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13~14

나단비 | 2024.02.11 12:38:38 댓글: 0 조회: 99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6544
13

기다리는 기쁨





마릴라가 시계를 흘끗 쳐다보고는 8월의 오후 열기 속에 모든 것이 졸고 있는 듯한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앤이 돌아와서 바느질을 해야 할 시간인데. 허락해준 시간보다 30분이나 더 다이애나와 밖에서 놀다 오더니, 이젠 장작더미에 걸터앉아 매슈 오라버니에게 쉴 새 없이 수다를 떨고 있잖아. 해야 할 일을 먼저 다 마쳐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건만. 물론 오라버니가 완전히 앤에게 폭 빠져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으니까 그렇다고는 하지만. 오라버니가 저렇게 뭔가에 정신이 팔리긴 생전 처음이야. 저 애가 말을 하면 할수록, 그것도 더 이상한 말을 하면 할수록 오라버니가 좋아한다니까. 앤 셜리, 당장 이리 들어오지 못하니! 내 말 들리지!”
서쪽 창문을 탕탕 두들기는 소리에 앤이 뒤뜰에서 후다닥 뛰어들어왔다. 눈은 반짝이고, 볼은 분홍빛으로 빛이 났으며 땋지도 않고 뒤로 늘어뜨린 머리는 밝은 물결이 되어 찰랑거렸다.
“오, 마릴라 아주머니. 다음 주에 주일 학교에서 소풍을 간대요.‘반짝이는 호수’바로 곁에 있는 하몬 앤드루스 아저씨의 목장으로 간대요. 벨 장로님의 부인과 린드아주머니가 아이스크림도 만들 거래요. 생각해보세요, 마릴라 아주머니, 아이스크림을! 오, 마릴라 아주머니, 저도 가도 되나요?”
앤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앤, 시계 좀 볼래? 내가너더러몇 시에 돌아오라고 했니?”
“2시요. 그런데 소풍은정말로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마릴라 아주머니? 제발, 저도 가게 해주세요, 네? 전 한 번도 소풍을 가본 적이 없어요.항상 소풍 가는 꿈만 꾸었죠. 하지만 한 번도…….”
“그래, 난 너에게 2시에 돌아오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3시 15분 전이야. 네가 왜 내 말을 듣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다, 앤.”
“전 그러려고 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요.하지만 ‘한가로운 황야’는 너무 매혹적이었어요. 그리고 물론 매슈 아저씨께 소풍 얘기를 해드려야 했고요. 매슈 아저씨는 정말로 제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세요. 저 소풍을 가도 되나요?”
“너는 그 환상의 유혹을 떨치는 법을 좀 배워야겠어. 내가 몇 시까지 돌아오라고 하면 그 시간에 와야지 30분이나 늦는 건 안 돼.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누가 네 얘기를 잘 들어준다고 멈추어 서서 이야기만 하고 있어도 안 되고. 물론 소풍은 가도 된다. 너도 주일 학교 학생이잖니, 다른 아이들도 다 가는데 너만 못 가게 할 이유가 어디 있겠니.”
“하지만, 하지만요, 다이애나가 그러는데 점심 바구니를 싸가야한대요.그런데 저는 아시다시피 요리를 못 하잖아요. 퍼프 소매 옷을 입지 못하는 것은 괜찮은데 점심 바구니를 가져가지 못하면 정말이지 자존심이 상할 거예요. 다이애나가 그 말을 해준 뒤로 내내 고민하고 있었어요.”
앤이 주저하며 말했다.
“그럼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다. 내가 네 점심 바구니를 준비해주마.”
“오, 사랑하는 마릴라 아주머니, 정말 감사해요.아주머니는 제게 너무나도 너그러우셔요.전 아주머니께 큰 빚을 지고 있어요.”
