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1-3

3학년2반 | 2022.03.11 07:09:08 댓글: 0 조회: 515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4629



여창해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 상관 없다고? 허허허......그대는 깨끗이 그 일을 부정하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와장창' 하고 대청의 창문이 부서지면서 무엇인가 날아들었다. 대청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수인지라 임기웅변이 신속했다. 한쪽으로 비키면서 각기 손을 내밀어 자기 자신을 지켯다. 날아든 것은 사람이?駭? 그 사람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사람이 날아 들었다. 이들 두 사람은 땅바닥에 쓰러져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모두 몸에 청색장포를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청성파의 제자였다.
그들의 엉덩이 위에는 발자욱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때 창 밖에서 창노하고 거친 음성이 낭랑히 들려왔다.

[엉덩이를 뒤로 한 평사낙안식이라! 하하하, 하하하!]
여창해는 몸을 흔들면서 두 손을 뻗어냈다. 곧이어 장세를 따라 훌쩍 몸을 날려 창 밖으로 뛰어나갔다. 왼손을 창틀0에 붙이고 껑충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지붕 위에서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어두운 빛만이 주위를 감싸고 있고 소나기가 댓줄기처럼 대지를 난타하고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순식간에 종적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이 부근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사람이 강적이라고 생각했다. 손을 뻗어 장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몸을 날려 빗속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천문진인은 자기의 ?탄隙?중시하여 여전히 태사의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고 정일사태, 하삼칠, 문선생, 유정풍. 노덕약 등은 지붕 위로 날아 올라갔다.
이들은 체구가 왜소한 도인이 검을 들고 쏘아나가자, 눈부신 검광(劍光)이 어둠을 찬란히 밝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섬광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그 도사는 드넓은 장원의 주위를 순식간에 몇 바퀴 맴돌았다.
그들은 여창해의 경신법에 탄복을 금치 못했다.
여창해는 빠르게 움직이며 횃불 같은 눈길로 집 모퉁이와 나무, 풀더미가 있는 곳을 빠짐없이 훑?咀맘弩립?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화청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두 명의 제자는 여전히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엉덩이에 똑똑히 찍힌 발자욱은 이제부터 수많은 무술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터엿다. 청성파의 명예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듯한 환상을 여창해는 보았다.
여창해는 한 명의 제자를 뒤집어 보았다. 그 제자는 신인준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은 뒤집어 보지도 않고 그의 뒤통수를 내려 보는 즉시 신인준과 항상 행동을 같이 하는 길인통(吉人通)이라는 사실을 알아 보았다. 0 그는 손을 뻗어 신인준의 옆구리를 두번 치면서 물었다.

[누구의 수작에 넘어갔느냐?]

신인준은 입을 열어 말을 하려고 했으나 소리를 내지 못했다.
여창해는 깜짝 놀랐다. 조금 전 그가 두번 후려친 것은 사실 청성파의 상승내력을 실어 후려친 것이었다. 그런데 신인준의 막힌 혈도를 풀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즉시 내공을 돋우고 자신의 내력을 신인준의 등에 있는 영대혈(靈?穴)로 천천히 주입시켰다.
한참 후 신인준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 사부님!]

여창해는 아무 말??하지 않고 한 동안 내력을 주입하기만 했다.
신인준은 말했다.

[제...... 제자는 그가 누구인지도 보지 못했읍니다.]
여창해는 말했다.

[그는 어디서 손을 썼느냐?]

신인준은 말했다.

[제자와 길 사제는 함께 밖으로 가서 소변을 보려고 했읍니다.
갑자기 제자는 전신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읍니다. 그 녀석은...]
여창해는 말했다.

[상대방은 무림의 고수이다. 함부로 욕하지 말아라.]

신인준은 대답했다.

[네.]

여창해는 상대방이 누군지 알 수가 없엇다. 천문진인0을 바라보니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덤덤하기만 했다. 이 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오악검파는 청성파와는 별로 교분이 없다. 나인걸이 영호충을 죽인데 대한 천문이라는 이 작자도 청성파를 탓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하수인은 어쩌면 대청에 있는 사람들 틈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재빠른 걸음으로 대청으로 나갔다.
대청의 사람들은 한 명의 태산파 제자와 청성파 제자를 죽인 사람이 누구일까 하는 문제를 놓고 아직까지0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창해가 들어오자, 그가 청성파의 장문이라는 사실을 즉시 알아보았다. 모든 사람들은 여창해가 체구는 비록 왜소하지만 눈빛이 형형하고 무악종사의 풍모가 엿보일 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절로 위엄이 스며나오는 것을 보고 감히 떠들 수가 없었다.
여창해는 눈을 들어 한 사람 한 사람을 훑어보았다. 대청의 사람들은 모두 무림의 인물이었다. 그는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으나 옷차림을 보고 어느 문파에 속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떤 문파의 ?╂眉?하더라도 그들 가운데는 내력이 심후한 고수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 사람이 대청에 있다면 반드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의 눈길이 한 사람에게 고정되었다.
그 사람은 얼굴이 흉칙하게 일그러졌고 근육은 비틀어졌으며 등이 낙타처럼 불룩했다. 바로 찻집에서 군웅들의 뒤를 따라온 젊은 꼽추였다.
여창해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혹시 그가 아닐까? 소문에 듣건대 새북명타(塞北明駝) 목고봉(木高峯)은 평소 새외(塞外)에서 활?오?하고 있으며, 중원땅에 발을 들여놓은 일이 없다고 했다. 도대체 오악검파와 어떤 교분이 있길래 유정풍의 은퇴식에 그가 참석하게 된 것일까? 만약 그가 아니라면 무림에서 모습이 저토록 추악한 꼽추를 어디서 찾아 볼수 있겠는가?)

대청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여창해의 눈길을 따라 그 꼽추에게 쏠렸다. 무림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어' 하는 소리를 냈다. 유정풍은 앞으로 나가 깊이 읍을 하고 말했다.

[귀하가 방문한 것을 모르고 대접이 소홀했으니 정??실례가 많았소이다.]

꼽추는 무림의 이인이 아니었다. 바로 납치된 부모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은퇴식에 잠입한 복위표국 임진남의 아들 임평지(林平之)라는 청년이었다. 그는 남에게 알려질까봐 줄곧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린 채 대청 한 모퉁이에 우크리고 있었다. 만약 여창해가 한 사람 한 사람 훑어보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뭇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임평지는 겸연쩍은지 유정풍의 인사를 받고 재빨리 일어서서 읍을 하고 말을 했다.

[그와0 같은 말씀은 감당할 수 없읍니다.]

유정풍은 목고봉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이 사람이 쓰는 말씨는 남쪽지방의 말씨가 아닌가? 나이도 차이가 많았다. 그는 의심이 일었다. 그러나 평소 목고봉의 행동이 신출귀몰하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여전히 공손하게 말했다.

[불초는 유정풍이라고 합니다. 실례이지만 귀하의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임평지는 집안을 멸망시킨 여창해 앞에서 정체를 드러낼 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가 꼽추로 변장하고 얼굴 모습을 바??이유도 청성파 사람들에게 정체가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유정풍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유정풍은 말했다.

[귀하는 목 대협과......]

임평지는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나의 성은 임(林)씨이나 이를 둘로 나누어 반쪽만 사용해도 될것이니 목(木)씨로 해두자.)

그는 생각이 끝나자 불쑥 말했다.

[저의 성은 목씨입니다.]

유정풍은 말했다.

[목 선생이 형산까지 왕림해 주신 점, 불초는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새북명타 목 대협과는 어?뺐?되시는가요?]
그는 임평지의 나이가 젊고 얼굴에 붙어 있는 고약은 자기 본래 모습을 감추려고 붙였다고 추측하였다. 분명히 명성을 떨친 지 수십 년이나 되는 새북명타 목고봉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임평지는 새북명타 목고봉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유정풍의 어조에는 목가 성을 가진 사람을 매우 존경하는 듯했고 여창해가 옆에서 노기등등한 눈초리로 자기를 쏘아보고 있는 모습을 대하자 자기가 만약 조금이라도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면 당장 그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0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세가 급박하니만큼 아무렇게나 얼버무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새북명타 목 대협 말씀입니까? 그는...... 불초의 윗어른이 됩니다.]

여창해는 대청에 또 다른 이상한 사람이 없으므로 제자 신인준과 길인통 두 사람을 걷어찬 사람이 임평지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만약 새북명타 목고봉이 친히 나섰다면 상당히 꺼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목고봉의 후손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는 자신이 만만해졌다.
그가 먼저 청성파에 도전을 한 셈이니 어찌 참고 견딜 수가 있0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청성파는 새북의 목 선생과는 아물나 관계가 없소. 그런데 어떤 점이 귀하의 눈에 거슬렸는지요?]

임평지는 이 왜소한 도사를 마주 바라보게 되자 두렵기도 했고 증오심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기도 했다. 며칠 전 여창해에 의해 집안이 멸망되었을 뿐 아니라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지 않았던가? 그의 부모는 사로잡혀 아직까지 생사를 모르는데 이 모든 것은 왜소한 도사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비록 여창해의 무공이 자기보??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는 무기를 뽑아 찔러 죽이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혔다. 하지만 이 며칠 동안 많은 고초를 겪은 그는 이미 닭 싸움이나 시키고 말을 달리던 부잣집 도련님은 아니었다. 그는 즉시 노기를 억누르고 말했다.

[청성파에서 비위에 거슬리는 일을 일으키게 되었다면 목 대협이 자연 손을 쓰게 되지 않겠소? 목 대협께서는 의협심이 탁월하신 분으로서 포악한 자를 치고 약한 자를 도우시는 성미이니 귀하가 그분에게 죄를 지었다??그분이 응분의 대가를 치룰게 아니겠소?]

유정풍은 그 말을 듣자 속으로 웃음을 금치 못했다. 새북명타 목고봉은 무공은 고강하나 인품은 퍽 포악한 편이었다. 그가 목 대협이라 부른 것도 예의상 그렇게 부른 것을 뿐이었다. 목고봉을 두고 논할 때 그는 대협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 이 자는 권세에 아부하고 이익에 민감한 자로서 신의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나 목고봉은 무공이 고강하여 그와 원한을 맺게 된다면 상당한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무림에 몸 담0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매우 두려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유정풍은 임평지의 말을 듣고 그가 목고봉의 아들이거나 조카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목고봉을 좋게 말할 이유가 없었다. 유정풍은 말했다.

[여관주, 그리고 목 형, 두 분이 저희 집에 오신 이상 모두 불초의 귀빈이올시다. 이 유모의 늙은 얼굴을 봐서라도 술 한 잔을 나누며 감정을 풀도록 하시구료. 게 누구 없느냐, 술을 가져오거라.]

집안의 장정들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술을0 가져왔다.
여창해는 맞은편에 서 있는 젊은 꼽추를 안중에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강호의 소문을 통하여 목고봉이 여러가지 음흉하고 독랄하며 억지를 쓰는 일들을 들은 적이 있는 터라서 감히 경솔하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임평지는 한편으론 미움에 치를 떨었고 한편으로 두려웠다.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은 이미 이 악독한 도사의 독수를 맞고 돌아가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일장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그와 함께 술을 마실 수는 없다.)

그는 두 눈에 노기0의 빛을 가득 띄우고 여창해를 노려보았을 뿐 술잔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여창해는 임평지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자, 노기가 끓어올라 손을 뻗어 금나수법으로 임평지의 손목을 움켜쥐며 말했다.

[좋아, 좋아, 유 대협의 체면을 보아서 너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지는 않겠다. 우리 잘 사귀어 보자구.]

임평지는 힘을 주었으나 손을 빼낼 수가 없었다. 손목에 격렬한 아픔이 밀려왔다. 손목뼈가 우두둑하며 금방이라도 부서지고 말 것 같았다. 여창해는 내력을 모아 내쏟지 않고 임평지로 하여금 0용서를 빌도록 할 속셈이었다. 그런데 임평지는 그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손목뼈 마디마디가 부서지는 듯 아파왔으나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유정풍은 임평지가 이마에서 콩알 같은 땀방울이 맺혀 떨어지는 데도 얼굴에는 여전히 의연한 빛을 띄우고 조금도 굴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 젊은이의 굿굿함에 탄복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보시오, 여관주.]

그러면서 그는 쌍방을 화해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별안간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여관주, 어찌 염치가 이토록 좋0소? 목고봉의 손자를 못살게 굴다니!]

뭇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대청 입구에 뚱뚱한 꼽추가 서 있었다. 이 사람의 얼굴은 하얀 버짐이 잔뜩 나 있었고 또 양쪽 뺨에는 커다란 검은 사마귀가 하나씩 나 있었다.
그 모습은 기괴하고도 흉칙해 보였다. 대청의 뭇사람들은 대부분 목고봉의 참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이때 그가 스스로 자기의 성명을 들먹이고 기이한 모습을 나타내자 하나같이 얼굴표정이 굳어졌다.
이 꼽추의 몸은 비대했으나 행동은 민첩하기 이를 데 없었다.
번쩍 몸을0 날려 어느새 임평지 곁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툭치면서 말했다.

[착한 손자 녀석, 정말 착하지. 너는 너의 할아버지가 의협의 길을 가며 강한 자를 무찌르고 약한 자를 도왔다고 말했지? 이 할아비는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정말 기분이 좋구나!]

