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6-2

3학년2반 | 2022.03.16 07:09:12 댓글: 0 조회: 1295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6256

점심때가 되자 수백명의 사람들은 닭고기, 양고기, 소고기와 술과 빵등을 봉우리로 가져올라왔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이곳은 백의관음(白衣觀音)을 모시는 성스러운 곳이다. 이곳에서 비린내를 풍기고 소 돼지를 잡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한다면 항산파의 역대 선조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즉시 그들에게 산허리에서 요리를 만들고 밥을 지으라고 하였다.
술과 고기냄새가 바람에 날리어 이곳까지 풍기자, 여러 제자들은 암암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군웅들은 점심밥을 먹고 난 후 견성봉의 주암 앞 넓은 빈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영호충은 서쪽에 앉아 있었으며, 수백명의 제자들은 서열에 따라 그의 뒤에서 있었으며 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한무리의 악사들이 퉁소와 피리를 불면서 봉우리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중간에는 두 명의 청의노자(靑衣老者)가 큰 걸음으로 올라왔다. 군웅들은 소리를 지르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청의노자인 납황면피(蠟黃面皮)가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일월신교, 동방교주님께서 가포, 상관운(賈布,上官雲)을 파견하여 영호공자에게 축하인사를 드리라고 했읍니다. 우리 모두 항산파의 명성이 드높고 영호장문의 명성이 천고에 남기를 축원을 합니다.]

이 말이 나오자마자 군웅들은 `악' 하고 소리를 내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 좌도인사의 태반은 마교와 꽤 관련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방불패가 준 삼시뇌신단을 복용하고 있었다. 동방교주라는 말을 듣자, 간담이 써늘해졌다. 군웅들은 설령 이 두 노자를 알지 못할지라도 익히 그 이름을 듣고 있었다.
좌측의 그 사람은 황면존자(黃面尊者)인 가포였으며 우측의 그 사람은 상관이라는 복성을 가지고, 이름은 운이라는 자였다. 사람들은 그를 조협(조俠)이라고 불렀다. 두 사람의 무공은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일반적인 문파의 장문인 또는 방주, 총타주보다도 훨씬 위라고 소문이 퍼졌다. 두 사람은 일월신교에서 분래 원로급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몇년 동안 일월신교 안에서 큰 변화가 있어 원로라고 부를 수 있는 상문천과 같은 사람들은 배척을 당하거나 또는 스스로 은거하였다. 그래서 가포와 상관운은 일월신교 안에서 큰 권력을 쥐고 있었다. 이번에 동방불패가 그들 두 사람을 친히 파견한 것은 영호충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영호충은 앞으로 나가 맞이하면서 말했다.

[저는 동방 선생과 평소에 안면이 없는데 두분이 이렇게 왕림해 주셔서 뭐라고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읍니다.]

황면존자 가포라는 자는 밀랍과 같이 얼굴이 노랬으며, 양쪽의 태양혈(太陽穴)은 툭 튀어나와 마치 복숭아씨가 그안에 있는 듯하였고, 그 조협 상관운이라는 자는 긴 손과 긴 다리에 두 눈이 찬란하게 빛이 났으며, 위세가 당당하였다. 두 사람의 내공이 심히 강한 듯하였다.
가포가 말했다.

[영호대협께서 오늘 큰 경가를 맞이하여 동방교주께서는 친히 이곳에 와서 축하의 말씀을 드려야 옳지만 교 중의 잡무가 잡다하여 이곳에 올 수가 없었읍니다. 영호장문께서는 탓하지 마십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내심 생각하기를, (지금 상황으로 보니 임 교주는 아직까지 교주의 자리를 빼앗지 못한 것 같구나. 임 교주와 상형님, 영영은 지금 어디에 계시고 무엇을 하고 계실까?)

가포는 몸을 옆으로 돌리더니 좌측손을 휘젓으며 말했다.

[약소한 예물입니다. 동방교주의 작은 정성이니 영호장문께서는 받아주시지요.]

백여명의 사내가 사십여 개의 빨간 칠을 한 큰 상자를 들고 왔다. 상자마다 네 명의 장정들이 붙어 있었으며 그들의 발걸음이 무거운 것을 보니 상자 안에 담겨져 있는 물건들이 묵직해 보였다.
영호충은 급히 물어보았다.

[두분이 이렇게까지 왕림해 주신 것도 황공하기 이를데 없는데 이렇듯이 귀중한 물건을 주시니 저는 거두어들일 수가 없읍니다.
저의 감사의 말씀과 함께 동방 선생에게 도로 갖다 드리시지요. 항산의 제자들은 산에 기거하고 청빈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렇듯이 고귀한 물건들이 필요가 없읍니다.]

가포가 말했다.

[영호장문께서 받지 않으신다면 저와 상관운 형은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약간 고개를 돌리더니 상관운을 향해서 말을 했다.

[상관운 형, 내말이 맞지 않소이까?]

상관운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영호충은 입장이 곤란하였다.

(항산파는 정교의 문파이고 마교들과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인데 설상 쌍방이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교우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더우기 임 교주와 영영은 곧 동방불패를 찾아갈텐데 내 어찌 그의 선물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말을 했다.

[저는 이런 귀중한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읍니다. 두분 선생께서 동방 교주께 말씀을 좀 잘 해 주시오. 두분께서 이 선물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면 저는 사람을 파견하여 이 물건들을 갖다 드리겠읍니다.]

가포는 미소를 짓더니 말을 했다.

[영호장문, 이 사십개 상자 안에는 무엇이 담겨져 있는지 아십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물론 모르지요.]

가포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장문께서 구경을 하시면 틀림없이 거절은 안 하실 겁니다. 이 사십개의 상자 속에 담겨져 있는 것들은 모두 동방 교주가 보낸 것은 아닙니다. 일부는 영호장문의 소유여서 우리가 지고 왔읍니다.
단지, 물건을 원래 주인에게 넘겨주는 것뿐입니다.]

영호충은 매우 이상해서 말했다.

[내 물건이라고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가포는 한발짝 앞으로 다가오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 상자는 임 소저가 흑목애에서 남겨놓으신 옷과 패물 등 일상적으로 쓰고 있던 물건들입니다. 동방 교주께서 저보고 이것을 가져다가 임 소저에게 드리라고 했읍니다. 그 나머지는 교주께서 영호대협과 임 소저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많은 물건들이 섞여 있으니 나눌 수도 없읍니다. 영호장문께서는 더이상 거절하지 마시오. 허허허.]

영호충은 본시 활달하고 작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 성격이었다.
동방불패의 선물이 정성이 담겨져 있고, 그중에 또 많은 것들이 영영의 옷들이라 하니 거절하기가 좀 뭐해서 껄껄껄 따라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읍니다.]

한 명의 여제자가 빠른 걸음으로 오더니 아뢰었다.

[무당파의 충허도장께서 친히 오셨읍니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급히 나가 영접했다. 충허도인은 여덟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봉우리를 올라오고 있었다.
영호충은 고개를 숙여 예를 차려 말했다.

[도장 어르신이 이렇게 친히 방문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읍니다.]

충허도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노제께서 항산 장문인을 맡는다는 소문을 듣고 너무 기뻤읍니다. 소림사의 방증 방생대사께서도 축하하러 오신다고 했는데 그들 두분께서 이곳에 오셨는지 모르겠군요.]

영호충은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산길에는 한 무리의 스님들이 걸어올라오고 있었다. 맨앞 두 사람의 소맷자락이 휘날렸다. 바로 방증과 방생대사였다.
방증은 외쳤다.

[충허도장, 당신은 걸음이 상당히 빠르시군요. 나보다 먼저 도착하니.]

영호충은 급히 앞으로 나가 마중하여 외쳤다.

[두분의 대사께서 친히 왕림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읍니다.]

방생대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소협,소협은 우리 소림사에 세번이나 오셨지 않았읍니까? 우리가 항산에 온 것은 예의하고 생각합니다.]

영호충은 소림사의 스님과 무당도인과 함께 봉우리로 올라왔다.
봉우리에 모여 있던 모든 무리들은 소림사의 장문인이 친히 오자 깜짝 놀라 말도 크게 할 수가 없었다.
항산의 여러 여제자들은 너무 기뻤다. 그래서 모두들 내심 생각하기를, (장문사형의 위풍은 정말 크구나.)

가포와 상관운은 그 광경을 쳐다보더니 한쪽으로 비켜섰다. 방증, 방생, 충허도인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도 마치 못본 척했다. 영호충은 방증대사와 충허도인을 상좌에 앉혔다. 그리고 내심 생각하기를, (내가 기억하기로는 사부가 그해 화산파의 장문인에 취임할 때 소림파와 무당파의 장문인은 오시지 않고 단지 사람만 파견했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나이가 어려 어떤 손님들이 왔는가 모르고 있었지. 그러나, 나중에 사부님이 여러 제자 앞에서 장문에 취임 할 당시의 일을 말씀해 주셨을 때도 소림이나 무당 장문인이 친히 왔다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지. 오늘 그 두분이 동시에 오셨는데 진정 축하해 주기 위해 온 것인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가.)
축하하러 온 손님들은 끊이지 않았다. 모두들 소림사에 함께 갔던 여러 군웅들이었다. 곤륜파, 점창파, 아미파, 공동파 등은 각기 사람을 파견하거나 또는 친히 왔고, 또는 많은 선물과 예물을 바치었다. 영호충은 손님이 많이 당도한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을 하였다.

(그들은 모두 항산파와 정한사태의 체면을 보고 축하하러 온 것이다. 절대로 나 영호충의 체면을 보고 이렇게 모인 것은 아니다.)

숭산, 화산, 형산, 태산 사파는 아무도 참석을 하지 않았다.
펑펑펑 세 발을 축포가 터졌다. 영호충은 중간에 서서 허리를 굽혀 포권을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후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항산파의 전 장문인인 정한사태는 불행하게도 죽음을 당하셨고, 정일 사태와 함께 입적을 하셨읍니다. 나 영호충은 정한사태의 유명을 받들어 항산 일파의 장문인의 직함을 맡았읍니다. 여러 선배님들과 친구분들이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항산파의 사람들은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읍니다.]

경(磬) 소리가 나면서 항산파의 여러 제자들은 어관(魚貫)을 앞 세우고 두줄로 행렬을 이루었다. 가운데는 의화, 의청, 의진, 의질 네 명의 큰 제자들이 서 있었다. 네 명의 큰 제자는 손에 법기를 들고 있었으며, 영호충 앞에 오더니 고개를 숙여 절을 하였다. 영호충은 길게 읍을 하고 예에 답하였다.
의화는 말하였다.

[이 네 가지의 법기는 항산파의 창시자인 효풍사태(曉風師太)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이고, 항산 장문인께서 맡아가지고 계셨읍니다. 새로운 장문인인 영호사형께서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영호충은 대답했다.

[녜.]

네 명의 큰 제자들은 법기를 차례차례 건네주었다. 그것은 바로 경서, 목어, 염주, 단검 등이었다. 영호충은 목어, 염주를 보자 자기도 모르게 곤혹스러웠다. 하는 수 없이 손을 내밀어 받고 두 눈은 땅을 쳐다보며 여러 사람과 눈을 감히 마주치지 못하였다.
의청은 한 개의 두루마리를 펼치더니 말했다.

[항산파는 선조 대대로 지켜 내려오는 오대 계율이 있는데, 장문사형께서는 친히 이행하시고 제자들을 독려하시며 이것을 지켜야만 합니다. 첫째로는 윗사람의 말을 거역하지 말 것이며, 둘째로는 동문끼리 싸우지 말 것이며, 세째로는 무고한 사람은 해치지 말 것이며, 네째로는 몸을 깨끗이 닦고 수양을 할 것이며 다섯째는 사악한 무리들과 사귀지 말 것입니다.]

영호충은 대답을 하였다.

[녜.]

내심 생각하기를, (앞의 세 개의 계율은 지킬 수 있다고 치더라도 나머지 두 개가 문제구나. 나는 이미 더럽혀지고 단정치 못한 사람이고 또 사악한 무리들과 시귈 수 없다고 하는데 오늘 모인 많은 사람들 중에서는 반절이 좌도의 인사들인데 이것 심히 난처하게 되었구나.)
갑자기 산길에서 어떤 사람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악검파 좌맹주의 명령입니다. 영호충은 절대로 항산파의 장문인 자리를 맡을 수가 없소이다.]

소리를 지르면서 다섯 사람이 나는 듯이 달려왔다. 뒤에는 수십명이 따라왔다. 앞에서 오던 다섯 사람은 각자 한 손에 금기(錦旗)를 쥐고 있었는데 바로 오악검파의 맹기(盟旗)였다. 다섯 사람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이르자, 우뚝하게 서 있었다. 가운데 그 사람은 키가 작고 뚱뚱했으며, 얼굴은 노랗고 부은 듯한 오십 살 정도의 나이였다.
영호충은 이 자의 성이 악씨이고 이름은 후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대음양수(大陰陽手)라고 부른다. 이 숭산파의 고수는 하남 들판에서 영호충과 겨룬 적이 있었는데, 자기의 장검이 그의 손바닥을 뚫고 지나가서 사이가 극히 나쁜 관계였다. 그러나 그 자는 퍽이나 광명정대하였다. 그는 그날 급습을 해서 영호충을 제압할 수 있었는데 그 틈을 이용해서 영호충을 죽이지 않고 다시 겨루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그에게 어느 정도 빚이 있기 때문에 즉시 포권을 하며 말을 했다.

[악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악후는 손에 들고 있던 금기를 앞으로 툭 내밀면서 말을 했다.

[항산파는 오악검파의 하니니 반드시 좌맹주의 명령에 따라야하오.]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항산파의 장문인을 맡고 나서 오악검파에 가맹해야 될지 그만둬야 될지는 우리 제자들과 한번 상의를 해야만 합니다.]
이때 열 사람이 당도하였다. 그것은 바로 숭산, 화산, 형산, 태산, 사파의 제자들이었다. 화산파의 여덟 명은 모두 영호충의 사제들이었는데 임평지는 끼어 있지 않았다. 이 수십명은 네 줄로 나뉘어 칼자루에 손을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악후는 큰 소리로 말했다.

[항산 일파는 출가한 비구니가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영호충은 남자이나 항산의 수백년 동안 내려오는 규범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규칙이란 사람이 만든 것이니 얼마든지 고칠 수가 있읍니다. 이것은 우리파의 일이니 다른 사람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그 군웅들 중에서 어떵 자들은 악후를 향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항산파의 일인데 숭산파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제미랄놈들, 빨리 꺼져버려라!]
[무슨 오악의 맹주인가? 잡소리들 그만하고 빨리 물러가라!]
악후는 영호충을 향해서 말했다.

[이 사람들은 입이 좀 지저분한데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저의 친구로서 저의 취임식을 보러 왔읍니다.]

악후는 말했다.

[그렇다면 항산파의 오대계율 중에 다섯번째는 무엇입니까?]
영호충은 내심 말을 했다.

(네놈이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데 내가 네놈과 한판 붙어보자.)
그리고 나서 말을 했다.

[항산의 오대계율 중에 다섯번째는 사악한 자와 교분을 맺을 수 없는 것이오. 예를 들면 악형 같은 사람들과는 교분을 맺지 않을 것이오.]

군웅들은 이 말을 듣자 모두 깔깔거리고 웃었다. 모두 말하기를
[이 간사한 무리야 빨리빨리 꺼져버려라.]

악후와 숭산, 화산 등 각파의 제자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자 모두들 중과부족이어서 그들과 겨루게 된다면 큰일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악후는 생각하기를, (좌사형은 이번에 뭔가 잘못 생각했구나. 좌사형이 생각하기를 이 견성봉에는 찬바람이 돌며 단지 항산파의 비구니나 여자들 뿐이라 우리 사파 수십명의 고수들이 제압할 수 있고 비록 영호충의 검술이 정통하나 우리들은 그의 손에 검이 없는 틈을 타서 사형제 다섯 사람이 돌격해서 협공을 한다면 그의 생명을 뺏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축하하러 온 손님들은 이렇게 많고, 소림 무당의 두 장문까지도 이곳에 오셨구나.)

즉시 몸을 돌려 방증과 충허도인을 향해 말을 했다.

[두분의 장문은 현재 태산북두(太山北斗)여서 모두들 앙축하고 따르고 있읍니다. 두분께서 오늘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영호충이 이렇게 많은 사악하고 요망한 자들을 이 항산에 불러다 놓은 것은 항산의 계율 중에 사악한 무리들과 사귀지 말라는 법규를 어긴 것이 아닙니까? 항산파는 오래 되고 명성이 드높은 명문정파인데 영호충의 수중에서 순식간에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려 하는데 두분께서는 좌시하려고 그러십니까.]

내심 이 자의 말은 퍽 일리가 있었다. 이곳의 대다수 사람들은 좌도의 인사이자만 영호충에게 그들을 내쫓으라는 소리를 할 수 없지 않은가? 갑자기 산길에서 한 여자가 외치는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일월신교의 임 소저가 도착하셨읍니다.]

영호충은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되어 자기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말을 했다.

[영영이 왔다!]

급히 달려갔다. 두 명의 장정이 어여쁜 가마 하나를 둘러매고 빠른 걸음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가마 뒤에는 네 명의 청색옷을 입은 여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좌도의 군웅들은 영영이 왔다는 소리를 듣자 너도나도 달려나가 가마를 떠밀고 봉우리 꼭대기까지 당도하였다. 가마가 멈추자 문이 열리더니 담록색의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 하나가 걸어나왔다. 바로 영영이었다.
군웅들은 크게 환호를 하였다.

[성고! 성고!]

일제히 고개를 숙여 절을 하였다.그들의 표정 속에는 영영에 대한 존경과 감탄함이 스며져 있었으며, 기쁜 마음은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온 것 같았다.
영호충은 몇 발짝 앞으로 나가 웃으면서 말했다.

[영영, 당신도 오셨군요.]

영영은 말했다.

[오늘은 경사의 날인데 내가 어찌 안 올 수가 있겠읍니까?]
사방을 훑어보더니 앞으로 몇발짝 걸어나가 방증과 충허 두 사람을 향해 옷을 살짝 들어 예를 하고는 말을 했다.

[방증대사님, 장문도장님, 안녕하십니까?]

방증과 충허도인은 일제히 예를 하고는 내심 생각하기를,(너는 영호충이 아무리 좋아도 이곳에 오면 안 되었다. 이건 영호충의 처지를 더욱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악후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아가씨는 마교의 중요한 인물입니다. 영호충, 내 말이 틀렸소?]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읍니까?]

악후는 말했다.

[항산파에는 오대 계율이 있는데 그중에 사악한 무리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계율이 있읍니다. 당신이 만약 이 사악한 무리들과 관계를 끊지 않는다면 항산파의 장문인 자리에 앉을 수 없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 자리에 취임을 못하면 못했지. 그게 무슨 큰 대수입니까?]
영영은 사랑이 담뿍 담겨져 있는 눈빛으로 영호충을 한번 쳐다보고는 내심 생각을 하였다.

(나 때문에 그 누구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구나.)

그리고는 물어보았다.

[영호장문께 말씀 좀 여쭙겠읍니다. 이 친구는 어디서 온 사람이며 무슨 권한으로 항산파의 일에 관여하고 있읍니까?]

영호충은 말하였다.

[그는 자칭 숭산파 좌장문인이 파견에 온 사람이라고 합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좌장문의 영기(令旗)입니다. 좌장문인의 작은 깃대는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좌장문이 친히 이곳에 도착을 해도 어찌 나의 항산파의 일에 관여할 수 있읍니까?]

영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합니다.]

그날 소림사에서 무술시합을 할 때 좌냉선은 말끝마다 트집을 잡고 아버지가 그 한빙진기 때문에 하마터면 목숨까지도 잃을 뻔하지 않았는가. 그런 정경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자기도 모르게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래서 말하기를, [이것이 오악검파의 맹기하고 했읍니까? 그는 우리를 속이려고......]

말도채 끝나기도 전에 몸이 약간 움직이더니 좌측 손에는 차가운 빛을 발산하는 단검이 쥐어져 있었고 질풍처럼 악후의 가슴을 향해서 들어갔다.
악후는 이렇게 귀엽고 아리따운 여자가 행동을 취하는데 아무런 징조도 나타내지 않고 질풍처럼 자기의 가슴을 향해 올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검을 뽑아 초식을 써 공격하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별수 없이 몸을 약간 옆으로 해서 급하게 공격을 막았다. 그는 영영의 이 초식이 헛초였음을 생각지도 못했다. 몸을 약간 옆으로 하고 있을 때 우측 손이 허황한 느낌이 들어서 자기가 들고 있던 깃발 하나를 이미 상대방이 뺏아간 뒤였다. 영영은 몸을 쉬지 않고 연신 오검을 찔러 다섯 개의 금기를 빼앗았다. 사용하는 검초는 똑같았으며 다섯개의 초식이 그러했다. 숭산파의 그 나머지 네 사람은 모두 악후의 사형제들인데 손과 발의 공력이 대단하여 좌냉선이 파견한 것이다. 원래는 손과 발로 영호충을 급습하려 했으나 영영의 손이 너무 빨라 순식간에 병기를 대하자 공격도 못하고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영영은 손에 그 깃발을 거머쥐고 영호충 뒤로 와서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영호장문, 이 깃발을 틀림없이 가짜입니다. 이 어찌 오악검파의 영기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이것은 오선교의 오독기(五毒旗)입니다.]

그녀는 다섯개의 깃발을 펼쳤다. 사람들은 분명히 볼 수가 있었다. 다섯개의 깃발에는 각각 뱀, 지네, 거미, 전갈, 두꺼비 등 다섯 종류의 독충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색깔이 선명하여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아 오악검파의 영기는 틀림없이 아니었다.
악후 등은 너무나 놀래서 멍한 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노두자, 조천추 등은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사람들은 모두 영영이 영기를 빼앗은 후 오악영기와 오독기를 서로 바뀌치기 한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놀림이 너무도 빨랐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 장면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영영은 외쳤다.

[남교주(藍敎主)!]

무리들 중에서 묘가(苗家)의 차림새를 한 미녀가 나오더니 웃으면서 말을 했다.

[여기 있읍니다. 성고께서는 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
바로 오선교의 교주인 남봉황이었다. 영영은 물어보았다.

[당신 교중의 오독기가 어째서 숭산파 사람들 손에 들어갔읍니까?]

남봉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이 몇 명의 숭산 제자들은 내 아래 있는 여제자들과 교분이 두터운 친구들이어서 달콤한 말로 꼬시어 나의 오독기를 가지고 간 것 같습니다.]

영영은 말했다.

[알고 보니 그렇게 됐구만. 자 이 다섯 개 깃발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겠네.]

말을 하면서 다섯 개의 기를 던져주었다.
남봉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손을 내밀어 받았다.
악후는 화가 치밀어 욕을 하였다.

[요망한 요녀 같으니라고. 이 어르신 눈앞에서 그런 못된 속임수를 쓰다니 빨리 그 영기를 가져오너라.]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오독기를 갖고 싶다면 남교주에게 달라고 하시오.]
악후는 어찌 할 수가 없어서 방증과 충허를 향해서 말했다.

[방증대사, 그리고 충허도장님. 두분께서는 덕망이 높고 존경을 받는 사람이니 말씀 좀 해주십시오.]

방증은 말을 했다.

[이건...... 음...... 사악한 무리들과 사귈 수가 없지, 항산파의 계율 중에는 틀림없이 그런 것이 있네, 그러나...... 그러나...... 오늘 강호의 친구들은 이곳에 예식에 참관하러 왔으니 영호장문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네. 그들을 내쫓는다면 그들의 체면에 먹칠하는 것이니......]

악후는 갑자기 무리 중에 한 사람을 가리키더니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저자가...... 저자가...... 나는 저자가 채화대도(採花大盜)인 전백광임을 알 수 있다. 저자가 저런 중의 모습으로 꾸민다해도 어찌 내 눈을 속일 수가 있는가? 이자도 역시 영호충의 친구입니까?]

무서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전백광, 너는 이 항산에 무엇하러 왔느냐?]

전백광은 말을 했다.

[스승을 모시러왔소.]

악후는 이상해서 말을 했다.

[스승을......?]

전백광은 말을 했다.

[바로 그렇소.]

의림 앞으로 걸어나가더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사부님, 제자가 인사드립니다. 이 제자는 저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법명을 불가불계라고 지었읍니다.]

의림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몸을 옆으로 살짝 피하고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전사부(田師傅)께서 사악한 마음을 버리고 바르게 하신다 하니 그것 참 좋은 일이십니다. 머리를 깍고 출가하여 법명을 불가불계라고 지었다 하니 그것은 더욱 정성이 갸륵합니다. 방증대사님 아무리 나쁜 자도 칼을 버리면 바로 성불이 된다고 하지 않았읍니까? 사람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한다는데 불문의 자비로움으로 그에게 광명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방증은 기뻐서 말을 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불가불계가 항산파에 들어온다면 그로부터 엄격히 문규를 지켜갈 것이며, 그것은 무림의 복입니다.]
영영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 여러분도 들으셨지요. 우리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모두 항산파에 가입하려고 온 것입니다. 영호장문께서 우리들을 기꺼이 맞아주신다면 우리들은 항산파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항산의 제자가 어찌 사악하다고 할 수가 있겠읍니까?]

영호충은 별안간 무엇인가 크게 깨달았다.

(알고 보니 영영은 내 처지가 심히 난감함을 알고 있었구나. 만약 항산파에 많은 남자가 있다면 더이상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니 그래서 특별히 많은 사람을 불러모아 항산파에 들어오기로 했구나.)

즉시 낭랑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의화 사제, 항산파는 남자 제자를 받지 말라는 그런 규정이 있읍니까?]

의화는 말을 했다.

[남자 제자를 받지 말라는 문규는 없읍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녀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갑자기 이렇게 많은 남자들이 나타나자, 어쨌든간에 별로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여러분께서 항산파에 들어오신다고 했는데 그것 참 잘 되었읍니다. 그러나 항산파는 따로 하나...... 따로 항산별원(恒山別院)을 만들어 여러분을 그곳에 모시겠읍니다. 그곳은 바로 통원곡(通元谷)으로 아주 좋은 곳이지요.]

그 통원곡은 견성봉 옆에 있었다. 선인 장과노(張果老)가 그곳에서 연단(煉丹)을 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항산파 내 큰바위 위에는 말발자국이 여러군에 있는데 역대 장과노가 타고 다니던 나귀의 말발자국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이렇게 딱딱한 화강암 위에 나귀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선인의 흔적이 아니라면 어찌 생긱 수가 있겠는가?
당 현종은 장과노를 통원선생(通元先生)으로 봉하여, 통원봉이라는 이름은 거기에서 연유된 것이다. 통원봉과 견성봉의 주암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통원봉에서 견성봉까지는 산길이 매우 험중하였다.
영호충은 이 강호의 호객들을 그 통원봉에다 모아놓고 남자와 여자를 격리시켜 많은 오해와 시비블 불러일으키는 것을 막으려 했다.
방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좋겠읍니다. 이 친구들이 항산파에 귀의하여 문규 구속을 받는다면 무림의 크나큰 경사입니다.]
악후는 방증대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또한 상대방의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영호충이 항산파의 장문인 자리를 맡는 것을 저지할 수가 없어 별수 없이 좌냉선의 두번째 명령을 전단하였다. 기침을 한번 하더니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오악검파의 좌맹주의 명령이십니다. 삼월 십오일날 새벽 오악검파의 각파의 사장제자들은 일제히 숭산에 모여 오악파의 장문인을 천거해야만 합니다. 반드시 기일 안으로 도착하고 어겨서는 안 됩니다.]

영호충은 물어보았다.

[오악검파를 한파로 묶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누구의 생각이오?]
악후는 말을 했다.

[숭산, 태산, 화산, 형산 네파가 모두 동의를 하였읍니다. 만약에 항산파가 어떤 이의를 단다면 그 네개 파와 안 좋은 관계가 발생할 것이며, 그로부터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몸을 돌려 태산파 등을 향해 물어보았다.

[당신들, 의견은 어떻습니까?]

그 뒤에 서 있던 수십명은 일제히 대답했다.

[맞습니다.]

악후는 냉랭하게 웃으며 몸을 돌려 걸어갔다. 몇발짝 앞으로 가더니 영영을 쳐다보고는 내심 생각하기를, (저 다섯 개의 영기를 어떤 방법으로 빼앗아야 옳으냐.)
남봉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악노사, 당신은 기를 잊었으니 어떻게 돌아가서 장문인과 대하겠읍니까? 자, 그 깃발을 돌려드리겠읍니다.]

말을 하면서 우측 손을 내밀어 금기 하나를 던졌다.
악후는 깃발이 바람을 가르며 날라오자 내심 생각하기를, (이것은 너희들을 오독기지 오악영기는 아니다. 내가 그것을 가지고 무엇하겠느냐?)

