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1-2

3학년2반 | 2022.03.11 07:01:17 댓글: 0 조회: 361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4628


2. 밝혀지는 비밀(秘密)

임평지는 방인지와 간인호를 죽이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등의 혈도가 막혀서 하반신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수근(手筋)이 절단되고 비파골(琵琶骨)이 묶여 폐인이나 다름없었으니 깨끗이 죽은 것만 못했다.
갑자기 부엌에서 "으악"하는 비명이 들렸다. 가인달의 비명소리였다.
방인지와 간인호는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부엌으로 뛰어갔다. 문에 인영(人影)이 비치는 듯하더니 한 사람이 소리없이 다가와 임평지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임평지가 얼굴을 쳐다보니 그 술집에서 심부름하던 못생긴 얼굴의 소녀였다.
그 소녀는 임평지를 가볍게 들고 문밖 말이 매어져 있는 나무밑으로 데려가서 왼손으로 허리를 잡아 그를 말잔등 위에 올려 앉혔다.
임평지가 놀라 얼이 빠져있는 사이에 그 못생긴 소녀는 장검을 빼어들어 섬전처럼 휘둘러 고삐를 끊고 말 엉덩이를 가볍게 쳤다. 말이 놀라 울음소리를 내며 숲속으로 달려들어갔다.
임평지가 외쳤다.
[아버지, 어머니 !]
부모님을 그냥둔 채, 혼자만 도망갈 수는 없었다. 두 손으로 말잔등을 온힘을 다해 치니 그는 말에서 떨어져 몇바퀴 구르다가 수풀속에 쳐박혔다. 말은 멈추지 않고 멀리 달아나 버렸다. 임평지는 관목의 가지를 잡고 일어서려 했으나, 양다리가 후들거려 일어서려다가 넘어지곤 했다. 어깨와 허리에도 통증이 전해졌는데 말에서 떨어질 때 나무뿌리와 바위에 부딪친 것 같았다.
고함소리, 발걸음소리가 들리며 청성파 무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임평지는 수풀속에 엎드려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칼이 부딪치는 쇳소리가 나며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임평지가 수풀속에서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니 청성파의 간인호, 방인지와 그 추녀와 또다른 한 남자가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 남자는 얼굴을 흑포로 가리고 있었는데 머리가 하얗게 센 것으로 보아 노인이었다. 임평지는 그순간 그가 설노인임을 알아차리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저 두 사람도 청성파인 줄 알았는데 저 소녀가 나를 구하다니. 아 ! 그녀의 무공이 이토록 뛰어난 줄 진작 알았더라면 그때 내가 나서지 않았을 테고. 그랬으면 이런 멸문지화도 당하지 않았을 것을.)
그는 또 생각을 바꾸어
(서로 격렬히 싸우고 있으니, 나는 이 틈에 부모님을 구해야겠구나.) 그러나 등의 혈도가 아직 풀리지 않아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방인지가 다급하게 물었다.
[너...너는 도대체 누구냐 ? 어떻게 청성파의 검법을 알고 있느냐 ?] 노인은 대답을 않고 돌연 섬광같이 움직여 방인지의 장검을 낚아챘다. 순식간에 검을 빼앗긴 방인지는 황급히 뒤로 물러났고 간인호가 막아섰다. 복면노인이 수초(數招)를 공격하자 간인호가 외쳤다.
[너는...너는 대체...]
놀란 목소리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갑자기 [쨍] 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의 손에서도 장검이 떨어졌다. 추녀는 한발 앞으로 나아가 간인호를 찌르려고 했다. 복면노인이 검으로 추녀를 제지했다.
[죽이지는 마라 !]
그 추녀가 말했다.
[죽일 놈들이에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잖아요.] [우리는 그만 가자 !]
그 추녀가 머뭇거리자 노인이 말했다.
[사부의 분부를 잊었느냐 ?]
그 추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승복한다.
[살려주도록 하지요.]
추녀는 숲을 뚫고 달려가고 복면노인도 그 소녀를 따라 순식간에 멀리 가버렸다.
방-간 두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자기들의 검을 찾아들었다. 간인호가 말했다.
[정말 신비한 사람들이오, 그들이 누구기에 이렇게 우리의 검법을 알고 있을까 ?] 방인지가 받았다.
[그는 단지 몇 초를 펼쳤을 뿐인데 그 홍비명명(鴻飛冥冥) 일 초의 절묘함이란 정말...정말...아 !]
간인호가 갑자기 깨닫고 외쳤다.
[그들이 어린 녀석을 구해갔다.]
방인지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조호이산(調虎離山)의 계책이 아닐까. 임진남 부부는 ?] 두 사람은 몸을 돌려 날 듯이 되돌아갔다.
한참 뒤 말발굽소리가 천천히 들리더니 숲속에서 두 필의 말이 걸어나왔는데, 방인지와 간인호가 한 필씩을 끌고 나왔다. 말잔등에는 임진남과 왕부인이 묶여 있었다. 임평지는 [아버지, 어머니] 하고 외치려다, 지금 소리치면 자신의 목숨조차 위태로울 뿐 부모님을 구할 방도가 없음을 깨달고 입을 다물었다.
두 필의 말이 몇 장(丈)걸어간 후 절뚝거리며 한 사람이 뒤따랐는데 가인달이었다. 머리에 두른 백포(백포)에는 붉은 선혈이 비치었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 놈들이 임가의 아들을 구해가 버렸군. 이 연놈을 매일 칼로 한 번씩 베어 청성산에 갈 때까지 살아있나 보겠다.]
방인지가 큰소리로 꾸짖었다.
[가사제, 이 임씨부부는 사부님의 처분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사부님께 문책을 당하려 하는가.]
가인달은 감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
임평지는 청성파의 세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도리어 안심이 되었다.
(그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청성산으로 데려간다면 당장은 부모님께 별 위험이 없겠구나. 여기서 사천 청성산까지는 수만리나 되니 그 사이에 아버지 어머니를 구할 묘책을 세워야겠구나. 표국의 분국을 찾아가서 이사실을 낙양에 전해야지.)
그는 수풀속에 힘없이 누워, 모기가 물어도 그냥둘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날이 어두워지자 마침내 등의 혈도가 풀렸다. 그제서야 겨우 일어나 천천히 음식점으로 걸어갔다.
(변장을 하면 그들이 나를 알아볼 수가 없을 거야. 그때 단번에 그 두놈을 죽여버려야지. 도대체 부모님을 어디서 구하지...?)
그는 음식점 주인방으로 절뚝거리며 들어가 등불을 켜고 갈아입을 옷을 찾았으나 얼마나 궁핍하게 살았는지 옷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밖으로 나온 그는 음식점 주인부부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죽은 사람의 옷을 벗겨 입어야만 하겠구나.) 죽은 사람의 옷을 벗기니 손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팽개치고 싶었지만 (내가 잠시의 청결을 위해 시간을 지체하여 기회를 잃고 부모님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천추의 한이 되리라.) 생각하여 그는 입을 악물고 옷을 벗고 죽은 사람의 옷으로 갈아 입었다.
횃불을 밝혀 사방을 둘러보니 부친과 자신의 장검, 어머니의 금도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부친의 장검을 천으로 싸서 옷속에 숨겨놓고 방향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계곡에서 개구리소리가 들리니 갑자기 마음이 처량해지고 눈물이 나오려 했다. 들고 있던 횃불을 허공을 향해 던지니 횃불이 연못에 떨어졌다. 갑자기 사방이 암흑으로 뒤덮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임평지야, 임평지야, 소심하고 인내심이 그처럼 없으면 다시 청성 사람들에게 잡히고 만다. 그건 마치 횃불이 연못에 빠져 있는 격이지.) 그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 이를 악물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몇 발자국을 걸어가자 허리에 심한통증이 느껴졌으나 그는 더욱 빨리 걸어갔다. 고갯마루에 이르니 길이 사방으로 나있어 부모님이 어디로 잡혀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걷다보니 날이 밝아 햇빛이 얼굴에 비쳐 눈이부셨다. 임평지는 깜짝 놀라며 생각했다.
(그들이 부모님을 잡아 청성산으로 갔고 사천은 복건의 서쪽인데도 나는 도리어 동쪽으로 왔구나.)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로 주머니를 뒤져보았으나 은자 한닢도 없었다. 금은 보석은 말안장 옆의 주머니에 있었고, 은자는 부모님에게 있었기에 그에게는 돈이 한푼도 없었다.
그는 더욱 조급해 하며 중얼거렸다.
[이제 어떡하지 ? 어떡해야 하지 ?]
그는잠시 서성이며 생각했다.
(부모님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야. 설마 굶어죽기야 할라구.) 그는 고개 아래로 뛰어갔다. 정오쯤 되자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옆의 용안수(龍眼樹)에 청색의 용안(龍眼)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것을 보고 군침이 돌았다. 그는 나무밑으로 가서 손을 뻗으며 생각했다.
(이 용안수는 주인이 있을 텐데 주인 몰래 열매를 따는 것은 도둑질이 아닌가.
임씨 가문은 3대 동안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녹림의 도적과 싸워왔는데, 내가 어찌 도둑질을 한단 말인가 ?)
그는 길옆의 용안수는 쳐다보지도 않고 큰걸음으로 걸어갔다.
몇 리를 걸어서 조그만 마을에 당도했다. 그는 인가(人家)를 찾아가 음식을 구걸했다. 그는 이때까지 누구에게 무엇을 구걸해본 적이 없었기에 몇 마디 하지않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농가의 아낙네에게 삶은 옥수수를 얻어먹고 배를 채웠다.
임평지는 길에서 구걸을 하거나 산야에서 열매를 따먹으면서 요기를 했다. 마침 그 해는 복건성에 풍년이 들어 집집마다 양식이 풍족했기 때문에, 얼굴은 더럽고 옷은 남루했지만 말씨가 부드러웠고 호감가는 인상을 가진 임평지로서는 밥을 얻어 먹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8, 9일을 걸어서 강서(江西) 경내에 도착했고 묻고 물어 남창(南昌)으로의 길을 재촉했다. 남창에는 표국의 분국이 있으니 반드시 어떤 소식이 있을 것 같았고, 소식은 못 듣더라도 말을 빌어 타고 갈 생각이었다.
남창성에 당도하여 복위표국을 물으니 행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복위표국 ? 무엇하시려구요 ? 표국은 이미 화재로 없어졌어요. 근처의 인가도 수십 채나 타버린 걸요.]
임평지가 허탈하게 표국을 찾아가보니 타다만 기둥과 부숴진 기와조각만 남아있었다. 그는 가만히 서서 폐허가 된 남창분국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것은 청성파의 흉적들이 한 짓이야. 이 원수를 갚지 않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남창에 머무르지 않고 그 날로 서쪽으로 향해서 호남성의 장사(長沙)에 당도했다. 그는 장사분국 역시 이미 폐허가 되었으리라 생각했다. 복위표국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니 모두들 금시초문이라는 듯 어리둥절했다. 그는 매우 기뻐 소재를 물어 표국을 향해 달려갔다.
표국 입구에 당도해서 보니, 복주 총국만은 못해도 호남분국은 매우 웅장했다.
붉은색 대문 옆에는 두 마리의 석사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며 임평지는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이런 꼴로 분국에 나타나면 표두들이 멸시하지는 않을까 ?) 고개를 들어 현판을 보니 {복위표국상국(福威標局湘局)}이라는 금색 글씨의 현판이 거꾸로 걸려 있었다. 그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표국의 표두들이 어찌 이처럼 해이해져 있는가 ? 현판이 거꾸로 걸려 있다니.) 고개를 돌려 표국의 깃발을 바라보다 그는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왼쪽 깃발에는 짚신이 걸려 있었고, 오른쪽 깃발에는 너덜너덜한 여자옷이 걸려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때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표국안에서 누가 걸어나와 소리쳤다.
[어느 놈이 여기서 서성거리느냐. 무엇을 훔쳐 갈려고.] 말씨를 듣고 임평지는 방인지나 가인달과 같은 사천인임을 알아차리고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돌아가려 하는데 갑자기 엉덩이를 걷어차였다.
(이곳의 표국도 청성파가 점거하고 있구나. 여기서 아버지, 어머니의 소식을 캐기 위해서는 내가 참아야지.)
그는 무공을 모르는 체 가장하여 넘어져서 한참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웃으며 몇 마디 욕설을 내뱉고 돌아갔다.
임평지는 천천히 기어 일어나 골목에서 찬밥을 얻어먹고 재를 주워서 얼굴을 시커멓게 칠한 다음, 담모퉁이에서 머리를 파묻은채 잠을 잤다.
2경(二更)쯤 되자, 그는 장검을 허리에 차고, 후문쪽으로 가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담을 넘어 과일밭에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는 담에 붙어서 살금살금 걸어갔다. 임평지는 발소리가 날까 가슴을 조리며 걸어가니 동쪽 방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몇 걸음 가까이 다가가자 이야기소리가 들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창가에 숨을 죽이고 앉았다. 계속하여 이야기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아침 일찍 이 표국도 불타버릴 테지 ?]
다른 사람이 대꾸했다.
[아니야, 불지르지 않을 거야. 피(皮)사형이 남창표국에 불을 질러 근처의 인가까지 태우는 바람에 사부에게 꾸중을 들었어. 청성파의 협의도에 먹칠을 했다고 말이야.]
임평지는 속으로 욕했다.
(청성파 놈들 과연 좋은 일 하는구나. 그러고도 협의도라 자칭하다니 뻔뻔스러운 놈들.)
먼저 말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불을 지르진 않겠군. 그럼 왜 하는 일 없이 여기에 머물러 있지 ?] [길(吉)사제, 생각해보게. 현판을 거꾸로 걸어놓고, 깃대에 여자옷을 걸어놓았으면 복위표국의 위명은 땅에 떨어진 것 아닌가. 그걸로 됐지, 뭐 태워버릴 것 까지야 있겠는가.]
[신(申)사형의 말이 옳습니다. 하하. 저 누더기옷이 복위표국이 망한 것을 나타낸다면 백년이 지나도 그대로 걸려 있게 해야지요.]
두 사람은 한바탕 크게 웃었다. 길(吉)씨가 말했다.
[내일 형산(衡山) 유정풍(劉正風)을 뵈러가는데 무엇을 가지고 가지요 ? 듣자하니 지난번의 예물이 너무 초라해서 청성파의 이름이 부끄러웠다고 하던데요.] 신(申)씨가 웃으며 말했다.
[예물은 이미 마련했으니 염려하지 말게. 아마 이번에는 유정풍의 눈이 휘둥그래질 것이네.]
[예물이 무엇인가요 ? 저는 전혀 알지 못하는데요.]
신씨가 크게 웃으며 득의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게, 얼마나 광채가 아름다운지.]
방에서 자루를 여는 소리가 들려오고 길씨가 탄성을 질렀다.
[굉장합니다. 신사형은 이 귀한 물건을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정말 용하십니다.] 임평지는 도대체 어떤 물건인지 보고싶었으나 발각될까 두려워 들여다보지 못했다.
이어서 신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우리가 복위표국을 그저 빼앗은 줄 아나 ? 이 옥마(玉馬) 한 쌍은 원래 사부님께 바치려고 했었는데, 유정풍에게 예물로 보내기로 했지.] 임평지는 가슴속에 울화가 치밀었다.
(우리 표국의 보물을 빼앗아 선심을 쓰는 것이 도둑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장사분국에 무슨 보물이 있을 리 없지. 분명히 전표를 주고 산 것일 텐데. 저걸 회수하지 못한다면 아버지가 돈을 물어야 하겠구나.)
신씨가 말했다.
[이 네 자루의 보물을 하나는 사매들에게, 하나는 사형제들에게 주고, 하나는 너, 하나는 내가 가지도록 하자. 자, 어서 뜯어봐라.]
[이게 다 무엇입니까 ?]
잠시후 길씨의 입에서 놀란 소리가 터져나왔다.
[모두 금은보화로구나. 우리는 제법 큰 부자가 되었네요. 복위표국도 도둑질 꽤나 한 모양이지요. 사형 도대체 어디서 찾으셨습니까 ? 나는 안팎을 샅샅이 뒤졌어도 은자 백여냥밖에 못찾았는데. 사형은 어디서 이런 귀한 물건을 찾았습니까 ?] 신씨가 득의에 차서 웃으며 말했다.
[표국이 금은보화를 아무곳에나두겠느냐 ? 며칠 동안 네가 서랍, 상자, 벽속을 뒤지는 걸 지켜보았네 헛수고라고 말해도 믿을 것 같지도 않고 도리어 나를 의심할까봐 이야기하지 않았지. 표국안에 있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무엇이 있나 ?]
길씨가 한참 생각한 후 대답했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 ? 내가 보기에 이 표국에는 이상한 점이 매우 많아요. 무예는 형편 없으면서 깃발에는 위풍당당한 사자를 수놓고 있기나 하고 말입니다. 에또, 장표두라는 사람이 분국의 주인인데 자기 침실 벽장에 관을 넣어두지를 않나 말입니다.]
신씨가 웃으며 말했다.
[네 머리도 쓸만하구나. 그가 왜 벽장에 관을 두었을까 ? 관속의 사람이 어머니여서 차마 묻을 수 없어서일까 ?]
길씨가 [아]하고 소리치며 펄쩍 뛰어올랐다.
[그래, 그랬구나. 금은보석이 그 관속에 있었구나. 교묘하구나. 교묘해.] 자르륵, 자르륵하고 금은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오고 한참후 길씨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신사형, 씻을 물을 가져올 테니. 세수나 하고 그만 잡시다.] 하품을 하면서 방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임평지는 창밑에 쭈그리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길씨라는 사람을 곁눈질로 보니 작고 땅땅한 게 낮에 자기를 걷었찼던 사람같았다.
잠시후, 길씨가 더운 물을 갖고 방에 와서 말했다.
[신사형, 사부께서 보낸 사형제들 중 우리 두 사람이 제일 큰 공을 세운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사형의 복이고 또한 저의 영광입니다. 장(蔣)사형은 광주(廣州)분국을, 마(馬)사형은 항주(杭州)분국을 빼앗았지만, 이리저리 설치느라 우리 만큼의 수확은 없을 겁니다.]
신씨가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방사형, 간사형과 가인달은 복주총국을 빼앗았으니 노획물은 우리 둘보다 많을 거야. 그러나 사부의 아들을 잃었으니 그것은 공을 세우지 않은 것만 못한 것이지.]
길씨가 말을 이었다.
[복위총국을 공격할 때는 사부님이 친히 지휘하셨으니 방사형 간사제가 한 일은 별로 없지요. 여사제가 죽었으니, 사부님께서 그들을 탓하지 않을 리 없지요. 이번에 우리들이 대거 출동하여 총국과 각 성의 분국을 치면서 임씨 가문의 무예가 이토록 형편없는 것은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방사형을 비롯한 세 명의 선봉에 의해 임진남 부부가 잡히지 않았습니까. 사부님조차 매우 놀라셨지요. 하하하 !] 임평지는 세수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청성파에서 이미 총국과 분국을 한꺼번에 칠려고 계획을 짰었구나. 내가 그 여(余)씨 놈을 죽여서 화를 만든 게 아니었구나. 여창해(余滄海)가 직접 복주에 왔으니, 최심장이 그토록 신출귀몰한 것도 무리가 아니지, 그런데 우리 표국이 청성파에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우리를 이렇게 악랄하게 공격하는 걸까 ?] 또 신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께서 잘못 보신게 아니야. 복위표국의 명성이 드높은 것은 분명히 무엇인가 이유가 있어. 벽사검법은 무림계에 명성이 높아 아무도 경시할 수가 없네. 다만 자손이 불민하여 선조의 무예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뿐이지.] 임평지가 그 소리를 듣고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신씨가 말을 이었다.
[우리들이 하산하기 전에, 사부님과 우리들이 벽사검법의 파해법을 연구했었는데, 몇 달이 지나도 벽사검법의 원리를 알아낼 수 없었지. 내가 보기에 벽사검법의 위력은 굉장할 것 같아. 다만 완벽하게 펼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모양이지만. 길사제 자네는 어느 정도 깨우쳤는가?]
[사부님 말씀이 임진남도 벽사검법을 완벽하게 펼치지 못한다고 하는데 제가 어찌 그 검법을 깨우쳤겠습니까. 신사형, 사부님이 보낸 전령에 본문 제자들은 형산으로 되돌아오도록 하셨는데, 방사형도 임진남 부부를 데리고 형산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벽사검법의 전인에게 왜 그처럼 후하게 대하는지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임평지는 부모님이 형산에 잡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편으로는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이 심정이 착찹했다.
신씨가 웃으며 말했다.
[며칠 후 임진남을 만날 수 있으니, 벽사검법을 배울 수 있을 걸세.] 곧 방에 불이 꺼지고 사방이 컴컴해졌다.
임평지는 즉시 그곳을 떠나고 싶었으나 사방이 너무나도 고요해 발각될까봐 그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창밖에 기대어 꼼짝않고 한참을 있으니 그때야 비로소 코고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려 창을 보니 창문을 닫지 않고 열어 두었다.
(원수를 갚을 좋은 기회로구나.)
임평지는 오른손으로 허리에서 장검을 빼들고 왼손으로 창문턱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달빛이 창으로 비치어 두 개의 침상에 한 명씩 자고 있는 것이 훤하게 보였다. 엎어져 자고 있는 놈은 머리카락이 몇 올 남지 않은 대머리였고 바로 누워 자는 놈은 머리카락이 쑥대밭처럼 길게 자라 있었다. 침상앞의 탁자위에는 5개의 작은 자루와 두 자루의 검이 놓여있었다.
임평지는 검을 치켜들며 생각했다.
(한 칼에 한 명씩 해치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지.) 막 검을 들어 내리치려다 다시 생각했다.
(내가 지금 두 놈을 몰래 죽이는 것은 장부가 할 짓이 아니지 않는가? 후일 가전무공을 제대로 익힌 후 청송파의 원수놈들을 찾아 해치우는 것이 대장부다운 행동이겠지.)
그래서 천천히 5개의 자루를 창문가에 놓여 있는 탁자위에 오려놓고 창을 열어 창문턱으로 올라섰다. 장검을 허리에 차고 자루 세 개는 등에 지고 한손에 하나씩 들고 뛰어내려 후원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갔다.
그는 후문을 열고 표국을 나와 남문으로 걸어갔다. 남문에 이르니 성문이 아직 열리지 않아 성벽옆의 구릉뒤에 몸을 기대고 숨어 있었다. 청성파의 제자들이 추격할까봐 가슴이 계속 쿵쿵 뛰었다. 날이 밝아 성문이 열리자, 그는 곧 성문을 벋어나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수십리를 내달렸다.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놓여졌다. 복주를 떠난 이래 지금까지 가슴 한번 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눈앞에 음식점이 보이자, 그는 국수를 시켜 배불리 먹고는 자루에서 은자를 꺼내어 주인에게 지불했다.
주인이 가게에 있는 모든 동전을 찾았으나 거스름돈이 부족했다. 임평지는 이제까지 얻어 먹는 신세가 되어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 ? 이제 손을 저으며 큰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거스름돈은 필요없소. 주인장이 가지시오.]
비로소 소표두의 호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삼십여 리를 더 걸어가서 제법 큰마을이 나타났다. 임평지가객점에 방을 얻어 창문을 닫아걸고 5개의 자루를 풀어 보았다. 열어보니 자루 네 개에는 황금과 은이 가득했고, 하나에는 높이가 오촌(五寸)쯤 되는 옥마(玉馬) 한 쌍과 진기한 물건들이 가득차 있었다.
(일개 장사분국에 이렇게 많은 재보(財寶)가 있으니 청성파가 탐을 낼 만도 하구나.)
그는 당장 약간의 은을 가지고 5개의 자루를 하나로 합쳐 등에 지고 시장으로 가서 좋은 말 두 필을 샀다. 두 필의 말을 번갈아 타면서 하루에 두세 시진(時辰)만 자고 밤낮으로 길을 재촉했다.
꼬박 하루를 달려 형산에 당도했다.
성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임평지는 방인지 일당들에게 들킬까봐 고개를 숙이고 객점을 찾아갔다. 몇 집을 들렸으나 모두 방이 없었다. 점소이(店小二)가 말했다.
[3일 후가 유대야(劉大爺)께서 무림을 떠나는 날입니다. 그래서 객점마다 하객으로 가득찼으니 다른 곳을 찾아가 보세요.]
임평지는 후미지고 조용한 거리로 가서 세곳의 객점을 거쳐서야 겨우 조그마한 방 한 칸을 얻었다. 임평지는 얼굴이 비록 더러워졌으나 방인지 일당이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방에 가서고약을 사 얼굴에 붙이고 두 눈썹을 깎아버리고, 왼쪽 입술을 뒤집어 이빨이 반쯤 보이도록 했다.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니 자신이 봐도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그리고 또 금은보화가 들어 있는 자루를 등에 넣고 그위에 옷을 걸친 다음 허리를 약간 구부리니 영낙없이 꼽추가 되었다.
(내가 이렇게 기괴하게 모습이 바뀌었으니 부모님도 못알아 보실 거야. 이제는 걱정이 없구나.)
그는 비골대면(菲骨大麵) 한 그릇을 시켜먹고는 복잡한 거리로 나갔다. 부모님의 행방을 알 수 있으면 좋겠고, 아니면 청성파의 소식을듣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반나절동안 돌아다니니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는 길거리에서 삿갓을 사 머리에 쓰고 하늘을 쳐다보니 캄캄한 게 비가 쉽게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길모퉁이를 돌아가니 찻집에 사람이 가득했다. 그도 찻집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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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남악(南嶽) 형산(衡山)의 장엄한 모습이 멀리 바라뵈는 형산성(衡山城)의 거리는 한적하기만 했다. 찻집에는 비를 피해 들어온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 위한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다박사(茶博士:차를 나르는 사람)는 남과자(南瓜子)와 차를 내왔고 한쪽 구석에서는 <삼국지>와 <수호지> 같은 이야기책을 읽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날 따라 태평다루(太平茶樓)에는 무사 차림을 하고 있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렴이 걷히고 한 사람이 다루 안으로 들어섰다. 비를 피하려고 머리에 썼던 기름종이로 만든 삿갓을 벗자 그 삶의 용모가 드러났다. 나이가 약관에 이른 꼽추였는데, 얼굴은 곰보자국으로 가득했으며 짙고 뭉퉁한 눈썹과 위로 뒤틀려 올라간 입술이 보는 이로 하여금 역겨움을 느끼게 했다.
[어서 오십시오.]
다박사가 꼽추에게 옆의 자리를 하나 정해 주고 뜨끈뜨끈한 차와 한 접시의 남과자를 갖다 주었다. 꼽추는 주위를 한 번 둘러 보더니 천천히 남과자를까먹기 시작했다.
꼽추의 옆에는 흑의를 걸치고 칼을 찬 세 명의 무사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 젊고 바짝 마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유 대협(柳大俠)께서 금분세수(금분세수:금대야에 손을 씻는다는 말로 은퇴식을 뜻함)의 예식을 치르게 된다면 대단히 많은 하객들로 붐빌 것이라 생각되는 군요. 아직 삼 일이나 남았는데 버써 이 형산성은 각지의 영웅호걸들로 가득 차지 않았읍니까?]
옆에 있던 뚱뚱한 장한이 얼른 말을 받았다.
[그거야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 오악검파(五嶽劍派)의 위세는 천하를 떨게 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중원오악의 하나인 남악 형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오악검파 중의 하나인 형산파의 둘째 가는 고수이니만큼 유 대협의 위세는 하늘에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리고도 남지. 그러니까 그가 금분세수를 하는 예식장에는 강호의 이름 높은 영웅호걸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게 될거야.] 마른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정풍(柳正風) 대협은 무공 역시 뛰어나 형산파에는 장문인(掌門人:문파의 우두머리)으로 있는 막대선생(莫大先生)과 버금간다고 하더군요. 형산파의 독특하고 오묘한 회풍낙안검(廻風落雁劍)을 유 대협은 신의 경지에 이를 정도로 터득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뭐가?]
[유 대협의 나이도 오십 세에 불과하고 무공도 이제 완숙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한창 활동할 나이가 아니겠어요? 그런데 왜 은퇴를 하는 걸까요?] 뚱뚱한 장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이상하군. 유 대협의 명성은 중천에 떠 있는 태양처럼 드높은데 어째서 은퇴를 서두르는 것일까?]
이때 건너편 탁자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비단장삼을 몸에 두른 장한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며칠 전 무한(武漢)에 갔다가 한 가지 소문을 들었소. 유 대협께서 금분세수를 하게 된 데는 실로 부득이한 고충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찻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비단옷을 입은 장한을 바라보았다.
구석에 잇던 한 무사가 소리쳐 물었다.
[귀하는 무슨 소문을 들었읍니까? 몹시 궁금하군요. 이야기 좀 해 주십시오.] 비단옷을 입은 장한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 소문은 내용을 다른 지방에서 발설하는 거야 상관없지만, 이 형산성에서는 말하기가 곤란하군요.]
그러자, 키가 작고 땅딸한 사내가 거친 음성으로 비양거렸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마치 혼자만 알고 있는 듯이 뻐기는 꼴이란!]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땅딸한 사내의 얼굴에 집중되었다. 몇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당신도 알고 있읍니까? 들려 주시오.]
땅딸한 사내는 큰 기침을 한번 하고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유 대협이 금분세수를 하게 된 이유는 형산파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열을 미연에 방지하려느 데 잇지요.]
[내분이라뇨?]
땅딸한 사내는 느긋한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은 유 대협의 무공이 형산파의 장문인 막대선생보다 약하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오. 두 사람이 몇 년 전 무예를 겨루게 되었을 때 막대선생은 일검(一劍)으로 세 마리의 날아가는 기러기를 베어 떨어뜨렸지만 유 대협은 다섯 마리를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형산파의 제자들은 유 대협이 장문인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막대선생파와 유 대협파로 분열되었던 것입니다. 쌍방은 몇 번이나 충돌하였고 그 과정에서 십여 명의 고수들이 죽었다고 하더군요. 유 대협은 형산파의 장래를 생각한 끝에 스스로 은퇴하여 막대선생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려고 한답니다.]
모두들 분분히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 그와 같은 사연이 있었군! 유 대협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켰으니 정말 훌룡한 분이시다!]
[막대선생이 소심한 거야! 유 대협에게 은퇴를 강요한 것과 다름이 없지 않아? 스스로의 무공이 약하다면 장문인 자리를 유 대협께 물려 주었어야 되는 건데!]
[막대선생을 욕할 수만은 없어. 누구나 권세를 한번잡게 되면 포기하기 힘드니까.]
이때였다. 갑자기 문 밖에서 스르릉 스르릉 하며 호금(胡琴)을 타는 음향이 들려왔다. 그리고 구슬픈 노랫소리도 함께 들려오기 시작했다.
[양가(揚家)의 충성심을 애도하노라. 송(宋)나라의 위기를 타개하려고......] 목청을 길게 빼는 그 노래는 매우 처량했다. 모든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문 밖을 내다보았다. 마루 안으로 비쩍 마르고 키가 큰 백발 노인이 품 안에 낡은 호금을 안은 채 천천히 들어서고 있었다. 피부는 밀납처럼 창백했고 쭈글쭈글 주름이 져 있었으며, 몸에는 빛 바랜 청삼을 걸치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돈을 받는 사람인 것 같았다.
땅딸한 사내는 노인이 나타나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시끄러워요!]
노인은 즉시 호금소리를 낮추었다. 그러나 입으로는 여전히 노래가락을 흥얼거렸다.
[금사탄(金沙灘)의 싸움에서 패하게 되니......]
이때 땅딸한 사람은 노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좌중을 향해 말했다.
[유 대협의 은퇴식은 형산파에서 주요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막대선생 일파는 유 대협의 집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강호의 손님을 맞이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지요. 이것만 보아도 막대선생이 얼마나 소심한 사람인지 잘 알 수가 있읍니다.]
갑자기 노인은 높은 목청으로 노래를 불렀다.
[소슬비는 난간에 부슬부슬 내리고...... 떠나는 님을 전송하는 이 마음......] 한 젊은이가 노인을 향해 호통을 질렀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돈이나 받아서 가시오!]
말과 함께 한 꾸러미의 동전을 노인 앞으로 던졌다. 동전꾸러미는 쨍그랑 소리를 내며 정확히 노인의 호금 위에 떨어졌다. 노인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 동전꾸러미를 거두어들였다. 땅딸한 사내는 말을 계속했다.
[유 대협은 대인(大人)이고 막대선생은 소인(小人)이라고 할 수 있지요.] 갑자기 노인은 걸음을 옮겨 땅딸한 사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꺄우뚱한 채 땅딸한 사내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 보았다. 땅딸한 사내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왜 이래?]
노인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당신이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어서......]

