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손원평 작 (14)

호수 | 2021.09.27 19:32:09 댓글: 2 조회: 695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08413


43.
계절은 어느덧 5월의 초 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5월 정도면 많은 게 익숙해진다. 신학기의 낯섦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게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 있는 엄마만이 영원한 1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방과 후에만 문을 열었으므로 당연히 책방의 매출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모릅지기 장사란 되지 않으면 접어야 한다던 할멈의 말도 떠올랐다. 매일 먼지를 쓸고 닦었지만 두 사람이 사라진 공간은 점점 낡아 가는 느낌이었다. 나 혼자 이공간을 언제까지 감당할수 있을까.
서가 사이를 걷다가 들고 있던 책들을 우르르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책장에 손끝이 베였다. 습기를 잔뜩 먹은 헌 책방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빳빠하고 두꺼운 종이로 만든 백과사전이라 운이 없었을 뿐이다. 낙하하는 핏방울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바닥에 붉은 핏방을이 도장처럼 톡톡 찍힌다.
- 뭐 해. 병신아. 피 나잖아.
곤이다. 들어온 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다가와선 말한다.
- 안 아프냐?
곤이의 눈이 동그랗다. 얼른 휴지를 뜯어 손에 쥐여준다.
- 이 정도는 괜찮은데.
- 지랄 마. 피 나면 아픈 거야. 진짜 바보냐?
곤이가 화를 냈다. 생각보다 많이 베였는지 휴지가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 곤이는 새로 휴지를 말아 내 손에 쥐었다. 꽉 잡은 손가락에서 맥이 고동쳤다. 한창 동안 그러고 있자 피가 멎었다.
곤이가 언성을 높였다.
- 네 몸 건사할 줄도 모르냐?
- 아프긴 한데 참을 만해서.
- 피가 줄줄 흐르는데 참을 만해? 너 진짜 로봇이냐. 그 렇게 생각하니까 어. 그렇게 대충대충 얼버무리니까 네 할머니, 엄마가 눈앞에서 그 꼴을 당하는데 멍청히 서 있었지. 아프겠단 생각. 막아야겠단 생각도 못 했지. 화도 안 내고. 아무것도 모르니까.
- 그래. 의사들이 그렇대. 타고났대.
사이코 패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이 나를 놀릴 때 쓰던 대표적인 단어다. 엄마와 할멈은 길길이 뛰었지만 사실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나는 진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힉나 죽여도 죄책감이든 혼돈이든 아무것도 못 느낄 테니까. 그렇게 타고났으니까.
- 타고나?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말이야.
곤이가 말했다.

