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화적편 10

3학년2반 | 2022.01.11 08:02:46 댓글: 0 조회: 403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1464
이튿날 판의금이 금부에 들어와서 노밤이의 일을 자세 다 듣고 어떻게 조처할
까 지의금, 동의금 들과 상의들 하였다. 노밤이가 꺽정이의 부하로 꺽정이를 배
반하고 조정에 귀순하려고 하는 것은 포청에서 여러 가지 밀고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고, 노밤이가 꺽정이의 모를 잡아온다는 것은 그다지 미덥지 못
하나 중로에서 도타할 것 외에 다른 염려는 없는 일이라 허허실실로 한번 보내
보자고 의론이 일차하여 판의금이 이 뜻으로 위에 품한 뒤 나장이 둘과 나졸 다
섯을 노밤이와 안동하여 꺽정이의 모를 잡으러 보내는데, 노밤이는 몸에 오라를
지우고 그러고도 또 일동일정을 임의로 하지 못하게 하여 도타를 방비하라고 나
장이와 나졸들을 각별히 신칙하였다. 노밤이가 전옥을 벗어나고 금부를 벗어나
서 마음은 날 것 같으나, 두 팔이 오라에 묶여 팔짓을 할 수 없어서 걸음이 잘
걸리지 아니하였다. 잘 걸리지 않는 걸음을 집짓 더 굼뜨게 떼어놓아서 나졸들
이 조급증이 나도록 걸음이 느리었다. “이놈아, 걸음 좀 빨리 걸어라.” “네놈
하구 같이 가자면 여드레 팔십 리 가기가 바쁘겠다.” “굼범이 천장하느냐, 이
년석아!” 나졸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때, 노밤이는 걸음을 아주 멈추고 서
서 “여보, 걸음을 빨리 걷자면 활갯짓을 해야 하지 않소? 두 활개를 잔뜩 묶
어놓고 어떻게 빨리 걸으란 말이오? 활갯짓 좀 하게 두 팔을 내놔 주시우.” 하
고 말하였다. 나졸들이 노밤이를 앞에서 잡아끌고 뒤에서 떠다 밀고 하다가 성
이 가시든지 나중에 나장들에게 말하고 노밤이의 두팔을 놀리게 해주어서 그 뒤
부터는 노밤이가 팔짓을 하면 걸음을 거뜬거뜬 걸었다. 첫날은 서울서 늦게 떠
나서 고양 와서 숙소 하는데 밤에 잘 때 오라를 풀어주지 않고 도리어 내놓은
팔까지 마저 넣어서 묶으려고 하여 노밤이가 나징이들을 보고 밤잠이나 편히 자
게 해달라고 비두발괄하였다. 나장이들이 처음에는 떼떼하더니 나중에 어찌 생
각하고 큰 혜택이나 베푸는 것처럼 허락하여 노밤이는 오라를 벗고 나졸들 틈에
끼여 자게 되었다. 노밤이가 우스개할 계제만 있으면 어릿광대짓도 하고 시중들
일만 있으면 하인 노릇도 하여 나장이와 나졸들의 비위를 맞추었다. 그 다음날
은 파주 와서 중화하고 장단 와서 숙소하는데 숙소에 들며 곧 노밤이의 오라를
벗겨주었으나, 혼자 밖에는 나가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뒷간에를 가는 데도 나
졸 한둘이 따라가서 지키었다. 끝날은 송도 와서 중화하고 청석골로 나오는데,
골 어귀 동네 앞에 왔을 때 앞서 오던 나장이 하나가 뒤를 돌아보며 여기서 잠
깐 쉬어가자고 말한 뒤 길가에 나섰는 동네 늙은이를 보고 여러 가지 말을 물어
봤다. “이 산속에 대적의 적굴이 있다지요?” “네,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
들 어떻게 사우?” “있는 사람이 도적이 겁이 나지 우리 같은 없는 사람이야
무슨 상관 있소.” “도적의 괴수 이름이 꺽정이라지요?” “네, 그렇답디다.”
“꺽정이가 요새 적굴에 있답디까?” “그건 우리 몰라요.” “꺽정이의 어미는
어디 가지 않구 있겠지요?” “꺽정이가 누님은 있답디다만 어머니 있단 말은
듣지 못했소.” 노밤이가 쫓아와서 “꺽정이의 양어미가 따루 사는 걸 모르우?
” 하고 곧 시비나 하려는 것같이 덤비어서 “그런 자세한 속내야 우리가 알 수
있소.” 하고 늙은이가 긴말을 아니하니 “속내를 자세히 모르거든 국으루 가만
히나 있지 않구.” 하고 노방이는 혀를 낄낄 찼다. “네야말루 국으루 가만 있거
라.” 나장이 노밤이를 꾸짖은 뒤 다시 늙은이더러 이 말 저 말 더 물어보았으
나 늙은이는 모두 모르쇠로 방패막이하였다.
탑고개를 넘어온 뒤 얼마 아니 오다가 산길을 잡아들었다. 노밤이가 나졸 서
넛과 함께 앞장을 서서 길을 인도하는데, 노밤이도 청석골 산속길이 초행이나
산속에서 드나드는 길목에는 말뚝이 박혀 있단 말을 졸개들에게 들어서 잘 아는
까닭에 말뚝만 눈여겨 보며 익숙히 다녀본 길같이 서슴지 않고 들어왔다.
이때 청석골에서는 대장과 대장의 버금가는 유력한 두령들이 밖에 나가고 없
어서 소굴이 허소하므로, 만일을 염려하여 사산 파수꾼외에 따로 순산군 사오십
명을 뽑아두고 순산을 멀리 지키는 중이라 서산 밖 셋째 등성이 위에 수상한 인
물들이 올라서는 것을 순산군이 멀리서 바라보고 쏜살같이 들어와서 두령들에게
보하였다. 도중 일을 맡아보는 배돌석이와 사산 파수를 총찰하는 길막봉이가 급
히 졸개 십여 명에게 무기를 나눠주어서 데리고 서산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곽
오주가 쇠도리깨를 끌고 쫓아와서 배돌석이를 보고 “내가 막봉이하구 같이 나
가리다. 오래간만에 도리깨질 좀 해봅시다.” 하고 말하여 배돌석이는 물러났다.
서림이가 이것을 보고 배돌석이 옆에 가서 “죽이면 어디서 온 무엇인지를 알
길이 없으니 죽이지 말구 사로잡아 오라시우.” 하고 소곤거려서 배돌석이가 군
령으로 죽이지 말고 사로잡으라고 이르니 길막동이는 네 대답하고 곽오주는 입
을 비쭉하였다. 곽오주와 길막봉이가 졸개들을 거느리고 서산을 넘을 때 해는
먼저 앞서 넘어갔다. 산골이라 해가 넘어가며 바로 어둡기 시작하여 맞은편 등
강이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수효는 칠팔 명밖에 더 안 되는 줄 알았으나, 복색은
군복인지 평복인지 분별할 수 없었다. 길막봉이가 곽오주더러 오는 놈들이 바짝
가까이 오도록 숨어 있다가 별안간 내닫자고 말하여 바위 뒤와 덤불 속에 은신
들까지 하였으나 포교 복색 같은 것이 눈에 보이게 되자마자, 곽오주가 쇠도리
깨를 높이 치켜들고 뛰어나가며 “너놈들이 웬놈들이냐!” 하고 소리를 벼락같
이 질렀다. 더 가까이 오도록 기다려도 좋을 것을 곽오주가 지레 뛰어나가니 길
막봉이도 마저 큰소리를 지르며 쫓아나가고 졸개들도 아우성을 치며 쫓아나갔
다. 여러 놈들은 다 도망가고 오라진 놈 하나가 남아 있다가 쇠도리깨를 들고
달려드는 곽오주를 보고 “곽두령 아니시우?” 하고 알은 체하였다. “네가 누
구냐? 나는 너를 모르겠다.” “내가 노밤이오.” “노밤이? 성명은 귀에 익다.
” “서울 있는 노밤이를 모르시겠소?” “옳지, 네가 영평 도덕여울 있던 애꾸
냐? 어디 눈 좀 보자. 참말 보름보기구나. 네가 노밤이면 서울 있지 여기를 왜
왔느냐? 그러구 같이 온 놈들은 웬놈들인데 도망질을 치느냐! ” 길막봉이가 와
서 곽오주 옆에 섰다가 “뉘게 잡혀왔느냐, 어째 묶였느냐?” 하고 덧붙였다. “
서울서 야단이 났소. 대장께서 장통방 소흥이 집에 가서 노시다가 포교들에게
하마트면 붙잡힐 걸 요행으루 빠져 도망하셨소. 서울 오실때 데리구 오신 졸개
두 놈하구 나하구 셋이 먼저 자히구 서울 있던 부인네 셋이 나중 잡혀서 다같이
전옥에 가서 같히었는데,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죽는 것두 까닭이 있지 그렇
게 얼뜨게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장 어머님이 청석골 산속에서 혼자 따
루 사시니 잡아다 바치마구 멀쩡한 거짓말루 속이구 이꼴을 하구 여기를 왔소.
같이 온 놈들이 금부 나장이 나졸 들이오.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책 한 권두
만들 만하니까 창졸간에 다 말할 수 없소." 곽오주가 옆에 와 둘러서서 노밤니의
이야기를 듣는 졸개들더러 "빨리 가서 홰들을 가지구 오너라." 하고 호령하여 졸
개들이 홰를 가지고 온 뒤에 홰들을 잡히고 도망한 나장이 나졸 들을 두루 찾아
보았으나, 원체 너무 오래 지체되어서 하나도 잡지 못하고 다 놓치었다.
장통방 사건에 앉아 벼락맞은 사람이 박씨와 원씨와 김씨와 한온인데, 한온이
는 잡히지는 아니하였으나 삼대 내려오는 지정이 하룻밤 사이에 흔들이었다. 포
교들이 처음 한온이를 잡으러 가가던 날 밤에 한온이가 작은첩의 집에 가서 자
는 것을 큰집 건넌방 사랑에서 자다가 붙들려 나온 서사가 능통하게 주인 상주
는 구산하러 나갔다고 거짓말하고 포교들이 처음 한온이를 잡으로 나가던 날 밤
에 한온이가 작은첩의 집에 가서 자는 것을 큰집 건넌방 사랑에서 자다가 붙들
려 나온 서사가 능통하게 주인 상주는 구산하러 나갔다고 거짓말하고 포교들의
신발차를 후히 주어 보냈었다. 이튿날 저녁때 포교 한패가 다시 나와서 한온이
의 형과 안해를 잡아가고 또 그 뒤에포교 두엇이 따로 나와서 서사 쓰는 사랑을
차지하고 들어앉았다. 한온이가 아비 궤연이도 오지 못하고 첩의 집에도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숨어다니며 뒤로 포청일을 알아보니 노밤니와 박씨 원씨 김씨
세 여편네가 붙지 않아도 좋은 말 을 다 불어서 꺽정이의 와주로 몰리었는데,
이름이 위에까지 입문되어서 자하로 빼놓지도 못하게 되고 일이 인왕산만큼 벌
어져서 포청에서 우물쭈물하지도 못하게 된 것이었다. 한온이는 강도 와주란 죄
명을 벗으려고 재물을 아끼지 않고 뇌물을 쓰며 길 닿는대로 여러 군데 청질을
하였으나 자기의 죄명은 벗지 못하고 겨우 형과 안해만 포청에서 놓여나왔다.
