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5-4

3학년2반 | 2022.03.05 07:49:00 댓글: 0 조회: 420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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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5 권


제 5 장 금화파파의 은단의절(恩斷義絶)


대도(大都)가 눈 앞에 이르자 장무기는 어젯밤 만안사에서의 일
전 때문에 여양왕 수하의 많은 무사들이 자기 얼굴을 식별해서
불편을 많이 겪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는 한 농가에서
농사꾼이 입는 옷가지와 죽립(竹笠)을 구하여 갈아입고 나서, 탄
재로 얼굴과 손을 까맣게 칠한 다음에야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서성(西城)의 객점 밖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전혀 이상
이 없는 걸 확인하자 즉시 안으로 들어가서 자기의 방으로 들어
갔다. 소조는 마침 창가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깜짝 놀랐으나 바로 알아보았다.
이윽고 만면에 희색을 띄우고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 전 어떤 농사꾼이 방을 잘못 들어왔는 줄만 알았어
요."

"넌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느냐?"

소조는 얼굴을 붉히며 수중에 있는 바느질감을 등 뒤로 숨기고
부자연스럽게 말했다.

"바느질을 해 보았으나 솜씨가 너무나 형편 없습니다."

옷가지를 베개 밑으로 숨기고 나서 장무기에게 차를 따라 주었
다. 그의 까만 얼굴을 보자 웃으며 말했다.

"세수하실 겁니까?"

장무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일부러 칠한 것이니 씻을 필요없다."

찻잔을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낭자는 나보고 도룡도(屠龍刀)를 빌리러 갈 때 동행해 달라
고 했다. 그러니 절대로 신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더구나 나
의 본래의 계획은 의부를 중토에 돌아오시게 하려 했었다. 그러
나 의부께서는 중원에 적을 많이 두고 있고, 눈까지 멀었으니 그
들을 대적하기 힘들다고 걱정을 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무림의
군호들이 한 마음으로 몽고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사사로운 원
한 관계는 모두 화해될 것이다. 내가 의부를 모시고 있으면 어느
누구도 감히 솜털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바다는 바람과 파
도가 험악하기 때문에, 소조는 함께 데려갈 수 없다. 음, 그렇
지, 조낭자에게 부탁해서 소조를 왕부(王府)안에 있게 하면 되겠
구나. 거기는 다른 곳보다 훨씬 편안할 것이다.'

소조는 그가 갑자기 미소짓는 것을 보자 연유를 물어 보았다.

"공자님, 뭘 생각하셨어요?"

"아주 먼 곳에 가야하는데 널 데리고 가면 몹시 불편할 것 같
다. 그래서 네가 기거할 만한 곳을 생각해 냈다."

"공자님, 전 당신을 꼭 따라가서 날마다 이렇게 시중들 것 입니
다."

"난 널 위해서다. 내가 가야할 곳은 아주 멀면서도 위험하다.
더구나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다."

"광명정의 그 동굴 안에서 전 이미 마음을 정했습니다. 당신이
가는 곳에는 저도 꼭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오로지 절 죽여야만
뿌리칠 수 있을 겁니다. 공자님은 제가 보기 싫어서 꺼려하는 겁
니까?"

"아니다, 아냐. 넌 내가 좋아하고 있는 줄 알고 있지 않느냐?
단지 내가 무의미한 모험을 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내가
돌아오기만 하면 즉시 널 찾겠다."

소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공자님만 곁에 있어주면 어떠한 위험도 겁나지 않아요. 공자
님, 절 데리고 가주세요."

장무기는 소조의 손을 쥐고 말했다.

"소조, 솔직히 너에게 말해 주겠다. 나는 조낭자의 부탁으로 그
녀와 함께 해외를 한 번 다녀오기로 했다. 나는 할수 없이 가더
라도 넌 꼭 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

"공자님과 조낭자가 함께 간다면 전 더욱 따라가야 합니다."

소조는 얼굴을 잔뜩 붉히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뭣 때문에 더욱 따라가야 하느냐?"

"그 조낭자의 마음이 독해서 그녀가 공자님께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릅니다. 제가 따라가면 당신을 보살펴 드릴 수가 있습니
다."

그러자 장무기는 마음이 동요되었다.

'이 작은 낭자가 나에게 정을 느끼고 있단 말인가?'

"좋다. 함께 가기로 하자. 하지만 배멀미하더라도 날 원망해서
는 안 된다."

"만약 공자님을 귀찮게 하게 되면 바다에 던져서 고기밥이 되게
하세요."

"그건 너무나 아깝지 않느냐?"

장무기는 웃으며 말했으나 소조는 한숨을 쉬며 한쪽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자 장무기가 소조에게 물었다.

"웬 한숨이냐?"

"공자님은 진정으로 아까운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미파의
주낭자며 여양왕부의 군주낭자도 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
도 모르지요. 그런데 어찌 저 같은 종년을 걱정하겠습니까?"

장무기는 그녀의 면전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소조, 네가 항상 따스하게 대해준 걸 내 어찌 모르겠냐? 그것
도 모른다면 난 은혜를 저버리는 파렴치한 사람과 다를게 뭐가
있느냐?"

그러자 소조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뻐했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말했다.

"전 공자님이 어떻게 대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단지 영원
히 공자님을 모실 수 있는 몸종으로 허락해 주신다면 전 그것으
로 만족합니다. 밤새 한숨도 못 주무셨으니 피곤하실 겁니다. 빨
리 침대에 올라가셔서 좀 쉬시지요."

말을 하더니 이불을 들춰서 그가 편안히 잠을 잘 수 있게 해준
다음, 자기는 창가로 가서 앉더니 다시 바느질을 했다.

장무기는 해질무렵에야 깨어났다.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서 말
했다.

"소조, 널 데리고 조낭자를 만나 보러 갈 것이다. 그녀의 의천
검을 빌려서 너의 수족을 묶고 있는 사슬을 잘라 주겠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와 보니, 몽고의 병졸들이 말을 타고 왔다
갔다하며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었다. 이는 어젯밤에 여양왕부의
화재와 만안사에서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말굽소
리를 듣자 얼른 처마 뒤로 몸을 숨겼다. 얼마 후 바로 그 작은
주점에 도착했다.

장무기는 소조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조민은 이미 어젯밤
술 마셨던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을 보더니 웃으면서 일어섰
다.

"장공자는 정말로 신용이 있으시군요."

그러자 장무기는 포권을 하며 말했다.

"조낭자, 어젯밤 일은 정말 미안했소. 용서해 주기 바라오."

조민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의 그 애첩은 요사스러워서 난 몹시 싫어했는데, 장공자
가 사람을 시켜서 그녀를 살해해 주셨으니 정말 고맙습니다. 우
리 어머님께서 장공자를 매우 칭찬하시더군요."

장무기는 깜짝 놀랐다. 이러한 결과가 될 줄을 실로 뜻밖이었
다. 이윽고 조민이 다시 말했다.

"그 사람들도 장공자가 구해 주길 잘했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귀항(歸降)하지 않으니 내가 남겨 둔들 무슨 소용 있겠어요. 장
공자, 내가 당신에게 한 잔 권하지요."

바로 이때 문 안으로 범요가 들어왔다. 그는 먼저 장무기에게
인사하고 나서, 다시 공손하게 조민한테 읍을 하면서 말했다.

"군주님, 고두타가 작별하러 왔습니다."

조민은 답례하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

"고대사, 당신은 날 너무나 기만했소. 덕분에 당신의 군주는 많
은 수모를 당했소."

그러자 범요가 일어나서 앙연히 말했다.

"고두타의 성은 범이고 이름은 요라고 하며, 명교의 광명우사
(光明右使)입니다. 조정과 명교가 적대 관계이기에 본인이 여양
왕부에 잠입한 건 자연히 임무수행차 온 것입니다. 군주님의 많
은 보살핌을 받았기에 오늘 특별히 작별하러 온 것입니다."

조민은 여전히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이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지 구태여 인사하러 올 것 까지
없지 않소?"

"대장부는 끊고 맺음이 좋아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군주님과 적
대관계가 되는 것인데, 만약 분명히 일러두지 않으면 군주님이
평소에 제게 잘 대해 준 것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조민은 장무기를 한 번 쳐다보면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재주가 있기에 수하들을 모두 당신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오?"

"우리는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인협을 위해, 의기를 위함
입니다. 범우사와 나는 평소에 서로 알지 못하고 지냈소. 그러나
만나자 마자 마치 오랜 친구처럼 간담상조(肝膽相照)하게 되었
소."

그러자 범요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교주의 말씀은 바로 속하(屬下)의 생각과 같습니다. 교주, 부
디 몸조심 하십시오. 군주낭낭, 이분께서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
만 심한수랄(心限手辣)한 건 보통이 아닙니다. 당신은 양심이 너
무나 올바르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겠소. 절대로 방심하지 않겠소."

그러자 조민은 웃으며 말했다.

"고대사의 칭찬, 대단히 감사합니다."

범요는 몸을 돌려 주점 밖으로 향했다. 소조의 옆을 지나갈 때
갑자기 얼굴 표정은 경악하면서도 괴상했다. 마치 갑자기 무슨
엄청나게 무서운 귀신을 본 것처럼 소리쳤다.

"넌..... 넌....."

그러자 소조는 이상하다며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범요는 멍청히 그녀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아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다."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가면서
중얼거렸다.

"정말 닮았다, 정말 닮았어....."

조민과 장무기는 서로 한 번씩 쳐다보았으나 그가 소조를 누구
와 닮았다고 하는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갑자기 먼 곳에서는 호루라기 소리가 세 번 길게, 두 번 짧게
들려왔다. 장무기는 순간 멈칫했다. 이는 아미파가 동문을 소집
하는 신호다. 그날 서역에서 멸절사태 등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
들은 이러한 신호로 서로 연락하는 걸 여러 번 들었다.

"어째서 아미파가 대도로 돌아왔을까? 혹 적을 만난게 아닐까?"

그러자 조민이 말했다.

"저건 아미파입니다. 마치 무슨 급한 일을 당한 것 같군요. 우
리가 한 번 가 보는 게 어떻겠어요?"

"당신이 어떻게 알죠?"

"내가 서역에서 사람들을 이끌고 그녀들을 사흘 동안 밤낮으로
뒤쫓아가서 겨우 멸절사태를 잡았는데, 어찌 모르겠어요."

"좋소, 가 봅시다. 조낭자, 우선 당신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
니다. 당신의 의천검을 빌려 주시겠소?"

"당신은 도룡도를 미처 빌려 주기도 전에 먼저 나에게 의천검을
빌리는구료."

조민은 웃으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보검을 풀러서 건네 주었
다. 그러자 장무기는 검을 뽑더니 소조에게 말했다.

"소조, 이리 오너라."

소조는 그에게 다가갔다. 장무기는 장검을 몇 번 휘둘러서 그녀
의 손 발을 묶고 있던 사슬을 일제히 잘라 주었다. 그러자 소조
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공자님, 군주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조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아름다운 낭자구료. 당신의 교주는 필시 당신을 끔찍하게
사랑할 거예요."

소조는 얼굴을 붉히며 눈에는 즐거운 빛이 번쩍거렸다.

장무기는 검을 거둔 다음, 조민에게 돌려주자, 아미파의 호루라
기소리가 바로 동북방 쪽으로 가는 게 들렸다.

"자, 그럼 갑시다."

조민은 은 한냥을 탁자 위에 던져 놓고 재빠르게 주점을 나섰
다.

장무기는 소조가 따라오지 못할까봐, 오른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 안고, 조민의 뒤를 따라갔
다. 그러나 십 여장밖에 달리지 않았는데, 소조의 몸이 몹시 가
볍게 느껴졌고, 발걸음을 이동하는 것도 몹시 신속해졌다. 그는
약간 이상하게 여겼다. 손에 도와주는 힘을 거두어 들였지만 소
조는 여전히 자기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비록 그는 상승경공
을 전개하지 않았으나 발놀림은 몹시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조민은 이미 한적한 작은 모퉁이를 몇개 지나
서 반쯤 무너진 담벽 밖에 당도했다.

장무기는 담 안에서 여자들이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리자 아미파
가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윽고 소조의 손을 잡고 월장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조민도 뒤따라 들어왔다. 세 사람은 우거진 풀
숲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폐원의 북쪽 모퉁이에는 허름한 정자가 하나 있었고, 정자 안에
는 이 십여명이 모여 있었다. 이윽고 한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너는 본문에서 제일 젊은 제자다. 자질이나 무공을 따져봐도
넌 본파의 장문이 될 차례가 되지....."

장무기는 정민군의 음성을 알고 있었다. 숲 속에서 포복하여 정
자의 수 장쯤 떨어진 곳까지 다가갔다. 이때 별빛이 어두워 매우
몽롱하게 보였다. 그는 안력을 모아서 주시하자, 정자에는 남자
도 있고 여자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아미파의 제자
였다. 정민군 외에는 멸절사태 좌하의 나머지 큰 제자들이 모두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왼쪽에 몸매가 가냘프고 청치마를 땅에
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주지약이었다.

이윽고 정민군이 매우 엄준한 말투로 다그쳤다.

"말해라, 말해.....!"

그러자 주지약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사저의 말씀이 옳습니다. 사부님께서 이 대임을 소매에게 명
하실 때 소매는 한사코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선사께서는 무서운
말투로 책망하시더니 소매가 맹세하기를 강요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부님의 분부를 저버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미의 대제자 정현이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영명하시기 때문에 주사매가 장문을 승계하라는
명은 필시 깊은 저의가 있을 것이오. 우리는 모두 사부님의 대은
을 입었기에 당연히 그 어르신네의 유지를 받들어 주사매를 보좌
해서 본파의 무덕을 빛내야 하오."

그러자 정민군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필시 깊은 저의가 있다는 말은 정말 잘 하셨소. 우
리가 고탑(高塔)위와 아래 있을 때 모두 고두타와 학필옹이 큰
소리로 외치는 걸 직접 듣지 못했습니까? 주사매의 부모가 누굽
니까? 사부님이 뭣 때문에 그녀를 달리 보는 줄 아직도 모르겠습
니까?"

고두타는 녹장객에게, 멸절사태가 자기의 옛 연인이라고 말했으
며, 주지약은 그들 두 사람의 사생아라고 했다. 그러나 학필옹이
이처럼 공공연하게 소리치게 되면 물론 남들은 전부 믿은 수는
없어도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남녀간의
일은 통상 믿는 쪽이 많았다. 각자는 정민군의 이 같은 말을 듣
자 모두 묵묵부답하였다.

