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밤

악의/히가시노 게이고 (5)

개미남 | 2019.06.19 16:14:00 댓글: 0 조회: 1251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3939861
악의/히가시노 게이고


5.

가가 형사가 찾아온 것은 저녁 6시쯤이었다. 또다시 매스컴 사람들이 찾아왔나 지겨워하면서 나가 보니 그였다. 하지만 혼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젊어 보이는 마키무라라는 형사와 함께 왔다.
"죄송합니다. 두세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뭔가 질문이 더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 자, 어서 들어와요."
하지만 가가 형사는 구두를 벗으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식사 중이셨어요?"라고 물었다.
"아니, 아직. 뭔가 좀 먹어볼까 하던 참이기는 한데."
"그러시면 밖에서 식사하실까요? 사실은요, 탐문수사로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아직 점심도 못 먹었습니다. 그렇지?"
가가 형사가 동의를 청하자 마키무라 형사도 곁에서 익살스러운 쓴웃음을 내게 보였다.
"아, 좋지. 그럼, 어디로 갈까? 이 근처에 돈가스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데 거기라도 괜찮겠어?"
"우리는 어디라도 좋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뭔가 퍼뜩 생각이 난 듯한 표정으로 가가 형사는 엄지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저 앞에 패밀리 레스토랑이 있었죠? 선생님이 어젯밤에 가셨다는 게 그 레스토랑입니까?"
"음, 맞아. 거기로 갈까?"
"그렇게 할까요? 거기라면 가깝기도 하고 커피도 리필이 되니까요."
"아, 거 좋네요." 마키무라 형사가 맞장구를 치듯이 말했다.
"나는 어디든 좋아. 자, 그럼 준비를 하고 나오지."
그들을 잠시 기다리게 하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가가 형사가 그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의 말대로 단순히 거리가 가깝고 커피를 얼마든지 마실 수 있기 때문일까.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방을 나섰다.
레스토랑에서 나는 새우 도리아를 주문했다. 가가 형사와 마키무라 형사는 각각 양고기 스테이크와 햄버거 세트 메뉴를 부탁했다.
"저, 그 소설 말인데요." 웨이트리스가 간 뒤에 가가 형사가 말문을 열었다. "히다카 씨의 컴퓨터에 남겨져 있던 <얼음의 문>이라는 제목의 소설."
"응. 알지. 그게 어제 집필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이미 발표된 분량을 화면에 불러낸 것인지 조사해본다고 했었지? 밝혀졌나?"
"네. 알아냈습니다. 아무래도 어제 쓴 분량인 것 같아요. 소메이 출판사의 담당자에게 문의해봤더니 지금까지 연재된 내용과 정확히 연결이 된다고 하더군요."
"그럼 그 친구, 살해되기 직전까지 열심히 글을 썼었군."
캐나다로 출발할 날짜가 바짝 다가와 있었던 만큼 히다카로서도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평소의 히다카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편집자의 속을 태우게 하고서도 마냥 태연했었는데.
"근데 약간 이상한 게 있었어요." 가가 형사는 몸을 쓰윽 내밀며 오른쪽 팔꿈치를 테이블에 얹었다.
"이상하다니?"
"원고 매수예요. 4백자 원고지로 환산해봤더니 27매나 되었습니다. 집필을 시작한 게, 후지오 씨가 집에 돌아간 직후인 5시쯤부터라고 해도 이건 너무 양이 많은 것 같거든요. 어젯밤 노노구치 선생님께 여쭤봤을 때, 히다카 씨의 집필 속도는 한 시간에 기껏 4매에서 6매 정도라고 하셨지요?"
"27매라…… 음. 그건 분명 너무 많네."
내가 히다카의 집에 갔던 게 8시였으니까 가령 그 직전까지 히다카가 살아 있었다고 해도 한 시간에 9매의 속도로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 그렇다면" 나는 말했다. "그 친구가 거짓말을 했는지도 모르겠군."
"거짓말이라니요?"
"사실은 어제 점심때쯤 벌써 10매나 20매는 써두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히다카 특유의 허세랄까. 그런 것 때문에 나한테는 아직 하나도 안 썼다는 식으로 말했던 게 아닐까?"
