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화적편 7

3학년2반 | 2022.01.11 07:52:57 댓글: 0 조회: 433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1461
부산동에 살인이 난 것을 부중 안에서는 빨리 안 사람이 금도군관 일행이 나
갈 때 알았고 대개는 유수 행차가 나갈 때 비로소 알았지만, 산 위의 구경꾼들
사이에는 군관 일행도 나가기 훨씬 전에 소문이 났었다. 이것은 구경꾼 중에 부
산동 살인난 것을 짐작한 사람이 더러 있었던 까닭이었다. “부산동서 살인이
났다네.” “기집 잃구 찾으러 갔던 사람이 쌈 끝에 살인했다네.” “백주에 남
의 기집을 훔쳐가는 놈들 죽어두 싸지.” “그 아주먼네 자네 똑똑히 봤나? 누
구든지 훔칠 생각 나겠데.” “아까 업구 오는 사람이 그 여편네의 사낼 테지.
그 사람은 선비같데. 그 사람이 사람을 죽였을까?” "뒤에 따라오는 우악스럽게
생긴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게지.“ ”옳지 ,그 사람이 손에 환두를 들고 오든구
먼. 환두 들구 오는 걸 보고 나는 벌써 일난 줄 알았네.“ ”그게 사람을 공기
같이 놀리던 장사야.“ ”살인할 번한 사람이 그예 살인을 했네그려.“ ”생김생
김이 사람 죽이게 생겼네.“ ”그 사람 일행이 지금 저 매로바위 밑에 앉았네.
도망을 하든지 자수를 하든지 양단간에 하지 않구 태평 앉았으니 무슨 믿는 구
석이 있는 모양이야.“ ”무얼 믿어? 잡으러 오길 기다리구 있는 게지.“ 산 위
의 구경군들은 대게 길막봉이를 살인 원범으로 알아서 이와 같은 말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에서 나왔었다. 서림이가 승교바탕이 오기를 기다리고 조바심을 하
는 중에 비탈 아랫길로 내려가는 사람들의 지껄이는 말이 들리는데, 길막봉이를
부산동 살인 범인으로 지적하는 말들이라 가슴이 선뜻하여 세 사람을 돌아보니
배돌석이,황천동이 두 사람은 다같이 빙글빙글 웃고 길막봉이 당자는 코방귀를
뀌고 있었다. 서림이가 손가락으로 황천왕동이의 몸을 직신직신하고 ”이 산 위
에까지 소문이 퍼졌을 때 젠 부중 안은 지금 발끈 뒤집혔을는지두 모르겠소. 아
무래두 우리가 이렇게 하늘남 쳐다보구 있다가는 큰코 다치겠소. 잠깐 내려가서
유수아문 동정을 좀 살펴보구 오시우. 내려가는 길에 교구꾼들을 만나거든 육
가각리까지 갈 것 없이 도루 올라오시구 육가각리를 가서 별반 동정이 없이 보
이거든 보은리까지 가서 교군바탕을 재촉하구 오시우.“ ”그래 봅시다.“ 대답
하고 곧 일러섰다. 황천왕동이가 부산동 뒷일이 궁금하여 한번 가보고 싶은 생
각이 있던 차이라 대답이 나갔던 것이다. 황천왕동이가 산 아래로 내려간 지 얼
마 아니 되어서 급한 걸음으로 도로 올라왔다. 서림이는 교구꾼을 만나서 도로
오는 줄만 여기고 오는 황천왕동이에게로 몇 걸음 나가면서 ”어디 옵니까?“
하고 물으니 황천왕동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큰일났소.“ 하고 대답 안
되는 대답을 하였다. ”큰일나다니 군관이 옵니까?“ ”언뜻 보기에 한 삼십 명
올라옵디다. 안식구들은 업든지 끌든지 하구 도망합시다.“ 배돌석이와 길막봉이
가 모두 일어섰다. 서림이가 손을 내저으며 ”지금 안식구들을 끌구 업구 도망
하다가는 창피만 더 볼 게니까 여기 앉아서 당할 도리를 생각합시다.“ 하고 잠
깐 동안 양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기울이고 있다가 ”자, 인제는 칼 물구 뛰엄
뛰기니 세 분은 아무 소리 말구 나 하자는 대루 하시우.“ 하고 말하는데 세 사
람은 모두 잠자코 있었다. ”우리 상궁을 가보구 말 좀 해봅시다.“ 서림이의 말
끝에 ”상궁더러 무슨 청을 하실라우?“ 황천왕동이가 물으니 ”나중 보면 아실
테니 다들 나만 따라오시우.“ 서림이가 앞서 휘적휘적하고 대왕당으로 오는데
세 사람도 하릴없이 그 뒤를 따라왔다. 대왕당 문간에 앉았던 상궁의 교구꾼들
과 박수들이 우 일어나서 못 들어오게 막는 것을 서림이가 잡아제치면서 ”우리
가 상궁마마께 뵈일 일이 있어 왔는데 왜 못 들어간단 말이노?“ 하고 언성을
높이었다. 들어간다거니 못 들어간다거니 떠들썩할 때 무수리 한 사람이 문간방
의 외쪽 지겟문을 열고 내다보며 왜 그렇게 떠드느냐, 마마께서 떠들지 말라신
다 말하여 구종벌레,박수들이 무춤하는 틈에 네 사람은 모두 대왕당 안으로 들
어왔다. 대체 대왕당 집이 어떻게 된 집이냐 하면 위채 삼 간,아래채 삼간, 도합
여섯 간 집으로, 위채는 대왕과 대왕부인의 목상을 뫼신이간 전각이 있고 전각
한쪽 머리에 단간 곳간이 있고, 아래채는 문간이 한 간이요, 서편으로 마루방이
반 간이요, 동편으로 방이 간반인데 마루방에는 북향으로 외쪽 지겟문이 있을
뿐이고 방에는 북향으로 쌍바라지가 있는 외에 문간으로 난 외쪽 지겟문과 동쪽
으로 난 들창이 있었다. 지금 청석골 안식구 여섯이 모로 세로 누워 있는 곳은
어둠침침한 반간 마루방이요, 상궁이 무수리, 각심이들을 데리고 사처한 곳은 좀
명랑하고 통창한 간반 방이다. 서림이가 지쳐놓은 쌍바라지 앞에 와 서며 세 사
람에게 오라고 손짓하여 줄느런히 늘어세우고 ”상궁마마께 문안
드립니다.“ 하고 소리치니 먼저 외쪽 지겟문으로 떠들지 말라고 말하던 무수리
가 쌀바라지를 열어젖힌 뒤에 다른 무수리에게 다리를 치이고 누웠던 상궁이 무
당들의 부축으로 일어 앉아서 밖을 내다보며 ”너이들이 누구냐?“ 하고 물었
다. 배돌석이는 한편 다리를 앞으로 내세우고 얼굴을 되돌고 있고 황천왕동이는
반몸을 비틀고 딴 데를 보고 있고 길막봉이는 어줍은 모양으로 몸을 가지고 두
리번거리고 있는데, 서림이 혼자 두손길을 맞잡고 공손히 허리를 굽히었다. ”상
궁마마께서 해서대적 임꺽정이의 명자를 들어 기신지 모르겟습니다만, 저이는
임꺽정이 수하에 있는 두령들이올시다.“ 서림이의 말 한마디에 방안에 있는
상궁 이하 여편네들은 고사하고 당집 안마당에 들어섰는 교구꾼들까지도 모두
다 놀라는 모양이 현저하였다. ”이번에 임대장의 부인이 두령의 안식구 다섯을
데리구 굿구경을 오는데 저희는 보호하러 따라왔습니다. 보호할 직책을 가진 저
희가 한만히 다른 데 놀러간 틈에 잡놈을 십여 명이 떼를 지어 가지고 와서 대
장 부인과 안식구들을 때려눕히구 안식구 하나를 붙들어갔습니다. 일 다 난 뒤
에 저희가 비로서 알구 그놈들 뒤를 밟아서 부산동을 좆아가서 다 죽게 된 안식
구를 찾아왔습니다. 그놈들 십여 명이 수 많은 것을 믿구 저희에게 대들다가 몇
놈은 중상하구 한 놈은 죽었는데 말 들으니 죽은 놈이 지금 송도 도사의 아들이
랍니다. 도사가 제 아들이 죽어 마탕한 짓 한 건 생각 않구 아들 원수를 갚으려
구 송도부 금도군관을 있는 대루 다 풀어 내놓을는지두 모릅니다. 그런 줄을 알
면서두 저희는 대장 부인과 다른 안식구들이 꼼짝 운신을 못하는 까닭에 얼른
피신을 못하구 이러구 있습니다. 저희가 올 때 저희 대장 본부내에 대왕대비 치
성굿판에서 야료를 내지 않두룩 조심하라구 하셨는데, 지금 사세가 큰 풍파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만이면 대장 분부두 있구 하니 어찌 되든지
순순히 잡혀가기라두 하겠는데, 대장 부인과 다른 안식구들을 군관의 손에 넣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올 때 저희 대장 본부내에 대왕대비 치성굿판에서 야료
를 내지 않두록 조심하라구 하셨는데, 지금 사세가 큰 풍파를 내지 않을 수 없
게 되었습니다. 저희만이면 대장 분부두 있구 하니 뒤는 어찌 되든지 순순히 잡
혀가기라두 하겠는데, 대장 부인과 다른 안식구들은 군관의 손에 넣을 수가 없
습니다. 저희가 죽거나 군관들이 죽거나 끝장나두룩 싸울밖에 없습니다. 저희 네
사람에 저 하나만 오죽지 않지 하나는 고금에 드문 석전군이요, 하나는 비호 같
은 사람이요, 또 하나는 아까 그네터에서 사람 공기 놀렸다고 떠들던 천하 장사
니까 적어두 열 곱절 사십 명 사람쯤 죽이기 전에는 문문히 죽지 않을 겝니다.
대왕대비 치성굿이 아직 끝두 나기 전에 대왕당 안에 뭇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
은 저희의 본의두 아니요, 더구나 저희 대장의 분부두 아닙니다. 대왕대비 몸받
아오신 상궁마마를 놀라시게 할 일이 황송해서 미리 말씀을 여쭙는 것이올시다.
“ 서림이의 말이 거침없이 흐르는 물과 같았다. 서림이가 말을 그친 뒤 한참만
에 상궁이 외면하고 ”쌈을 하더라도 당집 테 밖에 나가서 하면 어떻소?“ 하고
말하였다. ”대장 부인 이하 여러 안식구들이 저편 마루방에 와 있는 가닭에 여
기를 떠날수 가 없군요, 도 당집을 성삼아서 의지하구 싸우는 것이 저희에게 유
리한 까닭에 다른 데루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럼 안식구들은 내가 담당하고
잡혀보내지 않을 테니 항거들 않고 잡혀가겠소.“ ”말씀하긴 황송하오나 마마
께서 담당하시는 걸 저희가 믿을 수 있습니까. 피차간에 좋을 도리는 꼭 한 가
지 있습니다.“ ”무슨 도리요?“ ”공사를 내가 어찌 막겠소.“ ”대왕대비의
몸을 받아오신 마마께서 대왕대비의 치성굿을 하시는 날이니 마마게서 당집에
들어온다구 말씀만 하시면 군관은 말할 것두 없구 송도유수라두 문안에 발을 들
여놓지 못할 줄 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이오?“ ”저희가 오늘 밤
안으루 안식구를 모면하두룩 조처해 놓구 밝는 날 식전에 잡혀가겠습니다. 그러
면 치성굿은 무사히 끝나구 마마게서는 목전에 사람들 죽은 걸 보시지 않구 또
저희는 저희 직책을 다하게 될 테니 이리저리 다 좋지 않습니까.“ ”나는 굿이
끝나면 곧 산 아래로 내여갈 사람이오.“ ”오늘 밤 삼경까지만 여기 계셔 즈시
면 저희 조처두 그 안에 다 될 듯합니다. 그러구 굿은 앞으루 걸립과 뒷전이 남
았다니까 마마께서 친히 굿자리에 내려가 보시지 않아두 좋겠습지요. 하여튼지
삼경까지는 마마께서 잠시라두 이 방을 더나시면 안됩니다. 저희가 이 방 밖에
서 뫼시구 있겠습니다.“ 상궁은 한다 못한다 말이 없었다. 대왕당 성관이란 검
은 학골 늙은 무당이 상궁 옆에 가까이 가서 귓속말을 하듯 소곤소곤 여러
말을 지껄이고 상궁이 무수리 하나를 보고 나직나직 몇 마디 말을 이르더니 그
무수리가 곧 외쪽 지겟문을 열고 교구꾼과 박수들을 내다보며 ”마마 말씀이 없
이는 누구든지 당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시니 그리들 아우.“ 하고 말을
일렀다. 이때 당거미 어두워서 무당이 상궁 밖에 촛불을 켜고 일꾼들이 당집 바
깥마당에 큰 횃불을 놓고 또 안마당에 화톳불을 놓았다. 안마당의 문간과 전각
중간에 놓는 것을 서림이가 상궁의 한다 못한다 대답을 기다리는 중에 곁눈으로
보고 일꾼을 불러 말을 일러서 마루방과 문간 어름에 옮겨놓게 하여 상궁방 맞
은편 곳간 앞은 불이 멀어서 어스무레하고 문간에서 바로 보이는 전각 안은 불
이 미치지 못하여 어둠침침하였다. 무수리가 사내 하인들에게 말하는 상궁의 분
부를 서림이는 듣고 고개를 끄덕하며 씽긋 웃고 먼저 곳간 앞으로 가면서 세 사
람을 손짓하여 불렀다. 네 사람이 머리돌을 맞대다시피 하고 쭈그리고 앉은 뒤
에 서림이가 옆에 사람 겨우 들을 만한 입속말로 ”황두령, 인제 청석골 나가서
교군을 가지구 오시우.“ 하고 말하니 ”승교바탕을 천만이가 보낼 텐데.“ 황천
왕동이가 말을 반동강 하고 서림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천만이게 부탁한
승교바탕은 다 틀렸소. 군관들이 여기 온 뒤에는 보내더래두 소요 없구 그리구
군관들 나온 소문을 들으면 천만이 같은 약은 사람이 애초에 보내지두 않을 게
요. 여기 승교바탕을 보내주지 않는 대신 청석골루 보발꾼 하나는 띄워 줄 듯하
지만 우리가 그걸 믿구 있을 수 있소? 황두령이 얼른 가시우.“ ”나더러 가서
구원병을 글구 오란 말씀이구려.“ ”그렇소. 지금 우리 형편이 대장의 구원밖에
바랄 것이 없소.“ ”잠깐 마루방에 가보구 곧 가리다.“ ”군관들 오기 전에 얼
른 빠져나가시우.“ ”산 중턱쯤 올라오는 걸 내가 보구 왔으니까 아직은 여기
못 올 것이오.“ 황천왕동이가 마루방에 가서 들여다보며 누님과 안해의 아픈
것을 물어보는 중에 문간이 홀저에 떠들썩하여졌다. 황천왕동이가 아무 소리 말
고 가만히 있으라구 부탁하고 마루방 지겟문을 고이닫고 전각 앞을 획 지나서
곳간 앞으로 도로 왔다. ”저것들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소. 인제 문간이
막혔으니 어떻게 나가면 좋소?“ ”의관을 벗어버리구 굿당 일보는 사람인 체하
구 나가 보지.“ 배돌석이가 말하고 ”담을 넘어가우.“ 길막봉이가 말하는데 서
림이가 손을 가로젓고서 ”일보는 사람인 체해선 안 되구 담을 넘어가는 게 좋
은데 담 밖을 벌써 둘러쌌는지 누가 아우? 억석이 부자중의 하나가 들어오거든
바깥 형편을 알아보구 합시다. 그러구 당장 염려는 없을 듯하지만 그래두 혹시
를 모르니까 우리가 죽게 되면 고깃값이라두 하구 죽을 준비를 차리구 저 쌍바
라지 앞에 가서 있다가 군관들이 들어닥치거든 우리는 방안으루 뛰어들어가서
상궁과 무수리들을 붙잡아서 방패루 습시다.“ 하고 말하였다. 병장기는 네 사람
틈에 환도가 한자루뿐이나, 배돌석이가 매로바위 밑에 나가 앉았을 때 돌을 집
어서 소매 속에 넣은 것이 여남은 게 되어서 설혹 군관들이 몰려들어오더라도
첫번 기세는 능순히 꺽을 수가 있었다. 네 사람이 다같이 의관을 벗어서 곳간
지댓돌 위에 놓아두고 상궁방 앞에들 와서 섰는데, 그 동안에 사내 하인 한 사
람과 금도군과 한 사람 사이에는 언왕설래에 시비가 톡톡히 되었었다. ”우리는
그예 들어가야겠는 걸.“ 군관의 말은 반말이요, ”들이지 않는다거든 못 들어올
줄 아우.“ 하인의 말은 하우였다. ”빨리 비켜나지 않을 테냐!“ 군관의 말이
해라로 나오니 ”어르면 누구들 어쩔 테야! 우리가 도둑놈인 줄 아나?“ 하인의
말도 반말로 나갔다. ”살인한 적당이 분명히 이 안에 있는 줄 아는데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은 적당을 감춰주는 것이니까 도둑놈이 아니라두 도둑놈의
와주루 볼 수 있다.“ 상궁은 당집 안에 군관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을 하인들
에게 맡겨두고 자기가 아는 체 아니하려는 것같이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문간의
시비를 듣기만 하더니 도둑놈의 와주란 말이 마음에 찔리든지 별안간 외쪽 지겟
문을 열러젖히고 문간을 내다보며 ”대체 무엇들이 여기 와서 그렇게 떠드느냐!
