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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리철이

galaxy2 | 2020.08.20 09:38:52 댓글: 2 조회: 2412 추천: 4
분류실화 https://life.moyiza.kr/mywriting/4158460
이번 리철이 이야기는 한편으로 적어 보겠습니다.

나와 리철이의 인연은 심천에서 시작을 했다.
우리는 고향이 연변이지만 심천에 와서야 서로 알게된 친구이다.
B회사에 면접하고 입사 통지서를 받고 첫달 월급을 받은후 회사 부근에 세집을 맡고 광호집에서 나왔다.
B회사 첫번째 면접부터 나올때까지 광호집에서 2달이나 주숙했다.
하도 광호 여자친구가 무던한 사람이여서 내가 있을때 아무런 눈치도 주지 않았다. (혹시 내가 눈치가 무디였을수도 있고ㅎㅎ)

리철이와는 광호네 집에서 B회사에 출근 하는사이에 광호를 통하여 소개받아서 알게 되였다.
광호가 고향을 가는길에 비행기 옆자리에 앉게된 리철이를 알게 되였고 사람이 통쾌하고 전통적인 술마이기 좋아하고
씨 착한 그런 조선족 스타일이였다.
광호도 술을 매우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두사람은 모두 술마이자는 약속에 NO 할때가 없는 그런 사람이였다.
리철이가 광호 생일에 와서 우리는 만나게 되였는데 과연 광호가 말하던것처럼 술 애호가 이고 마음씨도 착하였다.

당일 친구들이 매우 많이 왔는데 2차 가족 노래방에 갔을때 리철이가 광호 생일이라고 마이딴을 하는것이였다.
참 멋져보였다...노래방에 가서 목이 터지게 노래부르고 맥주도 엄청 많이 마이고 또 길옆에서 하는 양뤄촬 먹으러 갔다.
양뤄촬 먹으면서 오늘 첨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도 듣고 좀 더깊게 자기 소개를 하는 판이되였다.
거의 끝날 무렵 나는 큰거는 못사도 양뤄촬 마이딴하려고 가게주인한테 갔더니 가게주인이 누군가 이미 마이딴했단다.
알고보니 리철이가 이미 마이딴을 다 하고 저기에 앉아 있었다.

97년도에 심천에 와서 첨에는 여기저기 회사 다니면서 헤매다가 운이 좋게 좋은 한국 회사에 입사하게되였다.
회사에서도 돈은 별로 없었지만 회사 사람들과 술마이거나 밥을먹거나 할때면 항상 자기가 마이딴하는 사람이였다.
어려서부터 마이딴하는데 습관된 사람인가봐...
때론 회사일로 쓴 자그마한 돈은 회사에 청구도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부담했다.

리철이 회사는 당시 금방 설립이되여서 직원도 부족하고 구매할 설비들도 많았다.
회사에 입사해서 리철이는 그 어느부서 소속이라기보다 사장 보조 역할을 하였다.
회사도 작은 규모가 아니였지만 무슨 설비를 사거나 사장은 모두 자기가 직접 참견을 해서
낮은가격에 좋은 제품을 사려고 노력했다.

리철이도 그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면서 공장의 자산, 원자재 구매 성본 절감에 큰 기여를 하였다.
사장도 리철이 사람 됨됨이가 좋았는지 그후부터 리철이에게 적지않은 권한을 부여했다.

이렇게 이회사에서 몇년 근무하면서 리철이는 회사를 위해서 많은 공헌을 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본사로부터 주재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리철이의 업무범위는 점점 작아지고 권한도 작아져감을 느꼈다.
그리고 한국 주재원들과 같은 직위인데 수입은 너무나도 차이가 났고 대우도 차별이 컸다.

개인 능력이나 직위와 관계없이 본사 직원이 아니고 중국 사람이란 속성때문에 이런 차별화가 생김을 알게되였다.

설비 구매를 할때에도 새로 오게된 한국 주재원이 결정권을 쥐고 리철이 구매업무를 감시함을 느꼈다.
리철이는 매번 공급상과 담판을 할때 꼭 그 주재원을 함께 참가시켰고 그자리에서 가격 결정을 냈다.

