绝代双骄 15

3학년2반 | 2022.02.14 08:02:17 댓글: 0 조회: 341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8675
강금(江琴)과 연남천(燕南天)
성공한 사람이 모두 행복한 사람은 아니다.
세상에 많은 성공한 여인들의 생활은 보기에는 다채로워도 사실
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허무하고 외로움에 차 있는 경우가 허다
하게 많다.
그녀들은 마치 기름에 볶은 새우처럼 보기에는 물 속의 새우보
다 더 다채로웠다.
그러나 사실은 기름의 뜨거움에 계속 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은을 가져가 버리자 도박장은 즉각 조용해졌다.
헌원삼광은 길게 허리를 편 후 중얼거렸다.
"이건 정말 천광(天光), 인광(人光), 전광(錢光)인데. 하여튼
돈을 다 없애버리지 않으면 난 잘 수가 없으니까!"
그는 돌연 도박장의 사람들이 모두 가지는 않았음을 알았다.
아직도 네 사람이 남아 있었는데 두 사람은 이미 땅에 누워 잠
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두 사람은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헌원삼광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너희들은 왜 가지를 않지? 나와 도박을 하겠느냐?"
그 두 사람 중에 키가 약간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가리키며 말
했다.
"여기에 반 개의 남자와 반 개의 여자가 남아 있소."
헌원삼광은 더욱 눈을 크게 뜨며 그 키가 작은 사람을 바라보았
다.
도교교가 웃으면서 그 키가 약간 큰 사람을 가리켰다.
"여기에 단 하나의 아들이 있고 난 너의 할머니다."
헌원삼광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급히 문쪽으로 달려갔
다.
백개심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를 볼 때마다 내가 달아났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달아나는
군!"
도교교는 눈알을 돌리면서 말했다.
"이 악도귀는 뭔가 우리에게 나쁜 일을 했기 때문에 달아나는
거야."
그녀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이미 쫓아가고 있었다.
백개심이 말했다.
"그러나 그는 너희들과 이십여 년간을 보지 못 했는데 무슨 나
쁜 일을 했다는 것이냐?"
"나도 그점이 이상해. 그를 찾아가서 물어보고 싶어."
이때는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길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박장이 끝났고 사람들이 식사를 하려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도교교가 거리에 나서 보니 헌원삼광은 이미 사람들 틈에 섞여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걸어가던 사람들은 힐끗힐끗 왼쪽을 바라
보곤 했다. 아마도 악도귀 헌원삼광이 급하게 내달리는 것을 보았
기 때문인 듯했다.
헌원삼광이 사라진 방향을 눈치챈 도교교는 웃으면서 말했다.
"안심해. 그 악도귀는 경공이 우리보다 뛰어나지 않으니까 필시
쫓아갈 수 있을 거야."
이때 헌원삼광이 돌연 왼쪽의 구석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몸을 돌려 얼굴에 온통 놀라운 기색을 띠고 도박장으로 급
히 달려왔다.
도교교 등은 곧 그를 따라 들어왔다.
백개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얼하는 것이냐? 귀신이라도 보았느냐?"
헌원삼광은 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귀신을 만났지!"
백개심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너 도박 같은 귀신도 귀신을 두려워 하냐?"
"쉬......."
그의 태도는 더욱 긴장되었고 안색 또한 창백해졌다.
도교교와 백개심은 서로를 바라본 후 그들도 문 틈에 눈을 대고
밖을 내다보았다.
왼쪽 길에서 두 사람이 걸어나왔다.
앞에 가는 사람은 몸이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몸에 파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생긴 것도 이상했지만 얼굴에 주름은 많아도 수염이 없었
다. 심지어는 눈썹까지도 없었다.
어떻든 간에 그 사람은 보기에 매우 재미가 있었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그가 우습다고 느꼈으나 어느 누구도 감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의 한쌍의 눈은 우습지 않았을 뿐더러 무섭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은 이마 아래 깊숙히 들어가 있었으며 그래서 더욱 크게
보였다.
그는 혈색이 창백한 것이 병이 있는 것 같았지만 한쌍의 큰 눈
은 매우 위엄있게 보였다.
백개심이 말했다.
"저 자식은 좀 이상하게 생겼는 걸. 강호에 저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듣지도 못 했고 보지도 못 했어. 요즘에는 강호를 많이 나다
녀야 겠는걸."
도교교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악도귀, 넌 저 사람을 아느냐?"
"몰라!"
그 괴인의 뒤에는 잘생긴 중년인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으며 풍체도 좋았다.
그는 미소를 띠우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오히려 울상이 되곤
했다.
그 사람은 바로 강별학이었다.
도교교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강별학이 어찌 위무아를 따르고 있지 않고 이런 괴인과 어울렸
지?"
백개심은 헌원삼광의 어깨를 치며 웃었다.
"이제보니 너는 강별학밖에 모르는군. 너는 그에게 미안한 일을
했나?"
헌원삼광은 콧소리를 낸 후 말했다.
"나는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보기 싫어 하는 것 뿐
이야."
"흥! 너는 필시 무슨 죄를 지었을 거야. 네가 말을 하지 않는다
면 내가 강별학에게 물어보겠다."
그는 눈알을 굴리면서 돌연 큰소리로 말했다.
"모두 모여라. 여기에 악도(惡賭)......."
다행히 헌원삼광은 그가 이럴줄 알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가서 그의 입을 막고 말했다.
"너 이자식아, 더 말을 하면 너의 대갈통을 깨버리겠다."
백개심은 웃고 있었다.
그가 이 정도로 했으면 밖의 강별학이 필시 들었을 것이라고 생
각했다.
그러나 밖에서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 한 듯했다.
갑자기 오른쪽 길에서 하나의 말이 달려 나왔기 때문이다.
마치 불덩어리처럼 붉은 말이 쏜살같이 거리로 뛰어들었다.
식당 앞에 앉아서 국수를 먹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소리를 지르
며 피해버렸다.
말발굽 소리와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 소리가 백개심의 고함소리
를 덮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말 위에 탄 사람의 기마술은 매우 훌
륭했다. 위급한 순간에도 침착하게 그 말을 세워 진정시켰다. 그
제서야 사람들은 말 위의 사람이 말처럼 빨간 옷을 입고 빨간 채
찍을 든 것을 발견하였다.
말의 울음소리에 이어 그녀는 말에서 뛰어 내렸다.
사람들은 그녀가 더없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저절로 감탄을 연
발했다.
그녀의 한쌍의 눈은 너무나도 아름다왔다.
행인들은 모두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사람들을 무시
하고 눈도 돌리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발을 구르면서 소리쳤다.
"어이 빨리와. 네 말은 다리가 세 개만 있는 모양이지?"
이때 길에서 다시 하나의 말이 달려왔다.
"내가 느린 것이 아니라 당신의 기마술이 너무 거치오!"
그 사람도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 사람은 매우 깨끗하게 생긴
소년이었다.
그 홍의 소녀는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내가 거칠게 말을 몰았다고? 내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라도
했단 말이야?"
그 소년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주시하는 것을 보자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빠...... 빠르지 않아!"
홍의 소녀는 말했다.
"내가 빠르지 않다면 네가 너무 늦은 거야."
"내가 너무 늦었어!"
홍의 소녀는 그제서야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야지. 누나가 오늘밤 한턱 내겠다."
그 소년은 더욱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들지 못 했다.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보자 세상엔 희한한 일도 다 있다 싶었
다.
그 소년은 너무 얌전해서 마치 아가씨와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아가씨는 너무 완강하고 무서워서 천군만마를 다룰 장수 같았
다.
사람들은 이 남녀 두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가씨는 과연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성질을 건드
린다면 곧 채찍을 감수해야할 불 같은 성격이었다. 그 괴인도 이
두 남녀를 쳐다보았다.
다만 강별학만이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 강별학은 이 두 사람이
구인지 알고 있었다.
홍의 소녀는 소선녀 장청이었고, 이 얌전한 소년은 물론 신권세
가의 공자인 고인옥(顧人玉)이었다.
소선녀는 고인옥의 손을 잡아 끌었다.
"여기에 필시 먹을 것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너는 믿질 않았
어. 자 봐. 내 말이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
고 떠들어 댔다.
고인옥은 귀밑까지 붉어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야? 무엇이 두려워?"
고인옥은 아무말도 하지 못 했다.
그는 마치 무척 그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소선녀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 구(九) 계집애의 좋은 날이니 나도 매우 기뻐. 오
늘은 실컷 먹고 술도 몇 잔 마셔야겠어."
고인옥은 가벼운 탄식 소리를 냈다.
소선녀가 즉각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왜 탄식을 하지? 구매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 괴롭다는
거야?"
고인옥은 급히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언제 괴롭다고 했어. 나...... 난......."
그는 얼굴이 붉어졌을 뿐만 아니라 목까지도 붉어졌다.
소녀가 '쿡'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괴롭지 않다면 좋아. 여기는 흙에 싸서 익힌 고기가 있고
진주환자(珍珠丸子)까지 있어. 이미 몇 년 동안 먹어보지를 못 했
지. 호북(湖北) 외의 것은 맛이 없어!"
그녀는 고인옥을 끌고 음식점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순간 그녀는 맞은편에 있는 강별학을 발견했다.
"저것봐! 저게 누구지!"
고인옥은 그녀의 눈초리를 따라가다가 곧 안색이 변했다.
"그가 어찌 여기에 왔을까요?"
"그래, 당당한 강남대협이 어찌 이런 곳까지 왔을까, 사람을 볼
낯이 없었겠지, 그래서 강호의 사람들이 강 대협이 실종되었다 하
는군."
그녀의 말소리는 귀먹어리까지 들을 수 있을 만큼 컸다.
사람들 중에는 강남대협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강별학을 바라보았다.
강별학은 아무 것도 보지 못 한 척 앞으로 걸어나갔다.
마치 급히 거리를 떠났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소선녀는 급히 그의 앞으로 달려와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강별학, 강 대협, 왜 말을 하지 않지요? 전에는 말을 잘 했었
는데. 당신의 그 위엄도 어디로 갔지요?"
강별학은 말을 하지도 못 했고 고개를 들지도 못 했다.
소선녀는 무서운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강별학, 병신인 척하지 말아요. 병신인 체 해도 쓸데없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려서 복수를 하려 하니 나를 따라 갑시
다."
강별학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못 했다.
그의 얼굴에는 조금의 표정도 없었다.
당당한 강남대협이 죽은 사람의 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옆에 서있던 괴인이 돌연 말했다.
"그는 너를 따라 갈 수가 없어!"
그 사람의 목소리는 저음이었고 쉬어있었다.
"그가 왜 나를 따라 가지 못 한다는 거요?"
"그건 그가 나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지."
"당신을 따라 가야한다고? 당신이 누구길래?"
그녀는 소리를 치면서 수중의 채찍을 휘둘렀다.
그 가죽 채찍은 그녀의 손에서 마치 먹이를 노리는 한 마리 독
사처럼 빠져나갔다.
그 괴인의 반응은 매우 느렸다.
마치 그 채찍이 자기의 얼굴에 적중하기를 기다리는 듯 멍하니
채찍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채찍이 막 그의 얼굴에 핏자국을 그리려는 순간, 채찍이 돌
연 그의 손에 들어가면서 몇 토막이 나고 말았다.
토막 하나 하나가 땅에 떨어졌고 소선녀는 잘 서있을 수도 없었
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며 고인옥의 품속에 파묻혀 버렸다.
사람들은 다만 채찍이 끊어지고 소선녀가 쓰러지는 것만을 보았
지 그 괴인이 어떻게 손을 썼고 또 어떻게 힘을 주었는지는 볼 수
가 없었다.
소선녀 자신까지도 어찌된 일인지를 몰랐다.
그녀는 다만 기이한 힘이 채찍을 통해 자신을 압도하는 것을 느
끼며 쓰러지고 만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겁에 질려 다시 손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선녀의 성질은 장비(張飛)에 비할 수도 있는 것이었
다.
고인옥은 괴인의 무술을 보자 그녀를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뛰어 나가서는 두 개의 단검을 꺼냈다.
길거리 옆의 식당에서는 손님들이 모두 음식을 먹지 않고 젓가
락을 놓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탁자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 구경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검빛은 번개 같이 허공을 갈랐다.
순식간에 소선녀는 이미 그 괴인에게 일곱 번이나 공격을 하였
다.
매 초식은 그의 가슴을 뚫을 듯 싶었다.
사람들은 그 괴인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여전히 느려서 곧 그 일곱 검을 맞고 쓰러질 것만 같
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 아가씨가 너무 경우가 없다고 생각하는 중에
그들이 멋지게 싸우기를 바라기도 했다.
다만 고인옥만이 정말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다.
소선녀는 성질을 내면 어느 누구도 막지를 못 했다. 더군다나
말리기에도 너무 때가 늦은 것이 아닌가!
그 괴인이 가볍게 소리를 치자 무슨 동작을 취했는지는 몰라도
소선녀 수중에 있던 두 개의 단검이 그녀의 손을 떠나버렸다.
두 개의 시퍼런 검빛이 불꽃처럼 빛을 내며 날아가버렸다.
소선녀는 다시 고인옥의 품속에 넘어졌다. 그녀는 이번 만큼은
다시 일어나 반격할 힘이 없어 보였다.
그 괴인은 무거운 안색을 하면서 말했다.
"너는 어느 집의 제자인가? 어찌 이유없이 남에게 독수를 가하
려는 것이지? 요즈음 강호의 후배들은 어찌 얌전하지 못 하느냐?"
소선녀가 큰소리로 욕했다.
"너야말로 되먹지 못 한 자식이야. 어찌 강별학과......."
그녀의 욕설이 돌연 멈추어졌다.
고인옥이 이미 그녀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소선녀가 온 몸의 힘을 다하여 그의 배를 차자 고인옥은 손을
놓고 말았고 그녀는 미끄러져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흙바닥에 쓰러져 고인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당하고 있는데 너는 도와주지는 못 할 망
정 이렇게 나를 괴롭혀? 너도 남자란 말이냐? 그래서 남들은 널더
러 고 소매라고 부르는구나!"
고인옥은 얼굴을 붉히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난...... 난...... 난 정말......."
"난 정말 너를 잘못 봤어. 난 네가 사나이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넌...... 넌 두부보다 약해. 정말 날 슬프게 만드는구나."
그녀는 정말 슬펐던지 눈물을 흘렸다.
고인옥은 돌연 입술을 악물면서 큰걸음으로 괴인쪽으로 걸어갔
다.
"각하의 무술은 확실히 훌륭하오. 그러나 나는 좀 견식을 넓혀
봐야겠소."
그 괴인은 인상을 찌푸릴 뿐 말을 하지는 않았다.
고인옥은 소리를 쳤다.
"조심하시오. 내가 손을 쓰겠소!"
그는 평시에는 매우 수줍음을 타지만 한 번 동작을 펼치면 매우
빠르고 깨끗하고 날카로왔다.
'펑' 하는 소리가 나며 그의 두 주먹이 그 괴인의 몸에 격중했
다.
그 괴인은 어찌된 일인지 그 주먹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고
있었다.
소선녀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부터 고가신권의 위력을 알고 있었고, 고인옥의 무
공이 뛰어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만약 그의 주먹을 맞는다면 사람 뿐만 아니라 한 마리의 황소도
쓰러지고 말 것이었다.
소선녀는 손벽을 쳤다.
그러나 그녀는 곧 그 괴인이 쓰러지지도 않았고 안색조차 변하
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고인옥의 신권(神拳)이 그의 몸에 격중했으나 그는 마치 그에게
등에 안마라도 받은 듯 태연했다.
고인옥 자신이 오히려 바로 서있지를 못 하고 비틀거렸다.
소선녀는 그제서야 정말 놀랐다.
그 괴인은 고인옥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는 고 노사와 어떤 관계이냐?"
고인옥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선...... 선배님은 아버님을 알고 있나요?"
그 괴인은 '흥' 하는 소리를 내고 말했다.
"듣기에 고 노사의 가정교육이 매우 엄격하다던데 어찌 그의 아
들을 강호에 내보냈을까? 무술을 하는 사람일수록 진중한 맛이 있
어야지. 함부로 싸우게 된다면 그건 도적들의 소행이야. 이런 교
훈을 너의 부친에게서 듣지 못 했느냐?"
고인옥은 꾸지람을 듣자 고개를 들지도 못 했다.
소선녀가 그 괴인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오? 무엇을 믿고 우리를 교훈하려는
것이지요?"
강별학은 나무로 만든 인형처럼 곁에 서있으면서 조금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그 괴인이 손만 쓴다면 소선녀와 고인옥 두 사람을
간단히 쓰러뜨릴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강별학이 돌연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이분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있었느냐?"
소선녀는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누구죠?"
강별학은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그가 바로 연남천(燕南天) 연 대협(燕大俠)이야!"
연남천!
이 세 글자가 나오자 소선녀는 다시는 화를 내지 못 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다물지도 못했다.
고인옥은 벌써 땅에 꿇어앉아 버렸다.
그 도박장에서 나온 깡패들도 '연남천'의 이름을 듣고서는 크게
숨도 쉬지를 못 했다.
연남천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별학은 다시는 그의 이름으로 나쁜 짓을 못 하게 되었으니
너희들은 그를 찾아 복수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그
를 찾아 복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십 년 전의 계산이
야."
고인옥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문지르며 대답했다.
"네, 네."
"너희들은 금후로 자기의 무술을 믿고 함부로 살인을 하지 말기
를 바란다!"
고인옥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네!"
"좋아, 가거라."
백개심과 도교교는 문 뒤에서 몰래 바라보고 있었지만 벌써부터
양다리에 힘이 쭉 빠졌고 옷이 모두 땀에 젖어있었다.
헌원삼광은 연남천을 본뒤 약간 몸을 움찔했지만 그러나 그들처
럼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본 헌원삼광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어버렸
다.
"이제는 왜 소리를 지르지 않는 거냐? 너희들이 연남천을 악인
곡에다 이십 년이나 가두었다는 소리를 듣고서 믿지를 않았었는데
지금보니 정말 그런 일이 있었구나!"
도교교는 진땀을 흘렸다.
"없...... 없었어......!"
그녀는 비록 인정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러나 혀가 말을 듣지
않아서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고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목이
뻣뻣해 움직이지를 않았다.
백개심이 말했다.
"그건 그녀와 이대취 등이 한 짓이니 나와는 관계가 없어!"
헌원삼광은 웃으면서 말했다.
"너와 관계가 없다면 왜 그토록 떨고 있지?"
"너는 그 사람을 보고서도 두렵지 않단 말이냐?"
"나는 너희들처럼 나쁜 일을 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떨 필요가
없지."
백개심이 돌연 웃으면서 말했다.
"옛말에 강간하는 놈은 있어도 도박을 강제로 하는 놈은 없다고
했다. 도박을 강요하는 것은 강간보다 더 나쁜 일이지. 난 비록
나쁜 일을 많이 했지만 다만 강간을 한 것 뿐이야. 그러나
넌...... 호호, 넌 두고 보아라. 연남천이 너를 보면 필시 너의
골을 부수어 버릴 거야."
헌원삼광은 땀을 닦으면서 말을 하지 못 했다.
그들 세 사람은 모두 연남천이 강별학을 데리고 빨리 떠나길 바
라고 있었다. 그러나 연남천은 주점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더니 혼
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강별학은 옆에서 손을 모은 채 앉지도
못 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너무 놀라 자리에 앉지를 못 했다. 그
식당의 주인까지도 손이 떨리고 있었다.
연남천은 옆사람들은 상관하지 않고 계속 술을 마셨다. 그는 한
잔 술을 마실 때마다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 마치 마음에 걸리
는 일을 꾹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헌원삼광이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강별학 저 자식이 어찌 연남천과 어울리게 됐는지 그 점이 이
상한 일인데!"
그는 이 말에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혼자 중얼거렸
을 뿐이다.
그런데 도교교가 돌연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난 지금에야 강별학의 내력을 알았어."
헌원삼광이 물었다.
"그가 무슨 내력이 있지?"
"그는 필시 강금(江琴)일 것이다."
"강금은 또 어떤 사람인데?"
"연남천이 악인곡에 들어온 것은 강금이라는 자를 찾아서 복수
를 하려는 것이었어. 강금이 그의 동생 강풍을 해쳤지!"
"강풍, 그 이름은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강풍이 바로 소어아의 부친이야."
헌원삼광은 크게 놀랐다.
"그가 강금을 찾는 것이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면 왜 지금 손을
쓰지 않고 데리고 다니는 것일까?"
"소어아를 찾아서 소어아에게 직접 복수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야."
"음, 그렇겠군. 필시 그 이유일 것이야. 그러나 만약 그가 소어
아를 찾지 못 한다면?"
백개심이 돌연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이 한평생에 다시는 그 자식을 찾지 못 할 거야."
"왜?"
백개심은 그저 웃을 뿐 말을 하지는 않았다.
도교교가 몰래 그를 꼬집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돌연 한 사람이 손에 주전자를 들고 연남천이 술을
마시고 있는 식당으로 가서는 연남천의 옆 식탁에 앉았다.
식당에는 초롱불이 켜져 있었다.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는 나이가 젊고 잘생긴 얼굴이
었는데 안색이 무섭도록 창백했다.
헌원삼광이 다시 놀라면서 말했다.
"저 자식은 강별학의 아들인 강옥랑이 아닌가?"
백개심이 대답했다.
"틀림없어."
강옥랑은 마치 그의 아버지를 보지 못 한 척 했다. 강별학도 마
치 그를 모르는 척 했다. 이 부자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지도 않
았다.
헌원삼광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저 두 사람의 부자가 도대체 무슨 수작을 벌이려는 것일까?"
이번에는 도교교가 말했다.
"보기엔 그가 필시 자기 아버지를 구하러 온 모양인데."
헌원삼광이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런 잡종 녀석이 무슨 재주로 그를 구한단 말이야?"
"재주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수작은 무시 못 해. 소
어아까지도 그에게 당해본 적이 있지."
헌원삼광은 눈을 크게 뜨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수작이 많다는 건 나도 알아. 그러나 소어아하고 비할 자
격은 없어!"
도교교는 눈알을 몇 번 돌리더니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이 '악도귀'와 소어아의 사이가 가깝다는 것을 눈
치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가 소어아의 편을 들어서 이야기를 한
단 말인가!
이때 강옥랑이 연남천에게 술을 한 잔 부어 올렸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그와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연남천은 그가 강별학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몇 마디를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몇 마디 말을 나눈 뒤 연남천은 돌연 일어서서 큰소리로 말했
다.