노인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땅딸한 사내는 벌컥 화를 내며 손을 뻗쳐 노인의 등을 움켜쥐려고 했다. 별안간 푸른 빛이 번쩍이며 쨍그렁 쨍!하는 음향이 일었다. 땅딸한 사내는 깜짝 놀라 뒤로 몸을 젖혔다. 노인의 손에는 한 자루의 가늘고 파란 빛이 감도는 장검이 쥐어져 있었다. 노인은 장검을 위로 쳐들더니 호금의 밑바닥에 서서히 찔러넣었다. 이윽고 검신은 호금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원래 이 장검은 호금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노인은 천천히 문 밖을 나섰다. 모두들 노인이 빗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뒷모습은 몹시 고독해 보였다. 처량한 호금 소리는 점점 멀어져서는 이윽고 들리지 않게 되었다. 갑자기 한 사람이 '아' 하고 놀라며 부르짖었다.
[여러분, 저것 보시오!]
모두들 소리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땅딸한 사내가 앉아 있는 탁자 위에 있던 일곱 개의 찻잔들이 일정한 높이로 수평이 되게 잘라져 있었다. 둥글게 잘라진 윗부분은 옆에 떨어져 있었으나 찻잔은 하나도 쓰러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 수십 명은 일제히 일어서서 탁자를 에워싸고 웅성거렸다.
[그 노인은 누구지? 누구이기에 그토록 검 쓰는 수법이 무서울까?] [일검으로 일곱 개의 유리잔을 잘랐을 뿐 아니라 찻잔이 하나도 쓰러지지 않았다니...... 신의 솜씨다!]
[다행히 노인이 사정을 봐 주어서 다행이었소. 그렇지 않았다면 노형의 머리통은 이 찻잔처럼 베어지고 말았을거요.]
땅딸한 사내는 일곱 개의 잘라진 찻잔을 망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서는 한 점의 혈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옆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누군가 입을 열었다.
[자고로 시비는 입에서 비롯되고 재앙은 혀에서 생긴다고 햇소. 지금 이곳 형산성에서 천하의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있으니 우리 모두는 조심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이 노인은 아마도 막대선생의 친구일 것이오. 우리들이 막대선생이 없는 자리에서 이러쿵저러쿵 험담을 하는 것을 보고 한번 검을 휘둘러 교훈을 내렸던 것이외다.]
구석에 있던 비단옷을 걸친 중년 무사가 차갑게 말했다.
[누가 막대선생의 친구라는 거요? 그 노인이 바로 형산파의 장문인인 소상야우(瀟湘夜雨) 막대선생이란 말이오.]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뭐라고? 그분이 막대선생 본인이라고? 당신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소?]
비단옷을 입고 무사는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자연히 알게 되었소. 막대선생은 호금 타기를 좋아한다오. 소상야우라는 곡(曲)을 그 분이 연주하면 듣는 사람은 누구나 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금중장검(琴中藏劍) 검발금음(劍發琴音)>의 이 여덟 자는 바로 그 분이 지니고 있는 무예를 표현한 귀절입니다. 그 노인의 호금 속에 검이 숨겨져 있는 것을 여러분은 보지 못했읍니까?]
비단옷을 입은 무사는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땅딸한 사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계속했다.
[저분이 막대선생의 실력이 유 대협보다 뒤떨어진다고 하면서 기러기를 세 마리밖에 떨구지 못했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막대선생은 일검에 일곱 개의 찻잔을 잘라 스스로의 실력이 유 대협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오. 찻잔마저 자르는 그분께서 기러기를 베어 떨어뜨리지 못할 리가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막대선생은 저분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비단옷을 입은 무사는 차값을 지불하고 총총히 찻집을 나선다. 모든 사람들은 소상야우 막대선생이 세상을 놀라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는 솜씨를 보여준 이후 하나같이 가슴이 서늘해지고 말았다.그들 모두는 조금 전 땅딸한 사내의 말에 맞장구를 치던가 아니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던 점을 상기하고 그곳에 더 이상 머무르다가는 다시 어떤 불미스런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찻집에서 나갔다.
사람들로 붐비던 찻집은 금새 썰렁해지고 말았다. 남아있는 사람은 못생긴 꼽추와 구석진 자리에서 얼굴을 탁자 위에 대고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는 두 사람뿐이었다. 꼽추는 놀란 눈초리로 일곱 개의 반토막이 난 찻잔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노인의 모습은 초라해 보이고 힘이 전혀 없어 보였다. 닭 한 마리 잡을 힘도 없어 보였는데, 그의 장검이 한번 번뜩이는 순간 일곱 개의 찻잔을 베어 버리지 않았는가? 내가 복주(福州)에서 떠나지 않았다면 세상에 이처럼 놀라운 무술이 있다는 사실을 어찌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는가? 나야말로 복위표국(福威標局)에서 하인들을 호령하면서 스스로 뽐내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우물 안의 개구리와 다름이 없었구나! 그동안 나는 아버님께서 천하제일의 무예를 지니신 줄 알았는데 이 노인은 아버님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예가 탁월하구나! 내가 그분을 사부로 모셔서 무예를 배우게 된다면 복위표국을 멸망시킨 청성파(靑城派)의 원수들을 무찌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막대선생을 찾아가서 우리 부모님을 구출해 주고 나를 제자로 거두어 달라고 애걸을 해보았겠다.]
꼽추는 벌떡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고 몇 걸음 옮기다가 갑자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부질없는 일이다! 막대선생은 형산파의 장문인이다. 오악검파와 청성파는 깊은 교분을 맺고 있는데 막대선생이 알지도 못하는 나를 제자로 거두어들이고 나를 위해 청성파와 싸울 까닭이 없다.]
홀연 문 밖에서 말고 고운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둘째 사형, 비가 멎지 않았네요. 저의 옷이 다 젖을 것 같으니 여기에서 차를 마시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게 어때요?]
꼽추는 그 음성을 듣자 깜짝 놀라며 고개를 아래로 숙여 얼굴이 남에게 보이지않도록 했다. 문 밖에는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좋아! 따끈따끈한 차를 마시며 한기가 좀 가실 것이다.] 두 사람은 찻집 안으로 들어서더니 한쪽의 탁자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앗다. 몸에 청의를 걸친 소녀와 오십여 세 정도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소녀의 얼굴은 곰보자국으로 가득해서 보기에 몹시 추했다. 꼽추는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당신네 두 사람은 사형제간이었군! 그런데 할아버지와 손녀딸로 가장을 하고서 술집을 차렸던 것이구나. 그들은 어찌해서 복위표국의 근처에서 술집을 차리고 술을 파는 행세를 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찌해서 청성파 고수들에게 납치되어가던 나를 구출해 주었을까?어쩌면 그들은 부모님의 행방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꼽추로 변장을 하고 얼굴 모습을 바꾸기를 정말 잘 했구나! 하마터면 저들에게 발각될 뻔하지 않았는가?)
이때 다박사가 끓인 차를 두 삼에게 날라왔다. 노인은 차를 받아 들고 훌훌 불며 마시다가 갑자기 '어' 하고 놀란다.
[소사매, 저것 좀 봐!]
소년는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막대선생이 자른 일곱 개의 찻잔을 보고 놀란 것이었다.
[저 한 수의 무예는 정말 놀랍군요! 누가 저 일곱 개의 찻잔을 베어 버렸을까요?]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소사매, 내가 소사매를 한번 시험해 봐야겠군! 일검을 휘둘러 단번에 일곱 개의 찻잔을 자를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맞춰 보게나.]
소녀는 퉁명스런 어조로 말했다.
[내가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누가 그랬는지 알 수가 있겠어요? 아...... 아니예요! 나는 알 수 있어요!]
소녀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호호호! 삼십육로(三十六路) 회풍낙안검(廻風落雁劍)의 제 십칠초인 일검낙구안(一劍落九雁)이라는 수법이 분명해요! 이것이야 말로 유정풍 대협의 걸작이예요!]
노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유 대협의 검법은 아직 이런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소사매는 겨우 절반만 알아맞추었어.]
소녀는 둘째 손가락을 내밀어 노인의 입술을 꾹 누르며 웃었다.
[그만 말씀하세요! 나는 알아애었다구요! 이건 바로...... 소상야우 막대선생이 만들어 낸 걸작이예요.]
이때였다. 갑자기 대여섯 명의 남자가 한꺼번에 웃어젖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사매는 정말 날카로운 안목을 가지고 있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꼽추는 깜짝 놀라 곁눈질을 하며 사방을 살펴보았다. 탁자 위에 엎드려 코를 골고 있던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찻집의 문 밖에서도 몇 명의 인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짐꾼의 차림이었고, 어떤 사람은손에 주판을 든 상인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어깨 위에 작은 원숭이를 얹고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마도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약을 파는 사람인 듯했다.
소녀는 나타난 사람들을 둘러보며 웃었다.
[호호호! 한 떼의 저속한 사람들이 이제보니 모두 여기에 숨어 있었군요!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구요! 그런데 대사형(大師兄)은 왜 보이지 않죠?] 그러자 어깨에 원숭이를 태우고 있는 사람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보자마자 저속한 사람들이라고 욕을 하기야?]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몰래 숨어 있다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저속한 사람들이 언제나 즐겨 사용하는 못된 습관이라구요. 대사형은 어찌해서 함께 오시지 않았어요?] 원숭이를 어깨에 태우고 있는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다짜고짜 대사형부터 찾는군! 어째서 여섯째 사형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거지?]
소녀는 발을 한번 구르고 쏘아부쳤다.
[쳇! 원숭이처럼 생긴 여섯째 사형은 이곳에 버젓이 있고, 죽지도 않았고 썩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그대에 관해서 물어요?]
그러자 그 사내는 웃으면서 말했다.
[대사형 역시 죽지도 않았고 썩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그에 관해서 묻는거지?]
소녀는 뾰로통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대와 말하지 않겠어요. 오직 네째 사형만이 좋은 사람이예요. 네째 사형, 대사형은 어떻게되었나요?]
짐꾼차림의 사내는 뭐라고 대답하려고 할 때 몇 사람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네째 사형만이 좋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모두 나쁜 사람이란 말이지? 네째, 그녀에게 말해 주지 말게나.]
소녀는 샐쭉해져서 말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뻐기는 거예요. 말하기 싫으면 그만두세요. 사형들이 이야기해 주지 않으니 나도 둘째 사형과 함께 겪은 괴이한 일들을 들려 주지 않을 거예요.]
짐꾼 차림의 사내는 그녀에게 놈담을 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매우 순박하고 과묵한 사람인 듯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어제 형양(衡陽)에서 헤어졌어. 대사형은 우리 보고 먼저 이곳에 와서 기다리라고 했어. 지금쯤은 술이 깨었을테니 머지 않아 이리로 달려올거야.]
소녀는 살짝 미간 찌푸렸다.

