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밤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51)

개미남 | 2019.06.18 10:21:16 댓글: 0 조회: 572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3938993
유성의 인연/히가시노 게이고


2 - 26.

고이치에게 하기무라의 연락이 들어온 것은 가시와바라의 자살로부터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하코자키에 있는 호텔 라운지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연락이 늦어서 미안해." 하기무라가 사과를 해왔다. "보강수사에 시간이 걸려서 말이지. 매스컴의 눈이 있어서 매사에 움직이기가 힘드네."
"매스컴에서 난리가 났으니 분명 힘드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시효 직전의 강도 살인사건의 범인이 자살. 게다가 수사를 직접 담당했던 경찰이 범인이라고 하니 매스컴이 떠들어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아직 보도되지 않았다.
"고백의 글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뉴스에서 알게 된 것을 고이치는 물어보았다.
"자살하기 직전에 요코스카 경찰서에 그가 전화를 해왔어. 자기 책상 맨 아래 서랍에 들어 있는 봉투를 서장에게 갖다 주라는 내용이었어. 전화를 받은 친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는데, 대답 없이 전화가 끊겼다는군." 하기무라는 고이치를 보았다. "그 전화, 자네와 함께 있을 때 걸었을 텐데?"
"네. 생각나요. 나와 이야기하기 전에 앞서 걸어가면서 전화를 했었어요. 그때는 그런 내용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 봉투 안에 고백의 글이 들어 있었어. 본인이 쓴 것이 틀림없어. 진범은 자신이라고 밝히는 내용이야. 아무래도 오래전에 그 글을 써둔 모양이더라고. 다른 사람이 이 글을 읽을 때쯤에 자신은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적혀 있었으니까 유서도 겸한 셈이지."
그 고백의 글 덕분에 고이치는 가시와바라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자살 직후에 상당히 장시간에 걸쳐 경찰의 취조를 받기는 했지만.
"도가미 씨에게서 받아온 우산에서도 그의 지문이 나왔어. 이걸로 마침내 <아리아케> 사건은 종결이 됐네. 시효 직전에. 단 피의자 사망이라는 형태로 말이지."
"그 고백의 글을 좀 볼 수는 없을까요?"
"전화로도 말했는데,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단지 질문에는 대답해줄 수 있어. 뭘 알고 싶지?"
"그야 물론 동기죠."
"거기에 대해서는 자네도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닌가? 고백의 글에 적혀 있던 내용은 자네가 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와 큰 차이가 없어."
"하지만 돈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내가 그 사람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짓을 할 타입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고이치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기무라는 커피를 후르륵 마신 뒤, 후우 하고 긴 한숨을 토했다. "아들 때문이야."
"예?"
"헤어진 부인을 찾아가서 사건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왔어. 그 이야기에 의하면, 가시와바라 씨‥‥‥, 아니, 가시와바라와의 사이에 아들이 있었는데 선천성 질병을 앓았대. 수술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병이야. 근데 수술하려면 큰돈이 필요했어. 그래서 그 부인이 전 남편에게 울며 매달린 거지. 전 남편은 자기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했고. 실제로 며칠 뒤에 2백만 엔을 은행을 통해 보내왔었대." 하기무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고이치를 보았다. "이걸로 사정은 대충 알았겠지?"
고이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더 커진 느낌이었다. 도박이나 여자관계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서라는 이유 때문이라면 그나마 낫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오로지 범인을 증오하고만 싶었던 것이다.
"그 사람, 아들이 죽었다고 했는데요?"
"그래. 죽었어. 수술했는데 결국 목숨을 건지지 못했어." 하기무라가 말을 이었다. "천벌을 받은 거 아니겠어?"
고이치는 눈썹을 찌푸리며 하기무라를 쳐다보았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주세요."
"아, 미안." 하기무라는 곧바로 사과했다. 스스로도 무신경한 소리를 했다고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도 마음이 좀 복잡해. <아리아케> 사건 수사에 관해서는 그 사람이 누구보다 열심이었어. 집념을 느꼈다고 해도 좋을 만큼.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모두 다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서였던 거야. 다이스케 군이 목격한 사람을 필사적으로 찾으려고 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어. 그 사람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발견해내고 싶었겠지. 그 한편으로는 비닐우산에 관한 탐문에는 소극적이어서, 이런 거 쫓아다녀봤자 소용없다는 말도 했어. 실은 그쪽이 자신에게 더 치명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나와 계속 연락을 취했던 것도 똑같은 목적이었을까요?" 고이치가 물었다. "우리가 뭔가 기억해내거나 뭔가를 알아내는 걸 경계하기 위해서?"
"글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한 가지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자네들을 걱정했던 건 진심이었다는 거야."
"부모를 죽여놓고 그 자식들은 걱정해주었단 말인가요?"
"보상‥‥‥? 아니, 그런 건 아니겠군. 어쩌면 그 사람의 내면에는 두 명의 인간이 있었는지도 모르지. 어린 자식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 그리고 부모가 살해된 어린 자식을 동정하는 사람. 그 두 사람이. 아니, 그저 얼핏 생각나서 해본 소리야." 하기무라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고이치를 보았다. "근데 봉투에 한 가지 더, 고백의 글이 들어 있었어. 또 다른 죄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더라고."
"또 다른 죄? 뭔데요?"
"금시계와 사탕 통에 대한 거. 그리고 도난 차량에서 발견된 DVD, 전복된 보트, 모래톱에서 발견된 유서 등에 대해서 모두 자신이 한 짓이라고 적혀 있었어."
고이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도가미 마사유키 씨에게 수사의 눈을 돌려서 시효가 성립되기까지 시간 벌기를 꾀했다. 라고 써뒀더라고. <아리아케> 사건을 고백하는 글하고는 필기구가 달랐으니까 다른 시기에 적어둔 것이겠지? 아마 최근인 것 같아."
고이치는 멍하니 눈만 깜빡거리다가 유리잔의 물을 마셨다. 복잡한 심경이 가슴속에 부글거렸다.
"경찰로서는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 일에 대해 조사에 나서는 일은 없을 거야. <아리아케> 사건은 이걸로 그만 마무리하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서 말이야."
하기무라가 지그시 응시해왔다. 고이치는 시선을 떨구었다.
어째서 가시와바라가 그런 글을 남겼는지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증거 조작에 대해 고이치 형제가 의심받는 일이 없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밖에 다른 질문은?" 하기무라가 물어왔다.
"아뇨‥‥‥.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 나는군요."
"그럴 거야. 나도 자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긴 한데, 지금은 관두기로 하지. 아마 큰 문제는 아닐 거야." 하기무라는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모두 다 끝났다. 그걸로 됐지?"
고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말 이걸로 다 끝난 것인지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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