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조각사 04

3학년2반 | 2022.01.19 08:00:32 댓글: 0 조회: 651 추천: 0
분류인터넷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3359
달빛 조각사 4권

【차례】ㅡ 1.절망의 평원
2.만물 기술자
3.무지개 옷 경매
4.다론의 조각술
5.조각 변신술
6.오데인 성 공방전
7.던전 사냥
8.위드의 사냥
9.다크 게이머 연합
10.지상의 거대한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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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평원

"저 사람 이상해. 왜 저렇게 뛰고 있지?"
"정신이상자 같아."
"어서 가자."
소므렌 자유도시의 사람들이 기피하고 두려워하는 인물. 가까이 다가가면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사람.
그는 바로 위드였다.
위드는 땅바닥에서 펄쩍 펄쩍 뛰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비명도 질렸다.
광기 어린 그의 행동에 모두들 멀리 피해 다녔다. 그나마 이곳이 프레야 교단의 신전이기에 망정이지 길거리 한복판에서 그랬더라면
동영상으로 갈무리되어 웹 사이트에 퍼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으흐흐흑!"
위드는 끝내 울음마저 터트렸다.
'대박의 기회를 내가 걷어차다니!'
모라타 지방을 떠나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소므렌 자유도시로 돌아왔다.
막 게이트에서 나오는 순간,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
'빙룡 상과 얼음 미녀상의 효과를 더이상 볼수 없겠군. 조금 아쉬운데.'
1달 넘게 걸려서 만든 조각상이다.
빙룡 상은 그 엄청난 크기와 압도적인 위용, 각종 옵션들도 경탄할 만큼 좋았다.
조각상에 붙은옵션들 덕분에 사냥이 절반 이상 빨라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내가 그걸 거져오지 않은 거지!'
빙룡 상은 너무 커서 거져올 수 없다 치자. 그러나 얼음 미녀 상만큼은 어떻게든 가져왔어야 했다.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를 상승시켜 주는 그 미녀 상을 판다면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설 테니까.
재료가 얼음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녹아 버릴 테지만, 지속적으로 빙계 속성의 마법을 걸어 준다면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을 터였다.
조각상에 붙은 옵션은 별도의 추가 효과로 적용이 되므로 팔찌나 반지 등 다른 아이템에 붙은 효과에 가산된다.
그런 얼음 미녀 상을 팔면 얼마나 많은 돈을받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으으... 나는 너무 착하고 순진하고 선량한 사람이라서 이런 식으로 손해를 보는구나.'
땅을 치고 펄쩍펄쩍 뛰면서 후회해 봤지만 이미 늦은바.
착하고 선량한 사람.
위드는 곧 바보나 다름없다고 보았다.
악독하고 야비하고 치사하며 파렴치하지만 부자.
이런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지향할 가치가 있지 않던가.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어. 보다 독하게 사는거다, 위드. 조각사가 된 것도 억울한데, 조각사의 이점을 전부 버리고 살 수는 없는 거야.'
위드는 인생의 목표를 다시금 설정했다.
함께 프레야 교단으로 돌아온 알베론을 비롯하여 사제들은 모두, 그때까지 위드의 광기 어린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찌프린 얼굴과 기겁한 표정.
그러면서 조금씩 주변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위드는 NPC들에게까지 기피당했다.
"흠흠."
위드는 곧 옷차림을 정돈하고 평상시처럼 악을 처단하고 의로운 일을 행하는 모험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럼 대신관을 만나 뵈러 가죠."

곧바로 위드는 우선 사제들과 함께 대신관에게 갔다.
대신관은 그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헌금을 하지 않아도 곧바로 대신관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점 하나만큼은 마음에 든 위드였다.
버는 돈이 늘어난다고 해도 나가는 돈을 잘 관리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부자가 되지 못한다.
위드는 품에서 흰 보석들이 박혀 있는 왕관을 껴냈다.
"여기 파고의 왕관을 되찾아 왔습니다.
"오오! 진정 고맙네. 헤레인의 잔에 이어서 파고의 왕관까지 이렇게 우리들에게 돌려주다니, 우리 교단의 은인일세."
파고의 왕관 탈환 의뢰 완료.
교단이 잃어버린 마지막 성물, 파고의 왕관은 모라타 지방의 뱀파이어들에세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가 이끄는 진혈의 뱀파이어족.
그들은 어둠의 주술사 바르ㅌ칸 데모프가 이끄는 불사읠 군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모라타 지방을 장 악해 왔다.
진혈의 뱀파이어족이 사라진 것은 대륙을 악으로 물들이려는 바르칸에게도 큰 타격일 것이다.
파고의 왕관은 신전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며, 교단의 성세를 위해서 반드시 되찾아야 할 물건이었다.

-명성이 1,200올랐습니다.

-프레야 교단과의 우호도가31이 되었습니다.

-프레야 교단의 공적치가 2,200 상승했습니다. 교단의 공적치는 종교 상태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 다.

프레야 교단의 공적치:4,612
종교 단체와의 공적치는 마물을 퇴치하는것과, 관련된 퀘스트를 완수하는 것으로 상승한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난이도 B급의 의뢰를 해결한 보상으로 9개의 레벨이 올랐다.
'괜찮은 편이군.'
지금 위드의 수준에서는 어떤 몬스터를 잡아도 이 정도의 레벨를 한 번에 올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파고의 왕관을 찾기 위하여 몇 개월간 고생을 했으니 쉽게 얻은 결과물은 아니다.
대신관은 흰 액체와 붉은 액체가 담긴 포션을 30개씩 주었다
"어것은 우리 교단이 자네에게 내리는 포상이네. 성수와 최고급 체력 회복 포션이지."
"뭘 어런 것을 다..."
"변변치 않지만 받아 주기 바라네. 위급할 때 사용하면 유용할 걸세."
"감사합니다."
위드는 포션들을 챙겼다.
포션은 값이 워낙 비싼 탓에, 위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었다.
뒤치기4인조처럼 해적질이나 산적질을 일삼는 이들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포션을 쓰기 힘들었다.
레벨이 올라서 생명력이나 체력이 늘어나면, 그만큼 더 성능이 좋고 비싼 포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포션으로 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포션을 가지고 있다면 위급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이유로 다들 몇 개씩의 포션은 챙겨 두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용사에게 내리는 장비들이 있네."
위드는 아가사의 검을 비롯해여, 헤레인의 잔을 구했을때 받은 물품들을 전부 한차레씩 다시 받았다.
'이건 잃어버린 성물을 되찾아 주면 주는 상품들이로군. 돈좀 되겠어.'
"그리고 이것은 우리 교단의 보물창고에 있던 물건인데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먼지만 쌓이던 참이었네. 마침 자네의 직업이 조각사라고 하니 받아 주면 좋겠군."
-알 수 없는 가죽 벨트를 습득하셨습니다.

모르는 아이템을 습득하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 물건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저주가 걸려 있거나 현재 소유하고 있는 아이템보다 성능이 좋지 않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감정."
데이크람의 붉은 와이번 가죽 벨트: 내구력60/60. 방어력22. 창공을 자유롭게 나는 와이번의 가죽으로 만든 벨트.
붉은 와이번은 매우 희귀하여 그존재 자체가 의심받는 생물이다.
붉은 와이번의 가죽으로 만든 벨트를 차고 있다는 것은 모험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질겨서 잘 찢어지지 않을뿐더러 착용감도 좋다. 가볍지만 허리를 바싹 조여 바지가 장착할 수 있는데, 조각 도구를 보관하기에 좋을 듯하다.
벨트의 중앙 부분에는 조각술 마스터 데이크람이 직접 새긴 와이번의 머리 조각이 있다.
제한:레벨150.
직업 조각사 한정.
옵션:매력+15.힘+10.민첩+30.명성+30.조각술 스킬+7%
이 허리띠를 착용한 상태에서 만든 조각품들은 추가로 명성을 5 더 획득하게 해준다.

위드는 잠시 침묵했다.
난이도 B의 의뢰를 해결하면서 특별한 아이템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는 했으나 데이크람의 벨트라니.
물론 아이템의 성능 자체는 그다지 좋지 않다.
이 정도 방어력과 스탯을 올려 주는 아이템이라면 구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데이크람의 벨트였다.
대륙에 존재했다는 5인이 조각술 마스터 중의 한 사람 데이크람!
그의 벨트가 위드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90만원 벌었군.'
데이크람의 장비 세트.
헬멧과 조각 도구들이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조각술 스킬을 향상시켜 주는 옵션은 일반인들에게 쓸모가 없다.
조각사라는 직업은 이미 전멸하다시피 했기에 거래가 안되어야 정상이었으나, 헬멧은80만워,조각 도구는110만원에 팔렸다.
희귀한 아이템들을 수집하는 이들이 사 간 것이다.
헤레인의 잔에 이어서 파고의 왕관까지 되찾아 주자 대신관이 내준 아이템들은 정말로 상상을 초월한 지경이었다.
"우리 교단은 용사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전하는 바일세. 어디서든 프레야 여신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상처를 입거나 저주에 걸리면 언제라도 찾아오게. 무료로 치료를 해 줄테니. 그리고 본 교단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대신관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심각한 고민거리가 있는 듯한 태도였다.
"교단의 성물3개가 드디어 돌아왔네. 권위와 무력, 신성력을 회복하게 된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본래의 힘을 발휘하게 될 테지. 바르칸 데모프가 이끌던 불사의 군단은 척박한 북부의 대지에 웅크린 채 세력을 늘려 나가고 있는데, 정찰을 위해 떠났던 성기사들이 마지막으로 보내온 소식에 의하면 그들에게 포섭된 몬스터 군단은 강력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하네."
바르칸 데모프가 이끌던 불사의 군다느이 무서움은 그들 개개인이 언데드라는 점에 있었다.
전투에서 죽은 이들은 적아를 가리지 않고 그의 부하로 되살아난다. 어둠의 마력을 발휘하는 성기사들, 악신의 축복을 사용하는 사제들.
불사의 군대는 싸울 때마다 세력이 늘어난다.
"바르칸 데모프가 부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이때에 악신을 신봉하는 네크로맨서들도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네. 마르지 않는 피와 증오 속에서 마법을 연구하는 네크로맨서들은 악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지. 절망의 평원에서 그들이 무슨 일인가를 꾸며 놓았다고 하더군."

띠링!

절망의 평원에 사는 유배자들.
바르칸 데모프가 이끌던 네크로 맨서들은 악신 벨제뷔트를 신봉한다.
마나의 원리를 집요하게 탐구하던 네크로맨서들이 어째서 벨제뷔트를 숭배하는 신전을 만들었는지는 알 려지지 않았다.
절망의 평원에는 혼돈의 시대에 각 왕국에서 추방된 유민들과 다크엘프들이 살고 있다.
신전에서 종사하는 네크로맨서의 일부가 절망의 평원으로 떠났다. 그들을 찾아내서 처치하라.
로자임 왕국의 신전으로 가면 그들에 대한 정보와 지원 부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난이도:B
보상 : 알 수 없음.
퀘스트 제한: 실패 시 프레야 교단의 공적치0으로 변함.
명성 -3,000.

위드는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번에도 난이도가 B급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제한이 없다는 것일까?'
절망의 평원은 로자임 왕국에서 동북쪽으로 한참이나 가야 하는 장소였다.
브렌트 왕국과 로자임 왕국의 접경에 위치한 곳으로, 위험한 몬스터들이 정신없이 튀어나오는 지역이다.
그렇지만 그곳은 단지 절망의 평원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언제 어디서 발견되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베르사 대륙의 지도' 에서는 중앙 대륙의 강국 아이데른 왕국보다 절망의 평원의 면적이 더욱 넓게 표시되어 있다.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네크로맨서들을 처치하겠습니다."
-퀘스트를 받으셨습니다.

"고맙네, 용사여!"
대신관은 크게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그 이야기를 끝으로, 대신관은 더 이상 위드에게 반응을 보이지않았다.
위드는 천천히 교단에서 물러나왔다.

마판은 인근 마을에서 교역을 마치고 소므렌 자유도시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그의 귓가에, 오랫동안 접하지 못하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판 님.

-예? 아, 위드 님! 죽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지금 어디십니까?

-일이 잘되었습니다. 프레야 교단 앞으로 오세요.

-예, 바로 달려가지요.

마판은 정말로 바람처럼 달려왔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였다.
무려 난이도 B의 의뢰를 받고 떠났던 위드의 귀환!
거래소에서 교역품을 처분하지도 않고 곧바로 온 것이었다. 마판은 아리따운 여인도 1명 동반한 상태였다.
마판은 우선 위드의 일에 대해서 묻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자신의 동료부터 소개했다.
"이쪽은 위드 님. 그리고 이쪽은 화령 님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위드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말씀은 많이 들었네요."
마판은 그동안 동료를 구해 같이 다니게 되었는데, 그녀의 직업이 무척이나 독톡했다.
"위드님, 놀라지 마십시오. 여기 화령님의 직업은 댄서입니다."
"댄서?"
화령이 활달하게 웃으며 말했다.
"바드와 비슷한 맥락의 직업이라고 보시면 돼요. 노래 대신에 춤으로 동료들의 능력을 올려 주기도 하고, 적들을 상대하기도 하죠."
"그렇군요. 힘드시겠습니다."
"아니에요!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제가 나름대로 춤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화령의 주특기는 적들을 현혹시키는 데에 있었다. 그녀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 몬스터들은 전의를 잃고 멍한 상태에 빠진다. 일종의 히든
클래스에 속한다고 봐도 되었다.
레벨175인 그녀보다 훨씬 더 강한 몬스터들도 현혹시킬 수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마나 소비가 심해진다.
대량의 몬스터들을 한꺼번에 현혹시킬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춤을 추다가도 그녀가 공격을 하면, 몬스터들이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손바닥만 한 소검을 쓰는 그녀는 방어력과 공격력이 빈약한 펀이라 혼자서는 사냥을 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정점이 있는 반면에 단점도 큰 직업인 것이다.
아무튼 지금까지는 몬스터들이 나타나면 화령이 현혹시키고, 그사이 마판은 마차를 몰아서 빨리 도주했다고 한다.
'조각사에 상인에 댄서라... 갈수록 태산이군.'
로열 로드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그것은 생산직 직업들과 그 외의 직업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직업들!
그들이 함께 뭉쳐서 자신들의 장점을 발후한다면 개개인의 능력이 극대화되는 최고의 파티가 탄생한다.
어떤 몬스터든 잡을 수 있고, 파티원이 전멸하기 전까지는 최대한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전설.
물론 이는 단지 로열 로드의 초창기에 떠돌던, 근원을 알 수 없는 전설이다.
'그저 헛소문에 불과하지.'
대부분의 사냥은 전투 계열 위주로 이루어진다.
일단 사람을 구하기 쉽고 조합을 구성하기가 편하다. 게다가 몬스터를 잡는 속도도 훨씬 빠르다. 그러나 전투 계열들은 약하고 쓸모없으며
전투에 있어서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였다. 구태여 가입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초대도 하지 않는다.
"휴우!"
마판이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슬쩍 다가와서 위드에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저는 위드님의 사자후를 겪어 본 이후로 정말 웬만한 사람의 전투 모습은 다 참고 넘길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요?"
"화령 님이 몬스터에게 추는 춤이 뭔지 아십니까?"
"뭡니까?"
"부비부비....."
"컥."
위드의 숨이 막혔다.
오크나 오우거가 나타나면 가까이 다가가서 부비부비를 하는 댄서라니!
화령의 볼은 복숭아 빛으로 물들였다.
"한때 클럽이나 나이트를 자주 다니다 보니... 이젠 그 춤이 너무 좋아서 끊을 수가 없더라고요."
"...."
"참!"
마판은 꼭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 3개월 동안에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퀘스트는 성공하셨나요?"
위드는 빙긋 웃었다.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네?"

시작은 소므렌 자유도시에서부터였다.
-자네, 위드라는 모험가를 알고 있는가? 그가 이번에 위대한 일을 해내고 말었어. 파고의 왕관! 프레야 교단에서 사라진 그 왕관을 되찾아 주었다지 뭔가.

-진혈의 뱀파이어족은 어둠의 주술사 바르칸의 중요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지. 신앙심과 예술성이 뛰어난 위드라는 용사가 그들을 물리쳤다고 해.

-저 유명한 위드에 대해서는 자네도 알고 있겠지?

거래소와 마차 보관소, 여관이나 혹은 용병길드에 머무는 모든NPC들이 일제히 위드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얼마 후에는 브리튼 연합

왕국의 NPC들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므렌 자유도시에서 큰일이 벌어졌다는군, 위드라는 모험가가 프레야 교단의 대단한 의뢰를 완료했다고 해.
-위드라는 사람이....

-위드가....

이어서 로자임 왕국!

-우리 왕국 출신인 위드를 알고 있나? 뭐야, 모르고 있다고? 그러면 잘 들어 보게.

토르나 하르판, 팔라모르국의 NPC들도 심심치 않게 위드의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캡슐에서 나온 이현은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접속했다.
접속하자마자 확인해 보니 오늘도 다크 게이머 연합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해 있다.
띠링!

당신을 다크 게이머 연합으로 초대합니다.
이 메일은 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하여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보내집니다.
자세한 것은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베르사 대륙이나 현실, 어떤 곳이든 좋습니다.
저희 다크 게이머들은 어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하니까요.
부담이 가지 않는 곳에서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쪽은 우리 연합을, 우리 연합에서는 그쪽을 이해하는 무대가 되겠지요. 대화를 나누어 보고 서로가 상대를 필요로 한다면 좋은 파트너가 될수 있을 것입니다.

이현은 메일을 무시하고 경매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습득한 아이템중에서 현금으로 판매됄 수 있는 아이템은 곧바로 팔아야 한다.
로열 로드의 시세라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낮아지기 때문이다.
중수 이상의 유저들이 늘어남으로 인하여 공급이 점차 많아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수요도 그에 버금가게 늘어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모라타 지방에서 습득한 뱀파이어들의 장비들.
그것들도 아직 경매 기한 내에 있었다. 현재 10만원에서 40만원 사이의 가격대를 형성해 놓은 상태다.
" 이정도면 괜찮군. 낙찰될 때에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어."
이현은 그가 개설한 경매장으로 가서 추가로 판매할 아이템들을 등록하였다.
우선 프레야의 신전에서 받은 장비들 중 2개씩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그대상이었다.
"아가사의 검이나 대신관의 반지는 꽤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일반적인 아이템에는 시세라는 게 존재한다. 하지만 구하기 힘든 이런 물건들은 어떤 이들이 사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격을 보인다.
정말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비싼 값에 팔리겠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제값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잘 팔려 주면 좋겠는데...."
이현은 사이트에 경매 글들을 올려놓고 잠을 청했다.

밤사이에 경매 사이트에 커다란 소란이 생겨났다.
"그다! 그 사람이 글을 올렸다!"
"트리플 다이아몬드 등급은 그 사람밖에 없잖아. 글을 올린 아이디도 동일해."
"위드다! 진짜 위드가 로열 로드의 아이템을 판매하는 거야."
"이건 빅뉴스다!"
마법의 대륙 계정을 판매할 당시에 이미 위드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CTS미디어에서 위드의 계정을 통해 여러 번 마법의 대륙에 대한 방송을 하였다. 이제 게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위드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이현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 거래 사이트의 아이디.
그것 역시 유저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현은 한두 차례 거래를 하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좋은 아이템을 판매하지는 않았다.
데스 나이트의 장비는 그리 인기 품목의 아니었고, 뱀파이어의 망토나 부츠, 장갑들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없었다. 그래서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다.
"아가사의 거룩한검! 장미 무늬 장갑! 대신관의 반지! 이건 프레야 교단이다. 프레야 교단의 성기사들이 쓰는 장비야."
장미 무늬가 새겨진 장갑이야, 그 정도 되는 물건이 흔한편이라 그리 시세가 높지 않다. 하지만 프레야 교단의 성기사단이 쓰는 아가사의 검은 최고의
인기 품목이다.
착용 제한이 낮고 공격력이 높다. 성스러운 가호까지 하루에 5번 쓸 수 있으니 검을 쓰는 이들이라면 직업을 망라하여 선호하는 인기 아이템인 것이다.
누군가 이현이 올려놓은 아이템들의 목록을 보고 조사를 해본 다음에 글을 달았다.
그 글은 빠르게 인터넷 공간으로 퍼졌다.
마법의 대륙의 위드가 로열 로드를 플레이하고 있다!
위드가 프레야의 성기사 장비들을 거래 사이트에 올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경매 글에 접속했다.

-설마 그 위드가 프레야 교단에 가입을 했다고요?

-정식 성기사가 된 건가요?

-교단 소속의 성기사가 된 사람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 아직 100명도 안 됩니다. 왕국 소속의 기사나 영주의 기사가 되기는 그래도 쉽지만, 교단의 성기사
는 굉장히 까다로운 관문을 뚫어야 하는데...."

-역시 위드 님이네요. 로열 로드에서도 상당한데요.
경매 글에 달린 댓글들은 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위드가 그들과 함께 로열 로드를 한다는 사실에 기쁨과 놀라움을 보였다.

마법의 대륙 출신이나, 인터넷상에 떠들썩한 위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 대거 모여든 것이었다.
그렇지만 몇 명은 노골적인 실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법의 대륙의 위드라면, 적어도 그 게임을 함께하던 우리들에게는 전설적인 존재였습니다.

-맞습니다.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는 것 같았죠. 어떤 위험한 사냥터도 정복하고 말았습니다. 위드가 휩쓸고 간 사냥터에는 몬스터가 한마리도 남지 않았죠.
그의 발자취를 기억하는 우리들에게는....

-언제나 혼자서,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던 사람입니다. 정복자인 그가 프레야 교단의 성기사가 되다니 기대 이하로군요.

-고독과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그는 어떤 면에서는 추앙의 대상이었죠. 이제는 그에 대한 관심을 접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게임에서 지존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고 해도, 역시 로열 로드에서는 조금 뛰어난 정도에 불과한 것일까요?

-로열 로드가 생긴 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더 지겨보도록 하죠.

-위드라는 이름이 반갑기도 하지만, 더 이상 우상처럼 여길 필요는 없겠군요.

댓글들은 분분한 의견들을 내어놓았다.
위드라는, 게임계에서는 하나의 상징이 된 인물, 위드가 프레야 교단의 성기사가 된 것은 축하할 일이라는 사람들과, 조금 강한 축에 들긴 하지만

예전의 절대자는 아니어서 실망스럽다는 사람들로 양분되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경매 글에 대한 관심은 멀어지게 됐다.
그들이 외면하는 사이에 이현이 올려놓은 물품들은 아주 조금씩 가격이 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나타났다. 그는 급하게 글 한 줄을 올렸다.
-저는 방금 전까지 로열 로드를 하다가 로그아웃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글은 으레 거센 반발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누가 물어봤어요?

-아무도 당신이 로그아웃한 것 궁금해하지 않아요.

냉소적인 댓글들이 순식간에 줄지어 달렸다. 그러자 처음 글을 올렸던 사람이 상세한 글을 작성해서 다시 올렸다.

-베르사 대륙 시간으로 약 5시간 전부터 로열 로드의 NPC들이 일제히 위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의 주술사 바르칸
데모프의 불사의군단, 그 일익을 담당하는 진혈의 뱀파이어족을 물리치고 프레야 교단의 성물을 되찾아 온 그의 모험담을 전 대륙의 NPC들이 외쳐 대고 있다 이겁니다.
저도 마법의 대륙유저였습니다. 위드 님이 성기사의 장비들을 올리셨다는 얘기를 듣고 혹시나 싶어서 와 봤는데. 정말 위드님이 하신 일이 맞군요. 감탄했습니다.

-뭐라고요? 바르칸의 불사의 군단요?

-그건 로열 로드의 최강의 세력 중의 하나잖아요?

-그것보다 진혈의 뱀파이어족이라면 개개의 레벨이 270이 넘는 집단이에요. 수장인 로드 토리도는 레벨400이 넘는다는.....

-말도 안돼! 믿을 수 없군요.

사람들은 불신하고 그 글을 무시하력 했다.
프레야 교단의 성물을 되찾고 진혈의 뱀파이어족을 퇴치하는 의뢰의 난이도가 높을 것은 자명한 사실.
그것을 한 사람이 해결했다고는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증거가 너무나도 명백하다.
프레야 교단의 성기사들이 사용하는 장비와 대신관의 반지!
특히 대신관의 반지로 말할 것 같으면, 교단에 아주 큰 공을 세운 이들에게만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령 성기사가 된다고 해도 받을 수 없는 아이템인 것이다.
더불어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하나 더 있다.
이현이 지난번에 올려 놓은 뱀파이어의 물건들이었다. 아직 경매장에 올라 있는 뱀파이어의 망토나 부츠들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았다.

이현이 4시간을 자고 눈을 뜬 것은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다.
그는 급히 옷을 챙겨 입고 아침 시장으로 향했다.
아침 식사와 여동생의 도시락에 쌀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서였다.
물론 학교에서 급식을 주긴하지만 요즘에 그걸 먹는 사람은 많지 않은 편이다. 영양도 부실하고 재료도 어느 나라의 것인지 믿을 수가 없다. 만에 하나 식중독에라도
걸리면 큰일이 아닌가.
'한창 중요한 시기인데....'
수험 공부에 힘쓸 여동생을 위해서 좋은 음식을 해 주어야 했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부모 없이 자라는 설움을 느끼지 않도록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이현은 직접 시장을 돌면서 신선한 야채와 고기를 구입했다. 적당히 값을 깎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낮에는 잘 깎아 주려 하지 않던 가게에서도 아침 일찍 인사하고
얼굴을 익혀두니, 제법 저렴하게 구입하는 게 가능하다.
본래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던 만큼 요리에는 오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로열 로드를 통해서였다.
이제 요리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식당 주방에 취직해도 될 정도였다.
"아함! 오빠, 좋은 아침이야."
"이제 일어났니?"
장을 보고 돌아올 때쯤 여동생이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어서 씻어. 학교 늦겠다."
"괜찮아. 아직 시간 넉넉하니깐."
"게으름 피우지 말고. 어차피 할 일이라면 빨리 빨리 해."
"쳇! 매일 잔소리만 느는 것 같아. 그보다도 검정고시 준비는 잘하고 있지?"
이현은 할머니와 약속을 한적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하지 못한 대신에 검정고시를 치르기로 말이다. 그런데 아직 책 한번 들춰 보지 않았다.
지리 공부를 할 시간이 있으면 베르사 대륙의 지도를 한번 더 찾아볼 것이다. 국사 공부 대신에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를 봐야 했다.
훌륭한 모험가라면 배경이 되는 역사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걱정마."
따지고 보면 거짓말도 아닌 것이, 이 공부나 저 공부나 공부이긴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알았어. 믿을게."
동생이 씻는 사이에 이현은 아침을 준비했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쌀쌀하니 칼칼한 생태 찌개와 오곡밥 그리고 담백한 밑반탄들로 상을 차렸다.
"잘 먹겠습니다."
여동생을 학교에 보낸 후에야 잠시의 자유 시간이 생겼다.
"어디, 어제 올려놓은 아이템 가격이 얼마나 올랐나 볼까?"
이현은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경매 글에 붙은 입찰자의 숫자가 자그마치 14만명....
"이건 무슨...."
분명 14만명이나 입찰했는데, 아이템들의 가격은 고작 23만원도 되지 않았다.
아가사의 거룩한 검은 아무리 헐값에 팔리더라도 200만원은 나갈 물건인데 말이다.
"대체 누가 23만원을 써 놓은 거야? 그리고 14만 명이나 참여했는데 이 가격이 말이 돼?"
이현은 어이가 없어서 경매 글을 클릭해 봤다.

-위드 님, 참 대단하시군요, 위드 님의 아이템을 한번이라도 입어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 돈이 없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참여해 볼게요.

이런 글을 써 놓은 사람은 첫 번째로 500원의 경매가를 써냈다. 많은 이들이 경매에 참가하라고 10원에서부터 시작된 경매였으니 별 의미 없는 액수였다.

-프레야 교단의 퀘스트를 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마법의 대륙유저의 자손심을 걸고 열심히 해 주세요!
두 번째로 글을 올린 사람은 501원의 경매가를 올려놨다.
그 다음은 더 가관이었다.

-위드 님 파이팅!502원

-위드 님, 멋있어요!503원

-존경합니다. 열심히 하세요.504원.

-앗 이거 새로운 경매 놀이인가요?505원.

-하하! 재미이겠네요. 저도 참여하고 싶습니다.506원

-이런, 이런....601원.

-순서 지키세요.602원.

나름대로 애정이 담긴 사람들의 장난이었다. 경매 가격을 조금씩 올리면서 하는 친근함의 표시다.
위낙에 많은 입찰자들이 참여한 덕분에 대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됐다.
위드라는 캐릭터를 모르든 사람들까지도 인터넷에 퍼진 소문을 촞아 찾아왔다.

-아!이게 바로 그 소몬의 위드라는 분이 파는 아이템이군요.

-성지순례왔습니다.

-벌써 9만 명이 넘었네요. 경매 가격도 12만원이 넘었고요.

-중복 입찰 제외해도 6만 명 이상이 참여했습니다. 경매 글로 대동단결!

-앗!방금 누가 비겁하게 20만원을....

-순서 똑바로 안 지키면 누군지 찾아내서 보복합니다. 조심하세요. 20만 1원부터 다시 시작.

-우리 이거 백만 명까지 달려 봐요!


만물 기술자



-로열 로드? 대학에 보내 놨더니 그런 게임이나 하고 앉았어?

-어서 복학 신청하지 못해?

-복학이 안 된다면 자격증 공부라도 해!

몰래 휴학을 한 사실이 들통 난 뒤에 부모님들의 끔찍한 잔소리를 들어야 했던 페일, 수르카,이리엔,로뮤나!
그러나 그들은 부모님들까지 로열 로드로 끌어들이는 악랄한 마수를 성공적으로 진행시켰다.
"흠! 페일아, 이번에 무기를 바꾸려고 하는데 어떤 게 좋겠니?"
"아버지가 돈이 부족해서 그러는데 4골드만 빌려 주면 안 될까? 이자까지 쳐서 갚을게!"
부모님들은 대체로 사냥에는 미숙한 편이었다. 그러나 돈 거래만큼은 철저했다
실제 가게를 운영해 본 경험을 밑천으로 상점을 하나씩 차렸다. 중고 무기 거래점이나,중고 방어구 상점, 스킬 북의 거래를 전문적으로 하기도 했다.
로뮤나와 수르카의 부모님들은 음식점을 겸한 여관을 차렸다.
마법사의 스킬 북, 궁수의 활, 성직자의 신물.
부모님들의 든든한 후원을 받아 가면서 네 사람은 열심히 사냥을 하고 레벨을 올릴수 있었다.
그들의 레벨도 이제는 180이 넘었다. 곧 200레벨을 바라볼 수준에까지 오른 것이었다.
그때 로자임 왕국의 NPC들이 이야기를 한다.

-위드라는 모험가를 알고 있는가? 진혈의 뱀파이어족이라는 사악한 무리들을 퇴치하고, 모라타 자방을 구해 준 사람이라네.

-프레야 교단의 은인이지. 그와 같은 영웅이 있기에 이 대륙이 조금씩 살 만한 곳이 되지 않겠는가? 듣고 보니 그는 로자임 왕국 출신이라더군.
국왕 폐하께서도 찾고 있다는 풍문일세.

무기점 주인이나, 약초점 주인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여인들까지 위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페일과 스르카 들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위드가 대단한 모험을 완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축하드려요, 위드님.

-대단하시네요.

-다음에 꼭 모험을 하신 이야기를 해 주세요.


"쿠워어!"
"다 덤벼!"
"우와앗! 몬스터다!"
"이 귀여운 녀석들, 형들이 밤마다 사랑해 줄게."
우악스러운 검치 들이 달려가자, 용맹스러운 듀라한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셨다.!
듀라한이 제아무리 뛰어난 전사라고 하지만 검치 들을 보면 기가 질릴수 밖에 없었다.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무작정 무식하게 들이대고 보는 검치 들!
전부 우락부락한 외모에 형편없는 차림새. 눈동자는 아이템과 경험치에 대한 욕심으로 이글거린다.
"크하하하! 둘치야."
"옛. 검둘치 대기했습니다."
"공격하자!"
"예엡!"
검치 들은 겁도 없이 듀라한에게 덤벼들었다.
간신히 나타난 몬스터를 누군가에게 빼앗길세라 일단 덮치고 보는 것이었다.
게임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는 그들. 레벨이 높은 몬스터라고 해도 직접 부딪쳐 보기 전에는 인정하지 않았다.
"다 죽여 버려라!"
초보 사냥터는 바로 넘어가고, 인근의 쓸만한 마굴이나 던전을 휩쓸고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검치 들은 라비아스에ㅣ 왔다.
지금까지 검치 들은 강한 몬스터들을 찾아다니면서 전투를 치렀다. 그들의 레벨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505명이 함께 다니고 있기에 별도의 그룹을 구할 필요도 없다. 합숙 생활을 하기에 접속 시간마저 늘 같았다.전투를 수련의 일환으로 삼고 있으니 약하ㄴ
사냥터에서 착실히 경험치를 모으기보다는 위험하ㄴ 곳만 쫓아다녔다.
위드가 지나온 리트바르 마굴을 비롯하여서 많은 던전들을 정복했다. 적이 나타나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싸운다. 싸우고 굴복시킨다.
검치 들은 전투가 제일 우선이었다. 귀찮다고 퀘스트를 거의 하지 않으니 장비나 아이템은 보잘것 없었다. 가난해서 매번 밥을 굶기 일쑤다.
검치가 뒷짐을 진 채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3쿠퍼? 허허허! 어렵게 잡은 몬스터가 겨우 저런 푼돈이나 주다니 우리들은 아직 약하구나. 얘들아."
"예, 스승님!"
"저 푼돈을 줍겠느냐?"
"그러면 더 강해져서 1골드를 주는 몬스터를 잡겠는냐?"
"스승님이 이끌어 주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검치의 훈시에, 다른 500여 명의 수련생들과 사범들은 눈물을 머금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몬스터에게 죽는 횟수보다 굶어서 죽은 경우가 더 많을까!
보리빵 한 쪽을 나누어 먹으며 동료의 우정을 키웠다.
몬스터에게 맞거나 죽는 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굶어 죽을 목숨!"
검치 들의 눈에는 광기마저 어려 있었다.
싸우다 죽고, 싸우다 굶어 죽고....
그렇게 사냥터를 전전하다 보니 레벨도 벌써 130ㅇㅣ 넘어 버렸다.
라비아스에서 무예인으로 전직도 마쳤다.
무예인들에게는 퀘스트도 많이 주어진다 어디의 유명한 몬스터를 상대로 싸워서 이기면 명성이 올라가고, 돈도 벌수 있다는 식이다.
힘과 민첩이 대폭 상승하고, 체력과 방어력까지 늘어난 전투 전문 직업!
그렇지만 로열 로드에 무지한 검치 들이 능력치의 변화나 퀘스트를 보고 직업을 선택할 리가 만무하였다. 김치 들은 볼래 한국의 무예를 계승한다는 자긍심에
살고 죽는 인간들이다.
무예인이 천성처럼 맞는다면서 505명 전원이 동시에 ㅎㅏ나의 직업으로 전직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하기야 이미 한차례 전원 검사로 전직을 한 상태인
만큼 새사ㅁ스럽지도 않은 일이었다.

-자네, 위드라는 모험가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위드가 이번에 대단한 일을 해냈어.

그들조차도 위드에 대한 소문을 NPC들을 통해 듣게 되었다.
검치 들!
그들은 위드에 대한 소문을 듣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우오오오!"
"위드가 해냈다! 우리도 한번 해보자!"
사나이로서 빠뜨릴 수 없는 감정.
공명심! 명예욕!
검치 들은 불타 올랐다.



"둘치야!"
"예, 스승님."
"센 놈 좀 알아봐라."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검둘치는 즉시 페일에게 연락을 취했다. 열심히 고생을 해서 정보를 검색하는 것보다 페일에게 귓속말을 한 번 보내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페일 님.

-예, 검둘치 님.

페일은 이리엔과 로뮤나 등과 사냥을 하던 중이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곤란한 부탁을 해 올까 두려움에 떨었다.
검치 들은 무리한 부탁을 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자존심과 긍지로 먹고사는 이들이기 때문에 보리빵을 사 준 은혜을 잊지 않고 페일에게 보답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는 부탁은 꼭 엉뚱한 것들이 많았다.

-여기서 제일 강한 놈이 누굽니까?

-네? 설마....

-그냥 알려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요.

페일은 머뭇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말해 주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그린 드래곤 비아키스는 숲과 나무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낙으로 조용히 살고 있었다.
바엔 산 정상의 넓은 분지에서 본체 상태로 깊은 잠에 들었던 비아키스.
그는 인간의 기척을 느끼고는 커다란 눈을 떴다.
'침입자인가?'
가끔 모험가 파티가 그를 찾아오곤 했다. 베르사 대륙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뭉쳐서 감히 자신을 사냥하러 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비아키스는 가차 없는 응징으로 보답해 주었다.
'이번에도 그냐ㅇ 놔둘 수 없지.'
비아키스의 초록색 눈동자가 분노로 뒤덮었다. 그가 바라본 곳에는 수백의 인간들이 겁도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1명씩 상대해 주기에는 숫자가 너무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위협을 느낀것은 물론 아니었다.
"우와아아!"
"우리가 왔다! 사악한 마룡은 모습을 드러내라!"
분노가 폭발했다. 아직까지 한 번도 비아키스의 부아를 이토록 돋우는 말을 한 모험가들은 없었던 것이다.
비아키스는 하품이라도 할 것처럼 커다란 입을 쩍 벌렸다.
그러고는 살짝 힘을 주었다.
후욱!


