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철국이1

galaxy2 | 2020.08.14 15:24:19 댓글: 0 조회: 1905 추천: 4
분류실화 https://life.moyiza.kr/mywriting/4156413
광호편에서 철국이가 잠깐 등장했다.
철국이는 나와 유치원부터 같이 다녔던 짜개바지 친구이다.
유치원 부터 소학교까지는 철국이와 벨로 휩쓸려서 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학교때 기억에 남는 일은 철국이는 축구를 엄청 잘찼다...
우리 농촌학교 축구팀이 어쩌다 시내에 가서 시장컵인지 교장컵인지 축구시합에 참가한적이 있는데 비록 소조경기에서 도태맞았지만
철국이가 유일한 꼴을 하나 넣어서 체육선생님이 얼굴에 잠간의 웃음이 핀적이 있었다.

철국이는 소학교까지 학습성적이 벨로 좋았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초중이 되여서 철국이 학습성적이 좋아지면서 우리는 서로 잘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 농촌에 시내로부터 젊은 남자선생님이 전근해 오셨는데 우리 반주임을 맡으셨고
시내 학교를 따라배워 수학써클 물리써클 등 과외 써클반을 조직하셨다. 그때부터 철국이는 써클반에 참가하면서 많이 접촉했다.
철국이네집은 한국에 친척이 있어서 92년도 중한 수교한후부터 어머님은 한국에 가서 돈벌이를 했다.
그후부터 철국이 생활 수준 향상속도는 로케트를 탄격이였다.

우리집은 80년대중반쯤이 되여서 우리고향에서 두번째 《万元户》로 되였다.
그때부터 채색 텔레비죤이 있었고 나는 소학교 4학년부터 二六(二八자전거는 큰 자건) 자전거 타고 학교에 다녔다.
나는 우리반에서 소비돈을 제일 많이 가졌고 옷도 제일 좋은거 입고 다녔고
구두도 소학교 6학년부터 신은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자기외모에 신경을 쓰는 좀 조숙된 청소년인것 같았다.

철국이는 초중부터 어머님이 한국에 가서 돈벌이 하면서 완전히 시내애들처럼 옷을 입고 다녔다.
철국이 어머님이 한국에서 옷을 사서 보내왔는데 옷 스타일이 중국옷에 비하면 완전히 하늘과 땅사이였다.
당시 한국은 88년 올림픽을 하고나서 박정희 대통령 임직시 잘 닦아논 경제 토대를 이용해서 고속으로 발전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철국이는 한국 운동복과 잠바를 많이 입고다녔는데 그 양식이 정말 멋있엇다...
매번 겨울마다 새 등산복을 사입는 나였지만 철국이 옆에서면 토배기 시골 소년이였다.
그때 그시대에 겨울옷 겨울신을 한번 사서 사오년씩 입고 동생에게 물려줘서 계속입는게 일반 가족의 현실이였다.


우리 써클을 하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이 하학한후 남아서 2시간 정도 써클공부를 더하고 하학한다.
그렇게 되면 저녁때가 거의 되여서 그리고 그때는 한창 몸이 자라는 나이여서인지 배가 매우 고프다.
써클에 참가하는 애들은 저녁밥 전의 잠간의 기아를 달래기 위해서 집에서 만티나 까마치 같은것들은 준비해온다.
나같은 경우는 집에서 용돈을 잘줘서 학교뒤에 쑈매풀에 가서 맨보에 사이다를 사다가 먹었다.
때론 같이 얻어 먹으러 따라오는 동학들에게 맨보를 한 1/3쯤 끊어주고 사이다도 입을 대고 나눠먹었다.
그래서 나의 주위에는 항상 따라다니는 동학들이 많았다...

그때는 사회 전체가 생활수준이 높지 않아서 보통 가정은 자식한테 날마다 용돈을 줄 처지도 안되였다.
게다가 우리는 시골 농촌이여서 생활수준이 더 나빳다.
인간이 있는곳에는 사회가 생기고 사회가 생기면 인간사이 관계가 생기기 마련이다.(별로 선후관계 바꿔말한것 같다)
그때 우리들 사이에도 작은 사회가 생기고 이익 관계가 생겨났다.
나처럼 집에서 용돈을 많이 가지는 애들의 주위에는 항상 따라다니는 애들이 많았다.

조금이라도 얻어먹을수 있었으니...
나는 소학교 6학년때 (91년도) 小天才게임(500원 미만.小霸王보다 좀 더좋은 기계였음. ) 기계를 샀다.
당시 한창 유행했던 魂斗罗,超级玛丽、沙罗蟒蛇、坦克大战、冒险岛등 게임을 게임방이 아닌 자기 집에서 놀수 있었다.
게임방에서 놀면 한게임하는데 30전을 받았다.
애들이 우리집에 와서 놀면 무료로 놀수있어서
우리반 애들 뿐만아니라 웃학년 아래 학년애들 모두 나와 관계가 매우 좋았다.

이렇게 나는 온 시골의 조선족 학생들의 총애를 혼자서 다 받은것 같았다... (한족애들과 조선족애들은 완전히 갈라져 놀았다)
어느날 갑자기 나는 따라다니던 애들이 점점 적어지기 시작함을 느꼈다. 철국이네 생활이 좋아졌으니... ㅎㅎ
철국이네 집생활수준은 우리집 보다 확실하게 더 좋아졌다.
철국이도 나처럼 게임 기계를 사니깐 나앞에서 알락거리던 일부 <불 충성>한 친구들은 철국이쪽으로 넘어갔다. ㅎㅎ
그때 자기를 따르던 애들이 철국이와 더 가까워지고 하니깐 마음속으로 조금 질투가 나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확실히 철국이네 집생활 수준이 올라가는 그속도를 보니깐 놀랄 지경이였다.
철국이네는 먼저 집부터 큰집으로 바꿧고 가정기물도 25인치 채색 텔레비로 바꾸고 냉장고도 우리집 냉장고보다 더큰것을 샀고
가구도 연길 시내 목수를 데려다가 최신 组合柜로 바꿧다.
그때는 목수를 집에 데려와서 집의 내부구조에 따라서 가구를 설계해서 직접
집에서 가구를 짜서 설치했었다.

