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庸 - 连城诀 3

3학년2반 | 2022.03.08 07:14:50 댓글: 0 조회: 395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3722

6. 혈도노조(血刀老祖)

적운은 사방에 점점 구경꾼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몸을 피하기가
더욱 어려워 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칼을 들어올리며 크게 외
쳤다.
"빨리 없어져!"
그리고는 왼쪽 겨드랑이에 그 작은 막대기를 받치고 동쪽을 향해
뛰어갔다. 옆에 둘러싸고 있던 구경꾼들이 소리를 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네명의 포졸이 외쳤다.
"꽃을 따는 악독한 중놈아! 어디로 도망 가려고 하느냐? "
그러면서 기를 쓰고 ㅉ아 왔다. 적운은 짧은 칼을 비스듬히 잡고
손목을 휘둘러서 한 포졸의 팔에 상처를 냈다. 그 포졸은 크게
외쳤다.
"저 살인법을 잡아라! 잡아라!"
수생은 말을 재촉하여 적운을 향해 덮쳐갔다. 왕소풍은 말이 앞
으로 달리도록 하여 채찍을 내리쳐서 적운의 칼을 말아서 잡아챘
다. 적운의 손에는 힘이 빠져 단도가 그의 손에서 날아가버렸다.
왕소풍은 왼쪽손을 내밀어 그의 목덜미를 잡아 그의 몸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이 나쁜 중놈아! 내가 양호에서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살려 둘
수 없다."오른손으로 칼을 잡아 누르니 청색의 빛이 감도는 장도
가 나와 적운의 목을 치려 했다. 옆에 있는 구경꾼들이 크게 외
쳤다.
"좋아! 좋아!"
"이 나쁜 놈을 죽여라!"
"우리 모두 그를 묻어 버리자."
적운의 몸은 공중에 떠있어 저항을 할수가 없었다. 그는 한탄하
며 생각했다.
'내 운명이 이토록 기구하고 억울하게 정해져 있으니 할수 없는
일이지.'
왕소풍의 칼이 이미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비미하게 쓴
웃음을 지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정형 내가 힘을 아니 쓴 것이 아니라 실로 내 운명이 나빴소.'
갑자기 먼데서 목쉰 음성이 들려왔다.
"멈추시오! 그의 생명을 해치면 가만 두지 않겠소."
왕소풍이 머리를 돌려 보니 황금색의 웃옷을 입은 한분의 스님이
보였다. 그 스님은 나이가 많았고 머리통이 솟아 올랐으며 귀는
길었고 얼굴은 온통 주름살 투성이였고 몸에 걸친 웃옷은 적운이
걸친 옷과 같은 것이었다. 왕소풍의 얼굴색이 바뀌더니, 그가 서
장의 혈도문의 인물인줄 알고 검을 들어 적운의 목을 향해 내리
치려고 했으나 이 나쁜 중을 죽이고 노승도 죽이려 했다. 칼날이
적운의 목에 거의 다 다다랐을때 갑자기 오른손 팔목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이미 암기로 혈도를 맞은 것이다. 그의 손에 있는
장검이 흔들리면서 늘어졌다. 비록 힘을 주지는 않았으나 그 칼
의 힘이 적운의 왼쪽 뺨에 한줄기의 칼자국을 내었다. 그 노승의
몸은 마치 바람처럼 다가와 한손으로 왕소풍의 몸을 말위에서 밀
어내고 왼손으로는 적운의 잡았다. 이어 오른다리를 박차며 평자
지에서 말등으로 뛰어 올랐다. 보통사람들이 말을 탈때에는 반드
시 한발을 발걸이에 걸고 타는데 이 노승은 뛰지도 않고 말걸이
를 밟지도 않고 담숨에 말등에 올라가서는 말을 수생을 향하여
몰았다. 수생은 왕소풍이 놀라는 소리를 듣고 급히 말의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추게 했다. 왕소풍은 크게 외쳤다.
"사촌누이, 빨리 도망가!"
수생은 멍하니 생각하다가 말머리를 돌렸으나 그 노승은 이미 말
을 타고 바짝 뒤 ㅉ아 왔다. 그는 적운의 수생의 몸뒤 백마의 안
장에 던지고 이어 그녀를 말에서 떨어뜨리려 했으나 그녀는 이미
장검을 뽑아 들고는 노승의 머리를 향해 내리치고 있었다. 그 노
승은 수생을 바라보더니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너무 아름답구나!"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허리에 있는 혈도를 명중시켰다. 수생
은 칼을 허공에 휘두르는 순간 온몸에 힘이 빠져 장검을 놓치고
말았다. 마음속으로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급하게 말에서
내려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허리가 마비되고 양 다리가 이미 마음
대로 음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 ㄴ은 중은 백마의 고삐를
당겨 동시에 황마와 백마를 발로 차니말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왕소풍이 땅에 쓰러진채로 말했다.
"누이! 누이!"
그는 두눈을 부릅뜨고 사촌누이가 납치되는 것을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러나 그의 온몸은 쑤시고 아프며 온 힘을 다해
일어 나려고 해도 음직여 지지가 않았다. 이때 포졸들이 크게 부
르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 나쁜 중을 잡아라!"
"악독한 혈도승이 도망갔다!"
"상처입은 자를 잡아라!"
적운의 몸은 말등에 있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마치 떨어질 것
같아서 습히 손을 내밀어 잡고 보니 손에 잡힌것은 보드랍기 그
지 없었다. 머리를 숙여보고 잡은 곳이 수생의 등뒤의 허리부분
임을 알았다. 수생은 크게 놀라 소리쳤다.
"이 나쁜 중놈아 어서 손을 놔!"
적운은 재빨리 손을 떼고 안장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수생의 몸
뒤에 앉았으니 두 사람의 몸이 부ㄷ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생은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날 놔줘! 날 놓아줘!"
그 노승이 듣기가 짜증나는지 그녀의 혈도를 눌러 버리자 수생은
말 조차도 할수 없게 되었다. 그 노승은 황마의 등에 타고 수생
의 몸매와 얼굴을 계속 보면서 혀를 차며 감탄했다.
"아름답군, 대단해! 난 아름다움을 보면참을 수가 없어!"
수생의 입은 비록 벙어리가 됐지만 귀는 막힌 것이 아니여서 그
의 말을 듣고는 기절할 듯이 놀랐다. 그 노승은 말을 타고 서쪽
을 향해 황쳬한 곳만 골라서 달려갔다. 영정 중에 두필의 말의
방울소리가 시끄러워서 혹시라도 누가 ㅉ아 오지 않을까 걱정하
여 금방울과 은방울을 모두 떼어 버렸다. 이 방울은 금사와 은사
로 말의 목에 매달려 있어서 손으로 잡아 당기자 금방 떼어낼수
있었다. 그 방울을 품속에 집어 넣으니 방울이 뭉쳐져서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 노승은 말을 쉬지 못하게하고 밤새워
달렸다. 이윽고 강변의 산 언덕 낭떠러지 옆에 도착했다. 지세가
황량한 것을 보고 사방에 인적이 없고 또한 집는 없는 것을 확인
하고 적운을 안아 말등에서 내려놓고 또 수생을 안아 내려놓고
두필의 말을 한 그루의 큰 나무로 끌고 가서 나무에 묶어 놓았
다. 그는 수생을 아래 위로 훑어 보며 웃으며 말했다.
"아주 좋아. 난 참을수가 없어!"
이때서야 비로서 강물을 향해서 앉더니 눈을 감고 운공에 들어갔
다. 적운은 그를 마주하고 앉아 이리저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늘 당한 일은 정말 이상하구나. 이 두 좋은 사람이 나를 죽이
려 하고 이 노승이 나를 구하다니. 이 노승은 분명 보상과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인데 그러고 보면 좋은 사람은 아닐거야. 이자가
만약 이 아가씨를 해친다면 어떻게 하면 좋지.'
어둠이 점점 짙어지고 귀에는 산에서 우는 밤새 소리가 들려왔
다. 우연히 머리를 들어 노승을 바라보았는데 노승은 마치 송장
과 같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적운은 가슴이 떨려와서 고
개를 돌렸다. 머리를 돌린 곳은 풀이 우거진 곳이었는데 숲속에
옷자락이 노출된 것이 보이고 수생이 거기 누워 있는 것이보였
다. 그는 몇번이고 입을 열어 노승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그의 표
정이 엄숙하고 운공에 열중하고 있어 감히 소리를 내어 방해하지
못했다. 얼마가 지난후 노승은 조용히 일어 나더니 왼발을 들어
하늘로 향하고 오른발은 땅을 딛고 양손을 벌리고 앞의 산 사라
이에 떠있는 밝은 달을 향해 서 있었다. 적운은 마음 속으로 생
각했다.
'이 자세는 내가 어딘선가 본 것 같은데? 그래 맞아! 보상의 작
은 책에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어.'
그런데 이 노승은 이렇게 서 있을뿐 조금도 음직이거나 떨리지
않고 있었다. 조금후에 노승은 한숨을 쉬더니 그 노승은 느닷없
이 펄쩍 뛰고 몸을 돌려 내려 앉더니 양손으로 땅을 짚고 머리를
땅에 대고 다시 양손을 좌우로 펼치고 다르는 하늘을 향해 곳곳
이 세웠다. 적운은 아주 호기심을 느끼고 품속에서 그 작은 책을
꺼내 한 도형을 뒤져 달빛 아래서 보니 과연 그 노인의 자세와
똑 같았다. 그는 생각했다.
'이것은 분명히 그들의 문파에서 무공을 익히는 방법일 것이다.'
그 노승이 눈을 감은 모습과 마음을 모두 집중시켜 하나 하나의
자세를 계속 연습 하는 것을 보니 한 번에 그것을 모두 연습하는
건 아니었다. 적운은 품소에 그 책을 넣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
다.
'이 노승이 비록 나의 생명을 구했으나 분명히 나쁜 사람이고,
이 아가씨를 납치해온 걸로 보아 나쁜 뜻을 품고 있을거야. 그가
무공을 연습하는때를 봐서 그 아가씨를 구해 말을 타고 같아 도
망가야지.'
그는 이 행동이 위험한 짓임을 알면서도 수생 같은 아가씨가 나
쁜 중에 의해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볼 숙 없었다. 그래서 살짝
몸을 돌려 숲을 빠져 나갔다. 그가 옥에 있을때 정전과 같이 무
공을 연습할때마다 매번 호흡을 할때에 귀가 멍멍하고 눈이 안보
이면 오관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노승이
무공을 연습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 동안에 그때 혼자서 그 아
가씨를 구한다면 노승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가 몸을 음직이자
마자 부러진 곳에 통증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몰려왔으며 전신의
무게를 양손으로 의지하고 천천히 숲속을고 기어갔다. 다행히도
그 노승은 눈치채지 못했다. 머리를 숙여보니 하얀 달빛 아래 수
생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둥글고 큰 눈을 뜨며 얼굴에 공포의
기색을 띠었다. 적운은 노승이 발견할 것을 두려워하여 말은 못
하고 단지 손짓으로 자기가 구해줄 것이라는 뜻을 비추었다. 수
생은 노승에 의해 이곳까지 납치되어 오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
길, 이 두명의 나쁜 중에게 납치되었으니 이후에 살아 남지도 못
하고 어떤 참을수 없는 모욕을 당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혈도를
적중당했으니 한마디도 할수 없을 것이고 몸을 음직이지도 못하
리라 생각됐다. 그녀는 노승에 의해 풀밭에 뉘이니 개미와 방아
깨비가 목과 얼굴을 기어다녀 이미 참기가 어려웠는데 갑자기 적
운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점잖지 못한 행동을 하리라 생각하고
매우 두려웠다. 적운은 손짓으로 계속 그녀를 구할 것이라는 알
렸다. 그러나 수생은 그 손짓의 의미를 알아차릴수가 없어 더욱
두려워 했다. 적운은 손을 내밀어 그녀를 앉게 하고는 손짓으로
나무에 있는 말을 가리켜 같이 도망가자는 뜻을 알렸다. 수생의
온몸은 혈도가 찍혀 후들후들 떨려서 맘대로 되지 않았다. 적운
의 몸상태가 좋았더라면 그녀를 안고 달렸을텐데 그는 현재 자기
자신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한가지 방법은 그녀의 혈
도를 풀어 도망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혈도를 푸는 방법을
모르는 적운은 실례를 무릅쓰고 계속 손짓으로 그녀의 몸의 각부
위마다 만지며 그녀의 눈빛을 보고 어느 곳이 풀수 있는 지를 알
아보려 했다. 수생은 그가 손을 내밀어 자기의 몸을 이리저리 만
지자 수치심이 극도에 달했다.
'이 나쁜 중이 내게 무슨 짓을 하는거지? 만일 내가 음직일수 있
다면 벽에 머리를 부디쳐 죽을거야. 그럼 이런 모욕을 면할수 있
을텐데.'
적운은 그녀의 얼굴빛을 보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도 어느 혈도가 막혔는지 모를거야!'
그녀의 혈도를 푸는 것 이외에는 도망갈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이
없건만 그녀가 입을 열수 없자 적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가씨, 나는 당신을 도와 위험을 면하게 하기 위해 죄를 짓는
것이니 어쩔수 없지 않겠어요?'
마침 손을 내밀어 그녀의 등을 천천히 몇번 내리쳤다. 이렇게 천
천히 내려치고 주물렀는데도 혈도를 푸는 데는 아무런 소용도 없
었고 오히려 수생에게 두려움만 안겨주고 말았다. 그의 오빠인
왕소풍은 어려서 부터 그녀의 집에서 아버지에게 무술을 배웠고
그녀와는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으며 사랑의 감정은 무르익었고
아버지는 일찌기 말하기를 그녀와 그를 결혼 시킬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늘 같이 강호를 다녔으나 한번도 예의에 어긋나는 짓
을 하지 않았고 손조차도 잡지 않았는데 적운이 이렇게 마구 만
지자 그녀는 눈물을 좔좔 흘렸다.
적운은 놀래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왜 울고 있지? 그녀의 혈도를 풀때에 등의 혈도가 많이
아파서 우는 것일까? 내가 그녀 허리의 혈도를 풀어 봐야겠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그녀ㄹ 뒤 허리를 천천히 꼬집었다. 이렇게
몇번 꼬집으니 (음... 여기서 녹정기의 위소보의 생각이 나는군.
목검병의 혈도를 풀려고 1류부터 9류까지의 해혈 방법을 쓰는 장
면이...) 수생의 눈물은 점점 많아졌다. 적운은 크게 두려워졌
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본래 허리사이의 혈도도 아픈가보다. 어떻게 해야하지?'
그는 여자의 몸이 귀함을 알고 있었다. 이미 가슴, 목, 다리, 복
부등을 쳐다보라 해도 볼수 없는데 만졌으니 실례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혈도를 풀 방법이 없다. 만약 다시 시도한다면 그
것은 못된 짓이야. 단지 그녀를 업고 산언덕을 내려가 도망 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그녀의 양팔을 잡고는 그녀의 몸을 자기 등에 업으려
했다. 수생은 화가 극독에 달했고 겁이나서 몇번 기절 했었다.
그가 자기의 팔을 잡을때 분명히 자기의 옷을 벗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두려움과 분노가 더욱 솟구쳤다. 적운이 막 그녀의 양
팔을 들고 그녀의 몸을 끌려 할때 수생의 가슴의 혈도가 풀려버
렸다. 그러자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나쁜 놈아, 빨리 나를 놔줘! 나를 건들지 말고 빨리 놔줘!"
이 소리가 갑자기 나오자 적운은 크게 당황하고 놀래 양손을 놓
게 되어 그녀를 땅에 떨어뜨리고 자기또한 중심을 못잡고 그녀의
위로 넘어졌다. 또한, 수생이 그렇게 소리치자 노승이 눈을 뜨고
두사람이 함께 엉켜 있는 장면을 보더니 다가왔다. 수생은 크게
외쳤다.
"나쁜 중아, 한 칼에 나를 죽여라. 나를 놔!"
노승은 다가오더니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 나쁜 자식! 뭐가 급해서 사조의 아가씨를 도둑질 해 잡아 먹
으려 하느냐!"
앞으로 몇발자국 걸어 나가서 한손으로 적운의 멱살을 잡고 그를
들어 올려 몇 발자국 간 뒤 그를 놔주면서 말했다.
"좋아, 좋아! 나는 너같이 대담하고 꽃을 좋아하는 소년을 좋아
해. 네가 다리가 분질러졌는데도 뜻밖에 고통을 두려워 하지 않
고 또한 여자를 생각하다니. 신통해, 신통해! 나의 비위에 맞는
놈이구나."
적운은 노승에 오해를 받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몰랐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진상을 설명한다면 노승은 단칼에 나를 죽여
버릴 것이다. 잠시동안 이렇게 있는 것이 좋겠어. 다시 방법을
강구해서 아가씨와 도망가야지.'
노승이 말했다.
"너는 보상이 새로 맞이한 제자이지. 맞지 ?"
적운은 대답하기도 전에 노승은 입이 찢어 지도록 웃으며 말했
다.
"보상은 틀림없니 너를 좋아 했을거야. 그가 혈도(血刀)와 승의
를 너에게 물려 주었으나 그는 혈도비급(血刀秘급)을 너에게 주
었겠지?"
적운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혈도비급이 어떤 것이지 ?'
그러나 그는 손을 품속으로 넣어 보상에게서 뺐었던 그 이상한
책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노승은 그것을 받아서 ㅎ어 본 다음 그
에게 돌려주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매우 좋아, 매우 좋아!"
적운은 대답했다.
"저는 적운이라고 합니다."
그 노승은 말했다.
"매우 좋아, 매우 좋아! 너의 사부는 너에게 무술을 연습하는 방
법을 설명해 주었느냐 ?"
적운이 말했다.
"아니요!"
그 노승은 말했다.
"응? 음 괜찮아. 너의 사부는 어디 있느냐 ?"
적운은 보상이 죽었지만 감히 사실을 말할수도 없었고 보상이 사
부도 아니였기에 말했다.
"그...., 그는 강가에서 배를 타고 계십니다."
노승은 말했다.
"너의 사부는 너에게 사조의 이야기를 했었느냐 한적이 없었느냐
?"
적운이 말했다.
"들은 적이 없읍니다."
노승이 말했다.
"나의 법명은 혈도노조이다. 너 같은 얼빠진 놈은 나로 하여금
기쁘게 한다. 네가 이 사조 할아버지를 따라 다닌다면 나는 너에
게 무궁한 복을 누리게 해줄 수 있으며 천하의 어떤 미녀라도 얻
게 해줄수 있다."
적운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원래 보상의 사부였군.'
그리하여 물었다.


"그들은 당신을 욕하고..., 우리보고 혈도의 악독한 중놈이라고
욕을 했어요. 사조는 우리 문파의 장교이시군요."
혈도노조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보상 그 얼빠진 놈이 말도 잘 하는군. 가문의 유래를
자기가 매우 아끼는 제자에게도 말해 주질 않았어. 우리의 문파
는 서장 청교중의 한 일파이며 혈도문이라고 부른다. 너의 사조
님은 이 일문의 제 4대 장교이다. 너도 여기서 무공을 잘 배우면
제 육대 장교가 될 것이다. 응, 너의 다리가 부러졌꾸나. 괜찮아
너를 치료해 주마."
그는 적운의 상처난 곳의 옷을 벗기고 다리를 접골 시키고 품속
에서 자기의 병을 꺼내 상처에 바르면서 말했다.
"이것은 본문의 신비스러운 접골약이란다. 그리고 다른 약과 비
교도 안된다. 절단된 곳이 한달도 되지 않아서 평상시와 같이 회
복된다. 우리가 내일 형주부로 가면 너의 사부도 올 것이다."
적운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형주는 내가 갈 곳이 못돼.'
혈도노조는 적운의 상처난 다리를 잘 묶고 머리를 돌려 수생을
ㅎ어보고 말했다.
"이 아가씨는 이쁘고 괜찮아. 정말 괜찮아! 그녀가 자칭하기를
영검쌍협이라고 했지. 그녀의 아버지 수대(水岱)는 명문정파에
속하고 중원무림의 우두머리라고 일컬어 지는데 우리 혈도문을
괴롭혀 왔지. 어제는 너의 사숙을 죽였고 사숙의 할머니도 죽였
단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할 그의 딸을 내가 잡아 왔다. 하하
하.... 우리 둘이서 그의 아버지를 챙피하게 하기 위해서 그녀의
옷을 다 벗겨서 말위에 올려 놓고 그녀로 하여금 각 곳의 크고
작은 마을과 성으로 다니며 창피당하게 하자. 모든 사람이 명백
히 보게하고 수대협의 딸이 이런 계집이었다고 알려주자."
수생의 마음은 매우 다급하여 토하고만 싶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작은 악독하고 고집스런 나쁜 중보다 늙은 중은 더욱 더욱
더 악독하구나. 나는 어떻게 하면 자결을 할수 있을까? 나의 순
결을 보호하고 아버지의 체면을 유지 할 수 있을까?'
갑자기 혈도노조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조조를 말하면 조조가 온다더니. 그녀를 구할 사람이 왔군. "
적운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
"어디 있어요 ?"
혈도노조가 말했다.
"아직은 5리밖에 있어. 하하하..... 17필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
는군."
적운은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 동남쪽 산길에서 말발굽 소리가
간간히 들렸으나 소리가 매우 작아서 겨우 들을수 있었다. 그것
이 몇마리라고 분간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러므로 적운은 혈도
노조에게 더욱 감탄 할수 밖에 없었다. 혈도노조가 말했다.
"너의 부러진 상처가 약을 방금 발랐으니 3시간 이내에는 음직일
수가 없다. 안그러면 불구가 될 것이야. 이 부근 백리이내에는
대단한 인물이 있다는 소리를 못 들었으니 ㅉ아오는 17명은 보나
마나 별볼일 없는 녀석들일 것이니 내가 죽여버리겠다."
적운은 그가 무림중의 정파 인물을 얼마나 죽였는지 생각지 않고
급하게 말했다.
"우리가 여기에 숨어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그들은 우리를 찾아
내지 못할거예요. 적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사..... 사조님 그
러니 조심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
혈도노조는 웃으며 말했다.
"이 자식 정말 멍청하구나.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라. 그러
나, 이 사조는 너를 너무 좋아해."
그는 손을 휘저어 허리에서 하나의 얇은 도(刀)를 꺼내 들었다.
도의 몸은 계속 진동하여 마치 한 마리의 살아 있는 뱀과 같았
다. 달빛 아래에서 이 도의 날은 암흑색으로 빛났으며 핏빛이 굉
장하게 번뜩여 매우 무시무시 했다. 적운은 자신도 모르게 식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이..., 이것은 혈도(血刀)입니까 ?"
혈도노조가 말했다.
"이 보도는 보름달이 떠 오를때마다 사람의 목을 배어 제사를 지
내지 아니하면 칼날이 무디어지고 주인은 불행해진다. 지금 달이
밝은 것을 보아라. 17명이 ㅉ아 오니 내가 제사를 지내기에는 딱
좋구나. 보도야, 보도야, 너는 오늘밤에 사람의 피를 포식하겠구
나."
수생은 말발굽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자 마음속으로 기뻐하였
으나 혈도노조가 잔신만만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마치 오는 사람
들이 틀림없이 죽을 것만 같이 느껴져 마음속으로 걱정이 되어
생각했다.
'아버지께서 오지 않오셨을까? 오라버니가 안 오셨을까?'
조금 지난후 달빛 아래에 한 떼의 말이 산길로부터 달려오는 것
을 보고 적운이 세어 보니 과연 많지도 적지도 않은 17명이었다.
그러나 17명이 바람처럼 달려와 급하게 언덕 밑의 길을 지나가
는 것이었으며 그들은 산길만을 달렸지 이곳에서 세 사람을 찾으
려 하지 않았다. 수생은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나는 여기 있어요! 나는 여기 있어요!"
그 17명의 검객들은 수생의 목소리를 듣고는 말을 마추고 다시
그들을 향해서 말머리를 돌렸다. 한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누이! 누이!"
바로 왕소풍의 목소리였다. 수생이 다시 소리치려 외치려 할때
혈도노조는 손을 뻗어 그녀의 아혈을 찍어 버렸다. 17명은 말에
서 내리더니 같이 모여 작은 소리로 상의했다. 혈도노조는 갑자
기 손을 내밀어 적운의 겨드랑이 아래를 받혀 그의 몸을 들어올
리고는 낭랑하게 소리쳤다.
"서장의 청교 혈도문의 4대 장교 혈도노조와 6대제자 적운이 여
기 있다! "
그 다음 몸을 굽혀 왼손으로 수생의 목덜미를 잡고 그녀를 일으
키며 말했다.
"수대의 딸은 이미 나의 사손인 적운의 제 18번째 소첩이 되었
다. 누가 이리와서 축배를 들겠는가! 하하하...."
그는 깊고 고강한 내공이 있었기에 웃는 소리가 산골짜기를 지나
먼 곳까지 울려 퍼졌다. 17명은 서로 깜작 놀라 모두가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왕소풍은 누이가 나쁜 중에 의해서 들어올려져
있는 것을 보고 또 수생이 이미 적운의 18번째 소첩이 되었다는
것을 듣고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그녀가 이미 모욕을 당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온 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큰 소리
로 외치며 장검을 뽑아 먼저 언덕을 향해 올라갔다. 다른 16명은
분분히 외쳤다.
"저 혈도 악승을 죽여라!"
"강호를 위해 대적을 없애라!"
"흉악하고 악독한 중을 살려주면 안된다!"
적운은 이와 같은 광경을 보고 마음 곳으로 어찌 할줄을 모르고
있었다.
'이 사람들 모두가 나를 혈도문의 나쁜 중으로 오해를 하니 나에
게 백개의 입이 있다 하여도 변명할 길이 없다. 좋은 것은 그들
이 이 노승을 죽이고 수 아가씨를 구해는 것인데... 그러나...
그러나 이 노승이 죽으면 나 또한 살기가 어려울거야. '
그는 중원의 여러 대협들이 이기기를 바랐으나 또 한편으로는 혈
도노조가 이들을 물리치길 바라니 자기는 도대체 누구를 어디를
도와주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곁눈으로 혈도노조를 보니 그는 단지 미미한 냉소를 짓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적이 많고 세력이 큰 것을 겁내지 않는 것 같았
다. 더더구나 양손에 적운과 수생을 들고 입에 혈도를 물고 있는
그의 모습은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무
사들이 가까이 오자 적운과 수생을 내려놓고 천천히 혈도를 손에
쥐었다. 10여장 밖에 까지 온 왕소풍이 크게 소리쳤다.
"누이, 누이. 무사하냐!"
수생은 크게 외치고 싶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그러나 그녀는 혈도노조에게 혈도를 찍혀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왕소풍이 멀리서 뛰어 오는 것을 보자 그녀의 마음속에는
무한한 기쁨과 걱정과 미련과 감사가 교차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왕소풍의 가슴에 몸을 묻고 이 몇시간동안 당한 모욕과 고
난을 호소하며 울소 싶었다. 왕소풍은 수생을 찾으러 두리번 거
리며 달려와 다른 무사들보다 몇걸음 뒤지게 되었다. 달빛 아래
에서 산억덕 제일 높은 곳에 혈도를 들고 서 있는 혈도노조를 본
사람들은 그 위풍당당함에 두려움을 느끼고는 5,6보 앞에서 일제
히 멈추었다가 잠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두명이 혈도노조에게 달
려 들었다. 그중 한명은 쌍도를 지녔고, 한명은 금편을 지녔다.
금편을 든자는 재빨리 혈도노조의 뒤로 돌았으며 쌍도를 든 사나
이는 포효와 함께 혈도노조를 덮쳤다. 혈도노조는 몸을 옆으로
돌려 뒤쪽의 쌍도를 피해내고는 어느세 왼손으로 입에 물고있던
혈도의 손잡이를 잡고는 내리치자 금편을 들고 있던 자의 머리가
두쪽이 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다시 재빨리 칼을 입에 물었
는데 그 행동이 너무 빨라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머리를 두쪽
을 냈는지 제대로 보지를 못했다. 쌍도를 든 자는 금편을 든 자
와 각별한 관계였는데 그가 죽자 분노가 솟구쳐서 쌍도를 질풍
같이 휘두르며 공격을 했다. 혈도노조는 가볍게 그의 공격을 몇
번 피해내더니 또다시 입에 물은 혈도를 왼손으로 잡고는 쌍도를
잡은자의 머리부터 허리까지 두쪽을 내고 말았다. 5,6보 밖에서
보고 있던 무사들은 경악하여 뒤로 물러섰다. 그의 혈도에는 많
은 피가 묻어 있었고 그 칼을 물고 있는 입에도 선혈이 줄줄 흘
러 내리고 있었다. 비록 무사들이 경악했으나 적을 무찌르기 위
해서 즉시 고함을 치며 4명이 달려 들었다. 혈도노조가 서쪽을
향해 비스듬히 음직이자 4명은 큰 소리로 욕을 하며 ㅉ아갔고 다
른 사람도 벌때처럼 그 뒤를 따랐다. 이때 앞장선 4명의 발걸음
은 이미 빠르고 늦음이 분명하여서 두 사람은 앞서고 두 사람은
처져 있었다. 혈도노조는 갑자기 발을 멈추고 몸을 돌려 느닷없
이 공격하니 빨간 불빛이 번쩍하더니 앞에 있는 두사람이 그 불
빛아래에서 죽어갔다. 뒤의 두사람도 연이어 혈도에 목을 ㅁ고
한순간에 목과 몸이 분리되었다. 적운은 풀숲에 누워 노승이 순
식간에 6명을 죽이는데 그의 무공이 기이하며 수법이 악랄하고
잔인한 것이 상상조차 할수 없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수법으로 남은 11명을 죽이기는 쉬울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지 ?'
갑자기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이, 수생아! 너는 어디 있느냐 ?"
바로 왕소풍의 목소리였다. 수생은 혈도노조에 의해서 아혈이 막
혀 있었으므로 말을 할수가 없었다. 왕소풍은 허리를 굽히고 급
하게 달리며 왼손으로 잡초를 헤쳐 나갔다. 갑자기 산 바람이 불
어와서 수생의 옷자락을 날렸다. 왕소풍이 크게 외쳤다.
"바로 여기 있었군!"
그는 앞으로 달려 나가 그녀를 와락 안았다. 그녀는 매우 기뻐
눈물을 흘렸고 온몸이 떨렸다. 왕소풍은 계속 외쳐댔다.
"누이, 누이! 너는 여기 있었구나!"
그녀를 꼭 껴안았다. 두 사람이 잠시 헤어졌다 만나게 되니 무슨
예의와 격식이 있겠는가 이미 오래 전에 마음은 두둥실 구름위로
떠 오른듯 황홀하기만 했다. 왕소풍은 물었다.
"누이 , 괜찮니 ?"
수생이 대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이상하게 여겨 그녀를 땅
에 내려 놓았다. 발이 땅에 닿자 수생의 몸은 뒤로 쓰러졌다. 왕
소풍은 혈도를 푸는 기술을 배웠으며 신통하지는 않았으나 그런
대로 기본적인 것은 알수 있어 급히 손을 내밀어 그녀의 등과 허
리에 있는 세곳의 혈도를 찾아 풀어 주었다. 수생은 외쳤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적운은 왕소풍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위험을 느껴 그가 수생
의 혈도를 푸는 것을 기회삼아 천천히 기어 도망갔다. 수생은 풀
숲속에서 사삭 하는 소리가 나자 자기를 모욕한 악독한 중놈이
도망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도망가는 적운을 가리키며 외쳤다.
"빨리 빨리 저 악독한 중놈을 죽여버려요!"
왕소풍은 수생의 말을 듣고 적운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장검
을 뽑아들고 적운을 향해서 내리쳤다. 적운은 비록 뒤를 보지는
못했지만 수생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재빨리 언덕의 아래를 향
해 굴러 내렸다. 왕소풍은 첫 공격이 실패하자 다시 공격하려 했
으나 적운은 이미 언덕을 굴러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왕소
풍은 포기하지 않고 그를 ㅉ아 가려는데 눈앞에서 한줄기 붉은
빛이 번뜩 했다. 그는 급한중에 자연스럽게 공작개병이라는 초식
을 전개했다. 그 순간 마치 줄줄이 걸어놓은 종들이 부ㄷ히는 소
리가 나면서 왕소풍의 장검과 혈도노조의 혈도가 단숨에 30여번
을 겨루었다. 왕소풍의 검법은 스승에게서 배운 것인데 평소에
이와 같은 강적을 만난적이 없었으므로 검법을 제대로 펼칠수가
없었다. 그러나 만약 한번만 실수한다면 곧 자기의 목숨이 다한
것이므로 온 정신을 다 쏟아 부어서 혈도의 공격을 막았다. 혈도
노조는 총 36번 공격을 했는데 너무나 빨라서 끝과 처음을 구분
할수 없었다. 그러나 왕소풍은 그 공격을 일일히 해소시켰다. 여
러 무사들은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영검쌍협의 이름이 헛되지 전해진것이 아니구나. 오직 그만이
혈도승의 번개처럼 빠른 공격을 막을수도 있고, 공격도 할 수 있
겠구나.'
무사들은 이미 혈도노조에 의해서 17명에서 9명으로 줄어 있었
다. 실제로 혈도노조은 도법을 천천히 하여서 왕소풍을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만약 혈도노조가 전력을 다해서 빠르게 공격했다
면 왕소풍은 이미 시체가 되어 땅에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혈도
승은 비록 전력을 다 한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왕소풍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자 장난기가 일었다.
'이놈이 도대체 얼마나 버티는가 두고 보자!'
그러면서 점차 공격의 속도를 빨리 했다. 나머지 무사들은 왕소
풍과 협공하여서 혈도노조를 죽이고자 했으나 두 사람의 싸움이
너무나 빨라서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었다. 수생은 왕소풍의 안
전이 걱정되어서 몸이 비록 힘이 없었지만 시간을 지체할수 없어
땅에 떨어져 있는 한자루의 검을 집어 들고 앞으로 공격해 들어
갔다. 둘의 협공은 특별히 연습한 적은 없지만 호흡이 잘 맞아서
왕소풍이 혈도노조의 도를 막으면 수생은 검으로 혈도노조를 공
격했다. 혈도노조는 그러지 않아도 왕소풍이 자신의 빨라지는 공
세를 막아내어 약간 초초해 있었는데 수생이 달려들자 코웃음을
한번 치고는 오른손으로는 여전히 혈도를 휘두르며 큰 소리를 지
르더니 왼손으로 왕소풍의 장검을 잡으려 했다. 왕소풍은 갑작스
러운 변초에 크게 놀랐으나 재빨리 빠르게 검을 음직여 혈도노조
의 손가락을 몇마디라도 자르려고 했다. 혈도승은 검을 두려워
하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잡으려 했으나 결국 왕소풍의 검이 반
푼쯤 빨라서 혈도노조는 부득이 손을 움츠릴수 밖에 없었다. 그
한번의 실수는 수생에게 여유를 주어서 둘은 어느덧 혈도노조를
포위하고 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혈도노조는 여전히 장난기
를 지니고 영검쌍협에게 공격의 기회를 일부러 주고 공격을 느리
게 하며 싸우고 있었다. 여러무사들중에서 한 노인은 사태의
불리함을 보고 만약 오늘 영검쌍협이 죽는다면 아무도 이곳을 살
아서 나가지 못하리라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노인은 크게 외쳤
다.
"모두 같이 나아가서 저 악독한 중을 죽이자!"
이때 갑자기 서북쪽에서 한줄기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낙 --- 화유수 (落花流水)! "
그러자 서쪽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응대를 했다.
"낙화 --- 유수 !"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남쪽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낙화유 --- 수 !"
이 세사람이 세 방향에서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는 호방하였으며
음조는 다르나 낭랑하기 그지 없었다. 혈도노조는 생각했다.
'어디세 세사람의 고수가 나타났지? 소리를 들어보니 세사람의
각각의 무공이 나보다 약한 것 같지 않다. 셋이서 합공을 한다면
나도 막아내기 쉽지 않겠는걸.'
혈도노조는 마음속으로 대응할 방법을 생각했으나 도법은 더욱
더 빨라져서 영검쌍협을 궁지로 몰아 넣었다. 갑자기 남쪽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낙화유수 --- !"
이 번의 소리에서 수(水)자는 매우 길게 꼬리를 끌었다. 그 소리
는 양자강의 물결처럼 면면히 이어지면서 끊어지지를 않았는데
앞서 세명보다 내공의 깊이가 훨씬 깊은 것 같았다. 수생이 그
목소리를 듣고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빨리 오세요!"
여러 무사중에 그 노인이 말했다.
"강남사기(江南四奇)가 도착했다. 낙화유수 강남사협이 왔어!"
그는 크게 웃으면서 기뻐했지만 그 웃음소리가 가시기도전에 혈
도를 가슴에 적중당하고는 선혈을 뿜으며 쓰러졌다. 혈도노조는
수생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마지막에 외친 사람이 수생의 아버
지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혈도노조는 생각했다.
'일찌기 나의 제자 선용이 말하기를 중원무림중에서 무공이 높은
것으로는 정전을 제외하고 낙화유수 남사기와 풍호운룡(風虎雲
龍) 북사괴(北四怪)가 있다고 하였다. 과연 오늘 들어보니 명성
이 헛되지 않았구나.'
그가 생각을 하고 있는중에도 낙화유수라고 외치는 소리가 산을
뒤 흔들었다. 사방으로 전해오는 함성을 혈도노조가 자세히 들어
보니 네사람이 있는 거리가 다 다른 것을 알수 있었다. 적은 모
두 5리 밖에 있었으나 여기에 있는 적을 하나씩 죽이자면 적들은
모두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그때에는 몸을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낙화유수야! 내가 너희들을 때려 부수겠다. "
잠시후, 혈도승과 적운과 수생 세사람은 얼굴이 창백해져 서로를
흔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니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수생의
칼이 허공을 날았다. 혈도노조가 적운을 보고 외쳤다.
"적운아! 탈 말을 준비해라.우리는 여기서 머무르면 안되겠다!"
적운은 응답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어찌 할바를 몰랐다. 만일 그
와 같이 도망치면 나쁜 길로 접어들어 평생 벗어나기가 쉽지 않
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남아 있자니 또한 여러사람에 의해서 토
막이 나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찌할바를 몰랐다. 혈도노조
가 또 부르짖었다.
"이놈아 말을 가지고 오너라!"
적운은 생각을 바꿨다.
'일단 오늘은 여기 이자리를 벗어나자.내가 일생동안 많은 억울
함을 당했는데 오늘 한번 더 오해를 받는다고 해도 뭐가 대단해!
이런 많은 것들은 생각할 필요 없어.'
혈도노조가 세번째 부르자 적운은 대답을 하고는 땅아래를 짚고
왼손으로 나무가지를 잡아 몸을 지탱하며 나무 근처에서 두필의
말을 골랐다. 짧은 곤봉을 든 무사가 외쳤다.
"큰일 났소. 저 악독한 중놈들이 말을 타고 도망가려 하니 내가
가서 막아야겠소."
그는 적운을 향해 달려 갔다. 혈도노조가 말했다.
"네놈이 그를 막으러 가기전에 내가 네놈을 막겠다."
혈도가 그를 향해서 내리쳐지자 사람과 곤붕이 모두 두조각이 나
버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가 이렇게 참혹하게 죽는 것을 보고
는 모두 비명을 질렀다. 혈도노조는 다시 혈도를 휘둘러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을 흩어버리고는 수생의 허리를 안고는 말을 끌고
오고있는 적운의 앞을 향해서 달려갔다. 수생은 외쳤다.
"이 악독한 중놈아! 나를 놓아줘!"
주먹으로 혈도노조의 등을 마구 때렸다. 그녀의 검술은 약하지
않았으나 주먹의 힘은 미약하기 그지 없었다. 그녀가 주먹으로
몇번이나 때렸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왕소풍은 혈도노조가
수생을 잡고 말을 타고 도망가기 위해서 달려가자 재빨리 몸을
날려 그의 특기인 공작개병 초식을 전개했다. 그리고 미처 공작
개병이 끝나기도전에 동전금우(東展錦羽), 서척취령(西剔翠翎),
남영염양(南迎艶陽), 북회신풍(北廻晨風)의 네가지 초식을 펼쳤
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 초식의 현란함에 눈이 어지러웠으나
혈도노조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듯이 왕소풍의 검을 피해 적운
과 말이 있는 곳으로 뛰어 가더니 수생을 황마의 등에 얹어 놓고
적운에게 속삭였다.
"지금 소리를 지르고 있는 네놈의 무공이 약하지 않은 강적들이
다. 이 여자는 인질이니 도망가지 못하도록 해야지."
혈도승은 백마를 몰아 동쪽을 달려갔다. 그동안 네사람이 외치는
낙화유수라는 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수생도 크게 외쳤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아버지, 아버지! 빨리 와서 나를 구해주세
요."
그러나 그녀는 오라버니가 점점 멀리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영
검쌍협이 타고 다니던 백마와 황마는 대완국의 명마였다. 왕소풍
의 경공이 뛰어나다고 해도 도저히 ㅉ아올 겨를이 없었다. 왕소
풍은 ㅉ아 갈수 없음을 알고는 크게 외치기만 했다.
"누이야! 누이야!"
한사람은 "오라버니!"하고 부르고 한명은 "누이!" 하면서 부르면
서 멀어져가는 광경은 매우 처량했다. 적운은 둘의 음성을 들으
니 마음이 매우 거북했다. 자신과 척방의 생각이 난 것이다. 그
는 수생을 내려주고 싶었으나 혈도노조가 말한 것이 생각나 억지
로 참았다. 수생을 놓아주면 혈도노조는 틀림없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사 혈도노조가 죽이지 않는다 해
도 네명의 강적에게 둘러싸인 혈도노조가 자기에게 신경을 돌릴
틈이 없을 것이므로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
다. 그러나 계속해서 둘이 외치는 소리를 듣자 점점 자신이 처량
해짐을 느꼈다.
'두 사람의 정이 대단한데 헤어지게 되는구나. 나와 사매도...
나와 사매도 이렇게 된거잖아! 하지만 사매가 나에게 보여준 정
은 수낭자가 왕소풍에게 보여준 것보다 못했어.'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다시 쓰라려 왔다. 그는 속으로 생각
했다.
'내가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를 인질로 삼지를 못하겠구
나.'
그는 손을 내밀어 수생을 살며시 말등에서 내려 놓았다. 혈도노
조가 눈치챌까 두려워서 조심했으나 혈도노조는 귀한 인질에게서
주의를 풀지 않았으므로 수생이 말에서 떨어져 왕소풍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수생과 왕소풍의 사이는 50여장이
되었다. 그러나 둘은 서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므로 사이는
매우 빠르게 가까워졌다. 한사람은 "오빠!" 하고 외쳤으며 다른
한 사람은 "누이!" 하면서 외치고 있었다. 둘은 너무나 기뻐하고
있었다. 혈도노조는 말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더니 가볍게 미소를
띠고는 왕소풍과 수생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뇬. 둘 사이의 거
리가 20여장으로 줄어들자 혈도노조는 말을 달려 수생을 향해 갔
다. 적운은 크게 놀라 생각했다.
'빨리 도망가! 빨리 도망가!'
반대편에서 왕소풍을 ㅉ아오던 한무리의 무사들도 혈도노조가 달
려오는 것을 보고 외쳤다.
"조심하시요! 빨리 달려요!"
수생은 뒤에서 나는 말발굽소리가 가까워 짐을 느끼며 전력을 향
해서 달렸다. 그녀는 너무나 빨리 뛰어 심장이 터질 것 같았으며
발목과 허리가 시큰거리며 힘이 빠지고 있었다. 왕소풍과의 거리
가 매우 가까워졌을때 그녀는 목에 말의 입김이 닿는 것을 느꼈
다. 혈도노조가 그녀의 목을 낚아채며 소리쳤다.
"도망 못가!"
그녀는 막 손을 내밀어 왕소풍의 손을 잡으려고 하던차였다. 그
녀는 너무나 놀래서 막 울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이때 아주 다
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아 겁먹지 마라. 아버지가 구해주러 왔다!"

