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1-1

3학년2반 | 2022.01.14 08:03:02 댓글: 0 조회: 618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2207
원제: 벽혈검(碧血劍) 제호: 금사검(金蛇劍) - 1992.11.15 발행
원작: 차량용(且良鏞;김용(金庸))

* 제 1 권 *

- 1 - 난세(亂世)

명나라 성조황제 영락 6년 8월 을미일(乙未日)에 중국 서남쪽에 자리잡고 있던 발니국(渤泥國) 국왕 마나약가나(痲[馬+邑부]葯加那)가 왕비와 황제, 제사들 및 문무 대신들을 이끌고 와서 용모리와 학머리, 대모, 무소 그리고 금은보화 등 여러 가지 보물을 조공하였다. 성조황제는 이들을 기쁘게 맞이하여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발니국은 지금도 파라주 북부의 파라내로, 문래라고도 하였으며 비록 중국 본토와는 만리나 떨어져 있지만 옛날부터 중국을 숭배해 오고 있었다. 송나라 태평 흥국 2년에는 사신들을 보내어 용머리와 상아, 단향목 등을 바쳤고, 그 후에도 조공은 끊이지 않았다.
마나약가나 국왕은 명나라의 문화와 정치, 그리고 풍부한 물자들을 보고 찬탄을 금할 수가 없었고, 명나라 황제의 후한 접대에 또한 몸들 바를 몰랐다.
그러나 그 해 11월, 그는 병이 들어 하루가 다르게 병색이 짙어져 가다 그만 죽고 말았다. 성조황제는 매우 애석해 하며 3일장을 지내고 남경 안 대문밖에 묻어 주었다. 또 세자 하왕을 발니국 국왕에 봉하고 금은, 그릇, 비단 등을 주어 귀국하도록 도와 주었다. 그 후부터 공희.가정.정덕 년간에는 모두 조공이 있었다. 중국 사람이 발니국에 관리로 갈 때는 나독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만력년에 발니국에서 내란이 일어났는데 <명사(明史) 발니전>에 이런 기록이 있다.
[왕이 죽었으나 후계자가 없었다. 문별이 서로 다투니 나라 안이 살생이 난무하였다. 그러던 중 마침내 여왕이 추대되었다. 여왕은 장주 사람으로, 장씨 성을 가졌고 미모와 학식이 뛰어났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측에서 내란을 꾀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있자 여왕은 사람을 보내어 그 집에 벌을 내렸다.
그러자 나독은 그만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 후 백성들이 그의 억울함을 증명하자 여왕은 곧 후회를 하고 소문을 낸 사람을 잡아다 교살시키고, 그 아들에게는 다시 벼슬을 주었다.]
장나독의 딸이 정신착란을 일으켜, 아버지가 내란을 꾀한다고 여왕에게 밀고한 것이 바로 이런 비극을 초래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반드시 다른 곡절이 있을 것 같으나 역사책에서는 더 이상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후 사람들은 그 이상은 아무도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복건성 장주 장씨들은 계속해서 발니국에서 나독이라는 벼슬을 지내니, 많은 권세도 누렸고 또한 그곳 사람들은 모두 그들을 준경했다.
발니국 나독 장씨 문중인 장신의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었다. 장신은 고국을 잊지 못하여 그 아들의 이름을 조당이라고 지었다. 장조당이 12세가 되던 해였다. 복건성에서 있었던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어떤 사람이 유학과 하던 사업을 동시에 버리고 고향 사람을 따라 발니국으로 왔다. 이 사람은 장사를 잘하지 못해서 이익은 고사하고 본전마저 축을 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고향에 돌아갈 면목이 없어서 이곳에 머무르게 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그를 장신에게 추천하여 생계를 꾸려가게 하였다. 장신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는 크게 기뻐하며 자기 아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도록 초빙하였다.
장조당은 학문의 시작은 비록 늦었지만, 원래가 총명하여 10년안에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모두 습득하였다. 그 스승은 장신에게 아들을 중국 본토에 보내어 시험을 응시하도록 권했다. 만약 합격한다면 수재나 거인이 되는 것은 물론, 중국에서도 유명하게 될 터이니 발니국에 돌아와도 큰 영광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장신도 또한 아들이 다른 나라의 풍물도 보고 배우기를 원해서 스승의 요청에 따르기로 했다. 장신은 아들 장조당에게 여비와 짐을 챙겨주고 스승과 하인인 장강과 함께 가서 과거 시험에 응시하도록 명하였다.
그때가 바로 승전 6년, 반역자 위중현은 토벌하였으나, 계조 7년부터 나라에 화가 일어나 선량한 백성이 살륙되는데다, 홍수와 한발이 극심하여 도둑들이 난무하던 때였다. 장조당 등 3명은 하문으로 들어가는 배 위에서 장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홀연히 한 무리의 도적때가 배 위로 몰려 올라와 당장에 그의 스승을 죽여 버렸다. 장조당은 다행히도 물 속으로 뛰어 들어 목숨만은 구할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인근 마을에 3일 동안 숨어 있다 근처 4개 마을을 굶주린 사람들이 백성들을 모아 장주와 하문을 공격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때 장조당의 가슴에도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이 있어 위험과 불의를 남의 일처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우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문으로는 갈 수 없었다. 결국 하인과 의논한 끝에, 육로인 광주로 가기로 결정하고, 두 필의 말을 사서 타고는 광주로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다행히도 무사하게 남정, 평화를 거쳐 광동성에 도착하여 다시 매현.수구를 지나 순조로운 행진을 계속하였다. 장조당이 일찍이 들은 소문에 광동은 부자 마을이라고 들었는데, 가면서 보니 이상하게도 모두 굶주린 백성들뿐이고, 조그만 발니국만이 남녀노소 모두 안락하고 근심 없이 살고 있었다.
이 날 홍도장을 지나 험난한 산길을 돌아가노라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더욱 빨리 말을 몰아 어느 작은 읍에 도착하였다. 두 사람은 크게 기뻐하며 잠잘 곳을 찾았으나 이상하게도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 곳에 말을 매어 놓고 그들은 여관 주위를 살펴보면서 큰 소리로 불렀다.
[여보시오, 주인장!]
여관이 산밑에 있기 때문인지 메아리만 크게 울렸다.
다시 큰 소리로 불렀다.
[여보시오, 주인장!]
여관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 기척이 없었다. 그때 대답 대신 한바탕 바람이 불면서 사나운 짐승의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 왔다. 두 사람 모두 모골이 송연해졌다.
장조장은 칼을 빼어 들고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두 구의 시체만이 있을 뿐이었다. 시체엔 검은 피가 홍건히 괴어 있는데다 파리가 어지럽게 날고 있었다.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죽은지 여러달이 지난 것 같았다.
장조당이 여기저기 둘러보노라니, 도처에 궤짝이 어지러이 널려 있고, 문과 창은 덜어져 있었다. 마치 강도가 몰살시킨 것 같았다. 장강은 주인이 나오지 않자 두려움에 떨며 한 발짝 한 발짝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도련님, 저기 좀 보세요.]
장조당이 장강이 말을 따라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아득한 곳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우리, 저기 가서 하룻밤 묵자]
장조당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두 사람이 불빛을 따라가는데, 어쩐지 갈수록 으시시하고 길이 작고 좁아졌다.
[만약 저것이 도적의 소굴이라면 우리는 지금 스스로 죽으러 가는 길이 아니겠느냐?]
장강은 퍼뜩 놀랐다.
[그러면 가지 맙시다.]
