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에서 언급되었듯이 숙소생활이여서 일요일부터 목요일저녁까지는 숙소에서 밤을보내야
하기에 그당시에는 심심풀이가 적었고 간식이 있으면 어불어먹는 숙소환경이였다.
물론 써우로으스(숙소선생)은 매일밤 열시가 되면 방실마다 체크들어간다.
인수체크 불 끄고도 떠들지 않는지 방안에서 담배피는놈 없는지 학교 담장을 넘어 농촌 매점으로
술마시러 가지 않았는지 등등을 체크하는것이다.
발각되면 선생방에 불려가서 회초리로 매를 맞아야 했다.
나도 가끔 불리워 가는데 매를 맞으러 가는것이 아니라 숙소선생이 담배가 떨어져 나보고 좀 달라는 얘기를 하는것이다.
나 역시 일주일치로 넉넉하게 담배를 챙겨두었고 고급담배를 피고 있는터라 선생님이 나를 부르기 좋아했다.
담배를 드리는 대신 어느날 밤은 담장을 뛰어넘어 가까운 소매부에서 맥주사서 마시는걸 눈감아 주는 합의가 형성된것이다.
그래서 나의 침실 친구들은 대부분 나보다 한두살 위지만 나를 데리고 같이 놀기 좋아했다.
나한테 특권이 많아서 우리 침실만은 늘 단속과검사가 다른방에 비해 너그러웠다.
물론 우리 침실 학생이 나이가 가장 많은것도 원인중에 하나였다.
숙소생활 초기엔 서로 서먹서먹해서 취미가 맞는 애들끼리 놀았는데 분류하자면 세가지로 나뉜다.
1.운동좋아하고 PS게임기를 즐기는 착한 애들이 모여노는 학생파
2.술 좋아하고 밖에 나가 여자찾기를 좋아하는 소히말하는 날라리파
3.딱히 취미가 없고 무미건조한 심심파 이렇게 세 부류로 나뉘여 있었다.
나는 1에도 속하고 2에도 속하는 반달이였다.
소학교때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학교에서는 늘 주력선수로 선출되였고 전성기엔 학교대표 선수로 뽑혀 연변대학 법학과 학생들과 교류차원에서 시합을 했는데 3대0으로 압승을 거두었다.
물론 고딩에게 참패를 당하여 뚜껑이 열린 법학과는 체육과 축구팀에 의뢰하여 다시한번 시합을 치뤘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5대0으로 깨졌다.
종합적으로 레벨이 달랐다.
우리 학교 체육선생이 연대출신이라서 조직된 시합이였지만 우리 학교 축구실력은 공부 못하는 애들이 모여서 그런지 종합적인 실력은 강했다. 뒤에 이어 연달아 같은 외국어 학교였던 백산외국어 고중하고도 한판 붙었는데 압승을 거두었다.
그밖에도 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취미가 있어서 늘 학생파들과 함께 PS2같은 오락실에 가서 친구들과 FIFA,홍색경보,스타크래프트같은 게임을 자주 했고 집에는 흔치 않은 컴푸터도 설치하여 삼각주부대 같은 게임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침실에 있는 친구들은 날라리파였기에 주말에 시내로 돌아가면 늘 술잔치가 계획되고 벌어져서 나의 주말은 남달리 다망했다.
주말이면 낮에는 태권도훈련과 더불어 헬스장도 다녔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술마시러 다니는 일상이였다.
동방수상시장에서 감옥가는 길에 세워진 환보국아파트에 120평되는 아파트는 친척집에서 눈치밥먹는게 맘에 걸려 엄마가 사준것이였다.
처음엔 날라리파 친구들이 나랑 안놀고 옆침실에 있는 허광이라는 친구집을 아지트로
설정하고 주말 술놀이 연애놀이 이벤트를 허광이 집에서 모이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집이 허름하고 방실이 적어서 차츰 우리집으로 아지트를 바꾸었다.
그렇게 되여서 나란 놈이 일시에 반에서 핵심적인 인물로 남녀 불문하고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리집이 뭐가 특이해서 주목 받는대???
해석하자면 조금 웃기고 어이없는데 사실이였다.
첫째: 날라리파 애들은 집배경이 좋고 돈도 많고 그런데 외박하기 힘든 사정이 있다.
