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34 잊혀졌던 무공

3학년2반 | 2021.12.01 08:22:51 댓글: 0 조회: 664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28939
잊혀졌던 무공

사육 백인대는 빠른 속도로 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140리 지점에 도착했지
만 몽고병의 흔적만을 발견했을뿐 몽고병은 벌써 내빼고 없었다. 이제부터 묵
향은 조금씩 말에 피로를 적게 주면서 이동을 시작했다. 나중에 기마전이 벌
어져도 말이 피로하면 제대로 힘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시진 정도 왔을까
전방에서 칼소리와 호령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한 국광은 모든 수하들을 이끌고 달려나갔다. 전방에서 선행하
는 육 십인대와의 거리는 6리(2Km정도). 적의 매복 기습을 받았다면 아마도
피해가 클지도 모른다. 그 부근에 2개 십인대가 있고 또 본대와의 중간에도 1
개 십인대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국광이 쫓는 부대는 패잔병이라고는 하지
만 팔천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죽자고 달려갔을 때 국광은 숲에 매복한 부대가 모두 보병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을 처음 보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말은 어디있지?'

몽고병은 말을 타고 싸운다. 아무리 매복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부는 말을
타고 퇴로 차단을 하기위해 달려나와야만 했다. 그런데도 적은 달려나와 백병
전을 벌이거나 아니면 활로 응사할뿐.... 그걸 보자마자 국광에게 짚이는 점
이 있었다.

'앗차!'

화살의 사거리 조금 못미처 국광은 외쳤다.

"모두들 말에서 내려!"

그와 동시에 자신도 내리면서 최대한의 경공술을 이용하여 적에게로 달려갔
다. 그러면서 임충에게 외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임충 너는 수하들을 데리고 말을 3리 밖으로 몰고가서 거기서 대기해라!"

국광의 지시를 받은 나머지 수하들도 임충이 거느리는 사육팔 십인대에게 말
들을 맏기고 경공술을 써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광에 비해 둔중한
갑주를 입은 그들의 속도는 날 수 없었다. 국광은 달려나가면서 걸리적거리는
갑주까지 벗어던지고는 죽자고 경공을 써서 앞으로 달려나갔고 그것을 뒤에서
본 수하들은 그의 경공술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매복한 적은 천명정도.... 지금 매복에 걸린 4개의 십인대가 분전(奮戰) 중이
었지만 그들의 말은 주위에 모두 죽어있었고 모두들 말시체 주위에서 등뒤에
화살을 몇대씩 박은채로 육박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고수들이라
고는 하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아 이미 몇 명의 시체가 보였고 또 남아서 싸
우는 자들의 몸에도 상당한 상처가 있는 것이 보였다. 국광은 적들에게 뛰어
들자 마자 자신이 가진 전력을 다해 무공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적의 숫자가
많은만큼 속전속결이 최고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전투를 빨리 종결짓
지 못한다면 저 4개 십인대의 인원들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 하는 걱정도 앞섰다.

"이얍!"

국광의 검이 휘둘러질때마다 검에서 뻗어나오는 검기는 더욱 강대해지기 시작
하더니 이윽고 유형의 강기로 변해갔다. 국광의 검에서 뻗어나오는 강기는 더
욱 더 강해지기 시작했고 그 강기의 회오리에 휩쓸린 적들의 몸은 토막이 나
며 날아갔다. 죽자고 검을 휘두르며 국광은 자신이 지금 전력(全力)을 다한다
고 생각했다.

'11만의 적과 싸울때도 나는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전력을 다하고 있을까.... 그리고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솟아나오는 이
힘은 뭐란 말인가....'

미지의 힘이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라 온 몸의 혈도를 타고흐르는 것을 느끼며
국광은 더욱 더 초식에 공력을 실었다. 그런데.... 그런 어느 한순간.... 갑
자기 몸이 편안해지며 초식이 더욱 원활하게.... 또 진기의 유통이 더욱 원활
하게 풀림을 갑작스레 느꼈다.. 그리고 그의 청성검에서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강기가 피어나오고 있었다.

'어검술인가.... 나는 이걸 지금 깨달은 것인가... 아니면 이전에 익힌 것이
내가 전력을 다하자 다시 나타난 것인가...'

빙긋이 미소지으며 국광은 생각했다.

'아마 이전부터 알고있던 것이겠지...'

그러면서도 국광의 맹렬한공격은 끊이지 않았고 자신이 알고있는 황궁무학의
진수를 쏟아부어 사방으로 검강을 날리며 수많은 적들을 죽여나갔다. 피와 살
이 튀어오르고 절단된 적의 몸뚱이가 날아다녔다. 국광은 죽자고 움직이며 저
쪽에서 이제 적의 포위가 그런대로 풀렸지만 국광의 악귀같은 형상을 보고 질
려있는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네녀석들은 뒤로 물러서... 잘못하면 다친다."

국광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부상자를 부축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뒷
편에서 자기딴에는 최대한의 속도로 달려오고있는 수하들에게도 소리쳤다.

"모두들 이리 오지 마! 걸리적거린다."

국광의 소리를 들은 수하들은 한편으로는 이런 미친 명령을 들을 생각이 없었
지만 그래도 대장의 명령이라 모두들 모여 진형을 짠 다음 국광이 밀리면 도
와줄 생각들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모두 국광의 싸우는 모습을 지
켜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국광은 이제 주변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지자 더
욱 광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무장(武將)이라기 보다는 한 마리의
악귀(惡鬼)에 가까웠다. 온 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사방을 누비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살육하는....

