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17~18

나단비 | 2024.02.12 19:27:19 댓글: 0 조회: 122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6800
17
흥미로운 삶





다음 날 오후 앤은 부엌 창가에 앉아 패치워크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바느질을 하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니 ‘드리아드의 샘’ 근처에서 다이애나가 손짓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당장 집을 뛰쳐나와 쏜살같이 분지를 향해 달려 내려갔다. 달리는 동안은 두 눈이 놀라움과 희망으로 반짝거렸지만 다이애나의 풀죽은 얼굴을 보자 희망이 다시 사라져버렸다.
“너희 엄마가 아직 화를 풀지 않으셨니?”
앤이 숨을 죽이고 물었다.
다이애나는 슬픈 듯 고개를끄덕였다.
“응, 너하고는 이제 놀지 말래, 앤. 난 울고 또 울면서 네 잘못이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어. 조르고 졸라서 작별 인사라도 하겠다고 겨우 허락을 받은 거야. 10분만 얘기를 하고 돌아오라고 했으니까 엄마가 지금 시간을 재고 계실 거야.”
“영원한 작별 인사를 하기엔 10분이란 시간은 충분치가 않아. 오, 다이애나, 나를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약속할 수 있어, 그대의 어린 시절 친구로, 설령 그대가 더 친한 친구를 사귀게 된다고 해도 나를 잊지 않겠다고?”
앤이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말했다.
“그럼, 그럴게. 난 절대로 또 다른 단짝 친구를 사귈 수 없을 거야, 사귀고 싶지도 않을 거야. 너를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할수는없어.”
다이애나가 흐느꼈다.
“오, 다이애나, 너 정말로 나를 사랑해?”
앤이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외쳤다.
“물론이지. 넌 그걸 몰랐단 말이니?”
“아니, 물론 나도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거야 알지만, 나를 사랑하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다이애나, 난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거든. 내 기억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었어. 오, 이건 정말 너무 굉장한 일이야! 그대와 이별하고 내가 걸어가야 할 어두운 길을 비춰줄 한 줄기 빛이요, 오, 다이애나, 그 말을 한 번만 더 해줄래?”
앤이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난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 앤. 그리고 앞으로도 내내 너를 사랑할 거야, 내 말을 믿어도 좋아.”
다이애나가 애절하게 말했다.
“나 또한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겁니다, 다이애나.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할지라도 그대의 기억은 우리가 함께 읽었던 마지막 이야기에서처럼 내 외로운 삶을 비추는 별처럼 빛이 날 것이오. 다이애나, 우리의 이별을 영원히 기념하고 싶은데 그대의 검은 머리카락을 좀 잘라줄 수 있겠소?”

