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2-5

3학년2반 | 2022.01.15 07:50:24 댓글: 0 조회: 465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2438

* 제 2 권 *

- 5 - 열 개의 보석상자

원승지는 다음 날 아침, 한나절이 지나서야 일어났다. 초원아가 친히 세숫물과 아침상을 들고 방에 들어오자, 원승지가 황망히 일어나 감사해 했다. 홍승해가 따라와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그가 막 얼굴을 씻고나자 목상도인이 바둑판을 들고, 바둑알을 든 청청과 함께 들어왔다.
청청이 웃으며 농담을 걸었다.
[잠꾸러기가 이제야 비로소 조반을 드셨군. 도장께서 조급해 하시니 빨리 바둑을 두도록 해요. 빨리.]
원승지는 그녀를 한 번 힐끗 보더니, 말없이 쿡쿡 웃었다.
청청이 웃으며 말했다.
[무엇이 그리 우스워요?]
[도장께서 청청에게 무슨 일을 해주셨길래 이토록 애써 적수를 찾아주려 하지?]
청청이 웃으며 대답했다.
[도장께서 저에게 무공을 좀 가르쳐 주셨어요. 이 수법은 참으로 오묘해요.
다른 사람이 상공을 공격할 때 당신은 그와 술래잡기 하듯이 동으로 번쩍, 서로 번쩍하여 그 사람이 때릴 수가 없는 그런 것이지요.] 원승지는 심기가 동하여 목상도인을 몰래 훔쳐 보았다. 그는 두 개의 흰바둑알과 검은알 두 개를 바둑판에 놓고 손에 검은알을 하나 쥐었다. 그리고 가볍게 바둑판을 치며 씻씻 소리를 내면서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원승지는 생각했다.
(오늘 저녁 둘째 사형과 형수의 우화대에서의 약속이 있는데 가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 형수의 기분을 보니 싸울 수 없겠더군. 내가 그들과 맞선다면 정말 맞지 않을 수가 없겠지. 둘째 사형은 신권에 적수가 없다고 했으니, 내가 전력을 다해도 반드시 이기진 못할 것이야. 만약 서로 양보를 한다 하더라도 중상은 면치 못할 것이니 참으로 큰일이야. 그러나 운명에 맡길 수 밖에.
그리고 도장이 그녀에게 무공을 전수해 준 것은 어떤 뜻이 있는 듯한데.......) 원승지가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바둑을 둔다면, 청청이 나에게도 좀 가르쳐 줘야만 하오.] 청청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원형은 내가 국도(國道)의 규칙을 말해 주세요.] 두 사람이 몇 마디 나누며 싱긋 웃었다. 원승지는 목상도인을 상대로 바둑을 바꾸었다. 점심이 끝난 후, 원승지와 최추산은 그 동안의 경위를 말했다.
한가지 소식은 츰왕의 세력이 크게 확장되어 오래지 않아 대거 입경할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가지는 어릴 적 친구가 이미 영웅같이 되어 재능을 발휘하는 것을 보자 희열과 위안을 느꼈다. 한참의 얘기 뒤에는 또 최희민과 안소혜가 금을 빼앗긴 일에까지 이야기가 미쳤다. 청청이 쉬지않고 원승지에게 손짓하며 나오라고 불렀다. 최추산이 웃으며 말했다.
[네 친구가 널 나오라고 부르니, 빨리 가보거라!]
원승지는 얼굴을 붉히더니 겸연쩍어하며 나가려 했다. 최추산도 웃으며 몸을 일으켜 따라 나가려 했다.
청청이 바삐 들어와 한마디 했다.
[빨리 와보세요. 제가 도장께서 가르쳐 주신 무공에 대해 알려 드릴께요.
도장께서 가르쳐 주실 때 싫증이 나서 이해를 못했어요. 이 분이 말씀하기시를 <단단히 기억해 두어라. 장차 천천히 이해하게 될거다>하셨는데 조금 지나면 다 잊어 버릴까 두려워요.]
그러면서 그려내듯이 목상도인이 전수한 절정의 경공 <신행백변(神行百變)>을 설명했다. 목상도인의 경공과 암기는 가히 천하의 독보적이었다. 이 <신행백변>은 특히 정묘하고 오묘하여, 화산에 있을 당시에는 원승지가 아직 어려서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전수하질 않았던 것이다. 청청의 무공은 그다지 정묘하지는 못했으나, 기억력이 뛰어나고 영특하였다. 목상도인이 그녀에게 전수하는 목적이 곧 원승지에게 전하려는 뜻임을 이내 알아차렸다. 다만 왜 그렇게 전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는 목상도인이 전수해준 경공은 이미 오랫동안 단련한 바 있다. 이 <신행백변>은 변화가 특히 오묘했다. 반드시 더욱 깊은 내공에 근거해야만 하고, 기본적인 이치는 이전에 배운 경공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았다. 그의 무예 수련은 크게 진보하여 한 번 들으면 즉시 깨달아 알고도 남는 바 있었다.
청청이 몇 군데 기억하지 못하는 곳이 있어 원승지가 자세히 묻자 그녀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급기야는 안으로 뛰어 들어가 목상도인에게 물었다. 두 번째의 가르침을 받고 원승지는 이미 완전히 그것을 이해하여 즉석에서 시범을 보였다. 이 경공법은 복잡하기가 마치 물고기가 노니는 모양과 같았다. 상대와 대적할 때에 자신을 보호해야 할 경우, 적이 가지고 있는 병기가 몸에 미치지 못하게 하는 무예였다. 그는 이제서야 목상의 뜻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둘째 사형의 무공이 절묘함을 이미 알고 있었떤 터였다. 당시의 사부는 일찍이 말했었다.
[너의 대사형은 위임됨이 우스꽝스럽고 침착성이 없어. 그러나 둘째사형은 무뚜뚝하나 침착하여 노력하는 사람인데 특히 결실이 있다.] 이로 미루어 알 수 있는 둘째 사형의 경공은 아마 큰사형 위에 있을 것이었다. 방금 새로 훈련한 공격은 아직도 미숙하여 상대방이 피하면서 막을 것이므로 반드시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이 두려웠다. 그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돌연 사부가 처음 무공을 가르쳐 주실 때 배웠던 십단금을 생각해 냈다. 당시에는 자신도 전력을 다했으나 사부의 옷자락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확실히 오묘함이 무궁한 무예였다. 목상도인이 <신행백변> 공법은 비록 영득함이 극에 이른다 하나 깊고 두텁지는 못했다. 시종 피하기만하면서 박격하지 않는 무예라서 상대방의 공격을 면할 수가 없다. 만일 본무의 경공과 혼합하여 사용한다면 좋을 듯 싶었다.
그는 홀로 서재에 들어 앉아 생각에 골몰하며 일초 일식을 열심히 깨우쳤다. 옆사람들도 그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애썼다. 미시(未時;13∼15시)경쯤 되자 원승지는 이미 전부를 터득하고 일어섰다. 다만 실제적으로 모두를 파악하지를 못했기에 한 번의 연습이 필요했다. 그래서 초원아에게 부탁하여 십여명의 사형제들로 하여금 한 자루의 물통을 들고 연무장 사각모서리에 서게하고 자기는 그 가운데에 서서 손을 양쪽으로 벌리고 섰다. 각 사람들이 그를 향해 물이 어지러이 퍼붓자 그는 이리저리 피하며 10통의 물이 다 없어지도록 움직였다. 단지 소매와 왼쪽다리 끝부분만 젖었을 뿐 멀쩡했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뛰어나가 기뻐하며 그의 절기를 축하했다. 목상도인은 줄곧 방에만 잠만 잤으므로 이것을 봤을 리가 없었다. 저녁식사 후에 원승지는 우화대의 약속 때문에 일어서야만 했다.
초공례, 초원아 부녀는 저희들도 같이 가서 해결하고자 했다. 청청도 따라오려고 했다. 그러나 원승지는 완곡히 거절했다. 청청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싫어했다. 원승지가 달래었다.
[그분들은 나의 사형과 형수님이오. 오늘밤 나는 맞기만 할 뿐 손을 쓸 수는 없어요. 청청이 보면 화만 날 테니, 그렇게 되면 내 일을 망치지 않겠소?] 청청이 대답했다.
[단지 3초씩만 그들에게 양보하면 될 뿐인데, 손을 쓰지 않을 이유가 어딨어요?]
원승지가 말했다.
[난 청청이 가르쳐준대로 할 테니 그들이 날 때리든 안 때리든 나에게 달린 일이오.]
청청이 갑자기 손바닥을 치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더욱 가봐야겠네요. 원형은 나로 인하여 사형이나 형수에게 죄를 지을가 두려운가 본데 난 아무말도 안할께요.]
원승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벙어리 흉내를 좀 내겠소.]
청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벙어리 흉내를 내겠어요.]
원승지는 끝내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그와 동행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목상도인에게로 가서 인사하려 했으나 그는 계속 침상에서 잠만 자고 있었다. 몇 번인가 소리를 질러 보았으나 끝내 깨지를 않았다. 최추산은 이미 어딘가로 가서 보이지도 않았다.
두 사람이 초씨 집의 건장한 말 두 마리를 빌려 타고서 떠났다. 2경이 되었을 때는 이미 우화대 부근에 도착했다. 사방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말을 내려서 기다리자 동쪽편에서 바삐 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오면서 가볍게 두 번 손바닥을 쳐 소리를 냈다.
원승지 역시 손바닥을 쳤다.
한 사람이 물었다.
[원사숙이 도착했습니까?]
목소리를 들으니 유배생이었다.
원승지가 대답했다.
[난 여기서 사형과 형수님이 기다리고 있는 중이오.] 그가 유배생과 매검화를 보고 다가 가려는데 먼 곳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과연 왔구나!]
말소리가 막 끝나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앞으로 다가왔다. 청청은 두 사람이 어떻게 이리 빠를까 하고 속으로 놀랐다. 매검화와 유배생 두사람은 피하듯 뒤로 물러났다. 바로 그들이 귀신수와 귀이랑 부부였다. 먼 곳에서 또 한사람이 달려왔다. 원승지가 보니 그는 바로 비천마녀 손중군이었다. 그녀는 사형이나 형수보다 훨씬 떨어져 한참 후에 도착했다. 그녀는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귀씨부부의 아이였다. 귀이랑이 냉랭하게 말했다.
[원야(袁爺)의 실력을 믿으나, 우리 부부는 아직 중요한 볼일이 있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원승지는 예를 행하여 공손하게 대답했다.
[소제, 오늘 사형과 형수님게 사죄하러 왔습니다. 소제가 형수님의 보검을 절단했음을 실로 몰랐었습니다. 죄를 범한점, 부디 사부님의 체면을 봐서라도 사형과 형수님께서 관용을 베풀어 주십시오.]
귀이랑이 냉소했다.
[네가 우리의 사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우선 초식을 받고 다시 말해라!] 원승지는 다만 물러날 뿐 손을 쓰려 하지 않았다. 귀이랑은 그가 물러남을 보고 마음속으로 가짜가 아닌가 하였다. 이같이 겁을 먹을 수 있을까? 그는 돌연 왼손을 들어 칼을 그어 내렸다. 원승지는 빨리 뒤로 물러나면서도 심적으로 몹시 놀랐다.
(여자들 중에 장법이 이만큼 지독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는데.......) 귀이랑은 일격이 적중하지 않자 오른손으로 화산파의 <파옥권(破玉拳)>을 펼쳤다. 원승지는 이 권법을 연습한 바 있어 이미 가슴에 새겨 둔 것. 그래서 두 손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결코 손을 쓰지 않을 것을 보이며 몸을 번쩍 움직였다. <신행백변>과 십단금의 경공을 섞어서 귀이랑의 손과 발의 공격을 피해 나갔다. 귀이랑이 연달아 십여 초식을 공격했다. 모두 그의 몸 비스듬히 스쳐갔을 뿐이었다. 귀신수는 옆에서 의연히 지켜보고 있다가 마음속으로 놀라 혼자서 생각하기를 <이 청년이 어떻게 무공을 익혔을까?> 하였다. 그의 경공은 확실히 본문의 신법이었다. 그런데도 대부분이 똑같이 똑같이 않으니 이 청년이 다른파의 첩자가 아닐까 추측되기도 했다.
그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주시했으나 아내가 고생할 것이 두려웠다. 귀이랑은 원승지가 결코 손을 쓰지 않는 것을 보자, <네가 이 같이 나를 무시하는구나. 귀이랑의 지독함을 알려주겠다.> 하는 생각했다. 그의 양손이 마치 바람과 같이 점점 빨라졌다. 그녀는 상대방이 결코 반격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맹렬히 공격했다. 원승지는 설마 둘째 형수가 이 파옥권법을 이같이 지독하게 쓸 줄은 미처 예측치 못했었다. 단지 수비만 강화할 뿐이었으나 위력이 더욱 가중돼 왔다.
손중군은 원승지가 반격하지 않고 있었으나 공격의 일초도 적중되지 않는데에 화가 치밀었다. 그녀의 눈은 다시 청청이 한편에 서 있는 것을 흘겨보았다.
그녀는 신이 나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아이를 매검화에게 넘겨 주고는 장검을 뽑아 청청의 가슴을 향해 찔러나갔다. 청청이 깜짝 놀라 황급히 몸을 피했다. 그녀는 원승지를 따라 오느라 몸에 무기를 지니지 않았으므로 손중군의 공격에 쫓겨 이리저리 피해야만 했다. 그녀의 무공이 특출하게 높은 편은 아닌데다 더욱 맨손이니 결국 수초 후엔 위험한 지경에 빠졌다. 원승지는 그녀의 놀란 목소리를 듣고 곧바로 구원하려 했으나 귀이랑이 거세게 공격하므로 몸을 뺄 방법이 없었다. 귀신수가 손중군을 향해 외쳤다.