국광은 있는힘껏 검을 휘두르며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내력(內力)과 싸울수록
차분해지는 마음.... 일대천의 말도안되는 싸움이지만 진다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아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국광
은 아직까지 읽기만 했을뿐 사용해보지 않은 수많은 황궁무학을 이 자리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수많은 초식들을 펼치던 중 솟아오르던 자신감도... 모
든 생각도 점점 다 사라지고 오직 눈앞의 적을 향해 검을 날릴 뿐이었다. 완
전한 무념(無念)....

국광의 수하들은 국광이 검술뿐 아니라 장법... 권법... 각법... 등등 황궁무
학을 이용해서 수많은 적들을 피떡을 만들어 나가는 걸 보고 전율을 금치 못
했다. 그는 오른손으로 청성검을 잡고 왼손으로는 권법이나 장법을 펼치며..
양 다리로는 각법을 펼치면서 주변의 몽고병들을 죽여나가고 있었다. 국광의
행동을 차분히 뒤에서 바라보고있던 마화가 옆의 임충에게 자랑스럽게 말했
다.

"봐.... 황궁무학이라고 했잖아..."

황궁무학에 대한 자랑에 속이 뒤틀린 임충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난 황궁무학은 익힌적도 없다고 했지? 하지만 대단하긴 대단하군... 어검술
에 검강까지 쓸줄이야.... 나도 황궁무학을 좀 익혀야겠어... 나는 황궁무학
이 저정도로 대단한줄은 오늘 처음 알았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아버지가 황궁무학만을 고집했을때는 무림사(武林史)
에 이름난 고수 한명 배출한적 없는 황궁무학을 익히게 한다고 불만도 많았었
는데... 오늘보니 그게 아냐... 사람의 정도에 따라 유치한 것 처럼 보이던
초식도 저렇게 살인적인 초식이 된다는 걸 처음 알았어."

국광의 엄청난 초식들을유심히 바라보며 임충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군. 대체 어떤 수련을 쌓으면 저정도의 고수가 될 수 있는거지?"

그러자 마화는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거야 알 도리가 없지. 도대체가 웃기는 대장이라니깐... 맨날 하는 말로는
왜 살인을 할까... 도덕이 어쩌구.... 웃기는 얘기만 해대면서 피만 보면 정
신을 못차리니..."

거의 2각이 지나자 일대천의 대결은 거의 종말을 고해가고있었다. 창칼을 든
용사들은 근처에만 가도 두토막이 났으며 활을 쏴도 모두 다 막아내고 간혹
운좋아 맞췄다 하더라도 옷에 맞은 후 다시 튕겨나가는 악귀에게 서서히 공포
를 느끼기 시작했다. 조금 더 지나자 그들의 일부가 슬금슬금 뒷걸음치기 시
작하더니 일부가 본격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자 나머지도 따라서 일제히 도망
치기 시작했다. 몽고병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문득 이성을 차린 국광이 손에
묻은 피가 검을타고 흘러내리는 걸 보면서 잠시 멍하니 서있더니 수하들이 모
두들 자신을 빤히 지켜보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어색한 표정으로 잠시 망설
이다 외쳤다.

"추격해서 전멸시켜!"

그러자 모두들 괴성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하지만 유일하게 한명... 마화는
달려나가지 않고 국광의 말을 끌고 창백한 표정으로 아직도 얼이빠져있는 국
광에게 다가왔다. 그런다음 자신의 말안장 뒤쪽에 묶여있던 수건을 꺼내어 국
광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끔찍한 얼굴 하고 있지말고 어서 피나 닦아요."

국광은 그 수건을 받아 피를 대강 닦아낸 다음 말안장 위에 올려진 자신의 갑
주를 입기 시작했다. 갑주를 입고있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마화가 말했
다.

"도대체 오늘은 왜그래요? 죽으려고 작정.... 아니지... 오늘 보니 당신을 죽
일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도 않더군요."

"글쎄.... 처음엔 뭐랄까... 분노... 안타까움... 뭐 이런 감정에서 시작되
었는데 나중에 피를 너무 봐서 그런지 아무 생각도 안나더군... 보기에 흉칙
했나?"

그에 마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뭐... 그렇게 흉칙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악귀(惡鬼)같았을 뿐이니까.."

국광은 피에젖은 수건을 던지며 말했다.

"악귀라.... 그럴지도 모르지.... 이 수건은 못쓰겠으니 나중에 새걸 주지."

갑주를 다 입고난 국광은 말에 오르며 마화에게 말했다.

"자.. 가자."

추격전은 반 시진도 안되어 끝이났다. 매복했던 몽고병은 모두 다 죽였지만
그 뒷맛은 씁쓸했다. 국광은 추격전이 끝난 다음 다시 집결한 수하들을 둘러
보며 말했다.

"완전히 글렀군. 이번 매복조는 나머지 칠천명이 살아돌아가기 위한 희생물이
야. 그런데 우리들에게 걸렸으니... 저들의 희생이 가엾게 됐군."

"무슨 말씀입니까?"

