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4-2

3학년2반 | 2022.03.14 07:46:46 댓글: 0 조회: 688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5756


물가를 끼고 있는 이곳은 심히 외떨어져 계무시 등 세 사람이 그날 저녁 여기를 지나가고부터 아무도 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십여일을 이곳에서 묵었다. 영영의 내상은 벌써 나아서 매일 들에 핀 열매를 따먹고 개구리를 잡아 먹었다. 그러나 영호충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비쩍 말라갔다.
그녀는 강제로 방생대사가 남긴 알약을 먹이고 금을 연주하여 그가 양신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으나 그의 상처는 호전되지 않았다.
영호충은 스스로 자기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성격이 애당초 활발했기 때문에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날마다 영영과 장난치고 웃으며 지냈다.
영영은 본래 자기만 생각하고 마음대로 구는 성격이었으나 영호충이 갑자기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에게 더욱 잘 대해주고 순종하였다. 어쩌다 자기의 성질을 참을 수 없어 화를 내곤했지만 금방 후회하고 그와 함께 지냈다.
이날 영호충은 두개의 복숭아를 먹고 몸이 노곤해지자 가물가물 잠이 들었다. 잠결에 우는 소리가 들려 눈을 살짝 떠보니 영영이 땅에 엎드려 그의 발끝에서 계속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호충은 깜작 놀라 그녀에게 왜 그리 우느냐고 물어 보려고 함 때 갑자기 마음에 짚히는게 있었다.

(그녀는 내가 곧 죽을 것을 알고 슬퍼서 우는 것이구나.)
그는 왼손을 내밀어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울지 마시오. 울지 마시오. 나는 아직 팔십 년은 더 살 것이오. 어찌 그렇게 빨리 황천으로 갈 수 있겠소?]

영영은 울면서 말했다.

[당신은 하루하루 야위어가고 난...... 난...... 나도 살고 싶지 않아요......]

영호충은 그녀의 말이 진지하고 심금을 울려 자기도 모르게 감동하였다. 갑자기 마음속으 뜨거워지더니 하늘과 땅이 빙빙 동고 목구멍에서 계속 선혈이 쏟아지더니 금방 인사불성이 되었다.


영호충은 정신을 잃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의식을 찾았지만 몸은 둥둥 허공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또 정신을 잃곤 했다. 이렇게 정신을 잃었다 깨고를 여러번 했다. 어떤 때는 누군가 입 속에 물을 넣는 것 같았고 어떤 때는 온몸을 불로 지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손과 발은 움직일 수 없었고 눈꺼풀조차 뜰 수가 없었다.
이날은 정신이 조금 들었다. 두 손의 맥을 누군가 꼭 쥐고 있었다. 한줄기의 뜨거운 열기가 두 손의 맥을 통해 주입되는 것 같았다. 그 열기가 체내에 주입되자 체내에 축척된 진기가 진동하며 서로 충돌하였다.
전신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랐다. 입을 열어 외치려고 했으나 소리를 조금도 낼 수가 없었으며 몸은 마치 수만가지의 고통과 수천가지의 몸을 지지는 혹형을 받는 것 같았다.
이렇듯 혼미한 상태에서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단지 매번 진기가 들어올 때마다 고통은 옛날보다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어떤 내공이 깊은 사람이 자기를 치료해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사부나 사모님께서 내공이 높은 사람을 모셔다가 내 생명을 구해주고 계실까? 영영은 또 어디로 갔는가? 사부님, 사모님, 소사매는 어째서 보이지 않는가?)

그는 악영산을 생각하자 속으로 뜨거운 피가 끓어올라 또 인사불성이 되었다.
날마다 어떤 사람이 내력을 주입시켜 주었다. 이날은 진기를 주입한 후 영호충의 정신이 많이 나 있었다.

[감사...... 감사합니다. 전...... 전 어디에 있읍니까?]
그는 천천히 눈을 떠보니 온 얼굴에 주름투성이인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퍼져 있었다.
영호충은 이 얼굴이 눈에 익었다. 어렴풋이 그를 한참 쳐다보니 이 사람의 머리카락은 한가락도 없고 머리에는 향으로 지진 듯한 흔적이 있었다. 그것은 스님이었다. 어렴풋이 생각이 떠오르자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방...... 방생대사......]
그 노승은 매우 인자하게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래, 그래. 자네는 나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내가 바로방생이네.]

영호충은 말했다.

[녜, 녜. 당신은 방생대사입니다.]

이때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는 작은방에 있었고 탁자의 등은 마치 공처럼 보였으며 그 등잔에서 노란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자기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몸에는 솜이불이 덮여 있었다.
방생이 말했다.

[몸은 좀 어떠한가?]

영호충은 말했다.

[많이 나아진 것 같습니다. 전...... 전 어디에 있읍니까?]
방생은 말했다.

[자네는 소림사 안에 있네.]

영호충은 이상해서 물었다.

[제가...... 제가 소림사 안에 있다구요? 영영은요? 제가 어찌 소림사까지 올 수 있었읍니까?]

방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의 몸이 호전되었으니 심기를 너무 쓰짐마게나. 신경을 너무 쓰면 몸에 이롭지 못하니 모든 일은 나중에 천천히 하도록 하세.]

그로부터 방생은 아침 저녁으로 작은방에 와서 내력으로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십여일이 지나자 영호충은 혼자서 앉을 수 있게 되었고 혼자서 식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매번 영영의 소재를 불어보고 어째서 자기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물어보면 방생은 언제나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이날 방생은 또 영호충을 위해 진기를 주입시키고는 말했다.

[영호소협, 지금 당신의 생명은 잠시 보전할 수가 있네. 그러나 노승의 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당신 체내에 있는 이상한 진기를 없앨 수가 없네. 지금으로 보면 하루하루를 연장시킬 수 있을 뿐이니 자네는 일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네. 만약 그때가서 자네의 내상이 발작을 일으킨다면 그때는 정말로 대나금선(大羅金仙)일지라도 자네의 생명을 보전할 수는 없을 것이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옛날에 평일지 선배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대사께서 있는 힘을 다해 저를 구해 주셨으니 그 은혜야말로 감격하고 잊을 수가 없읍니다. 한 사람의 수명의 길고 짧음은 각기 하늘에 달렸읍니다. 대사의 공력이 아무리 높아도 하늘의 뜻은 거역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방생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우리 부가에서는 천명을 믿지 않고 단지 인연을 믿을 뿐이네.
그날 내가 자네에게 말해줘 않았나. 이 절의 주지인 방증사형의 내공은 심히 깊어 자기와 인연이 닿는다면자네에게 역근경(易筋經)의 비술을 가르칠 것이며, 그러면 근골은 위치를 변경시킬 수 있고 체내의 진기도 없앨 수가 있을 것이네. 내가 자네를 데리고 방장을 알현할 것이니 자네는 잘 대답해주길 바랄 뿐이네.]
영호충은 평소 소림사 방증대사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슴속에 기쁨을 느꼈다.

[수고스럽지만 대사께서 인도해 주십시오. 제가 인연이 닿지 않아 방장대사님의 은혜를 받지 못해도 당대의 이름이 높은 고승을 만나뵐 수 있다면 이것도 평생 얻기 어려운 좋은 기회입니다.]
그는 펀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방생대사를 따라 작은 방을 나섰다.

문 밖을 나오니 햇빛에 눈이 부시고 또다른 천지에 들어선 것 같았고 정신이 금새 상쾌해졌다.
다리를 옮길 때마다 노곤해 천천히 걸음을 떼어 놓고 있었다.
절 안의 법당은 한채 한채가 웅장하고 위엄이 가득 차 있었다. 가는 길목마다 많은 스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모두들 멀리 한쪽으로 피하고 방생대사께 합장하며 예의를 표했다.
세개의 긴 복도를 지나 하나의 석실에 도착했다.
방생은 석실 밖에 있는 어린 사미승에게 말했다.

[방생이 일어 있어 방장사형을 만나볼까 한다.]

작은 사미승은 들어가 보고를 하더니 바로 나와 합장하며 말했다.

[방장께서 들어 오시랍니다.]

영호충은 방생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안에는 몸이 작은 노인이 방석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방생은 고개를 숙여 예를 올린 후 말했다.

[방생이 방장사형께 인사드립니다. 화산파의 대제자인 영호소협을 데리고 왔읍니다.]

영호충은 즉시 무릎을 끓고 머리를 땅에 대며 예를 올렸다. 방증대사는 고개를 숙이더니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소협께선 너무 예과 과하오. 앉으시오.]

영호충은 인사를 마치고 방생을 따라 아랫쪽에 있는 방석에 앉았다. 방증대사의 얼굴은 마르고 기색은 온화했으며 자애로왔다.
그러나 그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짐작할 수 없어 생각했다.

(정말 뜻밖이군. 당대에 이름이 높은 고승이 이렇듯 평범하다니 만약 알지 못했다면 누다 이 사람을 무림에서 제일 큰 장문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방생대사는 말했다.

[영호소협은 삼개월간 조리를 해 많이 나아졌읍니다.]
영호충은 또 깜작 놀랐다.

(알고보니 나는 정신을 잃은 채 이미 삼개월이 지났구나. 나는 겨우 이십여일 지났는 줄 알았지.)

방증은 말했다.

[수고하였소.]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영호충에게 말했다.

[소협, 스승인 악선생이 화산일파를 장악하고 계신데 그분의 사람됨은 엄정하고 저속하지 않고 깨끗하기로 이 강호에 널리 퍼져 있네. 소승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분을 매우 존경하고 있다네.]
영호충은 몸을 일으켜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몸에 중상을 입고 죽어가고 있었는데 방생께서 저를 구해 주셨읍니다. 알고보니 삼개월이 되었다니 저도 깜짝 놀랐읍니다. 저의 사부와 사모님은 틀림없이 편안하시겠지요?]
자기 사부와 사모님이 편안하시냐고 물어보아서는 안 되었지만 그는 내심 염려가 되어 참지 못하고 물었던 것이다.
방증은 말했다.

[듣건대 악선생과 악부인 등 여러 제자들은 지금 모두 복건에 있다고 들었네.]

영호충은 안심이 되었다.

[방증대사의 일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그는 가슴에 쓸쓸함이 느껴졌다.

(사부님과 사모님이 결국은 소사매를 데리고 임 사제의 집에 가셨구나.)

방증은 말했다.

[소협 앉으시게. 방생자제에게 들으니 소협의 검술이 정묘하여 이미 화산선배인 풍노선배에게 진수를 전수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고 축하해야 할 일이네.]

영호충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방증은 말했다.

[풍선생님이 이미 은거하신 지 오래 되고 또 이미 이 세상과 절연하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인간 세상에 살고 계시다니 나는 기쁘기 그지없었네.]

영호충은 말했다.

[녜.]

방증은 천천히 말했다.

[소협은 상처를 입은 후 진료를 잘못해서 몸속에 여러 가지 진기를 불어 넣었네. 그것을 방생이 노승에게 상세히 알려 주었네.
내가 자세히 살펴보건대 오로지 소림파의 내공비법인 역근경을 연마해야만 자기 공력으로 점차 없앨 수 있는 것이지 자기외의 외적인 힘을 소협의 몸에 가한다면 일시적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나 실은 음침지갈 즉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위험이 더 가중될 뿐이지. 방생이 내공으로 삼개월간 치료했으나 그의 진기가 자네 몸 속에 들어간 후 자네의 몸에는 또 하나의 다른 진기가 주입된 것이네. 소협은 기를 운행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네.]

영호충은 기를 써보니 단전에서 기식이 팽팽해짐을 느끼고 억제하기가 여러워 심장을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 삽시간에 몸은 흔들거리며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방생은 합장을 하며 말했다.

[소승이 무능해서 소협에게 병고 하나를 더 보태주었구료.]
영호충은 말했다.

[대사님께선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사님께서 저같이 미천한 사람대문에 진력을 다하시고 청수지공(淸修之功)의 힘을 다 소모하셨읍니다. 저는 이 세상을 두번 사는 것과 같습니다. 실로 대사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방생은 말했다.

[아니네. 풍노선생이 옛날 이 노승에게 큰 은혜와 덕망을 베푸셔서 소승의 이런 행동은 풍노선생의 은덕에 만분의 일도 갚지 못한다네.]

방증은 고개를 들어 말했다.

[무슨 대은대덕 또는 깊은 원한이라는 말씀을 하시오? 은덕도 인연이고 원한도 인연인데 우너한은 집착할 수 없고 은덕 또한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오. 백팔번뇌의 일이란 한줄기 연기와 같은 것이고, 백날백일 후에 그 무슨 은덕과 원한이 있겠소?]
방생이 대답했다.

[녜, 사형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방증대사는 천천히 말했다.

[불가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은 자비가 그 본분이오. 소협께서 이렇게 중상을 입고 있는지를 알고 있으면 응당 온 정성으로 간호해야 하오. 역근경의 신공은 동토선종초조(東土禪宗初祖)인 달마노조(達摩老祖)께서 창조하셨오. 선종의 이조(二祖)인 혜가대사(慧可大師)께서 노조에게 그것을 전수받았소. 혜가대사의 본래 법명은 신광(神光)이며 낙양 사람이오. 어려서 공자, 노자의 학문에 정통했고 현리(玄理)에도 높은 견해를 갖고 계셨오. 달마노조께서 이 절에 머무르실 때 신광대사는 와서 가르침을 청했오. 달마노조께선 그의 학문이 난잡하고 선입감이 충만되어 스스로 총명하게 여기고 선의 이치를 해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오. 신광대사는 한참을 애원해도 결국은 그의 문하에 입문을 허락받지 못하자 그는 즉시 검을 뽑아 자기의 팔뚜글 잘라 버렸오.]

영호충은 억 하고 소리를 내면서 생각했다.

(그 신광대사는 법과 학문을 구하는데 그렇듯 의지가 굳었구나.)

방증은 말했다.

[달마노조께서 그의 성심을 보시고 비로소 그를 제자로 거두었오. 그리고 이름을 혜가라고 했오. 결국 달마노조의 옷과 비릿대를 받아 선종의 법통이 이어진 것이오. 이조께서 달마노조를 다라가며 배운 것은 불법의 대도이고 릉가경(楞伽經)에 따라 명심견성(明心見性)했었오. 우리 선종의 무송의 이름은 천하에 알려졌지만 그것은 우리 선종에 있어선 제일 마지막 학문이고 그리 내세울게 못되오. 달마노조께서 그당시 제자들에게 몸을 건강히 하는 법문을 전수해 주셨을 뿐이오. 신건측심령(身健?心靈) 심령측이오(心靈?易梧)라 즉 몸을 건강히 하며 마음이 영활해지고 마음이 영활해지면 쉽게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오. 그러나 후세의 문하제자들은 때때로 무술의 학문에만 치우쳐 자기의 본분을 잊고 있오. 노조께서 그당시 무공을 전수하신 그 종지를 이해를 못하고 있오. 정말로 한심할 뿐이오. 정말로 한심할 뿐이오.]