너무 기쁜 마음에 오! 소리를 연발하던 앤이 급기야는 마릴라의품을파고들어 혈색이 좋지 못한 마릴라의 얼굴에 입까지 맞추었다. 마릴라의 얼굴에 어린아이가 먼저 와서 입을 맞추기는 평생 처음이었다. 마릴라는 다시 한 번 마음이 뿌듯해왔다. 앤의 갑작스러운 애정 표현에 속으로는 무척 기뻤지만 그런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더욱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이런, 그런 일로 입까지 맞추고 소란 피우지 말거라. 그것보다 나는 네가 얼른 말을 잘 듣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조만간 요리도 가르쳐주려고 한다. 그렇지만 넌 너무 덜렁대니까, 좀 더 차분해지면 차근차근 가르쳐주려고 해. 요리는 정신을 차리고 해야지 중간에 공상에 빠져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되잖니. 이제 바느질감을 가져와서 차 마시기 전까지 끝마쳐라.”
“저는 정말 패치워크16) 바느질이 싫어요.”
앤이 시무룩하게 말하면서 바느질 바구니를 찾아와 빨간색과 하얀색 마름모꼴 천을 잔뜩 앞에 쌓아 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바느질은 모르지만 패치워크 바느질에는 상상할 거리가 하나도 없어요. 하나 잇고 나면 또 이어야 하고 끝도 없이 계속 잇기만 해야 하잖아요. 물론 집이 없어 놀기만 하고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앤보다는 ‘초록 지붕 집’에 살면서 패치워크 바느질을 하는 앤이 더 좋긴 해요. 하지만 다이애나와 놀 때처럼 바느질할 때도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우린 정말 멋진 시간을 보내요. 상상은 대부분 저 혼자 해야 하지만, 그거라면 제가 아주 잘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일에는 다이애나가 정말 완벽해요. 우리 밭과 배리 아저씨네 밭 사이로 흘러가는 시냇가를 건너면 나오는 윌리엄 벨 아저씨네 작은 밭 아시죠? 바로 그 구석에 하얀 자작나무들이 둥글게 둘러선 작은 공터가 있어요. 정말로 낭만적인 곳이죠. 다이애나와 저는 거기에 우리 놀이 집을 만들었어요. 우리는 그곳을‘한가로운 황야’라고 불러요. 시적인 이름이란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 이름을 생각해내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요. 거의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으니까요. 막 잠이 들려는데 영감이 떠올랐어요. 다이애나도 그 이름을 듣고는 미칠 듯이 기뻐했죠. 우리는 집을 멋지게 꾸며놨어요. 꼭 오셔서 보셔야 해요, 마릴라 아주머니, 그러실 거죠? 이끼로 덮인 큰 돌을 가져다의자로삼았고요, 나무 사이에 판자를 얹어 선반을 만들어서 그릇들을 얹어두었어요. 물론 모두가 깨진 것들이지만 온전한 그릇이라고 상상하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거든요. 그중에 빨간색과 노란색 담쟁이덩굴이 그려진 접시가 하나 있는데 그건 정말로 아름다워요. 우리는 그 접시를 거실에 뒀어요. 거실에는 요정 거울도 있어요. 그 요정 거울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다이애나가 닭장 뒤에 있는 숲에서 찾아낸 거예요. 무지개가 잔뜩 그려져 있어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무지개예요. 다이애나의 엄마는 그것이 벽걸이 램프 깨진 조각이라고 했대요. 하지만 우리는 더 근사하게 어느 날 밤 요정들이 무도회에 들고 왔다가 잃어버린 거울이라고 상상해서 요정의 거울로 부르기로 했어요. 매슈 아저씨가 탁자도 만들어주신댔어요. 오, 그리고 있잖아요. 배리 아저씨 밭에 있는 작고 둥근 웅덩이에도 이름을 지었어요. ‘버드나무 연못’이라고요. 그 이름은 다이애나가 저한테 빌려준 책에서 따왔는데요, 정말로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여주인공에게 애인이 다섯 명이나 있어요. 전 하나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나요? 주인공은 아주 예쁘고 역경을 많이 겪어요. 기절도 아주 잘하죠. 저도 기절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릴라 아주머니는 안 그러세요? 너무 낭만적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마른 몸보다 정말로 너무 튼튼해요. 그런데 제가 점점 살이 쪄가는 거 같지 않으세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제 팔꿈치가 조금이라도 옴폭 들어가 있는지 살펴보거든요. 다이애나는 반소매로 된 새 옷이 생긴대요. 소풍 가는 날 그 옷을 입을 거라고 했어요. 오, 다음 주 수요일에는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제가 소풍에 못 가게 되는 일이 혹시라도 생기면 전 그 실망감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요. 어떻게든 견디기야 하겠지만 평생 슬픈 기억이 될 것은 분명해요. 나중에 소풍을 수백 번 가게 되더라도 아무런 소용도 없어요. 그 백 번으로도 이번 소풍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반짝이는 호수’에서 배도 타고, 말씀드린 대로 아이스크림도 먹는대요. 전 한 번도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적이 없거든요. 다이애나가 그 맛이 어떤지 설명해줬지만 그 맛은 상상하기가 불가능한 맛일 것 같아요.”