"저들은 우리의 목숨 보다는 우리의 말을 없애는데 더욱 신경을 썼다. 우리는
중갑주를 입었기에 말이 없다면 퇴각하는 적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아마도
그들은 정찰조에게 들켜버린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싸움을 시작한 것이었겠지
만 어찌되었건 빨리 해치운 다음 새로운 먹이를 기다릴 생각이었겠지. 그런데
후속대가 너무 빨리 도착했고... 또 빨리 해치우지를 못해서 전체적인 작전이
어긋난 것 뿐이야. 거의 60필의 말을 잃었으니 더 이상 적의 본대(本隊)에 대
한 추격은 불가능... 그리고 선도(先導) 임무를 이행할 수도 없다. 거기에 부
상자도 많고..."

여기서 말을 멈춘 국광은 수하들을 빙 둘러본 다음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돌아가자. 마화는 10명을 이끌고 말을 잃은 수하들을 보호하여 후속하는 관
지(關知) 대장(隊長)에게 사정을 얘기한 다음 본대로 회군(回軍)해라. 그리고
말을 타고있는 사람들 중에서 30명은 나를 따라서 이동한다. 직접적인 전투는
힘들겠지만 정찰임무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겠지."

국광이 처음에는 모두 다 돌아갈 듯이 말하다가 나중에는 30여명을 이끌고 다
시 정찰활동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 마화가 의의를 제기했다.

"대장. 저도 남겠어요. 누구 다른 사람을 선임해주시면..."

"네가 가라. 말(馬) 없이 회군하는 수하들을 보호할 임무도 막중한거야. 이제
그만 여기서 헤어지자. 자.. 출발!"

* * *

국광은 자신들이 매복대와의 교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입했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자신들은 관지대장의 명령을 받자마자 거의 최소한의 시간을 투입해서
출동했으니 본대와 더불어 나머지 2개 천인대까지 함께 출발했다면 그 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었다. 거기에 적이 발견된 140리 지점까지는 대단
한 속도로 이동했으니.... 하지만 여기서 막대한 시간을 투입한 결과 지금 거
의 본대는 국광의 사육백인대와 적으면 10리 최대한으로 잡아도 아마 40리까
지 거리를 좁혔을 것이다. 더 이상 거리가 좁혀들면 국광의 30여기(騎)로서는
참다운 정찰활동을 할 수 없게된다. 그 때문에 국광은 오랜 전투로 지친 병사
들을 독려하여 빠른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60리 정도 앞으로 추격해 나갔을 때 전방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밀려오는 것
이 멀리 보였다. 그것을 힐끗 바라보며 임충이 국광에게 말했다.

"멀어서 잘 모르겠지만 행색(行色)을 보아하니 피난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피난민을 가장한 적의 분대(分隊)인지도 모르니 빨리가서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좋아. 자네는 여기 남아 퇴로를 확보하라. 나는 10여기를 거느리고 정찰을
하겠다. 만약 혼전(混戰)이 벌어지더라도 구출하기 위해 혼전속에 뛰어들지
말고 퇴로의 확보에 최선을 다해라."

"예."

임충은 마화와 함께 사육 백인대에서는 가장 고참이다. 그렇기에 마화를 돌려
보낸 지금 자연스럽게 임충은 거의 부 백인대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임충은 마상에서 고개를 돌려 뒤쪽의 대원들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차임(車林)!"

그러자 뒷편에 피에 젖은 갑주를 입은 무사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의 갑옷
에는 사육구(四六九)라고 쓰여 있었다. 차임은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젊지만
뛰어난 검객이었다.

"예."

"네가 9명의 수하를 이끌고 대장을 따라가라."

"예... 그쪽의 9명. 모두 날를 따르라."

국광이 피난행렬로 보이는 집단에 근접해 들어갔다. 모두들 최대한 상대의 기
습에 대비했지만 더욱 가깝게 접근하자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진짜 피난민들이었다.

많은 말떼와 양떼를 이끌고 그 사이사이에 모두들 마차에 짐을 가득 싫고 이
동중인 그들의 표정에는 절망감만이 있을 뿐이었다. 장정들은 거의 없고 모두
들 노인과 여자... 어린애들 뿐... 국광은 그들 중의 한 나이 지긋한 노인에
게 다가가 말했다.

"어디로 가는가?"

검은 갑옷을 입은 중국인이 난데없이 몽고어로 말을 걸자 그는 놀란듯한 표정
이었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곤륜하(坤輪河) 쪽으로 갑니다. 나으리."

"왜?"

"진령하(震逞河) 쪽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자네 부족의 이름은뭔가?"

"타지크 부족입니다요. 나으리.."

"타지크면... 지울부족의 한갈래가 아닌가?"

그러자 그 노인의 눈에 공포가 어리며 더듬더듬 항변했다.

"아닙니다요.... 타지크는 지울... 지울 부족의..영토에서 일부 생활하긴..
하지만 지울부족과 절친하지도 않습니다요.. 나으리."

국광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쏘아보며 말했다.

"그래? 내가 잘못알고있었나?"

"잘못 아신 겁니다요... 나으리."

"좋아.. 그건 어찌되었건 상관없어. 이쪽으로 지나가는 약 칠천기의 몽고병사
들을 만났나?"

"못만났습니다요.. 나으리."

"자네들은 어디서 오는 길인가?"

"울란토르에서 오는 길입니다요. 나으리."

"울란토르? 울란토르라면 충분히 만났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면서 휙 피난행렬을 둘러보자 가장 눈에 확 띄는 것 중의 하나가 부족의
크기에 비해 말이 적다는 점... 그리고 남자가 너무 없다는 것이다.

'아마 말과 남자들이 그녀석들에게 합류했다고 봐야겠군. 여자들의 숫자로 봤
을 때 거의 천명정도...?'