"네가 정말 강소어를 알고 있단 말이냐?"
강옥랑도 일어서며 웃음을 보였다.
"비단 알 뿐더러 그와 나는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연남천은 그의 어깨를 흔들면서 말했다.
"너...... 네가 최근에 그애를 보았느냐?"
"이틀 전에도 후배와 같이 술을 마셨소."
연남천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어보았다.
"지금 그에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그의 행방은 항상 묘하죠. 그러나 나는 그를 찾을 수 있습니
다."
"정말이냐?"
강옥랑이 공경히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후배는 더 큰 간이 있어도 선배님 앞에서는 거짓말을 못 하
오."
"좋아, 좋아, 좋아......."
그는 너무 기쁘기 때문에 계속하여 수십 마디의 '좋아'라는 말
만 거푸했다. 그는 강옥랑의 어깨를 잡고 있는 자신의 손까지 잊
어버렸다.
강옥랑은 어깨뼈가 부스러질 것 같았으나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별학의 눈에서는 빛이 번져나오기 시작했다.
"이 자식은 내력도 분명치 않은데 어찌 이토록 쉽게 이 자식의
말을 믿소?"
연남천이 갑자가 대노했다.
"닥쳐, 내 앞에서 너는 말할 자격도 없어!"
그는 돈을 상 위에 놓고 강옥랑을 끌고 나갔다. 강별학은 할 수
없이 따라가는 척 했지만 입가에는 엷은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악인(惡人)들의 보물(寶物)
문 뒤에 숨어서 보고 있던 도교교는 연남천이 강옥랑에게 속는
것을 보고 웃어버렸다.
그녀는 중얼거렸다.
"연남천이 필시 그 자식에게 당할 것을 알았지. 내 추측이 과연
들어맞는군."
백개심은 낄낄 웃으면서 그의 말을 받았다.
"저 자식이 과연 재주가 있군. 정말 연극을 잘 해. 연남천이 그
를 따라 가다니."
"연남천은 영원히 소어아를 찾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이
두 부자에게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야."
헌원삼광은 한동안 멍하니 서있다가 돌연 문을 열고 달려 나가
려고 했다.
그러나 도교교의 손이 이미 그의 몸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막 문을 열었을 때 도교교는 번개처럼 그의 다섯, 여섯 군
데의 혈도를 점하고 그를 돌려서 문으로부터 던져버렸다.
백개심은 그것을 보자 손벽을 치며 좋아했다.
"도교교가 이 악도귀에게 반한 모양이지. 그를 놔주려 하지를
않다니. 그러나 도박꾼의 마누라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
니야. 도박으로 마누라를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헌원삼광은 놀랍고도 두려웠다.
그러나 그는 말을 하지도 못 하게 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교교는 집 뒤로 나와 마을을 떠났다.
날이 밝아지기 시작했으나 산으로 통하는 길에는 아직 사람이
없었다.
도교교는 온갖 힘을 다하여 나는 듯이 산쪽으로 뛰어갔다.
얼마가 지나자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
다.
이대취, 합합아, 두살은 산을 파고 있었다.
그들이 열심히 산을 파고 있을 무렵 도교교와 백개심이 마치 귀
신이라도 본듯 급히 되돌아왔다.
가장 이상한 것은 도교교의 등에 사람이 업혀 있다는 것이었다.
이대취 등은 즉각 손을 멈추고 달려갔다.
합합아는 눈길을 돌리더니 곧 웃으면서 말했다.
"난 또 누구라고? 알고보니 악도귀가 왔구나! 하하하, 오랜만이
야."
이대취도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악도귀, 오래간만인데. 어찌 오랫만에 만나서 도교교의 등에
올라탔느냐? 그렇다면 악도귀가 색귀(色鬼)로 변했단 말이냐?"
두살도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이것이 어찌된 일이지?"
도교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우선 헌원삼광을 땅에 눕혔다. 그리
고는 그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그는 옷을 툭툭 털고 일어서며 웃
었다.
"이제보니 너희들이 모두 여기에 있었구나. 귀산에 너희들이 모
두 있으니 명부기실(名簿其實)이 됐어."
백개심은 껄껄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아 넘겼다.
"도교교가 아무 이유도 없이 너의 일곱 군데의 혈도를 점했는데
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농담을 하다니 흐흐, 너는 과연 남에게
잘 당하는 사람이야."
헌원삼광은 통쾌한 성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많은 옛친구들을
보자 모든 일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백개심의 말을 듣자 즉각 화를 내면서 도교교의 코
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물어 보겠다. 너 이 불남불녀 같은 자식아, 왜 나의 혈도
를 점했지? 내가 괴롭히기 좋은 사람인줄 아느냐?"
"내가 물어 보겠는데 너는 그때 왜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
헌원삼광은 그녀의 말에 분노하여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너와는 상관이 없지 않는가?"
"너는 그에게 가서 사실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었느냐? 연남천에
게 달려가서 강별학에게 속지 말라고 알리려는 것이었지?"
연남천의 이름이 나오자 이대취, 합합아, 두살 등은 모두 심장
이 멈추는 것 같았다.
두살이 물었다.
"연남천?"
합합아도 중얼거렸다.
"너...... 네가 그를 봤느냐?"
이대취도 한마디 했다.
"그렇다면 그는...... 그의 병이 완쾌되었단 말이냐?"
도교교가 말을 받았다.
"그는 완쾌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술도 진보되었어. 또 모습이
변해서 그를 보고도 알아내지 못 했을 정도였어. 그러나 그가 무
술을 드러낸 후로는 연남천이라는 것을 알았어. 연남천 외에는 세
상에 그런 뛰어난 무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둘도 없지."
합합아는 치를 떨며 웃지도 못 했다.
이대취가 더듬거렸다.
"그...... 그가 지금 어디에 있지?"
백개심이 말했다.
"그는 이미 강별학에게 속아 넘어갔어. 그러자 악도귀는 그를
도와주려고 했지!"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대취, 두살, 합합아는 이미 헌원삼광
을 포위해 버렸다.
세 사람은 모두 이를 갈면서 무서운 살기를 드러냈다.
두살은 그를 노려보면서 한 자 한 자 또렷이 말했다.
"왜 그랬지?"
헌원삼광은 다른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두살에 대
해서 만큼은 약간 무서움을 느꼈다.
그의 무서운 얼굴을 보게 되자 헌원삼광은 소름이 쫙 끼쳐왔다.
"난 다만 그 강별학 부자를 죽이고 싶었을 뿐이야. 다른 뜻은
전혀 없었어!"
백개심이 큰소리로 말했다.
"두 노대, 그의 말을 믿지 말아!"
"내가 연남천을 찾아서 너희들을 괴롭힐줄 알았느냐?"
백개심이 소리쳤다.
"그럴지도 모르지. 오랫동안 보지를 못 했는데 네가 그동안 무
엇을 했는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연남천과 내통을 했다면 자연히
우리 친구들도 눈에 보이지가 않겠지!"
헌원삼광은 노했다.
"이 자식이 한 말은 터무니 없는 개소리이니 두 노대는 절대로
듣지 말아라."
백개심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물어 보겠는데, 네가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왜 우리를
보고 달아났지?"
그 물음에 헌원삼광은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거...... 그것은......."
백개심은 손뼉을 치면서 그의 말을 막았다.
"말을 해 봐? 왜 말을 하지 못 하느냐? 나쁜 일을 했으니까 그
런 것이야."
헌원삼광은 날뛰면서 말했다.
"내가 너의 조상의 무덤을 파지도 않았는데 너는 왜 나에게 시
비를 거는 것이냐?"
백개심은 자기 목적이 달성했다는 것을 알자, 헌원삼광이 욕을
해도 그저 듣고 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대취, 합합아는 곧 잡아먹을 듯한 무서운 얼굴을 했고, 두살
은 더욱 싸늘한 안색을 했다.
"너는 정말 이들을 보고 달아나려고 했었는가?"
"그렇지. 난 달아났어."
두살이 다시 물었다.
"왜 달아나려고 했었지?"
헌원삼광은 가슴을 펴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희들의 돈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야!"
이 말이 나오자 십대악인들은 일제히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합합아가 급히 물었다.
"우리의 돈이라고? 무슨 돈이냐?"
"너희들은 내가 도박꾼이라는 것을 알지? 난 돈을 따는 것도 좋
아하지만 잃기도 좋아하지. 돈을 잃는다는 것은 따는 것보다 더욱
재미가 있어. 더우기 돈이 없는 도박꾼들에게 빌려준 후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 기쁨을 너희들은 상상하지도 못
할 거야."
그는 숨을 돌린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몇 달 전에 나는 친구의 은을 강남(江南)의 부자 단합비에게
갖다 주었지. 그 일 때문에 강별학 부자를 화나게는 했지만 나는
단합비와 반 달 동안 도박을 해서 그 돈을 모두 땄지. 그리고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 돈을 잃어주기 시작했어."
이대취가 비웃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미친 놈! 재물에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도박이라면 앞
뒤가 없으니......."
"그러나 잃어주려고 할 수록 나는 점점 더 많은 돈을 따게 되었
어."
"돈을 따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잃어주는 것도 쉽지는 않단
말이지?"
"그렇지."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을 계속했다.
"어느 날 한 식당에서 차를 마시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도박을
하는 거야. 내 성미에 맞았지. 그래서 나도 그들 틈에 끼었어."
이대취가 말했다.
"넌 또 이겼느냐?"
"그 자식들은 운이 좋았고 나는 운이 나빴지. 계속 삼 일 동안
난 지기만 했으니까."
백개심이 돌연 끼어들며 말했다.
"잘 졌다!"
"그 식당은 하나의 골목에 자리잡고 있었어. 삼 일 동안 계속
그 골목의 노소(老少)할 것 없이 모두 나를 이기고 돈을 따갔지.
어떤 한 늙은이만이 매일 식당에 와서 차를 마시면서도 나와 도박
을 하지는 않았어."
그는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그가 도박을 하자고 하지 않자 나는 더더욱 그와 도박을 하고
싶었어. 남들은 그 노인이 도박을 하지 않을 뿐더러 담배도 피우
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고 여인도 좋아 하지 않아서 잣대 같은 사
람이라고 불렀어. 그를 이 노실(李老實)이라고 부르더군. 그리고
그들은 말하는 거야. 만약 내가 그 사람과 도박을 할 수만 있다면
모두 나에게 절을 하겠다고 말이야."
도교교가 이대취를 바라본 후 웃으며 말했다.
"이(李)씨 집안에서 그런 좋은 사람이 있다니 정말 보기 드문
일인 걸."
헌원삼광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골목에는 도(屠)씨 과부가 하나 있었어. 그녀는 골
목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고 있었고 십여년 간을 사람들은 그녀가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거야. 다만 한 마리의 개가 그 집을 지
켜주고 있었지."
이대취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도(屠)씨 집안에서 그렇게 정결을 지키는 과부가 있었다니 정
말 어려운 일이야. 다만 애석하게도 한 마리의 개를 키웠지. 개의
가장 좋은 점은 말을 하지 못 하는 것이야."
"나흘째 도박을 벌일 때 나에겐 삼만 냥의 은이 남아 있었어.
그래서 나는 모든 은을 이 노실 앞에 놓고, 내가 한마디로 그녀를
웃게 할 수도 있고 또 한마디로 그녀가 나의 따귀를 때리게 할 수
가 있다고 했지. 이 노실에게 그것을 믿느냐고 물어봤어."
합합아가 참을 수 없다는 듯 급히 물어봤다.
"그가 믿던가?"
"도 과부는 종래 웃지를 않았지. 과부는 더욱 냠자의 따귀를 때
릴 수 없으니 그는 자연이 믿지를 않았어. 그래서 나는 그와 내기
를 하자고 했지. 만약 내가 진다면 남은 은을 모두 그에게 주겠다
고 했으며 내가 이긴다면 그에게 나와 도박을 하자고 했지."
"그도 내기를 하던가?"
"그는 앞에 놓인 은을 바라보며 한 반 시간쯤 있다가 드디어는
나와 내기를 하기로 했지. 그는 비록 착하긴 했어도 은을 싫어하
는 사람은 아니었어. 남들은 모두 내가 필시 질 것이라고 생각했
지."
"그러나 너는 이겼단 말이지?"
"난 꼭 이겨야 했어. 통쾌하게 도박을 하기 위해선 꼭 이겨야
했지."
여기까지 듣고 있던 두살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겼는지 말해 봐라."
도교교도 침묵을 지키다가 돌연 물었다.
"한마디로 과부를 웃게 하고 다시 한마디로 그녀가 자기의 따귀
를 때린다...... 이건 정말 난처한 문제인데?"
이대취, 백개심은 서로 바라보면서 헌원삼광이 무슨 수를 썼는
지 궁금해 했다.
헌원삼광은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날 오후, 그 과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게를 열었고 그
개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옆에 앉아 있었어. 나는 공경하게
개에게 절을 하면서 '아빠'라고 불렀지. 그 과부는 처음에는 웃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웃어버렸어."
이대취 등 사람들도 그 말을 듣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헌원삼광의 말이 계속 되었다.
"남들은 내가 한마디로 그 과부를 웃기는 것을 보자 나에게 탄
복했지. 그러나 여전히 내가 어떻게 해서 그 과부에게 따귀를 맞
을 것인가는 짐작하지 못 했어."
도교교가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말이지만 나도 지금 네가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는데?"
"난 다만 그녀 앞에 가서 그녀에게 '엄마'라고 불렀어. 그녀는
즉시 목까지 붉어지면서 나의 따귀를 때린 뒤 돌아섰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모두 배를 잡고 딩굴었다.
"그래서 이 노실은 약속대로 나와 도박판을 벌였어. 그러나 운
이 좋았는지 내가 계속해서 열 번이나 이겼지. 처음에는 작은 것
으로 했지만 후에는 그가 져서 집의 물건까지 가지고 와서 도박을
했어. 다시 열 번이나 벌였지만 여전히 그는 지고 말았어."
"그렇지. 도박을 하지 않던 사람일수록 성질이 급하게 되어 도
박을 벌이면 지고 말지."
이대취의 말에 헌원삼광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원인은 그들이 본전을 찾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
야. 그 이 노실도 예외는 아니었어. 다 잃은 후에도 나와 도박을
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너는 돈도 없는데 무엇으로 나와 도박을
하겠느냐고 물어봤지. 그는 한동안 생각한 뒤 돌연 입술을 깨물면
서 나를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갔어. 그의 집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몇 개의 큰 상자가 있었지."
도교교가 물었다.
"큰 상자라고? 어떻게 생긴 큰 상자냐?"
"검은 큰 상자인데 먼지가 끼어 있었어. 이 노실은 말하기를 그
것은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보관해 달라고 한 것이라는 거야. 그
는 그런 것도 상관할 경황이 없었지."
그는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도박판에서 너무 많이 잃게 되면 자기의 마누라까지도 걸게 되
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지. 이 노실은 비록 얌전했지만 그러나 낡
은 집이 불이 타면 더 빨리 타게 되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
야."
도교교가 말했다.
"그래서 그가...... 그가 상자를 모두 너에게 잃었단 말이냐?"
"그렇지. 그러나 그는 그 상자 속에 모두 황금과 은이 있는 줄
은 생각도 못 했지. 더욱 그 상자들이 너희들의 것인줄도 몰랐었
지. 만약 그 상자 속에 너희들의 기호가 없었다면 난 영원히 너희
들이 그 상자를 한 늙은이에게 보관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
했겠지. 그것은 좋은 방법이었어."
그가 한바탕 웃고 난 뒤에 계속 말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벼락 부자가 되었지. 그러나 난 계속 도박
을 했어. 많이 잃기도 했고 남에게 주기도 했지. 지금 난 빈털털
이니 너희들에게 줄 돈이 없어. 그러나 목숨은 하나 있지."
백개심, 합합아, 두살, 이대취, 도교교등 다섯 사람은 모두 넋
을 잃고 말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조금의 혈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 중에서 합합아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 알고보니 구양정(歐陽丁)은 상자를 귀산에 두
지 않고 이 노실, 그 늙은이에게 맡겨 두었었구나. 우리는 그에게
멋있게 속고 말았어."
이대취도 말했다.
"누구든 그 같은 지경이 되면 거짓말을 하지 못 할 거야. 그런
데 그 형제 두 놈은 사람이 아니란 말일세."
합합아가 돌연 수중의 삽을 버리면서 한바탕 웃어 제꼈다.
"사실 우리는 이 도박꾼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야 돼!"
백개심이 반문했다.
"감사해야 한다고?"
"그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기서 고생을 더 해야 했을
거야. 그러나 지금은 그만 두어도 된단 말이다."
두살이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야. 헌원삼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상자
가 이곳에 있는 것으로 알고 열심히 이곳을 파내려고 했을 거야."
백개심이 말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그에게 물어 달라고 하겠느냐?"
이대취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가 벌써 말했잖아. 돈은 없고 하나의 목숨이......."
백개심이 말했다.
"그러나 그 몸도 괜찮아. 맛보고 싶지 않아?"
"만약 이 도박꾼을 먹게 되면 큰일이지. 그가 나의 창자와 위장
을 서로 도박하도록 만들면 난 견디지 못 한단 말이야?"
그는 웃으면서 헌원삼광을 바라보더니 다시 말했다.
"은은 다 잃었겠지만 그 상자도 잃었단 말이냐?"
"아니!"
이대취의 눈알이 밝아졌다.
"어디에 있느냐?"
"나는 그 상자가 너무 무겁다고 느낀 나머지 양자강(揚子江)에
다 버렸어."
이대취, 도교교는 서로 바라보면서 말을 하지 못 했다.
헌원삼광이 이대취를 향해 소리쳤다.
"너 이 자식아, 사람의 고기는 은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은을 몇 냥 잃었다고 괴로워할 것이 무엇이냐?"
이대취는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그것은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재
물을 좋아하게 되지. 나도 재물을 먹을 수도 없고, 또 입지도 못
하고 죽을 때 관 속으로 가져가지도 못 한다는 것을 알아. 그러나
누구나 좋아 한단 말일세."
합합아가 말했다.
"그렇지. 난 매일 아무일도 하지 않고 다만 문을 닫고 은을 헤
아려 본다면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거야."
헌원삼광이 말했다.
"내가 보기엔 너희 자식들이 정말 관에 들어갈 때가 된 것 같
다.
만약 사람이 다른 것은 싫어하고 오직 돈만 좋아한다면 그는 이
미 반쯤 죽은 것과 마찬가지야."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나 너희들이 그토록 돈을 좋아한다면 왜 훔치고 빼앗고 하
지를 않는 것이지?"
이대취가 말했다.
"그것도 모르는 소리야. 악인도 악인의 신분이 있어야지. 우리
같은 신분의 악인이 만약에 남의 물건을 약탈한다면 남들이 웃어
버릴 거야."
헌원삼광은 한동안 놀라더니 돌연 크게 웃었다.
"너희들이 강도질을 그만둔 줄은 몰랐는데. 이제 너희들이 무슨
소용이 있지? 오줌이나 싸고 거기에 죽어버려라!"
도교교가 말했다.
"개 같은 소리는 집어치워라. 누가 십대악인을 무시할 수 있다
는 것이냐?"
"이십 년 전에는 너희들이 십대악인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 악인곡 오귀동(烏龜洞)에 이십 년 동안 숨어살게 된 후에는 너
희들을 다만 오대축두오귀(五大縮頭島龜)라고 할 수밖에 없어."
"너는 무엇이냐? 이십 년 전이라도 너는 십대악인의 자격이 없
었어. 사람들은 다만 열이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너를 택했던
거야."
"우리가 모두 악인이 아니라면 왜 좋은 일을 하지 못 하지?"
이대취가 나섰다.
"무슨 일이 좋은 일이냐?"
헌원삼광은 철장 속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우리는 왜 이 세 명의 가련한 사람들을 보내주어서 그들에게
한평생 감격하도록 만들지 않지?"
이대취는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래 우리는 평생 동안 남에게 미움만 받아왔으니 때때로 남의
감격을 받는 것도 좋은 일이지."
"두 노대, 당신의 의견은 어떻소?"
두살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저들을 죽여서 뭐하겠어? 이젠 그런 일에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 해."
백개심이 급히 눈알을 굴리면서 소리쳤다.
"너희들이 좋은 사람이 되려면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해야 돼."
합합아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손인불이기도 좋은 말을 할줄 아느냐?"
"나는 한평생 나쁜 일만 했지만 지금은 나도 좋은 일의 맛을 봐
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염라대왕에게 가서 약간 미안하지 않
을까?"
헌원삼광은 그들의 익살스러운 대화에 웃음을 보였다.
"너 이 자식아,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냐?"
백개심은 화무결과 철심난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야.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느
끼지 못 하고 있지. 이렇게 몇 년간을 사랑했지만 소어아가 끼어
들었어. 지금은 소어아가 없어졌으니 우리는 좋은 일을 해서 이
사랑하는 남녀를 부부로 맺어주자고. 그것이 좋은 일이 아니겠
어?"
합합아는 손뼉을 치면서 기뻐했다.
"그렇지. 그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좋겠지."
이대취도 따라서 웃었다.
"난 이미 이십 년 동안 잔치술을 마시지 못 했으니 이번에는 필
시 재미있게 될 거야."
그러나 도교교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백개심을 가리켰다.
"난 벌써부터 이 자식이 좋은 마음이 없는 줄 알고 있었어. 이
자식이 한 일은 과연 손인불이기의 일들 뿐이야."
백개심이 말했다.
"중매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야. 염라대왕이 알아도 칭찬을 할
거야."
"너는 분명히 이 두 사람이 모두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서도 혼인을 맺게 하겠다니 그것은 살인보다 더 못 한 일이다."
백개심은 눈을 깜박거리며 도교교의 말에 대답했다.
"지금은 상심한다해도 혼인을 맺게 한다면 절대로 상심하지 않
을 걸?"
이대취가 큰 몸을 흔들며 말했다.
"이 개의 입은 언제까지도 상아(象牙)를 토하지는 못 해."
도교교가 웃음을 보였다.
"이런 똥개는 꼭 개똥을 먹여야 돼. 나쁜 놈은 영원히 좋은 사
람이 될 수가 없지!"
이때 합합아가 끼어들었다.
"너희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하든 간에 이 두 사람은 혼인을 맺
어야 하는 거야. 내가 직접 그들에게 빨간 옷을 입히고 술을 따라
주겠어."
이대취는 백부인을 바라본 후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또 여기에 하여튼 하나의 암놈이 있으니 하나의 늙은이
를 찾아 줘야겠는 걸."