마음속으로 주저하는 사이에 그 깃발은 눈앞에 날아와 자기의 목덜미를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거머쥐었다. 갑자기 크게 외치더니 그 깃발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손바닥이 마치 불덩어리를 쥐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손바닥은 이미 자주색의 빛을 띠고 있었다. 깃발에 독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놀라고 화가 나서 급히 욕을 하였다.

[이 악마 같은 년!]

남봉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이 영호장문님 하고 소리를 내어 살려달라고 한다면 내가 당신에게 그 해독약을 주겠소.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손바닥은 아마 썩어서 문드러질 것이오.]

악후는 이미 오독교가 사용하는 독물이 매우 무섭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주저하는 사이에 손바닥에 마비가 오고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내심 필생의 공력이 이 손바닥에 있는데 썩어 문드러지면 폐인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급한 나머지 별수 없이 외쳤다.

[영호장문님 당신이......]

남봉황은 웃으면서 말했다.

[자, 살려달라고 하시오.]

악후는 말을 했다.

[영호장문님 제자 잘못했읍니다. 저에게 그 해독약을...... 내려주십시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남 소저, 이 악형은 좌장문의 명을 받들고 왔을 뿐이니 그에게 해독약을 주시오.]

남봉황은 웃으면서 옆에 있던 묘녀(苗女)에게 눈짓을 했다. 그 묘녀의 품속에서 하얀 종이로 싼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몇발짝 앞으로 나가 악후에게 던져주었다. 악후는 손을 내밀어 받으면서 군웅들이 깔깔 웃는 소리를 듣고 질풍처럼 봉우리를 내려갔다.
그 나머지 수십명도 그를 따라 내려갔다.
영호충은 낭랑한 소리로 말을 했다.

[여러 친구들이 이 항산 별원에 머무르기를 원하신다면 본파의 규율을 준수해야만 합니다. 이 계율은 사실 그리 지키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다섯번째 계율에는 사악한 무리들과 사귈 수 없다고 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것이 조금 어렵겠군요. 그러나 지금부터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항산파의 사람이라 할 수 있으니 항산파의 제자들은 물론 사악한 사람은 없읍니다. 그러나 바깥 사람들과 사귈 때 좀 주의를 해야겠군요.]

여러 군웅들은 그 말이 심히 옳다고 떠들어댔다. 영호충은 또 말을 했다.

[당신들이 술과 고기를 먹고자 한다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오늘이 지나면 이 견성봉에 더 이상 오를 수가 없읍니다.]

방장은 합장을하며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이곳은 깨끗한 성지이니 더렵혀질 수는 없읍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자 됐읍니다. 장문인의 취임식도 마쳤고, 모두들 배가 고플 것이니 식사를 합시다. 나는 소림 방증과 무당 장문 여러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겠읍니다. 내일 다시 여러분들과 술을 마시기로 하지요.]

밥을 먹고 나서 방증이 말을 했다.

[영호장문, 소승과 충허도인이 할 말이 있읍니다. 장문과 상의를 좀 하고 싶어서요.]

영호충은 대답을 했다.

[녜.]

내심 생각하기를, (지금 무림 이대 문파의 장문이 친히 항산에 오신 것은 틀림없이 중요한 일인 것이다. 견성봉에는 잡다한 무리들이 있으니 어디에서 말을 해도 그 비밀이 새어 나갈 것이다.)

즉시 의화, 의청 증 제자에게 손님을 접대하라고 분부하고 방증, 충허 두 사람을 향해 말을 했다.

[이 봉우리 뒤 자요구(磁密口) 옆에는 산이 하나 있읍니다. 그산은 취병산(翠屛山)이라고 부르는데 깍아지른 절벽이 마치 거울과 같습니다. 또 산에는 현공사(懸空寺)가 하나 있는데 그 현공사는 항산의 최고의 승지입니다. 두분 선배님께서 만약 흥미가 있으시다면 제가 그곳에 모시겠읍니다. 어떻습니까?]

충허도인은 기뻐서 말했다.

[취병산의 현공사는 북위(北魏)년간에 지어졌는데 그곳에는 나무도 자랄 수가 없으며, 원숭이도 기어오를 수 없다고 들었읍니다.
그곳은 천하의 명승지 중에 하나이므로 이 빈도도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읍니다. 눈이나 한번 떠 볼까요.]

영호충은 방증대사와 충허도인을 인도하여 견성봉을 내려와 자요구를 지나 취병산 아래 당도하였다. 방증과 충허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비각(飛閣)이 봉끌에 우뚝 서 있었고, 마치 선인누각(仙人樓閣)이 구름 위에 나타난 듯하였다. 방증은 탄식하며 말했다.

[이 누각을 지은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일 것이오. 과연 이 세상에서는 하지 못할 일이 없고 마음만 먹는다면 뭐든지 다 해낼 수가 있소이다.]

세 사람은 천천히 산을 올라 현공사에 당도하였다. 현공사에는 두채의 누각이 있었는데 수십장 높이로 하늘을 찌를듯이 우뚝 서 있었다. 이 두개의 누각의 거리는, 수십보에 이르고 누각의 사이에는 비교(飛橋)가 놓여 있었다. 절에는 나이가 먹은 늙은 하녀가 그곳을 지키며 청소하고, 영호충 등 세사람이 왔는데도 멍청히 쳐다볼 뿐 아는 체도 하지 않았으며 절도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십여일 전에 의화, 의청, 의림 등과 이곳에 와서 이 하녀가 귀먹고 벙어리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는 체를 하지 않고 방증, 충허 두 사람과 다리에 이르렀다.
이 비교의 날개는 수척에 불과 했으므로 만약 일반 사람이 이 다리에 오르면 사방이 텅비고 구름이 발아래서 가물거리니 마치 몸이 허공에 뜬 것같이 간이 콩알만해지고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은 모두가 고수들이라 이런 멋진 풍경을 보자 가슴이 확트이는 것 같았다. 방증과 충허 두 사림이 북쪽을 향해 쳐다보자 구름 사이에는 은은하게 성곽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으며 자요구 쌍봉 사이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극히 웅장하고 험준 하였다.
방증이 말을 했다.

[옛말에 한 사람이 관문의 지키고 있으면 수많은 사람은 그 관문을 뚫을 수 없다고 했는데 이곳의 형세를 보니 그 말이 실감이 납니다.]

충허는 말을 했다.

[북송년간에 양노령공(楊老令公)께서 이 삼관(三關)을 지키기 위해서 이곳에다 병력을 주둔하였읍니다. 이곳은 원래가 군사의 제일 요충지대였읍니다. 처음 현공사를 보았을 때 신이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감탄을 하여 새삼스럽게 옛 사람들의 저력을 느꼈읍니다.
그러나 이 오백리나 뚫려져 있는 산길을 보니 현공사는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소이다.]

영호충은 이상해서 말을 했다.

[도장, 도장님께서 이 수백리 산길이 모두 사람이 뚫은 것이라고 했읍니까?]

충허도장은 말했다.

[사서(史書)의 기록에 의하면 위도부제 천흥원년(魏道武帝天興元年)에 연나라를 제압하기 위해서 수천 수만의 군졸들을 동원하여 산을 뚫고 길을 내어 오백리 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자요구는 이 길을 제일 북쪽이지요.]

방증이 말했다.

[소위 직도오백여리(直道五百餘里)라 함은 물론 대다수는 원래 있던 산길이었소. 북위황제는 수만 병졸을 동원하여 단지 그 사이의 길을 막고 있는 산을 뚫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해도 공사의 어려움이나 거대함이란 보는 사람이 혀를 내두를 뿐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황제가 되고자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단 한마디로 수만 수천 군졸을 동원하여 산길을 뚫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충허는 말을 했다.

[권세의 관문은 옛날부터 많은 영웅들이 뚫고 넘어갈 수 없었읍니다. 황제는 그만두고라도 오늘날 무림에서 이렇듯이 풍파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 권세라는 두 글자 때문이 아니겠읍니까?]
영호충은 내심 멈칫하였다. 깊이 생각하기를, (이제서야 본론에 들어왔구나.)

그래서 말하였다.

[저 고개는 실로 모르겠읍니다. 두분 어르신께서 좀 가르쳐 주시지요.]

방증이 말했다.

[영호장문, 오늘 숭산파의 악노사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왔는데, 무엇 때문에 온 줄 아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제가 항산파의 장문의 직함을 맡지 못한다는 좌맹주의 명령을 잔달하러 왔읍니다.]

방증이 말했다.

[좌맹주는 어째서 당신이 항산파의 장문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까요?]

영호충은 말했다.

[좌맹주는 오악감파를 합병하여 하나로 만들려고 했으나 제가 그의 계획을 저지하고 숭산파의 사람들을 적지 않게 죽였으니 아마 좌맹주는 제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방증이 물었다.

[당신은 어찌해서 그의 계획을 저지하려 합니까?]

영호충은 멍청하였다. 어찌 대답할 수가 없어서 다시 한번 나는 어째서 그의 계획을 저지하려 했을까 하고 되뇌었다.
방증이 물어 보았다.

[당신 생각에는 오악검파가 하나로 합병이 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그러한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는 생각해보지 못했읍니다. 단지 숭산파는 항산파의 대답을 얻어 내기 위해 협박을 하고 일월교의 교파로 위장하여 항산의 제자들을 못살게 굴고 정정사태를 공격했으니, 그들이 사용하는 수단은 너무나 졸렬하고 비굴합니다. 제가 마침 우연히 그 일에 관계가 되어 내심 타당치 못하다고 여겨 도와준 것이지요. 나중에 숭산파는 주검곡에 불을 질러 정한, 정인 두분의 사태를 태워 죽이려고 했지요. 그것은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오악검파가 합병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면 숭산파는 어찌해서 과명정대하게 각파의 장문들과 상의를 하지 않고 그렇게 뒷구멍으로 일을 처리하는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읍니다.]

충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영호장문의 견해는 틀림이 없읍니다. 좌냉선이라는 자는 야심이 너무나 커 무림의 첫번째 인물이 되려고 합니다. 스스로 여러 사람을 복종시키기가 어려우니 암암리에 음로를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방증은 탄식하며 말했다.

[좌맹주는 문무가 겸비되어 있는 사람이니 틀림없이 무림 중에 걸출한 인물입니다. 오악검파 중에는 그자를 따라갈 인물은 없지요. 그러나 그의 포부는 너무나 크고 급히 무당, 소림 두파를 제압하려고 하니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충허는 말했다.

[소림파는 무림의 우두머리로서 수백년 동안 공인이 되어 왔읍니다. 소림파의다음은 무당이지요. 그 다음은 곤륜, 아미 공동의 여러파입니다. 영호현제, 한개의 문파가 세워지고 이름이 나기까지는 수백년 동안 무수한 영웅호걸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쌓아서 이룩되는 것이지요. 무공은 모두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져서 되는 것이지 절대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오악 검파가 무림에서 일어난 것은 육칠십 년에 불과한 것이고, 비록 아주 빠르게 가세가 확장이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곤륜, 아미에 미치지 못하고, 더우기 소림파의 정묘한 칠십이 절예와는 비교가 되지 못합니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조를 하였다.
충허는 또 말했다.

[각파 중에는 어쩌다가 한두 명의 힘과 지혜를 갖춘 자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무림에서 우뚝서고 이름을 떨치는 것은 무림에서 자주 있는 일이오. 그러나 한 사람의 힘으로 천하 각파를 쓰러뜨렸다는 말은 지금까지 들어본 일이 없읍니다. 좌냉선의 야심은 바로 이 일을 하려고 하는데 있읍니다. 그가 오악검파의 맹주의 자리에 앉을 때 방장대사께서는 그로부터 무림 중에 먹구름이 낄 것이라는 예견을 하셨지요. 그 이후 좌냉선의 행동을 보면 방장대사의 예견이 옳았읍니다.]

방증대사는 아미타불 하고 불경을 외웠다.
충허는 말했다.

[좌냉선이 오악검파의 맹주자리에 앉은 것이 바로 첫번째 단계이고, 두번째 단계는 오파를 하나로 묶어 스스로 장문의 자리에 앉는 것이고, 오파가 하나로 귀속이 되면 세력이 커질테니 은연중에 소림, 무당과 함께 삼파가 되겠지요. 그때는 그는 진일보하여 곤륜, 아미, 공동, 청성 제파를 점차적으로 잠식하여 합병하는 것이 세번째 단계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소림, 무당여러파를 이끌고 일거에 마교를 뒤엎을 것입니다. 이것이 네번째 단계입니다.]
영호충은 내심 한줄기 공포의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말하기를, [이 일은 성사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좌냉선의 무공이 천하의 무적은 되지 못하는데 그가 어찌 그런 큰 야심을 품을 수가 있겠읍니까?]

충허는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판단하기 힘든 법입니다. 세상일이란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은 도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 아닙니까? 보시오, 이 오백리 산길은 사람이 뚫지 않았읍니까? 또한, 이 현공사도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닙니까? 좌냉선이 만약 마교를 멸하고 무림 중에 유아독존의 자리에 앉게 된다면 그때는 무당, 소림 두파를 집어삼키려 할 것입니다. 이 일을 하는데는 무공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방증은 또 한번 아미타불 하고 읊조렸다.
영호충은 말했다.

[알고 보니 좌냉선은 천하 무림을 호통하고 모두가 그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바라고 있군요.]

충허는 말했다.

[바로 그렇소! 그때가 되면 아마 그는 황제가 되고 싶을 것이고, 황제가 되면 또 장생불노하려고 들 것이고, 이것이 바로 뱀이 코끼리를 삼키려 하듯이 사람의 마음이란 끝이 없다는 것이오. 자고이래로 모두가 그러했소. 영웅호걸 가운데 그 권위라는 난관을 그냥 지나치는 자가 그 얼마나 되겠소?]

영호충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한 줄기의 폭풍이 질풍처럼 휘몰아쳤다.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면서 생각했다.

(인생은 일장춘몽이오, 살아 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인데 왜 그런 야심을 품고 있을까? 좌냉선이 공동, 곤륜을 소멸시키고 소림, 무당을 삼키려 하는데에는 그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고, 또그 얼마나 많은 피를 뿌려야 하는가?)

충허는 두 손을 탁치며 말을 했다.

[보시오, 우리 세 사람이 그 중임을 짊어지고 좌냉선의 야심과 강호의 피비릿내나는 싸움을 막아야 합니다.]

영호충은 황송해서 말했다.

[도장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실로 몸둘바를 모르겠읍니다. 저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견문이 좁으니 두분의 가르침에 따르겠읍니다.]

충허는 말했다.

[그날 당신이 여러 군웅들을 이끌고 소림사에 와서 임 소저를 구하려 할 때 소림사의 풀한포기 나무 하나 손상시키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방증대사는 실로 감사하게 여기고 있읍니다.]

영호충은 얼굴이 약간 빨개지면서 말을 했다.

[제가 멋도 모르고 그런 무례함을 저질렀읍니다. 실로 죄송하기 짝이 없읍니다.]

충허는 말을 했다.

[당신이 떠난 직후에 좌냉선 등도 바로 떠났지요. 나는 떠나지 않고 소림사에 칠일동안 머물면서 방증대사와 밤낮으로 이야기를 하고 깊이 좌냉선의 야심이 만만치 않음을 걱정하고 있었읍니다.
그날 임아행이 간계를 써서 방증대사를 제압하고 임아행이 지친 틈을 타서 좌냉선이 임아행을 쓰러뜨린 결과가 되지 않았읍니까? 그러나 무림의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은 `방증대사는 임아행을 이길 수 없고, 임아행은 또 좌냉선에게 이기지 못한다......' 라는 말을 할 것입니다.]

영호충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충허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 시합을 통해서 좌냉선의 이름은 적지 않게 높아졌고, 그의 자부심과 야심을 키워준 결과가 되었읍니다. 후에 우리들은 각각 영호현제가 항산 장문을 맡는다는 소식을 들었고, 친히 항산에 오기로 결정을 했지요. 그 이유는 첫째로 영호 노제에게 축하하려 함이고, 둘째는 일에 대해서 상의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두분 대사께서 이렇듯 저를 높이 추켜주시니 실로 저는 받잡기 민망합니다.]

충허는 말했다.

[그 악후라는 자가 와서 삼월 십오일에 오악검파의 사람들이 숭산에 모여 오악파의 장문인을 천거한다는 명령을 전달하지 않았읍니까? 그 일을 우리 방장대사는 벌써 예견을 하였읍니다. 단지 우리들 생각보다도 좌냉선이 결정이 조금은 빨랐읍니다. 그가 오악 장문인을 천거한다고 했는데, 오악파가 하나로 묶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결정이 된 것 같소이다. 사실 형산 막대선생의 성질이 괴팍하여 좌냉선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고, 태산의 천문도 형도 성격이 불과 같으니 절대로 그 밑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스승인 악 선생은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안으로는 강직한 사람이라 화산 일파의 도통에 대해서 극히 중히 여기고 있읍니다. 좌냉선이 화산파의 이름을 없앤다면 악 선생은 틀림없이 있는 힘을 다해서 막을 것입니다.오로지 항산 일파는 세분의 사태께서 선후로 입적하시어 많은 무리의 여제자들은 좌냉선에 대항하지 못하고 어쩌면 굴복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정한사태는 이러한 사실을 간파하시고 장문의 자리를 노제에게 건네 주었읍니다. 나와 방장 사형은 정한사태의 선견지명에 대해서 실로 탄복하고 칭찬을 하고 있었읍니다. 특히 사태께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그러한 결정을 하셨으니 더욱 대단한 일이 아니겠읍니까? 정한사태는 평소 덕을 쌓고 수양을 하여 결국은 입적하실 때까지 품위를 잃지 않으셨읍니다. 태산, 형산, 화산, 항산 네 파가 연합해서 대항하기만 한다면 좌냉선의 그 음모는 이룰 수가 없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러나 악후가 오늘 이곳에 와서는 명령을 전달하는 추세를 보니 아마 태산, 형산, 화산 세 파는 이미 좌냉선에게 제압을 당한 것 같습니다.]

충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바로 그렇소. 스승인 악 선생의 마음을 방장대사와 저는 이해를 못하겠읍니다. 듣기로는 복주 임씨 성을 가진 제자 하나가 화산파에 들어왔다고 했는데 맞습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맞습니다. 임 사제의 이름은 임평지라고 합니다.]

충허는 말했다.

[그에게는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벽사검보가 있다고 하는데 강호에서도 그 소문이 자자합니다. 모두들 이 검보에 기재되어 있는 검법은 위력이 상당히 크다고 하는데 노제도 그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녜, 들어본 적이 있읍니다.]

즉시 어떻게 해서 복주 상양항에서 가사(袈裟)를 찾아내었으며, 숭산파의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고, 자기가 어떻게 해서 상처를 받아 기절을 했는가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을 했다.
충허는 한참 동안 생각을 하더니 말을 했다.

[상황을 분석해 보면 스승이 그 가사를 발견하고 임 사제에게 준 것 같은데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사매가 나에게 와서 벽사검보를 달라고 추궁을 했읍니다. 그것의 의문점은 실로 풀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억울한 누명의 쓴 지 이미 오래되어서 별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읍니다. 그러나 벽사검보의 내력에 대해서 두분 어르신께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풍허는 방증대사를 한번 쳐다보고는 말을 했다.

[방장대사, 그 사연은 영호 노제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방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영호장문, 당신은 규화보전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읍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사부님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읍니다. 그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기를 규화보전은 무학 중의 최고의 비급인데,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지고 행방이 묘연하다고 하셨읍니다. 나중에 저는 임 교주에게 그가 규화보전을 동방불패에게 전해주었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그러니 이 규화보전은 지금 일월신교의 수중에 있을 것입니다.]

방증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일월교에 있는 그 비급은 온전치 못하고, 원서는 아닐 것입니다.]

영호충은 대답을 했다.

[녜.]

그 대신 무림 중의 중대하고 은밀한 일을 이 두분 선배기 만일 모른다면 다른 사람은 더욱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방증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말을 했다.

[화산파는 당시 기종, 검종으로 나루어 있었지요. 화산파의 선배는 그 때문에 서로 죽이고 서로를 헐뜯었오. 이 사실은 당신도 아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녜, 단지 나의 사부께서는 상세하게 말씀을 하시지는 않으셨읍니다.]

방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한 집안이 서로 물고 헐뜯는 일은 사실 좋은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악 선생께서는 이야기를 안 하셨던 것 같군요. 기종, 검종으로 나뉘게 된 것은 듣건대 그 규화보전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뜸을 들였다가 천천히 말했다.

[이 규화보전은 무림 중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전조 황궁(前朝皇宮)에서 한분의 환관이 지었다고 합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환관이라니요?]

방증은 말을 했다.

[환관이란 바로 내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음.]

방증은 말을 했다.

[그러나 그 비급을 지은 환관의 이름은 알 수가 없고, 또 그와 같은 고수가 어째서 황궁에서 내시를 하고 있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지요. 보전 중에 기재되어 있는 무공은 실로 오묘하기 그지없어 삼백여 년 동안 그 누구도 그 비급을 보면서 연마한 사람이 없어, 백여 년 전에 이 보전은 복건에 있는 보전(甫田)소림사에서 습득을 하였소. 그때 보전 소림사의 방장인 홍엽선사(紅葉禪師)는 대지대혜(大智大慧)한 대단한 인물이었소. 말대로라면 그 어르신의 무공이 어느 정도로 응당히 보전에 적혀 있는 무공이 연마되었어야 옳은 일이나, 그러나 그 어르신의 제자의 말에 의하면 홍엽선사는 연마를 하지 않으셨다고 하고, 또 어떤 자는 말하기를 홍엽선사는 여러 해를 연구하시고 돌아가실 때까지도 결국은 보전 중에 기재되어 있는 무공을 시작도 않으셨다고 하지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이 그 책속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홍엽선사와 같은 대단한 인물도 그것을 깨우치지 못하셨고 심지어는 착수 조차도 못하셨는지 모르지요.]

방증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그것도 가능합니다. 소승과 충허도형은 그 보전과 인연이 없었읍니다. 그렇지 않다면, 비록 연마한다는 말은 못 해도 그 책속의 오묘한 문자라도 보았으면 합니다.]

충허는 잔잔히 웃으면서 말했다.

[데사의 욕심이 발동하셨군요. 우리 무예를 배우는 사람들은 보전을 안 보면 그만인데 만약에 보았다면 틀림없이 식음을 전폐하고 연마하고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마음의 수련도 쌓지 못할 뿐 아니라 번뇌만이 가득 찰 뿐이지요. 우리들이 인연이 없어 보지 못한 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복일 수도 있소이다.]
방증은 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도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소승은 아직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 했읍니다.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군요.]

그는 또 몸을 돌려 영호충을 향해서 말을 했다.

[듣건대, 화산파의 두 명의 사형제가 보전 소림사에 놀러가서 우연한 기회에 그 규화보전을 보았다고 합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규화보전은 어떠한 물건인데 보전 소림사는 물론 사람들에게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산파의 두 명의 사형제가 보았다면 반드시 훔쳐서 보았을 것이다. 방증대사께서는 훔쳐 보았다는 말을 아니하시고 말을 돌리시는구나.)

방증은 또 말을 했다.

[그때 두 사람은 너무 정황이 없어 동시에 책을 읽지 못하고 즉시 두 사람이 나누어 읽었지요. 한 사람이 반절씩 읽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화산에 돌아와서 같이 풀어보고 연구를 하였지요. 그런데 두 사람이 책을 써놓고 검증을 해보자, 앞뒤가 안 맞고 뒤죽박죽이 되었지요. 두 사람은 상대방이 잘못 읽었다고 믿고, 오로지 자기가 기억한 것이 맞다고 우겼지요. 그러나 자기들이 기억한 발절로는 어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었겠읍니까? 두 사람은 본래 형제나 다름없는 사형제였는데, 나중에는 결국 원수지간으로 변했읍니다. 그래서 화산파는 기종, 검종으로 나뉘게 되었읍니다. 그때부터 그렇게 되었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이 두분의 선배 사형은 틀림없이 악소(岳蕭)와 채자봉(蔡子峯) 두붕의 선배일 것입니다.]

악소는 화산 기종의 비조이고, 채자봉은 검종의 비조였던 것이다. 화산 일파가 둘로 나워진 것인 몇십년 전의 일이었다.

방증을 말을 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악소와 채자봉 두 사람이 규화보전을 읽었다는 소문은 홍엽선사의 귀에까지 들어갔지요. 그 어르신께서는 이 보전 중에 기재되어 있는 무공이 너무 넓고 깊을 뿐만 아니라 흉악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듣기로는 제일 어려운 것은 첫번째 제일관이었다고 합니다. 제일관만 깨우칠 수만 있다면 그후로는 그리 어렵지가 않다고 하지요. 천하의 무공은 모두가 쉬운 것부터 점점 오묘한 상태로 들어가 나중에 갈수록 더 어려운 법인데, 이 규화보전은 그 반대로 첫번째가 제일 어려웠지요. 연마를 할 때 약간만 잘못을 해도 즉시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합니다. 즉시 그의 제자인 도원선사(渡元禪師)를 파견하여 화산으로 보냈지요. 두 사람에게 절대로 그 보전 중의 무학을 배우지 말라고 권하였답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말씀대로 그 무공의 첫번째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면 만약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이 책만을 보고 연마를 하게 되면 큰 화를 당하게 되는군요. 그러나 두분 선배께서는 그의 말을 듣지 않으신 것 같군요.]

방증을 말을 했다.

[사실은 그 두분을 탓할 수만은 없지요. 무학을 좋아하고 연마하는 사람들이 오묘한 무학의 비급을 얻고 어찌 연마하지 않고 있을 수가 있겠읍니까? 소승도 출가한 지 수십년이 되었지만 보전의 무학을 통달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릴 수가 없읍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충허도장께서도 웃으시지 않으셨읍니까? 하물며 일반 사람이야 어떠하겠읍니까? 뜻밖에 도원선사도 화산에 가서 일을 저지르고 말았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다면 혹시 악소, 채자봉 두분이 도원선사에게 무례한 짓을 하였읍니까?]

방증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그것은 아닙니다. 도원선사가 화산에 갔을 때 두분은 도원선사에게 잘 대해주고 또한 규화보전을 읽었다고 인정을 하였읍니다.
한편으로는 깊은 사과를 하고 한편으로는 그 경중에 기재되어 있는 무공에 대해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였지요. 도원선사는 비록 홍엽선사의 사랑을 받는 제자였지만 보전 중의 무학은 전수받지 못했읍니다. 홍엽선사는 자신도 모르는데 제자에게 가르쳐 줄 수는 없었겠지요. 그러나 두 사람은 그러한 곡절을 모르고 도원선사가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지요. 도원선사는 가르쳐 주지 않고 그들이 읽는 경문을 듣고 마음대로 해석을 하고 또한 암암리에 기억을 했읍니다. 도원선사의 무공은 본래 고명하고 또한 지혜로운 사람이라 경문을 듣자마자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붙였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게 해서 도원선사는 오히려 그 두분한테서 보전 중의 경문을 알게 되었군요.]

방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그렇소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바쁜 중에 외운 경문이라 이미 틀렸는데 한 다리를 걸치자 많이 빼먹었겠지요. 듣건대 도원선사는 화산에서 팔일 동안을 머무르고서야 하산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보전 소림사에 가지 않았읍니다.]

영호충은 이상해서 말했다.

[그가 보전 소림사에 가지 않았다면 어디로 갔단 말씀입니까?]
방증은 말했다.

[이 사건 때문에 소림사와 화산파 사이에는 좋지 못한 관계가 되었지요. 그리고 화산 제자들이 규화보전을 보았다는 사실이 밖으로 퍼지자, 머지 않아 마교 십장로가 화산을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읍니다.]

영호충은 갑자기 사과애의 동굴에서 본 해골들과 그리고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무공의 검법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방증은 말했다.

[왜 그러시오?]

영호충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말을 했다.

[방장의 말씀을 끊어 놓아 죄송합니다.]

방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는 당신의 사부조차도 이 세상에 나오기 전 입니다. 마교의 십장로가 화산을 공격한 것은 그 규화보전을 약탈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때 화산파는 이미 태산, 숭산, 항산, 형산 네 파와 오악검파를 결성하였지요. 그래서 네 파는 소식을 듣고 응원을 하러 왔읍니다. 화산에서 접전이 벌어져 마교의 십장로는 다수가 몸에 상처를 받고 날개가 꺾여서 돌아갔읍니다. 그러나 악소, 채자봉 두 사람은 이때 목숨을 잃었읍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적은 규화보전은 마교들이 빼앗아가고 그래서 이 일전은 누가 지고 누가이겼는가는 말하기가 어렵게 되었지요. 오년 뒤에 마교는 권토중래하였읍니다. 이번에 십장로는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지요. 오악검파의 검술에 대해 꿰뚫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왔던 것입니다. 충허도형과 소승이 추측해 보건대 마교 십장로의 무공은 비록 높지만 겨우 오년 사이에 오악검파의 정묘한 검초를 깨뜨릴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규화보전에서 터득한 검법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두번째 결투에서 오악검파는 큰 손해를 보았읍니다. 고수들은 죽음을 당하고 우파의 많은 정묘한 검법은 그로부터 사라지게 되었지요. 단지 마교의 십장로도 살아서 화산을 떠날 수가 없었읍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싸움은 실로 비참하기 짝이 없었던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제가 화산 사과애의 동굴에서 이 마교 십장로의 유골을 봤고, 또 석벽에 조각되어 있던 많은 글씨를 본 적이 있읍니다.]
충허는 말했다.

