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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범영 실화소설 귀여운처제1.2

제주소설가 | 2020.01.31 20:40:09 댓글: 0 조회: 1168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053094

김범영 애정소설 [귀여운 처제]

제주도의 인연 편

국가시낭[구지뽕나무 제주도 방언] 긴 가시가 위협이라도 하듯 나의 목 언저리를 향해 그 날카로움을 뽐내고 있었다.

뽕나무 오디를 닮은 국가시낭 열매들이 아직은 녹색을 띠며 조그맣게 달려 있었다.

나는 s정치외대의 대학원 과정을 올해 졸업을 하는 미래의 외교관이다.

1주일간 리포터를 위한 여행을 제주도로 온 나는 바닷가 작은 민박집에 친구들이랑 같이 머물고 있었다.

그 일주일이 어느덧 다 가고 친구들은 오늘 아침에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나는 혼자 남았다.

그 이유는.

민박집 주인의 딸 진미경.

그녀가 오늘 나에게 할 말이 있단다.

얼굴이 잘 생긴 미인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그녀가 나에게 다가온 것은.

이곳 민박집에 친구들과 민박을 시작한 다음 날부터다.

첫날은 친구들과 술이 너무 취해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다음날.

진미경 그녀는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들 몰래 밀감도 갖다 주고.

고구마 삶은 것도 갖다 주고.

눈웃음도 치며.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어젯밤.

그녀와 난 처음으로 키스를 했다.

친구 녀석들이 부르는 바람에 그 키스는 너무 짧게 끝났지만...

26살 내 가슴을 콩콩 뛰게 만들었다.

나의 아버지는 놀부로 통하는 자린고비 사체업자이다.

기업을 했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을 했을 정도로 돈은 많았지만.

아버지는 오로지 사체놀이 하나만 알았다.

아버지의 부인은 모두 3명이었는데.

첫째와 둘째 부인은 자식을 낳지 못하고.

아버지의 자린고비 성격이 싫다며 떠나버리고.

늦게 새로 장가를 간 세 번째 부인이 나를 낳았다.

그 세 번째 부인.

나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는 내가 9살 때.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와 단 둘이서 서로 의지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나는 아버지의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책임지고 해드렸다.

나의 어머니.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나에게 남긴 마지막 부탁이기에...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 손으로 손수 아버지 식사를 해드렸다.

[너의 아버지는 돈이 많고 원수도 많아서 아무 곳에서나 밥을 먹으면 안 된다. 네가 꼭 손수 해드려라!]

.

나의 어머니의 그 괜한 걱정 때문에.

어려서부터.

식모살이를 해야만 했다.

하하하.

그래도 난 좋았다.

학교를 다닐 때도.

놀러 다닐 때도.

다른 사람한테는 자린고비인 아버지.

나에게는 무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돈은 써본 사람만이 쓸 줄을 안단다. 아끼지 말고 써라!]

나의 아버지.

늘 나에게 돈을 펑펑 던져 주었다.

나는 명품이란 명품은 그 어떤 것도 잊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었으며.

중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전용 운전기사를 두고 .

번쩍번쩍 하는 신형 고급 승용차만 타고 다녔다.

나에겐 친구들이 줄을 섰다.

모두 나에게 뭔가 얻어먹을 속셈이었지만.

난 그런 친구들은 멀리했다.

오로지 몇몇 맘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만 했다.

이상하게도

나에겐 남자 친구들만 있었다.

여자 친구들은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대학교 3년 후배인 그녀.

김다희.

큰 두 눈이 나를 빨아들일 것처럼...

내 마음을 흔들고.

그녀만 보면 난 즐겁고.

그녀만 보면 난 항상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벌레 보듯 한다.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온 몸을 소름 끼친다고 부르르 떨며 피한다.

하나도 갖은 것도 없는

가난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를 둔 주제에...

항상 나를 벌레 대하듯 한다.

벌써 한대 쥐어박고.

발로 걷어차 버렸어야 하는데...

오기가 생겼다.

이번에 서울 올라가면 꼭 그녀가 나에게 호감을 갖게 만들 것이다.

리포터를 쓰는 것도

잊은 체.

오로지 그녀에게 이길 생각만 했다.

?

난 항상 그녀에게 졌으니깐.

말로 싸워도.

주먹으로 싸워도.

뭐든.

난 그녀에게 졌다.

김다희.

이제 내 인생의 목표가 그녀에게 이기는 것이다.

하하하.

민박집엔 어린 꼬마가 하나 있었다.

마치 인형처럼 생긴 4살짜리 여자아이다.

진미경의 동생.

이름이 미정이라 했다.

이 녀석이 유난히 나를 따랐다.

거침없이 뽀뽀도 해주고.

업어 달라 안아 달라 하면서 재롱을 부렸다.

신기하게도

다른 친구들에겐 전혀 가지 않았다.

오로지 나만 졸졸 따라 다녔다.

[신기하네! 미정인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민박집 주인아주머니는 그렇게 말을 하며 나와 미정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4살짜리 미정이는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온갖 재롱을 부렸는데.

주인아주머니 품엔 갓난아기가 하나 있어서

아주머니한텐 사랑을 다 받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아이가 왜.

나를 잘 따랐을까

그녀석이 날 좋아하는 통에.

자연히 미경이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짬춘!]

귀여운 꼬마 미정인 혀가 아직은 짧은 것일까.

삼촌 소리가 짬춘이란다.

[왜 그래?]

내가 미소를 보이며 다정하게 물었다.

[. !]

미정이가 소변을 보려는 모양이다.

이젠 기저귀를 벗고 생활하는 어린 아기.

난 그 녀석을 마당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뒤로 안아들고 소변을 보게 했다.

[저 녀석이! 정말 웃겨...!]

초등학생쯤 된 여자아이가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미정이 언니다.

난 소변을 다 본 미정이 팬티를 입히고 얼른 안고 일어났다.

[짬 춘!]

미정이가 날 불렀다.

[?]

내가 물었다.

[까까 사줘!]

미정이가 과자가 먹고 싶은 모양이다.

까까라는 말도 내가 가르쳐줬다.

[그래! 삼춘이 까까 사줄게!]

난 미정이를 데리고 500미터는 떨어진 동네 수퍼로 향했다.

휘잉...

찬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난 아기가 추울까봐 바람막이 점퍼 속으로 미정이를 집어 넣었다.

[안 춥지?]

내가 물었다.

점퍼와 내 가슴에 밀착되어 포근한 모양이다.

