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밤

의천도룡기 7-2

3학년2반 | 2022.03.07 07:25:51 댓글: 0 조회: 479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3358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7 권


제 2 장 장무기와 주지약의 고수정심(고수정심)


광장의 사람들이 차츰 조용해지자 공지의 뒤에 있던 그 달마당
노승이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여러 영웅께서 의논하여 약정한 규칙대로 무예를 겨루
게 될 겁니다. 허나 도창권각(刀滄拳脚)에는 눈이 없습니다. 설
령 인명 피해가 나더라도 절대로 탓하지 않고 하늘의 뜻으로 돌
리겠습니다. 어느 문파든 방회든 최후의 승자가 무공이 최고로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여 사손과 도룡도를 모두 차지하는 겁니
다."

장무기는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저 화상은 행여나 남이 독수를 가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군. 더
구나 각파가 서로 원한 관계를 깊게 맺지 않을까 봐 안달이니 공
견, 공문 같은 신승들의 자비로운 심성은 전혀 엿보이지 않는구
나.'

이미 약정한 바에 의하면, 한 사람이 두 번 승리하면 필히 퇴장
하여 휴식을 취해야 하니 먼저 겨루든 늦게 겨루든 별로 큰 차이
는 없다. 그러자 바로 여기저기서 출장하여 도전하는 자가 있었
다. 삽시간에 광장에는 여섯 사람이 세 쌍으로 나눠서 겨루고 있
었다.

조민은 만안사에서 육대문파의 절예를 습득했지만 아직은 수위
(修爲)가 얕았다. 그러나 식견은 이미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는
장무기와 범요의 중간에 서서 조그만 소리로 그 육인의 무공을
논의하고 또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배한다고 예측했는데, 뜻밖에
도 아주 정확했다.

차 한잔 끓이는 시간쯤 지나자 세 쌍 중에서 이미 두 쌍은 승부
를 가리고 한 쌍만 여전히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승자에
게 도전하는 자가 있어서 여전히 여섯 사람이 세 쌍으로 나눠서
접전을 벌이는 상황이 되었다.

새로 출장한 두 쌍은 각각 병기를 사용했다. 이렇게 계속 접전
하게 되자 십중팔구는 피를 흘리고 부상을 당해야만 승패를 가릴
수 있었다. 그러자 장무기는 내심 생각을 굴렸다.

'이처럼 서로 싸우게 되면 각문, 각파들은 필히 화기(和氣)를
상하게 될 것이다. 어느 일파든지 상대방에게 패하게 되면 부상
을 당하거나 죽게 되니 훗날 필히 보복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 죽이고 죽는 엄청난 재화(災禍)를 불러일으키는 게 아
닌가!'

순간 장안에는 화산파의 왜로자(矮老者)가 개방의 집법장로의
일장을 얻어맞고 입에서 선혈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자 화산파
의 고로자(高老者)가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구린내나는 거지놈아. 썩은 거지놈아.....!"

이윽고 그는 몸을 튕겨나오면서 개방의 집법장로에게 도전하려
했다. 그러자 왜로자가 그의 팔을 나꿔채며 조그만 소리로 말했
다.

"사제, 넌 그의 적수가 못 되니 우린 당분간 이 비분을 참기로
하자."

고로자는 화를 내며 말했다.

"적수가 안 돼도 싸우겠습니다."

비록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은 사형의 무예와 자기의 초수가
같더라도 수위는 사형이 깊었다. 게다가 사형이 패했으니 자기도
패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마지못해 왜로자에게 끌려가며
쉴새없이 욕을 퍼부었다. 끝내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목붕으로 돌
아갔다.

이윽고 그 집법장로는 다시 매화도의 장문인을 물리치고 승리했
다. 연거푸 두 번 승리하게 되자 개방 방주들의 우뢰같은 박수를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퇴장했다.

이처럼 왔다갔다하며 광장에서는 두 시간 정도의 무예가 겨루어
졌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지자 출전하는 사람의 무공도 점점 강
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엔 웅심발발(雄心勃勃)해 했지만 남
들의 무공을 보게 되자 그제서야 자기가 우물안의 개구리라는 것
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고수들은 섣불리 출전하지 못하
게 되었다.

신패(申牌) 시각이 되자 개방의 장발용두가 출장하여 상서배교
중의 팽사랑에게 도전했는데, 팽사랑은 크게 망신을 당했다. 팽
사랑은 그와의 대결에서 배심이 길게 찢어지자 부끄럽고 창피해
서 재빨리 퇴장했다. 그러자 장발용두는 아미파의 군중을 바라보
며 냉소를 지었다.

"여자들이 무슨 대단한 재주가 있겠습니까? 한결같이 도검이나
암기에 의지하는 것뿐이죠. 그래도 이분 팽사랑께서 이 정도까지
무공을 연마했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지약이 조그만 소리로 송청서에게 몇 마디 말을 하자 송청서
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느린 걸음으로 출장해서 장발용두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용두대형, 제가 당신의 가르침을 받겠소."

장발용두는 송청서를 보자 순간 울화가 치밀어서 얼굴이 시퍼렇
게 변했다.

"이 간적(奸賊) 같은 송가놈아! 네가 진우량의 명을 믿고 우리
개방에 잠입해서 사방주님을 살해한 일은 당연히 네놈도 책임을
한몫 져야 한다. 오늘 네놈은 아직도 나를 쳐다볼 낯이 있는 거
냐?"

그러자 송청서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호에는 적의 소굴로 잠입하여 기밀을 염탐하는 일은 매우 흔
한 것이오. 다만 너희 거지떼들은 눈이 멀어서 송대야의 본래 면
목을 식별하지 못했다는 것을 탓하거라!"

"넌 네 친아버지의 무당파까지도 배반했으니 무슨 일인들 못 하
겠느냐? 네놈은 부친에게 불효를 했으니 훗날 처자에게도 불의를
하게 될 것이다. 아미파는 너의 손에 꼭 망조가 들 것이다!"

송청서는 화가 나서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해 버렸다.

"이제 다 지껄였느냐?"

장발용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훗! 하며 일장을 후려쳤다.
송청서는 몸을 돌리며 피하더니 손을 되돌려서 살며시 한 번 휘
둘러 아미파의 금정면장(金頂綿掌)으로 대항했다.

장발용두는 그가 개방에 잠입하여 많은 사람을 기만했다는 것에
화가 나서 출수한 초수마다 모두 살수를 전개했다. 이미 죽을 각
오로 접전을 벌이고 있으니 보통 무예를 겨루는 것과는 전혀 상
황이 달랐다.

장발용두가 개방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방주와 전공, 집법 두 장
로의 다음이니 그의 조예는 실로 대단했다. 송청서는 무당파 제
삼 대 제자 중에서도 특출한 인물이었지만 처음으로 아미파의 금
정면장을 맞이하였기에 아무래도 장법 중의 정미오묘한 변화를
숙달되게 전개할 수 없었다.

그는 사,오십 합의 접전을 벌이고 나자 이미 위험한 처지에 놓
여졌다. 하는 수 없이 무당파의 면장으로 상대방의 초수를 분해
하였다. 이는 그가 어려서부터 배워온 무공이며 게다가 이십여
년 동안 연마하였기에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고 위력 또한 대
단히 강했다. 아미파의 금정면장과 외관상은 비슷한 게 있었으나
운경척초(運勁拓招)하는 법문은 전혀 달랐다. 은이정은 쳐다볼수
록 울화가 치밀어서 끝내 고함을 쳤다.

"송청서, 네 녀석은 정말 낯도 두껍구나. 넌 무당을 반출(反出)
하였는데 어찌 무당의 무공으로 목숨을 구하려 하느냐? 네놈은
아버지를 배신해 버렸는데 어찌 네 아버지가 전수해 준 무공은
버리지 않았느냐?"

그러자 송청서는 얼굴이 빨개지며 소리쳤다.

"무당파의 무공이 뭐가 대단합니까? 자 똑똑히 보시오!"

왼손을 갑자기 장발용두의 눈앞에서 상권하구(上圈下鉤) 좌선우
전(左旋右轉)하며 연거푸 칠,팔 가지의 모양으로 변하더니, 불쑥
오른손을 내뻗자 푹! 하는 소리가 나면서 다섯 손가락이 장발용
두의 뇌문(腦門)에 똑바로 삽입되었다. 방관하는 군웅들이 멈칫
하는 순간 그가 다섯 손가락을 피범벅이 된 채 들어올리자 장발
용두는 뒤로 나자빠지면서 즉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송청서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당파에 이런 무공이 있소?"

군웅(群雄)들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 개방에서는 동시에 여덟
명이 달려가더니, 두 명은 장발용두의 시신을 일으켜 세우고 나
머지 여섯 명은 일제히 송청서에게 덤벼들었다. 이 여섯 명은 모
두 개방의 호수였으며 더구나 그 중의 네 명은 병기를 들고 있었
으니 삽시간에 송청서는 다시 위험한 처지에 놓여졌다.

공지대사의 뒤에 있던 한 비대한 화상이 큰 소리로 호통쳤다.

"개방 제군(諸君)의 이러한 행동은 오늘 영웅대회의 규칙을 위
배하는 것이오!"

그러자 집법장로가 소리쳤다.

"여러분은 잠시 물러나시오. 본좌가 장발용두의 복수를 갚아 주
겠소!"

개방의 제자들은 뒤로 물러나면서 장발용두의 시신을 들고 목붕
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모두 화난 얼굴로 송청서를 무섭게 노려
보았다.

'비록 무예를 겨룰 때 살생하게 되어도 탓하지 않는다고 하였지
만, 이 송가란 놈의 출수는 너무나 악랄했다.'

방관하는 군웅들은 모두 이같은 생각을 했다.

이때 장무기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오직 조민 어깨에 찍
힌 다섯 개 조인(爪印)과 그날 밤 오두막집에서 두백당 부부가
횡사한 장면들이었다. 이윽고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양좌사, 어째서 아미파에 이런 사악한 무공이 있을까요?"

양소는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속하(屬下)는 이런 무공을 전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
미파의 창파사조인 곽여협의 별명이 <소동사(小東邪)>라 부르니
무공에 약간씩 사기(邪氣)가 서려 있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
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송청서는 이미 집법장로와 접
전을 벌이고 있었다. 집법장로는 신형이 왜소하였기에 행동이 엄
청나게 민첩했다. 열 손가락이 마치 갈고리와 송곳처럼 변하면서
응조공(應爪功)으로 송청서와 대항했다. 아마 그도 지공(指功)이
전문 분야라 같은 방법으로 송청서의 천령개에다 다섯 구멍을 찍
어서 장발용두의 복수를 갚아 줄 속셈이었다.

송청서는 처음엔 여전히 금정면장으로 그와 접전을 벌였다. 그
러나 접전이 깊어지게 되자 집법장로는 대갈일성하며 왼손의 다
섯 손가락을 송청서의 뇌문에 걸쳐놓게 운경하여 투입하려 했다.
그러자 송청서는 재빨리 오른손을 뻗었다. 순간 푹! 하는 소리가
나더니 다섯 손가락은 이미 집법장로의 후관(喉管)을 조단(爪斷)
하였다. 집법장로는 앞으로 쓰러지면서 왼손의 다섯 손가락은 땅
에 삽입되었다. 순간 피바다를 이루며 숨이 끊어졌다.

주지약이 손으로 신호를 보내자 여덟 명의 아미파 여제자가 각
각 장검을 쳐들고 몸을 날려서 나갔다. 두 명이 한 조가 되어서
등을 서로 맞대며 사방을 호위하더니 송청서를 중간으로 몰아넣
었다. 만약 개방이 다시 다가와서 싸우게 되면 즉시 패싸움으로
돌변하려는 상황이었다. 순간 달마당 노승 한 명이 낭랑한 소리
로 말했다.

"나한당의 삼십 육명 제자들은 듣거라."

손뼉을 세 번 치자 노란 도포를 걸친 삼십 육명 소림승이 앞으
로 날아나왔다. 십 팔명의 손에는 창장을 들고 있었고 십 팔명의
손에는 계도(戒刀)가 들려있었다. 마치 진법(陣法)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은 광장의 각처로 흩어지더니 엄밀
하게 주위를 지키고 섰다.

그 노승이 말했다.

"공지사숙님의 법지에 따라 나한당의 삼십 육명 제자들은 영웅
대회의 규칙을 감관(監管)할 것이다. 오늘 대회에서 무예를 겨룰
때 만약 시중기과(恃衆欺寡)하는 자가 있으면 그 자가 바로 천하
무림의 공적이다. 우리 소림사는 주인의 입장으로 필히 공도(公
道)를 유지해야만 한다. 삼십 육명 제자들은 정신 바짝차려서 감
시해라! 만약 규율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즉시
사살하여라.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 삼십 육명 소림승은 일제히 대답하고 나서 주의깊게 광
장의 중심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되자 개방의 제자들은 비록 모
두 격분되어 있어도 감히 함부로 앞으로 다가가서 출수하지 못했
다. 단지 큰 소리로 욕을 퍼부으면서 집법장로의 시신을 들고 내
려갔다.

조민은 조그만 소리로 범요에게 말했다.