말을 하면서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한참이 지난 후 방증이 또 말했다.

[노조께서 열반하신 다음 이조는 노조의 방석옆에서 한권의 경문을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역근경이오. 이 경문 안에 있는 뜻은 매우 심오해 이조께서는 온갖 고생을 하면서 연구했으나 해독할 수가 없었소. 이조께서 생각하시길 달마노조께서 구년동안 면벽하여 한 벽옆에서 이 경문을 보았기 때문에 비록 경문은 몇줄에 지나지 않지만 틀림없이 보통 것과 다르리라고 생각하고 명산을 순례하고 고승을 탐방하며 이 안에 있는 오묘함을 벗기려고 했었오.
그러나 이조께선 그때 이미 극도하여 고승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그 어르신께서 노심초사 풀 수 없는 것을 세상에는 그를 따를 자가 없었으므로 그것을 풀기가 어려웠오. 이렇게 이 여년이 흐른 다음 경문의 뜻을 결국은 풀지 못했오. 하루는 이조께서 큰 인연이 닿아 사천성 아미산에서 범승(梵僧)인 반자밀체(般刺密諦)를 만나셨는데 불교의 이치를 논하시다 서로 의기투합이 되었소. 이조께서는 역근경을 꺼내 반자밀체와 공동으로 연구했오. 두 분의 고승은 아미산 정상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칠천칠백사십구일만에 그 이치에 관통했오.]

방생은 합장하며 칭찬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방증방장은 계속해 말했다.

[그러나 그 반자밀체대사가 개발해 낸 것은 대체로 선종의 불교이치였고, 그리고 나서 이십년 후 이조는 장안의 길에서 한분의 무공에 정통한 젊은이를 만나셨소. 그와 삼일낮 삼일밤을 이야기 한 후 비로소 역근경 중의 무학비법을 모두 개우칠 수 있었오.]
그는 한참을 멈춘 후 말했다.

[그 젊은이는 바로 당나라 개국 대공신이고 나중에는 당태종을 보좌하여 돌궐을 평정시키고 밖에 나가면 장수가 되고 안으로 들어오면 재상감인 이청(李?)이라는 사람이오. 이 이청이 나라를 세우고 공이 많은 것은 이 역군경에서 적지 않은 교훈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오.]

영호충은 어 하는 소리를 내고 생각했다.

(원래 역근경은 우여곡절이 많았구나.)

방증은 또 말했다.

[역근경의 공력은 일신의 맥을 원활케 하고 오장의 정기를 한군데 몽 완저하며, 흩어지지 아니하고 행하나 끊이지 않으며, 기는 안에서 생기고 피는 밖에서 윤택해지오. 이 경을 연마하면 마음이 동하고 힘이 발하여 온갖 행동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으며, 자기도 모르게 힘이 나고 마치 조수가 흘러들어오듯 천둥번개가 발하는 것과 같소.]

영호충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치는 너무 광대하고 오묘해서 풍청양이 말하는 검의 이치와 퍽 상통됨을 알 수 있었다.
방증이 또 말했다.

[이 역근경이 이렇게 위력이 있기 때문에 수백년 동안 선택된 사람에게 전해지고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만 전해졌을 뿐이오. 소림사의 출중한 제자라도 인연의 복이 없다면 이 무공을 전수받지 못하고 얻을 수 없는 것이오. 마치 방생사제가 그의 무공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고 계율도 엄숙하게 지켜 본절에서 대단한 인물이지만 아직까지 조상대대로 전해오는 이 경문을 전수받지 못했오.]

영호충은 말했다.

[녜, 저도 이런 인연의 복이 없읍니다. 감히 쳐다볼 수도 없군요.]

방증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오. 소협은 인연이 닿는 사람이오.]

영호충은 놀람과 기쁨이 교차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뜻밖에 이 소림의 비기가 방생대사 같은 소림고수조차도 전수받지 못했는데 자기가 배울 인연이 닿았다는 것에 대해 깜짝 놀랬다.
방증은 천천히 말했다.

[불문은 넓고 오묘하지만 인연이 중시되오. 소협은 풍노선생의 전수자이니 이것은 첫번째 인연이고, 소협이 우리 소림사에 온 것도 도 하나의 인연이오. 소협께서 이 역근경이 숙달되지 못하면 목숨을 잃어야 되고 방생사제가 이 역근경을 연마했으나 이익이 될지언저 비록 습득하지 못해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으니 이것도 인연이오.]

방생은 합장하며 말했다.

[영호소협은 인연의 복이 매우 많소. 방생도 축하하네.]
방증이 말했다.

[사제, 자네는 천성이 한가지 일에 집착하는 성격이니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의 세가지 해탈의 이치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생과 사의 관문을 아직도 깨뜨리지 못했오. 내가 자네에게 역근경을 전수하려고 하는게 실로 최고의 무학을 연마한 다음 그속에 빠져 참선의 본업을 황폐케 할까 염려될 뿐이네.]

방생은 황공스러운듯 몸을 일으키며 공경스럽게 말했다.

[사형의 가르침이 맞습니다.]

방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엔 감동을 받은 듯했다.
한참 후에 방생이 얼굴에 웃음빛을 띠우자 또 고개를 끄덕이며 영호충을 보고 말했다.

[이걸 배우는데는 애당초 크나큰 장애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을 넘길 수가 있지. 달마조사 이래로 이 역근경은 오로지 본사의 제자에게만 전수할 수 있었고, 외부 사람에겐 전해주지 않았네.
이런 예를 내손에서 파괴할 수는 없는 일이네. 그래서 소협은 반드시 숭산소림파의 문하로 들어와야만 하니 소림사에 환속한 제자가 되어야 하네.]

그리고 잠간 쉬더니 말했다.

[소협이 싫지 않다면 이 늙은이의 문하에 들어오면 국(國)자 돌림의 항렬이 되니 이름을 영호국충이라고 고쳐 불러야 된다네.]
방생은 기뻐서 말했다.

[영호소협 축하하네. 내 방장사형은 평생동안 단지 두 명의 제자를 받았을 뿐이고 그것도 삼십년 전의 일이라네. 소협은 방장사형의 제자가 되니 역근경의 높고 심오한 무학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또 방장사형의 정통한 소림묘기를 전수받을 수 있게 되었네.
그때가 되면 소협은 우리 위에 있게 되고 무림에선 정말 멋진 존재가 될 것이네.]

영호충은 말했다.

[방장대사님의 뜻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몸의 소속은 화산파의 문하에 있으므로 스승을 바꿀 생각은 없읍니다.]

방증은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

[내가 말하는 큰 장애란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네. 소협 지금으로 보면 자네는 화산파의 제자가 아닐 것이네. 아마 자네는 모르고 있는 것 같네.]

영호충은 깜짝 놀라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전...... 전...... 제가 이미 화산파의 제자가 아니라구요?]
방증은 옷소매에서 한통의 편지를 꺼내더니 말했다.

[자 한번 보시오.]

그가 손바닥을 펼치자 그 편지는 영호충을 향해 평평하게 날아왔다.
영호충은 두 손으로 받는 순간 전신이 떨렸고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방증대사는 과연 내공이 깊어 추측할 수가 없구나. 겨우 이렇게 엷은 한장의 편지를 보내는데 이렇게 두터운 공력을 쓰다니.)
그 편지 봉투에는 화산파장문지인(華山派掌門之印)이라고 써 있었고, 그 위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 위에는 근정소림파장문대사(謹呈少林派掌門大師)라는 아호블자가 또박또박 단정하게 씌어져 있었다. 이것은 사부인 악불군의 친필이었다. 영호충은 일이 암암리에 이상하게 돌아감을 감지하고 두 손을 벌벌 떨며 안에 들어 있는 편지를 꺼내 보았다. 이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아 또 보고 또 보았다. 하늘이 빙빙돌고 어지러워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는 방생대사의 품 속에 있었다. 영호충은 일어나려고 지탱하다가 참지 못하고 방성대곡을 했다.
방생이 물었다.

[소협은 어찌 그리 슬피우는가? 혹시 사부께 좋지 못한 일이라도 있는가?]

영호충은 편지를 건네주면 흐느끼며 말했다.

[대사님 보시지요.]

방생은 편지를 건네 받아보니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화산파장문 악불군이 머리를 조아리며 소림장문대사께 글월을 오립니다. 덕이 부족한 몸이 화산일파를 집권하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문호도 드리지 못하고 소식도 전하지 못하였읍니다. 얼마전 저의 문하의 역도 영호충이 타고난 천성이 악랄하여 누차 문중의 법규를 어기고 더욱 사악한 무리의 악당들과 함께 지내고 있읍니다. 불구는 무능하여 심하게 꾸짖고 벌도 내렸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읍니다. 그리하여 오직 무림정기와 정파의 명예를 위해 이 역도 영호충을 우리 문중에서 추방하기로 했읍니다. 지금부터 이 역도는 우리 문중의 제자가 아니며, 만약 다시 악당들과 맺어 강호에 화를 입힌다면 나와 정파의 여러 친구들이 같이 없앨 것입니다. 이런 편지를 드리게 되어 부끄럽고 황송한 것이 말로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대사께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생도 역시 상상외의 일이었다. 무슨 말로 영호충을 위안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그는 즉시 편지를 방증대사에게 건네 주었다. 그는 영호충의 얼굴이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된 것을 보고 탄식했다.

[소협 자네와 흑목애 사람과 내왕하는 것이 온당치 못한 일이었네.]

방증이 말했다.

[그 많은 정파의 장문인들은 모두 자네 사부의 이같은 편지를 받았으니 강호에 다 전해졌을 것이네. 자네가 만약 몸이 나았다면 이 문을 나가야 하는데 강호에는 걸음걸음이 가시밭길이고 많은 정파문하의 제자들은 그 누구라도 자네를 적으로 볼 것이네.]
영호충은 그 산에서 영영도 이같이 똑같은 말을 한 것을 상기해 내고는 흠칫 놀랬다. 지금 이시각엔 방문좌도의 인사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고 정파문하의 사람들도 모두 자기를 적으로 여기고있을 것이다. 정말 천하는 크지만 몸을 맡길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 또 사부의 은혜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과 사모님은 지금까지 자기를 자식같이 대했고, 무예를 전수해주고 양육의 은혜까지 베풀었는데 자기의 이런 경솔한 행동으로 결국은 사문에서 쫓겨났다. 사부님이 이 편지를 쓸때 틀림없이 지금의 자기보다 가슴이 더 아팠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시에 마음이 아파오고 부끄러워졌다. 벽에 머리를 찧어 죽지 못하는게 한스러울 뿐이었다.
그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방생, 방증 두 스님의 얼굴에는 연민의 빠이 가득했다. 그는 갑자기 유정풍이 금분세수하려고 할 때가 생각났다. 유정풍이 금분세수하여 무림에서 물러서려고 한 것은 마교장로 곡양을 사귀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숭산파의 손에 목숨을 잃었었다. 그것으로 보아 정과 사는 양립할 수 없으며 유정풍과 같이 무예가 출중한 사람도 면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도와줄 사람도 없는 자기 같은 비천한 소년이야 어떻겠는가? 더우기 오패강에서 여러 군웅들이 모인 집회는 정말 튼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방증이 천천히 말했다.

[고해(苦海)는무한하지만 고개를 돌려보면 언덕이 있는 법이네. 구제할 수 없는 악한일지라도 마음속으로 후회한다면 우리 불가에선 들어오는 자를 막지 못한다네. 자네의 나이가 아직 어리고 일시적으로 발을 잘못 디뎌 나쁜 사람과 왕래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개과천선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네. 자네와 화산파의 관계는 칼로 자른 듯 두 조각이 났지만 앞으로 우리 소림파 문하에서 앞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새사람이 된다면 무림에서 아무도 자네를 못살게 굴지는 않을 것이네.]

그의 몇마디는 가볍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디만 범할 수 없는 기상이 깃들어 있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지금 나는 어찌 택할 방법이 없다. 만약 소림문하에서 비호를 받고 지내면 신묘한 내공을 배우고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또 소림파의 위명으로 강호에는 틀림없이 방증대사의 제자에게 시비를 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 가슴속 한 구석에서 오기가 일어났다.

(대장부로서 하늘과 땅에 설 수 없다하여 다른파의 비호를 받아 생명을 연장한다면 그 어찌 영웅대장부라 할수 있겠는가? 강호에서는 수천 수만인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들로 하여금 나를 죽이라고 내버려두자 사부님이 나를 화산파에서 쫓아버렸는데 나 혼자서 왔다갔다 하며 지낸다면 그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드거운 피가 용솟음치며 입 안이 탔고 몇잔의 독주를 마시고 싶을 뿐 무슨 죽음이라든가 삶 문벌들은 다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삽시간에 마음속에 잊지 못하던 악영산도 마치 낯설은 사람같았다.
그는 몸을 굽혀 방증과 방생대사에게 아주 공경스럽게 절을 하고 또 절을 했다.
두 스님은 그가 이미 결심을 하여 소림파에 들어온다는 것인 줄 알고 얼굴에 혼한 미소가 떠올랐다.
영호충은 몸을 일으키더니 낭랑하게 말했다.

[저를 사문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데 다른 파에 다시 들어가기가 면목이 없읍니다. 두 분 대사의 대자대비하신 은덕에 이 소인은 눈물겹게 감사를 드리며 이만 떠날까 합니다.]

방증대사는 어안이벙벙해졌다. 뜻밖에 이 소년이 이렇듯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방생이 권하며 말했다.

[소협 이 일은 자네 생사와 관계가 있으니 절대로 감정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지 말게.]

영호충은 껄껄 웃더니 몸을 돌려 그 방을 나왔다. 그의 가슴속에는 한줄기 형용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었으나 발걸음은 매우 경쾌하게 큰 걸음으로 소림사를 나왔다.

영호충은 절에서 나온 후 마음에 처량한 감이 들어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길게 웃었다.

(정파인사들이 나를 적으로 삼고 좌파의 인사들이 나를 죽이려하니 오늘을 넘기기가 힘들겠구나. 그렇다면 누가 내 목숨을 빼앗아갈지 두고 봐야겠어.)

영호충은 온몸을 더듬어 보았으나 일푼도 없었고, 검도 없었으며 영영이 준 단금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구나. 영호충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으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겠지하고 생각하고 숭산을 내려왔다.
저녁무렵을 걷다가 소림사가 아주 멀어졌음을 알자 피곤하고 배도 고파왔다.