합합아는 백부인을 한동안 바라본 후 다시 백개심을 쳐다보았
다.
"맞았어, 맞았어. 이 두 사람은 천생의 한쌍이 되겠지?"
도교교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이 아주머니는 복도 많군요. 이 백씨와 인연이 되었으니 시집
을 간다 해도 여전히 백씨로군. 성도 갈지 않고 말이야."
백개심은 벼락 같은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너희들...... 너희들......."
그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도교교, 이대취가 벌써 그를 막고 있었다.
도교교가 말했다.
"이것은 좋은 일인데 왜 달아나려는 거지?"
이대취도 한마디를 했다.
"달아나도 멀리 가지는 못 할 걸?"
헌원삼광은 소어아가 사라졌다는 소리를 듣자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눈알을 돌리면서 돌연 입을 열었다.
"난 또 혼인을 맺어야 하는 두 사람을 알고 있지. 좋은 일이지,
한꺼번에 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돈도 절약하게 되지 않을까?"
도교교가 대답했다.
"너는 그 모용구의 계집애와 그 검은 자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냐?"
헌원삼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대취가 크게 웃었다.
"모용집안의 사람이 어찌 우리와 같이 혼인잔치를 하겠어? 이
자식이 미쳤군!"
"우리는 왜 그들과 타협을 못 하지? 우리가 식장에 뛰어들어 세
쌍의 사람들을 함께 모아놓고 그들의 잔칫술을 마시면 그런 좋은
날에 안면을 바꾸겠어?"
합합아는 손뼉을 치면서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는 듯 기뻐하는
눈치였다.
"좋은 생각이다, 좋은 생각이야. 하하, 우리도 한번 편리를 봐
야지."
"그들의 잔칫상에 사람 고기로 만든 요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너희들은 너희들의 음식을 먹고 나는 사람 고기를 먹으면 서로가
좋겠지?"
이대취의 말에 백개심이 돌연 싸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날 연남천도 잔치에 나타났으면 더욱 좋겠는데."
이 말이 나오자 여러 사람들은 일시에 웃음을 거두고 말았다.
헌원삼광이 말했다.
"연남천은 절대로 그런 잔치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
백개심이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어떻게 알지? 너는 그의 뱃속의 회충도 아니지 않는가?"
헌원삼광은 그의 말을 상관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연남천은 지금 소어아를 애타게 찾고 있는데 잔치술을 먹을 경
황이 있을까?"
백개심이 말했다.
"잊지마라. 사람을 찾으려면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서 찾아야
돼.
결혼잔치에는 가장 사람이 많지. 내가 연남천이라면 필시 결혼
잔치에 갈 것이야."
헌원삼광이 말했다.
"너 이자식아, 잊지 마라. 지금 연남천의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구인줄 아느냐?"
백개심은 놀라면서 말을 하지 못 했다.
도교교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 연남천의 길을 안내하는 사람은 강옥랑이지. 강옥랑은 절
대로 연남천을 모용가(家)로 데리고 가지는 않을 거야. 비밀이 탄
로나기가 쉬우니까."
도교교가 웃으면서 말했다.
"틀림 없지. 이 도박꾼이 이토록 영리하게 될줄은 몰랐는데?"
합합아가 날뛰면서 말했다.
"정 그렇다면 무엇을 기다리느냐. 빨리 가자. 하하, 나는 떠들
썩한 것을 좋아하니 사람이 많을수록 좋지."
이때 화무결은 자기가 왜 이 세상에 죽지 못 하고 있는지를 생
각하며 비통해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자기와 철심난에게 할 일
을 생각하자 그는 마음이 깨어지는 것만 같았다.
소어아와 이화궁주는 이 산 속에서 매장된 채 영원히 햇빛을 보
지 못 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보다 철심난이 더욱 애태우고 있을 것을 생각하자 그는 그
녀를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철심난은 이제 눈물마저 말라 있었다.
이미 소어아가 산굴 속에 묻힌 지 육일이 지난 것이다.
강제 결혼(强制結婚)
산 밑에는 절간이 하나 있었다. 이곳의 중들은 화를 입었다.
그들은 고생하여 몇 근의 고기를 얻어와 부엌에 모여 먹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돌연 어떤 놈이 들어 와서는 고기와 술을 빼앗아
갔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늙은 중은 생각했다.
(이건 필시 부처님이 우리가 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알고 우리를
처벌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작은 중들을 불러내어 삼 일 동안 불공을 드려 참
회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들이 이번에는 떼거리로 몰려온 것이다.
이상한 것은 그 사람들의 생김새는 무시무시했는데 얼굴에는 시
종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 중에는 환자도 섞여 있었다. 여자 둘과 남자 하나였는데
남자는 깨끗하고 허여멀겋게 생겼으며, 여자들은 아름다왔다. 그
것을 본 중들은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늙은 중은 오직 염불만을 하기로 맹세하고 잿밥에는 눈도 돌리
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또 다시는 몰래 고기를 먹지 않기로 마
음을 먹었다.
사실 이대취와 도교교 등 그들은 마치 학당에서 돌아온 학생들
같았고 또 귀문관(鬼門關)에서 막 빠져나온 귀신들 같았다.
그들은 모두 큰소리를 내며 웃기만 했다.
그들은 빨간 양단의 옷을 우선 백 부인(白夫人)에게 입혔다.
이 백 부인은 난처해 하는 빛이 전혀 없었다.
사실, 그녀는 몸의 가려운 증세도 이미 없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히히 웃으면서 몸을 흔들어댔다.
합합아는 힘차게 백개심의 어깨를 치면서 웃음을 보였다.
"하하, 저 여인은 너에게 시집을 가고 싶은 모양이군!"
이대취가 말했다.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 싫증을 느낀 모양이야. 새로운 사람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지?"
도교교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쩌면 그녀는 백개심의 채찍을 좋아하는지도 몰라. 난 벌써부
터 이 여인이 채찍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금후로는
매일 채찍을 맞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어?"
합합아는 하나의 녹색 비단 옷을 백개심에게 입혔다.
백개심이 씁쓰레한 얼굴을 하면서 말했다.
"다른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이건 너무 길어."
이대취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길다고 생각한다면 잘라서 모자를 만들어라!"
화무결은 이 미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평온을 되찾으려
애썼다.
그는 이 미친 놈들이 어떻게 자기를 상대하더라도 자기는 절대
로 비감한 빛을 보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가 비감해 할수록 이 미친 놈들이 더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
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그가 안심이 되는 것은 철심난이 이미 졸도했다는 점
이다.
최소한 그녀는 이런 모욕과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전에는 그는 자기가 만 번을 죽는다 해도 철심난이 죽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철심난이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차라리 죽어버린다면 세상에 어떤 일도 그녀를 상처받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때 합합아가 하나의 옷을 골라 그의 몸에 걸치고는 웃으며 말
했다.
"좋은 날이 왔는데 왜 울상이지?"
도교교가 한마디를 했다.
"소어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버려라. 그는 그 소씨라는 계집
애와 산굴에서 식을 올렸을 거야."
합합아는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하하, 그렇지. 죽게될 것을 알게 되면 옆에 있는 것이 고양이
건 개건 간에 그저 암컷이라면 식을 올리려고 할 거야."
화무결은 지그시 눈을 감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대취가 돌연 손벽을 쳤다. 무슨 생각을 한 모양이다.
"우리는 하나의 일을 잊었어!"
도교교가 물었다.
"뭐!"
"모용가의 사람들은 장소를 중요시 하는데 어찌 이런 가난한 곳
에서 잔치를 하겠어?"
도교교가 말했다.
"그들이 어디서 잔치를 하든 간에 우리는 따라가야 해. 이제 여
기는 싫증을 느꼈으니 멀리 갈수록 좋지."
"그렇다면 빨리 가서 알아봐야지. 그들이 갔는지, 또 어디에서
잔치를 하는지 말이야."
"도박꾼을 시켜라. 그는 그녀들과 사이가 좋으니까."
돌연 창밖에서 한 사람이 음침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도박꾼은 갈 필요가 없어!"
헌원삼광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식, 너 이 반인반귀(半人半鬼)의 자식이 아직도 십팔층 지옥
으로 들어가지 않았느냐?"
음구유는 창밖에서 파란 얼굴을 내밀며 껄껄 웃었다.
"이 세상에는 귀신이 너무 많아. 도박 귀신, 여자를 좋아하는
귀신, 그리고 가난한 귀신, 술 귀신, 빚장이 귀신...... 세상에
이토록 많은 귀신이 있는데 내가 어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겠
어?"
두살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이미 모용가의 소식을 알아보았느냐?"
음구유가 대답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혼사를 하려고 했는데 생각을 변경시
켜 버렸어!"
"왜 그랬지?"
만약 이 말을 다른 사람이 물어 봤다면 음구유는 필시 눈을 크
게 뜨고 이렇게 대답 했을 것이다.
"내가 모용가의 아가씨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
그러나 그 말을 두 노대가 물어 왔으니 음구유는 고개를 저으면
서 말했다.
"그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었어."
이대취가 문득 웃으면서 말했다.
"여인이 어떤 일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가 생각을 변경시키지 않
으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합합아도 거들었다.
"그들이 왜 생각을 변경시켰는지 도교교는 알 거야. 하하, 그녀
는 반은 여자니까!"
도교교가 말을 받았다.
"그래 확실히 난 알아."
합합아는 놀라면서 물었다.
"너 정말 아느냐, 어떻게 알았지?"
"너도 생각을 자세히 해보면 알 수가 있을 거야. 그런데 너의
정신은 돼지 기름으로 덮혔어!"
헌원삼광이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서로 욕을 하지 않으면 시간을 보낼 수 없느냐?"
이대취가 헌원삼광쪽으로 향했다.
"이 이십 년간, 우리가 그런 귀신 같은 곳에서 사람을 욕하는
것 외에 무엇을 했겠어?"
합합아도 끼어들었다.
"하하, 그래. 날씨가 나쁜 때 어린애를 때리는 것처럼 할 일이
없을 때는 욕을 할 수밖에 없었지."
두살은 그들을 무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도교교에게 다시 물었
다.
"그녀들이 왜 생각을 변경시켰지?"
도교교가 웃으면서 말했다.
"생각을 해봐. 그녀들이 만약 성대하게 잔치를 한다면 많은 강
호의 이름이 있는 인물들이 잔치에 참석을 할 거야. 사람들은 모
두 모용구매가 얼마나 영리한 사람인가를 보고 싶어 할 것이고 또
한 그녀가 선택한 남편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싶어 할 거야."
그녀의 말은 계속 되었다.
"그러나 모용구매는 이미 정신이 없는 반 미친 계집이 되었고,
그녀가 고른 남편도 잘 생기지도 않았고 약간 미친 기질이 있는
사람이야, 그들이 어찌 그런 부부를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보이겠
어? 창피스러운 일인데."
이대취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그녀들의 친척은 모두 명문 세가의 사람들이니 그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면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 하게
될거야."
도교교가 다시 말했다.
"그들은 그 부부를 여기서 몰래 식을 올린 뒤에 조용히 다른 곳
으로 보내버릴 거야. 만약 남들이 물어보게 되면 그녀들은 이 신
혼부부들이 급하게 혼례를 올린 다른 이유를 대겠지."
"재미있어, 재미있어. 그렇게 되면 남들은 마음 속으로는 의심
을 해도 하는 수가 없겠지!"
"그렇지만 역시 체면에 관계된 일이니 너무 간소화하지는 못 할
거야. 그녀들은 필시 다른 잔치를 열어서 그녀들이 인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할 거야. 다만 그녀들이 초대한 사람들은 필시
그들과 상관이 었는 사람들일 것이고."
음구유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도교교는 과연 여자 제갈(諸葛)이야!"
두살이 음구유를 향해 물었다.
"어디서 잔치를 여는지는 아는가?"
음구유가 말했다.
"그녀들은 이미 강변에 일 리(里) 길이의 천막을 치고 잔칫상을
차렸어. 어느 누가 가도 먹고 즐길 수 있도록 했지. 거지가 가도
두 근의 고기와 술을 먹을 수 있으니까."
"언제?"
"바로 오늘이야."
도교교는 기쁜 빛을 만면에 들어냈다.
"빠를수록 좋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곳의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될 테니까."
합합아가 날뛰면서 웃었다.
"정 그렇다면 우리 빨리 가도록 하자."
이때 이대취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손님을 대접하면 안주가 필시 나쁜 거야. 무슨 술
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군."
백개심은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몸에 파란 비단 옷을 입고 있으니 좀 불편했다.
그는 보기에 정말 하나의 원숭이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웃으면서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자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해 있었다. 그는 이대취를 향해 말했다.
"너는 먹는 것을 좀 간소화 했으면 좋겠어. 너 같은 사람은 똥
을 먹기에 적합하지!"
도교교가 소리쳤다.
"너는 왜 꼭 똥이라는 말을 쓰지? 대변이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
니?"
날이 차츰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천막 안에는 모두 빨간 초
롱불이 켜져 있었다.
그 위에는 금종이로 만든 한쌍의 희(囍)자가 붙어 있었다.
긴 천막 안에는 파리의 알보다 사람 수요가 더 많았다.
이 시골 사람들은 신부를 보려고 각처에서 몰려왔다.
더군다나 여기에서는 돈 들이지 않고 술과 고기를 먹을 수가 있
었다.
그러나 완전한 공짜는 아니었다. 빨간 종이나 비단 같은 것을
축하금으로 들고 와야 했다.
그 위에는 천작지합(天作之合), 연봉화명의 글씨가 새겨진 것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내기도 했지만 그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듣지 못 하던 이름들 뿐이었다.
강쪽에 정박하고 있는 대관선의 선창 내외에는 많은 계집애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장막 속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수시로 고개를 밖으로 내밀
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것을 살피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이 집 주인은 정말 이상한데. 이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잔치
술을 마시 게 하고, 주인은 선창에서 얼굴을 드러내지도 않다니?
신랑도 우리에게 술을 따라주지 않는구나!"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가만히 있어라. 너는 그 사람들의 신분이 어떤지 아느냐? 그들
이 어찌 우리와 같이 술을 마시겠느냐?"
"그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들은 비단 강남(江南) 일대 제일의 부자
일 뿐만 아니라 무림 중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이래. 우리를
초대한 것은 다만 장소를 빛내 달라는 것이라는군. 우리는 술만
마시고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 말을 잘못했다가는 변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주고 받으며 여흥에 취해 있다가 돌연 일
제히 입을 닫아 버렸다. 마치 무슨 괴물을 본 것 같은 표정들이었
다.
하나의 마차가 밖에 서있었다.
그 마차는 모양도 이상했거니와 그 속에서 내린 사람들은 더욱
이상했다.
마차를 몰던 이는 몸집이 큰 사내였다.
비록 질이 좋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단추가 하나도 달려있지 않
았고, 앞가슴의 털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가 웃지 않았으면 오히려 약간이라도 모양이 좋았을 것이다.
그가 웃을 때면 입이 귀까지 찢어져 올라가 정말 두근 반의 큰 빵
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뒤따라 마차에서 몇 사람이 나왔다.
키가 작은 사람이 있었고, 뚱뚱한 사람이 있었으며, 음양괴기한
사람도 있었고, 또 의수(義手)를 한 사람도 있었다. 또 화려한 옷
을 입었으나 거지 불량배 같이 보이는 사람과 여관을 잡아놓고 노
름을 하던 괴인도 끼어 있었다.
그들을 보는 사람들은 먹던 음식맛이 모두 달아났으며 오히려
토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 사람들의 모습은 천하에 보기 드물게 괴이했다.
그들은 마차에서 다른 세 사람을 부축해 내리게 했다.
그 세 사람은 기운이 없었고 얼굴이 초췌해 있었으며, 다 죽어
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몸에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것이 마치 결혼할 사람들
같이 보였다.
장막 속에 사람들은 모두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괴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장막 속으로 들어섰다.
그 중에 마차를 몰던 얼굴이 수염으로 뒤덮힌 사나이가 소리쳤
다.
"주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난 그녀를 만나야겠는데?"
많은 사람들은 도박장에서 그 괴인을 본 적이 있었고 그의 수단
도 맛보았으니 감히 아무소리도 하지를 못 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두 사람은 성내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표국에서 온 사람들인데 어찌 그 무례함을 보고 그냥 갈
수가 있겠는가!
두 사람은 불 같이 호통치며 소리쳤다.
"너 이 망할 놈아! 말버릇이 그게 무엇이냐?"
'망할놈'이라는 욕을 하는 순간 두 사람은 목이 누군가에게 잡
힌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비록 오랫동안 무술을 연마했지만 조금도 힘을 쓰지
못 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버렸다.
그것을 본 녹색 옷을 입은 괴인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헌원(軒轅) 형을 망할 놈이라 욕하다니 간이 정말 크
구나. 만약 헌원형이 너희 두 놈에게 맛좀 보여주지 않으면 금후
로는 사람들이 모두 형에게 망할 놈이라고 부를 거야."
그 수염이 달린 사람은 이미 극도로 화가 돋아 있었다. 그는 양
손을 들었다.
두 사람의 목뼈는 즉각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다행히 이때 그 둥근 얼굴의 사나이가 그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오늘은 좋은 날이니 여기서 사람을 죽이면 주인의 체면
이 어떻게 되겠나?"
그 입이 매우 큰 사람도 웃으면서 말했다.
"살인을 한다해도 머리를 산산조각 낼 필요까지는 없어. 사람의
목이 부러지면 먹으려 해도 자꾸 구역질이 나지. 닭의 대가리를
산산조각 내봐. 먹고 싶겠는가."
그 수염이 달린 사나이는 '흥' 하는 소리를 내며 손을 휘둘렀
다. 그러자 두 사람은 모두 날아가 탁자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긴 장막은 삽시간에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가씨들과 노인들은 일제히 놀라서 밖으로 달아났다.
어떤 아이들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이런 소란 속에서 돌연 한 사람이 소리쳤다.
"어떤 친구가 소란을 피워 나를 난처하게 만들려는 것이냐?"
그 사람의 말소리는 크지는 않았으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는
있었다.
말소리 중에는 매우 웅혼한 내공이 실려 있었다.
울음소리, 부르는 소리. 떠들어 대는 소리가 일시에 멈췄다.
매우 젊은 사람이 뱃머리에 서있었다.
그 사람은 뒷짐을 지고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림 고수라는 것을 즉각 알 수 있었다.
장막의 사람들은 모두 한 구석으로 피했다.
그 둥근 얼굴의 사나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촌놈들이라서 그러니 잘못한 것을 작은 친구가 용서하오."
그는 비록 사과를 했지만 첫마디에 작은 친구라고 부르자 배 위
의 사람들은 즉각 안색이 변했다.
그러나 돌연 무엇인가를 생각해낸 듯 놀라운 빛을 드러냈다.
그는 이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 화무결
을 보았다.
그러나 더욱 놀라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은 혹시...... 혹시......"
그 둥근 얼굴의 사나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작은 친구, 우리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게 좋아. 너의 입을 더
럽힐 염려가 있으니까?"
그 사람은 한동안 잠잠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후배 진검(秦劍)은......."
이때 선창에서 다시 몇 사람이 걸어 나왔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왔고 남자들도 모두 귀공자들이었다.
그들도 밖에 온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면서도 여전히 웃는 얼
굴을 했다.
그들이 만약 이 사람들의 내력을 모르고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
이 했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람들의 내력을 알고도 웃어야 하는 것은 매
우 어려운 일이었다.
강호 중에 십대악인을 만나고도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무공의 고하를 막론하고 몇 명 되지 않았다.
합합아가 우선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봐라, 모용가의 사람들은 풍채도 좋고 교양도 있지만 우리 같
은 사람들까지도 마다하지 않는구나."
도교교도 껄껄 웃었다.
"그들이 모두 교양이 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더욱 널리 떨치는
거야."
이대취는 길게 인사를 했다.
"우리들은 잔치가 있다 하여 축하를 하러 왔소. 우리들을 기꺼
이 맞아 주시겠소?"
헌원삼광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자식, 사람 먹던 입으로 말은 잘 하는데......"
백개심이 일부러 들으라고 한마디를 더했다.
"이 사람들은 비록 입으로는 말을 잘 하지만 좋은 마음을 가져
본 일은 없어. 당신들은 빨리 그들을 쫓아버리는 것이 좋아."
뱃머리에 서있는 사람들은 진검 외에 큰남편 미옥검객(美玉劍
客) 진봉초(陣鳳超) 부부와, 두번째의 남궁유(南宮柳) 부부, 네번
째의 매화공자(梅花公子) 매중랑(梅中郞) 부부, 다섯번째의 신안
서생(神眼書生) 낙명도(駱明道) 부부 등 강남무림의 고수들이었
다.
그들은 화무결을 보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 했으나 모두 웃음을
드러내며 예의를 갖추었다.
합합아 일행이 말을 다 끝내자 미옥검객이 말했다.
"여러분들이 좋으시다면 당신들은 나의 손님이오."
모용쌍이 웃으면서 말했다.
"더군다나 헌원삼광 선생은 우리 막내동생의 남편의 생사를 같
이하는 친구이니 여러분은 어서 올라오시오."
이대취가 사양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분부대로 하겠소."
진검과 매화공자의 얼굴에는 경계의 빛이 보였다.
도교교는 그들 앞에 와서 웃으면서 말했다.
"안심해요, 우리는 오늘 술을 마시러 왔으니 절대로 시비를 걸
지는 않겠소. 우리를 경계할 필요는 없소."
헌원삼광이 큰소리로 말했다.
좋아, 오늘은 내 동생의 좋은 날이니 누가 쌍스러운 말을 하면
내가 먼저 그를 혼내 주겠다."
백개심이 싸늘하게 말했다.
"네가 무엇을 믿고 그러는 것이냐, 넌 아직 멀었어. 만약에 이
대취가 사람이 먹고 싶다면 네가 그의 입을 막을 수 있겠느냐?"
그 몇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배에 올랐다.
장막에 있던 사람들은 어찌된 일인지를 몰랐다.
그 고귀해 보이는 공자들이 그런 괴상한 인물들에게 예의를 갖
추다니!
선창에는 상이 차려져 있었다.
여섯번째 남편 소백룡(小白龍) 부처, 일곱번째의 동정제자(洞庭
弟子) 유학인(柳鶴人) 부처와 여덟번째의 만화검(萬花劍) 좌춘생
(左春生) 부처, 그리고 고인옥(顧人玉)과 소선녀(小仙女) 장정(張
) 등이 모두 선창에 있었다.