"네. 출판사 직원도 그런 의견이었습니다."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부인이 집을 나설 때, 히다카 씨는 자신이 호텔에 가는 건 아마 한밤중이 될 거라고 말했어요. 근데 실제로는 최대한 8시까지 벌써 27매를 다 썼다는 거예요. <얼음의 문>의 연재 1회분은 30매 전후라고 했으니까 거의 완성 단계였던 셈입니다. 글 쓰는 게 늦었다면 이해가 되지만 이렇게 예정보다 빠르게 써내는 경우가 있을까요?"
"음. 그런 일도 있겠지? 글을 쓴다는 건 기계적인 작업이 아니라서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몇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원고지 한 장도 채우지 못하는 일이 있어. 그 반대로 뭔가 생각이 풀리기 시작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써버리기도 하지."
"히다카 씨도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까?"
"있었지. 아니, 그보다는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지 않을까?"
"그렇군요. 물론 나는 그런 쪽은 전혀 짐작도 못하겠습니다만." 가가 형사는 앞으로 내밀었던 몸을 원래 위치로 돌렸다.
"근데 자네가 원고 매수에 집착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 나는 말했다. "요컨대 리에 씨가 집을 나갈 때는 아직 글은 완성되지 않았고 사체가 발견되었을 때는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는 거지? 그러니까 히다카는 살해될 때까지 제법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냥 그런 얘기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지요." 가가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이기도 했다.
형사라는 건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끈덕지게 조사를 해야 속이 시원한 모양이구나. 하고 예전의 후배 교사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주문한 음식들을 웨이트리스가 가져왔다. 그것으로 잠시 이야기가 중단되었다.
"그런데 히다카의 유해는 어떻게 됐지?" 나는 물어보았다. "부검을 한다든가 하는 말이 있던데."
"오늘, 부검이 있었어요." 그렇게 말하고 가가 형사는 마키무라 형사를 보았다. "자네, 오늘 사체 부검에 입회했었지?"
"아뇨. 나는 아니예요. 입회했다면 이런 거 못 먹지요." 햄버거를 포크로 쿡 찌르며 마키무라 형사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건 그렇겠지" 가가 형사도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부검은 왜요?"
"아니, 사망 추정시각이 밝혀졌는지 궁금해서."
"나는 아직 부검 소견을 자세히는 못 봤지만, 아마 판명이 났을 겁니다."
"그건 정확한가?"
"무엇을 바탕으로 판정했느냐에 따라 다르지요. 이를테면……." 말을 하려다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만두지요."
"왜?"
"새우 도리아 맛이 완전 엉망이 됩니다." 내 접시를 가리키며 가가 형사는 말했다.
"아.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묻지 말아야 겠네."
그러는 게 좋겠다는 듯이 가가 형사는 끄덕 턱을 당겼다.
식사 중에 그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주로 내가 쓰는 어린이 대상의 글에 대해 물어왔다. 최근에는 어떤 경향의 동화들이 많이 읽히는가, 요즘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것들이었다.
잘 팔리는 책이라는 건 문부성의 추천도서에 오른 것이고 요즘 애들이 책을 읽지 않는 건 부모의 영향이 크다는 식으로 나는 이야기했다.
"요컨대 요즘 부모들은 자기는 전혀 책을 읽지 않으면서 자식들에게는 꼭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스스로 독서 습관이 없으니 어떤 책을 읽으라고 해야 좋을지 짐작도 못 해. 결국 기관에서 권장하는 책으로 대층 챙겨주기가 쉬워. 그런데 그런 책은 딱딱하기만 하고 전혀 재미가 없으니 아이들은 저절로 책을 싫어하게 되지. 그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런 나의 이야기를 두 형사는 스테이크를 입에 넣어가며, 맞는 말씀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진지하게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주문한 것은 세트 메뉴였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커피가 따라 나왔다. 나는 따뜻한 우유를 추가 주문했다.
"담배 피우시지요?" 재떨이에 손을 내밀며 가가 형사가 물었다.
"아니. 괜찮아." 나는 대답했다.
"아, 끊으셨어요?"
"2년쯤 전에 끊었어. 의사가 피우지 말라고 했거든. 위가 안 좋아져서."
"그러시군요. 그럼 금연석으로 할 걸 그랬네요." 그는 재떨이로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작가분들이라면 으레 담배를 피운다는 이미지가 있어서요. 히다카 씨도 헤비 스모커였던 모양이던데요?"
"음. 그래. 작업 중이면 그 친구 방이 벌레 잡는 연막이라도 피웠는가 싶을 정도였어."
"어젯밤에 사체를 발견했을 때는 어땠지요? 방 안에 연기가 남아 있었습니까?"