가설로 여친이 생겼을때 호텔에 가야하는데 그 당시 사회환경에서는 경창단속이
있었던터라 리스크부담이 컸다.
둘째: 외박을 하려면 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했고 부모를 설득할만한 구실이 있어야
하는데 나의 생김새가 학습성적에 비해 착하고 바르게 생겨서 친구들 부모한테
는 삼호학생인 이미지여서 나의 이름을 대고 자습하러 간다면 80프로는 승낙을 받았던것이였다.
셋째: 그 당시 연길시내 아파트 인테리어 레벨로 봤을때 우리 집은 고급 인테리어
였고 방실도 두개 커팅에는 한국 수입 옥돌매트와 고급 쏘파 그리고57촌 채색
텔레비를 비롯한 가구들이 전부다 수입품아니면 최고급 가구여서 집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고급 민박집에 들어온듯한 느낌이였다.
넷째: 시중심과 너무 가까웠다. 술집이든 다방이든 씽치우띠팅이든 전부 가까웠다.
다섯째: 내가 혼자서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국에서 겨우1년에 한번 올가말가하는
상황이여서 우리집에 오면 부담이 없었다.
여섯째: 우리반 학생들이 이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간절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 있는 이성만으로는 선택범위가 너무 부족했던것이였다.
돈도 있고 생김새도 반반한데 대충이라는 단어와 타협하기 싫었던것이였다.
그래서 다른 학교에서 이상형?학교꽃?을 수소문해내면 여러가지 수단으로
불러내서 부킹을 하고 불 붙으면 끝을 보려고 했다. 그럴만한 나이였다.
이런 종합적인 요소와 배경하에 우리집이 주목된것이였다. 그렇다. 내가 아닌
우리집이 화제거리가 되었다. 이건 날라리파뿐만 아니라 학생파에게도
주목받은 일이였다. 왜? 학생파도 연애가 고팠다. 열애중인 커플도 우리집
날라리파도 우리집을 타겟으로 했고 주말에 뜨밤을 기획한다하면 예약한다.
처음엔 날라리파위주로 매일밤 침실두개가 늘 예약되었고 나는 커팅 옥돌장판에서
잠을 자는 시츄에이션이 지속되었다. 역시나 귀공자이고 얼굴짱이고 체격짱인
날라리파는 어딜가나 인기가 많았다. 나를 포함해 8명이 되는 날라리파는 주말만
되면 돈걱정없이 고급 놀이터만 찾아다녔다. 그 당시에는 서시장옆에 있는 씽치우
띠팅이 인기있는 띠팅이여서 그곳에서 술자리를 설정했다. 말했다싶이 잘생긴
남자들이 많다 보니 인기도 많았겠지만 여기서 또 한친구를 만나면서 날라리파
놀이터는 마치 한국 드라마에서 보는 재벌그룹 2세 상류층 라이프마냥 더한층
업그레이드되였다.
이 친구는 우리랑 동갑이고 띠팅에서 춤을 추는 아가씨들의 안무를 가르쳐주는
춘파라는 친구다. 같은 조선족인데 삼촌이 심양 장춘쪽에서 건달두목을 하고있고
씽치우 띠팅도 봐주는 사람이였다. 근데 이 친구가 동성연애자라서 남자한테
관심이 있었다. 날라리파 우리들을 보면서 찜해논 친구가 두명정도 있었는데
가까이 하기 위하여 술을 들고 우리와 합석하면서 가까이 지낸다.
VIP좌석은 물론 그당시 띠팅에서 벌어지는 술병던지기 패꺼리싸움에도 술병은
우리쪽으로 넘어오지 못했고 우리는 그냥 재미나는 구경을 하는 손님대우를
받은 셈이다. 춘파는 우리중에 친구를 꼬실려고 잘 나간다는 건달들을 불러
우리 상에 술을 따르는 인사등의 공세를 퍼부었고 스테지에서 춤을 추는
아가씨들을 보면서 맘에 드는 여자를 고르랜다. 찜해논 아가씨가 있으면
그자리에서 불러들여 합석을 시킨다. 그 당시엔 춤추는 아가씨에가 감히
그런 청탁을 할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친구 한마디에 그여자는 우리와
합석을 하면서 술을 마셨다. 그녀들도 우리가 돈많은 귀공자라는걸 알아채고
우리와 놀기 좋아했다. 춘파에겐 띠팅에오는 미녀들의 핸드폰번호 삐피번호
리스트가 있었고 올때마다 그녀의 번호를 가르켜 주었다.
