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6-3

3학년2반 | 2022.03.06 07:05:37 댓글: 0 조회: 674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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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6 권

제 3 장 홀연히 나타난 황삼미인(黃杉美女) #1/3

장무기는 말을 끌고 와 조민과 관내를 향해 달렸다.

만약 의부가 진짜 개방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면, 그를 이용해 명
교에 협박해 올 것이 분명한 일이므로 당장 의부를 해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러나 주지약은 너무 순진한 탓에 진우량 같은 음흉
한 놈과 송청서와 같은 염치없는 놈들의 강압을 받을 때는 필시
자살을 해 버릴 것이 분명했다. 장무기는 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
채찍질을 가했다. 그러나 부상입은 조민과 함께 있으므로 한 조
그마한 객점에 투숙했다. 방에 누운 장무기는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밖으로 나와 조민의 방 곁에 와서 조민이 깊이 잠들어 있
는 것을 확인하고는 간단히 쪽지 한 장을 남기고 남쪽 방향으로
달려갔다.

다음날 그는 새로 말 한 필을 구입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
렸다.

노룡은 하북의 중진(重鎭)으로, 당대(唐代)에는 절도사가 주재
하던 곳이며, 그 뒤 송대(宋代)에는 전쟁을 치뤄 많은 파손을 당
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인구가 많은 곳이다.

장무기는노룡의 큰길과 골목을 샅샅이 쏘다녔지만 이상하게도
거지라고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구나. 이런 큰 고장에 거지 한 명 보이지 않다니, 아마
모두 방주를 참배하러 간 모양이군. 집회 장소만 알아내면 의부
와 주지약을 정말 개방에서 납치해 갔는지 알아낼 수 있을 텐
데.....'

장무기는 절간 사당, 빈 집이나 넓은 뜰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
러나 여전히 조금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자 갑자
기 동남쪽 끝에 있는 누각에 불이 밝게 켜져 있는 것이 눈에 들
어왔다.

'저 집은 분명히 어느 벼슬아치의 집이 아니면 어느 갑부의 집
이 틀림없으니 개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겠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갑자기 한 그림자가 창문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어 자세히 볼 수
는 없었다.

'저 집에 도둑놈이 들어갔었나 한번 가서 살펴보자.'

그는 즉시 경공을 써 누각까지 달려가 담을 넘어 들어갔다. 그
러자 안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진장로는 정말 웃기는 사람이야. 분명히 정원 초파일 노하구에
서 모임을 갖기로 하자고 그렇게 급하게 연락을 하고 우리를 여
기서 기다리게 해놓더니, 자기가 방주도 아닌데 이래라 저래라
하다니."

그것은 분명 개방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장무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무기는 조용히 말소리가 나는 곳으로 접근했다.

안에서 다시 개방의 방주 사화룡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진장로는 정말 보통이 아니야. 그 무슨 금모사왕 사손인가 하
는 자를 강호에서 이십여 년이나 찾으러 다녔는데도 아무도 그의
그림자조차 보지를 못했는데, 그 진장로가 그 자를 잡아왔으니,
우리 개방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을 뿐 아니라 무림 전체에서도
그를 따를 자가 없을 것이야....."

장무기는 의부의 행방을 알아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한편
그는 놀랍기도 했다. 개방에 그런 고수가 있었다니 의부를 구출
하는 일이 쉬울 것 같지만은 않았다. 그는 창문 틈으로 안을 들
여다 보았다.

안에는 사화룡이 중앙에, 그리고 양옆으로 전공, 집법, 장봉용
두, 그리고 차림새가 화려한 한 중년으로 보이는 뚱뚱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보기엔 무척 거부(巨富)로 보이는데, 등에는 여섯
개의 자루를 메고 있었다.

'그랬었군. 노룡의 이 거부가 바로 개방의 제자였구나. 이런 부
자집에서 집회를 할 줄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진장로가 그렇게 급하게 연락을 해 왔을 땐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야. 우리가 큰 일을 하려면 제기랄, 걱정하지 않을 수
가 없지....."

그러자 장봉용두가 입을 열었다.

"방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강호에서 그 자를 찾아다닌 것은
순전히 도룡도를 얻기 위해서였는데, 이제 그 도룡도가 그 자의
손에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자를 잡아 두고 밥만 먹여 주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다른 형제들의 말을 들어보면, 독한 고문을
해서 자백을 받아내자는 겁니다."

사화룡은 손을 저었다.

"안돼, 안돼. 그렇게 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가 있을거야.
진장로가 도착한 뒤에 다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을거야."

장봉용두는 방주가 사사건건 진우량의 말만 듣는 것이 불만스럽
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화룡은 품 속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어 장봉용두에게 건네며
말했다.

"풍형제(風兄弟), 당신이 즉시 호주(濠洲)로 가서 이 편지를 한
산동(韓山童)에게 전해 주게. 한산동의 아들이 여기에서 아무일
도 없이 잘 있다고, 그리고 한산동이 우리 개방에만 들어오면,
아들은 무사할 것이라고 얘기하게."

"이런 작은 일은 내가 직접 갈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반 년 동안 한산동의 세력이 많이 커졌어. 듣자 하니, 그의 밑
에는 무슨 주원장이니 서달이니 상우춘이니 하는 무척 재주가 많
은 자들이 있다고 하더군. 그러니 이번 일은 풍형제가 직접 가야
겠소. 첫째는 한산동이 우리 개방으로 들어오게끔 잘 얘기해야
되고, 또한 그의 부하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둘째는 도대체 명교에 무슨 대단한 점이있는지 알아보시오. 모
두 작은 일이 아니니 풍형제가 직접 가야 된다는 거요."

장봉용두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했다.

"네, 분부대로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무림 각파를 모두 통일하면 만족이라는 그들의 말이
들려왔다. 들어 보니, 사화룡은 진우량보다는 야심이 없었다. 강
산을 뺏어 황제가 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장무
기는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보아 하니 의부와 주지약은 이곳에 감금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을 먼저 구출하고 나서, 다시 이놈들을 단단히 혼내 줘야겠
다고 장무기는 생각했다.

그는 가볍게 오른발을 튕겨 나무 위로 올라가 사방을 살펴보니,
누각 밑 한 곳에 십여 명의 개방 제자들이 모두 무기를 들고 경
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곳이 바로 사손과 주지약을
감금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무에서 내려와 그곳으로 접근했다. 조용히 창가로 다가
가 살펴보니 이상하게도 안은 조용했고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그는 다시 서쪽에 있는 방으로 가서 살펴보니, 안에는 술잔과 먹
다 남은 안주가 널려있었고 역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다시 가운데에 있는 방으로 가서 보니, 안에는 촛불도 켜 있지
않은 체 조용해 살며시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문은 안으로 잠
겨져 있었다.

그는 낮은 소리로 불렀다.

"의부님, 여기 계십니까?"

그러나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 여기에 감금되지 않은 모양이군. 그런데 왜 개방 제자들
이 여기를 그렇게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나를 속
이려고 한 것인가?'

그러나 그는 갑자기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재빨리 내력을 모아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는 앞으로 첫발을 내딛자 그만 뭉클한 느낌을 느꼈다. 사람을
밟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얼른 허리를 굽혀 만져 보니 조금 전
에 죽은 것 같았다. 칠,팔 구의 시체가 모두 심한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그는 한 시체의 옷을 찢어 보니, 가슴에 주먹자국이
나 있고 갈비뼈가 부러져 있었다. 실로 위력이 대단한 주먹이었
다.

'의부께서 위력을 발휘하셨군. 경비들을 모두 죽이고 탈출한 모
양인데.'

그가 방 주위를 살펴보니, 과연 한 구석에 불길 모양을 그린 명
교의 표시가그려져 있었다.

'그렇구나. 조금 전에 창문 밖으로 달아난 그림자가 바로 의부
였구나. 그런데 의부께서 어떻게 개방에 붙잡혔을까? 아마 앞을
못 봐 개방의 함정에 빠진 모양이군. 의부께서 아직 멀리 못 가
셨을 거야. 빨리 찾아서 돌아와 이 개방놈들에게 명교가 얼마나
무서운지 단단히 혼내줘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그림자가 달아난 서쪽을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큰길을 따라 몇 리 길을 달려가자 앞에 갈림길이 있었
다. 그가 사방을 둘러보니 큰 바위덩어리에 또 불길이 그려져 있
었다.

장무기는 불길이 그려진 방향으로 달렸다. 명교에서 연락을 취
하는 수단으로 불길을 그리는 암호에 대해서는 양소에게 들은 적
이 있었다. 또한 조금 전에 본 불길은 간단하게 그린 것 같지만,
사손과 같이 문무를 겸비한 분이면 그렇게 그릴 수 있을 것이라
고 생각했다.

그는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숨에 사하역(沙河驛)
까지 달려가니 날이 이미 밝아왔다. 그는 만두 몇 개를 사 먹어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서쪽으로 달렸다.

큰길 끝까지 오니 다시 불길을 그린 것이 보였다. 그 방향은 한
낡은 사당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의부가 분명히 여기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매우 기뻤다.

안으로 들어가자, 웬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보니
대청에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도박을 하고 있었다.

옷이 매우 화려하며 부귀해 보이는 도박장의 주인은, 장무기가
들어오자 큰 손님으로 알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하였
다.

"자, 도련님, 어서 오십시요. 재수가 좋으실 것 같은데 한 번
하시지요?"

장무기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도박꾼들 중에 강호 인물이 없
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불렀다.

"의부님, 의부님! 어디에 계십니까?"

한참 지나도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다시 몇 번을 불렀다.

한 도박꾼이 장무기가 노름을 하지 않고 시끄럽게 외치자 귀찮
다는 듯이 그를 놀렸다.

"그래, 네 의부가 여기 있다. 와서 주사위놀음이나 하거라."

장내는 와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장무기는 도박장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머리가 노랗고 키 큰 어른께서 한 분 오시지 않았소? 앞
을 못 보는 장님인데....."

"농담도 잘 하시는군요. 그래 세상에 장님이 주사위놀이하는 일
도 있소? 그 장님이 미친 사람이 아니오?"

장무기는 의부를 찾지 못하고 거기다 자기를 놀려대자 그만 화
가 치밀어 한 손에 한 놈씩 움켜잡고 지붕 위로 던져 버렸다. 그
리고는 노름판의 은덩어리를 모두 품 속에 집어넣고 큰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노름꾼들은 모두 겁에 질려 감히 그를 따라나와 잡
으려고 하지를 못했다.

장무기가 다시 서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또 불길 표시가 있었
다. 저녁 때가 되자 그는 풍윤(豊潤)에 도착했다. 이곳은 하북성
의 큰 성이다. 그는 불길 표시를 따라 한참을 가니 불길은 여전
히 서남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장무기는 날이 어두워지자 어둠 속에서 불길 표시를 못 알아보
고 지나칠까 염려되어 객점에 투숙하고, 다시 이튿날 아침에 길
을 떠나 오후에 옥전(玉田)에 당도하여 보니, 불길 표시는 다시
삼하(三河)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삼하에서 다시 향하까지
갔다. 장무기는 내심 아무래도 개방의 속임수에 속은 느낌이 들
었다. 그러나 그는 불길 표시를 따라 찾으러 가지 않을 수 없었
다. 향하에서 보성, 다시 대백장, 번장, 다시 동남쪽으로 해서
영하까지 온 장무기는 다시는 불길 표시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는 영하에서 아무리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아무런 표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음, 이 괘씸한 놈들! 과연 내가 속아 며칠을 헛되이 여기까지
왔구나.'

그는 즉시 말 한 필을 사서 쏜살같이 다시 노룡을 향해 달렸다.
그는 거리에서 백색 장포를 사 입고, 옷에다 큰 불길을 그렸다.
그것은 그가 이번엔 정정당당히 명교의 신분으로 찾아가려고 했
던 것이다.

장무기가 그 갑부의 저택 앞에 당도해 보니, 문이 꼭 잠겨 있었
다. 그가 쌍장을 뻗자 꽝! 하는 요란한 소리와 동시에 양쪽 대문
이 부서져 안으로 넘어지면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리며, 큰 어
항 두 개가 문짝에 부딪쳐 깨지고 말았다. 그는 큰 걸음으로 걸
어 들어가며 외쳤다.

"개방은 듣거라! 빨리 사화룡을 불러 나를 만나게 해라!"

마당에는 십여 명의 사,오 대 제자들이 모여 있다가 문짝이 부
서져 날아오자 이미 놀라 눈이 휘둥그래져 있는데, 한 백의 소년
이 유유히 걸어 들어오면서 소란을 피우자 그의 앞을 가로막았
다.

"넌 누구냐? 뭐하는 놈이냐?"

장무기가 양팔을 내두르자 칠,팔 명의 개방 제자가 나뒹굴었다.
그는 대청을 지나 다시 일장에 중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안에는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엔 사화룡이 중앙에 앉아 있었다.

이때 이미 연회석에 앉아 있던 개방 수령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듣자, 무슨 영문인지 조사하러 뛰쳐나오다 장무기와 마주쳤다.
장무기는 그 자의 앞가슴을 휘어잡고 사화룡을 향해 내던졌다.
갑부처럼 보이는 주인이 맨 끝에 앉아있다가 사람이 연회석 위로
날아오자 재빨리 일어나 그 자를 받았지만, 그만 그 무서운 힘에
뒤로 칠,팔 보 밀렸다. 다행히 큰 기둥으로 밀려 쓰러지지는 않
았다. 온몸의 힘이 빠져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만 기둥 밑에 주
저앉고 말았다. 그것을 목격한 개방 사람들은 모두 놀라 겁에 질
렸다.

바로 이때 장무기는 엇! 하고 소리를 냈다. 정말 놀랍고도 기뻤
다. 원탁의 왼쪽 맨 위에 주지약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
의 옆에는 송청서가 앉아 있었다.

주지약은 놀라 외쳤다.

"무기 오빠!"

그녀는 일어서자 그만 휘청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장무기는
놀라 앞으로 달려나가 그녀를 부축하며 안았다. 그런데 아직 몸
을 제대로 일으키지도 않았는데 팍! 하고 송청서의 일장이 그의
등을 때렸다. 거기다 또 한 명의 개방의 일권을 맞았다.

그 때 이미 장무기의 온몸에는 구양신공이 감돌아 장풍과 주먹
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는 주지약을 안고 마당으로 뛰어가 주
지약에게 물었다.

"의부께선 어디에 계시오?"

주지약의 음성은 매우 떨렸다.

"저는..... 저는....."

"어르신네께 무슨 사고는 없소?"

"무르겠어요. 저는 저 자들에게 여기에 잡혀와 봉혈을 당했어
요. 그리고 의부님의 행방은 몰라요."

장무기는 그녀의 혈도를 풀어주려 했으나, 봉혈의 수법이 너무
괴이해 두 번씩이나 주물러도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두 발을 딛
고 일어서려고 하다가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개방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까지 뛰쳐나갔고, 사
화룡이 포권의 예를 올리며 물었다.

"각하께서 바로 명교의 교주이시오?"

장무기는 상대가 개방의 방주인 것 같아 예절을 잊지 않고 역시
포권의 예를 올렸다.

"죄송합니다. 귀방의 총타(總舵)까지 쳐들어 와서 무례를 저지
른 죄 용서하십시오."

"장교주의 명성은 소인의 귀가 시끄럽도록 들어왔습니다.오늘
노형의 신법을 직접 뵈니 정말 소문대로군요. 하! 하! 정말 탄복
했소."

"사방주에게 웃음거리가 되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금모사왕은
지금 어디에 있소? 어서 나를 만나게 해주시오."

사화룡은 하! 하! 하! 하고 크게 웃었다.

"장교주께서 젊은 나이에 어찌 말투가 그리 당돌합니까? 우린
다만 호의를 베풀려고 술 한 잔 대접하려고 초청했더니, 그 사사
왕은 아무 말도 없이 떠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폐방의 칠,팔
명 제자까지 해치고 달아났습니다. 이 빚은 어떻게 갚아야 합니
까? 장교주께서 얘기해 보시오!"

'음! 과연 그 개방 제자들을 의부께서 처치했구나. 보아하니 지
금은 여기 안 계시는 것 같군. 그렇다면 어디로 가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귀방에서 어찌 주낭자를 감금하셨소."

"그것은....."

하고 사화룡이 머뭇거리자 진우량이 재빨리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명교의 장무기의 무공이 고강하다고들 하는데,
알고 보니 매우 경우가 없는 사람이군요. 주낭자는 아미파의 장
문으로서 명문 정파의 수뇌인데, 귀교와 같은 사교와 무슨 관계
가 있다는 거요? 이 송청서 형제는 무당파의 젊은 인재로서 주낭
자와는 정말 천생의 배필감인데, 이 두 사람이 같이 이쪽을 지나
기에 저희 개방에서 손님으로 초대한 것뿐인데, 무슨 이유로 명
교에서 간섭을 하는 거요? 정말 가소롭군."

"그렇다면 왜 주낭자의 혈도를 봉했소?"

"아니 지금까지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누가 그녀의
혈도를 봉했다는 거요? 개방과 아미파는 서로 인연이 많은 사이
입니다. 아미파를 창파한 조사 곽여협은 방의 상대(上代) 황방주
의 친딸이고, 폐방 상대의 방주 야율은 곽여협의친형부라는 것
은 세 살 어린애도 다 아는 일인데, 우리 개방에서 어찌 감히 아
미파의 장문을 감금한다는 거요? 장교주는 어찌 세상 사람들이
웃을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까?"

"흥! 그렇다면 주낭자 자신이 자기의 혈도를 찔렀다는 거요?"

"천만에! 장교주께서 달려와 주낭자를 납치한 것을 우리 모두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무슨 그런 무례한 말을 하시오? 주낭
자께서 앙탈을 부리자 당신이 그녀의 혈도를 봉한게 아닙니까?
아무리 영웅 호색이라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 정말 자기 신분을 알고 체통을 지키시오!"

계속 ---


제 3 장 홀연히 나타난 황삼미인(黃杉美女) #2/3

장무기는 진우량의 구변을 당해낼 수 없었다. 오히려 상대에게
당하자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나의 의부의 행방을 말할 수 없다 그거요?"