수생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자 너무나 기뻤다. 그녀는 어디서
힘이 났는지 갑자기 몸을 튕겨서 앞으로 뛰어 나갔다. 혈도노조
는 그녀를 완전히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뛰쳐나가
자 놓치고 말았다. 왕소풍은 결국 수생의 손을 잡을수 있었다.
엘欖老냅 오른손에 검을 들고 생각했다.
'때마침 사부님이 도착하셨구나. 이제 저 악독한 중놈도 무섭지
않다.'
혈도노조는 웃으며 혈도로 공격을 했다. 왕소풍은 재빨리 검을
들어 막았다. 순간 붉은 빛이 번쩍하면서 혈도가 왕소풍의 검의
날을 타고 아래로 내려와 그의 손가락을 베려 했다. 왕소풍이 급
히 검을 놓고 물러나지 않는다면 당장 손가락이 잘릴 판이었다.
왕소풍은 당황하지 않고 검을 혈도노조를 향해 힘껏 던졌다. 혈
도노조는 왼손으로 날아오는 검을 막았으며 오른손으로 혈도를
휘둘러 왕소풍의 가슴을 찔러 갔다. 왕소풍은 몸을 돌려 피하느
라 수생의 손을 놓고 말았다. 혈도노조는 왼손을 뻗어서 수생의
허리를 잡고는 말안장에 놀려 놓았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뒤따
라오던 무사들의 집단을 향해서 돌진했다. 무사들은 그가 공격해
오자 감히 맞서지 못하고 양쪽으로 갈라져서 도망갔다. 혈도노조
는 그 모양을 보면서 크게 웃더니 한남자의 머리를 잘라 죽이더
니 말을 돌려 적운을 향해서 달려 왔다. 갑자기 왼쪽에서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검을 찔러 왔다. 검에서 반사된 달빛
에 혈도노조는 눈이 시릴정도 였다. 한개 한개의 검화(劍花)가
그의 가슴을 향해서 날아왔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검과 혈도
가 부ㄷ혔다. 혈도노조는 그순간 깜짝 놀랐다.
'굉장한 내공이구나!'
이때 오른쪽에서 또하나의 검이 찔러왔다. 이 검의 검법은 너무
나 신기했으며 검끝이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면서 날아왔다. 도대
체 검의 목표가 어디인지 알수가 없었다. 혈도노조는 또 한번 놀
랐다.
'태극검(太極劍)의 고수가 왔구나!'
혈도노조는 혈도로 재빨리 원을 그리며 검을 막았다. 도와 검이
몇차례 만나며 불똥을 튀겼다. 상대방이 소리쳤다.
"좋은 도법이다!"
혈도노조도 크게 외쳤다.
"너의 검법도 대단하다!"
왼쪽에 있던 사람이 소리쳤다.
"내 딸을 내려 놓아라!"
그 사람은 검과 장으로 동시에 공격을 해왔다. 적운은 멀리서 혈
도노조가 수생을 잡고 두명과 동시에 싸우는 것을 보았다. 왼쪽
의 노이는 백발이 성성했는데 계속해서 '내 딸을 내려 놓아라!'
하고 외치는 것으로 보아서 수생의 아버지인 수대인 것 같았다.
혈도노조가 혈도로 공격할때마다 몸을 비트는 것이 내공은 혈도
노조보다 못한것 같았다. 이때 서쪽에서 두사람이 급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는데 발걸음이 날렵한게 무공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였
다. 적운은 생각했다.
'저 두 사람이 도착하면 네사람이 한꺼번에 혈도노조를 공격할텐
데 그럼 혈도노조도 꼼작없이 죽을 것이다. 나도 어서 도망가는
것이 좋겠어.'
그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아니다. 혈도노조가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왕소풍
의 칼에 죽었을 것이다. 은혜를 저버리고 내 목숨만 생각하는 것
은 너무 비겁한 짓이다.'
갑자기 혈도노조가 소리쳤다.
"좋다! 네 딸을 돌려 주겠다."
그러더니 팔을 벌리고 수생을 공중으로 던졌다. 수생의 몸은 상
대의 위를 지나 적운에게 날아왔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 소
리를 질렀으며 수생도 공중에서 소리를 질렀다. 적운은 수생이
날아오자 팔에 힘을 주었다. 잘못하면 땅에 떨어져 두명 모두 다
칠것이었기 때문이다. 적운은 간신히 받았다. 그러나 그 힘은 모
두 말에게로 가해졌다. 혈도노조는 수생을 던지기전에 혈도를 찍
었으므로 수생은 꼼짝도 할수 없었다. 수생은 소리쳤다.
"날 놓아줘!"
혈도노조는 수대에게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으며 늙은 도사에게도
역시 강한 공격을 했다. 혈도노조는 수비를 하지않고 공격만 하
자 늙은 도사와 수대는 잠시 주춤했다. 혈도노조는 소리쳤다.
"나를 기다리지 말고 어서 도망가!"
적운은 어떻게 할지 모르고 머뭇거리는데 왕소풍과 다른 몇몇의
무사가 소리쳤다.
"저 중놈도 죽여라!"
그러면서 일제히 적운에게 달려들었다. 혈도노조는 계속해서 외
쳤다.
"적운아! 어서 도망가거라. 내가 곧 ㅉ아 가마!"
적운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못하고 말을 돌려 도망갔다. 그와 혈
도노조는 동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정신이 없어 서쪽을 향해서 달
려갔다. 혈도노조는 적운이 달려가자 껄껄 웃더니 혈도를 휘둘러
서 늙은 도사를 물러나게 하고는 말했다.
"나는 이제 네놈들의 딸과 함께 가겠네. 네놈같은 늙은 놈보다는
꽃과 같은 여인이 훨씬 좋다네."
그리고는 두다리에 힘을 주자 혈도노조가 타고 있던 백마가 앞
으로 달려갔다. 수대는 딸을 구해야 겠다는 일념으로 적운이 말
을 달리자 마자 즉시 적운이 타고 있는 말을 따라 달려갔다. 그
러나 그 황마는 너무나 빨라서 수대의 경공이 매우 뛰어났지만
도저히 따라잡을수가 없었다. 수대는 소리쳤다.
"거기 서라! 거기 서라!"
말은 수대의 목소리를 알아들은듯이 서려 했으나 적운이 다시박
차를 가하자 다시 힘껏달렸다. 수대가 또 소리쳤다.
"이 악독한 중놈아 서지 않으면 네놈을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
수생이 소리쳤다.
"아버지, 아버지"
수대는 가슴이 찢어지라 아파와서 소리쳤다.
"얘야! 겁먹지 말아라. 이 아버지가 구해줄테니까."
수대의 경공은 매우 높았지만 그는 나이가 먹어서 힘이 없었다.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데 뒤에서 파공성이 울리면서 혈도가 공격
을 해왔다. 혈도노조가 뒤를 ㅉ아오면서 혈도로 공격을 한것이
다. 수대는 검을 들어 혈도를 막았다. 그러나 혈도노조는 스치듯
이 수대의 옆을 지나서 적운을 따라 백마를 달리고 있었다.

혈도노조와 적운은 백마와 황마를 몰아 한참을 달렸다. 추격자가
한동안 따라잡지 못하리라 생각한 혈도노조는 말을 쉬게 하기 위
해 말을 세웠다. 그리고 혈도노조는 적운에게 양심이 있어 위급
한 상황에서도 먼저 도망치지않았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적운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수생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눈은 잔뜩 겁
을 먹고 있었으며 동시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매
우 경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날 경멸하든말든 나는 상관없어.날 악독한 중놈이라 소리
쳐봐!'
혈도노조가 웃으며 말했다.
"이 아가씨야. 네 아버지의 무공이 상당히 높던데. 그러나 네 아
버지정도의 실력으로 날 잡지는 못해."
수생은 째려볼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혈도노조는 계속 웃
으며 말했다.
"그 태극검을 쓰는 늙은 도사는 낙화유수중에 누구냐 ?"
수생은 그가 어떤 것을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혈도노
조는 수생이 대답하지 않자 적운에게 말했다.
"이봐, 여자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무엇이지?"
적운은 깜작 놀랐다.
'이런 저놈이 이제 수낭자의 순결을 짓밟으려고 하는 구나. 큰일
났군! 어떻게 수낭자를 구하지!'
적운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혈도노조는 말했다.
"여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얼굴이야. 이 계집애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얼굴에 혈도로 수십개의 상처를 내주자. 그
럼 정말 그럴듯 해질거야."
말이 끝나자 그는 허리에서 혈도를 꺼내 들었다. 수생은 죽을 각
오를 하고 있었기때문에 죽는 것을 겁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용
모를 훼손한다고 하자 겁이났다. 그러나 순결을 더럽힌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때문에 불행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혈도노조는 혈
도를 갖대대고 겁을 주며 말했다.
"그 노인은 누구냐 ? 빨리 말하지 않으면 칼자국을 내겠다."
수생은 침을 뱉으며 말했다.
"죽이려면 죽여라! "
혈도노조는 오른손을 내리더니 번쩍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찔렀
다. 적운은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지도 못했고 수생은 이미 기절
해 있었다. 혈도노조는 크게 웃더니 말을 몰고 앞으로 달려 나갔
다. 적운이 수생을 바라보니 얼굴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조
금전, 혈도노조의 혈도는 그녀의 얼굴을 스쳐가게 한것인데 한치
의 오차도 없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몇올을 잘라 버린것이다. 수
생은 천천히 정신을 차리는데 적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더욱
화가 소리쳤다.
"이 악독한 중놈아! 이 ..... 나쁜 중놈아!"
그녀는 더 지독한 욕을 해주고 싶었지만 평소에 욕을 하지 않아
서 욕을 생각할수가 없었다. 혈도노조는 혈도를 들고 소리쳤다.
"빨리 말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얼굴을 그어 버리겠다. "
수생은 아까 혈도노조가 이미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낸줄 알고
한번 더 상처를 입은 들 아무런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빨리 날 죽여. 빨리 날 죽이란 말이야!"
혈도노조는 말했다.
"그렇게 쉽게 죽이지는 않는다."
그는 말을 마치고는 또다시 혈도를 휘둘렀다. 칼날이 수생의 얼
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수생은 이번에는 기절하지 않았다. 목근
처가 약간 시원한 감이 났으나 피도 나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
다. 그제서야 수생은 그가 단지 겁을 주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수생은 안도의 긴 한숨을 쉬었다. 혈도노조가 적운에게 말했다.
"내 솜씨가 어때 ?"
적운이 말했다.
"정말 굉장해요. 아주 멋있어요."
이 몇마디는 정말로 감탄해서 외친 것이다. 혈도노조가 말했다.
"배우고 싶지 않아 ?"
적운은 생각했다.
'저 낭자의 순결을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었는데 장말 잘
됐다. 내가 저 늙은 중에게 무공을 알려달라고 한다면 저중은 정
신을 팔아 수낭자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
적운이 말했다.
"당신의 검법은 정말 멋져요. 나에게 좀 가르쳐 주면 나중에 저
남의 오빠 같은 놈들에게 다시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거예요.
그리고 사조님의 체면도 떨어뜨리지 않을거예요. "
그는 평소 거짓말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부득이하게 사조님
이라고 부르자 얼굴이 빨개졌다. 수생은 그가 굴욕적으로 사조님
이라고 부르면서 아부를 하자 욕을 했다.
"더러운 녀석!"
혈도노조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 혈도무공은 하루아침에 이룰수는 없다. 좋아, 내가 우선 비
지초부(批紙초腐)의 도법을 가르쳐 주겠다. 도법을 배운뒤, 우선
100장의 종이를 쌓아놓고 도로 맨위에 있는 종이를 첫장을 자르
되, 두번째장을 건드리면 안돼. 그리고 두번째 종이를 자르고 세
번째를 자르고, 이렇게 계속해서 백장을 자르는 것이다."
수생은 그말을 듣다가 말했다.
"거짓말!"
혈도노조는 웃으면서 말했다.
"믿지 못하겠다니 보여주지."
손을 내밀어서 수생의 머리를 한올 뽑았다. 수생은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
혈도노조는 뽑은 머리카락을 수생의 코위에다 올려 놓았다. 수생
은 코가 간지러워서 입으로 바람을 불어 떨어뜨리려 하는데 혈도
노조가 소리쳤다.
"음직이지마!"
그는 말의 머리를 돌려 10여장 밖으로 가더니 말을 몰아 전속력
으로 달려오면서 수생을 향해 혈도를 휘둘렀다. 수생은 붉은 빛
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도 코끝이 약간 차갑다고 느꼈다. 코끝의
자신의 머리카락이 보이지를 않았다. 적운은 소리치는 것이 들렸
다.
"정말 멋있어요. 정말 멋있어요!"
혈도노조가 가까이 다가와서 혈도를 들어 보이자 그 끝에 머리카
락이 걸려 있었다. 혈도노조와 적운은 모두 대머리이므로 절대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일수가 없었다. 수생은 그의 실력을 보고는
한편으로는 놀랬으며 한편으로는 감탄을 했다.
'저 늙은 악독한 중놈의 무공이 매우 높구나. 만약 혈도가 나의
코보다 조금만 높았으면 머리카락은 저곳에 없을거고 조금만 낮
았으면 나의 코를 베었을것이다.'
적운은 혈도노조의 환심을 사기위해서 아첨을 하려 했으나 평소
에 하지 않았던터라 단지 '멋져요!' , '그런 무술은 처음봤어요'
하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수생은 자신이 직접 혈도노조의 무공
을 보았으므로 적운의 소리가 빈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그가 매우 비굴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혈도노조는 다시 말을
달려 적운과 말머리를 같이 하며 말했다.
"이 무공의 기초는 일단 두부를 한개를 놓고 한칼, 한칼 두부를
자르는 것이다. 두부를 20조각으로 자르는데 하나의 크기도 달라
서는 안돼. 그것은 해내면 이 무술의 기초를 완성한것이다."
적운이 말했다.
"그것이 기초에 지나지 않아요 ?"
혈도노조가 말했다.
"당연하지!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달리는 말에서 코위에 있는 머
리카락을 자를수 있겠는냐!"
적운은 말했다.
"사조님의 무공은 너무나 훌룡해요. 저는 평생동안 사조님의 십
분지 일만 성취해도 좋겠어요."
혈도노조는 그말을 듣고 만족해서 크게 웃었다. 적운은 착실한
사람이라 아첨을 할줄 몰라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지만 자꾸 하다
보니 입에서 술술 나왔다. 수생은 그것을 보고 외쳤다.
"비열한 놈!"
혈도노조는 그 말을 듣고 한번 더 크게 웃더니 말했다.
"적운아. 네놈의 재질도 괜찮은 편이니 열심히 연습하면 곧 배울
수 있을거야, 어디 한번 해보자!"
그러더니 다시 수생의 머리를 한올 뽑아 코위에 올려 놓았다. 수
생은 놀라며 입김을 불어 머리카락을 날려 버렸다. 그리고는 소
리쳤다.
"저 작은 나쁜중 (小惡僧)은 할줄 모르는데 연습을 시키면 어떻
게 해!"
혈도노조가 말했다.
"무공은 연습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해. 한번 실패하면 다시 연습
하고, 또 실패하면 계속 연습을 해야지."
그리고는 다시 머리카락을 뽑아 코위에 올려 놓고는 적운에게 혈
도를 주고 말했다.
"한번 해봐!"
적운은 혈도를 받아들고 어찌할줄을 몰라서 머뭇거리다가 수생을
바라보니 얼굴은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적운은 생각해보니 자
신은 틀림없이 수생의 코를 자를 것 같았다. 아니 코만 자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녀의 머리를 두 조각으로 잘라 버릴것 같았
다. 수생은 자신을 위안했다.
'지금 저 악독한 중놈에게 죽는 것이 나중에 모욕을 당하는 것보
다 나을것이다.'
비록 생각은 그러했지만 정말로 죽는 다고 생각하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적운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가지 생각이 나서
혈도노조에게 말했다.
"사조님, 칼을 쓸때 손목은 어떻게 해야 되지요 ?"
혈도노조가 말했다.
"허리의 내공을 어깨로 흐르게 하고 손목의 힘은 뺀다."
혈도노조는 계속해서 혈도를 잡는 법과 내공의 흐름을 설명했다.
수생은 그가 이렇게 훌룡한 무공을 자세히 설명하자 자신도 모르
게 귀를 기울였다. 적운은 설명을 듣다가 말했다.
"사조님, 저는 핍박을 받아서 비파골이 뚫렸는데 그 무공을 배울
수 있을까요?"
혈도노조는 말했다.
" 왜 비파골이 뚫리었지 ?"
적운이 말했다.
"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서 많은 고통을 받았어
요."
혈도노조는 크게 웃으면서 적운에게 상의를 벗어보라고 했다. 적
운의 상의를 벗자 어깨에 아직도 쇠사슬로 구멍이 뚫린 자국이
남아 있었고 오른쪽 손가락은 모두 잘렸으며 팔에도 칼자국이 여
기저기 나 있었다. 거기다가 영검쌍협에 의해서 한쪽 다리도 부
러져 있었다. 무공으로 말하면 폐인이나 마찬가지 였다. 혈도노
조는 그것을 보더니 크게 웃었다. 적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런 꼴을 보고 웃으면 나는 어떻게 해!'
혈도노조는 웃으며 말했다.
"너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여자를 농락했기에 이렇게 되었느냐 ?
너무 색을 밝히니까 그렇게 됐지. "
적운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상대방이 믿어줄것 같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혈도노조는 계속해서 말했다.
"말해봐! 감옥에 들어 간것도 여자때문이지!"
적운은 생각했다.
'내가 감옥에 들어간것은 만진산의 첩이 누명을 씨운것이고 그
이유는 사매때문이니 여자때문에 그렇다고 할수 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맞아요.그 여자때문에 제가 고생을 했어요. 꼭 복수를 하겠어
요."
수생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자기가 잘못을 하고서 남을 욕을 하면 어떻게 해! 정말로 나쁜
것은 바로 너 같은 ... 악독한 중놈이야!"
혈도노조는 웃으며 말했다.
"음탕하다고 욕하고 싶겠지만음(淫)자가 나오질 않나보군. 음.
좋아. 네년의 옷을 모두 벗기고 온몸에 칼자국을 내 버리겠다.
진짜 음탕한 맛을 보여주지. "
수생은 악이 바쳐 소리쳤다.
"이 나쁜 놈아! 어디 해봐!"
적운은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혈도노조의 신경을 수낭자에게서 떠나게 할수 있을
까 ?'
그는 물었다.
"사조님, 저같은 폐인도 무공을 연마할수 있나요 ?"
혈도노조가 말했다.
"얼마든지 익힐수 있어.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잘려도 우리 혈
도문의 무공을 배울수는 있어. "
적운은 정말로 기뻐서 소리쳤다.
"정말 잘 됐어요!"

이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갇 들려왔다. 그중에 한명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혈도승아! 내딸을 내려 놓아라! 지금 딸을 내려놓지 않으면 너
를 세상끝까지 따라 가서라도 목을 치겠다."
말발굽소리가 시끄러웠지만 수대의 목소리는 정확하게 들려왔다.
수생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아버지가 오셨다!"
다시 네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낙화유수--- ! 낙화유수 ---!"
네 사람의 목소리는 모두 달랐다. 어떤 것은 장엄했고, 어떤 것
은 창노했고, 어떤 것은 깊었다. 아마도 네명의 내공의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혈도노존의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놈들이 이렇게 냄새를 잘 맡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수대가 소리쳤다.
"너의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남사기 낙화유수의 협공을 당해내지
는 못할 것이다. 사나이의 약속인데 딸을 내려놓는다면 너를 ㅉ
지 않겠다. "
혈도노조는 생각했다.
'저 수대와 늙은 도인과 싸워보니 일대일은 그런대로 내가 이길
수 있겠지만 셋이 한꺼번에 덤벼들면 도망도 가지 못할 거야. 네
명이 함께 공격하면 나는 지옥으로나 가겠지. 중원의 사람들은
신용이 없으니 내가 이 인질을 풀어주면 더욱 무섭게 공격할 것
이다. 이 인질은 중요하니 놔 줄수가 없지.'
그는 재빨리 말을 몰아 적운과 함께 앞을 향해 무섭게 달려 갔
다. 그러면서 뒤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이봐 수늙은이! 혈도문의 두 스님이 모두 자네의 사위가 됐어.
4대 장교도 자네의 사위이고 6대제자 자네 사위야. 장인이 사위
들을 ㅉ다니 정말 재미있군!"
수대는 평생을 강호에서 살아 왔지만 이런 모욕은 처음이었다.
수대는 혈도문의 중들이 살인방화 약탈을 밥먹듯이 하고 있으니
자기 딸을 충분히 강간할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것 같았
다. 설사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미수대의 체면은 갈기갈기 찢어
진 셈이었다. 그는 더욱더 말을 세게 몰아 추격을 했다.