“앤, 넌 지금 저 시계로 10분도 넘게 떠들었다. 이제부터 10분이라도 혀를 가만히 둘 수 있는지 어디 좀 보자.”
마릴라가 말했다.
앤은 마릴라의 뜻대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주 내내 소풍 얘기를 했고, 소풍 생각만 했으며, 소풍 꿈만 꾸었다. 토요일에 비가 내리자 앤은 수요일까지도 비가 그치지 않을까 봐 너무 초조해서 마릴라는 패치워크 바느질거리를 더 많이 주어 앤의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일요일에 교회에서 돌아오면서 앤은 마릴라에게 목사님이 소풍 안내를 했을 때너무 흥분이 돼서 온몸이 얼어붙어 버릴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전율이 제 등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했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정말로 소풍을 가게 되는 건지 믿어지지가 않아요. 이게 꿈일까 봐 걱정이 돼요. 하지만 목사님이 강단에서 그렇게 말했으니 믿어야겠죠?”
“넌 너무 깊이 생각을 하는 게 문제야, 앤. 평생 실망할 일이 너무 많을까 봐 걱정이다.”
마릴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 마릴라 아주머니, 어떤 일을 고대한다는 것 그 자체가 절반의 기쁨인걸요. 그 일이 이루어지고 말고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제가 즐겁게 고대하는 것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요.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실망할 일도 없다.17)’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실망보다 아무것도 기대하는 것이 없는 게 더 나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앤이 흥분하여 말했다.
마릴라는 평상시와 다름없이그날도자수정 브로치를 달고 교회에 갔다. 그것을 달지 않으면 성경이나 헌금을 잊고 교회에 가는 것만큼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마릴라는 언제나 교회에 갈 때면 이 자수정 브로치를 달았다. 그 브로치는 선원이었던 삼촌이 마릴라 어머니에게 준 것을 마릴라가 물려받아 아주 소중하게 간직했다. 구식이긴 하지만 타원형 가장자리로 매우 질 좋은 자수정이 빙 둘러져 있고 안에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들었다. 마릴라는 귀금속에 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어 그 자수정이 얼마나 좋은 물건인지도 몰랐다. 단지 매우 아름다운 브로치고 자기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갈색 공단 블라우스 목 언저리에서 보랏빛으로 빛을 발하는 것도 좋다고 여겼다.

앤이 그 브로치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 감탄을 하며 찬사를 보냈다.
“오, 마릴라 아주머니, 이것은 완벽하게 우아한 브로치예요. 이것을 달고 어떻게 설교나 기도에 집중할 수가 있을까요. 저라면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자수정은 정말 아름다워요. 전 처음에는 다이아몬드가 이렇게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제가 다이아몬드를 본 적이 없을 때는 책에서 다이아몬드에 관해 읽으면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하곤 했거든요. 제 상상 속의 다이아몬드는 보라색으로 아름답게 빛을 발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한 숙녀분이 낀 반지에 박힌 진짜 다이아몬드를 보았을 때 전 너무 실망해서 울고 말았어요. 물론 그것도 예쁘기는 했지만 제가 생각했던 다이아몬드가 아니었거든요. 제가 그 브로치를 잠깐만 만져보아도 될까요, 마릴라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자수정이 아름다운 제비꽃의 영혼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16) 천을 이어붙이는 수예의 한 가지.
