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밤

의천도룡기 5-5

3학년2반 | 2022.03.05 07:50:29 댓글: 0 조회: 540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3067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5 권


제 6 장 한 배에 탄 네 여인(女人)


바로 이때 갑자기 뒤에서 땡! 땡! 하는 소리가 들려오며 세 사
람이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모두 백포를 들러 입고 있었고,
중간에서 달려오고 있는 자의 키는 매우 컸고 한 편은 여자인 것
을 볼 수 있었다. 세 사람은 달빛을 등지고 서 있어서 얼굴 모습
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 사람의 백포에는 모두 불길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명교 사람임에 틀림 없었다.

세 사람은 모두 두 손을 높이 쳐들고 그들의 손에는 모두 두 자
가 넘는 흑패(黑牌)를 들고 있었다. 그들 중에 키가 큰 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명교의 성화령이다. 호교법왕, 사손은 빨리 나와 무릎을 꿇지
않고 뭘 꾸물거리느냐?"

그의 발음은 정확치 못하고 매우 딱딱하게 들렸다.

장무기는 내심 깜짝 놀랐다.

양교주의 유언에 본교의 성화령은 삼십 일 대 석교주 때부터 이
미 잃어 버렸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 세 사람의 손에 들어 갔으
며, 진짜 성화령인지 아닌지, 또 이들이 본교의 제자들인지 도무
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자 금화파파가 그들의 말에 대답을 했다.

"본인은 이미 파교를 한 지 오래니, 호교법왕이란 네 자는 다시
거론하지 마시오. 당신네들은 누구요? 당신네들은 어디서 왔소?"

"이미 파교를 했다면 어째서 그렇게 꼬치 꼬치 캐묻는 거냐?"

"나 금화파파는 평생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했고,
또한 양교주께서 살아 있을 때도 나한테 존대를 했었는데, 너희
들은 명교에서 무슨 신분이기에 감히 나 금화파파를 이래라 저래
라 하느냐?"

그러자 별안간 세 사람의 몸이 움직이면서 금화파파에게 접근하
여 동시에 그들의 왼손이 금화파파를 내리찍는 것이었다.

금화파파는 재빨리 세 사람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어느새 세 사람은 몸을 움직여 신형(身形)을 변화시켰다. 금화파
파의 지팡이는 허공을 휘두르고 목덜미를 똑같이 세 사람의 오른
손에 붙잡혀 멀리 내팽개쳐졌다.

금화파파의 무공에는 천하에 제일 무서운 세 고수가 위공을 한
다 해도, 단 일초식에 그의 뒷덜미를 잡아 내동댕이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이 세 백포인들의 보법은 매우 교묘하고 배
합도 오묘하여 꼭 한 사람이 팔 여섯 개를 달고 있는 듯했다.

장무기는 자기도 모르게 엇! 하고 외쳤다. 그러나 세 사람의 몸
이 움직이는 사이에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키가 제일 큰 사람은 파란 눈에 털보였고, 또 한 사람은 노란
수염에 코가 매부리코였다. 그러나 여자의 머리카락은 화인(華
人)과 똑같은 검은 색이었으나, 얼굴색은 매우 하얀 것이 거의
백지장과도 같았다. 나이는 약 삼십 세 안팎으로 보였다. 어딘가
괴이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의 얼굴은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음, 알고 보니 이들은 모두 호인(胡人)들이었구나. 그래서 말
하는 것도 책 읽듯이 딱딱하게 들렸었구나.'

털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성화령은 바로 교주나 다름없는데, 사손은 어찌 빨리 나와 무
릎을 꿇지 아니 하는가?"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본교의 제자들이라면 나 사손이 당신
네들을 알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본교의 제자가 아닌 것이니,
성화령과 당신네들은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오!"

털보가 다시 외쳤다.

"명교의 발상지가 도대체 어딘가? 파사국(페르시아)이 아닌가?
그렇지? 내가 바로 파사국의 명교 총단의 유운사(流雲使)이고,
이 두 사람은 묘풍사(妙風使)와 휘월사(輝月使)다. 우리는 총교
주의 명을 받도 파사국에서 중토에 왔네."

사손과 장무기는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무기는 양소가 지은 명교유전중토기(明敎流轉中土記)를 본적
이 있어서 명교가 파사국에서 들어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이 모두 호인임엔 틀림 없고, 거기다 무공과 신법이
모두 이렇게 훌륭하니 거짓말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노란 수염의 묘풍사가 말했다.

"우리 교주께서 중토의 지파 교주가 실종하여 제자들이 서로 잔
혹한살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본교의 세력을 유지하
기 위해 특별히 운(雲), 풍(風), 월(月) 세 특사를 보내 중토의
교무를 정돈하라고 하셨다. 그러니 그분의 호령에 따라 조금도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 말에 장무기는 크게 기뻤다.

'총교주의 호령이라면 정말 잘 됐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 중책을 맡을 필요가 없게 됐으니.'

그러자 사손이 입을 열었다.

"우리 중토의 명교가 파사국에서 전해 온 것은 틀림없으나, 이
미 수백 년을 내려오면서 독립된 하나의 명교가 된 지 오래고 또
한 파사국 총교의 관할을 받아 온 적이 없소. 세 분이 멀리 우리
이 중토에까지 오신 것을 나 사손은 크게 환영하나, 무릎을 꿇으
라 하는 말은 절대로 들을 수 없소!"

유운사 직책의 털보가 갑자기 두 손의 흑패를 서로 부딪치자
쨍!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로 보아 흑패는 금도 아니
고 옥도 아닌 매우 이상한 물체였다.

"이것은 바로 중토 명교의 성화령이다. 전임 서교주가 칠칠맞게
밖에서 잃어버려 우리가 찾아 왔다. 예로부터 성화령을 보면 교
주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는데, 사손은 이래도 명령을 받지 않겠
는가?"

사손이 명교에 입교할 사기엔 성화령을 잃은지 벌써 오래라 그
는 한 번도 성화령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성화령에 대해서
들은 것은 많았다. 또한 경전에도 성화령에 대해 많은 소개가 있
었다. 또 금화파파를 단번에 내팽개친 그들의 무공은 보통 사람
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는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았
다.

"소인 존가(尊駕)의 말을 믿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분부가 있으
신지?"

유운사가 왼손으로 손짓을 하자 묘풍사, 휘월사 셋은 동시에 몸
을 날려 금화파파 옆으로 접근했다. 그러자 금화파파의 금화가
세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 세 사람은 가볍게 몸을 움직여 피하
며, 휘월사가 재빨리 금화파파의 목을 찌르자 금화파파는 당황하
여 지팡이로 그의 손가락을 막으려고 하는 동시에 갑자기 그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어느새 유운사와 묘풍사에게 뒤를
잡혀 공중으로 틀린 것이다. 휘월사가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가
슴에 연속으로 삼 장을 내리쳤다. 그의 삼 장은 별로 무겁게 보
이지는 않았으나 금화파파는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장무기는 내심 이 세 사람의 신법이 별로 특출한 점은 발하지
못했지만, 세 사람의 신법 배합은 매우 오묘하다고 느꼈다. 휘월
사가 앞에서 적을 유인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어느새 신출귀몰하
게 금화파파의 뒤를 잡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무공으로 따지면 금화파파보다는 훨씬 뒤떨어져 보였다. 휘월사
가 내려친 삼 장은 혈도를 친 것은 아니었지만 중토의 점혈 수법
과 매우 흡사한 점이 많았다.

유운사는 금화파파를 사손 앞으로 내던지고 입을 열었다.

"사왕(獅王), 본교의 교규에 누구든 한 번 입교하면 절대로 배
반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 자는 파교를 했으니 본교의
반도가 된 것이니, 당신이 이 여자의 머리를 먼저 잘라라."

사손은 크게 놀라며 당황했다.

"중토 명교에는 그런 교규가 없습니다."

유운사가 냉랭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지금부터 중토 명교는 파사국 총교의 호령에 따라야 한다. 그
리고 파교한 배반자는 언젠가는 화근이 될 것이니 빨리 그녀를
처치하라!"

"명교 법왕이라면 친 남매와 다름없는데, 오늘 금화파파가 아무
리 나한테 무정하게 했기로서니 나 사손은 절대로 그런 불의를
저지를 수 없소!"

"하! 하! 하!"

묘풍사가 크게 웃었다.

"중국 사람들은 왜 이리 시시콜콜하지? 파교한 사람을 죽이지
못하겠다니 이게 무슨 교리야. 정말 이상하군!"

"나 사손은 눈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였지만, 절대로 동교의
친구를 살해하진 않소!"

휘월사가 입을 열었다.

"꼭 당신이 이 배반자를 처치해아겠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우리가 당신을 먼저 죽일 것이다."

"세 분이 중토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이 금모사왕으로 하여금
자삼용왕을 죽이라고 하다니..... 겁을 주기 위해 위엄을 세우려
는 겁니까?"

휘월사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네가 두 눈이 멀었어도 머리는 아직 살아 있구나. 그렇다면 빨
리 이 배반자를 처치해라!"

사손은 목청 높여 크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계곡을 진동하
는 듯했다.

"나 금모사왕은 같은 교의 친구를 죽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
의 철천지 원수라 해도 이미 당신네들한테 붙잡혀 조금도 저항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절대 죽이지 않소!"

장무기는 의부의 이 호통한 말에 내심 갈채를 보내며 앞의 세
사람에게 점점 반감이 우러났다.

그러자 묘풍사가 말했다.

"명교 교도라면 그 누구도 성화령을 교주와 마찬가지로 대하는
데, 네가 감히 명령을 어기려고 하느냐?"

"나 사손은 절대로 명교를 배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오! 우리
명교의 교지는 어디까지나 행선제악하며, 의를 제일 중하게 여기
는 교요. 나 사손의 머리가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이런
졸장부 짓은 하지 않겠소!"

금화파파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사손의 말은 한 마디 한 마
디 모두 듣고 있었다.

장무기는 의부의 생사가 바로 눈앞에 걸린 것을 알고, 주아를
가볍게 땅에 내려놓았다.

이윽고 유운사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명교 교인이라면, 그 누구도 성화령에 불복하는 자는 절대로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나는 호교법왕이오. 교주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 해도 먼저 교
단을 열어 죄를 공표하고 집행할 수 있소."

묘풍사가 히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명교가 파사국에서는 아무 탈도 없이 조용했는데, 중토에 들어
오자 이렇게 귀찮은 규칙이 많이 생겨 나다니....."

세 사람은 동시에 휘파람을 불며 사손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사
손이 도룡도를 휘두르자 그들은 쉽게 사손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
다. 휘월사는 재빨리 달려들어 왼손에 들고 있던 흑패로 사손의
천령혈을 내리치자, 사손의 도룡도와 부딪치며 띵! 하는 매우 괴
이한 소리가 들렸다. 도룡도라 하면 그 어떤 물체도 자를 수 있
는데, 이 성화령은 조금도 파손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유운사는 왼쪽으로 몸을 굴려 그의 흑패로 사손
의 다리를 내리쳤다. 사손이 휘청거리는 사이 묘풍사가 그의 뒤
에 서서 흑패를 내리치려는 찰나, 갑자기 손마디가 풀리며 누구
에겐가 흑패를 빼앗겼다. 그는 크게 놀라 뒤돌아 보니, 한 소년
의 손에 그 성화령이 쥐어져 있는 것이었다. 장무기가 이 성화령
을 빼앗은 신법은 정말 쾌속하고도 오묘의 극치였다.

유운사와 휘월사는 그 광경에 격노하여 장무기를 향해 몸을 날
려 협공했다. 장무기는 몸을 돌려 왼쪽으로 피하는 사이에 그만
등에 휘월사의 흑패에 적중당하고 말했다. 그 성화령은 매우 견
고한 괴이한 물질이라, 그것을 맞은 장무기는 그만 눈앞이 캄캄
해지며 쓰러질 뻔했으나, 다행히 몸을 보호해 주는 구양신공이
위력을 발휘하여 즉시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삼 보를 뛰쳐 나갔
다.

그러자 셋은 재빨리 그를 포위하였다. 장무기는 오른손에 흑패
를 들고 유운사를 향해 공격하는 척하며 신속히 왼손을 뻗어 휘
월사의 성화령을 잡으려고 하는 순간, 뜻밖에도 휘월사가 갑자기
손을 놓자 성화령이 밑에 튕겨지며 장무기의 손목을 내리쳤다.
장무기는 갑자기 손이 마비되어 들고 있던 성화령마저 떨어뜨리
자, 휘월사가 재빨리 채갔다.

장무기는 이미 건곤이위심법을 익히고 거기다 장삼봉에게 태극
권의 오묘함까지 전수받아 지금까지 적수가 없었는데, 뜻밖에도
휘월사라는 여자에게 연속으로 당했다. 두 번째는 다행히 구양신
공의 힘으로 상대를 막아낼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손목
이 벌써 부러졌을 것이 분명했다.

장무기는 크게 놀라 다시는 적과 정면 대결을 못하고, 그의 초
식을 살피기 위해 가만히 서서 그들을 주시했다. 파사국 특사들
도 장무기가 두 번이나 적중당하고도 전혀 상처를 입지 않자 크
게 놀라고 있었다.