"장교주, 귀교의 광명좌사 양소가 당년 아미파의 기효부를 간살
(姦殺)하여 천하무림의 손가락질을 받아왔는데, 당신이 오늘 자
신의 무공을 믿고 또 그런 짓을 한다면 아마 살아 남지 못할 거
요!"

"주낭자, 당신이 직접 어떻게 여기에 잡혀 온 것인지 얘기 하시
오!"

"저.....저.....는....."

그녀는 갑자기 말을 못하고 그만 쓰러져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명교의 마두가 또 살인을 했다!"

개방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웠다.

"장무기가 여자를 괴롭히려다가 안 되니 아미파의 장문을 죽이
다니!"

"음적(淫賊) 장무기를 죽여라!"

장무기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서서히 사화룡을 향해 접근
했다.

'도둑을 잡으려면 제일 먼저 두목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저놈
을 잡아 의부의 행방도 알아내야 된다.'

장무기가 이렇게 생각을 굴리는 동안장봉용두와 집법장로가 그
의 앞을 가로막았다.

장봉용두는 철봉을 들었고, 집법장로는 오른손에 쇠갈고리를,
왼손엔 쇠지팡이를 들고 동시에 장무기를 향해 공격했다.

장무기는 기합을 넣고 건곤이위심법을 전개했다. 그러자 집법장
로는 쇠갈고리로 장봉용두의 철봉을 가로막고, 쇠자팡이로는 다
시 장봉용두의 겨드랑이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전공장
로가 장검을 뽑으며 외쳤다.

"이놈의 무공은 괴이하니 모두 조심하시오!"

그러면서 획! 획! 획! 하고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세는 무지개
와도같았다. 매번 장무기의 아랫배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정말
예리하였다.

'훌륭한 검법이군.'

그러면서 재빨리 옆으로 피하여 왼손으로 상대의 넙적다리를 향
해 찔렀다. 그러나 전공장로의 검 끝은 다시 장무기의 손을 향해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어느 사이엔가 번개와 같이 초식을 바꾼
것이다. 그의 이 초식 하나만 봐도 즉시 무림에서 보기 드문 고
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방의 명성이 강호에 떠들썩하고, 백 년을 내려오면서 조금도
쇠퇴하지 않은 것이 거저 얻은 것이 아니구나. 이런 걸출한 인물
이 있다니.....'

장무기도 내심 탄복했다.

순식간에 장무기는 개방의 세 고수와 벌써 이십여 회합을 부딪
쳤다.

"살구진(殺狗陣)을 쳐라!"

갑자기 진우량이 소리치자, 스물 한 명이나 되는 개방 제자들은
각기 자기의 병기를 들고 살구진을 쳤다.

그러자 전공장로가 소리쳤다.

"장교주, 미안하오. 한 사람을 상대하는데 여럿을 동원해서. 그
러나 악한 자를 처치하는데는 그런 일 대 일 규칙을 지킬 수는
없소!"

"천만에! 괜찮소!"

"그렇지만 우린 모두 무기를 들었는데 장교주는 맨손이니, 무슨
무기가 필요하면 말씀하시오. 부탁을 들어줄 것이니."

장무기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전공장로가 무공만 높은 것이 아니라 의기(義氣)도 있는 사
람이구나. 진우량과 같은 놈과는 무척 다른데.....'

"여러분과 장난 좀 치기로서니 무슨 무기가 필요합니까? 무기가
필요하면 나 스스로 뺏어오지 못할 것 같소?"

그러자 장무기의 신형이 번쩍 하더니 어느새 살구진에서 뛰쳐나
와 진우량과 송청서의 어깨를 짚고 나서 재빨리 두 사람의 무기
를 빼앗아 들고 다시 살구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살구진
을 치고 있는 스물 한 명의 제자들 옷자락 하나 스치지 않았다.
모두 그의 이런 훌륭한 솜씨에 겁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 하! 하! 귀방의 살구진이란 이름은 정말 잘 지었소. 그것
으로 개를 잡기는 쉬워도 용이나 범을 잡기엔 아무 쓸모가 없군
요."

그러면서 양쪽 무기를 서로 부딪치자 자신의 경력이 검 끝까지
전도되어 철그렁 하는 소리와 동시에 양쪽 검이 모두 부러져 버
렸다.

"모두 덮쳐라!"

장봉용두가 외치며 철봉을 장무기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집법
장로의 갈고리와 지팡이도 동시에 공격해 왔다.

장무기는 왼쪽으로 덮치며 건곤이위심법을 전개하여 순식간에
스물 한 명의 만도를 모두 빼앗아 던져 버렸다. 그가 던져 버린
스물 한 개의 칼들은 모두 질서정연하게 차례로 대청 기둥에 순
서대로 꽂히는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진우량의 외침이 들려왔다.

"장무기, 어서 멈추지 못하겠느냐!"

장무기가 뒤돌아보자 진우량의 장검이 주지약의 등을 노리고 있
었다.

장무기는 냉소를 지었다.

"백 년 동안 위세를 떨치던 개방에서 이런 비겁한 짓을 하다니,
홍칠공 대협의 명성에 먹칠할까 두렵지 않소?"

전공장로가 화를 벌컥 냈다.

"진장로, 어서 주낭자를 놔주시요! 우리 개방 전체의 힘으로 명
교의 한 사람을 잡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비겁한 행동을 하다니
창피하게 그게 무슨 짓이오?"

진우량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장부란 머리로 싸우지 힘으로 싸우지 않는다. 장무기, 이래
도 항복하지 않겠느냐?"

장무기는 크게 웃었다.

"좋소. 오늘에야 이 장무기가 개방의 진짜 위세를 보게 됐소!"

그러면서 그는 갑자기 뒤로 공중제비를 도니, 어느새 두 발이
사화룡의 양 어깨를 딛고 서 있었다. 그리고는 그의 오른쪽 손바
닥을 사화룡의 정문혈을 노리고, 왼손은 이미 사화룡의 목덜미의
경맥을 움켜쥐었다.

성화령에서 얻은 무공을 이렇게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장무
기도 천만 뜻밖이었다.

개방 사람들은 방주가 붙잡히자 모두 놀라 소란을 피웠다. 장무
기가 가볍게 장력을 뻗으면 사화룡은 즉사할 판이었다. 개방 사
람들은 소란을 피우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다.

바로 이때 갑자기 지붕 위에서 금소화명(琴簫和鳴)의 소리가 가
볍게 들려왔다. 들리는 듯 말 듯 갑자기 동쪽에서 났다가 서쪽에
서 났다가 도대체 종잡을 수 없이 들려오더니, 갑자기 네 명의
백의 소녀가 각기 다른 지붕 위에서 표연히 마당으로 내려왔다.
그들의 손에는 모두 요금(瑤琴)을 들고 있었다. 그러자 문 밖에
서 네 명의 흑의 소녀가 손에 모두 장소(長簫)를 들고 들어왔다.
네 명의 백의 소녀, 네 명의 흑의 소녀는 각기 교차해서 서 있었
다.

그러자 조용히 한 명의 황삼을 입은 여인이 손에 열 두어 살 된
소녀를 데리고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약 이십 칠,팔
세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뛰어난 각선미에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
다. 그러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핏기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녀가 데리고 온 여자 아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추해 보였다.
돼지코에다 큰 입에 덧니까지 나 있어 흉악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런 그 계집아이는 한 손은 미인의 손을 잡고 한 손엔 뜻밖에도
청죽봉(靑竹棒)을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오자 개방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시선이 모
두 그 청죽봉에 쏠려 있었다.

장무기는 여자들이 들어오자 자기가 여전히 사화룡의 목발을 타
고 있는 꼴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진우량이 여전
히 검 끝을 주지약의 등에 대고 있어서 사화룡을 풀어줄 수가 없
었다. 그러나 개방 사람들은 한눈 팔지 않고 모두 청죽봉에만 시
선을 두고 있었다. 백의 소녀나 흑의 소녀에게는 아랑곳하지 않
고 세상에 청죽봉만이 제일 중요한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장무기는 의아해 하며 청죽봉을 자세히 보니, 지팡이 전체가 반
들반들하며 온통 녹색이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때가 탔
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밖엔 별로 이상한 점을 볼 수가 없었다.

황삼 미녀는 눈동자를 돌리며 사방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눈동
자는 매서웠다. 그녀는 사방을 둘러 본 후 나중에 장무기에게 시
선이 멈췄다.

"장교주, 나이가 어리지도 않은데 아직까지 그런 철없는 짓을
하고 있습니까?"

책망하는 말투였으나 그의 음성은 매우 친절해 꼭 누나가 동생
을 훈계하는 것처럼 들렸다.

장무기는 얼굴이 빨개졌다.

"개방의 진장로께서 비겁한 수단으로 나의 동반을 위협하고 있
어서, 이렇게 하는 도리밖에 없었소."

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남의 방주를 발로 취급하다니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장안에
서 여기까지 오면서 들으니 명교의 작은 마두라 하던데, 지금 보
니 과연 소문대로군."

그러면서 고개를 살랑살랑 저으며 매우 못마땅한 인상을 풍겼
다.

사화룡이 갑자기 크게 외쳤다.

"장무기 이 색마야! 빨리 내려오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그는 장무기의 다리를 꺾으려고 했으나 자신의 목덜미
의 경맥을 잡혀 조금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장무기는 그 자가 여자들의 앞에서 자기를 색마라고 부르자 그
만 화가 치밀어 목덜미에 자신의 내력을 주입시키자, 사화룡은
고통을 참지 못해 아야!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개방 사람들은 장무기가 그렇게 무례하자 화가 치밀었으나, 한
편 방주가 이처럼 약하게 보이자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개방의
방주라면 강호의 제일 큰 방의 방주인데, 체통을 잃고 적 앞에서
신음소리를 내다니! 개방의 제자들도 이렇게 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진우량이 입을 열었다.

"장무기, 네가 방주를 놔주면 나도 검을 거두겠다."

그러면서 장무기가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검을 거두었다.

"좋다!"

장무기의 몸이 잠깐 움직이는 듯하더니 어느새 주지약의 옆에
와 섰다.

주지약은 기진맥진했는지 두 눈이 움푹 들어가 보기에 매우 가
련하였다. 장무기는 그녀를 부축하여 돌의자에 앉혔다.

진우량이 황삼 미녀를 향해 읍을 하며 말했다.

"방가(芳駕)께서 무슨 일로 폐방을 왕림하셨습니까? 어떻게 칭
호를 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실 수 없습니까?"

황삼 미녀는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혼원벽력수 성곤은 어디에 있느냐? 빨리 나와서 나를 만나라고
해라!"

장무기는 혼원벽력수 성곤이란 말에 무슨 영문인지 의아해 했
다. 순간 진우량의 얼굴이 갑자기 크게 일그러지더니, 재빨리 정
색을 하고 담담하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금모사왕 사손의 사부님이 아니요? 그렇다면 장교주에
게 물어야 옳지 않소?"

"당신은 누구요?"

"저는 진우량이라 하오. 개방의 팔대 장로올시다."

황삼 미녀는 사화룡을 노려보더니 다시 물었다.

"저 자는 누구요? 생김새는 무척 영웅 기개가 있는 듯한데, 어
찌 그렇게 쓸모가 없소? 조금 당했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다
니."

개방 사람들은 모두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진우량이 대답을 했다.

"이분은 바로 본방의 방주올시다. 그런데 중병을 앓고 이제 막
회복했소. 당신은 손님이라 우리가 양보했지만 앞으로 또 그런
무례한 말을 지껄이면 가만히 두지 않겠소."

황삼 미녀는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런 표정도 없이 한 흑의 소
녀를 향해 말했다.

"소취(小翠)야, 그 편지를 보여 줘라."

네! 하고 대답하고 나서 흑의 소녀는 품 속에서 편지 하나를 꺼
냈다.

장무기가 옆으로 슬쩍 곁눈질해 보니, 겉봉에 명교 <한산동나리
귀하>라고 씌어 있었고, 밑에는 <개방 사화룡>이라고 적혀 있었
다.

장봉용두는 그 편지를 보자 그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화를 벌컥 냈다.

"이 천한 계집애야, 알고 보니 중간에서 편지를 훔친 게 바로
네 계집애였구나!"

그는 철봉을 쳐들고 앞으로 덮칠 기세였다.

소녀는 깔깔 웃었다.

"나야 어린 계집애지만 당신처럼 큰 사람이 편지 하나도 못 지
킵니까?"

그러면서 가냘픈 팔을 휘두르자 그 편지는 직선을 그으며 장봉
용두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장봉용두는 재빨리 편지를 낚아
챘다.

장무기는 사화룡이 장봉용두를 시켜 편지를 한산동에게 갖다 주
라고 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산동의 아들을 인질로,
그를 개방에 항복하게 하려고 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들
의 대화를 듣자 장무기는 이 백의, 흑의 소녀들이 도중에서 편지
를 절취한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봉용두의 무공이 매
우 정강하여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비로소 자기를 희롱한 사람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여덟 명의 소녀들은 모두 매우
영리한 것이 아니면 무공이 장봉용두보다 더 고강한 것이라고 생
각했다. 아마 황삼미녀가 뒤에서 조종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
다. 그때 황삼미녀가 입을 열었다.

"한산동은 회사에서 몽고놈들을 쫓아내어, 모두 그가 인의를 지
키는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그런 영웅 인물이 자기 아들 때문에
명교를 배반하고 개방에 항복할 것 같소? 이 편지가 한산동에게
전해진다 해도 그저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을 거요. 내가 보기엔
이 장봉용두가 정말 흐리멍텅한 사람이로군요. 개방에 큰 사건이
라 장봉용두가 있는 자리에서 그의 편지를 꺼내 놓는 거요?"

장무기가 포권의 예를 올리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천만에."

황삼 미녀는 다시 개방을 향해 말했다.

"그래 당신들이 한림아를 납치했다고 한산동을 항복시킬 수 있
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장봉용두, 당신이 그날 계속 방해를 받
았을 때 작은 길로 가면 빠져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소?"

진우량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편지를 받아들고 보았다. 겉봉
은 조금도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는 겉봉을 찢고 안을
뜯어보더니 그만 안색이 크게 벼해 버렸다. 편지 내용은 완전히
딴판으로, 개방이 명교에 항복하는 것으로 씌어져 있는 것이 아
닌가!

황삼 미녀는 냉소를 지었다.

"그렇소. 그 편지 내용은 나도 이미 보았소. 그렇지만 내가 고
친 것은 아니오. 내가 이 편지를 본 후에야 장봉용두가 누군가에
게 당한 것을 알았소. 나는 개방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위세가 당
당한 천하 제일의 방회가 이런 창피를 당하지 않게끔 빼앗았던
거요. 당신네들이 잘 생각해 보시오. 이 편지가 명교에 들어갔다
면 개방은 앞으로 무슨 낯으로 강호에 존재하겠소?"

모두 편지 내용을 보니 사실대로였다. 그렇다면 황삼 미녀가 개
방에게큰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또 누가 이 편지
내용을 바꿔치기 했다는 것인가?

흑의 소녀 소취가 웃으며 말했다.

"누가 바꿔치기 했는지 그걸 묻고 싶은 거지요?"

개방 사람들은 모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를
못했다. 그러자 소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장봉용두, 외포를 벗어 보세요."

장봉용두는 벌써 아까부터 얼굴이 붉어져 목에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는 외포를 벗어 뒤로 던져 버리며 외쳤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냐?"

그러자 그의 뒤에 서 있던 개방 사람은 모두 앗! 하고 놀라움을
나타냈다. 무슨 이상한 물체라도 본 것 같았다. 장봉용두는 영문
을 몰라 다시 안에 입은 옷을 벗어 버리자, 몸에 바짝 붙은 속옷
에 큰 박쥐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입가에 피까지 흘리고 있
는 한 마리의 험악한 모습의 박쥐였다.

"청익복왕 위일소!"

하고 모두 외쳤다.

위일소는 중원에 별로 오지를 않아 명성을 그리 날리지 않았으
나, 근래에는 신출귀몰하게 나타나 그의 솜씨를 발휘해 그의 명
성은 백미응왕에 못지 않았다.

장무기는 내심 기뻤다.

'이형과 같은 경공이 아니면 장봉용두를 저렇게 조금도 눈치채
지 못하게 할 사람이 없을 거야.'

장봉용두는 놀라 속옷을 장무기를 향해 휘두르면서 화를 벌컥냈
다.

"좋다, 알고보니 네놈들이 노부를 희롱한 것이구나!"

장무기는 가볍게 옷소매를 흔들어 날아오는 옷을 공중으로 날려
나뭇 가지에 걸리게 하였다. 장무기가 가볍게 웃었다.

"청익복왕이 당신한테 사정을 봐준 것이오. 그가 그 때 당신을
죽이기는 아주 쉬웠을 것이오."

그 말에 장봉용두는 그만 자기도 모르게 치를 떨었다.

진우량은 이 일을 밝힐수록 점점 더 창피만 당할 것을 알고, 그
문제는 다시 거론치 않고 황삼 미녀에게 물었다.

"낭자는 누구신데 저희 개방과 인연이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
까?"

황삼 미녀는 냉소를 지었다.

"당신들과 무슨 인연이 있겠소? 다만 이 청죽봉과 인연이 있
지."

계속 ---

제 3 장 홀연히 나타난 황삼미인(黃杉美女) #3/3

개방 사람들은 벌써 이 청죽봉이 개방의 신물(信物)인 타구봉이
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어떻게 남의 손에 들어갔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모두 사화룡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사화룡의 얼굴은 백짓장과 같이 질려 어찌할 줄을 몰랐다.

전공장로가 물었다.

"방주, 저 계집아이가 들고 있는 타구봉(打狗棒)이 진짜요, 가
짜요?"

"내가 보기엔..... 가짜인 것 같소."

"방주, 그럼 진짜 타구봉을 꺼내 보여 주시겠소?"

"타구봉은 개방의 최고의 보물인데 어떻게 함부로 꺼낼 수 있
소. 그리고 지금 지니고 있지도 않소. 만약 잃어 버리면 큰일이
라....."

그 말에 모두는 체통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개방 방주로서
어떻게 타구봉을 잃어 버린다는 말인가!

여동(女童)이 죽봉을 쳐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자, 보세요! 이 타구봉이 바로 본방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타구
봉이오. 어째서 이것이 가짜라는 거죠?"