[따뜻해!]

미정이가 대답했다.

마치 아빠가 아기를 가슴속에 품고 가듯 난 그렇게 아기를 점퍼 속에 넣고 동네 슈퍼로 갔다.

[에고. 어서 완?]

슈퍼 할머니가 나와 아기를 번갈아보더니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것이다.

[저쪽 민박집에 놀러온 사람입니다. 이 아기는 미경이 동생이구요.]

내가 말했다.

[...!]

슈퍼 안 방에서 할머니 한분이 나오더니 날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난 당황했다.

혹시 날 아기 납치범으로 보는 건 아닐까.

왜 이렇게 날 보는 걸까.

[...! 물질은 면하겠군!]

날 한참을 살펴보던 할머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누가요?]

슈퍼집 주인 할머니가 날 살펴보던 할머니한테 물었다.

[누긴! 덕이네 큰딸이제!]

날 살펴보던 할머니 말이다.

[미경이가요?]

슈퍼 집 할머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나를 살펴보던 할머니는 다시 날 한번 살펴보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젠 장 기분이 별로다.

무슨 말인지.

왜 날 뜯어보고 그래.

제기랄.

난 미정이에게 줄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들고 슈퍼를 나섰다.

미정이는 내 점퍼 속에서 과자 한 봉지를 뜯어 아삭아삭 먹고 있었다.

.

녀석도 과자를 그냥 받아먹기는 미안했는지 나에게 뽀뽀를 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음료수를 먹으며 먹어야지 체할라!]

난 미정이에게 음료수를 먹였다.

!

미정이가 사래가 들었는지.

음료수를 먹다가 기침을 하며 조금 토했다.

우아.

내 속옷에 음료수를.

으으.

고내.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석으로 옹기종기 밭 담장을 쌓아

골목길을 만들고

지상 10층 높이는 될 것 같은 바닷가 벼랑위로 한참을 걸어가면

초가지붕을 새끼줄로 촘촘히 엮어 바람에 견디게 만든 집.

달랑 방 두 칸.

그 방 두 칸 중 하나는 집주인 3식구가 살고.

방 하나를 민박으로 하룻밤 한 사람당 5천원을 받았다.

1988년 한창 올림픽 열기가 뜨겁던 해.

5천원이면 그런 바가지요금이 없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벼랑위에 있는 집은 오로지 제주도를 다 찾아봐

도 그 초가 집 뿐이었다.

돈 많은 아버지 덕에 아까운 줄 모르고 3명 친구들 요금까지 모두 내가 부담했다.

하루에 2만원씩.

벌써 1주일째.

14만원이 민박 잠자리 값으로 나갔다.

그것뿐이 전부는 아니었다.

토종닭 그 질기고 질긴 닭고기가 뭐가 맛있다고.

마리당 1만원씩이나 주고 매일 한 마리씩은 친구들이 먹어 치웠다.

서울로 올라가는 전날 저녁엔 해삼이며 전복까지 아까운줄 모르고 주인아주머니가

물질해서 잡아 온 해산물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오늘 30만원을 지불했다.

2일째 되는 날 미리 15만원을 선 지급 했으니 이미 45만원을 쓴 것이다.

[짬춘! 나 두!]

미정이는 아침부터 나에게 매달렸다.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나가는 나를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난 민박집 주인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데리고 나가도 되느냐고 묻는 것이다.

이런...!

민박집 주인아주머니는 오히려 나에게 데리고 나갈 수 있느냐고 묻는 표정이다.

[잘 데리고 다니다가 올게요!]

난 민박집 주인아주머니에게 걱정을 말라는 투로 말했다.

민박집 주인아주머니는 미소로 답했다.

미정이 데리고 놀러간 곳은 용머리해안과 주상 전리 대.

어린 미정이가 좋아할 만한 장소는 아니었기에.

마침 말 타기 놀이기구를 끌고 다니는 노인이 있어서 1시간가량 놀이기구를 태워줬다.

사진도 찍었다.

즉석 사진이다

기념사진.

어린 미정이를 안고 한 장.

볼에 뽀뽀를 하면서 한 장.

점퍼 속에 넣고 얼굴만 보이게 해서 한 장.

3장의 사진.

어린 미정이와 나의 추억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진 2장은 미정이를 줬다.

마치 사진을 아는지 미정이는 그 사진을 품속에 소중히 넣었다

난 미정이를 안고 찍은 사진만 지갑에 넣었다.

다음날은 자전거를 태워줬다.

[아빠!]

잘못 들은 걸까.

미정이가 날 그렇게 불렀다.

[아빠라 그랬니?]

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미정이가 고개를 끄떡거렸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처다 보며...

어찌해야하나...!

아빠가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빠!]

미정이는 다시 날 아빠라 불렀다.

[? 왜 그래? 미정아!]

난 그렇게 아빠가 되어 버렸다.

그날 저녁...

미정이 아빠가 되어버린 그날 밤.

여섯 물이란다.

바닷물이 밀려가는 밀물 시간대를 말하는 것이다.

오늘이 보름날이다.

달빛이 무척 밝았다.

철썩...

철썩...

발아래 파도가 넘실대는 갯바위.

진미경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그 곳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래! 할 말이 뭔데?]

나는 넓은 바위에 앉아서 그녀가 따라주는 한라산 소주를 한잔 마시고 해녀 엄마 몰래 갖고 온 전복 회를 한 점 손가락으로 들어 초고추장을 푹 찍어서 먹으며 물었다.

[우선 소주부터 한잔 마시고 이야기 하면 안 돼?]

그녀는 급할 것이 없다는 투다.

그녀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 손엔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소주를 한잔 따라 달라는 것이다.

난 그녀에게 소주를 한잔 따라 주었다.

...

소리가 나도록 그녀는 빠르게 소주잔을 비웠다.

그녀는 그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서 내게 내밀었다.

나보고 한잔 마시라는 뜻이다.

난 천천히 그 술잔을 받아 마셨다.

[이제 이야기 해봐! 할 이야기가 뭔데?]

나는 그녀가 하려는 이야기가 뭔지 궁금했다.

혹시 나와 결혼을 하자는 것은 아니겠지.

어제 밤 처음 키스를 했다고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을 그녀라 생각했다.

[그냥 술이나 더 마시고 이야기 하면 안돼? 오빠!]

그녀는 소주를 손수 따라서 단번에 들이켰다.

[네가 j3학년이라고?]