“ 하고 큰소리를 내었다. 문간 앞에 섰는 군관 세 사람이 상궁의 첩지 슨 머리
를 바라보고 허리들을 굽실한 뒤에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저희는 송도부 금
도군관들이올시다. 오늘 부산동서 살인한 적당이 이 당집에 와서 숨어 있는 줄
을 알고 잡으러 왔는데 상궁 마나님의 분부라구 못 들어가게 막으오니 적다은
들이구 저희 군관은 들이지 말라구 분부하셨을 리가 만무할 줄루 생각하와 그럴
법이 없다구 나므라느라구 좀 떠들게 되었나 봅니다.“ 하고 언죽번죽 말하였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 나더러 도둑놈의 와주라고 말했나?“ ”천
만의 말씀이지 상궁 마나님께 그런 무엄한 말을 할 리가 있소리까?“ ”내 사람
더러 도둑놈의 와주라니 그게 곧 나더러 하는 말이지 무어냐! 도둑놈의 와주, 육
십 평생에 더 들어볼 소리가 없다. 괘씸한지고.“ ”저희가 생각이 부족한 탓으
루 상궁 마나님께 촉노될 줄은 미처생각지 못하구 말을 지망지망히 했소이다.
용서합시오.“ ”송도유수 같은 재상의 눈에는 내가 하치않게 보이겠지만 나도
정오품 내명부야. 더구나 이번에 나는 대왕대비 마마의 몸을 이어온 사람이야.
내가 사처한 데서 죄인을 잡아가려면 유수가 내게 전갈 한마디즘은 있어야 옳
지, 중대한 죄인이 지금이 당집 안에 잠복해 있더라도 내가 대왕대비 마마의 치
성굿을 다마치고 산 아래로 나려가기 전까지는 당집 안에서 야료를 내게 할 수
없으니까 그리들 알고 그대네 유수사또께 가서 내 말슴으로 말하라고.“ 상궁이
할 말 다하고 지겟문을 닫은 뒤에 쌍바라지 앞에 섰던 네 사람은 곳간 앞으로
다시 왔다. 황천왕동이가 혹시 빠져나갈 틈이 있을까 하고 침침한 전각 안에 들
어가서 문간 밖을 내다보았다. 군관 세사람이 한데 붙어서서 숙덕공론을 하는
모양이더니 군관 한 사람은 먼저 다른 데로 가고 군관 두 사람은 나중에 군사와
한량 수십 명을 세 패에 나누어서 군사 한 패는 앞에 남기고 군사 한 패와 한량
한 패는 좌우 옆으로 갈라 보내었다. 어림에 군관 한 사람은 유수께 사연을 고
하러 간 성싶고 군사 한패와 한량 한 패는 당집 담 밖을 지키러 보내는 것 같았
다. 그 뒤에 문 앞에 는 군관 두 사람이 댓돌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고 군사 칠
팔 명이 댓돌 아래 둔취하여 서 있었다. 상궁방에서 저녁밥을 재촉하라고 무당
하나를 밖으로 내보내더니 곧 외상,겸상,두루거리상을 일꾼들이 들고 들어오는
데, 김억석이가 일꾼 틈에 끼여 들어왔다가 곳간 앞에 앉았는 네 사람에게로 쫓
아와서 ”여러분 저녁 진지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군관들이 당집 안에 드릴
상 수효를 묻는데 가부새 박수 하나가 방정맞게 방에 외상 하나, 겸상 셋, 문간
에 두루거리 상 하나, 모두 다섯이라구 대답해 놔서 인제 상을 더 들여올 수가
없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하고 말하는데 황천황동이가 “저녁 한
끼 글ㅁ어서 죽겠나. 그건 염려 말구 이따가 상 내갈 때나 하나 일꾼 틈에 묻어
나가두룩 해주게.” 하고 부탁하니 김억석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사람 수
효가 맞지 않아서 탈이거든 일꾼 하나를 이 안에 남겨두구 내가 그 일꾼 대신
상을 들고 나가면 되지 않겠나.” “여기 들어오는 사람을 수효만 셀 뿐 아니라
일일이 얼굴을 살펴보구 나서 들여보내는걸요.” 김억석이 말끝에 서림이가 “
담 밖을 다 둘러쌌겠지?” 하고 물으니 김억석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무예
별감은 어디 갔나?” “그건 왜 물으십니까?”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말이야.”
“고녀당 젊은 무당에게 반해서 굿자리에서 고녀당으루 갔답디다.” “그러면
자네가 가서 상궁마마께서 얼른 오라신다구 오주전갈을 좀 해주게.” “그래서
어떻게 하실랍니까?” “우리가 무예별감을 보구 사정을 좀 할 일이 있네.” “
말썽만 더 되지 않을까요?” “지금 말썽 더 될 것이 무어 있나.” “그렇습지
요. 가겠습니다.” 김억석이가 나간 뒤에 서림이가 다른 세 사람과 소곤소곤 이
야기하고 웃옷 안고름에 찼던 긴 노랑수건을 끌러다가 황천왕동이를 주었다. 한
동안이 지난 뒤에 무예별감이 들어와서 쌍바라지 앞으로 가는 것을 서림이가 가
로막고 허리를 굽실하며 “저희가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하고 말하여 무예별
감이 잠깐 어리둥절할 즈음에 뒤에서 황천왕동이가 노랑수건을 홱 둘러서 입을
막아 동이고 또 뒤에서 길막봉이가 두 손으로 몸을 바짝 끼어안았다. 네 사람이
무예별감을 쥐잡듯 잡아가지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만에 무예별감이 문
간으로 나가는데 금도군관이 앉았다 일어나서 “어디를 가시우?” 하고 물으니
“유수사또 좀 뵈러 가우.” 하고 일변 말을 대답하며 일변 걸음을 걸어서 순식
간에 층층대 아리로 내려갔다. 무예별감이 군복자락에서 바람이 나도록 빨리
걸어 산 아래로 내려간 뒤 금도관들은 미심스러운 생각이 나든지 “걸음걸이가
아까 저기서 올 때 틀짓던 것과는 아주 딴판 달레.” “걸음걸이뿐 아니라 사람
까지 딴사람 같아 보이네.” “딴사람이라니 말이지 나올 때 고개 푹 숙인 게라
든지 말할 때 외면하던 게라든지 다시 생각해 보니 모두가 좀 수상해.” “재들
하나 딸려보낼 걸 우리가 잘못했나 봐.” 이런 말들까지 하다가 “대체 무슨 일
루 그렇게 급히 갔을까?” “상궁의 전갈을 맡아가지구 간 게지.” “우리가 일
껀 인사성으루 일어서기까지 하는데 말대답두 변변히 안 하구 도망하는 놈같이
내빼니 사람 대접을 그 따위루 하는 법두 있나.” “서울놈이 본래 반
지빠른데 게다가 대궐 안 물을 먹으니 우리가 눈에 보이겠나.” 다시 이렇게들
말하는 것이 딴사람으로는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안마당의 화톳불은 마루방
에 비치는 것을 박수들이 좋게 여기지 않는지 관솔이 잘 안 타는 것을 보고도
내버려 두어서 거의 다 꺼지고, 바깥마당의 큰 횃불은 군사들이 홰 끝을 타는
대록 두들겨 떨어서 불길이 활활 잘 탔다. 문간에서 밥 먹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틔워놓느라고 각각 밥그릇을 들고 이리저리 나앉고 또 밝은 데를 향하느라
고 거지반 전각을 등 뒤에 두고 돌아앉아서 모두 먹기에 골몰하였던 까닭에 무
예별감이 전각 안으로 붙들려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은 별로 없었겠지만, 문간
으로 나가는 무예별감의 얼굴을 본 사람은 더러 있을 것인데 적당의 일에 섣불
리 말밥에 오를면 화를 받을까 두려워하는 까닭인지 들어온 무예별감과 나간 무
예별감이 딴사람이니 아니니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김억석이가 무예별
감에게 위조 전갈하고 죄상이 탄로될까 겁이나서 당집 안에를 못 들어오다가 무
예별감이 산 아래로 내려간 줄 안 뒤에 어찌 된 곡절이 궁금하여 숭늉 심부름을
빙자하고 당집 안에 들어와 보니 곳간 앞에 사람은 그림자도 없고 잠겼을 곳간
문은 뻐끔하게 열리었었다. 캄캄한 곳간 속에서 버스럭 소리가 나서 네사람이
다 곳간 속에 들어가 있는 줄로 짐작하고 뻐끔한 데로 캄캄한 속을 들여다보며
“여기들 기시우?” 하고 물어보니 한참 만에 “나만 여기 있네.” 하고 대답하
는 것이 배돌석이의 목소리었다. “이 속에 어째 들어와 기시우? 또 자물쇠는
어떻게 여셨소?” “반쇠 띄워논 걸 누가 못 열겠나.” “대체 이 캄캄한 속에
서 무얼 하시우?” “밧줄이 있나 찾아봤네.” “밧줄은 무엇에 쓰실라우?” “
무감을 결박지우려구.” “무감을 결박지우다니 방금 산 아래루 내려갔다먼요.”
“그건 정말 굼기ㅏㅁ이 아닐세.” “누가 무감 복색을 뺏어 하구 나가셨소?”
“황두령이.” “키하구 몸집은 비슷 같을는지 몰라두 얼굴이 팔팔결 다른데 용
하게 속이구 나갔구려.” “눈깔 없는 군관들이 송기떡 군복에 속았겠지.” “하
여튼 용하게 빠져나갔소. 그럼 청석골 간 게구려.” “아직 말은 내지 말게.”
“그런 당부는 하실 것두 없소.” “밧줄이 있거든 하나 찾아주게.” “밧줄이
없을걸요.” “옳지, 낮에 그네터에 쓰던 무명 끗은 어디 있나?” “그건 이 속
에 있지요. 가만히 기시우, 내 찾아 드리리다.” 김억석이가 곳간 속에 들어와서
무명 두 끗을 더듬어 찾았다. “한 끗만 드리리까?” “넉넉히 두어 끗 주게.”
배돌석이가 무면 끗을 가지고 전각 안으로 오는데 김억석잉도 구경하러 따라왔
다. 길막봉이가 소능로 붙잡고 다리로 누르고 있던 무예별감을 무명 두 끗으로
윗도리 아랫도리 친친 동이었다. 어둔 속이라 똑똑히 보이지는 않지만, 무예별감
의 꼴이 그네 위의 목상과 다름없는 듯하였다. 서림이가 무예별감의 아갈잡이한
것을 다시 고쳐서 숨 잘 쉬도록 콧구멍을 내놓아 준 뒤에 “서울서 오신 귀한
손님을 너무 참혹하게 대접해서 미안하우. 벙거지와 군복을 빌려 주셨으니 곰
나 고녀당 젊은 무당에게루 도루 가시게 해두 좋겠지만, 문 앞에 파수 보는 군
관들과 한데 섭쓸려서 짝자꿍이를 노실 염려가 불무한 까닭으로 이런 참혹한 대
접을 하우. 미안하지만 좀 참구 기시우.” 얄미운 말로 흠씬 조롱하고 “우리는
인제 나갑시다.” 하고 말하여 김억석이까지 네 사람이 다같이 전각 밖으로 나
왔다. 상궁 이하 여러 여편네들이 모두 저녁밥을 점고만 맞고 말아서 벌써 상
들을 물려내게 되었다. 김억석이가 상 하나를 들고 나가려고 하는 차에 그 아들
이 들어와서 “아버지 내 말 좀 듣구 나가시우.” 하고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무슨 말이냐?” “상은 여기 놔두구 저리 가서 말합시다.” 아들은 사람 없는
마루방 앞을 가리키는데 아비가 배돌석이 서림이 길막봉이 세 사람이 앉았는 곳
간 앞으로 데리고 왔다. “무슨 말이냐? 말해라.” “이아 사령이라나 사령 둘이
한뎃솥 걸린 데 와서 아버지를 찾다 갔소. 모두들 말이 아버지가 나오기만 하면
재없이 접혀가리라구 합디다.” 김억석이가 아들의 말을 들은 뒤 세 사람을 보
고 “바람이 어디서 새어나간 모양인데 어떡허면 좋을까요?” 하고 물으니 서림
이가 선뜻 “밖에 나갈 거 없이 우리하구 여기 같이 있세.” 하고 대답하였다.
“나중은 어떻게 하나요?” “나중이라니?” “여러분 가신 뒤 말씀이오.” “
우리 갈 때 같이 가거나 뒤에 남아 있다가 잡혀가거나 그건 자네 요량해 하게.