(어디로 가서 먹을 것을 찾는담.)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칠팔 명이 서쪽에서 달려왔다.
모두들 단단한 몸차림이었고 병기들을 휴대하고 있었으며 급히 뛰는 폼이 아주 급한 것 같았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너희들이 나를 죽이려면 어디 한번 죽여 봐라.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그러면 밥을 찾아 먹을 필요도 없고 배가 불러도 죽어야 하니 또한 귀찮게 밥을 찾을 필요도 없는 일이지.)

그는 즉시 길 가운데 우뚝 서서 두손을 허리에 짚고 큰 소리로 말했다.

[영호충은 여기 있다. 나를 죽이려면 덤벼라.]

그 사람들은 영호충 앞까지 오더니 그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몸을 옆으로 피하더니 앞으로 달려갔다.
한 사람이 말했다.

[이 사람은 미친놈이다.]

또 한 사람이 말했다.

[맞다. 큰일을 앞두고 작은일에 신경쓰지 말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만약 그놈이 도망치면 큰일이지.]

그들은 삽시간에 멀리 사라졌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알고보니 그들은 다른 사람을 잡으려고 하는군.)

그 사람들의 발소리가 멀어져가자, 서쪽에서 도 한차례 말굽소리가 들려 왔다. 다섯필의 말이 질풍같이 달려 오더니 몸 옆을 스쳐갔다. 한 십여장을 달려 가더니 갑자기 그중 한 말이 길을 되돌아 오더니 말에 탄 중년부인이 말했다.

[보세요. 나그네, 말씀 좀 묻겠어요. 당신은 여기서 하얀 옷을 입은 늙은이를 보지 못했나요. 그 사람은 말랐고 키가 크며 허리에 완도를 한자루 찼는데요.]

영호충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보지 못했읍니다.]

그 부인은 더 묻지 않고 말을 돌려 다른 네 명을 뒤쫓아갔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그들은 하얀 옷을 입은 어떤 늙은이를 잡으려고 하는구나. 어차피 할일도 없으니 따라가서 구경이나 하자.)

그는 즉시 방향을 바꾸어 동쪽으로 향했다. 얼마가지 않았는데 몸 뒤에 또 십여명이 뒤쫓아왔다. 한 사람이 그의 몸을 스쳐가더니 오십여세 되는 사람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보시오. 당신은 이곳에서 하얀 옷을 입은 늙은이를 보았소? 그 사람은 키가 크고 말랐으며 허리에는 완도를 차고 있소.]
영호충은 말했다.

[보지 못했읍니다.]

한참을 걸으니 길이 세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서북쪽에서 방울소리가 울리며 세 마리의 말이 질풍처럼 달려왔다. 말에 탄 사람들은 모두 이십여세 정도되는 청년들이었다.
한 사람이 말채찍을 치켜 세우며 말했다.

[보시오. 말씀 좀 묻겠읍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영호충은 이어서 말했다.

[당신이 물어보려고 하는것은 몸이 호리호리하며 키가 크고 허리에는 완도를 차고 있으며 하얀 장포를 입고 있는 늙은이를 물어보려고 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세 사람은 기쁜 빛을 띄우며 일제히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읍니까?]

영호충은 탄식했다.

[나는 보지 못했읍니다.]

먼저 말했던 청년이 화가 나서 일갈했다.

[할 일도 되게 없는 사람이군. 보지도 못했는데 어찌 아시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보지 않았다고 알 수가 없나요.]

그 청년은 말채찍을 들어 영호충의 정수리를 내리치려고 했다.
그때 한 청년이 말했다.

[이제(二弟) 다른 일에 관여하지 마시게. 우리는 빨리 쫓아가야만 합니다.]

말채찍을 들던 청년은 흥 하고 코소리를 내던 말채찍을 공주에서 한번 휘두르고 말을 달려 앞으로 향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흰옷 입은 늙은이를 찾으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뒤쫓아가 구경을 하면 틀림없이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가 영호충이라는 것을 안다면 틀림없이 나를 금방 죽여버릴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자기도 모르게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했다.

(지금 정사에서 모두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는데 내가 살금살금 피하여 조금식 생명을 연장한다 해도 그것은 며칠을 연장할 수 있을 뿐이지. 최후엔 결국 액운에서 벗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하루를 더 산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오히려 부딪치면 편할 것이고 누구의 손에 내 목숨이 달아나는 것을 본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거야.)

그는 즉시 세 필의 말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곳으로 향해 몸을 옮겼다.
그 외에도 몇 차례의사람이 뒤쫓아와 모두들 그에게 하얀 옷을 입고 몸이 말랐으며 키가 크고 허리에 완도를 차고 있는 늙은이에 대해서 물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하얀 옷을 입은 늙은이를 쫓아가면서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구나. 그러나 찾아가는 방향이 일정하니 그것도 이상한 일이군.)

얼마를 걷다가 송림을 지나니 눈앞에 갑자기 엄은 평야가 나타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어림잡아 육칠백명은 도리 성싶었는데 평야가 넓고 크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이 있어도 조그만 점 같이 보였다. 모여 있는 곳으로 한 줄은 곧은 길이 뻗어 있었다. 영호충은 그 길을 따라 앞으로 갔다.
가까이 가보니 무리가 모여 있는 곳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이 광야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휴식처를 제공해 주고 있는 곳이었다. 그 건물은 누추하고 엉성했다. 무리와 정자와는 수장이 떨어져 있었으며 그들은 더 이상 가까이 접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영호충이 다시 십여장을 접근하니 정자 안에는 틀림없이 하얀 옷을 입은 늙은 사람이 보였고, 혼자서 긴 의자를 차지하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가 완도를 찼는지 차지 않았는지 금방은 알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앉아 있었지만 그의 키는 일반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영호충은 수많은 사람에게 포위를 당했으면서도 그가 이렇듯 단정히 앉아 여유를 즐기는 듯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자, 우러러 보게 되었다. 평생 두고 본 영웅들 가운데 이렇게 호기가 하늘을 덮는 듯한 사람은 극히 적었던 것이다.
그는 천천히 앞을 향해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들었다.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똑바로 들어 하얀 옷을 입은 늙은이만 주시할 뿐 영호충이 다가옴을아무도 주의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정신을 집중해 늙은이를 살폈다. 그는 좀 말라 있었고 턱에는 꽃같은 하얀 수염이 있었으며 그 수염은 가슴가지 내려와 있었다.
손에는 술잔을 들고 있었고 눈은 먼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에워싼 수많은 사람들은 마치 안중에 두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의 등에는 보따리가 짊어져 있고 허리에는 사람들이 말하는 완도는 없었다. 알고 보니 그는 병기조차 휴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호충은 이 노인의 성명과 내력을 알 수 없었고 또한 어째서 이 많은 무림사람들이 그를 괴롭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더우기 그 사람이 정파인지 사파인지는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 사람의 방약무인(旁若無人)과 같은 호기를 흠모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생각이 들어 만감이 교차되어 즉시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디며 낭랑하게 말했다.

[선배님, 오셨군요. 당신 혼자서 독작을 하시고 같이 드는 사람이 없으니 너무적막한 것 같습니다. 제가 당신과 함께 술을 마시지요.]

그리고 정자로 들어간 후 읍을 한 뒤 털썩 주저앉았다.
그 노인은 머리를 돌려 두 줄기의 차가운 빛으로 영호충을 흠어보았다. 그는 아무런 병기도 지니지 않고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으며 자기도 모르는 소년이라고 생각하자 의아한 빛을 띄우더니 흥 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술주전자를 들어 노인 앞에 놓여 있는 잔에 술을 가득 다르고 또 다른 한 잔에 술을 따라 들고 말했다.

[자, 드시요?]

그리고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술을 비웠다. 그 술은 극히 독해 입 속에 들어가자 목 안을 칼로 자르는 듯했고 수많은 화약이 뱃속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칭찬하며 말했다.

[좋은 술입니다.]

정자 밖의 한 사내가 굵은 목소리로 일갈했다.

[네 이놈 빨리 나오거라. 우리는 그 늙은이와 목숨을 걸고 싸우려고 하는 거기에서 수작부리지 마라.]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노선배와 술을 마시고 있을 뿐인데 당신들께 무슨 방해가 되었단 말이오?]

그는 또 한 잔의 술을 다르더니 고개를 쳐들고 입 속에 부었다.
그리고 나서 엄지손가락을 쳐들더니 말했다.

[좋은 술입니다.]

왼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 비켜라. 거기서 생명을 헛되이 버리지 말아라. 우리들은 동방교주의 명을 받들고 역도인 상문천(向問天)을 잡으려 왔다.
다른 사람이 만약 방해를 한다면 그놈도 함께 없애버리겠다.]
영호충이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마치 금박지처럼 비쩍 마른 사내였다. 몸에는 검은 옷을 입었고 허리에 노란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의 몸 옆에는 이삼백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으며 옷도 모두 검은색이었고 허리에 두른 띠는 각양각색이었다. 영호충이 생각해 보니 그날 형산성 밖에서 마교장로를 보았을 때 그도 몸에 이렇게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희미한 기억으로는 이 사람과 같은 노란띠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이 비쩍 마른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들은 동방교주의 명을 받들어 반역자를 잡으러 왔다고 했느데 이 사람들은 모두 마교의 부하들이고 이 비쩍 마른 사람은 마교의 장로가 아닐까?)

그는 또 한잔의 술을 따라 못을 쳐들고 싹 비워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좋은 술입니다.]

그리고 흰 옷을 입은 상문천을 향해 말했다.

[상노선배님, 제가 당신의 술을 세잔 마셨읍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갑자기 동쪽에서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이 자가 바로 화산파에서 내쫓긴 영호충이다.]

영호충은 눈을 껌벅이며 쳐다보니 말한 사람은 바로 청성파의 제자인 후인웅(侯人雄)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더욱 자세히 보니 그의 옆에는 적지 않은 오악검파의 인물들도 끼여 있었다.
한 명의 대사가 낭랑하게 말했다.

[영호충, 네놈의 사부께서 말씀하시길 네놈은 사악한 무리와 함께 있다고 했는데 그게 틀림없는 말이군. 이 상문천의 두 손에는 영웅협사의 새빨간 피가 잔뜩 묻어 있다. 너는 왜 그와 함께 있는가? 빨리 꺼지지 않으면 우리는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편육으로 말들겠다.]

영호충은 말했다.

[아니 태사파의 사숙이 아니십니까? 저는 앞에 계신 상선배님과는 평소 알지 못했고 단지 당신들 몇백명이 그를 에워싸고 있으니 그게 무슨 꼴이오? 오악검파는 또 언제 마교들과 손을 잡았읍니까? 정파 사파 쌍방이 함께 상노선배 한 사람을 대적하시니 이 어찌 천하영웅들이 웃지 않겠읍니까?]

그 도사는 화가 나서 말했다.

[우리가 언제 마교들과 손을 잡았단 말이냐? 마교들은 자기 교의 역도를 잡으러 왔고, 우리들은 이 악독한 놈의 손에 죽은 친구들의 복수를 하러 왔을 뿐이다. 각자가 각자의 일을 하고 있으니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영호충은 말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당신들은 일대 일로 대결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곳에서 술을 마시면서 구경이나 하겠소.]

후인웅은 일갈했다.

[네놈이 무엇이냐? 자 우리는 이놈을 먼저 처치한 후 상가를 처치합시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나 영호충 한 사람을 죽이는데 어째서 모두의 힘이 필요하오.
후형께선 혼자 올라와 보시겠오?]

후인웅은 예전에 주막에서 발로 채여 내쫓긴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자기의 무공이 가호충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손을 써서 앞으로 달려들지 못했다. 그는 영호충의 내공이 이미 소실되고 옛날과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치 상문천의 대단한 무공이 겁이 나서 감히 정자를 향해 쳐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교의 비쩍 마른 사내가 외쳤다.

[상가 놈아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빨리 교주를 만나뵙자. 그 어른에게 어떤 지시를 받는다면 살 수 있는 길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우리 교의 영웅인데 우리끼리 피비린내를 풍겨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겠지.]

상문천은 흥 하고 소리를 내고 술잔을 들어 한모금의 술을 마셨다. 손을 들자 챙그랑 소리가 울렸다.
영호충은 그의 양손 사이에 달려있는 쇠사슬을 보고 크게 의아하게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는 감옥에서 도망친 사람이었군. 손에 있는 결박 조차도 풀지 못했으니.)

그는 그를 동정하는 마음이 더욱 들었다.

(이 사람은 이미 항거할능력을 잃었으니 내가 그를 도와 좀 막아보자. 여기서 멍청하게 죽는다는 것도 좋은 일이지.)
그는 즉시 몸을 일으키고 두 손을 허리춤에 쥐더니 낭랑히 외쳤다.

[이 상선배님의 손에는 쇠사슬이 묶여 있는데어떻게 당신들과 손을 쓸 수 있단 말이오? 내가 어르신의 술을 마셨으니 말로써 감사를 어떻게 표해야할지 모르겠오. 그러니 별 수 없이 그를 도와 강적을 막을까 하오. 누가 만약 상어른께 손을 대려고 한다면 반드시 영호충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오.]

상문천은 영호충이 미친 것처럼 앞으로 나서자 의아하게 생각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여보게, 자네는 왜 나를 도우려는 것이지?]

영호충은 말했다.

[길을 가다 공평하지 못한 일을 보았으니 칼을 들어 도와 주려는 것일 뿐이지요.]

상문천은 말했다.
'
[그럼 자네의 칼은 어디에 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제가 검을 사용하고 싶어도 검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상문천은 말했다.

[자네의 검법은 어떠한가? 자네는 화산파의 사람이니 검법이 그리 고명하지는 않겠군.]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고명하지 못했읍니다. 지금은 몸에 중상을 입었고 내공까지 상실되어 더욱 설상가상이지요.]

상문천은 말했다.

[자네의 마음을 모르겠군. 좋아 내가 자네에게 검 한자루를 가져다주지.]