그는 다시 임평지의 어깨를 툭툭쳤다.
그가 처음 어깨를 툭 치게 되었을 때 임평지는 전신이 짜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창해 또한 손에 화끈한 기운이 전해져 하마터면 손을 놓을 뻔했다. 그러나 급히 공력을 돋우고 손을 더욱 힘주어 움켜쥐었다. 0목고봉은 여창해를 뿌리칠 수 없자 임평지에게 말을 걸면서 한편으론 내력을 돋우었다. 그리하여 두 번째로 임평지의 어깨를 치게 되었을 때는 이미 온몸의 공력을 돋우게 되었다.
임평지는 두 번째로 어깨를 맞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목 안이 달콤해지는 것을 느꼈으며 한 모금의 선혈이 입 안까지 올라옴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힘들여 참고 꿀꺽하며 선혈을 되삼켰다.
여창해는 이때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해서 더 잡고 있지 못하고 손을 놓고 말았다. 그는 한걸음 물러서며 생각했다.

(이 꼽추는 악랄??인물이라고 하더니 정말 명불허전이로구나.
그는 나의 손을 떨치기 위해 자기의 손자가 내상을 입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군!)

임평지는 억지로 껄껄웃으며 여창해에게 말했다.

[하하, 여관주, 청성파의 무공은 너무나 힘이 없구료. 새북명타 목 대협과 비교한다면 차이가 많이 나는구료. 내가 보기에 당신은 차라리 목 대협의 제자가 되어 그의 가르침을 몇 수 받는다면...... 약간의...... 진보가 있을 것 같구료......]

그는 내상을 입고 있는지라 그와 같은 말을 할 때 가스밍 크게 울0렁거렸다.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것 같았다. 억지로 말을 끝냈으나 몸은 쓰러질듯 휘청거렸다.
여창해는 말했다.

[좋아, 그대가 나에게 목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서 약간의 재간을 읽히라고 했는데 그것은 이 여창해가 바라던 바이다. 그대는 목 선생의 문하이니 재간이 반드시 뛰어나렸다? 불초는 그대의 가르침을 받고 싶군!]

그는 임평지를 지명하여 도전했다.
이렇게 되면 목고봉으로선 사만히 구경만 해야지 간섭할 수 없었다.
목고봉은 뒤로 물러서며 웃고 말했다.

[손자 녀석아, 아직0 너의 조예는 낮아서 청성파 장문인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며 덤벼들었다간 일장에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꼽추 녀석이 죽음을 당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아니할 수 없는 일...... 너는 차라리 무릎을 끓고 이 할아비에게 큰절을 올리고 이 할아버지가 대신 손을 써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임평지는 여창해를 한번 바라보더니 생각했다.

(내가 경솔하게 나서서 여가와 손을 쓰게 된다면 분노에 휩싸인 그는 정말 나를 죽이고 말 것이다. 목숨을 부지 못한다면 어떻게 부모의 원수를 갚0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임평지는 사내대장부이다. 어찌 처음 보는 꼽추를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 링단 말이냐? 내 자신이 모욕을 당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아버지까지도 큰 욕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짓을 하고서야 강호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 내가 그에게 무릎을 끓는다면 이것은 새북명타의 보호를 받겠다는 의미가 되고 다시는 자립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여창해는 말했다.
[내가 보기에 너는 사내다운 데가 없군! 절을 몇 번하고 남에게 대신 싸워달라고 하는 것이 뭐??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그는 이미 임평지와 목고봉 사이의 관계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목고봉이 그의 할아버지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고 짐작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임평지는 그를 대협이라 불렀을 뿐 시종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겠는가? 그리고 목고봉 역시 그 순간에 자기 손자에게 절을 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창해는 충동질을 하여 임평지로 하여금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손을 쓰도록 유도하려고 했다.
임평지는 머리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대장부가 일시0의 기분에 좌우되어 함부로 날뛴다면 큰일을 그르치기 쉽다. 내가 이후에 정말 위세를 떨치게 된다면 오늘 약간의 치욕을 당한다 해도 설욕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는 즉시 몸을 돌려 무릎을 끓고 목고봉을 향해 절을 했다.

[할아버지, 저 여창해는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며 재물을 빼앗았읍니다. 무림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죽이고자 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무림의 정의를 위해 강호의 저 큰 해충을 제거해 주십시오.]

목고봉과 여창해로서는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이 젊은 꼽추는 조금0 전 여창해에게 잡혀서 내력으로 핍박을 해도 시종 굴복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을 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처럼 굴욕적인 절을 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뭇사람들은 이 젊은 꼽추가 목고봉의 손자쯤되는 줄 알았다. 목고봉만이 이 젊은 꼽추가 자기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 뿐이었다. 그런데 여창해는 그 가운데 빈틈을 어느 정도 간파하긴 했으나 두 사람 사이의 참된 관계를 짐작할 수 없었다.
목고봉은 소리내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정말 0착한 손자다. 착한 손자야! 자아, 우리 한번 놀아볼까?]

그는 입으로 임평지를 칭찬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여창해를 향하고 있었다. 착한 손자니 하는 말은 마치 여창해 보고 하는 소리 같았다.
여창해는 더욱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는 오늘 이 일전은 비단 자기의 생사존망과 관계 있을 뿐 아니라 청성파의 명예와도 큰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경계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목 선생이 여러 친구들 앞에서 절세의 무예를 선 보여 주셔서0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줄 의도가 있다고 하시니 빈도는 목숨을 걸고 상대해 드릴 수밖에 없겠구료.]

조금 전 목고봉이 임평지의 어깨를 쳐 손을 떼지 않을 수 없었던 여창해는 그의 내력이 심후할 뿐 아니라 매우 패도(覇道)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단 정면으로 공격을 해온다면 그 기세는 마치 천둥이 치고 산이 무너지며 바다가 뒤엎어지는 듯한 위협적인 공세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목고봉은 왜소한 도인의 몸이 어린애 같아 손에 든다해도 몇 근 나가지 않을 것 같았으나 우뚝 버티고 서 ?獵?모습에 태산과 같은 위엄이 서려 있어서 절로 일파의 종사(宗師)다운 풍모가 엿보이는지라 여창해의 내공조예가 퍽 심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은 도사에게는 정말 약간의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청성파에서는 대대로 고수를 배출하였는데 이 소코도사는 장문인이니만큼 결코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겨루는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별안간 '휙' 하는 소리가 나면서 두 사람이 뒤로 날아와 '쿵' 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들은 사지를 쭉 뻗고 죽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0 이 두 사람은 몸에 청포를 걸치고 있었고 엉덩이에는 각기 발자욱이 찍혀 있었다. 곧이어 한 소녀는 크게 부르짖었다.

[이것은 바로 청성파가 자랑하는 재간으로 엉덩이를 뒤로 한 평사낙안식이로군!]

여창해는 크게 노해 고개를 돌렸다. 녹색장삼을 걸친 소녀가 탁자 곁에 서 있었다. 여창해는 휙 하고 몸을 날려 그녀의 팔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그 소녀는 크게 부르짖었다.

[어머나!]
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여창해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본래 그는 청성파 제자 두명이 또 한번 당하게 된 것은 그녀와 관계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팔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는데 그녀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서야 나이 어린 소녀에게 포악하게 구는 것이 자기의 체면을 손상시킨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는 급히 손을 놓았다. 그 소녀는 더욱 더 소리높이 울부짖었다.

[당신은 나의 팔뼈를 끊어놨어요! 엄마, 저의 팔이 끊어졌어요! 흑흑...... 아파요! 아파 죽을 지경이예요!]

이 청성파 장문인은 수없이 많은 싸움을 해왔다. 그리고 무수한 풍랑을 헤쳐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곤란한 경우에 처했던 적은 일찌기 없었다. 모든 사람의 눈길이 자기에게 쏠리고 또 하나같이 힐난하고 멸시하는 빛을 띄우고 있는지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는 나직이 말했다.

[울지 말아라. 울지 마, 팔은 끊어지지 않았어.]

그 소녀는 울부짖었다.

[이미 끊어진걸요, 당신은 사람을 못살게 구는군요. 어른이 어린애를 때리다니, 너무나 염치가 없어요. 아이쿠! 아파라! 흑흑흑......]

그 소녀는 나이는 약 열 서너 살 되어 보이며 몸에 초록색 의상을 걸치고 있었다. 소녀는 피부가 하얗고 얼굴도 매우 청초하고 귀엽게 생겼다. 사람들은 한같이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몇 명의 거친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저 소코도사는 염치가 없군!]
[키 작은 도사가 자기 힘을 믿고 날뛰는 꼴이란!]

여창해는 낭패했다. 당혹한 그는 소녀를 타일렀다.

[애야 울지 마라. 미안하다. 어디 상처를 입었는지 너의 팔을 보자.]

그리고 나서 그는 소녀의 옷자락을 걷어올리려고 했다. 그러자 그 소녀는 말했다.

[아니예요,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 어머니, 어머니, 이 키 작은 도사가 저의 팔을 부러뜨렸어요!]

여창해가 난처해서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한쪽에서 청포를 걸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바로 청성파에서 가장 머리회전이 빠르다는 방인지(方人智)였다. 그는 소녀에게 말했다.

[이봐 조그만 아가씨, 일부러 그러지 말아, 우리 사부님의 손은 너의 옷자락에도 닿지 않았는데 어찌 너의 팔을 부러뜨렸다는 것이냐?]

그 소녀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어머니, 저 사람이 나를 때리려고 해요!]

정일사태는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앞으로 나가 방인지의 따귀를 때리려고 하면서 호통쳤다.

[어른이 어린아이를 괴롭히다니! 정말 염치가 없군!]

방인지는 팔을 뻗어 막으려고 했다. 이때 정일사태는 오른손을 질풍과 같이 내밀어 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왼손을 내밀어 방인지의 팔목에 끼우고 방인지의 팔을 위로 꺾었다. 이렇게 좀더 힘을 주게 된다면 방인지의 팔이 부러질 판이었다. 여창해는 손을 드는 즉시 일지(一指)를 들어 정일사태의 뒷등을 찌르려고 했다. 정일사태는 방인지를 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놓는 즉시 손을 뒤로 하고 후려쳤다. 여창해는 그녀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실례했소.]

그리고 두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정일사태는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애야, 어디가 아프냐? 나에게 보여 주렴. 내가 치료를 해주겠다.]

그리고 그 소녀의 팔을 만져보았다. 부러지지는 않아서 마음이 놓였다. 그녀의 옷자락을 올리고 보니 희디흰 팔에는 선명하게 네개의 시퍼런 손가락 자국이 나 있지 않은가? 정일사태는 크게 노하여 방인지에게 호통을 쳤다.

[네 녀석은 거짓말을했다. 너의 사부가 그녀의 팔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이 네 개의 손가락 자국은 누가 만든 것이지?]
그 소녀는 말했다.

[자라가 한 짓이예요. 자라가 한 짓이예요.]

자라는 바로 애비없는 자식 즉 후레자식이라는 뜻이었다. 그 소녀는 그와 같이 말을 하면서 여창해의 뒷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갑자기 군웅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어떤 사람은 웃느라고 입 안에 넣었던 찻물을 뿜어 내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허리를 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청 안은 떠나갈듯한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여창해는 사람들이 왜 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소녀가 자기를 자라라고 욕했지만 어린애가 화를 참지 못하고 내지른 욕을 가지고 그토록 웃어야 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웃음을 터뜨리자 낭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인지가 몸을 날려 앞으로 다가 오더니 여창해의 뒤로 돌아가서 그의 등에서 한 장의 종이를 떼어내어 손으로 둘둘 말았다. 여창해가 둘둘말은 그 종이를 낚아채서 펼쳐 보니 그 종이 위에는 커다란 자라가 그려 있었다. 그 소녀가 자기의 등에 붙인것이 분명했다. 여창해는 수치와 분노를 느끼고 속으로 흠칫거리며 생각했다.

(틀림없이 저 소녀가 크게 울부짖어서 내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를 때 붙인 것일게다. 그렇다면...... 몰래 지시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유정풍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소녀는 유씨 집안의 사람이니 유정풍이 나에게 수작을 부렸군.)

유정풍은 여창해의 시선을 받자 즉시 눈치를 챘다. 그는 한 걸음 나가 그 소녀에게 말했다.

[애야, 너는 뉘집 아이냐?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두 마디의 질문은 여창해에게 의심을 품지 말라는 암시를 한 것이었다. 유정풍 역시 이 소녀가 어떤 사람이 데리고 왔는지 궁금했다.
소녀는 말했다.

[저의 부무님은 볼일이 계셔 잠시 자리를 비웠어요. 저 보고 가만히 앉아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요. 잠시 후면 구경거리가 생긴다고 했는데 그것은 두 사람이 날아와 땅바닥에 쓰러져 꼼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요. 그것은 청성파가 자랑하는 재간으로서 '엉덩이를 뒤로 한 평사낙안식'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 보기 좋군요.]

그녀는 말하면서 손뼉을 쳤다. 그녀는 얼굴에 수정과 같은 눈물방울을 닦아내기도 전에 활짝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매우 귀여웠다.
두 명의 청성파 제자들은 아직도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엉덩이의 발자욱은 청성파의 못난 꼴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여창해는 방인지에게 말했다.