수대와 함께 혈도노조와 적운을 ㅉ는 사람들은 남사기 이외에도
30여명의 중원고수들이었다. 혈도문은 많은 악행을 저질렀기에
중원의 무림인들과 원한관계가 깊었다. 그들은 남사기가 혈도문
의 사람을 ㅉ는 다는 소문을 듣고 만약 두명의 혈도문 사람이 도
망간다면 중원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추격
에 참여한 것이다. 중원의 호걸들은 마을에 다다르면 말을 바꾸
고 말위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ㅉ았다. 혈도노조도 마을에 들어가
서 소식을 알아본후에 즉시 떠났다. 잠은 길에서 잤으며 음식도
마을에서 먹지 않았다. 며칠동안 중원의 호걸들이 계속해서 추격
해 오자 수생은 순결을 지킬수 있었다. 그들은 ㅉ고 ㅉ기는 가운
데 사천을 거쳐 유주까지 다다랐다. 추격자들은 그 통과한 지방
에 많은 무림의 호걸들과 친분이 있었고, 그 지방의 고수들도 심
심하던차에 재미 있겠다고 생각하고 추격에 가담했다. 그래서인
지 추격자는 어느덧 30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거기다가 사천을
지나자 부자인 몇명이 참가해서 추격대의 뒤에는 음식과 침구를
끄는 마차가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혈도노조의 도망 가는 기술
과 백마와 황마의 놀라운 능력덕분에 추격자들은 그들의 앞을 가
로막지 못하고 계속해서 추격만 할수 있었다. 뒤늦게 참가한 사
람들은 수대에게 말을 했다.
"진작 알았으면 길을 가로막고 둘을 보내주지 않는 것인데. 허지
만 걱정마시요. 어떻게 하든 수낭자를 구하겠소."
수대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생각했다.
'설사 너희들이 알았다 해도 잡동사니들이 어떻게 그 혈도승들을
막을수 있었겠는가?'
추격전은 어느덧 한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혈도노조는 추격대를
따돌리기 위해서 산이나 동굴에도 숨었으나 추격자중에서는 마적
출신과 녹림의 출신이 있었기 때문에 용케도 그들의 숨어있는 장
소를 찾아 내곤했다. 그러나 그런때는 미처 낙화유수가 도착하기
전이었기때문에 혈도노조는 그들을 죽이고 도망칠수 있었다. 그
러나 그렇게 되자 혈도노조도 더 이상 숨지 못하고 계속해서 서
쪽으로만 달려가게 되었다. 중원의 호걸들은 점차 서쪽으로 나아
가자 혈도승이 혈도문의 본거지가 있는 서장으로 가고 있는 것을
알았다. 만약 혈도승이 서장에 도착한다면 그들의 패거리와 합류
해서 반격을 해 올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누가 이길것인지는 알수
가 없게 될 것이다. 호걸들의 초초함에도 불구하고 혈도노조를
끝내 따라 잡을수가 없는 가운데 눈이 내리는 변방의 지역에 도
달했다. 추운 것은 말할것도 없었으며 험난한 지형을 지나가고
바닥에서 잠을 자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추격대는 명망이 있는
사람들이라 체면때문에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특히, 사
천에서 온 사람들은 무공은 높았으나 고생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돌아 가기 시작했으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
는 사이에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추격전이 벌어지던 어느날 그들은 눈이 많이 쌓여 있는
산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왕소풍이 앞서 가다가 길가에 쓰러져
황마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악독한 중놈이 타고가던 황마가 죽었으니 얼마 가지 못했을 것
입니다! 빨리 ㅉ아가면 이제 놈을 잡을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호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으며 환호했다. 환호를 하고 있
는게 갑자기 한쪽 산등성이에서 눈이 쏟아져 내렸다. 한 노인이
외쳤다.
"눈사태다. 모두 뒤로 물러서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더욱 많은 눈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한번
도 눈사태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신기한듯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게 뭐지? "
어떤 사람은 이렇게 외쳤다.
"눈사태가 뭐가 무서워? 빨리 추격합시다."
그러나 은은하게 들려오던 눈이 떨어지던 소리가 천둥처럼 커지
게 되자 사람들은 그제서야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처음에 눈
만이 떨어졌으나 지체하는 사이에 바위가 함께 굴러오기 시작했
다. 사람들은 말을 몰아 즉시 산골의 밖으로 빠져 나가려 했다.
몇몇의 말은 겁을 먹어 다리를 음직이지 못했고 그 말을 탄 사람
은 말을 내려 경공으로 뛰어 갔다. 그러나 눈은 빠른 속도로 떨
어져 내렸으며 잠시 지체하던 사람들은 엄청난 눈속으로 빠져들
고 말았다. 운좋게 빠져 나간 사람들은 산곡을 빠져나가 눈이 없
는 곳에서 다시 몇리를 더 가서야 비로서 멈추었다. 그러나 뒤쪽
에서는 여전히 눈덩어리가 떨어지고 있었으며 순식간에 산길을
가로막아 버렸다. 사람들은 혈도승과 수생이 눈에 파묻혀 죽었으
리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친구가 죽어서 슬퍼했지만 어떤
사람은 살아 난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인원을 검사해보니 10여명
이모자랐다. 그중에는 낙화유수 남사기와 왕소풍이 끼여 있었
다. 수대는 딸을 사랑한 나머지, 왕소풍은 연정에 이끌려서 눈사
태에도 앞으로 뛰어 나갔고 낙화유수의 나머지 네사람도 수대와
관계가 깊어 그를 따라 나아갔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
을 애도했지만 어떤 사람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동안 남사기와 영검쌍협은 너무 명성을 떨쳤어. 오늘 정말 그
혈도노조는 적운과 수생을 데리고 도망치다가 황마가 죽었고 백
마도 뒤뚱거리는 것이 곧 죽을것 같자 생각했다.
'나 혼자 도망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사손이 다리가 부러져 같
이 가기가 힘들구나. 거기다가 자 계집애는 너무나 이뻐서 빼앗
기기 싫은걸.'
그는 여기까지 생각하자 수생을 한번 바라보고는 다가갔다. 수생
은 그가 다가오자 외쳤다.
"왜 ... 그래 ?"
혈도노조는 말했다.
"너를 데려가지 않겠다. 알겠어 ?"
적운이 소리쳤다.
"사조님, 적이 ㅉ아 와요!"
혈도노조는 뒤를 바라다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소리쳤
다.
"무슨 소리야!"
그때 머리위에서 굉음이 들리면서 눈이 쏟아져 내렸다. 혈도승은
눈사태를 많이 보았기때문에 그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소
리쳤다.
"빨리 도망가! 빨리 도망가!"
그는 재빨리 사방을 살펴보니 남쪽의 산봉우리만이 안전한 것 같
았다. 그는 백마를 타고 한손으로 적운을 한손으로 수생을 잡았
다. 백마도 위험을 느껴서 전력을 달렸다. 그러나 역시 너무나
느렸다. 혈도노조는 말에서 뛰어 내려 경공으로 달렸고 백마는
수생과 적운을 태우고 뒤뚱거리며 달렸다. 혈도노조는 달리면서
옆의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그 산에서도 눈이 쏟아져 내린
다면 죽는 길 밖에 없었기때문이다.

잠시후, 혈도승과 적운과 수생 세사람은 얼굴이 창백해져 서로를
바라보았다. 수생은 조금전까지 두사람에게 모욕을 당할까 걱정
을 했는데 이제 이런 위험을 마주치자 두사람에게 의지하는 마음
이 생겨 이 남자 둘이 어떤 방법을 마련해 이 위험을 벗어나기
를 바랐다. 남쪽의 산은 다행히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눈이 두껍
게 쌓여 있어 눈사태는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혈도노조는 숨이
가라앉자 몸을 일으켜 주변을 한바퀴 돌았다. 그가 돌아왔을때
그의 얼굴은 분노와 걱정의 기색을 띠고 있었다. 적운이 물었다.
"사조님, 어떻읍니까 ?"
혈도승은 화를 내며 말했다.
"어떠냐고 ? 이렇게 된것은 모두 네놈이 한짓이야!"
적운은 다시 감히 묻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단지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챘을뿐이다. 그는 잠시후 참지못하고 다시
말했다.
"사조님, 적이 입구를 막고 있읍니까? 그러면 저를 상관하시지
마시고 혼자 도망가십시요."
혈도승은 일생동안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으나 한번도 진실로 대
한적은 없었다. 심지어 제자인 선용, 보상, 승체등도 그의 앞에
서는 그를 존경하는 듯 하지만 그가 없는 곳에서는 그를 속인다
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때 적운의 혼자 도망가라는 소리를 듣자
기뻐서 말했다.
"네놈의 양심은 대단하군. 적이 입구를 지키고 있지 않으면 눈이
가로막고 있을거야. 높이가 몇십장이나 되고 몇천장이 눈밖에 없
으니 이 눈이 녹기를 바라자면 봄이 되어야 할텐데 그동안 우리
가 무엇을 먹고 있지. 이 산곡에 먹을 거라고는 없는데 말이야."
적운은 사태가 심각한것을 다시 실감했으나 일단 눈앞의 위기를
넘겨 안심 되었다. 그는 말했다.
"그래도 ㄱ어 죽는 것이 그들에게 잡혀 죽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
다."
혈도스은 웃으며 말했다.
"네 말이 꼭 마음에 드는구나."
그리고는 그는 혈도를 들고 백마를 향해 다가갔다. 수생은 그가
무엇을 하리라는 것을 눈치채고 외쳤다.
"안돼! 그 말을 죽여서는 안돼요!"
혈도승은 미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백마를 다 먹으면 너를 잡아 먹을 것인데 말걱정을 하느냐 ?"
수생이 애원했다.
"제발 말을 죽이지 말아요!"
수생의 백마는 그녀가 어릴때부터 함께 자랐기때문에 제일 친한
친구나 다름없었다. 그런 백마가 죽임을 당하려하자 적운을 향해
서 말했다.
"이봐요. 당신의 사조가 나의 말을 죽이지 않도록 해주세요. "
적운은 그녀가 애처러웠으나 현재로서는 말을 죽여 먹지 않을 도
리가 없었다. 말고기를 다 먹은후에 안장까지 삶아 먹을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수생이 마음 아파하는
것을 보지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수생은 다시 혈도노조에게 애
원했다.
"제발 나의 말을 죽이지 말아요."
혈도승은 웃으며 말했다.
"좋아! 너의 부탁을 들어주지!"
수생은 매우 기뻐하며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붉은 빛이 번뜩이고
는 말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수생은 연일 피곤한데다가 이런
광경에 놀랍고 아픈 마음을 참지 못하고 기절을 했다. 오래 있다
가 깨어나니 그녀의 코로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그녀는 오랫동
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매우 고팠기 때문에 저절로 군침
이 돌았다. 또한, 정신이 점점 맑아지면서 그녀의 사랑하는 말이
이미 구워져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마음이 아파서 엉엉 울었다. 혈
도노조가 그런 수생을 보고 말했다.
"먹을래? 안먹을래 ?"
수생은 소리쳤다.
"너희 두 악한 중놈이 나의 말을 죽였어. 나는 틀림없이 복수를
하고 말거야!"
적운은 그녀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수낭자. 이 설곡에는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굶어 죽지 않기 위
해서는 부득이 수 아가씨의 말을 잡아먹지 않을수가 없어요. 좋
은 말은 이곳을 살아 나간다면 또 구할수 있을거예요."
수생은 소리쳤다.
"네 놈이 좋은체 하지만 너는 저 악독한 늙은 중보다 더욱 악독
한 놈이야. 평생동안 너를 죽도록 미워할 거야."
적운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네가 나를 죽도록 미워한다고 해도 나는 살기위해서 먹지 않으
면 안돼!'
그는 입을 벌려 말고기를 뜯어 먹었다. 혈도노조는 말고기를 먹
다가 말했다.
"말고기가 정말 맛있는걸! 그러나 며칠후에 저 계집애를 잡아 먹
는다면 더욱 맛이 있을거야."
말을 마친 다음 생각했다.
'음. 저 계집애를 다먹은후에 다시 나의 사랑스런 제자를 먹어야
겠군. 이놈은 정말 내맘에 들어서 구워먹기가 아까운데. 그래도
어쩔수 없지. 그래도 이놈은 저 계집애보다 오래 사니 나에게 감
사할거야.'
그들은 말고기를 배불리 먹고 불속에 나무를 더 집어 넣은 뒤 돌
을 깔고 누워 잠을 청했다. 적운은 잠결에도 수생이 계속 울먹이
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수낭자는 한필의 말이 죽었는데도 이렇게 울고 있구나. 내가 세
상에 살면서 나를 걱정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어. 내가 죽는다면
나를 위해서 울어 줄 사람도 없을테니. 나의 죽음은 이 말보다도
못하겠구나.'


================= 연성결(連城訣) 상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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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화유수 (落花流水)

한밤중까지 자고 있던 적운은 누근가 어깨를 미는 바람에 잠에서
막 깨어나는데 혈도승이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칩입자가 왔다."
적운은 순간적으로 놀랐으나 누군가 들어왔으니 이 눈속에서 나
갈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기쁜 마음이 되었다. 낮은 소리
로 혈도노조에게 말했다.
"어디죠 ?"
혈도승은 서쪽을 향해 머리짓을 하며 말했다.
"넌 소리내지 말고 누워 있어. 적의 무술은 상당히 강해."
혈도승은 혈도를 쥐고 몸을 굽히더니 화살이 시위에서 떠나 날아
가듯 소리없이 뛰쳐 나갔다. 사람의 그림자가 산기슭에 스치는가
했더니 보이지가 않았다. 적운은 심히 탄복하였다.
'이 사람의 무술은 정말 굉장하군! 정전형이 살아 있다면 누가
더 고수일까 ?'
하고 적운은 생각하며 손을 뻗어 품속을 더듬었다. 정전의 뼛가
루를 싼 보자기는 품속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갑자기 밤의 정막
을 뚫고 쨍! 쨍! 하고 무기가 부ㄷ히는 소리가 울렸다. 혈도승이
적과 싸우고 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무기 무ㄷ히는 소리를 들
으니 상대의 무공은 혈도노조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생도 무기가 부ㄷ히는 소리가 들리지 잠에서 깨어났다. 산골짜
기는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었고 은빛같은 달빛은 희눈에 반사
되어, 비록 깊은 밤이었지만 새벽 빛이 돋는 듯 했다.수생은 적
운을 보자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를 미워하고 저주하였고 적운도
대답할 것 같지가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무기가 부ㄷ히는 소리
가 점차 가까워 지고 있었다. 적운과 수생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달빛아래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떨어졌다가 붙
었다가 하면서 높은 벼랑위에서 싸우고 있었다. 적운은 혈도승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 도복을 입고 손에 장검을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낙화유수' 4대 고수중의 한명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눈사태가 나서 골짜기의 입구가 막혔는데 어떻게 안으로 들어왔
는지 적운으로서는 궁금하기 그지 없었다. 수생도 곧 그 도인을
알아보고 외쳤다.
"유백부님, 유승풍 백부님께서 오셨군요. 아버지, 아버지! 저는
여기 있어요."
적운은 깜작 놀라 생각했다.
'혈도노조와 저 노인이 싸우는 것으로 보아 금방 승부가 날것 같
지는 않다. 그녀의 아버지가 이 말소리를 듣고 ㅉ아 온다면 나는
목숨이 열개라도 살아 있지 못할 것이다.'
그는 생각을 마치자 조용히 말했다.
"야! 큰소리 지르다가 눈사태라도 난다면 우린 모두 죽는단 말이
야!"
수생은 성을 냈다.
"난 너 같이 악독한 중놈하고 같아 죽어버리겠어."
그리고 큰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저는 여기 있어요!"
적운은 큰소리로 말했다.
"눈사태가 나면 네 아버지도 죽는다고! 네 아버지를 죽일 작정이
냐 ?"
수생은 아차 하며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의 재주가 얼마나 좋은데, 눈사태가 났지만 다른 사
람들은 몸을 피했고 유승풍 백부는 골짜기로 뛰어 들었다. 유백
부가 들어올수 있었다면 아버지도 들어올 수 있겠지. 소리질러
눈이 무너지면 기껏해야 나와 이 악독한 중놈만 압사할것이고 아
버지에겐 분명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 악독한 중놈이 이렇게 흉
악한 것을 보건데 유백부를 죽이고 난다면 나도 살아남지 못할거
야!'
그녀는 생각을 마치고 나자 더욱 큰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아버지! 저는 여기 있어요!"
적운은 어떻게 그녀를 저지할 지 몰랐다. 홀낏 머리를 돌리니 혈
도노조와 유승풍은 더욱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적운은
자세히 살쳐보았으나 혈도노조의 혈도와 유승풍의 검중 어느 것
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생
이 이제 아버지를 부르다가 말을 바꾸어서 '사촌 오라버니! 사촌
오라버니!' 하고 소리치자 정말로 화가 나서 외쳤다.
"이 계집애야! 입다물지 않으면 너의 혀를 잘라 버리겠다."
수생은 말했다.
"그래도 나는 부를거야! 누가 뭐래도 나는 부를거야!"
또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그러나 적운이 진짜로 공격해 올까봐 일어나서 돌을 들어 몸을
방어했다. 그녀는 적운이 음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는 것을
보고는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 악독한 중놈의 다리가 이미 나와 사촌오라버니에 의해서 부
러졌어.
상처가 깊어서 음직이지도 못하는데 뭐가 겁이 나서
그를 죽이지 않지 ?'
이어서 생각했다.
'난 정말 바보야. 혈도노조가 몸을 둘로 나눌수 없는 이상 이 조
그만 악승을 도와줄수 없을텐데 말이야.'
그녀는 돌을 들고 힘껏 적운의 머리 부근을 향해서 던졌다. 적운
은 반항할 방법이 없어 몸을 굴려 피할수 밖에 없었다. 돌이 얼
굴을 스치며 바로 옆의 눈에 묻혔다. 수생은 일격이 적중하지 못
하자 다시 돌을 들고 던졌다. 적운은 이번에 피하지 못하고 배에
돌을 맞았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날아온 돌이 부러진 다리의 정
강이에 맞았다. 적운은 너무나 아파서 길게 신음소리를 냈다.
수생은 크게 기뻐하며 돌을 들어 또 던지려고 하였다. 적운은 그
녀가 계속해서 돌을 던지면 자신이 살아 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
각하고 역시 돌을 하나 집어들고 소리쳤다.
"이 계집애야. 네가 다시 나에게 돌을 던지면 내가 먼저 너를 짓
이겨 죽여 줄테다."
그러나 수생이 다시 돌을 던지자 적운도 역시 수생을 향해 돈을
던졌다. 수생은 재빨리 몸을 피했으나 돌이 귓가를 스치면서 살
갗이 약간 벗겨졌다. 그녀는 놀래서 다시는 돌을 던지지 못하고
몸을 돌려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고 검법을 써서 그의 어깨를
찔렀다. 그녀가 배운 검법은 심오한 것이었다. 비록 나뭇가지였
지만 한번만 찔려도 목숨에 위협을 줄수 있었다. 적운이 설령 온
전한 몸이었다고 해도 그녀의 공격을 피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나뭇가지가 찔러오자 적운은 어깨를 기울여서 피했다. 그러나
수생의 검법은 빠르게 변화하며 '탁!'하고는 그의 이마를 때렸
다. 적운은 별똥이 튀었다. 수생이 욕을 했다.
"네 나쁜 중놈, 오는 도중 이 아가씨를 괴롭히더니 이제 내 혀꺼
지 자르려고 해! 너도 한번 잘려봐라!"
그녀는 나뭇가지로 적운의 몸을 마구 때리면서 외쳤다.
"네 사조를 불러 구해달라고 해봐라! 그가 오지 않으면 내가 너
를 때려 죽여버리겠다."
입으로는 욕을 했지만 수생의 손은 더욱 빨라져서 적운은 도저히
막아내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그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그녀
의 매질을 당하고 있었다. 적운의 몸이 금세 나뭇가지에 맞아 살
이 터져 피가 흘러 내렸다. 적운은 억지로 손을 내 뻗어 내리치
고 있는 그녀의 나뭇가지를 잡아 채어 힘을 주니 힘이 약한 수생
은 나뭇가지를 빼았겼다. 적운은 빼앗은 나뭇가지를 세게 휘두르
니 수생은 뒤로 몇걸음 물러나서 새로운 나뭇가지를 주워 들었
다. 적운은 그녀가 몇발자국 물러나자 시골 사람이 싸움에 지게
되었을때 쓰던 방법이 생각나서 외쳤다.
"멈춰라! 한 발자국이라도 가까이 온다면 나는 바지를 벗어 버리
겠다."
입으로 외치면서 두손으로 바지춤을 움켜쥐고 벗으려는 시늉을
했다. 수생은 깜작 놀라서 재빨리 몸을 돌렸다. 양볼은 부끄러워
서 붉게 물들었다.
'이 중놈은 정말 수치를 모르는구나. 기어코 이런 더러운 짓으로
나를 모욕하는 구나.'
적운은 소리쳤다.
"다섯보 걸어! 나한테서 되도록이면 멀리 떨어져!"
수생은 놀란 나머지 그대로 다섯보를 걸어갔다. 적운은 내심 기
뻐하며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난 바지를 벗어 던졌으니까 날 때리려거든 고개를 돌리고 나를
와봐!"
수생은 더욱 놀라 도망치려고 하다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비틀거
리면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황급히 일어나서는 감히 뒤돌아보지
도 못하고 멀리 있는 산등성이 뒤켠으로 도망갔다. 적운은 멀어
져 가는 수생을 바라보다가 다시 절벽 위를 쳐다 보았다. 유승풍
과 혈도노조는 절벽위에서 여전히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곳은 적운이 있는 지면으로부터 7,80장이나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깍아지른 절벽의 중간으로
만약 둘중 한명이라도 발을 잘 못디디면 땅에 떨어져 죽을 것이
었다. 적운이 둘의 싸움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수생이 산
뒤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아버지. 빨리 오세요!"
그녀가 몇마디 외치자 동남쪽의 산골짜기에서 노쇠한 음성이 들
려왔다.
"우리 예쁜 조카 수생이 아니냐 ? 아버진 약간 부상을 입었다.
곧 오실 것이다."
수생은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낙화유수중 둘째인 화철간임을 알자
급히 말했다.
"화백부! 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어떻게 부상당했죠 ?"
눈깜작할 사이에 화철간은 이미 수생의 곁으로 날아와서 말하였
다.
"눈사태가 났을때 산봉우리에 있던 돌이 육백부의 머리위로 떨어
지는 것을 쳐내셨다. 단지 그 돌이 너무 무거워서 손을 약간 삐
셨을 뿐이야. "
수생이 말하였다.
"악독한 중놈이 저쪽에 있는데... 벗었어요... 화백부, 빨리 가
서 죽여버려요."
화철간이 말하였다.
"좋아 어디있지 ?"
수생은 적운이 누워 있는 쪽을 손으로 가리켰는데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화철간이 적운은 죽이려고 가려는데 절벽위에
서 '창! 창! 창!' 하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혈도노조의
혈도와 유승풍의 검이 엉켜 있고 둘은 꼼작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두사람은 이미 내공을 겨루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화철간은 생각했다.
'악독한 혈도승이 이처럼 맹렬스러운 것을 보니 유현제가 우세를
점할 것 같지 않군. 내가 끼어들지 않을 수 없구나. 여러명이서
한명을 공격한다는 것이 비록 수치스럽지만, 이 혈도승과 혈도문
의 악행이 워낙 높으니 만일 내가 이 혈도승을 죽일수 있다면 수
치스러움을 면할수 있을 것이다.'
그는 몸을 돌려 절벽의 뒤쪽 등성이를 따라 나는듯 올라갔다. 수
생이 놀라 외쳤다.
"화백부, 뭘 하세요 ?"
한마디 말을 뱉는 순간 그녀는 이미 답을 얻고 있었다. 화철간은
소리없이 절벽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오른손에 강철로
만든 단창을 쥐고 석벽을 창끝으로 찌르면서 몸을 날렸고, 그 모
습은 유승풍이나 혈도노조보다 훨씬 고명해보였다.