17) 마태복음 5장의 문형을 이용해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가 한 말이다.

14

앤의 고백





소풍 가기 이틀 전인 월요일 저녁, 마릴라가 당황한 표정으로 방에서 내려왔다.
“앤!”
얼룩 한 점 없는 식탁에 앉아 다이애나가 가르쳐준 ‘개암나무 숲의 넬리’를 감정까지 넣어 씩씩하게 흥얼거리며 콩을 까고 있는 앤을 불렀다.
“내 자수정 브로치 못 봤니? 내가 어제 오후 교회에서 돌아와 바늘꽂이에 꽂아 둔 것 같은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구나.”
“제, 제가 오늘 오후 아주머니가 부인회 모임에 가시고 안 계실 때 보았어요. 아주머니 방 앞을 지나는데 브로치가 바늘꽂이에 꽂혀 있는 게 보여서 들어가서 좀 봤어요.”
앤이 천천히 말했다.
“너, 그것에 손댔니?”
마릴라가 엄하게 물었다.

“네에에. 제가 집어서 어떤가 보려고 제 가슴에 달아봤어요.”
앤이 사실을 고백했다.
“그것은 너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물건이야. 조그만 애가 이것저것 만지고 다니는 일은 나쁜 짓이야. 애초에 내 방에들어가지 말았어야 했어. 그리고 네 물건이 아닌 브로치를 만져서도 안 되는 거였고. 그래서어디에다뒀니?”
“전 옷장에 그냥 다시 올려놨어요. 전 1분도 안 만졌어요. 정말이에요. 이것저것 만지고 다니지도 않았다고요, 마릴라 아주머니. 전 아주머니 방에 들어가 브로치를 달아본 것이 나쁜 짓이라는 생각도 못 했어요. 하지만 그것이 나쁜 짓이라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어요. 그것이 제 장점 중 하나거든요. 전 절대로 나쁜 짓을 두 번은 안 한다고요.”
“너는 제자리에 놓아두지 않았어. 브로치는 옷장 어디에도 없다. 네가 밖으로 가지고 나갔거나 어디 다른 곳에 둔 거야.”
마릴라가 말했다.
“전 정말 그 자리에 놓아두었어요. 제가 그것을 바늘꽂이에 다시 꽂았는지 도자기 쟁반에 두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전 정말로 그 자리에 놓고 나왔다고요.”
앤이 재빨리 말해서 마릴라는 앤의 태도가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시 한 번 찾아보겠다. 네가 제자리에 두었으면 아직 거기 있겠지. 거기 없으면 넌 돌려놓지 않은 거야. 그렇지 않겠니?”

마릴라가 공정한 태도를 취하겠다는 듯 말했다.
마릴라는 방으로 가서 옷장 위뿐만이 아니라 방 안 여기저기 브로치가 있을 만한 곳은 모두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빈손으로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앤, 그 브로치는 없어졌다. 네가 인정했듯이 네가 그것을 마지막으로 만졌다. 대체 그걸 갖고 뭘 한 거니? 당장 사실대로 얘기를 해. 가져간 거니, 아니면 잃어버린 거니?”
“아니에요, 전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전 절대로 브로치를 아주머니 방에서 갖고 나오지 않았고, 제 말은 모두 사실이에요. 제가 그것 때문에 단두대로 끌려가야 한다면, 단두대가 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렇게 하겠어요!”
마릴라의 화가 난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며 앤이 단호하게 말했다.
앤의 ‘그렇게 하겠어요!’라는 말이 그저 자기 결백을 강조하려고 한 말이었지만 마릴라는 그 말을 도전적인 말로 받아들였다.
“넌 지금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앤. 나는 못 속인다. 모든 사실을 말하지 않으려거든 이제부터 한 마디도 하지 마라. 이제 네 방으로 가서 사실을 다 말하기 전까지는 나오지도 마.”
마릴라가 날카롭게 말했다.
“이 콩도 가지고 갈까요?”
앤이 차분하게 말했다.
“아니다, 콩은 내가 마저 까겠다. 넌 시키는 대로 하기나 해.”
