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왕 두 번째 이야기

나단비 | 2024.01.28 20:53:21 댓글: 2 조회: 151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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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 어느 소년과 소녀


Acoustic Café - Last Carnival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많이 사는 큰 도시는 누구나 다 정원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넓지 않다. 아무리 작은 정원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분에 꽃나무를 몇 그루 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런 큰 도시 중, 어느 한 도시에 가난한 두 아이가 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화분 몇 개보다는 더 크고 멋진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이웃에 사는 두 아이는 오누이는 아니었지만 오누이처럼 사이가 좋았다. 두 아이의 부모들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다락방에 살았는데, 두 집 지붕은 상대방 지붕 쪽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그 사이에는 물받이 통이 놓여 있었다. 또 양쪽 집에는 작은 창문이 있어서 물받이 통만 건너가면 상대편 집 창문에 닿을 수가 있었다. 두 아이의 부모들은 각각 커다란 나무 상자에 채소와 장미를 길렀다. 식물들은 날마다 쑥쑥 자랐다.




어느 날, 두 아이 부모들은 상자를 물받이 통에 갖다 놓으면 식물들이 한쪽 창문에서 다른 쪽 창문까지 닿아서 꽃담장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하고 상자를 옮겨 놓았다. 콩나무 덩굴은 축축 늘어지도록 자라 상자를 덮었고 장미나무는 긴 가지를 펼쳤다. 그리하여 두 식물이 서로 엉켜 꽃과 잎으로 만든 개선문처럼 보였다. 상자들을 매달아 놓은 곳은 높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허락 없이 그곳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장미 덩굴 아래에 등 없는 의자를 놓고 앉아서 조용히 노는 것은 괜찮았다. 그래서 두 아이는 그곳에 앉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겨울에는 창문이 꽁꽁 얼어붙어서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두 아이는 난로에 동전을 데워서 얼어붙은 창문에 갖다 대었다. 그러면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아주 동그란 구멍이 생겼다. 두 아이는 그 구멍을 통해 서로에게 사랑스럽고 밝은 미소를 보내곤 하였다. 사내아이의 이름은 카이였고, 여자아이는 게르다였다. 여름에는 창문에서 물받이 통만 펄쩍 뛰어넘으면 금방 만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겨울이라서 긴 계단을 올라갔다 다시 내려가서 눈 속을 뚫고 가야만 만날 수 있었다.
 
눈이 내리는 어느 날, 카이의 할머니가 펑펑 쏟아지는 눈을 가리키며 손자에게 말했다. “저기 좀 보렴. 하얀 벌들이 떼지어 다니지?”




“하얀 벌에도 여왕벌이 있나요?” 카이가 물었다. 카이는 진짜 벌에는 여왕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고 말고. 여왕벌은 벌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을 날아다닌단다. 벌 중에서 제일 크지. 또 땅에 가만히 있지 않고 저 검은 구름 속으로, 하늘 높이 날아다닌단다. 한밤중이면 도시의 거리를 날아다니면서 창문 안을 들여다보지. 그러면 창문에 아름답게 얼음이 얼어붙어서 마치 꽃이나 궁전처럼 보인단다.”

“맞아요. 그런 걸 본 적이 있어요.” 카이와 게르다가 말했다. 그들은 할머니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눈의 여왕이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나요?” 게르다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들어오기만 해 봐. 난로 위에 놓고 녹여 버릴 테야.” 카이가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카이는 외출복을 반쯤 벗고 의자 위에 올라서서 동전으로 창문에 만든 조그만 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눈송이가 한가하게 날리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송이가 화분 가장자리에 떨어졌다. 눈송이는 점점 커지더니 아주 곱고 하얀 천으로 된 옷을 입은 여자가 되었다. 마치 별처럼 생긴 수백만 개의 눈송이가 합쳐진 것 같았다. 여자는 매우 아름답고 고왔지만 눈부시게 반짝이는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두 눈은 투명한 별처럼 빛났다. 하지만 눈빛은 평온하고 온화하지 않았다. 그녀는 창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을 했다. 카이는 놀라서 튕겨져 나가듯이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바로 그 순간 커다란 새가 창문을 스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다음날, 매우 투명한 서리가 내리더니 얼마 후, 눈이 녹고 봄이 왔다. 해님이 따스한 햇살을 뿌리고 푸른 싹이 돋아났으며 제비들이 둥지를 틀고 집집마다 창문이 활짝 열렸다. 카이와 게르다는 다시 처마 밑의 작은 정원에 앉아 놀 수 있게 되었다. 여름이 되자 장미는 타는 듯이 빨갛게 피어났다. 게르다는 장미에 대한 노래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장미를 생각하며 카이에게 그 노래를 불러 주었다. 카이도 노래를 따라 했다.
 