"좋아. 뭐... 나완 별 상관없는 것 같으니 너희들은 최대한 빨리 이 부근을
떠나라. 이 근처에서 뭉기적거려 봐야 신상에 좋을게 없을테니까... 이봐, 차
임!"

"예."

"임충보고 전진하라고 해. 자 우리도 출발한다."

칠천기나 되는 병력이 움직인 대초원에 새겨진 흔적은 쉽게 없앨 수 있는게
아니다. 폭설이나 폭우가 쏟아진다면 몰라도... 타지크 부족과 서로 합쳐진
부분에서 혼동만 안하면 추격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 국광이 마상에서 건포로
식사를 때우며 죽자고 부하들을 몰아붙여 250리 (약 76Km)정도를 추격한 다음
에야 적의 후미를 포착할 수 있었다. 국광은 패잔병들과 20리(약 6Km)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비밀리에 후속하는 본대를 유도했다. 적들은 그날 100리 정
도를 더 이동한 다음 약 3000가구에 이르는 몽고마을을 만나 그곳에서 야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본대는 그날 저녘 늦게야 국광의 정찰대와 합류했다.

관지 대장은 적이 후퇴의 속도를 조금 줄인 이유가 뒤에 남겨둔 천여명의 매
복대에 대한 기대감이란 걸 눈치채고 이토록 빨리 적의 꼬리를 잡은 국광의
공로를 치하한 다음 휘하의 장수들과 전투 토의를 시작했다. 5개 백인대가 적
의 퇴로로 예상되는 지점들에 매복을 한 후 나머지 25개 백인대로 새벽을 틈
타 기습을 벌이기로 계획을 수립했다. 그중 국광이 거느린 30기는 국광의 부
탁을 받아들여 매복대에 합류하기로 했다.

당일(當日) 새벽 25개 백인대의 기습이 시작되는 것을 국광은 멀리 초원에서
말들을 눕혀놓은 상황에서 구경했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고 격렬
한 전투가 개시되었다. 안그래도 무술을 모르는 몽고인들을... 그것도 기습을
가했으니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그것은 전투가 아닌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찬
황흑풍단은 그렇게 패잔병과 그들을 도와준 지울 부족의 마을 한 개를 없애버
렸다. 사방으로 적들의 일부가 도망쳤지만 매복한 5개의 백인대는 그들을 놓
치지 않았다.

모든 전투가 종료되었을 때 이미 해는 중천에 떠올라 있었고 세명의 천인대장
들의 지시로 몽고병들의 부상자와 포로들을 모두 처형했다. 그리고 그들을 도
와준 마을은 젊은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였다. 철저히 약탈
당했으며 곳곳에서 살인... 방화... 강간... 약탈이 자행되었다. 마을은 그야
말로 지옥의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고 수많은 시체가 뒹구는 묘지가 되었다.

국광은 휘하의 30기를 거느리고 마을에서 거리를 둔 상태로 아직도 매복한 장
소에 있었다. 국광으로서는 대송제국 최고의 정예인 이들이 이렇게까지 전투
를 잔인하게 이끌어갈줄은 생각도 못해본 사실이었다. 아무리 멀찍히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의 일부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
고 또 군데군데서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지
긋이 그 광경을 바라보며 옆의 임충에게 말하는 듯... 아니면 혼자말을 하는
듯 나직히 입을 열었다.

"과연 전쟁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 임충이 말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몽고족들은 아주 강인한 민족이라 이렇게 강하게 맛을 보
여놓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반기를 들지 모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병사도 아닌 민간인들을... 저렇게까지..."

국광의 안색을 힐끗 살피면서 임충이 화제를 돌렸다. 계속 이런 얘기를 해봐
야 시간낭비기 때문이다.

"대장,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매복했던 다른 백인대들은 모두 약탈에 참가
했습니다. 우리만 이렇게 떨어져 있다구요."

"음....."

국광은 잠시 생각하더니 큰소리로 부하들에게 말했다.

"약탈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이 있냐?"

모두들 서로의 눈치만 멀뚱멀뚱 보더니 서로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찬황흑풍단으로서는 단장의 지엄한 명령때문이지 거의 대부분의 병사들이 이
따위 돈도안되는 몽고족들의 약탈따위 하고싶은 자들은 많지 않았다. 거기에
몽고족 계집들이 미인도 아니고 추위탓에 목욕도 별로 안하는 것들을 강간해
봐야 그도 별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국광은 수하들의 표정을 차근히 훑어본
다음 말했다.

"여기 계속 있어봐야 별 볼일도 없으니 관지 대장에게 통지하고 회군한다. 합
류한 다음 쉬는게 남는거겠지. 그리고 떠날 때 마화에게 살짝 일러놨으니 운
좋으면 술맛도 볼 수 있겠지. 지금까지 단장의 본대는 움직이지 않고 있나?"

술맛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모두들 기대감에 차서 군침을 삼키며 '역시 우리
대장'하는 표정으로 국광을 바라봤다. 국광의 옆에있던 임충도 미소를 띄며
국광의 질문에 대답했다.

"현재까지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누구 전령을 한명 보내라. 우리는 회군한다고... 그리고 만약 있을지
도 모르는 적의 매복에 대한 대비라고 하면 그도 허락할거야."

"예."

"그리고 이 지옥에서 언제 떠날건지 물어보는 것도 잊지말고... 단장한테 보
고해야 하니까."

"예."