그들은 모두 호기심이 어린 눈동자로 화무결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화궁의 전인(傳人)이 어찌 이렇게 되었는지가 매우 궁
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양있는 사람들이 남의 사사로운 일에 간섭을 할 수는
없었다.
남이 먼저 말을 하지 않으면 호기심이 있다 해도 못 본 척 해야
했다.
그들 몇 사람은 하나의 큰 탁자에 자리하고 앉았다.
두살이 수석에 앉았고 그와 같이 자리에 앉은 사람은 미옥검객
진봉초와 남궁유였다.
이 두 사람이 이 이상한 사람들 틈에 앉자 더욱 그들의 뛰어난
용모가 드러났다.
화무결은 나무 토막처럼 앉아 있었다.
마치 사람이 없는 광야에 앉아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남들이 그를 가엾게 생각하든 비웃고 있든 그는 마음에 두지를
않았다.
술을 많이 마셨는데도 한쌍의 신혼부부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
다.
이대취가 돌연 입을 열었다.
"잔치를 벌이고 있으면서도 왜 풍악소리가 없소?"
진봉초가 잠시 생각을 한 후 말했다.
"시간이 급박해서 준비를 못 했으니 용서하시길 빌겠소."
"그렇다 해도 예절을 버릴 순 없겠지?"
도교교가 급히 웃으면서 말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두 쌍의 신혼부부가 있어 이런 기쁜 날에
구(九) 아가씨와 함께 식을 올렸으면 하는데."
신봉초가 물었다.
"신혼부부라니요?"
남궁유도 가만히 있지 못 했다.
"그 신혼부부란?"
그들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화무결을 바라보았다.
화무결의 창백한 얼굴에는 고통의 빛도 없었으며 기쁜 빛도 찾
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소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복잡하여 어찌된
일인지 더욱 알 수가 없었다.
합합아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하하, 옛말에 한쌍이 되어야 좋은 일을 이룬다고 했으며, 하나
둘은 셋보다 못 하다고 했어."
진봉초가 미소를 띠우면서 말했다.
"각하의 좋은 뜻을 우리가 거역할 수는 없겠지만 애석하게
도......."
이대취가 양미간을 찌푸렸다.
"애석하게도?"
진봉초는 담담히 말했다.
"다만 우리의 구매(九妹)는 이미 혼사를 올리고 배를 타고 떠나
버렸소!"
남궁유도 따라서 말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동생 부처는 모두가 환자이오. 그들이
조용한 시간을 보내겠다고 해서 반대할 수가 없었소."
도교교와 이대취는 서로 바라보면서 아무소리도 하지 않았다.
합합아가 입을 열었다.
"하하, 만약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을 했다면 우리는 필시 사람
을 무시한다고 했을 것이오. 그러나 두 분이 한 이야기는 다르
지."
"진봉초가 말했다.
"감사하오."
도교교가 입을 열었다.
"만약 평상시에 여러분들이 우리를 만났다면 필시 싸움이 벌어
졌을 것이오. 모두 좋은 사람들이니 악인들과 공존할 수는 없지
않겠소?"
진봉초는 그저 웃을 뿐 말을 하지는 않았다.
도교교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평상시였다면 우리도 당신들을 찾아오지 못 했겠지. 모용(慕
容)가의 이름이 무서워서 우리는 시비를 걸지 못 하오."
진봉초는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우리들이 어찌 그런......."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망신을 주지 않을 것으로 알고 우리는 이
렇게 여기를 찾아왔소."
합합아가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하하, 우리가 이왕 여기에 왔으니 이곳에서 기분을 내야 되지
않겠소? 여러분들은 모두 군자이고 또 오늘은 좋은 날이니 우리가
좀 실례를 한다해도 우리를 쫓아버리지는 않겠지."
도교교가 만면에 웃음을 보였다.
"못난 사람들만이 손님을 내쫓지."
다른 탁자에 앉아있던 진검이 일어서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도대체 어쩔 셈인지 말을......."
이대취가 크게 웃으면서 그의 말을 막았다.
"우리는 다른 뜻은 없고, 다만 여기의 방을 하나 빌려서 이 두
쌍의 신혼부부에게 식을 올려주려는 것이오."
진검이 무슨 말인가 하려 할 때 진봉초가 그를 막고 미소를 지
으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죠. 환영합니다. 다
만...... 음악이 없어서?"
"급할 땐 아무렇게나 해도 되오."
"그렇겠죠!"
이대취는 손벽을 치면서 크게 재미있어 했다.
"그렇다면 왜 걱정을 하는 것이지?"
그는 돌연 두 개의 젓가락으로 상을 치기 시작했다. 합합아도
손으로 입을 막고 묘한 소리를 냈다.
도교교는 크게 웃었다.
"이런 음악은 하늘에만 있는 것인데 인간 세계에서 몇 번을 들
을 수가 있으랴, 이럴 때 빨리 식을 올리지 않고?"
그녀는 백 부인과 철심난을 한쪽에 세웠다.
백개심은 웃으면서 화무결을 일으켜 세웠다.
이대취는 그릇을 두들기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신랑 신부 등장! 그리고 절을......."
모용가의 사람들은 모두 재녀(才女)들이며 그들의 남편들도 재
자(才子)였다. 그런 그들이 이런 못난 짓을 보고는 서로를 바라보
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바로 이때 돌연 음구유가 소리쳤다.
"누구냐?"
한 사람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난 사람이 아니야!"
이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버렸다.
'난 사람이 아니야!' 이 말은 평소에 음구유가 자주 하는 말이
었다.
음구유는 놀라서 물었다.
"네가 사람이 아니라면 귀신이냐?"
그 사람이 말했다.
"틀림 없어!"
"네가 귀신이라고? 그럼 내가 누군인지 아느냐?"
"넌 다만 반인반귀(半人半鬼)이지만 난 완전한 귀신이야."
여기까지 듣고있던 백개심은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재미있어, 음구유가 오늘에야 정말로 귀신을 만나게 되는구
나!"
여러 사람들은 모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
그 사람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틀림 없어, 내가 바로 백일귀(白日鬼)야."
웃음 소리와 함께 하나의 그림자가 선창밖에서 바람을 타고 들
어섰다.
선창 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무림의 인류 고수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람의 경공을 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음구유가 몸을 날려 그를 제지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음
구유의 옆을 지나서 선창 깊숙히 들어섰다.
그 사람의 경공은 음구유보다도 더욱 뛰어났다.
이화궁주와 연남천 외에는 세상에 경공이 이처럼 훌륭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그는 연남천도 아니었고 이화궁주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의 몸은 석자(尺)도 못 되는 난장이었다.
난장이들은 기형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난장이는 달랐다.
그의 머리, 손, 발과 몸은 모두 기형의 기색이 없었다. 다만 모
두 작으마 했을 뿐이다.
얼굴은 깨끗하게 생겼으며, 수염을 기른 것으로 보아 도사(道
士) 같기도 했다.
그는 청회색의 옷을 입고 등에는 검을 꽂고 있었다. 그 검은 다
른 사람들의 단도 보다도 짧아서 마치 어린애의 장난감 같았다.
만약에 어린애가 그 사람을 보게 된다면 필시 손을 잡고 숨박꼭
질을 하자고 할 것이다. 만약 약장사가 봤다면 필시 좋은 인재라
생각했을 것이고, 관리들이 그 사람을 봤다면 임금님에게 광대로
진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교교는 그 사람을 보고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두살과 이대취는 그녀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보자 곰곰히 생각한
끝에 돌연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다.
이때 음구유가 달려들어 그 사람에게 공격을 하려 했다.
그러나 도교교와 이대취가 막아서더니 조용히 그의 귀에 대고
몇 마디를 했다.
음구유는 안색이 변하더니 즉각 손을 거두었다.
그 사람은 사방에다 인사를 한 뒤 서서히 입을 열었다.
"불청객이 잔치에 들어왔으니 용서하오!"
진봉초, 남궁유 등 그곳에 있던 고수들은 마음 속으로는 놀랐지
만 여전히 허리를 굽혀 예의를 표했다.
이때 셋째 아가씨 모용산산이 돌연 입을 열었다.
"후배는 어릴 때부터 강호에 한 사람의 기협(奇俠)이 있다는 것
을 들었습니다. 마치 용과 같이 빨라서 보기가 힘들다고 하던데,
후배는 벌써부터 보고 싶었어요."
모용쌍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혹시 기협은 귀...... 귀......."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씨 일부러 피하실 것은 없소. 귀동자(貴童子)라 부르시오.
난 벌써 습관이 되었으니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오. 그리고 그 이
름도 괜찮지요."
귀동자라는 세 글자가 나오자 진봉초, 남궁유 등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전설적인 인물로 그는 동영무상도
이하곡(伊賀谷)의 비종(秘宗), 인술(忍術)의 유일한 전인이었다.
광사 철전(狂獅鐵戰)
그러나 이 사람은 이미 오십여 년 전에나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
었다.
근 삼사십 년 동안 그의 소식은 알아볼 길이 없었다.
들리는 말에 그는 부상(扶桑)으로 건너가 이국(異國) 생활을 하
고 있다고 했다.
부상 섬에는 모두 난장이들만 살기 때문에 그가 생활하기가 더
욱 편리하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적인 사람이 오늘 이 자리에 홀연히 다시 나타나자 사
람들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진봉초는 공경히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후배들은 벌써부터 선배님의 존성대명을 들어왔습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귀동자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너는 비록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런 괴물
이 왜 나타났는가 하고 생각하겠지?"
진봉초는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제가 감히."
"네가 묻지 않아도 내가 그 이유를 말해 주겠다."
"네?"
"내가 이번에 온 것은 두 가지 일 때문이야. 첫째, 이분 철 아
가씨가 혼인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악사를 초청했지. 그들이 모두
일류 악사라는 것을 보증하겠네. 그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식을 올린다면 내 체면이 어떻게 되겠나. 그러니 잠시만 좀 기다
려 달라는 것일세."
진봉초 등 사람들은 모두 놀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취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보니 그는 우리 때문에 온 것은 아니군."
"하지만 이 노괴물과 철심난이 무슨 관계가 있지? 왜 그녀의 일
에 참견을 할까?"
귀동자는 그들에게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사실 나는 이 철 아가씨와는 모르는 사이야. 하지만 난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지."
이대취는 그 말에 의구심을 가졌으나 더 이상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악인곡(惡人谷)에 이십 년 동안이나 잠적해 있다가 다시 강호에
나타나기는 했지만 심대악인은 여전히 십대악인이었다.
십대악인의 이름은 그리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침착할 수가 있었다.
귀동자가 다시 말했다.
"또 한 가지의 일이 있는데 재미있는 것이지."
진봉초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면서 말했다.
"우리는 모두 듣고 있습니다."
"난 이번에 어쩌다 한 사람을 구하게 됐어. 듣기엔 나쁜 놈이라
하더군. 그러나 난 성질이 이상해서 나쁜 놈과 친구가 되기를 좋
아하지. 남들은 나쁜 놈과는 친구 삼기를 꺼려하지. 그렇다면 그
나쁜 놈이 불쌍하게 생각되지 않나? 한 사람이 너무 불쌍하면 어
찌 나쁜 놈이라 하겠나!"
이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 몰래 웃고 말았다.
백개심은 참지 못 해 입을 열고 말했다.
"선배께서 나쁜 놈과 친구가 되고 싶다니 정말 잘됐습니다. 지
금 이곳에 있는 나쁜 놈들은 다른 악당들보다 열 배는 더 흉악한
놈들이니까요."
그는 꼭 이런 식으로 사람의 심사를 긁어놓는 말을 잘했다.
그는 사람의 심사를 긁는 말을 하지 못 하면 목구멍이 간질간질
해서 참지 못 하는 성미였다. 마치 한 마리 똥개가 똥을 보고도
먹지 않으면 속이 아픈 것처럼 말이다.
귀동자는 그를 바라보면서 웃어보였다.
"네가 바로 손인불이기 백개심이겠군. 과연 명불허전이야. 내가
이번에 배에 올라온 것은 너를 찾기 위해서야."
백개심이 놀라면서 말했다.
"나...... 날 찾소? 왜...... 왜? 난 사람을 먹지도 않았고 도
박도 하지 않았으니 이중에서 내가 가장 얌전할 것이오."
"사실 내가 너를 찾은 이유는 나의 그 나쁜 친구와 네가 계산되
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해서야."
여기까지 말하던 그는 돌연 큰소리로 외쳤다.
"빨리 와라! 너 이 이빨 없는 호랑이야."
이 말이 나오자 백개심은 놀라 달아나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백 부인도 시종 생긋생긋 웃고 있다가 이 말을 듣자 돌연 안색
이 변해버렸다.
그러나 백개심은 달아날 수가 없었다.
귀동자가 이미 그의 앞을 막아버린 것이다.
이때 갑판 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이미 한
사람이 큰 걸음으로 들어왔다. 바로 그 마누라를 잃은 백산군이었
다.
백개심이 탄식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이런 계산은 언제까지 해야 다 끝낼 수가 있을까?"
이 말을 들은 이대취도 웃으면서 말했다.
"천천히 계산을 해야지. 시간도 많으니까."
백산군은 서서히 백개심의 앞으로 다가왔다.
백개심은 웃음띤 얼굴을 보이면서 말했다.
"우리는 모두 백(白) 씨이니 절대로 남의 도발적인 말을 듣고
싸움을 해선 안 되오. 우리 백가의 화기(和氣)를 상하게 해서야
되겠소?"
이대취가 싸늘하게 비웃었다.
"한 번에 두 개의 백(白) 자를 쓰지 못 하듯, 하나의 신발에 어
찌 두 개의 발을 끼어 넣을 수 있겠나?"
백개심은 펄쩍 날뛰면서 이대취에게 달려들었다.
오히려 백산군이 그를 막아셨다.
"이 분의 말도 사실이오. 이......."
백개심은 소리를 질렀다.
"사실이라고? 이건 개소리야. 나와 당신 마누라는 아무일
도......
아무 관계도 없었어. 나도 사실은 그녀가 필요하지 않았는데 정
잘됐군!"
백산군이 말했다.
"무슨 소리요? 이년은 이미 형씨와 혼인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
니 자연히 형씨의 마누라요. 난 비록 못났지만 그러나 친구의
마누
라를 희롱해선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소."
그가 이런 말을 하자 사람들은 모두 놀라버렸다.
백개심이 다시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당신은 당신 마누라가 필요없단 말이오?"
"이번에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다만 형씨와 이양하는 수속을 하
려하는 것뿐이오. 수속을 끝내면 다시는 문제가 없을 것이오."
"내가 당신의 부인을 빼앗았는데도 나와 싸울 뜻이 없소?"
"난 싸울 뜻은 전혀 없고 오히려 형에게 감사를 드려야겠소."
백개심은 완전히 놀라버렸다.
"당신...... 당신이 감사를 한다고?"
백산군은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난 이미 그녀를 이십 년 동안이나 사용했으니 형께서도 그녀의
맛을 좀 봐야지. 그녀는 성질이 나쁘고 질투심도 강하오. 게다가
밥도 짓지를 못 하고 집도 관리를 못 하지. 다만 때때로 계란을
삶아서 형씨에게 드릴 것이오. 소금을 좀 많이 집어넣기는 하지
만."
백개심은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이때 백 부인이 날뛰면서 소리쳤다.
"너...... 너 이 죽일놈아, 나를 그렇게 말하다니......!"
백산군이 웃으면서 말했다.
"형수께서는 진정하시지요? 난 지금 형수의 남편이 아니라는 것
을 잊지 마시오."
백 부인은 다시는 말을 하지 못 했다.
백산군은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두 분께서 영원히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행복하시길 빌
겠소. 난 두 분의 덕택으로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았으니 금후에도
꼭 두 분을 잊지 않겠소."
그는 하늘을 향해서 크게 웃더니 걸어나갔다.
사람들은 서로 바라보면서 울지도 웃지도 못 했다.
그 누구도 천하에 이런 일이 있고, 또 이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
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한참 후 백 부인이 중얼거렸다.
"그가 날 버렸어! 그가 나를 버렸어!"
"이게 정말일까?"
백개심이 말했다.
"정말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보기에 그는 정말인 것 같아!"
"정말이 아닐 거야. 그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 난 알아......
난 알아. 그는 지금 미칠 것 같을 거야. 그러니 나는 절대로 그를
그냥 보낼 수가 없어."
그녀는 소리를 지르면서 밖으로 달려나갔다.
삼사일을 굶은 여자가 힘도 좋았다. 마치 뒤에서 잡는 사람이라
도 있는 듯 급히 몸을 날렸다.
사실 어느 누구도 그녀를 잡을 사람은 없었다.
더우기 백개심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백개심이 이 여자에게 호기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이 여자가 남의 마누라였기 때문이다.
많은 남자들이 남의 마누라에게 호감을 느낀다.
더우기 손인불이기 백개심은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와 이 여인의 혼사가 추진될 때도 그는 반대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이 일이 있은 뒤 백산군이 와서 울고불고 그와 싸우려 하
기를 바랐다.
그러나 백산군은 손쉽게 그녀를 자기에게 넘기지 않았는가.
마치 그녀를 쓰레기처럼 취급하면서 버리지 못 할까봐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자 백개심은 정말 실망했다.
그는 이제 이 여인이 정말 쓰레기보다 깨끗하지 못 하다고 느꼈
다. 이것이 바로 남자들의 성미였다.
암돼지 같은 여자라도 두 사람이 서로 경쟁을 하게 되면 그 암
돼지는 즉각 천상의 공주가 된다.
그러나 그중 한 남자가 포기해 버리면 다른 한 남자는 깨닫게
된다.
"알고보니 그녀는 다만 하나의 암돼지였구나. 하나의 암돼지였
어!"
백개심은 이 여인이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성을 해서 물에 빠져버리면 금상첨화일 것 같았다.
그러나 백 부인이 귀동자의 옆을 지나치는 순간, 귀동자는 재빠
르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잡았다.
그의 몸은 비록 그녀보다 작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를 매우
손쉽게 다루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백개심의 옆으로 끌고 와서야 놓았다.
백 부인은 놀라서 넋을 잃고 말았다.
그녀 자신도 어떻게 귀동자에게 잡혔는지조차 몰랐다.
그녀는 말했다.
"내가 내 남편을 찾아가도 안 된단 말이오?"
"너의 남편은 여기에 있는데 어디 가서 찾는다는 거냐?"
"그러나...... 난 이 사람에게 시집갈 생각이 없어요. 이것은
완전히 남이 강제로 꾸민 일이에요."
"네가 그에게 시집을 가고 싶지 않았다면 왜 수줍은 신부의 모
습을 하고 있었지?"
백 부인은 울음을 터뜨리며 힘차게 눈을 비볐다. 그러나 아쉽게
도 눈물이 흘러주지를 않자 곧 거짓울음 소리를 그쳤다.
귀동자가 말했다.
"너에게 권하겠는데 얌전히 있어라. 네가 계속 그렇게 시끄럽게
한다면 어쩌면 나는 화가 나서 너를 개에게 시집 보낼지도 모른
다."
이 말을 들은 백 부인은 과연 아무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사람은 한 번 말을 하면 반드시 실천을 한다는 것을 알기 때
문이다.
그녀는 개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어떻든 간에 백개심은
개보다는 낫지 않는가!
귀동자는 웃으면서 화무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발끝을 세
우고서야 화무결의 어깨에 손이 닿았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자식, 네가 철 아가씨와 혼사를 이룰 수 있는 것은 너의 행운
이다."
화무결은 여전히 아무말도 없이 서있었다.
그는 사실 서있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할 힘이 없었다.
말은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때 그가 무슨 말을
할수 있으랴!
귀동자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떻든 간에 너는 그녀와 혼사를 하게 되었는데 왜 불쾌한 표
정을 짓는가?"
이때 철심난이 큰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저...... 전......."
귀동자가 웃으면서 그녀의 말을 막았다.
"네가 묻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라. 잠시 후에는 모든 것을 알게 될 테니까!"
모용가의 자매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 괴인을 자리에
앉히고 좌중을 정리하자는 뜻인 것 같았다.
모용가의 사람들은 절대로 손님에게 실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들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귀동자가 웃으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나에게 술대접을 할 필요는 없다. 난 술을 마시지 못 하니까.
나는 키가 작아서 술을 마셔도 남보다 많이 마시지 못 하기 때문
에 마시지 않기로 했지!"
진봉초가 옷는 얼굴로 말했다.
"정 그렇다면 선배님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어 보고 싶은 게지? 말해주지, 난
여인이 옷을 벗고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지. 너희들이 나를 기쁘
게 하고 싶다면 춤을 춰라. 그럼 만족하겠으니까."
모용자매들은 얼굴이 금방 파랗게 변해갔다.
진검, 매중량, 좌춘생 등은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도교교는 눈에서 빛을 내며 그들이 싸우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원한 밤바람을 타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율조의
음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음악 속엔 기쁨이 가득차 있었
다.
사람들은 어느새 모두 하던 말과 행동을 멈추고 그 곡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모두들 그 음악소리에 도취된 듯 보였다.
혈수 두살까지도 눈초리가 부드러워졌다.
그 음악 소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인생의 가장 유쾌하고 행
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모용가의 부부들은 자신도 모르
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은 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무결의 눈동자는 자기도 모르게 철심난을 향했다.
철심난도 그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마음 속으로 그들이 같이 있었던 행복했던 시간들을 생
각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에게는 오직 달콤한 추억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귀동자는 그들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내가 초청한 악사들이 천하 제일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겠지?
당명황까지도 이렇게 좋은 음악을 들어보지는 못 했을 거야."
음악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한 척의 배가 강물 위에서 마치 구름처럼 유유히 다가오고 있었
다.
배 위에서는 휘황찬란한 불빛이 흘러나와 강물을 비추고 있었고
잔잔한 물결이 그 빛을 영롱하게 반사하며 흐르고 있었다.
배 위에는 일곱 여덟쯤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퉁소를 부는 사람, 금(琴)을 튕기는 사람, 비파(琵琶)를 연주하
는 사람...... 그 중에는 북을 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북소리는 단순하고 별로 변화가 없었지만 그러나 한 번 한
번의 울림이 사람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사람들은 음악소리에 도취되어 갔다.
불빛에 비친 그 사람들은 노인들이었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
었다. 그 배는 서서히 모용가의 대관선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악기를 손에서 떼지 않은 채 계속 연주를 하며 모용가의 배 위로
올라왔다.