나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녀가 하려는 말이 꽤나 꺼내기 힘든것 같아서 다른 이야기부터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 오빠!]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크게뜨며 날 바라보았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 표정이다.

[무슨 과야?]

난 아직도 그녀가 말하지 않은 것을 하나씩 묻고자 했다.

[! 가정학과!]

그녀는 뭔가 잠시 생각하는듯하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몹시 취했다.

얼굴이 발그레 하고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나도 취기가 돌았다.

소주 세 병 정도는 반주감이라 자부했는데.

이제 두병을 그녀와 같이 마셨는데...

취기가 올랐다.

[! 남자하고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이 처음이야!]

그녀는 혀가 꼬부라진 발음으로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이제 나에게 하려는 말을 시작 하려는 모양이다, 라고 생각을 한 나는 조용히 그녀

말만 듣기 시작했다.

[오빠하고 어제 키스를 한 것도...난 처음이란 말이야! 알아?]

그녀는 마치 술주정을 부리듯 나에게 말했다.

[난 아직까지 한 번도 남자하고 술을 먹거나 키스를 한 적이 없어! 오빠가 내 첫 남자란 이야기야!]

그녀에게 내가 첫 남자란 이야기를 들으며 난 묘한 감정에 젖어들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심장은 빠르게 고동치고.

숨이 차서 호흡까지 크게 들릴 정도로 힘들게 쉬기 시작했다.

[젠장!]

그녀는 뭐가 화가 나는지 소주병을 집어 던졌다.

난 그녀가 화가 무척 난 모양이라고 생각 했는데.

갑자기 그녀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두 손으로 내 목을 감싸고 키스를 퍼부었다.

, ,

[왜 그래?]

난 그녀의 입에서 벗어나며 물었다.

[나도 몰라! 오빠가 좋단 말이야!]

그녀는 더욱 두 팔에 힘을 주며 나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차츰 나도 그녀의 키스를 받아들이며 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훌렁,

그녀는 옷을 벗어 던졌다.

나는 그렇게...

그녀와 첫 섹스를 하였다.

어떨 결에 당한 섹스라기 보단.

나도 원했다고 봐야 옳았다.

그러나

나의 환상처럼,

첫 경험은 그리 달콤하지는 않았다.

술이 취한 탓도 있지만,

내가 상상하던 만큼.

짜릿한 쾌감도 없었다.

경험 있는 친구들이 늘 이야기하던 그런 느낌도 없었다.

그냥.

어떻게 첫 경험을 했는지 모르게 치러 진 섹스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쑥스러운 마음에 그녀 미경이 얼굴을 마주할 수 없어서 도망치듯 서울로 돌아가려고 민박집을 나섰다

[...!]

민박집을 부지런히 벗어나려는 내 등 뒤에서 미정이가 날 불렀다.

난 차마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뒤로 돌아서서 미정이를 안고 민박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갔다.

미경이가 혹시나 마주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피한 것이다.

여자와의 관계가 처음인 나로서는 왠지 미경이를 다시 보기가 민망스러워 그랬다.

[아빠! 어딜 가?]

미정이가 물었다.

내가 떠나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모양이다.

[아빠는 이제 서울로 가야 하거든. 미정이 보러 다시 올게!]

난 미정이를 꼭 안고 그렇게 말했으나.

미정이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기특한 녀석.

눈물은 흘려도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아빠! 꼭 와야 해?]

미정이가 눈물을 멈추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처다 보고 말했다.

[그럼! 우리 미정이 보고 싶어서 라도 꼭 올게!]

난 그렇게 미정이와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미정이가 소중하게 품속에 간직한 사진 뒤 쪽에 내 핸드폰 번호를 적어줬다.

과자 사먹으라고 3만원을 품속에 넣어줬다.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어린 미정이를 민박집으로 돌려보내고 난 급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

서울로 올라온 나는.

운전기사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j대학 가정학과에 진미경에 대하여 조사를 해봐라!

그런 부탁이었다.

[j대학에 가정학과는 없다는데요! j대학에 진미경이란 이름의 학생도 없답니다!]

운전기사가 조사를 마치고 내게 보고를 한 내용이다.

제기랄!

그 애 뭐냐?

하나부터 전부 거짓말이잖아!

나만 당한건가!

숫총각 사냥꾼인가!

이런!

하하하.

[! 저거 또 만나네!]

s대학 앞 횡단보도에서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김다희.

나를 벌레 보듯 하는 그녀.

말을 붙이기 어려워서 늘 머뭇거리던 나는

미경이와 첫 관계 이후 자신감이 생겼다.

나를 보기만 하면 징그럽다고 멀리 도망치던 그녀,

그런 그녀도.

이젠 자신이 생겼다.

.

나의 손이 김다희 어깨를 툭 쳤다.

평소 같으면 전혀 하지 않던 행동이다.

[안녕! 다희야!]

나는 상냥하게 인사말도 했다.

.

다희는 항상 나에게 징그럽다느니.

소름 끼친다고 온 몸을 부르르 덜며 호들갑을 떨던 그녀가.

뭘 잘못 보았나.

할 말을 잊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 내 얼굴에 뭐가 묻었냐?]

난 그녀가 왜 그렇게 말을 못하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 시치미를 데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내가 평소 전혀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 때문에 놀란 것이었다.

[오빠!]

다희는 한참이 지나서 겨우 나를 불렀다.

[몇 시에 끝나니?]

내가 이때다 싶어 물었다.

[! 오늘은 오후 5시에 끝나!]

다희는 순순히 대답했다.

평소 같으면 그녀가 그렇게 대답을 할 리 없었다.

남이야.

언제 끝나든 무슨 상관이야!

치근덕거리긴.

오빠한테 시간 낼 사람이나 찾아봐!

그렇게 말을 해야 옳았다.

[d레스토랑에서 기다릴게!]

나는 조금의 시간도 주지 않고 곧바로 말했다.

갑자기 나의 행동에 멍한 상태로 잘 대답하는 다희가 정신을 차리면 무슨 말을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다희는 순순히 대답했다.

야호,

드디어.

26살에.

여자를 상대하는 방법을 깨우쳤다.

비록 이제 왕초보로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이지만.

처음.

다희와 만나기로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하하하.

평소.

그렇게 재미있고.

웃다가 시간을 다 보내는...

k교수의 강의도.

전혀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다희와 저녁에 무엇을 할까.

스케줄을 머릿속에 작성하는데 하루가 지나갔다.

d레스토랑.