곧이어 하얀 인영이 흔들거리더니 정자를 에워싼 군중들 틈으로 들어갔다.
삽시간에 도광이 번쩍이며 십여가지의 병기가 일제히 그를 내리찍었다. 상문천은 옆으로 피하며 태산파의 도사에게 접근했다. 그 도사가 검을 들어 내리치려고 하자, 상문천은 살짝 비켜 그의 목 뒤에 와서 섰다. 그리고 왼쪽 발꿈치에 일격을 가하며 퍽 하는 소리를 내며 그 도사의 뒷덜미를 내리쳤다. 두 손을 가볍게 흔들자 도사의 검은 어느새 그의 쇠사슬 안에 묶여져 있었고 오른발을 살짝 땅에 내딛자 어느새 그의 몸은 정자로 되돌아 와 있었다.
이 몇차례의 행동은 순식간이었으며 민첩하기 이를데 없었다.
정파의 군웅들이 손을 쓰려고 했으나 미처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한명의 사내가 잽싸게 뒤쫓아오더니 정자에서 불과 수척에 이르러 단도를 들고 내리찔렀다. 상문천은 등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고개도 돌리지 않고 왼발로 걷어차니 그의 가슴을 명중시켰다. 그 사람은 크게 소리치며 뒤로 벌렁 자빠졌다. 그 사람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단도를 힘껏 내리치고 있었기 때문에 쓱 하는 소리를 내며 자기 오른발을 스스로 찌르는 꼴이 되었다.
태산파의 도인도 몸을 몇번 흔들거리더니 천천히 풀썩 주저앉았다. 입 속에선 선혈을 끊임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마교 중의 무리 속에서 탄성과 갈채 소리가 벼락치듯 들려왔다.
수십명은 크게 외쳤다.

[정말 멋진 솜씨야. 멋진 몸놀림이야.]

상문천은 잔잔하게 웃으면서 두 손을 들어 마교의 사람을 향하여 포권을 하며 그 갈채에 인사를 했다. 손에 묶여져 있던 쇠사슬이 계속 쩡그렁 쩡그렁 소리를 냈다. 그가 손을 확 뿌리치자 그 검은 소리를 내며 탁자 위에 꽂혔다.

[자, 가져가 사용하게.]

영호충은 그의 솜씨에 감탄했다.

(이 사람은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도 굴하지 않는군. 과연 몸에는 놀랄만한 재간을 지니고 있군.)

검을 뽑으려고 하지 않고 그는 말했다.

[상선배님의 무공이 이렇듯 대단한데 제가 어찌 추태를 보이겠읍니까?]

그리고 포권을 하더니 말했다.

[저는 그만 물러가겠읍니다.]

상문천의 대답소리가 나기 전에 검광이 번쩍했다. 세 자루의 장검이 정자를 향해 날아왔다. 이것은 청파제자 후인웅 등 세 명이 공격해 오고 있는 것이었다. 세 사람의 세 검은 모두 영호충을 향해 뻗어왔다. 일검은 그의 뒷덜미를 노렸고 두 검은 그의 허리 뒤쪽을 향해 왔다. 검과 영호충의 거리가 일척정도 되었을 때 후인웅이 말했다.

[영호충, 내 앞에 무릎을 꿇으시지.]

이 말이 끝나면서 장검이 영호충의 살갗에 닿았다.
영호충이 생각했다.

(영호충은 당당한 사내대장부다. 오늘날 운수가 사나우나 결코 너희 청성파의 더러운 칼아래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 삼검이 그의 몸을 에워싸고 있으니 몸을 옆으로 비키면 일검이 가슴을 찌를 것이고, 두 검은 아랫배를 찌르게 될 것이다.
그는 즉시 껄껄 웃으며 말했다.

[무릎을 꿇으라고 하면 꿇어야지.]

오른쪽 무릎을 약간 굽히더니 오른손으로 재빨리 탁자 위에 꽂혀 있던 장검을 뽑아 휘둘렀다. 그 바람에 청성파제자 세 사람의 손목이 잘라져 나가며 세 자루의 장검이 일제히 쇳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떨여졌다. 후인웅 등 세 사람은 얼굴이 창백해지고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생각하고 멍청히 앞만 쳐다보더니 뒤롤 물러섰다. 그 청성파 제자 둥의 한 사람은 나이가 겨우 십칠팔 세 되어 보였는데 팔이 잘려져 나가자 아픔에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영호충은 미안한 듯 말했다.

[형제여, 자네가 나를 먼저 죽이겠나.]

상문천은 갈채를 보냈다.

[좋은 검법이군.]

이어서 또 말했다.

[검에는 힘이 없고 내공이 너무 부족해.]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어찌 내공만 부족하겠읍니까. 정말 내력이 하나도 없읍니다.]
갑자기 상문천이 큰 소리를 치더니 곧이어 쇠사슬이 쩡그렁 떵그렁 소리를 내며 쇠사슬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상문천을 향해 덮쳐온 것이었다.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손에 빈철쌍회장(?鐵雙懷杖)을 쥐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쌍철편을 쥐고 있었다. 이 무기들은 무거운 무기들로 무섭기 짝이 없었다. 네 개의 병기와 상문천의 쇠사슬이 부딪치자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상문천은 뒤로 물러서며 쌍회장을 흔들고 있는사람 뒤편으로 파고 들었다. 그러자 쌍회장을 휘두르는 사람도 몸을 지켜 죽음의 위험을 막았다. 상문천의 두 손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몸을 민첩하게 놀릴 수 없었다.

마교무리 중에서 질타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이 또 앞으로 나섰다. 두 사람 모두 팔각동추(八角銅鎚)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위아래로 맹렬히 휘둘러대고 있었다. 두사람이 쓰는 네 개의 동추가 다가오자 쌍회장을 사용하고 있던 자도 수비에서 공격으로 자세를 취했다. 상문천은 이리 피하고 저리 뚫고 하며 몸놀림이 민첩하기 이를데 없었으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었다. 틈이 생겨 한명을 공격하면 나머지 세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달려들고 하니 번번이 실패를 하곤 했다.
이렇게 십여초를 겨루고 난 후 마교중의 수령인듯한 자가 일갈했다.

[팔창(八槍)은 일제히 덤벼라.]

그러자 여덟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손에 장창을 쥐고 각각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동서남북 각 방향에서 각기 두 개씩의 장창이 상문천을 향해 찔러갔다.
상문천은 영호충을 향해 외쳤다.

[여보게, 친구 빨리 가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덟자루의 긴 창이 그를 향해 찔러왔다.
바로 이때 네 자루의 동추가 그의 배와 가슴을 향해 날아왔고 쌍회장은 그의 경골을 향해 일격을 가해왔다. 두 개의 쌍패는 그의 얼굴을 향해 쳐들어왔다. 사면팔방 어느 곳이고 살기로 가득 찼다. 이 열두 명의 마교인들이 각기 필생의 힘을 다해 쳐들어 왔으니 그 힘이란 말할 수 없는 위력이 있었다. 이들은 상문천과의 대결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들의 발걸음이 염라대왕을 보러 한발자국씩 들어가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이렇듯 혹독하게 쳐들어오는 것을 보자 상문천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아 외쳤다.

[창피할 줄도 모르는 놈들이다.]

상문천은 갑자기 신속하게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손에 들려져 있던 쇠사슬이 여러 사람의 병기들과 부딪치며 쨍그랑 창! 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몸이 마치 팽이처럼 빙글빙글 도니 모두들 눈이 돌 지경이었다. 쨍그랑 창그랑거리며 큰 소리가 두번 들리더니 두 개의 철패가 그의 쇠사슬에 부딪쳐 정자의 지붕을 뚫고 날아가 버렸다. 상문천은 상대방의 초식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듯 갈수록 빨라지며 여덟 자루의 긴 창을 모두 날려버렸다.
마교의 수령이 외쳤다.

[천천히 공격해라. 이 자의 힘을 소모시켜야 한다.]

창을 사용하던 여덟명이 일제히 말했다.

[녜.]

그리고 각자 두걸음씩 물러나 상문천의 힘이 쇠잔해지고 빈틈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문천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 해도 절대로 몸을 더 이상 회전시키며 싸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중에는 힘이 빠져 곧 잡히리라고 모두들 여기고 있었다.
상문천은 껄껄 웃고 왼쪽 다리를 구부려 쇠사슬을 홱 날려 동추를 사용하고 있던 사람의 허리에 내리쳤다. 그 사람은 악 하는 큰 소리를 내더니 오니손에 들고 있던 동추로 자기의 정수리를 쳐 삽시간에 머리가 부서지며 골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여덟 명이 사용하는 창이 일제히 상문천의 전후 좌우를 향해 찔러갔다. 상문천은 몸을 돌려 두 사람을 피했는데 나머지 여섯 사람의 강철창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왼쪽 옆구리를 찔러 왔다. 이런 상황은 상문천이 일창을 피할 수 있더라도 두번째 창은 피할 수 없고 설사 두번째 창을 피한다 해도 세번째 창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물며 여섯개의 창이 일제히 달려들어오니 어찌하겠는가? 영호충은 이 여섯 자루의 창이 일제히 찔러오자 상문천이 도저히 피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어 외리 속에 번쩍하고 영감이 떠 올랐다. 독고구검의 제사식인 파창식(破槍式)이 생겨난 것이다.
이 간발의 차이가 아쉬운 이때 어찌 더 머뭇거릴 시간이 있겠는가? 그가 장검을 잽사게 뽑아 휘두르자 챙그랑거리며 여덟 개의 긴 창이 땅바닥에 일제히 한꺼번에 떨어졌다. 거의 동시에 떨어졌던 것이다. 영호충의 일검이 여덟 사람의 손목을 치는 순간은 각자 선후의 구분이 있었으나 검세가 너무 빨라 여덟 명이 같은 시간에 맞은 것 같았다.
그는 장검을 뽑아들자 중단하지 않고 제오식인 파편식(破鞭式)을 펼쳤다. 이 파편식은 포괄적인 명칭일 뿐이었고 그 속의 변화는 수만가지였다. 강편(鋼鞭), 철간(鐵?), 점혈권(點穴?), 판관필(判官筆), 괴자(拐子), 아미자(蛾眉刺), 지수(?首), 판부(板斧), 철패(鐵牌), 팔각추(八角鎚), 철추(鐵椎) 등등의 무기는 모두 다 해소시킬 수 있었다. 검광이 연속 번쩍이며 두 개의 회장과 두 자루의 동추가 모두 땅바닥에 덜어졌다. 열두 명의 공격하던 마교인 중에 한 사람은 상문천에게 살해당하였고 한 사람은 손에서 철패를 떨어뜨린 외에 열 사람은 모두 손목에 검을 맞아 병기를 손에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열한사람은 모두 외마디의 신음소리를 지르더니 낭패하여 자기들의 본진으로 돌아갔다.
정파의 여러 군웅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멋진 검법이야.]
[화산파의 검법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었어.]

그 마교의 수령이 한 마디의 신호를 보내자 다섯 사람이 정자로 들어오며 공격을 해왔다. 그중 한 중년부인은 쌍도를 들고 있었는데 영호충을 향해 달려왔고 네 명의 거하는 상문천을 에워싸며 공격해 갔다. 그 부인의 도법은 극히 빨라 한 칼로는 몸을 지키고 다른 한칼로는 공격을 질풍처럼 해왔다. 왼손의 칼이 공격을 해오면 오른손의 칼은 수비를 하고 오른손의 칼이 공격을 하면 오니손의 칼은 수비를 하며 쌍도가 연신 교차되며 매 일초마다 공격틈을 드러내놓지 않고 있었다. 영호충은 이 도법을 알지 못해 연신 메발짝을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바로 이때 윙윙하며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사람이 연한 무기로 상문천과 대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자기 몸을 지키며 곁눈질을 해보니 두 사람이 연자추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두 사람은 부드러운 채찍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상문천의 쇠사슬에 부딪치곤 했다. 연자추에 달려 있는 강철로 만든 쇠사슬은 길어 한번 휘두르자 그 길이가 일장정도는 됨 직했고 몇 번이고 영호충의 머리끝을 지나갔다.
상문천이 욕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제미랄놈들!]

한 사내가 외쳤다.

[상우사(向右使) 죄송하게 되었소.]

알고 보니 한 연자추가 상문천의 쇠사슬을 움켜쥐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 나머지 세 사람의 병기도 동시에 상문천의 몸을 향해왔다.
상문천은 윽 하고 소리를 지르며 힘을 써 힘껏 잡아 당겼다. 연자추를 사용하던 사람이 그의 몸 앞으로 당겨졌다. 두 개의 채찍과 한 개의 강추는 모두 그 사람의 등 뒤에 꽂혔다.
영호충은 옆으로 비스듬히 일검을 질렀는데 그 기세는 벌이 쏘는 듯 빨라 그 부인의 왼쪽 팔목을 적중시켰다. 그러나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이 튕겨지며 그 부인의 손에 들려 있던 유엽도(柳葉刀)는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도가 썰듯 덮쳐왔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바로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녀의 손목은 강철로 싸맸군. 그래서 검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이야.)

손목을 비스듬히 하고 장검을 내리쳐서 그녀의 왼쪽 어깨 견정혈을 찔렀다. 그 부인은 깜짝 놀랐으나 그녀는 극히 용감하고 독해서 왼쪽 어깨가 비록 극렬하게 아파왔지만 오른손의 칼은 여전히 힘껏 공격해오고 있었다. 영호충은 장검을 들어 다시 그녀의 오른쪽 어깨의 견정혈을 찔렀다. 그녀는 더 이상 병기를 잡을 수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해 쌍도를 영호충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두 팔은 힘이 없어 두 자루의 칼은 일척도 못 날아와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영호충이 그 부인을 제압하고 나자 정파 중의 한 도인이 검을 뽑아들고 다가왔다. 얼굴이 새파란 그 도인은 말했다.

[화산파의 검법 중에 이런 요사한 검법은 없을 것이다.]
영호충은 그의 차림새로 보아 태산파이 선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틀림없이 자기의 동문이 상문천에게 살해를 당했기 때문에 그를 찾아 복수를 하러 왔을 것이다. 영호충은 비록 사부님에게 내쫓김을 받아지만 어려서부터 화산파의 문하에서 컸기 때문에 오악검파도 같은 줄기이므로 이 화산파의 선배를 보자 자연히 공경하는 마음이 들어 장검을 들어 검끝을 땅에 대고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제자는 태산파의 사백께 죄를 짓고 싶지 않습니다.]
그 도인의 도호는 천을(天乙)이었으며 천문(天門) 천송(天松) 등의 도인들과 같은 항렬의 사람이었다.
그 도인은 냉랭히 말했다.

[자네가 사용하는 검법은 무슨 검법이냐?]

영호충은 말했다.

[제자가 사용하는 검법은 화산파 선배님께서 전수해 주신 검법입니다.]

천을 도인은 말했다.

[당치도 않은 소리다. 어디가서 요괴한 선생을 찾아 사부로 모셨는지 모르지만 자 검을 받아라.]