앤이 엄숙하게 팔까지 벌려가며 말했다.
“내 머리를 자를 것은 있니?”
한껏 감정을 자극하는 앤의 말투에 왈칵 눈물을 쏟던 다이애나가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와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그래, 다행히도 내 앞치마에 재봉 가위가 들어 있어.”
앤이 대답을 하고 엄숙하게 다이애나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럼, 안녕, 내 사랑하는 벗이여. 앞으로 우리는 바로 이웃에 살더라도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야만 한다오. 그러나 내 마음은 영원히 그대의 것이오.”
돌아서 멀어져 가는 다이애나를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며 앤은 다이애나가 돌아볼 때마다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다음 집으로 돌아와서도 이 낭만적인 이별로 당분간은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다 끝났어요. 다시는 친구를 사귀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가슴이 아파본 적은 없어요. 더구나 지금은 캐티 모리스와 비올레타도 없잖아요. 그 친구들이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겠지만요. 어쨌거나 진짜 친구를 가져본 다음이라 꿈속의 친구로는 이제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다이애나와 저는 샘물가에서 정말 멋진 이별을 나누었어요. 그 이별은 제 기억에 영원히 자리할 거예요. 전 생각해낼 수 있는 말 중에서 가장 비장한 단어들을 썼어요. 당신이나 그대와 같은 말이요. 당신이나 그대와 같은 말이 너라는 말보다는 훨씬 더 낭만적이잖아요. 다이애나는 저에게 머리카락도 잘라줬어요. 전 그것을 조그만 주머니에 넣어 입구를 꿰맨 다음 평생 제 목에 걸고 다닐 거예요. 제가 죽으면 그 주머니를 저와 함께 묻어주세요. 전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배리 아주머니가 제가 차갑게 죽어 있는 걸 보면 후회하는 마음이 되어 다이애나가 제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허락해주시겠죠?”
앤이 마릴라에게 말했다.
“네가 말할 수 있는 한은 슬픔으로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구나.”
마릴라의 말에 동정의 빛은 없었다.
다음 월요일, 앤이 자기 방에서 책이 든 바구니를 안고 무슨 결심을 아주 굳게 한 듯 입술을 앙다물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마릴라는 깜짝 놀랐다.
“저 다시 학교에 가겠어요.”
앤이 발표를 했다.
“제 단짝 친구를 빼앗겨버렸으니 제 인생에 남은 것은 학교뿐이에요. 학교에서라면 다이애나를 볼 수도 있고 지난날의 추억에도 빠져볼 수 있잖아요.”
“네 공부와 산수에 빠져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마릴라가 상황이 이렇게 반전된 것에 대한 기쁨을 애써 감추면서 말했다.
“이제 학교에 가면 친구 머리에다 석판을 깼다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얌전하게 행동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모범생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별로 재미는 없겠지만요. 필립스 선생님이 미니 앤드루스가 모범생이라고 했지만 그 애는 상상력이나 생기라고는 없거든요. 항상 목에 걸고 다닐 거예요. 제가 죽으면 그 주머니를 저와 함께 묻어주세요. 전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배리 아주머니가 제가 차갑게 죽어 있는 걸 보면 후회하는 마음이 되어 다이애나가 제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허락해주시겠죠?”
앤이 마릴라에게 말했다.
“네가 말할 수 있는 한은 슬픔으로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구나.”
마릴라의 말에 동정의 빛은 없었다.
다음 월요일, 앤이 자기 방에서 책이 든 바구니를 안고 무슨 결심을 아주 굳게 한 듯 입술을 앙다물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마릴라는 깜짝 놀랐다.
“저 다시 학교에 가겠어요.”
앤이 발표를 했다.
“제 단짝 친구를 빼앗겨버렸으니 제 인생에 남은 것은 학교뿐이에요. 학교에서라면 다이애나를 볼 수도 있고 지난날의 추억에도 빠져볼 수 있잖아요.”
“네 공부와 산수에 빠져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마릴라가 상황이 이렇게 반전된 것에 대한 기쁨을 애써 감추면서 말했다.
“이제 학교에 가면 친구 머리에다 석판을 깼다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얌전하게 행동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모범생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별로 재미는 없겠지만요. 필립스 선생님이 미니 앤드루스가 모범생이라고 했지만 그 애는 상상력이나 생기라고는 없거든요. 항상 목에 걸고 다닐 거예요. 제가 죽으면 그 주머니를 저와 함께 묻어주세요. 전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배리 아주머니가 제가 차갑게 죽어 있는 걸 보면 후회하는 마음이 되어 다이애나가 제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허락해주시겠죠?”
앤이 마릴라에게 말했다.
“네가 말할 수 있는 한은 슬픔으로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구나.”
마릴라의 말에 동정의 빛은 없었다.
다음 월요일, 앤이 자기 방에서 책이 든 바구니를 안고 무슨 결심을 아주 굳게 한 듯 입술을 앙다물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마릴라는 깜짝 놀랐다.
“저 다시 학교에 가겠어요.”
앤이 발표를 했다.
“제 단짝 친구를 빼앗겨버렸으니 제 인생에 남은 것은 학교뿐이에요. 학교에서라면 다이애나를 볼 수도 있고 지난날의 추억에도 빠져볼 수 있잖아요.”
“네 공부와 산수에 빠져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마릴라가 상황이 이렇게 반전된 것에 대한 기쁨을 애써 감추면서 말했다.
“이제 학교에 가면 친구 머리에다 석판을 깼다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얌전하게 행동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모범생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별로 재미는 없겠지만요. 필립스 선생님이 미니 앤드루스가 모범생이라고 했지만 그 애는 상상력이나 생기라고는 없거든요. 항상목에 걸고 다닐 거예요. 제가 죽으면 그 주머니를 저와 함께 묻어주세요. 전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배리 아주머니가 제가 차갑게 죽어 있는 걸 보면 후회하는 마음이 되어 다이애나가 제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허락해주시겠죠?”
앤이 마릴라에게 말했다.
“네가 말할 수 있는 한은 슬픔으로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구나.”
마릴라의 말에 동정의 빛은 없었다.
다음 월요일, 앤이 자기 방에서 책이 든 바구니를 안고 무슨 결심을 아주 굳게 한 듯 입술을 앙다물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마릴라는 깜짝 놀랐다.
“저 다시 학교에 가겠어요.”
앤이 발표를 했다.
“제 단짝 친구를 빼앗겨버렸으니 제 인생에 남은 것은 학교뿐이에요. 학교에서라면 다이애나를 볼 수도 있고 지난날의 추억에도 빠져볼 수 있잖아요.”
“네 공부와 산수에 빠져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마릴라가 상황이 이렇게 반전된 것에 대한 기쁨을 애써 감추면서 말했다.
“이제 학교에 가면 친구 머리에다 석판을 깼다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얌전하게 행동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모범생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별로 재미는 없겠지만요. 필립스 선생님이 미니 앤드루스가 모범생이라고 했지만 그 애는 상상력이나 생기라고는 없거든요. 항상목에 걸고 다닐 거예요. 제가 죽으면 그 주머니를 저와 함께 묻어주세요. 전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배리 아주머니가 제가 차갑게 죽어 있는 걸 보면 후회하는 마음이 되어 다이애나가 제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허락해주시겠죠?”
앤이 마릴라에게 말했다.
“네가 말할 수 있는 한은 슬픔으로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구나.”
마릴라의 말에 동정의 빛은 없었다.
다음 월요일, 앤이 자기 방에서 책이 든 바구니를 안고 무슨 결심을 아주 굳게 한 듯 입술을 앙다물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마릴라는 깜짝 놀랐다.
“저 다시 학교에 가겠어요.”
앤이 발표를 했다.
“제 단짝 친구를 빼앗겨버렸으니 제 인생에 남은 것은 학교뿐이에요. 학교에서라면 다이애나를 볼 수도 있고 지난날의 추억에도 빠져볼 수 있잖아요.”
“네 공부와 산수에 빠져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마릴라가 상황이 이렇게 반전된 것에 대한 기쁨을 애써 감추면서 말했다.
“이제 학교에 가면 친구 머리에다 석판을 깼다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얌전하게 행동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모범생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별로 재미는 없겠지만요. 필립스 선생님이 미니 앤드루스가 모범생이라고 했지만 그 애는 상상력이나 생기라고는 없거든요. 항상 목에 걸고 다닐 거예요. 제가 죽으면 그 주머니를 저와 함께 묻어주세요. 전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배리 아주머니가 제가 차갑게 죽어 있는 걸 보면 후회하는 마음이 되어 다이애나가 제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허락해주시겠죠?”
앤이 마릴라에게 말했다.
“네가 말할 수 있는 한은 슬픔으로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구나.”
마릴라의 말에 동정의 빛은 없었다.
다음 월요일, 앤이 자기 방에서 책이 든 바구니를 안고 무슨 결심을 아주 굳게 한 듯 입술을 앙다물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마릴라는 깜짝 놀랐다.
“저 다시 학교에 가겠어요.”
앤이 발표를 했다.
“제 단짝 친구를 빼앗겨버렸으니 제 인생에 남은 것은 학교뿐이에요. 학교에서라면 다이애나를 볼 수도 있고 지난날의 추억에도 빠져볼 수 있잖아요.”
“네 공부와 산수에 빠져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마릴라가 상황이 이렇게 반전된 것에 대한 기쁨을 애써 감추면서 말했다.
“이제 학교에 가면 친구 머리에다 석판을 깼다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얌전하게 행동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모범생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별로 재미는 없겠지만요. 필립스 선생님이 미니 앤드루스가 모범생이라고 했지만 그 애는 상상력이나 생기라고는 없거든요. 항상 멍하고 느릿한 데다 즐겁게 보내는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기분이 이렇게 우울하니 모범생이 되는 일도 이제는 쉬울 것 같아요. 전 큰길로 돌아서 학교를 다니겠어요. 도저히 자작나무 길로 혼자 학교에 가지는 못하겠어요. 만일 그랬다간 너무 슬퍼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말 거예요.”
학교로 돌아간 앤은 대환영을 받았다. 게임을 할 때는 앤의 상상력이, 노래를 부를 때는 앤의 목소리가, 점심시간에 소리 내어 책을 읽을 때에는 앤의 극적인 재능이 절실히 필요했다. 루비 길리스는 성경 낭독 시간에 푸른색 자두를 3개나 살짝 건네주었다. 엘라 메이 맥퍼슨은 에이번리 학교에서 매우 인기가 높은 책상 장식품인 커다란 노란색 팬지꽃 사진을 주었다. 화훼 카탈로그 표지에서 잘라낸 것이었다. 소피아 슬론은 매우 우아한 새 레이스 뜨기 방법을 가르쳐주기로 했는데 앞치마 테두리 장식으로 쓰면 아주 멋질 것 같았다. 캐티 볼터는 석판용 물을 담을 수 있는 향수병을 주었고 줄리아 벨은 가장자리를 조가비 모양으로 자른 옅은 분홍색 종이에 다음과 같은 시를 정성껏 베껴주었다.