소므렌 자유도시는 상업적으로 발달한 도시였다. 물자가 모이고 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대장장이들과 여러 생산직 직업들의 길드도 이곳에 있었다.
위드는 마판을 통해서 그동안 모아 온 잡템들을 전부 처분하였다.
북부의 추운대지.
그곳의 몬스터들은 별별 희한한 아이템들을 다 떨어뜨렸다.
'이제 5,600골드를 모았군.'
3개월 전에 비해서 2,000골드가량이 늘어난 액수였다. 이정도라면 적은 금액은 아니다.
필요한 약초를 캐서 쓰는 등 경비 절감에 쓰지만, 대신에 획득한 무기나 방어구들은 돈을 벌기 위해 현금으로 판매한다.
로열 로드에서 좋은 무기는 몇만 골드에 팔리기도 하기 때문에, 병장기를 팔지 않는 이상 골드가 큰 액수로 늘어나진 않았다. 대신에 딱히 무기나
방어구를 구입하지 않는다면 큰돈이 나갈 일도 없다.
잡템들을 전부 처분한 위드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대장장이 길드를 향했다.
각종 전투 계열 직업 길드들에는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대장장이 길드에는 불과 30여 명만이 모여 있을 뿐 비교적 한산했다. 베르사 대륙의 촌구석
마을도 아니고, 도시에서 이 정도의 숫자라면 무척 적은 편이다.
사람들은 길드 내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검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이 직업을 선택했는데 신통치 않아."
"비슷한 시기에 같이 시작한 친구들은 벌써 코볼트까지 잡고 있는데 나는 매일 망치질이나 혹 있어야 하다니."
"그것뿐이야? 난 지루해 죽겠다니까. 막연히 무언가를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정말이지 내가 왜 이런 생산직 직업을 선택했나 몰라, 재미없고 시시해. 지금이라도 바꾸고 싶어."
"열흘 넘도록 무기만 만들었는데, 코볼트한테 나오는 무기보다도 보잘것없더라니까."
유저들은 불평과 푸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산직 직업에도 장점은 있다. 어떤 직업이든 키워 가기에 따라서 다를 뿐.
"참 토르의 대장장이 소식은 들었어?"
"그 사람이라면 알고 있지. 최초로 중급 대장장이가 되고, 지금은 중급4레벨이라던가."
"아냐. 어제 중급5레벨이 되었다는군."
"다른 길드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래."
"방어구의 방어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대장장이니까. 우리는 언제 그 정도까지 스킬을 올리지?"
"이제 중급 대장장이는 몇명이 있긴 하지만...."
"에휴! 부럽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위드는 슬그머니 위층으로 향했다.
일반적으로 1층에서는 각종 물품들을 팔고, 2층에서는 길드 가입과 같은 일을 도맡아서 한다.
위드는 길드의 사무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무슨 일로 왔는가?"
"무기를 만드는 법과 방어구를 제작하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오! 그것 말인가?"
사무장은 반가운 얼굴을 했다.
"대장장이가 되려는 건가?"
"아닙니다. 기술만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기술은 아무에게나 알려 주지 않는데...하지만 이 물건을 한 번에 고칠 수 있다면 고려해 보지."
사무장이 내놓은 건 다 깨진 방패였다.
금이 간 청동 방패:내구력3/28.방어력10.
대장장이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시험할때 쓰는 방패로, 청동이 주재료이다. 크기가 작아 주로 팔목에 부착하는 형태로 쓰이고, 검을 막기에 좋다.
제한:레벨15.
옵션:화살을 튕겨 내는 확률14% 증가.
치명적인 공격을 19%감소시킨다.

보통 초급의 수리 스킬은 그 효과가 레벨에 따라 차이 난다.
레벨 1에서는 5의 내구력을 한 번에 수리할 수 있고, 레벨2에서는 그 수치가 7로 늘어난다.
레벨10에서는 23의 내구력을 수리할 수 있었다.
방패를 한 번에 수리하려면 중급의 수리 스킬을 필요로 했다.
'이 정도라면....'
위드는 대장장이들이 쓰는 망치를 꺼낼 필요도 없이 가볍게 스킬을 시전했다.
"수리!"
방패가 빛에 휩싸이더니 완전히 깨끗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자네에게는 자격이 있군. 그러면 우선 망치를 쓰는 법부터 배워야겠지. 망치는 이렇게 잡고 이렇게두들기는 것일세."

-대장장이 스킬을 익히셨습니다.
각 아이템을 착용 제한이 스킬 레벨에 따라 2%씩 하락합니다.
대장장이 스킬을 마스터하면 모든 직업과 레벨의 아이템을 마음대로 착용하실 수 있게 됩니다.

위드는 대장장이 길드에서 쓸만한 아이템들 몇개를 구입했다. 무기를 만들때 사용할 수 있는 철괴들과 조금 더 좋은 망치, 숫돌 등이었다. 철을 녹여 주는 휴대용 소형 화로도 구입했다. 그리고 기본적인 형틀도 장만했다.
무기나 방어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대장간에 가야만 하지만, 이 작은 화로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철을 녹일 수 있었다. 그런 다음에 형틀에 부어서 굳히면 모양이 만들어진다. 거저 간단히! 형틀에 쇳물을 넣기만 하면된다.
그런 후에는 망치로 열나게 두들기면 아이템이 완성된다.
이 사실을 알고 나자 위드는 억울함마저 들었다.
대장장이의 직업이 노가다라고는 해도 조각사에 비할 바는 아니다. 정신을 집중해서 조각술을 펼쳐야 하는 위드의 직업에 비하면 대장장이는 훨씬 쉬웠던 것이다.
"좋아."
위드는 일단 가까운 대장간에 들어가서 배낭을 열였다. 배낭의 깊은 곳에서는 지금까지 사냥하며 모은 광석들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일단 녹이고...."
광석들을 녹여서 쇳물로 바꾸었다. 그런 다음에는 틀에 부어서 기초적인 검의 형태로 만들었다.
붉게 달구어진 검신.
치이이익!
망치로 두들기고 찬물에 식혀 가면서 담금질을 했다.
마침내 위드는 최초의 검을 만들었다.

길잡이의 수련검:내구력70/70.공격력:4/6.
잡철들로 만든 검. 훌륭한 장인의 기질을 가진 이에 의해 만들어진 검이다. 공격력은 낮지만 뛰어난 솜 씨로 제작되어 웬만해서는 파괴되지 않는다.
제한:없음.
옵션:힘+5.

-대장장이 기술의 숙련도가 36%상승하였습니다.

"오오! 이렇게 기쁠수가!"
위드는 혼자 만들고 혼자 기뻐했다.
오랫동안 혼자 지낸 사람의 심각한 폐해. 혼잣말을 하게 된 것이다. 조각술을 펼치면서 매번 고독을 곱씹다 보니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괜찮은 물건이군."
물론 위드가 쓸만한 무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 검은 상점에서 최소한 70실버에 팔린다. 공격력이 낮아도 내구력이 좋은 만큼 오랫동안 쓸수 있고 , 옵션으로 힘까지 붙어 있다.
최초의 시도에 이런 가치가 있는 무기를 만들어 내다니!
위드는 그만 감격하고 말았다.
"대장장이란 정말로 좋구나."
여우나 토끼 등의 조각품들은 기념품들은 기념품 외의 가치가 전무한 형편이다.
그것들을 몇 실버에 팔면서 근근이 살아온 위드인데, 대번에 레벨 15이하의 초보자들이 쓸 만한 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좋아. 이대로 계속하자!"
위드는 가지고 있던 광석 전부를 무기 제작에 쓰기로 했다.
초보 시절부터 버리지 않고 모아 온 자잘한 잡철들도 있지만 모라타 지방의 뱀파이어들로부터 얻은 광석의 경우 상당히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었다.
화로에 녹이고 형태를 만든 다음에 두들기기!
대장간에 있는 NPC들을 곁눈질로 따라 하면서 스킬을 상승시켰다.

-대장장이 스킬의 레벨이 2로 상승했습니다.제작하는 무기의 공격력이 강화됩니다. 검 이외의 형태의 무 기들을 만드실 수 있게 됩니다.

-대장장이 스킬의 레벨이 3으로 상승했습니다. 제작하는 방어구의 방어력이 강화됩니다. 청동이나 구리 로 만든 방어구에 추가적인 속성이 부여됩니다.

-대장장이 스킬의 레벨이 4로 상승했습니다. 제작하는 무기의 공격력이 강화됩니다. 이미 완성된 검을 변형할 수 있게 됩니다. 내구력은 떨어지지만 공격력이
더 상승합니다.

-대장장이 스킬의 레벨이 5로 상승했습니다. 제작하는 방어구들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착용감이 우수해 집니다. 부츠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대장장이 스킬의 레벨이 6으로 상승했습니다. 만들어진 아이템들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일정 수치만큼 증가합니다.

위드는 꼬박 열흘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광석들을 전부 녹여서 대장장이 스킬을 올렸다.
단 열흘 만에 향상시킬 레벨은 경이로울 정도!
본래의 직업이 조각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각사는 현존하는 각 직업들 가운데에 최고의 손재주 성장을 자랑한다. 초급 존재주는 레벨이 오를 때마다3%씩의 공격력을 강화시켜 주고,
중급 손재주는 5%씩 상승시킨다.
그러나 전투 부분을 제외한 생산 관련 부문에서는 더 많은 능력치의 향상이 있었다. 아무래도 손재주는 전투보다는 생산을 할 때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기술이니 말이다.
요리의 경우에는 초급이었을 때부터 스킬 레벨당 5%씩의 효과를 추가해 주었다. 중급에 오른 이후부터는 스킬 레벨이 오를 때마다 7%씩 늘어났다.
현재 위드의 손재주 스킬은 중급 8레벨. 만드는 요리들이 거의 2배의 효과를 가진 상태였다.
대장장이 스킬도 마찬가지로 손재주의 영향을 받았다. 같은 재료를 써도 2배나 내구력이 좋은 아이템들을 생산할 수 있다.
무기의 공격력이나 방어구의 방어력은 그보다 상승의 폭이 적었지만, 뛰어난 물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곧 빠른 숙련도 상승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최초로 직업을 선택하고 대장장이를 할때에 허덕이는 것과는 비할 바 없이 빨리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스킬 레벨이 많이 올라가면 차이가 줄어들지만, 초급 과정에서는 절대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위드는 가지고 있던 철광석을 전부 이용하여 대장장이 기술을 초급6레벨까지 만들고 나서야 대장간을 나왔다.

그 후에 위드는 낚시 길드로 갔다.
"자네는 세월을 낚고 싶은 건가, 아니면 전설에 남을 만한 물고기를 건져 올리고 싶은건가."
협회의 가입 절차는 간단했다.
찌와 낚싯대를 구입하고 낚시꾼이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되었다.
위드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배고파서, 먹기 위해서 낚시를 배우고 싶습니다."
"응?"
낚시꾼은 신기하다는 듯이 위드를 보았다.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물론 존재하지만, 낚시는 기본적으로 다른 직업에 있는 이들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스킬이었다.
넓은 베르사 대륙을 여행하다 보면 배를 탈 일도 있고, 그럴 때면 즐겁게 쓸 수 있는 기술이었기 때문.
하지만 위드와 같은 대답을 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낚시꾼은 신기하다는 듯이 위드를 쳐다보더니 곧 껄껄 웃었다.
"자네의 요리 솜씨가 무척 뛰어나군. 내 몰라 보았네. 나중에 언제 한번 기회가 된다면 매운탕이라도 끓여 주면 좋겠군."
"좋은 고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끓여 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자네가 이용할 만한 미끼를 주지."

-낚시 스킬을 익히셨습니다.
일정한 경지에 추가로 생존술을 배우실 수 있습니다. 어떤 극한의 상황이 오더라도 삶을이어 나갈 수 있는 기술입니다.
강이나 바다에서 물과 음식을 구할 수 있습니다.
스킬의 레벨이 오를 때마다 추가로 생명력이 주어집니다.

-낚시용 미끼, 크릴새우30개를 습득하셨습니다.

대장장이에게 낚시까지 배운 위드는 정말로 무지하게 고민을 했다.
"정말 이것도 배워야 하는 걸까?"
갈등과 번민
'그냥 안 배워도 되지 않을까? 재봉만큼은 그냥 넘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산 스킬 하나쯤... 그래, 배우고 싶지 않으면 배우지 않아도....'
어릴 때에 재봉 공장에서 일하며 실밥을 따던기억!
먼지로 가득하고 환풍기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착취당했다. 그나마도 몸이 아파서
결근을 몇 번 한 탓에 마지막 달에 일한 월급은 받지도 못했다.
그 쓰라린 기억 때문에 재봉만큼은 죽기보다 배우기가 싫다.
그러나 한 가지를 남겨 놓고 배우지 않는 것도 성미에 차지 않는 일이었다.
인챈터. 아이템에 마법을 부여할 수 있는 직업으로, 마법사의 상위클래스만 선택이 가능했다.
인챈터의 직업을 택할 수 없는 위드는 나머지 생산 스킬들은 전부 다 배우고 싶었다.
결국 위드는 재봉사 길드로 향했다.
"예술적인 감성이 뛰어난 사람은 좋은 원단을 고를 수 있고, 제대로 된 옷을 만들기에 좋지. 예술이 담겨 있으면 서로
그옷을 입으려고 할거야. 옷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나?"
"예, 배우고 싶습니다."
"단추를 다는 법 정도는 알겠지?"
"무, 물론입니다."
하필이면 단추 달기였다.
위드에게는 숟가락질만큼이나 익숙한 그것!
재봉사 길드에서 간단히 단추 몇 개를 달아 주고 나서, 재봉 스킬도 습득했다.

-재봉 스킬을 익히셨습니다.

'우선은 스킬의 상승이 최우선이다.'
위드는 가위와 천을 가져와서 자르기 시작했다. 대장간처럼 따로 옷을 만드는 공간이 없기에 거리의 구석에 앉아서 일을 시작했다.
소므렌 자유도시에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에서부터 대낮의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다양하였으므로,
특별히 위드가 옷을 만든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일 것은 없다. 간단한 몇의 천들을 오리고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들었다.

-재봉 스킬의 레벨이 2로 상승했습니다. 부드러운 재질의 천을 이용하여 몸에 딱맞는 디자인의 옷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역시 손재주 덕에 스킬 레벨2까지 올리는 건 금방이었다.
재봉사 길드에서 판매하는 기본 천으로 옷 몇 벌만 만드니 스킬 레벨이 오른다.
바느질은 따로 고생을 할 것도 없이 완벽하게 익숙한 상태였다. 현실에서도 단추가 뜯어졌을 때나 옷의 일부가 찢어졌을 때 바느질을 해 본 일이 많았다.
사각사각!
착착착.
원단을 자르고, 바느질을 하고, 단추를 다는 것까지!
위드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훌륭한 악사의 연주를 보는 것처럼 현란하게 움직이는 위드!
“이야, 대단한데!”
“저 사람 손 좀 봐!”
“최고다.”
사실 사람들은 위드가 옷감을 꺼낼 때부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었다.
생산직 캐릭터들은 그만큼 구경하기 어려웠던 것!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위드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옷을 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저걸 입을 수는 있을까?"
"몰라, 아무튼 입을 수는 있겠지? 그래도 옷인대...."
"분명 별로 쓸모는 없는 옷일 거야. 저것 봐. 무늬도 없이 단순하잖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위드도 듣고 있었다. 당연히 스킬 레벨1이나2에서 만들어진 옷인 낮은 것을 감안해 보면,
만들어진 옷들이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식으로 해서 스킬 레벨을 4까지 올렸다. 그러자 그의 배낭은 대장장이 기술로 만든 무기들과 재봉사 기술로 만든 옷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이제 슬슬....'
위드는 배낭 구석에서 최고급 사슴 가죽을 꺼냈다. 석상으로 변한 모라타 마을 사람들을 구하고 받은 퀘스트 아이템이었다.

최고급 사슴 가죽:내구력5/5.
생산 스킬 재봉과 관련된 아이템.
가죽을 잘라서 옷이나 장비를 만들수 있다. 스킬의 레벨에 따라 마법 저항이 부여되고, 순발력이 강화된 다.
2등급 재봉 아이템.

일천한 스킬 레벨로 사용하기에는 아까운 물건임에 틀림없었다. 중급 재봉 스킬을 쓴다면 꽤나 괜찮은 옷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드는 과감하게 사슴 가죽을 쓰기로 했다. 시간이 곧 돈이다. 좋은 재료를 이용해서 스킬 레벨을 빨리 상승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각사각!
위드는 매우 세심하게 옷을 만들어 냈다.

목마른 사슴 튜닉:내구력 40/40.방어력 13.
물을 마시지 않고 죽은 사슴으로 만들어진 튜닉. 남성용.
몸 전체를 덮을 수 있는 옷.
허리 라인이 피팅되어서 두드러지게 몸매를 강조할 수 있다.
직업 몽크들이 입으면 더 어울릴 것 같다.
제한:레벨15.
옵션:직업 몽크 착용 시 민첩2%상승.

-재봉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올랐습니다.

-재봉 스킬의 레벨이 5로 상승했습니다. 향상된 바느질로 이음새가 잘 찢어지지 않아 만들어진 옷의 내 구력이 추가 됩니다.
튜닉은 최소한 사슴 가죽 4장을 써야 만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
"와 저 옷은 꽤 좋아 보인다.."
"그러게, 부드러워 보이고 재질도 괜찮은 것 같아."
사람들은 몇 시간 되지도 않아서 위드가 좋은 옷을 만들어 내자 신기해했다.
"재봉 스킬이란 게 원래 이렇게 빨리 늘어나는 거였나?"
"몰라. 내 친구는 맨 처음에 재봉사를 선택해서 하루종일 실패작만 만들다가 파산한 다음에 캐릭터를 삭제해 버렸는데...."
"재봉사가 쉬울 리가 없잖아. 재봉사를 선택해서 눈물 흘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그런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빨리 좋은 옷들을 만들어 내는 거지?"
구경꾼들의 눈길을 의식한 위드는, 사슴 가죽 1장으로도 만들 수 있는 장갑이나 부츠 종류를 제작했다.
퀘스트를 완수하고 받은 사슴 가죽이 200장이나 되니 재료는 충분한 상태.
위드는 사슴 가죽을 이용해서 재봉 스킬을 9레벨까지 상승시킬 수 있었다.
중급 재봉까지는 불과 1레벨이 남았을 뿐이다.
사실 뛰어난 재료들을 이용해 중급 재봉까지 올릴 수 있어야 정상어었지만, 스킬의 레벨은 9에서 더 오르지 않았다.
중급에 오르기 위한 개수 제한 덕분이었다.
생산 스킬의 향상을 크게 좌우하는것은 손재주와 재료였다.
좋은 재료를 습득해서 쉽게 생산 스킬을 올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정 개수 이상을 반드시 제작하여야만 했다.


무지개 옷 경매


소므렌 자유도시는 다른 왕국의 수도와 마찬가지로 초보들이 많이 선택하는 장소였다.
일단 장점이라면 물가가 싸고 사람들이 많다.
위드처럼 모험을 위하여 사람이 조금 적은 로자임 왕국을 일부러 택하는 부류도 있지만, 대다수의 유저들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시작하길 원했다. 파티를 구하기도 쉽거니와 공개된 사냥터가 많아서 편하게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문 앞.

유저들로 바글거리는 곳에 어떤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심상치 않아 보이는 헬멧과 목걸이, 망토를 쓰고 있었다. 대신에 장갑은 새하애서 눈에 띈다.
"아이템 맡겨 주시면 무료로 수리해 드립니다. 오래 사용한 아이템의 떨어진 내구력을 최대치까지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가죽이나 천을 구해 오시면 즉석에서 옷 만들어 드립니다.철과나 청동 조각 구해 오시면 방어구도 제작해 드려요. 그리고
고기류를 가져오시면 즉석 구이 요리를 만들어 드립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한 구이 요리를 먹으면 체력이 150 이상 오릅니다. 맛도 기가 막히죠!"
남자가 외친 말에 성문 주변에서 사냥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초보자들이 입는 여행복 차림에, 기본적인 검을 든 입은 이들어었다.
"정말로 고기를 가져오면 체력을 올려 주나요?"
"들개 가죽이 몇장 있는데, 이거 드리면 옷을 만들어 줄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유저들은 혀를 끌끌 찰 뿐이었다.
"또 속는 사람이 나타났군."
"여러분 속지 마세요. 저런 식으로 등쳐먹으면서 아이템만 가지고 나르려는 수작입니다."
"사람이 많으니까 사기꾼들도 한둘이 아니라니까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세요. 옷을 만들고, 요리도 하고, 수리도 하고,방어구나 검도 만드는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게 다 아이템 가지고 튀려는 사기죠."

"초보면 초보답게 사냥이나 할 것이지 다른 사람한테 사기 치는 법부터 배우다니, 쯧쯧."
다른 유저들이 떠드는 말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금세 비난을 퍼부었다.
"더러운 놈!"
"어디서 이런 수작이야!"
성문 앞에 나타난 남자는 위드였다.
무슨 생각에서 인지 위드는 사람들이 떠드는 것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기분은 조금 나쁘지만 사실이 그랬다.
상식적으로 수리 스킬 중급에 재봉, 대장장이, 요리 등을 다 익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도 낚시와 조각술은 제외한 상태에서 말이다.
누구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재봉이나 대장일, 요리 등의 스킬은 그냥 길드에 가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손재주 스킬이나 수리 스킬이 일정
경지에 올라야 했으므로, 이런 기술들을 다 배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솔직히 위드조차도 초보 시절에 이런 일을 다 할 수 있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니 남을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 장사에는 도가 텄다.
처음에야 믿지 않는 이들을 보며 가슴을 쳤지만 이제는 다르다. 조각품을 판매할 때부터 경험을 쌓으며 철저한 계산과 잇속을 챙겼다.
어떻게 해야 좀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 있는가! 별로 해주는 것도 없이 참 인정 많은 장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방법,
또 손님들은 어찌 구분하는가에 대해서 위드는 완벽한 분석을 마친 것이다.
장사란 좋은 물건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손님들을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더욱 중요했다.
'우선 간단하게....'
이들이 믿지 않는 이유는 위드가 사기꾼이라는 생각에서다. 근처에 더 뛰어난 경쟁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불신만 하는것이다.
이럴 때의 대응 수단은 간단했다.
"어쩔 수 없군. 콜 데스 나이트!"
위드가 귀찮은 얼굴로 붉은 생명의 목걸이를 내밀고 중얼거리자, 검은 연기와 함께 데스 나이트가 나타났다.
"불렀는가, 주인."
"지금부터 여기 서있어."
"알겠다. 주인."
데스 나이트는 붉은 생명의 목결이로 소환할 수 있는 강력한 몬스터였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장식만 하기에는 다소 아까웠다.
하지만 위드는 서슴지 않고 기술을 사용했다. 그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뭐야, 저 사람?"
"방금 데스 나이트를 소환했어."
"저게 데스 나이트라고? 음침하게 생기기는 했는데...."
"인터넷에서 본 데스 나이트의 모습이 맞아. 확실해."
"데스 나이트의 레벨은 200도 넘잖아. 말도 안돼. 혹시 소환술사인가? 아니면 흑마술사?"
"흑마법사는 마법사의 2차 전직이잖아? 그것도 레벨280에서부터 전직이 가능한 직업이야."
그러면서 유저들의 마음은 불신에서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저렇게 레벨이 높은 사람이 초보들한테 사기나 칠까?"
"사기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잖아."
"그러고 보니 정말일지도...."
사람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방금 전에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던 이들부터 먼저 다가오더니, 그중 제일 큰 목소리로 떠들던 남자가 혹시나 하는 마음인지 제일 싼 고기들을 내밀었다.
"이거 정말로 음식 만들어 주시는 거죠?"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수수료는 30쿠퍼입니다."
위드는 불을 피워 가볍게 고기를 구워, 소금과 약간의 조미료를 뿌린 다음에 돌려주었다.
"드셔 보십시요."
구운 고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향긋한 냄새가 주변에 퍼진다.
사람들은 모두 고기를 들고 있는 남자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냄새에 이끌려서 고기를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와구와구!
그러고는 걸신드ㄹ린 듯이 삽시간에 고기를 해치워 버렸다.
그러더니 배낭을 열어 가지고 있는 고기를 전부 꺼내 위드에게 주는 것이었다.
"체력이 160이나 늘었어요. 돈 드릴 테니 이것 전부 구워 주세요!"
"저도 구워 주세요."
"제 것도..."
그 남자를 시작으로, 엄청난 인파들이 모여들었다.
각종 고기들을 내밀면서 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한ㄷㅏ.
초보들에게 체력160은 어마어마한 생명력 증가였던 것이다. 그 정도의 체력이 늘어나면 평소에는 잡을 수 없는 몬스터도 잡을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줄을 서서 기다리세요."
성문 앞에 기다란 줄이 형성되었다.
구운 고기는 제일 쉬운 요리이고 딱히 특별한 기술도 필요로 하지 않아서 금방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요리를 마치자 사람들이 물었다.
"다음에 고기를 가져오면 또 구워 주실거죠?"
"이름을 알아도 되나요? 다음에 또 부탁드릴게요."
위드는 그럴 때마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허락했다.
"제 이름은 위드입니다. 마음껏 찾아주세요."
"위드 님, 알겠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위드 님이라고요? 설마...."
로열 로드에서 이름이란 복잡한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 이미 위드라는 이름을 선택했다고 해도, 새로운 위드가 어디서든 만들어질 수 있었다.
로열 로드를 하는 유저들이 너무나도 많기 ㄸㅐ문에, 동일한 이름을 등록하지 못하게 한다면온갖 기괴한 이름들이 다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름이 같다고 해서 귓속말들을 보낼 때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중복된 이름을 사용했을 때에도
이름의 내부에 고유 코드가 있어서 그와 아는 사람, 혹은 직접 보고 등록한 사람에게 귓속말이 전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혹시 프레야 교단의 퀘스트를 수행하셨나요?"
"말씀 좀 해주세요!"
유저들은 이미 위드라는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한차례 모든NPC들이 떠든 만큼,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이 정도로 크게 떠들어 대는 경우는 로열 로드의 역사상 30번을 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일은...."
그런데 위드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들끼리 알아서 이야기를 하고 납득했다.
"설마 그 유명한 마법의 대륙의 위드 님이겠어요?"
"위드라는 이름이 흔한 편이니 단지 이름이 같은 거겠죠."
"맞아요. 그런 이름 꽤 많잖아요."
"제 친구도 위드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요."
마법의 대륙에서의 명성은 위드라는 이름을 로열 로드에 상당히 많이 퍼트렸다. 조각품을 팔때에도 위드는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을 여섯 번이나 만날 정도였다.
페일이나 수르카 들 또한 위드가 마법의 대륙을 했던 진짜 위드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도 하필이면 소므렌 자유도시에 위드라는 사람이 있다니..."
"저것 봐요. 데스 나이트도 소환했잖아요. 소환사 중에서도 데스 나이트를 소환한 사람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바로 그게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위드라는 사람은 진혈의 뱀파이어족을 멸망시켰지 않습니까?"
"위드라는 유저는 신앙심이 높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저 사람은 요리사잖아요. 요리사가 신앙심이 높다니 말이 안 됩니다."
"역시 제조 생산 캐릭터가 퀘스트를 했다는 건 말도 안 되겠죠."
"저것 보세요. 위드님도 아무 말씀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서로 소란을 피우다가 알아서 납득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무튼 이제 철석같이 위드를 믿고 있었다.
데스 나이트를 끌고 다니고 엄청난 요리 솜씨를 발휘하는 사람.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때 위드는 조그ㅁ 전에 외쳤던 말을 비슷하게 다시 반복했다.
"아이템 맡겨 주시면 무료로 수리해 드립니다. 오래 사용한 아이템의 떨어진 내구력을 최대치까지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수리하면 추가로 약간의 성능 향상도 있습니다. 가죽이나 천 구해 오시면 방어구도 제작해 드려요. 그리고 고기류를
가져오시면 즉석 구이 요리를 만들어 드립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한 구이 요리를 먹으면 체력이 160 이상 오릅니다. 맛은 또 기가 막히죠!"
사람들은 이제 들고 있는 가죽을 내놨다.
"옷 만들어 주세요."
"저도요!"
"아직 초보자인데 방어구가 없어서..."
위드는 우선 가죽들을 받았다. 성 앞의 사냥터답게 늑대나 토끼 가죽들이 가장 많았다. 가끔 사슴 가죽들도 있었지만 모라타
퀘스트를 완수하고 받은 것과는 비할 수도 없는 5급품이다.
"무슨 옷을 만들어 드릴까요?"
"바지를 만들어 주세요."
"편하고 스타일 좋은, 그러면서도 방어력도 괜찮으ㄴ 장비를 만들어 드릴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위드가 품에서 바늘과 실, 그리고 가위를 꺼냈다. 그러고는 가죽들을 이어서 바지를 만들었다.
물론 평범하게 가죽들을 이은 것은 아니었다.
우선은 눈대중으로, 쓰려고 하는 남성 유저의 하체를 보았다.
'저 정도면....'
대충 치수를 확인하고 가죽을 잘랐다.
그러고는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바느질로 가죽들을 이어서 멋진 바지를 만들어냈다.
허벅지는 편하게, 포겟은 넉넉하게.
길이는 딱 부츠에 맞게 떨어져서 다리가 길어 보이도로ㄱ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죽의 고급스러운 느낌을 한껏 살려서 완성된 바지.
고급 토끼 가죽 바지:내구력30/30. 방어력10.
토끼의 가죽으로 만든 바지이다. 옷으로 만들기에 썩 좋은 재료는 아니지만 뛰어난 손재주로 이를 극복 해 냈다.
'성공이군.'
위드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방어력이 10밖에 안 되는 물건이 나왔다. 옵션도 없고 특별히 레벨 제한도 없다.
현재의 위드라면 잡템으로 분류할 정도의 하급품이었지만, 초보들에게는 최고의 방어구였다.
중급8레벨의 손재주 덕분에 초급의 재봉 스킬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쓸 만한 아이템이 나오ㄴ 것이다. 하기야 초급 재봉 스킬이라고 해도,
이직까지 베르사 대륙 전체를 뒤져 보아도 중급 재봉 스킬을 가진 사람이 10명도 넘지 않음을 감안하면 엄천난 것이었다.
"이런 좋은 물건을...."
위드가 만들어 낸 옷을 보며 남자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가 가져온 토끼 가죽은 정말로 별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레벨30은 되어야 입을 만한 바지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1실버입니다."
위드는 일정 액수의 수수료를 받으며 가죽이나 옷감을 받고 옷을 제작해 주었다.
모자나 상의, 장갑까지 가리지 앟고 장비를 만드는 그의 손길은 과감했다. 재봉 공장에서 일하면서 비슷한 일을 수도 없이 해봤다.
그런 만큼 조금의 머뭇거림도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바느질을 하다 보면 환기도 안 되던 지하의 재봉 공장으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져서 무언가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지금 위드가 있는 곳은 소므렌 자유도시의 성문 앞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고,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유저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다.
"와! 이렇게 훌륭한 옷을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입을게요. 가죽을 가져오면 또 만들어 주실 거죠?"
초보 유저들은 대환영이었다. 위드 덕분에 몬스터들로부터 죽을 일이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사냥이 더욱 활기를 띠고, 안전해졌다.
소문이 퍼지자 소므렌 자유도시의 초보 유저들은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가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과 수리, 옷 제작들을 한꺼번에 의뢰했다. 그날 저녁이 되자 철광석을 내미는 사람들도 생겼다.
철광석 3개를 내민 유저가 긴장된 표정으로 위드를 보았다.
"정말 방어구를 만들어 주실 수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어떤 방어구를 원하십니까? 참고로 체인 갑옷 정도를 만들려면 철광석30개가 필요합니다. 이걸로는 옷감과 더해서 그럭저럭 부츠는 만들 수 있겠는데요."
"그러면 부츠를 만들어 주세요."
"3실버입니다."
"네."
위드는 소형 화로에 철광석을 녹였다. 그리고 쇳물을 형틀에 부어서 강철 부츠를 완성했다.

순도가 떨어지는 강철 부츠:내구력35/35. 방어력6.
불순한 철이 섞여 있다. 강도는 비록 낮지만 오래 신고 다녀도 지장없을 만큼 튼튼하다.
옵션:민첩 2상승.

일반적으로 가죽으로 만든 제품들보다는 철이나 청동으로 만든 제품들이 훨씬 방어력이 좋다.
그리고 헬멧이나 몸을 가리는 장비들이 방어력이 더 좋고, 장갑이나 부츠라면 레벨60이 쓰기에 적당한 물건이었다.
결정적인 부분!
위드는 강철 부츠에 꼬리 9개 달린 여우를 조각했다. 완성품에 하는 조각이라서 대량 생산에는 조금 차질이 생기지만,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상품을 만든 것이었다.

띠링!

-아이템의 속성이 변경되었습니다.

순도가 떨어지지만 예술적인 강철 여우 부츠:내구력38/38. 방어력7.
불순한 철이 섞여 있다. 낮지만 오래 신고 다녀도 지장이 없게 튼튼하다.
힘과 건강을 빌어 주는 여우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옵션:민첩+2. 힘+1. 체력+1.

중급의 조각술은 아이템의 성능을 올려놓았다. 별것은 아니라고 해도 스탯이 2개나 더 추가로 늘어난 것이었다.
이제껏 순수한 조각품들만 만들다가 처음으로 다른 생산품에 조각술을 응용해 본 위드였다.
'조각술에 이런 효과가 있었군.'
미세하지만 능력치를 추가로 향상시켜 주는 효과.
갈수록 모든 생산 직업들은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실상 이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움직일 정도의 대단한 천재들은 미술과 수학뿐만이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들이 한결같이 익힌 것은 조각술!
조각사는 일반적인 생산 직업에 속하지 않았다. 화가나 마찬가지로 예술가 쪽으로 분류되는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각사가
직접적으로 만들어 낸 아이템은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 걸작이나 명작의 경우에는 여러 효과가 작용하지만,
보통의 조각품들은 큰 쓸모가 없는 것이다.
대장장이나 요리사보다 조각사가 100배는 키우기 어려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남들은 사냥을 하고 열심히 레벨을 올릴때, 조각사는 만들어 낸 조각품을 팔아 치우면서 연명을 해야 하니까.
천신만고 끝에 중급 조각술에 오른다고 해도,걸작이나 명작을 펑펑 찍어 낼 수도 없는 노릇.
그야말로 조각사는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하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단지 어렵기만 한 직업은 없다. 어떤 직업도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조각사는 직업의 난이도가 높은 대신에 스킬이 좋다. 숨겨진 스킬들. 조각술 마스터 비전의 스킬들은 타 직업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조각 검술이나 조각품에 생명 부여 등.
이런 것들은 일반적인 대장장이의 직업을 선택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조각사는 손재주 스킬이 가장 빨리 상승한다. 여타의 생산직 직업들과는 비할 바 없는 속도인 것이다. 그리고 그높아진
손재주 스킬을 이용해서 다른 직업의 기술을 쉽게 익힐 수 있다.
다른 직업들은 자신의 전문 영역 외에 새로운 생산 스킬을 익히면, 맨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조각사는
다르다. 높은 손재주 스킬로 훨씬 빠르게 그 직업을 이해하고, 스킬 레벨을 올리는 게 가능하다.
이건 분명 장점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아무에게나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어차피 대장장이나 요리사나 재봉사나, 한 분야에만 매진하기에도 벅찬 노가다의 길이다.그런데 다른 분야까지 익히려고 한다는 건 끔찍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위드처럼 무모하기 짝이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도전하지 못할 일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철광석을가져왔던 이는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하고 무려 1골드나 주고 떠났다.
상점에서 이정도 되는 아이템을 구입하려면 최소한 10골드는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레벨이 30 정도인데,
60은 되어야 쓸 수 있는 좋은 부츠를 갖게 되었다. 이에 상당히 만족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위드가 또다시 다른 아이템들을 만들어 줄 수도 있는 만큼 다소 후한 사례를 했다.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또 올게요."
"여기 금속실 주운 게 있는데 드릴까요?"
위드가 만들어 낸 상품들은 지체 없이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물건을 꾸준히 만들고 있는데도 손님들의 줄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기만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철광석이나 가죽, 천이나 옷감은 사는 사람이 없어서 버리거나, 아니면 잡화점에서 헐값에 파는 흔한 재료들이다.
이런 물건들을 받고 그들의 쓰기에 적합한 좋은 아이템을 만들어 주는 위드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부들부들!
위드는 감동으로 몸을 떨었다.
조각품을 팔 때에는 어떻게든 1쿠퍼라도 더 받어 보겠다고 손님과 신경전을 펼쳐야 했다.
비열한 꼼수나 수작도 부렸고, 밑지고 장사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만 했던것.
그러나 대장장이나 재봉사의 기술로 만들어 내는 아이템들은 대환영을 받고 있다. 정말로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 주니 사람들이 감사하며 사 가는 것이었다.
'역시 조각사라는 직업은 최악이야.'
달빛 조각사에 대한 예찬론이 금방 사라지고, 다시금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이라도 전직을 할까? 본격적인 대장장이가 되어서 대장장이 스킬을 마스터하자. 그런 후에 가장 좋은 아이템을 만드는 거야
. 그러면 돈은 무한대로 모일 수밖에 없어. 돈을 벌기 싫어도 돈이 벌리게 되는 거지.'
조각술은 까다로운 스킬이다. 그에 비하면 대장장이 스킬은 훨씬 편하다. 여러모로 이득도 볼 수 있다.
조각술처럼 예술적인 기술에 비한다면 실용적이고 쓸모가 많다. 그런데도 위드는 정작 전직을 하는데에는 소극적이었다.
'으으....그래도 정작 전직을 하기는 싫으니 정말 미칠 노릇이군.'
위드는 일정한 수수료만 받고, 사람들이 가져오는 광석이나 가죽들로 가리지 않고 아이템을 만들었다. 어차피 스킬 레벨을 올리는 것이
주목적이니 최대한 많은 양을 만들기를 원했던 것이다.
대장장이들은 스킬이 높으면 높을수록 가급적 좋은 재료들만 쓰려고 한다. 사람들은 위드가 하찮은 재료들로도 군소리 없이 만들어 주는 것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정말 좋은 분이셔."
"이렇게 착한 사람이 있다니...."
"욕심이 없는 분이야."



자유도시의 성문 앞에 멋진 차림을 한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두 손으로 움켜쥐고 휘들러야 할 것 같은 거검을 등에 메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흔하지 않는 태양신 루의 사제였다.
성직자로서 루의 사제가 되려면 최소한 레벨이 250은 되어야 했다. 전투 계열 직업보다 레벨 업이 더딘 성직자로서는 거의 최고 수준의 유저였다.
그들은 위드를 훔쳐보며 중얼거렸다.
"굉장한 장인이군."
"그러게. 아주 양심적이고 훌륭해."
"무언가 특별한 정보를 가지고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 같다."
"일부러 로열 로드에서 사장된 직업이나 다름없는 생산직 캐릭터를 선택해서 시작하다니...."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무난한 직업을 택하는 편이 안전하지."
"그래, 그런데 한두 가지의 생산 스킬만 익힌 것도 아닌것 같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위드가 달빛 조각사가 된 이후로 피눈물을 흘린 사실을 절대로 알 수 없었다.