[살상해선 안된다!]
손중군이 대답했다.
[이 사람은 금사랑군의 자식이에요. 이 자는 바로 재앙의 불씨라구요!] 귀신수는 일찍이 강남 무림 중에 금사랑군이 있었다는 것과 마음이 간악하고 수법에 매서움을 들었으므로 아무말도 못했다. 손중군은 사부가 묵묵히 허락함을 보고 검초를 재빨리 하니, 청청의 목숨이 위태로왔다.
원승지는 긴박함을 보고 돌연 뛰어 올라 둘째 형수를 여섯 걸음 물러서게 했다. 그리고 공중에서 왼손으로 손중군의 뒤를 공격하고는 그녀의 손에서 장검을 빼앗았다. 그러나 돌연 묘 옆에서 소리를 내며 허리를 공격해 왔다. 그는 쉴틈없이 공격해오는 초를 끊었으나 오른손이 여전히 들어왔다. 손목을 낚아챘으나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오히려 그녀의 힘에 밀려났다. 원승지가 하산한 이래 힘이 이렇게 센 사람은 아직 보지를 못했었다. 그때 둘째 사형이 출수했음을 알고 그는 부지중에 놀랐다.
(일찍이 둘째 사형의 무공이 비범함을 알았으나 그의 몸이 이렇게 빼빼하고 작은데도 이처럼 신력(神力)이 갖추어진 줄은 몰랐구나!) 원승지는 둘째 사형의 명성이 높은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도 사문의 비법인 <파옥권법>으로 대항했다. 두 사람의 권법이 서로 같아 점점 쾌속해졌다. 청청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으나, 그녀를 쳐다볼 여유조차 없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등에는 축축하게 식은 땀이 젖었다. 그가 급히 청청을 구하고저 전력을 다했으나 아직도 그럴수가 없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청청이 만약 목숨을 잃는다면 사형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니 또한 당신을 죽이고 말겠소.)
손중군은 원승지가 사부에게 묶여있음을 보고 심중으로 크게 기뻐하며 검법을 더욱 세차게 펼쳤다. 유배생과 매검화는 동시에 소리쳤다.
[사매, 다치게 해선 안돼!]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손중군의 검이 명렬히 청청의 가슴을 향해 찔러나갔다. 청청은 어렵게 피하여 급히 뒤로 물러섰다. 청청이 손중군의 내리긋는 칼을 피해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 바람에 청청의 두건이 떨어져 나가고 긴 머리가 흩어졌다. 손중군은 그녀가 본래 여자란 걸 알고 있었으므로, 개의치 않고 단번에 검을 내리쳐 찔러나갔다.
그때 돌연 뒤쪽에서 매서운 음성이 들려왔다.
[아주 흉악한 여자로군!]
나무 꼭대기에서 검은 그림자가 덮쳐 내려와 그녀의 장검을 걷어차 버렸다.
손중군은 크게 놀라 두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달빛아래 나타난 그 도인은 수염과 눈썹이 눈같이 희었다. 그는 청청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손중군과 매검화, 유배생은 이 도인이 누구인지 몰랐으나, 귀이랑은 그가 사부의 오랜 친구인 목상도인임을 알았으므로 즉시 예를 갖추었다. 목상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예를 갖추느라 애쓸 것 없다. 저 두사람이 연습하는 걸 좀 보도록 하자.] 귀이랑이 고개를 돌려 남편을 보니 두 개의 그림자만이 보이나 소리는 매우 격렬했다. 귀신수는 힘이 세나 초식은 신중했고, 원승지는 몸과 손이 쾌속했다. 한 사람은 본문의 무공에 완숙했고, 한 사람은 3파의 무공중 장점을 겸비하였으므로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원승지는 처음에 청청의 안위를 염려하느라고 매우 초조했으나, 누군가 나타나 그를 구해주게 되자 이제야 비로소 안심하고 전신을 집중하여 사형과 대적에 몰두할 수 있었다. 초식중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매서운 공격도 막아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싸움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본문의 복호장법(伏虎掌法), 벽석권법(劈石拳法), 파옥권법(破玉拳法), 혼원장법(混元掌法) 등등 비장의 무공이 전부 펼쳐졌다. 원승지의 공격은 가벽고 수련기간이 아직 귀신수에 미치지 못하므로 천(千)초를 교환하고나자 점자 밀려나기 시작했다. 귀이랑은 남편의 공격이 늘어가고 수비가 적어지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기뻐했다. 그러나 원승지의 본문 공격 또한 이처럼 뛰어나고보니 사제임을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그는 속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또 수십초를 교환하고 나자 돌연 원승지가 권법을 바꾸었다. 그의 몸은 마치 물뱀과도 같이 유연하여 잡을 수가 없었다. 이는 금사랑군이 손수 창안해낸 <금사유신장법(金蛇遊身掌法)>인데, 수중에 노니는 물뱀의 움직임을 보고 깨달아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초식은 음독으로 적을 공격하는 권법이며 사람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원승지는 그 초식을 계속 쓰지 않고 <신행백변>의 경고만을 더했을 뿐이었다. 귀신수의 권법이 비록 높으나 그의 신법을 분명히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보니 어느새 마음이 초조해져서 이렇게 생각했다.
(내 신권에 대적할 자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어린 사제와 이미 일천초 이상을 나누었지만 어찌할 수 없다니 이제 이름에 실 리가 따르지 않는구나.)
원승지가 비스듬히 원을 그리듯이 하자 귀신수가 갑자기 뛰어 오르며 소리쳤다.
[멈춰!]
원승지가 급히 멈춰서며 대답했다.
[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날 잡을 수 없으니 쌍방이 평등하게 된 것이다. 모두가 보고 있으니 이만하면 되겠지.)
귀신수는 공중을 향해 읍(揖)을 하며 말했다.
[사부님과 어른들께서 오셨습니까?]
원승지는 크게 놀라 돌아 보았다. 커다란 나무에서 네 사람이 일시에 뛰어내렸는데, 제일 첫 번째 사람이 사부 목인청이었다. 원승지가 크게 기뻐하며 뛰어가 절을 하고 몸을 일으키니, 사부 뒤에는 최추산과 대사형 황진이가 보였고 제일 뒤에는 벙어리가 있었다. 원승지는 갑자기 사부와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매우 기뻤다. 벙어리와는 몇번 손짓을 주고 받았다. 자기는 역시 경험이 부족해서 오로지 둘째 사형과 대적하느라 주변 정세에 주의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만약 나무위에 숨어서 훔쳐 보던 사람들이 사부와 친구들이 아니고 적이었다면 어찌 암기에 맞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둘째 사형은 사방을 두루 살피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강호의 대가는 역시 다르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경탄을 금치 못했다. 목인청이 원승지의 머리를 쓰다드으며 미소를 지었다.
[너의 대사형이 절강구주(浙江歐洲)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더군. 아주 잘했더구나.]
그러면서 즉시 안색이 침중해지며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네 나이 어리다고 어찌 웃 어른을 공경하지 않느냐. 형수에게 손을 쓰다니?]
원승지는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소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는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귀신수 부부가 서 있는 곳까지 걸어가서 연달아 두 번이나 읍을 하며 말했다.
[소제가 사형과 형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귀이랑은 솔직하고 시원스런 성격이다. 목인청에게 한 마디 했다.
[사부님, 사제가 손을 쓴 것에 조금도 개념치 마십시오. 그것은 저희 부부가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그가 다른 파의 무공을 쓰길래 아직 그릇이 되지 않은 사제를 다만 혼내주려 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매검화 등 세 사람을 가리켰다.
목인청이 말했다.
[문중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나는 오히려 냉엄하다. 검화야, 이리 오너라. 그리고 한가지 묻겠는데, 사형과 원사숙이 싸우는 것은 나쁜 줄 알면서도 너희 세 사람은 왜 사숙에게 공격을 했느냐? 우리 문중에는 반드시 상하의 구별이 있는데 모두가 상관없다는 말이냐?]
매검화는 스승앞에서 속일 수가 없었으므로 민자화가 원수를 찾던 일에 대해 사실대로 고했다. 그러나 손중군이 다른 사라의 어깨를 절단한 일에 이르러서는 <초공례편의 한 명의 제자에게 손을 썼다>고 말했다. 그의 말 중에는 귀이랑이 손중군에게 준 장검을 원승지가 짓밟아 부러뜨렸다는 것도 들어 알고 있었다.
청청이 있다가 참지 못하고 끼어 들었다.
[이 비천마녀 손중군의 말은 사실대로가 아닙니다. 일검으로 사람의 한쪽 어깨를 베어버렸어요. 그 사람은 단지 사부님의 명을 받아 편지를 전하러 왔을 뿐이었습니다. 사실은 좋은 사람이었어요. 원형이 말하기를, 화산파의 사람들은 무죄한 사람을 해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보고도 상관치 않는다면 사부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일에 끼어들게 되었어요. 그가 말하는 중 사형과 형수님에게는 죄스런 일이라서 마음속으로는 슬퍼했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원승지가 말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모두 그를 대신해서 말해 주었다. 목인청의 얼굴이 서릿발같이 변하며 되물었다.
[정말이냐?]

귀씨 부부는 이 일을 몰랐으므로 손중군만 쳐다보았다.
매검화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손사매는 그가 나쁜 사람인 줄만 알고 무조건 손을 썼던 것입니다. 이제는 그도 크게 후회하고 있으니 사조(師祖;스승의 사부)께서는 관용을 베풀어 주십시오.]
목인청이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우리 화산파의 가장 큰 계율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말라는 것이다. 신수야, 네가 제자를 거두어 들일 때 가르치지 않았단 말이냐?] 귀신수는 자기 스승이 이토록 화를 내는 것을 보지 못했으므로 급히 그 자리에 꿇어 앉았다.
[제자가 가르침을 잠시 잊었으니 사부님께서는 노여움을 푸십시오. 사제가 마땅히 혼을 내겠습니다.]
귀이랑, 매검화, 유배생, 손중군 등 네 사람도 황급히 귀신수의 뒤쪽에 꿇어 앉았다. 목인청의 노기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채 이번에는 원승지를 혼냈다.
[너는 그런 일을 보고도 그녀의 검을 부러뜨린 것만으로 다 되었다고 여겼느냐? 그렇다면 왜 그녀의 어깨도 부러뜨리지 않았느냐? 우리가 우리파의 규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강호에서 웃음거리가 안된다고 누가 보장하느냐?] 원승지 역시 꿇어 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소제의 일 처리가 옳지 못했습니다.]
목인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낭자.......]
말하면서 청청을 한 번 가리키더니 손중군에게 외쳤다.
[또 무슨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질렀기에 간악하게 죽이려 했느냐? 그녀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는 안될 무슨 죄가 있었단 말이냐? 너 이리 좀 오너라!]
손중군은 놀라서 몸을 움추렸다. 그녀는 감히 앞으로 나갈 생각을 못하고 땅에 엎드려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그가 남자인 줄 알고, 그만 경박한 행동을.......]
목인청이 말을 끊으며 외쳤다.
[너는 이미 그의 두건을 베어버려 그가 여자인 줄 알고도 여전히 독수를 펼쳤다. 또 남자라고 모두 무고하게 죽여야 하느냐? 너의 <비천마녀>란 네 글자가 너의 평소 위인됨을 말해 주는구나. 이리 못 오겠느냐!] 귀이랑은 사부가 그녀를 폐인이 되게 할 것임을 알고는 고개를 조아려 빌 수 밖에 없었다.
[사부님, 제발 노여움을 푸시면 제자가 돌아가서 호되게 그녀를 다스리겠습니다.]
목인청이 숙연하게 말했다.
[너는 그녀의 어깨를 베고 내일 초씨네를 찾아가 용서를 빌도록 하여라.] 귀이랑은 감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원승지가 한마디 했다.
[소제가 이미 초씨댁을 찾아가 죄를 빌었습니다. 그래서 그 대응으로 일문의 무공을 사람에게 전수하였으니 초씨댁에선 별일 없을 것입니다.] 목인청이 <음.>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들었다.
[목상도형이 다행히도 외인(外人)이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분이 참으로 웃을 뻔했구나. 결국 그녀는 영리하여 본문의 욕을 먹였으니 일생동안 제자를 거두지 말고 앞으로는 체면을 떨어뜨리지 않게 해라. 자, 그럼 모두 일어나거라!]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인청이 손중군을 돌아보니 그녀는 놀라서 또 꿇어 앉았다.
목인청이 말했다.
[검을 갖고 오너라.]
손중군은 가슴이 불안하게 뛰는 가운데 두 손으로 검을 받쳐 들고 그에게로 나갔다. 목인청이 칼자루를 잡고 희미하게 한 번 떨자 손중군은 왼손에 통증을 느꼈다. 선혈이 흘러서 내려다 보니 금방 새끼손가락이 베어져 나갔다. 목인청이 다시 검을 흔드니 장검이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앞으로 너에게는 검을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손중군이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녀는 수치스러운 가운데서도 피가 계속 흘러내리자 겁을 먹고 있었다. 귀이랑이 옷을 찢어서 그녀의 상처를 싸매고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됐어. 사조님께서 다신 죄를 묻지 않을 게다.]
매검화는 사조의 손이 한 번 떤 것으로 장검이 절단나는 걸 보고는 비로소 원승지의 무공도 확실히 본문의 무공임을 깨달았다. 마으속으로는 본래 본문의 무공이 이처럼 정교하고 놀라운데 자신은 그저 겉껍질 정도 밖에 몰랐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자신이 미친 듯 오만했던 것이 몹시 부끄러웠고, 또 사조께서 더 견책할까 식은 탐이 흘렀다. 목인청이 그를 한 번 노려보더니 아무말 없이 고개를 돌려 원승지에게 물었다.
