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血剑 3-6 3-7

3학년2반 | 2022.01.17 07:11:58 댓글: 0 조회: 288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2820

* 제 3 권 *

- 6 - 오독교(五毒敎)

원승지는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나 청청의 손은 마구 떨리고 있었고 주위의 형세는 확실히 삼엄한 공포의 분위기였다.
원승지가 입을 열었다.
[먼저 나간 다음 다시 생각하자.]
그 말에 일행이 막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등뒤에서 철판인지 아니면 바위 덩어리인지 모를 덩어리가 굴러 들어왔다. 새까만 것이 응접실로 들어와서 손을 펴는데 다섯 손가락이 없었다.
일행은 너무도 놀란데다가 또 무슨 기분 나쁜 새울음 소리인지, 독충들이 합쳐내는 소리인지 모를 괴음이 들려와서 몸을 부들부들 떨게 되었다.
순간 눈앞이 반짝거리더니 앞쪽에서 눈을 찌르는 빛이 새어 들어왔다. 빛 가운데로 검은 옷을 입은 동자가 걸어서 응접실로 오더니 몸을 살짝 구부리며 말했다.
[교주님이 부르신다.]
원승지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어찌된 것일까 하고 의아해 했지만 어쨌든 가서 본 다음 다시 말하기로 하였다. 그는 청청의 손을 잡고 검은 옷의 동자를 따라 먼저 나갔고 일행이 그의 뒤를 따랐다.
모퉁이를 돌고 또 한참을 걷고 긴 통로를 지나서 어떤 궁전에 닿았다. 궁전에는 큰 의자가 하나 있었다. 그 의자는 주홍색의 비단으로 덮여 있었고 양 옆으로 4명의 동자가 서 있었다.
검은색의 동자들은 그 곳에 들어서자 양 옆으로 갈라섰다. 곳곳마다 홍색, 황색, 남색, 백색, 흑색의 비단 옷을 각각 입은 다섯 명씩의 동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 홍색을 입은 두 명의 동자는 일전에 은을 도둑질을 하던 그 자들이었다.
그 두 동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일행을 보고도 도대체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궁전 뒤에서 종소리가 땡땡 들리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왔다. 크고 작은 남자와 여자가 의자 양쪽으로 여덟명씩 갈라섰다.
모두 열여섯명이었다.
금의독개는 두 번째 좌측에 서 있었고 오른쪽 두 번째에 서 있는 자는 눈이 깊이 들어가고 온 얼굴이 상처투성인 그 거지였다.
(저 자가 분명 정방주를 해친 거지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원승지는 목소리를 낮추어 단철생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뭐하는 족속들이지요?]
그러자 단철생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운남(雲南) 오독교(五毒敎)지요. 우리는 분명 죽게 되겠소.] 원승지가 다시 물었다.
[오독교가 무엇이지?]
단철생이 서둘러 대답했다.
[아이고, 원상공! 오독교는 사람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죽이는 사이비 종교이지요. 교주 하철수를 여태 못 들어봤소?] 원승지가 고개를 저었다.
단철생이 다시 말했다.
[교주가 아직 안 나왔으니 우리 여기서 빨리 빠져 나갑시다.] 원승지가 고개를 저었다.
[어디 한 번 지켜 봅시다.]
단철생은 너무도 두려워 혼자라도 도망치기로 결정하고 갑자기 일어섰다.
[먼저 실례합니다.]
이렇게 소리를 치면서 그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날려 창을 향해 나가려 하였다.
옆에 섰던 왼편 3번째 고수가 급히 몸을 날려 그를 뒤쫓아가 움켜 잡았다.
단철생은 몸을 구부리고 오른손으로 그의 머리를 훑어 올렸다.
그 고수가 손을 들어 막으니 팍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은 모두 땅에 떨어졌다. 고수는 냉소를 띄우면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단철생은 어느새 왼다리와 오른손에 상처를 입었는데 몹시 아팠다. 손을 들어서 보니 다섯 손가락에서 모두 검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는 멈추질 않았다. 대경실색하며 왼발을 들어보니 심한 독약이 묻어 있었다.
사천광이 앞으로 나가 단철생을 끌어 일으켜 세웠다.
다시 열 명의 동자가 주머니에서 호각을 꺼내어 몇 번을 불었다. 그러자 20여명이 일제히 몸을 굽혀 절을 하였다. 그리고 궁전 뒤쪽에서 두 명의 소녀가 걸어나오자 의자 옆에 섰던 한 명이 소리쳤다.
[교주님이 나오십니다!]
한동안 쇠로 만든 악기를 두들겨 쟁쟁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듯했다.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고 궁전 뒤쪽에서 분홍색의 망사옷을 입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온통 웃음을 띠고 있었는데 이목구비가 수려한 약 22, 3세쯤 되어 보이는 아가씨였다. 그녀의 발목과 손목 위에는 각각 두 개씩의 황금원환(黃金圓環)을 달았는데 움직일때마다 그것들이 부딪쳐 쟁쟁하고 소리가났다. 피부가 어찌나 하얀지, 멀리서 보니 마치 백옥 같았다. 긴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 덮었다.
그녀가 의자로 걸어와서 앉자 뒤에 섰던 두 소녀도 따라와서 큰 부채로 그를 부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많은 손님이 오셨군요. 빨리 의자를 가져다 드려 앉으시도록 해라!]
동자들이 마당으로 내려가 몇 개의 의자를 가져와 원승지 등에게 주고 앉게 했다.
원승지는 마음에 의문이 가득하였다.
(오독교의 교인들은 모두 괴상망측하게 생겼으니 교주 본인도 당연히 흉악무도해야만 할텐데, 단철생을 혼비백산하게 한 오독교의 교주 하철수가 바로 저 젊은 아가씨란 말인가?)
그녀는 교태를 가득 담고 말했다.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원승지가 선뜻 대답했다.
[나의 성은 원가이고, 이 분들은 모두 저의 친구들입니다. 아가씨의 성은요?]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저의 성은 하가지요.]
원승지는 내심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정말 오독교 교주로구나!)
그녀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창고에 있는 은을 가지러 왔습니까?]
원승지가 대답했다.
[아니오. 이 단씨만 나라의 녹을 먹는 친구고 우리는 모두 평민인데다 단씨와는 처음 만난 사이여서 관가의 일에 대해선 저희들은 모르는 바입니다.]
그녀가 또 물었다.
[좋아요! 그럼 당신네는 이곳엘 뭐하러 왔지요?]
원승지가 다시 대답했다.
[내게 정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어디에선지는 모르나 귀교의 교인으로부터 중상을 입었기에 한 번 여쭤보러 왔소이다. 그 친구가 말하긴 했으나 그와 귀교의 교도와는 아는 바가 없는 걸 보니 아마 오해인 듯합니다.]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아, 당신들은 정방주의 친구시군요. 그렇다면 또 얘기가 다른데요. 자, 차를 드세요.]
그러면서 동자를 시켜 차를 따르게 했다.
일행들은 찻잎이 보이지 않는 녹색의 차를 보고 감히 마시지를 못했다.
그녀가 말했다.
[제 사형의 말을 듣자니, 원상공은 빙섬을 지닌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어떻게 교주가 부하를 보고 사형이라고 부르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인데?)
원승지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녀가 다시 물었다.
[원상공의 빙섬 약효를 내게 한 번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원승지는 빙섬을 그녀의 손에 넘겨 주려고 하다가 그녀가 돌려주지 않을 것이 두려워서 우선 단철생의 상처 위에 대고 독을 뽑아내고자 하였다.
사람들은 단철생의 상처에서 검은 피가 순식간에 가시는 걸 보고는 얼굴색들이 활짝 피면서 좋아했다.
그 교주는 기분이 좋은지 다시 한 번 웃었다.
[정말 신기하군요. 하지만 빙섬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독물이 있을 거에요.]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들 오독교인들은 이 빙섬이 독물을 제거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겠지.)
[그야 물론이지요. 천하의 그렇게 많은 독들이 있는데 이 조그만 빙섬이 어찌 모두에게 소용이 있겠소?]
청청이 분을 참지 못하고 끼어 들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교주는 원승지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다가 청청의 말을 듣고는 <흥!>하면서 코방귀를 뀌었다.
[오성을 가져와라!]
그러자 다섯 명의 동자가 안으로 들어가서 다섯 개의 철상자를 들고 나왔다. 다른 다섯명은 큰 원탁과 크고 작은 모래판을 들고 나와 앞에 놓았다.
열명의 동자가 모래판을 둘러섰다. 붉은 옷의 동자는 붉은 함을, 황색 옷의 동자는 황색 함에 서는 등 각각 다섯가지 옷색깔의 동자들이 색을 맞추어 섰다.
(이 사람들의 행동은 요기가 있지만 이런 다섯가지의 색깔 배열은 금목수화로 오행에서 나온 것이다. 마구잡이인 것만은 아니구나!)
원승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왼쪽에서 세 번째, 달자족으로 분장하고 있던 사람이 모래판 옆으로 걸어왔다. 그는 품속에서 작고 푸른 깃발 하나를 꺼내어 흔들자 다섯명의 동자들이 함을 열었다.
청청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왜냐하면, 각 함으로부터 모두 다른 독물들이 뛰어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섯가지 독물이란 즉, 청사(靑蛇), 오공(蜈蚣;지네), 지주(蜘蛛;거미), 전갈(全[蝎+欠]), 두꺼비였다.
그 달자족이 또 한 번 깃발을 흔들자 열 명의 동자가 일제히 물러섰다. 무리들 중에서 다른 네 사람이 나와서 모래판의 네 귀퉁이에 선 다름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주머니로부터 약물을 꺼내 한참을 씹은 다음 모래판에다 뱉았다.
(이것들은 모두 독물들을 몰아치는 괴법이다. 내가 간파하지 않으면 안된다.)
원승지는 이렇게 다짐하며 다시 모래판을 보았다. 푸른 뱀은 일찍이 본 일이 없는, 특이하게 길었다. 다른 네 종류의 독물은 보통의 크기보다 조금씩 더 클 뿐이었다.
다섯 종의 독물은 모래판을 돌더니 각자 몸을 사리며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독거미는 쉬지 않고 거미줄을 내뿜어서 모래판위에 망을 만들었다. 그때 전갈이 망을 타고 오르더니 많은 거미줄을 끊어버리고 물러섰다. 거미는 눈을 똑바로 뜨고서 전갈을 응시하더니 당시 망을 만들었다. 채 다되기도 전에 전갈은 다시 뛰어 올라 그것을 망가뜨렸다.
이러기를 여러차례하고 나니 전갈의 몸이 온통 거미줄로 끈적끈적하게 되어 드디어는 두 발이 붙어버렸다.
이 틈을 타서 거미가 서서히 전갈앞으로 다가서자 전갈은 갑자기 독이 든 꼬리를 들어 거미를 내려치려고 했다. 거미는 번개처럼 물러섰다.
이렇게 몇 차례를 거듭하니 전갈이 화가나서 앞으로 돌진하다가 그만 거미의 함정에 빠져 들었다.