” “처 되는 사람더러 말을 못 해봤는데요.” “갈 때 임시해 말해두 낭패될
거 없네. 같이 간다면 데리구 가구 같이 안 간다면 버리구 가지 별수 있나.” “
장래 고모의 대를 받아서 이 대왕당을 맡을 사람인데 여간 낭패가 아닙
니다.” “바람 잔 뒤에 나와서 송악산 다섯 굿당을 도거리루 맡아 볼 수두 있
네. 염려 말게.” 상궁방에서 굿을 다시 시작하라고 하여 박수가 낙가고 무당이
나갈 때 곳간 앞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쌍바라지 앞으로 왔다. 서림이가 환도를
가지고 와서 짚고 서서 “상궁마마께서는 안 나가시구 여기 기시겠지요?” 하고
말하니 상궁은 들은 척도 아니하고 대왕당 늙은 성관이 방에서 나오면서 “마마
께서 신기가 좋지 못하셔서 이 방에 누워 기실 테니 밖에서 떠들지 마우.” 하
고 말하였다. 이 동안에 김억석이는 나가는 처를 붙들고 자기가 밖에 못 나가는
사정을 총총히 이야기하고 배돌석이는 옆에 섰는 처남을 보고 바깥 동정을 알아
들이라고 두어 마디 말을 일러서 김억석이의 아들이 저의 의붓어미를 따라나갔
다. 상궁의 시중을 들고 심부름을 하려고 방안에는 무수리가 남아있고 문간에
는 상궁의 교군꾼이 남아 있었다. 마루방의 안식구는 쥐죽은 듯 아무소리 없이
가만히들 있더니 무당들 나갈 때 배돌석이의 안해가 사내들에게로 와서 황두령
이 변장하고 빠져나간 것과 청석골서 구원하러 올 것을 알고 갔다. 김억석이가
곳간 지댓돌 위에 놓인 의관들을 전각 편으로 멀찍이 치원놓고 곳간 속에서 멍
석을 꺼내다 곳간 앞에 까는 것을 서림이가 쌍바라지 앞으로 끌어오게 한 뒤,
네 사람이 다같이 퍼더버리고 앉았다. 마루방 상궁방 문간이 모두 다 조용하였
다. 굿판에서 장고소리 풍악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하던 문간에서 홀저에 떠들썩
한 말 소리가 났다. 유수부 비장이 유수사또의 전갈을 맡아가지고 왔다고 상궁
께 여쭈라고 하여 무수리가 지겟문을 열고 내다보며 “무슨 전갈입니까?” 하고
물었다. “살인 죄인을 잡으러 나간 군관들이 기신 굿당에를 막 뛰어들어라려구
했다니 작히 놀라셨겠습니까구. 그러나 굿당에 기신 줄을 모르구 한 일이라니
용서하시구 살인 범인은 도타하기 전에 잡두룩 해주시면 좋겠습니다구.” 비장
이 유수의 전갈을 옮긴 뒤에 무수리가 상궁의 답전갈을 받아 말하였다. “하치
않은 이 사람에게 전위해 비장을 부리셔서 황감합니다구. 살인 죄인은 이 사람
이 어떻게 잡게 할 수가 있습니까구.폐일언하구 이 사람은 대왕대비 마마의 굿
을 다 마치고 산 아래로 내려가면 고만이니 그리 압시사구.” 비장이 군관들을
데리고 쑥덕공론을 하는지 수군수군 지껄이는 소리가 한동안 나다가 그치고 문
간이 다시 조용하여졌다. 얼마 뒤에 김억석이의 아들이 들어와서 말하여 비장이
올 때 군관 군졸 이십여 명을 데리고 와서 먼저 있던 사람과 합치어 사오십 명
사람으로 당집을 철통같이 에워싸 놓은 줄을 알았다. 청석골 꺽정이 사랑에는
저녁마다 모이는 축인 이봉학이 박유복이 곽오주 김산이 네 두령 외에 저녁에
별로 오지 않는 늙은 두령 오가까지 모두 와서 굿구경 간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들 올 것인데 늦도록 아니 온다고 꺽정이는 이것들이 사
람이냐 마냐 하고 화를 내는 중에 밖에서 “그게 누구냐?” 신불출이의 놀란 말
소리와 “황두령 아니세요.” 곽능통이의 의심쩍어하는 말소리가 연달아 들리더
니 변복한 황천왕동이가 바에도 들어오지 않고 마루 앞에 와 서서 꺽정이를 들
여다보며 "형님, 큰일났습니다." 호들갑스럽게 말하였다. 꺽정이는 황천왕동이를
뻔히 보기만 하는데 이봉학이가 "무슨 일인가? 어서 이야기하게." 뒷말을 재촉하
여 황천왕동이가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사본이 이만저만하여 도사의 아들을 죽
이고 서종사가 꾀를 이리저리 내서 아직 관속들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고 일장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가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꺽정이가 신불출이와 곽능통
이더러 소임 없는 졸개들 중에서 교군꾼 열두 명과 횃군 열 명을 뽑아서 교군바
탕 여섯 채와 홰 사오십 자루를 준비시켜 등대하라고 분부하고, 또 여러 두령들
더러 오두령만 고만두고 그외의 다른 두령은 모두 출전할 준비를 차리고 오라고
명령하였다. 청석골 안이 불시에 떠들썩하여졌다. 한동안 지난 뒤에 꺽정이가 두
령과 졸개 삼사십 명 사람을 거느리고 골 어귀로 몰려나오는데 골 어귀 동네 앞
에서 김천만이가 보낸 보발꾼을 만났다. 황천왕동이 한 사람 외에는 모두 장달
음을 놓다시피 하여 어느덧 삼거리를 지나 탑골 가까이 왔을 때, 꺽정이가 걸음
들을 멈추게 하고 달리골 들어가는 갈림길과 북성문 올라가는 산길을 잘 아는
사람이 있거든 앞서라고 말하였다. 청석골 두령과 졸개들은 모두 초행인데 마침
김천만이가 보낸 사람이 길을 소상히 잘 알아서 그 사람과 횃군을 앞세우고 큰
길에서 달리골로 갈려 들어와서 북성문 산길을 도두밟아 올라올 때 밤은 벌써
아슥하였다. 이때 산 위에서는 큰굿이 다 끝나서 상궁이 산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는 것을 서림이가 위협도 하고 사정도 하여 겨우 준좌를 시키었다. 상궁
은 도적놈들에게 지가를 잡힌 셈인지 볼모를 잡힌 셈인지 내려가지 못하고 잡혀
있는 것도 분하거니와 이런 때 자기 대신 말 한마디라도 쾌쾌히 할 만한 무예별
감이 유수를 보러 간다고 핑계하고 혼자 어디로 피신한 것이 분하여서 애매한
무예별감을 모주 먹은 돼지 벼르듯 별렀다. 굿판 뒷설겆이를 다하고 들어간 건
너편 네 굿당의 무당과 박수들이 대왕당 일을 수군수군 이야기들 하는 중에 북
성문에서 난데 없는 고함소리가 나며 횃불이 꾸역꾸역 네 굿당 앞으로 올라왔
다. 꺽정이가 길에 오는 중에는 홰 두엇으로 길만 밝히고 산에를 거의 다 올라
온 뒤에는 횃군들 외에 교군꾼들까지 홰를 들게 하고 두령과 졸개 삼사십 명이
일자로 늘어서서 올라온 것이었다. 꺽정이가 장검을 비껴들고 여러 두령 졸개의
앞을 섰다. 대왕당 뒤와 옆에 화톳불들을 놓고 앉았던 군사가 우들 일어섰다. 꺽
정이가 대왕당으로 건너오는 길 위세 서서 "송도부 군관 군졸 말 듣거라! 나는
청석골 임꺽정이다. 목숨들이 아깝지 않거든 나와서 내 칼을 받아라!" 하고 벽력
같이 호통을 하였다. 꺽정이 호통 소리에 산이 울리었다. 군졸등른 말할 것도 없
고 군관들까지 도망질을 치기 시작하였다. 대왕당 안에서 네 사람이 큰소리들을
지르며 문간으로 내닫는데, 문간을 지키고 있던 군관과 군졸들은 그네터 아래로
뛰어 내뺐다. 첫째 임꺽정이가 무섭고, 둘째 횃불이 줄닿은 것이 수가 없어 보이
고, 셋째 이편은 한껏 몽치들을 가졌는데 저편은 모두 병장기를 가진 듯하여 도
저히 당치 못할 줄 알고 삼십육계의 상책들을 부른 것이었다. 꺽정이 호통 한번
에 군관과 군졸과 이아 사령과 관덕정 한량이 다 도망하고 굿구경 다하고 범인
잡는 구경하려고 남아 있던 구경속 좋은 사람들까지 모두 쥐구멍을 찾았다. 꺽
정이가 서림이의 말을 좇아서 대왕당 안에 들어와서 벌벌 떠는 상궁을 겁내지
말라고 안위시키고, 무예별감을 결박 풀고 데려내다가 위로 인사하고 황천왕동
이 입고 갔던 복색을 돌려주고, 그 뒤에 안식구 여섯을 보교바탕에 태우고 횃불
을 앞뒤에 밝히고 오던 길로 도로 갔다. 군관 군졸 중의 몇 사람이 산 위에서
도망하여 내려가는 길로 곧 유수아문에 달려가서 적변을 고하였다. 유수가 도사
와 상의하고 부중 군졸을 백여 명 급히 조발하여 무고의 무기를 내서 나눠주고
천총 두 사람을 시켜 영솔하고 미륵당으로 달리골을 가서 청석골 적당의 돌아가
는 길을 막고 체포하라고 지휘하였으나, 천총이 군졸을 영솔하고 달리골에 왔을
때 동네 사람들 말이 적당은 벌써 탑고개도 더 지나갔으리라고 하여 뒤쫓을 생
각도 않고 그대로 돌아갔다. 3 소굴 1 청석골 적당이 송도부 부근에서 살인
한 일이 기왕에도 종종 있었으나, 백서이 적당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관리에게
고발하지 못하고 혹 관리가 들어 알고서도 모른 체하고 덮어두어서 뒤가 모두
무사하였었다. 그러나 송악산 큰굿날 살인은 치명소가 송도부내요, 초장인이 이
아 아객이요, 원고인이 즉 송도 도사라 송도유수가 친히 검시하고 송도부에서
형조와 포도청에 보장할 뿐 아니라 송도유수가 상감께 장계까지 하였다. 조정
에서 토포사를 내보내서 청석골 적당을 토벌한다는 소문이 송도 부근에 자자하
였다. 꺽정이가 칼에 피 한 방울을 묻히지 않고 궁지에 빠진 안 팎 식구를 구
하여 가지고 들어간 뒤에 그전 약국 하던 허생원을 다시 데려다 두고 백손 어머
니와 황천왕동이 안해를 치료시키는데, 백손 어머니는 과연 이십 년 단산 끝에
물경스러운 아이가 있어서 안태할 약 몇 첩 먹고 바로 기동하게 되었으나 황천
왕동이 안해는 속으로 골병이 들어서 침을 여러 대 맞고 약을 여러 첩 먹었건만
뒷간 출입도 개신개신 겨우 하였다. 허생원 말이 약을 서너 제만 더 쓰면 쾌복
이 될 터인데, 약에 흔치 않는 당재가 몇 가지 든다고 하여 황천왕동이가 꺽정
이에게 말하고 약재구하러 서울을 올라왔었다. 황천왕동이는 한첨지 부자에게
부탁하여 곧 구해 가지고 당일로 되짚어 내려가려고 생각한 것이 남소문안 한첨
지 집에를 와서 본즉, 늙은 첨지는 중풍으로 앓아 누워서 사람도 잘 몰라보고
젊은 한온이는 저의 아버지 병구원도 아니하고 돌아다니는지 어디 나가고 집에
없어서 서사에게 약재 적은 것을 주고 얻어달라고 부탁하니, 서사의 말이 주인
의 말 없이 얻어드려도 좋겠지만 젊은 주인이 일찍 들어올 터이니 만나서 말하
라고 하여 한온이 들어오기를 오래 기다리고 또 한온이 온 뒤에 구리개 약국에
내보낸 사람이 벽재를 구하여 오느라고 오래 지체하여 긴긴 해가 쥐꼬리만큼 남
은데다가 해질 무렵에 어디를 간다느냐고 한온이가 붙들어서 하룻밤을 서울서
묵게 되었다. 저녁 밥을 먹고 조용한 틈에 한온이가 송악산에서 풍파난 것을 자
세히 듣고자 하여 황천왕동이가 일자 다 이야기한 뒤 한온이에게 조정소식을 물
어보았다. 송도 도사는 아들 가르치지 못한 허물로 파직당하게 된 것을 유력한
대관 하나가 지금 파직시키면 국가의 수치를 더한다고 말하여 아ㅈ기 중지되었
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인 모양이고, 유수한 무장으로 토포사를 내서 청
석골을 소탕시키자고 정부에서 공론이 났단 말이 있으나 그것은 적확치 않다고
한온이가 들은 소문을 말하였다. 얼마 있다가 한온이는 저의 아버지를 보러 가
고 황천왕동이는 의관을 벗고 자리에 누운 뒤 얼마 아니 있다가 바로 잠이 들어
서 자는 중에 "이 사람 일어나게." 한온이가 와서 깨웠다. "왜 일어나라나?" "술
먹으러 가세." "단야에 무슨 술인가? 나는 잘라네." "오래간만에 만나서 술 한잔
같이 안 먹을 수 있나. 어서 일어나게." 황천왕동기가 일어 앉았다. "어리루 가잔
말인가?" "우리 작은마누라가 술상을 차려놓구 기다리네." "그 술상을 갖다가 여
기서 먹세." "왜 내 첩의 집은 더러워서 못 가겠나?" "쓸데없는 소리 고만두구
이리 가져오라게." "글쎄, 왜 이리 가져오란 말이야?" "벗어논 옷을 다시 주워 입
기 귀찮거든." "쭉찌어질 의관 다 고만두구 그대루 가자." "어딜 상투바람으루 가
잔 말이야?" 한온이가 황천왕동이를 잡아 일으켜세우며 귀에 입을 대고 "도둑놈
의 주제에 의관은 다 무어냐?" 하고 웃으니 황천왕동이도 지지 않고 "너는?" 하
고 마주 웃었다. 황천왕동이가 다시 의관을 차리고 한온이를 따라 그 첩의 집
에 와서 안방에 들어앉았다. 한온이의 첩은 잠깐 인사하고 건넌방으로 건너간
뒤 다시 얼굴을 내놓지 않고 할멈 하나와 아이년 하나가 방에 드나들며 술상 심
부름을 하였다. 주인 손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권커니잣거니 술을 여남은 잔씩
먹었을 때 "단둘이 너무 심심하니 술 칠 기집 하나 불러올까?" 한온이가 말한는
것을 "조용히 이야기해 가며 술먹는 것이 좋으니 고만두게." 황천왕동이가 밀막
았다. "자네는 천생 고리삭은 샌님이여." "그저 샌님두 아니구 고리삭은 샌님이
여? 자네가 사람 칭찬을 너무 과히 하네." "자네가 품안으루 기어드는 젊은 기집
을 내박찼다지? 그게 고리삭은 샌님이라 할 짓이 아닌가." "만일 본서방의 칼을
맞았던들 사내대장부라고 할 뻔했네그려." "그렇지, 사내대장부면 칼을 맞을 때
맞더래두 기집을 받아주지 내박차지 않네." "자네 말대루 하면 흘레개를 제일등
사내대장부루 쳐야겠네." "에라 이 자식아, 그건 억설이다. 개하구 사람하구 어디
같으냐?" "어른더러 이 자식이 무어냐? 욕 말구 술이나 어서 먹어라." "자네가
먹을 차례 아닌가?" "벌써 옹송망송하냐? 이건 내가 부어논 잔일세." 한온이가
술을 마시고 잔을 가뜩 채워서 황천왕동이를 주며 "도둑놈 도학군자, 이 술 한잔
잡으시오." 권주가 흉내를 내었다. "어른을 놀리면 종아리 맞는 법이다." "참말
자네가 그때 기집더러 종아리채를 해오랬나?" "나를 정말 고리삭은 샌님으루 아
네그려. 종아리채가 다 무어란 말인가." "그래두 나는 그렇게 들었어." "누가 거
짓말을 한 게지." "그때 이야기 한번 자세히 들어보세." "그까진 이야길 누가 한
단 말인가. 술이나 가져오라게. 술이 다 없어졌네." "술은 얼마든지 있네. 우리
실컨 먹어보세." "자네 술이 늘었네그려." "전에 통히 접구두 못하던 술을 지금은
한 자리에 이삼십 배 예사 먹으니 굉장히 늘었지. 이게 선생님한테 배운 술일세.
꺽자 정자 분이 검술 선생님이 아니라 검자 떼구 술선생님이야." "우리 형님이
남의 집 자식을 버려놨군." “자네두 사람이 될라거든 선생님을 배우게. 선생님
같이 기집을 좋아해야 사내대장부 값이 있네.” “배울 것두 없든가부다.” “선
생님이 기집 후리는 수단이 있어. 그 수단이 아마 검술 수단만 못지않을 겔세.
장찻골다리 소홍이란 기생년은 임선다님을 오매불망 못 잊어서 상사병에 걸리게
되었네.” “자네가 조방꾼이 노릇을 하구 뒤에 앉아서 저 따위 소리를 하지.”
“소홍이 하나 사귈 때는 내가 더러 글을 가르쳐 드렸지만 그외는 모두 선생님
의 자작자필일세.” “들여앉힌 기집들두 자네가 천거 안하구 누가 천거했겠나?