위드가 만들어 준 물건들은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다.
디자인!
예술 스탯의 영향으로 확실히 눈에 띄게 예쁜 아이템들이 나왔다. 예술 스탯은 직접적으로 아이템의 완성도에 기여하지는 않아도 디자인만큼은 끝내 주었다.
성능도 상점에서 파는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물건들이니 팔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소므렌 자유도시에 위드의 이름이 퍼지는 것은 금방이었고, 곧 다른 도시이 손님들까지 일부러 찾아오기 시작했다.
뛰어난 대장장이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대부분 아이템은 대장장이를 통해 구입하기보다는 사냥으로 획득하는 것에 의존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쉽게 구할 수 없는 광석들을 습득하면 아까워서라도 몇 개쯤은 보관해 두고 있었다. 미스릴이나 아다만티움처럼 보물 급의 광석은 아니더라도,
꽤 쓸 만한 철광석들을 가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위드는 그것들을 가지고 방어구나 검을 만들어 줬다. 그러면서 미리 만들어 둔 옷들을 판매하기도 했다.
고급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들!
인파가 몰리자 그것을 경매에 붙여 버린 것이었다.
"자! 제가 만든 옷을 판매합니다. 이것은 성직자와 몽크용입니다. 최고급 사슴 가죽으로 만든 진품입니다. 수량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제일 높은
금액을 제시하시는 분께 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철로 된 방어구를 입지 못하는 사제나 몽크들. 그들은 천으로 된 옷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르사 대륙에서 천으로 된 방어구를 떨어뜨리는
몬스터란 흔하지 않은 편.
"160골드에 삽니다."
"여기 200골드에 삽니다."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들도 불티나게 팔렸다.
흔히 구할 수도 없는 위드만의 옷과 부츠 그리고 모자들.
초급 재봉 기술로 만들었지만 재료가 워낙에 뛰어난 탓에 레벨100은 넘어야 입을 만한 옷들이 나왔다.
옷들은 200골드에서 300골드 사이에 팔리고, 부츠나 모자들은 50골드 이상을 받았다.
위드는 경매를 통해1,000골드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나중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최고급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찾았지만, 이미 다 팔리고 난 후였다.
그리고 위드는 마침내 원하던 목표를 달성했다.

-대장장이 스킬의 레벨이 10이 되어 중급 대장장이 스킬로 변화가 됩니다.
부가 스킬 검 갈기와 방어구 닦기가 생성되었습니다.
검갈기:갈아 놓은 검의 광택이 사라질 때까지 공격력이 추가적으로 상승한다.
방어구 닦기:번쩍번쩍 빛나는 방어구들은 적들의 공격을 흘려 준다.
전 스텟에 +5의 추가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명성이 50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3 상승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재봉마저 중급에 오를 수 있었다. 스킬상으로는 재봉이 더 빨리 오를 수 있었는데, 유저들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검사들이 몰려와서 검을 만들어 달라고 조른 탓에 재봉이 조금 늦어지게 된 것이다.

-재봉 스킬의 레벨이 10이 되어 중급 재봉 스킬로 변화가 됩니다.
부가 스킬 다림질과 손빨래가 생성되었습니다.
다림질:옷을 반듯하게 편다. 빳빳함이 사라질 때까지 방어력 상승!
손빨래:물이 필요. 더러워진 옷을 손으로 주물러서 빤다. 옷의 방어력과 성질이 랜덤하게 변홤. 찢어지
거나 혹은 심하게 구겨져서 다시 빨아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1벌의 옷이나 장비에 대 해 최대 3회 반복 가능.
전 스탯에 +5이 추가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명성이 50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70 상승하셨습니다.

그리고 재봉과 대장술이 중급에 오른 그날, 위드는 사람들에게 공표했다.
이미 주변의 도시들이나 왕국에서도 찾아와서 와글와글하게 모여든 인파를 향해 알린 것이었다.
"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더 이상 옷을 만들거나 방어구를 제작해 드릴 수 없게 되어 안타깝군요.
그리므로 사흘 후! 마지막 경매 물품들을 여러분들께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제 재봉 스킬이 중급에 오르면서,
장인의 무지개 천을 이용하여 만든 옷들이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그말을 끝으로 위드는 조용히 영업을 접고 사라졌다.
"장인의 무지개 천?"
"그게 뭐야?"
웅성 웅성.
사람들은 이런저런 추측들을 내놓다가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로그아웃을 했다. 그러고는 로열 로드와 관련된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습득하였다.
장인의 무지개 천:내구력5/5
생산 스킬 재봉과 관련된 아이템.
궁극의 재봉 재료.
옷이나 장비를 만들기에는 최적의 물건이다. 제작물에 일곱 가지의 특성을 부여하며, 화살과 둔기류의 공격에 대해 뛰어난 방어력을 가졌다.
무지개 천을 다루기 위해서는 중급의 재봉 스킬이 필요하며,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지 정체를 알 수는 없 으나 현재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구할 수 없다.
1등급 재봉 아이템.
옵션:일곱 가지 특성이 랜덤하게 부여됨.

장인의 무지개 천을 누군가 갖고 있다는 사실만 해도 대박인데, 그 천을 이용해서 옷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사흘 후, 약속한 시간이 되자 소므렌 자유도시의 앞에는 유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전부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서 온 이들이었다.
멀리 떨어진 다른 왕국에서 밤을 새워 달려온 자들도 있었다.
"반드시 구입해야지."
"후후, 전부 우리 길드에서 구입하게 될거다."
개인으로 온 이들도 있었지만, 길드에서 구매를 위해 파견한 자들도 많았다.
그런 까닭으로 상당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로열 로드의 중앙 대륙은 이미 패권을 다투는 길드들의 각축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절대 상종을 하지 않는 인물들이 이렇게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만큼 기대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장인의 무지개 천은 재료 아이템 중에서는 극상에 속하는 물건이었다.
"자,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위드는 마판을 통해서 진행하였다.
이미 얼굴이 다 팔린 후였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 나서기가 꺼려졌다.
저들 가운데에는 틀림없이 이 광경을 동영상으로 갈무리 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이들이 있으리라.
프린세스 나이트의 아픈 추억 때문에 쓸데없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싶지 않은 위드는 마판에게 자리를 넘겨주었고,
마판은 더듬거리면서도 경매를 잘 진행했다.
"그러면 첫 번째 물건을....아, 위드 님께서 만드신 물품들은 총 13벌입니다. 참고로 1벌은 유니크 아이템이고,
5벌은 레어 그리고 나머지는 일반 아이템입니다. 먼저 일반 아이템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1,000골드!"
"1,500골드!"
"2,400골드!"
"4,000골드!"
일반 아이템임에도 불구하고 위드가 만들어 낸 옷은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며 팔렸다.
경매에 나오는 물건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경매의 장소와 모인 사람들의 면면은, 물건의 가격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었다.
어느 산골의 마을에서 유저들이 몇명 되지도 않는데 좋은 아이템으로 경매를 진행해 봤자 제값을 받긴 틀린 것이다.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두고, 그들 사이의 미묘한 견제와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경매를 주최하는 자의 묘미!
위드는 성대한 경매를 통해서 장인의 무지개 천으로 만든 아이템을 모두 팔아 치웠다.
경매가 끝난 다음 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위드는 약속대로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다론의 조각술



벤사강.
브리튼 연합 왕국의 젖줄이며, 돌아가고 굽이치는 절경이 9개의 화려한 모습을 낳는다고 하여 유명한 강이었다.
로열 로드의 초창기에 유저들은 이 벤사 강에 너무도 매료되었다.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움, 절정의 미!
여행자의 기분을 만끽하게 만들어 주는 장소인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일부러 브리튼 연합 왕국에서 시작한 유저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벤사 강 근처에서 한가롭게 피크닉을 즐기던 유저들!
쌍쌍의 바퀴벌레처럼 노닥거리면서 이야기를 하던 유저들은 겁도 없이 우기에도 벤사 강을 떠나지 않았다.
"저것 봐. 정말 예쁘지?"
"강과 하늘이 맞닿은 것만 같아."
"저 빗물은 강으로, 그리고 바다로 나아가겠지.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크게 키우자."
"응. 사랑해."
"나도"
굵은 빗줄기가 벤사 강으로 떨어지면서 환상적인 정경을 만들어 냈다.
시커먼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비를 쏟아 냈다. 안개가 피어 올라서 하늘과 강이 서로 맞닿은 것만 같았다.
지독하게도 멋진 풍경이었다.
연인들은 근처의 나무 아래에서 그 광경을 보며 나눈 대화는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니까. 그들은 미리 준비해 둔 느끼하ㄴ 사랑의 약속들을 서슴없이 나눴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연인들에게 냉정한 법!
겁도 없이 가장 강물 가까운 곳에서 사랑을 나누던 연인들이 첫 번째 희생양이 되었다.
"와! 물이 많네."
"정말로 많네."
"진짜 이렇게 많은 물은...."
"조금 심하네."
"끔찍하게...."
"어? 물이 불어나고 있잖아?"
"기분 탓인지 아까보다 조금 가까워진 것 같은데."
"어, 어, 어?"
상류로부터 조금씩 수량을 늘려 오던 벤사 강은, 빗물에 그 기세를 더해 가면서 마침내 폭발적으로 물의 양이 늘어 났다.
벤사 강이 마침내 범람을 시작한 것이다.
콰콰콰콰콰!
"으아아아악!"
벤사 강의 황토 빛 물결은 그 겁 없던 커플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그건 단지 서막에 불과할 뿐이었다.
"와아악!"
"살려 줘!"
"도망칠래!"
"여긴 지옥이야!"
짙은 안개 속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
벤사 강은 세상의 악의 씨앗인 커플들을 거침없이 지워 주었다. 그리고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솔로들.
연인들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애정 행각에 쫒겨난 그들!
고독을 곱씹으면서 살아가는 진정한 사나이들, 진정한 여걸들은 미소를 지었다.
"낄낄낄!"
"호호"
"아주 기막힌 광경이네."
연인들이 강물에 휩쓸려 가는 것은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진풍경임에 틀림없었다.
모라타 지방에 내리는 빙설의 폭풍과 함꼐 베르사 대륙의 환상적인 대자연이 만들어 내는 절경 중의 하나였다.


맑은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는 벤사 강. 평화롭고 아늑한 물소리. 우기가 아닐 때 벤사 강의 모습이었다.
이런 곳에서 산다면 마음까지 풍요롭고 넉넉해지리라.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1명쯤은 있었다.
부릅!
날카로운 눈초리로 찌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바라보는 인물.
위드였다.
'이번에야 말로 큰 놈을 하나 낚아 보자!'
벤사 강에서 낚시를 시작한 지도 어언 일주일 가량이 지났다. 그동안은 묵묵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조각술을 펼치느라 시간을 보냈다.
대장장이나 재봉은 좋은 재료와 높은 손재주 스킬로써 빠른 레벨 업이 가능하지만, 낚시는 다르다.
일단 물고기가 걸려 들게 되면 낚싯대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손재주 스킬이 조금 작용한다. 그러나 낚시를 하는 주 목적은 어떤 물고기를 잡느냐에 달려 있다.
최고급 미끼를 쓰더라도 어떤 물고기가 낚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싼 미끼를 쓴다고 해도 피라미가 낚일 수 있는 게 바로 낚시인 것이다.
그리고 좋은 미끼를 쓸수록 미끼만 먹고 달아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일주일간 죽어라 낚시를 했는데 위드의 낚시 스킬은 겨우3!
'절대로 큰 놈, 무조건 비싼 놈이다.'
위드는 물의 흐름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철저하게 찌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맑은 강물 속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을 보았다.
'비싼 놈아, 물어라!'
CTS미디어의 방송 출연, 프레야 교단에서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 판매 그리고 재봉을 통해서 상당한 돈을 벌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낚시 스킬까지 올릴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이런저런 돈이 생긴 덕분에 시간을 두고 낚시 스킬도 올리게 된 것이다.
무시무시한 적금 날짜!
여동생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매달200만 원씩의 적금을 붓고 있었던 것.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는 적금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 정해진 기일마다
나가는 돈은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박 상호신용 저축은행!
금리도 다른 은행보다 2%나 높았다. 거의 환상적인 수준.
여기에 돈을 맡기기만 하면 보통 은행과는 비할 바가 없는 것이다. 법에 의해서 은행이 망하더라도 5,000만 원까지는 고객의
원금을 보장해 준다. 은행법에 의해서 정해져 있는것이니 별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상 이 대박 상호 신용 저축은행의 배후에는 모 정치인이 있다고 한다.
한국의 정치판은 극도로 혼탁해진 비리의 온상이었다. 돈세탁을 위해서 만든 은행, 그러므로 남다른 수익을 준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매일 벤사 강에서 낚시를 하면서도 위드는 조각술에 대한 고민을 그치지 않았다.
전설의 달빛조각사.
모라타 지방에서 만든 빙룡 조각상이나 얼음 미녀 상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바란 마을이나 라비아스에서도 그랬지. 조각상들은 그 주변의 환경과 어우러져야만 한다.'
뜬금없이 만들어 낸 조각상들이 명작이나 걸작이 되지는 않는다. 조각상들은 저마다 특색이 있었다.
'강물이 흐르는구나, 그리고 나는 물고기를 잡고 있구나.
물고기...그래, 난 물고기를 잡고 있다!'
위드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곧바로 마판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마판님!

-예! 위드 님.

장인의 무지개 천으로 만든 아이템 경매를 통해 크게 레벨을 올린 마판은 완전히 위드의 신도가 되어 있었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위드!
그를 따라다니면 어떤 식으로든 이득을 얻는다.
마판이 위드를 믿고 있는 교리 그자체였다.

-돌이 필요합니다. 크기는 가능한 클수록 좋습니다. 재질은 아주 맑고 깨끗한, 그러면서 부식이 잘 안 되는 걸로 구해 주십시요.

-그런 돌이라면 특별히 구해 봐야겠네요. 이틀만 기다려 주세요.

위드는 마판을 기다리는 동안 초조하게 시간을 보냈다.
낚는 물고기마다 피라미들! 미끼만 날리고 놓치는 경우도 숱하게 많았다.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좋은 미끼를 구입할수록 미끼만 날리는 역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럴 수는 없는거야."
위드는 좌절했다.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다."
그때부터 위드의 두뇌 회전 속도가 사정없이 빨라졌다.
위기에 봉착할수록 가차 없이 돌아가는 잔머리가 유감없이 작동을 개시한 것이었다.

조마조마! 두근두근!
낚싯대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위드!
그 옆에서는 한가로운 말소리가 들렸다.
"허허, 낚시란 말일세. 그러니까 나의 마음을 닦는 것이지. 물고기란 저 강물 속을 유영하고 있을때라야 물고기요,
그래서 잡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잡고 나면 그건 고기일 뿐이지.
벤사 강에는 느긋하게 낚시를 즐기는 유저들이 있었다.
직업조차 정식 낚시꾼들.
본래 이들은 로열 로드를 좋아해서 모였다기보다는 낚시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낚시 동호회 모임.
그런 그들에게도 로열 로드는 축복이나 다름없다. 지구에서는 찾기 힘든 절경 속에서 낚시를 한다. 잡은 물고기는
직접 매운탕도 끓일 수 있으며, 낚시를 하는 것만으로도 캐릭터가 강해진다.
로열 로드에서는 생산직 캐릭터하고 해서 줄곧 생산만 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생산 스킬 외의 레벨이나 스탯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생산 활동을 통해서도 관련된 스탯이나 기술을 높일 수 있고, 그 특성을 살려서 전투 능력을 강화시켜 몬스터를 잡을 수도 있다.
조각술이 전투에 도움이 되듯이 낚시도 도움이 되었다.
인내력이나 지구력 스탯을 최고로 늘려 주는 기술인 것이다. 덤으로 순간 가속력까지 향상시켜 준다.
전투와 관련이 많은 만큼 위드에게는 꼭 마스터해야 할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낚시를 배워야겠다. 스킬이 아니라 낚시 그 자체를 다시 배워야겠어.'
요리를 잘하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레시피들을 검색하고 새로운 요리법을 연구하였다. 그런데 낚시를 익히면서는 너무 안일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반성이었다.
좋은 미끼와 손재주 스킬만을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가 어떤식으로 달빛 조각사라는 직업을 얻게 되었던가. 믿을 건 오직 자신뿐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대비를 해야 한다.
위드는 그때부터 낚시 동호회 모임에 들어가서 낚시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미끼를 끼우는 법에서부터 좋은 자리를 잡는 법까지, 익힐 것도 무척 많았다.
"자리에 따라서 낚는 물고기가 달라진다고요?"
"암, 그렇지. 당연한소리 아니겠는가. 바다에서 민물고기를 낚기 힘들고, 강에서 고래를 잡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해야지."
"그건 저도 알고는 있습니다만, 같은 강에서도 자리에 따라 차이가 납니까?"
"쯧쯧."
낚시꾼들은 혀를 끌끌 찼다.
"강의 물이 어디 다 같은가. 수심이 깊은 곳이 있는가 하면 얕은 곳이 있지. 수초가 많은 곳이나 바위가 많은 곳, 맑은 물과 혼탁한 물,
먹이가 몰려 있는 장소, 물의 온도도 위치에 따라 다르다네. 찬물과 따뜻한 물이 합쳐지는 곳에는 특히 맛있는 놈들이 많은 편이지."
"아! 그렇군요."
위드는 자신이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낚시꾼들이 몰려 있는 장소가 번잡하고 시끄러웠기 때문에 혼자서 외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위치에 따라서 낚을 수 있는물고기의 질과 양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위드는 염치 불구하고 가장 뛰어난 낚시꾼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월척이다!"
그때부터 위드는 신바람이 났다.
낚시 기술을 제대로 배우고 난 이후로 올바른 미끼를 쓰면서 포획량이 급증했던 것. 잡는 물고기도 훨씬 크고 귀한 녀석들로 바뀌었다.
"여기 돌을 가져왔습니다."
그 무렵 마판이 큰 바위를 마차에 매달아서 운반해 왔다.
"고맙습니다. 마판 님."
"그런데 이 돌을 어떻게 하시려고...."
"보시면 압니다.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위드는 자하브의 조각칼을 꺼내었다. 그러자 마판은 잔뜩 기대 어린 얼굴로 바싹 다가왔다.
"조각술을 펼치려는 것이군요."
마판은 위드의 손이 빚어내는 환상적인 조각품들을 몇 번이나 보았다. 그렇지만 바위로 조각품을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위드는 조각칼을 꺼낸 채로 바위를 한참이나 노려 보았다.
지금까지 만들어 낸 조각상들은 결정적인 역활을 해 주었다.
이번에도 기대에 부응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일단 조각을 시작하면 물러서지 못한다.
초보 조각사야 닥치는 대로 만들면 되지만, 실패한 조각품은 곧 명성의 하락을 불러오기에 아무렇게나 하찮은 걸 만들 수는 없다.
마판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물었다.
"그런데 뭘 만드시려고요?"
"그건...."
"혹시 아직 정하지 않으신 건가요?"
위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낚시에 도움이 될 만한 조각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떡밥이나 크게 만들어 볼까?'
하지만 거대 떡밥을 만들었다가는 주변에 있는 물고기들이 겁을 집어먹고 모두 도망칠지도 몰랐다.
"대체 뭘 만들어야 할까. 낚시에 도움이 될 만한 조각상은... 그래, 일단 여자를 만들자. 인어를 만드는 거야."
동화로널리 알려진 인어 공주 이야기.
수중 궁전에서 사는 인어 공주는 15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바다 위로 떠올랐다.
그때 보게 된 갑판 위에 서 있는 인간의 왕자.
인어 공주는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쿠르릉! 쾅쾅!
때마침 불어온 폭풍우.
배가 좌초되자 인어 공주는 왕자를 끌어안고 열심히 헤엄을 쳐서 그를 구해 주었다. 그러나 왕자가 깨어났을 때에는 그 자리에 이웃 나라 공주가 있었다.
왕자는 그 공주가 자신을 구해 준 줄 착각하고, 엉뚱한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다.
한편 인간의 왕자를 사모하면서 마녀의 질투로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 공주.
왕궁의 시녀로까지 들어가지만 끝내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인어 공주의 자매들과 바다의 정령들. 인어들, 물고기들이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였다고 한다.
"뭐, 꼭 인어 공주상은 아니더라도 뭔가 괜찮은 것이 나올 테지."
일단 물고기의 일종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인어를 만들면 무언가 좋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위드는 열심히 조각칼을 움직였다.
서윤을 통해서 이제 여자를 조각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도가 텄다. 적당히 그녀를 떠올리면서 차이를 두면 되는 것이다.
다만 인어를 만들어야 하니 약간의 차별화된 요소가 필요했다.
'우선 하반신은 물고기로... 눈은 좀 크고, 머리는 하늘하늘한 것이 좋겠지. 상체는 누드로 조각해야겠군.'
멈칫.
위드는 여기서 잠시 머뭇거렸다.
얼굴은 어디까지나 서윤이 기본형이다. 그녀의 얼굴을 바탕으로 조금씩 바꾸어 가는 것인데, 상체를 나체로 조각하다니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의도 아닐뿐더러, 자칫 걸리는 날에는 뒷감당이 불가능한 사태가 벌어지기 십상이었다.
'그러면 누구를 ...아! 연예인으로 해야겠다. 얼굴은 연예인들을 조금씩 따오고, 몸매는 유럽 쪽으로 쭉쭉 빵빵하게!'
조각칼이 움직일 때마다 빠르게 바위의 형상이 바뀌어 간다.
"어? 저게 뭐지?"
"조각상이다. 저런 건 처음 보는데."
"멋지다."
근처의 낚시꾼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구경을 했다.
어차피 낚시 외에는 딱히 할 일도 없는 이들이다 보니 위드가 조각상을 만드는 건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위드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일부분씩을 따와서 조각상을 완성했다.
예쁘지만 슬픈 눈을 가진 소녀.
일부러 소녀의 얼굴로 한 것은 아무래도 인어 공주가 장성한 여인이라고는 생가되지 않아서였다.
몸매는 글래머인데, 얼굴은 소녀였다.

띠링!
물의 정령 나이어스 상을 완성하셨습니다!
솜씨가 뛰어난 조각사의 작품.
특별한 능력이 깃들어 있다.
예술적 가치:450.
특수 옵션:물의 정령의 힘으로 벤사 강의 범람을 10년간 막아 준다.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
위드는 만들어 놓고 잠시 그대로 손을 멈췄다.
물고기를 대량으로 잡아 주는 목표와는 아무 상관없는, 완전히 엉뚱한 조각상을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물의 정령 나이아스.
강의 신의 딸로서 귀여운 하체는 물고기의 몸을 하고 있다. 외모상으로는 인어나 나이아스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
나이아스와 인어상.
기묘하게 닮은 외모가 전혀 엉뚱한 물건을 만들어 내고야 만 것이다.
"자네...."
그리고 쏟아지는 낚시꾼들의 원망 어린 눈초리들.
고독한 그들에게 있어 느끼하고도 밉살맞은 연인들이 강물에 휩쓸려 가는 건 큰 위안거리였다. 그런데 위드가 강의 범람을 막아 주는 조각품을 제작해 버렸다.
대번에 위드는 모든 낚시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어건 제 뜻이 아니었습니다."
위드가 서둘러 변명을 해 보았지만 분노한 낚시꾼들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자칫하면 벤사 강에서 쫒겨날 판국이었다.
"휴! 할 수 없군."
위드는 어쩔 수 없이 완성한 조각상을 스스로의 손으로 파괴했다.
"조각 파괴술!"
쿠르릉!
나이아스의 상은 아래에서 부터 순신간에 허물어졌다.
조각 파괴술을 사용하셨습니다.
조각상이 파괴된 아픔에 예술 스탯이 1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명성이 3 줄어듭니다.
예술 스탯이 1:2의 비율로 하루 동안 민첩으로 전환됩니다.

-조각술의 숙련도가 0.2% 상승합니다.

조각 파괴술 역시 조각술의 일부분 이었으니 발휘한 만큼 숙련도가 상승한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조각품을 만드는 것보다 상승이 빠른 편이다.
그렇지만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예술 스탯이 소멸하는 만큼 자주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위드는 900이 넘는 예술 스탯을, 낚시를 하면서 민첩으로 변환했다.
낚싯대를 휘드르는 그의 손길은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물론 낚시를 하는 데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지만.


검치 들은 불끈 검을 쥐었다.
"오오오오!"
"드래곤만 빼고 다 잡자!"
검치 들은 다시금 불타올랐다.
포기할 줄 모르는 사나이들.
불굴의 투지를 가진 강인한 전사들.
검오치는 서늘한 눈으로 주위를 쓸어 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깊은 숲 속이었다.
검치가 짐짓 위엄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오치야, 뭐가 보이느냐?"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삼치야, 너는?"
"저는 어린애를 발견했습니다."
"어린애! 그러면 이 근처에 마을이 있다는 말이겠지?"
검치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500명의 수련생들도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실 그들은 품을 잡고 모여 있었지만, 실제로는 길을 잃어 헤매고 있었다.
드래곤 비아키스에게 겁도 없이 덤비다 죽은 이후로, 그들은 로자임 왕국의 남부 밀림 속으로 내려갔다.
이유는 단하나.
뭐든 발견해서 명성을 올려 보기 위함이었다.
식량은 떨어진 지 오래. 산열매를 따먹거나 사냥을 해서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500명이 넘는 무리이다 보니 멧돼지나 사슴 몇마리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요리 스킬을 익힌 사람이 1명도 없기 때문에, 새카맣게 타버린 고기를 먹고 복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서 데려와 봐라."
"옛."
검삼치는 곧 어린애 하나를 데리고 왔다.
수련생들은 아이를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오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사람이야."
"드디어 마을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보리빵이 그리워. 흐흑."
검치가 무리를 대표해서 물었다.
"이 근처에 마을이 있느냐?"
아이는 불안한 듯이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예. 그런데 아저씨들은 누구세요?"
"아저씨라니!"
사범들과 수련생들은 곧바로 발끈했다.
"어딜 봐서 우리들이 아저씨야!"
"아직 결혼도 못 해 본 창창한 청춘이구만."
"난 아직 20대라고!"
검치 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였지만, 사실 산적이나 도둑 집단으로 오인하지 않은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운동으로 건장한 몸을 가지고 있는 우락부락한 사내들만 모여서 다니는데,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가끔 검치 들도 무언가 의문점을 느끼긴 했다.
"이상하네. 다른 사람들을 보면 모르는 사람들끼리 파티도 가입해서 사냥하고 그러던데..."
"왜 우린 그런 게 없지?"
"우리들이 다가가기만 하면 모두 흩어져 버려."
"세라보그 성에서도 시장을 구경 갔을 때 다들 우리를 피라더라고."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여자들과 사냥을 해 본 적이 없잖아."
이러다가 평생 혼자 살다 늙어 죽어야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김치 들이 그렇게 가슴을 부여잡고 슬퍼할 때에, 어린애가 무릎을 꿇었다.
"도와주세요."
"응?"
"저희 부모님들이 자이언트 맨에게 끌려갔어요. 저는 부모님들을 구하기 위해서 마을을 나왔습니다.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제발 저희 부모님들을 구해 주세요!"

띠링!
자이언트 맨이 잡아간 마을 사람들
거인족의 일종인 자이언트 맨은 인간을 부리는 것을 좋아한다.
인간에게 밥을 짓도록 시키고, 빨래와 청소도 전부 맡겼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옷을 빨고 식사를 준비해 야만 하기에 이들에게 잡히면 과로사하기 딱 좋다.
소년의 부모들이 죽기 전에 이들을 자이언트 맨으로부터 구출하라!
난이도:C
보상:용병들이 주로 쓰는 흑색 장검.
아이의 감사.
퀘스트 제한:열흘 내로 처리해야 함.

수련생들과 사범들은 조심스럽게 검치의 눈치만 살폈다.
퀘스트는곧 심부름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검치 들은 지금까지 모든 퀘스트들을 거절해 왔던 것.
그렇지만 검치는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를 보았다.
"우리들이 부모님을 구해 주겠다."
"스승님! 보통 의뢰는 거절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검둘치가 의아해서 묻자, 검치는 단호하게 말했다.
"뭐, 물건을 가져다 달라거나, 모아 달라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우리들은 무인.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사명이다!"
"그러면 저희들도...."
"모두 이 의뢰를 받아라. 자이언트 맨을 잡으러 가는 것이다."
검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우와!"
"퀘스트다!"
"우리들이 의뢰를 받게 되다니...."
"이제야 정말 게임을 하는 맛이 나는구나."
위기에 처한 이를 도와서 마물을 퇴치하는 용사의 꿈!


검치 들은 곧바로 자이언트 맨이 아이의 부모를 납치해서 끌고 갔다는 장소로 향했다.
중간 중간 지면이 크게 움푹 파인 곳이 있었다. 자이언트 맨의 발자국이었다.
"오! 꽤 큰데."
"지름이 3미터가 넘겠어."
"발 크기가 이 정도면 몸집은 대체 얼마나 크다는 거야?"
퀘스트를 수행하기 전에 최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검치들은 자이언트 맨이라는 몬스터가 어찌 생겼는지도 알지 못했다.
검치 들은 발자국을 따라서 큰 산 밑의 동굴로 향했다. 거의 드래곤의 레어라고 해도 좋은 정도로 거대한 동굴 속에서 자이언트 맨이 나타났다.
몸은 크지만 지능은 낮은 몬스터.
자이언트 맨은 자신의 은신처에 검치 들이 나타난 사실에 무척이나 화가 난 듯했다.
쿠워어!
자이언트 맨은 거칠게 달려온다. 지면이 쿵쾅거리면서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피해!"
검치 들이 우수수 좌우로 갈라졌다.
쿠웅!
자이언트 맨의 넓은 발이, 검치 들이 있던 장소를 깊이 파고 눌렸다.
"이건 무슨...."
몸무게와 다리가 무기였다. 밟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
쿵쿵쿵!
자이언트 맨은 흉성을 내보이며 날뛰었다. 검치 들은 그 발을 피하면서 발가락과 발목을 베었다.
"지금이다, 덮쳐!"
검치와 검둘치, 검삼치가 다리를 타고 자이언트 맨의 몸으로 올라갔다. 날다람뒤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거치적거리는 검치 들 때문에 자이언트 맨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 되었다.
크아오! 카오!
날뛰는 자이언트 맨!
두 팔을 연신 휘드르며 등과 머리 위에 귀찮게 달라 붙어 있는 검치 들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어딜!"
검치 들은 몸을 바싹 웅크린 채로 버텼다. 머리카락과 어깨의 옷자락을 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거대한 손바닥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바람의 압력도 장난이 아니었다.
다리에서 공격하고, 머리에서 난동을 피우는 검치 들!
큰 코끼라가 개미 떼에 의해서 무너지듯이 자이언트 맨의 거구가 흔들리더니 곧 지면으로 추락했다.
콰아앙!
"이겼다."
"모두 스승님의 덕분입니다."
검치 들이 승리를 나누고 있을 때, 멀리서 아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동굴 안에서 나오는 부모님들과 해후를 하는 것이었다.
검치 들이 잠시 가다리고 있는데, 곧 소년이 부모님과 함께 와서 말했다.
"우리 엄마와 아빠를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저씨들."
"뭘 이런 걸 가지고... 괜찮다."
"아니에요, 그리고 이것은 약속드린 보상입니다."

자이언트 맨이 잡아간 마을 사람들 완료.
자이언트 맨은 울큰 산의 폭군이었다.
큰 몸집으로 동물들을 잡아먹고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가 사라진 이후로 이제 이 일대는 평온을 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명성이 26올랐습니다.

-울큰 산 주변 마을 사람들과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는 힘들게 메고 있던 검을 풀어서 검치에게 주었다.
"이것도 받아 주세요."
"아이템 확인."
검치가 서둘러서 검을 살펴보니 지금까지 쓰던 것보다 훨씬 좋은 물건이었다.
"다른 분들의 검은 마을에 도착하면 드리도록 할게요. 그리고 우리 마을은 약초를 재배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약초로 하고 싶어요, 대도시에 나가서 팔면 돈으로 바꿀 수 있을거예요."
보상을 떼먹지 않겠다는 아이의 말에 단순한 성격의 수련생들과 사범들은 모두 감동했다.
검으로써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돕고 명성을 날린다.
거기에 돈도 번다.
"이렇게 좋은 일이!"
"오오! 우리 이제 퀘스트만 하자!"
점점 로열 로드에 빠져 드는 검치 들이었다.


위드는 다시금 노가다의 길에 접어들었다.
'낚시를 중급에 올리기 전까지는 생선만 먹겠다.'
매운탕을 끓여 먹으면서 독하게 마음을 다 잡았다. 그나마 먹는 시간마저 아까워 조각칼로 회를 떠서 먹을 때도 많았다.
'휴우! 지독하군.'
이건 다른 종류의 인내.
위드의 주특기는 전투였다. 아무리 싸워도 질리지 않는다. 몬스터를 잡고 전리품을 획득하며 점점 강해진다.
이것은 몇날 며칠을 반복하더라도 지겹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전투를 하지 않는다. 몬스터를 잡지 않고 싸우지도 않았다.
평화롭게 낚시 스킬을 올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재봉이나 대장일을 할 때에는 그나마 돈을 버는 맛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낚시는 별로 돈도 되지 않았다.
아주 대단한 물고기라고 해도, 대다수는 음식 재료로 헐값에 팔리고 있었다.
이제 그동안의 고난 덕분에 낚시 스킬 역시 9레벨에 올랐다. 숙련도도97.6%!
잔챙이들 몇십마리를 잡으면 숙련도가 올라가겠지만, 큰놈 한 번에 해치울 수 있는 수준이기도 했다.
위드는 낚시 스킬을 올리면서 어시장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위드의 옆에 그림자처럼 바싹 붙어 있는 한 사람!
제피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었다.
휜칠하고 잘생긴 외모!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피는 로열 로드가 처음 열렸을 때부터 이 낚시터에 나타났다고 한다.
우수에 젖은 눈으로 벤사 강을 바라보며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던 제피. 과묵하고 분위기 있는 모습에 반한 여성들까지 있을 정도다.
예술가적인 기질! 고독한 사슴 같은 사나이!
하지만 위드가 그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부릅!
제피도 뚫어져라 강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찌의 움직임ㅇㅔ 따라서 눈동자가 움직인다.
처음에 위드가 이곳에 왔을때 벤사 강 최고의 낚시꾼은 제피였다. 최소한 중급 스킬 이상을 가진 낚시꾼으로, 그에게서는 여유가 흘러나왔다.
가끔 잡은 물고기들을 그대로 풀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위드가 옆자리에 끼워 들었다. 제피가 앉아 있는 자리가 벤사 강 최고의 명당이었던 것!
위드는 제피의 근처에서 사정없이 물고기들을 낚았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제피도 위드의 행동이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누가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았는지 비교하게 되었고, 마침내 제피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말았다.
강가를 노려보는 두 사람!
먼저 제피의 찌가 크게 수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큰 놈이구나!"
제피가 보란 듯이 외치며 낚싯대를 건져 올렸다. 하지만 낡은 부츠가 나왔을 뿐이다.
"젠장!"
제피가 다시 바위에 주저앉는 사이에, 이번에는 위드의 찌가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그러나 금세 다시 쭉쭉 위로 올라온다.
위드는 가볍게 호흡을 고른 뒤에 낚싯대를 슬슬 잡아당겼다. 줄다리기를 하듯이. 낚싯줄을 통해 물고기와 겨루었다.
힘으로만 끌어당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때론 풀어 주고, 어쩔때는 바싹 조여야 했다. 물고기들의 힘이 원체 강해서 무작정 끌어당기기만 하면 낚싯줄이 끊어지고 만다.
한참의 신경전 끝에 위드는 붕어를 낚을 수 있었다.
45센티가 넘는 대물이었다.
벤사 강의 낚시 역사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큰 놈을 잡은 것이다.
띠링!

-낚시 스킬의 레벨이 10이 되어 중급 스킬로 변화가 됩니다.
낚시 길드에서 낚싯대 공격술을 습득하실 수 있습니다.
물 속성 친화도가 25상승했습니다.
생명력의 최대치가 2,000 늘어납니다.
낚시 스킬의 영향을 받아서 소유하고 있는 스킬 중에서 요리가 변화합니다.
특선 생선 요리를 배우실 수 있습니다.
어류를 이용한 음식에 추가적으로 50%의 효과가 더해집니다.
전 스탯에 +3의 추가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명성이 50올랐습니다.

-인내력이 30 상승하셨습니다.

-지력이 30 상승하셨습니다.

-지혜가 30 상승하셨습니다.

