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손원평 작 (2)

호수 | 2021.09.11 10:09:41 댓글: 2 조회: 918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02488
4.
솔직히 할멈이 붙여 준 애정 어린 별명을 이해하는데엔 시간이 좀 걸렸다. 책에서 본 괴물들은 예쁘지 않았다. 아니 예쁠수가 없는게 괴물이였다. 그런데 할멈은 왜 날 예쁜괴물이라고 부르는 걸까. 모순된 개념을 연달아 붙여서 의미을 낳은'역설'이라는 표현이 있다는걸 알게 된 뒤에도 할멈의 방점이'예쁜'에 찍혀 있는지 '괴물'에 찍혀있는지는 잘 몰라 헷갈리곤 했다.어쨌든 할멈이 나를 사랑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으니 나는 할멈을 믿기로 했다.
엄마는 할멈에게 미키마우스 여자아이 서건을 전해 듣자 눈물부터 짜냈다.
-결국 이렇게 될줄 알았어...... 그래도 이렇게 빨리 드러날 줄은 몰랐는데......
-듣기 싫다! 징징거릴 거면 네 방에 들어가서 문 꽉 잠그로 징징대.
별안간 호통에 잠깐 눈물을 멈춘 엄마는 할멈을 한번 노려보더니 더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할멈은 쯔쯔쯔 혀를 차곤 절레절레 고개를 젓더니 휴우, 한숨을 쉬곤 천장구석을 무심히 올려다봤다. 할멈과 엄마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저 풍경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말마따나 나에 대한 엄마의 걱정은 세월이 깊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터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았으니까. 어떻게 달럈느냐 하면.
나는 웃지를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발달이 조금 느린 거려니 했다. 하지만 육아책에는 아기들이 생후 삼 일이면 웃기 시작한다고 쓰여있었다.엄마는 손을 꼽아 날짜를 세어 보았다. 백 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웃지 않는 마법에 걸린 공주처럼 나는 꿈쩍도 안 했다. 엄마는 공주의 마음을 사려는 이국의 왕자처럼 온갖 방법을 다썼다. 손뼉도 치고 땅랑이도 색깔별로 사서 흔들어 대고 동요에 맞춰 댄스도 춰 봤다. 그러다 지치면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한 대씩 피웠다. 나를 가졌다는 걸 안 뒤 간신히 끊었던 담배였다. 그 무렵 엄마가 찍어 둔 동영상을 본적이 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엄마 앞에서 어린 나는 엄마를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아기의 눈빛이라기엔 너무나 깊고 잔잔하다.
어쨌든 엄마는 나를 웃게 하는 데 실패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웃지 않을 뿐 영유아 검진결과 내 키나 체중,행동 발달은 또래의 평규에 속했다. 대수럽지 않게 여긴 동네 소아과 의사는 아기는 건강히 무럭무럭 크고 있으니 걱정 말라며 엄마를 돌려 보냈다. 엄마도 단지 내가 다른 아기들보다 조금 무뚝뚝한 것뿐이라고 애써 위안하려 했다. 하지만 돌이 지날 무렵 진짜 걱정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날 엄마는 뜨거운 물이 든 빨간 구전자를 탁자에 올려 놓았다. 분유를 타느라 엄머가 뒤돌아서 있던 사이 나는 주전자에 손을 뻗었고 다음 순각 주전자가 탁자 아래로 떨어졌다. 주전자가 나동그라지며 마루에 물이 퍼졌다. 아직 까지도 희미하게 남은 회상 자국이 그때의 훈장이다. 나는 자지러지게 울어댔고 엄마는 내가 앞으로 뜨거운 물이나 빨간주전자를 무서워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아기들은 보통 그랬으니까.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물도 주전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안에 든 물이 차갑던 뜨겁던 여진히 빨간 주전자를 보면 손을 뻗었다.
그뿐아니다 아랫집의 애꾸눈 영감도 영감이 빌라 화단에 매어 놓은 커다란 검둥개도 내겐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백태가 껴 허연 영감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고 엄마가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날카로운 이빨을 디러내며 사납게 짖어 대는 개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 개가 옆집 아이를 물어 피가 나게 하는걸 본 뒤에도 그랬다. 엄마가 무리나케 달여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몇몇 일들을 겪으며 엄마는 때때로 내 지능이 낮은건 아닌지 걱정햇지만 내 오모나 행동에서 딱히 지능이 낮다고 판단할 근거는 보이지 않았다. 나라는 아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햇갈린 엄마는 엄마답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또래에 비해 겁이 없고 침착한 아이'
엄마의 일기장 속에는 내가 그렇게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 네 살이 지나도록 좀처럼 웃지 않는다면 불안이 극에 달할 범도 하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더 큰 병원을 찾았다. 바로 그날이 내 기억에 최초로 각인된 날이다. 물속에서 본 것처럼 아른아른 하다가 때때로 선명해지는 장면.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내 앞에 앉아 있다. 그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여러 가지 장난감을 차례로 보여준다. 그중 몇개는 직접 흔들어 보이기도 한다. 이번엔 내 무릎을 작은 망치로 톡톡 두들긴다. 생각지도 않게 종아리가 그네 뛰듯 하늘로 박차고 올라간다. 남자는 내 겨드랑이 사이로 손가락을 넣는다. 나는 간지러워서 조금 웃는다. 이번에는 그가 사진을 보여 주며 몇 가지 질물을 던진다. 그중 한 가지 사진은 기억에 또렸이 남아 있다.
-사진 속의 아이는 울고 있어. 엄마가 없어졌기 때문이야. 이 아이의 기분은 어떨까?
나는 답을 몰라 옆에 앉은 엄마를 올려다 본다. 엄마는 미소를 짓고 내 머리를 쓰다듬에 준다. 그러다 문득 이랬입술을 지그시 문다.

