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강호 3-3

3학년2반 | 2022.03.13 07:00:00 댓글: 0 조회: 507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5528

다음날 악불군 등 일행은 왕원패 부자에게 작별을 고하고 배를 타고 낙수(洛水) 연안을 따라서 북상하기로 했다. 왕원패 일가 다섯 사람은 배까지 전송나와 많은 술과 요리를 준비해 보내 주었다.
그날 오아가구 형제에게 팔이 빠진 영호충은 왕가 형제에게 말을 건네지도 않고 이별할 때도 왕가 집안의 사람들을 냉랭히 쳐다볼 뿐이었다. 마치 눈 앞에 금도왕가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악불군은 큰제자 때문에 심히 골치가 아팠다. 악불군은 왕원패에게 거듭 사과를 하고 영호충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선 보고도 못본 척 했다.
영호충이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니 왕가에선 큰상자, 작은 상자, 큰 보따리, 작은 보따리 등을 준비해서 악영산에게 많은 예물을 주었고 남녀하인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배에 올라 예물을 전하면서 떠들어대기를, 가는 도중 악소저의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고 하고 또 어떤 하인들은 큰 마님이 아가씨를 위해서 여행 중에 입을 옷을 준비했다고 했고 둘째 마님은 악영산이 배에서 몸에 치장할 수 있는 패물들을 준비해 준 것이라 했다. 정말로 그들은 자기의 친척처럼 대했다. 악영산은 기쁜 나머지 입을 열고 말했다.

[이를 어쩌나 내가 어찌 그 많은 옷을 입을 수 있으며 그 많은 것을 다 먹을 수 있읍니까?]

한참 떠들석하는데 갑자기 한 명의 허름한 옷을 입은 노인이 배에 올라와서 말을 했다.

[영호충.]

영호충이 보니 녹죽옹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 급히 앞으로 나가 고개를 숙이고 절을 했다. 녹죽옹은 말했다.

[내 고노님이 나에게 말하기를 이 선물을 영호군에게 전하라고 하셨네.]

말을 하면서 두 손을 받쳐 들고 하나의 기다란 물건을 싼 보자기를 건네주었다. 보자기는 하얀 꽃이 수놓아진 파란색의 거친 보자기였다. 영호충은 고개를 숙여 받았다. 그리고 말했다.

[선배님의 깊고 따뜻한 정, 이 제자가 기꺼이 받겠읍니다.]
말을 하면서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의 표시를 했다.
왕가준 왕가구 형제들은 그가 이 허름한 옷을 입은 노인에게는 그렇게 있는 예를 다하여 대하고, 이 강호에 이름이 널리 퍼진 금도무적 왕가준 어르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화가 솟아올랐다. 만약에 악불군 부부와 화산파의 여러 사형 사매들의 체면을 보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또 영호충을 끌어내어 늘씬 패주고 마음속의 울분을 향해서 밀고 왔다.
두 사람의 좌측어깨와 우측어깨가 가볍게 부딪치기만 해도 그 늙은이는 물에 떨어질 판이었다. 비록 강가에 물은 깊지 않아 물에 떨어져도 죽지도 않는다손치더라도 그런 행위는 영호충의 체면을 크게 손상시킨 셈이었다. 영호충은 그것을 보고 급히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막 손을 내밀어 두 사람을 잡으려고 했다. 갑자기 자기의 공력이 전부 소실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왕씨 형제를 잡지 못할 뿐더러 설령 잡았다 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가 멈칫하는 순간에 왕씨 형제가 이미 녹죽옹의 몸에 부딪쳤다. 왕원패는 크게 부르짖었다.

[안 된다!]

그는 낙양땅에서 가문이 있고 사업이 있는 사람이라 보통의 무인과는 크게 달랐다. 자기의 두 손자들이 젊은 혈기에 이 늙은이를 단숨에 부딪쳐 죽인다면 관청의 추궁을 당할 것이고 그 뒤의 일은 무척 수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창에서 악불군과 말을 하고 있을 때이므로 손을 써서 저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탁' 하는 소리가 나면서 두 형제의 어깨는 녹죽옹을 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개의 그림자가 허공에 떠올랐다. 텅텅 텅텅하는 소리를 내며 왕씨 형제는 각기 좌측과 우측에서 물 속으로 떨어졌다. 그 늙은이는 마치 공기가 부풀은 공처럼 왕씨 형제가 부딪치자 반탄력을 튕겨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는 듯 느릿 느릿 한걸음 한걸음 그 발판을 지나서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왕씨 형제가 물에 떨어지자 배는 삽시간에 큰 혼란에 빠졌다.
곧바로 두명의 선원들이 물에 뛰어들어가 두 사람을 구해 올라왔다. 이때는 이른 봄이라 이미 얼음이 풀렸다 해도 여전히 물은 차가웠다. 왕씨 형제는 이미 몇 모금의 강물을 마셨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이빨이 부들부들 떨렸고 두 사람의 몰골은 처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왕원패는 그 광경을 보고 깜작 놀랐다. 두 형제의 네 개의 팔뚝은 모두가 어깨 관절과 팔뚝 관절이 탈골이 되어 마치 두 사람이 영호충의 팔뚝을 꺾어놓은 광경과 똑같았다. 두 사람은 쉬지 않고 욕을 해댔다. 두 사람의 양쪽 어깨는 축 늘어져 마치버들가지와 같았다.
왕중강은 두 아들이 처참한 꼴을 당하자 몸을 달려 올라오더니 녹죽옹의 면전에 뛰어들어 그의 길을 막았다. 녹죽옹은 여전히 활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꼽추모양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걸어왔다. 왕중강은 인사를 했다.

[어디의 누구시요? 이 낙양땅 왕가에게 시비를 일으키다니!]
녹죽옹은 그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나갔다. 천천히 왕중강의 몸에 다가섰다. 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눈빛은 두 사람에게 쏠렸다. 녹죽옹은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앞으로 나가고 왕중강은 살짝 두 팔을 들어 길 가운데를 막았다. 점점 두 사람이 시간이 흐를수록 가까워졌다. 두 사람의 거리는 일장에서 오척으로 오 척에서 삼 척으로 줄어들었다. 중강은 일갈했다.

[꺼져라!]

두 손을 내밀어 그의 어개를 향해서 맹렬하게 후려쳤다. 그 두 손이 막 녹죽옹의 몸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갑자기 왕중강의 크고 거대한 몸체는 허공에 붕 떠 수장 밖으로 날아갔다. 여러 사람은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그는 허공에서 반 공중제비를 돌고 땅에 사뿐히 내려섰다. 만약 두 사람이 멀리서 급히 달려오다가 부딪쳐서 한 사람이 이렇게 공중으로 날라 갔다면 별로 이상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상한 것은 왕중강은 꼼짝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아니했는데 녹죽옹은 천천히 다가가 그를 날려버리니 악불군, 왕원패 같은 고수들조차도 이 늙은이가 어떤 수법을 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왕중강이 땅에 떨어질 때 몸체는 평행을 유지했으며 낭패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공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가 스스로 공중으로 날아 자기의 경공을 한번 과시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주위에 모여 있던 장정들과수레꾼들은 모두 갈채를 보내고 왕중강의 무공의 대단함을 칭찬했다. 왕원패는 처음에 그 녹죽옹이 아무런 기척도 없이 두 명의 손자의 관절을 탈골시키자 이미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그러한 기법은 자기도 비록 갖고 있으나 그 수법을 쓰려고 한다면 맹렬한 자세가 필요한데 자기는 이 노인처럼 가볍게 할 수가 없고 그렇게 신속하게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다시 자기의 아들이 공중에 튕겨서 날게 되니 놀라움뿌 아니라 이미 경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알기로는 자기의 아들은 이미 자기의 무공의 진수를 받은 듯하여 일수단도(一手單刀)의 사용에 있어서는 이미 안정이 되고 매서웠으며 발과 팔의 공력도 내공과 일치되어 자기가 젊었을 때보다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는데 두 사람이 일초를 부딪치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날려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광경은 평생 보지고 못한 것이었고 눈 앞의 자기 아들이 창피를 당하자 그는 손을 쓰려고 했다.

[중강아 이리오너라.]

왕중강은 몸을 돌려 뱃머리에 와서 침을 툭툭 튀기며 분한 듯이 욕지거리를 했다.

[썩어바진 늙은이! 썩어빠진 늙은이!]

왕원패는 낮은 소리로 물어봤다.

[몸은 좀 어떠하냐? 상처를 받았느냐?]

왕중강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왕원패는 자기의 재주로 이 노인네를 상대할 수 있을런지는 미지수였고 만약에 악불군의 손을 빌려 이긴다 해도 그리 떳떳하지는 못할 것이니 아예 이 일을 거론하지 않고 모르는 척 넘어갔다.
녹죽옹이 천천히 멀어지자 왕원패는 생각했다.

(저 노인은 영호충의 친구이다. 내 손자가 영호충의 팔을 꺾었다 햇 그는 손자들의 두 팔을 꺾어 놓음으로 해서 빛을 청산한 것이다. 이 낙양에서 영웅칭호를 받은 사람인데 내가 늙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두 대의 수레가 물에 젖은 두 소년을 태우고 돌아갔다. 왕원패는 악부군을 보면서 말했다.

[악 선생, 그 사람의 내력을 아십니까? 이 늙은이가 눈이 안 좋아 그 고수를 알아볼 수가 없읍니다.]

악불군은 말을 했다.

[충아, 그는 누구이냐?]

영호충은 말했다.

[그가 바로 녹죽옹입니다.]

왕원패와 악불군은 동시에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날 그들은 비록 그와 함께 골목에 갔지만그러나 녹죽옹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악불군은 그 파란 보자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가 너에게 무엇을 주었느냐?]

영호충은 대답했다.

[제자도 모르겠읍니다.]

보자기를 펼쳐보니 길이가 짧은 단금(短琴)이 나타났다. 낡아 오래 된 물건인 듯했다. 꼬리 부분에는 연어(燕語)라는 글자가 전서체로 조각되어 있었다.
또 다른 것은 한 권의 책자였는데 뚜껑에는 청심보선주라는 다섯 글자가 씌어져 있었다. 영호충은 뜨거운 기운이 울컥 솟아올라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악불군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왜 그러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이 센배께서는 나에게 비파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 나에게 악보를 적어 주셨읍니다.]

악보를 펼쳐보니 책자의 한장 한장마다 가득히 아리따운 글씨가 씌어져 있었다. 악보를 설명하는 것 외에도 상세하게 지법현법(指法絃法)과 금을 다루는 요령 등이 적혀 있었고 종이와 글씨는 모두 새 것으로 그 노파가 막 쓴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영호충은 이 선배가 자기에게 이렇게 진심으로 대해 주니 마음속으로 감동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하마터면 눈물이 떨어질 뻔했다.
왕원패와 악불군은 이 책자에 금을 다루는 비결이 씌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의 어떤 글자들은 그 소오강호곡에 있던 괴상한 글자와 비슷했다. 비록 마음속에 많은 의문점이 있었지만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악불군은 말했다.

[그 녹죽옹은 정말로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군! 알고보니 무림의 고수였어. 충아, 너느 그가 어느 가문의 어느 파인지 알고 있느냐?]

그는 영호충이 설령 알고 있다 하더라도 사실대로 자기 말에 대답하지 않을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사람의 무공이 심후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내력을 묻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제자는 단지 그분을 따라 금을 배우기는 했으나 정말로 그의 무공이 이토록 강한 줄은 몰랐읍니다.]

악불군 부부와 왕원패와 왕백분 중강 형제들은 공수를 하고 작별을 했다. 닻이 올려지고 큰 배는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그 배는 십여장의 물길을 가로지르고 떠나갈 때 여러 제자들은 서로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이는 그 녹죽옹의 무공이 깊어 예측할 수 없다고 했고, 어떤 이는 이 노인네가 아무런 재주가 없다고 했고, 왕씨 형제들은 조심하지 않아서 물에 빠졌을 뿐이고 왕중강은 단지 그 늙고 추악한 노인을 상대하고 싶지가 않아서 그를 피했다느니 여러 말들이 오고갔다.
영호충은 배 뒤에 앉아 그들의 말에 끼어들지 않고 스스로 혼자서 악보를 펼쳐보고 책에서 지시한 대로 손가락을 움직이며 따라했다. 단지 사부님과 사모님에게 시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손가락만 움직이고 있을 뿐 감히 소리를 내어 연주하지는 못했다.
악 부인은 자기가 탄 배가 순풍처럼 내달리자 녹죽옹의 괴이한 모습을 생각하고는 마음속으로 열가지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가 뱃머리에 가서 앞을 내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보건대 그 녹죽옹은 어떤 문파의 사람인 것 같소?]
이 말은 마침 그녀가 남편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말이었다. 남편이 비록 먼저 물어보았지만 악 부인은 여전히 반문했다.

[당신이 볼 때 그는 어떤 문파의 사람인 것 같소?]

악불군은 말햇다.

[그 노인네는 내내 손을 움직이지 않고 발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왕가 부자 세 사람을 그렇게 묵사발을 만들어 놓았으니 아마 정파무공(正派武功)은 아닐 것이오.]

악 부인은 말했다.

[그러나 그는 충아와 매우 밀접한 관계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금도왕가와 어떤 시비를 걸려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악불군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그렇게 끝나기를 바랄 뿐이오. 그렇지 않으면 왕 어르신네 평생의 명예에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길 것이오?]

한참을 쉰뒤 그는 다시 말했다.

[우리는 비록 물길을 타고 가고 있지만 모두 조심해야 돼요.]
악 부인이 말했다.

[당신의 뜻은 이 배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단 말이오?]
악불군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우리는 계속하여 감시를 받고 있는게 아닌가 모르겠구료. 도대체 그날 저녁 열다섯 명의 복면객이 무슨 일로 우리를 공격했는지 아직도 분명치가 않소. 우리는 밝은 데에 있고 적들은 숨어 있으니 아마 앞날은 그리 편치 못할 것이오.]