[그러한 일이 있었읍니까? 어떤 글자들이 써 있었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그 글자들은 대강 이러했읍니다. `오악검파는 천하의 상대할 수 없는 간사한 무리들이다. 시합에 이길 수 없자 비굴한 수법으로 흉계를 꾸며 사람들을 죽였다.' 그밖에 많은 잔 글자들이 써져 있었는데, 모두가 오악검파를 저주하고 욕하는 문귀들이었읍니다.]
충허는 말했다.

[화산파 사람들은 어째서 그런 자기들을 비방한 글자들은 아직도 석벽위에 지우지 않고 남겨 두었읍니까. 그 참 이상하군요.]
영호충은 말했다.

[이 동굴은 제가 무의식중에 발견한 것이며,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읍니다.]

즉시 그 동굴을 어떻게 발견했는가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또 도끼를 사용하는 사람이 날카로운 도끼로 수백장 길이의 동굴을 파고, 한척만 더 파면 밖으로 나갈 수가 있었는데 그 한척을 더 파지 못하고 힘이 빠져 죽었다는 말을 하였다.
방증대사는 말했다.

[도끼를 사용하는 사람이라? 그렇다면 십장로 중에 대도신마 범송(大盜神魔范松)이 아닌가?]

영호충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석벽에는 또 한줄의 글자가 써져 있었읍니다. 그 글자들은 `범송, 조학(趙鶴)이 이렇게 항산파의 검법을 파괴하였다'라고 씌여져 있었읍니다.]

방증은 말했다.

[조학이라? 그 자는 바로 십장로 중에 비천신마(飛天神魔)라는 자인데. 그는 뇌진당을 사용한 사람인가?]

영호충은 말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동굴 바닥에는 틀림없이 뇌진당이라는 무기가 있었읍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석벽의 글자에는 화산 검법을 파괴시킨 자는 장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인데 장승풍(張乘風), 장승운(張乘雲)이라는 자였읍니다.]

방증은 말했다.

[틀림이 없읍니다. 금후신마(金侯神魔) 장승풍, 백원신마(白遠神魔) 장승운은 형제인데 그들은 숙동곤을 사용한다고 들었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바로 맞습니다. 석벽의 그림에는 곤봉으로 저의 화산파의 검법을 깨뜨리는 그림이 있었읍니다.]

방증은 말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종합해 보면 아마 마교의 십장로는 오악검파의 매복을 받아 산동굴로 유인되어 빠져나올 수 없도록 그곳에 갇힌 것 같군요.]

영호충은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교의 사람들은 원한이 맺혀 석벽에다 글자를 새겨 오악검파를 욕하고, 또한 오악검파의 법문(法門)를 깨뜨린 것을 조각하여 후세 사람들이 알도록 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싸움에 진 것이 아니라 함정에 빠져 진 것이라고요.
석벽에 조각되어 있는 화산파의 검법은 정말 정묘하기 짝이 없었읍니다. 그런데 나의 사부와 사모님은 그것을 모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도 그것을 보고 많은 의문에 쌓였는데 조금 전에 방장대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화산파의 선배가 대부분 그 싸움에서 목숨을 잃어서 그 많은 화산파의 초식이 그로부터 실전(失傳)이 된 것을 알았읍니다. 항산, 태산 등의 네 파도 틀림없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충허는 말했다.

[틀림없이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마교 십장로의 해골 옆에는 여러 자루의 장검이 있었는데 틀림없이 오악검파의 병기일 것입니다.]

방증은 말을 했다.

[그건 추측하기가 어렵군요. 어쩌면 십장로가 오악검파의 수중에서 빼앗은 것이라고도 볼 수가 있지요. 당신은 그 동굴을 보고나서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은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동굴에서 그 이상한 일을 본 후 지금까지 사부나 사모님에게 말할 기회가 없었읍니다. 그러나 풍태사숙은 벌써 알고 있었읍니다.]

방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나의 방생 사제는 그 당시 풍노선배와 인연이 닿아 그 어르신에게 은혜를 입었었읍니다. 당신의 검법은 틀림없이 풍 노선배에게 전수받았다고 방생 사제가 말을 했읍니다. 나는 단지 풍 노선배가 그 당신 화산 기종과 검종이 싸움을 할 때 돌아가신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지금까지 건재하시군요.]

충허는 말했다.

[그 당시 무림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화산파가 자중지난이 일어났을 때 풍 노선배는 마침 강남에서 신부를 맞이하고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화산에 달려와 보니 검종의 고수들은 이미 죽어 사라진 뒤라고 합니다. 검술에 정통한 풍 노선배가 있었다면 기종은 아무래도 우위를 점할 수가 없었겠지요. 풍 노선배는 즉시 강남에서 신부를 맞이하여 혼인을 하는 일 등은 큰 속임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의 장인이 화산 기종을 부탁을 받고 시녀를 하나 사 딸로 둔갑시키고 그를 강남에 묶어 두었다고 합니다. 풍노선배는 사실 강남의 처가 집으로 가보니 그의 장인의 일가는 벌써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읍니다. 강호에서 전해오는말에 의하면 풍 노선배는 화가 치밀고 창피하여 스스로 자결했다고 합니다.]
방증은 연신 눈치를 하여 그의 입을 막으려 했다. 충허는 못본 척 계속 자기 이야기를 하였다.

[영호장문, 이 빈도는 풍 노선배를 평소 사모하고 존경해 왔읍니다. 그래서 그 어르신의 비밀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실로 죄송한 일입니다. 이렇게 그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영호장문께서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고로 영웅은 미인이 많이 따르는 법인데 한번 빠졌다가 헤어나오면 그만이지요. 그러나깊이 빠지면 절대로 아니 됩니다.]

영호충은 그가 말하는 것은 바로 영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것 을 알았다. 그의 비유는 적절하지 못했으나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이 되어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심 생각하기를, (풍태사숙께서 계속해서 사과애에 은거하고 계신 것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또 무림의 사람들을 볼 낯이 없어서 나에게 절대로 자기의 행적을 누설시키지 말라고 하였구나. 또한 절대로 화산파의 사람들을 만나보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지. 그의 일생도 퍽이나 기구하구나. 홀로 적막하게 사시니 내가 이 일이 끝나면 반드시 사과애에 가서 말벗이나 되어 주어야겠다. 난 지금 화산파의 사람이 아니니 그 어른을 만난다고 해도 그의 뜻을 크게 거역하는 것이 아닐 거야.)

세 사람이 말을 주고 받는 동안 어느새 해는 서산을 넘어 가려고 했다. 서쪽에는 노을이 빨갛게 져 있었다.
방증은 말했다.

[화산파의 악소, 채자봉 두 사람은 규화보전을 적고서 바로 마교의 십장로에게 살해되었지요. 두 사람은 그 규화보전을 습득하지도 못하고 보전은 또 마교의 수중에 들어갔읍니다. 그래서 화산파 중에는 보전 속의 무공을 배운 사람은 하나도 없지요. 그러나 두 사람은 보전의 경문의 해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무학에서 기를 중히 볼 것이냐 검을 중히 볼 것이냐 라는 편견이 생겼고, 각자가 제자들에게 자기의 견해를 논술하였지요. 그래서 화산파는 나중에 검종, 기종 두 파가 생기게 되고 동족이 동족을 살해하는 근원이 되었소. 그 보전은 길하지 못한 물건이지요.]

충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색(五色)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학고 오음(五音)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는 법이지.]

방증은 말을 했다.

[마교는 그 두 사람이 손으로 쓴 보전을 손에 집어 넣고 아마 좋은 일은 없었을겁니다. 십장로가 화산에서 참혹하게 죽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영호장문께서 말을 했다시피 임 교주는 그 보전을 동방불패에게 전해주었다고 하는데 그 둘 사이에 틈이 벌어진 것은 아마도 그 책 때문일겁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그 책은 대충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은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것이라고는 볼수 없지요. 임원도(林遠圖)가 깨우친 것보다도 못할 겁니다.]
영호충은 물어 보았다.

[임원도는 누구입니까?]

방증은 말을 했다.

[임원도는 바로 당신의 임 사제의 증조부가 되지요. 복위표국을 설립한 창시자입니다. 칠십이로 벽사검법(七十二路壁邪劍法)을 가지고 한때를 호령했던 사람이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임 선배님도 규화보전을 보았다는 말씀이십니까?]

방증은 말을 했다.

[그가 바로 도원선사 즉 홍엽선사의 제자이오.]

영호충은 깜짝 놀라며 말을 했다.

[알고 보니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

방증은 말을 했다.

[도원선사는 본래 성이 임씨였소. 환속한 직후 자기의 본성을 가졌지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알고 보니 칠십이로 벽사검보를 가지고 강호에 명성을 떨쳤던 임 선배가 바로 도원선사였군요. 정말로 뜻밖입니다.]

그날 저녁 형산성 밖의 낡은 절에서 임진남(林震南)이 죽을 때 모습이 갑자기 머리속에 맴돌았다.
방증은 말을 했다.

[도원(渡元)은 바로 도원(圖遠)으로 인해 선배선사께서 환속한 직후 자기의 원래 성을 가지고 자기의 법명(法名)을 거꾸로 하여 원도(遠圖)라는 이름을 가졌지요. 나중에 아내를 얻고 아들 딸을 낳아 표국을 세워서 이 강호에서 대단한 사업을 벌였소. 이 임 선배는 힘이 방정한 사람이라 표국자(驃局子)의 밥은 먹고 살았지만 의로운 일을 많이 하고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주었소. 그는 비록 불문을 떠났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자비로움을 베푸셨소. 사람이란 마음씨가 좋으면 바로 그 마음이 성불이지 출가를 하든 않든간에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오. 홍엽선사는 물론 이 임표두가 바로 그의 사랑하는 제자라는 것을 머지않아 알았소. 그러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그로부터 한번도 왕래가 없었다고 하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이 임선배는 화산파의 악소, 채자봉 두분의 선배로부터 규화보전의 내용을 들었다고 하는데 그 벽사검보는 내력이 어찌됩니까? 그리고 임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벽사검법은 그리 고명한 것같지 않는데 그 연유가 무엇입니까?]

방증은 말을 했다.

[벽사검보는 규화보전의 무공에서 나온 것으로 두 개는 원래 같은 보전입니다. 그러나 원래 보전의 한 부분에서 나온 것뿐입니다.]

고개를 들어 충허를 향해서 말을 했다.

[도형, 검법의 이치는 도형이 전문가이고 나보다도 많이 아시니 그 이치를 영호소협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충허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렇게 추켜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읍니다. 만약 우리가 오랫동안 사귀지 않았다면 제가 그 말을 듣고 저를 비웃는다고 화를 냈을 것입니다. 오늘날 검술에 있어서 풍 노선배를 제외하고 그 누가 영호소협을 따를 자가 있겠읍니까?]

방증은 말을 했다.

[영호소협의 검술은 비록 정묘하나 검도(劍道)에서의 학문은 아직 도형을 따르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 한가족이나 다름이 없으니 그리 겸손해 하지 마십시오.]

충허는 탄식하며 말을 했다.

[사실 빈도가 아는 것은 검도의 무한한 학문과 비교해 볼 때 좁쌀에 지나지 않습니다. 장래 인연이 닿아 풍 노선배를 말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어르신네에게 가르침을 청해야겠읍니다.]
영호충을 향해서 말을 했다.

[오늘날 임가의 벽사검법는 평범하기 짝이 없소. 그러나 임원도 선배가 이 검법으로 강호를 주름잡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오. 그 옛날 청성파의 장문인인 장청자(長靑子)는 삼협이서(三峽以西) 검법이 제일이라고 하였는데 임 선배의 손아래 무릎을 꿇었지요. 그 안에는 틀림없이 원인이 있소. 이 이치는 빈도가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소. 사실 천하에서 검을 배우는 인사라면 모두가 그러한 이치를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임 사제 집안이 망하고 부모가 참혹하게 죽었는데 금방 말씀하신 것과 관계가 있읍니까?]

충허는 말을 했다.

[바로 그렇소. 벽사검법의 명성은 대단한데 임진남의 무공이 너무나 보잘것이 없었소. 이것들 사이에는 틀림없이 우여곡절이 있을 것입니다. 추측해 보건대 임진남이 너무나 멍청하여 집안대대로 정해 내려온 무공을 배울 수가 없었던 거겠지요. 진일보 생각을 하여 이 검보가 내 수중에 있다면 틀림없이 임원도 선배의 그 휘황찬란한 검법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오. 노제, 백여년 동안 검법으로 세상에서 이름을 날린 사람은 임원도 한사람뿐이 아닙니다. 그러나 소림, 무당, 아미, 곤륜, 점창, 청성 및 오악 검파의 여러 파들은 후대 사람들에 의해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절대로 그들을 물리치려는 생각을 품지 못하고 있읍니다. 단지 임진남의 무공이 너무 미천하였읍니다. 마치 세살 난 아이가 황금을 들고 시장 바닥을 걸어가고 있는데 그 누구라도 욕심이 생겨 그 황금을 빼앗으려는 이치와 같지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임원도 선배님은 홍엽선사의 오른팔이고 또 그는 보전 소림사에서 이미 놀랄만한 무공을 배웠지 않았읍니까? 벽사검법은 어쩌면 소림사의 검법에서 약간 변화한 것뿐이고 벽사검보라는 검보가 없었지 않았을까요?]

충허는 말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벽사검보와 소림파의 무공은 현격하게 다릅니다. 검을 배운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 수 있지요. 아하, 욕심이 생겨 그 검보를 빼앗으려는 자는 많았지만 결국 청성왜자(靑城矮子) 얼굴 가죽이 제일 두꺼워 첫번째로 손을 썼읍니다. 그러나 여왜자의 얼굴 가죽은 두꺼웠지만 멍청하기 짝이 없었지요. 그 어찌 스승인 악 선생의 눈도 깜박하지 않고 앉아서 꿩먹고 알먹고 하는 사람을 따를 수가 있겠읍니까?]
영호충은 안색이 변하여 말을 했다.

[도장 도장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충허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했다.

[그 임평지라는 사람이 화산문하에 들어 갔을 때 물론 그 벽사검보를 가지고 들어갔을 것이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악 선생에게는 외동딸이 하나 있는데 그 임 사제라는 자에게 시집보낸다고 그러지요. 그렇지 않소이까? 과연 용의주도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입니다.]

영호충은 처음에 충허가 스승은 눈도 깜박하지 않고 꿩먹고 알먹고 하였다는 소리를 듣고 스승을 욕한 것으로 알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조금 뒤에 사부가 용의주도하고 생각이 깊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그날 사부가 노덕약을 분장시켜 소사매를 데리고 복주성 밖에서 주점을 차리라고 파견했던 것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사부의 생각을 몰랐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틀림없이 복위표국 때문인 것이다. 임진남의 무공은 평범한데 사부가 이렇듯이 조심스럽게 행동을 하는 것은 벽사검보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단지 사부가 쓰는 책략은 너무나 교묘하고 여창해와 목고봉처럼 강제로 빼앗으려는 것과 완전히 달랐다. 바로 또 생각을 하였다.

(소사매는 나이가 어린 처녀인데 사부는 어째서 그녀의 얼굴을 팔아 술집을 열었을까?)

여기까지 생각을 하지 등뒤에서 식은 땀이 났다. 갑자기 무엇인가 깨달았다.

(사부가 소사매를 임 사제에게 혼인시키려는 것은 사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에 이미 벌써 자기 나름대로 계획을 짜 놓은 것이다.)

방증과 충허는 그의 얼굴이 변하고 심기가 불편한 것을 보고 그는 지금까지 사부를 존경하였는데 이 말이 그의 체면을 손상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증은 말을 했다.

[이 말들은 소승과 충허도형이 잡담을 나누면서 아무렇게나 추측한 것에 불과할 뿐이오. 스승은 광명정대한 사람이고 무림 중에서도 군자의 칭호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과 같은 소인배들이 어찌 군자의 생각을 헤아리기나 할 수 있겠소?]

충허는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영호충은 마음이 혼란에 휩싸였다. 충허의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다. 그러나 내심 깊은 곳에서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서 또 생각을 하였다.

(맞다. 원래 임원도 선배는 스님이었다. 그러므로 상양항 그 집에는 불당이 하나 있었는데, 그 검보는 가사에 쏀져 있었다. 추측해 보건대, 그는 화산에 악소 채자봉 두 선배에게 규화보전을 듣고 한글자 한글자를 마음속에 기억하여 저녁에 가사에 적어 놓은 것이다.)

충허는 말을 했다.

[지금에 이르러 규화보전에 기재되어 있는 무학의 정도는 마교의 수중에 약간 있고 스승인 악 선생의 수중에도 좀 있읍니다. 임사제가 화산파에 들어갔으므로 좌냉선이 있는 방법을 동원하여 악 선생을 찾아가 귀찮게 군 것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지요. 첫번째는 물론 그 벽사검보를 손아귀에 집어넣기 위함이지요.]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도장의 추측이 맞습니다. 그 보전의 원서는 보전 소림사에 있는데 좌냉선이 이 일을 안다면 아마 보전 소림사에 가서 귀찮게 굴 것입니다.]

방증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했다.

[보전 소림사에 있는 규화보전은 이미 훼손되었으나 염려할 바가 못되오.]

영호충은 이상해서 말을 하였다.

[훼손되다니요?]

방증은 말을 했다.

[홍엽선사가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을 소집하여 이 보전의 전후 관계를 설명하고 화로 속에 던져 버렸지요.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이 무학의 비급은 정묘하고 대단한 것인데 그 중에 중요한 곳은 이 비급을 쓴 사람이 적절하게 설명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난제들을 남기어 특히 첫번째 과문을 통과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통과할 수 없으니 후세에 남긴다면 무림의 화근이 될 것이다.' 그는 유서를 써서 숭산분사(崇山本寺)의 방장에게 보내어 이에 관해서 설명을 하였읍니다.]

영호충은 탄식하며 말을 했다.

[홍엽선사는 실로 대단한 인물이십니다. 만약 이 세상에 규화보전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이 많은 변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내심 생각하였다.

(규화보전이 없었다면 벽사검법이 없었을 것이고 사부는 소사매를 임 사제에게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임 사제는 화산파의 문하에 들어올 수 없었으며, 소사매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자기의 생각을 고쳤다.

(나 영호충은 품행이 단정치 못하고 좌도의 인사들과 사귀고 있는데 그 규화보전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사내대장부가 씨앗을 뿌렸으면 자기가 거두어야지 남을 탓할 필요는 없다.)
충허가 말을 했다.

[다음달 십오 일좌냉선이 오악검파를 소집하여 숭산에서 장문인을 천거한다는데 영호소협께서는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 무슨 천거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있읍니까? 장문의 자리는 좌냉선의 것이겠지요.]

충허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영호소협께서는 이의가 없다는 말씀이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숭산, 태산, 형산, 화산 네 파가 이미 결정한 일인데 나 항산파 혼자서 어찌 막을 수 있겠읍니까? 설령 반대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쓸모가 없읍니다.]

충허는 머리를 흔들며 말을 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태산, 형산, 화산파는 숭산파의 위세에 밀려서 감히 공공연하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꿀먹음 벙어리처럼 따라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방증은 말을 했다.

[소승의 견해로는 소협께서 정연한 논리로 오파의 합병을 반대 한다면 모두가 숭산파에 승복을 하지 않을 것이오. 만약 저지할 수 없고 오파가 합병된다는 것이 기정 사실이 된다면 장문의 자리는 무공으로써 결정을 할 것입니다. 소협께서 있는 힘을 다하여 겨룬다면 검법에 있어서는 좌냉선을 물리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예 장문인의 자리를 수중에 넣으시오.]

영호충은 깜짝 놀라며 말을 했다.

[전...... 전...... 어찌 제가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겠읍니까? 저는 절대로 그렇 수 없읍니다.]

충허는 말을 했다.

[방장대사와 저는 오랫동안 상의를 하였읍니다. 노제는 성격이 직선적이고 자유분방하여 마음만 먹으면 아무리 큰일이라도 할 수가 있읍니다. 그렇지만, 마교 좌도의 인사들과 사귀고 있으니까 당신이 만약 오악파의 장문인이 된다면 사실 오악파의 문규는약간은 느슨해 질테이고, 제자들도 정신이 헤이해질터이니 반드시 무림의 복이라고는 할 수 없읍니다......]

영호충은 껄껄 웃으며 말을 했다.

[도장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단속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데 영호충은 술을 좋아하고 행동이 단정치 못한 사람입니다.]

충허는 말을 했다.

[행위가 단정치 못해도 피해는 그리 큰 것이 못 되고 술을 좋아해 그 속에 빠진다 해도 그리 많은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야심이 너무 크면 많은 사람을 해치게 되지요. 노제가 만약 오악 장문이 된다면 첫째로는 오악파의 선배들과 제자들을 못살게 굴지 않을 것이오. 두번째로는 무력을 동원하여 마교를 멸하려 들려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우리 소림, 무당을 삼키려 하지 않을 것이오. 세째로는 아미, 곤륜, 여러파를 집어 삼키려는 마음도 없을 것입니다.]

방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충허도형과 소승이 이렇게 계획을 하는 것은 비록 강호를 위하는 일이지만 우리 개인적인 욕심도 많이 포함되어 있읍니다.]
충허는 말을 했다.

[터놓고 진실을 말한다면 우리들이 이 항산에 온 것은 첫째로 노제 체면 좀 세워줄까 해서이고, 둘째로는 강호를 좀 편안케 하기 위함이오.]

방증은 합장을 하며 말을 했다.

[아미타불, 좌냉선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된다면 그 피바다를 이루는 피비린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오.]

영호충은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했다.

[두분 선배께서 이렇게 분부하시니 저는 응당히 승낙을 해야 옳은 일입니다. 두분 어르신께서도 알다시피 저는 막 되먹고 보잘것 없는 사람입니다. 항산파의 장문인을 맡는 그 자체가 이미 제 분수를 넘어서는 처사입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상황하에서 항산의 장문을 맡게 되었읍니다. 만약에 다시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려고 한다면 천하의 영웅들은 비웃고 손가락질을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어찌 제가 그 일을 맡겠읍니까? 이렇게 하시지요. 저는 실로 오악파의 장문인을 감당 할 수 없읍니다. 그런 삼월 십오일날 저는 틀림없이 숭산에 가서 한바탕 휘저어 놓을 것입니다. 어떤 큰일이 닥친다해도 좌냉선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지 못하도록 하겠읍니다. 이 영호충이 그일을 성사시키지 못한다해도 훼방을 놓겠읍니다.]

충허는 말을 했다.

[훼방을 놓는다면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때가 되면 틀림없이 당신은 장문인이 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는 절대로 물리치지 마시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허는 말을 했다.

[당신이 만약 좌냉선과 겨루지 않는다면 그가 장문인이 되겠지요. 그가 장문인이 되면 살생의 권한이 주어지게 되니 첫 번째로는 틀림없이 당신이 표적이 될 것입니다.]

영호충은 그 말에 동의를 하고 숨 한번 내쉬더니 말을 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겠지요.]

충허는 말을 했다.

[설사 당신이 가버린다고 해도 그는 당신을 잡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 항산파의 문하의 제자들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오. 정한사태는 당신에게 그 많은 제자들을 부탁했는데 당신은 제자들이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겠소?]

영호충은 손을 내밀어 난간을 `탁' 치며 큰 소리로 말을 했다.

[그럴 수는 없지요.]

충허는 또 말을 했다.

[그때가 되면 당신의 사부, 사모, 사제, 사매들도 틀림없이 좌냉선이 가만 놔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몇년 사이에 그들은 하나하나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쳐다보고만 있겠소?]

영호충은 내심 오싹한 기분이 들며 전신에 모골이 송연하였다.
뒤로 두발짝 물러나가 방증과 충허, 두 사람을 향해서 깊게 호흡을 한 다음에 말을 했다.

[두분 선배님께서 가르침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노력도 해보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폐를 끼칠 뻔했읍니다.]
방증, 충허 두 사람은 예로 답하였다.
방증이 말하였다.

[삼월 십오일 소승과 충허 도형은 제자들을 이끌고 숭산에 가서 영호 소협을 도울 것입니다.]

충허는 말을 했다.

[그들 숭산파가 만약 어떤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우리 소림, 무당 두 파는 손을 써서 제지할 것입니다.]

영호충은 크게 기뻐하며 말을 했다.

[두분 선배님께서 오신다면 좌냉선은 틀림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못할 것입니다.]

세 사람은 숙의를 마쳤다. 비록 앞날은 험난하였으나 이미 계획이 서지자 마음은 홀가분하였다. 충허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러면 우리는 그만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장문인이 늙은이 두 사람을 데리고 어디로 사라졌나 모두들 걱정을 하고 있겠소이다.]

세 사람은 일제히 몸을 돌려 막 일곱여덟 발자국을 가다가 갑자기 동시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영호충은 일갈을 했다.

[누구냐?]

그는 다리 저쪽에서 많은 사람의 호흡소리를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틀림없이 현공사 좌측 영귀각(靈龜閣)에 사람이 매복하여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일갈소리가 멈춤과 동시에 `팍팍' 하고 소리가 나더니 영귀각의 창문이 동시에 떨어져 나갔고 창에는 수십 자루의 활이 세 사람을 겨누고 있었다. 바로 이때 몸 뒤의 신사각(神蛇閣)의 창문도 나가 떨어지더니 창구에는 역시 수십 사람의 활이 세 사람을 조준하고 있었다. 방증, 충허, 영호충 세 사람은 모두가 무림중의 최고 고수로 비록 그들을 겨누고 있는 활이 강한 활일지라도 또한 창 뒤에 매복하고 있는 궁수들이 실력이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필경 세 사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단지 그들의 몸은 두 누각 사이에 있는 천교 위에 있어서 아래는 수만길 떨어진 깊은 계곡이라 밑으로 떨어질 수도 없고 다리는 수척의 넓이라 움직일 여유도 없었다. 더우기 세 사람은 몸에 병기를 휴대하지 않아서 이런 돌발사태를 맞자 깜짝 놀랐다.
영호충은 주인으로서 몸을 옆으로 비키더니 두 사람 앞을 가로막고 일갈을 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아! 어찌 숨어서 나타나지 않느냐!]
한 사람의 말이 들려왔다.

[쏘아라!]

창에는 열일곱여덟 줄기의 검정색 물줄기와 같은 활이 날아왔다. 이 물줄기는 활끝에서 나온 듯했는데 원래 이것은 활이 아니라 장치가 되어 있는 물총으로 물을 쏘는데 사용되는 것이다. 물줄기는 하늘로 향하더니 색깔은 새까맸으며 저녁노을을 받아서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영호충 등 세 사람은 바로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썩은 시체 냄새 같기도 하고 썩어 문들어진 생선냄새 같기도 하였다. 그 냄새를 맡자 견딜 수 없었고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십여 줄기의 물줄기는 하늘에서 빗물로 화해 아래로 뿌려졌다. 그 빗물이 그 천교의 난간에 떨어지니 순식간에 나무 난간은 부식이 되어 작은 구멍이 여기저기 생겼다. 방증과 충허는 견문이 넓고, 보고 들은 것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이런 무서운 독물은 처음보는 것이었다. 만약 날아오는 것이 화살이었다면 그 세사람의 수중에 병기는 없었지만 충분히 막아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보지도 못한 독물은 한방울이라도 몸에 닿기만 한다면 몸은 금방 썩어 문들어질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았다. 상대방의 안색은 변하고 또한 공포의 빛이 역력하였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무림의 이대 장문인의 눈빛속에 공포의 빛이 역력하다면 그것은 실로 범상치 않은 일인 것이다. 한바탕 독물이 떨어지더니 창 뒤의 사람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독물은 하늘을 향해서 쏜 것이다. 만약 세 사람의 몸에 쏘았다면 어찌 되겠는가?]

열일곱여덟 자루의 활이 차차 아래로 향하더니 똑바로 세 사람을 겨누었다.
천교의 길이는 십여장으로 좌측끝은 영귀각과 연결되어 있고, 우측끝은 신사각과 연결되어 있다. 두개의 누각에는 독물의 활이 매복되어 있으니 만약에 양쪽에서 동시에 쏜다면 아무리 무공이 높다하더라도 살아날 수가 없는 것이다. 영호충은 이 사람의 음성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그자의 목소리를 기억해내고 말을 했다.

[동방 교주께서는 너무나 멋진 선물을 하는구료.]