앤이 나가자 마릴라는 복잡한 심정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소중한 브로치가 걱정이 되었다. 앤이 그것을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하지? 가져가 놓고 잡아떼다니 못돼 먹었지, 누가 보더라도 저 애가 손댄 것이 확실하잖아! 그렇게 태연한 얼굴을 하다니! 조만간 무슨 일이 더 일어날지 모를 일이야. 물론 나는 저 애가 그것을 훔치려 했다거나, 뭐 그런 의도로 브로치에 손을 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저 갖고 놀려고 했거나 그걸로 상상력을 발휘해보려고 했겠지. 하지만 앤이 가져간 것만은 분명해. 그것은 명백하다고. 제 입으로 내 방에 들어갔다고 얘기를 했고, 오늘 내가 그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앤 외에 그 방에 들어간 사람이 없잖아. 그 후로 브로치가 없어졌으니 그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지. 저 애가 잃어버리고는 혼이 날까 봐 무서워서 거짓말을 하는 거야. 저 애가 거짓말이나 하는 아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해. 성질을 부리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일이지. 믿을 수 없는 아이가 내 집에 들어온 거라면 큰일인데. 지금 저 애는 엉큼하고 정직하지 못한 성품을 드러낸 거야. 내가 브로치를 잃어버린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바로 그 점이야. 앤이 사실대로 말해주기만 했다면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을 텐데.”
마릴라는 콩을 까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마릴라는 그날 오후 내내 이 구석 저 구석 방 안을 온통 뒤지며 다시 브로치를 찾았으나 허탕이었다. 밤중에 동쪽 방에도 가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앤은 브로치에는 아는 것이 없다는 말만 계속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마릴라는 앤의 짓이 틀림없다고 더욱 확신했다.
다음 날 아침 마릴라는 그 이야기를 모두 매슈에게 해주었다. 매슈는 혼란에 빠져 당황해했다. 앤을 그렇게 쉽게 믿을 수 없는 아이라 단정할 수도 없었지만 상황이 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옷장 뒤에 떨어진 건 아닐까?”
매슈가 해볼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내가 그 옷장을 밀어도 보았고 서랍도 모두 열어 보았어요. 틈새란 틈새는 모두 살펴보았다고요. 브로치는 없어졌어요. 앤이 손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요. 믿기 싫지만 확실한 사실이에요, 매슈 오라버니.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요.”
마릴라는 확신에 차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니?”
매슈가 초연하게 물었다. 이런 상황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 마릴라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고, 이번 일에 참견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을 다 말하기 전까지 앤을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할 거예요. 이제 보세요. 앤이 그 브로치를 어디로 가져갔는지 말만 한다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이번에는 아주 엄하게 혼을 내줘야겠어요, 매슈 오라버니.”
마릴라가 지난번에도 이 방법이 통했다는 생각을 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앤을 혼내줘야겠지.”
매슈가 모자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나는 이 일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걸 잊지 말아라. 네가 상관하지 말라고 했어.”
마릴라는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다. 린드 부인에게 조언을 구하러 갈 수조차 없었다. 마릴라는 매우 엄한 얼굴을 하고 동쪽 방으로 올라갔다가더욱더무거운 표정으로 방을 나왔다. 앤은 고집스럽게 고백을 거부했고 브로치를 가져가지 않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이가 울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마릴라의 가슴이 아팠지만 감정을 단단하게 억눌렀다. 밤이 되자 마릴라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모든 것을 고백할 때까지 넌 이 방에서 나오지 못해. 그러고 싶지 않다면 고백을 해라.”
마릴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일은 소풍날이에요, 마릴라 아주머니. 설마 저를 소풍도 못 가게하시지는않겠지요? 내일 오후만 나가게 해주시면 안 돼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아주머니가 원하는 한 언제까지라도 이 방에서 기꺼이 지내겠어요. 하지만 소풍은 ‘반드시’ 가야 해요.”
앤이 울부짖었다.
“고백을 하기 전까지는 소풍이고 어디고 못 간다, 앤.”
“오, 마릴라 아주머니.”
앤이 애원을 했다.
하지만 마릴라는 방을 나가버렸고, 문은 닫혀버렸다.