그렇게 주말마다 단골손님으로 드나들다보니 어느새 명인이
되었고 연길에서 한다하는 건달들이 우리 상에 술을 들고 인사하러 온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정보망이 넓어졌고 연길시내 여러가지 고중에서 누가 이쁘고
누구와 연이 닿을수 있는지 리스트가 작성된다. 인맥관계를 통하여 부킹자리까지
서배되면 거의 반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거의 매주 주말마다
끊임없는 방실예약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늘 뜨밤을 보내는 여자마다
조선족여성이여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면 꼭 우리에게 아침 식사를 마련해 주었다.
아마도 나는 혼자서 큰 집에 잠을 자는게 싫었던것 같았다.
유일한 과제가 있었다면 뒷처리였다. 아시다싶이 하얀 이불자리에서 첫밤을
보낸 커플이 아무리 이불흔적을 닦아냈다해도 그 피에 흔적은 남는다.
아무리 로무시장의 아줌마를 불러 집청소를 부탁했지만 간만에 어머니가 집에
와서 집청소할때마다 나에게 웃으며 묻는다. “너 지금 연애하니?”
“그건 무슨 소림까?” “이불자리에 피자국이 있잖아~”하고~ “아아~그게
내 침대에서 토마토먹다가 흘린 흔적일겜다~ 여자친구는 없슴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냥 웃으면서 그랬다.”핏자국이 엉치부위에 있는데 넌
엉치로 토마토 먹었니? 여친이 생겼으므 함 집에 불러라 엄마가 보게서리”
“아직은 없슴다~맘에 둔 여자가 있으면 어머니한테 면접시키겠슴다~”
이 대화가 엄마아들 사이에 많치 않은 대화였다.
엄마는 한국에 다시 돌아갔고 우리집은 또 다시 민박집으로 지속되었다.
낮에는 다방에서 새로 나온 핸드폰을 연구하면서 시간을 떼우다 저녁에는 밥
먹고 시간 맞춰 띠팅을 향한다. 그러다 어느날 친척인 동갑 세령이가 띠팅에
나타나 나를 알아보고 그의 친구3명이랑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연길에서
이렇게 잘 나갈줄은 몰랐다는등에 얘기를 주고 받다가 후일 도문에 친구들을
데리고 연길에 놀러 올테니까 서배를 하라고 한다.
나는 그냥 인사치례인줄 알고 흔쾌히 응납했다.
세령이는 나의 외할아버지 간아들의 딸로 나랑 동갑이고 도문 고중을 다니는데
반에 꽃이였고 그 학교에서 가장 이쁜 여자였다.
설명절때마다 한가족이 모이면 볼수 있었고 너무 이뻐서 가까스로 말을 걸기도
용기가 필요한 여자였는데 연길에서 만나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올줄 몰랐던
나로서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대도 조금 되는 심정이였다.
일주일후의 토요일에 세령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원봉아~ 머하니?”……”오~ 지금 태권도 훈련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중이다.”
“오~ 그러야~ 오늘 저녁에 시간되니?” “응 시간은 괜찮은데 무슨 일이야?”
“오~전번에 니하구 말했던 일인데 도문에 친구들이 지금 연길에 같이 왔다”.
“오~ 그러야 그럼 저녁에 같이 밥 먹지뭐~ 근데 몇이 왔니?”
“응~ 그게 말이다. 이번에 좀 많타~”………”몇명인데?”………”응~ 9명정도 된다~”
“어? 뭐라구? 9명? 니 뭐하자구 그래나? 어쩌다 일케 많이 왔나?”
“어~ 친구들이 마침 휴일이라서 거기다가 연길에 가서 놀구 싶다해서 다 델구 왔다~
어떻게 자리 만들수 있겠나?연길애들하고 좀 놀아보게~”
“헉~야! 아무리그래도 그렇지 9명 여자에 남자수도 짝을 맞춰야 하는데 내 어디가서
글케 많은 남자르 그것도 여친없는 남자르 모으나?”