본방이라는 말에 개방 제자들은 모두 내심 의아해 하며 자세히
보니, 분명 방주의 신물인 타구봉이 틀림없었다. 모두 서로를 쳐
다보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해 했다.

황삼 미녀가 입을 열었다.

"소문에 개방 방주께서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과 타구봉법으로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는데, 소홍(小虹)아, 네가 먼저 사방주한테
항룡십팔장의 무공을 가르침받아 보거라. 소냉(小冷)아, 너는 소
홍 언니가 이긴 후 다시 타구봉법을 실험해 보아라."

그러자 두 소녀가 앞으로 나와 각기 좌우로 서서 자세를 취했
다.

진우량이 노기띤 음성으로 나무랐다.

"낭자께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벌써 우리 개방을 경멸한
것인데, 두 하녀를 시켜 우리 방주에게 도전을 하다니, 강호에
이런 도리도 있소? 사방주님, 이 제자가 먼저 이 계집아이들을
처치하고 나서 다시 이 낭자의 실력을 시험해 보겠습니다. 도대
체 무슨 재주가 있기에 개방을 이렇게 우습게 보는지 모르겠습니
다."

"좋소. 진장로가 상대하시오."

진우량은 장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섰다.

소홍이 물었다.

"나는 항룡십팔장을 가르침 받으려고 하는 건데, 당신은 그 장
법을 아시오? 그 장법이 검을 사용하는 겁니까?"

"사방주가 어떤 신분인데 너 같은 계집아이와 상대하겠느냐!"

황삼 미녀가 장무기에게 말했다.

"장교주,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말씀해 보십시오."

"저 진가 놈을 던져 버리고 저 가짜 사방주를 끌어내 주십시
오."

그 말에 장무기는 그제서야 모든 것을 알았다. 장무기는 어느새
사화룡 앞으로 접근했다. 사화룡이 충천포(沖天抱)의 초식으로
장무기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팍! 하고 주먹이 장무기의 가슴을
때렸다.

"하! 하! 하! 항룡십팔장이 이런 쓸모없는 권법이오?"

장무기는 그의 가슴을 움켜쥐고 그를 바짝 치켜올렸다.

진우량은 이미 자기는 장무기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어
느새 사람들 속으로 숨어 버렸다.

못난 계집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나와 사화룡을 때
리고 물어뜯으며 외쳤다.

"너는 우리 아버지를 죽인 악마다!"

사화룡은 장무기에게 혈도를 잡혀 꼼짝할 수도 없었다. 그의 키
가 커서 계집아이는 작은 주먹을 그의 아랫배에 때리고 있었다.
장무기가 사화룡을 아래로 누르니 사화룡의 머리가 밑으로 내려
오자, 계집아이는 그의 머리를 낚아챘다. 순간 사화룡의 머리가
갑자기 떨어지며 대머리가 나타났다. 알고보니 그는 원래 대머리
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동이 막 때리고 사화룡의 코를 비틀었으
나 조금도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었다.

모두 어리둥절해 자세히 보니 그는 코도 가짜로 만들었다.

순간 개방 사람들은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넌 누구냐? 도대체 어떤 놈인데 우리 사방주로 변장했느냐?"

장무기는 힘껏 그 자를 내동댕이치자 그 자는 나가떨어져 아무
말도 하지를 못했다. 장봉용두는 화가 치밀어 그 자의 뺨을 힘껏
몇 번 내리쳤다. 그 가짜 방주의 뺨이 부어올라 그 자는 참지 못
하고 외쳤다.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모두 진장로가 시킨 겁니다!"

"진우량이 어디 있느냐?"

집법장로가 외치자 진우량은 그림자조차 나타내지 않았다. 이미
음모가 간파된 것을 알고 도망을 쳐 버린 것이다.

"발리 그 자를 잡아오거라!"

장봉용두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계속 그 자의 뺨을 후려쳤
다.

집법장로가 그를 말렸다.

"풍형제, 이러면 안 되오. 이 자가 죽어 버리면 우린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합니다."

그런 후 그는 황삼 미녀에게 포권의 예를 올렸다.

"낭자께서 모든 것을 밝혀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소
고 있었을 겁니다. 낭자의 이름을 밝힐 수 있는지요? 우리 개방
에서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황삼 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소녀는 심산에 숨어 살면서 바깥 사람과 왕래를 하지 않습니
다. 그러니 내 이름을 알아 봤자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
애를 누구도 알아 보는 사람이 없습니까?"

개방 사람들은 모두 계집아이를 쳐다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
다. 전공장로가 앞으로 걸어나와 자세히 쳐다보았다.

"어딘가 사방주를 많이 닮았는데, 그렇다면.....?"

"그렇습니다. 이름은 사홍석(史紅石), 바로 사방주의 외동딸입
니다. 사방주께서 죽기 직전 부인을 시켜 이 아이를 안고 타구봉
을 들고 나를 찾아와 복수를 해 달라고 하셨던 겁니다."

"아니? 낭자께서는 사방주가 돌아가셨다는 말씀이요? 어떻게 돌
아가신 겁니까?"

선대의 방주들의 항룡십팔장이 야율제(耶律帝)까지 내려오다 이
미 완전히 끊겨, 그 후 역대 방주들은 십 사 장까지 익힐 수밖에
없었다. 사화룡은 십 이 장까지 연마하고, 이십여 년 전에 그 장
법을 익히려다 그만 내력이 부족해 반신불수가 되어 두 팔을 움
직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부인을 데리고 각처의 명산을 찾
아다니며 영약을 구하려고 했다. 그리고는 개방의 모든 일을 전
공과 집법, 두 장로와 장봉, 장발 두 용두에게 맡긴 것이다. 그
러나 두 장로와 두 용두는 각기 책임이 달라 자기네들의 일만을
관리해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 양파로 갈라져 세력이 점점 약해졌던 것인데, 갑
자기 방주가 나타나자 젊은 개방 제자들은 방주를 직접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전공장로나 다른 사람들은 서로 떨어진 지 이십여
년이나 되어 방주의 용모로 비슷하게 변장한 가짜를 알아보지 못
한 것이다.

황삼 미녀는 탄식을 했다.

"사방주는 혼원벽력수 성곤의 손에 죽은 것입니다!"

'엇! 성곤은 분명히 광명정에서 죽은 것을 내가 직접 목격했는
데 어떻게 사화룡을 죽였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 전에 한 짓이란
말인가?'

"낭자, 사방주가 언제 피살당했습니까?"

"작년 시월 육일입니다. 약 두 달 전이지요."

"그렇다면 이상하군? 성곤이 한 짓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
까?"

"사부인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방주가 한 노인과 십이장이나
싸워 그 노인이 피를 토하고 가 버렸는데, 사방주도 그 노인의
장력에 부상을 입었지요. 그 노인이 삼일 후면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찾아올 것을 안 사방주는 모든 일을 부인한테 부탁하고 그
원수의 이름을 밝혔는데, 바로 혼원벽력수 성곤이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사방주의 마비 증세는 이미 구성이나 다 치료되어 그가
익힌 항룡십팔장 중의 십 이 장으로 이미 강호의 일류 고수가 될
수 있는데, 그 십 이장을 다 사용해도 그 자의 손아귀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사홍석은 거기까지 듣자 그만 소리내어 크게 울고 말았다.

전공장로는 비분하여 그 더러운 옷소매로 사홍석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소세매(小世妹), 방주의 원수는 우리 수만 제자의 원수니 언젠
가는 성곤을 붙잡아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이다. 네 어머니는 지
금 어디에 계시냐?"

"어머니는 지금 이 양(楊) 언니 집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계십니
다."

지금에서야 모두는 이 황삼 미녀의 성이 양씨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라는 것은 여전히 조금도 알 수
없었다.

황삼 여자는 가벼운 탄식을 토했다.

"사부인께서도 성곤의 일장을 맞고 상처가 심한데다, 저의 집까
지 왔을 땐 이미 위독하여 완전히 치료할 수 있을지 지금은 아직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집법장로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 성곤이라는 자가 우리 방주와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런 독
수를 썼을까요?"

"사부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성곤과 전혀 모르는 사이라 원한
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다는 겁니다.그래서 사방주께서도 죽기
직전까지도 무슨 이유인지 모르고 있었답니다. 사부인의 말에 의
하면, 아마 개방의 어느 제자가 성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것 같다는군요. 그래서 사방주를 찾아오게 된 거라는 겁니다."

"성곤이 사손을 피하기 위해 이미 수십 년 전에 강호에서 종적
을 감추었는데, 개방 제자들이 어떻게 그와 원한을 맺었겠소? 보
아 하니 무슨 큰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이 옆에서 듣고만 있던 장발용두가 갑자
기 반달형의 칼을 집어들고 가짜 방주인 대머리의 목에 대고 외
쳤다.

"네 이름이 뭐냐? 무슨 이유로 방주로 가장했는지 사실대로 말
해라!"

대머리도 겁에 질려 혼이 빠졌다.

"소인..... 대머리 유오(劉敖)라 합니다. 원래 산서해현(山西解
縣) 난석강(亂石岡) 산채의 두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도둑
질을 하러 내려왔는데, 진우량과 그의 사부를 만나게 된 겁니다.
진우량이 저를 걷어차고 나서 검을 들어 죽이려고 하여, 소인이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진우량이 한참 나를 보고
나서 갑자기 말했습니다. '사부님, 이놈이 우리가 이틀 전에 본
그 자와 무척 닮은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 사부란 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더군요. '아니야, 나이도 안 맞고 코도 납작하고 머
리도 대머리잖아!' 이 말에 진장로가 '제가 똑같이 만들 수 있습
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하여 소인을 해현까지 데리고 가
객점에 투숙시키고 저한테 가발을 씌우고 석고로 제 코도 높이고
다른 모습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여러 나리들, 소인이 아무리 간
이 크다 해도 어찌 감히 여러분들을 속일 용기가 있겠습니까? 진
장로가 강제로 시키니 따랐을 뿐입니다. 소인 집엔 여든 살이 넘
은 노모가 계십니다. 제발 좀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는 무릎을 꿇고 연실 절을 하며 손을 빌었다.

"진우량은 소림파 출신이다. 그의 사부는 분명 소림사의 고승일
것이야. 그런데 그에게 또 어떤 사부가 있지?"

집법장로가 낮은 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장무기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라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의 사부는 바로 성곤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성곤이 어떻게 이름을 원진으로 바꿔 공견신승의
제자가 됐고 또 광명정을 기습하여 끝내 은야왕의 칼에 죽었지
만, 나중에 시체가 실종된 얘기까지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틀림없소. 분명히 광명정에서 성곤이 죽은 척하고 있
다가 혼란한 틈을 노려 도망을 쳐 버렸던 겁니다."

전공장로가 노기띤 음성을 말했다.

"알고 보니 진우량, 이 못된 놈의 짓이었구나. 그 사부와 제자
두 사람이 야심이 커 천하를 독차지하려고, 사방주를 해치고 이
놈을 변장시켜서 괴뢰를 만들고 다시 명교를 협박해 소림, 무당,
아미 삼파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한 것이야. 그런데 송청서는 어
디로 사라졌지?"

그제서야 모두들 개방 방주와 황삼 미녀, 사홍석 등에 정신이
팔려 그들이 도망친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을 알았다.

전공장로는 황삼 미녀에게 포권의 예를 올렸다.

"낭자의 은혜는 우리 개방에서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
다."

"저의 조상들이 개방과 대대로 인연을 맺었었는데, 이만한 작은
일로 무슨 은혜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까? 다만 사방주의 이 외동
딸을 잘 부탁합니다."

그리고 읍을 하고 나서 어느새 이미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다.

"낭자, 잠깐만 기다리시오!"

그러나 어느새 네 명의 백의 소녀와 네 명의 흑의 소녀마저도
지붕을 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전공장로는 사홍석의 손을 잡고 장무기를 향해 말했다.

"장교주, 잠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장무기는 안으로 들어가 전공장로, 그리고 주지약과 같이 자리
에 앉자, 장무기는 일일이 이름을 물어본 후 말했다.

"조(曺) 장로, 만약 저의 의부님께서 귀방에 계시다면 나를 좀
만나게 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행방이라도 좀 알려 주십시
오."

전공장로는 긴 탄식을 하며 입을 열었다.

"진우량 그놈의 간계에 속아 너무 많은 천하 영웅들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사대협과 주낭자는 우리가 관
외에서 어렵게 초청해 온 겁니다. 그런데 그 때 사대협께서 몸에
병이 있어서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싸우지도 않고 여기에 데려온
겁니다. 그런데 닷새 전날 밤에 사대협께서 갑자기 간수들을 죽
이고 도망을 쳐 버렸습니다. 그분이 죽인 개방 제자들의 시체는
아직 뒷마당에 있습니다. 못 믿으시면 직접 가 보셔도 상관 없습
니다."

장무기는 그의 솔직한 태도와 또 그날 밤 자기가 직접 목격한
것이라 다시 물었다.

"제가 어찌 안 믿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서쪽 방향으로 그린
폐교의 연락 암호는 제가 조사해 보니 본교 형제들이 한 짓이 아
니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혹시 귀방과 무슨 관
련이 없는지요?"

"어쩌면 진우량 그놈이 한 짓인지도 모릅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조금도 모릅니다."

장무기는 내심 성곤이 광명정을 자유자재로 출입하면서 필시 명
교의 기호를 알고 있어 그가 한 짓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
편, 만약 의부가 성곤의 손아귀에 잡혀 있다면 하고 생각하니 그
만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사홍석에게 물었다.

"그 양 언니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전에 그를 본 적이 있었느
냐?"

사홍석은 고개를 저었다.

"본 적 없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타구봉을 갖고
며칠 동안 마차를 타고 가다 다시 내려 산으로 올랐는데, 나중에
어머님은 더 이상 걷지 못해 기어서 어느 나무숲까지 와서 소리
쳤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검은 옷을 입은 언니가 나오더니 뒤에
양 언니가 나와 저의 어머니에게 뭐라고 한참 물어본 후 이 타구
봉을 갖고 갔고, 반나절이 지나자 그만 어머니는 기절해 버렸습
니다. 그 뒤 양언니가 여덟 명의 언니들과 나를 데리고 마차를
타고 이리로 온 겁니다."

그녀는 나이가 어려 자세히 얘기하지를 못했다. 지방 이름을 물
어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입에서 조금도 단서를 찾아
낼 수 없었다.

전공장로가 다시 말했다.

"귀교의 한산동 나리의 아들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 후 분부하자, 한 제자가 바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 버
렸다.

잠시 후 한림아가 큰 소리로 욕설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천벌을 받을 거지떼들아! 또 나를 속이려고 하느냐? 우리
명교의 교주가 어떤 신분인데 너희 같은 거지 소굴에 오겠느냐?
어서 빨리 나를 죽여라! 어떤 간계를 부려도 소용없다!"

그 말을 들은 개방 장로들은 모두 참회스러운 표정들이었다.

장무기는 한림아의 인품에 감동해 앞으로 나서며 그를 마중하였
다.

"한대형, 나요. 며칠 동안 고생이 많았소."

한림아는 깜짝 놀라 그만 무릎을 끓고 절을 올렸다.

"교주님께서 정말 오셨군요. 어서 명령을 내려 이 거지떼들을
모조리 쓸어 버리게 하십시오."

장무기는 웃으며 그를 일으켰다.

"한대형, 개방 여러 장로들도 다른 사람의 간계에 속았던 것입
니다. 이제 모든 것을 알았으니 한형께선 나를 봐서도 이제 그만
화를 푸시고 용서하십시오."

그 말에 한림아는 개방 장로들을 그저 노려보며 참을 수밖에 없
었다.

집법장로가 입을 열었다.

"장교주께서 오늘 이렇게 왕림하셨으니 정말 큰 영광입니다.
자, 어서 연회를 차리고 장교주를 환영하는 동시에 한형에게 사
죄를 합시다."

장무기는 의부의 안부가 걱정됐고, 또한 주지약에게 물어 볼 말
도 많아 음식을 먹을 심정이 아니었다.

"여러분의 호의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의 의부님을 찾는
일이 급해 지금 떠나야겠으니 용서하십시오."

전공장로와 여럿이 완곡하게 만류하자, 장무기는 이대로 떠나면
개방에게 실례를 저지를 것 같아 연회석에 참석할 수 밖에 없었
다. 연회 중에 개방 고수들은 정중히 사죄하고 나서 개방 제자를
시켜 사손의 행방을 사방으로 알아내게 하여 즉시 장무기에게 연
락을 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하였다. 장무기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서 그들과 마음껏 먹고 마셨다.

개방의 여러 고수들은 장무기가 나이도 젊고 무공이 그렇게 높
은데도 조금도 오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성품이 활달한데 반
해, 합심하여 몽고 오랑캐를 몰아내기로 약속하고 노룡 밖 십여
리까지 배웅하고 나서 그제서야 서로 헤어졌다.

----- 제 6권 3장 끝 -----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6 권

제 4 장 깨져 버린 혼례식(婚禮式) #1/5

장무기, 주지약, 한림아 세 사람은 개방의 갑부가 마련해 준 말
을 타고 관도를 따라서 남하(南下)했다. 한림아는 도중에서 마치
하인처럼 시중을 들어 주었다. 그러자 장무기는 은근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한대형, 당신은 비록 우리 교에 속해 있는 형제지만, 인간적으
로 당신을 존경하고 있소. 물론 공적인 일에는 나의 호령을 듣겠
지만, 평상시에는 형제, 친구처럼 지내는 게 어떻겠소?"

그러자 한림아는 몹시황공해 하였다.

"당치도 않습니다. 항상 교주님을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오늘 제가 모실 수 있게 되어서 실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
습니다."

이윽고 주지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당신의 교주도 아닌데 뭣 때문에 나에게도 공경하게 대하는
것이죠?"

"주낭자께서는 선녀와 대등한 인물입니다. 소인이 같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만도 전생의 타고난 복입니다. 말투가 좀 거칠어도
흉보지 마십시오."

주지약은 자신의 용모가 청순하고 아름다워서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한림아처럼 오체투지(五體投地)한
남성은 평생 처음 만났다. 그러니 소녀의 마음이 얼마나 기뻐하
겠는가!

