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4-3

3학년2반 | 2022.03.14 07:51:10 댓글: 0 조회: 301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5757

항주는 옛날에는 임안(臨安)이라고 불렀는데 남송때에 비로소 도성으로 건립되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곳은 호화롭고 멋진 곳이었다. 성안에는 길거리마다 행인이 쏟아져 나와 걷고 있었고 노래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왔다. 영호충은 상문천을 따라 서호(西湖)의 호수에 다다랐다. 호수의 물은 거울같이 맑았고 호숫가의 버드나무가 늘어져 있었는데 그 풍경은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杭)이라고 말들 하는데 소주(蘇州)라는 곳은 가보지 못해 알 수 없지만 오늘 친히 이 서호에 와보니 천당이라는 이름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군요.]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을 달려 한 장소에 이르렀다. 그곳은 산을 기고 호수와는 제방을 끼고 있었다. 그곳은 더욱 조용했고 아름다웠다. 두 사람은 호숫가 버드나무에 말을 매어두고 산쪽의 도계단을 올라갔다. 상문천은 자기집을 가듯 길이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모퉁이를 몇번 도니 온통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이른본 꽃이 필때는 눈이 내리듯 하얗고 향기가 진동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매화림을 지나 푸른돌이 깔린 큰 길로 들어서니 붉은 대문과 하얀담이 있는 대장원앞에 이르렀다. 가까이 가보니 대문에는 매장(梅莊)이라는 두 글자가 씌어져 있었으며, 큰 글자 바로 옆에는 우윤문제(虞允文題)라는 네 글자가 아래로 씌어져 있었다. 영호충은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윤문이라는 사람이 남송때 금나라를 친 대공신인 줄은 몰랐으나 이 글자가 우아하고 힘이 벋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상문천은 앞을 향해 걸어가더니 문에 빛이 나도록 닦아놓고 구리로 만든 큰 고리를 잡더니 고개를 돌려 낮은 소리로 말했다.

[모든 것은 나에게 맡겨두게나.]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매장은 겉으로 보기엔 항주성의 대부호인 것 같은데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당세에 유명한 의사가 아닐까?)

상문천은 구리로 만든 고리를 네번 쳤다. 그리고 조금 멈추더니 다시 두번 치고 또 다시 멈추더니 다섯번을 또 쳤다. 또 다시 멈추더니 다시 세번을 치고는 구리고리를 놓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한참 후 대문이천천히 열리며 두 사람의 집을 지키는 차림새를 한 늙은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 나왔다. 영호충은 내심 놀랬다. 이 두 사람의 눈빛은 빛났고 발걸음은 매우 신중하여 틀림없이 무공은 낮은 것 같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곳에서 하인차림새로 천한 일을 하고 있을까?
왼쪽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두분께서 저의 장원을 찾아주신 데는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상문천은 말햇다.

[숭산문하.화산문하의 제자가 일이 있어 강남사우(江南四友)네 분 선배님을 만나 뵐까 합니다.]

그 사람은 말했다.

[우리집 어르신네께서는 손님을 만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으려고 했다.
상문천은 품 속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더니 그것을 풀었다. 영호충은 또 깜작 놀랬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은 빛이 사방으로 발했는데 그것은 다르아닌 오색금기(五色錦旗)였다. 그 외에 또 수많은 진주보석이 거기에 수놓아져 있었다. 영호충은 이것이 바로 숭산파 좌맹주의 오악영기(五?令旗)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영기가 이르는 곳은 마치 좌맹주가 이르는 것 같아 오악검파의 사람들은 그기를 가지고 있는 자의 호령을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영호충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상문천이 갖고 있는 이 기의 내력이 부정하게 온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쩌면 숭산파의 중요한 인물에게 빼앗아온 것인지도 몰랐다. 정파중의 인물들이 뒤쫓아 그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바로 이 기 때문에 그런것도 같았다. 그는 자칭 숭산파의 제자라고 했는데 또 무슨 일을 꾀하려고 하는 것인가? 자기가 모든 일을 그의 안배에 따르기로 했으므로 하는 수 없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 동태만 살폈다.
그 두 명의 가인은 이 기를 보더니 안색이 변하며 일제히 말했다.

[숭산파 좌맹주의 영기이군.]

상문천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오른쪽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강남사우는 오악검파와 평소 내왕이 없었는데 숭산의 좌맹주가 친히 오신다. 해도 우리 주인은 틀림없이...... 틀림없이...... 만나지는......]

그는 계속해서 말하지 않았으나 그 뜻은 명확했다.

[설령 좌맹주가 친힌 도착해도 우리 주인님은 만나 보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숭산파 좌맹주는 무공이 높고 위치가 높으니 이 사람들은 그말을 가볍게 입밖에 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강남사우의 신분과 직위가 좌맹주보다는 높고 크다는 것을 말 속에 내포하고 있었다.
영호충은 심각했다.

(이 강남사우라는 사람들은 어떤 인물일까? 만약 그들이 무림중에 큰 인물들이라면 어째서 지금까지 사부님은 그 네 사람의 이름을 들추지 않았는가? 내가 강호에 떠돌아다닐 때 많은 사람에게 당세 무림의 선배나 고수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는데 강남사우라는 네 글자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상문천은 웃으면서 영기를 품속에 집어 넣더니 말했다.

[나의 좌사질의 영기는 절대로 겁을 주려는게 아닙니다. 강남사우의 선배들은 어떤 인물입니까? 이 영기를 안중에 두고 있지는 않겠지요......]

영호충은 생각했다.

(뭐라고? 좌사질이라고? 아니 좌맹주의 사숙이라고 자칭하다니.
음 갈수록 말이 되지 않는구나.)

그때 상문천의 말이 계속 들려왔다.

[단지 이 몸이 줄곧 강남사우의 선배님들을 만나볼 인연이 없어 이 영기를 꺼내 내 신분을 확실히 밝히고자 했을 뿐이오.]
두 명의 하인이 어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말투가 강남사우의 신분을 지극히 높이 올리자 금새 얼굴색이 풀어지며 한 사람이 말햇다.

[각하께서 바로 좌맹주의 사숙입니까?]

상문천은 싱긋 웃더니 말했다.

[바로 그렇소. 나는 무림의 소졸이라 두 분께서는 아마 저를 모르실 것이오. 그 옛날 정(丁)형께선 기연산(祁連山)에서 일장으로 사패(四覇)를 쳐부수고 일검으로 쌍웅(雙雄)을 제패하셨고, 시형께선 호북횡강(湖北橫江)에서 고(孤)를 구하셨고,한 자루의 자금팔괘도(紫金八卦刀)를 가지고 청룡방(靑龍幇)의 열세명의 두목들을 죽여 한수강가에 피를 뿌리셨소. 이런 위풍을 저는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오.]

두 살므이 하인중 한 사람은 정견(丁堅)이라 부렀고, 한 사람은 시령위(施令威)라고 했다. 이곳 매장에 은거하기 전에 강호를 주름잡고 다니던때는 매우 무서운 반정반사(半正半邪)의 인물이었다.
두 사람의 일반적인 성격은 일을 행한 후 절대로 이름을 남기지 않아서 무공은 비록 높아도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상문천이 말한 이 두 가지 일은 바로 그 두 사람이 평생 자랑할 수 있는 걸작이었다. 첫째로는 상대방의 힘이 강했지만 그 두 사람은 적은 숫자로 많은 숫자와 대항하여 깨끗하게 일을 처리했고 두번째로는 이 두 가지 일이 모두 잘못이 상대방에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행동은 협의의 길인 것이었다. 이 의거도 두 사람이 평생 드물게 행하던 좋은 일 중의 하나였다. 무릇 좋은 일을 하면 사람들에게 선양하여 말리고 싶지 않아도 만약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알았다면 필경 마음속으로는 기뻐하리라. 정 시 두 사람은 상문천의 말을 듣고 얼굴에 기쁜빛을 확연히 떠올렸다.
정견은 웃으면서 말했다.

[사소한 일인데 어찌 입에 담을 수 있겠읍니까? 각하께선 정말 들은 것도 많으시고 보신 것도 많으십니다.]

상문천이 말했다.

[무림 중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름을 팔아 명예를 사는 사람이 많소. 그러나 품행이 단정하고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큰일을 하고도 그 일을 밝히기를 꺼리는 청고한 은사를 만나보기란 어려운 일이지요. 일자전검(一字電劍)의 정대형과 오로신(五路神) 시 아홉째형을 사모한 지 오래 되었지요. 저의 좌사질이 말하기를 일이 있으면 반드시 강남사우를 만나 가르침을 받으라고 했는데 저는 이제 은거한지 오래라 강남사우를 만나뵙지 못할지라도 일자전검과 오로신 두 분을 만나볼 수 있다면 여기 온 것도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소. 좌사질은 말하기를 자기가 친히 온다면 네분 선배께선 자기를 마나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요. 그것은 그가 요즘 강호에 이름이 알려졌으니 선배님들이 자기를 업신여긴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러나 나는 평소 바깥출입을 잘 안 했으니 밉게보지는 않았을 것이오.하하하, 하하하.]

정 시 두 사람은 그 말 속에 강남사우를 떠받들고 자기들을 떠받들자 심히 기뻐하며 그를 따라 껄껄 웃었다. 머리가 벗겨지고 뚱뚱한 자는 비록 추악하게는 생겼지만 행동은 절도가 있고 예의가 있었는데 확실히 평범한 사람같지는 않았다. 그느 그가 바로 좌냉선(左冷禪)의 사숙이라니 무공이 자연히 높으리라 생각하고 존경심이 일어남을 느꼈다.
시령위는 안채로 들어가 손님이 왔다고 알리려고 생각하고 영호충을 향해 말했다.

[이분은 화산파 문하이오?]

상문천은 재빨리 끼어 들었다.

[이분 풍(風)사숙께선 바로 화산장문인 악불군의 사숙이오.]
영호충은 이미 그의 터무니없는 말에서 자기의 신분과 이름을 거짓으로 말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자기를 사부의 사숙이라고 하는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호충은 많은 일을 그에게 맡겨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관여하지는 않았으나 자기를 은사의 사숙이라 칭하는데는 불안함이 일었다.
다행히 그의 얼굴에는 황분(黃粉)이 칠해져 있었기 때문에 놀라고 불안한 빛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정견과 시령위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의심했다.

(이 사람의 나이는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사십세도 된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악불군의 사숙이 될 수 있는가?)

상문천은 영호충을 늙은이로 변장시켰으나 아주 늙은이로는 변장시킬 수 없었다. 억지로 분장을 한다면 금새 표시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는 즉시 말을 이었다.

[이 풍선생은 나이는 비록 악불군보다는 몇살이 적소. 그렇지만 이분은 풍청양 풍사형의 검법을 전수받은 단 한 사람이외다. 검술의 오묘함에 있어선 화산파 중에서 이 선생을 따를 자가 없다오.]
영호충은 또 깜짝 놀라 기절할 것 같았다.

(상형은 어떻게 내가 풍태사숙에게 전수받은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풍태사숙의 검법은 대단했으니 당시 강호에 명성이 대단했겠지. 상형의 견문이 넓으니 나의 검법을 보고 추측했을 것이다. 방생대사도 알 수 있었으니 상형도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정견은 아 하고 놀란소리를 냈다. 그는 검법에 능한 명가에서 자라났으므로 영호충의 검법에 대해 듣자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얼굴은 싯누렇고 추잡하게 보이는게 검법에 정통한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물었다.

[두 분의 성함은 어찌 되시오?]

상문천은 말했다.

[나의 성은 동(童)씨이고 이름은 동화금(童化金)이외다. 이 풍선생의 이름은 이(二)자와 중(中)자이지요.]

정과 시 두 사람은 공수를 하며 말했다.

[오래 전부터 만나보고 싶었소이다. 오랫동안 마난보고 싶었소이다.]

상문천은 속으로 웃음을 금치 못했다. 동화금이라는 것은 동화금(銅化金)이라는 뜻인데 고의로 금을 만들었으니 그것은 가짜일 것이고, 이중(二中)의 두 글자는 바로 충(庶)의 글자를 풀은 것에 불과했다.
무림중에는 이같은 두 이름이 없었는데 그 두 사람은 말이 끝나자마자 오래 전부터 만나보고 싶었다고 하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견이 말했다.

[두 분께선 대청에 오르셔 차라도 드시고 계십시오. 안에 들어가 어르신께 말씀드리겠으나 두 분을 만나주실지는 모르겠소이다.]
상문천은 웃으며 말했다.

[두 분과 강남사우의 관계는 비록 주인과 하인의 관계지만 정은 형제와 같소이다. 네분 선배께서는 정 시 두 분의 체면을 보아서도 물리치지는 못할 것이외다.]

정견은 웃으면서 몸을 옆으로 비켰다. 상문천은 그의 앞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영호충도 뒤따랐다. 두 사람은 안뜰을 지났다.
그뜰 양쪽에는 늙은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가지가 마치 쇠같이 단단해 보였고 극히 오래된 나무 같았다. 대청에 이르자 시령위는 두 사람을 자리에 앉게 하고 자기는 옆에 서 있었고 정견은 안으로 들어갔다.
상문천은 시령위가 자기의 옆에 서 있자 무릎을 끓어 예를 갖추고도 그의 하인의 신분이니 앉으라고 할 수는 없었다.

[풍형. 이 그림을 보시오. 몇몇자에 불과하지만 기세는 하늘을 찌르는 것 같구료.]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일으켜 대청의 한 벽에 걸려 있는 그림 앞으로 갔다.
영호충은 그와 며칠을 동행하여 그의 재간이나 기지가 총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결코 그가 그림이나 서예에 밝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때 그가 그림을 보고 칭찬을 하자 무슨 꿍셈이 있는 줄 알고 그도 대답을 하고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그 화폭에는 신선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먹물을 훔뻑 묻혀 그렸는데 필법이 웅장한 것이 그림을 알 수 없는 영호충도 역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에는 단청생대취후발묵(丹靑生大醉後潑墨)이라는 화제가 씌어져 있었는데 필법이 단정하고 엄숙했으며 한획한획이 마치 장검으로 내리 그은 듯했다.
영호충은 한참을 보고 난후 말했다.

[동형. 나는 그림 속의 취(醉)자를 보니 매우 기쁘구료. 이 글자의 안에는 고명한 검술이 그려져 있는 듯하외다.]

그는 이 여덟 글자와 신선의 옷차림을 보니 사과애의 뒷동굴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도형을 생각해 냈다.
상문천이 대답하기도 전에 시령위가 말했다.

[이 풍어르신께선 정말 검술의 명가이십니다. 우리집 사장주(四莊主) 단청(丹靑) 선생께서 말씀하시길 그날 그가 술에 대취하셔서 이 그림을 그리셨다고 하셨는데 무의식중에 검법이 이 안에 숨어 들었다 합니다. 그는 평생 최고의 수작이라고 하며 다시는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지요. 풍어르신께서는 그림속에서 이미 검의(劍意)를 알아내셨으니 사장주께선 틀림없이 지기(知己)로 여기실 것입니다. 내가 들어가 말씀드리리다.]

그는 희희낙락하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상문천은 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풍형 알고보니 그림을 보실 줄 아시는구료.]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모르오. 마구 입을 놀렸는데 어쩌다 적중되었을 뿐이외다. 이 단청선생이 나와 그림에 대해 논한다면 큰 수모를 당할 것이외다.]

갑자기 문 밖에서 한 사람이 외쳤다.

[그가 그림 중에서 검법을 알아냈다고. 정말 그 사람의 안목이 대단하구먼.]

시쓰러운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리고 있었고, 왼손에는 술잔을 들고 있었는데 술에 취한 모습이었다.
시령위는 그의 뒤에 선 후 말했다.

