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화적편 17

3학년2반 | 2022.01.13 07:42:06 댓글: 0 조회: 386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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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온이가 만손이 내외의 지공스러운 접대와 지성스러운 공궤를 박고 하룻밤을
편히 지냈다. 이튼날 아침에 한온이는 덕신이 아비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아침때
오마고 했다는 사람이 이른 아침때가 지나고 늦은 아침 때가 지나고 해가 한나
절이 다 되도록 오지 아니하였다. 만손이나 집에 있었으면 한번 보내보기도 하
겠는데 만손이가 남부에 들어가고 없어서 한온이는 초조한 맘을 억지로 참으며
기다리었다.
‘윤원형 집 차지 방에서 인제 일어섰겠지.’ ‘지금쯤은 남촌을 건너섰으렸
다.‘ ’지금쯤은 남소문 큰길 어귀에 왔으렸다.‘ ’인제 다 왔겠는데.‘ ’아
니다, 볼일을 잊은 것이 있어서 윤원형 집에서 자기 집으로 도로 간게다.’ ‘볼
일 다 보고 인제는 나섰겠다.’ ‘가까운 샛길로 오나 큰길로 돌아오나. ’ ‘걸
음을 좀 재게 걸었으면 벌써 여기까지 왔을 텐데 인제 겨우 남성 밑골 갈림길에
나 왔지. ’ ‘굼벵이라도 그 동안에 굴러왔겠는데 여태껏 아니 온담.’ 한온이
가 이와 같이 생각으로 윤원형 집에서 만손이 집을 오기도 하고 또 덕신이 집에
서 만손이 집을 오기도 하였다. 덕신이집에서 만손이 집까지는 한번만 오지도
않고 두세 번 되거푸 왔다. 그러나 정작 사람은 오지 아니하여 한온이가 기다리
다 지쳐서 “무슨 까닭 있는 사람을 내가 공연히 기다리는군.” 하고 퇴침을 베
고 드러누웠다. 이때까지는 자주자주 방문을 열고 내다보느라고 방문 앞에 앉
아 있었던 것이다. 해가 한나절이 기운 뒤에 덕신이 아비가 비로소 왔다. 한온이
가 오래간만에 만나는 인사를 하기는 차치하고 받지도 않고 첫밗에 “아침때 오
마구 했다며 왜 이렇게 늦었소?” 하고 책망하는 말로 물었다. “만날 사람을
만나구 오느라구 늦었습니다. 어제 저녁때 가서 못만나구 오늘 식전에 가서 여
태까지 기다리다가 겨우 잠깐 만났습니다. ” “그래 김치선이 있는 데를 물어
봐 준다구나 합디까?" "김치선이 가서 있는 데를 아주 알구 왔습니다." "상제
님께서 곧 만나보시신 어려울 것 같은데, 그게 낭패 아닐까요?" "어디 가 있기
에?“ "시골 가 있답니다.”“시굴 어디?” “서울서 가깝긴 합디다. 용인이랍디
다.” “서울 있는 걸 시굴 갔다구 외대 주지나 않았을까?” “내가 박차지를
보구 김치선이 있는데를 손동지한테 물어봐 달라구 부탁하니까 박차지 말이, 김
치선이 거처는 손동지께 물어볼 것 없이 자기두 안다구 합디다. 그래 어디 있느
냐구 물은즉슨 손동지가 봐주어서 영부사댁 용인 전장의 마름을 얻어 해가지구
갔다구 합디다. 박차지두 차지들 중에 유력한 사람인데 마름출척이야 모르겠습
니까?” “언제 갔답디까?” “바루 엊그저께 처자까지 데리구 내려갔다구 합디
다.” “전장은 용인 어디랍디까?” “소지명은 물어보지 않았는걸요. 상제님께
서 용인을 내려가실랍니까?“ "아니.” “대체 김치선이는 무슨 일루 보실라구
그러십니까?” “치선이가 좌포장댁 청지기에게 무슨 들은 말이 있다구 해서 그
말을 좀 물어보려구 그러우.”“그럼 좌포장댁 청지기게루 바루 알아보시는 게
좋지 않습니까?” “좌포장댁 청지기루만 들었지 청지기 성명은 못 들었는걸.”
“좌포장댁에 왠 청지기가 많겠습니까? 하나기가 쉽구 기껏 많아야 두서넛이겠
지요.” “좌포장댁 청지기에 혹 친한 사람이 있소?” “저는 없습니다.” “친
한 사람으루 다리 놓을 길은 있소?” “그건 알아보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러면 그런 길 하나를 속히 뚫어보우. 그러구 물어볼 것은 좌포장이 서림
이란 자를 데리구 무슨 계책을 의논했는데 그때 청지기들두 들었다니 그 계책이
무슨 계책인가, 또 서림이란 자가 어디서 무얼하구 지내나 그걸 알구 싶소. 서림
이란 자가 조정에 귀순한 뒤 일은 샅샅이 알았으면 좋겠소.” “별일이 아니라
서림이의 뒤 파보는 일입니다그려. 그건 좌포장댁 청지기보다 좌포청 포교들이
더 잘 알는지 모르니까 어떻게든지 알 수 있겠습지요.” “글쎄, 지금 나는 알아
볼래야 알아볼 길이 없소.” “내가 어느 길을 뚫는지 뚫어가지구 자세히 알아
다 드리오리다. 설마하니 그런 일쯤이야 못 알아내겠습니까. 염려 맙시오.”하고
덕신이 아비는 곧 알아올 것같이 장담을 하였다.
덕신이 아비가 허튼수작을 잘 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욱이 한온이에게 허튼수
작을 할리는 만무하지만, 당장 희떱고 시원스럽게 보이는 맛에 뒷갈무리 못할
장담을 곧잘 하는 버릇이 있는 까닭에 그 장담을 꼭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
나 한온이는 아쉬잡아 엄나무로 그 장담에 희망을 붙여서 “곧 좀 알아봐 주.
믿구 있을 테니 그리 아우.”하고 뒤를 다져 부탁하였다. “상제님 부탁을 범연
히 생각할 리 있습니까. 내가 발바닥이 닳두룩 돌아다녀서라두 그예 알아오겠습
니다.” “내가 서울서 오래 묵을 사세가 못 되니 속히 알아봐 줘야겠소.” “
녜, 빨리 알아오리다.” “오늘 해전에 회보를 들을 수 있겠소?” “오늘 해전은
어려운걸요.” “그럼 내일은 되겠소?” “내일은 아시게 해드릴 수 있겠지요.”
“내일 어느때쯤 알 수 있겠소?” “내일 이맘때 또 오겠습니다.” “내일 점심
때가 저녁때나 되지 않겠소. 기다리기 힘드니 에누리 속을 미리 알아둡시다.”
“상제님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 나는 아침때 올라구 일찌거니 서둘렀지
만 남을 만나보자니 저편 사정이 어디 내 맘대루 됩니까. 그래 조금 늦었지요.
그래두 오늘은 빨리 만나본 셈입니다. 요전에 자식의 일루 그 사람을 만나볼 때
는 식전에 가서 저녁때까지 온종일 기다려서 겨우 만나봤습니다.” “참말 덕신
이가 어디루 피신했다지?” “녜, 그 자식 때문에 나두 그 동안 한번 형조에 끄
들려갔다가 박차지의 주선으루 놓여나왔습니다.” “이번 형조에서 사람 잡는
것이 우리 생각엔 좀 우습소. 우선 영감 부자를 두구 말하더라두 영감은 피신하
구 덕신이가 무사히 집에 있다면 혹시 모르겠는데 일이 뒤쪽이니 우습지 않소.
” “그건 최선칠이(최가의 자다) 한 일을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댁에서 서울을
떠나신 뒤에 선칠이가 댁 사업을 계적해 보려구 했는갑디다. 댁 사업으루 말씀
하면 영특하신 선조부 영감께서 터전을 잡아놓으시구 후덕하신 선영감께서 뒤를
받치셔서 남소문 안호령이 서울 안을 울리게 된 것인데 선칠이 같은 변변치 않
은 위인이 계적을 한다니 누가 말을 듣습니까. 술잔 값이나 생기면 흥흥 코대답
이라두 하지만 안 생기면 코대답이나 할 리 있습니까. 너는 너구 나느 나다 할
테지. 더구나 선칠이의 사지 어금니 같은 사람이란 게 문성이.호성이.호불이 이
런 솔봉이들이니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아이들 불장난밖에 더 될 것 있겠습니
까. 그런데 그 얼뜬 자식놈이 문성이 꾀임에 빠져서 선칠이게를 자주 다니는
모양이기에 다니지 말라구 누차 일렀지요. 그랬건만 그 자식이 아비를 기이구
꾀꾀루 다니다가 종말에 아비 기인 벌역을 받은 셈입니다. 이번엔들 잡힐 때 녹
쇠가 첫고등에 잡히구 그 다음에 선칠이며 선칠이 집에 다니는 놈들이며 다 잡
혀서, 녹쇠 같은 시라소니가 어떻게 잘못하다가 잡혀가서 여러 사람을 붙었는가
부다 생각했더니, 속내를 알아보니까 의외에두 녹쇠가 선칠이 집의 소위 도룩이
라구 꾸며 둔 것을 훔쳐다가 형조에 바치구 밀고를 했답디다. 그래서 다른 사람
들이 흑산도루 가게 작정이 되면 녹쇠는 곧 놓여나올 모양입디다.” “녹쇠가
최가를 고발했다! 그거 참 사람이란 알 수 없군. 그런데 최가의 집에 있는 도룩
을 어떻게 훔쳐냈을까?” “녹쇠가 선칠이 집에 가서 심부름해주구 있었답디다.