전갈은 힘을 다해 몸부림을 쳤으나 소용이 없었다. 거미가 서서히 다가와 한 입에 그를 물었다. 전갈은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찌찌 소리를 질러댔다.
거미가 막 미각을 돋우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독두꺼비가 쳐들어와서는 긴 혀를 빼내어 거미로부터 전갈을 빼앗아다가 한입에 꿀꺽 먹어버렸다.
거미는 화가 나서 이번에는 독두꺼비를 향해 나아갔다. 두꺼비는 또 혀를 낼름거리며 다시 거미를 잡아 먹으려 하였다.
거미가 두꺼비의 혀를 한입에 물었다. 두꺼비가 그 긴혀를 집어넣는 틈을 타서 두꺼비의 좌측으로 기어가 거미줄을 뿜어내어 주변을 끈적거리게 했다. 그리고 번쩍 뛰어 올라 그 줄을 잡고 공중으로 날아가서 두꺼비의 등을 다시 한 입 물어 뜯었다.
(저 조그만 거미가 지혜가 많구나!)
청청이 감탄할 때에 두꺼비는 몸을 급히 돌렸다. 그러나 이미 거미는 날아가버린 뒤였다.
잠시 사이에 두꺼비는 몸에 들어간 거미의 독에 못이겨 허옇게 배를 드러내 놓고 죽어버렸다.
거미가 내려와서 입을 벌려 두꺼비를 씹을 때 지네에게 쫓겨와 두꺼비 주위를 돌고 있던 푸른 뱀이 머리를 세우고 독거미를 삼켜 버렸다. 그리고 다시 두꺼비를 먹으려 할 때 지네가 다가와 옆에서 그걸 빼앗았다.
두 독물이 서로 뺏고 뺏기다가 결국은 푸른 뱀이 지네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그것에게 먹혀 버렸다.
모래판 주위에 다섯 사람은 승부가 끝나자 즉각 원위치로 돌아갔다.
하철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 지네가 네 종의 독물을 먹어 치우고 왕이 되었다. 다른 독물을 찾아 본들 이미 그의 적수가 될 수는 없다.]
원승지가 못믿는 기색을 보이자 하철수는 다시 동자에게 명을 내렸다.
[푸른 함을 가져 오너라!]
그 동자는 일곱 마리의 뱀을 꺼내어 판 위에 놓았다.
지네는 지지지 소리를 내면서 뱀을 물려고 했으나 일곱 마리의 뱀들이 원을 이루며 바깥에 있는 적을 향해 목을 빼고 몸을 하나로 만들었으므로 지네는 공격할 방법을 잃고 있었다.
어쨌든 몇 차례 공격을 가하다 보니 한 마리의 뱀이 지네에게 머릴 찔려 잡혀 나왔다. 뱀무리들은 일제히 슬픈 소리를 쳐대었다. 지네는 푸른 뱀을 물어 죽인다음 나머지 뱀들들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금의독개 제운오가 갑자기 나와서 하철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교주님, 노란 놈이 끊임없이 요동을 치고 있으니 꺼내어 놓아야만 할 것 같습니다.]
하철수가 이마를 한 번 찡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놈은 특히 많은 일을 해내지?]
그러자 제운오는 품속에서 철관을 꺼내 마개를 열었다. 그는 예전에 눈 위에서 잡은 금사를 모래판에 내놓았다.
금사는 철관에서 빠져나와 훌쩍 뛰어오르더니 여섯 마리의 뱀 앞에 섰다.
지네는 즉각 뒤로 물러서고 뱀무리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이 즉시 힘을 내어 다시 한 무더기를 만들었다.
금사는 비록 몸이 작기는 하나 몹시 영악하다는 것을 원승지와 청청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과연 얼마 안되어 지네는 금사에게 물려 죽었다. 다른 뱀들은 금사를 둘러싸고 계속 목숨을 구해 준 은혜에 감사해 했다.
원승지가 웃으며 말했다.
[저런 동물 중에도 협객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그때 청청이 원승지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금사를 가졌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어린애 같은 소리를 하다니? 누가 청청에게 주겠어?] [우리 아빠의 별명이 무엇인지 알아요?]
원승지는 순간 움찔했다.
[금사랑군! 하지만 이 금사와 무슨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잖아?]
<금사랑군> 이라는 넉자가 들렸을 때였다. 청청만을 계속 응시하고 있던 한 노파 거지가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자리에서 튀어나와 청청의 어깨를 잡아쥐며 말했다.
[금사랑군이라니! 너하고 어떤 관계지?]
그 노파의 생김새는 추악했으나 목소리는 날카로왔다. 청청은 깜짝 놀라 뒤로 움찔 물러섰다.
[왜 그러는 거에요?]
순간, 교주 하철수가 두 사람 앞으로 와서 노파의 옆에 서며 말했다.
[그 하씨 성을 가진 자는 지금 어디 있지?]
청청은 예전의 일들에 대해선 원래가 잘 모르고 있거니와 다만 어머니로부터 아버지 얘기를 듣고 존경해 마지않는 터라서 의연히 대답했다.
[금사랑군은 내 아버지에요. 당신들이 그걸 알아서 뭐해요?] 쌀쌀하게 쏘아 붙이는 목소리였다.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지?]
청청은 다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왜 당신들에게 말해야 하지요?]
그 노파는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청청의 하얀 뺨을 때리려 하였다. 청청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있는데 원승지가 오른손을 들어 푸 하는 소리를 내며 노파의 손과 청청의 뺨 사이에 옷자락을 놓자 그가 뒤로 넘어지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 노파 <하홍약>은 교인 중의 고수로서 교주 하철수보다도 한수 위인데 어떻게 아직 미소년인 원승지에게 꼼짝없이 당하는가 하고 지켜섰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때 교주 옆에 서 있던 50세 가량되는 두 남자가 서로 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중 키가 크고 마른 번수달이 외쳤다.
[제가 버릇을 고쳐 놓지요.]
사천광이 한마디했다.
[원상공! 내가 대적하겠소.]
원승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 부채를 사용하시오. 저 사람 손가락에는 날카로운 반지가 있는데 그것도 무기니 조심하오.]
사천광은 음양선을 사용하여 번수달과 맞섰다. 벙어리도 한쪽에서 대적하기 시작했다. 오독교의 교인들이 모두 합세하여 호계남과 철나한, 그리고 청청에게도 달려 들었으므로 결국은 모두가 대적하게 되었다.
노파는 미친 호랑이처럼 무조건 청청을 향해서만 달려들었다.
원승지는 그 노파의 손에 독침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청청에게 접근을 못하게 막아야만 했다.
그래서 노파가 청청에게 가까이 날아들 틈을 타서 급히 손을 뻗쳐 그 노파를 잡아 밖으로 차서 내보냈다.
하철수는 문득 수심이 짙어지더니 오른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중에 있는 호각을 크게 불었다. 오독교인들은 즉시 퇴각하여 순식간에 모두 교주옆에 흐트러짐없이 두 줄로 늘어섰다.
하철수는 만면에 미소를 띄고 원승지를 향해 한마디했다.
[원상공의 외모는 문인처럼 생겼는데 참으로 절묘한 무공을 지녔구료. 저에게 좀 가르쳐 주시지요.]
원승지가 냉정하게 대답했다.
[귀교의 여러사람들과 익숙치 않았습니다. 혹시 저희가 어떤 점을 잘못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하철수는 문득 얼굴이 붉어지더니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우리의 일은 본래 관부와 관계가 있는지라, 원상공은 중간의 일을 잘 모를 거에요. 그러니 그만 둡시다. 아까 갑자기 금사랑군이 끼어 들어 이렇게 되었는데 지금 어디 있는지 좀 말해보세요.]
청청은 원승지의 손을 끌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
[말하지 말아요.]
원승지가 다시 물었다.
[교주는 금사랑군을 혹시 알고 있습니까?]
그러자 하철수가 대답했다.
[그와 우리 교와는 관계가 깊지요. 아버지께서 그로 인해 돌아 가셨소. 그래서 우리 교 사람들이 모두 그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소.]
원승지와 청청은 금사랑군의 행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가는 곳마다 적이 있고 오독교도 그를 죽도록 미워하고 있고보면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원승지가 입을 열었다.
[금사랑군은 이곳에서 만리나 떨어져 있소. 아마도 그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오.]
그러자 하철수가 말했다.
[저 자가 아들이라니, 그럼 저 자부터 제사 지내고 봅시다!] 교주가 말하는 태도는 몹시 온화하고 우아해서 아주 부끄러움을 타는 소녀와 다를 바가 없었으나 흘러 나오는 말은 여전히 독기가 차 있었다.
원승지가 말했다.
[그 사람이 지은 죄는 그 사람이 받아야지요. 금사랑군과 오독교와 관계가 있다면 필히 그를 찾아야 함이 마땅할 것이오.] [하철수가 말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저는 겨우 3살이었어요. 20여년동안 어디 가서 그분을 찾는단 말이오? 만일 그의 아들을 여기에 묶어 놓으면 그의 가족들은 자연히 찾아들 것이 아니겠소? 그럼 우리들은 과거의 일을 처음부터 하나씩 처리해 나갈 수 있겠지요.] 청청이 나서서 말했다.
[흥! 천만의 말씀? 만일 우리 아버님이 오시면 너희들을 모두 죽여 놓을걸!]
하철수는 하홍약에게 문득 고개를 돌렸다.
[저 아이가 정말 저희 아버지를 닮았느냐?]
하홍약이 즉각 대답했다.
[생긴 것도 비슷하고 거만한 것도 흡사합니다.]
하철수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원상공, 그리고 여러분은 이제 편안히 돌아가시오. 우리는 여기에 이 소년만 잡아두겠소.]
원승지는 생각했다.
(저들은 청청 한 사람만을 붙잡으려 하는구나. 그러니 우선 그녀를 탈출시키려면 다른 사람들이 탈출을 못해도 그렇게 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원승지가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말이 끝나자 마자 그는 왼손으로 청청의 허리를 감고 벽쪽으로 달아났다.
벽이 너무 높았으므로 청청을 안고서 같이 뛰어오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먼저 위로 올려 보내었다.
[정신을 차려야 해!]
오독교인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무기를 앞세워 달려들었다.
원승지는 옷을 휘날리며 달랑달랑 소리를 내면서 무기들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청청은 두 손으로 벽을 잡은 채 막 바깥쪽으로 뛰어내리려고 할 때였다.
하철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맹렬히 원승지를 향해 공격해 왔다.
원승지는 그렇게 연약한 여자의 몸이 이토록 날렵하고 민첩한것에 놀라와 했다.
[좋아!]
그는 몸을 뒤로 빼며 위로 올랐다.
그때 그는 얼굴 앞에 있는 검은색의 쇠갈고리를 보고 놀랐다.
하철수는 오른손으로 그 쇠갈고리를 청청에게 던졌다.
[내려 와!]
청청은 왼쪽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한 손을 놓았으므로 벽에 뚝 떨어져 버렸다.
하홍약은 괴상한 소리로 한참동안 웃어 제끼더니 오매강을 청청에게 던졌다.