영귀각에 잠복하여 있던 사람은 바로 동방불패가 선물을 갖다주라고 파견한 황면존자 가포였다. 가포는 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영호공자는 귀도 밝으시오. 저의 목소리를 알아차리니 말이오.
우리가 비록 비굴한 방법으로 당신들을 제압하였지만 똑똑한 사람은 눈앞의 손해를 보지 않는 법이오. 영호공자께서는 졌다고 인정하는 것이 어떻소?]

그는 스스로가 악랄한 수법을 썼다고 인정하여 영호충의 비난의 화살을 막고 나섰다. 영호층이 기를 단전에 모으고 낭랑하게 웃자, 산계곡이 찌렁찌렁 울렸다.

[나와 소림, 무당 두분의 선배님과 이곳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어서 금일 산에 오는 사람은 모두 좋은 친구로 여기고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았소. 그래서 가형(賈兄)의 함정에 빠졌소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졌다고 인정을 해야지 다른 방도가 있겠소.]

가포는 말을 했다.

[거 참 결정을 잘 하였소. 동방 교주께서는 평소 두분의 무림 선배에 대해서 존경해왔고 영호소협에 대해서도 귀엽게 여기고 있었소. 또한 임소저의 체면을 봐서 영호공자에게 무례함을 범하지 않을 것이오.]

영호층은 콧방귀를 뀌더니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방증과 충허는 영호충과 가포가 말을 주고받고 있을 때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빈틈을 찾아 몸을 걸고 일격을 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앞뒤로 물총이 자기들을 겨누고 있었고,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쓰면 십여 자루의 물총은 휩쓸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의 하나라도 잘못되어 그중 한자루의 물총이 독물을 뿜어대면 세 사람은 곧바로 목숨을 보전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고 눈빛 속에서 경거망동할 수 없다는 것을 읽을 수가 있었다.
가포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영호공자께서 졌다고 인정을 하셔 이로써 쌍방이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으니 애당초 제가 바랐던 것입니다. 나와 상관운 형제가 하산할 때 동방 교주는 분부하시길 공자와 소림사 방장, 무당 장문도장을 동시에 흑목애에 오셔서 며칠동안 바람이나 쏘이고 가시라고 전하였읍니다. 마침 세 사람이 같이 있으니 잘 되었읍니다. 우리 지금 곧바로 가시는게 어떻습니까?]

영호충은 또 콧방귀를 뀌었다. 세사람이 이 천교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가포, 상관운을 제압하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라고 생각하였다.
가포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세분의 무공은 너무나도 높습니다. 만약에 가시다가 중도에서 생각이 바뀌어 흑목애에 가시지 않겠다면 우리들은 당해 낼 도리가 없읍니다. 그래서 감히 세분의 우측 손을 빌릴까 합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우측 손을 빌리다니?]

가포는 말을 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세분께서 스스로 우측 팔뚝을 자르신다면 우리들은 한결 마음을 놓을 수가 있지요.]

영호충은 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동방불패는 우리 세 사람의 무공과 검술에 겁을 내어 이런 함정을 파놓았고만. 우리가 스스로 우측 팔을 자르면 병기를 사용 할 수 없으니 아무런 걱정이 없겠구만.]

가포는 말을 했다.

[걱정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임아행에게는 공자와 같은 강력한 사람이 없어지게 되니 세력이 많이 약화되겠지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귀하께서는 솔직 담백하시군요.]

가포는 말을 했다.

[저는 소인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크게 하더니 말을 했다.

[방장대사, 장문도형 두분께서는 팔 한쪽을 자르시겠읍니까? 아니면 기꺼이 생명을 여기에 던지겠읍니까?]

충허는 말을 했다.

[좋다. 동방불패가 팔뚝을 빌려달라고 하니 우리들은 손톱을 그에게 빌려주어야겠구만. 그러나 우리이게 병기가 없으니 손을 자르려 해도 어렵구만.]

어렵다는 말일 끝나자마자 창구에서 차가운 빛이 번쩍하더니 강권(鋼圈)하나가 날아왔다. 이 강권의 직경은 한척 정도로 끝이 날카롭고 중간에 손잡이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짧은 병기였으며 만약 하나가 더 있다면 건곤권(乾坤圈)류였다.
영호충은 제일 앞에 서 있었으므로 손을 내밀어 그 병기를 받았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씁쓸히 웃었다. 내심 가포라는 자는 용의주도하다고 생각하였다. 강권의 가장자리는 날카로와서 팔뚝을 자를 수 있으나 아무리 신속하게 휘두른다해도 병기가 너무 짧기 때문에 날아오는 물화살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가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약속을 했으니 빨리빨리 행동하시오. 시간을 끌어서 구원을 받을 생각은 마시오. 내가 하나, 둘, 셋까지 세겠소. 만일 팔을 자르지 않는다면 독물이 일제히 나갈 것이다. 하나!]

영호충은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내가 앞으로 달려갈테니 두분께서는 뒤를 따르시오.]
충허는 말을 했다.

[안되오.]

가포는 외쳤다.

[둘!]

영호충은 좌측 손으로 강권을 치켜들었다. 내심 생각하기를, (방증대사와 충허도장은 나의 손님이니 절대로 이 두분에게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가 `셋'하고 소리치자마자 강권을 내던지고 소맷자락을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나가면 독물은 내 몸에 쏟아지고 그 두분은 몸을 빠져나갈 기회가 있을 것이다!)

가포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준비하시오. 나는 셋을 부를 것이오.]

갑자기 영귀각 지붕 꼭대기에서 청순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

곧 이어서 마치 한덩어리의 녹색의 구름이 지붕 꼭대기에서 날아와 영호충의 몸 앞에 섰다. 바로 영영이었다.
영호충은 급히 외쳤다.

[영영, 뒤로 비켜나시오!]

영영은 좌측 손을 내밀어 흔들더니 외쳤다.

[황면존자는 강호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인데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십니까?]

가포는 외쳤다.

[이건...... 아가씨 아가씨...... 는 물러나시오. 독물을 맞지말고.]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십니까? 동방 아저씨는 당신과 상관 아저씨보고 예물을 갖다주라고 했는데 어째서 숭산파의 좌냉선의 뇌물을 받고 이 항산파의 장문에게 무례한 짓을 하시오.]
가포는 말을 했다.

[누가 내가 좌냉선의 뇌물을 먹었다고 했느냐? 나는 동방 교주의 밀령을 받아 영호충을 잡아 데려가려 왔다.]

영영은 말을 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십니까? 교주의 흑목령(黑木令)은 여기에 있읍니다. 교주의 명령이십니다. 가포는 죄가 있는 자이니 모든 교파의 사람들은 보는 즉시 잡거나 죽이는 사람에게 많은 상금을 줄것이다.]

말을 하면서 우측 손을 높이 쳐들었다. 손에는 과연 한개의 흑목영패(黑木領牌)가 쥐여져 있었다.
가포는 대노하여 일갈을 했다.

[쏘아라!]

영영이 말을 했다.

[동방 교주께서 나를 죽이라고 했소이까?]

가포는 말을 했다.

[너는 교주의 명령을 거역하였다......]

영영은 외쳤다.

[상관 아저씨, 당신이 반도인 가포를 잡는다면 당신을 청룡당장로(靑龍堂長老)로 승격해 드리겠읍니다.]

상관운은 스스로 무공이 가포보다 높다고 자부하고 또한 일월신교에 들어 온 것도 그보다 더 오래되었는데, 가포는 청룡당의 장로이고, 자기는 백호당장로(白虎堂長老)이라 서열에 있어서 그보다 뒤져 본래부터 가포에 대해서 약간의 감정이 있었다. 영영이 외치는 소리를 듣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영은 전임 교주의 딸이고 지금 임 교주가 강호에 다시 나타나 교주의 자리에 다시 오르려고 계획을 하고 있다. 동방교주는 비록 지금까지 임 소저에게 대단히 잘 대해 주었지만 앞으로는 크게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하들을 지휘하여 영영을 향해서 독물을 쏘으라고 명령은 할 수가 없었다. 가포는 또 외쳤다.

[쏘아라!]

그러나 그의 부하들은 영영을 천신(天神)으로 여기고 있었고, 또한 그녀의 손에는 흑목령이 쥐어져 있어서 감히 무례하게 굴 수 없었다. 이렇게 대치하고 있을 때 영귀각에서는 갑자기 사람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불이다. 불이야!]

붉은 빛이 번쩍이면서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바로 누각 밑에서 불이 난 것이다. 영영은 크게 외쳤다.

[가포, 너는 지독한 놈이구나 어째서 너의 부하들을 태워서 죽이려 하느냐?]

가포는 화가 나서 말을 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느냐?]

영영은 외쳤다.

[천추만재, 일통강호(天秋萬載一統江湖) 일월신교의 교중들이여 동방 교주의 명령이시다 빨리 내려가 불을 꺼라.]

말을 하면서 앞으로 질풍처럼 달려나갔다. 영호충, 방증, 충허 세 사람도 기회를 틈타 달려나갔다. 영영이 외친 것은 일원신교의 암호였다. 더우기 불이 일어나자 그 혼란한 틈을 타 교중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영호충 등 세 사람은 이미 비교를 지나 창문을 통해서 누각 안으로 들어섰다.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독수를 뿌리는 화살은 그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영호충이 진무대제(眞武大帝)불상 앞에 이르러 촛대를 잡고 우측 팔을 휘두르니 초는 날아갔다. 그 독물은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어 한 방울이라도 몸에 닿기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할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 앞에 방증, 충허 두 사람이 팔과 다리를 써서 삽시간에 이미 일곱여덟 사람을 처리하는 것을 보자 그는 촛대랄 들어 검으로 여기고 한 사람의 목덜미를 찌르고 순식간에 여섯 사람을 죽였다.
가포와 상관운이 이번 항산에 올 때 모두 사십 개 상자를 휴대해 가지고 왔는데 한 상자마다 두 사람이 들었으므로 총 팔십 명의 사내들을 데리고 왔다. 이 사내들은 일월신교 중에서도 힘이 있는 자들로 무공이 대단하였다. 그중 사십 명은 현공사 사방에 숨어 있었고, 그 나머지 사십 명은 활을 가지고 신사각, 영귀각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영호충 등 세 사람은 순식간에 가포 수하에 있는 이십여 명을 깨끗하게 쓸어버렸다.
가포는 손에 한쌍의 판관필을 쥐고 있었으며, 한 자루는 길고 한 자루는 짧은 쌍검을 가지고 있는 영영과 맞붙고 있었다. 영호충과 영영이 내왕을 할 때 처음에는 목소리만 들었을 뿐 실제로 보지 못했고, 그 후로 그의 위세에 여러 군웅들이 쩔쩔매고 따르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날 그녀가 친히 소림제자를 죽이고 방생대사와 싸움을 할 때 그녀의 그림자만 봤을 뿐 지금까지 처음으로 사람과 직접 싸우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대단히 가볍고 사뿐해서 금방 이쪽으로 왔다 저쪽으로 갔다. 검초로 사람을 공격할 때 손놀림이 대단히 이상했으며, 장검과 단검은 혹은 허초를 쓰며 혹은 실초를 쓰며 극히 빨랐다. 비록 한 사람이 어른거렸지만 영호충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 사람이 마치 안개 속에 있는 듯하였다. 가포가 사용하는 판관필은 상당한 무게를 가졌으며 한번 휘두를 때마다 채찍소리가 났다. 영영의 쌍검은 시종 그의 판관필과 부딪치지 않았다. 가포의 일초 일초식은 영영 몸의 요혈을 향했다. 그러나 약간 차이로 적중시키지는 못했다.
방증대사는 일갈을 했다.

[이 못된놈, 빨리 병기를 버리고 항복하여라.]

가포는 눈 앞에 전개되는 상황이 이미 죽음뿐이고 살아날 가망이 없음을 보고 두개의 판관필을 하나로 모으고 질풍처럼 영영의 목덜미를 향해서 들어갔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영영이 그 일초식을 피할 수 없을까봐 손에 잡고 있던 촛대를 날렸다. 촛대는 쓱쓱 소리를 내면서 가포의 두손 완맥부에 꽂혔다. 가포의 손가락의 힘이 빠지고 판관필이 손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손가락을 들어 영호충을 향해서 달려왔다.
방증대사는 옆에서 튀어 나오더니 팔을 들어 그의 두개의 장을 잡았다. 가포는 있는 힘을 다하여 몸부림쳤으나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즉시 좌측발을 날리어 방증대사의 하음(下陰)을 걷어찼다.
방증이 한숨을 쉬더니 두손을 놔버리자 가포는 바깥을 향해서 날아갔다. 문을 뚫고 지나가더니 처절한 외침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취령산 깊은 계곡으로 떨어졌다. 영호충은 영영을 향해서 웃더니 말을 했다.

[알맞게 오셔서 저를 구해주셨군요.]

영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했다.

[결론은 제가 제때에 왔군요.]

소리를 높여 외쳤다.

[불을 다 껐느냐?]

누각 아래에서 응답이 왔다.

[녜.]

알고 보니 누각 아래에서 불이 난 것은 가포의 심기를 흩어 놓으려고 풀에 불을 약간 붙였을 뿐이고 진짜 불이 난 것은 아니었다.
영영은 창문으로 걸어가더니 맞은편 신사각을 향해서 외쳤다.

[상관 아저씨, 가포는 항명을 하여 스스로 화를 자초하였읍니다. 당신은 부하들을 이끌고이쪽으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겠읍니다.]

상관운은 말을 했다.

[아가씨, 아가씨의 말을 믿을 수 있겠지요.]

영영은 말을 했다.

[나는 일월신교의 역대 신마(神魔)에게 맹세를 하겠읍니다. 상관께서 내 명령을 듣기만 한다면 앞으로는 절대로 해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만약에 이 맹세를 깨뜨린다면 나는 삼시충(三尸蟲)에게 먹혀서 죽을 것입니다.]

이것이 일월신교의 제일 중요한 맹세였다. 상관운은 듣자마자 마음이 놓여 이십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왔다. 영호충 등 네 사람이 영귀각에 내려가보니 노두자, 조천추 등 수십 명이 이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영호충은 영영을 향해서 말을 했다.

[당신은 어떻게 가포 그자가 이곳에서 급습을 하려는 것을 아셨읍니까?]

영영은 말을 했다.

[동방불패가 무슨 심보로 당신에게 선물을 보냈겠읍니까? 나는 처음에 사십 개 상자 안에 무슨 흉계가 숨겨져 있을까 걱정을 하였읍니다. 나중에 가포의 행동을 보았읍니다. 사람들을 이끌고 이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내가 의심을 하였지요. 그래서 노선생 그들을 데리고 함께 이쪽에 와 보았읍니다. 그 취병산 아래에서 지키고 있는 밥통들은 나보고 산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였지요. 그래서 그들의 마각이 노출되었지요.]

노두자, 조천추 등은 껄껄껄 웃었다. 상관운은 고개를 숙이고 얼굴에는 창피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영호충은 탄식을 하며 말을 하였다.

[내가 항산파 장문인을 맡는 첫날에 무능한 추태를 보였읍니다.
동방불패가 여기까지 사람을 파견하였다는 것은 절대로 좋은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대비하지 않았읍니다. 내가 죽었다면 그것은 마땅한 일이나 만약 방증대사와 충허도장이 그 무서운 흉계에 걸렸다면...... 아이고......]

말을 하면서 계속 고개를 흔들었다.
영영은 말을 했다.

[상관 아저씨 앞으로 당신은 나를 따를 것입니까? 아니면 동방불패를 따를 것입니까?]

상관운은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는 동방교주를 배반해야 될지 남감한 처지에 놓였다.
영영은 말을 했다.

[신교의 십장로 중에서 여섯 사람이 나의 아버지가 준 삼신단을 먹었읍니다. 자 여기에 한 알이 있는데 잡수시겠읍니까? 안 잡수시겠읍니까?]

말을 하면서 손바닥을 내밀었다. 한 개의 빨간 알이 그녀의 손에서 대굴대굴 굴렀다.
상관운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가씨, 아가씨 말씀대로 본교 십장로 중에 이미 여섯 장로가...... 여섯 장로가......]

영영이 말을 했다.

[그렇소. 당신은 지금까지 아버지를 위해서 일을 하지 않았지만. 요 몇년 동안 동방불패를 따라다닌 것이 결코 아버지는 배반했다고는 볼 수가 없읍니다. 만약 당신이 항복을 하신다면 나는 중히 여길 것이며 아버지도 다른 눈으로 보실 것입니다.]

상관운은 사방을 쳐다보고 내심 생각을 하였다.

(내가 만약 항복을 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즉시 목숨이 달아날 것이다. 십장로 중에서 여섯 사람이 임 교주에게 귀순을 하였다고 하는데 나 혼자서 동방교주에게 충성을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즉시 앞으로 나오더니 영영의 손에서 삼시충 신단을 받아 입속에 넣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상관운은 아가씨의 은혜를 받았으므로 앞으로는 명령을 따르고 위반하지 않겠읍니다.]

말하면서 고개를 숙여 절을 하였다.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앞으로 우리는 같은 한배를 탄 사람입니다. 예를 차릴 필요는 없읍니다. 당신 수하의 이 친구들은 당신을 따르겠지요.]
상관운은 몸을 돌려 이십여 명의 부하를 쳐다보았다. 우두머리가 이미 항복을 하고 삼시충의 신단을 복용하는 것을 보고 즉시 영영을 향해서 땅에 엎드리며 말을 했다.

[우리들은 기꺼이 성고의 명령에 따르고 죽음도 불사하겠읍니다.]

이때 군웅들은 이미 불을 다 껐고 영영이 상관운을 제압하자 모두 축하를 하였다. 상관운은 일월교 중에서 무공이 높고 지위 또한 높아서 영영에게 귀순을 했다는 것은 임아행이 교주의 자리를 탈환할 때 실로 큰 힘이 되는 것이다.
방증과 충허는 일이 끝나자 즉시 그들과 헤어져 하산을 하였다.
영호충은 수십리 바깥까지 나가 그들을 환송하였다.
영영과 영호충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견성봉으로 돌아왔다. 영영은 말을 했다.

[동방불패라는 자는 정말 악독하기 그지없읍니다. 좀전에도 당신이 친히 보았지요. 나의 아버지와 상아저씨는 지금 교중의 친구들을 설득하고 그들을 규합하고 있는 중입니다. 순순히 항복을 한다면 별일이 없겠지만귀순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 하나 처치를 하고 동방불패의 세력을 꺾고 있읍니다. 동방불패는 이미 반격을 전개하여 가포와 상관운을 파견하여 당신에게 손을 썼읍니다. 방금 일어난 일이 하나의 증거입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상 아저씨의 행적이 은밀하므로 동발불패는 그들을 찾을 수 없읍니다. 만약 그들이 당신을 해쳤다면 나는...... 나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얼굴이 약간 빨개지더니 고개를 돌렸다.
이때 노을이 붉게 지고 저녁바람은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휘날리게 했다. 영호충은 그녀의 흰눈 같은 목덜미를 보자 마음이 달아올랐다. 내심 생각하를, (그녀의 나에 대한 정은 이 천하가 모두 알고 있는데, 동방불패는 나는 잡아가 그녀에게 협박을 하고, 다음에 그녀의 아버지에게 협박하려고 했을 것이다. 조금 전 현공사 천길 낭떨어지 다리위에서 그녀는 독물이 몸에 닿으면 죽는 줄 알면서도 내 앞에 막아서서 내가 상처나 받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두 팔을 내밀어 그녀의 어깨를 껴안으려고 했다. 영영은 피식 웃더니 몸을 살짝 돌려 허공을 껴안은 격이 되었다. 그는 검법에 정통하고 내력을 당할 자가 없었지만, 손놀림과 발놀림, 등의 공력은 약간 뒤떨어졌다.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한파의 장문 대종사가 이렇게 예의가 없읍니까?]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이 세상의 장문인 가운데 항산파의 장문인이 제일 멍청하고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는군요.]

영영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왜 당신은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소림 방장, 무당 장문조차도 예의를 다 하는데 누가 감히 당신을 얕봅니까? 당신 사부가 화산 문파에서 당신을 내쫓았다고 이를 영원히 맘에 두지 마시고 자격지심을 버리십시오.]

영영의 이 말은 영호충의 심중을 찔렀다. 그의 성격은 활달했으나 사문에서 축출당하자 내심 창피하고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숙였다.
영영은 그의 손을 끌어 당기며 말을 했다.

[당신은 항산파의 장문인입니다. 이미 천하 영웅들 앞에서 기개를 떨치었읍니다. 옛날 부터 항산, 화산 양파는 똑같은 명성을 지녔읍니다. 정정당당한 항산파의 장문이 화산파의 제자만 못하다는 것입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그런 말을 해주니 고맙소. 나는 단지 비구니의 우두머리가 된것이 쑥스럽고 난감하기도 하고 그렇소이다.]

영영은 말을 했다.

[오늘 수천 명의 영웅 호걸들이 항산파의 휘하에 들어왔읍니다.
오악검파 중에서 명성이나 세력을 말할 것 같으면 오직 숭산파만이 당신과 겨룰 수 있을 뿐 태산, 형산, 화산 세 파가 어찌 당신을 따를 수 있겠읍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 일에 관해서는 아직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못 했소.]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무엇이 감사하다는 말입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당신은 내가 비구니의 우두머리가 되어 체면이 서지 않는 것을 염려하여 휘하의 사람들을 파견하여 항산에 귀속토록하였읍니다.
만약 성고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이들 방탕한 강호의 친구들이 어찌 비구니들과 동문이 되겠다고 나섰겠읍니까? 그리고 또한 나의 명령을 따르겠읍니까?]

영영은 입을 막으면서 웃더니 말을 했다.

[그것을 꼭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들의 맹주가 되어 소림사를 공격했을 때 모두들 당신을 따르지 않았읍니까?]
두 사람음 말을 주고 받으면서 주암에 가까이 왔다. 은은하게 군호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영은 발걸음을 멈추고 말을 했다.

[우리가 여기서 그만 헤어지기로 해요. 아버지의 일이 끝나면 당신을 보러 다시 오겠어요.]

영호충은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더니 말을 했다.

[흑목애로 가시는 겁니까?]

영영은 말을 했다.

[녜.]

영호충은 말을 했다.

[나도 당신과 함께 가겠소.]

영영은 눈빛은 기쁨으로 이글거렸다. 그러나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왜 내가 함께 가면 안 되오?]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은 오늘 막 항산파의 장문에 취임하였는데 일월교의 일을 처리하러 간다면 항산파의 새로운 장문인은 옳은 일을 한다고 하나 좀 지나치지 않을까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동방불패를 상대하는 것은 위험천만의 일인데 그것을 나몰라라하고 당신이 그 위험한 데를 가도록 어찌 보고만 있겠소?]
영영은 말을 했다.

[그 강호의 사내들은 항산 별원에 있지만 그들이 항산파의 아가씨들에게 무례한 짓을 안 한다고는 보장할 수 없읍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당신이 명령만 내린다면 그들은 아무리 담이 크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그런 짓은 못할 것이오.]

영영은 말을 했다.

[좋습니다. 당신이 기꺼이 나와 함께 가시겠다고 하니 나는 아버님을 대신하여 감사드리겠읍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겸손할 필요가 있겠읍니까?]

영영은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나는 당신에게 무례하게 굴 것입니다. 그때 가서 나를 탓하지 마세요.]

한참 동안 가다가 영영은 대답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당신이 일월교에 들어오기를 거부하여 당신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을 하면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나는 비록 일월교에 속하지는 않지만 당신과는 남남이 아닙니다. 설사 아버지가 나를 꽁꽁 묶어서 쫓아낸다 할지라도 나는 막무가내로 달려들 것입니다.]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도 당신이 도와주러 온다는 것을 안다면 마음속으로는 퍽 기뻐하실 것입니다.]

두 사람은 견성봉에 올라 각각 제자들에게 분부를 하였다. 영호충은 여러제자들에게 열심히 무공을 쌓으라고 명령을 하고 자기는 영영과 함께 일을 처리한 후 돌아온다고 말을 하였다. 영영은 군호들에게 며칠이 지난 후 견성봉에 오르는 자가 있으면 좌측 발을 내딛으면 좌측 발을 우측 발을 내딛으면 우측 발을 두발을 다 내딛으면 두발 모두 싹둑 잘라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다음날 새벽 영호충과 영영은 여러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상관운과 이십 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흑목애를 향해서 진격을 하였다.

흑목애는 하북(河北)의 경내에 있었다. 항산에서 동쪽으로 하루를 채 못가자 평정주(平定州)에 도착을 하였다.
영호충과 영영은 각각 두 대의 큰 수레를 타고 갔다. 수레의 휘장을 아래로 축 늘어뜨려 동방불패에게 들키지 않도록 했다.
그날 저녁 영영과 영호충은 평정의 객주집에서 묵었다. 그 지역은 일월교의 총단과 그리 멀지 않아서 성 안에는 퍽이나 많은 교중들이 왔다갔다 하였으며, 상관운은 네 명의 부하를 파견하여 객주집 앞뒤를 지켜 잡다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저녁 식사를 할 때 영영은 영호충과 함께 술을 마셨다. 방 안의 불빛이 어른거리며 영영의 얼굴에 비치자 영영의 얼굴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영호충은 몇 잔의 술을 마시고 말했다.

[당신 아버님이 그날 소림사에서 그가 현세의 무림 호걸 중에 세 사람하고 반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그중에서는 동방불패가 그 으뜸이라고 하셨소. 이 사람은 당신 아버지 수중에서 교주 자리를 빼앗았는데, 틀림없이 지략이 겸비된 사람일 것 입니다. 강호에서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천하 무공은 이 동방불패가 첫째라고 하는데 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겠구료.]
영영은 말했다.

[동방불패는 음흉하고 꾀가 많은 자입니다. 근래 나는 그를 만나본 적이 없어 그의 무공의 깊이가 어떠한지 확실히 알 수가 없군요.]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래 당신은 낙양성 녹죽항에서 살고 있었으니 그를 만나 보기가 어려웠을 것이오.]

영영은 말했다.

[그렇다고 볼 수도 없읍니다. 나는 낙양성에 살고 있었지만 해마다 한두번씩은 흑목애에 가보곤 했읍니다. 그러나 흑목애에 돌아가보면 동방불패를 만나볼 수가 없었읍니다. 교중의 장로에게 듣기로는 이 몇년 동안 교주의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고 했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위엄을 나타내려고 사람을 만나주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야만이 다른 사람과 다른 멋을 나타내게 되겠지요.]

영영은 말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의 추측으로는 그는 아마 규화보전의 공력을 연마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교중의 잔무를 돌보면서 자기의 정신을 흐트려뜨려 놓고 싶지 않았겠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옛날 아버님이 밤낮으로 흡성대법 중에 악독한 진기를 없애는 방법을 연마하느라고 교무의 일을 처리하지 않아 동방불패가 교권을 차지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동방불패도 그러한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닙니까?]

영영은 말했다.

[동방불패가 친히 교부를 처리하지 않은 이 몇년 동안 교중의 잡다한 일들은 그 양씨 성을 가진 놈이 독점을 해버렸읍니다. 이 양씨 성을 가진 놈은 절대로 동방불패의 자리를 노리지 않을 것이고 또한 넘겨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양씨 성을 가진 놈이라 그 누구요? 어째서 나는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소?]

영영은 갑자기 얼굴에 난처한 빛을 띄웠다. 그리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말을 하자면 입이 더러워집니다. 교중의 아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입에 담으려고 하지 않지요. 교 밖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호기심이 크게 일어 말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시구료.]

영영은 말했다.

[그 양씨 성을 가진 자는 이름이 양련정(楊蓮亭)이라고 합니다.
스무살 정도의 나이인데, 무공이 낮고 또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재간도 없는 놈입니다. 그러나, 근래 동방불패는 그를 매우 총애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정말 알쏭달쏭한 일이지요.]

여기까지 말하자 영영은 약간 얼굴이 발개지며, 입가에는 멸시하는 빛이 나타났다.
영호충은 무엇인가 깨닫고 말을 했다.

[아, 그 양씨 성을 가진자는 동방불패의 남자 애인이구료. 알고 보니 동방불패는 영웅호걸이자만 사내...... 사내를 좋아하고 있구료.]

영영은 말했다.

[그만 말씀하세요. 나는 동방불패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어쨌든간에 교중의 모든 일을 양련정에게 넘겨주고 처리하도록 했읍니다. 교중의 많은 형제들은 양련정에게 피해를 보고 죽음을 당했지요. 그 자는 죽여도......]

갑자기 창 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면서 말소리가 나왔다.

[그 말은 틀렸다. 우리는 응당 양련정에게 감사를 해야 된다.]
영영은 기뻐서 외쳤다.

[아버지!]

빠른 걸음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임아행과 상문천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두 사람은 농부의 옷차림을 하고 머리에 모자를 쓰고 얼굴이 가려져 있어서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그들을 보더라도 알아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영호충은 앞으로 나가 절을하고 술집에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젓가락을 더 놓고 술을 더 가져오라고 하였다.
임아행은 흥분이 되고 의기가 충천하여 말을 했다.