얼마후 엄마는 우주여행을 간다며 나를 어디로 데려갔다. 그런데 도착한 장소는 병원이었다. 아픈데도 없는데 왜 여기 왔냐고 물어보지만 엄마는 답해 주지 않는다. 나는 차가운 어딘가에 눕는다. 허연 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띠띠띠 이상한 소리가 난다. 우주여행은 시시하게 끝났다.
또다시 장면이 바뀌면 갑자기 가운 입은 남자들의 수가 늘어있다. 그중 가장 나이든 남자가 흐릿한 흑백 사진을 보여주며 내 머릿속을 찍은 거라고 한다. 거짓말. 딱 봐도 저건 내 머리가 아니다. 근데 엄마는 그 뻔한 거짓말을 믿기라도 하듯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가 입을 열 때마다 옆에서 젊은 남자들이 뭔가를 받아 적는다. 조금 지루해져서 나는 발을 건들거린다. 그러다 의사의 책상을 몇 차례 친다. 엄마가 하지 말라며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올려다본 엄마의 뺨 위로 눈물이 흐르고 있다.
그 뒤로 남아 있는 그날의 기억은 엄마가 온통 우는 모습뿐이다. 엄마는 울고 울고 또 운다. 대기실로 나온 뒤에도 마찬가지다. 텔레비전에서 만화가 나오는데 엄마 때문에 집중할수가 없다. 우주 전사가 악당을 물리치는데도 어마는 울고만 있다. 결국 대시길 옆자리에서 졸고 있던 할아버지가 호통을 친다. 청승 좀 그만 떨어. 아까부터 시끄러워 죽갔네! 그제야 엄마는 야단맞은 여중생처럼 입술을 꽉 오므린 채 몸만 들썩들썩 한다.
5.
엄마는 내게 아몬드를 많이 먹였다. 나는 아몬드라면 미국산부터 시작해서 호주산 중국산 러시아산까지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종유는 다 먹어봤다. 중국산에선 기분나쁜 쓴 맛이 나고 호주산은 뭔가 모르게 시큼털털한 흙냄새가 난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도 있지만 내 입엔 역시 미국산 그중에서도 켈리포니아산이 최고다. 이제 태양 빛을 잔뜩 머금어 은은한 갈색 빛이 도는 캘리포니아산 아몬드를 먹는 나만의 방범을 알려주겠다.
먼저 아몬드 봉지를 집어 들고 그 안에 든 아몬드의 촉감을 느껴본다. 포장지 아래로 만져지는 단단한 알맹이들이 고집스럽다. 봉지 윗부분을 가만히 뜯고 이중 처리된 지퍼를 연다. 눈을 감은 상태어야 한다. 그런 다음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봉투 안으로 코를 들이민다. 얕게 숨을 끊어서 들이쉰다. 향이 몸속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아몬드 향이 깊이 들어찼을 때 반 줌 정도를 입안에 털어 넣는다. 혀로 아몬드의 결을 느끼며 한동안 입안에서 굴린다.뾰쪽한 곳을 찔러도 보고 아몬드 표면의 홈을 혀러 훑어도 본다. 너무 오래 해서는 안된다.아몬드가 침에 불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건 그저 클라이맥스를 위한 준비 과정일뿐이다. 짧으면 시시하고 길면 임팩트가 사라진다. 적당한 타이밍은 당신이 직접 찾아야 한다. 클라이맥스로 향해 갈 때는 아몬드가 점차 커지는 상상을 한다. 손톱만한 아몬드가 포도알 만큼 키위만큼 오렌지 만큼 수박만큼 점점 커진다. 이제 아몬드가 럭비공만큼 부풀었다. 바로 이때다 와드득 깨문다. 그러면 아그작 소리와 함께 멀고먼 캘리포니아에서부터 날아든 해빛이 입 안으로 퍼져 나간다.
굳이 이런 의식을 치르는 이유는 내가 아몬드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식탁위엔 삼시 세끼 아몬드가 올랐다. 피할길은 없었다. 그러므로 먹는 방법을 찾은 것뿐이다. 엄마는 아몬드를 많이 먹으면 내 머릿속의 아몬드도 커질 거라 생각했다. 그게 엄마가 기댈 수 있는 몇 안되는 희망 중 하나였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고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것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 라든지 '편도체' 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니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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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11.♡.84
토마토국밥 (♡.15.♡.73) - 2021/09/12 08:09:25

잘보고 갑니다

호수 (♡.111.♡.94) - 2021/09/13 05:04:1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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