[네가 그 사람에게 무공을 전수해 줬다니 참으로 잘했다. 그래 무엇을 가르쳐 주었느냐?]
원승지가 얼굴을 짐짓 붉혔다.
[소제, 앞으로는 스승의 허락없이는 망령되어 전수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한쪽 어깨만을 가지고 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가 스스로 만들어낸 무학을 가르쳤습니다.]
목인청이 말했다.
[네겐 잡학이 너무 많구나. 방금 보아하니 너와 둘째 사형이 초식을 바꿀 때 목상도인의 <신행백변>을 쓰는 것 같더구나. 이 바둑 친구가 너를 일심으로 돕고 있으니 둘째 사형이 자연 너를 어쩌지 못했던 것 아니겠느냐?] 그는 말을 마치자 <하하하!> 크게 웃었다.
[승지야, 네가 감히 스승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느냐?] 원승지가 대답했다.
[감히 할 수 없습니다.]
목상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가지 묻겠다. 화산을 떠난 후 내가 친히 너에게 무공을 전수한 적이 있느냐 없느냐? 듣자하니 내가 친히 가르친 적이 없는데 배웠다는구나.] 원승지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목상도인이 청청으로 하여금 전수해 주도록 손을 쓴 것은 사부와 둘째 사형이 이상하게 여길까봐 그렇게 한 것이라는 것을. 이 도장은 참으로 영리하고 지략이 많은 분이다.
[화산을 내려 혼 후로 도장께서 친히 무공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만나 두 번 바둑을 둔 것 밖에는요.]
그리고 또 생각했다.
(이 말이 비록 거짓말은 아닐지라도 결국엔 사부님을 속이는 뜻이 들어 있으니 이번에는 이렇게 말을 하자. 둘째 사형이 도장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니, 다음번에는 사부님께 실상을 고하도록 하자.)
목상이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래. 그러니 너는 다시 사형과 연습해 보아라. 너에게 가르쳐 준 무공은 일초도 사용하지 말고.......]
[둘째 사형은 무적신권이신데 과연 틀림이 없습니다. 소제로서는 감당할 수 없어 피하기만 하며 패배를 인정하려 했을 때 둘째 사형이 멈추게 했습니다.
사형이 이미 사부니님을 알아보신 것입니다. 줄곧 저는 옆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목인청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 좋아! 도장이 이왕 네가 연습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시니 한 번 보여드려라.]
원승지는 어쩔 수 엇이 옷깃을 가다듬고 귀신수에게 다가가 한 번 읍을 하고는 말했다.
[둘째 사형의 지도를 청합니다.]
귀신수도 손을 맞잡고 말했다.
[좋은 말이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목인청에게 말했다.
[저희가 틀린 것이 있으면 사부님의 지도를 부탁합니다.] 두 사람이 마주섰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또 달랐다. 귀신수가 목상도인과 사부, 대사형 및 여러사람들 앞에서 어찌 체면을 깎일 수 있겠는가? 신속하고 쾌속한 공격과 산 같은 수비가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원승지도 공격과 수비를 하며 사용한 것이 전부 사문의 절기였다. 일백여초를 교환하는데, 두 사람 모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목인청이 목상과 함께 옆에서 수염을 날리며 웃고 있었다. 목상이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명사문중의 훌륭한 제자로소이다. 강한 장수 밑에 약한 병사가 없다 하더니. 과연 이 두 사람의 훌륭한 제자를 보이 나 노도인조차 눈시울이 뜨거워지오. 제자 가르치기를 싫어했던 것이 후회가 되는구료.] 말하는 사히 두 사람은 또 수십초를 교환했다. 귀신수는 계속 싸웠으나 결판이 나지 않자 점점 힘을 가중하여 공세를 취했다. 원승지는 마땅히 한 초를 양보하리라 마음억었다. 그러나 귀신수는 매초마다 매우 맹렬하였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중상을 입을 수 밖에 없어 그에게 한초를 양보하는 것이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아까는 본문의 권번만을 쓰다가 수 백초 후 열세에 몰렸고, 그때 곧 목상도인과 금사랑군의 공격을 써서 조금 우위를 차지했었는데, 현재 또 본문의 무공만을 쓰니 여전히 수세에 몰린 것은 뻔한 일. 이것이 다른 파의 무공이 본 파의 무공을 이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도장이 그가 전수해준 무공을 쓰도록 허락치 않으니 이번에는 금사랑군의 무공을 쓰고자 하였다. 그는 곧 권법을 변화시켜 <금사금학권> 일초를 썼다.
귀신수는 그것을 받아 넘기면서 조금도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원승지가 돌연 연속적으로 기괴한 초식을 펼치니 귀신수는 깜짝 놀라 그것을 거두고 보호하기에 바빴다. 원승지는 한숨을 돌리며 운기를 등에 돌렸다. 귀신수가 보니 그의 등에 돌연 허점이 보였다. 찌르는 것이 무술하는 사람의 본성인 만큼 조금도 망설임 없이 상대방의 급소를 쳐나갔다. 원승지는 이미 준비하고 있다가 몸을 앞으로 굽혀 4, 5걸음 비틀거리며 말했다.
[소제가 졌습니다.]
귀신수는 일장을 친 즉시 후회하였다. 바삐 뛰어나가 그를 부축하려 했다.
원승지가 유기를 등에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일장을 맞았을 때 이미 상대방의 장력을 다소 해소시켰고 또 목상도인이 준 오금사(烏金絲)로 된 조끼가 보호했으나 통증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원승지가 돌아설 때 보니 그의 장삼이 찢어져 바람에 펄럭였다.
청청이 바삐 원승지에게 달려 가 물었다.
[안 다쳤어요?]
원승지가 대답했다.
[괜찮아.]
목인청이 귀신수를 보고 말했다.
[네 장력이 확실히 정진해 있지만 이번 일초는 너무 지나쳤구나. 알고 있느냐?]
귀신수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원사제의 공력에 참으로 감복했습니다.] [그의 본문의 공력은 너만큼 깊지 않다. 전에 듣자하니 너희 부부가 사제를 다그친다하더니 참으로 지독하구나. 나는 네가 사리를 분명히 아는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으나 방금 사제에게 하는 것을 보니.......] 귀신수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자가 잘 못했습니다.]
목상이 말했다.
[무공이 높다해도 하수에게까지 관용을 베풀지 않으니....... 승지가 상처를 입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목인청은 이에 아무 말이 없었다. 귀신수 부부는 이미 명성을 날린 지 오랜 사람들이다. 은연 중 그들은 강남 물미의 영수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지금 사부에게 책망을 듣자니 사부님에 대한 원망보다 원승지를 향한 분개심이 솟구쳤다.
목인청이 말했다.
[츰왕이 올 가을에 큰 일을 일으키실 것이니 너희들은 무사들을 소집하고 강남 무림의 호걸들에게 연락을 취하여 츰왕이 일시에 의거하더든 즉시 호응하기로 하자.]
귀신수 부부가 함께 대답을 했다.
[알겠습니다.]
목인청이 귀신수를 보고 음성을 바꿔 부드러운 말로 일렀다.
[신수야, 너는 내가 어린아이만을 편애한다고 말하지 말아라. 이제는 너의 나이가 적지 않지만, 내 맘속에는 네가 그때 맨 처음 화산에 왔을 때의 어린 제자와 똑같이 느껴지는구나.]
귀신수는 고개를 숙여 듣다가 맘속으로 따뜻함을 느꼈다.
그가 대답했다.
[제자의 맘에도 사부님의 편애하신다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너의 성격이 줄곧 강직하여 삼십 년 동안 무공을 쌓으면서도 다른 일에는 한 눈 팔지 않았음을 안다. 그러나 천하의 일이란 단순히 무공이 높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야. 대사(大事)를 만나면 더욱 뒷일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가벼이 사람들의 말을 믿어서도 아니된다. 알겠느냐?]
귀신수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제자, 사부님의 교훈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넣겠습니다.] 목인청이 원승지를 향해 말했다.
[너와 이 작은 친구는 북경으로 가서 조정의 동정을 살피거라. 섣불리 일을 만들면 아니된다. 또한 황제와 조정대신을 상해해서는 안된다. 만약 중대한 소식이 있거든 섬으로 가서 편지해라.]
원승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인청이 다시 덧붙였다.
[나는 오늘밤 27도 맹주 정기운(鄭起雲)과 청량사(淸凉寺)의 십력대사(十力大師)를 만나려 한다. 듣자하니 십력대사가 오대산 청량사에 도착하여 하남 남양 청량사원의 주지로 임명받았다. 그래서 내가 가서 우선 축하하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와 하남 무림의 사정을 상의할까 하는데 도형은 나와 동행하시겠소?]
목상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이 오로지 인인의사(仁人義士)로 우국위민을 위해 온종일 말을 달려 쉬지 않는데 빈도가 어찌 한가하게만 있겠습니까? 내 생각은 어린 제자와 함께 바둑이나 두고 싶은데 괜찮겠소?]
목인청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사제드에게 무공을 가르치겠다고 하니, 그렇게 되면 남경에서 어차피 며칠 체류할 테니 도형은 바둑이나 두시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그에게 전수해 주십시오.]
목상이 매우 흥이나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번에 몇 차례 바둑을 즐기게만 된다면 좋겠지. 알 수 없는 일이야. ㅇ에 또 그럴 여유가 있을지는.......]
목인청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도형께서는 어지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백성은 곪고 츰왕은 일을 크게 이루려 하는데....... 장차 사해와 천하가 태평하여야 백성들이 안락을 즐기고 우리도 또 무사할 것입니다.]
목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가 어디 있어. 옛것은 물러나고 새것이 생기는 걸. 대국중에도 흰알 검은알이 있으니 순환이 다함이 없다네.]
목인청이 웃으며 말했다.
[오래 뵙지 못했더니 도형의 철 리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우리들 세인은 그러한 현묘한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겠소이다.]
그는 하하 웃고는 손을 맞잡아 읍하고는 황진, 최추산과 함께 자리를 떴다.
벙어리가 움직이지 아니하고 크게 손짓하며 원승지와 함께 있고자 하였다. 목인청은 고개를 끄덕여 허락을 하며 웃었다.
[좋아, 네가 옛친구를 잊지 않으니 그와 같이 가거라.] 벙어리는 크게 기뻐하며 달려와 원승지를 안아서 공중으로 들어올렸다가 떨어질 때 손을 뻗어 다시 받아 주었다. 그것은 원승지가 어렸을 때 두 사람이 화산에서 늘 하던 장난이었다. 청청이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달빛아래 그의 얼굴에 희색이 넘치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악의가 없음을 깨닫고는 안도했다.
벙어리는 등에 걸머진 보따리에서 한 자루의 검을 꺼내어 원승지에게 주었다.
바로 금사검이었다. 그것은 그가 옛날에 원승지를 따라 동굴에 들어갔을 때 금사랑의 금사검을 빼왔던 것이다. 이번에 산을 내려올 때 목인청이 원승지와 만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산에 아무도 없으니 이 보검을 훔쳐가게 해서는 안된다> 하고 그곳을 나올 때 보따리에 숨겨서 목인청조차 모르게 가져온 것이었다. 원승지는 <이검은 청청 동생 부친의 유물이다. 내가 잠시 빌려 쓰기로 하자. 나중에 그녀에게 금사검법을 전수한 뒤에 검을 돌려 주기로 하자>고 생각했다. 청청이 검을 가져가 보고서는 부모의 생각에 미치자 슬픔이 치솟아 왔다.
원승지는 사부와 다시 헤어져야만 했다. 둘은 매우 섭섭해 했다.
귀신수는 웃으며 말했다.
[감히 너를 미치지 못하겠구나.]
귀신수 부부는 사부와 대사형이 보이지 않자 목상에게 몸을 굽혀 읍을 하고는 아이를 안은 채 세 사람의 제자와 함께 휭하니 가버렸다.
목상이 원승지를 보며 말했다.
[그들이 너에 대해 불만을 같고 있는 것 같다. 그들 두 사람의 공격이 만만치 않으니 차후 다시 만나더라도 조심하여야만 된다.]
원승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사형에게 죄를 지었음이 우울했으나 초씨집으로 돌아오자 곧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몸을 일으키니 청청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목제 쟁반이 들려져 있었다.
[뭔지 맞추어 보세요.]
원승지는 흥이 일지 않는 드한 어조로 대답했다.
[손님이 왔어?]
청청이 합을 받아 열어보니, 한 장의 커다란 붉은 초가 들어 있었다.
<우둔한 제자 민자화에게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이런 글자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원승지는 민자화의 약속을 지켜 그를 방문했다. 민가의 사람드은 이미 다 가고 하인 둘만이 곳곳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2경이 지나서였다. 원승지가 벙어리를 불러 두 사람이 쇠몽둥이를 갖고 그곳에 굴을 파나갔다. 청청은 검을 들고 밖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반시간쯤 파내려가니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쇠몽둥이가 곧 커다란 바위에 부딪혔다. 그걸 꺼내어 흙을 제거하니 커다란 판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아래는 큰 굴이 있었다. 청청이 그가 지르는 소리에 뛰어 들어왔다.
원승지가 말했다.
[여기에 좀 있으시오.]
횃불 아래로는 커다란 철상자가 일렬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 보이느데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원승지가 도형표를 꺼내 자시히 보니 보물을 감춘 좌편 모서리에 작은 철상자가 보였다. 그는 곧 철몽둥이에 의지하여 철상자 주위의 새끼줄을 거두어 보았다. 그러나 특별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더 가까이 다가가 횃불을 들고 살펴보니 상자 안쪽에 열쇠가 있고 거기 두 장의 종이가 있었다. 윗편을 들고 대충 보이 이러한 글이 써 있었다.