"고대사님, 아미파에게 저러한 절초(絶招)가 있을 줄은 정말 뜻
밖입니다. 그날 만안사에서 멸절사태가 죽음을 무릅쓰고 출탑하
여 무예를 겨루지 않았던 것은 아마 바로 이 절초 때문이었을 겁
니다."

범요는 고개를 흔들며 이 일초의 해결법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
는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장무기에게 말했다.

"교주님, 속하에게 한 가지 무공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쌍장을 탁자 위에 올려놓더니, 왼손의 식지와 오른손
의 식지를 뻗어서 하나는 앞으로 하나는 뒤로 하며 매우 유연하
게 연속 일곱 번을 움직였다. 이윽고 그가 조그만 소리로 말했
다.

"저의 양팔이 이처럼 연거푸 공격하는 것은 오직 그 녀석의 팔
을 나꿔채서 내력을 운출하여 그 녀석의 팔 관절을 진단(震斷)시
키려는 겁니다. 그의 지력이 아무리 무서워도 다시는 그 기술을
전개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자 장무기는 양손의 식지를 뻗어서 좌구(左鉤) 우탑(右搭)
하며 말했다.

"그가 지력으로 당신의 팔을 찍으려고 하는 것을 조심하시오."

범요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제가 금나수로 그의 손목을 나꿔채고 십 팔로(路) 원앙연환퇴
(鴛鴦連環腿)로 그의 하반신을 걷어찰 겁니다."

"팔십 일초의 맹공을 퍼부어서 그가 숨돌릴 틈을 주지 않는 겁
니다."

그들 두 사람은 네손가락으로 공격하고 후퇴하면서 대단히 빠
른 공수를 펴보였다. 그러자 범요는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말했
다.

"교주님의 그 몇 초는 실로 엄청나게 신묘합니다. 저 녀석은 지
력만 강할 뿐 무공은 대수롭지 않아서 이 몇 초는 절대로 전개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자 장무기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가 이 삼초를 전개하지 못한다면 범우사는 승리하게 됩니
다."

이윽고 장무기는 왼손의 식지로 두 번 원을 그리더니, 갑자기
오른손 식지가 원을 관통하여 범요의 손가락을 끌어잡으며 미소
를 지을뿐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자 범요는 멈칫하면서 매우
기뻐했다.

"교주님의 가르침, 정말 감사합니다. 속하는 매우 탄복했습니
다. 이 사초는 속하의 막힌 곳을 시원하게 뚫어 주셨습니다. 전
당장이라도 교주님을 스승으로 모셨으면 합니다."

"이건 제 태사부님께서 전수하신 태극권 중의 <난환결(亂環訣)>
이랍니다. 요지(要旨)는 왼손으로 그린 몇 개의 원에 있습니다.
저 송가란 자가 비록 무당의 출신이지만 이렇듯 정미한 신법은
깨우치지 못했을 겁니다."

범요에게는 이미 송청서를 제압하는 확신이 생겼지만 송청서는
이미 연속 두 번을 승리하였기에 규칙대로 퇴장하여 휴식을 취해
야 했다. 그러니 필히 그가 다시 출장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그에게 도전해야만 했다.

조민은 빙그레 웃으며 매우 기쁜 표정으로 옆으로 걸어갔다. 그
러자 무기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소 조그만 소리로 물었다.

"민매, 무슨 일로 이처럼 유쾌합니까?"

조민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범우사에게 전수한 이 몇 초 무공은 단지 송청서의 팔
을 진단(震斷)하도록 했습니다. 뭣 때문에 그에게 그 송가란 자
를 죽일 수 있게끔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까?"

"비록 송청서가 많은 불의를 행하였으나 그래도 제 대사백님의
사랑하는 외아들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제 대사백님이 직접 처분
하는 게 옳을 것 같소. 내가 만약에 범우사를 시켜서 그의 목숨
을 앗아 버리면 얼마나 대사백님에게 미안한 일입니까?"

"당신이 그를 죽여 버리면 주낭자는 과부가 됩니다. 당신이 다
시 그녀를 맞이하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장무기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허락해 주겠소?"

조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당신이 딴 마음을 먹을
때 그녀가 손가락으로 당신의 가슴에 다섯 개 구멍을 찍어낼 거
예요."

장무기가 범요와 조민하고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송청서는 이미
여덟 명의 아미파 여제자의 호위를 받으며 목붕으로 되돌아갔다.
군웅들은 방금 그가 다섯 손가락으로 살인하는 그 두 판의 광경
을 보게 되자 섬 한 마음을 금치 못하여 선뜻 나서는 자가 없었
다.

잠시 후 송청서는 표연히 출장해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소인은 휴식이 끝났습니다. 또 어느 분의 영웅께서 가르침을
베푸시겠습니까?"

그러자 범요가 소리쳤다.

"내가 아미파 절학의 가르침을 받겠소!"

이윽고 몸을 튕겨서 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한 회색 그림자가 한
번 흔들거리더니 송청서의 앞에 우뚝 섰다. 그러면서 범요에게
말했다.

"범대사, 나에게 양보해 주시겠소?"

이 자는 바로 무당이협 유연주였다. 범요는 그가 교주의 사백이
라 다루기가 난처했다.

"범요는 오늘 운이 좋아서 유이협의 무당 신기를 볼 수 있겠구
료."

"과찬의 말씀을....."

송청서는 어려서부터 유사숙을 무서워했다. 더구나 그가 병식운
기(屛息雲氣) 엄진임적(嚴陣臨敵) 태세를 취한 것을 보자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자기는 다른 기문무공(氣門武
功)을 습득하였지만 두려운 생각이 가시지는 않았다.

유연주는 포권하며 말했다.

"송소협, 먼저!"

이처럼 인사를 하며 또 이처럼 칭호하는 것은 자기의 의사를 분
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는 송청서를 전혀 멸시하지 않을 뿐더
러 반푼의 동정도 없었다. 그러자 송청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몸을 구부리며 인사했다. 순간 유연주는 훗! 하며 일장을 송청서
의 정면을 향해서 후려쳤다.

유연주가 강호 무림에 이름을 떨친 것은 이미 삽십여 년이 되었
지만, 무림에서 그의 무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늘에야 비로소 그가 쌍장의 유경(柔勁)으로 벽력뢰화탄을 제거
하는 것을 보게 됨으로써 자신의 공력을 재확인했다.

강호에선 무당파 무공의 요지는 이유극강(以柔克剛)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뜻밖에도 유연주의 쌍장은 마치 바람이 스쳐가
는 것처럼 엄청나게 빠른 초식이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송청서는
허리와 다리에 각각 일각(一脚)과 일장을 얻어맞았다.

송청서는 깜짝 놀랐다.

'태사부님과 아버님은 모두 날 무당파의 제 삼대 장문으로 인정
하셨기에 모든 무공을 나에게 전수했다. 유이숙님의 이 쾌권쾌각
(快拳快脚)의 초식은 내가 모두 배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빠르게 출초(出招)하는 건 본문 무공의 대기(大忌)를 범하는 게
아닌가? 하필이면 또 이처럼 매섭다니.....!'

이윽고 주지약에게 배운 지상무공(指上武功)을 전개하려 했지만
유연주의 빠른 공격에 눌려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연거푸 뒤로 물러나면서 문호(門戶)만 있는 힘을 다해
수비했다.

군웅들은 두 사람이 접전을 벌이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비
록 지금은 유연주가 기선을 잡고 있지만 방금 송청서가 개방이로
를 조살(爪殺)한 것은 모두 열세에서 뒤엎은 것이다. 그러니 그
일을 꼭 재현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연주의 공격은 갈수록 빨라졌다. 그러나 그의 일초일식은 빠
른 것에 비해서 너무나 정확했다. 마치 가수가 노래할때 비록 빠
른 음절에 접어 들었으나 박자, 음정, 가사를 청취자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처럼 정확했다. 그러자 군웅들은 어수선하게 웅성거
리며 일어섰다. 뒤에 서 있던 자들은 아예 탁자나 의자 위로 올
라가서 구경하는 자도 있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한결같이 찬
탄(讚嘆)을 금치 못했다.

'무당파 유이협의 명성은 과연 뜬소문이 아니구나. 단숨에 수많
은 공격을 퍼부었는데도 초식이 전혀 반복되지 않다니.....'

다행히 송청서는 무당의 적전제자(嫡傳弟子)이기에 유연주 권각
중의 경미한 변화는 그가 모두 배웠던 것들이다. 다만 이같은 쾌
투(快鬪)는 평생 처음 당한 것이다. 광장에는 황토먼지가 일더니
한 덩어리 짙은 안개로 형성되면서 유,송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
다.

갑자기 팍!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쌍장이 서로 부딪치더니 유연
주와 송청서는 일제히 뒤로 물러나며 두 덩어리의 황무(黃霧)로
나눠졌다. 유연주는 똑바로 서기도 전에 다시 몸을 비비적 거리
면서 앞으로 다가갔다.

은이정은 사형의 안위가 걱정되어 자기도 모르게 광장 옆으로
다가갔다. 손은 검의 손잡이를 쥐고 전혀 눈을 돌리지 않고 장중
을 지켜보았다.

이때 송청서의 생가는 갈림길에 놓여 있어서 전력으로 대항을
하고 있었다. 이미 문파가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전개
하는 권법은 모두 어려서부터 연마해 온 무당파의 무공이었다.

두 사람의 권각 초식은 은이정도 모두 알고 있었다. 더구나 매
일초마다 모두 치명적인 살수라서 초조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다행히 유연주는 갈수록 유리한 고지
를 점령했다. 만약에 송청서가 갑자기 출수하여 오지천동(五指穿
洞)하는 음독살수를 염려하지 않았다면 벌써 그를 죽였을 것이
다.

장무기는 몹시 염려되어서 손에는 이미 성화령 두 개를 몰래 쥐
고 있었다. 만약 유연주에게 정말 생명에 위험이 닥치게 되면 대
회 규칙을 무시하고 그를 구해 줄 심산이었다.

갈수록 흙먼지는 더욱 높이 날렸다. 순간 송청서는 갑자기 다섯
손가락을 뻗어서 유연주의 오른쪽 어깨 쪽으로 찍어갔다. 유연주
는 백 초 전부터 그가 이 일초를 전개할 것을 기다려왔다. 송청
서가 개방이로를 격패하는 광경은 유연주도 똑똑히 보았다. 만약
에 이로가 사전에 당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설사 죽지는 않는
다 해도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선례가 있었기에 그도 대응책을 강구해 놓았다. 송청
서는 이 조법을 연마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변화가 많지 않았다.
그러자 유연주는 오른쪽 어깨를 비스듬히 피하면서 왼손으로 허
공에다 원을 몇 개 그렸다.

조민과 범요는 그만 으잉! 하며 놀라운 비명을 질렀다. 유연주
가 돌린 이 두 개의 원은 바로 장무기가 범요에게 가르친 태극권
의 난환결이었다.

순간 조민과 범요는 송청서가 당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과연 으잉!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송청서의 오른손 다섯 손가
락은 유연주의 목줄기로 찍어갔다. 그러자 장무기는 몹시 화를
내며 욕을 했다.

"죽어도 싸다. 죽어도 싸."

개방의 집법장로가 바로 이 일조에 목숨을 잃었는데 송청서는
사숙님에게도 이러한 독수를 가하다니, 실로 죽어도 마땅했다.

이윽고 유연주의 양팔이 하나는 원을 그리고 하나는 돌리면서
육합경(六合勁)중의 찬번(鑽飜), 라선(螺旋), 이경(二勁)을 전
개하여 송청서의 양팔을 나꿔챘다. 순간 부드득! 부드득! 소리가
나더니 송청서의 양팔 골절(骨節)이 절단되었다. 곧이어 유연주
가 소리를 쳤다.

"오늘 일곱째 아우의 복수를 할 것이다!"

이윽고 양팔을 합하여 일초의 쌍풍관이(雙風貫耳)를 사용해서
쌍권으로 그의 양쪽 귀를 맹타했다. 이 일초는 면경(綿勁)이 곁
들여 있어서 송청서는 즉시 두개골이 파열되었다.

그의 몸이 쓰러지기 전에 유연주는 한 번 더 걷어차서 즉시 그
를 죽여 버리려는 찰나 느닷없이 파란 그림자가 번뜩거리더니 긴
채찍 하나가 정면으로 후려쳐 왔다. 유연주는 황급히 뒤로 피했
으나 그 긴 채찍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연거푸 공격했다. 바로
아미파의 장문인 주지약이 남편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다.

유연주는 급히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주지약의 편법(鞭法)은
매우 괴이했다. 삼초 사이에 이미 그를 권주(圈住)하였다. 그러
자 갑자기 채찍을 거둬들이더니 왼손으로 채찍 끝을 움켜잡고 냉
랭하게 말했다.

"지금 네 목숨을 앗아 버리면 넌 패배를 불복할 것이다. 검을
뽑아라!"

그러자 은이정이 장검을 뽑아들더니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내가 주낭자의 고초(高招)를 받아 보겠소!"

주지약은 그를 무섭게 한 번 노려보더니 몸을 돌려서 송청서의
상세(傷勢)를 바라보았다. 이때 그의 두 눈은 밖으로 튀어나왔고
일곱 구멍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힘없이 땅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니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이윽고 아미파의 남제자
세명이 달려와서 그를 들고 내려갔다.