“장미는 피었다 지네.
하지만 우리는 아기 예수를 보게 되리라!”
 
카이와 게르다는 서로 손을 잡고 장미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눈부신 태양을 쳐다보며 아기 예수가 정말 거기에 있는 것처럼 말을 걸어 보았다.
 
얼마나 멋진 여름인가! 영원히 지지 않을 것처럼 싱싱하게 피어 있는 장미에 둘러싸여 보내는 시간은 즐겁고 행복했다.

어느 날, 카이와 게르다가 나란히 앉아 동물과 새가 나오는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커다란 교회탑 종소리가 12번 울리자 갑자기 카이가 비명을 질렀다. “아야! 뭐가 가슴에 박혔어. 눈에도 박혔네.”

놀란 게르다는 카이의 목을 안고 눈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없어진 것 같아.” 카이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없어진 게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요술 거울의 파편이었다. 여러분은 앞에서 얘기한 거울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훌륭하고 멋진 것들을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보이게 하고 사악하고 나쁜 것들을 더욱 드러나게 하며, 아무리 사소한 결점이라도 어마어마하게 크게 보이게 만드는 악마의 거울을 말이다. 바로 그 파편 하나가 가엾게도 카이의 가슴에 박힌 것이다. 카이의 가슴은 금방 얼음 덩어리처럼 차갑게 변해 버렸다. 이젠 아프지 않았지만 그 파편은 카이의 가슴에 남게 되었다.

“왜 우니? 우는 건 딱 질색이야. 도대체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단 말이야. 저기 좀 봐, 저 장미는 벌레가 먹었네. 그리고 이건 완전히 비뚤어졌잖아. 정말 흉측하게 생겼어. 그걸 심은 상자랑 똑같아!” 카이가 이렇게 말하며 상자를 발로 걷어차고 장미 두 송이를 꺾어 버렸다.

“카이야, 갑자기 왜 그래?” 게르다가 놀라서 외쳤다.

하지만 카이는 게르다가 놀라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장미 한 송이를 더 꺾었다. 그리고는 창문을 통해 뛰어들어가 버렸다.

그 후 카이는 날이 갈수록 심술궂어졌다. 게르다가 그림책을 가지고 나오면 그런 건 갓난아기에게나 맞는 것이라고 빈정댔고,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해 주면 ‘그렇지만’ 하고 말참견을 하곤 했다. 그리고는 할머니 뒤로 가서 안경을 걸치고는 할머니처럼 흉내 내며 장난을 쳤다. 그러면 사람들은 똑같이 흉내 내는 카이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카이는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말투와 걸음걸이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괴팍하고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으면 곧장 흉내 내며 비웃곤 하였다. 그걸 보며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 아인 정말 똑똑해.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카이를 그렇게 만든 것은 눈과 심장에 박힌 거울 파편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게르다까지 괴롭히곤 하였다. 그가 하는 게임 역시 어린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주 이상한 게임이었다.

눈발이 드세게 휘날리는 어느 겨울날, 카이는 확대경을 들고 나와 푸른 웃옷 자락을 내밀어 눈송이를 받았다.

“게르다, 이 렌즈 좀 들여다 봐.” 카이가 말했다.

확대경을 들여다보자 눈송이들이 실제보다 훨씬 커 보였다. 마치 화려한 꽃이나 눈부시게 반짝이는 별 같았다.

“어때, 정말 멋지지? 진짜 꽃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어. 하나같이 모두 완벽해. 물론 녹지만 않는다면 말야.” 카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잠시 후, 카이는 손에는 커다란 장갑을 끼고, 등에는 썰매를 매고 나타났다. 그는 위층에 대고 게르다에게 소리쳤다. “나 광장에 간다! 애들이 놀이도 하고 썰매도 타고 있을 거야.” 그리고 나서 카이는 가 버렸다.