익히기 힘든 낚시 스킬!
그만큼 성과의 보상도 높은 편이었다.
위드는 주섬 주섬 낚시 도구들을 챙겼다.
'당분간 이것으로 생산 스킬은 끝이다.'
모든 생산 스킬을 마스터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그러자면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애초에 생산 스킬을 배운 목적. 영구적으로 올라간 스탯들로 위드는 만족했다.
"이제 가십니까?"
위드가 도구들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제피가 머뭇 머뭇 물어 왔다. 무언가 아쉬운 기색이었다.
"네, 저는 갈 겁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서로 말도 나누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참, 저보다는 형님이시죠?"
"아마도 그럴 것 같군요. 그럼 다음에 인연이 되면 또 만나도록 하죠."
벤사 강을 떠난 위드는 가까운 크로인 왕국 수도로 향했다. 낚시를 하며 근근이 시간을 내어 만들어 온 조각품들을 팔기 위해서였다.
딸랑!
위드가 조각 상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에 매달린 종이 영롱하게 울렸다. 상점 안에는 주인 혼자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로 왔는가?"
"제가 만든 조각품을 팔기 위해서 왔습니다."
위드는 직접 제작한 조각품을 보여 주었다.
기념으로 만든 뱀파이어 조각상, 늑대 조각상, 석상으로 변한 프리나와 파고의 왕관을 조각한 것도 있었다.
"호오!"
상점의 주인은 조각품을 살펴보더니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대단하군! 이렇게 뛰어난 조각품은 정말 오랜만에 보네.
특히 여기에 깃든 예술성이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야. 이렇게 깊이가 있고 철학이 담긴 조각품이라나...혹시 이 늑대는 직접 보고 만든 건가?"
"예, 그렇습니다."
"혹시 굶주린 상태 아니었나?"
주인의 말에 위드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었다.
"한 사흘은 굶었던 것 같습니다."
"오! 과연 그랬군. 허기짐이 그대로 느껴져, 눈빛마저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조각품이라니..."
"혜혜."
위드는 방긋방긋 웃었다. 그러면서 미리 준비해 온 생선구이를 내밀었다.
"참! 가격을 정하시기 전에, 여기 제가 만든 음식이나 잡숴 보세요. 음식을 드시면서 천천히 제가 만든 조각품들을 봐 주시지요."
"뭘 이런 걸 다..."
"앞으로 자주 찾아오게 될지도 모르니,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조각품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어르신을 이렇게 만나 뵙기란 쉽지 않은 일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 나도 한때는 조각술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네. 보잘것 없는 실력이라서 이렇게 가게를 내게 되었지."
"그저 조각술이라는 업종에 막 발을 내디딘, 실력은 부족하지만 열의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초보 조각사라고 생각해 주시고 많은 지도 편달 바랍니다."
"허허, 그러지!"
친절! 봉사! 헌신!
돈을 가진 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하고 상냥해질 수 있었다.
위드는 음식을 제공하고 몇 마디의 말을 나누면서 지속된 칭찬으로 가게 주인과의 친밀도를 조금씩 올렸다.
자고로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
끊이지 않는 칭찬, 그러나 맹목적이거나 엉뚱하지 않은 칭찬을 하는게 중요했다.
예컨대 가게 주인은 심각한 숏다리였다.
다리 짧은 사람에게 키 크다고 칭찬을 하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역효과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칭찬이 필요했다.
눈빛이 선해 보인다거나, 웃는 모습이 듬직해 보인다거나, 키가 작은 사람일수록 스스로 키는 작지만 속은 꽉 차 있다고 믿으니, 그 점을 적절히 공략하는 것이다.
혹은 비난을 해도 좋다. 키 큰 이들을 전부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이다.
"키만 크면 뭐 하겠습니까. 눈이 나빠서 이렇게 훌륭한 조각품도 알아 보지 못하는데요."
"암, 그렇지."
칭찬과 비난.
둘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면서 위드는 가게 주인과의 친밀도를 쌓았다. 만약 친밀도를 쌓는 대회가 있다면 1등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철저한 사전 작업 끝에 마침내 본론이 나왔다.
"값은 얼마나 쳐 주실 겁니까?"
위드에게 모든 가치는 돈! 예술성을 인정받는 것보다 돈을 많이 버는게 더 중요했다.
"이런 조각품들이라면 개당 3골드씩 쳐 주도록 하지. 몇개나 팔겠는가?"
"전부 다 팔겠습니다."
위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제 사람들에게 조각품을 판매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들이 사 가는 조각품의 가격은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예술 스탯을 높여서 오랜 시간 공들여 조각을 한다고 한들,
1골드 이상을 장식품에 지출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각 상점에 팔면 2골드, 혹은 3골드도 받을 수가 있다. 그래 봐야 조각푸ㅁ을 만드는 데 투자한 시간을 감안한다면
인건비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말이다.
직접 사냥을 해서 돈을 버는 쪽이 조각품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효율이 높았으니까.
레벨이 낮을 때라면 모르지만 이제는 확실히 사냥이 돈을 버는 데에는 훨씬 나았다.
위드는 조각품들을 판매한 대가로 245골드를 획득할 수 있었다.
'아직은 그럭저럭이군. 그렇지만 조각술이 고급에 오르면 더 큰돈을 벌 수 있을 거야.'
조각품들을 팔고 나서 막 가게를 나가려고 할 때였다.
"자네의 조각술에는 재능이 보이는군. 높은 예술성을 가지고 있으니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할 거야."
이 정도는 평범한 칭찬으로 여기고 그대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진 조각 상점 주인의 말이 위드를 붙잡았다.
"조각사는 다양한 삶을 경험해 봐야 하지. 자네에게는 관록과 함께 여러 부류의 매우 뛰어난 인생 경험이 느껴지는군.
혹시 조각술 마스터 다론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위드, 자네에게는 조각사로서의 자질이 있어. 본래는 알려 주지 않지만,
내 자네라면 믿을 수 있겠네. 바로 그 다론이 이 레가스 성에서 살고 있다네."

-조각술 마스터 다론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셨습니다.



조각 변신술



위드는 도시 외곽의 빈민촌으로 향했다.
언덕 위에 계단식으로 지어진 건물들. 레가스 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상점이나 별로 쓸 만한 건물도 없는 이곳까지 온 것은, 오직 조각술 마스터 다론 때문이다.
달빛 조각사로서 조각술의 비기를 찾는 것은 중대한 목표였다. 조각술 마스터들은 하나같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론의 행적을 찾은 것은 큰 소득이었다.
'아무리 명성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해도, 조각술 마스터가 겨우 이런 곳에서 살다니...'
새삼 조각술에 대한 회의가 드는 이 순간!
그렇지만 조각술 마스터를 만난다는 흥분으로 가슴이 떨려왔다.
'조각술 마스터들은 각자 자신만의 기술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 다섯 가지의 기술을 전부 모으면 조각술
최후의 비기를 찾을 수 있다. 조각술... 참 익히기도 힘들군.
돌이켜 보면 조각 검술을 익히고 달빛 조각사와의 첫 번째 인연을 맺은 것도 참 특이한 경우였다. 수련소의
교관과의 친밀도가 극도로 올라가서 얻은 의뢰에 전직의 의뢰가 있었다니.
그 후에 현자에게 속아 레벨60이 넘어서 하게 된 전설의 달빛 조각사.
그런데 이번만큼 난이도가 높지는 않았다.
조각사로서 여러 종류의 인생 경험.
즉 여러 생산 직업 기술들을 습득해야만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었다.
위드는 어렵게 다론의 집을 찾았다.
있으나 마나 한 담장은 군데군데 허물어져 있고, 안에는 한 장년인이 나뭇조각을 칼로 깎고 있었다.
'저 사람이 다론이다.'
조각칼을 놀리는 동작만 보아도 상대의 경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위드는 다론이 조각품을 완성할 때까지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실상 그가 어떤 조각품을 만드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컸기 때문이다.
다론은 여자를 조각하고 있었다.
풍성한 치마를 입고 있는 중년 여인의 모습.
다론은 때때로 피를 토해 가면서 조각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조각품이 완성되고 나서야 위드를 돌아보았다.
"오랫동안 기다려 주었군. 자네도 조각사인가?"
"그렇습니다."
"나를 찾아오다니... 조각술은 스스로 깨치는 것. 마음을 바꾸면 조각술도 달라지는 법이지.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조각술의 비기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 모양이군."
조각술의 비기!
조각품에 생명 부여, 그리고 조각 검술!
조각 검술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유용하게 써먹고 있던가.
위드는 흥분에 젖어 들었다.
"배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의 비기는 아무에게나 전수해 줄 수 없다네. 자네가 내 조각술을 배울 수 있을지를 시험해 봐야겠군.
지금 바로 나가서 다섯 종류의 생명이 가진 마음을 깨닫고 오게."
띠링!

조각품을 보는 눈
다섯 종류의 생명체의 행동을 따라 하고, 그들이 가진 마음을 이해하라.
자신이 아닌 다른이의 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다.
진실 어린 애정의 눈만이 그들을 똑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난이도:직업 비전 퀘스트.
보상:다론의 인정.
퀘스트 제한:중급 이상의 조각술을 익힌 이에게만 부여됨.

위드는 당혹스러웠다.
조각술의 비기들은 하나같이 상식과 어긋나 있었다. 조각 검술을 펼치는것으로 모자라서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섯 종류 생명체의 행동을 따라 하고 마음을 이해하라니, 전혀 감을 잡기 힘들었다.
'이게 조각술과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고...'
그때 다론이 말했다.
"내 비기를 배우지 않을 텐가?"

-퀘스트를 거부하시겠습니까?

위드는 서둘러 대답했다.
"아닙니다. 꼭 배우고 싶습니다. 지금 곧바로 나가서 다섯 종류의 생명체의 행동을 따라 하고 오겠습니다. 그것이면 되겠지요?"
"충분하네. 그러나 자네가 할 수 있을지는...."
-퀘스트를 받으셨습니다.


위드는 우선 밖으로 나갔다.
'다섯 종류의 생명체라...'
생명을 가진 것은 무엇이든 된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구태여 복잡하고 힘든 생명체를 선택할 필요는 없지.'
위드는 성 주위를 둘러보았다.
토끼나 다람쥐, 누루 등이 뛰어놀다가 유저들에게 학살당하고 있었다.
위드는 즉시 행동에 착수 했다.
목표는 흰털을 가진 토끼!
다람쥐나 노루는 아무래도 너무 작거나 속도가 빨라서 쫓아다니기가 힘드니 만만한 토끼로 정한 것이다.
토끼는 땅바닥에 웅크린 채로 풍을 뜯어 먹고 있었다.
"...."
처참한심정이었지만 위드는 불굴의 투지로 극복했다. 그냥 그대로 따라 했다.
"냠냠."
엎드려서 풀을 뜯어 먹는 위드.
약초학을 배운 덕분에 숲이나 산에서 나는 작물들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엎드려 풀을 뜯어 먹는 건 조금 추하지만 괜찮았다.
그렇지만 토끼는 위드이 시선을 느꼈는지 금세 깡충깡충 뛰어서 다른곳으로 행했다. 위드는 뒷발로 깡충깡충 뛰면서 토끼를 따라갔다.
토끼는 지그재그로 뛰기도 하고, 짧은 거리를 전력 질주로 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숲 속에 들어가서는 물을 마시거나,
혹은 다람쥐들이 뛰어노는 것을 빨간 눈으로 쳐다봤다.
"헉헉! 무슨 놈의 토끼가 이렇게 빨라."

-토끼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진행률 0.6%

다행스럽게도 제대로 하는 것은 맞는데, 토끼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과 조각술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날 하루 종일 위드는 토끼의 행동을 따라서 했고, 35%의 진행을 마쳤다.
하지만 토끼를 끝내더라도 네 가지 종류의 생명체들이 더 남아 있었다.

토끼의 요상한 행동.

위드는 토끼를 따라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우선 토끼의 행동은, 인간의 생각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턱을 문지르면서 영역을 표시하기도 하고, 때때로 팔자 뛰기로 유쾌한 기분도 드러낸다. 당연하지만, 철저하게 토끼 자신만의 기분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했다.
가끔씩 토끼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위드에게 다가와 몸을 부비며 친근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작은 흰 털의 토끼가 애교를 떠는 것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위드는 시선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맛있겠군. 이걸 한입에 그냥...'
군침을 꼴깍 삼키며 토끼를 보는 위드!
하지만 토끼를 사냥하지는 않았다.
토끼를 잡아 얻을 수 있는 경험치야 당연히 미미한 정도였고, 고기도 얼마 얻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베르사 대륙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동물 중의 하나인 토끼는 그래서 위드의 손아귀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토끼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진행률 84.2%
진행률은 높아질수록 더욱 더디게 올라갔다.
닷새가 지나 진행률이 80%가 넘었을 때에는 토끼에게 간단한 명령을 내릴 수도 있게 되었다.
"앉아. 일어서. 굴러. 옆차기!"
명령에 잘 따르는 귀여운 토끼.
토끼는 땅바닥을 구르기도 하고 옆차기도 하면서 위드의 명령을 따랐다.
'토끼라... 알고 보니 제법 귀여운 구석도 있는 생물이군.'
진행률이99.8%를 넘었을 때 토끼는 먼 하늘에 있는 달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열심히 절구질을 하는 자세를 취했다.
쿵기덕쿵기덕!

-토끼의 행동을 완전히 습득하셨습니다

토끼 다음은 사슴이었다.
위드는 비정상적이라고 할 만큼 민첩에만 스탯을 투자한 전투형 캐릭터이다.
조각사라는 직업 때문에 예술에도 스탯을 분배할 수 있을테고, 보통은 그러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예술에 분배하는 것은너무나도 아까웠다. 일단 예술은 확연히 눈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예술 스탯이 높을수록 조각품의 가치가 올라가 걸작이나 명작을 만들 확률이 상승한다지만, 그보다는 당장 강해지는 쪽이 좋았던 것이다.
예술 스탯은 노가다로 조각품을 만들면서 하나씩 올리는 걸로 대체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달빛 조각사라는 직업과 각종
스킬들로 인해서 예술 스탯을 상당히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800이넘는 예술 스탯에, 민접도 이제 추가 포인트까지 합쳐서 505가 넘었다.
'사슴이이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지!'
나뭇가지에 붙은 이파리들을 뜯어 먹던 사슴이 갑자기 어디론가 열심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민첩성이 굉장히 높은 위드는 사슴을 쫓아 달려갈 수 있었다.
-사슴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진행률 0.2%

속도에는 일가견이 있는 위드!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느니 차라리 사슴처럼 빠르게 달리는 쪽이 훨씬 우아해 보이리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중대한 오산은 있었다.
'아뿔싸! 사슴은 네발 달린 짐승이었구나.'
땅을 치고 후회를 해 보아도 이미 소용이 없었다.
위드는 사슴의 행동을 따라 하기 위해서 네발로 열심히 달려야 했다.

마판과 화령은 교역을 하면서 자주 레가스 성을 방문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꽤 짭짤한 수입을 거둘 것 같네요. 전부 화령님 덕분입니다.
"아니에요, 마판 님."
마판과 화령은 마부석에 나란히 앉아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교역이란 사 모은 물건을 판매하는 마지막 순간 외에는 지루한 여행이 되기 십상이었다.
이런 저런 마을들을 방문하면서 새로운NPC들과 친분을 나누고 교역품을 늘려 나가는 재미가 없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직업.
상인 특유의 스킬인 마차 운행 등으로 인해 한 번에 몰 수 있는 마차의 수와 적재하는 교역품의 무게,
운행 속도 등이 향상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도시와 도시 사이의 이동은 따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그들이 곧잘 대화의 주제로 올리는 대상은 위드였다.
"위드 님이 구출한 성기사들과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가 맞붙은 장면을 한번 봐 두었어야 했는데요."
"그래요. 난이도B급의 의뢰를 완수하시다니 위드 님도 참 대단하세요. 게다가 북부 대륙에 세워진 빙룡 상이라니..."
화령의 눈이 유달리 반짝였다.
매끈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동화나 환상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모라타 지방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흠뻑짜져 들고 말았다.
프레야 교단의 교황 후보인 알베론과 함께 단둘이 도착한 폐허의 마을.
터무니 없이 강한 몬스터들.
상대적으로 약한 위드와 알베론.
혹한의 추위를 견뎌 내면서 조금씩 세력을 불려 나가고, 함께 어려움을 이겨 내면서 저주로 갇혀 있던 성기사들을 구출!
중간에 거대한 조각품인 빙룡 상을 완성.
그 후로 계속 늘어나는 성기사들. 마침내 시작된 흑색 거성의 전투. 석상에서 깨어나는 모라타 자방의 주민들.
최후의 보스라고 할 수 있는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와의 결전!
화령의 머릿속에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남아 있었다.
실제로는 감기 몸살에 시달리면서 극도의 노가다로 어렵게 쟁취해 낸 승리지만, 옆에서 듣기로는 짜릿한 모험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마판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저는 위드 님을 한눈에 알아보았죠. 바란 마을의 상공에서 추락하던 위드 님을...."
둘은 화목하게 잡담을 나누면서 레가스 성의 성문 근처로 접어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문까지는 마차를 타고도 아직 한두 시간은 걸릴 거리였다. 그런 평원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건 정말로 흔치 않은 일이다.
마판과 화령은 눈을 마주쳤다.
호기심! 재미!
상인이면서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그들로서는 이러한 일에 빠져 본 적이 없었다.
"우리도 가 볼까요?"
"네, 무슨 일인지 궁금해요."
마판은 마차를 돌려 사람들이 몰려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둘은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1마리의 여우가 달리고 있었다.
부드러운 털에 귀여운 3개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여우!
그런데 그 옆에서 누군가가 네발로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여우가 점프를 할 때에는 따라서 뛰어오르고, 공중제비를 할 때에도 똑같이 행동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구경거리로 돌릴 수 있지만, 그 행동들이 신기할 만큼 여우를 닮아 있었다.
여우의 행동을 미리 짐작하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움직임들. 어떤 때에는 여우와 너무나도 흡사하여,
차이가 확연한 생김새만 아니라면 인간이 아니라 여우로 보일 지경이었다.
"와, 저게 누구죠? 특이하네요."
붙임성이 좋은 마판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둘이 있는 위치에서는 여우를 따라 달리는 사람의 얼굴이 잘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경하고 있던 작은 소녀는 킥킥대며 대꾸했다.
"저 사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토끼를 흉내내더니 그 다음엔 사슴, 고블린...뭐 이런 것들을
따라 하다가 이제는 여우의 행동까지 똑같이 따라 하더라고요."
"정말 이상한 사람이군요."
그때 열심히 여우를 따라 달리던 사람이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마판과 화령은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헉!"
"이럴 수가!"
위드! 여우를 따라 달리는 사내는 위드였다.
화령과 마판은 조심스럽게 눈을 마주쳤다.
지금 이 주변에는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전부 위드의 기괴한 행동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의리와 신의!
그렇지만 지나친 쪽팔림은 때때로 모든 걸 잊게 만들었다.
마판과 화령은 조용히 상황을 인지하고 그 자리에서 탈출했다.
위드를 깔끔하게 무시한 것이다.


토끼와 사슴, 고블린, 여우의 행동을 마스터한 위드는 그 다음 동물을 찾았다.
'아무래도 몬스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어떤 일이든 최초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토끼나 사슴, 고블린, 여우 등은 주로 사냥당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죽을 경우 다른 동물을 다시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본래 누군가 잡고 있는 몬스터를 공격해서 뺏어 먹는 행위는 스틸이라고 하여 굉장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위드의 경우에는 몬스터를 잡으로는 것도 아니고 그저 행동만을 따라 하고 있었으니, 딱히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힘든 상황!
위드에게는 잘 사냥당하지 않는 동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마지막 짐승이 바로 말이었다.
레가스 성 외곽의 말 사육장.
사육장 안에서 열심히 말을 따라서 네발로 달렸다.
말은 본래 달리기 위해 태어난 짐승이라, 민첩성이 높은 위드로서도 쫓아가는 게 쉽지 않았다.
목책으로 사육장이 막혀 있지 않다면 놓쳐 버릴 수도 있었다.
필사적으로 말을 따라 달리는 위드!
'이번의 마지막이다. 이놈들의 행동만 마스터하면 조각술의 비기를 배울 수 있어.'
-말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진행률 12.1%

하루가 지나자 12% 정도의 진행률이 올랐다. 위드는 식사도 미리 준비해 온 채소들로 때우며 최대한 말과 비슷하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음식까지 가능한 한 비슷한 걸 먹자. 말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는 거야.'
-말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진행률 59.0%

-말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진행률 89.7%

-말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진행률 95.9%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지날수록 진행률은 빠르게 채워졌다.

-말의 행동을 완전히 습득하셨습니다.

-퀘스트의 조건을 달성하셨습니다.

위드는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뜻박의 사태가 벌어졌다.
타닥! 타닥!
땅을 박차는 두 팔과 두 다리!
사슴 등을 흉내 내면서부터 시작된 네발 뛰기가 왠지 너무 나도 익숙해진 것이다.
바람을 가르며 위드는 달렸다.
후와왁!
왠지 평상시에 두 발로 달리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졌다.
띠링!

-특수 동작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네발 뛰기:이동 계열 스킬.
체력과 마나를 소모하여, 두 발로 달리는 것보다 약 60%의 속도를 더 낼 수 있다.
바람과 정면에서 달릴 때 체력 소모가 30%감소한다. 바람을 등지고 달릴 때에는 20%의 속도 가 추가로 늘어난다.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는 스킬의 사용이 불가능하며, 초원이나 평원에서는 추가로 80%의 이 동 속도가 가산된다.
-스킬의 획득에 따라 체력 5가 상승합니다.

-스킬의 획득에 따라 지구력 5가 상승합니다.

-스킬의 획득에 따라 민첩 10이 상승합니다.

"헉 이럴 수가..."
짐승을 따라 행동한 것이 스킬로 만들어지다니!
네발 뛰기 스킬.
아무리 위드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것만큼은 부담이 심각했다.
'차마 사람들 앞에서는 쓰기 힘든 스킬이군.'
그러면서도 위드는 씨익 웃었다.
그가 짐승들을 따라서 행동한 것은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는 비밀이었다.
'괜찮아. 절대로 모를 거야.'
다론의 의뢰를 완수한 위드는 레가스 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두 발로 서서 걸었다.


다론은 여전히 그 장소에서 1명의 여자를 조각하고 있었다.
중년 여인의 조각상.
위드는 그가 조각품을 완성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다론이 만드는 조각품을 세밀하게 살펴 보았다.
저번에 만든 그 조각상과 같군. 똑같은 조각상을 다시 한번 만드는 것인가?
위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조각사로서의 경지가 낮던 시절, 여우나 토끼의 조각품들을 복제하다시피 많이 만들어서 팔곤 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만들어 본 조각품들은 숙련도를 많이 늘려 주지 않았다.
'얼굴도... 솔직히 예쁘지는 않다.'
조각술 마스터라면 적어도 일국의 공주나, 혹은 아름다운 귀족 가문의 여인을 조각하는 쪽이 어울리지 않을까.
그런데 다론은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중년 여성을 조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잔뜩 애정 어린 얼굴로 말이다.
이윽고 다론은 조각품을 완성하였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위드에게 물었다.
"내가 내준 의뢰는 완수하였나?"
"그렇습니다. 토끼. 사슴, 고블린, 여우, 말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했습니다."
"상당히 일찍 끝냈군. 수고했네. 그러면 행동을 따라 한 생명체들을 조각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해내면 자네에게 내 조각술을 알려 주도록 하겠네."
"문제 없습니다."
위드에게는 조각품을 만들어 본 풍부한 경험이 있었다.
일단 본인 스스로가 특별한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종류를 닥치는 대로 만들어 보았던 것이다.
토끼나 사슴 등의 동물에서부터 각종 몬스터들까지, 위드는 어지간한 것들은 전부 한 번씩 만들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토끼나 여우는 한때 내 부업이었으니까.'
위드는 자신 있게 조각칼과 나뭇조각을 꺼내어 조각을 시작했다. 그런데 토끼를 조각할 때부터, 무언가 예전과는 달랐다.
'어라? 이 부분은...'
귀와 발, 심지어는 꼬리 부분을 조각할 때에도 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있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위드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만들고 있는 토끼의 조각품은 예전과는 차이가 많았다.
그런데 오히려 훨씬 더 귀엽고 종족의 특성을 잘 살린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생명들의 행동을 직접 따라 해 봄으로써, 그들을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토끼의 귀가 길쭉한 이유가 무엇인지, 꼬리가 어떻게 생겼으며, 움직일 때에는 어떤 자세로 다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러자 조각품에서 한결 더 생동감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재현하지 못하던 토끼의 살아 있는 표정들이 나왔다.
'어건....'
과거 토끼의 조각품을 만든다고 하면, 일단 그 형상을 그려 내는 데에만 급급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토끼가 슬퍼할
때의 모습과 기뻐할 때의 모습을 구별하여 조각할 수 있다.
토끼가 풀을 뜯어 먹을 때의 모습을 구별하여 조각할 수 있다.
토끼가 풀을 뜯어 먹을 때의 눈빛, 혹은 적에게 쫓겨서 달아날 때의 긴박한 움직임마저도 조각할 수 있게 되었다.
고블린의 행동을 따라 할 때에는 약한 몬스터의 설움과 보물에 대한 집착들을 느꼈다. 위드는 고블린을 조각하면서 고블린의 마음을 떠올렸다.
펑원을 거침없이 질주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면서 말을 조각했다.
위드 본인조차도 놀랄 정도로 조각상이 편하고 즐거웠다. 언제나 간직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섯 종류의 생명들을 완성하는 순간.
띠링!

걸작! 다섯 생명 조각상을 완성하셨습니다!
크고 복잡한 조각품.
까다로운 기법과 높은 예술성을 가진 조각품들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즐거움!
삶에 대한 환희를 가진 조각품들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할 것이다.
예술적 가치:460.
특수 옵션:생명 조각상을 바라본 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6% 증가한다.
해당 동물에 대한 친화력 상승.
화염 마법에 대한 내성 15% 상승(과도한 화기에 노출되었을 경우 귀를 통하여 열기를 방출할 수 있음).
함정이나 위험 지역에서의 관찰 능력 초급.
통솔력 25 상승.
지력 10 상승.
이동 속도 10% 상승.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걸작의 숫자:4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위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까지 걸작 조각품은 몇 번 만들어 보았다. 빙룡 상처럼 명작을 만들어 본 경험도 있었다. 그렇지만 작은 나뭇조각을 가지고 걸작을 만든 건 처음이다.
'게다가 이런 옵션이라니...'
예술적 가치야 판매할 때에 주로 기준으로 삼는 가격이니 일단 제처 놓더라도 옵션들이 아주 다양하고 좋았다.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 상승은 그만큼 사냥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준다. 동물과의 친화력은 별로 쓸모는 없어
보이니 제쳐 두더라도, 나머지 옵션들은 상당히 괜찮은 것들이었다.
'토끼와 사슴, 고블린, 여우, 말. 이 생명들의 특성이 하나씩 옵션으로 부여되었구나.'
여태까지는 거대 조각상들만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작은 조각품들에도 옵션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조각사로서 어마어마한 발전이었다.
다론은 위드가 만들어 낸 조각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각품에 대한 애정이 조각품을 더욱 생기 있게 만들 것이야, 그만하면 나의 시험은 훌륭하게 합격하였군."

조각품을 보는 눈 완료
눈으로 보고 만드는 조각품은 겉모슴만을 흡사하게 만들 뿐. 위대한 조각사는 그 내면까지도 담을 수 있 어야 한다.
조각품에 대한 애정과 이해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조각사의 중요한 자질임에 틀림없다.
퀘스트 보상:조각술의 비기!
다론에게 직접 배우십시오.

다론은 이어서 말했다.
"내 조각술은 특별한 것이 없다네. 그저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지. 기교나 형식 따위는 난 아직도 잘 몰라. 애정을 가진 조각사는
자신이 만든 조각품을 닮아 가기 마련이야. 그것을 세인들은 조각술의 비기라고 하더군."
"그러면?"
"조각 변신술. 이것이 내가 가진 비기이지. 그리고 자네에게 가르쳐 줄 것이 하나 더 있는데, 이건 조각품을 이해하는 법이라네. 쿨럭!"
다론은 피를 토하면서 기침을 했다.
"괜찮으십니까?"
"아무래도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군."
다론의 눈가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 있었다.
"휴! 죽을 날도 머지 않은데 아직 만들어야 할 조각품들이 300개나 되지. 최소한 지금까지 주문 받은 것들은 모두 만들어 주고 떠나고 싶네.
이곳에서 일주일 정도 나와 함께 조각품을 만들어 보겠는가? 내가 가진 조각술의 비기는 함께 일을 하면서 배울 수 있을 것이네."

다론의 주문
일주일 동안 레사스 성의 조각술 마스터 다론이 주문 받은 조각품들을 함께 제작하라.
다양한 종류의 조각품 제작은 조각사로서의 경험에 큰 도움이 될것이다.
조각술의 비기를 익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받아들여야 함.
난이도:직업 퀘스트.
보상:기간 내에 조각술 숙련도가 2배로 상승.
의뢰에 실패하더라도 조각술의 비기는 획득.
퀘스트 제한: 실패한 조각품은 사용할 수 없음.
기한을 맞추지 못할 시에는 명성이 하락하고 배상금을 물어 줘야 함.

위드는 그리 갈등하지 않고 선선히 의뢰를 수행하기로 했다. 조각술의 비기와 관련이 된 의뢰이니 당연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부차적인 문제들도 있었다.
빙룡 조각상을 만든 이후로 조각술 스킬이 중급6레벨에 올랐다. 그 후로 많은 사냥을 하면서 조각 검술을 사용했고, 이번에 걸작
조각품을 만들면서 조각술 숙련도가 늘었다.
이제는 조금만 더 하면 스킬을 중급7레벨까지 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조각술 스킬의 레벨을 올리는 것도 장난이 아니니까. 괜찮은 기회로군.'
같은 조각품을 만들고도 2배나 되는 조각술 숙련도를 얻을 수 있디. 그리고 주문 받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면 어떤 걸 만들고 싶은지 결정하게나."
의뢰를 받아들이자 다론은 위드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300개의 조각품.
이것 중에서 직접 만들 조각품들 가운데에는 만들기 까다로운 물건들도 많았다.
퀘스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쉬운 물건들만 만들면 되지만, 위드는 욕심을 내기로 했다.
'너무 쉬운 일은 재미가 없지. 누구 하나 가르쳐 주는 사람 없었는데 여기까지 왔다. 좀 무리를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야.'
위드는 매일 30개씩 210개의 조각품을 만드는 데에 도전을 하기로 했다.
아침, 점심, 저녁, 쉬지 않고 만들면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았다.

부른 상단의 선수상
멀고 먼 대양으로 돛을 펼치고 나아가야 하는 선단에게는 그들을 수호해 주는 선수상이 반드시 필요하
다. 부른 상단에서는 힘찬 돌고래를 닮은 선수상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하나하나가 작은 의뢰들이나 다름이 없었고,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그에 따른 보상금이나 숙련도를 획득하는 게 가능했다.
의뢰에 맞는 정확한 물건을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약간 곤란한 부분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마음 내키는 대로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들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 사항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곧 적응을 했다.
그러면서 첫날에는 15개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둘째 날은 24개, 그다음 날은 35개를 만들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틈틈이 다론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어릴 때에 한 여인을 만나서 사랑하였지. 재주라곤 조각술 밖에 없어서 그녀를 조각하게 되었네."
"그러셨군요."
"하지만 그녀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 그 후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녀가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을 조각하고 있다네.
조각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야. 기술이 늘어날수록 좀 더 잘할 수는 있겠지만, 마음이 죽어 있다면 사람을 감동시키지는 못하지.
조각술과 그녀에 대한 사랑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네."
위드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각품을 만들었다.
2배의 숙련도를 받는 덕분에 중간에 중급 7레벨까지 조각술 스킬을 올릴 수 있었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위드는 아슬아슬하게 의뢰를 완수할 수 있었다.

띠링!

다론의 주문 완료
다론은 평생을 한 여인을 조각해 왔다.
애정이 가득 담긴 조각술은, 조각품에 깊이를 더해 주고 있었다.
후배 조각사에게 많은 경험과 지식을 물려준 다론은 기쁘게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스킬:조각 변신술을 익히셨습니다.

-패시브 스킬:조각품에 대한 이해가 생성됩니다.

위드는 곧바로 스킬들을 확인해 보았다.
"스킬 정보창. 조각 변신술. 조각품에 대한이해!"
조각 변신술: 다론이 만든 조각사의 알려지지 않은 기술.
만들어 놓은 조각품으로 육체를 바꿀 수 있다.
제한: 조각품에 대한 이해를 깨달은 후에만 사용할 수 있음.
스킬요구량:마나 2,000. 예술 스탯 500 이상.
주의 사항!
다른 종족이나 생명체로 변신하더라도 그들의 외모와 육체적인 능력만 사용할 수 있을 뿐, 스탯과 레벨 은 현재와 동일하게 유지됨.
거대한 육체를 가진 생물로 변신할 경우에는 그 몸집을 유지하기 위하여 힘과 체력이 더 많이 소모.

조각품에 대한 이해1(0%):조각품을 알수록 더욱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조각술과 조각 변신술에 추가적인 효과를 더함.
초급 과정을 모두 익히면 조각술에 10%의 효과를 더함. 육상의 생명체로 변신할 수 있음.
중급 과정을 모두 익히면 조각술에 20%의 효과를 더함. 비행 생명체로 변신할 수 있음. 단, 날갯짓부터 배워야 됨.
고급 과정을 모두 익히면 조각술에 30%의 효과를 더함. 대형 생명체로 변신할 수 있음.

위드는 그렇게 또 하나의 조각술의 비기를 배울 수 있었다.
'조각 변신술이라...'
레벨이나 스탯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무턱대고 강한 몬스터로 변한다고 해도 그다지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드래곤을 조각하고 변신을 하더라도 절대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둔한 몸집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도 의문일뿐더러, 익숙하지 않은 몸 때문에 잘 싸울 수도 없다.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해2차 전직을 마친 검사에게 도륙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대신에 현재 위드가 토끼로 변한다면 무려 레벨 200이 넘는 괴물 토끼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기 외에도 조각품에 대한 이해 역시 매우 유용한 패시브 스킬이었다.
"쿨럭!"
다론은 피를 토했다.
자신의 모든 걸 전수해 주고 이제는 심지가 다 타 버린 초처럼 죽어 가는것이다.
"자네...개인적인 부탁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나를 좀 부축해 주겠나? 마지막 마무리를 지어야 할 조각품이 있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위드는 하루 정도 더 머물면서 다론을 돌봐 주었다.
다론이 끝까지 자리에 앉아 조각술을 펼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다론의 기침은 점점 심해지더니, 나중에는 거의 쉬지 않고 피를 토했다. 그러면서 끝내 조각품을 완성하였다.
중년의 여인.
그가 사랑하던 여인의 조각품이었다.
일을 마치고 조각칼을 놓은 다론은 힘겹게 말했다.
"많이 사랑하게. 그리고 여러 직업들을 경험해 보게. 달빛 조각사라는 직업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음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설의 달빛 조각사에게 나의 기술을 가르쳐 줄 수 있어서 영광이었네. 그런데 자네가 전설의 달빛조각사가 된 이유를 알고 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달빛 조각사와 전설의 달빛 조각사의 차이.
위드는 아직까지 전혀 알고 있지 못하였다.
"소수의 직업들은 전승이 되지. 한때 대륙 전체를 통일한 황제, 대륙 최고의 검을 가졌던 기사,
대륙 최고의 부를 소유했던 상인.... 이들에게만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네."
"그러면 혹시.... 아주 좋은 직업인 겁니까?"
사기당한 것처럼 얻게 된 직업.
지금와서 직업을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래도 늘 억을해하던 위드였다.
그런데 전설의 달빛 조각사라는 직업이 실제로는 아주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딱 이 순간까지만.
"전설이 전설이지, 뭐 별게 있겠나."
"....."
"그래도 명예로운 직업이니...."
"....."
명예보다는 돈! 그리고 강함을 추구하는 위드에게 그것은 별 의미 없는 소리와도 같았다.
'역시 달빛 조각사나 전설의 달빛 조각사나 쓸모없기는 마찬가지였어.'
차라리 모르면 마음이라도 편할 것을!
그나마 한 줄기 희망과 기대라도 가졌을 것을.
달빛 조각사보다는 전설의 달빛 조각사가 그래도 뭔가 있어 보이는 직업이라는 생각으로 자위하며 살았는데, 그마저도 깨져 버린 지금이었다.
"아, 엘리엔..."
위드의 성질을 박박 긁어 놓은 다론은 마음속의 여인을 부르며 숨을 거두었다.
그가 숨을 거둔 장소에는 목조품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조각술 마스터만이 자신의 기술을 남기는 목조품!
'조각사라....세상을 가장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조각사일 것이다.'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것을 조각한다.
기술로만 접근해서는 절대로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없는 것을 이제는 위드도 조금은 깨치고 있었다. 마음에 와 닿는 그 무언가를, 그 감정을 살려서 조각해야 한다.
작은 여우라고 해도 그들의 삶이 있었다.
이들의 모습을 남기는 게 조각사의 일.
위드는 다론의 형상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다론의 마지막 순간을 아는 것은 위드뿐이었다.

띠링!

명작! 다론 조각상을 완성하셨습니다.
조각술 마스터 다론.
그는 세상을떠났지만 그의 마음은 이곳에 남아 있다.
비전을 이어받은 후인이 만든 조각품은 그가 가졌던 애정을 널리 퍼트리게 하리라.
예술적 가치:2,300.
특수 옵션:다론 상을 본 이들은 생명력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50%증가한다.
마법 저항력40% 상승.
생명력 최대치45% 상승.
전 스탯 10상승.
다론 상이 보이는 영역에서는 전투 불가능.
다론 상이 위치한 성과 나라의 인구가 빠르게 늘어남.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명작의 숫자:2.

-중급 조각술 스킬의 레벨이 8로 상승했습니다. 조각술이 한층 더 섬세하고 세밀해집니다.

-중급 손재주 스킬의 레벨이 9로 상승했습니다. 도구나 손을 이용하는 능력이 추가로 5%증가하며, 다양 한 분야에 걸처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조각품의 이해 스킬의 레벨이 초급 4레벨이 되었습니다. 조각품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늘어날수록 만든 조각품의 효과가 강해집니다.
-명성이 1,350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79 상승하셨습니다.

-인내가 3 상승하셨습니다.
-지구력이 3 상승하셨습니다.

-통솔력이 5 상승하셨습니다.