” “애매한 소리 하지 말게. 자네가 잘 모르면 내 이야기할게 들어보게. 박생원
의 딸은 순이 할미란 매파를 놓구 데려왔구, 원판서의 딸은 노박이놈을 데리구
가서 업어왔구, 또 김씨 과부는 격장해서 사는 중에 후려왔다네. 하나나 내가 알
까닭이 있난. 나는 그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세 집 뒤치다꺼리에 골만 빠지네.
이왕 말잉 난 길이니 말이지만 선생님이 데려가든지 어떻게 하든지 속히 귀정을
내주어야 사람이 살겠네. 자네 이번에 가서 말씀 좀하게.” “말할 것이 동이 난
두 그런 말은 안 하겠다.” “자네 누님 대신 강짜하나?” “미친 소리 하지 마
라. 노밤이란 그 미친 놈은 지금 대체 어디가 있나?” “선생님의 셋째부인, 아
니 자네 누님까지 치면 넷째
부인인 김씨 집에 비부쟁이루 가서 있네.” “그놈이 홑으루 미친 놈만두 아니
데.” “미친 척하구 떡시루에 엎드러질 놈이지.” 한온이가 먼저 하품을 하여
황천왕동이도 따라 하품을 하고 나서 “고만 가서 자구 내일 일찍 가겠네.” 하
고 일어나려고 하니 한온이가 붙들면서 “술 좀 더 먹어야 하네. 자, 우리 파탈
하구 앉아 먹세.” 하고 자기가 먼저 의관을 벗고 황천왕동이의 의관도 억지로
벗기었다. 이야기하는 동안 술잔 놀인 오력을 내느라고 부어라 먹자 부어라 먹
자 수없이들 먹었다. 주인 손 두 사람이 다 같이 고주망태가 되어서 술자리에
그대로 쓰러져서 이튿날 아침 해가 높이 솟아오르도록 정신들을 몰랐었다. 황
천왕동이가 성루서 청석골로 내려오는 길에 혜음령도적 정상갑이와 최판돌이를
고개에서 만났는데, 청석골서 서울로 보내는 봉물짐이 어제 저녁때 고개를 넘어
갔다고 생게망게한 소리를 하여 황천왕동이가 근일에는 청석골서 봉물짐을 보낸
일이 없다고 말하였더니 상갑이가 판돌이를 돌아보며 “우리가 속았네그려. 그
놈의 눈치가 좀 수상하더라니.” 하고 말한 뒤 황천왕동이를 보고 “어제 저희
둘이 사람 몇 데리구 고개를 지키는데 태산 같은 봉물짐 하나가 오겠지요. 옳다,
오늘 벌이는 잘했다 생각하구 내달아서 짐을 벗어놓구 가라구 소리를 질렀더니
그 짐꾼놈이 청석골 임대장께서 서울 보내시는 짐이라구 말합디다. 그래서 뺏지
못하구 그대루 보냈습니다. 인제 알구 보니 그놈이 멀쩡하게 사람을 속였습니다
그려.” 하고 말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정상갑이와 최판돌이에게 군호 하나를 주
어 두려고 군호까지 생각하다가 말고 “그런 일이 앞으로는 없두룩 방지할 도리
를 생각해야 겠네.” 하고 말을 일러두었다. 황천왕동이가 서울서 늦게 떠나고
또 혜음령서 지체하여 다 저녁때 청석골을 들어와서 꺽정이만 보고 바로 자기
집으로 가고 석후에도 안해의 식후복 약시중을 하느라고 꺽정이 사랑에 일찍 오
지 못하였다. 등 너머에 외따로 가서 거처하는 곽오주 같은 사람은 황천왕동이
온 줄도 몰라서 사랑에 모인 얼굴을 돌아보며 “천왕동이 형님이 오늘두 안 왔
네.” 하고 혼잣말까지 하였다. 다른 두령들은 형님뻘 되는 사람을 부르자면 반
드시 이두령 형님이니 박두령 형님이니 부르건만, 곽오주는 걸핏하면 봉학이 형
님 유복이 형님 이놈 여보로 불렀다. 그대신에 형님뻘 중의 맞잡이 황천왕동이
가 오주야 불러도 대답을 잘하였다. 황천왕동이가 남나중에 와서 사랑마당에 들
어설 때 곽오주가 내다보고 “천왕동이 형님이 인제 오네.” 하고 소리치다가
방안의 다른 사람들이 웃는 것을 보고 “예 여보, 사람들 안됐소. 벌써 온 걸 나
만 속여먹었구려.” 하고 떠들었다. 황천왕동이는 자살궂은 사람이라 여느때와
같이 방안에 들어서서 “진지들 잡수셨습니까?” 도거리로 석후 인사 한마디만
하고 자리에 앉은 뒤 유독 곽오주를 보고 “자네는 서울 갔다온 뒤 처음 보네.
” 하고 따로 인삿말을 하였다. “대체 언제 왔소?” “아까 낮에 왔네.” “낮
에 내가 넘어왔다 갔는데.” “자네 넘어간 뒤든 게지.” “그런데 왔단 기별두
안 해주?” “나 온 줄을 참말 이때까지 몰랐나?” “알 까닭 있소. 지금두 안
왔느냐구 말하니까 여러 형님네까지 날 속일라구 시침들을 떼구 있었소. 모두들
서종사 물이 들어서 사람들이 변했어.” 곽오주 황천왕동이 두 사람의 수작을
다른 사람들은 그저 웃고 듣고 서림이는 곽오주의 나중 말을 탄하여 “내 몸에
는 왼통 곽두령의 잇자국이 백혔소. 하루 한번이라두 그예 씹히니까.” 하고 깔
깔 웃었다. “실없은 소리 인제 고만둬.” 꺽정이 말 한마디에 웃음판이 끝이 났
다. 꺽정이가 황천왕동이더러 서울서 들은 소문과 혜음령서 안 폐단을 여러 사
람에게 이야기하라고 말하고, 황천왕동이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다시 여러 사람
더러 그런 폐단을 무슨 방법으로 방지할까 공론들 하라고 말하였다. 혹은 군호
를 정해 주자고 말하고 혹은 목패를 만들어 쓰자고 말하는데, 서림이가 말하기
를 액내 사람이 왕래할 때는 군호를 쓰고 액외 사람을 무사히 통과시킬 때는 목
패를 주되 거둬들일 지명을 박아서 주고 또 액외 사람에 혹시 후대할 만한 사람
이 있어서 각별히 보호시킬 때는 대장의 차신 장도를 주되 장도 끈에 거둬들일
지명을 써서 주기로 방법을 정하여 각처에 알리고 이 방법을 시행할 때 장도와
목패의 본보기는 한번 미리 각처에 돌려 보이고 군호는 다달이 한 번씩 고쳐서
각처에 알려 주자고하여 꺽정이가 서림이의 말대로 작정하였다. 여러 두령이
한담들을 시작할 때,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토포사 난단 소문이 비록 진적
한 소문이 아니라두 토포사가 나면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을 미리 생각해 두는 것
이 좋지 아니할까요?”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뒤로 비스듬히 기대앉아서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토포사가 나면 나는 때 어떻게 할 것을 생각해두 넉넉
하겠지.” 하고 대답하였다. “생각해서 곧 할 수 있는 일은 나중이라두 넉넉하
겠지요. 그렇지만 시일이 걸릴 일은 미리 예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토포사
나기 전에 무슨 예비할 일이 있소? 생각한 것이 있거든 말하우.” 여러 두령이
모두 한담을 그치고 서림이의 말을 기다리는데, 서림이는 말을 정중하게 하려고
먼저 헛기침을 몇 번 하였다. 서림이 헛기침에 곽오주 비위가 뒤집혀서 “서종
사 말할 것 나는 벌써 다 알구 있소. 포두산지 무슨 산지 나오면 또 이천 광복
산으루 피란가잔 말이겠지.” 하고 꿰진 소리를 하여 서림이는 곽오주를 바라보
며 “곽두령 지레짐작이 요하시우.” 칭찬하듯 조소하듯 말대꾸를 한마디 한 뒤
에 다시 꺽정이를 보고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토포사가 만일 나구 보면 우리
가 여기 앉아 배기진 못합니다. 손바닥만한 산공에서 무슨 수로 토포사의 관군
을 막아냅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취할 만한 방책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
는 서흥 대현산성이나 재령 장수산성이나 또는 은율 구월산성 같은 큰 산성 하
나를 뺏어서 웅거하구 토포사의 관군을 막아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군량만 있으
면 몇 달 동안은 접전할 수 있을 겝니다. 그러구 나중에 모두 잡혀 죽더래두 우
리의 이름은 반드시 뒤에 남을 겝니다.” “도둑놈으로 뒷세상까지 욕을 먹잔
말이오?” 꺽정의 호령기 있는 말에 서림이는 말중둥이 끊이었다가 옆에 앉은
이봉학이가 “또 한 가지 방책을 무어요?”하고 물어서 이봉학이를 돌아보며 뒷
말을 계속하였다. “또 한 가지 방책은 전에두 대장께 말씀을 여쭌 일이지만 우
리가 한군데 붙박여 있지 말구 동에 가 번쩍, 서에 가 번쩍 종적을 황홀하게 하
는 것입니다. 가령 토포사가 황해도루 나온다 하거든 우리는 강원도에 가 있구,
또 토포사가 강원도루 온다구 하거든 우리는 평안도에 가 있어서 토포사를 한두
달만 헛다리 짚구 돌아다니게 하면 조정공사 사흘이라니 조정에서 하는 일이 어
디 오래갑니까? 토포사가 도루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구 우리가 어디루든지 길
을 뚫어서 대간 하나만 일으켜 세우면 토포사쯤 파직시키기는 여반장 용이합니
다.” “여보 서종사?”꺽정이가 불러서 “녜.” 서림이가 꺽정이를 향하고 바로
앉았다. “이왕에 다 말한 일인데 지금 새삼스럽게 두 가지니 세 가지니 말할
게 무어요? 토포사가 나오는 때 그렇게 하면 고만 아니오.” “그렇게 하자면
예비해 둘 일이 있습니다.” “무슨 예비요?” “우리의 소굴을 몇 군데 더 예
비해 두어야 임시 군색을 면할 수가 있습니다.” “소굴을 예비하다니?” “전
자에 광복산 갔을 때 인가가 있어두 군색을 여간 겪지 않았는데 더구나 인가 없
는 데 가선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 몇 군데 가서 우리가 거처할 만한 집칸을 미
리 세워두잔 말씀입니다.” 꺽정이가 서림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였
다. “토끼두 세 굴을 판다는 셈으루 소굴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우선 먼
저 성천,양덕,맹산 평안도에 서너군데 만들어놓구 차차 다른 데두 더 만들두룩
하시면 제 생각엔 좋을 것 같은데 어떨까요?” “좋겠지.” 꺽정이가 한번 좋다
고 말한 바에는 다른 두령들이 아무리 좋지않다고 딴소리를 하여도 소용이 없지
만, 곽오주 한 사람 외에는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황천왕동이와 길
막봉이도 송악산 서림이의 꾀가 신통한 것을 보아서 전과 같이 곽오주와 한 동
아리가 되지 아니하였다.
청석골 도중의 공용 재물은 부근 동민과 인읍 이속이 갖다 바치는 것도 다소
없지 아니하나, 대개는 탐관오리나 토호거부의 재물을 뺏어들이는 것인데 한 달
에 한두 번 또는 네댓 번 두령들이 졸개를 거느리고 백 리 이백 리 밖까지 나가
서 뺏어들이었다. 뺏어온 재물에 도중의 소용없는 물건은 으레 서울이나 송도로
보내서 상목을 바꾸어다가 쓰고 남는 것을 저축하여 저축한 상목이 수천 동씩
곳간에 쌓일 때도 있었다. 이때 도중의 상목이 그다지 많진 못하나마 새 소굴을
열 군데 스무 군데 만들더라도 경비 부족할 염려는 조금도 없으므로 꺽정이가
서림이의 말을 좇아서 평안도에 소굴을 만들어 두기로 작정하고 보낼 두령을 고
르는데, 박유복이는 평안도 지방에 익숙하고 배돌석이는 집 역사 감역에 능란하
다고 두 사람을 같이 보내기로 하였다.
꺽정이는 무슨 일이든지 작정해 놓고 흘미죽죽 오래 두지 못하는 성미라 이
튿날 식전 조사에 전날 밤 작정한 두 가지 일을 다 명령으로 내리어서 각처에
돌릴 기별군은 당일내로 띄워 보내게 하고, 평안도 보낼 사람들은 떠날 준비를
차리라고 겨우 하루 말미를 주었다. 박유복이와 배돌석이가 양반 행세하고 부담
마들을 타기로 하여 역사에 부비 쓸 서총대 무명을 부담상자 네짝에 그들먹하게
다고 대목,소목,미장이 일하는 졸개 십여 명은 하인과 마부를 삼아서 데리고 가
기로 하였다. 일행이 너무 많으면 남의 이목에 두드려져서 의심을 사기 쉬우니
맹산 가서 모이기로 하고 뿔뿔이 떠나라고 서림이가 말하여, 다음날 식전에 박
유복이가 먼저 졸개 두 명을 하나는 하인,하나는 마부로 데리고 떠나고 그 뒤에
졸개 칠팔 명이 각각 괴나리봇짐을 해 지구 둘씩 셋씩 작반하여 떠나고, 맨 나
중에 배돌석이가 길양식과 다른 행구를 졸개 두 명에게 나누어 지우고 말,사람
넷이 같이 떠났다. 배돌석이는 해가 한나절 기운 뒤에 청석골서 떠난 까닭에 그
날 겨우 오십 리를 오고 그 이튿날 백 리를 오고 사흘 되는 날 역시 백 리를 와
서 봉산읍에서 숙소하게 되었다. 배돌석이가 황주 경천역말서 역졸 노릇할 때
봉산서 장교 다니던 황천왕동이를 자주 찾아다녀서 봉산 장교에 안면 있는 사람
이 많았으므로 마음에 서먹서먹한 생각이 없지 아니하나, 그 사람들이 그저 장
교를 다니란 법도 없고 설혹 그저 다니는 사람이 있다손 잡더라도 설마 어떠랴
생각하고 봉산읍에 숙소참을 댄 것이었다. 장거리 집으로 제법 깨끗한 집이 배
돌석이가 사처를 정한 뒤 길양식에서 상하 세 사람의 저녁 아침 두 끼 쌀밥을
주인에게 내주고 저녁밥 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사처방의 비슷 맞은편
길가 방 쪽에서 주인과 어떤사람이 수작하는 말이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같이
들리었다. “형님 웬일이오?”묻는 것은 주인의 말소리요, “너희 집에 손님 드
셨구나. 어디서 오신 손님이냐?”묻는 것은 다름 사람의 말소리다. “서울 손님
이오.”“안전께 구걸하러 온 손님인가?”“아니오. 평안도로 가시는 손님이라
우.”말소리가 그치고 얼마 아니 있다가 신발 소리가 가까이 나는 듯하여 배돌
석이가 방 밖을 내다보니 어둔 속이나 눈에 보이는 것이 분명히 장교 복색이라
마음이 갑자기 뜨아하여졌다. 배돌석이는 얼굴을 보라고 들고 앉았을 묘리가 없
어서 슬그머니 퇴침을 베고 드러누웠다. 한동안 지난 뒤 주인이 저녁 밥상을 가
지고 와서 배돌석이가 일어 앉았다. 하인 졸개가 행구 중의 찬합을 내서 열어놓
는 동안에 배돌석이는 방 밖에 섰는 주인을 보고 “아까 장교가 무어 수탐하러
왔었나?”하고 말을 물어보았다. “아니올시다. 소인의 사촌형이 소인보구 무슨
할 말이 있어 왔다갔습니다.”“사촌형이 장교 다니나?”“수교 올시다.” 주인
은 손님이 수저 드는 것을 보고 길가 방으로 나갔다.