적운은 화철간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듣자 마음을 놓고
있다가, 화철간이 몸을 날려 벼랑위로 기어 오르는 모습을 보자
다시 비명을 질렀다.
"앗!"
이때의 유일한 희망은 화철간이 벼랑에 다 올라가기 전에 혈도승
이 유승풍을 죽인 후 몸을 돌려 화철간과 싸우는 것이었다. 그렇
지 않으면 한사람이 두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되므로 혈도노
조가 패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는 생각했다.
"이 유승풍이라는 자와 화씨성을 가진 자는 모두 영웅호걸들 이
지만 혈도노조는 분명히 폭악무도한 악인이다. 그런데 난 어쩠든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을 죽이기를 바라고 있으니, 에이... 이것
은 너무나 잘못된 마음이지..."
한편으로는 자책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되어 마음속이 정말로 혼
란스럽기만 했다. 이때, 화철간은 이미 벼랑위에 올라서 있었다.
혈도승은 내공을 운행하며 유승풍과 싸우고 있었다. 내공의 힘은
마치 바다위의 파도가 한번은 가볍게 때리고 지나갔다가 다시 세
차게 몰아쳐 오듯 점점 강해졌다. 유승풍은 태극무술의 명수로
평생동안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도리를 연구하였으므로 아무리
기를 모아 공격해 와도 그는 내공의 힘을 하나 하나의 둥근원으
로 만들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혈도노조의 내공을 없애나
갔다. 혈도노조는 먼저 기선을 잡고 승리 하려 하였다. 혈도승의
내공이 비록 강맹하고 변화무쌍했으나 유승풍을 단신간에 물리친
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사람은 모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철간이 절벽을 타고 올라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화철
간은 두사람의 머리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을 보고
이미 내공을 많이 소모했음을 알고는 살며시 혈도승의 뒤로 가서
는 단창을 들어 혈도승의 뒷머리를 가르며 내리쳤다. 혈
도승은 자신의 등뒤에서 매서운 기운이 자신을 내리치는 것을 느
꼈다. 그러나 그의 손의 혈도는 유승풍의 장검과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한치도 움직일수 없었는데 어찌 화철간의 단창을 피할수
있겠는가! 그는 재빠르게 마음을 굴렸다.
'어차피 죽는 마당이다. 차라리 스스로 떨어져 줄을지언정 적의
손에 죽을수는 없다.'
그는 양쪽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몸을 살짝 기울여 벼랑쪽으로
몸을 날렸다. 화철간은 혈도승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단창을 아
주 강하게 내리치고 있었는데 혈도승이 예상을 뒤엎고 벼랑 아래
로 띠어 내려버리자 미처 그 기세를 거두지 못하고 단창은 유승
풍의 가슴에 박혀 등뒤로 뚫고 나가 버렸다. 혈도승은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면서 혈도를 들어 아래를 내리쳤다. 그곳은 마침 큰
암석이 있었는데 탕! 하는 소리와 함게 혈도가 크게 휘어지고는
다시 펴지면서 혈도승은 다시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다시
땅으로 떨어지면서 같은 동장을 18번을 반복하니 마침내 그는 암
석위에 가뿐하게 내리설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만족하여 껄껄
웃었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내 도를 받아라!"
혈도승은 소리를 듣고는 재빨리 혈도를 뒤로 돌려서 맞받아 쳤
다. 짱!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무기가 맞부ㄷ히쳤다. 혈도승은 가
슴이 얼얼해지면서 하마트면 혈도를 놓칠뻔 했다. 혈도승은 깜작
놀랐다.
'이 놈의 내공이 대단한데.'
머리를 돌려 보니 한명의 건장한 노인이 백발을 휘날리면서 당당
하게 귀두도(鬼頭刀)를 들고 서 있었다. 혈도승은 그의 당당한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상대가 무서웠던 것이 아니라 유승풍과
내공의 대결을 벌이고 아까 18번 암석을 굴러 뛰어 내리는동안
많은 내공을 소모해서 기를 운용하는데 가슴이 은은하게 아파
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왼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육대형, 이 악독한 중놈이 유세째를 죽였소... 우리 ... 우리
는..."
바록 화철간이었다. 그는 잘못해서 유승풍을 죽이자 분노가 극에
달해 나는 듯 절벽의 아래로 달려 내려 와 혈도승과 사생결단을
내려 했다. 마침 낙화유수 남사기의 첫째인 육천서가 혈도승의
앞길을 가로 막은 것이다. 화철간이 창을 들고 뛰어 오는 것을
본 혈도승은 자신이 이미 내공이 소진되어 육천서 하나를 상대할
수도 없을텐데 다시 강적이 하나 추가되자 감히 싸울 생각을 하
지 못한체 수생을 인질로 삼아 이 난관을 빠져 나간후 훗날 다시
복수를 하리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이렇게 먹고 있는데 육천서의
귀두도가 움직이더니 정면에서 날아왔다. 혈도승은 몸을 한번 움
츠리더니 적의 하체를 내리쳤다. 육천서는 상대가 하체를 공격하
자 위로 뛰어 올랐다. 그러나 그는 체격이 건장하여서 뛰어 오르
는 높이가 높지 않았다. 혈도승은 그런 육천서의 아랫배를 혈도
로 찔러 갔다. 육천서는 귀두도로 혈도를 막으려 했다. 혈도승의
혈도공격은 허초로 만약 육천서의 방어가 소홀하면 그대로 찔러
들어가서 육천서에게 치명타를 주겠지만 육천서의 방어가 철저하
자 급히 혈도를 거두어 들이면서 몸을 뒤로 날려 육천서의 공세
를 벗어났다. 혈도노조는 육천서의 공격권에서 벗어나자 빠른 속
도로 적운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수생을 찾았으나 수
생은 이미 거기 있지 않았다. 혈도노조는 적운에게 말했다.
"계집애는 ?"
적운이 말했다.
"저쪽에요."
말하면서 손을 가리키니 혈도승은 화를 냈다.
"어떻게 하라고 그녀를 도망가게 내버려 두었느냐? 왜 잡아 두지
못했어 ?"
적운이말하였다.
"저는... 저는 그녀를 잡아 둘수 없었읍니다."
혈도승은 매우 화가 났다. 그는 본래 굉장히 난폭한데다가 지금
은 생사의 위기였으므로 더욱 더 분기탱천해서 적운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적운의 몸은 붕 뜨더니 옆의 골짜기로 떨어
졌다. 수생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적운이 계곡으로 처
박히고 혈도노조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겁이나서 반대로 도망
쳤다. 그때, 오른쪽에서 한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아! 생아!"
수생의 아버지인 수대가 온 것이다. 수생은 너무나 기뻐 소리쳤
다.
"아버지!"
수생은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혈도승과는 오히려 가
깝게 있었다. 그러나 원근의 차이는 불과 3장정도 밖에 안되었으
므로 그녀가 소리를 지르지 않고 아버지를 보자마자 아버지쪽으
로 달려 갔더라면 아버지에게 가까이 갈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
나 그녀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아버지!' 하고 부르고는 멍청하
게 그 자리에 멈추어 서고 말았다. 그러자 혈도승은 바로 뒤까지
접근할수 있었다. 그것을 본 수대가 소리쳤다.
"생아, 빨리 이쪽으로 와!"
수생은 그말을 듣고서야 다시 수대를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 혈
도승은 수대와 수생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혈도를 입에 물고는 허
리를 숙여서 두개의 눈뭉치를 만들어 하는 수대를 향해 던지고
다른 하나는 수생을 향하여 던지면서 앞으로 달려 들었다. 수대
는 검을 휘둘러 눈뭉치를 막았다. 그래서 발걸음이 늦추어졌을때
수생에게 던져진 눈뭉치가 등의 영대혈을 맞추었다. 수생은 온몸
에 힘이 빠지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혈도승은 그녀가 채 쓰러
지기도 전에 달려와서 그녀를 잡고는 다시 몇곳의 혈도를 더 짚
었다. 그때, 바로 옆에서 바람을 가르며 하나의 단창이 날아왔
다. 화철간이 도착한 것이다. 그는 이미 의형제인 유승풍을 죽였
으므로 수생의 생명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화철간의 창이 바람
같이 빠르게 덤벼들자 혈도승은 혈도로 화철간의 단창을 쳐 내었
다. 혈도승의 혈도는 매우 날카로운 보검이라 어떤 무기라도 잘
랐으나 화철간의 단창도 역시 여러번 불에 달구어서 만들었기때
문에 혈도승의 혈도는 튀어 올랐다. 혈도승은 혈도가 튀어 오르
자 욕을 했다.
"제기릴!"
혈도승은 수생을 잡고 화철간의 단창을 피해서 뒤로 물러 났으나
그곳에는 막 따라온 육천서의 귀두도가 내리쳐 지고 있었다. 그
는 더 이상 피할곳이 없었다. 그는 그래도 피할곳을 찾기위해 두
리번 거리다가 계곡으로 떨어진 적운이 눈을 털며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는 생각했다.
'계곡에 눈이 쌓여 있어서 저 녀석이 떨어졌는데도 무사하구나.'
혈도승은 수생의 허리를 감싸며 몸을 날려 계곡 아래로 뛰어 내
렸다. 수생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두 사람은 깊은 계
곡으로 떨어졌다. 계곡의 눈은 수십장 두께로 쌓여져 있어서 눈
밑에 단단한 얼음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아무런 상처도 없이 내
려설수 있었다. 혈도승은 눈위로올라오더니 커다란 바위위로 올
라와서는 혈도를 몇번 휘둘르면서 외쳤다.
"용기가 있는 놈은 한번 내려와 봐라! 나와 싸워보자! 하하하!"
이 큰바위는 바로 계곡의 요충에 있었기 때문에 수대등이 위에서
뛰어 내리려면 반드시 바위 옆을 지나야 하는데 혈도승이 혈도를
휘두른다면 손쉽게 두조각으로 낼수가 있었다. 몸이 허공에 있는
사람은 설사 혈도승보다 무공이 10배가 강하다고 해도 어쩔수가
없었다. 육천서, 화철간, 수대는 가까스로 혈도승을 포위했는데
다시 그를 놓치고 추격도 할수 없자 한스럽지 않을수 없었다. 수
생은 여전히 음탕한 중에게 잡혀 있고 잘못하여 의제를 죽였으므
로 화철간은 더욱 분통이 터졌다. 세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낮은
소리로 의논을 했다. 수대의 별명은 냉월검(冷月劍)이라는 별명
을 가지고 있었는데 미풍양속을 벗어난 행동을 보면 참지를 못했
다. 그런데 지금 수대의 눈앞에서 악독한 혈도승이 으시대고 있
었고 수생이 적운에게 기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겼다. 그는 이미 수생이 혈도를 짚혀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을 모르고 그녀가 앙탈도 하지 않고 혈도문의 악독한 중놈에게
고분고분 순중한다고 생각하자 더욱 분노가 솟구쳤다. 그는 눈속
에서 몇개의 돌을 찾아 계곡아래로 던졌다. 그의 팔힘은 매우 강
했으므로 더구나 위에서 아래로 던졌기 때문에 그 위력은 무척
강했다. 혈도승은 재빨리 적운과 수생을 바위뒤로 숨겨서 돌을
피하게 했다. 그는 일단 위기를 모면했기에 적운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혈도승은 위에서 던지는 돌을 피하면서 욕을 해대었다.
그러다가 저쪽 절벽위의 유승풍이 절벽에 걸린채로 음직이지 않
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철간이 자기를 기습하다 그를 죽게 한 것
을 눈치채고는 크게 기뻐했다. 적운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산등성
이에 뚫려 있는 하나의 산동굴을 발견하고는 돌맹이를 피하기 위
해서 수생을 안고는 그리고 들어 갔다. 수생은 소리쳤다.
"내 몸에 손대지마! 손대면 안돼!"
혈도노조가 크게 웃으면서 소리쳤다.
"그놈 참 맹랑한데! 사조께서 적을 막고 계시는데 사조보다 먼저
재미를 볼려고 해!"
수대와 육천서와 화철간은 그 소리를 듣고는 더욱 더 분노했다.
수생은 적운이 나쁜 짓을 할까봐 겁이 났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
는 적운이 옷을 단정히 입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까 적운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 자신을 떼어 낼려고 했던 것
을 알게되자 화가 나고 부끄러워서 외쳤다.
"이 사기꾼 같은 중놈아! 어서 내게서 떨어져라!"
적운은 그녀와 함께 동굴로 들어서자 돌맹이를 맞을 위기에서 벗
어나자 조금 안심되었다. 그는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으므로 천천
히 기어서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녀가 나를 나쁜 중놈이라고 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왜 나를 사기꾼이라고 하는 건가.'
이렇게 시간이 흘러 날은 점점 밝아졌다. 혈도승은 점차 기운을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곤경에서 벗어 날수 있을까 ?'
눈 앞의 세사람의 무공은 개개인에 있어서 자신과 백중세에 있어
서 자기가 이 바위를 떠나기만 한다면 지형의 유리함을 잃는 셈
이니 순식간에 세명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는 스스로 영리
하다고 자부했지만 현재에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를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바위위에서 세사람에게 욕을 하고 팔뚝질을 함으로써 스
스로를 위안했다. 육천서는 갈수록 화가 나는지 온작 욕설을 다
했다. 화철간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말했다.
"수현제, 그대가 동쪽으로 가서 눈을 타고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체 하시요. 나는 서쪽으로 내려가는척 할터이니 그러면 저 중놈
이 우리때문에 자리를 뜰탠데 그때 큰형이 절벽을 내려가십시
요."
육천서가 말했다.
"그거 묘하군 !"
수대가 말했다.
"그가 우리를 막지 않는다면 정말로 우리가 눈을 타고 내려가면
될 것이요."
그와 화철간은 즉시 좌우로 나뉘어져 달려갔다. 부근의 백여장
근처는 깍아 지른 듯한 벼랑이어서 눈을 타고 내려가려면 한바퀴
빙 돌아서 먼 곳에서 내려가야 했다. 혈도승은 두사람이 각각 방
향을 나누어서 각기 좌우로 가는 것을 보자 그들의 의도를 알아
챘다. 그러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이거 정말 야단 났구나! 저 새끼들이 한바퀴 뱅 돌아 온다면 시
간이 걸리겠지만 결국은 이곳까지 올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 오
기전에 도망가야한다. 어서 도망치는 것이 상수다!'
그는 살그머니 바위에서 내려왔다. 육천서는 화, 수 두사람이 멀
리 가자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보니 혈도승의 자취가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데 눈위에는 서북쪽으로 발자국이이어져 있었다.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화현제, 수현제, 중놈이 서북쪽으로 도망갔다! 빨리 돌아오게!"
화, 수 두사람은 일제히 몸을 돌렸다. 육천서는 급히 혈도승을
ㅉ으려고 계곡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는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몸이 푹 꺼지면서 사람 키보다 훨씬 높게 쌓인 눈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육천서는 당황하지 않고 위를 보니 자신이 빠진 구멍은
두길이나 되는 것 같았다. 그는 두손과 두 발을 이용해서 재빨리
위로 올라갔다. 그의 머리를 막 구멍 밖으로 내미는 순간 갑자기
가슴팍에 격렬한 아픔이전해져 왔다. 이미 공격을 받은 것이다.
깜작 놀란 그는 즉시 귀두도를 휘두르며 위로 솟구쳤다. 육천서
는 손에 오는 감각으로 보아 자기의 대도가 허공을 후려친 것을
알고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리는데 발 밑의 눈에서 갑자기 혈도
가 솟구쳐 나왔다. 원래 혈도승은 육천서가 크게 소리치자 그가
뛰어 내리라는 것을 알고는 서북쪽으로 도망치는척 하다가 재빨
리 돌아와서 눈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육천서는 무공이 높고
경험도 풍부했으나 이런 눈속에서의 싸움은 일생의 처음이라 당
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육천서는 혈도를 비스듬히 피하면
서 혈도승이 있음직한 자리를 대충 가늠하고는 세번 귀두도로 찔
러 갔다. 이 세번의 칼질은 맹목적이었으나 그 힘은 결코 우습게
볼수 없었다. 그 세번의 칼질중 한번은 때마침 혈도승이 있는 곳
에 적중했다. 혈도승은 눈속에서 온힘을 다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그 뒤쪽은 바닥이 다시 물렁해서 혈도승은 눈 속 깊숙히
빠져 들었다. 육천서는 자신의 세번의 공격을 상대가 뒤로 물러
남으로써 피하리라는 것을 예측하고는 다시 한걸음 나가면서 다
시 세번을 휘둘렀다. 그러나 갑자기 그의 발밑이 다시 꺼지면서
눈속으로 파 묻히고 말았다. 두사람은 눈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는
데 이때 두사람은 눈앞에 아무것도 보지를 못해서 마치 장님이
싸우는 것과 같았다. 두 사람은 발이 딱딱한 곳에 닿자 필생의
공력을 다해서 서로에게 공격을 퍼 부었다. 이때 그들의 머리위
로는 십여장이나 되는 눈이 쌓여 있었다. 두 사람중 한명이 위로
올라가려 한다면 하체를 수비할수 없게 되므로 상대의 공격에
허리가 잘릴 것이기 때문에 상대를 죽이기전에는 아무도 위로 올
라갈수 없는 지경이었다. 적운은 밖이 갑자기 조용해 지자 고개
를 동굴밖으로 내밀어 밖을 살펴보았다. 이때 혈도노조는 어디에
도 없었다. 단지 동굴옆의 바위 옆에 눈이 조금씩 들썩 거릴 뿐
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수대와 화철간이 계속해서 눈속으로 주
목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마침내 혈도노조와 육천서가 눈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수생도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펴 보았다. 아버지는 정신을 모아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
었다.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 감히 크게 외쳐 도움을 청할수
가 없었다. 화, 수 두사람은 어떻게 하든 육천서를 도와 혈도승
을 요절내고 싶었으나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수대가 말했다.
"둘째 형님, 제가 아래로 뛰어 내리겠읍니다."
화철간은 급히 말했다.
"그건 안된다. 그건 안돼! 자네가 눈속으로 뛰어 든다면 어떻게
공격을 할텐가? 눈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혈도
승에게만 공격을 할수 있겠는가 ?"
화철간은 스스로 유승풍을 죽인 것을 생각하고는 마음이 다시 착
잡해졌다. 지금의 이 상황을 그역시 모르지는 않았다. 눈 밑으로
뛰어 든다면 적은 고사하고 자기편조차도 구분할수가 없고 오로
지 마구 무기를 휘둘러대는 방법 밖에 없었다. 것이다. 그렇다
면 혈도승과 육천서 누구를 찌를 것인가는 반반의 확률이었다.
또, 자기가 뛰어 들면 혈도승과 육천서에게 죽음을 당할 확률도
대단히 높았다. 그런데 자기쪽에서 두명의 고수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육천서가 눈속에서 혈도승과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것을
보자니 답답하기만 했다. 이때 계곡아래의 흰 눈의 요동이 멈추
었다. 절벽위의 수대와 화철간, 동굴속의 수생과 적운은 모두 초
조해졌다. 이제 눈밑의 사투는 승부는 났으나 누가 이기고 누가
목숨을 빼앗겼는지는 알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참후, 한 곳에서
흰눈이 천천히 솟아 오르더니 사람의 머리가 솟아 올라왔다. 그
사람은 점점 위로 올라오니 머리카락이 하얗게 보였다. 혈도승은
대머리이니 머리카락이 있을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온
사람은 육천서가 틀림이 없었다. 수생은 기뻐하며 낮은 소리로
환호를 질렀다. 적운은 화가 났다.
"무엇이 좋아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야 ?"
수생은 말했다.
"네놈의 사조는 이제 죽었다. 너 작운 중놈의 생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거야."
적운은 이제 이 세명의 고수에게 사로잡힌다면 자신은 꼼작없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악에 바쳐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다시 떠든다면 내가 먼저 너를 죽여버리겠다."
수생은 흠칫 놀라며 감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혈
도승에게 혈도가 찍힌 이후 음직일수 조차 없었으며 적운은 비록
다리가 부러졌지만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면 아주 쉬운 일이었다.
육천서의 머리는 눈더미 밖으로 나와 이러지리 꿈틀거렸다. 마치
눈속에서 기어 나오려는 것 같았다. 수대와 화철간이 일제히 외
쳤다.
"육대형, 우리가 갑니다!"
두 사람은 몸을 날려 계곡 밑으로 떨어졌다. 깊은 눈속에 파 묻
히는가 했더니 재빨리 기어 나와서 계곡의 바위위로 몸을 날렸
다. 바로 이때 육천서의 머리가 갑자기 푹 눈 속에 빠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두 다리가 다른 사람에게 붙들려서 끌려 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가 눈속에 들어간 다음 아무리 기다려도 머리
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혈도승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수대가 생각해보니 육승풍이 이미 상대의 암수에 걸린
것 같았다.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나면서 또 한개의 머리가
눈속에서 나왔다. 이번에는 머리가 박박 벗겨진 혈도승이었다.
그는 껄껄 웃더니 다시 눈속으로 사라졌다. 수대가 욕을 했다.
"이 악독한 중놈아!"
그는 검을 들더니 몸을 날려 눈속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다. 그때
눈속에서 한개의 머리가 급히 날아왔다. 그것은 몸과 떨어진 머
리였는데 바로 육천서였다. 이 머리통은 수십장을 날아가더니 눈
더미에 떨어져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수생은 눈앞에서
처절한 광경을 보자 혼비백산하여서 소리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수대는 비분강개하여서 길고 큰소리로 외쳤다.
"형님, 당신은 우리 형제들때문에 목숨을 잃으셨읍니다. 이 형
제들은 이제 당신의 복수를 해 드리겠읍니다."
그러더니 잽싸게 몸을 날리려고 했다. 화철간은 급히 그를 잡았
다.
"잠깐! 적 악독한 중놈은 논속 컴컴한 곳에 숨어 있고 우리는 밝
은 곳에 있으니 무턱대고 뛰어 들어간다면 그의 덧에 걸릴 것이
요. "
수대는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화철간은 말했다.
"그는 눈속에서 몇 시간동안 힘을 소비하다가 결국 표면으로 나
타날 것일세. 그때 우리 두사람이 연합하여서 공격하면 나쁜 놈
의 심장을 도려내어 두분 형제의 영전에 바칠수 있을 것이네."
수대의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침착해야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이때 절대로 마음이 약
해져서는 안된다. 적을 앞에 두고 있는데 쓸데없는 생각을 하거
나 마음이 약해질수는 없다.'
그러나 두사람은 수십년간을 사귄 친구인데 오늘 죽어버렸으니
어찌 슬프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또 어떻게 슬픔을 억제할수 있
을 것인가 ? 두 사람은 혈도승이 조금전 솟아 오른 곳을 쳐다보
면서 점점 수생과 적운이 숨어 있는 동굴 옆으로 접근했다. 수생
은 곁눈으로 적운을 쳐다보고 아버지가 몇장정도 더 접근하면 소
리를 내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아버지가 늦지 않게 자
신을 구할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운은 그녀가 자신을 쳐
다보자 그녀의 뜻을 눈치챘으나 짐짓 모른채 했다. 수생은 적운
을 바라보니 눈만 바라보고 있어서 다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순간 적운은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힘껏 졸랐다. 수생
은 깜작 놀라서 외치려고 했으나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았다.
적운의 팔뚝이 이미 자신의 목을 누르고 있어서 숨을 쉴수도 없
었다. 적운은 그녀의 구에 입을 갖다 대고 속삭였다.
"소리치지만 않으면 나는 너를 목졸라 죽이지 않겠다."
그는 이말을 한다음 손에 힘을 조금 풀어 그녀로 하여금 숨을 쉴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비쩍 마르고 무쇠같은 그의 팔뚝은 그녀의
목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수생은 속으로 적운을 수십 수백번 저
주를 하고 있었다. 눈쌓인 계곡에는 아무런 기이한 흔적이 없었
다. 혈도승이 무슨 장난을 하는지 눈속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
었다. 화철간과 수대는 혈도승이 숨도 쉬지 않고 눈속에서 오랫
동안 숨어 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눈속에 들어간 다
음 곧바로 혈도로 큰 동굴을 하나 파서 손으로 다둑거려 견실하
게 만들어 놓아서 공기를 저장할수 있는 곳을 만들은 것이다. 그
리고 매번 호흡이 답답해지면 재빨리 그 동굴에 머리를 넣어서
숨을 쉬었던 것이다. 육천서는 평생을 남쪽에서 살아 평생 눈을
본적도 몇번 없었는데 어찌 이런 요령을 알수 있었겠는가! 그의
내력이 비록 혈도승을 능가했으나 혈도승이 계속해서 공기를 마
시는데 비할수 없었던 것이다. 육천서는 숨이 막혀 더 이상 견딜
수 없자 몸을 날려 솟구치려 하다가 즉시 혈도승의 혈도에 연속
삼도를 하체에 맞고 죽었던 것이다.
수대와 화철간은 오랜 시간을 기다렸으나 혈도승이 나타나지 않
자 더욱 의아해졌다. 수대는 말했다.
"이 중놈은 아마 상처를 입고 눈속에서 죽은 모양입니다."
화철간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육대형님이 그 악승에게 죽임을 당했을때 어
찌 그에게 일격을 가하지 않았겠는가 ? 하물며 악승은 이미 유현
제와도 오랫동안 싸움을 했기 때문에 육대형님의 적수가 되지 못
했네."
수대는 말했다.
"그는 틀림없이 비겁한 방법으로 육대형님을 죽였을 것이요."
수대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비분강개하여 더 이상 억제할수 없다
는 듯이 말했다.
"내가 계곡 아래로 내려가서 살펴 보겠읍니다."
화철간은 말했다.
"그러게, 하지만 조심해야되네. 내가 이곳에서 망을 보겠네."
수대는 손에 장검을 잡고 한숨을 쉰 다음 경곡을 전개해서 바위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 설곡은 사방이 극히 높은 봉우리
로 둘러ㅆ여 있었고 수백년동안 햇빛이 비치지 않았기때문에 계
곡 바닥은 비록 눈으로 쌓여 있었지만 벌써 눈과 얼음이 혼합되
어서 마치 땅과 같았다. 위에서 아래로 뛰어 내리면 그 힘으로
눈더미를 뚫고 들어가지만 경곡을 전개하여 빠르게 걸어가면 눈
속에 빠지지는 않았다. 화철간이 소리쳤다.
"정말 멋있는 경공이네! 수현제, 그 악독한 중놈을 조심하게."
그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푹석! 하는 소리와 함께 수대의 몸 바
로 옆에서 한사람이 눈을 뚫고 나왔다. 바로 혈도노조였다. 그의
두손에는 아무런 병기도 들려 있지 않았다. 혈도승은 외쳤다.
"사내대장부의 싸움은 항상 공평해야 한다. 너의 손엔 검이 들려
있고 나는 빈손이니 너도 어서 검을 버리고 맨손으로 대결해 보
자."
수대가 대답하기전에 화철간이 먼저 소리쳤다.
"네놈같은 악독한 중놈을 죽이는데 무슨 놈의 공평이 필요하겠느
냐 ?"
수대는 이 악승이 가지고 있던 혈도를 틀림없이 육천서와 싸울
대 잃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곡에는 눈이 수십장이나 쌓
여 있었기 때문에 그가 혈도를 찾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혈
도승의 손에 아무런 병기도 존재하지 않자 수대는 어느정도 마음
이 놓였다. 수대는 혈도승이 다시 눈속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
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외쳤다.
"이 악승아 내 딸을 어디에 있느냐 ?"
혈도승은 말했다.
"그 계집애가 숨겨져 있는 곳은 네 놈이 열흘이고 한달을 찾아도
못 찾을 것이다. 만일 나에게 도망갈 길을 열어준다면 내가 즉시
알려주겠다. "
그러면서 발을 계속 음직여 뒤로 물러 섰다.
'잠시 이놈을 속이자. 먼저 딸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겠다. '
수대는 생각하며 말했다.
"이곳의 사방은 날개가 달렸어도 오로지 못할 높은 봉우리에 둘
러 쌓여 있었다. 너를 놓아준다고 해서 네놈이 도망갈수는 없
다."
혈도승은 말했다.
"이곳은 지세가 이상하기 짝이 없으나 나는 이 부근에서 수십년
을 살았기때문에 손바닥 보듯이 알수 있다. 네놈이 만약 나를 죽
인다면 이 계곡에서 나가지 못하고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죽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타협을 해서 함께 이 계곡을 빠
져 나간후 우리의 은원을 청산하자."
화철간은 화가나서 말했다.
"네놈의 말은 믿을 수가 없다. 너는 빨리 무릎을 끓고 투항하거
라. 어떻게 처리하든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말을 하면서 그는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혈도승은 웃으면서 말
했다.
"그렇다면 이 어르신께선 이만 물러가겠다."
그리고 발을 빨리 놀려 동북쪽을 향해 달려갔다.
"어디를 가느냐 ?"
수대는 검을 거머쥐더니 잽싸게 추격했다. 수대는 혈도승
의 바로 뒤로 다가갔다. 갑자기 혈도승이 비명을 지르면서 앞으
로 넘어졌다. 그리고는 눈에 상체를 박고 하체를 허우적거리는
것이 수대가 보니 틀림없이 내공이 고갈된 것으로 보였다. 동굴
속에서 수생과 적운은 확실히 보고 있었다. 하나는 매우 기뻐했
고 다른 하나는 당황하였다. 적운이 눈을 돌려보니 수생의 얼굴
은 기쁨이 넘쳐 있었다. 그가 화가나서 자기도 모르게 팔뚝에 힘
을 주니 수생의 숨통은 다시 막혀버리게 되었다. 혈도승이 쓰러
지자 수대는 기회라 싶어 앞으로 몇발자국 달려 나갔고 화철간도
바위에서 내려가 그쪽으로 달려갔다. 수대는 검을 들어 혈도승의
엉덩이를 향해서 신속하게 내리쳤다. 이 일검은 단숨에 그를 죽
이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도망칠수 없도록 상처를 입혀 수생이
어디에 있는 가를 알아 내고자 함이었다. 그가 장검을 앞으로 두
척정도 내밀고 좌측발을 앞으로 내밀었을때 수대는 갑자기 발밑
이 허전해짐을 느꼈다. 그리고는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구덩이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런 괴변은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것이기에
세사람은 놀랄 시간도 없었다. 화철간, 적운, 수생, 세사람은
수대가 이기려고 할즘에 일순간에 사라진 것을 보았다. 이어서
길다랗고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이 수대가 아래
에서 어떤 이상한 일을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혈도승은 몸을 날
려 일어 났는데 행동이 민첩하기 그지 없었다. 그가 조금전에 머
리를 눈에 박고 허우적댔던 것은 수대를 유인하기 위한 수작이었
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는 일어서서 두발에 힘을 주니 그 부근의
눈이 꺼지면서 눈밑으로 사라졌다. 이어서 재차 눈속에서 뛰쳐
나오더니 한사람을 잡아 집어 던졌다. 그 사람은 피가 낭자했는
데 바로 수대였다. 그의 두다리는 무릎 아래가 잘라져 나가 있었
다. 수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수생은 아버지
의 참혹한 광경을 보자 큰소리로 울려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적운은 너무나 처참한 꼴을 보자 놀랜 나머지 팔뚝에 힘을 주는
것도 잊어 버리고 오히려 손을 풀려 그녀를 위로했다.
"수아가씨, 당신의 아버지는 아직도 죽지 않았소.... 그는 아직
도 움직이고 있소."
혈도승이 좌측손을 휘두르자 한줄기 암홍색의 빛이 번쩍이면서
혈도가 나타났다. 조금전 혈도승이 눈속에서 잠복한후 오랫동안
나오지 않은 것은 암암리에 한개의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장치를
해두느라고 시간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그는 눈구덩이를 판후에
구덩이 밑에 혈도를 세워놓고 수대를 유인하여서 함정으로 빠지
게 한 것이다. 수대도 역시 경험이 풍부했으나 눈밭에서의 싸움
은 처음이라 그만 혈도승의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가 파놓
은 함정속에는 쇠도 끊는 혈도가 놓여 있었으므로 수대의 두다리
가 가볍게 잘라져 버린 것이다. 혈도승은 혈도를 높이 쳐들고는
화철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자 자신이 있으면 이리로 와서 노부와 삼백합만 겨루어보자."
화철간은 수대가 눈밭에서 너무 아픈 나머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참혹한 광격을 보자 겁이 덜컥 나서 감히 맞붙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단창을 치켜세우고 자기 몸을 지키며 한걸음 한걸
음 뒤로 물러섰다. 창의 빨간 술이 계속해서 떨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서움에 떨고 있는 것 같았다. 혈도승은 일갈하며 앞으로
두걸음을 다가왔다. 화철간은 급히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
런데 손이 떨린 나머니 단창을 떨어 뜨리고 말았다. 그는 다시
단창을 급히 주어 들고는 뒤로 물러섰다. 혈도승은 계속해서 3명
의 절정고수와 싸우느라고 기진맥진해 있는 상태였다. 만약 화철
간과 다시 겨룬다면 일초식도 지탱해낼 자신이 없었다. 화철간의
무공은 원래 혈도승에 비해 손색이 없었는데 실수로 유승풍을 죽
이고 육천서와 수대가 잇따라 비참한 꼴을 당하자 기가 크게 꺽
이고 말았다. 혈도승은 그가 이렇게 무서움에 떨고 있는 것을 보
자 의기양양해서 외쳤다.
"허허! 나에게는 칠십이종류의 수법이 있는데 오늘 그중 세개를
써서 이미 세명의 늙은이를 죽였다. 아직도 육십구개가 남아 있
는데 이 모두를 너에게 실험해 보리라."
화철간은 평생을 강호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평소라면 이러한 허
풍에 넘어갈리가 없었으나 지금은 혈도승이 악독한 방법 육십구
개를 자신에게 펼친다고 하자 중얼거렸다.
"육십구개! 육십구개!"
그렇게 생각하니 두 손은 더욱 심하게 떨려 왔다. 혈도승은 이때
내공이 고갈되어서 혈도를 들고 있는 것 조차도 힘겨운 상태였
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조금이라도 드러난다면 즉시 화철간이
덤벼들것이었기 때문에 온힘을 다 내어 혈도를 빙빙 돌리는등 아
직도 힘이 있음을 과시했다. 그는 화철간이 도망칠듯 하다가
시 멈추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간이 콩알만한 놈아! 빨리 도망가라! 빨리 도망가란 말이다! '
그는 이때 이미 화철간이 도망갈 용기조차 없어진 것을 알지 못
한 것이다. 수대는 두다리가 잘려나갔으나 아직 정신은 또렷하여
서 이미 혈도승이 내공이 고갈되고 단지 허장성세를 부린다는 것
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소리를 질렀다.
"화형, 저놈을 당장 공격하십시요. 악독한 중놈은 내공이 고갈되
어서 당신이 그를 죽일려고 한다면 그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
다 쉬울 것이요!"
혈도승은 내심 깜작 놀랐다.
'이 늙은이가 나의 헛점을 간파했구나. 일이 참 더럽게 되어 가
는군.'
그는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맞다! 맞아. 나의 내공은 이미 소실되었다. 우리 저쪽 절벽에서
삼백합만 붙어 볼까? 가지 않는 놈은 겁쟁이이고 후레자식이다."
갑자기 그의 뒤의 동굴에서 수생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아버지, 아버지!"
혈도승은 순간 좋은 계책이 떠 올랐다.
'지금 만약 수대를 죽인다면 내가 약해졌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 된다. 내가 이 계집애를 끌어다가 수대에게 항복을 하라고
권해야겠다. 이 화씨 성을 가진놈은 그렇게 되면 더욱 싸울 힘이
없어질 것이다.'
그는 화철간을 향해 교활하게 웃더니 말했다.
"가겠나 ? 가지 않겠나 ? 우리 한번 오백여합만 붙어 보자고."
화철간은 고개를 흔들며 다시 한걸음을 물러 섰다. 수대는 외쳤
다.
"그와 싸우시오! 그를 찌르시요! 당신은 육형님과 유세째형의 원
수를 잊었단 말입니까 ?"
혈도승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덤벼라! 나는 아직도 예순아홉가지 기술을 펼치지 않았는데 이
제야말로 너에게 그 수법을 써야 겠다."
말을 하면서 그는 산동굴로 들어가서 수생의 머리채를 잡고는 질
질 끌고 나왔다. 그는 그녀를 끌고 나올때 이미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숨길수 없게 되었다. 그는 수생을 수대의 앞에 데려다 놓고
는 외쳤다.
"네놈은 나의 내공이 소멸되었다고 했지. 어디 소멸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보려므나!"
그는 말을 하면서 수생의 우측소매를 잡아 당기니 찍! 하는 소리
가 나면서 소매가 찢어져 나갔다. 눈같이 하얀 팔뚝이 드러났다.
수생은 너무나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혈도를 찍혀 조금도 음직일
수가 없었다. 적운은 동굴에서 기어 나오다가 이런 장면을 보고
는 소리쳤다.
"이 아가씨를... 아가씨를 죽이지 말아요!"
혈도노조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이놈아 걱정 마라. 사조는 절대로 그녀의 목숨을 건드
리지는 않겠다."
그는 혈도를 높이 들어서 수대의 어깨의 살을 한웅큼 도려냈다.
그리고 물었다.
"자, 나의 진기가 소멸되었느냐? 안되었느냐 ?"
수대의 어깨에서는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그는 또 다시 수생의
죄측 소매를 찢어 버렸다. 그리고 수대를 향해서 말했다.
"나를 향해서 할아버지라고 세번 부르면 너의 딸을 희롱하지 않
겠다."
수대는 그의 얼굴을 향해서 침을 뱉었다. 혈도승은 고개를 돌려
침을 피했다. 그러나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는 비틀거렸다. 수대
는 화철간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화형님! 빨리 손을 쓰십시요!"
화철간도 혈도승이 비틀거리는 것을 보았으나 감히 덤비지를 못
했다.
'이놈은 잔꾀가 많으니 비틀거리는 것은 나를 유인하려는 수작일
것이다. 이럴때 일수록 신중해야 한다.'
혈도승은 다시 수대의 좌측 어깨를 혈도로 내려 찍으며 말했다.