[또 술에 취하셨나요?]
짐꾼 차림의 사내는 말했다.
[맞아.]
손에 주판을 들고 있는 사람이 끼어들었다.
[이번에 대사형은 정말 통괘하게 마셨지. 아침에서 정오까지 그리고 정오에서 해질 무렵까지 마셨으니 적어도 이삼십 근의 술은 마셨을 꺼야.]
소녀는 발을 구르며 말했다.
[그렇게 많이 마시면 몸을 버린단 말이예요! 어째서 만류하지 않았죠?]
주판을 들고 있는 사람은 혀를 쑥 내밀더니 말했다.
[대사형이 언제 남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나. 그렇다면 해가 서쪽에서 뜨게? 소사매가 그에게 권한다면 또 모르지. 한 모금 정도 줄여 마실지도......]
그러자 여러 사람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소녀는 급히 말했다.
[어째서 그토록 퍼 마시게 되었죠?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주판을 든 사람이 말했다.
[그야 사형 자신에게 물어봐야 알겠지만...... 혹시 모르지.
형산성에 오게 된다면 소사매를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서 술을 퍼 마셨는지도!]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터무니없는 소리 말아요! 여자를 우롱했다고 아버지에게 일러바칠거예요!]
그러나 그녀의 어투에는 기쁜 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꼽추는 그들 사형사매가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듣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들어보건데 이 소녀는 대사형이라는 인물에 대해 정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둘째 사형이라는 자가 저토록 늙었으니 대사형은 더욱 늙지 않았겠는가? 이 소녀의 나이는 불과 십육 세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와 같은 늙은이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아! 그렇군! 이 소녀의 얼굴은 정말 보기 힘들 정도로 추하지 않은가. 따라서 세상의 어느 남자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자 정에 굶주린 이 소녀는 한사람의 늙은 홀아비의 주정뱅이를 사랑하게 된 모양이구나.) 이때 소녀는 다시 물었다.
[대사형은 아침 일찍부터 술을 마셨나요?]
원숭이를 어깨 위에 태우고 있는 사내가 말했다.
[소사매가 이토록 간절하게 애원하니 모두 이야기해 주도록 하지. 어제 아침 일찍 우리들 여덟 명이 막 출발하려고 할 즈음에 대사형은 갑자기 술냄새를 맡게 되었지. 한 거렁뱅이가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손에 호로(葫蘆)를 들고는 입에 호로병의 주둥이를 대고 벌컥벌컥 술을 들이키고 있는 중이었어. 대사형은 회가 동하여 거렁뱅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더군. '술향기가 몹시 특이한데 무슨 술이요.' 하고 물었던 거야. 그러자 거렁뱅이가 이렇게 대답했지. '이것은 원숭이술이라는 것이외다.' 대사형은 호기심을 끔치 못하고 물었지. '원숭이술? 처음 듣는 소린데요?' 거렁뱅이는 원숭이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었지. '호남성 북쪽의 산 속에는 원숭이들이 무리를 지어 살고 있는데 과일을 따서 술을 만들기도 한다오. 원숭이들은 가장 신선하고 달콤한 열매를골라서 술을 빚기 때문에 그 맛이 천하제일이라오. 나는 우연히 산 속에서 그 술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마침 원숭이들이 집을 비웠던 터라 세 호로나 되는 원숭이술을 훔칠 수 있었고 한 마리의 새끼 원숭이를 잡게 되었소.']
말을 하던 사내는 어깨에 태운 원숭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녀석이 바로 그 거렁뱅이가 데리고 있던 원숭이 새끼야.] 그 원숭이의 뒷다리는 노끈에 묶어져 있었고 그 사내가 노끈의 끝을 붙잡고 있었다. 원숭이는 끊임없이 머리를 긁적이고 고개를갸우뚱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매우 우스꽝스럽고 귀여웠다.
소녀는 원숭이를 바라보고는 깔깔 웃었다.
[여섯째 사형, 사형이 육후아(六喉兒)라는 별명을 가진 것도 무리는 아니예요! 여섯째 사형과 이 작은 원숭이는 정말 생김새가 비슷하네요!]
육후아라고 불리는 사람은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원숭이는 나의 친형제가 아니고 나의 사형(師兄)이야. 우리는 이 원숭이 나으리를 마땅히 첫째 사형이라고 불러야 돼.] 그 말이 떨어지자 모두 배꼽을 잡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소녀는 눈을 흘기며 빈정거렸다.
[잘 하는 짓이군요! 말을 빙 돌려 대사형을 원숭이 같은 인간 이라고 빗대어 욕을 하다니요! 내가 고자질을 안 할 줄 아세요? 대사형은 아마도 여섯째 사형이 몇 번이나 곤두박질치도록 아프게 발길질을 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저원숭이는 어쩌다가 여섯째 사형의 손안에 들어오게 되었죠?]
육후아는 말했다.
[나의 사형인 이조그만 짐승 말인가? 아...... 말을 하자면 정말 골치가 아프지.]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요. 틀림없이 대사형께서 그 원숭이를 달라고 해쏀죠 뭐. 그리고 여섯째 사형에게 돌보라고 했겠지요. 대사형은 아마도 이 쬐그만 녀석이 한 호로의 원숭이술을 담가 자기에게 먹여 주기를 바라고 있을 거예요.]
육후아가 말했다.
[정말 대사형에게 대해 많이도 연구했군! 맞아! 소사매는 정말 보지도 않고 훤히 내다보는구만!]
소녀는 다소곳한 음성으로 말했다.
[대사형께서는 정말 이상야릇한 것만 좋아해요. 원숭이는 숲 속에 있을 때나 술을 빚는 법이예요. 사람이 붙잡고 있다면 어떻게 열매를 따서 술을 만들 수가 있겠어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째서 육후아 사형이 원숭이술을 담그는 진귀한 광경을 볼 수 없었겠어요?]
육후아는 화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매, 사형을 존경하지는 못할망정 원숭이라고 하면 어떡해? 정말 아래 위도 없이 함부로 말하기야?]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어머나! 새삼스럽게 사형의 위신을 세워보겠다는 거예요? 여섯째 사형, 그건 그렇다 치고 대사형은 어쩌다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을 마시게 되었죠?]
육후아는 지나간 일을 회상하듯 눔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아...... 눈에 선하군! 그대 대사형은 더럽지도 않은지 거러뱅이가 먹고 있는 술맛을 좀 보자고 하더군. 그 거렁뱅이의 살갗에는 시커먼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다 떨어진 의복에는 쌀알만한 이가 들락날락 했었지. 어디 그뿐인가? 눈물과 콧물이 흘러내려 얼굴은 온통 더럽게 반죽이 되어 있었어. 틀림없이 그 호로병에는 많은 양의 눈물과 콧물이 떨어져을 거야.]
소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내저었다.
[그만해요. 구역질이 나려고 그래요.]
육후아는 짓궂게 말했다.
[사매는 구역질이 날지 모르지만 대사형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어. 그 거렁뱅이는 세 호로의 원숭이술을 모두 마시고 겨우 반 호로의 술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남에게 줄 수가 없다고 말했어. 나 같으면 공짜로 주어도 마시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대사형은 한 냥의 은자를 꺼내면서 그 더러운 술을 사려고 하더군.]
소녀는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정말 대사형은 바보예요! 그는 너무 술을 좋아해서 탈이라고요!]
육후아는 싱긋 웃고 말을 계속했다.
[그 거렁뱅이는 은자를 보자 손을 내밀어 은자를 나꿔채면서말 했지. '당신이 하도 먹고 싶어하니까 딱 한 모금만 마시도록 허락하겠소. 딱 한 모금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대사형은 이렇게 말했지. '한 모금만 마시라면 그렇게하겠소이다.' 그리고는 호로를 입으로 가져가 마시기 시작했지. 대사형이 한 모금을 마시는 시간은 매우 길었지. 꿀꺽꿀꺽 하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단숨에 반 호로나 되는 술을 다 마셔 버리는 것였어. 이때 대사형은 사부님이 전수해 준 기공(氣功)을 펼쳐서는 숨 한번 쉬지 않고 용(龍)이 강물을 마시듯 호로의 술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마셔 버렸던 거야.]
사람들은 거기까지 듣게 되자 일제히 큰 소리로 웃어젖혔다.
육후아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소사매(小師妹), 어제 그대가 형양에서 친히 대사형이 그 술을 마시는 재간을 보았더라면 정말 탄복하고 말았을 거야. 그야말로 '신응단전(神凝丹田) 식유자부(息遊紫府) 신고능허이초화악(身苦凌虛而超華嶽) 기여충소이감북진(氣如沖宵而憾北辰)이라는 구절이 실감이나는 순간이었다니까! 이 한 수의 숨을 쉬는 재간이야말로 신(神)의 경지에 도달하여 있어 오묘하기 이를 데 없었단 말이야.]
소녀는 깔깔 웃으면서도 쌀짝 눈을 흘겼다.
[터무니 없는 소리는 그만 하세요. 대사형의 술을 마시는 행동이 우스꽝스러웠다고 해서 무공의 비결을 들먹일 것까지는 없다구요! 우리 문파의 무공 비결을 조롱했다고 아버지께 일러바치고 말테니 두고 봐요.]
육후아는 황망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내가 문파의 구결(口訣)을 욕하는데 사용한 것은 아냐! 모두 보았다니까! 이것들 봐, 대사형이 구결에 있는 재간으로 술을 마시는데 쓴 것을 모두 보았지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소사매, 육후아의 말은 사실이야.]
소녀는 기가 막힌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께서는 그 기공을 오직 대사형에게만 전수해 주셧는데 고작 거렁뱅이의 콧물이 섞인 술을 빼앗아 마시는데 사용하다니...... ]
육후아는 말했다.
[대사형이 호로의 술을 모조리 마셔 버리자 그 거렁뱅이는 화가 나가 대사형에게 대들었지. '딱 한 모금만 마시겠다고 하고서 어째서 반 호로의 술을 다 마셔 버리는 거요!' 대사형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지. '나는 확실히 한 모금밖에 마시지 않았소. 내가 언제 숨을 바꾸는 것을 보았소? 숨을 바꾸어 쉬지 않으면 그게 한 모금이 아니고 뭐겠소? 우리는 큰 한 모금과 작은 한 모금을 정하지 않았단 말이외다. 사실 나로서는 반 모금밖에 마시지 않았소. 한 모금도 채 마시지 못했단 말이오. 적어도 다섯 호로 정도의 분량은 되어야 나의 한 모금이 될 수 있단 말이오. 한 모금에 한 냥의 은자를 주기로 했으니 반 모금에는 오전(五錢)의 가격이 붙은 셈이외다. 오전의 은자를 거슬러 주어야 하오.' 그러자 거렁뱅이는 다급해진 나머지 울려고 하더군, 그러자 대사형은 얼른 그를 위로해 주었어. '노형, 술 한 모금을 가지고 그토록 마음 아파하는 걸 보니 그대는 정말 술을 좋아하는 군자(君子)로군요! 갑시다! 내가 한 턱 낼테니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셔 봅시다.' 대사형은 거렁뱅이의 팔을 끌고 길 옆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가서는 권커니 자커니 마셔대기 시작했지. 우리들은 정오까지 기다리며 술자리가 파하기를 기다렸으나 두 사람은 조금도 멈추지를 않았지. 대사형은 그 거렁뱅이에게 원숭이를 달라고 해서는 나에게 주며 돌보라고 했어. 오후가 되었을 때 그 거렁뱅이는 땅 바닥에 쓰러져서는 일어날 생각도 못했지. 대사형은 혼자서 자음 자작하게 되었는데 평소 술을 많이 먹기로 유명하여 '밑 삐진 독'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대사형도 결국은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게되더구만! 대사형은 우리 보고 형산성에 먼저 가 있으라고 하면서 자기도 곧 뒤따라 오겠다고 했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그렇게 된 일이군요. 그 거지는 개방의 인물이었나요?]
육후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포대자루를 등에 메고 있지는 않았어.]
소녀는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육후아는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사매, 둘째 사형과 함께 있는 동안 많은 괴상한 일을 만났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려 주는게 어때?]
소녀는 육후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나중에 대사형이 도착하면 그때 말할래요. 그렇지 않으면 같은 이야기를 두 번이나 하게 되니까 번거러운 일이예요. 그런데 어디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셨나요?] 육후아는 말했다.
[약속은 하지 않았어. 그저 형산성에서 만나기로 했지. 술에 취하면 세상이 작게 보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대사형은 술에 만취하게 되자 형산성이 안방처럼 좁은 줄 알고 형산성에서만 있으면 금방 찾을 수 있다는 듯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먼저 형산성에 가시오. 나는 곧 뒤따라 가겠소.'라고 말하고는 곧이어 그 자리에 큰 대(大)자로 쓰러져 잠이 들었단 말이야. 글쎄 곧 따라올런지 아니면 몇 달이 걸린 후에 따라올런지는 우리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 소사매, 나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소사매도 겪은 일을 이야기해 주어야 되지 않겠어?]
소녀는 시쿵등한 어조로 말했다.
[둘째 사형, 사형이 말해 주세요. 저는 이야기할 기분이 나지 않아요.]
소녀는 꼽추를 흘깃 바라본 후 다시 말했다.
[이곳은 이목이 많아서 그 괴상한 일을 이야기할 장소가 되지 못해요. 다른 곳에 가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어요.]
육후아는 말했다.
[저 꼽추는 분명히 실성한 녀석일거야.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쳐들 생각을 하지 않잖아? 우리는 미친 녀석을 아랑곳하지 맙시다. 둘째 사형, 사매와 같이 북위표국을 정탐하러 갔었는데 어찌 되었소? 소문을 듣자니 북위표국은 청성파의 고수들에 의해 멸망당했다고 하던데 북위표국에는 쓸만한 고수가 없었나보구려?]
노인은 천천히 말했다.
[대사형이 아직 오지 않고 비도 그치지 않은데다가 할 일도 없고 하니 처음부터 이야기 해주지. 모두들 원인과 결과를 알아야 이후 청성파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조심을 하게 될 거이야. 그러니까 작년 겨울에 대사형이 한중(漢中)에서 청성파의 제자인 후인영(候人英)과 홍인웅(洪人雄)을 때린 적이 있지 않은가?] 육후아는 갑자기 킥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소녀는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뭐가 우스워요?]
[나는 그들 두 녀석이 자존망대(自尊妄大)하여 거들먹거리는 꼴이 생각나서 웃은 거야. 무슨 인영(人英)이니 인웅(人雄)인 하는 이름을 지은 것도 그렇지만 강호에서 청성파의 가장 뛰어난 네 제자를 가리켜 청성사수(靑城四秀)이라고 부르지 않은가? 하지만 그 이름 때문에 망신을 당하게 되었던 거지. 차라리 나처럼 육후아(六喉兒)라는 이름을 가졌다면 그와 같은 망신을 당하지는 않았을 거야.]
이때 짐꾼 차림의 사내가 말했다.
[육후아, 둘때 사형이 이야기하는데 끼어들어 쓸데없는 말을 늘여놓지 말게나.]
육후아는 말했다.
[끼어들지 말라면 끼어들지 않겠습니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다시 킥! 하고 웃었다. 소녀는 눈쌀을 찌푸리며 쏘아부쳤다.
[또 뭐가 우스워요? 정말 훼방만 놓고 있네.]
육후아는 말했다.
[히히히...... 나는 홍인웅과 후인영 두 녀석이 대사형의 발길에 채여서는 예닐곱 번이나 곤두박질치면서 나가떨어진 광경을 상기하고 웃은 거야. 원래 대사형은 그들의 건방진 이름을 듣고 화를 낸 것이야. 그래서 술잔을 높이 쳐들고 건배하면서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지. 즉'영웅호걸 청성사수'라는 말 대신에 구웅야저(狗熊野猪), 청성사수(靑城四獸)'라고 외쳤던 거지. 그 말뜻을 풀이한다면 '개와 곰과 멧돼지 같은 청성파의 네 짐승'이 되는 것이지. 이 말을듣게 된 두 녀석은 크게 노하여 대사형에게 덤벼들었는데 대사형의 발길에 채여서는 그만 이 층의 주루에서 땅바닥으로 나가떨어지고 말았지. 하하하!]
꼽추는 그 대사형이란 인물이 무척 재미있는 사람이고 생각했다. 술이라면 사죽을 못 쓰는 점도 재미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이 건방지다고 시비를 걸고 발길질을 했다니 들을수록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대사형이라는 인물은 정말 별 일을 다 참견하는군. 술을 마시는 거렁뱅이에게 수작을 부리지 않나...... 어쨌든 우리 북위표국을 멸망시킨 청성파 놈들을 혼내 주었다니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할 판이군.)
둘째 사형이라는 노인은 말을 계속했다.
[대사형이 청성파 제자를 걷어찬 사실을 전해 들은 청성파의 장문인인 송풍관주(松風關主)여창해(余滄海)는 한 통의 편지를 써서 사부님께 보냈지. 그 편지에는 '불초가 제자를 엄히 다스리지 못하여 귀하의 제자에게 얻어 맞았읍니다. 내 제자들은 맞아도 쌉니다. 고명하신 귀제자에게 시비를 걸어오니까 맞은 것이지요.'라는 말이 씌어 있었네.]
육후아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 여창해 녀석은 아주 못됐군! 편지를 써서 사과를 한 것은 사실상 사부님께서 대사형의 행동을 알려 주어 혼을 내주려는 것이었지! 그 바람에 대사형은 문 밖에서 하루 밤낮을 두고 꿇어 앉는 벌을 받게 되었고 여러 사형제들이 간곡히 사정을 해서야 사부님께서는 대사형을 용서해 주셨단 말이야!]
소녀는 뾰로통한 음성으로 말했다.
[용서는 무슨 용서예요! 그대신 삼십 대의 곤장을 맞앗단 말이예요.]
육후아가 말했다.
[나도 덩달아 열 대의 곤장을 맞게 되었지. 히히히...... 그렇지만 청성파의 두 녀석이 엉덩이를 걷어채여 아래층으로 굴러 떨어지는 꼴을 구경했으니만큼 열 대의 곤장은 그만한 가치가 있어!]
주판을 든 사내가 임을 열었다.
[자네는 여전히 뉘우치는 기색이 없군! 열 대의 곤장을 헛맞았어.]
육후아는 말했다.
[뉘우치긴 뭘 뉘우친단 말이오? 대사형이 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이오.]
그러자 주판을 든 사내는 말했다.
[하지만 옆에서 몇 마디 말로 만류를 했어야 했어. 사부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어. '육후아란 녀석은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충동질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열 대의 곤장을 내린다.' 하하하......]
옆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웃었다. 육후아는 말했다.
[나는 정말 억울하오! 생각해 보오. 대사형의 발길질이 얼마나 빠른지를. 두 녀석이 대사형에게 덤벼들었을 때 대사형은 잔을 높이 들고 꿀꺽꿀꺽 술을 마시고 있었소. 그래서 나는 부르짖었소.
'대사형! 조심하시오!' 그 순간 퍽퍽하는 둔탁한 음향이 울려퍼지면서 곧이어 두 분의 영웅이 아래층으로 내리뻗는 계단으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는 것이 아니겠소? 나는 그저 대사형의 동작을 자세히 관찰하여 대사형의 그 유명한 표미각(豹尾脚)이라는 발길질을 배우려고 했을 뿐이었으나 미처 볼 사이도 없었소. 그런데 나보고 충동질을 했다고 한다면 그건...... 그건 너무나 억울한 일이오.]
주판을 든 사내가 물었다.
[육후아, 솔직히 말해보아라. 대사형이 '구웅야저 청성사수'라고 부르짖었을 때 너도 옆에서 그 말을 따라 함께 부르짖지 않았느냐?]
육후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헤헤...... 대사형께서 그와 같이 선창을 하는데 사제가 된 나로서 어찌 따라 불러 기세를 돋우지 않을 수가 있었겠어요? 설마하니 나보고 청성파 두 녀석의 편을 들어 대사형에게 욕을 해야 된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주판을 든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
[사제들은 사부님께서 대사형에게 훈계를 내리시던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하네. 사부님께서는, '강호의 인물들은 누구나 별호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같이 지나친 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들면 위진천남(威震天南)이나 추풍협(秋風俠), 또는 초상비(草上飛)와 같은 별호가 사용되고 있다. 그 많은 별호를 어찌 일일이 상관하여 시비를 걸 필요가 있겠느냐? 남이 영웅호걸이라고 불러도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 친구를 사귀려고 해도 한 평생 시간이 부족한데 어찌 원한을 맺으려고 일일이 따라다니며 치근거린단 말이냐?]
모든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육후아는 나직이 말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여섯째 원숭이(六喉兒)'라는 별명은 참 좋은 것 같군. 듣고 화를 내거나 시비를 걸 사람이 없으니 말야.]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사형은 청성파의 두 녀석을 발로 차서 떨어뜨린 것은 청성파 사람들에게 큰 치욕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그 소문을 퍼뜨리면 안 된다고 우리들에게 분부하셨던 거야. 그러니 우리 그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 다른 사람이 듣고 소문이 퍼지면 안 되거든!]
육후아가 말했다.
[사실 청성파는 헛된 명성만 지니고 있었어요. 그들의 미움을 사도 상관 없읍니다. 그들은 우리를 어쩌지 못하니까 말입니다.]
그러자, 노인이 눈을 흘기며 쏘아부쳤다.
[여섯째 사제, 자네가 계속 쓸데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면 나는 사부님께 일러 바치고 말겠어. 그렇게 되면 자네는 다시 열 대의 곤장을 맞게 될거야. 자네는 알고 있는가? 대사형께서 그 두 녀석을 차서 아래층으로 떨어뜨린 것은 두 녀석의 빈틈을 노려 기습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또한 대사형은 화산파의 두 번째 가는 고수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자네는 백년 동안 무예를 익혀봤자 대사형의 발끝에도 못 미친단 말이야. 자네에게 청성사수를 차서 떨어뜨릴 재간이 있다고 여기나?]
육후아는 혀를 쑥 내밀고 손을 내저었다.
[헤헤...... 내가 대사형과 비교될 자격이 있나요?]
노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청성파의 장문인인 여관주는 당금 천하의 기재(奇才)이고 괴걸(怪傑)일쎄. 그를 얕보다간 큰 코 다치지. 소사매, 그대는 여관주를 직접 보았는데 내 말이 틀리다고 생각해?]
소녀는 말했다.
[맞아요. 맞고 말고요! 여관주의 수법은 약랄하기 그지없어요. 나는...... 그를 다시는 맞나고 싶지 않아요. 그가 두려워요. 그는 정말 너무나도 무서운 사람이예요.]
소녀의 음성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육후아는 물었다.
[그 여관주의 수법이 악랄하다고? 사매는 그가 사람을 죽이는 광경을 본 거야?]
소녀는 몸을 움츠리며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노인은 말했다.
[그날 사부님께서는 여관주가 보낸 편지를 받으시고 크게 화를 내시며 대사형과 육 사제를 혼내 주셨지. 그리고, 이튿날 한 통의 편지를 써서 나에게 건네 주시며 청성산으로 가서 여관주에게 전해 주라고 하셨네.]
여러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알고 보니 그날 둘째 사형께서 총총히 산을 내려간 것은 바로 청성파로 가느라고 그런 것이었군요?]
노인은 말했다.
[맞아. 사부님께서는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네. 쓸데없는 일을 일으키게 될까 염려하셨던 거지.]
육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쓸데없는 일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우리는 쓸데없는 일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키가 큰 사내가 말했다.
[자네가 무얼 안다고 그래? 둘째 사형이 만약 자네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해봐. 자네는 분명 대사형께 일러바쳤을 게 아닌가? 그렇게 되면 대사형은 틀림없이 은밀히 일을 꾸며서 청성파를 골탕먹였을 거야.]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째 사제의 말이 옳아. 대사형은 강호(江湖)에 친구가 많으시니까 무슨 일을 꾸미려고 한다면 직접 손을 쓸 필요도 없지.
사부님께서는 편지에 사과하는 말을 쓰셨다고 했어. 즉, 제자가 커다란 골치덩어리라서 쓸데없는 일을 자주 저지르기 때문에 매우 속이 상하다고 하시며 사문(師門)에서 축출해야 마땅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강호에서는 청성파와 화산파에 알력이 생겼다고 수근거리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더욱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하셨지, 그리고 이미 두 명의 못된 제자들을.......]
거기까지 말하고 노인은 육후아를 슬쩍 바라보았다. 육후아는 못마땅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못된 제자란 말이지?]
소녀는 '체' 하며 말했다.
[여섯째 사형이 대사형과 나란히 평가된다는 것이 설마하니 불쾌하다는 말은 아니겠죠?]
육후아는 대뜸 기쁜 표정을 지으며 크게 부르짖었다.
[맞아! 맞다구! 제가랄...... 술을 가져 와! 술을!]
찻집은 원래 차를 팔지 술을 파는 법이 없었다. 다박사(茶博士)가 얼른 다가오며 굽신굽신 거렸다.
[손님 죄송합니다.저희 가게에는 동정춘(洞庭春), 수선(水仙), 용정(龍井), 기문(祁門), 보문(普聞), 철관음(鐵觀音)같은 차밖에 없읍니다. 술은 팔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형양(衡陽)이나 형산(衡山) 지방의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종종 '죄송합니다' 하는 뒷말을 붙이곤 했다. 이 다박사는 특히 심한 편이었다.
육후아는 그 말을 받아 말했다.
[죄송합니다. 당신네 가게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면 나도 술을 마시지는 않겠읍니다. 죄송합니다.]
다박사는 허리를 굽신거리며 말했다.
[예, 예.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몇 주전자의 끓인 물을 탁자 위에 갖다 놓았다.
노인은 말을 이었다.
[사부님께서는 편지에, '못된 두 제자를 청성산에 보내 사과를 하도록 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두 명의 못된 제자가 너무나 심하게 매를 맞아 걸음을 옮길 수가 없읍니다. 그래서 특별히 둘째 제자 노덕약을 보내 대신 사과를 드리는 바입니다.'라고 쓰셨다네. 그리고 '이 일은 오로지 두 녀석 때문에 일어난 불상사이니만큼 여관주께서 청성과 화산 두 파의 평소 교분을 보아서 마음속에 접어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회에 제가 친히 여관주를 찾아 뵙고 사과를 드리도록 하겠읍니다.'라는 글도 쓰셨다고 하더구만.]
꼽추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당신의 이름은 노덕약이고 당신들은 화산파의 제자들이었군! 화산파라면 태산파(泰山派), 형산파(衡山派),항산파(恒山派), 숭산파(崇山派)와 함께 오악검파(五嶽劍派)의 하나가 아닌가?)
이때 노덕약은 말을 계속했다.
[내가 청성산에 이르니 그들은 사사건건 나에게 시비를 걸더군. 특히 후인영과 홍인웅 두 녀석은......]
육후아는 눈쌀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청성파 녀석들이 그토록 건방지다니! 둘째 사형,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셨어요?]
노덕약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청성파에 보낸 것은 화해를 하라는 것이었지 시비를 일으키라는 게 아니었어. 그래서 나는 꾹 눌러 참고 이레가 지난 후 여관주를 만날 수 있었네.]
육후아는 코웃음을 쳤다.
[흥! 그들은 꽤나 거드름을 피웠군! 둘째 사형, 이레 동안 꽤나 심심하고 따분하고 울화가 치밀었겠군요?]
노덕약은 말했다.
[물론 시시콜콜 녀석들이 시비를 걸었지. 그러나 나는 사부님의 뜻을 받들어 꾹 참았단 말이야. 나는 정말 참을성을 극도로 발휘했었지. 내가 청성파의 송풍관(松風觀)에서 이레를 머무는 동안에 나는 한 가지 이득을 보았다네. 나는 삼 일째 되는 날 이른 아침산보를 나갔다가 송풍관 뒤쪽의 연무장으로 발길을 옮기게 되었는데, 거기서 청성파의 수십 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지. 강호에서는 남이 무예를 익히는 광경을 엿보는 것은 크게 꺼리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급히 발길을 돌려 내 방으로 돌아갔지. 그러나 흘깃 본 그들이 연마하는 무공초식에 크나큰 위혹을 느꼈다네. 그들이 익히고 있는 초식은 결코 청성파의 검법(劍法)이 아니었거든! 생각해 볼수록 이상하지 않겠나? 더구나 청성사수라고 일컬어지는 후인영, 홍인웅, 우인호, 나인걸 등도 그 속에 끼어서 그 검법을 익히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익히는지 매우 서툴렀다네. 여러 사제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손에 주판을 들고 있는 사람이 말했다.
[청성파에서는 혹시 한 권의 검법비급(劍法秘及)을 얻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여관주가 새로운 검법을 창안해 냈는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전수했겠지요.]
노덕약은 말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더군! 여관주의 검 쓰는 재간은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러 있으니만큼그가 새로운 검법을 창안했다면 그 위력은 정말 놀라웁지 않겠는가. 그리고 만약 새로운 무공비급을 얻었다고 한다면 반드시 고명한 제자들에게 연마하도록 했을 것이야. 그리고 고명한 수법이라면 평범한 제자들은 터득하기 어려우므로 무공이 뛰어난 몇몇 제자들에게만 전수했을 것이네. 그렇지 않다면 엉터리 무사가 도시에 검술 도장(道場)을 건설하고 어중이 떠중이를 긁어모아 돈을 우려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냐 말이야. 그런 짓을 명문대파(名門大派)의 대종사(大宗師)가 할 까닭이 없지. 그날 밤 내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갑자기 멀리서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겠나? 나는 깜짝 놀라 생각했지. 혹시 청성파에 강적이 쳐들어 온 게 아닌가 하고 말이야.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은 대사형이 벌을 받고 속으로 울화가 치밀어 송풍관에 쳐들어 온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네. 그분 혼자서는 중과부적이니까 내가 나가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지. 당시 나는 청성산에 오르느라고 입구에 무기를 벗어놓았기 때문에 검(劍)을 갖고 있지 못핸네. 부득이 적수공권으로 뛰어나가는 수밖에 없었지.]

육후아가 갑자기 칭찬의 말을 던졌다.

[훌룡하오! 둘째 사형은 정말 용기가 대단하군요! 나로서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노덕약은 눈을 흘겼다.

[자네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가? 나는 결코 적수공권으로 싸우려는 것이 아니었어. 맨손으로 나서지 않으면 베개를 들고 나가란 말인가? 아니면 이불 속에 자라처럼 머리를 파묻고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단 말인가?]

육후아는 혀를 쑥 내밀고 말했다.

[나는 둘째 사형을 칭찬하는 건데 왜 도리어화를 내시지요?]
노덕약은 말했다.

[칭찬의 말이라면 사양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웬지 듣기 거북스러운 칭찬이로군!]

소녀가 얼른 말했다.

[둘째 사형, 육후아 사형이 자꾸만 방해를 놓는데 그분을 아랑곳하지 마세요.]

노덕약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나는 살그머니 일어나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갓지. 무기 부딪치는 소리는 바로 후전(後殿)에서 들려왔어. 후전의 창문에서는 등불이 환히 비치고 있었어.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그머니 다가가 창문 구멍을통해 안을 엿보았지.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쉴 수가 있었다네. 후전에는 두 쌍의 사람이 마주서서 비검(比劍:검을 겨룸)을 하고 있었는데 한 쌍의 후인영과 홍인웅 이었고 다른 한 쌍은 방인지(方人智)와 우인호(于人豪)였다네.]
육후아는 익살스런 표정으로 짐짓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허! 청성파의 제자들은 정말 열심히 무공을 연마하는군! 밤에 잠도 자지 않고 무공을 연마하다니 말이오. 이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니겠소?]

노덕약은 그를 한 번 흘기고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대사형에게 걷어채이고 정신을 차렸는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지. 어쨌든 후전 한복판에는 푸른 도포(道袍)를 걸친 왜소한 도사가 앉아 있더구만. 나이는 약 오십 세 가량이고 얼굴은 깡말랐는데 몸무게가 기껏해야 서른 근(斤)정도밖에 나가지 않을 것 같더군. 왜소하다고 소문 난 청성파의 장문인 여창해(余滄海)였어. 나는 두 쌍의 제자들이 펼치는 검법이 바로 그날 아침 그들이 새로이 배우고 있던 초식이라는 점을 알 수가 있었지. 나는 그들에게 발각될까봐 전전긍긍했지. 남이 무공을 연마하는 걸 엿보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이며 그 소문이 퍼진다면 화산파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것이 아니겠는가? 대사형이 청성사수를 걷어찬 것은 우리 화산파를 빛낸 일이지만 내가 그들의 무공 연습을 숨어서 지켜본다는 것은 우리 문파를 망치게 하는 일이었지. 사실 이제야 말이지만 사부님께서는 속으로 대사형을 기특하게 여기셨을 거라고 샐각해. 그때 나는 청성파의 제자들이 화산파에 대항하기 위해 새로운 검법을 익히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 그들의 무공을몇 초 훔쳐 보고 사부님께 알려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지. 그들의 검법은 기이하긴 했지만 위력은 없어 보였다네. 이레가 되는 날 나는 여관주를 접견하게 되었는데 그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너무 엄한 벌을 내리신 것 같다고 하시더군. 제자들끼리 한 번 장난을 한 걸 가지고 그러느냐고 하더라니까. 물론 마음에는 없는 소리였겠지. 나는 송풍관에서 떠나 사부님께로 돌아왔고 즉시 그들이 연마했던 검초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시범을 보여 드렸지. 사부님은 말씀하시더군. '그 검법은바로 복위표국(福威標國) 임(林)씨 집안의 벽사검법(僻邪劍法)이다!']
[벽사검법이라.......]

육후아는 중얼거렸다. 노덕약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당시 나는 사부님께서 이렇게 여쭈어 보았지. '벽사검법은 대단한 위력이 있나요? 그들은 어째서 그 검법을 애써 연마하는 거지요?'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네. '강호에 떠도는 소문에서 복위표국의 총표두(總標頭) 임진남(林震南)의 무공은 어떻게 평가되는지 아는 데로 말해 보게.' 나는 말했지. '무림의 친구들은 임진남에게 의리의 사나이라고 합니다만 무공은 별로 이름이 나있지 못하더군요.' 사부님께서는 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셨어. '맞아. 자네는 여관주의 사부 장청자(長靑子)가 옛날 임원도(林遠圖)의 벽사검(僻邪劍) 아래 패한 사실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어리둥절하여 물어보았지. '임원도라면...... 임진남의 부친인가요?' '아니야. 임원도는 임진남의 조부이고 복위표국을 건립한 인물이야. 과거 임원도는 칠십이로(七十二路) 벽사검법으로 천하무적(天下無敵)이었어.' '그렇다면 벽사검법은 대단히 무섭겠군요?' '장청자는 벽사검법 아래 패한 이후 청성파의 제자들에게 기필코 벽사검법을 꺾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한을 품고 죽었지. 벽사검 아래 중상을 입었는데 결국 치료를 하지 못했던 거야.
벽사검법은 비록 겉으로는 평범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는 귀신도 헤아리지 못하는 오묘한 변화가 숨겨져 있어.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아깝게도 그의 자손들은 벽사검법의 오묘한 점을 깨우치지 못하고 한낱 평범한 검법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지. 덕약, 너는 여창해가 새삼스레 벽사검법을 익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말했네. '혹시 여관주는 복위표국을 무찔러 장청자 사부의 원한을 갚으려는 것이 아닐까요?' 사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셨네. '네 말이 옳다. 이번에 청성파와 복위표국은 피의 혈투를 벌이게 될 것이다. 여창해는 청출어람(靑出於藍: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남)의 기재로서 무공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임진남은 그의 조부의 발바닥에도 못 미치지. 그러니 복위표국은 참패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임진남이 그의 장인 되는 낙양금도(洛陽金刀) 왕원패(王元覇)의 도움을 받는다면 한바탕 겨뤄 볼만 하겠지만...... 자네는 그 싸움을 살펴보고 오게.' 이리하여 나와 소사매 두 사람은 사부님의 명을 받들어 변장을 하고 복위표국 옆에서 술집을 차리고 복위표국의 동정을 살피게 되었지. 어느 날 공교롭게도 임진남의 아들 임평지(林平之)가 우리가 차려 놓은 술집에 들어오지 않았겠는가? 바로 이때 청성파의 못 된 제자 두 명이 그 술집에 들어왔단 말씀이야!]

