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물 ---- [2편]

진달래8 | 2014.06.09 14:12:23 댓글: 16 조회: 4324 추천: 15
분류실화 https://life.moyiza.kr/mywriting/2193296

아버지와 고향방문 끝내고 몇개월뒤,
부모님의 소원대로 오빠는 중점고중에 붙었고 나도 뒤따라 중학생이 되였다.
물론 아버지의 든든한 기둥과 물심량면 지지해준 어머니 뒷받침이 없었더라면
아마 우리도 더 열심히 공부 해야할 동력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90년대말, 한국바람이 거세게 불어칠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유혹을 물리치고 우리곁을 굳건히 지켜주셨다.

가끔 친구들이 한국 학용품이나 예쁜 한국옷을 입고 다닐때면
어린 마음에 부러웠던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나도 한국에 부모나, 친척이 있었더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지않아 있었지만
그럴때마다 마음속으로 수도없이 자신과의 타협을 시도했다.

(괜찮아. 비록 너희들은 예쁜 한국옷 입고 좋은 한국 학용품 쓰겠지만
난 엄마.아빠가 골라주는 옷이 젤 예쁘고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젤 맛있고
무엇보다 든든한 엄마.아빠가 옆에 있어줘서 무엇보다 행복해.)

하지만 자식 둘을 공부시켜야 하는 만만치 않은 부담에도 불구하고
3살 차이였던 오빠와 나는 하필이면
오빠가 대학입시 시험을 칠때 나 또한 덩달아 고중입시를 맞이해야 했다.
어쩌면 아버지에게 본의 아니게 2배의 짐을 얹어주게 된 셈이다.

그도 그럴것이, 아버지는 젊었을때부터 어머니가 너무 고생 많으셨다고
도시에 이사오던 날부터 맞벌이를 접게 하시고 밖에 일은 혼자 도맡아 하셨다.
그뒤로 어머니는 전업 가정주부로 우리 세식구 뒷받침을 하셨으니
아마 그때로부터 우리집의 무거운 짐은 아버지 혼자서 등에 짊어지게 되셨다.

하여 보험회사에 출근하셨던 아버지는
낮이면 열심히 뛰여다니면서 고객에게 보험선전을 해야 했고
밤이면 야시장에 나가서 자그마한 품목으로 품팔이를 하셨다.
날씨도 좋고 잘 되는 날에는 100원,200원 운수좋게 벌어 들였고
싸늘한 날엔 몇시간 앉아 있어도 먼지만 풀풀 날릴 뿐이였다.

그러다 어느날 아침,
거실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깨여나보니 아버지는 나갈 준비를 하시는것이였다.
운동하러 가시나 싶어서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며칠째 아버지의 아침은 새벽에 시작되였고
혹시나 아침 단련이라면 같이 따라나서고 싶었는데
결코 따라나서지 말라면서 화까지 내신다.
나중에 어머니를 통해 들었지만
아침시장에 좋은 자리가 생겨 거기서도 품팔이를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물정 알리가 없었던 나는 아버지를 전부 이해할수는 없었다.

어쩌면 사춘기에 들어섰던 나에겐 번듯한 직장과 고정적 월급이 있으면서도
아침/저녁으로 시장 나가서 물건을 팔아야 했던 아버지가 창피해서였다.

비록 넉넉한 형편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쫓겨나지 않을 집이 있고
굶지 않을 삼시세때가 차려지는 우리집인데
굳이 밤낮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 필요가 있었을지 싶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그저 아버지의 지나친 욕심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몇개월 흘러,
우연한 기회에 야시장에 놀러갔다가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채
길양옆 바닥에 쭉 벌려있는 노점상들이 파는 아기자기한 물품에 정신팔려 가는데
<영이야 ~> 하는 부름 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아버지셨다.