[먼저 떠메어 가도록 해라.]

방인지는 몇 명의 동문들에게 손짖을 했다. 몇 명이 다가와 두명의 쓰러진 제자를 떠메고 대청에서 나갔다.
그 소녀는 갑자기 부르짖었다.

[청성파 사람들은 정말 많군요. 한사람이 평사낙안식을 펼치면 두 사람이 떠메고 나가고 두 사람이 평사낙안식을 펼치면 네 사람이 달라붙는군요!]

여창해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이 되어 소녀에게 말했다.

[너희 아버님의 성씨가 뭐냐? 방금 몇 마디 말은 너의 아버님이 가르친 것이냐?]

그는 이 소녀의 두 마디는 실로 청성파를 꺼집는 말이며 어른이 가르치지 않으면 어린 나이에 그와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생각했다.

(엉덩이를 뒤로 한 평사낙안식이니 뭐니 하는 것은 영호충이라는 녀석이 만들어낸 것이다. 십중팔구 화산파의 사람들이 가호충이 나인걸에게 죽은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청성파에게 시비를 걸려는 것이겠지. 그런데 혈도를 짚은 사람의 무공은 지극히 높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화산파의 장문인 악불군이 수작을 부린 것일까?)

악불군이 자기를 적대시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무거웠다. 악불군은 뛰어난 고수였다. 더군다나 오악검파는 연맹을 맺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 그들이 일제히 손을 쓰게 된다면 청성파는 일패도지할 가능성이 컸다. 이와 같은 생각이 들자그는 안색이 핼쓱하게 변했다.
이때 소녀는 그의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일은 이,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는 팔, 네 사람이 나가 떨어지면 여덟 명이 떠메고 나가겠구나!]

그녀는 끊임없이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다.
여창해가 소리쳤다.

[입 닥치지 못해!]

그 음성은 매우 엄했다. 소녀는 입술을 삐죽이더니 왁 하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얼굴을 정일사태의 품에 묻었다.
정일사태는 가볍게 그녀의 등을 쓸어주며 위로했다.

[겁낼 것 없다. 애야 겁내지 말아라.]

그리고 머리를 돌려 여창해에게 말했다.

[왜 소리를 질러 어린애를 놀라게 만드는거요?]

여창해는 속으로 코웃음치며 생각했다.

(오악검파는 아늘 힘을 합쳐 우리 청성파에게 도전할 작정이군! 조심해야지.)

그 소녀는 정일사태의 품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웃으며 말했다.

[이이는 사라고 청성파의 두 사람이 엉덩이를 뒤로 한 평사낙안식을 펼치자 네 사람이 떠메게 되고 이삼은 육이라고 세 사람이 평사낙안식을 펼치자 여섯 사람이 떠메게 되고 이사는 팔......]
그녀는 더 말하지 않고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었다.
뭇사람들은 이 소녀가 걸핏하면 울음을 터뜨렸다간 즉시 웃음을 띄우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와 같이 갑자기 울었다 웃는 것은 칠팔 세 어린애나 하는 짓이었다. 그런데 이 소녀는 열 서너 살은 돼 보였고 키도 꽤 큰 편이었다. 더군다나 한 마디 한 마디가 여창해를 꼬집는 말이라 천지난만한 어린애의 말 이라곤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바로 누구의 지시를 받고 그렇게 행동하는 모양이로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창해는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내대장부는 공명정대하게 행동해야 하오. 어느 친구가 빈도를 못살게 구는지 모습을 드러내시오! 이와 같이 꼬리를 감추고 한 어린애를 시켜 무례한 말을 하도록 한다면 어디 영웅호걸이라고 할 수 있겠소?]

그의 몸은 왜소했으나 이 몇 마디 말은 단전에서 울려퍼진 것이라 매우 우렁찼다. 듣는 사람은 머리가 웅 하고 울리 정도였다.
군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조금 전까지 경시하던 태도를 고치게 되었다. 그의 말이 끝난 이후 대청 안은 조용했으며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노사태, 그는 어떤 영웅호걸을 가리키는 거예요? 그의 청성파는 영웅호걸들이 아니예요?]

정일은 항상파의 선배인물이었다. 청성파에 대해 비록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공공연히 청성파의 전체를 비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청성파?...... . 청성파의 윗대에는 많은 영웅호걸들이 있었지.]

그 소녀는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은 어때요? 지금도 영웅호걸들이 남아 있나요?]
정일은 입으로 여창해를 가리키고 말했다.

[너는 이 청성파의 장문도장님께 물어봐라.]

그 소녀는 여창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청성파의 장문도장, 만약 그 누가 중상을 입어 꼼짝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누가 그 사람을 못살게 굴었다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남의 위험한 처지를 노리고 덤벼드는 녀석을 영웅호걸이라고 할 수 있나요?]

여창해는 가슴이 쿵 하며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화산파의 짓이군!]

조금 전 화청에서 나인걸이 영호충을 죽인 경과를 의림에게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흠칫했다.

(혹시 이 소녀는 화산파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노덕약은 그들 생각과는 달랐다.

(이 소녀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분명히 대사형을 위해 변호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일까?)

그는 소사매가 슬퍼할까봐 대사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동문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의림은 전신을 떨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그 소녀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한 마디로 말하면 그녀가 일찌기 여창해에게 따지고 싶었던 말이었다. 다만 그녀는 성격이 온화한 편이었고 평소 윗사람을 존경하는 터였다. 여창해는 어찌되었든 선배이기 때문에 그 말을 묻지 못했는데 그 소녀가 대신해서 자기 마음속의 접어 두었던 말을 표현하자 고마움을 느끼는 한편 마음이 쓰라려왔다.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여창해는 낮고 굵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한 마디는 누가 너에게 가르친 것이지?]

소녀는 말했다.

[청성파의 나인걸이란 사람은 본파의 제자이지요? 그는 남이 중상을 입은 것을 보고 상처를 입은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인데도 그를 구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검으로 찔렀어요. 그러니 나인걸이란 사람이 영웅호걸이예요? 아니예요? 그와 같은 짓은 도장께서 그에게 가르친 '청성파의 의협심'이 아니겠어요?]

이 같은 몇 마디 말이 한 소녀의 입에서 나오긴 했으나 그녀의 물음은 매우 직선적이어서 사람을 다그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창해는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누구의 지시를 받고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 너의 아버지는 화산파의 사람이냐?]

그 소녀는 무섭다는 듯 몸을 떨더니 정일사태에게 말했다.

[노사태, 저 사람이 저에게 겁을 주는데 공명정대한 사내대장부가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저 자라는 영웅호걸이나요?]

정일사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로선 말을 할 수 없구나.]

뭇사람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소녀의 먼저번 말들은 십중팔구 어른이 가르쳐 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방금 한 말은 바로 여창해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 것이 아닌가?
의림은 눈물 때문에 시야가 모호했으나 그 소녀의 잘룩한 뒷모습을 대하게 되자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저 소녀는 어디서 본 것 같다. 어디서 보았을까?)

고개를 갸웃하고 한참 생각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어제 회안루의 구석에 그녀가 앉아 있었지.)
그녀의 뇌리엔 어제의 광경이 점차 뚜렷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제 아침 전백광이 그녀를 협박하여 주루 위에 올라가게 되었을 때 주루에는 여덟 개의 탁자 곁에 손님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그후 태산파의 두 사람이 나와 도전을 하게 되고 전백광이 한 사람을 죽이게 되자 손님들이 놀라서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주보(酒保:술심부름을 하는사람)마저도 감히 다가와 음식을 나르지 못했다. 그러나 거리 쪽으로 난 탁자 옆에는 체구가 매우 우람한 화상이 앉아 있었고 다른 조그만 탁자 곁엔 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영호충이 피살되고 그녀 자신이 영호충의 시체를 안고 주루를 내려가게 되었을 때 화상과 두 사람은 시종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당시 그녀는 놀람과 당황함이 극도로 달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터라 체구가 우람한 화상과 다른 두 사람을 유의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소녀의 뒷모습을 보자 뇌리에 남아 있던 모습과 대조되어 똑똑히 기억할 수 있게 되었는데 어제 조그만 탁자에 앉아 있던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이 소녀였다. 그녀는 등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뒷모습 만 기억할 수 있었다. 어제 그녀는 엷은 황색의상을 입고 있었으나 지금은 초록색옷을 입고 있었기에 만약 그녀가 등을 자기쪽으로 도리지 않았다면 기억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누구일까? 의림은 그 사람이 남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늙은인지 젊은인지 옷차림은 어떠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또 기억이 나는 것은 그 화상은 잔을 들고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전백광이 영호충의 속임수에 넘어가 졌음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그 화상이 소리내어 웃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 당시 이 소녀 역시 웃었는데 그녀의 맑고 고운 웃음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대화상은 누구일까? 어찌하여 화상이 술을 마시고 있었을까?
의림의 마음은 어제의 광경을 떠올리느라고 골몰해 있었다. 그녀의 눈 앞에는 영호충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죽을 당시 어떻게 하여 나인걸을 다가오도록 유인했으며 어떻게 검으로 나인걸의 배를 찔렀는가를 되새겨 보았다. 그녀가 영호충의 시체를 안고 휘청거리며 주루를 내려오던 일, 멍해져서 자기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고 무작정 성문을 나서서는 길을 가던 일...... .

그녀는 품에 안고 있는 시체가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었다. 무거운 줄도 몰랐고 슬픈 줄도 몰랐으며, 영호충의 시신을 어디로 안고 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별안간 그녀는 연꽃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 연못가에 이르게 되었다. 연못 가득히 연꽃이 활짝 피어 아름다움을 다투고 있었다. 연꽃을 본 순간 그녀는 가슴을 커다란 망치에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고 더 지탱할 수 없어서 영호충의 시체와 함께 쓰러져서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녀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게 되었을 때 찬란한 햇빛이 온누리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시체를 안으려고 했다.
그런데 손에 잡히는 것은 빈 허공뿐이었다. 그녀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녀 자신은 여전히 연못가에 있었고 연껑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으나, 영호충의 시체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놀라고 당황하여 연못가를 몇 바퀴나 돌았으나 영호충의 시신은 어디로 갔는지 눈을 씻고보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자기의 옷차림을 보니 이곳저곳이 피로 얼룩져 있지 않은가? 영호충의 몸에서 흘러나온 핏자국이었다. 태양의 광채 아래 핏방울은 눈에 선연히 비추어 들었다. 핏자국은 남아 있건만 시신은 날개가 달린 듯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연못의 물은 얕았다. 그녀는 연꽃잎을 헤치고 연못 속을 살펴보았으나 영호충은 거기에도 없었다.
그녀는 형산성으로 들어서게 되었고 유씨 저택을 물어 본 이후 사부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시시각각 영호충의 영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영호 오라버니의 시체는 어디로 갔을까? 지나가던 사람이 옮겨간 것일까? 아니면 야수가 끌고간 것일까.)

영호충은 자기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그녀 자신은 그 시체마저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야수가 끌고가서 먹어 버렸다면 그녀 스스로는 세상을 더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영호충의 시체가 완전무결하게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해도 그녀는 역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별안간 그녀 마음속 깊은 곳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예전엔 감히 생각해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이 생각은 하룻동안 수없이 떠올랐으나 억지로 지워 버리곤 했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꾸짖었다.

(내가 어째서 이토록 마음을 가라앝히지 못할까? 어찌하여 이토록 쓸데없는 생각을 할까? 진정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아니다, 결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생각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똑똑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내가 영호 오라버니의 시체를 안고 있을 때 나의 마음은 매우 차분했으며 기쁘기까지 했다. 마치 입정하여 염불을 하는 듯 마음속에 아무런 생각도 없었으며, 오로지 한 평생 그의 몸을 끌어 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길을 따라서 영원히 걸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었다. 나는 어찌되었든 그의 시체를 찾아야 된다. 그건 또 무엇 때문일까? 그의 시체가 야수들에게 뜯어먹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나는 그의 시체를 끌어안은 채 그저 영원히 있고 싶다. 그리고 연꽃이 핀 연못가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가 어떻게 정신을 잃게 되었을까? 정말 죽어 마땅하다. 빨리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사부님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보살님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악마의 유혹이다. 나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영호 오라버니의 시체는?)
그녀의 마음은 어지러울 대로 어지러워져 있었다. 영호충의 빙긋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모든 근심 걱정을 초월한 듯한 미소! 그녀의 눈앞에 다시 영호충이 재수없는 젊은 여승이라고 욕을 할때의 멸시에 찬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가슴이 아파움을 느꼈다. 마치 칼로 에이는 듯......
여창해의 음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노덕약 이 소녀는 화산파의 사람이지? 그렇지?]

노덕약은 말했다.

[아닙니다. 그 소녀는 제가 오늘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화산파의 사람이 아닙니다.]

여창해는 말했다.

[좋다. 네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만두지.]

별안간 그는 손을 쳐들어 홱 뿌리쳤다. 광채가 번쩍이는 가운데 비추(飛錐)가 의림을 향해 쏟아져갔다. 동시에그는 호통을 쳤다.

[여승, 이게 무엇인지 보아라!]