-명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1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오데인 성 공방전



레가스 성을 떠나는 위드는 흥분으로 몸이 달아올랐다.
'몬스터와 싸워 본 지도 오래간만이군.'
전투에 대한 감을 잃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천만한 전투만을 해 온 위드지만, 몇 개월간 쉬었으니 감각이 예전만큼은 아니리라.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긴장감.
상대하기 힘들고 강한 몬스터가 있는 위험한 사냥터만을 다니던 위드에게 그 느낌이 어느덧 생소한 게 되어 버렸다.
'어쩌면 맥없이 죽을지도....'
나약한 마음이 들었다.
두려움의 근원은 다른 이들이 앞서 갈 때에 정체되어 있다는 기분일지도 모른다.
프레야 교단의 성물을 반환한 지도 몇 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레벨은 228이었다. 219에서 퀘스트를 완수한 대가로 9개의 레벨이 오른 후 변화가 없는 것이다.
가끔 귓속말을 나누는 페일의 레벨도 이제 190 정도가 됐다. 수르카나 이리엔 등은 함께 사냥을 하므로 그녀들의 레벨도 대충 그 정도였다.
하다못해 마판의 레벨도 이제 160 정도가 되었고, 화령의 레벨도 210 정도다.
남들은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위드만 혼자서 그대로 였다. 그러나 위드는 놀고 있던 게 아니었다.
힘을 기르면서 멀리 돌아왔을 뿐이다.
달빛 조각사라는 직업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하여!
레벨은 그대로지만 강화된 스탯과 연계된 기술의 변화는 위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크크크"
"다 죽이겠다."
검치 들은 몬스터만 보이면 검을 뽑아 들고 돌격을 했다.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고 해도 일단 보이면 잡으려고 들었다.
공명심.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적을 가리지 않았다.
자이언트 맨을 잡은 기세를 살려서, 일단 어떤 몬스터들이든지 싸우고 봤다.
미친 검사들의 집단. 그러한 별명으로 더 유명해진 검치들이었다.
단연 독보적인 존재는 그들 중에서도 5명.
검치, 검둘치, 검삼치, 검사치, 검오치.
"그런데 스승님."
"왜 그러느냐, 검둘치."
"위드 말입니다."
위드와 검치 들은 가끔 귓속말을 나누었다.
남자들끼라라 처음에는 서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검둘치나 검삼치가 열성적으로 위드에게 귓속말을 보내었다.
이유는 단하나!
정보는 곧 힘.
하나라도 더 알면 그만큼 검치에게 아부를 할 수 있다.
어디의 음식이 맛있는지, 혹은 어떤 몬스터가 무엇을 떨어뜨리는지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검치가 좋아할 만한 곳으로 안내를 하고,
일부러 요리 스킬을 배우기도 했다.
검둘치 등은 로열 로드에 와서야 그들의 스승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늑대를 향해 휘두르는 일 검조차 평범하지 않다.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일 검!
검치의 전투를 보면서 완전히 매료되어 버린 사범들이었다.
'본래 강한 분인 줄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굉장한 검술이다.'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 아부와 아첨을 서슴지 않게 됐다.
검둘치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위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달성하고 사냥을 하러 간다는 군요."
"음, 나도 어서 녀석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강한 적과 맞서 싸울 줄 아는 남자야말로 매력이 철철 넘치는 것이지."
"그런데 최근에 그는 꽤 오랫동안 전투를 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랬지."
"시간이 많이 지난 만큼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을까요?"
"허허..."
검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웃고만 계실 때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싸우지 않았으니 감각을 잃어버려서..."
"둘치야."
"예, 스승님."
"맹수는 먹이를 잡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고양이인지 사자인지는 거기서 결정이 나는 법이지."
"맞습니다. 스승님."
말은 그렇게 하지만 검둘치는 스승의 말을 인정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뛰어난 운동선수라고 해도 실전을 오래 치르지 않으면 감각이 무디어지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감사라면 자신의 검을 한동안 떼어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네?"
"검과 나를 따로 둘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이 있은 다음에 검이 있는것이 아니겠는냐? 목적을 위하여, 더 높은 경지의 검만을
익히려고 스스로를 좁은 세상에 가뒤 두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검을 놓느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검을 끊임없이 떠올린다.
이 또한 수련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어쩌면 녀석은 내가 가르쳐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착착 과정을 밟아 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요새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보급품을 확인해!"
"이번에도 요새를 사수한다면 발칸 길드도 물러나게 될거야."
"이번의 총공격을 막아야 한다."
오데인 요새를 차지한 동맹 길드.
제국의 번영 길드와 오아시스, 메이파의 날개가 주축이 된 동맹군은 곧 분열으ㄹ 일으겼다.
오데인 요새의 어마어마한 가치. 그것을 제국의 번영 길드가 독식하려 했기 때문이다.
오아시스 길드와 메이파의 날개는 정당한 보상을 해 달라며 극렬하게 항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데인 요새를 탈환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숫자의 유저들이 제국의 번영 길드에 가입을 한 것이다. 그 힘을 기반으로 제국의 번영 길드는 중요한 공들을 독차지했다.
오아시스 길드는 본래 용병들이 모여서 만든 길드이다.
임무를 마치고 난 뒤 배신감과 함께 뿔뿔이 흩어졌지만, 메이파의 날개는 보복을 다짐하며 동맹에서 이탈했다.
본래 요새의 주인이던 발칸 길드에서도 칼을 갈고 있었다.
"우리의 것을 되찾아야 한다. 놈들에게 쓴맛을 보여 주자!"
길드 마스터 그레인 발칸은 그렇게 외치며 세력을 결집시켜 성의 탈환에 도전했지만, 몇 번의 패배를 겪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아 놓은 자본과 인맥으로 다시금 세력을 일으켰다. 메이타의 날개도 과거의 악연을 접어 둔 채 발칸 길드에 합류했다.
그러자 세력 면에서는 요새를 차지하고 있는 제국의 번영길드를 압도할 지경이었다.
브리튼 연합과 아이데른 왕국의 접경에 위치하여 엄청난 통관세를 거둘 수 있는 오데인 요새의 가치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
베르사 대륙의 모든 관심이 오데인 요새로 몰렸다.
오데인 요새의 막강한 수비력은 단지 숫자만 많다고 해서 뚫을 수 있는 건 아니기에, 어느 누구도 섣불리 승부를 점칠수는 없었다.
공성전이 벌어지기 2시간 전.
발칸 길드가 선전포고를 한 이후, 평원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오데인 요새 내부에서도 바쁘게 움직였다.
"1군단 도착했습니다."
"2군단 집결 끝. 성주님의 명령 기다립니다."
"3군단 전투태새 갖추었습니다. 인원 배치 완료하였습니다."
"4군단 보급 준비 다 마쳤습니다."
제국의 번영 길드는 각기 3,000명으로 나누어진 4개의 군단으로 개편했다.
1군단은 주력부대로 성벽 위에서 적과의 전투를 전담하고, 2군단은 성문이 부서질 때를 대비하여 그 뒤를 지킨다.
3군단은 궁수 부대와 마법사 부대였다. 이들은 후방 지원과 요충지에서의 공격을 맡았다.
4군단은 보급과 예비 병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머지 부족한 병력들은 용병을 모아서 충당하기로 했다.
오데인 요새를 지키는 NPC 병사들도 꽤 많은 편이니, 조금 불리하지만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번 전투에 오데인 요새를 사수하느냐 사수하지 못하느냐가 달려 있었다.
만약 패배한다면 제국의 번영 길드는 모든 것을 잃어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발칸 길드에서 내기로 한것의 3배의 보상을 약속하며 용병들을 모집했다.

오데인 요새의 후원.
그곳에도 일단의 용병들이 모여 있었다.
"자, 그러면 우리들의 임무는 우선 이곳에서 대기하는 겁니다. 전투가 벌어진 직후에 상황이 급해지면 우리들이 투입될 겁니다. 더 궁금하신 게 있나요?"
제국의 번영 길드에서 나온 대장 브라인의 말에 용병들은 그냥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러고느ㄴ 대충 무기를 손질하거나 멀리 성벽 위를 올려다 보았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기사들이 많은데."
"저것 봐. 마법사들이 날아다니고 있어."
"그만큼 이번 공성전이 치열하다는 소리지. 발칸 길드에서 칼을 갈고 있을테니까."
"그러면 우리가 죽을 확률도 조금은 높아진 건가?"
용병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공성전의 개시를 기다렸다.
용병들은 소속된 세력이 승리를 거두어야 의뢰금을 받을수 있었다.
제국의 번영 길드에서 내건 의뢰금은 1인당 10골드씩! 상대를 죽이면 5골드를 더 받고, 끝까지 살아남으면 20골드를 추가로 받는다.
전쟁에 참여한다는 짜릿한 느낌 때문에, 보상이 아니더라도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많았다.
둥! 둥! 둥! 둥!
뿌우우우!
이윽고 발칸 길드에서 모든 준비를 마쳤는지,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가 함께 들렸다.
"온다."
성벽 위에서 마법사들과 궁수들이 소란을 피우며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 아래에 있는 용병들에게도 보였다.
두두두두!
땅울 울리는 진동음.
"기사단이다. 발칸 길듸의 철십자 기사단이야."
"기사단이 진격한다."
"전쟁이 시작됐다!"
용병들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아!"
"전쟁이다! 놈들을 깨부숴라."
"오데인 요새를 지키자, 침략자로부터 요새를 사수하라!"
용병들이 괴성을 지르고, 제국의 번영 길드에서도 열심히 북을 두들기고 뿔피리를 불었다.
모두가 고조되어 버린 이때에. 테오도로는 아직도 앉아 있는 이를 목격하고는 다가갔다.
"겁을 집어 먹은 모양이군. 괜찮네. 다 그렇게 시작하고는 하니까."
전투 경험이 많으ㄴ 테오도르는 풋내기 용병을 안심시키며 다독여 주려고 했다. 전투가 벌어진다고 해도 그들이 속한 부대가 투입되려면 한동안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 풋내기 용병이나 상대하면서 자신의 뛰어남을 자랑하려는것이 목적이었다.
"아, 전투가 이제 시작됐군요."
"그렇다네. 그러고 보니 자네는 뭔가를 만들고 있었군. 인형인가?"
테오도르는 풋내기 용병이 만드는 나무 조각품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데인요새를 조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철십자 기사단.
한때에는 침략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서 요새를 탈환해야 하는 입장이자만 여전히 단일 세력으로는 이 근방에서 최강이었다.
그런 그들이 별로 의미 없는 첫 번째 교전에 나설 리가 없었다.
철십자 기사단은 전운을 고조시키는 역할만을 맡고 조용히 후방으로 빠졌다.
본격적인 전투는 그때부터였다.
발칸 길드의 수장이 피를 토하듯이 외쳤다.
"진군하라, 병사들이여! 동료들이여! 우리의 것을 다시 되찾는 것이다!"
그의 명령에 따라 수만 명의 유저들이 해일처럼 오데인 요새를 향해 달려들었다.
엄청난 광경이었다. 성벽 위에 있는 이들은 다들 가슴이 떨려 왔다.
"파이어 월!"
"데미지 샷!"
성벽 위에서 준비하고 있던 마법사들과 궁수들이 공격을 개시했다. 마법과 화살 공격은 바다에 조약돌을 던진 듯 티도 나지 않았다.
정령과 골렘이 날뛰고, 어쌔신들이 잠입하여 마법사들의 목을 벤다.
마침내 오데인 요새 공방전이 개시된 것이었다.
사다리와 밧줄이 걸리고, 성벽을 오르려는 자들과 이를 막으려는 자들 사이에서 전투가 벌여졌다. 그리고 발리스타와 발석기가 쇠뇌와 거대한 돌을 뿜어냈다.
지금까지는 오데인 요새의 가고하다고밖에 표현되지 않을 방어력때문에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
발칸 길드는 막대한 자금을 사용했다. 요새를 보유하는 동안 축적해 놓은 자금을 아끼지 않고 풀어서 공성 병기들을 구입했다.
쿠구궁! 콰쾅!
막으려는 자와 돌파하려는 자들의 싸움!
오데인 요새 전역에 걸쳐서 벌어지는 장대한 전투였다.

브라인이 이끄는 용병대가 투입된 것은 전투가 벌어지고 나서 약 4시간이 흐른 후였다.
성벽은 이미 발칸 길드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러나 발칸 길드는 성벽을 장악하는 대가로 막대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NPC 궁수 부대와 마법사들의 공격으로 인하여 전체 전력의 삼분의 일 가까이가 희생되었다.
오데인 요새의 방어력. 그것이 유감없이 위력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말로 발칸 길드와 제국의 번영, 양 진영의 세력을 엇비슷해졌다고 할 수 있다.
공격대가 브라인 휘하의 용병대가 지키고 있는 연무장을 향해 뛰어왔다.
"모두들 반드시 자리를 지켜 주십시오."
브라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요새 안에서 도망칠 곳은 없었다.
용병들은 비장한 얼굴로 칼을 빼어 들었다. 어떤 이들은 도끼나 창을 뽑기도 했다. 사용하는 무기도 그 직업만큼이나 각양각색인 것이다.
다만 마법사나 정령사, 궁수의 직업을 가진 이들은 별도의 부대에 속해 있어서, 이곳에는 직접 전투를 하는 직업뿐이었다.
위드도 그들 틈에 섞여 있었다.
'역시 대단하군.'
오데인 요새 전투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직접 참여해 보니 정말로 장관이었다.
귀로 들리는 무수한 소음들.
마법이 작렬하고 사람이 죽는 비명 소리들.
이것들이 실제처럼 박진감을 더해 준다.
등줄기가 짜릿했다. 마법의 대륙을 할 때도 공성전에 참여해 본 경험은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전투에 대한 감각을 깨우기 위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전장에 참여한 것이다.
눈을 감아도 오데인 요새를 공격해 오는 적들의 존재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브라인의 용병대와 공격대는 즉시 나뭇조각을 이용해서 만든 가면을 얼굴에 착용했다. 나비가 금세 날아 오를 것 같은 가면!
"괴상한 놈이군. 나와 싸우는 것이 너의 불행이다. 우와합! 파워 어택!"
위드를 상대로 한 전사가 크게 검을 휘들렀다.
채앵!
위드는 가볍게 그의 검을 막아 주었다. 전투를 치른 지 너무 오래되어서 걱정을 했는데, 그것이 기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어깨가 움직이는 것만 보고도 상대의 공격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조각 검술!"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허점을 노린 위드의 검은 크리티컬을 터트리면서 상대방을 회색빛으로 만들었다.
"이익! 알톤을 주이다니!"
"복수다."
"제비베기!"
"천둥베기!"
"트리플 어택!"
3명의 적들이 저마다 기합을 외치면 동시에 덤벼들었다.
아마도 방금 해치운 이와 동료 사이인 것 같다. 하지만 검기를 이용한 스킬을 쓰지 않는 걸 보니 레벨이 200을 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위드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검을 바닥에 늘어뜨렸다. 그리고 3명의 공격을 그대로 맞아 주었다.
퍼퍼펑!
스킬들이 위드의 몸에 작렬했다.
그런데 어딘가 미묘하게 빗나가는 느낌이었다. 빛과 화염이 위드의 방어구나 옷에 닿을 때 슬쩍 미끄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라함의 가죽 갑옷!
광이 나도록 닦고 다려 놓은 갑옷이 적의 공격을 흘려 버린 것이었다.
"죽었겠지?"
"어서 아이템이나 줍자!"
위드를 죽인줄 알고 화색이 되어 있던 그들!
그러나 스킬의 효과가 사라지고 나서 나타난 위드를 보고 얼굴빛이 파리하게 변하고 말았다.
죽지 않고 멀쩡했던 것이다. 하다못해 입가에 피를 흘린 다거나 하는,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은 티고 나지 않는다.
이들이 보기에 이 순간 위드는 대마왕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재 위드의 총 생명력은 9,000이 넘었다. 각 스킬들이 중급에 오르면서 늘어나게 된 보너스 스탯!
거기에 낚시 스킬은 총생명력을 늘려 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적의 스킬들이 깎아 놓은 피해는 겨우 300도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약하군.'
위드는 적들에게 실망했다.
죽도록 노가다를 해서 얻은 다림질과 방어구 닦기가 주는 효과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면서!
"조각 검술!"
위드는 상대를 거침없이 공격했다.
검광이 번뜩일 때마다 상대의 생명력이 쭉쭉 떨어졌다.
직접적인 레벨의 차이는얼마 안난다고 해도 위드의 스탯은 비정상적으로높았다.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조각사만의 검술에, 감 갈기 스킬이 주는 공격력 강화 효과.
동료의 복수를 위해 나선 3명을 잡는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미처 대응할 새도 없이 공격을 퍼부어서 회색빛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띠링!

-현재까지 적을 죽인 횟수:4
전쟁이 승리로 끝날 때에는 공적에 따라 의뢰 보상금을 받게 됩니다.
추가로 명성이나 작위가 부여될 수 있습니다.

위드는 세 사람이 죽은 자리로 몸을 날렸다. 그곳에서 땅바닥을 한 바퀴 구르고 일어나자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은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쓱싹!
셋을 잡는 것도 빠르지만 떨어진 아이템을 줍는 동작이야 말로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듯이 쾌속했다.
"이야합"
위드는 쉴 틈도 없이 다른 적들과 싸웠다.
검광이 번뜩이고 스킬을 시전할 때마다 맥없이 죽어 나가는 적들!
위드가 강한 탓도 있지만 상대의 레벨이 170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로열 로드의 최상위 랭커들!
그들은 공성전에 좀처럼 참여하지 않는다. 자칫 실수라도 해서 죽는날에는 얻게 되는 페널티가 너무나도 컸던 것.
일반용병들이나 병사들은 돈을 풀어서 얼마든지 모을 수 있지만 진정한 고수들은 철저하게 자기 길드의 전투에만 동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길드에선 레벨이 높은 이들을 영입하려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적들 중에는 레벨 250대의 중고수들도 다수 있었다. 숫자를 채워 주기 위한 병력이 아니라 실질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
공격대를 인솔하러 온 지휘관들이 그러했다.
위드가 열심히 살육전을 펼치자 마침내 그들이 나섰다.
"비켜라. 저놈은 내가 맡겠다."
그러나 위드의 시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면서 위험한 던전에서 전투를 치렀다. 그 덕분에 주변 상황을 살피는 눈치만큼은 최고였던 것.
"칠성보!"
1급 무술서에 수록된 보법을 도주에 사용하는 위드!
'남의 집 싸움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결코 아니다.
레벨 250대의 중고수라고 해도 별로 두렵지는 않았다. 진혈의 뱀파이어 수백과 싸웠던 위드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들을 꺾으면 더 강한 자가 나타나기 마련.
위드는 아군을 최대한 이용했다.
강한 자가 다가오면 강한 아군 근처로 피한다. 그래서 둘을 싸움 붙이고 위드는 편안하게 다른 적들을 상대했다.
"조각 검술!"
치사하고 야비한 방법!
그러나 위드는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적과 적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
위드는 난폭하ㄴ 폭군이 되었다.
브라인 용병대장을 비롯해서 아군의 지휘관들이 자신과 걸맞은 상대와 피 튀기며 혈전을 벌이는 가운데, 약한 적들만 골라서 싸우며 최고의 전공을 올리는 것이다.
"이이익!"
"저놈부터 죽여!"
적들이 한꺼번에 위드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위드보다 훨씬 약했다.
적들 다수가 위드에게 몰리자 팽팽하던 균형이 깨졌다.
방어를 하던 브라인의 용병대는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위드가 실속을 톡톡히 챙긴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전투가 무서워.
전투를 해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혹시 감각을 잃어비리진 않았을까?
미리 했던 우려들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전투는 하루 종일 치열하게 전개 됐다.
무수히 많은 피가 뿌려진 오데인 요새!
제국의 번영 길드에서는 이번에도 승리를 거머쥐고 오데인 요새를 사수할 수 있었다.
전력을 기울인 시도가 좌절된 발칸 길드에서는 당분간 힘을 비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제국의 번영 길드가 승리한 데엔 오데인 요새의 두꺼운 성벽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내성으로 향하는 길목이 끝까지 뚫리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유저들 사이에 전설이 된 사람이 있었다.
나비 가면을 쓴 용병!
동료까지 거침없이 이용하는 야비함과 치사함!
그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단돈 1쿠퍼도 남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검치 들의 레벨이 드디어 170을 넘었다.
사냥터만 전전하는 굻주린 이리 떼들!
미친 듯 사냥만 하고 있었으니 레벨이 빨리 오를 수밖에 없었다.
위드의 레벨이 180 정도일때 시작하였으니 매우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사냥에 열중하던 검치 들!
그들은 로자임 왕국 남부의 이름 모를 계곡이나 산들을 돌아다니면서 전투를 치렀다.
제대로 된 보급품도 없이 다들 거지 꼴이지만 즐거웠다.
사람들이 많이 개척하지 않은 곳을 다니면서 퀘스트를 수행하는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검치 들은 서서히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그들의 행동을 고깝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저것들 왠지 기분이 나쁘군."
"유명하고 단체로 다니는 것들은 다 재수가 없단 말이야."
"죽여 버릴까?"
할마와 마르고가 중얼거렸다.
옆에는 레위스와 그랜도 함께였다.
"놈들을 죽이고 레벨이나 올리자."
"아이템도 좀 뺏고, 나 그때 잃어버리고 나서 아직도 흉갑이 없다니까."
"괜찮은 생각이야."
뒤치기 4인조!
다리 짧은 이의 무덤에서 위드와 마판을 함정에 빠뜨리려다가 역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4인조는 클라우드 길드의
추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로자임 왕국으로 넘어왔다.
그 후로 몇 달이 지났지만 그들의 레벨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몬스터보다는 사람 사냥을 좋아하는 뒤치기 4인조.
로자임 왕국에서는 그들이 죽일 만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스킬의 레벨도 오르지 않아 무료함을 느끼던 차에 검치 들을 발견했다.
"재밌겠다. 어서 하자!"
언제나 그랬듯 나쁜 일에는 그랜이 가장 먼저 앞장를 섰다.
"킥킥킥."
"낄낄."
할마와 레위스도 웃으면서 따라붙었다.
4인조는 동료라고 해도 언제나 배신당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
이미 한차레 배신을 겪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들은 되살아난 이후로 다시 모였다.
"혼자 사람 죽이는 건 재미가 없어."
"이야기라도 하면서 죽여야지."
"암, 역시 너희들과 함께 죽이는 게 최고야."
"언제든 배반해. 나도 배반할 테니까."
동료애 따위는 추호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단순한 재미를 위해 모인 이들!
뒤치기 4인조는 검치 들이 이동하고 있는 길을 떡하니 가로막고 섰다. 500이 넘는 이들을 전부 상대하는 건 그들로서도 부담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딱 5명이 있는 파티를 목표로 삼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그게 검치와 검둘치, 감삼치, 검사치, 검오치로 구성된 파티였다.
"응?"
"뭐 하는 놈이지?"
검치 들이 멀뚱멀뚱 서서 쳐다보자, 그랜은 빙긋 미소만 지었다. 그러고는 검을 들어 스킬을 시전했다.
"플레임 소드!"
그랜은 예고도 없이 가장 선두에 있던 검치를 공격했다.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걸어오던 검치를 향해, 활활 타오르는 검을 휘두르며 뛰어든 것이었다.
"스승님!"
"위험합니다."
검둘치와 검삼치가 크게 입을 벌렸다.
검치는 산책이라도 하듯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한 발자국 물러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검을 뽑아 들었다. 물 흐르듯이 가벼운 대응이었고, 막힘이 없었다.
'멍청한 놈.'
그랜은 눈을 빛냈다.
플레임 소드는 힘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 화염이 폭발하는 검술이다.
검치가 피하기 위해서 물러났다면 이는 오산! 오히려 화염을 뒤집어쓰기에 좋은 것이다.
그런데 막 휘둘러지고 있는 검에 검치가 자신이 검을 내밀어서 마주 대었다.
'무슨 해괴한 짓이야?'
이때까지만 해도 그랜은 별 생각이 없었다. 막강한 자신의 힘을 막아 낼 리 없다고 믿었다.
'어라?'
그런데 미묘한 힘이 가해지면서 검을 그대로 들고 있기가 힘들어졌다. 아차, 하는 사이에 플레임 소드에서 뿜어진 막강한 힘이
엉뚱한 좌측 숲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랜이 어찌 손 쓸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콰과광!
엉뚱한 곳에서 폭발한 플레임 소드.
검둘치와 검삼치는 눈을 부릅떴다.
"사량벌천근!"
넉 냥의 힘으로 천근의 무게를 옮기는 기술!
검사치와 검오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무예인으로 전직을 하면서 몇몇 기술들을 새롭게 습득하였다. 그때 얻은 기술 중에서도 제일 쓸모없어 보이던 기술,
사량발천근. 마나 소비도 50밖에 안 되는 데다가 사용하기도 극히 까다로운 기술이다.
우선 적 공격의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힘의 흐름을 살짝 뒤틀어 주어야 한다. 스킬만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 힘이 흐르는 맥을 스스로 인지하고 찾아내야만 했다.
스킬이 발동되는 것은 그 이후였다.
사량발천근을 사용하면 자신을 공격해 오는 힘의 경로를 미세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전투 전문 직업 무예인!
그만큼 뛰어난 싸움 실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검치는 무려 다섯 차례나 연속으로 사량 발천근을 사용하면서 플레임 소드의 공격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흘려보내 버렸다.
"이런....."
자신감 넘치던 기술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간 그랜의 몸이 얼어붙었다.
검치는 느긋하게 물었다.
"넌 뭐야? 인간형 몬스터냐? 데스 나이트보다 센데. 아이템은 괜찮은 거 주겠지?"
"그, 그건...."
그랜은 너무나도 놀라서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판단.
어쨌든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검치는 가볍게 이를 피하며 매타작을 시작했다.
퍼버버벅!
"어쭈? 안 죽네?"
"끄아아악!"
그랜은 높은 방어력과 생명력 덕에 잘 죽지 않았다.
검치는 교묘하게 아픈 급소들만을 공격하며 그랜을 두들겨 팼다.
레위스나 할마, 마르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놈들 몬스터야?"
"일브러 찾아가지 않아도 알아서 나타나네."
"심심하던 차에 잘 결렸다."
"어디 한번 죽어 봐라!"
검둘치, 검삼치, 검사치, 검오치의 처절한 응징!
다른 이들이라면 살인자가 될 때 받는 페널티 때문에라도 웬만하면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검치 들에게는 그러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숫제 사람을 몬스터로 취급하면서 패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4인조보다도 훨씬 잔인한 감이 있었다.
4인조는 처참하게 두들겨 맞고 로그아웃을 당했다.


하루가 지난 후에 다시 모인 4인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으으... 어제 일은 떠울리고 싶지도 않아."
"그러면 복수를 포기할까?"
4인조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역시 나쁜 일에는 가장 앞장서는 그랜이 나섰다.
"이대로는 억울해서 안 되겠다."
"해야지."
"우리들만으로는 무리린데...."
레위스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어제의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것!
"우리들에게는 이제 길드가 있잖아. 거기서 사람을 좀 데려오자."
로자임 왕국은 4인조의 천국이었다.
치안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아 4인조 같은 수배범들이 돌아다니기에는 천혜의 환경이다.
뒤치기 4인조는 이곳에서 다리우스의 이카 길드에 가입했다. 세력을 확대하려던 이카 길드는 뒤치기 4인조들의 악명을 알면서도 받아들였다.
4인조는 곧 이카 길드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남부에 있는 이카 길드의 전투원들은 무려 300여 명이나 되었다. 4인조는 적당한 거짓말로 그들을 구슬렸고,
평소에 검치 들을 고깝게 보던 이카 길드에서는 아예 전면적인 토벌전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놈들을 죽여라!"
"우와아!"
뒤치기 4인조는 30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검치 들을 불시에 습격했다.
몸을 숨기고 있던 어쌔신이 기습을 가하고, 저격수가 쇠뇌를 쏘았다.
"으아악!"
"적이다."
모여 있던 검치 들 중 많은 수가 갑작스러운 기습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평범한 필드에서 다른 유저들이 공격을
가해 올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살아남은 검치 들은 서로 등을 맞대고 항전하기 시작했다.
"큭! 이놈들, 생각보다 강하다."
"모두 거리를 벌려. 괜히 접근하지 마라!"
검치 들을 우습게 보고 다가가던 전사나 워리어, 권사들은 그들의 완강한 저항에 목숨일 잃고 말았다.
그래서 아예 원거리 공격 부대를 이용해서 검치 들을 공격했다.
"아이스 스톰!"
"썬더 볼트!"
얼음 조각들이 날리고 천둥 벼락이 쳤다.
아직까지 마법사들을 마법사들을 상대해 본 적이 없는 검치 들에게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연속적인 마법 공격과 화살 공격 앞에, 검치 들의 생명력은 크게 떨어졌다.
"제기랄!"
검치 들은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통쾌하게 싸워 볼 텐데 원거리 공격만 퍼부으니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방패도 제대로 들고 있지 않아 화살 공격에 더욱 피해가 컸다.
"개죽음당할 바에는 한 놈이라도 죽이겠다!"
몇 명의 수련생들이 억지로 다가가려다가 집중 공격을 당하여 회색빛으로 변했다.
"이럴 수가...."
"저놈들은 대체 누구기에 우릴 공격하는 거지?"
검치와 사범들의 얼굴에 처음으로 심각한 위기감이 떠올랐다. 보리빵이 없어서 굶어 죽은 적은 있지만, 적에게 몰려서 전멸 위기에 처한 건 처음이다.
검둘치가 외쳤다.
"스승님! 이대로라면 다 죽겠습니다."
"안 되겠다. 도망가자."
"어디로...."
"숲으로 가자. 놈들도 쫓아오지 못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모두 나를 따르라."
검치가 검둘치 등과 함께 선두에서 포위망을 돌파했다.
검을 좌우로 휘저으며 돌격하는 검치 들.
그 와중에도 쐐기형으로 진형을 이루고 달렸기에 쏟아지는 화살에도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퍼부었지만 검치 들은 전속력으로 질주. 공격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됐다."
"살아남은 인원은?"
"260명이 조금 넘는 것 같습니다. 스승님."
"거의 절반 가까이 죽었구나."
검치 들은 겨우 한숨을 돌리며 붕대를 몸에 감았다. 가난한 그들은, 가지고 다니는 붕대도 그리 많지 않았다.
"놈들이 저기 있다!"
검치 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추적자들이 나타났다.
"어떻게 이곳까지...?"
"도둑이나 암살자들을 동원해 우리의 흔적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검치 들은 낭패감에 사로잡혔다. 직업이 무예인인 그들에게는 따로 자신들의 흔적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추적자들에 의해 끝까지 몰릴 수밖에 없었다.
검치 들은 부상을 안고 더욱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부상을 회복할 시간도 없이 적들의 추격과 공격이 계속 이어진다.
"검둘치, 검삼치! 그리고 너희들."
"예,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이대로 흩어져서 일부라도 살겠느냐, 아니면 끝까지 싸우겠는냐?"
검치의 물음에, 살아남은 이들은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승님, 우리는 사나이입니다."
"그래, 알겠다. 어디 한번 시원하게 싸워 보자."
검치들은 그때부터 숲을이용하며 다가오는 적들과 본격적으로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미 부상이 크게 악화되어 있던 검치 들에게 더 이상의 전투는 무리였다.
평소에 연마해 놓은 검술로 버티긴 하지만, 적들은 온갖 마법을 몸에 걸고 부상을 당하면 신관의 치료를 받으면서 그들을 압박해 왔다.
결국 무력이 약한 수련생들부터 속속 죽어 나갔고, 사범들도 밀려드는 적들에 의해 하나 들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으윽,스승님!"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사범들은 생명력이 다 떨어져 가는 마지막 순간에 검치를 바라보았다.
혼자 남은 검치는 두 다리로 꿋꿋하게 서서 의연하게 버티고 있었다.

"......"
도장에는 침중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수련생들과 사범들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정좌한 채 누군가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안현도가 들어 있는 캡슐의 문이 위로 미끄러지듯이 열렸다.
"스승님!"
정일훈과 최종범, 마상범과 이인도는 숨 막힐 듯한 긴장감에 몸을 떨었다.
결국 안현도도 목숨을 잃고 로그아웃을 당한 것이었다.
하기야 적들의 숫자가 수백이었다.
아무리 검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 죽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욱 이상하리라.
평소 안현도의 성격이라면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것이 사범들을 움츠러들게 만든 이유였다.
안현도의 입이 아주 천천히 열렸다.
"나를 죽인 놈은..."
"...."
"그랜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러고는 검으로 나의 목을 치더군."
검치의 최후는 그랜에게 목이 날아가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수련생들과 사범들은 격분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안현도란 절대적인 존재였다. 가끔 엉뚱한 구석도 없진 않지만 최소한 검으로는 범접하지 못할 사람.
솔직히 가끔은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안현도의 도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에는 얼마나 큰 희열을 맛보았던가.
안현도는 그들의 우상이었다.
그 우상이 적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죽었다는 데에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화내고 있는 이때에 안현도는 빙긋이 웃었다.
"한 30년쯤 된 것 같다."
"....?"
"내가 진 것이 말이다."
"적들이 너무 많았을 뿐입니다."
"아니야, 일훈아, 적의 숫자나 레벨은 변명이 될 수 없지. 그래서 더욱 로열 로드가 재미있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스승님!"
사범들과 수련생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안현도가 주먹을 높이 들었다.
"재밌었으니 됐다! 사나이답게 넓은 가슴으로 이해해야지. 그저 로열 로드이지 않느냐. 하하하!"
그제야 졸이던 가슴을 펴게 된 사범들과 수련생들이었다.
"오오! 재밌다."
"역시 화끈한 싸움이었어!"
"좀 더 레벨을 올려서 확실하게 갚아 줘야지!"
그렇지만 이어진 안현도의 행동에 모두들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뚜벅뚜벅 벽으로 걸어가더니 칠판에 몇 개의 이름들을 적기 시작한 것이다.

그랜, 할마, 마르고,레위스, 이카 길드.
그리고 맨 앞에는 비아키스의 이름을 적었다.
안현도는 웃으며 말했다.
"절대 지우지 마라."


"이겼다."
그랜과 뒤치기 4인조들은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이카 길드를 데리고 온 보람이 있었다. 검치 들을 모조리 죽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뒤치기 4인조는 전리품을 나누기 위해서 검치 들이 죽은 자리를 살폈다.
사실 살인을 할 때에는 죽이는 맛도 있지만, 그 후에 얻는 전리품을 무시할 수 없었다.
몇날 며칠을 사냥해도 구하기 힘든 장비를 살인을 통해서 쉽게 얻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디 뭐가 있는지 볼까?"
탐욕스러운 할마와 마르고가 제일 먼저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곧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어, 없다!"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이템이 없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럴 리가 없잖아. 잘 찾아봐!"
그랜과 레위스도 열심히 전리품을 찾아서 뒤적거려 보았다. 그런데 검치 들이 떨어뜨린 것은 긴급하게 수리할 필요가 있는 검 몇 자루 그리고 망토 3장.
나머지는 전부 보리빵이었다.