[이 며칠 동안 나와 상형제는 교파의 많은 사람들과 연락을 하였는데 뜻밖에 일이 너무나 쉬웠지. 열명 중 여덟 사람은 우리의 뜻을 따르고 모두들 동방불패는 근자에 이르러 대역무도한 짓만하여 교파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마지막에 이르렀다고 하더구만. 특히 양련정이라는 놈은 본래 신교에서 이름없는 소인배에 지나지 않았는데 단지 동방불패에게 신임을 얻어 대권을 쥐고 위세가 당당하여 교중에 적지 않은 공신을 배척하고 죽였다고 하더구만. 만약에 교중의 엄격한 규율에 얽매이지 않았다면 벌써 사람들이 뒤집어 엎었을 것이라고 하더구만. 그 양씨 성을 가진 놈이 우리를 도와주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느냐?]

영영은 말을 했다.

[그렇게 되었군요.]

또 물어 보았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했다.

[상 형제와 상관운이 싸움을 한바탕 벌여 나중에 비로소 이미 그가 너에게 항복을 하였다는 것을 알았지.]

영영은 말을 했다.

[상 아저씨, 아저씨는 그를 해치지 않았지요.]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를 해치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호각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한 밤중에 들려오는 호각소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케 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설마하니 동방불패가 우리가 온 것을 안 것이 아닐까요?]
영영이 해석을 하였다.

[이 호각소리는 교중에서 책객이나 역도들을 잡는데 쓰이는 신호입니다. 신교의 교중들은 이 신호를 들으면 모두가 한몸이 되어 경계를 하고 서로가 합심하여 그자들을 잡습니다.]

조금 후에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말에 탄 자가 큰 소리로 명령을 전하였다.

[교주의 명령이다. 풍뇌당장 노동백웅(風雷堂長老童百熊)이 적과 내통하여 반역을 꾀하려고 한다. 즉시 잡아서 대령하여라. 반항을 하거든 죽여도 무방하다.]

영영은 말을 했다.

[동 아저씨가 그런 일을 하실 사람일까요?]

말발굽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그자의 명령은 계속해서 전달되었다.
이 상황을 살펴보건데 일월교는 이 일대에서 권력이 대단하며, 지방의 관청도 눈에 없는 듯하였다.
임아행은 말을 했다.

[동방불패라는 자의 소식이 퍽이나 빠르구만. 우리가 그저께 동노회(童老會)와 만난 적이 있었는데.]

영영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했다.

[동 아저씨께서도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대답하셨읍니까?]
임아행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그가 어찌 동방불패를 배반하겠느냐? 나와 상 형제 두 사람이 그를 만나 한참동안 이야기를 주고 받았지. 그러나 마지막에 동백웅은 말하기를 `나와 동방형제와는 생사를 초월한 관계입니다. 두분께서도 아마 아실 것입니다. 오늘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나라는 사람을 친구나 팔아먹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분명히 저를 깔보시는 것입니다. 동방교주는 근자에 소인배들의 아첨과 유혹에 넘어가 틀림없이 적지 않은 나쁜 일을 했읍니다. 그가 설령 망하고 죽음을 맞는다 해도 이 동씨 성을 가진 자는 절대로 그를 배반할 수가 없읍니다. 나는 두 분의 적수가 아니니 죽이려면 빨리 죽이시오.' 이 동씨는 정말로 멋진 사람이야.]

영호충은 찬탄을 하였다.

[정말로 멋진 사람입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그가 우리들의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동방불패는 어째서 그를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상문천은 말을 했다.

[아마 망령이 난 모양이구만. 동방불패는 나이를 그리 먹지 않았는데 일을 하는 것이 뒤죽박죽이야. 동백웅과 같은 그런 충성스런 좋은 친구를 이 세상 어디가서 찾는단 말이냐?]

임아행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동백웅과 같은 인물에게도 동방불패가 손을 댔다면 우리들의 대사는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소. 자, 건배나 합시다.]

네 사람은 일제히 잔을 들어 술을 비웠다. 영영은 영호충을 향하여 말했다.

[동 아저씨는 본교의원로이십니다. 왕년에 큰 공을 세우셔서 교중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심히 존경하고 있었읍니다. 그는 지금까지 아버지와는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이 못되지만, 동방불패와는 교분이 상당히 깊습니다. 이치대로라면 그가 아무리 큰 과실을 범했다 해도 동방불패는 그를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임아행은 기쁜 나머지 말을 했다.

[동방불패가 동백웅을 잡는다면 흑목애는 틀림없이 자중지란이 일어날 것이야. 우리가 그 틈을 타서 올라간다면 틀림없이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야.]

상문천은 말을 했다.

[밖에 있는 상관운 형제를 오라고 해서 함께 상의하도록 하지요.]

임아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만.]

상문천은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바로 상관운을 데리고 나타났다.
상관운은 임아행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여 절을 하며 말을 했다.

[저 상관운은 교주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교주께서는 천추만재 일통강호(千秋萬載一統江湖)하십시오.]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상관 형제는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어째서 처음 만나자마자 그런 말을 하시오.]

상관운은 멈칫하며 말을 했다.

[저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읍니다. 교주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영영은 말을 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상관 아저씨가 천추만재 일통강호라고 말씀하는 것을 듣고 이상해서 그러십니까?]

임아행은 말을 했다.

[무슨 천추만재고 일통강호냐! 내가 뭐 진시황(秦始皇)인 줄 아느냐?]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이것은 동방불패가 생각해낸 장난입니다. 그는 아랫사람들에게 그를 볼때마다 그런 말을 하도록 하였고, 설령 그가 앞에 없을지라도 교중의 형제들이 서로 만날 때면 그런 말을 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최근에 만들어낸 장난이지요. 상관 아저씨는 말투가 습관이 되어서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임아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알고 보니 그렇군. 천추만재 일통강호라. 그 참 멋진 말인데, 그러나 신선도 아닌데 어찌 천년 만년을 살 수 있단 말이냐? 상관 형제, 듣건데 동방불패가 명령을 내려 동백웅을 잡으려고 하니 흑목애는 심히 혼란할 것 같소. 그래서 흑목애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당신 의견은 어떻소?]

상관운은 말을 했다.

[교주님의 뜻은 영명하시고 계획에 있어 차질이 없으십니다. 온 천하를 비춰 만민에게 복을 주시고 싸움에 있어 제압하지 않는 경우는 없읍니다. 저는 뜻을 받들어 교주에게 충성을 다하여 천번 만번이라도 목숨을 바치겠읍니다.]

임아행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강호에서 조협인 상관운은 무공이 높고 강직하다고 했는데 어째서 입만 살아서 아부의 말만 잔뜩 늘어놓고 있는가. 정말 염치를 모르는 소인배 같구나. 강호의 들려오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닐까?)
자기도 모르게 눈쌀을 찌푸렸다.
영영은 말을 했다.

[우리가 흑목애에 잠입해 들어가려면 첫째 우리는 변장을 해야만 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흑목애에서 쓰이는 암호를 좀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발각이 될 것입니다.]
임아행은 말을 했다.

[흑목애의 암호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영영은 말을 했다.

[상관 아저씨가 금방 말씀하신 `교주님의 뜻이 영명하시고 계책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읍니다.'라든지 또는 `저는 교주님의 명령을 받아들여 충심으로 교주님을 모실 것이며, 천번 만번 기꺼이 죽겠읍니다.' 등등의 말은 요즘 들어 흑목애에서 유행하는 말들입니다. 이것들은 모두가 양련정이라는 작자가 생각하여 동방불패를 떠받드는 것입니다. 동방불패는 들을수록 귀가 솔깃하여 나중에는 어떤 사람이라도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 대역무도의 죄를 짓는 것이 되고, 목숨을 부지하지 못합니다.]

임아행은 말을 했다.

[너도 동방불패를 볼 때 역시 그런 말 같지 않는 소리를 지껄였느냐?]

영영은 말을 했다.

[흑목애에 있으니 그렇게 말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딴 도리가 있겠읍니까? 제가 낙양성에 묶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말을 하거나 듣고 싶지 않아서였읍니다.]

임아행은 말을 했다.

[상관 형제, 우리들 사이에는 앞으로는 그런 말투로 말하지 맙시다.]

상관운은 말을 했다.

[녜, 교주님의 영명한 지시는 수백년 동안 새롭고 만세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마치 하늘의 해와 달과 같이 온누리에 충망되는 것과 같습니다. 응당히 교주님의 분부에 따르겠읍니다.]

영영은 입을 삐죽거렸으나 소리를 내지 않고 웃었다.
임아행은 말을 했다.

[우리가 어떻게 흑목애에 가야 될지 말씀 좀 해보시오.]
상관운은 말을 했다.

[교주님의 생각과 계획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읍니다. 교주의 면전에서 제가 어찌 감히 주장을 하겠읍니까?]
임아행은 눈쌀을 찌푸리며 말을 했다.

[동방불패는 교중에서 대사를 상의할 때 그 누구도 이의나 주장을 제의하지 않는단 말이냐?]

영영은 말을 했다.

[동방불패 그 자는 원래 지략이 뛰어나 다른 사람은 본래 그를 따를 수도 없지만 설사 할 말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감히 그 누구도 입밖에 내지 않습니다. 잘못했다가는 불똥이 떨어질 판이니까요.]
임아행은 말을 했다.

[알고 보니 일이 그렇게 되었구만. 좋아 잘 되었다. 동방불패가 당신에게 영호충을 잡으라고 명령을 했을 때 어떻게 지시를 했소?]

상관운은 말했다.

[그는 영호대협을 잡으면 많은 상금을 내릴 것이고, 못 잡으면 머리를 내밀고 오라고 하였읍니다.]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거 참 잘 되었소. 자네는 영호충을 묶고 가서 상금을 타게나.]

상관운은 뒤로 한발짝 물러나더니 얼굴이 두려운 빛으로 가득차서 말을 했다.

[영호대협은 교주님이 총애하시는 사람이고, 또한 본교의 크나큰 공이 있는데 감히 제가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읍니까?]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동방불패의 거처는 심히 들어가기가 어려우니 자네가 영호충을 묶어서 흑목애로 들어간다면 그는 틀림없이 보자고 할 것이네.]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 계획은 정말로 멋지군요. 우리들은 상관 아저씨의 부하로 변장하여 함께 가서 동방불패를 만나보는 것입니다. 제얼굴을 보았을 때 우리 모두가 일제히 병기를 들고 달려들면 그가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결국은 우리를 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상문천은 말을 했따.

[영호형제가 몸에 중상을 입은 것처럼 가장을 하고 손과 다리에 붕대 따위를 감고 피 흔적을 내어서 우리 몇 사람이 그를 들고 가는 것이 좋겠군. 그렇게 하게 되면, 첫째 동방불패는 방비를 소홀히 할 것이고, 둘째 담가 속에 무기를 숨길 수 있지.]

임아행은 말을 했다.

[심히 좋은 생각이야.]

길게 뻗은 거리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려오더니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풍 뇌당주를 잡았다! 풍 뇌당주를 체포하였다!]

영영은 영호충을 향해서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이 객주집 대문 뒤에 다가가보니 수십 명이 말에서 횃불을 높이들고 풍채가 당당한 노인을 데리고 질풍처럼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노인은 백발이 성성하였고 온통 얼굴에는 핏자국이었다. 틀림없이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던 것 같았다. 그의 두손은 등뒤로 묶어져 있었으며 두 눈이 번쩍번쩍 빛나고 불을 뿜어대는 것 같았다.
영영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오육 년전에 동방불패는 동 아저씨를 보면 온갖 말을 주고받고 상당히 가깝게 지냈었지요.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서 이러한 상황이 되다니.]

얼마 안 있자 상관운이 담가 들의 물건을 가져왔다. 영영은 영호중의 손과 팔목에 흰천을 감고 그 끈을 목덜미에 엮어 팔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염소를 한마리 잡아 피를 그의 몸에 뿌렸다. 임아행과 상문천은 교중의 옷으로 갈아 입고 영영도 남장을 하고 얼굴에는 검정칠을 하였다. 각자 밥을 배불리 먹고난 뒤에 상관운의 부하들을 데리고 흑목애를 향해서 떠났다.

평정주에서 서북쪽으로 사십여 리는 바위가 피빛으로 붉은 색을 띄었으며 넓고 긴 모래 사장의 물은 급하게 흘렀다. 그곳이 바로 유명한 성성탄(猩猩灘)이었다. 더욱 북쪽으로 가니 절벽의 중간에는 넓이가 오척 정도의 길이 나 있었다. 가는 길목마다 일월교의 교중들이 엄격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상관운을 보자마자 매우 공손하였다. 일행은 세군데 산길을 지나 흰 모래 사장에 당도하였다. 상관운이 화살을 쏘자 건너편 언덕에서 세척을 작은 배가 와 일행을 태우고 갔다.
영호충은 암암리에 생각을 했다.

(일월교는 수백년 동안 그 기업(基業)을 쌓아왔다고 하더니 정말 대단하구나. 상관운이 안에서 내응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공격해 들어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구나.)

언덕에 오르자 산길이었다. 산길은 매우 가파랐다. 상관운 등은 강을 지날 때 이미 말에서 내렸기 때문에 일행은 소나무 장작 횃불이 비치는 상태에서 도보로 언덕을 올랐다. 영영은 쌍검을 손에 쥐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옆에서 담가를 지켰다. 길은 매우 험악하기 짝이 없었다.
담가를 드는 사람이 영호충이 누워 있는 담가를 버린다면 영호충은 수만길 깊은 계곡으로 떨어질 것이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총단에 당도하였다. 상관운은 동방불패에게 교주의 명령을 받고 성공하여 돌아왔다는 말을 전하라고 부하를 급파하였다. 한참 지난 뒤에 허공에서 방울소리가 울렸다. 상관운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영영은 임아행은 잡아 끌더니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교주의 명령이 도착한 것 같습니다. 빨리 일어나세요.]
임아행이 즉시 일어나 보니 총단에서 수많은 교중들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 우뚝 서있었으며 마치 마술에 걸린 사람들처럼 보였다.
방울소리는 매우 신속하게 높은데서 낮은 쪽으로 들려왔다.
방울 소리가 멈추자 노란 옷을 입은 교도 하나가 걸어나왔다. 두 손에서 한폭의 노란천을 펼치더니 읽었다.

[문무를 겸비하시고 인자하고 영명하신 동방교주님의 말씀이시다. 가포, 상관운은 내 뜻을 받들어 성공하여 돌아왔으니 심히 칭찬할 만하고 축하할 만한 일이다. 지금 즉시 포로를 데리고 나를 보러 들어올지라.]

상관운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그것은 모두가 교주님께서 은총을 내려주신 까닭입니다.]
영호충은 이런 상황을 보자 암암리에 웃었다.

(이것은 연극에서 대감이 임금의 성지(聖旨)를 읽는 꼴이 아닌가?)

상관운이 큰 소리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주께서 우리들을 만나보신다 하니 대은대덕하심에 우리들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 부하들은 일제히 말을 했다.

[교주께서 친히 우리들을 만나보신다 하니 대은대덕하심을 영원히 잊지 않겠읍니다.]

임아행, 상문천 등은 여러 사람이 말을 하는 대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내심 욕을 하고 저주를 하였다.
일행은 돌계단을 따라서 흑목애로 올라갔다. 세곳의 철문을 지나자 철문마다 모두 그날 저녁의 암호를 물어보고 또한 신분을 나타내는 요패(腰牌)를 검사하였다. 크나큰 돌로 만든 문에 이르자 양쪽에는 두줄을 큰 글자가 조각되어 있었다. 우측에는 문성무덕(文成武德) 좌측에는 인의영명(仁義英明)의 글자였다. 또한 가로지른 액자에는 일월광명(日月光明)이라고 씌어진 빨간 네 글자가 조각되어 있었다.
그 성문을 지나자 약 쌀 열섬을 담을 수 있는 큰 대나무 바구니 하나가 땅바닥에 놓여 있었다.
상관운은 일갈을 하였다.

[포로를 그 바구니 안에 옳겨 실어라.]

임아행, 상문천, 영영 세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담가를 들고서 대나무 바구니 안으로 실었다. 징소리가 세번 울리자 천천히 대나무 바구니가 공중으로 떴다. 알고 보니 대나무 바구니에는 밧줄이 걸려져 있었다. 대나무 바구니는 천천히 계속 올라갔다.
영호충이 고개를 들어 윗쪽을 바라보니 까마득한 윗쪽에는 불빛이 반짝거렸다. 이 흑목애는 높이가 상당하였다. 영영은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컴컴한 밤중이지만 구름이 머리 위에서 두둥실 떠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참 지나자 몸이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바구니 밑을 쳐다보니 컴컴할 뿐 불빛마저도 볼 수가 없었다. 대나무 바구니가 멈추자 상관운 등은 영호충이 든 담가를 들고 대나무 바구니밖으로 나왔다. 좌측으로 몇장정도 가자 또 다른 바구니에 들어갔다. 알고 보니 이 산은 너무 높아 중간에 이러한 것들이 세 곳이나 마련되어 네번째에서야 비로소 정상에 올라갈 수가 있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동방불패가 이러한 높은 곳에 살므로 교중의 사람들이 그를 한번 만나보기가 실로 어렵구나.)

가까스로 정상에 도착하자 이미 해는 높이 떠올랐다. 햇빛은 동쪽에서 비춰와 한백옥(漢白玉)의 거대한 패루(牌樓)에 비추었다.
패루에는 황금색을 입힌 탁피창생(탁被蒼生)이라는 네 글자가 햇빛을 받아 금빛 찬란한 빛을 번쩍번쩍 발산하였으며 보는 사람으로 하금 자기도 모르게 숙연한 감을 불러일으켰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였다.

(동방불패의 화려함은 무림에서 따를 자가 없겠구나. 화산, 항산은 그 축에도 끼지 못하고 소림, 숭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해. 그의 가슴에는 그래도 크나큰 학물을 지니고 있어 절대로 평범한 영웅은 아니야.)

임아행은 가볍게 말을 했다.

[탁피창생이라 웃기는군.]

상관운은 낭랑한 소리로 외쳤다.

[백호당장로 상관운이 교주님의 명령을 받들고 알현하러 왔읍니다.]

우측의 돌로 만든 집에서 네 사람이 걸어나왔다. 이 네 사람은 모두 몸에 자주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말을 했다.

[상관 장로께서 큰 공을 세웠다니 축하합니다.그런데 가 장로는 어째서 오시지 않았읍니까?]

상관운은 말했다.

[가 장로께서는 순직을 하였읍니다. 이미 교주님의 대은에 보답하였지요.]

그 사람은 말을 했다.

[그렇게 되었군요. 그렇다면 상관 장로께서는 곧 진급을 하시겠군요.]

상관운은 말을 했다.

[교주님의 총애를 받는다면 절대로 노형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상관운의 말을 듣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먼저 당신에게 감사를 드려야겠군요.]

그는 영호충은 한번 쳐다보더니 말을 했다.

[임소저의 맘에 든 자가 바로 이놈입니까? 나는 번안(藩安)송옥(宋玉)처럼 어여쁜 얼굴을 한 자인 줄 알았더니 그저 그렇구만요.
자 청룡당 상관 장로께서는 이쪽으로 가시지요.]
상관운은 말을 했다.

[교주께서 아직 저를 그렇게 임명하지 않으셨는데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오. 만약에 교주님과 양 총관 귓속에 들어간다면 큰일 날 것입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인도하였다. 패루에서 대문까지는 똑바른 돌알 깐 큰 길이었다. 대문에 들어서자 또다른 자주색을 입은 자가 다섯 사람을 뒤의 대청으로 인도하면서 말을 했다.

[양 총관께서 당신을 보자하니 당신은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상관운은 말을 했다.

[녜.]

손을 아래로 하고 똑바로 서 있었다. 한참 지나도 양 총관이라는 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상관운은 줄곧 서있었으며 자리에 앉지 않았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이 상관 장로란 자는 교중에서 그 지위가 낮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곳에 올라와 보니 모든 사람들은 그를 마치 자기 심복 부하나 대하듯 하는구나. 양 총관이라는 자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틀림없이 양련정이라는 사람일 것이다. 원래 총관이라는 자는 집안 일이나 다스리거나 하인들의 우두머리에 지나지 않는데, 일월교의 백호당장로는 그 앞에서 꼼짝도 못하고 그의 지시를 따르고 있구나.)
또 한참 지나니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 발걸음 소리로 이 사람의 아랫도리의 힘이 허약하고 내공이 깊지 않음을 알 수가 있었다.
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병풍 뒤에서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영호충이 살짝 그 자를 쳐다보지 삼십이 못된 나이에 빨간 비단옷을 입고 있었으며, 몸체는 대단히 크고 얼굴에는 온통 수염이 나 있었으며,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영영의 말로는 동방불패는 이자를 심히 총애하고 또한 두 사람 사이가 이상하고 애매하다고 말을 하여 나는 여자 모양을 한 남자인 줄 알았는데 몸집이 크고 장대한 사내이구나. 정말로 뜻밖이다. 그렇다면 그가 양련정이 아니지 않을까?)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상관 장로, 당신은 영호충을 잡아 큰 공을 세웠으니 교주께서는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목소리는 낮게 깔렸으며 심히감동을 주는 듯한 목소리였다. 상관운은 고개를 숙으며 말했다.

[그것은 교주님의 은덕이십니다. 양 총관께서 먼저 자세하게 지침을 내려주셨고, 단지 저는 교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일을 처리했을 뿐입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이 자가 틀림없이 양련정이구나.]

양련정은 담가 옆에 오더니 영호충을 살펴보았다. 영호충은 두 눈의 촛점을 잃고 입을 딱 벌려 깊은 상처를 받고 난 후의 멍청한 모습으로 가장을 하였다.
양련정은 말을 했다.

[이 꼴 같지도 않은 자가 틀림없이 영호충입니까? 틀리지는 않겠지요?]

상관운은 말을 했다.

[제가 두 눈으로 그가 항산파의 장문인의 자리를 맡는 것을 보았으니 틀림이 없읍니다. 그는 가 장로에게 혈도를 찍히고 또한 나에게 얻어 맞아 몸에 깊은 상처를 받았읍니다. 일년이 지나도 아마 원상태로 회복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양련정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은 임 소저가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이 사람을 이런 꼴로 만들었으니 그녀가 틀림없이 당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오.]
상관운은 말을 했다.

[저는 교주님께 충성을 바칠 뿐이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있는 목숨을 다하여 교주님을 위해서 죽는다면 그것은 저의 소원이고 우리 집안의 크나큰 영광입니다.]
양련정은 말을 했다.

[좋소. 아주 좋소. 나는 당신의 그런 충심을 교주님께 아뢸것이오. 그러면 교주님은 많은 상을 내릴 것이오. 풍뇌당 당주가 교주님을 배반하여 하극상한 사실을 당신은 아시고 계셨소?]
상관운은 말을 했다.

[저는 그 내막을 자세히 모르고 있읍니다. 그래서 총관께 여쭈어 보려고 하던 참입니다. 교주님과 총관께서 만약에 심부름을 시키실 일이 있으면 저에게 그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불속이라도 뛰어들어 이 한목숨을 기꺼이 바치겠읍니다.]

양련정은 의자에 앉으면서 말을 했다.

[동백웅 늙은이는 평상시 교주께서 그에게 잘 대해주자, 그것을 핑계로 거드름을 피우고 그자의 안중에는 아무도 없었소. 근자에 이르러 암암리에 사조직을 키우고 결당을 하여 반역을 꾀하였소.
나는 벌써 그것을 눈치챘으나 그자는 갈수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있었소. 그자는 결국 대역도인 임아행이라는 자와 결탁을 하였소.
어찌 이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있겠소?]

상관운은 말을 했다.

[그자가 정말로...... 그 임씨 성을 가진 자와 작당을 했읍니까?]

말소리는 떨려왔고 크게 놀란 듯하였다. 양련정은 말을 했다.

[상관 장로께서는 왜 그렇게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소? 임아행이라는 자는 머리가 셋이나 달린 괴물이랍디까? 교주께서 왕년에 그를 손바닥에 가지고 노셨읍니다. 단지 교주께서 은덕을 베풀어 비로소 그자가 오늘날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지요. 혹시 몰라도 그가 이 흑목애에 왔다면 닭 모가지 비틀듯이 비틀어 버릴 것이오.]
상관운은 말을 했다.

[녜, 녜. 그런데 동백웅께서 어떻게 암암리에 그와 작당을 하셨읍니까?]

양련정은 말을 했다.

[동백웅과 그 임아행은 남 모르게 만나고 몇 시간 동안 말을 했읍니다. 또한 반도의 대역도인 상문천이 그 옆에 있었소. 그런 광경을 친히 본 사람이 있었읍니다. 임아행, 상문천, 그 대역무도한 자와 그 무슨 할 이야기가 있겠읍니까? 그것은 틀림없이 교주에 대항하기 위한 역모였겠지요. 동백웅이 흑목애에 왔을 때 그에게 이러한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눈도 끔뻑하지 않고 그런 일이 있었노라고 대답했소.]

상관운은 말을 했다.

[그가 그 일에 대해서 단번에 인정을 하였다면 무슨 우여곡절이 있지 않았을까요?]

양련정은 말했다.

[나는 그에게 어째서 임아행을 만나본 사실을 교주에게 알리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소. 그는 말하기를 `임노제는 이 동씨 성을 가진자의 인품을 알고 나하고 허심탄회하게 말을 했소. 그는 나를 친구로 여기고 나 또한 그를 친구로 여기고 있는데 친구끼리 몇마디 주고받았다고 해서 그게 무슨 대단한 일입니까?' 그래서 제가 그에게 물어보았지요. `임아행이 다시 강호에 나타나 의도적으로 교주를 몰아내려고 하는데 그 사실을 당신은 모르고 있지는 않을것이오.
그가 교주에게 못된 짓을 하는데 당신은 어째서 그를 친구로 보시는 겁니까?' 내가 이렇게 물어보자 이 늙은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소. `아마 교주가 그 양반에게 미안한 짓을 했지 그가 교주에게 미안 짓을 한 것은 아니오?']

상관운은 말을 했다.

[이 놈의 늙은이가 말을 함부로 하는군요. 당연히 배은망덕한 무리들이 교주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오.]
이 몇마디는 양련정이 들으면 교주란 두 글자는 동방불패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영호충 등은 그가 이 말을 의도적으로 한 것은 임아행에게 호감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다시 말을 하였다.

[저는 맹세코 교주님께 충성을 다 바칠 것입니다. 그 쥐새끼같은 놈들이 그러한 말로 교주 어르신에게 약간이라도 무례한 짓을 한다면 나 상관운은 절대로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오.]
이 몇마디 말은 실은 간접적으로양련정을 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양련정은 말을 했다.

[좋소이다. 교중의 여러 형제들이 당신처럼 교주에게 그런 충성을 바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읍니까? 그럼 돌아가서 좀 쉬시도록 하시지요.]

상관운은 깜짝놀라 말을 했다.

[저는 교주님을 뵙고 싶습니다. 교주님의 용안을 볼 때마다 사기가 진전되고 하는 일마다 힘이 넘치곤 하였읍니다. 온 몸에 열이 나면서 마치 십년 동안 공력을 쌓은 듯했읍니다.]

양련정은 담담히 웃으면서 말했다.

[교주께서 대단해 바쁘셔서 당신을 만나볼 시간에 없을 것입니다.]

상관운은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이 나올 때는 이미 손바닥에 열몇 개의 진주가 쥐어져 있었다. 앞으로 몇발짝 나가더니 말을 했다.

[양 총관님, 제가 이번에 밖에 나가 일을 보다가 이 열여덟 개의 진주를 손에 넣게 되었읍니다. 이 모두 선물로 드르겠읍니다. 교주님을 한번 만나뵙게 해주십시오. 교주께서 저의 일에 흡족하시고 저에게 직함을 올려주시면 그때 가서 깊은 사례를 드리겠읍니다.]
양련정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다같은 형제들인데 이렇게 예를 차릴 필요가 있겠읍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교주님, 면전에서 제가 있는 힘을 다하여 당신을 높여 드리겠읍니다. 그리고, 당신이 청룡당당주가 되도록 권해 보겠소이다.]

상관운은 연신 읍을 하며 말했다.

[일이 만약에 성사가 된다면 상관운은 평생토록 교주와 총관님의 대덕대은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양련정은 말을 했다.

[당신은 여기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교주님이 시간이 있으면 당신을 만나뵙도록 하겠읍니다.]

상관운은 말을 했다.

[녜, 녜, 녜.]

진주를 그 손바닥에 쑤셔넣고 뒤로 물러났다.
양련정은 몸을 일으키더니 거드름을 피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지나자 자주색의 옷을 입은 시종이 나와 가운데 서더니 낭랑한 소리로 말을 했다.

[문무를 겸비하시고 의롭고 자애롭고 영명하신 교주님의 명령이십니다. 백호당장로 상관운은 포로를 데리고 들어오라.]
상관운은 말을 했다.

[교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원하옵건데 교주님께서는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시길 빕니다.]