앤에게,

황혼이 커튼을 내리게 했고
별들이 창가로 다가올 때
기억해주오, 친구가 있음을
저 멀리 방황하고 있을지라도.
“소중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은 너무 좋은 일이에요.”
그날 밤 앤은 아주 만족스러운 듯 마릴라에게 말했다.
앤을 소중한 존재로 환영해준 건 여학생들뿐만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에 자리로 돌아와 보니(필립스 선생님은 앤에게 모범생인 미니 앤드루스와 같이 앉으라고 했다.)책상에 커다랗고 먹음직스러운 붉은 사과가 놓여 있었다. 앤은 그 사과를 집어 덥석 한 입을 베어 먹었지만 에이번리에서 붉은 사과를 재배하는 곳은 ‘반짝이는 호수’ 건너편의 블라이드네 과수원밖에 없다는 생각이 났다. 앤은 그 사과가 마치 불이 붙은 석탄이나 되는 양 얼른 떨어뜨려 버리고는 보란 듯이 손수건으로 손가락을 박박 문질러 닦았다. 그 사과는 다음 날 아침까지도 앤의 책상에 그대로 있었지만 학교 청소를 하고 불을 지피는 일을 하는 티모시 앤드루스라는 아이가 이게 웬 떡이냐며 가져가 버렸다. 찰리 슬론은 점심시간 후에 앤에게 석필을 주었다. 보통 연필이 1센트인데 비해 2센트나 하는 이 석필은 빨간색과 노란색 종이가 화려하게 감긴 예쁜 물건으로 사과보다 환대를 받았다. 앤이 기쁜 마음으로 받고 보답으로 미소까지 보내주었다. 앤에게 반해 있던 그 아이는 너무 기뻐서 천국에라도 오른 듯 황홀감을 맛보았다. 하지만 너무 흥분을 했는지 받아쓰기에 실수를 연발해 공부가 끝난 다음까지도 남아서 쓰기 연습을 하라는 필립스 선생님의 명을 받았다.
그러나 ‘카이사르 행렬에 브루투스의 흉상이 없어, 로마 최고의 인물인 그를 더욱 생각나게 했다’20)는 시구처럼 거티 파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다이애나 배리에게서는 아무런 선물도 오지 않고, 아는 척조차도 해주지 않아 앤의 작은 승리감에 흠집을 냈다.
그날 밤 앤은 마릴라에게 “다이애나는 저에게 한 번도 미소를 보내주지 않았어요.” 하며 한탄을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접은 쪽지와 작은 꾸러미 하나가 전해져 와 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사랑하는 앤에게,

엄마가 학교에서도 너랑 놀지도 말고 얘기도 하지 말라고 하셨어. 그러니 나를 나쁘게 여기지 말아줘. 나는 너를 여전히, 아니 예전보다도 더 사랑해. 너에게 내 모든 비밀 이야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거티 파이는 조금도 좋아할 수 없어. 널 위해 빨간색 종이로 책갈피를 만들었어. 지금 굉장히 유행하는 것인데 이 책갈피 만드는 법을 아는 애들은 학교에 단 셋뿐이야. 이것을 보면서 나를 기억해주기를!