육후아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 술집은 정말 장사가 잘 되었군요! 그야말로 한 밑천 톡톡히 잡았겠군요?]

노덕약은 웃으며 말했다.

[임평지란 녀석의 무공은 하잘 것이 없었지. 우리 소사매의 제자가 될 자격도 없었는데 뜻밖에도 의협심은 대단하더군! 청성파의 못된 녀석들이 소사매를 희롱하는 걸 보고 그들에게 대들었단 말이야! 임평지는 청성파의 두 제자을 찔러 죽였지만, 무공이 뛰어났던 게 아니고 순전히 기습을 했던 거야. 그날 밤 여관주는 수많은 제자들을 이끌고 복위표국에 쳐들어가 수백 명이나 되는 식솔들을 이 잡듯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여 버리더구만! 정말 악랄했어. 차라리 끔찍할 정도로 처참한 광경이었어. 여관주는 임진남 부부와 임평지를 사로잡아 제자들을 시켜 청성산으로 호송하라고 시키고 자신은 복위표국에 남아 여인의 속옷을 찢어서 표국의 깃발을 만들어 대문 앞에 높이 걸어놓았지. 복위표국의 위신이 깡그리 뭉개지는 순간이었다고! 소사매는 임진남 부부가 납치되는 걸 따라가서 기습을 하여 임평지를 구출해 주었어. 하지만 임진남 부부까지 구할 수는 없었지.]

육후아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묘하군! 정말 묘하다! 내 생각엔 소사매가 임가 녀석을 구한 속셈은 따로 있었을 거야!]

소녀는 발을 구르며 부르짖었다.

[나에게 무슨 속셈이 있었다고 그래요? 터무니없는 소리 그만두지 못해요!]

육후아는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내가 곤장을 맞은 게 바로 청성파의 녀석들 때문이 아니었겠어? 소사매는 그래서 청성파 녀석들만 보면 훼방을 놓고 싶었을 거라구! 청성파 녀석들을 골탕먹인 것은 바로 나의 원수를 갚아 준 것이 아니고 뭐겠어? 정말 고마워!]

그러면서 육후아는 소녀에게 허리를 굽혔다. 소녀는 '훗' 하고 웃으며 마주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여섯째 사형, 너무 고마와할 건 없어요.]

주판을 든 사람이 말했다.

[소사매가 청성파 녀석들을 골탕먹인 것은 물론 화풀이를 한 것이지. 하지만 자네를 위해서 그랬다고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 사부님께 곤장을 맞은 사람이 육후아 한 삶은 아니지 않은가?]

노덕약은 웃으며 말했다.

[소사매가 육후아의 화풀이를 해준 것이 맞아. 이후에 사부님께서 물어보실 때 소사매는 틀림없이 그렇게 말할테니 두고 보라구!]

육후아는 손을 마구 내저으며 황급히 말했다.

[아이쿠! 그런 소리 그만 하세요. 만약 그 말이 사부님 귀에 들어간다면 나는 다시 열 대의 곤장을 맞을 거예요.]

여러 사람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노덕약은 말했다.

[어쨌든 대사형이 그 일을 알게 된다면 소사매를 크게 칭찬할거야!]

빗발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이때 혼돈(混沌)을 파는 사람이 등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솔을 지고 찻집 처마 아래에 이르러 비를 피하고 있었다. 혼돈을 파는 노인은 대나무로 만든 딱딱이를 쳐서 '딱딱딱' 하는 소리를 내며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일제히 문 밖을 내다 보았으며 육후아는 큰 소리로 부르짖기까지 했다.

[이봐요! 여기 아홉 그릇의 혼돈을 주시오. 계란 하나씩 얹어 주시면 더욱 좋을 것이오.]

노인은 대답했다.

[예, 예, 곧 됩니다.]

그리고는 혼돈을 끓는 물 속에 집어 넣었다. 얼마 후 그는 다섯 그릇의 혼돈을 삶아서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그릇을 날라왔다. 육후아는 첫번째 그릇을 노덕약에게 주고, 둘째 그릇은 세째 사형인 양발에게 주고, 차례대로 네째인 시대자, 다섯쟤인 고근명의 앞에 놓았고 다섯째의 그릇은 원래 그가 차지해야 했으나 소녀의 앞에 가져오며 말했다.

[소사매, 먼저 먹어.]

소년는 줄곧 그와 농담을 했으며 원숭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가 혼돈 그릇을 가져오자 급히 몸을 일으키며 정중하게 마랴싶다.

[사형, 고마와요.]

화산파의 규칙은 매우 엄하여 농담을 할 때도 있지만, 결코 장유유서의 규칙을 깨뜨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육후아가 먼저 혼돈을 먹자 모든 사제들도 기다렸다는 듯 급히 혼돈을 먹기 시작했다.
양발이 물었다.

[여관주는 복위표국에 머문 다음 즉시 떠났나요?]

노덕약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쎄. 여관주는 표국에 산처럼 쌓여 있는 금은보화를 제자들을 시켜 나르게 하고 다시 표국을 이리저리 뒤지는데 뭔가를 찾고 있는모양이었네.]

양발은 무릎을 '탁' 하고 치며 부르짖었다.

[알겠소! 그는 바로 벽사검법의 검보를 찾고 있었군요?] [맞아! 자네는 참 추리력이 뛰어나군! 어쨌든 여관주는 벽사검보를 찾아내지 못했네. 변소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벽사검보는 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었단 말일세. 내 생각에는 그가 복위표국을 멸한 것은 사부의 원한을 갚기 위한 것보다는 오히려 벽사검보를 얻으려는 데에 있는 듯하더군.]

네째인 시대자가 입을 열었다.

[혹시 벽사검보란 게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노덕약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원래 무공의 비결은 사부가 말로써 제자에게 알려 주는 게 일반적이지. 그래서 구결이란 말도 생긴 거야.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네. 예외란 항상 있는 법이니까 말이네. 여관주는 욕심이 대단한 사람이지. 그는 천하제일검이라는 명예로운 지위에 오르려고 광분하고 있지. 사제, 자네는 청성파의 무공이 오악검파에 비교할 때 어떻다고 보는가?]

시대자는 얼른 대답했다.

[오악검파의 천하제일의 다섯 검파입니다. 청성파는 그 밑에 있는 게 당연합니다.]

노덕약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것 보게. 세상 사람은 누구나 그처럼 생각하고 있네. 여관주같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어찌 오악검파의 위에 오르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 않겠는가? 벽사검법의 오묘한 점만 깨우친다면 오악검파와 능히 겨룰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라네.]
시대자는 탁자를 '꽝' 소리가 나도록 내리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둘째 사형의 추리가 그럴 듯하군요! 정말 일리가 있어요!]
이때였다.
밖에서 사람들이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님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소낙비를 맞으며 십여 명의 여승들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몸에는 기름종이로 만든 우의를 걸치고 있었다. 앞장을 선 늙은 여승은 키가 매우 컸는데 그는 찻집 앞에 이르자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영호충은, 썩 나오너라!]

화산파의 제자들은 그 늙은 여승이 정일사태라고 불리우며 오악검파 중의 하나인 북악 항산파의 이름난 고수로서, 항산파의 장문인인 정한사태의 사매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녀는 성질이 불 같아서 강호의 인물들은 그녀를 보면 아예 멀리 피해 버리고 마는 괴퍅한 여승이었다.
노덕약을 비롯한 화산파의 제자들은 급히 몸을 일으켜 정일사태에게 공손히허리를 굽혔다.

[삼가 사숙님을 뵈옵니다.]

정일사태는 여러 사람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거친 어조로 호통을 쳤다.

[영호충은 어디에 숨었느냐? 빨리 기어나오라고 해라!]
그녀의 음성은 사내들보다도 훨씬 우렁찼다. 노덕약은 공손히 대답했다.

[사숙께 아룁니다. 영호충 대사형은 지금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화산파의 대사형은 바로 영호충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꼽추는 속으로 생각했다.
(영호충이라는 분은 참 말썽꾸러기인 모양이구나! 어쩌다가 늙은 여승의 비위를 긁어놓게 되었다지?)
정일사태는 나카롭게 찻집 안을 둘러보더니 소녀의 얼굴에 시선을 못박고 물었다.

[너는 영산이겠지? 어째서 흉칙스럽게 곰보의 얼굴로 변장을 했느냐?]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나쁜 사람이 저의 얼굴을 보면 자꾸만 추근거릴 게 아니예요? 그래서 곰보로 분장을 한 거예요.]

정일사태는 사늘히 코웃음쳤다.

[너희 화산파는 점점 규율이 문란해지는구나. 너의 아버지는 어째서 제자들을 풀어놓아 이곳저곳에서 말썽을 피우도록 하는지 알수가 없어! 이곳의 일이 끝나는 대로 내 친히 화산으로 달려가 따져야 되겠다.]

영산은 급히 말했다.

[사숙, 그러지 마세요. 대사형은 얼마 전 아버님께 서른 대의 곤장을 맞았어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할 지경이라구요. 사숙께서 다시 아버님께 대사형의 일을 말씀 드린다면 그분은 다시 예순 대의 곤장을 얻어맞게 될 것이고 다리 병신이 되고 말 것이예요.]
[그 짐승 같은 녀석은 때려서 일찍 죽여 버리는게 좋을 게다.
영산, 너도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구나. 영호충이 걸음을 걷지 못한다고? 걸음을 걷지 못하는 녀석이 어떻게 나의 막내 제자를 납치해 갈 수 있었느냐?]

정일사태의 그 말이 떨어지자 화산파의 모든 제자들은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영산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숙, 그럴 리가 없을 거예요! 대사형이 아무리 당돌하다고 해도 사숙의 막내 제자를 납치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마도 누군가 헛소문을 퍼뜨렸겠지요!]

정일사태는 버럭 노호를 터뜨렸다.

[너는 그래도 그를 위해 변명을 하겟단 말이냐? 의광, 태산파의 사람들이 말한 대로 설명해 주도록 해라.]

그러자 정일사태의 뒤에 서 있던 한 명의 중년 여승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태산파의 천송도장은 형양성의 어느 주루에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회안루라는 술집에서 영호충이 의림 막내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목격했답니다. 의림 막내는 영호충에게 인질로 잡혀 있었고 영호충의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술을 마셧다고 했읍니다. 의림 사매는 금새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답니다. 그리고 두 삶의 옆에는 또 한 사람이 동석하여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여인을 괴롭히기로 유명한...... 전백광이라고 했읍니다.]

정일사태는 들을수록 화가 나는지 주먹을 들어 옆의 탁자를 힘껏 내리쳤다. 그 바람에 그 탁자는 대뜸 도끼로 내려친 듯 두쪽으로 갈라졌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그녀의 귀신 같은 솜씨를 보자 일제히 안색이 변했다.
영산은 눈물을 글썽이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거짓말이예요! 천송도장은 사람을 잘못 본 게 틀림없어요!]
정일사태는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쳤다.

[입 닥쳐라! 영호충 이 짐승이 감히 전백광과 같은 악당과 사귀었으니 그야말로 타락할 대로 타락했다고 할 수 있다. 만리독행 전백광이 어떤 인물인지 너도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놈은 전문적으로 여인을 납치하여 강간한 후 살인하는 색마가 아니더냐? 나는 반드시 천하의 여인들을 위해 전백광과 영호충 두 벌레를 제거해 버릴테다! 아...... 의림이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정일사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다시 말했다.

[의림...... 이 예쁘고 철 없는 것이...... 잘못되면 어떡하나.......]

화산파의 제자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대사형이 항산파의 막내 여제자를 데리고 술을 마셨다고 화산파의 명예를 더럽힌 것이고 문규를 어긴 것이다. 더구나 색마 전백광과 어울려 다녔으니 큰일났구나!)
노덕약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숙, 아마 영호충 사형과 전백광은 우연히 같은 좌석에 앉아 술을 마시게 되었을 겁니다. 결코 어울려 다니는 사이는 아닐 것입니다. 영호충 사형은 요 며칠 동안 술에 대취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읍니다. 아마 술기운 때문에 .]

정일사태는 눈을 부릅뜨며 호통을 쳤다.

[술에 취하면 무슨짓을 하여도 괜찮단 말이냐!]
[아 아닙니다. 영호충사형을 찾아낸 후 사부님께 데리고 가서 무거운 벌을 받도록 하겠읍니다.]

정일사태는 낼랭히 말했다.

[흥! 그 녀석이 무서운 벌을 받든 받지 않든 나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은 의림이란 말야!]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갑자기 손을 뻗쳐 악영산의 손목을 움켜 쥐었다. 악영산은 손목이 쇠집게에 물린 듯 아파서 '악' 하는 비명소리를 냇다.

[사숙 왜 이러세요!]

정일사태는 호통을 내질렀다.

[너희 화산파의 제자가 나의 의림을 잡아갔으니 나 역시 너희 화산파의 막내 제자를 잡아가야겠다. 너희들이 의림을 내놓는다면 나도 영산을 내놓겠다!]

그녀는 영산을 확 끌어당기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영산은 억지로 끌려 문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노덕약과 양발이 휙 몸을 날려 정일사태의 앞을 가로막았다.
노덕약은 허리를 접으며 말했다.

[사숙께서 화를 내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저의 사매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입니다. 아무쪼록 사숙께서는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정일사태는 소리 높여 외쳤다.

[좋아! 아량을 베풀어 주겠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오른발을 비스듬히 휘둘러 노덕약을 향해 후려쳐 갔다. 노덕약과 양발은 음유한 기운이 덮쳐와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노덕약은 태풍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뒤로 날라가 길 건너에 있는 어느 가게의 벽에 '꽝' 하는 소리를 내며 부딪치고 말았다. 양발은 혼돈을 파는 노인의 등 뒤로 날아갔다. 펄펄 끓는 물이 담긴 솥을 머리로 들이받는 기세로 그의 몸은 곧장 날아가는 것이었다. 끓는 물을 얼굴에 뒤집어 쓰게 될 위험한 처지였으나 누구도 막을 여유가 없었다. 모두들 놀라 '아' 하는 비명소리를 냈다.
그런데 혼돈을 파는 노인이 갑자기 몸을 뒤로 돌리며 한 손바닥을 불쑥 내밀지 않는가! 양발의 머리는 노인의 손바닥에 철썩하며 부딪쳤다. 노인은 손바닥을 가볍게 앞으로 밀어냈고 양발은 뒤로 몇 보 정도 날아갔다가 사뿐히 자리에 내려설 수 있게 되었다.
정일사태는 혼돈을 파는 노인을 놀란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싸늘히 말했다.

[알고 보니 당신이었군!]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알아 내셨군! 사태의 불 같은 성질은 여전하시구료.]
바로 이때 길 저쪽에서 두 삶이 기름 종이로 된 우산을 들고 한 손에는 등롱을 든 채 가까이 다가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

[혹시 항산파의 정일사태가 아니십니까?]

정일사태는 대답했다.

[내가 바로 정일이오. 그런데 귀하는 누구시오?]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 들린 등롱에는 유부라는 붉은 글자가 씌어 있었다. 앞장을 선 사람이 공손히 말했다.

[저는 사부님의 명을 받고 여러 무림 협사들을 모시러 왔읍니다. 성 밖까지 마중하지 못한 점 용서해 주십시오.]

말과 함께 그는 깊이 허리를 굽히며 정중히 절을 했다. 정일사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지나친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소. 두 분께서는 유정풍 대협의 제자들이신가요?]

앞에 선 사람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의 이름은 상대년이고 이 사람은 저의 사제로 미위의라고 합니다.]
[좋소. 그렇지 않아도 우리들은 유정풍 대협의 은퇴식에 참석하려는 중이었소.]

상대년은 화산파의 제자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분들은 어디서 오신 영웅호걸이신지요?]

양발이 얼른 말했다.

[저는 화산파의 양발이라고 합니다.]

상대년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알고 보니 화산파의 세째 사형이시군요. 영명은 오래 전 부터 익히 들어왔읍니다. 자아, 함께 저희 집으로 가십시다.]
노덕약이 다가와 말했다.

[우리는 원래 대사형을 기다렸다가 함께 유 대협께 가서 문안을 드리려고 했었네.]

상대년은 기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혹시 화산파의 둘째 사형이 아니신지요? 우리 사부님께서는 화산파의 영호 대사형과 노 둘째 사형 두 분이 걸출한 영재라고 말씀하시곤 했었읍니다. 영호 사형께서 아직 안 오셨다면 우선 다른 분들이라도 함께 저희 정원으로 가십시다.]

노덕약은 생각했다.
(소사매가 정일사태에게 잡혀 있으니 함께 행동할 수밖에는 없구나.)
생각을 마친 그는 얼른 입을 열었다.

[그럼 폐를 끼치겠읍니다. 안내해 주십시오.]
[예, 따라오십시오.]

상대년은 앞장 서서 걸음을 옮기려 했다.
정일은 혼돈을 파는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도 초대하지 그러오?]

상대년은 그 노인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 그는 공손히 절을 하며 말했다.

[알고보니 안탕산의 하 대협께서도 여기에 계셨군요. 미처 몰라 뵌 점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가시기를 청해도 될런지요?]

혼돈을 파는 노인은 바로 절강성의 안탕산에 거주하고 있는 고수 하삼칠 이었다. 하삼칠은 어려서부터 혼돈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는데 무공을 익힌 후에도 변함없이 혼돈을 메고 다니며 강호를 유랑하고 있었고, 따라서 혼돈을 삶는 솥은 그의 표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는 일신에 무공을 지니고 있었으나 무공을 이용해 돈을 벌지 않고 혼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를 아는 강호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하삼칠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뒤를 따라가려던 참이었네!]

그러면서 하삼칠은 탁자 위에 놓여진 혼돈 그릇을 거두기 시닥했다.
노덕약은 말했다.

[이 후배가 눈이 있으면서도 선배님을 알아보지 못한 점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하삼칠은 웃으며 말했다.

[용서하고 말고 할 것이 있나? 자네들은 나의 혼돈을 팔아 주었으니 나의 은인이 아닌가? 혼돈은 한 그릇에 십 문전이니까 모두 합하면 칠십 문이 되네.]

그러면서 그는 왼손을 내밀었다. 돈을 내라는 뜻이었다. 혼돈이란 밀가루 반죽에 고기를 넣어 삶거나 찐 음식으로 만두의 일종이었다.
정일사태가 그 광경을 보고 말했다.

[하 대협의 별 말이 없는 이상 혼돈을 먹었으면 값을 치루어야지.]

하삼칠은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맞아. 조그만 밑천으로 현금 거래를 하는 장사이니만큼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외상은 사절이오.]

노덕약은 급히 칠십 문의 동전을 꺼내 두 손으로 공손히 바쳤다. 하삼칠은 돈을 품 속에 넣은 후 정일사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가 탁자를 후려칠 때 혼돈 그릇 하나가 깨졌소. 모두 십사 문이니 배상을 해 주시오.]

정일사태는 웃으며 말했다.

[정말 째째하군요. 출가인에게도 돈을 받으려고 하다니! 의광, 배상해 주도록 해라.]

의광은 십사 문의 돈을 꺼내 공손히 건네주었다. 하삼칠은 돈을 품 속에 넣으며 '갑시다' 하고 말했다.
상대년은 다박사에게 말했다.

[이분 손님들이 마신 차값은 나중에 계산해 줄 것이오. 사부님 앞으로 적어 두시구료.]

다박사는 허리를 굽신거리며 공손히 말했다.

[유 대협의 손님이라면 차값은 받지 않겠읍니다. 죄송합니다.]
상대년은 가지고 온 우산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나눠 주고 앞장을 섰다. 정일사태는 여전히 영산의 손목을 꽉 움켜쥐고 하삼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음을 옮겼다. 항산파와 화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그 뒤를 따랐다.
자리에 홀로 남아 있던 꼽추는 잠시 망설이더니 천천히 화산파 제자들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큰 거리를 세 구비나 돌게 되자 한 채의 커다란 저택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문의 좌우에는 커다란 등롱이 걸려 있었고 십여 명의 무사들이 손에 횃불을 들고 집 주위에 늘어서 있어서 육중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정일사태의 일행이 대문 안으로 들어간 직후 또 한 떼의 무사들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꼽추는 그 삶들 틈에 끼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대청 안에 들어서니 이백여 명이나 되는 하객들이 가득들어 앉아 차를 마시기도 하고 국수를 먹기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산파의 제자들과 항산파의 제자들은 각기 하나의 탁자를 차지하고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다. 정일사태는 많은 사람의 이목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하여 영산의 손을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악영산은 풀려나게 되자 노덕약 곁으로 달려와 얼른 자세를 바로 하고 의젖하게 앉았다.
정일사태와 하삼칠에게 상대년이와서 말했다.

[두 분께서는 후원에 있는 귀빈관으로 가시죠. 강호의 종사들은 거기에 모여 있답니다.]
[음, 그렇게 하지.]

정일사태는 하삼칠과 함께 대청에 나 있는 또 하나의 문을 열고 안으로 사라졌다.
이때였다. 대문이 있는 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며 몇 명의 청의를 걸친 사람들이 두 사람을 태운 문짝을 들고 걸어 들어왔다.
문짝 위에 눕혀진 사람은 온몸을 하얀 베로 칭칭 감고 있었는 데 백포의 곳곳에는 점점이 붉은 선혈이 물들어 있었다. 대청에 있던 군웅들은 다투어 다가갔다.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태산파의 제자다!]
[태산파의 천송도인이 큰 중상을 입었군! 또 한 사람은 누구지?]
[태산파의 장문인 천문진인의 제자다!]
[그는 이미 죽었다! 저것 보라구! 칼이 가슴을 뚫고 등 뒤로 빠져나왔쟎아? 그러니 죽지 않고 베기겠어?]

시끌벅적한 가운데 중상을 입은 사람과 한 구의 시체는 대청의 한 쪽에 나 있는 문을 열고 떠매어져 갔다. 바로 귀빈실로 간 것이었다. 대청 안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오악검파의 제자를 누가 감히 죽였을까?]
[천송도인에게 중상을 입힌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무공이 대단한 고수인가봐.]
[무공이 높으면 용기도 자연히 커지는 법이 아니겠어? 그러니 이상할 건 없어.]

이때 상대년이 총총히 달려와 노덕약에게 말했다.

[둘째 사형, 저희 사부님께서 귀빈실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지? 알겠소. 갑시다.]

노덕약은 몸을 일으켜 상대년의 뒤를 따라 기다란 낭하를 지나 하나의 호려한 대청에 이르게 되었다. 바로 귀빈실이었다.
노덕약이 바라보니 귀빈실의 북쪽으로는 다섯 개의 태사의가 가지런히 놈여져 있었는데 체구가 우람하고 얼굴에 붉으레 한 화색이 감도는 한 도인이 앉아 있고 나머지 네 개의 태사의는 비어 있었다.
노덕약은 그 다섯 개의 태사의가 바로 오악검파의 다섯 장문인이 앉을 자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태사의에 앉아 있는 우람한 도인은 바로 태산파의 장문인인 천문진인이었다. 아직 나머지 오악검파인 숭산, 항산, 화산, 형산의 네 명 장문인은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태사의 앞으로는 십구 인의 무림 선배들이 각기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항산파의 정일사태, 청성파의 장문인 여창해(청성파는 오악검파에 속하지 않으므로 태사의에 앉지 못했음), 하삼칠도 그 사람들 가운데 끼어 있었다.
동쪽의 주인석에는 지금 몸에 짙은 자색의 명주로 짠 장포(두루마기처럼 무릎 밑까지 내리 덮느 웃옷)를 걸친 땅딸한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바로 유정풍이었다.

제가 이 글을 HWP 2.0으로 작성하고 있는데 없는 한 자가 자주 나와서 아예 한자를 적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도 '육후아' 같은 한자는 후자가 없어 다른 후자로 썼습니다.이접 사과 드리며 양해 바랍니다. 한문 확장 팩을 구입하면 아마 없는 한자가 거의 없을 거예요.
제가 시가이 쫑기다 보니 일주일에 한번 정도 밖에 못 올립니다. 시간 나는 데로 그날 작성해서 그 날 올리니 이해해 주세요.
그럼, 다음 편을......

방 안에 들어선 노덕약은 먼저 유정풍에게 인사를 올리고 다시 천문진인에게 절을 했다.

[화산파의 제자 노덕약이 삼가 천문사백님께 인사 드립니다.]
천문진인은 분노에 몸을 떨며 이빨을 악물고 있는 도중이었다.
그는 노덕약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힘주어 발을 구른 후 노갈을 터뜨렸다.

[영호충은 어디 있느냐?]

그 음성은 천둥소리처럼 우렁차서 멀리 멀리 울려퍼졌다.
대청 안에 있던 화산파 제자들까지도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음성이었다. 악영산은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큰일났어요! 대사형께서 또 무슨 일을 저지르셨나 봐요!]
세째인 양발이 악영산의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의 말을 던졌다.

[사매, 진정해. 대사형은 결코 못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거야.]

꼽추는 구석진 자리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가 혼자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들은 똔 영호충을 거론하고 있군! 그 영호충이라는 늙은이는 정말 말썽꾸러기인 모양이다!]