그들이 배 위로 올라온 후에야 그들이 멀리서 보았던 것보다 훨
씬 더 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을 보지 못 한 사람들은 결코 세상에 이토록 오래 산 사람
들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직접 그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눈이 믿어
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더우기 그 청춘의 생명감이 가득찬 음악을 그 늙은이들이 연주
했다는 것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진실로 믿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그 노인들도 이미 모두 배
위로 올라온 뒤였다. 음악소리는 잠시도 중단되지 않았다.
북을 치는 사람은 머리가 백설 같았으나 피부는 흑마처럼 윤이
나는 검은 빛이었다.
그는 몸이 매우 야위었기 때문에 단추도 달려있지 않은 옷소매
가 바람에 날리자 앙상한 뼈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두 다리 사이에 큰 북을 하나 끼고 있었다.
그 북은 그 보다도 이 세상에 더 오래 있었던 듯했고 매우 무거
워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무거운 북을 들고도 가볍게 배에 올랐다.
그는 그 북을 마치 종이로 만든 장난감을 다루듯 해서 혹시 바
람에 날아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진봉초가 앞으로 달려가서는 읍을 하며 말했다.
"선배님들 세외고인(世外高人)들께서 어찌 오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북을 치던 노인이 돌연 물었다.
"너의 성은 무엇이냐?"
"후배는 진봉초입니다."
그의 입에서 '진(陳)'자가 나오자 그 노인이 소리쳤다.
"진씨도 좋은 놈은 아니야!"
그는 소리를 치면서 마른 몸을 날려 진봉초에게 달려들려고 했
다.
귀동자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그를 막으며 말했다.
"네가 조씨에게 원한이 있는 것은 알지만 진씨와는 무슨 상관이
있느냐?"
북을 치던 노인이 말했다.
"왜 관계가 없어. 만약 진궁(陳宮)이 조조(曹操)를 놓아주지 않
았다면 나의 조상이 어찌 조조에게 죽었겠어?"
그가 이렇게 떠들자 음악소리가 멈추고 말았다.
모용산산이 웃으면서 말했다.
"삼국(三國)이래 우리까지 십팔대(十八代)가 흘렀는데 아직도
그 일을 얘기하십니까?"
진봉초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 사람은 바로 미형(彌衡)의 자손이었다.
미형은 조조에게 북을 치며 욕을 했기 때문에 조조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지금, 그 옛날의 일로 시비를 하자 진봉초는 어찌할 바를 몰랐
다.
모용산산이 다시 말했다.
"정 그렇다면 선배께서도 잊지 마세요. 진궁은 그 후에 간적 조
아만의 손에 죽었어요. 그러니 선배와 진씨는 같은 원수를 맺었는
데, 서로 싸우게 되면 조씨가 비웃지 않을까요?"
미심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네가 말을 하지 않았으면 내가 잊을 뻔 했어."
이때 돌연 한 사람이 말했다.
"여기에 종(鍾) 씨가 있느냐?"
그 사람은 키가 크며 금(琴)을 갖고 있었다.
백개심은 그와 종씨가 원한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즉각 이대
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종(鍾) 씨요!"
모용가가 절대로 이대취를 위해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
백개심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필시 이대취가 봉변을 당하게 될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그 노인은 이대취에게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나 유자아요. 옛날 당신의 조상인 자기(子期) 선생만이 우리
가문의 곡조를 알아주는 유일한 지음(知音)이었소. 오늘, 우리가
만났으니 각하가 싫지만 않으시다면 음악을 들려 드리겠소."
이대취는 소년시절에 재자(才子)라는 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
그는 실로 재주가 많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철무쌍이 딸을 시집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백아(伯牙) 선생과 종자기(鍾子期)의 이야기를 그는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음악을 잘 알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선배께서 그렇게 해주시겠다면 저는 귀를 크게 열고 듣겠소."
유자아는 앉아서 금(琴)을 튕겼다.
그 사람의 연주는 마치 선경에 올라선 느낌을 갖게 했다.
이대취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 곡조를 듣다가 감탄을 했다.
"태산(泰山)처럼 든든하니 정말 웅장한 기세가 비할 바가 없
소."
유자아의 곡조가 변했다.
이대취는 손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마치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니 세월의 도도한 흐름과도 같군
요."
유자아는 금(琴) 소리를 멈추고 탄식을 했다.
"여전히 세상에 지음(知音)이 있으니, 나는 이 곡을 다시는 다
른 이들 앞에서는 연주하지 않겠소."
도교교는 이미 이 노인이 보통의 고수(高手)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쉽게 이대취의 그럴 듯한 말에 넘어가자.
참을 수가 없어 웃으면서 생각했다.
(늙을수록 정신이 없어진다더니 틀림이 없군!)
유자아는 이대취의 손을 잡고 늙은이들에게 일일히 소개를 시켰
다.
퉁소를 부는 사람은 노파였고 소롱옥의 자손이었다. 그리고 고
(高) 씨도 있었고, 옥적(玉笛)을 부는 사람은 한상자의 후세였다.
그는 한유(韓愈)와도 관계가 있었다.
모용자매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그들은 점점 이 사람들이 혹시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 아
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묘한 것은 남곽 선생의 후손이라고 자처하는 사람까지 있
었다는 점이다.
그의 이름은 남곽홍이라고 했다.
모용산산은 참을 수가 없어 그에게 입을 열었다.
제선왕(齊宣王)은 삼백 명에게 피리를 연주하게 하고는 나머지
이백 구십구 명이 남곽 선생보다는 잘 분다고 했소. 선배의 그런
훌륭한 솜씨가 어찌 남곽 선생의 뒤를 따른 것이겠소!"
남곽홍은 키가 작고 뚱뚱했으며 인상이 호인이었다.
매우 온순해 보였기 때문에 모용산산이 농담을 하게 된 것이다.
과연 그는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씨는 그 이유를 모르는가?"
"후배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소."
"선왕(宣王)이 죽은 뒤에 민왕이 즉위했지. 그 역시 그 삼백 명
에게 일일히 피리를 불게 했어. 나의 선조가 그 말을 듣고 밤 사
이에 달아났다는 이야기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그후, 선조께
서는 밤낮으로 연마를 한 결과 죽기 전에는 제 일인자가 되었어.
그리고 는 옛날의 모욕을 씻기 위해 자손들 모두에게 피리를 배우
게 했지!"
그는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아가씨는 보시오. 천하에 이 남곽홍보다 피리를 잘 부는 사람
이 있는지를!"
모용산산이 즉각 말했다.
"후배가 무식해서 실례를 했으니 용서하세요."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남곽홍이 남곽 선생의
후손이 아닌 것과 미심팔이 미(彌) 씨가 아닌 것, 그리고 그 한
(韓)씨가 한상자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상자는 마누라가 없었는데 어찌 후손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노인들이 그렇게 말을 하니 그런 것으로 알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이 노인들이 모두 오륙십 년, 심지어 육칠십 년 전에
강호에 이름을 날리던 무사들이었던 것은 짐작을 했지만 그들의
정확한 신분은 알 수가 없었다.
철심난은 왜 이 노인들이 자기를 위해 연주를 하러 왔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모용가의 큰아가씨는 얌전한 현모양처였다.
그녀는 시종 웃음띤 얼굴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때 돌연 그녀는 남편의 옷을 잡아 당기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늦었고 모두들 피곤할 텐데......."
진봉초는 그녀의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
"당신의 뜻을 알고 있소."
사실 그도 오늘의 국면이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
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음악도 준비되었으니 빨리 두쌍의 부부를 위해 식을 올립시다.
그리고 모두들 기분 좋게 한 잔을 해야 할 테니까요."
도교교가 손뼉을 치면서 기쁜 표정을 했다.
"그 말이 맞아!"
합합아도 말했다.
"하하, 신랑 신부들이 신방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깜박 잊었
군."
그들도 이 노인들의 내력이 무서웠기 때문에 빨리 이 자리를 떠
나고 싶었다.
그러나 귀동자가 큰소리로 저지했다.
"안 돼. 지금은 안 되니 잠시 더 기다렸다가 시작합시다."
도교교가 말했다.
"무엇을 기다린다는 거요?"
"한 사람을 더 기다려야 하오."
"선배께서도 이 혼인식에 손님을 초대했나요?"
"손님이 아니고 주인이오."
도교교는 놀라움을 금치 못 하면서 말했다.
"주인? 주인들은 모두 여기에 있지 않소?"
귀동자는 그녀를 상관하지 않고 미심팔에게 말했다.
"막내는 너희들과 같이 오지를 않았느냐?"
미심팔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가 우리와 함께 오지 않으면 누구와 오겠나."
"어디 있지?"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그에게 물어 봐."
"내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너에게 물어 보겠나?"
미심팔이 말했다.
"네가 모르면 내가 어떻게 알아. 난 그의 애비도 아닌데."
귀동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정말 너의 조상과 같은 성미구나."
이때 남곽홍이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그의 괴팍한 성미를 알면서 왜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지? 왜 나
에게 물어보지 않지?"
이대취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몰래 웃음을 띠웠다.
사람은 늙을수록 애들처럼 되어버린다고 하지 않는가!
진봉초는 그들이 계속 입다툼을 할까봐 적정이 앞섰다.
그러나 다행히 남곽홍이 계속해서 말했다.
"막내도 우리와 같이 배를 타고 왔었는데 배의 속력이 너무 느
리다고 내려버렸어. 육지로 해서 오겠다고 하더군."
유자아가 곁에서 거들었다.
"이게 바로 급할수록 일이 안 된다는 거야."
귀동자는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았다.
"그의 불 같이 급한 성미는 죽어도 변하지 않을 모양이군!"
퉁소를 불던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경공으로는 먼 길을 돌아왔다 해도 벌써 도착해 있어야
해. 필시 성질을 못 참아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싸우고 있을 거
야."
한상자가 그 말을 받았다.
"만약 정말 싸움이 붙었다면 며칠이라도 기다려야 할 걸."
도교교가 눈알을 돌리면서 말했다.
"선배들의 그 친구는 남들과 싸우게 되면 꼭 끝장을 보는 모양
이지요?"
귀동자는 탄식을 했다.
"상대방이 절을 하면서 빌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를 않지."
도교교는 이대취를 한번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아닐까?"
이대취는 고개를 돌려 노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선배들의 그 친구는 혹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연 육지에서 한 사람의 외치는 소리
가 들려왔다.
"이대취, 악도귀 너희들 개새끼들아, 거기에 있으면 모두 나와
라!"
도교교는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틀림 없군. 과연 그 늙은 미친 놈이군!"
헌원삼광이 손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이 자식이 오게 되면 더욱 재미있지!"
돌연 그 사자 같은 목소리를 듣자 철심난은 안색이 변하면서 몸
을 떨기 시작했다.
모용자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노괴물들의 형제가 어찌 십대악인의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인
가!
이대취는 헌원삼광과 함께 뱃머리로 나갔다.
"너 이 미친 놈아! 아직도 죽지 않았느냐?"
육지에 있는 사람도 크게 웃으면서 소리쳤다.
"너희들 개새끼들이 죽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죽을 수가 있겠느
냐."
웃음소리가 나며 한 사람이 이미 뱃머리로 뛰어 올랐다.
그렇게 큰 배였음에도 불구하고 올라서자 배가 중심을 잃고 흔
들거리는 바람이 잔 속의 술이 넘쳐흘렀다.
그의 경공은 놀라왔다.
육지에서 배까지의 거리는 적게 잡아도 사오장(丈)의 거리였다.
매화공자(梅花公子), 신안서생(神眼書生) 등의 경공도 모두 강호
의 일류에 속했지만 한 번에 넉장(丈) 이상을 날아다닐 수는 없었
다.
사람들은 그가 뛰어오를 때 배가 흔들리자 엄청난 거한(巨韓)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그를 보고는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사람은 몸이 결코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곱 자(尺) 정도
였으며 가슴둘레도 다섯 자(尺)를 넘지 못 했다.
다부진 체격에 암석 같이 단단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었다.
그는 머리가 유난히도 컸다.
머리를 잘라 무게를 단다면 최소한 사오십 근은 될 것 같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수염까지 기르고 있어서 어디까지가 수염이고
어디까지가 머리카락인지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더우기 코와 입은 찾을 수도 없었다.
이 사람의 얼굴은 마치 무엇인가에 짓눌려버린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배에 뛰어오르자 헌원삼광, 이대취 등과 손을 잡고
어깨를 치며 떠들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나이를 합하면 이백 살이나 됐지만 모두 순진하게 보
이기만 했다.
진봉초는 쓴웃음을 띠웠다. 그를 마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
시 갈피를 잡지 못 하는 눈치였다.
그 사람은 이대취의 어깨를 치며 소리쳤다.
"너희들 개자식들아, 딸에게 어떤 남편을 찾아 주었지? 만약 마
음에 들지 않는다면 너희들을 죽여 버리겠다."
그가 큰소리를 치고 있을 때 도교교가 가만히 앞에 와서 웃음을
보였다.
"우리가 찾아준 사위에게 만족할 거야!"
한편 철심난은 그 괴인을 보자 눈물을 참지 못 하여 달려왔다.
"아버지!"
그녀는 다만 아버지라는 소리만 불렀을 뿐 더 이상 말을 이어가
지 못 했다.
화무결은 그제서야 광사 철전(狂獅鐵戰)이 온 것임을 알았다.
철전은 자기 딸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웃음을 보였다.
"딸아 울지마라. 아버지가 죽지 않았으니 기뻐해야지, 울긴."
그는 말을 끝맺지도 않고 화무결의 앞으로 껑충 다가섰다.
그는 화무결의 위 아래를 자세히 몇 번씩이나 훑어 보았다.
화무결은 그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철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사람 같이 생기긴 했는데 다만...... 어찌 이리 비실거리지?
너희들이 환자를 찾은 것은 아니냐?"
귀동자가 웃으면서 나섰다.
"그건 병이 아닌 것 같은데, 다만 하나의 만두만 있으면 치료할
수가 있을 걸."
철전은 놀라면서 말했다.
"그가 굶어서 이렇게 비실거린다는 말이오?"
"그렇지."
철전은 펄펄 날뛰면서 소리쳤다.
"누가 나의 사위를 이 꼴로 만들었지?"
"너희 저 친구들 외에 또 누가 있겠나?"
철전은 돌연 양손을 벌려 합합아와 도교교의 목덜미를 움켜쥐었
다.
그의 무술은 결코 십대악인 중의 최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싸울 때 목숨을 걸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 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아귀에 잡힌 도교교와 합합아는 반항을 할 수 없
었을 뿐 아니라 몸을 꼼짝할 수도 없었다.
이대취 등 사람들은 모두 놀라 버렸다.
그의 무술이 이토록 진보되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
했던 것이다.
눈길을 돌려보니 미심팔, 유자아 등 사람들이 모두 흐뭇한 표정
을 짓고 있었다. 물어 보지 않아도 그가 그 괴물들에게 무술을 배
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합합아는 목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호흡을 거칠게 내
쉬었다.
"늙...... 늙은 친구, 할 말이 있으면 해봐. 왜 손을 쓰지?"
철전이 노하며 말했다.
"무슨 할 말이 있어? 너는 고기를 먹고 우리 사위를 이꼴로 만
들었단 말이야?"
도교교가 급히 말했다.
"모르는 말이야. 그를 굶기지 않았으면 벌써 달아났을 거야."
"달아났다고? 왜 그가 달아나야 하지?"
"직접 그에게 물어보지 그래?"
철전은 손을 놓고 이번에는 화무결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묻겠는데, 왜 달아나려 했지? 우리 딸이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냐?"
철심난은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아버지 놓으세요. 그와 상관없는 일이에요."
철전은 더욱 노했다.
"그는 너의 남편이야. 그와 상관이 없다면 누구와 상관이 있단
말이야?"
철심난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이것은...... 말을 하면 길어져요. 아버지......."
어찌 마음 속의 복잡한 일들을 이렇게 많은 사람앞에서 말할 수
있으랴!
철전이 말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좋아, 어쨌든 한 가지만 말해라. 너는
이 자식에게 시집을 가겠느냐?"
철심난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 난......."
"네가 어찌 이 모양이 되어버렸지? 이게 무슨 곤란한 문제라고
그러느냐.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야. 네가 고개를 끄덕이면
이 자식은 너의 것이 되고 네가 고개를 저으면 난 즉각 이 자식을
쫓아 버리겠다."
철심난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저을 수도 없었다.
화무결의 정을 생각한다면 그녀가 어찌 고개를 저을 수 있겠는
가?
그녀가 고개를 저으면 영원히 화무결을 다시는 보지 못 하게 된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밉쌀스럽고도 사랑스러운 소어아를 생각하자.......
그녀가 어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는가!
이때의 그녀의 심정은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사랑을 느껴보지 못 한 광사 철전은 더 말할 나
위가 없었다.
철전은 답답한지 발을 구르며 말했다.
"말은 하지 못 한다 해도 고개도 움직이지 못 하겠느냐?"
철심난은 여전히 가만히 서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며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궁금해 했다.
그중에 다만 화무결만이 어느 정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는 가슴이 고통스러웠다.
그는 철심난이 고개를 젓지 않은 것이 자기를 상심케 하지 않기
위함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철심난이 고개를 끄덕인다 해서 자기가 상심하지 않게
되겠는가!
그는 암담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
그러나 그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철전이 소리쳤다.
"닥쳐, 누가 너더러 말하라고 했느냐? 다만 우리 딸이 좋다면
너는 그녀를 얻어야하고 그녀가 싫다면 넌 꺼져야 돼."
천하에 이런 사람은 보기가 드물었다.
그러나 만약 광사 철전이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면 십대악인
에 속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때 퉁소를 부는 소 노파가 웃으며 말했다.
"여자들이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젓지도 않는 것은 좋아한다
는 뜻이지."
그녀는 백발인데다가 얼굴에 주름살 투성이었으며 이빨까지 다
빠지고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서는 젊은 날을 상기하는 듯한 기묘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철전은 자기의 머리를 때리면서 말했다.
"그렇지, 과연 소 누님이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군요......."
소어아를 찾아서
이때 철심난이 입을 열었다.
"나...... 난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럼 너는 그에게 시집을 가고 싶지 않다는 거냐?"
철심난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그...... 그렇지도 않아요......."
철전은 자기의 수염을 매만지며 도교교 등을 둘러보았다.
"너희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말해봐라!"
철심난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철전도 애가 탓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다.
"너희들 어느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모른단 말이냐?"
이때 헌원삼광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지!"
"누구냐?"
"도교교!"
철전은 도교교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너는 알고 있다면서 왜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
도교교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당신 딸의 심정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지?
이건 모두 악도귀의 수작이야."
철전이 무서운 소리로 말했다.
"개소리, 악도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내가 '셋'을 헤아릴 때
까지 말을 하지 않는다면 너를 죽여 버리겠다."
그의 입에서 '하나'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도교교는 이미 쓴
웃음을 띠우면서 대답했다.
"좋아, 내가 말해주지. 그러나 내가 말을 한다해도 너에겐 방법
이 없어."
그녀는 광사 철전이 한 번 말을 하면 꼭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를 죽이겠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들 못 하겠는가!
철전이 말했다.
"말하기만 한다면 난 필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게다."
귀동자가 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방법을 찾지 못 한다해도 우리가 찾아내겠다."
이윽고 도교교가 입을 열었다.
"너의 딸은 화 공자에게 시집을 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있어. 그녀는 화 공자에게
시집을 가고도 싶으며 그 사람에게 시집을 가고도 싶은 것이다."
이때 소 노파가 철전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 두 사람 중 누가 더 강하지?"
도교교는 웃으면서 말했다.
"두 사람이 똑 같죠. 각자의 장점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녀도
어쩔 줄 모르는 거예요."
철심난은 부끄럽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해서 오직 죽고 싶은
마음만 자꾸 떠올랐다.
게다가 지금은 소어아가 살아있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녀는 다만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머금었다.
소 노파가 탄식을 했다.
"아무리 강한 여인이라도 이런 일을 당하면 어쩔 수가 없지. 그
래서 철 아가씨가 저토록 고통스러워 하는군. 만약에 나라
도......."
그러나 백개심이 웃으면서 그녀의 말을 중단시켰다.
"당신들은 방법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방법이 있소."
소 노인이 말했다.
"어?"
"그녀가 만약 두 사람을 좋아한다면 동시에 두 사람에게 시집을
가라고 하시오. 양쪽에서 기분을 내면 더 좋은 일이 아니겠소?"
개 입에서는 개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광사 철전이 필시 그를 혼내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철전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좋은 생각이야. 과연 좋은 생각이야......."
소 노파가 놀라면서 말했다.
"그것이 좋은 생각이란 말이야?"
"물론 좋은 생각이지요. 남자는 마누라를 두 명씩 얻을 수 있는
데 여자는 왜 두 남편을 얻지 못 하지요?"
"그러나...... 그러나 그건 틀리지."
철전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무엇이 틀리지요? 여자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당신도 여자
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소 노파는 탄식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난 여자지만 넌 미친 놈이야!"
철전은 크게 웃었다.
"딸을 위해서라면 미쳐도 괜찮아요."
그는 계속 크게 웃으며 딸의 손을 잡았다.
"또 한 사람이 누구냐? 말을 해도 괜찮다."
철심난은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자기가 일찍 죽지 못 한 것이 한이 되었다.
곁에서는 모용자매들까지도 이 딱한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받는
그녀를 동정하고 있었다.
헌원삼광이 돌연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일을 어찌 그녀 자신이 말할 수가 있겠어?"
"그럼 넌 아느냐?"
"말해 주지. 그 자식은 성은 강(江)이고 이름은 소어아(小魚兒)
야."
'소어아'라는 세 글자가 나오자 모용자매는 일제히 놀라움을 감
추지 못 했다.
소선녀는 더욱 안색이 붉어졌다.
도교교가 몰래 이맛살을 찌푸렸다.
다만 화무결만이 눈앞이 밝아졌다.
그는 헌원삼광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이다.
"소어아, 소어아, 소어아!......."
철전은 그 이름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 하다가 중얼거렸다.
"그 자식은 이름도 괴상하군."
백개심이 나섰다.
"그 자식은 워낙 이상한 놈이라 누구든지 그를 만나면 삼 년 동
안이나 재수가 없지."
철전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 이 자식아, 말조심해라. 우리 딸만 좋다면 상관 없다."
헌원삼광이 탄식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지금 그 자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
라!"
"그건 상관이 없어. 그런 사람만 있다면 찾을 수가 있으니까."
그는 귀동자에게 말했다.
"난 찾지 못 한다해도 당신은 찾을 수 있지 않겠소?"