그러자 주지약은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정사저, 당신은 제가 장문을 승계하는 것에 대해 불복한다면
얼마든지 분명히 얘기하세요. 당신이 허튼소리로 사부님이 평생
이룬 청예(淸譽)를 더럽히게 되면 무슨 죄를 범하는 줄 아세요?
소매의 선친께서는 성이 주(周)고, 한수에서 배를 모는 뱃사공이
었고, 무공을 전혀 할 줄 모르오. 선모(先母)께서는 설(薛)씨고
조상은 세가(世家)이며, 본시 양양(襄陽) 사람인데 양양성이 함
락된 후 남쪽으로 피난하러 내려갔소. 의지할 곳이 없어서 선친
에게 출가한 것이오. 소매는 무당파 장진인의 추천으로 아미의
문하로 들어오게 된 것이오. 그 전에는 사부님을 만난 적이 없습
니다. 당신은 사부님의 대은을 입고 있으면서 사부님이 돌아가시
니깐 바로 이러한 말을 한다는 건....."

그녀는 목이 메어 그만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말을 잇지 못했
다.

정민군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본문의 장문이 되고 싶겠지만 아직 동문의 공인을 얻지 못
했다. 자기의 신분도 표명되지 않았는데 나의 잘못을 지적하고
무슨 사부님의 청예를 더럽히느니 하면서 주제넘게 떠들고 있는
것이냐? 넌 나에게 벌을 주려 하는 것이냐? 그렇다면 너에게 묻
겠다. 넌 사부님의 분부로 장문으로 승계했으면 당일로 아미에
돌아가야 되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돌아가셨으니 본파의 수많은
사무가 모두 장문인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넌 혼자서
소리없이 대도에 되돌아 온 이유가 무엇이냐?"

"사부님께서는 매우 무거운 짐을 소매에게 안겨 주었소. 그러기
때문에 소매는 대도에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그게 무슨 일이냐? 이곳에는 본파의 동문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으니 말해 보아라."

"이건 본파의 최대 기밀이라 본파의 장문인 외에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는 안 되오."

그러자 정민군은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

"흥, 흥! 넌 모든 걸 <장문인> 이 세 글자에 미는구나. 하지만
날 속이지는 못한다. 너에게 묻겠다. 본파와 마교는 불공천하(不
共天下)의 원수지간이다. 본파는 마교의 사손에 수 많은 동문이
희생되었고 마교의 교중도 사부님의 의천검 아래 부지기수로 죽
었다. 사부님이 돌아가신 이유는 바로 그 마교 교주의 일탁(一
托)을 받기 싫어하셨기 때문이다. 사부님의 시신이 미처 굳기도
전에 넌 마교의 그 장이란 소음적(小淫賊)을 살며시 찾으러 돌아
올 수 있겠느냐?"

장무기는 마지막 이 몇 마디를 듣자 그만 몸이 휘청거렸다.

'주낭자가 진정으로 날 찾으러 왔단 말인가?'

이윽고 주지약이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당신..... 당신은 또 허튼소리로......"

그러자 정민군은 큰 소리로 말했다.

"발뺌하려는 거냐? 넌 사람들을 아미로 먼저 돌려 보냈다. 우리
가 너에게 대도에 돌아온 이유를 묻는데 뭣 때문에 꾸물거리고
있는 거냐? 여러 동문들은 예감이 심상치 않아서 너의 뒤를 밟은
것이다. 네가 너의 부친인 고두타에게 소음적의 행방을 물어본
것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네가 객점에 가서 그 소음적을 찾아
간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녀는 말끝마다 소음적, 소음적 하였다. 아무리 장무기의 성격
이 좋다 해도 어찌 울화가 치밀지 않겠는가? 이때 조민은 웃으면
서 그를 놀려 주었다.

정민군이 다시 말했다.

"네가 누굴 찾든지, 누굴 좋아하든지 다른 사람하고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 장이란 소음적은 본파의 철천지 원수다. 어젯밤
우리가 대도를 빠져나올 때 넌 도중에서 뭣 때문에 정이 서린 눈
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냐? 그의 발길이 옮기는 대로 너의 눈빛도
따라 옮겼다. 이건 절대로 널 모함하는 게 아니다. 여기에 있는
동문들도 모두 목격했었다. 그날 광명정에 있을 때도 그러했다.
의천검 같은 예리한 검으로 왜 그를 죽이지 못 했느냐? 그 안에
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다!"

주지약은 울면서 말했다.

"당신은 뭣 때문에 듣기 싫은 말만 해서 날 모욕하는 것이오?"

그러자 정민군은 냉소로 한 번 웃더니 말했다.

"내 말이 듣기 싫으면 너의 소행들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냐? 흥! 방금 넌 그 객점의 주인에게 어떻게 물었느냐?"

그녀는 주지약의 흉내를 내며 말을 했다.

아미파의 대다수 제자들은 모두 사부의 유명대로 주지약을 장문
인으로 받들고 있었다. 그러나 정민군의 그럴싸한 말을 듣게 되
자 모두 마음이 동요되었다.

'사부와 마교는 깊은 원한관계에 있다. 그런데 주사매와 마교의
교주는 보통 관계가 아니다. 만약에 그녀가 본파를 마교에게 팔
아 버리면 큰일이 아니겠는가?'

이윽고 정민군의 말소리가 다시 들렸다.

"주사매, 넌 무당파의 장진인이 사부님 문하에 인입(引入)시켰
지만, 그 마교의 소음적은 바로 무당 장오협의 아들이다. 이 중
간에는 도대체 무슨 괴이한 음모가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목소리를 높여서 다시 말했다.

"사형, 사저, 사제, 사매 여러분. 비록 사부님의 유명은 주사매
를 장문에 접임(接任)시켰소. 그러나 그 어르신네가 원적(圓寂)
한 후 시신도 미처 굳기 전에 본파의 장문인이 즉시 그 마교 교
주를 찾아가서 서로 정을 나눌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
오. 이 일은 본파의 존망흥쇠에 달려 있습니다. 선사께서 만약에
오늘 밤의 일을 알게 되면 그 어르신네는 필시 다른 장문인을 선
택할 것이오. 소매가 보기에는 우리가 필히 선사의 유지를 승계
하여 주사매의 장문 표시인 철지환(鐵指環)을 받아내서 우리가
본파의 장문을 다시 추대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동문 중에 이미 육, 칠 명은 그녀의 뜻을
호응했다.

그러자 주지약이 말했다.

"전 선사의 명을 받들고 본파의 장문을 접임한 것이오. 이 철지
환은 절대로 넘겨줄 수 없소! 전 이 장문의 자리를 정말로 하기
싫습니다. 그러나 사부님에게 맹세를 하였기에 절대로..... 절대
로 그 어르신네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그 장문 철지환은 내놓기 싫어도 내놓아야 한다. 본파의 문규
에는 기사멸조(欺師滅祖), 음사무치(淫邪無恥)를 엄히 금하고 있
다. 넌 이 두 가지의 대계(大戒)를 범했는데 어떻게 문호를 손에
쥐고 있겠느냐?"

조민은 입술을 장무기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주낭자가 몹시 난처하게 되었어요. 당신이 나에게 착한
누님이라고 한 마디 부르면, 내가 즉시 나가서 그녀의 처지를 구
해 주겠어요."

장무기는 이 낭자가 족지다모(足智多謀)한 줄 알기 때문에 필시
주낭자의 곤경을 벗겨줄 묘책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는 자기보다 많이 적었다. 그런데 누나라는 말이 실로 입에
서 나오지 않았다. 마침 주저하고 있을 때 조민이 다시 말했다.

"부르기 싫으면 난 이만 가겠어요."

장무기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불렀
다.

"착한 누님."

그러자 조민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막 몸을 일어서려는 찰나
정자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발각되고 말았다. 이윽고 정민군이
소리쳤다.

"누가 거기서 엿듣고 있는 것이냐?"

갑자기 담 밖에는 기침소리가 몇 번 들려오더니 한 여자의 음성
이 들렸다.

"밤도 깊은데 아미파는 여기서 서성거리며 뭐 하는 것이냐?"

한 차례의 옷자락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정자 밖에
는 이미 두 사람이 많아졌다.

이 두 사람의 얼굴은 달빛을 향하고 있었기에 장무기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은 등이 앞으로 꼬부라진 늙은 부인이었
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바로 금화파파였다. 다른 한 사람은
몸매가 가냘픈 소녀였는데 용모는 괴이하게 추악했다. 바로 은야
왕의 딸이자 장무기의 사촌 누이인 주아(珠兒) 아리(阿離)였다.
장무기는 그녀와 헤어지게 된 후부터 자주 그녀를 생각했었다.
뜻밖에 지금 갑자기 나타난 걸 보게 되자 그녀는 너무나 기뻐서
하마터면 소리를 내어 부를 뻔했다.

정민군은 쌀쌀하게 말했다.

"금화파파, 당신은 뭣 때문에 오셨습니까?"

"너의 사부는 여기 있느냐?"

"선사께서 어제 이미 원적하셨소. 당신은 원(圓) 밖에서 이미
들었으면서 뭣 때문에 또 묻는 것입니까?"

"아니 멸절사태가 이미 원적했다구? 어떻게 죽은 것이냐? 뭣 때
문에 날 기다리지 않는 것이냐? 아유, 아유, 안타깝다, 안타까
워!"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허리를 굽히고 몹시 기침했다. 주아는
살며시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정민군에게 냉소를 보이며 말
했다.

"누가 너희들 말을 엿들었다고 하는 것이냐? 나와 파파가 여기
를 지나는데 네가 재잘재잘하고 말하는 걸 들었다. 난 너의 음성
을 알기 때문에 들어와서 보게 된 것이다. 파파가 너에게 묻지
않느냐? 너의 사부는 어떻게 죽은 것이냐?"

"그게 너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뭣 때문에 너에게 말하겠
느냐?"

금화파파는 길게 숨을 한모금 들여마신 후 천천히 말했다.

"난 평생 사람들과 싸웠지만 유독 너의 사부에게 한 번 패했다.
그러나 그건 무공의 초수가 뒤진 게 아니라, 의천검의 예리함을
막아내지 못한 것 뿐이다. 요 몇 년 동안 난 예리한 검을 찾아서
다시 너의 사부와 고하(高下)를 겨루려 벼르고 있었다. 내가 온
세상을 헤매는 바람에 한 분의 고인(故人)이 보도를 나에게 한
번 빌려 주기로 승낙했다. 내가 듣기로는 아미파의 사람들을 조
정에서 만안사에 감금하였다고 들었다. 그래서 난 너의 사부를
구출해 내어 그녀와 진정한 재주를 겨루려 하였다. 그런데 오늘
만안사에 가 보니 이미 초토가 되어 버렸더군. 아유, 멸절사태,
멸절사태, 하루라도 늦게 죽을 수 없는 것이었냐?"

그러자 정민군이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서 만약 아직도 살아 계셨다면 당신은 또 한 번
패배의 쓰라림을 보았을 것이오!"

갑자기 팍팍팍팍! 네 번의 경쾌한 소리가 지나가자, 정민군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얼굴에 이미 금화파파의 사 장을 연거
푸 얻어맞은 것이다. 그녀와 정민군의 거리는 이 장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다가가서 사 장을 후려치고 다시 물
러나온 것은 마치 귀신같은 행동이었다.

정민군은 화가 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즉시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다가가서 금화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거렁뱅이 같은 늙은이가 정말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금화파파는 마치 그녀의 욕설을 듣지 못한양 그녀의 수중에 있
는 장검도 아랑곳 하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너의 사부는 도대체 어떻게 죽게 된 것이냐?"

말투가 소침되어 있는 것이 마치 몹시 안타까운 것 같았다. 정
민군의 검 끝과 그녀의 흉구와의 거리는 불과 세치 정도밖에 안
되었으나 시종 찌르지는 못했다.

"거렁뱅이 같은 할망구야, 내가 뭣 때문에 말해 줘야 하는 것이
냐?"

금화파파는 긴 한숨을 쉬며 혼자 중얼거렸다.

"멸절사태, 너는 일세(一世)의 영웅이며 무림에서는 뛰어난 인
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단 죽게 되니 제자 중에는 접장문
호(接掌門戶)할 인제는 하나도 없구나!"

이윽고 정현사태가 한 발 다가가더니 합장을 하며 말했다.

"빈니 정현, 파파를 참견합니다. 선사께서 원적하실 때 주지약
주사매가 장문에 접임하라는 유명을 남기셨소. 그러나 본파에는
약간의 동문들이 불복하고 있습니다. 선사께서 이미 원적하셨으
니 파파의 소원도 이루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본파의 장
문은 아직 결정되지 못했기에 파파와는 아무 약속도 할 수 없습
니다. 그러나 아미는 무림의 대파라서 절대로 선사의 위명(威名)
에 먹칠할 수 없습니다. 파파께서 무슨 분부가 있으시면 얼마든
지 말씀하세요. 나중에 분파의 장문이 무림의 규칙대로 당신과
일단락을 짓게 될 것이오."

"존사가 원적할 때 이미 유명을 전해서 계임(繼任)할 장문인을
정해 놓았구나. 그것 참 잘됐다. 어느 분이지?"

말투는 정민군과 말할 때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러자 주
지약이 다가가서 인사하며 말했다.

"아미파의 제 사대 장문인 주지약, 파파에게 인사 드립니다."

정민군이 큰 소리로 말했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본파의 제 사대 장문인이라고 자칭하는구
나!"

주아가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분 주 언니는 너무나 좋은 사람입니다. 내가 서역에 있을 때
주언니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녀가 장문이 될 자격이
없다면 너는 자격이 있단 말이냐? 또다시 파파의 면전에서 방자
하게 굴면 너의 따귀를 몇 번 더 때려줄 것이다!"

정민군은 대노하였다. 획 하고 일검을 주아의 분심(分心)으로
찔러 댔다. 주아는 몸을 비틀어서 피하며 장을 내밀어 정민군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녀의 이 신법은 금화파파와 똑같았으나 출수
하는 신속성은 한참 뒤떨어졌다. 정민군은 얼른 고개를 숙여서
피했다. 그녀의 일검도 주아를 적중하지 못했다.

금화파파는 웃으며 말했다.

"주아야, 내가 그렇게 여러 번 가르쳐 주었는데 아직도 이 쉬운
일초를 터득하지 못했느냐. 자세히 보거라."

오른손을 휘둘러서 정민군의 왼뺨에 일장을 후려치고, 다시 손
을 되돌려서 그녀의 오른뺨을 후려쳤다. 바로 또 왼뺨을 후려치
고 나서, 손을 되돌려 오른뺨을 후려쳤다. 이 사장의 단락(段落)
이 분명하여 사람들도 모두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정민군
의 온몸은 큰 힘이 감싸고 있는 것 같아서 사지를 움직일 수 없
었다. 다행히 금화파파의 손에는 경력을 운용하지 않아서 그녀는
중상을 면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주아는 웃으며 말했다.

"파파, 이제 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같은 내경(內
勁)은 없습니다. 제가 한 번 더 해보겠습니다."

정민군은 여전히 금화파파의 내력에 눌려 있었다. 주아의 일장
이 다시 얼굴을 후려쳐 오는 걸 보자, 화가 치밀어서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갑자기 주지약이 재빨리 다가가더니 왼손을 뻗어서 주아의 일장
을 막아내며 말했다.

"언니, 멈추시오!"

이윽고 고개를 돌려서 금화파파에게 말했다.