꺽정이의 와주는 비록 초범이라도 다른 강도 와준의 삼범과 같이 처교되기 쉬운
데, 유력한 사람들이 뒤에서 힘을 써서 가장 경하게 처벌되면 강와라고 자자를
받고 귀양가게 될 것이 거의 의심이 없었다. 서사가 한온이 숨어 있는 처소에
와서 여러 가지 일을 상의하는 중에 “전가사면이면 어렵지만 그런 염려가 없거
든 귀양을 한번 갔다오실 작정이구 자현해 보시오.”하고 권하니 한온이는 골을
내며 “그래 나더러 이마에 자자를 받구 귀양 가란 말인가? 나중에 귀양이 풀
린다니 그 이마를 가지구 어디를 나서겠나. 차라리 죽는 신세가 낫지.” 하고 푸
푸하였다. “그럼 어떻게 하실라우?” “아무리 생각해 봐두 청석골루 가는 게
제일 상책이야. 온 집안식구 다 끌루 청석골루 갈라구 작정했네. 가변운 세간이
라든지 귀한 물건은 슬금슬금 손모아서 먼저 실려보내구 그 다음에 식구들을 죄
다 쓸어보내구 구러구 내가 갈 테니 자네는 뒤에 쳐저서 방매할 것 방매하구 추
심할 것 추심해 가지구 나중 오게. 액내사람 중에 따라오구 싶어하는 사람은 다
데리구 와두 좋겠지.” “선대 적부터 내려오는 지정을 일조에 내버리기 아깝지
않소?” “아까운들 어떡하나?” “청석골을 가실라면 혼자나 가보시우.”"나 없
으면 집안일이구 도중일이구 다 엉망될 것은 정한 일인데." "이번 바람이 얼마나
오래 갈라구. 바람 자거든 도루 오시지." "도루 와두 좋거든 그때 와서 다시 수
습하면 고만 아닌가." "서울 살림을 아주 파산하면 다시 와서 차리기가 어디 쉽
소." "이번 일이 귀정날 때 적몰은 당하지 못할 텐데 아까운 천량을 왜 속공하게
둔단 말인가?" "이사두 큰일이지만 빈소를 어떻게 하실라우?" "포교들 몰래 관
을 뫼셔낼 수 있을까?" "관은 빈소방 뒷문으로 가만히 뫼셔낼 수 있겠지만 양례
절차야 어떻게 몰래 차릴 수 있소." "이런 때 절차가 왜 있겠나? 우리 어머니 산
소에 합폄만 해드려두 무던하지." "그럼 곧 장택을 내서 양례를 잡숫두록 합시
다." "장택을 내다가 만일 합당한 날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 볼복일이 좋겠네." "
더구나 그럴 바엔 오늘 밤에라두 관을 뫼셔내다가 다른 데 뫼셔놓구 속히 양례
잡술 준비를 차립시다." "그렇게 하세." 한온이와 서사가 이런 의논을 하던 다음
날, 한첨지의 상행은 마주잡이로 수구문 밖을 나갔다. 한온이가 초조하게나마 그
아비의 장사를 지내고 난 뒤 큰집 사랑 세간만 아직 가만두고 대소가 여러 집
세간의 알짬을 뽑아내서 짐들을 만들려는데, 사랑에 와서 있는 한온이가 마음놓
고 큰집 안에까지 왔었다. 세간은 워낙 많고 짐은 몰래 싸자니 자연 날짜가 걸
렸다. 짐 싸기 시작한 지 사흘 되던날, 한온이가 저녁때까지 짐 싸는 것을 보살
피다가 작온첩의 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숨어 있는 처소로 자러 가려고 나오는데
문간을 나서자마자 어떤 사람이 손목을 꽉 붙들었다. 한온이는 붙드는 사람의
복색이 포교 아닌 것을 뻔히 눈으로 보면서도 포교인 줄만 여겨 소스라쳐 놀랐
다가 "왜 이렇게 놀라나?" 웃는 말소리를 듣고 다시 보니 황천왕동이었다. "자넨
가?" "어디 가나?" "나하구 같이 가세." "어디를?" "어디든지." 한온이가 황천왕
동이를 끌고 잘 처소로 같이 왔다. "자네 저녁을 어떻게 했나?" "안 먹었네." "여
기 나 먹을 밥이 있을 테니 자네 먹게." "자네는 어떡허구?" "나는 집에서 먹구
왔네." 한온이가 방 밖에 와 섰는 주인더러 저녁상을 내오
라고 일렀다. "이 집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 "내 집안 사람이야." "여기서 아무
이야기나 다 해두 괜찮겠나?" "내 집 사랑이나 별루 다름없으니 그렇게 알구 이
야기하게." 저녁상이 나와서 황천왕동이가 밥을 먹으며 장통방에서 도망하던 날
밤에 풍파 겪은 것을 대강 이야기하고 끝으로 그 뒤에 서울을 두번째 온다고 말
하였다. "먼젓번 와서는 어째 나를 안 찬아보구 갔나?" "요전 왔을 때 서사 방에
있는 젊은 사람을 자네 집 골목 밖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이 자네 소조당한 것을
대강 이야기하구 자네는 어디루 피신했는지 집안 사람두 모른다고 하데. 이야기
나 더 좀 자세히 듣구 가려구 서사를 만나볼라구 했더니 서사는 포교들 술대접
하는 중이라지. 그래서 남성밑골 동소문 안 빈집들만 한 바퀴 돌아보구 그대로
내려갔네." "저런 놈 보게. 나중에라두 내게 말을 해야지. 나는 통히 몰랐네." "정
신 없는 중에 잊은 게지." 황천왕둥이가 밥을 다 먹고 상을 물린 뒤에 "대체 이
번 일이 어디서 꿰져 났는지 자네는 알았나?"하고 물었다. "노밤이하구 졸개 두
놈하구 술집에 가서 술들을 쳐먹구 술값을 못 내서 붙들렸는데 술집 여편네의
친정 조카가 좌포청 포교더라네 . 그 포교가 수상한 인물들루 간파하구 세놈을
모짝 포청으로 잡아가지구 가서 내려조겼는가 부데.김씨는 졸개 한놈의 입에서
튀어나오구 원씨는 김씨가 끌구 들어가구 밖시는 노밤이가 불어넣은 모양인데,
나는 노밤이놈이 와주라구 불 뿐 아니라 여편네 셋이 살림을 차려줬다. 시량을
대어줬다. 갖은 소리를 다 불어서 입이 백이구 천이래두 와주 아니라구 발명할
도리가 없이 됐네." "우리가 소홍이 집에 있는 건 노밤이놈이 불었다든가?" "그
건 알아보지 못했지만 노밤이나 졸개들 입에서 나왔겠지" "포청 일이 어떻게 될
모양인가?" "어떻게 끝이 났어?" "장통방에서 봉패한 것이 포장들의 잘못이라구
사간원에서 들구 일어나서 좌우변이 다 갈렸네. 좌변 남치근은 책임을 지울 만
두하지만 우변 이몽린은 공연히 휩쓸려들어가서 늙은이가 가엾게 됐지." "포청에
갇힌 사람들이 어떻게 될 모양이냐 말이야." "김순고란 사람이 새루 좌변대장으
루 제수되어서 첫번 들청하던 날 바루 사내 셋을 전옥으루 넘겨버렸네. 여섯이
다 살아나올 가망은 없는 모양이데. 그중의 노밤이는 일전에 금부에서 넘겨갔단
말을 들었는데 그 속은 알아보지 않아서 모르겠네." "자네 백씨하구 부인이 포청
에 잡혀갔단 말은 요전에 듣구 갔는데 어떻게 되었나?" "그 동안에 놓여나왔네."
"자네 일은 무사타첩이 될 모양인가?" "무사타첩이 다 무언가? 나는 포교 손에
들리는 날이 신세를 조지는 날일세." "그럼 언제까지든지 이렇게 서울 안에서 피
해 다닐 텐가?" "식구를 끌구 청석골루 얻어먹으러 갈 텔세." "오게. 자네 도중
사람을 다 끌구라두 오게." "짐을 오늘까지 사흘째 묶었는데 내일 하루는 더 걸
릴 모양일세." "실없은 말이 아니구 참말 청석골루 올 텐가?" "실없은 말이 무언
가. 내가 지금 실없은 말을 할 경황이 있는 사람인가." "크나큰 살림을 졸제 어
떻게 거둬치우나?" "되지 못한 세간이 많아서 성가시어 못 견디겠네." "포교들이
사랑을 지키구 있다니 짐두 드러내 놓구 묶지 못하겠지?“ “우리 서모집 한 채
를 통히 치워놓구 물건을 날라다가 짐을 묶이네.” “짐이 갈 때 중로에서 혹시
작경하는 사람이 있거든 청석골루 가는 짐이라구 말하구 군호를 산하거든 천하
구 초하거든 목하구 대답하라구 영거해 가지구 가는 사람들에게 이르게. 그러구
짐은 띄엄띄엄 보내는 게 좋을겔세.” 황천왕동이는 한온이와 이런 이야기를 하
다가 그 집에서 같이자고 이튿날 바로 광복산으로 회정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서
울을 먼젓번 갔다와서 두 졸개와 세 여편네가 포청에 잡히고 한온이의 집이 난
가되었단 소식을 전하고, 두번째 갔다와서 두 졸개와 세 여편네는 전옥에 가서
갇히고 노밤이는 전옥에서 금부로 넘어가고 한온이는 청석골로 철가도주하여 온
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꺽정이는 세 여편네가 불쌍하여 뇌물을 써서 빼내올 도
리가 있으면 재물은 아끼지 않고 들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법을 법대로
켜면 관비나 박히게 될 것을 엄청나게 교에 처하게 되리라고 하니 더구나 모른
체하고 가만둘수가 없었다. 뇌물과 청질로는 빼내올 가망이 없은즉 전옥을 깨치
고 꺼내오는 수밖에 없는데, 전옥은 시골 옥과 달라서 깨칠 엄두가 잘 나지 아
니하였다. 꺽정이가 황천왕동이의 전하는 소식을 들으며부터 입을 일자지도록
꽉 다물고 말을 하지 아니하여 그 앞에서 감히 먼저 말을 걸 사람도 없었다. 때
마침 점심이 되어서 신불출이가 졸개 계집의 말을 받아가지고 “안에서 진지 여
쭈십니다.” 하고 말하다가 대답이 없어서 두번 말하지 못하였다. 안에서는 점심
상을 벌여놓고 기다리다 못하여 애기 어머니가
백손이더러 “너 나가서 너의 아버지 진지 좀 여쭤 봐라.” 하고 이르니 “난
싫소.” 백손이는 도리 머리를 흔들었다. 애기 어머니가 이날 아침밥을 설치어서
시장하다고 점심을 재촉까지 한 까닭에 애기가 어머니의 시장한 것을 생각하고
또 외삼촌의 귀염을 믿어서 “내가 뒷문 밖에 가서 여쭤 보지요.” 자청하고 나
갔다. 애기가 꺽정이 있는 바깥방 뒷문께 와서 나직이 기침 소리를 낸 뒤에 “
아저씨 점심 진지 안 잡수세요? 어머니가 시장하시대요.” 하고 말하며 속으로
‘오냐, 들어간다. 저년 제가 배가 고파서 어머니를 팔지.’ 외삼촌은 이런 대답
을 하려니 예기하였는데 의외에 대답이 없어서 “녜, 아저씨?” 하고 대답을 재
촉하니 “웬 수선이냐!”하고 꺽정이가 소리를 꽥 질렀다. 외삼촌이 저에게 소리
지르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드문 일이라 애기가 처음에는 놀라고 나중에는 부끄
러워서 고개를 푹 숙이고 풀기 없이 걸어들어왔다. 백손 어머니가 이것을 보고
졸개 계집들을 시키지도 않고 자기 손으로 상을 들어다가 애기 어머니 앞에 놓
으며 “형님, 우리나 먼저 먹어치웁시다. 살찐 놈 따라 부어 죽겠소.” 하고 말
하였다. 백손 어머니가 애기 어머니와 시누이 올케 겸상하여 밥을 먹는 중에 밑
도끝도 없이 송악산 대왕당 그네터 이야기를 꺼내었다. 대왕당 그네를 뛴 보람
으로 서울 세 계집이 떨어지게 되거니 생각하는 백손 어머니의 속을 애기 어머
니는 꿰뚫고 들여다보듯이 아는 까닭으로 “그 따위 이야기는 다시 입밖에 내지
말게.” 하고 나무랐다. 꺽정이가 반 나절 동안 혼자 앉았다 누웠다 하다가 승석
때가 거의 다 되었을 때 “밖에 아무두 없느냐?” 하고 소리를 쳐서 신불출이가
녜 하고 쫓아들어가니 “황두령 어디 가셨느냐. 빨리 오시라구 해라.” 하고 말
을 일렀다. 황천왕동이가 이봉학이와 같이 밖에 나가서 거닐다가 신불출이에게
불려서 들어왔다. “너 지금 청석골 좀 가거라. 가서 한온이 집 식구가 내려오거
든 치워놓은 초막들에 전접시키라구 하구 배돌석이, 길막봉이, 서림이 세 사람을
새 달 초사흗날 장수원으루 오라구 해라. 너는 곧 되짚어서 이리 오너라.” “오
늘은 벌써 해가 다 져가니 내일 식전 일찍 떠나가면 어떨까요?” “오늘 가라거
든 두말 말구 곧 가거라.” 황천왕동이가 하릴없이 녜 대답하고 나와서 불불이
행장을 차려 가지고 청석골로 떠나갔다. 꺽정이가 이봉학이, 배돌석이, 길막봉이
세 사람을 데리고 밤에 오간수 구멍으로 성안에 들어가서 전옥을 깨치고 세 여
편네와 두 졸개를 꺼내오려고 결심하고 구월 초사흗날 장수원에 모여서 거사하
려고 계획을 세웠다. 모일 처소를 장수원으로 정한 것은 전번 도망하여 나온 길
을 뒤쪽 들어가 생각이요, 모일 날짜를 구월 초사흗날로 정한 것은 황천왕동이
청석골 내왕에 사흘 넉넉, 광복산서 장수원을 가는데 나흘 넉넉 낭패 없도록 넉
넉히 잡은 셈이었다. 꺽정이가 황천왕동이를 떠나보낸 뒤 이봉학이를 보고 전옥
깨칠 계획을 말하니 이봉학이가 한참 생각하여 보다가 “어려운걸요.” 하고 고
개를 가로 흔들었다. “다들 어렵다구 할 줄 아네. 그렇지만 일을 해보면 어렵지
않을 겔세. 생각할 때 아주 못될 것 같은 일두 하면 되거든. 그렇기에 무슨 일이
든지 하는 게 장사니.” “십만 장안 한복판에 있는 전옥을 단 넷이 가서 어떻
게 파옥합니까. 아무래도 안될 일 같습니다. ” “그럼 몇이 가야 되겠나? 한 사
십 명 가면 될 것 같은가?” “글쎄요. 지 생각에는 삼사십 명 사람 가지구두
안될 것 같은걸요.” “그렇기에 숫제 우리 넷이만 가잔 말이야. 일이 여의하면
다시 더 말할 것 없구 혹시 여의치 못하더래두 피신하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 “겁이 나서 못 가겠나?” “아닙니다. 아무리 사지라두 형님이 같이 가자시
는데 싫단 말을 하겠습니까. 그렇단 말씀이지.” “그럼 염려 말구 나만 따라올
작정하게.” “서종사는 어째 오라셨습니까?” “파옥하는 데 혹 좋은 꾀가 있
나 물어보려고 오라구 했네.” “아무리 꾀가 많기로서니 워낙 되기 어려운 일
을 되두룩 만들수야 있겠습니까.” “우리가 미처 생각 못한 것을 뚱겨만 주더
래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은가.” “그거야 그렇지요.” 이봉학이는 꺽정이의
계획을 섶 지고 불로 기어드는 것과 같은 무모한 일로 알지마는 언제든지 한번
당할 일을 미리 당할 뿐이거니 생각하여 마음이 태연하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첩 계향이와 같이 앉아서 어린 아들의 재롱을 볼 때는 한숨이 부지중 절로 나왔
다. 황천왕동이가 떠나간 지 사흘 만에 되돌아와서 보고 들은 청석골 대소사를
꺽정이에게 이야기하는데, 가던 전날 노밤이 까닭으로 한바탕 난리 꾸민 이야기
를 들은 대로 다 옮기고 나서 “노밤이는 형님께서 오셔서 조처하실 때까지 함
부루 나다니지 못하두룩 감금해 두라구 이르구 왔습니다.”