그리고 검을 들어 영호충의 가슴을 향해 질러왔다. 검광이 번쩍이며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일검은 그의 가슴에 있는 전중(?中), 신장(神藏), 영허(靈墟), 신봉(神封), 보랑(步廊), 유문(幽門), 통곡(通谷) 등의일곱 군데의 대혈을 일시에 노리며 찔러 왔다. 그가 어떤 곳을 스치든 간에 어떤 한 곳의 혈도가 예리한 검에 찔리고 말 것이었다. 이 일검은 칠성낙장공(七星落長空)이라고 부르는데 태산파의 검법 중에도 으뜸가는 정묘한 검법이었다.
이 일초가 뻗어나오면 상대방은 반드시 경고이 높아 즉시 뒤로 한장 정도 물러나야만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칠성낙장공의 검초를 알아야 한다. 그의 검초가 일제히 들어오면 즉시 주저하지 말고 나는 듯 뒤로 물러서야만 가슴을 노리는 초식을 피할 수 있고 땅에 떨어진 다음 뒤따르는 삼초의 후초도 주의해야 한다. 이 삼초식은 일초일초가 더욱 무서워 연달아 동작이 이어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천을 도인은 영호충의 검법이 예리하고 무서운 것을 보자, 손을 쓰자마자 제일검부처 사력을 다해 왔다. 태산파의 선배가 이 초식을 창출해낸 이후 일초부터 이 초식을 사용한 적이 일찌기 없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으나 사과애의 뒷동굴 속에서 이 초식을 본 적이 있었다. 그날 자기가 배운 다음 전백광과 상대했으나 자기가 익숙하게 배우지 못해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초식의 검법은 앞뒤를 훤히 알고 있었다. 이때 이 검법이 무시무시하게 다가오자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삽시에 검을 똑바로 쳐들고 천을 도인의 아랫배를 향해 질러갔다. 이 일검은 바로 석벽에서 본 도형이었다.
마교장로는 이 검법을 써 칠성낙장공의 초식을 해소시켰던 것이다. 언뜻 보면 적과 싸워 같이 패하고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술법 같았다. 사실 태산파의 칠성낙장공의 초식은 두 절로 나눌 수 있었다. 제일절은 검기로 적의 가슴에 있는 일곱군데의 요혈을 노린 다음 적이 놀라고 당황한 틈을 타서 다시 제이절 중의 검법을 택해 혈을 찌르는 것이었다. 검기가 휩싸고 있는 부위는 일곱 군데였으나 결국 검이 찔러오는 것은 일검뿐인 것이다. 이 일검이 어떤 혈을 지르든 간에 적을 쓰러뜨리고 승리를 취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동시에 일곱 군데의 혈을 지르지 못하니 동시에 일곱 군데의 혈을 적중시키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초식은 두 절로 나뉘어져 있지만 본시 이 일초의 검법의 매서움은 그 당시 마교장로가 연구하고 추리해 본 결과 바로 이 매서운데서 약점을 찾아냈던 것이다. 상대방이 제일절의 검법을 사용하면 즉시 질풍처럼 그의 아랫배를 공격하면 이 일초의 칠성낙장공은 즉시 중단되며, 초식은 빈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천을 도인은 적의 검법이 오묘하게 들어오는 것을 보자 절대로 다른 자세를 취할 수 없음을 알고 대경실색하여 큰 소리로 질렀다. 자기는 그 장검에 찔려 구멍이 날 것이라 생각하고 경황중에 아픈 줄도 모르고 자세가 흐트러지더니 자기는 이미 죽은 줄 알고 땅바닥에 털석 쓰러졌다. 사실은 영호충은 검끝이 그의 아랫배에 닿았을 때그는 초식을 더이상 쓰지 않았던 것이다. 뜻밖에 천을 도인은 너무 놀라 스스로 시절해 버렸던 것이다.
태산파 문하생들은 눈앞의 천을 도인이 쓰러지자, 모두들 영호충이 그에게 상처를 입힐 줄 알고 너도나도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섯명의 청년도인들이 검을 뽑아들고 공격해왔다. 이 다섯명은 모두 천을의 문인으로 사부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다섯 자루의 장검을 폭풍우처럼 흔들기 시작했다. 영호충의 장검은 연신 다섯 도사의 손목을 찔러갔다. 곧이어 장검이 챙그랑 챙그랑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다섯 사람은 놀래서 각자 몸을 날려 피했다.
천을 도인은 엉금엉금 기듯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찔려서 죽었구나. 나는 찔려서 죽은 것이야.]

다섯 제자는 그가 연신 입으로 중얼거리는 것을 보자 어안이벙벙해 그가 정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천을 도인은 몇 마디를 더 하더니 비틀거리며 또다시 땅에 쓰러졌다. 두 명의 제자가 뛰어가 그를 부축하며 낭패한 듯 물러섰다.
군웅들은 영호충이 반초식으로 태산파 천을 도인의 혼을 빼앗자 모두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때 상문천을 에워싸고 공격하는 사람은 또 바뀌어 있었다. 검을 사용하는 두 사람은 형산파 사람이었는데 쌍검의 휘두름은 신속했고 상문천의 빈틈을 찾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왼손에 방패를 들었고, 오른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틀림없이 마교 중의 인물 같았다. 이 사람은 방패로 몸을 보호하고 지당도법(地堂刀法)을 전개하며 굴러와 상문천의 다리까지 접근하더니 칼로 그의 아랫도리를 찔러왔다. 상문천은 쇠사슬을 들어 방패를 연신 두번 내리쳤으나 모두 그를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방패 아래 있던 칼날이 거북이 머리처럼 들어갔다 나왔다 했는데, 그 수법이 극히 악랄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방패로는 몸을 보호하고 있는데 칼을 써 공격할 때는 반드시 빈틈이 생길 것이다. 그때 그의 손목을 자르면 되는 것이다.)

이때 등 뒤에서 어떤 사람이 일갈했다.

[이놈! 네놈은 목숨을 보존하고 싶으냐? 그렇지 않으면 버리고 싶으냐?]

그 소리는 비록 크지는 않았으나 거리는 가까와 그와 한두 척의 거리인 것 같았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과 얼굴이 마주쳐 코가 맞닿을 듯했다. 급히 피하려고 했으나 그 사람의 두손이 그의 가슴에 와 닿았다.
그 사람은 냉랭히 말했다.

[내가 내공을 쓰기만 하면 너의 근골은 모두 부서져 버릴 것이다.]

영호충은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똑바로 서서 움직이지 못했고, 심장의 맥박도 멈추는 듯했다. 그 사람은 두 눈을 들어 똑바로 영호충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영호충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두 눈은 빛을 발하고 있는게 위엄이 서려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의 손아귀에 죽는구나.)

그는 생과 사가 이렇게 갈라진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영호충의 눈빛에서 당황하고 놀라는 빛을 보았으나 순식간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타나자 죽음에 임박해서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무림중의 선배나 고인중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흠모의 정이 들었다.
그 사람은 껄껄 소리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몰래 급습했으니 너는 죽어서도 승복하지 않겠지?]
그리고 두손을 거두며 뒤로 세 발자국 물러섰다.
영호충은 그제서야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키가 작고 뚱뚱했으며, 얼굴색이 누렇고 부은듯 했으며 오십여세 정도 되어 보였는데 두손의 손바닥은 통통한 것이 작고 두꺼웠다. 그는 일장은 높이 들고 일장은 아래를 향해 숭양수(崇陽手)의 장법을 취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알고 보니 숭산파의 선배님이시군요. 성함은 어떻게 되시나요? 선배님의 넓은 도량에 감사드립니다.]

그 사람은 말했다.

[나는 효감인 악후(樂厚)이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후 다시 말했다.

[너의 검법은 확실히 고명하다. 그러나 적을 맞아 싸운 경험이 너무 부족하구나.]

영호충은 말했다.

[부그럽습니다. 대음양수(大陰陽手) 악사백님의 몸놀림은 정말 빠르시군요.]

악후는 말했다.

[사백이라는 두 글자는 받아드릴 자격이 없네.]

그리고 곧이어 왼쪽 장력을 휘두르며 오른쪽 장력을 뻗어냈다.
그 사람의 몰골은 몹시 추악했으나, 이 일장을 후려치자 온몸은 마치 우뚝 솟은 산처럼 든든해 보았다.
영호충은 그의 몸 어디를 살펴볼 빈틈이 없자, 갈채를 보냈다.

[아주 기막힌 장법이군요.]

그리고 장검을 비스듬히 뻗어냈다. 그것은 악후의 어디를 보아도 빈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검의 자세는 십중팔구는 몸을 보호하는 것이었으며, 그 중의 하나는 공격의 자세였던 것이다.
악후는 영호충이 장검을 뻗어 비스듬히 쳐오자 자기의 장력이 그의 몸 어디를 쳐도 장심을 그의 검끝에 갖다대는 꼴이라 쌍장을 한척 정도 내밀다 바로 거두어 들이며 말했다.

[멋진 검법이네.]

영호충은 말했다.

[후배가 무례했읍니다.]

악후는 일갈했다.

[조심하게.]

그리고 쌍장을 뻗더니 허공을 가로질러 밀어냈다. 한줄기의 강렬한 장풍이 몸에 맹렬히 덮쳐왔다. 영호충은 암암리에 외쳤다.

(아차 큰일 났구나.)

이때 그와 악후의 거리는 상당히 멀어 상자이 뻗어오자 영호충은 장검을 들어 막을 수 없어 몸을 피하려고 할 때 한줄기의 차가운 기운이 몸을 덮쳐 오는 것을 느끼고 몸서리를 쳤다. 악후의 상장의 힘은 서로 달랐다. 일음일양(一陰一陽)이라 양장(陽掌)을 먼저 뻗어 냈으나 음력(陰力)이 먼저 몸에 와 닿았다. 영호충은 멍한 상태에서 한줄기의 뜨거운 기운이 몸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그는 질식할 것 같았고 몸은 흔들흔들거렸다.
음양쌍장의 장력이 몸에 닿으면 본래는 요행을 바랄 수가 없었다. 영호충의 내공은 비록 소실되었지만, 체내에는 진기가 충만하게 넘쳐 흘렀다. 도곡육선의 진기와 불계화상의 진기도 지니고 있었고 소림사에서 상처를 치료할 때 방생대사의 진기도 얻었으니 모두 한줄기마다 극히 높고 중후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 일음일양의 두줄기 장력이 몸에 와 닿자, 그의 체내에 있던 진기가 상응의 힘을 발휘하여 심맥과 내장을 보호하니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그러나 삽시에 온몸이 떨려오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랐다.
악후가 다시 쌍장을 뻗어낼까 염려되어 영호충은 검을 들고 정자를 빠져나오며 똑바로 검을 질풍같이 내리쳤다. 악후는 장력에 격중되면 상대방은 즉시 죽지 않는다 해도 틀림없이 중상을 입고 땅바닥에 쓰러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고 무사했으며, 곧이어 검광이 번쩍이며 자기의 장력을 향해 질러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는 놀란 나머지 두 손을 교차시켜 일장은 영호충의 얼굴을 향하고 일장은 그의 아랫배를 노리고 장력을 날렸다. 장력이 쏟아져 나오자 강렬하게 손바닥이 아파왔다.
자기의 손바닥이 한군데 겹쳐 상대방의 검끝에 찔려 있는 것이었다.
영호충이 검을 써 자기의 손바닥을 찔렀는지 아니면 자기가 손바닥을 그의 검끝에 갖다 댔는지 몰랐다. 그러나 왼쪽장은 앞에 오른쪽 장은 뒤에서 검끝은 왼쪽 손등 뒤에서 관통하여 앞으로 튀어 나와 있었다.
영호충은 이 기세로 검을 쓴다면 그의 가슴까지 찌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목숨을 한번 늦춰 준 것이 생각나자 검이 쌍장을 관통한 후 더 이상의 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악후는 크게 외치며 두 손을 뒤로 빼냈다. 예리한 검끝에서 손을 빼내자 급히 뒤로 물러섰다.
영호충은 미안한 감이 들어 외쳤다.

[제가 죄를 범했군요.]

그가 사용하는 일초는 독고구검 중의 파장식(破掌式)의 절묘한 초식 중의 일초였다. 풍청양이 은거한 후 이 강호에 출현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쨍그랑 챙 하는 소리가 들려 영호충이 고개를 돌려보니 일곱 여덟명이 상문천을 향해 공격하고 있었다. 그 중 두 사람의 장력은 무섭고 강하여 그 정자의 기둥과 석가래를 쳐서 지붕 위에 있던 기와나 나무들이 여기저기서 떨어졌다. 모두들 싸움에 정신이 집중되어 기왓장이 머리 위에 떨어져도 상관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가 이런 광경을 쳐다보고 있을 때 악후가 숨을 죽여 그의 몸 가까이 오며 멀리서 일장을 뻗어 냈다. 그 장력이 영호충의 가슴에 닿자 그의 몸이 날라갔고 장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그의 등이 땅에 닿기도 전에 일곱 여덟명이 쫓아오더니 일제히 병기를 들어 그의 몸을 향해 찔러왔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공짜는 되게들 바라시는군.]

그리고 허리가 조여져오고 한 줄의 쇠사슬이 날아와 그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구름을 타고 안개속을 날으듯 허공으로 날랐다.
영호충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은 마교고수인 상문천이었다. 그는 마교와 정파 싸압아의 추격을 받고 힘이 딸린 즈음 하늘도 무서운줄 모르고 땅도 무서운줄 모르는 소년이 나타나 공평치 못한 이유로 자기를 도와주자 지기의 감정을 느겼던 것이었다. 그는 영호충이 적을 물리치는 수법을 보자 이 소년이 검법이 극히 강함을 알았다. 그러나 내력이 급히 떨어지는 줄 알고 바로 강적이 에워싸며 공격해와 위험한 순간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한편으로 적과 대결을 하면서도 때때로 영호충의 전황을 유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영호충이 장풍에 몸을 날리는 것을 보자, 즉시 쇠사슬을 날려 그를 꽁꽁 싸며 급히 도망치고 말았다.
상문천이 경공을 펼치자 말이 달리듯 순식간에 수십장을 날아갔다.
뒤로 수십명이 나는 듯 뒤쫓아 오며 일제히 큰 소리로 외쳤다.

[상문천이 도망친다! 상문천이 도망친다!]

상문천은 대노하여 몸을 뒤로 돌리더니 앞으로 몇 발자국을 달려갔다. 뒤따르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그 중 한명은 공력이 약해 급히 뛰어오다 발을 멈추지 못하고 앞으로 계속 달려 왔다. 상문천은 왼발을 날려 그를 사람들 틈 속에 냅다 걷어찼다. 그리고 몸을 돌려 또 도망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또 뒤를 쫓아갔다. 그러나 그 누구도 힘을 다해 쫓으려고 하지 않아 그와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졌다.
상문천은 발을 잽싸게 놀리며 생각했다.