이때 원승지는 하철수의 부하 5명을 때려 눕히고 다시 두 사람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바쁜 중에도 청청의 상황을 살짝 훔쳐보았다. 그리고는 한 줌의 동전을 꺼내어 던졌다. 하홍약의 오매강이 하나씩 땅에 떨어졌다.
하철수가 소리쳤다.
[참으로 기묘한 수법이로구나!]
원승지는 그녀의 오른손 손톱 위에 붉게 물들인 봉숭아즙을 보았다. 한 번 손을 휘두르면 진한 향기가 뿜어나오는 듯했으나 왼손 손톱은 모조리 뽑아 버리고 그 위에 아주 정교한 손톱 모양을 한 쇠갈고리가 끼워져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몹시 고운 여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으나 때리고 잡아당기고 찌르는 모든 수법이 거기에 들어 있었다.
원승지는 사천광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자.]
그러나 이미 오독교인들로 첩첩이 둘러싸여 있어 어떻게 빠져나간단 말인가?
하철수의 무공은 그런대로 다듬어지긴 했지만 치고 때리는데는 실수가 있었다.
원승지는 그가 손을 놀릴 때 사람을 죽이지 않고 언제나 여유를 준다는 것을 알았다. 싸우면서 청청을 바라보니 그녀는 땅바닥에 앉아 시종 일어서질 못하고 공격만 당하고 있었다. 원승지는 하철수를 몇 발짝 물러서게 만든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철나한과 무리들이 계속 싸우고 있었다. 철나한이 도중에서 소리쳤다.
[이 무리들의 손에는 모두 독이 있으니 만지지 마라!] 원승지는 그제서야 오독교의 무리들이 손바닥에 독을 묻혀 그 액이 묻기만 하면 중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철수의 손 놀림이 비록 연약하고 헛점이 있긴 하지만 대단히 무섭다는 것도 알았다. 만일 한 번 중독시키겠다고 마음 먹으면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으나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자신만이 소굴에서 빠져 나갈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하철수는 원승지가 청청을 일으키는 것을 보자, 그가 다시 철나한을 돕지 못하도록 몸을 바람같이 날려 다가갔다. 원승지가 외쳤다.
[하교주! 우리들은 예전에 원한을 산 일도, 요즘 적이 될만한 일도 없소이다. 어째서 이렇듯 핍박을 하는거요? 당신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무례를 무릅쓰겠소!]
원승지는 왼발로 빗자루를 차면서 오른손으로는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가게 만들었다.
하철수는 오른손으로 탁자를 들어 막으면서 원승지의 무공을 보았다. 만일 하철수가 두 손을 마주대면서 상대방을 중독시키려 한다면 자신의 손도 절단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그는 손가락을 움직이며 조금씩 위로 올렸다. 그리고 원승지의 오른 어깨 <곡지혈(曲池穴)>을 짚었다. 이때의 동작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묘법이로군!]
원승지가 소리치며 오른손으로 하철수의 어깨를 살짝 베었다.
그는 그녀가 독이 있긴 해도 자기 자신의 실력을 못 믿어 당장에 수법을 바꾸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수법은 파옥권(破玉拳)으로 무척 힘든 권법이며 절묘한 것이다. 그러나 하철수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 한들 결국 여자의 몸인데 원승지의 무공과 맞부딪치면서 그 얼굴의 웃음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원승지는 그녀가 반발짝 물러서는 틈을 타서 왼손을 들고 오른손으로 <석파천경(石破天慶)>의 권법을 사용하여 옆에서 달려드는 금의독개와 제운오를 물리치고 위기에 몰려있는 호계남을 향해 소리쳤다.
[벽쪽으로 물러서시오! 내가 구해 주겠소!]
호계남은 원승지의 말대로 청청, 철나한, 단철생 세 사람의 부상자를 부축하며 벽쪽으로 갔다.
원승지가 다시 둘러보니 사천광과 벙어리가 1대 3으로 대적하고 있었다. 즉각 몸을 날려 무리속으로 뛰어 들어가 사천광을 둘러싼 교인들의 관절을 내리치고 머리와 어깨, 손목들을 동시에 부러뜨렸다.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았으나 또한 상대방의 독수에 접촉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무리들을 해치우고 벙어리쪽으로 날아갔다.
벙어리의 권법은 화산파의 정수. 그는 고수 세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다. 비록 몸을 빠져 나올 수는 없었지만 또한 피하지도 않았다.
하철수가 휘파람 소리를 내자 즉각 다섯명의 교인이 그들 둘을 에워쌌다.
원승지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으면서 벙어리를 에워싼 두 사람을 해치우고 나니 벙어리는 기둥에 다른 놈의 코를 박아 놓고 선혈이 낭자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벽쪽으로 달려갔다.
[자, 우리 빨리 도망칩시다! 내가 여기 남아서 대적하지요.] 호계남은 담벼락에 올라서서 한 사람씩 끌어올리고 원승지는 벽밑에서 다시 십여명을 때려 눕힌 후 하철수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교주 아가씨, 다시 봅시다.]
노파 거지 하홍약은 큰 소리로 외치며 오매강을 위와 중간, 아래로 3개를 던졌다. 필히 원승지가 아직 벽아래에 있고 그렇게 빨리 도망치진 못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원승지는 왼쪽 소매를 휘둘러 날아오는 오매강을 되돌려 오독교인들에게 쏘아 보냈다. 그러자 하홍약은 원승지의 이 무공을 보고 외쳤다.
[너는 금사랑군의 제자가 아니냐?]
그의 목소리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뭔지 모르겠지만 금사랑군과 깊은 사연이 있구나!) 이렇게만 생각하고 급히 몸을 돌려 대답을 하지 않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문밖으로 나온 두 명의 교인과 일행이 싸우고 있었다. 원승지가 달려가 쌍권법을 휘두르니 그 두사람은 안으로 사라져 버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더 이상 나올 엄두를 못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옮김: 김선국(金善國;sm1109)

* 제 3 권 *

- 6 - 오독교(五毒敎)

집으로 돌아온 후 빙섬으로 철나한의 상처를 치료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중독은 안되었으나 격투 중에 모두 독기를 마셨으므로 그것도 빙섬으로 치료해야만 했다.
그러나 청청의 상처는 흰 피부가 검게 변하며 점점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반나절이 지난 뒤 원승지는 단철생에게 오독교의 내력에 대해 물었다.
[오독교 교인은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북쪽으로 오기 전에 이미 악명이 드높아서 무림 중의 사람들이 오독교를 말하기를 모두들 두려워 떨며 감히 상대하려 들지를 않습니다.
그들이 어찌하여 성대군의 별장에 있게 되었는지 저도 알 도리가 없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정청죽이 갑자기 끼어 들었다.
[원상공, 선도파의 황옥도인이 오독교의 그물 안에서 죽음을 당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러자 원승지가 말했다.
[누가 보았대요?]
정청죽이 대답했다.
[누가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오독교의 독수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을 게요. 강호에서 말하기를 황옥도인의 죽음은 너무도 참혹해서 선도파가 훗날 운남으로 가 사인을 조사해 보았으나 한조각의 결과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사천광이 끼어 들었다.
[정형! 그 노파 거지는 과연 표독스럽더군요. 그를 처음 만났음에도 당신의 원수를 갚지 못해 안타깝군요.]
정청죽이 이어 말했다.
[나와 오독교와는 한오라기의 인연도 없는데 어떻게 나를 찾아내었는지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때 심부름하는 아이가 와서 전하였다.
[어떤 초씨 성을 가진 아가씨가 원상공을 뵙겠다고 합니다.] 청청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찾아와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지?]
원승지는 입을 열었다.
[들어오시라고 해라!]
얼마 안되어 그 아이는 초씨 아가씨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녀는 들어서자마자 원승지 앞에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부터 하였다.
원승지는 급히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초아가씨, 일어나세요. 집안은 평안하시고요?]
초원아는 울면서 대답했다.
[아버님이 민자화 그 놈에게 살해 당했어요.]
원승지는 깜짝 놀랐다.
[그......, 그분이? 어째서 그런 일을?]
초원아는 몸속에서 보따리를 하나 꺼내어 탁자 위에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아직 혈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비수가 있었다.
원승지는 비수를 들어 칼자루에 <선도문하자배제자(仙都門下子輩弟子) 민자화수집(閔子華收集)>이라는 몇 글자가 금물로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분명히 선도파의 스승이 그 제자에게 준 것이었다.
초원아는 울면서 고했다.
[그날 태산에서 집회가 있은 후에 저와 아버님은 함께 집으로 돌아왔어요. 오는 도중에 서주부 객사에 투숙했었습니다. 이튿날 늦잠을 주무시길래 깨우려고 하는데, 그때...... 그때......, 아버님의 가슴에 이 칼이....... 원상공! 제발 부탁해요!]
청청은 그전부터 그녀에게 질투심이 있었지만, 그녀의 볼에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가련하고 슬퍼졌다. 그래서 그녀를 자기 옆으로 끌어당겨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원승지에게 한마디했다.
[오빠! 그 민씨는 이미 약조한 바가 있는데 어떻게 또다시 암살을 했지요? 우리는 더 이상 좋게만 생각할 수 없어요.] 원승지는 초공례의 기개를 생각하면서 몹시 마음이 아파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잠시 후 그가 물었다.
[초아가씨. 그 후에 당신이 그 민씨를 만났었나요?]
초원아가 코먹은 소리로 대답했다.
[저...... 저......, 그 사람을 두 번이나 보았어요. 우리가 오는데, 어제 저녁 북경에까지 쫓아왔습니다.]
청청이 한마디했다.
[어머! 그럼, 그가 북경에 있겠네요. 우리가 가서 그를 찾아볼테니 동생은 여기에서 안심하고 있어요. 우리가 원수를 갚아줄 테니까.]
정청죽과 사천광은 이미 원승지로부터 남경의 초와 민 양가의 관계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이번 민자화의 이같은 강호도의(江湖道義)에 어긋난 행동을 듣고 몹시 분개하였다. 사천광이 입을 열었다.
[그 민자화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내가 한 번 겨뤄 봐야겠다!]
초원아는 일행들을 향해 연신 절을 하면서 처량한 목소리로 주문하였다.
[여러분, 여러 숙부님께서 공도를 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정청죽은 책상을 거세게 두드렸다.
[민자화는 어디에 있지? 선도파가 많긴 하지만 나는 그들이 두렵지 않아!]
그러자 초원아가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 저와 몇 분 숙부님들이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시신은 서주황무표국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민자화의 뒤를 추적했었어요. 아버님이 생전에 덕이 있으셨기에 며칠이 안되어서 하북의 친구들이 소식을 전해왔는데, 어떤 사람이 화북에서 그 민자화를 보았다고 했어요. 도로와 수로를 감시한 결과 두 번씩 마주쳤으나 그때마다 그놈이 도망쳐 버렸대요.] 초원아는 다시 덧붙였다.
[어제 우리는 북경까지 왔어요. 그래서 그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놨어요.]
청청이 급히 물었다.
[그래, 그 놈은 지금 어디에 있죠?]
초원아가 대답했다.