평시에 하얀셔쯔에 넥타이를 반듯이 하시던 아버지가 아닌
허줄한 티에 호주머니가 많이 달린 카키색 쪼끼를 입으시고
허리엔 검은 가방을 두르신 아버지의 모습은 여전한 노점상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낯설기만 하고 창피하기만 했다.
친구들이 갔으니 다행이지…
아버지의 이 모습을 봤더라면 아마 한동안 학교 다니기도 싫었을것 같았다.

아버지가 장사하는데는 본의 아니게 처음 와본 셈이다.
옆에 아저씨,아줌마들은 딸이냐고 한결같이 물으신다.

<야,맞소,내 딸이요.>

<어머머, 딸이 정말 기특함다. 생긴것두 어쩜 이리 온천하게 생겼담까?
우리집 큰아는 내 이런일 한다구 창피하다구 피해 다니는데.
로찐(老金)은 정말 좋겟음다. 아버지 자기네 위해 고생하는거 알구 이렇게 와서 도와두 주구.>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라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아버지의 모든 행동들이 한 가정을 보다 나은 환경에서 지키고 싶은 희생인것을 알면서도
창피하다는 이유로 '굳이 이정도까지?' 라는 되지도 않는 사유를 붙이고
아버지를 외면했던 내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이고 원망스러웠다.

그날 나는 밤잠을 설쳤다.
진정 창피한것은 아버지가 아닌 나 자신이였다.
아버지가 우리를 위하여 8시간도 아닌 아침, 저녁시간까지 아낌없이 팔아가면서
집안의 기둥을 든든하게 세우시고 있으셨는데 그걸 알아봐주지는 못할 망정
아버지의 모습이 창피하다고 외면하고 부정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였다.
나는 아버지의 아낌없는 사랑에 고맙기도 했고 그런 아버지가 있음으로 너무 든든했다.


그뒤로 주말마다 운동한답시고 아버지가 계시는 아침시장도 자주 나갔었고
저녁에는 별일 없으면 아버지가 품팔이 하시는 야시장에 들러 일손을 도와주곤 했다.


<로찐 좋겠오. 딸이 또 왔구나. 에이구 착하기두 해라.
나두 영이같은 딸이 하나 있고 싶다야. >

한번씩 아저씨,아주머니가 부러운 시선을 보낼때마다 아버지는
전혀 내색을 비추지 않고 그저 웃어 보이군 하신다.
어쩌면 우리딸 기특하다고 칭찬도 해줄만 한데
아버지는 늘 칭찬을 아끼셨고 자식들한테 겸손하라고 배워주셨다.

그 겸손을 몸소 배우기까지 참으로 많은 심리투쟁도 함께 겪어야 했다.
99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기쁜 심정으로 집에 갈때면
<못한 애들과 비교하지 말고 백점 맞은 애와 비교해>라고 따끔하게 일러줬고
부단한 노력끝에 100점짜리 시험지를 보란듯이 으쓱하며 척 내밀때면
<앞으로 계속 100점맞게 노력해라>라고 하늘을 치솟는 교만을 쭉 내리 깔아주셨다.


비록 자식들 앞에서는 칭찬을 아끼고 또 아끼셨지만
행동만큼은 사랑을 듬뿍 담아 표현해주셨다.

매번 일손을 돕겠다고 시장에 찾아갈때마다 손에 먼지가 묻는다며
깨끗한 곳에 앉혀주시고는 내가 좋아하는 빈대떡이며 꼬치를 간식거리로 사주시곤 했다.
그리고 갈때마다 똑같은 그 한마디를 남기셨다.

"영이야, 이젠 오지 마라."

그렇게 아버지는 추우나 더우나, 비가오나 맑으나를 막론하고 아침,저녁시장을 다니셨고
다른때 같으면 중앙뉴스 끝나면 바로 잠자리에 드시던 아버지가
밤자습이 끝나 가로등도 없는 골목길을 혼자서 다닐 딸애가 걱정되여
매일마다 9시면 어김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대문앞에 데릴러도 와주셨다.
그것도 비가오나 눈이 오나 막론하고 말이다.

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화려한 말로 표현은 하지 않으셨지만
늘 가슴으로 우리 자식들을 품어주시고 사랑해주셨다.