<나의 숙부가 반란을 일으키니 대신들이 모두 항복하였다. 위국공(魏國公) 서휘조가 공신인데 사직에 충성하매 특히 기쁘다. 안의 보물은 경황중에 위공이 날 위해 지킨 것이다. 종묘사직을 위해 자금으로 써야만 한다. 건문 사년 유월 경신 어필(御筆).>
과연 오왕이 찬위할 때 건문제가 남긴 보물이 틀림없었다.
명나라의 개국은 대장군 서달의 공이 첫째였다. 그와 명태조 주원장은 포의(布衣)의 친구였다. 주원장이 황제가 되고 나서도 그를 <서형>이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서달은 감히 황제를 <도형제>라 칭할 수 없었으므로 시종 공경하고 조심했다. 어느날 황제와 그가 술을 마시는데 황제가 말했다.
[서형의 공이 이토록 큰데 아직 묵을 곳이 없으니 나의 옛집을 드리겠소.] 옛집이란 것은 태조가 스스로 오왕(吳王)이 되었을 때 기거하던 곳으로, 그가 황제로 등극하자 궁전으로 건립된 집을 말한다. 서달은 속으로 생각했다.
(태조가 스스로 오왕이 되어 등극하고 나서 내가 만약 그의 옛 궁정에 머문다면 그 의심은 자뭇 크게 될 것이다.)
그는 태조가 시기심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므로 당시에는 고맙다고만 하고 아무것도 받지를 않았다. 태조는 다시하너번 그를 시험해보고자 마음먹고 며칠이 지난 뒤 서달을 옛집에 불러 끊임없이 술을 마시게 하였다. 그를 만취하게 한 다음 시종에게 명하여 그를 침실로 옮겨 태조가 종전에 잠자던 침상에 뉘게하고 이불까지 덮어 주었다. 서달은 술이 깬 다음에 상황을 알아채고 크게 놀라 침상을 뛰어 내려와 엎드려서 연신 사죄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시종이 돌아가 그대로 보고하자 태조는 크게 기뻐 마음속으로 그가 꾸밈없는 충신임을 알았고 반항할 의사가 없음도 깨달았다. 그래서 궁전을 그에게 하사하여 친히 <대공(大功)>이란 두 글자를 써서 이 집의 이름으로 삼게했다 그것이 남경의 <대공방(大功方)>과 <위국공사제(魏國公賜第)>의 유래이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서달은 황제에 대해서 공손했으나 그는 여전히 그가 배반할까 염려하였다 한다. 홍무 18년에 서달의 등에 종기가 있었다. 한다. 전하는 바에는 <종기가 난 사람이 거위찜을 먹으면 즉사한다>고 했다. 태조가 사람을 보내 위문하고 거위찜 한 마리를 그에게 하사했다. 서달이 만면에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한 마리의 거위찜을 모두 먹어치웠다. 그는 그날밤 독이 온몸으로 퍼져서 급기야 죽고 말았다. 등에 종기가 난 사람이라고 해서 거위찜을 먹었다고 꼭 죽는 것은 아니다. 태조는 거위찜을 내림으로서 서달에게 죽음을 내린 것이다. 서달은 사실 거위쯤을 먹고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그날 밤, 스스로 독약을 먹고 자살한 것이었다. 이일은 정사(正史)에 기재되어 있지 않아서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다. 서달에게는 4남 3녀가 있었는데 딸 셋이 모두 태조의 며느리가 되었다. 서달의 큰 아들 서휘조는 건문제에게 충성하고 연군(燕軍)에겐 반항하였다. 성조(成祖)가 찬위한 후, 서휘조는 부친의 사당으로 옮겨 가서는 알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성조가 관리를 파견해 물으니 서휘조는 <나의 아버지는 개국공신이므로 자손이 죽음을 면한다>하는 표지를 내어 주어 보이므로 성조가 대노하였지만 그 역시 민심을 얻어야 했으므로 그를 죽이지는 않았다. 명나라가 망한 후에도 그는 남경을 수비하였기에 백성들이 그를 <수비부 서공>이라 하였으며 위국공이란 말은 원승지와 청청은 물론 누구도 들어보지 못했다.
원승지가 두장째를 집어드니 한 수의 시가 적혀 있었다.
[기울어가는 서담 사십추, 백발이 성성하다. 건곤이 어디 있는가, 강물은 흐르는데 장락궁중에 구름이 흩어져, 조원각의 벗 소리가 들리누나. 신포세류는 해마다 푸르고, 야로는 곡성을 삼키며 쉬지도 못한다!] 언래 이 시는 건문제가 각지를 돌며 다니던 때로부터 40년후에 금령이 지은 것이다. 원승지가 이 시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청청은 급히 상자안의 물건을 보려고 했기에 그 종이를 한쪽에 놓아 두었다. 원승지가 열쇠를 찾아 상자를 여니 안에 가득히 보옥(寶玉)들이 들어 있었다. 또 하나를 여니, 거기에는 비취 등의 값나가는 것들이 가득했다. 열 개의 상자를 차례차례 열어보니 모두 같았다.
원승지가 입을 열었다.
[이 보물은 명 태조가 천하 백성들에게 거둔 것인데 우리는 도대체 이걸 어디에 써야하지?]
청청은 그와 같이 있은지 오래였기에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행여라도 탐을 낸다면 그의 경멸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우리가 말한 바 있듯이 재물을 찾으면 츰왕을 돕기로 했잖소? 백성들에게 갈취한 것은 당연히 백성들을 위해 써야지요.]
원승지는 크게 기뻐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청청, 당신은 참으로 날 알아주는 지기(知己)로군요.]
원승지는 어려서부터 나라일에 심취한 아버지를 보아왔다. 침식을 폐하고 금전을 탐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자의 화목함이나, 또 친구들과의 우정도 즐기기를 탐하지 않았다. 당시 응송이 그를 가르칠 때, 일찍이 원숭환이 쓴 한 편의 문장을 가르쳐 주었는데, 당시에는 어려서 평소에 애국충정을 완전히 이해하지를 못했었다. 원숭환은 평소에 <심성은 하늘에 죄를 짓지 말 것이며, 언행은 자손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었다. 원승지가 아끼고 있는 부친의 유물은 바로 이 한편의 좌우명 뿐이었다.
청청은 그 출신이 비록 대도(大盜)의 집안이나 원승지가 자기를 <지기>로 칭하는 것을 듣자 부지중에 달콤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일시게 고시(古時) 한 구절을 떠올렸다.
[가치없는 보물은 구하기 쉬우나 님을 구하기는 어렵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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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후, 원승지는 홍승해에게 명하여 초씨편의 나입여를 불러오도록 했다. 그는 어깨의 절단된 상처가 심히 컸으나 원승지가 부른다는 말을 듣고 부축을 받아가며 왔다. 그는 원승지를 보자 스승에게 드리는 예를 행했다. 원승지가 극구 만류하며 그를 앉도록 권한 다음 한쪽 어깨로 쓰는 검법을 그에게 가르쳤다. 나입여는 무공에 본래 기초가 있었으므로 원승지가 일초지식을 자세히 설명하자 귀담아들었다. 연속 5일을 가르치자 나입여는 그것을 모두 기억하여 어깨의 상처가 낫기만을 기다렸다. 나입여는 비록 어깨를 잘렸으나 가히 강호의 절기를 배우게 되었기에 전화위복격으로 마음이 몹시 기뻤다.
원승지는 나입여를 가르치는 일을 마친 후, 북경으로 갈 채비를 했다. 초공례 부녀는 여러사람들과 함께 나와 전송을 해 주었다.
어느 덧 가을은 깊어 날씨가 상쾌했다.
원승지, 청청, 벙어리, 홍승해 일행은 목상도인과 이별을 하고는 열 개의 철상자를 수래에 싣고 북쪽으로 향해 출발했다.
초공례 부녀는 제자들과 같이 삼십리 길을 나가 배웅하고서야 이별했다.

x x x x
십여일을 가자 산동의 경계에 닿았다. 그들 일행은 주점으로 들어가서 머물기로 했다. 원승지는 열 개의 철로된 상자를 모두 방으로 들여놓도록 명령을 한 다음 벙어리와 한 방을 쓰기로 했다.
그들이 철상자를 막 놓고 났을 때 두 명의 사내가 주점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원승지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하인에게 여기서 묵겠노라고 했다. 그러자니 또 두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원승지는 뭔가 속으로 결심을 한 듯 저녁을 먹고는 모두 방으로 들어갔다.
한 밤이 되어 어렴풋 잠이 들었는데 밖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미미하게 들려왔다. 그는 금세 도둑이라는 걸 눈치채고 몸을 일으켜 촛불을 켠뒤 철상자를 열어 구슬, 보석, 비취 등을 비춰봤다. 기이하고 진귀한 보물이 등 아래에서 현란하고도 찬란한 빛을 발했다. 얼마인지 수를 알 수 없는 탐욕에 찬 눈동자들이 창밖에서 문풍지 틈새로 방안을 엿보고 있었다.
홍승해가 소리를 듣고 안심을 못하고 와서 살피러 다가가니 십여명의 정탐꾼들이 모두 몸을 감췄다. 홍승해는 속으로 빙긋이 웃고는 원승지의 방문을 가볍게 두들겼다.
원승지가 듣고 대답했다.
[들어 오시오.]
방문은 잠겨 있지도 않았다. 그가 방에 들어서자 탁상에는 보석주화가 휘황하게 빛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손가락 크기의 진주와 주홍색 산호, 영록한 벽록의 대괴조모연(大塊祖母緣), 이외에 고양이 눈보석, 홍보석, 남보석, 자옥 등 값나가지 않는 것이 없었다. 홍승해는 사실 그 열 개의 철상자 안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져 모두가 금은쯤으로 여겼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도적들이 탐을 내는 것이 이같은 보석들인 것을 알고 은연중에 놀라와했다. 그는 강호에서 오랫동안 견식을 넓혔으나 이렇게 많고 또 귀중한 보물을 보지는 못했었다. 그는 원상공이 도대체 이걸 어디서 얻어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원승지의 곁으로 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공, 이 보물들을 제가 거두어도 좋겠습니까? 밖에 사람들이 훔쳐보고 있습니다.]
원승지 역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로 그들이 지켜보게 하자는 것이야. 내 뜻은.]
그러더니 진주를 들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이 진주 목걸이 값이 얼마나 하는지 알겠는가?]
홍승해가 대답했다.
[삼백냥 정도 할 것입니다. 아니, 적어도 그 이상일 것입니다. 진주 한알에 그정도이니, 모두 스물 네알이면 적어도 일만오천냥 정도는 될 것입니다.] 이런 대화를 밖에서 듣고 있던 도적들은 즉시에 쳐들어가 빼앗을 수 없는 것이 한이 되었다. 다만 명령만 내린다면 그처럼 값진 보물을 서로 나누어 가져도 괜찮겠다고 다들 궁리했다.
원승지는 도적들이 잔뜩 집결한 것을 알고, 노상에서도 여러 궁리를 짜면서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홍승해가 입을 열었다.
[놈들의 수가 적지 않습니다. 상자의 물건도 이렇게 많으니 실수하지 않도록 힘써야 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생각했다.
(만일 금사랑군이 이때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대응할까? 금사랑군은 온씨의 5형제와 공동파에게 잡혀서도 숨겨놓은 보물을 취하려고 서로 싸웠다. 온씨 5형제는 공동파들에게 당했으며, 이로 인해 그가 기회를 틈타 도망치려다가 만석량파(晩石梁派)의 장춘구와 대머리가 화산을 습격하여 혹독한 가비급(假秘[竹+及])을 보았다. 동료조차도 죽였다. 용유방과 청청이 서로 치열하게 싸웠다. 그 큰 승리를 눈 앞에 두고도 서로 잔인하게 싸웠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전시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물건을 객주에 진열해 놓았다.
이틀이 지난 뒤, 제남부(濟南府)를 지나게 되었다. 마차부대를 이끌고 있는 도적들은 갈수록 더욱 많아졌다.
홍승해는 처음에는 공포심이 없었으나 도적들이 대군임을 보고는 무슨 계책을 세워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는 무의식중에 불안해하며 원승지에게 해도(海道)로 방향을 바꿀 것을 권했다. 그러면서 그곳에는 친구들이 많다고 하였다. 배를 타고 천진쪽 해안으로 가서 다시 북경으로 가면 비록 길은 멀고, 시일은 좀더 걸리겠지만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원승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본래 보물을 잘 이용하여 친분을 만드는 영웅호걸이 아닌가! 그리 걱정은 말게. 재화를 몸에 지니고 있지 않으니 우리도 의리를 내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홍승해는 그의 이런 말을 듣고 다시 더 권하지 않았다.
이날 우성(禹城)에 도착하여 객점에 들었다.
원승지는 길거리로 나갔다. 그러나 원승지는 은근히 몇 명의 얼굴 모르는 벙어리들을 불러 모아 홍승해와 함께 객점을 지키도록 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청청은 즐거운 얼굴로 돌아왔다. 손에는 두 개의 작은 대바구니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새가 들어 있었다. 새는 계속 울고 있었다. 그녀는 원승지에게 바구니를 건네주며 말했다.
[한 마리에 4원입니다. 밤에 여기에 매달아 놓으면 듣기 좋을 거에요.] 원승지가 물었다.
[길에서 누구를 만났지?]
[아니요. 아마도 안 만났어요.]
원승지는 눈을 크게 떴다.