전령이 달려갔다가 돌아오자 국광은 본대를 향해 출발했다. 더 이상 피비린내
가 나는 장소에 머무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추격전과는 달리 회군은 국광
이 수하들을 다그치지도 않았지만 돌아가서 오랜만에 술을 실컷 마신 후 푸근
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연히 속도가 빨랐다.

거의 400리 정도를 이동하자 국광의 코에는 짙은 피냄새가 느껴졌다. 국광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우리가 매복 기습을 당했던 장소에 도착하려면 멀었지?"

"예. 지금 400여리를 왔으니 아직도...."

"그럼 이 피냄새는 뭔가? 이 근처에서 전투를 벌인 기억은 없는데?"

"예? 피냄새라구요? 아무 냄새도 안나는데요."

"그런가? 내가 잘못 맡았을 리는 없는데... 하여튼 좀더 속도를 내라."

국광이 수하들을 이끌고 5리 정도 나가자 그곳에는 수많은 시체와 불타다가
남은 마차... 말과 양의 시체들... 각종 짐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것을 국광
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임충이 어찌된 것인지 눈치채고 말했다.

"그때 만났던 타지크 부족입니다. 관지대장의 후속대가 한 행동인 것 같습니
다. 아마 포로들과 약탈한 물건들은 먼저 몇사람 뽑아서 본대로 보냈겠죠."

"....."

"여기서 보셔봤자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시체들을 다 파묻을 수도 없구요...
출발하기로 하죠."

"그러자..."

* * *

본대는 아직도 그곳에 계속 주둔중이었다. 국광이 도착하자 마화가 뛰어나와
국광을 반기며 말했다.

"모두들 무사하군요. 정작 패잔병의 본대와는 싱거운 전쟁이었던 모양이죠."

하지만 국광의 떨떠름한 표정에 옆에있던 임충이 거들었다.

"몽고병들이 마을에서 야영중인 것을 새벽에 기습했으니 싱거운 싸움이었지.
그래 술은 구했어?"

"말도 말아. 그 술 구한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또 마유주(馬乳酒)? 난 그놈의 마유주 냄새만 맡아도 올라올 것 같아. 어떻
게 그걸 마시고 사는지 원...."

마유주란 몽고 전통의 토속주로 말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다. 비교적 약한 술
로 이상야릇한 냄새가 나고 시큼텁텁한 맛에 도저히 중원사람이라면 맨정신에
마시기 힘든 술이다. 그걸 몽고인들은 사발로 벌컥벌컥 들이켰고 어떤 면에서
는 거의 주식(主食)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언제 맛으로 마셨냐? 취하는 기분에 마셨지. 그게 아니고 고량주야. 꽤 오랫
동안 여기 머물렀으니까 가까스로 구할 수 있었다고.. 어때?"

고량주라는 말에 임충이 꿀꺽 군침을 삼키며 힐끗 국광의 눈치를 본다. 역시
나 국광의 목젖도 올라갔다 내려가는 걸 보니 모두들 술에 굶주리기는 매한가
지인 모양이다... 중원의 술에....

국광은 주변을 한동안 살펴보더니 말했다.

"인원이 많이 준 것 같은데...?"

"예... 4개 천인대가 주변을 돌며 마을들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어요. 연일
몽고계집들과 약탈품들이 쏟아져 들어온다구요. 내가 생각해도 너무하는게 아
닌가 하는..."

"잔소리 말고 나중에 만나자. 나는 먼저 단장 나으리를 만나봐야겠어."

"그럼 나중에 보죠. 임충의 막사로 오세요."

"알겠다."

* * *

오랜시간 고생한 수하들에게도 고량주를 보낸 다음 대장급들은 임충의 막사에
모여들어 술맛은 이래야 한다고 외쳐대며 장시간의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치하하면서 마셔댔다. 국광은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시작된 술자리가 해가 진
후 끝이나자 임충과 함께 나가떨어진 4명의 십인대장들을 한팔에 한명씩 집어
들고 나왔다. 그런다음 술기운에 완전히 나가떨어진 마화를 먼저 옆의 막사에
던져넣으며 임충에게 투덜거렸다.

"이 계집들은 술도 약하면서 왜이렇게 마셔대는거야."

그의 말에 임충도 맞장구를 치면서 말했다.

"글쎄 말입니다. 계집만 아니면 그냥 같이 뒤엉켜 자도 상관없는데 원... 날
잡아 잡수 하면서 먼저 뻗어버리니... 그런데 대장!"

"왜?"

"빨리 안가시면 하부르한테 두들겨 맞지 않을까요?"

"하부르?"

잠시 국광은 하부르가 뭔지 생각했다. 곧이어 하부르가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
과 그 애가 자신의 막사에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군. 줏어왔으면 돌봐줘야 되는건데... 나중에
얻어터지지나 않을지 걱정이군."

"빨리 가보시죠."

국광은 왼팔에 쥔 사람을 막사에 집어던지며 말했다.

"그래야겠지. 잘자게나. 내일 보세."

그러자 임충의 웃음을 머금은 말이 등뒤에서 들려왔다.

"대장도 잘 주무십쇼. 내일 일 보시려면, 오랜만에 만났다고 너무 힘쓰시면
안됩니다요."

"...."