말을 마치고 그 자주색 옷을 입은 시종의 뒤를 따라서 들어갔다. 임아행, 상문천, 영영은 영호충을 들고서 바로 뒤를 따랐다.
들어가 보니 복도마다 무기를 들고 있는 무사들이 가득하였다. 모두 세개의 큰 철문을 들어서고 기나긴 복도에 이르렀다. 수백명의 무사들은 양쪽에 배열되어 손에는 각자 번쩍번쩍 빛나는 장검을 서로 교차되게 들고 있었다. 상관운은 등은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지나갔다.
수백자루의 장검 가운데 만약 한자루라도 갑자기 내려친다면 몸은 두 조각이 날 것이지만, 임아행, 상문천 등은 백전노장이므로 이 무사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동방불패를 눈앞에 두고 그러한 꼴이 된다면 천추의 한이 되리라.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동방불패가 그의 부하들을 이렇듯이 무례하게 대하는데도 그 부하들이 그를 위해서 충성을 바치고 교중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뒤엎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철저한 방비 때문이었구나. 동방불패는 여러 군호들을 멸시하고 있으니 어찌 패하지 않으리오.)
그 검진을 다 지나자 문앞에 당도하였다. 문앞에는 두꺼운 장막이 내리쳐져 있었다. 상관운은 손을 내밀어 장막을 밀고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갑자기 섬광이 번뜩이면서 여덟자루의 창이 각각 좌측, 우측에서 교차되어 질풍처럼 그를 찔렀다. 네 자루의 창은 그의 가슴을 찌르고 다른 네 자루의 창은 그의 등뒤를 스치고 지나갔다. 영호충은 분명하게 볼 수가 있었다. 깜짝 놀라서 다리 밑 붕대 속에 숨겨져 있는 장검을 잡았다. 그런데 상관운은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그리고 낭랑한 소리로 말을 했다.

[저는 백호당장로 상관운입니다. 문무를 겸비하시고 의롭고 자애로우신 교주님을 만나뵐까 합니다.]

그 안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오.]

여덟 명의 창을 잡은 무사들은 뒤로 두발짝 물러섰다.
영호충은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알고 보니 여덟 개의 창이 일제히 나온 것은 겁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에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속에 나쁜 뜻을 품고 있다면 눈앞에 찔러들어오는 여덟개의 창을 보고 일제히 병기를 뽑아들고 막았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음모가 탄로가 날 것이다. 대전(大殿)에 들어서자, 영호충은 내심 말하였다.

(정말로 긴 대전이구나!)

전당(殿堂)은 넓이가 삼십척 정도에 불과한데 길이는 삼백척 정도였다. 길다란 대전 구석에는 높은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앉은 사람은 수염이 긴 노인이었는데 그것은 틀림없이 동방불패였다. 대전에는 창문이 나 있지 않았으며 입구에 촛불이 켜 있었고 동방불패가 앉아 있는 양쪽에는 두개의 기름 등잔에 불이 켜져 있을 뿐이었다. 두개의 불꽃이 어른거리고 거리가 상당히 멀어 불빛이 희미한 상태에서 이 사람의 모습을 홧실하게 볼 수가 없었다.
상관운은 제단에 꿇어앉아 말을 했다.

[문무를 겸비하시고 의롭고 영명하시고 교를 중시여기고, 택피창생하신 교주님, 백호당장로 상관운이 교주님께 인사드립니다.]
동방불패 몸 옆에 있던 자주색 시종이 크게 일갈했다.

[너의 부하들은 교주를 보고도 어찌 무릎을 꿇지 않느냐?]
임아행은 내심 생각하기를, (아직은 때가 안 되었으므로 네놈에게 무릎을 꿇는다 해도 무슨 큰일이드냐? 조금 있다가 네놈을 힘줄을 뽑고 가죽을 벗겨 버리겠다.)

즉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다. 상문천과 영영은 임아행이 무릎을 꿇자 역시 무릎을 꿇었다. 상관운은 말을 했다.

[제 밑에 있는 아이들은 교주님의 용안을 한번 우러러 뵙기를 소원하였읍니다. 교주님의 은총으로 교주님을 뵙게 된 것은 조상대대로의 은덕이며 교주님을 보자마자 너무 기쁜 나머지 온몸이 떨려 무릎 꿇는 것을 잊어먹은 듯합니다. 교주님께서는 용서해주십시오.]

양련정은 동방불패 옆에 서있다가 말했다.

[가 장로는 어찌해서 순직하였는가? 당신이 사실대로 교주님께 아뢰주시오.]

상관운은 말을 했다.

[가 장로와 저는 오랫동안 교주님의 은덕과 돌봐주시는 은혜를 받고 어찌 보답을 해야 될까 몸둘 바를 모르고 있었읍니다. 교주님의 계략과 생각은 너무나 완벽하여 그 누구를 파견하여 영호충을 잡는다해도 교주님의 위세와 덕망에 힘입어 틀림없이 성공을 할 것입니다. 교주께서 우리 두 사람을 파견하여 주신 것은 우리들에게 크나큰 영광입니다......]

영호충은 담가에 드러누워 내심 계속 욕을 하였다.

[아이쿠 말세로구나 말세. 사람들이 이 상관운이란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는 협(俠)의 글자를 집어넣어 부를 텐데 이런 자에게서 저런 말이 줄줄줄 나오니 창피한 일이로구나.]

바로 이때 몸 뒤에서 큰 소리로 사람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방 형제 당신이 사람을 파견하여 나를 잡아오라고 하였소?]
이 사람의 목소리는 늙었으나 내공이 충만하여 한마디 한마디가 나올 때마다 대전이 진동되었다. 바로 이 사람이 풍뇌당 당주인 동백웅이었다.

양련정은 냉랭하게 말을 했다.

[동백웅, 이곳 성덕당(成德堂)에서 네가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칠때가 있더냐? 교주를 보고도 어째서 무릎을 꿇지 않느냐? 어째서 교주의 문무성덕을 칭송하지 않느냐?]

동백웅은 하늘을 쳐다보며 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나와 동방형제가 친구로 사귈 때 어찌 네놈이 있었느냐? 나와 동방형제가 생사고락을 같이 할 때 너같이 젖비린내나는 놈은 태어나지도 않았다. 감히 네놈이 나와 말을 할 수가 있느냐?]
영호충은 머리를 옆으로 하자 비로소 그의 모습을 분명히 볼 수가 있었다. 그의 흰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었으며 은색의 수염은 옆으로 벌어졌으며 얼굴의 근육은 마구 움직이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얼굴에 묻어 있던 피는 이미 굳어져 있었고 표정은 심히 공포스러웠다. 두 손과 두 다리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어 길게 늘어진 쇠사슬을 질즐 끌며 말끝마다 화가 치밀어오르는 듯 두 손을 움직이자 쇠사슬은 계속해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임아행은 본래 무릎을 꿇고 꼼짝도 하지 않았으나 쇠사슬 소리를 듣자 서호의 호수 밑바닥에 감금되어 있을 때 여러가지 일들이 머리속에 떠올라 더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몸을 덜덜 떨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하였다.
양련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주님, 면전에서 어찌 그리 무례하느냐? 건방지기 그지없구나. 너는 암암리에 대역도인 임아행과 작당을 했는데 네 죄를 모르느냐?]

동백웅은 말을 했다.

[임교주는 본시 이교의 전임 교주이다. 몸에 불치의 병이 들어 비로소 은거를 하게 되자 교의 책무가 동방형제의 수중에 들어갔다. 어찌 반교의 대역도라고 말할 수 있느냐? 동방형제 당신도 분명히 말하시오. 임교주가 어째서 반교이며 본교를 배반했단 말이오?]

양련정은 말을 했다.

[임아행은 질병을 치료한 후 응당히 본교에 돌아와야 하는데 그는 소림사에 가서 소림, 무당, 숭산 여러파의 장문인들과 작당을 하였는데 그것이 반역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그는 어째서 교주님의 뵈러 오지도 않고 교주의 지시를 따르지 않소이까?]
동백웅은 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임교주는 동방형제의 옛날 상사이며 무공이나 견식이 동방형제의 밑에 있지는 않다. 동방형제, 말씀 좀 해보시오.]

양련정은 큰 소리로 일갈을 했다.

[나이를 먹었다고 이곳에서 거드름 피우지 마시오. 교주는 아랫사람에게 관대하고 당신과는 똑같지 않소이다. 당신이 만약에 잘못했다고 뉘우치고 내일 총단에서 여러 형제들에게 자기가 잘못했다고 말을 하고 앞으로는 자기 잘못을 고쳐 교주님께 충성을 다하겠다고 약속을 한다면 교주님은 체면을 보아 당신을 죽이지않고 용서를 해줄 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그 결과야 당신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동백웅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내 나이 벌써 팔십이오. 이미 너무 오래 살아서 죽지 못해 안달이 날 지경인데 무슨 결과가 두렵단 말인가?]

양련정은 일갈을 했다.

[사람을 데려 오너라.]

자주색의 옷을 입은 시종은 대답하였다.

[녜.]

쇠사슬 소리가 연신 들리더니 십여명을 압송하여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으며 또한 몇명의 아이도 있었다.
동백웅은 이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있는 힘을 다하여 일갈을 하였다.

[양련정, 대장부는 자기가 한 일은 자기가 책임진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일인데 내 아들과 손자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이렇게 일갈을 하자 소리가 진동이 되어 각자의 귀막이 웅웅거렸다. 영호충은 가운데 앉아 있는 동방불패의 몸이 움직이는 것을 보자 내심 생각하기를, (이 사람의 양심이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구나. 동백웅이 이렇듯이 급한 것을 보고 어찌 마음이 동하지 않으리오.)

양련정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교주님의 보훈(寶訓)가운데 제삼장은 무엇인가 당신이 한번 읽어 보시오.]

동백웅은 퉤 하고 침을 뱉고 말을 하지 않았다. 양련정은 말을 했다.

[동가의 일가들 중에서 교주님의 보훈의 제삼장이 무엇인 줄아는 자가 있으면 나와서 읽어 보아라.]

열살 전후의 남자 아이가 일어나더니 말을 했다.

[문무를 겸비하시고 자애로우시고 영명하신 교주님의 보훈의 제삼장은 `적과 대적할 때는 용감히 해야하며 발본색원하고 남녀노소 한 사람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양련정은 말을 했다.

[그래, 그래. 참 잘했다. 얘야. 십장의 교주님의 보훈을 너는 다 외울 수가 있느냐?]

그 남자 아이는 대답했다.

[녜. 다 외울 수 있읍니다. 하루라도 교주님의 보훈을 읽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읍니다. 교주님의 보훈을 읽고 나서 무술이 크게 진보하고 싸움에서 힘이 났읍니다.]
양련정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맞다, 그런데 이 말은 누가 너에게 가르쳐 주었느냐?]
그 남자아이는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가르쳐 주셨읍니다.]

양련정은 동백웅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그는 누구이냐?]

그 남자아이는 말을 했다.

[할아버지이십니다.]

양련정은 말을 했다.

[너의 할아버지는 교주님의 보훈을 읽지도 않고 교주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교주님을 배반을 하였는데 너는 응당히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그 남자아이는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잘못하셨읍니다. 모든 사람들이 응당 교주님의 보훈을 읽어야 하고 교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양련정은 동백웅을 향해서 말을 했다.

[당신의 손자는 겨우 열살나기에 지나지 않는데 모든 이치를 확연하게 알고 있소. 당신은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고서도 어째서 그리 흐리멍텅하시오.]

동백웅은 말을 했다.

[나는 단지 임씨 성을 가진 자와 상씨 성을 가진 자와 잠시 말을 했을 뿐이다. 그들이 나보고 교주를 배반하자고 해서 나는 허락을 하지 않았다. 이 동백웅은 하나면 하나고 둘이면 둘이지 절대로 양심을 저버리는 일은 한 적이 없다.]

그는 가족 열 몇명이 잡혀 온 것을 보자 말투가 자기도 모르게 힘이 빠졌다. 양련정은 말을 했다.

[당신이 만약에 일찌감치 그렇게 말을 했더라면 그렇게 번거로울 필요도 없지 않았소. 지금은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아시오?]
동백웅은 말을 했다.

[나는 틀린게 없고 교를 배반한 적도 없으며 더우기 교주를 배반한 적도 없다.]

양련정은 탄식을 하며 말을 했다.

[당신이 인정을 하지 않으니 당신을 구해 줄 수 없소. 여봐라, 그의 가족을 데려가라. 오늘부터 그들에게 한 톨의 쌀이나 한모금의 물도 주지 말아라.]

몇명의 자주색 옷을 입은 시종은 대답했다.

[녜.]

열 사람을 압송해 갔다.
동백웅은외쳤다.

[잠깐만.]

양련정을 향해서 말을 했다.

[좋다. 내가 잘못을 인정하지. 내가 잘못했다. 간절히 교주가 용서해주길 구하오.]

비록 잘못은 인정했지만 눈속에서는 불이 훨훨 타오르는 듯했다. 양련정은 냉소를 하며 말했다.

[당신은 조금 전에 뭐라고 하셨소. 당신은 무슨 교주와 동고동락을 같이 했을 때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하셨소이까?]
동백웅은 화를 참으면서 말을 했다.

[내가 잘못했소.]

양련정은 말을 했다.

[당신이 잘못을 했다고요. 그 말 한마디 참으로 쉽게 나오는군요. 당신은 교주님 앞에서 어째서 무릎을 꿇지 않소이까?]
동백웅은 말을 했다.

[나와 교주는 팔배지교(八拜之交)이오. 수십년 동안 지금까지 서로 터놓고 지내왔소.]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동방형제, 당신은 이 늙은 형님이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째서 입을 열지 않소? 왜 한 마디도 안 하고 있는 것이오. 당신이 이 늙은이에게 무릎을 꿇으라면 그건 쉬운 일이오.
당신이 한마디만 한다면 이 형은 내가 당신을 위하여 죽는다고 해도 눈쌀 하나 찌푸리지 않을 것이오.]

동방불패는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큰 대전에는 정적이 흘렀다. 모든 사람들은 동방불패를 쳐다보고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 지났지만, 결국 그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동백웅은 외쳤다.

[이보게, 동생. 이 몇년 동안 나는 자네를 한번 보려해도 실로 보기가 여려웠네. 당 안에 자네가 은거하여 규화보전을 연마하는 동안 교중에서 많은 변고가 있음을 아는가 모르는가 지금 큰 화가 눈앞에 닥쳐왔네.]

동방불패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동백웅은 말을 했다.

[동생이 나를 죽여도 괜찮고 나에게 고통을 준다고 해도 아무렇지가 않네. 그러나 강호에서 떠들썩하고 수백년 동안 이어온 일월신교를 멸한다면 그것은 천고의 죄인이 되네. 자네는 어째서 말을 하지 않는가? 자네는 무공을 연마하다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닌가?]

양련정은 일갈을 하였다.

[무슨 엉터리같은 말을 지껄이느냐? 무릎을 꿇어라.]
두 명의 자주색 옷을 입은 시종은 일제히 일갈을 하였다. 그리고 달려가 동백웅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퍽퍽 소리가 나더니 두명의 자주색 옷을 입은 시종이 다리가 부러지고 나동그라졌다. 입속에는 선혈을 품고 있었다. 동백웅은 말을 했다.

[동방형제, 나는 자네가 말 한마디만 해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 자네가 삼년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으니 교중의 형제들은 모두 의심을 하고 있네.]

양련정은 화가 나서 말했다.

[무슨 의심을 품고 있단 말이오.]

동백웅은 말했다.

[교주가 함정에 빠져 말을 못하는 약을 먹었는가 의심하고 있다. 어째서 그가 말을 하지 않느냐? 어째서 그는 말을 하지 못 하느냐?]

양련정은 냉소하며 말했다.

[교주님의 한 말씀은 황금과도 같은데 어째서 너와 같은 역적의 무리에게 가볍게 입을 열겠느냐? 여봐라, 이 자를 데리고 가거라.]

여덟 명의 자주색 옷을 입은 시종은 대답을 하고 달려나왔다. 동백웅은 크게 외쳤다.

[동방형제, 자네 날 좀 보게나 누가 자네를 해쳤기에 말을 하지 못한단 말인가?]

두 손을 움직여 쇠사슬을 휘두르며 두 다리는 쇠사슬을 질질 끌고 동방불패를 향해서 달려나갔다. 여덟 명의 시종은 그의 위세가 늠름한 것을 보고 감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양련정은 크게 외쳤다.

[그 자를 잡아라! 그 자를 잡아라!]

무사들은 문 입구에서 큰 소리를 지를 뿐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교중에는 엄격한 규율이 세워져 있는데 교중들이 만약에 병기를 휴대하고 성덕전에 한걸음이라도 들어선다면 그것은 죽음을 면치 못하는 죄였던 것이다. 동방불패는 몸을 일으켜 세워 뒤로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동백웅은 외쳤다.

[동방형제 가지 마시오.]

가능한 걸음을 빨리하여 달려갔다. 그러나 그의 두 다리는 족쇠에 묶여 있어서 빨리 가지 못했고 마음이 급하자 나뒹굴어 떨어졌다. 그는 나뒹그러진 틈을 타서 몇번 데굴데굴 구르자 바로 앞으로 덮쳐나갔다. 동방불패와의 거리는 백척 정도에 불과하였다. 양련정은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 반역자가 교주를 암살하려고 한다. 여러 무사들은 빨리 올라와 이 역적을 잡아라.]

임아행은 동방불패가 피하는 모습이 극히 꾸물거리고 자연스럽지 못하여 동백웅과 그의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금방 쫓아갈수 없는 것을 보고서 품 속에서 세 개의 동전을 꺼내 기를 손바닥에 동방불패를 향해서 던졌다. 영영은 외쳤다.

[자 행동을 하시오.]

영호충은 몸을 일으켜 세워 붕대 속에서 장검을 뽑아들었다. 상문천은 담가의 나무막대기에서 병기를 뽑아 각각 임아행과 영영에게 건네주고 이어서 힘껏 당기니 담가에 묶어져 있던 끈은 부드러운 채찍으로 변했다. 네 사람은 경공을 전개하여 앞으로 달려나갔다. 동방불패가 악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마에는 동번 하나가 적중되어 선혈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임아행이 동전을 던질 때 그와 너무 거리가 멀었고 그의 이마에 적중되었으나 그리 강하지는 못하여 단지 약간의 찰과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동방불패의 무공이 천하의 제일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런 동전 한 개도 피할 수 없다면 그건 이치에 맞지않는 일이다.
임아행은 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이 동방불패는 가짜이다.]

상문천은 싹하고 채찍을 휘두르며 양련정의 두 다리를 거머쥐고 당겨 버리자 그는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동방불패는 얼굴을 가리고 도망쳤다. 영호충은 가로질러 나아가 그의 앞길을 막으면서 장검을 내밀어 일갈을 했다.

[멈추어라!]

그러나 동방불패는 급히 달린 나머지 발을 멈출 수가 없어서 몸이 검끝에 와 닿았다. 영호충은 급히 검을 뒤로 빼고 좌측장으로 가볍게 치자 동방불패는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뒤로 벌렁 나가자 빠졌다. 임아행은 몸을 날려 다가가 동방불패의 뒷덜미를 거머쥐고 그를 앞으로 끌고 나오더니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여러 사람은 들으시오. 이놈은 가짜 동방불패로 우리 일월신교를 망치려는 자요. 모두들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보시오.]
이 자의 오관은 동방불패와 너무나도 흡사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당황하고 동방불패의 평소 태연자약했던 모습과 야심에 찬 그런 표정과는 실로 천양지차였다. 그래서 무사들은 서로 얼굴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모두가 놀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임아행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네놈이 똑똑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네놈의 머리를 박살내 주겠다.]

그 자는 너무 놀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소...... 소...... 소인은...... 소인은]

상문천은 이미 양련정의 혈도를 찍어서 그를 질질 끌고 앞으로 나와 일갈을 했다.

[이 자는 도대체 이름이 무엇이냐?]

양련정은 목청껏 말을 했다.

[네놈은 왠 놈이냐? 나에게 물어볼 자격이나 있느냐? 너는 역도인 상문천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일월신교는 벌써 너를 이교에서 축출하였는데 너는 무슨 자격으로 이 흑목애에 돌아왔느냐?]
상문천은 냉소하며 말을 했다.

[내가 흑목애에 올라온 것은 바로 너 같은 간사한 무리를 혼내주려고 왔다.]

우측장을 들어 내리치니 그의 좌측다리뼈가 분질러졌다. 양련정의 무공은 평범하기 그지없었으나 사람됨은 그리 만만치 않았고 강인한 자였다.
양련정은 일갈을 하였다.

[뼈대가 있는 놈 같으면 나를 빨리 죽여라. 이 어르신에게 그렇게 고통을 주는 것이 무슨 영웅호걸이라고 할 수가 있느냐?]
상문천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네놈을 그렇게 쉽게 죽게 내버려 둘 줄 알았느냐?]

손을 들어 내리치자 소리가 나면서 그의 우측다리뼈가 분질러졌다. 좌측손으로 짓누르자 그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양련정이 땅바닥에 주저앉자 부러진 다리 뼈가 툭 튀어나왔다. 그 고통이야 상상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신음소리를 한마디도 내지 않고 있었다. 상문천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말을 했다.

[참으로 멋진 사내군. 나는 더아상 너를 괴롭히지 않겠다.]
그 가짜 동방불패의 배를 가볍에 내리치더니 물어보았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그 자는 악 하고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며 말을 했다.

[소...... 소인은...... 소인의 이름은 포(包)...... 포......]
상문천은 말을 했다.

[너의 성은 포씨지 그렇지.]

그 자는 말을 했다.

[녜...... 녜...... 그렇습니다. 포...... 포......]
한참 중얼거렸으나 자기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은 바로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그의 바지가랑이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똥오줌을 싸고 있었던 것이다.
임아행은 말을 했다.

[더 늦기 전에 동방불패를 찾아야만 한다.]

그 포씨성을 가진 사내를 거머쥐고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모두들 똑똑히 보았지요? 이 자는 우리 교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자요. 우리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여야 합니다. 내가 바로 당신들의 진짜 교주인 임아행올시다. 당신들은 나를 모르시오.]
여러 무사들은 모두가 스무살 정도의 청년으로 그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알지 못하였다. 동방불패는 교주의 자리를 물려받고 나서 자기 휘하의 믿고 따르는 자들이 자기의 마음을 추측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전임교주의 일을 제기하지 않아서 이 무사들은 임아행의 이름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을 뿐더러 마치 일월신교가 창립한 지 수백년 동안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동방불패가 교주를 맡고 있는양 하였다. 여러 무사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못했다. 상관운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동방불패는 이미 양련정에게 목숨을 잃었을 것이오. 임 임교주는 바로 본교의 교주이십니다. 지금부터 모두들 임 교주님에게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말을 하면서 임아행을 향해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말을 했다.

[저, 상관운은 임 교주님께 인사드립니다. 교주께서는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시오.]

여러 무사들은 상관운은 본교에서 직위가 상당히 높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임아행을 향해서 참배를 하고 동방교주가 틀림없이 가짜인 것을 봤으며 또한 권세가 당당하던 양련정은 다리가 부러지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전혀 반항할 힘이 없는 것을 보고는 즉시 몇 사람이 임아행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말을 했다.

[교주님께서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시오.]

그 나머지 무사들도 서로 다투어 고개를 숙이고 똑같은 말을 읊조렸다. 임아행은 껄껄껄 크게 웃었다. 순식간에 득의만면하여 말을 했다.

[너희들은 엄격하게 흑목애의 통로를 지켜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곳에 올라올수 없도록 할 것이며, 내려가게 해서도 안 된다.]
여러 무사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이때 상문천은 이미 자주색 옷을 입은 시종을 시키어 동백웅의 수갑을 풀게 하였다. 동백웅은 동방불패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양련정의 뒷덜미를 거머쥐고 일갈을 했다.

[넌...... 넌 틀림없이 나의 동방형제를 죽였을 것이다.
넌...... 넌......]

마음이 격동이 되고 목구멍이 막혀 오면서 두눈에는 눈물을 흘렸다. 양련정은 두 눈을 꼭 감고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동백웅은 뺨따귀를 때리면서 일갈을 했다.

[동방형제는 도대체 어찌 되었느냐?]

상문청은 급히 외쳤다.

[너무 심하게 때리지 마십시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동백웅은 가볍게 손을 휘둘렀으나 양련정은 기절을 해버렸다. 동백웅은 있는 힘을 다해서 그의 몸을 흔들어댔다. 양련정은 두 눈에 흰자위가 가득하더니 마치 죽은 사람과 같았다. 임아행은 자주색 옷을 입은 시종을 향해서 외쳤다.

[그 누가 동방불패에 대해서 아는 자가 있다면 내가 많은 상금을 내릴 것이다.]

연신 세번 물어 보았으나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임아행의 마음은 얼음처럼 싸늘해졌다. 그는 서호 호수 밑바닥에서 십여년 동안 갇혀 있으면서 무공을 연마하는 것 외엔 어떻게 하면 탈출을 해서 동방불패에게 고통을 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흑목애에 오니 찾은 것은 가짜 동방불패였다.
동방불패는 틀림없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기지와 무공으로 어째서 양련정의 이러한 행동을 가만히 보고만 있으며, 가짜 인물을 만들어 자기를 대신하도록 내버려 뒀겠는가. 이 양련정이라는 자와 이 포씨 성을 가진 자를 괴롭힌다고 한들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수십명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주색 옷을 입은 시종들을 쳐다보았다. 어떤 자들은 매우 공포에 떨고 있었으며 어떤 자들은 당혹하고 어떤 자들은 교활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일갈하기를, [너희놈들은 이미 동방불패가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 이 양련정과 작당을 하여 교중의 형제를 속였다. 나는 그런 죄인은 하나도 살려 둘 수가 없다.]

몸이 기우뚱거리더니 앞으로 달려가 퍽퍽퍽 가볍게 소리를 내며 손바닥이 이르는 곳마다 네 명의 자주색 옷을 입은 시종은 끽 소리도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그 나머지 시종들은 깜짝 놀래서 사방으로 도망쳤다. 임아행은 교활하게 웃으면서 말을 했다.

[어디로 도망치려고 하느냐?]

동백웅의 몸에서 풀어진 족쇄와 쇠사슬을 집어들더니 사람들을 향해서 맹렬하게 던졌다. 순식간에 피와 살점이 여기저기 날라 또 일곱여덟 명이 즉시 절명을 하였다. 임아행은 껄껄껄 크게 웃더니 말을 했다.

[동방불패를 따른 자들은 한 명도 살려둘 수 없다.]

영영은 아버지의 거동이 이상하고 미친 것처럼 보이자 외쳤다.

[아버지!]

달려가서 그의 손을 움켜잡았다. 갑자기 시종 중에 한 사람이 걸어 나오더니 무릎을 꿇고 말을 했다.

[교주님께 아룁니다. 동방불패...... 동방불패는 죽지 않았읍니다.]

임아행은 기뻐서 달려나가 그 자의 어깨를 잡고 물어보았다.

[동방불패는 죽지 않았다고?]

그 자는 말을 했다.

[녜. 아이고.]

크게 외치더니 정신을 잃었다. 알고 보니 임아행은 격동한 나머지 힘을 너무 써서 그의 어깨뼈를 분질러 버린 것이었다. 임아행은 그의 몸을 몇번 흔들었으나 이 사람은 깨어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여러 시종을 향해 일갈을 했다.

[동방불패는 어디 있느냐? 빨리 길을 인도하여라. 조금만 더 지체했다가는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한 명의 시종이 무릎을 꿇고 말을 했다.

[교주님께 아룁니다. 동방불패가 묶고 있는 곳은 매우 은말하여 오로지 양련정만이 그 비밀의 문을 알 수 있읍니다. 우리가 이 양씨 성을 가진 자를 정신이 들게 한다면 그는 교주님을 모시고 길을 인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임아행은 말을 했다.

[빨리 냉수를 가져오너라.]

이 자주색 옷을 입은 시종들은 매우 영리한 무리들이었다. 즉시 다섯 사람이 나는 듯이 밖으로 나가더니 세 사람이 돌아왔다. 각자 한 대야의 냉수를 떠왔던 것이다. 그 나머지 두 명은 이미 도망쳐버렸다. 세 대야의 냉수를 양련정의 머리에 뿌렸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떠 정신이 돌아왔다. 상문천은 말을 했다.

[이 양가놈아 너의 그 끈질긴 용기에 감탄을 했다. 너를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흑목애의 모든 통로는 끊어져 동방불패에게 날개가 달리지 않는 이상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 너는 우리들을 빨리 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사내대장부가 어찌 머리를 숨기고 꼬리를 감출 수가 있단 말이냐? 모두들 통쾌하게 양단간을 내자꾸나.]

양련정은 냉소하며 말을 했다.

[동방교주는 천하무적이다. 너희들이 기꺼이 목숨을 바치러 가겠다니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가겠다.]

상문천은 상관운을 향해서 말을 했다.