이윽고 장무기가, 그녀가 개방에게 잡혀가게 된 경위를 묻자,
주지약은 이렇게 말했다.

----- 그날 그가 객점을 나간 뒤 얼마 후 사손은 느닷없이 온몸
을 떨면서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겁이 덜컥 나서
있는 힘을 다하여 타이르고 위로해 주었다. 그러자 사손은 마치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이 방 안에서 날뛰었다. 얼마 후 바닥
에 쓰러지면서 인사불성이 되었다. 바로 이때개방의 육,칠 명
고수가 동시에 방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그녀가 미처 검을 뽑
기도 전에 이미 제압당해서 사손과 함께 노룡(盧龍)으로 압송된
것이다.-----

장무기는 어릴 때부터 의부가 칠상권을 연마하는 바람에 심맥을
상한 것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온 가족이 성곤에게 살해되었기
에 간간이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
각에 발작되어서 개방의 침습을 막아내지 못할 줄은 정말 뜻밖이
었다. 두 사람은 사손이 있을 만한 곳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전혀 집히는 게 없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경사(京師)는 각처의 인물이 모이는 곳이오. 우리가 남쪽으로
내려가면 지나가게 될 것이오. 거기서 바로 대도에 가서 수소문
하는 게 어떻겠소? 청익복왕 위형에게 혹 무슨 단서라도 있을 줄
모르지 않소?"

"당신이 정말 위일소를 만나러 대도에 가는 겁니까?"

주지약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장무기는 그녀의 말뜻을 눈
치채고 그만 얼굴이 빨개졌다.

"위형을 찾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양좌사, 고두타, 팽화상 등
그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좋은 대책을 세워 줄 것이오."

"대도에 있는 그 여자를 찾아가면 더욱 좋은 대책을 세워 줄 거
예요. 양좌사 그들이 어떻게 그 낭자의 총명한 머리를 따라가겠
어요?"

장무기는 조민과 만났던 일을 그녀에게 숨기고 있었는데, 막상
그녀가 빈정대며 말을 하자 표정이 몹시 부자연스러워 졌다.

"당신은 기분만 좋았다 하면 한 번씩 창피를 주는구료."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은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이군요. 제가
당신의 마음을 모르는 줄 알았나요?"

장무기는 주지약과 백년해로를 약속한 사이라 더 이상 아무 말
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지약,당신에게 꼭 얘기해 줄 일이 있는데, 화내지 않기로 약
속할 수 있겠소?"

"화내야 할 일은 화내고 화내지 않아야 할 일은 내지 않을 거예
요."

그러자 장무기는 잠시 생각을 했다. 그 사이 타고 있던 말은 작
은 마을 한 곳 가까워졌다. 이때 이미 해도 저물어서 객점을 찾
아 투숙하기로 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주지약의 배심(背心)을
다시 한 차례 주물러 주었다.

"우리 밖으로 산보하러 가요."

주지약은 객점 안이 더럽고 냄새난다며 장무기에게 말했다.

"그럽시다."

그녀와 손을 맞잡고 마을 밖으로 나갔다. 이때 석양은 산등성이
에 걸려 있었고 서쪽 하늘의 놀은 마치 피빛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걷다가 큰 나무 밑에 앉았다. 이윽고 해
는 서산에 지고 사방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장무기는 용기
를 내어 미륵묘에서 조민을 만났던 일이며, 어떻게 막성곡의 시
체를 발견한 것과, 어떻게 송원교를 만난 것과, 어째서 명교의
불길 표시를 따라서 기북(冀北) 일대를 돌았던 일들을 일일이 말
해 주었다. 나중에는 주지약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지약, 당신은 나의 미혼처요.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지 않소?
그러기에 난 당신에게 아무것도 숨기고 싶지 않은 거요. 조낭자
가 의부를 다시 만나려 하는 건 의부에게 물어 볼 중요한 말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소. 난 그 당시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자꾸만 두려워지는구료."

"뭘 두려워하는 거죠?"

"의부에게는 실심풍(失心風)이란 증세가 있기 때문에 발작하게
되면 인사불성되어 버린다오. 그의 두 눈이 장님으로 된 것도 우
리 어머님의 은침을 맞아서 멀게 된 것이오. 내가 출생할 때도
의부는 우리 부모를 살해하려 했소. 그런데 나의 울음소리를 듣
더니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되었소. 난.....난 정말 두려워....."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겁니까?"

"이 말은 해서는 안 되지만 난 정말 걱정되오. 나의 사촌누이
는..... 바로..... 의부가 살해한 것이오."

그러자 주지약은 놀라서 펄쩍 뛰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사대협께서는 우리 후배들을 더없이 사랑으로 대하시는데, 어
찌 은낭자를 죽일 수 있겠어요?"

"물론 이건 나의 추측에 불과하오. 설령 사촌누이가 의부에게
살해되었다면, 그건 어르신네의 고질병이 갑자기 발작되어서 그
런 것이지 절대로 본의는 아닐 것이오. 아아, 이 모든 잘못은 전
부 성곤 그 악적 때문이오."

주지약은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우리가 동시에 십향연근산에 중독된 것도 의부 그
어르신네의 짓이란 말인가요? 그는 어디서 독약을 구했죠? 사람
이란 갑자기 정신착란을 일으키면 살인하는 건 있을 수 있지만,
어떻게 음식에다 독을 뿌려 놓겠어요?"

장무기의 눈앞에는 마치 짙은 안개가 깔려 있는 것처럼 전혀 빛
을 볼 수 없었다. 이윽고 주지약의 싸늘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무기 오빠, 당신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조낭자의 누명을 벗
겨주려 하는군요."

"만약에 조낭자가 범인이라면 의부를 피하는 것도 시급할 것인
데 뭣 때문에 의부를 만나려 하겠소?"

그 낭자는 신기묘산(神機妙算)해서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서
는 어떠한 방법도 생각해 낼 겁니다."

그녀의 말투는 갑자기 부드럽게 변하면서 그의 몸에 안기었다.

"무기 오빠,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온후하며 점잖은 사람이에
요. 그러나 총명지모(聰明智謀)를 따진다면 조낭자의 상대는 될
수 없어요."

장무기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이윽고 그녀의
부드러운 몸매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지약, 세상만사는 번뇌가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료. 난 달
자들을 몰아내는 대업을 완수하면 당신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서 조용히 살겠소. 그 때는 속세의 일은 전혀 상관하지 않겠소."

"당신은 명교의 교주에요. 만약 하늘이 도와서 호로(胡盧)를 정
말 몰아내게 된다면 천하는 당신 명교가 장악하게 될 것인데, 어
떻게 조용히 산단 말인가요?"

"나의 재간으로는 교주가 과분하며 또 하고 싶지도 않소. 만약
명교가 중권(重權)을 장악하게 되면, 교주의 자리는 더욱 마땅히
영명지철한 사람이 담당해야만 하오."

이윽고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끝없이 사랑을 속삭였다.

이때 갑자기 이 장 밖에 있는 큰 나무 뒤에서 흐흐 하며 두 번
냉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는 사이에 그림
자 하나가 몇 번 흔들거리더니 멀리 사라졌다. 그러자 주지약은
벌떡 일어나더니 창백한 얼굴을 하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조민이에요. 그녀는 줄곧 우리를 미행했어요!"

"그녀가 분명할까? 뭣 때문에 우리를 미행했을까?"

"그녀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걸 아직도 발뺌할 작정입니까?
당신들은 필시 날 놀라게 하기 위해서 사전에 약속한게 아녜요?"

주지약이 화를 내며 말을 하자 장무기는 연신 억울하다며 소리
쳤다.

주지약은 잠시 앞뒤의 경과를 생각하더니 또 눈물을 흘렸다. 그
러자 장무기는 왼손으로 그녀를 끌어안으며 오른손의 옷자락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또 눈물을 흘리는 거요? 만약에 내가 조낭자하고 여기서 만
나기로 약속했다면 벼락을 맞아 죽을 것이오."

"무기 오빠, 제 마음이 자꾸 흔들리는 것 같아요."

주지약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자 장무기는 그녀를 품안으
로 끌어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의부를 찾게 되면 그 어르신네에게 부탁해서 우리 두
사람의 혼례를 주선해달라고 할 것이오. 그러면 우리 두 사람은
앞으로 헤어지지 않고 백년해로할 게 아니오? 이렇게 하면 되겠
소."

"제발 오늘의 말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두 사람은 오랫 동안 부둥켜안고 있었다. 새벽이 되자 바람은
점차 강하게 불었다. 두 사람은 그제야 객점으로 들어와서 각기
취침했다.

다음날 아침 세 사람은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으나 조민의 종적
은 다시 발견하지 못했다.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대도에 도착하
게 되었다. 성 안으로 들어갈 때는 이미 해질 무렵이었으나, 합
성(合城)의 남녀들은 모두 거리를 청소하고 있었다. 큰길과 작은
골목까지 모두 깨끗이 청소해 놓고 집집마다 대문밖에는 향안(香
安)을 설치해 놓았다.

장무기 일행은 객점에 투숙하면서 안 안에 무슨 큰일이 있는지
종업원에게 물어보았다.

"손님들께서는 정말 때마침오셨습니다. 내일이 대유황성(大遊
皇城)하는 날입니다."

"대유황성이라니?"

"내일은 황상께서 일 년에 한 번 대유황성하는 날입니다. 황상
께서 경수사에 봉향하러 가실 때 수만 명의 남녀들이 반희유행
(拌戱遊行)합니다. 그 행렬의 길이는 자그만치 삼,사십 리는 되
는 실로 장관입니다. 손님들께서 내일 일찍 일어나 서서 옥덕전
문 밖에 가시면 황상, 황후, 귀비, 태자, 공주, 모두 보게 될 겁
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 같은 백성들이 경사(京師)에 살고 있
지 않는다면 어떻게 황상을 직접 볼 수 있겠습니까?"

"도적을 지아비로 섬기는 건 부끄러움을 모르는 한간(漢奸)이
다. 달자의 황제가 뭐 볼게 있느냐?"

한림아가 화를 내며 호통치자 종업원은 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
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당신.....당신이 하는 말은 반역 행위가 아닙니까?
죽는 게 겁나지 않습니까?"

"나는 한림아다! 달자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었느
냐! 그런데 넌 황상이 어쩌구저쩌구 하다니, 정말 쓸개도 없는
놈이구나!"

그 종업원은 우락부락한 그를 보자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려 했
다. 그러자 주지약은 얼른 그 자의 등에 있는 혈도를 찍으며 말
했다.

"이 자가 나가면 필시 입을 놀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관병들이
곧 우리를 잡으러 오겠지요."

말을 하면서 그를 침대 밑으로 걷어찼다.

"우선 그를 며칠 굶긴 후 우리가 떠날 때 풀어 줍시다."

잠시 후 주인장이 밖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아복, 아복! 또 거기서 쓸데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거냐! 빨
리 3호실에 세숫물 갖다 드려라!"

그러자 한림아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탁자를 치며 소리쳤
다.

"빨리 술과 음식을 가져오너라!"

잠시 후 다른 종업원이 음식을 갖고 들어오면서 중얼거렸다.

"아복, 이 녀석은 아마 황상에 불꽃놀이 구경하러 갔을 거야.
그 녀석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엉뚱한 짓만 골라서 한단 말이
야."

다음날 아침 장무기가 깨어나자 밖은 몹시 소란했다. 문 밖으로
나가보니 수 많은 남녀들이 모두 호화스런 옷을 입고 북쪽으로
몰려갔다. 저마다 즐거워하는 모습은 설날을 방불케 했다. 폭죽
소리도 사방에서 끊임없이 터지고 있었다. 주지약도 문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우리도 구경하러 갑시다."

"난 여양왕부에 있는 무사들과 싸운 적이 있어서 내 얼굴을 알
아볼 것이오. 구경하러 가더라도 우선 변장 좀 해야겠소."

장무기, 주지약, 한림아 세 사람은 시골남자와 여자로 변장하고
얼굴과 양손은 흙탕물로 노랗게 칠한 다음, 사람들을 따라서 황
성으로 몰려갔다.

그 때는 겨우 모말진초(卯末辰初) 시각인데도. 황성의 안팎은
이미 인산인해가 되어서 발디딜 곳이 없었다. 그러자 장무기는
양팔을 앞으로 뻗어서 사람들을 살짝 밀어내며 길을 터 주었다.
잠시 후 연춘문 밖에 있는 부잣집 처마 밑에까지왔다. 얼마 후
바로 징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러자 백성들은 일제히 왔다,
왔다! 라고 소리치며 목을 내밀고 쳐다보았다.

징소리는 점차 가까이 다가올수록 소리가 요란했다. 이윽고 백
팔명의 우람한 남자들이 모두 청색옷을 입고 왼손에는 징을 하나
씩 들고 있었고, 오른손의 징추로 일제히 징을 쳤다. 백 팔개 징
이 동시에 올리는 소리는 실로 고막이 터질 정도였다. 징부대가
지나가자 뒤에는 삼백 육십명의 장고 부대가 따랐고, 그 뒤는 한
인의 고적대, 서역의 비파대, 몽고의 호각(號角)대가 따랐다. 부
대마다 백에서 오백 명은 되었다. 악대가 모두 지나가자 빨간 비
단으로 만든 큰 깃발 두 개가 따라왔다. 하나는 안방호국(安邦護
國)이란 글이 씌어 있고, 하나는 진사복마(鎭邪伏魔) 였다. 옆에
는 금빛 찬란한 범문(梵文)이 많이 씌어 있었다. 깃발의 전후에
는 몽고 정병 이백 명이 호위하고 있었다. 사백 명이 타고 있는
말은 모두 흰 색이었다. 백성들은 이러한 위세를 보게 되자 모두
큰 소리로 환호성을 쳤다.

큰 깃발 두 개가 지나가는 순간, 갑자기 서쪽에 몰려 있는 사람
숲에서 흰 빛이 연거푸 번뜩거리더니두 줄기 비도(飛刀)가 두
개의 깃대를 향해서 날아갔다. 비도는 한 줄에 일곱 자루씩 연결
시킨 것이다. 일곱 자루 비도는 질서정연하게 깃대에 꽂혔다. 비
록 깃대는 매우 굵었으나 일곱 자루의 비다가 일제히 꽂히자 몇
번 휘청거리면서 바로 부러졌다. 그러자 비명소리가 크게 들리면
서 십여 명이 깃대에 깔리고 말았다.

이 갑작스런 변고는 장무기의 일행도 예측 못한 일이었다. 한림
아는 너무나 기뻐서 갈채를 보내려는 찰나 갑자기 부드러운 손
한 쪽이 뻗어와서 그의 입을 막았다. 주지약이 때마침 그가 소리
치는 것을 저지시킨 것이다.

순간 사백 명 몽고병들이 각각 병기를 들고 사람 숲 속에서 범
인을 수색했다.

장무기는 열 네 자루의 비도를 발사한 수경(手勁)이 매우 예리
한 것을 보고 무림 고수의 소행이란 것을 짐작했다. 그러나 서로
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잠
시 후 몽고병들은 칠,팔 명의 남자들을 억지로 끌어냈다. 그들은
모두 억울하다며 소리쳤으나 몽고병들은 일제히 창칼을 휘둘러서
무참하게 살해하였다. 그러자 한림아는 몹시 화를 내며 말했다.

"비도를 던진 자는 벌써 사라졌는데, 저 멍청한 놈들은 양민을
학살하여 화풀이를 하다니!"

"한대형, 소리를 낮추세요."

주지약이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네."

한림아는 더 이상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한 차례 소란이 끝나자 뒤에는 악기소리가 다시 울렸다. 다가오
는 부대들은 모두 칼을 삼키고 불을 토하는 서역비기(西域秘技)
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다시 갈채를 보냈다. 방금 있었던 유혈참
극은 마치 깨끗이 잊어버린 듯했다. 그 다음은 화려한 마차 행렬
이었다. 마차 위마다 준동미녀(俊童美女)들이 모두 연극 속에 있
는 인물처럼 분장했다.

장무기 일행은 항상 가난한 벽촌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이러한
번화기상은 전혀 볼 기회가 없었다. 제각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차 위에는 전부 금기(錦旗)가 꽂혀 있었고, 뒤로 갈수록 마차
는 더욱 화려했다. 이는 모두가 몽고의 왕공대신들이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며, 또 각자가 부(富)를 과시하기 위해서다. 그
래서 한결같이 돈을 아끼지 않고 마차를 장식했다.

갑자기 깨진 징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비쩍 마른 말 두 필이 채
차(綵車) 한 대를 끌고 들어왔다. 이 마차는 전혀 장식이 달려있
지 않았고 몹시 허름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리
며 빈정거렸다.

"저런 형편없는 마차로 황성 들러리에 참석했다니, 정말 사람
웃기는군."

마차는 천천히 가까이 다가왔다. 장무기는 마차를 보는 순간 놀
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차 안에는 한 남자가 노랑머리를 어깨까
지 늘어뜨렸으며, 두 눈을 꼭 감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이건 금
모사왕 사손으로 분장한 게 틀림없었다. 옆에는 파란 옷을 입은
미모의 소녀가 찻잔을 들고 정성껏 모시고 있었다. 용모는 비록
주지약만은 못했지만 치장한 것은 그녀가 만안사의 담 위에 있을
때와 똑같았다.

계속 ---


제 4 장 깨져 버린 혼례식(婚禮式) #2/5

순간 한림아가 말했다.

"주낭자, 저 사람은 당신을 꼭 닮았어요."

그러자 주지약은 콧방귀만 뀌고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장
무기는 그녀가 몹시 화내고 있는 것을 보자, 손을 내밀어서 그녀
의 오른손을 잡아주었다.

이 마차의 뒤에도 여전히 사손과 주지약으로 분장한 마차가 따
르고 있었다. 그 여자배우가 낄낄거리며 남자 배우의 등 뒤로 가
서 두 손가락으로 갑자기 가짜 사손의 등을 힘껏 한 번 찍었다.
그러자 가짜 사손은 악! 하고 크게 소리치면서 침대 밑으로 떨어
졌다. 그러나 가짜 주지약이 발로 누르면서 검을 들어올리더니
찌르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잘하다! 잘한다! 빨리 죽여라!"