광장에서는 배짱 좋은 개구쟁이 소년들이 농사짓는 데 쓰는 마차에 썰매를 묶고 멀리까지 매달려 가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카이도 그들 틈에 끼여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이 한참 흥이 나서 놀고 있을 때 어디선가 큰 썰매가 나타났다. 그 흰색 썰매에는 어깨에 하얀 모피를 두르고 머리에는 흰 털모자를 쓴 사람이 앉아 있었다. 썰매가 광장을 두 바퀴 돌았을 때 카이는 자기의 작은 썰매를 흰 썰매에 단단히 묶었다. 큰 썰매는 거리를 지나서 더 점점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썰매를 타고 있던 사람이 고개를 뒤로 돌려, 서로 아는 사이나 되는 것처럼, 카이에게 상냥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카이는 너무 두려워서 자기의 작은 썰매를 큰 썰매에서 떼어 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때마다 그 사람은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카이는 하는 수 없이 썰매를 떼어 내는 걸 포기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성문을 빠져나오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바로 눈앞에 있는 손조차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썰매는 쉬지 않고 달렸다. 카이는 끈을 풀고 커다란 썰매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작은 썰매는 큰 썰매에 단단히 매달려 질풍처럼 달렸다. 카이는 도와 달라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눈보라가 몰아쳐 카이의 얼굴을 후려쳤고 썰매는 눈 속을 헤치며 계속 달렸다. 가끔 울타리를 뛰어넘어가 도랑을 건널 때면 썰매가 하늘 높이 치솟기도 했다. 카이는 너무나 무서워 기도를 하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입에서 맴도는 것은 구구단뿐이었다.

눈송이가 점점 더 커지더니 마침내 커다란 흰 닭처럼 보였다. 그때 갑자기 몸이 용수철처럼 옆으로 튀어 오르고 썰매가 멎었다. 썰매를 몰던 사람이 일어서서 진짜 눈으로 만든 털옷과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키가 크고 눈부시게 하얀 숙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바로 눈의 여왕이었다.

“정말 신나게 달려 왔지? 그런데 왜 그렇게 떨지? 자, 내 털옷 속으로 들어오렴.” 눈의 여왕이 카이를 자신의 옆에 앉히고 털옷으로 감싸주었다. 카이는 마치 눈더미에 파묻히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춥니?” 눈의 여왕이 카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차가운 입술에서 나오는 냉기가 이미 얼음 덩어리나 다름없는 카이의 심장에 전해졌다. 카이는 금방이라도 얼어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금방 추위가 가시더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내 썰매! 내 썰매 잊어버리면 안 돼요!” 카이는 그때서야 썰매가 생각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이의 썰매는 한 하얀 닭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닭이 썰매를 등에 지고 쫓아왔던 것이다. 눈의 여왕이 한 번 더 입을 맞추자 카이는 게르다도 할머니도 모두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젠 더 이상 입을 맞춰 줄 수가 없어. 그럼 넌 죽게 되니까.” 눈의 여왕이 말했다.

카이는 눈의 여왕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 눈의 여왕보다 더 아름답고 우아한 얼굴이 있을까? 카이는 그런 사람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창문을 통해 보았을 때는 여왕이 얼음으로 빚어진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카이의 눈에는 여왕이 어느 한 구석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해 보였다. 더 이상 두렵지도 않았다. 카이는 여왕에게 분수도 암산할 줄 안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면적을 구할 줄도 알고 전국의 인구 수도 안다고 말했다. 카이가 말하는 동안 여왕이 잠자코 미소만 짓자 카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왕은 카이를 데리고 검은 구름 위로 높이 높이 날아오르면서 널따란 황야를 둘러보았다. 폭풍이 옛날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울부짖었다. 그들은 숲과 호수와 바다와 육지 위를 날았다. 아래에서는 거친 바람이 윙윙거리고 늑대가 울부짖었으며 눈이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그리고 위쪽에서는 까마귀들이 까악까악 하며 날고, 달님이 밝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카이는 기나긴 겨울밤에는 그렇게 지내고, 낮에는 눈의 여왕의 발 밑에서 잠을 잤다.
 
 


 
출처 : 안데르센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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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4/01/29 06:25:35

게르다와 카이는 青梅竹马엿군요..마음속에 악마의 거울이 박히면 세상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심술궂고 빈정대기 좋아하네요.근데 이런 삐딱한 카이를 눈의여왕
은 왜 데려갓을까요?여왕이 입을맞추면 기억상실증에 걸리네요.여왕은 요술쟁이.

아름답지만 외로웟던 눈의여왕.

나단비 (♡.252.♡.103) - 2024/01/29 09:09:54

눈의 여왕도 외로웠던거 아닐까요. 차갑고 아름답고 외로운 눈의 여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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