헌원삼광이 말했다.
"못 찾을 걸!"
철전이 말했다.
"너는 우리 형님의 재주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거
야."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인지 모르지만 그러나 소어아는
어려워, 어렵지!"
철전은 다시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왜?"
헌원삼광은 도교교 일행을 바라본 후 말했다.
"소어아를 그들이 감추었기 때문이지."
철전은 도교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왜 그를 감추었지? 네가 반하기라도 했단 말이냐?"
그는 도교교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도교교는 급히 웃는 얼굴을 하면서 말했다.
"이 도박꾼은 백개심과 같은 병에 결렸으니 그의 말을 듣지 말
아라."
헌원삼광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를 감추지는 않았어도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알겠지?"
도교교는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꼭 그를 찾겠다면 내가 데리고 가지. 그러나 지금은
너무 늦었어!"
철전은 그녀가 나중에 한 말은 듣지도 않고 소리쳤다.
"갈 테면 지금 가자, 빠를수록 좋으니까."
이때 돌연 진봉초가 일어서며 말했다.
"그렇죠! 잔치술은 나중에 마셔도 무방하오."
철전이 말했다.
"너희들도 같이 가고 싶으냐?"
진봉초가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우리들은 오래 전부터 '소어아'의 이름을 들어왔고, 벌써부터
그를 만나고 싶었소. 철전은 손뼉을 치면서 기뻐했다.
"그렇다면 나의 둘째 사위는 인복이 좋군!"
이때 소선녀가 중얼거렸다.
"그는 인복이 확실히 좋아요. 내가 알기로 적어도 팔백 명의 사
람이 그를 삼키고 싶어하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
도 그녀의 말을 듣지는 못 했다.
다만 고인옥만이 옆에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이 다 나가버린 후 고인옥이 가볍게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이젠 갑시다."
"넌 저들을 따라가지 않을테냐?"
고인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 난 집에 가는 게 좋겠소."
소선녀는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싸늘하게 말했다.
"너와 구(九) 계집에의 혼사를 망쳐놨다고 그를 미워하는 것이
냐?"
고인옥은 암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구매(九妹)는 나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으니 내가 어찌 그런 마
음을 가지겠소."
"그럼 무슨 뜻이냐?"
고인옥은 고개를 더욱 숙였다.
"난 다만...... 다만 당신...... 당신이......."
그는 얼굴에서 목까지 완전히 붉어졌다.
소선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 병신아! 내가 그이를 좋아하는 줄 알고 있느냐?"
고인옥은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셋째 누나에게 들었는데 여인은 남자를 좋아해야 미워한다고
하더군요. 당신은 그토록 그를 미워하니 혹시...... 혹시......."
소선녀는 돌연 부드러운 손으로 그의 입을 막은 후 역시 부드러
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바보야. 넌 내 마음을 모른단 말이냐?"
고인옥은 놀라서 넋을 잃고 말았다.
소선녀가 다시 말했다.
"내가 지금 너에게 시집을 가면 안심을 하겠지?"
그녀는 돌연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했다.
"맞았어. 지금 식을 올리면 음악도 필요없고 중매장이도 필요없
지. 그들이 돌아와서 이 소식을 들으면 표정이 재미있을 거야."
돌연 '풀석' 하는 소리가 나더니 고인옥이 의자와 함께 땅에 쓰
러지고 말았다.
소선녀는 놀라면서 말했다.
"너...... 너 왜 그래?"
그녀가 그를 부축하려고 할 때 고인옥이 땅에서 일어서며 소리
쳤다.
"난 너무 기뻐. 너무 기뻐...... 천하에 나보다 더 기쁜 사람이
있을까?"
소 선녀는 다시 놀랐다.
"고 소매가 미친 사람이 될줄은 몰랐는데!"
고인옥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난 지금에야 소어아가 천하에서 제일 가는 좋은 사람임을 알았
어."
소선녀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다니 정말 미쳤느냐?"
고인옥이 말했다.
"생각을 해봐요. 그가 아니었다면 구매와 우리 두쌍의 부부가
생길 수 있었겠소?"
소선녀는 얼굴을 붉혔다.
"나는 무서운 마누라가 되어 매일 너를 때리고 욕하고 심지어는
밥도 안 줄지 모르는데."
고인옥이 용기를 내어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당신과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밥을 먹지 않아도 괜찮소. 광동
(廣東) 사람들은 '정이 있으면 물만 먹어도 배가 부른다'라고 했
지만, 난 물을 마시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얌전한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군!"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으로 가득찬 눈빛들이었다.
소선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인옥의 품속에 안겼다.
이때 선창 밖에서는 두 명의 하녀 계집애들이 안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었다.
빨간 옷을 입은 계집애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소어아가 누구지?"
다른 하나의 둥근 얼굴의 소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너도 그 사람을 찾아서 중매를 해달라고 하고 싶으냐? 너의 춘
심(春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난 벌써부터 알고 있었어."
그 빨간 옷의 계집애가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테야? 너는 소어아를 보고 싶지도 않으냐?"
둥근 얼굴의 소녀가 말했다.
"난 보기 싫어. 전에 마나님의 말을 듣자니 그 사람은 까불고,
못됐고, 사람을 해치는 나쁜 놈이라던데."
빨간 옷의 소녀가 말했다.
"비록 말은 그렇게 하지만 너도 마음 속으로는 보고 싶지? 그가
정말 나쁜 사람이라면 고 도련님이 어찌 좋은 사람이라고 하겠
어?"
둥근 얼굴의 소녀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하긴 최근에 마나님의 말을 들으니 말투가 변했어. 그를 나쁘
다고는 하지 않는 것 같아......."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하여튼 그는 재미있는 사람일 거
야. 난 정말 소홍(小紅), 소취(小翠) 그 계집애들이 부러워. 마나
님을 따라갔으니 얼마 있으면 그를 보게 될 거야."
두 계집애는 어두운 밤하늘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별빛이 아름다왔다.
마치 쾌활하고 멋있는 소년들이 그녀들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소어아는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었다.
헌원삼광은 앞에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흡족한 웃음을 지었
다.
이대취는 그를 한 번 바라본 후 걸음을 늦추면서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제보니 너는 소어아의 친구였구나!"
"그렇다면 너희 같은 되먹지 못 한 놈들과 친구를 하란 말이
냐?"
"너는 우리가 그가 산에 갇혀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구하
려 하지 않자 모용가로 가게 한 것이구나?"
"네 말이 맞아. 모용자매에게 구원을 요청하려 너희들을 그곳으
로 유인했지. 일이 잘 돼서 다행이야."
"네가 그런 마음을 쓸 줄은 몰랐는걸. 우리가 모두 당했잖아?"
"너희들 같은 자식들은 사람이 아니야. 소어아가 너희들 틈에서
자라났는데도 그가 죽기를 바라다니!"
이대취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사실 말이지만 나도 그를 구해주고 싶었어. 그러나...... 연남
천이 여기에 왔다는 소식을 듣자 그 생각이 없어진 거야."
헌원삼광이 말했다.
"소어아가 연남천을 도와 너희들을 해칠까봐?"
"그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원망할 수는 없지. 강풍 부처가 우리
손에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연남천은...... 아!"
헌원삼광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소어아를 잘못 봤어. 그는 절대로 의리가 없는
사람이 아니야. 그가 만약 살아있다면 연남천에게 너희들의 목숨
을 위해 사정을 해줄 거야. 만약 그가 죽었다면 너희들은 끝장이
지."
이대취는 한참 동안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다가 탄식을 했다.
"그가 살아있기를 빌어야겠군."
"그렇다면 그가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단 말이냐?"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도 알 수가 없어. 그는 산에 칠팔일
동안이나 갇혀 있었어, 물도 음식도 없는데......."
헌원삼광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칠팔일 동안 물을 먹지 못 했다면 어찌 견디겠어?"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죽었을 거야. 그러나 그는...... 그는
어쩌면 방법이 있을 거야. 그는 재주가 좋으니까."
그는 헌원삼광이 화를 낼까봐 급히 말을 이었다.
"그 귀동자 그놈도 재주가 좋던데. 그놈이 어찌 우리의 행동을
알고 그 철씨 미친 놈을 데리고 왔을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한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그걸 알 수 있다면 네가 귀동자라고 할 수 있지."
말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귀동자가 이미 그들 앞에 서있었다.
이대취는 미안했는지 급히 웃으면서 말했다.
"선배께서는 과연 무영(無影)이시군요. 정말 탄복했소."
"네가 궁금하다면 이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해 주지. 강
호의 사람들은 모두 철전이 하나의 보물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사실 그는 보물에 대해서는 조금도 흥미가
없었지. 그의 최대의 흥미는 무명도(無名島)에 있었던 거야."
이대취가 말했다.
"무명도? 그게 어디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 했는데?"
"너도 들었다면 그건 무명도가 아니라 유명도가 되겠지."
"무명의 섬이라면 철전이 어떻게 알았지요."
"그는 식량을 구하러 나간 무명도의 인물 하나와 시비가 붙었
지. 만신창이로 얻어맞고도 배 뒤에 붙어서 끝까지 따라왔어."
그는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철전은 무명도의 고수들을 보자 마음이 혹 했지. 되돌아가 딸
에게 보물지도를 줘버리고는 본격적으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무
명도로 다시 돌아왔어."
"무명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죠?"
"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강호를 떠난 고수들이야. 그들은 섬
에 온 후 그들의 이름조차도 사용하지 않았지."
"선배께서도 무명심의 영웅이시군요?"
"무슨 영웅이야. 나도 비록 이름을 버렸지만 사람들은 내 모습
을 보면 즉각 나를 알아보지."
"철전은 정말 운이 좋은데!"
"그는 섬에서 삼사 년 동안 정말로 많은 무술을 배웠지. 그러나
만약에 너였다면 우리는 벌써 바다로 던져버렸을 거야."
이대취는 억지 웃음을 보였다.
"난 비록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철전도 나보다 낫다고 할 수가
없소. 그런데 왜 그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이오?"
귀동자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물어보겠는데 너도 싸울 때 그처럼 목숨을 걸 수 있느냐?"
"그건...... 그건 좀 안 되지만......."
"우리는 그의 강렬한 투지가 마음에 들어 그에게 무술을 가르쳐
준 것이야."
이대취는 생각했다.
(너희들 미친 놈이 미친 놈을 만났으니 잘 됐구나!)
소어아를 걱정하고 있던 헌원삼광도 그들의 얘기에 끼어들었다.
"선배들은 은거생활을 하셨는데 어찌 다시 강호에 나타나셨소?"
"철전이 우리에게 삼 년 동안 무술을 배운 뒤 돌연 더 이상 배
우지를 않겠다는 거야. 우리는 그 이유를 물어봤지. 그는 우리 모
두의 무술을 합해도 연남천과 이화궁주의 상대가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배워도 소용이 없으니 안 배우겠다는 것이었어."
이대취의 눈이 밝아졌다.
"그렇다면 선배께서 이번에 온 것은 연남천이나 이화궁주와 겨
루어 보겠다는 뜻이오?"
귀동자는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그건 인노심불로(人老心不老)라 하는 거야."
이대취는 매우 기뻤으나 일부러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내가 보기엔 선배들이 돌아가시는 게 좋겠소."
"왜?"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연남천의 무술은 독보고금(獨步古今),
공전절후(空前絶後)이니 선배들은......."
귀동자는 그의 생각대로 펄쩍 날뛰면서 소리쳤다.
"난 꼭 그와 겨루고 말겠다."
이대취는 자기의 목적이 달성되자 다시 물었다.
"그런데 선배께서는 어찌 철심난의 혼사를 알았소?"
귀동자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우리는 강을 따라 가다가 무창에 들렀었지. 그런데 그 늙은이
들이 무창(武昌) 성내의 한 아가씨에게 반해서 그녀의 비파 솜씨
가 최고라고 떠들며 가지를 않는 거야. 내가 화를 내도 소용이 없
었어. 혼자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그 백산군을 구하게 된 거
야."
"그 사람도 운이 좋은데요."
"그때 그는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산의 절간에 데
려다 놓고 상처를 치료했지. 그런데 너희들이 나타난 거야."
"이제보니 선배께서도 그 절간에 계셨군요. 우리가 왜 선배를
보지 못 했을까요?"
"방금 내가 너희 뒤에 있을 때 너희가 그것을 알 수 있었느냐?"
"선배께서는 몰래 우리의 계획을 엿듣고 그들을 데리고 왔군
요?"
귀동자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알았느냐?"
이때 돌연 철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어아가 여기 있다니 그가 손오공처럼 부처님에 의해 산에 갇
혔단 말이냐?"
헌원삼광은 그 소리를 듣고 즉시 달려갔다.
철전은 도교교를 번쩍 들고 소리쳤다.
"네가 그를 산에 넣었으니 네가 나오게 해라!"
도교교는 쓴 웃음을 띠우면서 말했다.
"내가 어찌 그런 재주가 있겠어!"
"그럼 누구냐?"
헌원삼광이 뛰어오며 말했다.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냐. 소어아는 이미 일주일이나 갇혀
있었어!"
"일주일? 이 화씨는 이삼일을 굶겨도 저 모양인데 일주일이
면......."
철전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실종(失踵)
악도귀 헌원삼광은 철전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일하는 사람이 많이 있으니 더 이상 시간을 지체
하지 않도록 하세."
이대취가 뒤따라 소리쳤다.
"산을 뚫는데 협조하여 소어아를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빨리 손
을 쓰도록 하시오."
이부와 철추 등의 도구들을 찾아와 산을 파기 시작했다.
도교교는 사나운 눈초리로 그를 힐끗 바라보더니 속으로 중얼거
렸다.
(너는 지금에 와서야 설치는구나. 하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다.)
도교교가 바라보니 사람들은 모두들 서로 다투듯이 도끼와 철퇴
등을 집어들어 땅을 파고 바위돌을 깨고 있었다. 심지어는 곱게
자라 빨래 한 번 해보지 못 한 소녀들까지도 품에 지니고 있던 비
수나 단검을 빼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땅을 파고 바위를 깨는 소리가 온 산을 뒤덮었다.
도교교는 한숨을 내쉬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들 모두가 소어아가 죽기를 바라는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모두들 그가 살기를 바라고 있었군! 소어아야, 소어아야. 이러한
것을 보니 너는 죽었다고 해도 가치있는 죽음을 한 셈이로구나!"
백개심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구 말구. 만약 내가 이 산복(山腹)에 갖혀 있다면 들개 한
마리도 나를 구하러 오지는 않을 것이야."
이대취가 웃었다.
"네가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전혀 뜻밖인
걸. 하하하!"
백개심이 냉소를 터뜨렸다.
"너는 다를줄 아느냐?"
그는 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람 모두가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인다 해
도 반 나절은 걸려야 산복을 뚫고 들어갈 수가 있어. 들어가봐야
소어아는 굴비 같이 말라 있을 것 같군!"
화무결과 철심난은 뜨거운 눈물을 뚝 뚝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흥분해 있는 것 같았고, 한가닥의 실오라기 같이 엷은 희
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듯했다.
이때 백 부인이 총총히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꾸러미를 들고 그들 앞에 섰다.
"이 꾸러미 속에는 닭튀김과 떡 등 얼마간의 먹을 것이 들어 있
소. 빨리들 나눠 먹도록 하시오. 배가 불러야 힘이 날 것이고, 힘
이 나야 소어아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이 아니오?"
철심난은 목메인 소리로 울먹였다.
"당신...... 당신도 그를 구하려고 생각하시나요?"
백 부인은 두 손을 마주잡고 계면쩍다는 듯 웃음을 띠웠다.
"비록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자세히 알지 못 하지만 그렇지만
생각컨데...... 그가 살아나면 모두들 아주 즐거워 할 것 같이 생
각되군군."
만약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무예계에서는 아무도 이러한 일이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강호에서 가장 명성이 있는 몇몇 세가(世家)의 공자(公子)들과,
사나운 악명을 떨치고 있는 십대악인들이 일제히 모두 소매를 걷
어부친 채 바위를 깨고 흙을 나르고 있었으며 심지어 향수병이 마
루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고 집어들 생각
조차 하지 않던 모용가의 자매들까지도 그 섬섬옥수로 흙을 파내
고 있었다.
이것은 모두 악인곡(惡人谷)에서 자라난 이십여 세의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일을 누가 보지 않고 믿을 수 있단 말
인가?
돌연 쇄석(碎石)이 마치 우박과 같이 떨어졌다.
그들은 과연 기적을 창조해낸 것이다.
반 나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십여 개의 견고한 석갑을 부
수고 산복을 뚫고 들어간 것이다.
화무결과 헌원삼광은 앞장서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은 몹시 흥분되어 있었지만 속으로는 걱정과 두려움을 금치
못 했다.
그것은 그들이 발견하게 될 것이 소어아의 시체가 될까봐 두려
워서였다. 화무결은 소어아를 외쳐 불러보고 싶었으나 입 안에서
만 맴돌 뿐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대청에까지 다달았다.
이미 두 쪽으로 쪼개져있는 돌의자 위에는 한 개의 술병이 놓여
있었고, 바닥에는 찢어진 옷자락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화무결은 단번에 그것이 소어아와 이화궁주가 입고있던 옷 조각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추어 서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 했다.
헌원삼광이 놀라며 물었다.
"이것이...... 이것은 그들의 옷자락인가?"
화무결은 망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신음하듯 내뱉았다.
"그렇소."
헌원삼광도 곧 침울해져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무슨 변고를 만났기에 옷까지 갈기갈기 찢어졌단 말인가?"
그들은 잔혹한 현실을 접하게 될까봐 용기를 잃고 한 걸음도 앞
으로 나가지를 못 했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일에 부딪치게 되었기에 입고 있던 의복마
저 갈기갈기 찢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또 누가 그들의 옷을 찢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그들의 뇌리에
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모용산이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병에 들어있는 것은 술이 아닙니까?"
헌원삼광은 병을 집어들더니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렇군."
모용산은 눈빛을 반짝이며 기쁜 듯이 말했다.
"병 안에 있는 것이 술이라면 희망이 있어요."
헌원삼광이 물었다.
"무엇...... 무엇 때문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지?"
"술도 허기를 메꿀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술을 마셨다면
며칠 간을 더 지탱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헌원삼광은 껑충껑충 뛰며 미칠 듯이 기뻐했다.
"소어아, 소어아, 어디 있느냐? 너의 좋은 친구들이 모두 너를
구하려고 이곳에 와 있단다!"
그러나 동굴 안에서는 오직 헌원삼광의 목소리만 메아리쳐 되돌
아올 뿐 대답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곧 위무아의 시체를 발견했고 무수한 빈 술병도 발견했
으며, 악취가 풍기는 변소까지도 발견했다.
하지만 이리저리 다 찾아 보았으나 살아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
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대체 소어아는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죽었다 해도 시체라도 남
아 있어야 될 것이 아닌가?
이궁리 저궁리를 해보아도 결론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오
직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서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있던 헌원삼광이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 어느 곳에도 소어아를 가둬 둘만한 곳은 절대로 없어. 우
리들은 공연한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는 벌써 가버렸단 말
일세!"
이대취가 말했다.
"그건 아닐 거야."
헌원삼광은 노하여 외쳤다.
"너 이 병신 같은 놈아! 너는 그가 갇혀 죽었기를 바라는구나
그렇지?"
이대취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가 빠져나갔기를 바라고 있어. 그렇지만 이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사면팔방이 모두 막혀있고 출로(出路)는 하나도 없더
군!"
헌원삼광은 그의 말을 이어 받듯이 성급한 어조로 대꾸했다.
"나도 이곳에 출구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빠져 나갔을 것이다."
이대취가 그 말을 받았다.
"그리고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을 것 같은가? 벽을 부수고 나갔
다면 다소간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나? 손오공
처럼 일흔 두 가지로 둔갑할 수 있는 재주가 있어 공기 구멍으로
조그만 파리가 되어 빠져나가지 않은 다음에야......."
기실 헌원삼광도 그의 말이 타당한 것이라는 것을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면의 산벽(壁璧)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완전했기 때문에 소어
아가 아무리 총명하고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다는 것을 자신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약 그가 빠져나가지 못 했다면 응당 이곳에 있어야
되는 것이기에 희망을 버리지 못 하고 있는 셈이었다.
헌원삼광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참기 어려운 듯
입을 열었다.
"너 이 병신 같은 놈아! 그들이 빠져나가지 못 했다면 어디로
갔다는 말이냐? 우리들은 그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찾아내지 못 했
지 않느냐?"
이대취가 침울한 안색을 하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돌연 백
개심이 큰소리로 외쳤다.
"화골단(花骨丹)!"
화골단이라는 세 자가 그의 입에서 나오자 헌원삼광과 화무결은
척추에 서리를 맞은 것 같은 써늘한 한기(寒氣)를 느꼈다. 철심난
은 까무러치도록 놀랐다.
이대취는 눈을 부릅뜨고 백개심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의 생각은 위무아가 그들을 살해하고 난 다음 화골단을 써서
그들의 시체를 없애버린 것이란 말이지?"
백개심이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 그 말은 자네가 한 것이지?"
철심난은 낮게 신음을 하더니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그들이 빠져나갈 수는 절대로 없고 그렇다고 이곳에 남아 있지
도 않으니 자연히 그들의 시체가 소멸되었다는 것이 가장 합리적
인 해석이었다.
철전은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그가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 보기 위해 온 것인데...... 무엇
때문에 딸년이 그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지? 그 녀석을 보기는
커녕 뼈다귀 하나 남아있지 않을줄 누가 알았담!"
그는 철심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계속 중얼거렸다.
"그놈은 아마도 너를 얻을만한 복은 없는 놈인 모양이니 상심해
할 것 없다. 너에게 알맞는 착실한 명문가(名門家)의 공자(公子)
를 곧 찾아줄 터이니......."
그는 그러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철심난은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울음소리조차 제
대로 내지 못한 채 까무라쳐 버리고 말았다. 이때 귀동자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위무아에 의해 이곳에 갇힌 것 같은데."
이대취가 탄식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아마 그런 것 같군요."
"그렇다면 왜 위무아가 지하의 석실에 죽어있을까?"
도교교가 말했다.
"글쎄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
숨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죽였다면 무엇 때문에 자기 자신이 독약을
먹고 자살을 했겠어?"
도교교는 얼떨떨해하며 말했다.
"그것은......."
귀동자는 웃으며 느릿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위무아는 아무도 감히 그를 죽일 수 없다는 상황이었으니 이
안에 그들을 가두어 두고 죽어가는 것을 즐기려 한 것 같은데."
