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히가시노 게이고 (4)

개미남 | 2019.06.19 16:12:20 댓글: 0 조회: 700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3939860
악의/히가시노 게이고


4.

히다카의 죽음은 다음 날 조간신문에 벌써 실려 있었다. 어젯밤에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으로 봐서는 뉴스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을 것 같다. 요즘에는 11시를 넘어선 뒤에도 뉴스 방송이 있다.
신문에서는 간단한 제목이 1면 끝에 나왔고 사건의 상세한 내용은 사회면에서 다루고 있었다. 히다카의 집 사진이 큼직하게 실렸고 그 옆에는 잡지용으로 촬영했던 듯한 히다카의 얼굴 사진이 나와 있었다.
기사 내용은 거의 사실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단지 사체 발견에 대해서는 '집의 전깃불이 꺼져 있다는 지인의 통보를 받고 아내 리에 씨가 자택에 돌아가 본 바, 1층 작업실에 히다카 씨가 쓰러져 있었다'라고만 나와 있어서 독자들은 발견자가 리에 씨 한 사람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었다. 내 이름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신문기사가 전하는 바로는, 경찰은 우발적인 뜨내기의 범행과 평소 안면이 있는 자의 범행이라는 양쪽 방향으로 수사해나갈 전망이라고 했다. 현관문이 잠겨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범인은 작업실 창문을 통해 드나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신문을 덮고 우선은 아침식사 준비를 하려고 일어섰을 때 차임벨 소리가 났다. 시계를 보니 아직 8시를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이런 이른 시간에 사람이 찾아올 예정은 없었다. 나는 평소에는 별로 사용하는 일이 없는 작은 인터폰 수화기를 들었다.
"예."
"아, 노노구치 선생님이십니까?" 여자 목소리였다. 몹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런데요."
"아침 일찍 죄송합니다. XX텔레비전에서 나온 사람인데요. 어젯밤 사건에 대해 잠깐 여쭤볼 수 있을까요?"
나는 깜짝 놀랐다. 신문에는 이름이 나오지 앉았지만 텔레비전 방송국 사람들은 벌써 내가 발견자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아, 그게……."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생각했다. 경솔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신지?"
"어젯밤에 히다카 구니히코 씨가 자택에서 살해된 사건에 대해서 여쭤보려고 합니다. 부인 리에 씨와 함께 사체를 발견하신 분이 노노구치 선생님이라고 들었는데요. 그게 사실입니까?"
아마 와이드쇼의 여성 리포터인 것 같은데 아직도 나를 태연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무신경에 적잖이 김이 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어떻든 그렇게 물어보는데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예. 사실입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들의 흥분하는 분위기가 문 너머로 전해져 왔다.
"선생님은 무슨 볼일로 히다카 씨 댁을 방문하셨던 건가요?"
"아. 미안하지만 필요한 이야기는 경찰에 모두 했어요."
"히다카 씨 댁의 상태를 보시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리에 씨에게 연락하셨다고 하던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셨던가요?"
"경찰 쪽에 문의해주세요." 나는 인터폰을 껐다.
말로는 들었지만 텔레비전 쪽 사람들의 취재라는 건 역시나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어제 사건이 터진 터에 내 쪽에서는 아직 남 앞에서 이야기 따위를 할 심정이 아니라는 건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오늘은 외출하지 말고 집 안에만 있자고 마음먹었다. 히다카 가의 일이 마음에 걸렸지만, 사건 현장에 가까이 가는 건 어차피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있으려니 다시 차임벨이 울렸다.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나온 사람인데요. 아주 잠깐만 말씀을 들을 수 없을까요?" 이번에는 남자 목소리였다. "전국의 시청자들이 자세한 정보를 원하고 있거든요."
히다카의 죽음이라는 비극만 아니었다면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터져버렸을 듯한 과장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발견을 한 것뿐인데요."
"그래도 히다카 씨와 절친한 사이셨지요?"
"그건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자세히 말할 만한 건 없어요."
"그래도 아주 잠깐만요." 남자는 물고 늘어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고 집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는 이웃 사람들에게 폐가 될 터였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나는 인터폰 수화기를 내려놓고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마이크가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결국 오전 내내 매스컴의 인터뷰 공격으로 녹초가 되어버려서 아침밥도 변변히 먹지 못했다. 그렇게 점심이 지나고 와이드쇼를 보며 인스턴트 우동을 먹고 있으려니 화면에 내 얼굴이 크게 나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건더기가 목에 걸려 켁켁거리고 말았다. 오늘 아침에 찍어간 분량이 당장 방영되고 있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고 하셨는데, 노노구치 씨가 보시기에 히다카 씨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여성 리포터가 큼직한 목소리로 질문을 한다.
이 질문에 화면 속의 나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침묵의 시간이 의외로 길어 영상으로서는 지나치게 틈이 벌어졌다. 아마 편집할 시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주변에 있던 리포터들이 은근히 속을 태우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화면으로 보니 금세 느껴졌다.