하고 말했다. “잘했다.” 하고 꺽정이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황천왕동이
돌아오던 이튿날 꺽정이가 이봉학이와 같이 장수원 길을 떠나는데, 황천왕동이
는 안식구들을 보호하고 있으라고 광복산에 머물러 두고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는
무기와 길양식을 지워 가지고 데리고 떠났다. 광복산서 장수원까지 삼백이십여
리 길에 첫날 백 리, 이틀에 이백 리를 접어버리고 나머지 일백 이십여 리를 이
틀에 별러 온 까닭에, 광복산을 떠난 지 나흘 되던 날 점심때 장수원 원집에 와
서 청석골서 오는 일행을 반나절 동안 기다리었다. 배돌석이, 길막봉이, 서림이
세 사람이 다 저녁때 겨우 대어와서 저녁 전에는 이야기할 사이도 별로 없었고
저녁들을 먹은 뒤에 꺽정이가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더러 방문 밖에 나가 서서 원
주인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금하라 하고, 청석골서 온 세 사람에게 계획을 이
야기하여 들리니 길막봉이는 당장 전옥문을 때려부술 것 같이 주먹을 부르쥐며
좋다고 말하고 배돌석이는 팔매돌을 많이 가지고 나오지 아니하여 내일 준비해
야 하겠다고 말하고 서림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눈만 까막까막하였다. “서종
사는 좋은 꾀나 생각해서 말 좀 하우.” “글쎄올시다. 좋은 계책이 있을는지 생
각해 봐야겠습니다.” 서림이가 한동안 천장도 치어다보고 자리도 내려다보고
하다가 헛기침을 한두 번 한 후 꺽정이를 바라고보 “지금 제 생각엔 상중하 세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여 “세 가지가 뭐뭐요?” 하고 꺽정이가 물
었다. “창졸간에 생각한 계책이라 세 가지가 다 신통치 않습니다. 맘에 드시지
않더래두 꾸중은 마십시오.” 서림이가 먼저 발뺌부터 하고 나서 비로소 계책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전옥에 갇힌 사람들이 불쌍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대장께
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구 파옥하려구 하시는 건 너무 과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파옥할 계획을 파의하시는 것이 상책일 것 같습니다.” 이봉학
이가 서림이의 상책을 듣고 연해 고개를 끄덕이니, 꺽정이는 흰자 많은 눈으로
이봉학이를 흘겨본 뒤 서림이더러 “내가 한번 맘에 작정한 일이니까 그 따위
상책은 아무짝에 소용이 없소.” 하고 불쾌스럽게 말하였다. “그러면 중책을 말
씀하겠습니다.” “소위 상책이란 게 소용이 없으니 중책, 하책은 들을 것두 없
소. 고만두우.” “중책은 파옥할 준비를 말씀하려는 것이올시다.” “무슨 준비
요?” “전옥은 조그만 골 토옥과 달라서 파옥하자면 큰일인데 준비 없이 되겠
습니까?” “글쎄, 무슨 준비란 말이오?” “가령 내일 밤 오경에 파옥하러 가
신다구 잡구 말씀하면 내일 저녁 성문 닫히기 전에 사람을 서너너덧씩 작패해서
뿔뿔이 문안에 들여보내서 빈집이나 으슥한 곳에 은신들 하구 있다가 밤이 사경
쯤 되거든 전옥 전후좌우 십여 간 내외 되는 곳과 위아래 대궐 좌우 옆과 종묘
앞과 육조 뒤와 좌우포청, 한성부, 내수사, 장흥고 근처에 있는 조그만 초가집들
을 골라 들어가서 불씨를 뺏어가지구 그 집과 그 이웃집에 불들을 놓게 합니다.
아닌밤중에 화재가 여러 군데 나서 서울 안이 발끈 뒤집히거든 그 틈을 타서 파
옥하시는 것이 중책은 될 줄루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사람이 얼마나 들겠
소?”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만 적어두 사오십 명은 있어야지요.”
“하책이란 건 또 무어요? 마저 들어봅시다.” “하책은 사람 한 십여 명 데리
구 가서 파옥해 보시는 게올시다. 다른 사람들 안 데리구 단 네 분이 가셔서는
일이 애초에 성사될 가망이 없습니다.” “어째서?” “파옥하는 데는 다른 사
람이 더 간다구 별루 더 나을 것이 없지요만, 옥중에 갇힌 다섯 사람이 다들 제
발루 걷지 못하기가 쉬운데 네 분이 어떻게 시람을 주체하실랍니까. 게다가 만
일 군관과 군사들이 앞뒤루 대어들게 되면 네 분은 앞을 짓치구 뒤를 막느라구
다섯 사람을 돌보실 새가 없을 테니 네 분 외에 열 사람쯤이나 더 가야 번갈아
업구라두 오지 않습니까.” “청석골서 한 오십 명 불러올려다가 불 놓는 계책
을 써봐두 좋겠지만 그러자면 날짜가 너무 늘어지는걸.” 꺽정이 말끝을 이봉학
이가 “일만 여의하게 된다면 날짜야 좀 늘어진들 어떻습니까?” 하고 말하니
“저런 사람 봐. 청석골 내왕하는 동안이 하루이틀인가. 그 동안 우리는 여기서
내처 묵잔 말두 안 되구 갔다가 다시 오잔 말두 안되구 어떻게 하잔 말이야.”
꺽정이가 핀장을 주었다.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가까운 데 사람을 불러 써
보시지요.” 하고 말하여 “가까운 데 사람을 불러 써보시지요.” 하고 말하여
“가까운 데 어디?” 하고 꺽정이가 물었다. “혜음령패가 사람이 몇이나 되리
라구.” “그래두 모두 주워 모으면 오십 명이야 되겠습지요.” “정가 최가가
저의 일이 아닌데 그렇게 알뜰히 다 모아가지구 올까.” “상갑이 판
돌이하구 친한 길두령이 가서 서울 안에 불 놓구 전옥 파옥한단 말은 말구 그저
사람이 많이 드는 큰일이 있으니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대루 많이 모아가지구 가
자구 하면 뒤의 노느목을 바라구 저이 자식놈들까지라두 다 데리구 옵니다.”
“노느목을 바라구 왔다가 노느목이 없는 줄 알면 낙망이 되어서 일들을 잘할라
구.” “일이 성사되면 상급을 후히 주마구 낙망들 안 되두룩 어루만지시지요.”
“어디 그렇게 해봅시다.” 꺽정이가 서림이의 말을 좇아서 길막봉이 시켜 혜음
령패를 불러오기로 작정하였다. 꺽정이는 길막봉이를 곧 밤길로 떠나보내고 싶
었으나, 이날 밤에 가을비가 제법 소리를 치고 와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그대로
하룻밤을 같이들 지내었다. 이튿날 식전 길막봉이를 떠나보낵 때 꺽정이가 처음
에 당일도 다녀오라고 이르다가 사람을 모으는 동안이 있어서 당일 오기 어려우
리라는 서림이의 말을 듣고 하루 말미를 주어서 닷샛날 저녁전에는 틀림없이 대
어오게 하라고 고쳐 일렀다. 혜음령패가 오면 오는 날 저녁과 가는 날 아침 두
끼는 먹어야 할 터인데 장수원 온동네 여닐곱 집에 양식 주고 밥을 시킬 수는
있겠지만, 양식까지 대라기는 어려워서 양식 변통할 공론이 났다. 어디 가서 부
자집 하나를 떨어다가 양식거리 외의 다른 부비까지 쓰자고 서림이가 발론하여
이봉학이와 배돌석이가 모두 좋다고 찬동할 때 꺽정이는 다른 생각을 먹고 “우
리 오늘 홍천사에나 가볼까.” 하고 말하였다. “절을 떨게요?” 서림이 묻는 말
에 꺽정이가 아니라는 대답으로 고개를 외쳤다. “혹시 오늘들 올는지두 모르니
양식을 시급히 변총해 놔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홍천사에를 가볼 생각이
났소.” “홍천사에 가서 양식을 꾸어 오실랍니까?” “글쎄, 어디 가봅시다.”