"본파 문호의 일은 외부인이 간섭할 수 없습니다. 소녀는 선사
의 유명을 받들고 있습니다. 비록 재주는 뛰어나지 못할지라도
외부인이 본파 문인을 모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금화파파는 웃으며 말했다.

"좋다, 좋다, 좋다!"

갑자기 쌍장을 일제히 출수했다. 일장은 주지약의 앞가슴을 눌
렀고, 일장은 그녀의 후심(後心)을 누르고 있었다. 쌍장이 누르
고 있는 곳은 모두 치명적이 대혈(大穴)이었다.

이윽고 금화파파는 엄숙하게 말했다.

"주낭자, 당신 같은 장문인은 정말 드물고 보잘것도 없구료. 어
째서 존사는 아미파의 장문이란 중임을 당신 같은 연약한 작은
낭자에게 넘겨 주었소?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허튼소리 하고 있
는 것 같구료."

주지약은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했다.

'지금 그녀의 손에서 내경만 토해 내면 내 심맥은 바로 진단(震
斷)되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어찌 사부님의 위명에 먹칠할
수 있겠느냐?'

막상 사부를 생각하지 즉시 용기가 났다. 이윽고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건 선사께서 친히 나의 손에 끼어 준 아미파 장문의 철지환
이요. 그런데 어찌 거짓이 있겠소?"

금화파파는 웃으며 말했다.

"방금 너의 사저가, 아미는 무림대파라고 한 말은 옳은 것 같
다. 그러나 네가 지니고 있는 재주로 어떻게 무림대파의 장문인
이 될 수 있느냐?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얌전히 내 분부를 듣
는 게 좋을 것 같다."

"금화파파, 비록 선사께서는 원적하셨지만 아미파가 이대로 끝
나는 건 아닙니다. 주지약은 비록 나이가 어리고 연약한 여자지
만 중임을 맡고 있는 이상 생사 같은 건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습
니다!"

장무기는 몹시 안절부절했다. 금화파파가 노해서 그녀의 생명을
다칠까봐 막 나가서 구출해 내려는 찰나, 조민은 그의 속셈을 간
파했다. 얼른 그의 오른팔을 잡고 살짝 한 번 흔들었다. 서두르
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이윽고 금화파파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역시 멸절사태가 사람을 잘 골랐구나. 넌 비록 무공은 약하나
성격은 완강하구나. 음, 됐다. 됐어! 무공의 부족함은 연마해서
보충할 수 있다. 강산은 쉽게 바꿀 수 있어도 본성은 고치기 힘
든 법이니까."

사실 주지약은 무서워서 정신이 없었다. 단지 사부가 죽기 직전
에 중임을 부탁한 걸 생각해서 억지로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아미파의 동문들은 주지약을 모두 멸시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
녀의 행동을 보게 되자 모두 탄복하는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때
정현이 장검을 한 번 휘두르며 호루라기를 몇 번 불자, 아미파의
제자들은 갑자기 흩어지면서 각자 병기를 뽑아 들고 정자를 겹겹
으로 포위했다.

금화파파는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러느냐?"

정현이 말했다.

"파파는 아미의 장문을 위협하는 저의가 무엇이오?"

금화파파는 기침을 몇 번 하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떼거지로 덤벼들 작정이냐? 내가 보기에는 열배가 더
많아도 아무 소용없게 느껴지는구나."

갑자기 주지약을 놓아주고 신형을 흔들더니 곧바로 정현앞에 다
가왔다. 그러더니 두 손가락을 뻗어서 그녀의 두 눈을 공격했다.
그러자 정현은 감히 검을 돌려서 그녀의 양 팔을 베려 했다. 순
간 윽 하는 소리가 나더니 옆에 있던 동문사매 하나가 쓰러졌다.
금화파파는 정현을 공격하면서 왼발로 아미의 여제자 한 명의 허
리에 있는 혈도를 걷어 찬 것이다.

그녀는 정자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큰 소매자락을 펄럭이면서
간간히 기침소리가 몇 번 들리곤 했다. 아미파 문인들은 일제히
장검을 휘둘렀으나 그녀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했다. 그러나 남녀
제자는 이미 일곱명이나 혈도에 적중되어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타혈수법(打穴手法)이 몹시 괴이해서 적중된 사람들은 모두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일시에 폐원에는 비명소리가 여기 저기
나면서 듣기에 소름이 끼쳤다.

금화파파는 손뼉을 한 번 치더니 정자 안으로 돌아가서 말했다.

"주낭자, 너희 아미파의 무공이 금화파파와 비교하면 어떠하다
고 생각하느냐?"

"본파의 무공이 당연히 파파보다는 높지요. 왕년에 파파는 선사
의 검 아래 패한 걸 잊으셨습니까?"

금화파파는 노하여 말했다.

"멸절 늙은이에게 패한 건 단지 보검이 예리했기 때문이다!"

"파파는 솔직히 말해 주세요. 만약에 선사와 파파가 맨손으로
겨루었다면 승부는 어떻게 됐을 겁니까?"

금화파파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모르겠다. 나와 존사 두 사람 중에 도대체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 걸 알기 위해서 오늘 대도에 온 것이다. 아하, 멸절사태가
원적하였으니 무림에는 고인을 한 분 잃은 것이다. 아미파도 지
금부터는 덩달아 쇠약해졌군."

일곱명의 아미 제자들은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정현
등 나이 많은 제자들이 그들에게 힘껏 추혈과궁(推穴過宮)했으나
전혀 효력이 없었다. 아마 금화파파 본인만이 풀어줄 수 있는 것
같았다.

장무기는 왕년에 금화파파에게 상한 사람들을 많이 치료해 준
적이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노파의 악랄한 수법을 잘 알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나가서 구해 주고 싶지만 마음을 고쳐 먹
었다.

'내가 주낭자를 도와주면, 주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내 사촌
누이는 나에게 잘 대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골육지친(骨肉之親)
이 아니더냐. 그런데 내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윽고 금화파파의 말소리가 들렸다.

"주낭자, 굴복 하겠느냐?"

"본파의 무공은 바다처럼 깊기 때문에 속단할 수 없습니다. 우
리는 아직 젊기 때문에 파파의 무공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나중
에 진전하게 되면 그때는 어떨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자 금화파파는 웃으며 말했다.

"아주 묘하다. 아주 묘해. 금화파파는 이만 작별하겠다. 나중에
너의 무공이 진전되거든 다시 와서 그들의 혈도를 풀어 주겠다."

말을 하면서 주아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려서 떠나려 했다.

주지약은, 이 동문들의 고통이 잠시도 참기 어려운데 금화파파
가 가 버리면 아마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
이 들었다. 그러자 급히 말했다.

"파파, 잠깐 멈추시오. 저의 동문 사저, 사형들을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건 어렵지 않다. 지금부터 금화파파와 나의 이 제자가 가는
곳에는 아미 문인들은 우리를 피해서 다녀라!"

주지약은 잠시 생각을 굴렸다.

'내가 장문직을 맡자마자 바로 강적을 만났구나. 만약에 이 일
을 승낙하게 되면 아미파는 어떻게 무림에서 발디딜 수가 있겠는
가. 그렇게 되면 아미 일파는 바로 내 손에 멸망하는 것이 아니
냐?'

금화파파는 그녀가 망설이고 있는 것을 보자 웃으며 말했다.

"넌 아미파의 위명을 먹칠하기 싫으면 그만 두거라. 대신 너의
의천검을 나에게 한 번 빌려주면, 너의 동문들을 풀어줄 것이
다."

"본파의 사도들은 조정을 간계에 빠져서 고탑에 감금 되었는데,
어찌 의천검이 아직도 우리의 수중에 있겠습니까?"

금화파파는 주지약의 이같은 말을 듣자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스쳐갔다. 갑자기 무서운 소리로 말했다.

"네가 아미파의 명성을 보전하려면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지 못
한다.....!"

말을 하면서 품안에서 환약 한 알을 꺼내더니 다시 말했다.

"이건 단장렬심(斷腸裂心)하는 독약이다. 네가 먹는다면 내가
사람을 구하겠다."

주지약은 떨리는 손으로 독약을 받아 들였다. 그러자 정현이 소
리쳤다.

"주사매, 절대로 먹지 마라!"

장무기는 정세가 위급한 것을 보자 다시 나가려 하는데, 조민이
그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바보, 가짜다. 독약이 아니다."

장무기가 멈칫하는 순간 주지약은 환약을 이미 삼켜 버렸다.

정현 등 사람들은 저마다 소리치며 다시 금화파파와 싸우려 했
다.

"좋았어. 의지는 강하구나. 이 독약의 약성은 금방 발작하지 않
는다. 주낭자, 날 따라라! 얌전하게 말 잘 들으면 이 늙은이가
기분 좋아서 너에게 해독약을 주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윽고 그 혈도를 찍힌 아미 문인들에게 다가가서 번갈아가며
몇 번 두드렸다. 그 사람들의 통증은 즉시 멈추었으나 사지가 저
리고 마비되어서 여전히 금방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은 주
지약이 독약을 복용하면서 자기들을 구해주는 걸 보게 되자 몹시
감격하였다.

금화파파는 주지약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얘야, 네가 날 따라오면 파파는 너에게 잘 대해 줄 것이다."

주지약은 미처 대답을 하기 전에 한 줄기 거대한 힘이 자기를
끌어대는 것 같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몸이 위로 솟구쳤다. 그러
자 정현이 소리쳤다.

"주사매!"

다가가서 저지하려 했으나 한 줄기 지풍(指風)이 비스듬히 공격
해 왔다. 이는 주아가 옆에서 발지(發指)하여 기습한 것이다. 정
현은 좌장을 휘둘러서 막았으나 주아의 이 일초는 뜻밖에도 허초
였다. 팍 하고 소리가 나더니 정민군의 얼굴에 일장이 후려쳐졌
다. 이 지동타서(指東打西)의 수법은 바로 금화파파의 무학이다.
이윽고 주아의 깔깔거리는 교소(橋笑)가 들리면서 이미 담을 넘
어 밖으로 나갔다.

장무기가 말했다.

"빨리 쫓아가자."

한 손은 주민을 끌고, 한 손은 소조를 데리고 세 사람은 동시에
월장하였다. 정현 등은 갑자기 풀밭에 세 사람이 숨어 있던 것을
알게 되자 한결같이 경악했다. 금화파파와 장무기의 경공은 얼마
나 고묘(高妙)한지, 아미의 제자들이 담을 넘어오자 여섯 사람은
벌써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장무기 등이 십여 장을 쫓아갔으나 금화파파의 걸음은 전혀 정
지하지 않으면서 소리쳤다.

"아미파의 제자에 감히 금화파파를 쫓아올 담력을 가진 자가 있
다니, 흐흐, 대단하구나."

조민이 말했다.

"본파의 장문을 남겨 놓아라!"

조민의 몸이 한 번 휘청거리더니 수장 앞으로 다가갔다. 의천검
의 검 끝은 이미 금화파파의 등 뒤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일초
는 금정불광(金頂佛光)이며 바로 아미파 전통 검법의 하나였다.
그녀가 만안사에 있을 때 아미파의 여제자 수중에서 배운 것이
다. 단지 멸절사태에게 배운 게 아니라서 정묘한 것은 부족했다.

금화파파는 등 뒤에서 금도(金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듣게
되자, 주지약을 놓아주고 급히 몸을 돌렸다. 조민은 손목을 한
번 흔들더니 다시 천봉경수(千峯競秀) 일초를 전개했다. 금화파
파는 그녀의 수중에 있는 병기가 바로 의천검이란 것을 알아채
자, 놀라워하면서도 기뻐했다. 즉시 손을 뻗어서 뺏으려 했다.

몇 초가 지나자 금화파파는 이미 조민의 몸 앞으로 접근했다.
손가락이 그녀가 검을 쥐고 있는 손목에 닿으려는 찰나, 뜻밖에
조민은 장검을 급회전시키며 곤륜파의 검초인 신타준족(神駝駿
足) 일초를 전개했다.

금화파파는 그녀가 나이가 젊은 여자며 손에는 의천검을 쥐고
있고, 검법 또한 아미파의 검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자, 그녀가
아미파의 제자인 줄 알았다. 금화파파는 멸절사태와 겨루기 위해
서 아미파의 검법을 수년 간 연구했었다. 그러나 이 젊은 낭자가
갑자기 곤륜파의 검법을 전개하자, 금화파파는 하는 수 없이 얼
른땅에서 한 번 뒹굴어야만 그녀의 일검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
나 왼손의 옷자락은 예리한 검날에 스쳐서 큰 조각이 베이고 말
았다.

금화파파는 놀라면서도 화가 치밀었다. 즉시 다시 덮여갔다. 조
민은 자기의 무공이 그녀보다는 훨씬 못한 것을 알고 있기에 의
천검을 휘둘러서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갑자기 공동파 검법을
사용하다가 갑자기 화산파 검법을 사용하고, 갑자기 곤륜파의 대
막비사(大漠飛沙) 일초를 전개하더니 바로 소림파 달마검법의 금
침도겁(金針渡劫) 일초를 전개했다. 매초마다 모두가 각파의 검
법 중에 뛰어나게 우수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매 초마다 매우
거대한 위력을 지녔다. 더구나 의천검의 예리함을 가미하면 금화
파파는 도저히 접근하지 못했다. 주아는 옆에서 보다못해 허리춤
에 있는 장검을 풀어서 금화파파에게 던져 주었다. 조민은 연거
푸 칠, 팔 검을 빠르게 공격했다. 제 구검째가 되자 금화파파는
하는 수 없이 병기로 막아야 했다. 싹! 하고 소리가 나더니 장검
은 두 토막으로 잘라졌다.

금화파파의 안색이 몹시 변하더니 얼른 몸을 옆으로 튕겨서 피
하며 소리쳤다.

"넌 도대체 누구냐?!"

그러자 조민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어째서 도룡도를 뽑지 않는 거죠?"

"만약에 나에게 도룡도가 있다면 네가 어찌 나의 십초를 막아
내겠냐? 날 따라와서 시험해 보겠느냐?"

"당신이 도룡도를 얻게 되면 오히려 잘된 일이오. 난 대도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칼을 얻은 다음에 다시 도전하시
오!"

"고개를 나에게 돌려라. 그래야만 널 똑똑히 볼 수 있지 않느
냐?"

그러자 조민은 몸을 비스듬히 돌려서 혀를 내밀고 왼쪽 눈을 감
고, 얼굴의 근육을 실룩거리면서 그녀에게 괴상한 얼굴을 해 보
였다. 금화파파는 몹시 화를 냈다. 이윽고 땅에다 침을 한 번 뱉
더니 단검을 버리고 주아와 주지약을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떠났
다.

그러자 장무기가 조민에게 말했다.

"우리 다시 쫓아갑시다."

"서둘지 말고 날 따라 오세요. 당신의 주낭자는 무사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도룡도라고 말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오?"