그는 화산파의 강문을 맡은 이후로 이렇게까지 중대한 좌절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앞날이 그리 평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적은 도대체 누구이며 무슨 조직에 속해 있는지에 광해서는 손톱만치도 알아낼 수 없으니 더욱 불안했다.
그들 부부는 여러 제잗르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엄중히 방비 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배가 공현(鞏懸) 부근에서 강심으로 나온 후 동쪽을 향해서 물길을 헤쳐나갔으나 아무런 의외의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은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개봉(開封)에 곧 도착할 즈음에 악불군 부부와 여러 제자들은 개봉의 무림인물에 대하여 논평을 했다. 악불군은 말했다.

[개봉은 비록 큰 도시이나 무풍(武風)은 비상하지 못하다. 예를들면 화노표두(華老?頭) 해노권사(海老拳師) 예중삼영(豫中三英) 같은 사람들은 무공과 명성이 그리 대단치 못하다. 우리는 이 개봉땅에서 며칠 놀다가 가자. 그 사람들을 방문하는 것을 삼가하고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

악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개봉부에는 크게 유명한 인물이 있는데 사형은 벌써 잊었어요?]
악불군은 말했다.

[크게 유능하다고? 당신 말하는 사람이 누구지?]

악 부인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한 사람을 치료하면 한 사람을 죽이고 한 사람을 죽이면 한 사람을 살려내고, 살려낸 사람과 죽인 사람이 꼭 같이 말하기를 절대로 손해보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누구죠?]

악불군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살인명의(殺人名醫) 평일지(平一指)! 그 사람은 너무 유명한 사람이야. 그러나 그의 성질이 괴팍하여 우리가 방문한다 해도 만나 본다고 말 할 수는 없지.]

악부인은 말했다.

[그렇기는 한데 충은 내상이 있어도 줄곧 치유하지 못했다느데 우리가 이곳까지 와서 그 살인명의를 찾아봐야 옳지 않겠읍니까?]
악영산은이상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어머니, 살인명의가 누구입니까? 사람을 죽이는데 어찌 명의라 하십니까?]

악부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평노선생은 무림 중에 한...... 한분의 기인인데 의술이 고명하여 어떠한 중한 빌병이나 상처라도 그가 치료해 주겠다는 대답만 한다면 안 낳은 병이 없지. 그러나 그는 괴팍하고 괴이한 성격의 소유자란다. 그가 말하기를 이 세상에는 사람의 숫자가 일정해서 조물주나 염라대왕의 마음속에 정해진 사람의 숫자가 있으므로 만약에 그가 많은 사람을 피료해 준다면 죽는 사람이 적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사는 사람이 너무 많고 죽는 사람이 너무 적어지기 때문에 염라대왕에게 송구스럽단다. 그래서 앞으로 자기가 죽은 다음 염라대왕이 상대를 안해주고 전생의 죄를 심판하는 귀신이 그를 못살게 굴까봐 걱정을 한단다. 그가 죽으면 염라대왕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하더구나.]

여러 제자들은 이야기를 듣고 한바탕 웃어댔다. 악 부인은 계속하여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맹세를 했다. 한 사람을 치료해서 구한다면 한 사람을 죽여서 그 숫자를 충당하겠다고. 또한 그가 사람 하나를 죽이면 사람 하나를 살려 그 숫자를 보충하지. 듣건대 그가 살고 있는 처소에는 한 폭의 큰 글씨가 씌어 있는데 그 글씨에는 '한 사람을 살리면 한 사람을 죽이고 한 사람을 죽이면 한 삶을 살려내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숫자가 같아야 하고 손해 보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느다' 고 씌어 있단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조물주가, 그가 인명을 많이 살상했다고 탓하지 않을 것이고 염라대왕 또한 그가 저승의 사자를 망치지 않았으므로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단다.]

여러 제자들은 다시 크게 웃었다. 악영산이 말했다.

[이 평일지라는 의사는 상당히 재미가 있는 분이군요. 그런데 그는 또 어찌 이러한 이름을 지었나요? 그는 정말 손가락이 하나밖에 없나요?]

악 부인은 말했다.

[아마 손가락이 하나뿐인 것은 아닐거다. 사형, 당신은 그가 왜 이러한 이름을 지었는지 알고 계세요?]

악불군은 말했다.

[평일지는 손 가락 열 개가 모두 성하지. 그는 스스로 일지(一指)로 자칭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을 죽이든 사람을 살리든 한 손가락으로 해내기 때문이라는군. 만약에 사라미마 죽이려고 한다면 손가락 하나로 찍어 버리면 죽어버리고 만약에 사람을 살려내려고 생각한다면 역시 손가락 하나로 맥을 짚는 순간에 살아난다고 하더군!]

악 부인은 말했다.

[아, 알고보니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가 혈도를 찍는 수단은 상당히 무섭겠군요?]

악불군은 말했다.

[그건 확실히 알지 못하겠어. 이 평일지와 겨뤄본 사람은 몇명 되지 않을테니까. 무림의 고수들은 그의 의술이 매우 고명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한 세상 사는 동안 그 누구도 아무 일 없으리라고도 단정하지 못하여 어느날 그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모르는 처지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사람과 원한을 맺으려고 하지 않지. 그래서 죽음을 눈 앞에 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감히 그에게 병을 낫게 해달라는 사정을 못 하지.]

악영산은 말했다.

[그것은 어재서 그래요?]

악불군은 말했다.

[무림의 사람이 그에게 병을 낫게 해달라고 청할 때 그는 반드시 청한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맹세를 하도록 하지. 병이 난 다음에 반드시 그의 분부를 따라서 그 사람이 지정한 사람을 꼭 죽여야 한다고. 이것이 바로 한 목숨과 한 목숨을 상쇄시키는 법칙이지. 만약 그가 상관없는 사람을 죽이라고 한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만약 그가 죽이라고 지정한 사람이 부탁한 사람의 친척 또는 친한 친구라든지 심지어는 부모형제, 처, 자식이라면 그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겠지.]

여러 제자들은 모두 말했다.

[이 평 의사는 정말로 사악하기 짝이 없군요.]

악영산은 말했다.

[대사형, 그렇다면 당신의 상처도 그에게 치료해달라고 부탁할 수가 없겠군요?]

영호충은 계속 조금 뒤에 떨어진 선창가에서사부와 사모님의 말하는 살인명의 평일지의 괴벽(怪癖)에 대한 말을 듣고 있었다.
소사매의 이런 말을 듣고 담담히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렇군! 그가 내 병을 치료한 다음에 나보고 나의 소사매를 죽이라고 한다면 어떡하지?]

화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모두 웃어버렸다. 악영산도 웃으면서 말했다.

[이분 평 의사는 나와 아무런 원수도 지지 않았는제 왜 당신 보고 나를 죽이라고 하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아버지, 그렇다면 도대체 이 평대부는 좋은 사람입니까그렇지 않으면 나쁜 사람입니까?]

악불군은 말했다.

[듣건대 그의 행적은 희노애락이 무상해서 어떤 때는 올바르지만 어떤 때는 매우 사악하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고 말 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좋게 말한다면 하나의 기인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괴인이라고 할까?]
악영산은 말했다.

[강호에 전해오는 말은 과장되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개봉부에 도착하면 그 어르신을 한번 방문하는 것이 어떻겠읍니까?]
악불군과 악 부인은 차갑게 말했다.

[절대로 함부로 날뛰지 말아라.]

악영산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색이 매우 심각해지는 것을 보자 깜작 놀라며 물어봤다.

[왜 그러세요?]

악불군은 말했다.

[너는 화를 당하고 싶으냐?]

악영산은 말했다.

[좀 찾아본다고 화를 당할까요? 나 또한 그에게 병을 고쳐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두렵습니까?]

악불군은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우리들은 산천경계를 두루 구경하려고 나온 것이지 절대로 화를 당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러 나온 것은 아니다.]

악불군이 화를 내자 악영산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살인명의 평일지에 관해서 마음 가득히 호기심이 끓어올랐다. 악불군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리 악가의 가문을 빛낸 장소가 있다. 우리는 그곳에 가보자꾸나.]

악영산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그렇지요. 잘 알았읍니다. 그곳이 바로 주선진(朱仙鎭)이라는 곳이지요. 그 옛날 악붕거(岳鵬擧) 할아버지께서 김올출(金兀朮)을 쳐부순 장소이지요?]

무릇 무예를 배우는 사람은 금위국(金衛國)에 대항해서 싸운 악비(岳飛)에 대하여 모두 숭배의 념을 품고 있었다. 주선진은 바로 악비가 금나라 병사의 군대를 맞이하여 싸웠던 장소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한번은 가 보려고 했다. 악영산은 앞장을 서서 부둣가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외쳤다.

[우리 빨리 그 주선진에 가 봐요! 그리고 나서 개봉성에 가서 점심을 먹어요.]

여러 사람들은 다투어 언덕에 올랐다. 영호충은 뒤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악영산이 외쳤다.

[대사형! 안 가실 생각이예요?]

영호충은 무공이 소실된 후부터 계속 온몸이 권태롭고 피곤하여 걷기다 싫었다. 마음속으로 모두가 배에서 내려 노는 사이에 자기는 그 기회를 큼타 청심보선주를 배우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한 임평지가 악영산의 몸 가까이에 붙어서 친밀하게 구는 꼴을 보자 더욱 마음이 냉정해져서 말했다.

[나는 힘이 없어. 빨리 걸을 수가 없단 말이다.]

악영산은 말했다.

[그래요? 당신은 배에서 좀 쉬도록 하세요. 우리가 개봉에서 몇근의 좋은 술을 받아오지요.]

영호충은 그녀가 임평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동행하여 빠른 걸음으로 모든 사람을 앞질러 나가자 마음이 울적해져 이렇게 생각했다.

(이 청심보선주를 배운 다음에 설령 나의 내상이 낫는다 할지라도 그 내상을 낫게 할 필요가 있을까? 또한 이 금을 타는 수법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

황하의 탁류가 하염없이 흘러가는 것을 쳐다보며 그는 순식간에 인생의 비애가 마치 흐르는 물처럼 끊이지 아니함을 슬퍼했다. 마음이 울적해지고 심기가 도하자 아랫배가 금새 아파왔다.
악영산과 임평지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명서 이곳 저곳의 풍물을 가리키며 낮은 소리로 말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즐겁기 그지없었다.
악부인은 남편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산과 평은 아니가 젊고 어립니다. 이런 천춘 남녀가 같이 걷는다면 이 들판에서는 아무일 없겠지만 그러나 큰 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요.]

악불군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과 나는 이미 나이가 적지 않으니 우리가 그들과 동행을 한다면 그들을 염려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오.]

악 부인은 깔깔 웃으면서 몇 발짝 앞섰다. 앞서서 딸의 몸 가까이에 다가갔다. 네 사람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길을 물어가며 주선진을 향해서 갔다.
주선진에 거의 다 다가갈 무렵 길 옆에 한 채의 절이 있었다.
대문위에 양장군묘(楊將軍廟)라는 황금색의 글씨가 씌어져 있는 액자가 보였다. 악영산은 말했다.

[아버지, 나는 여기가 어떤 절인지 알아요. 이곳이 바로 양재흥(楊再興) 장군의 사당이지요? 그는 소상하(小商河)에서 금나라 병사의 화살을 맞아 죽었죠?]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다. 양 장군께서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받쳤으므로 우리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우리 절에 들어가서 그분의 위용이나 보고 그분의 영령에 참배를 하자꾸나.]

그 나머지 제자들은 그들과 함참 떨어져 잇었기 때문에 네 사람은 그들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절 안으로 들어갔다. 양 장군의 신상은 황금색의 빛이 번쩍거렸다. 악영산은 내심 생각했다.

(이 양 장군께서는 참 잘 생기셨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임평지를 쳐다보았다. 마음속으로 비교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 절 밖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 장군 사당이니까 틀림없이 양재흥을 모셨을 것이야.]
악불군 부부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핼쓱하게 변했다. 두 사람은 칼자루를 거머쥐었다.
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천하에는 양씨성을 가진 장군이 많은데 어찌 반드시 양재흥 장군이라고 하지? 어쩌면 후산금도(後山金刀) 양노영공(楊老令公) 인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양육랑(楊六郞), 양칠랑(楊七郞)인지도 모르잖아?]

또 한 사람이 말했다.

[틀림없이 양가장(楊家將)일 것이고 양육랑, 양칠랑 또는 양종보(楊宗保), 양문광(楊文廣)은 아닐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왜, 양사랑은 안 되는 거야?]

먼저 말한 사람이 말했다.

[양사랑은 번방(番邦)에 투항했으니 절대로 이 절에는 모시지 않았을 것이야.]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나의 항렬이 네째이니까 은연중에 나를 놀리고 내가 번방에 투항할거라고 비웃고 있군. 그렇지!]

한 사람이 말했다.

[너의 항렬과 양사랑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야?]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당신의 항렬은 다섯째이고, 양오랑은 오대산에 출가를 했는데 당신은 왜 중이 되지 않지?]

한 사람이 말했다.

[내가 만약 중이 된다면 당신은 번방에 투항해야만 돼!]
악불군 부부는 맨처음 말을 할 때 그 사람들이 바로 도곡괴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즉시 몸을 날려 딸과 임평지와 함께 신상 뒤로 몸을 피했다. 그 부부는 좌측으로 피하고 악영산과 임평지는 우측으로 피했다.
도곡육선은 절 밖에서 쉬지 않고 언쟁을 했다. 그러나 들어와서 사실을 확인하려 하지는 않았다. 악영산은 속으로 매우 우스웠다.

[뭐 그렇게 다툴 필요가 있을까? 양재흥인지 양사랑인지는들어와서 쳐다보기만 하면 알 수 있을텐데!]

악 부인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살펴보니 모두 다섯 사람이라 내심 생각하기를 나머지 한 사람은 틀림없이 자기 칼에 죽었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자기와 남편은 화산을 멀리 떠나온 것이 이 다섯 괴물의 몸에서 멀리 피하고 그들이 산에 올라와 복수하는 것을 방지하려고 했기 때문인데 뜻밖에도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듯 이곳에서 마주쳤으니 비록 그들이 발견하지 못했다 해도 다른 제자들이 금방 도착할 것이니 어지 이 화를 피할 수 잇단 말인가? 마음속으로 걱정이 태산 같았다.
밖의 도곡오괴들은 갈수록 치열하게 말다툼을 했다.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 들어가보자. 도대체 이 사당에는 어떤 썩어빠진 보살을 모시고 있는가를!]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아하! 보시오! 여기는 분명히 '양공재흥지신(楊公再興之神)' 라고 씌어 있지 않습니까? 틀림없이 양재흥이니다!]

