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추억의 돼지머리

네로 | 2002.01.17 09:52:23 댓글: 0 조회: 1567 추천: 1
분류일반 https://life.moyiza.kr/mywriting/1560431
사무실에서 퇴근하여 어둑어둑한 땅거미가 피여오르는 저녁거리를 가로질러 전철역으로 향하는데 저 멀리서 돼지머리를 들고 길을 걷는 아낙네가 눈에 띈다.아마도 집에서 고사를 치르나 보다.(한국에서는 명절때나 무슨일이 있을때면 과일과 돼지머리를 상에 올려놓고 고사를 치른다.) 돼지머리를 보니 쉽게 눈을 뗄수가 없다,그도 그럴것이 돼지머리에 내 청춘의 기쁨과 애달픔이 고스란히 녹아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전,그러니까 20세기 후반에 내가  경기도에 있는 모 자동차부품공장에서 2년간 근무할때 있은 일이다.

우리 연변에서 온 연수생 5명은(워낙 7명이였는데 두명은 달아났다.ㅡ.ㅡ) 하루세끼 회사에서 먹고 자고 일했다. 회사식당에서 제공하는 화식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기전엔 한국에서 고기가 비싸서 구경조차 하지 못한다고 뜬소문으로 들었지만 심심치 않게 제육볶음같은것도 먹을수 있었고(대개 주말이면 제육복음을 하는데 그때면 산더미처럼 식판에 담아서 먹곤 했다.)돈까스나 물고기구이같은것도 자주 했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일하고나면 늘 속이 허전했는데 주머니 사정이 않좋은지라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배달시키거나 치킨에다가 맥주를 마실수도 없는 일이였다.(멀기는 하지만 중국집에서 배달은 해주었는데 우리는 2년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한번밖에 시켜먹어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슬프다.)

그나마 사치를 부릴수 있는건 라면을 먹는것이였다. 밤에 일을 마치고나서 콘테이너에 돌아오면 서랍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신라면을(라면은 공동구매,적게먹는눔이 밑진다.)꺼내서 일인당 하나씩 분배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물에 퍼지워먹도록 만든 사발면과는 달리 봉투신라면은 워낙 면발이 굵고 단단하다보니 몇분정도 끓여야 하지만 가스버너같은것이 없었으므로(비싸지도 않은데 왜 하나 구입하지 않았냐고 묻지 마라,그때는 돈이 없어 사발면도 먹지못하고 봉지라면을 먹어야 했으니까.) 냉온수기로 더운물을 받아서 몇분정도 퍼지워서 먹군 했다.물론 그과정에 나무젓가락으로 퍼졌나 찔러보고 저어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말이다. 드디여 면이 후줄근하게 퍼졌다싶으면 서로<나이든 형님이 먼저 드시우.><아니,어린 네가 먼저 먹어라.>라고 먼저먹으라고 양보하면서(지금도 그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 금싸락같은 밤시간을 보냈다.(퇴근해서 자기전까지의 두시간정도는 푹 쉬면서 티비도 볼수 있고 라면도 먹을수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천국과도 같은 시간이였다.)

날마다 이렇게"영양보충"은 하건만 한국음식이 워낙 기름기가 적어서인지 늘쌍 허기에 시달렸다.  주말은 주방아줌마가 나오지 않으므로 회사에서는 평소와 달리 식당문을 잠구지 않고 우리절로 해먹도록 했는데 반찬같은것이 부족할때가 많았다.

같이 일하는 맘씨고운 아줌마들이 가끔은 집에서 심은 고구마며 배추같은 야채를 갖다주기도 했고 색다른게 먹고싶으면 가까운 동네를 나가서 고기나 야채같은것을 구입하기도 했으나 가격이 워낙 비싸다보니 마음대로 사먹지는 못했다. 그러던중 어느하루 장보러 갔던 큰형이 여느때와는 달리 묵직한 검정비닐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우리는 의아해서 물었다.<그게 뭔데?>그러자 큰형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한국은 돼지머리가 되게 싸더라,5000원밖에 안받아,그래서 하나 사왔어.> 중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돼지머리를 편육을 만들거나 고사를 지낼때나 가끔 쓰지 평소에는 거의 먹지 않으므로 고기에 비해 많이 저렴했던것이다.물론 그걸 알기까지는 퍼그나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우리도 같이 신이 나서 돼지머리소탕작전에 들어갔다. 공장안에서 산소절단기를 끌어내다가 돼지머리를 그을리니 아주 제격이였다. 연기도 안나는데다가 1000도가 넘는 불길로 콧구멍,귓구멍까지 구석구석 지져대니 순식간에 돼지머리는 잔털이 다 타고  노릇하게 그을려진다. 그야말로 신선놀음이라고 할수가,음하하!

주방에 있는 식칼로 돼지머리를 토막내고 돼지이발같은 지저분한 부위를 도려내니 이발몇개가 금방 나가뻐린다. <이거 월욜이 되면 혼쭐나게 생겼네.>그도 그럴것이 주방아줌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폭군과 같은 존재였다.