묘풍사는 갑자기 머리를 숙이고 장무기를 향해 부딪쳐 왔다. 이
런 타법은 사실 무학의 금기였다. 자신의 제일 중요한 부분을 상
대에게 들이대는 것이다. 장무기는 필시 무슨 함정이 있을 것을
알고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그의 머리가 자기와 가까워질 때
살짝 옆으로 피하자 갑자기 유운사가 몸을 날려 그의 엉덩이로
장무기의 머리를 향해 내려앉는 것이었다. 실로 괴이한 초식이
아닐 수 없었다. 천하의 무학이 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이런 둔탁
한 초식은 본 적이 없었다. 장무기는 다시 재빨리 옆으로 피했는
데, 그만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것은 묘풍사의 팔꿈치에 맞
은 것이었다. 그러나 묘풍사는 구양신공의 탄력에 뒤로 세 발짝
휘청거리더니 다시 뒤로 세 걸음 물러서서 몸을 가누려고 하다가
다시 뒤로 세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파사국의 세 특사는 그만 모두 놀라 안색이 크게 변했다.

휘월사가 다시 두 손에 성화령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유운사
는 갑자기 공중에서 세 번이나 제비넘기를 하며 공격해 왔다. 장
무기는 그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몰라 일단은 피하는 것이
묘수라 생각하고 왼쪽으로 한 발 비켜섰는데, 갑자기 눈앞이 번
쩍거렸는가 싶더니, 그만 어깨에 유운사의 성화령을 적중당하고
말았다.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초식이었다. 조금도 빈틈이 보이지를 않았
다. 분명 유운사의 몸은 공중에서 제비넘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
느새 손을 뻗어 자기를 적중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일격에 장무기는 심한 타격을 받았다. 그 통증은 구양신공으
로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자기가 뒤로 물러서면 의부의 목
숨이 위험한 것을 알고 그는 숨을 몰아쉬고 나서,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려 유운사의 가슴을 향해 장력을 뻗었다.

유운사도 동시에 몸을 날려 성화령으로 막았다. 장무기의 두 손
이 부딪치자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에 뜬 장무기의 몸이 밑
으로 곤두박질하며 겨드랑이에 통증이 왔다. 이미 묘풍사에게 한
발 차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묘풍사
의 몸은 뒤로 튕겨져 나가고, 휘월사의 성화령은 또다시 장무기
의 오른팔을 적중하고 말았다.

사손은 옆에서 듣고 모든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이 소년이 연속으로 당하며 겨우 지탱하고 있는 데도, 원망스럽
게도 자기는 눈이 멀어 그를 도울 수가 없어서 마음만 조급해 하
고 있었다. 만약 자기 자신이 적과 싸운다면 소리를 들어 상대의
검이나 칼을 피하고 막아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돕는데에는
어떻게 적과 자기편을 가려낼 수 있겠는가. 그는 마음이 조급하
고 안타까워 큰 소리로 외쳤다.

"소협, 이 일은 명교의 일이라 소협과는 아무 상관없으니, 빨리
여기를 피하십시오. 이 사손을 도우려고 하는 마음은 절대로 잊
지 않을 것이오!"

"나는..... 나는..... 당신이나 빨리 여기를 피하십시오. 어서
빨리 내 말을 들으십시오!"

그러는 사이에 유운사의 성화령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장무기
가 자기 성화령으로 그와 부딪치자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렸
다. 유운사는 그 진동에 견디지 못하고 성화령이 손에서 벗어나
공중으로 날렸다. 장무기는 몸을 날려 그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찰나, 찍! 소리와 함께 그의 장심이 찢겨져 나가며 등을 휘월사
의 손톱에 할퀴고 말았다. 통증이 스며들며, 그 사이 성화령은
다시 유운사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한 사람씩 비교하면 그들의 무공은 장무기에 비해 보잘것 없지
만, 세 사람이 교묘하게 연결되어 장무기가 한 사람이라도 중상
을 입히지 않는 한 그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때 사손이 대갈일성하며 도룡도를 안고 뛰어들었다.

"소협, 이 도룡도를 쓰시오."

그리고는 뒤로 다시 물러나는 사이에 그만 묘풍사의 일장이 사
손의 등을 적중했다. 그의 장풍은 무형무영하며 소리도 없어 사
손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장무기가 도룡도를 휘두르자 세 사람은 다섯 개의 성화령으로
맞서며 서로 엉켜 도룡도를 빼앗으려고 했다. 세 사람의 성화령
은 도룡도에 걸려 서로 내공으로 대치했다. 장무기는 가벼운 상
처를 많이 입었으나 조금도 그들에게 눌리지 않았다. 내력으로
싸운다면 오히려 파사국의 세 특사는 자기네 약점으로 장무기의
장점을 공격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장무기는 지금 정세로 보아 자신이 세 사람을 제압하기
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그는 외쳐댔다.

"사대협님, 이 파사국 삼사의 무공이 아무리 괴이하다 해도 소
인이 이 자리를 피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서 먼저 여
기를 피하십시오. 이 도룡도는 나중에 꼭 돌려 드릴 것입니다."

파사국 삼사는 그가 진력을 다해 내력을 쏟으면서 평상시와 조
금도 다름없이 말을 하는 것에 내심 크게 놀라고 있었다.

"소협의 존함은 어떻게 됩니까?"

장무기는 지금 절대로 사손에게 사실도래 말할 수 없다고 생각
했다.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손은 장무기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고 파사국 삼사와 결사적으로 싸울 것이
분명했다.

"소인은 증아우라 합니다. 사대협께서는 왜 아직 몸을 피하지
않습니까? 이 도룡도를 돌려 드리지 않을까 하고 염려되어서 그
러십니까?"

"하하하! 증소협, 그런 말씀 마시오. 이 늙은 나이에 소협과 같
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소협,
나의 칠상권으로 저 여자를 칠 것이니, 내가 힘을 쓰려고 할 때
빨리 도룡도를 버리시오."

장무기는 의부의 칠상권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만약 자기가 도
룡도를 손에서 놓는다면 일권에 휘월사를 즉사시킬 수 있는 위력
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파사국 총교와 깊은 원한을
맺게 되는 것이 아닌가. 장무기는 사손이 누누이 얘기하기를, 동
교의 친구를 살해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자기는
총교의 사자를 죽이다니, 그는 절대로 그럴 수가 없었다.

"잠깐!"

하고 외치고 나서 유운사를 향해 말했다.

"잠깐 휴전하는 게 어떻소? 세 분에게 자세히 물어 볼 것이 있
습니다."

유운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무기는 다시 말을 건넸다.

"소인은 사실 명교와 매우 관련이 있는 사람입니다. 세 분께서
성화령을 갖고 계시니 나의 손님이나 다름없습니다. 모든 걸 용
서하시고 우리 동시에 내력을 거두고 싸움을 중지합시다."

유운사는 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장무기는 기뻐하며 내력을 거두고 도룡도를 거두자, 파사국 삼
사도 동시에 내력을 거두었다. 그러나 갑자기 장무기는 가슴에
칼날과 같은 한기가 스며드는 충격을 받았다. 장무기는 재빨리
호흡을 멈추었으나 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죽다니. 내가 죽으면 의부께서도 이들의 손아귀를
빠져 나가지 못해. 주아 동생, 주낭자, 조낭자, 소조, 그리고 원
나라를 무너뜨릴 대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데, 유운사의 성화령이 자기의 천령혈을
향해 내리치는 것이었다. 장무기는 급하게 내력을 모아 조금 전
에 기습당한 옥당혈을 뚫으려고 했으나 그 때는 이미 늦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여자의 외침이 들렸다.

"중토 명교의 사람들이 달려온다!"

그 소리에 유운사는 놀라 쳐들고 있던 손을 멈추었다. 그러는
사이에 한 회색 그림자가 쏜살같이 달려와 장무기 허리에 찬 의
천검을 뽑아 유운사의 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장무기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으나 바로 조민이라는 것을 자세
히 볼 수 있었다. 조민의 이 초식을 바로 곤륜파의 살초인 옥쇄
금강이었다. 그것은 적과 같이 죽겠다는 타법이었다.

유운사는 이 날카로운 일격에 세 사람이 연합하기는커녕 자신의
목숨이 당장 위급한 것을 알고, 황급하게 성화령을 쳐들어 검을
막으며 뒤로 나뒹굴었다. 그는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생각
하며 일어나, 왼쪽 뺨을 만져 보니 피가 흐르며 반쪽 수염이 살
점과 함께 달아나 있었다. 성화령이 기괴한 물질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미 의천검에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장무기가 사손을 만나러 갈 때, 조민은 금화파파의 행동이 괴이
하고 진우량의 행동은 더욱 의심할 점이 많아 몰래 뒤를 미행했
던 것이다.

조민의 의천검이 유운사의 성화령에 부딪쳐 튕겨 나와 자기가
쓴 모자 한쪽이 잘려 나가 그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그녀는 다시 몸을 날려 묘풍사를 향해 공격했다. 그녀의 이번 초
식은 공동파의 절초인 인귀동도였다.

이 초식 또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적과 같이 옥석구분(玉石
俱焚)하자는 것이다. 이런 타법은 매우 잔혹하여 소림이나 아미
와 같은 불문무공에는 이런 초식이 없었다.

묘풍사는 그녀의 무서운 이 공격에 그만 온몸이 싸늘해지며 멍
청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바로 이 찰나 유운사가 쏜살같이 조민
을 뒤에서 끌어 안았다. 조민은 상대에게 붙잡히자 어쩔 줄 몰라
그만 검을 거꾸로 하고 자기의 아랫배를 찌르려고 하는 것이었
다.

이 초식은 정말 더욱 잔혹한 것이었다. 이것은 무당의 천지동수
(天地同壽)라는 초식인데, 장삼봉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은
이정이 기효부가 죽고 난 후 그녀를 위해 복수하기 위해서 양소
의 무공을 자신이 이겨내지 못할 것을 알고, 그와 같이 죽기 위
해 정성을 쏟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 초식은 바로 자신의 뒤
에 바싹 붙은 적을 죽이려고 할 때 자신의 아랫배를 관통한 후
적의 몸을 찌르는 살법이다.

바로 의천검이 조민의 아랫배에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장무기는
혈도를 뚫고 재빨리 손을 뻗어 의천검을 낚아채었다. 그 순간 조
민은 힘껏 뿌리쳐 유운사 품에서 벗어나 재빨리 장무기 손에 있
는 성화령을 빼앗아 금화파파가 포진한 바늘진으로 던져 버렸다.

성화령은 파사국 삼사가 자기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것이
다. 유운사와 휘월사는 장무기나 조민과 더 이상 싸울 여유도 없
었고, 심지어 묘풍사가 어떤 위경에 처해 있는지 알 바도 없이
조민이 던진 쪽을 향해 달려가 줏으려고 했다.

그들은 몇 장을 달려가자 그만 바늘진(針陣) 속으로 뛰어들어갔
다. 앗! 하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휘월사가 그만 예리한 강침을
밟았다. 날은 어둡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그들은 어디에 강침이
있고 성화령이 어디 떨어졌는지 몰라 땅을 더듬으며 성화령을 찾
고 있었다. 그제서야 묘풍사가 꿈에서 깨어난 듯이 정신을 차리
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조민은 조금 전에 장무기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고 덤볐지만, 지금 정신이 들자 그만 겁에 질려
응! 하고 소리내며 장무기의 품 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장무기
는 그녀를 안으며 내심 말을 수 없이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파사
국 삼사가 성화령을 찾고 나면 다시 돌아올 것을 생각하자 그는
마음이 조급했다.

"자, 이제 그만 빨리 여기를 피합시다."

그러면서 도룡도를 사손에게 돌려 주고 중상을 입은 주아를 끌
어안았다.

"사대협님, 지금은 잠시 저들을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렇게 합시다."

사손은 허리를 굽혀 금화파파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장무기는
내심 금화파파가 오늘 이 대난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사손의 덕택이므로, 그녀가 사손에게 크게 감사드려야 할 것이라
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갑자기 사손이 대갈일성하며 금화파파를 향해 주먹
을 내리쳤다.

금화파파는 재빨리 피하며 주아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장무기
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크게 놀라 그들 앞으로 달려갔다.

"한부인, 왜 또 은 낭자를 해치려고 하는 거요?"

하고 사손이 외쳤다.

금화파파는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은 당신 마음이지만, 내가 이 애를
죽이는 것도 내 마음이요. 그러니 상관 마시오!"

장무기가 그들의 말에 끼어들었다.

"내가 여기 있는 한 누구도 함부로 누구를 죽일 수 없습니다."

"존가(尊駕)께서 오늘 남의 일에 너무 끼어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천만에! 절대로 쓸데없는 일에 간섭하는 것이 아닐 거요. 파사
국 삼사가 곧 뒤따라올 텐데, 어서 빨리 여기를 피하지 않고 무
슨 쓸데없는 일을 하려고 합니까!"

흥! 하고 금화파파는 서쪽으로 달아나며, 갑자기 뒤에다 세 개
의 금화를 주아의 뒤통수를 향해 날리는 것이었다. 장무기는 재
빨리 손가락을 뻗어 금화를 튕기자 화살보다 더 위력 있고 날카
롭게 다시 금화파파를 향해 날아갔다.