공주와 왕자들만 출입한다는 말이 나오듯.

s대학 부유층 아이들만 출입하는 값이 청량고추처럼 매운.

고급 레스토랑이다.

항상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나도.

d레스토랑은 처음이다.

제주도에서.

진미경.

그녀를 만나고부터 처음으로 하는 일이 많아졌다.

딱정벌레 같은 녀석들.

알록달록.

치장만하고 허세를 부리면.

다 부유층 자녀들로 보이는가.

꼬질꼬질한 청바지에.

얇은 반팔 하얀 셔츠 차림의 나를.

마치 거지 보듯 한다.

어떤 남녀는 대놓고 한마디 한다.

주제를 모르나봐.

여기가 어디라고 출입을 해!

젠장!

5시부터.

다희를 기다린 나는...

벌써.

차디찬 얼음 냉커피만 4잔 째 마셨다.

6시가 지나고.

7시가 다 되어 가는데.

다희.

그 계집애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말괄량이 삐삐 같은 계집애.

감히 나에게 바람을...

저것 봐! 괜히 쥐뿔도 없는 거지 녀석이.

허세를 부리려고 들어왔나 봐!

제일 싸구려 커피만 마시다가 가네.

허세를 부리면 누가 데이트라도 신청할까.

떡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김칫국 마신다더니.

킬 킬 킬.

그딴 소리를 들으며.

내가 d레스토랑에서 나와야 했다.

우라질.

내일 요 계집애 만나기만 하면 콱.

핸드폰은 왜 꺼놓고.

다희는 고의적으로 나에게 엿 먹어라.

그런 것이다.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파전 집에 들어가서 동동주를 혼자서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데...

[이게 누구야! 아까 d레스토랑에서 커피만 마시던 그 친구 아니야!]

어떤 녀석이 나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힐끗.

고개를 돌려보니 안면이 있는 녀석이다.

k대학 박변호.

이름 그대로 법대 4학년생이다.

한참 후배 녀석이다.

[어린 녀석이 선배가 술 마시는데 떠들지 말고 주둥이 닥치고 꺼져라!]

화가 난 나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갈 리 없었다,

[? 선배? 푸 하하... 네가?]

박변호 녀석 법대나 성실히 다니다가 이름 그대로 변호사나 되던가 해야지.

아무한테나 시비 걸어서 전과자 되고 싶은 모양이다

[맞아! 저 선배 s대학원생이야!]

박변호 녀석 팔에 매달려 있던 여자 아이가 나를 알아봤다.

누굴까.

전혀 기억에 없다.

[? s대학원생? 지랄!]

박변호 녀석 팔에 매달려 있던 여자 친구를 뒤로 물러나게 하더니 나에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녀석이 등 뒤로 다가오자 나의 뒤통수가 갑자기 화끈하게 열이 올랐다.

녀석이 손바닥으로 내 뒤통수를 친 것이다.

[나도 1년 꿇었거든! 그러니 임 마! 선배는 개 코! 지랄 말고. 너 같은 거지새끼가

여기 올 곳이 못되거든! 여기 파전 값도 커피 값 보단 비싸. 그냥 네가 꺼져라!]

박변호 녀석 입에 구정물을 물고 다니는 모양이다.

악취가 확 풍겼다.

[젊은 사람이 술이 취했으면 그냥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 매를 벌지 말고.]

장기사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 당신은 누구요?]

박변호가 멱살을 잡힌 체 장 기사한테 물었다.

나이가 많은 것을 본 박변호는 반말을 못하고 존칭을 사용했다.

[난 저분의 운전기사야!]

장기사가 박변호 멱살을 잡은 체 파전 집 문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기사...?]

박변호는 밖으로 끌려 나가며 여자 친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박변호의 여자 친구는 나의 기사는 모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내가 대학원생이란 것만 가르쳐 준 모양이다.

이런! 우라질.

다희 그 계집애한테 무려 8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핸드폰을 계속 꺼놓았다.

술도 한잔 마셨겠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바로 잠이 들고 말았다.

다희.

다음날.

그녀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다.

오후 늦게 친구들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만나자는 장소는 화려하다.

보나마나 나에게 바가지 씌우려는 것일 테니까.

난 지갑을 차에 놔두고.

장기사보고 멀리서 기다리라고 했다.

삼성동.

h장어 집.

민물장어집이다.

친구 녀석들이 양식 장어를 먹을 라고 나를 그곳에 부른 것이 아닐 것이다.

어디서 자연산 장어가 나왔다느니 뭐니 하면서.

팔뚝만한 자연산 장어를 한 놈이 2키로 씩은 먹을 테니까.

친구 3명과 나.

두 관은 먹어야 끝날 저녁식사다.

1kg에 아마도 큰 것은 50만원씩은 갈 것이다.

어디 녀석들 오늘 바가지 한번 써 봐라.

나는 친구들을 혼내줄 생각이었다.

친구들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평소에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생각만 했을 뿐.

실천이 어렵게 됐다.

[선배!]

누군가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안면이 있는 여자다.

그래.

박변호의 여자친구.

바로 그 여자다.

[나를 불렀나?]

내가 물었다.

[! . 저녁 좀 사주시면 안돼요?]

여자 아이가 먼저 나에게 작업을 시작한 것 같다.

내 생전 처음 있는 일이다.

[저녁이야 얼마든지 사주지만. 이름도 모르는데?]

나는 그 여자아이에게 이름을 물었다

[이소진이에요! y대학 3학년이고요!]

그 여자아이 이소진이 상큼하게 미소를 지었다.

호오.

그러고 보니 꽤 미인이다.

귀엽게 생겼고.

[난 지금 친구들과 장어구이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갈까?]

난 이미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소진을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저런 거짓말로 둘러 대면 그만이지만.

난 전혀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좋아요! 선배 친구 분들께 저를 뭐라고 소개하실 건데요?]

이소진이 살짝 눈웃음을 치며 물었다.

[...! 뭐라고 소개할까?]

나는 이소진의 의견을 물었다.

[여자친구.]

이소진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

아무려면 어때.

친구 녀석들,

놀라겠는 걸.

흐흐흐.

친구들과 장어구이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일까.

정신없이 보낸 밤.

아침이 돼서야 난 이소진과 모텔에 들어가 잤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왜 이러지.

미경이와 관계를 맺은 후 너무 여자에게 자신감이 생긴 탓일까.

[선배!]

누군가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김다희었다.

[!]