국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막사에 도착했을 때 하부르는 자지않고 국광을 기다
리고 있었다. 국광이 도착한 다음 수하를 시켜 그의 갑주와 말만이 도착했을
뿐... 정작 사람은 밤이 되어 술냄새를 푹푹 풍기며 들어오니 얄미울만도 하
련만.... 하부르는 국광이 들어오는 걸 보고 쪼르르 달려와 국광에게 안겼다.
국광은 그런 하부르를 마주 안고 토닥거리며 말했다.

"얌전히 있었냐?"

"...."

"밥은 제때 먹었어?"

"...."

"너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냐?"

"..."

"말을해라.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어디 얼굴좀 볼까? 얼굴이 어떤지도 잊
어버렸군. 이게 며칠만이지?"

국광이 살며시 턱을 잡고 올리자 아직 앳된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남아있었다.
자신의 후광이 있어 옆에서 괴롭히는 녀석이 있을리도 없지만 말도 통하지 않
는 늑대같은 살벌한 남자들과 같이 있는다는 사실 자체가 소녀에게는 고역이
었을지도 모른다. 국광으로서는 이 아이를 빨리 놓아서 돌려보내고 싶지만 마
화의 말대로 4개 천인대가 주변을 돌며 마을들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면 이 아
이를 맏길만한 마을을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국광은 한숨을 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저녘은 먹었니?"

고개를 가로 젓는걸로 봐서 국광을 기다리며 아직 안먹은 모양이다.

'이미 수하들과 배터지게 음식과 술을 먹었지만 그래도 이녀석이 나를 위해
장만해놓은 음식들이니 같이 먹어야 되겠지. 가만... 더 먹어도 될까?'

몰래 배를 한번 찔러본 다음 약간의 자신감이 생기자 국광이 말했다.

"자... 같이 먹자."

하부르는 쪼르르 달려가더니 몽고식으로 차려놓은 음식들을 가져왔다. 뼈채로
삶아놓은 양다리... 그리고 뭐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걸쭉한 국물이 작은
그릇에 담겨있다. 아마 여기에 고기를 찍어먹는 것이리라... 그리고 마유
주... 작은 식탁 위에는 작은 칼 두자루가 올려져 있었다.

'이걸로 썰어서 먹는 모양이지? 그건 그렇고 내 위장이 버틸지 모르겠군...'

국광은 어색한 표정으로 식탁을 보면서 잠시 망설이다가 이윽고 마음을 굳힌
다음 용감하게 식탁으로 달려들었다.

'저 아이를 데리고 있는 내가 멍청한 놈이지...'

국광이 식탁에 앉자 하부르는 국광에게 칼을 건네줬다. 그런다음 자기도 국광
옆에 앉은 다음 칼을 잡았다.

몽고인들은 어떤때는 통째로... 어떤때는 대강 토막을 친 상태에서 적당히 삶
아서 먹는다. 토막이 크기에 칼은 식사에 있어 필수품이다. 서로가 칼을 가진
채로 식사를 하다보니... 이놈의 식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종종 식사하는
장소에서 살인(殺人)이 벌어지기도 하기에 서로가 식사를 같이 했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상당한 신뢰의 표시였고 또 담력이 크다는 징표였다.

양다리는 두개... 한 개씩 집으면 딱 맞는 숫자다. 국광이 양다리를 잡고는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이고 있는 걸 보고 하부르가 살며시 미소지으며 양다리
의 드러나 뼈부분을 잡은 상태에서 자신의 소매위에 올렸다. 국광이 따라하자
칼을 잡은 상태로 칼날을 자신의 쪽으로오도록 잡은 다음 썰어서 입으로 가
져갔다. 고기가 덜익어서 핏기가 배어나오는걸 보고 국광은 잠시 망설였다.

'맙소사... 설익은 고기군... 그래.. 몽고족은 이동하는 부족.. 저 큰 고깃덩
이를 푹 익힐려면 시간이 적잖게 들어가지. 그러니 당연히 겉만 대강 익혀먹
을밖에.. 그래도 한번 칼을 들었으니... 한번 죽지 두 번 죽나..'

국광은 모진 결심을 하고 본대로 고기를 썰어 입속에 쑤셔넣었다.

'오... 신이시여. 이걸 먹어야만 합니까... 아마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죄를
너무 많이 지은 것같군.'

속마음이야 어떻든 국광이 맛있게 먹어대자 하부르는 좋아했다. 둘은 같이 간
단한 얘기를 나누며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처음에 국
광이 고통은 한번에 당하는게 낫다는 생각에 자신앞에 놓인 마유주를 한번에
쭉 다 마셔버리자 하부르는 다시 마유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마유주를 좋아하시는군요."

"그래......"

'돌아가시겠군...'

"천천히 드세요."

너무 안마시고 고기만 먹기도 그래서 이번에는 간간히 마유주에 입도 대면서
앞으로의 살길을 찾아 우회적으로 질문했다.

"몽고에서는 고기를 언제나 삶아서만 먹냐?"

"아뇨. 구워서도 먹어요."

"구워? 그럼 내일은 구워먹자."

"왜요? 맛이 없으세요?"

"아니야. 맛있어. 아주 잘 삶았는데... 그래도 계속 삶아만 먹으면 아무리 맛
있어도 질리쟎니... 가끔은 바꿔야지."

그러자 하부르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예. 마유주 더 드세요. 많이 구해놨어요."

국광은 억지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래... 잘했다...."

'내가 못살아... 얘를 빨리 내보내야 제명대로 살 수 있겠군...'