처음에 장무기가 주아를 안을 때 그만 얼굴에 그렸던 수염이 지
워져 금화파파는 그 때 이미 그의 진짜 얼굴을 보아 내심 이 젊
은 소년에게 어찌 이런 무서운 내력이 있을까 하고 놀란 터라,
그는 다시 날아오는 금화를 감히 받지 못하고 재빨리 땅에 엎드
려 피했다. 찍! 하는 소리와 금화파파의 옷이 세 군데나 찢겨지
며 금화가 날아가자 금화파파는 가슴이 섬찟하여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그만 쏜살같이 달아났다.

장무기가 주아를 끌어안는데, 갑자기 조민이 윽! 하고 외치며
허리를 구부리고 아랫배를 움켜 쥐는 것이 아닌가! 장무기는 깜
짝 놀라 물었다.

"조소저, 왜 그러시오?"

조민의 손에는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조금 전에 그녀가 천지동
수의 초식을 사용할 때 끝내 자기의 아랫배를 조금 찌르게 되었
던 것이다.

"많이 다쳤소?"

그러자 묘풍사의 함성이 들려왔다.

"성화령이 여기 있습니다. 찾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민은 마음이 조급하여 재촉했다.

"저는 상관 말고 빨리 여기를 피하세요."

장무기는 한쪽에 주아를 안고 한쪽에는 조민을 안고 쏜살같이
산 밑으로 달렸다. 사손은 그의 뒤를 따르며 내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소년은 정말 대단하구나! 두 사람을 안고도 여전히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니!'

장무기는 자기 품의 두 소년 중에 누구 하나가 생명을 잃는다
해도 평생의 한을 남기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는 마음이 착잡하
고 무거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두 소녀의 체온은 따뜻하였다.

파사국 삼사는 성화령을 찾아내자 곧바로 장무기의 뒤를 쫓았
다. 그러나 그들의 경공은 장무기나 사손에 비해 훨씬 뒤떨어졌
다.

장무기는 물가에 당도하자 큰 소리로 외쳤다.

"조민 군주의 명령이다! 빨리 배를 띄워라!"

파사국 삼사가 바닷가에 당도할 즈음엔 배는 이미 수십 장이나
떨어져 있었다.

장무기는 조민과 주아를 나란히 선창 안에 눕혔다. 소조는 옆에
서 그를 도와 그들의 옷을 벗기고 상처를 살펴보니, 조민은 아랫
배를 약간 찔려 피를 많이 흘렸으나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주아
는 금화 세 개를 모두 급소에 맞아 살려 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
웠다. 장무기는 두 사람에게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주었다.

주아는 이미 오래 전에 기절하여 혼미상태에 인사불성이었다.
조민은 그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장무기는 아무리 조민
에게 병세를 물어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었다.

사손이 입을 열었다.

"증소협, 나 사손은 세상과 떨어져 살다가 이번에 중토에 다시
돌아와 소협과 같은 의리가 갚은 친구를 사귀어 정말 뜻밖의 기
쁨을 얻게 됐습니다."

장무기는 사손을 일으켜 선창의 의자에 앉히고 무릎을 꿇고 절
하며 울면서 인사를 올렸다.

"의부! 제가 바로 무기입니다. 좀더 일찍 의부를 모시러 오지
못해 의부께서 고생을 더 하시게 했습니다."

사손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고! 네가 지금 무슨 말을.....?"

"제가 바로 장무기입니다."

사손은 할 말을 잊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장무기는 어렸을 때 사손이 자기에게 전수하던 무결을 외웠다.
그것은 모두 빙화도에서 자기가 직접 장무기에게 가르쳐 주었던
무학의 요결이라, 사손은 기쁨과 놀라움이 교차하여 말을 더듬었
다.

"네가..... 정말..... 무기가 틀림없느냐?"

장무기는 일어나 사손을 끌어안으며 그 동안 겪었던 일들을 간
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자기가 명교의 교주가 됐다는 얘기
는 일단 하지 않았다. 그것을 얘기하면 사손이 명교의 직책을 따
져 오히려 자기에게 절을 할 것이 틀림없었다. 장무기는 그것을
피하고 싶었다.

사손은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다.

"하느님, 제 눈을 좀 뜨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갑자기 사공이 외쳤다.

"적선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장무기는 재빨리 뒤로 돌아가 보니, 멀리 한 척의 큰 배가 다섯
개의 돗을 달고 바람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적선은 돛을 많이
날아 쏜살같이 달려오며 점점 접근해 오자, 장무기는 조급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별 수 없어 파사국 삼사가 이 배
로 올라와 그들과 선창에서 싸울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선
창 안이 좁으니 세 사람이 합동 작전을 펼 수 없을 것이라고 생
각했던 것이다.

장무기는 조민과 주아를 한쪽으로 옮겨 놓고 나서 만반의 태세
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선채가 옆으로 기울어지며
바닷물이 배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사공이 황급히 외쳤다.

"포격입니다, 포격!"

그러나 다행히 배에 적중하지는 않았다. 조민은 장무기에게 손
을 흔들며 낮은 소리로 일러주었다.

"우리 배에도 포가 있어요."

그 말에 장무기는 정신을 차리고 갑판으로 뛰어나가 포를 끌어
내게 하고 폭약을 넣고 반격을 개시했다. 조민의 부하들은 비록
무공은 뛰어났지만, 바다에서 포격에 대한 것은 전혀 알지 못해
대포알은 얼마 날아가지 못하고 떨어지며 바닷물만 출렁거렸을
뿐 적선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적선에서는
상대에게도 대포가 있다는 것을 알자 겁을 먹고 너무 가까이 접
근하지는 못했다. 얼마 지나자 적선은 다시 포를 쏘아, 이번에는
뱃머리에 적중하여 곧 큰 불이 붙었다.

장무기가 불을 끄도록 명령하고 나자, 또 위에 있는 선창에서
갑자기 불길이 솟았다. 장무기는 큰 물통으로 물을 끼얹고 들어
가니, 안에는 주지약이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장무기는 물통을
버리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주 낭자, 별일 없습니까?"

주지약은 온 몸이 물에 젖어 매우 조급해 하고 있는 순간 장무
기를 발견하자 무척 반가워했다.

그녀가 움직이자 땡그랑! 소리가 났다. 그녀의 손목과 발목에
모두 금화파파가 쇠사슬을 채워 두었던 것이다. 장무기는 아래로
내려가 의천검을 갖고 와 그것을 모두 잘라 버렸다.

"장교주,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습니까?"

장무기가 대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선체가 기우뚱하자 그녀는 발
을 헛짚으며 그만 장무기의 품 속으로 쓰러졌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이 발갛게 홍조를 띄었다.

장무기와 주지약이 갑판으로 나오자 배에는 이미 큰 불이 붙어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장무기는 조급하여 사방을 둘러보니, 배
왼쪽에 작은 배 하나가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주낭자, 어서 빨리 저 작은 배로 뛰어 내리시오."

이때 소조는 주아를 안고, 사손은 조민을 안고 밑의 선창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작은 배로 뛰어내렸다.

이때 그 배에는 이미 불이 완전히 타올라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
고 있었다. 장무기는 힘껏 노를 저어 적선이 이 작은 배를 발견
하기 전에 빨리 큰 배의 근처에서 멀리 떨어지려고 애썼다. 그러
면 모두 배가 가라앉아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한
참 노를 저어 큰 배와 멀리 떨어지자 갑자기 큰 배에서 요란한
굉음과 배에 있던 화약들이 터져 배가 가라앉고 말았다. 파사국
전함은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서 감시를 하고 있었다. 조민의 부
하들 중에서 수영을 할 줄 아는 부하들은 모두 살기 위해 적선을
향해 수영해 갔으나 모두 적선에서 화살을 쏘아 죽이고 있었다.

장무기와 사손은 조금도 지체하지 못하고 노를 저었다. 육지라
면 몰라도 바다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적선의 대포에 적중
당하지 않는다 해도 파도가 높이 출렁거리기만 해도 그들의 작은
배는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두 사람의 내력이 심후해
별로 피로를 느끼지는 않았다.

날이 밝자 사방이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장무기는 크게 기뻐
하였다.

"이 안개가 우리를 살려 주는군요. 이제 반나절만 지나면 적선
은 절대로 우리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갑자기 광풍이 몰아부치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작은 배는 그만 남쪽으로 흘러가고 있었
다. 그런데 지금은 한참 추운 겨울이라 옷이 모두 젖어 장무기와
사손은 내력이 심후해 참을 수 있으나, 주지약과 소조는 추워서
몸을 떨고 있었다. 그들은 그래도 신발을 벗어 배 안에 들어온
물을 밖으로 퍼냈다.

"무기야, 내가 네 부모와 당시 배를 타고 나올 때는 지금보다
날씨가 더 험악했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나서 그는 하! 하! 하!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당년에는 네 부모와 같이 갔었지만, 오늘은 네가 혼자
여자 넷을 데리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냐? 하! 하! 하!"

주지약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소조는 아무렇지도 않
은 듯이 태연자약했다.

"할아버지, 저는 도련님의 시중을 들어 주는 시녀에요."

조민은 상처를 입고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서 갑자기 입을 열었
다.

"또 다시 그런 엉터리 말씀을 하시면, 내 상처가 다 나은 후 가
만히 두지 않겠어요."

"하! 하! 소녀가 매우 무섭구나. 그런데 네가 어젯밤 모인 세
초식 중에 하나는 곤륜파의 옥쇄금강이고, 하나는 공동파의 인귀
동도였는데, 세 번째는 무슨 초식인지 이 노인네가 들은 것이 별
로 없어 모르겠구나."

조민은 내심 탄복했다.

'과연 금모사왕이군! 그의 이름이 왕년에 세상을 진동했다는 것
이 헛소리는 아니야.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바람소리로 그 두 절
초를 알 수 있다니.....'

"세 번째는 무당파의 천지동수라는 초식입니다. 그것은 근래에
만든 초식이라 영감님이 모르시는 겁니다."

"음! 그런데 어찌 목숨까지 바칠 각오를 한 거지?"

"그.....그건....."

조민은 쑥스러워 말을 잇지 못했으나 끝내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가 계속 주아를 안고 있어서, 나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
니다."

네 사람은 그녀가 자기 심정을 솔직히 말하자 모두 깜짝 놀랐
다. 조민은 몽고 여자이기에 성격이 매우 활달하고 솔직한 것이
다. 또한 지금 이 생사를 모르는 위험 중에서도 솔직히 자기 심
정을 털어놓은 것이다. 장무기는 내심 조민이 원래 자기의 적이
였었는데, 이렇게 자기를 생각하자 크게 감격했다.

비가 그치자 파도도 조용해지고, 그들은 모두 잠이 들어 버렸
다. 약 세 시간이 지나자 사손이 먼저 깨었다. 그는 다섯 명의
청년 남녀의 숨소리와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민과 주아는 상처를 입어 숨소리가 매우 빨랐다. 장무기의 숨
소리는 매우 뚜렷해, 사손은 내심 자기 평생 이렇게 어린 나이에
내력이 심후한 소년은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조의
숨소리는 잠시 빨랐다가 잠시 느려서, 이 소녀가 배운 무공은 매
우 기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손은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그렇다면 이 소녀가 바로....."

그러자 갑자기 주아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장무기야, 왜 나와 영사도로 가지 않는 거지?"

이 외침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는 또 계속 외쳤다.

"나 혼자 섬에서 얼마나 고독했는데, 왜 나와 같이 있기를 싫어
하는 거지? 내가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고 있는데, 당신은 죽어
지하에서 이런 내 마음을 아세요?"

장무기는 그녀의 이마를 만져보니 무척 뜨거웠다. 상처를 입고
열이 올라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은 배엔 약도 없
고 아무것도 없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장무기는 그저 옷자락
을 찢어 물에 적셔 그녀의 이마를 적셔 주었다.

주아는 잠꼬대를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를 죽이지 마세요. 새 엄마는 내가 죽인 것이니
나만 죽이세요."

"주아야, 주아야, 네 아버지가 여기 없으니 무서워하지 마라."

"아버지가 나빠요.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했으면 됐지, 왜
둘째, 세째까지 얻어요? 그런 남자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남자예
요!"

장무기는 깜짝 놀랐다. 그는 조금 전 꿈 속에서 마침 자기가 조
민과 결혼한 후 또다시 주지약을 맞아들이고, 나중에 주아와, 소
조까지도 얻게 된 꿈을 꾸었던 것이다.

"무기를 찾아다니다 당신이 절벽에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
고 정말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증아우라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 사람도 무공이 매우 높고 인품이 훌륭한 사
람이었어요. 저는 그분에게 시집가겠다고 맹세했어요."

조민, 주지약, 소조 세 사람은 모두 주아가 잠꼬대하면서 증아
우라는 이름을 부르자, 그가 바로 장무기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
다.

장무기는 얼굴이 빨개져 어쩔 줄을 몰랐다. 세 소녀의 각기 다
른 시선이 자기를 주시하자, 장무기는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싶
은 심정이었다.

주아는 계속 잠꼬대를 했다.

"그 아우 오빠가 나한테 얘기했어요. '낭자, 내 진실로 당신을
부인으로 맞아들일 것이니, 내가 당신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
지 마시오. 지금부터 누구든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은 가만히 두
지 않을 것이오. 내 전력을 다해 당신을 보호해 줄 것이오.' 무
기 오빠, 이 아우 오빠의 인품은 당신보다 더 훌륭해요. 무기 오
빠, 당시 당신이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지금 후회하지 않
으세요?"