난 화를 내려다가 다희 얼굴이 무척 수척해진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어디 아팠구나? 다쳤니?]

난 다희가 한쪽 다리를 약간 절름거리는 것을 보고 물었다.

[! 지난번엔 죄송했어요! 교수님한테 붙들려 선배님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너무

늦어서 뛰어가다가 다리를 삐었어요!]

다희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런! 많이 다친 모양이구나?]

난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물었다.

[아니에요! 이젠 걸을 만 해요. 그날 약속을 못 지켜서 정말 죄송해요!]

다희가 다시 나에게 사과했다.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난 다희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정말 미안해하는 다희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독거려 주려고 하는 말이다.

[대신 오늘 저녁사주세요! 4시에 강의 끝나요!]

다희가 말했다.

[그래? 알았다! 맛있는 걸로 사줄게! 그때 그 장소에서 기다릴게.]

난 다희와 다시 약속을 했다.

오늘은 맛있는 걸로 사주려고 마음을 먹었다.

[안녕하세요!?]

오후.

김다희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가던 나에게 누군가 아는 척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여인.

키가 크고 s라인 몸매에 서글서글한 눈매의 미녀였다.

어디서 봤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난 기억을 더듬으며 인사를 받았다.

[시간 있으세요?]

그녀가 나에게 시간이 있느냐고 묻는다.

물론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었기 때문에...

다희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30분 정도라면.]

난 조건부 시간을 내주겠다는 답을 했다.

[타세요!]

그녀가 나에게 차를 타라고 했다.

도로변에 세워진 붉은색 고급 승용차의 조수석 문을 그녀가 열어줬다.

난 아직도 그녀가 누군지 기억이 잘 나질 않아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냥 차를 탔다

.

나를 태운 그녀는 운전을 손수하며 서울 외각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30분이라 했는데...

이미 20분은 지나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려다가 다시 참았다.

그녀가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기 때문이랄까.

그녀의 환한 미소에 잠시 매력을 느꼈다고 할까.

그녀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일산.

이미 30분이 지나고...

다희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은 이미 지났다.

[누구와 약속이 있으신 것은 아니시죠?]

그녀가 일산에 위치한 p공원에 도착한 후 차에서 내리며 나에게 물었다.

[. ! 후배와 만나기로 했는데. 이미 시간이 지났군요!]

난 언제나 솔직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런! 어서 전화해주세요! 바뿐 리포터를 쓸 장소에 오느라고 오늘약속을 못 지키겠다고.]

그녀는 나에게 거짓말까지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아직 난 다희 전화번호를 모른다.

생각 끝에 d레스토랑 전화번호가 기억나서 그곳으로 전화를 해봤다.

아직 다희가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다.

5시에도.

6시에도.

그녀와 공원에서 꽃을 구경하며 수시로 전화를 했지만 다희는 d레스토랑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젠장!

아직도 그녀가 누군지 기억이 나질 않는 나는.

그녀가 하자는 데로 따라다니며 같이 저녁도 먹고.

술도 한잔 마셨다.

그리고

극장에 들어가서야.

그녀가 누군지 기억이 났다.

z여고 퀸.

황 지 미.

v쇼핑 전속모델.

바로 그녀였다.

그녀와 난.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전국 황금사자기 고교 야구대회.

오징어를 무척 좋아하는 난.

주머니에 돈을 탁탁 털어서.

오징어 한축을 사서 모조리 구어가지고 야구장에 들어갔다.

물론 내가 졸업한 모교인 y고등학교를 응원하기 위함이었으나.

난 홀로 외야석에 앉아 있었다.

조용히 경기만 감상 하려던 나에게.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s대 오장진이시죠?]

[!]

나의 이름을 아는 그녀가 신기하고 너무 예뻐서 난 얼른 대답했다.

[z여고 황지미에요!]

그녀가 자신을 소개했다.

황지미.

이미 고교시절부터 전해들은 이야기.

z여고 퀸 황지미 그녀는 모델로도 유명했다.

그렇게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난 그녀와 같이 야구 경기를 감상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러나

우리의 친분은 그날로 끝났다.

야구 경기가 끝나고 그녀가 나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해서...

f한식집.

장춘동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

그 비싼 음식점에서 저녁을 같이 먹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술을 한잔 하자는 말에 늘 모범생이었던 난.

거절을 했고.

그녀는 실망의 눈초리를 보내며 나에게서 떠나갔다.

그런 그녀가 5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나타난 것이었다.

[벌써 5년은 흘렀군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기억이 난 나는 그녀에게 상투적인 인사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어머! 이제야 기억이 나신 모양이군요?]

그녀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계속 기억을 더듬는 모습을 봤다는 이야긴데...

[! !]

난 변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호호. 역시 아직도 범생티가 나는군요! 가끔은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하고. 술도 한잔 하시고. 삐뚤어질 때도 있어야죠! 안 그래요?]

그녀는 극장 옆자리에 앉은 채로 나의 손을 살짝 잡으며 말을 했다.

후끈.

가슴이 콩 콩 뛰었다

난 그녀의 스킨십에 얼굴까지 발그레해졌다.

[그 그런가요?]

난 말까지 더듬었다.

[아직도 여자 친구가 없는 모양이군요?]

그녀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녀의 하얀 치아가 내 눈앞에 어른 거렸다.

촉촉한 입술이 희미한 불빛에 반짝거렸다.

상큼한 향수 냄새가 나의 코를 자극했다.

[. 그걸 어. 어떻게?]

난 말까지 더듬거리며 물었다.

[호호호.]

그녀는 환하게 웃더니 그녀의 입술이 내 눈앞에 점점 커졌다.

[!]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친 것이다.

난 그녀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거절할 생각도 없었고.

그녀가 그렇게 키스를 해주길 은근히 바랐던 모양이다.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키스는 짧게 끝났다.

난 아쉬움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의 눈을 바라보며 반짝 이채를 띠었다.

극장을 나온 그녀와 난.

다시 그녀의 차를 탔다.

이제 그녀가 나를 데리고 갈 곳은...

아마도.

그녀의 자취방이나.

아니면 모텔.

호텔.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차에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깜빡 잠이 들었었나.

술기운 때문일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잠깐 동안.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잘 가! 오늘 즐거웠어!]

그녀가 인사를 하는 말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나는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여긴!]

그렇다.

그녀가 나를 태우고 간 곳.

d레스토랑 근처였다.

[그래! 나도 즐거웠어! 조심해서가!]