국광으로서는 장도(長刀)를 들고 전장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것보다 더 지옥같
은 식사가 끝난 후 국광은 자신의 강력한 비위(脾胃)를 믿고 쑤셔넣은 반 생
고기와 마유주가 반역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걱정이었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부르는 오랜만에 만난 말상대를 향해 국광이 알아듣건 못알아듣건
재잘거렸다. 전체 내용의 반도 못알아 듣는 국광으로서는 점점 인내의 한계에
이르고 있었으나 이 멍청한 아가씨는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국광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일어서서는 밖으로 나가려다가 마음을 돌리고 구석에 놓인 검을
집어들었다. 그런다음 다시 하부르의 옆에 앉은 다음 잠자코 듣고있으면서 국
광은 요즘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청성검과 장도를 꺼내 정성껏 닦으면서 건성
으로 하부르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갑자기 검을 꺼낸 국광의 태도에 움찔
하기는 했지만 곧이어 검을 손질하기 시작했으므로 또다시 하부르의 입은 쉴
새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될 수있으면 천천히 진행하던 검의 손질까지 끝나자 국광은 자리를 편 다음
잘 준비를 했다. 그러자 하부르가 국광의 손에서 가죽을 뺏은다음 자신이 정
성껏 깔았다. 그런다음 국광을 ㄴ히고는 그 옆에 누웠다. 국광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자신을 완전한 남편이나 남편 대용품(代用品) 쯤으로 생각
하는 이 아가씨를 설득하기도 뭣했다.

'에이... 될대로 되라지.'

국광은 오른손을 뻗어 하부르의 팔베개를 만들어준 다음 옆에서 속삭이는 하
부르의 말을 들으며 곧 잠이 들었다. 오랜시간 뛰어다니며 거의 잠을 자지 못
한 국광이었기에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하부르는 옆에서 속삭이다가
곧이어 국광의 편안한 숨소리와 함께 더 이상의 형식적인 대꾸도 없자 살짝
국광을 찌르며 말했다.

"이봐요..."

국광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녀는 살며시 웃으며 국광의 품에 기댄 다
음 잠을 청했다. 어쩔수 없이 함께하게 되었지만 그녀로서는 자기에게 꽤나
신경을 써주는 이 알 수 없는 이상한 남자가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또다시 마화가 국광을 깨우러 왔다. 그녀는 다짜고짜로
막사안으로 처들어와서는 말했다.

"대장."

국광은 누운채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왜그래?"

그러자 마화는 국광을 내려다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계속 잠만자면 어떻게 해요? 할 일이 많은데..."

"할일?"

"예."

"어떤?"

"그러니까...."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충하고 둘이서 해결해. 잠을 오랫동안 못잤더니
피곤하군."

"안일어날거에요?"

"야... 잠좀자자.. 지금이 도대체 몇신데..."

"벌써 해떴다구요."

"벌써가 아니라 해뜬지 1각도 안됐쟎아. 나중에 보자구."

일어날 생각은 안하고 국광이 가죽을 좀 더 높이 끌어올리자 마화가 다가오더
니 가죽을 획 겉었다. 그러자 저녘에 입고있던 옷을 그대로 입은 국광이 누워
있었고, 그 옆에 옷을 입은채 누워있던 하부르는 약간 겁을 먹은 눈으로 마화
를 훔쳐보며 국광을 살며시 껴안았다. 그걸 보고 설마하고 있던 마화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

그런 사이 국광이 내공을 운용해 능공섭물(能空攝物)을 이용해 마화가 쥔 가
죽을 뺏어서 다시 덮은 다음 약간 졸리는 듯한 목소리로 냉냉하게 말했다.

"나중에 보자구. 쫓아내기 전에 빨리 나가."

"그러죠."

국광이 또다시 하부르를 껴안고 잠이 든 사이 순순히 물러난 마화는 임충의
막사로 향했다. 임충도 뻗어서 자고있었는데 다짜고짜 마화가 막사로 쳐들어
왔다. 마화는 임충의 막사로 들어가서는 자고있는 임충을 툭툭 차면서 말했
다.

"야... 빨리 일어나."

"으응.... 왜그래?"

"왜그래고 자시고 빨리 일어나"

"끄응..."

신음소리와 함께 모포를 뒤집어쓰며 다시 잠을 청하는 임충을 보고 마화는 이
번에도 바로 모포를 뺏어들었다. 무심했던 국광과는 달리 임충은 아침을 알리
는 양물이 비록 바지안으로지만 마화 앞에 드러나자 황급히 가리면서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빨리 나가."

"쳇... 꼴에 남자라고..."

그러면서 손으로 가린 부분을 발로 툭 찬다음에 말했다.

"밖에서 기다릴테니 빨리 나와. 죽고싶지 않으면...."

"야... 너 정말 여자냐... 아침부터 미치겠군..."

팽창한 양물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간수를 잘한 임충이 투덜거리며 나오
자 마화가 임충에게 따지듯 물었다.

"야. 대장이 왜 몽고계집하고 같이 사는거지?"

"그걸 몰라서 묻냐? 왜 잘자는 사람 새벽부터 깨운다음 헛소리야. 냄새나는
몽고계집하고 같이 산다면 이유야 뻔한거쟎아."

"뭐... 성교?"

직설적으로 여자가 묻자 임충의 얼굴이 약간벌개지면서 더듬거렸다.

"그... 그렇...겠지."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아."

"왜?"

"하부르하고 살기 시작한 다음부터 새벽마다 내가 깨우러 갔었는데..."

놀란 임충이 외쳤다.

"너 미쳤냐?"