수요일 아침이 소풍을 위해 특별히 주문되어 나온 날이라도 되는 듯 밝고 화창하게 동터 올랐다. 새들은‘초록 지붕 집’주변을 날며 노래를 불렀고 정원에 피어 있는 흰나리의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타고 문과 창틈으로 스며들어 축복의 요정처럼 온 복도와 방 안에 감돌았다. 분지의 자작나무는 앤이 평상시처럼 동쪽 방에서 아침 인사를 건넨 듯 즐겁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하지만 앤은 창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릴라가 쟁반을 들고 들어갔을 때 앤은 창백했지만 단호한 모습으로 침대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입술은 꽉 다물었고 눈은 빛이 났다.
“마릴라 아주머니, 전 고백할 준비가 되었어요.”
“아!”
마릴라가 쟁반을 내려놓았다. 다시 한 번 자기 방법이 효과를 냈지만 가슴은 쓰라렸다.
“그래, 들어보자, 앤.”
“제가 자수정 브로치를 가져갔어요. 아주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가져갔어요. 들어갈 때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제 가슴에 브로치를 꽂은 순간 저항할 수 없는 유혹에 지고 만 거예요.‘한가로운 황야’로 가지고 가서 레이디 코델리아 피츠제럴드 놀이를 하면 상상이 완벽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진짜 자수정 브로치를 단다면 저를 코델리아 아가씨로 상상하기가 훨씬 더 쉬워질 테니까요. 다이애나와 저는 산딸기 꽃으로 목걸이를 만들었지만 산딸기 꽃을 어찌 자수정에 비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제가 브로치를 가져갔어요. 전 아주머니가 돌아오시기 전까지 돌려놓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전 그 브로치를 좀 더 오래 갖고 있고 싶어서 길을 빙빙 돌아왔어요.‘반짝이는 호수’에 놓인 다리를 건너다가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브로치를 꺼냈죠. 오, 햇빛에서 얼마나 빛이 나던지! 그런데 제가 다리에서 몸을 호수 쪽으로 내민 순간 그만 브로치가 제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가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보랏빛을 반짝이며‘반짝이는 호수’저 아래로 영원히 가라앉아 버렸어요. 이것이 제가 최선을 다한 고백이에요, 마릴라 아주머니.”
마릴라는 다시 한 번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아이가 자기의 소중한 자수정 브로치를 가져다 잃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저기 앉아 양심의 가책이나 후회의 빛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그 자세한 내막을 차분하게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앤, 이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구나. 너처럼 못된 아이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마릴라가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네, 맞아요, 전 나빠요.”
앤이 차분하게 맞장구를 쳤다.
“전 벌을 받아야 해요. 저에게 벌을 내리는 게 당연해요. 그런데 마릴라 아주머니, 벌을 주시려거든 지금 당장 주시면 안 될까요? 전 부담을 털고 편한 마음으로 소풍을 가고 싶으니까요.”
“소풍이라고, 세상에! 넌 오늘 소풍 못 간다, 앤 셜리. 그것이 네가 받아야 할 벌이야. 네가 한 짓에 비하면 이 벌로도 충분치 않아. 네가 받아야 할 벌의 절반도 안 되는 거지!”
“소풍을 못 간다고요!”
앤이 벌떡 일어나 마릴라의 손에 매달렸다.
“하지만 고백만 하면 가게 해준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오, 마릴라 아주머니, 전 반드시 소풍을 가야 해요. 그래서 제가 고백을 했잖아요. 어떤 방법으로 저를 벌하셔도 좋아요, 하지만 오, 마릴라 아주머니, 제발, 제발, 소풍은 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아이스크림 생각을 해보세요! 아주머니도 아시다시피, 다시는 아이스크림을 먹어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요.”
마릴라가 매달리는 앤의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그렇게 애원해도소용없다, 앤. 넌 소풍 못 간다.더 이상 말은 필요 없어.”
마릴라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앤은 두 손을 꼭 붙들고 비명을 지르며 침대로 얼굴을 던졌다. 그러고는 말할 수 없는 실망과 절망으로 몸부림치며 울음을 터트렸다.