한번은 그 주재원이 너무 쉽게 공급상이 부르는 가격에 동의를 하게 되여
리철이는 너희네 가격이 경쟁사대비 너무 비싸니 다시
견적을 내라고 했다.
더 성실하게 가격을 내지 않을경우 경쟁사도 함께 불러다가 현장에서 1:1로 견적을 내게끔 하겠다고 했다.

당일 저녁 공급상이 밥을 사주겠다고 해서 주재원과 함께 술먹으러 나갔고 한국주재원의 아닌척하면서
노래방도 가고싶어해서
2차까지 안배해주고 아가씨를 붙여서 호텔에 보내주고 사는 세집까지 바래 받고
공급상과 인사를 나누고 갈라졌다.


이튿날 아침 먹으려고 하는데 돈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아차...엊저녁에 잃어버렸구나...어제 술도 너무 과하게 마이지 않았는데...

그래도 다행히 돈지갑에 현금이 몇 백원밖에 없기 다행이였다. 은행카드는 재신청하면 되는게고...
아침에 회사로 들가는길에 어제 함께 술마였던 공급상이 전화가 왔다...
아침에 차 뒷좌석에서 돈지갑을 발견했다고...
지금 바로 기사 시켜서 돈지갑 돌려주려 보냈단다. 참 다행이였다.

월급날이 되여서 리철이는 은행에 가서 현금 빼러고 ATM기계 앞에서 비밀번호 입력하고 월급이 얼마 들어왔는지 체크하였다.
이번엔 월급이 왜서 이렇게 적게 들어왔지? 만의 자리수가 변동이 안생겼네...이번달에 보너스가 들어온다고 했는데...
다시한번 확인해봤는데 만의 자리수가 변동이 안생긴게 아니고 만의 자리수에 5자가 적혀져있었다...
한자리를 적게봤던것이다.

설마... 회사에서 나에게 보너스를 5만 줬단 말인가? ...
우리 사장이 이제야 내가 회사에 대한 공헌을 알았구나...

사장에게 감사의 인사 드리려고 회사를 막 달아들어가는데 핸드폰이 울려터졌다.

지난번에 견적을 낮추어 주지 않아서 다른 공급상을 찾겠다고 윽박질렀던 업체 사장의 전화였다.

李经理,很感谢通过你的努力还是选择了我们公司的设备。为此表达一下我们的谢意。
你去银行确认一下账户,我们细水长流!
리철이는 깜짝 놀랐다... 이넘의 공급상이 한짓이구나... 전화가 오기 잘했다...
전화가 안왔더라면 사장과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가 이사연을 어떻게 해석할수 없었다.

리철이는 5만원을 돌려줄가 아니면 모르는체 하고 개인소유로 할가 고민을 하던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지금까지 회사를 위해서 많은 돈을 아껴주고 공헌을 했는데 주재원들이 무더기로 들어오는 바람에 권한은 점점 작아지고
향후에는 회사에서
자기 지위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평소에 많이 받았던지라 후자를 선택했다.

그후부터 이 회사뿐만아니라 다른 회사로부터 리철이는 이런 회뢰를 적지 않게 받게 되였다.
(물론 이런 행위가 잘되였다는것은 아니다. 이런 행위는 불도덕적이다.
그러나 회사를 위해서 청렴하게 일을 해도 회사에서는
절대 알아주지 않는다.
일정한 규모 회사에서는 회뢰를 잘받는 사람들이 징급도 빠르고 윗사람들의 총애를 받는다.)


리철이 말로는 이 회사에서 인민페100만원을 벌고 사직하고 나왔단다.
꼬리가 길면 잡힐것도 고려하고 이렇게 회뢰를 받는게
자기를 믿어주고 이런 권한을 부여한 사장에게도 미안하고 해서...
그리고 또 그때 생각에는 백만원이면 후반생 편히 잘살수 있다고 생각해서...