너의 진실한 친구,
다이애나 배리
앤이 쪽지를 다 읽은 다음 그 책갈피에 입을 맞추고 곧바로 답장을 써서 교실 반대편으로 보냈다.
나의 사랑 다이애나,

물론 나는 네가 엄마 말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서 너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 마음은 서로 통해. 네가 준 예쁜 선물은 영원히 간직할 거야. 미니 앤드루스는 아주 좋은 아이야. 상상력은 없지만. 하지만 다이애나의 단짝 친구였던 내가 미니의 친구가 될 수는 없어. 철자가 틀렸더라도 부디 용서해줘,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철자에 서툴거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앤 코딜리아 셜리

추신: 오늘 밤에는 네 편지를 내 베개 밑에 넣고 잘 거야.

앤 또는 코딜리아 셜리.

앤이 다시 학교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마릴라는 또 말썽이 일어날 것이라고 비관적인 예상을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앤이 미니 앤드루스에게 ‘모범생’ 정신이라도 전수받은 것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그 이후로는 필립스 선생님과도 아주 잘 지냈다. 앤과 길버트 사이에는 경쟁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앤은 어떤 과목에서도 길버트 블라이드에게 지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이라도 한 듯 보였다. 길버트 쪽에서는 순전히 선의의 경쟁이었지만 앤으로 말하자면 꼭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분명 좋다고 볼 수 없는 성격이지만 앤에게는 어떤 일을 잊지 못하고 속에 묻어두는 경향이 있었다. 앤은 사랑도 증오도 모두 뜨겁게 했다. 하지만 앤은 학교 공부에서 길버트와 경쟁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걸 인정하면 앤이 무시해버리고자 했던 길버트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꼴이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 둘이 경쟁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고일 등자리는 둘 사이를 번갈아가며 오락가락했다. 이번에 길버트가 철자 맞추기에서일 등을 하면 다음에는 앤이 그 긴 빨간 머리를 쳐들고 길버트를 내리눌렀다. 어느 날 아침 칠판에 적힌 산수 문제백 점명단에 길버트의 이름이 오르면 다음 날에는 앤이 전날 밤 필사적으로 공부를 해와일 등을 되찾았다. 어느 날에는 둘이 동점을 차지해 둘의 이름이 나란히 적히는 끔찍한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앤은 낙서로 나란히 이름이 적히는 것과 거의 맞먹는 불쾌감으로 분해했지만 길버트는 아주 만족해했다. 매월 말에는 필기시험을 치렀는데 그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첫 달에는 길버트의 점수가 3점이 더 높았다. 두 번째 달에는 앤이 5점을 앞섰다. 하지만 길버트가 전 학생들 앞에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앤을 축하해주어 앤이 누려야 할 승리의 기쁨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만일 길버트가 진 것을 분해했더라면 그 기쁨이 더욱 달콤했을 텐데.
필립스 선생은 별로 좋은 선생님이라 할 수 없었지만 학생의 배우려는 의지가 매우 높아서 다른 어떤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었다 해도 공부는 분명 나아졌을 것이다. 그 학기가 끝나면서 앤도 길버트도 모두 5학년으로 진급했고 특별 과목인 라틴어, 기하, 불어, 대수의 기초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앤은 기하에서 악전고투를 해야 했다.
“이건 정말이지 끔찍한 과목이에요, 마릴라 아주머니. 전 절대로 이 과목을 따라잡지 못할 거예요.”
앤이 끙끙 앓는 소리를 했다.
“기하 공부에는 전혀 상상의 여지가 없어요. 필립스 선생님은 저처럼 기하를 못 하는 애는 처음 봤다고 했어요. 그런데 길…… 아니, 다른 아이들은 기하를 너무 잘해요. 정말 신경질 나 죽겠어요. 다이애나도 저보다는 잘한다고요. 하지만 다이애나가 저보다 잘하는 건 상관없어요. 지금은 서로 모른 척하면서 지내야 하지만 저의 다이애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까지나 불타오를 테니까요. 그렇지만 가끔씩 다이애나를 생각할 때마다 너무 슬퍼져요. 하지만 마릴라 아주머니, 이렇게 흥미로운 세상에서 언제까지나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죠?”




20) 영국의 시인 바이런(Byron, George Gordon, 1788~1824)의 기행시 <차일드 헤럴드의 편력(Childe Harold’s Pilgrimage)> 제4권 59장에서 인용. 바이런은 피렌체에서 추방된 단테의 무덤이 피렌체에 없어 단테가 더 그리웠다는 의미로 이 구절을 썼고, 몽고메리는 이 시구를 다이애나의 빈자리가 그 만큼이나 컸다고 말하려고 인용했다.
18
앤이 미니 메이의 목숨을 구하다