” “최가를 해내려구 근사를 모았구려.” “처음부터 그런 맘을 먹구 심부름꾼
노릇을 하러 갔는지는 마치 모르겠습니다.” 여담이 너무 길어져서 한온이가 오
늘 해를 이야기로 보내서는 안될터이니 미진한 이야기는 내일 하자구 말하고 행
중 소용으로 가지고 온 필찬 상목 댓 필 중에서 한 필을 꺼내서 술값으로 주고
어서 가서 일을 보아 달라고 덕신이 아비를 쫓아보내다시피 하였다. 덕신이 아
비를 보낸 뒤 한온이는 혼자 누워서 덕신이 아비의 장담을 믿기가 어려우니 오
늘 용인을 내려가서 김치선이를 찾아볼까. 소지명을 모르더라도 용인읍에 가서
영부사댁 전장 있는 곳을 물으면 대번 알 수 있겠지. 내일 덕신이 아비의 회보
를 들어보아서 용인을 내려갈까. 그 늙은이가 설마 내게다 헛장담을 했을 리 없
겠지. 생각을 질정 못하고 있는 중에 만손이 집안 식구의 말소리와 다른 여편네
말소리가 안방에서 나는데 그 말소리가 한온이 귀에 장히 익으나 말소리 임자는
언뜻 생각이 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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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할머니라고 부르는 매파가 만손이 아들 놈이의 혼인을 중매하여 정하였
는데 색시집에서 혼인 준비에 신랑집 의향을 알아다 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어서
순이 할머니가 만손이 집에를 왔었다. 순이 할머니는 한첨지의 여자 부하 중 구
군으로 한온이 집에를 무상출입하던 매파라 한온이가 목소리를 들으면 대번 알
것인데 목소리가 평일과 달라져서 몰랐던 것이다.
순이 할머니가 만손이 부모를 보고 색시집에서 부탁한 일을 대개 이야기한 뒤
“건넌방에 누가 오셨소?”하고 물으니 만손이 어머니가 영감의 입을 치어다보
다가 그저 “손님이 오셨소.”하고 대답하였다. “어떤 손님인데 손님 혼자 내버
려두고 주인은 모두 안방에 와 있소?” “손님이 낮잠을 주무시는가 보우.” “
어디서 오신 손님이오?” “저 시굴서 오신 손님이오.” 만손이 어머니가 한온
이 온 것을 말 않고 모호하게 대답하는 중에 공교하게 이때 건넌방에서 한온이
의 기침 소리가 났다. 순이 할머니가 귀가 밝아서 대번 기침 소리를 알아듣고
“주인댁 작은상제님이 오신 모양인데 왜 나를 기이우.”하고 골을 내었다. “우
리가 마누라를 기이려는 게 아니오. 상제님께서 분부하시기를 일체로 뉘게든지
말 말라고 하셔서 그래서 말을 못했소.” “상제님이 아무리 그렇게 분부하셨더
라도 나를 고발할 사람으로 알지 않은 담에야 그럴 법이 어디 있단 말이오.”
“누가 마누라를 못 믿어서 말 안했을세 말이지.” “고만두우. 듣기 싫소. 상제
님은 날 보지 않으려고 하셔도 난 상제님을 좀 보여야겠소.”하고 순이 할머니
가 일어나서 건넌방으로 건너오는데 만손이 어머니도 뒤를 따라 건너왔다.
순이 할머니가 기임 받고 골난 것이 아직 사라지지 아니하여 건넌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곧 “여보 상제님. 인정이 없으셔도 분수가 있지 그런 데가 어디 있소.
”하고 사살부터 내놓았다. “순이 할멈한테 내가 무슨 인정 없는 짓을 했나 나
는 모르겠는데.” “내가 안방에 온 줄 아셨을 텐데 순이 할멈 게 왔나 이리 오
게 좀 하면 어떻소.” “순이 할멈이 온 줄 난 몰랐소.” “귀 어두운 나는 상제
님 기침 소릴 대번 알아들었는데 귀 밝으신 상제님이 내 말소릴 못 알아들으셨
단 말이오.” “목소리가 영 딴 사람 같으니 웬일이오?” “목소리가 좀 변했기
로 일년 이태 들으신 목소리요. 그렇게 아주 못 알아들으셨을 리가 있소. 알고도
모른 체하셨지 무얼.” “아니 참말 목소리 듣곤 몰랐소. 목이 좀 쉰 것 같소.”
“초겨울에 고뿔을 앓고 목이 잠기더니 내처 시원하게 트이지 않아요. 그런데
상제님 나보고 하우를 하시니 웬일이오?” “그전에는 주인집 아들 자세루 늙은
이보구 하게를 했지만 지금이야 그럴 수 있소.” “지금은 주인이 아니란 말씀
이오?” “그럼 지금이야 주인이 무슨 주인이오.” “내가 첨지 영감 앞에서 죽
는 날까지 부하 노릇하기를 맹세하고 이름을 도록책에 올렸소. 이 목숨 지는 날
까지 댁 부하 사람이오. 지금은 주인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야박한 말씀이오. 아
스시우. 전대로 하게하시우.” “내가 전에 하게하던 늙은이에게 몰밀어 하우를
했는데 그런 말 듣기는 순이 할멈한테 처음이여.”하고 한온이가 눈에 눈물을
먹이었다.“하우받는 사람들도 인사가 틀리지만 상제님이 하우하시는 것부터 잘
하시는 일이 아니오.” “그래 요새 지내긴 어떻게 지내우?” 한온이가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하오로 말하여 놓고 “아니, 어떻게 지내냐?”하고 말끝을 하게로
고치었다.
“지내는 건 전이나 일반이지만 큰쇠란 놈이 포도대장댁에 상노로 들어가서는
걱정 한가지는 덜린 셈이지요.” “큰쇠가 순이 남동생이지? 그놈이 올에 몇살
이든가?” “열여섯 살지요.” “우변이야 좌변이야? 어느 포장댁이야?” “잿
골 사시는 좌포장댁이오.” “언제 들어갔어?” “인제 두어 달 됐세요.” “그
럼 아직 수청방 허드레 심부름이나 하겠군.” “아니오. 포장 영감 눈에 들어서
영감 사랑 방안 심부름을 지가 도맡아 하다시피 한답니다.” 한온이가 서림이의
일을 큰쇠에게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내가 죄포장댁 일을 좀 물어보구
싶은데 큰쇠를 한번 내게 데리구 올 수 없겠나?”하고 순이 할멈더러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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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물어보실 일이 없으시더라도 데리고 와서 문안을 시켜야겠지요
만 그놈이 집에도 한만히 나오질 못합니다. 물어보실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면 내가 가서 보고 물어다 드리는 게 어떨까요?” “그놈을 내가 꼭 좀 봤으면
좋겠네.” “그럼 어떻게든지 불러내서 데리고 와야겠구먼요.” 하는 순이 할멈
말끝에 만손 어멈이 나서서 “그저 나오라고 해서 잘 나올 것 같지 않거든 마누
라가 급살을 맞았다고 기별하구려. 그럼 근두박질해서 뛰어나올 테니.”하고 웃
으니 “이 늙은이가 얼쩡하고 남을 방자하지 않나.”하고 순이 할멈이 눈을 흘
기는 체하였다. “살기 싫증이 날 만큼 살고도 죽기는 원통하우.” “임자는 죽
고 싶어서 몸살이 났나.” “나는 얼른 죽기를 바라우. 얼른 죽어야 영감 손에
묻힐 테니까.” “난 묻어줄 영감도 없지만 영감이 있더라도 지금 죽으면 원통
해서 눈이 감기지 않겠소.” “무에 그리 지원 원통하우?” “아비 어미 없는
손자 남매를 일심정력으로 길러가지고 성취를 못 시키고 죽으면 원통하다뿐이
오. 큰쇠마저 장가를 들여놓고 죽어야지.” “큰쇠 장가 들인 뒤엔?” “순이 할
멈하구 이야기 좀 하게 쓸데없는 소린 고만 하우.” 한온이가 만손 어멈의 말을
중동무이시킨 뒤 순이 할멈더러 “만손 어멈 실없는 말을 본받는 것 같지만 큰
쇠에게 할멈이 병이 났다구 기별하면 그 댁에서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두 내
보내줄 것 아닌가?”하고 의논성으로 말하였다.
“그야 내보내 주겠지만 그놈이 할미 앓는단 소릴 들으면 잠시라도 놀랄 것이
애색하지요.” “순이 할멈 그런 줄 몰랐더니 자애가 끔찍하군. 잠깐 애색한 건
참구 어떻게 그렇게 해보게.” “상제님 분부를 거역할 수 있소. 그렇게 해보리
다.” “그럼 지금 곧 가서 데리구 오게.” “내 걸음으로 지금 농포안 집에 가
서 잿골로 사람 보내서 불러내다가 데리고 오자면 해가 질 테니 내일 데리고 오
는 게 좋지요.” “내가 지금 시각이 바쁘니 오늘 좀 데리구 오게. 해 지면 어떤
가? 여기서 자지.” “나는 다시 오면 순라 때문에 가기가 어렵지만 그놈은 포
장댁 사람이란 패가 있어서 순라잡힐 염려 없이 밤에도 다니니까 그놈만 보내도
록 해보리다.” “그래두 좋지만 그놈이 이 집을 아나?” “전에 와본 일이 없
지요. 아마 집을 모르면 자세히 가르쳐 보내지요.” “그놈이 만손이 얼굴은 아
나?” “알구말구요. 놈이 할미도 아는걸요.” “그럼 저녁때 만손이더러 골목
밖 큰길에 나가서 기다리구 있으라구 함세.” “그놈이 서울 골목을 휑하게 다
아니까 잘못 찾을 염려는 없을게요.” “그럼 얼른 가서 한 시각이라두 빨리 보
내주게.” “놈이 어른을 좀 기다려 보고 가야겠는걸요.” “만손이를 보구 갈
일이 무언가?” “놈이 혼인을 내가 정해 주었는데 색시집에서 이 집 의향을 알
아달라는 일이 있어서 지금 와서 늙은이 내외를 보고 말하니까, 아들이 오늘 일
찍 나온다고 아들의 말을 듣고 가랍디다그려.” “그건 큰쇠가 왔다 갈 때 말해
보내면 되지 않겠나. 만손이 기다리지 말구 어서 가게.”