"글쎄. 잘 모르겠네. 아무튼 내가 너무 놀란 상태여서."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역시 약간 연기가 남아 있었나? 음, 그랬을 거야."
"그렇군요." 가가 형사도 커피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수첩을 꺼냈다. "한 가지 확인해두고 싶은데요. 8시에 히다카 씨 집에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응."
"그때 노노구치 선생님은 인터폰을 눌러도 응답이 없고 집안의 불도 모두 꺼져 있어서 리에 부인이 숙박한 호텔에 전화를 했다고 하셨지요?"
"그랬지."
"그 전깃불 말인데요." 가가 형사는 똑바로 내 쪽을 보았다. "정말 전부 다 꺼져 있었습니까?"
"꺼져 있었지. 틀림없어." 그의 눈을 마주보며 대답했다.
"하지만 작업실 창문은 대문 쪽에서는 보이지 않지요? 정원 쪽으로 돌아가서 보셨던가요?"
"아니. 정원 쪽에는 들어가지 않았어. 하지만 작업실에 불이 꺼져 있는 건 대문 쪽에서 고개를 쭉 빼고 쳐다보면 알 수 있어."
"그런가요?" 가가 형사는 약간 의아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작업실 창문 바로 밑에 큼직한 천엽벚나무가 있거든. 작업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그 벚나무가 환하게 보이지."
"아. 그렇군요." 가가 형사는 마키무라와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해가 됩니다."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아뇨. 단순한 확인 작업이라고 생각해주십쇼. 이런 부분을 애매하게 보고하면 상사한테 혼이 나거든요."
"허어. 꽤 엄격하군."
"어느 세계나 다 마찬가지예요." 가가 형사는 예전 교사 시절 때를 생각나게 하는 웃음을 내보였다.
"그런 그렇고. 수사 쪽은 어떻지? 뭔가 알아낸 게 있어?" 두 형사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마지막으로 가가 형사의 얼굴에 시선을 맞췄다.
"이제 시작인데요, 뭐." 가가 형사는 온화하게 그렇게 말했다. 수사에 관한 일은 말할 수 없다는 뜻을 암암리에 내비치는 것일 터였다.
"텔레비전에 나오기로는, 뜨내기 범행이라고 하던가, 그저 우발적인 범행일 가능성도 있다는 식으로 말하던데? 이를테면 우연히 도둑질을 할 목적으로 침입했다가 히다카에게 들켜 뜻하지 않게 살해하고 말았다는 거겠지."
"그럴 가능성도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쪽으로는 별로 생각을 안 하는 건가?"
"글쎄요." 가가 형사는 옆자리 후배가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빈집털이범이라면 보통 현관으로 침입하죠. 그러면 만에 하나 들키더라도 어떻게든 변명을 둘러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떠날 때도 현관을 통해서 나가요. 그런데 히다카 씨 집 현관문은 아시는 대로 잠겨 있었어요."
"범인이 일부러 문을 잠그고 갈 리는 없다는 건가?"
"히다카 씨 집 열쇠는 세 개인데 두 개는 리에 부인이 갖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히다카 씨의 바지 호주머니에 들어 있었어요."
"하지만 창문으로 드나드는 도둑이 없는 건 아니잖아?"
"물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상당히 계획성이 짙은 범행이에요. 사전에 조사를 하고 그 집 사람들이 언제 집을 비우는지, 도로 쪽에서 목격될 일은 없는지, 그런 걸 모두 확인한 뒤에 실행에 옮기죠."
"그런 쪽 가능성은 없는 거야?"
"아, 근데요." 가가 형사는 하얀 이를 내보였다. "사전 조사를 했다면 그 집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는 걸 다 알고 있었겠죠."
"아하!" 나는 입을 헤벌렸다. "그렇지. 참." 하며 두 형사를 보았다. 마키무라 형사도 슬그머니 웃고 있었다.
"저는요." 가가 형사는 약간 주저하듯이 말을 꺼냈다. 그러고는 정색을 하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번 사건은 아는 사람의 범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 참.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이건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로 해주시겠어요?" 가가 형사는 둘째손가락을 입에 댔다.
"응. 그야 물론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마키무라 형사에게 눈짓을 했다. 젊은 형사는 계산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여기 계산은 내가 할게."
"아뇨. 아뇨." 가가 형사는 손을 내밀어 만류했다. "제가 모시고 왔는데요. 뭐."
"하지만 이건 경비 신청을 못 하잖아?"
"못 하지요. 단순한 저녁식사니까."