리철이는 회뢰를 받는 사이에 고향 부모님께 돈을 보내서 연길에서 집을 네댓채 샀다.
부모님에게 한채, 자기가 이후에 돌아가 살집
한채, 동생에게 한채, 그리고 영업할수 있는 가게를 한채...
그때 광호가 심천 남산구에 집을 살때 오륙천 한평방 할때이다.
100만원이면 광호가 산집 부근에 100평방 짜리 집 두채를 은행 대출 필요없이 살수 있었다.
대출까지 해서 샀더라면 하악골이 떨어질것이다...

그시절에 아무리 투자 의식이 없다고 해도 광호나 나처럼 결혼하고 세집에 사는게 싫어서 살림집으로 집을 살생각은 안하고
여기에서 장기동안 살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고향에 돌아가서 살겠다는 목적에 고향에 집을 세네채 산것 같다.
리철이는 사실 심천에 집 한채 사긴 샀다... 商品房이 아닌 农民房 삼사십평방 되는거 한채 샀다.
일하는 공장부근의 세집에 살기 싫어서 개인적으로 몇만원 주고 샀단다. 그런 집이지만 현재 십배정도 올랐다고 한다.ㅎㅎ

위까지찌는 나와 리철이가 만나기전의 이야기를 적었다...
내가 광호집에 나와서 세집 맡고 살때 리철이랑 광호랑 같이 술마였는데 리철이는 120평방 되는 아빠트에서 둘이 세맡고
살고 있으니 나보고 룸메이트 할생각이 없는가 한다. 위치도 우리회사에서 지하철로 통근할수 있는 그런 위치여서 참좋았다.
(2004년도 말에 심천에 1호선과 4호선이 금방 통하였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그때는 지하철에 사람이 정말 적었다. 지하철에 앉아서 출퇴근할수 있는 정도였으니...
나는 그날 술마이고 이튿날에 원래 세집에서 트렁크 하나 딸랑 들고 리철이네 살고 있는 세집에 갔다...

리철이는 우리가 사는 세집에서 몇날 살고 또 자기가 산 집에 가서도 몇날 살고 양쪽으로 다니면서 놀았다.
그때 무역회사에 출근을 한답시고 별로 정규적인 무역회사 같지 않았고 심심풀이로 출근하는 회사 같았다...
저녁에 좀 늦게 퇴근해서 집에 가보면 항상 술상이 벌어져있었고 나도 항상 퇴근해서는 그술상에 참여했다.
때론 퇴근전이면 전화와서 저녁에 일없으면 퇴근해서 어느식당으로 오라고 한다...친구들과 술마이니깐 함께 참석하란다...
그때는 술상이 엄청 좋았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도 엄청 좋았다...
또 리철이가 기분 좋을때는 함께 아가씨를 부르는 노래방도 갈때있어 리철이 콜하면 무조건 달려갔다...

리철이는 친구가 참 많았다...
매번 새로운 친구들과 술을 먹는것 같았다... 별의별 친구들이 다있었다...

심천 모 파출소에서 소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느 진정부에 일하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공무원들이 많았고 장사군들은 거의 없은거로 기억난다...
그때 공장에서 사장 보조를 하다보니 정부부문 사람들과 관계가 좋아야 했으니...
그리고 하는 일이 구매 업무이니 일단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구매 권한이 없어지니 공급상들과 인연은 끝난것과 같다...
이런 친구들과 술먹을때 모두 리철이가 마이딴 한다...
술먹으면서도 리철이 전화기는 쉴새없다...계속 전화가 걸려온다...

