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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l판도라l | 2023.02.03 11:07:19 댓글: 2 조회: 718 추천: 1
분류타향수기 https://life.moyiza.kr/mywriting/4439125
꽤 오래전에, 소설 “대위의 딸”을 재미있게 읽고 푸쉬킨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다가 내가 말했다.

“왜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결국은 그런 생의 마감을 했을까요?”
“그런 마감이라니?”
“아내의 염문설에 휩싸여 근위대 장교와 결투를 했잖아요. 결국 그때문에 젊은 목숨을 잃었고.”
“난 그게 푸쉬킨다운 마감이라고 생각하는데.”
“왜요?”
“사랑과 믿음을 위한 선택이지.”
“사랑과 믿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은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나랑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던 때 아버지는 아마 지금 내 나이였었다. 삶의 불우한 징후들을 견딜수 없어 간혹 앓아눕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 깊은 곳까지 인내와 포용이 들어있어 고단하기까지 한 불혹의 나이, 20여년이 지난 오늘 내가 굳이 어린 시절 일을 떠올린 건 그때 푸쉬킨의 사랑과 믿음을 높이 샀던 아버지의 생각은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초에 아버지를 보았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두달동안 거의 두문불출 하다싶이 하던 우리는 딸애가 학원 수업을 보는 틈을 타서 학원 근처에서 만났다. 지난 일년동안 우리 집은 코로나보다도 더 무서운 바이러스를 겪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엄마의 무모한 투자로 인한 경제적 파탄이었다. 작년 5월부터 엄마는 태국에 있는 어느 사기군에게 속아 해외회사 세금관련 투자를 진행했는데 우리가 알았을 때에는 이미 수십차례를 거쳐 80여만원이 보내진 후였다. 노후 걱정 없이 살던 아버지에게 부채가 줄줄이 늘어선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몇달동안 언니와 내가 우리 유동자금을 몽땅 털어 일부 급한 빚들을 물고 친정의 생활비를 보탰지만 부채까지 갚기에는 역부족이어서, 긴급 상의끝에 급매로 집을 내놓기로 결정한 날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 집을 팔면 앞으로는 어쩔 타산이에요?”
“고향에나 갈까? 아니면 시교에나 가서 조용히 살까.”
“엄마는요? 만일 그 투기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면...”

이미 우리는 더이상 어린애들이 아니었고 엄마의 이런 무절제한 집념에는 이성적인 판단과 냉철한 결정이 필요했기때문에 나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내가 평생을 고생시킨 사람이다. 엄마도 잘 해보려다 그리 된것이다. 너무 뭐라고 하지 말자꾸나. ”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흘낏 쳐다보았다. 마침 딸애가 수업이 끝났고 아버지는 우리 애들에게 밥이나 한끼 사주겠다고 앞장섰다. 하필 그날따라 코로나 여파로 근처 모든 음식점들은 영업을 중단한 상황이었다. 몇곳을 다니다가 단념을 했는지 아버지는 편의점에 들려 애들 간식 한꾸러미를 샀다.

“나중에 밥먹자. 오늘은 집까지 바래다주마.”
“괜찮아요. 나 혼자 갈수 있으니 여기서 헤어져요.”

집근처 사거리에서 아버지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희슥희슥한 머리에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느릿느릿 건늠길을 건느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고개를 돌렸다. 오래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몸은 여기저기서 경고의 신호를 보냈고, 아무리 추스려보아도 마음은 바닥 모를 깊은 곳으로 자꾸만 흘러내리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며 끝날줄 모르는 일에 눈코뜰새없는 하루가 지나고, 밤샘을 하다싶이 한 내가 이튿날 아침 애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돌아오는데 달랑 한줄의 문자가 도착했다.

“오늘아침 자전거와 차가 부딪쳐 발을 상했다.”

아버지의 문자였다. 왠지 심상치 않았다. 평소엔 말과 문자를 아끼던 분이 아침에 연락이 온걸 보니 결코 작은 사고가 아닌것 같았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고 화물차에 짓이겨진, 아버지의 참담한 발을 보았을 때 나는 목이 꺽 하고 막혔다.

수술은 좋이 한시간 반이 걸렸다. 피를 많이 흘린 탓으로 수술도중 아버지는 쇼크가 두번이나 왔었고 아버지가 수술실에서 나와 입원병동에 옮겨서야 우리는 의사에게 수술결과를 전해들을수 있었다.