주방아줌마가 기분이 않좋으시면 곧바로 아침식사가 부실해지는데(회사직원이 같이 먹는 점심이나 저녁과는 달리 아침은 우리 중국아저씨들만 먹으니까 집중적으로 혼내줄수가 있다.)그중에서도 주특기가 반찬을 계란후라이, 콩나물볶음+콩나물국 으로 일주일내내 집행하는것이다. 잠간 설명하고싶은것은 그중에서 콩나물볶음+콩나물국인데 제조법으로 놓고 말할작싶으면 굽이 깊은 냄비에 먼저 콩나물을 충분히 넣고 볶아낸다. 그다음 절반쯤 담아서 내놓고(왜 나머지 절반은 그대로 두는가 묻지 마라,곧 알게된다.)나머지 절반에다가 그대로 물을 붓고 끓이면 콩나물국으로 변신한다. 그릇을 재차 가실 념려도 없고 제작법도 울트라캡숑 용이한 아줌마의 필살기(必殺技)중의 하나다. 수요일까지는 그대로 버틸수 있으나 목요일부터는 아침에 식당문으로 올라가는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직접적인 데미지(손상)을 받는다는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서 주방아줌마는 우리에게 있어서 사장이나 직장장보다도 더 무서운 신성불가침의 존재였으며 항상 마마와도 같은 존대를 받았다.

월요일마다 혼나는 이유중 주요한 몇가지로는 기름을 너무 많이 썼다는둥,그릇을 깨끗이 가시지 않았다는등 몇가지 사항이였는데 몇번 몸으로 주방아줌마의 위력을 느낀뒤에는 아침마다 아줌마를 보면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하고(직장상사를 보면 무시함, 직장상사를 혼내주는 방법은 월급인상요구,노동조건개선촉구등 다양한 방법이 있기에 하나도 무섭지 않음!)그릇이며 방바닥을 파리가 앉다가 미끌어지도록 알른알른하게 청소하였고 음식 하나 다치더라도 주방아줌마의 입장에서 이건 어떻게 생각할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결정하였다. 결과 주방아줌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됐고 우리들의 아침반찬은 나날이 향상됐으나 뒷얘기임.

아무튼 식칼사건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수습했다. 공장내에 전동연마기같은 설비는 쌔구버렸으니 내친김에 주방의 칼을 모두 연마기로 머리칼이 떨어지면 저절로 잘린다는 전설속의 보검처럼 시퍼렇게 갈았다.(이거,또 주방아줌마한테서 사랑받게 생겼다.)

깨끗하게 튀한 돼지머리는 커다란 솥에 넣어서 삶겨졌고 나머지 돈으로 슈퍼에 가서 패트병소주(패트병소주는 보통 마시는데 쓴다기보다 약술같은걸 담글때 많이 씌이는데 1.6리트라는 어마어마한 용량에 가격은 아주 싸다.)까지 장만했다.

오후가 되자 돼지머리는 손가락으로 찔러도 뻥 구멍이 뚫릴정도로 푹 익었고 우리는 돼지머리를 건져서 큰 사발에 고기가 넘치도록 수북하게 썰어놓고 컵에다가 소주를 콸콸 부어서 기껏 만포식했다.  그야말로 세상에 부러운것이 없었고 그때보다 더 행복한적이 손가락을 꼽아봐도 몇번 있는것 같지 않았다.

이후마다 주말이면 즐거운 돼지머리행진곡은 계속되였고 나중에는 아주 이골이 나게 되였다. 머리를 사오고 산소불로 튀하고 솥에서 삶아내고 각자 담당한 파트로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였고 그 솜씨가 죄다 프로급이였으니 포정도 이모습을 보면 감탄했으리라.

注 : 포정은 包丁解牛 라는 사자성어를 만들어낸 중국의 이름난 백정, 소잡는 솜씨가 달인의 경지에 이르러 뼈에 칼이 닿지 않고 그사이에만 칼을 집어넣어 고기를 저며냈으므로 10년동안 무수한 소를 잡으면서도 칼 한번 간적이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아예 머리를 두개씩 구입해서 향연을 베풀었으나 불행하게도 좋은 시간은 너무 오래가지 못했다. 머리고기에 질려버렸던것이다. 돼지머리는 워낙 지방질이 많아서 느끼했는데 그것도 푹 삶는 단순한 조리법으로 줄기차게 해제꼈으니 질리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공장에 근무한지 6개월이 되니까 월급을 전액으로 받을수가 있어서 형편이 많이 나아졌고 좀 더 여유있는 생활도 가능해졌다.(한국에 온 처음 6개월은 이탈방지명목으로 월급을 전부 강제저축당하고 통장을 회사에 차압당했다. 그리고 달마다 5만원씩만 용돈으로 타썼는데 그돈으로 집에다가 전화하고 세면도구를 구입하고 이발까지 하고나면 거의 남지를 못했다. 덕분에 상당기간동안 담배까지 끊었다만 몇년지난 지금은 봉창이라도 하듯 더 억세게 피운다.)