순이 할멈이 나간 뒤 얼마 안 되어서 만손이가 돌아왔다. 한온이가 만손이더
러 “순이 할멈이 지금 막 나갔는데 길에서 만났나?”하고 물으니 “골목 밖에
서 만났습니다.”하고 만손이가 대답하였다. “놈이 혼인에 물어볼 말이 있다는
데 말하던가?” “네, 들었습니다.” “순이의 남동생 큰쇠가 좌포장집 상노루
들어가 있다기에 내가 좀 불러 보내라구 했는데 그 말두 하던가?” “그 말은
못 들었습니다. 상노루 들어간 제 얼마 안되는 놈이 무얼 알까요?” “글쎄 서
림이가 어디서 무얼 하는 것쯤은 알는지 모르지.” “덕신이 어른 왔다 갔습지
요?” “아침에 온다던 사람이 점심때가 지남 뒤에야 왔는데 김치선이가 영부사
댁 마름을 해서 용인으루 내려갔다네그려.” “그럼 어떻게 하실랍니까?” “덕
신이 어른이 서림이 일을 자세히 알아온다구 장담은 했지만 그 장담을 믿을 수
가 있나.” “글쎄올시다.” “큰쇠가 여길 와본 일이 없다니 자네가 저녁때 골
목 밖에 나가서 기다리구 있다가 데리구 들어오면 좋겠네.” “그렇게 합지요.”
저녁때가 다 된 뒤 만손이가 골목 밖에 나가서 큰쇠 오기를 기다리고 섰는데 그
어멈이 나와서 자기가 대신 서 있을 터이니 잠깐 들어가서 저녁밥을 먹고 나오
라고 말하여 만손이가 집에 들어와서 저녁밥을 먹기 시작하자 곧 그 어멈이 큰
쇠를 데리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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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손 어멈이 들어올 때 건넌방 앞에서 “상제님, 큰쇠 여기 왔습니다.” 하고
소리쳐서 한온이가 방 앞문을 열고 내다보니 큰쇠는 방 앞을 지나서 마루로 올
라가고 만손 어멈만 방 앞에 섰다가 웃으면서 “늙은것이 찬바람맞이에 나가 섰
느라고 혼났습니다.” 하고 공치사를 하였다. “누가 놈이 할멈더러 치운 데 나
가라구 했소.” “아들 대신 나갔지요.” “만손이가 여태껏 나가 섰다가 지금
막 들어왔는데 놈이 할멈이 무슨 요공이요.” “상제님 방문 닫구 들어앉아 기
셔두 바깥일을 용하게 아시네.” “방문만 닫혔지 내 귀야 닫혔나.” 큰쇠가 마
루로 난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한온이가 만손어멈더러 “치운데 혼났으
니 어서 안방 영감 옆에 가서 몸을 녹이우.” 하고 웃음 섞어 말한 뒤 앞문을
닫고 돌아앉아서 큰쇠의 절을 받앗다. “그 동안 몰라보게 컸구나. 내가 너를 정
초에 보구 거의 일년 만에 보는가부다.” “첨지 영감 상사 때 할미하구 같이
가서 뵈었습지요.” “그랬던가?” “창황중에 보셔서 잊으셨나 보이다.” “그
런게지. 네 저녁을 먹구 왔느냐?” “할미가 빨리 가 다녀오라구 재촉해서 저녁
두 못 먹구 왔습니다.” “그럼 저녁을 먹어야겠구나.” “아니올시다. 조그만치
입시는 하구 왔으니까 가서 먹겠습니다.” 한온이가 안방을 향하고 놈이 어멈을
부르니 만손이 안해가 녜 대답 소리 떨어지며 곧 건너왔다. “이애가 저녁을 안
먹었다는데 먹일 밥이 있겠나?” “숫밥은 없지만 상제님 얼마 안 잡수신 대궁
이 그대로 있습니다.” 만손이 안해가 한온이의 묻는 말을 대답한 뒤 곧 큰쇠를
돌아보고 “놈이 아버지가 지금 저녁을 먹으니 와서 같이 먹어라.” 하고 말하
였다. 큰쇠가 처음에 싫다고 사양하다가 한온이가 가서 먹으라고 이르고 만손이
안해가 가자고 끌어서 마침내 안방으로 건너갔다. 얼마 동안 지난 뒤 만손이가
큰쇠를 데리고 건너왔다. 만손이는 화로의 숯불을 부저로 집어가지고 불어서 등
잔불을 당겨놓고 곧 가려고 하는 것을 “왜 가려구 그러나. 저애 이야길 같이
듣세. 게 앉게.” 하고 붙들고 큰쇠는 두 손길 맞잡고 섰는 것을 “너두 게 앉아
라.” 하고 이른 다음에 한온이가 큰쇠를 보고 “내가 네게 물어볼 말이 많다.”
하고 말문을 허두를 내었다. “서림이란 사람을 너 아느냐?” “알다뿐입니까
늘 보는걸요.” “서림이가 지금 어디 있느냐?” “저의 댁에 있습지요.” “너
의 댁에서 하는 일은 무어냐?” “하는 일은 아무것두 없습니다. 사관청의 대령
포교들 이야기 소일이나 해줍지요.” “서림이의 식구는 어디 있느냐?” “저의
댁 행랑에 있습니다. 그 아들은 청석골 떨어져 있다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
었습니까?” “죽긴 왜 죽어.” “서림이가 식구들 데려올 때 아들이 안 온 것
을 보구 자식 하나 있던것 죽였다구 펄펄 뛰더랍니다.” “그 자식이 볼모루 잡
혀 있을 줄은 생각 못하였던 게지.” “서림이 아들을 청석골서 볼모루 잡아 두
었습니까. 그럼 서림이는 처자를 이쪽 저쪽 양쪽에 볼모 잡힌 셈이구먼요. 저의
댁 영감께서 서림이의 안해 딸 그외의 그 처가 떨거지까지 행랑에 두신 것이 역
시 볼모 잡으신 게지 별겝니까.” “서림의 처가 떨거지라니, 그 장모된다는 노
파두 너의 댁 영감이 붙들어 두셨느냐?” “서림이의 처남 내외두 댁 행랑에 와
있습니다. 그 처남이 서울와서 좀도둑질하다가 좌포청에 잡혀 갇힌 것을 서림이
가 빼놓으러 왔다가 저마저 잡혔답지요? 그 처남을 저의 댁 영감께서 백방으루
내놓아 주실 때 댁 행랑에 와 있을 조건으루 내놓아 주셨답니다. 행랑에 있으면
떨어 내쫓을 것들인데 뒤쪽으루 행랑에 끌어들이시는 걸 보면 서림이 도망 못하
게 볼모 잡아 두신게 환하지 않습니까?” “너의 댁에서 그것들 요를 먹이느냐?
” “서림의 처남은 저이 가지구 온 걸루 끓여먹구 지내구 서림이만 댁에서 먹
을 걸 대주시는갑디다. 서림이 내외는 행랑에 두셨지만 행랑 원역두 안 시키십
니다.” 안방문을 여닫는 소리가 나고 곧 이어서 마루에 콩콩 발소리가 나더니
만손 어멈이 건넌방 밖에 와서 "애 어미가 너를 좀 보잔다. 잠깐 나오너라.“하
고 만손이를 불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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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손이가 일어서 나간 뒤 한온이는 큰쇠더러 “대체 서림이가 잡힐 때 귀순하
겠다구 먼저 내통해 놓구 잡혔다더냐?”하고 말 묻기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
런 말씀은 듣지 못했는걸요.”“잡힌 뒤에 귀순한다구 했으면 포청에서 어리무
던하게 그걸 받아줬을 리가 있느냐.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었겠지.”“서림이가
엄 무엇이라구 변성명하구 서울 와서 있다가 잡혔습지요. 포교들은 서림이루 알
구 잡았는데 서림이가 서림이 아니구 엄 무엇이라구 내뻗다가 매를 맞게 되니까
서림이 말이 영부사댁 도차지가 저의 이성사촌이니 불러 물어봐 다라구 하더랍
니다.”“그래서?”“그날 밤 당번 부장이 서림이 거짓말에 속아서 매두 때리지
못하구 간에두 집어넣지 못했답니다.”“그래.”“서림이가 거짓말루 매를 모면
하구 나중에 포교들을 보구 하는 말이, 제가 들면 서림이뿐 아니라 청석골 대장
임 아무개까지 잡을 도리가 있는데 포도대장을 뵙게 해주면 포도대장께 다 말씀
하겠다구 하더랍니다.”“그래.”“저의 영감께서 포교들이 와서 여쭙는 말씀을
들으시구 서림이를 댁으루 데려오라구 분부하셨습니다.”“그래.”“서림이가 영
감마님 앞에 오더니 바루 제 성명이 서림이라구 직토하구 저를 일 년 동안만 용
서해 주시면 일 년 내에 임 아무개를 잡아 바치겠다구 말씀합디다.”“저런 죽
일 놈 봐. 그래서?”“구월에 장수원서 모인 것이며 지난 달에 마산리서 모일
것을 서림이가 다 고해바쳤습니다. 저의 댁 영감께서 이튿날 예궐하셔서 상감께
품하니까 상감께서 귀순시키라구 처분하셨답디다. 그러구 마산리 일 난 뒤에 상
감께서 서림이를 아주 저의 댁 영감께 맡기셨답디다.”