의사는 아버지의 한쪽 발은 상처면적이 커서 일부 피부조직과 연근육조직이 괴사했고 다른 한쪽 발은 심지어 뼈가 부서졌다고 했다. 피가 심하게 나던 발은 괴사로 인한 피부이식수술도 필요할 것 같다고 의사가 소견을 덧붙였다. 코로나 기간이라 병원은 외부 방문이 어려웠고, 가족중 병간호로 등록된 한사람만 출입이 가능했다. 우리는 엄마만 아버지 곁에 남겨두고 병원에서 물러날수밖에 없었다.

그후 외지 의료보험을 알아보고 교통국을 오가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상처가 나아진다는 아버지의 문자에 우리는 간간히 위로를 느꼈다. 그래, 사람이 무사하면 되는 거야, 다 액땜이라고 치지 뭐. 그때까지는 삶은 우리에게 더 혹독한 시련을 줄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감지하지 못한채, 이번 불운만 지나면 우리에게는 탄탄대로가 열릴줄로만 알았다. 부모들과 병증세에 관한 문자를 가끔씩 주고받으면서 그런대로 보름이라는 시간이 무난하게 흘렀다.

교통사고 보험처리가 어느정도 해결이 될 기미가 보일 무렵, 아버지에게서 문자가 왔다. 의사가 큰 병원을 권장하지만 아버지가 보기에는 상처가 낫는 추세이니 이젠 집에 가서 보수치료를 하시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자를 남편에게 보였더니 머리를 기웃한다.

“의사가 그리 말할땐 심각한데?”
“상처가 낫고 있다잖아.”

아마도 그때의 나는 이미 여러가지 일에 치인 나머지 아버지의 그 문자에서 내가 듣고싶은 내용만 캐치한 모양이다. 나는 남편이 괜히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어련히 알아 하시겠지.”
“그걸 어떻게 알아? 의사가 큰병원까지 권장할 정도면 어쩐지 예사롭지 않은데. 애들은 내가 픽업할테니 큰병원 예약 넣고 내일 퇴원수속 할때 가봐.”

지금에 와서 나는 남편의 그날 권고가 눈물겹도록 고맙다. 이튿날 병원에 가서 허름한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오는 아버지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뒤이어 아버지 발의 상처를 눈여겨본 나는 그만 억이 막혔다. 거의 다 나았다는 아버지의 말과는 달리 아버지의 두 발은 이미 퉁퉁 부은데다가 절반 이상의 부위는 노랗다못해 까맣게 변해있었다.

다짜고짜 아버지를 모시고 큰병원으로 향했다. 외과 진찰을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 발에서는 피와 고름이 계속 배여나왔다. 엄마가 옆에서 계속 면봉으로 닦아내고 있었고 나는 진찰대기시간이 늦게 흐르는 것이 한스러웠다. 겨우 우리 차례가 되자 의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괴사조직 제거수술을 해야 하겠는데요.”
“수술…”

아마 아버지는 이미 오랜 병원생활이 지긋지긋하신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의사의 표정에서 일이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집에서 다니면서 치료 받으세요. 적어도 서너번의 괴사조직 제거수술을 거쳐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진단서 떼주세요.”

의사가 진단서를 떼는 동안 진찰실 옆의 처치 간호사가 진찰실로 들어왔다. 간호사는 아버지의 상처를 힐끗 보더니 눈짓으로 가만히 나를 불러냈다.

“가족인가요?”
“네.”
“당장 입원시키세요.”
“네?”
“저러다 두발 보존 못합니다. 이 일 오래 해왔고 괴사조직 상처 많이 봐왔는데 저정도로 심각한 건 처음이라서.”
“…”
“년세 많으신 분이라 재생도 치료도 힘들겁니다. 집에서 다니면서 치료한다는 건 말도 안돼요. 외과의사는 입원 권한이 없어서 그러는 거에요. 입원시키려면 골과 가세요. 감염이 위로 올라가면 그땐 발의 문제가 아니죠…”
“고맙습니다.”
“내가 말했다는 걸 절대 얘기하지 말아요. 엄청나게 혼날 걸 각오하고 말해주는 겁니다.”

간호사에게 인사를 하고 그 길로 골과로 찾아갔다. 골과문진은 인산인해였다. 인파를 비집고 무작정 주임의사 진찰실을 노크했다. 예약된 환자들이 문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내게 눈을 흘겼지만 외과대기실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오래 혼자 둘수는 없었다.