어느 여름방학,
나도 나름 컸다는 생각에 고생하시는 아버지,어머니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기도 했고
혼자서 돈 벌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아마도 아버지의 영향이 크셨나보다.

그리고 나의 뜻밖의 결정에 극구 반대하시는 어머니와
<그래 한번 생각한대로 해봐라>라고 지지하는 아버지 두갈래 패로 나뉘였다.

16살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이집 저집 미성년자라고 장난치냐고 문밖으로 쫓기워 나다가
마지막 희망을 안고 소머리 국밥집에 들어서게 되였는데
로반냥은 처음으로 나한테 왜서 돈 벌겠다고 나섯냐는 질문을 하신 분이셨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아버지,어머니 도와 나도 한번 돈을 벌어보고 싶다고 하니
자기한테도 나만한 딸이 있으니 기특하다며 한번 나와 해보라는것이다.
그렇게 겁도 없이 나는 시장 모퉁이에 자리잡은 소머리 국밥집에서
16살, 내 생에 첫 돈벌이를 시작했다.

기대와 설레임으로 잔뜩 북받쳐 아침 첫출근은 그야말로 활기차게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것은 내가 생각한것처럼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는 않았다.

철판으로 곱돌에 담긴 소머리 국밥을 한꺼번에 6개씩 놓아주시는데
나름 튼튼한 신체라고 생각했는데 팔이 끊어질것만 같았다.

눈물 흘리며 깟던 마늘이나, 구석구석 진 기름때를 닦는건 그래도 견딜만 했지만
탈많고 말많은 손님을 만날때마다 어린 마음에 첨으로 겪는 수모들이 제일 힘들었다.

<피두 안 마른 어린것이....> 어쩌고 저쩌고 ...
<여기와서 술이나 따라봐...> 라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며
술취해 들어와 시비를 걸면서 자꾸만 쌍소리 해대는 손님들이며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달아나고 싶은 심정이였지만
무엇에서 우러러 나온 책임감이였는지 용두서미로 일을 끝낼순 없었다.


저녁무렵쯤 로반냥은 마늘을 까면서 좀 앉아 휴식하라고 했다.
점심부터 시작해서 숨돌릴가 하면 손님이 들어오고...
좀 휴식할려고 앉을가 하면 저녁시간이 시작되고 제대로 휴식한적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마늘을 까다가 오늘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노라니
서러움이 울컥 치밀어 올라 눈가엔 눈물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한편으론 고생한다고 가지말라고 반대하셨던 어머니가 보고 싶었고
한편으론 고생할거 알면서도 잡아주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미워서였다.
그리고 지금 앉아서 마늘까고 있는 내 자신도 초라해 보였다.

바로 그때
식당앞에 웬 오토바이 발동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셨다. 꿈은 아닐가 싶어 다시 보니 아버지셨다.

아버지를 보니 참았던 눈물이 왈왈 쏟아져 나온다.

로반냥은 참 좋은 분이셨다.
처음부터 나를 복무원으로 쓰실 생각이 아니셨다.
부모님 도와 돈벌겠다는 그 마음이 기특하여
이곳저곳 치이기만 하던 내 사정을 듣고 나를 흔쾌히 받아주셨던 것이다.

로반냥은 아버지와 잠간 얘기를 나누고 들어와서
하루 일당이라면서 13원을 나의 손에 쥐여주신다.

<영이야. 그만하고. 밖에서 아버지가 기다리시니 얼른 집에 가.
그리고 이건 많지 않지만 오늘 니 두손으로 번 돈이다. 공부 잘해야 한다.>

나는 13원을 손에 꼭 쥐고 눈물 범벅이 된채 아버지 품에 안겼다.
아버지는 토닥토닥 내 등을 두드려 주시면서 '고생했다 우리딸'이라고 하시는것 같았다.

그날 아버지는 울먹이는 나를 데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양꼬치 먹으러 갔다.