주지약은 고개를 되돌리더니 유연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를 먼저 죽이고 다시 은가를 죽여도 늦지 않다!"

방금 유연주는 전력으로 그녀의 편권(鞭圈)을 벗어나려 했지만
끝내 벗어날 길이 없어서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사제를
아끼는 마음으로 잠시 생각했다.

'내가 그녀와 한판 겨뤄서 설령 그녀의 채찍에 죽더라도 여섯째
아우는 최소한 그녀 편법의 실마리를 알아낼 것이다.'

이윽고 손을 내밀어서 은이정 수중의 장검을 받으려 했다. 은이
정도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형제 두 사람의 무공
으로 그녀의 일격을 벗어나가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와
사형은 똑같은 생각을했다. 차라리 자신이 먼저 모험해서 사형
이 그녀 편법의 요지를 관찰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순간 은이정
은 검을 주지 않으며 말했다.

"사형, 제가 먼저 출장하겠소."

유연주는 그를 한번 바라보았다. 수십 년 동안 동문으로서 같이
무예를 배운 정의와, 또 수족처럼 친한 정의가 한꺼번에 복받쳐
올랐다. 뇌리에는 마치 번개처럼 유대암의 불구와 장취산의 자살
그리고 막성곡의 참사가 스쳐갔다.

더구나 무당칠협 중에 오직 넷만 남았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또 이협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육제(殷六弟)의
무공은 강해도 성격은 아주 연약했다. 만약 자기가 먼저 죽게 되
면 그는 심신이 크게 혼란되어 전의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도 들었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여섯째 아우,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버티어라."

은이정은 아내 양불회가 임신한 것을 생각하자 지가도 모르게
고개를 양소와 장무기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다시 생각을 달리했
다.

"내가 죽고 나면 불회와 아이는 자연히 돌봐 줄 사람이 있는데,
구태여 남에게 구걸하며 당부할 것 없다."

이윽고 장검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장문인, 공격하시오!"

그의 나이는 주지약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주지약은 지금 아
미파의 장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결례를 하지 않은 것이
다.

유연주는 그가 태극검의 기수식으로 적을 맞이하는 것을 보자
여섯째 아우가 이번에는 사문의 절학으로 강적과 주선(周旋)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주지약이 말했다.

"당신이 먼저 공격하시죠!"

은이정은 상대방의 출수가 마치 번개처럼 빠르기 때문에 만약
그녀가 기선을 잡게 되면 뒤엎기 매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그
래서 왼발을 내딛으면서 검을 왼손으로 전개했다. 제 일검은 허
허실실하며 왼손으로 검을 쥐고 적을 공격했다.

검 끝은 빛이 반짝거리며 칙칙.....!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났다.
그러자 방관하는 군웅들은 참다 못해 우뢰같은 박수와 갈채를 보
냈다.

주지약은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서 재빨리 피했다. 그러자 은이
정도 재빨리 대괴성(大魁星) 연자초수(燕子抄水)로 공격했다.

장검은 공중에서 큰 원을 그렸고, 오른손은 검결을 연출했는데
도 마치 칙칙.....!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주지약
은 허리를 살짝 흔들어서 일일이 피하며 말했다.

"은육협, 내가 당신에게 삼초를 양보한 것은 옛날 무당산의 옛
정을 보답하는 것이오."

말이 끝남에 동시에 부드러운 채찍은 마치 민첩한 뱀처럼 꿈틀
거리며 곧바로 은이정의 흉구로 달려들었다. 은이정이 왼쪽으로
재빨리 피했으나 채찍은 도중에서 꺾어지면서 달려들었다.

그러자 은이정은 풍파하엽(風擺荷葉) 일초로 응수하면서 장검을
삭출(削出)했다. 채찍과 장검이 맞부딪치자 철썩! 하며 가벼운
소리가 한 번 났다. 순간 은이정이 호구(虎九)가 뜨거워지는 것
같으면서 하마터면 장검을 놓칠 뻔했다. 내신 크게 한 번 놀랐
다.

'난 그녀의 초식만 괴이한 줄 알았는데 내력 또한 나의 적수가
아니구나. 그녀의 내경이 그처럼 기궤(奇詭)하며 예측할 수 없을
줄은 정말 뜻밖이다.'

이윽고 정신을 통일하여 태극검법을 모두 전개하면서 문호를 엄
밀하게 방어했다.

주지약 수중의 채찍은 마치 한 가닥 부드러운 실처럼 전혀 아무
런 중량이 없는 것 같았다. 몸이 갑자기 동쪽으로 또 갑자기 서
쪽으로, 갑자기 전진하고 또 갑자기 후퇴하면서 은이정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장무기는 바라볼수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이처럼 채찍을 사용하는 것은 도액, 도난, 도겁 세 분
고승과 비교하면 아주 또 다르구나.'

처음에 그는 아미파에 또 다른 사문 무공이 있는 것으로 알았지
만 지금 그녀의 마치 귀신 같은 신수(身手)를 보게되자 실로 멸
절사태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내심 두려운 생각이 은근히 생
겼다.

범요가 갑자기 말했다.

"그녀는 귀신이지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은 장무기의 허를 찌르는 말이었다. 장무기는 그만 몸을
부르르 한 번 떨었다. 만약에 광장에 햇빛이 눈에 부시지 않고
또 사방에 온통 사람들이 서 있지 않았다면, 정말로 주지약은 이
미 죽었고 그 혼백이 채찍을 들고 은이정과 접전을 벌이는 것으
로 알았을 것이다. 그는 평생 수많은 괴이한 무공을 보았지만 주
지약의 이러한 신법과 편법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와 흐
르는 물의 부평초 같았다. 실로 인간의 기상은 아니었다. 잠깐
동안 그는 마치 꿈 속에 있는 듯 하면서 내심 섬 했다.

'진정 그녀에게 요법(妖法)이 있단 말인가. 아니면 무슨 괴물이
몸에 부착되어 있단 말인가?'

주지약의 신법은 실로 괴이했다. 그러나 태극검법 또한 장삼봉
이 만년에 태극권을 이어서 창작한 것이라 실로 근세에서는 등봉
조극(登峯造極)의 검술이었다.

은이정은 공경(功勁)을 한꺼번에 끊임없이 전개했다. 비록 상대
방을 상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자기를 방어하는 데에는 전혀 빈틈
이 없었다.

순간 갑자기 한 사람이 괴상한 소리를 외치는 게 들렸다.

"아이구! 송청서의 숨이 끊어지려고 한다. 주대장문, 당신은 부
군의 임종을 보지 못하면 과부가 되더라도 창피한 일이오."

사람들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바로 주전이었다. 그는 무
당파 제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게 양기조식(養氣調息)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적을 맞이하여 접전을 벌일 때 모두
태산이 눈앞에서 붕괴되더라도 전혀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수위(修爲)가 있다. 그가 외친 것은 은이정을 도와주고 주지약의
심신을 교란하기 위한 속셈이었다.

그는 다시 소리쳤다.

"이봐요, 아미파의 주지약 낭자, 당신 부군의 숨이 끊어지려 하
네. 당신에게 몇 마디 당부할 말이 있다고 하는군. 그의 말에의
하면 그는 밖에 삼십 이십일, 사칠 이십 팔 명의 사생아가 있는
데, 그가 죽고 나면 당신이 잘 좀 부양해 줘야만 눈을 감을 수
있다는군. 당신은 도대체 승낙하는 건가, 아니면 승낙하지 않는
것인가?"

군웅들은 그가 멋대로 지껄이는 것을 듣고 어떤 자는 참다 못해
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주지약은 마치 듣지 못한 듯 태연했다. 그러자 주전은
다시 소리쳤다.

"아이구, 야단났군! 멸절 노사태님, 그래와서 어른신네꼐선 안
녕하십니까? 오랫 동안 뵙지 못했는데 어르신네는 점점 더 경랑
(硬朗)하셨구료. 당신의 혼백이 주낭자 몸에 씌워지더니 채찍의
놀림이 아주 보기 좋구료."

순간 갑자기 주지약의 몸이 두 번 휘청하더니 재빨리 뒤로 수장
(數丈) 물러나며 긴 채찍을 오른쪽 어깨 위에서 뒤로 급히 던졌
다.

그러자 채찍의 끝이 주전의 면문(面門)으로 날아갔다. 그녀와
명교의 목붕 사이는 열 장도 더 떨어져 있었는데 그녀의 채찍은
마치 하늘에 날으는 용처럼 곧바로 날아갔다.

마침 주전은 침을 사방으로 튀기며 즐겁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
데 어찌 주지약이 한창 접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에갑자기 채찍
을 던져서 자기에게 기습할 줄 알았겠는가! 그가 멍하는 사이에
채찍은 이미 면문에 날아왔다. 주지약은 마치 등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채찍의 끝은 그의 콧날을 가리켰다.

주지약은 채찍을 뒤로 던지면서도 왼손의 식,중 이지(二指)는
은이정에게 연거푸 찍어갔다. 계속해서 일곱 번을 찍었는데 모두
가 그의 머리, 얼굴, 앞가슴 쪽의 중요한 혈도였다. 은이정은 이
어 적을 공격할 틈도 없을 뿐더러 장검을 휘둘러서 그녀의 팔을
후려칠 수도 없었다. 다만 봉점두(鳳點頭)란 초식을 사용하여 몸
을 움추리고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명교의 목붕 안에는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우당당탕! 하
며 요란한 소리가 한 차례 들렸다. 이건 양소가 주전의 옆에 서
있다가 재빠르게 장풍으로 앞에 있는 나무 탁자를 끌어올려서 주
지약의 일편(一鞭)을 막은 것이다. 긴 채찍이 나무 탁자를 후려
치자 즉시 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날리면서 탁자 위에 있던 주전
자와 찻잔이 사방으로 날렸다. 군웅들의 몸에는 많은 사기 조각
과 뜨거운 차가 묻어 버렸다.

주지약은 일격이 명중되지 않자 주전에게 더 이상 공격하지 않
았다. 채찍이 돌아서 되돌아오자 질풍 폭우처럼 은이정에게 공격
했다.

유연주는 검을 들고 옆에서 한동안 관망하였으나 끝내 그녀의
편법 요지를 알아낼 수 없었다.

'내가 다시 출수하더라도 이 태극검법은 여섯째 아우보다 더 이
상 좋게 전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랫 동안 접전을 벌이게 되
면 아무래도 여자는 내력이 부족하기에 우리가 승리할지도 모르
는 일이다.'

그는 은이정의 검법이 탄토개합(呑吐開合) 음양동정(陰陽動靜)
한 것을 보자 실로 은사 장삼봉이 평소에 지적한 절예에 이미 도
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제는 평생 동안 한 번도 이처럼 고명한 검술을 전개하지 않
았다. 오늘 생사의 갈림길에서 검법 중의 최고 정요(精要)한 것
을 모두 아낌없이 발휘하는구나. 무당파의 무공은 싸우면 싸울수
록 강해진다.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패하지 않을 희망은 그만
큼 더 있는 것이다.'

순간 주지약은 갑자기 긴 채찍을 휘둘더니 크고 작은 원을 수없
이 만들면서 은이정을 그 안으로 감싸 버렸다. 태극권과 태극검
만이 경력을 운용하여 원을 만드는 것인데, 주지약도 긴 채찍을
휘둘러서 원을 만들었다. 게다가 채찍이 원을 그린 방향과 은이
정의 검이 원을 그린 방향은 똑같았다. 다만 몇 배가 더 빨랐다.

그러자 은이정 검의 경력이 그녀에게 한 번 이끌리더니, 즉시
몸이 자기도 모르게 몇 바퀴 돌면서 파란 빛이 한 번 번뜩거리고
장검이 손에서 벗어나며 위로 날아갔다. 순간 주지약은 긴 채찍
을 반대로 거두어들이면서 채찍의 끝을 은이정의 천령개를 겨냥
해서 내리찍었다.

그러자 유연주는 몸을 위로 솟구쳐서 오른손으로 채찍을 나꿔챘
다. 순간 주지약은 치마 밑에서 일각을 날려 유연주의 요협(腰
脅)을 걷어찼다. 유연주는 계속 주지약의 괴이한 편법(鞭法)의
정요한 소재를 파악할 수 없었는데, 그녀가 채찍을 휘둘러서 원
을 그리며 은이정의 장검을 빼앗는 순간 즉시 깨우치는 바가 있
었다.

'그녀의 공력도 저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그녀가 채찍을 휘둘
러서 원을 그리는 건 우리의 태극권에 비교하면 실로 한참 뒤떨
어졌다.'

채찍을 움켜잡자 허리는 그녀의 일각에 걷어채이면서도 왼손을
뻗어냈다. 바로 호조절호수(虎爪絶戶手)의 일초였다. 유연주는
곧바로 주지약의 하복부로 찍어갔다. 주지약은 막을수가 없었다.
순간 뇌리에는 번개처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오늘 유이숙님의 손에 죽어 버리자.'