그녀는 멍하니 서서 영호충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창해가 자기에게 암기를 던지며 소리치자 고개를 돌렸다. 쉭! 하니 암기가 날아드는 것을 본 순간 갑자기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그가 나를 죽인다면 가장 좋다. 나는 살고 싶지 않다. 빨리 죽는게 좋겠다.)

그녀는 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 비추가 빠르게 날아들자 옆 사람이 소리쳤다.

[암기를 조심하시오!]

의림은 어찌 된 노릇인지 오히려 평안함과 평온함을 느꼈다.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고달프기 이를데 없는 일처럼 느껴졌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외롭게 느껴졌다. 비추가 자기를 죽인다면 그것은 자기가 바라던 바라고 생각했다.
이때 정일은 녹의소녀를 가볍게 밀어 젖히더니 나는 듯 다가와 의림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는 이미 늙은 몸이었으나 이번에 몸을 날린 행동은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그 비추가 날아가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그러나 정일사태의 행동은 더욱 빨랐다. 정일은 나중에 몸을 날렸는데도 먼저 다가가서 때 늦지 않게 손을 뻗어 그 암기를 잡으려고 했다.
정일사태가 손을 뻗기만 하면 그 비추를 잡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무쇠비추는 그녀의 몸 앞에 이르게 되었을 때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졌다. '팍'하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박힌 것이다.
정일사태는 허공을 움켜잡고 말았다. 이렇게 되니 상대방에게 우롱당한 셈이라서 얼굴을 살짝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로 이때 여창해는 다시 손을 흔들어 둘둘만 종이를 그 소녀를 향해 날렸다. 그 종이는 바로 자라를 그린 종이였다. 정일사태는 그 광경을 보고 번개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 소코도사가 비추를 날린 것은 원래 나를 소녀의 곁에서 끌어내려는 것이었을 뿐, 결코 의림을 해치려는 것은 아니었구나!)
그 종이뭉치는 날아가는 기세가 무척 빨랐다. 조금 전의 비추에 비하면 기세가 날카롭기 이를데 없었으며 그 가운데 실린 내력 또한 엄청나 보였다. 종이뭉치가 소녀의 얼굴에 맞으면 소녀는 반드시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이때 정일사태는 의림의 곁에 서 있었기 때문에 창졸간에 일어난 변화에 대처할 수 없었고 미처 그녀를 구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당황하여 부르짖게 되었을때 그 소녀가 돌연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며 울부짖었다.

[어머니, 어머니! 저 악인이 나를 때려 죽이려고 해요!]
그녀가 주저앉는 행동은 매우 신속했다. 일시에 종이뭉치를 피한 것이다. 그녀가 몸에 무공을 지니고 있으면서 순진한 체 어머니를 찾으며 우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뭇사람들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여창해는 더이상 녹의소녀를 핍박할 염치가 없었다. 다만 가슴까지 끓어오르는 의문을 풀 길이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정일사태는 여창해의 안색에 겸연쩍어 하는 표정이 떠오르자 우습기 짝이 없었다. 청성파에서는 정말 적지 않게 못난 꼴을 보인 셈이었다. 정일사태는 속으로 고소하다고 생각하며 의림에게 말했다.

[의림아, 저 소녀의 부모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그를 데리고 찾아보도록 해라. 그러면 돌보는 사람이 없다고 남에게 놀림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예.]

의림은 다가가서 그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 소년는 방긋 웃어 보이고 함께 대청을 나갔다.
여창해는 냉소를 한번 흘렸을 뿐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더니 목고봉을 바라보았다.
의림은 그 소녀를 끌고 대청 밖에 이르자 물었다.

[소저, 성씨가 무엇이며 이름이 무엇인지?]

그 소녀는 히히 하고 웃더니 말했다.

[저는 복성으로 영호(令狐)라고 하며, 이름은 외자로 충(沖)이라 해요.]

의림은 가슴이 쿵 내려 앉는 것을 느끼고 안색을 굳혔다.

[내가 호의로 묻는데 어째서 농담을 하지?]

그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왜 농담을 하겠어요? 설마하니 그대의 친구만 영호충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고 나는 그 이름을 가지지 못한단 말인가요?]
의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호충을 생각하자 서글품이 물밀듯 밀려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 영호 오라버니는 나의 목숨을 구해 주었으나 끝내 나 때문에 죽고 말았어...... 나는...... 나는 그의 친구가 될 자격이 없는 몸이야!]

여기까지 말했을 때 두 사람의 꼽추가 총총히 대청 밖의 난간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바로 새북명타 목고봉과 임평지였다. 그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천하에 정말 이토록 공교로운 일이 있을까? 흉칙한 늙은 꼽추가 있는가 하면 또 그와 같은 젊은 꼽추가 한 장소에 있다니!]
의림은 그녀가 다른 사람을 조소하자 마음속으로 그녀가 귀찮아졌다.

[소저, 그대 혼자 그대의 부모를 찾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어? 나는 머리가 아프고 몸이 편찮아.]

그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편찮은 것은 모두 가짜예요. 나는 알고 있어요. 그대는 내가 영호충의 이름을 사칭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한 거예요. 언니, 그대의 사부가 나를 데리고 있으라고 했는데 어째서 나를 돌보지 않고 곁을 떠나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나쁜 사람에게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면 그대 사부는 그대를 크게 꾸짖을 거예요.]

의림은 말했다.

[그대의 재간은 나보다 훨씬 낫고 눈치가 빨라 여관주와 같이 천하에 이름을 떨친 인물도 그대에게 창피를 당하지 않았어? 그대가 다른 사람을 못살게 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은 천지신명께 감사하다고 여길 것인데 누가 감히 그대를 괴롭히겠어요.?]
소녀는 깔깔거리고 웃으며 의림의 손을 잡았다.

[그 말은 나를 비웃는 것이군요? 조금 전 그대의 사부가 나를 살려 주지 않았다면 그 소코도사는 나를 때렸을 거예요. 저의 성은 곡(曲)이고 이름은 비연(非烟)이라고 해요. 저의 할아버지는 비비(非非)라고 불러요. 그대도 나를 비비라고 부르는게 좋겠어요.]

의림은 그녀가 자기의 진짜 성명을 말해 주자,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녀는 어떻게 자기가 영호충을 생각하고 있다는 속마음을 알고 영호충의 이름으로 자기를 놀리는 것일까? 그녀는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화청에서 사부에게 애기를 할 때 이 영리한 소저가 창 밖에 숨어서 엿들은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곡 소저, 그대는 그대의 부모님을 찾아가도록 해요. 그대는 그분들이 어디로 가셨다고 짐작하죠?]

곡비연은 말했다.

[나는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요. 그대가 찾고자 한다면 혼자서 가도록 해요. 나는 가지 않겠어요.]

의림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아니 그대는 왜 가지 않겠다는 거죠?]

곡비연이 말을 가로챘다.

[우리 부모님은 이미 남에게 살해당하셨어요. 그대가 그들을 찾고 싶다면 저승으로 가서 찾도록 하세요.]

의림은 불쾌한 표정을 짖고 말했다.

[그대의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을 어찌 농담삼아 이야기하지? 나는 그대와 같이 있지 않을래.]

곡비연은 의림의 손을 잡고 부탁을 했다.

[착한 언니, 전 외로운 몸이예요. 그리고 저를 상대해 줄 사람도 없어요. 잠시 저와 함께 있어 줘요.]

의림은 그녀가 가련한 어조로 말을 하자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 단지 조금만 함께 있을께. 그러나 그대는 무례한 농담을 하면 안 돼. 나는 출가인이야, 그러니 그대가 언니라 부르는 것도 역시 마땅치 않아.]

곡비연은 웃으며 말했다.

[어떤 말들도 그대는 무례하다고 느끼는 모양인데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각자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예요. 그대는 나이가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언니라고 부르는 것인데 뭐가 잘못되었나요? 내가 그대를 누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의림 언니, 그대는 여승이 되지 말았어야 했어요.]

의림은 아연해져 걸음을 멈췄다. 곡비연은 그녀의 손을 놓으며 웃고 말했다.

[여승이 무엇이 좋아요? 고기나 새우, 닭, 오리고기도 먹을 수 없고 소고기나 양고기도 먹을 수 없지 않아요? 언니는 참 아름다워요. 머리를 깎고 봐도 아름다운데 새까맣고 기다란 머리를 기른다면 얼마나 더 예쁘겠어요?]

의림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말을 들으며 웃었다.

[나는 공문(空門)에 든 몸이라 모든 것을 헛되다고 보고 있는데 어찌 겉모습의 아름답고 못난 것을 생각하겠어?]

곡비연은 자세히 의림을 뜯어 보았다. 이때 빗줄기는 가늘어지고 있었고 검은 구름을 헤치고 엷은 달빛이 비스듬히 내리비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몽롱한 한겹의 은빛 장막으로 가려진 듯 고결하고 신비스럽게 보이고 있었다. 마치 하늘의 선녀가 하강했다고나 할까? 곡비연은 한숨을 쉬며 나직이 말했다.

[언니, 정말 아름답네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그토록 그대를 생각하겠죠.]

의림은 얼굴이 붉어져 말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그대가 또 장난을 친다면 나는 가겠어요.]

곡비연은 웃으며 말했다.

[말하지 않을께요. 언니, 언니는 나에게 천향단속교를 좀 줘요.
가서 사람을 구해야겠어요.]

의림은 아연해 물었다.

[그대는 누구를 구하려고 하지?]

곡비연은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예요.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의림은 말했다.

[그대가 사람의 목숨을 구하겠다니 응당 주어야겠지만 사부님께선 이 천향단속교를 만들기가 쉽지 않아서 만약 상처를 입은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면 결코 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상대를 확인하기 전에는 주기가 난처해요.]

곡비연은 말했다.

[언니, 만약 누가 듣기 거북한 말로 그대의 사부와 항산파를 욕한다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예요? 아니면 나쁜 사람이예요?]
의림은 말했다.

[그 사람이 우리 사부님과 항산파를 욕한다면 물론 나쁜 사람이지 어떻게 좋은 사람이겠어?]

곡비연은 웃으며 말했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어떤 사람이 입을 벙긋하기만 하면 여승을 재수 없는 물건이라고 욕을 하고 놀음을 하게 되면 반드시 잃는다고 했어요. 그대의 사부님을 욕하고 전체 항산파를 욕했어요.
만약 이 같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다면?]

의림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안색이 변해 몸을 돌렸다. 곡비연은 웃으며 그녀가 지나가지 못하게 손을 활짝 벌려 막아섰다.
의림은 갑자기 마음속에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어제 회안루에서 이 소녀는 다른 남자와 함께 앉아 있었다. 영호 오라버니가 죽고 내가 그의 시체를 안고 내려올 때도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모든 광경을 그녀는 보았으니 내가 하는 말을 훔쳐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그녀는 나의 뒤를 줄곧 따라온 것이 아닐까?)

의림은 소녀에게 한 마디 묻고 싶었으나 얼굴만 붉혔을 뿐 입을 열지 못했다.
곡비연은 말했다.

[언니가 묻고 싶은 말은 영호 오라버니 시체는 어디로 갔느냐하는 것이죠? 그렇죠?]
[그래요. 소저가 말해 줄 수 있다면...... 나는...... 정말 고맙게 생각할 거예요.]

곡비연은 말했다.

[저는 몰라요, 하지만 아는 사람이 한 사람 있어요. 이 사람은 몸에 중상을 입고 있는데 목숨이 경각에 달렸어요. 언니가 천향단속교로 그의 생명을 구한다면 그는 영호 오라버니의 시체가 있는 곳을 말해 줄 거예요.]

의림은 말했다.

[그대 자신은 정말 모르는 거예요?]
[이 곡비연이 영호충의 시체가 있는 곳을 안다면 내일 나는 여창해의 손에 죽게 될 것이고 그의 장검에 의해 십여 군데나 구멍이 뚫리게 될 거예요.]

의림은 재빨리 말했다.

[난 믿을 수 있어요. 망설일 것 없어요. 그 사람은 누구죠?]
곡비연은 말했다.

[그 사람을 구하고 안 구하고는 그대에게 달렸지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도 좋은 곳은 아니예요.]

영호충의 시체를 찾기 위해서라면 도산검림(刀山劍林)이라 해도 뛰어들 형편인데 좋은 곳과 나쁜 곳을 가리랴?
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가 보도록 해요.]

두 사람은 대문 입구에 이르렀다. 빗줄기는 가늘게 내리고 있었고 문 옆에는 수십 자루의 기름 먹인 우산이 놓여 있었다. 의림과 곡비연은 각기 한 자루씩을 들고 대문을 나서서 동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는 이미 깊은 밤이어서 거리엔 행인도 드물었다. 두 사람이 지나가자 깊숙한 골목 안쪽에는 한두 마디의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림은 곡비연이 외지고 좁은 길을 따라 갔으나 그저 영호충의 시체가 있는 곳이 궁금하여 곡비연이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든 상관치 않고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한참 동안 걷게 되었을 때 곡비연은 조그만 골목길로 들어섰다. 홍등(紅燈)이 문 앞에 걸린 한 채의 장원이 나왔다. 곡비연은 다가서더니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걸어나오는 발자욱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누군가 고개를 내밀었다. 곡비연이 그 사람의 귀에다 뭐라고 나직이 몇마디 속삭이고 다시 한 가지 물건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 사람은 말했다.