"빨리 나를 할아버지라고 불러라!"
수대는 너무나 아파 죽을 지경이었으나 크게 외쳤다.
"나는 죽을지언정 굴복하지는 않는다. 어서 나를 죽여라!"
혈도승은 말했다.
"나야말로 네 놈을 통쾌하게 죽도록 하지는 않겠다. 나는 네놈의
손목을 자르고 살을 한조각 한조각 벗겨서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
를때까지 고통을 주겠다."
수대는 욕을 했다.
"이 제미랄 놈이 개소리만을 나불거리는구나."
혈도승은 그말을 듣고는 외쳤다.
"좋아! 네놈의 딸이 당하는 꼴을 봐야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겠
구나."
그는 말을 하자 수생의 치마를 잡아 찢어 버렸다. 하이얀 허벅지
가 드러났다. 수대는 고통과 절망속에 곧 기절할 것 같았다.
'화형은 겁을 먹고 싸울 엄두조차 내지를 못하는구나. 이 악독한
중놈이 어떤 모욕을 준다 해도 나는 끝까지 버텨서 이 놈과 싸워
야 한다.'
혈도승은 교활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 화씨성을 가진 놈은 이제 곧 무릎을 끓고 살려 달라고 할 것
이다. 나는 이자를 살려주어 앞으로 강호에 나가서 떠벌리게 할
작정이다. 네놈의 딸과 내가 어떻게 알몸으로 껴안고 한몸이 되
었는가를 말이다. 화철간! 너는 항복하겠느냐 ? 암 그래야 착하
지. 항복을 하면 나는 너를 살려 줄것이다. 나 혈도노조는 아직
항복한자를 죽인 적은 없다."
화철간은 이말을 듣자 투지를 더욱 상실했다. 그는 한마음 한뜻
으로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무릎을 끓고 살려달라고 하는 것
을 치욕스러운 일이지만 칼에 살점을 한점 한점 도려냄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싸운다면 전세가 금방 역전되어 적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눈앞의 이 혈도승
이 가공스럽고 악랄하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다. 혈도승은 다시
말했다.
"마음을 놓아라! 네가 졌다고 항복만 한다면 나는 너의 생명을
살려주겠다. 절대로 네놈의 몸에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다."
이 몇마디의 달큼한 말을 들은 화철간은 크게 마음이 놓였다. 혈
도승은 그의 얼굴에 기쁜빛이 역력하자 내심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즉시 수생을 내려 놓더니 그의 앞으로 다가
가면서 말했다.
"대장부란 자고로 때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무릎을 끓을때도
있어야 비로소 크게 펼수 있는 것이야. 네가 투항을 하려면 먼저
그 단창을 나에게 던져라. 자자, 나는 절대로 너의 생명을 건드
리지 않겠다. 나는 너를 내 친구로 여기겠다. 자자, 단창을 버려
라! 단창을 버려!"
그 목소리는 심히 부드러웠다. 그의 몇 마디는 거역하기 힘든 마
력이 있는 것 같았다. 화철간은 손에 힘을 풀더니 단창을 누바닥
에 떨어 뜨렸다. 혈도승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좋아, 좋아! 너는 참 똑똑한 사람이구나. 너의 그 단창은 멋지
군! 어디 한번 보세나. 뒤로 세발자욱 물러서게. 그래 말을 잘
듣는 구먼. 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거야. 마음을 놓아라! 이제 세
발자욱 더 뒤로 물러서거라."
화철간은 그의 말에 따라 뒤로 물러섰다. 혈도승은 천천히 고개
를 숙여서 그 단창을 손에 집었다. 손이 단창에 와 닿았을때 기
진맥진하여서 금세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는 연신 두번이나
내공을 운행했으나 내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내심
깜작 놀랐다.
'조금전 연신 세명의 고수와 싸움을 했더니 정말 힘이 다 소모되
었구나. 아마 열흘이나 보름동안 정양을 해야 원기를 회복하겠구
나.'
비록 강철도 된 단단한 단창을 손에 넣었지만 여전히 그는 마음
이 놓이지 않았다. 만약 화철간이 갑자기 손을 서서 공격해 온다
면 도저히 막아 낼 자신이 없었다. 수대는 화철간이 단창을 버리
고 투항하자 절망감을 맛보았다. 그래서 그는 체념한 표정으로
수생에게 말했다.
"얘야! 빨리 나를 죽여라!"
수생은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 나는... 나는 움직일수가 없어요."
수대는 적운을 향해 말했다.
"ㅈ은이, 좋을 일을 좀 해주게. 나를 좀 죽여주게나."
적운은 그의 뜻을 알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살 수 없으니 이제
고통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느니보다 빨리 죽는 것이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운은 그의 뜻을 따르고 싶었으나 자기가 손을 쓰게
되면 적을 도와준 것이 되기 때문에 혈도승이 격로하여서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머뭇거렸다. 수대는 다시 말했
다.
"생아야. 네가 저 ㅈ은이에게 부탁 좀 해다오. 빨리 나를 죽여
달라고 말이다. 조금 더 지체하면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게 된
다."
수생은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 아버지는 죽으시면 안되요. 죽으시면 안되요."
수대는 화가 나서 말했다.
"나는 지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 너도 지금까지 보아 오
지 않았느냐 ?"
수생은 깜작 놀라며 말했다.
"네, 네 아버지. 저도 아버지와 함께 죽겠어요."
수대는 다시 적운을 향해서 애원했다.
"대사님, 자비를 베푸셔셔 나를 빨리 죽여 주십시요. 내가 이렇
게 악독한 중놈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할 수도 없고 내 딸이 그에
게 능욕을 당하는 것은 차마 눈뜨고 볼수가 없구려."
적운은 수대의 영웅적이 기개를 보고 심히 탄복했다. 이때 마음
속에서 점점 의협심이 서서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그래서 좋
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읍니다. 내가 당신을 죽여드리겠읍니다. 노화상이 화를 내도
저는 두렵지 않읍니다."
수대는 마음이 놓였다. 그는 비록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지만 심
기는 흩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수대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큰 소리로 당신을 욕할테니 당신은 단번에 나를 죽여버리
십시요. 그러면 저 늙은 화상은 당신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러더니 적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큰 소리로 욕을 했다.
"이 음탕한 어린 중놈아! 네놈과 저 늙은 중놈은 지옥에 갈 것이
다! 네놈이 만약 약간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빨리 혈도문을
벗어나야 한다. 이 작은 중놈아. 이 못된 후레자식 놈아. 너는
빨리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는 좋은 사람이 되거라."
적운은 그의 욕지거리속에 권계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을 알고 마
음속으로 감격했다. 그는 몽둥이를 공중에서 몇번 휘둘렀으나 좀
처럼 내리칠수가 없었다. 수대는 마음이 더욱 초초해졌다. 곁눈
으로 보니 화철간이 무릎을 휘청거리더니 눈 밭에 끓어 앉아서
혈도승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혈도승은 몸에 남아 있던
내력을 모아서 화철간의 등뒤에 있는 영대혈을 내리쳤다.
이 혈도를 찍느라 온몸의 힘을 다 소비했기 때문에 찍자마자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화철간은 혈도가 찍히자 나뒹굴렀
다. 혈도승 역시 두 무ㄹ을 끓고 천천히 땅에 대더니 꺼구러 졌
다. 수대는 화철간이 쓰러지자 마음속이 시큰해져 왔다. 자기가
죽으면 수생을 보호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암암리에
탄식했다.
'가련한 내 딸아.'
그는 이어서 적운을 노려보면서 욕을 했다.
"이 개같은 놈아. 너는 어째서 나를 죽이지 않느냐?"
적운은 화철간이 쓰러진 것을 보고 내심 혈도승이 금방 달려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입술을 깨물고 있는 힘을 다하여
서 막대기를 휘둘렀다. 수대의 머리통이 파괴되면서 일대 대협은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갔다. 수생은 울면서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그러더니 정신을 잃었다. 혈도승은 수대가 죽기직전에 욕을 해대
자 적운이 화를 참지 못하고 그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화
철간을 제압한 이상 수대가 죽던 살던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
각했다. 형세가 이렇게 돌아가자 그는 득의양양하게 마음을 놓고
길게 웃었다. 그러나 자기의 웃는 목소리는 심히 이상했다. 단지
아아악, 소리만 날뿐 목이 쉬어서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두 무
릎은 갈수록 힘이 빠져 휘청휘청 몇걸음 앞으로 나가더니 결국
눈바닥에 털썩 주저 앉고 말했다. 화철간은 이런 상황을 보게되
자 크게 후회가 되었다.
'수대의 말이 맞았군. 이 악독한 중놈은 정말로 진기가 소멸되었
구나. 진작 이럴줄 알았다면 단숨에 이놈을 요절내는 것인데. 내
가 어찌 이렇게 겁이 많아서 이런 꼴이 되었는가!'
자기는 수십년동안 중원의 대협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이 용서받
지 못할 적에게 무릎을 끓고 살려달라고 애걸했으니, 수치심이
물밀듯이 밀어 닥쳤다. 이때 그는 혈도를 찍혔는데 그 혈도를 풀
기 위해서는 반나절은 걸릴 것 같았다. 혈도승이 만약에 진기가
소멸되지 않았다면 자신을 죽이지 않겠지만 그의 진기가 소멸되
었으니 그가 힘을 차리는 즉시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았
으나 어찌 힘을 써볼 도리가 없었다. 그때, 혈도승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적운아. 이자를 빨리 죽여없애라. 이자는 간사하고 악독하기 그
지 없어서 살려 둘수가 없다."
화철간은 외쳤다.
"당신은 나의 목숨을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소, 당신은 절대로 항
복하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고 해놓고 어찌 일구이언을 하는 것이
요."
그는 항변해봤지만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러나 큰 재난이 다가오자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것이었다.
혈도승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혈도문의 고승들은 신의 라는 두 그글자를 마치 개똥과 같
이 여기지. 네놈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살려달라고 한 것은
네놈 스스로가 나의 덫에 걸린 것이야. 하하하! 적운아, 이자를
단칼에 처치해 버려라. 이놈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다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는 화철간에 대해 단단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조금전 혈도를
찌를때 그의 내공은 평소의 일할도 되지 않아서 화철간의 무공이
높기 때문에 금세 그 혈도를 풀수 있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혈도승은 그에게 사로잡힌 고기 신세가 되는 것이
다. 적운은 혈도승의 내력이 이미 소실되었음을 모르고 달리 생
각했다.
'내가 조금전에 수대협을 죽인 것은 그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
기 위함이였다. 이 화대협은 멀정한데 내 어찌 그를 죽일수 있겠
는가.'
그는 즉시 말했다.
"그는 이미 사조님께 제압당했는데 굳이 죽일 필요가 있겠어요?"
화철간은 급히 말했다.
"그렇소. 그렇소! 이 대사님의 말씀이 옳소. 나는 이미 당신에게
제압을 당했고 조금도 반항할 마음이 없소. 꼭 나를 죽여야할 필
요가 있겠소 ?"
수생은 기절한 상태에서 점점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울면서 외
쳤다.
"아버지! 아버지!"
그녀는 화철간이 염치없고 비굴한 것을 알고 그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흥, 화백부, 당신은 무림에게 이름이 쩌렁쩌렁한 인물인데 어째
서 이렇듯 자기의 체면을 지키지 않나요? 눈앞에 나의 아버지가
처참한 꼴로... 아버지가.... 아버지가..."
여기까지 말하자 설움이 복받혀 말을 잊지 못했다. 화철간은 말
했다.
"이 두분의 대사님들의 무공이 출중하여서 우리들로서는 이길수
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순종하고 그들의 명령을 받을어
야 하는 것이다."
수생은 다시 욕을 했다.
"ㅌ! 이 더러운 놈! 끝까지 명예를 지키지 못하는 놈아!"
혈도승은 시간이 지나면 그만큼 위험이 뒤따를 것이라고 생각했
다. 지금 자기는 약간의 힘도 쓸수가 없었다. 몸을 지탱하여 걸
음을 옮기려 해도 움직일수가 없었*다.
"얘야! 착하지? 이 사조의 말을 듣거라. 빨리 이자를 죽여러버려
라."
수생은 고개를 돌려보니 아버지의 머리가 피로 물들어 있었으며
그 모습은 매우 처참했다. 자기 아버지가 평시 자기를 몹시 사랑
하였는데 비참하게 죽은 걸 보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때
너무 애통한 나머지 적운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로 보였다. 마음
속으로 분개하여 그녀는 참을 수가 없었다. 슬픔이 억제되지 못
하자 갑자기 단전에서 한줄기 강렬한 내공이 솟구쳐 올라왔다.
내공을 끌어 올려서 혈도를 푼다는 것은 대단히 난해한 무공이라
서 무림에서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화
철간도 단지 초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수생은 어림
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은 재난에 직면하게 되면 체태에 잠재해
있던 힘이 폭팔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수생이 지금 그런 경
우였다. 단전에서 솟구쳐온 기가 막힌 혈도에 강렬한 충격을 주
자 혈도는 금세 풀려 버리고 말았다. 그는 몸을 음직일수 있게
되자 즉시 하나의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는 적운을 향해 내리쳤
다. 적운은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며 중요한 급소는 막을수가 있
었으나 다른 부분은 수생의 나무에 맞아서 퉁퉁 부어 올랐다. 그
는 손을 내밀어 막대기를 막으면서 외쳤다.
"너는 나를 왜 때리느냐? 너의 아버지가 나보고 죽여달라고 한
것이다."
수생은 흠칫 하더니 힘이 빠졌는지 땅바닥에 털싹 쓰러져 목놓아
울었다. 혈도승은 적운의 말을 듣고는 아까의 상황을 다시 생각
해보니 적운이 수대를 도운 것을 알게 되어서 몹시 화가 났으나
몸을 음직일수가 없었다. 그는 즉시 내색도 하지 않고 적운에게
말했다.
"얘야! 착하지? 이 계집이 더 이상 행패 부리지 못하게 잘 감시
하고 있었라. 계집은 너의 것이니 이 사조도 건드리지 않겠다. "
화철간도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외쳤다.
"수질녀, 이리 오너라. 내가 할 말이 있다!"
그는 지금 혈도승은 기운이 빠져 아무 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네사람 중에서 혈도승은 진기가 소멸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자신도 혈도를 찍혀서 몸이 마비되었으며 적운은 다리가
부러져 있었으니 수생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서 그는 이 기회를 틈타서 두 명의 중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생은 그의 비굴함과 연약함을 보고 혐오감이 뼈에 사무
쳐 있었다.
'만약 당신이 창을 버리고 투항하지만 않았다면 나의 아버지는
절대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화철간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들은 체를 하지 않았다.
화철간은 다시 말했다.
"수질녀, 네가 만약 이 곤경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지금이 바
로 좋은 기회이다. 이리 와라. 내가 할 말이 있다."
혈도승은 화가나서 말했다.
"너는 왜 그리 시끄럽게 떠드느냐? 더 이상 주둥이를 놀린다면
나는 너를 죽여버리겠다."
수생은 화가나서 말했다.
"할말이 있으면 하세요. 왜 오라가라 하지요 ?"
화철간은 내심 생각했다.
"저 늙은 중놈은 지금 내공을 운행시켜 내력을 회복하고 있는 중
일 것이다. 그가 만약 약간의 힘이라도 찾는다면 나는 그의 단칼
에 죽어 버릴 것이다. 시간이 너무 급하다. 내가 빨리 말을 할수
있다면 좋을 텐데."
생각을 하니 그는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수질녀, 너는 저 늙은 노화상을 보아라. 진기가 소멸되어서 서
지도 못하다 땅바닥에 엎드려서 음직이지도 못하지 않느냐?"
그는 혈도승이 지금 힘이 없지만 감히 그의 노여움을 사고 싶지
않아서 노화상이라고 정중하게 불렀다. 수생은 혈도승을 바라보
니 땅바닥에 쓰러진 채 낭패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
고 있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는 생각이 들자 화철간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즉시 나무가지로 혈도승을
향해서 내리쳤다.
혈도승은 화철간이 계속해서 수생을 오라고 불러대는 소리를 듣
자 이미 그의 마음을 추측하고 마음이 초초해졌다. 그는 또 다시
내공을 모으려 했으나 단전은 텅비고 몸은 조금전보다 더욱 허약
해져 있었다. 수생의 손에 들려있던 나무막대기는 이미 혈도승을
향해 쳐 내려왔다. 수생이 사용하는 병기는 장검이었으므로 본래
막대기를 사용할 줄을 몰랐다. 더우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마음이 급해 아무런 규칙도 없이 막대기를 휘두르느라고 그만 겨
드랑이 밑에 커다란 빈틈을 노출하고 말았다. 혈도승은 몸을 약
간 피하고 손에 들고 있던 화철간의 단창을 내밀려고 하였다. 그
러나 내밀 힘이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억지로 창끝을 수생
의 겨드랑 밑의 대포혈을 겨냥하고만 있었다. 수생은 너무나 비
분한 나머지 그의 행동을 주의하지도 못하고 다가가 막대로 혈도
승의 얼굴을 내리치려 했으나 겨드랑 밑이 뜨금하면서 다시 사지
의 힘이 빠져 자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막대기는 계속해서 떨어
져서 혈도승의 얼굴을 때려 얼굴 얼굴가죽이 벗겨졌다. 혈도승은
막대기를 맞자 기절할 지경이었으나 수생이 넘어져서 꼼작도 못
하는 것을 보고는 의기양양해져서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이 날도둑놈 같은 화씨놈아! 네놈이 나의 힘이 쇠진되었다고
말했지 ?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 계집의 혈도를 찍을 수 있었겠
느냐 ?"
그가 창끝으로 수생의 혈도를 찌른 수법을 화철간은 자세히 보
지 못해서 수생이 스스로 창끝에 혈도를 갖다 댄것은 모르고 혈
도승의 내력이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화철간은 급히 말했
다.
"노선배의 신공은 대단하십니다. 저와 같은 범부는 우물안의 개
구리입니다. 저는 생각지도 못했읍니다. 노선배님의 이런 깊은
신공은 이 세상에도 둘도 없으며 정말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침이 마르도록 혈도승을 칭찬하였다. 그러나 말소리는 두
려움에 떨고 있었다. 혈도승은 비록 잠시 화를 당하는 것을 면했
지만 수생이 혈도를 찍힌 것은 자기의 손가락 힘에 의한 것이 아
니어서 경력이 깊은 곳에 침투해 들어가지 못했으므로 얼마 안
있으면 그녀의 혈도가 풀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행
운은 앞으로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만약에 칼을
집어 자기를 죽이려고 덤빈다면 이번에 다시 창끝으로 그녀의 혈
도를 찍는다고 해도 자기의 머리는 얼굴가죽이 벗겨지는 것이 아
니라 완전히 몸과 떨어질 것이다. 반드시 짧은 시간에 빨리 내공
을 회복하여서 그녀의 혈도가 풀어지기전에 죽여야만 했다. 그러
내 내공이란 억지로 끌어올릴려고 하면 몸만 해칠 뿐이었다. 그
래서 혈도승은 눈밭에 누워서 천천히 내공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대는 그는 다리를 꼬고 앉고 싶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을 감을수도 없었다. 세사람이 자신에 불리한 어떤
행동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적운은 머리, 어깨, 팔, 발, 모든
것이 너무나 아파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러니 입을 꽉 다물고 신
음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어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
하고 있었다. 수생이 누워 있는 곳은 혈도승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고 다급했다. 혈도승은 곧 이어
자기에게 손을 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난
후에도 그가 음직이지 않는 것을 보자 수생은 약간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수생은 비통하기 짝이 없었다. 체력이 지탱할수 없
자 결국은 정신을 잃었다. 혈도승은 내심 기뻐했다.
'잠을 자거라. 잠을 자. 몇시간동안 잠을 잔다면 나는 더욱 좋
다.
그렇다면 만사가 해결되는 것이야.'
이런 한순간 한순간을 화철간은 모두 간파하고 있었다. 적운이
마음이 약해서인지 자기를 죽일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사는 오로지 수생이 혈도승보다 먼저 행동하여서 혈도승을 죽
이는 길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생이 점차 정신을 잃어가
자 화철간은 급히 외쳤다.
"수질녀! 수질녀! 절대로 잠을 자서는 안된다. 이 두 놈의 중놈
들이 너를 해칠려고 한다."
그러나 수생은 혼미한 상태에서 신음소리만 두번을 냈다. 화철
간은 크게 외쳤다.
"큰일났다! 큰일 났다! 빨리 정신을 차려라! 악승이 너를 해칠
려고 한다."
혈도승은 대노하여서 생각했다.
'이렇게 외쳐 이 계집애를 깨운다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
그래서 적운을 향해 말했다.
"얘야, 저 늙은이를 죽여 버려라!"
적운이 말했다.
"이 사람은 이미 항복했는데 죽일 필요까지 있겠읍니까 ?"
혈도승은 말했다.
"그가 어디 항복을 하였느냐 ? 너도 들어봐라. 그가 떠드는 소
리를, 우리를 죽일려고 하지 않느냐 ?"
화철간은 말했다.
"ㅈ은이, 당신의 사조는 흉악하기 그지 없소, 그러니 그가 지금
진기가 모두 소멸되어서 행동할수 없으니 비로서 당신보고 나를
죽이라고 하는 것이오. 좀 있다가 그의 내공이 회복된다면 당신
이 사부의 명을 듣지 않았다고 당신을 죽일것이요. 그러니 먼저
손을 써서 그를 죽이는 것이 상책이오."
적운은 말했다.
"그는 나의 사조가 아닙니다. 단지 나를 구해준 은혜가 있고 내
가 은덕을 입은 것 뿐이오. 그런데 어찌 그를 죽일 수가 있겠읍
니까 ?"
화철간은 말했다.
"그가 당신의 사조가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빨리 손을
쓰십시요. 한시라도 지체할수가 없읍니다. 혈도문의 중들은 잔인
하고 흉악하기 그지 없고 절대로 용서해주는 법이 없읍니다. 당
신은 살고 싶은 마음이 없읍니까 ?"
적운은 매우 초초했다. 그의 말투가 맞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혈도승을 죽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그는
화철간의 계속되는 권고를 듣자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계속 떠드는다면 나는 당신을 먼저 죽이겠소."
화철간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단시 수생이 혈도승보다 빨리 깨어나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잠시후 그는 다시 크게 외쳤다.
"수생아! 수생아! 너의 아버지가 살아 돌아 오셨다. 너의 아버
자기 오셨어!"
수생은 꿈속에서 희미하게 너의 아버지가 살아서 올라 왔다는
외침소리를 듣자 마음이 기뻐 금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화철간은 말했다.
"얘야, 너는 그에게 어떤 혈도를 찍혔느냐 ? 이 악승은 이미 아
무런 힘이 없다. 설령 혈도를 찍혔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
다. 내가 너에게 호흡하여 혈도를 푸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
수생은 말했다.
"나의 좌측 겨드랑이의 근골이 마비되어 음직일수가 없읍니다."
화철간이 말했다.
"그것은 대포혈이다. 풀기는 매우 쉽지. 너는 숨을 한번 크게
쉬고 의도적으로 단전을 막고 있다가 천천히 내공을 몰아 너의
좌측 겨들랑 밑에 있는 대포혈을 뚫어라. 뚫은 다음에 너는 아버
지의 복수를 할수가 있다."
수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렇게 하겠읍니다. "
그녀는 비록 화철간에 대해 화가 나 있었으나 그는 자기의 편이
지 적이 아니었다. 그의 가르침은 자기에게 매우 유리했다. 수생
은 재빨리 숨을 크게 한번 쉬고 단전에 있는 내공을 의도적으로
한번 막았다. 혈도승은 눈을 떠 그녀의 동태를 주시했다. 그녀는
화철간의 말을 듣고난 다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혈도승은
내심 아뿔사! 하고 외쳤다.
'이 계집애가 이미 고개를 끄덕였으니 혈도에 충격을 주어 아마
향 하나가 타는 시간이면 행동할 수 있겠구나.'
그는 즉시 눈은 코끝을 보고 코끝을 단전을 향하는 식으로 수생
이 혈도를 풀수 있을지 없을 지를 상관하지 않고 뱃속의 한줄기
진기를 천천히 끌어 모으고 있었다. 이때 수생의 봉쇄된 혈도는
내공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천천히 풀어졌다. 그녀가 진기를 가
지고 충격을 주지도 않았는데 얼마 있지 않아 그녀의 허리가 음
직이기 시작했다. 화철간은 말했다.
"수생아, 됐다! 너는 그런 방법으로 계속해서 혈도를 풀어라.
그러면 일어설 수가 있을 것이다."
수생은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손과 발이 마비되었던 손과 발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한숨을 크게 쉬더니 천천히 몸
을 지탱하여 똑바로 앉았다. 화철간은 외쳤다.
"잘한다! 조카, 너는 일거일동에서 모두 나의 말을 들어라! 절
대로 차례가 틀려서는 안된다. 너의 하나하나의 행동은 매우 긴
요하고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복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첫
번째로 땅바닥에 있는 혈도를 주워 들어라."
수생은 천천히 바닥에 손을 집어 혈도를 주어 들었다. 적운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그녀가 다음 차례로 혈도를 휘둘러 혈도승의
머리를 찌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혈도승은 두눈을 꼭 감
고 눈 앞의 위험한 상황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혈
도승은 이때 손과 발에 점차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앞으로 반시진 정도만 더 있으면 강적을 당해내지 못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행동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수생이 먼저 혈
도를 집어 들어 위험이 닥치자 즉시 전신의 모든 내공을 우측팔
에 집중 시켜 놓았다. 화철간의 외침소리가 들렸다.
"둘째로는 먼저 저 어린 중놈을 죽여버려라. 빨리, 빨리 저 어
린 중놈을 죽여라!"
이런 외침은 적운, 수생, 혈도승에게 모두 의외였다. 화철간은
외쳤다.
"늙은 중은 아직도 음직일 수 없으니 먼저 저 어린 중놈을 죽이
는 것이 급선무다. 만약 늙은 중이 먼저 죽는다면 저놈은 너와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수생은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혈도를 들고 적운의 앞으로
갔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나의 아버지를 도와 아버지가 저 늙고 악독한 중놈에게
모욕당하지 않도록 해 주었다. 내가 그를 죽여야 하나? 살려주어
야 하나 ?'
이렇게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결심했다.
"물론 죽여야지!"
그러더니 혈도를 적운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적운은 급히 몸을
굴려 뒤로 피했다. 수생은 두번째 칼을 또 다시 내리쳤다. 적운
은 또 한번 몸을 굴려 피했다. 그녀가 세번째 칼을 내리치려 할
때 갑자기 손목이 죄여 오더니 혈도를 다른 사람이 낚아 채어갔
다. 그녀의 병기를 빼앗은 자는 바로혈도승이었다. 그는 힘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헛손질을 할수가 없어서 단번에 그의 칼
을 빼앗아야만 했다. 혈도승은 혈도를 성공적으로 빼앗자 더 생
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수생은 너무 갑작
스러운 일이라 피할시간도 없었다. 적운은 외쳤다.
"더 이상 사람을 해치지 말아요."
그러더니 앞으로 달려가 아까 수생의 공격을 막고자 들었던 나
뭇가지로 혈도승의 팔목을 후려쳤다. 평소의 혈도승이라면 어찌
이 일격이 성공할수 있었겠는가만, 혈도승의 지금은 몸이 너무나
허약해서 그 나뭇가지를 맞고는 손이 벌어지면서 혈도를 떨어 뜨
렸다. 두 사람은 동시에 허리를 굽혀서 혈도를 주우려 했다. 적
운의 손이 아래에 있었기에 적운이 먼저 혈도에 손이 닿았다. 혈
도승은 그러자 재빨리 적운의 목을 잡아 죄기 시작했다. 적운은
숨을 쉴수가 없자 혈도를 놓고는 용을 써서 혈도승의 손에서 빠
져 나오려 했으나 혈도승도 마지막 힘을 짜내어서 적운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혈도승은 이미 적운이 자신을 죽이려는 흑심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혈도문의 규칙대로 적운을 먼저 죽
이려고 생각했다. 화철간은 한 두시간은 음직일수가 없었고 수생
은 여자이므로 쉽게 대응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오로지 적운을 죽
이기 위해서 온몸에 남아 있는 힘을 써서 적운의 목을 졸랐다.
적운은 숨을 쉴수가 없자 얼굴이 새파랗게 되었으며 두 손의 맥
이 풀려갔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가 떨구어져 갔다. 그는 속으
로 부르짖었다.
"나는 죽는구나! 나는 죽는구나!"
수생은 처음에 두 사람이 눈앞에서 싸우는 것을 보았다. 적운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일어난 사태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두명의 악승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이 제일좋은 일이라고
적운은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후에 보자 적운의 고개가 떨어지고
반격할 생각도 못하는 것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깜작 놀랐다.
'이 늙은 중이 저 작은 중을 죽인 다음 바로 나를 죽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찌하면 좋을까 ?'
이때 화철간이 외쳤다.
"수생아, 이것은 절호의 기회이다. 빨리 혈도를 집어 들어라!"
수생은 그의 말대로 혈도를 집어 들었다. 화철간이 또 외쳤다.
"어서가거 저 두놈의 중놈을 죽여버려라!"
수생은 혈도를 거머쥐고 앞으로 몇바자욱 다가가 그 혈도승을
죽이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혈도승과 적운의 몸은 한데 어울
려 있었다. 이 혈도는 예리하기 그지 없는데 단칼에 틀림없이 두
사람을 한꺼번에 죽여 버릴 것이다. 이 어린 중이 비록 사악했지
만 조금전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는 없었
다. 그녀는 틈이 벌어지면 즉시 혈도승을 죽이기로 했다. 주춤거
리고 있을대 화철간이 다시 외쳤다.
"빨리 내리쳐라. 조금만 지체한다면 절호의 기회를 놓칠것이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한다. 그것은 지금 이순간에 달
려 있는 것이다."
수생은 말했다.
"두명의 중이 함께 붙어 있어서 떼어 놓을수가 없읍니다."
화철간은 화가 나서 말했다.
"너는 정말 멍청하구나! 나는 두사람을 한꺼번 죽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
그는 무림중에 이름이 난 영웅이였고 강서 응조철장문의 장문으
로 평소에는 턱으로 모든 것을 명령하고는 했다. 그는 지금 자기
가 음직일수 없다는 것을 잊어 먹고 있었던 것이다. 수생은 마음
속으로 그를 매우 멸시하고 있었는데 그가 그렇게 나오자 더욱
화가나자 오히려 뒤로 물러나면서 말했다.
"흥! 당신은 영웅호걸이구만요! 그런데 조금전 어째서 이 악승
과 한번 겨루어보지도 않고 항복했지요? 당신이 죽일수 있다면
해 보시지요!"
화철간은 그말을 듣자 상황이 엉뚱하게 나간다는 것을 느끼고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얘야, 조카야, 이 아저씨가 너무 말을 함부로 했구나. 절대로
화를 내지 말아라! 네가 가서 저 중놈을 죽이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면 이 일이 멀리 퍼져나가서 그 누구나 수여협의 효성과
의로움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그가 추켜세울수록 수생은 화가 났다. 화철간을 ㅎ어 보더니 다
시 앞으로 나아가서 혈도승의 머리를 겨낭하고 다시 두번의 칼질
을 하려고 했다. 혈도승은 적운의 반항이 약해지자 마음의 여유
를 가지고 수생의 음직임을 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다시 등뒤로
다가오자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너는 조심해서 내 등에 칼을 꽂아라. 잘못해서 이 소화상이 상
처를 입지 않게 조심해라."
수생은 깜작 놀랐다. 그녀는 혈도승에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가 자기보고 등뒤를 찌르라고 하자 내심 무슨 흉계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고는 칼을 내리칠수가 없었다. 적운은 혈도노
조에게 목을 잡힌후에 폐속에 모아져 있던 탁기를 내뿜을수가 없
자 탁기는 몸안에서 좌충우돌했다. 일반사람이라면 끝내는 질식
해서 죽을 것이지만 그는 기절하지도 않았고 전신에 말할수 없는
고통만 느끼고 있었다. 그는 내심 외쳤다.
"나는 죽는구나! 나는 죽는구나!"
갑자기 그의 가슴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몸속
에 있던 가운이 갈수록 팽창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뜨거워짐을
느꼈다. 마치 솥속에 증기가 가득 차 빠져나갈 수멍이 없자 금방
이라도 폭발하려는 것과 같았다. 그는 갑자기 전음후음(前陰後
陰) 사이의 회음혈(會陰穴)에 마치 뜨거운 공기가 놓이면서 작은
구멍이 하나 생기는 것 같음을 느꼈다. 삽시간에 열기가 회음혈
을 통하여서 척주끝에 있는 장강혈(長强穴)로 뻗치는 느낌이 들
었다. 사람 몸의 회음, 장강 두혈은 불과 수촌의 거리였지만 회
음은 임맥(任脈)에 속하고 장강은 독맥(督脈)에 속하므로 두 맥
의 내공은 절대로 혼합될수가 없었다. 자기의 몸속에 있던 내공
과 몸 밖의 내보낼수 없었던 한줄기 거대한 탁기가 혼합되면서
위급한 상황하에서 스스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서 충격을 가하
고 맹공을 하여 그의 임맥과 독맥의 어려운 난관을 관통시켜 주
었던 것이다. 이 내공이 장강혈을 통해 들어오게 되자 삽시간에
요유(腰兪), 양관(陽關), 명문(命門) 같은 여러 개의 혈에서부터
계속해서 척추를 따라 올라가 등의 임맥과 독맥의 중요혈을 지나
서 척중(脊中), 중극(中극), 근축(筋縮), 지양(至陽), 영대(靈
坮), 대추(大椎), 아문(아門), 풍부(風府), 뇌후(腦后), 강간(强
間), 후정(後頂)을 지나서 정수리의 백회혈(百會穴)에 이르렀다.
적운은 감옥에 있을때 신조경의 기초를 익혀서 그 심법을 잘 알
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신조경은 매우 난해한 무공이라서 정전이
지도하고 적운이 평생동안 노력한다해도 연마 할수 있을지는 미
지수였다. 그러나 지금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임매과 독맥이 뚫리
면서 신조경이 연성된 것이다. 임맥과 독맥이 뚫렸던 이유는 첫
째로 그의 목에 막혀 나가지 못했던 기가 나갈길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고, 두번째로 그가 혈도경을 연마한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신조경의 내공 운행법과 달랐지만 돌파력을 보조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척주를 타고 머리까지 올라온 내공이 백회혈에 다다르자
얼굴에 차가운 감각이 들었다. 이 차가운 기는 이마에서 코로,
코에서 입술로, 그리고 입술 아래의 승장혈(承장穴)에 도달했다.
이 승장혈은 임맥에 속하므로 독맥에서 임맥으로 자연스레 돌아
가는 교착점이었다. 임맥의 여러혈은 모두 몸의 앞에 있었으므로
이 차가운 내공은 계속해서 염천(廉泉), 천돌(天突)에서 천기(천
璣), 화개(華蓋), 자궁(紫宮), 옥당(玉堂), 천중(天中), 중정(中
廷), 구미(鳩尾), 거궐(巨闕), 상원, 중원, 하원(下阮)을 거쳐서
수분(水分), 신궐(神闕), 기해(氣海), 석문(石門), 관원(關元),
중극(中極), 곡골(曲骨)의 여러 혈을 거쳐서 다시 회음혈로 돌아
왔다. 그렇듯 내공이 몸을 한바퀴 돌자 답답하던 기운이 가시고
몸이 편안하기 그지 없어졌다. 내식이 처음 통했을때는 고통스러
웠으나 임맥과 독맥이 통하자 한번 뚫렸던 길이라 두번 세번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운행이 되고 순식간에 열여덟번이나 돌렸다.
신조경은 최고의 기공이었다. 그것을 옥중에서부터 연마하기 시
작한 이후로 이렇듯 내식이 통하게 되자 그의 경력은 급격히 증
가하여서 머리카락도 힘에 서버릴 지경이 되었다. 혈도승은 그의
열손가락 안에 잡혀있는 사람의 몸속에 이렇듯 큰 변화가 일어날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수생의 음직임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적운의 체내에서 경력이 급격히 증가하자 그 자신도 겁이 나고
있었다. 그는 좌측발을 몇번 걷거 찼는데 한발이 그만 혈도승의
아랫배에 적중하고 말았다. 이 걷어찬 힘은 무서워서 혈도승의
내공이 소진되지 않았다고 해도 견딜수가 없었을텐데 하물며 지
금 그의 내공은 거의 소멸되어 있지 않은가! 혈도승의 몸이 마치
구름처럼 하늘을 날아서 공중에서 한바퀴 돌더니 눈더미에 머리
를 박고 떨어졌다. 수생과 화철간은 놀람의 비명을 질렀다. 혈도
승은 머리부터 허벅지까지 눈속에 묻혀 버리고 발만 눈위로 나와
있었다.