다행이도 잠시후 문밖으로 나온 젊은 실습의사가 내가 내민 상처사진을 보더니 골과 주임의 추가예약을 해주었다. 사진을 본 주임의사는 대뜸 환자가 어딨냐고 물었고 나는 아래층에 달려내려와서 아버지를 부축해 다시 올라갔다. 곧 핵산검사를 거친 후 당장 입원하라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당뇨병 환자가 아니고서야 이정도까지 감염이 진행 될줄은…그냥 두면 발을 지키지 못하는 건 물론 생명까지 위협받을수 있는 일입니다. 두달 입원하고 적어도 네번의 괴사조직수술과 피부이식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선생님 꼭 걸을수 있게 해주세요.”

눈물이 흘러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길로 아버지를 모시고 핵산검사며 흉부 엑스레이 등 입원에 필요한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이미 아버지는 두발의 통증으로 무척 힘겨워하셨다. 나는 1층 로비로 달려가 휠체어를 대여했다. 그날 이리저리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내게 아버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니가 고생이 많구나. 이젠 나절로 바퀴 굴리는 법을 배워야겠다.”
“에이, 그럴바엔 전동으로 된 걸 사야죠.”

농담처럼 받아쳤지만 가슴이 쓰렸다. 간신히 모든 수속을 마치고 아버지를 입원병동으로 들여보냈다. 코로나 기간 병원 규정상 가족이 간호를 못하게 되어있어서 일단 간병인을 고용했다. 그날 줄이 간 환자복을 갈아입은 아버지를 홀로 두고 병실을 나오는데, 엘레베이터에서 나는 왠지 눈앞이 희미해져서 손으로 연신 눈을 부비었다. 엄마가 나를 돌아보았다.

“어제밤부터 잠을 못자서 그런지 눈이 따끔거려 죽겠네요.”
“고생 많았다. 얼른 집에 가서 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사실 내 눈을 따갑게 만든 것은 눈물이었고, 나도, 엄마도 굳이 그것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나온 후 나는 엄마와 헤어졌다. 축 처진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속으로만 삭인 말은 그 뒤에 있었다.

“이제 아버진 수술이 다 끝날 때까지 저렇게 혼자 계셔야 한다구요…그런데 엄마는 그돈, 아직도 회수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왜 신고하자는 우리 말은 듣지 않는 거에요? 수술비는…”

그 말까지 깡그리 더해야 나다운 성격이라 할수 있지만, 나는 차마 더이상 말을 꺼낼수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스스로 느낄 것이기에, 이미 자책으로 괴로워할지도 모를 일이기에, 나는 아버지의 사랑과 믿음을 존중해주기로 선택했다.

중년의 애환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더이상 치기어린 모습으로 징징대지도 못하고, 삶이 가져다주는 카르마에 원망을 쏟아내지도 못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란 바로 이런 뼈아픈 각성을 거쳐야 한다는 걸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언니가 수술비 일부를 보내왔고 나는 대출을 내서 입원비와 수술비를 마련했다. 수술일정은 빠르게 잡혔다. 괴사조직 제거수술 후 바닥을 밟지 못하도록 두발을 매달아 놓고 침대와 한몸이 된 와중에도 며칠전 아버지는 자신이 쓴 글을 보내왔다. 핸드폰으로 한글자한글자 정성들여 쓴 소설이었다.

“핸드폰으로 타자를 하는 게 참 어렵구나. 넌 그 긴 글을 어떻게 폰으로 쓰냐?”

나는 피씩 웃다가 금세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글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식구에 대한 배려만큼이나 깊었다. 매번 내가 애들을 데리고 친정을 방문하면 아버지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짚으며 방안에서 걸어나오신다.

“난 니가 오면 머리가 아파.”
“왜요?”
“글 이야기를 해야겠으니.”
“안하면 되잖아요?”
“그것만큼 재미있는게 또 어딨겠냐? 가만있자, 가서 맥주나 한병 사오고.”

아버지는 거실에서 서성거리다가 당신이 마실 술과 나와 애들이 좋아하는 간식들을 산다고 아래층 슈퍼를 몇번이나 들락거리신다. 그리고 나는 밤샘에 의한 두통을 핑계로 방안에 누워있다가 아버지가 음식들을 차려놓고 나를 불러서야 느긋하게 상에 마주앉군 했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 저렇게 누워계신다. 그토록 약한 모습으로, 그토록 무방비상태로. 대체 우리가 뭘 그리 잘못 살았냐고, 먹장구름이 꽉 낀 하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한 시절은 치열하게 세상에 맞서 싸워야 할 때가 있는 줄은 안다.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한꺼번에 모든 사고가 닥치지는 말아야 하지 않는가!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폭우가 쏟아져 내리고 창문을 두드리는 장대같은 비줄기를 바라보는 내 마음속에도 차거운 비가 내렸다.