큰쇠가 서림이 귀순한 곡절을 막 다 이야기하고 났을 때 만손이가 안방에서
다시 건너와서 한온이는 만손이를 보고 “서림이란 놈이 제가 섬기던 대장을 조
정에 잡아 바치기루 하고 귀순했다네. 그놈 죽일 놈 아닌가.”하고 말한 뒤 “서
림이 잡힐 때 뒤에서 밀고한 사람은 누구라더냐. 너 혹시 들었느냐?”하고 큰쇠
더러 물었다. “전날 댁에 있던 서사가 포교에게 귀뜸해 주었단 말이 있습디다.
”“옳지. 최가가 좌포청에 등을 대구 지냈다더라.”“포교 몇 사람하구 친하게
지냈는갑디다.”“이번 형조에 잡힌 걸 좌포청에서 빼놓으려구 주선해 줄 듯두
한데 그런 말 없더냐?”“그런 말씀 듣지 못했습니다. 대체 포교들 친하다는 건
등치구 배 문질러 주는 것인데 소득 없는 일을 알뜰히 주선해 줄리 없지요. 그
러구 포교들이 주선해 줄 힘이나 웬 있나요.”“다 같은 배은망덕하는 놈들이지
만 최가는 서림이보다두 더 죽일 놈이다. 최가 이야긴 고만두구 서림이 이야기
나 더 듣자. 너의댁 영감이 서림이를 신임하신다니 그게 참말이냐?”“그건 헛
말입니다. 신임하실 것 같으면 맘대루 다니지두 못하게 하실 리가 있습니까? 서
림이가 포교를 안동하지 않구는 대문 밖에를 못 나갑니다.”“어디루 도망할까
봐서 맘대루 나가진 못하게 하더라두 가끔 불러서 일두 의논하구 계책두 물어보
구 한다니 그게 신임하는 게지 무어냐?”“그런 일두 별루 없습니다.”“우선
이번 순경사 나가는데 너의 댁 영감이 서림이 시켜서 계책을 내어 바치게 했다
든구나.”“그걸 상제님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단다.
내가 그걸 아는 게 괴상하냐?”“저의 댁에서두 아는 사람이 대령 포교 둘하구
세간 청지기하구 저하구 넷 뿐인데 먼데 기신 상제님께서 아셨으니 괴상한 일
아닙니까? 저의 댁 영감께서 어느 날 밤중에 서림이를 불러들여서 데리구 말씀
하시는데 수방청에서 들은 사람은 세간 청지기하구 저뿐입니다. 세간 청지기는
듣다 말구 졸리다구 누워 잤지만, 저는 상제님 가 기신 데 일인 줄 아는 까닭에
가만히 앉아서 끝까지 다들었습니다.”“네가 다 들었어? 들은 대루 자세히 이
야기해라. 어디 들어보자.”한온이의 무릎이 절로 앞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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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 남판윤 대감께서 오셔서 댁 영감마님하구 두 분이 약주를 잡수시
며 밤 늦두룩 이야기를 하시구......”“가만 있거라, 남판윤이 누구냐?”“그 양
반이 저의 댁 영감마님 바루 전에 좌변 대장으루 기시다가 장통방에서 청석골
대장을 잡지 못하구 놓친 까닭으루 벼슬이 갈리셨다든구먼요.”“남치근이 말이
구나. 그래 그가 지금 한성판윤이냐?”큰쇠가 대답을 하기 전에 만손이가 앞질
러서 “한성판윤 하신 지 인제 한 보름 됐습니다. 상감께서 그 인재를 아끼셔서
특별히 판윤을 시키셨답디다.”하고 대답하여 한온이는 만손이를 돌아보며“특
지 제수일세그려.”하고 고개들 한번 끄덕인 뒤 다시 큰쇠를 보고 “그래 남판
윤이 와서 너의 댁 영감하구 무슨 이야기를 하더냐?”하고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 그건 모릅니다. 두 분이 정분이 좋아서 가끔 서루
시방들 하시니까 별 이야긴 없었겠지요. 지가 약주상 들구 들어갈 때는 봉학이
가 누군지 봉학이란 사람의 이야기들을 하셨는갑디다.”“봉학이 이야길 무어라
구 하더냐?”“저는 이야기 끝만 조금 들었습니다. 남판윤 대감이 봉학이 버린
책망은 전 병판이 당연히 받아야 옳으니 하구 말씀하니까 저의댁 영감은 말씀이
책망을 받기루 하면 좌상 대감두 노놔 받으셔야 옳을걸 하구 두 분이 서루 웃으
시더구먼요. ” “이야기 갈래가 져서 못쓰겠다. 그래 너의 댁 영감하구 남판윤
하구 이야기들 하구 어떻게 했어?” “남판윤 대감은 약주 잡숫구 이야기하시다
가셨지요. 가실 때 밤이 늦어서 저의 댁 영감께서 취침하실 때가 지났는데 취침
하시지 않구 대령 포교를 불러서 서림이를 데리구 들어오라구 분부하십디다.”
“그런 잔사설은 안 들어두 좋으니 서림이가 내어 바친 계책이나 자세 이야기해
라.” “서림이 말씀한 계책이 두 가진데 한 가지는 마산리 갔던 선전관이 이런
계책을 썼더면 성공했으리라구 말씀한 것이구, 또 한 가지는 이번에 황해도 순
경사가 이런 계책을 쓰면 성공할 듯하다구 말씀한 것입니다. 저이 같은 아무것
두 모르는 소견에두 두 가지 계책이 다 용한 것 같습디다.” “순경사가 나가서
어떤 계책을 쓰면 성공한다구 말하더냐?” “청석골 쳐들어가는 데 한쪽은 틔워
두구 열 군덴가 아홉 군데루 쳐들어가면 청석골 대장과 두령들이 죄다 나오게
된다나요. 대장과 두령들을 멀리 끌어내구 그 틈에 정병 일대를 틔워둔 쪽으루
들여보내서 소굴에 남아 있는 처자들을 잡아다가 송도 옥에 가둬 두면 청석골
대장과 두령들이 처자를 빼가려구 송도를 치러올 테니 그때 송도 유수와 황해도
순경사가 앞뒤루 에워싸구 잡으면 대개 잡힐 터이구 만일 잡지 못하구 놓치거든
그 처자들을 서울 전옥에 갖다 두구 전옥 파옥하러 오기를 기다리자구 계책을
냅디다.”
식구들은 잡아다가 미끼삼자는 계책이 궁흉극악한 데 한온이는 기가 막혀서
한참 동안 입을 벌리고 말을 못하였다. “그러구요, 선전관이 썼더면 성공할 뻔
했다는 계책은 제 생각에 더 용합디다.” 한온이는 지난 일에 대한 계책은 들으
나마나로 여기다가 큰쇠말에 끌려서 “그 계책마저 이야기해라. 어디 들어보자.
” 하고 말하였다. “서림이는 관군 오백 명이 마산리루 몰려간 게 잘못이라구
타박하구, 그러구 자기 계책을 말하는데, 관군 오백 명 중에서 활 쏘는 군사들을
백 명이구 이백 명이구 남겨놓구 그 나머지 군사루 청석골 소굴을 가서 쳤으면
청석골 대장과 두령들이 급한 기별을 듣구 허둥지둥 쫓아왔을 테니 그 오는 길
목에 활 쏘는 군사들을 매복시켰다가 일시에 내달아서 화살을 비 퍼붓듯 퍼붓게
했으면 아무리 천하 장사라두 죽거나 잡혔지 별조없었으리라구 합디다.” 소명
한 큰쇠가 더 용하다고 말하더니 한온이 생각에도 계책으로 빈틈 없는 품이 먼
저 들은 궁흉극악한 계책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한온이가 서림이 일을 들어보고 싶은 대로 대강 다 물어본 뒤 “이 다음에라
두 서림이가 어디를 가게 되든지 무슨 계책을 내서 바치든지 하거든 아는 대루
곧 이 집주인에게 알려두어라.” 하고 큰쇠에게 당부하였다. 큰쇠가 밤이 늦기
전에 가겠다고 일어나려고 할 때 “상제님 뫼시구 이야기나 좀더 해라.” 하고
만손이가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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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손이의 붙드는 까닭을 큰쇠는 고사하고 한온이도 몰라서 “일찍 가게 두지
왜 붙드나?” 하고 물으니 만손이는 주저주저하다가 “상제님 잡수실 밤참을 만
든다기에 큰쇠 먹일 것까지 만들라구 일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한온이가
만손이더러 “밤참은 무슨 밤참이야. 일찍 자는 게 좋은걸.” 하고 말한 뒤 큰쇠
를 보고 “이왕 밤참을 만든다니 먹구 가려무나.” 하고 일렀다. “언제 밤참을
먹구 있습니까. 곧 가야겠습니다.” 큰쇠는 한온이에게 말하고 “곧 먹구 가게
해줄 테니 가만 있거라.” 만손이는 큰쇠더러 말하였다.