44.
얼마 후 곤이는 투명 한 플라스틱 통을 가기고 왔다. 어디서 구했는지 그 안에는 나비가 한 마리 들어 있었다. 날갯짓을 하기엔 통 안이 너무 좁은지 나비가 여기저기에 둔탁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 이게 뭐야.
- 공감 교육.
곤이의 얼굴에 웃음기는 없었다. 장난은 아닌거다. 그 애는 조심스레 손을 넣어 나비를 손으로 잡았다. 꽃잎처럼 얇은 날래를 잡힌 나비가 힘없이 버둥댔다.
- 어떨것 같아?
곤이가 물었다.
- 움직이고 싶을것 같다.
나비를 꺼낸 곤이는 한 손에 날개를 한쪽씩 잡다니 조금 씩 옆으로 늘이기 시작했다. 나비의 더듬이가 여기저걸 휘었고 몸통은 심하게 버둥거렸다.
- 나한테 뭔가 느끼게 하려고 이런 짓을 하는 거라면 그만둬.
- 왜
- 나비도 아플 테니까.
- 네가 아픈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지?
- 팔을 잡아당기면 아프니까. 그런 건 경험이다.
곤이는 그만 두지 않았다. 나비의 몸부림도 극심해졌다. 곤이는 날개를 잡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딴 데로 돌렸다.
- 아플것 같다? 그게 전부면 안되지.
- 그럼?
- 예를 들면, 네가 아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야지.
- 내가 왜 아파? 난 나비가 아닌데.
- 좋아. 계속 가보자. 네가 뭔가를 느낄 때까지.
곤이가 날개를 더 잡아당긴다. 여전히 딴 데를 보면서.
- 그만하라고 말했을 텐데. 생명을 갖고 장난치는 건 나쁜거다.
- 교과서처럼 나불대지 마. 말했잖아. 네가 정말 뭘 느끼면 그때 놓아주겠다고.
그 순간 나비의 날개 한쪽이 찢어졌다. 곤이의 입에서 짧고 급한 숨이 튀여 나왔다. 한쪽 날개를 잃은 나비는 남은 날개를 헛되이 놀리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 불쌍하단 생각 안드냐?
곤이가 씩씩 대며 물었다.
- 불편해 보여.
- 불편해 보이는게 아니라 불.쌍. 해. 보이지 않냐고 망할.
- 그만두자.
- 아니.
곤이는 허둥거리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바늘이었다. 그 애는 바닥을 돌고 있는 나비에게 바늘을 가져다 댔다.
- 뭐 하는 거야.
- 똑똑해 봐.
- 그만 둬라.
- 똑똑히봐 안 그럼 다 박살 날줄 알아. 알았어?
나는 책방이 난장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곤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아이라는 걸 알았다. 곤이는 의식을 치르는 제사장이라도 된 양 나비를 노려봤다. 순식간에 나비의 몸통에 바늘이 꽂혔다. 나비는 소리없이 발버둥 쳤다. 자신이 할수 있는 최대한으로, 파닥거리며, 필사적으로.
곤이는 나를 매섭게 쏘아봤다. 그러곤 이를 악물더니 남아 있던 나비의 한 쪽 날개마저 떼어 냈다. 표정이 변하는 건 내가 아니라 곤이 쪽이였다. 눈썹이 눈에 띄게 움찔거리기 시작했고 비웃듯 올라갔던 입술은 이빨에 꽉 물려 있었다.
- 어때, 이제 좀 맘이 움직이냐? 이래도 불편해 보이기만 하냐고, 그게 네가 느끼는 전부냐고.
곤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 이제는 아플거라고 생각해, 몹시. 근데 불편해 보이는 건 너다.
- 그래 난 이런 거 좋아하지 않거든. 화끈하게 패든가 죽여 버리는게 낫지, 이런 식으로 미적거리면서 고문하는 거 아주 질색이야.
- 그럼 왜 하는데. 난 어차피 네가 원하는 걸 보여 줄수가 없어.
- 닥쳐 병신아.
어느새 곤이의 얼굴이 뒤틀려 있었다. 소각장에서 내게 발길질 하던 그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곤이는 나비에게 뭔 가를 더 해 보려 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날게도 없이 몸에 바늘이 꽂힌 채 빙빙 도는 나비는, 더이상 나비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벌레는 온몸으로 고통을 표현하고 있었다. 앞, 뒤, 옆으로 빙빙돌며 초라해진 모습으로 사력을 다했다. 그만 두라고 외치는 걸까. 끝까지 살고 싶어서 그런걸까. 그저 본능일거다. 감정이 아닌. 감각이 주는 본능.
- 젠장 못해 먹겠네!
쿵, 쿵,쿵 곤이는 나바릴 땅에 던지더니 몇 차례밝고 짓이기듯 힘을 다해 발을 비볐다.

45.
나비가 있던 자리엔 점 같은 흔적이 남았다. 나는 나비가 편안한 곳으로 갔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비가 불편에 처하는 걸 막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이 눈싸움 같은 거였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게임이다. 먼저 눈을 감는 쪽이 지는 것 뿐이다. 그런 종류의 싸움에서 나는 언제나 승자다. 삶들은 눈을 감지 않으려고 기를 쓰지만, 나는 애초에 눈을 감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곤이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시간이 길ㅇ지고 있었다. 그 애는 나비에게 그런 짓을 하고 나서 왜 화를 냈을까. 내가 반응하지 않아서? 자신을 막지 않아서? 결국 그런 짓을 하고 만 스스로에게 화가나서? 이런 질문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다.