"이거, 미안하네."
"걱정 마세요.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나는 계산대 쪽을 보았다. 마키무라 형사가 돈을 치르고 있었다.
이윽고 그의 행동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산대 아가씨에게 뭔가 말을 걸고 있었다. 아가씨는 이쪽을 쳐다보며 그에게 뭔가 대답을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가가 형사는 계산대 쪽은 보지 않고 얼굴을 내 쪽으로 향한 채 말했다. 표정도 지금까지와 전혀 변한 데가 없었다. "알리바이 확인을 해달라고 했어요."
"내 알리바이?"
"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지 출판사의 오시마 씨에게는 이미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뒷받침이 될 만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부분은 모조리 확보하는 게 경찰에서 하는 일이거든요. 용서해주십쇼."
"그래서 이 가게로 왔군?"
"네. 같은 시간대가 아니면 웨이트리스가 다르거든요."
"흠. 역시나."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마키무라 형사가 돌아왔다. 가가 형사는 그에게 물었다.
"계산은 잘 맞았어?"
"네. 잘 맞았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그렇게 말하고 가가는 나를 보며 잠깐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더니 가가 형사는 즉각 강한 관심을 보였다. 레스토랑을 나와 잠시 걸음을 옮긴 뒤의 일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내 집 앞에서 우리는 그대로 헤어졌을 터였다.
"이런 경험은 아마 내 평생에 두 번 다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형태로든 기록을 남겨두기로 했어. 뭐, 일종의 작가 근성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지."
그러자 가가 군은 잠시 생각을 더듬는 듯이 침묵한 끝에 이렇게 말했다.
"그걸 좀 보여주실 수는 없을까요?"
"보여줘? 자네한테? 아, 이것 참. 누구한테 읽히자고 쓴 글이 아닌데."
"부탁합니다." 그는 머리를 숙였다. 마키무라 형사도 곁에서 똑같이 하고 있었다.
"저런. 그러지 마. 길가에서 그렇게 절을 하면 내가 부끄럽잖아. 게다가 지금까지 기록해둔 건 벌써 자네들에게 다 말했던 내용들이야."
"그래도 괜찮으니까요."
"이거 참." 나는 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우리 집에 잠깐 들어갈까? 아, 그리고 워드프로세서로 입력해둔 거라 프린트하는 동안 기다려야 하는데."
"기꺼이" 가가 형사는 말했다.
두 형사는 내 방까지 따라왔다. 내가 프린트를 시작하자 가가 형사는 곁에 와서 들여다보았다.
"이건 워드프로세서 전용인가요?"
"음. 그래."
"히다카 씨 방에 있었던 건 컴퓨터였죠?"
"음. 그 친구는 호기심이 왕성하거든." 나는 말했다. "컴퓨터 통신이니 게임이니, 이래저래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모양이야."
"노노구치 선생님은 컴퓨터는 안 쓰십니까?"
"나는 그냥 워드프로세서로도 충분해."
"그럼 원고는 항상 받으러 옵니까. 출판사 사람이?"
"아니, 대개는 팩스를 사용해. 저기 있지?" 방구석에 놓인 팩스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화회선은 하나뿐이어서 거기에 무선 전화기의 본체를 이어놓았다.
"하지만 어제는 출판사 쪽 사람이 원고를 받으러 왔었잖아요?" 가가 형사가 얼굴을 들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그의 눈 속에 의미심장한 빛이 감도는 것 같았다.
범인은 아는 사람이다. 조금 전에 그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래저래 직접 만나 상의할 것들이 있어서 어제는 특별히 집으로 좀 와달라고 했었어."
내 대답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 그 이상은 아무 질문도 던져오지 않았다.
프린트를 마치자 그것을 가가 형사에게 건네기 전에 나는 말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좀 감췄던 게 있어."
"그러세요?" 가가 형사는 그다지 놀라지 않는 기색이었다.
"읽어보면 알 거야. 이 사건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공연히 남을 의심하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히다카가 고양이를 죽인 건에 대해서였다.
"알겠습니다. 네. 그런 일도 있지요."
가가와 후배 형사는 프린트된 수기를 받아들자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서 돌아갔다.


자. 그건 그렇고.
가가와 마키무라 형사가 돌아가고 나는 곧바로 오늘 치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에게 건넨 그 다음부터인 셈이다. 이것도 가가 형사가 읽어보겠다고 할지 모르지만 되도록 그런 건 의식하지 않고 계속해서 써나가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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