[그는 지금 서성부가호동(西城傅家胡同)에 묵고 있는데 우리를 돕는 사람 백여명이 밖에서 지키고 있어요.]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띄운 채 속으로 생각하였다.
(저 애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총명하고 결단력이 있어서 하는 일도 출중하구나! 이번에 내가 민자화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초원아가 입을 열었다.
[금방 큰 길에서 태산대회 중에 만난 친구를 보았는데, 그가 원상공님이 여기 있다고 알려 주더군요.]
사천광이 엄지손가락을 오므려뜨리며 말했다.
[초아가씨! 당신이 하는 일이 그렇게 용의주도한데도, 그리고 또 민자화가 이미 당신네 수중에 있음에도 우리를 찾아와 도움을 청해 공도를 바로 잡아주길 부탁하니 우리 강호의 친구들은 모두 <민자화는 죽어 마땅하다>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원승지도 한마디 했다.
[언제 시작할 계획이오?]
초원아가 숙연히 대답했다.
[오늘 저녁 정야(丁夜;새벽 1시∼3시)에요.]
그러면서 그는 비수를 보자기에다 도로 싸 담았다.
청청이 물었다.
[동생은 다시 이 칼로 그를 죽일 생각인가요?]
초원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승지는 초공의 기골장대한 체격을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들 결국 초공을 살릴 수 없다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몹시 마음이 죄스러웠다. 또한 선도파를 쳐서 금룡방의 원수를 필히 갚을 것을 분명히 맹세했다.
민자화는 사람을 죽였으니 응당 죄과를 받아겠지만, 이 기회에 선도파로부터 항복을 받고 후환이 없게 미리 방지하는 것이기도 했다.
모두들 저녁을 먹고 난 후, 원승지는 정청죽, 사천광, 벙어리, 호계남, 홍승해 등 다섯 사람들을 데리고 초원아를 따라서 부가호동으로 갔다.
청청과 철나한은 아직 상처가 안 나왔으므로 동행치 못하였다.
단철생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했다.
청청은 계속 한숨을 쉬면서 하철수라는 그 요괴같은 인간을 향하여 저주하고 있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 제 3 권 *

- 7 - 미녀의 검술

일행들은 호동 10여장 밖에 도착했다. 초공례의 몇몇 제자들이 그를 맞이하러 나왔고, 민자화와 그의 사제 동현도인은 방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일행들은 원승지에게 물었다.
[원상공, 이제 행동으로 옮겨도 되지 않겠습니까?]
원승지가 대답했다.
[한 패의 무리들이 밖에 있으니, 우리들 몇 사람이 먼저 가서 염탐을 하는 것이 좋겠소.]
초원아 여기 <좋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는 곧 낮은 소리로 일행들에게 몇 마디 명령을 내린 뒤, 원승지와 함께 담을 넘어 들어갔다. 초원아의 경공은 다시 미흡하여 벽에서 떨어질 때 발 아래서 삐꺽하는 소리가 났다. 순간 방안의 등불이 꺼져 버렸다.
그들은 이미 발각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다시 무엇을 더 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낮으면서도 날카로운 소리가 나면서 사방과 지붕 꼭대기에서 정찰하는 자들이 튀어 나왔다.
초원아가 소리쳤다.
[민가야, 나와서 보아라. 누가 왔는가!]
그러나 방안의 사람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를 않았다.
초원아가 서둘러 명령했다.
[횃불을 붙여라!]
금룡방 4명은 즉각 갖고 온 횃불에다 불을 붙였다. 옆에 있던 4명의 무사도 칼을 들고 그들을 옹위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돌연히 팍팍팍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4개의 횃불이 날아와 그들의 것 중 3개의 횃불을 무너뜨렸다. 곧 두 패의 어두운 그림자가 무리로부터 튀어 나왔다.
금룡방 무리는 일제히 일어나서 그들은 상대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주위를 에워싸는 횃불은 점점 많아졌다. 드디어 그 큰 정원은 마치 대낮처럼 환히 밝아졌다.
민자화와 동현도인은 이미 포위되었음을 알았으나 두 사람은 등과 등을 맞대고 서로를 보호하면서 전력을 다해 싸웠다.
그러는 사이 금룡방 일행중 6,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상처 입은 자는 일단 무릎을 꿇었다. 개중에는 일어서려다가 상대방의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다시 한바탕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민자화와 동현 또한 서너 사람을 손쉽게 해치웠다. 그러나 동현은 이미 왼쪽 어깨에 부상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검을 오른 손에 들고 여전히 맹렬하게 싸웠다. 양의검법(兩儀劍法)은 본래 그의 왼손에 의한 것이었고 민자화는 오른손으로 호흡을 맞추며 공격과 방어를 했다. 눈 앞의 둘은 모두 오른손이 검잡이기에 위력은 이미 줄어들었다. 동현과 민자화의 몸 또한 여러곳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원승지는 싸움을 방관하면서 내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한 목숨은 한 목숨으로 바꾸는 것이다. 민자화 한 사람의 죽음으로 충분하다. 동현으로 하여금 함께 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는 두 사람이 목숨을 바쳐 싸우는 것을 지켜보다가 몸을 날려 그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몸을 날릴 때 금빛이 번쩍번쩍했는데 요란한 소리가 한바탕 났다.
곧이어 동현과 민자화 손안의 긴 칼은 금사검(金蛇劍)에 의하여 동강이 났다. 금룡방의 모든 칼들도 일곱, 여덟 동강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무리는 뜻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자 모두 크게 놀라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원승지는 금사검을 손에 쥔 이후, 서양 군관 레이먼의 장검을 빼앗은 것 외에 검과 사람을 정식으로 손에 얻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검은 놀랍게도 이토록 위력이 있어서 원승지 조차도 놀라와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것은 모두 각자 손의 병기에 따르는 것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스스로는 쌍방이 검을 놓고 싸움을 중지하도록 해야만 했다. 그러나 예상치 않게 많은 명검이 무너졌으니 마음속으로는 불안하기조차 했다.
어느덧 민자화와 동현의 온 몸은 피투성이가 돼 있었는데, 원승지를 보자 얼른 다가왔다.
동현은 부러진 검을 땅에 던지며 참담하게 웃었다.
[나의 형제들은 그대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대가 이렇게 고통스럽게 공격을 해도 좋은가?]
그러더니 얼른 손을 돌려 허리에 찬 비수를 잡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기 가슴을 향해 문득 꽂았다.
그러나 원승지의 왼쪽 손바닥이 마치 바람과 같이 날아가 그의 가슴을 가볍게 밀었다. 또한 오른손은 이미 동현도인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갖고 있던 비수를 불빛 아래서 얼핏보았다. 그 비수는 민자화가 죽인 초공례의 비수 손잡이와 분명히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 손잡이 위에는 <선도문하자배제자(仙都門下子輩弟子) 민자화수집(閔子華收集)>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동현은 굳은 얼굴로 원승지에게 물었다.
[대장부라면 가히 죽여도 되지만, 욕을 뵈어서는 안된다. 나의 무예는 그리 뛰어나지는 않다. 그러므로 너의 맞수가 못되었다.
그러니 너에게 죽어 보이리라. 빨리 내 비수를 돌려다오!] 원승지는 그가 또 자살을 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비수를 자기 허리에 간수하며 정색을 하였다.
[모든 정리가 깨끗하게 되도록 기다리시오. 칼은 나중에 당신에게 되돌려 드리겠소.]
동현은 크게 노하며 소리쳤다.
[네가 나를 죽이려면 지금 곧 죽여라. 이렇게 사람을 기만할 수는 없는 법 아니냐?]
그러면서 순간 벽에다 일격을 가했다.
원승지는 뒤로 일보 물러나면서 그에게 되물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속이려 하겠소이까?]
동현이 분연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비수는 우리파의 스승이 주신 것이다. 어찌 목숨 없애는 것을 가르쳤겠는가. 더욱이 그것이 다른 사람의 손안에 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
원승지는 속으로 놀랐다. 그러면서도 의심이 구름처럼 일기 시작했다.
(이 비수가 비록 요긴하기는 해도, 민자화가 초공례를 죽인 뒤에도 어찌 이렇게 여전히 그의 몸에 지닐 수가 있었으며 또 감히 돌려 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즉시 이 비수를 돌려 달라고 그는 두 손을 내밀었다.
[저로서는 지금 납득할 수 없는 게 딱 한가지가 있어요. 도인에게 청하건데 분명히 좀 가르쳐 주십시오.]
동현은 비수를 받으며 그가 겸손하게 말하는 것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오.]
원승지는 몸을 돌려 초원아를 불렀다.
[초아가씨, 그 보따리를 내게 좀 주시오.]
초원아는 보따리를 원승지에게 주면서도 손으로는 쌍도(雙刀)를 굳게 쥔 채 긴장스럽게 민자화를 주시하고 있었다. 원승지가 보따리를 풀자 곧 비수 하나가 드러났다.
민자화와 동현은 동시에 놀라서 소리쳤다. 금룡방 무사들은 눈으로 흉기를 보면서 두목이 처참하게 죽은 것을 떠올렸다. 그들의 눈빛은 이미 적개심으로 번쩍였으며 침묵속에 몇 발자국을 접근해 왔다.
민자화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 이것......, 이것은 나의 비수입니다. 당신은 이걸 어디에서 얻었소?]
그는 떨리는 손을 내렸다.
그때였다. 느닷없이 초원아가 단도를 휘둘러 민자화의 손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민자화가 기절초풍하여 손을 움추렸기 때문에 칼은 맞지를 않았다.
초원아가 다시한번 공격하려다 주춤하였다. 원승지가 손으로 말렸기 때문이다.
[내 질문에 먼저 정확한 대답을 해주시오.]
초원아는 칼을 거두면서 두 줄기의 눈물을 흘렸다.
민자화는 분노를 짓누르면서 대답했다.
[그날 우리들은 남경언명(南京言明)에서 쌍방이 서로 원수의 한을 풀려고 했었소. 금룡방은 신의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몇 차례나 나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오. 당신은 초공례를 앞으로 불러내시오. 서로 대면하면 이것도 명백해질 것이다. 민가가 도대체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가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금룡방 무리들은 술렁거렸다.
벌써 화가 치솟은 표정들이었다.
[우리 두목은 이미 너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 요사스런 놈이 아직도 거짓으로 흑백을 가리려고 하느냐!]
민자화와 동현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초공례가 죽었다고?]
원승지는 두 사람이 대경실색하는 것을 보자 그들이 거짓으로 꾸민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혹시 이 내막에 다른 일이 있는지도 모른다.)
원승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정말로 모른단 말입니까?]
민자화는 경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당신에게 이미 체면을 잃었소. 내가 다시 강호에서 지낸다해도 면목이 없는 일이오. 그래서 곧 개봉부로 가서 장문 대사형 수운도장과 함께 의논하려고 했던 참이오. 그런데 거기에서 사형이 도착하지 않았음을 알았소. 도중에 우리는 뜻하지 않게도 금룡방과 두 번이나 싸웠소. 초공례는 아주 단단한 사람이었소.