말하는 사람은 바로 도지선(桃枝仙)이었다.
도간선(桃幹仙)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에 씌어져 있는 것은 양공재(楊公再)이지 양재흥이가 아니다. 알고보니 양 장군은 성은 양이고 이름은 공재였구나! 오! 양공재, 양공재, 좋은 이름이군! 암 좋은 이름이고말고!]
도지선은 크게 노해서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이것은 분명히 양재흥이다. 엉터리 말을 하지 말아라! 어째서 양공재이냐?]

도간선은 말을 했다.

[여기 분명히 양공재라고 씌어 있지 않나? 절대로 양재흥이라고 씌어 있지 않단 말이야!]

도근선(桃根仙)은 말했다.

[그렇다면 희지신(興之神) 이 세 글자의 뜻은 무엇일까?]
도엽선(桃葉仙)은 말했다.

[흥(興)은 바로 기쁘다는 뜻이고 흥지신이라 하면 마음이 매우 기쁘다는 뜻이야. 양공재 이 양씨는 죽어서조차도 사람들이 그를 떠받드니 마음이 물론 기쁘겠지.]

도간선은 말했다.

[맞습니다. 참으로 명답입니다.]

도화선(桃花仙)은 말을 했다.

[이곳에는 양칠랑이 모셔져 있을지도 몰라. 틀림없어. 나 도화선은 선경지명을 가지고 있거든! 암, 내 말이 맞을거야!]
도지선은 화를 내며 말했다.

[양재흥이다. 어찌해서 양칠랑이냐?]

도간선도 또한 화를 내며 말했다.

[양재흥이다! 어째서 양칠랑이냐?]

도화선은 말했다.

[세째 형님. 양재흥의 항렬이 몇째입니까?]

도지선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느 모르겠는걸?]

도화선은 말했다.

[양재흥의 항렬은 일곱째이므로 그래서 양칠랑이야. 둘째형님, 양공재의 항렬은 몇째입니까?]

도간선은 말했다.

[옛날에 난 알았었는데 지금은 다 까먹었다.]

도화선은 말을 했다.

[나는 알지. 그의 항렬은 일곱째였어. 그래서 양칠랑이야.]
도근선은 말했다.

[이 신상이 만약에 양재흥이라면 절대로 양공재는 아니고, 만약에 양공재라면 절대로 양재흥이가 아닌데 어째서 양재홍이가 되고 또 양공재가 된단 말이야?]

도엽선은 말했다.

[큰형님도 모르시는 것이 있군요. 이 재(再)자는 무슨 뜻입니까? 이 재 자는 다시 재 자로서 다시 하나 있다는 뜻입니다. 틀림없이 두 사람이고 하나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양공재도 되고 양재흥이도 되지요.]

나머지 네 사람은 일제히 말했다.

[그말이 맞는 것 같군!]

갑자기 도지선은 말을 했다.

[양칠랑의 이름 속에 칠자가 있다. 그는 아들을 일곱을 두었지.
아마 모두들 이것을 알 것이야.]

도근선은 말했다.

[그렇다면 이름에 천자가 있으면 아들을 가 명을 나야 되고 만자가 있다면 아들이 만 명이나 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다섯 사람은 말을 할수록 엉뚱했다. 악영산은 몇버닝고 웃음소리가 밖으로 튀어 나왔으나 억지로 참고 있었다. 도곡오괴가 한참을 다투고 난 다음에 도간선이 갑자기 말했다.


[양칠랑이여! 양칠랑이여! 당신이 내 여섯째 동생을 죽지 않게 보살펴 주신다면 이 어르신이 당신에게 몇번 절을 올린들 어떻겠읍니까? 내가 먼저 절을 하지요!]

말을 하면서 무릎을 끓고 절을 넙죽했다. 악불군 부부는 그 소리를 듣고 서로 눈짓을 하며 얼굴에 기쁜 빛을 띄었다.

(이 자의 말을 들어 보니 그 괴인은 비록 일검을 맞았지만 아직 죽지 않았군!)

이 도곡육선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들이었다. 그 부부는 그들과 어떤 원한을 맺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도지선은 말을 했다.

[만약 여섯째 동생이 죽는다면?]

도간선을 말을 했다.

[그러다면 나는 이 신상을 뭉개버리겠어. 그 다음에 그 위에다 오줌이나 깔기지.]

도화선이 말했다.

[설령 당신이 이양칠랑의 신상을 까뭉긴다 해서 또 오줌을 내깔긴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읍니까? 여섯째는 죽을 것이고 당신은 절을 했으니까 결국은 손해를 볼 것이오.]

도지선은 말했다.

[그말이 맞군. 급히 서둘러 절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우리 먼저 가서 자라아보자. 여섯째의 상처가 낳을 수 있는가? 아니면 고칠 수 없는가? 고칠 수 있으면 다시 와서 절을 하고 고칠 수 없다면 다시 와서 오줌이나 누자.]

도근선은 말했다.

[만약에 고칠 수 있다면 절을 아니해도 고칠 수 있어. 그러므로 절을 할 필요가 없고 만약에 고칠 수 없다면 오줌을 누지 않아도 고칠 수가 없으니 그 오줌을 눌 필요가 없지요.]

도엽선은 말했다.

[여섯째 동생이 낫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오줌을 눌 수가 없어. 오줌을 누지 않는다면 배가 부풀어와서 죽지 않을까?]
도간선은 갑자기 방성대곡했다.

[여섯째가 만약에 살아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들 오줌을 눌 수도 없고 오줌을 누지 않으면 배가 터져 죽을텐데! 배가 터져 죽을텐데!]

그 나머지 네 사람도 크게 울기 시작했다. 도지선은 갑자기 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여섯째 동생이 만약에 죽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금 우는 것도 헛탕이야! 또 손해가 아닌가? 갑시다. 가서 확실히 물어보고 그때가서 울어도 늦지 않을 것이오.]

도화선이 말했다.

[그 말에는 어폐가 있군! 만약 죽지 않는다면 다시 물어도 쓸모가 없지 아니한가?]

다섯 사람은 서로 말다툼을 하면서 바른 걸음으로 사당을 나갔다.
악불군은 말했다.

[그 사람이 살고 죽음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니 내가 가서 사정을 알아 보겠소. 사매께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나를 기다려 주시오.]

악 부인이 말했다.

[당신 혼자서 위험한 곳에 들어가면 도울 사람이 없으니 내가 당신과 함께 동행을 하겠읍니다.]

말하면서 먼저 절 밖으로 나갔다.
악불군은 과거에 큰일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부부가 합심하고 연합해서 대응을 했기 때문에 이때 또한 자기의 아내가 이렇게 말을 하자 떨쳐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사당 밖으로 나온 후 도곡오괴가 멀리서 작은 길을 따라 산허리를 돌아서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은 너무 가까이 뒤따를 수는 없었다. 단지 멀리서 뒤쫓아 갈 뿐이었다. 다행히 다섯 사람의 음성이 몹시 커서 비록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지만 다섯 사람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산길을 따라서 십여 그루의 큰 버드나무를 지나자 한 줄기의 작은 시내 옆에 몇채의 작은 기와집이 있었는데 오괴들의 다투는 소리는 기와집 속에서 들려왔다.
악불군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집 뒤로 돌아갑시다.]

두 부부는 경공자르 펼쳐 멀리서 우측으로 달려갔다. 기와집 뒤에는 일렬로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머드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도곡오괴들의 분노한 목소리가 맹렬히 들려왔다.

[네놈이 여섯째를 죽였구나!]
[어째서...... 어째서 그의 가슴을 파헤쳐 놓았느냐?] [네놈을 죽여 없애겠다!]
[네놈의 가슴을 해부해 버리겠다.]
[아이고! 여섯째야, 네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었구나! 난......
우리들은 영원히 오줌을 누지 않고 너를 따라서 죽겠다!]
악불군은 부부는 크게 놀랬다.

[어째서 이 사람이 여섯째의 가슴을 파헤쳤다고 할까?]
두 사람은 눈짓을 주고받고 허리를 굽혀 창 아래로 다가가서 창의 문틈으로 내부를 살펴보았다. 집안에는 일곱 여덟 개의 등불이 켜져 있고 방 가운데는 하나의 큰 침대가 놓여져 있었다. 침대에는 온몸이 벗겨진 한 명의 남자가 위를 향하여 반듯하게 드러누워 있었는데 가슴팍은 이미 해부되어 선혈이 계속 흐르고 두눈은 꼭 감고 있어 이미 죽은 지 오래 된 듯 했다. 그의 얼굴을 보니 바로 그날 화산에서 몸에 악 부인의 일검을 맞은 도실선이었다. 도곡오괴들은 침대의 곁에 삥 둘러서서 한 명의 키가 작고 통통한 사람을 향해서 외치고 욕지거리를 했다. 이 키가 작고 통통한 사람은 머리통이 상당히 컸다. 쥐수염을 기르고 매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그의 두 손에는 새발간 피가 묻어 있고 우측 손에는 날이 시퍼런 단도가 들려져 있었으며 칼에도 피가 잔뜩 묻혀져 있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도곡오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 뒤에 그는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귀는 다 뀌었습니까?]

도곡오괴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다 뀌었읍니다. 여섯째는 방귀를 뀌었나요?]

그 뚱뚱하고 키가 작은 사람이 말을 했다.

[이 사람이 가슴에 칼을 맞자 당신들은 그에게 금창약을 붙이었소. 그리고 천리 먼길을 마다않고 나에게 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데려왔소. 당신은 도중에 너무 늦게 왔소 상처에는 딱정이가 앉았고 경맥도 바로잡지 못하였소, 그의 생명을 구할 수는 있소. 그러나 경맥이 서로 뒤틀려 설령 구한다손치더라도 무공이 전부 소실되고 하반신을 쓸 수가 없소. 행동을 할 수가 없을 것이오. 이러한 폐물을 낫게 한다한들 무슨 쓸모가 있겠소?]

도근선은 말했다.

[비록 폐인이지만 죽는 것보다 낫지 않겠소?]

그 키가 작은 뚱뚱한 자가 화를 내며 말했다.

[치료를 안 하면 안 하고 하면 낫게 합니다. 아예 폐인을 만들어 놓고 이 늙은이가 어디에다 얼굴을 내밀 수 있겠소? 치료하지 않겠소! 치료하지 않겠소! 당신들은 이 시체를 들고 가시오. 이 늙은이는 절대로 치료하지 않겠소! 울화통이 치미는군! 울화가 치밀어 죽을 지경이군!]

도근선은 말했다.

[당신이 금방 화가나 죽겠다고 했는데 왜 죽지 않았소?]
그 키가 작고 뚱뚱한 자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냉랭하게 말했다.

[나는 벌써 당신들 때문에 울화토이 터져 죽었소. 당신들 내가 죽지 않은 줄 아시오?]

도간선이 말했다.

[당신이 내 여섯째를 살릴 수 없다면 그의 가슴을 파헤쳐 놓았소?]

그 뚱뚱하고 키가 작은 자는 냉랭하게 말했다.

[내 별명이 무엇이라 부르는지 아시오?]

도간선이 말했다.

[당신의 개똥같은 별명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살인명의라고 합니다.]

악불군 부부는 내심 흠칫했다.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면서 똑같이 이런 생각을 했다.

(알고보니 몸체가 괴상하게 샌긴 킥가 작고 뚱뚱한 자가 바로 그 이름도 쟁쟁한 살인명의로구나! 그래 맞다. 온 천하에서 의술이 제일 정통한 사람은 강호에서 말들하기를 이 일평지가 첫째라고 하지 않던가? 여섯 괴인들은 여섯째가 깊은 상처를 받았으니 그에게 고쳐달라고 애원하고 있구나.)

평일지는 냉랭하게 말했다.

[내 별명이 살인명의인 이상 사람하나 죽였다고 무슨 신기한 점이라고 하겠소?]

도화선이 말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뭐 그리 어렵소? 나는 식은 죽 먹기요.
당신은 단지 사람을 죽일 뿐 고쳐내지도 못하면서 명의라는 두 글자의 탈을 쓰고 있군!]

평일지는 말했다.

[누가 나보고 사람을 살릴 수 없다고 그러시오? 내가 이 곧 죽을 사람의 가슴을 해부한 것은 경맥을 다시 접촉하고 치료한 다음에 내공이 상처를 받지 않을 때와 똑같이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이었소. 이것이야말로 살인명의의 위대한 기술이오.]

도곡오괴는 크게 기뻐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알고보니 우리 여섯째를 살리실 수 있군요! 정말로 미안하게 됐소.]

도근선은 말했다.

[당신은 왜...... 어째서 아직도 손을 쓰지 않소? 여섯째의 가슴을 당신이 다 해부해 놓고 지금도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데 빨리 손을 쓰지 않는다면 필시 죽고 말 것이오.]

평일지는 말했다.

[살인명의는 당신이요? 아니면 나요?]

도근선이 말했다.

[물론 당신이요, 그걸 뭘 물어볼 필요가 있오?]

평일지는 말했다.

[내가 살인명의인 이상 당신이 늦었는지 늦지 않았는지 어떻게 아시오? 또 내가 그의 가슴을 해부한 다음 나는 벌써 손을 썼을 것이나 당신들 다섯 명의 귀찮은 존재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멈추지 아니하니 내 어떤 방법으로 치료를 하겠소? 내가 당신들을 보고 양장군 사당에 가서 한참 놀고 다시 우 장군 사당과, 장 장군 사당에 가서 놀라고 했거늘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온 것이오?]
도간선이 말했다.

빨리 손을 써서 상처를 치료해 주십시오. 당신은 지금 혼자서 떠들고 있지 않소? 왜 우리보고 떠뜬다고 말씀을 하시오?]
평일지는 또 다시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바늘과 실을 가져 오너라!]