[아니야, 몰래 가서 먼저 살펴보자.]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 말을 길옆의 나무에다 매어 놓고 조용조용히 불빛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초가집 두 채가 있었다. 장조당이 창문 틈으로 다가가 안을 엿보려고 하자 갑자기 개 한 마리가 크게 짖어 대었다.
그는 얼른 몸을 숨기며 칼을 빼어 들고 휘둘렀다. 개 역시 주춤주춤하면서 여전히 시끄럽게 짖어 대었다. 그러자 사립문을 열고 한 할머니가 손에 등불을 든 채 밖으로 나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면서 누구냐고 물었다. 장조당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지나가는 과객입니다. 잠잘 곳을 잃었으니 댁에서 하룻밤만 묵게 해주십시오.]
할머니는 의심스러운 듯 머뭇거리며 대꾸하였다.
[들어오세요.]
장조당이 집으로 들어가서 보니, 흙 침대 하나와 탁자와 의자가 살림살이의 전부였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노인은 무슨 병이 있는지 끊임없이 기침을 하고 있었다. 장조당은 장강에게 말을 끌고 오라고 명령했다. 장강은 얼마 전에 보았던 참상이 생각나서 선뜻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가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나, 같이 말을 끌고 오라고 나갔다. 할머니는 떡과 뜨거운 물을 가지고 와 장조당 앞에 놓았다.
장조당은 떡을 다 먹고 나서 그에게 물었다.
[앞에 있는 동네 사람들은 모두 다 죽었던데, 그게 누구의 짓입니까?] 할아버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관가의 병사들 짓이지요.]
장조당은 이 말에 크게 놀랐다.
[관병이요? 관병이 어떻게 저렇게 무자비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오? 그들의 대장은 법도 모른답니까?]
할아버지는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군요. 대장? 흥! 대장이란 자는 좋은 물건이 있으면 먼저 가지고 예쁜 여자들만 보면 닥치는 데로 데려 간답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어째서 고소를 하지 않습니까?]
[고소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고소한다면 십중팔구는 목숨부터 빼앗길 것이오.]
장조당은 더욱 의아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관리는 관리끼리 통하지 않소? 만약 당신이 고소를 한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관리 나으리께서 당신에게 곤장을 쳐서 감옥에 가둘 것이오. 그리고 뇌물을 바치지 않는다면, 아마 영영 나올 생각도 말아야 할 것이오.] 장조당은 머리를 갸우뚱하며 또 물었다.
[관청의 병사들이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그 할아버지는 이를 악물다시피 하며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는 쉬지 않고 기침을 했다. 할머니가 손짓으로 그를 불러 관가에 대해서 더 알려고 하면 아마 큰 재앙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장조당은 어쩌다 이와 같은 세태가 되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버지께서 항상 중국은 전통과 예의가 있는 나라로 왕도가 바르며, 길에 떨어진 물건은 줍지 않으며, 밤에는 문을 닫지 않고 인의를 중히 여긴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 오히려 발니국 오랑캐만도 못한 것 같으니...)
그는 한숨을 쉬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아직도 덜깬 몽롱한 상태인데 문득 문 밖에서 개가 크게 짖는 소리와 연이어 사람이 화를 내며 꾸짖는 소리 그리고 <쾅쾅쾅!!> 사납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한데 어울려 떠들썩했다. 할머니가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려고 하자, 할아버지가 손을 저어 그의 손을 멈추게 하고, 조용히 장조당에게 말을 건네었다.
[당신은 어서 몸을 숨기시오.]
장조당과 장강이 집 뒤로 피하자, 얼마 안 가 한바탕 소란스러움이 일더니 대문이 부서지고 거친 사람 소리가 들렸다.
[뭐 하느라고 문을 안 여는 거야?]
대답도 하기 전에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대꾸하였다.
[우리 늙은이들은 나이가 많아 어리석은데다 귀가 어두워 잘 듣지도 못합니다.]
그 사람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듣지 못했으면 당연히 맞아야지. 빨리 닭을 잡고 4명의 밥을 지어 놔!] 할아버지가 말했다.
[우리들도 배가 고파 죽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어찌 닭이나마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즉각 할아버지를 채찍으로 갈겨 땅에 쓰러뜨렸다.
그러자 한 사람이 말했다.
[왕형, 관두세. 오늘은 우리가 뛰어도 수확이 좋지 않아서 모두들 기분이 좋지 않으니 왕형도 그를 가지고 화를 낼 필요가 없어.] 왕형이란 자가 대꾸했다.
[이런 인간을 그냥 놔두라고? 자! 어서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하게 내놓으시지.]
할아버지가 흐느끼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이런 촌구석의 늙은이한테 무엇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한 번만 봐주십시오.]
이때였다. 갑자기 장조당의 말이 울기 시작했다. 그 패거리들은 깜짝 놀라서 문 밖에 나가 두 필의 말이 있는 것을 보고는, 말 주인이 분명히 집안에 있을 것이니 찾아내자고 하며 기세 등등하게 다시 집안으로 몰려들었다.
장조당도 놀라서 장강의 손을 이끈 채 뒷문으로 빠져나가 사뭇 달아났다.
두 사람은 발소리를 죽이며 산으로 도망쳤다.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 안심을 하고 보니 다행히도 장강이 은화 꾸러미를 그대로 짊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풀 더미 속에 있다가 날이 완전히 밝은 후에야 천천히 큰 길로 나왔다. 두 사람이 10여 리쯤 걸었을 때였다. 갑자기 갈라진 옆길에서 4명의 건달들 손에는 무거운 철퇴를 들고, 뒤의 2명은 말을 끌고 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 말은 바로 장조당의 것이었다.
장조당과 장강은 어찌할 바를 몰라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으나 이때는 이미 피하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다. 둘은 아무 일도 없는 척하고 계속 걸어갔다.
네 명 중 한 명이 그들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이봐, 친구들! 뭐하는 것들이야?]
장조당이 목소리를 들으니 바로 노인네들을 때리던 왕가라는 작자였다. 장강이 대답했다.
[우리들은 광주로 공부하러 가는 사람들입니다.]
왕가는 말고삐를 늦추고, 장강의 등에 있는 보따리를 풀라고 협박했다. 그리고는 황금과 은전 꾸러미가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뭐? 공부를 하러 간다고? 내가 보니 너희 두 놈 다 못쓰겠구나! 이 금과 은은 어디서 났느냐? 훔친 것은 아니겠지? 좋아, 지금 도적들을 잡고 있으니 우리 대장한테로 가자!]
그러자 장강이 애원했다.
[우리 도련님의 아버지께서는 외국의 높은 벼슬에 계시는 분으로. 고관대작들도 모두 어려워한답니다. 당신들의 대장한테 가도 소용없을 것이오.......] 그 중 나이가 든 한 사람이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살려 두면 오히려 후환이 두려우니 차라리 이 애송이들을 죽여 버리자고 말하고는 칼을 꺼내어 장강을 내리치려고 하였다. 장강이 놀라서 황급히 머리를 움츠리니 칼이 모자만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몸으로 건달을 막으며 재촉했다.
[도련님, 빨리 피하세요!]
장조당은 후다닥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건달은 또 칼을 들고 장강을 내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장강은 옆으로 살짝 몸을 피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달음을 쳤다. 네 명의 건달들은 칼을 휘두르며 뒤쫓았다.