나는 그녀에게 이별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오늘은 촬영 때문에 가 봐야해! 내일 연락할게!]

그녀가 차에서 내려서 나에게 다가와 나의 입술에 살짝 입맟춤을 해주며 말했다.

[!]

마치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난 그렇게 대답했다.

그녀가 떠나고.

나는 왠지 허전함이 밀려왔다.

젠장!

어딜 가야하나!

이 시간에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하나.

잠시 두리번거리던 나의 눈에.

간판 하나가 들어왔다.

d레스토랑.

[그래! 들어가서 커피나 한잔 마시고 가자!]

난 그렇게 생각하며.

d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늦은 밤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어머! 저 거지같은 사람 또 왔네!]

누군가 나를 보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살짝 틀어보니 긴 생머리의 처음 보는 계집애다.

제기랄!

처음 보는 계집애가 왜 나에게 시비지...

그 계집애를 살짝 스쳐보며 구석진 자리를 찾던 나는 두 눈이 반짝 빛났다.

열대어 수족관이 반쯤 가린 구석진 좌석.

혼자서 차를 마시는 여자.

녹색 줄무늬 상의를 입은 모습이 마치 어느 회사 여직원 같은 차림의 여자.

바로 그녀였다.

녹색 줄무늬 상의.

k푸드 사원복장.

김다희.

오늘도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한 그녀.

왜 이 시간까지 이곳에 있을까?

난 그녀에게 다가갔다.

[...!]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선배!]

반가운 표정인가.

그녀의 표정은 좀 묘했다.

의외라는 표정 같기도 하고.

기다렸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 이 시간에?]

나는 그녀 앞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은 것인데.

[선배! 아직도 절 기다리신 건가요?]

그녀가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표정은 바로 그것인가보다.

내가 아직도 그녀를 기다려 줬다는 고마움의 표시.

아니면 감격의 표정.

[. !]

난 긍정도 부정도 않고 묘한 대답으로 마무리 했다.

[오늘은 왜 늦었어?]

난 그녀가 늦게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고 믿고 그렇게 물었다.

[방학동안 k푸드에서 일하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면접이 갑자기 정해져서.]

그녀가 미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사실은 나도 안 나왔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k푸드? 아하 네 전공이 영양학이지?]

내가 물었다.

[! 졸업 후 k푸드에 취직이 정해졌거든요.]

그녀는 이미 k푸드 영양사로 취직이 된 상태였다.

[선배는 왜 외교관이 되려고 하세요?]

다희가 물었다.

[!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

사실 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어느 나라인데요?]

다희가 물었다.

[중국!]

내가 말했다.

[네에? 거긴 왜요?]

다희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물었지만.

난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이유를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니까.

[그런 일이 있어! 그보다 넌 요즘 왜? 나에게 고분고분하지? 혹시?]

난 그렇게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

다희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

난 그녀가 말하길 기다렸다.

[선배와 가까워지려고 괜히 투정도 부리고. 못되게 굴었는데. 모르셨어요?]

다희가 나와 친해지려고 그랬단다.

난 그녀의 대답에 잠시 멍해져 있었다.

[선배는...선배가 얼마나 멋지고 여자들에게 인기 짱 인지 모르죠?]

다희가 입가에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슨 말이야?]

난 다희에게 급히 물었다.

[선배는 바보에요! 봐요. 돈 많죠. 잘 생겼죠. 바람둥이가 아니죠. 연애도 안하고 범 생이죠. 세상에 이런 남자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선배는. 선배만 모르는 것 이죠 다들 관심이 많거든요. 특히 여자들은.]

다희가 얼굴에 홍조를 띠며 말했다.

술을 한잔 마셨나...

그녀 얼굴은 발그레 한 것이 더욱 귀여워보였다.

[정말? 그럼. 너도 내가 좋다는 것?]

난 얼른 다희의 속마음을 물어봤다.

그러나 아차 싶었다.

남자가 여자한테 그런 걸 그렇게 물어보는 것이 실례 같았기 때문이다.

[저거 봐! 조금 띄워주니까. 선배는 역시 멍청해! ...!]

그녀가 다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우리 나가서 청계천이나 거닐까?]

내가 다희에게 물었다.

[술이나 한자 사줘! ?]

다희가 말했다.

[알았다! 가자! 나도 한잔 마시고 싶었다.]

난 다희와 d레스토랑을 나섰다.

물론 계산은 내가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데이트는 포장마차가 좋다던데...]

그녀는 내 팔에 팔짱을 끼고 청계천 물가를 거닐며 말했다.

[하하.녀석 소박하긴! 그래 알았다!]

난 이곳저곳 찾다가 조금은 깔끔한 포장마차를 발견하고 다희와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젊은 아주머니가 나와 다희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포장마차에는 1쌍의 남녀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이가 이미 20대 후반 같았다.

익을 대로 익은 연인 사이 아니면 부부사이 같았다.

그런데.

[! !]

그 다정해 보이는 남녀 중 남자가 나에게 아는 체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난 전혀 기억이 없는 사람.

술이 취해서 사람을 잘못 본 것인가.

[누구십니까?]

난 아무리 기억해도 첨보는 얼굴인 그 남자에게 공손히 물었다

[이런! 난 한눈에 널 알아보겠는데...나 최태수야. 최민희 오빠.]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는 악수라도 하자는 이야긴데...

[!]

난 드디어 기억이 났다.

고교시절 난 동창생 여자아이를 무척 좋아했다.

최민희.

장례의 꿈이 의사라던 그 여자아이.

같은 학교 같은 학년 여자친구.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린 남들 눈을 피해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나

그 달콤했던 첫사랑 데이트는 겨우 3개월을 넘지 못했다.

이사를 가버린 것이다.

특히 그녀의 오빠 최태수가 철저히 방해를 하여 1달 가까이는 같은 학교에 있으면서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최민희는 다른 동네로 말도 없이 이사를 했다.

학교도 전학을 가버렸다.

몇 년 후 겨우 들리는 소문으로 알게 된 이야기는.

최민희 아버지가 큰 회사 사장님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난해 보이는 나를 최태수가 철저히 방해를 했다는 소문이었다.

물론 소문은 그냥 소문에 불과했다.

사실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최태수를 우연히 포장마차에서 만난 것이다.

[몰랐습니다! 반가워요!]

난 몰라본 것에 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최태수의 손을 잡았다.

[아직도 낳아진 게 없구나! 뭐하고 사니?]