<오늘 힘들었지?>

< ... ... ... ... ...> (끄덕끄덕)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 말도 못한채 머리만 끄덕였다.

<아빠는 우리 딸이 부모부담 덜어주겠다고 하니깐 정말 기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단다. 이렇게 힘들거 알면서 잡아주지 않은 아빠가 미웠지?>

< ... ... ... ... ...> (끄덕끄덕)

<그래도 우리 딸이 오늘 하루 돈주고도 바꾸지 못할 좋은 경험을 했고 많이 배웠을거라 믿는다.>

< ... ... ... ... ...> (끄덕끄덕)

<그럼 됐다. 앞으로 돈은 아버지가 열심히 벌테니 너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된다>

<예,알았음다. 돈 버는게 이렇게 힘든줄 몰랐음다...>

나의 첫 사회 도전기는 하루에 불과했지만
그때에야 비로소 나를 지지해 주셨던 아버지의 참뜻이 무엇이였는지를 심심히 깨닫게 되였다.

지금도 그 13원은 소머리 국밥집 냄새가 흠뻑 묻은채로 고스란히 나의 일기장에 모셔두고 있다.
비록 13원은 어진간히 밥 한때 떼우기 힘들만큼 가치가 외소해졌지만
그 13원은 금전 액면의 가치를 떠나 가히 무엇으로도 가늠할수 없는
한 사람의 금전관을 수립하는데 큰 역할을 심어주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가르친 험난한 인생길에서의 보귀한 인생수업이였고
잊지못할 소중한 경험이였으며 또한 나 자신에게 있어서
첫번째로 얻은 인생의 값진 "재부"였기도 했다.


아버지는 늘 나의 본보기셨다.
고중입시 지망을 쓸때 일이다.
아버지의 소원은 내가 교원이 되는것이였다.
그것도 그럴것이 글자도 모르는 꼬맹이가 이불장에 있는
베개를 전부 내려 한줄 세워놓고 벽에다 글자도 아닌 오리발도 아닌
문자를 가득 적어놓고 선생님 시늉을 한것이 그 계기가 되였던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중입시를 앞두고 치뤄지는 월고시험마다 일반고중에 갈수 있는 점수였고
다른 학생들과 같이 평범하게 고중붙고 대학가고 싶었을 뿐이지
혼자 집을 떠나 동떨어진채 숙사생활을 해야하는 그 학교가 싫었다.
많은 갈등이 오갔다.

거기는 다른 고중과 달리 시험치기전에 면접부터 진행했다.
면접에 떨어지면 그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나는 꼼수를 쓰기로 했다.

면접이 있던 날 비가 추척추척 끝이없이 내리고
사람도 어찌나 많은지 면접 줄도 엄청 길게 서있었다.

줄을 서있으면서도 집으로 가고 싶은 맘이 간절했던 나는
오만가지 나쁜 생각에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하지마 오히려 아버지는 풀이 죽어있는 나를 지켜보시고
열정적으로 달아가서 면접 상황도 알아봐 주시고
교도처 처장샘과 학교생활도 료해해 주시고
비오는 쌀쌀한 날씨에도 올리뛰고 내리뛰셔서 그런지
아버지의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아버지는 너의 꿈을 아낌없이 응원해줄게.>

면접 들어가기전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콧마루가 찡해남을 느꼈다.
어쩌면 아버지는 어릴적부터 갖고 있던 딸의 꿈을 응원하고 지켜주고 싶어 하셨다.
잠간 잊고 지냈던 나의 꿈을 다시 일깨워준 아버지의 마음에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좀 전까지만 해도 나는 면접 들어가면 심사샘께 제발 불합격 매겨 달라고 애원해야지 싶었는데
아버지가 전하는 희망의 메세지와 진심어린 응원을 보노라니 생각이 바뀌였다.