장조당은 평소에 느긋한 편이었으나 마음이 급한 김이라서 마구 달리는데, 갑자기 앞에서 말 한 마리가 달려왔다. 그 건달들은 오히려 도적을 잡으라고 소리치며 장조당과 장강을 모함하였다. 앞에서는 말이 질주해 오고 뒤에서는 건달들이 뒤쫓아오니 정말 진퇴양난이었다.
마침내 말을 타고 달려온 사람한테 장조당과 장강은 모두 붙잡혔다. 그 사람은 몸집이 장대하고 목소리가 크며 얼굴에 붉은 기가 도는 약 40세 정도 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장조당의 옷 입은 행색을 보고는 그런 꼴로 어떻게 도적질을 하느냐며 껄껄 웃었다. 장강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살려 주십시오. 저놈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장강에게 다시 물었다.
[너희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장강이 대답했다.
[저분은 도련님인데, 광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그러자 건달 중 한 명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그 건달이 말을 탄 사람 앞에 버티어 섰다.
[노형, 당신 일이나 보시오. 우리 관청의 일은 우리가 맡을 테니.......] 말을 탄 사람이 다시 말했다.
[손을 놓고 말하게 하시오.]
그때 장조당이 나섰다.
[나는 일개 서생인데 개처럼 묶어 놓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자 건달이 윽박질렀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의 손이 장조당에게 날아들었다.
말을 탄 사람이 채찍을 휘둘러 그 건달의 팔목을 휘어 감고는 나꿔채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장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도련님은 광주로 시험을 보러 가는 수재이신데, 우연히 네 명의 건달들을 만났습니다. 저들은 우리의 은화를 모두 빼앗고는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말을 탄 사람이 건달들에게 물었다.
[이 말이 사실이냐?]
건달들은 대답이 없었다. 그 때 갑자기 말을 탄 사람 뒤에 서 있던 왕가가 칼을 번쩍 들어 그의 머리를 내리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이미 그걸 알아차리고는 얼른 오른쪽으로 몸을 구부려 피하면서 왕가의 무릎을 냅다 걷어찼다. 그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나머지 3명의 건달이 소리를 치며 철퇴와 칼을 휘두르면서 말을 탄 사람 주위로 몰려들었다.
장조당은 손에 든 무기도 없는 터라서 앞이 캄캄하였다. 그러나 그 말을 탄 사람은 두려워하지도 않고 용감무쌍하게 3명의 건달을 차례차례 무찔렀다. 그때 왕가가 다시 일어나서 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왔다. 말을 탄 사람이 소리를 버럭 지르자 왕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칼을 떨어뜨렸다. 말을 탄 사람이 잽싸게 주먹으로 그를 한 대 치자, 시커먼 코피가 주르르 흘렀다. 그러자 그 건달들은 더 이상 싸워 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말을 탄 사람은 혼자 껄껄 웃으면서 칼을 집어들었다.
장조당이 황급히 앞으로 나가 감사하다고 말하며 그의 이름을 물었다.
[여기서는 말하기가 곤란하니, 말을 타고 가면서 얘기합시다.] 장강은 빼앗겼던 보따리를 집어들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장조당이 먼저 이름을 밝혔다.
[아, 장공이시군요. 저는 성은 양이고, 이름은 붕거입니다. 강호 사람들은 미금윤씨라고 부릅니다.]
장조당이 감사해 했다.
[오늘 만약 우리를 구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린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입니다.]
양붕거가 대답했다.
[지금은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공께서도 일찍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광주로 꼭 가시겠다면 함께 동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장조당은 기꺼이 좋다고 하였다. 요 며칠 동안 항상 불안하였는데, 이제 이런 믿음직한 무사와 동행하게 되니 정말 안심이 되었다.
세 사람은 20여 리나 지나왔는데 배를 채울 만한 주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마침 양붕거가 마른 음식을 가진 것이 있어서 두 사람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장강이 목이라도 축이려고 마른 나뭇잎에 물을 뜨려는 찰나였다.
[도적들이 저기 있다!]
이런 소리가 들려 왔던 것이다. 아까 도망갔던 그 건달들이 1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었다. 양붕거는 얼른 일어섰다.
[빨리 말을 타시오!]
양붕거는 두 사람을 먼저 가게하고 뒤에서 보호하면서 왔다.
[저 놈들을 잡아라!]
군사들은 소리를 치며 급히 추격해 왔다.
양붕거가 뒤를 돌아보니, 군사들이 화살을 쏘며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다.
앞에는 작은 샛길이 갈라져 있었다.
[샛길로 빠지시오!]
장조당은 얼른 말고삐를 돌려 샛길로 빠지고 장강과 양붕거는 그 뒤를 따라갔다. 건달들도 조금도 늦추지 않고 추격해 왔다.
양붕거는 건달들이 가까이 왔을 때 갑자기 말고삐를 돌려 크게 소리를 지르며 칼을 휘둘렀다. 건달들은 놀라서 물러섰으나 나머지 건달들은 오히려 창과 칼을 휘두르며 바짝 덤볐다. 양붕거는 적의 숫자가 오히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고 힘을 다해 돌진했다. 말을 타고 돌진해 오는 건달 한 명을 단칼에 베어 버리니 나머지 건달들은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을 쳤다. 양붕거가 다시 말을 달려 쫓아가니, 건달들은 서로 도망가기에 바빴다. 건달들은 양붕거의 용맹에 다시 한 번 감탄하고 두려워하였다.
양붕거는 곧 장조당과 장강에게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길이 점점 좁아지고 구불구불한데다 건달들이 고함소리가 저 만큼에서 다시 들렸다. 그런데 사람의 그림자는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이 급히 말을 달려 앞으로 나가니 갑자기 3개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양붕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리시오!]
세 사람이 숲속에 말을 매어 두고 몸을 숨겼다. 얼마 되지 않아 건달들이 뒤쫓아왔다. 그 건달들은 잠시 지체하더니 일행들을 데리고 한 갈림길로 들어섰다.
양붕거가 속삭였다.
[그들은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니, 빨리 떠납시다.] 세 사람은 다른 갈림길로 급히 말을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서였다. 과연 그들의 추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양붕거가 당황하여 앞을 쳐다보니 기와집이 3채 있었다. 집 앞에서 어떤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그는 말에서 내려 농부에게 다가가 간청했다.
[여보시오, 뒤에서 건달들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소. 제발 우리를 좀 숨겨 주시오.]
그 농부는 단지 밭만 갈 뿐 양붕거의 말을 못들은 척했다.
장조당이 말에서 내려 다시 그에게 간청을 했다. 그제서야 농부는 머리를 들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앞의 숲속에서 소발굽소리가 들리며, 목동이 소등에 타고 나타났다. 그 목동은 약 10살 정도 되어 보였고, 머리에는 붉은 끈을 매고 있었다.
얼굴은 검었으며, 큰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농부가 목동에게 일렀다.
[너는 말을 몰고 산에 가서 풀을 먹이다가 날이 어두워지거든 돌아오너라.] 목동은 장조당과 두 사람을 힐끗 보더니 금방 세 필의 말을 이끌고 자리를 떴다.
양붕거는 농부의 의도를 잘 몰랐으나 그의 말과 행동이 매우 믿음직스러워 목동이 말을 몰고 가는 것도 막지 않았다. 이때 추격하는 건달들의 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려 왔다. 장조당은 당황해서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하죠?]
그 농부가 나직하게 한마디했다.
[나를 따라오시오.]
그리고 세 명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대청에는 나무로 만든 상과 의자가 있었고 벽에는 액자만 하나 걸려 있었으나 매우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평범한 농가 같지가 않았다. 농부는 세 사람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천막을 들추자 창문이 하나 나타났다. 창문을 뒤로 밀고 큰 돌을 옮기자 거기에는 구멍이 있었다.