(이 소년은 평소 나와 아는 사이도 아닌데 나를 위해 목숨도 버리려고 했으니 이런 친구를 어디가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 귀신처럼 따라붙는 토끼같은 놈들을 어떻게 떨쳐 버릴 수 있을까?)
그는 한참 달리다 어떤 장소를 생각해 내고 마음 속으로 기뻐했다.

(그곳이 정말 좋겠군.)

그리고 또 생각해 보았다.

(그곳은 여기서 멀다. 그곳까지 달려 갈 힘이 있을까? 괜찮다 내가 힘이 없어지면 그 토끼같은 놈들도 힘이 없어지겠지.)
그는 고개를 들어 해를 보더니 방향을 잡아 보리밭을 가로질러 동북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십여리를 달린 후 큰길로 들어섰다. 갑자기 세필의 말이 몸 옆을 스쳐 지나가자 상문천은 욕을 해댔다.

[제미랄 놈들!]

화가 난 그는 말 뒤에 바짝 붙어 발을 날려 말위에 있던 사람을 떨어뜨리고 자기가 말 등에 사뿐히 올라탔다. 그는 영호충을 말안장에 걸쳐 놓고 쇠사슬을 날려 또다른 두 필에 타고 있던 사람을 쳐서 떨어뜨렸다. 그 두 사람은 근골이 절단되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세 사람은 모두 평범한 백성이었고 차림새로 보아 무공을 쓰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뜻밖에 액신을 만나 부당히 생명을 잃은 것이다. 타고 있던 사람이 떨어져도 두 필의 말은 여전히 앞을 향해 달렸다. 상문천은 쇠사슬을 들어 말굽을 감았다. 이 쇠사슬은 그의 수중엣 자유로이 자기의 긴 팔인양 사용되고 있었다. 영호충은 그가 무고한 양민을 죽이자 탄식이 흘러 나왔다.
상문천은 세 마리의 말을 얻자 정신이 일진되어 하늘을 보고 껄껄 소리내 웃으면서 말했다.

[여보게 형제 그 토끼같은 놈들은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걸세.]
영호충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오늘 쫓아오지 못한다면 내일 쫓아 오겠지요.]

상문천은 욕을 했다.

[제미랄 놈들 쫓아오기는 어떻게 쫓아와. 그놈들 하나하나는 깨끗이 죽여버리겠다.]

상문천은 세 마리의 말을 바꿔타며 큰 길을 달리더니 한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갈수록 산은 높아졌고 나중에는 말로는 더 갈 수가 없었다.
상문천은 말했다.

[배가 고픈가?]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당신께 건량이 있읍니까?]

상문천은 말했다.

[네게 건량은 없네. 말의 피를 먹어 보게나.]

그리고 말에서 내려 다섯 손가락으로 말목을 잡았는데 금방 구멍이 났다. 거기에서 붉은 피가 샘처럼 솟아나왔다. 상문천은 입을 대고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피를 마신 후 말했다.

[자, 마셔보게나.]

영호충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놀라자, 상문천이 말했다.

[말의 피도 마시지 않는다면 무슨 힘으로 다시 싸울 수 있겠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또 싸워야 됩니까?]

상문천은 말했다.

[왜, 무서운가?]

영호충은 오기가 불쑥 치밀어 껄껄 소리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무서워하는지 무서워하지 않는지 알아보십시오.]
그리고 입을 말목에 갖다대고 피를 빨아 목 안으로 삼켰다.
말의 피가 처음 입 속에 들어가니 비린내가 코를 찔렀으나 몇모금 마시고 난 후에는 냄새도 별로 나는 것 같지 않았다. 영호충은 배가 팽창해지도록 마신 후에야 비롯 입을 뗐다. 상문천이 곧바로 입을 대고 피를 빨아마셨다. 얼마를 마셨을까? 그 말은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상문천은 발을 날려 말을 계곡 밑으로 차 밀었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말의 크기는 적게 잡아도 오백근은 될 성싶었는데 그는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차버렸다. 상문천은 바로 두번째 말도 차 버리고 곧이어 훅하고 세번째 말의 뒷다리를 잘라냈다. 그리곤 다시 한족 다리마저 잘라내고 있었다. 그 말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곧이어 상문천은 발길질을 했고 그 말의 울음소리는 길게 울리더니 곧 계곡 밑으로 사라져 갔다.
상문천은 말했다.

[자네는 한쪽 다리를 가지게. 천천히 먹어두면 열흘간의 양식은 도리 것이네.]

영호충은 그제서야 깨달앙싶다. 본래 그가 말의 다리를 잘라낸 것은 양식으로 삼기 위함이었고, 결코 잔인하거나 죽이기를 좋아해서가 아님을 알았다. 그는 그의 말대로 말다리를 들었다. 상문천이 말다리를 매고 산봉우리를 향해 걸어 가자 그도 뒤따라 갔다. 상문천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영호충은 내력이 전부 소실되어 반리도 가지 못했는데 숨이 가빠왔고 얼굴이 창백해지며 그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상문천은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멈추고 기다렸다. 영호충은 어느 정도를 더 걷게 되자 힘이 없어져 길가 옆에 앉아 다리를 쉬었다.
상문천이 말했다.

[여보게 친구 자네는 참 이상하군. 내공은 전혀 없는데 악후의 대음양수를 두번이나 맞고도 무사하다니 너무 이상하네 그려.]
영호충은 쓸쓸히 웃었다.

[어찌 아무일도 없겠읍니까? 내 오장육부는 흔들려 뒤죽박죽이 되었고, 이미 몇십번이나 내상을 입었는지 모릅니다. 나도 이상하게 여기고 있읍니다. 어째서 이때까지 죽지 않았을까 하고요. 아마도 어느땐가는 쓰러질 것이고 그러면 일어설 수 없을 것입니다.]

상문천은 말했다.

[일이 그렇게 되었나. 우리는 좀더 쉬어 가세나.]

영호충은 본래 자기의 생명은 오래 남아있지 못하니 자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뒤쫓아 오는 것을 방비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좀더 생각해 보니 이 사람은 매우 호방하여 절대로 자기를 남겨두고 혼자 갈 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 이런 말들을 하면 그를 너무 업수이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문천은 바위에 걸터 앉아 물었다.

[이보게 친구, 자네의 내력은 어찌 모두 소실되었는가?]
영호충은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

[이 일을 말하자면 정말 우습지요.]

그는 즉시 자기가 어떻게 상처를 받았고 도곡육선이 어떻게 자기를 위해 기를 넣어 상처를 치료했으며 불계화상이 나중에 또 어떻게 자기의 몸 속에 진기를 주입했는가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상문천의 껄걸 웃는 소리가 계곡을 진동시켰다.

[이런 기이한 일을 나는 아직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네.]
그 웃음소리 뒤에 갑자기 먼 곳에서 질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문천, 너는 도망칠 수가 없다. 그러니 점잖게 투항하거라.]
상문천은 여전히 껄껄웃으면서 말했다.

[재미 있군. 재미 있어. 그 도곡육선과 불계화상은 천하에서 제일가는 멍청이들이군.]

그리고 서너번 웃어제치더니 눈살을 지푸리고 욕을 해갔다.

[제미랄놈들! 멍청한 한 무리가 뒤쫓아 왔군!]

그리고 두 손을 감싸 영호충을 품 속에 안고 말다리는 챙기지 않고 그냥 길가에 버려둔 채 단숨에 질풍처럼 달렸다.
이렇듯 달리니 영호충은 마치 구름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있지 않아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생각했다.

(그거 참 묘하다. 이렇게 산 위에 오른 후 그 사람들은 한명 한명 올라올 것이다. 그러면 이 상선생과 내가 한명씩 물리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갈수록 가까워졌다. 쫓아오는 사람들은 경공이 높은 고수들인 것 같았다. 비록 상문천과는 견줄 수 없었으나 그의 수중에는 사람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발걸음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상문천은 어느 모퉁이에 이르더니 영호충을 내려놓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무 소리 말게나.]

그리고 두 사람은 산벽에 가까이 붙어 섰다. 그러자 뒤쫓아 오던 자들이 가가이 다가왔다.
쫓아오던 두 사람은 발걸음은 빨랐으나 짙은 안개 때문에 영호충과 상문천을 보지 못하고 두사람 몸 가까이 와서야 무엇인가를 느끼고 발걸음을 늦추며 몸을 돌릴 때 상문천이 쌍장을 뻗어내 적중시켰다. 두 사람은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산계곡 아래로 떨어졌다. 한참후에야 푹 하고 두 번의 가벼운 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이 추락하며 어찌 외치지 않았는가? 맞다. 그 두 사람이 떨어지기 전에 장력을 맞았는데 그때 이미 숨이 끊어졌을거야.)

상문천은 킥킥 웃더니 말했다.

[이 멍청한 두놈들은 평상시 자기들이 그 무엇이더라 점찬쌍검(點蒼雙劍) 검기충천(劍氣沖天)이라 했는데 제미랄놈들 계곡에 떨어져 석어빠진 기로 충천이나 하거라.]

영호충은 일찌기 점창쌍검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듣건대 그 두 사람의 검법은 실로 대단해 적지않은 흑도의 인물들을 죽였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이곳에서 죽었으니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으나 볼 수도 없었다.
상문천은 영호충을 또 안더니 말했다.

[여기서 선수협(仙愁峽)까지는 아직 십여리가 남았네. 그 계곡 입구까지만 가면 뒤다라 오는 놈들을 염려할 필요는 없네.]
그는 달릴수록 더욱 빨랐다. 그러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몇명이 또 뒤쫓아 온 것 같았다. 이때 그는 방향을 바꿔 동쪽으로 꺾었으며 옆에는 깊은 계곡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상문천은 조금 전처럼 산벽에 숨어 급습할 수가 없자, 할 수 없이 최선을 다해 달릴 뿐이었다.
후기하는 가벼운 소리가 들리며 한 개의 암기가 날아왔다. 허공속을 가르는 소리로 보아 암기가 무거운 것 같았다. 상문천은 영호충을 내려 놓더니 몸을 돌려 손을 내밀어 그 암기를 낚아챘다.

[이 하(何)가 놈아! 너는 이곳까지 쫓아와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짙은 안개 속에서 한 사람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은 무리에서 악한 짓을 많이 했으니 누구든지 너를 죽이려고 한다. 자 내 일추(一錐)를 받아라.]

곧이어 휙휙휙 날아오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그가 말한 이 일추는 날아오는 숫자가 적게 말해도 일곱여덟개는 됨직했다.
영호충은 이 암기가 허공을 가르며 무섭게 날아오자 근심이 되었다.

(풍태사숙께서 내게 전수해 준 검법은 어떤 암기라도 물리칠 수 있지만 이 추가 날아오며 이렇듯 무서운 소리를 내니 내 장검에 맞아도 나의 내력이 소실되었으니 장검이 부러질 것이다.)
상문천이 두 다리를 굽히고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표정은 심히 긴장된 듯 보였다. 정자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포위되었을 때보다 더 난감한 듯한 표정이었다. 비추가 하나씩 날아와 그의 몸에 닿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틀림없이 그가 모두 거두어 들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더니 수많은 비추가 날아왔다. 영호충은 바로 만천화우(滿天花雨)라는 암기 수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래 이런 암기에 사용되는 것은 금전표(金錢?) 철연자(鐵蓮子) 등등의 아주 작은 암기였다. 그러나 이 비추가 허공을 가르며 내는 소리를 들으니 무게가 반근이나 한근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것을 동시에 수십개를 쏘아낼 수 있을까. 그는 무섭게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소리를 듣고 재빨리 몸을 땅바닥에 엎드렸다.
상문천은 크게 외쳤다.

[아이쿠!]

그가 몸에 중상을 입은 것 같았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급히 몸을 일으켜 그의 앞에 가서 물었다.

[상선생, 중상을 입으셨나요?]

상문천은 말했다.

[난...... 난 안 되겠네. 자네나...... 자네나...... 빨리 가게나......]

영호충은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같이 살고 같이 죽는 것입니다. 이 영호충 혼자 살아남지는 않을 것입니다.]

뒤쫓던 적의 소리가 크게 들렸다.

[상문천이 비추에 적중되었다!]

짙은 안개 속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십여명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때 영호충은 한줄기 강한 바람이 스쳐가는 것을 느꼈고 상문천은 껄껄 웃었다. 앞의 십여명이 풀썩풀썩 쓰러졌다. 알고 보니 그는 수십개의 비추를 손에 받아들고 거짓으로 추에 맞아 부상당한 듯하여 적이 방심한 틈을 타 바로 만천화우의 수법으로 비추를 날렸던 것이다. 그때는 짙은 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영호충의 황급한 소리는 진심에서 터져 나왔으니 상대방이 의심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우기 상문천이 뜻밖에 만천화우의 수법을 써 이렇게 무거운 암기를 발하리라고는 뒤쫓던 사람들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십여명의 사람 중에는 죽은 사람도 있었고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었는데 성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상문천은 영호충을 안고 또 달렸다.

[괜찮은 놈이야. 이봐 친구, 자네는 의리가 매우 깊군 그래.]
그는 영호충은 자기를 돕는 것이 어린 소년들의 호기인줄 알았으나 자기가 조금 전 몸에 중상을 입은 척했을 때, 영호충이 자기를 버리고 목숨을 건지려고 하지 않았고, 결단코 같이 살고 같이 죽겠다는 결의를 보고는 실로 강호에서 제일 귀중하게 여기는 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얼마를 가자 적이 또 다가왔다. 곧이어 휙휙휙 소리를 내며 연신 암기가 날아왔다. 상문천은 껑충 뛰기도 하고 구부리기도 하며 암기를 피했다. 쫓아오는 사람이 가까이 오자, 그는 영호충을 내려놓고 적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창창창 소리가 났다. 곧이어 그가 다시 돌아왔는데 한사람을 메고 있었으며, 자기의 쇠사슬로 꽁꽁 묶어 허리에 차고 있었다. 그제서야 영호충을 가슴에 안더니 앞으로 달렸다.
상문천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방패를 추가시킨 것이야.]

그 사람은 크게 외쳤다.

[암기를 쏘지 말아라. 절대로 암기를 쏘지 마라.]

그러나 쫓아오는 사람들은 계속해 암기를 쏘아댔다. 그 사람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아이쿠!]

그의 등에 암기가 꽂힌 것 같았다. 상문천은 살아 있는 방패를 메고 손에 영호충을 안고는 여전히 나는 듯 재빨리 발을 움직였다.
등에 있던 그 사람이 큰 소리로 욕을 해댔다.