큰일은 꼭 작은 일과 연관되어 일어난다. 얼핏 보기에는 캐나다 총리가 자기 유세 일정에 프린스에드워드 섬을 포함시킨 것이 ‘초록 지붕 집’의 어린 앤 셜리의 운명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지 않았다.
총리가왔을 때는 일월이었고 샬럿타운에서 연설하기로되어 있었다. 이 연설회에는총리의 충실한 지지자들뿐 아니라 그저 구경꾼에 불과한 비지지자들까지 모두 모여들었다. 에이번리 사람은 대부분이총리를지지하는 편에 속했다. 그래서 연설이 있는 날 밤 거의 모든 남자들과 꽤 많은 여자들이 거의 50킬로미터나 떨어진 샬럿타운으로 가느라 마을을 비웠다.레이철린드 부인도 갔다.레이철린드 부인은 정치에 관심이 아주 많아서 이런 정치적인 집회가 자기 없이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고까지 믿었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가의 연설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말을돌보아주는 데필요한 남편까지 대동하고 도시로 나갔다. 그리고 마릴라 커스버트도 린드 부인과 동행했다. 마릴라도 내심 정치에 흥미가 있었고 이 기회를 놓치면총리를볼 기회가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앤과 매슈에게 집을 맡기고 따라나선 것이다.

마릴라와레이철이총리의 연설회를 맘껏 즐기고 있는 동안 앤과 매슈도‘초록 지붕 집’의 아늑한 부엌을 다 차지하고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구형 워털루 난로에서는 밝은 불이 타오르고 유리창 밖으로는 푸른빛을 띤 하얀 고드름이 빛을 냈다. 매슈는 소파에서 농업 잡지를 펼쳐놓은 채 졸고 앤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탁자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자꾸만 시계가 놓인 선반으로 갔다. 그 선반에 제인 앤드루스가 그날 빌려준 새 책이 놓였기 때문이었다.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제인의 말이 자꾸만 생각나 책을 가져오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근질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일 길버트 블라이드에게 지고 말 것이다. 앤은 시계가 놓인 선반에서 등을 돌리고 책이 거기 없다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매슈 아저씨, 학교 다닐 때 기하 공부를 해본 적이 있으세요?”
“글쎄다. 아니, 없는데.”
졸다 깨어난 매슈가 대답했다.
“해보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럼 제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었을 거예요. 이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면 절대로 제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어요. 이건 제 인생 전체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고요. 전 정말로 기하에는 형편없이 무너져요, 매슈 아저씨.”
앤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너라면 뭐든지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주 카모디의 블레어 상점에서 필립스 선생을 만났는데, 네가 학교에서 제일 똑똑한 아이고, 또 네가 공부에도 아주 빠른 향상을 보이고 있다고 하더구나. ‘빠른 향상’이라고 했어. 사람들은 테디 필립스가 훌륭한 선생이 아니라고 말들을 하지만 난 필립스 선생의 말이 옳다고 믿는다.”
매슈가 온화하게 말했다.
매슈는 앤을 칭찬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옳다고’ 생각할 것이다.
“선생님이 문자를 자꾸 바꾸지만 않는다면 저도 기하를 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선생님은 제가 명제를 다 외우기만 하면 칠판에서 그걸 지워버리고 책에 있는 것과는 다른 문자를써넣어서 헷갈리게 했어요.”
앤이 불평했다.
“전 선생님이 그렇게 심술궂게 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우리는 이제 농업도 배워요. 그래서 이제는 왜 길이 그렇게붉은색인지도 알게 되었어요. 그 이유를 알게 되어 너무 기뻤어요. 마릴라 아주머니와 린드 아주머니는 좋은 시간을 보내고계시는지궁금해요. 린드 아주머니는 정치가 계속 오타와처럼 되어 간다면 캐나다가 난장판이 되고 말 테니 유권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여성들이 선거권을 갖게 된다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도 하셨어요. 아저씨는 어디에 투표하실 거예요?”
“보수당이지.”
매슈가 말했다. 보수당에 투표하는 것은 매슈의 종교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저도 보수당이에요.”
앤이 단호하게 말했다.
“길…… 이랑 우리 학교 어떤남자아이들은 그리트당인데 저는 보수당이라서 다행이에요. 필립스 선생님도 아마 그리트당일 거예요. 프리시 앤드루스의 아버지가 그리트당이거든요. 루비 길리스가 그러는데 남자가 구혼할 때는 언제나 여자의 어머니와는 종교에서 아버지와는 정치에서 의견이 같아야 한대요. 그런데 그 말이 진짜예요?”
“글쎄다, 난 잘 모르겠는데.”
매슈가 말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구혼이란 걸 해보셨어요?”
“글쎄다, 아니, 난 그런 적이 없는데.”
일생 그런 일은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매슈였다.
앤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구혼이란 것도 왠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매슈 아저씨? 루비 길리스는 자기가 어른이 되면 숭배자를 많이 만들어서 모두가 자기한테 푹 빠지게 만들겠대요. 그것도 신나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전 올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한 명이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하지만 루비 길리스는 언니들이 많아서 그런 문제이라면 저보다 더 잘 알아요. 린드 아주머니도 길리스네 딸들은 불티나게 시집을 잘 갈 거라고 했어요. 필립스 선생님은 거의 매일 저녁 프리시 앤드루스를 만나러 간대요. 프리시의 공부를 도와주러 간다고 말하긴 하지만, 미란다 슬론도 퀸스를 대비해 공부하고 있으니까 제 생각에는 훨씬 더 공부를 못 하는 미란다를 더 많이 도와주어야 할 것 같은데 미란다네는 가지 않는 게 이상해요. 이 세상에는 제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주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글쎄다, 나도 세상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더라.”