[이 두 분께선 숭산파의 동어르신과 화산파의 풍어르신입니다.
이분이 바로 매장주의 사장주이신 단청선생님이외다. 사장주 이 풍어르신께서 장주의 필법을 보시자마자 그 중에 고명한 검술이 숨겨져 있다고 하셨읍니다.]

그 사장주인 단청선생은 취한 눈을 들어 쳐다보았다.한참을 영호충을 뜯어보더니 말했다.

[당신은 그림을 아시오? 검을 쓸 줄도 아시오?]

그 말투는 심히 무례했다.
영호충은 새파란 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듯한 비취배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는데 그 술잔에서는 이화주(梨花酒)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순식간에 조천추가 황하강변에서 말하던 것이 생각나 말했다.

[이화주를 마시려면 반드시 비취배로 마셔야 되지요. 사장주께선 과연 술에 있어서도 전문가이시군요.]

그는 공부를 하지 못해 시나 사를 몰랐으나 천성이 총명하여 다른 사람이 한번 말한 것은 잊지 않는 재주가 있어 이때 조천추의 말을 옮겼던 것이다.
단청생은 그 말을 듣자 두 눈을 휘둥그래 뜨고 영호충을 껴안으며 크게 외쳤다.

[아이구 좋은 친구가 오셨구료. 자자 우리 한번 멋지게 마셔봅시다. 풍형, 이 노인은 술을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고 검을 좋아하니 모두들 나를 삼절(三絶)이라고 부르는데 삼절 중에도 술이 첫째이고, 그림이 둘째이며, 검술은 제일 마지막에 해당되오.]
영호충은 크게 기뻐하며 생각했다.

(잘 됐다. 나는 나의 병을 치료하러 온 것이지. 결코 검술을 시험하러 온 것은 아니지. 그런데 이 술은 자신이 있거든.)
그는 즉시 단청생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상문천과 시령위도 뒤따라 들어갔다. 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나 서쪽에 있는 한칸의 방에 이르렀다. 문에 쳐져있던 휘장을 걷으니 한줄기 코를 찌르는 술 향기가 풍겨 나왔다.
영호충은 어려서부터 술을 좋아했다. 그것은 사부와 사모님이 많은 용돈은 주지 않았으나 술이 있으면 술을 마셨지 술이 좋고 나쁨은 따지질 않았었다. 그런데 낙양에서 녹죽옹에게 주도에 대해 자세하게 강의를 들었고, 또 각종 미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첫째로는 천성적으로 술과 의기투합됐고, 두번째로는 명사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그 후로는 술에 대한 감사와 안목이 더욱 깊어졌던 것이다.
그는 술 향기를 맡자 말했다.

[음 좋습니다. 여기에는 삼과두(三鍋頭)의 오래 묵은 분주(汾酒)가 있구료. 오 여기의 이 백초주(百草酒)는 아마 칠십년은 묵은 것 같소이다. 저기에 있는 후아주( 兒酒)는 참 희귀한 술이지요.]

그는 후아주의 냄새를 맡자 육사제인 육후아가 생각나 가슴에서 무엇이올라오는 것 같았다.
단청생은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멋지시오, 멋져. 풍형께서 이방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소장하고 있는 세 가지의 명품을 알아 맞추시니 정말 술에 대한 안목은 높으시오, 대단하시오. 대단합니다.]

영호충은 방안을 살피니 훌룡한 것들이 가득 쌓여있고 곳곳에 술단지, 술병, 호로, 호로병, 술잔 등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선생께서 소장하고 계신 것이 어찌 세 종류뿐이오. 이 소흥여아홍(紹興女兒紅)은 상품 중에 상품이며, 이 서역에서 온 토로번(吐魯番)의 포도주는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술이지요.]

단청생은 놀라고 또 기뻐하며 물었다.

[나의 토로번의 포도주는 나무통 속에 있는데 노제께선 어떻게 그 냄새를 맡으셨소?]

영호충은 미소를 지며 말했다.

[이런 좋은 술은 몇십장이나 되는 땅 밑에 묻으셔도 술향기는 나는 법이외다.]

단청생은 외쳤다.

[자자자 오시오. 우리는 이 포도주를 마십시다.]

그는 곧 방구석에 놓여 있던 큰 나무통을 옮겨왔다. 그 나무통은 이미 오래되어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나무통 위에는 서역문자가 구불구불 씌어져 있었다. 나무로 된 마개는 빨간칠로 봉해져 있었고, 칠 위에는 다시 도장이 찍혀져 있어 극히 중히 여기는 것 같았다. 단청생은
나무마개를 가볍게 들어내자 삽시에 온 방안은 술향기로 가득 찼다.
시령위는 지금가지 입에 술을 대지 않았는데 이 냄새를 맡자 취하는 것 같았다.
단청생은 손을 휘저으며 웃더니 말했다.

[자네는 나가게, 자네는 나가. 술에 취해 쓰러지겠네.]
그는 세개의 술잔을 놓더니 술통을 안고 술을 따랐다. 그 술색은 피빛처럼 빨겠는데 그가 술을 따르자 술잔에서한방울도 튀지 않고 술을 따르는 것을 보고 영호충은 갈채를 보냈다.

(이 사람의 무공은 대단하구나. 백여근이나 나가는 술통을 들어 조그만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도 한방울도 세개 하지 않으니 정말 대단하다.)

단청생은 나무통을 옆구리에 끼고 왼손으로 술잔을 들고 말했다.

[자 드시오, 들어.]

그는 쌍눈을 들어 영호충이 술을 마신 후의 표정을 살폈다. 영호충은 술잔을 들어 술을 음미하고 있었다. 단지 그의 얼굴에는 두껍게 분이 칠해져 있었기 때문에 쳐다보아도 표정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기뻐하지 않는 눈치였다.
단청생의 표정은 금방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이 자가 술이 별볼일 없다고 말할까 두려운 눈치였다.
영호충은 눈을 한참 감고 있다가 말했다.

[이상하군요, 이상하군요.]

단청생은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단 말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이 일은 풀기가 어렵군요. 저는 알다가도 모르겠읍니다.]
단청생의 눈망울에 일술 기쁜빛이 지나갔다.

[당신이 물어 보시는 것은......]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딱 한번 낙양에서 이 술을 마셨는데 술맛은좋았으나 신맛이 났었읍니다. 술을 잘 아시는 선배님께선 신맛이 나는 것은 술을 운반할 때 너무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하셨소. 이 토로번의 포도주는 한번 운반될 때마다 맛이 감해진다고 합니다. 토로번에서 항주까지는 수만리길인데 선배님의 이 술에는 신맛이 조금도 나지 않으니......]

단청생은 껄껄 웃더니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이것은 내가 공개하지 않은 비밀이오. 내가 삼초식의 검법을 서역의 검호인 막화이철(莫化爾徹)과 비결을 바꾼 것이오. 당신은 알고 싶지 않고?]

영호충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술을 마신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읍니다. 선배님의 비결을 감히 여쭐 수가 없군요.]

단청생은 말했다.

[자자 술을 드시오, 술을 드시오.]

그는 세잔의 술을 다시 따르고 영호충이 이 비결을 물어 보지 않자 속이 근질근질거렸다.

[사실은 이 비결은 한푼의 값어치도 안 나간다오. 말을 해도 신기한 일은 못 되지요.]

영호충은 자기가 알고 싶어하지 않을수록 그가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는 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선배님,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당신의삼초는 무척 대단할 것이외다. 이렇게 막대한 댓가를 치루고 바꿔온 비결을 제가 어찌 가볍게 배우고 또 배운들 어찌 마음이 편하겠읍니까? 옛말에 공이 없으면 녹을 받지 말라고 했는데......]

단청생은 말했다.

[당신이 나와 술을 마시며 술의 내력을 말하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오. 이 비결을 듣지 않는다면 안 되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선배님께서 이렇게 대해주시고 세상에서 보기드문 술을 하사하시니 감사합니다. 어찌 감히......]

단청생은 말했다.

[내가 원할 뿐이오. 당신은 들으시오.]

상문천은 말했다.

[사장주께서 어러시니 풍형께선 거절하지 마시지요.]
단청생은 말했다.

[맞소, 맞아.]

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다시 당신을 시험해봐야겠소이다. 이 술이 얼마나 뭇었는지 아시겠소?]

영호충은 술잔을 들어 마신 후 한참을 음미하더니 말했다.

[이 술은 또 다른 이상한 점이 있군요. 언뜻 보니 백이십년동안 묵은 것 같기도 하도, 또 어떻게 보면 십이삼년 묵은 것 같습니다. 묵은 것 같으면서도 싱싱하고 싱싱하면서도 묵은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 백여년 묵은 술맛과 또 다른 맛이 나는군요.]
상문천은 이마를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망신을 당하겠군. 백이십년과 십이삼년의 차이는 백년이상인데 어찌 그렇게 말을 했을까?)

그는 이 노인이 불쾌하리라 생각했지만 그 노인은 껄껄 웃으면서 가슴까지 내려온 수염을 잡고 말했다.

[정말 대단하오. 나의 비결은 바로 여기 있소. 내가 말하리다.
그 서역의 검호인 막화이철은 내게 열통의 백년묵은 토로번의 포도주를 다섯마리의 말에 실려 항중에 보내왔오. 나는 이 술을 다시 빚어내는데 그때가 십이년전이외다. 이 술에 신맛이 없고 싱싱한 맛과 오래 뭇은 맛이 같이 나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오.]
상문천과 영호충은 일제히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알고 보니 그렇게 된 것이군요.]

영호충은 말했다.

[이렇게 술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은 십초의 검법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것이죠. 선배님께선 삼초로 비결을 배우셨으니 너무 싸게 배우신 것입니다.]

단청생은 더욱 기뻐하며 말했다.

[노제는 정말 나의 지기오. 그때 큰 형님과 세째 형님은 검초로 술을 바꿔오고 나의 중원에서의 검초가 서역땅에 전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오. 둘째 형님은 웃고 마았지만 마음속은 그리 편치 않으셨을 것이외다. 오로지 노제는 내가 싸게 배워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좋군요. 자 우리 마십시다.]

그는 상문천이 주도에 대해 모르는 것 같자 상대도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또 한잔의 술을 마시며 말했다.

[사장주, 이 술을 마실 때는 또 다른 방법을 쓰는데 애석하게도 지금은 그 방법을 쓸 수가 없군요.]

단청생은 급히 물었다.

[어떻게 마시는 방법이오? 왜 지금은 할 수 없다는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토로번이라는 곳은 세상에서 제일 더운 곳이오. 듣건대 현장대사(玄裝大師)께서 천축에 불경을 얻으러 가셨을 때 도중에 화염산(火 山)이라는 곳을 지나셨소. 거기가 바로 토로번이오.]
단청생은 말했다.

[그렇소. 그 지역은 무척 덥지요. 여름이 되면 하루 온 종일을 찬물에 들어가 앉아도 덥기가 그지없고, 겨울이 되면 추위가 뼈를 깍지요. 그러니 거기에서 나는 포도는 일반 것과 다르다오.]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낙양에서 이 술을 마실 때는 술이 차가웠는데도 그 술을 아시는 선배님께선 술잔을 얼음 위에 놓으셨지요. 이 술은 얼음과 어울리면 또 다른 맛이 납니다. 지금은 초여름이니 얼음에 담궈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겠지요.]

단청생은 말했다.

[내가 서역에 있을 때도 여름이었소이다. 그 막화이철이란 사람도 이 술을 얼음에 담가 먹는다고 했지요. 노제 그건 쉬운 일이오. 당신은 이곳에서 반년 가량 묵었다가 겨울이 되면 우리 품평회나 가져 봅시다.]

그는 한참동안 말을 않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단지 그때까지 기다린다니 시간이 조급할 뿐이오.]

상문천이 말했다.

[애석하게도 강남일대에는 한빙장(寒 掌) 음풍조(陰風爪)와 같은 순음의 공력을 연마한 사람들이 없읍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청생이 기뻐서 말했다.

[있소, 있소이다.]

그는 술통을 내려놓고 기쁜듯이 나갔다.
영호충은 상문천을 쳐다보고 의심을 했으나 상문천은 웃을 뿐 말이 없었다.
얼마 후 단청생이 키가 크고 검은 옷을 걸친 비적마른 노인네를 끌고 들어오며 말했다.

[둘째 형님, 이번에는 어떤 일을 무론하고 저를 도와 주셔야겠읍니다.]

영호충은 이 사람의 모습은 수려했으나 안색이 창백한 것이 시체같아 보였다. 그를 보면 음산한 기분이 들었다. 단청생은 그 사람에게 인사를 시켰다. 그는 이 매장의 이장주인 흑백자(黑白子)였다. 그의 머리카락은 새카맣고 피부는 극히 흰 것이 흑백이 분명했다.
흑백자가 냉랭히 말했다.

[무엇을 도와 달라고?]

단청생은 말했다.

[형님께서 물을 얼음으로 변하는 재주를 이 두분 친구께 보여 주십시오.]

흑백자는 흑백이 분명한 두 눈을 껌벅이더니 냉랭히 말했다.

[굼뱅이 기어가는 잔꾀를 어찌 보일 수 있느냐? 모두들 그 재간을 보면 웃고 말거야.]

단청생은 말했다.

[둘째 형님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읍니다. 이 풍형께서 말씀하시길 토로번의 포도주는 얼음에 재워 마시면 또 다른 맛이 난다고 합니다. 이 더운 날 어디서 얼음을 구해옵니까?]

흑백자는 말했다.

[이 술의 향기도 그만인데 얼음에까지 재울 필요가 있겠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토로번이라는 고장은 덥기가 말할 수 없는 곳이지요......]
단청생은 말했다.

[그렇소. 상당히 더운 곳이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 지방의 포도주는 날시가 덥기 때문에 그 술 속에는 서기(暑氣)가 스며 있지요.]

단청생은 말했다.

[그렇소, 그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오?]

영호충은 말했다.

[그 서기가 술에 들어 있으면 백년이 흐르면 비록 감소된다고는 하나 약간은 시고 매운맛은 없어지지 않지요.]

단청생은 말했다.

[옳은 말씀이오. 이치가 맞는 말이외다. 노제께서 알려주시지 않았으면 나는 그 맛이 술을 끓일 때 너무 센불에 끓여서인 줄로만 알았을 것이오. 그 어주(御廚)를 잘못 탓할뻔 했소이다.]
영호충은 물었다.

[어주라니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단청생은 웃었다.

[나는 술을 다릴 때 불조절을 못해 이 열통의 술이 엉망이 도리까봐 특별히 황궁(皇宮)에 가서 주방장을 잡아와 시켰었다오.]
흑백자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크게 벌여 놓았어.]

상문천은 말했다.

[원래 그랬었군요. 웬만한 영웅협사였다면 이 술맛이 조금 시고 맵다고 신경이나 썼겠읍니까? 그러나 이장주와 사장주께선 이렇게 산수가 좋으신 곳에 은거하고 계시니 어찌 청고하지 않겠읍니까? 무림중의 저속한 인사들과는 사뭇 다르지요. 이 술이 차가운 얼음과 어울린다면 두 분의 신분과 딱 어울릴 것이외다. 마치 바둑을 둘 때 집만을 빼앗고 티격태격한다면 바둑을 모르는 기풍이고 바둑을 하는 고수들은 입신하여 앉아서 비추지요......]

흑백자는 이상하게 눈을 굴리더니 그의 어깨를 잡고 급히 물었다.

[당신은 바둑을 둘 줄 아시오?]

상문천은 말했다.

[저는 평생 바둑을 두고 살았지만 기력(棋力)은 높지 못하지요.
바둑을 두니 강남땅을 안 가본 곳이 없고 황하의 상류하류를 돌아다니면서 기보(棋譜)를 찾았지요. 삼십년 동안 동서고금의 명국들은 이 가슴 속에 남아 있지요.]