[이리로 들어가시오.]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니 훤히 넓은 동굴이었다. 이 집은 원래 산 바로 옆에 있는 집이라서 처음에 집을 지울 때 동굴을 막지 않고 위험할 때 몸을 숨길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세 사람을 숨긴 뒤 농부는 다시 나가서 밭을 갈았다. 머지않아 건달들이 일행을 이끌고 왔다. 왕가가 농부에게 물었다.
[이봐! 말을 탄 세 사람이 여기를 지나가지 않았는가?] 농부는 옆으로 난 작은 샛길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벌써 지나갔습니다.]
건달들이 7,8리를 달려가도 장조당 일행이 보이지 않자 다시 돌아와 그에게 물었다. 농부가 거짓말로 얼버무리자 건달 한 명이 화를 내었다.
[바보 같은 자식하고 무슨 얘기를 해? 가자!]
그리고는 휭하니 다른 길로 가 버렸다.
장조당과 양붕거, 그리고 장강 세 사람은 동굴 속에 숨어서 말굽소리가 사라져 가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 농부가 문을 열어 주지 않자 마음이 조급해져서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밀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세 사람은 땅에 주저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으나 돌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빛이 들어왔다. 농부는 촛불을 들고 낯선 두 명과 서 있었다.
[나와서 식사하십시오.]
양붕거가 나오고 뒤따라서 두 사람도 모두 대청으로 나왔다. 잘 차린 음식은 아니었으나 세 사람 모두 배불리 잘 먹었다. 상을 돌리고 나서 장조당과 양붕거는 농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의 이름을 물었다. 얼굴이 마르고 50세 정도 되어 보이는 그 농부는 겸손해 했다.
[소인의 성은 응가이고 이쪽은 주가와 예가입니다.]
장조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럼 한 집안 사람이군요.]
그 농부도 장조당의 말에 대꾸를 했다.
[우리들은 모두 좋은 친구고 말굽쇼.]
장조당이 보기에 그는 매우 위엄이 있고, 단아하여 범상한 농부 같지가 않았다. 주가와 예가는 특히 용맹스러워 보이고 응가는 고상하여 모두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같았다. 장조당이 시험해 보기 위해 몇 마디 물어 보았더니 응가는 막힘이 없이 줄줄 대답했다.
응가가 왜 건달들이 쫓아왔는지 원인을 묻자 장조당이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그가 본 참상과 건달들이 백성을 착취하는 것과 관리들의 부패를 모두 이야기하였다. 예가는 화가 나는 듯 탁자를 치고 눈썹을 찌푸려 가면서 욕을 했다. 응가가 눈짓을 하자 그는 곧 그만두었다.
장조당은 또 양붕거가 어떻게 건달들을 무찔렀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양붕거는 신이 나서 열거하였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작년에 강서에서 나 혼자서 번양의 나쁜 놈들을 3명이나 무찔렀지요.]
그러면서 그때의 정세가 얼마나 위급했는지, 자기가 얼마나 영웅인지, 또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이 말을 듣고 늦게 와 있던 어린 목동이 좋아하며 웃었다.
양붕거는 한참을 떠들더니 곧 지쳤는지 하품을 하였다. 좀 뚱뚱한 편인 주가가 한마디했다.
[늦었습니다. 그만 잡시다.]
목동 아이는 문을 잠그러 나갔다. 마침 큰 돌이 문 뒤에 놓여 있었는데, 그것을 본 양붕거가 중얼거렸다.
[주가는 힘이 좋아 보이는데, 이런 400근도 못 되는 돌도 못 들어올리다니 힘을 쓸 줄 모르는구나.......]
응가가 이 말을 듣고 대꾸했다.
[산 속에는 호랑이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집안에까지 들어올 때도 있지요.
그래서 큰 돌로 문을 받쳐 놓아야 합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광풍이 몰아치고 문이 흔들리며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포효와 함께 문 밖에서 소와 말이 놀라 날뛰는 소리가 들렸다. 예가가 일어나서 쇠도끼를 들고 나오면서 의기양양하게 중얼거렸다.
[오늘은 정말이지 그 놈을 놓쳐서는 안돼! 승지야, 너도 가자.] 어린 목동은 기쁜 듯이 대답하고는 안으로 뛰어들어가 가죽 주머니와 철창을 가지고 나왔다. 주가가 큰 돌을 치우자, 바람이 몰아치더니 나무가 흔들리고 촛불마저 꺼져 버렸다. 예가와 목동 아이가 먼저 대문 밖으로 나갔다.
양붕거가 칼을 쥐고 일어섰다.
[나도 가겠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왼쪽에서 붙잡는데, 그 힘이 어찌나 센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암흑 속에서 주가가 전하였다.
[나가지 마십시오.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도 양붕거가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하자 그는 더 꽉 잡고 끝내 놔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양붕거가 주저앉으니 그는 그제서야 손을 놓았다.
문 밖에서는 예가의 고함소리,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 창이 부딪치는 소리, 바람소리,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들려 왔고 간간이 목동의 소리도 들렸는데 호랑이 한 마리와 두 사람이 뒤엉켜 싸우는 것을 보는 듯했다. 잠시 후에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 호랑이가 창을 맞고 도망가고 두 사람이 뒤쫓아가는 것 같았다. 횃불을 들고 나가 보니 집 주위가 모두 나뭇잎이었다. 장강은 놀라 얼굴이 하얗게 되었고 장조당과 양붕거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참 지나자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이어 어린 목동이 집으로 들어왔다.
[호랑이 고기 좀 먹읍시다.]
장조당은 아직도 창끝에 묻어 있는 붉은 피를 보았다.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리 용감한지, 그리고 자기의 힘이 얼마나 미약한지를 생각하였다.
이때 예가가 성큼성큼 들어서는데 왼손에는 쇠도끼를 들고 오른손에는 축 늘어진 호랑이가 들려 있었다.
예가가 엄한 얼굴로 목동에게 말했다.
[승지야, 아까 네가 잘못한 것이 있는데 무엇인지 아느냐?] 목동은 머리를 끄덕였다.
[예, 정면으로 동물에게 무기를 겨누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제서야 예가의 얼굴이 밝아지며 몇 마디 칭찬도 하였다.
[네가 동물의 머리를 겨냥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단지 힘이 좀 부족하였으니 네가 크게 되면 팔의 힘을 더 기르도록 해라.]
[다음부터는 명심하겠습니다.]
목동은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호랑이를 뒤꼍으로 끌고 갔다. 양붕거는 두 사람이 쉽게 호랑이를 잡은 것을 보고 걱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자기는 도적들을 만나 멍청하게 싸우다가 도망쳐 숨기까지 했는데 이 사람들은 더 잘 싸울 것이니, 자기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장조당은 오히려 기뻐하며 목동 아이가 용감하다고 칭찬까지 해주었다. 그리고
[애야, 네 이름이 뭐지? 네 이름이 승지지, 그렇지?] 그 목동은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그날 밤에 장조당과 양붕거, 그리고 장강은 한 방에서 잤다. 장강은 눕자마자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러나 장조당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문득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그 목동아이였다.
장조당이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글 내용이 전술에 관한 것이었다. 호기심이 일어나 옷을 입고 가만히 대청으로 나갔다. 탁자에 불을 밝히고 목동 아이가 바르게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응가가 옆에 앉아서 해석을 도와주고 있었다.