그러자 오른손의 채찍을 놓으면서 다섯 손가락은 유연주의 머리
위를 찍어갔다. 그와 동귀어진(同歸於盡)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유연주는 머리를 옆으로 기울여서 피하려 했지만, 허리가 채이는
바람에 혈도가 봉쇄되어 몸이 굳어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런데 주지약의 왼손은 여전히 무섭게 다가왔다.

바로 이 천균일발(千鈞一髮)의 순간에 한 사람이 옆에서 달려들
더니, 오른손으로 유연주의 호조절호수를 막아내고 왼손으로 주
지약의 다섯 손가락을 밀어냈다. 바로 장무기가 출수하여 두 사
람을 구한 것이다.

그러자 주지약은 쌍장으로 재빨리 장무기의 가슴을 후려쳤다.
장무기가 만약 피한다면 이 쌍장의 힘은 마침 은이정의 얼굴에
강타될 것이다. 오직 좌장을 후려쳐서 막는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쌍장이 맞부딪친 순간 장무기는 주지약의 쌍장에 전
혀 경력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몹시 놀랐다.

'아이구, 야단났다! 그녀와 육숙이 고투(苦鬪) 이백여 초를 하
더니 이미 유진등고(油盡등枯)의 경지에 도달했구나. 나의 이 경
력이 앞으로 뻗게 되면 당장 그녀의 목숨을 상할 게 아닌가!'

그러자 황급히 수경(手勁)을 거둬들였다.

그가 처음에 좌장을 후려칠 때 주지약의 무공과 자기의 무공은
이미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크나큰 강적으로 간주하여 털
끝 만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단장(單掌)으로 쌍장을
맞이했으니 이 일장은 곧 십성(十成)의 경력을 발출한 것이다.
그러나 경력을 밖으로 발출하자마자 즉시 상대방이 역진(力盡)한
것을 눈치채고 급히 그대로 거두어 들인 것이다.

물론 이것이 무학의 대기(大忌)를 범한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 간발의 차이에서 갑자기 거둬들이니 힘이 더
한층 강맹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내력을 자유자재로 수발(收
發)할 수 있기에 이 강력한 힘이 되돌아와서 부딪쳐 봤자 잠시
숨이 막힐 뿐 절대로 큰 지장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
도 그의 장력이 되돌아오자마자 갑자기 상대방의 장력은 마치 호
수가 방죽을 무너뜨리고 밀려오는 듯했다.

장무기는 깜짝 놀라면서 이미 상대방의 암계에 결렸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펑! 하는 소리가 나면서 주지약의 쌍장은 그의 흉
구에 적중되었다. 이건 그 자신의 장력과 주지약의 장력이 합쳐
진 것이다. 그의 호체(護體)하는 구양신공이 제아무리 두텁다 해
도 양대 고수가 합력한 장력은 견딜 수 없었다. 더구나 주지약의
장력은 그가 구력이진(舊力已盡) 신력미생(神力未生)할 때 틈을
타서 후려친 것이다.

이러한 무공은 바로 아미파의 적전(嫡傳)이다. 옛날에 멸절사태
도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그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게 했던 것이
다. 다만 옛날에는 그가 방비책을 전혀 몰라서 당한 것이지만,
이번에는 오로지 인(仁) 때문에 기만되어 당한 것이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몸이 뒤로 제껴지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한 모
금의 선혈을 토해 냈다.

주지약은 도습이 성공되자 바로 왼손을 앞으로 뻗어서 다섯 손
가락으로 그의 흉구로 찍어갔다. 비록 장무기는 중상을 입었어도
심신은 혼란되지 않았다. 그는 이 일조(一爪)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억지로 뒤로 몇 걸음 이동했다. 순간 주지약의 다섯 손가락
에 옷이 찢겨지고 앞가슴이 드러났다.

주지약의 오른손 다섯 손가락이 바로 잇따라 공격하려 했다. 그
때 유연주는 그녀에게 혈도가 채여서 움직일 수 없었고 은이정도
덮쳐가서 구출하려 했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

순간 장무기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졌다. 그러나 주지약이 한
번 흘낏 보는 순간 갑자기 그의 흉구에 있는 상처자국을 보게 되
었다. 바로 전에 광명정 위에서 자기가 의천검으로 찌른 상처자
국이었다. 다섯 손가락이 그의 가슴에서 반치정도 떨어진 곳까지
가자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더 이상
공격을 가하지 못했다.

그녀가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 위일소, 은이정, 양소, 범요 네
사람이 이미 일제히 덮쳐갔다. 위일소는 몸을 날려서 장무기의
몸 앞을 막았고 양,범 두 사람은 각각 주지약의 좌우를 공격했
다. 그 사이 은이정은 장무기를 안아들고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장중은 삽시간에 크게 혼란되었다. 아미파의 제자들과
소림승은 모두 호통치면서 병기를 들고 장중으로 달려들었다. 양
소, 범요와 주지약은 서로 몇 초씩을 주고받자 더 이상 연전하지
않았다. 위일소가 유연주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자 일제히 목붕
으로 되돌아갔다. 아미, 소림 양파의 사람들도 장중의 접전이 끝
난 것을 보고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조민도 달려가서 구조하려 했으나 신법이 위,양 보다 못하기 때
문에 포기했던 것이다. 도중에서 장무기의 입가에 온통 피투성이
가 된 것을 보자 그만 놀라서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러자 장무기는 억지 웃음을 하며 말했다.

"괜찮소. 잠시 운기조식하면 좋아질 것이오."

여러 사람들이 그를 부축하여 목붕 안의 땅바닥에 좌정시켰다.
그러자 장무기는 천천히 구양신공을 끌어내며 내상을 조리했다.

주지약이 외쳤다.

"어느분 영웅께서 저와 겨루겠습니까?"

그러자 범요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장무기가 말했다.

"범우사님, 이건 제 명령입니다. 출전하지 마세요. 우리.....
우리가 패한 것을 인정....."

한 모금 기(氣)가 엇갈리자 다시 두 모금의 선혈을 토해 냈다.
범요는 교주의 명령을 감히 어기지 못했다. 만약에 출전하길 고
집하면 필시 장무기의 상세가 더욱 악화될 것 같았다. 더구나 출
전하는 건 단지 진심갈력(盡心竭力)해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을
뿐 본교에게 전혀 보탬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지약은 광장 중심에 서서 다시 두 번 되풀이하여 말했다.

방금 장무기의 회력자상(廻力自傷)한 일은 오직 그와 주지약 두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방관하는 사람들 눈에는 모두 주지약의
장력이 괴이해서 장무기가 역부족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가 한낱 젊은 여자로서 은이정, 유연주, 장무기 등
세 분 같은 당세의 일류급 고수를 연패시키는 것을 보자 무공의
괴이함은 실로 믿어지지 않았다. 비록 군웅 중에 절학을 지닌 자
들은 많았지만 유,은,장 세 사람에 비하면 절대로 미치지 못하다
는 것을 자신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구태여 출전해서 목숨을
잃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주지약은 잠시 더 기다렸으나 여전히 도전해 오는 자는 없었다.
그러자 그 달마당의 노승이 걸어나오더니 합장하며 말했다.

"아미파 장문인 송부인께서 무공이 천하 제일입니다. 불복하는
영웅이 계십니까?"

주전이 외쳤다.

"나 주전은 불복하오."

"그렇다면 주영웅께서 겨뤄 보시오."

"난 그녀에게 이길 수 없는데 뭣 때문에 겨룹니까?"

"주영웅께선 자신이 적수가 안 된다는 것을 아시면 굴복해야 할
게 아니오!"

"적수가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불복합니다. 그러면 안
되오?"

그 노승은 더 이상 그와 시비하지 않고 다시 되물었다.

"이분 주영웅 말고 또 불복하는 분이 계십니까?"

이윽고 연거푸 세 번 물었으나 주전만 세 번 대답할 뿐 아무도
불복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겨룰 분이 안 계시면 우리는 영웅대회를 개최하기 전
에 약정한 대로 금모사왕 사손을 아미파의 송부인에게 넘겨드려
서 처치하도록 합시다. 도룡보도는 어느 분의 수중에 있는지 모
르지만 이 자리에 내놓으셔서 송부인께서 수관하도록 합시다. 이
건 군웅들이 공결(公決)한 것이니 어느 누구도 군말해선 안 됩니
다."

장무기는 마침 내식(內息)을 조절해 놓고 구양진기로 내상을 치
료하면서 차츰 무아지경에 이르는 찰나, 불쑥 그 노승이 금모사
왕 사손을 아미파의 장문인 송부인에게 넘겨서 처치한다는 말을
듣자 충격을 받아서 하마터면 또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할 뻔했다.

조민은 옆에 앉아서 정성스럽게 돌봐주고 있었는데, 그의 몸이
갑자기 떨리고 안색이 몹시 변하는 것을 보자 그의 마음을 알아
차리고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장교주, 당신의 의부를 주낭자에게 넘겨 주는 건 아주 잘 된
일입니다. 그녀가 방금 당신에게 손을 쓰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
도 당신에게 깊은 정이 남아 있는 겁니다. 그러니 절대로 당신의
의부를 해치지 않은 겁니다. 당신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처나
치료하세요."

장무기가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러자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 때 태양은 서서히 뒷산으로 지고 있었다. 광장은 점점 어두
워졌다. 그러자 그 노승이 다시 말했다.

"금모사왕 사손은 뒷산 모처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시간
이 이처럼 늦었으니 여러분들도 시장하실 겁니다. 내일 정오에
우리가 다시 이곳에 모이면 노납(老衲)이 송부인을 인도해서 죄
인을 석방하게 할 것이오. 그 때 가서 우리는 송부인의 신묘한
무공을 다시 보게 될 것이오."

그러자 양소, 범요 등 명교 사람들은 모두 조민을 바라보았다.

'과연 당신의 예측대로군. 소림파에겐 또 다른 음모가 있었구
나. 아무리 주지약의 무공이 강해도 절대로 도액 등 세 분 노승
을 이기지 못한다. 어쩌면 그녀는 소실봉에서 목숨을 잃게 되고
결국엔 소림파가 칭웅정강(稱雄정强)할 것이다.'

이때 주지약은 아미파의 위세를 떨치고 이미 목붕으로 돌아갔
다. 제자들은 장문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더니 한결같이 조용히
일어나서 인사했다. 군웅들은 비록 주지약이 이미 <무공 천하제
일>이란 명칭을 취득한 것을 보았지만 대사가 마무리 지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도 하산하지 않
았다.

그 노승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여러 영웅분들께서 본사에 오셨으니 모두가 소림파의 귀빈입니
다. 여러분들 상호간에 설사 은원이 있다 해도 폐파의 체면을 봐
서 잠시 참아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소실산(小室山)에서 해결
하려 하면 그건 소림파를 얕잡아보는 겁니다. 여러분께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앞산에는 얼마든지 유람하셔도 좋습니다. 그
러나 뒷산은 폐파의 장경수예(藏經授藝)하는 곳이니 여러분께선
자중하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범요는 장무기를 안아들고 명교 자체에서 만든 목붕으로
돌아갔다. 비록 장무기의 장상이 아주 심했으나 그가 평소에 만
든 영단을 아홉 알 복용하고 다시 구양진기로 악의 힘을 분산시
키자 심야의 이경쯤 되어 세 모금의 어혈(於血)을 토해내면서 내
상이 모두 치료되었다.

양소, 범요, 유연주, 은이정 등은 모두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모두가 그의 심후한 내공에 찬사를 보냈다. 만약 보통 사람이 이
정도의 중상을 입게 되면 고수가조치해 준다 해도 최소한 일,이
개월 정도 걸려야만 회복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단 몇 시간 만
에 완쾌 되었으니, 만약에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정말 믿기 어
려운 일이다. 장무기는 밥 두 그릇을 먹고 잠시 더 휴식을 취하
고 난 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잠깐 나갔다 오겠소."

그는 교주의 신분이라 무슨 일이란 것을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
람이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은이정이 말했다.

"방금 중상이 완쾌되었으니 각별히 조심해라."

"네."

장무기는 대답하고 나서 조민의 얼굴을 바라보니몹시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그녀에게 살짝 웃어 보였다. 안심하라는 뜻이
었다.

그는 목붕을 나와서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는 밝은 달과 작은
별이 몇 점 떠 있었다. 깊이 한 모금의 숨을 들여마시자 체내의
진기가 유전되면서 정신이 바짝 났다. 이윽고 소림사 밖으로 가
서 지객승인에게 말했다.

"아미파의 장문인을 만나고 싶은데, 수고스럽지만 안내해 주겠
소?"

그 지객승은 그가 명교의 교주라는 것을 알아보고 내심 매우 두
려워했다. 얼른 마주 공손하게 말했다.

"네, 네. 소승이 인도해 드릴 테니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 지객승은 조심스럽게 그를 안내하며 서쪽으로 갔다. 약 일
리(一里)쯤 가더니 손으로 앞에 있는 작은 집 몇 칸을 가리켰다.

그 지객승이 말했다.

"아미파는 모두 저기에 있습니다. 승니(僧尼)는 유별해서 소승
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는 장무기와 주지약이 다시 싸워서 행여나 자기가 옆에 있다
가 다칠까 봐 몹시 두려워했다. 그러자 장무기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돌아가서 이 일을 얘기하면 다른 사람들은 매우 놀랄
것이오. 그러니 내가 당신의 혈도를 찍어놓을 테니 여기서 날 기
다리는 게 어떻겠소?"