[상관형, 우리 두 사람이 잠시 동안 가마꾼이 되어 이놈을 동방불패 앞까지 데리고 갑시다.]

말을 하면서 양련정을 잡아 그를 담가 뒤에다 내려놓았다. 상관운은 말을 했다.

[녜.]

상문천 등 두 사람은 담가를 들었다. 양련정은 말을 했다.

[안쪽으로 가거라.]

상문천과 상관운은 그를 둘러매고 앞에서 길을 인도하였다. 임아행, 영호충, 영영, 동백웅, 네 사람은 그들 뒤를 따랐다.
일행은 성덕전을 나와 기나긴 복도를 지나서 화원에 들어왔다.
서쪽의 한칸의 돌로 만든 집으로 들어갔다. 양련정은 말을 했다.

[좌측의 벽을 밀어라.]

동백웅이 손을 내밀어 밀자 벽이 움직이며 한 개의 문이 나타났다. 안에는 하나의 철문이 길을 막고 있었다. 양련정은 몸에서 한 개의 열쇠를 동백웅에게 건네주었다. 철문을 열어보니 안에는 한개의 지하갱도였다. 여러 사람은 지하갱도에서 아래로 향하였다. 양쪽에는 몇 개의 기름 등잔이 타고 있었다. 불꽃을 크기가 콩알만하여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임아행은 내심 생각하기를, (동방불패 이놈이 나를 서호의 호수 밑에 가둬 놓더니 제놈도 그 댓가를 받느라고 이런 감옥에 갇히게 되었구나. 이 지하갱도는 고매산장의 지하갱도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구만.)

그런데 몇개의 모퉁이를 돌자 앞이 확 트이고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여러 사람은 꽃향기를 맡을 수가 있었다. 가슴이 상쾌해졌다. 그 지하갱도에서 나오니 몸은 세심하게 잘 가꾸어져 있는 꽃밭에 들어와 있었다. 빨간 매화, 파란 대나무, 푸르른 소나무들은 멋지게 배치되어 있었으며 연못에는 몇쌍의 원앙이 유유하게 그 사이를 노닐고 연못가에는 네 마리의 백학(白鶴)이 있었다. 여러 사람은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모두들 혀를 차며 감탄을 하였다. 인공으로 만든 산을 도니 크나큰 밭에는 모두가 새빨갛고 분홍색의 장미꽃이 서로의 요염함을 뽐내며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영영은 고개를 들어 영호충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찼으며 매우 희열에 가득 한 듯하였다. 그래서 낮은 소리로 물어보았다.

[어때요. 이곳이 멋지지 않습니까?]

영호충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했다.

[우리가 동방불패를 쫓아낸 후 나와 당신이 이곳에서 몇달간 묵읍시다. 당신이 나에게 금타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그 이상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읍니까?]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의 그 말씀은 저를 속이는 것이 아니겠지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때 가서 내가 잘못 배운다고 할머니께서는 탓하지나 마세요.]

영영은 씩 하고 웃었다. 두 사람은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느라 사람들 뒤에 떨어졌다. 상문천과 상관운이 양련정을 둘러매고 우아하게 만들어진 작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영호충과 영영은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한줄기 짙은 꽃내음이 풍겨왔다. 방을 살펴보니 사녀도(仕女圖)의 그림이 한폭 걸려져 있었으며 그 중에는 세 명의 미녀가 그려져 있었다. 의자에는 수를 놓은 꽃방석이 놓여져 있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이곳은 여자의 규방인데 어찌 동방불패가 이곳에 산단 말인가? 맞다, 이곳은 그의 애처의 거처이다. 그는 여자와 술독에 파묻혀 교중의 일은 돌보지 않는 것이다.)

내실에서 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양련정, 누구와 함께 왔는가?]

목소리는 가늘고 뾰족하여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하여 듣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
양련정은 말을 했다.

[당신의 옛 친구인데 당신을 꼭 봐야겠다고 합니다.]
내실에 있는 그 사람은 말을 했다.

[어째서 당신은 그 사람을 데리고 오셨소. 이곳에는 오로지 당신 혼자만이 들어올 수 있읍니다. 당신 외에는 그 누구도 만나보고 싶지 않아요.]

마지막 이 두 마디는 아양이 섞여져 있어서 틀림없이 여자였다.
그러나 목소리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임아행, 상문천, 영호충, 영영, 동백웅, 상관운 등은 동방불패를 너무나 잘 알고있어서 이 목소리는 틀림없이 그자였다. 단지 목구멍을 쥐어짜 여자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듯하고 억지로 교태를 부리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장난이 아닌 듯 싶었다. 서로가 얼굴을 쳐다보고 이상한 눈빛을 하였다.
양련정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했다.

[안 됩니다. 내가 그들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나를 죽일 것입니다. 내가 어찌 당신을 보지도 못하고 죽는단 말이오.]

방 안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놈이길래 감히 당신을 못살게 군단 말인가? 임아행인가 들어오라고 하시오.]

임아행은 단숨에 그가 자기를 알아내는 것을 보고 내심 그의 영리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 신호를 하여 각자 안으로 들어가도록 지시를 하였다.
상관운은 한무더기의 목단꽃이 수놓아져 있는 휘장을 제치고 양련정을 안으로 들이밀었다. 여러 사람은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방안 울긋불긋하였으며 진한 분냄새가 코를 찔렀다.
동쪽 화장대 앞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몸에눈 분홍색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좌측 손에는 수를 놓는 틀을 쥐고 우측 손에는 한개의 수반을 쥐고 있었다.고개를 들어 실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의 표정에 나타난 의아한 표정은 임아행 등 일행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보다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영호충을 제외한 여러 사람들은 모두 이 사람이 분명히 일월신교의 교주자리를 빼앗고 십여년 동안 무공이 천하에서 제일이라고 일컬어져 왔던 동방불패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수염을 싹 깎고 얼굴에는 분명히 분이 발라져 있는 듯하였고 몸에 걸치고 있는 그 옷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색깔의 유사함이란 설령 영영이 입는다 해도 사치스럽고 요염했고 눈에 거슬릴정도였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고 무림에서 그 위세가 당당한 호걸이 이런 규방에 숨어서 자수를 놓고 있다니 임아행은 원래 원한이 뼈에 사무쳤지만 이때 이런 광경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임아행은 일갈을 했다.

[동방불패 이놈, 네놈은 지금 미친 척을 하고 있느냐?]
동방불패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을 했다.

[틀림없이 임 교주님이시군요. 결국은 돌아오셨군요. 연제 연제...... 대체 어찌된 일이오? 누가 당신을 이렇게 하였소.]
양련정의 몸 가까이에 다가가도니 그를 안고 침대에 내려놓았다. 동방불패의 얼굴에는 연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연신 물어보았다.

[많이 아픈가?]

또 말을 했다.

[단지 다리가 부러졌다면 왠찮지. 마음을 푹 놓아요. 내가 바로 당신의 다리를 접골해 드리겠읍니다.]

천천히 그의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향기가 풍겨지는 수놓은 이불을 끌어와 그의 몸을 덮고 마치 현모양처가 남편을 대하듯 하였다. 여러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서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모두들 껄껄 웃고 싶었다. 단지 이러한 상황이 너무나 괴이하기 때문에 웃을 수도 없었다. 동방불패는 몸에서 한 조각의 파란 비단 손수건을 꺼내더니 양련정의 이마에서 땀과 지저분한 것을 닦아내었다.
양련정은 화가 나서 말했다.

[적이 눈앞에 있는데 당신은 나에게 시시껄껄한 일만 할 것이오. 당신이 적을 물리치고 나서 다시 나에게 다정하게 굴어도 늦지가 않소이다.]

동방불패는 천천히 웃으면서 말했다.

[녜, 녜, 그러지요. 화내지 마세요. 발이 너무나 아플거예요. 그렇지요? 정말로 가슴이 아프군요.]

이러한 괴상한 일을 임아행, 영호충 등은 모두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남자끼리 좋아지내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동방불패는 당당한 교주로써 어찌 여자로 분장하고 스스로 여자임을 자처하고 있을 수 있는가. 이 사람은 틀림없이 미쳤다. 양련정은 그와 말을 할 때 표정과 목소리가 엄숙한 반면에 그는 말꼬리가 부드럽고 교태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이상하게 느끼고 속이 메쓰거워 참을 수 없었다. 동백웅은 더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가 외쳤다.

[동방형제, 자네는...... 자네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동방불패는 고개를 들어 의기소침한 얼굴을 하며 물어보았다.

[나의 이 연제를 이렇게 한 자 중에 당신도 끼어 있읍니까?]
동백웅은 말을 했다.

[자네는 어째서 양련정의 손아귀에 놀아나는가? 그는 가짜를 하나 내새위 마음대로 명령을 하달하고 패권을 휘두르고 있는데 자네는 그것을 알고 있는가?]

동방불패는 말을 했다.

[나도 물론 잘 알고 있어요. 이 연제는 나에게 잘 해주고 친절하게 해줍니다. 그는 나를 대신해서 골치아픈 일들을 처리해 주고있는데 그게 어째서 안 좋단 말씀입니까?]

동백웅은 양련정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이 자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자네는 그것도 알고 있었는가?]
동방불패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나는 모르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연제가 당신을 죽이려고 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틀림없이 좋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그가 당신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소.]
동백웅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껄껄 웃었다. 웃음소리는 비분이 담겨져 있었다. 한참 웃고 나서 비로소 말했다.

[그는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자네는 그가 나를 죽이도록 하겠다는 말인가, 그러한가?]

동방불패는 말했다.

[연제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나는 뭐든지 해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혼자만이 진정으로 나에게 잘 대해주고 나도 오로지 그에게만 잘 대해주고 있읍니다. 동 형님, 우리들은 지금까지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였소. 그러나 당신은 나의 연제에게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동백웅을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했다.

[나는 그래도 당신이 실신하고 돌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당신은 마음속으로 우리들이 사이가 좋은 친구로 막역한 교분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구만.]

동방불패는 말을 했다.

[그렇소이다. 당신이 나에게 미움을 산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오. 그러나 나의 연제에게 미움을 사면 절대로 아니됩니다.]
동백웅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 이미 그에게 미움을 받았는데 자네는 나를 어찌 하겠는가? 이 악랄하고 간사한 놈은 나를 죽이려고 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못했지.]

동방불패는 손을 내밀어 천천히 양련정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소리로 말을 했다.

[연제, 연제는 이 자를 죽이려고 했소?]

양련정은 화가 나서 말을 했다.

[빨리 이 자를 없애버리시오. 왜, 그리 질질 끌고 화를 돋우게 하는 것이오.]

동방불패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녜, 그러지요.]

동방불패는 고개를 돌려 동백웅을 향해서 말을 했다.

[동형, 오늘부터 우리의 관계는 끊어지고 의절입니다. 절대로 나를 탓하지 마세요.]

동백웅은 이곳에 오기 전에 니미 무사들 수중에서 한자루의 단도를 가져왔기 때문에 즉시 뒤로 두발짝 물러나 칼을 손에 들고 똑바로 자세를 취하였다.
그는 평소 동방불패의 무공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제 정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
눈을 똑바로 하여 두눈으로 상대방을 응시하였다. 동방불패는 냉랭하게 웃더니 탄식을 하며 말을 했다.

[이건 정말로 곤란하게 됐는걸. 동형님 그 옛날 태행산(太行山)에 있을 때 노동칠호(노東七虎)가 나에게 공격을 했읍니다. 그때 나의 무공은 아직 연마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들이 나에게 급습을 하여 우측 손에 중상을입었기 때문에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지요. 만약에 당신이 생명을 아끼지 않고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동백웅은 콧방귀를 뀌더니 말을 했다.

[자네는 그 옛날 일들을 기억은 하고 있구만.]

동방불패는 말을 했다.

[내가 어찌 잊을 수가 있겠읍니까? 또한 당시 내가 일월신교의 패권을 인계받은 후 주작당 나장로(朱雀堂羅長老)가 내심 불복을 하여 한참 떠들고 다닐 때 당신은 단칼에 나장로를 죽여버렸지요.
그때부터 그 누구도 단 한마디의 이의를 달지 않았읍니다. 당신의 그러한 공로는 실로 적지가 않습니다.]

동백웅은 화가 나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때는 내가 너무나 멍청하였지.]

동방불패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땐 당신이 멍청한 것이 아니고 나와 의기가 투합되었지요. 나는 열한살 때부터 당신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때 우리집은 너무 가난하여 당신의 도움을 많이 받았읍니다. 내 부모가 돌아가신 후 장례를 치르지 못하자 장례일까지도 당신이 맡아 처리를 해주었지요.]

동백웅은 좌측 손을 움켜주더니 말을 했다.

[옛날 일은 무엇하러 다시 끄집어 내는가?]

동방불패는 탄식을 하며 말했다.

[그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지요. 동형님, 제가 양심이 없어서 옛날 은혜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당신은 나의 연제에게 미움을 받았으니 그것을 탓할 뿐입니다. 그가 당신의 생명을 얻고자 할 때는 나도 어쩔 수가 없읍니다.]

동백웅은 크게 외쳤다.

[관두게 관둬!]

갑자기 여러 사람의 눈앞에 한줄기의 분홍색의 사물이 번쩍이더니 마치 동방불패의 몸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탕 하고 소리가 들리더니 동백웅의 수중에 있던 칼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몸이 몇번 기우뚱하였다. 동백웅은 입을 크게 벌리고 갑자기 몸을 앞으로 쓰러뜨리더니 땅바닥에 꼬꾸라져 그로부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가 넘어지는 상황이 순식간에 일어났지만 임아행 등의 고수들은 분명히 볼 수가 있었다. 그의 미심(眉心)좌우 태양혈(太陽穴) 코 아래 인중(人中) 네 곳의 대혈에는 모두 작은 점이 나 있었으며 미미하게 피가 흐르고 있었다. 틀림없이 동방불패가 수중에 있던 수바늘로 찌른 것이었다. 임아행 등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영호충은 좌측 손으로 영영을 밀치고 자기가 그녀의 몸 앞을 막으며 나섰다. 순간 방안에서는 정적이 흐르고 누가 감히 큰 소리로 숨을 쉬려 들지 않았다.
임아행은 천천히 장검을 뽑아들며 말을 했다.

[동방불패, 규화보전의 무공을 연마한 것을 축하해야겠구만.]
동방불패는 말했다.

[임 교주님, 이 규화보전은 당신이 저에게 준 것입니다. 나는 줄곧 당신의 호의를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임아행은 냉랭히 말을 했다.

[그런가? 그래서 자네가 나를 서호의 호수바닥에 가뒤 놓고 나로 하여금 하늘의 태양을 보지 못하게 하였는가?]

동방불패는 말을 했다.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았어요. 내가 만약에 강남사우에게 당신에게 물조차 주지 말라고 하였다면, 당신은 열흘 반나절을 견딜 수 있다고 보십니까?]

임아행은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자네가 나에게 잘 대해 주었다고 해야 되겠군.]
동방불패는 말을 했다.

[녜,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이 항주성에서 나머지 여생을 편안하게 지내도록 했읍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위에는 천당(天堂) 아래는 소항(蘇杭)이 있다고 했읍니다. 서호의 풍경은 천하에서도 알아주는 곳입니다. 고산매장은 더욱 서호에서 경치가 제일 좋은 곳이지요.]

임아행은 껄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알고 보니 자네는 나를 서호 호수 밑바닥 컴컴한 감옥 속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도록 했구만. 정말로 자네에게 감사를 해야겠군.]

동방불패는 탄식을 하더니 말을 했다.

[임 교주님, 당신이 나에게 잘 해준 것을 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본래 일월신교에서 풍뇌당장로 밑에 있는 한명의 부향주(副香主)에 지나지 않았읍니다. 당신은 파격적으로 저를 높이 사 해마다 저의 직급을 높여주고 본교의 최고의 보물인 규화보전까지도 나에게 전해 주었읍니다. 그리고 나를 지정하여 당시 교주자리를 맡도록 했읍니다. 이러한 은혜와 은덕을 동방불패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오.]

영호충은 땅바닥의 동백웅의 시체를 쳐다보고 내심 생각을 하였다.

(너는 좀전에 부단히 동 장로의 좋은 점을 찬양하더니 갑자기 그에게 손을 써 죽도록 했다. 지금 너는 임 교주님에게 다시 그 방법을 쓰고 있구나. 그러나 그는 절대로 너의 속임수에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방불패의 동작은 너무나 신속하고 마치 번개나 천둥같았다. 그리고 또 동작을 하기 전에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아 실로 무섭기 짝이 없었다. 영호충은 장검을 들어 그의 가슴을 겨냥하고 그의 사지가 조금이라도 움직이기만 하면 곧바로 검을 들어 공격하려고 하였다. 선제공격을 해야만이 비로소 그를 제압할 수가 있고 만약 그에게 선기를 내준다면 이 방 안에서는 또 한 사람이 생명을 잃을 것이다. 임아행, 상문천, 상관운, 영영 네 사람은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고 동방불패를 주시하여 그가 갑자기 움직이는 것을방비하였다.
동방불패는 또 말을 하였다.

[처음에 나는 한마음 한뜻으로 일월신교의 교주가 되고 싶었읍니다. 그래서 온갖 모략과 계략을 짜서 당신의 자리를 노리고 당신의 날개를 하나하나씩 잘라냈읍니다. 상형제(尙兄弟), 나의 이런 계획과 모략은 당신을 속일 수는 없었읍니다. 일월신교 중에서 임 교주와 나 동방불패를 제외하고는 당신이 그래도 인재라고 할 수 있소.]

상문천은 채찍을 꽉 쥐고 숨을 몰아쉬며 마음이 흐트러질까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동방불패는 또 한번 한숨을 쉬더니 말을 했다.

[내가 처음에 교주의 자리에 올랐을 때 너무나 기뻐서 미칠 지경이었소. 그 무슨 문을 이루고 덕을 쌓고 성교를 중시 여긴다든가 이러한 되지 못한 말들은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았소. 그런데 나중에 규화보전을 연마하고 비로소 인생의 묘미를 터득하게 되었읍니다. 그후로 내공을 연마한 후 수년 뒤에 결국은 하늘과 인간의 섭리와 만물의 이치를 깨달았읍니다.]

여러 사람들은 그의 뾰쪽하고 이상야릇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듣자 점점 손에 땀이 났다. 이 사람의 말은 사리에 맞고 머리가 돌지 않고 분명하였다. 그러나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괴이한 모양을 볼수록 모골이 송연해졌다. 동방불패의 눈빛이 천천히 영영의 얼굴에 옮겨가더니 말을 했다.

[근래에 내가 너에게 어떻게 대해주었느냐?]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은 나에게 참 잘 해주었소.]

동방불패는 한숨을 또 쉬더니 은은하게 말을 했다.

[잘 해주었다는 것은 과분한 말이지.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너를 부러워하였지. 여자로 태어난다는 자체가 이미 쓸모없는 남자로 태어나는 것에 비해서 백배의 행운을 가졌다고 말할 수가 있고 하물며 너처럼 귀엽고 예쁘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 만약 내가 너와 처지가 바뀌었다면 일월신교의 교주의 자리는 물론이고 나보고 임금이 되라 해도 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이 만약 임 소저가 되고 임 소저가 당신이 되었다면 나는 죽으면 죽었지 당신과 같은 늙고 요망한 자를 사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아행 등은 그의 이러한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동방불패의 두 눈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눈썹은 점점 일어났으며 얼굴색은 새파랗게 변하였다. 그리곤 말하기를, [너는 누구냐? 감히 나에게 그렇게 말하다니 간댕이가 부었구나.]

이 몇마디는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그는 상당히 화가 난 듯하였다. 영호충은 위급함이 눈앞에 닥쳤지만 참을 수 없어서 웃으면서 말을 했다.

[수염을 기른 사내도 좋고 아리따운 아가씨도 좋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여자분장을 한 사내이다.]

동방불패는 뾰죽한 소리로 화가 나서 말을 했다.

[내가 너에게 묻겠다. 너는 누구냐?]

영호충은 말을 했다.

[나는 영호충이라고 부르오.]

동방불패는 화난 기색이 갑자기 걷히더니 잔잔이 웃으면서 말을 했다.

[네가 바로 영호충이구나. 나는 벌써 너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임 소저가 너를 죽도록 좋아하고 너를 위해서라면 머리조차 내놓을 수가 있다고 하여 어떤 놈인가 궁금했는데 쳇 이제 보니 평범하기 짝이 없는 놈이구나. 나의 연제와 비교해 보건대 멀어도 한참 멀었군.]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나는 아무런 장점도 없는 사람이오. 장점이 있다면 한 사람을 죽도록 좋아하는 것이 내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지. 이 양군(楊君)은 비록 멋지나 기생오라비처럼 빈대에 달라붙어 사는 놈이오.]

동방불패는 갑자기 포효를 하였다.

[넌...... 너 이 못된 놈,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느냐?]
얼굴이 새빨개지며 갑자기 분홍색의 그림자가 섬뜩하더니 수바늘이 영호충을 향해서 질풍처럼 들어왔다. 영호충이 그 말을 한 의도는 그를 화나게 말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옷자락이 약간 움직이자, 즉시 검을 뽑아 그의 목구멍을 향해서 질풍처럼 들어갔다.
이 일검은 너무 빨라 동방불패가 만약 몸을 움츠리지 않으면 그 날카로운 검이 목구멍을 뚫을 찰나였다. 그러나 바로 이때 영호충은 좌측 뺨이 약간 아픈 느낌이 들면서 손의 장검이 좌측으로 비껴났다. 원래 동방불패의 동작은 너무 빨라 실로 불가사의하였다. 이 전광석화처럼 번쩍이는 사이에 그는 이미 바늘을 쏘아 영호충의 얼굴에 맞혔다. 이어서 손을 뒤로 빼 침으로 영호충의 일검을 막았던 것이다. 다행히 영호충의 일검은 너무나 빠르고 상대방의 급소를 찔렀던 것이다. 그러나 동방불패는 노한상태에서 공격을 하자 바늘은 비로소옆으로 비껴나가 그의 요혈을 찌르지 못했다. 동방불패 손에 있는 이 수바늘의 길이는 일촌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위력이란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고 마치 물속에 떨어져도 가라앉지 않는 바늘처럼 영호충의 장검을 똑바로 막았던 것이다. 무공의 높기란 실로 불가사의 할 정도였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오늘에야 비로소 평생 만나보지 못했던 강적을 만났고 상대방에게 약간의 여유를 주기만 한다면 자기의 생명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싹싹 사검을 휘둘렀다. 모두가 상대방의 급소를 찔렀다. 동방불패는 억 하고 소리를 지르며 찬탄을 하였다.

[검법이 상댕하구나!]

좌측을 젖히고 우측을 젖히고 위에서 젖히고 아래서 젖혀 영호충의 사검을 모두 피하였다. 영호충은 눈을 똑바로 뜨고 그의 동작을 살피었다. 이 수바늘로 자기의 검을 막을 때 온몸에는 약간의 빈틈도 없었다. 바로 이때 그가 손을 써서 반격할 여유를 주지 않고 즉시 큰 소리로 일갈을 하면서 장검을 들어 머리를 똑바로 내리쳤다. 동방불패가 엄지와 식지로 수바늘을 거머쥐고 위로 쳐들어 쳐내려오는 장검을 막자 장검을 내리칠 수가 없었다. 영호충의 팔목은 약간 저려왔다. 그러나 빨간 그림자가 섬뜩 움직이더니 마치 어떤 물건이 자기의 좌측 눈을 찌르는 것 같았다. 이때 영호충은 막지도 못하고 피할 수도 없었다. 급한 나머지 장검을 들어 동방불패의 좌측 눈을 향해서 급히 찔렀다. 이 모두가 양쪽이 다 피해를 입는 것이었다.
적의 눈을 찌르는 이 일검은 실로 억지나 다름이 없었다. 고수들은 절대로 이러한 초식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영호충이 배운 독고구검의 검법은 초식이 없는 것이었으며, 또한 그이 사람됨은 어떠한 것에도 구속을 받지 않고 평소에도 고수라고 자처한 적도 없어서 실로 위급한 상황에 처해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영호충은 좌측 눈썹에 약간 통증을 느꼈다. 동방불패는 자기의 일검을 피하였다. 영호충은 자기의 좌측 눈썹이 그의 수바늘에 적중되었음을 알았다. 다행히 그가 자기의 장검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에 수바늘이 비로소 명중하지 못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쪽 눈은 이미 그에게 찔려서 봉사가 되었을 것이다.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장검을 마치 폭풍우처럼 마구 휘둘렀다.
상대방에게 여유를 주지 않았다. 동방불패는 우측을 젖히고 좌측을 막고 약간의 여유가 있을 때마다 중얼중얼 찬탄을 하였다.

[멋진 검법이야, 좋은 검법이다.]

임아행과 상문천은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장검과 채찍을 휘두르며 동시에 협공을 하였다. 당세의 삼대 고수가 연합해서 싸움을 하자 그 위세가 대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동방불패는 두 개의 손가락으로 한 개의 수바늘을 거머쥐고 이리 뚫고 저리 지나가고 동작이 질풍과 같았고, 처지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상관운은 단도를 뽑아 앞으로 달려나가 가세를 하였다. 한참 어지럽게 싸움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상관운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도가 떨어지고 재주를 한번 넘더니 뒤로 벌렁 자빠졌다. 우측 눈은 이미 동방불패에게 찔려서 두 손으로 우측 눈을 감싸고 있었다.
영호충은 임아행과 상문천, 두 사람의 공격이 날카롭자 동방불패가 자기에게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 늦추어지는 것을 보고 즉시 장검을 움직여 그의 몸의 급소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서 내리쳤다.
그러나 동방불패의 몸은 마치 귀신처럼 이리 날고 저리 날고 마치 연기와 같았다. 영호충의 검끝은 도저히 그의 몸에 갖다 댈 수가 없었다. 갑자기 상문천이 악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이어서 영호충도 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의 몸이 각기 바늘에 적중된 것이다. 임아행이 연마한 흡성대법은 깊지만 그러나 동방불패의 몸놀림은 너무 빨라 몸을 접촉할 수가 없으며 또한 사용하는 병기가 아주 적은 수바늘이어서 바늘끝에서 그의 내공의 흡수 할 도리가 없었다.
또 한참 동안 싸움을 하였다. 임아행 역시 악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가슴과 목덜미에는 바늘이꽂혔다. 다행이 영호충은 급하게 공격을 했기 때문에 동방불패는 자신을 비방하느라 바늘 하나를 잘못 날렸고 또 다른 바늘 하나는 정확하게 와서 꽂혔지만 그리 치명상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네 사람이 동방불패를 에워싸고 공격했으나 그의 옷자락 하나 부딪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네 사람은 모두 그의 바늘에 맞았던 것이다. 영영은 옆에서 관전을 하다가 갈수록 걱정이 되었다.

(그의 바늘에는 독이 묻혀 있는가 모르겠구나. 만약 독이 묻어 있다면 그 결과는 생각을 안해도 뻔한 일이다.)

동방불패의 몸놀림은 갈수록 더 빠르고 한줄기의 빨간 그림자는 팽이처럼 도는 것 같았다. 임아행, 상문천, 영호충은 연신 고함을 쳤다. 소리에는 분노와 당황함이 서려 있었다. 세 사람의 병기에는 모두 내공이 주입되어 있어 소리가 크게 났다. 동방불패는 반대로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영영은 암암리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끼어든다면 도리어 방해만 될 뿐 도움을 줄 수가 없을 것이다. 동방불패는 혼자 몸으로 세 사람을 맞고 있어도 우세에 있으니 말이다.)

옆눈으로 살펴보니 양련정은 이미 침대에 앉아 있었으며 염려의 눈빛으로 관전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영영은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천천히 침대 옆으로 다가가 갑자기 좌측 손에 단검을 양련정의 우측 어깨에 내리쳤다. 양련정은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에 당하는 것이라 크게 신음소리를 냈다. 영영은 바로 또 일검으로 그의 넙적다리를 베었다.
양련정은 이때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자기가 소리를 지르기만 하면 동방불패의 심기가 분산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억지로 아픔을 참고서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영영은 화가 나서말을 했다.

[너는 소리를 지를 것이냐? 안 지를 것이냐? 내가 너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없애주겠다.]

장검이 떨리며 그의 우측 손의 손가락 하나를 내리쳤다. 뜻밖에도 양련정은 매우 강인하여 잘려져 나간 손가락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왔으나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러나 양련정의 첫번째 외침소리가 이미 동방불패의 귓 속에 들어왔다. 옆눈으로 영영이 침대가에 서서 검을 휘두르고, 양련정을 내리치는 것을 보았다.

[이런 못된 계집애!]