세 번째 마차도 역시 가짜 사손과 가짜 주지약이었으나 그들이
육,칠 명의 개방 사람들에게 잡혀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장무기는 이 마차 세 대가 조민이 연출해낸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녀는 주지약이 대도에 올 줄 미리 예상해서 주지약을 한 차례
놀려주려는 속셈이었다. 이윽고 그는 허리를 굽히더니 작은 돌
몇 개를 집었다. 가운데 손가락으로 살짝 튕겨서 세 번째 마차를
끌고 있던 두 말의 오른쪽 눈을 적중했다. 돌은 뇌로 관통해서
들어갔기 때문에 두 말은 몇 번 애절하게 울부짖더니 바로 쓰러
져 죽었다. 그러자 마차는 뒤집히고 차 안에 있던 남녀 배우들은
모두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순간 거리는 또다시 아수라장이 되었
다.

"그 요녀가 날 이처럼 모욕하다니 내.....내.....내....."

주지약이 입술을 깨물고 말을 하자 장무기가 얼른 위로해 주었
다.

"지약, 그 못된 여자가어떤 해괴망측한 짓을 하더라도 당신은
신경쓰지 말아요. 남이 아무리 당신과 나를 이간질시킨다 해도
난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러자 주지약은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말했다.

"아, 생각났어요. 그날 의부는 평소와 다름없이 잘 있었는데 갑
자기 몸을 한 번 떨더니 바닥에 쓰러지면서 헛소리하게 되었죠.
혹시.....혹시 당시 그 요녀가 객점의 어두운 곳에 숨어서 의부
의 후심에 암기를 발사한 게 아닐까요?"

"그녀의 무공으로는 의부를 암살한다는 게 그다지 쉽지는 않을
것이고, 혹 현명이로(玄冥二老)가그랬는지도 모르지 않소."

말하고 있는 사이에 몽고 관병들은 이미 백성들을 탄압해서 죽
은 말을 끌어내자 뒤에 있던 마차들이 다시 끊임없이 다가왔다.
마차 행렬이 지나가자 범창(梵唱) 소리가 들리면서 빨간 가사를
걸친 번승(番僧) 행렬이 걸어 들어왔다. 번승 대의 뒤에는 이천
명의 철갑 어림군(御林軍)이 따랐고, 그 뒤에는 삼천 명의 궁전
수(弓箭手)가 있었다. 궁전수가 모두 지나가자 향연(香煙)이 모
락모락 나면서 신상(神像)을 하나하나 가마에 태운 채 지나갔다.
모두 삼백 육십 존(尊)의 신상이 있었는데, 맨 끝에는 관성제군
(關聖帝君)의 신상이었다. 그러자 백성들은 염불을 외우는 자도
있고, 무릎꿇고 절을 하는 자도 있었다.

신상이 지나가자 금과금추(金瓜金錘)를 들고 있는 의장대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우선보산(羽扇寶傘) 행렬이 하나씩 지나갔다.
그러자 백성들은 일제히 말했다.

"황상께서 오신다! 황상께서 오신다!"

멀리서 황주대교(黃紂大轎 한 대가 삼십 이 명의 금의시위들에
게 들린 채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무기가 자세히 그 몽
고 황제를 살펴보니, 얼굴은 파리하면서 핼쓱한 것이 몹시 쇠약
하게 보였다. 그러나 말을 타고 있는 황태자는 매우 영기(英氣)
가 있었다. 등에는 금과 옥으로 장식한 긴 활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영낙없는 몽고 건아의 차림이다.

한림아가 장무기의 귀에 대고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교주님, 소인이 덮쳐가서 단칼에 저 달자 황제를 죽여 버릴까
요?"

"안 되오. 달자 황제의 신변에는 필시 많은 고수들이 있을 것이
오. 그러니 내가 가겠소."

그러자 장무기의 왼쪽에 서 있던 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

장무기, 주지약, 한림아 세 사람은 일제히 깜짝 놀라며 그 자를
쳐다보았다. 이 자는 쉰 살쯤 되는 낭중(郎中)이었다. 등에는 약
자루를 짊어지고 있었으며 오른손에는 호장(虎杖)을 짚고 있었
다. 그 자는 양손의 엄지를 펴서 가슴 앞에 나란히 하더니 명교
의 화염수세(火염手勢)를 해 보이면서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팽영옥, 교주님께 인사드립니다. 교주님의 건강한 모습을 보게
되어서 정말로 매우 기쁩니다."

그러자 장무기도 매우 기뻐했다.

"아, 당신은 팽....."

그 자는 바로 팽영옥이었다. 그의 변장술이 교묘해서 옆에 한참
동안 있었는데도 장무기의 일행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이윽고 팽영옥이 조그만 소리도 다시 말했다.

"여기는 말할 곳이 못 됩니다. 달자 황제를 죽여서는 안 됩니
다."

장무기는 전부터 그의 견식이 매우 넓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만 끄덕일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제와 황태자가 지나간 후 다시 삼천 명의 철갑 어림군이 있었
고, 그 뒤에는 수천 수만의 백성들이 구경하러 따라갔다. 이윽고
길가에 있던 백성들은 일제히 말했다.

"황후낭낭과, 공주낭낭을 보러 가자!"

사람들은 모두 서쪽으로 몰려갔다. 그러자 주지약이 말했다.

"우리도 구경하러 가요."

네 사람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옥덕진 밖으로 따라갔다. 거기엔
일곱 채의 화려한 누각이 우뚝 솟아 있었고, 누각 밖에는 어림군
이 등조(藤條)를 들고 외부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쫓아내고 있었
다. 비록 백성들이 많이 몰려 있었으나 장무기 일행은 가볍게 누
각 앞으로 다가갔다. 중간에 있는 제일 높은 누각에는 황제가 자
리하고 있었고, 옆에는 황후 두 분이 있었다. 황후들은 모두 뚱
뚱한 중년 부인이었으며, 온 몸은 주옥 보석으로 감싸있어서 휘
황찬란했다. 머리에는 고관(高冠)을 쓰고 있었는데, 매우 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황태자는 왼쪽 아래에 앉아 있었고, 오른쪽
밑에는 스무 살 가량의 공주가 앉아있었다. 장무기는 두루 살펴
보다가 왼쪽 두번째 누각에 있는 한 소녀의 얼굴에 시선을 멈추
었다. 이 소녀는 초구(招구)를 입고 있었고, 목에는 진주목걸이
를 하고 있었다. 바로 조민이었다. 이 누각의 중간에 앉아있는
수염 긴 왕야(王爺)는 조민의 부친인 여양왕 찰한특목이었다. 조
민의 오빠인 고고특목이는 누각 위에서 왔다갔다하며 거닐고 있
었다. 응시호보(鷹視虎步)한 것이 매우 사납고 날카롭게 보였다.
주지약은 조민을 잠시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돌아가요."

네 사람은 사람 숲을 헤쳐나와서 객점으로 돌아갔다. 팽영옥은
장무기에게 참견(參見)인사를 하고 나서, 그 동안 밀렸던 이야기
를 나누었다. 장무기는 사손에 관한 소식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팽영옥은 금방 회사(淮泗)에서 대도로 왔기 때문에 사손이 중원
에 이미 돌아왔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는 주원장, 서달, 상우춘
등이 전에 없는 전공을 많이 세웠기 때문에 명교의 위성을 더욱
크게 떨쳤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한림아가 말했다.

"팽대사님, 지금 우리가 채루(綵樓)에 덮쳐서 달자 황제를 단칼
에 죽여 버리면, 일로영일(一勞永逸)하지 않습니까?"

팽영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황제가 혼용무도(昏庸無道)한다는 건 바로 우리를 크게 돕고
있는 격이 되는데 뭐하러 그를 죽이겠느냐?"

"달자 황제가 혼용무도하기에 백성들은 몹시 수난을 겪고 있는
데, 어째서 우리를 돕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건 한형제가 모르고 하는 말이다. 달자 황제는 번승을 임용
(任用)하기 때문에 조정 안은 몹시 문란해지고 있으며, 또 가로
(駕魯)에서 황하를 개발하고 명했으니 노민상재(努民傷財) 때문
에 천인공노할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우리같은 오합지졸이 몽고
정병을 쳐부술 수 있는 건 모두 그 멍청한 황제가 재능있는 관리
를 임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몽고병이 싸움을 잘한다 하
더라도 멍청한 장군들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달자 황제는 바로 우리의 큰 동업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이러한 말을 듣고 있던 장무기는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팽영
옥이 다시 말했다.

"만약에 우리가 달자 황제를 살해한다면 황태자가 황위에 오르
게 될 것이다. 그 황태자의 생김새만 보아도 보통내기는 아닐 것
같다. 설사 새 황제도 혼군(昏君)이긴 해도 그의 멍청한 애비보
다는 나을 것이다. 만약 그가 정전(征戰)에 능한 장군들을 기용
해서 우리를 치게 되면 그 때는 큰일이 아니냐?"

이윽고 장무기가 말했다.

"대사님께서 때마침 도착하셨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일을 그
르칠 뻔했습니다."

그러자 한림아는 자기의 뺨을 때리며 욕지거리로 말했다.

"죽어도 싸지, 죽어도 싸! 네 이녀석, 나중에 또 이런 멍청한
짓을 하겠느냐?"

순간 장무기, 주지약, 팽영옥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팽영옥이 다시 말했다.

"교주님은 천금지체(千金之體)입니다. 게다가 어깨에는 호로(胡
虜)를 몰아내며 나라를 재건하는 중임이 걸려 있어서 무모한 모
험은 절대 금물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황제의 신변에는 많은 고
수가 호위하고 있을 겁니다. 만에 하나라도 실수하게 되시면 큰
일이 아닙니까?"

그러자 장무기는 포권의 예로 인사하며 말했다.

"대사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겠습니다."

이윽고 주지약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팽대사님의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그런데 어찌 당신은 함부로
모험을 하려는 겁니까? 나중에 우리의 큰 뜻이 이뤄지게 되면 채
루의 용의(龍椅)에 앉아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장교주입니다."

그러자 한림아는 박수치며 말했다.

"그 땐 교주님께서는 황제가 되시고 주낭자께서는 황후낭낭이
되시고, 양좌사님과 팽대사님은 바로 좌,우 승상이 될겁니다."

주지약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지만 기뻐하는
모습은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장무기는 손을 마구 흔들며 말했
다.

"한형제, 다시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본교는 오로지 백
성들을 수심화열(水深火熱)에서 구제하는 일만 도모할 뿐입니다.
절대로 부귀영화를 탐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만 광명정대한 대
장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황포(黃袍)를 입게 되시고 뿌리칠 순 없
게 될 겁니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했더라면 하늘
이 용서치 않을 것이오."

주지약은 결단성 있는 그의 말을 듣자 실망한 얼굴을 하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 사람이 식사를 마친 후 장무기가 말했다.

"나와 팽대사님은 밖에 나가서 의부 소식을 알아보겠소."

그는 한림아의 성격이 외골수라 불공평한 일을 보게 되면 즉시
주먹을 휘두르기 때문에 화를 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형제, 당신과 지약은 오늘 밤에는 나가지 마시고 객점에서
푹 쉬십시오."

"네, 조심하세요, 교주님."

그러자 장무기와 팽영옥은 이경(二更)전에 객점에서 회합하기로
약속하고 두 사람은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갔다. 장무기
는 서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도중에는 백성들이 군데군데 모여서
유황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흥미를 느끼지 못해
서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걷고 있는 곳은 갈수록 조용하고 후미
졌다. 불쑥 고개를 들어보니, 그날 조민과 술을 마셨던 작은 주
점 앞에 당도한 것이다. 그는 내심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곳을 오게 됐구나. 진정 난 조낭자를 잊
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이때 주점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는 조용하여 술손님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갔
다. 안에는 한 종업원이 카운터 옆에 있는 탁자에 앉아서 꾸벅꾸
벅 졸고 있었다. 내당으로 들어가 보니 구석에 있는 탁자 위에는
꺼질 듯한 촛불이 켜져 있었고, 탁자 옆에는 한 사람이 안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그 탁자는 바로 그와 조민이 두 번씩이나 술
을 마셨던 자리였다. 주점에는 술 손님이 한 사람뿐이었다. 그
사람은 발자국소리를 듣더니 불쑥 일어났다. 그러자 촛불의 빛은
흔들거리며 그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뜻밖에도 조민이었다.
순간 두 사람은 모두 아! 하고 소리를쳤다. 이윽고 조민이 조그
만 소리로 말했다.

"당신.....당신이 어떻게 왔죠?"

감정이 몹시 격동되어서 말소리가 떨렸다. 그러자 장무기가 말
했다.

"지나는 길에 들렸을 뿐이오. 그런데....."

탁자 옆으로 다가가 보니 그녀의 반대편에는 젓가락 한 쌍이 놓
여 있었다.

"사람을 기다리고 있소?"

그러자 조민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뇨, 지난번 두 번씩이나 이 자리에서 당신하고 술을 마실
때, 당신은 나의 반대편에 앉아 있었지요. 그래서.....그래서 제
가 종업원을 시켜서 젓가락 한 쌍을 더 준비하라고 했죠."

장무기는 내심 감격했다. 탁자에 놓여 있는 안주 네 접시는 첫
번째 조민이 그를 초대해서 술마셨던 안주와 똑같은 것임을 보
자, 그녀의 두 손을 꼭 잡고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조낭자!"

그러나 조민은 상심하듯 말했다.

"제가 몽고의 왕가에서 태어난 게 원망스러울 뿐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이때 갑자기 창 밖에서 흐흐하며 두 번 냉소가 들리더니, 한 물
체가 날아들어와서 촛불을 꺼뜨렸다. 순간 방 안은 칠흑처럼 깜
깜했다. 장무기와 조민은 모두 주지약의 짓인 줄 알았기 때문에
일시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윽고 지붕 위에서 발자
국소리가 들리면서 주지약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조민이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당신과 그녀는 이미 백년해로하기로 약속했다는데 정말입니
까?"

"그렇소. 당신에게 숨기고 싶지 않소."

"그날 제가 나무 뒤에서 당신과 그녀가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걸 듣게 되었을 때는 당장 죽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날
제가 두 번 냉소를 지었더니 오늘 그녀가 복수하는군요. 그러
나.....그러나 당신은 한 마디도 제가 좋아하는 말은 하지 않았
어요."

장무기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조낭자, 내가 여기에 와서 당신을 만난 게 잘못이오. 당신은
금지옥엽의 몸입니다. 앞으로는 이 산촌야부(山村野夫)를 잊어
버리구료."

조민은 그의 손을 잡으며 손등에 있는 상처 자국을 만지면서 말
했다.

"이건 제가 물어서 생긴 자국입니다. 당신의 무공과 의술이 아
무리 뛰어나도 이 자국은 지울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은 손등에
있는 상처 자국도 지울 수 없으면서 제 가슴의 상처 자국을 어떻
게 지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술에다 진하게 키스했
다. 그런데 갑자기 조민은 그의 입술을 호되게 물어 버렸다. 그
의 윗입술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밀치면
서 몸을 되돌리더니 창문으로 빠져나가며 소리쳤다.

"당신이 미워, 당신이 미워!"

한림아는 장무기와 팽영옥이 객점을 나간 후 주지약에게 말했
다.

"주낭자, 일찍 쉬시오."

"한대형, 절 무서워하는 겁니까?"

그러자 한림아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러면서 재빨리 자기 방으로 달려가서 방문을 걸어 잠그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한참 동안 주지약을 생각하다가 미소를 지으
며 몽롱하게 잠들었다. 갑자기 꽈다당! 하는 소리가 한 번 들렸
다. 마치 동편에 있는 방 안에서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인 것 같
았다. 그 방은 바로 주지약의 방이었다. 그러자 한림아는 재빨리
방을 뛰쳐나갔다. 동편의 방에 있는 창문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
가 달빛에 반사되었는데, 마치 공중에 걸려있는 듯 살며시 흔들
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한림아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주낭자, 주낭자?"

문을 열어 보았으나 방문은 잠겨 있었다. 그러자 그는 어깨로
힘껏 밀어부쳐서 빗장을 부러뜨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급히
부싯돌로 촛불을 밝혀보니 주지약은 대들보에 목매달려 있었다.
순간 그는 기절초풍했다. 얼른 몸을 튕겨서 밧줄을 끊고 주지약
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코에 손을 대어보니 다행히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주낭자, 주낭자! 당신.....당신이 뭣 때문에....."

갑자기 문 밖에서 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한형제, 무슨 일이오?"

한 사람이 걸어들어왔는데, 바로 장무기였다. 장무기도 이러한
광경을 보게 되자 마치 갑자기 벼락을 맞은 듯했다. 떨리는 두
손으로 주지약의 목에 있는 밧줄을 풀어주며 그녀의 가슴을 만져
보았다.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그러자 기뻐하며 말했다.

"괜찮소, 구할 수 있습니다."

손으로 그녀의 배심(背心)에 있는 소복혈도를 몇 번 주물러 주
자 한 줄기 구양진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갔다. 왕복으로 한 번
부딪치더니 주지약은 와! 하고 소리내며 울어 버렸다. 한림아는
너무나 기뻐서 소리쳤다.

"됐어요, 됐어요! 주낭자가 살아났어요!"

주지약은 눈을 뜨고 장무기를 보게 되자 울면서 말했다.

계속 ---

제 4 장 깨져 버린 혼례식(婚禮式) #3/5

"뭣 때문에 살렸어요? 차라리 죽어 버리게 내버려 두지 그랬어
요?"

문득 그의 윗입술에 이빨자국이 있는 것을 보더니, 울화가 치밀
어서 그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순간 한림아는 깜짝 놀랐다.

'교주를 구타하다니 될 법이란 말인가?'

그러나 주지약은 그의 마음 속에 마치 천신(天神)같은 존재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갑자기 사람 손이 뻗어오면서 그의 어
깨를 두 번 살짝 두드렸다. 한림아가 뒤돌아보니 바로 팽영옥이
어느새 온 것이다. 그는 몹시 기뻐했다.

"팽대사님, 돌아오셨군요. 어서 주낭자 좀 타일러 보세요."

그러자 팽영옥은 웃으며 말했다.

"뭘 타이르란 말이냐?"

그러면서 장무기에게 말했다.