최태수는 나의 아래위를 흩어 보며 허름한 옷차림에 실망이라도 한 듯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선배! 이분 누구세요?]

다희가 그런 최태수의 행동에 불쾌하다는 표정을 보이며 나에게 물었다.

[! 고교 친구 오빠 되는 분이셔.]

난 간단하게 최태수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s3학년 김다희 라고 해요.]

다희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난 그녀가 최태수에게 공손한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며 불안함이 온 몸으로 엄습했다.

다희가 본격적으로 상대방을 혼내려고 할 땐

처음은 그렇게 공손하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희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아저씨가 누군지 전 그런 건 모르겠는데요. 아무리 잘난 아저씨라 해도 s대학원 최

고 킹카 선배님을 그렇게 내리까는 것은 볼 수가 없군요.]

다희가 시작을 해놓고 잠시 최태수의 눈을 무섭게 노려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저씨...?]

최태수가 다희의 돌발적인 공격에 당황했는지 자신을 아저씨라 부른 것만 못마땅하다는 듯 되묻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선배가 검소해서 아저씨 눈엔 거지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러는 게 아니에요.

치 거지라도 바라보듯 한 눈과 말투. 듣기가 거북하네요. 당장 사과해요.]

다희의 공격이 본격 괘도에 올랐다.

[...그게...!]

최태수가 이젠 말까지 더듬거리는 것을 보니 이미 기선은 다희에게 제압된 상태로

봐야할 것 같다.

[왜요? 쥐뿔도 없는 아저씨가 잘난 것도 없는 아저씨가. 우리 선배에게 잘못은 했어

도 사과는 못하겠단 말인가요?]

다희가 다그치듯 최태수를 몰아 붙였다.

[저기요!]

앉아서 바라만 보던 최태수와 같이 있던 여자가 벌떡 일어서서 다희를 불렀다.

참다 참다 더 이상 못 참고 일어선 모습인데.

[왜요? 남자친구가 저질스럽게 선배를 모욕하고 사과를 못하니까 댁이 대신 하시려

고요?]

다희가 날 파리 쫓듯 획 한번 바라보고 한마디 던지며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최태

수에게 다시 두 눈을 고정하면서 어서 사과 하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

최태수가 입만 벌리고 할 말을 잊어버린 표정이다.

당당하게 일어서던 최태수 여자 친구는 멀쑥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앉아버렸다.

다희가 1회전은 ko승을 한 것 같았다.

[다희야!]

난 다희에게 그만 하라는 뜻을 전하는 의미로 불렀다.

[선배는 바보야?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가만있게? 내가 남자라면 벌써 주먹이

날아갔다. 어서 사과하지 않고 뭐해요?]

다희는 나에게도 핀잔을 주며 최태수에게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만약 최태수가 마지막 경고도 무시하고 사과를 안 하면 다희의 2회전 공격이 시작될

판인데.

[미안하다! 내가 실수했어!]

그 교만하기만 하던 최태수가 얼른 사과를 해버렸다.

아쉽게도 다희의 2회전은 시작되지 못했다.

[형의 성격인데 이해합니다! 하하...]

난 웃고 말았다.

최태수가 사과를 해서 통쾌해서 웃은 것은 아니다.

다희의 불같은 성격이 재미있어서 웃은 것이다.

[. ]

다희는 어김없이 내게 그 한마디를 던졌다.

연락주세요.

최태수가 포장마차에서 떠날 때.

최태수 여자 친구는 내게 최태수 몰래 그런 쪽지를 전하고 갔다.

전화번호와 함께.

무슨 뜻인지.

, ,

혼자만의 들뜬 생각에 다음날 저녁

난 최태수의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제 포장마차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나는 기대를 잔뜩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잠시만.]

최태수의 여자 친구는 그 한마디를 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젠장.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모양이다.

최태수랑 같이 뭔짓 하는데 전화를 한 것은 아닌지.

다시 전화를 할까 하다가 말았다.

편한 위치에 있을 때 전화를 하겠지.

그런 마음에 기다리기로 했다.

유명 소녀그룹의 최신 노랫소리가 들리면 그건 내 핸드폰 벨소리다.

샤워를 끝내고 막 잠자리에 들려는데.

전화가 왔다.

그런데.

못 보던 전화번호다.

잘못 온 것이겠지.

정중하게 잘못 왔다고 말해주려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뜻밖에 목소리가 아주 예뿐 여자 목소리였다.

[! 오장진입니다!]

나는 여자 목소리라는 것에 호기심을 갖고 최대한 씩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야! 민희. 최민희.]

여자 목소리는 바로 그녀였다.

최민희.

최태수 동생.

나의 고교시절 첫사랑.

[! 그래! 민희야 반가워!]

난 정말 반가웠다.

최태수 여자 친구가 나의 전화번호를 알기위해 전화를 해달라고 쪽지를 준 것이었고.

그 전화번호를 바로 민희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민희가 나에 대하여 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미 달구어진 불덩어리처럼.

나와 민희는 만날 장소부터 약속을 하고.

난 잠자려던 생각을 취소하고 늦은 밤 뛰어나갔다.

첫사랑 민희를 만나기 위해서.

민희가 만나자는 장소는 나의 집에선 멀었다.

나의 집은 한강 남쪽에 있는 방배동.

그녀가 만나자는 약속장소는 최태수를 만났던 청계천 근처 신당동이었다.

그렇다면 그녀 집이 그 근처란 이야기다.

내가 살아오면서 외식을 즐겨했지만.

가장 먹기 싫은 것이 바로 족발이다.

그런데.

그녀는 공교롭게도 족발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제기랄.

또 먹기 싫은 족발 냄새를 맡아야 할 판이다.

k족발집.

신당동에선 꽤나 유명한 족발집이란다.

한옥으로 된 큰 건물에 넓은 주차장까지.

제법 큰 식당이었다.

나는 저녁 10시가 조금 넘어서 k족발집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인데도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207.

예약된 룸이다.

물을 열고 룸으로 들어갔다.

10명은 앉을 수 있는 긴 식탁과 푹신한 소파가 앞에 놓여있고.

그 끝에 짧은 청치마에 노란 브라우스를 걸친 여자가 앉아있었다.

[어서와!]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 얼른 일어서서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바로 최민희 그녀였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

아직도 고교시절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귀에 간들간들 흔들리는 하얀색 하트모양의 귀걸이.

가느다란 금색 목걸이.

악세사리는 단 두 가지 뿐 이었는데.

그 방면에 난 전문가 수준의 안목이 있는데.