그가 갑자기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자 도곡오선과 악불군 부부는 모두 깜짝 놀랐다. 한 사람의 키가 크고 삐쩍 마른 부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한 개의 나무로 된 쟁반을 가지고 와서 일언반구도 없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이 부인은 사십대 정도로 얼굴이 네모 났으며 귀가 크고 눈이 깊이 패이고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평일지가 말했다.

[당신들이 이 사람을 구해달라고 청했으니 나의 규칙은 벌써 당신들에게 말했을 것이오. 그렇지요?]

도근선이 말을 했다.

[맞습니다. 우리도 벌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고 맹세도 했소. 누구를 죽이든간에 분부만 하시오. 우리 여섯 형제는 그 명에 따를 것이오.]

평일지는 말했다.

[그렇다면 됐소. 지금은 아직 누구를 죽여야할 지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생각이 나면 그때 당신들에게 말을 하겠소. 당신들은 모두 한쪽 옆에 서 계시오. 한 마디도 말을 하면 아니되고 약간의 말소리만 들려도 난 바로 손을 멈출 것이고 이 사람이 죽든살든간에 난 더 이상 책임을 지지 않겠소.]

도곡의 육형제는 어려서부터 같은 방에서 같이 자고 같은 탁자에서 밥을 먹고 잠시도 입을 쉬지 않고 꿈 속에서도 서로 다툼을 멈추지 아니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모두들 배에 하고 싶은 말을 가득 채우고 금방이라도 중얼중얼대고 싶었으나. 한 마디라도 말을 하면 여섯째의 생명이 없어져 가는 판이니 하는 수없이 참고 있었고 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꼼짝달싹하지 않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평일지는 쟁반에서 큰 바늘을 집더니 투명하고 굵은 선을 뒤에 집어 넣어 도실선의 가슴을 해부해서 벌어진 상처를 봉하기 시작했다. 그의 열 개의 손가락의 마디는 굵고 또 짧았다. 마치 열 개의 오이토막 같았다. 그러나 동작의 민첩하고 바름이란 마치 바늘이 날으는 것 같아 순간 사이에 구촌(九寸)의 길이에 달하는 사처를 꿰맸다. 상처를 다 꿰멘 다음에 또한 여러 개의 자기병 속에서 약가루와 약물을 꺼낸 다음에 상처에다 발라주고 또 도실선의 입술을 벌리고, 그 속에다 몇 종류의 약물을 주입시켰다. 그리고 나서 젖은 걸레로 그의 몸에 있던 피를 닦았다. 키가 크고 삐쩍 마른 부인은 계속 옆에서 도와주고 바늘을 집어주고 약을 집어주는데 동작이 매우 숙련돼 보였다.
평일지가 도곡오선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다섯 사람의 입술은 꾸물꾸물 움직이고 모두가 급히 말하려고 했다.

[이 사람은 아직 살아나지 않았다. 이 사람이 살아난 다음 당신들은 그대 가서 말하시오.]

다섯 사람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은 매우 난감한 듯했다. 평일지는 '험' 소리를 내고 한쪽 옆에 앉았다. 그 부인은 바늘과 실과 약들을 모두 치웠다. 악불군 부부는 창 밖에 숨어서 숨소리조차도 내지 않았다. 이때 실내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없었기 때문에 창밖에서 만약에 약간의 움직임이라도 있다면 곧 안에 있던 많은 사람은 금방 눈치를 챌 것이다.
한참 지난 뒤에 평일지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도실선의 몸 가까이 다가갔다. 갑자기 손바닥을 내밀어 도실선의 머리 정수리 백회혈(百會穴)에 강한 충격을 가했다.여섯 사람은 '아!' 하고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 여섯 명 중에 다섯 명은 도곡오선이요, 다른 한 사람은 침대에 드러누워 지금까지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한 도실선이었다. 도실선은 호흡을 한번 내쉬고 바로 앉았다.
그리고 욕을 해댔다.

[제미랄 놈! 네놈은 왜 내 머리를 때리느냐!]

평일지는 욕을 했다.

[제미랄 놈. 이 어르신께서 진기로 너의 백회혈을 관통시키지 않았다면 네가 어찌 빨리 나을 수 있었단 말이냐?]

도실선이 말했다.

[제미랄 놈! 이 어르신이 빨리 낫고 천천히 낫고 네놈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평일지는 말했다.

[이런 제미랄놈 봤나? 네가 만약에...... 네가 천천히 낫는다면 이 살인명의의 솜씨와 명성이 실추되지 않겠느냐? 네가 만약에 일어나지 않고 내 방에 드러누워 있다면 꼴불견이 아니냐?]
도실선은 말했다.

[제미랄 놈! 네가 정녕 내가 싫다면 이 어르신네께서 가 주지 뭐 그렇게 어려울 게 있느냐?]

그는 몸을 벌렁 일으켜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 도곡오선은 그가 간다고 말을 하고 가버리자 이렇게 신속하게 몸이 나으니 모두들 놀라고기뻐하면서 그의 뒤를 따라 문을 나가 버렸다.
악불군 부부는 마음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평일지의 의술은 과연 듣던대로다. 그의 내력은 정말로 범상치 않다. 조금 전에 도실선 정수리 백회혈에 가한 동작은 정말 대단했다!)

도곡육선이 멀리 사라지자 평일지는 몸을 일으켜 옆에 있는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악불군은 자기 아내에게 손짓했다. 두 사람은 발소리를 죽이고 살며시 빠져나갔다.
그 집에서 수십 장 떨어진 곳에 와서야 비로소 빠른 걸음으로 당났다.
악 부인이 말했다.

[그 살인명의 무공은 정말 무섭군요. 그의 행동을 보니 옳은 일을 할 줄 모르는 사악한 인물 같아요.]

악불군은 말했다.

[도곡육괴가 살아 있는 이상 이 세상에는 좋은 일보다 시끄러운 일이 더 많은게 당연하오. 우리는 빨리 이곳을 떠납시다. 그들과 시비를 일으킬 이유가 없지 않소?]

악 부인은 '응' 하는 콧소리를 냈다. 그녀는 이 몇개월 사이에 받은 고통과 서러움이 너무도 많았다. 남편이 오악검파중의 일파인 화산파의 장문인인데도 이리저리 피해다녀야만 되는 처지가 되니 천하가 비록 크다고 해도 그들의몸을 둘 곳이 없었다. 그들 부부는 어떤 말이든지 주고받는 사이였으나 화제가 도곡육선에 이르면 서로 피하고 말하지 않았다.
이때 도실선이 결국 죽지 않았음을 생각하자 기쁘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기본 이유는 도곡육선과 원수관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양 장군의 사당에 도착해 보니 악영산과 임평지, 노덕약 등 모든 제자들이 모두 뒷켠에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악불군은 말했다.

[배로 돌아가자.]

모든 사람들이 이미 도곡오괴들이 이곳에 나타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총총히 배로 돌아갔다.
닻을 올리고 배가 출항하려고 할 때 갑자기 도곡오선이 일제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 영호충! 너는 어디에 있는가?]

악불군 부부와 화산의 여러 제자들의 얼굴색이 일제히 변했다.
여러 사람이 급한 걸음으로 부둣가로 달려왔다. 도곡오선 외에 또 한 사람은 바로 평일지였다. 도곡오선은 악불군 부부를 알아보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서 그를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환호했다. 다섯 사람은 몸을 날려 배 위로 뛰어올랐다.
악 부인은 즉시 장검을 뽑아 힘을 다해 도근선의 가슴을 향해 내리쳤다. 악불군 역시 이미 장검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에 쨍그랑 소리를 내면서 아내의 칼날을 제지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뱃머리가 움직여 도곡오선은 이미 뱃머리에 서 있었다.
도근선은 큰 소리로 말했다.

[영호충! 어디 숨어 있는가? 왜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가?]
영호충은 대노해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네놈들을 무서워하는 줄 아느냐? 누가 피했단 말이냐?]
바로 이때 선체가 움직이며 뱃머리에또 한 사람이 늘어났다.
바로 살인명의 평일지였다.
악불군은 내심 깜짝 놀랐다.

(나와 사매가 배에 막 돌아왔는데 이 땅달보가 왜 뒤따라왔지? 나와 우리 두 사람이 창 밖에서 그들의 행적을 몰래 훔쳐보았음을 알고 있는 것일까? 도곡오괴들도 처치하기 곤란한데 더욱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 달라 붙었으니 우리 부부의 생명은 오늘 이 개봉땅에서 사라지나 보다!)

평일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분이 영호 현제이시오?]

말투가 심히 겸손했다.
영호충은 천천히 뱃머리로 걸어가 말했다.

[제가 영호충입니다. 각하의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또한 저에게 무슨 하문할 일이 있으신지요?]

평일지는 그를 쳐다보고 위 아래를 가름질하며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당신 상처를 치료해주라고 부탁하셨소.]
그리고 손을 내밀어 그의 손목을 잡았다. 식지로 그의 맥을 짚는 순간 갑자기 양쪽 눈썹을 찌푸리며 '억' 하는 소리를 냈다. 한참 후에 양쪽 눈썹이 찡그려지며 가운데로 모아졌다. 그는 다시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 왼손으로 쉬지 않고 머리를긁적긁적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한참 후에 한 손으로 영호충의 오른손을 잡고 맥을 짚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품을 크게 하며 말했다.

[그거 참 이상하구나! 이 몸이 평생 이런 경우를 만나지 못했는데!]

도근선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씀이오? 그가 심경(心經)에 상처를 입어 나는 벌써 내공으로 그를 치료해준 적이 있소.]

도간선도 말했다.

[그 무슨 말씀입니까? 그가 심경에 상처를 받다니요 틀림없이 폐경(肺經)이 온전치 못해 그러할 것입니다. 만일 내가 나의 진기로 그의 폐경의 여러 혈도를 통하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면 이놈이 어찌 오늘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소?]

나머지 도곡오괴는 남에게 뒤질세라 너도나도 자기가 잘 했다고 고집을 세우며 자기의 공을 치사했다.
평일지는 튼 소리로 꾸짖었다.

[헛소리들 말아라! 헛소리 말아!]

도근선도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신이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오! 어째서 우리 다섯 형제보고 헛소리를 한다고 하시오?]

평일지는 말했다.

[그건 너희 다섯 형제가 헛소리를하고 있는 것이다. 영호 현제의 체내에 비교적 강한 두 줄기의 진기가 있는데 아마 불계화상이 주입시킨 것 같고 또 다른 여섯 줄기의 비교적 약한 진기가 있는데 아마 내 생각에는 당신네 여섯 형제들의 것 같소.]

악불군 부부는 서로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 평일지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가 맥을 짚자 마자 체내에 여덟 개의 서로 다른 진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낼 뿐만 아니라 그 진기가 어디서 연유되었는지를 알아맞추는구나?)
도간선은 화가 나 말했다.

[우리 여섯 사람의 것이약하고 불계대머리의 것이 강하다고? 틀렸어! 우리들 것이 강하고 그의 것이 약한 거야!]

평일지는 냉소하며 말했다.

[창피한 줄도 모르는군! 그 한 사람의 두 줄기 진기가 너희 여섯 사람의 진기를 누르고 있는데 그래도 너희들 것이 강하다고 우겨댈거야? 불계화상, 이놈의 늙은이는 무공은 강하지만 너무 멍청해! 제기랄놈! 늙어빠진 놈!]

도화선은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 영호충의 우측손의 맥을 짚고 말했다.

[내가 맥을 짚어본 바로는 아무래도 도곡육선의 진기가 불계화상의 진기를 눌러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어......]

그러다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그 손가락이 사람에게 물린 것처럼 얼얼했다.

[아이쿠! 제기랄!]

평일지는 껄껄 웃으며 매우 의기양양해 했다. 여러 사람은 그가 상승내공으로 영호충의 몸을 빌려 힘을 넣어 매섭게 도화선을 놀려주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평일지는 한참 웃더니 얼굴색이 갑자기 엄숙해지며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선찬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누구도 한 마디도 해서는 안 된다.]

도엽선은 말했다.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이오. 우리가 왜 당신의 말을 들어야 하오?]

평일지는 말했다.

[너희들은 맹세를 했지? 나를 위해 사람 하나를 죽이겠다고. 그렇지 아니한가?]

도지선은 말했다.

[맞소. 우리는 단지 당신을 위해 사람 하나를 죽이기로 했지.
당신 말을 듣는다고는 하지 않았소.]

평일지는 말했다.

[만약 내가 너희들에게 도실선을 죽이라고 한다면 너희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도곡오선은 일제히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런 이치가 어디 있소? 당신은 그를 살려 주었는데 어찌 우리들로 하여금 그를 죽이라고 하오?]

평일지는 말했다.

[당신 다섯 사람은 나에게 어떤 맹세를 했는가?]

도근선은 말했다.

[우리들은 승낙을 했지. 만약 당신이 우리들 형제인 도실선을 살려 준다면 당신이 우리에게 어떤 사람을 죽이라고 분부하면 누구든지 간에 그대로 따를 것이고 절대로 핑계를 대지 않는다고 했지.]
[맞소. 그럼 내가 당신들의 형제 하나를 구해 주었는가? 구해주지 않았는가?]

도화선은 말했다.

[살려 주었지요.]

평일지는 말했다.

[그럼 도실선은 사람인가? 사람이 아닌가?]

도엽선은 말했다.

[물론 사람이지. 아니면 그가 귀신이란 말이오?]

평일지는 말했다.

[좋다. 그럼 내가 너희들에게 사람 하나를 죽이라 하겠다. 그 사람은 바로 도실선이다.]

도곡오선은 서로를 텨다보고 있었다. 이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한 일이었으나 반박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평일지는 말했다.

[너희들이 정말 도실선을 죽이고 싶지 않다면 어느 정도 융통성은 있다. 너희들은 선창에 들어가 잔소리 말고 앉아 있어라.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하거나 움직이면 안 된다.]