내 울적한 기분을 알아챘는지 아버지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괜찮다. 사람이 성하면 다시 일어설 것이다. 이제 내 발이 나으면 애들을 데리고 바다가라도 가자. 아이들 뛰어노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싶구나.”
“지난번 엄마를 시켜 보낸 누룽지와 과자가 맛있더라. 두근씩 더 사주라. 그리고 9월부터 사교육 페지라고 들었는데 애들 학원은 잘 다니냐?”

그날의 나는, 빗물에 씻겨나가는 창밖의 세상을 바라보며 좌절과 환멸의 낭떠러지에 서있는 내게 아버지가 건넨 위로가 어떻게 소중한 것인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끝날줄 모르는 어두운 공허와 절망의 시간에도 아버지는 그토록 담담하고 달관된 모습이었다. 괴사조직 제거수술후 피를 뽑아 힘줄을 덮고, 배의 피부를 이식하여 뼈가 하얗게 드러난 두 발을 지키려는 사투를 벌이면서도 아버지는 시종 낙관적인 태도로 이 모든 것을 대했다. 아마 이것이 아버지의 옹근 일흔두해를 거쳐 집약된 현실수용의 지혜이자,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삶의 자세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현시대의 우리는, 항상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현실을 살아간다. 그리고 눈앞에 닥쳐온 일들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이 세상에는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등 이데올로기식 믿음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잔혹한 사례들이 많다. 해외에서 발이 묶여 들어오지도 못한다는 사기군의 불행한 처지를 그대로 믿고 거액의 돈을 보낸 엄마나, 사고를 당해 피를 흘리고 쓰러졌으면서도 그래도 혼자 걸을수 있다고 화물차 기사를 곱게 보내버린 아버지나…살아가면서 호의가 보답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너무 적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독하게 마음을 먹고, 치열하게 싸우며 세상을 살아간다. 이처럼 지극히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삶이 주는 불운을 버텨내는 것이 바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버틸대로 버티다가 물먹은 솜처럼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경우가 많다. 외롭고 꼿꼿하게, 남들앞에서 억지웃음을 지어가며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의 의지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처럼 위태롭게 흔들린다. 자제라는 결박이 마음 깊숙히 뿌리 내린 탓이리라. 힘들다고, 슬프다고 터놓지 못한 채 묵묵히 버티고 감당하는 것에 익숙해진 탓이리라. 어쩌면 우리는, 언녕 삶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버렸다. 삶이 우리를 속이는 것에 분노하고 슬퍼하기만 했다. 취약한 마음이 깊이 모를 곳으로 한없이 추락해내려갈 때, 아버지와의 일상적인 문자는 그동안 들끓던 내 감정을 냉각시켜주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있었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결 차분해진 머리속으로 가물가물하던 오래전 기억 한조각이 떠올랐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버지에게 답장을 보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한없이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아버지가 이를 드러내고 크게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핸드폰을 오래 만지더니 이제는 이런 이모티콘 보내는 법도 장악했는 모양이다. 그것을 보자 간만에 안정되고 따사로운 기분이 느껴졌다.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하고 창문을 열어젖혔다. 폭우가 지난 청신한 바람이 훅 하고 불어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젖혀 간만에 맑게 개인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높이 걸려 푸르게 빛났고, 바람이 구름을 밀어 뜨거운 태양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둥글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처럼 내 마음도 둥글게 열렸다. 이제 곧 다섯번째 수술을 앞둔 아버지의 쾌유를 빌며, 이 세상 모든 부모와 자식들에게 평화와 안정이 깃들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들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기를 나는 진심으로 기원했다.

2022년 로년세계 1기
추천 (1) 선물 (0명)
IP: ♡.40.♡.91
로즈박 (♡.175.♡.27) - 2023/02/03 14:15:02

어마나..큰 일을 당하셧네요..지금은 아버님 발 다 나으셧나요?판도라님 마음이 많이 아프셧겟어요..글을 읽는 제 마음도 이렇게 아프고 안쓰러운데..지나간 해는 이런저런 일때문에 참 힘든 한해엿겟네요..아무쪼록 부모님들 다 건강하셧다면 액땜이엿을지도요..새해에는 아마도 좋은 일들이 생길거예요..힘내요~~

l판도라l (♡.115.♡.27) - 2023/02/04 14:47:05

네, 삶에는 항상 고비가 있는거 같아요. 그나마 일년전 일이라 이젠 많이 털어냈습니다. 사람이 건강하면 다행이지요…우리 부모님들, 그리고 힘든 날들을 이겨낸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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