그런 그가 어찌 그리도 쉽게 죽을 수가 있단 말이오?]
초원아는 그의 이런 말을 듣고는 상황이 어딘가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가 경직된 목소리로 물었다.
[나의 아버님은 당신의 이 비수로서 살해되었다. 만약 당신이 아니라면 반드시 당신의 친구일 것이오.]
민자화는 마음속으로 불현 듯 깨닫는 바가 있어 손을 내저었다.
[음, 음, 바로 이것이었구나!]
초원아가 눈을 크게 떴다.
[무엇이 이것이란 밀이에요?]
민자화는 자기로서도 분별을 가려야만 했다. 한마디라도 말이 잘못된다면 도리어 내막이 더욱 애매해질 것이었다.
금룡방 일행은 모두가 그를 무섭게 지켜보며 흉흉하게 칼을 매만지고 있었다.
동현도인은 민자화의 손에서 반토막으로 부러진 검을 받아들고 땅에 꿇어앉으며 냉정하게 말했다.
[여러분은 초두목의 대원수로부터 영원히 보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오. 진짜 흉악한 놈은 옆에서 은연중 냉소를 짓고 있어요. 나의 사형제는 이 두 목숨을 용서했소이다. 또 무엇을 계산하겠소?]
그는 가슴을 펴고,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듯이 죽으려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이러는 것을 보고 서로를 돌아보았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다.
원승지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초방주는 민형이 죽인 것이 아니군요?]
민자화가 대답했다.
[민가는 선도문하에 나와서부터 현재까지 강호에서는 신의가 먼저인 것으로 알고 있소. 나는 이미 당신에게 졌소. 또 간적이 있어 도발을 한 것으로 알았으니 어떻게 다시 남경에서 원수를 찾을 수 있겠소?]
원승지는 미진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초방주는 그럼 남경에서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닙니까?] 민자화는 이상하게 여기고 되물었다.
[어디요?]
원승지가 다시 대답했다.
[서주요.]
죽으려 했던 동현도인이 끼어들었다.
[나의 사형제들은 십여년 동안 서주엘 가지도 않았소. 내가 만일 비검을 놓지 않았더라면 천리 밖에서도 사람의 목을 취했을 것이오.]
원승지가 다시 재촉했다.
[그 말이 사실이오?]
동현은 자기의 목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죽여도 두려울 것이 없소. 어찌 헛말을 하겠소?]
초원아가 급히 물었다.
[그렇다면 이 비수는 어디에서 얻은 것이오?]
동현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내가 진상을 자세히 말하리다. 나는 다만 여러분이 아직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 두려울 뿐이오. 나는 당신을 데리고 지금 어느 곳으로 가고 싶소. 가서 보면 즉각 알 것이오.]
민자화가 급히 말렸다.
[사제, 거긴 갈 수가 없소!]
동현이 대답했다.
[입으로 말하는 것이야 믿을 수 없겠죠. 반드시 증가가 필요할 것이오. 초방주는 못된 놈에게 살해되었소. 이 일은 작은 일이 아니오. 반드시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조사를 해야 하오. 원상공과 초아가씨는 결코 우리들의 일을 방해할 수 없을 것이오.] 민자화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대체 어디로 가자는 겁니까?]
동현이 심각하게 말했다.
[나는 오로지 원상공 당신만을 데리고 가겠소. 사람이 많으면 안되니까.]
금룡방 중 어떤 사람이 뒤에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원래가 간사합니다. 절대로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초원아가 원승지에게 물었다.
[원상공,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원승지는 잠깐 마슴속으로 생각하였다.
(보아하니 이 두 사람은 확실히 다른 숨겨진 계략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함께 나가 진상을 밝힌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만약 그들이 흉계를 부리는 날에는 용서를 구해와도 내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원승지도 뜻을 정했다.
[그럼 우리 함께 가서 보도록 합시다.]
그러자 초원아가 금룡방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원상공과 함께라면 그들 조차도 감히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오.]
초공례가 주살된 후부터 초원아는 이미 위엄있게 이들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한 무리를 솔선하여 이끌고 원수를 찾으러 나서려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따르지 않는 것이 없지만, 특히 원승지의 위인됨과 그가 또 인의를 알고 있고 무공이 높다는 것을 익히 인정하고 있는 터여서 동행키로 했다.
이런 고수를 보호하고 지지한다는 것은 실로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었다.
원승지와 초원아는 곧 민자화와 동현도인을 따라 북쪽으로 향해 떠났다.
성벽으로 다가갔을 때, 동현도인은 갈고리를 꺼내서 성벽으로 던저 끝을 걸쳤다. 초원아 먼저 기어올라갔고 원승지가 두 번째로 올라간 뒤, 동현도인과 민자화가 따라 올라갔다.
네 사람은 성벽을 통과해 다리를 타고 계속 북쪽으로 나아갔다. 사방은 칠흑으로 감싼 듯 어두운 밤이 되었고 달빛은 마치 물빛처럼 맑았다. 다리는 갈수록 험했다. 다시 4, 5리를 가니 험한 돌산이 나왔다.
원승지와 초원아는 은연 중 놀라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어떻게 이런 황폐한 곳을 왔었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초원아는 나름대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두 사람은 이미 이곳에다 한 무리를 숨겨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상공이 여기에 있으니, 상대방에 천궁만마가 있다해도 두렵지 않다. 그는 나를 위해 어떤 위험 속에서도 구해 줄 것이니까.......)
다시 2, 3리를 비탈길로 걸으니, 그제서야 산마루가 나타났다.
오로지 보이는 것은 울퉁불퉁한 괴석과 준엄하게 드러난 바위뿐인데 그것들은 달빛 아래라서 더욱 요괴스러웠다. 날씨까지 음험하고 싸늘해서 사람을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동현과 민자화는 한 덩어리의 큰 바위를 지나갔다. 원승지와 초원아도 그들을 따라서 지나갔다. 높고 험한 곳에 닿으니 놀랍게도 거기에는 한 구의 큰 관(官)이 놓여 있었다.
이 어두운 밤에 갑자기 흉측한 것을 보게 되니, 초원아의 마음속에는 한줄기 냉기가 쭉타고 올랐다.
동현은 돌 한 개를 들어 관 위에 가볍게 세 번 두드리고 잠시 멈췄다가 또 두 번, 그런후에 다시 세 번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관 뚜껑을 잡고 뒤쪽으로 향해 얼어 젖히니, <쿨럭>하는 소리가 나면서 관 가운데로 시체 한 구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초원아는 <아!> 하고 외마디 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원승지의 왼손을 붙잡고 어색하게 기대어 섰다.
시체가 문득 입을 열었다.
[뭐라고? 바깥사람을 데리고 왔다고?]
동현이 조용히 대답했다.
[두 사람은 친구입니다. 이분은 원상공으로, 금사랑군 하설의의 제자입니다. 이 분은 초아가씨인데 금룡방 초방주의 따님이고요.] 그 시체는 원승지와 초원아 두 사람에게 말했다.
[두 분은 이상히 생각하지 마시오. 나는 지금 몸에 상처를 입고 있소. 그래서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오.]
동현이 한마디 거들었다.
[이분은 폐파장문(蔽派掌門) 사형 수운도인이오. 여기서 지금 원수를 피해 상처를 돌보고 있는 중이지요.]
원승지와 초원아는 그제서야 그가 시체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곧 예를 갖추었다. 수운도인도 손을 마주잡고 그들에게 답례를 했다.
수운도인은 얼굴이 백짓장같이 하얗고 파리했다. 혈색이 없는데다, 한가운데는 머리부터 콧대까지 오히려 붉은색의 커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그 흔적으로 보아 상처를 입은 지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았다. 창백한 얼굴색에 그 색깔을 더하니 모습은 더욱 공포스러웠다.
수운도인이 입을 열었다.
[내 스승과 당신 사부 하스승은 교류가 좋았소. 하스승이 선도산에 왔을 때, 내가 모신 적도 있소이다. 그 노인은 지금 어떠신가요?]
원승지가 그를 기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분은 이미 세상을 뜨신지가 몇 년이나 되었습니다.] 수운도인은 크게 한숨을 쉬며 잠시 참담한 듯 말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그가 다시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조금전에 동현사제가 말한 것을 들었소. 당신이 금사랑군의 제자라니 내 마음이 아주 기쁩니다. 나는 그간 금사 선배만이 유독 뛰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사부의 대원수, 혹시 복수를 할 수 있을는지....... 아! 그분이 홀연히 돌아가셨다니 인간이란 언제고 늙고 죽기 마련이구먼. 두려운 것은 악인이 이 세상을 횡행하는 것이오.]
초원아는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나의 아버님 복수를 위해 이곳엘 왔다. 어찌 사부의 원수까지 끌어낸단 말인가?)
원승지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상대가 어떤 굉장한 사람이었는지 모르겠군. 천하에 금사랑군을 능가할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동현은 다시 낮은 소리로 금룡방의 원수를 찾고 있다는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 대사형에게 청하여 초원아에게 설명을 해주도록 했다.
수운도인은 <아>하고 짧게 탄식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분노가 인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돌연히 손바닥으로 몸 옆에 있던 관 뚜껑을 맹렬하게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관이 튀어오르며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원승지는 잠시 생각하였다.
(이 도인의 무공은 그의 두 제자보다도 훨씬 고명하구나! 그의 몸은 비록 부러진 가지와 같지만 이토록 대단한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그런데도 이런 곳에 숨어 마치 죽은 사람인양 행세를 하다니.......)
수운도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초아가씨, 우리 선도제자들은 각자 모두 배울만큼 배웠고 또 무예도 어느만큼 이루어져 있소. 입산해서 도를 닦을 때, 사부는 반드시 그들에게 비수 한 자루씩을 주었다오. 나는 본파의 장문을 알고 있소. 내 비록 나아가 많고 낡은 무예이나 인내하며 이곳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있소.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친구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수가 없구료. 초아가씨, 이 비수가 대체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 알려 주겠소?]
초원아가 한스럽게 대답했다.
[모릅니다.]
수운도인은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다가 탄식하였다.
[우리파 제 13대 장문조사 국담도장이 그 해에 검술로는 천하무적이었소. 오로지 안타까운 것은 성질이 강직하고 오만하여 많은 사람을 죽였기에 원수가 많았다오. 마침내 각파 검객대회가 있어 항산에서 차륜전법으로서 싸움을 했소. 국담도장은 비록 검으로 상대방 18명을 해치워 이겼지만 종내에는 자신도 기력이 쇠진하여 몸에 깊은 상처를 입었었소. 그래서 비수로 자살을 했소. 본 파는 이런 까닭에 사기가 크게 상했고, 또 천하의 영웅들에게 죄를 지었소. 이후부터 한가지 규율이 정해졌소. 바로 무예가 마쳐진 제자들에게 한 자루씩 비수를 주는 것이오. 동현사제, 자네 저기로 가 보오.]
동현은 그의 뜻을 잘 모르는지 주저하다가 그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서쪽을 향해 걸어갔다.
수운은 그가 수 백보를 걷는 것을 기다렸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되었소.]
동현은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수운은 작은 소리로 민자화에게 물었다.