큰쇠가 만손이에게 붙들려서 밤참 냉면을 먹고 한온이한테 간다고 인사할 때
한온이가 상목 한 필을 손 가까이 내놓아 두었다가 큰쇠 앞으로 밀어 내주며 “
이것 가지구 가서 너의 할머니 찬수 공궤나 해라.” 하고 말하니 큰쇠는 “황송
합니다.” 하고 받았다. 큰쇠가 준비하여 가지고 온 손초롱에 불을 켜서 한손에
들고 상목을 한옆에 끼고 나가다가 문간에서 따라나간 만손이를 보고 “순라잡
힐 염려는 없지만 밤에 상목을 가지구 가는 건 아무래도 재미가 좀 적으니 맡아
뒀다 주시우.” 하고 상목을 맡기고 갔다.
한온이가 생각도 못한 큰쇠에게 서림이 계책을 자세히 들어서 그만하면 서울
온 보람이 넉넉하므로 덕신이 아비의 장담 하회는 기다리지도 않고 이튿날 새벽
일찍 떠나가려고 맘을 먹고 큰쇠 보내고 들어오는 만손이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내가 내일 일찍 떠나가겠으니 새벽밥을 좀 시켜 주게” 하고 이른 다음에 “
자네가 걸음 잘 걷는 황씨를 전에 내게서 더러 보았지. 이 다음에 서울 알아볼
일이 있으면 그 사람을 자네게루 보낼 테니 자네가 알 수 있는 대루 알아서 기
별해 주게. 그러구 덕신이 어른이 내일 오거든 내가 급한 기별을 받구 떠나갔다
구 말해 두게.” 하고 뒤일을 부탁하니 만손이가 “녜,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
답하고 끝으로 “놈이 혼인 부조는 이 다음 편 있을 때 보내겠지만 내가 이번에
가지구 온 상목이 온필은 다섯 필뿐인데 그 중의 세 필이 저기 남았으니 우선
급한 혼수 장만에 보태 쓰게.” 하고 말하니 만손이가 “천만의 말씀이올시다.
상목은 가지구 가시다가 길에서 쓰십시오.” 하고 사양하였다. “길에서 쓸 일
없네. 노수는 자투리가 따루 있으니 염려 말게.” “저이 식구 지금 사는 것이
통히 상제님께서 주신 건데 상목 서너 필을 안 받겠다구 사양할 리 있습니까.
그렇지만 상제님께 염반 몇 끼 해드리구 받기는 참말루 황송합니다.”“밥값으
루 친다면 자네 집 밥값은 한 끼 한 동씩 쳐주어두 내가 아깝지 않겠네.” 민손
이는 종시 맘에 미안한 듯 아비 어미에게 꾸지람을 들은 것이라고, 더구나 처에
게 나무람을 받을 것이라고 중언부언하는것을 그렇게 여러 말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한온이가 나무라서 말을 더 못하게 하였다.
이튿날 새벽 파루 친 뒤 한온이가 만손이 집 식구들과 작별하는데 만손이 부
모는 살아서 못 만나겠다고 말하며 질금질금 울고 만손이 아내는 말은 그렇게
안하나 다시 못 만날 작별같이 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하였다.
교군꾼들이 상목 댓 필 가벼운 짐이나마 올 때 돌려 지던 집이 없어져서 몸이
거뜬하고 하루 동안을 갑갑하게 갇혀 앉았다가 나와서 맘이 시원하고 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발이 가벼워서 가까우면 5리 한참 멀면 10리 한참을 놓았다.
서울서 떠나던 날은 고양 지나 파주 와서 중화하고 장단읍을 지나 어룡개 나와
서 숙소하고 다음날 송도를 지날 때 청석골 소식이 궁금하여 김천만이 집에를
들러서 순경사가 해주로 가서 도중이 아직 무고한 것을 알고 청석골로 나오니
해가 아직 점심때가 못되었었다.
한온이가 산에 들어오는 길로 바로 꺽정이 사랑으로 와서 마침 혼자 있는 꺽
정이를 보고 큰쇠에게 들은 이야기를 보탤망정 빼지않고 다 이야기하였다. 꺽정
이가 한온이의 이야기를 다 들은 뒤 “그놈들의 계책을 안 바엔 우리두 대책을
의논해서 세워야겠다.” 말하고 곧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불러서 여러 두령들
에게 점심 먹고 도화청으로 모이란 전령을 돌리라고 분부하였다.
26
도회청은 벽도 없고 문도 없는 사발허통한 대청인데 뒤와 양옆은 휘장이나 꽉
둘러쳤지만 앞은 그대로 터놓아서 춥기가 한데와 별로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추위,더위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꺽정이가 자기 생각만 하고 겨울에도 매일
조사를 여기서 보고 중대한 일 있을 때 좌기를 여기서 하는 까닭에 청 밖에 섰
는 두목과 졸개는 말할 것 없고 청 안에 앉는 두령들도 덜덜 떨 때가 없지 아니
하였다.
이 날은 날씨도 잔풍하고 남향 대청에 낮볕이 들이쬐어서 도회청 안이 그다지
춥지 않건만 낫살 먹은 오가는 추워 죽겠다고 꺽정이에게 사정하고 화로를 갖다
놓고 쬐었다. 여러 두령이 하나 빠진 사람 없이 다 모인 뒤 꺽정이가 신불출이
와 곽능통이더러 도회청 근처에 오는 사람을 금하라고 분부하고 한온이더러 서
림이 계책을 여러 두령이 듣게 이야기하라고 명하여 한온이는 처음에 두 가지
계책만 대강 이야기하려고 하다가 서울 갔다온 이야기를 자세 듣기 원하는 두령
이 많아서 마침내 먼지 꺽정이에게 이야기한 대로 한번 다시 되풀이하였다. 꺽
정이가 한온이의 이야기 끝나기를 기다려서 “서림이놈의 계책이란 걸 다 들었
으니 인제 대책을 생각들 해서 말해 보라구.” 하고 두령들을 돌아보았다. 여러
두령이 다들 잠자코 있는 중에 오가가좌중에 들떼놓고 “나이값으루라두 내가
먼저 한마디 할씀하지.” 하고 말한 뒤 곧 이어서 “첫째 관군이 여러분을 멀리
끌구 나거려구 꼬이거든 그 꼬임을 받지 말구, 또 둘째 관문이 한쪽을 틔워놓거
든 그 틔워놓는 쪽을 더 경계하면 서림이 꾀가 허사가 되지 별수 있겠소." 하고
대책을 말하였다. 오가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봉학이가 고개를 가로 흔들고 "관군
이 우리를 꼬이다니, 우리더러 뒤쫓아나오라고 일부러 도망하는 체한단 말 아니
겠소? 일부러 도망하는 체하다가 뒤쫓지 않으면 도루 앞으로 대들 것은 정한 일
인데 도망하는 것 뒤쫓지 않을 수는 있지만 앞으루 대드는 걸 막지 않을 수야
있소? 그러구 관군이 가령 열 길루 쳐들어온다구 하구 우리 도중 상하 일백오십
여 명이 열 길루 갈려나간다면 한 길에 불과 열댓 명씩 나가게 되겠구려. 관군
의 쳐들어오는 길두 나가 막을 사람이 부족한데 쳐들어오지 않는 길까지 경게하
구 있을 사람이 남을 수 있겠소? 도대체 이번에 관군이 얼마나 올 줄루 생각하
시우? 내 생각엔 적어두 몇천 명이 올 것 같소. 우리 칠팔 인이 마산리에 모이
는 걸 잡으려구 자그마치 오백 여 명이나 왔구 오백 여 명이 와서두 이를 보지
못했으니까 이번 우리 소굴을 치러 오는 데는 몇천 명이 오지 않겠소? 순경사가
만일 단단히 준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군사를 거느리구 올는지두 모르겠소. 순경
사가 금교역말 같은 데 와서 유진할 듯한데 금교역말에는 오지 않구 해주 감영
으루 감사를 보러 간 것이 준비를 단단히 차리는 속인 듯싶소. 엄청난 대군이
올는지 모르지만 줄잡아서 이 삼천 명 올 샘 잡구 한 길에 이 삼백 명씩 열 길
루 쳐들어온다면 우리가 각각 두목 졸개 여남은씩 데리구 나가서 막을 수 있겠
소? 이 삼백 멍을 짓치고 빠져나가기두 쉽지 않거든 이 삼백 명을 못 들어오게
막기가 어디 쉽소. 막아서 뭇 들어오는 길이 더러 있더라두 여기까지 들어오는
길이 못 들어오는 길보다 더 많을 줄 알우. 그러구 보면 관군이 여기를 우리 몰
래 들어오는 건 차치물론하구 우리 알게두 들어올 것 아니오." 하고 긴말로 오가
의 대책을 반박한 끝에 “내 생각엔 식구들을 어디 안전한 데루 피신시켜 놓구
서 관군이 들어올 때 열 길루 들어오거나 스무 길루 들어오거나 우리는 일백오
십여 명이 한 길루 나가서 한 길씩 물리쳐서 다 물리치면 물론 좋구 그렇지 못
하면 목숨인들이라두 도망하는 게 상책일 듯하우.” 하고 자기의 대책을 말하니
다른 두령이 거지반 다 그 대책이 좋다고 찬동들 하였다. 여러 두령뿐 아니라
꺽정이도 이봉학이의 대책을 언짢진 않게 여기나 생각에 식구들을 보내 둘 만한
곳이 없어서 “안전한 데가 어디야. 마땅한 데 생각나는 데가 있나?” 하고 이
봉학이더러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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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학이는 꺽정이가 그런 말을 물을 줄 미리 알고 기다린 것같이 꺽정이의
말이 떨어지자 곧 “우리 요전 가서 하룻밤 자구 온 자무산성이 어떨까요. 더
마땅한 데가 없으면 거기두 잠시 피난처루 좋을 줄 압니다. 우리 식구들 가 있
는 곳을 관군두 알아선 안되지만 첫째 서림이가 몰라야 안전합니다.” 하고 대
답하니 꺽정이가 이윽히 생각하다가 “자무산성이 잠시 피난처는 될는지 모르나
여러 집 식구들이 가서 당장 거접할 데가 없는 걸 어떡하나?” 하고 말하였다.