노덕약은 얼른 천문진인에게 깊이 허리를 구부리며 말했다.

[영호 대사형은 우리와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읍니다. 아마 내일쯤이면 이곳에 도착하여 사백(오악검파끼리는 결맹을 맺었으므로 사백이니 사숙이니 사형, 사제 등으로 서로를 불렀음)께 인사를 드릴 것입니다.]

천문진인은 다시 발을 힘차게 구르며 노갈을 터뜨렸다.

[그놈이 감히 이곳에 얼굴을 내밀어? 그놈은 화산파의 대사형으로서 감히 강간과 강도질을 자행하면서 색마 전백광과 어울렸단 말이다! 오악검파의 망신은 그 녀석이 혼자 다 시키고 다닌단 말이다!]

노덕약은 말했다.

[대사형은 평소 전백광과 교류가 없었읍니다. 아마 상대방이 전백광인지 모르고 술자리를 함께 한 모양입니다. 정말 우연히 술을 마셨던 거죠.]

천문진인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노덕약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지 마라! 천송 사제, 자네가 어떻게 중상을 입게 되었는지 노덕약에게 말해 주게.]

두 개의 문짝은 한 켠에 놓여져 있엇다. 한 개의 문짝 위에는 한 구의 시체가 놓여 있었고 다른 한 개의 문짝 위에는 기다란 수염을 기른 노인이 앉아 있엇다. 그의 얼굴과 온몸은 피로 덮여 있었다. 그는 나직이 말했다.

[오늘 아침......나와 저 사질은......]

그는 손을 들어 문짝 위에 쓰러져 있는 한 구의 시체를 가리킨 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계속했다.

[형안의 회안......회안루에서 영호충을 만나......았읍니다.
그는 전백광과 젊은 여승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는 몹시 말하기가 힘이 드는지 숨을 헐떡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정풍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었다.

[천송도우, 좀 쉬시구료. 내가 조금 전 도우가 한 말을 그에게 들려 주겠소.]

유정풍은 노덕약에게 고개를 돌리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나를 위해 이곳까지 찾아온데 대해서 나는 무척 고맙게 여기고 있네. 그러나 영호 사질이 어떻게 전백광과 같은 색마와 사귀게 되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네. 진정 영호 사질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우리 오악검파는 한 집안사람과 다름없으니만큼 그를 잘 타일러야 되지.]

천문진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타이르긴 뭘 타일러? 문호를 정리하고 마땅히 그의 목을 잘라야 돼!]

유정풍은 말했다.

[화산파의 장문인 악 사형은 제자를 엄히 다스리기로 소문난 사람이니 영호충을 알아서 처단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도 이번 일은 영호충이 지나쳤다고 사료됩니다.]

천문진인은 차갑게 말했다.

[지나칠 뿐 아니라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하는 게 옳다.]
노덕약은 말했다.

[유 사숙, 진상을 듣고 싶으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정풍은 말했다.

[조금 전 천송도우는 이렇게 말햇네. 그가 두 명의 사질을 이끌고 회안루에 올라갔을 때 영호충, 전백광, 의림 세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는 걸 보앗다네. 천송도우는 이 광경을 목격하자 속으로 화가 났다네. 원래 천송도우는 그들을 몰라보았으나 옷차림을 보고 한 사람은 화산파의 제자이고, 또 한 사람은 항산파의 여승인지 알 수가 있었다네. 그렇지만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삼십 세 가량의 남자가 전백광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네. 영호 사질이 그를 부르는 말을 듣고 비로소 알아차렸다는 거야. 영호 사질은 이렇게 말했네. '전형, 그대의 경신법이 천하에서 으뜸간다고는 하나 재수 옴 붙으면 경신법이 아무리 탁월하다고 해도 도망칠 수가 없을 것이오.' 전씨 성을 가지고 경신법이 천하에서 으뜸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리독행 전백광임을 알 수가 있지 않겠는가? 천송도우는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협사로서 그들의 술 마시는 꼴을 보자 치미는 울화를 억제하지 못했다네.]

노덕약은 허리를 굽신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가 봐도 울화가 치밀었을 겁니다. 색마와 여승, 그리고 도사 세 사람이 어울려 술을 마시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꼴불견일 것입니다.]

유정풍은 말을 계속했다.

[이때 전백광이 말했네. '이 전백광은 언제나 홀로 강호를 횡행했네. 이 젊은 여승을 만난 이상 억지로라도 술을 먹입시다.' 이 말을 들은 청송도우와 두 명의 사질은 크게 호통을 쳤다네.
'네가 바로 그 죽어 마땅한 색마 전백광이구나! 누구나 너를 보면 죽이려고 벼르고 있는데 이곳에서 감히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여! 살기가 싫다면 죽여 주지.' 그리고 무기를 뽑아 들고 전백광을 향해 공격했네. 그러다가 전백광에게 죽임을 당하고 중상을 입게 되었던 거라네. 영호충은 그 옆에 있으면서도 천송도우를 돕기는 고사하고 술만 마시고 있더라는 게야. 이야말로 우리 오악검파의 결맹에 커다란 금을 그어놓은 일이지. 천문진인께서 화를 내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라네.]

천문진인은 싸늘히 코웃음을쳤다.

[흥! 결맹은 무슨 결맹이야! 색마와 어울리는 화산파는 결맹을 우습게 여긴 게 아니고 뭐냔 말이다!]

이때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제자가 드릴 말씀이 있읍니다.]

천무진인은 그 음성이 귀에 익은 것을 알고 잘라 말했다.

[들어 와.]

서른 가량의 영기발랄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들어오더니 유정풍에게 먼저 인사를 올린 후 천문진인에게 말했다.

[사부님, 천백 사숙께서는 본문의 제자를 이끌고 색마 영호충과 전백광을 잡으러 떠났읍니다. 아직까지는 색마의 종적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머지 않아 사로잡아 오겠다고 전갈이 왔읍니다.]
천문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 색마들이 반항한다면 사로잡을 필요도 없이 죽여서 수급을 가져와도 상관 없다고 전해라.]
[예.]

사내는 읍을 하고 다시 말했다.

[그리고 형양성 밖에서 한 구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그 시체의 배에는 한 자루의 검이 박혀 있다고 합니다. 그 칼은 바로......
영호충 그 색마의 칼이었다고 합니다.]

천문진인은 깜짝 놀라 물었다.

[뭐라고? 죽은 사람은 누구더냐? 또 우리 태산파의 제자이냐?] [다행히 우리 파의 제자는 아닙니다. 그 시체는 바로 청성파의 나인걸......]

이때 여창해가 소스라쳐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나인걸 그 애가......시체는 ......시체는 어디에 있지?]

그러자 문 밖에서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 있읍니다.]
[가지고 들어오너라.]
[예.]

다시 한 개의 문짝이 들려 왔는데 거기에는 배에 검이 찔린 채 죽은 한 삶의 시신이 뉘여 있었다. 그 수법은 악독하고 잔인했다. 배에서부터 찔러 목으로 치밀어 올렸는데 자루만 남기고 검날은 시체의 뱃속에 파고들어 보이지 않았다.
여창해는 사랑하는 제자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하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영호충......영호충......너는 정말 악랄하구나!]

바로 이때였다.
문 밖에서 교태어린 여인의 고운 음성이 들려왔다.

[사부님, 제가 돌아왔어요.]

정일사태의 표정에 기쁜 빛과 분노의 빛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녀는 다급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의림아, 빨리 들어오너라.]

모든 사람의 시선은 일제히 문을 향해 돌려졌다. 밝은 대낮에 두 남자와 술을 같이 마신 대담한 여승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문의 휘장이 걷혀지는 순간 사람들은 갑자기 방 안이 환히 밝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 명의 젊은 여승이 사뿐사뿐 걸어서 들어오고 있었다. 청초하고 고운 용모였다. 아리따운 얼굴은 인간 세상에서 보기 드물 정도였고 빛이 나서 사람들을 비추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십오 세 정도의 나이로 보였지만 몸매는 가냘프면서도 굴곡이 뚜렷해서 풍성하지도 여위지도 않아 매우 보기에 좋았다. 넓은 승포로 몸이 감추어져 있었으나 뛰어난 몸맵시는 감추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정일사태의 앞으로 다가서서 다소곳하게 인사를 한 후 고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부님......]

한 마디를 채 뱉기도 전에 갑자기 그녀는 왁 하니 울음을 터뜨렸다.]

정일사태는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너는 무슨 짖을 하고 다녔지?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의림의 울음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사부님......저는 이번에......이번에 하마터면 사부님을 뵙지 못할 뻔 했읍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고왔다. 한쌍의 해맑은 섬섬옥수를 내밀어 정일사태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그 손은 투명할 정도로 희고 고왔다. 모든 사람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어쩌다가 여승이 되었을까?)
여창해는 멍하니 나인걸의 배에 박힌 장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자루에 달린 수실이 미풍에 흔들거리고 있었고, 검자루에 가까운 칼날에는 '화산 영호충'이라는 다섯 글자가 깨알처럼 작게 새겨져 있었다. 여창해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노덕약의 허리에 매달린 장검을 바라보았다. 허리에 찬 패검은 나인걸의 배에 꽃힌 검과 모양이 같았다. 여창해는 불쑥 손을 내밀어 노덕약의 허리를 향해 뻗어갔다. 노덕약은 깜짝 놀라면서 재빨리 거화소천의 일초를 써서 두 손을 내밀어 여창해의 손을 내밀려고 했다. 여창해는 차갑게 코웃음치며 손을 거두고 물러났다. '쉭' 하는 음향이 들리며 푸른 빛이 장내에 어른 거렸다.
여창해의 손에는 노덕약의 장검이 들려져 있었다. 어느 틈에 뽑았는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번개 같은 솜씨였다.
장검의 예리한 끝은 노덕약의 목젖에 살짝 닿아 있어 조금만 힘을 주면 목을 꿰뚫을 수 있는 상태였다.
노덕약은 얼굴색이 창백하게 변하여 더듬거렸다.

[왜...... 왜 이러시오!]

여창해는 대꾸를 하지 않고 검날을 바라보았다. 검날에는 '화산 노덕약'이라는 다섯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여창해는 검을 내려뜨려 여창해의 아랫배를 찌를 듯 몇 번 내밀며 물었다.

[이렇게 검을 비스듬히 올려 찔러 상대를 죽이는 수법은 화산파의 검법이겠지?]

노덕약은 이마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더듬더듬 말했다.

[우리 화산파의 검법에는 그와 같은 수법은 없읍니다.]
여창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인걸을 죽인 이 일초는 장검을 아랫배에서 찔러 넣어 목구멍까지 찌르는 잔인한 수법이다. 혹시 영호충은 몸을 낮춘 자세에서 위를 향해 치찌른 것이 아닐까? 그는 살인 후에 어째서 장검을 뽑지 않고 그냥 두었을까? 청성파에 공공연히 도전하겠다는 수작일까?]

의림의 음성이 장내에 낭랑히 울려퍼졌다.

[여 장문인, 영호 오라버니의 그 수법은 화산파의 검법이 아니었어요.]

여창해의 얼굴은 한 겹의 서리가 내린 듯 차가웠다. 그는 정일사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태, 당신도 들었지요? 방금 당신의 나이 어린 제자는 영호충 그 색마를 향해 무어라고 호칭하던가요?]

정일사태는 발끈한 음성으로 쏘아부쳤다.

[나는 귀가 없는 줄 아시오?]

정일사태 역시 의림이 영호충을 '영호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화가 치밀어 오르던 참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여창해가 먼저 무례한 어조로 따지고 들자 오히려 제자를 변호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녀가 그를 가리켜 오라버니라고 부르는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소? 오악검파는 의리로 결맹을 맺었으니까 모두 사형 또는 사매라고 불러도 괜찮은 것이오.]

여창해는 급히 말했다.

[좋소! 좋아!]

말과 함께 여창해는 장검을 거두어들이면서 왼손으로 노덕약의 가슴을 힘껏 떠밀었다. 노덕약은 창졸간에 당한 일이라 맥없이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정일사태는 의림을 돌아보며 말했다.

[의림아, 네가 어떻게 하다가 그 짐승들에게 잡혔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부에게 상세히 이야기해 주렴.]

그러면서 의림의 손을 끌고 대청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끌려가는 의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와 같이 아리따운 소녀가 색마에게 사로잡혔으니 분명히 몸을 더럽혔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래서 우리들이 들을까봐 나가는 것이겠지.)

갑자기 푸른 그림자가 번뜩이면서 여창해가 정일사태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일은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중대한 일이니 의림으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상을 밝히도록 해야 하오.]

정일사태의 성격은 열화와 같았다. 평소 사자인 정정이나 항상파의 장문인 정한도 그에게는 양보하는 처지였다. 그녀가 어찌 여창해로 하여금 앞길을 막아서서 비웃음을 던지도록 허용하겠는가? 즉시 그녀의 눈썹이 쫑긋 솟아올랐다. 이때 유정풍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서며 부드럽게 말했다.

[두 분은 모두 본인의 손님이 아니겠소? 아무쪼록 저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서로 양보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모두가 불초의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절을 했다. 정일사태는 호호 하고 웃은 다음 말했다.

[이 소코도사의 기를 꺾어 놓고 싶지만 유 대협의 얼굴을 봐서 참도록 하죠.]

여창해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소코고 말코고 좋소. 의림 보고 어서 진상을 말하게 하시오. 그러면 나는길을 막으래도 막지 않을 것이외다.]
여창해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정일사태는 의림을 돌아보며 말했다.

[할 수 없다. 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해라. 그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간 후 너는 어떤 일을 겪었느냐?]
정일사태는 의림이 나이가 어리고 순진하여 쓸데없이 자질구레 한 일까지 이야기할 것 같아서 주의를 주었다.

[다만 요긴한 말만 골라서 해라. 상관이 없는 일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의림은 다소곳이 대답했다.

[네. 제자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았어요. 다만 전백광......그 나쁜 사람이......그는......그는......]

정일사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반드시 전백광과 영호충 두 악적을 죽여 너의 화풀이를 해주겠다.]
의림은 혼백을 빨아당길 듯 맑고 깊은 눈동자를 들어 정일사태를 바라보았다. 점차 그녀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영호 오라버니는......그분은......그분은...... 이미 죽었어요.]

사람들은 영호충이 죽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천문진인은 크게 기뻐 소리를 질렀다.

[잘 죽었군. 잘 죽었어! 그를 누가 죽였느냐?]

의림은 손을 들어 나인걸의 시체를 가리켰다. 그리고 울음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바로......바로 저기 있는 청성파의 나쁜 사람이예요.]
여창해는 의기양양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인걸과 영호충은 서로를 죽인 것이구나. 좋아! 인걸 녀석이 용감하다는 것을 나는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지! 과연 우리 청성파의 위명을 손상시키지 않았구나!)

생각을 마친 그는 의림을 흘겨 보며 싸늘히 말했다.

[나인걸이 나쁜 사람이라고? 흥! 오악검파의 인물만 좋은 사람이란 말이지?]

의림의 복숭아처럼 발그레한 뺨 위로 수정같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저는...... 청성파를 욕한 게 아니고 다만 저 사람을 나쁘다고 한 거예요.]

그녀는 다시 한번 나인걸의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정일사태는 여창해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당신 어찌해서 나의 제자에게 큰 소리를 치는 거지? 내 제자가 얼마나 놀라겠어? 의림아, 겁내지 말아라. 그 사람이 어째서 나쁜 사람인지 말해 보아라. 사부가 여기에 있는 이상 누가 감히 너를 괴롭힐 수 있겠느냐?]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한번 여창해를 흘겨보았다. 여창해는 말했다.

[출가인은 거짖말을 하면 안 된다. 의림, 그대는 관음보살의 이름을 걸고 너의 말이 진실이라고 맹세할 수 있겠느냐?]
그는 의림이 나인걸을 헐뜯지 못하게 만들 속셈이었다.
의림은 말했다.

[저는 사부님 앞에서 거짖말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는 문 밖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의림은 관세음보살께 맹세합니다. 오늘저는 한 마디도 거짖말을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굽어 살피소서.]

사람들은 그녀의 음성이 매우 진지하고 가냘픈 몸매가 안스러워 저절로 동정심을 느꼈다. 그리고 의림이 거짖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 명의 구렛나룻이 무성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분은 결코 거짖말을 하지 않을 것 같소. 우리는 그를 믿어도 될 것이외다.]

정일사태가 여창해를 향해 말했다.

[소코도사, 당신도 들었지요. 문 선생께서도 의림을 믿는다고 했소. 그녀는 거짖말을 하지 않을 것이오.]

모든 삶들의 시선은 의림 한 사람의 얼굴로 집중되었다. 이때 의림의 아리따운 자태는 명주처럼 밝고 순결해 보였다. 심지어 여창해마저도 이렇게 생각할 정도였다.

(저 어린 비구니는 결코 거짖말을 하지는 않을 것 같구나!)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모두들 의림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림은 고운 음성으로 말을 시작했다.

[어제 오후 저는 사부님과 언니들을 따라 형양으로 갔지요. 그런데 도중에 비를 만나고 말았답니다. 언덕을 내려가다가 그만 미끄러졌지요. 저는 엉겁결에 손으로 땅을 짚었고 그 바람에 손에는 진흙이 잔뜩 묻었어요. 그래서 저는 언덕 아래에 있는 개울가로 가서 손을 씻고 있었어요. 갑자기 개울의 수면 위에 저의 그림자 말고 한 남자의 모습이 비춰지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깜짝 놀라 급히 몸을 일으켰는데 그 순간 온몸의 힘이 빠져서 비틀거리게 되었읍니다. 그 남자에게 혈도를 짚힌 것이지요. 그 사람은 비틀거리는 나를 품에 안고 산 속 깊이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결국은 은밀한 어느 동굴 속으로 들어갔답니다. 그제서야 그는 저를 땅 위에 내려놓았어요. 저는 무서워서 미칠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움직일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읍니다. 이때였어요.
언니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의림아, 어디에 있느냐!' 언니들은 그렇게 불렀어요. 그 남자는 웃으며 말했어요.
'저 계집애들이 너를 찾고 있구나. 이곳으로 그녀들이 들어온다면 나는 그들마저 잡아먹어야지.' 한참이 지나자 언니들은 저를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고 말았어요. 그 사람은 그제서야 나의 혈도를 풀어 주었어요. 저는 즉시 동굴 밖으로 도망을 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신법은 저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그는 먼저 동굴의 입구를 막아서는 것이었어요.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서 저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어요. 그는 웃으며 말했어요. '네가 내 손아귀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저는 급히 뒤로 물러나 장검을 뽑아들었어요. 그리고 말했어요. '이봐요. 왜 나의 앞을 가로막는 거예요? 비키지 않으면 나의 검으로 당신을 찌를 거예요!'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어요. '어린 여승, 그대는 마음씨가 꽤 자비롭군. 나를 차마 찌르지는 못할 것이다.' 저는 말했어요. '나는 당신에게 원한이 없는데 왜 당신을 찔러야 하나요? 빨리 비켜 주세요.' 그 사람은 말했어요. '그렇다면 우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저는 말했어요. '그럴 시간이 없어요. 사부님께 돌아가야 해요. 저의 사부님께서는 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이미 이야기를 나누었지 않아. 몇 마디 더 한다고 해서 큰 일이 나는 것은 아니라구.' 저는 소리쳤어요. '빨리 비키세요. 당신은 우리 사부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군요. 그분께서 당신의 무례한 행동을 보았다면 당신의 다리를 분질러 버렸을 거예요.' 그러자, 그는 말했어요. '그대가 나의 다리를 분질러 버린다면 나는 반항하지 않겠소. 하지만 그대의 사부는 늙은이가 아닌가? 쭈그렁 바가지를 위해 다리를 맡길 수는 없지.']

정일사태가 호통을 쳤다.

[바보 같으니라구! 그런 말까지 하면 어떡해?]

의림은 말했다.

[그는 그렇게 말했어요. 사부님을 쭈그렁 바가......] [됐다. 그와 같은 말은 요긴한 것이 아니니 앞으로는 들먹이지 말아라. 너는 어쩌다가 화산의 영호충을 만나게 되었는지 미야기해라.]

의림은 말했다.

[예, 알겠어요. 그는 여러 가지 말을 했어요. 저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내가 매우 예쁘게 생겼다고 했고......같이 잠을 자자고......]
[닥쳐라! 점점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의림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말을 했을 뿐이고 저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어요. 나는 그와 같이 잠을 자지 않았어요.]
[닥치지 못해!]

이때 나인걸의 시체를 떠매고 들어왔던 한 사람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직이 웃었다. 정일사태는 대뜸 옆의 찻잔을 집어들고 뜨거운 찻물을 그의 얼굴을 향해 뿌렸다.

[아이쿠!]

그 사람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여창해가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의 제자는 말을 할 수 있고 나의 제자는 웃지도 못한단 말이오?]

정일사태는 여창해를 흘겨준 후 다시 의림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말을 계속해라. 하지만 필요가 없는 말은 생략하도록 해라.] [예, 사부님.]

의림은 다소곳이 대답하고 말을 이었다.

[참지 못한 제자는 결국은 그 사람을 향해 검을 찔러 갔어요.
그때 제자는 금침도겁(金針渡劫)이라는 일초를 펼쳤어요. 그는 검을 아랑곳하지 않고 가만 있었어요. 저는 차마 그를 찌르지 못하고 검의 끝을 그의 가슴팍에 대고 내밀지 못했어요. 갑자기 그가 크게 웃었는데 웃음소리가 끝났을 때 저의 검은 어느샌가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었어요. 그는 왼손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검의 끝을 잡더니 '뚝'하고 저의 장검의 끝을 한 치 정도의 길이로 잘라 버렸어요.]

정일사태는 놀란 어조로 물었다.

[잘라낸 검의 끝이 정말 한 치밖에 되지 않았느냐?]

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일사태는 말했다.

[그 전백광이 장검의 가운데를 부러뜨렸다면 별로 신기할 것도 없다. 그러나 식지와 엄지의 힘으로 칼끝 한 치 부근을 부러뜨렸다면......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구나!]

이때 천문진인이 제자의 패검을 뽑아들고 왼손의 식지와 엄지로 검 끝을 잡고 힘을 주었다. '뚝' 소리와 함께 검끝의 한 치 부근이 대뜸 부러져 나갔다. 천문진인은 의림을 향해 물었다.

[이렇게 하더냐?]

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사백부님께서도 그 수법을 알고 계셨군요.]

천문진인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부러진 검끝을 손가락사이에 끼고 책상을 가볍게 내리쳤다. '팍' 소리가 나면서 검끝은 단단한 책상을 뚫고 들어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의림은 기쁜 어조로 소리쳤다.

[멋지네요! 아마 그와 같은 재간은 전백광도 가지고 있지 못했을 거예요!]

그녀는 갑자기 수심에 잠긴 채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애석하게도 그때 사백부님께서 그곳에 계시지 않았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영호 오라버니는 상처를 입지 않으셨을 텐데......]
천문진인은 물었다.

[상처를 입었다고? 너는 영호충이 이미 죽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래요. 영호 오라버니는 몸에 상처를 입으셨기 때문에 청성파의 나쁜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 거예요.]

의림의 까만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금새라도 주루루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은 너무나 애처로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그녀가 출가한 비구니가 아니라면 선배고수들은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던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의 말을 던졌을 것이다.
의림은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친 다음 울먹이며 말했다.

[전백광은 나쁜 사람이었어요. 자꾸만 저를 끌어안으려고했어요. 제가 손으로 그를 때리자 그는 저의 두 손마저 움켜쥐고 저의 몸을 와락 끌어당기는 것이었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갑자기 동굴 밖에서 누군가 '하!하!하!' 하고 세 번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어요. 잠시 멈추었다가 그 사람은 다시 '하!하!하!' 하고 세 번 웃었어요. 전백광은 호통을 쳤어요. '어떤 놈이냐?' 그러자 동굴 밖에 있는 사람은 다시 '하!하!하!' 하는 웃음을 다섯 차례에 걸쳐 웃었어요. 전백광은 소리를 질렀어요. '분수를 알고 일찌감치 꺼져 버려라! 이 전 나으리가 만약 밖으로 나간다면 네 녀석은 뼈도 추리지 못한다!' 그러나 밖의 사람은 다시 '하!하!하!' 하는 기이한 웃음소리를 냈어요. 그 웃음소리는 호탕했고 우렁찼으며 맑기가 그지없었어요. 전백광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 제 앞가슴 옷섶을 해치려고 했어요. 그때 다시 '하!하!하!' 하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어요. 저는 그 사람이 달려들어와 전백광을 물리치고 저를 구해 주기를 바랬죠. 하지만 그 역시 전백광이 무서운지 감히 동굴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어요.
다만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만 계속되었을 뿐이었죠.
전백광은 화가 나는지 다시 저의 혈도를 짚은 후 휙 하니 동굴 밖으로 다려 나갔어요. 하지만 밖에 있던 사람의 종적은 발견할 수 없었죠. 전백광은 동굴 안으로 들어오자 나를 거칠게 일으켜 세우고 입맞춤을 하려고 했어요. 바로 이때 동굴 밖에서 다시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 왔어요. 저는 그만 크게 우스워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정일사태는 의림을 흘겨보며 말했다.

[네 자신의 몸이 더럽혀지는 긴급한 순간인데도 웃음이 나오더냐?]

의림의 두 뺨이 진달래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나직이 대답했다.

[우스운 걸 어떡해요. 이때 전백광은 살며시 나를 내려놓고 살금살금 소리를 죽여 동굴 있는 쪽으로 다가갔어요. 기습을 하여 사로잡으려고 했던 거예요. 그러나 동굴 밖으로 사람은 대단히 눈치가 빨라서 다시는 웃지를 않더군요. 전백광이 막 동굴 입구로 뛰어나갈 때 저는 소리를 쳤어요. '조심하세요! 그가 나가요!' 이때 멀리서 그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어요. '하!하!하! 알려 주어서 고맙소. 하지만 나는 잡히지 않는다오. 그의 경신법은 나의 발바닥에는 미치지 못한다오!']

모든 사람들은 전백광의 별명이 만리독행(萬里獨行)으로서 경신법(輕身法:몸을 빨리 이동하는 기술)이 독보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경신법은 나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한다'라는 말은 전백광을 충동질하기 위해 일부러 꾸며낸 말일 거라고 짐작했다.