일이 공교하게 되려면 억지로 꾸며 만든 것같이 공교하게 되는수가 있다. 배
돌석이가 우연히 사처를 정한 집 주인의 사촌형 봉산 수교가 역시 우연히 대단
치 않을 볼일로 사촌의 집에 왔다가 서울 손님이 어떤 손님인가 들여다보았더
니, 뜻밖에 그 손님의 얼굴이 눈에 익어 보이었다. 배돌석이는 어둔 밖을 내다보
아서 복색을 겨우 분변하였지만, 수교는 등잔불 켠 방안을 들여다본 까닭에 얼
굴을 잘 볼 수 있었다. 만일 배돌석이도 수교의 얼굴을 보았던들 눈에 익어 보
였을 것이 수교가 황천왕동이와 함께 장교를 다닐때 배돌석이와 수차 안면이 있
었던 까닭이다. 손님의 얼굴을 더 좀 자세히 보려고 할 즈음에 손님이 드러누워
서 수교는 그대로 돌아나와 사촌보고 할 말 하고 길거리로 나오면서 고개를 이
리 기울이고 저리 기울이고 하다가 나중에는 “옳지, 그놈이다.”“영락없는 배
가다.”하고 혼잣말을 지껄인 뒤 주먹을 쥐고 달음박질하여 홍살문 안으로 들었
갔다.
문루위의 폐문소리 끝나갈 때 수교가 삼문 안에 들어와서 쌍창 열어놓은 동헌
방을 바라보니 원님이 어디를 가고 자리가 비었었다. 수교가 동헌 마루에 올라
서자, 방에서 아이 통인하나가 마주 나왔다. “안전께서 내아에 듭셨느냐?”“아
니요, 뒤 납셨소.”수교가 동헌 마루에서 내려와서 뒷간 편으로 가다가 말고 넓
은 마당 중간에서 어정어정하는 중에 통인이 한 손에 초롱 들고 또 한 손에 인
궤들고 앞을 서고 그 뒤에 원님이 걸어오는데, 체소한 양반이 걸음만은 황소 걸
음 못지않게 무거웠다. 수교가 앞으로 나가서 두 손길 맞잡고 국궁하였다. “너
밤에 웬일이냐?”“비밀히 아뢸 일이 있소이다.”“비밀히 말할 일이 있어?”원
님이 수교의 말을 뇌듯이 말하고 다시는 말이 없었다. 무슨 일이냐 채쳐 묻지
않는 것을 수교는 속으로 괴상히 생각하며 원님의 뒤를 따라왔다. 원님이 방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은 뒤에 통인이 앞에 갖다놓는 인궤를 한번 열어보고 다시
닫아서 옆에 비켜놓고 좌우에 있는 통인들을 다 물리고 비로소 마루에 섰는 수
교를 내다보며 나직한 말소리로 “비밀히 말할 일이 무슨 일이냐?”하고 물었
다. 원님의 성질이 찬찬한 데 수교는 새삼스럽게 놀랐다. 이때 봉산군수는 박응
천이니 사람이 찬찬하고 또 찰찰하였다. 수교가 열어놓은 쌍창 앞으로 가까이
들어서서 역시 나직한 말소리로 말을 아뢰었다.
“연전에 황주 경천역말 역졸의 배가성 가진 자가 살인하구 도타한 일이 있솝
는데 그자가 유명한 불한당 괴수 임꺽정이 부하가 되었단 말이 있솝드니 무슨
흉겐지 모르오나 그자가 지금 가짜루 양반 행차를 꾸며가지구 읍에서 와서 싸전
거리 소인의 사촌의 집에 사처를 잡구 있소이다.”“네가 보았느냐, 네 사촌의
말을 들었느냐?”“소인이 사촌의 집에 갔다가 봤소이다.”“그놈들 수효가 모
두 몇이드냐?”“배가가 양반 행세하구 하인이라구 둘을 데리구 왔습디다.”“
모두 세 놈뿐이야?”“녜.”“세 놈을 잡는데 사람이 얼마면 되겠느냐?”“배가
가 돌팔매질루 유명한 놈이오나 잠자는 것을 들이덮쳐서 잡는 데는 사람이 많지
않아두 되겠소이다.”“그러면 왁자하게 떠들 것 없이 네가 슬그머니 장교와 사
령을 칠팔 명 모아가지구 나가서 잡아오너라.”수교가 장청에 나와 앉아서 장교
중의 힘꼴 쓰는 사람 네 명과 사령,군노 중에 건장한 사람 네 명을 뽑아 모아서
거느리고 싸전거리 사촌의 집으로 몰려나왔다. 그 집은 뒤채,안채,옆채 세채 집
인데, 안방과 건넌방은 뒤채에 있고 길가 방은 앞채에 있고 마굿간은 옆채에
있었다. 집 뒤와 집 옆은 울타리가 둘렸으나 집앞만은 그대로 길거리고 안채 한
구석에 있는 널찍한 헛간은 밖에서 뒤채로 드나드는 길이었다. 관차들이
집 앞에 와서 보니 온 집안이 캄캄하고 안방에만 희미한 불이 비치었었다.
수교가 이럴 줄 짐작하고 홰 두 자루를 준비시켜 가지고 왔었다. 가까운 술
파는 집에 가서 홰에 불을 붙여가지고 바로 안마당으로 들어오라고 두 사람을
보내고 길가 방과 헛간 앞에 한 사람씩 세워두고, 나머지 네 사람은 모두 육모
방망이를 손에 들고 배가의 사처방인 건넌방의 앞문과 지겟문을 지키게 하였다.
도둑과 같이 발자취들을 숨기고 다니나 자연 인기척이 아니 날 수 없었다. 안방
머리맡 외쪽문이 열리며 주인이 내다보는 것을 수교가 가까이 가서 손을 저어서
주인은 말없이 외쪽문을 도로 닫았다. 그 뒤에는 마굿간에 매인 말이 힝힝 소리
할 뿐이고 건넌방과 길가방은 사람 없는 듯 조용하였다. 횃불이 안마당에 들어
오자마자 건넌방의 앞문과 지겟문을 일시에 열어젖히고 수교까지 다섯 사람이
으악 소리들들 지르며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빈방이다. 행구도 있고 의관도 있
는데 사람만 없었다.
배돌석이는 잡히지 않을 운수가 뻗쳐서 관차들 오기 바로 전에 밤뒤를 보려고
마굿간 옆에 따로 떨어져 있는 뒷간에 나와 있었다. 배돌석이가 뒤를 다 보고
뒷간에서 나오다가 복색 다른 사람들이 안마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희미한 별빛
아래 바라보고, 먼저 왔던 수교에게 자기 본색이 탄로되어서 관차들이 자기를
잡으로 나온 줄 선뜻 짐작하였다. 남의 없는 무기 팔매 돌주머니를 방에 두지
않고 가지고 나왔다면, 그까지 관차 몇 명 안중에 둘 것도 없었지만 무기를 안
가지고는 별수가 없어서 구차스럽게 은신할 곳을 찾았다. 뒷간 앞에서 뒤울안으
로 돌아오는데 신발 소리를 새지 않으려고 신을 벗어 손에 들고 맨발로 색시 걸
음을 걸었다. 버선은 벗어놓은 채 두고 맨발에 신을 꿰고 나왔던 것이다. 마루에
북창이 있으나 다행이 닫혀 있어서 마루 뒤 안방 뒤를 살그머니 지나 부엌 뒤에
까지 와서 울타리의 개구멍으로 밖에 나가려다가 나중 급하면 어찌하든지 우선
당장 버스럭 소리 내는 것을 부질없게 생각하여 부엌 뒤에 가만히 숨어 있었다.
안마당에 불빛이 비치더니 방문 열어젖히는 소리와 여러 사람 으악 소리가 일시
에 나서 ‘저놈들, 빈방을 들이치는구나.’배돌석이는 관차들이 허탕친 것을 고
소하게 생각하는 중에 별안간 밖에서 “여기 한 놈 뛰었다!”외치는 소리가 나
며 곧 안에서 “홰 하나,사람 둘만 얼핏 쫓아나가게.”지휘하는 말소리가 들리었
다. 잠깐 동안 신발 소리들이 요란하게 나고 뒤가 괴괴하여 배돌석이가 살며시
부엌안으로 들어와서 안마당을 내다보니 마굿간 근처에 횃불빛과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었다. 마당과 마루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배돌석이는 부엌에서 건넌
방으로 갔다. 말코지에 걸어두었던 돌주머니를 떼어내려서 손에 드니 우선 안심
이 되나 방안에서 팔매질이 거북하고 또 도망질한 졸개가 궁금하여 버선만 신고
대님도 못 치고 바로 헛간으로 밖을 나오는데, 횃불은 뒤 울안에 있는 듯 마루
북창문이 환하였다. 졸개들이 어느 쪽으로 도망하였는지 몰라서 배돌석이가 어
둠 침침한 처마 밑에 잠깐 망설이고 섰는 중에 마침 술집 앞에서 나섰던 사람들
이 “그놈이 도둑놈인가베.”“그놈 향교말 다 못 가서 붙잡히네.” 지껄이는 말
이 귀에 들리어서 향교말 길로 오게 되었다. 배돌석이가 향교말을 거의 다 왔을
때, 맞은편에서 횃불하나가 오는 것을 보고 길 옆 으슥한 곳에 몸을 숨기고 이
었다. 관차 다섯이 마부 노릇하던 졸개를 붙잡아 가지고 오는데, 하나는 횃불을
들고 앞을 서고 둘은 졸개의 양죽지를 치켜들고 중간에 서고 뒤에 오는 둘은 손
에 방망이들을 들었었다. 배돌석이의 신통한 재주 연주 팔매가 잠깐 동안에 중
간의 돌과 뒤의 둘을 꺼꾸러뜨리니 앞에 하나는 홰를 내던지고 어둔 속으로 도
망질하였다. 홰 떨어진 곳에 물이 있든지 불은 뿌지직하고 바로 꺼졌으나, 늦게
뜨는 달빛이 우리기 시작하여 어둠이 차차로 엷어졌다. 배돌석이가 관차를 꺼꾸
러진 자리에 와서 관차의 방망이로 관차들을 짓두들겨서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
도록 만들어놓고 비로소 졸개를 돌아보니 졸개는 양쪽 어깨를 번갈아 만지고 있
었다. “어깨는 왜 만지느냐?”“양쪽 어깻죽지를 방맹이루 어떻게 몹시 맞았는
지 살이 죄다 으스러진 것 같습니다.”“너 혼자만 잡혔느냐?”“소인이 자다가
으악 소리에 초풍해서 일어나 보니까 소인만 남았습디다. 잠든 동무를 깨우지
않구 혼자 먼저 도망하는 그런 천하의 몹쓸 놈이 어디있습니까. 소인이 방문을
박차구 길거리루 뛰어나오는데 사령 한 놈이 방문 밖에 지키고 있다가 붙잡으러
대듭디다. 그래서 눈깔이 빠지두룩 눈퉁이를 후려갈기구 도망질을 쳤습니다. 발
치만 익은 길이면 저깐 놈들한테 붙잡히지 않을겐데 길을 몰라서 허둥지둥하다
가 붙잡혔습니다.”“고만 지껄이구 가자.”“어디루 가잡시요?”“나를 따라오
너라.”배돌석이가 졸개 하나를 데리고 이날 밤에 밤길로 검수역말을 지나오고
이튿날 아침부터 과객질을 시작하여 갖은 토심을 다 당하고 사흘 만에 청석골로
돌아왔다.
배돌석이가 하인으로 데리고 갔던 졸개는 벼룩을 몹시 타는 사람인데, 봉산서
자던 길가 방에 벼룩이 많아서 잠 못 자고 부스대기치던 끝에 고의 속에 든 벼
룩을 떨려고 밖에 나갔다가 마침 관치들이 오는 것을 보고 그대로 들고 뛰었었
다. 배돌석이보다 하루 뒤져서 청석골로 돌아온 것을 두령이 버리고 동무를 버
리고 혼자 도망한 것이 용서치 못할 죄라고 꺽정이가 장하에서 물고를 내게 하
였다.
배돌석이의 못 가게 된 것을 맹산서 기다릴 박유복이에게 기별하여 주자고 이
봉학이가 꺽정이에게 말하여 황천왕동이를 보내기로 되었는데, 길은 봉산을 피
하기 위하여 신계,곡산으로 작로하게 하였었다. 황천왕동이가 곡산서 양덕, 양덕
서 맹산으로 가는 중에 소삽한 산골길에 여러 차례 길을 잃고 헛고생을 무척 하
여 돌아올 때는 순천,은산,자산을 지나 평양으로 나와서 서관대로을 좇아 봉산을
지나왔다. 봉산읍에는 해진 뒤 캄캄한 때 들어가서 처가에서 자고, 밝는 날 어뜩
새벽 떠나나온 까닭에 남의 눈에 뜨일 사이가 없었다. 봉산 장교 하나와 사령
셋은 배돌석이에게 돌팔매를 맞고 또 방망이를 맞아서 모두 죽다 살아났고, 수
교는 배돌석이를 잡지 못하고 놓친 죄로 원님에게 소곤 오십도를 맞았고, 배돌
석이가 버리고 온 말 한 필과 서총대 무명 두 상자와 기타 행구는 다 속공되었
다고 황천왕동이가 그 장인 백이방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았었다. 여러 두령이
황천왕동이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 “수교놈 곤장 맞은 것 잘코사니요.”“그 따
위 놈은 대매에 때려죽여두 싸지.”“그까지 수교놈버더 군수놈을 치도곤 한번
먹였으면 좋겠소.”“말 한 필, 무명 두 상자 뺏긴 것은 더 말할 것 없구 졸개
한 놈 죽은 것두 봉산군수의 탓이라구 말할 수 있지.”“그놈 한번 버릇을 못
가르친단 말이오?”이 사람 저 사람의 지껄이는 말을 꺽정이가 듣고 나서 서림
이를 돌아보며 “봉산군수 박응천과 신계현령 이흠례 두 놈은 가만 놔두면 우리
에게 많은 해를 끼칠 테니 어떻게 처치할 도리를 생각합시다.”하고 말하니 서
림이가 “녜.”대답하고 바로 꾀를 생각하느라고 눈을 까막까막하였다. “급치
않은 일이니 차차 생각해두 좋소.”“위선 박응천이부터 처치하지요.”“어떻게
처치하잔 말이오?”“가짜루 금부도사를 꾸며가지구 가서 잡아가지구 오면 어떻
겠습니까?”“좋지, 그럿지만 금부도사를 어떻게 꾸미나?”“두령 한 분이 두목
이나 졸개 서너 놈 데리구 서울 가서 한첨지의 아들과 상의해서 금부도사 행차
를 꾸며가지구 봉산으루 내려가면 되지 않겠습니까.”“금부도사와 금부 나쟁이
의 복색을 얻으러 서울까지 간단 말이오?”“도사나 나쟁이의 복색은 얻으러 갈
것이 없지만 주장두 지금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러구 첫째 한첨지집의 위조
마패를 한 벌 얻어서 역마를 잡아타구 내려가야 금부도사의 행차가 되지 않습니
까.”꺽정이가 고개를 한두 번 끄덕이고 “그러면 누구를 금부도사루 만들면 좋
겠소?”하고 물었다. “도사 노릇을 잘못하면 발각이 나기 쉬우니까 이두령께서
도사루 가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서림이 말끝에 이봉학이가 고개를
외치고 “고양,파주 등지의 역사람들은 대개 다 내 얼굴을 알 테니까 나는 안
되겠소.”하고 말하였다. “낯익은 사람 보시거든 부채루 차면하시지요.”“역사
람은 고만두구 임진나루 사공들이 부채 차면했다구 나를 모르겠소.”“그러면
서울서 여기까지 다른 사람이 오구 여기서 봉산까지 이두령께서 가시지요.”“
가짜에 교다까지 하면 일이 너무 구차하지 않소.”“구차하지만 다른 두령의 갈
만한 분이 없지 않습니까.”“두령 중에 도사 노릇 잘할 사람이 없으면 두목이
나 졸개 중에서 물색해도 좋지 않소?”서림이가 자기 말로는 이봉학이를 누를
길이 없어서 꺽정이의 말을 자중하려고 “대장께서 결정해 말씀하셨으면 좋겠습
니다.”하고 꺽정이를 바라보았다. 꺽정이가 한참 생각하다가 “서종사 도사루
가보우.”하고 말하여 서림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고서 “제가 어디 도사 노
릇을 잘할 수가 있습니까. 대장께서 가라시면 가긴 가겠습니다만, 혹 낭패가 되
더래두 제게 죄책은 내리지 마십시오.”하고 대답하였다.