마릴라는 너무나 기가 차서 서둘러 방에서 나와 버렸다.
“세상에, 어쩌면 저럴 수가! 저 애가 정신이 어떻게 된 것 같아. 완전히 돌지 않고서는 저런 행동을 할 리가 없어. 세상에나! 처음부터 레이철이 옳게 봤던 거야. 하지만 벌써 쟁기에 손을 대었으니 뒤로 돌아갈 수는 없지.”18)
암울한 아침이었다. 마릴라는 일에 열중했다. 베란다 바닥과 제유실 선반까지 박박 닦았다. 선반도 베란다도 닦을 필요는 없었지만 닦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런 다음 밖으로 나가 뜰을 쓸었다.
점심 준비를 끝내고 계단을 올라가 앤을 불렀다. 난간 너머로 나타난 눈물로 범벅된 앤의 얼굴이 처량해 보였다.
“점심 먹게 내려와라, 앤.”
“전 먹고 싶지 않아요, 마릴라 아주머니.”
앤이 훌쩍거리며 말했다.
“전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요. 제 가슴이 미어지는걸요. 아주머니는 언젠가 후회하시게 될 거예요. 가슴이 아파질 거라고요. 하지만 전 아주머니를 용서해드릴 거예요. 기억하세요, 언젠가 때가 되면 제가 아주머니를 용서해드릴 거예요. 하지만 제발 저한테 뭘 먹으라고는 하지 마세요. 특히 끓인 돼지고기와 야채는 이렇게 가슴이 아픈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낭만적이지 못해요.”
할 말을 잃은 마릴라는 부엌으로 돌아가 매슈에게 서글픈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매슈는 공정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생각과 앤이 가엾다는 마음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글쎄다, 앤도 브로치를 가져가지 말거나 아니면 가져갔다고 처음부터 얘기했어야 했는데, 마릴라. 하지만 저 아이는 아직 어리고 또 그런 것에 흥미를 느낄 나이지 않니. 그렇게 소풍을 가고 싶어 했는데 못 가게 한다면 너무 심한 거 아닐까?”
매슈도 앤처럼 접시 가득 담긴 낭만적이지 못한 돼지고기와 야채를 이렇게 울고 싶은 심정일 때는 적당한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괴롭게 바라보기만 하며 말했다.
“매슈 오라버니, 오라버니를 보면 정말이지 놀라워요. 전 저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봐주기만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저 아이는 제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니까요. 그 점이 가장 걱정스럽다고요. 저 아이가 정말로 자기 잘못을 알고 인정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었겠어요? 그런데 오라버니도 깨닫지 못한 건 마찬가지군요. 계속해서 저 아이 변명만 늘어놓고 있잖아요. 오라버니 속이 훤히 다 들여다보여요.”
“글쎄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아이니까.”
매슈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같은 소리만 반복했다.
“그리고 너그럽게 봐주기도 해야지, 마릴라. 너도 알다시피 저 애는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잖니.”

“지금 받고 있어요.”
마릴라가 톡 쏘아붙였다.
마릴라의 쌀쌀한 태도가 매슈를 설득하지는 못했어도 입을 다물게는 했다. 점심 식사 내내 매우 우울한 분위기였다. 일하는 아이인 제리 부트만이 즐겁게 식사를 했는데, 마릴라는 제리의 그런 태도가 몹시 못마땅했다.
설거지를 마친 뒤, 닭 모이를 주고 나자 마릴라는 더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러자 문득 월요일 오후에 부인회에서 돌아와 가장 아끼는 검은색 레이스 숄을 벗었을 때 조금 해진 곳이 있었던 게 생각났다. 숄이나 수선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트렁크 상자 안에 있는 숄을 끄집어냈다. 마릴라가 숄을 집어 들었을 때, 창가를 무성하게 덮고 있는 덩굴 잎 사이로 비친 햇빛을 받으며 숄에 달라붙은 뭔가가 반짝반짝 보랏빛을 발했다. 깜짝 놀란 마릴라가 그것을 잡아챘다. 자수정 브로치! 브로치가 레이스의 실에 매달린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마릴라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내 브로치가 이렇게 멀쩡하게 있다니, 배리 연못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저 애는 이것을 가져다 잃어버렸다고 한 거야?‘초록 지붕 집’이 뭔가에 홀린 게 분명해. 그래, 내가 월요일 오후에 숄을 벗어서 잠깐 옷장에 올려놨던 게 기억이 나. 그때 브로치가 여기에 걸렸었나 봐, 그렇구나!’