[와숭고(王崇古) 제미랄놈 네놈은 의리도 없구나. 분명히 내가...... 아이쿠 이것은 수전(袖箭)이군. 제미랄 놈들 장부용(張芙蓉) 이 여우같은 년아 넌...... 넌 칼을 휘둘러 사람을 죽이는 것이냐?]

팍팍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 사람의 욕지거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은 한마디도 들어오지 안항싶다.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살아 있는 방패가 죽은 방패로 바뀌었어.]

그는 암기가 날아오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재빨리 달리더니 산 허리를 지난 후 말했다.

[도착했네.]

그리곤 후하고 긴숨을 내쉬더니 껄껄 웃어대는 촘이 흡족한 듯 했다. 최후의 십리길의 산길은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뒤쫓는 사람들을 막아낼지는 그때로서도 알 수 없었다.
영호충은사방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계곡으로 돌다리가 놓여져 있었는데 만겁의 깊이에 팔구척 정도의 길이로 돌다리가 놓여져 있었고, 그 바깥에는 구름과 안개가 덮여 끝이 보이지 않았다.
상문천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쪽 안개가 있는 곳의 다리는 쇠로 된 철다리지. 절대로 마음대로 밟지 말게나.]

영호충은 말했다.

[녜.]

그리고 마음속으로 놀람을 참지 못했다.

(이 돌다리의 넓이는 한자도 되지 않고 밑은 깊은 계곡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데, 또 거기에다 다리가 철책으로 되어 있다니 나의 공력으론 절대 건너갈 수 없겠구나.)

상문천은 죽은 방패에 감겨져 있던 쇠사슬을 풀고 그의 몸에서 장검을 뽑더니 영호충에게 건네주고 방패를 몸 앞에 세우더니 그 뒤에 서서 조용히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자나자 적이 뒤쫓아 왔다. 정파와 마교의 인물들이 함께 있었다. 뒤쫓던 사람들은 지형이 험악하고 상문천이 배수진을 쳐 계곡을 뒤로 하고 있음을 보고 감히 앞으로 달려오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자 뒤쫓던 인물들은 점점 많아지더니 오육장거리에 멈추어 서서 욕을 해대고 암기인 비황석(飛蝗石) 수전(袖箭)등을 날려 보냈다. 상문천과 영호충은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암기들은 그들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때 산계곡을 울리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망두타수(莽頭陀手)라는 자가 선장(禪杖)을 휘두르며 달려들고 있었다. 이 칠팔십근이나 나가는 철선장이 상문천의 허리를 향해 들어왔다. 상문천은 고개를 숙였다. 그 바람에 철선장이 바람 소리를 내고 머리 위를 지나칠 때 즉시 쇠사슬을 날려 그의 발목을 낚아챘다. 그 두타는 일시에 힘을 너무 썼기 때문에 금새 자세를 잡지 못하고 몸을 날려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상문천의 쇠사슬은 더욱 빨라 어느새 그의 발목을 나꿔채고 있었다. 그가 쇠사슬의 힘을 슬쩍 놓자, 그 두타는 서있지 못하고 앞으로 꼬꾸라지며 계곡 밑으로 떨어졌다.
상문천이 쇠사슬을 손 안에 쥐고 잡아당기니 이미 쇠사슬은 그의 발목에서 풀어졌다. 그 두타의 울부짖는 처참한 소리가 계속 깊은 계곡 밑에서부터 들려왔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모골이 송연해져 자기들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마치 상문천이 자기들을 계곡밑으로 메칠 것이 두려운 듯했다.
한참이 지난 후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한 사람의 손에는 쌍극(雙戟)이 들려져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스님이었는데 한 자루의 월아산(月牙?)을 쥐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개를 나란히 하고 공격해 왔다. 쌍극을 쓰는 자는 상문천의 얼굴과 배를 노렸고 월아산을 사용하는 스님은 그의 오니쪽 옆구리를 노리며 공격해 오고 있었다. 이 세 사람의 병기는 힘이 무거워 보였고, 한 번씩 휘두를 때마다 내력이 가중되어 공격할 때의 위세는 너무나 위맹스러웠다. 두 사람은 지형을 잘 살펴 보았다. 상문천은 발디딜 곳이 없자, 쇠사슬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쇠사슬을 휘두르자 창! 창! 소리가 나며 상극과 월아산의 수차례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네 개의 병기가 서로 부딪치자 불꽃이 튀었다. 그것은 강공으로만 맞설 수 있었고, 어떤 교묘한 술수는 쓸 수가 없었다.
이들의 싸움을 구경하던 많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그 두 사람의 병기는 쇠사슬에 막히면 뒤로 물러섰다 다시 공격해 들어갔고 창창 소리를 내고 다시 불꽃을 튀기며 싸우고 있었다. 얼마나 지나자 스님과 사내는 몸을 휘정거렸으나 상문천은 여전히 기세 등등히 싸우고 있었다. 그는 적이 숨쉴 사이도 주지 않고 큰 소리로 일갈하며 쇠사슬을 질풍같이 휘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병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다시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스님은 큰 소리로 울부짖더니 월아산이 손에서 벗어나고 입에 선 선혈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사내가 쌍극을 높이 쳐들고 상문천의 쇠사슬에 부딪치며 들어갔다. 상문천은 가슴을 편 채 막지도 않고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쌍극이 그의 가슴에 닿으려 할 때 어째서인지 그 사내가 풀썩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 다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상무넣나의 경근으로 말미암아 진동되어 죽어 버렸던 것이었다.
산계곡에 모여 있던 자들은 낯빛이 변하더니 그 누구도 감히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상문천은 말했다.

[여보게 친구, 우리는 너무 힘을 썼으니 앉아서 좀 쉬세.]
그는 털석 주저앉아 두 손으로 무릎을 감쌌는데, 여러 사람은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은 듯했다.
갑자기 어떤이의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담이 큰 요사스러운 놈 같으니라고, 어찌 감히 천하영웅들을 몰라본단 말이냐?]

네 명의 도사가 일제히 검을 봅아들고 상문천의 주위를 감싸며 말했다.

[일어나서 겨루어 보자.]

상문천은 킥킥 웃더니 냉랭히 말했다.

[이 상가놈이 당신네 아미파에게 무슨 못된 짓을 했느냐?]
왼쪽에 있던 도사가 말했다.

[사마외도(邪魔外道)는 이 강호에선 백해무익한 존재지. 우리같은 수진지가(修眞之士)는 정의를 부르짖고 사악함을 제거함에 있으니 우리들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킬 수는 없는 일이지.]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흥, 핑계 한번 좋군. 자기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킬 수가 없다고? 너희 몸 뒤에는 절반이 마교사람들인데 어재서 그 요망한 것들을 없애지 않는 것이냐?]

그 도인은 말했다.

[먼저 네놈부터 없애야지.]

상문천은 여전히 무릎을 감사고 앉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뜬 구름을 쳐다보며 담담히 말했다.

[알고 보니 그랬었군. 장한 일이군 장해.]

갑자기 그가 일갈하더니 쇠사슬을 날려 네 사람을 향했다. 이 기습은 너무 갑작스러웠으나 네 명의 도인은 모두 아미파의 고수들이라 재빨리 세개의 장검이 아랫쪽을 향해 허리를 막았다. 오른쪽에 있던 도인이 검을 뻗어 상문천의 목을 노리고 찔러 왔다. 이때 팍 하는 소리가 들리며 세 사람의 검이 쇠사슬에 의해 구부러지고 동시에 상문천이 고개를 돌려 이 일검을 피했다. 그 도인이 질풍처럼 연속 삼검을 내뻗으니 상문천은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 세 명의 도인이 물러나 다시 검을 바꾸어 쥐고 다시 공격해갔다. 네 명의 도인의 검세가 하나로 모여 검진을 이루었다. 네 자루의 장검은 춤을 추듯 갑자기 흩어지고 갑자기 한 군데로 모아지기도 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상문천이 쇠사슬을 쓸 때는 꼭 두 손을 사용했는데 차라리 한 손으로 휘두르는게 더욱 민첩할 것 같았다. 시간이 길어지면 틀림없이 패하리라고 생각하고 상문천의 옆에 다리를 옮겨놓고 신속하게 일검을 뻗어 한 도인을 향해 내리쳤다. 이 일검의 출초는 너무 기괴해서 그 도사는 위험을 앞에 두고도 피할 수가 없었다. 퍽하는 소리가 나며 검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영호충은 갑자기 무엇인가 떠올랐다.

(듣건대 아미파는 지금껏 몸을 단정히 하고 자제해 왔다. 강호의 어떤 일도 상관하지 않았고, 그들의 명성은 강호에 널리 퍼져 있다. 나는 상선생을 도우려는게 내 목적이지 절대로 이 도사의 생명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날카로운 검끝이 상대방의 살갗에 닿을 때 바로 검을 회수시켰다. 그러나 검초가 빨라 자기 마음대로 회수되지는 않았다.
그 도인은 팔굽에 힘을 두너 그의 장검을 꼭 기었다.
영호충이 장검을 빼내자 그 도인의 옆구리와 팔굽에 기다란 검자국이 생겼다. 이럴 때 다른 중년도인이 장검으로 영호충의 장검을 내리쳤다. 영호충은 팔굽이 마비되며 검을 놓고 싶었다. 그러나 검이 없다면 병신이나 다를 바 없어, 목숨을 걸고 검자루를 쥐고 있었다. 그 검끝으로 상대방의 경력이 일진해 오며 자기의 심맥을 질공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의 도사는 옆구리의 상처가 매우 깊었다. 그러나 팔굽으로 검을 눌렀을 때 영호충이 검을 빼내자 상처가 매우 깊어 선혈이 흘렀고,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나머지 두 도인은 영호충의 등 뒤에서 상문천과 대결하고 있었다. 두 도인의 검법은 정묘했고 쌍검을 휘두르며 공격해도면서도 수비는 엄중했다.
상문천은 수초를 겨루며 한발짝 뒤로 물러서더니 계속해 십여보를 물러섰다. 그의 몸은 안개 속에 잠겼다. 두 도인은 계속 앞으로 공격해 갔는데 장검의 반쪽은 안개 속에 묻히곤 했다.
이때 돌다리 저쪽에서 어떤 사람이 외쳤다.

[조심해라. 조금 더 가면 철책의 다리가 있다.]

이 다리라는 말이 끝나자 두 도인의 외침소리가 들려왔고 몸이 앞으로 끌려 갔으며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못하고 상문천에게 질질 끌려가는 꼴이었다. 잠시 후 비명소리가 계곡 밑에서 들려오더니 잠잠해졌다.
상문천은 껄껄 웃으며 안개 속에서 걸어 나왔다. 순간 영호충이 쓰러질 뜻 비틀거리는 것을 보자 깜짝 놀랐다.
영호충이 정자에서 독고구검을 사용해 연속 싸울 때 네 명의 도사는 검법으로 그의 상대가 도리 수 없음을 알았고 그의 내력은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이때 그 도사는 끊임없이 자기의 내공을 그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의 영호충은 내공이 전부 소실되었다고는 했지만 옛날의 영호충이라고 해도 수련을 쌓은 기간이 짧았고 깊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삼십년산 수련을 쌓은 아미파의 심법도인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의 몸 안에는 진기가 충만되어 금방 쓰러지지 않았지만 혈기가 뒤죽박죽 용솟음쳤고 눈에선 불꽃이 튀었으며 어지러웠다. 갑자기 등 뒤의 대추혈(大椎穴)에서 한줄기 뜨거운 진기가 침투되는 것 같았다. 곧이어 손에 들어오는 압력도 금방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영호충은 이미 상문천의 도움을 받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자 상문천은 상대방의 내공을 끌어들여 아래로 향하게 했다. 팔뚝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다시 발끝으로 전해오더니 바로 땅속으로 소실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도인은 이상하다는 듯 뒤로 물러서서 큰 소리로 일갈하더니 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흡성요법(吸星妖法)이다. 흡성요법이다.]

군웅들은 흡성요법이란 네 글자를 듣더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렸다.
상문천은 껄껄 소리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이것이 흡성대법(吸星大法)이다. 어떤 놈이든 취미가 있으면 앞으로 나와 보시지.]

마교 중의 황대장노(黃帶長老)라는 사람이 짖어지는 소리로 말했다.

[설마 그 임(任)...... 임...... 또 나타났단 말이냐? 우리는 교주에게 알려 교주의 지시를 받도록 하자.]

마교의 사람들이 일제히 대답을 하고 몸을 돌렸다. 백여인 중에 금새 반이 없어졌다. 그 나머지 정파인물들은 낮은 소리로 한참 상의하더니 어떤 사람들은 돌아가고 나머지 십여명은 남아 있었다.
이때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상문천, 영호충, 너희들은 결국 흡성요법을 사용했구나. 그것은 만겁에 떨어져 회복할 수조차 없는 경우이다. 앞으로 무림의 친구들이 너희 두 사람을 대할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고 정당여부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너흴르이 스스로 자처한 것이니 일이 닥치더라도 후회는 하지말아라.]

상문천은 웃으며 말했다.

[이 상가놈이 일을 할때 언제 후회한 적이 있었겠는가? 너희 수백명이 우리 두 사람을 공격했는데 그것도 정당한 일인가? 하하하 정말 웃긴다 웃기는 일이야.]

나머지 십여명도 발길을 돌려 가버렸다.
상문천은 귀를 기울여 이미 쫓아오던 적들이 멀리 사라졌음을 알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은 틀림없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자네는 내 등 뒤에 매달리게나.]

영호충은 그의 표정이 신중한 것을 보자 더 묻지 못하고 그의 등에 엎드렸다.
상문천은 허리를 굽혀 오니발을 천천히 내밀어 계곡밑으로 걸어 내려갔다. 상문천은 쇠사슬을 던져 절벽 위에 있던 한그루의 나무에 감았다. 그는 그 나무가 견고해 두 사람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가늠해 보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상문천은 몸을 몇번 흔들거리며 발을 옮길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고 손목의 힘을 반대로 주니 나무줄기에서 쇠사슬이 미끄러지듯 떨어졌는데 그것은 아래 절벽에 툭 불거져 나온 바위에 걸쳐 있었다. 두 삶은 일장정도의 아래로 내려왔다. 이렇게 계속해 아래로 내려왔다. 어떤 때는 절벽이 평펑하여 나무도 없고 뾰족하게 튀어나온 돌부리도 없을 때는 상문천은 몸을 조심스럽게 절벽에 붙이고 위에서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러곤 힘씁 곳이 있으면 발이고 손바닥이고 간에 힘을 써 내려오는 힘을 늦추곤 했다. 영호충은 이렇게 큰 위험을 맛보아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혼비백산할 지경이었다. 이렇듯 미끄러지며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위험은 조금 전 싸울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평생 맛볼 수 없고 위험한 순간 상문천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백번천번 죽었다깨도 이런 경험은 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상문천의 다리가 땅바닥에 닿을 때 그는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그것은 이 산계곡이 수백장정도가 더 깊었으면하고 바랐던 것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계곡 위는 하얀 구름으로 휩싸였고 돌다리는 작은 검은 그림자로 변해 있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상선생님......]