그 지객승이 얼른 말했다.

"소승은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겁니다. 교주님께서는 안심하십시
오."

그러면서 황급히 돌아갔다. 장무기는 천천히 작은 집 쪽으로 걸
어갔다. 십여 장쯤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자 비구니 두 명이 몸을
날려서 다가왔다. 장검을 몸 앞에 쳐들고 호통쳤다.

"누구냐!"

장무기는 포권하며 말했다.

"명교의 장무기가 귀파의 장문인 송부인을 뵈러 왔습니다."

그러자 비구니 두 명은 대경실색했다. 이윽고 나이가 많은 한
비구니가 말했다.

"장.....장교주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제가 보고하
러 가겠습니다."

그녀는 억지로 진정해 보았으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서 몇 걸음 걸어가더니 바로 죽소(竹소)를 꺼내어 불었
다. 그러자 사방에서 즉시 이십여 명이 뛰어 나왔다. 검광을 번
뜩거리며 각처에 분산했다. 장무기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뒷짐을
지으며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비구니가 작은 집 안으로 보고하러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나오면서 말했다.

"폐파의 장문인께서는 남녀가 유별해서 밤에는 만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장교주님은 걸음을 돌리시지요."

"나는 의술이 매우 정통하여 송청서 소협의 상처를 치료하고 싶
을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 비구니는 멈칫하더니 다시 들어가서 보고했다. 한참 지난 뒤
에 나와서 말했다.

"장문인께서 들어오시랍니다."

장무기는 허리 사이를 두드려 보이며 병기가 없다는 것을 보이
며 그 비구니를 따라서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주지약은 손으로 턱을 괸 채 멍하니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가 들어온 것을 들었는데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 비구니
는 청차(淸茶) 한 잔을 따라서 탁자에 올려놓고 바로 물러갔다.
살며시 문을 닫아 버리자 대청 안에는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

한 자루 하얀 촛불이 갑자기 밝게 또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주지
약이 입고 있는 담청색 옷을 비추었다. 몹시 처량한 정경이었다.

장무기는 마음이 찡하여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송사형의 상처가 어떠한지 내가 살펴보아도 괜찮겠소?"

주지약은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

"그는 머리뼈가 부서지는 바람에 상세가 몹시 심해서 살아날 것
같지 않소. 아마 오늘 밤도 넘기지 못할 것 같소."

"당신은 내 의술을 잘 알지 않소. 내가 힘껏 구해 보겠소."

그러자 주지약은 되물었다.

"당신은 뭣 때문에 그를 구하려 하죠?"

장무기는 멈칫하며 말했다.

"난 당신에게 잘못을 저질러서 마음이 몹시 괴롭소. 게다가 오
늘 당신이 내 목숨을 살려주지 않았소? 송사형의 상처는 내가 있
는 힘을 다해 보겠소."

"당신이 먼저 수저류정(手底留情)한 것을 내 어찌 모르겠어요.
당신이 만약에 송대형을 살려낸다면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보답
해야 되겠습니까?"

"목숨과 목숨을 바꾸는 것이오. 내 의부에게 수하류정(手下留
情)하시오."

주지약은 손으로 내당 쪽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안에 있습니다."

장무기가 방문 앞으로 걸어가 보니 방 안은 칠흑처럼 캄캄했다.
전혀 불빛이 없었다. 그는 촛대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무기는 청사(靑紗) 휘장을 열고 촛불을 비춰서 송청서를 보니
두 눈은 돌출되어 있었고 오관이 비뚤어진 게 몹시 무서운 얼굴
이었다. 호흡은 미약하며 벌써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다. 그의 손
목을 눌러보니 맥식(脈息)이 갑자기 빨랐다가 또 갑자기 느리면
서 매우 혼란되어 있었다. 체온도 얼음처럼 차가왔다. 만약에 즉
시 손을 쓰지 않는다면 과연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다시 살며시 그의 두개골을 만져 보니 앞이마와 뒷골뼈가 모두
네 개가 부서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속으로는 유이숙의 쌍
권의 힘이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송청서의 내공이 상
당한 수준이 아니었더라면 쌍풍관이를 십성(十成) 내력으로 후려
친 것을 맞았으니 당장에 즉사했을 것이다.

그는 휘장을 내려놓고 촛대를 탁자에 올려놓으며 대나무 의자에
앉아서 치료할 방법을 곰곰이 생각했다. 송청서가 당한 상처는
실로 치명적인 중상이라 그의 생명을 구하는 건 삼성(三成)의 자
신밖에 없었다.

그는 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시간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외실로
나가서 주지약에 말했다.

"송부인, 송사형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는 단언(斷言)하기 힘
들지만 내가 한번 시험해 보아도 괜찮겠소?"

"만약 당신이 구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 누가 그를 구할 수
있겠어요?"

"설사 그의 생명을 구한다 해도 용모와 무공은 옛날처럼 되기가
힘들 것이오. 그의 뇌도 이미 고장나서 아마.....아마 말도 제대
로 할 수 없을 것이오."

"필경 당신은 신선이 아니에요. 하지만 난 당신이 꼭 있는 힘을
다해서 그를 살려 놓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야만 당신이 아무
런 죄책감없이 조정의 군마(群馬)가 될 게 아닙니까?"

그러자 장무기는 아찔했다. 그러나 이 일을 당장 논할 것도 없
다는 생각이 들자 즉시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장무기는 송청서가 덮고 있던 얇은 이불을 걷고, 그의 여덟 군
데의 혈도를 찍었다. 그리고 나서 열 손가락을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한줄기의 힘으로
그의 부서진 머리뼈를 하나하나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다음에
품에서 금합(金盒) 한 개를 꺼내었다. 세끼 손가락으로 한 덩어
리 검은 고약을 찍어서 양손으로 비벼 대더니 살며시 송청서의
머리뼈가 깨진 곳에 발라 주었다. 이 검은 고약은 바로 <흑옥단
속고(黑玉斷續膏)>였다. 이는 서역 소림파가 상처 치료나 접골에
쓰는 묘약이다. 옛날에 그가 조민에게 구걸하여 얻어서 유대암과
은이정 두 사람을 치료해 주고 남은 것이다.

그는 장내의 구양진기를 끊임없이 송출하여 약의 힘을 송청서의
부서진 뼈에다 투입시켰다.

약 한 자루의 향을 태우는 시간이 지나자 장무기는 약의 힘을
모두 투입시켰다. 송청서의 얼굴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을
보자 몹시 기뻐했다. 그를 살려낼 수 있는 확신이 더 한층 확고
해졌다.

그는 자신이 부상이 좀전에 완쾌되었는데 이처럼 내경을 운용하
자 그만 다시 가슴이 뛰고 숨을 헐떡거렸다. 잠시 침상 앞에 선
채로 내식(內息)을 고루 조절하고 나서 그제야 대청으로 돌아가
서 촛대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희미한 불빛에 비친 주지약의 안색은 몹시 창백했다. 문밖에서
는 가벼운 발걸음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아미파의 제자들이
순찰하고 있는 중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송사형의 생명을 구해낼지도 모르겠소. 당신은 이제 마음을 놓
으시오."

"당신이 그를 구할 수 있는 자신이 없다면 나도 사대협을 구할
자신이 없습니다."

장무기는 잠시 생각을 굴렸다.

'내일 그녀가 금강복마권을 공격하러 가면 아미파에서 한,두 명
의 고수가 돕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십중팔구 성공할 수 없을 것
이다. 잘못하면 도리어 그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신은 의부가 감금되어 있는 곳의 정세를 알고 있소?"

"모릅니다. 혹 소림파에서 어떤 무서운 매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자 장무기는 사손이 산정의 지하감옥에 감금되어 있고, 또
소림의 세 노승이 지키고 있으며, 그리고 자기가 두 차례나 공격
했는데 모두 실패하고 게다가 은천정이 그 일 때문에 죽었다는
일들을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주지약은 묵묵히 듣고 나서 말했다.

"당신도 실패했으니 난 더욱 불가능하겠군요."

장무기는 갑자기 마음이 동요되더니 기뻐하며 말했다.

"지약, 만약에 우리 두 사람이 손을 잡으면 성공하게 될것이오.
나는 순양지강(純陽至剛)의 힘으로 세 분 고승의 장편(長鞭)을
맡고, 당신은 음유(陰柔)의 힘으로 틈을 타서 안으로 들어가는
거요. 일단 복마권 안에 들어가서 우리가 내외로 협공하면 이길
수 있을 것이오."

주지약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전에 혼인지약이 있었고, 또 지금은 내 남편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으며, 오늘 내가 당신의 목숨을 살려줘서 다른
사람들이 필시 내가 아직도 당신에게 미련이 남아 있다고 말할
것이오. 만약에 다시 당신을 도와주게 되면 천하의 영웅들은 모
두 날 욕하게 될 것이오."

그러자 장무기가 얼른 말했다.

"우리가 양심에 가책이 없는데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지 않소!"

"만약에 내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어쩌겠소?"

장무기는 멍해지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신.... 당신....!"

"장교주님, 우리 두 사람은 고남과녀(孤男寡女)입니다. 야밤중
에 같이 있게 되면 물의를 빚게 됩니다. 어서 가십시오."

그러자 장무기는 일어나서 포권의 예로 인사하며 말했다.

"송부인, 당신은 어려서부터 나에게 아주 잘 대해 주었소. 당신
이 다시 한 번 은덕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장무기가 살아 생전에
그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주지약은 묵묵히 있을 뿐 승낙하지도 않고 거절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장무기는 그녀의
안색을 볼 수 없었다. 다시 머리를 숙여서 구원을 청하려 했는데
주지약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정혜사저, 손님께서 가십니다."

그러자 방문이 열렸다. 정혜는 문 밖에 서 있었다. 손에는 장검
을 들고 얼굴에는 노기를 띄우며 그를 노려보았다. 장무기는 의
부의 생가가 이 일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자 앞뒤를 가릴 겨를
이 없었다. 설령 자기의 체면이 깎이게 되더라도 무슨 상관 있겠
는가! 그는 갑자기 땅에 무릎을 꿇고는 주지약에게 절을 네 번하
며 말했다.

"송부인, 제발 불쌍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주지약은 마치 돌부처처럼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 그
러자 정혜가 소리쳤다.

"장무기, 장문인께서 당신보고 나가라고 하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는 거냐? 진정 나야말로 무림의 패류(敗類), 무치지우(無恥之
尤)로다."

그녀는 송청서가 죽어가는 틈을 타서 장무기가 다시 와서 주지
약에게 청혼을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자 장무기는 한숨을 내
쉬며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가 명교의 목붕 앞으로 돌아가자 조민이 마중하며 말했다.

"송청서의 상처는 구할 수 있죠? 그렇죠? 또 나의 흑옥단속고를
사용해서 좋은 사람 노릇을 하셨군요."

"아니, 당신은 정말 귀신처럼 아는구료. 그의 상세를 구할 수
있을지는 지금 단정할 수 없소."

그러자 조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은 송청서의 생명을 구해서 사대협을 바꾸려 했군요. 장공
자, 당신은 남의 속도 모르고 점점 더 멍청해지는군요."

장무기는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뭣 때문이오? 이거야말로 난정말 모르겠소?"

"당신이 온 정성으로 송청서를 구하는 건 바로 주낭자가 당신에
게 대한 정의를 하나도 생각지 않는다는 거예요. 당신 생각에 그
녀가 화를 내겠어요, 안 내겠어요?"

장무기는 깜짝 놀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조민이 다시
말했다.

"당신은 송청서의 생명을 구해 준 것이 지금 와서 또 후회가 되
죠? 그렇죠?"

조민은 장무기가 대답도 하기 전에 빙그레 웃더니 옷자락을 펄
럭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장무기는 바위에 앉아서 차거운 초생달을 바라보며 주지약과 처
음 만났던 일부터 이것저것 회상해 보았다. 특히 방금 본 그녀의
말투와 표정은 옛날의 그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월 초 엿새의 아침이 밝아오자 소림사의 종소리는 탕탕.....!
하며 울렸다. 그러자 군웅들은 다시 광장에 집결되었다. 그 달마
당의 노승은 이번엔 공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즉시 일어나서 낭
랑한 소리로 말했다.

"영웅 여러분들, 밤새 안녕하십니까? 어제 무예를 겨룬 끝에 아
미파의 장문 송부인께서 예관군웅(藝冠群雄)하셨습니다. 그러니
송부인께서는 뒷산에 가셔서 파관(破關)하여 금모사왕 사손을 끌
어낼 겁니다. 자, 노승이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말을 끝나자 즉시 앞장서서 걸어갔다.

여덟 명의 아미파 비구니 대제자가 그의 뒤를 따랐고, 주지약과
아미의 제자들은 바로 그 뒤를 따라갔다. 수많은 영웅들은 멀찌
감치 뒤를 따라서 일제히 뒷산으로 걸어갔다.