"아까 그 할머니가 폐원에서 말하길, 그녀는 온 세상을 헤매다
가 결국 한 분의 고인에게 보도를 빌려서 멸절사태의 의천검과
겨루게 됐다고 하지 않았나요? <의천불출, 수여쟁봉> 즉, 의천검
과 예리함을 겨루려면 오직 도룡도밖에 없소. 그렇다면 그녀는
당신의 의부인 사 노선배에게 도룡도를 빌리게 되었단 말인가요?
그러나 그녀의 손에는 보도가 없어서 나보고 그녀를 따라와 시험
하라 했어요. 마치 그녀는 이미 도룡도의 소재를 알았는데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같았어요."

"그것 이상한 일이군....."

"내 생각으로는 그녀가 바다로 나가서 칼을 찾으러 갈 것 같소.
우리는 필히 한 발 앞서야 하오. 그래야만 두 눈이 이미 장님이
되고 마음이 착하신 사 노선배님이 이 악독한 할머니에게 농락당
하지 않을 것이오!"

장무기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자, 가슴의 뜨거운 피가 위로
솟구쳤다. 그러자 급히 말했다.

"그렇소, 그렇소!"

장무기가 조민이 도룡도를 빌리러 가자고 할 때 승낙한 것은,
단지 대장부가 일구이언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주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지금은 금화파파가 의부를 찾아가서 농락한다는 것
을 생각하자 날개라도 있으면 얼른 날아가서 구해주고 싶은 심정
이었다.

이윽고 조민은 두 사람을 데리고 왕부의 앞으로 왔다. 부문(府
門) 앞에 있는 위사(衛士)에게 한참 동안 뭔가 분부했다. 그 위
사는 연거푸 대답했다. 얼마 후 아홉 필의 준마를 끌고 나오면서
금은이 담긴 큰 보따리 하나를 갖고 나왔다. 조민과 장무기, 소
조 세 사람은 세 필의 말을 타고, 나머지 여섯 필은 뒤에 따라오
게 하더니 교대로 갈아타면서 동쪽으로 질주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아홉 필의 말은 모두 지쳐서 움직이지 못
할 정도였다. 그러자 조민은 지방관(地方官)에게 여양왕 이 천하
의 병마를 부릴 수 있는 금패를 보이면서 다시 아홉 필의 말을
교환했다. 당일 심야가 되자 해변가에 당도했다.

조민은 말을 몰아서 현성(顯城)으로 바로 들어갔다. 현관에게는
최고로 견고한 큰배 한 척을 속히 준비하라고 명하였다. 선상에
는 타공(舵工), 수수(水手), 양식, 식수, 병기, 겨울옷 등을 모
두 갖추도록 했다. 이밖에 모든 해선을 즉시 남쪽으로 몰라고 하
고, 해변 오십 리 안에는 다른 선박이 정박하지 못하도록 지시했
다. 여양왕 금패가 가는 곳에 말단 현관들이 어찌 명을 따르지
않겠는가. 조민과 장무기, 소조 세 사람은 현에 있는 관아에서
술을 마시며 기다렸다.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모든 것을 준비
완료하고 현관이 보고했다.

세 사람은 해변으로 갔다. 배를 보더니, 조민은 발을 동동 구르
며 소리쳤다.

"큰일이에요!"

해변에 정박해 있는 해선의 선채는 매우 컸다. 배의 높이는 이
층으로 되어 있고, 뱃머리의 갑판과 왼쪽, 오른쪽 뱃전에는 모두
철포(鐵砲)가 장치되어 있었다. 이는 몽고 해군의 포선이었다.
왕년에 몽고의 대군이 일본을 원정하러 갈 때 뜻밖에 태풍을 만
나서 몽고 해군이 엉망으로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동정(東征)하
는 일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함의 모양은 그
때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이때 배 안에는 양식, 식수 등이 모
두 준비되었고, 더구나 해변에 있는 나머지 배들은 이미 여양왕
금패의 전령에 따라 벌써 남쪽 수십 리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조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는 수 없이 대포 위에다 고기 그물을
여러 개 걸쳐 놓고 배 위에는 십 여 단의 신선한 생선을 갖다 놓
으라고 뱃사공들에게 분부했다. 이는 포선이 오래 되어서 쓸모없
게 되자 어선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위장한 것이다.

조민과 장무기, 소조, 세 사람은 뱃사공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서 유채(油彩)로 얼굴을 노랗게 칠한 다음, 다시 쥐같은 수염
두 개를 그렸다. 세 사람은 배 안에 앉아서 금화파파가 오기만
기다렸다.

조민 군주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과연 해질 무렵이 되자 큰 수
레 한 대가 해변으로 다가왔다. 금화파파가 주아와 주지약을 데
리고 배를 구하러 다가왔다. 선상에 있는 사공들은 이미 조민의
당부를 받아서 여러 번 사양하면서 말하길, 이건 오래된 포선이
어선으로 개장(改裝)한 것이라 고기만 전문적으로 잡는다며 절대
로 손님을 태우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금화파파가 두 덩어리
나 되는 황금을 꺼내서 뱃삯이라고 하자, 선장은 그제서야 마지
못해 승낙했다. 금화파파는 주아, 주지약을 대동하여 배에 올라
가더니, 즉시 돛을 내려서 동쪽으로 가자고 명하였다.

배가 이틀쯤 가자, 장무기와 조민은 배의 밑창에 있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해와 달은 항상 왼쪽의 뱃전에서 떠올랐다. 이
는 배가 남쪽으로 가는 것을 뜻한다. 그 때는 이미 초겨울 날씨
라서 북풍이 몰아쳤다. 돛에 잔뜩 바람을 먹게 되자 배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 장무기와 조민은 여러 번 상의했었다.

"우리 의부는 북극의 빙화도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찾으려
면 필히 북쪽으로 가야하는데, 어찌 반대로 남쪽으로 가는 것이
오?"

조민은 매번 같은 대답을 하였다.

"금화파파에게 필시 무슨 꿍꿍이 속이 있을 거예요. 더구나, 지
금 이 계절에는 남풍이 불지 않기 때문에 북쪽으로 가려 해도 갈
수 없어요."

사흘째 되던 오후였다. 키잡이가 내려와서 조민에게 보고하길,
금화파파는 이 일대의 사정에 매우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오히려
자기보다 더 똑똑히 알고 있다고 했다.

장무기는 갑자기 뇌리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 그렇다! 그녀는 영사도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조민이 물었다.

"영사도라니?!"

"금화파파의 옛집은 영사도에 있소. 그녀의 별세한 남편 이름은
은엽선생이오. 영사도의 금화은엽(金花銀葉)을 당신은 들어보지
못했소?"

그러자 조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나보다 겨우 몇 살 위인데 강호에 있는 일을 정말 많이
알고 있군요."

"명교는 사마외도라 군주 낭자보다야 강호의 일을 많이 알 수밖
에 없죠."

키잡이는 보고한 후 금화파파에게 발각될까봐 얼른 배 뒤쪽으로
돌아갔다.

조민이 웃으며 말했다.

"장교주, 귀찮겠지만 당신은 영사도의 금화은엽이 강호에서 위
세를 떨친 이야기를 이 계집에게 해 주겠습니까?"

그러자 장무기는 웃으며 말했다.

"얘기하자면 부끄러운 일이요. 은엽선생이 어떠한 인물인지 난
전혀 아는 바가 없소. 그러나 그 금화파파란 분은 나와 한 번 적
대관계가 된 적이 있소."

이윽고 자기가 어떻게 해서 호접곡에서 접곡의선 호청우에게 의
술을 배운 것하며, 어떻게 해서 각파의 사람들이 금화파파에게
당해서 접곡으로 온 일하며, 호청우가 자기를 지적해 줘서 사람
들을 치료했다는 일과, 금화파파가 어떻게 해서 멸절사태에게 패
한 일하며, 호청우, 왕난고 부부가 결국은 금화파파의 손에 다시
죽게 되었나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일일이 얘기해 주었다.

그는 호청우의 성격이 몹시 괴팍하였으나 자기에게는 실로 잘
대해 주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 부부의 시체가 나뭇 가지에 높
이 걸려 있는 광경을 생각하자 그만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는 주아가 자기를 사로잡아서 영사도로 데려가서 그녀의 동무
가 되어 달라는 일과, 자기가 그녀의 손등을 한 입 물었다는 일
은 생략했다. 뭣 때문에 생략했는지 자기도 그 영문을 몰랐다.

조민은 소리내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이윽고 점잖은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엔 난 이 할머니가 단지 무공이 뛰어난 고수인 줄만 알았
는데, 그 속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군요. 당신의 얘기를 들어
보면 이 할머니는 매우 상대하기 어려운 것 같은데, 우리는 절대
로 방심해서는 안 되겠죠?"

"군주 낭자는 문무쌍전하시고, 수하에는 많은 기재이능지사(奇
才異能之士)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그까짓 금화파파 하나쯤이
야 식은죽 먹기 아닙니까?"

그러자 조민은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망망대해에서는 나의 수하에 있는 무사들을
소환하지 못해요."

"밥을 짓는 부엌떼기들과 돛을 끄는 사공들은 강호의 일류 고수
라고 할 순 없어도 이류는 될 게 아니오?"

그러자 조민은 멈칫거렸다. 이윽고 깔깔 웃으며 말했다.

"정말 탄복했어요. 장교주의 안력은 정말 놀랍군요."

그녀는 왕부에 돌아가서 금은과 말을 끌고 올 때, 몰래 위사(衛
士)에게 분부해서 한패의 부하들을 해변으로 이동시켜 놓았다.
이 사람들은 쾌마(快馬)로 달려가서 장무기와 소조보다는 반나절
이나 먼저 도착한 것이다. 그녀가 이동시킨 사람들은 모두 반안
사의 일전에 참가하지 않아서 장무기는 그를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장무기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조민은 그의 말을 듣자 이미 그에게 간파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금화파파의 눈은 더욱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자기편에는 사람이 많고 세력 또한 막강했다. 더구나
무공이 고강한 장무기도 있다. 그녀가 설사 간파해서 싸우게 되
더라도 별로 겁날 것은 없었다. 그녀가 가만히 있는 한 계속 모
른 체하기로 했다.

요 며칠 동안 장무기가 제일 걱정하고 있는 것은 주지약이 금화
파파의 그 환약을 복용했기에 독성이 발작하느냐, 안 하느냐 하
는 것이다. 조민은 그가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걸 보자 그의 속
셈을 눈치챘다. 그러자 사람을 상창(上艙)에 파견해서 차와 물을
가져다 주는 것처럼 가장해서 동정을 살피라고 하였다. 매번 들
어와서 보고할 때는 주낭자에게 전혀 이상이 없다는 말을 하였
다. 이처럼 몇 번 지나자 장무기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선면(船面) 위에서 한 차례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바로 사공이 내려와서 보고했다.

"앞에 육지가 보이는데 할머니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가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조민과 장무기는 창 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수 리 밖에는 나무가
우거진 큰 섬이 있었다. 배는 바람을 잔뜩 먹었기에 곧바로 앞으
로 다가갔다. 잠시 후 섬에 당도했다.

전선(戰船)이 미처 정박하기 전에 갑자기 산등성이에서 큰 소리
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장무기는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이 외
치는 소리가 몹시 귀에 익기 때문이다. 바로 의부인 금모사왕 사
손의 음성이었다. 십여 년을 헤어졌지만 의부의 웅풍(雄風)이 옛
과 다름없는 것을 보자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그러자 얼른 사
다리로 올라가서 선미(船尾) 쪽으로 가더니 소리를 발출한 산등
성을 바라보았다.

이때 네 명의 남자가 병기를 손에 쥐고, 체격이 거대한 사람을
포위해서 공격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맨 손으로 적을 맞이하였
다. 바로 금모사왕 사손이었다. 장무기가 의부를 보니 비록 눈은
장님이고 일 대 사로 싸우고 있었으나 전혀 그들에게 놀리는 감
은 없었다. 그는 의부가 남하고 싸우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
다. 지금 몇 초를 보았지만 매우 기뻤다.

'왕년에 금모사왕이 위진천하한 건 과연 헛소문이 아니구나. 의
부의 무공은 청익복왕보다 한 수 위라서 나의 외할아버지와 비슷
한 것이다.'

그 네 사람의 무공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선미에서 산등성을
올려다보니, 네 사람의 얼굴은 똑똑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누
더기 옷하며 등에 포대(布袋)를 짊어지고 있는 것을 보아서는 개
방의 인물인 것 같았다. 옆에는 다른 세 사람이 진을 치고 있었
다.

이윽고 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도룡도를 내놓아라..... 널 살려주마..... 보도와 너의 목숨을
바꾸는 것이다....."

산간의 가벼운 바람이 그의 말소리를 간간이 끊으면서 전해 왔
다. 이 사람들의 저의는 도룡보도를 강탈하는 것이다.

이윽고 사손이 큰 소리로 웃어대며 말했다.

"도룡도는 나의 신변에 있다. 개방의 더러운 도적들아, 재주가
있으면 뺏어 보아라!"

그는 말을 하면서도 손발의 초수는 전혀 늦추지 않았다.

금화파파의 몸이 한 번 휘청거리더니 이미 물가의 언덕에 올라
갔다. 기침을 몇 번 하면서 말했다.

"개방의 군협(群俠)이 영사도에 광림했으면 나하고 말을 해야
지, 뭣 때문에 영사도의 귀빈에게 귀찮게 구는 것이냐?"

그러자 장무기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 섬은 과연 영사도구나. 금화파파의 말을 들어보면 마치 나
의 의부는 그녀가 모셔온 손님 같구나. 나의 의부는 왕년에 어떠
한 일이 있어도 빙화도를 떠나 중원으로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금화파파의 부탁을 받고 그가 바로 돌아왔을까? 금
화파파는 또 어떻게 의부, 그 어르신네의 소재를 알게 되었을
까?'

마음속에는 삽시간에 수많은 의문이 생겼다.

산등성이에 있는 네 사람은 이 섬의 주인이 당도한 것을 알게
되자 마음이 다급해져서 사손에게 더욱 맹렬하게 공격하였다. 그
러나 이렇게 되면 곧 무학 중의 큰 금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사손은 장님이기 때문에 적의 병기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듣고
방향을 잡아서 적을 응대하는 것이다. 이 네 사람의 출수가 빨라
지자 바람소리가 더욱 커졌다. 사손은 길게 한 번 웃더니 펑 하
고 일권을 한 사람의 앞 가슴에 적중했다. 그 사람은 길게 비명
을 지르며 산등성이에서 밑으로 떨어졌다. 두개골이 깨지면서 뇌
장이 낭자했다.

옆에서 진을 치고 있던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소리쳤다.

"물러서라!"

가볍게 나부끼는 일권을 후려쳤다. 권력은 약유약무(若有若無)
하였다. 이는 사손이 방향을 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과연 주
먹이 사손의 몸 앞에 가까이 똑바로 다가가자 그는 그제서야 발
각되면서 급히 응초(應招)했다. 이미 수족이 양난되어 매우 낭패
하였다. 먼저 싸웠던 세 사람은 물러나고 옆에서 진을 치고 있던
한 노자가 다시 전단(戰團)으로 가입했다. 이 사람은 먼저 그 사
람의 타법과 똑같았다. 그 역시 출장이 가볍고 유연했다. 수초가
지나자 사손은 위험한 처지에 놓여졌다.