장조당이 가까이 가서 보니 탁자 위에 몇 권의 책이 있었다. 집어들고 보니 제목이 <기효신서>였다. 그것은 척계광 장군이 지은 병법서였다. 척계광 장군의 이름은 장조당이 발니국에 있을 때 이미 듣고 있었다. 왜구를 격파한 명장으로, 무기를 잘 다루며 용감하다고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다.
장조당이 응가에게 물었다.
[당신은 결코 평범한 사람 같지가 않은데, 왜 은거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응가가 대꾸했다.
[우리들은 평범한 백성이오. 씨를 뿌리고 밭을 갈며 글을 읽는 것이 바로 보통 사람 아니겠소. 공자께서는 무엇을 이상히 여기시오? 설마 뱌슬아치의 자제들만이 글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장조당은 그만 깊이 감복하였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그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장조당은 깊이 잠이 들어 있다가 갑자기 양붕거가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니 그가 낮은 목소리로 귀띔을 했다.
[여기가 바로 도둑 소굴이오. 빨리 도망갑시다.]
장조당이 놀라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양붕거가 촛불을 밝히고 나무 상자 옆으로 가서 뚜껑을 열었다.
[여기를 보시오.]
장조당이 보니 상자에 금은보화가 가득하였다. 그는 그만 너무도 놀라서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양붕거가 촛불을 그의 손에 쥐어 주고 나무상자를 들어올리니 아래에는 또 하나의 상자가 있는데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여기는 이상한 기운이 있습니다.]
장조당이 황급히 되물었다.
[무슨 기운 말이오?]
양붕거가 말했다.
[혈성 기운이오.]
장조당은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양붕거가 자물쇠를 비틀어 떼어 내고 살살 뚜껑을 열고 촛불로 그 안을 비추는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자 안에는 둥근 모양의 것이 2개 있었는데 하나는 아주 오래되어 혈흔이 변색해 이미 검은 색을 띠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새것이었다. 2개는 모두 석회와 약료를 사용해서 만든 것인데, 하나는 완전히 얼굴 모양을 갖추고 있었으나 이미 많이 부패해 있었다. 양붕거는 이미 강호에 오래 살았는데도 이렇게 손발이 떨릴 만큼 놀란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장조당은 말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양붕거는 조용히 상자를 닫아 원래대로 해 놓고 속삭였다.
[빨리 갑시다.]
그들은 장강을 깨워 대청으로 나왔다. 세 사람이 살금살금 문 옆으로 가서는 양붕거가 큰 돌을 치우려고 있는 힘을 다해 밀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겨우 조금 밀어내었을 때였다. 갑자기 주위가 밝아져서 돌아보니 주가가 등불을 들고 나왔다.
양붕거가 칼을 꺼내 들고 방어하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다. 주가는 영문을 모르는 듯 그들에게 물었다.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러면서 큰 돌을 옆으로 치우고 문까지 열어 주었다. 양붕거의 장조당은 그저 고맙다는 말 한마디만 하고 문을 나와 동쪽으로 급히 말을 달렸다.
10여 리쯤 달려 위험한 곳을 빠져나와 겨우 한숨을 돌렸을 때 였다. 갑자기 뒤에서 말굽 소리가 들리더니, 어떤 사람이 근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멈추시오, 멈추시오!]
그러나 세 사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그러나 곧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창을 들이대었다. 양붕거의 말이 놀라 요동을 치며 멈췄다. 양붕거가 칼을 휘두르며 방어하자 그 사람은 갑자기 높이 뛰어올라 뒤에서 양붕거의 팔을 비틀어 꼼짝 못하게 내리눌렀다. 그러더니 말에서 내리라고 호통을 치고는 칼을 빼앗은 다음 그를 땅에서 팽개쳤다.
언뜻 비치는 달빛 사이로 그 사람을 보니 바로 주가였다. 그 사람은 냉랭하게 한마디로 말했다.
[돌아가자!]
그러고는 먼저 말을 타고 앞장서 갔다. 세 사람은 영문을 모르는 채 그저 그를 뒤따라갔다. 양붕거 역시 공연히 반항하거나 도망치는 것은 이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순순히 말에 올라탔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대청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고 그 목동과 나머지 세 사람이 모여 앉아 있었는데 분위기가 자못 심상치 않았다.
양붕거가 스스로 생각함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단단히 마음먹고 소리를 높여 말했다.
[나 양붕거는 너희들 손에 잡혔으니 죽어도 할 말이 없다.] 주가가 대꾸했다.
[응형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응가는 묵묵한 채 말이 없었다. 예가가 대신 입을 열었다.
[장조당과 장강은 놓아주고 양붕거만 죽여 버립시다.] 그러자 응가가 입을 떼었다.
[양가는 단지 저 두 사람을 보호하는 사람일뿐인데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내가 보기에 용기가 있어 큰 일을 할 사람 같으니 목숨은 살려 주자. 예가야 차라리 처 두 사람을 없애 버려라.]
예가가 일어서자 양붕거의 안색이 참담하게 변했다. 양붕거가 살려 달라고 대신 간절하게 호소하자 보다 못한 목동 아이가 나섰다.
[응숙부님, 제가 보기에도 너무 가엾어 보입니다. 저들을 살려 주세요.] 응가와 다른 사람들이 잠시 의논하더니 양붕거에게 말했다.
[그러면 네가 그렇게 애걸을 하니 살려 주겠다. 그러나 오늘 밤에 본 일은 결코 남에게 얘기해서는 안된다. 알겠느냐?]
양붕거가 기뻐하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오늘 밤에 본 일은 절대로 비밀로 하겠습니다. 만약 맹세를 어길 때는 죽음을 당해도 할 말이 없겠습니다.]
응가도 흔쾌히 대꾸했다.
[좋다. 우리도 네가 약속을 지킬 것을 믿겠다. 가 봐라.] 양붕거는 절을 하고 뒤돌아 섰다. 그러자 예가가 벌떡 일어나 말을 붙였다.
[그냥 가시려는 겁니까?]
양붕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는 씽긋 웃었다.
[아! 칼을 좀 빌려주십시오 .]
주가가 탁자 위에 예리한 칼을 내려놓았다. 양붕거는 칼을 들고 몇 발자국 가다가 왼손으로 탁자를 짚으며 단칼에 손가락 세 개를 베어 버렸다. 그리고 웃으며 돌아섰다.
[이 일은 전부 내가 책임질 일이지 장조당과 장강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의 손을 보고 깜짝 놀라며 또한 그의 기개에 감탄하였다. 예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오늘 밤 일은 이것으로 모두 끝내자.]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가 약과 흰 천을 가지고 나와 상처를 싸매어 주었다.
양붕거는 더이상 머무르고 싶지가 않아서 장조당에게 그만 떠나자고 말했다. 장조당은 양붕거의 안색이 너무도 창백하여 잠시 쉬었다가 가자고 말하고 싶었으나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응가가 입을 열었다.
[장공자께서 만리 밖에서부터 와서 외국으로 돌아가셔야 하는데 지금 중국 땅에는 흉악한 무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양붕거와 같이 가시니 다행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그는 보따리에 싼 물건을 장조당에게 내밀었다.
장조당이 받아서 풀어 보니, 대나무로 된 판에 산종(山宗)이라는 두 글자가 찍혀 있고, 뒤쪽에는 꽃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무엇에 쓰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응가가 설명하였다.