이대취가 끼어들었다.
"그렇지요. 그 만이 이곳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
지요. 소어아 등은 그를 죽이기는 커녕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잡아 출구를 알아내려 했을 것이오."
귀동자가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는 아마도 다른 사람이 찾아낼 수 없는 은밀한 장소에 숨어
있었겠지. 소어아 등은 이리저리 궁리를 하여 그를 찾아냈겠지.
그러나 그는 자기 혼자만 죽어 없어진다면 아무도 이곳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독을 먹고 죽었을 거야."
그의 추측은 사실과 그리 차이가 없었다. 헌원삼광, 화무결, 이
대취 등은 모두들 소어아에 대한 걱정에 냉정함을 찾기가 어려웠
다. 그러나 귀동자 등은 원래 소어아를 자세히 알지 못 하는 사람
들이었기에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헌원삼광은 기쁜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위무아는 반드시 소어아 그들보다 먼저 죽었
겠군요?"
귀동자는 또 희죽희죽 웃었다.
"위무아는 자신이 잡힌 이상 자살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겠지. 그렇지 않았을까요?"
백개심이 돌연 냉소를 터뜨리며 끼어들었다.
"독약을 쓰는 방법도 안 된단 말인가?"
헌원삼광은 그 말을 듣자 웃음이 싹 걷혔고 안색이 굳어졌다.
백개심이 이어 계속 말했다.
"갈증이 아주 극도에 달하게 되면 술 속에 분명히 독이 들어있
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시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법이야. 그렇지 않
다고 말할 수 있겠나?"
도교교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지!"
백개심은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쏘아보았다.
"네가 무얼 안다고 그러느냐?"
도교교는 그의 말에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느릿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술 속에는 절대로 독이 없어. 모든 술병을 내가 냄새 맡아 보았
어."
헌원삼광은 파안대소했다.
"너와 알고 지낸 지 몇십 년이 되었지만, 오늘에야 처음으로 사
람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는군!"
백개심은 연신 눈을 깜박였다.
"그렇다면 소어아 그들은 절대로 이곳에서 죽지 않았다는 것이
되는군!"
헌원삼광과 귀동자 그리고 이대취 등 세 사람 모두가 이구동성
으로 황급히 말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지!"
"그가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고 이곳에서
죽지도 않았다면 그럼 도대체 그들이 어디로 갔다는 말이지?"
백개심이 이렇게 묻자 모두들 멍해져서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서
있었다.
이 사건은 정말 추측도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천하에 그 누가 소어아가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 알고
있단 말인가?
아무도 그가 지금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죽어서 형체도 없이
소멸되었는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유자아, 미심팔, 소노파 등은 일찌기 세상을 등지고 속세를 떠
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모두들 미간을 찌푸리고 깊
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것은 이 사건이 너무나도 신비로워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헌원삼광이 제일 초조해했고, 철심난은 가장 비통해 했으며, 백
개심은 쉬지 않고 냉소를 터뜨렸다. 두살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지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돌연 화무결이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분께서는 모두 신발 밑을 축축하게 젖게하는 습기를 느끼
시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모두들 마음 속으로 깊은 궁리를 하고 있었으므로 자
기의 신발 밑이 축축하건 바싹 말라 있건 간에 개의치 않고 있었
다. 그러나 화무결의 흥분된 표정은 아주 중요한 생각을 해낸 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왜 그렇게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는지, 그
러한 것이 이번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헌원삼광은 그의 말대로 살펴보더니 신고있는 초화(草
靴)가 완전히 젖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
"그렇군, 신발이 젖어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백개심이 비아냥거리듯 웃었다.
"신발 한 켤레를 친구의 생사보다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
람이 있을 줄은 정말로 몰랐는데!"
화무결은 그의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만면에 흥분한
기색을 띠었다.
"이곳에는 물이 없는데 어떻게 신발이 축축하게 되었을까요? 위
무아는 그들을 허기지고 목마르게 하여 죽이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곳에 물이 있을까요?"
그의 말을 듣고나자 모두들 과연 그 점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
다.
헌원삼광이 물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러한 것과 소어아의 행방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지?"
"관계가 있고 말고요. 만약 저의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소어
아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헌원삼광이 말했다.
"정말 이상한 걸! 이 동굴에 물이 흐르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
는데."
그러나 아무도 흐르고 있는 물이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인지는
알지 못 했다.
화무결은 몸을 구부리고 한동안 수세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또다
시 위무아의 그 밀실(密室)을 향해 들어갔다.
이 밀실 안에서는 참을 수 없는 악취가 풍겨 나왔다. 아까는 아
무도 그 안에 오래 머물러 있으려고 하지 않고 재빨리 나와 버렸
지만 지금은 모두들 소어아의 행방에 대한 비밀이 이 밀실과 아주
관계가 깊다고 생각하고는 냄새쯤은 아랑곳 할 것 없다는 듯 모두
들 뒤따라 들어 갔다.
돌연 화무결이 외쳤다.
"과연 틀림 없군. 바로 이곳 입니다!"
그는 소어아 등이 변소로 사용했던 것 같은 석관(石棺) 앞에서
만면에 희색을 띠우고 섰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살아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를 않았다. 백개심이 실소를 하며 말했
다.
"소어아가 이곳에 있다고? 그렇다면 그가 똥오줌에 파묻혀 죽기
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두살이 노했다.
"왜 그리 말이 많으냐! 썩 꺼지지 못 하겠어!"
두살은 몸을 날려 그의 뺨을 올려붙였다. 백개심은 사람들의 머
리 위를 날아 '퍽' 하고 석실 밖으로 떨어졌다.
백 부인은 그것을 보고도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있었
으나 얼마가 지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황급히 달려 가더
니 그를 발길로 걷어찼다.
"그렇게 말조심을 하라고 해도 듣지 않고 멋대로 지껄이더니 참
꼴 좋군!"
백개심은 신음을 하며 중얼거렸다.
"네가 왜 쓸데없이 참견하려 드느냐?"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렇다면 누구와 상관있는 일이지?
이 나이에 남편을 갖는다는 것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야. 너는
나를 과부로 만들려는 것은 아니겠지?"
"어이쿠! 정말 흉악한 여자로구만. 어쩌구 어쨌다구? 늙어빠진
할망구가 나 같은 남편을......."
그는 말을 미처 끝맺지도 못 하고 또다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
다.
백 부인이 그의 귀를 움켜잡고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소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흐르고 있는 물이 석관 옆의 바닥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깨어진 석상 조각들과 관을 치웠다. 과연 그곳에는 하나
의 구멍이 나 있었다.
헌원삼광은 놀라움과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소어아 그들이 이 구멍으로 빠져나간 것이란 말인
가?"
화무결은 정색을 했다.
"그렇지요. 우리들은 오직 사면의 산벽만을 주의해 살펴보고 그
들이 절대로 도망가지 못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지하로 빠져 나
갔으리라고는 생각지 못 했었지요."
"그렇군, 사면의 산벽은 아주 견고한 바위덩이이지만, 지하는
흙으로 되어있으니 돌 보다는 파내기가 한결 쉽구 말구!"
헌원삼광은 돌연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밖으로 굴을 뚫고 빠져 나가기란 쉽지 않겠
는 걸!"
"쉽지 않음은 물론이지요. 그러나 이 굴은 그들이 판 것이 아닙
니다."
"그들이 판 것이 아니라면 누가 파낸 것이란 말인가?"
"대부분의 하류(下流)는 지면(地面)에 있지요. 하지만 지하에도
하류가 다소 있습니다. 벽해가 변하여 상전(桑田)이 되듯이 지세
(地勢)의 변화는 무궁한 것이어서 하류가 땅 속에 묻혀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류만 찾아낸다면 그것을 통하여 밖으로
나갈 수가 있지요."
모두들 그의 말을 듣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 했다.
헌원삼광은 펄쩍펄쩍 뛰었다.
"자네는 정말 알고 있는 것도 많으이 그려. 허허허!"
헌원삼광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빨리 이야기해 보게.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를 말일세!"
사람이 비록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동굴의 신비스러운 본
능은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지요. 예를 들어 한 마리의 개는
후각으로 몇십 리 밖에 있는 것의 냄새도 맡을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게 하지를 못 합니다."
헌원삼광이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그래서?"
"동물의 본능은 동물 모두가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개가 후각
이 잘 발달되어 있듯이 후조는 날씨의 변화에 민감합니다."
화무결은 홀연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구멍을 잘 뚫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모용산산이 따라 웃으며 말했다.
"쥐이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쥐입니다. 쥐는 어떠한 곳에 가두어 둔다 해
도 결국에는 구멍을 뚫고 나옵니다."
헌원삼광이 중얼거렸다.
"위무아 그놈은 바로 큰 쥐 같은 놈이니 이곳에는 쥐도 적지 않
을 것이오."
"소어아는 쥐를 몇 마리 잡아 나갈 수 있는 길을 찾도록 했을
것입니다. 쥐들도 며칠을 굶었으니 필사적으로 나갈 길을 찾으려
했겠지요. 그는 쥐를 그대로 풀어두면 길을 찾아 도망해 버릴까봐
끈을 만들어 매어놓은 다음 놓아준 것 같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지하의 하류는 쥐가 찾아냈을 것입니다. 소어아는 왜 쥐가
땅 속을 파고 들어가는 것인지는 알지 못 했겠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던 때라 쥐들이 하는대로 내버려 두었을 것입니다."
헌원삼광이 껄껄 대소했다.
"나는 소어아가 천하에 비할 바 없는 총명한 사람인줄 알았더니
자네도 그에 뒤지지 않는 총명한 사람일세 그려. 보아하니 두 사
람을 형제의 인연으로 맺어주어야 할 것 같군."
화무결은 헌원삼광의 말을 듣자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
다. 그것은 그가 가슴 속 깊이 굶은 마음의 상처를 건드렸기 때문
이다.
소어아는 무사히 도망했다 해도 이화궁주의 손아귀에 있을 것이
다. 그렇다면 그와의 생사일전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헌원삼광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땅 속으로 뚫려 있는 구멍
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대취가 그것을 보고 물었다.
"자네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헌원삼광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쏘아보며 대답했다.
"무슨 짓을 하느냐고? 그것을 몰라서 묻는 것인가. 소어아를 찾
으려는 것이야."
이대취가 웃으며 그의 말에 대꾸했다.
"그들은 나갈 길이 없어서 땅 속을 뚫고 나간 것이지만 자네는
굴 속으로 어기적어기적 기어나갈 필요는 없는 것일세!"
"만약 굴로 기어나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가 간 곳을 알 수 있
겠나?"
이때 돌연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셋째 언니, 셋째 언니, 지금 어디에 있어요?"
모용산산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 장청이로군! 그 애가 어떻게 여기에 왔을까?"
그녀가 대답을 하자 소선녀가 달려왔다. 그녀는 얼굴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고, 붉그스레한 그녀는 석실을 들어서자마자 모용산
산의 손을 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나는 한 사람을 보았어요...... 나는 한 사람을 보았어
요......"
모용산산이 말했다.
"누굴 봤길래 이렇게 호들갑을 떠니? 우리는 매일 수백 수천의
사람을 보고 있지 않니?"
"그러나 그 사람은...... 그 사람은......."
그녀는 신비스럽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마도 영원히 추측해내지 못 할 거요?"
모용산산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급히 물었다.
"그게 도대체 누구인데?"
그녀는 그렇게 묻다가 홀연 마음에 집히는 바가 있는 듯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네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소어아가 아니냐?"
그녀가 그렇게 묻자 모두들 긴장된 눈초리로 소선녀를 주시했
다.
소선녀는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바로 소어아예요. 모두들 이곳에서 그를 찾고 있었지
만 뜻밖에도 그는 이미 우리들의 배에 와 있어요."
헌원삼광은 놀랍다는 듯 펄쩍 뛰었다.
"정말이야?"
소선녀는 그를 한 번 쳐다보고 나서 말했다.
"우리는 술상도 치우지 않고 쭉 당신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
어요. 정오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조바심을 하고 있는데 돌연
히 물 속에서 몇 사람이 나타나더니 두말도 하지 않고 배 위로 뛰
어올라 왔어요. 그들은 아무소리도 없이 먹고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젓가락으로 집어먹을 겨를도 없는지 손가락으
로 음식을 급히 집어먹었지요. 자세히 보니 사람이 바로 소어아였
어요."
헌원삼광은 껄껄 대소했다.
"그녀석 참! 얼마나 허기가 졌는지 미칠 것 같았던 모양이군!"
이때 화무결이 입을 열었다.
"그 외에 또 누가 있었습니까?"
소선녀가 미소 지었다.
"이화궁주도 함께 있었지요. 정말 그녀들이 그렇게 젊어 보일
줄은 뜻밖이던데요. 그녀들은 입고 있는 의복의 차림새가 아주 기
괴했고, 물 속에서 나왔는데도 옷이 하나도 젖어있지 않더군요.
그녀들은 어찌나 고귀(高貴)해 보이는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
녀들 같더군요."
모용산산이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렇다면 너의 그 소선녀라는 별명은 그녀들에게 주어야겠군
그래!"
소선녀는 눈을 깜박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을 따라온 일행 중에는 젊은 아가씨도 하나 있었어요. 소
어아와 아주 친숙하더군요."
그녀의 그러한 말을 듣자 사람들은 철심난을 거의 동시에 주시
했다.
철심난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철전이 그 말을 듣고는 대노했다.
"그놈이 감히 다른 여자와 놀아나다니, 내 딸이 그 어떤 여자보
다 못 하단 말이냐?"
소선녀가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매우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어요. 처음엔 그저 그
랬지만 보면 볼수록 예뻐 보였고, 웃는 모습이라든지 동작 하나하
나가 조금도 탓할 데가 없이 아주 자연스럽고 매력적이어서 여자
인 나까지도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어요."
철전은 그 말을 듣자 더욱 분통이 터지는 듯 고래고래 떠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모용산산은 소선녀를 바라보며 이상스러움을 느꼈다.
오직 여자만이 여자의 마음을 안다고 소선녀의 소어아에 대한
감정을 모용산산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소선녀가 소어아를 죽일 듯 미워하고 있는 듯 했지만 속
으로는 연모의 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소어아의 정인(情人)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 여자에 대해 온갖 욕을 다 퍼부을만도 했는데 소선
녀는 그녀에 대해 욕을 하기는 커녕 세상에 둘도 없다는 듯 칭찬
하고 있었다. 모용산산은 소선녀가 혹시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가졌다.
그렇지만 지금 소선녀의 감정은 이미 고인옥과의 애정으로 충만
해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에 대해 달콤하게 생각을 하는 행복한
순간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 대해 깊은 사랑을 느끼고 어떠한 사람도 미워하지
않을 부드러움과 관대함이 그녀의 가슴 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모용가의 큰언니가 여러 사람들을 둘러 보고 나서 부드러운 어
조로 남편에게 물었다.
"배에 이미 귀객(貴客)들이 와있다면 빨리 돌아가야 하지 않을
까요?"
그녀는 모든 일에 대해서 먼저 남편의 의견을 물었다. 그것은
그녀의 남편이 자기의 의견에 대해 절대로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
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철전도 펄쩍 뛸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 우리 지금 떠나도록 하지. 어디 그놈이 얼마나 담대한
놈인지 좀 보아야겠는 걸!"
소 노파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듣자하니 이화궁주가 늙어보이지 않고 도리어 젊어 보인다니
무슨 곡절이 있는 것 같군. 어떠한 것인지 좀 보아야겠는 걸!"
미심팔도 끼어들며 말했다.
"나는 그녀들의 무예가 정말로 천하무적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고는 믿지 않아!"
헌원삼광이 미소를 지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 했으니 소어아가 얼마나 원숙해졌는지 좀
봐야겠는데!"
어떤 사람은 이화궁주를 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은
소어아를 만나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미인이
어떻게 소어아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고 싶었다. 모두들 이유
는 같지 않았지만 급히 배로 돌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직
화무결만이 이화궁주와 소어아를 만나게 되면 소어아의 생사일전
을 피할 수 었는 절박한 형세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어 차라리 영원히 소어아를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했
다.
돌연 소선녀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내가 미처 말을 다하지 못 했군요. 여러분들께서는 급히 서둘
러 돌아가실 필요가 없어요."
모용산산이 웃음을 보였다.
"수다좀 그만 떨고 빨리 이야기할 수 없겠니?"
소선녀가 눈빛을 반짝였다.
"이화궁주 외에 우리들의 배에는 또다른 귀한 손님이 왔어요."
모용산산이 말했다.
"도대체 누구인지 말해 보아라!"
소선녀는 또다시 신비스러운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그분의 명성은 절대로 이화궁주 보다 못 한 분이 아니에요. 이
렇게 얘기하면 여러분들께서는 그분이 누구인지를 아시겠지요?"
그녀의 말을 듣자 사람들은 모두들 그녀가 이야기하는 사람이
구인가를 알 수 있었다. 천하에서 이화궁주의 명성과 비교될 정
도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은 오직 한 사람 뿐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치 한 사람이 대답을 하는 것 같이 거의 동시에 이
구동성으로 외쳤다.
"연남천! 바로 대협(大俠) 연남천이지?"


신공절학(神功絶學)
연남천이라는 이름을 듣자 도교교 이대취 등은 날개가 없어 십
만 팔천 리 밖으로 멀리멀리 빨리 날아가 버릴 수 없음을 한스러
워 했다. 모용자매도 모두 안색이 변했다.
미심팔과 유자아는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미심팔이 말했다.
"연남천과 이화궁주가 그곳에 함께 있다는 것은 정말 뜻밖인
걸!"
유자아가 말했다.
"여지껏 헛수고만 한줄 알았더니 그런 것만도 아니었는 걸!"
귀동자가 끼여들었다.
"이화궁주와 연남천이 서로 만났으니 일이 아주 재미있게 된 것
같은데!"
사람들은 당대의 양대 절정고수(兩大絶頂高手)가 만났을 때의
광경을 상상해 보고는 모두들 호기심이 크게 일어남을 누를 수 없
었다. 자신들이 그 자리에 없었음을 한스러워 했다.
소 노파가 참을 수 없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이화궁주 그녀들은 연남천을 알고 있던가?"
"그녀들은 그를 모르고 있는 듯 했어요. 하지만 연 대협이 배
위에 오르자 곧 그녀들은 그가 누군지를 눈치 채는 것 같았어요.
그분의 그런 기백은 다른 사람은 아무리 흉내를 내려해도 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귀동자가 쌀쌀한 어조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구태여 그런 것을 배우려 한다고는 할 수 없겠
지!"
소선녀는 웃음을 보였다.
"이상한 것은 소어아도 마치 연남천을 본적이 없는 것 같은 표
정을 짓고 있었어요. 연남천은 배 위로 올라오자 조금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 계속 그를 주시하고 있었지요."
헌원삼광이 물었다.
"그래서 소어아가 어떻게 했지?"
"소어아는 한동안 그를 주시하는 듯하더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에 일어섰어요. 연남천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면서 입 속으로
는 쉬지 않고 아주 좋아, 아주 좋아, 아주 좋아 하며......."
모용산산이 피식 웃었다.
"이제 됐다. 한 번만 이야기 하도록 하지 그래!"
"연 대협은 그렇게 십여 번이나 되풀이해 말을 했어요. 눈에는
곧 떨어져 내릴 듯 눈물이 고여 있었지요. 소어아는 그것을 보고
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달려가 그의 앞에 꿇어 엎드렸어요. 연남
천은 그의 손을 잡으며 '네가 한 일에 대해서는 내가 거의 다 알
고 있다. 너는 네 부친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
았다. 그것을 나도 다 알고 있단다' 하고 말했어요."
여기까지 이야기 했을 때 소선녀의 눈언저리는 축축하게 젖어들
고 있었다. 깊이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렇지만 그녀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심지어는 자신들이 밖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까지도 잊고 있는 듯했다.
"이화궁주는 계속 한 옆에서 그들을 차가운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었지요. 얼마 후 대궁주(大宮主)가 쌀쌀한 어조로 '잘됐소. 우
리가 마침내 만나게 되었으니'라고 말하더군요."
모용산산이 물었다.
"연 대협은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나?"
"연 대협은 얼마가 지난 후에야 돌아서서 그녀를 주시하며 말했
지요. '우리는 이십 년 전에 만났어야 되는 것이었소.' 그러자 그
대궁주가 냉소하며 '당신은 너무 늦었다고 겸연쩍어 하는 것이
오?' 하고 물었고, 연 대협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길게 한숨을 내
쉬더군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그녀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용산산이 참고 있을 수가 없다는 듯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연 대협은 무어라고 말을 하던가?"
"그는 마치 가슴 속 깊이 있는 모든 일들이 상기되는 듯 긴 한
숨을 내쉬더니 '연모가 아직 죽지 않았으니 늦었다고는 할 수 없
는 것이오' 하고 말하더군요."
헌원삼광 등 칠팔 명이 이구동성으로 거의 동시에 물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됐지?"
"그들은 곧 폭발할 것 같은 긴장된 표정들을 짓고 곧 손을 써
싸움을 벌일 기세였어요. 우리들은 두 절정(絶頂)의 고수들이 싸
우게 되면 어떠한 형세가 될런지 알 수가 없어 초조해하고 있었지
요. 그때 인옥(人玉)이 저를 한 옆으로 끌고 가더니 빨리 여러분
들께 연락해 돌아오도록 전하라고 하더군요."
고인옥의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그녀의 눈에는 부드러운 웃음
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어 계속 말했다.
"그는 여러분들이 그런 공전절후(空前絶後)의 대전(大戰)을 그
냥 지나친다면 반드시 평생의 한이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귀동자가 그녀의 말에 재빨리 대꾸했다.
"평생의 한이 될 뿐이겠나? 나는 아마도 평생토록 한잠도 자지
못 할 걸!"
헌원삼광은 궁금하다는 듯 재촉하는 어조로 물었다.
"그들은 정말 싸움을 시작했나?"
"그것은 나도 모르지요."
헌원삼광은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들이 싸움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소선녀가 물었다.
"무엇 때문에 싸움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시지요?"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면 그중 한 마리는 반드시 상
할거야, 두 마리가 모두 상할 수도 있는 것이지. 그들의 싸움의
결과를 예측할 수조차 없는 것이니 그러한 대전은 벌어지지 않은
것이 좋다는 것이지."
화무결은 감격해서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 싸움은 서로간에 누가 죽든지 한 사람이 죽어야 끝이 날
싸움이다. 두 사람 중 누가 이긴다 해도 그때에는 나와 소어아는
영원히 풀어버릴 수 없는 원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얼마 후 유자아가 탄식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두 사람이 모두 상하게 된다면 정말로 애석한 일이야!"