무엇때문에 지원하게 되였냐는 심사선생님 질문에 처음부터 있는그대로
아버지의 소원이였지만 지금은 나의 어릴때 꿈이자 내가 가야할 목표라고
흐르는 눈물 참으면서 당당하게 대답했던것 같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학교생활은 시작되였다.
첨엔 낯선 숙사생활에 밤잠을 설치며 집생각만 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학교는 봉페식 교육이라 한숙사에 8명씩 기숙사 생활을 해야했고
아침이면 군인처럼 아침체조, 저녁이면 저녁자습.
그리고 흑판글 쓰기 참으로 처음엔 적응하기 힘든 생활들이였다.

그럴때마다 내가 가겠다던 고중에 보내주실것이지.
매몰차게 나를 숙사에 등떠 밀어주셨던 아버지가 밉기도 원망스럽기도 했다.

허나 차츰차츰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나는 5년이란 시간을 거기에서 보내게 된다.
그리고 우수졸업생으로 졸업하면서
오늘의 나를 있게해준 아버지에게 정말 감사했고
거기에서 보낸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소중한 내 인생의 한페지로 장식되였다.

아버지의 근검절약은 자식들한테도 그대로 유전되였다.
아버지는 오토바이 타시고 길을 가시다가도
페트병이 보이면 잠간 멈춰 바구니에 담고 가시는 분이셨다.
그리고 페트병이며 낡은 책장으로 판 돈을 모아 책을 사주시곤 하셨다.

어느날부터인가 반급에서 콜라 마시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나는 거리낌없이 빈깡통을 모으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10~20개씩 모아 집에 갖고 갔으며
운동대회날이나 반급 모임이 있을때면 아예 한마대씩 메고 갔다.

가끔 친구들이 상처되는 말도 툭툭 던지군 한다.
너네 집에 돈이 없어 이렇게 모으냐고?
하지만 그럴때마다 나는 더이상 창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은 돈은 전부다 나의 책을 사는 투자에 들어가기도 했다.

나의 깡통 모으기도 짭잘했는데 한반이였던 탄위 친구의 발견으로
학교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조직하는 바람에 일단락 되고
나는 짬짬이 오후 휴식시간이나 주말시간을 이용하여 소학생 과외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달에 100원 200원 모은 과외비를 생활비에 보태며 지내왔다.

한참 멋부리고 허세 떨고 다닐 나이에 가끔은 못된 맘을 먹을때도 많았다.
넉넉한 집안의 자제들은 주말이면 쇼핑하고
놀러 다니고 먹고 싶은것도 갖고 싶은것도  주저없이  썼지만
나는 늘 점심이나 저녁을 1.5원에 공제해야 했다.
그래서 장학금이 내려오지 않을때 나의 반찬은 흔히 地三鲜이였다.
그게 학교식당 반찬중에 제일 쌋으니 말이다.

물론 학교때는 지겹게 먹었던 地三鲜이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맛이 그리워
동북 요리집 갈때마다 빼놓지 않고 주문하는 반찬이 되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넉넉하지 못한 가정현편임을 잘 알면서도
한편으론 나와 정반대로 여유롭고 넉넉한
눈에 훤히 보이는 부러운 상황들을 결코 부정할수 없는
모순된 심리를 갖고 있는 마지막 10대를 방황하면서 보내게 된다.
그럴때마다 나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졸업하면 꼭 나의 두손으로 돈벌어
내가 하고 싶은일, 먹고 싶은것, 입고 싶은것 맘껏 사고
부모님도 지금보다 편안하고 넉넉하게 해드릴거라고...

그렇게 나는 5년이라는 시원섭섭한 시간을 마무리 지으며 졸업을 맞이했고
불안과 방황의 변두리에서 허덕이다가 얼떨결에 사회진출의 스타트선에 들어섰다.


나에게는 두갈래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가 마련해준 철밥통 자리에 들어가는것.
다른 하나는 외지에 나가서 홀로서기 하는것.
하지만 자기 능력으로 되는것은 후자밖에 없었다.

첫자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편제기회가 극히 적었던 그때 아무리 인맥이 있다고 해도
철밥통이 차려지려면 적지 않은 돈을 팔아야 했다.
어쩌면 빛나는 태양뒤에 암흑한 그림자 같은 상황들이였다.