[지금같이 천하가 어지러운 때에 당신같이 약한 서생이 외국에 나와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오 그러니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십시오. 만약 길을 가다가 위급한 때를 만나면 이 패를 보이십시오. 아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 아니 10년 혹은 20년이 지나 중국 땅이 다시 태평해지면 그때 다시 한 번 오십시오! 어지러운 때는 화를 당하기가 쉽습니다요.] 장조당이 다시 죽패를 보니 정말로 신기한 비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길한 물건인 것 같아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장강에게 주머니에 넣으라고 넘겨주었다. 세 사람은 인사를 하고 말에 올라 천천히 길을 떠났다. 마침 주가와 한바탕 싸웠던 곳에 오니 칼이 찬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양붕거는 그것을 주워 들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너무 잘난 체를 했어. 주가에 비하면 쓸모도 없는 것이....) 다음날, 그들은 어느 작은 동네에 도착했다. 장조당은 주막을 찾아서 양붕거를 하루종일 자도록 했다. 그리고 날이 밝자 다시 길을 재촉하여 20여 리쯤 지나왔을 때였다. 갑자기 말굽 소리가 들리며 그 중 한 마리가 달려와서는 그들의 옆을 지나치며 세 사람을 쳐다보더니 다시 먼지를 일으키고는 달려갔다.
5리 쯤 갔을 때였다. 또 뒤에서 말굽소리가 들리며 그 말이 쫓아왔다. 이번에는 양붕거와 장조당이 그를 눈여겨 보았는데 그는 푸른 두건을 쓰고 있었고, 양미간이 아주 용맹스러워 보였다.그 사람 역시 세 사람을 지나쳐 또 앞으로 질주해 갔다.
장조당이 입을 열었다.
[저 세 사람 참 이상한 사람이네. 왜 왔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러지?] 양붕거가 대꾸했다.
[장조당은 기회가 오면 혼자 도망가 목숨을 구하시오. 그리고 나를 기다리지 마시오.]
장조당이 놀라서 물었다.
[왜요? 또 도적들입니까?]
양붕거가 심상찮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얼마 안 가서 반드시 무슨 일이 터질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뒤로 후퇴할 수도 없소. 단지 앞으로 돌진해야 합니다.]
세 사람은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었지만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과연 얼마 안 가서 함성 소리가 들리더니, 공중에서 화살이 날아와 앞길을 가로막았다.
양붕거가 앞으로 나가 인사를 하였다.
[나는 무회도장의 양붕거올시다. 이 사람은 외국에서 온 장조당이라는 분으로, 글을 읽는 선비입니다. 여러분께서 양해하시고 길을 비켜 주십시오.] 그러자 그 중 한 사람이 손을 휘저으며 껄껄 웃었다.
[우리는 여비가 모자란다. 그래서 은화 백 냥만 빌리려고 한다!] 그의 말은 절강성 남쪽의 말씨라서 양붕거와 장조당은 서로 멍하니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말을 타고 달려와 탐색을 했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은화 백 냥을 빌리려고 한다. 못 알아 듣겠느냐?]
양붕거는 그들이 이렇게 무례하게 나오자 화가 치솟았다.
[은화를 빌려 달라고? 너희가 언제 돈을 맡겼느냐?]
양붕거가 소리치자 그 사람이 갑자기 등뒤의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그 중 3개를 먼저 공중으로 쏘고, 연이어 또 3개를 쏘아 맞추니, 6개의 화살이 모두 조각조각이 나서 땅에 떨어졌다.
양붕거가 이것을 신기한 듯이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왼쪽 팔에 작은칼이 하나 날아와 박혔다. 양붕거가 고통을 참으며 그 칼을 빼어 냈다. 그 사이에 그 사람들은 장강의 주위를 돌면서 칼을 휘두르고 위협하며 등에 짊어진 보따릴 떼어 갔다.
장강은 무서움도 없이 달려들었으나 그들은 이미 멀리 도망가고 없었다.
양붕거는 힘이 빠져 더이상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장강이 머뭇거리며 다가섰다.
[우리 여비를 모두 빼앗겼으니 어떻게 집에 돌아갑니까?] 양붕거가 대답했다.
[네 목숨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다. 가면서 방법을 생각해 보자.] 세 사람은 모두 힘이 빠져서 터덜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얼마 가지 않아서였다. 또다시 말발굽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그 세 사람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양붕거와 장조당은 한숨을 쉬었다.
[돈도 다 빼앗아 갔는데 설마 목숨까지 빼앗겠는가?] 그 세 사람은 앞으로 달려와 말을 멈추고는 일제히 말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우리들이 몰라보고 경솔한 짓을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러면서 보따리를 장강에게 돌려주었다. 장강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주인을 쳐다보았다. 장조당이 머리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보따리를 받아들였다.
[방금 여러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분은 양무인이시고, 한 분은 장공자라던데, 정말입니까?]
장조당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두 사람의 이름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저는 황가고 이 두 사람은 친형제로서 유가입니다. 장공자께서는 일찍 그 죽패를 보여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정말 무례했습니다.] 장조당은 이 말을 듣고 그제서야 그 죽패의 힘이 얼마나 큰 지를 알게 되었다. 그 황가는 양붕거와 장조당에게 성봉장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나 장조당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들은 광주로 빨리 가야 합니다. 성봉장으로는 갈 수가 없습니다.] 황가는 얼굴에 노기를 띠었다.
[3일만 지나면 8월 16일이라서, 우리는 천리나 떨어진 월동으로 가야 합니다. 당신들은 여기까지 와서 어째서 산으로 가지 않겠다고 합니까?] 산에 가서는 무엇을 하며, 8월 16일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장조당과 양붕거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직접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장조당이 둘러대었다.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즉시 돌아가야 합니다.]
황가가 파르르하니 화를 내었다.
[산에 오르는 것은 이틀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산종>의 동지가 되었습니까?] 장조당은 산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껏 알 수가 없었다. 양붕거만은 이런 일을 많이 겪어 본 사람이었던지 정세를 알아차렸다. 만약 성봉장에 가지 않는다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그들의 안색과 말투에서 읽었던 것이다.
[세 분께서 그렇게 간곡하게 말씀하시니, 나와 장공자도 산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장조당을 보고 괜찮다는 표시를 해 보였다.
그제서야 황가가 안색을 바꾸었다.
[그래야죠. 저는 정말 가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여섯 사람이 같이 가면서 여러 번 음식점에 들렀다. 그때마다 황가가 나서서 몇 마디 말만 하면 돈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성스런 대접을 했다.
이틀이 지나 성봉장 근처에 도착했다. 그 근처는 성봉장으로 가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는데 행색이 모두 무인들 같았다. 황가와 유씨 형제는 이 사람들과 거의 안면이 있는 듯 서로 인사했다.
장조당과 양붕거는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그들의 대화를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말은 남쪽과 북쪽이 한데 섞여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장조당과 양붕거는 놀랍기도 하고 또 한편 걱정도 되었다.
이날 밤에 장조당 일행은 성봉당 산중턱에 있는 주막에서 쉬면서 다음 날 산에 오를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서 외쳤다.
[손상공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서 몰려 나갔다. 양붕거가 장조당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두고 봅시다.]
주막을 나간 사람들은 손을 앞으로 모으고 숙연하게 서 있었다. 잠시 후에 산의 서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발꿈치를 들고 서로 쳐다보려고 하였다.40세 정도된 서생이 말을 타고 천천히 오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길에 마중나와 서 있는 것을 보고 말을 재촉하여 달려왔다.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앞으로 나가 말고삐를 받아들였다.