장무기는 주지약의 옷차림이 어제와 똑같은 것을 보자 송청서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어젯밤을 무사히 넘겼으니 어쩌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산봉우리에 올라가 보니 세 분 노승은 가부좌를 틀고
소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그 달마당 노승이 말했다.

"금모사왕은 저 세 그루 울창한 소나무 사이의 지하 감옥에 감
금되어 있습니다. 지하 감옥을 지키고 계신 분은 폐파의 세 분
장로님입니다. 송부인께선 무공이 천하무쌍하시니 폐파의 이 세
분 장로님만 이긴다면 즉시 감옥을 부수고 사람을 꺼낼 수 있습
니다. 우리들은 다시 송부인의 신수(身手)를 관전하겠습니다."

양소는 장무기의 안색이 불안정하게 보이자 그의 귀에다 대고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교주님,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위복왕, 설불득 두 분은 이미
오행기 사람들을 통솔하여 산봉우리 밑에 매복했습니다. 아미파
에서 만약 사사왕을 내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무력
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장무기는 이마를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건 대회의 규칙을 어기고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오."

"전 다만 송부인이 도검으로 사사왕의 목을 겨누고 있으면 우리
가 싸울 때 투서기기(投鼠忌器)할까 봐 걱정입니다. 신의 같은
건 신경쓸 겨를도 없습니다."

조민은 나직하게 말했다.

"사사왕에게 원수를 갚으려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우리
는 사람 숲에서 암기로 도습하는 자를 방어해야 합니다."

양소가 말했다.

"범우사, 철관도장, 주형, 팽대사 등 네 분께선 이미 사방에 나
뉘어 도습하는 자를 방어하고 있습니다."

조민이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암기를 발사하여 도습하려는 자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우리가 그 틈을 타서 사사왕을 구출하는 겁니다. 그러면
천하의 영웅들도 우리가 신의를 저버렸다고 나무라지 않을 겁니
다. 하지만 모든 게 조용하면..... 오히려..... 음, 양좌사님,
수고스럽지만 몰래 사람을 보내서 사사왕을 습격하는 것처럼 가
장해 주십시오. 혼란한 틈을 이용해 우리는 혼수모어(混水摸魚)
하듯 사사왕을 구출하겠어요."

그러자 양소는 웃으며 말했다.

"정말 묘책입니다."

이윽고 즉시 사람을 파견했다. 장무기는 이러한 행동이 정정당
당한 게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의부를 구하기 위해서
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기로 했다. 속으로는 조민에게 매우 고맙
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매와 양좌사는 어떠한 일이 닥쳐도 주저하지 않고 결단하는
큰 재질을 지니고 그들 두사람이 서로 의논하면 잘 통하는구나.
그러나 나에게는 그러한 재주가 없으니.....'

그러자 주지약의 말소리가 들렸다.

"세 분 고승이 소림파의 장로라면 무학도 자연히 깊을 것이 아
닙니까? 본좌가 일 대 삼으로 하면 비단 공평하지 않을 뿐만 아
니라 윗사람을 모욕하는 일입니다."

그 달마당의 노승이 말했다.

"송부인께서 한, 두 사람 보태서 돕게 해도 안 되는 것은 아닙
니다."

"본좌는 천하의 영웅들께서 양보하신 바람에 요행탈괴(僥倖奪
魁)했지만, 모두가 선사 멸절사태께서 비전(秘傳)한 본파의 무공
덕분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삼 대 삼으로 싸워서 이기게 되더라
도 선사께서 옛날에 본좌에게 정성껏 가르치신 것을 과시하지 못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일 대 삼으로 싸운다면 그건 또 주
인에게 실례를 범하니..... 그럼 이렇게 합시다. 어제 본좌에게
상처를 입어 미처 완쾌되지 않은 한 녀석을 불러서 연수(聯手)하
겠습니다. 그 녀석은 옛날에 선사에게 세 장을 얻어맞고 입에서
선혈을 토했던 것은 천하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선사
의 위명은 깎이지 않을 겁니다."

장무기는 그 말을 듣자 내심 매우 기뻤다.

'천지신명께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과연 내 부탁을 들어주었
군.'

곧이어 주지약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장무기, 이리 나오너라!"

명교의 군호 중에 양소 등 극소수 외에는 모두 내막을 몰랐다.
자연히 주지약이 이녀석 저녀석 하며 본교 교주를 모욕하는 언사
를 듣자 한결같이 격분했다. 그런데 장무기는 얼굴에 희색을 띄
우며 앞으로 다가가서 정중히 인사하면서 말했다.

"어제 송부인께서 수하류정(手下留情)하여 이 녀석의 목숨을 살
려 주셔서 대단히 고마왔습니다."

그는 이미 속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날 모욕한 것은 아미파의 체면을 살려
주고 또 혼례식날 신랑이 달아난 수치감을 보복하는 것뿐이다.
의부를 위한 일이라면 난 끝까지 참고 견딜 것이다.'

주지약이 말했다.

"넌 어제 중상을 입어서 피를 토했기 때문에 지금 난 너를 진짜
원조자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흉내만 내주기 바란다."

"네, 모든 것을 명령대로 실행하겠습니다. 절대로 위반하지 않
겠습니다."

주지약은 연편(軟鞭)을 꺼내서 오른손으로 한 번 휘둘자, 채찍
은 즉시 십여 개의 크고 작은 원이 형성되는 것이 매우 아름다웠
다. 다시 왼손을 뒤집자 파란 빛이 번뜩거리면서 한자루 단도가
손에 쥐어졌다.

군웅들은 어제 이미 그녀의 연편의 위력을 보았지만 그녀가 왼
손으로 단도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으리라곤 정말 뜻밖이었다.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은 것이었다. 또 하나는 부드러운 것이고
하나는 강한 것이니, 이 두가지 병기는 분명히 다른 것들이었다.
군웅들은 놀라움과 탄복을 보내며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장무기는 품에서 성화령 두 개를 꺼내어 앞으로 두 발자국 걸어
갔다. 갑자기 다리를 휘청하더니 일부러 또 큰 소리로 몇 번 기
침을 했다. 중상이 아직 완쾌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야만
나중에 만약 소림 삼승을 이기게 되더라도 모두 주지약의 공로라
며 군웅이 말할 게 아니냐는 생각에서였다. 주지약은 그의 곁으
로 다가가서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전에 당신의 사촌누이의 복수를 해준다고 맹세한 바 있
는데, 만약 그녀를 해친 범인이 당신의 의부라면 당신은 그래도
그를 구출할 겁니까?"

순간 장무기는 놀라며 말했다.

"의부께선 정신착란을 일으킬 때가 있어서 그 자신이 한 일을
모르고 있소."

도액이 말했다.

"장교주께서 오늘 또 오셨군요."

"세 분 대사님께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별 말씀을..... 이분 아미파의 장문께서 어제 무예로 천하의
군웅을 제압했다는데 그녀의 무공이 장교주의 위에 있단 말입니
까?"

"틀림 없습니다. 후배는 어제 주장문인의 손에 중상을 입어 피
를 토했습니다."

도난이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

그러자 세 노승은 긴 채찍을 천천히 앞으로 뻗어 내었다.

바로 이때였다. 산등성이에서 갑자기 거문고와 퉁소가 뒤섞인
소리가 몇 번 살며시 들렸다. 장무기는 내심 기뻐했다. 이윽고
요금(瑤琴) 소리가 연거푸 세 번 울리더니 백의 소녀 네 명이 옷
자락을 펄럭이며 산봉우리로 올라왔다. 손에는 각각 단금(短琴)
하나씩을 안고 있었다. 곧이어 퉁소소리가 울리더니 흑의 소녀
네 명이 손에 장소(長簫)를 들고 산봉우리로 올라왔다. 흑백 소
녀 여덟 명은 각각 팔개 방위(方位)를 차지하고 거문고와 퉁소를
함께 연주했다. 매우 운치가 있었다. 그러자 담황경사(淡黃經紗)
를 몸에 걸친 한 미녀가 음악소리를 들으며 느린 걸음으로 산봉
우리로 올라왔다. 바로 전에 장무기가 노룡의 개방에서 만났던
여인이었다.

개방의 여동방주 사홍석이 그녀를 보자마자 달려가서 그녀의 품
에 덥석 안기며 소리쳤다.

"양언니, 양언니! 우리의 장로와 용두는 모두 남의 손에 죽었어
요."

말을 하면서 손으로 주지약을 가리켰다.

"바로 그녀의 아미파와 소림파가 가한 독수예요."

그 황삼 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 흥! 구음백골조(九陰白骨爪)가 천하 최강의 무공이라
장담할 수 없다!"

이때 군웅의 시선은 모두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
두 마디는 더욱 똑똑히 모두의 귀에 전달되었다.

'아미파의 그 조법(爪法)이 바로 백 년 전 강호에서 이름을 날
렸던 음독 무공 <구음백골조>란 말인가?'

그들은 구음백골조란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무공
은 너무나 음독하기에 이미 오래 전부터 실전(失傳)되어서 아무
도 본 적이 없었다.

황삼 미녀는 사홍석의 손을 잡으며 개방이 몰려 있는 곳으로 걸
어가서 바위 위에 앉았다. 주지약은 안색이 약간 변하면서 조그
만 소리로 물었다.

"저 여자는 누구죠?"

"난 그녀를 한 번 만난 적이 있소. 그러나 그녀의 이름과 내력
은 모르오. 단지 개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오."

그러자 주지약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싸우겠어요."

그리고는 긴 채찍을 앞으로 뻗어서 도난의 채찍으로 감아갔다.
이윽고 몸도 덩달아 솟구쳐서 세 그루 늙은 소나무 사이로 내려
앉았다.

그녀는 제 일초부터 곧장 적의 중앙을 공격했다. 그 초수의 매
서움과 신속함, 그리고 담식(膽識)이 강함은 설령 일류급 강호의
노수(老手)들도 미치지 못했다. 군웅의 눈에는 그녀가 허공에서
마치 한 마리 청학처럼 위로 높이 솟았다가 아래로 덮쳐가며 공
격했다. 신법은 만묘(曼妙)하여 비할 바가 없었다. 그녀의 오른
손의 연편(軟鞭)과 도난의 장편(長鞭)을 서로 얽어 놓고 도난이
병기를 잠시 사용할 수 없게 말들었다. 그러자 도액과 도겁은 쌍
편을 일제히 휘둘러서 각각 좌우를 공격했다.

장무기는 재빨리 앞으로 달려가면서 발을 한 번 헛딛더니 갑자
기 한 번 데굴데굴 굴러서 다가갔다. 그러자 군웅들 사이에 으
잉! 하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두 그가 중상을 입
은 후 제대로 설 수 없는 것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장무기의 이 일초는 바로 성화령 위에 기재되어 있는 옛
파사국의 무공이었다. 신법의 괴이함은 실로 극에 달했다. 그는
마치 앞으로 넘어지는 것 같았지만 양손의 성화령은 이미 도난의
흉구로 후려쳐 갔다. 그 때 도난의 채찍은 마침 주지약의 채찍과
서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채찍을 돌려서 막을 수가 없었다. 도액
과 도겁은 도난이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보자 즉시 주지
약을 버려두고 두 채찍을 장무기에게 공격해 갔다. 두 개의 긴
채찍의 예민한 움직임과 강맹한 위력은 실로 한 쌍의 오룡(烏龍)
같았다.

장무기는 열세에 놓여지자 느닷없이 땅에서 한 번 구르더니 몹
시 낭패한 꼴로 도액의 곁으로 굴러갔다. 그러자 도액은 왼손으
로 그의 어깨를 찍어내렸다. 장무기는 좌장을 건곤이위신공의 힘
으로 막으며 몸을 한 번 흔들어 내니 어깨는 이미 도겁에게 박으
러 가는 꼴이 되었다.

그는 오늘 주지약의 명성을 떨쳐 주겠다는 일념으로 임전하였기
에 소림 세 고승을 격패한 수훈은 모두 아미의 장문에게 돌리고,
자기는 오직 사손만을 구출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용하는
무공도 전부 옛 파사국의 무공이라, 동쪽으로 한 번 굴렀다가 서
쪽으로 한 번 넘어지는 게 실로 너무나 보기 흉했다.

물론 방관하는 군웅들 중에는 탁월한 인물을 식별하는 안목은
있었지만, 이 옛 파사국 무공이 너무나 괴상하고 또 아무도 중토
에서 사용했던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어제 장무기가 중상을 입
은 것을 모두들 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모두 진의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명교의 적들은 모두 속으로 즐거워했고 명교의
친구들은 모두 걱정하면서 혹 그가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수십 초를 서로 주고받자 주지약의 신형(身形)은 갑자기 위 아
래로 날아다니며 더욱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장무기는 점점
더 막아내지 못하는 듯 수족이 망난하였다. 마치 무공을 처음 배
우는 사람보다 더 어설펐다. 그러나 아무리 위험한 형세에 놓여
있어도 항상 그는 상대방의 무서운 살수를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그러니 방관하는 영웅들 중에 심지(心智)가 남달리 예민
한 사람은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무공은 어찌 보면 취팔선(醉八仙) 같은 종류의
무공이라 보기엔 뒤죽박죽하며 아주 무질서하지만 사실은 기묘한
변화가 내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로(正路)의 무공보다 훨씬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들 나름대로 하기도 했다.