2. 깃털로 만든 옷 (羽衣)

수생과 화철간은 그런 광경을 보고 멍청해 졌다. 적운은 꽉 조여
있던 목이 풀리자 몇번 숨을 헐떡 거리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부러진 우측다리를 생각지 못하고 짚었으므로 통증에 자신
도 모르게 아이쿠!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나뒹굴었다. 그는 급히
우측 손으로 급히 땅을 짚고 좌측발로 의지해서 다시 일어났다.
혈도노조의 두발이 하늘을 향해 쳐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눈
을 비비고 살펴보았다. 혈도노조는 틀림없이 눈속에 머리를 박고
꼼작도 하지 않았다. 수생은 적운이 몸을 날려 일어났을 때 자기
를 해칠까봐 혈도를 가슴앞에 들고 뒤로 몇 발자욱 물러서서 그
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민망해 보였다. 갑자기
화철간의 칭찬하는 말이 들렸다.
"ㅈ은 대사님, 당신의 무공은 대단하십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을 것입니다. 한발로 저 늙고 추악한 중을 차죽였으니 아
마 그 발에 실린 무게는 천여근은 될 것입니다. 이런 의로운 행
동은 정말 많은 사람들로부터 흠모를 받아 마땅합죠."
수생은 이말을 듣더니참지 못하고 꾸짖었다.
"제발 닥치세요! 듣자듣자 하니 정말 구역질 나는군요."
화철간은 말했다.
"혈도승은 간악하고 사악한 놈이고 모든 사람이 그를 죽이려고
했던 참이다. ㅈ은 영웅께서 의를 위해서 자기의 사조를 죽였으
니 그 늠름한 기개를 어찌 우러러보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정
말 대단하십니다. 대단해요. 만백성이 축하할만한 일이외다."
그는 혈도승의 두다리가 뻣뻣하게 굳어 틀림없이 죽었으리라고
생각하자 즉시 말투를 바꿔 적운을 치켜세우고 있는 것이였다.
사실 그의 사람됨이 지금은 비록 간사했졌지만 평생동안 의로운
일만 행하고 악한 일은 하지 않았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육
천서, 유승풍, 수대등 세사람과 십 여년동안 교분을 쌓고 마치
형제처럼 지낼 수 있었겠는가 ? 그러나 오늘 어쩌다 실수를 하여
유승풍을 죽이게 되자 마음속에 큰 충격을 받아 평시의 호탕한
기개가 모두 사라졌던 것이다. 게다가 혈도승에게 괴롭힘을 당하
자 수십년동안 마음속에 잠재하고 있던 비굴한 마음이 자기도 모
르게 겉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적운은 말했다.
"내가 ... 내가 그를 발로 차 죽였다는 말씀이오 ?"
화철간은 말했다.
"물론입죠. 소영웅께서 믿지 못하겠다면 먼저 그의 두다리를 자
른 다음 꺼내 보십시요."
적운은 수생을 한번 쳐다보았다. 수생은 그가 자기 수중에 들려
있는 혈도를 빼앗으려는 줄 알고 깜작 놀라 뒤로 한 발자국 물러
섰다. 적운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렇게 무서워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오.
조금전 당신이 나와 저 노화상을 한꺼번에 단칼로 내리치지 않아
서 감사드립니다."
수생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화철간
은 말했다.
"조카야! 이것은 너의 잘못이고 소영웅께서 성심성의껏 너에게
사과를 하는데 너는 응당히 그 사과를 받아줘야 한다. 조금전 늙
고 악독한 중이 한칼에 너의 목을 내리치려고 했을때 만약 소영
웅께서 너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았다면 너의 목숨이 지금까지 남
아 있을수 있었겠느냐 ?"
수생과 적운은 화철간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소리를 하자 멍한 표
정이 되어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수생은 비록 용모가 어여
쁜 소녀였지만 적운은 그녀를 구해줄때 더 이상 애매한 사람을
죽게해서는 안딘다는 일념으로써 구해줄 때 마음속에 엉뚱한 생
각을 품은것 처럼 되고 말았다. 수생은 원래 적운에게 매우 강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으나 화철간이 그런 말을 하자 더욱 강한 미
운 생각이 들었다. 일시적으로 누구를 더 미워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그러나 두사람 모두 사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돌려보니 아버지의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의 처지가 너무
가련하게 느껴져 그 시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화
철간은 웃으면서 말했다.
"대사님, 소영웅님의 법명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
적운은 말했다.
"나는 중이 아닙니다. 나를 대사라고 부르지 마시오. 내가 이렇
게 승복을 입은 것은 잠시 난을 피하려고 거짓으로 입었을뿐이
요."
화철간은 기뻐서 말했다.
"그것참 이상하군요. 알고보니 대사... 가 아니었군요. 그렇다면
대협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
수생은 비록 통곡을 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주고 받는 말을 듣
고 있었다. 적운이 중이 아니라고 하자 내심 반신반의 하였다.
적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성은 적이요. 이름도 없는 소인배이고 또 죽음의 늪에서
겨우 살아난 폐인입니다. 그 무슨 대협도 아니요."
화철간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 참 묘하군요. 묘한 인연입니다. 적대형은 이렇게 늠름하시
니 나의 저 수질녀같은 어여쁜 처녀와는 어울리는 한쌍입니다.
이거야, 원! 내가 중매장이가 되고 싶지 않아도 별 수 없이 매파
노릇을 해야겠군요. 그것참! 묘합니다. 알고 보니 적대협께서는
출가인이 아니시군요. 머리만 약간 길고 옷을 바꿔 입는다면 그
누구도 신분을 알아차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환속의 절차
는 밟을 필요가 없겠지요 ?"
그는 적운을 틀림없는 혈도문의 중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
나 단지 적운이 수생의 미색을 탐내어 고의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적운은 고개를 흔들며 침울하게 말했다.
"당신의 말은 솔직히하고 그런 너덜구레한 소리는 치워버시오.
우리들이 만약 이 계곡을 나간다면 나는 영원히 당신을 보지 않
을 것이고 수소저도 보지 않을 것이요."
화철간은 깜작 놀라 일시 그의 말을 알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즉시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렇군요. 아, 이제야 알겠읍니다."
적운은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안단 말이요 ?"
화철간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적대협께서는 마음에 두고 계시는 어여뿐 아가씨가 있군요. 저
수질녀를 오래도록 부인으로 삼으실수는 없다는 이야기겠지요.
헤헤헤... 그렇다면 며칠 재미를 보시기만 해도 상관없읍니다.
부부가 아니라도 운우지락을 누릴 수는 있지 않겠읍니까? 헤헤
헤..."
이 몇마디의 말을 수생은 듣게 되자 너무 울화가 치밀고 억제할
수 없어서 재빠르게 뛰어가더니 연신 화철간의 뺨을 때렸다. 적
운은 망연히 쳐다보기만 할뿐 이일은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
하고는 눈길을 돌렸다. 한잠치 지나도록 혈도노조의 눈속에 박힌
발은 꼼작도 하지 않았다. 수생은 아버지의 시신이 다시눈안에
들어오자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할수가 없었다. 그녀는 애통해서
크게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그러나 수대는 이미 죽은 몸인데 어떻게 딸의 외침에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 수생의 눈물은 한방울 눈위에 떨어져 눈속에 스며
들며 천천히 얼음으로 변하였다. 화철간은 혈도가 아직도 풀어지
지 않자 쓸데없는 말을 하여 적운을 추겨올려 호감을 사려고 했
다. 그러나 말할수록 자꾸 빗나가기만 했다. 적운이 그를 아는체
도 하지 않자 화철간은 스스로 눈밭에 드러누워서 몸을 정양했
다. 적운은 처음엔 임맥과 독맥이 관통되자 정신이 개운하고 몸
속에 따스한 기운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느꼈다. 그 기운은 가
슴에서 등뒤로 갔다가 다시 가슴으로 빠져 나왔다. 한바퀴 돌때
마다 몸은 말할수 없이 편해졌다. 그는 이 기묘한 상황이 금방
왔다가 사라질까 염려되어 즉시 바닥에 누워 감히 음직이려고 하
지 않았다. 내력이 임맥과 독맥을 흐르도록 가만히 놔두었다. 수
생은 몸을 일으키더니 한걸음 한걸음 혈도승이 쳐박혀 있는 곳으
로 가보았다. 혈도승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즉시 있는
힘을 다해서 좌측발을 혈도로 내리쳤다. 팍! 하고 가벼운 소리가
나면서 왼쪽 다리가 잘라져 나갔는데 피도 흐르지 않았다. 수생
은 정신을 차려 자세히보니 혈도노조의 혈액은 이미 체온을 잃고
꽁꽁 얼어 있었다. 이 혈도승은 죽은지 이미 오래 되었던 것이
다. 수생은 한편으로는 기뻤고 한편으로 슬펐다. 그래서 칼을 들
어서 혈도승의 다리에 마구 칼을 휘둘렀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이 악독한
늙은 중은 죽었으나 아직도 저 새파란 중놈이 살아있다. 내 어찌
그에게 수모를 당할수 있단 말인가? 만약 나에가 조금이라도 이
상한 짓을 하려고 한다면 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
화철간은 이 모든 행동을 쳐다보면서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저 작은 중놈은 흉악하지만 나를 죽일 마음은 없구나. 조금뒤
나의 혈도가 풀어지면 당장 저놈을 죽여야겠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도록 적운의 내공은 계속해서 음직이며 멈
추지 않았다. 그래서 적운은 정전이 가르쳐준 신조경의 내공의
요결에 따라서 운기조식을 하였다. 본래 내공이란 만질수도 볼수
도 없는 것인데도 이때는 자유자대로 음직일수가 있었다. 그는
내심 놀라고 기쁘괌 이를데 없었다. 운기조식을 한 후 몸을 일으
켜 나무막대를 하나 주워서 우측 겨드랑이에 끼고 혈도승 가까이
다가섰다. 그의 시체는 눈속에 꺼구로 박혀 있고 두 다리는 수생
에게 잘려져 있었다. 죽은 것이 확실했다. 혈도승이 악한 짓을
너무 많이 했으니 인과응보라고 적운은 생각했다. 그러나 혈도숭
아 자기를 구해준 은혜가 생각나자 마음속이 조금은 아파왔다.
그래서 그의 시신을 단정하게 꺼내어서 눈밭위에 똑바로 누윈후
눈을 모아 시신을 덮었다.비록 간단하기는 했으나 그런대로 안정
했다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혈노노조가 왜 그렇게
힘없이 죽었는지 알수가 없었다. 수생은 그가 혈도노조를 묻는
것을 보고는 그 방법이 괜찮다고 생각하여서는 즉시 수대의 시신
을 눈속에 묻었다. 그녀는 다시 육천서와 유승풍의 시신을 찾아
묻으려 했으나 둘의 시체는 눈속에 파묻혀서 어디에 있는지 알수
가 없었다. 화철간은 말했다.
"소영웅님, 우리 셋은 이렇게 기진맥진해 있고 모두들 배가 고프
니 조금전에 굽던 말고기를 좀 나누어 주시지 않으시겠읍니까 ?
모두 배를 채운뒤에 다시 의논하여서 이곳을 빠져 나가도록 하지
요."
적운은 그를 경멸하고 있었으므로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수생은 경멸의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그것은 내 말의 고기예요. 당신같은 비열한 작자에게는 줄수가
없어요!"
적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화철간을 향해서 눈을 부릅떴
다. 화철간은 말했다.
"대사님..."
적운은 말했다.
"내가 말씀하지 않았소. 나는 중이 아니라고. 더 이상 대사라고
부리지 마시요."
화철간은 말했다.
"네, 네, 네, 적대협, 적대협께서는 이번에 혈도승을 일거에 차
죽였으니 그 이름은 천하에 빛날 것입니다. 내가 이 계곡을빠져
나가면 첫번째로 적대협의 오늘과 같은 의기를 널리 선전하겠읍
니다. 적대협께서 목숨을 아끼지 않으시고 수아가씨를 구하고 혈
도승을 죽여버렸으니 이야말로 무림의 큰 복입니다."
적운은 말했다.
"나는 이름도 없고, 미천한 죄인인데 그 누가 당신과 같은 헛소
리를 믿는단 말이요? 그러니 입이나 닥치고 계시요."
화철간은 말했다.
"이 화철간이라는 사람은 그래도 무림에 약간의 명성이 있어서
내가 말한다면 누구라도 안 믿고는 못배길것입니다. 그러니 저에
게 말고기를 좀 가져다 주십시요."
적운은 울화가 치밀어서 말했다.
"내가 왜 당신에게 말고기를 가져다 주어야 한단 말이요? 앞으로
당신은 나를 보더라도 모르는 척 하시요. 안 그러면 당신의 체면
에 손상이 갈것이니 말이요."
그는 이 몇년동안 자기가 받은 억울한 누명과 고통이 생각나자
자기도 모르게 격분하여 억제하기 힘들었다. 화철간은 기실 말고
기가 먹고 싶어서 그랬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비록 배가 고프긴
했지만 반나절밖에 굶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문제되지는 않았다.
그가 자꾸 말고기를 달라는 이유는 적운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
지 않을 줄을 알았으나, 그가약간이라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해서 자신을 죽일 생각을 가지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었다. 적운
은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서북풍이 계속안으로 몰아치자 수생이
추워할까봐 적운이 말했다.
"수소저, 당신은 동굴안으로 들어가서 자도록 하십시요."
이말을 듣자 수생은 깜작 놀랐다. 그가 나쁜 마음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고 즉시 두발자국 물러서더니 혈도를 쥐고는 앞을 가로막
으며 말했다.
"이 악독한 중놈아! 한발자욱이라도 다가온다면 나는 즉시 자결
할 것이다."
적운은 깜작 놀라서 말했다.
"아가씨, 절대 오해를 하점 마십시요. 나는 아가씨에게 조금도
흑심이 없읍니다."
수생은 욕을 하며 말했다.
"당신의 사람 얼굴에 짐승의 탈을 스고 있어요. 웃음속에 칼을
품고 있으니 저 늙은 중놈보다도 사악하단 말이예요. 나는 절대
로 당신의 함정에 걸려들지 않겠어요."
적운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나는 이 계곡을 빠져나가 당신을 영원히
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즉시 멀리있는 넓적하고 큰 바위를 찾아 몸을 누이고 쉬기
시작했다. 수생은 그가 멀리가자 마음이 더욱 불안했다. 밤중에
습격해 올까봐 손에서 혈도노 놓지 못하고, 동굴안으로는 감히
들어가지를 못했다. 그녀는 주변의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었는데
눈꺼풀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무거워져왔다. 그녀는 속으로 타일
렀다.
'절대로 잠을 자서는 안된다. 절대로...'
그러나 며칠동안 심신이 피곤하니 마음으로는 자지 말자고 했으
나 결국 자신도 모르는새에 잠이 들고 말았다.
그녀가 눈을 떴을때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햇살이 따갑게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깜작 놀라 몸을 일으키니 손에 혈도가 없었다.
그녀는 더욱 놀라서 즉시 주변을살펴보니 혈도는 자신의 발밑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수생이 급히 혈도를 들어서 적운을 찾
아보니 적운은 손에 나무막대기를 들고는 절뚝 거리면서 계곡밖
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수생은 기뻤다. 이제야 이 악독한 중놈이
그냥 간다고 생각하니 부처님에게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적
운은 계곡에서 빠져나가고자 길을 찾으려 했으나 주변은 온통 눈
에 막혀서 나갈 길이라고는 없었다. 계곡의 입구에는 수십장 높
이로 눈이 쌓여져 있어서 봄이 와서 눈이 녹지 않는 이상은 이곳
을 빠져나가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어쩔수 없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화철간이 말했다.
"적대협, 어떻게 되었소 ?"
적운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나갈 길이 없읍니다."
화철간은 혼자 중얼거렸다.
'너야 나갈수 없겠지만, 이 화철간이 어떤 사람인데 너와 같겠느
냐. 오후가 되어서 혈도가 풀어진다면 나의 실력을 톡톡히 보여
주마.'
그러나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않고 말했다.
"그리 걱정하지 마십시요. 나의 혈도가 풀어지면 두분을 데리고
이 계곡을 빠져 나가겠읍니다."
수생은 적운이 자기에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자 다소 마음이
놓였다. 그래 방비하는 마음은 흩어지지 않아서 항상 그와 멀
리 떨어져서 한마디도 대화하지 않았으며 혈도를 품안에 간직하
고 있었다. 적운은 그녀의 그런 태도를 보고 기분이 나빠서 빨리
이 계곡을 빠져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오가 넘어섰을때 화
철간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조카님의 말고기를 좀 빌려주게나. 이 계곡에서 나가면 배로 갚
아주지."
그리고 말고기가 있는 곳으로 가더니 한덩이를 주워들고는 먹기
시작했다. 혈도승이 찍힌 혈도는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풀어졌
던 것이다. 화철간은 혈도가 풀어점痔 즉시 교만하게 변했다. 수
생과 적운이 합공을 해온다 해도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계곡에서 오래 머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한시라도 빨리 나가는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가는
길을 찾는 즉시 적운과 수생을 죽여서 이 계곡안에세 펼쳐졌던
자신의 추태를 누설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그는 경
공을 전개 하여서 계곡을 한바퀴 돌았으나 주변이 수십장 높이
의 눈이 수십리에 걸쳐서 쌓여 있어서 도저히 나갈수가 없었다.
행여나 눈밑으로 길을 판다고 해도 수십리에 걸쳐서 굴을 파서
나가면 그 안에세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렇다고 또 이 눈이
녹기를 기다라지나 반년은 지내야 할 것인데 눈밖에 없는 이 계
곡에서 무엇을 먹으면서 지냐야 할지 깜깜했다. 그는 어쩔수 없
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말했다.
"내년 봄이 와야 나갈수 있겠구먼."
적운과 수생은 화철간의 양쪽에 있었는데 화철간의 말을 듣고는
깜작 놀라서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했다.
'이 계곡안에는 나무뿌리조차도 찾을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봄까지 기다린단 말인가? '
허공에서 독수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셋은 일제ㅣ 하늘을 쳐다
보며 생각했다.
'저 하늘 나는 독수리처럼 날개가 있다면 이 계곡을 쉽게 빠져
나갈수 있을텐데..."
수생의 백마는 살이 찌고 컸지만 세사람이 날마다 먹으니 일개
월도 채 되지 못해서 결국 다 먹어 치우고 말았다. 다시 칠팔일
이 지나자 머리 및 오장도 깨끗이 먹어 치우고 말았다. 화철간,
수생, 적운은 요 며칠동안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눈이 마주
치면 얼굴을 황급히 돌리기도 했다. 화철간은 몇번이나 수생과
적운을 죽이려 했으나 그 둘을 죽이고 혼자서 이 설곡에서 살자
니 그것또한 견딜 수 없는 노릇같아 적운과 수생은 목숨을 연장
할수 있었다. 화철간은 어차피 두 사람은 자신의 손바닥안에 있
으므로그리 급하게 손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자 수생은 적운에 대한 의심이 크게 줄어서 동굴에
들어가 잠을 잤다. 십이월로 들어서니 이 눈덮인 계곡의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적운은 신조공을 계속 연마하여 내력이 하루가
다르게 증가되었다. 그러나 옷이 너무나 얇아서 살을 에이는 듯
한 추위를 견디기가 힘이 들었다. 수생은 가끔 동굴에서 나와 적
운이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곤했다. 그가 벌벌 떨며 추위를
견디지 못하면서도 동굴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자 그녀는 이 작
은 중이 악독하면서도퍽이나 예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적운의 상처는 치유되었고 부러진 다리도 이미 뼈가 붙어서 평
상시처럼 걸을수 있게 되었다. 어떤때는 이 끊어진 다리를 혈도
노조가 붙여 준것이라고 생각하자 우울하기도 했다. 말고기가 다
떨어져 가자 가장 큰 문제는 식량문제였다. 말고기가 적어지자
적운은 될수 있는대로 적게 먹어서 약간이라도 비축하려 하였으
나 화철간은 적운이 남겨놓은 말고기까지 남겨 놓지 않고 다먹었
다. 수생은 내심 생각했다.
'이자는 명색이 중원의 대협이면서도 위기에 처하니 혈도승의
악독한 중놈보다도 못하구나.'
이날 삼경즈음 되어서 다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적운이 큰소리
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대협의 몸에는 절대로 털끝하나도 건드릴수 없읍니다."
화철간이 냉랭히 말했다.
"며칠 지나면 산사람도 잡아 먹을 지경인데 죽은 사람을 먹는
것이 어때서 그런가?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될 것이 아닌가 ?"
적운은 말했다.
"우리들이 차라리 눈을 먹고 나무뿌리를 먹는 한이 있더라도 살
람만은 먹을수 없는 것이요!"
화철간은 일갈했다.
"비켜라! 왜 귀찮게 떠드느냐? 나를 화나게 한다면 너를 즉시
죽여버리겠다."
수생은 급히 일어나 동굴 밖으로 나왔다. 화철간과 적운이 그녀
의 아버지 무덤 옆에 서 있었다. 수생은 크게 외쳤다.
"나의 아버지를 건드리지 마세요!"
그리고 몸을 나는듯 달려가보니 아버지의 시신을 덮고 있던 흰
눈이 파헤쳐져 있었으며 화철간의 좌측손은 수대의 가슴을 쥐고
있었다. 적운은 일갈했다.
"빨리 놓으시오!"
수생은 급히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
갑자기 차가운 빛이 번뜩이더니 화철간은 소매에서 한개의 단짱
을 꺼내들고 몸을 비스듬이하고 단창을 똑바로 겨누더니 질풍처
럼 적운의 가슴을 찔렀다. 이 일초는 상당히 빨랐다. 적운의 내
공은 비록 크게 진보했지만 외공은 척장발에게서 배운 검술에 지
나지 않았다. 화철간과 같이 무공이 심후한 사람이 갑자기 기습
을 해오자 도저히 상대할수 없었다. 멈칫하고 있는 사이에 화철
간의 단창끝은 이미 가슴에 와 닿아 있었다. 수생은 크게 비명을
지르며 어찌 할바를 몰랐다. 화철간은 이 일격으로 적운의 목숨
을 빼앗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창끝이 가슴에 가 닿는 순
간 더 이상 뚫고 들어갈수 없었으며 무엇이 막고 있는 것 같았
다. 적운은 뒤로 벌렁 쓰러지면서 왼손으로 힘것 단창의 창대를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가 나면서 단창은 화철간의 손을 벗어나
서 멀리 날아가 버렸다. 화철간의 엄지와 검지사이의 호구가 찢
어져서 피가 스며나오고 있었다. 이 일격의 힘은 대단해서 화철
간 역시 뒤로 곤두박질 쳤다. 단창은 눈속을 뚫고 들어가서 자취
조차 찾을수가 없었다. 화철간은 깜작 놀라면서 내심 생각했다.
'이 어린 중놈의 재간이 보통이 넘는구나! 늙은 중놈에 못지 않
구나.'
그는 벌떡 일어서자 꽁무니가 빠져라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화철간은 적운이 창에 맞고도 죽지 않은 것이 바로 오잠의의 덕
분이라는 것을 알수가 없었던 것이다. 화철간은 단창에 실린 힘
이 매우 강했으므로 그를 죽일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적운은 정통
으로 창에 찔리고도 멀쩡했으므로 적운이 무슨 요상한 무공을 익
힌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때 적운은 가슴에 온 충격에 잠시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져 있었다. 만약 그가 신조공을 익히지 않
았다면 오잠의가 비록 단창을 막았다고 해도 화철간의 내경에 적
중당해서 죽었을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휘영청 밝았고 두
마리의 독수리가 눈위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공중에서 빙빙
선회하고 있었다. 수생은 적운이 꼼작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이
미 화철간에 의해서 죽은 줄 알고 생각했다.
'이 악독한 중놈이 마침내 죽고 말았구나! 앞으로는 이놈이 나
를 괴롭힐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녀는 다시 생각했다.
'화철간이 내 아버지의 살을 먹으려고 했을때 이 악독한 중놈이
있는 힘을 다해서 그것을 저지하려다가 죽고 말았다. 이 중놈이
무슨 좋은 뜻을 품고 있었을려고... 나를 속여서... 속여서...
흥! 내가 너의 속임수에 걸려들줄 알았니? 이 중놈이 죽은뒤에
다시 화철간이 와서 나의 아버지의 시체를 먹겠다고 한다면 어떻
게 해야하지? 아무래도 이 중놈이 죽으면 곤란해!'
그녀는 혈도를 손에 쥐고 천천히 적운의 몸곁으로 다가갔다. 적
운은 꼼작도 않고 눈위에 쓰러져 있었는데 얼굴 근육이 연신 실
룩거리고 있었다. 수생은 내심 기뻐하면서 고개를 숙여 그의 코
밑에 손을 갖다대니 두줄기 따스한 숨결이 그녀의 손가락에 와
닿았다. 수생은 깜작 놀라 급히 손을 거두었다. 적운이 죽지 않
았다고 해도 중상을 입어 숨결이 미약하리라 생각했는데 적운은
내공이 심후하여서 정신을 잃었지만 숨결은 여전히 힘찼던 것이
다. 그러나 아직 상승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여서 숨결이 힘은 있
었으나 고르지 못하였다. 수생은 생각에 잠겼다.
'이 중놈은 기절했지만 잠시후면 다시 정신을 차릴거야. 내가
옆에 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몰라.'
수생은 이때 고개를 돌리다가 화철간이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
는 것을 보았다. 화철간은 적운을 찔러 죽이기는 커녕 오히려 그
의 반격을 받자 내심 경악했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가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자 용기를 내어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이때 그
의 오른 손의 호구가 찢어져서 은은하게 저려왔다. 화철간은 적
운이 음직이는 기척이 있으면 그 즉시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는
다가오는 것을 본 수생이 깜작 놀라서 소리쳤다.
"다가오지맛!"
화철간은 교만한 미소를 지었다.
"왜 오지 말라고 하지! 산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훨씬 맛있단다.
우리가 그를 산채로 잡아먹자."
그는 말을 하면서 다시 한걸음을 다가왔다. 수생은 다급해져서
힘껏 적운의 몸을 흔들어대면서 외쳤다.
"그가 돌아와요! 그가 오고 있어요!"
화철간은 적운이 그래도 일어나지 않자 내심 크게 기뻐하면서
뛰어 오르더니 오른손으로 적운의 가슴을 힘껏 내리쳤다. 수생은
급히 혈도를 휘두르며 화철간을 찔러갔다. 그녀가 사용하는 수법
은 검법이었지만 혈도는 날카롭기 짝이 없어 검과 같은 효과를
낼수가 있었다. 화철간은 단창을 잃고 지금은 빈손이었다. 쇠를
진흙처럼 자르는 이 혈도의 위력을 알고 있었으므로 감히 소홀하
지 못하고 즉시 공수입백인의 수법으로 혈도를 빼앗은 다음 그녀
를 죽이려고 하였다. 적운은 혼미한 상태에서 수생의 말이 어렴
풋이 들려왔다. 이어서 기합소리가 들려서 눈을 떠보니 달빛 아
래에서 수생이 혈도를 휘두르면서 화철간과 싸우고 있었다. 수생
은 병기를 들고 있었지만 혈도를 사용할줄 몰랐고, 그녀의 무공
은 화철간에 미치지 못해 자꾸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녀는 병
기를 휘둘렀으나 공격이 아니라 몸을 지키는데 불과했다. 그녀는
계속 외쳤다.
"이봐요! 이봐요! 빨리 정신을 차려요! 그가 당신을 죽이려고
해요!"
적운은 그말을 듣고 섬뜩함을 느꼈다.
'위험했구나! 조금전 그녀가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만약 그
녀가 있는 힘을 다해서 막지 않았다면 화철간은 벌써 나를 죽였
을 것이다. 비로ㅓ 내가 오잠의를 입고 있어 보호는 받고 있지만
창으로 머리통을 찌른다면 내 어찌 살아있을수 있겠는가?'
그는 즉시 몸을 일으키더니 손바닥을 휘둘러서 맹렬하게 화철간
을 향해서 내리쳤다. 화철간은 손을 휘둘러서 막았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두사람이 동시에 눈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적운
은 내공이 심후했고, 화철간은 장법이 고명해서 일시에 고하를
가릴수가 없었던 것이다. 화철간의 무공이 높아 신속하게 대응했
다. 적운의 일장에 쓰러졌으나 바로 몸을 일으켜서 두번째 장을
날려보냈다. 적운은 몸을 일으켜 세울틈이 없어서 앉은채로 두번
째 장을 쳐냈다. 펑! 하는 소리가 나면서 적운은 뒤로 두바퀴나
뒹굴었고 화철간도 뒤로 세발자국이나 물러섰다. 화철간은 내심
놀랐다.
'이 작은 중놈의 내력이 정말 대단하구나.'
그러나 두번째 장력이 맞딱드린후 화철간은 그의 장법이 매우
평범하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두려운 마음이 없어져서 몸을 옆으
로 돌려 세번째 장력을 뻗어냈다. 적운은 앉아서 반격을 하였다.
그러나장이 미처 부ㄷ히기도 전에 퍽! 하면서 적운의 가슴에 화
철간의 발길질이 명중했다. 적운은 몸을 보호하는 오잠의가 대부
분의 충격을 흡수했지만 뒤로 벌렁 자빠지고 말았다. 화철간은
이 수법이 성공을 거두자 두번째 장력을 즉시 뻗어냈다. 그는 무
림의 명숙이였고 중원에서도 알아주는 고수였다. 그가 일초를 뻗
어내자 10여번의 장력이 발출되었는데 그중 네다섯번이 적운을
격중시켰다. 적운은 맞받아서 반격을 했으나 그의 교묘한 몸놀림
에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두사람의 무공의 차이는 너무나 심했
다. 적운은 내력이 화철간보다 훨씬 강했으나 그것을 격중시킬
기회가 없었다. 그는 어쩔수 없이 두손으로 머리와 얼굴을 막고
있었을뿐 몸은 무방비상태였다. 그는 일어날려다가 몸에 일장을
맞고 다시 쓰러지고는 했다. 화철간은 될수 있는대로 그를 빨리
해치워서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더욱 강한공격을 퍼부어댔다. 수
생은 처음 두사람이 붙어서 극렬하게 싸우자 끼어들수가 없었는
데 적운이 위험한 상태에 이르자 즉시 혈도로 화철간의 등을 향
해 내리쳤다. 화철간은 몸을 살짝 비키더니 몸을 돌려 오히려 수
생의 혈도를 빼앗으려 했다. 적운은 우측장에 있는 힘을 다하여
서 일장을 내리쳤다. 한줄기 무서운 장풍이 삽시간에 화철간의
전신을 휘감았다. 화철간은 피할수가 없자 어쩔수 없이 장을 뻗
어서 막았다. 내공으로 말하자면 화철간은 적운의 상대가 아니었
다. 갑자기 화철간은 눈앞이 어질어질 하면서 별이 반짝이더니
전신이 마비되면서 몸이 흔들거려 더 이상 서 있을수가 없었다.
수생은 외쳤다.
"빨리 도망치세요! 빨리 도망치세요!"
그리고 적운을 끌어당겨 동굴속으로 도망갔다. 두 사람은 급히
몇개의 큰바위를 들어 동굴입구를 가로막았다. 수생은 혈도를 거
머쥐고는 바위를 지키고 있었다. 이 동굴은 좁아서 바위를 쌓아
두자 화철간이 안으로 들어 올려고 한다면 바위를 옮겨야 하는데
그 사이에 수생은 그의 손을 잘라버릴수 있을것이다. 한잠이 지
나도록 화철간은 아무런 음직임이 없었다. 수생은 적운을 보고
말했다.
"이 악한... 악한... "
구녀는 계속 적운을 악한 중놈이라고 불러 왔는데 이때 그와 함
께 적을 공격하고 있는 처지라 그를 악한 중놈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했다. 그래서 말을 고쳐서 말을 했다.
"당신의 상처는 어떻읍니까?"
적운은 말했다.
"괜찮소이다..."
갑자기 화철간이 동굴 밖에서 껄껄 웃더니 외쳤다.
"두마리의 잡종들이 동굴 속에 숨어서 못된 짓을 하고 있구나."
수생은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 다시 적
운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떠 올랐다. 그녀는 적운이 여색을
즐기는 음탕한 중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와 함께 동굴에 있는 것
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옆으로 몇발자국 옮
겨서 될수 있는 한 그와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화철간이
또 외쳤다.
"두 잡종놈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어르신은 수대의 고기를 구
워먹어야겠다."
수생은 깜작 놀라서 말했다.
"저 사람이 우리 아버지를 구워먹으려고 해요. 어떻게 하면 좋
지요 ?"
적운은 이 몇년동안 누명을 써 왔고 이때 또 화철간이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갑자기 바윗돌를
무너뜨리고는 마치 호랑이처럼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손과 발
을 휘둘르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서 미친듯이 내리쳤다. 화철간은
옆으로 두걸음 피하면서 좌측장으로 둥근호를 그리며 우측장으로
번개같이 적운의 등을 내리쳤다. 적운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으
방향에서 장력이 날아오자 어쩔수 없이 맞고 말았다. 적운은 입
속에서 선혈을 토해냈고 머리속은 혼미하기 짝이 없었다. 눈앞에
서 있는 화철간이 마치 만진산, 만규, 강릉현의 현감, 옥졸, 능
퇴사, 보상... 그외에 자신을 학대하고 모욕한 수많은 악인으로
보였다. 그는 두 팔을 벌려 있는 힘을 다해서 화철간을 꼭 껴안
았다. 화철간은 한주먹으로 그의 코를 후려쳤다. 금세 그의 코에
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적운은 이미 아픔따위는 느끼지 않
았다. 그의 허리를 안고 있는 두 손에 더욱 힘을 주어조였다.
화철간은 점차 호흡이 막혀왔다. 거기다가 뒤쪽에서는 수생이 혈
도를 들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화철간은 크게 놀라서 재빨
리 두 주먹으로 적운의 겨드랑이를 쳤다. 적운은 두팔에 힘이 빠
졌다. 화철간은 그제서야 적운의 두팔에서 벗어 날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십여장이나 곧장 달아나서야 멈추
어 섰다. 수생은 적운이 몸을 비틀거리면서 얼굴이 온통 피투성
이인 것을 보고 그를 부축하고 싶었으나 두려움이 앞섰다. 적운
이 일갈했다.
"나는 악독하고 음탕한 중놈이다! 절대로 가까이오지마라! 가
까이 온다면 너의 명예가 실추될 것이다! 비켜라, 꺼지란 말이
야!"
그의 두눈에는 핏발이 서 있자 수생은 너무나 겁이 나서 뒤로
두 발자국 물러섰다. 적운은 계속 숨을 헐떡이면서 몸을 비틀거
리면서 화철간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외쳤다.
"너희들은 모둑 악독한 놈들이다! 만진산, 만규, 너희들은 나를
해치지도 못하고 죽이지도 못한다! 오너라! 와! 와서 나를 때려
봐! 현감나리, 당신들은 선량한 사람을 괴롭혔소! 자, 올테면 와
바라! 어디 한번 겨루어보자! 누가 죽고 누가 사는지를..."
화철간은 생각했다.
'이 자는 미쳤어. 이자는 정말로 미쳤어'
그러더니 몸을 뒤로 날려 그와의 거리가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적운은 고개를 하늘로 향하더니 크게 외쳤다.
"너희들은 모두 천하에서 가장 악독한 놈들이다! 이 악독한 놈
들아! 모두 다 덤벼라! 이 적운은 너희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나를 감옥속에 가두고, 비파골을 꿰뚫고, 손가락을 모
두 잘랐으며, 나의 사매를 빼앗아 갔고 또 내 다리를 짓밟았다.
나는 아무것도 무서워 하지 않는다! 나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
는다 해도 나는 두려워 하지 않는다.! "
수생은 그가 울부짖고 크게 떠드는 음성 가운데 울음이 섞여 있
는 것을 알고 무서운 상태에서도 가련한 마음이 은연중에 생겼
다. 그가 나의 비파골을 꿰뚫고, 나의 손가락을 잘랐고, 나의 사
매를 빼앗아 가고, 다리를 짓밟았다는 소리를 하자 마음이 더욱
음직였다.
'이 소악승은 알고보니 마음 가득히 서로움을 품고 있었으며 많
은 고통을 받았구나. 그의 다리는 내가 말을 달려 부러뜨린 것이
다.'
적운은 너무 외쳐 목이 쉬었고 끝내는 몸을 몇차례 휘청거리더
니 눈밭에 쓰러졌다. 화철간과 수생은 두려워서 감히 가까이 다
가가지를 못했다.
허공에는 두마리의 독수리가 날고 있었는데 적운이 쓰러진후 한