꺽정이가 한첨지 일칠일재에 갔을 때 홍천사 주장중이 속이 택택하단 말을 들은
까닭에 그 주장중을 가서 보고 떼를 쓰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절에 놀러가는 셈
을 잡고 가자고 꺽정이가 세 두령, 두 시위를 다 데리고 홍천사에 와서 주장중
을 찾아보았다. 주장중은 꺽정이와 이봉학이를 한첨지 재에 보시 많이 쓰던 시
주로 대접하여 정결한 방을 치워서 들어들 앉게 하고 특별한 찬을 장만해서 점
심들을 먹게 하였다. 점심이 끝난 뒤에 꺽정이가 주장중을 보고 “내가 대사보
구 할 말이 있네.” 하고 말시초를 내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객중에
급히 쓸 일이 있으니 상목 댓 필만 취해 주게.” “있으면 취해 드리겠습니다만,
없어서 못 취해 드립니다. 미안합니다.” “댓 필을 못 취해 주겠다? 그러면 열
필만 내게.” “다섯 필두 없는데 열 필이 어디서 납니까? 소승을 놀리시느라구
실없은 말씀을 하십니다그려.” “네가 나를 누군지 모르지? 나는 청석골 임꺽
정이다. 상목 열필을 당장에 내놓지 않으면 네 모가지를 돌려앉힐 뿐 아니라 네
절 기둥뿌리를 빼놓을 테다!” 주장중이 얼굴빛이 노래져 가지고 한동안 아뭇소
리 못하고 앉았다가 다 죽어가는 사람의 목소리로 “나가서 주선해 보겠습니다.
” 하고 말하며 바로 일어서려고 하는 것을 꺽정이가 눈을 부라리며 “내 말두
안 들어보구 어딜 나가려구 하느냐!” 하고 꾸짖어서 도로 주저앉히었다. “네가
밖에 나가서 어디루 도망할 생각이냐, 뒤루 포청에 밀고할 생각이냐?” “아닙
니다. 아닙니다.” “그러면 여기 앉아서 상좌를 불러다가 말해라.” “상좌를
누가 불러옵니까?” “내 사람을 시켜두 좋다.” 주장중이 신불출이에게 상좌의
이름을 일러주어서 신불출이가 그 상좌를 불러온 뒤에 주장중은 주머니 끝에 찬
열쇠를 끌러서 상좌를 주며 “문안 시주가 불공드려 달라구 맡긴 상목이 궤 속
에 있다. 아마 네댓 필 될 게니 다 꺼내오너라.” 하고 이르는데 꺽정이가 신불
출이에게 “너 상좌하구 같이 가서 상목을 들구 오너라. 그러구 대사 말대루 궤
속에 있는 상목은 있는 대루 다 가져오너라.” 하고 분부하였다. 신불출이를 보
낼 것이 없다고 주장중이 밀막는 것을 꺽정이는 들은 척 안하고 “어서 가거라.
” 하고 재촉하여 상좌의 뒤를 딸려보냈다. 주장중이 네댓 필 되겠다던 상목이
가져온 뒤 보니 거의 삼곱절 열두 필이나 되었다. “열 필을 가져가기루 했으니
두 필은 내놓구 열 필은 다섯 필씩 묶어서 너하구 능통이하구 둘이 걸머지구 가
자.” 하고 꺽정이가 신불출이에게 말을 일렀다. 신불출이와 곽능통이가 상목을
걸머지기 좋도록 묶은 뒤에 세 두령더러 두 시위를 데리고 먼저 가라고 하고,
꺽정이는 뒤에 떨어져서 주장중을 붙들고 앉아 있다가 먼저 간 사람들이 멀리
갔을 만한 때 비로소 주장중을 보고 가노라고 인사하고 홍천사에서 나와서 장수
원으로 돌아왔다. 홍천사 주장중은 탐심 많고 인색하여 남이 주는 건 받지 않는
일이 없고 남이 달라는 건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상목 열 필을 꺽정이에게 뺏기고 아까워서 가슴이 쓰리고 분해서 치가 떨리었
다. 꺽정이의 가는 곳을 알아서 포청에 고발하려고 꺽정이가 절에서 나간 뒤에
바로 영리한 불목하니 하나를 쫓아보내서 뒤를 밟게 하였다. 홍천사 대중이 몰
려오든지 또는 좌우포청이 쏟아져 오든지 꺽정이는 조금도 겁날 것이 없으나,
소소한 일로 앞의 큰일에 방해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조심조심하여 장수원으로
가는 뒤를 밟지 못하도록 일행 여러 사람을 먼저 보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올
때도 곧장 오지 않고 동소문 밖 삼선평길로 멀리 동아왔었다. 주장중이 보낸 불
목하니가 한동안 허덕지덕 꺽정이 뒤를 밟아오다가 중간에서 떨어져서 다리를
쉬어가지고 천천히 절로 돌아가서 그 사람이 동소문 안에 들어간 뒤 어디로 새
었는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눈에 보이지 않더라고 주장중에게 말하여, 주장중은
즉시 상좌를 포청에 들여보내서 꺽정이가 도당을 많이 거느리고 절에 나와서 상
목 십여 필을 뺏어가지고 동소문 안으로 들어왔다고 고발하게 하였다. 좌포장
김순고가 좌포청에서 홍천사 중의 고발을 받고 포교들을 내놓아서 꺽정이의 종
적을 염탐시키었다. 우포청에서도 이것을 알고 역시 포교를 내놓아서 좌우포청
포교들이 성안, 성 밖으로 가을중 쏘대듯 하였다. 길막봉이가 바눌티 정상갑이
집에 와 앉아서 상갑이의 짝패 최판돌이까지 청해다 놓고 장수원에 대장과 두령
몇 사람이 모여서 무슨 일을 경영하는데 의외로 사람이 많이 들게 되어서 가까
운 데로 청병하러 왔으니 사람을 많이 모아가지고 장수원으로 가자고 말한즉,
최판돌이는 그저 들을 만하고 있고 정상갑이는 일을 알려고 여러 가지로 캐어물
었다. 구변 없는 길막봉이가 한참 끙끙거리다가 일은 가보면 알 테니 미리 묻지
말라고 막잘라서 정상갑이가 더 묻지는 못하나 진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 텐가?” 길막봉이 다그쳐 묻는 말에 정상갑이는 “글쎄요.” 하고
대답한 뒤 “자네 어떡허면 좋겠나?” 하고 최판돌이를 돌아보았다. “우리 사
람을 청석골 대장이 쓰실 데 있다구 오라시는데 안 갈 수 있나.” “불르러 오
신 길두령 낯을 뵙더래두 안 간달 수는 없지만 변변치 못한 놈들을 몰아가지구
가서 일을 잘못해서 낭패를 시켜 드리면 우리가 되려 미안스럽지 않은가.” “
일은 잘못하더래두 몫이나 많이 노놔 줍시사구 말씀하세그려.” “그런 뻔뻔스
러운 소리는 자네나 하게. 좌우간 가긴 가야 할 테니 내일 아침밥들 일찍 먹구
이리 모이라구 밤에 돌아다니며 일러두세.” 정상깁니는 길막봉이 대접한다고
가지 않고 최판돌이만 혼자 돌아다니며 일러서 이튿날 아침에 바눌티로 모아들
인 사람이 겨우 한 삼십 명 되었다. 사람수가 적어서 길막봉이는 마음에 좀 시
원치 못하나 최판돌이 말이 올 만한 사람은 거의 다 왔다고 하는 것을 더 오아
오라고 말할 수 없어서 그대로 데리고 오는데, 삼십여명이 성군작당하여 한테
몰려오는 것은 불길하므로 셋씩 넷씩 따로 떨어져 오게 하였다. 길막봉이가 정
상갑이, 최판돌이와 같이 맨앞에 오는 중, 홍제원 조금 못 미쳐서 정상갑이와 최
판돌이의 잘 아는 젊은 사람 하나를 만났다. 정상갑이가 먼저 “자네 오래간만
일세. 인제 벌이터에 나가나!” 젊은 사람이 미처 대답도 하기전에 최판돌이가
연달아서 “요새 벌이 좋은가?” 하고 물었다. 젊은 사람의 벌이터는 녹번이고
개요, 벌이는 단신행인의 보따리와 주머니를 발리는 것이었다. “그 동안에 두
분이 다 저승 행차하신 줄 알았더니 사자가 아직두 뫼시러 오지 않았구려.” 젊
은 사람 농담 인사에 정상갑이가 웃으면서 “이놈아, 악담 마라!” 하고 꾸짖었
다. “두 분 다 연만하신 터에 혜음령같이 되우 가파른 고개를 하루 몇번씩 오
르내리시자면 숨이 가쁘실 테지요. 내 벌이 자리를 바꿔 드릴까요?” “오, 네가
혜음령이 욕심이 나서 우리가 죽기를 바라는 모양이 다만 틀렸다. 너는 그저 녹
번이서 산골이나 파먹어라.” “대체 어디들 가시는 길이오?” “서울 간다.”
“궁시서다리에서 망나니가 오시라구 부릅디까.” “이놈아, 그 따위 주둥이 놀
리면 입살에 주먹덩이 같은 정이 부릍는다.” 젊은 사람이 방수 꺼리는 말 하는
것을 길막봉이는 불쾌하게 생각하여 정상갑이더러 실없은 소리 고만하고 어서
가자고 재촉하였다. 젊은 사람이 정상갑이의 소매를 붙잡고 "참말루 서을 가시
우? " 하고 다진 뒤에 "문안에 들어가기 어려운 건 고사하구 이 앞의 모래재두
넘어가기가 쉽지 않소. 실없은 말씀 아니오. " 하고 말하여 "어째서? “ 정상갑
이가 까닭을 물었다. "오늘 식전에 내가 볼알이 있어서 문안에를 들어가는데 서
대문 턱에서 포교들이 기찰을 하두 어라어마하게 하기에 나는 문안에 무슨 큰일
이 난 줄 알았더니, 포청 속내 잘 아는 친구를 만나서 물어본즉 다른 별일은 없
구 청석골
대장 임꺽정이가 서울 안에 와 파묻혀 있단 소문이 있다나. 그래서 어제 저녁
때부터 좌우포청 포교들이 임꺽정이 종적을 알려구 나와서 발동을 한답디다. 그
러나 종적을 알면 무엇하겠소? 임꺽정이같이 귀신 찜쪄먹을 친구가 그렇게 어리
무던하게 포교 손에 잡히겠소. 요 전자에 장통방에 와 있는 것을 철통같이 에워
싸구두 잡지 못하구 놓친 주제들이 또 인제 잡으러 가서 칼 맞구 화살 맞구 놓
치구 와서 매맞구 곤장맞구 그렇구 그렇지 별수 있겠소. 그런 건 딴 이야기구
포교들이 개싸대듯 하는 판에 잘못 걸리면 경이니까 맥없이 돌아다닐 까닭 있습
디까. 부리나케 볼일 보구 바루 나오는데 나올 때 기찰은 들어갈 때버덤 더 심
합디다. 묻는 말을 고분고분 대답해두 으르딱딱거리구 쥐어박구 치구 차구 갖은
짓을 다합디다. 나을 때는 모래재에두 포교들이 나와 앉아서 쌀자루 걸머진 촌
뜨기까지 열나절씩 세워놓구 기름을 내리구 보냅디다. 두 분이 다 아시다시피
내가 못 생긴 겁쟁이는 아니건만 오늘 문안에 한번 갔다오는데 십 년 살 건 감
수했소. " 젊은 사람의 수다스러운 말을 정상갑이가 다 듣고 나서 길막봉이를 돌
아보며 "우리가 모르구 모래재에까지 갔던들 봉변할 뻔했구먼요." 하고 말한
다음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하고 물었다. 정상갑이는 꺽정이 세력에 눌리
고 또 길막봉이 안면에 끌려서 오기 싫은 것을 억지로 참고 오는 길이라 핑곗모
가 좋은 김에 중로에서 돌아갈 생각이 없지 아니하였다. 길막봉이가 정상갑이의
묻는 말은 대답 않고 인사도 아니한 젊은 사람더러 "실없은 거짓말 아니오? ”
하고 묻는데 말투 거센 품이 얼러대는 것과 같았다. 젊은 사람이 정상갑이에게
로 가까이 가서 귓속말로 길막봉이를 누구냐고 묻는듯 정상갑이가 "참말 자네
인사 여쭙게. 청석골 길두령이실세. " 하고 길막봉이도 다 듣게 말하였다. 젊은
사람이 길막봉이 앞에 와서 "저는 여기 사는 최가올시다." 하고 절을 너푼 하는
데 정상갑이가 옆에서 웃으면서 "녹번이 최까불이라면 요 가근방에선 다들 알지
요." 하고 말하니 최가는 "점잖은 사람더러 까불이가 무어요?“ 하고 정상갑이애
게 말대꾸한 뒤에 비로소 "아까 말은 실없은 말이 아닙니다. 기찰이 참말루 여간
심하지 않습니다. " 하고 길막봉이의 말에 대답하였다. 길막봉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느라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중에 "임대장께서 과연 서울 와 기
십니까? " 하고 최가가 묻는 것을 길막봉이는 그러니 아니기 긴말 하기가 싫어
서 고개를 한두 번 끄덕이었다. "문안에를 꼭 들어가실라면 길을 돌아서 창의문
으루 들어가 보시지요. 창의문에서두 기찰은 할는지 모르지만 서대문같이 심하
진 않을 듯하구 설혹 심하더래두 모래재 한 번은 비키지 않습니까." "동행이 여
럿이니까 서루 의논해서 작정하겠소." 그 동안에 뒤에 오던 서너 패가 멀찍이 와
서 길가애서 쉬면서 앞에 동행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앉아 있는 여러분두
같은 동행이십니까? ” “그렇소. " "아이구 한두 분두 아니구 십여 분이 들어가
시자면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어야겠습니다. " "그렇기에 서루 의논해 봐야겠
소." "그럼 저는 볼일 보러 가겠습니다. 이 담에 또 뵙지요." "그럽시다. " 최가가
정상갑이와 최판돌이에네도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고 녹번이길로 활개치며 간 뒤
에 길막봉이가 정상갑이, 최판돌이를 보 고 "모래재를 넘지 않구 돌아갈 수 있겠
지? ” 하고 물으니 정상갑이는 잠자코 있고 최판돌이는 선뜻 "있다뿐이에요. "
하고 대답한 뒤 "여기서 연희궁 쪽으루 내려가다가 서강, 삼개 가는 길루 꺾어서
공덕리를 가서 고개 하나 남으편 용산이구 용산서 강을 끼구 돌면 서빙고서 왕
시미루 가면 고만 장수원 가는 길이 나서지 않습니까." 하고 서울길 잘 아는 것
을 자랑하듯 이렇게 이렇게 간다고 지형을 손으로 긍중에 그리기까지 하였다.
