김학철전집4-태항산록-(수필)한 녀류작가

더좋은래일 | 2024.05.10 14:13:26 댓글: 1 조회: 139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67490


수필


한 녀류작가


3월 3일 밤저녁에 느닷없는 지급전보 한통을 받고 우리 내외는 불안스러운 얼굴을 마주보았다. 밤에 들이닥치는 전보가 희소식일리 없다는 속된 철학을 우리는 믿고있었기때문이다. 뜯어보니 아니나다를가

<<정령위독진명(丁玲病危陈明)>>

이런 여섯 글자가 마치 여섯개의 송곳끝처럼 우리의 눈속으로 뛰여들었다. 정력의 남편 진명이 친 전보였다. 그리고 24시간이 채 못되여 우리는 정령이 이 세상을 떴다는것을 전파를 통하여 알게 되였다(부고는 며칠후에 받았다).

그러고보니 81년 여름 연길에서 가졌던 그녀와의 짧은 몇차례의 접촉이 결국은 영원한 결별로 되여버렸다. 그때 우리 집에서 정령부부와 우리 부자는 스물 몇해만에 마주앉아 피차의 소경력을-겪어온 고난의 력사를-이야기하였다.

80년 12월에 내가 무죄선고를 받고 명예회복을 하기전까지는-나의 의사를 존중하여-정령은 우리 아들 해양이하고만 서신왕래를 하였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사이에는 하고싶은 말이 쌓이고 또 쌓였었다.

정령은 우리가 북경에서 살 때, 당시 서너살 먹었던 해양이를 안아주면서 <<쑈하이양(小海洋)>>이라고 불렀었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 손자 시월이를 보고도 웃음의 소리로 <<쑈쑈하이양(小小海洋)>>이라고 불렀다.

내가 정령더러 그동안 줄곧 모스크바방송이 정령, 애청, 풍설봉을 성원하는것을 알고있었느냐고 물어본즉 정령은

<<알구있었지, 라지오를 갖구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방송을 들을적마다 난 가슴이 더 달랑달랑했었지 뭐야.<타먼자이빵따오망(他们在帮倒忙)> 한다구 말이야.>>하고 쓴웃음을 웃었다.

하긴 국외로부터의 성원이 그녀의 립장을 더욱더 고난하게 만들어주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우리는 피차에 다 20여년 고난속에서도 반드시 인민의 품속으로 돌아가게 될 날이 오리라는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는것을 알고-새삼스레 마주보며 장쾌한 웃음을 웃었다. 우리는 피차간 소식을 모르고 살면서도-견해만은 완전히 일치하게-당의 일시 비꾸러진 로선과 당 본래의 바탕을 혼동하지 않고 뚜렷이 갈라놓고 보았던것이다. 우리는 다같이 20여년의 긴 암흑속에서도 맑스주의자로서의 방향을 잃지 않았던것이다.

정령이 석후에 돌아갈 때 허리를 잘 구푸르지 못하므로 우리 해양이가 얼른 앞으로 나와 신발의 끈을 매여드리니 정령은

<<그전에 내가 네 신끈을 매주었는데... 인젠 그 반대로구나.>>

하고 웃었다. 그 웃음은-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추어지지 않는-허구픈 웃음이였다.

이튿날 영빈관 휴계실에 다시 모였을 때 정령은 동행인 루적이(楼适夷, 인민문학출판사 고문)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두 사람에 여섯다리>>라고 놀려주고 깔깔 웃었다. 년로한 루적이는 개화장을 짚어서 다리가 셋이 되고 그리고 나는 외다리에 쌍지팽이를 짚어서 역시 세다리가 되였었기때문이다.

이듬해 가을, 연변자치주 성립 30돐 때, 정령은 그 딸 조혜(祖慧)가 오는 편에 상하권으로 된 <<호야빈(胡也频)선집>>과 "쑈쑈하이양"을 주라는 쵸콜레트 한상자를 보내왔었다. 호야빈은 30년대에 국민당에게 체포되여 총살당한 좌익작가로서 정령의 전남편이다. 그러니까 그 아들 조림(祖林)의 생아버지인것이다. 정령은 지난달의 동지이며 또 전우였던 전남편의 글들을 정성껏 정리, 출판하여 세상에 남긴것이다.