아마 집에 돌아가서도 돼지머리를 같이 먹었던 우리 다섯명은 그 이야기를 두고두고 하게 될것이다.

그로부터 2년정도뒤 나는 서울 성수동근처의 한 염색공장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구정때라 회사에서 고사를 지내게 됐다. 워낙 공장에서 고사를 치르는 일은 드문데 얼마전 같이 일하던 조선족영감님이 심장마비로 일하던도중 숨져서 그 영혼도 위로할겸 더이상 않좋은 일이 생기지 말게 해달라고 시루떡을 몇말 시켜놓고 돼지머리와 과일도 구색대로 갖추고 공장전원이 같이 고사를 치뤘다.

그때 직원중 몽골에서 불법체류로 온 청년들이 많았는데 몽골청년들도 멋모르고 눈치를 보며 덩달아 절을 하고 떨떠름한 눈치였다. 아무튼 고사는 차질없이 진행되고 술이 한순배씩 돈뒤에 한국인직원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갈곳이 없는지라 썰렁한 회사기숙사에 몽골청년들같이 같이 남게 되였는데 먹는것이 문제였다.염색공장은 워낙 규모가 적어서 식당이 따로 없는데다가(밥은  부근의 식당에서 시켜먹었다.)구정이라 근처의 식당마저 문을 닫아 먹을데가 없었다.

이때 뭉흐잘갈이라고 부르는 몽골청년들이 나보고 히죽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밖에 있는 돼지머리를 먹어도 되냐고, 알고보니 고사가 끝난다음 남은 떡이며 과일은 직원들이 다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돼지머리만은 가져가는 사람이 없어서 남았던것이다.

뭐 먹으면 어떠냐고 내가 말했더니 좋아라고 돼지머리를 기숙사로 들고 들어온다.
나머지 청년들도 좋아서 우르르 모여들었다. 워낙 몽골에서는 고기가 주식인데 얘네들이 한국에 와서 풀만 먹고 살려니 오죽이나 힘들었을꼬? 눈물이 막 찔끔 날것같았다. 과부설음은 홀애비가 안다고,아니,몽골사람 설음은 조선족이 안다고, 그것도 아는지 모르는지 몽골청년들은 과일칼을 꺼내들더니 돼지머리에서 살을 썩썩 발라내서 그대로 손으로 집어먹는다.

게다가 쐬주를 컵에다가 따라마시니 세상에 부러운것 없고 고향노래가 마구 흘러나온다.으악, 죽음이닷! 왜냐면 몽골청년들은 노래를 하면 꼭 합창을 하는통에 도저히 들어줄수가 없다. 한밤중이던 꼭두새벽이던 이들은 술만 마시면 꼭 노래를 부르거나 다투곤 하는데 두쪽 다 어찌나 소란스러운지 도저히 버텨내기가 힘들다.

평소에는 순한양처럼 말도 잘듣고 시키는 일도 잘하는데 술만 마시면 도저히 그들을 이길 자신이 없다.취하면 눈에 뵈는게 없는데다가 그들은 많고 나는 혼자니까...ㅡ.ㅡ 아무튼 같이 외지에서 힘들게 돈벌고 사는처지라서 나도,그들도 같이 참고 살았다. 그들 눈에는 내가 노래도 안하고 술도 잘안마시는 인생을 즐길줄도 모르는 재수없고 이상한넘으로 비쳤을거다.아마...

몽골청년들은 나더러 같이 먹자고 했지만 싸늘하게 식은 돼지머리가 그것도 허벌나게 질리도록 먹은 돼지머리고기가 구미가 땡길리가 없었다. 하지만 술까지 거절할수는 없어 한컵 꼴똑 부어서 마셨더니 빈속에 머리가 핑핑 돈다.

한판대기 남기고간 차고 딱딱한 시루떡을 찾아서 몇점 집어먹고나니 그나마 허기도 가라앉고 머리도 덜 어지럽다. 방쪽 한구석으로 찾아가 머리까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려니 자꾸 허구픈 웃음이 나온다.

아! 돼지머리,돼지머리,못되고도 끈질긴 인연이여,내가 죽고 이몸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없고 차마 너를 잊지는 못하리라!

후기: 따끈따끈한 집에 편하게 앉아 우유에다가 치킨을 먹으면서 노트북으로 이글을 씀다.이글을 쓰면서도 나에게도 이렇게 힘든 과거가 있었나싶습니다. 지금은 밤이 깊었지만 이시간에도 돈을 벌려고 한국땅에서 땀흘리며 고생하는 조선족 여러분이 있음다. 모두들 그분들의 어려움과 애타는 노력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었으면 하는 심정임다.

--- 연변총각 무우가 2001년 11월 7일 새벽 1시 32분에 서울 가리봉동 어느 반지하 셋방에서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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