던전 사냥


"그러면 지금부터 베르사 대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로열 로드의 사건들을 소개해 드리는 시간. 오늘도 변함없이 오주완 씨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혜민 씨의 미소가 오늘따라 더 향기로워 보이는 군요."
"호호, 나오지자마자 제게 아부를 하시는 걸 보니 오늘은 별로 말씀해 주실 것이 없는 모양이죠?"
"그렇습니다. 아침에 삼겹살을 먹은 것으로 추측되는 혜민 씨의 식성을 제외한다면요."
"어머, 무슨 소리예요? 삼겹살은 아침에 먹어야 제 맛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 냄새가 나요?"
오주완과 신혜민.
게임 방송답게 젊은 두 사람의 진행자가 티격태격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이현은 밥을 먹으며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CTS미디어의 방송들은 재미가 없으니가.'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서는 돈을 벌기 어렵다. CTS미디어에서는 가장 예쁘고 유명한 연예인들을 섭외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톡톡 튀는 신선한 맛이 모자랐다.
저마다 자신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또 스스로의 캐릭터 자랑에만 열을 올리다 보니, 프로그램 자체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에 비하면 KMC미디어의 방송은 보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정보력도 뛰어난 편이라 베르사 대륙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귀신같이 알아 와서 방송을 하곤 했다.
베르사 대륙이 워낙에 넓고 사용하는 사람의 숫자 또한 많다 보니 방송사들의 정보 수집능력도 시청률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오늘은 대단한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여러분, 주목해 주세요. 드디어 하벤 왕국의 바드레이라는 유저가 마의 벽으로 불리던 레벨370을 돌파했습니다."
"와! 굉장하네요."
"흑기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바드레이는 현존 최고 수준의 랭커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죠. 그런 그가 이번에
전사의 팝에서 레벨을 공인 받았습니다. 드러난 그의 레벨은 무려 370. 현재 최고 레벨의 유저입니다. 그러면 잠시 화면을 보시죠."
전사의 탑.
대륙의 강한 자들이 모여 힘을 겨루고 증명하는 장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검은색 장비로 무장한 기사가 바바리안 워리어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바바리안 워리어는 괴성을 지르며 흑기사를 몰아붙였다. 거검을 풍차처럼 돌리면서 압박하는 기세는 일품이었다. 하지만 흑기사는
특이한 스텝으로 이를 피하거나, 검에 기를 씌워서 받아쳤다.
검과 검.
최고 수준에 오른 이답게 현란한 스킬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붉은 용이 춤을 추었다.
힘으로 상대를 가지고 노는 흑기사!
결국 승부는 흑기사의 승리로 끝이 났다.
"방금 보신 화면은 전사의 탑에서 바드레이라는 유저가 레벨을 공인받는 장면입니다. 전사의 탑 소속의 가드와 싸우면서 자신의 무력을
보여 주는 것인데요, 여기서 370이라는 경이로운 레벨이 나왔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이 전투에서 바드레이가 사용한 스킬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입니다."
"정말 굉장하네요. 그런데 지금까지 숨겨 왔던 레벨을 공개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네, 그가 소속된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이번에 하벤 왕국의 첫 번째 성인 일루인을 장악하고, 패도의 길을 걷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타 세력들에게 전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네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그만한 역량이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바드레이가 있으니까요."
"실질적으로 길드 마스터가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헤르메스 길드의 얼굴 마담은 바드레이라는 유저였죠. 전사의 탑에서 레벨을 공개한
것은 헤르메스 길드가 대대적인 세력 확충에 나서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 후로 몇 가지 평범한 정보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떤 마법사의 던전이 발굴되었다거나, 혹은 어디의 어떤 길드들이 전쟁을 선포했다는 소식들이 이어졌다.
베르사 대륙에서는 정기적으로 도적 떼가 들끓기도 하고, 흉년, 모래 폭풍도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잘 모르는 지역을 돌아다니다가는 큰 사건에 휘말리기 쉬웠다.
'370이라...'
이현의 머릿속에서는 바드레이의 레벨이 떠나지를 않았다.
마법의 대륙에서는 이현이 지존이었다. 그런데 지존에 오르기 전까지는 별로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사냥터에선 다른 이들과 대화도 나누지 않고 오직 사냥만 했다. 인벤토리에 아이템이 가득 차면 그걸 처분하기 위해서 가끔 마을을 방문하는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존의 자리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지 못했다. 캐릭터를 처분할 때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 정도였다.
'바드레이라는 캐릭터...팔면 꽤 비쌀 테지?'
마법의 대륙과는 사용자 숫자에서 비교도 할 수 없는 로열 로드.
지금 이 시간에도 수백만 명이 접속하고 있을 것이다. 전체 이용자 숫자로만 따지면 억 단위가 넘는다.
직장인들, 혹은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휴양을 목적으로 로열 로드를 하고 있을 정도니까.
낚시 스킬을 익히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가족 단위, 혹은 회사 단위로 벤사 강에 놀러 오는 인물들이 꽤 되었다.
멋진 의상과 장비, 호화로운 음식들을 즐기는 그들의 레벨은 불과 50도 안 되었다.
현질.
현금으로 아이템과 돈을 사서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진짜 휴양을 온 것처럼 베르사 대륙에서 피로를 풀고 간다. 따로 일주일씩 휴가를 내지 않더라도 주말에 캡슐만
있으면 접속을 해서 쉴 수 있으니 좋은 휴양지가 따로 없는 것이다.
몇 번 쓰지도 않을 아이템을 비싼 값에 구입해서 몬스터들과 싸워 보기도 하고, 혹은 애인 앞에서 멋을 부리기도 한다.
이현은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고객이라고 여겼다.
그들이 있기에 조금이라도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말단 회사원이나 이사들, 기업체의 사장들까지도 로열 로드를 할 정도이니 최고의 레벨에 오른 캐릭터의 가치는 천문학적일 것이다.
그러나 바드레이는 절대로 자신의 캐릭터를 판매하지 않을 것이다. 가치를 안다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마법의 대륙의 경우에는 저무는 해였다. 한때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추억의 게임이랄까.
반면에 로열 로드는 향후 10년간은 절대적인 위치를 유지할 것이다. 최고의 캐릭터를 소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한데 굳이 판매할 이유가 없다.
"네, 그러면 오주완 씨, 다른 소식들은 더 없나요? 오늘은 베르사 대륙 이야기 시간이 좀 짧은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베르사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 이야기하려면 아마 24시간도 모자랄 것입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굉장한 모험들이 벌어지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 그렇게 뜸만 들이지 마시고 빨리 좀 말씀해 주세요."
"혜민 씨, 혹시 생산 스킬을 좋아하십니까?"
"음, 좋아해요."
"좀 더 진지하게 대답해 보세요."
"에...무언거 열정을 가지고 만들어 내는 사람이면 좋아해요."
"그러면 잘되었군요. 한 가지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재봉과 대장일, 요리를 모두 중급까지 올린 유저가 나타났습니다."
"와! 대단해요!"
이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재봉, 대장일, 요리를 전부 중급까지 올린 사람이 있다고?'
본인이 직접 해 봤으니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뜻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요리의 경우는 정말 노가다지. 재봉이나 대장일은 재료가 좋다면 그런대로 빨리 올릴 수도 있지만...
아니지, 내 경우는 손재주 스킬 덕분에 2배 이상 빨리 올린 거고, 다른 사람이라면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재봉이나 대장장이나 초기에는 나오는 것 없이 돈만 들어가는 직업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모두를 중급에 올린 사람이 있다고는 믿기 힘들었다.
신혜민이 귀엽게 안달하는 표정을 지으며 재촉했다.
"그러면 그 유저 분과 인터뷰를 해 보셨어요? 세 가지 생산 스킬을 동시에 익히는 유저 분이라면 굉장한 말을 해주실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저희들이 그 첩보를 입수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의 일이었는데요...."
"오주완 씨가 인터뷰에 성공하지 못하셨다니 믿어지지가 않네요."
"예. 저로서도 나름대로 바쁘기도 했고, 제 경우는 그런 유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했거든요. 나중에 그가 만든 여러
아이템들이 웹사이트에 오른 걸 보고서야 확신을 가지고 인터뷰를 하러 갔지만, 이미 늦어 버린 후였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장인의 무지개 천이라는 1등급 재료로 만든 옷과 방어구들을 경매에 붙여 큰 이득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마침 자료 화면을 입수할 수 있었으니 같이 보시죠."
그러면서 방송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은 번화한 중세의 도시를 비추어 주었다.
여러 특이한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들. 신전과 석탑, 넓은 정원을 가진 저택과 2~3층짜리 건물들. 멀리는 콜로세움도 보이고
마차와 말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게에서는 가격을 흥정하는 주인과 손님의 말다툼도 있다.
그리고 넓은 공터에서 경매가 벌어진다.
한 유저가 화려한 일곱 가지 색상의 옷들을 내놓고 팔고 있는데, 유저들이 벌 떼처럼 모여들었다. 그러고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이었다.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은 이현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마판 님이구나. 그러면 세 가지 생산 스킬이 중급에 오른 사람이라면....'
오주완이 말한 유저란 바로 이현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조각술과 낚시까지 중급에 오른 사실을 공개한다면 오주완은 기절초풍을 할지도 모른다.
'굳이 밝힐 이유도 없지만...'
방송 화면에서는 경매의 진행을 실감 나게 보여 주었다.
여기저기서 불붙은 가격 경쟁. 신혜민과 오주완의 감칠 맛 나는 발언들로 더욱 흥미진진해진 경매였다.
경매가 졸료되자 화면이 다시 신혜민과 오주완이 있는 스튜디어로 전환되었ㄷ.
그들의 뒤에 비치는 스크린에는 경매로 인한 수익금이 대략 올라와 있었다. 또한 이현이 마판을 통해서 팔아 치운 물건들의 정보도 있었다.
"장인의 무지개 천! 이 재료를 이용해 중급 재봉사가 만든 옷은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주완이 방송인답지 않게 침을 튀기며 말했다.
그만큼 좋은 아이템이라는 이야기였다.

희귀한 무지개 튜닉:내구110/110. 방어력 55.
장인의 무지개 천으로 만들어진 튜닉.
높은 예술성을 바탕으로 제작된 옷으로,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기에는 조금 아까울 듯하다.
제한:레벨 150. 힘 80. 민첩 80.
옵션:일반 화살 공격의 피해를 85% 감소.
화염 마법에 내구력이 줄어들지 않음.
전격계 마법을 20% 확률로 차단.
둔기류 공격에 대해 치명상을 받지 않음.
명성100상승.
기품20상승.
예술15상승.
민첩10상승.

내구력이 높은 건 순전히 손재주 스킬덕분이었다. 게다가 천으로 만든 아이템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높은 방어력.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인의 무지개 천이 부여하는 일곱 가지 특성!
보통 두 가지나 세 가지쯤은 쓸모없는 것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곱 가지 모두 좋은 옵션들만 걸려 있었다.
방송에 나온 물건은 이현도 하나밖에 만들지 못한 유니크 옷이다.
재봉의 유니크 옷은 조각술의 걸작, 명작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날 이후로 이 유저는 다시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가 나타난다면 그곳이 어디든지 저 오주완이 달려 가서 인터뷰를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현은 번거로운 일은 질색이었다.
캐릭터 정보들이 알려진다면 장점도 생기겠지만 단점도 따르기 마련이다. 우선 만드는 물건을 팔기에는 좋다. 하지만
어디든 따라오려는 이들로 인해 사냥이나 퀘스트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인터뷰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을 예상하며 일부러 마판에게 대신 경매를 진행시킨 것이다.
"아! 아쉽네요. 그러면 다음 소식을 전해 주세요. 마지막 소식인가요, 오주완 씨?"
"예. 이번에 마지막으로 전해 드릴 소식. 오데인 요새 공방전입니다. 마침내 제국의 번영 길드가 발칸 길드의 침공을
무력화시키고 승리를 차지하였습니다. 당분간 제국의 번영 길드에 도전할 만한 세력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며,
오데인 요새의 세율은 전후 복구 비용 마련이라는 명목으로 70%로 늘어났습니다."
"원성이 자자 하겠군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죠. 성을 차지한 쪽에서 세율을 정하는 것이니까요. 사냥터와 교역을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유저들이
오데인 요새를 이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 그러면 전투화면으로...."
다시금 방송의 화면이 바뀌었다.
오데인 요새를 빼앗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 두 세력.
방송 화면은 그 웅장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매우 높은 장소에서 넓게 비추고 있었다. 아마도 마법사 유저가 직접 날아다니면서
관찰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화면을 구성했을 것으로 짐작이 됐다.
대규모 격전이 벌어진다. 공격자들이 우르르 밀려들고, 수비하는 제국의 번영 길드느ㄴ 연달아 퇴각을 한다.
그러나 결국 승리한 쪽은 제국의 번영 길드였다. 요새 내부의 지형적인 요소를 이용해서 하루 동안 수비에 성공한 것이다.
"이번 전투에 참여한 인원은...."
거기까지 본 이현은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간단히 몸을 씩고 캡슐에 들어갔다.


로열 로드에 접속한 위드는 아직도 오데인 요새에 있었다.
공성전이 끝난 이후로 바로 접속 종료를 하고 지금 다시 들어온 것이다.
광장 주변에는 분주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성전이 벌어진 동안에는 일반 유저들이 요새의 물품을 구입하지도 못하고,
상단들도 요새를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들었어? 바드레이라는 유저의 레벨이 370을 넘었다고 하더라고."
"헤르메스 길드에는 경사가 겹쳤군."
"벌써 하벤 왕국에는 방문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던걸."
"언제 우리도 바드레이나 구경하러 하벤 왕국으로 놀러 갈까?"
"그것도 재밌겠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 전의 방송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실질적으로 행동하는 세상은 로열 로드.
바드레이는 이들의 정점에 서 있었다.
황제, 혹은 무신처럼 추앙을 받는 존재이다. 그의 전투술 하나라도 동영상으로 뜨면 수백만 건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할 정도다.
로열 로드는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점을 충분히 따르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전투는 벌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스킬이나 스탯만 열심히 올린다고 해서 맞지도 않은 공격이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실전 격투기처럼 완벽하게 현실적이지도 않다. 힘이나 민첩 스탯에 따라서 육체적인 능력이 변하고, 소위 스킬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진 능력을 얼마나 잘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요소가 매우 중요했다.
어떤 스킬을 조합하고 어떤 식으로 몬스터와 싸우는가.
자신이 능력을 조명하고 밝혀내는 부분도 로열 로드의 즐거움인 것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를 잡아 내는 유저들의 전투, 혹은 높은 레벨에 오른 유저들 간의 전투는 그러한 이유로 큰 인기를 끌었다.
바드레이에 대해서 한참을 떠들던 유저들은 곧이어 자신들의 일을 시작했다.
"성직자 구합니다. 레벨170 이상으로요!"
"원거리 공격 가능하신 분, 우대해요."
"레벨210 검사가 쓸만한 검 구합니다. 힘을 추가시켜 주는 것으로 사고 싶습니다."
광장은 여전히 사냥 파티를 구하는 이들로 붐볐다.
현재 위드의 레벨은 230. 228에서 공성전을 치르는 동안에 2가 올랐다.
적을 죽이면 동일한 레벨의 몬스터로 인식하고 경험치를 먹게 되므로 2개의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죽었을 때의
페널티 역시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에 레벨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일부러 공성전에 참가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위드는 레벨 업으로 얻은 10개의 보너스 포인트를 모두 민첩에 분배한 뒤에 잡화점을 찾아 들어갔다.
요 근래 거의 생산 스킬의 향상에만 몰두하느라 전투와 관련된 물건들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오데인
요새의 특성 탓인지,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주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손님, 무엇을 찾으십니까?"
"음식 재료와약초, 붕대들을 사고 싶습니다."
"이쪽에 많이 있으니 천천히 둘러보세요."
오데인 요새에는 여느 성이나 마을과는 다르게 식료품 가게가 없었다. 약초를 비롯한 어지간한 물건들은 거의 다 잡화점에서 판매하는 실정이었다.
대신에 전투와 관련된 무기점이나 방어구점들은 여러 군데 있고, 판매하는 물품도 다양한 편이다.
자레트의 붉은 약초:소모품 아이템.2실버.
상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초.

실론이 푸른 약초:소모용 아이템. 4실버.
정신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약초.
식용으로 사용하며 소모된 마나를 보충하는 속도를 늘려 준다.

오데인 요새에서 판매하는 약초들은 종류도 다양하고 쉽게 캐낼 수 없는 고급품들도 많았다.
위드는 먼저 각 약초들을 200개씩 사고, 숫돌, 바느질용 실, 붕대와 음식 재료들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오데인
요새의 세율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졌지만, 전투를 승리한 쪽에 참여한 용병들은 일주일간 모든 상거래에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승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이었다.
위드는 준비를 마친 후에 오데인 요새의 성문을 나섰다.
목적지는 바스라 마굴!

푸른 로브를 입은 솔론과 그의 마법사 부대원들은 이를 악물었다.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 모두 준비하라."
비장하게 외치는 솔론.
그의 음성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부대원들은 혀를 끌끌 찰 뿐이었다.
'여자에게 미쳐 가지고....'
'이젠 잘 보이려고 별짓을 다하는군!'
그러나 이런 생각들도 잠시였다.
곧 도독 바투가 적들을 잔뜩 끌고 왔던 것이다. 적들의 정체를 알아본 눈썰미 좋은 궁수들이 고함을 질렀다.
"바스라 습격단이다!"
"숫자가 40명도 넘는군."
"바투, 수고했다. 마법사 부대, 공격 준비!"
솔론의 명령에 따라 마법사들이 일렬로 정렬해서 마법을 준비했다. 복잡한 수인을 맺고 시동어를 외친다.
"공격! 타오르는 불길이여, 휘몰아치고 분개하라. 파이어 스톰!"
솔론의 마법을 필두로 마법사 부대의 다양한 마법 공격들이 바투라는 도둑 뒤의 바스라 습격단에게 작렬했다.
괴로워하는 바스라 습격단.
솔론의 파티는 즉시 2차 공격을 이어 갔다.
"궁수 부대, 공격!"
피유웅! 퓽!
부상을 입은 바스라 습격단을 향해 궁수 부대들이 화살을 쏘았다. 그들의 화살은 적을 밀어내는 효과가 있어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 준다.
궁수들 중 일부는 스턴 샷을 쏘아 적들을 기절 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솔론이 마법사 부대들은 그사이에 또 다른 마법의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이글거리는 분노는 나의 뜻이 되어 적들을 막는 벽이 되어라. 파이어 월!"
"땅의 정령들아. 이 땅에 발붙일 자격이 없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을 똑바로 서 있지 못하게 하라. 그리스!"
바스라 습격단은 달려오던 그대로 미끄러져서 불길의 벽에 갇혔다.
"끄아아악!"
"뜨거워! 몸이 타들어 간다!"
이 마법까지도 뚫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근접전 캐릭터들이 빛을 발하게 되었다.
두 번의 마법 공격과 궁수들의 화살 공격에 바스라 습격단의 숫자는 7할 이상 줄어든 상태였다.
"죽음의 춤!"
한 여인이 작은 소검 두 자루를 양손에 들고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바스라 습격단을 스치고 지나갔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모!
그녀는 댄서인 화령이었다.
화령이 춤을 추며 지나칠 때마다 도적들은 큰 부상을 입고 괴로워했다. 주특기인 부비부비 댄스 외에 유일한 공격 춤이었다.
습격단의 숫자가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아서 굳이 부비부비 댄스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예쁘다."
"멋진걸."
화령이 춤을 추기 시작하자 솔론을 비롯한 마법사와 궁수들은 입을 떠억 벌리고 구경하는 데에 열중했다.
본래 예쁜 외모인 화령이 소검을 들고 춤을 추니 하늘에서 내려운 여신 같았던 것.
솔론의 파티는 가장 빠르게 화령의 팬 클럽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화령 님, 힘내세요!"
"방금 화령님이 날보고 윙크했어."
"아니야. 나라니까!"
퍼버벅!
급기야는 마법사들이 로브를 휘날리며 싸움을 벌이기까지 했다. 파티의 리더인 솔론이 나서서 조율해야 할 상황이지만, 실상 그가 가장 심하게 매료되어 있었다.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이때에, 뇌물을 바치고 파티에 들어온 제피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아이언 피슁!"
쇠로 된 낚싯줄로 적을 칭칭 감거나, 고리에 엮어서 멀리 던져 버린다.
낚시꾼인 제피에게 주어진 공격 기술인 것.
그러다가 2명의 습격단이 달려들자, 그는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낚시 고리에 미끼를 달아 멀리 던졌다.
"루어!"
그러자 습격단들은 제피는 제쳐 두고 멀리 있는 미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생명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던 바스라 습격단은 차례차례 화령과 제피에 의해 진압되었다.

-경험치를 3.49% 획득하셨습니다.

솔론의 파티원들은 한 번의 전투치고는 상당히 많은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바스라 마굴의 몬스터가 주는 경험치의 양은 엄청났다.
오데인 요새가 전략적인 요충지가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사냥터이다. 이런 사냥터들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나 지리적인 상황에 따라서 좋은 사냥토들이 존재했다.
솔론은 화령의 곁으로 오더니 잔뜩 느끼한 어조로 말했ㄷ.
"수천 마리의 나비가 제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중에 가장 아름다운 나비가 제 앞에 있군요,화령님."
"별것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화령님은 좀더 자신의 춤에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화령은 별로 대꾸를 하지 않았다. 벌써 몇 번째나 들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다음에 솔론이 할 말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참, 제가 마바로스 길드원이라는 이야기를 했던가요? 이 바스라 마굴은 우리 마바로스 길드에서 장악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제가
이끄는 파티에만 따라오시면 늘 이 정도의 경험치를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대형 마굴이나 던전은 특정 길드에서 장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곳의 보스 몬스터를 잡거나, 필드에서 도전 길드를 상대로 마굴의
주인 자리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다.
마굴을 차지하면 그곳에서 추가로 30%의 경험치를 더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쟁탈전이 벌어지는 경우는 극소수였다. 복잡한 세력으로 얽혀서 웬만한 길드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마바로스 길드는 오데인 요새 공방전에서 당시 제국의 번영 길드 쪽의 동맹군으로 참가했고, 그 대가로 이 바스라 마굴을 분양받았다.
다른 길드에서 바스라 마굴을 차지하고자 한다면 제국의 번영 길드를 비롯한 오데인 요새의 주인들과 전투를 벌어야 하는 것이다.
마굴이나 던전 사냥터의 독점!
이것 때문에라도 중앙 대륙에서는 피바람이 가실 날이 없었다.
강대한 세력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저마다 더 강한 세력에 속하기 위한 이동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위드의 사냥



"에휴! 지겨워."
화령은 푸념했다.
마판이 소므렌 자유도시와 브리튼 연합 왕국의 거래를 주업으로 삼게 된 이후부터 그녀는 이제 마판의 레벨로도 마차를 지킬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혼자 남은 그녀는 최근 들어 브리튼 연합 왕국에서 혼자 사냥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우연히 이 바스라 마굴까지 오기에 이르렀다.
높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데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다. 보니 실속도 차릴 수 있거니와 재미 또한 쏠쏠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래 부르는 바드와 비슷하게 춤으로써 동료들의 능력치를 올려 주고, 적들과 싸울 수도 있는 그녀!
댄서라는 직업 덕에 그녀는 금세 인기를 얻어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여차저차 소개를 받아 솔론의 파티에도 가입을 했다. 그리고 사작된 고난!
솔론이 그녀를 보내 주려고 하지 않았다.
화령은 여러 사람들과 사귀는 걸 좋아하는데, 춤을 추는 동작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이유로 그녀를 독점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파티에 들면 바로 옆에서 훼방을 놓아 버렸다. 사냥을 방해하거나, 열심히 공격하던 몬스터가 죽기 직전의 상황에 이르렀을 때에
마법을 퍼부어서 잡고는 아이템을 챙겨 갔다.
굉장히 예의 없는 행동이지만 마바로스 길드의 영향력 때문에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솔론 쪽에서 더욱 기세등등하게 나왔다.
"화령 님을 데려간다면 우리 마바로스 길드의 영역에서 사냥할 생각을 포기하는게 좋을 것이다."
그 후로 모두가 화령을 기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화령은 어쩔 수 없이 솔론의 파티에 속해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제피라는 말 잘 듣는 동생을 하나 사귄 것이 위안거리였다.


"체인라이트닝!"
"실프, 저들의 발을 묶어다오."
솔론의 파티는 바스라 습격단, 바스라 약탈단을 상대로 전투를 치렀다.
마굴 내부의 몬스터들이 워낙 많기에 사냥을 할 때마다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바투라는 도둑이 끌고 오면 잡는 방식이었다.
마법사들과 궁수들!
강력한 데미지 딜러인 마법사들이 먼저 몬스터들의 체력을 대폭 깎아 놓는다.
마법사들은 막대한 마나를 소모하는 대신에 뛰어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마법사들이 단체로 시전하는 광역 마법은 일품이었다.
그 공격이 끝나면 궁수들이 체력이 많이 남은 몬스터들을 상대로 화살을 퍼붓는다.
그런 다음에 다시 한 번의 마법 공격.
그러고 나서야 댄서 화령과 워리어 다브론 그리고 낚시꾼 제피가 나서서 남은 몬스터들을 청소하는 것이다.
솔론의 파티는 원거리 공격 부대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충분한 거리와 면적이 없다면 활동하기 어려운 구성이다.
던전 탐험에서는 마법사들이 2명을 넘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솔론의 파티는 8명의 마법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사냥! 그리고 휴식! 사냥! 휴식!
솔론의 파티는 한 번의 사냥이 끝날 때마다 긴 휴식을 취했다.
많은 경험치에 좋아하던 것도 잠깐이었다. 한 번에 몰아서 경험치를 획득한 것일 뿐, 실제로는 전투가 끝날 때마다
마법사들이 마나를 회복할 때까지 파티 전체가 휴식을 취해야 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은제 갑옷이 나왔습니다."
"우와아!"
"이건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 화령 님께 드렸으면 하는데... 다들 이의 없으시죠?"
"예"
"솔론 님의 선택이라면!"
날지 못하는 새끼 새처럼 서로 아이템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던 유저들은 솔론의 말에 금방 찬성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여자 진짜 밝히는군.'
'젠장! 이번에는 내가 받을 차례였는데....'
'저 여자한테 아이템을 다 몰아줄 셈인가?'
마음속의 불만이 아무리 가득해도 그들은 솔론의 파티를 떠날 수 없었다. 이만큼 많은 경험치를 주는 파티는 바스라 마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기 때문이다.
상당히 빠른 경험치 획득 속도.
화령은 편안하게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실질직인 사냥은 마법사들이 거의 다하고 마무리만 하면 되었으니 별로 힘들 게 없다.
'경험치는 늘어나는데... 그런데 이렇게 사냥을 해도 괜찮은 건가?'
화령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 파티의 워리어인 다브론에게 물었다.
"이런 식으로 사냥을 하면 스킬이 잘 안 늘어나지 않나요?"
"예?"
다브론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황당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스킬이라니요?"
"아니, 그러니까 우리들은 여러 스킬들을 올려야 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런 파티에 끼어서 사냥을 하면 스킬은 낮은 상태로 레벨만 빨리 오르는 게 아닌가 해서...."
화령의 우려는 스킬의 숙련도를 배제하고 경험치만 획득하는 데 있었다.
다브론은 뭐가 어떠냐는 투로 물었다.
"물론 화령 님처럼 스킬 숙련도를 따지는 분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언제 레벨 올립니까? 우선 레벨부터 올리고
나면 더 강한 파티에 들어갈 수 있고 더 많은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죠."
"그래도 그런 식으로 하면 결국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약해지게 될 텐데...."
화령은 마판을 따라다니면서 몬스터들을 상대로 춤을 추던 때를 떠올렸다.
춤 스킬을 하나 더 올리기 위해서 몇 시간이나 쉬지 않고 춤춘 적도 있었다.
"다들 이렇게 하는데요?"
"예?"
"다들 이런 식으로 사냥을 하는데, 화령 님은 대체 어디서 오셨습니까? 레벨부터 올려놓고 스킬은 나중에 천천히 올리죠, 뭐."
솔론의 파티는 경험치 획득 위주로 구성이 된 파티였다.
마법사들의 경우에는 그나마 어느 정도 스킬을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공격 스킬만 성장할뿐, 방어와 관련된 인내력
수치가 완전히 제자리일 테니, 이런 식으로는 가뜩이나 취약한 단점을 갈수록 부각시키는 꼴이었다.
구ㅇ수나 워리어, 검사 캐릭터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많이 때리고 맞아야 그만큼 강해지는데 이들은 자신보다 약한 적들만, 그것도 아주 편하게 사냥하는 것이었다.


바스라 마굴!
왕국의 수도와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고정 파티에 1명이 자리를 비웠습니다. 잠시 참여해 주실분. 빠른 사냥 보장합니다. 최대 30명 규모 파티입니다."
"몸빵 해 주실 분 찾아요."
"약초 팝니다. 상점보다 훨씬 저렴하게 팔아요. 대량 구입 환영!"
바스라 마굴에 간 위드는 여기저기서 파티를 구하는 이들을 볼수 있었다.
이미 파티를 구성해 놓고 부족한 인원을 모으려는 자들과, 파티에 참여하려는 이들로 던전 앞은 상당히 붐비고 있었다.
바스라 마굴은 경험치를 많이 주고 아이템도 잘 떨어져서 유저들이 북적북적한 곳이다. 다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혹시 파티 구하세요?"
위드가 가만히 서 있자 몇 명이 다가왔다. 그중에서 공작 깃털을 모자에 꽂고 있던 자가 물었다. 그러더니 위드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시 질문을 했다.
"실례지만 레벨과 직업이 어떻게 되시죠? 검을 가지고 있는 걸로 보아서 검사 계열 같으데, 마침 한 자리가 비었으니 우리와 함께 사냥을 하시겠어요?"
위드는 천천히 공작 깃털의 사내를 살펴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을 살펴본 것이다.
'공작 헬름, 브리튼 연합 왕국의 무구, 레벨 180 이상이 구입할 수 있는 물건. 가격 800골드.'
"우리들은 15명으로 이루어진 파티입니다. 좀 대규모죠. 평균 레벨은 170이고 제 이름은 빈티지, 마바로스 길드 소속이죠. 같이 사냥하시겠습니까?"
빈티지는 재차 질문을 하였지만 이미 위드는 파티로 데려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마바로스 길드!
최소한 이 일대에서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파티를 거절당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위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파티는 구하지 않습니다."
"네?"
"저 혼자면 충분합니다."
"......."
위드는 혼자서 성큼성큼 바스라 마굴 안으로 들어갔다.

바스라 마굴은 최소 레벨120부터 200대 중후반까지 사냥을 할 수 있는 장소였다. 총 지하 4층으로 이루어져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강력한 몬스터들이 나온다.
이들의 무서운 점은 도적이라는 점!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에게 죽으면 제대로 털리게 된다.
입고 있는 장비까지 벗겨질 정도로 약탈을 당하는 것이었다.
통상의 죽음보다 서너 배나 더 많은 아이템을 잃어버리게 되니 나름대로의 각오가 필요했다. 그러나 바스라 도적
떼들이 주는 괜찮은 아이템들도 많아 유저들이 끊이지 않는 인기 장소였다.
'3층에 있다고 했지.'
위드는 지하 1층과 2층은 그대로 지나쳤다. 마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파티를 이루어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불쑥 나타나면 조금 놀라겠군.'
위드는 다시 사냥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마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 마판은 바빠서 나설 수가 없다고 한다.
모라타 지방에서 나온 잡템과 무지개 천 경매로 레벨을 크게 올린 그는 작위을 하나 사서 자신의 이름으로 상단을 개설하였다는 것이다.
대신에 화령이 있는 장소를 알려 주었는데, 그곳은 마침 위드의 위치와도 가까운 바스라 마굴이었다.
위드는 지하 3층에서 어렵지 않게 화령을 찾을 수 있었다.
중앙 통로 부근에서 꽤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냥을 하고 있었다.
춤을 추면서 바스라 도적떼와 싸우고 있는 그녀.
위드는 전투가 끝날 때쯤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화령 님, 오랜만에 보내요."
"앗! 위드 님 아니세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냥 사냥이나 해 볼까 하고 찾아왔습니다."
위드는 때마침 지루해하던 화령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자 먼 곳에서부터 푸른 로브를 입은 솔론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여기 이분은 누구십니까?"
솔론은 위드를 위아래로 흝어보았다. 모척이나 속 좁아 보인다는 것도 모르고 벌이는 행동이었다.
화령은 애써 화를 참으며 말했다.
"여기 이분은 제 동료 분이세요, 이름은 위드 님, 직업은 조각사이시구요."
"아! 그렇군요."
그러나 그 정도로는 납득하기 어려웠는지 솔론이 묘한 눈빛으로 묻는 것이었다.
"참! 혹시 친구 사이입니까? 아니면 애인? 함께 다니신 기간은 얼마나 되었죠?"
"그냥 아는 분을 통해서 소개받은 사이입니다. 함께 다녔던 적은 없고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위드의 말에 솔론은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아하! 그러셨군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호의도 베푸는 것이었다.
"위드 님도 저희들과 함께 사냥을 하시겠습니까? 뭐, 직업 탓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조각사시니 어런 사냥에 끼는 일도 흔치 않을 텐데요."
"그래요, 위드 님. 우리랑 같이해요."
본래 위드는 화령과 함께 사냥을 하러 온게 아니었다. 그저 근처에 있으니 인사나 한번 하러 들른 정도. 하지만 화령까지
부추기자 위드는 빠져나갈 명분을 잃고 말았다.

솔론의 파티에 속한 이루로 위드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조각사라는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된 솔론은 아예 싸울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 덕에 위드는 휴식 시간마다 화령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멀찌감치에서 솔론이 집요하게 쳐다보고는 있었지만.
위드는 순수하게 감탄을 담아서 말했다.
"인기가 참 많으시군요, 화령 님."
"그렇지도 않아요."
화령은 뜻밖에도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제 직업이 댄서잖아요. 그러니까 매력 스탯이 높거든요. 용모 스탯도 존재하구요."
"매력과 용모요?"
"네, 매력 스탯이 높으면 은은한 아름다움이 더해지죠. 흔히 말해서 후광이라고 할까? 눈빛이 고와지고 피부에서도 살짝 빛이 나요."
"그러면 용모 스탯은 ...."
"말 그대로예요. 몸매가 예뻐지고, 얼굴도 밝아 보여요. 윤곽도 또렷해지고요. 댄서들에게 부여돼는 스탯이죠."
위드는 착용하고 있는 데이크람의 벨트에 매력 스탯을 올려 주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매력이 그런 의미였군.'
어쩌면 힘과 민첩 외에도 골고루 여러 스탯을 올려야 하는 댄서들은 상당히 피곤한 직업인지도 몰랐다.
물론 화령처럼 예쁜 여자라면 솔론의 경우처럼 여기저기서 서로 모셔 가려고 할 것이었다.
"저 같은 경우는 댄서라서 매력이나 용모 스탯에 꽤 많이 투자를 한 편이거든요."
"그러면...."
"본래 제 얼굴과는 조금 차이가 날 수도 있을 거예요. 굳이 밝힐 필요는 없는 이야기지만 혹시나 해서 알려 드리는 거랍니다."
아차피 처음 캐릭터를 생성할 때에도 기본적인 외모에서 약간씩 변환할 수는 있었다. 아주 눈썰미가 좋은 사람만 알아볼 정도.
그렇지만 화령은 그 이후로도 추가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였다.
소위 말해서 여자, 혹은 조명발 안 받는다는 여자들의 행동거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메이크업 베이스 정도는 화장 취급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또 조명발은 안 받는다면서 왜 항상 조명 위치에 따라서 분주하게 자세를 바꾸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예뻐 보이는 여자에게는 약한 것이 남자인 법!
다만 위드에게는 그다지 해당 사항이 없었다.
'여자는 돈이다. 여자를 만나면 다 돈으로 연결돼. 깨지는 돈만큼 얻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 비겁한 사랑은 원하지 않아.'
완전히 왜곡된 여성관을 가지고 있는 위드에게 있어 예쁜 여자는 돈 먹는 하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솔론은 대충 12시간 정도를 사냥하고 난 뒤 말했다.
"휴! 오늘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면 내일 다시 모이도록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파티원들은 접속을 종료하며 1명씩 해산했다.

위드는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지금까지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해 볼까?'
우선 배낭에서 숫돌부터 꺼내서 검을 갈았다.
사각사각!
-검을 날카롭게 갈았습니다.
검 갈기 스킬 발동!
공격력이 14% 증가합니다.

검갈기 스킬은 중급4레벨이었다.
이것만큼은 수리 스킬처럼 남들에게 무적정 퍼 줄 수 없는 수킬이다.
비가 오거나 혹은 사냥을 하지 않으면 검을 간 효과가 금방 사라지기 때문이다.
위드 본인이나 같이 사냥을 하는 파티원들에게만 써 줄 수 있느ㄴ 대장장이 스킬이었다.
"자, 그러면 그다음으로...."
위드는 부드러운 천을 꺼내어 열심히, 광이 나도록 방어구를 닦았다.

-방어구를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번쩍번쩍 빛이 납니다.
방어구 닦기 스킬 발동!
방어력이 16% 증가합니다.
회피 능력이 2% 증가합니다.

방어구 닦기 역시 검 갈기와 비슷했다.
오래 지속되지 않는 대신에 효과는 지극히 좋다.
이것은 파티에 가입한 대장장이들이 사용하는 이른바 생명 연장 스킬인 것이다.
대규모 파티서 이런 스킬이라도 보여 주지 않는다면 굳이 대장장이를 데리고 다니려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 다음에는 음식을...."
음식으로는 해산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새우 요리를 준비해 놓았다.
해산물의 가격은 비싼 편이지만, 의외로 오데인 요새에서는 로자임 왕국보다 싼값에 구입이 가능했다.
세금을 내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브리튼 연합 왕국과 아이데른 왕국의 접경이기 때문에 상단들이 빈번하게 오가면서 풍부한 물량이 공급되는 것이었다.
체력과 생명력을 향상시켜 주는 데에는 해산물만 한 게 없다. 그중에서도 새우는 일품요리였다.
적당히 불에 구운 통새우!
단풍나무의 수액으로 만든 달콤한 시럽을 듬뿍 바르고, 후식으로는 감자와 양상추, 베샤멜 소스로 맛을 낸 샐러드까지!
위드는 입을 크게 벌렸다.
살짝 불에 구워져 노르스름하게 달아오른 껍질을 벗겨 낸 새우. 흰 속살을 드러낸 새우가 꼬챙이 위에서 달랑거리면서 입 안으로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이성과 본능의 싸움!
입은 어서 새우를 달라고 하는데, 손은 새우와의 이별을 슬퍼하고 있었다.
보통 새우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조각술을 활용, 새우에 멋을 잔뜩 첨가했다.
소면 몇 가닥과 수액 시럽으로 활짝 날개를 편 천사 새우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름도 붙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새우 천사 요리!
천국에서나 맡을 수 있는 듯한 고소하면서도 향긋한 냄새에 매료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리라.
날름날름.
위드가 혀를 방정맞게 움직이며 막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였다.
파티가 해체될 당시에 화령은 재빨리 접속을 종료했다.
집접거리는 솔론을 떼어 내기 위해서 였다.
그렇지만 솔론이 포기하고 떠났을 때쯤에 돌아왔다.
제피는 아예 접속을 끊지도 않고 끈질기게 위드만을 따라 다녔다.
화령과 제피는 위드가 새우를 만들어 입에 가져다 대는 것을 묵묵히 지켜봤다.
그들이 보기에는 새우는 1마리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치사하게 하나밖에 없는 걸 나눠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러나 목울대가 크게 꿈틀거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꿀꺽!
위드가 막 새우를 먹으려고 할 때 어디선가 군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드가 돌아보자 화령과 제피가 그대로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령 님, 안 가셨습니까?"
"네."
입으로는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눈은 새우에서 떠날 줄 모른다.
꼴까닥.
침을 사정없이 삼키면서 말이다.
화령은 절대로 음식을 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잔뜩 충혈되어 새우를 바라보는 눈은, 차마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사흘쯤 굶은 난민이 막 음식을 본 듯한 눈빛!
그 간절한 갈망! 허기짐! 욕구!
'저 눈이라면 살인도 하겠군.'
위드는 어쩔 수 없이 새우를 내밀었다. 음식을 주지 않고 는 못 배길 정도였다.
"이거라도 괜찮다면...1골드에...."
"고맙게 먹겠어욧!"
위드는 이 상황에서도 장삿속을 버리지 않고 가격 흥정에 나서려고 했지만, 화령은 정신없이 새우를 뜯어 먹었다.
와구 와구!
그녀의 입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새우의 살들.
본래 화령도 이 정도까지 식탐을 하진 않았다. 현실의 그녀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몸매를 관리한다면서 음식을 많이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새우에서 풍기는 강력한 향기는 도무지 자항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먹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이는 요리가 거의 마약의 경지에까지 올랐다는 증거인데, 위드의 요리술이 그간 일취월장하였기 때문이다.
화령은 그 새우를 먹으면서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먹는 동안 입이 너무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를 지경이었다.
'역시! 마판 님이 위드 님을 따라다니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더니,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구나. 아, 맛있어!'
화령은 무척이나 만족스럽게 새우를 뜯어 먹었다. 잘먹지 않는 꼬리는 물론이고, 머리마저도 아쉽다는 듯이 몇 번이나 쳐다봤다.
새우 머리까지 먹으려고 들었던 것!
위드나 제피의 시선만 없었더라면 그녀를 쳐다보는 애처로운 머리를 한입에 삼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눈알까지 쪽쪽 빨아 먹었을지도.....
'미안하다, 새우야.'
위드는 잠시 애도를 표했다. 그러고는 새로운 새우를 하나 더 꺼내서 굽기 시작했다.
새우는 제법 비싼 타ㅅ에 간식처럼 맛으로만 먹을 수는 없었다. 위드에게는 어디까지나 투자였다.
생명력과 마나 최대치, 그리고 각종 스탯을 일시나마 향상시켜 주는 전투 기술!
위드가 비싼 돈을 치르고 500개나 사 온 이유가 있었더ㄴ 것이다.
-기분 좋안 포만감으로 인해 생명력이 최대치가 400상승했습니다.
마나 최대치가 400 상승했습니다.
지구력이 20 상승했습니다.
예술이 15 상승했습니다.