[전백광은 나에게로 번개같이 달려와 나의 얼굴을 힘껏 비틀었어요. 내가 아파서 비명을 지를 때 그는 밖으로 뛰쳐나가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어요. '이 도둑아! 나와 경신법을 겨루어 보자!' 전백광은 속은 거예요. 원래 그 사람은 동굴 바로 옆에 몸을 숨기고 있었거든요. 전백광이 멀리 뛰어가자 그는 살그머니 동굴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는 말했죠. '두려워 마오. 나는 그대를 구하러 왔소. 그는 그대의 어느 혈도를 짚었소.' 나는 얼른 대답했어요. '견정(肩井)과 대추(大?)를 짚혔어요. 당신은 누구신가요?' 그는 말했어요. '혈도를 푼 이후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그리고 손을 뻗어 저의 견정과 대추 두 혈도를 추궁과혈(推宮過血)의 수법을 써서 풀어 주려 했어요. 이때 전백광이 되돌아오는 기척이 들렸어요. 저는 말했죠. '그대는 빨리 도망치세요. 그가 돌아오면 당신을 죽이고 말 거예요.' 그는 말했답니다. '오악검파는 의리로 맺어진 만큼 한 집안이 아니겠소?사매의 어려움을 보고도 구하지 않는다면 그건 말이 안 되지.']

정일사태는 물었다.

[그가 오악검파의 사람이었느냐?]

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가 바로 영호충(令狐沖) 영호 오라버니였어요.]
모든 사람은 의림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 '아' 하는 신음 소리를 냈다.


한문 확장 팩을 사면 한자를 쓰려고 했는데 있는 글자 만이라도 쓰고 없는 글자는 '?'로 쓰기로 했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의림은 말을 계속했다.

[전백광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죠.
'실례하오.' 그리고 저를 품 안에 안고 동굴 밖으로 뛰어가서 주변의 풀더미 속에 몸을 숨겻어요. 우리가 숨자마자 전백광은 동굴로 돌아왔어요. 그는 동굴 속에서 나를 찾지 못하자 별의 별 욕설을 퍼부었어요. 그는 장검을 휘둘러 동굴 주변의 풀더미를 마구 찌르고 베었어요. 다행히 그날 밤은 비가 오고 난 뒤라서 달도 별도 없이 캄캄했기 때문에 전백광은 우리를 찾아내지 못??
어요. 그는 우리가 멀리 달아나지 못했을 거라고 내다보고 풀더미를 난도질하기 시작했죠. 한번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검이 저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어요. 전백광은 칼을 휘둘러 풀을 베며 우리를 지나쳐 갔어요.
저는 갑자기 뜨끈뜨끈한 액체가 저의 얼굴에 떨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동시에 짙은 피비린내를 맡았어요. 바로......
영호 오라버니가 전백광의 칼에 상처를 입었던 거예요. 저는 깜짝 놀라서 물었죠. '그대는 상처를 입었나요?' 영호 오라버니는 손을 뻗쳐 저의 입을 막았어?? '큰 상처는 아니오.' 그러나 저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뜨거운 피는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대는 큰 상처를 입었으므로 얼른 지혈을 해야 돼요. 저에게 천향단속교(天香斷續膠)라는 약이 있어요.' 그때 영호 오라버니는 말씀하셨어요. '소리내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마시오. 전백광은 귀가 밝은 녀석이외다.' 한참 후 전백광이 다시 달려오며 부르짖었어요. '하하하! 너희들은 알고 보니 그 곳에 숨어 있었구나! 나는 보았다. 냉큼 나오지 못해!' 저는 전백광이 우리를 발견한 줄 알고 정말4 몸을 일으키려고 했죠. 그때 영호 오라버니가 저를 꽉 눌렀죠. 이때 저는 풀더미 속에 드러누운 상태였고 영호 오라버니는 제 몸 위에 엎드린 상태였어요. 그분이 몸을 일으키지 않으니까 저도 몸을 일으킬 수가 없더군요.]

정일사태는 말했다.

[전백광은 너희들을 발견하지 못했어. 그냥 상대방의 허를 찔러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도록 흉계를 꾸민 것이지.]

의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사부님은 거기에 계시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있죠?] [그 정도는 강호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窄?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야. 그가 정말 너희들을 발견했다면 일검으로 영호충을 찔러 죽일 일이지 무엇 때문에 소리를 지르겠느냐?]
[영호 오라버니는 이때 일어나려는 저를 내리누르고 손으로 나의 입을 막았어요. 그분 역시 전백광의 교활한 생각을 꿰뚫어 보신 거지요. 영호 오라버니는 그가 다시 멀리 간 후 나직이 말했어요. '전백광은 다시 와서 칼을 휘두를 것이오. 그러니 우리는 아예 동굴 안으로 들어가 숨어 있기로 합시다. 그 녀석은 우리가 동굴 속에 들어갔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

하삼칠은 갑자기 손뼉을 쳤다.

[좋아! 정말 영호충은 용기가 있고 견식이 풍부하구나!]
의림은 하삼칠을 바라보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당신도 영호 오라버니가 용감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군요. 우리 두 사람은 동굴 속으로 들어왔어요. 그분은 저를 땅바닥에 내려 놓았어요. 저는 그분의 머리와 어깨에서 여전히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말했죠. '저의 품 안에 천향단속교라는 약이 있어요.
그걸 바르면 피가 곧 멎을 거예요. 저는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이니까 오라버니께서 제 ??속에 있는 약을 꺼내도록 하세요.' 그는 말했어요. '지금 꺼내기가 불편하니 그대가 손을 움직일 수 있을 때 그대가 꺼내 주시오.' 그분은 허리의 검을 뽑아 옷자락을 잘라 왼쪽 어깨를 싸맸어요. 상처는 몹시 깊었어요. 그분은 저를 위해 그처럼 큰 상처를 입었는데도 신음소리 한 번 내뱉지 않았어요. 저는 몹시 미안했어요. 그리고 약을 왜 꺼내지 않고 나 보고 꺼내달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정일사태는 '흥' 하고 코웃음친 후 말했다.

[체! 그렇다면 영호충은 정인군자(正人君子)4로군!]

정일사태는 영호충이 의림의 품 속에 손을 넣을 수 없어서 의림의 혈도가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한 것이다.
의림의 맑고 커다란 눈동자에 기쁜 빛이 떠올랐다.

[맞아요! 영호 오라버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예요. 그분은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 놀랍게도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저를 구하려고 했어요.]

여창해는 냉랭히 말했다.

[그 녀석은 였날부터 너의 용모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미쳤다고 위험을 무릅쓰겠어?]

의림은 말?杉?

[아니예요. 그분은 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분은 결코 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그분은 거짓말을 몰라요.]

사람들은 그녀의 진정에 가득 찬 말을 듣고 숙연해졌다. 여창해는 속으로 생각했다.

(영호충이라는 녀석은 대담하면서도 건방진 구석이 있었군! 의림에게 눈독을 들이지 않았다면 전백광과 겨루어 천하에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의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동굴 밖에서 전백광이 풀을 베어 넘기며 가까이 다가왔어요.
그는 동굴4 안에 들어와 땅바닥에 주저앉더니 묵묵히 침묵을 지켰어요. 저는 숨을 죽였으며 영호 오라버니 역시 구석에 웅크리고 숨소리 한 번 내지 않았죠. 갑자기 막혔던 혈도가 시간이 흐르자 풀렸고 혈도가 풀리느라고 몸이 쿡쿡 쑤셨지요. 저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고통이 엄습해오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어요. 전백광이 껄껄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죠. 영호 오라버니는 옆에 움츠린 채 아무 기척도 내지 않았지요. 전백광은 웃으면서 말했어요. '어린 양(羊)이 동굴 속에 숨어 있었구나!' 그는 4손을 뻗어 저를 붙잡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칙' 하는 소리가 났죠. 영호충 오라버니께서 전백광에게 일검(一劍)을 격중시켰던 거죠. 전백광은 뒤로 물러서더니 허리에 찬 칼을 뽑아서 영호 오라버니를 향해 찔러 갔어요. '창' 하는 소리가 나면서 불똥이 튀고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싸우게 되었죠. 그들은 한참 동안 싸우다가 갑자기 똑같이 뒤로 물러섰어요. 거친 숨소리만 동굴 속을 메웠을 뿐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크게 무서워졌어요.]

천문진인이 불쑥 물었다.

[영호충4은 그와 몇 초를 싸웠느냐?]

의림은 말했다.

[저는 얼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잘 몰라요. 갑자기 전백광이 놀란 음성으로 소리쳤어요. '이제 보니 너는 화산파의 인물이었구나! 화산파의 검법은 나의 적수가 못 된다. 너의 이름이 뭐냐?'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죠. '그건 몰라도 되오. 오악검파는 그대 같은 색마의 적이오.' 막 영호 오라버니의 말이 끝났을 때 전백광은 몰래 기습을 했어요. 원래 그는 영호 오라버니가 말을 할 때 위치를 알아내려고 했던 거죠. 두 사람은 다시 몇 초를 싸웠어요. ??
자기 영호 오라버니가 '아' 하는 신음소리를 냈어요. 다시 상처를 입었던 거예요.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어요. '나는 이미 화산검법이 나의 적수가 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너의 사부 악(岳) 노인이 친히 달려온다 해도 나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저는 이 무렵 혈도가 풀려진 상태였죠. 저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기척을 듣고 크게 말했어요. '혈도가 풀렸군! 빨리 떠나시오. 빨리!' 나는 말했어요. '화산파의 사형, 저는 그대를 도와 저 악인을 무찌를 거예요.' 영호 오라4버니는 말했어요. '빨리 떠나요! 둘이 힘을 합한다고 해도 그를 이길 수는 없소.' 전백광이 웃었어요. '알고 있으니 잘 되었다. 구태여 목숨을 버리지 말고 자네가 떠나게. 그리고 나와 저 여승은 이곳에 남겠네. 한데 그대의 이름은 뭔가? 나는 그대의 의협심에 깊이 감복했네.'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죠. '나의 존성대명을 이야기해 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오. 이 늙은이는 그대 보다 나이가 많은데 그대가 반말을 하므로 기분이 나빠서 내 이름을 알려 주지 않겠소.' 사부님 우습죠? 그분은 스스로4 늙은이라고 했어요.]

정일사태는 냉소했다.

[시정잡배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냈군! 천박스럽다! 천박스러워!]

의림은 말했다.

[아...... 늙은이란 말은 원래 천한 말이었군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사매, 빨리 형산성으로 가시오. 거기엔 많은 무예의 달인들이 모여 있으므로 이 색마가 감히 추격하지 못할 것이오.' 나는 물었어요. '내가 떠난 후 그가 사형을 죽이면 어쩌지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나도 곧 뒤를 따를 테니 어서 가시오.' 순간 다시 무기가 무섭게 충돌4했어요. 영호 오라버니의 비명소리가 다시 들리는 걸로 보아 또 다시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어요. 이때 영호 오라버니는 크게 소리쳤어요. '사매, 어서 떠나시오. 빨리 떠나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을 욕하겠소!' 저는 부르짖었어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공격해요.'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어요. '그거 참 영광스럽군! 나 전백광이 혼자 화산파와 항산파의 연수공격을 맞아 싸우게 되다니!' 이때 영호 오라버니가 저를 욕했죠. '이 철없는 비구니야! 천치 밥통 머저리야! 아직도 떠나지 않았느냐!' 전백광??웃으며 말했어요. '이 여승은 나에게 미련이 남아 있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이지.' 영호 오라버니는 크게 욕을 했어요. '병신 같은 계집애야! 갈꺼냐 안갈꺼냐?' 저는 말했어요. '저는 가지 않겠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죠. '그렇다면 그대의 사부를 욕하겠다. 정한(定閒) 그 늙은 중대가리는 멍청이라서 너 같은 어린 멍청이를 배출했구나!' 저는 말했어요. '정한 사백부님은 저의 사부님이 아니예요.' 그분은 다시 말했어요. '좋아. 그렇다면 정정(定靜)사태를 욕하겠다.' 저는 말했어요. '그?筠?저의 사부님이 아니예요.' 그는 말했어요. '쳇! 그래도 가지 않고 말대꾸야. 그렇다면 나는 정일(定逸) 사태를 욕해야 되겠군. 정일 그 병신 멍청이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일사태의 안색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의림은 얼른 말했다.

[사부님, 노여워하지 마세요. 영호 오라버니는 저를 위해서 그런 것이지 결코 사부님을 정말로 욕하려고 한 게 아이예요. 저는 말했죠. '저 자신이 멍청한 것이지 사부님을 닮아서 멍청한 것은 아니예요.' 갑자기 전백광이 제 곁으로 날아오며 손가락??뻗어 저를 찌르려고 했어요. 저는 어둠 속에서 마구 검을 휘둘러 간신히 그를 퇴치했어요. 영호 오라버니가 큰 소리로 외쳤어요. '나에게는 무수한 욕설이 있다. 그대의 사부에게 써먹어도 좋단 말인가? 왜 안 가지?' 저는 말했어요. '욕을 하시면 안 돼요. 우리 함께 도망쳐요.' 영호 오라버니가 소리쳤어요. '네가 네 곁에 있으면 내가 화산검법을 펼칠 수가 없게 돼. 그러면 나는 전백광을 죽일 수 없어! 빨리 나가라고! 나는 화산검법을 펼쳐 전백광을 죽일 테니까!' 전백광은 소리내어 웃었어요. '4하하! 그대는 젊은 여승에 대해서 정말 다정하구만!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는 그대의 성명조차 모르고 있네.' 저는 그 말을 듣고 말했어요. '화산파의 사형,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제가 형산으로 가서 사부님께 그대가 저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는 사실을 말씀 드리겠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외쳤어요. '빨리 꺼져라!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나의 성은 노이고 이름은 덕약이라고 한다.']

노덕약은 의림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 했다.

(대사형은 어째서 나의 이름을 들먹였을까?)

문선생이 고4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영호충은 착한 일을 하면서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니 정말 우리 협의지사들의 모범이라고 할 것이외다.]

정일사태는 노덕약의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흥! 나를 욕했으니 겁이 났겠지. 나중에 내가 따질까봐 남에게 죄를 전가시킨 것이겠지.]

그녀는 노덕약을 노려보며 앙칼지게 물었다.

[이봐 노덕약, 자네가 동굴 속에서 나를 욕했다는데 사실인가?]

노덕약은 재빨리 허리를 굽혔다.

[저는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4]

유정풍은 미소를 지었다.

[정일사태, 영호충이 그의 사제의 이름을 사칭한 데는 이유가 있다오. 노덕약으로 말하면 나이가 들어 화산파에 입문한 자로서 배분은 비록 낮으나 나이는 가장 많지요. 수염도 저렇게 무성하니 족히 의림의 할아버지 뻘이 될 수 있을 것이외다.]

정일사태는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그녀는 영호충이 의림을 생각하여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동굴 안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남녀가 한 동굴 속에서 있었다면 자연히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누구??생갈할 것이외다. 하지만 의림이 노덕약 같은 늙은이와 있었다고 한다면 누구도 할아버지와 손녀딸 같은 두 사람이 동굴 속에서 엉뚱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
정일사태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정말 용의주도하구나. 의림아, 그 다음을 이야기해 보아라.]

의림은 말을 이었다.

[저는 말했어요. '노덕약 오라버니, 그대가 저 때문에 위험에 처했는데 제가 어떻게 혼자 도망칠 수가 있겠어요. 사부님께서도 그와 같은 일은 바라지 않으실 거예요. 사부님께서는 평소4 우리 항산파의 제자들은 모두 여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행협(行俠)에 있어 결코 남자들 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정일사태는 흐뭇해져서 손뼉을 쳤다.

[좋아! 나는 언제나 여자가 남자보다 못한 게 없다고 말했었지. 여자라고 해서 의로운 일에 발벗고 나서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람들은 정일사태의 표정이 호탕한 것을 보고 하나같이 생각했다.

(저 늙은 여승의 기백은 수염을 기른 남자에 못지않구나!)
의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는 큰 소리로 욕을 퍼붓기 시작했어요. '이 빌어먹을 어린 중대가리야! 네가 내 곁에 있으니 내가 어떻게 화산파의 천하무적검법(天下無敵劍法)을 펼칠 수 있겠느냐? 이 늙은이는 전백광에게 죽고 말겠구나! 이제 보니 너와 전백광은 한 통속이 되어 내가 화산파의 검법을 펼치지 못하게 하고 있구나! 이 노덕약은 오늘 정말 재수가 없느라고 여자 중대가리를 만난 거야! 전백광, 자네는 한 칼로 나를 쳐 죽이게. 이 늙은이는 삶에 미련을 느끼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은 의림의 고운 목소리가 영호충의 그처럼 거칠고 무례한 말을 되풀이하는 소리를 듣자 빙그레 웃고 말았다.
의림은 말을 계속했다.

[저는 영호 오라버니의 말을 듣고 내가 동굴 속에 있어 봤자 그분이 천하무적의 화산검법을 펼치는데 지장이 될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흥! 그 녀석은 허풍이 너무 세서 탈이라니까! 화산파의 검법은 그저 그렇지. 천하무적이라니 무슨 빌어먹을 소리야!]
정일사태가 싸늘히 말했다. 의림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사부님, 그분을 욕하지 마세요. 그분은 거만해서 그런 말을 한게 아니예요. 다만 전백광에게 겁을 주어 스스로 물러가게 만들려고 했던 거지요. 저는 말했어요. '노덕약 오라버니, 저는 이만 가겠어요. 다음에 만나요.' 영호 오라버니는 소리를 버럭 질렀어요. '빨리 꺼지기나 해! 그리고 다음에 만나지 않는 게 좋아! 나는 여자 중대가리만 보면 몇 년 동안 재수가 없더라! 싸움을 하건 놀음을 하건 재수가 없어서 언제나 지고 말지.']
정일사태는 크게 화가 났다. 발을 힘껏 구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 녀석은 정말 못됐구나!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너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더냐?]

의림은 말했다.

[저는 그분이 재수가 없게 되어 싸움에서 질까봐 얼른 동굴을 나왔어요. 저는 있는 힘을 다해 사부님 계신 곳을 향해 뛰어갔어요. 사부님, 영호 오라버니는 저를 만나서 재수가 없어졌고 그래서 상처를 입은 거예요.]

정일은 노해 부르짖었다.

[터무니없는 소리 작작해라!]

의림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말했다.

[알았읍니다. 저는 날이 밝을 때까지 달렸어요. 형양성이멀리 보였어요. 이때 전백광이 저를 쫓아오는 것이었어요. 저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끝내는 붙잡히고 말았지요. 저는 영호 오라버니가 전백광에게 죽었으리라 짐작하고 마음이 아팠어요. 전백광은 거리에 많은 행인이 있어서 감히 저에게 무례한 짓을 하지는 못했어요. 그는 말했어요. '네가 순순히 나를 따라온다면 너를 때려 주지 않겠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는 즉시 너의 옷을 홀랑 벗겨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만들겠다.' 저는 놀랍기 짝이 없어서 감히 반항하지 못하고 그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갔어요. 전백광은 저를 데리고 회안루(廻雁樓)라는 술집 앞으로 데려 갔어요. 그는 나에게 말했어요. '이봐, 너는 침어낙안(沈魚落雁:여인이 너무 아름다와서 그 모습을 본 물고기가 놀라 물 속에 가라앉고 날아가던 기러기가 놀라서 땅에 떨어짐)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아름답구나. 나는 그대 같은 미녀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싶다. 우리 함께 즐겨 보도록 하자꾸나.' 저는 말했어요.
'출가인은 비린 고기와 술을 입에 대지 않는 법이예요. 이는 우리 백운암(白雲岩)의 규칙이예요.' 그는 말했어요. '그런 엉터리 규칙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나는 너를 파계승으로 만들고 말테다.
너의 사부는...... 사부는......']

의림은 당혹한 표정으로 정일사태를 바라보고 말을 잊지 못한다.
정일사태는 말했다.

[그 악인이 나를 헐뜯은 모양이구나. 그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다음을 애기해라.]
[예, 저는 그에게 말했어요. '당신은 거짓말하지 말아요. 저의 사부님은 숨어서 몰래 개고기와 술을 먹은 적이 없었어요.']
여러 사람들은 그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의림은 전백광이 한 말을 직접 옮기지는 낳았으나 전백광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백광은 정일사태가 순링어서 술과 개고기를 먹었다고 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멍청이......]

정일사태는 의림을 쏘아보았다. 의림은 사부가 왜 화를 내는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일사태는 순진하기만 한 그녀에게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녀는 얼굴을 부드럽게 고치고 말했다.

[의림아, 그 다음을 이야기해라.]

의림은 사부의 얼굴이 풀어지자 마음이 놓이는지 한번 빙그레 웃고 말을 계속했다.

[저는 그와 함께 회안루에 올라갔어요. 그 악한 사람은 술과 고기를 시켰어요. 쇠고기와 돼지고기, 오리고기, 닭고기, 새우 같은 음식을 시킨 거예요. 그는 말했어요. '네가 이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나는 너의 옷을 벗겨 버리겠다.' 사부님 저는 한사코 먹기를 거절했어요. 불문(佛門)의 제자는 비린 음식을 먹으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나쁜 사람이 저의 옷을 벗긴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가 벗긴 것이지 내가 스스로 벗은 게 아니니까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이때였어요. 한 사람이 이층으로 올라왔죠. 허리엔 장검을 차고 있었고 안색은 창백했으며 온몸은 피투성이였어요. 그는 나와 전백광이 있는 탁자 옆으로 다가오더니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전백광이 나에게 마시라고 따라 놓은 그 술잔을 집어들고 단숨에 비웠어요.
그리고 스스로 한 잔을 따라 들고 전백광에게 말했어요. '드시오.' 그리고 저에게 말했어요. '듭시다.' 말을 마치자 다시 그 술잔의 술을 들이켰어요. 저는 그 음성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원래 그는 동굴에서 저를 구해 주었던 바로 노덕약 오라버니였던 거예요. 나는 그분이 죽지 않은 것을 알고 너무 너무 기뻤어요.
하지만 그의 온몸은 상처 투성이었어요. 모두 저를 구하려고 입은 상처였어요. 전백광은 말했어요. '그대였군!' 영호 오라버니는 대답했어요. '그렇소, 바로 나외다.' 전백광은 영호 오라버니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칭찬의 말을 던졌죠. '훌룡하오.' 영호 오라버니도 전백광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칭찬했죠. '훌룡한 도법(刀法)이었소이다.' 두 사람은 껄껄 호탕하게 웃어졔혔지요. 그리고 연거푸 몇 잔의 술을 마시더군요. 저는 이상하기 짝이 없었어요. 그들은 어젯밤 무섭게 생명을 걸고 싸웠는데 어째서 갑자기 친구로 변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던 거죠.
이때 전백광이 말했어요. '그대는 노덕약이 아니군. 노덕약은 늙은이야. 그대처럼 젊지가 않단 말이야.' 저는 놀라서 나타난 그 사람을 바라보았죠. 과연 그는 20세 남짓해 보였으며 얼굴이 아주 잘 생겼더군요.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어요. '맞소이다. 나는 노덕약이 아니오.' 전백광은 탁자를 손으로 탁치며 부르짖었어요. '알았소. 그대는 바로 화산(華山)의 영호충(令狐沖)! 강호에서 으뜸가는 인물이군!' 영호 오라버니는 빙긋 웃었죠. '감당할 수 없는 칭찬이외다. 영호충은 그대에게 패배한 인물이 아니겠소?' 전백광은 말했어요. '싸우지 않고는 서로를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소. 우리 친구로 사귀는 게 어떻소. 영호 형이 이 아름다운 비구니를 좋아한다면 나는 기꺼이 양보해 드리리다. 나는 여색을 밝히는 사람이지만 친구간의 신의를 더욱 높이 평가한다오.']

정일사태는 서슬이 퍼래 가지고 중얼거렸다.

[그 악적은 죽어 마땅하다. 감히 내 사랑하는 제자를 주고받으려고 하다니!]

의림이 갑자기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사부님...... 영호 오라버니는 갑자기 저를 욕하기 시작했어요. '이 젊은 비구니는 얼굴에 핏기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가 없이 창백하오. 마치 시체의 얼굴을 보는 듯 징그럽단 말이외다.
전형, 나는 여승을 보기만 해도 재수가 없소. 생각 같아서는 천하의 여승을 모조리 때려 죽이고 싶은 심정이라오.' 전백광은 웃으며 물었어요. '여승이 어째서 재수가 없을까? 난 처음 듣는 애기군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솔직히말하리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도박이지요. 골패와 주사위를 보면 사죽을 쓰지 못한다오. 그런데 일단 여승을 보면 그날은 재수가 더럽게 없어서 놀음을 하는 족족 털리기만 한다오. 비단 나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고 화산파의 모든 사제들도 여승만 보았다 하면 재수 옴 붙게 된다오. 우리 화산파의 제자들은 그래서 항산파의 냄새나는 계집애들을 보기만 하면 멀리 피해 버린다오.']

정일사태는 크게 화를 내며 '철썩' 하니 노덕약의 따귀를 후려쳤다. 노덕약은 호되게 한 대 얻어맞자잠시 비틀거렸다. 머리가 띵 하며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유정풍은 웃으며 말했다.

[사태께서는 화를 푸시구료. 영호 사질은 의림을 구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라오. 그 말을 정말로 믿으시면 아니되오.]
의림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는 좋은 사람이예요. 다만 말을 함부로 하는 게 탈이죠. 사부님께서 화를 내시니 저는 이야기를 계속할 수가 없네요.]

정일사태는 호통을 내질렀다.

[말해라! 한 자도 빠짐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보라구! 나는 그가 도대체 얼마나 대담하게 지껄였는지 알아내야겠다.]

의림은 노기등등한 사부의 모습을 보자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정일사태는 소리쳤다.

[어서 말하라니까! 이 애가 갑자기 벙어리가 됐나! 네가 영호충이 나중에 혼날까봐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이 사부를 무시한 것이 되고 사부보다 그 녀석을 더 중요시한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니 숨김없이 말을 하라구!]

의림은 풀 죽은 음성으로 말했다.