[어떤 사람이 미행하지 않았어?]
청청은 대답도 않고 자기 방으로 급히 들어가 옷을 갈아 입었다. 잠시후,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돌아와 원승지에게 말을 붙였다.
[제가 그 사람을 잡아 오겠어요.]
원승지가 의아해서 되물었다.
[어디서 누굴 잡아오겠다는 거야?]
[원형도 언젠가 길거리를 해뵈하며 미친 사람으로 가장하지 않았어요?] [그럼 청청도 그리 할 수 있단 말인가?]
[네, 우리 길거리로 빨리 나가요.]
그러나 원승지는 동행하지 않았다. 대신 홍승해를 딸려 보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조심하라 이르고 혼자 객점을 나섰다.
우성은 번화한 곳이라 밤이 되어도 장사꾼들, 마부들이 끊이지 않았다. 원승지가 객점을 나서서 몇 걸음도 못가서여싸. 뒤에서 누군가가 미행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잘됐다. 너희들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구나. 우리들도 너희들에게 당할 수야 있나?)
그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계속 뒤쫓아오고 있었다. 원승지는 철가게 앞을 지나면서 대장장이를 살펴 보는 척하며 그 자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갑자기 손을 뻗어 그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 사람은 순간, 반쪽이 마비되어 원승지에게 이끌려 왔다. 골목길로 끌려 들어가면서도 저항조차 못했다.
원승지가 말했다.
[너는 누구의 수하에 있는 놈이냐?]
그러자 그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스럽게 말했다.
[상공어른, 좀 놔주십시오. 머리 좀 비틀지 마시고요.] 원승지가 계속 다그쳤다.
[빨리 말하지 않으념 더 꼭 쥐어 줄테다.]
그러자 그는 다급히 말했다.
[말하겠어요, 말하겠소! 소인은 황이모자(黃二毛子)입니다. 악호구(惡虎溝) 사성주(沙城主)의 수하에 있습니다.]
원승지가 계속 추궁했다.
[내 짐작엔 뒤에 더 많은 무리가 있을 것 같은데?]
[사성주께서 소생에게 주신 사명은......, 다음... 다음 번에도 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무리들이냐?]
[사성주께서 말씀하시길, 우리 악호구의 재물이 기호로 만들어졌으니 다른 사람들은 손도 못대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원승지는 빙긋 웃었다.
[사성주라? 그는 지금 어디에 있지? 빨리 길을 안내해라.] 그 자는 더듬거렸다.
[사성주께서는 오늘 밤 늦게 소인을 삼광사(三光寺) 밖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그는 안절부절 못해하며 원승지와 함께 동행하였다. 이때는 이미 날이 밝았고, 절에는 인적도 없었다. 원승지는 그 절이 폐허가 된 것을 알았다. 그러기에 스님들을 볼 수가 없었다. 앞뒤를 샅샅이 살펴보니 무기들이 남아 있었다.
잠시 후, 절 밖에서 어떤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10여명이 무리져 절로 들어오는 소리였다. 그들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엄노사(嚴老四), 너희는 지붕 위로 올라가 망을 봐라.] 그러자 지붕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절 밖에는 대단히 큰 무리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원승지는 무리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이게 바로 산동 8성주 집회라는 것이구나 하고 짐작했다.
어떤자가 한마디 했다.
[우리 열 개의 보물상자를 공평하게 분배합시다. 악호구가 2개, 산포강이 2개, 그 나머지 사람들에겐 한 개씩 말입니다.]
(얼씨구! 다른 사람의 물건을 제것인 양 나누자고 하단! 여기에 모여서 나누어 가질 계획이로군)
그때 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번엔 우리 장사꾼들도 합세를 하겠소. 이건 모두의 일이니까요. 너 죽고 나 사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소. 하지만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그걸 나눠 가지겠소? 내 말은 사성주를 두목으로 해서 보물을 나누자는 것입니다.] 원승지는 그들의 모이을 보고 그들을 칠 방법을 모색했다.
(이렇게 많은 자들이 모이리란 건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다. 어서 일행드에게 알려야겠는데.......)
그는 급히 돌아와 벌써 귀가해 있는 청청에게 귀뜸을 했다.
[도적의 무리가 그토록 크다면 조용히 일을 처리할 수는 없겠군요. 어쩌지요?]
[도적을 잡으려면 도적의 소굴로 들어가야 하니, 정말 재미있을 거요.] 다음 날, 그들이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길 위에는 정찰하러 나온 도적들이 끊이지 않았다. 원승지는 그 무리들을 모르는 척 해싸.
홍승해가 입을 열었다.
[원상공, 저들의 득의양양해 하는 꼴을 보니, 오늘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겠습니다.]
원승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청청은 마차편대나 돌보고 있어요. 노새가 놀라서 달뛰지 못하게 말이야.
저놈들은 우리 세 사람이 맞서 주겠어.]
홍승해는 명령대로 따랐다.
원승지가 손짓으로 벙어리를 부른 것은 그로 하여금 자기의 손동작을 보고서 행동을 취하게끔하여 완전히 그들을 잡기 위함이었다. 벙어리는 곧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신패(申牌)를 지날 때쯤, 장장(張莊) 가까이 우거진 숲속에서 갑자기 머리를 때리는 듯한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소리는 활쏘듯이 지나갔다. 징소리가 한 번 울리자 숲속에서는 수백명의 괴한들이 송곳으로 뚫고 나오듯이 빠져 나왔다. 그들 모두는 각각 푸른천의 머리띠를 두르고, 검은 옷과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칼을 쥐고 말없이 길 앞을 가로막았다. 마부들은 이미 형세가 불리함을 알고 머리를 감싸고 땅에 쪼그리고 앉았다.
이것은 행각의 규례로, 도망가거나 뛰어들지 못하게 하려함이었다. 길을 막고 강도질을 하려는 사람들은 마부를 해치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휘파람소리와 어지러운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수풀 옆쪽에서 여러명의 기마병들이 뛰어나와 마차부대의 뒤를 가로막아 뒷길마저 봉쇄해버렸다. 그것또한 조용히 진행되었다 어제 삼광사에서 원승지는 도적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이제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앞쪽에 8명이 한 줄로 서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은 30여 세의 얼굴이 흰 도적이었는데 무리중에서도 두드러져 보였다. 그는 무리를 헤집고 나왔는데 손에는 무기도 쥐지 않았다. 다만 음양선(陰陽扇;주름이 있어 접혀지는 부채)를 흔들며 작고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상공, 어서오시오!]
원승지는 이 소리를 듣고서야 그가 악호구의 사성주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보고는 마음속으로 과연 무예에 강한 자라고 생각했다. 손에 들려있는 철제 음양선는 많은 흠집이 나 있었다.
[사성주, 안녕하셨소!]
두손을 모아 인사를 하자, 사성주는 자뭇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가 어떻게 내 성이 사씨라는 것까지 알지?)
그러나 태연하게 한마디했다.
[원상공, 먼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원승지는 그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사라을 시켜 내 뒤를 미행했으니, 자연 나의 성이 원씨라는 것은 일찍이 들었으리라. 하지만 내가 그를 사성주라 불렀을 때 그의 이상한 표정은 이해할 수가 없어. 차라리 그를 모른 척 할 걸.)
원승지도 한마디 했다.
[원상공의 상경은 어쩐 일이오?]
원승지가 대답했다.
[예, 동생이 공부가 부족하여서 시험을 치고 또 쳐도 시종 낙방만 하기에 뇌물을 좀 바치려고 갔었소. 그런데 그 분이 워낙 결백하고 청렴해서.......] 사성주도 웃으며 응수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누구나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정말 고생할거요.] 원승지도 싱긋 웃었다.
[어제 한 친구가 나와 이야길 했는데, 오늘 사씨 성을 가진 친구가 길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조심하라고 하더이다. 또 살표강(殺豹崗), 난석채(亂石菜) 등등 모두 8성의 주인들이 있다고 하던데요? 우리들은 너무나 기쁩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열렬하게 환대해 줄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이 길을 오면서 긴장을 풀지 않고, 항상 주의를 살피면서도 사성주를 기다렸지요. 잘못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렇게 만날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부하들을 이렇게 데리고 나오셨는데, 어찌 상경치 않을 수가 있겠어요? 우리들과 같이 동행하는 것이 어떻겠소? 걸어가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한다면 우리 가는 길도 외롭지 않을 거요.]
사성주는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원상공은 집에 있지 않고, 하필 집을 나와 이렇게 분주히 돌아다니시오? 강호에 험악한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시는 모양이지요?] 원승지가 대답했다.
[집에 있을 때 이미 들어 알고 있지요. 그러나 강호에 어떤 협잡꾼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천리 이상이나 달려왔소. 어찌 그것을 모르겠소. 허지만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소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두가 날 속인 말이고, 진실이 아니었소. 그런데 이렇게 많은 친구들은 여기에 서서 무얼하고 있는거죠? 무공단련을 하고 있는거죠? 참 재미있습니다.]
7명의 성주들은 원승지의 반은 정신나간 듯한 넋두리를 듣고 있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사성주에게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며 행동개시를 명령할 것을 재촉하는 태도를 보였다.
사성주는 웃음띤 얼굴이었는데 갑자기 큰소리를 내며 철부채를 폈다. 하얀 부채위에 검은색 해골이 그려져 있었다. 해골의 입가운데에는 칼이 물려져 있었다. 공포심을 조성케 하는 그림이었다.
청청은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낮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원승지도 비록 무예가 뛰어나고 담이 큰 사람이지만 한차례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사성주는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부채로 손짓하였다. 그러자 수백명의 도적때들이 일제히 마차부대 앞으로 덤벼들었다. 원승지는 몸을 날려 순식간에 사성주를 사로잡았다. 그러자 홀연히 수풀 속에서 입으로 부는 대나무 이파리의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성주도 이를 듣자 안색이 일변하여 부채를 또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도적떼들은 동시에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숲속에서 다시 두 마리의 말이 달려 나왔다.
앞에 있는 한사람은 수염과 눈썹이 모두 하얀 노인이고 뒤에 있는 사람은 상투를 늘어뜨린 푸른옷의 소녀였다. 슬쩍 쳐다보니 대단한 미인이었다. 두 사람은 사성주와 원승지 사이로 오더니 말을 세웠다. 사성주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여기는 산동지역이오!]
그러자 노인이 대댑했다.
[누가 아니라 했소이까?]
사성주가 다시 한마디 했다.
[우리들은 금년에 태산에서 대회를 하였소. 내용이 무어신지 알려드릴까요?]
노인이 대답했다.
[우리들 청죽방(靑竹幇)도 산동모임을 도와드리지 못했지만, 당신들도 북직례로 가서 행동할 수는 없소이다.]
사성주가 되물었다.
[그렇습니까? 한데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노인장께서 직접 예까지 나오셨소?]
그 노인이 싱긋 웃었다.
[많은 재물이 북직례으로 간다는 소리를 들었소. 물건도 적지않은 것 같고 해서 우리들이 먼저 좀 그것을 보려고 왔소이다.]
사성주가 사색이 되어 대답했다.
[물건이 노인장 구역에까지 들어오길 기다렸다면 그건 너무 늦은 것 같소이다.]
[어째서 늦었다는 거요? 물건들이 악호구의 당신 동생 성에 이미 도착했는데, 어찌 참새가 떡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소?]
원승지와 청청, 홍승해 등 3명은 눈이 둥그래져서 서로 바라만 보았다. 그들은 이제야 하북(河北)의 큰 도적을 만났구나 생각하며 어떻게 타협하는지를 지켜보았다. 산동 도적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사성주가 외쳤다.
[정청죽(程靑竹)노인, 당신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시는군요!] 노인이 대답했다.
[당신이 만약 예의가 있다면 산동쪽엔 오지 않았어야지요. 당신은 도상(道上)의 규례도 지키지 않으니, 참 뻔뻔스럽군요!]
정청죽이 화를 내었다.
[망나니처럼 뒤죽박죽 무슨 말을 하는거요? 나는 나이가 너무들어 귀가 어둡고 눈도 밝지 못하오. 산동 도상의 모든 친구분들이 모두 나를 보고 의리가 두텁고 덕망이 하늘 같다고 칭찬을 하지 않습니까?]
사성주가 부채를 휘두르자 무리들이 입을 다물었다.
[우리들은 이미 선약한 바가 있는데 정노인은 어찌 후회하지 않겠소? 신의가 없으니 강호의 영웅호걸들이 비웃지 않겠소이까?]
정청죽은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려 소녀에게 물었다.
[아구야! 내가 집에서 네게 무슨 이야길 했지?]
그 소녀가 대답했다.
[어른께서 말씀하시길, 우리들이 한가한 것도 한가한 것이려니와 산동을 산책하는 것만도 못하고, 기회를 틈타 재물을 탈취하는 것만 못하다 하셨습니다.]
청청은 금쟁반에 옥구술 구르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와 또렷한 말씨,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에 놀랐다. 청청이 실눈을 뜨고 쳐다보니 자태는 선녀와 같고, 두 뺨은 불그스름했다. 나이는 비록 어리나 용모가 아름다왔다. 기풍 또한 고아한데다 미모까지 뛰어났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저런 소녀가 도적의 무리중에 있다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청청은 그간 자신의 미모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외모로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겼기에 원승지의 눈길을 끌 수 있었다.
정청죽이 싱긋 웃었다.
[우리들이 규례를 만들었다고 내가 말한 적이 있었는가?] 아구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어른께서 우리들과 산동의 동지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신 것은 산동지역에는 금산(金山) 은산(銀産)이 앞에 있으니, 청죽방도 큰 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매 말로써 믿는다 하였습니다.
정청죽이 머리를 돌렸다.