지금 누구랑 같이 밥먹고있으니 우리 내일 만나자...
그리고 우리 세집으로 친구들이 잘 찾아온다...
고향에서 심천으로 일자리 찾으러 온 사돈의 팔촌들...
그리고 여자애들도 여러번 데리고 왔다...
난 그때까지 전심천에 친구란게 모두 10명도 안되였다 ㅎㅎ

리철이 여자 초중 동창생이 심천에 있었는데 그 동창생도 여자 셋이 같이 합숙하고있었고 우리 한번 만나서 술먹자구 했다.
어느날 시간 잡아서 식사했는데 세 여자애중 한여자애가 참 이쁘고 똑똑했다.
후얘기지만 이여자애를 따라서 나의 와이프로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리철이를 내인생에 매우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한세집에 일년 있다가 나는 리철이 여동창생 룸메이트와 연애를 하다가 번개결혼을 하게되면서 세집을 나오게되였고
리철이는 내가 연애하는 과정에 우리 고향 동갑내기 모임에서 이쁜 여자애를 만나서 함께 살게되였다.
결혼은 우리보다 1년 늦게 한것같다.
그래서 우리 셋이 있던 세집은 완전히 다른 친구들이 들어가서 살게 되였다.

리철이가 여자친구를 만나서부터 친구들이 적게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좋은 여자를 만나서 열심히 살려고 하고 있구나...

여러번 회사를 바꾼거 같은데 다 오래 못하고 그만두고 한 1년은 세집에서 놀고 있었던것 같다.
그때는 이미 옛날에 벌었던 돈을 다 쓰게된것 같았다.
비록 물어는 보지 않았지만... 옛날처럼 그렇게 많은 친구들의 전화가 없었고

기분도 많이 떨어진것같았다.
그렇게 심천에서 일이년 더살다가 와이프와 같이 한국을 가기로 했다.
우리는 비록 고향에서 만난 친구가 아니고 심천에서 사귀게 된 친구지만 이넘의 너무 순진하고 친구에 대한 진심때문에
비록 이국타향에 갈라져 있었지만 계속 연락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 출장을 자주 가는 편이여서 한국에서 적어서 일년에 한번씩은 만났다.

리철이네 살고있는 전세집에도 가봤는데 열심히 회사에 가서 일을하고 저녁에 돌아와서 와이프와 소주도 같이하고
심심하면 등산도
하고 재미있게 살고 있는것 같았다.
옛날에 잘나갈때처럼 호황스러운 생활은 못하고 있지만 자기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주위에 보면 나이 어렸을때 돈을 많이 번 친구들이 참 많다...
그러나 어려서 벌었던 재부가 고속으로 발전하는 중국경제의 거품을 타고 재부증장을 이룩한 친구들은 너무 많지는 않았다.
우리 조선족들은 한족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술먹고 놀기(도박) 좋아한다...
젊어서 벌었던 돈을 젊은나이에 도박에 날려버린 친구들도 참 많다.
그리고 앞길에 대한 장기 계획이 좀 부족하다...
심천 집값이 오르기 시작할때는 우리또래가 한창 결혼할 때였다...
그시절에 대도시에서 사랑을 만나서 결혼을 위해서 집을 마련한 사람들은 정말로 인생에서 몇십년 적게 분투하고 살수 있었다.
(향후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현상황으로 보면 그런것 같다)
그리고 광호처럼 눈이 독하여 인터넷쇼핑의 미래를 예견? 하고 남보다 퍽 일찍 风口 사업 시작을 하였다.

리철이 같은 경우는 어려서 第一桶金을 벌었지만 운이 나쁘게 억대 부자가 될수 있는 기회를 스쳐지나게 되였다.

그러나 리철이는 이런 현실을 직면하고 오늘도 한국에서 자기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달리고 있다...
올해 코로나 사태전에 한국에 가서 리철이와 만나서 술한잔하면서 한마디 했다.
리철아, 운은 그라프와 같아서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어느만큼 최하로 떨어졌으면 다음번의 최고봉기는 그만큼 더 휘황찬란 할것이다!



추천 (4) 선물 (0명)
IP: ♡.98.♡.82
비자대행22 (♡.122.♡.180) - 2020/08/21 10:24:32

공감 가는글~! 박수~짝짝짝

심천 1호선 처음으로 생길고 개통하던날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거슬러 이십년전만해도 심천에 조선족젊은 청년들이 참 많았었죠~

어릴때 타향에서 조선족만 봐도 참 반갑던 시절이 그립네요

피시골드 (♡.186.♡.3) - 2020/08/24 10:48:09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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