흑백자는 급히 물었다.

[어떤 명국들을 기억하고 계시오?]

상문천은 말했다.

[예를 들면 왕질(王質)이란 사람이 란가산(爛柯山)에서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기국이고 유중보(劉仲甫)가 려산(驪山)에서 신선을 만나 바둑을 두었다는 기국과 왕적신(王績薪)이 고선파식(?仙婆 )을 만나 두었다는 대국 등이지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흑백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런 신화를 어지 믿을 수 있단 말이오? 그리고 또 기보는 어디 있소?]

그러면서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상문천은 말했다.

[저도 처음엔 그 이야기들이 지어낸 것인 줄만 알았는데 이십 오년전 유중보와 여산에서 신선들이 대국한 기보를 보았소. 한수한수가 심히 기묘했으며,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으나 그때서야 비로소 믿게 되었읍니다. 선배님께서는 바둑을 좋아하십니까?]

단청생은 껄껄 웃는데 가슴까지 내려오는 수염이흔들거렸다.
상문천은 물었다.

[선배님께선 어찌 그리 웃으시는지요?]

단청생은 말했다.

[당신은 내 둘째 형님께 바둑을 좋아하시냐고 묻지 않았소? 하하하 우리 둘째 형님의 도호(道號)는 흑백자올시다. 바둑을 좋아하느냐고요? 둘째 형님이 바둑을 좋아하시는 것은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과 같소이다.]

상문천은 말했다.

[제가 너무 겁없이 지껄인 것 같구료. 이장주께선 노여움을 푸시지요.]

흑백자는 말했다.

[당신은 정말 유중보와 여산에서 신선들이 두었다는 기보를 보았단 말이오? 나는 옛날 책 속에서 그런 기재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속에는 유중보는 당신 국수(國手)였지만 여산에서 한 시골 노인에게 대패하였다는데 그 기보가 바로 구혈보(嘔血譜)라고 칭하고 있소. 그러면 이 세상에 그 구혈보가 있단 말이오?]

그가 처음 방에 들어올 때는 표정이 냉랭했었으나 지금은 많이 풀어져 온화하게 보였다.
상문천은 말했다.

[제가 이십오년 전 사천(四川) 성도의 집에서 본 적이 있지요.
단지 그 일국이 너무 괴이했기 대문에 이십오년이 흘렀지만 전수의 일백십이수는 지금까지 기억할 수가 있지요.]

흑백자는 말했다.

[총 백십이수라고요? 그렇다면 당신이 한번 바둑판에 그려 보시겠소? 자자 내 기실(棋室)에 가셔서 그 기보를 봅시다.]
단청생은 손을 내밀며 막았다.

[잠깐 둘째 형님, 얼음을 만들어 주시지 않는다면 이 방에서 한발작도 나가실 수 없읍니다.]

그리고 그는 백자그릇을 가져와 물을 가득 담았다.
흑백자는 탄식했다.

[네 형제가 각기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 별 수 없지.]
그리고 오른손을 내밀더니 식지를 뻗어 백자그릇 안에 넣었다.
순식간에 물표면에 하얀기가 떠오르고 얼마 후에는 그릇가에 한 거풀 흰서리가 내렸다. 이어서 얼음이 얼기 시작해 차 한잔 마실 시간에 한그릇의 맑은 물이 차가운 얼음으로 변했다.
상문천과 영호충은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상문천은 말했다.

[이 흑풍지(黑風指)의 공부는 이미 소실되었다고 하는데 알고보니 이장주께서......]

단청생은 그 말을 가로챘다.

[이것은 흑풍지가 아니고 현천지(玄天指)라고 부르지요. 흑풍지와는 각각 다른 점이 있지요.]

그러면서 네잔의 술잔을 앞에 놓더니 포도주를 따랐다. 얼마 후 술잔에서 하얀 김이 서려 올랐다.
영호충은 말했다.

[됐읍니다.]

단청생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그 맛은 중후하고 더구나 시거나 맵지 않았고 시원한 그 맛이 마음을 씻어내는 듯했다.

[정말 멋진 술이오. 나는 이 술을 잘 빚었고 풍형께선 평가를 잘해주셨고, 둘째 형님은 얼음을 썩 잘 만들어주었는데 당신은요?]
그러면서 상문천을 보고 웃었다.

[당신은 옆에서 말참견을 잘하셨지요.]

흑백자는 술을 마시고도 술맛이 어떻다고 말 한마디 없이상문천을 잡아 끌었다.

[갑시다, 가요. 유중보의 구혈보를 내게도 보여주시오.]
상문천은 영호충의 소매를 살짝 잡아 당겼다. 영호충은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자 저도 가서 구경 좀 해보아야겠소이다.]

단청생은 말했다.

[그 바둑이 무슨 구경거리나 되오? 우리는 여기서 술이나 마십시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술을 마시면서 그 기보를 보면 어떻겠소?]
그리고 흑백자와 상문천을 따라 나섰다. 단청생도 술단지를 옆에 끼고 기실로 다라 들어갔다.
큰 방안에는 일장의 석괴(石?)와 두개의 부드러운 의자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장식도 없었다. 석괴 위에는 종횡 열아홉줄의 바둑줄이 그어져 있었고, 양쪽에는 흰돌과 검은돌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은 대국하는 사람들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상문천은 석괴 앞에 걸어가 바둑판의 평(平).상(上).거(去).입(入) 네 군데를 손으로 가리키더니 바로 평부(平部) 육삼(六三)의 줄에 흰돌을 하나 놓았다. 그리고 다시 구삼(九三)줄에 검은 돌 하나를 놓고 다시 또 육오(六五)줄에 흐니돌을 놓고 구오(九五) 길목에 흰돌을 놓고 이렇게 쉬지 않고 바둑돌을 놓아갔다. 갈수록 놀놓는 속도가 느렸다.
흑백쌍방이 함께 엉켜 격돌을 하는데 조금의 틈도 없었다. 흑백자는 그 광경을 보더니 온 얼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영호충은 깜작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전 그가 현천지로 얼음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높고 강한 내공의 수양이겠는가? 그 당시에는 눈도 꿈적 않았는데 바둑이란 어린애 장난에 불과한 것 같은데 그는 온통 땀범벅이라니 이 자가 바둑을 좋아하니 거기에 미쳐있는 것이겠지. 상문천은 그의 약점을 알고 급습하고 있는거겠지.
흑백자는 상문천이 육십 육수를 두고난 후 한참 후에도 더이상 두지 않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다음 수는 어찌 되오?]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한수가 관건인데 이장주의 고견으론 어디다 두면 좋겠소?]
흑백자는 한참 고심하더니 풀죽은 소리로 말했다.

[다음 수라? 끊으면 이상한 것 같고 연결시키자니 맞지 않고 싸우자니 싸울 수도 없으며, 살 수도 없는 꼴이 되지 않았소? 이건...... 이건...... 이건......]

그의 손에는 흰돌이 쥐어져 있었고, 석괴에 툭툭 두드리며 밥 한끼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 돌 하나를 어디다 놓아야 될지 생각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때 영호충과 단청생은 이미 십칠팔잔의 포도주를 마셨다.
단청생은 갈수록 흑백자의 얼굴이 파래지자 말했다.

[동노형 이것은 구혈보요. 우리 둘째 형님이 피를 쏟아야 당신은 편안하시겠소? 다음 수를 어떻게 두는지 속시원히 보여 주시오.]
상문천은 말했다.

[좋습니다. 이 육십 칠수는 바로 이곳에 놓아야 하지요.]
그러더니 상부(上部)의 칠사(七四)줄에 돌을 놓았다.
흑백자는 손을 들어 다리를 툭툭치며 말했다.

[좋군요. 이 한수를 여기다 두니 확실히 멋진 한수가 되는구료.]

상문천은 웃었다.

[유증보의 이 수는 물론 이채롭지요. 그러나 그건 인간국수(人間國手)의 묘기일 뿐입니다. 그 여산선노(驪山仙?)의 신과 같은 한수와 비교할 때 그것은 땅과 하늘 차이지요.]

흑백자는 급히 물었다.

[여산선노의 신과 같은 한수는 또 어떤 것이오?]

상문천은 말했다.

[이장주께서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흑백자는 한참을 사색에 잠겼다. 이 한판으로 승부는 났으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것은 신선들의 바둑인데 어지 나같은 범부가 생각해 낼 수 있겠소? 동형께서 으시대지만 말고 말씀 좀 해주십시오.]
상문천은 미소지었다.

[이 신기의 한수는 시니 돼야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흑백자는 바둑을 좋아하는 자이므로 상대방의 마음도 훤히 볼 수 있었다. 상문천이 이 한수를 빨리 말하지 않고 질질 끌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군침만 돌게 하자 그가 어떤 요구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동형, 당신이 이 일국의 기보를 내게 말씀해 주신다면 나는 그저 듣지만은 않을 것이오.]

영호충은 생각했다.

(상형은 이장주의 현천지를 보고 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이렇게 유도를 해내지 계시는 것이다.)

상문천은 고개를 들더니 껄껄 웃었다.

[나와 풍형제는 네분 장주께는 아무런 요구가 없읍니다. 이장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 둘을 업신여기는 것이지요.]
흑백자는 깊게 읍을 하며 말했다.

[제가 실수했구료. 사과드리리다.]

상문천과 영호충도 예로써 답했다.
상문천이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매장에 온 것은 네분 장주와 내기를 한번 할까 해서지요.]

흑백자와 단청생을 일제히 물었다.

[내기를 하신다구요? 무슨 내기이오?]

상문천은 말했다.

[이 매장 중에선 아무도 겁법으로 이 풍형제를 이길 수 없을 것이외다.]

흑백자와 단청생은 고개를 돌려 영호충을 보았다. 흑백자의 표정엔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고, 단청생은 껄껄 웃더니 말했다.

[그럼 무슨 내기를 하시겠소?]

상문천은 말했다.

[만약 우리가 진다면 이 한폭의 그림을 사장주께 드리리다.]
그러더니 등 뒤에서 보자기를 풀어 내리더니 그 속에서 두장의 권축(卷軸)을 꺼냈다. 권축을 펼쳤는데 그것은 아주 오래된 한폭의 그림이었고, 우측 상단에는 북송범중립계산행여도(北宋范中立谿山行旅圖)라는 열 글자가 씌어져 있었고, 높은 산이 그려져 있었다.
선은 중후하고 산의 기세는 웅장하고 멋있었다.
영호충은 비록 그림을 몰랐지만 이 한폭의 산수화는 정묘하고 기찬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종이에 그려져 있었지만 사람들이 그림을 볼 때 웅장함에고개가 숙여지는 것 같았다.
단청생은 큰 소리로 외쳤다.

[아이쿠!]

그는 두 눈을 그림에서 떼지 않고 한참을 보더니 말했다.

[이것은 북송 범관(范寬)의 진필이오. 당신은...... 당신은...... 이것이 어디서 났소?]

상문천은 웃을 뿐 대답하지 않더니 천천히 권축을 말기 시작했다.
단청생은 말했다.

[잠깐만?]

그는 왼손을 내밀어 웅후하고 부드러운 내력을 쏟아내 그의 손바닥을 밀어 권축을 못 말게 했다.
상문천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권축을 돌돌 말았다. 단청생은 조금 전 그의 팔을 끌은 것은 그 그림이 찢어질까 염려되어 아무런 힘도 주지 않았지만 상대방의 내력이 이렇게 튕겨오자 그것이 극상승의 내공이고 극히 여력이 남아도는 것을 알았다.
그는 탄복하며 말했다.

[동형, 원해 당신의 무공은 이렇듯 높구료. 이 사장주인 나보다 날것 같구료.]

상문천은 말했다.

[사장주께선 과찬이십니다. 매장의 네 장주는 검법을 제외하고는 무적이외다. 나같은 무명소졸을 어떻게 사장주와 비교할 수 있겠읍니까?]

단청생은 얼굴색은 변했다.

[당신은 어째서검법을 제외하고는 하고 말씀하시오? 정말 나의 검법이 이 분을 따를 수 없단 말이오?]

상문천은 웃었다.

[두분 장주께선 이 한폭의 글씨가 어떤지 보시겠읍니까?]
그리고 한권의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것은 마치 용이 휘젓고 지나간 듯한 초서체였다.
단청생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어? 억 억!]

연신 억억 소리를 지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세째 형님, 세째 형님, 당신의 보배가 왔읍니다.]

그 소리는 매우 커서 벽에 있는 창문이 흔들거렸고, 천장의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더욱 이렇게 갑자기 외쳐대니 영호충은 깜작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서 어떤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데 그리 떠들고 야단인가?]

단청생은 외쳤다.

[빨리 와서 보지 않는다면 이 그림을 치울 것이니 평생 후회하실 것이오.]

바깥의 그 사람이 말했다.

[너는 또 가짜 서예를 보았구나 그렇지?]

문의 휘장이 걷히더니 한 사람이 들어왓다. 그는 키가 작고 땅딸했으며 머리가 벗겨졌는데 한올의 머리카락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엔 큰 붓이 들려져 있었고, 옷은 온통 먹물투성이였다.
그는 앞으로 걸어와 그림을 보더니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숨이 거칠어지며 헐떡이면서 말했다.

[이건...... 이건 진필이야 진필...... 정말로 당나라 때 장욱(張旭)의 솔의첩(率意帖)이다. 가짜...... 가짜일 리 없어.]
첩에는 초서체가 자유분방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마치 무림의 고수가 경공을 전개하는 듯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이 행동은 민첩했으나 우아한 것을 잃지 않고 있었다. 영호충은 열몇 글자 되는 것 중에 한 글자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서첩의 끝에는 발문(跋門)이 가득 씌어져 있었고, 몇장이 찢어져 있었다. 이것을 봐서 다른 것과 다르다고 영호충은 생각했을 뿐이었다.
단청생은 말했다.

[이분 세째 형님은 독필옹(禿筆翁)이오. 이런 호를 가지신 것은 그는 평생 서예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수천개의 붓을 닳아 못쓰게 했으니 붙여진 것이지 결코 머리가 싹 바져서 그런 것은 아니외다. 이런 이유를 확실히 알고 혼동하지 마십시오.]

영호충은 미소하며 말했다.

[녜.]

그 독필옹은 오른손의 식지를 내밀더니 솔의첩의 필적을 따라 한획한획 따라 그렸다. 그 표정은 마치 바보인양 술에 취한양 했고, 상문천과 영호충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단청생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영호충은 갑자기 무엇인가 떠올랐다.

(상형님의 이런 행동은 이미 계획에 짜여져 있을 것이다. 기억하기론 정자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등에는 이런 봇짐이 있었어.)
그러나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당신 봇짐 속에는 두개의 권축이 들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
어저면 그가 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도중에 내가 객주에서 휴식을 취할 때 나가서 사왔거나 훔쳤거나 빼앗아왔을 것이다. 음 아마 십중팔구는 훔쳐온 것이 분명해. 이렇게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물건을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겠느냐?)

독필옹이 허공에 대고 쓰는데 쓱쓱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 왔다. 내공의 강함이 흑백자와 다름없는 것 같았다.

(나의 내상은 도곡육선과 불계화상 때무인데 이 매장의 세분장주는 도곡육선과 불계화상보다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더우기 첫째 장주는 내공이 더 강할지도 몰라. 거기다 상형님까지 합치면 어쩐면 내 상처는 치료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들의 능력을 너무 많이 소모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문천은 독필옹이 허공에 글자를 다 쓰지도 않았는데 솔의첩을 걷어 보자기 안에 쌌다.
독필옹은 어리벙벙한 듯 상문천을 바라보며 한참 후에 말했다.

[무엇과 바꾸겠소?]