만약에 이 옛 파사국 무공으로 세 고승 중의 아무나 한 사람만
상대했더라면 상대방은 필시 장무기가 풍운삼사를 처음 만났던
그 때처럼 허둥지둥하며 몹시 낭패한 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
나 이 소림의 세 분 고승은 수십 년 동안 고선(苦禪)하였기에 심
의(心意)가 상통해서 어느 한 승의 초수에 빈틈이 보이게 되면
나머지 이승은 즉시 그 빈틈을 메꿔 주었다.

그러니 장무기가 어떠한 괴이한 심법을 구사해도 삼승의 솜털
한 가닥도 상하게 할 수 없었다. 막상 백초에 가까와지자 그는
삼승 채찍의 위력이 더욱 강해지고 자기의 심법은 도리어 천천히
둔해지면서 이미 처음 결투할 때의 예민함은 찾을 수 없다는 느
낌이 들었다.

그는 자기가 사용한 무공이 이미 마도(魔道)에 돌입했고 그 삼
승의 금강마권이 바로 불력복마(佛力伏魔)하는 정묘대법(精妙大
法)인 것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싸울수록
힘이 솟구치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 그의 심령에는 마두(魔頭)
가 점점 자라고 있어서 앞으로 백 초만 더 싸우게 되면 그는 삼
승의 불문상승 무공에 극제(克制)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미쳐 날
뛰게 될 것이다. 세 고승이 출수하지 않아도 그는 자기가 자기를
죽이게 될 것이다.

명교가 세인들에게 마교라 불리는 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
니었다. 이 옛 파사국 무공의 창시자인 산중노인(山中老人)이 바
로 사람을 죽여도 눈하나 깜짝거리지 않는 대악마였다.

장무기가 처음에 그 무공을 연마할 때는 별로 느낀 게 없었지만
막상 경적(勁敵)을 만나서 그 무공의 정묘한 곳을 모두 발휘하게
되자 무엇인가가 심령에 차츰 와 닿으면서 느닷없이 하하하! 하
며 앙천대소했다. 웃음소리에는 사악간사(邪惡奸詐)의 뜻이 충만
되어 있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끝나자 갑자기 세 그루 소나무 사이에 있는 지
하 감옥에서 불경을 낭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의부 사손
의 소리였다. 그는 창로(蒼老)한 음성으로 금강경을 천천히 낭송
하고 있었다. 장무기는 싸우면서 듣고 있었다. 그러나 사손이 불
경을 낭송하자 소림 삼승의 긴 채찍의 위력도 즉시 감소되었다.

사손은 이 몇 개월 동안 지하 감옥에 감금되어 있으면서 밤낮으
로 삼승이 낭송하는 금강경을 들어 왔기에 경의(經義)에 대해서
깨달은 바가 많이 있었다. 이때 갑자기 장무기의 궤괴(詭怪)한
웃음소리를 듣게 되자 마치 심마대성(心魔大盛)하여 차츰 위험한
경지에 돌입하는 것 같아서 즉시 금강경을 낭송한 것이다. 그렇
게 함으로써 그의 마음 속의 마두를 파탈(擺脫)하기를 바랬던 것
이다.

장무기는 사손이 낭송하는 불경을 들으면서도 출수하는 초수는
전혀 멈추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경문에 내장된 뜻을 깨닫게 되
자 심마가 즉시 사라졌다. 그러자 이 옛 파사국 무공을 순식간에
연관시킬 수 없게 되었다. 순간 획! 하며 소리가 나더니 도겁의
자편이 그의 왼쪽 어깨를 후려쳐 왔다.

장무기는 재빨리 어깨를 피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건곤이
위심법을 전개하며 구양신공을 배합하여 순식간에 공격해 온 경
력을 물리쳤다. 그는 곁눈으로 주지약을 쳐다보니 그녀도 이미
패한 기색이 나타나 있었다.

'오늘의 기세로는 두 가지 일을 성사하기 어렵구나. 내가 만약
에 전력으로 싸우지 않아서 일단 지약이 패하게 되면 의부를 구
출하는 일은 전혀 가망이 없을 것이다.'

이윽고 대갈일성하며 성화령 두 매를 휘둘러서 맹렬히 공격했
다.

사손의 독경소리는 이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장무기는
신경을 곤두세워서 건곤이위심법을 구사했기 때문에 그가 읽고
있는 경문은 이미 들은 체하지도 않았다. 그는 온갖 방법으로 삼
승의 장편이 자기에게 공격하도록 유인하면서 주지약이 권내(圈
內)로 들어갈 수 있도록 공격을 퍼부었다.

그가 전력으로 공격을 가하자 삼승은 즉시 채찍에서 전해오는
압력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는 수 없이 그들도 각자 내력
을 운용하여 상대방에게 대항했다. 장무기가 무공의 초수를 고쳐
버리자 세 그루 소나무 사이의 쟁투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

삼승의 머리 위에는 차츰 한 덩어리의 연한 수기(水氣)가 나타
났다. 이건 이마와 정문(頂門)의 땀이 내력에 핍박되어 증기(蒸
氣)로 변한 것이다. 그러니 다섯 사람은 이미 각자의 내력으로
서로 싸우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장무기의 머리위에도 수기가
나타났지만 그의 것은 반듯하게 일직선이 되었고 가늘면서도 길
게 모아져서 흩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내력은 삼승보다 더
욱 심후하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

어제 군호들은 그가 중상을 입은 것을 모두 보았는데 그는 단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회복될 줄이야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
다. 그의 심후한 내력은 실로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주지약은 삼승과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 권외(圈外)에서 유투
(遊鬪)하다가 금강복마권에 빈틈이 엿보이면 바로 몸을 날려서
앞으로 전진했다. 그러나 막상 채찍의 저지를 받으면 즉시 놀란
기러기처럼 재빨리 몸을 피했다.

이렇게 되자 장무기와 그녀의 무공 차이는 순식간에 판명되었
다. 그러자 방관하는 군웅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수군거리
기 시작했다.

"요 몇 년 동안 무림에서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명교 장교주의
무공이 당금독보(當今獨步)하다더니, 과연 뜬소문이 아니구나.
어제 그는 일부러 져 송부인에게 양보한 것이다. 그걸 호남불여
여투(好男不與女鬪)라 하지."

"그게 아니라 송부인은 본래 장교주의 처자였네. 당신은 그것도
모르나? 그걸 고척정심(故尺情深)이라 하지."

"떽! 고검정심(故劍情深)이란 말은 있어도 고척정심이란 말은
없다네."

"당신은 장교주가 사용하는 두 자루의 철척(鐵尺)이 안 보이
나?"

"나중에 송부인도 장교주에게 독수를 가하여 죽이지 않았는데,
그것이 바로 고수정심(故手情深)이 아니면 무엇이냐?"

소림 삼승과 장무기의 초수가 점점 느려지면서 변화도 차츰 정
묘해졌다. 이때 장무기와 소림 삼승은 각자 최대한의 실력으로
싸우고 있는 터라 전혀 잔재주를 부릴 수 없었다. 주지약의 내공
은 유연주, 은이정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녀가 간간
이 앞으로 다가가서 공격해 보았지만, 네 사람의 내경에 부딪치
자마자 즉시 튕겨서 되돌아왔다. 그러니 그녀는 전혀 도움이 되
지 못했다.

다시 반 시간 정도 지나자 장무기 체내의 구양신공이 급속히 유
동되면서 성화령이 칙칙....! 하며 소리를 발출하였다. 소림 삼
승의 안색은 본래 각각 달랐지만 이때는 모두 피빛처럼 빨갛게
되면서 승포(僧袍)도 덩달아 부풀어졌다. 마치 바람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장무기의 옷은 전혀 아무 이상도 없었
다.

만약 그가 일 대 일 혹은 일 대 이로 싸웠으면 이미 벌써 이겼
을 것이다. 그가 연마한 구양진기는 본시 혼후(渾厚)하였으며 또
장삼봉에게 태극권 중의 연기법(練氣法)을 배웠으니 싸울수록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에 다
시 한, 두 시간 싸워서 적이 기진맥진하길 기다릴 수 있을 정도
였다.

소림 삼승은 지금까지 겨뤄 본 것으로 미루어 오래 접전을 벌이
면 자기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러자 갑자기 일제히
소리를 외치며 세 채찍을 급속히 휘둘러 대면서 장무기에게 공격
을 퍼부었다. 장무기는 적의 공격을 주시하면서 일일이 막아냈지
만 내심 혼자 초조해 하고 있었다.

'비록 지약의 무공이 괴이하지만 아무래도 배운 지 오래되지 않
아서 위력이 강하지 않구나. 나 혼자의 힘으로는 버티기 힘드니
오늘도 역시 패하게 되는구나. 이번에도 의부를 구출하지 못하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는 마음이 조급해지자 즉시 내력이 감소되었다. 그러자 삼승
은 그 틈을 타서 진격했다. 순간 그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
다.

장무기의 뇌리에는 옛날 빙화도에서 사손이 자기에게 대해준 애
정이 전광석화처럼 스쳐갔다. 그리고 사손이 장님이 된 후에 온
갖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강호에 돌아온 것은 모두 자기 때문이
니, 만약 오늘 그를 구하지 못하면 자기도 혼자는 정말 살 수 없
다는 생각을 했다.

이윽고 도난의 장편이 몸 뒤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자 그는 더
이상 자기의 생사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왼손을 재빨리 들어올려
서 그 채찍에 팔이 적중되도록 했다. 단지 건곤이위심법으로 편
력(鞭力)을 감소시켰다. 오른손은 성화령으로 도액과 도겁의 양
편(兩鞭)이 공격하는 것을 막았고, 몸은 갑자기 큰 새처럼 왼쪽
으로 덮쳐가더니 공중에서 한 번 회전하자 도난의 그 긴 채찍을
그가 앉아 있던 소나무에 한 바퀴 감아 버렸다.

이 일초는 실로 눈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다. 장무기는 왼
팔에 힘을 가하여 뒤로 급히 끌어당겨서 긴 채찍을 소나무 줄기
에 깊숙히 끼워서 박아 버렸다. 도난은 깜짝 놀라면서 얼른 뒤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장무기는 재빨리 초수를 변형해서 그가 채찍
을 뽑아가지 못하게 했다.

소나무의 줄기는 매우 굵었다. 그러나 뿌리 부분에 이미 반 이
상은 삼승이 파내서 비바람을 피하는 피신처로 사용해 왔다. 그
런데 이때 말할 수 없이 견인한 긴 채찍에 장무기와 도난의 두
줄기 내경이 동시에 작용하자 우지직! 하는 거대한 소리가 들리
더니 소나무의 파헤친 곳이 절단되면서 나무 꼭대기에서부터 쓰
러져 내렸다.

장무기는 도액, 도겁 이승이 경악하여 어쩔 줄 모르는 틈을 포
착하여 대갈일성하면서 쌍장을 도액이 몸 담고 있던 소나무로 후
려쳤다. 이 쌍 의 장력은 그가 필생의 공력을 모은 것이므로 그
소나무는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즉시 절단되어 버렸다. 절단
된 두 그루의 소나무는 일제히 도겁이 몸담고 있었던 소나무로
쓰러져 갔다.

쌍송(雙松)이 넘어질 때 이미 수천 근에 달하는 무게가 있는데
도 불구하고, 장무기는 몸을 날려서 양팔로 세 번째 소나무를 힘
껏 한 번 후려쳤다. 그러자 그 소나무도 바로 절단되어 공중에서
몇 번 흔들거리더니 천천히 쓰러지고 말았다.

그 때 소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와 군웅이 놀라서 지르는 소리가
뒤섞여서 몹시 소란스러웠다. 장무기는 손에 쥐고 있던 성화령
두 매를 힘껏 도액과 도겁에게 던졌다. 그러자 양승(兩僧)은 공
중에서 쓰러져 내리는 소나무도 피해야 하고 또 날아오는 성화령
도 막아야 하니 순시간에 수족이 망난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장무기는 몸을 살짝 낮추더니 미처 땅에 닿지 않은 나무 줄기의
옆으로 빠져나가서 금강복마권의 중심으로 돌입했다. 이윽고 건
곤이위심법을 전개하여 쌍장을 일추일전(一推一轉)하더니 즉시
지하 감옥을 덮고 있던 거대한 바위를 밀어내면서 소리쳤다.

"의부님, 빨리 나오세요!"

그는 사손이 다시 나오지 않을까 봐 사손의 대답도 듣지 않고
손을 밑으로 뻗어서 그의 후심(後心)을 움켜잡고 위로 들어올렸
다.

바로 이때였다. 도액과 도겁의 쌍편이 일제히 공격해 왔다. 그
러자 장무기는 하는 수 없이 사손을 내려놓고 품에서 성화령 두
매를 꺼내어 이승(二僧)에게 던지며 양손은 번개처럼 두 채찍의
편초(鞭梢)를 휘어잡았다.

도액과 도겁은 각각 내력은 운용하여 다시 빼앗으려 했지만, 성
화령이 이미 면문(面門)으로 날아왔다. 그러자 양승은 하는 수
없이 채찍을 버리고 급히 뒤로 몸을 튕겨서 성화령을 피했다. 그
때 도난은 이미 좌장을 가슴으로 후려쳐 왔다. 그러자 장무기가
소리쳤다.