[녜, 녜, 소저는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곡비연은 고개를 돌리면 손짖을 했다. 의림은 그녀를 따라 문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은 얼굴에 의아한 빛을 띄우고는 앞서 길을 안내했다. 그는 뜨락을 지나 동쪽에 있는 객실의 문 휘장을 걸치더니 말했다.

[소저와 스님은 이곳에 앉아 계십시오.]

휘장이 걷혀지자 지분 냄새가 코에 와 닿았다.
의림은 문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고 꽃을 수 놓은 이불과 베개가 놓여 있었다. 붉은 바탕의 이부자락 위에 수 놓아진 것은 한 쌍의 원앙(鴛鴦)이었다. 빛깔이 밝았고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의림은 어려서부터 출가하였기 때문에 백운암에서 시퍼런 무명베로 만든 거친 이불만을 덮고 잠을 잤지 한 평생 이처럼 화려한 이불과 요를 본 적이 없었던 터였다. 탁자 위에는 붉은 초가 타고 있었다. 초 옆에는 거울이 달려 있었고 화장품 상자가 놓여 있었다. 침대 앞에는 한 쌍의 꽃을 수놓은 남녀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의림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쳐들었다.
눈 앞에 얼굴을 살짝 붉힌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나타난다.
약간 부끄러워하는 겸연쩍은 빛을 얼굴에 살포시 짖고 있었다. 자기의 얼굴이 거울에 비친 것이었다.
등 뒤에서 발자욱 소리가 들리며 일하는 하녀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차를 올렸다. 이 하녀의 의복은 몸에 착 달라붙어 있어 신체의 굴곡이 완연히 드러나 있었다. 옷이 몸에 붙었으며 요염한 미소를 짖는 모습이 매우 음탕해 보였다.
의림은 나직이 곡비연에게 물었다.

[이곳은 어떤 곳이지?]

곡비연은 웃으며 몸을 숙이고 그 여인에게 속삭였다. 그 여인은 대답했다.

[녜.]

그리고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웃으며 엉덩이를 흔들고 걸어 나갔다.
의림은 생각했다.

(저 여인의 모양을 내는 태도로 보아 반드시 좋은 사람이 아닌것 같다.)

그녀는 곡비연에게 다시 물었다.

[이곳에는 왜 데려왔지? 이곳은 무엇하는 곳이지?]
[이곳은 형산성에서 크게 유명한 곳이예요. 이곳은 군옥원(?玉阮)이라고 해요.]

의림은 다시 물었다.

[군원옥이 무엇하는 곳이지?]
[군원옥은 형산성에서 으뜸가는 기녀원이예요.]
의림은 기녀원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방안의 치장을 보고 은연중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으나 이곳이 기녀원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기녀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확실히는 몰랐으나 속가의 동문 사제들로부터 기녀원은 천하에서 가장 음탕하고 비천한 여자들이 사는 곳이고 어떤 남자라도 돈만 있으면 기녀와 잠을 잘 수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곡비연이 자기를 기녀원에 데리고 온 것은 바로 자기에게 기녀를 시키려고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 그녀는 당황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바로 이때, 옆방에서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매우 귀에 익었다. 바로 전백광의 웃음소리가 아닌가! 의림은 두다리에 힘이 풀어져서 풀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얼굴에는 핏기 한점 없이 창백했다.
곡비연은 깜짝 놀라 달려와서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러죠?]
[저...... 저 사람은 전...... 전백광......]

곡비연은 '헤'하고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나도 그의 웃음소리를 알고 있어요. 그는 그대의 제자 전백광이 아니예요?]

전백광이 옆방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그 누가 나의 이름을 들먹이는가?]

곡비연은 말했다.

[이봐, 전백광! 당신의 사부가 지금 여기 계시니 이리 와서 큰절을 올려요.]

전백광은 노해 말했다.

[무슨 사부야. 계집애가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군. 내 너의 입을 찢어 놓겠다.]

곡비연은 말했다.

[그대는 형산성 회안루에서 항산파의 의림을 사부로 모셨지 않았어요? 그녀가 바로 이곳에 계시니 빨리 이리 와요.]

전백광은 말했다.

[그녀가 왜 이런 곳에 있지? 그대는...... 그대는 어떻게 알고 있지? 그대는 누구이지? 내 그대를 죽이고 말겠다.]

그 음성에는 놀람과 두려운 빛이 담겨 있었다.
곡비연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사부에게 절을 한 이후 다시 말하도록 해요.]
의림은 재빨리 말했다.

[안 돼요. 안 돼! 그가 이리로 건너오지 말도록 해요.]
전백광은 놀람에 찬 외침을 토해냈다. 곧이어 쿵 하며 침대 위에서 마루바닥 위로 내려서는 것 같았다.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나으리, 가지 마세요. 한번만 더 사랑해 주세요.]

곡비연은 말했다.

[전백광, 도망치지 말아요. 그대의 사부가 그대에게 빚을 갚으러 왔어요.]

전백광은 욕을 했다.

[사부는 무슨 놈의 사부야! 난 영호충의 속임수에 넘어 갔단 말이야! 그 젊은 여승이 한 걸음이라도 건너온다면 난 즉시 죽여 버리겠다.]

의림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네, 나는 그리로 가지 않겠으니 그대도 들어오지 말아요.]
곡비연은 말했다.

[전백광, 그대는 강호에서 일류의 인물로 손꼽히고 있는데 자기가 한 말을 책임지지 못하는 거예요. 사부로 모셔놓고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어요? 빨리 와서 그대의 사부에게 절을 해요.]
전백광은 코웃음쳤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의림은 말했다.

[나는 그대가 절하는 것도 싫고 만나고 싶지도 않아요. 그대는 그대는 나의 제자가 아니예요.]

전백광은 재빨리 말했다.

[그렇지, 비구니께서는 아예 나를 마나는 것조차 싫어하는구만!]

곡비연은 말했다.

[좋아요. 그대의 말이 옳다고 해도 좋아요. 그대도 알겠지만 우리가 방금 이곳으로 오게 되었을 때 두 도적이 살그머니 우리의 뒤를 따라 왔어요. 그대는 빨리 가서 그들을 내쩨고 와요. 나와 그대의 사부는 이곳에서 쉬고 있을 것이니 그대는 밖에서 지키고 있으면서 누구도 우리에게 방해를 놓지 못하게 해요. 그대가 이 일을 하게 되면 그대가 항산파의 사부로 모셨던 일을 이후들먹이지 않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천하의 사람에게 모조리 불고 다니겠어요.]

전백광은 소리를 돋우며 말했다.

[이 좀도적 같으니, 대담하구나!]

곧이어 창문이 펑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났고 지붕 위에서 '챙그랑' 하는 소리가 뒤이어 울려 퍼졌다. 두 가지 무기가 지붕 위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곧이어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리고 다시 도망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창문에서 다시 한번 '펑' 소리가 나는 걸로 보아 전백광이 그 방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하나는 죽였는데 청성파의 좀도둑이었소. 하나는 도망을 쳤소.]

곡비연은 말했다.

[정말 쓸모없네요. 어찌하여 도망치게 내버려두었어요?]
전백광은 말했다.

[그 사람은 내가 죽일 수 없었소. 그는...... 항산파의 여승이었소.]

곡비연은 웃으며 말했다.

[원래 그대의 사백부였군. 그렇다면 물론 죽여선 안 되지.]
의림은 깜짝 놀라 나직이 말했다.

[나의 사저였다고? 어찌하면 좋지?]

전백광은 물었다.

[소저, 그대는 누구지?]

곡비연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물을 것 없어요. 그대는 조용히 있기만 하면 돼요. 그대의 사부는 영원히 그대를 찾으러 다니지 않을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전백광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의림은 말했다.

[곡 소저, 빨리 돌아갑시다.]
[상처 입은 사람을 아직 보지도 않았는걸요. 그대는 그에게 할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대가 사부의 꾸지람을 듣는 것이 두려우면 즉시 돌아가도록 해요.]

의림은 생각해 보고 나서 말했다.

[어찌 되었든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는...... 그 사람을 보러 가요.]

곡비연은 빙긋 웃으며 침대가로 가서 손을 뻗어 동쪽의 벽을 밀었다. 그러자 한 쪽의 문이 가볍게 열렸다. 벽에는 비밀문이 장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곡비연은 손짓을 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의림은 이 기녀원이 더욱 더 이상하고 신비스럽게 생각됐다. 다행히 전백광은 서쪽방에 있으니 그와는 멀어지면 질수록 좋다는 생각에 대담하게 곡비연을 따라 들어갔다. 한쪽 역시 방이었으나 등불이 없었다. 방 안이 좁으나 침대가 놓여 있고 모기장이 나직이 드리워져 있으며 어렴풋이 한 사람이 침대 위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을 볼 수있었다. 의림은 문 안으로 드어서자 다시는 앞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곡비연은 말했다.

[언니, 언니는 천향단속교로 이 사람을 치료해 주도록 하세요.]
의림이 부르짖었다.

[그는...... 그는 정말 영호 오라버니의 시체가 어디 있는지 아나요?]

곡비연은 말했다.

[어쩌면 알고 어쩌면 모를 거예요. 확정해서 말할 수는 없어요.]

의림은 다급히 말했다.

[방금 그대는 그가 알고 있다고 했잖아요?]

곡비연은 웃으며 말했다.

[없었던 말로 하면 되잖아요. 그대가 시험해 보고 싶다면 이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 주세요. 그러고 싶지 않으면 그대는 이곳을 떠나면 돼요. 그 누구도 그대를 막지 않을 거예요.]

의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찌 되었던 영호 오라버니의 시체를 찾아야 한다. 기회가 이번뿐이라면 절대로 놓칠 수가 없지.)

그녀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말했다.

[좋아, 내가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지.]

그녀는 바깥방으로 가 촛대를 가져와 침대 앞에 놓고 모기장을 들추었다. 한 사람이 위를 향해 누워 있었는데 얼굴엔 녹색의 비단 손수건이 덮여 있었다. 숨을 쉬고 들이마실 때마다 비단수건이 미미하게 떨렸다.
의림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자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이 사람은 어디에 상처를 입었지?]

곡비연은 말했다.

[가슴에 상처를 입었어요. 상처가 매우 깊어 하마터면 심장을 건드릴 뻔했어요.]

의림은 그 사람이 덮고 있는 엷은 이부자락을 들추었다. 그 사람의 가슴이 드러나게 되었다. 가슴 한복판에 커다란 상처가 나있었는데 피는 멎었으나 상처가 매우 깊었다. 생명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의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찌 되었던 이 사람의 목숨을 구해 놓고 보자.)

그녀는 촛대를 곡비연에게 들고 있으라고 주고는 품 속에서 천향단속교가 들어 있는 나무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고 한 개를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 사람의 상처 주위를 가볍게 눌러 보았다.
곡비연이 나직이 말했다.

[필요로 하는 혈도는 이미 짚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죽었을 거예요.]

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사방의 혈도가 봉해져 있었다. 그 혈도 짚는 수법은 매우 교묘해서 의림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솜씨였다.
그녀가 천천히 상처에 막았던 솜을 꺼내자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의림은 사문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재간을 배웠는지라 왼손으로 상처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천향단속교를 상처 위에 발랐다. 그리고 다시 솜으로 상처 구멍을 틀어막았다. 이 천향단속교는 항산파에서 자랑하는 금창약으로 성약(聖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상처에 약을 바르자마자 피가 멎었다. 의림은 그 사람의 호흡이 불규칙한 것을 보고 회생할 수 있을런지 의문스러웠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것 보세요. 빈니가 한 가지 여쭈어 볼 말이 있으니 영웅께서는 가르침을 베풀어주기 바래요.]

별안간 곡비연이 몸을 기울였다. 그 바람에 촛대가 비스듬히 기울여져 촛불이 꺼지고 말았다. 방 안은 칠흑같은 어둠에 휩싸이고 말았다.
곡비연이 말했다.

[어마!]

그리고 말했다.

[촛불이 꺼졌군요.]

의림은 다섯 손가락을 눈 앞에 펴보았으나 보이지 않자 크게 당황해 했다.

(이처럼 깨끗하지 못한 곳에 출가인이 어찌 올 수 있을까. 나는 영호 오라버니의 시체가 있는 곳을 물어본 후 즉시 떠나야겠다.)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여보세요. 아픈 것은 좀 어떠세요?]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곡비연은 말했다.

[그는 열이 나고 있어요. 머리를 만져 보세요. 매우 뜨거울 거예요.]

의림이 대답하기 전에 곡비연은 의림의 오른손을 잡고 그 사람의 이마 위로 가져갔다. 그의 얼굴에 덮혀 있던 비단수건은 곡비연이 치운 모양이었다. 의림은 손닿는 곳이 숯불처럼 뜨거운 것을 느끼고 그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는 먹는 약이 있으니 반드시 그에게 먹이는게 좋겠군요.
곡소저, 그대는 촛불을 켜도록 해요.]

곡비연은 말했다.

[좋아요, 그럼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불씨를 찾아 올께요.]
의림은 그녀가 떠나겠다는 말에 다급해져 재빨리 곡비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니예요, 그대는 가지 말아요. 나 혼자 남겨두면 난...... 무서워요.]

곡비연은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먼저 약을 꺼내 봐요.]