매슈도 인정을 했다.
“전 이 공부를 끝마쳐야만 해요. 공부를 완전히 다 끝내지 못하면 제인이 빌려준 저 책을 절대로 펼치지 않겠어요. 하지만 매슈 아저씨, 전 그 유혹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요. 제가 책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도 책이 아주 생생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제인은 저 책을 읽을 때 눈물을 줄줄 흘렸대요. 전눈물 나는책이 너무 좋아요. 하지만 저 책을 거실에 있는 잼을 두는 찬장에 넣고 열쇠를 채워버려야 할 것 같아요. 매슈 아저씨, 제가 공부를 끝마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애원해도 그 열쇠를 절대로 저에게 주지 마세요. 유혹을 물리치는 일이 말로야 쉬워도 저한테는 열쇠가 제 손에 없어야 정말로 쉬운 일이 될 것 같아요. 제가 지하실에 가서 붉은 사과를 좀 꺼내올까요, 아저씨도 사과 좀 드시겠어요?”
“글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좀 먹어보자.”
매슈는 사실 붉은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앤이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서 그렇게 말했다.
앤이 접시에 사과를 가득 담아 씩씩하게 지하실에서 올라올 때 밖에서 꽁꽁 언 계단을 달려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다이애나 배리가 부엌문을 활짝 열고뛰어들어왔다. 숄을 뒤집어쓴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고 숨은 턱에까지 차 있었다. 앤은 그만 너무 놀라 들고 있던 촛불과 접시를 떨어뜨려 버렸다. 그 바람에 양초도 접시도 사과도 모두 깨져 지하실 계단 맨 아래까지 굴러가 나뒹굴며 녹아내린 기름에 뒤섞였다. 다음 날 마릴라가 그것을 치울 때 집에 불이 붙지 않은 게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쓸어내려야했다.
“무슨 일이야, 다이애나? 네 엄마가 드디어 화를 푸셨니?”

앤이 큰 소리로 물었다.
“오, 앤, 빨리 가야 해. 미니 메이가 많이 아파. 메리 조 언니가 그러는데 후두염에 걸린 것 같대. 엄마 아빠 모두 시내에 나가셨어. 의사를 부르러 보낼 사람도 없어. 미니 메이는 너무 아픈데 메리 조 언니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라. 오, 앤, 난 너무 무서워.”
다이애나가 몹시 불안정한 모습으로 설명을 했다.
매슈는 아무 말도 없이 모자와 코트를 챙겨 입고 황급히 다이애나 곁을 지나 어둠에 잠긴 마당으로 걸어 내려갔다.
“매슈 아저씨는 카모디로 의사를 부르러 가려고 마차에 말을 매러 가셨어. 난 아저씨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도 난 아저씨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아저씨와 나는 서로 통하거든.”
서둘러 외투를 입으며 앤이 말했다.
“카모디에 가도 의사를 찾기 힘들 거야.”
다이애나가 흐느꼈다.
“블레어 의사 선생님도 샬럿타운에 가셨어. 스펜서 선생님도 아마 그곳에 가셨을 거야. 메리 조 언니는 후두염에 걸린 사람을 본 적이 없대. 린드 아주머니도 안 계시고. 오, 앤!” 
“울지 마, 다이애나. 난 후두염 환자 돌보는 법을 잘 알고 있어. 너 하몬드 아저씨 댁에 쌍둥이가 세 쌍이나 있었다는 거 잊었니? 세 쌍둥이를 돌보다 보면 모르는 게 거의 없게 돼. 그 아기들이 모두 후두염에 걸렸었거든. 잠깐만 기다려. 내가 토근제21)를 가져올게. 너희 집에는 없을지도 모르니까. 자, 이제 가자.”