길막봉이가 혜음령패를 데리고 바눌티서 떠날 때 장수원 팔십 리길을 해 있어
올 요량 잡았더니 서울을 꿰어 뚫고 지나오지 못하고 멀리 안고 돌아서 백리길
이 넘어 되는데다가, 홍재원서 최가의 이야기 듣고 노정을 고쳐 정하고 또 일행
이 모여서 인절미로 점심 요기를 하느라고 지체를 좋이 한 까닭에 해가 져서 깜
깜 어둔 때 겨우 장수원을 들어왔다. 저녁 전에 와야 할 것인데 밤이 되고, 사람
을 오십 명 가량 잡은 것인데 삼십 명이 와서 꺽정이는 화가 났었다. 혜음령패
의 문안을 받으며 잘들 왔느냐 말 한마디를 않고 길막봉이의 발명을 듣기 싫다
고 끝까지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이봉학이가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불러서 분
부하여 온 사람들에게 즉시 저녁밥을 공궤하는데, 정상갑이, 최판돌이 두 사람은
길막봉이와 같은 방에서 상 받치고 먹게 하고 기외의 삼십 명은 화톳불 놓고 멍
석 깐 마당에 둘러앉아서 바가지로 각기 퍼먹게 하였다. 오십 명 가량 먹도록
시켜놓은 밥이라 다들 허리띠를 늦춰 가며 실컷 먹고도 함통이와 소래기에 밥이
많이 남아 나갔다. 방과 마당의 저녁밥들이 다 끝난 뒤에 정상갑이가 꺽정이를
향하고 꿇어 앉아서 "저이 같은 변변치 못한 것들을 무슨 일을 시키실라구 부르
셨습니까? " 하고 묻는데 꺽정이는 도무지 말이 하기 싫어서 서림이를 바라보고
턱을 한번 추색하여 대신 말하란 뜻을 보이었다. "오늘 밤은 곤할 테니 일찍들
자구 내일 이야기를 들으시우. 일을 워낙은 오늘 밤에 할 작정이었는데 여러분
이 늦두룩 아니 오는 까닭에 할 수 없이 내일 받으루 기일을 물렸소. " 서림이의
말끝에 정상갑이가 서림이를 보고 "하루 전기해서 말씀하시기루 어떻습니까. 저
이가 다른 데 누설할까 봐 말씀 안 하십니까? " 하고 물었다. "그럴 건 아니오."
"그러면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무슨 일인지 몰라서 궁금하겠지만 궁금한 것두
한 재미루 알구 더 좀 참았다가 내일 대장께 말씀을 듣좁구려." "대장 앞에서 말
씀하시면 대장께서 말씀하시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 "정히 그렇게 듣고자 하
면 내가 지금 이야기하리다. ”
서림이가 신불출이를 불러서 방 근처에 다른 사람을 오지 못하게 하라고 이른
뒤에, 정상갑이와 최판돌이를 번갈아 보면서 서울 안에 불지르고 그 틈에 전옥
깨치려는 계획을 이야기하니 최판돌이는 눈이 휘등그래지고 정상갑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내흔들었다. "왜 일이 잘 안될 것 같소? “ "안되구말구요. 여느때두
잘 안될 일인데 지금 포교들 눈이 빨갛다는데 될 뻔이나 한 말입니까? ” "일이
좀 어렵긴 하지만." 하고 서림이가 정상갑이의 말을 꺾으려고 다시 말을 낼 즈음
에 "되구 안 되구 내가 하기루 결심한 일이야. 딴소리는 소용없어! “ 호령기 있
는 말이 꺽정이 입에서 떨어져나왔다. 정상갑이가 서울 안데 불지르러 가는 것
보다 꺽정이의 비위를 거스르는 것이 당장 더 무서운 일인 줄을 생각 못하고 "
딴 말씀 더할 것 없이 저희는 못하겠습니다. ” 하고 불쾌스럽게 말하였다. 꺽정
이가 정상갑이 않으로 버쩍 가까이 나와앉았다. "무어야! 한번 다시 말해 봐!" "
저희는 겁이 많아서 그런 대담스러운 일을 못하겠단 말씀입니다. “ 정상갑이의
말기 듣기에 비꼬아 하는 말같이 들리었다. 꺽정이의 손길이 번개같이 앞으로
나가며 정상잠이 뺨에서 딱 소리가 나
고 정상갑이 임에서 아이쿠 소리가 나왔다. 꺽정이가 힘껏 친 것도 아니건만, 정
상갑이의 한쪽 위아래 어금니가 다 빠졌다. 정상갑이가 피묻은 이를 뱉으면서 "
사람을 일부러 오래서 이게 무슨 행악이람." 하고 우는 소시로 중얼거렸다. "행
악? " 하고 뇌며 꺽정이가 벌떡 일어서니 "소인이 저놈 대신 빌겠습니다. 용서합
시오." 하고 최판돌이가 한편 소매에 매어달리고 “형님 참으십시오. " 하고 길
막봉이가 한편 손목을 잡아당겼다. 꺽정이가 최판돌이와 길막봉이를 뿌리치며
발길로 정상갑이를 걷어찼다. "행악? 오냐 행악한다. " 하고 두서너 번 연거푸
발길질하였다. 정상갑이는 첫번에 나가동그라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
로 사지를 족 뻗쳤다. 최판돌이가 정상갑이를 와서 붙들고 "여보게 이 사람, 왜
이러나 정신 차리게." 하고 자는 사람 잠 깨우듯 몸을 흔들어야 정상갑이는 콧구
멍에서 끙끙 소리가 나올 뿐아고 그나마도 차차로 가늘어졌다. 길막봉이는 와서
들여다보다차 꼬개를 뚝 숙이고 이봉학이와 배돌석이는 바라보며 눈살들을 찌푸
리는데, 서림이가 신불출이를 불러서 찬물을 떠오라고 하고 또 더운물을 얻어오
라고 한 뒤 약낭에서 청심원과 옥추단을 꺼내주어서 더운물은 청심원을 개어 입
에 흘려넣고 찬물은 옥추단을 갈아 머리에 들어붓게 하였다. 그러나 명문뼈가
수서운 발길에 걷어채여서 안의 홍근이 이미 끊어진 것을 청심원이나 옥추단으
로 다시 이을 수가 있으랴. 정상갑이는 눈 뜨고 입 벌리고 마지막 숨을 지었다.
꺽정이가 정상갑이를 걷어찰 때 죽거나 말거나 불계하였지만, 급기 죽어자빠진
것을 보고는 어이가 없어서 "응. " 하고 혀를 찼다. 최판돌이가 송장을 끌어안고
"상갑이 상갑이! " 부르다가 별안간 벌떡 일어나 꺽정이게로 와락 달려들며 "나
까지 마저 죽여라, 이놈아. 네가 우리하구 무슨 원수냐, 이놈아 이놈아." 하고 부
르짖었다. 꺽정이가 처음에는 몸에 손만 못 대도록 밀막다가 버럭버럭 달려드는
것이 성가시어서 나중에 한번 왈칵 떠다 밀었다. 최판돌이가 맞은편 벽 밑에 가
서 자빠지는데 뒤통수 투닥뜨린 곳에 벽의 맥질한 흙이 떨어지고 외얽이가 드러
났다. 자빠진 채 일어나지 못하는 최판돌이를 길막봉이가 와서 일으켜 앉혀보니
눈은 감기고 고개는 가누는 힘이 없어 건드렁건드렁하였다. "이 사람마저 탈났나
보우. 서종사 좀 와보시우." 서림이가 와서 최판돌이를 반듯이 눕혀놓고 길막봉
이와 둘이서 허리띠 대님을 끄르고 버선을 벗기고 손바닥 발바닥을 비벼주는데,
발바닥의 용천혈을 화끈화끈 달도록 억센 손으로 비벼야 좋다고 고린내나는 발
은 길막봉이를 맡기었다. 한동안 지난 뒤에 최판돌이가 눈을 번쩍 뜨고 사람을
보다가 다시 슬며시 감으며 아이구 소리를 한숨 섞어 내었다.
꺽정이가 이봉학이더러 서림이와 의논하여 취처리를 하라고 맡기어 이봉학이
가 서림이를 불러가지고 둘이 서로 공론하였다.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좋겠소?
" "혜음령 사람을 오늘 밤에 다 도루 보냅시다." "나두 그 생각인데 죽은 사람은
거적에 싸서 지워 보낼 셈 잡구 저 사람은 어떻게 보내야 좋소? " "업혀 보내지
요." "내일 하루쯤 조리를 시켜 보내는 게 좋지 않겠소? “ "또 미친 사람같이
날뛰면 피차간 좋지 못하니까 오늘 밤에 보내는 게 상책입니다." "한번 나가자빠
진다구 고만 까물키니 그런 얼뜬 사람이 어디 있소? ” "뇌후가 깨졌습디다." "
몹시 깨졌습디까? “ "자세히 보든 않았어두 몹시 깨진 것 같습디다." "묵솜을
얻어다가 지져나 주구려." "보낼 때 지져주어 보내지요." "죽은 사람 장비는 주어
보내야지." "상목 두러너 필 주어서 장비두 쓰구 의약비두 쓰라면 되겠지요. ”
이봉학이가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더러 혜음령 사람을 불러모으라고 일렀더니, 삼
십 명 중의 남아 있는 사람이 칠팔 명밖에 더 되지 아니하였다. 혜음령패가 정
상갑이 죽은 것을 엿보고 엿들어서 알고 모두 도망질들을 치는데, 그 중에 정상
갑이, 최판돌이와 정의 깊은 사람이 하회를 보려고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봉학
이가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 정상갑이, 최판돌이의 화를 받은 것이 자취요, 반
은 수라고 누누이 말한 뒤에 정상갑이의 장비와 최판돌이의 의약비로 상목 세
필을 내주는데, 꺽정이가 상목을 있는 대로 다 주라고 하여 열 필의 쌀 바꾸고
남은 여덟 필을 통틀어 내주었다. 길막봉이가 최판돌이를 업어다 두고 오겠다고
하는 것을 꺽정이가 아무리나 하라고 시원치 않게나마 허락하여, 정상갑
이의 시체는 혜음령 사람들이 돌려가며 지고 가고 최판돌이는 길막봉이가 내처
업고 가기로 하고 밤중에 길들을 떠나갔다.