금화파파가 소리쳤다.

"계장노(系長老), 정장노(鄭長老), 금모사왕이 눈이 불편한 줄
알면서 그처럼 비겁한 수단을 쓰다니, 강호에 이름있는 영웅이라
할 수 없겠군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 지팡이를 짚고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그녀
의 엉성한 걸음을 보면 마치 산바람이 불기만 하면 밑으로 내동
댕이쳐질 것 같지만, 몸의 이동은 매우 신속했다. 주아가 뒤에
바짝 다가갔으나 오히려 한참 낙후되었다.

장무기만 의부의 안위가 걱정되어서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라갔
다. 조민도 따라 올라오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 노파가 있는 한 사왕에게는 위험이 없을 거예요. 당신은 출
수할 필요 없으니 숨는 게 시급해요."

장무기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주아의 뒤를 따라갔다.

네 사람은 잠깐 사이에 산마루에 도착했다. 사손의 양손 출초는
매우 짧으면서 수비만 하고 공격하지 않았다. 적의 권각(拳脚)이
가까이 공격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그제서야 소금나수(小擒拿
手)로 막아냈다. 이러한 타법은 일시적으론 염려할 것 없지만,
적을 공격해서 승리를 얻으려면 몹시 힘들었다.

장무기가 한 그루의 큰 소나무 밑에서 의부를 바라보니, 얼굴은
주름 투성이고 머리도 거의 모두 하얗게 되었다. 그날 헤어질 때
보다는 훨씬 더 늙었다. 아마 이십여 년 동안 혼자서 황도(荒島)
에 살아서 몹시 고생한 것 같았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마음이
몹시 아팠다. 참다 못해서 그를 대신하여 적을 처치할 생각이 굴
뚝 같았다. 조민은 그의 마음을 알았다.

이윽고 금화파파의 말소리가 들렸다.

"계장노, 당신의 음산장대구식(陰山掌大九式)은 강호에 펼쳤는
데, 뭣 때문에 슬며시 연장초식으로 바꾸는 것이오? 정장노는 더
욱 형편 없구료! 당신은 회풍불류권(廻風拂柳拳)을 몰래 팔궤권
중에 숨겼으니 금모사왕 사대협은 알 도리가 없죠..... 콜록 콜
록....."

사손은 적의 초식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적과 싸울 때는 몹시 손
해였다. 더구나 그 계, 정 두 장노는 몹시 교활해서 출초할 때
일부러 변식하여 그가 알아채지 못하게 했다. 금화파파가 이처럼
허를 일러주게 되자 그는 짐작하게 되었다.

사손은 정장노의 권법이 미처 바뀌기 전에 몸을 타서 훅! 하고
일권을 후려쳐서 마침 정장노가 공격한 일권을 막아냈다. 정장노
는 뒤로 두 발자국 물러나서야 몸을 똑바로 가눌수가 있었다. 계
장노는 옆에서 장풍을 휘두르면서 보호했다. 이는 사손이 추격
(追擊)할 틈을 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장무기가 개방의 두 장노를 바라보니, 그 계장노는 키가 작았고
뚱뚱했다. 얼굴이 블그스름한 것이 마치 도살장의 백정같았다.
그 정장노는 비쩍 말랐으며 얼굴에 채색이 있는 것이 영낙없는
개방 인물이었다. 두 사람의 등에는 모두 여덟개의 포대를 짊어
지고 있었다. 멀리 서 있는 삼십 세 정도의 청년도 개방의 복장
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옷가지는 매우 청결하였다. 등에는 역시
여덟개의 포대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의 나이에 개방의 팔대(袋)
장노가 되었다는 것은 꽤 드문 일이다. 갑자기 그 사람이 입을
열었다.

"금화파파, 당신은 옳게 사손을 도와주지 않았지만 구두(口頭)
로 도와주는 건 치지 않는 겁니까?"

그러자 금화파파는 냉랭하게 말했다.

"각하도 개방 중의 장논가요? 노파가 눈이 어두워서 몰라 뵈었
소."

"소인은 새로 개방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파파는 의당 모를
것이오. 소인의 성은 진(陣)이고, 이름은 우량(友諒)이라고 합니
다."

금화파파는 혼자 중얼거렸다.

"진우량, 진우량, 진우량, 못 들어봤다!"

갑자기 크게 호통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정장노의 왼팔에 사손의
일권이 다시 적중되었다. 그러자 옆에서 관전하는 세 명의 개방
제자들은 다시 병기를 빼앗아 다가가면서 위공(圍攻)하였다. 이
세 사람의 무공은 계, 정 두장노보다는 못해서 오히려 거추장스
러웠다. 그러나 사손은 장님된 후 한번도 남하고 싸우지 않아서
경험이 없었다. 오늘 처음 강적을 만난 것이다. 적들은 권각에다
병기까지 쓰고 있으니 소리가 혼란되어 방향을 분별하지 못했다.
잠깐 사이 어깨에 일권이 적중되었다.

장무기는 정세가 다급해진 것을 보고 막 출수하려는데 조민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금화파파가 구해줄 거예요."

장무기는 잠깐 주춤했다. 금화파파를 바라보니 그녀는 여전히
지팡이를 짚고 있으며 살짝 냉소를 보일 뿐, 다가가서 구해주지
는 않았다. 바로 이때 사손의 왼쪽 다리가 다시 정장노에게 무섭
게 걷어채였다. 사손은 휘청하면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장무기의 수중에는 벌써 일곱개의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다. 이
때 참지 못해서 오른손을 일진(一振)하여 일곱개의 작은 돌을 다
섯 사람에게 나누어서 공격했다. 돌이 미처 그들에게 당도하기
전에 갑자기 검은 빛이 번뜩거리더니 지직 하는 소리가 나면서
세 가지 병기는 즉시 잘라졌고, 다섯 사람 중 네 사람은 일제히
몸통이 잘라지면서 여덟 토막으로 되었다. 여덟 토막의 몸뚱이는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산기슭 밑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정장노만
왼팔이 잘라지면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등에는 장무기가 격출한
돌 두 개가 박혀 있었다. 그 네 개의 잘려진 몸에도 모두 돌이
박혀 있었다. 다만 칼에 먼저 베였고 돌은 나중에 박힌 것이다.

이 갑작스런 변고에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사손의 수중에는 거
므스름한 대도가 한 자루 쥐어져 있었다. 바로 <무림지존>이라고
부르는 도룡보도였다. 그는 칼을 들고 산마루에 서 있었다. 위풍
당당한 것이 마치 전신(戰神) 같았다.

장무기는 어려서부터 이 대도(大刀)를 보아왔다. 그러나 이처럼
예리하고 위맹(威猛)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

금화파파가 수다스럽게 말했다.

"무림지존 보도도룡, 무림지존 보도도룡!"

정장노는 팔이 잘리자 아파서 마치 돼지 멱따는 소리로 크게 소
리지르고 있었다.

진우량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사대협의 개세무공(蓋世武功)엔 정말 탄복했소이다. 이분 정장
노를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소인의 목숨으로 그의 목숨을 대신
하겠습니다. 자, 사대협은 손을 쓰시오."

이러한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이 사람의 의기가
이처럼 심중(深重)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 장무기도 그만 존경
하는 마음이 생겼다.

사손이 말했다.

"진우량, 음, 그래도 넌 호한(好漢)이구나. 좋다! 이 정가란 자
를 데려 가거라."

"소인은 우선 불살지은(不殺之恩)을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개방에는 이미 다섯 사람이 사대협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소인
이 십 년 안에 무공의 진전이 있게 되면 다시 와서 오늘의 원한
을 갚을 것이오."

"노부가 십 년을 더 살 수 있으면 꼭 기다려 주마."

진우량은 포권을 하며 금화파파에게 인사하면서 말했다.

"개방이 귀도(貴島)에 함부로 들어온 것을 사과드립니다."

이윽고 정장노를 끌어안고 산 밑으로 내려갔다.

금화파파는 장무기에게 눈을 부릅뜨고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의 타혈수법(打穴手法)은 대단히 정확했소. 당신은 뭣 때
문에 모두 일곱 개의 돌을 발사했소. 하나는 진우량을, 또 하나
는 날 때리려는 것이오?"

장무기는 그녀가 자기의 저의를 간파한 것을 보고 그저 살짝 웃
기만 했다. 그러자 금화파파는 사나운 소리로 말했다.

"노인장, 당신의 존함은 뭡니까? 사공으로 가장하여 이 노파를
뭣 때문에 따라왔소? 금화파파의 면전에서 잔꾀를 부리다니 그래
도 살고 싶은 것이오?"

장무기는 거짓말하는 데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녀의 물음을 듣
더니 멈칫하면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조민이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거경방은 항상 바다에서 밥을 찾아 먹고 본전없는 장사를
하고 있소. 노파파께서 많은 금을 내놓으셔서 여기까지 모셔온
것 뿐인데 뭐가 잘못 되었소? 이분 형제는 개방이 자기편 사람이
많다는 걸 믿고 남을 못살게 구는 걸 보다 못해서 출수하여 도운
것인데, 뜻밖에도 사대협의 무공이 이처럼 대단한 줄 정말 몰랐
소. 우리가 괜한 일을 한 것 같구료."

그녀는 남자의 음성을 흉내냈으나 듣기에 몹시 귀가 거슬렸다.
그러나 그녀의 화장이 정묘해서 금화파파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사손은 손을 한 번 휘두르며 말했다.

"정말 고맙소. 아하, 금모사왕이 호락평양(虎落平陽)하니까, 오
늘은 반대로 거경방의 도움을 받게 되었구료. 강호와 작별한 지
이십 년이 되니까 무림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나왔구료. 내
가 구태여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었구료."

마지막 몇 마디 할 때는 음성이 의기소침하였다. 이윽고 금화파
파가 말했다.

"사삼가(謝三哥), 난 당신이 남의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 줄 알
기 때문에 출수하지 않았소.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거죠?"

장무기는 그녀가 자기의 의부에게 <세째 오라버니>라는 말을 하
자 약간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의부의 항렬이 세째인 줄 몰랐
다. 더구나 금화파파는 그의 의부보다도 더 늙었다. 이윽고 사손
이 말했다.

"뭘 이상하게 보고 자시고 하겠소. 당신은 이번에 중원으로 돌
아가서 무기의 소식을 들은 적이있소?"

순간 장무기의 가슴은 찡했다. 이윽고 부드러운 손이 그의 손을
힘껏 쥐고 있었다. 이는 조민이 지금 자기가 나가서 상인(相認)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자 금화파파가 말했다.

"없소."

사손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한참 지난 다음에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한부인(韓夫人), 그 무기는 확실히 살아 있는 거요?"

그러자 금화파파는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주아가 갑자기
말했다.

"사대협....."

금화파파는 왼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힘껏 잡으며 눈을 부릅
뜨고 쳐다보았다. 그러자 주아는 더 이상 감히 말을 하지 못했
다. 사손이 다그쳤다.

"은 낭자, 어서 말해 보아라. 너의 파파가 날 속이고 있는 것이
다. 그렇지?"

주아의 얼굴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금화파파는 우장
을 들어 올려서 그녀의 머리 위에다 올려놓았다. 주아가 한 말이
그녀의 비위를 거슬리기만 하면 내력을 토해내서 즉시 그녀의 목
숨을 앗을 심산이다.

"사대협, 우리 파파는 당신을 기만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우
리가 중원에 갔지만 장무기의 소식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금화파파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자, 우장을 즉시 들어 그녀의
뇌문(腦門)에서 떼었다. 그러나 왼손은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잡
고 있었다.

사손이 말했다.

"그럼 너희들은 무슨 소식을 알아 보았느냐? 명교는 어떻게 됐
느냐? 우리의 옛 친구들은 어떻게 됐느냐?"

"모르겠소. 강호의 일은 알아보지도 않았소. 난 단지 내 남편을
해친 두타(頭陀)를 찾아서 복수하려 했소, 또 아미파의 멸절 늙
은이를 찾아서 그 일검을 복수를 하려 했소. 나머지 일은 이 할
망구의 안중에도 없소."

사손은 화를 내며 말했다.

"잘하는구나. 한부인, 당신은 그날 빙화도에서 나에게 어떻게
말했소? 당신은 나의 장오제(張五弟)부부가 내 은신처를 발설하
지 않았기 때문에 무당산에서 사람들에게 강압당해서 자진했다고
하지 않았소? 내 그 무기 아이는 돌봐줄 사람도 없는 고아가 되
어 강호를 떠돌아다니며 남에게 설움을 당할 게 아니오? 얼마나
비참하겠소. 안 그렇소?"

"맞습니다."

"당신은 그가 누구에게 현명패천장 일장을 얻어맞고 밤새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소? 당신은 호접곡에서 직
접 목격했다며, 그가 영사도로 오기를 바랬지만 그는 절대로 오
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소?"

"틀림없는 일이오. 내가 만약에 당신을 속인다면 하늘이 꾸짖고
땅이 꺼질 것이오. 죽은 내 남편도 지하에서 편치 못할 것이오."

사손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은 낭자, 너의 얘기는 어떠하냐?"

"그 당시 전 그에게 영사도로 가자고 권했지만 제 말을 듣지 않
았습니다. 오히려 저의 손등을 물었습니다. 저의 손등에는 아직
도 이빨자국이 남아 있으니 절대로 거짓말은 아닙니다. 전.....
전 그가 몹시 걱정됩니다."

조민은 장무기의 손을 갑자기 힘껏 끌더니 눈을 부라리고 그를
주시했다. 눈빛에는 비웃기도 하고 원망하는 뜻이 서려 있었다.
그러자 장무기는 얼굴을 붉히며 주아가 자기에게 비상한 정의로
대해준 것이 생각났다. 순간 가슴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했다.

갑자기 조민은 장무기의 손을 입가에 끌어가서 그의 손등을 사
납게 물었다. 그러자 장무기의 손등은 즉시 선혈을 내뿜었다. 체
내의 구양신공이 자동적으로 저항하는 힘이 생겨나자, 조민의 입
가는 모두 진파(震破)되어서 덩달아 피를 흘렸다 그러나 두 사람
은 모두 아픔을 참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장무기는 조민을 쳐
다보았으나 그녀가 뭣 때문에 자기를 갑자기 물었는지는 몰랐다.
그녀의 눈은 웃음을 머금고 있으며, 얼굴은 약간 붉히고 있는 것
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입술 위에는 두 가닥의 가짜 수염을 붙였
지만 아리따운 얼굴을 가릴 수는 없었다.

사손이 말했다.

"한부인, 난 무기가 혼자서 떠돌아다니며 고생할까 봐 걱정되어
서, 만리 길을 불사하고 빙화도를 떠나 중원으로 다시 돌아온 것
이오. 당신은 나에게 무기를 탐방하러 간다고 응답하였는데, 어
찌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오?"