도곡오선은 연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다섯 사람 모두 두 손을 무릎에 대고 다소곳이 앉아 잠을 자라고 하면 자고 말을 잘 들으라고 하면 말 잘 듣는 어린애들처럼 평일지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평 선배님, 제가 듣건대 당신은 사람을 고쳐 줄 때 어떤 규칙이 있다고 했읍니다. 사람을 살려낸 후 그 사람에게 당신을 대신해서 한 사람을 죽이라고 한다면서요?]

평일지는 말했다.

[그 말이 맞네. 정말 그런 규칙이 있지.]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당신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나를 치료할 필요가 없읍니다.]

평일지는 이 말을 듣자 하하하 소리를 내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영호충의 모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치 어떤 괴물이나 짐승을 관찰하는 것 같았다.
한참 후 그는 말했다.

[나는 치료하지 않겠다. 자네의 병이 중하여 나는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내가 치료할 수 있다손치더라도 자네는 나를 위해 한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릴 것이 아닌가? 난 결코 자네를 치료해주지 않겠다.]

영호충은 악영산의 자기에 대한 정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 이후 살아가는 것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세상에서 사람을 회생시킬 수 있다는 명의라고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 자기 병이 이미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단정하자, 자기도 모르게 처량한 생각이 엄습해 왔다.
악불군 부부는 서로 쳐다보며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살인명의를 움직여 호나자가 있는 곳에 오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람은 영호충과 어떤 관계일까?)

평일지는 말했다.

[영호 현제, 자네의 체내에는 여덟 줄기의 이상한 지기가 있는데 토해낼 수도 없고 변화시킬 수도 없고 감화시킬 수도 없고 네압할 수도 없다네. 정말로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네. 내가 부탁을 받아 자네를 치료한다고 하여 있는 힘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아니네. 실질적으로 자네의 병의 원인은 진기와 관계가 있어 침술이나 약종류로 어떤 효과를 바랄 수는 없네. 이 몸이 의술을 베푼 이래 지금까지 이런 병세는 본 적이 없네. 나는 무능하여 힘을 쓸 수 없으니 정말로 창피할 뿐이네.]

그러면서 품 속에서 자기병 하나를 꺼내 그 속에서 주홍색의 알약 열 알을 끄집어 내며 말했다.

[이 열 알의 진심리기환(鎭心理氣丸)은 명귀한 약재가 많이 들어 있고 만들기도 쉽지 않다네. 자네가 십 일마다 한 알씩 복용한다면 백 일 동안 생명을 이어갈 수 있네.]

영호충은 두 손으로 받아들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평일지는 몸을 돌려 언덕으로 오르려고 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병 속에 두 알이 남았으니 이것마저 자네에게 주겠네.]
영호충은 받지 않으며 말했다.

[선배님이 이렇게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니 틀림없이 그 약효가 뛰어날 것입니다. 저를 주느니 남기셨다가 다른 사람에게 주십시오. 제가 조금 더 산다 한들 무슨 좋은 일이 있겠읍니까?]
평자리지는 고개를 반쯤 위로 빼고 그를 한참 보더니 말했다.

[생사를 초월하는 자가 진정한 사내대장부라네. 어쩐지 어쩐지 아...... 아깝다! 아가워! 미안하고 창피하다!]

그러면서 큰 머리를 흔들흔들 거리며 언덕을 뛰어올라 바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는 온다고 하면 오고 간다면 가는 사라이라 화산파의 장문인은 마치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은 듯했다.
악불군은 무척 화가 났다. 그러나 선창에는 아직도 다섯 명의 목숨을 앗자가는 온신(瘟神)들이 앉아 있어서 어떻게 그들을 쫓아 보낼까를 궁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곡오선들은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눈으로 코를 보고 코는 배꼽을 보고 있었다. 마치 늙은 중이 정좌하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선장에게 명해 배를 떠나가게 한다면 이 다섯 명의 전염병들을 함께 데려가야 하고 만약에 배가 떠나지 않는다면 그들이 언제까지 앉아 있을런지 알수 없었고 또 그들이 발작하여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악 부인이 도실선에게 일검을 가한 복수를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노덕약, 악영산 등은 친히 그들이 사람을 찢어 죽이던 광경을 보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때의 무서움이 남아 있어 각자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고 그 누구도 다섯 명을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몸을 돌려 선창으로 들어가며 도곡오선에세 말했다.

[보시오. 당신들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소?]

도근선은 말했다.

[꼼짝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
영호충은 말했다.

[우리는 곧 배를 띄워야 하오. 빨리 언덕으로 오르시오.]
도간선은 말했다.

[평자리지가 우리들에게 선창에서 꼼짝도 하지 말고 앉아 있으라고 했다. 아무 말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라고 했어. 그렇지 않으면 우리리 형제를 죽이라고 할거야. 그래서 우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것이고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을 것이오.]
영호충은 웃음이 나와 참을 수 없었다.

[평 의원께선 벌써 배를 떠나 언덕에 오르셨소. 당신들은 말을 할 수도 있고 움직일 수도 있소.]

도화선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안 돼!안 돼! 만약 그가 우리가 말하고 움직이는 것을 본다면 정말로 일이 크게 벌어질 거야.]

갑자기 언덕에서 쉰 듯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사람 같지도 않고 귀신 같지도 않은 다섯 놈은 어디 있느냐?]
도근선은 말했다.

[누가 우리를 부르는 것 같은데!]

도간선은 말했다.

[어째서 우리를 부르는 것이라고 하느냐? 우리가 어째서 사람 같지도 않고 귀신 같지도 않단 말이냐?]

그 사람은 또 외치듯 말했다.

[여기에 사람 같지도 않고 귀신 같지도 않은 물건이 또 하나 있다. 평 대국께서 그를 치료해 주셨다. 너흴르이 이 물건이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 만약 내가 손을 놓는다면 이 물건은 즉시 황하강물 속에 빠뜨려져 물고기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도곡오선은 그 소리를 듣자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나란히 선창을 빠져나가 언덕에 섰다.
평일지가 상처를 꿰맬 때 옆에서 도와주던 중년부인이 똑바로 서서 왼손을 쭉 내밀고 있었는데 그녀의 손아귀엔 도실선이 멱살을 잡힌 채 대롱대롱 들려져 있었다. 이 부인의 얼굴은 병색이 있는 듯했으나 힘은 좋아서 한 손으로 도실선을 들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들지 않은 듯 조금도 힘겨워하지 않았다.
도근선은 급히 말했다.

[물론 필요하지! 우리가 막내를 받아들이지 않을 까닭이 있겠어?]

도간선은 말했다.

[너는 어째서 우리보고 사람 같지도 않고 귀신 같지도 않다고 했느냐?]

도실선은 매달린 채 말했다.

[이 여편네의 꼴을 보라구! 우리보다 더욱 사람 같지도 않게 생겨 먹었잖아!]

원래 도실선은 평일지가 상처를 꿰매주고 영단묘약(靈丹妙藥)을 복용시킨 후 그의 정수리를 한대 쳐 진기를 집어넣어 주자 바로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피를 너무 쏟은 끝이라 또 혼절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 중년부인이 그를 다시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의 상처는 중했지만 주둥이는 여전히 살아 잇어서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부인이 냉랭히 말했다.

[당신은 평 의원께서 평생 무엇을 제일 무서워하고 있는지 아시오?]

도곡육선은 일제히 말했다.

[모르오. 그가 누구를 무서워 하오?]

그 부인은 말했다.

[그는 마누라를 제일 무서워하오.]

도곡육선은 깔깔 웃으며 일제히 말했다.

[그렇게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땅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정말로 마누라를 무서워 한다니. 하하하! 정말 웃기는구나! 정말 웃기는 일이야!]

그 부인은 냉랭히 말했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가? 내가 바로 그의 마누라야!]

도곡육선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 부인이 말했다.

[내가 어떤 분부를 하면 그 사람은 감히 듣지 않고는 못배기지.
내가 누구를 죽이라고 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너희들에게 죽이라고 할 것이다.]

도곡육선은 일제히 말했다.

[녜, 녜, 그렇겠지요. 평 부인께선 누구를 죽이고 싶소?]
그 부인의 눈빛을 선창을 향했다가 악불군에게 머물렀다가 다시 악 부인을 바라보더니 악영산에게로 눈빛이 흘러갔다. 그리고 화산파의 여러 제자에게로 눈을 돌렸다. 모든 사람은 그녀의 눈빛과 마주치며 몰골이 송연해졌다. 모든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추하게 생기고 핏기가 하나도 없는 그 부인이 누구를 지적하면 도곡육선이 그 사람을 즉시 찢어 죽인다는 사실을......
악불군 같은 고수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 부인은 눈빛을 천천히 거두어들이고 다시 도곡육선을 쳐다보았다.
여섯 형제도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 부인이 '흥' 하고 코웃음 치자 도곡육선이 일제히 말했다.

[녜, 녜.]

그 부인은 '쳇!' 하는 소리를 냈다. 도곡육선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녜녜, 녜녜.]

그 부인이 말했다.

[나는 아직 누구를 죽이겠다고 작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남편은 말하기를 이 배 안에는 영호충 영호 공자가 계시는데 내 남편은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하더군. 너희들은 그를 잘 모시도록 해라. 그가 죽을 때까지 모셔야 한다. 그가 뭐라고 하면 그 말에 따르고 절대 반항하면 안 된다.]

도곡육선은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가 죽을 때까지 보살피라고요?]

평 부인은 말했다.

[맞아,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정중히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백 일 밖에 살지 못하니 너희들은 그 백 일간 그의 모든 분부를 따라야 한다.]

도곡육선은 영호충이 백 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에 모두 기뻐했다. 그리고 일제히 말했다.

[백 일 동안 그를 보살핀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지.]
영호충은 말했다.

[평 선배님의 호의에 몸둘 바를 모르겠읍니다. 도곡육선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읍니다. 그들 보고 배에서 내리게 해주십시오.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평 부인의 얼굴엔 아무런 희노애락의 표정이 없었다.

[평 대부께서 말씀하시길 영호 공자의 병은 이 여섯 사람이 만들었고, 평 대부가 손을 쓸 수 없게 만들어 놓았고 그래서 체면이 손상되고 또한 부탁받은 사람에게 할 말이 없게 만들었으니 이 여섯 멍청이들에게 중한 벌을 내려야 한다고 하셨오. 내 남편은 이들이 도실선을 죽이도록 명령을 내려야 하지만 아량을 베풀어 영호 공자를 모시게 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말했다.

[이 여섯 멍청이들이 영호 공자의 명을 거역한다면 평 대부게서는 즉시 여섯 중의 한 명의 목숨을 요구할 것이오.]

도화선은 말했다.

[영호형의 상처는 우리들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니 우리가 그를 보살핀다한들 그것이 뭐 대단한 일이겠소? 대장부는 사리를 분명히 해야하오.]

도지선이 말했다.

[사내대장부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도 불사하는데 하물며 그의 상처를 좀 보살피는 것인데요, 뭘.]

도실선도 말했다.

[나의 상처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하고 그도 보살핌이 필요하니 서로서로가 좋은 일이지.]

도간선은 말했다.

[하물며 백 일인데 뭐. 날짜도 제한되어 있고.]

도근선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옛사람들은 친구가 병이 나면 천리도 마다 않고 달려간다고 했소. 우리 형제들은 불의를 보고 칼을 들어 서롤 돕는데......]
평 부인은 눈을 흘기더니 돌아갔다.
도지선과 도간선은 도실선을 받아 들고 배로 뛰어들었다. 도근선 등도 따라들어오면서 외쳤다.

[충항하시오! 출항하시오!]

영호충은 그들과 동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섯 도형께서 나와 동행을 하실 때 우리 사부님과 사모님께 반드시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 첫번째의 분부입니다.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들의 보살핌을 받지 않겠소.]
도엽선은 말했다.

[도곡육선이 정인군자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야. 당신 사부와 사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신 아들 손자를 보고도 우리는 깍듯이 예를 올려야해.]

영호충은 자칭 정인군자라고 하는 소리를 듣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악불군에게 말했다.

[사부님, 이 여섯분이 우리와 함께 동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사부님의 생각은 어떠하신가요?]

악불군은 생각했다.

(이 여섯 사람은 지금 화산파 사람을 못살게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같은 배에 있으면 마음속의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나 그들을 쫓아보낼 수는 없다. 이 여섯 명의 무공이 높고 정신이 돈 사람 같기 때문에 지혜를 짜내 상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그들이 같이 가는 것은 좋으나 나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니 그들이 떠들거나 다투지 않도록 해다오.]

도간선이 말했다.

[악 선생의 그런 말은 잘못이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왜 주둥이를 다물고 살아야 하오? 이 주둥아리는 밥먹는 것 외에 말을 해야 하오. 왜 귀가 두 개 있는지 아시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함이오. 당신이 조용한 것을 좋아하면 그것은 조물주가 당신의 입을 만든 것에 반발하는 것이고 두 귀를 만들어 준 데에 반발하는 것이오.]

악불군은 이 사람과 말을 하면 다섯 형제가 끼어들어 언제까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힘으로나 입으로나 그들을 이길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여보게, 사공, 배를 띄우게.]

도엽선이 말했다.

[악 선생, 당신이 사공들에게 배를 띄우라고 말씀하실때 어째서 입을 벌려 말을 하는 것이오. 정말 당신이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손짓으로 그들에게 배를 띄우라고 해야하지 않겠소?]
도간선은 말했다.

[사공들이 뒷편에 있고 악 선생은 중앙에 있으니 손짓을 해도 사공들은 볼 수가 없어. 그러니까 입으로 말한 것이지.]
도엽선이 말했다.

[그렇다면 뒷쪽으로 가서 손짓을 하면 되잖아?]

도화선은 말했다.

[만약 사공들이 그의 손짓을 알아듣지 못하고 배를 띄우라는 뜻을 배를 뒤집으라는 뜻으로 알아들으면 그건 큰일이야.]
도곡육선들의 말싸움이 계속되는 한 듯 영호충과 도곡육선을 둘러 본 후 서로 똑같은 일을 생각했다.