임충이 경악하든 말든 마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멀쩡해. 그런데.... 그때마다 둘 다 옷을 입고 있더라구. 그건 서로 성
교를 안했다는 말이쟎아. 남자가 그럴수도 있냐? 전에 보니까 양물에도 이상
이 없는 것 같던데...."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되자 임충의 얼굴은 더욱 벌개졌고, 주위를 두리
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로서는 도저히 이런 마화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제기랄... 도대체 누가 우리들의 대화를 들으면 이게 아침부터 웬 개망신이
냐....'

"제기랄... 아침부터 헛소리 하지말고 잠이나 좀 더 자. 너야 오래전에 와서
푹 쉬어서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라고.... 30기 만으로 벌판을 헤
맨다는게 어디 보통일인줄 알아. 대장은 거의 한숨도 못잤고... 나도 그렇다
구... 그러니 제발 잠좀 자자.."

마화는 막사로 들어가려는 임충의뒷덜미를 잡고는 버둥거리는 그를 임시로
말이 마실수 있도록 물을 받아둔 곳으로 끌고갔다. 그런다음 물통속에 얼굴을
처박았다가 뺀 다음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이제 정신이 좀 드냐.... 그래서 난 이해가 안간단 말이야. 욕망을 채우기
위한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몽고와는 식생활이 달라서 하녀로 부려먹을 수도
없고...."

임충은 물이 뚝뚝 떨어져 옷을 적시고 있는데도 소매로 쓱 눈부분만 닦은다음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젠장... 들을수록 가관이군. 그래서 너가 하고싶은 말의 요점이 뭔데?"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러니까.... 왜 하필이면 몽고계집을..... 대장이
원한다면 여기도 여자는 많은데..."

그러자 멍한 표정으로 임충이 마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많은 여자?"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내가 아니라니까..."

마화가 발끈하자 임충이 놀리듯 빙글거리며 말했다.

"흥.. 네가 아무리 애태워봤자 너하고는 격이 다른 분이야. 냉수먹고 속차리
라구. 남이야 몽고계집을 껴안고 자던... 요나라 계집을 껴안고 자던 너하고
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럼 나는 잠이나 좀 더 자야겠다. 일 생기면 너가 알아
서 처리해."

임충이 자신의 막사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그 뒤를 보고 마화가 말했다.

"야. 잘 생각만 하지말고 내 말도 좀 들어보라니까..."

임충은 자신의 막사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헛소리 하지말고 잠이나 좀 더 자. 잠이 모자라니까 정신이 헤깔리고 입에서
헛소리가 나오는거야."

약이 오른 마화는 임충이 들어간 다음 약간 펄럭이는 막사의 휘장을 보며 중
얼거렸다.

"흥! 내가 말을 말아야지."

* * *

국광이 느즈막히 일어나자 먼저 일어나서 기다리고 있던 하부르는 다시 식사
를 가져왔다.

"드세요."

이번에는 양다리를 통채로 구운 거였지만 사정은 전과 별로 다른게 없었다.
겉만 굽혔지 안은 똑같았던 것이다. 국광은 사력을 다해 고기를 씹어 삼키고
마유주를 들이킨 다음 일어났다.

"좀 더드세요."

국광은 억지로 웃으면서, 음식을 권하는 하부르에게 더듬더듬 말했다.

"아... 그러니까... 이거 정말 맛있기는 하지만 나는 원래 식사를 많이 안해.
그리고 점심은 수하들하고 같이 먹으니까 언제나준비할 필요없어. 심심하겠
지만 혼자 먹어라.. 응?"

맛있다는 말에 활짝 미소지으며 하부르가 말했다.

"부하들하고 가깝게 지낸다는 것도 좋은거에요."

"아... 지금 생각났는데 오늘 저녘도 수하들하고 약속이 있어. 술을 같이 마
시기로 했으니까 먼저 먹어라. 응?"

"내일은 저녘 같이 먹는거죠?"

"그럼..."

국광은 서둘러 청성검이 매여있는 검대를 찬 다음 밖으로 나왔다. 옥영진 나
으리에게 청성검을 받은 후부터 묵혼검은 깊숙히 보관해두고 이걸 애용했다.
마상전에서는 짧은 것 보다 긴게 더편리했기 때문이다. 국광은 서둘러 임충
의 막사로 갔다. 임충은 수하들과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고있다가 국광이 다
가오자 모두들 일어나 인사를 했다. 국광은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하면서 말
했다.

"야.. 내가 먹을것도 좀 있냐?"

그러자 그 속사정 뻔히 안다는 식으로 흉물스런 미소를 지으며 임충이 비꼬았
다.

"아뇨. 대장님 드실게 어디있습니까? 저희 먹을것도 없는데.... 거기에 대장
님은 예쁜 하부르가 만든 아침식사를 든든히 하셨을텐데..."

"그게 인간이 먹을 수 있는거라면 그렇지. 잔말 말고 빨리 내놔."

그러자 수하 한명이 밥을 한공기 퍼서 국광에게 줬다. 국광은 열심히 밥과 반
찬을 집어먹으면서 앞으로 이 난국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열심히 궁리를
해댔다. 하기야 열심히 먹어대면 나중에는 어떻게 이골이 나서 먹겠지만 문제
는 지금 적응을 하는 단계인 것이다. 거기에 하부르를 자기가 평생 대리고 살
것도 아닌 상황에서는 적응하려고 노력해봤자 모든게 부질 없는 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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