상문천이 고개를 흔들었다.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소이다.]

독필옹은 링라했다.

[이십팔초의 석고타혈필법(石鼓打穴筆法)과 바꿉시다.]
흑백자와 단청생이 일제히 외쳤다.

[안 됩니다!]

독필옹은 말했다.

[된다 왜 안 되니? 이 장욱의초서와 바꿀 수만 있다면 나의 석고타혈필법이 뭐 그리 아깝겠는가?]

상문천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독필옹은 더욱 급하게 말했다.

[그러면 당신은 왜 그것을 가져와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오?]
상문천은 말했다.

[그렇다면 삼장주께서는 안 보신 것으로 하시죠?]

독필옹은 말했다.

[이미 보았는데 어떻게 안 본 것으로 하시죠?]

상문천은 말했다.

[삼방주께서 장욱의 진필을 얻고자 하신다면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외다. 그것은 우리와 내기를 하면 되는 것이지요.]
독필옹은 급히 물었다.

[무슨 내기요?]

단청생은 말했다.

[세째 형님. 이 사람은 좀 모자라는 것 같아요. 우리 매장가운데는 누구도 이 화산파의 풍형의 검법에 따르지 못한다고 하는군요.]

독필옹은 말했다.

[만약 이 친구를 이긴다면 그때는 어찌하시겠소?]

상문천은 말했다.

[만약 이 매장에서 어느 누구든 이 풍형을 이길 수 있다면 이 한폭의 솔의첩을 삼장주께 드리지요. 그리고 그 범관의 진필인 계산영행여도도 사장주께 드리리다. 그리고 신선들이 두었다는 이십국이나 되는 기보를 일일이 써서 이장주께 드리리다.]

독필옹은 말했다.

[그럼 우리 큰 형님께는 무엇을 드리겠소?]

상문천은 말했다.

[저에게는 광릉산(廣陵散)의 금보가 있는데 어쩌면 대장주께서 기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흑백자 등 세 사람이 말했다.

[광릉산?]

영호충은 놀랬다.

(이 광릉산의 금보는 곡장로가 고분을 발굴하여 얻은 것이다. 그는 그것을 소오강호지곡에 삽입시켰다. 상형이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그는 바로 깨달았다.

(상형님은 마교의 우사(右使)이다. 곡장로도 마교의 장로이니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을 것이다. 곡장로가 이 금보를 얻은 직후 너무 기쁜 나머지 상형님께 말했을 것이다. 상형님은 그것을 베꼈을 것이고 곡장로는 기쁘게 그것을 허락했겠지.)

곡장로는 세상을 떴으나 그 금보는 세상에 떠다니자 마음속이 우울했다.
독필옹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혜강( 康)이 죽은 뒤로 광릉산의 악보는 전해지지 않았소. 동형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오?]

상문천은 웃으며 말했다.

[내게는 좋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금을 참 좋아했지요.
그로 말하기를 혜강이 죽자 천하에는 그로부터 광릉산의 악보가 사라졌다고 했지요. 이 악보는 서진(西晉) 직후에는 사라졌지만 서진 이전에는 어떻소?]

독필옹 등 세 사람은 막연하여 이 일이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상문천이 말했다.

[내 친구는 총명했고, 담력도 커서 서진 이전의 금의 명인들이 잠들고 있는 무덤을 찾아가 무덤을 팠지요. 과연 뜻이 있는 자에게 길이 있다고 십여개의 고분을 파헤친 후 결국 동한채옹(東漢蔡邕)의 무덤 속에서 이 곡을 찾아내고야 말았지요.]

독필옹과 단청생은 아연 실색했다.
흑백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지혜와 담력이 뛰어났군요. 대단하십니다.]

상문천은 보따리를 풀어 한권의 책자를 꺼냈다. 겉면에는 광릉산금곡(廣陵散琴曲)이라고 씌어져 있었고, 그 책을 펼치니 틀림없이 금보가 수록되어 있었다. 그는 그 책자를 영호충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풍형 매장 중에서 어떤 한 고인이 당신의 검법을 이긴다면 형씨께선 이 금보를 대장주께 드리시오.]

영호충은 그 책자를 갈무리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이 곡장로의 유물인지도 모르지. 곡장로가 죽었으니 상형이 이 금보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청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풍형은 주법에 정통하시고 검법도 고명하신 것 같소. 그러나 그는아직 어린데 어찌 우리 매장에 흐흐 그것은 너무 웃기는 일이오.]

흑백자는 말했다.

[만약 우리 매장에서 풍형을 이길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내기를 해야 하오?]

영호충은 모든 것을 상문천에게 일임했으나 상문천이 하는 일이 너무 과분하고 상대방을 중시하면서 어떻게 자기 약을 구하려 할까 생각되었다. 하물며 자기의 내력은 모두 소실되었는데 어찌 매장의 고수들과 맞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

[풍형님께선 농담을 좋아하시죠. 보잘 것 없는 이 후배가 어찌 매장의 네분 매장주와 무예를 논하고 검을 논하겠읍니까?]
상문천은 말했다.

[그런 예의적인 말은 응당히 하는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너무 내세운다고 하지 않겠소?]

독필옹은 이 두 사람의 말이 귓속에 들어오지 않는양 중얼거렸다.

[장욱삼배초성전(張旭三杯草聖傳), 탈모노정왕공전(脫帽露頂王公前), 휘호낙지여운연(揮毫落紙如雲烟) 즉 장욱은 삼배의 초성이라 전해 내려온다. 왕공 앞에서도 의관없이 나서네. 종이 위에 붓을 휘두르면 운연과 같은 초서의 글씨. 둘째 형님 그 장욱이라는 호는 초성(草聖)이라고 하며, 초서의 성인이올시다. 이 세 귀절의 싯귀는 두보(杜甫)가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장욱에 관해 쓴 것이지요. 그의 글을 잡아둘 수 없는 용맹스런 멋진 글자입니다.]
단청생은 말했다.

[그렇지요. 그 사람은 술을 좋아하는 호인이었으니 글자 또한 어디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독필옹은 말했다.

[한유(韓愈)가 장욱의 글씨를 평하기를 희노애락의 무궁함이나 원한과 사모의 정을 술로 풀자니 무의미 하고 공허하고 마음속에 두자니 어쩔 수 없자 그것을 초서로 승화시켰다 이 사람은 바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오. 마음에 두지 못하고 초서로 발로시켰으니 마치 장검을 휘두르는 것과 같이 통괘하지 않으시오?]

그리고 손가락을 뻗어 허공에 몇번을 써보고 또 써보더니 상문천을 향해 말했다.

[여보시오. 다시 한번 펼쳐서 구경 좀 합시다.]

상문천은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삼장주께서 이기신 다음에는 이 서첩은 당신 것이 될텐데 왜 그리 급하게 구시는 것인지요.]

흑백자는 바둑에 능한 사람이라 생각이 깊었다. 아직 승리하지 않았으니 실패도 우려하고 말했다.

[만약 매장 중에서 풍형을 이기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댓가를 치루어야 하오?]

상문천은 말했다.

[우리가 매장을 찾은 것은 어떤 일이나 물건을 구함이 아니외다. 풍형제께선 단지 무학이 최고인 이곳에 와서 당세의 고수들에게 검법을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오. 만약 이긴다면 우리는 바로 이곳을 떠날 것이며, 어떤 댓가도 우리는 바라지 않소이다.]
흑백자는 말했다.

[오호 이 풍형께선 이름을 날리고 싶어 오셨구료. 일검에 강남사우를 격파시킨다면 자연 강호에 이름이 날리는 것이지요.]
상문천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장주의 생각이 틀리셨소이다. 오늘 매장에서 검법을 인정받고 누가 이기건지던간에 한마디라도 바깥에 누설시킨다면 나와 풍형은 하늘에 벌을 받을 것이고 개똥보다 못한 인간이 도리 것이외다.]
단청생은 말했다.

[오호! 그렇소? 좋군요. 말씀이 깨끗하십니다. 이 방은 넓으니 나와 풍형이 두수 겨루어 보지요. 풍형 당신의 검은?]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곳 매장에 오는데 어지 감히 병기를 지닐 수 있읍니까?]
단청생은 크게 외쳤다.

[두 자루의 검을 가져 오거라!]

밖에서 대답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시령위와 정견이 각기 검 한자루씩을 들고와서 단청생 앞에 다가가 몸을 굽혀 칼을 바쳤다.
단청생은 정견에게 검을 받더니 말했다.

[이 검은 저분에게 갖다 드려라.]

시령위는 말했다.

[녜.]

그리고 두손으로 검을 바쳐들고 영호충 앞으로 걸어갔다.
영호충은 일이 남감하여 고개를 돌려 상문천을 바라보았다.
상문천은 말했다.

[매장의 사주께선 검법이 신의 경지에 있지요. 풍형께선 일초 일식을 배운다면 그것을 종신토록 다 쓰지는 못할 것이오.]
영호충은 눈 앞의 상황에 이르자 검술을 시합하지 않을 수 없어 두 손으로 장검을 받아들었다.
흑백자는 갑자기 말했다.

[네째 아우 잠깐만 기다리게. 이분 동형께선 이 매장중에는 누구도 풍형을 이길 수 없다고 했는데 정견도 검을 쓸 줄 알고 매장의 사람이니 반드시 우리가 친히 나서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상문천이 갈수록 도도해지자 심히 못마땅하게 느껴 즉시 정견에게 먼저 시합에 임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는 생각하기를 정견의 검법을 대단하고 또 매장의 문지기 신분이니 설사 지더라도 매장의 명예에는 아무런 훼손이 되지 않고, 두 사람이 시합을 할때 이 풍이중의 검법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상문천은 말했다.

[녜, 녜, 그렇습니다. 어지되었든 매장에서 우리 풍형의 검법을 이길 수만 있다면 우리가 진 것으로 간주하겠으며, 네 분의 장주께서 친히 나서지 않으셔도 되지요. 이 정형은 강호에선 일자전검이라 부르며 검초의 바름은 이 세상에서도 보기가 드물지요. 풍형 먼저 이 정형의 일자전검의 가르침을 받는 것도 좋겠구료.]
단청생은 장검을 정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네가 진다면 벌로써 토로번에 가서 술을 운반해와야 하네.]
정견은 장검을 받아들고 영호충을 향해 말했다.

[그럼 제가 먼저 풍어르신 검법의 가르침을 받을까 하오.]
싹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을 벋어냈다. 영호충도 즉시 장검을 봅아들고 검집을 석괴 위에 올려놓았다.
상문천이 말했다.

[세분 장주 그리고 정형, 우리는 검법을 증명하는 것이지 내력을 알려는 것이 아니외다.]

흑백자는 말했다.

[그거야 물론이오. 상대방을 찍으면 승부가 판가름나는 것이외다.]

상문천은 말했다.

[풍형 당신은 절대 내력을 써서는 안 되오. 검법을 시험하는 것이니 초수가 정통한 자가 이기고 총수가 정통하지 못하면 지는 것이오. 당신네 화산파의 기공은 무림에 이름이 나 있으니 내력으로 승리를 취한다면 우리가 지는 것이오.]

영호충은 내심 웃었다.

(상형님은 내 내력이 모두 소실됨을 알고 먼저 이렇게 말을 해놓고 예방을 하자는 것이겠지.)

그리고 말했다.

[제가 내력을 쓴다면 세분 장주와 정 시 두분께선 이발이 빠지도록 웃으실 것입니다. 절대로 내력을 사용하지 않겠읍니다.]
상문천은 말했다.

[우리가 이 매장에 온 것은 성의입니다. 풍형께서 다시 이렇게 겸허하게 말씀하신다면 오히려 네분 선배님께 불경한 결과가 되지요. 당신네 화산파의 자하신공은 우리 숭산파의 내공에 비해서 돌출하다는 것은 무림에선 다 알고 있는 사실이오. 풍형, 나의 두개의 발자국에서 두발을 절대로 이동할 수 없다고 하고 정형과 검초를 겨룸이 어떻겠소?]

그가 말을 마치고 발을 옮기니 그곳에는 파란돌이 깔린 발자국이 생겼는데 깊이가 두척정도가 되었다. 원래 그는 조금 전 내력을 써서 이 파란돌 위에 두개의 발자국을 생생하게 남겼던 것이었다.
흑백자, 독필옹, 단청생 등은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정말 기막힌 공력이오.]

그들이 상문천이 말을 할 때 아무 내색이나 소리도 없이 내력을 발끝까지 운행해서 만들어낸 발자국에서도 파란돌은 부서지지 않았고, 두개의 발자국이 똑같이 깊고도 평평하고 가지런하게 조각돼 있는 것을 보자 내력이 자기들보다 위일 것이라고 믿었다.
단청생 등은 그가 내공을 표출해내 보이자 그 행동이 천박하고 내공이 높은 사람의 행위는 아닐지라도 필경 신공이 경인지경에 이르니 탄복했으면서도 그가 또다른 생각이 있는지는 몰랐다.
영호충은 그 뜻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가 자기들 내공보다 높음을 과시한 것은 그의 내공이 이렇듯 높은데 자기는 더욱 무서울 것이고, 그러면 상대방은 시합에 있어서 불리할 때도 감히 내력을 행하여 스스로 치욕을 자처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더우기 자기는 검법을 제외하고는 다른 무공은 하나도 취할 수가 없으니 자기의 발자국에 두발을 딛고 있으면 오로지 검법만을 전개해야 하고 그러니 자기의 약점을 감출 수 있었던 것이다.
정견은 상문천이 영호충에게 두발을 발자국 위에 놓고 검대결을 하라고 하자 별시한다고 생각하고는 화가 치밀어오름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남긴 흔적이 이렇게 깊으니 자기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와서 네분 장주께 도전을 하는 것을 보니 시시한 패들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이들과 사워 비기기만 해도 고산매장에서는 공르 세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옛날엔 거만했으나 강적을 만나 죽지도 살지도 못할때 다행히 강남사우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상호아에서 구출되었고, 그는 매장에 투신하여 그들을 떠받들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옛날 용감무쌍하던 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영호충은 큰 걸음으로 상문천이 낸 발자국 위에 서서 웃었다.

[정형 가르침을 받겠소이다.]

정견은 말했다.

[그럼 실례하겠읍니다.]

장검을 휘두르자 싹하는 가벼운 음향과 함께 긴 섬광을 그리며 여러 사람 앞을 지나갔다. 그가 이 매장에서 십여년 동안 은거했으나 그 당시의 공력은 조금도 없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일자전검의 매초식이 펼쳐질 때마다 섬광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보는 사람이 혼비백산하였던 것이다. 옛날 정견은 눈이 먼 독행대도(獨行大盜)에게 패했었는데 그것은 이 일자전검이 그 사람 눈에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이때 그가 검을 휘두르자 삽시간에 방안에는 섬광이 가득 차고 눈이 어지러웠다.
이때 일저전검의 일초가 펼쳐지자 영호충은 세군데 큰 헛점을 발견했다.
정견은 급히 들어오지 않고 장검을 연신 휘두르며 마치 자기를 찾아온 손님에게 예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진정한 생각은 영호충으로 하여금 눈이 부신 나머지 그 사람의 다음 동작을 막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제오초식을 펼쳤을 때 영호충은 이미 그 초식 중에서 열여덟군데의 헛점을 발견해 내고는 즉시 말했다.

[자 그럼 받으시오.]

그리고 장검을 비스듬히 뻗어냈다.
그때 정견의 일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급히 내리쳤는데 영호충의 검봉은 그의 손에서 두자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러나 정견의 일검이 자나치자 자기의 손목을 영호충의 칼끝에 갖다대는 꼴이 되었다. 그 휘두름이 빨라 다시 거둘 수가 없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듯 외쳤다.

[조심하게나.]