의림은 품 속에서 하나의 자기로 된 병을 꺼내 병마개를 뽑았다. 그리고 세 알의 약을 꺼내들고 말했다.

[약을 꺼냈으니 그대가 그에게 먹이도록 해요.]

곡비연은 말했다.

[어둠 속에서 약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요. 사람의 목숨은 하늘이 주신 것이니 함부로 할 수가 없어요. 언니가 이곳에 남아 있지 못하겠다면 내가 남을테니 언니가 촛불을 찾아 불을 켜도록 해요.]

의림은 그녀가 기녀원 이곳저곳을 마구 돌아다니며 촛불을 켤 불씨를 구하라고 하자, 더욱 조바심이 나서 말했다.

[아니야, 난 가지 않겠어요.]

곡비연은 말했다.

[부처님을 보내려면 서쪽까지 보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 사람을 구하려면 끝까지 구해야 되죠. 그대는 약을 이 사람의 입에 넣어 주고 몇 모금의 차를 마시게 하면 될 것이예요. 어둠 속이라 그는 그대가 누구인지 보지도 못하는데 무엇이 두렵다고 그래요? 자, 여기 찻잔이 있으니 조심해서 받아요. 쏟지 말고요.]
의림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찻잔을 받고 망설이며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출가인은 자비를 근본으로 삼아야 하며 사람의 한 목숨을 구하는 것은 칠층의 불탑을 쌓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 하셨다. 이 사람이 영호 오라버니의 시체가 있는 곳을 모른다고 해도 명이 경각에 달렸으니 나는 그를 구해야 한다.)

그는 왼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 사람의 이마를 더듬어 보고 손바닥을 뒤집어 세 알의 백운웅담환(白雲熊膽丸)을 그 사람의 입속에 넣어 주었다. 그 사람은 입을 벌리고 알약을 입 안에 머금었다. 의림이 찻잔을 그의 입가로 가져가서 몇 모금 먹이자 그 사람은 힘들게 약을 삼켰다. 그리고 뭐라고 웅얼거렸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의림은 말했다.

[여보세요, 댁은 중상을 입었어요. 안정하여 휴식을 취하는게 좋겠어요. 저에게 한 가지 여쭐 일이 있어요. 영호충 협사는 그 누구에게 해침을 당했는데 그 시체는......]

그 사람은 말했다.

[그대는..... 그대는 영호충에 대해서 묻는 것이오?]
[바로 그래요. 귀하는 영호충 영웅의 시체가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그 사람은 나직이 말했다.

[뭐라고...... 시체라니?]

의림은 말했다.

[맞아요. 귀하께선 영호충 협사의 시체가 어디갔는지 아세요?]
그 사람은 몇 마디 말을 하는 것 같았으나 소리가 너무 작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의림은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귀를 그 사람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그 사람의 숨소리는 매우 미약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으나 시종 말하지 못했다.
의림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본문의 천향단속교와 백운웅담환은 효험이 대단하지만 약기운이 상당히 세다. 더우기 백운웅담환을 복용하게 되면 종종 반나절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것이 상처를 치료하는 요긴한 배려가 아닌가? 어찌 그에게 다그쳐 질문을 할 수 있으랴?)

그녀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 모기장 한쪽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그리고 침착하게 의자를 잡고 그 의자 위에 앉으며 나직이 말했다.

[그가 좀 나아지면 다시 묻기로 하지.]

곡비연은 말했다.

[언니, 그 사람의 생명엔 지장이 없겠어요?]

의림이 말했다.

[아믓든 상처가 치료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가슴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곡 소저 이 어른은...... 누구시지요?]
곡비연은 대답하지 않고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저희 할아버지는 그대가 모든 속세의 인연을 떨쳐 버리지 못하면 여승이 될 수 없다고 했어요.]

의림은 의아해 말했다.

[그대 할아버지는 나를 아시는가? 그...... 그 노인께선 내가 속세의 인연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계시지?]
곡비연은 말했다.

[어제 회안루에서 우리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그대들과 전백광이 싸우는 것을 보았어요.]
[그럼 함께 있던 그 분이 할아버지였나요?]

곡비연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대의 영호 오라버니는 말도 잘 하더군요. 그가 앉아서 싸우는 데는 천하에서 둘째 간다고 말할 때 저희 할아버지도 어느 정도 믿는 것 같았으며, 그리고 대변을 볼 때 연마한 검법이 있는 줄 아셨으며 전백광이 그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어요. 호호호......]

어둠 속에서 그녀의 웃는 얼굴을볼 수 없었지만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짓고 있음이 분명했다. 곡비연은 웃을수록 기분이 좋아졌으나 의림은 마음이 갈수록 아파 오기만 했다.
곡비연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 후 전백광은 도망을 쳤어요. 할아버지는 그 녀석에게 못난 놈이라고 욕을 하셨어요. 지게 되면 그대를 사부로 모시겠다고 한 이상 응당 절을 하고 사부로 모셔야 하는데 어찌 억지를 쓰느냐고 했어요.]

의림은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는 나를 구하기 위해서 꾀를 낸 것에 불과해요.
그리고 전백광을 이겼다고는 할 수 없어요.]

곡비연은 말했다.

[언니는 정말 마음이 좋은 사람이예요. 전백광이란 녀석은 그대를 못살게 굴었는데도 그대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군요. 영호 오라버니가 찔려 죽음을 당하게 된 이후 그대가 그 시체를 안고 주루에서 내려올 때 저희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저 젊은 여승은 정이 많은 사람이니 이번엔 아마도 미치게 될 것 같구나. 우리 뒤를 따라가 보자.'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그대의 뒤를 따랐어요.
그대는 죽은 사람을 안고 있는데도 놓기가 아쉬운 듯했어요. 저희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죠. '비비야 저 젊은 여승이 얼마나 상심하고 있느냐? 영호충이란 녀석이 죽지 않는다면 저 젊은 여승은 반드시 환속해서 그에게 시집을 가 그의 아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의림은 얼굴이 붉혀졌다. 귀뿌리와 목이 화끈화끈 달아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곡비연은 말했다.

[언니, 저희 할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의림은 말했다.

[내가 그 분을 죽게 한 것이야. 난 내가 죽고 그가 살았으면해.
만약 보살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내가 죽어서 영호 오라버니께서 살아나실 수만 있다면 나는...... 나는 십팔 층 지옥으로 떨어져 만겁(萬劫)에 휩싸여 환생하지 못한다 해도 좋아.]

그녀의 이 몇 마디 말은 진정에 가득 차 있었다.
이때 침대 위에 사람이 나직이 신음소리를 냈다. 의림은 기뻐서 말했다.

[그는...... 그는 깨어난 모양이야. 곡 소저, 그에게 물어봐요.
좀 나아졌는가?]

곡비연은 말했다.

[어째서 내가 물어봐야 하나요? 그대는 입이 없나요?]
의림은 잠시 머뭇거리다 침대 앞으로 나가 모기장을 걷으며 말했다.

[이것 보세요, 그대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 사람은 신음소리를 몇 번 토해냈다. 의림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는 지금 참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고 있다. 내가 어찌 그를 번거롭게 할 수 있으랴?)

그녀는 잠시 말 없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의 숨소리가 차츰 고르게 되었다. 약기운에 다시 잠이 든 모양이었다.
곡비연은 나직이 말했다.

[언니, 영호충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고 하셨죠? 정말 그가 그토록 좋으세요?]

의림은 말했다.

[아냐, 아냐. 곡 소저 나는 출가인이야. 그대는 부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말아요. 영호 오라버니는 나와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도 나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당했어요. 나는...... 나는 다만 그에게 미안할 뿐이야.]

곡비연은 말했다.

[만약 그가 살아 돌아온다면 그대는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겠어요? 그분에게 시집을 가래도 갈 수 있어요?]
의림은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잠시 후 모기소리만 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그를 위해 천번 죽는다고 해도 좋아.]

곡비연은 음성을 높여 웃으며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 들었죠? 의림 언니는 친히 말했어요.]
의림은 노해 말했다.

[그대는 무슨 장난을 하려는 거예요?]

곡비연은 계속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영호 오라버니가 죽지만 않는다면 무슨 일이라도 그를 위해 하겠다고 햇잖아요?]

의림은 그녀의 말투가 장난 같지 않자 그만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뛰었다. 그저 말을 더듬거릴 뿐이었다.

[그대는...... 그대는......]

이때 달각거리던 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눈 앞이 환해졌다. 곡비연이 어느덧 촛불에 불을 켠 것이다. 그리고 모기장을 들추고 웃으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의림은 천천히 다가갔다. 별안간 눈 앞이 캄캄해지는 충격을 받고 비틀거리며 쓰러지려고 했다. 곡비연은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부축해 쓰러지지 않도록 하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대가 놀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어요. 이제 그가 누군지 보았나요?]

의림은 말했다.

[그는...... 그는......]

그 음성은 미약하기 그지 없었으며 숨이 막힌 듯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말았다.
침대 위의 그 사람은 두 눈을 꼭 감고 있었으나, 희고 창백한 얼굴에 칼날처럼 힘차게 뻗어나간 눈썹, 붉고 꽉 다문 입술, 우뚝 솟은 코를 지닌 미청년(美靑年)이었다. 천하제일의 풍류남아 영호충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의림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이는...... 그이는 죽지 않았나요?]

곡비연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대의 상처약이 효과가 없다면 죽게 될 거예요.]

의림은 다급히 부르짖었다.

[죽지 않을 거예요! 그이는 죽을 수 없어요! 그이는 죽어서는 안 돼요!]

놀람과 기쁨에 넘쳐 갑자기 그녀는 왁 하니 울음을 터뜨렸다.
곡비연은 의아해 물었다.

[어마, 그가 죽지 않았는데 왜 우는 거예요?]

의림은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 침대를 붙잡고 앉아 흐느껴 울었다.

[너무 기뻐서 우는 거예요. 곡 소저 정말 그대에게 감사 드려요. 그대가 영호 오라버니를 구했어요.]

곡비연은 말했다.

[그대가 구한 거예요. 난 그런 재간이 없어요. 나에겐 천향단속교가 없는걸요.]

의림은 깨달은 듯 천천히 몸을 일으킨 다음 곡비연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그대의 할아버지가 구하신거야. 그대의 할아버지께서 구하신거야. 정말 고마워요.]

[의림아! 의림아! 어디 있느냐?]

별안간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정일사태의 음성이었다.
의림이 깜짝 놀라 막 대답을 하려고 할 때 곡비연이 입김을 훅 불어 촛불을 껐다. 이어 손을 들어 의림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귓가에 입을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이곳이 무슨 곳이예요? 대답하지 말아요.]

의림은 어지할 바를 몰랐다.지금 그녀는 기녀원에 있는 것이다. 난처한 입장이 아닐 수 없었다. 사부님의 음성을 듣고 대답을 않은 적은 일찌기 없었던 일이었다.
이때 정일은 다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전백광, 빨리 이리로 기어나와! 의림을 내놓아라!]

그러자 서쪽 방에서 전백광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동안 웃던 그는 입을 열었다.

[지금 말씀하시는 분은 항산파 백운암의 정일사태시죠? 이후배는 응당 나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겠으나 지금 곁에는 몇 명의 아리따운 여인들이 옷을 벗고 있어 감히 뿌리칠 수가 없군요. 피파 인사는 그만두기로 합시다. 하하하!]

곧이어 너댓 명의 여인들이 간드러지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매우 음탕하고 천한 것으로 보아 기녀들의 웃음소리였다. 한 기녀가 코먹은 소리로 말했다.

[상공, 그녀를 상관치 말고 다시 뽀뽀를 해줘요. 호호호!]
기녀들은 자지러지는 신음소리를 내질렀으며 점점 숨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전백광의 분부를 받고 일부러 더하는 것 같았다. 정일사태의 혐오감을 자극시켜 떠나가게 만들려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정일사태는 호통쳤다.

[전백광, 기어나오지 않는다면 너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말겠다!]

전백광이 말했다.

[내가 기어나가지 않더라도 그대가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고 내가 기어나간다 해도 날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니 기어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소이다. 정일사태, 이곳은 그대 같은 출가인이 올 곳이 못 되니 되돌아가는 것이 좋을게요. 귀하의 제자는 이곳에 없소이다. 그녀는 계율을 무척 철저히 지키는 여승인데 어떻게 이곳으로 왔겠소이까? 어르신께서 이런 곳에 와서 제자를 찾는 그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창녀들만 있는 곳에 당신의 짜가 있다면 그것은......]

정일사태는 노해 부르짖었다.

[불을 질러라. 불을 질러서 이 개집을 태워 버려라. 그래도 그가 안 나오는지 두고보자!]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정일사태, 이곳은 항산성에서 유명한 군옥원이라 한답니다. 그런데 불을 질러 태우면 나는 상관이 없겠지만 강호의 뭇사람들은 한참 떠들 것입니다. 항산성의 큰 군옥원은 항산파 백운암의 정일사태가 불태웠다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게 될 겁니다. '정일사태는 덕망이 높은 사태인데 어찌 그와 같은 곳에 갔었지?' 그러면 다른 사람은 대답을 하겠죠. '그녀는 제자를 찾아갔었대.' 그러면 상대방이 묻겠죠. '항산파 제자가 어찌하여 기녀원에 가 있었지?' 이와 같이 너 한마디 나 한 마디 하게되면 귀파의 명성에 금이 가고 말 것입니다. 귀하에게 말씀 드리오만 만리독행 전백광은 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 세상에서 귀하의 제자 한 사람만은 두려워한답니다. 그녀를 만나기만 하면 저는 멀리 피하기가 바쁜 신세가 되는데 어찌 감히 그녀를 건드릴 수 있겠읍니까?]