방을 치우고 조용하게들 앉았을 때, 서림이가 파옥은 파의하는 수밖에 업겠다
고 알을 꺼내다가 누가 파의한다더냐고 꺽정이에게 핀잔을 받고 다시 말을 못하
였다. 이봉학이와 배들석이는 파옥할 일이 근심되고 서림이는 초져녁 광경이 눈
에 발혀서 닭 울 녘까지 잠들을 이루지 못하고 꺽정이만은 자리에 누우며 바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새벽 다른 사람들은 아직 곤히 자고 꺽정이만 잠이 깨었을 때, 방 밖
에거 황천왕동이의 말소리가 나서 꺽정이가 일어나 방문을 열치고 내다보며 "너
웬일이냐? " 하고 물었다. 방안에 자던 사함이 다 일어났다. 황천왕동이가 방에
들어와서 절할 데 절하고 입인까할 데 입인사한 뒤 배돌석이가 비켜주는 자리에
와 앉았다. "어디서 자구 이렇게 일찍 왔나? 비선거리서 잘나? “ 배돌석이 묻는
말에 ”아니오. 어제 석후에 이천읍내서 떠나서 내처 밤길루 왔소." 대답하고 "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 이봉학이 묻는 말을 "큰일이 하나 생겼새요. " 대답
하고 "큰일이 무슨 큰일이냐? ” 꺽정이 묻는 말에 “어제 백손이가 이천읍에
잡혀 갇혔습니다." 황천황동이는 비로소 밤길로 급히 온 연유를 말하였다. "무어
야? 백손이가 잡혀 갇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 "어제가 이천 장날이지오. "
"그래. “ "애기 어머니가 실인가 무엇을 사오라구 명녹이를 장에 보내는 데 백
손이가 장구경을 간다구 따라갔답니다. 저는 가는 줄두 몰랐지요. 아침에 누님을
뵈러 들어갔더니 누님이 말씀합디다." "그래 장에 가서 무슨 짓을 하구 잡혀갔단
말이냐? " "말 않구 간 것이 괘씸해서 곧 좇아가서 붙잡아오구 싶은 생각두 없
피 않았으나 이왕 간 걸 그렇게까지 할 것은 없기에 고만 내버려두었더니 해가
승석때나 되어서 명녹이 흔자 왔겠지요. 도련님은 어디 가구 너 혼자 왔느냐 하
구 물으니까 명녹이란 놈이 울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들어보니 백손이는 별루 잘
못한 것두 없습디다. " "잘잘못간에 일이 무슨 일이야? " "둘이 장에 가서 살 것
사구 구경할 데 구경하구 떡으로 점심 요기들까지 하구 돌아올 참인데, 백손이
가 애기 준다구 엿을 좀 사가지구 가자구 하더랍니다. 그래서 명녹이가 강엿하
구 밥풀엿하구 섞어 샀는데 강엿이 화독내가 나서 엿장사를 보구 마저 밥풀엿으
루 바꿔달라구 했더니 그 엿장사가 안 바꿔 주더랍니다. 엿장사 말은 이모저모
떼어먹구 가지구 와서 바꿔 달란 법이 있느냐구 하구, 명녹이 말은 물러 달라면
모르지만 바꿔 달라는데 못 바꿔 줄 것이 무어냐구 해서 말다툼이 났는데, 맨망
스러운 명녹이란 놈이 성깔이 나서 안 바꿔 줄라거든 네나 처먹어라 하구 강엿
쪽을 엿장사 얼굴에 내던져서 코피를 냈답니다. 여러 장꾼들이 와서 구경들 하
는데 백손이두 그 틈에 섞여 서서 구경하구 있었답니다. 이때 사령 한 놈이 어
디서 보구 구경꾼들을 잡아체치구 들어오더니 불문곡직하구 명녹이를 이 뺨 치
구 저 뺨 치구 하는데, 명녹이가 항거두 못하구 맞는 것을 백손이가 보구 구경
꾼 틈에서 쫓아나와 그 사령을 보기좋게 메어꽃았답니다." 황천왕동이가 숨을 돌
리느라고 이야기를 중간에 잠시 그치니 "그래 어떻게 돼서 뒤쪽으루 잡혀갔단
말이냐? ” 꺽정이가 이야기 끝을 재측하였다. "백손이가 명녹이더러 고만 가
자구 해서 둘이 바루 광복으루 나오는데 읍애서 불과 한 이 마장쯤 나왔을 때,
뒤에서 이놈들 게 있으라구 소리들을 지르며 사령 여닐곱 놈이 좇아오더랍니다.
명녹이가 빨리 도망가자구 한즉 백손이 말이 이런 때 서루 돌보다가는 낭패보기
가 쉬우니 각각 도망하자구 하더랍니다. 명녹이가 그 말을 곧이듣구 저 혼자 도
망질을 치는 중에 백손이 일이 종시 궁금
해서 차츰차촌 도루 가면서 앞을 바라본즉 먼저 도망하자구 말하던 그 자리에서
백손이가 사령들에게 붙잡혀 묶이는 중이더랍니다. 명녹이가 제 힘으루 뺏어을
수는 없구 같이 잡혀가기나 하려구 앞으루 더 나가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까 저
마저 잡혀가면 소식을 통할 수가 없어서 혼자 왔다구 하구 제 잘못으루 이런 일
이 났으니 치죄하여 달라구 대죄를 합디다." "그 자식은 나 잡아가거라 하구 가
만히 한 자리에 서 있었단 말
이냐? 그랬다면 그런 넉적은 자식이 어디 있단 말이냐? “ 하고 꺽정이가 쓴입
맛을 다시었다. 꺽정이 말끝데 황천왕동이가 고개를 외치며 "백손이가 넉적은 짓
을 한 게 아니라 깜냥없는 짓을 했어요." 하고 말하였다. "깜냥없는 짓이라니?
” "그 깜냥없는 아이가 혼자서 맨주먹으루 사령 예닐곱 놈과 마주 싸웠답니다.
그래두 제법 이놈 치구 저놈 치구 해서 사령들 중의 몸에 상채기 하나 안 나구
성한 놈이 두어 놈뿐이었다니, 저딴엔 난생 처음으루 큰 쌈을 해본 셈이겠지요.
한참 치구 달쿠 하는 중 에 사령 한 놈이 살그머니 백손이 뒤애 가서 몽치루 골
통을 내려 패서 고꾸라뜨려 놓구 여러 놈이 대들어서 묶었답디다." "골통이 깨졌
으면 죽기가 쉽겠구나." "그렇게 몹시 깨지지는 않은 모양입디다." "읍에 와서 김
좌수를 찾아봤느냐? " "지금 말씀한 이야기두 김좌수에게 들었습니나. 명녹이의
말을 듣구 곧 옵으로 쫓아내려와서 김좌수를 찾아보구 백손이를 빼주두룩 힘 좀
버달라구 청했더니 김좌수가 자기 힘으루 어떻게 할 수 없는 형편을 자세 이야
기합디다. 백손이가 사령들에게 뭇매를 맞을 때 청석골 임대장의 아들이라구 말
을 했다나요? 이 말을 사령들이 이방에게 고하구 이방이 원에게 고해서 원이 백
손이를 잡아 들여다가 문초를 받는데, 우리가 팡복산에 와 있는 것까지 다 바루
댔답디다. 원이 큰 공명할 수나 생긴 줄 알구 백손이를 큰칼 씌워서 옥에 가두
게 하구 옥쇄쟁이게만 맡겨두는 것이 허소하다구 장교들을 시켜 옥을 지키게 했
답디다. 그러구 서을 포청과 강원 감영에 보내는 보장들은 오늘쯤 띄우게 되리
라구 합디다. “ 황천왕동이는 이야기를 다하고 끝으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구
경 저의 불찰인즉 무슨 죄책을 내리시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하고 식구 보호할
책임 다하지 못한 것을 인책하여 말하니 "네게는 과실이 없는 걸 무슨 죄책이란
말이냐? " 하고 꺽정이는 황천왕동이를 책망하지 아니하였다. 황천왕동이가 그제
야 길막봉이 없는 것을 괴이쩍게 생각하여 옆에 앉은 배돌석이더러 "막봉이는
어째 아니 왔소? " 하고 물었다. "다른 데 갔네." "어디를 갔소? ” "바눌티. " "
바눌티라니 정상갑이 집 말이오? 거기는 어째 갔소? “ "이야기하자던 자네 이
야기만 못지않게 길걸세. " 배돌석이는 이야기가 길다고만 하고 고만 덮어두는
것을 서림이가 간단하고도 조리 있게 혜음령패 불러왔다싸 도로 보낸 사정을 이
야기하여 황천왕동이에게 들려주었다. "막봉이가 혜음령패에게 욕이나 보지 않을
까요?" "혜음령패가 저이 괴수의 복수를 할는지 모른단 말씀이지요. 그럴 리는
만무하우. 상갑이의 유족들이라두 우리에게 복수할 생각은 먹지 못할 게요." "판
돌이가 대장 혈님께 욕설하며 대들기까지 했다먼요?" "일시 미쳐서 날뛰었지 맑
은 정신 가지구야 될 말이오. 설혹 우리에게 복수할 맘을 가진 자가 있더래두
저희들끼리 못하게 말릴게요 왜 그런고 하니 패 중의 하나가 섣부른 짓을 하는
날이면 일불이 살육통으루 전패가 망할 걸 잘들 아니까." 서림이가 황천왕동이와
수작하는 것을 그친 뒤에 꺽정이를 보고 "어떻게 하실랍니까. 이천을 곧 가보셔
야지요? ”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혀를 한번 쩟 차고 "할 수 있소, 가봐야지."
대답하고 나처 바로 황천왕동이를 돌아보며 "우리는 이천으루 갈 테니 너는 문
안에 들어가서 한온이를 찾아보구 이사두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려니와 전옥 옥
사가 어느때쯤 결말이 날까 알아봐 달라구 해라. 알아보는 데 날짜가 걸린다거
든 며칠을 묵든지 아주 똑똑히 알구 오너라. 그러구 바눌티 가서. 막봉이보구 이
리 다시 오지말구 바루 청석골루 가라구 말해라." 하고 말을 일렀다.
꺽정이가 외아들 백손이의 일이 급하여 전옥 파옥은 중지하고 이봉학이, 배돌
석이, 서림이 세 두령과 신불출이, 곽능통이 두 시위를 데리고 총총히 이천으로
회정하였다.
꺽정이의 일행 여섯 사람이 첫날 백여 리 연천 와서 자고 이튿날 백리 놋다리
고개를 해동갑하여 넘어와서 촌가에서 저녁밥들을 시켜 먹고, 석후에 달빛을 띠
고 다시 사십리길을 걸어서 이천읍내를 대어오니 밤이 벌써 삼경이었다. 사직단
위에 지는 달이 걸리고 성산 허리에 자는 구름이 둘렀는데, 어디서 개짖는 소리
가 나다가 그치도 인적은 괴괴하였다.
읍내를 들어서기 전에 일제히 준비를 차리는데 짐에 든 병장기들은 꺼내고 웃
옷들은 벗어 짐에 넣었다. 꺽정이는 검술 선생에게서 받은 장광도를 뻬들고 이
봉학이는 전주 감영에서 장만한 일등 좋은 각궁을 내들었다. 이것은 다 서울 가
서 전옥을 깨칠 때 쓰려고 가지고 갔던 것이다. 배돌석이가 괄매돌을 한줌 가득
쥔 것은 말할 것도 얼고 서림이까지 환도 하나를 손에 잡았다. 신불출이와 곽능
통이는 가벼운 짐이나마 짐을 진 까닭에 접전할 준비는 고만두고, 그 대신 한
사람은 화살을 많이 가지고 또 한 사람은 팔매돌을 보에 싸들고 이봉학이와 배
돌석이의 뒤에 각각 붙어 다니기로 되었다.