봉산은 전에 선비가 없던 시골인데 장기순이란 학행 겸비한 선비가 평지돌출
로 처음 나서 봉산의 때를 씻었다. 그의 이름을 위에서까지 알고 특지로 참봉
초사를 시키었으나, 그는 환로에 나서지 않고 일평생 시골에 들어앉아서 제자를
많이 길러놓은 까닭에 이때 봉산은 황해도에서 선비 많기로 평산과 갈이 치게
되었었다. 봉산군수 박응천이 관가에 일없는 날, 장참봉 제자의 유수한 선비 사
오 인을 데리고 계유산 정림사에 나와서 봉산 십이경의 하나인 양익봉을 시제
삼아 풍월들을 짓는 중에 호장,이방,승발 삼공형이 함께 나와서 급한 공사가 있
다고 통인 시켜 말하여 군사가 앉았는 누마루 앞으로 삼공형을 불러들이었다.
“급한 공사가 무엇이냐?”군수의 묻는 말을 “서울서 금부도사가 내려왔소이
다.”호장이 대답하였다. “금부도사가 내려왔어?”군수는 호장의 말을 한번 뇌
고 나서 “무슨 일루 내려왔다드냐?”“무슨 일인지는 알 길이 없사오나 금부도
사가 객사에 와 앉아서 안전께 전교 받자오러 나옵시라구 성화같이 재촉하옵디
다.”“내게 전교가 내렸다. 무슨 일일까?”군수는 혼잣말로 말하는데 이방이 섰
던 자리에서 한두 걸음 앞으로 나서서 “소인이 나졸 하나를 붙들구 넌지시 까
닭을 물어보온즉 서울서 역적고변이 생겨서 여러 사람이 잡혔솝는데 안전 성함
이 죄인 초사에 났다구 하옵디다.”하고 소리를 낮추어서 나직나직 말하였다. “
도사가 나졸을 몇이나 데리구 왔드냐?”“나졸이 둘이옵구 나쟁이가 하나옵디
다.”“도사가 무얼 타구 왔드냐?”“역마 타구 왔습디다.”“그 역마가 분명히
검수역에서 온 것이드냐?”이방이 대답을 못하고 호장을 돌아보고 또 승발을 돌
아보았다. 승발이 나서서 “말두 소인이 잘 아는 말이옵구 경마 들구 온 역졸두
소인의 잘 아는 역졸이옵디다.”이방 대신 대답하였다. “도사의 성이 무어라드
냐?”삼공형이 다 대답을 못하여 군수는 혀를 차고 “십 리 밖에 쫓아나오는 것
들이 그만 것두 알아보지 않구 나왔단 말이냐?”꾸짖은 뒤 선비들을 돌아보며
“나는 곧 읍으루 들어가야겠소. 아직 잘 알 수는 없으나 여러분과 다시 만나지
못하구 작별하게 되기가 쉽겠소.”하고 말하니 선비들은 “성주의 불행은 곧 봉
산 일군의 불행이올시다.”“청천백일 같으신 성주를 초사에 올린 놈이 어떤 놈
인지 그놈은 봉산 일군 대소 인민의 원수올시다.”“민들두 곧 성주뒤에 따라들
어가서 다시 보입겠습니다.”“성주께서 이런 소조를 당하신 줄 알면 민들이 집
에 있다가두 전지도지해서 들어가 뵈올 터인데 한자리에 뫼시구 있다가 집으로
흩어져 갈 수가 있습니까.”이런 말을 제각기 한마디씩 지껄이었다.
박응천이 정림사에서 읍으로 들어오는데 떠들지 않고 조용히 오고 객사로 가
지 않고 동헌으로 왔다. 삼공형들이 줄달음으로 원님의 교군 뒤를 쫓아오는 중
에 이방만 객사 길목에서 뒤떨어져서 객사를 들러왔다. “도사의 성씨는 서씨라
구 하옵구 도사는 봉명한 사람을 오래 지체시킨다구 화가 천둥같이 났다구 하옵
디다.” 이방의 말하는 것을 군수가 듣고 곧 옆에 섰던 통인더러 문무백관의 성
명들 적어 꽂는 첩책을 가져오라고 하여 의금부 관원을 찾아보니 경력 다섯에
서가 성이 하나 있을 뿐이고 도사 다섯은 모두 타성들이었다. 박응천이 의심이
없지 않던 중에 이것을 보고 확실히 깨달은 바가 있어 군노,사령,장교 몇십 명을
떠들지 말고 시급히 모아서 대령하라고 이방에게 분부하였다.
군수와 같이 절에 갔던 선비들이 관가로 들어왔다. 선비 하나가 “성주께서
바루 객사루 행차하신 줄 알구 민들은 객사에를 갔었습니다.”하고 말하니 군수
는 “그랬소.”한마디로 대답하고 “거기들 앉으시우.”하고 말하여 선비들이 동
헌 윗간에 자리잡고 앉을 때, 이방이 한편 어깨를 처뜨리고 썰썰 기어들어와서
댓돌 아래 엎드리는 것을 군수가 댓돌 위에 올라서라고 분부하여 이방이 내다보
는 원님 앞에 허리를 구부리고 서서 “한 삼십 명 모아서 삼문 밖에 대령시켰소
이다.”하고 아뢰었다. “좌우병방은 다 어디 있느냐?”“삼문 밖에 있소이다.”
“그러면 좌우병방을 시켜 삼십 명을 거느리구 빨리 객사에 가서 도사일행을 잡
아오게 해라.”이방은 이때가지 도사를 가짜로 생각하지 못하다가 도사를 잡아
오란 원님의 분부를 듣고 비로소 개도가 되어서 “도사가 분명 적당인 줄 아셔
기시오니까?”하고 묻지 않아도 좋은 말을 묻다가 “잔소리 말구 빨리 나가 분
부대루 거행해라! 만일 도사를 잡아오지 못하면 좌우병방은 고사하구 너부터 중
책을 당할 테니 그리알아라.”호령기 있는 군수 말에 황겁하여 “녜.”대답하고
곧 밖으로 나갔다.
윗간에 앉았는 선비들은 군수의 처사를 해이하게 여겨서 말없이 서로 돌아보
는 중에 말을 못 참는 사람 하나가 군수를 보고 “여느 조관두 아니요, 지중한
어명을 받아가지구 나온 조관을 잡는 법두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지금 객사
에 왔다는 것이 진정한 금부도사면 내가 잡으러 보낼리가 있소.”하고 군수는
웃었다. “진정한 금부도사가 아니면 무어오니까?”“대담무쌍한 적당이 나를
속이러 온 것 같소.”“적당인 줄을 어떻게 아십니까?”“요전에 왔던 적당이
양반 행세를 하구 왔더라니 양반 행세하는 놈들이 조관 행세는 못할 리 있소.”
“적당이 어떻게 역마를 잡아타구 올까요.”“글쎄,그런 지금 알 수가 없으나 적
당이 아마 마패를 위조해 가진 것 같소.”“어명을 받아가지구 왔다면 어보 찍
힌 문자가 있겠지요?”“그런 것이 없소. 우리와 같은 일개 수령을 압상할 때는
말할 것두 없구 증왕 대신을 지낸 죄인에게 사약할 때두 전교를 쪽지에 적어가
지구 갈 뿐이오.”“그러면 금부도사가 그 쪽지에 적은 것을 죄인에게 내줍니
까?”“죄인이 보여달라면 보여주기두 하겠지만, 그까지 쪽지 보나 안보나 마찬
가지니 보여 달랄 까닭 있소? 도사가 말루 옮기는 전교를 듣구 고만이지.”“막
중한 전교가 도사의 입에 달린 셈이니 소홀하기 짝이 없구먼요.”“그래서 기묘
년에 조정암 선생이 능주서 후명을 받으실 때 상소를 하려구까지 하셨답디다.”
군수가 선비들을 데리고 여러 가지 수작을 하는 중에 이방과 좌우병방이 같이
들어와서 계하에 굴복들 하였다. “어떻게 했느냐, 잡아왔느냐?”군수 묻는 말에
“도사 일행이 잡으러 가기 전에 벌써 먼저 도망질을 쳤솝디다.”이방이 대답하
니 군수는 화를 내며 “무어야! 너희 놈들이 놓치구 와서 하는 소리지!”호령을
내놓았다. “소인이 이애들하구 같이 객사에를 갔었소이다. 도사 일행이 어디 가
구 없솝기에 객사 앞에 섰는 백성들더러 물어보온즉 나졸 하나가 관가 근처까지
왔다 가서 도사를 보구 몇 마디 말을 지껄이더니 도사가 바루 나쟁이,나졸,역졸
다 불러놓구 큰소리루 하는 말이 봉산군수가 전교를 받지 않으니까 내가 밤 도
와 서울루 올라가서 위에 아뢰구 별반 조치를 할밖에 없다, 이틀 밤 하루 낮 동
안에 서울을 득달하두룩 빨리 가자 하구 곧 역마를 타구 풍우같이 몰아갔다구
하옵디다. 소인들이 객사에 갔을 때 벌써 십리길이나 갔으리라구들 하옵기에 하
릴없이 그대로 돌아와서 대죄를 하옵니다.”군수가 이방의 발명하는 말을 듣고
한동안 쓴입맛을 다시다가 “다들 나가거라!”이방과 좌우병방을 호령으로 퇴출
시킨 뒤 선비들을 보고 “오늘 절에를 안 갔더면 일찍 서둘러서 적당을 잡는 겐
데 분하게 되었소.”하고 말하였다.
봉산에 갔던 금부도사가 서림인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서림이가 봉산군
수를 잡으러 갔다가 하마터면 봉산군수에게 되잡힐뻔하고 청석골로 돌아와서 여
러 두령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봉산가서 한 일을 자초지종 다 이야기하고 끝으
로 꺽정이를 보고 “제가 금부도사 노릇은 의수하게 했지만 박응천이가 워낙 참
새굴레 씌우게 약아서 속지를 않으니 할 수 있습니까?”자기의 실수 없는 것을
발명하여 말하니 꺽정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무엇이 잘못된 줄루 생각하
십니까?”“군수가 나오거나 장채들이 나오거나 양단간 끝장을 보구 올 것을 지
레 도망한 것이 잘못된 것 같소.”“장채들이 나온 뒤에야 무슨 수루 도망합니
까. 끝장을 보려구 있었으면 저는 지금 봉산 옥중에서 죽을 곡경을 치르게 되었
을 겝니다.”꺽정이는 더 말을 아니하는데,이봉학이가 꺽정이의 뒤를 받아서 “
대장 형님 말씀과 같이 지레 도망한 것이 자겁해 한 것 같소. 서종사는 발각이
나서 도망했다구 하지만 뒤쪽으루 도망해서 발각이 났는지 누가 아우?”하고 말
하여 서림이가 무안 본 사람같이 얼굴을 붉히며 “나중에 알아보시면 알 일이지
만 박응천이가 금부도사를 가짜루 간파하구 체포하러 든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
인 줄 압니다.”하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이봉학이는 서림이의 단언을 믿지 아니
하는 듯 “글쎄.”하고 고개를 한편으로 기울였다. 곽오주가 입짓 콧짓 다하며
“서종사 하마트면 봉산 귀신 될 뻔했소.”말로 비웃을 뿐 아니라 말없는 다른
두령들도 눈으로 비웃는 것 같았다. “전교가 내렸다면 원이 동헌에 있다가두
근두박질해서 나올 것인데 절에서 들어와서 바루 객사루 오지 않구 동헌에 가서
안연히 앉아서 도사의 성을 알아들이는 것이 도사를 의심하구 전교를 의심하는
증거가 아닙니까. 원이 관가루 들어간 줄 알구는 곧 일어서구 싶은 것을 그래두
혹시를 몰라서 관가의 동정을 알아본즉 관문 밖에 장교,사령,군노 들이 자꾸 모
여들더라니 이것이 체포하려는 거조지 무업니까. 지레 뺑소니치지 않았으면 꼭
박응천이 손에 걸렸습니다.”
서림이가 열이 나서 발명하는 말을 꺽정이는 웃으며 듣고 “지나간 일은 잘됐
는 못됐든 덮어두구 박응천이를 달리 처치할 도리나 생각해 보우.”하고 말하였
다. “박응천이 같은 약은 위인을 달리 욕보이기는 좀처럼 어려우니까 그저 군
수나 떼어먹구 마는 수밖에 없습니다.”“군수를 떼어먹기는 그리 쉽소?”“서
울 가서 한온이 시켜 주선하면 쉽사리 될 수 있을 겝니다.”“한온이가 이조판
서나 된 줄 아우? 제가 무슨 수루 군수를 떼구 달구 하겠소.”“윤원형에게나
지금 시색 좋은 이량에게 다리를 놓구 말 한마디만 들여보내면 봉산군수는 곧
떨어집니다.”“무슨 말을 들여보낸단 말이오?”“청석골패 대장 아무개가 조관
행세하구 봉산읍에 들어간 것을 군수가 몰라서 잡지 못했다구 말을 들여보내면
박응천이의 뒷줄이 여간 좀 든든하더래두 떨어질 줄 압니다.”꺽정이는 빙그레
웃얼다. “제가 서울을 한번 더 갔다올까요?” “천왕동이를 보내선 안될까”
“황두령이 간들 까닭이 있습니까? 한온이더러 그렇게 주선하라구 부탁만 하면
될 일인걸요.” 꺽정이가 황천왕동이에게 “너 내일 잠깐 서울을 갔다오너라.”
하고 말을 일렀다.
황천왕동이가 서울 가서 서림이 말대로 한온이에게 부탁할 때 한온이 말이 이
량의 심복인 이령에게 말을 들여보낼 만한 좋은 계제가 있다고 하더니, 불과 십
여 일 후에 봉산군수 박응천은 체차하고 그 대에 윤지숙을 임명한다는 정사가
기별지에 나게 되었다. 윤지숙은 이때 당항호반 중 쟁쟁한 사람이라 적당을 잡
으라고 특별히 택임한 것이었다.
정석골 적당이 송도서 백주에 살인한 뒤 조정에서는 토포사를 내보내서 적당
을 토멸시키자는 공론도 있었고, 토포사를 내보내면 민폐만 더 되니 고만두고
개성유수와 황해도관찰사를 각별 신칙하여 적당을 체포시키자는 공론도 있었다.
어느 날 영중추부사 윤원형과 대사간 이량이 편전에 입시하였을 때, 위에서
적당 토멸할 방법을 하문한즉 원형은 토포사 내보내기를 주장하고 량은 토포사
그만두기를 주장하여 각기 주장을 세우려고 말을 다투는데, 위에서 사가로 치면
외숙인 윤원형은 꺼리고 중전의 외숙인 이량은 특별 총애하는 중이라 량의 주장
을 옳다고 말씀하여 원형이 무료하고 있다가 함문밖으로 물러나와서 “적당이
나라를 떠가면 내 나라를 떠가나?” 혼잣말일망정 무엄한 말을 입밖에 내기까지
하였다. 권신들이 서로 틀개를 놓은 중에 조정 공론이 이것저것 다 무력하여져
서 하등 조처가 없이 달포를 지내왔다.