정일은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명의 제자가 의림이 바로 이 집안으로 들어갔다고 했으며 전백광에게 상처입은 것도 사실인데 그 제자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다섯 구멍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그리하여 지붕 위의 기와를 마구 밟아 깨뜨렸지만 일시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별안간 맞은편 지붕 위에서 냉랭한 음성이 들렸다.

[전백광, 나의 제자 팽인기(彭人騏)는 그대가 죽인 것인가?]
그는 바로 청성파의 장문인 여창해의 음성이었다.
전백광은 말했다.

[이거 실례했소이다. 청성파의 장문인까지도 왕림을 하셨군. 이렇게 되면 군옥원은 명성을 떨치고 장사가 잘 되어 손님을 다 받지도 못하게 생겼군요. 한 녀석을 내가 죽인 건 사실이오. 검법이 평범하고 청성파의 초식인 것 같았으나 그 이름이 팽인기인지 아닌지는 물어보지 못했소이다.]

'휙' 하며 여창해가 방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곧이어 '창창' 하는 소리가 잇달아 들려왔다. 여창해와 전백광이 싸움을 시작한 것이었다.
정일사태는 지붕 위에 서서 두 사람의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탄복했다.

(전백광이란 녀석! 재간이 제법 있군! 이 몇 수의 쾌도로 청성파의 장문인과 막상막하의 싸움을 벌이다니 몰랍군!)

별안간 '쿵'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무기 부딪치는 소리도 멎었다.
의림은 이때 곡비연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그 손바닥엔 홍건히 식은 땀이 고여 있었다. 전백광과 여창해 두 사람의 싸움은 누가 지고 이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리를 따지자면 전백광이 수차레에 걸쳐 욕보이려 했으니 전백광이 여창해에게 지기를 바래야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여창해가 전백광에게 지기를 바랬다.
그리고 여창해가 빨리 돌아가고 자기의 사부도 떠나가 주기를 그래서 영호충이 이곳에서 편안하게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으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영호충은 생사의 관문에 돌입해 있었다. 만약 여창해가 방 안으로 뛰어들어온다면 놀란 나머지 상처가 파열될 것이고 그러면 그는 죽게 되는 것이다.
이때 전백광의 음성이 멀리서 들려왔다.

[여관주, 방안은 장소가 너무 협소하니 발을 움직이기 불편하오! 우리는 넓은 곳으로 가서 삼사백 초만 크게 싸워 누가 센지 가려내도록 합시다! 그대가 이긴다면 기녀 옥보아(玉寶兒)를 주겠소이다. 그러나 그대가 지게 된다면 이 옥보아는 내 것이 되오.]
여창해는 울화통이 터지고 말았다. 전백광의 말은 자기와 전백광이 군옥원의 일개 기녀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운다는 뜻이 아닌가? 조금 전 방안에서 두 사람은 삽시간에 오십여 초를 겨루게 되었는데 전백광의 도법은 정묘했고 공격과 수비에 있어서 법도가 있었다. 여창해는 상대방의 무공이 자기에 못지 않다고 생각했다.
삼사백 초를 싸운다 해도 꼭 이긴다는 자신이 서지 않았다. 삽시간에 사방은 조용해졌다. 의림은 자기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곡비연의 귓가에 입을 대고 나직이 물었다.

[그......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곡비연은 그녀보다 몇 살 아래였다. 그러나 다급한 경우를 당해 의림은 어떻게 할지 몰랐다. 곡비연은 대답하지 않고 손을 뻗어 입을 막았다.
갑자기 유정풍의 음성이 들렸다.

[여관주, 전백광이란 녀석은 많은 악한 짓을 한 자이니 이후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오. 우리가 그를 처치한다 해도 지금 서두를 필요는 없소. 이 기녀원은 더럽기 짝이 없는 곳, 이 형제는 벌써 부터 없앨려고 했으니 이 집은 형제가 처리하겠소. 대년(大年) 위의(爲義) 모두 들어가 조사를 해봐라. 한 사람도 놓치지 말아라.]
유씨의 제자인 상대년과 미위의는 일제히 대답을 했다. 곧이어 정일사태가 급히 명을 내려 뭇사제들로 하여금 사방을 아래 위로 겹겹이 에워싸도록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림은 갈수록 당황하고 다급해졌다. 곧이어 유씨 문중의 제자들의 호통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각방을 일일이 뒤지기 시작했다.
유정풍과 여창해는 옆으로 감독을 하고 있는 듯했다. 상대년과 미위의는 기녀원의 하인과 주모를 마구 패는 듯 그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청성파의 제자들은 기녀원의 가구와 집기 그리고 찻잔과 술잔을 내던져 박살을 내고 있었다.
유정풍 등이 곧 들이닥치려고 하자, 의림은 다급해져 기절을 할 지경이었다.

(사부님이 나를 구하러 왔지만 나는 소리내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기녀원에서 영호 오라버니와 밤중에 한방에 같이 있다. 물론 영호 오라버니는 중상을 입고 있지만 항산파와 청성파의 많은 남자들이 떼를 지어 들어오면 내게 입이 백 개 달렸대도 변명을 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항산파의 명성에 누를 끼친다면 내 어찌...... 어찌 사부님과 사제들을 대할까?)

그녀는 손을 뻗어 장검을 뽑아 자기 복을 찌르려고 했다.
곡비연은 장검이 뽑아지는 소리를 이미 듣고 짐작했는지 왼손을 뒤집어 그녀의 손목을 잡고 소리쳤다.

[안 돼요. 불안하면 달려나가도록 해요.]

침대 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호충이 몸을 일으키더니 나직이 말했다.

[촛불을 켜라.]

곡비연은 말했다.

[뭐하게요?]
[나는 촛불을 켜라고 했다.]

그 음성은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곡비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화도(火刀)와 화석(火石)을 꺼내 불을 당겨 촛불을 밝혔다.
촛불 아래 먼저 드러난 것은 별처럼 빛나는 영호충의 눈동자였다. 의림은 영호충의 안색이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것을 보고 나직이 놀람에 찬 소리를 냈다.
영호충은 침대머리에 놓여 있는 장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에게...... 나의 몸 위에 걸쳐 주시오.]

의림은 전신을 떨면서 몸을 굽혀 장포를 들어 그의 몸 위에 덮었다. 영호충은 장포의 앞자락을 당겨 자기 가슴의 상처와 핏자욱을 가리며 말했다.

[그대들 두 분은 침대 위에 누워 계시도록 하시오.]

곡비연은 '헤' 웃고 말했다.

[재미있군! 재미있게 되었어!]

그리고 의림을 끌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때 밖의 사람들은 이 방 안에 촛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다투어 불렀다.

[저쪽으로 가서 찾아보세.]

그리고 벌떼처럼 몰려왔다.
영호충은 한 모금의 진기를 돋우고 달려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빗장을 지르고 침대 앞으로 되돌아와 모기장을 들고 말했다.

[모두 이부자리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시오.]

의림은 말했다.

[그...... 그대는 움직이지 말고 상처를 조심하도록 하세요.]
영호충은 왼손을 뻗어 의림의 머리가 이불 안으로 들어가게 밀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론 곡비연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끌어내 베게 위에 흐뜨려 놓았다. 그가 힘을 쓰자 상처의 피가 다시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두 무릎에 힘이 풀려 침대가에 걸터앉았다.
이때 누군가 방문을 쿵쿵 치더니 부르짖었다.

[개새끼야! 문 열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삼사 명이 동시에 방안으로 들어왔다.
앞장을 선 사람은 청성파의 제자 홍인웅(洪人雄)이었다. 그는 영호충을 보자 놀라 더듬거렸다.

[너는...... 영...... 영호충!]

급히 두 걸음 물러섰다. 상대년과 미위의는 영호충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영호충이 나인걸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홍인웅이 이름을 부르자 똑같이 흠칫해서 약속이나 한듯 뒤로 물러났다.
이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영호충을 바라보았다.
영호충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당신들...... 이 많은 사람들은......]

홍인웅은 말했다.

[영호...... 영호충! 알고보니...... 알고보니 죽지 않았었군!]
영호충은 냉랭히 말했다.

[어떻게 쉽게 죽을 수 있겠나?]

여창해는 뭇사람 앞에 나오더니 말했다.

[네가 바로 영호충인가? 좋아, 좋아!]

영호충은 그를 한번 쳐다보고 대답하지 않았다.
여창해는 말했다.

[너는 이 기녀원에 무엇하러왔지?]

영호충은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알고 계시면서 일부러 묻는 것이오? 기녀원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당신은 모른단 말이오? 여자가 필요해서 온게 아니겠소?]

여창해는 냉랭히 말했다.

[평소 화산파의 문규가 심히 엄하다고 들었다. 너는 화산파의 대제자이고 군자검(君子劍) 악 선생의 직계제자가 아닌가? 그런데 몰래 들어와 기생을 끼고 자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구나! 허허허......]

영호충은 말했다.

[화산파의 문규가 어떻든 우리 화산파의 일이오. 남이 걱정할 필요는 없소.]

여창해는 견식이 넓은 사람이었다. 영호충의 얼굴이 창백하고 몸을 쉬지 않고 뛰고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상이 분명한데 태연한 것을 보아 더럭 의심이 치밀었다. 이 방안엔 어떤 속임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염두를 굴렸다.

(이 녀석이 인걸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했는데 죽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젊은 여승이 거짓말을 한 것이 틀림없다. 그녀가 말을 할 때 영호 오라버니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말투에 정을 가득 실려 있었는데 그렇다면 두 사람은 이미 사통을 하고 있는 관계인지도 모르겠군. 그 젊은 여승이 기녀원에 온 것을 본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종적도 없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이 녀석이 숨긴 것이 분명하다. 흥, 그들 오악검파는 무림의 명문정파라고 자부하고 있으며 우리 청성파를 업수이 여기고 있는데 애가 젊은 여승을 잡아서 끌어낸다면 화산파와 항산파에 커다란 수모를 안겨 주게 되는 것이고 오악검파 전체에 치욕스런 일이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는 강호에서 큰소리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방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 젊은 여승은 침대 위에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해.)
그는 홍인웅에게 말했다.

[인웅아, 모기장을 들추고 침대 위에 여승이 있는지 찾아 보아라.]

홍인웅은 대답하고 앞으로 두 걸음 나갔으나 영호충에게 쓴맛을 본 적이 있는지라 자기도 모르게 그를 바라보며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영호충은 말했다.

[너는 살기가 귀찮아진 모양이구나!]

홍인웅은 흠칫했으나 사부가 곁에 있으니 두려울 것 없다고 생각하고 장검을 뽑아들었다.
영호충은 여창해에게 말했다.

[어쩌자는 것이오?]

여창해는 말했다.

[항산파에서 한 명의 여제자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가 이곳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 그녀를 찾으려고 그러는 것이다.]

영호충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오악검파의 일을 당신네 청성파에서 감히 상관하려는 것이오.

여창해는 말했다.

[오늘 일은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인웅아, 손을 써라.]
홍인웅은 대답을 하고 장검을 내밀어 모기장을 들췄다.
의림과 곡비연은 꼭 껴안고 이불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녀들은 영호충과 여창해가 하는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하고 전신이 떨려왔다. 거기다 홍인웅이 모기장을 들추자, 더욱 혼비백산했다.

모기장이 들춰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침대 위로 쏠렸다. 한 쌍의 원앙이 수놓인 붉은 이불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베개 위에는 기다란 머리카락이 흩어졌고 이불이 연신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불 안의 사람이 매우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창해는 베갯머리에 기다란 머리카락을 보자 매우 실망했다.
이불 안에 몸을 숨긴 사람은 결코 젊은 여승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영호충은 정말로 기생을 품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영호충은 냉랭히 말했다.

[여관주, 그대는 출가인이지만 청성파의 도사들은 혼인을 금하지 않는다고 합디다. 그대에겐 작은 마누라 큰 마누라가 적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대가 목숨처럼 색을 좋아하여 기녀원의 벌거벗은 여자의 몸을 보고 싶다면 어서 시원스럽게 이불을 들치고 몇번 더 들여다보도록 하시오. 항산파의 여제자를 찾는다는 구실을 내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오.]

여창해는 호통했다.

[개소리 마라!]

그리고 오른손을 후려쳤다. 영호충은 옆으로 몸을 날려 장풍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중상을 입은 몸이라 몸놀림이 여의치 못했다. 여창해의 일장은 그의 어깨죽지를 후려쳤다. 영호충은 의자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힘주어 버티며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입에서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냈다. 여창해가 다시 손을 쓰려고 할 때 창 밖에서 누군가 부르짖었다.

[어른이 나이 어린 사람을 못살게 굴다니! 염치가 없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창해는 오른손을 돌려 창문을 후려쳤다. '우지직' 하며 창문이 부서져 나갔다. 여창해의 몸은 창문을 통해 밖으로 쏘아져 나갔다. 한 명의 꼽추가 담장 모퉁이를 돌아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여창해는 호통을 쳤다.