한 줄기의 빨간 구름이 삽시간에 영영을향해서 덮쳐왔다. 영영은 급히 몸을 피했으나 동방불패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지는 자기도 몰랐다.
영호충, 임아행은 쌍검을 동방불패의 등허리를 내리쳤다. 상문천의 채찍은 양련정의 허리를 휘감았다. 동방불패는 자기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반격을 하여 상문천의 가슴에 바늘을 찔렀다.
상문천은 전신이 마비되는 것을 느끼며 몸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바로 이때 영호충과 임아행의 두자루의 검은 동방불패의 뒷덜미에 와서 꽂혔다. 동방불패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양련정의 몸위에 포개졌다. 임아행은 기쁜 나머지 검을 뽑아 검끝으로 그의 뒷덜미에 대고 일갈을 하였다.

[동방불패, 오늘 결국...... 결국 네놈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구나.]

너무 힘일 들어서 말을 할 때 계속 숨을 헐떡거렸다. 영영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며 몸이 흔들거리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영호충은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의 좌측 볼에는 가느다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영영은 말을 하였다.

[당신도 상처를 많이 입으셨는데요.]

소매자락을 내밀어 영호충의 얼굴을 닦았다. 소매자락에는 붉은 핏자국이 묻었다.
영호충은 고개를 돌려 상문천에게 말을 했다.

[상처가 깊지 않으십니까?]

상문천은 씁쓸히 웃으면서 말을 했다.

[죽지는 않을 것이야.]

동방불패는 어깨의 두군데 칼이 꽂힌 곳에서 선혈이 줄줄 흐르고 상처가 심히 깊었다. 그래도 계속 헐떡거리며 외쳤다.

[연제, 연제. 이 못된놈들이 너에게 이렇게 고통을 주었구나.]
양련정은 화가 나서 말을 했다.

[당신은 스스로 무공이 이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자랑을 해놓고 어째서 이 못된 놈을 죽이지 못한단 말이오.]

동방불패는 말했다.

[나는 이미...... 나는......]

양련정은 화가 나서 말을 했다.

[당신이 어쨌단 말이오?]

동방불패는 말을 했다.

[나는 이미 내 있는 힘을 다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무공은 모두가 대단한 사람이야.]

갑자기 몸이 움직이더니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임아행은 그가 일어나 다시 공격을 해 올까봐 일검을 좌측다리에 내리꽂았다. 동방불패는 씁쓸히 웃으면서 말을 했다.

[임 교주, 결국은 당신이 이겼고 내가 졌소.]

임아행은 껄껄껄 크게 웃더니 말을 했다.

[너의 그 별명을 고쳐야 되겠군.]

동방불패는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그것은 고칠 필요가 없소. 동방불패는 당신 손에 죽을 것이고 이 세상에 다시 살아나가지는 못 할 것이오.]

그의 목소리는 본래가 가늘고 뾰죽하였지만, 지금음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또 말을 했다.

[만약 일대일로 싸움을 했다면 당신들은 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오.]

임아행은 약간 주저하더니 말을 했다.

[네 말이 맞다. 너의 무공은 나보다 높다. 나는 거기에 탄복하고 있다.]

동방불패는 말을 했다.

[영호충, 너의 검법은 상당하다. 그러나 만약 일대일로 싸움을 했다면 너는 나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바로 그렇소. 사실은 우리들 네 사람이 힘을 합해서 공격했어도 당신을 이길 수가 없었읍니다. 단지 당신은 저 양씨 성을 가진 자를 돌보다가 비로소 이런 꼴이 되었소. 각하의 무공은 극히 높고 천하 제일이라는 호칭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읍니다. 저는 매우 진심으로 탄복하고 있읍니다.]

동방불패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 두분이 그런 말을 하다니 실로 사내대장부의 기개를 지녔소. 아 원통하오, 원통하오. 나는 그 규화보전을 연마할 때 보전의 비방대로 자궁(自宮)에서 기를 연마하고 연단(煉丹)을 만들어 복용을 했는데 점점 수염이 없어지고 목소리도 변하고 성도 변하였소.
나는 그때부터 여자를 싫어해서 일곱 명의 첩들을 모두 죽였읍니다. 그리고...... 그리고 온갖 정성을 다해서 양련정이라는 사내에게 정을 쏟았읍니다. 만약 여자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을까, 임 교주님 나는...... 나는 곧 죽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한가지 청이 있읍니다. 내가 옛날에 당신의 딸을 잘 대해준......]
임아행은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 있냐?]

동방불패는 말했다.

[청하건데 양련정의 목숨은 살려주시오. 그를 흑목애에서 마음대로 가도록 내버려두시오.]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나는 그를 갈기갈기 죽여서 능지처참을 할 것이다. 오늘은 손가락을 하나 자르고 내일은 발가락을 하나 자르고.]

동방불패는 진노를 해서 외쳤다.

[당신은...... 당신은 악랄하군요.]

갑자기 몸을 일으켜 임아행에게 덮쳤다. 그는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몸놀림이 앞에서보다는 신속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덮친 자세는 실로 매섭기 짝이 없었다.
임아행은 장검을 똑바로 찔렀다. 그의 장검은 앞가슴을 관통하여 뒤로 칼이 나왔다. 바로 이때 동방불패는 손가락에 있는 수바늘을 날려 임아행의 우측 눈에 가서 꽂았다. 임아행은 칼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펑 하는 소리가 나면서 척추가 담벼락에 부딪치고 소리가 나면서 한쪽 담벼락이 무너져내렸다. 영영은 급히 앞으로 달려나가 아버지의 우측 눈을 쳐다봤다. 그 수바늘은 눈동자 가운데 꽂혀 있었다. 다행히 그때 동방불패의 손의 힘이 쇠약하였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바늘은 곧바로 뒷골을 관통하여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한쪽 눈알은 영원히 병신이 될 것 같았다.
영영은 손가락으로 바늘의 끄트머리를 잡았다. 그러나 바늘은 매우 짧아서 아무리 해도 눈속에 박힌 그 바늘끝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려는 몸을 돌려 땅바닥에 버려진 동방불패가 수 놓았던 자수틀을 집어 거기에서 실 한개를 풀어서 조심스럽게 눈에 박힌 바늘끝의 구멍에 끼워서 실을 잡고 바깥으로 당겼다.
임아행은 신음소리를 크게 내었다. 그 수바늘에는 핏방울이 맺혀 있었고 실끝에 달려나왔다. 임아행은 극도로 화가 나서 발을 날려 동방불패의 시신을 걷어찼다. 시신은 날라서 펑 하고 소리를 내면서 양련정의 머리 위에 부딪쳤다. 임아행은 극도로 화가 난 나머지 발길질을 하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내리쳤기 때문에 동방불패와 양련정의 두개의 머리가 부딪치자 박살이 났으며 선혈이 방으로 튀었다.
임아행은 원수를 갚고 다시 일월신교의 교주자리를 빼앗았지만 이로 인하여 한쪽 눈을 실명하였다. 기쁨과 진노가 교차되어 하늘로 머리를 향하고 껄껄 웃었다. 그러나 웃음소리 중에는 분노가 충만하였다. 상관운은 말을 했다.

[교주님, 축하합니다. 오늘에 비로소 대역무도한 자를 모두 죽였읍니다. 오늘부터 우리교는 교주님의 보호 아래서 그 명성이 사해에 진동할 것입니다. 교주님께서는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 하십시오.]

임아행은 웃으면서 욕을 하였다.

[무슨 놈의 얼어죽을 천추만재이더냐?]

갑자기 만약 천추만재하고 일통강호 하면 실로 인생의 최고의 낙일 것이라고 느끼고 껄껄껄 크게 웃었다. 이번 웃음이야말로 진심으로 마음을 펼치고 웃는 웃음이었다. 상문천은 동방불패의 바늘에 좌측 젖가슴 아래의 혈도가 찍혀서 전신이 한참동안 마비 되었다가 비로소 사지가 자유로왔다.
역시 말을 하였다.

[교주님, 축하드립니다. 축하합니다, 교주님.]

임아행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이번에 원수를 갚고 복위한 것은 자네의 공이 첫째이네.]
고개를 돌려 영호충을 향해서 말을 했다.

[충의 공로도 물론 적지가 않지.]

영호충은 영영의 백옥 같은 뺨에 한줄기의 빨간 핏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전에 악전고투한 광경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가 처졌다.

[만약에 영영이 양련정을 상대하지 않았다면 동방불패를 죽인다는 것은 실로 쉬운 일이 아니었읍니다.]

한참 있다가 다시 말을 했다.

[다행이 그의 수바늘에는 독이 묻어 있지 않았읍니다.]
영영은 몸을 약간 움직이더니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그만하세요. 이것은 사람이 아니고 괴물입니다. 내가 어렸을때 그는 나를 자주 품에 품고 산에 가서 과일을 따고 놀았읍니다. 그러나 오늘에는 이러한 꼴이 되었군요.]

임아행은 손을 내밀어 동방불패의 주머니에서 얇고 낡은 한권의 책자를 끄집어 내어 책장을 펼쳐보았다. 그 안에는 촘촘히 글자가 가득 씌여져 있었다. 그는 책을 손에 거뭐쥐고 한번 흔들더니 말을 했다.

[이 책자가 바로 규화보전이다. 위에는 분명히 `신공을 연마하는 것은 칼을 자궁으로 인도하는 것과 같다.' 라고 분명해 씌여져 있다. 이 늙은이가 어떠한 늙은인데 그러한 멍청이 짓을 하겠는가? 하하하하......]

바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나 보전에 기재되어 있는 무공은 실로 대단하지. 무공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이 보전의 무공을 보고 마음이 동하지 않은 자가 없을 것이야. 그러나 그때 나는 이미 흡성대법을 배웠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이 사람을 폐인으로 만든 이 공력을 배웠을 것이야. 아마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야.]

그는 동방불패의 시체를 한번 걷어찼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을 했다.

[혼자 잘 나고 약은 척하더니 내가 너에게 이 규화보전을 전해준 뜻을 모르고 있었구나. 너의 야심이 너무나 크고 교주의 자리를 탐내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하하하.]

영호충은 내심 철렁하였다.

(알고 보니 임 교주가 규화보전을 그에게 전해 줄 당시에 이미 나쁜 뜻을 품고 있었구나. 두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각자의 흉계가 있었어.)

임아행의 우측 눈에서는 계속해서 새빨간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입을 열고 미친 듯이 웃으니 그의 모습이 더욱 흉악하고 음흉하게 보였다.
영호충은 내심 더욱 공포심이 일어났다. 임아행은 손을 내밀어 동방불패의 사타구니를 만져 보았다. 틀림없이 그의 두개의불알이 이미 잘려지고 없는 듯하였다. 그래서 웃으면서 말했다.

[이 규화보전은 내시가 연마했다면 최고로 좋았을 것이다.]
그는 규화보전을 손바닥에 거머쥐더니 공력을 쓰자 본래 아주 낡은 책자가 갑자기 가루가 되었다. 그는 손을 휘졌자 책부스러기가 바람에 날려서 창밖으로 날아갔다.

영영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했다.

[이런 사람을 못 쓰게 만드는 것은 없애버리는 것이 좋겠읍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은 내가 그걸 연마할까봐 염려가 되오?]

영영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했다.

[정말 점잖지 못하군요.]

영영은 금창약을 꺼내어 아버지와 상관운은 상처에 발랐다. 각자의 얼굴에는 바늘에 찔린 구멍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영영은 거울에 얼굴을 살펴보니 좌측뺨에 한줄기의 핏자국이 나 있었다. 비록 극히 작았지만 상처가 나은 후에도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심히 우울하였다.
영호충은 말을 하였다.

[당신은 천하의 좋은 것을 다 가지고 있으니 아마 귀신이 질투를 한 것 같소. 얼굴에 새로 생긴 그 점은 복점이오.]

영영은 말을 했다.

[내가 천하의 좋은 것을 다 갖추고 있다니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당신은 영리하고 아름답고 무공이 강하며 아버지는 신교의 교주이고 천하의 호걸들이 목숨을 걸고 따르고 있지 않소. 또한 여자의 몸이라 동방불패는 당신이 부러웠다 하지 않았소.]

영영은 그가 이런 농담을 하자 피죽 웃으면서 얼굴에 난 상처에 대해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임아행 등 다섯 사람은 동방불패의 규방에서 나와 꽃밭과 지하갱도를 지나서 전각에 돌아왔다.
임아행은 명령을 전하여 각당의 장로 향로에게 일제히 들어올 것을 명하였다. 그는 교주의 자리에 앉아서 웃으면서말을 했다.

[동방불패, 이 작자는 잔꾀가 실로 많은 놈이야, 이렇게 교주의 자리를 높게 만들어 놓고 아랫사람들과 거리를 멀리 두게 하여 위엄을 풍기도록 했으니 말이야. 이 전각의 이름을 뭐라고 부르더라.]

상관운은 말을 했다.

[교주님께 아룁니다. 이 전각은 성덕전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교주님을 칭송하는 뜻이 담겨져 있읍니다.]

임아행은 껄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문무를 겸비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인가?]

영호충을 향해서 손짓을 하며 말을 했다.

[충아, 이쪽으로 오너라.]

영호충은 그가 앉은 좌석 앞에 이르렀다. 임아행은 말을 했다.

[충아, 그날 내가 향교에서 너 보고 본교에 들어오라고 하였지.
그때 나는 홀홀단신이고 아직 위험한 상태라 내가 약속한 말을 아마 너는 다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다시 교주의 자리에 앉았으니 맨처음 하고 싶은 일은 바로 그 옛날 일을 다시 한번 거론하고자 함이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 우측 손은 의자의 손잡이를 툭툭치면서 말을 했다.

[이 자리는 조만간에 너의 자리이다. 하하하......]

영호충은 말을 했다.

[저는 영영에게 태산과 같은 은혜를 받고 있읍니다. 응당히 교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당연하나, 나는 이미 한가지 일을 처리하기로 사람들과 약속이 되어 있읍니다. 신교에 들어가는 일은 죄송하지만 약속을 할 수 없읍니다.]

임아행은 두 눈썹을 천천히 치켜세우더니 음산하게 말을 했다.

[내 분부를 듣지 않겐다고 앞으로 어떤 꼴이 될지 너는 알겠지.]

영영은 앞으로 걸어 나와 영호충의 손을 잡고 말을 했다.

[아버지 오늘같이 기쁜 날 왜 그 작은 일로 기분을 상하시도록 하십니까? 그가 본교에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는 천천히 말씀해도 늦지가 않습니다.]

임아행은 한쪽 눈을 비스듬이 하여 두 사람을 쳐다보고는 콧방귀를 뀌더니 말을 했다.

[영영아, 너는 남편만을 위하고 아버지는 안중에도 없구나. 그렇지.]

상문천은 옆에 서있다가 말을 했다.

[교주님, 영호형제는 아직은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라 성격이 급하고 고집스럽습니다. 제가 천천히 그를 깨우치지요.]

여기까지 얘기하자 대전 밖에서는 수십 명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무당에 속해 있는 장로 당주, 부당주, 오지향 향주, 부향주가 문무를 겸비하시고 인자하시고 영명하신 교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교주님께서는 본교를 중하시고 억조창생을 구하시고 천추만제 일통강호하십시오.]

임아행은 일갈을 했다.

[들어오너라.]

십여 명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와 일렬로 서서 무릎을 꿇었다.
임아행은 옛날에 일월신교의 교주로 있을 때 교중의 부하 형제들과는 서로 만날 때 단지 포권을 하고 공수했을 뿐이다. 갑자기 여러 사람이 무릎을 꿇자 즉시 일어나 손을 흔들며 말을 했다.

[그럴 필요는......]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 떠올랐다.

(위엄이 부족하면 많은 사람을 복종시키기 어려운 법이다. 그 옛날 내가 교주의 자리를 간교한 자에게 빼앗긴 원인은 바로 내가 너무나 인자하게 대했던 까닭이다. 이 무릎을 꿇고 예를 하는 것은 동방불패가 정했지만 내가 그것을 없앨 필요는 없는 것이다.)
즉시 `그런 예는 취할 필요가 없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다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즉시 자리에 앉았다. 얼마 안 있자 또 한무리의 사람들이 대전에 들어와 인사를 청하였다.그를 향해서 무릎을 꿇을 때 임아행은 일어서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영호충은 이미 대전 문입구에 물러서 있었다. 교주의 자리와는 심히 멀리 떨어져 있었고 불빛이 또한 어두웠다. 멀리 앉아 있는 임아행을 보니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았다. 내심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을 하였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임아행인가 아니면 동방불패인가 왜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일까?)

각 당의 당주나 향주들이 칭송을 하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여러 사람들은 내심 공포감에 휩싸였으며 자기가 과거에 십여년 동안 동방불패에게 충성을 바쳐왔기 때문에 말투 속에는 전임교주인 동방불패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고 있을 것이고, 오늘 임교주가 다시 패권을 장악하여 만약에 죄를 묻는다면 어떠한 참혹한 형벌이 자기들에게 내릴지 몰랐던 것이다. 더욱 새로 들어온 신진들은 임아행이 어떤 사람인 줄 몰랐고 단지 있는 힘을 다하여 동방불패와 양련정에게 화나 당하지 않을까 충성만 했기 때문에 새로운 교주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똑같은 줄 알고 모든 사람들이 큰 소리로 칭송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호충은 대전 문앞에 서있었기 때문에 햇빛이 등 뒤에 따갑게 내리쬐었다. 대전 밖에는 훤하였으며 음산한 대전 안에서는 백명에 이르는 사람이 땅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연신 칭송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말 할수 없는 혐오감이 일어났다. 그는 내심 생각하기를, (영영이 만약 나에게 일월신교에 들어오라고 한다면 그녀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 내가 숭산에 가서 좌냉선의 오악파 장문인의 야심을 저지하고 방증대사와 충허도장 두분에게 약속을 지킨 다음 항산파 제자 중에서 여제자를 골라 장문의 자리를 맡긴다면 내 몸은 자유로와질 것이다. 그때가서 신교에 들어오는 일은 영영과 상의를 해야겠다. 그러나 나보고 이 사람들과 똑같이 흉내를 내라고 한다면 이 어찌 막무가내로 사람을 따르고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내가 앞으로 영영을 처로 맞는다면, 임 교주는 나의 장인이 되니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한다는 것은 마땅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무슨 성교를 중하고 억조창생을 고하고 문무를 겸하고 자애롭고 영명한 따위 사내대장부가 하루 종일 이런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영웅호걸의 길을 더럽히는 것이다.
내가 맨처음 이런 잠꼬대 같은 장난은 동방불패와 양련정이 생각하여 사람을 못살게 구는 수단인 줄만 알았더니 지금 상황을 보니 임 교주도 이런 아부의 말을 듣고 의기양양해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있구나.)

또 생각하기를, (그때 화산, 사과애 뒷동굴 석벽에서 마교 십장로가 조각해 놓은 무공을 보고 마교의 선배들 중에는 적지 않은 영웅호걸이 있다고 생각을 했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일월교는 어찌 정교와 대항해서 백여년 동안 싸웠으며 시종 쇠퇴하지 않았는가? 옛날은 고사하고라도 지금 현세를 말할 것 같으면 상형님, 상관운, 가포, 동백웅, 고산매장 중의 강남사우들은 그 모두가 걸출한 인사들이 아닌가? 이러한 영웅호걸들은 협박과 강권에 못 이겨 날마다 땅바닥에 절을 하고 입속에는 아부의 말을 하지마는 내심 욕을 하고 저주를 했을 것이다. 나쁜 짓을 한 자보다 나쁜 짓을 하도록 시킨 자가 더욱 나쁜 놈이다. 이렇게 천하의 영웅들에게 굴욕과 창피를 준다면 어찌 영웅호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임아행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대전의 한쪽 귀퉁이에서 들려왔다.

[너희들은 옛날에 동방불패의 수하에서 일을 하였다. 어떤 일을 하였는가는 본 교주가 암암리에 벌써 분명하게 조사를 했고 일일이 기록하였다. 그러나 본 교주는 큰 아량을 베풀어 옛날의 잘못을 묻지 않기로 하였다.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본 교주에게 충성을 다한다면 본 교주는 선처를 할 것이며 함께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순식간에 대전에서 칭송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모두들 교주의 인자함과 의로움이 하늘을 덮고 교주님의 아량은 바다처럼 넓고우리들은 충성을 다할 것이며 불속에라도 뛰어들 것이며 끝까지 교주님을 모실 것이라는 말들이 새어 나왔다.
임아행은 여러 사람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또 말을 했다.

[그러나 만약에 대역무도한 짓을 하거나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엄한 징벌을 내릴 것이고, 한 사람에게 죄가 있다면 온가족이 능지처참되어 죽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일제히 말을 했다.

[저희들이 어찌 그런 생각을 품겠읍니까? 절대로 그러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이 사람들의 말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느끼고 내심 말하였다.

(임 교주는 동방불패와 똑같이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해서 교중들을 억압하고 있구나. 여러 사람들은 겉으로는 순순히 따를 것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심히 불복할 것이다.)

어떤 자가 임아행에게 동방불패의 죄악을 일일이 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방불패가 어떻게 소인배말만 듣고 일을 처리했으며 또한 양련정은 어떻게 교주의 신임을 받고 무고한 자를 죽였으며 아무 이유없이 상벌을 내리고 신교의 기강을 무너뜨렸다는 등등의 말을 하였다.
어떤 자는 말하기를, 동방불패는 본교의규칙을 어기고 마구 흑목령을 남발하였으며 강제로 삼시뇌신단을 먹였다고 말하였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동방불패는 사치와 낭비를 좋아하여 한끼에 소 세마리와 닭 한 마리, 돼지 열 마리를 잡아먹었다고 하였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했다.

(한 사람이 밥먹는 양이 아무리 크다 해도 어떻게 소 세마리 닭 한마리 돼지 열마리를 먹을 수가 있는가? 동방불패는 틀림없이 친구들을 초대해서 연회를 벌렸거나 그들과 같이 식사를 했을 것이다. 동방불패는 일교의 교주인데 몃마리의 소 염소를죽였다고 그게 무슨 큰 죄가 된다는 말이냐?)

그러나 각자가 말하는 동방불패의 죄면은 갈수록 많았고 지저분하였다. 어떤 자는 동방불패는 희노애락을 모르는 자라고 욕을 하였으며 어떤 자는 동방불패는 화려한 옷을 입는 것을 좋아했고 은거하여 나오지 않았다고 욕을 했고, 더우기 어떤 자들은 그가 아는 것이 없고 멍청하다고 욕을 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동방불패는 무공이 미약하여 아무런 재주가 없다고 욕을 하였다. 영호충은 깊이 생각하기를, (너희들이 동방불패는 어찌어찌 하다고 욕을 하고 있지만 너희들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그건 나는 모른다. 그러나 조금전에 우리 다섯 사람이 그를 맞아 싸울 때 모두가 죽음에서 도망쳐 나왔으며 하마터면 그의 수바늘에 적중되어 목숨을 잃을 뻔했다. 만약 동방불패의 무공이 미약하다면 세상에 무공이 높은 사람은 그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말로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구나!)
이어서 또 한 사람은 동방불패가 음흉하고 여색을 좋아하여 강제로 여자들을 약탈하고 교중의 처와 딸들에게 손을 댔으며 많은 사생아를 낳았다고 말을 하였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동방불패는 규화보전의 기법을 연마하여 벌써 고자가 되었는데 어찌 부녀자들을 욕을 보이고 사생아를 그리 많이 낳았단 말이냐, 하하하!)

그는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더 계속 참을 수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껄껄껄 웃었다. 이 웃음소리는 순식간에 멀리까지 퍼졌다.
대전 중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서 눈을 부라렸다.
영영은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달려나와 그의 손을 잡더니 말을 했다.

[충 오라버니 그들은 동방불패의 일을 말하고 있읍니다. 더들을 것이 없으니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서 풍경이나 구경하지요?]
영호충은 혓바닥을 내밀었다.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의 아버지의 화를 돋우면 아니되겠지요.]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왔다. 한 계곡의 패루를 지나서 대나무 바구니를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두 사람은 대나무 바구니를 타고 아래로 내려올 때 안개와 구름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 흑목애 위의 모습과는 또 다른 세계였다. 영호충이 흑목애를 바라보니 햇빛이 그 백 곡의 폐루에 비치어 금빛을 발산하였다. 그 광경을 보고내심 상쾌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이곳을 떠나는구나. 어젯밤의 일은 마치 악몽을 꾼거와 같다. 앞으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흑목애는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영영은 말을 했다.

[오라버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읍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당신은 나와 함께 갈 수가 있읍니까?]

영영은 얼굴이 빨개지더니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는......]

영호충은 말을 했다.

[우리가 어쨌단 말이오?]

영영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우리는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는데요. 내가...... 내가 어찌 당신을 따라갈 수가 있읍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옛날에 당신은 나와 함께 강호를 돌아다니지 않았소.]
영영은 말을 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었읍니다. 더우기 그 때문에 적지 않은 일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았읍니까? 조금전에도 아버지가 나보고 당신말을 위하고 아버지는 염두에 두고 있지도 않다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만약에 내가 당신을 따라간다면 아버지는 틀림없이 크게 화를 내실 것입니다. 아버지는 십여년 동안 감옥에 갇히는 재난을 당해 성격이 많이 달라졌읍니다. 저는 아버지를 도와 좀더 있고 싶어요. 당신의 이 마음이 변하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둘이 함께 친하게 지낼 날들은 얼마든지 있읍니다.]
그녀는 마지막 이 두마디를 말할 때 목소리가 극히 작아져 거의 들리지가 않았다.
마침 한 덩어리의 흰구름이 날아와 두 사람이 구름 속에 갇힌 상태가 되었다. 영호충은 구름 속에서 영영을 쳐다보았다. 영영은 뒤로 자기몸에 기대고 있었지만 그녀와의 거리가 아주 멀게 느껴졌다. 마치 그녀가 구름 한쪽에 있고가지가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닿지 않는 듯하였다.
대나무 바구니가 아래에 당도하자 두사람은 대나무 바구니 밖으로 나왔다. 영영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지금 가시겠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좌냉선이 오악검파를 삼월 십오 일에 모이도록 해놓고 오악파의 장문인을 천거한다고 합니다. 그의 야심이 너무나 커 천하영웅들에게 못된 짓을 할 것이오. 숭산의 회의에 나는 반드시 가야만 합니다.]

영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충 오라버니, 좌냉선의 검술은 당신의 맞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의 흉계를 조심해야만 합니다.]

영호충은 대답을 하였다.

[알았소.]

영영은 말을 하였다.

[나는 응당히 당신과 함께 가야 하지만, 단지 나는 마교의 요녀여서 만약 당신과 함께 숭산에 간다면 당신의 계획에 많은 지장을 줄 것입니다.]

그녀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묵묵히 말하였다.

[당신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면 이름을 천하에 떨칠텐데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소속이 다르니 그때가면...... 그때가면 더욱 어렵지 않을까요?]

영호충은 그녀의 손을 꼭 쥐고 부드러운 소리로 말을 하였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당신은 나를 믿지 못한단 말이오?]
영영은 초연하게 웃더니 말을 했다.

[믿을 수가 있읍니다.]

한참 주저한 뒤에 희미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단지 내가 느껴왔고 걱정이 되는 것은 한 사람의 무공은 연마 할수록 높아지는 법이고, 그래서 그 명성 또한 갈수록 커져 때때로 성격이 변하는 법입니다. 자기 자신은 모르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면 옛날과는 사뭇 다르지요. 동방아저씨가 그러했고 아버지가 그렇게 되실까봐 심히 염려됩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 아버지는 그 규화보전의 무공을 연마하지 않을 것이오. 그 보전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졌으니 설사 연마하고 싶어도 연마 할 수가 없읍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나는 무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격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방 아저씨는 규화보전을 연마하기 전에, 그가 일월신교 교주가 되고 패권을 손에 쥐게되자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스스로 자멸하기 시작했지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영영, 당신은 다른 사람이나 걱정하시고 나의 걱정은 일체 하지 마시오. 나는 타고난 성격이 그런 거짓이나 점잖은 체를 하지 못하오. 내가 설령 으스대고 성격이 변한다 해도 당신 앞에선 영원히 오늘처럼 이러할 것이오.]

영영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했다.

[그렇게 된다면 오죽이나 좋겠읍니까.]

영호충은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라 말을 했다.

[우리 둘의 일은 이미 하늘이 알고 있소. 그런데 당신이 저남쪽 무인도로 보낸 그 친구들은 이제는 이제는 데려올 때가 되지 않았소?]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내가 사람을 파견하여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오지요.]
영호충은 그녀의 몸을 당기어 가볍게 그녀를 안으면서 말을 했다.

[나는 여기서 당신과 헤어지겠소. 숭산의 대사가 끝나면 나는 바로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절대로 당신과 헤어져 있지 않을 것이오.]

영영은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당신이 무사하기를 빌겠읍니다. 하루 빨리 돌아오세요.
난...... 난 이곳에서 밤낮으로 기다릴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잘 알았소.]

입술을 내밀어 그녀의 볼에다 가볍게 입맞춤을 하였다. 영영의 얼굴은 새빨개지고 수치심이 가득하여 손을 내밀어 그를 밀쳤다.
영호충은 껄껄 웃더니 말에 올라타 일월교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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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 제 6 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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