장무기 눈에는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의부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중원에 돌아온 것이 모두 자기 때문인 것을 알
았다.

"그날 우리는 약속했죠? 내가 당신을 위해 장무기를 찾아준다면
당신은 도룡도를 나에게 빌려준다고 했소. 사삼가, 노파의 말은
산처럼 무겁소. 당신이 나에게 칼을 빌려 준다면, 당연히 당신을
위해 그 아이의 확실한 소식을 탐방할 것이오."

사손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무기를 먼저 데려오시오. 그럼 칼은 자연히 빌려 줄 것
이오."

"날 믿지 못하는 거요?"

"세상의 일은 예측하기 매우 힘드오. 부모형제처럼 친하게 지내
도 어떤 때는 믿지 못할 때가 있소!"

"그렇다면, 칼을 먼저 빌려줄 수 없다는 거죠?"

"내가 개방의 진우량을 놓아 줬기 때문에 앞으로 영사도는 조용
한 날이 없을 것이오. 게다가 무림에 있는 수많은 원수들이 날
찾으러 오게 될 것이오. 금모사왕은 벌써부터 옛날과는 다르오.
이 도룡도 외에는 의지할 게 없소이다. 흐흐흐....."

그는 갑자기 냉소를 몇 번 터뜨렸다.

"한부인, 아까 그 다섯 사람이 날 포위해서 공격할 때 거경방의
호한 그분까지 미리 알고 수중에 돌을 일곱개 쥐고 있었던 것이
오. 그렇다면 당신은 날 해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소? 당신이
바라는 건 내가 개방에게 죽어서 보도를 어부지리로 얻으려는 것
이죠? 비록 사손의 눈은 멀었지만 마음은 멀지 않았소. 한부인,
한 가지 더 물어 보겠소. 사손이 영사도에 온 일은 몹시 은밀한
데 개방이 어찌 알게 되었소?"

"나도 자세히 알아볼 참이오."

사손은 손가락으로 도룡도를 한 번 튕기더니 장포(長袍)안으로
집어 넣었다.

"당신이 나를 위해 무기를 탐방하는 것은 당신 마음대로 하시
오. 사손은 오직 강호로 다시 들어가서 모두 엎어 버리는 수밖에
없겠구료."

말이 끝나자 하늘을 우러러보며 휘파람을 한 번 불더니, 몸을
위로 솟구쳐 어느새 서쪽 산비탈로 걸어 내려갔다. 그는 매우 신
속하고 민첩한 걸음으로 섬 북쪽에 있는 산봉우리를 향해 곧바로
갔다.

그 산정(山頂)에는 오두막집 하나가 외롭게 서 있었다. 아마 그
는 거기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금화파파는 사손이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개를 돌려 장무
기와 조민에게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썩 꺼져라!"

조민은 장무기의 손을 잡고 즉시 하산하여 배로 돌아갔다. 이윽
고 장무기가 말했다.

"난 의부를 만나러 가겠소!"

"당신 의부가 떠날 때 금화파파의 눈에는 흉악한 빛이 번뜩거렸
는데, 당신은 보지 못했나요?"

"난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소!"

"내가 보기엔 이 섬에는 많은 간사하고 비밀스런 일이 숨겨 있
는 것 같아요. 개방의 사람들이 어떻게 영사도에 오게 되었죠?
금화파파는 어떻게 빙화도를 찾아 갔을까요? 이 중간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아요. 당신이 가서 금화파파를 일장에 죽
이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죠.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는 거예요."

"난 금화파파를 죽일 생각은 없소. 단지 의부께서 날 너무나 보
고 싶어하기 때문이오. 난 즉시 그를 만나러 가겠소."

조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십여 년도 헤어져 있었는데 하루 이틀은 더 기다릴 수 있잖아
요? 장공자, 우리는 금화파파를 방어해야 되겠지만 진우량도 방
어해야 해요."

"그 진우량 말이오? 그 사람은 의리를 중요시하는 대장부가 아
니오?"

"당신은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날 속이는 게 아니
죠?"

장무기는 이상히 여기며 말했다.

"뭣 때문에 당신을 속이겠소? 그 진우량은 정장노의 죽음을 대
신 자처하지 않았소.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오."

그러자 조민은 그를 주시하며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장공자, 당신은 명교의 교주이며 사납고 교만하고 불순한 수많
은 영웅호걸을 통솔해야 하며, 수많은 대사를 도모해야 할 사람
이에요. 그런데 이처럼 쉽게 사람에게 기만당하면 정말 큰일이
아니에요?"

"남에게 기만당하다니?"

"그 진우량은 분명히 사대협을 기만했어요. 당신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어찌 알아채지 못했어요?"

장무기는 펄쩍 뛰었다.

"그가 나의 의부를 기만했단 말이오?"

"당시 사대협께서 도룡도를 한 번 휘둘러 대자 개방의 고수는
네 사람이 죽었고, 한 사람은 부상당했소. 그 진우량의 무공이
제아무리 높아도 도룡도의 일할(一割)은 벗어나지 못해요. 이런
처지에 놓여있을 땐 무릎꿇고 비는 수밖에 없소. 당신도 생각해
보세요. 사대협께서는 자기의 행적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
하고 있으니, 설령 진우량이 절을 삼백번 하더라도 사대협의 마
음을 돌릴 수는 없소. 그러니 인협중의(仁俠重義) 말고 더 좋은
위장 방법이 있겠어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 장무기 손등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자기
의 손수건으로 상처를 감아주었다.

장무기는 그녀가 진우량의 처지를 설명하는 것을 듣고 보니, 과
연 틀린 곳은 없었다. 그러나 당시 진우량의 전혀 거짓없는 표정
을 회상하더니 여전히 반신반의(半信半疑)하였다. 이윽고 조민이
다시 말했다.

"좋아요. 내 당신에게 다시 묻겠소. 그 진우량이 사대협에게 말
을 할 때 그의 양손과 양발은 어떠했어요?"

장무기는 그 때 진우량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의 얼굴과 의
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기에 진우량의 손, 발에는 주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온몸 자세는 눈에 선했다. 다른 사람이 말
하지 않으면 그 역시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조민이 자기
에게 묻자 당시의 정경이 다시 뇌해(腦海)에 새로 펼쳐졌다.

"음, 그 진우량의 오른손은 약간 들어올리고 왼손은 가로 흔들
었다. 그건 <사자박토(獅子搏兎)> 일초다. 그의 양 다리는 음,
맞다 이건 <강마탕두식(降魔湯斗式)>이다. 그건 모두 소림파의
권법이다. 하지만 별로 대단한 초수라 할 수 없소. 그렇다면 그
는 의부에게 사정하는 척하면서 도습하려는 것이란 말이오? 그건
옳지 않은 생각이오. 그 두 가지 초식은 별로 쓸모가 없소."

그러자 조민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공자, 당신은 세상의 민심이 얼마나 험악한지 도무지 아는
게 없구료. 그 진우량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대협을 도습
한다는 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어요. 그 사람의 총명함과 기경
(機驚)함은 실로 일류급이라 할 수 있어요. 만약에 그가 가장한
의기심중한 잔재주가 사대협에게 간파되어 그를 살려주지 않는다
면, 당시 그의 서 있는 위치로 봐서 강마탕두식은 누구를 걷어차
려는 것이죠? 그리고 사자박토 일초는 누구를 잡으려 하는 것이
죠?"

장무기는 마음이 너무 착해서 사람을 대할 때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우량의 계략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막상 조민이 일침을 놓자, 뇌리에는 뭔가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이윽고 식은땀이 나면서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그..... 그의 일각(一脚)은 땅에 누워있는 정장노를 차려했고,
출수하여 잡으려 하는 건 은 낭자였소."

그러자 조민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틀림없어요. 그는 정장노를 발로 걷어차서 사대협 몸 앞으로
날아가게 한 다음, 다시 그 은 낭자를 잡아서 사대협 몸 앞으로
미는 것이오. 이처럼 시간을 약간 벌면 그는 기회가 생겨서 혹
도피해서 목숨은 부지할 줄 모르지 않아요? 비록 사대협이 무공
이 뛰어나고 보도도 들고 있지만, 그래도 이 방법은 성공률이 높
아요. 난 지금까지 생각했지만 여전히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어요. 그 자는 잠깐 사이에 그처럼 임기웅변하
다니 실로 대단한 인물이에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 칭찬을 금치 못했다.

장무기는 생각할수록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 지나서야 말
했다.

"조 낭자, 당신은 한눈에 그의 속셈을 바로 꿰뚫었으니 당신은
그보다 더 대단하구료."

조민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날 빈정대고 있는 거예요? 내 당신에게 분명히 말하겠
는데, 만약 나의 마음 씀씀이가 험악하여 겁난다면 차라리 날 멀
찌감치 피해 있는 게 상책이라 생각해요."

그러자 장무기는 웃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소. 당신이 나에게 많은 계략을 행했기에 난 모
든 일에 방어하고 있소."

조민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의 손등에 독약을 발라
주었는데 어찌 모르고 있는 거예요?"

장무기는 깜짝 놀랐다. 과연 상처 부위는 약간 마비되고 간지러
운 것 같으면서 몹시 이상했다. 얼른 손수건을 찢어 버리고 코에
대고 맡아보더니 그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이구!"

장무기는 얼른 선미(船尾) 쪽으로 달려가서 깨끗한 물로 상처난
곳을 씻었다. 조민은 뒤를 따라가서 웃음을 띄우며 그가 씻는 일
을 도와주었다. 그러자 장무기는 그녀의 어깨를 밀면서 괴로워하
며 말했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오! 뭣 때문에 이처럼 고약한 장난을 하
는 거죠? 남은 아프지 않는 줄 아오?"

조민은 깔깔 대며 웃었다.

"난 당신이 고통당할까 봐 이 방법을 사용한 거예요."

장무기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식식거리며 선창 안으로
돌아가면서 두 눈을 감았다. 조민이 따라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장공자!"

장무기는 자는 척했다. 조민은 다시 두 번을 불렀으나 그는 아
예 코를 골았다. 그러자 조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진작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독약을 발라서 그의 개같은 목
숨을 끊어 버리는 게 훨씬 좋았을걸."

장무기는 눈을 뜨더니 웃으며 말했다.

"나도 당신의 손등을 한 번 물어서 평생 날 잊지 못하게 할 것
이오."

이윽고 그녀의 왼손을 잡고 입에 가져다 대었다.

조민은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밖
으로 달려갔다. 하마터면 소조와 정면 충돌할 뻔했다. 조민은 깜
짝 놀랐다.

'아차, 나와 그의 대화를 이 계집이 다 들었을 것이다. 아유,
창피해!'

그만 얼굴을 붉히며 갑판으로 뛰어갔다. 소조는 장무기에게 다
가가서 말했다.

"공자님, 금화파파와 그 못생긴 낭자는 저쪽으로 지나갔는데,
두 사람은 모두 큰 자루를 하나씩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무슨 수
작을 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섬 북쪽에 있는 그 작은 오두막집으로 갔느냐?"

"아닙니다. 그들 두 사람은 줄곧 북쪽으로 갔으나 산으로 올라
가지 않았습니다. 마치 무엇인가 다투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 금
화파파는 몹시 화가 나있는 것 같았습니다."

장무기는 선미 쪽으로 다가갔다. 멀리 조민이 뱃머리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뿐 몸을 뒤로
돌리지 않았다. 한참 후 태양이 서쪽 바다 밑으로 가라앉자 선창
으로 돌아갔다.

장무기는 저녁을 먹고 나서 조민과 소조에게 말했다.

"난 의부를 살펴보고 올 것이니 당신들은 배에 남아 있으시오.
사람이 많으면 금화파파에게 발각될지 모르니까."

그러자 조민이 말했다.

"그렇다면, 아예 일경(一更)을 더 기다렸다가 날이 완전히 어두
워지면 그 때 가세요."

"알겠소."

그는 의부를 걱정하고 있기에 심혈이 마치 부글부글 끓는 것 같
았다. 이 일경은 정말 기다리기 힘들었다. 마침내 사방이 칠흑처
럼 캄캄해지자, 그는 일어서더니 조민과 소조에게 살짝 웃으며
창문쪽으로 갔다. 그러자 조민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의천검을
풀면서 말했다.

"장공자, 이 검을 지니면서 몸을 방어하세요."

장무기는 깜짝 놀랐다.

"당신이 갖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니오. 웬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료."

"뭘 걱정하는 겁니까?"

"나도 모르겠소. 금화파파의 계략은 예측할 수 없고, 진우량 또
한 귀계다단(鬼計多端)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당신 의부마저 당
신이 그 <무기 아이>란 걸 믿을지 믿지 않을지 모르지 않아
요..... 이 섬은 영사(靈蛇)라 칭하니, 혹 섬에 무슨 무서운 독
물(毒物)이 있을지 모르죠. 더구나....."

그녀는 말을 끝내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장무기가 물었
다.

"더구나 뭡니까?"

조민은 자기 손을 들어올리더니 무는 시늉을 하면서 호호 하고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장무기는 그녀가 자기의 사촌누이인 주아
를 얘기하는 줄 알았다. 이윽고 손을 흔들면서 선창문을 나섰다.
그러자 조민이 소리쳤다.

"받으세요!"

의천검을 던져준 것이다. 장무기는 검을 받아 들면서 가슴이 찡
했다.

'그녀는 의천검까지도 나에게 빌려주면서 날 믿는구나.'

그는 검을 등 뒤에다 꽂은 다음 기를 끌어올리더니 섬 북쪽에
있는 그 산봉우리로 달려갔다. 그는 조민의 말을 기억하면서 풀
속에 독사와 독충이 숨어 있을까 봐 매끄러운 바위만 골라서 발
을 디뎠다. 잠시 후 산봉우리 밑까지 달려갔다. 고개를 들어 바
라보니 산봉우리 위에 있는 그 오두막집은 깜깜하니 전혀 등불이
없었다.

'의부께서 이미 주무셨을까? 아니다. 그 어르신네는 장님이니깐
등불이 필요없을 게다.'

바로 이때, 왼편의 산기슭 쪽에서 말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는 몸을 구부려서 소리나는 쪽으로 갔으나 소리는 또 들리지
않았다.

이때 한차례 삭풍(朔風)이 북쪽에서 불어오자 초목이 바스락거
리며 소리냈다. 그는 바람소리를 타고 질주해 갔다. 그러자 사,
오 장 밖에서 금화파파가 목소리를 낮추어서 말하는 것이 들렸
다.

"아직도 하지 않느냐? 왜 꾸물대는 것이냐!"

주아가 말했다.

"파파, 당신은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이러면..... 이러면 옛
친구에게 죄를 짓는 겁니다. 사대협과 당신은 수십 년의 친구가
아닙니까? 그는 당신을 믿기 때문에 빙화도에서 중원으로 돌아온
게 아닙니까?"