마릴라는 손에 브로치를 들고 서둘러 동쪽 방으로 갔다. 앤은 여전히 울면서 창가에 처량하게 앉아 있었다.
“앤 셜리, 내 검은색 숄에서 브로치를 찾았다. 오늘 아침에 내게 늘어놓은 얘기는 다 뭐니?”

마릴라가엄숙하게물었다.
“아주머니께서 제가 고백할 때까지 여기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전 소풍을 가려고 고백을 해야 했다고요. 어젯밤 잠들기 전에 고백할 이야기는 그럴듯하게 꾸며 뒀고 잊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연습했어요. 그래도 아주머니는 절 소풍에 보내주지 않으셨어요. 제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고 말았어요.”
앤이 지친 듯이 대답했다.
마릴라는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앤, 너한테 완전히 졌다. 그렇지만 내가 나빴어.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다. 네 말을 의심해서는 안 되었어. 그래도 네가 이야기를 지어내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물론 하지도 않은 일을 지어내서 고백한 너도 잘못이야. 하지만 내가 널 그렇게 만들었다. 날 용서해주겠니, 앤? 나는 너를 용서할 거야, 그럼 우리가 다시 잘해볼 수 있을 거다. 빨리 소풍 갈 준비를 해라.”
앤은 로켓처럼 벌떡 일어났다.
“오, 마릴라 아주머니, 너무 늦지 않았을까요?”
“아니야, 아직 2시밖에 안 되었어. 이제야 다들 모였을 시간이고, 점심시간까지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할 거다. 얼른 세수를 하고 머리도 빗어라. 옷도 얼른 챙겨 입어야지. 나는 네 점심 바구니를 준비하마. 집에 구워둔 빵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리고 제리더러 마차로 소풍 장소까지 너를 태워다 주라고 해야겠다.”
“오, 마릴라 아주머니,”
앤이 외치고는 세면대로 달려갔다.

“5분 전만 하더라도 전 너무 비참해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천사하고도 제자리를 바꾸고 싶지 않아요!”
그날 밤 앤은 완벽하게 행복하고, 완전히 지쳐서‘초록 지붕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하루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오, 마릴라 아주머니, 저는 오늘 기가 막히게 멋진 시간을 보냈어요. 기가 막히게 멋지다는 말은 오늘 제가 새로 배운 말이에요. 메리 엘리스 벨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거든요. 감정을 아주 잘 표현하는 멋진 말인 것 같아요. 모든 것이 근사했어요.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 하몬 앤드루스 아저씨가 우리 모두를‘반짝이는 호수’로 데려가 배를 태워주셨어요. 한 번에 여섯 명씩 배에 탔어요. 그런데 제인 앤드루스는 연꽃을 따려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가 하마터면 물속에 빠질 뻔했어요. 앤드루스 아저씨가 그 순간 제인의 허리띠를 잡지 않았더라면 제인은 아마 물에 빠져버렸을 거예요. 제가 물에 빠질 뻔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거의 물속에 빠질 뻔했던 일은 너무 낭만적인 경험이거든요. 그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주면 가슴이 마구 뛰겠죠? 그리고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 그 아이스크림 맛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정말 최고였어요!”
그날 저녁 마릴라는 양말을 짜면서 그 이야기를 매슈에게 전부 들려주었다.
“제 실수라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겠어요.”
마릴라가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좋은 공부를 했어요. 앤이 고백한 걸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와요. 거짓말을 한 거니까 웃으면 안 되지만. 하지만 그 거짓말이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지않아요. 제 책임이기도 하니까요. 저 아이는 종잡을 수 없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애로 자랄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한 가지는 분명해요. 저 애가 함께 사는 한 절대로 지루할 일은 없을 거예요.”



18) 누가복음 9장 6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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