노파가 그 말을 받았다.
"당신은 그들 중 하나라도 나중에 당신과 싸울 수 있기를 바라
는 것이지요? 그렇죠?"
유자아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그 와황 십팔변이라는 새로운 수법을 써보고 싶
지 않소?"
소 노파는 가볍게 탄식을 했다.
"그렇지만 아깝게도 그들은 아주 깊은 원한이 맺혀져 있는 것
같군요. 이십 년간을 기다렸다가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가 손을 털
고 그냥 물러설 것 같소?"
유자아도 탄식을 했다.
"그 두 사람이 싸우기 시작한다면 세상의 어느 누구라도 그들을
떼어놓지 못 할 것이오!"
그들이 강안(江岸)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천막 안의 탁자와 의자
등은 모두 치워져 있었다. 오직 색종이와 희연(喜聯)만이 강바람
에 휘날리고 있었다.
어젯밤의 성대했던 잔치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광경은 한없이 처
량했다.
화려했던 영화도 끝난 후에 생각하면 모두가 다 부질없는 것이
고, 영고성쇄가 다 허무한 것이거늘 왜 그렇게 서로들 아웅다웅
하려드는 것인지...... 화려했던 잔치가 끝난 후의 어수선한 강변
을 보고는 모든 사람의 마음은 쓸쓸해졌다.
이때 그들은 천막 옆의 넓직한 공지에 많은 사람들이 무슨 구경
거리라도 있는 듯 겹겹이 둘러서서 수군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
다.
그것을 궁금하게 여긴 헌원삼광이 달려가 그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려고 하자, 그 사람들은 그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둘러싸여 있던 곳
은 그저 평범한 강변의 빈터였을 뿐이었다.
이때 소선녀가 부르짖듯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지? 소만(小蠻), 그들은 모두 어
디로 갔느냐? 고 공자(顧公子)는 또 어디에 있지?"
소만은 원래 모용산산의 시중을 들던 몸종이었다. 그녀는 소선
녀가 오고 난 후 소선녀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고 있는 것이 아마도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소선녀가 너무 빠르게, 또 너무 많은 것을 물어보았기 때문에
얼떨떨한 듯 한동안 머뭇거리던 그녀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나더
니 눈망울을 굴리면서 말했다.
"아가씨가 가시고 난 후 그분 연...... 연 대협께서는 그 소어
아 소야(小爺)님과 술을 마셨습니다. 두 분은 서로 권하거니 받거
니 하며 계속 술을 마시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홀연
껄껄 너털웃음을 터뜨리다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고, 홀연 한숨
을 길게 내쉬고는 했지요. 그분 소씨라는 아가씨는 웃음을 머금고
술을 따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을 때 보니 눈물이 쉬
지 않고 흘러 떨어지더군요."
소선녀는 그녀가 그들이 지내왔던 이야기를 듣다가 슬픔에 겨웠
던 일을 듣게 되자 눈물을 흘린 것임을 알았다.
소선녀는 재촉하듯 말했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더냐?"
"그들의 이야기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아 어느 때는 들리지도 않
았고, 비록 알아들었을 때에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더군요!"
소선녀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런 것을 제대로 알아듣기나 한다면 정말 제법이게. 이
어리석은 것 같으니!"
소만은 고개를 숙였다.
"저는 비록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아듣지 못 했지
만 그들의 표정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코가 시큰해지고 눈물이 나
더군요."
헌원삼광도 소어아와 연남천이 재난에 빠졌던 불우했던 때를 생
각하고는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그는 큰소리
로 말했다.
"그렇지. 나도 비록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듣지 못 했
지만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걸!"
소선녀는 그를 한 번 쏘아보고 나서 소만에게 물었다.
"그들이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이화궁주는 어떻게 하고 있더냐?"
"이화궁주는 다른 탁자에 앉아서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조
급히 굴지도 않았어요. 아마 그녀들은 연 대협이 말을 끝마치고는
자기들에게 올 것이라고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사람들은 속으로 모두들 씁쓸한 공허함을 느꼈다. 연남천이 이
화궁주와 생사일전을 벌일 결심을 하고, 뒷일을 소어아에게 부탁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끝이 없을 듯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더우기
소어아 소야께서는 거의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저는 여
지껏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말이 많은 남자는 정말 보지를 못 했
어요. 마치 늙은 할머니 같이 말이 많더군요."
그 말을 듣자 돌연 헌원삼광이 탄식을 하며 말했다.
"소어아야, 나는 안다. 너는 연남천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일부
러 많은 말을 하여 시간을 끌려고 한 것이다......."
소만이 그 말을 듣고나서 말을 이었다.
"그 말씀을 듣고보니 연 대협께서도 그분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
같더군요!"
헌원삼광이 물었다.
"무엇이라구?"
"홀연 연 대협께서 일어나더니 소어아님의 어깨를 두드리고 껄
껄 대소하시며 '너의 연 대숙은 백전백승 싸워서 진적이 없는 사
람임을 너도 알지 않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지요."
유자아는 그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
"백전백승이라니 정말 너무 큰소리를 치는군."
헌원삼광이 눈썹을 치켜뜨며 그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만약 그런 말을 했다면 나도 틀림없이 터무니없는
큰소리라고 했을 것이오. 그렇지만 연남천이 그 말을 한 것이라면
그렇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유자아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소어아 소야께서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연 대협을 바라보았으
나 이화궁주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고 있어 연 대협도 곧 그녀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지요.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떻
게 된 일인지 저는 긴장이 되어 숨이 막힐 것 같더군요."
그녀는 말을 조리있게 했고 소리도 청아했다. 그녀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들 긴장해서 마치 자기들이 두 사람의 절세 고수들
이 강변에서 생사의 결투를 벌이는 것을 보기라도 하는 듯 손에
땀을 쥐고 온 정신을 집중해 듣고 있었다.
강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왔다. 마치 대지에 살기가 충만되어 있
기라도 하다는 듯 소만은 몸서리를 치며 목을 움추리더니 이어 이
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그들은 밖으로 나가서도 곧 손을 쓰지 않고 서로 대치
한 채 서로를 주시하고 있더군요."
유자아가 물었다.
"연남천이 무기를 쓰지 않더냐?"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두 사람 모두
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유자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연남천은 검법이 천하무적이라고 오래 전부터 들어왔는데 어째
서 검을 가지지 않고 싸우려고 했을까? 그 동안 이화궁주의 장법
(掌法)을 능가하는 권법(拳法)을 익히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화궁주의 장법내력(掌法內力)은 천하에 독보적인 것이었기에
그는 연남천을 얘기하면서는 장법이라고 하지 않고 권법이라고 표
현했다.
그것은 그가 이화궁주의 장법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장법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험악해서 일초(一招)의 공격만으로도 곧 생사의 결판이
날 것 같았습니다."
소 노파가 유자아를 한 번 쳐다보고 나서 웃음을 보였다.
"이 조그만 아가씨도 무엇을 좀 알아 볼 줄 아는데......."
소만은 입술을 깨물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짓더니 이어 이야기
를 계속 했다.
"저는 너무 긴장된 분위기를 보고 고 공자께 그들이 싸우지 않
도록 하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지요. 고 공자께서는 그들 두 사
람은 지금 비록 손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온 정신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싸움을 말리려고 가까이 갔다가는 그들의 진
기에 압도되어 쓰러지고 말 것이라고 하더군요."
소 노파는 뜻있게 소선녀를 힐끔 바라보고 나서 한마디를 던졌
다.
"그 고 공자도 무엇을 좀 아는 듯하군!"
"고 공자님과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소어아 소야께서도 들
으신 듯 홀연 가까이 오더니, 공자님께 '너는 정말 아무도 저들의
싸움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느냐'고 말하더군요!"
소선녀는 미간을 찌뿌렸다.
"그 소귀(小鬼)가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랬을까?"
"고 공자께서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소어아 소야께서는
'나와 내기를 하지 않겠나?' 하고 묻더군요."
소선녀가 황급히 물었다.
"그는 귀신 중에서도 귀신의 정령(精靈) 같은 놈인데 고 공자는
성실한 사람이니 그와 내기를 했을 리가 없지........."
"고 공자께서는 원래 그와 내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소어아
소야께서 말씀을...... 말씀을......."
"무어라고 말했단 말이냐?"
소만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나는 고 소매가 감히 나와 내기를 해보려고 생각지 못
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 그만두지!'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헌원삼광이 껄껄 대소했다.
"묘한 걸, 아주 묘해. 소어아는 충동질을 해서 꼼짝없이 자기의
낚시에 걸려들게 만들었군. 그분 고 소매라는 사람도 내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지?"
소선녀는 사나운 눈초리로 헌원삼광을 흘겨보았고 소만은 탄식
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랬어요. 고 공자께서는 과연 참지 못 하시겠다는 듯 마침내
그와 내기를 하기로 했지요."
소선녀는 얼굴까지 붉히고 화를 참을 수 없다는 듯 헛발길질을
했다.
"어쩌면 그렇게 참을성이 없을까? 그들은 도대체 무슨 내기를
했지?"
"그분 소어아께서는 '나는 오직 한마디만을 이화궁주에게 해서
그녀의 손을 멈추게 할 수가 있지. 그렇게 되면 연 대숙께서도 싸
울 수 없게 되는 것이지.'라고 말했어요. 고 공자께서는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지요."
소 노파가 끼어들었다.
"고 공자만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도 믿지 않았을 것이야.
내기는 나도 했을 것이고."
소만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하셨다면 노인께서도 지시고 말았을 거예요."
사람들은 도대체 소어아가 무슨 말로 이화궁주의 손을 멈추게
할 수가 있었을까 궁금해 했으나 소선녀만은 고인옥이 내기에 져
서 무엇을 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했다. 소만은 대가(大家)의 아
가씨들 곁에서 오랫동안 시중을 들어왔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주
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또 어떤 경우에 주인의 화를 돋
구어 욕을 먹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우선 소선
녀가 궁금해할 듯한 것부터 얘기하기 시작했다.
"소어아 소야께서는 자기가 진다면 고 공자가 어떠한 것을 시켜
도 마다 않고 다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고 공자
께서 진다면 자기를 위해 한 가지 일만 해주면 된다고 말씀하시더
군요."
소선녀가 초조하게 물었다.
"한 가지......?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 당시에는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으셨습니다."
소 선녀는 버럭 화를 냈다.
"아무 쓸모도 없는 계집애로군. 그렇다면 결국 너는 아무 것도
알고 있는 것이 없는 셈이 아닌가?"
소 노파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저 애는 알고 있는 것이 적지 않은데......."
헌원삼광도 끼어들며 말했다.
"그렇구말구, 도대체 그 소어아 소야가 무슨 말을 했는지 빨리
말해 보아라! 과연 이화궁주가 그의 한마디 말에 손을 곧 멈추더
냐?"
"소어아 소야께서는 다른 한 사람의 이화궁주를 향해 큰소리로,
'아깝구나 아까워, 나와 화무결이 싸우는 것을 당신의 언니께서는
아마도 보지 못 하게 될 것이니 아깝지 않소?'라고 말하더군요."
소 노파가 물었다.
"그 말에 이화궁주가 정말로 손을 멈추었단 말이냐?"
그녀가 곧 손을 멈추길래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아
주 이상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소 노파는 의아스럽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소어아와 화무결의 일전을 꼭 보아야겠다
고 생각했을까? 그것이 연남천과의 싸움보다 더 중요할 리가 없었
을 텐데. 정말 이상한 걸!"
유자아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연남천이 도대체 무슨 놀라운 무예를 익히고 있었기에 이화궁
주가 손을 멈추었을까?"
"그녀의 손을 멈추게 한 것은 연 대협이 아니고 소어아 소야님
이에요."
모용산산은 그녀의 말을 듣자 어처구니 없다는 듯 말했다.
"닥쳐라! 어리석은 계집애 같으니!"
소 노파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화궁주가 만약 확실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싸움을
끝내고 나서도 화무결과 소어아의 일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니 손
을 멈추지 않았을 게 아니겠나?"
소만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웃으
며 말했다.
"그렇군요. 저는 정말 어리석었군요."
이화궁주가 홀연 손을 멈추었다면 그것은 연남천의 공력이 도저
히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해서 승패를 확신할 수 없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헌원삼광은 오직 소어아만 근심스러운 듯 했고 다른 일에 대해
서는 관심조차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큰소리로 물었다.
"지금 소어아는 어디에 있느냐?"
"연 대협과 이화궁주는 아침 해가 뜰무렵 산봉우리에서 만나기
로 약정을 했습니다. 약정한 기간은 이화궁주가 그 화무결......
화소야님을 찾을 때까지로 정했지요. 그렇게 약속을 한 다음 연
대협께서는 소어아님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헌원삼광은 궁금하다는 듯 재촉하는 어조로 물었다.
"이화궁주는 어떻게 됐느냐?"
"그녀들은 화 소야님을 찾으러 갔습니다. 단정 지어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조금 있으면 아마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것은 고
소야께서 그녀들에게 화 소야님도 여러분들과 함께 떠났다고 말했
기 때문입니다."
소선녀의 마음 속에는 오직 고인옥에 대한 생각만이 있는 듯 황
급히 물었다.
"고 소야께서는 어디로 가시더냐?"
"고 소야님께서는 내기에 지셨기 때문에 소어아님이 시킨 일을
하러 같이 떠나셨습니다."
"그 도깨비 같은 녀석이 그에게 좋은 일을 시킬 리가 있겠니?
그는 무엇 때문에 따라갔는지 모르겠구나."
그녀는 초조하고 화가 치미는 듯 눈물이 곧 떨어져 내릴 듯했
다.
모용산산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홀연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어조
로 말했다.
"큰 언니가 축하한다."
소선녀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금방 미칠 것 같은데 무엇을 축하한다는 말이에요?"
"고 소매가 너의 어떤 사람이 아니라면 네가 왜 그렇게 초조해
하고 발끈 화를 내겠니?"
소선녀는 더욱 뾰루퉁해졌다.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그를 고 소매라고 부르
지요?"
모용산산은 깔깔댔다.
"고 소매라는 이름은 원래 네가 그에게 지어준 것이 아니냐? 지
금에 와서 우리들에게 그렇게 부르지 못 하게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지? 하루 동안 못 본 사이에 너희들 사이가 벌써 그렇
게 되었니?"
소선녀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이더니 말을 잇지 못 했다.
"우리들은...... 우리들......."
모용산산은 가볍게 그녀의 얼굴을 꼬집으며 웃었다.
"앙큼한 계집애 같으니! 아직도 나를 속이려고 하느냐. 술 한
잔 주기가 싫어서 시치미를 떼려고 하느냐?"
모용쌍이 홀연 끼어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싸우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무엇을 둘러서서 보
고 있었느냐? 설마 땅 속에서 꽃송이라도 솟아나왔단 말이냐?"
소만이 웃었다.
"땅에서 꽃이 솟아 나왔다면 이상하지 않게요. 홀연 빵이 솟아
나왔으니까 기괴하지요."
모용쌍은 어리둥절해 했다.
"빵이라구?"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평지 위에 조그만 구릉이 솟아나와
있었는데 과연 생김새가 빵 같이 보였다.
모용산산은 웃음을 감추지 못 했다.
"바보 같으니라구! 저것이 무어 볼 것이 있단 말이냐?"
"알지 못 하시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저것은 이상할 뿐만
아니라 아주 괴상망칙한 걸요!"
그녀는 홀연 그 구릉으로 달려가 올라 서더니 소리쳤다.
"아까 이화궁주는 바로 이곳에 서있었어요. 그녀가 처음 이곳에
있을 때는 이곳도 다른 곳과 똑 같은 평지였는데, 그녀가 서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치 빵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솟아올랐어
요. 정말 쪄놓은 빵 같이 되었군요."
모두는 그녀의 말이 우습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놀랍고 의아스러
움을 금치 못 했다.
유자아, 미심팔 등은 돌연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허리를
구부리고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유자아 등은 안색이 점점 변하며 보면 볼수록 놀랍고 의아스럽
다는 듯 분분히 떠들었다.
"과연 틀림없는 걸...... 그렇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사람으로 인해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전혀 뜻밖
인 걸!"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일제히 그 구릉으로 달려갔다. 구릉에는
두 개의 발자국이 나 있었는데 그 발자국은 이상하게도 들어가 있
는 것이 아니라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고수들이 싸울 때에는 전신의 공력이 모두 집중하기 때문에 왕
왕발자국이 깊이 파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것은 이상한 것이
없었지만 이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었던 것이다.
모용산산이 눈빛을 번쩍였다.
"이화궁주는 아주 기괴한 무예를 익히고 있는 것 같군요?"
유자아가 탄식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군. 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전절후의 무예를 익히
고 있으니 당대를 무시할 만도 하군."
유자아는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들께서는 모두 저 솟아있는 발자국을 보셨죠?"
그는 모두들 그것을 보았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계속
말을 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공력을 운행할 때 진기를 밖으로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으로 빨아들였기 때문이오. 어떠한 물건이든 지
남철에 쇠가 들어 붙듯이 강하게 빨아들여지는 것이오."
모용산산이 물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공력은 영원히 소모되지 않고 쓰면 쓸수록 더
욱 늘어나게 된다는 것입니까?"
"바로 그렇소. 싸우면 싸울수록 그녀의 공력은 더욱 늘어나게
되니 상대가 아무리 무예가 강한 사람일지라도 결국에는 패하고
말것이오."
모용산산은 놀랐다.
"그러한 것을 무슨 무공이라고 합니까?"
소 노파가 그 말을 받았다.
"명옥공(明玉功)이라는 무예를 구할 정도 익히게 되면 그런 현
상이 일어나게 되지. 체내의 진기가 마치 소용돌이처럼 몰아쳐서
어떠한 물건이라도 마치 물 속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과 같이 진기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들게 되는 것이오."
"사람도 그녀와 부딪치게 된다면 그 사람의 진기가 모두 빨려
들어가 없어진다는 말인가요?"
소 노파가 그말에 대답했다.
"상대방의 항력(抗力)이 강하지 못 하면 자연 그렇게 되어버리
고 말 것이오."
"그렇다면 그 무예만 익힌다면 천하무적의 존재가 되는 것이 아
닙니까?"
소 노파, 미심팔, 유자아 등은 모두들 서로를 쳐다보며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유자아는 길게 탄식을 했다.
"그렇지. 그녀는 확실히 천하무적이지. 우리들은 헛걸음을 한
셈이야."
"그녀가 이미 천하무적이라면 연남천도 그녀의 적수가 못 되는
셈이니, 연남천을 피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렇다면 연남천도
그런 무예를 익혀 알고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야 않을 것이오."
모용산산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과연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체내의 진기가 소용돌이
치듯이 맴돌며 상대방의 진기를 흡수한다는 말이지요."
유자아가 말했다.
"그 무예의 가장 기묘한 점을 강호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소. 그 꿈을 들어본 사람들도 대부분 그것을 일종의 사술(邪術)
이라고 믿지. 그러나 그것도 분명히 내가정종(內家正宗)의 절정심
법(絶頂心法)이오."
"그렇다면...... 그녀는 절대 패할 리는 없었을 텐데 무엇 때문
에 싸움을 중단했을까요?"
유자아 등 사람들은 침중한 안색을 하며 모용산산이 묻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을 했다. 한참 후 소 노파가 말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소. 바로 연남천도 일
종의 신기한 무예를 익히고 있으며 그 무예의 능력 역시 그녀의
명옥공(明玉功)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
오."
모용산산이 물었다.
"그렇다면 세상에 명옥공에 맞설수 있는 그런 무예가 있단 말인
가요?"
"오직 한 가지가 있지."
"그것이 도대체 무슨 무공입니다."
"가의신공(嫁衣神功)이라는 것이지."
"가의신공이라니요?"
"'다른 사람을 위해 옷을 만들어 입힌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
이오."
"다른 사람에게 옷을 만들어 입힌다 하는 것과 같은 뜻이라면,
자기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소 노파가 대답했다.
"그렇소. 그 무예를 익히게 되면, 진기가 마치 화염 같이 맹렬
하게 변하게 되어 밤낮으로 그것으로 인한 고통을 받아야 하오.
그러한 고통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었는 것이고, 그 고
통을 조금이라도 적게 하려면 자신의 진기내력(眞氣內力)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주어야 하는 것이오."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나더니 이어 말했다.
"그러나 이 가의신공을 익히려면 적어도 이십 년이라는 고된 수
련을 쌓아야 하오. 그렇게 고된 수련을 통하여 얻은 공력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려야 하다니 정말 이상스러운 무예이지."
유자아가 그녀의 말을 이어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날 강호에는 이런 말이 있었소. 만약 해
(害)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가의신공의 심법(心法)을 전
수해주어 일평생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 하게 하라고."
모용산산이 말했다.
"연 대협께서는 정말로 그 가의신공인가 하는 무예를 익히고 계
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렇다면 그는 이화궁주와 싸움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고 말 것이 아니겠어요?"
유자아가 조용한 어조로 침착하게 말했다.
"가의신공은 그 무공을 연마한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오.
가의신공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 주고 나면 그 무공을 익힌 당사자
는 마치 기름이 다 말라버린 등잔불 같이 되어 버리고 말지. 사람
이 무궁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오."
모용산산이 물었다.
"그렇다면 선배님의 뜻은 어떤 사람이 가의신공을 익혀서 연 대
협에게 진수하여 준 것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모용산산의 질문에 한동안 입을 닫고 있던 유자아는 한참 후에
야 유유히 입을 열었다.
"세상에 그 누가 가의신공을 익혀 연 대협에게 그 내력을 옮겨
주었겠소?"
지금껏 대답만 하던 유자아가 돌연 이런 질문을 하자 사람들은
모두 의아하고 혼란스러워서 아무말도 하지 못 한 채 망연히 서있
었다.
한참 후 유자아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가의신공을 창조해낸 사람은 오만하고 기이한, 세상에 둘도 없
는 천재일 텐데 그런 사람이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해 온갖 고통과
시련을 이기고 고수해 가며 그것을 만들어 냈겠소?"
사람들은 그제서야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그의 다음 얘기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유자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가의신공을 익혀서는 안 된다고만 알고 있을 뿐 그것
을 아무 해 없이 익힐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소.
무예를 익히는 데엔 한 가지 비결이 있는 것이오."
모용산산이 도저히 궁금해 참을 수 없다는 듯 재촉해 물었다.
"그 비결이 도대체 무엇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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