금화파파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가 날 믿는다구? 정말 우스운 얘기군. 그가 날 믿는다면 뭣
때문에 나에게 도룡도를 빌려주지 않는 것이냐? 그가 중원에 돌
아온 건 오로지 의자(義子)를 찾기 위함이다. 나와 무슨 상관 있
느냐?"

어둠 속에서 금화파파의 꼬부라진 몸이 어렴풋이 보였다. 갑자
기 땡 하고 그녀의 몸 앞에서 쇠붙이와 바위가 부딪치는 가벼운
소리가 났다. 잠시 후 다시 이러한 소리가 났다. 장무기는 몹시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발각될까 봐 앞으로 다가
가서 보지는 못했다. 이윽고 주아의 말소리가 들렸다.

"파파, 그의 보도를 뺏으려면 정정당당하게 교전(交戰)하세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만약에 소문이라도 나면 천하의 호
한들이 얼마나 비웃겠습니까? 그 멸절사태는 이미 죽었는데 도룡
도는 또 어디에 사용할 겁니까?"

금화파파는 대단히 화가 났다. 몸을 꼿꼿이 세우면서 사나운 소
리로 말했다.

"이년아! 왕년에 누가 네 부친 창 밑에서 너의 목숨을 구해 주
었느냐? 지금 어른이 됐다고 파파의 분부를 듣지 않는 것이냐?
그 사손은 너와는 아무런 친척 관계도 아닌데 뭣 때문에 그를 감
싸주려 하는 것이냐? 어디 그 연유를 파파에게 말해 보아라!"

그녀의 말은 비록 엄준했으나 목소리는 몹시 낮추었다. 마치 산
정(山頂)에 있는 사손에게 들킬까 봐 겁내는 것 같았다.

주아가 손에 들고 있는 자루를 땅에다 팽개치자 찰랑찰랑한 차
례 소리가 났다. 뒤로 세 걸음을 물러섰다. 그러자 금화파파는
사나운 소리로 말했다.

"꽤 깃털이 많아지니깐 날으려 하는구나, 그렇지?"

"파파, 전 절대로 제 목숨을 구해준 것과 무예를 가르쳐 주신
은혜는 잊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대협께서는 그..... 는 그의 의
부잖아요."

"세상에 너처럼 어리석은 계집도 있구나. 그 장가란 녀석은 서
역에 있는 만장심곡(萬丈深谷) 아래로 떨어졌다는 말을 넌 무열,
무청영에게 직접 듣지 않았느냐? 지금쯤 그 장가란 녀석의 시신
은 모두 재로 화했을 것이다. 넌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구
나."

"파파, 전 도저히 그를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이게 바로 당신
께서 말씀하신 무슨..... 무슨 전세의 원(寃) 뭐가 아닙니까?"

그러자 금화파파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왕년에 그 애는 우리를 따라서 영사도로 오려 하지 않았다. 설
령 너와 부부가 됐다고 하더라도 그가 죽었으면 그만 아니냐? 그
가 일찍 죽은 건 오히려 다행일지 모른다. 너의 이러한 생김새를
보게 되면 어찌 널 사랑하겠느냐? 넌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걸 어떻게 볼 수 있겠느냐?"

이 몇 마디의 말투는 매우 부드러워졌다. 주아는 묵묵부답 하였
다. 아마 대답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자 금화파파는 다시
말했다.

"다른 사람은 얘기할 것도 없다. 우리가 잡아온 그 아미파의 주
낭자만 해도 그처럼 아름다운데, 그 장가란 녀석이 보게 되면 어
찌 마음이 동요되지 않겠느냐? 아니면 그 녀석을 죽일 것이냐?
흥! 흥! 만약에 네가 그 천주만독수를 연마하지 않았다면 너도
절세가인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다 끝났다."

"그는 이미 죽었고, 제 얼굴도 훼손되었으니 더 이상 얘기할 게
또 뭐가 있습니까? 그런 사대협은 여전히 그의 의부입니다. 파
파, 우린 그의 솜털 하나라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파파, 전
이 일만은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일은 모두 파파의 말을 듣겠습
니다."

말을 하면서 주아는 무릎을 꿇고 애걸했다.

장무기는 혼자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명교의 교주로 신임(新任)한 일은 벌써 무림을 진동했는
데 어찌 그녀들은 모르고 있을까? 음, 그렇다 그들 두 사람은 먼
빙화도까지 가서 의부를 맞이해 왔으니 왕복 시일이 많이 걸렸을
것이다. 이번에 대도에 왔으나 오자마자 바로 돌아갔으며, 또 사
람들과 내왕이 없으니 나의 이름에 대해서도 전혀 듣지 못했을
것이다.'

금화파파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좋다, 일어나거라!"

"정말 고맙습니다, 파파."

"단 그의 목숨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도룡도
만은 꼭 탈취해야....."

"그러나....."

금화파파가 그녀의 말을 가로채며 소리쳤다.

"다시 또 이러쿵저러쿵하면 파파는 화낼 것이다!"

손을 휘두르자 땡 하는 소리가 다시 났다. 그녀는 양손을 연거
푸 휘두르며 점점 멀어졌다. 땡땡..... 소리는 끊임없었다. 주아
는 머리를 부둥켜 안고 바위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장무기는 그
녀가 자기에게 일편단심인 걸 보게 되자 몹시 감동되었다. 잠시
후 금화파파는 십여 장 밖에서 소리쳤다.

"갖고 와!"

주아는 하는 수 없이 자루 두 개를 들고 금화파파가 있는 쪽으
로 갔다.

장무기가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가서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정말
너무나 놀라웠다. 세 치 간격으로 칠, 팔촌 길이의 강침(鋼針)이
바위에 꽂혀 있었다. 끝이 매우 뾰족하고 날카로우며, 빛이 번쩍
번쩍 났다. 그는 생각할수록 섬찟했고 울화가 치밀었다. 즉시 손
을 내밀어서 강침을 뽑아 그녀의 음모를 분쇄하려 했지만 마음을
달리 먹었다.

'이 악파(惡婆)가 나의 의부를 사삼가라고 부르는걸 보면, 옛날
에 두 사람의 사이는 보통이 아닌 것이다. 우선 그녀가 의부에게
등을 돌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그녀의 음모를 격파해야겠다.
오늘 하느님이 장무기를 여기에 있게 했으니, 절대로 의부가 손
상을 입게 해서는 안 된다.'

이윽고 무릎을 꿇고 바위 뒤에 앉아서 변화를 조용히 관망하기
로 했다. 갑자기 바람소리에 마치 낙엽이 떨어지는 것처럼 경공
이 고강한 사람이 살며시 다가오는 것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 바
라보니 한 사람이 요리조리 피하면서 다가왔다. 바로 그 개방의
장노인 진우량이었다. 손에는 만도(灣刀)를 쥐고 있었으나 포대
로 칼 빛을 가렸다. 그는 조민이 예상한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 자는 과연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윽고 금화파파가 길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삼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놈이 당신을 찾아왔소!"

장무기는 깜짝 놀랐다. 자기의 행적이 금화파파에게 발각됐는
줄만 생각하였다. 이때 진우량은 길 풀숲 속에 엎드려서 더욱 꼼
짝하지 않았다. 이윽고 장무기는 몸을 몇 번 튕겨서 다시 수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의부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좋다고 생각
되었다. 그래야만 금화파파가 갑자기 간계를 쓰더라도 얼른 구조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쯤 지나자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산정에 있는 오두막집에서
걸어나왔다. 바로 사손이었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하산하더니
금화파파와 수장 떨어진 곳에 다가섰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
다. 그러자 금화파파가 말했다.

"흐흐! 사삼가, 당신은 옛 친구를 경계하면서 외인에게는 경신
(輕信)하는구료. 당신이 낮에 놓아준 그 진우량이 지금 당신을
다시 찾아왔군요."

그러자 사손은 냉랭하게 말했다.

"사손의 일생은 오직 자기 사람들에게 손해보았소. 그 진우량이
날 또 찾아왔다고? 뭣 때문에 왔을까?"

"그처럼 간사하고 교활한 소인을 뭣하러 상대하려 하는 것이죠?
낮에 그의 목숨을 살려줄 때 그의 손발이 어떤 초식을 취했는지
당신은 알고 있소? 그의 두 손은 사자박토의 초식을 취했고, 발
에는 강마탕우식 일초를 취했소. 하하하하!"

사손은 놀랐으나 금화파파의 말일 거짓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자기의 눈이 멀었기 때문에 진우량에게 당했다는 것도 알았다.
이윽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손이 사람에게 기만당한 건 이미 처음 있는 일이 아니오. 그
런 소인배는 강호에 얼마든지 있소. 하나 더 죽이든 덜 죽이든
무슨 차이가 있겠소. 한부인, 당신은 나의 친한 친구라 할 수 있
는데, 그 당시 말해 주지 않고 지금 말해 주는 것은 날 약올리는
건가요?"

여기까지 얘기하더니 갑자기 몸을 솟구쳐서 번개처럼 신속하게
진우량의 몸 앞으로 덮쳐갔다. 진우량은 크게 놀라며 칼을 휘두
르며 후려쳤다. 사손은 왼손을 비틀어서 그의 수중에 있는 만도
를 낚아채면서 팍팍팍! 연거푸 그의 뺨을 세 번 후려쳤다. 오른
손으로 그의 뒷덜미를 잡아서 들어올리며 말했다.

"지금 내가 널 죽이는 건 마치 닭 잡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그
러나 사손은 너에게 미리 말해 둔 게 있다. 그러니 넌 십 년 후
에 다시 날 찾아오너라. 만약에 이 섬에서 나와 다시 부딪치게
되면 당장 네 놈의 목숨을 끊어줄 것이다!"

사손은 손을 휘둘러서 그를 던져 버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진우량의 몸이 떨어지는 곳이 바로 뾰족한 침을 잔뜩 꽂아 놓은
곳이었다. 그의 몸이 떨어져서 침에 찔리기만 하면 금화파파가
밤새도록 설치한 간계가 즉시 발각되는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몸을 날려 다가가더니 지팡이를 뻗어 그의 허리쪽을 한 번 받쳐
그를 다시 수장 밖으로 보냈다. 그리고는 호통을 쳤다.

"나의 영사도에 한 발자국만 더 밟게 되면 내 너의 개방거지를
백 명을 죽일 것이다. 금화파파가 한 말은 항상 지켜왔다. 오늘
너에게 우선 금화(金花) 한 송이를 하사하겠다!"

왼손을 한 번 올리자 노란 빛이 살짝 번뜩거리더니 푹 하는 소
리와 함께 진우량 왼뺨의 협차혈에 적중되었다. 그가 말을 못하
게 한 것이다. 그래야만 기밀 누설을 막을 수 있었다. 진우량은
왼빰을 누르며 급히 산 밑으로 뛰어갔다.

이때 사손과 침진(針陣)의 거리는 불과 수장 정도밖에 안 되어
장무기는 오히려 그의 등 뒤에 있었다. 장무기는 진우량보다 내
공이 훨씬 강했다. 호흡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사손과 금화파파
는 그가 옆에 엎드려 있는 줄도 알아채지 못했다. 금화파파는 몸
을 돌리며 칭찬했다.

"사삼가, 당신은 귀로 눈을 대신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군요. 앞
으로 중진웅풍(重振雄風)하면 다시 강호에서 이십 년이나 종횡무
진할 수 있겠소."

"무기, 그 아이의 확실한 소식만 알게 되면 난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사손에게는 산처럼 많은 혈채(血債)가 있어서 아무리 비
참하게 죽어도 당연한 것이오. 그런데 강호를 종횡무진하다니 그
건 또 무슨 말이오?"

그러자 금화파파는 웃으며 말했다.

"명교의 호교법왕이 사람 몇을 죽인 게 무슨 대수입니까? 사삼
가, 당신의 도룡도를 나에게 한 번만 빌려 주시죠?"

사손은 고개를 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금화파파는 다
시 말했다.

"이곳의 행적은 이미 폭로되었으니 당신은 더 이상 여기서 살면
안 되겠소. 내 다른 은밀한 곳을 찾아줄 것이오. 당신은 거기서
몇 달 동안 기거하고 있으면, 내 도룡도로 아미파의 적을 물리치
고 나서 당신을 위해 장공자의 행방을 전력을 다해서 알아볼 것
이오. 나의 재주로 장공자를 당신 면전에 데려오는 건 그다지 어
려운 일은 아니오."

사손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사삼가, 당신은 아직도 <사대법왕 자백금청(四大法王 紫白金
靑)>, 이 여덟 자를 기억하고 있소? 왕년에 우리가 양교주 수하
에 있을 때 응왕 은이가(殷二哥), 복왕 위사가(韋四哥),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을 보태서 천하를 누비고 다닐 때 누가 감히 우리를
막았소? 오늘날 몸은 비록 늙었지만 웅심(雄心)은 아직 존재하
오. 당신은 자삼노매(紫衫老妹)가 남에게 설움을 당하는 걸 보고
만 있을 건가요?"

장무기는 몹시 놀랐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정녕 그녀가 본교 사대법왕의 우두머리인
자삼용왕(紫衫龍王)이란 말인가? 세상에 이처럼 이상한 일도 있
단 말인가! 그런데 어찌 그녀는 위복왕도 <사가(四哥)>라고 부르
는 것일까?'

이윽고 사손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건 지나간 일이오. 다시 얘기해야 무슨 소용 있겠소. 늙었
소, 여러분은 모두 늙었소!"

"사삼가, 이 십년 동안에 당신의 무공이 크게 진전된 걸 모르고
있었소. 뭣 때문에 또 겸손해 하는 거죠?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소. 내가 보기에는 명교의 사대법왕이 아직 살아있을 때다
시 손을 잡고 후세에 남길 만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되오."

그러자 사손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은 둘째 형님과 위 네째 아우는 지금쯤 모두 살아있지 않을 것
이오. 더구나 위 네째 아우의 몸에 있는 한독은 제거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마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이오."

금화파파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잘못 생각한 것이오. 솔직히 당신에게 말하는데, 백미응
왕과 청익복왕은 지금 모두 광명정 위에 있소."

"그들이 뭣 때문에 다시 광명정에 돌아갔소?"

"이건 주아가 직접 목격한 것이오. 주아는 바로 은이가 오빠의
친손녀죠. 그녀는 부친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녀의 부친이
그를 죽이려 했소. 첫 번째는 내가 구해줬지만, 두 번째는 위사
가 오빠가 구한 것이오. 위사가 오빠가 광명정으로 데려갔지만,
도중에서 내가 살며시 다시 훔쳐온 것이오. 주아야, 네가 육대문
파가 어떻게 광명정을 위공했는지 사삼가에게 얘기해 드려라."

주아는 서역에서 본 일들을 간단명료하게 얘기해 주었다. 그녀
는 광명정에 올라가기 전에 금화파파가 데려왔기에 나중에 광명
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전혀 몰랐다. 사손은 들을수록 초조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느냐?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느냐?"

연거푸 물어보더니 결국은 화를 내며 말했다.