배고픈 자가 예술을 안다는 말을 누가 했던가.
배가 부르니 예술 스텟까지 올라갔다. 직업에 따른 부가효과가 주어진 것이었다. 만약에 직업이 요리사라면 체력이나 요리 스킬, 혹은 음식의 맛이 더욱 좋아졌으리라.
위드는 이제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물론 화령에게서 새우 값으로 1골드를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는 계속 사냥을 하려는 참인데, 화령 님은 종료하실 건가요?"
"잘됐군요."
위드는 일찍부터 화령을 점찍어 두었다.
댄서인 그녀의 실력. 죽음의 춤의 공격력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거의 도둑만큼이나 몸놀림이 빨라서 몬스터에게 좀처럼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
덤으로 그녀의 춤을 본다면 아군의 능력치도 약간이나마 향상되니, 이 또한 나쁘지 않다. 특히나 몬스터를 재울 수 있는 현혹은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파티 개설."
위드는 파티를 생성하고, 화령을 초대했다.
"기쁘게 받아들이겠어요."
화령은 파티에 바로 가입을 했다. 그러고는 제피를 향해 손짓하느ㄴ 것이었다.
"같이 하실래요?"
제피는 바라던 차에 잘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만 주신다면 가입하고 싶습니다."
위드는 제피도 파티에 초대했다. 바스라 마굴의 몬스터는 위낙에 많기에 기왕이면 믿을 만한 아군이 1명이라도 더 있는 편이 낫다.
낚시꾼인 제피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악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러면 제피 님에게도 요리를 해 드리죠 그리고 두 분, 무기와 방어구도 닦아 주고 무기도 손질을 해 주었다. 떨어진 내구력을 수리로 고쳐 준 것은 물론 이었다.
대장장이와 요리사, 재봉사로서의 실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한 것이다.
"와! 대단해요."
"방어력이 올라갔습니다. 낚싯대의 공격력도...."
화령과 제피는 입을다물지 못했다.
한 사람에게서 이렇게 여러 가지의 능력이 발휘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잡케와 만능 캐릭터는 종이 1장 차이였다.
"그러면 이제 우리 다른 파티를 구해 봐요. 우리3명이라면 어디든 가입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화령이 신이 나서 말했지만 위드는 조용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우리끼리 해 먹기도 바쁨니다."
"네? 그러면,,,,,"
"설마 달랑 우리 셋이서 이 바스라 마굴에서 사냥으ㄹ 하자고요?"
제피가 황당ㅎㅏ다는 듯이 물었지만 위드의 생각을 정확히 짚은 것이었다.
"3명이면 충분합니다. 아니, 4명이 되겠군요. 콜 데스 나이트!"
위드가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에서 검은 연기가 쏟아져 나와 데스 나이트 반 호크로 변했다.
오랜만의 소환에 데스 나이트는무척이나 기쁜 기색이었다.
"주인 불렀는가."
"그래"
위드는 고깝다는 듯이 데스 나이트를 쳐다봐았다.
획득하는 경험치를 20%씩 먹는 식충이 데스 나이트, 반 호크를 얻은 것은 레벨이 175이던 바르칸의 지하 묘지에서 였다.
일반적인 데스 나이트에 비해서 보스 급인 그는 훨씬 더 강했다.
그 후로 모라타 지방에서 사냥을 하면서 반 호크는 더욱 강해졌다.
위드는 성기사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였지만, 데스 나이트의 경우에는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위드가 먹는 경험치는 20%씩 가로채는 주재에, 스스로 사냥해서 얻은 경험치는 깡그리 독식하는 뻔뻔한 놈!
프레야의 성기사들은 어차피 남의 세력이었다. 그렇지만 데스 나이트 반 호크는 언제라도 부려 먹을 수 있는 부하다.
위드도 각별히 신경을 써서 기왕이면 반 호크가 많은 적을 상대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 덕분에 반 호크의 레벨은 성기사들을 넘어 290에 육박하고 있었다.
"쓸모없는 놈! 이제야 네 밥값을 할차례다."
위드는 곧바로 구박을 시작했다. 데스 나이트가 먹은 경험치가 지극히 아깝다는 태도.
그렇지만 데스 나이트로서도 할 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놀고먹으면서 레벨을 올린 것은 결단코 아니기 때문이다.
성기사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이리저리 괄시를 당하고, 자신보다 더 강한 뱀파이어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심지어는 성기사들의
친밀도를 올린다는 이유로 드들겨 패는 위드의 폭력까지 견뎌 내야 했다.
그야말로 고난의 가시밭길을 참아 내면서 이만큼 강해진 것이었다.
마굴의 역사라고 까지 할 것은 없지만, 과거 바스라 대공이라는 귀족이 있었다. 브리튼 연합 왕국의 결성을 끝까지 반대하면서
축출된 비운의 귀족, 그는 도둑 길드와 힘을 합쳐 반역을 꿈꾸고 있다.
그 장소가 바로 이곳, 바소 바스라 마굴인 것이다.
위드는 데스 나이트를 선두에 세우고 지하4층으로 내려 갔다.
"여긴 사람이 별로 없군요."
바스라 마굴이 이름난 사냥터라고 해도, 지하 4층은 인적이 뜸한 편이었다.
이곳에서는 레벨240이 넘는 몬스터들이 곧잘 출몰했다.
그러므로 웬만한 파티는 사냥도 하지 못하는 장소였다.
덜덜덜.
뒤따라오는 제피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동료로서의 신의! 그리고 위드가 괜찮다고 밀어 붙인 탓에, 화령과 제피는 끌려오듯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아멘! 괜히 접속해서 죽는구나, 그냥 얌전히 로그아웃할걸.'
'여기서 죽으면 아이템도 털리는데... 사제나 성기사도 없이 사냥을 하다니 미치겠네.'
제피와 화령의 마음속에는 비슷한 종류의 공포와 원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진 놈 옆에 있어서 벼락을 맞은 기분.
3층에서 사냥을 하는 것도 과한데, 지하 4층으로 내려오다니!
그 덕분에 위드와 데스 나이트보다 뒤처져 있는 그들이었다.
"모험가의 배낭을 털자!"
"너희들을 호주머니에 뭐가 들었는지 한 번만 볼 수 있게 해 줘!"
"국가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
바스라 도둑 기사단이 나타났다. 갑옷을 입고 기사의 검을 들고 있는 그들.
바스라 도둑 기사단들은 아주 진부한 말을 함녀서 덤벼들었다.
"암흑 투기!"
데스 나이트는 본신의 오라를 방출했다.
죽음의 기사로서 가진 음차원의 마나를 암흑 투기로 발산하는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데스 블레이드!"
데스 나이트 반 호크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바스라 도둑 기사단을 향해 시커먼 검의 기운을 날렸다.
꽈과광!
검의 기운이 그물처럼 퍼지면서 수천 개의 가닥으로 변해 도둑 기사들의 몸에 박혔다.
순간 피를 흘리며 짚단처럼 우수수 쓰러지는 기사들.
제피와 화령은 혀를 내둘렀다.
'과연 대단하네.'
'저게 레벨290이 넘는 몬스터의 위용인가? 저런 몬스터를 위드 님은 어떻게 길들였지?'
새삼스럽게 위드가 위대함을 알게 된 그들이었다.
바스라 마굴에서 데스 나이트까지 포함하여 단 4명이 사냥을 하자는 위드의 이야기가 비로소 하황되지 않게 들린다.
신뢰도가 아주 조금은 생겨났다.
하지만 이 순간 위드도 무척이나 놀라고 있었다.
'이 녀석이 이렇게난 강했던가?'
모라타 지방에는 실상 성기사들이나 사제들 때문에 데스 나이트가 크게 부각되지 못하였다. 기껏해야 다 잡은 몬스터를
적당히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거나, 아니면 만만한 적과 싸우도록 시키는 정도였다.
위드의 기억 속에서는 스킬 수련도 상승을 위해 두들겨 맞던 모습밖에 없는데, 지금은 괴물 같은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레벨 240대의 기사 넷을 전투 불능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데스 나이트의 속성 탓도 있었다. 죽음의 힘을 발휘하는 데스 나이트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싸울 때에 제 실력을 발휘한다.
자신보다 고급 마물인 진혈의 뱀파이어나 몬스터들과 싸울 때에는 실력이 많이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붉은 생명의 목걸이, 데스 나이트 반 호크의 생명을 봉인해 놓은 물건이지. 그리고 토리도의 생명이 봉인되어 있는 검은
생명의 목걸이.... 이것들은 단지 보상으로 주어지는 물건일까? 아니면 이들을 성장시켜서 무언가 또 다른 길을....'
위드의 사고는 거기에서 멈추었다.
데스 나이트가 쓰러진 기사들을 향해서 다시금 일격을 날리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위드는 곧바로 달려가서 데스 나이트의 머리통을 검집으로 갈겼다.
딱!
"명령이다. 죽이지는 마라. 그냥 피해만 적당히 주도록해. 죽이는 건 우리가 할 것이다."
"알겠소 주인."
데스 나이트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레벨이 높아진 데스 나이트는 금세 자만심에 가득 찼다.
처음 귀속될 때의 공손했던 태도는 이미 다 잊어버렸는지, 위드의 레벨이 자신보다 낮으니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아직 덜 맞았군.'
데스 나이트의 교육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위드는 우선 전투에 돌입했다.
"조각 검술!"
전매특허가 되어 버린 기술!
위드는 조각 검술을 펼치면서 기사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죽어라!"
"돈! 돈을 쥐!"
기사들의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위드를 스치고 지나간다.
위드는 공격을 피하면서 끊임없이 전진하고 검을 휘들렀다. 마치 죽기를 각오한 사람 같았다.
'이래야 재미있지.'
적에게 둘러싸여 있어야 즐겁다. 적의 숨결과 심장 박동 소리가 바로 곁에 있어야 행복하다.
이렇게 싸워야만 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절대로 질리지 않는 쾌락!
위드의 머릿속에서 검치가 떠올랐다.


김치, 안현도는 이현에게 진검을 가르쳐 주었다. 그때부터는 검을 쥐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예전에도 검을 배운 적이 있지만 그때에는 기초적인 수련에 불과했다. 불과 1년 도장에 다닌 것으로는 기본기 외에는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현이 최근에 도장에 찾아갔을 때부터는 훈련이 달라졌다.
안현도가 직접 나서서 이현에게 검을 지도해 주었다.
검무.
누구도 진심으로 상대할 수 없던 안현도는 스스로 춤을 추었다.
"이것이 검이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선들이 보였다.
극히 미려하고 잔잔한 떨림들을 가지고 있었다.
안현도처럼 단순하고 무식한 인간이 펼치는 검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늘과 땅.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맑은 빛깔을 가진 그러한 예술 작품처럼!
'이것이 정말 검이라고?'
그러나 검은 곧 변화하였다. 이현이 섣불리 짐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듯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웅크린 맹수가 대지를 박차고 뛰어오른다.
광오하게 내려다보는 독수리. 하늘.
지상으로 내려온 맹수의 앞에는 요새가 지어져 있었다.
오데인 요새.
'아니야. 그보다 훨씬 더하다.'
요새의 성벽보다도 더 두껍고 높은 곳이 맹수의 앞을 막고 있었다.
맹수가 가야 할 곳은 더 멀리 있는데 성벽이 막고 있다.
맹수는 고민하지 않았다.
단순하고 무식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모조리 파괴해 버리고, 자유로운 맹수가 되었다.
지상에서 가장 강한 맹수가 울부짖었다.
"검은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타인과 싸워서 이기기 위한 수단은 아니다. 그러려면 차라리 총을 구하는 편이
훨씬 쉽지 않겠느냐? 그러나 제대로 검을 익힌 사람은 강해진다. 죽음, 병마, 어떤 고뇌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나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 검을 배웠다."
이현은 안현도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검을 대하는 마음가짐, 호흡법, 육체를 바로 보는 법, 심지어는 진검을 닦는 법까지 배웠다.
'세상은 넓구나.'
이헌은 자신이 어느 정도 강하다고 생각해 왔다.
도장에 다니기 전에도 거칠게 살아 왔다. 부모가 없다고 몰리는 녀석들에게는 망설임 없이 덤벼들었다.
삶의 희망을 찾기보다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다.
길거리 싸움에 불과하지만 독기를 기를 수 있었고, 도장에서 익힌 기본기는 거기에 무게를 더해 주었다.
어떠한 적을 만나더라도 싸우기도 전에 움츠러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익힌 검술은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기사들 개개인이 예전에 라비아스에서 싸워 본 데스 나이트보다 조금 강하다지만,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데스 나이트와 싸울 때에는 정면만 신경 쓰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전후 좌우 모두를 살펴야 했다.
'이러니 더 재미가 있는걸.'
위드는 옆구리로 찔러 들어오는 롱 소드를 피하며 기사들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타아앗!"
기합 소리와 함께 위드의 검을 잡고 있는 손이 마치 환상처럼 움직였다.
푸확!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연속으로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연환 공격에 성공하셨습니다. 3단 베기. 정식 스킬로 등록하시겠습니까?

허점을 정확히 노려서 타격할 때에 터지는 치명적인 공격.
적이라고 해서 가만히 앉아서 맞고만 있지는 않았기에 3번이나 연속해서 나온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이렇게 제대로 성공한 기술들은 별도의 스킬로 저장할 수도 있었다.
위드는 스킬을 저장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3단 베기 정도는 정형화된 움직임에 불과했다.
전투는 살아 있는 것이다. 언제든 마음이 따르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거추장스러운 스킬들을 다수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조각 검술!"
위드는 재차 검술을 펼치며 기사들 틈으로 뛰어들었다.
수비는 튼튼한 방어력을 믿었다. 방어구 닦기와 다림질로 향상시켜 놓은 방어력이 목숨을 지켜 줄 것이라고 믿었다.
위드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피를 뿌리는 기사들.
화령과 제피도 뒤늦게 나섰다.
"매혹의 댄스!"
화령이 본격적인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거녀의 가공할 부비부비 공격에 일부 기사들이 부끄러운 듯 움직임을 멈췄다.
기사들의 볼은 붉게 달아 올랐고, 눈에는 은은한 열기가 더해졌다.
"너무 아름다운 여성이여."
"오오! 나처럼 정의로운 기사들이 도둑이 되다니..."
"사뿐사뿐 밟는 걸음들이 나의 애간장을 녹이는구나!"
그때 화령이 외쳤다.
"부킹 사절! 전부 관심 없어욧!
"헉!"
기사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러고는 잠시 동안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화령은 다른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파티원들에게 한마디씩 일러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들이 공격만 안 하면 괜찮을 거예요."
"얼마 동안 괜찮은 거죠?"
제피가 다급하게 물었다. 이런 난전에서는 사소한 정보하나가 목숨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았다.
"2분정도요. 얘들의 레벨이 높으니 어쩌면 1분30초 정도? 그사이 최대한 다른 녀석들부터 서둘러서 해치워야겠군요.
낚싯대 스윙!"
제피도 낚싯대를 ㅇ휘드르면 적을 공격했다. 기가 주입된 낚싯대가 빳빳하게 일어서서 적들을 휩쓸었다.
위드와 데스 나이트가 기사들의 주력을 맡고, 화령은 나머지 기사들을 최대한 많이 재운다.
그리고 제피는 모여 있는 적들을 향한 광범위 공격!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상황이라 화령과 제피는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솔론으ㅣ 파티처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 따위는 없었다. 자신의 몫을 해내지 못하면 파티가 전멸하는 것은 시간문제 였다.
화령은 열둘의 기사들을 재우고 난 뒤에 탈진한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더,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모든 체력과 마나를 소진한 화령은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모험을하고 여행을 하면서 늘 적당히 약한 적들과 여유롭게 싸웠다. 그러면서도 각종 스킬을 레벨에 비해 많이 올린 그녀는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극한에 이른 전투를 경험하고 나니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투라, 더 강한 적들과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싸우는 건가?'
화령에게 든 생각이었다.
"화령 님. 안전하게 제 뒤에 계세요."
제피가 기사들로부터 화령을 보호해 주었다. 그는 최고의 낚시꾼답게 지구력과 인내력이 탁월했다. 낚시꾼 전용 스킬인 생존술로 얻은 강인한 생명력!
제피는 화령을 보호하면서 도둑 기사단과 싸움을 벌였다.
낚시 공격술은 아예 1명에게 강력하거나, 아니면 여러 명의 체력을 조금씩 깎아 놓을 수 있다.
제피는 한 사람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을 자제하는 대신에 광범위 공격을 퍼부었다.
그가 생명력을 많이 깎아 놓으면 위드가 하나씩 맡아서 확실하게 처리를 했다. 그 무렵 화령이 재워 놓은 기사의 일부가 깨어났다.
정말로 쉴 틈도 없이 벌어지는 전투였다.
"조각 검술!"
위드는 정신없이 달렸다.
이쪽의 기사를 정리하자마자 깨어난 다른 기사와 싸워야만 했다.
시간이 곧 적이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적들의 숫자가 늘어나니 동분서주하면서 기사들을 처치하였다.
화령도 체력을 조금 회복하고는 자리에서 일아났다.
"저도 싸울게요."
기진맥진한 화령이 감탄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그녀는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이겼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굳이 떠올려 보자면 지옥 같은 싸움이었다.
한계와 한계를 부수어 나가던 싸움!
승리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재밌어.'
화령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완전히 녹초가 될 정도로 전투를 해 본 경험은 처음이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탓에 웃을 수 있었다.
사실 데스 나이트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들끼리 바스라 도둑 기사단을 해치우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싸워서 이겼다는 순수한 기쁨에만 빠져 있었다.
"위드 님은 늘 이런 전투를 해 오셨어요?"
화령은 질문을 던졌다. 전투를 시작할 때부터 꼭 묻고 싶은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위드는 방금 전까지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던 것도 잊어버린 듯이 얌전히 방어구를 벗어서 수리를 하고 있었다.
매번 방어구가 상할 때마다 최대한 내구력을 회복시켜 놓는 것이었다.
"위험할 텐데, 힘들다고 느껴 본 적은 없었나요? 그리고 자신보다 강하거나 많은 몬스터들과 싸우는것이 두렵지 않으세요?"
화령은 잠깐이지만 공포에 질렸다.
통로를 가득 메우고 덤벼드는 기사들을 상대로 어떤 식으로 싸워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가상현실인 만큼 적의 숫자가 많거나 자신보다 더 강한 적을 상대로 싸울 때에는 공포가 느껴진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이었다.
모니터를 통해서 싸우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면서 싸우는 것의 차이인 것이다.
적의 호흡과 숨결, 투지를 대하는 것만으로도 먼저 얼어붙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그런 이유로 인해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죽는 이들도 있다.
"라비아스에서 몬스터를 봤습니다.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니까 몬스터들이 작게 보이더군요. 그때 생각했죠.
이놈들은 밥이다.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먹이다.
화령은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역시 위드 님과 같이 다니면 재미있는 일이 끊이지 않을 것 같아.'
그런데 제피는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데스 나이트를 보면서 두려움에 떠는 것이었다.
"제피 님?"
"화, 화령 님."
제피는 차마 말도 제대로 잊지 못하였다.
"대체 왜 그러세요?"
"저 데스 나이트가 ...."
"데스 나이트가 뭘요?"
데스 나이트가 암흑 투기를 발산하면서 전투를 준비하는 모습이 화령의 눈에 보였다.
"어? 왜 저러죠?"
화령은 궁금했지만, 제피는 대략 답을 알고 있었다. 꽤 오랜 기간 같이 낚시를 하면서 위드라는 인간을 겪어 본 그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위드가 낚시에 성공했다고 해서 휴식을 취하던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대충 붕대질을 끝내고, 방어구와 검의 수리를 마친 위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이번에는 조금 위험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위험하진 않았군요. 최소한 한두 번 정도는 죽음 직전의 상황까지 몰릴 줄 알았는데."
"....."
"생명력이 15%나 남은 상태에서 도적 떼를 다 잡았으니 요즘은 제 감이 떨어진 것도 같습니다. 하기야 오랫 동안 전투를 쉬긴 했죠.
오데인 요새 공방전에서는 약한 적들만 찾아다녔고."
"....."
"인내력 스탯이 하나밖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꽤나 힘든 전투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다음에는 생명력을 3% 이하로 남겨 봐야겠습니다.
화령 님과 제피 님에게만 알려 드리는 건데, 생명력이 아주 극소량 남아 있을수록 인내력 스탯이 더잘 오르더군요. 그러니 전투를
할 때는 가능한 한 맞아주세요. 적당히 맞아 주면 그게 다 나중에 도움이 됩니다. 요증에는 웬만큼 맞아서는 간지럽더라니까요."
제피와 화령은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독한 위드에게 완전히 기가 질린 탓이었다.
'세상에! 바스라 도둑 기사단의 공격이 간지럽다고?'
'아무리 대장장이에 재봉사 스킬을 중급까지 올렸다고 해도....'
'그 방어구들은 우리도 차고 있잖아. 엄청 아프던걸.'
'역시 변태가 틀림없어!'
그리고 화령과 제피는 이어진 위드 발어네 기겁을 하고 말았다.
"자, 탐색전은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싸워 보죠."


제피와 화령은 지옥을 겪었다.
그것은 정말로 지옥 같은 사냥이었다.
"모두들 들으세요. 저를 파티의 리더로 인정합니까?"
위드의 말에 제피와 화령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드가 만든 파티에 가입을 하였으니 당연히 리더라고 봐 주었다.
또한 그들 3명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도 위드다
낚시꾼으로서 스킬을 상당히 많이 올린 제파나, 댄서로서 많은 경험을 쌓은 화령은 베르사 대륙 그 어디서도 자신의 스킬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전투형 캐릭터들에 비해서 다소 약하다는 편견을 가지고는 있어도, 전문 분야에서 만큼은 뛰어났다.
특색이 있는 스킬들이야말로 화령과 제피의 강점이었다.
그런데 스킬 레벌로 따져도 위드와 비교할 수 없었다.
'생산 스킬만 다섯 가지를 중급으로 올리다니....'
'괴물. 완전 노가다 꾼이야.'
이상한 쪽으로 의기투합해 버린 화령과 제피였다.
각종 전투 스킬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스탯들도 괴물처럼 높다.
이런 위드를 보면서 받는 상대적인 박탈감! 그리고 자신들은 정상인이라는 안도감이 겹치는 것이었다.
'위드 님 같은 분이 있으니...'
'우린 절대 페인이 아니야!'
화령과 제피는 속생각까지 죽이 척척 맞았다.
보통 파티의 리더는 워리어나 기사가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투를 지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파티에서도 통솔력과 카리스마 스탯이 약간은 영향을 준다.
리더의 통솔력 등이 높으면 파티원들이 혼란 마법에 당하지 않고, 획득하는 경험치도 올라가는 것이다. 덕분에 카리스마가
높은 지휘관이 있는 파티와 맞닥뜨린 몬스터들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냥당하기도 했다.
"이야아!"
"죽음의 댄스! 매혹의 댄스!"
"낚싯대 풀 스윙!"
"나를 때려 봐라! 내 인내력을 올려 줘!"
그리고 사냥이 시작되었다.
바스라 도둑 기사단과의 끝없는 승부!
한 무리의 적을 어렵게 해치우면, 쉬지도 않고 다음 전투를 준비해야 했다.
전리품은 알아서 줍는 대로 획득하였고, 그나마 갖는 휴식이라고는 장비의 내구력이 최저로 낮아졌을 때 이를 수리하는 시간이 전부였다.
"우와악!"
배를 채우고 무기를 수리하는 시간 외에는 전부 싸움만 하였다면 아무도 믿지 않으리라.
결국 16시간의 연속적인 전투 끝에 제피는 큰 부상을 입었다. 바스라 도둑 기사단의 검이 복부르 관통해 버린 치명상이었다.
화령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위드를 보았다.
"너무 무리했잖아요! 우린 인간이라고요. 피곤하면 쉬게해 주셔야지요!"
그러면서 화령은 부러운 눈으로 제피를 바라 보았다.
'죽다니... 하루는 편히 쉬겠구나. 나는 언제쯤 이 악마의 손길에서 뻐져나갈 수 있을까?'
처음으로 죽는 이가 부러워진 화령이었다.
제피도 입가에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전 괜찮습니다. 화령 님, 위드님. 제 걱정은 정말로 하나도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하하하!"
제피는 시원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위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아니야. 성직자나 신관도 없는데 나를 살릴수는 없겠지.'
제피의 복부에서는 피가 샘솟듯 솟구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생명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제 남은 생명력은 단 23%
이직 위험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상처를 지혈하지 않는 한 상세가 계속 악화될 것이 자명했다.
다시 말해 성직자가 없다면 제피는 완벽하게 죽는 것이다.
제피는 캡슐을 빠져나가서 취할 편안한 휴식을 꿈꾸었다.
그런데 이 사악한 위드는 그가 죽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양 붕대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제가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무슨 농담을...."
"붕대 감기!"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감아 주는 붕대.

-상처의 지혈이 끝났습니다.

-부상 부위가 안정화되었습니다.

-생명력이 회복되었습니다. 26%.
-생명력이 회복되었습니다. 29%...

"커헉!"
제피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그러고는 두려움에 휩싸인 눈으로 위드를 쳐다보았다.
"설마...위드 님, 붕대 감기 스킬이...?"
"중급9레벨입니다."
고급이 되기 직전이었다.
성기사들이나 여러 부하들 그리고 위드 자신이 언제나 최대한 드들겨 맞는 전투를 하다 보니, 붕대 감기 스킬 역시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보통 파티 사냥을 하면서 성직자들의 치료에 의존하다 보면 여간해서는 붕대 감기 스킬을 쓸 일이 없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초보 시절 외에는 스킬의 레벨이 거의 올라가지 않고 사장되기 일쑤다.
"붕대 감기마저 중급9레벨이라니...."
제피는 땅을 치고 안타까워했다.
좌절과 원망스러움.
이 지옥 같은 사냥에서 빠져나가지도 못하게 만드는 위드가 악마처럼 보일 뿐이었다.
여행 불가능 지역으로 알려질 만큼 위험한 모라타 지방!
억지로 끌려가다시피 한 그곳에서 레벨250대의 몬스터들이 위드의 주 먹잇감이었다.사제 알베론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진혈의 뱀파이어와도 싸웠다.
그에 비하면 바스라 마굴은 약한 사냥터에 불과하다.
지하3층까지는 라비아스에서 숱하게 싸운 데스 나이트보다 약하다
데스 나이트들의 경우에는 장검을 쓰고 방어력이 좋은 갑옷을 입고 있어서 꽤나 까다로운 상대였다. 스킬도 곧잘 사용했다.
바스라 도적단은 단검 종류를 사용하는데, 숫자만 많을 뿐 상대하기엔 쉬었던 것이다. 물론 진혈의 뱀파이어들과는 애초부터 견줄 만한 상대가 못 되었다.
사제 알베론이 없다곤 해도, 낚시를 익히면서 부족하던 생명력을 많이 늘렸다.
현재 위드의 생명력은 이전과 비교해서 거의 2배에 달하는 14,000을 헤아렸다.
또한 대장장이 기술들을 통해서 공격력과 방어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으니, 현재의 위드는 혼자서도 진혈의 뱀파이어를 사냥할 자신이 있었다.
전설의 달빛 조각사라는 직업!
단지 레벨로만 판단할 수 없는직업이다.
만들어 놓은 걸작 조각품에 따라 능력이 달라지고, 여러 생산 스킬들을 섭렵하는 과정에서 각종 스탯과 스킬들을 이용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지난 몇 달간 위드는 단순히 놀면서 지낸 게 아니었다. 강해지는 방편으로 생산 스킬들을 연마하였다. 그 결과가,
비록 레벨은 오르지 않았지만 실력은 크게 향상된 지금의 모습이다.
만약에 조각술이나 다른 생산 스킬을 연마하지 않은 채로 레벨만 280을 넘었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약했으리라
조각사라는 이유로 인하여 제한된 낮은 생명력과 마나, 거기에 별로 특별한 것이 없는 스탯들 때문이다.
지금은 그 어떤 직업과 견주어도 동일 레벨에서는 적수를 찾지 못한다. 드러난 레벨로는 판단할 수 없는, 숨은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만 가치를 발휘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위드의 목표는 애초부터 지하4층에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저 강한 몬스터와 싸우는 것이 좋을 뿐.
레벨110이 넘었을 때부터 데스 나이트들과 싸움을 벌였다. 물론 수련소의 스탯과 직업의 효과, 스킬의 영향 덕분에 한
번 죽고 한 번 이기는 싸움을 반복했지만, 그러는 과정에서도 희열을 느끼던 위드였다.
위드는 화령과 제피와 함께 무려 29시간을 연속으로 사냥했다. 그때에 이르러서는 배낭이 가득 차서 더 이상 전리품을 넣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아쉽군요."
화령과 제피는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화령과 제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고 긴 사냥은 이걸로 끝이 났다.
'정말 힘들었어.'
'참으로 끔찍했지.'
꿈에서도 바스라 도둑 기사단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어진 위드의 말에 그들은 까무러칠듯이 놀라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마을에 한 번 다녀와서 잡템 좀 팔고 다시 사냥을 해야겠습니다. 바스라 도둑 기사단이 우릴 기다리고 있으니, 서둘러서 다녀 오도록 하죠."
뜨아악!



다크 게이머 연합



이현은 수학 책을 집어 들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두 번 다시는 하지 않을 줄로만 알았던 공부를,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다시 시작한 것이다.
"으음..."
육체를 단련시키는 동안 머리가 굳은 탓인지 내용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체 공식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필요하면 인터넷에 찾아보면 되고, 복잡한 계산식도 처리할 수 있는 계산기가 널리 보급된 마당에...."
이현은 불평과 불만들을 끊임없이 쏟아 냈다. 혼자서 수학을 배우기란 도저히 무리였다. 그렇다고 해서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기에는 돈이 아까웠다.
'포기해 버릴까? 하지만 그러기엔 시험을 신청한 돈이 아깝고....'
결국은 여동생이 이틀에 1시간씩 이현의 공부를 봐 주기로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수학만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배우는 쪽에서 열의를 보이지 않읜 가르치는 사람도 힘이 빠지기 마련.
그러나 이현을 가르치는 여동생 혜연은 자신의 오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것 봐. 이거 다 적립이라니까. 적금을 생각해! 오빠. 30만원씩 5.39%의 이자율로 12개월 적금을 넣으면 그게 알마지?"
"370만5,105원!"
이혜연이 묻자마자, 눈 깜짝할 새에 나와 버린 대잡이었다. 그것으로는 모라랐던지 이현은 말을 덧붙였다.
"일단은 이자가10만5,105원 붙은 거지. 그런데 이자 소득에 대해서 세금을 내야 되잖아. 세금 우대로 가입하면
369만5,120원이고, 일반 과세로는 368만8,919원이 돼."
"그것 봐. 쉽잖아. 수학은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돼. 다 돈이야. 돈을 계산하는거야."
고등학교를 중퇴한 이후로 공부를 완전히 손을 놓아 버렸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학교를 그만두고 난 이후로 아직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른건 아니다.
'어디 한번 해보자!'
과목들은 일단 대충이라도 한 번씩 문제집을 풀어 보았고, 여동생의 교과서도 빌려서 쭉 읽어 보았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사흘 앞둔 날!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공부가 잘되지 않는다.
시험을 바로 코앞에 두었을 때라야 공부에 집중이 잘되는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
이현은 필살의 비기, 벼락치기를 실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검정고시의 니ㄹ이 다가왔다.


이현은 일찍 집을 나왔다. 방학 기간 중인 시내의 한 중학교에서 검정고시를 보기로 되어 있었다.
'잘 봐야 될 텐데....'
검정고시를 보러 가기 전에 먼저 병원에 들렀다. 할머니를 뵙기 위해서였다.
할머니는 혈색이 많이 좋아져 있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요즘은 산책도 다니고 거동에 별다른 불편함도 없다고 한다.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두 번, 세 번이라도 봐서 꼭 합격하도록 하려무나."
"예. 할머니."
이현은 할머니의 손을 꽉 잡아 드렸다.
주름이 가득한 손,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 이현과 이혜연을 기르기 위해서 고생을 한 손이다.
'할머니.'
그 고마움만큼은 평생 잊지 못하리라.
만약에 할머니마저 그들 남매를 포기했더라면 제각기 흩어져 고아원 시설 같은곳에서 자라야만 했을 것이다.
"그럼 다녀 오겠습니다."
이현은 병원을 나와서 학교로 향했다.
한국 중학교에서 치르는 시험. 중학교 옆에는 한국 대학교와 한국 고등학교가 함께 붙어있었다.
한국 대학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교수진이 좋고 시설도 무척 훌륭한 평이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인재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명문대 우선인 국내에서보다는 오히려 외국에서 더욱 높이 평가받는 한국 대학교. 그래서인지 유학생들도 타 대학에 비해 훨씬 많다고 한다.
이현은 높게 치솟은 대학의 본관을 보며 다짐했다.
'나는 실패자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혜연이만큼은 반드시 이 대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다.'
각 반마다 약 30명씩 시험을 치렀다.
시험지를 받아 든 이현은 우선 쭉 훑어보았다. 모르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벼락치기가 상당한 효과를 보여 주는 듯 싶다.
하긴 검정고시 자체가 노인들이나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정규 시험보다는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다.
'역시 나는 똑똑하군. 공부를 했어도 대성했을 거야.'
이현은 학교에 정상적을 다니지 못한 것에 대해 비로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열악한 교육 과정이 비운의 천재를 또 하나 만들었다!
이현은 그렇게 자위하면서 시험 문제를 풀었다.
다만 몇 번은 심각하게 고민이 되는 순간도 있었다.
선택 과목인 도덕 시험을 볼 때였다. 선택 과목으로 외국어를 택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도덕이라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윤리 의식으로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집도 제대로 풀어 보지 않았던 것.
1.길에서 돈이 든 지갑을 발견했습니다. 올바른 해결 방법은?
(1)챙긴다.
(2)지갑을 주운 후 목격자가 있는지 확인한다.
(3)가지고 도망친다.
(4)지갑에 신분증이 있는지 확인하고 주인을 찾아 준다.
(5)돈은 챙기고 지갑만 그 자리에 놔둔다.

이현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무척이나 갈등했다. 아마도 학교를 그만둘 때에도 이렇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듯싶다.
'대체 정답이 뭐야?'
도덕이라서 쉬울 줄 알았더니 이렇게 애매한 문제를 낼 수 있단 말인가!
'정답이 3개난 있다니...'
이현은 고심 끝에 2번을 택했다. 5번도 어느 정도 정답에 가까워 보이지만 지갑을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두다니, 올바른 판단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 문제부터는 별로 선택이 어렵지 않아서 쉽게 풀 수 있었다.
'도덕은 만점을 받겠군.'
그 도덕 시험을 끝으로 검정고시를 마쳤다.