적당이 조관으로 가장하고 봉산군수를 노락한 일이 위에까지 입문된 때, 위에
서 삼공과 영부사에게 적당이 횡행하는 것을 가만두고 보는 것은 국가의 수치니
빨리 조치할 방법을 상의하라고 하교를 내리시어 삼공과 영부사가 정부에 회좌
하였다. 상좌에 영의정 상신이 앉고 그 다음에 좌의정 이준경이 앉고 그 다음
우의정 심통원이 앉고 영중추부사 윤원형은 말좌에 앉았다. 세력 좋은 윤원형이
정부 좌차에 말좌하게 된 것은 이야말로 팔자 소관이니 유명짜한 장님 호계관이
윤원형의 사주를 보고 영의정이 되면 불길히다고 말하여 윤원형은 영의정을 고
사하고 영중추를 자원하였었다. 상좌의 영의정이 무거운 입을 열어서 “영부사
대감 말씀하시지요?” 말하고 우의정과 함께 말좌를 바라보니 “소생에게는 묻
지 마시구 어서 말씀하십시오.” 하고 윤원형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무엄한 말
을 입밖에 내던 배짱이 아직도 남아서 도리머리를 친 것이었다. 그제는 영의정
이 말하라는 눈치로 좌의정을 돌아보니 좌의정은 눈을 아래로 깔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우상 대감 먼저 말씀하시오.” “소생의 생각에는 개성유수와 황해관
찰이 각각 정병을 조발하여 가지고 비밀히 기일을 정해서 출기불의로 적굴을 음
습하여 열거에 적당을 섬멸할 수 있을 줄 압니다.” “인제 대감 말씀 좀 들읍
시다.” 영의정이 다시 좌의정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재촉하였다. “지금 우상 말
씀이 좋습니다. 그런데 개성과 황해도에서 출병할때 평안.강원 양도에서 지경을
지켜서 도적의 도타할 길을 막으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영의정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인 뒤 “영부사 대감, 지금 두 분 대감의 말씀이 어떻습니까?” 윤원
형의 의향을 물었다. 윤원형은 좌우의정의 의론을 귀담아 듣지 않고 사인방에서
나오는 풍류 소리와 기생 노래를 듣고 있다가 영의정 묻는 말에 무턱대고 “좋
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소생이 탑전에 들어가서 개성유수와 황해,
평안,강원삼도 관찰에게 각각 밀유를 내리시도록 아뢰고 나오리다.”
영의정만 승지,사관들과 함께 합문 안에 들어갔다가 얼마 뒤에 다시 정부로
물러나와서 좌우의정과 영부사를 보고 “위에서 윤종하십시다.” 하고 말하였다.
말좌의 영부사가 먼저 일어나가고 삼공들도 좌차대로 차차 일어나서 정부의 회
좌가 끝이 났다.
송두유수와 황해감사가 상감의 밀유를 받고 군병을 조발한다는 소식이 득달같
이 청석골로 들어왔다. 꺽정이가 여러 두령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각처에서 들
어온 소식을 이야기하는데, 출모발려를 맡아놓고 하다시피 하는 서림이가 “우
리는 차차 형편을 봐가며 자리를 옮기더래두 주체궂은 안식구들만은 먼저 이천
광복산으로 먼저 이천 광복산으로 보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고 말
하니 다른 두령은 말한 것도 없고 서림이의 말이라면 으레 뒤받는 곽오주까지
희한하게 찬동하였다. 꺽정이가 서림이의 말을 좇아서 안식구들을 이천 광복산
으로 보내는데 두령 중의 이봉학이,황천왕동위 두 사람을 같이 보내고, 또 양주
갖춘 두목과 졸개 수십 명을 따라 보내기로 작정하였다. 두목과 졸개들은 각각
저의 식구를 데리고 뿔뿔리 떠나게 하고 두령들의 안식구는 혹 말도 태우고 혹
소도 태우기로 하였는데, 탈것 외에 양식바리,세간바리도 적지 아니하여 마소가
있는것으로 부족되어서 근처 아는 사람의 것을 얻어들이기도 하고 또 난데 들에
들에 매인 것을 끌어오기도 하였다.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외의 다른 두령들도
여러 차례에 전줄러서 떠나는 내행을 배행들 하느라고 잠시는 청석골을 비다시
피 하였다.
청석골 꺽정이패가 강원도로 달아났단 소문이 있어 송도 포도군관들이 듣고
각처로 알아본즉, 말 탄 소 탄 여편네들과 빈몸 아이업은 사내들이 우봉길 토산
길로 십여 일 동안 매일같이 나간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 포도군관들이 이 사
연을 유수께 아뢰니 유는 큰 시름을 놓은 것같이 여기서 곧 황해감사와 약회하
고 만나 상의한 후에 청석골 적당이 강원도 땅으로 도망하였다고 각각 장계하고
군병 조발하던 일을 다같이 중지하였다. 청석골에 있는 꺽정이 이하 여러 두령
들은 이것을 알고 감류의 처사가 맹랑한 것을 웃었다. 서림이가 꺽정이에게 말
하기를 아직 얼마 동안은 여기 있는 표적을 내지 않는 것이 좋으니 이 근방에서
는 행인의 보따리 하나라도 강탈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자고 하여 꺽정이가 그 말
을 좇아서 부하를 단속한 까닭에 송도 부하와 강음경내에 일시 적환이 없어졌
다.
각 깁안 식구들이 죄다 없고 보니 청석골 안이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어린애
를 기하느 곽오주가 좋아하고 홀아비로 지내는 김산이가 심상할 뿐이지 그외의
다른 두령들은 모두 불편도 하고 허우룩도 하였다. 그나마 일이 많은 때 같으면
일에나 골몰들 할 것인데 하루 한 번씩 탑고개 큰길에 나가서 순을 돌던 것까지
페지하고 가만히 산속에들 들어앉았는 중이라 밤낮으로 술판만 벌이어서 독술이
번쩍번쩍 들어났다. 꺽정이가 심심한 것을 견디다못하여 청석골 일을 늙은 오가
와 서림에게 쓸어맡기고 단신으로 서울을 올라왔다. 겉으로는 남소문 안 한첨지
의 문병을 볼일로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서울 살림하는 여편네들을 와서 볼 생
각이 긴하였던 것이다. 꺽정이가 서울 오던 날 바로 남소문 안으로 들어와서 한
온이에게서 저녁을 먹고 남성밑골 박씨에게 가서 자고, 이튿날 아침 후에 동소
문 안 원씨와 김씨를 보러 왔다. 원씨집과 김씨집은 서로 격장이나 김씨집이 가
는 길의 첫머리라 꺽정이가 김씨ㅈㅂ으로 먼저 들어가려고 집 앞에 와서 보니
문이 닫아 걸려서 “문 열어라!” 하고 문짝을 흔들었다. “누구요?” 김씨의 목
소리가 나서 “나야.” 꺽정이가 대답하니 김씨가 쫓아와서 문을 열어주며 “아
니구 이게 웬일이세요? 오신단 선성도 없이.” 하고 싱글싱글 좋아하였다. “내
가 어제 선성 놓구 다니는 사람인가, 그런데 아무두 없어 혼자 있으니 웬일이
야?” “빨래 보냈세요.” 김씨가 마루에 돗자리를 내다 깔고 “웃옷을 아주 벗
고 앉으시지요.” 꺽정이가 벗어주는 의관을 받아서 방안에 갖다놓고 꺽정이 옆
에 와서 앉았다. “서울을 언제 오셨세요?” “어제 저녁때.” “남소문 안에서
주무셨나요?” 꺽정이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었따. “어제 오시는 길로 기별
이나 좀 해주시지요. 그랬으면 집안이나 깨끗하게 치워놨지요.” “이만해두 깨
끗해서 좋은데 무얼 그래?” “깨끗한 게 무어에요. 앞뒤 마당 쓰레질도 내가
하니 오죽해요?” “애꾸눈이는 가만히 놀리구 밥만 쳐먹이나?” “대체 어디
가 그 따위 천하 망한 놈을 골라서 비부쟁이로 들여주셨세요?” “왜 그래?”
“왜 그래가 무어에요? 내가 그 동안 그놈 때문에 속을 얼마나 썩였는지 아세
요?” 김씨가 말소리가 새되어졌다. “배부쟁이 잘못 들였다구 날 보면 시비하
려구 벼르구 있었군.” “시비도 할 만하거든요.” “그까지 시비는 나중에 가리
구 우리 그 동안 서루 그린 정회나 이야기하자구.” 꺽정이가 김씨의 얼굴을 들
여다보며 웃으니 김씨도 혼연하게 마주 웃었다. 꺽정이가 한나절 김씨와 같이
있다가 밤에 다시 오마고 말하고 의관을 차리고 원씨의 집으로 왔다. 오래간만
에 원씨가 만든 맛깔진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원씨와 둘이 방에 앉아서 이야기
를 할때, 동자치가 열어놓은 방문 앞에 와서 원씨를 들여다보며 “아씨, 심미실
이가 선다님 오신 줄을 알구 보이러 왔다는데 어떡해요?” 하고 물었다. 꺽정이
는 심미실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서 “누가 왔어?”하고 채쳐 물은즉원씨가
웃으면서 “담 너머집 하인이 보이러 왔나 봐요.” 하고 말하였다. “담 너머집
하인이라니?” “노가 말씀이오.” “그놈이 왔으면 그대루 들어올 게지 무슨
연토이람?” “노가가 사람이 하두 흉몰스럽다기에 내가 집안에 들이지 말라고
일러두었세요.” 꺽정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런데 심미실이란 무어야? 노방
이가 변성명을 했나?” “집의 할멈의 자살궂게 그런 성명 같은 별명을 지어놨
세요.” “심미실이란 성명에 무슨 뜻이 있나?” 원씨가 마르에 앉았는 할멈쟁
이를 내다보며 “할멈, 심미실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시네.” 별명 지은 사람더러
그 뜻을 말하라고 하니 “아씨가 잘 아시면서 왜 할멈을 끌어내시어, 할멈은 정
신이 사나워서 잊었습니다.” 할멈쟁이가 딴청을 썼다. “무슨 말하기 어려운 뜻
인가?” 꺽정이 묻는 말에 원씨는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럼 왜
서루 미루구 말을 안해?” “심은 심술망나니, 미는 미치광이, 실은 실본이라나
요?” 꺽정이가 심미실의 뜻을 듣고 한바탕 껄껄 웃은 뒤 동자치를 보고 “심미
실이를 들어오라구 그러게.” 웃음의 소리로 말을 일렀다. 동자치가 밖으로 나간
지 한참 만에 먼지 켜켜 앉은 갓을 쓰고 툭툭한 무명 흩두루마기를 입은 노밤이
가 가장 틀을 짓고 뚜벅뚜벅 걸어들어오더니 마당에도 서지않고 뜰어데 서지 않
고 바로 마우 위로 올라왔다. “어디루 올라가?” 동자치가 뒤따라 들어오며 나
무라고 “천등했나?” 할멈쟁이가 한옆으로 피해 앉으며 욕하는데 노밤이는 모
두 못들은 체하고 안방 문앞에 가까이 와서 내다보는 꺽정이에게 공손히 문안을
드리었다. “잘 있었느냐?” “녜, 덕택으로 잘 지냅니다.” “네 처에게 구박이
나 맞지 않느냐?” “제 첩년이 저라면 끔뻑 죽습니다. 구박이 다 무업
니다. 그러구 사내 쳇것이 기집년에게 구박을 맞구야 갓철대를 이마에 붙이구
다닐 수가 있습니까.” “저눔이 첩이라구 하다가 기집에게 빰을 안 맞을까.”
“저나 첩이나 기비은 마찬가집지요. 저두 선다님을 본받아서 적서 분간을 않습
니다.” “누굴 본받아, 이 미친 놈아?” “선다님께서 저를 데리구 실없이 하시
느라구 미친 놈 패호를 채워 주셔서 치마 두른 사람들까지 저를 아주 미친 놈으
로 돌리빈다. 창피해서 죽겠습니다. 제발덕분에 인제부터는 실없는 말씀이라두
미친 놈 하지 맙시오.”“저눔이 아주 미치지 않았나.” “선다님 야속두 하십니
다.” “고만 가거라.” “네.” 노밤이가 그제사 돌아서서 할멈쟁이를 보고 “
각골 아전은 원님 있는 동헌 마루에 못 올라가지만 장교들은 장막의를 차려서
올라가는 법이오. 나두 선다님의 막하니까 마루에 올라와서 문안을 드린 것이오.
아무리 여편네들이라두 그런 것쯤은 알아야 하우.” 말하고 뜰 위에 내려서다가
머리를 돌아켜서 원씨를 보고 “제가 업어 모실 때버덤 퍽 수척하셨구만요.”
말하는 것을 “이눔!” 꺽정이가 호령하니 “아니올시다.” 하고 목을 자라같이
움츠리고 허둥지둥밖으로 나갔다. 꺽정이가 원씨의 집에 눌러 저녁 먹고 초벌잠
한숨 늘어지게 자고 밤중이 지난 뒤에 다시 김씨집에를 와서 보니, 김씨는 그때
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베개 위에서 김씨가 낮에 미진한 이야기를 하
는데 이야기 중에 그 동안 노밤이에게 속상한 하소연이 많았다. 먹는 것은 다른
사람 배벌 먹으며 일은 죽어라고 아니하고 혹간 박부득이 일을 시키려면 빌어
뫼시듯 해야 어떻게 꾹적거리나 그나마 제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쇠귀신보다 더
질겨서 비부쟁이라고 곧 상전인데 이런 것은 오히려 소분지요, 병신 고운데 없
다고 그중에 흉측스러운 마음이 있어서 선다님이 보구 싶지않으냐 혼자 자기 고
적치 않으냐 이 따위 말을 가끔 하고 어느 때는 임선달이 누군 줄 아느냐, 해서
대적 임꺽정이가 지금까지는 운수가 좋아서 잡히지 않았지만 잡히는 날이면 따
라서 경칠 테니 진작 알아차리라고 엄청난 소리를 다 하더라고 김씨가 가지가지
이야기한 뒤 끝으로 “내가 들인 사람이면 벌써 들거저 내쫓을 것인데 들여 주
신 사람을 내 자의로 내쫓기가 어려워서 단근질 참듯 참았세요. 인제 오셨으니
얼른 어떻게 조처해 주세요.” 하고 남편을 졸랐다. 꺽정이가 노밤이를 아무짝에
쓸데없는 기와깨미로 알면서도 미친 체하는 것을 입지 않게 보고 거짓말하는 것
을 웃음거리로 들어서 심심할 때 심심풀이 소일감이 되는 까닭에 한온이가 불길
한 화상이라고 보내라고 말한 적도 있고, 또 황천왕동이가 이간질 잘할 위인이
라고 상관 말라고 말한 일도 있었건만, 꺽정이는 보낼 마음도 나지 아니하였고
상관 말 생각도 들지 아니하였었다. 김씨의 하소연하는 사람이 노밤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면 내쫓기는 고사하고 곧 죽일 작정도 하였을 것인데, 꺽정이 자
기가 자기 마음을 괴상하게 여기도록 화도 별로 나지 아니하여 “그눔이 원래
미친 눔이야, 입은 사구일생이구.”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따. “미친 놈을 왜 집
에다 두고 속을 썩여요?” “그것들 남진기집 사이는 어떤고? 말썽이없나?” “
처음에는 기집이 서방을 싫어하는 눈치가 보이더니 지금은 연눔이 똑같이 서로
궁둥이를 따라다니지요. 그래서 오늘도 빨래 가는 데 같이 가지 않았세요.” “
내보내려면 기집까지 속량해 주어서 내보내고 담 너머집처럼 늙은 할미와 기집
아이년을 얻어두고 지내지.” “아무렇게든지 좋두록 해주세요.” 꺽정이가 다
샐 녘에 비로소 눈을 붙여서 잠을 잔지만지하게 자고 깨었을 때, 밖에서 김씨와
노밤이 사이에 가고 오는 말이 들리었다. “선다님도 오시고 볼 께러군, 빗자루
를 들고 돌아다니니.” “나는 일평생 무슨 일이든지 하구 싶으면 하구 말구 싶
으면 말지 하구 싶지 않은 일을 남의 눈가림으루 해본 적이 없소. 지금두 선다
님의 눈가림이라면 선다님이 일어나서 보는 데 해야 말이지.” “선다님 주무시
니 너무 떠들지 마라.” “어젯밤에는 흐믓하게 잘 주무셨소?” “흐뭇하게 잘
자는 건 다 무어야?” “오래간만에 선다님을 만났으니 말이지.” “저런 망한
놈이 있나.” “식전 댓바람에 무슨 욕이오? 선다님 자세요?” “떠들지 말라니
까 더 떠드네. 선다님이 깨시기만 해봐.” “자기가 떠들며 누구더러 떠든대? 그
러구 선다님이면 제일강산인가.” 꺽정이가 기침을 한번 하였더니 오고가던 말
이 뚝 그치고 바로 김씨가 방으로 들어오는데 분이 나서 숨까지 가쁘게 쉬었다.