"교주님께 아뢰오. 금모사왕의 소식을 알아오지 못했습니다."

장무기는 음! 하고 대답했으나 표정이 몹시 부자연스러웠다. 그
러자 팽영옥은 한림아에게 말했다.

"한형재, 우리는 밖으로 나가지."

"싫습니다. 두 사람이 싸우게 되면 주낭자는 교주님의 적수가
못 됩니다."

팽영옥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멍청한 친구, 우리 둘이서 주낭자를 돕는다고 교주님을 이길
것 같으냐? 교주님은 분명히 주낭자에게 지게 돼 있다."

그러면서 한림아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러자 한림아는 몹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한없이 뒤돌아보았다.

주지약은 그만 피식 하고 웃더니 바로 침대에 쓰러져서 흐느끼
며 울었다. 장무기는 침대로 다가가서 살며시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지약, 절대로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한 게 아니오. 정말 우연히
만나게 되었소."

주지약은 발을 동동구르며 울면서말했다.

"전 믿을 수 없어요. 당신이 어떠한 변명을 하더라도 전 앞으로
당신을 믿지 않을 겁니다."

장무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세상 일이란 본시 오해를 일으키기 아주 쉬운 것이오..... "

주지약은 불쑥 일어나서 앉았다.

"당신의 입술 좀 보세요. 이게 무슨 꼴입니까? 창피하지도 않아
요?"

장무기는 오늘 있었던 일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생
각을 했다. 어차피 자기는 이미 주지약하고 부부가 되기로 결심
했으니, 정으로 그녀를 달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촛불
에 비친 그녀의 불그스름한 얼굴과, 목에는 밧줄자국이 깊게 새
겨져 있었다. 만약 한림아가 제때 구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죽었
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부끄럽기도 하고 애석하기도 했다. 이
윽고 팔을 내밀어서 그녀를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려는데 주지약
은 머리를 돌려서 피하더니 화를 벌컥 냈다.

"더러운 몸으로 절 건드리지 말아요. 제가 그리도 만만하게 보
입니까?"

그러자 장무기는 그녀가 꼼짝하지 못하게 양팔을 바짝 조르고는
그녀의 입술에다 진하게 키스했다. 이윽고 그녀의 마음도 점차
누그러졌다.

다음날 아침, 장무기는 팽영옥에게 대도에 사흘간 더 머물면서
사손의 소식을 알아보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주지약과 한림아를
데리고 남쪽에 있는 회사(淮泗)로 내려갔다.

막상 산동(山東) 경내에 당도하자 몽고의 패잔병들이 벌떼처럼
밀려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패잔병 중의 한 낙오자를 잡
아서 신문해 보니, 주원장이 회북(淮北) 전쟁에서 연거푸 대승을
몇 번 거뒀기에 원병(元兵)은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세 사람은 너무나 기뻐서 걸음을 한층 더 재촉해
노완(魯完) 변계에도착했다. 이곳은 이미 명교 의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의군 중에서 한림아를 아는 자가 급히 원수부에 통보했
다.

세 사람이 호주(濠洲)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한산동이 주원장,
서달, 상우춘, 등유, 탕화 등 정군들을 이끌고 삼십 리 밖까지
영접하러 나왔다.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게 되어서 모두 굉장히
기뻐했다. 한산동은 교주가 아들을 구해주었다는 말을 듣고 더욱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들은 수많은 병사들의 옹호를 받으며 호주
성으로 들어갔다.

장무기는 성 안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다. 양소, 범요, 은천정,
위일소, 은야왕, 철관도인, 설불득, 주전, 오행기의 여러 장기사
등 사람들은 소식을 듣고 각지에서 몰려왔다.

장무기는 사손이 중원에 돌아온 일이며, 개방에게 잡혀가서 다
시 실종된 여러 가지 사정을 말해 주었다. 양소, 범요, 은천정
등은 여러모로 곰곰이 생각하고 상의해 보았으나, 모두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범요가 말했다.

"그 황삼(黃杉) 미녀의 내력은 모르겠지만, 사형의 행적을 그녀
한테서 찾게 될지도 모르겠소."

그러나 군호들은 무림에 그런 황삼 미녀가 있다는 것조차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장무기는 몹시 초조하고 불안하였으나 당장 어
떻게 할 방도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오행기에 속해 있는 교도
들을 각처에 파견해서 수소문하기로 했다. 다시 하루가 지나자
팽영옥이 대도에서 왔다. 그 역시 사손에 관한 소식은 전혀 알아
내지 못했다.

명교의 의군이 여러 차례 대승을 거두었으나 피해도 매우 극심
했다. 앞으로 이,삼 개월 동안은 의군의 세력을 재정돈하고 신병
을 모집해야만 원군과 다시 대전을 치를 수 있었다. 군호들은 교
주가 몽고의 군주를 아내로 맞이할까 봐 하루속히 주지약하고 혼
례를 치루도록 권고하였다. 그러자 장무기도 쾌히 승낙했다.

양소는 삼원 시오 일을 황도길일(黃道吉日)로 택일했다. 그러자
명교의 아래윗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며 교주의 혼사일에 분주하
기 시작했다.

이때는 명교의 위성이 천하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동로(東路)에
서는 한산동이 회사 일대의 성(城)을 많이 함락하였고, 서로에
있는 서수휘(徐壽煇)도 약북, 예남 일대에서 원병을 연패시키고
있었다. 교주의 혼사가 밖으로 전해지자 무림 인사의 하례는 마
치 밀물처럼 밀려왔다. 각 문파의 장문인들도 모두 하객과 예물
을 보내왔다. 장삼봉은 손수 쓴 가아가부(佳兒佳婦) 네 자를 임
축하여 태극권경 한 권과 송원교, 유연주, 은이정 삼대 제자를
하객으로 보내왔다.

장무기는 진우량과 송청서가 흉계를 꾸며서 장삼봉을 해칠까봐
위일소를 사례사(謝禮使)로 무당으로 보냈다. 그러면서 위일소에
게 급히 말했다.

"진우량 그놈은 위형이 마음대로 처치하세요. 그러나 송청서는
저의 송대사백의 독생자이며 미래의 무당파 장문인이라서, 당분
간 무당파 자신들에게 처리하라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대사
백님의 정을 상하지 않을 겁니다."

위일소는 대답하고 나서 정중한 예를 올린 다음 무당으로 떠났
다.

삼월 십일이 되었다.아미의 여러 여협들은 제각기 선물을 갖고
호주에 왔다. 다만 정민군은 직접 오지 않고 선물만 보내왔다.

드디어 삼월 시오일이 되었다. 명교의 아래윗 사람들은 모두다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배천지(拜天地) 하는 예당은 호주에서 제
일 부자집의 대청에 마련했다. 장삼봉의 <가아가부> 네 자로 된
대입축(大入軸)은 중앙에 걸려 있었다. 은천정은 신랑측 주혼(主
婚)이고, 상우춘은 신부측 주혼이며, 철관도인을 호주총순(濠洲
總巡)으로 임명해서 적의 침입을 막게 하였다. 탕화는 의군을 이
끌고 성 밖에 주둔하면서 적을 막았다. 이날 오전에 소림파와 화
산파도 예물을 보내오며 축하해 주었다.

신시일각(申時一刻) 길시가 되자 호각과 폭죽소리가 일제히 울
려 퍼졌다. 하객들이 대청에 일제히 들어오자 찬례생이 낭랑한
목청으로 찬례(贊禮)하였다. 그러자 송원교와 은야왕이 장무기를
데리고 나왔다. 사죽(絲竹)소리가 울리자 여덟 명의 아미파 젊은
여협들이 주지약을 데리고 대청 안으로 들어왔다. 주지약의 몸에
는 빨간색 금포(錦袍)를 입었고, 봉관하피(鳳冠霞被) 하였으며,
얼굴은 빨간 천으로 가려 있었다.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
신랑,신부는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섰다. 그러자 찬례생(사회자)
이 낭랑하게 외쳤다.

"배천(拜天)!"

장무기와 주지약이 무릎을 꿇으려는 찰나 갑자기 대문 밖에서
큰 소리의 외침이 들렸다.

"잠깐 멈추시오!"

파란 빛이 번뜩거리더니 한 청의(靑衣) 소녀가 웃음을 띄우고
어느새 대청 안에 서 있었다. 바로 조민이었다. 군호들은 그녀가
온 것을 보자 저마다 호통치며 격분했다.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바로 덮쳐가서 출수하려 했다. 그러자 양소는 양팔을 벌리면서
덩달아 한 번 외쳤다.

"잠깐 멈추시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폐교와 아미파의 장문이 혼례식을 올리는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조낭자가 축하하러 왔으면 바로 우리들의 반가운 손님
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미파와 명교의 체면을 봐서라도 지나간 일
들은 잠시 접어 두시고, 조낭자를 무례하게 대하지 맙시다."

그는 설불득과 팽영옥에게 눈치를 하자, 두 사람은 즉시 알아차
리고 후원으로 돌아가서 조민이 얼마나 많은 고수들을 데려왔는
지 살펴보았다. 이윽고 양소가 조민에게 말했다.

"조낭자, 이쪽 상좌로 어셔서 관례하십시오. 나중에 제가 낭자
에게 술 석 잔을 다시 권하겠소."

"장교주에게 몇 마디 드린 후 바로 물러가겠습니다. 나중에 다
시 와서 폐를 끼치겠습니다."

"무슨 얘긴지는 모르지만 혼례식이 끝난 다음에 얘기합시다."

"혼례식이 끝나면 너무 늦습니다."

"오늘만큼은 조낭자가 지중하길 바라오."

그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조민이 만약에 난동을 부린다
면 즉시 출수하여 그녀의 혈도를 찍어서 제압한 다음에 다시 얘
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조민이 장무기에게 말했다.

"장무기, 당신은 명교의 교주요. 사내 대장부가 약속한 말은 책
임지게 되어 있죠!"

"내가 한 말들은 모두 책임지오!"

"그날 당신의 유삼숙과 은육숙의 목숨을 구해줄 때, 당신은 나
의 세 가지 조건을 따르기로 약속했죠? 그렇죠?"

"틀림없소. 당신은 나한테 도룡보도를 빌려서 구경하자고 했소.
그런데 당신은 이미 구경했을 뿐더러 보도를 훔쳐갔소."

근래 수십 년 동안강호에 있는 사람들은 이 무림지존(武林至
尊) 도룡도의 행방에 모두 관심이 있었다. 갑자기 조민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자 순간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조민이 말했다.

"도룡도가 누구의 수중에 있는지는 오직 금모사왕 사대협께서만
알고 있소. 당신은 그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나요?"

사손이 이미 중원에 돌아온 일은 무림의 군호들은 대다수가 모
르고 있었다. 그녀가 금모사왕의 말을 꺼내자 대청 안의 소란스
런 소리가 금방 조용해졌다.

장무기가 말했다.

"난 의부가 계신 곳을 몰라서 밤낮으로 걱정하고 있소. 낭자가
가르쳐 주시기 바라오."

"내가 당신한테 하라는 세 가지 일이 절대로 무림의 협의지도
(俠義之道)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당신은 복종하기로 약속했
어요. 도룡도를 빌려 본 일은 비록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 보도
는 결국 보게 되었어요. 나중에 보도가 도난당한 것에 당신을 나
무랄 수는 없어요. 그러니 첫 번째 일은 이미 실천된 거지요. 지
금 두 번째 할 일이 기다리고 있어요. 장무기, 천하의 영웅호걸
여러분들 앞에서 당신은 절대로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나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는 것이오?"

그러자 양소가 얼른 말을 가로챘다.

"조낭자, 당신이 폐교 교주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은 물론 사전
에 약속이 되어 있지만, 무림도의를 위배하지 않는다면 폐교의
어떤 사람일지라도 진심갈력(盡心竭力)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은 장교주가 새 부인과 친지를 참배하는 좋은 시각이니, 다른 일
은 잠시 옆으로 밀어두고 제발 방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중의 말투는 몹시 엄하고 사나왔다. 그러나 조민은 오히려 아
무렇지도 않은 듯 짜증부리며 말했다.

"나의 이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잠시도 지체할 수 없소."

갑자기 장무기의 몸 앞으로 다가가서 발 뒤꿈치를 들더니 그의
귀에 대고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두 번째 일은 오늘 당신과 주낭자가 혼례를 치루지 않는 것이
오!"

"뭐라구?!"

"그게 바로 두 번째 일예요. 세 번째 일은 나중에 생각나면 다
시 당신에게 얘기해 주겠어요."

그녀의 이 몇 마디는 비록 조그만 소리로 말했지만, 주지약과
가까이 서 있는 송원교, 유연주, 은이정, 그리고 신부의 들러리
를 하고 있는 아미의 여덟 여자도 모두 들었다. 그들은 모두 아
연실색했다.

장무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일은 따를 수 없소!"

"당신은 약속을 어길 작정입니까?"

"우리가 사전에 분명히 약속한 것은 협의지도를 위배하지 않는
것이오. 나와 주낭자는 부부가 되기를 약속했는데, 만약에 당신
의 뜻대로 한다면 그것이 <의>자를 위배하는 것이오!"

그러자 조민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당신과 그녀가 혼사를 치루게 되면, 그거야말로 불효불의
(不孝不義)가 되는 것이에요. 대도에서 유황성할 때 당신의 의부
가 남에게 어떠한 암습을 당했는지 보지 못했단 말이에요?"

장무기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조낭자, 오늘 당신은 나의 손님이라 내가 양보하겠소. 만약에
또 허튼소리를 지껄이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두 번째 일은 따르지 않겠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이게 뭔지 한
번 보세요."

오른손을 펴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장무기는 깜짝 놀랐
다. 온 몸을 떨면서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이..... 이건 나....."

조민은 재빨리 손을 오므려서 그 물건을 품 안에 넣으며 말했
다.

"두 번째 일을 따르든 안 따르든 그건 당신 자유예요."

말을 하면서 대문 밖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손 안에 무슨 물건이 있었기에 장무기를 이처럼 경황없
게 만들었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주지약의 두 눈은 빨간 천에
가려 있었기에 장무기와 조민의 말소리만 들릴 뿐 전혀 밖을 볼
수 없었다. 장무기가 급히 말했다.

"조.....조낭자, 잠시 걸음을 멈추시오!"

"당신이 내 말을 따르겠다면 날 따라오고, 따르지 않겠다면 빨
리 신부와 혼례식을 올리시지요."

그녀는 낭랑한 소리로 말을 했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고 곧장 대
문 밖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장무기가 얼른 외쳤다.

"조낭자, 잠깐 멈추시오!"

그러면서 급히 다가가서 소리쳤다.

"좋소. 당신의 뜻을 따르겠소. 오늘 혼례식을 치루지 않겠소!"

조민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렇다면 날 따라 오시죠."

장무기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주지약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보
게 되자 몹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막상 그녀에게 몇 마디 설
명해 주려는데, 조민이 다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이자 이를 악
물고 조민의 뒤를 따랐다.

장무기가 대문 앞까지 쫓아갔을 때 갑자기 몸 옆으로 빨간 그림
자가 번뜩거리더니 한 사람이 조민의 등 뒤에 다가가 빨간 옷자
락 안에서 손을 내밀었다. 다섯 손가락을 조민의 머리 위로 찍어
내렸다. 이처럼 신속하고 민첩하게 출수한 자는 바로 신부 주지
약이었다.

장무기는 멈칫했다.

'이 일초는 정말 무섭구나. 지약이 어디에서 이처럼 정묘한 무
공을 배웠을까?'

그녀의 수장(手掌)은 이미 조민의 정문(頂門)을 감싸고 있었고,
다섯 손가락이 찍어내렸다 하면 즉시 뇌가 깨지는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자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즉시 앞으로 튕겨
가서 주지약의 맥문을 잡으려 했다. 그러자 주지약은 왼손 팔꿈
치로 느닷없이 공격했다. 순간 팍! 하고 가벼운 소리가 나면서
그의 가슴에 정통으로 적중했다. 장무기의 체내에 있는 구양신공
이 즉시 발동되어 이 일격의 경력을 감소시켰지만, 흉복간의 기
혈이 치솟는 것 같으면서 다리가 약간 휘청거렸다.

이 사이에 조민은 이미 앞으로 반 발자국 나가면서 뇌문 급소를
피했지만 어깨에 심한 통증을 한 차례 느꼈다. 주지약의 오른손
다섯 손가락이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 삽입된 것이다. 그러자 장
무기는 아! 하고 소리를 한 번 지르더니 손을 뻗어서 주지약에게
밀어갔다. 장무기는 그녀와 싸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서 다
만 막아내고 타이르려 했다. 그러나 주지약은 양손으로 연거푸
위험한 초수로 팔초를 전개하였다. 장무기가 건곤이위심법을 전
개해서야 막아내었다. 팔공(攻) 팔수(守)는 전광석화처럼 눈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다. 대청 안에 있는 군호들은 숨을 죽이며 눈여
겨 보고 있었으나 모두 놀라서 멍해졌다.

조민은 어깨에 중상을 입어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상처 난
다섯 구명에서는 피가 샘처럼 솟아나 입고 있던 옷이 절반은 피
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계속 ---
제 4 장 깨져 버린 혼례식(婚禮式) #4/5

주지약은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말했다.

"장무기, 당신은 저 요녀의 유혹을 받고 날 버리고 그녀를 따라
가려 했습니까?"

"지약, 나의 괴로운 심정을 이해하기 바라오. 우리의 혼인 약속
은 장무기가 절대로 지킬 것이오. 다만 며칠 뒤로....."

주지약은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이 꼭 가야 한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마세요!"

조민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걸어갔다. 바닥에는 온통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로 젖어 있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의부께선 나에게 산처럼 무거운 은혜를 베푸셨소. 지약, 지약,
당신이 이해하기 바라오."

그러면서 조민을 뒤쫓아 나갔다. 은천정, 양소, 송원교, 유연
주, 은이정 등은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막을 수 없었다. 주지약은 불쑥 손을 내밀더니 얼굴을 가린 빨간
천을 찢어내며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께서 보신 바와 같이 그 자가 날 배신한 것이지, 내가
그 자를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주지약과 장무기는 은
단의절(恩斷義絶)합니다!"