[민사제, 이 비수를 무엇이라고 부르오?]
민자화가 대답했다.
[이것은 선도계사도입니다.]
그러자 수운이 또 물었다.
[사부께서 너에게 계사도를 주실 때 4귀절에 무슨 훈시가 있었는지 조용히 말해 보시오.]
민자화는 숙연하게 대답했다.
[함부로 죽이는 것을 엄격히 금하라(嚴戒壇殺), 선을 소중하고 진귀하게 보아라(善視珍狀), 의에는 적이 없느니라(義所不敵), 자기를 죽임으로써 행동하라(擧以自狀)입니다.]
수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는 저쪽으로 가게.]
그는 민자화가 저만큼 먼 곳으로 간 것을 기다린 뒤, 다시 동현을 불러 돌아오도록 했다.
수인이 그에게 물었다.
[동현사제, 이 비수를 무엇이라고 불렀소?]
동현이 대답했다.
[선도계살도라 합니다.]
수운이 다시 물었다.
[사부께서 자네에게 이 칼을 주실 때 무슨 훈시가 있었겠지?] 동현이 숙연하게 대답했다.
[엄계담살, 선시진장, 의소불적, 거이자장 하라 했습니다.] 수운은 다시 민자화를 불러 돌아오도록 했다. 그리고는 원승지와 초원아에게 말했다.
[지금 두 사람은 가히 믿어도 좋습니다. 우리파는 확실히 이런 훈시가 있소. 우리파 제자가 살인을 범하는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소. 그러나 그런 훈시를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무도한 짓을 하겠소? 어찌했건 계살도를 알고는 살인을 할 수가 없소이다.]
원승지가 오랜만에 물었다.
[이 비수를 왜 계살도라 하십니까?]
수운이 대답했다.
[우리파는 국담조사의 실패를 거울삼아 15대 조사때부터 한가지 규율을 만들었소. 무고한 자를 함부로 죽이는 것을 엄금한다(嚴禁妄殺無華). 그렇지 않을 때는 매 두 해마다 한 번씩 선도산대회가 열리는데 이때 선배 형제들 앞에서 이 계살도를 자행으로 무너뜨려야만 하오. 민사제가 초방주를 살해하고자 하였다면, 또 그해 민자엽 사형의 행위가 옳지 않은 것이 있다면 죽일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소. 그러나 형의 복수를 갚기 위하여 함부로 죽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그러나 뒷날 못된 놈들의 도전을 받고, 다시 그들에게 가해를 주는 가운데 그것이 중대한 규율을 범하게 되었다오. 그들은 용서받지 못할 자들이었소.]
그는 한숨을 쉬고나니 말을 이었다.
[이 계살도는 자살용이오. 만약 선도제자가 우연히 적을 만났을 때, 무공이 그보다 못하다면 상대방 역시 고통스럽게 서로 접근할 것이오. 몸을 피하는 길을 얻지 못한다면 그때는 반드시 이 비수로써 자살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도의 이름을 면하게 하지요. 민사제가 감히 우리의 엄격한 규율을 어기고 할 수 있다면 천하의 무기가 도처에 많은데 어떻게 계살도로서 사람을 죽였겠소?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인 칼이라면 어떻게 그걸 도로 가져가지 아니하였겠소?]
원승지와 초원아는 여기까지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수운이 또 말했다.
[초아가씨, 이 편지를 좀 보시려오?]
그는 관 모퉁이에서 보따리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펼치니 속에는 한 묶음의 문건과 잡물이 있었다. 그는 편지 하나를 꺼내어 초원아에게 내밀었다.
초원아는 눈으로 원승지를 바라보았다.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원아는 편지를 받고서 달빛 아래서 봉투에 쓰여져 있는 <급송 수운대사형께, 민이 보냄> 이란 몇 글자가 눈에 띄었다.
민자화가 수운에게 보내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편지지를 꺼내보니 <방부통상대객잔용잔>의 붉은 글자가 쓰여져 있고 편지의 글자는 삐뚤삐뚤했으며 문맥도 잘 통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수운 대사형, 안녕하십니까. 초방주의 일은 도인이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한게 분명합니다. 무엇을 보복하는지 그것은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젯밤 대사형의 계살도를 홀연히 어떤 놈들에게 그만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만약 못 찾으면 저는 다시 대사형을 뵐 면목이 없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생 민자화 올림>
초원아는 이 편지를 읽자 온몸이 떨렸다. 곧 민자화를 향해 절을 하며 말하였다.
[민숙부, 질녀가 좋은 분을 잘못 봤습니다. 어른께 그만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나서 또 동현에게도 절을 올렸다. 두 사람도 황망히 일어나 맞절을 했다. 민자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느 도둑에게 이 비수를 빼앗겼는지는 나도 모르겠소. 또 그것으로 초방주를 죽이기까지 하고요. 더구나 시체 위에다 그 칼을 놔두었으니 그대가 나를 의심할밖에.......]
초원아가 대답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이 점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민숙부가 아버님을 살해한 후 영웅으로 과시하시기 위해 칼을 남기신 줄로만 알았었습니다.]
민자화가 다시 한마디 했다.
[나는 계살도를 찾기 위해서 동현도인과 사방으로 돌아다녔지.
그러나 모두가 헛수고였소. 나중에 대사형의 민첩한 판단이 우리를 경성으로 오게했소. 길거리에서 그들은 아무 생각없이 날 죽이려 하니, 나 역시 한바탕 싸울 수 밖에 없었소. 다행히도 원상공이 도착했기 때문에 이 일이 명백해질 수가 있었던 것이오.] 수운이 입을 열었다.
[내 일이 잘 마무리되고 그래서 요행히 생명이 부지된다면 내가 초아가씨를 도와 그 칼을 훔친 살인자를 반드시 잡겠소. 이 사건이야말로 선도파의 마지막 명예가 걸린 큰 사건이군요.] 초원아는 다시 절을 올리고서 비수를 민자화에게 돌려 주었다.
원승지는 생각해 보았다. 그들 사형제들은 어떤 다른 비밀스런일이 있는 것 같은데 함께 의논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만 같았다.
바깥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손을 모으며 말하였다.
[자, 그럼 여기서 작별을 합시다!]
두 사람은 수운과 작별을 하고 수십보를 걸어 나왔다. 그들이 막 산을 내려오려 할 때였다. 동현이 문득 뒤에서 큰 소리를 쳤다.
[두 분은 잠깐 걸음을 멈추시오!]
원승지와 초원아는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곧 동현도인은 뛰어서 쫓아왔다.
[원상공, 그리고 초아가씨, 한가지 말씀드릴 게 있는데 두 분은 이상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원승지가 대답했다.
[도인, 말씀하십시오.]
[여기서 있었던 일은 절대로 누설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저는 많은 말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실은 사형의 생명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절하게 요청을 합니다.] 그게 강호의 규칙이었다. 다른 조직이나 다른 파의 은밀하고 괴이한 어떤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말을 전하거나 논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흉칙한 재난을 면치 못한다. 이 일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동현도 이러한 점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은 그는 명령을 어긴 셈이어서 이것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원승지는 마음의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비록 일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조금 전에 수운도인의 무의식간에 노출한 하나의 무공을 보지 않았던가. 원승지도 피차 아끼고 싶어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어 동현도인에게 진심어린 목소리를 대답했다.
[사형께서 어떤 위험한 일을 당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모쪼록 형제들이 서로 도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동현은 원승지의 손을 굳게 잡더니 다시 한 번 그의 인간됨이 진실함과 높은 무공을 치하했다 무공만 하더라도 자기보다 10배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선도에서 제일 고수인 수운도인보다 더 높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적대감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원승지도 속으로 기뻐하며 말하였다.
[원상공께서도 의에 의지하고 서로 도우면 실로 구해지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오. 저는 이제 사형들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그는 총총이 되돌아가 낮은 소리로 수운과 민자화의 이런저런 일을 의논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의논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결정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옮김: 김선국(金善國;sm1109)

* 제 3 권 *

- 7 - 미녀의 검술

원승지는 잠깐 생각했다.
(설사 그들에게 큰 일이 있다 해도 외부 사람이 끼어 드는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리어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두 도인님! 민형, 저희들 먼저 가겠습니다. 다음 기회에 만나 뵙지요.]
그리고는 한 번 손을 모으더니 곧 몸을 돌렸다.
수운도인이 모처럼 입을 열었다.
[원상공, 좀 건너와서 거들어 주시오.]
원승지는 할 수 없이 다시 몸을 돌려 그들에게 갔다.
수운이 입을 열었다.
[원상공, 검을 모아 서로 도웁시다. 우리 사형제는 실로 감개무량해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사로운 일이긴 하나 나라의 정세는 실로 흉흉하기 그지없소. 감히 원상공이 무고하게 위험을 무릅쓰게 할 수는 없소이다만....... 아까 내가 귀한 분을 얼른 알아보지 못함을 섭섭해 하진 마시오.]
그는 손을 모아 예를 갖추었다.
원승지는 그가 자기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에게는 어떤 영웅기개가 있다는 것도 느꼈다.
[도인,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비록 그렇다하더라도 저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도인, 만약 저희들을 필요로 한다면 마땅히 힘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니 일을 있으시면 수시로 정조사호동으로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수운은 머리를 숙이고 잠시 아무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원상공이 이처럼 의기로운데 우리들의 일을 숨긴다면 더 큰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오. 만약 앞으로 다시 서로를 기만한다면 친구로서 부족함을 어찌하리. 두 분은 잠깐 여기 좀 앉으시오. 동현사제, 네가 두분께 자세한 말씀을 드리거라.]
동현은 두 사람이 오른쪽 돌 위에 앉는 것을 기다렸다가 자기도 따라 앉았다.
[우리 은사 황옥도인은 워낙 돌아다니시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도처로 돌아다니셨지요. 2년에 한 번씩 선도대회에 가시는 것을 제외하고 평일에는 거의 산상에 계시지를 않습니다. 5년 전, 중추절(仲秋節)에 또 대회가 있었습니다. 은사는 여전히 산으로 돌아오시지 않고, 편지조차 없었습니다.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요. 많은 제자들이 모두 괴이하게 여겼고 또한 걱정이 되었습니다. 은사님은 남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체약을 하시는 것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바삐 운귀, 양광으로 찾아다녔지만 그 곳마다 소식이 없었지요. 나와 민형은 오히려 그곳 객점에서 점창과 추풍검 만리풍의 소식을 들었었소. 들어보니 급한 일이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었어요. 우리 둘은 급히 운남 대리 만대형 댁으로 갔지요. 그가 중상을 입고 자리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었어요. 물으니 원래는 우리 은사를 위해 상처를 받은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원승지는 황옥도인은 오독교의 손에 죽었다는 정청죽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은연중 머리를 끄덕이면서 동현이 말하는 것을 계속 들었다.
[추풍검 만대형이 말씀하시길, 그날 그가 대리성 밖에 있는 친구를 방문하러 갔었대요. 그런데 거기서 우리 은사가 포위되어 공격받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을 보았던 것이지요. 점창파와 선도파는 본래 관계가 깊은 터라서, 그는 당장 검을 빼들고 도왔다고 하오. 그러나 어찌 알았겠소? 상대방이 모두 고수인 것을.......