장무기는 처음에 그녀가 자기가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는 것으
로 알고 매우 난처하고 쑥스러웠으나, 듣고 나니 그만 감격스러
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때 안개가 모두 걷혀 옆으로 누운
주아의 몸매가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낮은 소리로 잠꼬대를 했다.

"무기 오빠, 당신은 지금 유명(幽冥)에서 고독하지 않으세요?
나는 파파와 같이 빙화도로 가서 당신의 의부를 모셔오고, 다시
무당산으로 돌아가 당신 부모의 묘에 제사드리고 난 후, 당신이
떨어져 죽은 절벽으로 가서 나도 떨어져 죽어 당신 곁으로 가겠
어요. 그러나 파파가 백살이 지난 후라야 됩니다. 지금은 당신곁
으로 갈 수 없어요. 파파 혼자 외롭게 이 세상에 남겨 둘 수 없
어요. 파파께서 나를 살려 주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내 아버지
에게 살해당했을 거예요. 당신의 의부를 위해 파파를 배반했지
만, 파파는 나를 무척 미워할 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파
파를 좋아하고 위해 드릴 거예요."

그의 이번 잠꼬대는 장무기와 상의하는 말투였다. 그녀는 장무
기가 이미 죽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연신 헛
소리를 하며 잠꼬대를 했다.

다섯 사람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모두 바다를 바라보며 각기 자
기들의 심사를 생각하며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매우 부드러운 노래소리가 바다로 퍼져 나갔다.

----- 오늘을 넘겼으나 내일을 피할 수 없구나. 백세광음에 칠
십고래희라. 한 해 한 해 지나가는 것이 유수와 같구나. -----

이것은 주아가 잠결에 부른 것이었다.

장무기는 그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노래는 광명정에서 성곤
(成崑)에게 길일 막혀 위험에 처해 옴쭉달쭉 할 수 없을 때 소조
가 부른 노래였다. 장무기는 그만 소조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소
조도 자기를 멍청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제 5 권 6 장 끝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5 권


제 7 장 십이(十二) 보수왕(寶樹王)과 성화령(聖火令)


주아는 다시 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엔 완전히
중토의 곡조와는 달랐다. 자세히 들으니, 뜻은 여전히 소조가 부
르던 노래와 비슷했다.

----- 유수와 같이 흘러와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어디서 왔다
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

그녀의 음성은 점점 가늘어지며 끝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
다.

사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 파사국 노래는 한부인이 가르쳐 준 것이야. 이십여 년 전
광명정에서 한 번 들은 적이 있었지. 그런데 한부인이 이렇게 매
정하게 이런 독수를 내리다니....."

조민이 사손에게 물었다.

"영감님, 한부인이 어떻게 파사국 노래를 부를 줄 알지요? 이
노래는 명교의 노래입니까?"

"명교가 전해 온 곳이 파사국이지. 명교와는 많은 인연이 있지
만, 명교의 노래는 아니야. 이 곡은 이백 년 전 파사국의 유명한
시인 아묵(峨默)이 만든 것인데, 듣자 하니 파사국에서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더군. 당시 내가 한부인이 부르는 것을 듣고
내력을 묻자, 나한테 자세히 얘기해 주더군. 당시 파사국이 대철
야망(大哲野芒)이라는 사람이 천막을 치고 제자를 받아들일 때,
문하에 걸출한 세 제자가 있었는데, 아묵이라는 제자는 문학에
능통했고, 니약모는 정사에 밝고, 곽산은 무공이 절강했지. 세
사람은 의기가 투합하여 맹세하기를, 나중에 세 사람 모두 같이
부귀를 누리기를 약속했는데, 결국 뒤에 니약모는 교왕의 수상
자리까지 올랐지. 두 친구가 찾아오자 니약모는 교왕에게 청탁하
여 곽산에게 벼슬을 내리게 해주었지. 아묵은 벼슬에 관심이 없
어 다만 거액의 연금만 타고 문학 연구에만 전념했지. 그런데 곽
산은 야심이 커 정변을 일으켰지. 그런데 그 일이 실패하자, 그
는 부하를 결당하여 한 고장을 점령하고, 위세가 당당한 한 중파
의 수령이 된 거야. 의사미량파(依斯美良派)라고 살인을 전문으
로 하는 종파야. 십자군 시절에 서역의 산중노인 곽산(山中老人
藿山)이란 이름만 들어도 겁을 집어 먹었었지. 사실 서역의 많은
군왕들이 이 산중노인에게 죽음을 당했었지. 그런데 그 곽산이
왕년의 은혜를 잊고 니약모까지 암살한 거야. 바로 그 니약모가
죽으면서 부른 노래가 지금 이 주아가 부른 노래야. 그런데 그
뒤 산중노인 일파의 무공을 파사국 명교에서 습득한 거야. 파사
국 삼사의 무공이 괴이한 것도 바로 이 산중노인의 무공일 거
야."

"영감님, 한부인의 성격이 그 산중노인을 많이 닮았군요. 당신
이 그녀를 그렇게 의리있게 대했는데도, 영감님을 죽이려고 했으
니."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희귀한 일이냐?"

조민은 고개 숙여 한참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한부인이 명교 사왕(四王) 중에서 서열은 제일 높지만, 무공은
영감님보다 더 높지 못하던데, 어젯밤 파사국 삼사와 싸울 때 그
녀는 왜 천주만독수를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천주만독수? 한부인은 그런 무공을 할 줄 몰라. 그녀와 같은
절세 미인은 얼굴을 자기 목숨보다 더 중하게 생각하는데, 감히
그런 무공을 익히겠느냐?"

장무기, 조민, 주지약은 그 말에 모두 어리둥절했다. 그들의 마
음속엔 지금의 금화파파의 모습으로는 삼, 사 십년 더 젊어진다
해도, 절세미인이라는 말은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조민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영감님, 제가 보기엔 금화파파가 별로 예쁜 것 같지 않은데
요?"

"뭐라고? 자삼용왕은 이십여 년 전 무림의 제일가는 미인이었
지. 지금 나이가 들었다 해도 왕년의 미색은 남아 있을 거야. 나
야 지금 볼 수 없지만....."

사손의 말에 조민은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추악하게 생긴 노파가 왕년에 무림의 절세미인이었다니, 누가
뭐라 해도 절대 믿을 수 없었다.

"영감님의 명성은 천하가 다 알고, 또한 무공이 심후한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리고 백미응왕도 자신이 교파를 창립하고
육대문파와 맞섰고, 청익복왕 또한 신출귀몰하여 전에 만안사에
서 내 얼굴을 훼손시키겠다고 겁주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섬찟
합니다. 금화파파의 무공이 높다 하지만 서열이 세분 위라 하면
좀 지나치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 세 사람이 양보한 거야."

"어째서죠?"

사손은 갑자기 껄껄 웃고 나더니 입을 열었다.

"영웅이란 미인관(美人關)을 빠져 나갈 수 없는 거야. 사실 대
기사(黛綺絲) 미색에 매료됐던 사람이 어디 세 사람뿐이었겠느
냐? 아마 교내 교외 해서 백 명은 넘었을 것이야."

"대기사라니요? 그게 바로 한부인의 이름입니까? 어딘가 좀 이
상한데요?"

"그녀는 파사국 사람이라 파사국 이름이지."

장무기, 주지약, 조민은 모두 크게 놀랐다.

"네? 그녀가 파사국 사람이라니?"

사손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그녀의 생김새를 보면 모르겠느냐? 그녀는 원래 중국과
파사국의 혼혈이야. 머리카락과 눈은 모두 검은 색이나 눈이 움
푹 파였고, 코가 날카롭게 생기지 않았느냐? 그리고 피부도 백설
과 같이 하얗고, 우리 중토 여자와는 달라."

"아닙니다. 그녀는 코가 납작하고 눈도 좁쌀만하고, 영감님이
말씀하신 것과는 전혀 틀립니다. 장 공자, 그렇지 않습니까?"

"맞어. 그렇다면 그녀도 고두타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모습을 자
기가 훼손시켰단 말인가요?"

사손이 다시 물었다.

"고두타라니 어떤 사람이냐?"

"바로 명교의 광명우사 범요입니다."

그리고는 범요가 자기의 얼굴을 훼손하여, 모습을 바꿔 여양왕
부에 들어갔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사손은 긴 탄식을 뿜었다.

"범형의 그런 행동은 정말 본교에 큰 공을 세운 것이야. 그것도
반 이상은 한부인의 자극으로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야."

"영감님, 어서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사손은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한참을 있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
다.

"이십여 년 전 당시 명교는 양교주의 통솔 아래 교세가 무척 흥
왕했었지.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세 명의 파사국 사람들이 파사
국 명교 교주의 친서를 들고 와 양교주를 직접 만나겠다는 거야.
친서에 쓴 것을 보니, 파사국 총교에 정선사자(淨善使者)라는 분
이 있는데, 원래는 중국인이라는군. 그는 파사국에 들어가 오래
살다 명교에 입교했는데, 공을 많이 세워 파사국 여자를 얻어 결
혼을 하고 딸아이 하나를 낳았지. 이 정선사자는 그 뒤 일 년 후
에 죽고 말았는데, 죽기 전에 고향을 생각하고 유언에 딸 자식을
중국에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양교주께서 승낙을 하자 그녀가
대청으로 들어왔지. 그녀가 들어오자 대청 안은 금방 환하게 밝
아오는 분위기였지. 정말 뭐라고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
웠지. 그녀가 양교주에게 절을 하자 대청에 있던 좌우 광명사.
삼법왕, 오산인, 오행기사 어느 누구 하나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지. 데리고 왔던 세 명의 파사국 사람들은 다음날 파사국으
로 떠나 버리고, 그 대기사라는 아름다운 소녀는 그 후 광명정에
서 살게 된 것이야."

조민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영감님께서도 그 때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었군요? 사실대로 말
씀하세요."

사손은 고개를 저었다.

"천만에. 나는 그 때 신혼이라 내 처와 매우 사랑을 했었지. 또
임신까지 했었고. 그런데 어떻게 내가 다른 마음을 품었겠나?"

그 말에 조민은 자기의 그런 물음에 매우 후회를 했다. 조민도
사손의 부인이 성곤에게 피살된 것을 알고 있었다. 공연히 사손
의 슬픈 곳을 다시 생각나게 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조민은 다시 물었다.

"고두타 범요는 젊었을 때 무척 미남이었다는데, 대기사를 무척
좋아했었겠군요?"

이번엔 사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 첫눈에 반했었지.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했지. 그녀의 미
색에 반한 총각들이 무척 많았지만, 대기사는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를 않았지. 한번은 양교주 부인이 범요와 맺어 주려고 했는
데, 대기사가 일언에 거절해 버렸어. 그건 무척이나 범요의 자존
심을 상하게 했지. 그녀는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시집을 안 간다
는 거야. 그후 누구도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된 거야. 그런데 그후
반 년이 지난 어느 날, 바다 건너 영사도에서 한천엽(韓千葉)이
라는 젊은이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양교주를 찾아온 거야.
우리는 모두 그 대단치 않게 생긴 젊은이가 홀로 광명정에 복수
하겠다고 나타나자 모두 비웃었지. 그러나 양교주는 큰 주연까지
베풀어 주었어. 연회가 끝나자 양교주는 그런 일이 생긴 연유를
털어 놓았지. 알고 보니 양교주는 그 젊은이의 부친과 사소한 말
로 인해, 그만 대구천수(大九天手)라는 일장으로 그의 부친에게
중상을 입히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불구를 만들어 놓은 거
야. 그 때 그의 부친은 꼭 복수를 하겠다고 공언을 한 거야. 다
만 자기의 무공으로는 상대가 되지 못해, 훗날 자기의 아들이 아
니면 딸이라도 시켜 복수하겠다는 거야.

그런데 그 때 양교주는 그에게 말하기를, 아들이든 딸이든 자기
를 찾아올 땐 꼭 먼저 삼초(三招)를 양보해 주겠다고 약속을 한
거야. 그런데 그 사람은 초식을 양보할 필요는 없고, 그 대신 어
떻게 무술을 겨룰 것인지 자기 자식에게 선택하게 해달라는 것이
었어. 양교주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십여 년이 지나자 양
교주는 그 일을 깜빡 잊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그 사람은 정말
아들을 보낸 거야.

모두는 생각하기를 혼자서 찾아올 땐 절대 만만치 않은 사람이
라고 짐작하고 있었지. 그렇지만 양교주의 무공하면 천하 무적
아닌가! 아마 무당파의 장삼봉 진인 외엔 어느 누구도 그의 일초
반 식을 받아 낼 자가 없었을 거야.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그
젊은이가 어떤 어려운 요구를 할지 그게 걱정스러웠지. 이튿날
그 한천엽은 여러 사람 앞에서 옛날의 약속을 공표하며 양교주가
다른 말을 못하게 하고 대결 방법을 말하더군. 그 자는 양교주와
광명정에 있는 벽수한담(碧水寒潭) 연못 속에서 겨루겠다는 거
야. 그 말을 들은 모두는 정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 그
연못의 물은 얼음처럼 차가와 뼈를 깎는 것과 같았지. 아무리 더
운 여름일지라도 누구 하나 그 물에 들어가지 못했지. 더우기 그
때는 한참 제일 추운 겨울이었거든. 양교주의 무공이 아무리 심
후하지만, 그분은 수영을 할 줄 몰랐던 거야. 그러니 무술은 둘
째치고 물에 빠져 죽을 것이 아닌가?"