은으로 된 귀걸이와 금목걸이.

너무 싸구려 티가 난다.

회장님 딸이 이게 무슨.

너무 검소한 건가.

나와 비슷한 성격이란 건데.

덥석 잡은 그녀의 손은 가늘게 덜리고 있었다.

아직도 나를 좋아한다는 뜻인가.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정말 나를 좋아하는지 보려고.

하하.

나도 이젠 여자를 좀 알게 됐나보다.

[반갑다! 이게 몇 년 만이지?]

난 그녀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18살 때 헤어졌으니 벌써 8 년이 됐네.]

그녀가 유난히 크고 검은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그녀의 버릇이다.

아직도 날 좋아한다는 뜻도 된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뜻을 보낼 땐 늘 그렇게 두 눈을 동시에 감았다가 뜨는 버릇이 있었다.

아직도 날 좋아하고 있었군.

남자친구도 없었나.

뭘 하며 지냈지.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녀와 난 무릎을 마주 대며 가까이 마주보고 앉아서 한동안 말없이 손만 서로 잡고 있었다.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너의 아빠는 사업이 잘되고?]

한동안 서로 두 손만 마주잡고 바라보기만 하던 나는 가장 의문나는 것을 물었다.

큰 회사의 사장님 혹은 회장이 되어 있을 최민희 아빠가 뭔가 사업이 잘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벌써 5년 전에 하시던 사업이 부도나고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어. 엄만 그때

부터 몸 저 누우셔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시고,]

첫사랑인 나한테 그렇게 바로 대답하기는 힘들었을 텐데.

역시 최민희다.

성격이 숨기는 것을 모르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최민희 눈가엔 반짝 눈물이 한 방울 맺히고 있었다.

[그랬구나! 그런 너의 오빠에게서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던데? 잘나가는 것 같던데?

왜 너만?]

최태수가 거들먹거리는 것을 비유해서 민희에게 묻는 말이지만.

실제 최태수는 모든 것을 명품으로 입고 씀씀이도 가난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빤 아빠의 남은 재산이라도 물려받았잖아!]

민희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재산을 물 받으면 다 같이 물려받지. 오빠하고 같이 안살아?

오빠가 결혼했구나! 그래서?]

나는 최태수가 결혼해서 그 재산을 혼자 갖고 갔다고 생각했다.

[오빠는 아직 연애중이야. 결혼을 한 것은 나고.]

민희가 말했다.

결혼을 한 것은 나다.

민희의 그 말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다.

실망도 가져다 줬다.

난 한동안 할 말을 잊고 멍하니 민희만 바라보았다.

[? 내가 아직 미혼인줄 알았구나? 내가 미혼이면? 아직도 날 사랑하니?]

민희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마치 그 대답을 꼭 해주길 바라는 눈빛으로.

[남편은 뭐하고?]

난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남편도 2년 전에 공사장에서 다쳐서 집에 누워있어. 어머니하고 둘을 돌봐야 하므로

내가 좀 힘들어. 그렇게 보이지?]

민희가 숨김없이 다 털어놓고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당당하게 보이던 그녀.

숨김없이 다 털어놓고 난 그녀의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젠장.

여자의 눈물은 나를 약하게 만든단 말이야.

그것도 첫사랑 여인이라면 더욱 더.

[애기들은 아직 없어?]

그녀의 눈물을 보고 있으려니 고통스러워 화제를 돌렸다.

[! 결혼 후 2개월 만에 그이가 사고를 당해서.]

그녀는 슬픈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은 직업이 없었나보구나?]

난 그녀의 남편이 뭣 하는 사람이었는지 그 것이 알고 싶어졌다

[사법고시 공부 중이었는데. 돈을 번다고 공사장에 나간 것이 3층에서 떨어지며 허

리를 다쳐서.]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는 괜히 그녀의 아픈 상처를 들추고 있다는 죄책감에 미안했다.

[너 네 아빠 아직도 그 사업 계속하지?]

민희가 나에게 물었다.

민희는 알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가 사채업을 한다는 것을.

[. 그래!]

난 대답을 하면서 민희 표정을 살폈다.

민희가 생활이 어려워지자 나의 아버지에게 돈을 빌리고 싶은 모양이다.

민희 표정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너의 아빠에게 돈을 좀 빌리면 안 될까? 안되겠지? 담보도 없으니깐.]

그녀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며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너의 오빠는 결혼도 안했다며? 엄마는 왜 네가?]

난 그것이 가장 의문 이었다

[오빠 애인이 꽤 잘나가는 집안에 딸이거든. 그래서 아픈 엄마가 안 보이는 게 오빠

의 결혼을 돕는 것이라고.]

그녀의 말을 들으니 대충 이해가 갔다.

최태수 이놈이 분명 자기가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아픈 엄마가 방해가 되니 동생한테

떠맡기고 자신은 마치 혼자 인 것처럼 애인 부모에게 허락을 받으려는 것 같았다

.

[돈이 얼마나 필요한데?]

난 민희가 딱해 보여서 나에게 있는 돈이라도 빌려 주려고 생각했다.

[! 살림이 이렇다보니 빗이 늘어서 지금 갚을 돈만 8천만 원이야. 1억만 빌려주면

좋을 텐데. 안 될 거야! 그치?]

민희가 필요로 하는 돈은 내겐 없었다.

아버지가 주는 용돈은 흥청망청 다 써서 겨우 모아둔 돈이라고 몇 백 만원에 불과했다

.

1억이란 돈을 민희에게 빌려 주려면 아빠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아빠는 절대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간.

나의 애인도 아닌 그녀에게 말이다.

[그렇게 많은 돈은 아빠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데...아빤 확실한 담보와 신용 없이는

안 될 거야.]

난 그렇게 민희에게 말하면서 괜히 미안함에 그녀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안 될까? 돈만 빌릴 수 있다면 뭐든 다 할 수 있는데. 한번 너 네 아빠에게

부탁 좀 드려봐 응?]

민희는 정말 어려운 모양이다.

그렇게 첫사랑인 나에게 사정을 하니 말이다.

난 민희 사정이 딱해 보여서 안 될 줄 알면서 아빠에게 부탁해보기로 했다.

첫사랑인 그녀.

그녀가 날 찾으려 한 것은.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오직 돈을 빌리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날 그녀를 아빠에게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난 무척 우

울했다.

기대를 가졌던 첫사랑의 환상이.

겨우 돈을 빌리려는 그녀 생각 때문에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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