[여보시오! 당신은 들은 적이 없소? 나는 거의 산동지역의 규례를 말한 것 같은데 말이오.]
사성주의 얼어붙은 얼굴이 좀 풀어지며 웃음기가 돌았다.
[좋소, 이제야 좀 예의를 차리시는군요. 난 또 정노인이 예의와는 거리가 먼 줄 알았소이다.]
정청죽은 이 말이 거슬린 듯 아구에게 다시 물었다.
[아구야! 우리들이 집에서 또 무슨 말을 했었지?]
아구가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네께서 재물이 많으니, 길 위에 만약 떨어뜨린 것이 있다면 우리들도가히 농간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쉽게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겠으나, 그건 우리들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음, 만약 체면불구한다면 물건은 손에 넣을 수 있겠구나.] [어르신네께서는 복직례에서 돈을 벌어 산동으로 가 간수하는 것이 더욱 좋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일을 도모한다면 우리들도 어쩔 도리없이 양산까지 물고가 간수하는 것이 더욱 좋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을 도모한다면 우리들도 어쩔 도리없이 양산(梁山)까지 끌고가 간수하는 수 밖에 없다고도 말씀 하셨습니다.
정청죽이 픽 웃었다.
[어린 것이 기억력도 좋구나. 나도 정확히 그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사성주에게 눈길을 돌렸다고?
[여보시오, 잘 알겠소? 우리들 산동에서의 규례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조금도 틀림이 없소. 그러나 나 정청죽은 완전히 약속하지 않았소?] 사성주의 얼굴이 퍼렇게 변했다.
[우리들의 일을 묵인할 수 없다고요?
[재물이 북직례쪽으로 들어오길 기다려, 자기가 손을 쓰려고 한느 것은 어쩐 일이오? 그렇게 꾸민 거지요?]
[그렇소, 태산대회의 약정은 결국 지켜진 것이오. 북직례로 돌아가 우리의 본거지 사람들을 훈련시켜 다시 표행([金+票]行)을 도모, 재물을 갈취하고 싶소.]
도적들이 그의 언변력있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다른 두 노인과 한 소녀가 앞으로 나와 마구 칼을 휘두렀다. 아구의 손에는 두장의 죽엽이 있었는데, 입술에 갖다 대더니 훅 날려 보내었다. 그러자 숲속에서 수백명의 무리들이 돌연 웅위해 나왔다. 의복은 ㄱ지각색이고 머리에는 다섯 자 정도의 내장(來長)을 꽂고, 청죽(靑竹)을 들고들 있었다.
사성주가 놀란 얼굴을 했다.
[사람들을 이렇게 매복시켜 놓았었군요. 이렇게 많은 기마병이 산동으로 왔는데도 우리들의 정찰병들이 모르고 있었다니, 쓸개빠진 놈들 같으니라구! 아직껏 이 소식도 모르고 있었다니.......]
그가 음양선를 휘두르자 7명이나 되는 성주들이 연합한 가운데 악호구의 두 명의 성주는 8성의 병사들을 이끌고 전투태세를 취하였다. 눈에 선히 뵈는 것은 한 판의 접전이었다. 사람 수는 산동의 도적들이 많았지만 청죽방도 이미 준비해온 터라, 싸움이 붙는다면 풍전등화격일 것이었다.
[물건도 손에 넣지 못하고 먼저 싸움부터 벌어지니 정말 웃기네요.] 청청의 말에 원승지도 웃었다.
[우리들은 구경이나 하지. 그것이 좋겠어.]
산동 도적들은 무리져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 보엿으나, 수십 명의 감시자를 마차부대편에 남겨놓아 도망가는 자들은 막도록 했다.
원승지가 홍승해를 손짓, 가까이 오게하여 물었다.
[청죽방은 어느쪽 파벌인가?]
[북직례쪽엔 전부가 다 청죽방의 세력권입니다. 저 정청죽노인이 우두머리이죠. 깡마르고 늙었다고 얕보지 마세요. 무예가 대단히 뛰어나답니다.] [그럼 그 소녀는요? 그의 손녀쯤 되나요?]
홍승해가 대답했다.
[정청죽은 성질이 괴하기로 유명하다고 들었거니와 장가도 못갔는데 어디 손녀가 있겠습니까? 아마 양손녀쯤 되겠지요.]
청청은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말이 없었다. 아구의 태도를 본 즉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녀도 무예가 뛰어나리라.> 짐작했으나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 청죽방쪽에서 대피리 소리가 연이어 나는가 싶더니 수백명의 4개의 부대로 열을 지었다. 정청죽과 아구는 말고삐를 잡고 진으로 들어가 4부대의 앞에 섰다. 그러나 손에는 여전히 무기가 들려 있지 않았다. 눈 앞에는 쌍방의 일대 접전이 금세 펼쳐질 기세였다. 그런데 홀연히 남쪽에서 북을 울리며 3명의 기마병이 급히 질주해왔다. 앞선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은 모두 친구들이오! 얼핏 보니 형제의 얼굴도 있는데....... 그만들 하시오!]
원승지가 속으로 <해결사가 오는구나>하고 생각했다. 3명의 병사들이 오는데, 그들을 보니 앞선 사람은 50세쯤되는 뚱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화금단(團花錦緞)의 옷을 손에는 투박한 담뱃대로 들고 있는데 지주(地主)같았다. 뒤에 따라오는 두 사람도 거칠게 생긴 사람들이었다. 그 뚱보는 두 부대의 중간까지 달려와 담뱃대를 한 번 흔들었다.
[모두 같은 형제들이니 말이 필요없겠습니다. 여기에서 싸운다는 것은 강호의 동지들에게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성주가 대답했다.
[저장주(楮莊主), 이리로 와서 이 꼴들을 보게나.]
그는 청죽방의 지역을 넘어온 사실들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정청죽은 다만 냉소를 띠며, 아무런 말 참견도 하지 않았다.
홍승해가 원승지에게 속삭였다.
[상공, 저 사성주인 사천광(沙天廣)의 별명이 지닌 것처럼 음양선이고 이 저장주라는 살마은 저홍유(楮紅柳)인데 산동지역의 두 패자(覇者)들입니다.] [음, 먼저 번에 말한 그 두사람이군.]
청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그도 무슨 장주라고 하던데?]
원승지의 말에 홍승해가 대답했다.
[사천광 개산(開山)에서 도적질을 하고 있죠. 저홍유는 암암리에 결탁한 자로 당원 내에 있지는 않죠. 혼자 일을 하면서도 많이 할 ㄸ는 두 세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닙니다.]
정청죽이 내심, <이 사람이 바로 나와 5명의 공(公)들과 함께 동행한 장사꾼이로구나. 동생이 전에 당신의 도매상들을 믿었다는데, 저 뚱뚱보는 모르나봐> 하고 생각했다.
저홍유가 입을 열었다.
[정형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님께서 잘못하셨습니다. 금년 태산대회에서의 결정은 각자가 지위를 가지고 기회를 기다리며 형제들과 회의를 모색하기로 돼 있습니다. 여러분이 선정한 것은 지역 침범안이 아닙니다.] 정청죽이 대답했다.
[우리들은 규례를 만들지 않았으니, 청죽방은 구경만 할 수는 없잖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고치러 갑시다. 명나라의 왕법도 이것을 마다하지 못할 거요.
저형, 당신의 기별도 민첩하지만 거기에는 도적질이 있소. 당신의 담뱃대도 거기에서 얻은 것이 아니오?]
저홍유는 껄껄 웃으며 뒤쪽의 두 사람을 가리켰다.
[저 두사람은 회음(淮陰)의 두 호걸이오. 며칠 전 급히 내게로와 하는 말이 재물을 받들어 바친다고 하였소. 동지들도 몸이 비대하여 더뒤를 싫어하고 게으르지만, 그 형의 열성을 다해 형제들과 함께 기회를 엿보고 있었소. 그런데 모두 여기에서 이렇게 만날 줄을 누가 알았겠소? 그게 대단하군요.] 사천광이 생각했다.
(이 저씨의 무공이 대단한 것 같으니 우리가 먼저 한몫ㅅ을 떼어줄까? 아니, 그건 그와 결탁하는 것만 못해. 함께 청죽방에 대항해야겠어.) 마음으로 결정한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어렵게 여기까지 왔소. 저장주도 산동지역 사람이어서 아직 이야기는 안해 봤지만 몫을 나누는 것이 어떻겠소? 그러나 다른 사람들까지 끼어들었으니 이번에는 양보하고, 다음 번에 산동형제들끼리 갖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저홍유가 눈을 크게 떴다.
[정형님, 뭐라고 하셨소?]
[우리들도 힘들게 여기까지 왔소. 사정주도 분명 체면을 생각치 않을 터이니 무슨 방법이 있겠소! 우리 모두 기분좋게 창과 칼로 승부를 겨룹시다!] 저홍유가 고개를 돌려 옆으로 물었다.
[사동생, 당신은?]
[우리들은 산동의 호걸들이오. 다른 자들에게 병신취급을 받을 수는 없소이다!]
이 말은 분명이 저홍유를 합세하게끔 한 것 같았다.
정청죽이 결정을 내렸다.
[우리 다같이 여기까지 왔으니 역시 1대 1로 겨뤄봅시다. 사성주가 응낙했으니, 나머지 사람들도 이에 따라야겠지요.]
사천광은 음양선을 활짝 펴서 휙휙 허공을 가로지르는 소리를 내더니 저홍유에게 물었다.
[저장주, 당신은 뭐라 이야기했지요?]
저홍유도 회음의 쌍걸(雙傑)로 여기고 있으나, 본래 혼자 재물을 다 차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발 늦은 것이었다. 게다가 휘하에 거느린 사람도 적기에 그는 사실 물건이나 나누었으면 하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는 청죽방의 부하들이 적지 않음을 안다. 그 두목 정청죽도 나이는 많지만 결코 보통내기가 아닌 듯 싶어서 그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는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피할 수야 없겠소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칠 것이오. 우리들은 본래 원수지간도 아닌데 하필이면 싸워야 되겠소?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떻소?]
정청죽과 사천광은 뜻을 함께했다.
[저장주, 말씀해 보시오.]
저홍유는 담뱃대를 치켜들고서 10개 편대의 마차를 가리켰다.
[여기엔 10개의 상자가 있습니다. 우리 산동 북직례의 각파가 10개이니, 이것이 10번 싸움을하여 점수로 따진다면 사람도 다치지 않을 것이오. 한 번 이길 적마다 상자 한 개를 가지면 됩니다. 그게 가장 공평한 방법이 아니겠소? 우리들도 무예는 연마했으나 너무 움직이지 않았으니 한 번 겨뤄봄도 좋겠지요. 상자도 얻고, 즐겁기도 하고, 그러나 상자를 얻지 못하면 오히려 자기의 몫을 내 놓는 것이되니 자존심은 상하게 되겠지요. 두 분 생각은 어떻소?] 정청죽은 이 방법이 괜찮다 생각이 되어 좋다고 하였다. 사성주는 마음속으로 정청죽을 기피하고 싶었으나 청죽방은 이미 준비태세를 갖춰ㅓ놓고 있었다. 대오도 정돈되어 있었다. 오합지졸 같은 산동도적들에겐 패배만 잇을 듯하였다. 만약 결전을 한다면 이기지 못할 것은 뻔했다.
(내가 매채파(每寨派) 사람들을 불러들여 승리한다면, 물건을 그들에게 주어야 되지 않는가! 그렇지만 진다면 우리와는 무관하겠지. 나와 담이로(譚二老)가 출전한다면 결코 패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상자 두 개를 얻을 것이야. 다른 하나는 저장주에게 갖게 하자.)
그도 생각을 정리하고 바로 승낙했다. 쌍방은 부대를 모아 사람을 뽑았다.
저홍유는 사람을 시켜 철상자에 황색글씨로 <甲(갑)>, <乙(을)>, <丙(병)>, <丁(정)>, <戊(무)>, <己(기)>, <康(강)>, <辛(신)>, <壬(임)>, <癸(계)> 10개를 표시했다.
원승지와 청청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정청죽은 두려워 하는 기색이 없는 두 사람을 보고 오히려 이상히 여겼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그들을 바라보곤 하였다.
도적들은 큰 원을 만들었고 저홍유가 그 가운데 서서 심판을 하였다.
제 1진 산동 도적 선발팀이 나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두 사람 다 기골이 장대하고, 완력도 대단해 보였다. 치고 받고 한 차례 싸움이 벌어졌다. 북직례의 살마이 조심하지 않아 그만 다리를 공격당해 꺾인 채 꼬꾸라졌다가 다시 일어나 싸웠다. 그러나 저홍유가 손을 들어 멈추게 하고 상자에 <甲>자를 <魯(노)>자로 썼다. 산동이 첫 대결에서 승리하자 도적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북직례파에서 제 2진이 나왔다. 사천광은 그가 철사장(鐵沙掌)의 고수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담이채주가 그를 이기기라 믿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급히 그를 내세웠다.
두 사람의 권법은 거의 막상막하였다. 담이채주는 권법을 다해 때려부수었다. 주먹이 상대방의 어깻죽지를 때리니 그 사람은 어깨를 다시 들지 못했다.
산동 도적들이 득의만만하여 승승장구를 외쳤다. 제 3, 제 4, 제 5, 제 6진들을 다 이기고 말았다. 4개의 상자 위에 <直(직)>자가 써졌다.
제 7진은 칼로 싸웠다. 살표강 성주가 번뜩이는 구환도(九環刀)를 메고 나왔는데 위풍이 당당하였다. 저홍유는 마음속으로 <또 3개의 상자에 그들의 이름이 써지겠구나> 생각하고 <쌍방이 나눠가지면 창피한 일>이라고 여겼다.