옥쇄쟁이가 초저녁잠 한숨을 늘어이게 자고 나서 옥을 한번 돌아보고 들어오
려고 하던 차에. 개짖는 소리에 외심이 나서 초롱불도 안 가지고 옥으로 나오다
가 병장기 가진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바라보고 꺽정이가 아들을 찾으러 온
줄 선뜻 짐작하고 뒷길로 빠져서 장청으로 달려갔다. 꺽정이가 옥 앞에 와서 "백
손아! " 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또다시 “백손아! " 하고 불렀다. 두번째 목
소리는 첫번보다 훨씬 컸다. 백손이는 마침 잠이 들었다가 잠결에 아비의 목소
리를 듣고 "아버지. " 하고 불러서 꺽정이가 "오냐. " 하고 대답하였다. 반가운
마음이 복받쳐서 아버지 소리는 굵고 급하였고, 자애가 흘러나와서 오냐 소리는
부드럽고 길었다. 옥문은 튼튼한 자물쇠로 잠갔지만, 꺽정이가 자물쇠를 쥐고 비
트는데 배목이 부러져서 잠근 보람이 조금도 없었다. 꺽정이가 갈문을 열어젖히
고 옥 안에 들어가서 백손이의 칼을 벗기고 끌고 나오며 "너 걸음을 걷겠느냐?
" 하고 물으니 백손이는 "그러먼요. " 대답하고 옥 밖에 나와서 겅충겅충 뛰어
보이었다.
이봉학이와 배돌석이는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데리고 앞을 서고 서림이는 백
손이와 함께 중간에 서고 꺽정이는 뒤에 서서 광복가는 길로 나오는데, 칼이며
창이며 활을 가진 장교와 사령과 군노들이 한 떼는 앞길을 가로막고 또 한 떼는
뒤에서 쫓아왔다. 관속 편에는 횃불이 있어서 활로 쏘고 돌로 치는데 겨냥대기
가 좋았다. 이봉학이의 활과 배돌석이의 팔매로 앞에서 쌈이 벌어졌다. 화살은
빨랫줄같이 건너가고 팔매돌은 별똥같이 홀러갔다. 관속 대여섯이 삽시간에 고
꾸라졌다. 횃불 있는 것이 불리한 줄 깨닫고 꺼버리는 듯 여러 자루 홰가 일시
에 다 꺼졌다. 저편에서 들어오진 못하나 이편에서 나가서 이편 저편의 동안이
가까워지며 웅긋쭝긋 섰는 것이 별빛 아래 보이었다. "살 받아라! " "돌 받아라!
" 웅긋중긋이 하나 줄고 둘 줄자, 나머지는 이리저리 다 달아났다. 앞에서 막는
것을 물리치는 동안에 뒤에서 쫓는 것은 쫓는 대로 내버려 두었건만 앞의 기제
가 꺾이는 데 뒤의 기세도 따라 줄어서 힘껏 쫓아오지 않고 멀찍이 따라오며 활
들을 쏘았다. 앞에서 막는 데는 살수가 많고 뒤에서 쫓는 데는 사수가 많았었다.
사수는 많으나 활솜씨들이 오죽치 아니하여 겨냥을 잘 잡고 쏘더라도 열에 한
대 맞칠 동 말 동한테 더구나 겨냥도 잡지 못하고 함부로 쏘니 살이 바로 나가
서 넘고 처지는 것보다도 어림없이 빗나가는 것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런 때 망령살이 바로 가 맞지 말란 법도 없다. 꺽정이는 뒤에서 활 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는 중에 오른쪽 견대팔이 흘저에 뜨끔하며 돌아보니 화살 하나가
와서 박혔다. 왼손으로 박힌 살을 뽑아버리고 맞은 자리를 색색 비빈 뒤에 칼을
검무 추듯 휘두르펴 활 쏘는 관속들에게로 쫓아갔다. "이놈들, 목을 늘이구 칼
받아라!" 꺽정이가 호통을 지르며 달려드는 길로 관속 서넛을 꺼꾸러뜨려서 오
랫동안 피맛을 보지 못한 장광도애 고사를 지냈다. 이 관속 떼를 지휘가덜 병방
이 칼을 두르며 꺽정이와 마주 싸우러 내닫는데, 칼과 창을 가진 장교와 사령들
이 병방을 조력하려고 전후좌우로 꺽정이에게 대들었다. 칼잡이 칼로 쳐고 창잡
이 창으로 찌르려고 여럿이 일시예 악 소리를 칠 때, 꺽정이는 어느 틈에 테 밖
에 뛰어나가 껄껄 웃고 있었다. 검술 모르는 칼잡이와 창법 모르는 창잡이가 대
적하려 대드는 것이 꺽정이 마음에 같지않았던 것이다. 병방이 꺽정이의 놀림을
받고 분하여 "이 도둑놈아, 내례지 말구 내 칼을 받아라! " 하고 소리를 지르며
좇아왔다. 병방은 꺽걸이의 장광도가 채가 짧은 것을 넘보고 멀쩍이서 긴 환도
를 앞으로 내들고 차츰차츰 나오며 어르다가 별안간 정면으로 내리쳤다. 꺽정이
가 정면으로 들어오는 환도날을 옆으로 흘리고 다시 끌어들여갈 사이 없이 뛰어
들어가서 병방의 어깨에 한 칼을 먹였다. 병방이 어깨에서 가슴으로 엇비슥 칼
을 받고 당장에 푹 고꾸라졌다. 여러 관속들은 모두 와 하고 도망질을 쳤다.
꺽정이가 뒤쫓던 관속들을 물리친 뒤 일행을 쫓아와서 거침없이 광복산으로
나오는데 길에서 날이 밝았다. 백촌이가 꺽정이 옷소매에 피가 내밴 것을 보고 "
아버지 팔에 피가 났으니 웬일입니까? “ 하고 물어서 여러 사람이 비로소 꺽정
이의 화살 맞은 것을 알았다. 꺽정이가 병방 이하 관속들을 죽인 것은 이야기하
였지만, 화살 맞은 것은 상처가 대단치 아니하여 이야기도 하지 아니하였었다.
광복산에를 오니 벌써 조반 먹을 때라 들이닥치며 곧 조반들을 먹고 조반 먹은
뒤에는 뿔뿔이 잠잘 궁리들을 하였다. 하룻낮 하룻밤에 이백 리 길을 오고 또
작은 접전이나마 접전을 하고 온 까닭에, 평생에 피로란 것을 모르는 꺽정이까
지 소홍이의 시중으로 옷을 갈아 입은 뒤 누워서 다리를 치이다가 잠이 들어서
한숨을 옳게 잤다. 꺽정이가 잠이 깨어서 사람을 부를 때 안에 들어가 있던 소
홍이가 다시 쫓아나왔다. "냉수 좀 떠오라게." "양추하실래요, 잡수실래요? ” "
양추질한 냉수는 먹지 못하나." "잡수실라면 더운 숭늉을 갖다 드릴라고 여쭤 봤
세요." "냉수가 좋으니 냉수를 떠오라구 이르게." 소홍이 친히 물그룻을 쟁반에
받쳐 가지고 나와서 앞에 놓는데, 꺽정이가 먹여까지 달라고 입을 아 하고 벌리
니 소홍이는 웃으며 물그릇을 입에 대어주었다. 꺽정이가 뻘떡뻘떡 물을 들이켜
고 나서 소흥이의 손을 가리키며 "그 손에 묻은 것이 무엇인가? " 하고 물으니
"가루예요. " 하고 소홍이가 손에 묻은 가루를 비볐다. "무슨 가루야? “ "국화
전 좀 집었세요." "국화전? " "오늘이 구일이에요." "그래 구일이라구 오늘은 국
화전으루 점심들을 어일 텐가? " "우리는 벌써 점심들 먹었는걸요." "그럼 저녁
사이들루 먹을 작정인가? ” "우리가 먹을라구 만든 것 아니에요 여러분들하구
같이 잡수세요." "국화전은 안에서 노놔먹구 우리는 국화주나 해주게. " "국화주
도 해놨세요. " "국화주두 해놨다? 그럼 먹어야지." 꺽정이가 밖을 내다보며 "
게 아무두 없느냐? “ 하고 두서너 번 소리를 쳤다. 평시애 가까이서 도는 신출
출이와 곽능통이는 어디 가서 잠들을 자고 아랫도리 일을 하는 졸개 두엇이 긴
대답들 하며 들어와서 대령하였다. "이두령 배두령 서종사 새 분 다 오시라구 그
래라. " 하고 졸개들더러 말을 일러 내보낸 뒤, 한동안 지나서 세 사람이 같이
왔는데 서림이는 어떻게 몸이 고달프든지 눈까지 뙤었었다. "서종사는 실컨 자게
가만둘 걸 공연히 불렀군. ” "아까 주무실 때 밖에 한번 왔다갔는걸요." "왜 자
지 않구 돌아다녔소? “ "현감이 뒷일을 어떻게 하나 읍에 사람을 보내 보는 게
좋을 듯해서 여쭤보러 왔었습니다." "보내지. " "이두령께 말씀하구 보냈습니다.
" "현감이 뒷일을 어떻게 꾸미거나 우리는 청석골루 단취하는게 좋겠지? " "제
생각에두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들 하는 것을 알구 앉았는 것이 좋지 않습
니까? ” "읍내 사람 보낸 건 잘했소." 꺽정이가 심기가 좋아서 자기 자는 틈에
사람 보낸 것을 미타하게 여기지 않고 도라어 칭찬까지 하였다.
점심 요기들 하란 입맷상과 술먹으란 주안상이 안에서 나오는데 소홍이가 주
장하여 차리어서 음식이 안목이 있었다. 입맷상에는 온면, 편육, 실과, 정과, 수
란, 국화전이 놓였고, 주안상에는 연계찜, 도야지 순대, 마른 안주가 놓였다. 입맷
상의 놓인 것은 여러 상이 다 같으나, 고인 높이는 꺽정이의 상이 다른 상보다
더 높았다. 입맷상들은 놓아두고 주안상으로 국화주들을 먹는 중에 배돌석이가
안주 좋은 데 술탐이 생겨서 여기 있는 술은 여기서 다 없애고 갈 것인즉 오늘
구일날 낮에서 밤까지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느런히 앉은 이봉학이가
돌아보면서 "이번 반이에는 내행 배행이나 짐 영거할 사람이 자네하구 난데 우
리가 청석골을 몇 고팽이씩 할는지 아나. 갈 때두 먹구 갔다 와서두 먹구 두구
두구 먹어야 할걸 오늘 한꺼번에 다 먹어서 쓰겠나. “ 말하고 웃었다. 이봉학이
의 말끝에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이번 반이하는 데는 여러 날 두구 띄엄띄엄
떠날 것 없이 한날 한꺼번에 떠나두룩 하시지요." 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그럴 이
유를 묻는 눈치로 물끄러미 바라보니 서림이가 다시 "요전 여기를 올 때는 우리
가 여기 와 있는 것을 아무조록 남에게 알리지 않으려구 띄엄띄엄 왔지만 이번
에 가는 데는 알려두 좋구 안 알려두 좋구 아무래두 좋은데, 지금 이두령 말씀
마따나 가깝지두 않은 길에 여러 차례 내왕들 하시게 할 것 있습니까. 한꺼번에
가면 번폐스럽지두 않구 또 길에서 다른 염려두 되려 적을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반이할 이야기는 나중 하구 지금은 술이나 먹자구." 꺽정이가 술을
재촉하여 잔이 한동안 빨리 돌았다. 술이 밤까지 가지 않았으나 배돌석이도 마
음이 느긋하도록 술을 많이 먹었다. 입맷상 음식의 안주 될 만한 것 외에는 거
의 저들도 대지 아니하였는데, 그중의 국화전만은 꺽정이가 소홍이의 정성을 받
느라고 자기도 먹고 다른 사람도 권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읍애 보낸 쫄개가 돌아와서 읍내 소식을 들었다. 관속의 상한
사람은 넷이요, 죽은 사람은 그 곱절 여덟이고, 읍내 장정은 반상을 물론하고 다
군총으로 뽑아서 순경을 돌린다, 파수를 보인다, 큰 난리가 난 것 같고, 또 서울
과 감영에서 포도군사들이 내려오리라고 하였다. 읍내 소식을 들어보았자 조금
도 겁날 것이 없으나, 꺽정이는 빨리 반이를 시켜놓고 다시 전옥 파옥을 경영하
려고 마음을 먹고 광복산서 곧 떠나기로 작정하였다. 개 잡고 돼지 잡고 술을
있는 대로 걸러서 두목과 졸개들을 먹이게 한 뒤, 바로 짐을 묶기 시작하여 이
틀 동안에 다 묶어가지고 사흘 되는 날 떠나는데 사람 탄 말, 짐 실은 소 짐승
이 십여 필이요, 상하 남녀 사람이 오륙십 명이었다. 안식구 몇 사람이 오가 마
누라 장사 때 청석골 가서 눌러 있고 오지 않고 광복산은 아직은 아주 비우지
않으려고 두목, 졸개 십여 명을 뒤에 남겨두고 가는 까닭에 올 때보다 사람이
많이 줄었었다.