장무기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양교주께서 한 번 약속했으니 대장부 일언 중천금이라
약속을 안 지킬 수도 없지 않습니까?"

조민은 그 말에 장무기의 손을 움켜잡고 살짝 꼬집으며 미소를
지었다.

"네, 맞아요. 대장부 일언 중천금인데, 명교의 교주 신분으로
어떻게 식언을 합니까?"

사실 그녀의 말뜻은, 장무기를 다시 깨우치는 것이었다. 사손이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

"바로 그것이야. 자기는 강호에 무명 소졸이라, 명교에서 자기
를 무슨 방법을 써서 죽여도 강호에 누구도 알 리가 없다는 거
야. 그러니 자기를 죽이고 싶으면 당장이라도 자기를 죽이라는
거야. 양교주는 한참 생각하고 나서 입을 열었지."

"한형제, 당시 영존과 맹세한 것이라 다른 소리하지 않겠네. 그
러니 이번 싸움은 졌다고 인정하네. 그러니 자네가 나를 맘대로
조치하게."

그러자 한천엽은 품 속에서 작은 비수 하나를 꺼내며 이렇게 말
했지.

"이 비수는 선친의 것인데, 조치는 없고 다만 이 비수에 무릎을
꿇고 세 번 절을 하시오."

군웅들은 그 말에 모두 크게 놀랐지. 당당한 명교의 교주신분으
로 어찌 그런 굴욕을 당한다는 건가? 그러나 양교주가 이미 졌다
고 인정했으니, 강호의 규율로 따지면 그의 말을 안 들어 줄 수
없었지. 그는 양교주의 절을 받고 나서 그 비수로 자신은 자진을
하지, 명교의 손에 죽지 않겠다는 거야. 순간 대청에는 쥐죽은
듯이 조용했고, 광명좌우사, 백미응왕, 팽영옥 등은 모두 지략이
뛰어난 사람들인데도 속수무책이었지. 한천엽의 그런 행동은 양
교주 스스로 자살하게 하고 자신도 자살하겠다는 것이었지. 바로
이 긴박한 상황에 대기사가 갑자기 앞으로 뛰쳐 나온 거야.

"아버님, 저들에게 훌륭한 아들이 있다면 아버님한테는 이 딸이
있지 않습니까? 저쪽에서 아들을 보냈다면, 이 딸이 아버님 대신
그의 초식을 받아 내겠습니다."

대기사가 양교주를 아버지라고 부르자 모두는 깜짝 놀랐지. 그
러나 그녀가 양교주의 위경을 해결하기 위해 가짜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즉시 깨달았지. 그렇지만 마음속으로 모두 대기사가
무슨 무술을 할 줄 아는가 하고 의심했고, 또한 무술을 익혔다
해도 별로 신통치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지. 더우기 얼음장과 같
은 연못 속인데 더 말할 나위가 없었지. 양교주가 미처 대답하기
도 전에 한천엽이 먼저 입을 열은 거야.

"딸이 아버지 대신 해도 괜찮지요. 그러나 딸이 져도 여전히 양
교주가 이 비수를 향해 절을 해야 합니다."

한천엽은 대기사를 보자 연약한 여자라 우습게 본 거야. 그런데
대기사가 다시 한천엽에게 물었다.

"만약 당신이 진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되면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시오."

"아버님, 걱정 마세요."

그녀는 그 말을 하고 양교주를 향해 절을 하더군. 그 절을 올리
면서 대기사는 양교주와 의부녀(義父女)가 된 것이야. 양교주는
대기사가 자기를 위해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장포를 벗
어던지고 단도를 꺼내들고는 일어서 대기사를 말렸다.

"대기사야, 너의 고마움은 알겠으나, 내가 그와 겨루겠다."

그는 연못 속으로 뛰어들 결심을 했던 거야. 그런데 대기사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아버님, 소녀는 어렸을 때부터 해변에서 자라 물에
대해선 도통했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즉시 장검을 뽑아 들고 연못 속으로 몸을 날
려 얼음 위에 서서 검 끝으로 둘레에 작은 원을 그리더군. 그러
자 얼음은 갈라졌고 그녀는 왼발을 그 둥근 얼음에 딛고 서서히
물 속으로 들어갔지.

그날은 차가운 북풍이 불어와 매우 추웠었지. 그날 그 연못의
상황을 생각하면, 정말 어제 있었던 일 같아. 대기사는 그날 엷
은 자색의 옷을 입었는데, 그녀가 얼음 위에 선 자태는 정말 선
녀와 다름없었다. 군웅들은 그녀가 얼음을 깨고 물 속으로 들어
가자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 한천엽은 그녀의 신법을 보자
그만 오만한 기색이 금방 사라지고 말았지. 그는 비수를 들고 뒤
따라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지. 그 연못은 너무 깊어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은 볼 수 없었으나, 물이 출렁이는 것은 볼 수 있었
지. 잠시 후, 한천엽이 물 속에서 뛰어 올라왔지. 그런데 호흡이
매우 급박했어. 그런데 한천엽의 두 손엔 아무것도 든 것이 없었
어. 그의 비수는 오히려 자기의 오른쪽 가슴에 꽂혀 있었고, 양
쪽 뺨에 칼자국까지 나 있었지.

잠시 후 대기사는 물 속에서 몸을 날려 장검으로 방어하며 공
중에서 제비넘기를 하며 얼음 위에 살짝 내려앉는 거야. 그의 그
신법은 정말 아름다움의 극치였어. 양교주는 그녀의 두 손을 잡
고 정말 기뻐 어쩔 줄 몰랐지. 정말 아무도 그녀가 물에 대해 그
렇게 훌륭한 솜씨를 지녔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런데 대기사
는 오히려 한천엽을 위해 사정을 했지.

"아버님, 이 사람의 솜씨는 정말 대단합니다. 자기 부친을 위해
복수하러 온 것을 생각해서 목숨만은 살려 주세요."

양교주는 즉시 승낙을 하고 신의 호청우를 시켜 상처를 치료해
주게 했던 거야. 그날 밤 광명정에는 정말 큰 주연이 베풀어졌
지. 모두 대기사가 명교를 위해 큰 공을 세웠다고 칭찬이 자자했
지. 그리하여 양부인이 그녀에게 자삼용왕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
었고, 응왕, 사왕, 복왕과 같이 병렬하게 된거야. 그런데 위 셋
이 모두 그녀에게 첫째 서열을 양보한 거야.

"그런데 그 벽수한담의 일전이 정말 큰 뜻밖의 결과를 몰고온
거야. 한천엽이 패하긴 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는 대기사의 환심
을 얻게 된 거야. 아마 그녀가 매일 문병다니면서 사랑이 싹튼
모양이야. 한천엽의 상처가 다 치료되자 대기사는 갑자기 양교주
에게 한천엽에게 시집가겠다고 얘기를 했지. 모두는 그 소식을
듣고 크게 상심하고 실망을 했지. 어떤 자는 본교의 호교법왕이
어떻게 그 자에게 시집갈 수 있냐고 떠들었고, 어떤 자는 한천엽
을 모욕하고 인격을 무시했지. 그런데 대기사는 검을 들고 대청
입구에 서서 큰 소리로 맹세한 거야.

"지금부터 한천엽은 나의 부군이니 누구든 그를 모욕하는 자는
이 장검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자 모두 한천엽이 입교하려고 하자, 반대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끝내 입교하지 못했지. 그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양
교주 부부가 실종된 거야. 광명정의 인심은 매우 어수선했지. 모
두 양교주 부부를 찾아 나섰는데, 어느 날 밤 광명우사 범요가
한부인 대기사가 비밀 통로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됐지."

장무기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녀가 비밀 통로에서?"

"그렇다. 명교의 교규가 매우 엄해 이 비밀 통로는 교주 한 사
람 외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야. 범요는 격노하여 그를
질책했었지. 그런데 한부인은 오히려 적반하장 격이었지.

"내가 이미 본교의 교규를 어겼으니,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
세요."

그날 밤 군효들은 대회를 열었으나, 한부인은 여전히 그 말밖에
하지 않았지.

사실 교규로 따지자면, 그녀는 자살을 하든가 자기가 스스로 한
쪽 팔을 잘라야 했지. 그런데 범요는 자기가 그녀를 사모했던 정
을 봐서 그녀를 변호해 주었고, 나 또한 옆에서 거들자 군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죄를 십 년 옥살이로 결정을 내렸지. 그런
데 대기사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거였어.

"양교주가 여기 없는 한 누구도 나를 제재할 수 없습니다!"

장무기가 갑자기 사손에게 물었다.

"의부, 한부인이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비밀 통로에 들어 갔습
니까?"

"그걸 설명하자면 말이 길어지지, 아마 명교에서 나 혼자만 알
고 있을 거야. 그 당시 군호들은 모두 양교주가 실종한 일과 관
련있다고 의심을 했지. 그러나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역설
했지. 결국 서로 대립이 되자 한부인은 끝내 파문출교(破門出敎)
하고 말았지. 그리고 한천엽과 홀연히 광명정에서 내려가 행방을
감추어 버린 거야."

사손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 후 양교주의 행방은 끝내 찾지 못하고 몇 년이 지나자, 서
로 교주 자리를 노리고 쟁탈전을 벌이느라 점점 일은 난장판이
되어 버렸지. 그후 백미응왕 은형은 광명정을 떠나 혼자서 천응
교라는 것을 창립했지. 내가 그렇게 말려도 듣지를 않아 결국 나
하고 불목하게 된 거야. 이십여 년 전 왕반산의 천응교에서 위세
를 떨칠 때, 난 그들의 위세를 꺾으려고 갔었지. 한편으로는 도
룡도의 위세를 믿었고, 또한 당시 그와의 불목했던 것에 앙갚음
을 하려고도 했고, 그가 명교를 떠나서는 위세를 떨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도 싶었기 때문이지.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 때
너무 심술을 부린 것 같다."

사손은 또 긴 탄식을 했다. 그의 탄식엔 무수한 강호의 풍파가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모두 잠시 침묵을 지키자 조민이 입을 열었다.

"영감님, 그 뒤 금화와 은엽의 명성은 강호를 진동시켰는데, 명
교에서 어찌 그 두 사람을 알아 보지 못했습니까? 그리고 은엽은
분명 한천엽인데 어떻게 독살당했습니까?"

"그 중간 사정은 나도 몰라."

"그런데 자삼용왕이 그렇게 미인이었다면 지금은 어째서 그렇게
추악해졌습니까? 자기 얼굴을 훼손시킨 자국은 없는데."

"내 생각엔 무슨 교묘한 방법으로 변장을 한 것 같아."

"파사국 총교에서 왜 그녀를 그렇게 찾는 겁니까?"

"그것이 한부인의 제일 큰 비밀이야. 이런 얘기를 해서는 안 되
는데, 너희들이 영사도에 가서 그녀를 구출해 주기를 바라고 얘
기를 해주지."

조민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영사도에 다시 간다는 말씀이에요! 우리가 그 파사국 삼사를
이길 수 있을까요?"

사손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옛일을 회상하며 입을 열었
다.

"중토 명교의 교주는 수백 년을 내려오면서 꼭 남자가 그 교주
자리를 지켰지만, 파사국 총교의 교주는 꼭 여자라야 교주가 될
수 있지. 그것도 꼭 시집을 안간 쳐녀라야 맡을 수 있지. 총교
경전에 규정되어 있기를 성처녀(聖處女)이어야 교주가 될 수 있
다는 거야. 명교의 신성 정결을 지키기 위해서 누구든 교주가 된
후엔 교중의 고위직에 있는 인사의 딸 세 명을 지명하여 소위 성
녀라고 부르는데, 이 세 성녀는 맹세를 하고 나서 방방곡곡을 돌
아다니며 명교를 위해 공덕을 쌓는 것이야. 교주가 죽고 나면 교
중의 장로들이 회의를 열어 그들의 공덕을 가려 한 성녀가 교주
로 임명되는 거야. 그런데 만약 이 세 성녀 중에 누구든 정조를
잃은 자는, 분신형(焚身刑)으로 사형에 처하는 것이야.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명교에서 꼭 체포해 죽이고 말았지."

"아! 그렇다면 그 한부인이 바로 그 세 성녀 중에 한 명이라는
겁니까?"

"그렇다네. 범요가 그녀가 비밀 통로로 나오는 것을 발견하기
전에, 난 이미 먼저 발견했었지. 한부인이 나를 믿고 모든 사실
을 고백한 거야. 그녀가 연못에서 한천엽과 살을 맞대고 싸운 것
은 어쩔 수 없었지만, 끝내 그 일로 큰 화를 초래하게 된 거야.
그녀는 총교에서 언젠가는 사신을 보내와 조사를 할 것이 분명
해. 그녀는 자기가 큰 공을 세워 그 죄 값을 치루려고 한 거야.
그녀가 비밀 통로에 들어간 것은 건곤이위라는 무공심법을 찾기
위해서였지. 그 심법은 총교에서 이미 잃어 버린 지 오래지만 중
토 명교에는 아직 그것을 간직하고 있었지. 총교에서 그녀를 광
명정에 보내온 것도 바로 그게 목적이었지. 어디 갔어도 그 심법
을 찾지 못했어. 난 그녀에게 정중하게 경고했지. 그것은 본교의
대규를 범하는 것이니 절대로 용서받지 못한다고."