또 그때 제 8진이 청죽방파에서 나오니, 자기 수하를 출진시켜서 한 상자라도 더 얻으려고 했다.
[저장주의 장수들을 우리 상동파와 겨루게 합시다.]
사천광에게 한 소리였다.
상대편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가 싶더니, 저홍유가 멍해졌다. 그는 곧 아구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과 15, 6세도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더군다나 손에는 아무런 무기도 없었다. 단지 2개의 가느다란 막대기만 쥐고 나왔을 뿐이었다. 저홍유는 속으로 <나는 이름이 있는 고수인데 어찌 저런 연약한 계집과 싸워야 하는가?>하며 앞으로 몇 걸음 나서려다 되돌아와서는 사천광에게 투덜거렸다.
[사형, 다른 사람을 내보내시오. 나를 대신해 싸울만한 사람으로!] 사천광은 그가 소녀와 싸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아 차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흥치호(興緻好)가 그녀를 상대할 것이니 걱정마시오!] 무리중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데, 키도 크고 얼굴도 백옥같았다. 손에는 한 자루의 판관필(判官筆)을 들었는데, 마치 산동 8명의 성주중 황석파(黃石派) 성주인 주동(奏棟) 같았다. 가끼이 보니 바로 그였다. 이 사람의 풍류도 대단해 보였지만 소녀의 미모도 빼어났다. 그는 사천광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급히 답하며 달려나왔다. 그를 보자 사천광이 슬쩍 웃었다.
[우리들 중에도 당신을 상대할 사람이 있소이다.]
주동은 고의로 농간을 부리며 사뿐이 일어나 몸을 가볍게 날려 아구 옆에 가 섰다. 그는 몇 마디 말을 하다가 발을 떼었다. 순간 푸른 그림자가 번뜩이더니 대막대기가 그의 가슴을 향해 날아오자 주동은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주동은 땅으로 뒹굴며 급히 피하였으나 온몸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산동의 도적들은 어린 아구의 무예가 그같이 뛰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원승지와 청청도 의외로 날라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아구의 손에 있는 대막대기의 사용법은 쌍창창법이었다. 대나무의 부드러운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모든 일행중에서 그런 걸 할 줄 아는 자는 없었다.
주동이 속으로 초조해하고 있었다.
(한낱 계집애조차 장악 못하면서 어찌 산동에서 활거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판관쌍필을 잡을수록 더욱 긴장되었다.
아구는 돌연 왼손에서 막대기를 땅으로 던지며 몸을 날리는 동시에, 오른손으로도 대막대기를 던지더니 다시 일어나 상대방 앞에 우뚝섰다. 주동은 그것을 방어할 방법을 알지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진채 멍청이 처럼 서 있다가 <견정혈(肩貞穴)>을 그녀의 막대기에 얻어 맞았다. 곧 왼쪽 어깨가 마비되더니 그는 판관필을 땅에 떨어뜨렸다. 얼굴이 붉어지면서 패배를 시인하고야 말았다.
[아가씨의 무공은 정말 뛰어나오. 강한 장수 아래 약한 병사 없다더니.......
과연 훌륭한 무공이오. 내가 한 번 배우고 싶은데 어떻소?] [저는 아직 능숙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당신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괴상한 병도를 사용한다던데요?] 그녀가 저홍유를 보며 말하자 그는 씩 웃었다.
[이건 어른과 아이가 노는 것 같군. 병도도 사용할 줄 아오? 하시만 아쉽게도 내 손엔 아무것도 없는데.......]
사실 그는 싸움을 구경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어린 소녀가 이렇게 대단하니, 상대쪽에서도 반드시 더 뛰어난 자가 있으리라고 믿었다. 청죽방 무리들도 아구의 두차례 싸움을 보고 긴장했으나 벌서 3명이 앞으로 나아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구는 이길 수 있었으나 겸양해 했다.
[저는 저홍유에게 이미 대답했습니다.]
세 사람이 물러나자 정청죽이 아구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녀는 돌아갔다.
정청죽이 그녀의 귓가에 몇마디 말로 분부하였다.
아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싸움 장소로 되돌아와 저홍유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취하였다.
저홍유는 천천히 걸어서 한발 한발 다가가더니 돌연 왼손을 펴 그녀의 오른쪽 어깨를 공겨했다. 아구는 두 막대기를 내던지며 몸을 날려 피하였다. 손으로 다시 막대기를 빼내어 대단히 빠른 기세로 달려들었다. 막대기는 저홍유의 견갑골(肩甲骨;겨드랑이)을 파고 들었다. 청죽방의 무리들이 크게 소리쳤다. 저홍유는 정신이 흐려졌다. 점점 얼굴색이 변하여 이마까지 붉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또 공격을 취해왔다.
아구의 무공은 신출귀몰하고 나는 듯하였다. 조금의 허점만 보이면 곧바로 공격을 퍼부었다. 저홍유의 몸도 건장하나 사지와 어깨에 이미 많은 상처를 입었기에 차츰 정신을 잃어갔다.
원승지가 청청에게 한마디 했다.
[저런, 나이 막은 사람이 꼬마 아가씨에게 골탕을 먹이다니....... 좀 봐! 독이 묻어 있어.]
청청도 한마디했다.
[내가 그녀를 구해줘야 겠어요.]
원승지가 씨익 웃었다.
[두 사람 모두 재물 때문에 싸우는데 우리가 무얼 구해주겠다는 거야?] [저 아가씨에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요. 구해주고 싶어요. 상공이 손 좀 써봐요.]
원승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장은 더욱 격렬해갔다. 저홍유는 얼굴이 온통 빨개져 거의 피를 다 쏟은 듯 했다. 어깨위의 손도 점점 붉어져 갔다.
원승지가 혀를 찼다.
[손이 점점 붉어지는 걸 보니 저 아가씨도 보통이 아닌데.] 이때 저홍유의 몸에는 몇 개의 막대기가 날아들었다. 그는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손만 허우적거렸다. 아구는 상대방을 무수히 공격했지만 전처럼 민첩하지는 못했다. 정청죽이 명했다.
[아구야! 돌아와라. 저홍유가 이겼다.]
아구가 몸을 돌려 물러서려하자 저홍유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외쳤다.
[날 이렇게 상처내 놓고선 도망갈 생각을 해?]
그의 손은 힘이 좀 빠져 있었지만 아직 그녀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점점 붉어짐을 보자 정청죽은 부하를 시켜 두 개의 대막대기를 가져오게하여 그에게 전졌다. 저홍유와 아구 사이에 간격이 생겼다.
[이미 승부는 났소. 저형이 이겼으니 어서 놔 주시오.] 사천광이 말했다.
[두 사람이 한 사람과 대항한 것 아니오?]
그러면서 그는 음양선은 펼쳐들고 정청죽 앞을 지나갔다. 냉소를 띄며 말했다.
[점수가 가산됐으니 잘못은 없소. 허허.......]
그는 긴장하며 손을 꽉 쥐었다. 정청죽은 아구를 구할 생각이었으나 사천광 때문에 재빠른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다.
아구의 머리는 땀으로 온통 뒤범벅이 되었다. 그녀가 저홍유의 손을 보니 상처가 깊었다.
원승지가 갑자기 큰 소리를 쳤다.
[아야! 아이쿠! 못 살겠네! 살려줘요! 살려줘요!]
말 탄 자가 싸움장 속에서 곧바로 달려나왔다. 정청죽과 사천광도 막 뛰어갔다. 가보니 원승지는 말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두 손을 말 목에 집어넣고 있다가 갑자기 말 배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즉시 위로 올라갔다.
그 말은 곧바로 아구에게로 돌진하더니 그녀와 저홍유 사이에 멈춰섰다. 원승지는 숨을 헐떡거리며 말에서 내려와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못 살겠소. 정말 죽음 같은 지옥에서 도망치고 싶소. 금수같은 놈들! 금수만도 못한 놈 같으니라구! 이게 대부의 명령이란 말이오?] 이렇게 가로막자, 아구는 부끄러운 듯이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막대기를 모아서 돌아갔다. 저홍유는 내심 달갑지 않아 했다.
정청죽이 한마디했다.
[사성주, 늙은이가 당신의 음양보선(陰陽寶扇)을 돌려드리다.] 사천광이 싱긋 웃었다.
[좋소. 마지막 상자 하나는 우리들의 결투로 결정합시다.] 또 이렇게하여하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10여 차례를 싸우도록 했다. 싸움은 끝이 나지않고 서로 죽이기만 하였다. 정청죽의 쌍막대기는 매우 길어 사천광의 철선(鐵扇)은 감히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어느 덧 해가 저물었다. 새들도 둥지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싸움은 계속되었다. 사천광은 점점 기력이 떨어져 다리마저 공중에 떠 있는 듯했다. 저홍유가 소리쳤다.
[서로 힘이 비슷하니 승패를 가리기가 어렵겠소. 이 한 상자는 공평히 나누도록 합시다.]
정청죽이 크게 한 번 웃더니 대나무를 땅에서 주웠다. 그러자 사촌광은 급히 몸을 피하였다. 정청죽이 그것을 모아 여러개를 한꺼번에 던지니 사천고아의 몸을 마구 뚫고 들어갔다. 왼쪽다리에 이미 한 개가 박혀 있었다. 이제 설 수 조차 없는지라 그는 땅에 넘어지고 말았다.
정청죽이 말했다.
[용서하시오.]
사천광은 이를 악물고, 한 손으로 부채를 잡아 그를 향해 부채질을 하였다.
그러자 5개의 강철이 발사되었다. 정청죽은 강철을 미처 피하지 못해 등허리를 강타당했다. 정청죽은 바싹 다가가 몸을 돌려 두 개의 대막대기를 던지니 사천광의 아랫배에 가서 꽂혔다.
이 두 사람은 분개하여 서로 힘을 다해 싸우다가 사천광이 끝내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산동 도적들은 창을 들고 사천광을 구하려고 했다.
정청죽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큰대자로 뻗어버렸다. 아구가 급히 노인에게로 가 그를 부축하였다. 청죽방의 무리들도 우두머리의 생사가 어떤지를 알기 위해 몰려왔다.
또 한차례 산동의 도적들과 일대 혼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때 비비무(非比武)는 이미 대단한 상처를 입어 선혈이 낭자했다.
저홍유가 악호강의 담이성주의 어깨를 잡고 외쳤다.
[빨리 모두 멈추라고 해!]
담이성주가 호각을 꺼내어 빽빽 불어대자 산동 도적들이 물러났다. 그쪽에서도 대피리 소리가 들리니 청죽방의 무리들도 재빨리 후퇴했다.
아구는 정청죽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혼전이 끝난 것을 알고 상대편을 쳐다보았다.
처홍유가 두 편의 중간에 서서 소리높여 외쳤다.
[여러분! 이제 더 이상 싸우지 말고 화해합시다. 우리들 이제 상자를 다 분배했으니, 천천히 따지기나 합시다.]
담이성주가 대답했다.
[마지막 상자는 우리들 것이오!]
청죽방의 사람들이 맞장구쳤다.
[체면이 있소, 없소? 생각해봐도 그렇지, 이게 어찌 당신들 것이오?] 쌍방이 서로 욕지거리를 퍼붓고 다시 싸우려고 하였다. 저홍유가 잘라 말했다.
[이 상자는 공평하게 나누겠소.]
쌍방은 두목의 상처를 돌보며 견제하고 있었지만 감히 저홍유의 뜻을 거스르려하지 않았다. 더구나 재물이 적지 않음을 알고는 모두 만족해 하며 그것을 나르기 시작했다.
아구가 입을 열었다.
[8번째 상자는 내 것이오. 그러나 그것은 객인에게 주겠소. 누구도 그에게 주는 것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저홍유도 한마디했다.
[뭐라구요?]
아구가 응수했다.
[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벌써 죽은 목숨일 것입니다. 그에게 사례하고 싶습니다.]
저홍유는 빙긋 웃었다.
[꼬마아가씨, 사리가 분명하군. 좋소, 얘들아, 그걸 날라 드려라. 상자에 적은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무리들이 상자를 옮기려 할 때 원승지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이제야 무예연습을 다 하셨습니까? 매우 보기 좋았습니다. 강호의 도매상인 쪽이 승리했군요....... 그런데 지금 무얼 하고 있소?] 아구가 피식 웃었다.
[보면 모르십니까? 우리들은 상자를 나르고 있습니다.] 원승지가 말했다.
[그건 곤란합니다. 나도 큰 부대를 이끌고 있소. 여러분들이 이처럼 수고를 하신데, 내가 두고 볼 수 있겠소.]
아구가 운을 떼었다.
[우리들은 당신을 대신해서 나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서 운반하는 거죠.]
원승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거 이상하군요. 이 상자들은 모두 내 것인데....... 당신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닙니까?]
산동 도덕들 중 하나가 욕설을 퍼부었다.
[저런 사람이 어찌 밥을 먹고 똥을 싸는지 한심하군. 그와 함께 무얼 이야기하는 거요? 이번에 당신 목숨을 건진 것도 다 조상덕인 줄 아슈!] 그는 몸을 돌려 상자를 들어 올려찼다.
원승지가 다시 소리쳤다.
[아이쿠! 큰 일 났구나!]
그는 상자 위로 기어 올라가 다리를 포개고 앉았다. 어떤 얼간이 하나가 걸려 넘아졌다. 원승지는 상자위에서 다시 수족을 허우적대며 소리쳤다.
[아이쿠! 살려주십시오! 살려줘요!]
아구도 그가 정말 미친 줄로 알고 그를 잡아 끌어 내려놓고 한편은 화를 내고 한편으로는 웃으며 외쳤다.