1952년에 옹근 한여름을 정령내외와 우리는 이웃하여 살았다. 당시 북경 이화원-서태후의 별궁-만수산기슭에 전국문련의 별장 두채가 있었는데 그 하나를 운송소(云松巢)라고 하고 또 하나를 소와전(邵窝殿)이라고 하였다(당시는 아직 작가협회가 성립되지 않았었다). 정령내외가 들어있는 운송소와 우리가 사는 소와전은 자그마한 정자 하나를 사이둔 아래웃집이였으므로 피차간 래왕이 잦았었다.

<<인물을 써야 해, 인물을. 이야기를 엮지 말구... 인물을 써야해, "홍루몽"에 나오는 그 숱한 인물들이 다 살아서 아직두 우리 눈앞에서 움직이구있잖은가. 인물의 성격을 부각하잖은 소설은... 실패작밖에 더될게 없어.>>

이와 같이 정령은 거듭거듭 나에게 강조하는것이였다.

하루는 내가 무엇을 쓰다가 무심코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우리 집 소와전-아름드리목이 하늘을 가리는-마당에 웬 낯선 사람들이 여럿이 들어와 서성거리고있었다. 공원안에 있는 집이였으므로 유람객들이 일쑤 드나드는 까닭에 나는 례사로이 생각하고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한동안이 잘 지나서 또 어떡하다 밖을 내다보니 앞서 들어왔던 유람객들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다 사라지고 그 대신 만면에 웃음을 띤 정령부부가 우리집 마당으로 들어오고있었다. 운송소의 정문은 있어도 쓰지 않고 다들 옆문으로 드나드는 까닭에 자연 우리가 사는 소와전의 마당을 지나다니게 되였었다.

내가 심심파적으로 마주 나가며...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느냐고... 그저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더니 정령은

<<고대 우리 집에 오셨던 손님을 바래구 들어오는 길이야.>>

하고 새삼스레 남편하고 둘이서 즐거운 웃음을 웃었다.

<<어떤 손님인데요?...>>

하고 내가 재쳐 물은즉 정령은 상글거리며 무슨 비밀이라도 가르쳐주듯이 목소리를 푹 낮추어가지고 내게다 귀띔해주는것이였다.

<<모주석, 모주석... 모주석이 오셨댔어. 지금 곤명호에 배를 타러 나가셨으니... 빨리 나가봐요. 해양이랑 해양이 엄마랑... 얼른요!>>

(그러구보니 조금전에 소와전 마당에 들어와 서성거리던 사람들은 유람객이 아니구 모주석의 경호원들이였구나!)

나는 들었다보았다하고 안해와 아들을 불러내는 즉시 세식구 함께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락수당(乐寿堂)앞 배닿는 곳으로 달려갔다...

56년 가을 내가 북경에 갔을 때 초대소에서 정령의 집-다복항(多福巷) 16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통신원 소하(小夏)가 대번에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김학철동지가 아닙니까? 언제 오셨습니까?>>

하고 되묻는데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정령부부는 마침 사천을 가고 부재중이여서 섭섭하지만 나는 그냥 귀로에 올라야 하였다.

달포가량 지나서 북경으로 돌아온 정령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해양이앞으로 그림책 한 소포를 부쳤다는 사연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이듬해봄에 온 편지에는 그 늙으신 어머니가 세상 뜨신것을 슬퍼하는 절절한 사연이 적혀있었다(우리는 다들 정령의 모친을 <<퍼퍼(婆婆)>>라고 불렀었다).

그로부터 29년이 지나서 나는 그 <<퍼퍼>>의 딸-정령 본인의 슬픈 소식을 그 남편-진명에게서 받았다.

정령은 더운 사람이였다.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였다. 중국인민의 충직한 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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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201310 (♡.163.♡.89) - 2024/05/12 21:54:02

모주석이 나오네요 ㅋㅋ

잘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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