“일없다. 시간나는 친구들이면 된다 너무 무리하지 말라~”
이렇게 되어 내가 이래저래 친구들을 물어봐서 겨우 4명까지 서배를 했다.
그날밤은 참 희구한 자리였다. 남자4명에 여자9명이 둘러싸여 술판 벌리는 자리
였다. 분위기가 좋았던건지 모르겠으나 그날밤엔 여자도 남자도 술이 잘되어
전부다 우리집에서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식사 마치고 다들 돌아갔지만
세령은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집에 머물러 저녁밥을 먹고 이튿날에 도문
내려간다고 했다. 그래 그럼 그래라하고 나는 내 방에서 컴퓨터게임을 하고 있는데
세령이가 커팅에서 나를 불렀다. 왜? 했더니 록상기테프를 틀어 달라는것이였다.
해서 어떤 영화가 보고 싶니 물었더니 요즘 유행어인 AV보고 싶다고 한다.
헐~내가 잘못들은거 아닌가? 그거 남자들 사이에서 보는건데 여자가?
다시 한번 물었다.”진짜 그거 보고 싶니?” ”응 한번 틀어봐라 좀 보자~”
허억! 이건 또 무슨 상황? 내가 당황했다. 그럼 같이 보면서 뭔가 썸띵을
기대하는건가? 하는 생각에 “음~ 있긴 한데 외국꺼? 일본꺼?어느걸로?”
“아무거나 다 된다~” 해서 내가 저장해둔 비데오테프를 틀었다. 자연스레
옆자리에 누워서 같이 보려 했는데 세령이가”야~ 너는 들어가서 게임해라~ ”
하는것이였다. “어~ 어? 오~ 알았다~ ”하고 나는 다시 내방으로 들어가
삼각주부대라는 컴퓨터게임을 하다가 그 방에서 잠을 보냈다.
이제야 돌이켜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일이지만 그때는 많이 의문쩍었던게
분명했다. 아침에 세령이랑 헤어지고 나는 택시를 잡고 학교를 향했다.
그러다 돌아오는 금요일에 바로 전화가 왔고 도문에 놀러 오라고 한다.
이미 한번 당황했던터라 이번에는 날라리파 친구들을 좀더 모아 8명을 데리고
도문에 갔다. 두놈은 도문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친구에게 불려 술 마시러 갔고
6명이서 도문에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게 되였는데 이번에는 20명정도였다.
세령이가 성격이 좋고 반의 꽃이였다보니 반에 여자들이 거의 다 모인셈인데
얼떨결에 남자 한명이 세네명여자랑 노는 희구산 술자리인 만큼 나의 친구들도
기분이 좋았고 이차 삼차까지 놀았다. 물론 도중에 도문 건달들과의 마찰도
있어서 살짝 지체되긴 했으나 우두머리가 연길에 자주 놀러가는 터라 우리한테
노래방에서 술잔을 마주치면서 인사만 나누고 말았다. 주고 받은 대화에서 이미
우리가 연길에서 잘나가는 친구들이란걸 눈치채고 호의를 베풀어준것이였다.
그 후로도 우리는 늘 띠팅 그다음 쥬으바 같은 놀음을 계속 하였고 띠팅에 아가씨
들과도 사이가 좋아져 낮에는 아가씨들과 우리집에서 포커게임을 하면서 사이좋게
지냈다. 근데 이건 좀 특이했다. 넷이서 하는 포커 게임에 진 사람은 돈놀이가 아니라
옷벗기 게임이였다. 남자들은 물론 여자도 하나씩 벗어야 하는데 꼴따뻘개로 되는
게임이였다. 여자랑 한침대를 써보지 못했던 나에게는 당혹스러웠지만 은근히 가슴
뛰고 기대되는 게임이였다. 그래서 늘 여자들한테 순진하다 놀려댔다.
어쨋거나 나는 그때 늘 민박 아줌마 역을 맡았던것 같았다. 초중때 짝사랑하던
그녀를 못잊어 막나가지 못했던것도 없지않아 있었을것이다. 친구들이 하나 둘씩
숫총각의 몸을 깨고 사랑의 과일을 따먹을즈음에 나는 늘 커팅에서 혼자서
밤을 보내야 하는 모습을 보고 날라리파 친구들 학생파 친구들이 나한테 늘
자기의 여친을 통해서 알게된 이쁜 여자를 소개해주려고 했다.