[당신도 사람이에요?]
무리들은 그의 이런 행동을 보자 재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계속 상잘르 옮겨 날랐다. 원승지는 쉬지 않고 두 손을 흔들며 외쳤다.
[천천히, 천천히 해요! 내 상자를 어디로들 옮기는 거요?] 아구가 대답했다.
[우리들 각자의 집으로 갖고 가지요.]
[각자의 집이라니?]
아구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멍청한 사람이군요. 얌전하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세요. 당신의 생명을 그냥 놔주는 건 아닙니다.]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의 말이 일리가 있소. 그러나 나는 상자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오.]
그때 마침 걸려 넘어졌던 자가 화가 났는지 그를 향해 머리와 어깨를 마구 내리쳤다.
[무릎 꿇어! 이 빌어먹을 자식아!]
이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뒤쪽에서 원승지가 그를 잡고 번쩍 쳐들었다. 그 사람은 장난감처럼 공중에서 빙글 돌더니 저쪽 멀리 있는 나무 위에 가서 떨어졌다. 그는 목숨을 걸고 나뭇가지를 붙잡고서 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때 한떼의 까마귀가 나뭇가지에서 놀라 달아났다.
그를 따르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때 정청죽은 등에서 5개의 강철을 빼고 있었다. 자신도 상처가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자기 운명을 한탄하였다. 그러면서도 훔친 물건이 빨리 옮겨지기를 바랬다. 그런데 갑자기 원승지의 한 손이 보였다. 정말 고단수의 무술이었다. 누구도 그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급히 손짓으로 아구를 불렀다.
[저 사람은 보통이 아니다. 조심해라.]
나지막한 그의 말에 아구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녀도 사실 놀라와 하던 중이었다. 상상도 못하게 높은 고수가 자신을 구해 준 것에 감사하기도 했다. 일부러 실수하는 것 처럼 꾸며 자시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말이다.
그때 원승지가 소리높여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들은 반나절이나 걸려 내 상자에 무슨 갑, 을, 병, 정과 산동 직노라고 써 놨는데 이제 다 끝났소? 하하, 내가 그걸 지우러 가겠소이다!] 그는 손으로 거기 있는 사람을 잡아 세워 놓고는 철상자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는 수건을 상자 위에 쓰여진 갑, 을, 병, 정이니 <적노>니 등의 글자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그 사람을 두 손으로 들어 나무 위에다 던져버렸다. 산동 도적과 청죽방 무리들 중 10여명이 크게 함성을 지르며 병도를 쥔 채 몰려왔다. 원승지는 손과 발만 놀리는 권법으로 그 무리들을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산동 도적들과 청죽방 무림들은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정청죽과 사천광은 각각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그저 저홍유의 지시만 기다릴 뿐이었다. 저홍유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들은 무림의 같은 파벌이오. 모든 무사들이 함께 사사받은 것 같은데, 대체 그대는 누구의 문하생이오?]
원승지가 대답했다.
[본인은 원가 올시다. 나의 사부는 이말 저말 중얼거리셨던 늙은이였소. 그 노인은 경학대사(經學大師)로 예기(禮記)와 춘추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셨던 분이오. 또 한 분 이노인(李老人)도 나에게 팔고시문(八股時文)을 가르쳐 주셨는데 기승전합(起承轉合)을 연구하셨소.......]
저홍유가 대답했다.
[그걸 무슨 산(蒜)이라 하지 않았소? 당신에게 무학을 전수해 준 사람을 말하시오. 혹시 우리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니 말이오.] 원승지가 즉각 거부했다.
[다시 말할 수는 없소. 연원을 말해도 이미 지나간 과거요. 우린 지금 이렇게 얼굴을 대하고 있지 않소? 각자의 장사속이 인의에 있지를 않으니 서로 속이지 않는다해도 본전을 축내는 것은 아니지 않소? 날도 저물었으니 이제 우리 여기서 내려갑시다.]
살표강의 성주가 <엄마 젖이나 먹어라>하고 욕하는 중에 구환도가 번쩍 들려졌다. 그리고는 바람에 잎사귀 날리듯이 원승지의 어깨를 향해 집어 던졌다.
원승지는 몸을 약간 비껴 구환도를 피했다. 성주는 이 칼을 쓰려면 대단한 힘이 들 것을 알고는 남은 여력을 다해 큰 칼 을 들어 저홍유의 가슴을 향해 던졌다. 저홍유는 왼손을 펴 식지와 중지 사이에 칼들을 끼고 뒤로부터 잡아 그 칼을 멈췄다. 성주는 안색이 변하더니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저장주님, 정말, 정말 미... 미안합니다!]
저홍유는 웃음을 띠며 손가락을 벌려 원승지에게 보였다.
[이 손가락의 무예 덕분에 당신은 재물을 얻으려 하니 분배치 않을 수 없겠소.]
[아니, 그것도 무술입니까?]
원승지가 쏘아보자 저홍유는 득의양양해 했다.
[이것은 <해겸공(蟹鉗功)>이라 하는데 당신도 할 수 있다면 탄복하겠소.] [무슨 해겸인지, 하겸(蝦鉗)인지 난 본 적도 없소.]
저홍유는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내 두 손가락으로 칼을 잡았지 않았소. 도대체 당신의 눈은 있는거요, 없는거요?]
[아하, 그게 그거였군요! 그건 우리 두 사람이 한통속이 돼서 그런거니 어찌 흉합되지 않을 수 있겠소? 노형, 우리들도 함께 결탁합시다.] 청청이 희희 웃으며 땅에 떨어진 단검을 집어들고 원승지를 향해 던졌다.
칼은 그에게 가까이 갔을 때 이미 힘을 잃어 가볍게 날아 들었다. 원승지는 손털 두 개로서 칼 등을 잡았다. 청청이 장난으로 펄쩍펄쩍 뛰더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아이쿠, 지독한 해겸공이야!> 했다.
아구는 두 사람이 저홍유를 골탕먹이는 꼴을 보고 있으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도적들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저홍유는 어떻게 그 소인배들이 놀리는 걸 참았는지 모를 정도였다. 손에 잡힌 구호나도는 비스듬히 손에 들려져 있었다.
[당신, 내 칼도 받아보시오. 절대로 받지 못할 거요!] [칼로 죽인다고 원수를 갚는 것은 아니잖소? 당신은 관청의 소식을 듣지도 못했소?]
저홍유는 점점 화를 내었다. 살기가 일어 얼굴이 점점 변하고 있었다.
[누가 죽든지 간에 원수는 갚아야지요.]
[조심하시오. 칼이 갑니다.]
원승지는 갑자기 반대편 손으로 칼을 던졌다. 저홍유는 뜻 밖에 날아오는 칼을 보고 놀라 급히 머리를 숙였으나, 칼은 이미 모자를 뚫고 지나갔다. 또 도적들이 한바탕 웃어댔다. 원승지도 웃었다.
[당신의 해겸을 어째서 나와 견주겠다는 거요?]
말을 마치자 칼이 땅에 떨어졌다. 저홍유가 놀라 급히 도망가려했으나 강도(鋼刀)로 이미 그의 신발 뒤축을 끊어 놓았다.
저홍유가 크게 외쳤다.
[이 죽일놈 같으니라구! 네가 나의 생사를 쥐려고 해?] 원승지가 다른 손으로 큰 칼을 들어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는 어떤 도적에게 던졌다. 칼이 앞으로 날아가 교묘하게도 그 도적이 딛고 있는 나뭇가지를 잘랐다. 그 도적은 금세 거꾸러지며 <쿵!> 하고 땅에 떨어졌다. 무리들이 웅성거리자 원승지가 입김을 불었다. 혼원공이 움직여져 10개의 상자가 번쩍 들려지더니 마구 흔들거리면서 날아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줄 몰랐다.
[이것도 비법이니 나에 대해 방심하지 마시오. 당신들은 도적이기에 이곳까지 왔겠으나 결코 내 상자를 훔칠 수는 없을 것이오.]
그는 몸을 획 돌리더니 상자 위로 올라가 앉았다.
[이건 상래비(上來比)란 권법이오.]
저홍유는 첩첩이 싸올려진 상자 위를 단숨에 올라가는 그를 보고 그의 신통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통 비상한 것이 아니어서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
그는 자신의 경공법이 아직 미흡함을 알기에 감히 대항하지 못하였다.
[당신에게 할 말이 있으니 좀 내려오시오!]
원승지는 위에서 대답했다.
[당신에게 용건이 있으니 그대가 좀 올라오시오!]
저홍유가 몇 걸음 앞으로 내딛으니 아래의 몇 개 상자가 요동을 하였다. 그러나 원승지는 아무일도 없는 듯이 위에 서서 있다가 거꾸로 뒹굴며 내려왔다. 도적들은 환호성을 연발하며 원승지가 저홍유의 머리위에 <창응박토(蒼鷹搏兎)> 권법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저홍유는 깜짝 놀라 오른손을 펴서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이미 원승지의 손이 그의 급소에 꽂혀 있었다.
[일어나!]
원승지가 다시 그의 뻗는 손을 보고 허점을 발견하여 함정을 팠다. 도적들은 어느 누구도 감히 상자에 접근하려 하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도적들은 생전 보지 못한 무예였다. 두 사람이 남게되자 도적들은 급히 도망을 갔다. 원승지는 깜짝할 새에 사천광에게로 달려갔다. 그는 땅에 누워 있었다. 두 명의 무사들이 곁에서 돌봐주는데 갑자기 원승지가 나타나자 한 사람이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사천광을 피하게 하였다. 그러나 원승지는 칼로 구멍을 뚫듯 눈앞의 도적 두목의 머리를 비틀었다. 그는 두목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원승지는 사천광을 잡고 한 대의 마차 위로 뛰어올라가 소리쳤다.
[너희들은 두목의 생명을 원하느냐? 그렇지 않으냐?] 도적의 두목이 잡히자 모두들 바보가 된 듯 아무도 움직이질 못했다. 원승지가 벙어리를 손짓으로 불렀다. 벙어리는 청죽방쪽으로 달려갔다. 청죽방의 무리들은 넋을 놓고 있다가 갑자기 벙어리가 맹호처럼 돌진해옴을 보고 각자 병도를 들어 자세를 취했다. 벙어리는 다년간 무술을 닦아온 터라 감히 그에게 대적할 자가 없었다.
갑자기 아구가 정청죽의 몸을 주무르며 통곡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일이 그에겐 의외로운 것이었다. 만약 정청죽이 죽었다면 이곳에 있는 무리들이 두목이 없음을 알고 놀라할 것이다.
[승해야! 빨리 벙어리를 오라고 해라!]
홍승해는 벙어리 앞으로 달려가 그를 끌고왔다. 벙어리는 머리를 돌려 마차 위에 있는 원승지를 쳐다보자 원승지는 반죽음 상태에 있는 사천광을 아구에게 넘겨주며 물었다.
[네 사부님은 어떠시냐?]
아구가 울면서 대답했다.
[사부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원승지는 허리를 굽혀 정청죽의 숨을 살펴보니 과연 이미 호흡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의 가슴을 다시 더듬으니 숨이 남아 있는 듯하여 그를 뒤집었다.
등에는 5개의 작은 구멍이 있었다. 비록 피는 멈췄지만 5개의 구멍은 마치 동굴처럼 뚫려 있었다. 정청죽이 아무리 대단한 무술가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원승지는 혼원공을 써서 그의 <천부혈(天府穴)>과 발 아래쪽에 있는 <용천혈(湧泉穴)>을 지압했다. 있는 힘을 다해 정청죽의 핏줄을 다시 흐르게 하니 그는 점점 깨어나면서 눈을 부릅떴다.
아구는 너무 기뻐서 소리높여 외쳤다.
[사부님! 사부님!]
정청죽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승지가 입을 열었다.
[이제 안심하십시오. 당신 사부님의 상처는 다 치료됐소.] 아구는 커다란 눈망울에서 진주같은 눈물을 쏟았다.
[아!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때 청청과 벙어리, 홍승해 등 3명이 사천광을 부축하고 있었다. 산동 도적들은 수령이 잡힌 것을 보고 구하려고 돌진해 왔다. 청죽방 무리들이 그들을 제지했다. 쌍방이 또 혼전을 벌였다. 눈깜짝 할 사이에 쌍방에서 10여명의 사샜다.
청청이 입을 떼었다.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쌍방에서 죽은 자들이 대단하군요!] 청청이 입을 떼었다.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쌍방에서 죽은 자들이 대단하군.] 원승지는 빙그레 웃었다. 순간 상자위에 서 있던 저홍유가 어깨를 쳐들고 쳐들고 소직쳤다.
[큰일 났소! 관병이 오고 잇소. 기천 명이나 되는 것 같소. 모두들 빨리 도망 칩시다!! 아니 만여명이나! 아뿔사!!]
그는 몸을 더 빼고 서서 선두를 엿보았다. 그들은 모두 칼과 창을 들었다.
앞의 3명의 기마병이 오는 것이 보였다. 두 명은 산동 도적이 보낸 초소사람이고, 나머지 한 명은 청죽방의 정찰병이었다.
[여러분! 관병이 오고 있습니다!]
저홍유는 사태를 돌볼 틈도 없이 상자 위에서 뛰어 내려왔다. 두 다리가 퉁퉁부어 있어서 행동이 불편했다. 그는 산동 도적들을 이끌고 서둘러 물러갔다.
원승지는 사천광을 둘러메고 있다가 말 위에 태우고는 급히 숲속으로 달리게 했다. 청죽방쪽에서도 대피리 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부상당한 사람을 데리고 4부대로 나뉘어 후퇴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그 넓은 벌판에는 원승지와 천여 명만이 남게 되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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