흑백자의 손에는 흑백의 두개 바둑알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그 바둑알을 던져 영호충의 장검을 막아 정견의 손목이 잘라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내가 만약 손을 쓴다면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대적하는 셈이다.
그러면 우리 매장 전체가 지는 꼴이니 앞으로 시합할 명목이 서지 않는다.)

그는 행동을 멈추었다. 정견의 손목은 이미 예리한 검봉을 향해 들어가자 시령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이쿠!]

섬광이 번쩍하는 순간에 영호충은 손목을 살짝 옮겨 검봉을 뉘였다. 팍하는 소리와 함께 정견의 팔뚝이 검봉에 부닥치고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정견은 멈칫했으나 상대방이 사정을 봐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이순간 자기는 손목 하나를 주워온 셈이 되었고, 이 손목이 끊어진다면 평생 쌓은 무공이 일시에 끊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정견은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풍대협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영호충도 허리를 굽혀 반례하며 말했다.

[천만의 말씀이오. 겸손의 말씀이시오.]

흑백자, 독필옹, 단청생은 영호충이 장검을 옆으로 살짝 내밀어 정견에게 상처를 조금도 입히지 않자 호감이 감을 느꼈다.
단청생은 한잔에 술을 가득 따르며 말했다.

[풍형, 당신의 검법은 정묘하구료. 내가 경의를 표하겠소이다.]
영호충은 말했다.

[천만부당한 말씀이시오.]

그리고 술잔을 받아들고 마셨다.
단청생도 같이 한잔 따라 마시더니 또 영호충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그리고 말했다.

[풍형! 당신의 성품은 인자하구료. 정견의 손바닥을 남아있게 했으니 다시경의를 표하겠소이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것은 우연이니 내세울 것이 못되오.]

그러면서 두 손을 받쳐들고 술을 마셨다.
단청생은 같이 마시고 난 후 다시 한잔을 따르며 말했다.

[이 세번재의 잔은 잠시 후 당신과 내가 대결을 한 후 진 사람이 마시기로 하면 어떻겠소?]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제가 질 것이니 제가 먼저 마셔야겠읍니다.]

단청생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뭐가 그리 급하시오?]

그러더니 술잔을 석괴 위에 내려놓고 정견에게 검을 받아쥐고 말했다.

[풍형 먼저 출수하시오.]


영호충은 술을 마실 때 이미 계산해 놓았었다.

(그는 자칭 첫째로 술을 좋아하고, 둘째는 그림을 좋아하고, 세번째로 검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검법은 틀림없이 정교할 것이다.
보건대 그가 그린 대청의 선인도는 필법은 예리하고 대단하지만 자세히 보면 자기 자신을 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그의 검법도 그렇다면 틀림없이 헛점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즉시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사장주 너무 심하게 손을 쓰지 마십시오.]

단청생은말했다.

[겸손하시구료. 자 손을 쓰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가르침을 받겠소.]

그리고 장검을 올려 그의 어깨를 향해 뻗어냈다.
그의 이 일검은 흔들흔들 아무 힘도 없어 보였고 더욱 무슨 검법도 아니었다. 천하에서 이런 일초가 있을 수 없었다.
단청생은 거짓없이 말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구료.]

그는 이미 영호충은 화산파의 사람이라 내심 하산파의 여러 검법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 일검이 뻗어지자 자기 생각과는 정반대이며 화산파의 검법도 아니고 심지어 검법이 아님을 느꼈다.
영호충은 풍청양을 따라 고금에 없는 독고구검을 배웠고 더욱 무초승유초(無招勝有招)와 같은 검술에 정통한 의미를 깨우쳤던 것이다. 이런 이치와 독고구검은 상호보완 작용을 했으며, 독고구검의 검법은 오묘하여 극점에 도달하고 있으나 독고구검은 초식이라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거기다 무초승유초의 검의 이치를 넣어 운용한다면 더욱 안개 속에서 헤매며 허공을 찾는 꼴이 되니 그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는 것이다.
영호충이 일검을 벋어내자 단청생은 흠칫 놀라며 바로 검을 벋어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어떻게 막고 어떻게 자세를 취해야 좋을지 몰라 두걸음 물러나 몸을 피했다.
영호충은 단 일초로 정견이 칼을 버리고 패했음을 인정하자 흑배자와 독필옹은 속으로 그의 검법을 칭찬하고 있었으나 놀라지는 않았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그가 매장에 도전하러 와서 매장의 하인조차 이길 수 없다면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단청생이 그의 일검에 뒤로 두걸음 물러서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청생은 뒤로 두걸음 물러서더니 바로 아픗로 두 걸음을 나왔다. 영호추은 장검을 뻗어 그의 옆구리를 향했다. 여전히 아무렇게나 내뻗는 검이었고 어떤 검의 이치와는 전혀 투합하지 않았다.
단청생은 검을 뉘며 막으려고 했으나 쌍검이 서로 부딪치기도 전에 상대방의 검끝이 자기의 옆구리에 들어옴을 느꼈다. 이때 그곳은 헛점이 크게 보여 상대방이 공격해 왔다. 그는 위급한 나머지 초식을 바꾸어 두발을 튕겨 뒤로 일장정도 물러서 일갈했다.

[멋진 검법이오.]

그리고 다시 앞으로 쳐들어왔다. 사람과 검이 영호충을 향해오는데 그 기세가 심히 맹렬했다.
영호충은 그의 오른발 구부러진곳이 헛점이라고 간파해 내고는 장검을 들어 그의 오른발을 내리쳤다. 단청생은 도중에서 초수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오른발은 이미 상대방에 의해 내리칠 것이나 그의 무공도 대단해서 급한 상황에서 손목을 급히 아래로 향해 장검을 바닥을 향해 땅의 반력을 이용해 재주를 넘더니 두장밖으로 떨어졌다. 그때 등과 벽과는 수촌에 불과했다. 만약 이런 공중제비 돌기에 있어 힘을 조금만 너 썼어도 등이 벽에 부딪쳐 자기의 높은 신분이 크게 실추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것을 면할 수 있었으나 낭패하여 얼굴색이 파래졌다.
그는 활달하고 호탕한 인물이라 오히려 껄껄 웃더니 왼손 검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외쳤다.

[정말 멋진 검법이오.]

그러더니 장검을 춤을 주듯 백홍관일(白虹貫日) 일초를 벋더니 바로 춘풍양유(春風楊柳)의 초식으로 바꿔 휘두르고 또 다시 등교기봉(騰蛟起鳳)으로 바꿔 검을 벋어냈다. 삼검이 단숨에 만들어져 마치 그의 발걸음이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이 삼초식이 나놀 때 검끝이 이미 영호충의 이마에 닿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검을 뉘여 가볍게 내리치니 그의 검허리를 짓누르는 셈이 되었다. 이때 가볍게 툭치는 시각과 방향은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단청생의 장검은 위쪽을 향해 질러오자 정신과 기력을 검끝에 모아 검 허리에는 아무런 힘도 주지 않았다. 가벼운 고리가 탕 나더니 그의 수중에 있던 장검이 아래로 처졌다. 영호충의 장검이 바깥을 향하여 그의 가슴을 향해 찔러왔다. 단청생은 악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왼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는 왼손으로 검결을 취하고 오른손으론 장검을 들어 공격해 들어 왔다. 이번에는 똑바로 허공을 가로질러 찔러오며 외쳤다.

[조심하시오.]

그는 결코 영호충을 베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일검인 옥룡도현(玉龍倒縣)의 기세는 대단하여 상대방이 피하지 않거나 자기 자신이 억제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상처를 입힐 것이었다.
영호충은 대답했다.

[녜.]

그리고 장검을 반대쪽으로 올려 벋더니 그의 정검과 검봉이 붙어 올라갔다.
단청생은 이 일검이 영호충의 정수리에 닿기 전에 자기가 검을 쥐고 있는 다섯 손가락이 먼저 상대방의 공격을 받아 상대방의 검봉이 자기의 검끝에서 미끄러져 내려오자 상대방의 일초를 깨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니소능띵 맹렬히 뻗어 한줄기 장력이 땅에 부딪쳐 펑하는 소리가 나면서 몸이 뒤로 물러나 일장 밖으로 떨어졌다.
자기 몸이 똑바로 서기도 전에 장검을 이미 몸 앞에서 동그란 원을 세번 그리더니 세개의 둥근빛을 만들어 냈는데 마치 형체가 있는 물건처럼 공중에서 잠깐 머물더니 천천히 영호충 앞으로 갔다.
이 몇개의 검기가 변한 빛줄기는 일자전검보다 대단하지는 않았으나 검기가 방안을 가득 채우자 차가운 바람이 몸을 엄습했다.
영호충은 장검을 내밀어 둥근빛 왼쪽 옆을 쳤다. 그것은 바로 단청생의 제일초의 힘이 사라지고 제이초의 중력이 생기기 전에 생긴 빈틈이었다.
단청생은 억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또 몇걸음 물러섰다.
이렇게 들어가고 물러서고 단청생의 공격도 빨랐고, 물러서는 것도 빨랐다. 순식간에 그는 십일초의 초식을 써서 공격하고 열한번이나 물러선 것이다. 그의 수염이 휘날리고 검광이 커지더니 그의 얼굴을 비추었는데 그의 얼굴엔 푸른기가 비추었다.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수십개의 크고 작은 빛이 일제히 영호충을 향해 엄습해 갔다. 그것은 검법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수십초의 검법을 하나로 화한 것이었다. 이 수십초의 검법은 하나하나마다 살기가 있었고 매초식이 변화를 주는데 한군데 모아져서 번쩍였다.
영호충은 하나를 가지고 수십개를 상대하는 검법으로 몸을 숙여 검끝을 수십개의 빛 위에 올려뻗어 단청생의 아랫배를 노렸다.
단청생은 또 한번 큰 소리를 내더니 뒤로 물러섰다. 펑하는 소리가 나며 석괴 위에 무겁게 앉았다. 이어 쨍그랑 소리가 나면서 석괴 위에 있던 술잔들이 땅바닥에 떨어져 가루가 되었다.
그는 껄껄 소리내 웃더니 말했다.

[절묘하오. 멋지오. 풍형 당신의 검법은 나의 위에 있소. 자자자 제가 당신에게 세잔의 술을 권하겠소.]

흑백자와 독필옹은 이미 자기 네째 아우의 검법을 익히 알고 있었고, 눈 앞에서 십육초나 되는 공격에도 영호충의 두발은 상문천이 만들어 놓은 발자국에서 떨어지지도 않고도 단청생을 열여덟차례나 물러나게 했음을 보고 검법의 높은 경지에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청생은 술을 따라 영호충과 석잔의 술을 마셨다.

[강남사우 중에 나의 무공이 제일 났소. 나는 비록 졌지만 둘째형, 세째 형님은 절대로 굴하지 않을 것이외다. 아마 그들도 당신과 겨루어 볼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우리들이 십여초를 겨루었지만 사장주께선 일초도 지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미 승패가 났다고 하십니까?]

단청생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첫번째 초식에서 이미 승부가 난 것이오. 그뒤의 십칠초는 한번 해본 것에 볼과하오. 큰 형님께서 내가 좀 모자란다고 하셨는데 정말 틀린 말이 아니오.]

영호충은 웃었다.

[그렇소, 그렇소. 자 우리 술이나 마십시다 그려.]

그는 평소 검술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 이름도 없는 후배에게 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도량이 깊은 것은 무림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이었다.
상문천과 영호충은 그의 기풍에 찬탄을 보냈다.
독필옹은 시령위에게 말했다.

[시집사 번거롭지만 나의 토필(?筆)을 가져 오게나.]
시령위는 대답을 하고 나가서 한가지의 병기를 가져와 두 손으로 바쳤다.
영호충이 보니 그것은 강철로 만든 판관필(判官筆)로써 길이가 일척육촌 정도였는데 이상한 것은 판관필의 끝은 다름 아닌 한묶음의 먹물이 묻어 있는 양모로 만든 것이었다. 마치 글자를 쓸수 있는 큰 붓모양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판관필의 붓끝은 혈을 찍는데 사용하는 것인데 그의 병기는 끝을 부드러운 양털로 장식을 해 놓았으니 사람의 혈도를 찍는다면 어떻게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그의 무공은 일가견이 있고, 내력도 중후하니 내력이 닿는 곳마다 양모도 상처를 줄 수 있는 것 같았다.
독필옹은 판관필을 손에 들고 웃으면서 말했다.

[풍형 당신은 그래도 그 두발을 발자국에서 떨어뜨리지 않겠소?]

영호충은 급히 두 발자국 물러서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선배님께 가르침을 청하는데 감히 어찌 그럴수 있겠읍니까?]

단청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당신은 나와 대결할 때는 서서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지만 우리 세째 형님과 시합을 할 때는 안 되지요.]

독필옹은 판관필을 들더니 웃으며 말했다.

[나의 몇가지 필법(筆法)은 명가의 필첩(筆帖)에서 변화시킨 것이오. 풍형은 문무를 겸비하셨으니 틀림없이 나의 필법을 알아 맞추실 것이오. 풍형은 나의 좋은 벗이니 나는 이 붓 끈에 먹물은 묻히지 않겠소이다.]

영호충은 놀라며 생각했다.

(당신이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면 붓끝에 먹물을 묻히겠단 말인가? 붓끝에 먹물을 묻히면 어떻다는 것인가?]

그는 독필옹이 판관필을 사용할 때 먹칠을 하는 것은 특수한 약재로 달여 만든 거승로 사람의 피부에 닿으면 깊이 스며들어 씻어도 빠지지 않고 칼로 긁어내도 안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무림의 고수들이 강남사우와 겨룰 때 제일 골치아픈 상대가 이 독필옹인 것이었다. 자칫 조심하지 않으면 독필옹의 붓끝에 의해 얼굴에 그림이 그려지는데 둥그렇게 그려지거나 또는 글자가 쓰여지면 종신토록 사람을 만날 수 없이 창피한 것이었고, 얼굴에 먹물이 묻혀진 것보다 차라리 한칼을 맞거나 팔이 잘려나가는 것이 낫다고 여겼던 것이다.
독필옹은 영호충이 정견과 단청생과 대결할 때 상당히 성실한 것을 보고 붓끝에 먹물을 묻히지 않았던 것이다.
영호충은 비록 그 뜻을 알지는 못했으나 자기에게 매우 겸손하게 대해줌을 알고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그렇게 대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아는 것이 적어 삼장주의 필법을 알지 못합니다.]

독필옹은 실망한 듯 말했다.

[당신이 서예를 모른다면 그것도 좋소. 내가 먼저 해설을 해주겠소. 나의 필법은 배장군시(裴將軍詩)라고 부르오. 그것은 안진경(顔眞卿)이 쓴 시첩(詩帖)에서 변화된 것이고, 총 스물세 글자인데 한글자마다 삼초에서 십육초까지 일정치 않게 있소. 자 들어보시오. 배장군(裴將軍), 대군제육합(大君制六合), 맹장청구핵(猛將淸九?), 전마약용호(戰馬若龍虎), 등록하장재(騰?何壯哉)!]
영호충은 말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생각했다.

(시인지 서예인지 알 수는 없는데 거기가지 생각할 필요가 있겠는가?)