말을 하면서 머리에 쓰고 있는 봉관을 풀어내리더니, 한 주먹의
진주를 움켜잡고 나서 봉관을 던져 버렸다. 양손에 힘을 가하자
진주는 모드 가루로 변해서 우수수 하며 흘러내렸다.

"나 주지약이 오늘의 치욕을 씻지 않는다면, 바로 이 진주처럼
될 것이오."

은천정, 송원교, 양소 등은 그녀를 타이르고 진정시켜서 장무기
가 돌아오면 내막을 자세히 묻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주지약은 양손으로 빨간 장포(長袍)를 두 갈래로
찢어서 바닥에 팽개치면서즉시 몸을 위로 솟구치더니 공중에서
살짝 몸을 꺾어서 지붕 위로 올라갔다.

양소, 은천정 등이 일제히 따라갔으나 그녀는 마치 둥실둥실 떠
가는 가벼운 빨간 구름처럼 동쪽으로 사라졌다. 경공의 실력은
청익복왕 위일소와 비슷했다. 양소의 일행은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잠시 멍하더니 다시 대청으로 돌아왔다.

아미파의 여자들은 조그만 소리로 서로 몇 마디 상의하더니 화
난 표정을 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자 은천정은 연신 사과하
면서 장무기가 돌아오면 아미 금정에 가서 사과한 후 다시 혼사
를 주선한다고 말했다. 절대로 양가의 화기를 상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아미파의 여자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즉시 분산
하여 주지약을 찾아나섰다. 남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사내 대장부
가 박행(薄倖)하면 좋지 못하다고 호되게 나무랐다.

조민이 장무기에게 보인 것은 다름아닌 한 줌의 담황색 머리카
락이었다. 장무기는 금방 사손의 머리카락인 줄 알았다. 사손이
수련한 내공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중년 이후에는 긴 머리카락
이 담황색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서역 색목인의 금발과는 아
주 달랐다.

그가 대문 쪽으로 나가 보니, 조민은 전력 질주하고 있었다. 어
깨의 선혈이 대로에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숨을 한 번 몰
아쉬더니 수 장을 달려가서 그녀를 가로막고 말했다.

"조낭자, 나를 불의(不義)의 인간으로 몰아세우지 마시오!"

조민의 어깨는 상처가 몹시 깊었다. 처음엔 한 모금 진기만 믿
고 억지로 지탱하며 달려온 것이다. 막상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진기가 흩어지면서 바로 쓰러졌다.

장무기는 몸을 굽히며 말했다.

"우선 나에게 말하시오. 의부는 어디에 계시오?"

"날 데리고가서 그를 구해야 해요. 내가....내가 당신에게....
안내하겠어요."

"그 어르신네 생명은 무사하오?"

"당신의 의부.....의부는 성곤에게 잡혀 있어요."

장무기는 <성곤> 두 글자를 듣게 되자 그 놀라움은 실로 오장육
부가 모두 터지 듯했다. 이 자는 무공이 고강할 뿐 아니라 계략
또한 풍부하고 사손과는 철천지 원수지간이라, 그에게 잡혔다면
위험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민이 말했다.

"당신 혼자서는 안 되어요. 어서..... 양소, 그들을 불러서 같
이....."

그러면서 손으로 서쪽을 가리키더니갑자기 머리가 뒤로 젖혀지
면서 기절했다. 장무기는 의부가 지금쯤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
을 상상하자 오장육부가 불에 타는 듯했다. 얼른 조민을 안아들
고 옷자락을 찢어서 그녀의 상처를 동여매고 길가에 있는 한 명
교 교도를 불러 분부했다.

"빨리 양좌사에게 통보해서 급히 사람을 데리고 서쪽으로 달려
오라고 명하여라. 내가 분부할 일이 있다고 전해라!"

그 교도는 대답하고 나서 날 듯이 뛰어가서 통보하러 갔다.

장무기는 한시라도 지체하면 의부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얼른 조민을안아들고 성문 옆으로 달려갔다. 수문사졸에
게 명해서 건마(健馬) 한 필을 끌어오라 했다. 몸을 날려서 올라
타더니 서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수 리를 달려가더니 품안에 있
는 조민의 몸이 점점 차가운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맥박을 재
어보니 몹시 약하게 뛰고 있었다. 순간 그는 놀라서 몹시 다급했
다. 얼른 상처를 살펴보니 깊이는 뼈가 보일 정도며 상처 옆의
근육은 모두 흑자색으로 변해 필시 극독에 중독된 것이 틀림없었
다. 그는 몹시 경이했다.

'지약은 아미의 제자인데, 어찌 이토록 음독한 무공을 사용할
수 있을까? 그녀의 수법은 멸절사태보다 더 예리하고 악랄하다.
그건 무슨 연유일까?'

당장은 조민을 급히 구하지 않으면 독이 퍼져서 죽게 될 것이
다. 그는 신랑 복장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독을 치료하는 약품을
휴대했을 리는 만무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즉시 말에서 뛰어내렸
다. 이윽고 그녀의 몸을 안아들더니 몸을 튕겨서 왼쪽에 있는 산
속으로 달려갔다. 사방을 둘러보면서 독을 제거하는 약초를 찾아
보았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는 흔해 빠진 약초 한 뿌리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는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사방을 찾아보았다. 갑
자기 눈이 밝아지면서 오른쪽 전방에 있는 작은 폭포 옆에 사,오
송이의 빨간 작은 꽃을 발견했다. 이건 불좌소홍연(佛座小紅蓮)
이란 꽃인데 독을 제거하는 효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매우 기
뻤다. 얼른 조민을 안아들고 골짜기 개울을 지나가서 빨간 꽃을
꺾었다. 꽃을 입으로 씹어서 반은 조민에게 먹이고 반은 그녀의
어깨에다 붙여 주었다. 그리고 조민을 안아들고 서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삼십여 리쯤 달려가니 조민이 깨어나서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제.....제가 아직살아있나요?"

그러자 장무기는 웃으며 말했다.

"기분이 어때요?"

"어깨가 몹시 가려워요. 아아, 주낭자의 그 일수무공(一手武功)
은 정말 무섭군요."

장무기는 그녀를 살며시 내려놓고 그녀의 어깨를 다시 살펴보
니, 흑기(黑氣)는 전혀 가시지 않고 다만 맥박이 전처럼 미약하
지 않았다. 장무기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으로 그녀의 어깨를 빨
아주었다. 한 모금씩 당에 뱉어 낼 때마다 그 비린내는 코를 진
동시켰다. 조민은 그의 머리를 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장공자, 이 중간의 곡절을 아직도 생각해 내지 못했나요?"

장무기는 더러운 피를 전부 빨아낸 후 개울에 가서 입가심하고
그녀의 옆으로 돌아와서 앉으며 말했다.

"곡절이라니?"

"주낭자는 명문정파의 제자인데, 어찌 이런 음독한 사문무공을
할 줄 압니까?"

"나도 이상한 생각이 드오. 도대체 누가 그녀에게 가르쳤을까
요?"

조민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필시 마교 사파의 작은 도적이 가르쳤을 거예요."

그러자 장무기는 웃으며 말했다.

"마교에는 많은 마두가 있지만, 아무도 이런 무공은 할 줄 모르
오. 다만 청익복왕이 사람 목의 피를 빨고 장무기는 어깨 피를
빨아 댈 뿐이오."

이윽고 바로 되물었다.

"나의 의부는 어째서 성곤에게 잡혔소? 도대체 지금은 어디에
있소?"

"내가 당신을 데리고 가서 구해낼 방법을 강구할 거예요. 어디
에 있는지는 말해 줄 수 없어요. 내가 말을 하게 되면 당신은 즉
시 달려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날 버려둘 게 아닙니까?"

그러자 장무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그토록 정도 의리도 없는 줄 알았소?"

"당신은 의부를 위해서 꽃다운 새색시도 버렸는데, 나쯤이야..
..."

말을 하면서 천천히 그의 몸에 기대면서 다시 말했다.

"오늘 당신의 첫날밤을 늦추어 놓았는데 날 원망할 건가요?"

어찌된 일인지 장무기의 지금 심정은 몹시 즐거웠다. 도대체 무
슨 까닭인지 자신도 말할 수 없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물론 당신을 원망하오. 나중에 당신이 그 준수한 군마야(郡馬
爺)라는 분하고 혼례식을 올릴 때, 나는 한바탕 소란을 피울 것
이오. 절대로 새색시를 편하게 할 수는 없소."

조민의 창백한 얼굴이 빨개지면서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소란피우면 단칼에 죽여 버릴 거예요."

장무기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웬 한숨입니까?"

"그 군마야라는 분은 전생에 무슨 선행을 했기에 이처럼 복을
타고났을까?"

조민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도 늦지 않아요."

"뭐요?"

조민은 얼굴이 빨개졌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쯤
얘기했으니 두 사람은 모두 부끄러워서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장무기는 다시 그녀의 상처에 약
을 발라 주고 나서 그녀를 안아들고 다시 서쪽으로 달렸다. 조민
이 그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기에 얼굴을 서로 맞대고 있었다. 장
무기는 그녀의 얼굴에서 풍기는 분향과 지향(脂香)을 코로 맡고,
손에는 부드러운 몸매를 안고 있으니, 끓어오르는 욕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만약 의부를 구해내는 일이 시급하지 않았다면 이
산골짜기에서 평생 동안 걷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 사람은 호주(濠洲) 서쪽의 교외에 있는 야산에서 하룻밤을
노숙했다. 다음날 그들은 작은 마을 한 곳에 가서 건강한 말 두
필을 구입했다. 조민의 독상(毒傷)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고 게
다가 몸까지 허약해서 하는 수 없이 장무기와 말을 같이 탔다.
이렇게 닷새 동안을 달려서 하남 경내에 도착했다. 이날 두 사람
이 한참 말을 타고 가는 도중에 갑자기 백여 명의 말탄 자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몽고의 기병이었다. 그
러자 장무기는 말을 길 옆으로 몰아서 길을 비켜주었다. 몽고 기
병들이 쏜살처럼 지나가자 수십 장 뒤에는 또 한패의 말탄 자들
이 있었다. 장무기가 바라보니 그들 중에는 신전팔웅(神箭八雄)
이 끼어 있었다. 그러자 속으로 걱정하며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그 자들은 두 사람의 얼굴이 길 옆으로 향해 있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신전팔웅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이 자들이 모두 지나가고 나서 장무기는 말머리를 다시 돌려 앞
으로 달리려는 찰나, 갑자기 가볍고 민첩한 말굽소리가 들리면서
말 세 필이 쏜살처럼 달려왔다. 중간은 백마였고 말 위에 탄 자
는 비단으로 된 도포에 금관을 쓰고 있었다. 옆에는 각각 밤색
말이었다. 안장에는 녹장객과 학필옹, 즉 현명이로가 타고 있었
다.

장무기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리려는데 녹장객이 이미 두 사람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군주낭낭께서는 당황하지 마시오. 구원 부대가 왔습니다."

그러자 학필옹은 즉시 소리 높여서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신전
팔웅 등이 휘파람소리를 듣더니 즉시 달려와서 두 사람을 중간에
놓고 포위했다. 그러자 조민이 말했다.

"오빠, 여기서 오빠를 만날 줄은 정말 뜻밖이군요. 아버님은 안
녕하세요?"

장무기는 그녀가 <오빠>라고 부르자, 비로소 그 백마를 타고 있
는자가 바로 조민의 오빠인 고고특목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한
나라 이름은 왕보보(王保保)다.

왕보보는 뜻밖에도 누이를 보게 되어 놀라워하면서도 기뻐했
다. 하지만 그는 장무기를 알지 못했다. 이윽고 이마를 찌푸리
며,

"누이, 너.....너.....!"

"오빠, 전 적에게 암습을 당해서 몸에 심한 독상을 입었는데,
다행히 이분 장공자께서 구해 주셨어요. 그렇지 않으면 오늘 오
빠를 보지 못했을 거예요."

녹장객은 왕보보의 귓가에 입을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소왕야(小王爺), 저 자가 바로 마교의 교주 장무기입니다."

왕보보는 오래 전부터 장무기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조민
이 그에게 협박당해서 하는 말인 줄 알고 오른손을 한번 휘두르
자, 현명이로는 장무기의 좌우에 다섯 치 정도 떨어진 곳에 다가
갔으며, 아울러 신전팔웅 중의 사웅도 각각 화살을 장진하여 그
의 후심에 조준했다.

왕보보가 말했다.

"장교주, 각하는 일교의 주인이며 무림에서 이름나 있는 호걸인
데, 연약한 나의 누이를 괴롭히다니 남들이 비웃을 게 두렵지 않
소? 빨리 그녀를 놓아주시오. 목숨만은 살려 주겠소."

"오빠,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장공자는 나에게 분명히 은혜
를 베풀었는데 어째서 괴롭힌다는 겁니까?"

왕보보는 낭랑한 어조로 말했다.

"장교주, 당신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해도 두 주먹으로는 네 사
람을 상대할 수 없소. 나의 누이를 살려준다면 오늘 우리도 당신
을 살려 주겠소. 나 왕보보가 한 말은 절대적이오."

장무기는 내심 생각을 굴렸다.

'조낭자의 독상은 몹시 심하다. 날 다라서 천리길을 달리게 되
면 상처가 쉽사리 낮게 되지 않는다. 이왕에 그녀의 오빠와 만나
게 됐으니, 아무래도 그녀의 오빠를 따라서 왕부의 명의에게 치
료받는 것이 그녀의 몸에 좋을 것이다.'

"조낭자, 오빠께서 당신을 모셔간다 하니 우리는 여기서 작별합
시다. 다만 나의 의부가 있는 곳을 말해 준다면 내가 가서 구출
해 낼 방법을 생각하겠소. 우리는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
오."

"내가 끝까지 사대협이 있는 곳을 알리지 않는 것은 그만한 깊
은 까닭이 있어요. 난 다만 당신을 데려가서 그를 찾는다고 대답
할 뿐 장소를 알려줄 수는 없어요."

"당신은 중상을 입어서 먼 길을 간다는 건 너무 무리가 되오.
그러니 오빠하고 같이 돌아가는 게 좋겠소."

그러자 조민은 몹시 화나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당신이 날 떼어놓고 간다면 사대협이 있는곳을 알 수 없을 거
예요. 나의 몸은 하루하루 좋아지고 있어서 걸어다니면 오히려
더 빨리 나을 수 있어요. 왕부에 돌아가면 난 답답해서 죽을 거
예요."

장무기가 왕보보에게 말했다.

"소왕야, 당신의 누이를 타일러 보구료."

왕보보는 몹시 이상했다. 순간 마음을 고쳐먹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흐! 허튼 수작 부리지 마라. 너의 손이 내 누이의 사혈(死
穴)을 누르고 있으니 당연히 네가 시킨 대로 헛소리를 하지 않느
냐?"

그러자 장무기는 몸을 위로 솟구치며 말에서 내렸다.

신전팔웅 중의 두 사람은 그가 출수하여 왕보보를 기습하려는
줄 알고 획획 화살 두 자루를 그에게 발사하였다. 그러자 장무기
는 왼손으로 건곤이위심법을 전개해서 낭아전(狼牙箭)두 자루를
거꾸로 되돌아가게 하자, 경풍이 더욱 강했다. 순간 팍! 팍! 하
며 두 번 소리가 나더니 활을 쏜 두 사람 수중에 있던 장궁이 쪼
개지면서 부러졌다. 그 두 사람이 빨리 피하지 않았으면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장무기는 조민에게 멀리 떨어지며 말했다.

"조낭자, 먼저 왕부로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하시오. 나중에 다
시 만납시다."

조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왕부에 있는 의사가 어찌 당신의 의술을 따르겠어요? 당신이
끝까지 책임지세요."

왕보보는 장무기가 누이에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누이가 여전히
동행하기로 고집하는 것을 보자, 그만 놀라면서도 울화가 치밀었
다. 그러자 현명이로에게 말했다.

"수고스럽지만, 두 분이 제 누이를 보호하세요. 그럼 우리는 가
자!"

"네!"

현명이로는 대답하고 나서 조민의 말 옆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조민이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녹,학 두 분 선생님, 제게 급한 볼일이 있어서 장교주를 따라
가고 있는 참이오. 마침 손이 부족해 하고 있는데 두 분께서도
절 따라서 같이 갑시다."

그러자 현명이로는 왕보보의 눈치를 바라보았다. 녹장객이 말했
다.

"마교의 대마두는 괴팍한 일을 행하니, 군주께서는 그와 자주
만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소왕야와 함께 왕부로 돌아가십시
오."

조민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두 분은 지금 제 오빠의 말만 듣고 제 말은 듣지도 않는겁니
까?"

녹장객이 억지웃음을 하며 말했다.

"소왕야께서는 군주님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조민은 코웃음을 치며 왕보보에게 말했다.

"오빠, 제가 강호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벌써 아버님에게 허락을
받았어요. 오빠는 날 걱정하지 않아도 나 자신이 조심할 거예요.
아버님을 뵈면 안부나 전해 주세요."

왕보보는 아버지가 딸을 몹시 총애하고 있는 줄 알고 있어서 감
히 지나치게 위협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홀로 마교의 교
주를 따라가게 되었는데, 어찌 두고만 볼 수 있겠는가. 그러자
그녀가 말에 올라타는 것을 보더니 즉시 팔을 양쪽으로 벌리며
말했다.

"착한 동생아, 아버님께서 지금 이리로 오고 계시니 잠깐 기다
려서 아버님을 만나 뵈어라."

그러자 조민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께서 오신다면 난 갈 수 없게 됩니다. 오빠, 난 오빠의
일을 간섭하지 않으니 오빠도 제 일을 간섭하지 마세요."

왕보보는 다시 장무기를 훑어보니 그는 훤칠한 키에 얼굴은 준
수하게 생겼다. 자기 누이의 말투를 들어보면 이미 그에게 반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명교가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크나큰
반역행위를 했다는 생각이 들자, 즉시 왼손을 한번 흔들면서 소
리쳤다.

"우선 이 마두를 잡아라!"

계속 ---
제 4 장 깨져 버린 혼례식(婚禮式) #5/5

그러나 녹장객은 녹장을 휘두르고 학필옹은 학필을 휘두르면서
일제히 장무기에게 공격했다. 조민은 현명이로의 무서움을 너무
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행여나 그가 다칠까 봐 소리치며 말했
다.