[게 섰거라!]

그 꼽추는 바로 임평지였다. 그는 유정풍의 집에서 곡비연이 출현하여 여창해가 소녀에게 정신을 팔게 되자 슬그머니 빠져나오고 말았다. 바로 그의 뒤를 목고봉이 뒤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담장에 숨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떻게 해야 부모님을 구할 수 있을런지 좋은 계책이 떠오르지 않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내가 꼽추로 가장한 것을 대청의 사람은 모두 보았다. 다시 청성파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죽음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되지 않을까?)

조금 전 여창해에게 붙잡혔던 광경을 떠올리자 전신의 힘이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여창해의 고강한 무공을 생각하니 그의 마음은 착찹하기 그지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가 그의 등을 가볍게 후려쳤다. 임평지는 깜짝 놀라 급히 몸을 돌렸다. 눈 앞엔 뒷등이 불룩한 진짜 꼽추 새북명타 목고봉이 서 있지 않은가?
새북명타 목고봉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가짜 꼽추야, 꼽추가 뭐가 좋지? 어째서 나의 제자나 사손으로 사칭하려고 했지?]

임평지는 이 사람의 성격이 흉폭하며 무공이 고강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대답을 잘못하게 된다면 살신지화를 초래하게 될 터였다. 그러나 조금 전 대청에서 그는 목고봉에게 큰 절을 한 바 있으며 그가 이런 일을 한다고 추켜세웠을 뿐 그에게 죄를 지은 적은 없었다. 그는 계속 친절하게 말하면 그의 화를 부르지 않을 줄 알고 말했다.

[후배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북명타 목 대협의 자자한 명성을 들었읍니다. 그리고 목 대협께선 남의 어려움을 가장 잘 돌봐주며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 준다고 들었읍니다. 저는 줄곧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그만 부지불식간에 목 대협의 모양으로 변장을 하게 되었읍니다. 이점 용서해 주십시오.]

목고봉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구하고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돌봐 준다고?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로군!]

그는 임평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말이 듣기 싫지는 않았다.

[너의 이름은 뭐냐? 누구의 문하이지?]

임평지는 말했다.

[후배의 성은 임씨이며 우연히 선배님의 성씨로 가장하게 되었읍니다.]

목고봉은 냉소했다.

[뭐가 우연이야? 너의 할아버지 이름으로 남들을 속이려 한 것이지. 여창해는 천하에서 몇째 안 가는 고수이다. 손가락 하나로도 능히 너를 죽일 수 있는데 네 녀석은 감히 그와 맞서다니 정말 담이 적지 않구나!]

임평지는 여창해라는 이름을 듣게 되자,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큰 소리로 말했다.

[후배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 사악한 자를 친히 죽이고 말겠읍니다!]

목고봉은 의아해 물었다.

[자네는 여창해와 원한이 닝는가?]

임평지는 잠시 생각했다.

(내 힘으론 부모님을 구출할 수 없다. 그에게 큰절을 올리고 도움을 빌리자.)

그는 즉시 두 무릎을 끓고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후배의 부모님이 그 간악한 적의 손에 들어갔읍니다. 선배님께선 의리로서 저의 부모님을 구해 주십시오.]

목고봉은 눈쌀을 찌푸리며 고개를 연신 가로저었다.
[좋은 일이 없는 한 이 꼽추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너의 아버님은 누구냐? 그를 구출해 주면 무슨 이득이 돌아오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대문에서 누가 다급한 음성으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사부님께 알려라! 군옥원이란 기녀원에서 청성파의 사람이 또 한 명 살해되었고 항산파의 한 사람이 상처를 입고 도망쳐 왔다고 해라!]

목고봉은 나직이 말했다.

[너의 얘기는 나중에 듣도록 하자. 당장 좋은 구경거리가 생기게 되었으니 너도 구경을 하려면 날 따라오너라.]

임평지는 생각했다.

(그의 곁에 있으면 부탁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는 급히 대답했다.

[녜, 녜, 노선배님께서 가시는 데라면 후배는 마땅히 뒤를 따라야죠.]

목고봉은 말했다.

[우리는 먼저 말을 확실히 해두자. 이 꼽추는 어떤 일이든 이득이 되는 일만 한다. 네가 나를 몇 번 추켜세운다고 해서 이 할아버님께서 귀찮은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임평지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갑자기 목고봉이 말했다.

[그들이 갔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 순간 임평지는 자기의 오른쪽 손목이 바짝 조여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그에게 잡혀 몸이 허공에 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땅을 밟지 않는 듯 쾌속하게 거리를 질주해 나가고 있었다.
군옥원 밖에 이르게 되었을 때 목고봉과 그는 한 그루 나무 뒤에 숨어서 기녀원의 동정을 엿보았다. 여창해와 전백광이 손을 쓰고 유정풍이 사람을 데리고 도착하기 시작했으며 영호충이 나서서 말을 하던 상황을 두 사람은 일일이 귀로 들어 알게 되었다. 여창해가 재차 영호충을 때리려고 했을 때 임평지는 더 참을 수 없어.
'어른이라는 작자가 어린애를 못살게 구니 염치없다' 는 비웃음의 말을 던졌던 것이다.
임평지는 말을 마친 즉시 자기가 경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을 돌려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창해의 동작은 신속하기 그지 없었다. 여창해는 뒷모습을 알아보고 냉소했다.

[알고 보니 너였군!]

임평지는 목고봉의 옆에 가서 섰다. 여창해는 목고봉을 쏘아보며 말했다.

[목 꼽추, 당신은 세 번씩이나 어린애를 시켜 나를 난처하게 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가?]

목고봉은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저 사람은 스스로 나의 아랫사람이라 했지만 이 꼽추는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의 성은 임씨이고 나의 성은 목씨이니 나와 저녀석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여관주, 목 꼽추는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아. 다만 이 가짜 꼽추 때문에 그대와 싸우고 싶지 않을 뿐이야. 즉 방패막이는 될 수 없다는 애기지. 물론 방패막이가 되어 돌아올 이득이 있다면 이 목고봉은 간섭을 할 수도 있지.]

여창해는 그 말을 듣자 기뻐서 말했다.

[이 사람은 목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빈도는 더 이상 귀하의 체면을 돌보지 않겠소.]

그는 장풍(掌風)을 쏘아내어 임평지의 가슴을 뻐개려고 했다.
갑자기 창문 안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어른이 어린이를 괴롭히다니 정말 염치가 없군!]

여창해가 고개를 돌려보니 한 사람이 창문가에 우뚝 서 있었다.
바로 영호충이었다.
여창해는 노기가 끓어올랐다. '어른이 어린이를 괴롭히니 염치 없다'는 말은 바로 여창해의 치부를 건드린 셈이었다. 눈앞의 두 사람은 무공에 있어서 자기에 뒤떨어진다. 죽이려면 손을 한번 휘두르면 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어린이를 괴롭혔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힌다는 것은 강호에서 가장 경멸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두 사람을 용서한다면 터질 것 같은 울화를 진정시키기 힘든 노릇이 아닌가? 그는 냉소를 하며 영호충에게 말했다.

[너의 일은 이후 내가 너의 사부를 찾아가 따지겠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임평지를 보며 물었다.

[이 녀석, 넌 도대체 어떤 문파의 사람이냐?]

임평지는 노해 부르짖었다.

[이 도적놈아, 네놈은 우리 집안을 망하게 해놓고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지 않았느냐? 이제 와서 나에게 묻다니 철면피 같은 놈!]

여창해는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네가 언제 이 추악한 녀석을 알고 있었단 말이냐? 내가 집안을 망하게 하고 식구를 뿔뿔이 헤어지게 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사방에서 이곳을 주시하는 시선은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여창해는 홍인웅에게 말했다.

[잉웅, 먼저 이 녀석을 죽여 버려라. 그리고 영호충을 없애도록 해라.]

제자가 나서게 된다면 어른이 되어 어린사람을 못살게 굴었다는 비난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홍인웅은 대답하고 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갔다.
임평지는 손을 뻗어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검을 뽑는 순간 홍인웅의 장검은 싸늘한 광채를 뿜어내며 그의 가슴을 찔러왔다.
임평지는 부르짖었다.

[여창해, 이 도적놈아! 나 임평지는 네놈을......]

여창해는 깜짝 놀라 왼손을 급히 후려쳤다. 장풍을 발출하여 홍인웅의 장검을 비껴가게 만든 후 여창해는 말했다.

[너는 방금 무엇이라고 했지?]

임평지는 말했다.

[이 임평지는 악귀가 된다 해도 네놈을 찾아 목숨값을 받아낼 것이다!]

여창해는 말했다.

[네가...... 네가 복위표국의 임평지란 말이냐?]

임평지는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죽는 것은 이미 겁나지 않았다. 그는 손으로 얼굴에 붙인 고약을 떼며 말했다.

[그렇다. 나는 복위표국의 임평지다. 그런데 네놈은 우리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죽였을 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마저도...... 네놈은 도대체 우리 부모님을 어디다 가둬 두었느냐?]

청성파에서 이번에 복위표국을 뒤엎어 놓은 사실은 강호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이었다. 장청자가 일찌기 임원도의 검 아래 패했다는 사실을 무림에선 알고 있는 사람이 희귀했다. 강호에는 청성파에서 임씨 집안의 벽사검보를 훔치려고 그랬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영호충은 그와 같은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회안루에서 벽사검보를 들먹여 나인걸을 자기 곁으로 유인하여 죽일수가 있었던 것이다. 목고봉 역시 그와 같은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눈 앞의 가짜꼽추가 복위표국의 임평지라는 말을 듣게 되고 여창해가 그의 이름을 듣자마자 황망히 홍인웅의 장검을 밀어제치며 긴장된 표정을 띄우고 것을 보고 이 젊은이의 몸에 있는 벽사검보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이때 여창해는 왼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임평지의 오른쪽 손목을 움켜잡고 팔을 잡아당겨서 자기 쪽으로 끌어가려고 했다. 목고봉이 호통쳤다.

[잠깐!]

그는 달려나와 손을 뻗어 임평지의 손목을 잡고 뒤로 끌었다.
임평지는 두 팔이 엄청난 힘에 의해 전후로 끌어당기게 되자 어깨와 팔굽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고 너무 아파 기절을 할 지경이었다.
여창해는 즉시 오른손의 장검을 내밀어 목고봉을 겨누고 소리쳤다.

[목형, 손을 놓으시오!]

목고봉은 왼손을 흔들더니 '창' 하고 장검을 밀어냈다. 그의 손엔 한 자루의 푸른 빛이 번쩍이는 만도(彎刀)가 들려 있었다. 여창해는 검법을 펼쳐 '칙칙' 하는 음향을 흘리며 순식간에 여덟 번을 목고봉을 향해 찔러갔다.

[목형, 그대와 나는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이 녀석 때문에 두 집안이 감정을 상할 필요는 없지 않겠소?]

목고봉은 만도를 휘둘러 찔러 오는 검을 일일이 밀어내며 말했다.

[조금 전 모든 사람이 보고 있는 가운데 이 녀석은 나에게 절을 했고 나를 할아버지라 불렀소. 이것은 모든 사람이 보고 들은 일이외다. 불초와 여관주는 비록 과거에 원한이 없고 최근에 감정을 상한 일도 없으나 그대가 나를 할아버지라 부른 사람을 잡아가 죽이게 된다면 이는 나의 체면을 깎는 게 아니겠소?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를 비호하지 못한다면 이후 그 누가 나를 할아버지라 부르겠소?]

두 사람은 이와 같이 이야기하면서 무기를 휘둘러대었다. 무기를 휘두르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다.
여창해는 노해 부르짖었다.

[목형, 이사람은 나의 친아들을 죽인 사람이오. 아들의 원한을 갚지 말란 말이오?]

목고봉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좋소, 여관주의 체면을 보아 그대를 대신해 원한을 갚아드리지. 자, 그대가 앞쪽으로 당기고 내가 뒤쪽으로 당깁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이 녀석을 두 조각으로 찢어 죽입시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하나 둘 셋 하고 헤아렸다. 셋 소리가 끝나자마자 손에 힘을 주었다. 임평지의 전신 뼈마디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여창해는 깜짝 놀랐다. 원한을 갚는데 서둘 필요는 없었다. 검보를 손에 넣기도 전에 임평지의 목숨을 해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즉시 손을 놓자 임평지의 몸이 목고봉 쪽으로 끌려가게 내버려두었다.
목고봉은 소리내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정말 고맙소. 정말 고마워! 여관주는 정말 의리가 깊소. 이꼽추의 체면을 봐서 아들의 원한마저 덮어두니 말이오. 이처럼 의리를 중시하는 사람은 다시 찾아보기 힘들 것이오!]
여창해는 냉랭히 말했다.

[목형이 알고 있다면 잘 되었소. 이번엔 불초가 한 걸음 양보하지만 이후엔 양보가 절대로없을 것이오.]

목고봉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꼽 그렇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오. 어쩌면 여관주께선 하늘을 찌를 듯한 의리를 지켜 두 번째로 양보할지도 모르지.]
여창해는 코웃음치고 왼손을 들어 신호하며 말했다.

[우리는 가자.]

그는 청성파의 제자를 이끌고 즉시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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