독필옹은 큰 붓을 들더니 영호충의 왼뺨을 향해 연신 세번을 찍었다. 바로 그 배(裴)자의 첫번째 삼획이었는데 그것은 헛초였고 막 위에서 아래로 내려그으려고 했다. 영호충은 장검을 뽑아 제압을 하려고 질풍같이 그의 어깨를 내리쳤다.
독필옹이 어쩔 수 없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그 검을 막으려고 하자, 영호충의 장검은 이미 원위치로 돌아간 후였다. 두 사람의 병기는 서로 부딪치지 않았고 사용한 것은 모두 헛초였다. 그러나 독필옹의 배장군시필법(裴將軍詩筆法) 제일식은 이미 반초를 사용하여 온전치가 못했다. 그의 큰 붓이 허공을 치고난 후 바로 두번째 초식을 펼쳐냈다.
영호충은 그의 큰 붓이 뻗어나오기 전에 장검을 위로 내밀어 위급함을 막았다. 독필옹은 붓을 휘둘러 막았고, 영호충은 장검을 원위치로 하여 독필옹의 제이초도 여전히 반초식만 썼을 뿐이었다.
독필옹은 쓰자마자 상대방에 의해 두 초식이 제압당하자, 자기의 득의양양한 필법을 사용할 수 없음을 알고 참을 수 없었다. 마치 서예를 잘하는 사람이 붓을 들어 몇글자 쓰려고 할 때 옆에서 한명의 짓궂은 아이가 와서 그의 필봉을 잡고, 그의 손을 잡는다면 어찌 좋은 글씨를 쓸 수 있겠는가?
독필옹은 생각했다.

(내가 이 배장군시를 그에게 먼저 읽어주었더니 그가 나의 필법을 알고 먼저 제압하고 있구나. 앞으로 모든 초식은 순서에 따를 수가 없겠구나.)

그는 큰 붓을 들어 오른쪽 위에서 오니쪽으로 비스듬히 찍어내렸다. 그가 쓴 것은 경력이 충만히 내포된 여(如)자의 초서를 그어 내고 있는 것이었다. 영호충은 장검을 내밀어 그의 겨드랑이 오른쪽을 겨누었다. 독필옹은 깜작 놀라 판고나필을 급히 반대방향으로 돌려 그의 장검을 막았다. 영호충의 이 일검은 정말 내리친 것이 아니고 단지 자세만을 취했을 뿐이엇다.
독필옹은 또 다시 반초만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의 이 초서중엔 무수한 정신과 힘이 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중도에서 방향을 바꾸자 필법이 막히고 내공이 바뀌어 단정에서 한줄기 피가 용솟음치며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랐다.
그는 후하고 한숨을 내쉰 후 판관필을 들어 춤을 추듯 등(騰)자의 일식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반초식을 썼을 뿐 영호충의 공격에 필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독필옹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일갈했다.

[흥, 중간에서 훼방만 놓는구나.]

그리고 판관필을 더욱 바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변화무쌍하게 움직여도 모든 글자의 필법은 많이 써봐야 이획이었고 영호충에 의해 봉쇄되어 더이상 쓸 수가 없었다.
그는 일갈하더니 필법을 갑자기 변화시켰다. 조금전처럼 자유분방하게 움직이지 않고 필봉을 중간에 잡고 필치에 무게가 있었는데 불꽃이 사방에서 튀고 검이 튕겨져 나오고 활이 쏟아져나오면서 돌덩이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그의 필법이 촉한의 대장군인 장비가 쓴 팔몽상면에서 따온 것인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이 필법이 앞서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그는 상대방이 무슨 초식을 쓰든지간에 상관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판관필의 움직임에서 그의 헛점을 찾아내 공격했던 것이었다. 독필옹은 왁왁하고 큰 소리로 질렀다. 어떤 변화나 움직임에도 결국 반초식 이상을 쓸 수 없었고 한초식도 온전히 쓸 수 없었던 것이다.
독필옹의 필법은 또 바뀌었다. 크게 회소자석척 중의 초서를 쓰고 있었다. 그 필법은 종횡무진하고 변화가 무궁무진했다.

(회소의 초서는 알기 어렵다. 거기다 초서 중에 초서를 가미시켰으니 아마 이놈은 나의 독창적인 초서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영호충이 초서는 말할 것도 없고 단정히 쓴 해서조차도 얼마 알지 못한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그는 단지 영호충이 필법을 알고 제압하는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사실 영호충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순수한 병기의 초수였고 기회를 틈타 상대방의 빈틈을 노려 공격했을 뿐이었다.
독필옹은 자기가 초서체에서 따온 초식이 단지 반초만 사용하면 상대방에 의해 중도에서 끊기자 마음속의 화는 갈수록 심했다.
그는 갑자기 크게 외쳤다.

[싸우지 않겠소. 더이상싸우지 않겠소.]

그는 뒤로 물러나 단청생의 술을 가져다가 석괴 위에 거꾸로 따르더니 대필을 술속에 묻혀 하얀벽에 쓰기 시작했다. 벽에 씌어진 것은 바로 배장군시였다. 이 스물세글자는 한획한획마다 정신이 포만되고 특히 그 여(如)의 글자는 마치 벽을 뚫고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는 다쓰고 난 후 비로소 숨을 돌리더니 껄껄 웃엇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벽에 새빨갛게 씌어진 큰 글자를 감상하고 말했다.

[멋집니다. 내 평생 글씨를 써보았지만 이 한폭의 글씨가 제일 멋진 것 같소이다.]

그는 볼수록 득의양양한 듯 말했다.

[둘째형님, 이 기실을 나에게 주십시오. 나는 정말 이 글자들이 아깝군요. 앞으로는 이런 글씨를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흑백자는 말했다.

[좋네. 어차피 이 방에는 바둑판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으니 자네가 이 방을 가지지 않는다해도 나는 어차피 장소를 옮겨야 돼. 너의 용이 날고 봉황이 춤을 추는 듯한 큰 글자를 마주하고 어떻게 마음을 안정시키며 바둑을 둘 수 있겠나?]

독필옹은 그 글자를 연신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화자찬했다.

[설사 염로공이 다시 환생한다해도 이같은 글자는 못쓸 것이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영호충을 보며 말했다.

[형시, 이 모두가 당신 덕분이오. 나는 마음속 가득 초서의 필법을 휘두르고 싶었으나 그것을 전개할 수가 없었는데 갑자기 손가락에서 그 기가 나온 것이오. 앞으로는 이 세상에 이런 걸작은 나오지 않을 것이오. 당신의 검법이 멋지고 나의 서예도 최고입니다.
이것을 보고 각기 장점이 있다고 하는 것이오. 승패는 나지 않았소.]

상문천이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요. 각기 장점이 있고, 승부가 나지 않았군요.]
단청생은 말했다.

[또 있지요. 모두가 나의 좋은 술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흑백자는 말했다.

[나의 세째동생은 정말 천진난만하오. 서예에 정신이 팔려서 시합에 져놓고도 졌다고 인정하지 않는군요.]

상문천은 말했다.

[저도 잘 알고 있읍니다. 우리가 내기를 한 것은 단지 매장중에서 아무도 풍형의 검법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고 쌍방이 승패가 나지 않으면 이 내기도 우리는 지지 않은 것이외다.]

흑백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소이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석괴 아래에서 사각형의 철판을 끄집어 냈다. 철판에는 열아홉줄의 바둑줄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알고보니 쇠로 만들어진 바둑판이었다.
그는 쇠로 만든 바둑판의 모서리를 잡더니 말했다.

[풍형, 나는 이 바둑판을 병기로 삼겠소. 자 몇 수 가르침을 받겠소.]

상문천은 말했다.

[듣건대, 이장주의 이 바둑판은 보물이면서 많은 암기를 쓸 수 있다고 하던데요.]

흑백자는 그를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말했다.

[동형께선 들으신 것도 많으시고 아는 것도 많으시군요 탄복했소이다. 정말 감탄했소이다. 사실 나의 이 병기는 보잘것 없소이다.
이것은 자석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쇠로 만든 바둑돌을 부착시키는데 쓰이며 그 옛날 말위나 배위에서 바둑을 둘때 흔들려서 바둑판이 엎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지요.]

상문천은 말했다.

[알고보니 그렇군요.]

영호충은 이 말들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상형님이 가르쳐주셔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장검을 쓰자마자 그의 바둑판에 달라붙었을 것이고 싸울 필요도 없이 지는 것이다. 이 자와 싸울 때는 그 바둑판에 내 장검이 부딪치면 안되겠구나.)

그는 즉시 검끝을 아래로 하고 포권했다.

[자, 이장주께서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흑백자는 말했다.

[감히 어찌 그럴 수 있겠소. 풍형의 검법은 고명하시오. 저는 평생 보지 못했소이다. 자, 출수하시오.]

영호충은 검을 들어 구불구불거리며 앞으로 밀어냈다.
흑백자는 멈칫하고 생각했다.

(이것은 무슨 초식인가?)

영호충의 검끝이 자기의 목을 겨누고 들어오자, 즉시 바둑판을 들어 막았다. 영호충은 칼끝을 얼른 바꾸어 그의 오른쪽어깨를 찔러갔다. 흑백자는 또 바둑판을 들어 막았다. 영호충은 장검이 바둑판에 접근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회수하여 그의 아랫배를 향해 검을 뻗었다.
흑백자는 또 막은 후 생각했다.

(다시 반격하지 않으면 어찌 선수를 잡을 수 있겠는가?)
원래 바둑을 둘 때는 선수를 따지고 법이고 무술을 시합할 때도 역시 선수를 따지는 법이었다. 흑백자는 바둑의 이치에 정통하여 선수의 이치도 신통했다. 그는 즉시 바둑판을 들어 영호충의 어깨를 질풍같이 내리쳤다. 이 바둑판의 넓이는 사방 두자였고 두께는 일촌정도였으므로 무거운 병기에 속했다. 만약 검이 그곳에 부딪치면 설령 쇠로 만든 바둑판에 자석의 힘이 없다고 해도 장검은 반드시 부러지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영호충은 몸을 살짝 피하고, 검을 비스듬히 뉘여 그의 우측 옆구리를 향해 찔러갔다. 흑백자는 상대방의 이 일검이 초식이 없었지만 공격을 막지 않을 수 없어 즉시 바둑판을 비스듬히 하여 그의 장검을 봉쇄하고 동시에 앞으로 쳐냈다.
이 일초의 대비는 본래 자기 목을 방어하면서 공격하는 초식이라 영호충이 이 초식을받아내기만 하면 다음 수가 계속되어 나올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호충은 그 초식을 받을 생각도 않고 장검을 옆으로 치켜올려 선제공격을 다투었다.
흑백자의 몸을 지키면서 공격하는 초식은 단지 반초식만 효과가 있고 반초식은 자기 방어에 쓸 뿐 반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후 영호충은 일검 또 일검을 조금도 멈추지 않고, 연속 사십여검을 휘둘렀다.
흑백자는 우측을 막고 좌측을 봉쇄하고 앞을 막고 뒤를 방어하고 마치 물방울도 들어가지 못하게 은밀하게 방어했다.
두 사람은 사십여초를 겨루었으나 흑백자는 사십여초식의 방어를 했을 뿐 결국 일초식도 공격해가지 못했다.
독필옹, 단청생, 정견, 시령위 네 사람은 그 광경을 멍청히 쳐다볼 뿐이었다.
영호충은 속도가 극히 빠를 뿐이었고, 위세가 있거나 무섭지도 않았으며, 초식이 변할 때도 교묘한 점은 없었다. 그러나 일검이 나오면 어찌되었든 흑백자는 좌측을 막고 우측을 막으면서 자기의 헛점을 방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필옹과 단청생은 자기 나름대로 알고 있듯이 어떤 초식이라도 반드시 빈틈이 있는 법인데 선제공격하여 한걸음이라도 상대방의 요점을 공격할 수 있다면 자기의 헛점은 헛점이 되지 않고 설령 수만군데에 헛점이 나타나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영호충은 이 사십여초를 끊임없이 연속 공격하면서 이런 이치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흑백자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초조해졌다. 초식을 바꾸어 반격하려고 했지만, 바둑판을 움직이려하면 상대방의 검끝이 자기가 노출한 헛점을 찾아서 들어오는 데 사십여초 중에 자기는 한초식도 손을 써서 반격할 수 없었다. 마치 자기보다 기력이 아주 높은 고인과 대국하는 것 같아디 상대방이 연속 사십수를 두어도 자기는 그 한수도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고 막는데 급급한 것과 같았다.
흑백자는 이렇게 계속 사운다면 설령 일백초 이백초를 붙여다고 해도 자기는 여전히 얻어맞는 국면이 되고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오늘 만약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국면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나의 일세의 영명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바둑판을 가로세워 질풍처럼 휘둘러 영호충의 좌측허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영호충은 여전히 피하지 않고, 먼저 검을 들어 그의 아랫배를 찔렀다. 이번에 흑백자는 바둑판을 거두어 막으려고 하지 않고 여전히 기세를 따라 영호충을 내리치고 있었다. 마치 목숨을 걸고 상대방과 몸을 던진다는 식이었다. 장검이 찔러오자, 좌측손의 식지 중지 두손가락을 갑자기 내밀어 검날을 손가락에 끼웠다.
그는 현천신공을 연마했기 때문에 이 두 개의 손가락의 힘은 대단했다. 다른 어쩐 무기와 비교할 때 뒤떨어지지 않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다섯 사람은 그의 이런 행위를 보고 모두 억하고 소리를 냈다. 이런 공격법은 무공의 시합을 벗어나 죽음과 생의 결판이었고, 만약 그가 손가락에 검을 끼우지 못한다면 그 검날은 배를 뚫고 지나갈 것이었다. 삽시간에 다섯 사람의 손아귀에는 차가운 담으로 흠뻑 적셔졌다.
흑백자의 두 손가락이 검을 막는데 있어서 그 검을 잡든 잡지않든 간에 반드시 한사람은 상처를 입거나 죽어야 했다. 만약 손가락이 그 검을 받는다면 영호충의 장검은 멀리 찔러갈 수 없고, 바둑판은 그의 허리를 향해 내리칠 것이니 그 기세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손가락에 검을 끼우지 못하고 심지어 끼웠다 해도 두 손가락이 검을 힘을 막지 못한다면 장검은 앞을 통해 나올 것이니 흑백자는 물러서려고 해도 때는 늦는 것이다. 흑백자의 손가락과 검이 막 부딪치려고 할 대 장검의 끝이 갑자기 치켜올라 그의 목을 노렸다. 이 일검의 변초는 뜻밖이었고, 동서고금의 검법 중에는 이런 초식은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되니 그의 아랫배를 향해 직어내려 오던 일검은 상대방의 헛점을 노리기 위한 헛초였으며, 고수들과 싸울 때는 이런 헛초는 어린애 장난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초식이 비록 검의 이치에 없는 초시기었지만 필경 이미 영호충의 손에 의해 사용된 것이었다. 검끝이 위로 향해 질풍처럼 목을 내리치니 흑백자의 바둑판이 계속해 나온대도 이 일검이 먼저 그의 목을 찌를 것 같았다.
흑백자는 깜짝 놀라 오른손에 힘을 다해 바둑판을 멈추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생각이 민첨했고, 바둑의 이치를 잘 알고 있어서 이 위기의 순간에도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이었다. 만약 자기의 바둑판을 멈춘다면 상대방의 장검도 더이상 뻗어내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영호충은 그의 바둑판이 더이상 앞으로 나오지 않자, 장검을 멈추고 움직이지 않았다. 검끝은 그의 목에서 불과 수초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고 바둑판도 영호충의 허리에서 불과 수초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굳은듯 미동조차 않았다. 대국은 비록 교착상태에 빠졌으나 사실은 영호충이 이미 앞선 대국이었다. 바둑판은 무거운 물건이라 최소한 수척의 거리에서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쳐야 비로소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을 텐데, 이때는 영호충과의 거리가 단치 수초에 불과하니 큰힘을 써서 앞으로 뻗는 단지 쌀짝만 내리쳐도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쌍방의 승부는 그 누구도 볼 수 있었다.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 누구도 선수를 치지 못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구료.
이것이 바로 바둑에 있어 쌍호라이지요. 이장주께선 정말 지혜롭고 용감하십니다. 풍형과의 시합에선 승부가 나지 않았구료.]
영호충은 장검을 거두고 두걸음 물러서더니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흑백자는 말했다.