(평일지가 말하기를 사람에게 부탁을 받고 영호충을 고쳐주러 왔다는데 아마도 부탁을 한 사람은 무림에서 지위가 높을 것이다.
화산파 장문인을 안중에 주지 애으면서도 화산파의 일개 제자에게 예를 다하니 누구 부탁을 받고 충아를 치료해 주려고 했던 것일까? 그는 불계화상을 제기랄놈! 늙어빠진 놈이라고 욕했으니 그것으로 보아 불꼐화상의 부탁 같지도 않구나!)

옛날 같았다면 그 부부는 벌써 영호충을 불러다가 자세히 물어보았을 것이나, 지금은 사제간에 틈이 생겨 두 사람은 영호충에게물어볼 처지가 못 되었다.
악 부인은 강호에서 첫째 명의라고 평이 난 평일지마저 영호충의 병을 치료할 수 없고 그가 단지 백 일 동안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는 말을 생각해내곤 마음이 괴로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배는 순풍에 돛단 듯이 빠르게 나아가 그날 저녁에는 난봉(蘭封)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했다.
사공들은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었다.
각자 밥을 먹으려고 할 때 갑자기 언덕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씀 좀 묻겠읍니다. 화산파의 여러 영웅들께서 이 배에 타고 계십니까?]

악불군이 미처 대답을 하기 전에 도지선이 얼른 대답했다.

[여섯 분의 대영웅 도곡육선과 화산파의 인물들이 이 배 안에 있읍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 사람은 기뻐서 말했다.

[아! 참 잘 되었읍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낮 하루밤을 기다렸읍니다. 자자, 빨리 가져와라.]

열다섯 명의 장정들이 두 줄로 나누어 언덕에 있는 한 초가집에서 걸어 나왔다.
모든 사람들이 손에는 붉은 칠을 한 상자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빈손으로 있던 한 푸른옷을 입은 사내가 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의 상전께서는 영호소협이 몸이 불편하시다는 말을 듣고 심히 걱정하고 계십니다. 원래 친히 와서 문안을 여쭈어야 하겠지만 이 시간에 맞추어 올 수가 없어 비둘기를 날려 우리들에게 편지를 보내셨읍니다. 소인들에게 명하기를 정중한 예를 올리라고 하셨으니 영호소협께서는 기쁘게 받아주십시오.]

사내들은 일제히 뱃머리로 걸어와 십여 개의 상자를 배 위에 올려놓았다.
영호충은 의아해서 말했다.

[귀하의 상전께서는 누구십니까? 이렇게 대접을 하시니 영호충은 부끄럽고 몸둘바를 모르겠읍니다.]

그 사내는 말했다.

[영호소협게선 덕망이 높으시니 틀림없이 건강이 회복되실 것입니다. 그러니 몸을 잘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예를 행한 후 십여 명의 사내들을 데리고 물러갔다.
영호충은 말했다.

[누가 나에게 예물을 보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이상하고 희한하구나.]

도곡오선은 벌써 참을 수 없어 일제히 말했다.

[먼저 열어보고 구경이나 합시다.]

다섯 사람의 손과 발이 일제히 붉은 칠을 한 상자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 상자에는 맛있는 간식들이 가득 담겨져 있었고 어떤 것은 닭고기 쇠고기들이었고, 더우기 인삼 녹용이니, 제비둥지, 은이(銀耳)버섯 같은 진귀한 약재가 들어있었다.
마지막 두 상자에는 크고 작은 금덩이와 은덩어리가 담겨져 있었는데 틀림없이 영호충의 노비에 쓰라고 한 것이었고 그들이 변변치 않다고 한 이 물건들은 정말 엄청나게 귀하고 값비싼 것이었다.
도곡오선들은 과자와 꿀을 입힌 과일들을 보자 넝큼 손에 들어 입에 쑤셔넣으며 크게 외쳤다.

[맛있다! 참 맛있군!]

영호충은 십여 개의 상자를 이리뒤적 저리뒤적해 보았으나 편지나 명함 같은 것이 없었고, 또한 어떤 흔적이나 꽃무늬도 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 선물을 보냈을까?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단서를 찾지 못해서 영호충은 악불군을 향해 말했다.

[사부님 이 제자는 정말 무엇이 무엇인지 통 모르겠읍니다. 이 예물을 보낸 사람은 악의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또 장난인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간식을 들어 먼저 사부님과 사모님께 드린 다음 차례로 여러 사제와 사매들에게 분배해 주었다.
악불군은 도곡육선이 이런 음식을 먹고 아무런 이상이 없자, 이 음식에는 어떤 독약이 들어 있지 않음을 알고 영호충에게 말했다.

[너의 강호친구들 중에 이 일대에 사는 사람이 있느냐?]
영호충은 한참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없읍니다.]

그때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여덟 팔의 말이 강가를 따라서 달려오면서 한사람이 외쳤다.

[화산파 영호소협께서 이곳에 계십니까?]

도곡육선은 기쁜 나머지 환호성을 지르며 말했다.

[예, 여기 있읍니다.! 여기 있읍니다! 또 무슨 맛있는 음식을 가져오십니까?]

그 사람은 외쳤다.

[저의 방주께서는 영호소협이 이곳 난봉에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또한 영호서협께서 약주를 좋아하신다는 소문을 익히 아시고 우리들에게 명해서 열다섯 단지의 오래 묵은 술을 보내라 하셔서 여기 가지고 왔읍니다. 영호소협게선 배에 놓고 잡수십시오.]
여덟 마리의 말은 가까이 달려왔다 말 한 필마다 두 단지의 술이 실려져 있었다. 술단지 중의 어떤 것들은 극품공주(極品貢酒)라고 씌어져 있었고, 어떤 단지 위에는 삼과량분(三鍋良汾)이라고 씌어져 있었으며 또 어떤 것에는 소흥장원홍(紹興狀元紅)이라고 씌어져 있었으며 이 열다섯 단지의 술들은 각기 달랐다.
영호충은 많은 술을 보자 누구보다 기뻐했다. 급히 뱃머리로 나가 읍을 하며 말했다.

[저의 견문이 좁아 그러하오니 당신들은 어느 방에 속하는지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형씨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그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

[본방의 방주는 수차 분부하셨읍니다. 절대로 영호소협에겐 신분을 밝히지 말라고요. 그 어르신은 이 약간의 선물을 드리면서 변변치 못한 선물을 주면서 신분을 밝히기가 뭐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가 좌측 손으로 손짓을 하자 바로 같이 온 사내들은 술단지를 하나씩 하나씩 옮겨 와 뱃머리에 놓았다.
악불군은 선창에서 이 여덟 명의 사내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모두가 손놀림이 빠르고 한 손에 술단지 하나씩을 들고도 가볍게 몸을 흔드니 뱃머리에 올라섰다. 이 여덟 명의 사내들은 특별히 어떤 무공을 갖춘 것 같지 않았고 틀림없이 여덟 명이 한 문파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보아하니 같은 방이지만 서로 소속이다른 것 같았다. 여덟 명은 열여섯 단지의 술을 뱃머리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여 영호충에게 절을 한 다음 곧바로 말에 올라타고 가버렸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이 일은 정말 이상하군. 누가 이 제자하고 장난을 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많은 술을 보내온 것 같아요.]
악불군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전백광이 아닐까? 또 불꼐화상이 아닐런지?]
영호충은 말했다.

[맞습니다. 이 두 사람의 행적이 예측을 불허하니 혹시 그들일지 모르겠읍니다. 이봐요, 도곡육선. 여기 많은 술이 있소. 당신들은 마실거요? 안 마실 거요?]

도곡육선은 웃으며 말했다.

[마시지! 마셔! 안 마실 이유가 어디 있는가?]

도근선과 도간선 두 사람은 술단지를 들고 와 흙으로 봉한 뚜껑을 열고 그릇에 술을 따랐다. 과연 향기가 좋았다.
여섯 사람은 영호충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꿀꺽꿀꺽 마셔댔다.
영호충은 술을 한 그릇 퍼 악불군에게 갖다주며 말했다.

[사부님, 맛 좀 보십시오. 이 술은 정말로 괜찮습니다.]
악불군은 살며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음.]

노덕약은 말했다.

[사부님, 사람을 조심하고 음식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 술은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데 어찌 술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겠읍니까?]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충아, 아무래도 조심해야겠다.]

영호충은 향기로운 술내음이 코에 닿자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웃으며 말했다.

[제자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 술에 독이 있든 없든 그것이 대수이겠읍니까?]

두 손에 술잔을 받쳐들고 몇 모금에 한 그릇을 싹 비워버렸다.
그리고 감탄하며 말했다.

[좋은 술이다! 좋은 술이다!]


언덕에서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칭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술이야! 암 좋은 술이야!]

영호충은 눈을 들어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버드나무 아래에 옷을 남루하게 입은 별볼일 없는 서생(書生)이 오른손에 한 자루의 낡은 부채를 들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배에서 날아오는 술 내음을 맡고 있었다.

[과연 좋은 술이야!]

영호충은 웃었다.

[형씨께선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어찌 이 술의 좋고 나쁨을 아시오?]

그 서생은 말했다.

[이 술냄새를 맡아보니 이 술은 육십 이 년 동안 묵었던 삼과두분주(三鍋頭汾酒)라는 걸 알 수 있소. 그러니 어찌 안 좋을 리 있겠읍니까?]

영호충은 녹죽옹으로부터 가르침을 맏아 주도의 지식이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어 이 육십 년 정도 묵은 삼과두보주라는 것을 벌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지 않고 많지도 않은 딱 육십이 년 이라는 기간을 알아 맞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 서생이 조금 과장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웃으며 말했다.

[형씨께선 싫지 않으시다면 좀 건너 오셔서 몇 잔을 드시지요?]
그 서생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당신과 나는 평소 알지 못하고 오다가다 만났을 뿐인데 술내음을 맡는 것도 미안한 일이거늘 어찌 다시 술을 마시려고 하겠소? 그건 절대 안 되는 일이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 서생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사해지내(四海之內)는 모두 형제라 하지 않았소? 형씨의 말씀을 들으니 술에 있어서는 선배인 것 같소. 제가 가르침을 청하고자 하니 배로 건너오셔서 한 잔 드시기를 사양하지 마시오.]
그 서생은 천천히 건너왔다. 아주 깊게 읍을 한 후 말했다.

[저의 성은 조(祖)이고 조상할 때 조씨이며 그 옛날 새벽에 닭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춤을 추었다는 조적(祖?)이라는 분이 바로 저의 먼 할아버지외다. 저의 이름은 천추(千秋)라고 합니다.
천추라는 뜻은 백세천추(百歲千秋)라는 뜻이지요. 감히 묻건데 형씨께선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저의 성은 영호라는 복성이고 이름은 외자로 충자입니다.]
그 조천추는 말했다.

[성이 참 좋습니다 성이 참 좋아요! 이름도 좋고요!]
말을 하면서 발판을 건너 뱃머리에 올라섰다.
영호충은 잔잔히 웃으며 생각했다.

(내가 술을 권하니 무조건 좋아 보이는 모양이군!)

그는 즉시 술 한 그릇을 떠서 조천추에게 건네주었다.

[자 한 잔 드시오.]

조천추는 나이가 오십여 세 되어 보였으며 얼굴색은 누렇고, 주독이 올라 붉게된 코하며, 촛점이 흐려져 있는 두눈에 드문드문 몇 가닥의 수염이 나 있었다.
그의 옷은 때가 절어 반지르르했다. 두 손으로 잔을 받을 때 손을 보니 열 손가락의 손톱에는 때가 시커멓게 끼어 있었다.
조천추는 영호충이술을 건네는 것을 보자 받으려들지 않고 말했다.

[영호충, 비록 좋은 술은 있으나 좋은 그릇이 없군요. 아깝습니다. 아깝습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빈손으로 여행하는 중이니 이렇소. 조 선생께선 개의치 마시고 한 잔 드시구료.]

조천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절대로 안 되는 일이오. 형시께서 주도(酒道)에 대해 이렇게 무심하시니 틀림없이 주도의 삼매(三昧)를 모르시는 것 같소이다. 술을 마실 때는 반드시 술그릇을 따져야 합니다. 어떤 술을 마실 대나 그에 맞는 술잔을 사용해야 되지요. 분주(汾酒)를 마실 때는 응당히 옥배(玉杯)를 사용해야 합니다. 당나라 때의 시에는 이렇게 적혀 있소. 옥완성래호박광(玉碗盛來?珀光 ; 옥그릇으로 술을 담으니 행기가 그윽하다!) 이 싯귀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옥으로 만든 그릇과 옥으로 만든 술잔은 술맛을 더 해주는 법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녜, 그렇군요.]

조천추는 한 단지의 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단지에 들어 있는 술은 관외백주(關外白酒)이오. 술맛은 좋으나 단지 한가지, 향기가 부족하오. 그래서 이 술을 마실 대 제일 좋은 것은 서각배(犀角杯)에 담아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맛은 무엇하고도 비교할 수 없소. 옥으로 만든 술잔은 술의 색을 아름답게 해주고 서각배 즉 코불소의 코뿔로 만든 술잔은 향기를 첨가시켜 주지요. 옛사람의 말씀이 틀림없읍니다.]

영호충은 낙양에서 녹죽옹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어 천하의 미주에 대한 내력이나 냄새, 술 담그는 이치, 저장할 때의 비법을 이미 십중팔구는 알았다.
그러나 술잔에 대한 것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이때 조천추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있으니 막힌 구멍이 탁 트이는 듯 후련했다.
그가 또 말했다.

[포도주를 마실 때는 물론 야광배(夜光杯)에 다라 마셔야 되지요. 옛사람의 시에는 이렇게 되어 있소. '포도미주는 야광배가 제격이라, 그 술을 먹고 싶어 비파를 타며 말을 재촉하네(葡萄美酒夜杯欲飮琵琶馬上催) 그리고 알아야 될 것은 포도주는 요염한 색깔을 내니 우리같은 수염을 기른 남자가 마신다면 호기가 부족하게 도리 것이오. 포도주를 야광배에 담으면 술의 색깔은 새발간 피와 같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것은 피를 마시는 것 같죠.
악무목(岳武穆)이 지은 사(詞)에서는 '대장부는 뜻을 세워 배가 고플 때는 오랑캐의 살을 뜯어 밥으로 삼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할 때는 흉노족의 피를 가지고 환담하네(壯志飢餐胡虜肉, 笑談渴飮?奴血). 이어찌 장엄하지 않소이까?]