그 서생은 길을 건너와 사람들과 인사를 하였다. 그는 장조당 앞으로 와서 그가 서생의 모습인 것을 보고 약간 놀라며 악수를 청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장조당이 대답했다.
[저는 장가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손가이고 이름은 중수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손중수는 웃으며 그를 인도해 주막으로 들어갔다.
저녁 식사 후에 양붕거가 목소리를 낮추어 장조당에게 물었다.
[저 손상공은 매우 권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공자, 당신이 그에게 가서 우리를 놓아 달라고 얘기 좀 해보십시오. 서생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장조당이 생각하기에도 그게 좋을 것 같아서 손중수의 문 앞에 가서 기침을 몇 번하고 문을 열었다. 그는 시문을 암송하고 있다가 장조당이 들어가자 고개를 돌렸다.
손중수가 나오면서 입을 떼었다.
[마침 심심해하던 참이었는데, 잘 오셨습니다.]
장조당이 절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탁자 위에 여러 권의 책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요동(遼東)>, <영원(寧遠)>, <신(臣)>, <황상(皇上)> 등의 책이었다. 장조당은 한 편 놀랍기도 하고 한편 감탄도 되었다.
손중수가 장조당의 집안 내력을 물었다. 그는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다 듣고 나서 손중수가 말하였다.
[장형은 이번에는 기회가 좋지 않군요. 중국의 조정은 지금 매우 어지러워 언제 평정이 될지 모릅니다. 제가 보기에 장형은 잠시 발니국으로 돌아갔다가 평온해지면 다시 와서 과거를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조당은 지금까지 자기가 도적들을 피해 다닌 이야기, 양붕거가 구해 준 이야기, 그리고 죽패를 얻게 된 일들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러나 상자 안에 사람의 머리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손중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내일 저와 함께 산으로 올라갑시다.
아마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보고들은 바를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장형은 크게 해를 입을 것입니다.]
장조당은 감사하다고 말하고 더이상은 묻지 않았다.
손중수는 장조당으로부터 발니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탄식을 하였다.
[언제 우리 중국의 백성들도 발니국과 같이 편안하게 농사짓고 근심 없이 배불리 먹으며 태평성대를 누리겠는가.]
두 사람은 2경이 되어서야 이야기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양붕거는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손중수가 한 말을 전해 듣고는 겨우 마음을 놓았다.
다음 날은 마침 중추절이라서 장조당, 양붕거, 장강은 사람들을 따라 일찍 산으로 올라갔다. 정오쯤 되어 산 중턱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계속해서 올라갔다. 어느 한 곁에서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데, 경비가 엄하고 철저하게 조사하였다. 장조당 일행을 조사할 때 손중수가 머리를 끄덕이자 그들을 그냥 통과시켰다. 장조당이 중얼거렸다.
[어젯 밤에 그와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오늘 죽었을지 살았을지는 상상도 못 할 일이야.]
저녁 때가 다 되어서 산꼭대기에 올라가니 수백 명의 남자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중간에 체격이 건장한 사람이 우두머리 같아 보였다. 그 사람은 손중수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빨리 걸어가 영접하고 손을 잡아 집안으로 이끌어 갔다. 산꼭대기에는 집이 10여 채의 집이 있었는데, 제일 큰 것은 크기가 사당만 했다. 이 집들은 평범한 모양이었고, 방어 진지 같은 것도 없어, 도적들의 집단 같지는 않았다. 양붕거는 어떻게 이렇게 높은 산 위에 이런 큰 성채 같은 집을 지을 수 있었는지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더욱 이상한 것은, 이 사람들은 만리 밖에서부터 왔는데도 사람마다 모두 인정이 넘치고 친숙해 보였으며, 때로는 오히려 서로 비분강개하는 것이었다.
장조당 일행은 작은 방에 안내되어 들어갔다. 잠시 후에 밥과 반찬이 들어왔는데 모두 소찬이었으나 20여 개의 만두가 있었다. 그날 밤에 장조당과 양붕거는 몰래 숙의하였는데,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의심스럽다는 것, 손중수가 말한 천하의 기괴한 것이 무엇인지 밝히자는 것이었다.
다음 날, 장조당과 양붕거는 아침을 먹고 난 후 산 주변을 산책하다가 도처에서 남자들을 만났다. 어떤 사람은 머리에 상처가 여기저기 나 있었고, 어떤 사람은 손과 발이 잘려 있었다. 두 사람은 화를 당할까 두려워 곧장 방으로 돌아와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 날은 하루종일 소찬만 먹었다.
저녁 때가 되자 종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조금 있다가 어떤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손상공께서 두 분을 예식에 청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곧 그를 따라 일어섰다. 장강이 함께 가겠다고 했으나 그 사람이 앞을 막았다.
[너는 일찍 가서 자거라.]
장조당과 양붕거는 몇 채의 집을 지나 사당 앞에 도착했다. 장조당이 고개를 들어보니 <충렬사(忠烈祠)>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사당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마당이 있는데, 양쪽으로 무기를 올려놓는 선반이 있었다. 선반 위에는 창과 칼 도끼 등 18가지 무기가 전부 갖추어져 있었고, 모두가 잘 손질되어 눈이 부시도록 빛났다.
큰 단상 위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는데, 아마 3, 4천명은 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어떻게 이 산꼭대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가 하고 매우 놀랐다.
단상 중간에 흙으로 만든 신상(神床)이 하나 놓여 있었다. 문관 복장을 하고 있었으나 머리에는 금 투구를 쓰고 있었다. 몸에는 붉은 비단옷에 노란색 갑옷을 입고, 왼손에는 보검을, 오른손에는 깃발을 들고 있었다. 얼굴은 마른 편이었고 머리는 길게 늘어뜨려 묶었으며 몸은 약간 옆으로 향하고,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용맹스럽고 위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상의 양쪽으로는 위패가 놓여져 있었다. 단상의 상면은 모두 깃발, 갑옷과 투구, 무기, 말에 쓰이는 기구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깃발은 붉은색 혹은 파란색 또 황색에 붉은 선을 두른 것, 백색에 붉은 선을 두른 것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장조당의 마음은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비장한 기색이 넘쳐 보였다. 그 때 신상 옆에서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 일어나 횃불을 밝혀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제사를 시작한다!]
단상 위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장조당과 양붕거도 따라서 무릎을 꿇었다.
손중수가 앞으로 나와 제문을 낭송하기 시작했다. 양붕거는 제문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장조당은 들을 수록 놀라 왔다.
제문의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니, 청나라와 몽고인들을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라고 비난하는 내용과 지금의 숭정황제 또한 조금의 의리도 없다고 분개하면서 그를 <어리석고 도리도 모르는 교활한 자>, <제멋대로 하여 조상을 욕되게 한 자>, <만리장성을 훼손한 천하의 죄인>이라고 비난하는 것들이었다.
지금의 황제를 이렇게 통렬히 비난하는 것을 어찌 반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조당은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제문의 끝 부분에 가서는 더욱 흉악해져, 숭정황제의 조상들까지도 통렬히 비난하는 것이었다.
이 제문은 기개가 넘치고 조리가 있어 한마디 한마디가 장조당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비록 외국 사람이지만, 중국의 일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신상도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를 죽이고 청군을 격파하여 이름만 들어도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계요장군 원숭환이었던 것이다. 장조당이 다기 한 번 신상을 보니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백성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아파하는 것을 아파하고, 다른 민족이 침입하여 날뛰는 것을 비난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는 사이 제문의 낭송이 모두 끝났다. 장조당이 더욱 놀란 것은 원래 제문 맨 끝에는 재를 올리는 사람들이 맹세하는 말이 있었다.