앤이 씩씩하게 말했다.
이 소녀들은 손을 꼭 잡고 서둘러‘연인의 오솔길’을 지나 꽁꽁 얼어붙은 들판을 넘어갔다. 눈이 너무 쌓여서 숲 속의 지름길로는 갈 수가 없었다. 앤은 미니 메이가 진심으로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이 상황이 너무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낭만을 다이애나와 나눌 수 있어 더욱 달콤했다.
그날 밤은 모든 것이 얼어붙어 버릴 듯 몹시 추웠다. 칠흑 같은 어둠의 그림자가 세상을 뒤덮고 고요에 싸인 들판 너머 눈 덮인 비탈길은 은빛으로 빛났다. 시꺼멓고 끝이 뾰족한 전나무는 가지마다 눈가루를 뒤집어쓴 채 서 있고,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그 사이를 지나갔다.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던 단짝 친구와 함께 달려가는 것이 앤은 너무 기뻤다.
세 살이 된 미니 메이는 몹시 아파 보였다. 열에 들떠 안절부절못하며 부엌 소파에 누워 있었고, 숨을 쉬기가 얼마나 힘든지 거친 숨소리가집 안전체에 울려 퍼졌다. 배리 부인이 집을 비우면서 동글동글한 얼굴에 건강하게 생긴 프랑스 소녀 영 메리 조에게 아이들을 맡겼다. 하지만 영 메리 조는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고, 설사 어찌해야 할지 알았다 해도 미니 메이를 제대로 돌볼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앤은 능숙하고 신속하게 미니 메이를 살펴보았다.
“후두염인 게 분명해. 상태가 무척 심각하지만 난 더 심하게 앓는 아이도 보았어. 우선 뜨거운 물을 넉넉히 준비해야 해. 저런, 다이애나, 주전자에 물이 조금밖에 없잖아. 내가 주전자를 채울 테니, 메리 조 언니는 난로에 땔감을 더 넣어줘요.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상상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생각할 수 있어야죠. 이제 미니 메이의 옷을 벗기고 침대로 옮겨야 해. 다이애나, 넌 포근한 면 이불을 좀 찾아와. 일단 토근제부터 먹여야겠어.”
미니 메이는 순순히 토근제를 마시려 하지 않았지만 앤은 세 쌍이나 되는 쌍둥이를 돌보면서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길고 불안한 밤 동안 미니 메이에게 토근제를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이나 먹이며 두 소녀는 끙끙 앓는 미니 메이를 정성껏 돌보았다. 영 메리 조는 걱정에 사로잡혀 자기가 할 수 있는일을하려고, 불을 쉴 새 없이 너무 많이 지펴 후두염에 걸린 아이들로 가득한 병원에서도 쓰고 남을 만큼 물을 많이 데워놓았다.
3시쯤에야 매슈가 의사를 데리고 왔다. 의사를 구하려고 스펜서베일까지 갔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긴급한 응급조치는 끝난 뒤였다. 미니 메이는 훨씬 좋아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저는 거의 포기할 뻔했어요. 미니 메이의 상태가 점점 악화돼서 나중에는 하몬드 아저씨네 막내 쌍둥이보다도 상태가 더 나빠졌거든요. 전 정말로 미니 메이가 숨이 막혀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 병에 있던 토근제를 다 먹이고 마지막 한 방울을 먹일 때는 다이애나나 메리 조 언니에게는 들리지 않게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두 사람을 더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저 혼자 불안감을 가라앉히려고 ‘이것은 마지막 남은 희망이야. 이번에도 아무런 소용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고요. 그런데 3분쯤 지나자 미니 메이가 기침을 토해내면서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가 얼마나 안심을 했는지 선생님은 상상도 못 하실 거예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거든요. 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일이 있잖아요.”
“그래, 그렇지.”
의사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뭔가 생각은 있지만 자신 또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듯 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생각을 배리 씨와 배리 부인에게 표현했다.
“커스버트네에 산다는 그 빨간 머리의 아이는 정말 똑똑하더군요. 그 아이가 미니 메이의 생명을 구했어요. 그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거기 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때였을 겁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재주도 훌륭했고 침착하기도 했고요. 상황을 설명할 때 반짝이던 눈빛은 아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눈이 하얗게 내린 아름다운 겨울 아침이 밝자 앤은 집으로 돌아왔다. 잠을 자지 못해 눈꺼풀은 무거웠으나 매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재잘대면서 하얀 들판을 건넜고, 반짝이는 단풍나무 아치 아래‘연인의 오솔길’을 걸었다.
“오, 매슈 아저씨, 아름다운 아침이죠? 하느님이 보고 즐기려고 상상했던 세상이 이런 모습일 거예요. 저 나무들은 제가 입김으로 날려버릴 수 있을 것처럼 보여요. 후! 하얀 눈에 덮인 세상에서 산다는 게 너무 좋아요. 아저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하몬드 아주머니가 쌍둥이를 세 쌍이나 낳았던 게 결국에는 다행이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미니 메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테니까요. 쌍둥이를 많이 낳았다고 화를 냈던 게 미안할 지경이에요. 하지만 매슈 아저씨, 전 지금 몹시 졸려서 오늘은 학교에도 못 가겠어요. 눈을 뜨고 있을 수도 없을 테니 바보처럼 보일 거예요. 그래도 집에 있기 싫어요, 그럼 길…… 이랑 다른 애들이일 등을 할 거고, 다시 따라잡으려면 너무 힘이 들 거예요. 물론 힘이 들수록 기쁨도 더 크겠지만요. 그렇죠?”
“글쎄다, 넌 잘해낼 거다.”
매슈가 앤의 하얗고 작은 얼굴과 눈 아래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집에 가면 곧바로 잠부터 자거라. 집안일은 내가 할테니.”
그래서 앤은 집에 가자마자 잠자리에 들었고, 깊게 잠들어 흰빛과 장밋빛으로 빛나는 오후에야 눈을 떴다. 앤은 잠을 깨자 곧바로 부엌으로 내려갔다. 어느덧 마릴라가 돌아와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오,총리는만나보셨어요? 그분은 어떻게 생겼던가요, 마릴라 아주머니?”
마릴라를 보자마자 앤이 물었다.
“그 얼굴을 보아서는총리같아 보이지 않더구나. 그 코는 어쩌면 그렇게 생겼는지. 하지만 연설은 잘하더라. 내가 보수당인 게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물론레이철린드 부인은 자유당이어서총리를시큰둥하게 생각했지. 앤, 네 점심은 오븐 안에 있다. 찬장에 자두 절임도 있으니까 꺼내 먹고. 배고프겠다. 매슈 아저씨한테 어젯밤 이야기는 다 들었다. 네게 그런 솜씨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후두염 환자를 본 적이 없어 아무런 생각도 못 해냈을 거다. 자, 점심부터 먹고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네 얼굴을 보니까 말이 무척 하고 싶은 모양인데, 조금만 참아라.”
마릴라가 말했다.
마릴라는 앤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었지만그 순간에는말하지 않았다. 그때 말하면 앤이 너무 흥분해서 먹는 것마저 잊어버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앤이 푸른 자두까지 먹고 나자 마릴라가 입을 열었다.
“배리 부인이 오늘 오후에 우리 집에 왔었다. 너를 만나고 싶어 했지만, 내가 너를 깨우지 않았다. 네가 미니 메이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걸 알고는 과실주 문제로 너를 심하게 대했다고 미안하다고 하더구나. 네가 일부러 다이애나를 취하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자기를 용서해달라고도 했다. 또 네가 다이애나와 좋은 친구로 지내기를 바란다고도 했고. 그런데 다이애나가 어젯밤에 감기에 걸려서 밖에서 놀지 못하니까 네가 오늘 오후에 들러도 좋다고 하더라. 자, 앤 셜리, 제발 너무 흥분하지 마라.”
마릴라의 주의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 앤의 표정은 꿈이라도 꾸는 듯 황홀경에 젖었고, 앤의 얼굴은 영혼의 불길에 휩싸인 듯 환히 빛났다.
“오, 마릴라 아주머니, 지금 가도 돼요, 설거지도 안 하고? 갔다 와서 할게요. 이처럼 감격스러운 순간에 설거지처럼 낭만적이지 못한 일에 얽매일 수는 없어요.”
“그래, 가봐라.”
마릴라가 기꺼이 허락해주었다.
“앤 셜리, 너 미쳤니? 빨리 와서 외투를 입어라. 차라리 바람에게 얘기를 하는 편이 낫겠다. 저 애가 모자도, 외투도 안 입고 나가네. 저런,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과수원을 빠져나가는 것 좀 봐. 저러다 감기나 안 걸리면 다행이지.”
해가 저물어 겨울 하늘이 자줏빛으로 물들어갈 때 앤은하얀들판을 가로질러 춤을 추며 집에 돌아왔다. 옅은 황금빛과 영롱한 장밋빛으로 물든 저 멀리 남서쪽 하늘에서 진주 같은 저녁별 하나가 어둠에 잠긴 가문비나무 골짜기너머로반짝거렸다. 눈 덮인 언덕을 달리는 썰매의 종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뚫고 마치 요정의 종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러나 그 종소리도 앤의 가슴과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만큼 달콤하지는 않았다.
“마릴라 아주머니, 지금 아주머니는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을 눈앞에서 보고 계신 거예요.”