"개성이 강한 친구였다고 생각합니다." 화면 속의 내가 드디어 말을 내뱉었다. "몹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꽤 냉혹한 면이 있어서 놀라기도 했죠.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런지도 모르지만요."
"냉혹한 면이라고 하시는 건 이를테면 어떤 일이었습니까?"
"이를테면……." 그렇게 말하고 곧바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금방 생각이 나지도 않고요. 그런 이야기는 지금 여기서 하고 싶지 않군요."
그때 내 뇌리를 스친 것은 히다카가 고양이를 죽인 일이었지만, 그건 공공방송에 내보낼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히다카 씨를 살해한 범인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십니까?" 몇 가지 적잖이 속물스러운 질문을 던진 뒤에 여성 리포터가 닳고 닳은 말을 물어왔다.
"특별히 없습니다."라는 게 내 대답이었다. 리포터들은 잔뜩 실망한 눈치였다.
그 다음에는 스튜디오의 사회자가 히다카의 지금까지의 작가 활동에 대해 해설을 시작했다. 그간 다양한 세계를 묘사해온 배경에는 작가 자신의 복잡한 인간관계가 영향을 끼친 게 틀림이 없다. 이번 사건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가. 그런 쪽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눈치였다.
그리고 최근에 히다카가 관계되었던 트러블로서 <수렵 금지구역>이라는 소설 건으로 이야기의 모델이 된 남자의 유족이 항의하고 있다는 것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 그 유족인 후지오 미야코가 히다카의 집을 방문했던 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한 듯했다.
사회자뿐만 아니라 우연히 오늘 게스트로 나오게 되었을 터인 탤런트까지 히다카의 죽음에 대해 제각기 생각나는 대로 떠들어댔다. 나는 어쩐지 지겨운 마음이 들어서 텔레비전 스위치를 꺼버렸다. 큼직한 사건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을 때는 NHK가 가장 좋겠지만 공교롭게도 히다카의 죽음은 국영방송이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할 만한 사건은 아닌 것이다.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 이것으로 몇 번째일까. 그래도 만에 하나 일거리에 관련된 연락이라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꼭꼭 수화기를 집어드는 것인데 지금까지 모조리 매스컴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네. 노노구치입니다." 나도 모르게 약간 무뚝뚝한 어조가 되었다.
"여보세요. 히다카입니다."
또렷한 그 목소리는 틀림없는 리에 씨의 것이었다.
"아, 예. 이것 참……." 이런 경우에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졸지에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뒤로 어떻게 지내셨어요?" 묘한 질문이었지만 그렇게 묻는 것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어젯밤에는 친정집에서 보냈어요. 여러 곳에 연락을 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도저히 그럴 만한 기운이 없어서요."
"그러시겠죠. 지금은 어디에?"
"집에 와 있어요. 오늘 아침에 경찰에서 연락이 왔는데, 사건 현장을 보면서 다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해서요."
"그건 끝났습니까?"
"네. 끝났어요. 경찰 쪽 분들은 아직 계시지만."
"매스컴에서 꽤 귀찮게 굴지요?"
"네. 하지만 출판사 사람들이랑 남편과 교제가 있었던 텔레비전 쪽 사람들이 와서 대응을 해주셔서 그나마 편하게 넘어갔어요."
"그러셨군요." 그건 참 다행이라고 말하려다 꿀꺽 삼켰다. 간밤에 남편을 잃은 미망인에게 할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노노구치 씨.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댁에 몰려들고 정말 큰 고생을 하셨죠? 제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출판사 사람이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정말 큰 폐를 끼쳤다 싶어서 전화 드렸어요."
"아뇨. 나는 괜찮아요. 취재 공세도 이제 어지간히 끝난 모양이니."
"정말 죄송해요."
진심으로 사과하는 말투였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 중의 하나일 텐데도 남을 걱정해주는 그 정신력에 나는 경복敬服했다. 강한 여자구나. 새삼 그렇게 생각했다.
"뭔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언제든 사양 말고 말씀하세요."
"아뇨. 남편 친척들도 있고 우리 어머니도 와주셨고. 저는 괜찮아요."
"그래요."
히다카에게 두 살 많은 형이 있고 그 형 부부가 나이 든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것 등을 나는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래도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연락 주십시오."
"고마워요.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일부러 전화해줘서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잠시 리에 씨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생각일까. 아직 나이도 젊고 친정집이 운송업을 하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풍족하다고 들었으니 생활하는데 부족한 건 없겠지만, 이번 사건의 충격을 딛고 일어서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리지 않을까. 무엇보다 히다카와 결혼한 지 이제 겨우 한 달밖에 안 된 것이다.
리에 씨는 예전에는 히다카의 소설을 사랑하는 열광적인 팬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 업무 관계로 본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그 뒤부터 개인적으로 사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어젯밤에 대단히 소중한 것 두 가지를 동시에 잃은 셈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는 남편, 그리고 또 하나는 작가 히다카 구니히코의 신작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외이드쇼에 나와 주셨으면 한다는 의뢰였지만 즉석에서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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