“집이 십여 호나 되니 원거인들만 어떻게 처치하면 우리 식구들이 잠시 거접이
야 못하겠습니까?” “원거인들을 어떻게 처치하잔 말인가. 광복산 처음 갔을
때처럼 모두 죽여 없애잔 말인가?” “죄없는 백성들을 죽일 것 있습니까? 어디
든지 가서 집 사가지구 살 만한 밑천들을 주어 보내두 좋겠지요.” “그럼 소문
이 나지.” “만일 소문들을 내면 어디든지 쫓아가서 집안을 도륙낸다구 을러
보내지요. 그럼 소문들을 못 낼 겝니다. 소문낼 것이 정히 염려되면 토막나무집
을 몇 채 지어주구 산성 안에서 밖엔들을 못 나가게 붙들어 주지요.” “그놈들
이 안식구들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것 같은가?” “우리 중의 누구든지 하나 안
식구들을 따라가 있을 것 아닙니까?” “글쎄”하고 꺽정이가 다시 생각하여 보
는 중에 “안식구들 갖다 둘 만한 곳을 내가 한 군데 말씀하리까?” 하고 이춘
동이가 말하였다. 꺽정이가 이춘동이를 돌아보며 “어디?” 하고 묻는데 여러
두령의 눈도 이춘동이에게로 모이었다. “해주 박대장 기신 데가 어떱니까? 내
생각엔 그만한 데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박대장은 의기가 태산 같은 분이라 전이
라두 여기 대장께서 위급한 때 식구를 좀 맡아달라구 하시면 못한단 말을 안하
실 텐데 지금은 더구나 두 분이 겹사돈을 정하신 터이니 싫다실 리 있습니까.
두말 않구 맡아서 자기 식구같이 보호해 주실 겝니다.”
하는 이춘동이 말에 꺽정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나서 “식구들을 연중이 노
인에게루 보내는 게 좋겠네.” 하고 이봉학이를 돌아보니 이봉학이도 자모산성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거기가 좋겠습니다.:” 하고 찬동하였다. 꺽정이가 다시
이춘동이를 보고 “식구들을 해주루 보내자면 자네가 먼저 가서 사정을 이야기
해야겠네.”하고 말하니 “내행들 갈 때 내가 배행으루 가게 되면 그때 가서 이
야기해두 좋습니다.”하고 이춘동이는 대답하였다. “그러면 자네는 식구들 갈
때 따라가서 아주 거기 눌러 있을 텐가?” “내가 무재무능한 위인이지만 사람
부족할 때 충수라두 해야 하지 않습니까. 내행 배행을 가라구 하시면 내행들 데
려다 두구 곧 오겠습니다.” “여러 길루 갈려나가지 않으면 사람이 부족할 것
없으니까 자네는 거기 가서 식구들 봐주구 있는 게 좋겠네.” “그건 하라시는
대루 하겠습니다.” 이춘동이 말끝에 한온이가 꺽정이를 보고
“제가 대장께 말씀 한마디 여쭐 것이 있습니다.”하고 말하여 “무슨 말?” 하
고 꺽정이가 물었다. “이런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기는 부끄러운 일이나 저
루 말씀하면 접전할 때 여기 있어야 여러분을 도와 드리긴 고사하구 되려 여러
분께 누를 끼칠 위인이니까 저 이두령과 같이 가서 식구들이나 보호하구 있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온이의 말을 꺽정이는 웃으며 듣고 “그렇게 해라.
” 하고 선뜻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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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과 두령들의 식구 수효를 저저히 쳐보면 꺽정이의 식구는 애기 어머니 모
녀와 백손 어머니 모자에 소홍이까지 다섯이고, 이봉학이는 소실과 그 소생 세
살 먹은 아들과 두 식구요, 박유복이도 안해와 네살 먹은 딸과 두 식구요, 황천
왕동이도 역시 안해와 젖먹이 아들과 두 식구요, 배돌석이는 단 내외뿐이라 안
해 한 식구요, 한온이는 식구가 제일 많아서 서모와 형과 형수와 조카와 안해와
큰 첩과 작은 첩과과 모두 일곱이요, 이외에 남은 두령 오가와 곽오주와 김산이
는 다 딸린 식구 없는 단신들이었다. 이상 식구가 도합 스물 네 명인데 이찬동
이와 한온이와 의원 허생원을 따라보내면 셋 모자라는 삼십 명이고, 두목과 졸
개들의 처자 사 십여 명을 함께 보내면 칠십 여 명이 하나가 넘지 않을 리가 없
었다. 조그만 산골 동네에 칠십 여 명이 들어가면 다른 건 고만두고 우선 방사
가 부족하여 다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 두목과 졸개들의 처자는 보내지 말고
그대로 두자는 의논도 났었으나 두령들의 식구는 다 피난시키고 두목과 졸개들
의 처자는 피난시키지 않는다면 군심에 영향이 미칠 터이므로 각 집에서 하인같
이 부리는 졸개들의 처자는 식구들과 같이 보낼 수밖에 없고 그 외의 삼십 여
명은 다 내외 내외 껴서 양덕, 맹산, 성천 세 군데로 나누어 보내자는 의논이 돌
아서 그대로 작정이 되었다. 이렇게 많이 줄이고도 해주로 보낼 사람 수효가 어
른 아이 합하여 근 사십 명인데, 게다가 도중 공용 재물과 각집 세간 알천의 물
건짐이 바리로 여러 바리 될 터이므로 전날 광복산 피난 갈 때와 같이 관원의
내권, 선비의 안해, 촌가 여자 가지각색으로 차려서 띄엄띄엄 떠나 보내기로 준
비할 것까지 다 이야기가 되었다. 꺽정이가 좌기를 파하고 일어나려고 할 때 아
들 수남이를 맡아가지고 있는 박유복이가 꺽정이더러 “수남이두 식구들 갈 때
같이 보내시지요?”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대번에 고개를 가로 흔들며 “서가의
자식은 우리 있는 데 두어야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하고 대답하였다. 꺽정이
가 자기의 의향을 돌리지 않으면 백 사람이 천 말을 하여도 다 빈말이지만 수남
이를 해주로 보내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두령이 하나도 없었다.
도회청 회의가 끝난 뒤 권속들만 피난시킨다는 전령을 돌리고 즉시 준비에 착
수하여 이틀 동안 집마다 수선하고 사람마다 분주하였다. 제사흘 되는 날 꼭두
새벽부터 다음날 밤중까지 해주로 보내는 일행과 평안도로 보내는 두목,졸개의
남진계집들을 다 떠나 보냈다. 이춘동이,한온이 외의 황천왕동이도 배행으로 해
주를 가서 셋만 빠지고 뒤에 남은 여러 두령들이 맨 끝에 떠나는 사람들을 보내
고 꺽정이 사랑에 들어와서 모여 앉았는 중에 박유복이 집에 있는 졸개가 와서
수남이가 도망하였다고 고하여 다른 두령들도 놀라긴 좀 놀랐지만 박유복이는
맡은 책임이 있어 깜짝 놀라며 마루로 뛰어나와서 졸개더러 말을 물었다. “너
희들은 어디 가서 무어 했느냐?” “소인이 뒷간에 갔다와서 보온즉 앉았던 명
녹이는 누워서 잠이 들었솝구 누웠던 수남이놈은 일어나서 어디루 갔솝디다.”
“뒷간엘 가든지 어딜 가던지 명녹이더러 일러두고 갈 것 아니냐. 그래 집안이
나 다 찾아봤느냐?” “소인이 명녹이를 깨워가지구 나서서 찾아볼 만한 데는
다 찾아 봤습니다.” 방안에서 꺽정이가 다른 두령들더러 “조그만 놈이 지금
어둔 밤중에 도망하면 얼마나 멀리 도망했겠느냐. 곧 삼사십 명이구 오륙십 명
이구 풀어서 등불,횃불을 가지구 산 안팎을 뒤지게 해라.” 하고 말을 일렀다.
수남이가 서산 파수꾼에세 들키지 않고 서산을 넘어서 탑고개 나가는 길로 천
방지축 도망하다가 일 마장도 못 나가고 붙들러 왔다. 꺽정이가 수남이 붙들어
왔단 보고를 듣고 “고눔 어린 눔이라구 그래루 두어선 못쓰겠다. 지금 당장 물
고를 올려버려라.” 하고 분부를 내리었다. 서림이 아들 수남이는 구경 아비의
죄로 죽었다.
29
황해도 순경사는 그 동안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있었던가. 황해도 순경사가 서울
서 떠나던 날 파주 숙소하고 다음날 개성 숙소하고, 개성서 숙소하던 이튿날은
유수와 이야기하다가 점심대접까지 받고 다 저녁때 떠나서 벽란도 나와 숙소하
고 다음날 숙소참은 연안이 알맞았으나 부사의 등대 범절이 태만하여 괘씸할뿐
더러 이튿날 해주를 대기가 어려워서 홰를 잡히고 삽다리 와서 숙소하고 그 다
음날 해질 무렵에 해주를 들어왔었따. 감사가 노문을 보고 순경사의 사처와 군
사들의 숙소를 미리 정하여 놓고 중군을 5리 밖에서까지 마중을 내보내고 사처
에 와서 든 뒤 예방비장을 내보내서 엄동설한에 원로행역이 얼마나 수고되시느
냐고 위로 전갈을 하였다. 예방비장은 감사 김덕룡의 서족인데 이사중이 등과하
기 전에 같은 한량으로 한사정에 다니던 사람이라 오래간만에 서로 만나서 반기
었따. 예방비장이 전갈 나왔다가 눌러앉아서 얼마 동안 서회하고 들어갈 때 순
경사는 감사에게 석후에 들어가서 보입는다고 답전갈하였다.