영호충은 연신 괘를 끄덕였다. 그는 공부도 많이 못 했고 읽은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조천추가 시사(詩詞)를 가지고 술에 대해 이야기하자 아무 것도 모르며 웃고 있다가 흉노족의 피를 마신다는 대목에 이르자 정말로 호기가 하늘을 가르고 가슴에 피가 뭉쳐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조천추는 한 단지의 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고량미주(高梁美酒)는 정말로 최고 오랜 술 중의 하나이지요. 하(夏)나라 우(禹) 임금 때 의적(儀狄)이 만든 술을 우 임금이 마시고 기뻐했다는 술이 바로 이 고량주요. 영호형, 세상 사람의 안목이 너무 미천합니다. 단지 우 임금이 치수(治水)만을 해서 후세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었다고만 하는데 그건 그렇다치고 우 임금의 진정한 공로는 무엇인지 당신은 아시오?]

영호충과 도곡육선은 일제히 말했다.

[술을 만드는 것이겠죠?]

조천추는 말했다.

[녜, 바로 맞추었읍니다.]

여덟 사람은 일제히 크게 웃었다.
조천추는 다시 말했다.

[이 고량주를 마실 때는 반드시 청동주작(靑銅酒爵)을 써야만 비로서 옛맛이 나는 법이오. 그리고 쌀로 빚은 미주(米酒)는 그 맛은 비록 좋지만 너무 달지요. 약간 엷게 걸러서 큰 그릇으로 담아 먹으면 호탕해지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배운 것이 너무 없어 술이나 술잔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데 정말 그 학문은 깊고도 넓군요.]

조천추는 백초미주라는 글자가 씌어져 있는 술단지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이 백초미주는 수백 가지의 약초를 채집하여 술을 담갔으므로 술의 향기가 맑아 본나들이를 가는 듯합니다. 그래서 마시지 않아도 취한 느김을 주지요. 이 백초주를 마실 때는 반드시 고등배(古藤杯)에 부어 마셔야 합니다. 백년 묵은 등나무로 조각해서 만든 술잔은 이 백초를 담아먹으면 그 향기가 너무나 그윽하오.]
영호충은 말했다.

[백년 묵은 등나무는 무척 구하기가 힘이 들지요?]

조천추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영호형씨는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군요. 백년 묵은 등나무보다는 백년 묵은 술을 구하기가 더 어렵지요. 생가해 보시오. 백년 묵은 등나무는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어도 백년 묵은 미주는 모든 사람이 마시고 싶어하고 마신 후엔 없어져 버리지요.
그러나 하나의 고등배는 천잔만잔 마신다 해도 그래도 그 형태는 망가지지도 않고 여전히 내려오는 법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예, 맞습니다. 제가 너무 모르는군요. 선샌께서 많이 지도해 주십시오.]

악불군은 계속 조천추의 말을 유심히 들었다. 그의 과장된 말투를 듣고 있었으나 이치에 맞는 것 같았다.
도지선, 도간선 등 잡배들이 백초미주의 술단지를 들고서 원탁에 줄줄 흘리며 귀중한 술을 물 마시듯 마셔댔다.
악빠루군은 비록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술의 향기가 코끝에 닿으니 정말 감미로웠다. 그는 그 술이 정말 좋은 술이라는 것을 알았고 도곡육선들이 이렇게 마셔대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천추는 또 말했다.

[이 소흥장원홍을 마실 때는 반드시 고자배(古瓷杯)에 따라 마셔야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북송 때 만들어진 술잔이오. 남송 때 만들어진 자기술잔은 그래도 쓸 만하고 그러나 북송 때 만들어진 자기술잔보다는 못하오. 원나라 때 만들어진 자기술잔은 저속하기 이를데 자빠싸다오. 이 단지의 술은 이화주(梨花酒)인데 이 이화주를 마시려면 응당히 비취배(?翠杯)에 따라 마셔야 합니다.
백낙천은 항주춘망(杭州春望)이라는 시에서 붉은 소매자락이 감잎처럼 나부 낄 때 문박의 푸른 깃발은 이화주의 향기를 더해주네(紅袖織綾枾葉, 靑旗沽酒?梨) 라고 하였지요. 생각 좀 해보십시오 항주의 술집들은 이 이화주를 팔 때비취색의 기를 문 밖에다 걸어놓고, 이 이화주를 팔고 있음을 나타냈지요. 이 이화주를 마실 때는 물론 비취잔이 제격이고 이 옥로주(玉露酒)는 응당히 유리배(琉?杯)에 따라 마셔야 합니다. 옥로주에는 구슬 같은 기포가 생겨 이 투명한 유리배에 따라마시면 정말 보기좋지요.]

갑자기 한 여자의 비웃음소리가 들렸다.

[치이! 허풍을 떨기는!]

말하는 사람은 악영산이었다.
그녀는 오른쪽 식지를 내밀어 자기의 오른쪽 뺨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악불군은 말했다.

[산아, 무례하지 말아라. 이 조 선배님의 말씀은 무척 이치에 맞는 얘기가 아니냐?]

악영산은 말했다.

[이치는 무슨 이치예요? 술 몇 잔 마시고 흥을 돋구면 그것으로 족하지, 아침 저녁 하루종일 술이나 마시면서 그렇게 따진다는 것이 어찌 영웅대장부의 할 짓이겠어요?]

조천추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아가씨는 몰라서 그러십니다. 한 고조 유방께서는 영웅입니까? 아닙니까? 그 당시 그는 크게 취한 다음 백사(白蛇)를 단검에 찌르지 않았다면 어찌 한나라를 세우고 수백년 간 업적을 쌓았겠읍니까? 번쾌(樊?)는 영웅호한이 아닙니까? 그날 홍문연(鴻門宴)에서 번장군께서 그의 넙적다리를 잘라 한 말의 술을 마셨을 때, 그를 어찌 장사라고 하지 않겠소?]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선생께선 주법에 도통하시고, 또 말씀하시길 천하의 영웅호걸들은 술을 좋아한다 하셨는데 왜 드시지 않소이까?]

조천추는 말했다.

[내가 이미 말했지요. 술에 맞는 술잔이 없으면 술에 대한 무례라고요.]

도간선은 말했다.

[당신도 허풍이 심하시군. 무슨 비취배요 야광배입니까? 세상에 그런 술잔이 어디 있단 말이오? 있다 해도 한 두 개일 뿐인데 그 누가 그 많은 술잔을 다 갖추고 있겠소?]

조천추는 말했다.

[술의 품격을 따지는 신사들은 물론 다 갖추고 있소. 당신들처럼 소처럼 개처럼 마셔대는 사람들이나 밥그릇이든 물그릇이든 따지지 않겠지.]

도엽선은 말했다.

[그럼 당신은 풍류를 아는 신사요? 아니요?]

조천추는 말했다.

[과분하다고 한다면 과분하지 않고 부족하다고 한다면 부족하지 않은 어느 정도 풍류를 아는 사람이오.]

도엽선은 깔깔 웃어댔다.

[그렇다면 이 여덟 종류의 미주의 술잔을 당신은 몇 개나 지니고 있소?]

조천추는 말했다.

[많다면 많지 않고 적다면 적지 않고 한 가지씩은 갖추고 있지요.]

도곡육선은 일제히 소리쳤다.

[허풍쟁이! 허풍쟁이!]

도근선은 말했다.

[그럼 내가 당신과 내기를 하겠소. 당신 몸에서 여덟 종류의 술잔이 나온다면 나는 그 술잔 하나하나를 십어 뱃 속에 넣겠소. 당신이 만약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찌 하겠소?]

조천추는 말했다.

[그러면 내 스스로 여기 있는 술잔과 밥그릇을 하나하나 뱃속에 쳐넣지요.]

도곡육선은 일제히 말했다.

[그것 참 좋다! 잘 되었다! 어떻게 나오는가 보자!]

이 말이 채 끝자지도 않았는데 조천추는 손을 내밀어 품 속을 더듬어 하나의 술잔을 끄집어냈다.
부드럽고 윤이 나는 이 술잔은 바로 양지백옥배(羊脂白玉杯)였다.
도곡육선은 깜짝 놀라 입을 꼭 다물었다. 조천추는 하나 또 하나 계속해서 품 속에서 술잔을 끄집어냈는데 틀림없이 비취배, 서각배, 고등배, 청동작, 야광배, 유리배, 고자배, 등등이었다. 그는 여덟 개의 술잔을 끄집어 낸 다음 다시 계속해서 끄집어 냈다.
금뱉이 찬란한 금배(金杯) 조각이 정밀한 은배(銀杯), 꽃모양이 조각되어 있는 석배(石杯), 그밖에는 또 아배(牙杯), 호치배(虎齒杯), 우피배(牛皮杯), 죽동배(竹?杯), 자단배(紫檀杯) 등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 술잔들은 크고 작은 하나하나가 크기가 전부 달랐다.
뭇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모두들 멍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그 누구도 이 거렁뱅이의 품 속에서 이렇게 많은 술잔들이 숨겨져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조천추는 득의양양해 도근선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소?]

도근선의 얼굴은 참담해졌다.

[내가 졌소. 내가 이 여덟 개의 술잔을 먹어치우겠소.]
그는 고등배를 들고 뚝하고 반을 갈라 반쪽을 입 속에 쑤셔넣고 와작와작 씹었다.
여러 사람들은 그가 자기의 말을 실행하기 위해 그 반쪽의 고등배를 씹어먹는 것을 보자 모두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근선은 손을 내밀어 또 다른 서각배를 집었다. 조천추는 오니손을 들어 그의 맥문을 내리쳤다. 도근선은 오른손을 약간 내리며 그의 손목을 잡으려고 반격했다.
조천추는 중지로 그의 장심을 쳤다.
도근선은 깜짝 놀라 손을 움추리며 말했다.

[왜 주기가 싫소? 내가 먹겠다는데?]

조천추는 말했다.

[내가 졌소이다. 저는 탄복했소이다. 이 여덟 개의 술잔을 당신이 다 먹었다고 칩시다. 당신의 호기는 좋지만 나는 아깝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을 것이오.]

모든 사람들은 큰 소리로 웃었다.
악영산은 처음에 이 도곡육선의 힘이 무서웠다. 그러나 서로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보니 그들은 아직까지 어떤 흉악한 짓을 하지 않았고 또한 행동할 때나 말할 때 익살스럽고 친근감이 갔다.
그래서 대담하게 도근선에게 말했다.

[보세요. 그 고등배는 맛이 좋나요?]

도근선은 입맛을 쩍쩍 다시며 말했다.

[무척 쓴데 무슨 맛이 있겠소?]

조천추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당신이 나의 고등배를 먹어버렸으니 나의 큰일을 그르친 것이오. 아이고! 이 고등배가 없어졌으니 이 백초주는 어떤 잔으로 마셔야한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나무조각으로 만든 잔으로 마셔야될 것 같소.]

그는 품 속에서 수건을 끄집어내어 도근선이 먹다 남은 반조각의 고등배를 닦고 단목배를 집어 계속 닦아대었는데 그 손수건은 시커매서 닦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을 뻔했다. 이렇게 닦으니 닦을 수록 더 더러워졌다.
한참을 닦고 난 후 비로소 나무잔을 탁자에 올려 놓고 여덟 개의 술잔을 한줄로 진열하고 나머지 금배, 은배들은 다시 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서 분주, 포도주, 소흥주 등 열 가지의 미주를 각각 여덟 개의 잔에 따랐다.
길게 숨을 한번 내쉬더니 영호충을 향해 말했다.

[영호형, 이 여덟 잔의 술은 당신이 한잔 한잔 드시구료. 그리고 나서 내가 다시 이 여덟 잔의 술을 마시리다. 그리고 나서 자세히 품평을 해봅시다. 옛날에 먹던 술과 짐금 먹는 술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시구료.]

영호충은 말했다.

[좋습니다.]

그는 목배를 들어 단숨에 마시니 한 줄기의 쓰고 매운기가 뱃속에 꽉 찼다. 자기도 모르게 내심 놀라며 깊이 생각했다.

(이 술맛이 어찌 이리 고약하냐?)

조천추는 말했다.

[내 술잔들은 술마시는 사람의 보배요. 단지 담이 작은 소인배들은 이 술맛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한잔을 마신 다음 두번째 잔부터는 다시 마시려하지 않는 다오.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 여덟 잔의 술을 다 마신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오.]

영호충은 생각했다.

(설령 술 속에 독이 있다 해도 영호충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에게 독살을 당하면 당했지 질 수야 없지.)

그는 또 다른 잔을 들어 연거푸 두 잔을 마셨다. 한 잔은 쓴맛이 감돌고 다른 잔은 상당히 떫었다. 절대로 그 미주의 맛이 아니었다. 다시 네번째 술잔을 들었을 때 도근선이 갑자기 외쳤다.

[아이쿠! 큰일났다! 내 뱃속에서 불이 나네! 불덩어리가 있는 것 같다!]

조천추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내 고등 술잔 반쪽을 먹었으니 어찌 배가 안 아프겠소? 그 오래 묵은 등나무는 딱딱하기가 강철 같은데 뱃속에선 절대로 소화가 되지 않을 것이오. 빨리 설사약을 먹고 다 쏟아버리시오.
만약 쏟아내지 못한다면 별 수 없이 그 살인명의 평일지를 청해 배를 자르고 끄집어내야 될 것이오.]

영호충은 움찔했다.

(이 사람의 여덟 잔의 술잔 속에는 틀림없이 다른 이물질이 들어 있을 것이다. 도근선이 등나무 술잔을 먹었는데 설령 등나무가 딱딱해 소화가 되지 않는다 해도 단지 뱃속이 아플 뿐인데 열이 날 까닭이 있겠는가? 흥! 사내대장부가 죽음을 무서워 한다면 말이 안 되지! 독이 독할수록 좋다.)