참동안 음직이지 않자 한마리가 날아 내려와서 그의 이마를 쪼았
다. 적운은 독수리에게 이마를 쪼이자 금방 정신이 들었다. 그
독수리는 그의 몸이 음직이자 다급하게 다시 하늘로 날아 올랐
다. 적운은 대노하며 일갈했다.
"이제 짐승조차 나를 능욕하려 드느구나."
그리고 우측장을 있는 힘을 다해서 뻗어내니 그 독수리는 그의
몸에 수척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그의 장력이 미치자 날개
를 푸드득 거리더니 떨어져내렸다. 적운은 단숨에 낚아채더니껄
껄 웃으면서 독수리의 배를 물어 뜯었다. 그 독수리는 날개를 퍼
득거리면서 더욱 몸무림을 쳤다. 적운은 독수리의 피가 입속에
들어오자 한방울 한방울의 힘이 몸속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갑
자기 손과발을 흔들며 덩실덩실 춤을 추더니 외쳤다.
"네놈이 나를 먹으려고 했지만 내가 먼저 네놈을 먹어버렸구
나."
화철간과 수생은 그가 독수리를 미친 듯이 먹는 것을 보자 모두
놀라서 얼굴색이 변하였다. 화철간은 이 미친자가 자기에게 달려
와서 목숨을 걸고 겨룬다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의
손에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재빨리 도망을 쳤다. 그는 즉
시 동굴에서 먼 계곡으로 도망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적운이 독
수리를 잡는 방법이 괜찮다고 생각되어서는 즉시 땅에 드러누었
다. 그렇게 얼마간 있자 독수리가 날아와 쪼았다. 화철간은 곧바
로 장력을 뻗어 냈으나 그와 적운의 공력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의 장법은 교묘했으나 독수리또한 번개같은 몸동작으로 그의
장력을 피해버렸다.
한편, 적운은 독수리의 뜨거운 피가 몸안으로 들어오자 가슴과
뱃속의 기와 혈이 용솟음쳐 다시 제장신을 잃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때는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 몸 옆에 있는 독수리를 집어 들고 깨물었다. 독수리고기를
입에 넣자 향기가 진동했으며 맛이 상당히 좋았다. 그는 자기손
에 들려 있는 독수리 고기를 살펴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멍청해졌
다. 그는 분명히 몇모금의 피를 빨고 바로 잠이 들었는데 누가
그를 위해 구워 놓았던 것이다. 그는 크게 외치고 울부짖은 후라
마음이 많이 가라 앉아 있었다. 이때는 마음이 매우 평온했고 상
쾌했다. 수대의 무덤은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산동굴을
쳐다보니 수생이 바위뒤에 엎드려 달콤하게 잠을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적운은 내심생각했다.
'그녀도 며칠을 굶어서 배가 몹시 고플텐데... 이 독수리고기를
구운다음 통째로 나에게 다 건네주고 자기는 한점의 살도 먹지
않았구나. 제가 뭔데 좋은 사람인척 하는거야? 쳇! 계속 나를 얕
보아서 그럴거야. 네가 나를 얕본다면 나도 너를 얕보지 않을수
없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다시 생각이 바뀌였다.
'그녀가 나에게 독수리 고기를 구워준것을 보면 나를 그리 없수
이 여기지 않는 것 같구나. 그녀를 굶겨죽인다면 그것도안될 일
이야.'
그래서 그는 땅바닥에 드러누워 꼼작도 않고 죽은척 하고 있었
다. 반시진도 못되는 사이에 그는 네마리의 독수리를 때려 잡았
고, 그중 두마리를 수생에게 던져주었다. 수생은 이쪽으로 오더
니 나머지 두마리도 가지고 가서는 먼저 털을 벗기고 깨끗이 다
듬더니 함께 구웠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없이 두마리의 익힌 독
수리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눈쌓인 계곡에는 독수리들이 적지 않았고 또 멍청하기 짝이 없
어 매일 동료들이 죽음을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짓을 계속하
고 있었다. 적운의 내력은날이 갈수록 증가하였고 장력도 강해
져서 이제 죽은척 하지 않아도 나뭇가지에 쉬고 있거나 몸옆으로
낮게 날아가는 새를 일장으로 잡을수 있게 되었다. 눈쌓이 계곡
에는 또 어느날 기러기가 나타났는데 몹시 통통해서 적운과 수생
이 하루 하루를 보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적운은 손가락으로
굽어보니 어느덧 십이월지 지난 것 같았다. 설곡은 열흘이나 팔
일에 한번 큰 눈이 왔고 밤낯으로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수생은
땔나무를 줍고 새고기를 굽는 것 이외에는 언제나 동굴속에서 지
냈다. 적운은 끝내 그녀와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고 또 동굴속
으로도 한발자국도 들여 놓지 않았다. 어느날 밤새도록 눈이 내
린 다음날 아침에 적운이 눈을 떠보니 몸에 따뜻한 느낌이 들었
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자기의 몸위에 시커먼 물건이 놓여 있
었다. 그는 깜작 놀라서 그 시커먼 물체를 들어보니 그것은 괴상
망측한 옷이었다. 이옷은 새털을 하나하나 이어서 만든 것으로
검은 것은 독수리의 털이요, 하얀 것은 기러기의 털이었다. 옷의
길이는 무릎까지 내려왔고 몇천 몇만개의 새털로 만들어졌는지
그수는 헤아릴수 없었다. 적운은 이 새깃털로 만든 옷을 보고 갑
자기 얼굴을 붉혔다. 수생이 갖은 노력을 다해서 수천 수만개의
새털을 엮어서 만든 것임을 알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계곡
에는 바늘과 가위같은 도구도 없었기 때문에 이 옷에 들인 수생
을 노력을 알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내밀어 옷을 깃털을
만져보니 깃털 한개마다 가느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은
머리에 꽂고 있던 큰 비녀를 바위에 갈아서 가느다랗게 만들어서
뚫은 것이었다. 구멍을 이어서 엮은 것은 담황색의 가느다란 실
이었는데 수생이 입고 있던 노랑색 옷을 풀어서 엮어 만든 것이
었다.
'헤헤, 여자들은 참으로 이상하구나! 이것을 만들려면 피곤하고
번거로웠을텐데.'
갑자기 몇년전 형주성의 만진산의 집에서 있었던 정경이 떠올랐
다. 그날 저녘 그가 만문의 여덟제자에게 공격을 받고 눈이 시퍼
렇게 멍들도록 맞았고 새로 사입은 옷이 여러군데 찢어져 있었는
데 사매 척방이 바늘과 실을 들고 자기의 옷을 꿰매어 주었던 것
이다. 그의 뇌리 속에는 분명하게 그날의 정경이 떠 올랐다.
그의 몸 가까이에서 옷을 꿰매고 있었으며 그녀의 머리
카락이 그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는 얼굴이 그의 머리카락으로
인해 근질근질했으며 콧속에는 그 소녀의 담담한 향내가 느껴졌
다. 그때 적운이 그녀를 불렀다.
'사매!'
척방은 그때 대답했다.
'공심채, 말하지 마세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도둑이라고
여기게 하지 마세요.'
그는 여기까지 생각하자 목구멍으로 다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았고 눈물을 끌성거렸다. 그는 내심 생각했다.
'과연 다른 사람은 나에게 도둑이라는 누명을 씌웠다. 그러나
과연 사매가 옷을 꿰매어 주고 있을때 내가 말을 해서 이꼴이 되
었단 말인가?'
그러나 이 수년동안 말할수 없는 고초와 풍파를 격은 그였기에
그런 미신같은 말은 믿지를 않았다.
'허허... 사람들이 마음을 먹고 나를 해치려고 했는데 내가 설
령 복을 타고났다 해도 똑 같이 능욕을 당했을 것이다. 사매는
그때 나에게 진정으로 대했었다. 그러나 그 만씨성을 가진 자는
큰 부호이고 만규 그놈은 나보다 멋진 놈이니 더 무슨 할말이 있
겠는가? 그러나 그날 몸에 깊은 상처를 받아 그녀의 집에 숨어
있을때 그녀는 자기의 남편에게 일러바치고 나를 잡아 관가에 넘
겨 상을 받으려 했지. 그것은 정말 용서할수 없는 일이야. 하하
하...'
그는 갑자기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깃털로 만든 옷을 가지고
동굴 앞에 오더니 땅바닥에 냉동댕이 치면서 그위에 발을 딛고
몇번 짓이기며 말했다.
"나는 악독한 중놈인데 어찌 아가씨가 만든 옷을 입을수 있겠
소!"
그리고 옷을 발로 차 동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몸을 돌
려 미친듯 웃으면서 사라졌다. 수생은 한달남짓 소비해서 겨우
이 깃털옷을 만들었다. 그녀는 적운이 아버지의 시체를 잘 봐주
었고 절대 자기에게 무례하지 않았고 절대 자기에게 무례하지 않
았고 며칠동안 그가 잡아온 새 고기로 생명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그 옷을 만들었다. 또 그가 밤낮 동굴 밖에서 차가운 추위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자 마음속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작으
나마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적운은 좋게 받아주지
못하고 오히려 옷을 발길로 차 동굴속에 쳐 넣었으며 그에게 모
욕을 주고 말았다. 그녀는 부끄럽고 화가 나서 닥치는대로 그 옷
을 마구 찢어대며 울분을 참지 모하고 눈물을 깃털옷 위에 떨어
뜨렸다. 그녀는 적운이 몸을 돌려 미친듯 웃고 있을때 그의 가슴
과 옷이 눈물로 젖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눈물은 자기의 팔자가 너무 기구하고 슬퍼서 흘린 눈물이었고 사
매의 매정함이 야속해서였다. 점심때가 되자 적운은 까치 네마리
를 잡아서 동굴안에 던졌다. 수생은 여전히 그것을 구워서 반절
을 적운에게 돌려주었다. 두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눈빛
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적운과 수생이 멀리 떨어져 앉아서 새고
기를 먹고 있는데 누군가 눈밟은 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고개를
돌려보니 화철간이 우측손에 한자루의 장검을 들고 다가오고 있
었다. 적운과 수생은 동시에 일어났다. 수생은 급히 동굴 속에
들어가 혈도를 가지고 와 잠시 주저하더니 적운에게 던져주면서
외쳤다.
"받으세요!"
적운은 손을 내밀어 칼을 받으면서도 마음속으로 멈칫하였다.
'그녀가 어째서 나에게 이 칼을 주는가? 생명처럼 귀중한 것인
데... 그녀가 나보고 목숨을 걸고 화철간을 막으라고 하는 모양
인데 쳇! 나도 좋은 중놈이 아닐텐데...'
바로 이때 화철간은 이미 가까이 다가와서 껄껄 웃더니 말했다.
"축하한다, 축하해!"
적우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무엇을 축하한단 말이오?"
화철간은 말했다.
"두 남녀가 좋은 인연을 맺었으니 축하한다. 목숨처럼 아끼는
보도를 너에게 주었으나 다른 것도 바쳤을 것이 아니냐? 하하하!
하하하!"
적운은 화가나서 말했다.
"사람들은 당신을 중원의 대협이라고 부르던데 정말 아깝소. 알
고보니 대협이 아니라 비굴하고 더러운 소인배였구려!"
화철간은 킥킥 거리면서 말했다.
"비굴하고 염치없기로 말하자면 당신 혈도문의 인물들이 나보다
더 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말을 하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 오더니 킁킁 거리고 냄새를
맡더니 말했다.
"음, 향기가 좋다! 향기가 무척 좋다. 나에게 새 한마리만 주
렴."
그가 만약 좋은 말로 달라고 했다면 적운은 틀림없이 주었을 것
이다. 그러나 이때 그의 경박하고 비굴한 태도를 보자 속에서 화
가 치밀었다.
"당신의 무공은 나보다 높은데 혼자서 사냥을 못한단 말이요?"
화철간은 웃으면서 말했다.
"못한게 아니라 게을러서 그렇지."
그 두 사람이 말을 하고 있을때 수생은 적운의 등뒤로 다가오더
니 놀라 부르짖었다.
"육아저씨, 유아저씨!"
그녀는 화철간이 두손에 유승풍의 장검과 육천서의 귀두도가 들
려 있고, 북풍이 휘몰아쳐서 화철간의 입고 있는 옷이 휘날리자
옷속에서 육천서와 유승풍의 도포가 보이자 화철간이 두명의 백
부의 시신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화철간이 말했다.
"왜 유아저씨를 부르지?"
수생은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그들을 먹었군요."
그녀는 화철간이 두사람의 시체를 찾아내어 다 먹었다고 생각하
고 있었다. 화철간은 화가 나서 말했다.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
수생은 깜작 놀라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육아저씨와 유아저씨는 당신괴 의형제를 맺지 않았나요...."
화철간이 만약 새를 잡을수 있었더라면 의형제의 시신을 결코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몇마리의 새를
잡아 며칠을 연명했으나 새는 더 이상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날 그는 육천서와 유승풍의 시체를 다먹고 손에 그들의 도와 검
을 쥐고 적운과 수생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눈속에 묻혀
있는 수대와 혈도노조의 시체를 먹고 지낸다면 초여름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 그는 수생의 말을 듣자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다. 또 새고
기의 냄새를 맡자 침을 질질 흘리더니 갑자기 귀두도를 들어 큰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면서 적운을 향해서 내리쳤다. 적운은 혈도
를 들어 막았다. 챙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귀두도는 위로 튕겨져
나갔다. 귀두도도 역시 보도였는데 혈도처럼 예리하지는 못했다.
육천서와 혈도승이 싸울때 이미 세곳에 이가 빠져 있었는데 다시
혈도와 부ㄷ히자 귀두도에 또 하나의 이빨이 나갔다. 화철간의
힘은 강하지 않았지만 무공은 심히 높았는지라 귀두도를 다시 휘
둘러오자 적운은 밀릴수 밖에 없었다. 수초를 겨루자 적운은 연
신 뒤로 밀렸다. 화철간은 추격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더니 적운
이 먹다남긴 익은 새고기를 집어 들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신 탄성을 질렀다.
"아 좋다! 참 맛있어! 질겨서 좋구나!"
적운은 수생을 쳐다보았다. 두사람은 모두 가슴속이 서늘해져
옴을 느꼈다. 화철간이 이번에 무기를 들고 도전하러 온 상황은
지난번과는 사뭇달랐다. 빈손으로 격돌할때는 적운이 그에게 몇
대 맞더라도 다만 상처를 입거나 피를 흘릴뿐이지 한주먹에 죽을
염려는 없었다. 허니 지금은 그의 손에 도검이 쥐어져 있었으므
로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었다. 지난번 격돌할때 수생
의 손에 혈도가 쥐어져 있었기때문에 겨우 지탱할수 있었는데 지
금 화철간의 손에는 두개의 병기가 쥐어져 있었으므로 그것으로
이미 우세를 점하고 있는 것이었다. 화철간은 반마리의 새고기를
먹은후에 아직도 미련이 남은 듯 뒤를 살펴 보았다. 동굴입구에
또 한마리가 보이자 달려가서 깨끗이 먹어 치웠다. 그는 옷소매
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거 맛좋다! 요리 솜씨가 일품이야!"
하고서 몸을 돌리며 갑자기 몸을 날려 앞으로 다가와 적운에게
일도를 내리쳤다. 이 일도는 기습적이었고 날카로왔다. 적운은
졸지에 방비할수 없어서 하마터면 머리가 반쪽이 날뻔했다. 그는
급히 혈도를 들어 화철간의 귀두도를 막았다. 화철간은 적운의
내공이 자신을 휠씬 능가함을 알고 있었으므로 만약 두개의 도가
부ㄷ히면 자신의 손과 팔뚝이 마비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귀두도
를 돌려 옆으로 내리찍었다. 삼초사이에 적운은 이미 손과 발이
둔해졌으며 ㅆ!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쪽 팔이 귀두도에 의해서
긴 상처가 생겼다. 수생은 급히 외쳤다.
"싸우지 마세요! 싸우지 마세요! 화아저씨, 제가 고기를 나누어
드리겠어요!"
화철간은 적운의 도법이 평범한 것이 삼류수준도 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내심 한시라도 빨리 후환을 없애고자 작정했다. 그래
서 즉시 손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조카야, 너는 이놈을 매우 아끼고 있지? 그렇지 ? 너는 왕가의
사촌오빠를 잊지는 않았겠지?"
그리고 다시 번개같이 삼도를 내리치니 적운은 가까스로 옆으로
피했다. 수생이 크게 외쳤다.
"화아저씨, 싸우지 마세요!"
적운은 노해 말했다.
"이 자를 그렇게 부르지 마시요. 내가 이기지 못하면 죽으면 될
것이 아니오!"
그는 미치도록 화가 난 나머지 혈도를 들어 마구 내리찍었다.
그는 갑자기 우측손의 혈도를 좌측손에 거머쥐더니 맹렬히 반격
했다. 화철간은 이 미천한 작은 중이 이토록 오묘한 초식을 써서
반격을 해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급히 머리를 돌려 피하
려고 했으나 팍! 하면서 그의 일장이 목덜미에 와 닿았다. 그는
일장이 목덜미에 닿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적운은 멈칫하면서 생
각했다.
'이것은 거지 할아버지가 알려준 이광식이다.'
적운은 성공을 거두자 곧바로 자견식과 거검식의 초식을 사용했
다. 화철간이 외쳤다.
"연성검법이다! 연성검법이다!"
적운은 다시 멈칫했다. 그날 형주성의 만씨집안에서 만규등 여
덟사람과 검술시합을 할때 만진산도 연성검법이라고 했는데 그당
시 적운은 만진산이 엉터리로 말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화철
간과 같은 무림의 명숙이 말하자 정말로 이 검법이 연성검법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혈도를 검으로 써서 제이 제삼초식을 연
속 몇번 사용하였다. 그러나 화철간의 무공이 어찌 만규나 노곤
등과 비교가 될수 있겠는가? 화철간은 다시 적운이 세번째로 거
검식의 초식을 사용하며 혈도로 귀두도를 내리치려 했을때 화철
간은 발길질을 하여서 정확하게 적운의 완맥을 적중시켰다. 적운
의 혈도는 손을 벗어났고 화철간은 양손에 들은 도와 검을 동시
에 적운을 향해 찔러갔다. 팍팍! 하는 소리가 나면서 두개의 병
기가 동시에 적운의 가슴에 적중했다. 그러나 적운은 오잠의를
입고 있었기에 두개의 병기는 적운의 몸을 파고들지는 못했다.
화철간은 저번에 단창이 적운의 몸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를 적운
의 몸에 쇠붙이가 있어서 창끝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번에는 그런 요행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도검은 역시
적운의 몸에 파고들지를 못했고 적운은 양주먹을 휘두르며반격
을 시도하고 있었다. 화철간은 외쳤다.
"귀신이다! 귀신이다!"
그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육형님과 유승풍은 내가 자기들 시체를 먹었다고 나를 괴롭히
는 것이 아닐까?'
그는 온몸에 식은 땀이 흐르는 걸 느끼고 뒤로 몇발자국 물러섰
다. 적운과 수생은 이 기회를 틈타서 재빨리 동굴안으로 뛰어 들
어갔다. 둘은 다시 저번에 쌓아 놓았던 돌맹이로 동굴의 입구를
막았다. 두사람은 죽음에서 살아 나오자 마음이 두근거렸다. 화
철간이 외쳤다.
"나와라! 이 자라같은 놈아! 동굴속에서 평생을 숨어 있을수 있
겠느냐? 너희들은 그 동굴에서 새를 잡아먹으려고 하느냐? 하하
하!"
그는 큰소리로 웃고 있었지만 감히 수대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
체를 끌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수생과 적운은 서로 쳐다보며 생
각했다.
'이자의 말은 일리가 있다. 우리는 동굴에서 무엇을 먹고 살까?
나가면 저놈에게 죽을텐데. 어쩌면 좋단 말인가 ?'
화철간이 만약 돌덩이를 옮기고 동굴 속으로 들어온다면 두사람
은 무기가 없으니 수비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화철간은 도검이
적운의 몸을 꿰뚫지 못하자 내심 두려운 생각에 함부로 동굴안으
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적운과 수생은 동굴속 입구에서 한참을 지키고 있었다. 화철간
이 더 이상 공격해 들어오지 않자 마음이 약간 놓였다. 적운은
좌측팔뚝을 보니 상처난 곳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수생이 옷
자락을 찢어 그의 상처를 싸매주었다. 적운은 이믹 갈기갈기 찢
어진 옷자락을 가지고 가슴을 꽁꽁 싸맸다. 그렇게 싸매지 않는
다면 자기가 품속에 간직하고 있는 보상 몸에서 나온 혈도경이
떨어져 수생이 보면 어쩔까? 하는 염려때문이었다. 그가 조금전
화철간과 극렬하게 겨룰 때 시간은 짧았고 힘은 많이 쓰지 않았
지만 한숨을 돌리자 몸이 피곤해져왔다. 그날 낡은 절에서 처음
혈도경을 보고 그속의 나체모양대로 해보니 정신이 일진되었음이
문득 머리속에 떠올랐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화철간은 절대로 그
냥 물러가지 않을 것이니 빨리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 방법
대로 운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죽이겠다는 생각보다는
죽기전에 그를 몇대라도 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그가
즉시 책을 꺼내어 들어보니 첫번째 장에는 한 사람이 그려져 있
었는데 머리는 아래로 향하고 다리는 위로 향하고 있는 이상한
그림이었다. 적운은 즉시 그 자세대로 하고 운공을 하기 시작했
다. 수생은 갑자기 적운이 이상한 행동을 취하자 또 발작을 했다
고 여겼다. 밖에는 강적이 있고, 안에는 미친 사람이 있으니 그
녀는 두려운 나머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적운은 반시진을
연마하지도 않았는데 전신이 따듯해지면서 마치 불을 쬐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또 한장을 넘기니 좌측손으로 땅을 짚고 있
었다. 이 자세는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적운은 신조경을 익힌
이후로 뼈마디를 자유롭게 음직일수 있었으므로 어려움이 없었
다. 그는 즉시 책의 그림대로 하고 빨간선을 따라 연마를 하였
다. 원래 이 혈도경은 혈도문의 무공의 총결산이었다. 그렇기에
무공이 무척 난해아여서 한폭의 도보를 익히자면 반년에서 일년
이 넘게 걸렸다. 그러나 적운은 임맥과 독맥이 뚫려 신조공의 기
초가 있어 아무리 어려운 도보라도 금방 익힐수 있었다. 수생은
그가 무공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자 마음을 놓을수 있었다. 그녀
는 홀낏 책을 보니 책속에는 벌거숭이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
녀는 즉시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
했다.
'이 자가 무공을익힌다고 옷을 다 벗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적운이 한동안 내
공을 익힌뒤에 다시 책장을 넘기니 그림속의 인물은 칼을 쥐고
있었다. 적운은 크게 기뻐하면서 외쳤다.
"혈도도법이다!"
그는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들고 그림대로 펼쳐보았다. 이 혈도
도법은 정말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초식은 불가능한 방향과 위
치에서 내리쳐 왔다. 적운은 겨우 삼초식을 연마하고 깨닫는바가
있었다. 알고보니 이 초식은 모두 앞에서 나오는 괴이한 모습을
변형한 것이다. 적운은 즉시 네초식의 도법을 골라서 숙달되게
익혔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잠을 자지 않고 쉬지 않고 이 초식을 빨리 연마 해야겠
다. 사오일이 지난다음 화씨성을 가진 놈과 일전을 가져야겠어..
아f! 조금이라도 빨리 이 도법을 익히지 않은 것이 아깝구나.'
그런데 화철간은 반나절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화철간은 외쳤
다.
"이 어린 중놈아! 네놈의 장인의 심장의 맛은 참 좋구나. 너는
먹지 않겠느냐 ?"
수생은 깜작 놀라서 바위를 밀어 버리고 달려나갔다. 화철간은
귀두도를 가지고 마침 수대의 무덤을 파헤치고 있었다. 아직 시
체는 보이지 않았으나 꺼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수생은 외쳤
다.
"당신은 의형제의 정분도 돌보지 않는군요!"
그녀는 계속 떠들며 달려나갔다. 화철간은 먼저 그녀를 끌어내
처치한후 적운을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달려
오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눈을 파다가 그녀가 바로 옆에 다다
렀을때 재빨리 손을 뻗어서 그녀의 혈도를 짚었다. 수생은 갑작
스러운 공격에 힘도 써보지 못하고 눈으로 쓰러졌다. 이때 적운
은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화철간은 껄껄
웃더니 말했다.
"이놈이 죽을려고 환장을 했구나. 그 약한 나뭇가지로 이 어르
신과 상대를 하겠다는거냐? 좋다 너희 혈도문의 무기로 너를 죽
여주마!"
그러더니 손을 뒤로 돌려 허리춤에서 혈도를 풀어서 삽시간에
적운을 향해서 세번을 공격했다. 이 혈도는 얇기가 종잇장 같았
다. 내리칠때마다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화철간은 내심 생각했
다.
"정말 좋은 칼이다!"
적운은 혈도가 내리쳐 오자 간담이 서늘해져 어찌할 바를 몰랐
다. 그는 입을 악닥물고 생각했다.
'오늘 내가 네놈과 같이 죽겠다!'
그는 우측손으로 나뭇가지를 휘둘러 등뒤에서 반격했다. 팍! 하
는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가 화철간의 뒷덜미를 후려쳤다. 이 일
초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그가 들고 있는 것이 나뭇가지
가 아니고 병기였다면 이 일초로 화철간의 머리는 두쪽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기실 화철간과 혈도노조의 무공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혈도도법을 익숙하게 익힌 혈도노조라 해도 이 일
초를 화철간에게 적중시킬수는 없었다. 그러니 적운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화철간은 적운을 너무 가볍게 보다가 기습적으로
일격을 당한 것이다. 적운으 갑자기 두팔을 휘둘렀다. 적운이 들
고 있던 나무막대기가 마치 폭풍우처럼 내리 찍어 왔다. 적운은
아무런 생각없이 펼친 초식이었는데 정신이 빠진 화철간은 또 다
시 목덜밀에 적중당했다. 화철간은 몸을 흔들거리더니 말했다.
"귀신이다! 귀신이다!"
그는 손을 벌벌 떨더니 혈도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멀리 도망쳐버렸다.
화철간은 의형제의 시신을 먹고 난 뒤에 마음속으로 육천서, 유
승풍의 혼령이 와서 괴롭힐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조
금전 도검이 적운의 몸에 적중했는데 적운의 몸을꿰뚫지 못할때
이미 혼령이 요술을 부린다고 겁을 먹고 있었는데 적운은 한개의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자신의 앞에 서 있고 수생은 혈도가 찍혀서
쓰러져 있는데 자기의 뒷쪽 목덜미가 연속으로 얻어 맞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지금 계곡안에는 자신과 적운과 수생 뿐이었는
데 이렇듯 신출귀몰하게 음직이니 귀신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
게 된 것이다. 그기 고개를 돌려 보았다면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
을 것이다. 그는 혼비백산되어 감히 이자리에 더 이상 머물러 있
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적운은 화철간이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
는데 갑자기 목숨을 걸고 도망치자 매우 뜻밖이었다. 적운은 혈
도를 집어들고 땅바닥에 누워 있는 수생을 보며 말했다.
"당신은 그에게 혈도를 찍혔읍니까 ?"
수생은 말했다.
"예."
적운은 말했다.
"나는 혈도를 풀지 모르니 당신을 구할수가 없군요..."
수생은 말했다.
"당신은 단지 내 허리와 다리에....."
본래 그녀는 혈도의 부위를 알려주어서 그에게 피를 밀어 피가
궁을 지나게 되면 혈도가 풀어진다는 사실을 말해주려고 하였는
데 이 사람이 최근에는 무례한 짓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몸이
불편한틈을 타서 야수처럼 덤벼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
던 것이다. 적운은 그녀가 말을 하다가 두려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멈추자 생각했다.
'화철간은 이미 멀리 도망쳤는데 무엇이 무섭단 말인가 ?'
그러다가 적운은 그녀가 두려워 하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생
각해 내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외쳤다.
"당신은 지금 내가 당신게 못된 짓을 할가봐 두려운 것이요 ?
흥! 그렇다면 지금부터 나는 당신을 절대로 보지 않겠소!"
그는 화가 너무나서 눈이 많이 쌓인 곳에 발길질을 했다. 눈이
여기저기 휘날렸다. 적운은 동굴속으로 들어가서 혈도경을 가지
고 나와서 땅에 떨어진 혈도를 들고 바위로 가서 앉는데 수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수생은 내심 부끄러웠다. 그녀는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꼼작도 하지 못했다. 한시진도 채 되지 못하여서 한
마리의 독수리가 그녀를 향해서 내려왔다. 수생이놀라서 악! 하
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 한줄기 번쩍하고 붉은 빛이 보였다. 혈
도가 비스듬이 날아와서 독수리를 두쪽내었다. 독수리는 그녀의
몸가까이에 떨어졌다. 적운은 그녀가 자기를 의심하여서 화가 났
지만 화철간이 돌아 올지도 몰라서 그녀가 보이는 바위위에서 혈
도도법을 연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생이 말했다.
"적오라버니, 적오라버니. 내가 잘못했어요. 백번 내가 잘못했
어요."
적운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고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적오라버니, 적오라버니, 모든일을 용서해주세요. 아버지가 돌
아가시고 저 혼자 외롭게 되니 모든 일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어
요. 저를 미워하지 마세요."
적운은 여전히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의 노기는 점차 가
라 앉았다. 수생은 땅바닥에 누워 있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야 몸을 음직일수가 있게되었다. 그녀는 적운이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밤새도록 두눈을 뜨고 자신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사실
을 알수 있었다. 그녀는 매우 감격했다. 그녀는 몸을 음직일수
있게 되자 독수리를 구워서 절반을 적운에게 가져다 주었다. 적
운은 그녀가 가까이 오자 그녀를 보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눈을 꽉 감았다. 수생은 익은 독수리 고기를 놓고는 바로
돌아서서 걸어갔다. 적운은 그녀가 멀리 가기를 기다려서 눈을
떴다. 갑자기 그녀의 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서
'어머 !' 하는 소리를 내더니 땅바닥에 쓰러졌다. 적운은 몸을
날려서 그녀 가까이 다가갔다. 수생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킥킥! 내가 당신을 잠깐 속였어요. 당신은 나를 보지 않겠다고
했는데 나를 보았지요? 당신의 말은 믿을수가 없어요."
적운은 그녀를 메섭게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천하의 모든 여자들은 모두 여우와같아. 정형님의 능아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거짓말장이야! 이후론 절대 믿지 않겠어.'
수생은 킥킥! 교태롭게 웃으면서 말했다.
"적오라버니. 당신이 재빨리 저를 구해주러와서 정말 고마와
요."
적운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몸을 돌려 성큼 성큼 되돌아갔
다.
화철간은 귀신의 장난이 무서운지 더 이상 돌아와서 귀찮게 굴
지 않았다. 그는 별수없이 나무껍질과 풀뿌리를 씹으면서 세월을
보냈고 어떤때는 돌맹이를 던져서 몇마리의 기러기를 잡기도 했
다. 적운은 날마다 한두개의 혈도도법을 익혀서 내력과 외공이
갈수록 진보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서 점차 날이 따듯해졌
다. 계곡에 쌓이 눈은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이 며칠동안 적운
은 한권의 혈도문의 도법과 내공을 모두 익숙하게 익혔다. 그는
이때 몸에 정사(正邪) 양파 무공의 최고 장점을 지닐수가 있었
다. 비록 경험이 적고 결함이 있고, 또 정사 양파의 공력을 융화
관통시킬수는 없었으나 이제 무공으로 말하자면 화철간이나 혈도
노조보다 훨씬 높아서 큰 차이가 있었고 정전과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신조공을 연마하여서 임맥과
독맥을 관통시킨 덕이었다.
수생은 자꾸 그에게 말을 걸었으나 적운은 끝내 한마디도 대답
하지 않았다. 식사할때를 제외하고는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무공만 연마했다. 그의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단 세가지
였다. 계곡을 나간후 첫째로는 옛날 살던 상서로가서 사부님의
찾고 두번째로 형주로 가서 능소저와 정전을 합장하는 일이였으
며 세번째로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눈은 녹아서 개울을 이루어 유유히 계곡 밖으로 흘러나가고 있
었다. 계곡을 막고 있던 눈은 하루가 갈수록 낮아졌다. 단오절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계곡을 나갈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하루는 수생이 건네주는 익은 고기를 받아들고 막 몸을 돌릴려
고 하는데 수생이 말했다.
"적오라버니, 며칠 뒤면 우리는 이곳을 떠날수 있겠지요 ?"
적운은 '응! '하며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수생은 말했다.
"이 몇달동안 당신이 나를 보살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만약
당신이 아니였다면 나는 그 화철간 그 악독한 자에게 벌써 죽었
을 거예요."
적운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감사는 무슨..."
그는 몸을 돌려 멀어져갔다. 갑자기 뒤쪽에서 우는 소리가 들
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수생이 바위 위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그는 내심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갈수 있게 되었으니 당연히 기뻐해야 될텐데 왜 울고 있는
거지? 울까닭이 없지 않은가? 여자의 마음은 이상하기 한이 없구
나. 영원히 알 수 없겐단 말이야!'
기실 도대체 왜 울고 있는지는 수생 자신도 알지 못하고 있었
다. 단지 마음이 괴로워서 참지 못하고 울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적운은 한바탕 무공을 연마한후에 날마다 잠을 잤던
그 바위위에서 잠을 청했다. 그 바위는 동굴과 멀지 않아서 화철
간이 밤에 무덤을 도굴하거니 수생에게 덤벼드는 것을 쉽게 막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 몇달동안 화철간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걱정될것이 없어 그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멀
리더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는 이때 내공이
지극히 높아서 눈과 귀가 매우 밝았으며 옛날과는 사뭇 달랐다.
발걸음 소리는 멀리서 들려왔지만 그는 깜작 놀라 잠에서 깼다.
그는 즉시 몸을 일으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많은 사람의 발자
욱 소리였고 최소한 오륙명이나 열명정도는 될 것 같았다. 그들
은 아주 빠른 걸음으로 계곡을 향해 오고 있었다. 적운은 깜작
놀랐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 눈덮이 계곡으로 들어올수 있었을까?'
계곡에는 산봉우리 대문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고 비교적 추웠
으며 밖에 ㅅ였던 눈이 녹고 계곡안의 눈이 녹을려면 최소한 한
달차이가 난다는 빨營퓽 그는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적운
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ㅉ아오던 중원의 군웅들일 것이다. 지
금 혈도노조는 죽었으니 복수는 이미 끝났다. 음, 그리고 수아가
씨의 사촌오빠기 틀림없이 같이 왔을 것이니 그녀를 데리고 간다
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구나. 그들은 틀림없이 나를 혈도문의
여색을 밝히는 중이라고 단정짓고 있을 것이고 아무리 설명해도
나를 믿어 줄리가 없다. 그러니 나는 그들이 수아가씨를 데리고
나간뒤에 천천히 계곡 밖으로 나가야겠구나.'
그는산동굴 옆을 돌아 큰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발걸음 소
리는 점점 가까이 들리더니 갑자기 눈앞이 밝아졌다. 여러사람들
이 산허리를 돌아 들어오자 손에 들려있던 횃불이 사방을 밝혀
주었다. 이 사람들은 약 오십명 정도 되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한
소에는 횃불을 들고 있었고 한손에는 병기를 들고 있었다. 맨 앞
에 선 인물은 흰머리를 휘날리며 왼손에는 도를 오른손에는 검을
쥔 인물이었는데 바로 화철간이었다. 적운은 그가 여러사람과 함
께 오는 것을 보자 크게 의아했으나 곧바로 그 의문은 풀렸다.
'이 사람들은바로 호북 사천에서 추격해 온 사람드링고 화철
간은 그들의 우두머리이니 당연히 만나 어울렸을것이다. 그런데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구나.'
일행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 그는 급히 앞으로 몇장정도 기어
나와 눈이 녹지 않은 수풀속에 엎드렸다. 그와 여러사람들과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지만 그의 내공은 상당히 높아서 그들이 말하
는 소리를 또렷히 들을수 있었다. 한사람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알고보니 화형께서 친히 혈도악승을 처치하셨구려. 정말 축하
합니다. 화형이 이렇듯 훌룡하시니 앞으로는당연히 중원무림의
우두머리가 되시고 우리 모두는 화형의 분부에 따르겠읍니다."
또 한사람이 말했다.
"단지 애석한 것은 육대협, 유도장, 수대협께서 참사를 당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비통한 일입니다."
또 다른 한사람이 말했다.
"그 늙은 악승은 죽였으나 어린 악승은 아직 처치하지 못했으
니 우리는 지금 즉시 수색하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화대협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
화철간은 말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장형의 말씀이 맞읍니다. 이 소악승의 몸
에 사파의 무공이 있고 그 독랄함이 그 스승에 뒤지지 않고 오리
혀 더 하죠. 그는 지금 어디 숨어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는 우리
가 계곡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급히 몸을 피했을 것입니다.
여러 형제들께서는 무서워하지 마시고 그 악독한 놈을 죽여서 일
을 마무리 짓도록 합시다."
적운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화씨성을 가진 놈이 함부로 말을 하고 있구나. 흉악함이란
이루 말할수 없다. 내가 신중히 몸을 숨겼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함깨 달려와 죽이려 했을텐데. 내 어찌 막을수
있겠는가?'
그때 한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그는 악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분은 정인군자입니
다. 화철간, 이놈이 나쁜 놈입니다."
적운은 그말이 수생이 한 것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적운은
그말을 듣자 어느정도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악
승이 아니라 정인군자라는 말을 듣자, 이 며칠동안 수생이 자신
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신을정
인군자라고 부르자 오히려 멍청해지고 말았다. 갑자기 그는 눈물
을 흘렸다.
'그녀가 나를 정인군자라고 하는구나. 그녀는 나를 정인군자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수생이 이 덧罐떫霽 하자 굴속의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기만
할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적운이 숲속에서 바라보니 이 사
람들의 얼굴에는 수생을 멸시하는 빛이 역력했고 어떤자는 비웃
음을 띠고 있었고 어떤 자는 재미있는 양 구경을 하려 했다. 한
참 뒤 한 늙은 사람이 말했다.
"수소저, 나와 당신의 아버지와는 여러해동안 친한 친구였으니
몇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군. 이 악독한 중놈은 아버지를 살해했
어...."
수생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니예요..."
그 노인은 말했다.
"그렇다면 그 중놈에게 살해당하지 않았뇟摸 누구에게 살해되
었는가 ?"
수생은 말했다.
"그는... 그는..."
그리고는 금방 말을 잇지 못했다. 늙은 노인의 계속해서 말을
했다.
"화대협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날 계곡에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
져 그 조그만 중놈이 나무 막대기로 아버지의 머리를 쳤기 때문
에 죽었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은가 ?"
수생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노인은 말했다.
"그러나 무엇이란 말인가 ?"
수생이 말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스스로 그에게 죽여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녀가 이말을 하자 동굴 쐴纜【_ 갑자기 폭소가 터져나왔다.
웃음소리는 동굴 밖의 나뭇가지를 흔들었으며 다 녹지 않은 눈송
이가 휘날렸다. 웃음소리는 무수한 조롱이 섞여 있었다.
"자기 스스로 죽여달라고 했다니? 하하하! 거지말이 너무 재미
있군."
"알고보니 수대협께서는 살기가 싫어 장래의 사위에게 머리를
박살내달라고 청했군!"
"장래 사위라니? 수대협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그 중놈과 이 아
가씨와는 벌써 어쩌고저쩌고 했을 거야!"
또 몇사람은 무서운 목소리로 힐책했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몰염치한 계집은 없을 거야. 족보도 모르
는 사내를 위해서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조차도 버리다니..."
또 어떤 이는 냉혹하게 풍자를 했다.
"사내때문에 아버지를 버린다는 일은 이세상에 흔한일이야. 단
지 간부를 사주하여 자기 아버지를 살해까지 한다는 것은 정말
금시초문이군."
또 한사람이 말했다.
"나는 간부를 시켜서 지아비를 죽였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는
데 아마 요즘 세상에는 그게 아닌가 보지? 사내에게 푹 빠져 아
버지를 모살하다니. 하하하!"
그들은 모두 화철간의 말을 먼저 들었기때문에 수생과 적운이
벌서 사람들에게 알릴수 없는 못된 짓을 했을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사내를 위해서 변명을 하고 있다고 여기
고 모두 분개하였다. 그러므로 갈수록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오로지 싸움만 아는 강호의 사람들이니 무슨
말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수생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큰소리로 말
했다.
"당신들은... 당신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나요? 정말 창피한지
도 모르는군요."
그들은 또 한바탕 웃어 제꼈다. 한사람이 말했다.
"이제서야 우리들이 수치를 모른다는 것을 알았소? 정말 배꼽
을 잡고 죽을일이오."
"좋소, 아가씨, 우리들은 염치와 수치를 모르는 사람들이오.
당신이 그 중놈과 산동굴에서 히히덕 거리면서 아버지의 원한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은 수치를 아는 짓이요?"
또 다른 거친 목소리가 욕을 하기 시작했다.
"제기랄! 이 늙은이가 호북에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도중에 쉬
지도 않고 온것이 모두 이 화냥년을 구하기 위해서였다니 이 염
치없는 미천한 계집을 이 늙은이가 한칼에 없애버리겠다."
그러자 옆사람이 만류했다.
"그렇게 할수는 없읍니다.인형(印兄)! 경거망동하지 마십시
요."
그 늙은 목소륫φ 말했다.
"모두 잠시만 참아 주십시요. 수아가씨는 나이가 젊어서 견문
이 적고 수대협께서 불행히 세상을 뜨셨으니 그녀가 홀로 되어
보살피는 사람이 없었잖소.모두들 그녀를 괴롭히지 마십시요. 화
대협께서 책임을 지고 맡아서 잘 가르친다면 아마 제정신으로 돌
아올 것입니다. 모두들 이 기회에 덕을 좀 쌓으시고 이 계곡안에
서 생긴일은 절대로 강호에 나가서 발설하지 마십시요. 수대협께
선 생전에 사람들을 인과 의로 대했기 때문에 모두 그의 딸을 구
러온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응당히 수대협의 체면을 봐서 웩缺
을 찾아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 놈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수대협의 영전에 바쳐야만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덕망이 높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무리들중 적지 않은 사람
이 그의 의견에 찬동했다.
"네, 네. 그렇습니다. 장노영웅의 말씀은 일리가 있읍니다. 우
리는 가서 그 중놈을 찾아 놓아야합니다."
여러사람들은 여기저기서 한마디 하자 수생은 왁!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먼곳에서 길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생아! 수생아! 누이는 지금 쐴諍弔獵 !"
수생은 이 목소리를 듣자 바로 사촌오빠인 왕소풍인 것을 알았
다. 그녀는 갑자기 자기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치욕을 당하고 있
던 차에 갑자기 친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자 무척 기뻤다. 그녀는
즉시 울음을 멈추고 산동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떤 사람이 말
했다.
"저 정신을 빼앗긴 왕소풍이 진상을 안다면 아마 미치고 말 것
일세."
그 장씨 성을 가진 노인이 말했다.
"모두 떠들지 마시고 나의 말을 들으시오. 이 왕가청년은 수
소저의 몸에 어떤 이상이 생겼을까봐 노심초사해 왔읍니다. 눈이
녹기 이틀전에 벌써 이 계곡안으로 들어왔읍니다. 길이 좋지 않
아 어떤 곳에 발이 묶여 오히려 우리보다 뒤쳐진것 같읍니다. 여
러분께서는 이 사람의 팔자가 나쁘다고 여겨주시고 모두들 공덕
을 쌓아서 수아가씨와 그 중놈의 추악한 일은 그에게 말하지 말
아주십시요."
군웅들중 우직한 자가 말했다.
"마땅히 그래야지요. 수아가씨는 잠시 실수하였으니 새로운 길
을 걸을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하물며 어쩔수 없는 상황에
서 일어난 것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명문의 규수거 어찌 그런 사
악한 중놈과 붙었겠읍니까 ?"