"이번에 로스 글레아시스에서 새 아이템을 얻었어. 이름도 찬란한 금빛 도끼! 데미지 범위가 무려 60이 넘지."
"옵션은?"
"힘 45를 올려 주고 민첩10하락, 필드에서 도적 떼를 랜덤하게 만날 수 있고, 물에 빠뜨리면 잃어버리는 물건이긴 하지만 말이야."
"오오! 좋은데."
교실 안은 옹기 종기 모여서 떠드는 이들로 소란스러웠다. 시험이 끝난 기분 때문인지 긴장이 풀어져서 로열 로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금빛 도끼라...'
도끼는 파괴력이 강한 대신에 타격 범위가 좁고 속도가 느린 단점이 있다. 데미지는 높아도 적중시키지 못하면 허사,
그러나 도끼를 정말 잘 쓰는 전사라면 확실히 위협적이기도 했다.
이현은 주섬주섬 가방을 싸서 교실을 나왔다. 그런데 우르르 교실을 나서는 게 아닌가.
어쩔 수 없이 학교를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
한 사내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고, 나머지는 모두 이현의 또래였다.
"그런데 중훈이 형은 참 대단하시네요. 저희들은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술이나 마시고 살았는데...."
"굉장해요. 다크 게이머라니...."
'다크 게이머?'
게임으로 돈을 버는 이들.
그들을 다크 게이머라고 부른다.
이현이 놀란 것은 다른 이들의 반응이었다.
중훈이라는 사람이 다크 게이머라는 사실을 알고서 부러워하는 것이다.
'창피하지 않나?'
이현이 생각하기에 게임을 잘해서 돈을 버는 건 전혀 자랑 거리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어떤 생산적인 일을 통하여 사람들의 생활을 이롭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ㄱㅔ임을 직업 삼아 돈을 버는 페인에 불과하지 않던가.
"형, 죄송하지만 형의 레벨은 얼마나 돼요?"
"내 레벨? 355야, 지금."
"헉! 제 주변에도 로열 로드를 한다는 사람이 꽤 많지만 형처럼 레벨이 높은 사람은 처음 봐요. 그러면 랭커?"
"1만 랭킹 안에 들지."
로열 로드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수억을 헤아리다 보니, 1만 명 안에만 들어도 굉장하다고 할 수 있다.
'레벨350이 넘다니 대단하군.'
이현은 부러움음 감추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집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런데 중훈이라는 사람과 그 일행은 근처에 주차된 외제차 앞에서 멈추는 것이었다.
"타라. 다크 게이머가 어떤 건지 한번 구경시켜 줄게."
"고맙습니다. 형."
중훈은2명의 동생들을 데리고 차에 탔다. 이현이 그 차의 옆을 지나치려고 할 때였다.
"어이! 차에 빈자리가 있는데 탈래? 집이 멀지 않다면 태워 줄게."
이현은 사양할지 말아야 할지 참시 망설였다.
그때 중훈이 한마디를 덧붙었다.
"괜찮아. 그리고 그쪽도 로열 로드를 하는 것 같던데. 우리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유심히 듣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지금 다크 게이머 정기 모임이 있어서 가려고 하는데, 괜찮다면 구경이라도 해 보고 가지 그래?"
다크 게이머의 모임 장소는 창고를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어떤 건물 내부였다.
몇 대의 캡슐이 있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탁자와 의자도 넉넉했다.
"우선은 정기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 다크 게이머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지."
자신을 최중훈이라고 소개한 사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로열 로드로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버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하지? 한두 번이 아니라,
직업적으로 아이템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말이다."
"수만 명 정도요?"
최중훈은 고개를 저었다.
"최소한 수십만 명은 될 거다."
"그렇게 많나요?"
"인도나 중국, 동남아에서 전문적으로 게임만 하는 이들도 있으니까."
중국 게이머들이 한국 게임에 접속해서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를 파는 것은 이미 21세기 초반부터 빈번하게 일어나던 일이었다.
로열 로드는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문 게임ㅇㅣ다. 어느 대륙, 어떤 나라의 국민이라도 캡슐을 통해서 좁속할 수 있었다.
다른 국적을 가진 이들끼리의 대화는 유니콘 사에서 개발한 자동 언어 변환기를 통해 자국어로 통역되니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로열 로드를 기업형으로 운영하는 조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말도 맞아. 그런 데선 많은 직원을 두고 아이템이나 게임 머니를 모아서 판매하지. 비겁하다고 욕할 생각은 없어.
그들은 나름대로 현명한 판단을 한 거라고 봐. 그렇지만 우리의 적은 그들만이 아니다. 다크 게이머라는 사실을 가능한
숨기고 활동하는 편이 좋기 때문에 세상의 전면에는 나서지 못하지. 천성 탓인지 혼자서 다니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기존 세력들의 텃세에 밀리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만든 게 다크 게이머 연합이다."
최중훈의 말에 예비 다크 게이머 후보생들은 모두 머리를 굴렸다.
"그러면 연합에서는 무슨 일을 하죠?"
"좋은 질문이다. 첫 번째로는 정보를 공유한다. 연합 소속의 다크 게이머들이 올린 정보를 공유한다. 연합 소속의 다크
게이머들이 올린 정보들을 서로 공유할 수 있지.
사냥터에 대한 정보라든가 특정 몬스터에 대한 정보... 그런것들 말이야."
"정보 공유! 그러면 연합에 들면 베르사 대륙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겠군요."
"아쉽게도 다 받을 수 있는건 아니야. 등급에 따라서 획득할 수 있는 정보가 나누어져 있거든."
"그건 좀 실망인데요?"
"보안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뭐, 아직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지만, 누군가가 연합 내부의 중요한 정보를 외부로 유출시키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하긴, 사람이 많으면 그럴 가능성도 있겠네요."
"그리고 레벨 100짜리에게 레벨200들이 노는 사냥터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진 않지. 제공한 정보의 가치에 따라 회원 각자의
등급이 결정되고, 그 등급에 맞게 정보의 가치에 따라 회원 각자의 등급이 결정되고, 그 등급에 맞게 정보가 제공돼는
시스템이랄까. 뭐, 대충 그런 건데, 물론 초보다들을 위한 기초적인 정보 정도는 막 가입한 이들에게도 공개되어 있지."
"그러면 등급은 연합에 제공하는 정보에 의해서만 올릴 수 있는 건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 다크 게이머로 활발하게 활동하면 등급이 자연히 오르기도 하지. 거래 사이트에 열심히 물건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오를 수 있고. 물론 그런 식으로 올리는 데엔 한계가 있지만."
"그러면 저희들도 다크 게이머 연합에 가입할래요."
최중훈을 따라온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바로 가입 서류를 작성했다. 거기에는 캐릭터의 이름과 레벨, 기타 인적사항들을 기재하는 항목이 있었다.
레벨에ㅣ 따라 최초의 등급이 결정이 되는데, 두 사람 모두 레벨 140이하라서 D였다.
"자네는 가입하지 않을 건가?"
가만히 있는 이현에게 다가온 최중훈이 물었다.
이헌은 다크 게이머 연합에 가입하는 것이 이득일지 손해인지 곰곰이 계산해 본 뒤 고개를 저었다.
"가입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가?"
최중훈은 별로 아쉽지 않은 얼굴이어ㅆ다.
"가입을 하지 않겠다는 걸 보니 로열 로드를 하고는 있군. 여기까지 따라온 걸로 보아서 우리 연합에 대한 호기심도 제법
있을 테고. 뭐,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아무래도 좋아."
그러면서 최중훈은 이현의 귓가에만 살짝 속삭이는 것이었다.
"저 녀석들은 뜨내기지.정보만 얻어 가고 말 녀석들이야. 그런데 자네의 경우는 왠지 조금 달라 보이는군. 단지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쓸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말이야."
"...."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 혹은 받은 만큼 갚아야 하는 관계가 싫다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초보자들에게 제공되는 정보 따위는 알 필요도 없다 이건가?"
이현은 상당히 놀랐다. 최중훈은 이현과 비슷한 이들을 상대해 본 경험이 많은 듯했다.
"어떻든 간에 좋아. 누구나 자기만의 사정을 한둘쯤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 뭐, 그 점에서는 다크 게이머들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진심으로 이야기한다. 로열 로드를 하고 있다면 우리 연합에 가입해라."
이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가하게 등급이나 올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 정보를 공개하고 싶지고 않습니다."
모르기는 해도 이현이 위드라는 사실이 공개되면 평지풍파가 일어날 것이다. 반드시 인터뷰를 따 내겠다는 오주완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최중훈은 이현의 거듭된 거절에도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었다.
"자네 같은 사람들은 최소한 뒤퉁수를 치지는 않지. 다크 게이머의 홈페이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
계정은 kj9008,암호 165008. 신규 회원을 위해서 주어지는 아이디다. 접속을 하게 되면 등급이 C로
조정되어 있을 거야. 저법 쓸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걸. 뭐, 신분이 드러날 게 걱정이라면 암호를 자네 마음대로 바꿔도 되고."
"내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뭡니까?"
"동료?"
"우리 다크 게이머들의 제 1법칙. 아무도 믿지 말라. 이것은 자네와 나 사이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
"그렇지만 다크 게이머의 제2법칙도 있지. 받은 만큼은 베풀어라. 자네는 최소한 1법칙과 2법칙을 철저히
지킬 사람 같아서 이렇게 권하는 거다. 내가 보기엔 다크 게이머로 타고난 사람 같으니까."
"제3법칙도 있습니까?"
"있지. 믿을 건 돈밖에 없다."
"...."
이현은 다크 게이머 연합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


바스라 마굴 지하 3층에서 위드와 화령, 제피는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매번의 전투마다 목숨을 걸어야 했기에, 그들의 사냥 솜씨는 획득하는 경험치 만큼이나 일취월잘하고 있었다.
"이제 생명력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다음 사냥감을 찾아보죠, 위드 님."
"네, 그러는 펀이 좋겠어요."
제피와 화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념의 정서!
어떤 말로든 위드의 사냥을 멈출 수 없음을 알게 되었으니 아예 선수를 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위드는 바스라 마굴에서 사냥을 할 수 있는 한계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짧으면 하루, 길면 이틀, 검정고시 때문에 뺏긴 시간이 아쉽군.'
오데인 요새 공방전이 완전히 끝난 지고 제법 날짜가 지났다.
발칸 길드의 약화로, 당분간 요새를 공략할 길드는 없을 것이다. 이는 승자들이 자신들의 영토에 대한 지배력 강화에 들어갈시기가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일종의 텃세, 혹은 사냥터의 독점.
그 시기가 되면 제국의 번영 길드와 그 동맹 길드에 속하지 않고서는 유명한 던전에서 사냥하는게 힘들어질 것이 뻔했다.
'아까워.'
바스라 마굴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도 꽤나 이름난 던전에 속한다. 많은 경험치와 쓸 만한 전리품을 노리고, 다른 국가에서 일브러 찾아오는 유저도 있다.
덕분에 위드는 이곳에서 17개의 레벨을 올려 레벨247을 만들 수 있었지만, 그것도 길어야 이틀. 그 이후로 더 이상의 사냥은 기대하기 힘들다.
'최소한 5개의 레벨은 올려야지. 그러자면 더 강한 놈을 잡아야 한다. 약한 놈을 여럿 잡는것보다는 강한 놈을 하나 잡는게 경험치 명에서 더 나으니까
위드는 화령과 제피를 이끌고 지금까지 가 본 적이 없던 영역으로 진입했다.
그곳은 바스라 마굴의 보스 던전
바스라 대공과 기사들이 있는 장소로 알려진 곳이엇다.
처음 위드가 그리로 가자고 할때 화령과 제피는 질린 얼굴이 되었다.
"말도 안 돼요!"
"위드님 드디어 확실하게 미치셨군요!"
그럴 수밖에 없는게 바스라 대공의 레벨은 290이고, 그의 휘하 기사들은 275라고 알려져 잇다.
"위드 님! 위드 님의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해요. 하지만 바스라 대공과 그 밑의 기사들은 절대로 이길수 없을 거예요."
"그렇습니다. 바스라 대공은 흑마법사이며, 동시에 네크로맨서입니다.네크로맨서는 일반 마밥사와 차원이 달라요.
게다가 그냥 레벨 290의 몬스터가 아니라 보스 몬스터란 말입니다."
"대공의 마법 공격력은 막강하다고요."
"너무 강해서 한두 번만 맞으면 우리들 정도는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어 죽을...."
이현이 그들의 말을 잘랐다.
"바스라 대공의 공격력은 물론 강하겠죠?"
"당연하죠! 붕대 감기로도 어쩔 수 없을 만큼..."
"붕대 감기는 전투가 끝나야 제대로 쓸 수 있으니까요."
그 순간 제피와 화령의 표정이 돌변했다. 두 사람은 활짝 웃으며 위드의 의견에 찬성했다.
"위드 님! 우리 가요!"
죽음으로 얻게 될 하루의 휴식!
화령과 제피는 바로 이것을 노린 것이다.
'정말 재미있는 동료들이군.'
위드는 그들을 볼 때마다 지루하지가 않았다. 사람들이 어찌 이리도 단순한지!
그렇지만 정작 1쿠퍼에 눈이 뒤집히는 위드는 본인 스스로가 얼마나 단순한지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었다.

"크크큭! 오랜만의 손님이군. 너희들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찾아왔느냐."
지하4층의 깊은 곳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바스라 대공과 기사2명 그리고 바스라 도적들이 12명 있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다행이야. 빨리 죽어야지.'
바스라 대공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화령과 제피는 삶을 체념했다.
그렇다고 해서 초조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바스라 대공처럼 인격을 가지고 있는NPC들은, 만난다고 하여 무조건 덤비지는 않는다.
브리튼 연합 왕국에 복수하기 위한 군자금을 내놓는 것으로 싸움을 무마시킬 수도 있다.
또한 친밀도를 높이 쌓음으로써 바스라 대공으로부터 특별한 의뢰를 받는 것도 가능했다. 대공을
죽이려는 브리튼측의 암살자를 격퇴한다거나, 아니면 도둑 기사단에 필요한 장비들을 가져오는 의뢰를 받기도 한다.
일종의 퀘스트가 부여되는 것이다
대신에 그러한 의뢰를 받아들일 경우, 브리튼 연합 왕국과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다만 그런 일이 아무 때나 벌어지는 것은 아니고, 유저의 명성과 레벨이 바스라 대공이 상대해 줄 정도로 높아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바스라 대공은 초면인 위드레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때문에 화령과 제피는 초조함을 느꼈다. 만에 하나 싸움이 벌어지지 않으면 죽지고 못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위드는 바스라 대공의 말에 검부터 빼 들었다.
"너를 죽이기 위해 왔다."
"호오! 브리튼의 개인가? 죽음의 길로 들어서겠다면 막을 수눈 없지. 너희들을 벌하는 것으로 나의
정당성을 알리겠다. 너희들의 죽은 몸뚱이를 이던전의 입구에 걸어 본보기로 삼겠다. 기사들이여! 저 녀석들을 죽이도록하라!"
"예! 대공전하!"
기사들이 복명을 하는 사이에 위드는 검을 쥐고 외쳤다.
"성스러운 가호!"
아가사의 거룩한 검의 효과로 위드의 몸에 성령의 힘이 깃들었다.
"대신관의 축복!"
반지에서부터 빛이 뿜어 나와 위드의 몸을 얇게 둘러쌌다.
20분간 지속될 뿐이지만, 프레야 교단의 대신관이 직접 축복한 것과 같은 효과!
위드의 능력치가 150%로 향상되었다.
"데스나이트, 바스라 도적들을 맡아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데스 나이트는, 축복이 걸리는 순간 말 잘 듣는 부하가 되었다.
평소 오만불손하게 굴던 데스 나이트지만 대신관의 축복앞에서는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피 님은 나이트와 함께 도족 떼를 해치워 주십시오."
"하지만...."
어차피 싸울 거라면 기사를 맡고 싶은 제피였다. 그 편이 아무래도 빨리 삶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기사들은 화령 님이 재워 주시면 됩니다. 저는 그 동안 바스라 대공을 맡겠습니다."
"기사들이 깨어나면요?"
"바스라 도적들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데스 나이트와 제피님이 합류해 준다면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바스라 대공을 상대하겠습니다."
제피와 화령은 위드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 외에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공의 기사 2명이 은빛 검을 맹렬하게 휘드르면 덤벼들었다.
"화령님, 수고하세요!"
제피는 곧바로 도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였다. 위도도 기사들의 공격에서 빠져나갔다.
결국은 화령 혼자 가사 둘을 감당해야 했다.
"매혹의 댄스!"
자기보다 더 강한 이들을 재울 때에는 막대한 마나가 필요했다. 또한 춤을 추어야 하는 시간도 더 길어졌다.
"바스라의 영광을 위해!"
기사들은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마구 돌격을 했다.
'최고야! 바로 그 기세라고!'
화령은 춤을 추면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약간은 고통은 있겠지.'
죽을 정도의 고통!
그렇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근육통 속에서 하루 종일 사냥을 하는 쪽보다는 훨씬 낫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사들이 검은 휘두르지 않고 갑자기 잡담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제이슨, 네가 죽여라."
"싫어. 토번, 네가 해."
"나는 그럴 수 없다. 레이디를 지키는 것은 기사의 신성한 의무 기사 서임을 받을 때 나는 맹세했다. 이 레이디를 베면 나는 기사도 아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공 전하의 명령이 있으니...."
기사들은 화령을 죽이기 직전의 순간, 갈등에 빠진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바스라 대공의 명령을 떠올리고는 화령에게 다가왔다.
"미안하오, 레이디!"
이미 목숨을 내던질 각오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기란 너무 속 보이는 짓이기에, 화령은 춤을 멈추지 않았다.
손짓을 하면서 허리를 유혹적으로 흔드는 뇌쇄적인 춤을 추었다.
실상 눈을 감고 춤을 추는건 그녀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 바스라 도둑 기사단을 상대할 때, 지독한 졸음을 이겨 내며 사냥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얻은스킬, 눈 감고 춤추기.
띠링!
-매혹의 댄스 스킬이 성공하셨습니다.
바스라 대공의 기사가 잠이 듭니다.

"아!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죽일 수가 없구나. 대공 전하, 용서하십시요 저는 차마....."
화령은 무사히 기사들을 재울 수 있었다.
"앗! 이게 아니었는데!"
화령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사이, 제피와 데스 나이트는 최대한 빨리 도적들을 처치하고 위드가 있는 쪽을 보았다.
'대단하다!'
제피는 위드의 전투를 보면서 진심으로 감탄했다.
바스라 대공은 사악한 마나를 모아서 흑마법을 시전했다.
"적을 꿰뚫어라. 다크 애로우!"
바스라 대공의 등뒤로 수많은 검은 화살들이 생성되어 일시에 날아든다.
공격 마법이 생성되어 시전되기까지는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한데, 위드는 그 화살들 전부를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었다.
마법 공격이 근처까지 다가올 때가 아니라 생성될 때부터 그 궤도를 파악하고 미리 대비하는 것이었다. 그 뛰어난 예측력과
신묘한 동작에, 제피는 절로 탄성을 터뜨렸다.
"조각 검술!"
위드는 검을 휘들러 마법 화살을 받아쳤다. 그러고는 거센 화살 비를 뚫고 바스라 대공을 공격했다.
"블링크!"
바스라 대공은 이동 마법을 펼쳐 몇 미터 밖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팍에는 기다란 검상이 나 있었다.
위드의 공격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조각 검술의 장점은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한다는 점!
본래 생명력이 적은 네크로맨서로서는 큰 타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예 리치가 되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생명력을 얻겠지만,
리치는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수준의 최상급 몬스터였다. 드물기도 하거니와 있는 곳을 알아도 다들 피해 가는 실정이다.
"어리석은 놈들!"
겨우 한숨 돌린 바스라 대공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상황이 악화된 것을 발견하자 금세 격노하여 비난을 퍼부었다.
"죽음의 신과 계약한 나와 맞서려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왜 추악한 브리튼의 왕들이 나를 토벌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아느냐?
내가 지금 똑똑히 보여 주마. 불사의 힘이여! 여기 나의 전사가 필요하다!"
투르륵! 투둑!
땅속에서 해골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검은색 해골과 붉은색, 흰색 해골들!
스켈레톤 메이지와 스켈레톤 워리어, 스켈레톤 궁수, 스켈레톤 파이터 등....
바스라 대공은 보스 몬스터 답게 네크로맨서의 능력을 발휘하여 언데드들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여기는 대대로 우리 바스라 영지의 시신들을 매장하는 장소였다. 내가 어릴 때부터 네크로맨서 마법을 익혀 온 장소지.
똑똑히 기억해 뒤라. 너희들에게는 무덤이 될 자리다!"
"조각 검술!"
위드는 바스라 대공과 스켈레톤들을 전부 감당해야 했다.
스켈레톤 전사나 워리어의 공격을 막는 한편 바스라 대공의 마법 공격을 상대해야 하는 지극히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것이다.
고위 네크로맨서의 마법 공격은, 제대로 맞을 경우 위드의 생명력을 삼분의 일 이상 날아가게 만들 수도 있다.
네크로맨서의 위험함은 공격 마법 외에도 극악한 저주와 시체 폭발 그리고 언데드 소환이었다.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직업.
하지만 절망의 평원에서 바르칸의 네크로맨서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위드로서는 한발 앞서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인간... 죽어라!"
등 뒤에 있던 스켈레톤 워리어가 녹슨 장검 으로 위드를 내리쳤다. 그 공격은 위드에게 정확히 적중되었지만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잘 다림질된 망토가 그 공격을 부드럽게 감싸듯이 흘러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 타격력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레벨 220 정도.'
위드는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엄청나게 맞아 본 위드인 만큼, 몸에 전해진 타격력만으로 몬스터의 대략적인 레벨을 유추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이 몸으로 때워 본 것이야 말로 생생한 자료. 애써 읽거나 볼 필요 없이 몸으로 느끼면 되는 것이다.
'220 정도라면 까다로운 상대는 아닌데.'
문제는 바스라 대공이 끊임없이 언데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축북의 효과는 단 20분!
그 기간이 지나면 훨씬 어려운 전투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위드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언데드들을 피하는 게 문제라면... 방법이 있지!'
불에는 불!
위드는 반 호크의 마법 헬름에 있는 권능을 발휘했다.라바이스에서 데스 나이트에게서 획득한 아이템으로 아직까지 머리에 차고 있는 것이었다.
"콜 스켈레톤!"
레벨 50 이하의 언데드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아이템 부릴 수 잇는 숫자와 명령의 수준은 통솔력에 따라 달라진다.
푸스스슥!
지하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스켈레톤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스켈레톤들만 해도 200여 구가 넘었고, 그후로도 계속 스켈레톤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인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깨어난 스켈레톤들이 일시에 위드에게 부복하는 것은 가히 장관이었다.
"싸워라! 나를 위협하는 적들에 맞서!"
스켈레톤들은 스켈레톤 워리어나 스켈레톤 궁수들에게 넘벼들었다.
바스라 대공이 불러낸 스켈레톤들을 숫자로 압도하는 상황이었다.
"죽음의 신으로부터 힘을 받은 주인님께 복종하라."
"우리를 불러낸 것은 그자가 아니다."
"어리석은....!"
스켈레톤과 스켈레톤들의 싸움!
누가 아군인지 누가 적군인지조차 구분조차 가지 않는 대난전이었다.
스켈레톤들끼리 서로를 물어뜯고 서로의 뼈다귀를 빼앗는 행위가 전역에 걸쳐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드가 만들어 낸 스켈레톤들은 금방 박살이 나서 뼈무더기로 변했다. 레벨50도 안 되는 스켈레톤들로는,
바스라 대공이 만들어 낸 언데드들을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켈레톤들이 방패막이가 되어 준 덕분에 위드는 포위 공격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트리플! 백어택!"
급한 상황이기에, 위드가 마나를 아끼지 않으며 바스라 대공을 공격했다.
바스라 대공은 블링크를 연속으로 써 가면서 끝까지 항전했지만, 그사이 그의 수호 기사들이 제피와 데스 나이트에 의해 제압되었다.
화령과 제피, 거기에 데스 나이트까지 더한 파티의 총공격이 가해지자 바스라 대공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인내 1이 상승하셨습니다

-투지 1이 상승하셨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과연 레벨 290의 몬스터답게 위드의 레벨도 하나 오르게 되었다.
진혈의 뱀파이어와 레벨 차이는 그리 크지 않지만 보스 몬스터 답게 과연 끈질기고 강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와 비교할 수 는 없겠지만.....
"와! 대단해요. 정말 잡았네요."
화령과 제피는 사냥의 성공을 순수하게 기뻐하며 다가왔다. 하지만 위드는 금방 그들으ㄹ 얼어 붙게 만들고 말았다.
"음, 이번에는 생명력을 3.5%나 남겼군요. 나름대로 신경으ㄹ 썼는데ㅣ...."
"...."
"그럼 사냥 계속하죠."
"...."


지상의 거대한 무덤




위드가 레벨259에 올랐을 무렵, 마침내 마바로스 길드에서 포고령을 내렸다. 위드의 예상보다는 하루 정도 늦은 날짜였다.

바스라 마굴에 대한 사용 요금을 200%인상함.
지하 3층부터는 마바로스와 제국의 번영, 두 길드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하기로 함.
사냥을 통해 획득한 아이템 중에 레어 이상의 물품은 적당한 가격으로 마바로스 길드에서 구함.
"이게 무슨 짓이야."
"에이, 더러운 놈들! 적당한 가격이라고? 너희들이 마음대로 매기는 값이겠지."
이 포고령은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언제그랬냐는 듯, 금새 유아무야되었다.
베르사 대륙에서는 힘을 가진 자가 곧 법이다.
오데인 요새 근처에서 제국의 번영 길드와 그 동맹 길드를 거스를 만한 힘을 가진 이는 없었다. 때문에 다소의
폭거에도 눈을 질끈 감고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아니면 마바로스 길드에 가입하거나.
실제로 포고령을 내건 이후, 마바로스 길드는 바스라 마굴 입구에서 신입 길드원을 대거 모집했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지만 효과만큼은 커서, 다수의 신입 길드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저희들은 좀 더 레벨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요, 위드 님!"
화령, 제피와의 이별.
위드는 바스라 마굴을 나와 오데인 요새에 있는 프레야 교단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사제와 성기사들이 질문하자 위드는 대신관의 반지를 보여 주었다.
"이곳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오! 그대가 바로 우리 교단의 은인이시군요. 꼭 한번 방문해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신관은 위드의 두 손을 잡고 흔들었다. 성기사들도 다들 나와서 위드를 한 번씩 보고 들어갔다.
어떤 여신관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위드 님이시군요. 저희 수련 여사제들이 위드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괜찮으시겠습니까?"
위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자 아리따운 여사제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프레야 여신은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교단의 여사제들도 뛰어난 미녀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늘씬한 몸매에 크고 맑은 눈, 오뚝한 코, 새하얀 피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만도 황송할 만한 여사제들이 몰려나와 위드의 옷에 성수를 뿌려 주었다. 그야 말로 최고의 서비스였다.

-여신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방어력이 26% 상승합니다.
생명력 회복 속도가 30%증가합니다.
몸에 뿌려진 성수가 마를 때까지 악의 힘으로부터 보호됩니다.
체력이 올라갑니다. 향상된 체력은 다양한 곳에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성인이시라면 애인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위드는 메시지 창을 닫아 버렸다.
여신관의 축복은, 일반적으로 손님이 돈을 내고 받는 교단의 축복보다 한 단계 상위에 속한다.
그렇지만 체력이 늘어나도 딱히 쓸 데가 없는 위드로서는 별로 기뻐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테레포트 게이트로 안내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신관들은 위드를 교단의 안쪽으로 인도해 주었다.
프레야 교단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할 자격을 갖춘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탓에, 위드는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게이트를 쓸 수 있었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관장하는 사제가 물었다.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로자임 왕국의 세라보고 성."
"이동시켜 드리겠습니다."
사제들은 게이트에서 나온 빛이 위드를 덮었다.

"아이템 삽니다!"
"같이 사냥 가실 분! 마법사가 파티 찾아요."
"여기 냄새 잘 맡는 모험가가 있습니다. 후각을 이용한 추적 능력으로 어떤 몬스터라도 찾아 드립니다. 원하는 몬스터을 골라서 싸울 수 있습니다."
위드가 다시 나타난 곳은 세라보그 성의 분수대였다.
브리튼 연합 왕국까지 갈 때에는 바르크 산맥을 넘어 1달 가량의 긴 여정이 걸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다시 돌아온 로자임 왕국!
고향처럼 친근하기는 커녕 그새 엄청나게 번화해져 있었다.
'오랜만이군.'
위드는 주위를 휘휘 훑어봤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더욱 화려해지고, 들고 있는 무기들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그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뜻이다.
"위드 님!"
저 멀리서 페일과 수르카, 로뮤나, 이리엔이 씩씩대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요!"
두 팔을 가득 벌린 채로 안기는 수르카.
로무나나 이리엔 등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내가 평소에 이렇게 덕을 쌓고 지냈구나.'
위드는 잠시 감동했지만 그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수르카가 웅얼거리면서 말했다.
"이리엔 언니나, 로뮤나 언니는 너무 요리를 못 해요. 위드 님이 정말 보고 싶었어요."
"수르카 님?"
"요리 스킬! 더 늘어나셨죠? 얼른 밥해 주세요."
"...."
결국 수르카가 품에 안긴 것은 음식 때문이었던 것이다.
위드가 해 주는 음식을 잊지 못한 수르카는 그가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위드는 그리 화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페일 일행과는 라비아스에서 헤어진 이후로 처음이었다.
'꾸밈없고 순수한...나를 손익으로 따지지 않는 이들이 있기에 삶이 즐거운 것이겠지.'
위드는 흐뭇하게 웃으며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주저하지 않고 프라이팬을 꺼냈다.
"자, 오늘은 특별히 탕수육을 해 드리겠습니다!"
"우와아!"
위드는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서 페일과 수르카, 이리엔과 로뮤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정작 요리를 해 주니, 음식보다는 위드의 지난 행보에 대해 더 궁금해하는 일행이었다.
물론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쪽지나 귓속말로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면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기분부터가 다른 것이다.
세라보그 성의 광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탕수육 파티!
위드와 페일 등은 음식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 그런 일이 있었네요. 석상으로 변했던 귀여운 소녀라니, 보고 싶어요."
이리엔은 성직사로서 위드가 프레야의 사제들과 함께 모험을 했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 레벨이 너무 낮아서 끼지 못했지만, 이제는 저도 레벨220을 달성했어요. 위드님이 오신다기에 바짝 사냥에 전념했거든요."
"축하드립니다."
"참!"
페일이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마판 님과는 이래저래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가게를 내셨거든요. 마판 님이 상인이라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위드 님께선 바스라 마굴에서 화령 님과 사냥을 하셨다고요?"
"예."
"그러면 현재 위드 님의 레벨이...."
왠지 불안한 듯 말끝을 살짝 흐리는 페일이었다.
위드는 정직하게 대답했다.
"259입니다."
"....."
"....."
"쳇!"
"수르카야!"
방금 전까지 동료애로 불타오르던 이들은 이 자리에 없었다.
질시와 사나운 눈초리!
척! 척! 척!
그때였다. 왕국의 병사들이 나타나 위드와 페일 등의 주위를 둘러싸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저 사람들, 죄인인가 봐."
사람들이 이런저런추측으로 떠들어 대며 모여들었다. 이런 흔티 않은 일이야말로 좋은 구경거리가 되니까.
"설마....?"
"위드 님, 사람도 죽이셨어요?"
페일과 이리엔 등이 영문을 몰라 했지만, 어안이 벙벙하기로는 위드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로자임 왕국에 죄를 지은 건 없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없었다.
그런데 병사들 사이에서 기사 복장을 한 이가 나서더니 예를 취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조각사 위드 님이 어느 분입니까?"
"저입니다만...?"
위드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왕 폐하께서 만남을 청하고 계십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시지요."
왕국 기사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현왕 시오데른과의 만남!
찰칵! 찰칵!
"어쩜 좋아! 어서 이 장면 촬영하자!"
"로자임 왕국의 국왕과 만나는 모험가가 있어!"
"야! 애들 불러. 여기 굉장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까!"
광장은 한순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위드를 보려고 하는 이들, 기사의 말을 좀 더 들으려는 이들!
가끔 귀족이 모험가를 찾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기껏해야 백작 정도일 뿐, 현왕 시오데른을 만나 본 유저는 지금까지 단 1명도 없었다.
위드는 국왕과의 만남을 거부할 이유를 딱히 찾지 못하였다.
'나쁜 일은 아닌 것 같군!'
좋지 않은 일이면 병사나 기사들이 이토록 호의적으로 나오지 않았으리라.
당장 제압을 해서 감옥에 데려가거나 아니면 즉결 심판에 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위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 지금 이 순간 두뇌 회전 속도는 대충 12배 정도 빨리진 상태였다.
최대한 눈치를 보며 잔머리를 굴린다!
"폐하께서 부탁하실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니 저와 함께 왕궁으로 가시지요."
정작 위드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이 다시 한 번 난리가 났다. 기사의 말이 일파만파로 퍼진 것이었다.
"로자임 국왕의 부탁이래!"
"그러면 퀘스트잖아!"
"정말이네!"
부러움과 시샘으로 가득한 눈초리들.
언뜻 살기마저 느껴졌다.
페일과 이리엔, 로뮤나, 수르카가 조금 전에 보였던 눈빛을,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군중들이 한꺼번에 쏟아 내고 있는 것이다.
남 잘되는 꼴은 절대 못 본다!
질투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위드는 국왕을 만나는 일을 승낙하려다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사람들로 가득한 곳, 그 너머에 프레야 신전이 있었다.
"국왕 폐하를 만나 뵙기 전에 먼저 프레야 신전에 들렀으면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예, 저희들이 호위하겠습니다."
종교와 세속의 권력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위드는 국왕을 만나기에 앞서 프레야 신전에 들를 수 있었다.
"절망의 평원을 탐험하기 위해서 먼 길을 오신 분을 환영합니다."
고위 신관들이 나와 위드를 맞이하였다.
성물을 되찾아 준 퀘스트로 인해서 종교 공적치가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이제는 프레야 교단 어디를 가나 인기인이된 위드였다.
기사와 군중들이 신전 앞까지 따라왔지만, 성기사들과 수도승들이 지키는 관계로 고위 신관들을 만나는 장소까지는 따라 들어오지 못하였다.
위드는 바로 용건을 꺼냈다.
"먼저 절망의 평원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들도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인간이 살기 힘든 땅, 대형 몬스터와 오크들의 영역입니다. 오크들은 사납고
난폭하며, 부족들 간의 전쟁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 평원에는 혼돈의 시기에 떠난 유배자들과 다크 엘프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쯤 그들은 모두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
"바르칸이 이끌던 네크로맨서들이 절망의 평원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평원은 죽음의 지역!
모든것은 두발로 올바른 길을 찾고, 두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절망의 평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위드가 가봐야만 알 수 있다는 소리다.
'난이도B의 퀘스트라....'
모라타 지방에서 죽을 고생을 한 위드로서는 썩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이것도 모험이라는 생각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라타 지방에서도 성기사들300명과 사제 100명의 도움 덕분에 어렵지만 결국은 퀘스트를 해결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절망의 평원으로 저와 함께 떠나는 지원 부대는 어디에 있습니까?"
위드의 물음에 고위 신관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사제들50명을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사제들50명요?"
"예, 성기사들과 다른 사제들은 포교 활동에 바빠서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위드 님의 출발 준비가 갖취지시면,
곧바로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 절망의 평원으로 떠날 것입니다."
성기사나 몽크도 아닌 사제들!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포기하기에 일렀다.
누가 봐도 불가능하던 모라타 지방의 진혈의 뱀파이어족을 퇴치한 것도 위드였다.

프레야 신전에서 정보 습득을 마친 위드는 병사들의 호위속에서 왕성으로 향했다.
"정말 왕성으로 간다."
"국왕을 만나러 가는거야."
군중들이 우르르 따라왔지만, 이번에도 왕성 입구에서 경비병들에 의하여 차단되었다.
위드는 병사들과 함께 국왕이 머무는 대전으로 향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주변에 있는 물품들을 살피는 건 잊지 않았다.

-베오다르데의 벽화를 보셨습니다. 예술 스탯이 1상승합니다.

-명인의 조각품.<왕의 기사들>을 감상하였습니다. 예술 스탯이 2 상승합니다.
-발란챠의 무기 3종 세트를 발견하셨습니다. 예술 스탯이 1상승합니다.

예술은 곧 안목!
뛰어난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예술 스탯이 올라갈 수 있다. 다만 이것도 눈높이와 관련된 것이라 무한정 올라가지는 않는다.
대단한 작품을 보면 예술 스탯이 상승하지만, 그 후로는 웬만한 작품을 보아도 효과가 없다. 눈높이가 그만큼 오른탓이었다.
하지만 위드는 궁전에 들어와서 여러 소장품들을 보며 예술 스탯을 30이나 올릴 수 있었다.
"시오데른 로자임 국왕 폐하, 여기 모험가 위드를 데리고 왔습니다."
위드는 곧보로 국왕에게 안내되었다.
이곳까지 위드를 데리고 온 기사가 무릎을 꿇고 예를 취하자, 위드도 대충 따라서 했다.
귀족들과 기사들이 양탄자를 따라 양쪽에 도열해 있고, 상석에는 국왕이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 푸르스름한 반점들이 돋아나 있는 것이 보였다.
"자네가 위드인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은... 쿨럭!"
국왕은 피를 토했다.
"전하!"
기사들과 시종들이 주위로 몰려들었지만, 국왕은 손을 휘휘 저어 그들을 물리쳤다.
"내 병은 내가 더 잘 안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말라. 위드, 자네의 직업이 달빛 조각사라고?"
"그러하옵니다."
"달빛 조각사라면 익숙한 직업이군, 나의 어머니께서는 자하브라는 정인을 두셨지."
"폐하!"
국왕의 말에 귀족들이 놀라서 외쳤지만, 왕은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다들 알고 있는 것 아니던가?"
"...."
"굳이 숨길 일도 아니로다. 위드, 그러면 조각술에는 일가견이 있겠군. 너에게 긴히 맡길 일이 있다. 내 수명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나는 올바른 치세로 나라 안팎의 인간들을 평화롭게 만들고, 숙적 브렌트 왕국을 무찌를 수 있었다.
말 한마디로 산천초목들이 벌벌 떨고, 손짓 하나로 충성스러운 기사들이 구름처럼 일어나니...."
현왕 시오데론은 자기 자랑을 좋아하는 무지막지한 수다쟁이였다. 업적과 행동, 혹은 사소한 왕실의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늘어놓는 국왕.
위드는 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디서 무슨 특별한 퀘스트의 실마리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국왕의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쓸모없는 것들뿐이었다.
5살 때 말에서 처음 떨어졌는데 다리가 부러졌다느니, 궁전의 시녀들이 예쁘지 않냐느니, 귀담아 둘 가치가 전혀 없는 잡스러운 이야기들!
국왕은 무려 2시간만에 본론을 들어갔다.
"...하여 본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짐을 느끼고 있다. 왕세자에게 이 무거운 자리를 물려줄 때도 되었지 내게는
새로운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이 지친 육신을 편히 쉴 장소. 나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감한 이후에 지낼 무덤이 필요하다
장엄하고 거대한, 누구라도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무덤을 만들어 다오. 인부를 마음껏 차출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려 두겠다."
띠링!

현왕 시오데른의 무덤
대대로 로자임 왕국에서는 국왕이 죽기 전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어 왔다.
시오데른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다.
그래서 유명한 조각사에게 무덤의 제작을 의뢰하기로 했다.
다만 완성된 무덤이 국왕의 위엄에 걸맞지 않을 시에는 퀘스트 실패와 더불어 각종 불이익이 뒤따를 수 있음.
무덤을 만들기 위해 인부들을 구성할 수 있다.
작업 비용으로 10만 골드가 주어짐.
난이도:B
보상:성공할 경우 왕실 공적치 최소 2,000이상.
완성품의 수준에 따라 추가 공적치 획득 가능.
퀘스트 제한:실패 시 국왕의 진노를 살 수 있음. 명성 하락.

위드의 프레야 교단의 공적치는 무려 4,600이 넘는다.
종교 단체의 공적치가 높으면 여러모로 혜택이 많다. 무료로 치료를 받거나, 혹은 돈을 기부하고 사제나 성기사들의 힘을
빌릴 수도 있다. 그 외에도 타 국가를 여행할 시에 입국이 수월해지고, 명성처럼 높은 난이도의 퀘스트를 받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왕실의 공적치는 그보다도 더 쓸모가 많은 편이었다. 귀족의 작위를 받거나, 아니면 공적치를 아이템과 바꿀수 있다.
왕실에서 가지고 있는 무기나 방어구들, 이런 것들을 공적치를 통해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위드의 선택은 당연히 무기였다.
'왕실 공적치 2,000이라면 레어 급의 무기를 얻을 수 있겠군.'
조각사로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바란 마을 이후로 처음 받는 의뢰였다. 당시에는 명성이 낮아서 그 정도의
일밖에는 맡지 못했지만, 이제는 드디어 국왕의 일까지 맡게 된 것이다.
여러 직업들을 전전하면 비정상적으로 상승한 명성 덕분이었다.
위드는 잠시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결정은 이미 나 있었다.
오는 몬스터 마다하지 않고, 오는 의뢰 거부하지 않는다!
사실 로자임 왕국의 국왕이 직접 내린 의뢰를 거부했다가는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 모든 것을 바쳐 훌륭하신 국왕 폐하께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실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퀘스트를 받으셨습니다.


위드는 궁전에서 나오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장엄하고 거대한 무덤이라....'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대충 고인돌 비슷한 걸 만들어 주면 되나?'
2개의 기둥 역할을 하는 바위 위에 크고 넙적한 바위 하나!
얼마나 간단하고 편리한 작업인가!
그러나 그렇게 했다가는 국왕의 진노를 사게 되고, 왕국 군대의 대대적인 추격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국왕이 내린 퀘스트인 만큼 보상 또한 대단할 것이다. 레어 급 아이템,혹은 유니크급 아이템을 상으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다 얼마야.'
돈이면 무조건 움직인다!
로열 로드의 아이템 시세가 다소 떨어졌다고 해도, 고레벨들이 쓸 만한 레어, 유니크 아이템은 부르는게 값이다. 위드는
절대로 돈을 포기할 수 없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퀘스트에 성공할 작정이었다. 그렇지만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하니,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몰랐다.
평범한 무덤? 조각품들이 많은 무덤?
이런 것들은 너무나도 식상하기 짝이 없다.
국왕을 만족 시켜 줄 수 있는 무덤, 장엄하고 거대한, 누구라도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무덤을 만들어 주어야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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