철국이와 잘사는것으로 비교해서는 안되겟다는것을 충분히 느꼇다.
생각밖으로 철국이는 나와 친구 빼앗기를 하지 않았고 나와 가깝게 보내려고 어머님이 한국에서 보내온 쵸컬리랑
많이 줘서 참 맛있게 잘먹었다(그때 쵸컬렛트를 먹어본 애들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학교 써클에서 공부도 같이 하고 시내에 수학경연 물리경연 등에 참가하러도 다녔다.
시내에 경연 참가하러 갈때 제일 행복할때이다. 나와 철국이는 용돈도 푸짐히 가지고 연길에 가서 써클반 친구들과 잘 썻다.

저녁이면 먹을것들을 많이 사다가 초대소에서 잘 먹고...시헙이 끝나서 연길 청년호에 가면 게임방이 큰게 있었는데 그기서 잘놀았다.
그게임을 大机器라고도 불렀고 그 게임방을 币子厅 라고도 불렀다.
그중에 街头霸王이 제일 인기가 있었고 비행기 게임 등이 있었는데 游戏币 하나 50전씩 사서 잘놀았다.


학교에서 일년에 한번씩 조직하는 원족이 있다.초중 2학년이던지 3학년이던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원족에 가서 등산 시합도 하고 바줄당기기도 하고 집에서 준비해간 음식을 야외에서 먹으면서 재밌게 놀고 산에서 내려와서
철국이는 나보고 저녁에 집가서 밥먹지 말고 자기와 같이 학교뒤에 있는 양뤄촬(양꼬치)집에 가잔다.
비록 나는 집에서 소비돈을 잘 가진다고 하지만 양뤄촬(양꼬치)까지 친구에게 사줄만한 용돈은 가지지 못했었다.
그때 우리 농촌에서 양뤄촬이 금방 시작할때에는 한촬에 25전씩 했는데 그가격을 몇년동안 유지한것 같다.
농촌이여서인지 물가가 쉽게 오르지 않았다. 그때는 한창 몸이 자랄때여서 한사람이 50촬씩은 먹어야 배에 기별이 갔다.
(난 혼자서 최고로 100뀀 먹은 기억이 있다. )

둘이면 100촬은 먹어야지 25원 그기에 사이다 한사람이 세네병은 마여야지 한병에 50전하면 8병에 4원.
둘이서 적어서 30원은 있어야 양루촬 썰썰이 뗄수 있었다.


그때 생활 수준 놓고 말하면 잘산다는 우리집에도 일년에 한번씩 가는 원족날에 10원 용돈밖에 주지 않았다.
평소에는 하루에 2원정도. 그때 삥궐값이 10전 쒜고 20전으로 기억난다.

오늘은 철국이 덕분에 양루촬 확실하게 먹어야지.
양루촬집에 도착해보니 한반에 다니는 영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영수가 언젠가 부터 철국이와 가깝게 지내려고 하는것을 나도 발견했었다.
양루촬 구워놓고 먹으려고 하는데 영수가 일어나더니 밖에 나가서 맥주 세병 들고 들어오는것이였다.
야 오늘에는 양루촬에 피쥬나 먹자...

그때에 우리반에는 공부를 별로 하지 않고 담배도 피우고 술도 먹는 그런 학생들이 몇명 있었다.
영수도 그중의 한명에 속했다.
그렇게 우리셋은 맥주에 양루촬을 먹었고 한사람 맥주 한병씩 다먹으니 나는 취해서 집에 감히 가지 못하고 철국이네 집에서 잤다.
(철국이네는 어머니는 한국에서 일하시고 아버지는 자주 밖에 나가는지 보지 못했다. 철국이는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그후부터 나와 철국이 사이에는 영수가 드문드문 끼여들어서 놀군했다.
하루는 철국이가 나보고
<<영수가 말하는게 우리셋이 딱친구 하자더라.니생각에 괜찮으무 우리셋이 또 양루촬집에 가서 한때
먹자...>>
난 양루촬 먹는게 좋아서 좋다고 쉽게 대답했다. 양루촬 우정의 시작...
그때 영수는 내가 좀 어려워 보였는지 나보고 직접 자기 의사를 표달하지 못하고 철국이를 통해서 표달한것 같다.


말로는 셋이 딱친구이지만 영수는 나와 철국이처럼 공부를 하는 구치가 아니여서 셋이 만나서 노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철국이와 나는 모두 선생님이 조직하는 써클에 참가하니깐 함께 공부도 하고 또 우리 모두 축구를 좋아해서 휴식할때면
다른 축구를 좋아하는 애들과 축구를 많이 찼다.
지금 기억에 영수는 우리 원족을 갈때와 일년에 한번씩 하는 운동대회날 저녁에 모아서 놀때 우리와 같이 휩쓸려 놀았다.
그런데 지난번 양루촬땐에서 맥주 먹은후부터 영수는 은근히 우리둘과 친한척했다.

다른 애들과도 우리셋은 딱친구라면서 자랑을 했단다.(후에 다른 친구들한테서 들은 얘기)
나와 철국이는 새로 전근해오신 선생님의 좋은 가르침으로 中考시험에 좋은 성적을 따냈고 나는 고중에 가게 되고 철국이는
연길의 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되였다.
영수는 초중 졸업시험만 보고 中考시험은 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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