왕소풍이 멀리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이야! 수생아!"
그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틀림없이 사람들이 이곳에 없
는 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생은 급히 동굴밖으로 나가 외쳤
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나는 여기 있읍니다. 나는 여기 있어
요!"
왕소풍이 또 크게 외쳤다.
"수생아! 수생아! 어디 있니 ?"
수생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전 여기 있읍니다."
동북쪽에서 한사람의 그림자가 미끄러지듯이 날아 오면서 수생
을 불렀다. 그는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더니 땅바닥에 넘어졌다.
수생은 놀라면서 매우 걱정이 되어서 그에게 달려갔다. 왕소풍은
수생의 목소리를 듣고 너무 기뻐서 그만 발을 헛디뎌서 넘어졌던
것이다. 그는 몸을 바로 일으키더니 급히 달려왔다. 수생도 급히
달려갔다. 두 사람은 서로 가까이 다가가자 일제히 환호성을 지
르며 포옹했다. 적운은 두사람이 만나자마자 기뻐하면서 다정한
모습을 보이자 마음속이 시큰하게 저려왔다. 그는 결국 사매인
척방을 잊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계곡에서 수생과 반년정도
같이 지냈지만 마음속으로 그녀를 추호도 여자로 보지 않았던 것
이다. 단점 오랫동안 같이 있다 헤어지게 되자 아쉬움이 조금 남
았을 뿐이다.
'그녀가 사촌오빠를 따라가면 그 이상 좋을 것이 없겠지. 그녀
가 앞으로 아무 재앙없이 사촌오빠에게 시집을 가서 평생 즐겁게
살기를 바랄뿐이다.'
갑자기 왕소풍이 대성통곡을 했다. 수생이 수대의 죽음을 전했
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 뒤에 왕소풍이 수생의 손을 잡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왕소풍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께서 불행하게 당하셨읍니다. 나... 난... 나는 어려서
부터 삼촌이 키워주셨고 나를 마치친자식처럼 대해주셨읍니다."
수생은 그가 자기 아버지에 대해 말을 하자 자기도 참을수 없
어 눈물을 흘렸다. 왕소풍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누이, 앞으로 다시는 당신과 헤어지지 맙시다. 그리고 나는
평생 잘 대해 줄것이요."
수생은 어려서부터 사촌오빠를 사모해왔다. 이렇게 헤어져 있
는 동안 생각은 더욱 간절했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하자 얼
굴이 붉어지면서 마음속이 달콤해져왔다. 두사람은 동굴 가까이
걸어왔다. 수생은 갑자기 멈춰 서며 말했다.
"오라버니, 당신과 나는 이만 돌아가도록 해요. 끝ご 그들을
보기 싫어요."
왕소풍은 으아해하며 말했다.
"왜 그러니? 이 많은 아저씨와 어르신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너
를 구하러 왔는데, 그 분들은 계곡 밖에서 반년이나 기다렸단다.
정말 좋은 분들이야.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 돼!"
수생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내가 이미 그들에겐 감사하다고 말을 했어요."
왕소풍은 말했다.
"모두들 천리 먼 호북지방에서 이곳까지 ㅉ아왔는데 같이 왔으
니 같이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더구나 여기 있는 삼촌의
시신을 고향으로 모셔가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이곳에서 장례를
치러야 할지 그어르신께 여쭈어보아야 한다. 육아저씨와 화아저
씨, 유도장께선 어디 계시냐 ?"
수생은 말했다.
"당신이 나와 먼저 가신다면 천천히 말씀해 드리겠어요. 화아
저씨는 정말 나쁜 사람이니 당신은 절대로 그의 엉터리같은 말을
듣지 마세요."
왕소풍은 옛날부터 그녀의 말을 탓하지 않았었다. 이때 컴컴
한 상태에서 달콤한 목소리를 듣자 그녀의 의사에 따라 저 떠나
기로 마음을 굳혔다. 갑자기 동굴속에서 한사람이 말했다.
"왕현질, 좀 들어오게나."
그는 바로 화철간이었다. 왕소풍은 말했다.
"네, 화아저씨!"
수생은 급해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말했다.
"내 말을 듣지 않겠어요 ?"
왕소풍은 생각했다.
'화아저씨는 삼촌의 의형이시다. 어르신의 명령인데 어찌 거역
할 수 있겠는가? 이 많은 분들이 사촌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이렇
게 천리길도 멀다 하지 않고 도와주시려고 오셨는데 일이 끝났다
고 해서 아는체도 않고 떠나간다면 너무한 일이야. 그러면 나의
명성이 땅에 떨어지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강호에 고개를 들고
다닐수 있겠는가? 사촌동생은 아직 어린애의 마음을 지니고 있으
니 조금 뒤 그녀를 달래며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면 되겠지!'
그는 즉시 그녀의 손을 잡고 산동굴로 들어가려 했다. 수생은
화철간이 말하려는것은 절대로 좋은 말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
다.
'누가 뭐래도 나는 순결하다. 그가 무슨 더러운 말을 해도 나
는 깨긋한 몸이야.'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즉시 왕소풍을 따라 들어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두사람이 동굴에 들어서자 화철간이 말
했다.
"왕현질, 네가 왔으니 일이 참 잘되었다. 혈도승은 이미 나에
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런데 아직 어린 중끝弔 우리가 쳐놓은 그
물에서 빠져 나갈려고 하니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그를 잡아다가
죽이는 것이다. 그 어린 중놈이 바로 너의 삼촌을 죽인 원흉이
다."
왕소풍은 크게 외치며 싹 하고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그리고
수생을 쳐다보고 급히 이 사촌동생이 아무런 이상이 없는가를 살
펴보았다. 불빛아래서 본 그녀는 초췌해보였고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왕소풍은 그녀가 가련해 보였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왕소풍은 급히 물었다.
"왜 그러니 ?"
수생은 급히 말했다.
"아버지는 그... 그 사람웩 죽인 것이 아니예요."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격분했다.
"우리들은 네가 가련해보이고 수대협의 얼굴을 보아서 너와 그
추악한 중놈과의 일을 발설하고 있지 않은데 네가 지금에 와서도
그 중놈을 두둔하고 있구나. 정말 백번죽어도 용서할수 없는 계
집이군. 너는 중놈이라고 호칭을 붙이고 싶지 않아 아직도 그사
람 그사람 하고 있으니 정말 낯이 두껍기 한정 없구나."
왕소풍은 모든 사람들이 노기를 띄우자 매우 이상하게 생각되
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자기의 사촌동생이 이들과 만나기를 원
하지않았고 또 모든 사람이 그녀에게 적의를 품고 있으니 그 중
간에는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
했다.
"누이, 우리가 화아저씨 말씀대로 그 중놈을 잡아 천갈래 만갈
래로 찢어 놓은 다음 나중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는다!"
수생은 말했다.
"그는 중이 아니예요..."
왕소풍은 멍청해졌다. 그는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경멸의
눈초리를 보이자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검을 검집에 들이
밀며 큰소리로 말했다.
"여기계신 여러 어르신과 친구들, 여러분들은 한번 더 수고를
해주시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해주십시요. 이 사람은 다
시 여러분의 은덕에 감사드릴 것입니다."
그러면서 허리를 숙이며 절을 했다. 여러사람은 일제히 말했
다.
"그렇습니다. 빨리 가서 그 악승을 잡는 것이 급하고 그가 이
계곡을 빠져 나가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더니 너도 나도 모두 동굴을 뛰쳐 나.

누가 동굴속에 횃불을 남겨 놓았는지 꺼질듯 말듯 계곡안과 영
검쌍협의 두사람 얼굴에 비추고 환해졌다 어두워졌다 하였다. 두
사람은 샥 손을 잡고 무슨 말이든 하려고 했으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몰랐다. 적운은 내심 생각했다.
'그들 사촌 오누이끼리 틀림없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면 나는 이제 그만 사라지는 것이 좋겠구나.'
그가 막 몸을 피하려고 하는데 두사람이 가까이 걸어오는 소리
가 들렸다. 한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이쪽에서 수색해 오시오. 나는 저쪽에서 수색해 오리
다. 한바퀴 빙돌고 난후 다시 이곳에서 만납시다."
다른 한사람이 말했다.
"좋읍니다. 이 일대의 눈밭에는 발자욱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으
니 어쩌면그 악승이 이 근처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지요. "
먼저 말한 자는 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
"보시요. 송씨, 그 수소저는 마치 한떨키 꽃처럼 어여쁘기 그
지 없던데 그 음흉한 중놈은 이 반년동안 그녀와 아마 많은 재미
를 보았을 것이요."
또 한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그렇읍니다. 그러나 그 왕씨성을 가진 자는 기꺼이
그 혹을 거두려 하지 않읍니까 ?"
두사람은 히히덕 거리면서 몇마디 더 주고 받은후 각각 적운을
잡으로 헤어졌다. 적운은 옆에서 듣고 왕소풍과 수생을 생각하자
마음이 괴로웠다.
'화철간이라는 자는 정말 악독하구나. 그는 염치도 없이 유언
비어를 날조하여서 수아가씨의 명성을 훼손시키고 있구나. 그렇
다고 자기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
화철간은 수생이 자기의 여러가지 악행을 폭로하는 것이 염려
되어 먼저 손을 써 그녀의 명성을 더럽힘으로써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듣지 않게 만든 것이다. 적운은 고개를 들어 동굴속을 바라
보았다. 수생은 뒤로 두발자국 물러 나더니 얼굴을 창백히 하고
몸을 떨면서 말했다.
"오라버니, 당신은 낭설을 믿지 마세요."
왕소풍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얼굴의 근육이 실룩실룩 음직였
다. 틀림없이 그 두사람의 말이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것
이었다. 이 반년동안 그는 계곡 밖에서 밤낯으로 생각을 했었다.
'사촌동생이 그 음흉한 중놈에게 잡혀 갔으니 어찌 몸을 깨긋
이 보존할수 있었겠는가? 단지 그녀의 생명에 아무 이상만 없다
면 하늘에 감사하겠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이다. 이때 수생을 보며
그녀가 몸을 깨긋이 지키고 아무일이 없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여러사람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깊이 생각했다.
'이제는 강호의 모든 사람덧湧 이 일을 알텐데... 이 왕소풍은
당당한 사내 대장부로써 어찌 그들의 비웃음을 받겠는가 ?'
왕소풍은 수생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우리 나가자."
수생은 말했다.
"당신은 이 사람들의 말을 믿나요 ?"
왕소풍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쓸데없는 말을 하는데 들은척 해서 무엇 하겠
어 ?"
"그렇다면 당신은 믿는다는 말인가요 ?"
왕소풍은 고개를 숙였을뿐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았다. 한참후
그는 비로서 말을 했다.
"좋다.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겠다."
수생은 말했다.
"당신은 마음속으로는 그들의 누명 씌우는 더러운 말을 믿고
계시는 군요."
그녀는 잠시 말을 중단했다가 다시 말했다.
"앞으로 당신은 나를 볼 필요가 없어요. 내가 이계곡에서 죽었
다고 생각하세요."
왕소풍은 말했다.
"그렇게 할필요가 있느냐 ?"
수생은 마음이 괴로워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대답하지 않았
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누명을 씌우고 자기를 멸시해도 그것
은 괜찮았다. 그러나 사촌오빠까지 자기를 미천하게 여기고 있다
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한시라도 바삐
계곡에서 빠져나가 그 누괌링 자기를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었으
며 이들과는 영원히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황급히 밖으로
뛰어 나갔다. 동굴입구에 도착했을때 그동안 쌓인 정때문에 고개
를 들려 동굴 구석구석을 쳐다보았다. 이 몇개월동안 그녀는 이
동굴안에서 은신하고 있었고 손재주가 좋았기 때문에 나무껍질과
새깃털등을 이용해 적지 않은 요나 방석따위를 만들었다. 그녀는
떠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서운했다. 그녀는 시선이 자기가 적운
에게 짜준 깃털옷에 머물렀다. 적운이 화를 내며 되돌려준후 그
녀는 이것을 가지고 이불을 삼웩만 추위를 견디어 냈던 것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그가 음탕한 중이라고 하며 그를 죽이려고 하는
데 만약 그를 찾아낸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그는 감당할수 없을
것인데 어찌하면 좋을까?'
그녀는 즉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깃털옷을 멍하니 쳐다 보았
다. 한편, 왕소풍은 그 깃털옷이 그녀의 잠자리에 놓여 있고 옷
의 모양이 크고 넓은것이 남자의 옷같다고 생각하자 내심 의아함
이 들었다.
"이건... 이건 무엇이냐 ?"
수생은 말했다.
"그것은 내가 만든 것이예요."
왕소풍은 씁쓸해져서 말했다.
"이것이 네것이냐 ?"
수생은 즉시 내것이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
한다면 결과가 안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저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왕소풍은 말했다.
"이것은 남자옷 같은데 ?"
그 목소리는 매우 텁텁하게 변했다. 수생이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이자 왕소풍은 또 말했다.
"이것은 네가 그에게 짜준것이냐 ?"
수생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왕소풍은 그 깃털옷을 들고 자세
히 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참 잘 짰군!"
수생은 말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그렇게 비약해서 생각하지 마세요. 그
와 나는..."
그러나 그의 눈에 핏발이 선 모습을 보자 더 이상 말을 계속하
지 못했다. 왕소풍은 깃털옷을 내던지며 말했다.
"그의 옷... 그의 옷이 당신의 잠자리에 던져져 있군..."
수생의 마음은 얼음처럼 싸늘하게 식어갔다. 지금까지 부드럽
고 친절한 오빠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저속하게만 여겨졌다.
그녀는 더 이상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은 저속하게도 나를 의심하고 있군요. 그렇다면 끝까지
나를 의심하도록 내버려 두겠어요.'

적운은 동굴밖에서 그녀가 억울한 누명을 쓰가 있는 것을 보자
심사가 울적해졌다.
'나는 미천한 사람이어서 억울한 누명이 습관처럼 따라붙어도
상관이 없지만 그녀는 귀중한 집안의 따님인데 어찌 그런 누명을
쓸수 있단 말인가 ?'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동굴밖
에서는 수십명의 고수들이 그를 찾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샅샅
이 뒤지고 있었지만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즉시
몸을 날려 동굴 속으로 띠어 들면서 소리 높여 외쳤다.
"왕소형, 당신의 생각은 모두 틀렸소."
왕소풍과 수생은 그가 갑자기 동굴속으로뛰어 들자 깜작 놀랐
다. 적운의 머리카락은 이미 길게 자라 옛날처럼 빡빡 깎은 중머
리가 아니었다. 왕소풍은 정신을 가다듬고서야 비로서 그가 누군
지 알아볼수가 있었다. 그는 즉시 검을 뽑아들며 우측손으로 수
생을 밀어 냈다. 그의 눈에서는 즉시라도 불꽃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그의 장검은 쉬지 않고 떨리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적운을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적운은 말했다.
"나는 당신과 싸우지 않겠소. 이 수소저는 결백하오. 당신이
그녀를 아내로 맞는다면 정말 하늘이 내려준 복덩어리를 맞이 하
게 되는 것이외다. 절대로 엉뚱한 생각은 마시고 나쁜 사람들이
날조한 풍문은 믿지 마시요."
수생은 그기 위험함을 무름쓰고 자기의 몸이 깨끗함을 증명하
기 위해서 이렇게 나타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감격하는 한편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급히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빨리 가세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려
고 하고 있었요. 이곳은 너무 위험해요."
적운은 말했다.
"나도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왕소형께 이 일을 자세히 설명하
여 당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도록 하지 않을 수 없읍뇟求.
왕소협, 이 수소저는 정말 좋은 아가씨입니다. 당신은... 당신은
절대로 그녀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지 마십시요."
적운은 말솜씨가 너무 없었다. 단순한 한가지의 일을 설명하는
데도 말을 더듬거리며 분명하게 설명할수 없을 것인데 이렇게 복
잡한 일을 더듬거리는 몇마디의 말로 어지 설명할수 있겠는가?
왕소풍의 의심은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 수생은 급히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빨리 떠나세요. 당신의 호의를 나는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예요. 빨리 가세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려
고 하고 있어요."
왕소풍은 수생의 말투와 표정에서 그에게 매우 관심이 많고 정
이 듬뿍 담겨 있는지라 질투심이 걷잡을수 없이 일어나 소리쳤
다.
"나는 네놈을 단숨에 처지하겠다."
하고 말하더니 적운의 가슴을 향해서 질풍같이 일검을 찔렀다.
이 일검은 맹렬하고 날카로왔지만 적운은 이미 옛날의 적운이 아
니었다. 적운은 정사 양파의 무공을 한몸에 갖추고 있었다. 왕소
풍의 검이 몸앞에 이르자 그는 몸을 약간 돌려 일검을 피하고는
말했다.
"나는 당신과 겨루지 않겠소. 나는 당신에게 이 수소저를 아내
를 맞아드리고 그녀에게 추호도 의심을 품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
읍니다. 그녀는... 그녀는 정말 좋은 아가씨입니다."
그가 말을 하고 있을때에도 왕소풍의 검은 좌측에서 두번, 우
측에서 세번을 찔렀으나 적운은 약간씩 몸을 돌려 피해내고 있었
다. 적운은 계속해서 피하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사람의 무공은 매우 높았는데 어째 반년사이에 이토록 무공
이 무디어졌지 ?'
왕소풍은 맹렬히 찍어갔지만 그가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살짝
살짝 피하자 더욱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댔으며 검초는 더욱 빨
라졌다. 적운은 말했다.
"에欖老, 당신은 이 수소저의 순결을 의심하지 않겠다고 말해
주시오. 그럼 나는 가겠읍니다. 당신의 친구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니 나는 더 이상 머무를수 없읍니다."
왕소풍의 검은 갈수록 빨라졌다. 적운은 비록 내공이 심후했으
나 경공은 형편없었다. 그러기에 왕소풍의 검이 더욱 빨라지자
마침내 더 이상 피하지 못하기에 이르렀다. 적운은 할수없이 가
운데 손가락으로 왕소풍의 검신을 퉁기자 왕소풍은 그 힘을 견디
지 못하고 호구가 찢어지면서 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검을 주어 들어 덤비려 했다. 적운은 다시 그가 검을 들면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일장으로 그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
그러나 적운은 자신의 힘이 어느정도인가를 몰랐기에 살짝 밀었
으나 왕소풍은 몇바퀴를 돌더니 벌렁 나가자빠지면서 석벽에 부
ㄷ혔다. 수생은 그가 낭패할 정도로 넘어지자 급히 달려가 부축
했다. 적운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절대로 왕소풍을 그렇게 날
려 버릴 생각은 없었는데 그가 이렇게 넘어지자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서 왕소풍을 부축하려 했다.
"미안합니다. 정말 죄송하게 되었읍니다. 나는 정말... 고의가
아니었읍니다."
수생은 우측팔을 잡아 당시면서 말했다.
"오라버니, 아무 일 없지요 ?"
왕소풍은 질투와 분노와 수치심에 자신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
는 수생의 마음이 적운에게 치우치고 있고 두 사람이 연합해 자
기를 공격한 후 오히려 자신을 비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좌
측장을 휘둘러서 철썩 하는 소리가 나도록 수생을 오른쪽 뺨을
때리며 소리를 질렀다.
"꺼져라!"
수생은 깜작 놀랐다. 사촌오빠가 자기를 때린 다는 것은 상상
도 못했던 일이다. 그녀는 손으로 뺨을 만지면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왕샥老냅 다시 일장을 가해 왼쪽뺨을 때렸다. 수생은 놀
라고 무서워서 적운의 품으로 뛰어 들었다. 적운은 그녀를 끌어
안고 몸을 돌려 자신의 뒤에 세워 놓은뒤 왕소풍에게 다가가며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왜 수소저를 때리는 것이요 ?"
그때 동굴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몇사람이 외쳤다.
"동굴속에서 사람이 다투고 있으니 빨리 가서 봅시다. 어쩌면
악승이 거기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수생은 뒤로 물러나면서 말했다.
"빨리 떠나세요... 난... 난 당신의 호의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적운은 왕소풍과 수생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말했다.
"나는 가겠읍니다."
그리고 몸을 돌리더니 밖으로 나가려 했다. 왕소풍이 크게 외
쳤다.
"음흉하고 악독한 중놈이 이곳에 있읍니다. 그가 도망치려 하
고 있으니 빨리 동굴 앞을 막아 도망치지 못하게 하시오."
수생은 급히 말했다.
"오라버니, 터무니 없는 말씀은 그만 하세요."
왕소풍은 여전히 크게 외쳤다.
"빨리 동굴을 막으시오. 빨리 동굴을 막으시오!"
동굴밖에 서 있던 칠팔명은 왕소풍의 말을 듣고 즉시 동굴입구
를 막아섰다. 적운이 빠륫 걸음으로 나가자 한사람이 일갈했다.
"어디로 도망치느냐 ?"
그러더니 검을 휘둘러 그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적운은 재빨리
우측으로 피하며 손을 내밀어 그의 가슴을 밀쳤다.그 사람은 똑
바로 나가떨어지며 가까이 있던 세사람과 부ㄷ쳤다. 그러자 네사
람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여러 사람들이 욕을 하고 떠드는 사이
에 적운은 비호같이 사라졌다. 군웅들은 그 소리를 듣고 사방팔
방에서 ㅉ아왔다. 그러니 적운은 이미 멀리 사라진 후였다. 적운
은 이때 수풀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컴컴한 밤중이라 어느 누
구도 그를 찾지 못했다. 군웅들은 그가 이미 계곡을 빠져 나갔을
것이라고 여기고 추격하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난뒤 적운은 왕소
풍과 수생이 계곡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왕소풍은
앞에 있었고 수생은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거리는 일장정도 되었
다. 그들의 뒷모습도 산허리를 돌아 사라졌다. 조금전까지 떠들
석 하던 계곡은 조용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중원의 군웅들
도 갔고, 수생도 떠났으며 화철간도 사라졌다. 단지 적운만이 홀
로 남아 있었다. 그동안 보이던 독수리들도 한마리도 찾을수가
없었다. 정막 적적하고 외로웠다. 단지 눈이 녹은 물들이 계곡밑
을 흐르고 있는 소리만이 적막한 계곡의 정적을 단조롭게 깨트리
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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