앤이 말했다.
“전 지금 완벽하게 행복해요. 네, 제 머리칼이 빨간색이어도 상관없어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빨간 머리 같은 건 문제가 안 돼요. 배리 아주머니가 제게 입맞춤까지 하면서 너무 미안하고, 제게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전 떨리고 당혹스러웠지만, 아주 예의 바르게 ‘전 아주머니한테 나쁜 감정은 없어요.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일부러 다이애나를 취하게 하지는 않았어요. 이제부터는 지나간 과거는 망각의 외투로 덮어 버리겠어요.’라고 말씀드렸어요. 이 정도면 제가 아주 정중하게 말한 게 아닌가요, 마릴라 아주머니? 배리 아주머니는 제가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다이애나와 저는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다이애나가 제게 새롭고 멋진 뜨개질법을 가르쳐주었어요. 카모디에 사는 숙모에게 배운 거라며, 에이번리에서는 우리 둘만 이 뜨개질법을 알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 뜨개질법을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기로 엄숙히 맹세했어요. 또 다이애나는 저한테 장미 화환이 그려지고 시가 적힌 예쁜 카드 하나를 주었어요. 이런 시였죠.

내가 당신을 사랑하듯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죽음 외에 우리를 갈라놓을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
이 말은 바로 우리 마음이에요, 마릴라 아주머니. 학교에서도필립스 선생님에게 우리를 같이 앉게 해달라고 부탁드릴 거예요. 거티 파이는 미니 앤드루스와 같이 앉으면 되거든요. 우리는 우아하게 차도 마셨어요. 제가 진짜 손님인 것처럼 배리 아주머니는 가장 좋은 도자기찻잔까지 내주셨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제가 얼마나 감격했는지 말로 표현하지도 못하겠어요. 지금까지 누구도 저를 위해 그렇게 좋은 찻잔을 내놓은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과일 케이크와 파운드케이크, 도넛, 게다가 두 종류의 잼도 먹었어요. 배리 아주머니가 저한테 차를 마셨냐고 묻고는 ‘여보, 앤에게 비스킷을 좀 주실래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른이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어른인 것처럼 대접받는 것도 이렇게 좋은데 말이에요.”
“잘 모르겠다.”
마릴라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하튼 전 어른이 되면 어린여자아이들에게도 어른에게 말하듯이 할 거예요. 어린아이가 거창한 말을 한다고 비웃지도 않고요. 그런 말을 들으면 큰 상처가 되고 슬프다는 걸 제가 경험해봐서 알거든요.”
앤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차를 마신 후에는 다이애나와 함께 태피22) 사탕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태피 사탕이 별로 맛이 없었어요. 다이애나도 저도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다이애나가 접시에 버터를 바르면서 저한테 반죽을 저으라고 했는데 제가 깜빡 잊어버려서 태워버렸어요. 그래도 반죽을 식히려고 받침 위에 놓아두었는데 고양이가 받침 위로 지나가서 반죽을 버릴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태피 사탕 만드는 건 정말 재미있었어요. 제가 나올 때는 배리 아주머니가 가능하면 자주 놀러 오라고 하셨고, 다이애나는 창가에 서서 제가 ‘연인의 오솔길’을 지나는 동안 내내 키스를 보내주었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오늘 밤엔 정말 기도를 하고 싶어요. 오늘을 기념해서 아주 새로운 특별한 기도를 생각해낼 거예요.”



21) 꼭두서니과의 상록 관목. 뿌리는 가래를 없애주고 토하게 하는 약재로 씀.
22) 설탕이나 당밀을 고아 땅콩 등을 넣어 만든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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