[말씀 드릴께요. 영호 오라버니는 다시 말했어요. '전형, 우리 무예계의 인사들은 한 자루 검을 의지하여 강호를 횡행하고 있소.
운수가 불길하면 남의 칼에 맞아 죽기가 일쑤가 아니겠소? 이 젊은 여승은 마른 동태처럼 비쩍 여위어서 매우 꼴불견이구료. 척 보아하니 아주 재수 없게 생겨 먹었단 말이외다. 그러니 당신도 이 젊은 비구니를 건드리지 않은 게 좋을 듯하군요.'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어요. '영호 형, 나는 그대를 기개가 하늘을 찌르는 영웅호걸인 줄 알았는데 한낱 여승 때문에 의기소침하여 몸을 사리는 걸 보니 저절로 실망을 느끼게 되는구료.' 영호 오라버니가 말했어요. '나는 여승을 만나고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소. 생각해 보시오. 어젯밤만 해도 나는 멀쩡했는데 이 젊은 여승을 만난 후 당신에게 중상을 입지 않았소? 이것이 재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뭐가 재수 없는 일이겠소?' 전백광은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어요.
'하하하! 그 말에도 일리가 있소.'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전형, 우리 사내대장부는 모름지기 술을 마실 때 통괘히 마셔야 하오. 옆에 여승이 있으니 어디 술맛이 나겠소? 어서 꺼지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내가 충고하는데 만약 당신이 이 비쩍 마르고 볼품없는 비구니를 품게 된다면 이후 평생 동안 그대는 재수가 없게 될 것이외다. 천하삼독(天下三毒)을 그대는 어찌하여 가까이 하는 것이오?' 전백광은 물었어요. '천하삼독이라니? 그게 뭐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죠. '어이쿠! 전형은 강호를 주유한 지 오래 되었는데 아직 천하삼독이 뭔지도 모르오? 천하삼독이란 비구니, 비상(砒霜), 그리고 금전사(金錢蛇) 세 가지를 일컫는 말이외다. 용기가 있건 없건 천하삼독을 가까이 할 필요는 없는 일이라오. 이 비구니는 천하삼독 중에서 으뜸가는 독(毒)이외다. 우리 오악검파의 남자제자들은 종종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오.']
듣고 있던 정일사태는 탁자를 힘주어 내리치며 성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저런 망할 녀석이 있나! 개......]

그녀는 '개방구 같은 소리'라는 말을 하려고 하다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차마 '방구'라는 소리를 낼 수가 없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노덕약은 그녀가 또다시 발작을 하자 다시 따귀를 맞을까봐 얼른 뒤로 피해 버렸다.
유정풍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영호 사질은 좋은 일을 위해 말을 했겠지만 좀 지나쳤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전백광과 같은 악당을 때 그럴 듯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를 속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오. 영호 사질의 고충이 많았을 거외다.]

의림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의 고민이 말끔히 사라지는지 기쁜 어조로 물었다.

[유 사숙님, 영호 오라버니는 일부러 그와 같은 말을 꾸며내어 그 전백광을 속이려고 한 것이었군요?]

유정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오악검파의 협사들은 결코 그와 같이 항산파를 비난하지 않는다. 내일 나는 은퇴식을 갖게 되는데 항산파를업수이 여겼다면 항산파에 초청장을 보내지도 않았을 게다.]

정일사태는 유정풍의 말을 듣고 안색이 약간 풀어졌다.

[흥! 영호충이란 녀석은 입버릇이 없어. 그 녀석이 어디서 그따위 주둥이 놀리는 법을 배웠는지 모르겠군.]

그녀의 말은 은근히 영호충의 사부를 빗대어 욕한 것이기도 했다. 유정풍이 말했다.

[사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소이다. 전백광은 무공은 매우 무섭소이다. 영호 사질이 그를 이길 수가 없고 의림이 커다란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그와 같은 말을 꾸며대어 그 악적으로 하여금 그녀를 포기하게끔 유도했던 것이외다. 더구나 전백광 같은 노련한 여우를 속이려면 평범한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영호 사질은 그러한 말을 꾸며댄 것이라고 할 수가 있소. 우리는 강호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 때때가로 속임수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움에 처할 때가 많지 않겠소? 영호 사질이 만약 항산파를 업수이 여겼다면 그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항산파의 제자를 구하려고 했겠소?]

정일사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 대협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군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의림에게 말했다.

[영호충의 말을 듣고 전백광이 너를 놓아 주더냐?]

의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전형 그대의 경신법이 천하에서 제일간다고는 하지만 재수가 없으면 경신법이 아무리 고강해도 도망칠 수 없는 경우도 생기는 법이외다. 이 비쩍 마른 비구니를 가까이 한다면 재수가 없어서 전형은 오래 살지 못하게 될 것이외다.' 전백광은 그 말을 듣고 몇 번이나 저를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말했어요. '나 전백광은 언제나 홀로 천하를 종횡한 몸, 그런 미신에 구애를 받지 않소이다. 이 비구니는 이미 얼굴을 보았으니 같이 놀도록 합시다.' 바로 이때였어요. 옆의 탁자에 앉아 있던 젊은 무사가 갑자기 장검을 뽑아들고 갑자기 전백광에게 덮치며 호통을 질렀어요. '당신이 바로 전백광인가?' 전백광은 말했어요. '그렇소. 왜 묻는 거요?' 그 젊은 무사는 말했어요. '너 같은 색마는 죽어야 한다. 강호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은 모두 너를 죽이고 싶어하는데 너는 겁도 없이 여기서 정체를 밝혔다. 살고 싶지 않다면 죽여 주겠다.' 말을 마치자, 그는 검을 휘두르며 전백광을 공격했어요. 태산파의 검법이었어요. 그 젊은 무사는 바로 저기 죽어 있는 사형이었어요.]

그녀는 문짝 위에 눕혀져 있는 태산파의 제자를 손가락질했다.
천문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백성(遲百城)! 너는 진정 용감했다! 정말 훌룡한 영웅이었다!]

의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전백광은 몸이 흔들한 순간 어느새 그의 손에는 한 자루의 단도가 들려져 있는 것이었어요. 전백광은 말했어요. '자, 앉아서 술이나 마셔라.' 그 말이 끝나고 전백광은 단도를 칼집에 꽂아 넣었어요. 그런데 태산파 사형의 가슴팍에서는 선혈이 왈칵 뿜어져 나왔으며 힘없이 그 자리에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어요. 전백광은 눈 깜짝할 사이에 태산파 사형을 베어 버렸던 거예요. 태산파 사형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어요.]

의림은 태산파의 천송도인을 가리키며 말을 계속했다.

[그러자 천송 사백이 검을 휘두르며 전백광을 향해 덤벼들었어요. 천송 사백의 검술은 눈부실 정도로 훌룡하셨지만 전백광은 여전히 몸을 일으키지않고 의자에 앉은 채 단도를 뽑아 천송 사백을 상대했어요. 어느덧 삼십여 초가 흘렀어요. 전백광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서 상대했어요.]

천문진인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그는 천송도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제, 그 전백광이 앉아서 너를 상대했단 말이 사실인가? 그의 무공이 그토록 고강하던가?]

천송도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께서는 그제서야 검을 뽑아 들고 전백광을 향해 번개 같이 일격을 가했어요. 전백광은 단도를 휘둘러 막으며 몸을 일으켰어요.]

정일사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거 믿어지지 않는군. 천송도인이 삼십 초를 공격해도 끄덕 없던 전백광이 영호충의 단 일 초를 못견디고 몸을 일으켰단 말이냐? 그렇다면 영호충의 무공이 천송도인보다 훨씬 뛰어나단 말인가?]

의림은 말했다.

[전백광은 일어서면서 말했어요. '영호 형, 나는 그대를 친구로 여기고 있다오. 그대가 무기를 뽑아 나를 공격하는데 내가 여전히 앉아서 상대한다면 그대를 업수이 여기는 것이 되지 않겠소. 나는 그대의 영웅적인 기질을 존경하고 있다오. 그래서 몸을 일으켜 예의를 차린 것이외다. 그러나 이 소코......소코도사는 나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오.' 영호 오라버니는 싸늘히 코웃음쳤어요. '흥! 나를 높이 봐 주니 이 영호충은 영광스럽기 그지 없소이다.' 라는 말과 함께 휙휙휙 삼검(三劍)을 공격했어요. 사부님, 그 삼검의 기세는 전광석화처럼 빨랐고 우뢰처럼 강맹했으며 폭풍처럼 숨이 막혔답니다. 검광(劍光)은 대뜸 전백광의 상반신을 에워쌌답니다.]

정일사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검법은 바로 악(岳) 늙은이가 자랑하는 '태악삼청봉(太岳三靑峯)'이라고 부르는 수법이란다. 제이 검이 제일 검보다 무섭고 제삼 검은 제이 검보다 빨리 상대방의 몸에 닿는다고 하더구나.
전백광은 어떻게 막아내더냐?]

의림은 말했어요.

[전백광은 일초가 펼쳐질 때마다 한 걸음씩 물러섰어요. 그는 잇달아 세 걸음을 물러서더니 갈채를 보냈어요. '훌룡한 검법이오!' 전백광은 고개를 돌려 천송 사백부님을 보며 말했어요. '소코도사, 그대는 어째서 공격을 멈추었지?' 영호 오라버니가 검을 쓰자마자 천송 사백님은 한쪽으로 물러서서 관망하고 계셨어요.
천송 사백은 냉랭히 말했어요. '우리 태산파 제자는 정인군자이다. 어찌 사악하고 음란한 저 녀석과 힘을 합치겠느냐?' 저는 참지 못하고 말했어요. '영호 오라버니를 헐뜯지 마세요. 그분은 좋은 사람이란 말이예요!' 천송 사백은 냉소를 날렸어요.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흐흐흐! 그는 전백광과 함께 어울려서 술을 마시고 형님 아우하는 사이가 아니냐? 그런데도 좋은 사람이라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말을 하던 천송 사백은 갑자기 '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가슴팍을 얼싸안았어요.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으며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나왔어요. 전백광은 천천히 단도를 칼집에 꽂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자, 앉아서 술이나 마셔.' 전백광의 칼 쓰는 솜씨는 정말 신속해서 저는 언제 어떻게 천송 사백을 베었는지 보지 못했어요. 저는 놀라 부르짖었어요. '죽이지......죽이지 마세요.'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어요. '미인(美人)이 죽이지 말라고 하니 죽이지 않겠다.' 천송 사백은 상처를 감싸쥔 채 아래층으로 비틀거리며 내려갔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뒤따라가서 부축하려고 했어요. 그때 전백광이 영호 오라버니를 말렸어요. '영호 형, 저 소코도사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자로서 죽으면 죽었지 그대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 영호 오라버니는 쓸쓸한 표정으로 자리에 주저앉더니 잇달아 세 잔의 술을 마셨어요. 사부님, 그때 영호 오라버니의 모습은 한없이 외로워 보였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이 매우 아팠어요.]

정일사태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 다음엔 어떻게 됐느냐?]

의림은 말했다.

[전백광은 말했어요. '그 소코도사의 무공은 쓸만하더군! 나의 일도(一刀)는 몹시 빨랐는데 그는 놀랍게도 세치 정도 뒤로 물러섰기 때문에 죽지 않았어. 태산파의 무공은 정말 얕볼 수가 없구만! 영호 형, 저 소코도사가 죽지 않는다면 이후 그대에 대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울 게 뻔하오. 영호 형이 원한다면 내가 지금 뒤따라 가서 그를 죽여 버리겠??' 영호 오라버니는 고개를 저었어요. '나는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매일같이 귀찮은 사건에 휘말려 들었소. 그를 상관하지 마시오. 술이나 마십시다. 술이나 마셔. 전형, 그대의 그 일도를 나에게 펼쳤다면 나는 꼼짝없이 죽고 말았을 것이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어요. '하하하! 영호 형은 어젯밤 나를 죽일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소. 내가 어떻게 영호 형을 죽이겠소?' 그 말을 듣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동굴 속에서 두 사람이 싸울 때 영호 오라버니는 전백광을 죽일 수 있었는데 살려 준 1모양이구나, 하고요. 전백광은 다시 말했어요.
'어제 내가 동굴 속에 들어갔을 때 동굴 안은 칠흑같이 캄캄했소.
나는 이 비구니가 소리를 지를 때만 해도 그대가 동굴 속에 함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소. 그때 만약 영호 형이 계속 기척을 내지 않고 나를 죽일 기회를 노렸다면 하하......내가 이 비구니를 끌어안고 쾌락의 늪에 빠져서 넋을 잃고 황홀해 할 때 그대가 검을 내리쳤다면 나는 영락없이 죽었을 거외다. 나는 그대가 당당한 사내대장부로서 비겁하게 암습을 가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잘 알고 있다오.'
영호 오라버니는 코웃음을 치고 말했어요.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요. 중요한 것은 그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 비구니가 몸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란 말이외다. 전형의 생명보다는 이 비구니의 순결이 더 중요하단 말이외다. 내가 비록 비구니를 보면 때려 죽이고 싶긴 하지만 항산파는 오악검파 중의 하나이니만큼 돕지 않을 수 없단 말이외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어요.
'나에게는 내 목숨이 이 비구니의 순결보다 중요하지 않겠소. 그래서 영호 형께 고마움을1 느끼고 있다오.'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좋아요! 좋아! 술을 마십시다!' 전백광은 소리내어 웃었어요. '좋소! 영호 형, 그대는 내 맘에 쏙 드는 사람이오! 자, 술을 마십시다!' 영호 오라버니는 빙긋 웃으며 말했어요. '무공에 있어서는 내가 전형보다 못하겠지만 주량에 있어서는 내가 훨씬 뛰어날 것이외다.' 전백광은 말했어요. '그렇다면 한번 겨루어 봅시다. 자, 먼저 열 대접의 술을 마신 후 이야기합시다!' 그러자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나는 전형이 떳떳한 사내대장부라고 생각했기에1 같이 술을 마시자고 했던 것이오. 그런데 이제 보니 비겁한 사람이군!' 전백광은 눈을 크게 뜨고 반문 했어요. '비겁하다니, 무엇이 비겁하다는 것이오?'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나는 비구니만 보면 재수가 없어서 내기에서 진단 말이외다. 지금 술 내기를 하는 좌석에 비쩍 마른 비구니가 앉아 있으니 입맛이 싹 달아나서 내기를 해봐야 질게 뻔하단 말이오. 전형은 나의 이와 같은 약점을 알고 비구니를 옆에 앉히고 내기를 하자고 하는게 아니오?' 전백광은 소리내어 웃었어요. '하하하, 그대1가 계책을 써서 이 비구니를 구하려고 하지만 이 전백광은 색(色)을 목숨처럼 좋아한다오.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은 내 생전 처음 보는 바이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비구니를 취하고 말겠소. 내가 이 비구니를 포기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소,' 영호 오라버니는 물었어요. '그게 무엇이오?' 전백광은 석잔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른 후 말했어요. '그대가 석 잔의 술을 마신다면 이야기해 주리다.' 영호 오라버니는 술잔을 들고 단숨에 비웠어요. 그리고 석 잔의 술잔에 술을 따라서 전백광에게1 내밀며 말했어요. '석 잔을 들고 말씀하시오.' 전백광은 석 잔의 술을 마신 후 입을 열었어요. '<강호에는 친구의 아내를 넘보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소.
그대가 만약 이 예쁜 비구니를......비구니를......']

여기까지 말한 의림은 두 볼을 빨갛게 붉히며 수줍어했다. 그녀의 음성은 점점 작아져서는 끝내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정일사태는 탁자를 내리치며 노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터무니없는 소리! 그 다음을 이야기해라! 전백광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의림은 말했1다.

[전백광은 터무니 없는 소리를 지껄인 다음 이렇게 말했어요.
'대장부의 말이 한번 입에서 나오면 사마난추(駟馬難追:네 필의 말이 끄는 몹시 속도가 빠른 마차로도 따라 잡기 어려움)라고 했소. 그대가 이 비구니를 처로 맞아들인다면 나는 즉시 이 비구니를 놓아 줄 뿐 아니라 이 비구니에게 절을 하여 내가 저지른 무례를 사과하겠소. 이 방법 외에는 그녀를 나에게서 떼어갈 수 없소.' 영호 오라버니는 코웃음을 쳤어요. '그대는 나로 하여금 한 평생을 재수 옴 붙게 만들 참이오? 들어볼1 가치도 없는 소리!' 전백광은 다시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여댔어요. 머리를 기르게 되면 여승이 아니라는 말도 했고......저는 귀를 막고 그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큰 소리로 외쳤어요. '닥치시오! 더 이상 무례한 소리를 한다면 이 영호충은 울화통이 터져서 죽고 말 것이오. 죽은 사람이 어떻게 그대와 술내기를 할 수 있겠소? 그대가 이 비구니를 놓아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생사의 결전을 치루는 수밖에 없소.'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어요. '싸워봤자 그대는 내 적수가 못 ??'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서서 싸운다면 내가 질 것이오. 그러나 앉아서 싸운다면 내가 이기지.']
모든 사람들은 조금 전에 의림이 했던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백광은 의자에 앉은 채 태산파의 고수인 천송도인을 여유있게 상대하지 않았던가? 전백광이 앉아서 싸우는데 이력이 났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영호충이 앉아서 싸우면 전백광을 이길 수 있다고 하자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
의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어요. '나 전백광이 탄복한 것은 그대의 호?藪?용기이지 그대의 무공은 아니오.'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죠. '이 영호충이 탄복한 것은 그대가 서서 싸우는 쾌도(快刀)이지 그대가 앉아서 싸우는 수법은 아니외다.' 전백광은 그 말을 듣고 웃었어요. '그건 그대가 모르고 하는 소리요. 나는 소년 시절에 다리에 한질(寒疾)을 앓은 적이 있었소. 따라서 나는 이 년 동안이나 앉은 자세에서 칼 쓰는 방법을 연마했소. 앉아서 싸우는 재간은 나의 자랑스런 특기란 말이오. 조금 전 내가 앉은 자세로 태산파의 소코도사의 공격을 막아내지 않았소? 이것??결코 그를 얕본 것이 아니고 내가 편하기 때문에 일어나기 귀찮았던 때문이었소. 영호 형, 앉아서 겨루는 재간에 있어서는 천하에 나를 능가할 자가 없을 것이외다.'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전형, 그것은 전형이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외다. 전형은 소년 시절에 다리에 한질을 앓느라고 이 년 동안 앉아서 도법(刀法)을 연마했다고 하지만 나는 십여 년 동안 앉아서 검법(劍法)을 연마하고 있는 중이외다. 그러므로 그대는 나를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외다.']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일제히 노1덕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화산파에서는 앉아서 검을 연마하는 수법이 있나 보군!)
노덕약은 그 눈치를 알아채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대사형은 전백광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외다. 저희 화산파에는 앉아서 연마하는 검법이 없읍니다.]

의림이 말했다.

[전백광은 물었어요. '정말 그런 무공이 있소? 나는 견문이 좁아 처음 듣는군요. 정말 화산파의 좌(坐)......검법을 구경하고 싶구료.' 영호 오라버니는 웃으며 말햇답니다. '그 검법은 저의 사부께??전수하신 게 아니외다. 다만 나 자신이 창안해낸 것이라오.' 전백광은 그 말을 듣자 놀라는 눈치였어요. '알고 보니 그대가 창안한 검법이었군! 영호 형은 정말 총명하시오! 검법을 창안까지 하다니!']

사람들은 전백광이 어째서 놀랐는지 알고 있었다. 무예(武藝)에 있어 새로운 검법을 창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예가 탁월하고 타고난 총명이 없이는 결코 새로운 무공을 창안할 수 없는 것이다. 화산파같이 문파가 창립된 지 수백 년이나 되는 명문대파(名門大派)의 검법은 일초일식(一1抄一式)마다 수많은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것들로써 이 가운데 단 한 초라도 변화시키기 힘든 노릇인데 새로운 검법을 창안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었다.
노덕약은 속으로 생각했다.

(대사형은 원래 한 가지 검법을 창안한 모양이구나! 그런데 어째서 사부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았을까?)

이때 의림이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는 웃으며 말했어요. '이 검법은 구린내가 충천하는 검법인데, 무얼 그리 탄복하시오?' 전백광은 크게 의아하여 물었어요. '냄새가 나는 검법도 있소? 해괴한 일이 다 있군.' 저 역시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검법이란 기껏해야 뛰어나거나 형편없을 뿐이지 어떻게 냄새를 풍긴단 말이예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사실대로 말해 주리다. 나는 매일 아침 변소에 앉아서 대변을 본다오. 이때 파리들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매우 번거롭소.
그리하여 나는 검을 들고 파리를 찔러 떨어뜨리기 시작했다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으나 몇 년을 연습하니까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졌소. 그리하여 일검(一劍)에 십여 마리의 파리를 떨어뜨릴 수 있게 되었고 뜻(意)과 정신(神)이 하나로 융합되어 파리를 잡는 검초를 연결시켜 하나의 검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외다. 따라서 대변을 볼 때 이 검법을 펼쳤으니 구린내가 난다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닐 것이오.' 이 말을 듣고 저는 웃음을 터뜨렸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정말 우스운 분이예요. 저는 대변을 보면서 검법을 연마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어요. 전백광은 안색이 새파래지더니 노해 부르짖었죠. '영호 형, 나는 그대를 친구로 여기고 있는데 그와 같은 말을 하다니......나를 우습게 보는 게 아니오? 그대는 이 전백광을 변소에서 오락가락하는 파리로 여긴단 말이오? 좋소. 나는 즉시 그대의 냄새나는 검법과 겨루어 보겠소!']

모든 사람은 거기까지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고수(高手)들끼리의 겨룸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들뜨게 된다면 불리하게 마련이다. 영호충이 그와 같은 말로 상대방을 격노하게 만들었으니 일단은 계책이 성공한 셈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정일사태는 말했어요.

[좋아! 그후엔 어찌 되었느냐?]

의림은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는 빙긋 웃고 말했어요. '불초는 결코 전형을 변소에 있는 파리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소. 언짢아 마시구료.' 나는 참을 수 없어서 웃었어요. 전백광은 더욱 화를 내며 단도를 뽑아 탁자에 콱 꽂고 말했어요. '좋소! 앉아서 겨루어봅시다.' 이때 전백광의 두 눈에는 흉악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어요. 분명히 영호 오라버니를 죽이려고결심했던 거예요. 영호 오라버니는 웃으며 말했어요. '앉아서 겨룬다면 그대는 나를 이길 수 없소. 영호충은 오늘 새로 사귄 전형을 해치고 싶지 않구료. 나 영호충은 당당한 사내대장부로서 나의 특기를 가지고 친구를 굴복시키고 싶지는 않구료!' 전백광은 싸늘히 말했어요. '잔말 말고 겨루자고!'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전형은 꼭 겨루어야 되겠소?' '물론이지!' '반드시 앉아서 겨루고 싶소?' '맞아! 우리 앉아서 겨루자고!' '좋소! 그렇다면 우리는 조건을 미리 정합시다. 승부가 결정되기 전에 먼저 일어나는 쪽이 지는 것으로 하는 게 어떻겠소?' '맞아! 먼저 일어나는 자가 지는 것으로 하자고!'
영호 오라버니는 물었어요. '지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요?' 전백광은 말했어요. '내가 진다면 그대가 하라는 대로 따르겠소.' '좋소. 이렇게 합시다. 진 사람은 금후 이 젊은 비구니를 보게 되었을 때 어떤 무례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안 될 뿐 아니라 그녀를 보는 즉시 그녀에게 큰절을 올리면서 <사부님, 제자 전백광이 인사 드립니다.>하고 인사를 올리기로 합시다.' 전백광은 화를 냈어요. '쳇! 내가 반드시 진다는 보장이 없는데 왜 전백광을 찍어다 붙이는 거지? 만약 그대가 진다면......'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나도 마찬가지요. 그 누가 지던간에 항산파 문하의 제자로 들어가야 하며 정일사태의 사손(師孫)이 되어야 하고 젊은 여승의 제자가 되어야 하오.' 사부님, 영호 오라버니의 말은 정말 우습지요? 그들 두 사람이 무공을 겨루다가 진다고 해서 어찌 항산파의 문하로 귀의할 수 있겠으며 제가 어떻게 그들을 제자로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그녀는 줄곧 근심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방긋 웃으니 그 모습은 더욱 아름다와 보였다.
정일사태는 말했다.

[강호에서 굴러먹은 거친 사내들은 무슨 말이든지 거침없이 하기 마련인데 너는 그 말을 정말로 알아듣느냐? 영호충은 전백광을 격노시키자는데 그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턱을 쳐들고 지그시 눈을 감고서 영호충이 무슨 방법으로 상대방을 이길 수 있을까, 만약 그가 진다면 자기가 한 말을 어떻게 취소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잠시 생각해본 그녀는 자기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영호충의 속셈을 알아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전백광은 어떻게 대답하던?]

의림은 말했다.

[전백광은 영호 오라버니가 믿는 데가 있는 듣이 말을 하자 주저하는 빛을 띄웠어요. 제가 보기에 그는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어요. 아마도 영호 오라버니가 앉아서 검을 쓰는데 있어 정말 남보다 뛰어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이때 영호 오라버니는 다시 그를 화나게 만들었죠. '만약 그대가 항산파의 문하로 귀의하기 두렵다면 우리는 무공을 겨룰 필요가 없소이다.' 전백광은 노해 말했어요.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야!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지는 사람이 이 젊은 여승을 사부로 모시도록 합시다.' 저는 말했어요. '저는 그대들을 제자로 거둬들일 수 없고 사부로서의 자격도 없어요. 더군다나 저의 사부님도 허락하지 않으실 거예요. 우리 항산파의 제자들은 모두 여자예요. 그런데 어찌... 그런데 어찌......' 영호 오라버니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어요. '나와 전형이 상의해서 정했으니 그대는 거두기 싫어도 제자로 거두어 들여야 하오.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오.' 그리고 그는 전백광을 향해 말했어요. '두 번째 조건은 지는 사람이 칼을 들어 스스로 태감(太監:내시의 중국식 표현)이 되는 것으로 합시다.' 사부님, 칼을 들어 스스로 태감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그녀가 이와 같이 묻게 되자 뭇사람들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스스로 생식기를 자른다는 뜻인데 순진한 의림은 그것도 모르고 불쑥 물었던 것이다.
정일사태는 근엄하던 얼굴에 한가닥 웃음이 떠올랐다.