그때의 나는 많이 촌스러웠고 패션스타일도 많이 후져서 친구들이 나를 데리고
옷가게에 가서는 코디네이트를 해주곤 했다. 이렇게 입으면 매짜다,이렇계 맞추면
니 스타일이 살아난다~ 이런식으로~ 무식한 나는 귀공자들의 추천하에 제법
그럴싸하게 패션도 갖추기 시작했지만 적응이 잘 안되였다.
그 당시엔 너무나도 내성적인 나여서 이쁜 여자보고도 말을 쉽사리 걸지 못했다.
후기는 3편에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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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술먹구 놀구 ㅋㅋㅋㅋㅋ
와늘 가관이네요 ㅋㅋㅋㅋ
글이 잼있고 너무 웃겨요
비공식님은 련애 못하고 집은 공짜로 빌려줬겠구나
학생애들이 너무 일찍 성을 알아버렸네여
그러다가 여자애들이 임신하면 어찜까
글을 잘 쓰심다~ 하하하하하
특별한 사연에 엉켜모인 학생들이라서 저마다 컨셉이 아주 뚜렸했지요~
타니님이 으쌰으쌰 해주시니 저도 덩달아 들뜨게 되네요ㅋㅋㅋ
창작의 고통을 무릅쓰고 지루하지 않은 글을 올리도록 힘내겠습니다.
글쓰라고 툭~ 던진 그 한마디말에 힘입어 창작을 시작했다는게 어딘가요~ ㅋㅋㅋㅋ
너무너무 귀엽네요~ㅋㅋㅋㅋ
작가님은 글쓰는 재미로 쓰고,
나는 글 읽는 재미로 삽니다.
겪은일이 나보다 많아서 나누 신세계를
보는거 같심더 ㅋㅋㅋㅋ
그나저나 고민이네요~
고중시절 이야기는 그래도 유쾨하고 홀가분한 스토리여서 좋은데
일본유학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너무 어둡고 무겁고 비참한 실화여서
시나리오를 작성하기가 많이 두렵네요~
그래도 추천 눌러주신 분들 위해서 용기내여 써보렵니다.ㅎ~
난 이분이 라플만 다는 유령회원인줄 알았더니 어느사이 글 많이 올렸네요 허얼~
일케 관심가져주기 시작하니까 조금 흐투삼다ㅎ~
회사일이 바쁘면 저장했던 글들을 올리고
회사일이 한가하면 댓글만 달면서 구경하는게 좋습데다ㅋㅋㅋㅋ
23살때 연길에 놀러가서 星期五迪厅을 한번 가봤는데 그때 혹시 우리 스쳐지지 않았을가? 므하하 ,글 잼있게 잘봤슴다, 일본에서 무슨일들을 겪었는지 궁금하네요, 글쓰는것도 한편의 자신인생을 기록하는 自传이 될수 있으니 과감히 써보세요 ,每个人都是一本书
도넛츠님은 선배벌이 될지 싶네요 ㅋㅋㅋ
1998년 좌우에 있었던 일이라서
어쩌면 스쳤을수도 있겠슴다 ㅋㅋㅋ
도넛츠님이 격려해주시니 힘이 납니다.
나두 연길에서 학교다녓는데 동방수상시장에서 감옥까지 직선길이잖아요.중간에 삼꽃시장이 잇구.
우리학교는 봉쇄식이구 관리가 엄해서 대부분 연애를 못햇어요.근데 몰래 연애한 사람들도 잇엇
을거예요.그때는 요즘처럼 관리가 엄하지 않으니까.
근데 고중때 이렇게 띵가띵가 놀다가 일본유학 가면 기초없어서 데게힘들텐데.님은지금도 내성적
이예요.
맞습니다. 썬화제에 사우나 있었는데
그 뒤켠에 환보국 아파트에 살았읍죠 ㅋㅋㅋ
그때는 확실이 보수적인 시대여서 쉽게
연애를 하고 호텔가는게 어려운 사회 환경이였습니다.
지금도 내성적이다 이건 아닌것 같은데요 ㅋㅋㅋ
백산학교는 외국어 아니고 실험학교
루이스님은 좀 놀던 분이시네요 ㅋㅋㅋㅋ
저는 백산학교가 실험학교 인지도 몰랐습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