조민이 그의 말을 가로 막았다.

"아, 이제 알았어요. 한부인이 파문출교한 것도 바로 그 비밀
통로에 계속 드나들기 위해서였군요. 명교인이 아니니 그 구속을
받을 필요가 없잖아요?"

"조낭자는 아주 총명하군. 그렇지만 광명정은 본교의 근본적인
요지인데, 어찌 외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 있겠나? 그때 나도 그
녀의 뜻을 알았지. 한부인이 광명정을 떠나자 난 직접 내가 그
비밀 통로를 지키고 있었다. 그후 한부인은 세 번이나 왔었는데,
나를 보자 다시 가 버리곤 했지."

사손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물었다.

"그 파사국 삼사의 복장이 중토 명교의 복장과 다른 점이 없었
느냐?"

"그들은 모두 백포를 입었고 옷자락엔 빨간 색의 불길이 그려져
있었고, 옷 끝에 검은 테두리가 둘러져 있는데, 그게 중토 명교
와 틀린 점이었습니다."

"바로 그 점이야. 총교 교주가 죽어 검은 테두리로 조의를 표하
는 것이야. 그들은 신교주를 세우기 위해 천리만리를 불사하고
한부인을 찾아온 것이야."

장무기가 다시 물었다.

"한부인이 파사국에서 왔다면 필시 그 파사국 삼사의 괴이한 무
공을 알 텐데, 어찌 상대의 일초 반식에 손도 못 써보고 그들에
게 제압당했습니까?"

그말에 조민은 웃으며 말했다.

"아주 둔하군요. 한부인은 자기 신분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그
런 거예요. 아마 그 때 영감님이 파사국 삼사의 말에 복종하고
한부인을 죽이려고 했다면, 한부인은 분명 달리 피신할 방법을
썼을 거예요."

"한부인이 자기의 신분을 감추려고 그런 것은 맞아. 그렇지만
파사국 삼사에게 봉혈을 당하고 바로 도망치기는 어려웠을 거야.
그녀는 아마 내 칼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분신형의 고통을 당하
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야."

조민이 다시 말을 꺼냈다.

"중토 명교만 사교인 줄 알았더니, 파사국 총교는 더 사교군요.
왜 꼭 처녀가 교주를 해야 되며, 그리고 정조를 잃으면 분신형을
하다니....."

그 말에 사손이 그녀를 나무랐다.

"어린 소녀가 입을 함부로 놀리는구나. 교파마다 다 전해 내려
오는 규칙이나 의전이 있는 법이야. 뭣이 사교라는 거냐?"

갑자기 주아가 이를 부딪치며 몸을 달달 떨었다. 장무기는 그녀
의 이마를 만져 보니 불덩어리였다. 그녀의 병세가 무척 심한 것
같았다.

"의부님, 저도 영사도로 가고 싶습니다. 주 낭자의 상세가 위독
해 약을 구해야겠습니다. 설사 한부인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주
낭자야 살리지 못하겠습니까?"

"그렇게 하자, 이 주 낭자가 너를 그렇게 사모하는데, 안 살려
서야 되겠느냐? 주 낭자, 조 낭자, 두 사람의 생각은 어떻소?"

조민이 대답을 했다.

"내 상처는 대수롭지 않지만 주 낭자의 상처가 중하니,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주지약도 사손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영감님이 가신다면 저희도 따라가겠어요."

그들은 안개가 걷히자 그제서야 방향을 잡아 서북쪽으로 노를
저었다.

장무기와 사손은 파사국 삼사의 연합 무공에 대해 연구했으나,
시종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자 갑자기 눈앞에 불빛이 보였다. 그 불빛은 보기엔
바로 앞인 것 같지만, 바다라 수십 리 길은 떨어져 있었다. 그들
은 다시 반나절이나 노를 저어 불빛과 접근하자 장무기가 외쳤
다.

"저기가 바로 영사도입니다."

사손은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아! 하고 소리를 냈다.

"왜 영사도에 불길이 하늘을 찌르고 있지? 설마 그들이 한부인
을 화형하는 것은 아니겠지?"

쿵! 그 말에 소조가 그만 기절하고 쓰러져 버렸다. 장무기는 재
빨리 뛰어가 그녀를 부축하며, 그의 혈도를 눌러 깨우고 그녀에
게 물었다.

"소조, 왜 그러는 거야?"

소조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부인이 화형을 당한다는 말에 그만 겁이 나서 기절한 거예
요."

"그건 의부님의 추측이야."

"장공자, 제발 한부인을 좀 구해 주세요."

"모두 힘껏 노력해야지."

그들은 모두 합심하여 노를 더 빨리 저었다.

조민이 갑자기 장무기에게 물었다.

"장공자, 오랫 동안 생각했던 두 가지 일이 있는데, 아무리 생
각해도 알 수 없어요."

"그래, 무슨 일이요?"

"전에 녹류산장 밖에서 내가 당신의 외조부와 양좌사 등 여러
사람을 공격하라고 명령했을 때, 이 소조 낭자가 앞에 나서 지휘
를 하며 저항했어요. 그 때 정말 용장 밑에 약물이 없다고, 명교
교주 밑에 있는 한 명의 시녀가 그렇게 훌륭한 재주가 있을 줄
은....."

사손이 갑자기 그녀의 말을 막았다.

'아니, 명교의 교주라니?"

"영감님, 사실대로 말씀드리지요. 당신의 이 의자가 바로 당당
한 명교의 교주이십니다. 당신이 오히려 그의 부하가 되는 겁니
다."

사손은 반신반의하며 도저히 믿으려고 하지를 않았다.

장무기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사손에게 낱낱이 얘기해 주었
다.

사손은 기분이 매우 좋아 일어나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금모사왕, 교주께 인사드립니다."

장무기는 재빨리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의부님, 그러지 마세요. 양교주의 유언에 의부님께서 교주 직
위를 잠시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어떻게 그런 중책을 감당
해 낼까 걱정했었습니다만, 다행히 하늘이 도와 의부께서 아무
탈 없이 돌아오셨으니, 정말 본교의 홍복입니다. 중토에 돌아가
면 의부께서 교주의 직책을 맡으세요."

"아무 탈 없다니? 난 이미 두 눈이 멀었는데 명교의 교주를 어
찌 장님한테 맡기겠느냐? 조 낭자, 그래 무슨 두 가지 이해 못할
일이 있소?"

"소조 낭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런 기문팔괘(氣門八卦),음양
오행(陰陽五行)을 누가 가르쳐 주었으며, 어떻게 그런 나이에 그
런 이상한 재주를 갖고 있습니까?"

"그것은 저의 가전무공입니다."

"영존은 누구세요? 딸이 이렇게 대단하니, 부모님은 필시 천하
의 일류 고수가 틀림없을 거예요."

"저의 아버님은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니 묻지
마세요. 설마 내 손가락을 자르면서 강제로 캐묻지는 않겠지요?"

소조는 어린 나이지만 조금도 조민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그리
고 손가락 자르는 얘기마저 꺼내는 것은 주지약이 조민을 미워하
게끔 하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조민은 웃으며 다시 장무기에게 물었다.

"장공자, 우리가 그날 밤 두 번째로 주점에서 만날 때, 고두타
범요가 나한테 작별을 고하면서 소조 낭자를 보고 무슨 말인가
두 마디를 했었지요?"

장무기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한참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소조의 모습이 누구를 닮은 것 같다고 한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누구를 닮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느덧 그들의 배는 섬에 점점 접근했다. 섬 서쪽에 큰 배들이
나란히 정박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무기가 인상을 찌푸리
며 말했다.

"파사국 총교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파견했군. 우리는 섬 뒤
쪽으로 돌아가 조용한 곳에다 배를 댑시다. 저들에게 발각되지
않게."

그들의 배가 삼사 장 거리밖에 못 가 갑자기 큰 배에서 호각소
리가 울리며 펑! 펑! 하고 두 발의 포를 쏘자 그들의 작은 배 양
쪽에 떨어졌다. 그러자 두 개의 물기둥이 치솟으며 작은 배는 휘
청하며 전복될 뻔했다.

큰 배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배를 이쪽으로 몰아와라. 그렇지 않으면 즉시 배를 가라앉히겠
다!"

그들은 별수없이 큰 배 쪽으로 노를 저었다. 큰 배에 접근하자
큰 배에서 줄사다리를 내렸다.

"기회를 보아 배를 강탈합시다."

사손이 제일 먼저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 뒤엔 주지약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아를 안고 올라갔고, 그 뒤엔 소조, 맨
뒤엔 장무기가 조민을 안고 올라갔다. 배 위에 오르니 상대는 모
두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이고 모두 몸집이 큰 파사국 사람들이었
다. 그러나 전에 보았던 파사국 삼사는 안에 없었다.

중국 말을 구사할 줄 아는 한 파사국 사람이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누군데 여기에 왔는가?"

조민이 대답을 했다.

"우린 바다에서 표류하여 이리로 오게 된 거예요."

그 파사인은 반신반의하여 갑판 중앙 의자에 앉은 수령에게 뭐
라고 말을 주고 받더니, 다시 수하들에게 뭐라고 명령을 내렸다.
순간 소조가 갑자기 몸을 날려 수령을 향해 장풍을 뻗었다. 그
수령은 잽싸게 몸을 피하며 의자를 집어들고 소조를 향해 내리치
는 것이었다.

장무기는 소조가 이렇게 빨리 공격을 취할 줄 모르고 있다가 일
이 벌어지자, 그는 재빨리 몸을 날려 수령의 혈도를 찔러 버렸
다. 배 안은 금방 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그들의 무공도 모두 높
았으나 전의 파사국 삼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배를 강탈하고 점령해 버렸다.

그러자 사방에서 고동소리가 들리더니, 다른 큰 배들이 그들을
향해 접근해왔다.

장무기는 파사국 수령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큰 소리로 외쳤다.

"누구든 이 배로 올라오면, 당장 이 사람을 죽여 버리겠다."

그러자 그들은 뭐라고 떠들며 소란을 피웠다. 장무기는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저들이 감히 이 배로 올라
오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이 수령의 직위가 무척 높은 사람일 것
이라고 짐작했다.

장무기는 다시 갑판으로 돌아와 막 잡고 있던 수령을 풀어주려
고 하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탱! 하는 소리와 함께 어떤 병기가
자기를 공격해 오는 것이 아닌가.

장무기는 재빨리 몸을 피하며 발로 걷어차자 앞에 다시 한 성화
령이 자기를 공격해 왔다. 그러자 곧바로 옆에서도 성화령이 자
기를 내리치는 것이 아닌가! 장무기는 유운사, 휘월사, 묘풍사
셋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모두 빨리 선창으로 피하십시오."

그러면서 그는 수령의 목덜미를 잡고 한쪽의 성화령을 막았다.
그러자 그 성화령은 그만 그 수령의 뺨을 내리치고 말았다.

그 수령을 때리게 된 묘풍사는 즉시 물러서며, 공손히 그 수령
에게 사과를 했다. 갑자기 고동소리가 울리며 한 척의 큰 배가
서서히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 배에는 열 두 개의 금색 깃발을
달고 있었다.

배에는 열 두 개의 호랑이 가죽을 씌운 의자가 있었는데, 모두
사람이 앉아 있었고, 한 의자만 비어 있었다. 그 배는 가까이 접
근해 와 멈추었다. 비어 있는 의자는 여섯 번째에 놓여 있었다.

조민이 장무기에게 말했다.

"우리가 잡은 저 자의 옷이 저들과 똑같은 것으로 보아, 저 열
두 수령 중에 한 명인가 봐요. 아마 서열이 여섯 번째쯤 되는 모
양이군요."

사손이 입을 열었다.

"음! 총교의 십이 보수왕(寶樹王)이 온 모양이군. 대단하구나."

조민이 그에게 물었다.

"십이 보수왕이라뇨?"

"파사국 총교 교주 밑엔 열 두 명의 대경사(大經師)가 있는데,
십이 보수왕이라고 부르지. 신분으로 따지면 우리의 사대법왕과
같은 직위야. 첫째는 대성(大聖), 둘째는 지혜(智慧), 셋째는 상
승(常勝), 넷째는 장화(掌火), 다섯째는 근수(勤修), 여섯째는
평등(平等), 일곱째는 신심(信心), 여덟째는 진악(鎭惡), 아홉째
는 정직(正直), 열 번째는 공덕(功德), 얼 한번째는 제심(齊心),
열 두번째는 구명(俱明)이라고 부르지. 그러나 이 십이 보수왕은
모두 교리와 경전에 통달하고 무공은 전혀 할 줄 모른다고 들었
는데, 이 사람이 여섯 번째라면 평등 보수왕이군."

장무기는 한쪽에 앉아 평등왕을 자기 무릎에 눕혔다. 그리고 여
기서 살아 남으려면 이 자를 잘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자
를 쳐다보니, 성화령을 맞은 뺨은 크게 부어 올라 있었다. 그러
나 생명엔 지장이 없는 듯했다. 아마 묘풍사가 내리칠 때 잘못된
것을 직감하고 재빨리 힘을 거두어 들인 것 같았다. 또한 이 사
람도 상당한 내공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장무기는 사방을 둘러보니, 주위에 큰 배들이 자기네들을 완전
포위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다 쳐들어 올라온다면, 그 천여
명을 모두 당해 낼 능력이 절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한 파사인이 중국말로 크게 외쳤다.