심 박사는 내가 던지는 질문에 늘 최선을 다해서 답하려고 애썼다. 곤이와 나의 특별한 관계를 편견없이 들어주는 사람도 그가 유일했다.
- 전 평생 지금 처럼 살게 될까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서 말이에요.
우동 면발을 삼키며 물었다. 심 박사는 가끔 내게 밥을 사줬는데 면 종류를 좋아했다. 취향이 빵 아니면 면인 모양이었다. 그는 단무지를 끝까지 씹어 삼키곤 입을 닦았다.
- 어려운 질문이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한테서 그런 질문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굉장한 변화라고. 그러니까 노력을 해 보자고 말이야.
-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데요? 타고난 머리의 문제라면요. 엄마가 시켜서 매일 아몬드도 먹었지만 아무 소용 없었어요.
- 음. 글쎄 아몬드를 먹는 대신 자극을 주는 건 조금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뇌라는 놈은 생각보다 멍청하거든.
편도체가 작게 태여났지만 노력을 통해 가짜 감정이라도 자꾸자꾸 만들다 보면 뇌가 그걸 진짜 감정으로 인식 할지도 모른다는 게 심 박사의 말이었다. 그러면 편도체의 크기나 활성화에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읽는 게 조금은 쉬워질지도 모른다고.
- 지난 십육 년간 꿈쩍 않던 머리가 이제 와서 변할 까요?
- 예를 들어 주마. 스케이트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 백날 연습을 한다고 해서 최고의 스케이터가 되지는 못할거다. 타고난 음치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멋들어지게 불러 청중의 갈채를 받는 것도 불가능 하겠지. 하지만 연습을 하면 말이다. 적어도 비틀거리며 얼음 위로 조금 나아가는 것 정도는, 서툴게 나마 노래 한 소절쯤 부르는 것 정도는 가능해 진단다. 그게 바로 연습이 허용하는 기적이자 한계란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이 됐으나 설득되진 않았다. 과연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일까.
- 이런 고민을 언제부터 했었니?
- 얼마 전 부터요.
- 계기나 이유가 있니?
- 글쎄요. 남들은 다 본 영화를 나만 못 보고 있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못 보고 살아도 상관없지만 본다면 다른 사람들과 얘기 나눌 거리가 조금쯤은 많아지겠죠.
- 놀라운 발전인걸. 방금 네 말 속에는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담겨 있단다.
- 사춘기 인가 보죠.
심 박사가 웃었다.
- 이왕이며 즐겁고 예쁜 걸로 연습하려무나. 넌 백지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나쁜 것 말고 좋은 걸 많이 채워 넣는 편이 좋아.
- 해 볼게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가만 있는 것 보다는 나을 테니까.
-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알궃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 과 완전히 달라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 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맹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번 차이고 밟히고 굴러다니고 깨진다는 걸' 알게 되면' 돌맹이의 ' 기분' 은 어떨까. 이 예 조차아직은 네게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니까. 내가 말하려는 건 ... ...
- 알아요. 엄마가 비슷한 얘길 자주 해 주셨어요. 절 위로하려고 한 말이겠지만. 엄마는 아주 똑똑한 여자였거든요.
- 엄마들은 대부분 똑똑하지.
심 박사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조금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 물론이다. 어떤 질문이지?
-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이랄까요?
심 박사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두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나비에 관한 이야기 부터 꺼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심 박사는 두 손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얘기가 다 끝나자 표정을 풀고 빙긋 웃었다.
- 그러니까 네가 알고 싶은 게 정확히 뭐지? 곤이가 네앞에서 그런 짓을 한 이유? 아니면 그때 곤이가 느꼈을 감정?
- 글쎄요. 둘 다라고 해 두죠.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곤이는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
- 친구.
내가 의미 없이 되뇌었다.
- 친구가 되고 싶을 때 눈앞에서 나비를 찢어 죽이기도 하나요?
심 박사는 두손을 깍지 꼈다.
- 그건 아니지. 아무튼 네 앞에서 나비를 죽이 고 나서 그 애는 자존심이 많이 상한 것 같다.
- 나비를 죽여 놓고 자존심은 왜 상했을까요.
박사 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재빨리 덧붙였다.
- 저를 이해시키는 게 쉽진 않으실 거예요.
-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단순하고 쉽게 얘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자, 핵심만 말하마. 그 앤 너한테 관심이 많다. 널 알고 싶어하고, 너와 같은 느낌을 느끼고 싶어해.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늘 그 애쪽에서 네게 다가간 것 같다. 한 번쯤 네가 먼저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
- 한가지 질문에도 백 가지 다른 답이 있는게 이 세상이란다. 그러니 내가 정확한 답을 주기는 어렵지. 특히 네 나이 땐 세상 이 더 수수께끼 같을 거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되는 때거든. 그래도 굳이 조언을 원한다면, 질문으로 대신하마. 그 애가 너한테 제일 많이 한 행동이 뭐지?
- 때린 거요.
심 박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 깜빡했구나. 그건 패스하자. 그다음으론?
- 음.
잠깐 생각했다.
- 찾아온 거요.
박사가 테이블을 가볍게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 네가 할수 있는 방법 하나는 찾은 것 같구나.







추천 (0) 선물 (0명)
IP: ♡.179.♡.193
토마토국밥 (♡.15.♡.73) - 2021/09/29 16:47:38

잘 보고 갑니다

호수 (♡.179.♡.193) - 2021/09/29 17:20:01

감사합니다.

23,400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나단비
2024-03-29
0
34
나단비
2024-03-29
0
15
나단비
2024-03-29
0
26
나단비
2024-03-28
0
24
나단비
2024-03-28
0
24
나단비
2024-03-28
0
14
나단비
2024-03-27
0
20
나단비
2024-03-27
0
32
나단비
2024-03-27
0
40
나단비
2024-03-27
0
26
나단비
2024-03-27
0
32
나단비
2024-03-26
0
26
나단비
2024-03-26
0
32
나단비
2024-03-26
0
33
나단비
2024-03-26
0
44
나단비
2024-03-26
0
52
뉘썬2뉘썬2
2024-03-26
1
67
뉘썬2뉘썬2
2024-03-26
1
67
나단비
2024-03-25
0
76
나단비
2024-03-25
0
52
나단비
2024-03-24
0
39
나단비
2024-03-24
0
83
나단비
2024-03-07
0
417
나단비
2024-03-07
0
386
나단비
2024-03-07
0
412
나단비
2024-03-06
1
469
뉘썬2뉘썬2
2024-03-05
1
453
뉘썬2뉘썬2
2024-03-04
1
488
나단비
2024-03-04
1
457
나단비
2024-03-03
1
432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