선화당에 등촉이 휘항 하고 배반이 벌어졌다. 감사가 성서한 주안으로 순경사
를 대접하는 중이었다. 선화당 수청외의 기생 사오 명이 좌우에 앉아서 청하한
노래와 번화한 웃음들ㅇ로 주흥을 돋우었다. 사오 명이 다 해주의 일등 기생이
라 얼굴이 어여쁘거나 태도가 아리땁거나 그렇지 않으면 노래가 명창으로 다 각
각 취할 모가 있었다. 여러 기생이 순경사 눈에 들려고 혹태도 짓고 혹 아양도
부리고 또 혹 추파로 정도 흘리는데 그 중의 한 기생만은 눈을 아래로 깔고 단
정히 앉아서 순경사의 얼굴도 별로 보지 아니하였다. 마치 순경사 인물을 맘에
차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저 얌전빼구 앉았는 년 술 한잔 부어라.” 분결
같은 두 손이 술잔을 들고 받기를 기다리었다. “한마디 있어야지.” 한 이가 보
일 듯 말 듯한 붉은 입술 사이로 나오는 나지막한 권주가 소리가 주안상 위에
떠돌았다. 순경사가 술을 받아 마시고나서 “너는 이름이 무엇이랬지?” 하고
물었다. “초운이라고 부릅니다.” “좋다, 초운이, 무산신녀가 네로구나. 그러나
하나 물어볼 것이 있다. 네가 아침의 구름만 되지 저녁의 비는 지을 줄 모르느
냐.” “남이 지어준 이름 뜻을 지가 어찌 아오리까.” 감사가 순경사를 보고 웃
으며 “영감이 양대운우에 뜻이 있으면 내가 영감을 위하여 일잔 바람을 도우리
다.” 하고 상없지 않게 농을 한 뒤 초운이더러 “너 오늘 밤에 순경사 사또 사
처에 가서 수청을 들어라.” 하고 분부하였다. 다른 기생들의 눈치는 초운이를
시새워하고 부러워하는 모양인데 초운이는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없었다. 순경
사가 초운이의 기색을 보고 “내게 수청들기가 싫으냐? 싫거든 고마둬라.” 하
고 말은 웃으며 하는 눈치는 좋지 아니하였다. “하방 천기로 사또 같으신 귀인
을 뫼시는 것이 몸에 넘치는 영광이온데 싫다 할 리 있사오리까.” “그러면 순
상 사또 분부를 듣구 실심하는게 웬일이냐?” “사또께 실심한 것같이 뵈온 것
은 천성이 옹졸한 탓이외다.” “그건 둔사다. 그러나 네 둔사는 추가하지 않구
덮어두구 술이나 먹겠다. 자 또 부어라.” 맛있는 술과 재미있는 웃음에 밤이 가
는 줄 모르게 가서 어느덧 이슥하였다. 순경사가 감영에 들어올 때는 말을 타고
군사들을 앞뒤에 늘어 세웠었지만 사처로 나올 때는 통인을 초롱 들려 앞세우고
초운이를 뒤에 딸리고 걸어나왔다. 순경사가 사처에 나와 앉아서 대령 군사들을
물리고 초운이를 촛불 아래 앉히고 다시 보니 술자리에서 볼 때보다도 더욱 어
여쁘나 웃음에는 강작이 많고 미간에는 주름이 절로 잡히는 것이 속에 무슨 수
심이 있는 계집 같았다.
30
순경사가 점잖게 묻자면 “네가 무슨 근심이 있느냐?” 하고 물을 것을 실없
는 말로 “네 애부가 오늘 밤에 기다린다구 했느냐?” 하고 물으니 초운이는 대
답이 없었다. “어째 대답이 없느냐?” “어떻게 대답하올지 대답할 말씀을 생
각하는 중이올시다.” “지가 애부가 있다고 하오면 사또를 기망하는 것이옵고
없다고 하오면 사또께서 곧이 안 들으실 테니까 그래서 대답을 아뢰기가 어렵소
이다.” “그래 네가 애부가 없다는 걸 내가 잘못 넘겨짚었단 말이냐?” “바른
대로 아뢰자면 없다고 아뢸밖에 없소이다.” “전에는 있었구 지금은 없단 말이
냐?” “지금도 없고 전에도 없었소이다.” “그럼 아까 너의 감사가 수청 분부
할 때 실심한 건 무슨 까닭이며 지금 예 와서두 눈살을 펴지 못하구 앉았는 건
무슨 까닭이냐?” “지가 남과 같이 가식하는 재주가 없어서 속에 있는 근심 걱
정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엄적 못하는 까닭이외다.” “네 속에 무슨 근심
걱정이 있느냐?” “사또 앞에 구구한 사정을 아뢰긴 황송하오나 물으시니 대강
아뢰겠소이다. 지가 늙은 어미가 있사온데 어미는 재령 사는 오라비에게 가서
있솝구 저는 여기 사는 고모에게 얹혀 있소이다. 어미가 본래 다병한 사람이라
무슨 급한 병으로 방금 죽게 되었는데 죽기 전에 저를 한번 보아지라고 한다고
어제 전인이 와서 즉시 말미를 얻으랴고 청했솝더니 행수가 저하고 무슨 혐의가
있는지 중간에서 훼방을 놀아서 못 얻었소이다. 남의 자식 되어서 죽는 부모 가
슴에 못을 박아주면 살아서 무어 하오리까. 저는 지금 죽고 싶은 생각밖에 아무
다른 생각이 없소이다.” “친환에 말미를 안 주다니 그런 일이 어디 있겠느냐?
내가 내일 김사과에게 말해 주마.” “김사과라니요?” “예방비장 말이다.” “
예방 나리 말씀 한마디면 며칠 말미는 고사하고 몇 달 말미라도 당장 허락이 날
것이외다.” “내일 어미를 보러 가두룩 해줄 테니 염려 마라.” 초운이 얼굴에
안심하는 빛이 나타나며 턱을 괴고 있던 손이 무릎 아래로 내려왔다. 이튿날 식
전에 감영 통인이 감사 전갈을 나왔을 때 순경사가 그 통인더러 “예방 나리께
바쁘신 일이 없거든 좀 나오시라구 말씀해라.” 하고 말을 일렀더니 통인이 들
어간 뒤 얼마 아니 있다가 예방비장이 나왔다. 밤 잔 인사 수작이 끝난 뒤 “내
가 자네게 청할 일이 하나 있네.” 하고 순경사가 말하니 “무슨 청입니까?”
하고 예방비장이 물었다. “저 초운이가 어머 병이 있어서 말미를 얻으려다가
못 얻었다네. 자네가 말해서 말미를 얻두룩 해주게.” “하룻밤을 자두 만리성을
쌓는단 말이 헛말이 아니올시다그려. 영감께서 특별 청하시는 일을 아니 들을
길이 있습니까. 영감 말씀대루 하겠습니다.” “내가 순상하구 공무를 좀 의논해
야겠는데 어트때쯤 좋겠나?” “어느때든지 좋을 줄 압니다. 그런데 영감께서
내일 떠나신다니 수일 동안 해주 구경이나 하시구 떠나시지요.” “공무가 바쁜
데 한만히 구경하자구 묵을 수야 있나.” “여기서 어디루 가실랍니까?” “재
령을 거쳐서 봉산으루 가겠네.” 예방비장이 초운이를 돌아보고 “네 어미가 봉
산 어디 있다지?” 하고 물어서 “아니올시다. 재령읍에 있습니다.” 하는 대답
을 들은 뒤 “그럼 좋은 수가 있구나. 오늘 밤까지 순경사 사또를 모시구 내일
행차 뒤에 따라가거라. 말미는 내가 오늘 얻어놓으마.” 하고 말하는데 순경사는
손을 홰홰 내저었다. “왜 그러십니까? 초운이 같은 이쁜 계집을 하루라두 더
보시는 게 좋지 않습니까?” "초운이는 이쁘기는 곧 궤어차구라두 가겠지만 순
경사가 도둑놈 안 잡구 기생 싣구 다녔다면 말썽스러운 양사에서 옳다꾸나하구
들구 나서라구.” “대론이 무서우면 내가 방지해 드립지요.” 예방비장의 실없
은 말을 “나는 자네가 그런 힘이 있는 줄은 몰랐네.” 순경사도 실없는 말로
말로 대답하고 실없는 말끝을 그대로 계속하여 “초운이를 오늘 제 어미게루 보
내주는 게 대론 방지하는 데 우물고누 첫술세.” 하고 말하니 “영감께서 정히
먼저 보내라시면 오늘 보내두룩 하겠습니다.” 하고 예방비장이 대답하였다.