"금모사왕은 듣거라! 총교 심이 보수왕이 모두 여기 계신데, 네
가 총교에 저지른 죄 십이 보수왕께서 너그러이 용서해주시니,
어서 우리의 교우를 풀어 주고 다른 데로 떠나거라."

사손은 가볍게 웃었다.

"나 사모(謝某)는 세 살 어린애도 아닌데, 너희들의 속임수에
넘어갈 것 같으냐? 우리가 포로를 석방하면 너희는 즉시 포격할
것이 아니냐?"

"네가 포로를 석방 안 한다고 우리가 포를 쏘지 않을 것 같으
냐?"

"나한테 세 가지 조건이 있다. 너희가 들어주면 이 포로를 풀어
주겠다."

"무슨 조건이냐?"

"첫째, 오늘 이후 총교와 우리 중토 명교는 서로 존경하며 절대
서로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고, 둘째, 대기사의 정조를 잃은 죄
를 다시는 묻지 말고 그녀를 이 배로 오게 해주어야 하고....."

"그 조건은 절대로 승낙할 수 없다. 대기사는 총교의 대규를 어
겨 분신형을 받아야 하는데, 그 일이 중토 명교와 무슨 상관이
냐? 그래, 셋째는 무엇이냐?"

"둘째 조건을 승낙 못하는데, 세 번째를 말해서 뭘하느냐?"

"그래도 한 번 얘기해 보아라."

"셋째는 아주 쉽지. 우리에게 작은 배 한 척을 보내 우리의 뒤
를 오십 리 정도 따라오게 한 후, 그 동안 너희가 우리를 따라오
지 않을 때 포로들을 모두 작은 배로 석방해 주겠다."

"헛소리 말아라!"

이 자는 바로 십이 보수왕 중의 말석인 구명 보수왕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소조가 앗! 하고 놀라며 외쳤다. 장무기가 그쪽
을 보니 유운사가 한 여인을 끌고 십이 보수왕의 좌석앞으로 가
고 있었다. 그 여인은 남루한 옷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것이 바
로 금화파파였다. 두 번째 좌석에 앉은 지혜 보수왕이 뭐라고 그
녀에게 묻자, 금화파파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인지 난 하나도 모르오."

지혜왕은 냉소를 지으며 일어나더니, 갑자기 금화파파의 흰 머
리를 낚아챘다. 그러자 그만 검은 색의 머리카락이 나타났다. 금
화파파가 얼굴을 다른쪽으로 돌리자, 지혜 보수왕은 다시 그녀의
얼굴에서 한 꺼풀의 껍질을 벗겨 냈다. 그것은 사람의 가죽으로
만든 가면이었다. 금화파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대기사는 자기의 진면목이 탄로나자 그녀는 모든것을 포기한
듯, 지팡이를 내팽개치며 가볍게 냉소를 짓고 있었다.

지혜왕이 다시 그녀에게 뭐라고 묻자, 대기사는 파사국 말로 대
답했다.

조민이 갑자기 물었다.

"소조 낭자, 저 사람들이 지금 뭐라고 얘기하는 거죠?"

소조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총명해요. 그런데 왜 미리 영감님께 두 번째 조건
을 말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 저들은 원래 금화파파가 진짜
대기사인 줄은 모르고 있었어요. 영감님께서 앞을 못 봐 금화파
파의 가장이 얼마나 진짜 같은 줄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정말
누가 봐도 가장한 것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을 조 낭자 당
신은 알잖아요."

"소조 낭자, 저는 정말 몰랐어요. 나는 파사국 사람들이 확실히
금화파파가 대기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줄로만 생각했었어요."

그 말을 들은 사손은 미안한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는 내심 무슨 수를 쓰든 대기사를 구출해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소조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들이 지금 금화파파를 분신형에 처하겠다고 말한 거예요."

장무기가 입을 열었다.

"소조, 너무 상심하지 마라. 기회만 생기면 즉시 파파를 구해
낼 테니까."

사실 장무기는 평소 파파라고 부르던 것이 습관이 됐지만, 자삼
용왕의 지금의 모습은 이미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름다움은 조금도 조민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주지약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보면 소조의 큰 언니뻘 되는 것
처럼 보였다.

"천만에요. 십일 명의 보수왕, 그리고 풍운 삼사를 합치면 우린
그들의 적수가 못 돼요. 지금 저들은 어떻게 평등왕을 구출해 낼
것인가 그것을 연구하고 있어요."

조민이 말했다.

"흥! 평등왕이 살아 돌아간다 해도 얼굴에 이상한 글씨가 새겨
져 정말 꼴볼견이겠군요."

장무기가 물었다.

"아니, 글씨라니?"

"아까 그 노란 수염이 성화령으로 그 자를 잘못 때렸을 때.....
앗!"

조민은 갑자기 무엇이 떠올랐는지 소조에게 물었다.

"소조, 파사국 문자를 아세요?"

"네, 알아요."

"빨리 좀 보세요. 뭐라고 새겨졌는지."

소조는 몸을 일으켜 평등왕을 보니, 그의 얼굴은 심하게 부어올
라 글씨 자국이 깊이 나 있었다.

소조는 전에 장무기와 광명정의 비밀 통로에 들어가 건곤이위심
법을 몇 번 읽은 적이 있었다. 장무기의 분부가 없어 연마를 하
지는 못했지만, 아직까지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
도 모르게 크게 외쳤다.

"저것은 건곤이위심법입니다."

장무기는 영문을 몰라 물었다.

"건곤이위심법이라니?"

"아! 아니군요. 처음 볼 때 그런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아니군
요. 그런데 중국말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응좌측전(應左側前)
수우내후(須右乃後) 삼허칠실(三虛七實) 무중생유(無中生有), 그
리고 무슨 천방지원(天方地圓) 밑엔 자세히 보이지 않아요."

장무기는 그 말에 갑자기 번개가 번쩍 하며, 하늘의 검은 먹구
름이 일시에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오리무중에서 하나의
출구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응좌측전 수우내후!"

그는 그것을 건곤이위심법에 배합해서 연구해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아리송했다.

"장공자, 조심하세요. 저들이 명령을 내렸어요. 풍운 삼사는 당
신을 공격하고 근수왕과 진악왕, 그리고 공덕왕은 평등왕을 구출
해 내려고 그래요."

사손은 평등왕을 자기 앞에 잡아 놓고, 도룡도를 장무기에게 건
네 주었다.

"무조건 내휘둘러라."

조민도 의천검을 주지약에게 건네주었다. 자금은 모두 합심해서
적을 물리칠 수밖에 없었다.

근수, 진악, 공덕은 몸을 이쪽으로 날려 사손을 향해 공격을 했
다.

그들은 평등왕이 다치게 될까 두려워 병기를 쓰지 않고 주먹이
나 장력만 사용했다. 주지약은 의천검을 들고 사손을 도왔다.

한 쪽에선 장무기와 풍운 삼사가 한데 엉켜 싸우고 있었다. 그
들은 서로 상대방이 두려워 조금도 감히 쉽게 덤벼들지 못했다.

휘월사가 성화령으로 장무기를 내려쳤다. 그런데 무학의 이치로
보아 그것은 분명히 장무기의 왼쪽 어깨에 와 맞아야 하는데, 웬
일인지 중도에 갑자기 괴이하게 원을 그리고 그만 장무기의 뒷덜
미에 와 맞는 것이었다. 장무기는 극렬한 통증을 느꼈으나, 그는
갑자기 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듯이 모든 것을 깨달았다.

풍운 삼사가 쓰고 있는 무공은 건곤이위심법의 제 일층 무공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화령에 다른 변화로 사용하는 용법이
적혀 있었다. 그는 순간 소조가 읊은 네 구절의 구결을 완전 터
득했다. 다만 천방지원인가 뭔가 하는 것은 깨달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내심 이 성화령을 뺏어와 거기에 새겨진 글씨를 봐야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삼허칠실의
초식으로 순식간에 휘월사의 두 성화령을 모두 빼앗아왔다. 그리
고 다시 무중생유의 초식으로 유운사의 두 성화령 마저 뺏고 나
서, 두 사람의 목덜미를 잡고 내팽겨쳐 버렸다.

파사국 교도들은 그것을 보자 그만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웠
다. 그 사이 묘풍사는 잽싸게 자기네 배로 달아나려고 했다. 장
무기는 어느새 그들의 무공 요점을 모두 파악했다. 묘풍사의 무
공은 그의 앞에서는 이미 아무런 신비감을 주지 못했다. 그는 어
느새 재빨리 그의 발목을 잡아 낚아채며 그의 성화령을 모두 빼
어 버리고 혈도를 찌르고 나서 한쪽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갑자기 장무기가 완전히 강세를 보이자, 모두 놀라면서도 기뻐
그 연유를 물었다.

"운이 좋아 평등왕이 성화령을 맞고 글씨 자국이 생겨 우리를
살려 준 겁니다. 자, 소조야, 어서 빨리 이 성화령에 씌어진 글
씨를 읽어 보아라."

소조가 성화령을 받아 읽어 내렸다. 장무기가 들으니, 그것은
모두 건곤이위심법의 입문 공부였다.

사실 이 여섯 개의 성화령은 명교와 같이 중토에 들어와 성화령
은 중토 명교의 영부(令符)가 됐는데,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흘러
중토 명교에는 파사국 문자를 알고 볼 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또한 수십 년 전 성화령을 개방에서 강탈해 가 어떤 경로를 거쳐
파사국 거상에게 팔려 다시 파사국으로 흘러들어 가게 된 것이었
다. 파사국 총교에서 성화령에 새긴 문자를 수십 년간 연구하여
직분이 좀 높은 사람들의 무공이 많은 진보를 얻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 새긴 무공이 너무 정심하여 수양이 제일 깊은 대성
보수왕 마저도 그것의 삼, 사성밖에 터득하지 못했다.

건곤이위심법은 사실 파사국 명교의 호교신공이나, 그 오묘한
무공을 보통 사람은 터득할 능력이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중토
명교에서 완전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파사국 명교에서는 일
성 정도 되는 구건곤이위 무공과 이, 삼성의 새로운 성화령의 무
공으로, 이런 괴이한 무공으로 변화시켜 온 것이다.

장무기는 뱃머리에 정좌하고 앉아 소조가 번역해 주는 문자를
자세히 들으며 연구를 했다. 장무기는 소조가 다 읽어 주자 이에
칠, 팔성을 터득했다. 그 정도로도 십이 보수왕이나 풍운 삼사의
무공은 그의 앞에서는 보잘것 없게 되었다.

그 사이 시간은 흘러 대기사의 손발에는 수갑과 쇠사슬이 묶여
졌다. 십일 보수왕은 무엇인가 토의를 하더니, 입고 있던 장포를
벗어 버리고 가벼운 갑옷으로 갈아 입더니, 각기 이상한 무기를
손에 쥐었다. 앞뒤로 포위한 배에는 파사인들이 모두 줄을 서서
활을 장무기가 있는 쪽으로 겨냥하고, 열 명의 파사인들은 따로
도끼를 들고 수령의 명령만 떨어지면 물 속으로 뛰어들어 이쪽의
배 밑에 구멍을 뚫어 가라앉게 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드디어 중앙에 앉아 있던 대성 보수왕이 대갈일성하자, 사면에
서 북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고 호각소리가 요란했다. 십일 명의
보수왕들은 각기 무기를 들고 이쪽 배로 몸을 날려 건너왔다. 그
러나 바로 즉시 접근하지 못하고 기회를 노리는 것 같았다.

지혜왕은 중국말로 말을 건네왔다.

"어서 빨리 우리의 교우를 풀어 주어라. 당신네들이 잡고 있는
포로는 우리한테는 조금도 중요치 않은 인물들이다. 너희들이 용
기가 있으면 그들을 즉시 죽여 봐라. 우린 눈 하나 깜짝하지 않
을 것이다."

조민이 그의 말을 받았다.

"큰소리치지 마세요. 우리가 거기에 속아 넘어갈 것 같아요? 우
리는 이 두 사람이 평등 보수왕과 묘풍사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소. 또한 파사국 명교에서 지위가 상당히 높다는 것도 알고 있
어요. 정 그렇다면 좋습니다. 당신네 말대로 죽여드리지. 자, 어
서 그 자의 머리를 내리치세요."

"알았소!"

사손이 대답하고 나서 도룡도를 쳐들고 평등왕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머리까지 닿는 순간 바로 그 자의 머리 위에서
멈추었다. 그러나 평등왕의 머리카락이 잘려 바다 바람에 사방으
로 흩어져 날렸다. 사손은 다시 그 자의 양어깨를 왼쪽, 오른쪽
으로 번갈아가며 검을 휘둘렀다. 휘두를 때마다 꼭 그의 두 팔을
잘라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정확히 그 자의 옷 소매자락
만 찢어 냈다. 그러나 그의 휘두름은 매우 맹렬하여 장님이 아니
라 두 눈이 멀쩡한 사람일지라도 그런 솜씨를 보일 수 없었다.

평등왕은 겁에 질려 혼이 빠져 기절할 정도였다. 십일명의 보
수왕, 그리고 풍운 삼사는, 모두 넋이 빠져 멍청히 쳐다보며 혀
를 내둘렀다.