[동형께선 저를 비웃으시는군요. 무엇을 보고 비겼다고 하십니까? 풍형의 검술은 정묘하여 난 한수도 선수를 치지 못하고 모두 패한 것이지요.]

단청생은 말했다.

[둘째 형님, 형님의 바둑판알의 암기는 무림 중의 일절인데 삼백육십일개의 흑백돌을 쏜다면 그 누구도 당할 수 없을 것이오. 어째서 풍형에게 암기를 파기하는 공력은 시험해 보지 않는 것입니까?]

흑백자는 그말에 동하여 상문천을 바라보았다.
상문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영호충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 표정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이 사람의 검법은 극히 고명한 것이다. 지금 어쩌면 그 사람이야말로 이자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아무 표정도 없고 내가 다시 암기를 사용해도 웃음거리만 될 뿐이지.)
그는 즉시 고개를 흔들고 웃었다.

[나는 이미 졌다고 인정했는데 다시 암기가 무엇에 필요하냐?]
독필옹은 장욱이 쓴 솔의첩이 걱정되어 애걸하듯 말했다.

[동형, 다시 한번 그 서첩을 보여주실 수 없으시오?]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했다.

[대장주께서 풍형을 이긴다면 이 서첩은 바로 삼장주의 소유가 될 것이오. 설령 삼일밤 삼일낮을 계속 보신다해도 그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독필옹은 말했다.

[나는 칠일밤 칠일낮을 계속해 볼 것이외다.]

상문천은 말했다.

[그러시오. 칠일낮 칠일밤을 보십시오.]

독필옹은 몸이 근질근질거려 참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둘째형님, 내가 가서 큰형님을 모셔오겠읍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흑백자는 말했다.

[너희 두 사람은 이곳에서 손님과 함께 있거라. 내가 큰형님께 가서 말을 전하지.]

그리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단청생은 말했다.

[자, 풍형, 우리는 술이나 마십시다. 참 이 맛있는 술을 세째 형님이 적지 않게 낭비를 하셨구료.]

말을 하면서 술을 잔에 따랐다.
독필옹은 화가 나서 말했다.

[무슨 술을 낭비했다고 하느냐? 이 술이 너의 뱃속에 들어가면 모두 오줌똥으로 변할텐데 그 어찌 나의 망고불효할 내 붓글씨와 비교한단 말이냐? 술이 글씨에 편승하여 전해지면 수천년 두에도 서예를 봄으로써 이 세상에서 너의 토로번의 포두주가 있음을 알 것이다.]

단청생은 술잔을 들고 벽을 향해 말했다.

[벽아! 벽아! 너는 차믓로 운이 좋구나. 이 어르신이 친히 담은 미주를 맛보았으니 나의 세째형님이 너의 얼굴에다 글자를 쓰지 않았다면 넌...... 넌...... 넌 끝까지 망고불효했을텐데.]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무지하고 의식이 없는 벽보다는 제가 이 세상에서 희귀한 비주를 맛보았으니 내가 더 행운입니다.]

그리고 술잔을 들어 마셨다.
상문천은 옆에서 두잔 받아마신 후 더이상 마시지 않았다. 단청생과 영호충은 주거니 받거니하며 사실수록 흥취가 돋는 듯했다.
두 사람이 각자 열일곱 여덟잔을 마셨을 때 흑백자가 그제서야 나오며 말했다.

[풍형. 우리 큰형님께서 보비자고 하시는데 자, 자리를 옮깁시다. 동형께선 이곳에서 술이나 좀더 드시구료.]

상문천은 어안이벙벙한 듯 말했다.

[이건......]

눈치를 보니 흑백자는 자기를 데리고 갈것 같지 않았다.
상문천은 탄식했다.

[개는 대장주를 만나뵐 인연이 없는 것 같구료. 실로 평생 유가인 것 같습니다.]

흑백자는 말했다.

[동형께선 너무 탓하지 마십시오. 우리 큰형님께선 은거하신지 오래고 지금껏 손님을 만나보신 것이 없으십니다. 단지 풍형의 검술을 들으시고 내심 사모의 정이 들어 한번 만나뵙기를 허락하셨을 뿐이지 절대로 동형께 불경의 마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상문천은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소이까?]
영호충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주인을 만나보는데 병기를 휴대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흑백자의 등뒤를 따랐다.

복도를 지나 달모양을 한 월동문 앞에 이르렀다. 월동문의 액자에는 금신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남색의 유리를 쪼아서 만들었는데 필체는 웅후했으며 독필옹이 쓴 것 같았다.
월동문을 지나자, 조용하고 우아한 꽃길이 나타났다. 길양쪽에는 대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꽃길에 아란석 위에는 파란이끼가 가득 자라 있었다. 이것은 평소 사람의 왕래가 적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꽃길은 돌로 만든 세칸의 집까지 뻗어 있었다. 집 전후에는 일곱여덟그루의 파란 솔나무가 하늘을 향해 벋어 있었고 사방을 뒤덮어 음침하게 보였다.
흑백자는 가볍게 문을 열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자, 들어가십시오.]

영호충이 방안에 들어서자, 향나무 향기가 콧속에 스며들어 왔다.
흑백자는 말했다.

[큰형님, 화산파의 풍소협께서 오셨읍니다.]

내실에서 한 노인이 걸어나오며 공수했다.

[풍소협께서 저의 집에 들러주셨는데 멀리 나가지 못했읍니다.
용서바라오.]

영호충이 보니 이 노인은 육십여세가 되었고, 장작개비처럼 말라 있었다. 얼굴의 근육은 모두 푹패여 들어갔으며, 마치 한구의 해골 같았으나 두 눈은 번쩍번쩍 빛이 나고 윤이 났다.
영호충은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제가 당돌하게 찾아뵌 것 같군요. 선배님께선 용서해 주십시오.]

그 노인은 말했다.

[천만의 말씀이시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흑백자는 말했다.

[나의 큰형님의 도호는 황종공이라고 하지요. 풍소협께선 이미 들어 알고 계실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네분 장주를 사모해 왔는데 오늘 이렇게 만나뵈니 정말 행운입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상형님은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나. 사전에 나에게 아무 말도 안 해주고 나보고 모든 이릉띵 자기가 안배한대로 따르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가 내몸 옆에 없으니 이 대장주가 어떤 난제를 내준다면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황종공은 말했다.

[듣건대, 풍소협께선 화산파의 어르신인 풍노선생에게 검법을 전수받아 검법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들었소. 이 늙은이는 평소 풍선생의 사람됨과 무공에 대해 매우 추앙하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만나뵐 수가 없었소. 강호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풍노선생은 이미 신선의 도를 닦으러 은서하셨다고 하여 이 늙은이는 심히 애석했다오. 그런데 오늘 풍노선생의 적개의 전수자를 만났으니 평생의 소원을 풀었다고 할 수 있다오. 풍소협께선 풍노선생의 자식이나 조카가 되지 않소?]

영호충은 생각했다.

(풍태사숙께선 완곡하게 분부하시길 절대로 그 어르신의 행적을 발설치 말라고 했는데 상형님이 나의 검법을 보고 그 어르신이 전한 검법임을 알아맞추곤 이곳에 와서 크게 떠들며 나의 성이 풍씨라고 한 것은 너무 사기가 지나치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진상응 띵밝힌다면 그것도 좋은 일은 못되지.)

그래서 별 수 없이 어물쩡거렸다.

[나는 그 어르신의 후배제자일 뿐이지요. 저의 자질이 멍청하고 우둔하여 배운 것이 적지요. 그 어르신의 검법을 저는 십의 한둘도 배우지 못했지요.]

황종공은 탄식했다.

[만약 당신이 그 어르신의검법을 십의 한둘만을 배워 우리 세 아우를 대패시켰다면 풍노선생의 조예는 깊어 예측할 수가 없구료.]

영호충은 말했다.

[세분 장주께선 저와 장난삼아 몇초 겨루었을 뿐이지요. 승부도 나기 전에 그만두셨읍니다.]

황종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쩍 마른 얼굴에 웃음기를 떠올렸다.

[젊은 사람이 교만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다는 것은 드문 일지이. 자 금당(琴堂)에 들어와 차나 마시구료.]

영호충과 흑백자는 그를 따라 금당 안을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한명의 동자가 차를 따라와 바쳤다.
황종공은 말했다.

[듣건대, 풍소협께선 광릉산이라는 악보를 지니고 있다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오? 이 늙은이는 음악을 좋아해 혜중산(?中散)께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실 때 금을 안고 말씀하셨오. "광릉산은 여기에서 끝나는구나"라고요. 그는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매번 탄식했지요. 만약 그 곡이 세상에 다시 출현되었다면 이 늙은이가 막년에 그 한곡만 탈 수 있다면 평생 여한이 없겠소.]

그의 창백한 얼굴에 이 말을 하고난 후 핏기가 돌았고 다정다감한 눈빛이 되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상형의 거짓말이 이 사람들을 죽이는구나. 내가 보건대, 고산 매장의 네분 장주는 일반인과는 다르다. 여기까지 온 것은 나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함인데 더이상 거짓말을 할 수는 없구나. 이 국보가 정말 곡양선배가 동한의 채 무엇이라는 사람의 묘에서 광릉산을 찾아냈다면 응당히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품속에서 금보를 꺼내 두 손으로 바치며 말했다.

[대장주께선 보시지요.]

황종공은 고개를 숙여 받으면서 말했다.

[광른산은 인간세상에서 끊긴 지 오래인데, 오늘 고인의 명보를 볼 수 있다니 정말 기쁘기 짝이 없구만 단지...... 단지......]
그의 말뜻은 이것이 어찌 광릉산의 진보라고 할 수 있으며,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위조해 온 것 같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책을 펼치며 말했다.

[오! 곡이 아주 길구만.]

그리고 첫째장을 펼쳐보더니 갈수록 얼굴색이 변했다.
그는 오른손으론 금보를 펼치고 왼손의 다섯손가락은 탁자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금을 타는 자세를 취하더니 찬탄했다.

[정말 멋지구료. 평화롭고 지나침이 없으며 조용하기 짝이 없구료.]

둘째장을 펼쳐 한참본 후 다시 찬탄했다.

[고량이 높고 우아하고 현기가 깊이 숨겨져 있으니 신선들이 노니는 것 같이 마음이 툭 터지는 것 같구료.]

흑백자는 황종공이 두번째장을 보면서 신선의 경지에 몰입되어 이렇게 계속되어 간다면 언제 끝날지 몰라 끼어들었다.

[이 풍소협과 화산파의 동형이라는 분이 오시더니 말씀하시길 매장 중에서 만약 한 사람이라도 이 사람의 검법을 이긴다면......]
황종공은 말했다.

[음, 틀림없이 그의 검법을 이길자가 있을거야. 그래야만 이 광릉산의 악보를 빌려주어 적을 수 있다는 말이냐?]

흑백자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패했읍니다. 만약 큰형님께서 출마하신다면 나의 고산매장은 허허허......]

황종공은 담담히 웃었다.

[너희들이 패했으니 나도 어쩔 수가 없어.]

흑백자는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이 어찌 형님과 비교될 수 있읍니까?]

황종공은 말했다.

[몸이 늙으니 아무 쓸모가 없구나.]

영호충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말했다.

[대장주의 호는 황종공이라 하셨는데 틀림없이 금의고수일 것 같습니다. 이 악보는 구하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전하지 못할 비법의 악보는 아니지요. 대장주께서 필요하시면 적어두시지요. 삼일후에 제가 받으러 오겠읍니다.]

황종공과 흑백자는 멈칫했다. 흑백자는 거실에서 지금껏 상문천이 으시대며 약을 올려 자기의 마음을 달아오르게 했음을 보았는데 뜻밖에 이 풍이중이라는 사람이 매우 솔직하고 담백하게 나오자 뜻밖이라고 여겼다. 그는 바둑을 잘하므로 영호충이 어떤 함정을 만들어 놓고 황종공이 거기에 빠지도록 유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결함이나 빈틈은 찾을 수 없었다.
황종공은 말했다.

[공이 없으면 녹을 받지 말라고 했네. 나는 자네와 평소 아무 관계도 없었는데 어찌 당신의 이 같은 예의를 받겠소. 두 분께서 우리 매장에 오신 것은 무슨 이유인지 솔직이 말해 주시겠소.]
영호충은 생각했다.

(도대체 상형이 나를 데리고 이 매장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여기에 오기까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미루어 생각해보면 틀림없이 네분 장주에게 내 상처를 치료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은데, 그러나 그의 안배는매우 철두철미하여 비밀스러운 것은 이 네분의 장주가 모두 남다른 인사들이라 어쩌면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확실히 상형이 이곳에 온 것은 어떠 요구가 있어서인지 모른다. 내가 솔직이 말해도 그리 큰 죄는 되지 않겠지.)

그는 말했다.

[저는 동형과 귀하의 매장을 찾아왔지요. 솔직이 말씀드리건대 이 매장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저는 네분 장주의 존함을 듣지도 못했고 또 이 세상에서 고산매장과 같은 집이 있었는지도 몰랐읍니다.]

그리고 말을 잠시 멈춘 후 다시 말했다.

[저는 견문이 좁고 배운 것이 없어서 무림에 여러분과 같은 분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읍니다. 두분 장주께선 너무 책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황종공은 흑백자를 쳐다본 후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말했다.

[풍소협의 말슴은 너무 솔직하시군요. 이 늙은이가 감사드리오.
이 늙은이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던 참이었소. 우리 네 형제가 은거하여 이곳에서 터를 잡은 것은 강호에서 아는 사람이 극소수이지요. 오악검파와 우리 형제는 평소 내왕이 없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을까? 그리고 풍소협께선 우리 네 사람의 내력을 모를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제가 너무 미흡했지요. 두분 장주께서 많은 지도바랍니다. 조그전 제가 말한 네분 장주의 존함은 익히 들었읍니다라고 한 말은 사실은...... 사실은......]

황종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황종공, 흑백자 등등은 모두 우리 스스로 지어낸 별명이고 우리들의 이름과 성은 사용된지 오래요. 소협께서 지금가지 우리 네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오.]
그리고 오른손으론 악보를 뒤적이면서 물었다.

[이 악보를 정말 이 늙은이에게 빌려주시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 금보는 동형의 소유이니 빌려드린다고 할 수밖에 없읍니다. 만약 내 소유였다면 저는 선배님께 드렸을 것입니다. 보검은 필요로 하는 자에게 돌려져야 하고 금보도 자기 주인을 찾아가야 되지요.]

황종공은 억하고 소리를 지르며 비쩍마른 얼굴에 한줄기 희색이 떠올랐다.
흑백자는 말했다.

[당신이 이 악보를 큰형님께 빌려주신다고 했는데 그 동형이 허락을 하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상형과 저는 목숨을 뛰어넘는 사이이지요. 그 사람의 사람됨은 호탕하고 깨끗하여 설령 제가 대답한 일이라면 아무리 큰일이라도 그는 절대로 개의치 않을 것이외다.]

흑백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종공은 말했다.

[풍소협의 호의는 감사하기 작이 없구료. 단지 이 일은 아직 동형께서 허락을 안 하셨으니, 이 늙은이는 마음이 불안하구료. 그 동형의 말대로라면 이 금보를 얻으려면 반드시 우리 매장주 어떤 사람이라도 당신의 검법을 이겨야 한다고 했지 않소이까? 이 늙은이는 절대로 공짜로는 이것을 얻고 싶지 않소이다. 자, 우리 겨루어 봅시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조금전 이장주가 말하기를 '우리 세 사람이 어떻게 큰형님과 비교할 수 있읍니까?'라고 했는데 그러면 이 대장주의 무공은 틀림없이 세 사람 위에 있을 것이다. 세분 장주의 무공도 탁월한데 내가 오직 풍태사숙이 전해주신 검법으로 선기를 잡았을 뿐이니 만약 대장주와 겨룬다면 반드시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다. 반드시 비웃음과 굴욕을 맛보아야 하는가? 내가 이긴다해도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이냐?)