두 사람은 힘이 딸린 것이오. 민형은 먼저 독수를 맞아 기절해서 땅에 쓰러졌었는데, 나중에 누군가의 구원을 받아 돌아오게 되었어요. 은사님의 생사는 모른 채 말이오. 맏형은 어깨와 겨드랑이 아래에 모두 강철같은 깍지로 상처를 입었고요. 독있는 곳을 긁어서 살펴보니 틀림없는 오독교의 소행이었소. 그는 천신만고 끝에 명의를 찾아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4년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요. 은사에게는 그동안 흉한 일이 많았고, 오독교 또한 은밀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운남의 모든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시종 아무런 혐의를 찾을 수가 없어 모두들 속수무책인 채 그곳을 떠난 것이오. 후에 북방에서 전해오는 소식으로는 오독교 교주 하철수가 북경으로 왔다고 하기에.......]
원승지는 <아!> 하고 외마디를 냈다. 동현이 말을 끊고 물었다.
[원상공은 혹시 그녀를 알아볼 수 있습니까?]
원승지가 대답했다.
[나의 친구 몇이 어제 그녀의 독수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동현도인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다친 친구들은 별일 없나요?]
[눈으로 보아서는 아직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음, 그것이야말로 정말 천행이구료. 우리들이 얻은 소식은 대사형이 전하는 급한 명령이었소. 그래서 선도제자들은 모두 경성 선사에 집합했습니다. 우리들은 경성으로 가는 도중이었는데 우연히 초아가씨를 만난 것이지요. 대사형은 저희보다 먼저 도착했었습니다. 그와 하철수는 좁은 길에서 문득 마주쳤다 합니다. 그 미천한 것이 갑자기 욕을 하더니 아주 무례하게 굴었지요. 대사형과 그녀는 그 자리에서 싸우기 시작했지요. 이 미천한 여자가 손발을 부드럽게 움직이자 대사형이 그만 주의하지를 않았지요.
그래서 이마 위를 그녀 왼손의 철갈고리에 맞아서 상처를 입었어요. 그 다음은 그녀의 다섯가지 비밀스런 무기를 정통으로 건드렸소. 그녀의 비밀무기를 건드리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다행히도 대사형의 내공이 아주 훌륭하였기 때문에 어디에 독을 갖고 다니는지를 알아냈었지요. 이미 무술하시기 전에 많은 해독약을 먹고 있기도 했지요. 또 몸주위에는 갖가지 해독약과 고약, 알약들을 갖고 다니셨지요. 그랬기 때문에 어려움을 만나서도 견딘 것이지요.]
수운이 문득 탄식했다.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가 알까봐 두렵소. 그가 다시 온다면 나는 죽고 말 것이오. 이것은 집에서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는 까닭이오. 그래서 이런 기괴한 장소에서 정양을 하는 중이오. 다시 3개월만 더 지나면 독기가 천천히 빠질 겁니다. 사부는 이미 비천한 그녀의 수하에게 죽음을 당할 가능성이 많소. 이 복수는 꼭 갚지 않으면 안되오. 다만 상대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오.
독물도 굉장하고....... 이것이 감히 내가 친구를 붙잡을 수 없는 이유요.]
민자화가 중간에게 물었다.
[원상공은 어떻게 해서 오독교와 원수가 되었지요?]
원승지는 어떻게 해서 금의독개 제운오를 만났는지 그리고 정청죽이가 어떻게 해서 늙은 거지에게 상처를 입었는지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했다.
[원상공은 그들과 깊은 원수관계는 없지 않소? 손해를 조금 본 정도였으니 그만 두시오. 당신은 귀중한 분입니다. 뱀 같은 인간과 상종을 해서 죄를 짓지는 마시오.]
원승지는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아버님의 원수는 곁에 있고, 또 의형 이암이 모의하는 큰 일도 보좌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강호상의 작은 원한도 막아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얽히고 설켜 영원히 끝장이 나지 않을 것이다.)
원승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도인,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제게는 마침 한 마리의 빙섬이 있습니다. 제가 도인의 독을 뽑아 드리겠습니다.]
그는 곧 빙섬을 꺼내어 그를 위해 일차의 독을 뽑았다. 이런 강호에는 독을 뽑아낼 두꺼비가 없었다. 그래서 빙섬을 동현에게 빌려 주었다. 용법을 가르쳐 주니 그는 수운을 위해 독기를 끝까지 뽑아내었다. 수운, 민자화, 동현은 끝없이 감사를 표했다.
원승지와 초원아는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반 정도를 내려왔을 때였다. 초원아는 갑자기 돌 위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뜻밖에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의아한 원승지가 물었다.
[왜 그러시오? 초아가씨. 어디가 불편하시오?]
초원아는 고개를 흔들면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아무일도 없다고 하면서 다시 일어났다. 원승지는 내심 생각했다.
(이렇게 나간다면 이 금룡방과 선도파는 비록 적이 변하여 친구가 된다고 해도 아가씨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건강하기만 하니 다행이지.......)
두 사람은 말없이 성으로 돌아왔다.
원승지는 초원아를 금룡방 숙소로 데려다 준 뒤 귀가 했다. 원승지는 큰 길가로 길게 늘어선 민방 지붕의 꼭대기에서 가벼운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어느덧 벌써 몇 골목을 건너뛰고, 뛰는 것이 흥미가 있고 발랄했다.
<신행백변(神行百變)>의 절기가 나타났고, 날으는 제비가 파도를 잡으려는 것 같았다. 유성이 공중에서 날며, 귀 옆에 바람이 움직이는 것과도 같았다. 발자욱 소리는 없으나 분별하는 것이 귀신 같았다.
그때였다. 곁에서 낮은 소리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훌륭한 무술이구나!]
원승지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림자와 함께 한 사람이 갑자기 들어오며 웃었다.
[하지만 나를 따를 수가 있겠는가?]
목소리와 함께 어느새 그는 7, 8자 밖에 나가 있었다. 원승지는 이 사람의 신법이 기괴하고 빠른 것에 놀랐다.
(이 사람은 누구지? 경공술을 어떻게 이토록 닦을 수 있었단 말인가?)
그 사람은 아주 이상하리만큼 힘이 세었다. 기운을 내어 따라가니 그를 추적할 수는 있었다. 그는 아무 생각도 않고 그냥 날아 다니는 새와도 같았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원승지의 경신무술도 마침내 높이 뛰어 올랐다. 발 밑에 힘을 더하니 짧은 시간 동안은 따라다닐 수도 있었다. 그 사람은 몇 자 앞에 우뚝 서더니 드디어 몸을 되돌렸다.
그리고는 깔깔대며 교태로운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원상공, 오늘에서야 나는 당신을 굴복시킬 수 있겠소.]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녀의 긴 소매의 구멍이었고, 몸은 마치 꽃가지와도 같았다. 그는 바로 오독교의 교주 하철수였던 것이다.
그녀가 입은 옷은 마치 눈과 같이 희었다. 더욱이 검은 것은 더욱 검고, 흰 것은 더욱 희었다.
무림의 무사들이 야행에 입는 옷들은 대게 검은 색이 아니고 회색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얼른 발각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비밀무기로 맞서더라도 정확하게 맞출 수 없게 하기 위해 회색옷을 입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놀랍게도 흰 옷을 입었다. 만약 무예가 높고 뛰어나지 않다면 결코 이토록 방자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원승지는 손을 모으며 물었다.
[어느 교의...... 무엇을 가르칩니까?]
하철수는 교묘히 웃었다.
[원상공이 전날 왕림하셨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모여 있었소. 그래서 모두들 마음이 분산되고, 고하를 잘 판가름해 낼 수가 없었지요. 저는 오늘 마음을 모아 이곳에 왔어요. 가르침을 좀 주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몹시 간드러지게 들렸다.
원승지가 대답했다.
[교주의 이런 무예는 남자 가운데서도 보기가 드물답니다. 십분 감복되는 바이오.]
하철수는 여전히 웃었다.
[전날 원상공과 겨뤄보니 장풍은 실로 극치였습니다. 저는 힘이 부족합니다. 감히 맞설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병도를 비교해 봄이 어떨까요?]
그는 원승지의 대답도 듣기 전에 훅하는 외마디를 내더니, 이미 허리에서 말랑한 가죽끈을 꺼내어 들었다.
흐릿한 빛 속에서 보니 끈 전체가 가늘고 날카로운 고리였다.
그것에 다치면 육체는 반드시 큰 덩어리로 찢길 것 같았다.
하철수는 다시 웃었다.
[원상공, 이것은 할미편이라고 부르오. 다치면 독이 있소. 그러니 당신은 주의해야 할 것이오.]
원승지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싸움이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온화하고 친절해서였다. 그러나 또 그녀의 모든 것엔 독기가 서려 있기도 했다. 둘 다 인사치례는 하지 않았다.
원승지는 처음부터 그녀와 무예를 비교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주저하다가 말했다.
[실례합니다.]
그러나 하철수는 상대방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손을 한 번 펼쳤다. 할미편의 힘은 강한 바람과 같이 원승지의 가슴 앞으로 몰아쳐 왔다.
원승지는 짐짓 미소를 띄우고는 윗몸을 뒤로 향해 올리면서 그것을 피했다.
할미편이 두 번째 오기도 전에 그는 이미 뒤로 몇 자나 벗어나 있었다.
하철수는 그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내 알았는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사랑군의 제자는 이토록 무례하군. 스승의 이름에 누를 끼치고 있으니! 호호호.......]
원승지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나는 몇 차례나 양보를 했다. 그들 오독교는 기만하는데 습관이 되어 있다. 내가 그녀를 두려워하다니!)
마음이 미동하는 사이, 하얀 그림자가 번쩍번쩍하면서 할미편이 날아왔다.
원승지는 그것을 비켜서며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서 독이 묻은 병기를 만진다면 마침내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좋은 여자인 것 같으면서도 오히려 몸은 악으로 가득차 있다.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생각한 대로 할미편은 전체 독이 묻어 있는 띠였다. 그것을 맨손으로 낚아챌 수는 없었다. 상대방의 두 손은 소매 속으로 왔다갔다하고 몸은 자유자재였다. 원승지도 동쪽으로 또는 서쪽으로 슬쩍슬쩍 피하였다.
하철수의 몸놀림은 무척 빨랐다. 그렇다고 원승지의 옷자락까지에는 미치지 못했다. 20여 차례나 이렇게 휘두르더니 하철수는 갑자기 몸놀림을 멈추면서 섰다.
[당신은 번번이 피하기만 하는데 어디 대장부라 할 수 있겠소?]
[당신이 나를 격하게 만들면 당신의 할미편을 빼앗긴다는 것을 생각해 봤소?]
몸을 한 번 굽히더니 두 손은 이미 지붕에 있는 한 조각의 기와를 들고 할미편의 그림자를 응시하였다.
[할미편을 버려라!]