[그것은 망나니들의 거친 말이다. 얘야, 너는 모르면 더 묻지 말아라. 좋은 뜻은 아니란다.]

의림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알고보니 거친 말이었군요. 전백광은 그 말을 듣더니 영호 오라버니에게 말했어요. '영호 형, 그대는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소?'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그거야 물론이오. 서서 싸운다면 이 영호충은 천하무림에서 서열이 여든 아홉 번째에 해당하겠지만, 앉아서 싸운다면 서열이 둘째 간다오.' 전백광은 호기심이 이는 듯 물었어요. '그대가 두 번째 간다고? 그럼 첫번째는 누구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그것은 마교 교주(魔敎敎主) 동방불패(東方不敗)이외다.']

뭇사람들은 마교교주 동방불패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의림은 뭇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한편으로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한편 당황하기도 했다. 혹시 자기가 말을 잘못한 것이나 아닐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부님 저의 말이 잘못되었나요?]

정일사태는 말했다.

[너는 마교 교주의 이름을 다시는 들먹이지 말아라. 전백광은 어떻게 말하드냐?]
[전백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그대가 마교 교주가 제일이라고 하는데는 나 또한 이의가 없소. 그러나 귀하가 스스로 둘째라 자처한다면 그건 자화자찬이 좀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오. 설마 그대는 영사이신 악(岳)선생까지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오?'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나는 앉아서 싸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오. 서서 싸울 때 저의 사부님은 여덟 번 째이고 나는 여든 아홉 번째이외다. 그러니 그 어르신과 비교한다면 아주 뒤떨어지게 된다오.' 전백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알고보니 그렇군. 그렇다면 서서 싸울 때 나의 서열은 몇 번째 가오? 그리고 그것은 누가 정한 서열이오?'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이것은 큰 비밀이외다. 나는 그대와 의기투합했으므로 말해 주지만 절대로 남에게 누설하면 안 되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무림에 커다란 풍파를 일으키게 될 것이외다. 삼 개월 전 우리 오악검파의 다섯 장문인께서 화산에 모이게 되었소. 그때 그 분들은 당금 무림고수들의 실력을논하게 되었소. 다섯 분의 장문인께서는 오랜 토론끝에 천하에 있는 고수들의 서열을 정하게 되었소. 전형 솔직이 말하지만 다섯 분 사존(師尊)께서는 그대의 인품에 대해서 한푼의 가치도 없다고 욕을 했지만 그대의 무공에 대해서는 모두들 대단하다고 인정했지요. 그리고 서서 싸운다면 열네 버째라고 했소.']

천문진인과 정일사태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영호충은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래!]

의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가 속인 것이었군요. 전백광 역시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어요. 그러나 그는 말했어요. '오악검파의 장문인들은 모두 무림에서 대단한 고수이신데 놀랍게도 이 전백광에게 열네 번째라는 서열을 내주셨군! 고맙소이다. 영호 형, 그대는 다섯 장문인 앞에서 그 구린내 나는 파리잡는 검법을 펼쳐 보였소? 그렇지 않다면 그분들이 그대가 천하에서 둘째 간다고 하지는 않았을거요.' 영호 오라버니는 웃으며 말했어요. '이 변소의 검법을 뭇사람 앞에서 펼친다는 것은 너무나 보기 흉칙한 것인데 어떻게 감히 다섯 분의 사존 앞에서 볼썽 사나운 추태를 보인단 말이오. 이 검법의 자세는 보기에 흉칙하나 매우 무섭소. 나 영호충은 몇 명의 방문좌도의 고수와 무공을 토론한 바가 있는데 모두들 마교 교주를 제외하고는 천하에 필적할 고수가 없다고 인정했다오. 하지만 전형, 다시 말하지만 이 검법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파리를 잡는 것 외엔 별 쓸모가 없다오. 생각해 보시오. 남과 손을 써서 무공을 겨룰 때 그 누가 앉아서 싸우려고 하겠소? 설사 나와 그대가 반드시 앉아서 겨루기로 약속을 했지만 내가 이기게 되었을 때 그대는 수치가 분노로 변해 몸을 일으키게 될 것이 아니겠소? 그대가 싸우는데는 천하에서 열네 번째이니만큼 일어서서 나를 상대한다면 앉아서 싸우는데 두 번째 가는 나를 한칼에 죽일 수가 있을 거외다.
그대가 서서 싸웠을 때 열네 번째 가는 것은 실용적이지만 반면에 앉아 싸우는 서열 두 번째인 나의 구릿내나는 검법은 헛되이 서열만 높았지 별 쓸모가 없는 것라로.' 전백광은 살며시 코웃음치며 말했어요. '영호 형 그대의 혀는 정말 기름을 칠한 듯 매끄럽게 구르는 구료. 그대는 내가 앉아서 싸울 때 반드시 그대에게 진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으며 또 내가 수치가 분노로 변해서 몸을 일으켜 그대를 죽인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소?'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그대가 진 이후에 나를 죽이지 않는다면 태감이 될게 아니겠소? 나를 죽여야만 그대는 태감이 되어 자손이 끊어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 아니겠소? 좋소. 이제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손을 쓰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는 손을 들어 탁자와 술주전자 등을 한쪽으로 치웠어요.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본 채 앉았어요. 한 사람은 손에 칼을 들고 한 사람은 검을 들었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공격하시오. 먼저 일어나거나 먼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는 사람이 지게 되는 것이외다.' 전백광은 말했어요. '좋소, 누가 먼저 몸을 일으키는지 두고 봅시다.' 두 사람이 막 손을 쓰려는 찰나 전백광은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어요. '영호 형, 나는 그대에게 탄복했소! 알고보니 그대는 사람을 매복하였다가 이 전백광을 난처한 처지에 빠뜨릴려고 했구료. 내가 그대와 싸우게 되고 그 누구도 먼저 일어나선 안 된다고 했을 때 그대의 협조자들이 와락 달려든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는 몸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을게 아니오? 흥!' 영호 오라버니 역시 소리내어 웃었어요. '다른 사람이 끼어든다면 이 영호충이 진 것으로 합시다. 젊은 여승, 그대는 내가 이기기를 바라오? 아니면 내가 지는 것을 바라오.' 저는 말했어요. '물론 그대가 이기는 것을 바라죠. 앉아서 싸울 때 그대가 천하에서 둘째라니 결코 저 사람에게 뒤지지 않을 거예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좋소, 그렇다면 그대는 가시오. 가능한한 멀리, 빨리 갈수록 좋소. 그대와 같은 못생긴 여승이 내 앞에서 있으면 재수 옴붙게 되어 이 영호충은 싸울 것도 없이 지게 마련이외다.' 그는 전백광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일검을 찔러갔어요. 전백광은 칼을 들어 막으며 말했어요. '탄복했소이다! 탄복했어! 젊은 여승을 구해 주려는 멋진 계책이었군! 영호 형, 정녕 다정종자(多情種子)이외다. 그러나 이 같은 일에 지나친 모험을 하는 것 같구료.' 그제서야 저는 영호 오라버니가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진다고 한 것은 바로 저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음을 깨달았죠. 전백광은 의자에서 일어날 수 없으니 자연 저를 잡을 수 없을 것이 아니예요.]

뭇사람들은 거기까지 듣게 되었을 때 영호충의 계책에 대해 찬탄을 금치 못했다. 사실 영호충의 무공이 전백광에게 뒤지는 것이 사실이니 그 방법 외에는 확실히 의림을 그곳에서 벗어나게 할 뾰족할 방법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일사태는 말했다.

[다정종자라는 말은 거친 말이다. 이후 절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되며 마음속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의림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네, 알고보니 그말 역시 거친 말이었군요. 제자는 알았읍니다.]

정일사태는 말했어요.

[그렇다면 너는 뒤로 돌아 길을 떠나야 하지 않았느냐? 만약 전백광이 영호충을 죽인다면 너는 그의 독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요, 영호 오라버니가 두번 세번 말하기에 저는 인사를 하고 말했어요. '영호 사형이 목숨을 구해 준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왔어요. 계단 쪽으로 등을 돌렸을 때 전백광의 호통소리가 들려왔어요. '받아랏!' 제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데 두 방울의 피가 저의 얼굴에 튀었어요. 영호 오라버니가 어깨를 맞은 거예요.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어요. '하하! 앉아서 싸우는데 천하에서 둘째 가는 검법도 내가 보기엔 시시하기만 하군!'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저 젊은 여승이 아직 가지 않았는데 어찌 내가 이길 수 있겠소? 이것은 재수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란 말이오.' 저는 영호 오라버니가 여승을 미워하는데 계속 남아 있다가는 그의 목숨을 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그래서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왔어요. 계단을 내려오게 되었을 때 이층에선 칼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곧이어 전백광의 호통소리가 들려왔어요. '받아랏!'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영호 오라버니가 그의 칼에 맞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감히 이층으로 올라갈 수 없었어요. 저는 주루의 담장을 끼고 지붕 위로 올라가게 되었어요. 저는 지붕 위에 납짝 엎드려 방안을 엿보게 되었어요. 그러고 보니 영호 오라버니는 여전히 검을 들고 무섭게 싸우고 있었는데 온몸이 피투성이었어요. 반면에 전백광은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어요. 다시 한동안 싸우다가 전백광이 호통을 내질렀어요. '받아랏!' 영호 오라버니의 왼팔을 찌른 전백광은 칼을 거두며 웃었어요. '영호 형, 나의 이 일초는 사정을 둔 것이오.' 영호 오라버니는 웃으며 말했어요. '나도 알고 있소. 그대가 손에 조금만 더 힘을 줬다면 나의 이 팔은 잘라지게 되었을 것이오.' 사부님, 그와 같은 상황에서도 그이는 웃고 있었어요. 전백광은 말했어요. '그래도 싸우겠소?'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물론 싸워야지. 내가 언제 몸을 일으켰소?' 전백광은 말했어요. '충고하건대 일어나도록 하시오. 우리가 정했던 조건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그 젊은 여승을 사부로 모시는 것도 없었던 것으로 해주겠소.'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대장부 일언은 사마난추라고 했소이다. 그 말을 어떻게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겠소?' 전백광은 말했어요. '천하에 적지 않은 호걸을 만나보았지만 영호 형과 같은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나보는 바이오. 좋소, 모든 것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손을 멈춥시다.' 영호 오라버니는 빙긋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몸에 입은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 마루를 적셨어요. 그때 전백광은 칼을 칼집에 꽂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어요. 갑자기 그는 몸을 일으키면 진다는 점을 상기하고 즉시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어쨌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떨구지는 않았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웃으며 말했죠. '전형 매우 재빠르군요!']

뭇사람들은 의림의 말을 듣고 전백광이 일어섰어야 하는 건데하고 애석하게 여겼다.
의림은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전백광은 칼을 뽑아들며 말했어요. '나는 쾌도를 펼칠 작정이오. 조금만 더 지체하면 그 젊은 여승이 어디로 갔는지 몰라 쫓아잡을 수 없으니 말이오.' 저는 그가 나를 쫓아잡는다는 말을 듣자 전신이 떨려왔어요. 그리고 영호 오라버니가 그의 독수에 당하게 될까봐 두렵기도 했어요. 별안간 영호 오라버니가 힘을 들여 그와 싸운 것은 단지 저를 구하기 위한 거라는 생각이 퍼뜩 머리에 떠올랐어요. 제가 두 사람 앞에서 자결을 하게 된다면 영호 오라버니가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허리에 찬 단검을 들고 집 안으로 뛰어내리려고 했어요. 별안간 영호 오라버니가 몸을 흔들하더니 의자와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어요. 그는 두 손으로 땅을 짚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데 의자는 그의 엉덩이에 붙은 채 쓰러져 있었어요. 그는 상처가 매우 심해 일시 버둥거렸을 뿐 일어나지를 못했어요. 전백광은 의기양양한 빛을 띄운 채 웃으며 말했어요. '앉아서 싸운다면 천하에서 둘째 가고 누워서 싸운다면 몇 번째 서열에 해당되오?' 그러면서 그는 몸을 일으켰어요. 영호 오라버니 역시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어요. '그대가 졌소.'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어요. '그대가 낭패를 했는데도 내가 졌다는 것이오?' 영호 오라버니는 땅바닥에 쓰러진 자세로 물었어요. '우리는 처음 어떻게 정했소.' 전백광은 말했어요. '우리는 앉아서 싸우기로 했지.누가 먼저 일어나 의자에서 엉덩이가 떨어지느냐......
떨어지느냐......' 전백광은 말을 더듬거렸어요. 그리고 왼손으로 영호 오라버니를 가리키고 있었어요. 그제서야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예요. 그는 이미 일어섰고 영호 오라버니는 일어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죠. 전백광은 매우 난처했으나 약속대로라면 영호 오라버니가 이긴 거죠.]

뭇사람들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손뼉을 치며 잇달아 '잘 했다'고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여창해만이 코웃음치며 입을 열었다.

[무례한 녀석이 전백광과 같은 악적을 상대로 속임수를 썼으니 명문정파의 체면을 깎는 것이 아니겠소?]

정일사태는 노해서 말했다.

[무엇이 속임수란 말이오? 사내대장부는 지혜로 싸우는 것이지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오. 당신의 말을 듣건대 그대의 청성파에는 의리를 위해 용감히 나서는 소년 영협(英俠)이 없음을 알수 있소.]

그녀는 의림으로부터 영호충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항상파의 체면을 보존해 주었다는 긴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으로 커다란 감동을 받고 있었다. 처음 영호충을 미워하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여창해는 다시 코웃음치며 말했다.

[땅바닥에 쓰러진 소년 영협이라! 정말 대단하구료!]

정일사태는 날카로운 음성으로 다그쳤다.

[그대 청성파에서......]

유정풍은 그들 두 사람이 다시 충돌을 일으킬까봐 재빨리 큰 소리로 의림에게 물었다.

[전백광이 졌음을 시인했는가?]

의림은 말했다.

[전백광은 우두커니 서서 일시 어떻게 할지 몰랐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큰 소리로 말했어요. '항상파의 비구니 내려오시구료.
그대가 새로 뛰어난 제자를 거둬들이게 된 점을 축하하오.' 그는 제가 지붕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거예요. 전백광은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억지를 쓰지 않았어요. 그는 앞으로 나서 한칼로 영호 오라버니를 죽일 수 있었고 저를 상대할 수도 있었으나 이런 말만 했어요. '젊은 여승, 그대에게 말하겠는데 다음에 나를 만나게 되면 한칼에 죽이고 말겠으니 알아서 하시오.' 저는 원래 그와 같은 악인을 제자로 삼을 생각은 없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제가 바라던 바였지요.전백광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는 칼을 칼집 속에 넣고 성큼성큼 주루 아래로 내려갔어요. 저는 뛰어 들어가 영호 오라버니를 부축해 일으켰어요. 그리고 천향단속교(天香斷續膠)를 상처에 발라 주었어요. 크고 작은 상처가 열세 곳이나 되었어요.]

여창해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정일사태, 축하드립니다.]

정일사태는 눈을 부릅떴다.

[무슨 축하를 한다는 것이오?]

여창해는 말했다.

[무공이 탁월하며 천하에 명성을 떨친 사손(師孫:제자의 제자)을 거두어들인 것을 축하 드립니다.]

정일사태는 대노해서 탁자를 치고 몸을 일으키며 욕설을 퍼부으려고 했다.
이때 천문진인이 입을 열었다.

[여관주, 지나친 말은 삼가하시오. 우리 현문(玄門)에서 수도를 하는 사람이 어찌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소?]

여창해는 첫째로 자기가 잘못했고, 둘째는 천문진인의 고강한 무공을 무서워했으므로 즉시 고개를 돌리고 못 들은 체했다.
의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영호 오라버니의 상처를 돌본 후 그를 부축해 의자에 앉혔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연신 가쁜숨을 내쉬며 말했어요. '수고스럽지만 술을 한 잔 따라 주시오.' 저는 술을 따라 드렸지요. 그런데 주루에서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두 사람이 올라왔어요. 한 사람은 바로 저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나인걸의 시체를 메고온 청성파의 제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은 악인 나인걸이었어요. 두 사람은 저와 영호 오라버니를 번갈아 바라보는데 그 표정은 오만무례했어요.]
뭇사람들은 나인걸이 온몸에 피칠을 한 영호충과 아름다운 여승이 주루에 앉아 있을 뿐 아니라 젊은 여승이 영호충에게 술을 따라 먹이는 것을 보고 자연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무례한 얼굴빛을 띄우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는 나인걸 등을 한번 쓸어보더니 제게 물었어요.
'사매, 그대는 청성파에서 가장 자랑하는 재주가 무엇인지 아시오.' 저는 말했어요. '모르겠어요. 청성파에는 고명한 재간이 많다고 하더군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했어요. '맞았소! 청성파에는 고명한 재간이 많이 있소. 그 가운데 으뜸은......하!하!하! 서로의 감정을 위해서 말하지 않는게 낫겠군!' 그러고 나서 나인걸을 한번 쏘아보았어요. 나인걸은 앞으로 나서며 말했어요. '가장 고명한 것이 무엇이오? 이야기해 보시오.' 영호 오라버니는 웃으며 말했어요. '나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 그대는 나 보고 꼭 밝히란 것이오? 말해 주겠소. 그것은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나가 떨어지는 평사낙안(平沙落雁)이라는 신법이외다.' 나인걸은 탁자를 내리치며 큰 소리를 쳤어요. '터무니없는 소리! 무엇이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날아가는 평사낙안식이란 말이오? 나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소.' 영호 오라버니는 웃으며 말했어요. '이것은 귀파의 자랑하는 초식인데 그대는 어찌 들어보지 못했소? 그대는 몸을 돌리시오. 내가 펼쳐 보이리다.' 나인걸은 몇마디 욕을 하고 영호 오라버니를 향해 주먹을 날렸어요. 오라버니는 몸을 피하려고 했으나 피를 많이 흘려서 기운이 전혀 없었어요. 오라버니는 몸을 흔들었을 뿐 즉시 주저앉게 되고 나인걸의 주먹에 코를 맞고 코피를 마구 쏟게 되었어요. 나인걸이 또다시 때리려고 했을 때 나는 재빨리 손을 내밀며 말했어요. '때려선 안 돼요!이분은 몸에 중상을 입고 있단 말이예요! 그대가 상처입은 사람을 못살게 굴다니! 어찌 영웅호걸이라 할 수 있겠어요?' 나인걸이 욕을 했어요.
'젊은 여승이 이 녀석의 반반한 얼굴을 보고 속세에 뛰어들고 싶은 게로군! 비키시오! 비키지 않는다면 그대마저 때려 주겠소!' 저는 말했어요. '그대가 나를 때린다면 나는 그대의 사부 여관주에게 일러 바칠거예요.' 그는 말했죠. '하하하! 그대가 계율을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음란한 죄마저 범했으니만큼 천하의 모든 사람들은 그대를 때릴 수 있소.' 사부님, 이것은 억울하게 누명을 씌우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는 왼손으로 저를 잡으려고 했어요.
제가 막으려 했을 때 뜻밖에 그의 한 수는 헛초였어요. 별안간 그의 오른손이 뻗어 나오면서 저의 왼쪽뺨을 꼬집고 껄껄 웃지 않겠어요. 저는 화도 나고 다급해져 잇달아 삼 장을 후려쳤지만 그는 모두 피해냈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말햇어요. '사매, 그대는 손을 쓰지 마시오. 내가 운기행공을 하고 나서 곧 저 녀석을 혼내 주겠소.' 저는 고개를 돌리고 그이를 바라보았어요. 그이의 얼굴은 핏기라곤 전혀 없고 창백했어요. 이때 나인걸이 다가서더니 다시 주먹을 들고 때리려고 했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왼손으로 슬쩍 원을 그리며 그를 잡아당겼어요. 곧이어 다리를 들어 그의......그의 엉덩이를 걷어찼어요. 그 발길질은 참 빠르고 교묘하기 이를데 없었어요. 나인걸은 그대로 서 있지 못하고 곧장 아래층으로 날아가 떨어졌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껄껄 웃으며 말했어요. '사매, 이것이 청성파에서 가장 유명한 초식으로서 <엉덩이를 뒤로 한 채로 날아가는 평사낙안식>이라는 신법이외다. 엉덩이를 뒤로하는 것은 전문적으로 남의 발길질을 당하려고 것이고 그것은 모레벌판을 기러기가 날아내리듯 매우 우아한 자태를 보여 주게 되는 것이오.
하!하!하! 그대가 볼 때 과연 근사하지 않소?' 저는 웃고 싶었으나 그의 얼굴 빛이 점점 창백해지는 것을 보고 걱정이 되어 웃지도 못하고 말했어요. '좀 쉬도록 하세요.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저는 상처에서 또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어요. 아마도 지금 그가 발길질을 하느라고 힘을 주었기 때문에 상처가 재차 터진 모양이었어요. 나인걸은 주루 아래로 떨어졌으나 곧 달려왔어요. 그의 손엔 이미 한 자루의 검이 쥐어져 있었어요. 그는 말했죠. '너는 화산의 영호충이지? 그렇지?' 영호 오라버니는 웃으며 말했어요. '귀파의 고수들 가운데 나에게 엉덩이를 뒤로 한 평사낙안식을 펼쳐 보인 사람은 귀하가 세 번째요. 그러니......그러니......' 말을 하다가 끊임없이 기침을 했어요. 저는 나인걸이 그분을 해할까봐 검을 뽑아 옆을 지켰어요. 나인걸은 사제에게 말했어요. '여 사제, 그대가 이 젊은 여승을 상대하게.' 그 여가라는 악인은 대답을 하더니 장검을 뽑고 제게 공격을 해왔어요. 저는 검을 써서 상대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나인걸은 일검을 휘두르며 영호 오라버니에게 다가갔어요. 영호 오라버니는 간신히 검을 들어 막았으나 그 형세는 무척 다급해 보였어요. 다시 몇 초를 싸우게 되었을 때 영호 오라버니의 장검이 떨어지고 말았어요. 나인걸은 장검을 뻗어내서는 그의 가슴을 겨누고 웃으며 말했어요. '그대가 나를 거룩하신 할아버지라고 세 번 부른다면 그대의 목숨을 살려 주도록 하지.' 영호 오라버니는 웃으며 말했죠.
'좋아. 내가 부르지 부르고 말고 내가 부른다면 그대는 귀파의 엉덩이를 뒤로 한 평사낙안식을 나에게 전수해 주겠소?' 그의 말을 듣자 나인걸은 장검을 앞으로 내질렀어요. 검은 영호 오라버니의 가슴을 깊숙히 찌르고 말았어요. 나인걸은 너무 악랄했어요.]
그녀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녀의 뺨을 타고 두 줄기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흐느끼며 말을 계속했다.

[저는......저는......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달려가 막으려고 했으나 나인걸의 일검은 이미......영호 오라버니의 가슴을 찌른 이후였어요.]

일시에 화청 안은 조용해졌다.
여창해는 갑자기 자기의 얼굴에 많은 시선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 눈동자는 하나같이 멸시와 분노, 그리고 미움의 빛이 서려 있었다.
여창해는 그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그대의 말은 진실성이 없군. 그대는 나인걸이 영호충을 죽였다고 했는데 어떻게 나인걸이 그의 검에 죽게 되었지?]

의림은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는 검에 찔린 이후 빙그레 웃으며 저에게 말했어요. '소사매, 나에게......나에게 커다란 비밀이 있소. 그대에게 드려 드리지. 그 ......복위표국의 벽사......벽사검보는 저기 ......저기 ......' 그의 음성은 갈수록 낮아져서 전 무엇이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다만 그의 입술이 달짝거리는것만 보였을 뿐이예요.]

여창해는 그녀가 복위표국의 벽사검보를 들먹이자 마음속에 큰 충격을 받아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져 물었다.

[어디에......]

그는 어디에 있었냐고 물으려고 했으나 그와 같은 말을 많은 사람 앞에서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기하고 말을 멈추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쿵쿵거렸으며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이때 의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나인걸은 그 검보에 대해 관심이 매우 많은 것 같았어요. 다가와서 몸을 숙이고 영호 오라버니의 음성을 들으려고 했어요. 그때 별안간 영호 오라버니는 마루바닥에 떨어진 검을 움켜잡고 손을 쳐들어 나인걸의 아랫배를 찔렀어요. 나인걸은 뒤로 벌렁 쓰러지게 되었으며 손과 발을 몇 번 떨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어요.
원래......원래......사부님, 영호 오라버니는 일부러 그가 가까이 다가오게 해서 그를 죽여 원한을 갚은 것이었어요.]
그녀는 이야기를 끝내자 정신적으로 다시 견딜 수 없는 듯 몸을 두어번휘청거리더니 까무러치고 말았다.
정일사태는 손을 뻗어 그를 안고 여창해를 노기 띤 눈으로 바라보았다.
뭇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간담을 서늘하케하는 그 광경을 상상하고 있었다. 천문진인, 유정풍, 문선생, 하삼칠 등 고수의 눈에는 영호충과 나인걸의 무공은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토록 변화가 많고 잔혹한 싸움은 강호에서 보기드문 처절한 장면이라고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의림과 같은 아름답고 순진한 여승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이야기는 조금도 과장되거나 허황된 것으로 들리지 않았다.
유정풍은 여가라 하는 청성파의 제자를 보며 말했다.

[여형, 당신도 그곳에 있었다는데 친히 목격했소?]

여가라는 청성파의 제자는 대답은 하지 않고 여창해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그의 표정을 보고 당시의 사실이 확실하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고 의림이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면 그가 틀림없이 나서서 반박했을 것이었다.
여창해는 눈길을 들고 노덕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푸르뎅뎅한 얼굴로 물었다.

[노덕약, 우리 청성파가 도대체 어떤 일로 귀파에 죄를 짖게 되었길래 그대의 사형이 두번 세번 무단히 시비를 일으킬 뿐 아니라 청성파의 제자들에게 도전을 했는가?]

노덕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자는 모릅니다. 그것은 영호 사형과 귀파 나인걸과의 사사로운 싸움이겠죠. 청성파나 화산 두 파의 교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읍니다.]

5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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