그리고 말했다.

[동형께선 일시적인 호의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말 부끄럽군요. 네분 장주께선 책망을 안 하시고 계셔서 매우 감격했지요. 그런데 어찌 다시 대장주와 겨룬다는 것입니까?]

황종공은 미소를 지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심지도 곱소. 나는 몇초식만 겨루자는 것이니 무슨 상관이 있겠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벽위에서 한자루의 옥소(玉簫)를 꺼내더니 영호충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당신은 이 퉁소로 검을 삼고 나는 이 요금(瑤琴)을 병기로 삼겠소.]

그러더니 침대머리에서 하나의 요금을 바쳐들고 오며 웃었다.

[나의 이 두개의 악기는 성을 바꿔 올 수는 없지만 얻기는 어려운 물건이오. 그러니 망가지면 안 되는 것 아니겠소? 그러니 우리는 폼이나 잡아봅시다.]

영호충은 퉁소를 보았다. 그것은 몸체는 새파랗게 빛나는데 아주 좋은 옥으로 만든 것 같았다. 입이 닿는 부분은 붉기가 피빛 같았는데 옥색깔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황종공이 들고 이는 요금의 색은 아주 오래되어 낡아있는 것같고 수백년이나 천년이상이 지난 골동품인 것 같았다. 이 두 개의 악기가 가볍게 스치기만해도 틀림없이 가루가 될 것이니 정말 힘서 싸울 수도 없고, 지금으로선 물리칠 수도 없어 두 손으로 퉁소를 받쳐들고 공손하게 말했다.

[대장주의 많은 가르침을 받겠읍니다.]

황종공은 말했다.

[풍노선생께선 일대 검호(劍豪)이셔서 나는 평소 매우 흠모하고 있었오. 그 선배님이 전수하신 검법이니 범상치는 않을 것이오.
자, 풍소협 어디 대결을 해보겠소?]

영호충은 퉁소를 가볍게 들어 휘둘렀다. 그러자 바람이 퉁소속에 들어가고 부드러운 음이 새어나왔다. 황종공은 우측손으로 금줄을 몇번 투이겼다. 음악이 울리더니 금의 고리가 영호충의 우측 어깨를 향해 밀려왔다. 영호충은 금소리를 듣자 마음이 흔들렸다. 옥소를 천천히 들어 황종공의 팔꿈치를 향해 찍었다.
요금이 계속 어깨로 향해 오면 영호충의 옥소가 먼저 황종공의 팔꿈치 요혈을 찌르는 셈이 되었다. 황종공은 요금을 거꾸로 돌려 영호충의 허리를 향해 밀어왔다. 금의 몸통이 나오자 몇 가닥의 음이 흘러나왔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내가 옥소를 가지고 막는다면 두개의 명기는 부딪쳐 망가질 것이다. 그는 이 악기들을 대단히 중히 여기니 틀림없이 요금을 거둘 것이다. 이렇게 겨룬다면 승부는 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즉시 옥소를 가지고 고형(?形)을 그리면서 회전하여 상대방의 겨드랑이를 향해 직어갔다. 황종공은 검을 들어 막았고 영호충은 옥소를 급히 뒤로 빼냈다. 황종공이 요금을 몇번 튕기니 음악이 갑자기 변했다.
흑백자의 안색이 금새 변하더니 서둘러 금당을 나간후 문을 꼭 잠갔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황종공이 금을 튕겨 소리를 내는 것은 어떤 여가를 내주는 것이 아니고 금의 소리에 최고의 내공을 주입시켜 상대방의 정신을 분산시키고 금의 쇨와 상대방의 내력이 공명하여 자기도 모르게 금소리에 제압당하고 마는 것이었다.
금소리가 천천히 나오면 상대방의 초식도 느려졌고 금소리가 급하게 울릴수록 상대방의 초식도 급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러나 황종공의 내식은 이 금소리와는 반대의 현상이 일었다. 그의 초식이 빨라지면 그의 슴소리는 더욱 느리게 들렸고 상대방은 막을 수가 없었다.
흑백자는 황종공의 이 공력이 일반것과는 다름을 알고 있었으며 자기의 내력이 손상을 입을까 염려되어 급히 금당을 나선 것이었다.
그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때로는 느려지고 때로는 급해졌다하고 갑자기 소리가 끊기며, 갑자기 쨍하고 큰 소리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참 후 금소리가 더욱 급해졌다.
흑백자는 그 소리를 듣자 심신이 안정되지 못하고 호흡이 빨라져 또다시 대문 밖으로 물러섰다. 그리곤 대문을 꼭 잠갔다. 대문을 잠그자 금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다가 금 소리가 높은 음을 내면 소리가 흘러나왔는데 그는 그 소리를 듣고도 심장이격렬하게 뛰는 것이었다.
한참을 서 있어도 금소리가 계속 들리자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 풍씨성을 가진 소년의 검법은 정말 고명하구나. 또한 내력은 이렇듯 고명할가? 우리 형님의 칠현무형검(七絃無形劍)과 같은 공격을 이렇게 오랫동안 받으면서도 여전히 지탱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독필옹과 단청생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고 있었다.
단청생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어찌 되었지요?]

흑백자는 말했다.

[벌써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네. 나는 형님이 이 젊은이의 목숨에 지장을 줄까 염려되는구만.]

단청생은 말했다.

[내가 형님께 말씀 좀 드려야겠어요. 이 좋은 친구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고요.]

흑백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들어갈 수 없네.]

바로 이때 금소리가 쩡쩡 크게 울렸다. 금소리가 한번 울리자, 세 사람은 일보씩 뒤로 물러섰고, 다시 다섯번의 금소리가 연속 들려오자, 세 사람은 연속 다섯보씩을 뒤로 물러섰다.
독필옹은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큰형님의 이 육정개산(六丁開山)의 무형검법은 정말 무서워 이 여섯음이 맹렬히 공격했으니 그 풍가놈이 어떻게 막을 수 있냐?]
그말이 끝나기 전에 큰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고 곧이어 팍팍하는 소리가 수차례 들렸는데 몇가닥의 금현이 끊어진 것 같았다.
흑백자는 깜짝 놀라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 다시 금당의 쪽문을 열어보았다.
황종공은 멍청히 서 있었는데 말이 없었고, 손에 들고 있던 요금의 줄은 모두 끊겨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영호충은 손에 옥소를 들고 있었고 한쪽에 서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틀림없이 이번 시합도 황종공이 패했던 것이었다.
흑백자 등 세 사람은 모두 깜짝 놀랐다. 세 사람은 자기 형님이 내력이 웅후하고, 무림에선 대단하다고 이름이 나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화산파의 일개 소년에게 패하다니 친히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일이었다.
황종공은 씁쓸히 웃었다.

[풍소협의 오묘한 검법은 이 늙은이가 평생 보지 못했오. 또 내공의 조예도 이렇듯 대단하니 존경스럽고 탄복하오. 이 늙은이의 칠현무형검은 본시 내 스스로 이 무림에서 절학(絶學)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풍소협의 손에는 어린애 장난같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소이다. 우리 네 형제가 은거하여 강호에 나가지 않은 지 십여년이 되었는데 아! 정말로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었소.]

그 말투는 퍽 처량했다.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힘들여 막았을 뿐이지요. 선배님께서 사정을 봐주셨기 때문입니다.]

황종공은 깊게 탄식하더니 땅바닥에 주저앉았는데 정신이 나간듯 멍청했다.
영호충은 그의 이런 행동을 보자 연민의 정이 생겼다.

(상대형이 나의 내력이 소실되었다는 것을 감추신 것은 그들이내 상처를 치료할 때 어떤 장애가 생길가봐 그랬다. 그러나 대장부라면 정정당당해야 된다. 나는 절대로 공짜로 이익을 취할 수는 없다.)

그리고 말했다.

[대장주 한가지 분명히 밝힐 것이 있읍니다. 제가 당신 금에서 나오는 무형의 검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그건 나의 내력이 높아서가 아니고 저의 몸에는 내력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지요.]
황종공은 놀란듯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말했다.

[무엇이라고?]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여러차례 상처를 입고 내공이 완전히 소실되었지요.그래서 선배님의 금소리를 듣고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황종공은 놀라서 기쁨에 차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사실인가?]

영호충은 말했다.

[선배님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저의 맥박을 짚어보시지요.]
그리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황종공과 흑백자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가 이 매장에 온 것은 적대감은 없다고 하나 좋은 뜻은 품지 않았을 것인데 어찌 감히 손을 내밀어 자기의 명맥(命脈)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길 수 있겠는가? 만약 황종공이 맥을 짚는 기회를 이용해 그의 손목의 혈도를 짚는다면 그가 아무리 하늘처럼 큰 재주를 지니고 있다해도 상대방의 재간에 맡겨야 되는 것이었다.
황종공은 조금전 육정개산이라는 신기를 펼쳤으나 조금도 영호충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고 최후의 칠현이 동시에 울려 내공이 최고에 이르도록 했는데 결국 일곱현이 끊어지고 대패하였으니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네놈이 나의 손을 끌어들여 내 혈도를 짚는다면 나는 네놈과 함께 내력을 같이 쓸 것이다.)

그는 즉시 오측손을 내밀어 천천히 영호충의 우측손목에 갖다댔다. 그는 손을 내밀때 암암리에 호조금나수(虎爪擒拿手)와 용조공(龍爪功)과 소십팔나(小十八拿)라는 세 가지의 최고 금나수법을 불어 넣었다. 상대방이 틈을 타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다섯손가락으로 맥을 짚어도 영호충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반격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황종공은 영호충의 맥박이 미약하고 느려서 틀림없이 내공이 소실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멍청해졌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껄껄 소리내 웃더니 말했다.

[그렇게 되었었군. 그렇게 되었어. 내가 자네의 속임수에 넘어간거야.]

그는 입으로는 당했다고 하면서도 표정은 심히 유쾌해 보였다.
그의 칠현무형검은 단지 소리일 뿐이고 적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그들은 상대방의 내력을 발동시켜 초식에 혼란을 가져오게 했다. 상대방의 내력이 강할수록 그들은 더욱 강하게 파고 들었던 것이다. 뜻밖에도 영호충은 조금의 내력도 없어서 이 칠현무형검은 그에게는 아무 효과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황종공은 크게 의기소침해 있었으나 자기가 패한 것은 자기의 묘기가 덧없다는 것이 아님을 알고 미친듯 기뻐했다.
그는 영호충의 손을 꼭 잡고 연신 흔들며 웃었다.

[자네는 멋진 친구요. 멋진 친구야. 자네는 왜 그것을 이 늙은이에게 가르쳐주었나?]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 후배가 내공이 소실된 것을 시합하기 전에 속인 것도 불량한데 어찌 더 속일 수 있겠읍니까? 그것은 소귀에 음악을 들려주었으니 소귀에 경읽기가 되어버린 셈이지요.]

황종공은 파안대소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늙은이의 칠현무형검은 아직 패배는 안 되었소이다. 나는 혈현무형검이 단현무용검(斷絃無用劍)으로 되는 줄 알았소. 하하하! 하하하!]

흑백자는 말했다.

[풍소협, 당신의 솔직함에 우리 형제는 모두 감격했소이다. 그런데 당신은 우리 형제가 당신 생명을 바꾸기를 여반장하듯 해도 괜찮으시오? 당신의 검법은 지극히 높으나 내력이 없으니 우리에게 항거할 수는 없을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이장주의 말씀은 지당하지요. 저는 네분 장주께서 영웅호걸임을 알고 솔직이 말씀드릴 것이지요.]

황종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소, 맞는 말이오. 풍형께 당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솔직이말해 보시오. 우리 네형제는 힘이 닿는 곳까지 도와드리리다.]
독필옹은 말했다.

[당신의 내력은 모두 소실되었으니 틀림없이 중상을 입으셨겠지요. 내게는 한 친구가 있는데 의술이 신의 경지에 있지요. 단지 성질이 괴퍅하게 쉽게 사람을 치료해주지 않는답니다. 그러나 내 체면을 봐서 틀림없이 당신을 치료해줄 것이고, 그 살인명의 평일지는 나와 옛부터 교분이......]

영호충은 실성하며 말했다.

[평일지 평대부를 말하시는 것인가요?]

독필옹은 말했다.

[그렇소, 당신도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소? 그렇소?]
영호충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분 평대부께서는 몇개월전 산동의 오패강에서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독필옹은 아이쿠 하고 소리를 지르며 놀란듯 말했다.

[그가...... 그가 죽었소?]

단청생은 말했다.

[그는 어떤 병이든 다스렸는데 어째서 자기의 병은 치료하지 못했을까요? 아, 그는 원한을 사서 살해를 당했을까요?]

영호충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항상 평일지에게 미안한 감을 품고 있었다.

[평대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의 맥을 봐주셨지요. 그리고 말씀하시길 저의 상처는 심히 괴상하여 그도 치료를할 수 없다고 하셨지요.]

독필옹은 평일지의 죽음을 알고 한참 멍청히 있더니 잠시후 눈물을 줄줄 흘렀다.
황종공은 사색에 깊이 잠겨 있더니 말했다.

[풍형제, 내게 한가지 길이 있소. 그러나 상대방의 허락을 할지는 의문이오. 내가 편지 한통을 써줄테니 당신은 소림사 장문 방증대사를 찾아가보시오. 그의 소림사 절기인 역근경을 전수받으면 자네의 내상은 치료될 수가 있을 것이오. 이 역근경은 소림파에서도 쉽게 전수하지 않는 비방이오. 그러나 예전에 방증대사는 나에게 약간의 빛이 있으니나를 봐서 가르쳐줄지도 모르오.]

영호충은 그 두 사람이 한 사람을 평일지를 또 한 사람은 방증대사를 추천하는데 진지하고 간곡하게 말하자. 이 두장주의 위인됨에 감격되어 말했다.

[그 역근경의 신기는 소림사의 본문 제자에게만 전수할 뿐이니 저는 절대로 소림사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깊게 읍을 했다.

[네분 장주의 호의에 이 후배는 감격될 뿐입니다. 생과 사는 정해져 있으니 저의 몸의 상처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네분께 걱정을 끼쳐드렸으니 미안할 뿐입니다. 저는 그만 물러가 보겠읍니다.]

황종공은 말했다.

[잠깐만!]

그는 몸을 돌려 내실로 들어가더니 잠시후 자기병을 꺼내오며 말했다.

[이것은 옛날 나의 스승께서 하사하신 두 알의 환약이오. 보신과 상처에 퍽 효과가 있소. 나의 작은 성의니 풍형께선 받아주시기 바라오.]

영호충은 그 자기병의 뚜껑이 오래된 것임을 보자, 이것은 자기 사부의 유물로 지금까지 보존한 것은 틀림없이 진귀한 물건인 것 같아 급히 말했다.

[이것은 선배님의 존사께서 주신 것이니 저는 받을 수가 없읍니다.]

황종공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우리 네 사람은 강호에 발을 끊고 외부인을 만나지 않으니 상처약은 쓸모가 없다오. 또 우리 형제는 문하생도 없고 자녀도 없으니 당신이 거저로한다면 이 두 알의 약은 무덤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다오.]

영호충은 그가 처량하게 말하자, 별 수 없이 감사하며 받고 인사를 하고는 문을 나섰다. 독필옹, 흑백자, 단청생도 그를 따라 기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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