나는 이미 졸업까지 한 마당에 아버지 어깨에 무거운 짐을 덜어주진 못하더라도
더 얹어드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몇날 며칠 고민끝에 나는 더이상 내가 좋아하는걸 위해 부모님을
희생시킬수 없다는 생각에 하나라도 젊었을때 남방도시에 가서
나의 힘으로 경험도 쌓고 능력도 키우려고 마음 먹었다.


아버지는 내가 집을 떠나는 날도
주말이라 잠간 물건 파시러 갔다가 오토바이 타시고 공항에 나오셨다.


밤낮없는 품팔이로 아버지의 손은 나무 뿌리처럼 터실터실 해졌고
얼굴도 태양의 끄스름에 거멓게 타셨다.

그런 아버지를 공항에서 마주한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려 아버지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늦지 않았냐고 달려와서 나를 꼭 안아주시고는 바로 등돌려 뒤돌아 서신다.

아버지가 안아주실때 어깨의 들썩임을 나는 느꼈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물이 떨어질무렵
딸아이한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었던 아버지는 등을 돌리셨다.
돌아선 아버지의 등은 축 처진데다가 힘이 없으셨다.

<잘가라...얼른 들어가라...도착하면 전화하구...>

아버지는 끝내 얼굴을 보여주시지 않은채 당부만 남기시고 걸어가신다
그리고 등을 돌린채 공항 출입구를 향해 가시면서 잘가라고 손만 흔드신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버지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딸은 한번 집을 떠나면 다신 돌아오기 힘들다는 말을 늘 하시던 아버지셨는데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채 아버지와 나는 가슴으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눠야 했다.

(아버지 이 딸이 옆에 없더라도 건강하게 잘 계세요.
딸이 꼭 돈 많이 벌어 호강시켜 드릴게요.)

공항 휴계실에 들어와서도 눈물은 멈추지가 않았고
비행기에 올라서도 집을 떠난다는.. .고향을 떠난다는....아버지 어머니 품을 떠난다는 현실앞에
자꾸만 수많은 필림들이 재연되면서 한달 흘려야 할 눈물을 그 순간에 다 흘렸던것 같다.


그리고 남방도시에 도착하고
안부전화를 걸었더니 아버지는 잘 도착했냐는 말만 하시고는
흐느끼시는지 이내 어머니를 바꿔주시는 것이였다.

<영이야 말두 말라, 너네 아버지 글쎄,
애같던 딸이 다 커서 집 떠나 자기절루 돈벌겠다구 고생할거 생각하니깐 자꾸 가슴 아프다구
오토바이타구 공항에서 집으 오는 길에 쭉 통곡하시면서 왔다.에이그>


그건 내가 본 아버지의 두번째 눈물이였다.
철없고 애지중지 품었던 딸이 아버지의 둥지를 벗어나
하늘을 향해 날겠다고 허우적 거리고 있음을 북돋아 주시는 응원의 눈물이였고
날다가 자칫 치일가봐, 상처받을가봐, 고생할가봐 걱정해주시는 걱정의 눈물이기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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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후기

1편을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며 동시에 2편
글이 길어졌지만 끝까지 읽어주시고 이 시간을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지켜주고 싶으셨던 딸의 꿈은 현실에 치여 이뤄지지 않았지만 
아직 그 꿈은 사라지지 않은채 가슴속에 씨앗으로 남아
먼훗날 어떤 방식으로던 실현 될거라는 희망을 안아 봅니다.