"현명이로, 당신들이 장교주를 다치게 한다면 난 아버님에게 알
려서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

왕보보가 화를 내며 말했다.

"현명이로, 당신들이 이 마두를 살해할 수 있다면 부왕과 난 모
두 후한 상을 하사할 것이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녹선생, 소왕(小王)은 미녀 네 명을 추가로 선물해서 당신을
즐겁게 해주겠소!"

그들 남매 두 사람은, 하나는 죽이라고 명령하고 하나는 다치지
못하게 명령하니, 현명이로는 진퇴양난에 놓여서 어찌할 바를 몰
랐다. 그러자 녹장객이 사제에게 눈치를 하며 조그만 소리로 말
했다.

"사로잡아라!"

장무기는 갑자기 성화령에 적혀 있는 무공을 전개했더니 팍! 하
는 소리가 나면서 녹장객의 따귀를 힘차게 한 대 때렸다.

"사로잡아 보아라!"

녹장객은 갑자기 얻어맞자 놀라면서도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역시 그는 일류 고수였다. 심신을 어지럽히지 않고 녹장을 빈틈
없이 휘둘렀다. 장무기는 다시 도습을 가하려 했으나 전혀 빈틈
이 보이지 않았다.

조민은 말고삐를 한 번 당겨서 급히 말을 몰고 갔다. 그러자 왕
보보는 말채찍을 휘둘러서 그녀가 타고 있는 말의 왼눈을 적중시
켰다. 순간 그 말은 길게 비명을 지르며 앞발을 들어올렸다. 조
민은 상처를 입어서 몸이 몹시 허약했기 때문에 하마터면 안장에
서 떨어질 뻔했다. 그러자 화를 내며 말했다.

"오빠, 꼭 저를 막아야 합니까?"

"누이야, 내 말을 들어라. 집에 돌아간 후 너에게 사과하마."

"오빠, 제가 가지 못하면 한 사람이 비명에 죽게 됩니다. 그럼
장교주는 앞으로 뼈 속 깊이 절 원망할 겁니다. 당신 누이도 살
수 없을 겁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여양왕부에는 고수가 구름처럼 많아서
널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이다. 이 마두가 출수하여 널 해치기는
커녕 만나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자 조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바로 그걸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난..... 죽게 될거
예요."

그들 남매 두 사람은 정의가 몹시 두텁기 때문에 서로가 못할
말이 없었다. 조민은 다급한 나머지 장무기에게 기울어진 자기의
마음을 숨김없이 고백한 것이다. 그러자 왕보보는 화를 내며 말
했다.

"넌 몽고의 왕족인데 어찌 오랑캐에게 정을 쏟을 수 있느냐? 만
약 아버님이 아시게 되면 그 어르신네는 홧병으로 돌아가실 것이
다!"

왼손을 한 번 휘두르자 다시 세 명의 호수가 앞으로 다가가서
협공했다. 그러자 조민이 소리쳤다.

"장공자, 당신이 의부를 구출하고 싶으면 먼저 날 구해줘야해
요!"

왕보보는 누이의 마음이 돌아서지 않는 것을 보자 몹시 초조했
다. 즉시 그녀를 자기 팔로 안아와서 말을 몰고 달려갔다. 조민
의 무공은 원래 자기 오빠보다 뛰어났으나 중상을 입어서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크게 소리쳤다.

"장공자! 구해줘요! 구해줘요! 장공자!....."

장무기는 십성(成)의 경력으로 후려쳐서 현명이로가 뒤로 삼 보
(步) 물러가게 하고 나서, 경공을 전개하여 왕보보의 말을 뒤쫓
았다. 그러자 현명이로와 나머지 세 명의 호수도 얼른 쫓아왔다.
장무기는 다섯명이 가깝게 쫓아올 때마다 뒤로 몇 장씩 후려쳤
다. 구양신공의 위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현명이로도 감히 정
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옆으로 피하고 했다. 이렇게 세 번이나 반
복하자 장무기는 드디어 왕보보의 말을 따라잡았다. 이윽고 몸을
위로 솟구치면서 왕보보의 뒷덜미를 움켜잡았다. 이 일조(一爪)
에는 나혈수법(拿穴手法)이 암장되어 있기 때문에[ 왕보보의 상
반신은 즉시 마비가 되었다. 이윽고 조민을 안고 있는 두 팔이
풀어졌다. 그러나 몸은 이미 장무기에게 들어올려져 녹장객에게
던져졌다. 녹장객은 얼른 받았다. 이때 장무기는 이미 조민을 안
고 말에서 뛰어내린 후 좌측에 있는 산언덕 쪽으로 달려갔다. 그
러자 학필옹과 나머지 호수들이 큰 소리로 외치며 뒤쫓아왔다.
그러나 이 산은 수백 장 높이에 달하고 있기에 경공이 뛰어난 자
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비록 현명이로의 내력이 막강했으
나 경공은 일류에 속하지 못해서 오히려 나머지 사,오 명이 학필
옹을 앞질러 쫓아오고 있었다. 왕보보는 장무기가 조민을 안고
점점 높은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자 발을 동동 구르며 욕을 마
구 퍼부으며 소리쳤다.

"활을 쏘아라! 활을 쏘아라!"

그러나 너무나 멀리 떨어졌기 때문에 장무기에게 화살이 미치지
못했다.

장무기가 조민을 안고 한참 산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한 사람이 낭랑한 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군주낭낭, 소승은 여기서 오랫 동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산 뒤에서 빨간 도포를 입은 번승 이십여 명이 돌아나왔
다. 장무기는 이 번승들의 옷차림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무공이
대단한 것도 지난번 만안사에서 경험한 바가 있었다. 이윽고 맨
앞에 있는 번승 한 명이 합장을 하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소승은 왕야의 명령을 받아 군주를 왕부로 모셔가야 합니다."

그러자 조민이 되물었다.

"너희들은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

"군주께서 부상당해서 왕야가 몹시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소승에게 분부하셔서 군주 방가(芳駕)를 영접하는 중입니다."

그러면서 수중에 들고 있는 흰비둘기 한 마리를 들어 보였다.
그러나 조민이 다시 물었다.

"아버님은 어디에 계시죠?"

"왕야께서는 산 밑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군주의 상처가 어떠
한지 급히 보고 싶어합니다."

장무기는 더 이상 얘기를 들어봐야 좋은 결론이 나올 것 같지
않아서 앞으로 돌진해가며 소리쳤다.

"살고 싶으면 빨리 물러서라!"

그러자 번승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앞으로 일 부씩 내
딛으며 일 장씩 후려쳤다. 장무기는 좌장을 후려쳐서 양승(兩僧)
의 장력을 되돌려 보냈다.

번승 둘은 일제히 소리쳤다.

"아미아미공(阿未阿未供)! 아미아미공!"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 같기도 하고 욕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자 조민은 손해보기 싫어서 같이 소리쳤다.

"네가 아미아미공이다."

두 번승은 삼 보씩 뒷걸음질치자, 뒤에 있던 두 번승이 각각 일
장을 뻗어서 밀려오는 승려의 배심을 밀더니 다시 그들을 밀어왔
다. 두 번승은 초식을 변화시키지 않고 다시 배산장(背山掌)으로
공격해 왔다. 장무기는 그들한테 진력(眞力)을 허비하기 싫어서
바로 건곤이위심법으로 두 번승의 경력을 분산시키려 했다. 그러
나 손가락이 두 승려의 장연(掌緣)에 닿는 순간 갑자기 그들의
장연에 찰싹 들러붙었다. 마치 쇠붙이가 자석에 붙어 보린 듯했
다. 그러자 두 번승은 크게 소리쳤다.

'아미아미공, 아미아미공!"

장무기는 두 번이나 끌어당겨 보았지만 전혀 뿌리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구양신공을 운용하여 반격해 갔다. 그러나 이번에
는 두 번승을 밀어내지 못했다. 이때 그들의 뒤에 있던 이십 이
명의 번승은 이미 두 줄로 나란히 서서 각각 우장으로 앞 사람의
후심(後心)을 밀고 있었다. 그러자 장무기는 번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태사부님의 말로는 천축(天竺)의 무공 중에 병체연공법(倂體連
功法)이란 것이 있다고 하셨다. 이 이십 사명의 번승이 합력하여
나와 대장(對掌)한다면 나의 내력이 아무리 강해도 이십 사명이
합력한 힘을 막아내지 못한다.'

그는 쫓아오는 자가 또 있을까 봐 걱정했다. 순간 대갈일성하면
서 손에다 공력을 삼성(成) 더 끌어올리더니 갑자기 비스듬히 공
격하면서 왼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이십 사명의 번승의 경
력은 이미 일직선으로 연성(連成)할 수 없었다. 순간 앞에 있던
육 명은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곧장 앞으로 돌진해왔다. 장무기
는 양손을 마주 휘둘러서 그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순간 팍
팍.....하며 여섯 번 소리가 들리더니 번승 육 명이 차례로 쓰러
지면서 피를 토해냈다. 그러자 뒤에 받쳐 있던 일곱, 여덟 번째
번승이 바로 돌진하면서 공격해왔다. 장무기는 우장으로 후려치
면서 약간 경력을 더 가해서 옆으로 밀어 버리려 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가볍게 들려왔다. 그를 공격해오는 자
가 있었다. 그는 좌장을 뒤로 후려치면서 그 일장을 분산시키려
했는데, 갑자기 한 줄기 음한지기(陰寒之氣)가 장중에서 곧장 전
해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몸이
한 번 휘청하더니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바로 녹장객이 현명
신장으로 갑자기 도습한 것이다.

"녹선생, 멈추시오!"

조민은 놀래서 소리쳤다. 바로 장무기에게 덮쳐가서 그의 몸을
가로막고 호통쳤다.

"감히 누가 또 출수하겠느냐?"

녹장객의 생각 같아선 일장을 더 후려쳐서 생애에 제일 강적을
이대로 없애 버리고 싶었지만, 군주가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자,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는 휘파람을 길게 불어서
동료들에게 알리며 말했다.

"군주낭낭, 왕야께서는 오직 군주께서 왕부로 돌아가시기를 바
랄 뿐 딴 뜻은 없습니다. 이 자는 대역무도한 반역인데 뭣 때문
에 군주께서 이러시는 겁니까?"

조민의 심정 같아선 그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잘
못했다간 장무기의 생명에 지장이 있을까 봐 생각을 달리했다.
이윽고 터져나오는 말문을 억제하면서 장무기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잠시 후 란령(鸞鈴) 소리가 울리면서 말 세 필이 산길을 따라
쏜살처럼 달려왔다. 하나는 학필옹이고 하나는 왕보보고, 마지막
한 사람은 다름아닌 여양왕이 친히 온 것이다. 세 사람은 가까이
달려오자 모두 말에서 뛰어내렸다. 이윽고 여양왕이 이마를 찌푸
리며 말했다.

"민민, 왜 그러느냐? 뭣 때문에 오빠의 말을 듣지 않고 여기서
말썽을 부리는 것이냐?"

여양왕은 앞으로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하자 조민이 갑
자기 품에서 비수 한 자루를 꺼내들고 자기의 가슴에 들이대면서
소리쳤다.

"아버님, 소녀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면 오늘 아버님의 면전에
서 죽어 버릴 겁니다."

여양왕은 너무나 놀래서 뒷걸음질치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할말 있으면 좋게 말로 해라. 네가.....네가 원하는 게 뭐냐?"

그러자 조민은 어깨의 상처를 여양왕에게 보이면서 녹장객을 가
리키며 말했다.

"이 자는 엉뚱한 생각으로 소녀를 겁탈하려 했습니다. 제가 죽
을 각오로 반항하자 그가.....그가 이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아버님께서 알아서 처리해 주십시오."

녹장객은 놀래서 어쩔 줄 몰랐다.

"소인이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여양왕은 그를 무섭게 노려보면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네놈이 감히..... 지난번 한희의 일도 내 더 이상 추궁하지 않
고 덮어놓았는데, 다시 나의 딸을 범하려 하다니, 저놈을 잡아
라!"

이때 그를 따르던 무사들도 이미 당도하였다. 왕야가 호령하는
소리를 듣자 비록 녹장객의 무공이 뛰어난 줄 알지만 그래도 무
사 네 명이 녹장객에게 다가갔다. 녹장객은 놀라면서도 화가 났
다. 즉시 일장을 후려쳐서 무사들이 접근 못하게 해놓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제, 가자!"

학필옹이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조민이 소리쳤다.

"학선생,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 당신 사형처럼 호색한이 아닙니
다. 당신이 사형을 잡아준다면 우리 아버님께서 큰 벼슬을 내리
고, 또 후한 상을 줄 것입니다."

현명이로의 무공은 몹시 탁월했지만 공명이록(功名利祿)을 탐하
기 때문에 왕부에 투신하게 된 것이다. 학필옹은 평소에 사형이
호색탐음(好色貪淫)한 줄 알기 때문에 조민의 말을 듣고 거의 부
인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벼슬과 상을 준다는 말에 그는 또 귀가
솔깃했다. 다만 그와 녹장객은 동문에다 막연한 사이라 일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녹장객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사제, 네가 벼슬과 부를 누리고 싶으면 날 잡아라."

그러자 학필옹이 한숨을내쉬며 말했다.

"사형 갑시다!"

이윽고 녹장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떠났다. 여양왕부의 무사
들은 그들을 신처럼 받들고 있었다. 그러니 누가 감히 나서서 그
들을 가로막겠는가? 여양왕이 연신 호령을 했으나 무사들은 잡는
척만 하고 실제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여양왕이 말했다.

"민민, 부상을 입었으니 돌아가서 상처부터 치료하라."

그러자 조민은 장무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 장공자께서는 녹장객이 절 범하려는 걸 때마침 구해 준
겁니다. 그런데 오빠는 그것도 모르면서 도리어 그가 무슨 역반
반적(逆반反賊)이라고 오해하며 얘기한 겁니다. 아버님, 소녀에
게 급한 볼일이 한 가지 있어서 필히 장공자하고 같이 처리하러
가야 합니다. 일이 성사된 후에 다시 그와 함께 와서 아버님을
뵙겠습니다."

"네 오빠의 말로는 이 자가 마교의 교주라는데 틀림없으렸다!"

"오빠는 농담도 잘 하는군요. 아버님이 보기에 그가 반역의 우
두머리 같습니까?"

여양왕이 장무기를 살펴보니 나이는 스물 한두 살에 불과했고,
상처를 입은 후 안색이 초췌해서 영정수발(英挺秀拔)한 기질이
상실되어 수십 만 대군을 통솔하는 우두머리 같지는 않았다. 그
러나 설령 교주가 아니더라도 필시 마교 중의 중요한 인물로 단
정하면서 조민에게 말했다.

"그를 성 안으로 데려가서 자세히 신문해 보자. 만약에 마교의
사람이 아니라면 내 그에게 상을 내릴 것이다."

그가 이렇게 말을 할때는 이미 딸의 체면을 생각해 준 것이다.
이윽고 네 명의 무사가 왕야의 명령을 받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조민이 울면서 말했다.

"아버님, 소녀가 죽는 꼴을 보셔야 하겠습니까?"

그러면서 비수를 가슴에다 반 치쯤 찌르자 선혈이 삽시간에 옷
을 빨갛게 물들었다. 여양왕이 놀라서 소리쳤다.

"민민, 절대로 허튼짓해서는 안 된다."

조민은 울면서 말했다.

"아버님, 불효 소녀는 이미 장공자와 몰래 부부가 되었습니다.
이 딸을 없는 셈치고 소녀를 놓아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장
아버님 면전에서 죽겠습니다."

여양왕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왼손으로 자기의 수염을 연
신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는 장병을 호령할 때나 적과 전쟁을 할
때는 모두 한 마디로 결정을 했지만, 오늘 이러한 난감한 일을
닥치게 되자 실로 손발이 묶인 듯했다. 그러자 왕보보가 말했다.

"누이, 너와 장공자는 모두 부상을 입었으니, 잠시 아버님하고
함께 돌아가서 명의에게 상처를 치료한 다음에 아버님에게 부탁
해서 혼례식을 주선해 달라고 해라. 그러면 아버님께서는 승용쾌
서(乘龍快서)를 얻게 되시고, 나에게는 영웅매부가 한 분 생기게
된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

조민은 그가 완병지계(緩兵之計)를 쓰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장무기가 일단 그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조만간에 그를 사형시킬 게 뻔한 일이다.

"아버님, 일이 이쯤 되었으니 소녀는 죽든 살든 장공자를 따르
기로 결정했습니다.아버님과 오빠가 어떠한 계략을 쓰더라도 제
눈을 속일 수 없습니다. 지금은 오직 두 갈래 길 뿐입니다. 소녀
를 살려주신다면 이대로 물러나시고, 그렇지 않으면 소녀를 죽여
버리십시오."

여양왕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민민, 분명히 알아 두어라! 네가 이 반적(反賊)을 따르게 되면
넌 앞으로 나의 딸이 될 수 없다!"

"아버님, 오빠, 모두가 민민이 잘못한 겁니다. 그러니..... 그
러니 절 용서해주십시오."

여양왕은 딸아이의 마음이 끝내 돌아서지 않자 길게 한숨을 내
쉬더니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민민, 부디 몸조심하거라 아버지는 가겠다..... 부디.....부디
조심하거라."

조민은 고개를 끄덕거릴 뿐 감히 아버님을 다시 쳐다보지 못했
다.

여양왕은 천천히 산 아래로 내려가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말했
다.

"민민, 네 상처는 견딜만 하냐? 돈은 지니고 있느냐?"

조민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윽고 여양왕은
좌우의 수하에게 말했다.

"나의 말 두 필을 군주에게 갖다 주거라."

좌우의 위사는 대답하고 나서 말을 조민에게 갖다 준 다음 여양
왕을 옹호하며 산 밑으로 내려갔다. 여섯 명의 번승은 땅에 쭈그
리고 있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러자 나머지 번승들은 두 사
람이 한 명씩 부축해서 곧 뒤따라서 내려갔다.

잠시 후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 버렸다. 오직 장무기와 조민 두
사람만 남겨 놓았다.

----- 제 6권 4장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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