두 조각의 기와중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이미 할미편을 가로 지르고 있었다. 안쪽으로 몸을 돌리려고 했으나 오른발이 휘청하고 헛디뎌졌다. 하철수는 힘으로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으나 상대방의 발은 예리하게 끈을 차 올렸다. 하철수는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너무도 짧은 순간에 발을 헛디딘 그녀는 자세를 바로잡지 못한 채 방안으로 미끄러졌다.
원승지는 끈을 빼앗아 들며 크게 웃었다.
[금사랑군의 제자가 과연 어떤가?]
그 말을 듣고 있던 하철수는 갑자기 온유하고 교태로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주 뛰어나군요.]
그녀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매우 빠른 몸짓으로 일어나더니 몸을 날려 저만큼 달아났다. 원승지의 몸도 민첩했으나 그녀의 민첩함에는 따를 수 없었다.
하철수는 오른손을 허리에 짚고 있었다. 허리와 다리는 호리호리하기가 이를데 없이 마치 계속 서 있는 것이 불안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직 원상공의 비밀무기의 무예를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우리들 오독교는 독섬사가 있는데.......]
원승지는 그녀가 교태롭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에 정신이 빠져 그녀가 몸을 돌려 솟구쳐 오르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돌연 눈앞에 금빛이 번쩍하여 깜짝 놀랐다.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 황망주에 일비충천, 몸을 튕기며 막대기를 찾았다. 오로지 들리는 것은 가늘고 희미하게 쩡쩡하는 소리뿐이었다. 수십 개의 비밀무기가 지붕의 기와 위를 때렸다.
원래 이 독섬사는 수없이 많고 극히 세세한 강침이었다. 이것은 가슴에 품는 척하면서 발사하는 것이다. 상대를 맞추는 것은 서로의 몸이 정확하게 서 있어야만 가능하다. 손을 뻗고 허리 옆을 한 번 누르면 된다. 그러면 강침은 곧 강력하게 발사된다. 강침은 비록 가늘지만 수는 엄청나게 많다.
한 개만 몸에 맞아도 독에 걸리고 만다. 활, 탄환, 철연자를 막론하고 어떤 비밀무기라도 발사할때는 어깨를 움직이거나 손을 올려야 되기 때문에 상대방이 이미 간파하고 그걸 방비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독섬사는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실제로 천하제일의 맹독 흉기였다. 더구나 이것을 외부 사람에게 일러주거나 가르쳐 주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이의 십중팔구는 죽지 않으면 상처를 받는다. 출중한 무예인이라 하더라도 다친 자는 머지않아 반드시 목숨을 잃게 된다. 이 무서운 무기는 그들 <함사사영>의 무예를 위한 것이다.
아무튼 원승지는 세 개의 동전을 그녀를 향해 던졌다. 그리고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나와 그대는 원한진 것도, 원수진 것도 없다. 그런데 왜 독섬사를 쏘아대는가?]
하철수는 옆으로 몸을 돌려 두 개의 동전을 피하고는 오른손을 뒤집어서는 세 번째 동전을 잡았다. 그리고 가볍게 소리를 쳤다.
[아이고, 힘이 장사군요.]
원승지는 그녀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한 다음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동전 잡는 소리를 듣고 눈으로 보니 그녀 역시 힘이 약하지 않았다. 원승지는 손을 뻗어 다시 동전을 손으로 잡으려다가 돌연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 여자의 손에는 독이 묻어 있다. 내가 속아서는 안돼지!) 곧 소매 끝으로 동전을 받아 밀치니, 그것은 다시 하철수에게로 날아갔다. 하철수는 두 손가락을 내밀어 그것을 가볍게 받고는 더 이상 되돌리지 않고 옷 속에 집어 넣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내게 일전을 주셨다고 그다지 아까와 하지는 않겠죠?]
그리고 이어 그녀가 손바닥을 내밀자 바람이 부르르 떨었다.
십여가지의 금도 아닌 밧줄이 원승지의 머리 위를 향해 덮쳐왔다.
원승지는 즉시 할미편을 올리면서 밧줄을 얽어매 버렸다. 하철수는 놀라서 끝을 잡은 채 외쳤다.
[할미편은 내것이오! 당신이 나의 병기를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겠소?]
말소리가 마치 운남의 사투리 같기도 했다. 아주 약하고 교태로운 음성이었다.
원승지는 할미편을 멀리멀리 던져 버리고 외쳤다.
[나는 너의 밧줄을 몇 개 손안에 넣었다. 당신의 오독교는 지금부터 다시 분란을 일으킬 수 없다.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하철수가 대답하였다.
[이것을 밧줄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이것은 연홍주색이오. 그렇게 뺏는 것을 좋아한다면 다시 한 번 시도해 보세요!]
그러더니 그녀는 주색을 가로로 던지며 다가왔다. 이 주색은 가늘고 긴 여러가닥의 갈래였다. 한 번 던지면 사방팔방이 동시에 막히게 되는 무기였다.
원승지는 계속 몸을 피하며 상대의 손을 비어 있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녀가 또 십여 개의 주색으로 공격하리라는 것을 미처 생각 못했다. 어떤 가닥은 문을 막고, 어떤 가닥은 공격을 해나갔다. 한 가닥이 돌아가면 다른 가닥이 펼쳐지고 지 반격을 해나왔다. 한 가닥이 돌아가면 다른 가닥이 펼쳐지고 오므라들어 도무지 반격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십여 차례를 공격하고 피하는 사이 원승지는 이미 주색의 오묘함을 다 보았다.
(이 주색의 무예는 거미망으로부터 변화시켜 만든 것이구나!) 자세히 보니 공격하는 새끼줄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방어하는 줄은 이미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자세를 비스듬히 해서 그녀의 등으로 달려들어 겨드랑이를 잡으려 하였다.
아주 빠르고 위험한 동작이었다. 하철수는 그의 공격을 피하느라 갑자기 몸이 기우뚱하였다.
원승지는 이렇게 되자 손가락으로 그녀의 가슴을 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얼굴이 뜨거워져서 손가락이 나가지를 않았다.
하철수는 왼손 한 고리에 힘을 올렸다. 원승지는 급하게 손을 움츠렸으나 <읍!>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소매끝이 이미 상대방의 고리바들에 걸려들고 말았다.
하철수가 외쳤다.
[아이고, 죄송해라. 원상공의 소매를 찢었군요. 당신 그 긴 옷을 좀 벗어주세요. 내가 꿰매 드릴께요.]
원승지는 그녀가 교활하게 백계를 쓰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더욱 화가 치밀었다. 원승지는 오른쪽 어깨의 소매가 찢어진 것을 벗어냈다. 그러나 소매는 이미 주색과 함께 뒤얽혀 있었다.
찢어진 소매와 주색은 두손에서 동시에 땅으로 떨어졌다.
원승지가 싱긋 웃었다.
[어떻소?]
하철수는 깔깔거리며 대답했다.
[별로인데요, 당신의 병도도 손을 벗어났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승부를 낼 수 있지요?]
그의 반대쪽 손은 등뒤로 가 있고, 오른손엔 한 개의 금빛나는 고리가 하나 들려져 있었다.
원승지는 그녀의 주신법보에 놀라와했다. 무기가 이처럼 끝없다니....... 머리가 띵 하였다.
[당신을 보니 아직도 많은 병기가 있는 모양이구료?] 마음속으로 그녀의 모든 병기를 빼앗으려 했으나 어렵겠다고 여겨 그만 물러서기로 했다.
하철수가 한미디했다.
[이것은 금오구요.]
왼손을 뻗더니 손 위로 철갈고리를 하나 내보았다.
[이것은 철오구요. 나를 위해 우리 아버님은 나의 한쪽 팔을 끊었습니다. 병기는 손안에 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이것을 사용한지 13년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루지를 못했어요.
원상공, 이 갈고리는 독이 있으니 당신은 손으로 만지지 마세요.] 그녀가 여전히 되뇌이는 말을 들으면서 원승지는 천천히 자리를 떴다. 그의 모습은 아무일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으나 내심으로는 실로 두려움이 일고 있었다. 그녀가 또 무슨 간계를 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긴장하여 마음으로 방어하고 있는데 먼 곳에서 은은한 소리가 들려 왔다.
갑자기 생각나는 일이 있어 속으로 외쳤다.
(좋지 않아! 내가 저 여자를 잡아매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 아닌가?)
그때 하철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달아나려고 하시다니, 이미 늦었어요!]
그녀의 철갈고리를 쭉 뻗더니 맹렬하게 원승지의 뒤를 향해 쫓아왔다. 원승지는 몸을 반쯤 돌린 채 옆걸음으로 걸었다.
이때 서광이 비추이더니 한 줄기 검은 기(氣)가 일련의 누런 광채와 함께 원승지의 몸을 종횡으로 가로지르고 지나갔다.
하철수의 무공은 굉장했다.
그와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성경의 옥진자뿐일 것만 같았다. 그는 누군가의 응원자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싸움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므로 수차 그녀의 철갈고리를 빼앗으려 했으나 늘 그녀에 의해 반격을 당하기만 했다.
이 철갈고리는 손 위에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사용할 때는 움직임이 비범했다. 마치 살아있는 손과도 같았다.
원승지는 30여 차례나 꺾었지만 그것을 빼앗지는 못했다. 원승지는 초조한 마음으로 허리를 더듬었다.
문득 금빛이 번쩍하더니 그의 손에는 어느새 금사검이 들려져 있었다.
하철수가 힐끗 보더니 웃음을 머금은 채 대꾸했다.
[좋아요! 그 금사검이 놀랍게도 당신 손에 있으니.......] 원승지도 의아해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지?]
쓱쓱하고 검을 내둘렀다.
하철수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났다해도 금사검을 당할 수는 없었다. 쨍하는 소리와 함께 철갈고리는 이미 반토막이 나버렸다.
원승지가 외쳤다.
[다시 싸움을 한다면, 이제 당신의 철손조차 부러뜨리고 말 것이오.]
그녀는 이 말을 듣자 문득 공포의 기색을 비쳤다.
원승지는 천천히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곧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막 도착했을 때였다. 홍승해가 땅위에 누워있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목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원승지는 그를 서둘러 일으켰다. 다행히도 그에겐 숨결이 남아 있었다.
홍승해의 목은 이미 깊은 상처를 입어서 참혹하였다. 홍승해는 간신히 손을 뻗어 집쪽을 가리켰다. 원승지가 그를 부둥켜 안고 집안으로 들어가니 집안 곳곳에는 탁자가 어지럽게 엎어져 있고 이것저것이 부서져 있었으며 문을 파괴되고 창은 깨어져 있었다.
한바탕 치열한 싸움이 지나갔음이 분명했다.
원승지는 우선 옷소매를 찢어 홍승해의 상처를 묶어 주고 방으로 곧장 뛰어 들어갔다. 안에도 곳곳마다 파손이 된 채 호계남과 정청죽이 이리저리 뒹굴며 신음하고 있었다. 원승지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찌된 일이오, 대체?]
호계남이 간신히 대답했다.
[청아가씨, 청아가씨가.......]

- 계속 원제: 벽혈검(碧血劍) /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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