[명나라 황제나 청나라 두목을 죽일 것이다. 이로써 천고의 원한을 씻어 우리 장군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한다.]
제문 낭송이 끝나자, 의식을 인도하던 사람이 외쳤다.
[우리 장군을 위해 절을 합시다.]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했다.
곧이어 소복 차림의 한 어린아이가 앞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절을 했다. 장조당과 양붕거는 너무 놀랐다. 왜냐하면 그 어린아이는 그 날 호랑이를 잡은 바로 그 목동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절을 마치고 모두 일어나서 눈물을 흘리며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손중수가 장조당에게 말했다.
[만약 이 제문에 부당한 점이 있다면, 현명하신 장형께서 좀 잡아 주십시오.]
장조당이 고개를 숙였다.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손중수는 사람을 시켜 먹과 붓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제가 당신을 산으로 초대한 것은 당신의 훌륭한 지식을 빌려 원장군의 공적을 찬양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손중수의 원래 생각은 장조당이 이국 사람이므로 원장군을 찬양하는 글을 써도 아무 상관이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조당에게 자꾸 권하였다. 장조당은 원숭환 장군을 제갈량(諸葛亮)과 악비에 비유하여 칭찬을 하였다. 청나라는 금나라의 후예로 모두 여진족이며, 청나라가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 국호를 <금>이라고 칭했다가 다시 고친 것이다. 악비와 원숭환은 모두 금에 대항하다가 간신들의 손에 죽음을 당했으니, 두 사람은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고 썼다.
그가 쓴 것을 손중수가 몇 마디 사람들에게 해석해 주자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기뻐하고 친숙하게 대해 주었다.
[장형, 문장 실력이 대단하군요. 원장군도 기뻐하실 겁니다.
장조당은 그에게 고맙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원래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의식을 인도하는 사람이 소리를 쳤다.
[모모영의 모 장군]
[모모읍의 모 대장]
직책과 이름을 부르면 한 사람씩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대답했다. 장조당은 그들의 이름을 들어보니 모두 원숭환 장군 밑에 있던 사람들로, 그가 죽고 난 후 군대를 떠나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오늘 원장군의 3주년 제삿날이라 그의 고향 광동성 부근의 성봉장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그들의 말하는 것을 들으니 어떤 중대한 일을 모의하는 것 같았다.
의식을 인도하는 사람이 <계진 부대장 주안국>이라고 소리치자 한 사람이 일어났는데, 바로 장조당과 양붕거를 숨겨 준 그 농부였다.
[원장군은 몸도 건강하고 무예도 뛰어났으며, 학식 또한 깊었습니다. 예, 주가와 나는 모두 그에게 무예를 배웠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다른 분을 추천해 주십시오.]
손중수가 그의 말에 대답했다.
[우리 형제들 중, 세 분 만큼 무예와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장군은 너무 겸손하시군요.]
주안국이 거들었다.
[원장군의 무예와 학식은 정말 출중합니다. 우리들은 상대도 안되지요.] 손중수가 이었다.
[좋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의논하기로 합시다. 첩자를 처벌하는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호랑이를 잡은 예가가 일어났다.
[범가라는 첩자는 주장군이 8개월 전에 정강에서 죽였고, 사가는 10여 일 전에 소주로 도망쳐 왔을 때 제가 죽였습니다.]
할말을 마치고 마대를 열어 두개의 머리를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통쾌해 했다. 손중수가 머리를 받아 신상 앞에 놓았다.
장조당은 그제서야 그게 상자 안에서 보았던 것임을 알았다. 이때 어떤 사람이 10여개의 사람 머리를 가지고 나와 신산 앞에다 바쳤다. 그 사람은, 이것 중의 하나는 반역자 위중현의 일당으로, 원숭환 장군을 배반하였다고 보고했다.
사람들이 보고를 끝마치고 나자 손중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첩자들은 적지 않습니다. 당연히 보복을 받아야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떤 작은 사람이 일어나 손상공을 불렀다. 손상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말이 있으면 하십시오.]
[내가 할 얘기는.....]
그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갑자기 문 밖에서 한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이장군께서 오시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에 모두들 웅성거렸다. 손상공이 입을 열었다.
[조장군, 우리들이 먼저 군사들을 맞아들여야겠습니다.] [좋소.]
조장군이 먼저 창을 들고 나가자 사람들도 모두 일어섰다.
대문은 활짝 열고, 횃불을 밝혀 놓고 도열해 있는데, 그는 이자성(李自成)이라고 하였다. 몇 년 동안 위세가 대단하여 모두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40여세가 훨씬 넘어 보였고, 얼굴은 야위었으며,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투박한 천으로 만든 옷은 여기저기 헤지고 떨어져 실로 꿰매었고, 다리와 신발은 흙투성이로 농부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 뒤에는 또 두 사람이 따라 들어왔는데, 한 사람은 30세 정도로 피부가 하얗고 깨끗하였으나 다른 한 사람은 몸이 장대하고 얼굴이 검은 게 역시 농부의 행색이었다.
그 사람들은 단상 앞으로 걸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상 앞에 섰다. 얼굴이 하얀 남자가 보따리에서 초를 꺼내어 신상 앞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세 사람은 모두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 어린 목동은 탁자 앞에 앉아 답례를 하였다.
세 사람은 절을 마치자 얼굴이 여윈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 이장군님께선 원장군이 몽고인을 무찔러 큰 공을 세운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보내어 찾아 뵙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이 말을 마치고 또 여러 번에 절에 걸쳐 절을 하였다. 이자성이 보낸 사람들은 믿음직스럽고 성실해 보였다.
손중수가 앞으로 나가 절을 하며 말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유방량이라고 합니다. 이장군께선 오늘이 원장군의 기일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보내셨습니다.]
[이장군의 호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손중수라고 합니다.] 얼굴이 하얀 남자가 응수했다.
[아! 당신은 손조수 장군의 동생이시군요. 손장군께서는 몽고인과의 싸움에서 돌아가셨지요. 우리 모두 매우 존경하고 있습니다.] 손조수는 청에 대항한 장군으로 많은 공훈을 세웠으며, 청나라가 칩입했을 때 원숭환 장군을 따라서 수도를 방어했다. 원숭환 장군이 감옥에 갇힌 후에는 혼자 당당히 출전하여 북경의 영정문 밖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하여 천하에 이름을 드날렸던 인물이다.
손조수의 강직하고 외로운 면모는 <명사(明史)>에도 잘 나타나 있다.
손조수가 도읍을 지키며 청군을 방어하고 있을 때, 부상을 당하여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 장씨가 팔의 살을 도려내어 삶은 물을 손조수에게 마시게 했다. 그리고 칠일 낮 칠일 밤을 하늘에 빌었다. 후에 손조수는 병이 완쾌되었으나 장씨는 그만 죽고 말았다. 손조수는 부인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에서 평생토록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가 대장이 되었을 때, 그의 고향집에 은화 5백 냥을 보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일이 보통이었는데 그의 아들이 완강히 받기를 거부하였다. 후에 그의 아들이 관군에 들어왔을 때 그는 크게 기뻐하며 술을 권했다. 그리고 그에게 돌려주었다.
[그때 네가 돈을 받지 않은 것이 나의 마음에 들었다. 만약 네가 그것을 받았더라면 이번에 관군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손조수는 일을 처리하는 데도 매우 공평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를 존경하였음은 두말 할 나위 없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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