"지약, 빨리 그를 맡으시오!"

그러면서 몸을 재빨리 비스듬히 날리며 사손을 안아들었다. 장
무기의 생각은 사손을 세 그루 소나무 사이에서 구출하기만 하면
소림파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주지약이 흥! 하며 코웃음을 치며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도난의
장풍이 바로 연이어 공격해 왔다. 그러자 장무기는 몸을 한 번
돌려서 배심(背心)의 급소를 피하고 그 일장이 어깨에 적중되게
하였다.

그는 사손을 안아들고 부러진 세 그루 소나무 사이에서 나오려
했다. 그러자 사손이 말했다.

"무기야, 난 평생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다. 이곳에서 불경을
들으며 참회하는 것도 퍽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데 넌 뭣 때문에
날 구출하려 하느냐?"

말을 하면서 땅으로 다시 내려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장무기는
의부의 무공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만약에 밖으로 나가기를
결사 반대하면 그로서도 어찌할 수 없었다.

"의부님, 소자를 용서하십시오."

이윽고 오른손의 손가락으로 그의 대퇴부와 흉복간의 혈도를 몇
군데 재빨리 찍어서 잠시 그가 움직일 수 없게 하였다. 이처럼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소림 삼승은 수장을 동시에 후려치면서 일
제히 소리쳤다.

"사손은 남겨 놓으시지!"

장력은 사면팔방으로 장무기를 덮어서 감싸 버렸다. 수장이 와
닿기도 전에 장풍은 이미 다가와서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자 할
수 없이 사손을 다시 내려놓고 출장하여 막으며 소리쳤다.

"지약, 어서 의부님을 안고 밖으로 나가시오!"

그는 쌍장에 장력을 끌어모아서 원을 그리며 휘둘렀다. 삼승 중
어느 누구도 주지약에게 다가가서 저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였다. 이는 건곤이위심법 중에서 제일 깊은 무공중의 하나다. 장
력의 움직임이 일정치 않아서 허허실실하며 삼승의 장력은 동시
에 찰싹 달라붙고 말았다.

주지약은 권(圈) 안으로 들어가서 사손의 곁으로 갔다. 그러자
사손이 호통쳤다.

"천한 인간이.....!"

그러자 주지약은 손을 내밀어서 그의 아혈(啞穴)을 찍으며 큰
소리로 꾸짖기 시작했다.

"사가야. 난 좋은 뜻으로 널 구하러 왔는데 뭣 때문에 욕지거리
를 하는 것이냐? 네가 지은 죄는 하늘에 닿을 만큼 많으며, 게다
가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는 판국에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할 것
같으냐?"

이윽고 오른손을 들어올리더니 다섯 손가락을 반듯이 세워서 사
손의 천령개를 찍어내리려고 했다. 그러자 장무기가 급히 소리쳤
다.

"지약, 아니 되오!"

이때 그와 삼승은 각자 평생의 공력으로 서로 대항하고 있었다.
물론 삼승은 그를 죽여 버릴 뜻은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생사가
순식간에 결정되는 시점에선 적이 죽지 않으면 바로 자신이 죽기
때문에 전혀 양보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장무기는 입을 열어 버리자 진기가 점점 새어나갔다. 그러자 삼
승의 장력은 마치 배산도해(排山倒海)하듯 밀어닥쳤다. 하는 수
없이 다시 힘을 끌어서 저항했다. 쌍방은 모두 어쩔 수 없는 순
간에 놓여진 것이다. 일단 <점>자결을 운용하게 되면 승패를 가
리지 않고서는 몸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주지약은 수조(手爪)를 공중으로 들어올렸지만 밑으로 공격하지
는 않았다. 그러더니 곁눈으로 장무기를 차갑게 흘겨보면서 냉소
를 지으며 말했다.

"장무기, 그날 호주성에서 넌 혼례식을 하는 도중에 날 버려두
고 도망갔는데, 어찌 오늘 같은 일이 있으리라고 미처 예측하지
못했느냐?"

그러자 장무기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설령 그가 다른 일에 신
경을 쓰지 않고 열심히 삼승을 대항해도 결국은 패하게 될지도
모르는 판국에 이처럼 심신이 혼란해지자 더욱 그에게 큰 화가
미치게 되었다. 이윽고 그는 이마에서 식은 땀이 비오듯 쏟아지
더니 삽시간에 앞가슴과 뒷잔등의 옷이 모두 흠뻑 젖어 버렸다.

양소, 범요, 위일소, 설불득, 유연주, 은이정 등은 이러한 광경
을 보게 되자 모두 대경실색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장무기를 구할 수 있다면 설령 자기의 목숨을 버리
더라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자기네들의 공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
었다. 설령 자기들이 다가가서 소림 삼승에게 습격을 하더라도
삼승은 가볍게 외력(外力)을 장무기의 몸으로 옮겨서 그로 하여
금 더욱 중력을 부담하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되면 장무기를 구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공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세 분 사숙님, 장교주는 여러 차례에 본파에게 은혜를 베풀었
습니다. 부디 수하류정(手下留情)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네 사람은 이미 난해난분(難解難分)한 처지에 돌입되었
다. 비록 쌍방이 모두 해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이미 기호난
하(騎虎難下)의 입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위일소가 몸을 한 번 흔들자 마치 한 줄기 가벼운 연기처럼 잘
라진 소나무의 사이로 번개처럼 들어가면서 주지약에게 덮치려
했다. 그러나 주지약의 오른손이 자세를 취하여 공중에 쳐들고
있는 것을 보자, 자기가 만약에 덮쳐가면 그녀의 수조세(手爪勢)
는 즉시 사손의 머리 위를 찍어내릴 것 같았다. 사손이 만약에
죽어 버리면 장무기는 크게 슬퍼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즉시 삼
승의 장력에 죽게 될 것이다.

위일소와 주지약이 떨어진 거리는 불과 일 장 정도였지만 감히
다가가서 출수하지 못하고 멍청히 서 있기만 했다. 잠시 동안 산
봉우리 위에 있는 사람들도 돌부처처럼 굳어 어느 누구도 움직이
지 않고 또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자 느닷없이 주전이 하하.....! 하며 웃음을 터뜨리면서 앞
으로 다가갔다. 양소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주형, 경거망동해선 안 됩니다."

주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소림 삼승의 앞으로 다가갔다."

"대화상 세 분은 개고기를 먹지 않습니까?"

이윽고 품에서 삶은 개다리를 한 짝 꺼내더니 도액의 면전에다
흔들어 보였다. 그러나 삼승은 못 본 척하면서 전혀 동요하지 않
았다. 그러자 주전은 개다리를 한 입 뜯어 먹으며 말했다.

"정말 향기롭고 맛있구나. 대화상 세 분도 한 입씩 잡수시지!"

그는 삼승이 전혀 동요되지 않는 것을 보자 개다리를 도액의 입
가로 갖다 대며 그의 입 안으로 쑤셔넣으려 했다. 그러자 방관하
던 소림승이 호통쳤다.

"저런 미친 놈 같으니, 빨리 물러서라!"

주전이 개다리를 앞으로 내밀자 마침 도액의 입술에 부딪쳤다.
갑자기 팔목이 한 번 울리면서 상반신이 쑤시고 마비되었다. 순
간 팍! 하는 소리가 나면서 개다리는 땅으로 떨어졌다. 이때 도
액의 온몸은 내력으로 휘감겨 있어서 이미 승충불능락(蠅蟲不能
落)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사지백해(四肢白該)에 외력을 받게
되자 즉시 튕겨서 되돌려 나온 것이다. 그러자 주전이 소리쳤다.

"아이구, 정말 대단하구나! 개고기를 안 먹으면 그만이지 구태
여 내 개다리를 땅바닥에 튕겨서 나까지 못 먹게 할 건 없지 않
느냐? 어서 배상해라! 어서 배상해라!"

그는 손짓 발짓을 해가며 큰 소리로 외쳐 댔다. 그러나 뜻밖에
도 삼승의 수양이 너무나 깊어서 전혀 외마의 간요를 받지 않았
다. 그러자 주전은 품에서 단도 한 자루를 꺼내며 소리쳤다.

"내 개다리를 배상하지 않는다면, 노자(老子)는 오늘 너하고 사
생결단을 낼 것이다!"

그러면서 단도로 자기 얼굴에다 한 번 그어대자 즉시 피가 흥건
했다. 군웅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 주전은 다시 단도
로 자기의 얼굴에다 한 번 그었다. 순간 그의 얼굴은 피가 범벅
되면서 몹시 무섭게 변했다. 이러한 광경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놀라서 마음이 동요되기 마련인데, 소림 삼승은 마치 눈, 귀,
코, 혀 등 모든 기능이 상실한 것 같았다. 그러니 주전이 자해하
는 광경만 보지 못한 게 아니라 그가 자기들 곁에 나타난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주전이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중놈아, 내 개다리를 배상하지 않는다면 난 너의 면전에서
죽어 버릴 것이다!"

그러면서 단도를 들어올리더니 자기의 가슴으로 찔러갔다. 그는
교주의 생명이 위험한 것을 보게 되자 자살을 하여 삼승의 심신
을 교란시켜 보겠다는 결의였다.

순간 느닷없이 노란 그림자가 번뜩거리더니 한 사람이 몸을 날
려서 다가갔다. 협수(夾手)로 그의 단도를 뺏고 나서 바로 몸을
비스듬히 하면서 앞으로 다가가더니 다섯 손가락을 반듯이 뻗어
주지약의 머리 위에서부터 찍어내렸다. 사용한 수법은 송청서가
개방의 장로를 죽일 때와 똑같았다.

주지약의 다섯 손가락은 사손의 정문(頂門)에 불과 한 치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상대방의 심법이 실로 너무나 빨라서 하는 수
없이 손을 위로 되돌려서 이 일초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장무기는 내심 기쁨이 넘치자 내경도 바로 살아나서 삼승이 공
격해 온 경력을 하나 하나 와해시켰다.

도난은 비록 외계의 사물에 대해서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지
만, 갑자기 상대방의 내력이 크게 살아났어도 공격하지 않는 것
을 알게 되자 바로 쌍방의 위난을 제거하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
각했다. 삼승의 심의가 상통되자 즉시 내경을 살짝 거두었다. 그
러자 장무기도 따라서 경력을 조금 거두어 들였다. 이렇게 서로
조금씩 거둬들이자 잠깐 사이에 쌍방의 경력을 모두 거둬들이게
되었다. 네 사람은 동시에 하하.....! 웃으며 일제히 일어섰다.

장무기는 땅에 닿을 정도로 길게 읍을 했다. 그러자 도액, 도
겁, 도난 삼승은 합장하며 답례했다. 네 사람은 일제히 말을 했
다.

"정말 탄복했소! 정말 탄복했소!"

장무기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 황삼 여자와 주지약은 한참 치열
하게 싸우고 있었다. 황삼 여자는 빈 손이고 주지약은 오른손에
채찍을 들고 왼손엔 단도를 들었지만 여전히 열세에 몰려 있었
다. 황삼 여인의 무공은 마치 주지약과 일로(一路)에 속해 있는
듯 했다. 만약 주지약을 귀매(鬼魅)로 비유한다면 그 황삼 여인
은 바로 신선이었다.

도액이 말했다.

"장교주님, 당신이 비록 우리 셋을 이길 수 없었지만 우리 셋도
당신을 이길 수 없었소. 사거사님,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그러면서 앞으로 다가가더니 사손의 혈도를 풀어 주며 말했다.

"사거사님, 방하도도 입지성불(放下度刀 立地成佛)하시오. 우리
불문의 문호는 광대하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이든 넘볼
수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이 산봉우리에서 여러 날을 같이 지낸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인연입니다."

그러자 사손은 일어서면서 말했다.

"아불자비(我佛慈悲), 세 대사님께서 밝은 길로 인도해 주신 것
에 대해서 사손은 평생 고마움을 잊지 않을 겁니다."

이윽고 그 황삼 여인의 맑은 소리가 한 번 들리더니 왼손으로
주지약의 수중에 있는 장편(長鞭)을 빼앗으면서 팔꿈치로 그녀의
흉구 혈도를 찍었다. 그러한 뒤 오른손을 키처럼 뻗어서 다섯 손
가락으로 그녀의 머리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도 구음백골조(九陰白骨爪)의 맛을 보겠느냐?"

주지약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눈을 감아 죽음을 기다렸다.

사손의 두 눈은 비록 사물을 관찰할 수 없었지만 주위에서 일어
나는 모든 일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앞으로 다가가서
포권의 예로 인사하며 말했다.

"낭자께서 우리 부자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해 준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만약 이 주낭자가 회개하지 않고 불의(不義)를 많
이 행한다면 언젠가는 보복을 받게 될 날이 있을 겁니다. 제발
부탁인데 낭자께선 오늘은 잠시 그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
다."

"금모사왕께선 너무나도 빨리 회개하셨군요."

그러면서 몸을 한 번 흔들더니 바로 뒤로 물러섰다.


----- 제 7 권 2 장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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