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밤

비밀/히가시노 게이고 (5)

개미남 | 2019.06.20 11:28:57 댓글: 0 조회: 821 추천: 0
분류추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3940354
비밀/히가시노 게이고


3.
나오코가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고를 깨달은 것은 병실로 옮겨진 직후였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정신이 몽롱해서 사고를 당한 것도, 생사의 경계를 방황했던 것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의식이 또렷해진 이후에도 왜 사람들이 자신을 모나미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잠시 그대로 있기로 했다.
'아니에요! 나는 모나미가 아니라 나오코예요!'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그녀를 말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사태가 더욱 복잡해진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입을 다무는 것밖에 없었다. 이윽고 자신과 딸의 육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면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시라도 빨리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오늘 남편의 우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끔찍한 악몽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헤이스케는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다음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은 모나미라는 뜻인가?"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헤이스케의 고개가 앞으로 푹 꺾였다.
"그래? 그렇군. 모나미는 죽은 거군."
그녀, 즉 모나미의 모습을 한 나오코는 몸에 덮고 있던 담요를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다. 담요 아래에서 숨을 숙인 오열이 새어나왔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나 같은 것보다 사랑스런 모나미가 살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나 같은 것이 살아서 무엇을 하려고‥‥‥."
"무슨 말 하는 거야? 지금 그런 뜻이 아니잖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알아? 당신만이라도 살아남은 게 천만다행이라구. 당신만이라도‥‥‥."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딸의 모습을 보면서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죽음을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슬픔으로 자리했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리를 죽여 흐느껴 울었다.
"그런데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이런 일을 믿을 수 있겠어?"
슬픔의 썰물이 어느 정도 빠져나간 다음, 그는 딸아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니, 아내의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나도 믿을 수 없어요."
그녀는 손등으로 얼굴에 흐르고 있는 눈물을 닦았다.
"그러니까 결국 이제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군."
"어찌할 수 없다뇨?"
"그러니까 앞으로 낫지 않을 거라는 뜻이야."
"낫다니‥‥‥ 병에 걸린 건가요?"
"글쎄, 그게‥‥‥."
"만약에 약을 먹거나 수술을 해서 모나미의 의식이 돌아온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치료를 받겠어요."
그녀의 의지는 무엇으로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단호했다.
"하지만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의식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번에는 당신의 의식이 사라져버리잖아?"
"그래도 상관없어요. 모나미가 돌아올 수 있다면 나는 어딘가로 사라져버려도 좋아요."
커다란 눈에 진지한 빛을 가득 담고 그녀는 헤이스케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예전 딸아이의 표정을 떠올렸다. 반드시 성적을 올릴 테이까 학원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고집을 부리던 모나미. 지금 그때와 똑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아내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나오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하지만 그것이 정상이에요. 사실 내가 죽어야 마땅한 거잖아요."
"지금 그런 말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어?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모나미는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야."
잠시 동안 무거운 침묵이 방 안 공기를 휘감으며 두 사람을 내리눌렀다. 정적을 먼저 깨뜨린 사람은 그녀였다.
"여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글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다른 사람은 도저히 믿어주지 않을 테고 의사들도 어쩔 수 없을 거야."
"정신병원에 넣으려고 하겠죠."
"그렇겠지."
나지막하게 신음을 내뱉는 그의 얼굴을, 그녀는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무엇인가 알아차린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이 장례식이었나요?"
"응? 그래. 어떻게 알았지?"
"그런 때가 아니면 당신이 와이셔츠를 입을 일이 있겠어요?"
"아, 그런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와이셔츠 옷깃을 만져보았다. 상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고 생각했지만 와이셔츠 위에 카디건을 걸쳐 입었을 뿐이었다.
"내 것이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어두운 늪 속에서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응?"
"내 장례식이었냐고요?"
"음, 그래. 나오코의 장례식이었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살아 있어. 나오코는 살아 있다구."
"그러면 모나미의 장례식이었군요. 내가 그 아이의 몸을 뺏은 거예요. 그 아이의 영혼을 내쫓았어요‥‥‥."
그녀의 눈에서 또다시 굵은 눈물방울이 넘쳐흘렀다.
"당신은 모나미의 몸을 구한 거야."
그는 아내의 가냘픈 손을 잡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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