"한부인, 당신은 비록 혼인 문제 때문에 형제들과 불화했으나,
본교가 위험에 처해 있었는데 당신은 어찌 수수방관할 수 있소?
양교주는 당신의 의부가 아니오? 그가 왕년에 어떻게 당신을 대
해 주었는지 모두 잊고 있는 거요? 당신도 보시오. 은 둘째 형님
과 위 네째 아우, 오산인과 오행기 등 사람들은 모두 광명정에
가서 협력하지 않았소!"

그러자 금화파파는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도룡도를 얻을 수 없으면 끝내는 아미파의 멸절 늙은이의
수하대장이오. 설령 광명정에 가더라도 그녀와 싸울 면목이 없는
것이오. 그러니 가봤자 헛걸음밖에 더 하겠소?

두 사람은 묵묵히 마주하고 있었다. 잠시 후 사손이 금화파파에
게 물었다.

"당신은 그날 나의 소재를 어떻게 알았소? 뭣 때문에 숨기려 하
는 거요? 무당파 사람이 얘기해 준 거요?"

"무당파 사람들이 어찌 압니까? 장취산 부부는 자결을 하면서도
당신의 은신처를 말하지 않았는데 무당 문하가 어찌 알겠소? 좋
소, 오늘 모든 걸 다 털어놓겠소. 내가 서역에서 이름이 무열이
란 자와 부딪쳤소. 그는 무삼통의 자손이오. 난 그와 딸아이가
말을 하는 걸 듣고 그들에게 지독한 형벌을 가해서 입을 열게 했
죠."

사손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 무가란 자가 나의 무기 아이를 만났었습니까? 아마, 그는
어린애를 속여가며 비밀을 알아냈을 것이오."

장무기는 이 말을 듣자 몹시 부끄러웠다. 왕년에 자기가 주가장
에서 농락당한 일이 생각났다. 만약에 의부가 그 일로 인해서 간
인(奸人)의 수중에 떨어졌다면, 자기는 만 번 죽더라도 그 죄를
씻지 못할 것이다. 비록 의부의 눈은 멀었지만 그 일을 추리하기
는 마치 직접 목격한 듯 했다. 이윽고 사손이 다시 말하는 것이
들렸다.

"육대파가 명교를 위공했다면 보통 일은 아니오. 우리 교는 도
대체 어떻게 되었소?"

"명교의 흥쇠존망(興衰存亡)은 이 늙은이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
어진 지 오래 되었소. 왕년에 광명정에서 모든 사람이 일제히 나
를 몰아세운 일은 당신은 전부 잊었지만, 이 늙은이는 똑똑히 기
억하고 있소. 그 당시 양교주와 당신만이 나에게 잘 대해 주었
죠. 나도 잊지 않고 있소이다."

"아하, 사사로운 원한은 작은 일이고 교를 보호하는 게 큰 일이
오. 한부인, 당신의 속도 몹시 좁구료."

"당신은 남자 대장부지만 난 도량이 좁고 작은 아녀자예요. 왕
년에 내가 파문출교(破門出敎)할 때 맹세코 명교와는 인연을 끊
기로 했소.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그 호청우가 어떻게 날 외인
으로 취급하겠소. 호청우는 내가 살해했소. 자삼용왕은 벌써부터
명교의 대계(大戒)를 범했소. 그러니 나와 명교는 무슨 관계가
있겠소?"

사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한부인, 난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소. 당신이 도룡도를 빌리려
하는 건 말로는 아미파를 상대한다지만, 실상은 양소와 범요를
상대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오? 당신이 줄곧 잊지 못한 건 광명정
의 비도(秘道)에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난 더욱 빌려
줄 수 없소!"

그러자 금화파파는 기침을 몇 번 하면서 말했다.

"사삼가, 왕년에 당신과 나의 무공 고하(高下)는 어떠했소?"

"사대법왕은 각자 특기가 있소."

"오늘날 당신은 두 눈을 못 쓰게 되었소. 다시 이 늙은이하고
겨룬다면....."

그러자 사손은 앙연히 외쳤다.

"당신은 무력으로 칼을 빼았으려는 거요? 사손은 도룡도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내 눈 몫은 할 것이오!"

그는 숨을 한 모금 길게 마시더니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면서,
실명된 한 쌍의 눈동자를 금화파파에게 조준했다. 위풍당당하였
다.

주아는 겁을 먹어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금화파파는 몸을
구부리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간간이 한, 두 번의 기침을 하
였다. 마치 사손이 손을 뻗기만 하면 당장 그녀를 일도에 두 동
강이 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마치
사손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장무기는 그녀의 배명(排名)이 자기 외조부, 의부와 위복왕보다
높으니 무공도 당연히 한 수 위라는 생각을 하자, 은근히 사손을
걱정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마주보면서 서 있는 거리는 불과 일
장 정도였으나, 누구도 먼저 출수하지 않았다. 얼마가 지난 후
사손이 갑자기 말했다.

"한부인, 오늘 당신이 날 억압하여 꼭 출수하게 하는 건, 우리
사대법왕이 옛날에 결의를 맺은 언약을 위배하는 일이라 사손은
몹시 괴롭소."


"사삼가, 당신의 마음이 약하다는 걸 난 예전에 미처 몰랐소.
무림에 있는 그 수많은 영웅호걸들은 모두 당신이 손수 살해했잖
소!"

그러자 사손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난 부모처자와 원한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어서 다른 일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소. 내 평생 최대의 실수는 바로 칠상권 십
삼초를 연발하여 소림파의 공견신승을 격패한 일이오."

금화파파는 깜짝 놀랐다.

"진정 공견신승이 당신 손에 죽었소? 당신은 언제 그처럼 무서
운 무공을 연성했죠?"

그녀는 사손에게 퍽 자신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두려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겁낼 것 없소! 공견신승은 맞기만 했지 저항은 하지 않았소.
그가 끝없는 불법을 전개했더라면 나 같은 사마외도는 상대도 되
지 않았을 것이오."

금화파파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그럼 그렇지. 이 늙은이는 공견신승보다 못하니 구, 십 권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 늙은이를 요리하게 되겠군요."

사손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갑자기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
다.

'한부인, 옛날 광명정에서 당신은 정말로 나에게 잘 대해 주었
소. 그날 내가 병들어 있을 때 하필이면 안사람도 산후 허약하여
거동이 불편했는데, 당신이 한 달 넘도록 날 정성스럽게 보살펴
준 것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소."

그러자 금화파파는 처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옛날 일들인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구료."

사손은 앙천대소하더니 두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무기는
의부가 자기 때문에 상심하는 것을 보게 되자 참다 못해 나가려
는 찰나, 갑자기 금화파파의 말소리가 다시 들렸다.

"사삼가, 당신의 그 의자 장무기는 이미 죽었는데. 뭣 때문에
그 도룡보도를 지키고 있는 겁니까? 차라리 나에게 빌려 주시
죠?"

사손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날 너무나도 기만하였소. 보도를 탈취하고 싶으면 먼저
날 죽이시오!"

이윽고 지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장포의 앞깃을 찢어내서 금화
파파에게 던져 주었다. 이것은 할포단의(割袍斷義)라고 하는 것
이다.

'내가 지금 나가서 진상을 설명할 때가 됐구나. 그래야만 두 사
람의 의기(義氣)가 상하지 않을 것이다.'

장무기는 이처럼 생각을 했다. 바로 이때 갑자기 왼쪽 멀리 떨
어진 긴 풀숲 사이에서 경미한 숨소리가 몇 번 전해 왔다. 비록
거리가 멀고 숨소리도 몹시 가벼웠으나, 장무기의 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뇌리에 번뜩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금화파파가 몰래 매복시켜 놓은 자가 있었구나! 그렇다면 아직
나타나서는 안 된다.'

이윽고 도풍(刀風)이 획획!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손과 금화
파파의 격전이 시작되었다.

사손은 보도를 휘두르며 마치 흑룡처럼 그녀의 몸 주위를 맴돌
았다. 갑자기 빠르게, 갑자기 느리게 초수를 변화시키는데 마치
귀신 같았다. 금화파파는 보도가 예리한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멀찌감치 그의 몸 옆을 돌기만 했다. 사손에게 간간이 빈틈이 보
일 때마다 금화파파는 서슴없이 공격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보
도를 돌려서 후려치면 금화파파는 얼른 교묘하게 피하곤 했다.
두 사람은 서로 무공을 잘 알기 때문에 일, 이 백 초안에는 승부
가 날 것 같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모두 자기들의 유리한 점을 십
분 발휘하여 상대방을 제압하려고만 했지 초수와 내력을 전혀 생
각지 않았다.

갑자기 획획 두 번의 소리와 함께 노란 빛이 번뜩거리더니, 금
화파파의 두 송이 금화가 발출되었다. 사손이 도룡도를 한 번 돌
리자 두 송이 금화는 모두 보도에 붙어 버렸다. 금화는 순강(純
鋼)으로 주조했고, 겉에는 황금으로 도금한 자성(磁性)을 지녔
다. 그러기에 쇠붙이를 만나는 즉시 붙어 버리는 것이다. 뜻밖에
도 이 도룡도는 다른 모든 암기의 극성(剋星)이었다. 금화파파는
좌우로 여덟 송이 금화를 연발했으나 모두 도룡도에 붙어 버렸
다. 갑자기 금화파파는 기침을 한 번 하더니 한 주먹의 금화를
뿌렸다. 모두 열여섯, 열일곱 송이나 되었다. 그러자 사손은 소
매자락으로 일곱, 여덟 송이를 말아 버리고 나머지는 모두 다시
도룡도에 붙었다.

"한부인, 당신의 호칭이 자삼용왕이기에 이름 자체가 이 보도의
기위(忌緯)를 범한 것이오. 만약 다시 연전(戀전)하게 되면 그대
에게는 불리할 것이오."

그러자 금화파파는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나의 이 살사장(殺獅掌)이 눈먼 사자(獅子)를 먼저 죽여
버릴지도 모르죠."

그리고는 즉시 훗 하며 일장을 후려쳤다. 사손은 어깨를 재빨리
피했으나 발 밑이 갑자기 휘청하였다. 순간 아! 하는 소리가 나
더니 이 일장은 그의 왼쪽 어깨에 적중되었다. 비록 힘이 반이
상은 감소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볍지는 않았다.

장무기는 사손이 일부러 피하지 못하는 척하면서 일장을 얻어
맞는 것을 보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의부는 왼쪽 소매자락에 있는 금화를 뿌리고 다시 도룡도로 천
산만수(千山萬水) 일초만 전개하면, 금화파파는 보도의 예리한
것을 막아내지 못해서 필시 왼쪽으로 더 물러날 것이다. 연거푸
두 번 물러날 때 의부가 내력으로 도룡도에 있는 금화를 발사하
면 금화파파는 막을 힘이 없어서 멀리 피하며 중상을 입을 것이
다.'

과연 노란 빛이 번득거리더니, 사손은 왼쪽 소매자락에 말려 있
는 금화를 뿌렸고 금화파파가 얼른 왼쪽으로 후퇴하는 것이 보였
다. 장무기는 순간적으로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아이구, 큰일났다. 금화파파는 장계취계(將計就計)하는구나!'

사손은 대갈일성(大喝一聲)하며 보도에 붙어 있는 십여 송이의
금화를 재빨리 앞으로 발사했다. 그러자 금화파파는 아이구! 하
며 소리를 한 번 지르더니 다리가 한 번 휘청하면서 뒤로 몇 걸
음 물러났다. 사손은 끊고 맺음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이미 할포
단의한 사이라 전혀 봐주지 않았다. 이윽고 몸을 솟구치더니 보
도를 휘두르며 금화파파에게 후려치며 갔다. 갑자기 주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심하시오. 발 밑에는 뾰족한 침이 있소!"

사손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으나 자세를 거두기에는 이미 때
가 늦었다. 이윽고 획획! 하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십
여 송이의 금화가 일제하 날아왔다. 금화파파는 그의 몸이 공중
에 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게끔 해서 양발이 뾰족한 침에
떨어지도록 할 속셈이다. 사손은 어쩔 수 없이 보도를 휘두르며
금화를 막았다. 갑자기 발 밑에서 탱탱 하는 소리가 몇 번 들리
면서 그의 양발을 착지했으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허리를 굽히고 더듬어보니 사방에 있는 바위에는 모두 칠, 팔 촌
(寸) 길이의 강침이 이미 사람이 돌을 던져서 부러뜨려 놓았다.
그 돌을 던져 강침을 부러뜨린 경세(勁勢)를 들어보니, 바로 낮
에 일곱 개의 돌을 던졌던 그 거경방의 소년이었다. 그 자는 옆
에서 몰래 보고 있는데도 자기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만약에
그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발 밑에 이미 중상을 입고 금화파파
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손은 뇌리에 이러한 생각이
스치자 등에는 식은땀이 한 차례 흘렀다.

그들 두 사람은 서로 고육지책(苦肉之策)을 사용했다. 사손은
어깨에 일장을 얻어 맞았고, 금화파파 몸에도 두 송이 금화가 꽂
혀 있었다. 비록 급소에는 모두 맞지 않았으나 상대방의 경력으
로도 그리 가벼운 상처는 아니었다. 금화파파는 심하게 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장무기가 숨어있는 곳을 향해서 말했다.

"거경방의 녀석아! 넌 뭣 때문에 늙은이의 대사를 그르치게 하
는 것이냐? 어서 이름을 대라!"

장무기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갑자기 노란 빛이 번뜩거리더니
주아가 윽!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가슴에는 세송이 금화가
꽂혀 있었다. 금화파파는 장무기의 무공이 대단한 것을 보게 되
자, 자기가 주아에게 출수하게 되면 그가 필히 막을 것이라는 생
각을 했다. 그래서 그에게 말을 하는 척 하며 손을 되돌려서 금
화를 발출한 것이다. 장무기는 몹시 놀랐다. 얼른 몸을 위로 솟
구치더니 허공에서 금화파파가 발사한 두 송이 금화를 받아 버렸
다. 착지하자마자 주아를 품안에 끌어안았다. 주아는 아직 정신
이 혼미하지 않았다. 수염달린 남자가 자기를 안고 있는 것을 보
자 얼른 손을 내밀어서 반항했다. 그러나 힘을 쓰게 되자 입에서
는 몇 모금의 선혈이 연거푸 쏟아졌다. 그러자 장무기는 손으로
자기 얼굴을 힘껏 몇 번 문지르면서 화장한 것을 지우니 본래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자 주아는 멈칫하면서 소리쳤다.

"아우 오빠! 오빠가....."

"그렇소, 나예요."

장무기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더니, 즉시 그녀의 신봉, 영허,
보랑, 통곡 등 여러 곳의 혈도를 찍어서 그녀의 심맥을 보호해
주었다.

이윽고 사손이 낭랑한 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

"각하께서 두 번씩이나 출수하여 구해주셔서, 사손은 정말 고맙
게 생각합니다."

장무기는 목이 메이며 말했다.

"의.....의..... 당신께서 구태여....."


----- 제 5 권 5 장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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