31
재령군수가 순경사 온다는 노문을 본 뒤 백성들을 내세워서 연로의 치도를 시
키고 관속들을 내보내서 지경에 등대를 시키고 순경사의 사처를 친히 나와서 간
검하고 순경사의 조석 지공을 각별히 하라 색리에게 신칙하였다. 순경사가 이틀
밤을 해주서 자고 또 이틀길로 재령에 왔다. 재령읍에 들어올 때 해가 아직 높
이 있었으나 다음날 숙소참 봉산읍이 하룻길이 알맞은데 구태여 엇참을 댈 까닭
이 없으므로 재령읍에서 그대로 숙소하게 되었다. 순경사가 사처로 나와 보는
군수를 데리고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듣기도 하다가 관청색의 진배
하는 저녁밥을 먹고 군수가 동헌으로 들어간 뒤 곧 취침하려고 의관을 벗을 때
기생 하나가 밖에 와서 문안을 드린닥 하여 불러들여 보니 곧 초운이었다. “너
이거 의외로구나. 그래 네 어미 병은 어떠냐?” “천행으로 좋은 의원을 만나서
병을 돌렸답니다. 지금 보아서는 죽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거 다행한 일이
다. 그래 저렇게 싱글벙글 좋아하는구나.”“저 좋아하는 속을 사또는 다 모르세
요.” “나 모르는 좋은 일이 또 무어냐? 말해라.” “싫어요. 말씀 안하겠어요.
” “버르쟁이 없이 굴지 말구 얼른 말해라.” “역정을 내시면 말씀하지요. 사
또를 다시 뵈니 좋아서 맘이 가득해요.” “네가 예 와서 말주변이 늘었구나. 해
주서는 묻는 말 대답두 변변히 못하더니.” “해주는서는 하루 통히 굶고 머리
싸고 누었던 끝이니 생기가 날 까닭이 있습니까.” “오늘 밤 생기가 난 때 다
시 한번 수청을 들겠느냐?”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입니다.” “네 자리옷을 가
져와야겠지. 사람 하나 불러주랴.” “지금 초저녁인데 어느새 취침하실랍니까.
길이 삐치셔서 곤하십니까?” “비가 오는 바람에 잠은 달아났지만 이왕 잘 차
비를 차렸으니 일찍 누워보자.” “약주 한잔 안 잡수시렵니까?”.“술이 어디
있느냐?” “잡수신다면 제가 나가서 한 병 사드들구 오겠습니다.” “술은 싫
지 않지만 치운데 나갈 것 없다. 고만드어라.” “자리옷도 제가 가서 찾아와야
합니다. 이왕 나가는 길에 사가지고 오지요.” “그럼 술만 몇잔 사가지구 오너
라. 안주는 찬합에 포쪽이 있다.”“지금 가서 한손에 술병 들고 한옆에 옷보퉁
이 끼고 오겠습니다.”초운이가 간 지 한식경이 못되어서 주안 한 상을 사람을
시켜 들려가지구 왔다. “이게 왠 주안이냐? 출처를 모르구는 안 먹겠다.” “제
가 사또께 드리려고 아가 올 때 오라비에게 부탁을 해두고 왔었습니다.” “네
오라비는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장교를 다닙니다. 사또께서 재령서 군사를
조발하자면 제 오라비도 사또 휘하에 따라가게 된다고 오라비는 은근히 바라는
모양이지만 도둑놈하고 접전한단 소리에 앓던 어미는 그렇게 될까봐 겁을 더럭
더럭 냅니다.” “너는 뉘 편을 드느냐. 어미 편이냐, 오라비 편이냐?” “제야
물론 어미 편입지요. 앓는 어미를 두고 전장에 가라고 오라비 편을 들 리가 있
습니까.” “그럼 네 오라비를 데리구 가지 말아달라구 나를 주안 대접하는게
냐?” “지가 사또께 술을 안 들이면 그만 청을 못합니까. 그런 정 밖의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야숙합니다.” “그럼 정으루 주는 술을 먹을 테니 상을
이리 가져오너라.” 순경사가 술을 서너 잔을 먹고 고만두려고 하다가 초운이
권에 못이겨 예닐곱 잔 가량 먹었다. 초운이가 주안상을 물려내서 들려가지고
왔던 사람을 주어 보낸뒤 순경사가 앞에 외서 “얼마 잡숫지도 않으시는 걸 공
연히 잠만 일찍 못 주무시게 해서 황송합니다.”하고 사과하듯 말하였다. 순경사
가 그 말대답은 안 하고 “자리옷은 어쨌느냐?”하고 물으니 “저기 있습니다.
”하고 초운이가 윗간 구석을 가리켰다. “옷을 바구어 입어라.”“주무실랍니
까? 그럼 먼저 누우십시오.” 초운이가 윗간에 내려가서 자리옷을 바꾸어 입는
동안 순경사는 눕지 않고 앉아 있다가 초운이가 다시 아랫간에 와서 촛불을 물
리려고 할때에 순경사가 아직 그대로 놓아두고 앉으라고 명한뒤 초운이의 무릎
을 당겨 베고 누웠다.
32
초운이가 순경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지가 이번 사또 덕택에 ”하고 말
을 내다가 별안간 “사또란 칭호가 듣기 좋으세요?”하고 딴소리를 물어서 “그
건 무슨 소리냐?”하고 순경사가 되물었다. “제 맘에는 사또라고 부르는게 영
감마님이라고 부르는 것만 못 할 듯해요. 정다워 들리지 않을 것 같아요. 인제부
터 영감마님이라고 부를까요?” “영감에 마님까지 받치지 않으면 더 정답지요.
그럼 영감이라고만 부를 테니 꾸중 마세요.” “오냐, 남 듣는 데만 그렇게 홀하
게 부르지 마라.” “남 듣는 데는 사또라 부르지요.” “그래 내 덕에 무에 어
쨌단 말이냐?” “영감 덕택으로 올에는 모녀 남매 한데 모여서 설을 쇠게 되었
세요.” “말미를 얼마나 얻었기에 여기서 설까지 쇠게 되느냐?” “한 달 얻었
세요.” “많이 얻었구나.” “아주 특별한 일이에요. 말미 못 얻게 훼방놀던 행
수년이 용심이 나서 죽으려고 하겠지요.” “네 어미 병이 나아두 말미 기한을
말미 기한을 다 채우구 갈 테냐?” “그러먼요. 그 얻기 어려운 말미를 하루라
도 썩일 까닭있세요. 꼭 정월 초아흐렛날 여기서 떠날 작정인데요.” “내 덕으
루 알거든 설 떡국 먹을 때 내 생각이냐 해라.” “영감께서는 어디 가서 설을
쇠시겠세요?” “어디가서 쇨는지 나두 모른다.” “만일 황해도 내에서 설을
쇠시거든 지가 흔떡 싸가지고 쫓아갈까요?” “그럼 작히나 고마울까.” “설에
쫓아갈 것 없이 이번에 아주 영감 가실데를 앞질러 가서 등대하고 있을까요?”
“그러면 더욱 고맙지.” “영감께서 바깥 물론만 끄리시지 않는다면 지가 가겠
세요.” “성가신 물의만 없으면 내가 너를 꿰어차구라두 가겠다.” “여기서 며
칠 동안 묵으시면 공사가 낭팹니까?” “며칠 동안 더 묵는다구 낭패될 건 없지
만 일없이 묵울 까닭이 있느냐.” “낭패만 없으시거든 묵으세요. 단 며칠이라도
더 뫼시고 지냈으면 좋겠세요.” “글쎄, 어디 생각해 보자. 머릿속이 가려우니
좀 긁어다우.” “머리를 긁어 드릴께 여기서 묵으시도록 잘 생각하세요.” 초
운이가 순경사의 탕건을 벗기고 머리를 긁다가 “영감 머리에 신털이 많습니다.
”하고 호들갑스럽게 말하였다. “왜 신털을 보니까 정이 떨어지느냐?” “영감
을 언제 젊으신 양반으로 알았을세 말이지요.”“그럼 나를 늙은이로 보았단 말
이냐?” “늙은이는 아니시라도 사십은 넘으셨지요.” “머리속이 시원하니까
잠이 오는구나.” “그럼 자리에 가 누우세요.” 그 밤을 지내고 이튿날 식전에
순경사는 노독이 났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먼저 노문을 놓은 봉산
에는 풍한에 촉상되어서 수일 조리 후에 간다고 기별을 띄웠다. 봉산군수 이흠
례가 순경사의 기별을 받고 문후하기 겸 기병할 방침을 취품하려고 재령을 왔
다. 순경사는 병중이라 옹금하고 앉아서 봉산군수를 접견하였다. 이흠례가 마산
리에서 봉패한 원인을 말하는데, 도적을 업신여긴 것과 계책을 미리 정하지 않
은 것과 지리를 상세히 알지 못한 것과 군기가 해이한 것과 지휘와 호령이 한
사람에게서 나지 못한 것을 열거하고 이번에 순경사가 열읍 군병을 통솔하고 청
석골을 공격하면 일거에 소탕할 수 있으나 다만 청석골이 강원도 지경에서 멀지
않고 강원도에도 적굴이 있어 도적들이 강원도로 도주할 염려가 불무한즉 강원
도 순경사에게 통기하여 양도 접경을 방비하게 한 후 청석골 공격을 시작하는
것이 득책이라고 진술하였다. 순경사는 재령을 아직 떠나기 싫은 욕심에 이흠례
의 말을 유리한 말이라고 허여하고 본쉬와도 상의한다고 재령군수까지 불러내었
다. 순경사가 두 군수와 상의한 결과 7일 후인 20일까지 양도 접경을 방비하여
달라고 강원도 순경사에게 통첩을 보내고 서흥부사와 평산부사에게 각기 기병할
준비를 차리고 등대들 하라고, 금교찰방에게 적굴 동정을 상세히 염탐하라고, 또
풍천부사가 군사에 익다고 하므로 풍천서 기병하여 20일 이내에 재령으로 오라
고 각각 관자를 부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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