꺽정이가 일어나서 대님 허리띠를 주워 매는 동안에 김씨는 홑이불을 개어 얹고
방문을 열어놓았다. 꺽정이가 탈망에 탕건만 쓰고 방문턱에서 밖을 내다보며 “
밤이 어디 있느냐?” 하고 소리치니 노밤이의 처가 부엌에서
나와서 문안을 하였다. “네 서방 어디 갔느냐?” “부엌에 있습니다.” “불러
라.” 노밤이가 그제야 꺽정이 앞에 나와서 “침수 안녕히 하셨습니까.?” 하고
허리를 굽실거리었다. 꺽정이가 밤잔 인사하는 노밤이를 잡아먹을 것같이 노려
보면서 “이눔, 네 모가지가 대체 몇이냐?” 하고 호령을 내놓으니 노밤이는 곧
누가 잡아엎치는 것같이 맨땅에 꿇어엎드렸다. “네가 네 죄를 아느냐?” “제
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저 알기엔 죽을 죄는 고사하구 꾸중들을 죄두 없습니다.
” “죄가 없어, 이눔아! 네 죄가 몇 가진지 모른다. 다른 건 고만두구 우선 네
가 아는 임선달이 어떤 사람이냐? 내 앞에서 한번 말해 봐라.” 노밤이는 꺽정
이를 치어다보며 히히 웃고 “선다님 같으신 장한 양반두 베개 너머 송사를 들
으십니까? 베개 너머 송사가 옥합을 뚫는단 말이 헛말이 아닙니다. 선다님께서
저를 믿으시구 제가 선다님을 바라구 살지 않습니까? 종작없는 말은 아예 곧이
듣지 맙시오.” 능청맞게 지껄였다. “뉘 말이 종작없단 말이야, 이눔아.” “세
상 사람 말이 죄다 종작이 없습지요. 제 말두 종작이 있다 없다 합니다.” “네
죄는 죽여야 싸지만 내 손에 피묻히기가 더러워서 고만두니 오늘부터 내 눈앞에
보이지 마라.” “선다님께서 오늘 시골 행차하십니까? 그러면 또 한동안 못 보
입지요.” “네가 참말 죽구 싶으냐?” “아니올시다. 꿈에두 죽구 싶지 않습니
다.” “누가 잘한다까 봐서 말대답이냐! 이눔, 어서 말대답해라!” 꺽정이가 주
먹을 부르쥐고 마루로 나오니 노밤이는 질겁하면서도 입은 여전히 놀려서 “재
하자 유구무언입지요. 제가 언감생심 선다님께 말대답을 하겠습니까. 그저 요놈
의 쥐둥이가.”하고 제 주먹으로 제 주둥이를 쥐어질러서 입속 어디가 터졌든지
피 섰인 침을 퉤퉤 뱉었다. 꺽정이가 속으로 웃으면서도 겉으로는 율기한 채 “
너는 배냇병신 미친 눔이라 족가할 게 없어서 용서하지만 여기 둘 수는 없으니
기집을 데리구 나가거라.” 하고 호령기 있는 말로 분부하였다. “선다님 안으서
댁이 즉 선다님댁이니까 선다님댁에서 비부쟁이 노긋하는 건 조금두 챙피할 것
이 없지요만, 선다님께서 특별히 생각하셔서 기집을 속량해 주구 나가 살라시는
데 거역할 길이 있습니까? 나가 살라시면 집칸두 장만해 주시구 시량두 더 주시
겠습지요.” “사지 성한 눔이 벌어먹지 누구더러 시량을 대달라느냐?” “그러
면 떨어 내쫏으시는 것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너 같은 눔은 떨어 내쫏는 것
두 과만하다.” “제가 긴 말씀 여쭙지 않더래두 경가파산하구 선다님 따라온
놈을 어련히 잘 생각해 주기겠습니까. 저는 그저 선다님 처분만 바라구 있겠습
니다.” “되지 않은 소리 듣기 싫다. 고만 저리 가거라.” “녜.”하고 노밤이는
일어나서 행랑방으로 나갔다.
꺽정이는 한온이에게 부탁하여 노밤이는 삼간 초가를 사주어서 계집 데리고 나
가 살게 하고, 김씨 집에는 늙은 할미와 계집아이을 얻어주게 하였다. 꺽정이가
서울 온 뒤 식사는 대개 원씨에게서 하고 잠은 많이 김씨에게서 자는데, 간간이
친한 기생 장찻골다리 소홍이를 찾아 다녔다. 어느 날 남소문 안에 와서 종일
있다가 저녁 주비 대어서 동소문 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오개 큰길을 건너올
때, 기생 하나가 하가마 쓰고 몽도리 입고 말을 타고 동대문 쪽으로 올라오는데
다시 보니 장찾골다리 소홍이라 “어디 갔다오나?”하고 알은 체하였더니 소홍
이가 반색하며 말을 멈추었다. “오늘 밤에 놀러갈까? 혹 상치되는 일 없겠나?
” “오세요.” “그럼 석후에 감세.” “기다립니다.”
소홍이는 말을 몰아가면서 뒤를 돌아보고 손길을 쳐서 오라고 신신당부하는 뜻
을 보이었다. 꺽정이가 원씨 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고 도로 나오는 길에 김씨
집에 들러서 밤에 기다리지 말라고 이르고 장찾골 소홍이 집을 찾았왔다. 소홍
이는 십 년 기생 노릇에 이에 신물날 때가 많아서 평생 의탁할 만한 사람을 은
근히 물색하던 중에 임선달을 만났는데, 근지 분명치 않은 것이 험이라면 험일
까 다른 것은 몰라도 모아놓은 사천으로 기둥서방에게 몸값을 치러주고 임선달
을 따라가서 그 집사람으로 골을 누이려고 마음먹고 있는까닭에 꺽정이의 얼굴
을 보기만 하면 언제든지 입이 함박만큼 벌려졌다. 문간에서 꺽정이의 기침 소
리가 나자마자, 소홍이가 방에서 쫓아나와서 진정으로 나오는 웃음으로 맞아들
이고 다른 오입쟁이를 받지 아니하려고 일각문을 초저녁부터 닫아 걸게 하였다.
방에는 불을 켜지 아니하고 마루 끝에 사방등을 달아서 불빛이 방안을 은은하
게 비추었다. 꺽정이는 방에 들어서며 바로 의관을 벗어서 소홍이를 주고 아랫
간 방문 앞에 퍼더버리고 앉고 소홍이는 의관을 받아서 옷걸이에 갖다 걸고 꺽
정이 옆에 와서 얌전하게 앉았다. “오늘 어디 놀이 갔었나?” “연못골 어선전
댁에 사랑놀음 갔엇세요.” “어선전이라 자네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는 지
금 좋아하는 사람이 없세요.” “정말인가?” “내 속을 속임없이 말하면 지금
잊자 해도 못 잊는 양반이 꼭 한분 있지요.” “그게 누군가?”
“그건 말씀 안할 테요.” “누군지 좀 알세그려.” “알아서 무어하시게?” “
내가 그 사람보구 건강짜라두 좀 해야겠네.” “진강짜는 안하시고 건강짜만 하
신다면 진짜 그 양반은 아직 숨겨두고 그 양반의 가짜 한 분 대 드리지요. 자
저기 기십니다.” 소홍이가 뒷벽에 있는 꺽정이의 그림자를 가리키니 “사람을
놀리지 말게.”꺽정이는 그림자 가리키는 소홍이의 손을 잡아서 품안으로 끌어
왔다. “진정인가?”
소홍이는 대답이 없었다. “자네 같은 일등 명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뿐일
리가 있나.” “그게 사내 양반 말씀입니다. 사내의 정이란 건 들물과 같아서 여
러 갈래로 흐르지만 여편네 정은 폭포같이 외곬로 쏘칩니다.” “사내두 사내
나름이구 여편네두 여편네 나름이겠지.” “그야 그렇지요. 그렇지만 여편네는
대개 정으루 살구 정으루 죽습니다.” “자네가 사내가 아니라 사내의 웅심 깊
은 정을 몰라서 사내 정을 타박하네.” “정이 불이면 불길이 솟아야 하고 정이
물이면 물결이 일어야하지 그저 웅심 깊어 무슨 맛입니까?” “정 논란 고만하
고 다른 이야기 하세.” “무슨 좋은 이야기가 있거든 하십시오.” “자네 오늘
놀음 갔던 이야기나 좀 하게.” “술치고 소리하고 웃고 지껄이고 그러고 하루
해 보냈지요.” “어씨 집에 오늘 무슨 잔치든가?” “아니오. 어선전이 친구 양
반 대여섯 분 청해 가지고 술들 자셨세요. 그 친구 양반 중에 새로 외임해 가는
분이 있어서 주장 그 양반 대접인갑디다.” “선전의 친구면 어디 변지 수령이
겠군.” “황해도봉산이라지요? 예전 세월에는 호반들이 못 가던 자리라고 말들
합디다.” “응 그래? 새루 봉산군수 된 육지숙일세그려.” “윤씨랍디다. 선다
님고 그 윤씨를 아십니까?” “나는 면분은 없구 말만 들었네. 언제쯤 도임한다
고 말하든가?” “그 동안 숙배˙서경 다 마치고 골에서 신연하인이 오기만 기
다리는데 일간 오면 오는 대로 곧 떠난다고 합디다. 다른 양반들이 모랫재로 작
별을 나간다니까 나더러도 부디 같이 나오라고 말하든구먼요.” “봉산군수 작
별하러 나갈 텐가?” “그건 무어하러 나가요? 선다님이 어디 외임을 해가신다
면 작별은 고사하고 배행이라도 가지만.” “말만 들어두 고마웨.” “참말 선
다님. 저 황해도 대적 임꺽정이 이야기를 더러 들으셨세요?”
꺽정이가 속으로 깜짝 놀라웠으나, 겉으로는 시침을 떼고 한참만에 “그건 왜
묻나?” 하고 되물었다. “꺽정이 오늘 귀가 가려웠을걸요? 어선전 사랑에서
종일 꺽정이 애기로 판을 짰었세요.”
꺽정이가 낮에 귀는 가렵지 않았지만 지금 낯은 간지러웠다. 소홍이의 듣고 온
이야기를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바이 없지 아니하나, 필시 좋은 소리들 했을 리
가 만무하여 묻지 않고 잠지코 있었다. 소홍이가 꺽정이의 눈치를 보면서 “요
새 한서방 친환은 좀 어떤가요?” 다른 말을 꺼내는데 꺽정이는 소홍이 묻는 대
로 “그저 한모양이라네.” 한마디 대답하고 바로 “윤봉산이 사람이 어떻든가?
” 하고 물어서 먼저 말끝을 다시 자아내었다. “사람이 배때 벗고 건방지고 흰
치리 잘하고 그럽디다.” “자네가 사람을 몹시 깍네. 조정에서 특별히 봉산군수
를 기켜 보낼 제는 사람이 출중할 테지, 그럴 리가 있나?” “봉산군수를 시켜
주면 꺽정이를 잡아바친다고 장담하고 얻어 했는지도 모르지요." "장담한다구
군수를 시켜주면 군수 못할 사람이 없겠네.” “그 양반 장담이 하도 굉장하니
까 그랬을는지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대체 장담을 무어라고 하든가?” “꺽
정이를 꼭 잡는단 장담이지요. 꺽정이 같은 대적은 일개 군수의 힘으로 잡기가
어렵다고 다른 양반들이 말하니까 그 양반이 팔을 뽐내면서 내가 백정놈의 자식
을 잡아서 조정에 바치고 그 공로로 옥관자를 붙이게 될 테니 두고 보라고 흰목
을 씁디다. 꺽정이가 백정의 자식이라나요? 그래서 그 양반은 꺽정이 말을 꼭
백정의 자식이라 말합디다.”
꺽정이는 백정의 자식으로 아이 적부터 창피를 보고 설움을 받은 것이 뼈에 맺
힌 까닭에 천참만륙할 도둑놈이란 말은 오히려 웃고 들을 수는 있어도, 백정놈
의 자식이란 말은 듣기만 하면 언제든지 온몸의 피가 일시에 끓어올랐었다. 꺽
정이가 소홍이의 수상히 여길것도 생각지 못하고 눈을 딱 부릅뜨고 입을 꽉다물
고 씨근씨근 가쁜 숨을 쉬다가 한참 만에 후유 하고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지
그시 감았다. ‘윤지숙이란 놈을 그대로 가만둘 수 없다. 어떻게 할까. 그놈의
집을 알아가지고 찾아가서 주먹으로 때려죽일까, 도임하러 가는것을 청석골로
잡아다가 난장질로 쳐죽일까.’ “선다님!” 소홍이가 부르는 소리에 꺽정이가
눈을 떠서 소홍이를 물끄러미 보았다. “신기가 좋지 않으세요?” “술 생각이
나니 술 좀 받아오라게.” “안주가 없지 술은 있세요.” “미리 받아다 놨나?
그럼 가져오라게.” 소홍이가 조석 해주는 여편네를 불러서 술상을 차려 들이라
고 일렀다. 안주도 미리 다 장만해 둔 것이라 얼마 아니 있다가 술상이 들어왔
다. 소홍아가 술을 잔에 치려고 하는데 꺽정이가 홀짝홀짝 먹기 갑갑하다고 큰
양푼이에 가뜩 부어 달라고 하여 양푼을 들고 들이켰다. “안주나 좀 집으시고
쉬엄쉬엄 잡수세요.” 꺽정이가 바닥이 드러난 양푼을 놓고 마른 안주 한두 쪽
을 입에 넣으며 “술 또 있나? 있거든 마저 주게.” 술을 토새하여 잠시 동안에
두 양푼 술을 먹고 바로 술상을 물리었다. “술도 맛없이 잡수시오.” “홧술은
취하는 것이 맛이야.” “참말 왜 화가 나셨어요? 내가 무슨 말씀을 잘못했어
요?”“아닌게아니라 자네 하는 말이 비위에 거슬렸어.” “일개 천기로 양반님
네를 헐뜯어 말하는 것이 괘씸해서 화가 나셨나요?” 꺽정이가 대답이 없었다.
소홍이는 빼또라져서 말을 않고 꺽정이는 속이 있어서 말을 아니하여 한동한 두
사람은 서로 소 닭 보듯 하였다. 마루에 있던 여편네가 뜰아랫방으로 내려간 뒤
꺽정이가 소홍이 앞으로 바짝 가까이 다가앉으면서 “소홍이?” 정중하게 먼저
이름을 불러놓고 그 다음에 “자네 임꺽정이가 누군지 아나?” 건성으로 물어보
고 끝으로 “여기 있으니 다시한번 보게.” 나직이 말하고 자기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
소홍이는 너무 놀라워서 도리어 놀라운지 만지 한 모양이었다. 마음이 섬뜩하
고 실쭉하든지 슬며시 꺽정이 옆에서 따로 떨어져 나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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