칠갑산산마루에님이 100포인트 선물하셨습니다.
추천 (15) 선물 (1명)
IP: ♡.31.♡.39
newsky (♡.239.♡.170) - 2014/06/09 15:35:37

늘 묵직한...아버지의 사랑은 그런것 같네요.
이글을 보면서 저도 제뒤바라지하시느라 많은 고생하신 아버지생각에 눈물이 나네요.
글 곳곳에서 아버지의 딸사랑이 느껴지네요.참으로 야무지고 똑똑한 딸로 키우셨으니 한껏 자부하셔도 되겠어요.
주인공님의 글솜씨도 대단하셔요,추천하고 갑니다~

진달래8 (♡.31.♡.39) - 2014/06/09 17:20:42

newsky님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어머니 사랑은 흔히 봄이나 여름처럼 따스하게 우리를 감싸주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반대로 혹독한 겨울도 잘 이겨낼수 있는
강인함으로 우리를 감싸주는게 아닌가 싶네요.

북위60도 (♡.60.♡.229) - 2014/06/09 16:05:44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한번 새겨보면서 돌아가신지 20여년되신 아버지가넘 보고 싶네요..
저도 님처럼 너무 인자하시고 유식하신 아버지를 마음속에 깊이에 묻어두고 있습니다.
참 아버지 사랑을 너무 실감나게 잘쓰셨습니다.님의 꿈은 꼭 이루실것입니다.

진달래8 (♡.31.♡.39) - 2014/06/09 17:29:43

늘 아버지에 대한 글을 적고나면 가슴이 먹먹해 납니다.
과묵하셨지만 무엇보다 딸아이를 사랑해주셨던 아버지가 있었으므로
북위60도님도 저처럼 행복하셨을거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방울7 (♡.136.♡.183) - 2014/06/09 18:58:08

좋은 글을 잘 밧슴니다~ 다음 집을 기대할게요~`

진달래8 (♡.123.♡.52) - 2014/06/11 13:35:41

물방울7님 감사합니다.

WENBIN (♡.203.♡.14) - 2014/06/10 08:37:05

말없이 자식에게 쏟아붓는 아버지의 자상하고 내심 뜨거운 사랑이 그대로 묻어나네요.
부모님께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님의 당찬 모습 돋보이기도 하구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추천 드리면서 담집 기대합니다.

진달래8 (♡.123.♡.52) - 2014/06/11 13:45:06

WENBIN님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사랑은
평생을 들여도 보답할수가 없을것 같네요.

한단 (♡.231.♡.17) - 2014/06/11 13:09:34

표현은 안했지만.. 우리 아버지도.. 이 아들을 정말 묵묵히 응원해주셨지요.. 많이 미안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좋아하는것고 같이 하고... 가슴이 먹먹 합니다.

진달래8 (♡.123.♡.52) - 2014/06/11 13:52:06

한단님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릴땐 아버지가 우리 손을 꼭 잡고 이끌어주셨다면
이젠 우리가 아버지 팔짱을 꼭 끼고 함께 걸을때도 된것 같네요.
함께 열심히 삽시다. ^ ^

들래 (♡.69.♡.81) - 2014/06/13 15:30:14

삼실에서 글 보메 눈물이 절로 줄줄 흘러내려서 ...
아재 아버님처럼 우리 아버지도 멋진 분이셨는데...
그냥...진짜 많이 보고싶네요...
있을때 잘해드리세요...추천~~

진달래8 (♡.112.♡.91) - 2014/06/16 13:32:00

민들레아재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계셨어요? ^ ^
이렇게 자작글까지 들려줘서 감사합니다.

우째야 (♡.72.♡.222) - 2014/06/27 15:43:18

좋은 부모 만낫슴다,,,

진달래8 (♡.25.♡.239) - 2014/06/30 10:26:58

ㅋㅋ 아무튼 이제라두 들려줘서 땡큡니다.
지금까지도 느끼지만 전 참 복많은 아이인것 같아요.

련꽃사랑 (♡.100.♡.86) - 2014/07/02 18:05:31

자식들을 위해서 힘을 내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눈귀가 젖어 납니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맘을 잘 알아봐 주는 착한 맘을 지닌 님의 소행도 넘 보기 좋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진달래8 (♡.25.♡.108) - 2014/07/04 10:51:37

고맙습니다.

련꽃사랑님 글도 봤는데 가족의 힘이란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였어요

큰 고비도 꿋꿋이 넘겼으니 이젠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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