그는 고개를 들어 또 한 잔의 술을 마셨다.
악영산은 갑자기 말했다.

[대사형, 이 술은 마시지 마세요! 술잔 속에 독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당신이 그 복면인들의 눈을 모두 질러 봉사가 되게 했으니 그 사람들의 복수를 조심해야 합니다.]

영호충은 처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조 선배님은 통쾌한 장부이시오. 절대로 나를 암살하는 것 같지는 않소.]

이렇게 말을 하는 그는 이 술 속에 독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악영산이 자기의 죽은 모습을 보고 슬퍼 눈물을 흘렸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즉시 또 두 잔을 마셨다.
이 여섯번째의 술은 시고 짰다. 게다가 악취마저 풍겨서 미주는커녕 술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지경이었다. 그는 뱃속에 술을 집어넣을 때 자기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도간선은 그가 한참 마시고 도 한잔씩 마시는 것을 보자 참지 못하고 그도 먹으려고 했다.

[이 나머지 두 잔의 내가 먹겠소.]

그는 손을 내밀어 일곱번 째 놓인 술잔을 들었다. 조천추는 부채를 휘둘러 그의 손등을 치고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십시오. 천천히 차례대로 마셔야 합니다. 모든 사람따르은 반드시 이 여덟 잔의 술을 마셔야 술의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이외다.]

그가 내리치는 부채의 일격이 극히 강했으므로 만약 손등이 적중되었다면 도간선의 손마디가 부러졌을 것이다. 그는 손을 피하면서 오히려 반격에 나서 그는 부채를 잡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이 술을 먹어야겠소! 당신이 어떻게 하시겠소?]

조천추의 부채는 접어져 있었다. 도간선의 손가락이 부채를 잡았을 때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나며 부채가 펴지고 부채의 테두리가 그의 식지를 내리쳤다. 이 행동은 순식간이고 뜻박이어서 도간선은 부채가 손을 때리자 급히 손을 움추렸다. 식지 손가락은 얼얼하게 아팠다.
그는 고함을 치며 뒤로 물러섰다.
조천추는 말했다.

[영호형, 빨리 이 두 잔의 술을 마시구료.]

영호충은 더 생각하지 않고 나머지 두 잔의 술을 마셨다. 이 두잔의 술은 악취가 없었으나 한 잔은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목구멍이 칼에 베인 듯 쓰라렸고 한 잔은 약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것이 무슨 술인가? 풀에 사용하는 살충제보다 더 독한 것 같았다.
도곡육선은 영호충의 얼굴이 이상하게 찌푸려지는 것을 보자 모두 신기한 듯 쳐다보며 물었다.

[여덟 잔을 다 마셨는데 맛이 좀 어떠시오?]

조천추는 말을 낚아챘다.

[여덟 잔의 술을 다 마셨으니 그 달콤함 맛이야 무궁무진할 것이오. 옛책에도 그렇게 씌어 있읍니다.]

도간선은 말했다.

[엉터리 소리는 집어치우시오. 무슨 옛날책이 어쩌구 저쩠다구?]

갑자기 그가 어떤 신호를 했는지 네 명은 동시에 달려나와 각각 조천추의 사지를 붙들었다.
도곡육선이 사람의 사지를 잡는 수법은 너무나 빠르고 괴이했다. 그 행동은 마치 귀신이나 요괴들 같았다.
조천추는 무공이 상당한 경지에 도달했었지만 그래도 도곡사선에게 손과 발이 잡혀 공중으로 추켜올려졌다.
화산파의 여러 사람들은 도곡사선의 손들이 무서운 줄 알고 이 광경을 보고 참지 못하고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조천추는 문득 벗어날 생각이 떠올라 크게 말했다.

[술 중에는 독이 있다! 해독약이 필요하지 않은가?]

조천추의 팔다리를 잡고 있던 도곡사선도 이미 적지 않은 술을 마셨다. 술 속에 독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모두 깜짝 놀랐다.
조천추가 바라고 있는 것은 이 네 사람이 이렇게 주저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갑자기 크게 외쳤다.

[헛소리 말고 내 똥이나 먹어라!]

도곡사선은 손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김을 받았다. '펑' 하는 큰 소리가 나면서 배의 천정에 큰 구멍이 뚫어지고 조천추는 구멍을 통해 도망쳐 사라지고 말았다.
도근선과 도지선은 두 손이 텅비고 도화선과, 도엽선의 손에는 각각 고린내가 나는 양발 한 짝과 흙이 잔뜩 묻어져 있는냄새나는 신발을 잡고 있었다.
도곡오선의 신법도 극히 빨라 순간에 언덕으로 일제히 쫓아갔다. 그러나 조천추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다섯 사람이 경공을 써서 뒤쫓아가려고 할 때 갑자기 맞은편 쪽에서 어떤 사람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천추, 이 나쁜 놈의 새끼! 빨리 내 알약을 돌려달라! 한알이 없어지면 나는 너의 뼈를 추리겠다! 네 가죽도 벗기겠다!]
그 사람은 큰 소리로 외치며 빠르게 이쪽으로 달려왔다.
도곡오선은 어떤 사람이 조천추를 크게 욕하는 소리가 들리자 마침 자기네들 뜻과 같아 모두들 그 달려오는 사람을 쳐다보며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가 누구인가를 살폈다.
멀리서 숨을 헐떡헐떡 쉬며 굴러오는 것은 고기덩어리였다. 구를수록 더욱 가까워졌다. 도곡육선은 이 고기덩어리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사람은 키가 매우 작고 매우 뚱뚱해서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
이 사람은 목이 없는 것 같았다. 하나의 멀뚱멀뚱한 대가리가 어깨 위에 얹혀 있는 것 같았고 어미배에서 맨처음 나왔을 때 무거운 철퇴로 한 방 맞은 것 같고 그 철퇴에 머리가 눌려 얼굴, 뺨, 입, 코, 모든 것이 옆으로 깨지고 퍼진 것 같았다. 이 사람의 생김새를 본 모든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모두 생각했다.

(그 평일지라는 사람은 키가 작고 뚱뚱한 편이다. 그러나 이 사람과 비교할 때는 평일지는 크게 준수하다고 하겠구나!)
평일지는 단지 키가 작고 땅딸한데 불과했으나 이 사람은 사방이 똑같이 퍼지고 뚱뚱했다. 손과 발은 매우 짧았다. 팔은 일반인의 반밖에 안 되었다. 이 사람은 배만 있고 가슴은 없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배 앞에 다가오자 두 손을 벌리며 노기가 충천한 듯 물었다.

[조천추! 이 도둑놈이 어디에 숨었는가?]

도근선은 웃으며 말했다.

[그 썩어빠진 도둑놈은 도망갔소! 발이 무척 빠르더이다. 당신처럼 이렇게 느릿느릿 굴러간다면 아마 틀림없이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오.]

그 사람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작은 눈으로 그를 한번 쳐다보더니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갑자기 소리르 질렀다.

[내 알약! 내 알약!]

그리고 두 발을 튕기더니 한 개의 고기덩이처럼 선창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몇번 냄새를 맡고 탁자 위에 올려 있는 빈 술잔을 바라보고 코에 갖다대고 한번 냄새를 맡아보더니 얼굴색이 크게 변했다.
그의 얼굴은 본래 상당히 고약했는데 그러한 표정을 짓자 더욱 술잔을 집어들고 냄새를 맡으면서 한 술잔의 냄새를 맡을 때마다 한 마디씩 했다.

[내 약! 내 약!]

그는 모두 여덟 번을 내 약 내 약이라고 말했다. 그의 애석하고 실망한 표정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갑자기 땅바닥에 주저앉더니 방성대곡을 터뜨렸다.
도곡오선은 더욱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일제히 그의 몸을 둘러싸고 물었다.

[당신은 왜 우시오?]
[조천추가 당신을 못살게 굴었소?]
[그렇게 괴로워하지 마시오. 우리가 그 도둑놈을 찾아서 그의 몸뚱이를 네조각으로 찢어버리고 당신의 복수를 해주겠소.]
그 사람은 울면서 말했다.

[나의 알약은 그가 술과 함께 먹어치웠소. 죽여버려야해요...... 이 도둑놈을 죽여버려야 해요! 그러나...... 그러나 죽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소?]

영호충은 마음속에 짚히는게 있어 물었다.

[그건 어떤 알약이오?]

그 사람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나느 내 평생 이십 년이라는 세월을 들여서 천년 묵은 인삼, 복령(伏笭), 영지(靈芝), 녹용(鹿茸), 수오(首烏), 영지(靈脂), 웅담(熊膽), 삼칠(三七), 사향(麝香) 등등의 진귀한 약물을 모아 아홉번 찍고 아홉번 말려서 여덟 알의 기사회생할 수 있는 속명팔환(續命八丸)을 만들었소. 그런데 그 죽여버릴 조천추가 훔쳐가 술에 섞어 먹어버렸소.]

영호충은 크게 놀라며 물어보았다.

[당신의 여덟 알의 환약은 그 맛이 서로 다르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말했다.

[물론 다르오. 어떤 것은 매우 냄새가 나고, 어떤 것은 매우 쓰고, 어떤 것은 입에 넣으면 칼에 베인 듯 쓰리고, 어떤 것은 매워서 불덩이 같다오. 이 속명팔환을 복용하기만 하면 아무리 큰 외상이나 내상이라도 기사회생할 수가 있소.]

영호충은 무릎을 '탁' 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큰일 났네요, 큰일 났어! 조천추가 당신의 속명팔환을 훔쳐 온 것은 그가 먹은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물었다.

[그럼 어쨌단 말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그게 아니고 술에 그 약을 섞어서 나에게 속여서 먹였소. 나는 그 술 속에 진귀한 한약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가 독을 탄 줄로 알고 있었소.]

그 사람은 노기가 충천해 욕을 하며 말했다.

[독을 넣어? 독을 넣어! 제기랄 독을 넣었어야 했는데...... 당신이 그 속명팔환을 먹었소?]

영호충은 말했다.

[그 조천추라는 사람이 여덟 개의 잔에 술을 담아서 나에게 먹도록 했는데 정말로 어떤 것은 매우 쓰고 어떤 것은 악취가 났으며 어떤 것은 마치 칼로 혀를 자를 듯했고 어떤 것은 불덩이를 먹는 것 같았소. 무슨 약이 들어 있었는지 나는 보지 못했소.]
그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 영호충을 쳐다보았다. 뚱뚱한 얼굴에 근육의 꿈툴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큰 소리치더니 몸을 튕겨 영호충에게 덮쳐왔다.
도곡오선은 그의 안색을 보고 벌써부터 방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몸이 막 튕겨져 올라왔을 때 도곡사선은 번개처럼 각각 네 사지를 잡았다.
영호충은 급히 외쳤다.

[절대로 그의 생명을 해치지 마시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두손과 다리가 도곡사선에게 잡히자 사지가 자라의 목처럼 움츠러들어 마치 둥근 공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닌가? 도곡사선은 크게 놀라 일제히 기합을 지르며 그의 사지를 잡아당겼다. 이 사람의 사지는 잡아당길수록 길게 늘어져 손과 팔 다리는 그의 몸에서쭉쭉 빠져 나왔다. 마치 한 마리의 자라가 뚜껑 속에서 집혀내는 것과 같았다.
영호충은 또 외쳤다.

[그의 생명을 다치게 하지 마시오!]

도곡사선의 손이 약간 늦쳐지자 그 사람의 사지는 즉시 수축되어 둥근 공이 되었다.
도실선은 크게 외쳤다.

[그것 참 재미있다! 그것 참 재미있다! 그것은 또 무슨 재주이지?]

도곡사선은 힘껏 잡아당겼다. 그 사람의 손과 발은 또 한 자 정도 길게 늘어졌다.
악영산 등 네 제자들은 일제히 그 광경을 보고 킥킥 웃어댔다.
도근선은 말했다.

[보시오, 우리가 당신 팔다리를 길게 잡아당겨 보겠소. 그러면 참 멋있을 것이오.]

그 사람은 크게 외쳤다.

[어이쿠! 사람살려!]

도곡사선은 깜짝 놀라 일제히 말했다.

[뭐라고?]

손에 힘을 약간 늦추었다.
그 사람은 사지를 갑자기 잡아당기더니 도곡사선 수중에서 빠져나와 펑 하는 소리를 내는 동시에 배 밑바닥을 뚫고 황하의 물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여러 사람들은 일제히 놀라 외쳤다.
배 위로 물이 계속 흘러들어왔다.
악불군은 외쳤다.

[모둘르 자기 짐을 들고 빨리 언덕으로오르거라!]

배 밑바닥은 둥그렇게 뚫려졌고 강물은 줄줄 들어와 얼마 있지 않아 선찬 안에는 이미 물이 무릎까지 차 올라왔다. 다행히 그 배는 언덕가에 정박해 있어서 모두들 하선을 할 수 있었다. 배주인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안절부절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게 근심하지 마시오. 이 배는 얼마의 값이 나가오? 내가 두배로 보상을 하겠소.]

그리고 생각했다.

(나와 조천추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왜 그가 이렇게 귀한 약을 훔쳐 나를 속이면서까지 약을 먹였을까?)

그는 기운을 쓰니 아랫배에 불덩이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몸 안에 있는 여덟 줄기의 진기는 여전히 서로 부딪치며 한 군데로 모이지를 않았다.
즉시 노덕약은 다른 배를 빌리고 모든 물건을 옮겼다.
영호충은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금은으로 그 배주인에게 보상하였다.
악불군은 그 지역에 이상한 사람이 많고 그 사람들의 뜻이 분명치 않고 이상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자 하루빨리 이 지역에서 벗어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날이 이미 어두웠고 강물은 빨라 저녁에 배를 띄울 수가 없어 하는 수없이 배에서 쉬었다.
도곡오선은 두 번이나 실수를 했다. 앞뒤로 조천추와 고기덩어리를 놓친 것은 자기들 평생에 있어 드문 일이었다.
여섯 형제들은 허풍을 떨며 자기가 잘났다. 누가 못났다. 말싸움을 하더니 끝내는 화를 풀지 못하고 술만 사셔대고는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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