상문천은 손을 내밀어 그의 입을 막더니 왼손의 식지로 윗쪽을 가리켰다.
영호충은 적이 되돌아왔음을 알았다.
자세히 위를 쳐다봐도 돌다리 위의 구름 속에선 어떤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상문천은 입에서 손을 떼고 귀를 벽에 갖다대고 무엇인가를 듣고 있었다. 한참 후 그는 미소를 지며 말했다.

[제미랄놈들 어떤 놈들은 산을 지키고 있고 어떤 놈들은 사방을 뒤지고 있군.]

그리고 영호충은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는 정파의 제자이고 나는 사악한 문파의 사람이네. 쌍방은 애당초 친척이나 다름없는데 자네는 왜 기꺼이 정파의 친구들에게 원한을 사면서까지 이렇듯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나의 생명을 구해주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선생을 만난 것도 기회가 닿아서지요. 정파와 마교의 군웅들과 한바탕 싸웠는데도 이렇듯 죽지 않은 것은 하늘의 도우심이지요. 상선생님은 무슨 생명을 구해주고 구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정말로...... 쿨록쿨룩...... 그것은 정말로......]
상문천은 이어서 말했다.

[그것은 정말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그허지 않은가?]
영호충은 말했다.

[제가 어찌 감히 상선생님께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겠읍니까? 제가 생명을 구해줬다는 것은 너무 잘못도니 것입니다.]
상문천은 말했다.

[나는 내가 한 말은 절대로 거두어들이지 않는다네. 자네가 나의 생명을 구해준 흔혜가 있다면 은혜는 있는거야.]

영호충은 웃고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상문천은 말했다.

[조금 전 그 생쥐같은 작자들이 흡성대법이라도 하며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는데 자네는 이 흡성대법이 무슨 공부인지 아는가? 또 그들이 왜 그렇게 무서워하고 있는 줄 아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제가 가르침을 청하려던 참입니다.]

상문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놈의 후배고 선생이고 제자인가? 정말 듣기가 거북하군.
자네는 나를 상형이라 부르고 나는 자네를 동생이라 부르는게 좋겠네.]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감히 그렇게 부를 수가 없읍니다.]

상문천은 노해 말했다.

[좋아, 자네는 내가 마교의 인물이라고 나를 업수이여기는 것이야. 자네가 내 생명을 구해주었지만, 이 늙은이의 생명이 있든 없든 그것은 대단한 일이 못되지. 자네가 나를 업신여긴다면 우리는 한번 겨루어 봐야겠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틀림없이 화가 잔뜩 나 있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겨룰 것까지 있겠읍니까? 상형이 그렇게까지 나오시면 동생은 그 명에 따라야지요.]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전백광같은 음탕한 놈도 친구로 사귀었는데 상문천이라는 사람을 하나 더 사귄다고 어떻게 되겠는가? 이 사람은 호탕하고 깨끗한게 정말 사내대장부다. 나는 본래 이런 인물을 좋아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고 말했다.

[상형께 인사드립니다.]

상문천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천하에서 이 상모와 금란(金蘭)의 결의를 맺은 자는 오로지 동생 한사람뿐이네.이것을 똑똑히 기억해주기 바라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형님의 사랑을 너무 받는 것 같습니다.]

강호의 관례에 따르면 두 사람이 결의형제를 맺으면 최소한 향불을 피우고 훗날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나누고 어려움을 당하면 같이 해결한다는 말이라도 해 맹세를 해야했지만 두 사람 모두 작은 예의에 묶이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혈전을 통해 두 사람의 의기가 투합되어 서로가 서로를 알았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향불을 피우고 말을 하는 따위의 번거로운 절차는 누구도 따지려하지 않았다.
형제가 되는 것이다. 동생이라고 여기면 동생이 되는 것이었다.
상문천은 마교에 있을 때 교중에 있던 사람 중 누구도 그의 눈에 차지 않았는데 오늘 이런 형제를 알게 되었으니 기뻐서 말했다.

[그런데 아깝게도 여기엔 술이 없군. 제미랄 몇십 잔의 술을 들이키면 정말 통쾌할텐데.]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제 목구멍도 벌써부터 근질근질하군요. 형님게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더욱 생각이 나는군요.]

상문천은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쥐새끼같은 놈들은 아직도 멀리 떠나지 않았군. 우리는 별수없이 이 계곡 밑바닥에서 며칠을 지내야 되겠어. 동생 조금 전 아미파의 개코같은 놈이 내공으로 자네를 공격했을 때 내가 내공으로 맞섰지. 그 개코 같은 놈의 내공은 어떠하든가?]

영호충은 말했다.

[언뜻보니 형님이 그 도인의 내공을 끌어다가 땅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더군요.]

상문천은 다리를 툭치며 기쁜 듯 말했다.

[맞네, 맞아. 동생의 고나찰력은 대단하군. 나의 그 재간은 무의식중에 생각해낸 것이야. 무림의 사람들은 아는 사람이 없어. 내가 이름을 지어줬지. 흡공입지소법(吸功入地小法1)이라고 말이야.]
영호충은 말햇다.

[그 명칭이 퍽 이상하군요.]

상문천은 말했다.

[나의 재간이 그 무림중의 인물들이 얼굴색이 변하는 흡성대법과 비교할때 용꼬리에 불과하다네. 그러니 별 수 업이 소법이라고 부른 것이네. 나의 이 공력은 단지 이화접목(移花接木)일 뿐이고 힘을 빌려쓰는 잔재주에 불과하다네. 상대방의 내공이 땅속에 들어가면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자기에게도 이익은 없는 거야. 더욱 이 공력은 상대방이 공격해야만 사용할 수 있고, 또 그것을 가지고 사람을 상할 수 없으니 상대방은 당시 내력이 끊임없이 바깥으로 새나가자 자기도 모르게 대경실색할 뿐이고 얼마 안 있으면 금방 회복되는거야. 그렇기 때문에 개들은 돌아가다 되돌아오리라 생각했고, 그 아미파의 개코같은 놈이 공력을 다시 쓰면 나의 흡공입지소법은 단지 사람을 놀라게하는 장난인 줄 알게 되겠지. 사실 그렇게 무서운게 아니야. 자네의 형님은 평소 이런 잔꾀로 사람을 속이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것을 사용해본 적은 없었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상문천이라는 사람은 오늘 이 동생을 위해 그 맹세를 깨뜨렸군요.]

상문천은 킥킥 웃더니 말했다.

[절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은 좀 이상하네. 단지 아미파의 송문도인(松紋道人)같은 사람에게 속임수를 썼다는게 개운치 않아. 만약 사람을 속인다면 큰일을 해야지. 한번 속인다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되지 않겠나?]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위에서 들을까봐 큰소리는 못냈지만 통쾌하게 웃어제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피곤하여 각각 바위 위에 앉아 조식을 취했다.
영호충은 곧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영영이 손에 세 마리의 개구리를 들고 그에게 물었다.

[왜 나를 잊으셨나요?]

영호충은 큰 소리로 말했다.

[잊지 않았소. 잊지 않았소. 당신은...... 당신은 어디에 있소?]

영영의 그림자가 갑자기 사라지자 영호충은 큰 소리로 외쳤다.

[가지 마시오. 나는 할말이 많소이다.]

그때 칼과 검과 무기들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상문천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했다.

[꿈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가? 무슨 말을 하던가?]
영호충은 얼굴이 빨개졌다. 자기가 꿈속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상문천은 말했다.

[동생,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려면 상처를 치료해야 하네. 상처가 치료되면 그녀를 만날 수 있는거야.]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 전 사랑하는 연인이 없읍니다. 더욱 나의 상처는 치료 할 수가 없지요.]

상문천은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빚을 졌는데 비록 형제지만 마음속이 영 편치가 않네. 반드시 그 빚을 갚지 않으면 안 되겠어. 내가 자네를 데리고 한곳을 가면 자네는 틀림없이 상처가 치료될 것이네.]

영호충은 비록 생과 사를 초월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필경 그 일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담담히 응할수 있었던 것이다. 상문천이 자기의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이 다른 사람을 토해 들었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나 상문천이라는 사람은 믿을 수 있었고, 무공도 강했으며, 채사숙 풍청양을 제외하곤 평생 이런 사람을 대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가볍게 한마디해도 그 본량은 무거웠으며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속에 한줄기 기쁜 마음이 일어났다.

[저는...... 저는......]

그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었다. 이때 활같이 구부러진 달이 계곡을 비추었는데 은빛이 온천지를 감싸고 있었다. 계곡안은 음침했지만 영호충은 온천지가 광명처럼 보였다.
상문천은 말했다.

[우리는 한 사람을 만나보세. 그 사람의 성격은 매우 괴퍅해 먼저 그 사람에게 상황을 알릴 수는 없다네. 동생 자네가 나를 믿는다면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게나.]

영호충은 말했다.

[믿고 안 믿고가 어디 있읍니까? 형님께서 저의 상처를 치료해 주신다는 것은 죽은 말을 살리려는 것이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일이지요. 나을 수 있다면 하늘과 땅의 감사이고, 못 고치더라도 당연한 것이지요.]

상문천은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바르더니 말했다.

[그 말 뒷다리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군. 제미랄 그렇게 많은 쥐새끼들은 죽었는데 이 계곡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군.]
영호충은 그의 표정으로 보아 죽은 시체를 찾아 먹으려는 줄 알고 깜짝 놀라 말을 하지 않고 즉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 이튿날 아침 상문천이 말했다.

[동생 이곳에는 바위의 이끼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네. 우리가 이곳에서 더 머무르다가는 죽은 시체나 찾아먹게 생겼어. 그러나 어제 여기로 떨어진 것들은 모두 늙은 가죽이 질겨 내 생각에는 자네는 그것이 입맛에 안 맞을 것 같군.]

영호충은 급히 말했다.

[정말 입맛이 싹 가시는군요.]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할수 없네. 우리는 나가는 길을 찾아야지. 나는 먼저 얼굴을 고쳐야겠어.]

그리고 산 밑에 가서 흙을 집어오더니 자기의 얼굴에 묻혔다. 그가 자기의 아랫턱을 문지르자 신력이 닿는 곳마다 긴수염이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두 손을 자기 머리에 올려놓고 한차례 문질러 대니 하얀 머리카락이 깨끗이 뽑히고 번들거리는 대머리가 되었다. 영호충은 삽시간에 그의 모습이 바뀐 것을 보고 재미있기도하고 탄복하기도 했다. 상문천은 또 가서 흙을 집어오더니 자기의 코를 높이고 양볼을 살이 오르게 만들었다. 이렇게 되니 누구든지 이 사람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상문천은 앞으로 걸으면서 두 손목에 감겨 있던 쇠사슬을 옷소매 속에 감추었다. 손을 내밀지만 않는다면 이 대머리 뚱뚱보가 상문천이라는 것을 누가 봐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산계곡을 이리 둠고 저리가며 점심때서야 산허리에서 털복숭아 나무를 볼 수 있었다. 복숭아는 아직 익지 않았으나 두 사람은 새파란 복숭아를 따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한 시간을 쉰 후 다시 앞을 향해 걸었다.
황혼무렵이 되어서야 상문천은 비로소 계곡을 나가는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계곡을 나가려면 수백천이 되는 깎아내린 듯한 절벽을 넘어야 했다. 그는 영호충을 어깨에 매고 나는듯 기어올라 가기 시작했다. 절벽에 올라서니 구불구불하게 절벽 사이로 풀이 난 길이 보였다. 비록 경치는 삭막했으나 어쨌든 그 맹수들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계곡을 빠져 나왔으니 두 사람은 안심이 되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날 두 사람은 동쪽으로 걸어 어는 큰 마을에 다다랐다. 상문천은 품속에서 한 조각의 금엽자(金葉子)를 꺼내 영호충을 시켜 한 금은방에 보내 은자로 바꿔오게 했다. 그들은 주점을 빌려 방에 들어갔다. 상문천은 주점아이를 시켜 술 한 단지를 가져오게 했다.
영호충과 상문천은 통쾌하게 반단지의 술을 비우곤 밥도 먹지 않고 한 사람은 의자에 기대어 잠이 들었고, 한 사람은 어지럽게 침대 위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해가 중천에 떠서야 두 사람은 잠에서 깨어났다. 두 사람은 웃으면서 전날 정자에서와 돌다리에서 악전고투하던 때와 격세지감을 느꼈다.
상문천이 말했다.

[여보게 동생, 자네는 여기서 좀 기다리게. 내가 잠시 밖에 나갔다 오겠네.]

그는 한번 나가자 점심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영호충은 그가 또 적을 만날가 심히 염려되었다. 그때 상문천이 두 손에 큰 보따리, 작은 보따리 옆구리에 보따리들을 차고 들어왔다. 손목에 차고 있는 쇠사슬은 어디 갔는지 모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대장장이에게 시켜 풀었으리라.
상문천이 보자기를 풀었는데 그 속에는 귀중한 옷과 장신구가 들어 있었다.

[우리는 큰 부자로 꾸미는 거야. 차림새는 호화스러울수록 좋은 것이야.]

즉시 두 사람은 옷을 갈아 입었다. 주점을 나서자 술심부름 하는 아이가 깨끗한 두필의 말을 가지고 왔다. 이것도 상문천이 사온 것이었다.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천천히 동쪽을 향해 갔다. 이틀 정도를 가자 영호충은 심히 피로함을 느꼈다. 상문천은 큰 수레를 빌어 그에게 타게 했다. 운하에 도착하자 그는 수레와 말을 버리고 배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도 상문천은 돈을 물쓰듯 썼다.
금엽자가 다 쓸 수 없을 것처럼 많았다. 장강을 지나자 운하의 양쪽 시가지들은 번화하여 상문천이 사는 옷과 패물들은 갈수록 호화스러워지고 있었다.
배를 타고 가면서 상문천은 강호에서 있어던 일들을 들려 주었다. 많은 것을 영호충은 처음 들었고 아주 흥미롭고 재미 있었다.
그러나 흑목애의 애기만 나오면 상문천은 입을 다물곤 했다. 영호충도 더 묻지 않았다.
이날 항주(杭州)에 도착할 즈음 상문천은 자기 자신과 영호충을 한번 더 꾸몄다. 그제서야 비로소 배에서 내렸고 두 마리의 건장한 말을 사서 말을 타고 항주성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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