조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중토 명교의 무공 실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
까? 이분은 금모사왕이신데, 중토 명교에서 지위가 삼천 번째 되
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만약 당신네들이 인원수가 많다고
우리를 공격하면, 앞으로 중토 명교와 파사국은 원수지간이 되어
중토 명교에서 파사국 총교를 깨끗이 소탕해 버릴 것이오. 그러
니 일찌감치 협상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거예요."

지혜왕은 조민의 말을 믿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지금 당장 어
쩔 도리가 없었다.

대성 보수왕이 갑자기 파사국 말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소조가 그것을 보고 외쳤다.

"적들이 배에 구멍을 내려고 해요."

만약 저들이 배에 구멍을 내어 가라앉게 한다면, 그것은 분명
큰일이었다. 모두들 수영을 할 줄 모르므로 그들에게 잡힐 수 밖
에 없었다. 장무기의 몸이 움직이자 어느새 대성왕 앞에 접근했
다. 곧이어 양쪽에 서 있던 공덕왕과 장화왕이 각기 쇠망치와 채
찍을 들고 동시에 장무기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장무기는 이미 그들의 무공에 대해선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알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목을 움켜쥐었다. 그러면서 다리를 뻗어
연속으로 걷어차며 제심왕과 진악왕 손에 쥔 큰 칼을 걷어차 떨
어뜨리고, 다시 두 발로 근수왕과 구명왕을 바다 속으로 걷어차
떨어뜨렸다.

그러자 보수왕 중에 한 명인 키가 크고 빼빼 마른 한 명이 두
손에 단검을 들고 장무기의 배를 향해 찔렀다. 그의 초식은 매우
영리하고 날카로왔다. 이 자는 바로 보수왕 중의 상승왕이었다.
파사국 총교 십이왕 중에서 무공이 제일가는자였다.

장무기는 공덕왕과 장화왕의 혈도를 봉하고 나서 두 사람을 선
창 안으로 던져 버리고, 다시 상승왕과 맞싸웠다. 상승왕의 무공
은 다른 왕들과 완전히 달랐다.

장무기는 내심 그에게 갈채를 보냈다.

'정말 무공이 훌륭한 파사국 사람이군.'

장무기는 성화령에 적힌 무공을 터득했지만, 그것을 연습할 여
유도 없이 갑자기 강적을 만나자 그는 하나 하나 생각하며 그와
상대했다.

처음 십여 초식까지는 장무기는 순전히 심후한 내력으로 그와
막상막하를 보였으나, 이십여 초식이 지나자 점점 성화령의 무공
과 건곤이위심법이 배합되어 조금씩 우세를 보였다.

상승이라고 호칭이 붙은 그 자도 평생 이런 적수와 만난 적이
없었다. 삼십여 초가 지나자 장무기는 그 자의 다리에 중도(中
都), 축빈(築賓) 양혈을 봉하였다. 그것은 바로 중토 무공의 나
혈지법(拿穴之法)이었다. 상승왕은 그만 두 디리에 힘이 풀리면
서 마비가 되어 탄식을 터뜨리며 장무기에게 순순히 잡히고 말았
다.

장무기는 그 자의 재능이 아까워 그 자를 살려 주고 싶었다.

"당신의 무공은 매우 훌륭하오. 당신을 헤치지 않을 것이니 어
서 돌아가시오."

상승왕은 진정 감격하면서도 한편 창피스럽기도 하여, 재빨리
자기 배로 몸을 날려 돌아갔다.

조민이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어서 빨리 대기사를 우리 쪽으로 넘기고, 금모사왕의 세
조건을 따르시오!"

남은 보수왕들이 모여 뭐라고 상의를 했다.

잠시 후 지혜왕이 입을 열었다.

"당신네들의 조건을 들어줄 수도 있소. 그러나 이 젊은이의 무
공은 분명히 우리 파사파인데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소?"

"당신네들은 본시 모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오. 이 청년은 중
토 명교의 광명좌사 밑의 여덟 제자 중의 막내요. 잠시 후에 일
곱 명의 사형들이 당도하면 당신네들은 살아 남기 힘들 거요."

지혜왕은 한참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

"좋소. 대기사를 주겠소."

두 명의 파사 교도가 대기사를 장무기의 뱃머리로 데리고 갔다.
주지약이 검을 휘둘러 대기사의 쇠사슬을 잘라 버리자, 그 두 명
은 검의 예리함에 놀라 겁에 질려 재빨리 자기네 배로 돌아갔다.
그런 후 다시 작은배 한 척을 보냈다.

장무기 일행이 배를 몰고 얼마쯤 가자 날이 어두어졌다. 파사국
배가 뒤따라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장무기는 사손에게 말했
다.

"의부님, 이제 저들을 돌려보내 드리지요."

"좋아, 그렇게 하자."

그러자 묘풍사가 말했다.

"이 여섯 개의 성화령은 제가 장관하고 있는 것인데, 그걸 잃으
면 무거운 죄를 받으니 그것도 함께 돌려 주시지요."

"이 성화령은 중토 명교 교주가 지니고 있는 영부요. 오늘 다시
원주인한테 돌아왔는데, 어떻게 다시 돌려 주겠소?"

공덕왕이 배에 달린 줄을 잘라 버리자, 두 배는 떨어져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순간 갑자기 대기사가 큰 소리로 외치며 몸을 바다 속으로 날렸
다. 장무기는 깜짝 놀라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곧이어 바다 속
에서 빨간 피가 스며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대기사
가 입에 단검을 물고 한손에 파사인의 머리카락을 쥐고 올라왔
다.

그제서야 모두는 파사인들이 간계를 부린 것을 알았다. 그 때
갑자기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배 꼬리에 폭약이 터지며 큰 구멍
이 생겼다. 그러자 배 속으로 물이 왈칵 쏟아져 들어오고 타도
온데간데 없이 떨어져 나갔다.

조민은 마음 속으로, 잠시 지나면 페르샤의 큰배가 쫓아와 죽음
을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갑자기 대기사가 소조에게 뭐라고 파사국말로 중얼거렸
다. 소조도 파사국 말로 뭐라고 대답을 하며 두 사람의 표정이
수시로 변했다.

한참을 서로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 대기사는 소조를 끌어안고
서로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영문
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조민이 장무기의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보세요. 두 사람이 너무나 닮았어요."

장무기가 쳐다보니 두 사람은 정말 흡사하게 생겼던 것이다. 그
렇다면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인가?

대기사가 장무기에게 말했다.

"장교주, 걱정 마세요. 그들이 쫓아오면 나와 소조가 해결 하겠
습니다. 나 자삼용왕은 여자의 몸이지만 내가 저지른 일은 내가
감당할 겁니다. 장교주의 은혜는 정말 잊지 못할 겁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창에 물이 들어와 장무기는 주아를 안고, 주지약은 조민을 안
고 모두 돛대 위에 매달렸다.

소조가 갑자기 동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모두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멀리 십여 척의 배가 접근해 오고 있었다. 점점
접근한 그들은 배를 멈추고 포구를 그들의 돛대를 향해 조준하고
나서, 지혜왕이 크게 웃으며 으시대며 외쳤다.

"자, 이제 항복하겠느냐?"

장무기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중토의 의사들은 죽는 한이 있어도 남한데 항복하지는 않
소. 당신네들이 정말 대장부라면 정정당당하게 무공으로 겨룹시
다."

"하! 하! 대장부란 머리로 싸우지 힘으로 싸우지는 않아."

대기사가 갑자기 파사국 말로 크게 외쳤다. 그러자 지혜왕은 깜
짝 놀라며 역시 뭐라고 대답했다. 몇 차례 일문일답을 하고 나자
저쪽에서 여덟 명이 작은 배로 갈아 타고 이쪽을 향해 접근해 왔
다.

"장교주, 나와 소조가 먼저 저 작은 배로 갈 것이니 잠시만 기
다리세요."

사손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한부인, 당신이 만약 우리를 팔아 먹는다면 나 사손은 죽어서
도 당신을 용서치 못할 것이요!"

대기사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당신 의자만 귀한 줄 아시는 모양인데, 나도 내 딸이
누구보다도 귀중하오."

소조는 과연 그녀의 딸이었다.

대기사는 소조를 데리고 작은 배를 타고 그들의 큰 배로 올라가
여러 보수왕들과 뭐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
네들의 배는 점점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사손이 탄식을 하며 말했다.

"우리와 다른 민족이라 우리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무기야,
넌 소조를 잘못 본 거야. 나 역시 한부인을 잘못 봤구나."

주지약이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입을 열
었다.

"소조는 절대로 장공자를 배반하지 않을 거예요."

조민이 말했다.

"저기 자삼용왕이 연실 소조를 협박하는 것이 보이지 않아요?
끝내 고개를 끄덕거리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잖아요."

그러자 갑자기 십여 척의 배에 있는 파사인들이 큰 배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큰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큰 배의 십이 보수왕도
모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세히는 볼 수 없었으
나 중간 의자에 앉은 사람은 소조인 것 같았다. 그들의 외침으로
무슨 경사가 난 듯이 보였다.

잠시 후, 다시 작은 배 한 척이 장무기가 있는 쪽으로 접근해
왔다. 배에 탄 사람은 바로 소조였다.

그녀는 손을 흔들며 외쳤다.

"장공자, 그리고 여러분, 모두 저 큰 배로 가세요! 파사국 명교
에서 절대로 해치지 않을 것이에요."

조민이 물었다.

"어째서죠?"

"저 큰 배로 가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사손이 갑자기 외쳤다.

"소조, 네가 총교의 교주가 됐느냐?"

소조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그만 그녀의 눈
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순간 장무기도 사정을 파악했다.

"소조야,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였구나."

소조는 고개를 돌리고 장무기를 똑바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사손이 탄식을 하며 입을 열었다.

"대기사에게 이런 딸이 있었구나. 무기야, 건너가자."

그들 일행이 모두 큰 배로 올라가자 소조는 사람을 시켜 그들에
게 젖은 옷을 갈아입게 하고 먹을 것을 차리게 했다.

장무기가 막 젖은 몸을 닦아 내자, 문이 열리며 소조가 새 옷을
들고 들어왔다.

"장공자, 제가 새 옷으로 갈아입혀 드리겠습니다."

"소조야, 너는 이미 총교의 교주가 아니냐? 말하자면, 난 너의
부하나 다름없는데 어찌해 시중을 들겠느냐?"

"공자,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조야, 처음엔 네가 나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한
테 이렇게 고맙게 대해 줄 줄은 정말 몰랐구나."

소조는 머리를 장무기의 넓은 가슴에 기대며 낮은 소리로 속삭
였다.

"공자, 전에는 제가 정말 공자를 속인 적이 있습니다. 저의 어
머니는 총교의 세 명의 성처녀 중의 한 명이었고, 후에 아버지를
만나 중죄를 저지른 것을 알고, 성처녀가 지니고 있는 무지개 색
깔의 보석반지를 저에게 물려주시며 저를 광명정으로 보내 건곤
이위심법을 훔쳐 내게 한 겁니다. 그것이 제가 당신을 속여 왔던
겁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엔 당신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지 않습
니다. 왜냐하면 저는 파사국 총교 교주보다 당신의 시녀가 되기
를 원했었으니까요. 그리고 추호도 건곤이위심법에 대해서는 입
밖에 내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너무 급박
해 할 수 없이 그것을 폭로한 것이에요."

"이제 나도 모든 것을 다 알았다."

갑자기 밖에서 대기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소조야, 네가 네 감정을 억제 못하고 장공자의 목숨을 잃게 하
려고 하느냐?"

소조는 갑자기 몸을 떨며 일어나 단호하게 말했다.

"장공자, 지금부터 나를 잊어 버리고 기억에서 지워 버리세요.
그리고 주아는 수년을 저의 어머니를 따르며 당신을 무척 사모했
고, 정말 당신의 좋은 베필감입니다."

장무기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뛰쳐나가 다시 저들의 보수왕 몇 명을 인질로 잡고, 여기서 빠
져 나가자."

소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쯤 사대협이나 은낭자 옆엔, 파사인들이 칼을 그들의 목에
대고 있을 거예요.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그
들은 즉시 목숨을 잃을 거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대기사가 문 밖에 서 있
고, 두 명의 파사인이 장검을 들고 그녀의 뒤에 지켜 서 있었다.
검 끝이 대기사의 등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소조는 당당하게 갑판으로 걸아 나갔다. 장무기도 그녀의 뒤를
따라 갑판으로 올라갔다.

과연 갑판에는 사손 등 여러 사람을 파사국 무사들이 위협하고
있었다.

"장공자, 여기 파사국의 약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주아의 상처
를 치료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사람을 시켜 당신네들을 중토까
지 모셔가게 할 테니, 이제 여기서 그만 헤어져야겠어요. 소조가
비록 멀리 파사국에 있지만, 밤낮으로 장공자가 옥체 안강하시기
를 빌 테니, 만사 순조롭게 되기를 빕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울먹였다.

일행은 모두 다른 배로 갈아탔다. 소조는 도룡도와 의천검을 모
두 장무기에게 돌려주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작별의 인
사를 했다.

장무기는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느새 소조가 탄
배에서 고동소리가 울리더니, 돛을 올리고 서서히 움직였다. 두
배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 제 5 권 7 장 끝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5 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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