한온이의 집 이사는 한 머리가 이왕 벌써 왔고 내행이 광복산 일행과 어금버
금 같이 들어오고 그 뒤에 한온이가 황천왕동이와 작반하여 내려왔다. 황천왕동
이는 광복산으로 갈 작정인데, 한온이에게 끌려서 청석골로 온 것이 도리어 헛
걸음을 안 하고 잘되었었다. 전옥에 갇힌 다섯 사람 중의 원씨는 포청에 잡힌
뒤로 물 한 모금 아니 먹는 것을 전옥에서 억지로 한번 미음을 먹였더너 미음
먹이던 날 밤에 혀를 깨물어서 이내 죽었고, 박씨와 김씨는 원씨 죽은 뒤에 형
조 장래사로 넘기라고 위에서 처분이 내려서 장차 관비들로 박히게 되었고, 두
졸개만은 처참글 당하게 되리라고 한온이가 소식을 알아가지고 왔었다. 꺽정이
가 전옥을 파옥하려고 결심한 것은 주장 세 여편네를 살릴 마음이었는데, 하나
는 이미 자결하여 죽고 둘은 장차 관비가 되어 살게 된 바엔 구태여 위험을 무
릅쓰고 어려운 일을 할 까닭이 없어서 중지한 전옥 파옥을 아주 파의하기로 하
였다. 장통방 사건이 생긴 고동을 한번 노밤이에게 물어보고 노밤이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하려고 꺽정이는 광복산에서 온 뒤 아는 체 않고 내버려두었던 노밤이
를 도회청 조사 끝에 잡아들여다가 뜰 아래 꿇려놓고 전후 전말을 일호 기이지
말고 바로 아뢰라고 호령하였다. "소인이 그날 낮에 대장께서 동소문 안에 기신
가 하구 뵈이러 갔솝더니 소인 쓰던 행랑방에서 두 놈이 쫓아나와서 서울 구경
을 시켜내라구 조릅디다. 졸리다 못해서 두 놈을 데리구 나와서 위아래 대궐을
구경시켜 주구 북촌에서 남촌으로 건너와서 회동서 초 전골루 내려오는 중에 그
놈들이 술을 사먹으러 가자구 끄옵기에 소인은 그놈들이 술값 줄 것을 가졌나
부다 태평 믿구 술집에를 가지 않았겠습니까. 급기 술을 몇 잔씩 먹구 나서 그
놈들더러 술 값을 주라구 하온즉 그놈들은 소인을 믿구 왔다구 소인더러 주랍니
다. 세 놈이 다 빈손이니 어떡헙니까. 할 수 없이 몰래 일어서
나오려다가 포교놈에게 붙들렸습니다. 나중 알구 보너 그 포교놈이 술집 주인
마누라의 조카랍디다. 창피한 걸 무릅쓰구 가서 술값 치를 걸 가지구 오마구 빌
다시피 사정하구 나오는데, 소인이 혼자 뺑소니칠까 봐 한 놈이 같이 가자구 따
라나서서 한 놈만 볼모루 술집에 남겨두구 두 놈이 나왔습니다. 대장께 황송한
말씀을
여쭈려구 이리저리 찾아다니옵다가 장찻골 가서 뵈입긴 뵈었지만 꾸중만 들었습
지요. 한서방께나 말씀해 보려구 대소가 여러 댁을 쫓아다녔었는데, 따구 보시질
않습지요. 할 수가 있어얍지요. 그대루 쭐레쭐레 가서 만날 사람을 못 만나서 변
통을 못했으니 우리를 믿구 보내주면 술값을 내일 보내줄 게구 못 믿어서 못 보
내주겠으면 욕을 하든지 뺨을 치든지 맘대루 하라구 배짱을 부렸습지요. 그러다
가 포청으루 끌려갔소이다. 술값 동티루 뒤에 그런 큰일이 벌어질 줄은 꿈애두
생각 못했소이다. 능구렁이 다 된 포교놈들은 소인들을 수상하게 보구 등을 치
는데 줄곧 잡아례면 별일 없을 것을 그 못생긴 놈들이 방망이찜질 한바탕에 혼
신이 나갔든지 할 소리 안할 소리 다 지껄인 모양입디다. 그놈들이 청석골서 대
장을 뫼시구 왔다, 동소문 안 대장 부인댁에서 묵었다, 대장이 낮에 장찻골다리
기생집에서 약주를 잡수셨다, 이 따위 소리 지껄인 것을 딴 방에 잡혀 앉았던
소인이 알 까닭이 있습니까. 말 맞춰보느라고 묻는 것을 소인이 아니라구 잡아
때다가 학춤까지 추어봤습니다. 학춤 추이던 젊은 포교 한 놈이 소인더러 병신
이 급살한다구까지 욕합디다. 어떤 포교놈이 밉살스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고놈
은 창 정말 밉살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장찻골 기생 아가씨댁과 동소문안 김씨
댁은두놈중에 어떤 놈 한놈이 댔솝구 원씨와 박씨는 김씨가 물귀신 심사루 불어
넣솝구 남소문 안 한서방은 김씨, 원씨, 박씨 세 분 초사에 들쳐났소이다. 소인
은 동소문 안 김씨댁과 남성밑골 박씨댁을 가르쳐 준 것밖에 잘못한 것이 꼬물
두 없소이다. 이건 소인이 말씀을 안 여쭤두 뒤루 알아보셔서 대개 알구 기실
듯하외다." 노밤이가 길게 지껄인 말이 열의 여덟아홉은 거짓말이건만, 그 거짓
말을 분명히 발기잡을 사람이 없었다. 거짓말이 으레껏 많이 섞였으려니 꺽정이
가 짐작하고 "우리가 장찻골 가 있는 것두 네가 대구 한서방과 우리의 사이두
네가 다 불었다는데 이눔 누구를 속이려구 거짓말이냐! " 하고 넘겨짚고 꾸짖으
니 노밤이는 기가 막히는 모양을 하고 한참 있다가 "어떤 놈의 입에서 그런 말
이 나왔는지 그야말로 거짓말이올시다. 소인이 그런 말을 불었으면 다른 데루
내뼘 궁리를 하지 이리루 오겠습니까? " 하고 발명하였다. “ "전옥에 갇힌 눔이
여기까지 오긴 어떻게 왔느냐? " "소인은 처음에 귀양이나 보벌 줄루 짐작했솝
더니 전옥에 갖다가 스물닷근 칼을 씌워서 가두는 품이 잘못하다간 얼뜨게 죽을
것 같솝기에 역적 고변한다구 거짓말하구 금부루 넘어가구 대장 대부인을 잡아
바친다구 거짓말하구 금부 나장이, 나졸 들을 끌구 여기까지 왔소이다. 소인이
거짓말한 것두 기이지 않구 다 바루 아룁니다. " "백골이 된 지 오랜 우리 어머
니를 들쳐내서 빈말루라두 욕을 보였으니 그 죄만 하더래두 너는 당연히 죽일
것이지만 간신히 살아온 걸 죽이기 불쌍해서 특별 용서하니 그리 알아라." 하고
꺽정이는 노밤이를 용서하여 주었다.
꺽정이가 한온이 부자의 와주 노룻한 공로를 생각하여 한온이를 두령을 시키
고 처음 와서 전접하는 데 모든 편의를 보아주었다. 첫째 거처할 집만 자더라도
오가더러 마누라의 제청을 끌고 박유복이 집으로 가고 그 집을 한온이에게 내주
라고하고, 그 집 한채만 가지고 한온이의 수다 권솔이 지낼 수가 없으므로 조금
조금한 집을 서너 채 새로 세우기로 하고 새집들을 짓기 전까지는 초막 중의 가
장 깨끗한 것을 치워서 쓰게 하였다. 한온이가 아비의 제청과 서모와 형의 식구
콰 저의 본안해는 오가의 집에 몰아 있게하고 두 첩과 여러 심부름꾼은 초막들
에 갈라 들게 하고 세간을 대강 정돈한 뒤 가지고 온 재산의 절반을 도중에 출
여놓고, 또 자기가 부비를 내서 한번 호군을 하겠다고 하는데 꺽정이가 호군은
아직 좀 기다리라고 중지시키었다. 기다리란 것은 박유복이가 평안도에서 올라
오고 길막봉이가 혜음령에서 돌아와서 원만히 모인 뒤에 하라는 말이었다. 박유
복이도 올라올 기한이 지났거니와 길막봉이가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아니하여 혹
시 무슨 변고가 생기지 않았나 의심들까지 들게 되었다. 황천왕동이가 가보고
온다고 꺽정이에게 말하고 내일 식전쯤 떠날 터인데, 오늘 밤에 길막봉이가 혜
음령패 한 사람을 세리고 들어왔다. 길막봉이는 정상갑이의 장사를 보고 곧 오
려고 한 것이 최판돌이가 뇌후의 상처보다도 파상풍이란 병으로 금일 금일 하여
그대로 눌러 있다가 죽어서 장사 지내는 것을 마저 보고 혜음령패들을 모아놓
고, 그중애서 나이 지긋한 사람을 하나 뽑아서 괴수로 정하여 주었는데, 태리고
온 사람이 곧 해음령패의 새 괴수이었다. 꺽정이는 그 사람을 특별히 후대하고
갈 대 상목 수십 필을 짐꾼에게 지워주며 가지고 가셔 정상갑이와 최판돌이의
유족들을 구휼하여 주라고 당부하였다.
길막봉이 돌아온 지 불과 이삼 일 후에 박유복이가 평안도 역사를 끝마치고
올라왔다. 역사는 괄월 그믐 전에 끝날 줄 안 것인데, 성천에 늦장마가 져서 역
사도 애료보다 늦어졌거니와 양덕, 맹산, 성천 새 군데 새집에 각각 두목과 쫄개
를 십여 명씩 남겨두고 몇 달 동안 먹을 양식들을 변통하여 주고 오느라고 더욱
늦어졌다고 박유복이가 이야기하여 꺽정이가 듣고 "역사 부비를 다 쓰구두 상목
이 그렇게 많이 남았드냐? “ 하고 물으니 "여기 하기를 닦아왔으니까 보시젼
아시겠지만 가져간 상목은 역사 부비루 다 들어가구 올라올 노비두 남지 않았었
습니다." 하고 박유복이가 대답하였다. "그럼 양식은 어떻게 변통해 주구 노비는
무얼루 썼느냐? " "성천, 맹산, 순천 등지 밥술 먹는 놈의 집에서 우려냈습니다."
"응. " 하고 꺽정이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급한 때 동에 가 번쩍, 서에 가 번쩍 종적을 황흘하게 하려는 준비로 완전한
소굴을 여러 군데 만들어 두자고 서림이가 계책을 낸 뒤, 사오 삭 만에 양덕, 맹
산, 성천 세 군데 소굴이 완성되었다. 소굴이 더 생기고 두령이 더 늘어서 도중
의 경사라고 도중에서 큰 잔치를 하고 그 뒤에 한온이가 조중 잔치만 못지않게
큰잔치를 하여 며칠 동안 청석골 안에 혜진 것이 술, 고기 ,떡이었다.
두령들이 맡은 소임이 그 동안 뒤죽박죽이 되어서 꺽정이가 서림이와 상의하
여 새로 작정하는데, 한온이는 도중 재산을 관리시키고, 김산이는 미곡, 포목을
출납시키고, 배돌석이는 사산 총찰을 맡기고, 황천왕동이는 각항 전령을 맡기고,
좌군과 우군을 새로 만들어서 이봉학이와 박유복이는 좌우군의 정두령을 시키
고, 길막봉이와 곽오주는 좌우군의 부두령을 시키었다. 서림이가 모사로 주모설
계할 직책을 맡은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고, 오가는 소임이 없어 사무한신이로
되 꺽정이가 출타할 때 대장 대리할 권한을 오가 홀로 가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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