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피라미드 장군총

무우 | 2008.03.31 09:45:02 댓글: 1 조회: 2393 추천: 0
지역中国 北京市 海淀区 분류여행기 https://life.moyiza.kr/travel/1688791
유명한 고구려유적지가 있는 집안시는 길림(혹은 장춘)시에서 만행기차를 타고 여덟시간 걸려서 통화시에 도착한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세시간이면 도착할수 있는 곳이다. 연길에서 가려면 기차로 연길-길림(장춘)-통화에 도착한뒤 집안행 버스를 갈아타면 된다. 전체 과정은 거의 24시간이 소요될것이다. 아니면 특별히 튼튼한 체질이라면 연길기차역에서 통화행 직행버스를 타고 통화에 도착한뒤 다시 집안행 버스를 갈아타면 된다. 통화행 버스는 무려 12시간을 타야 하는 체력에 대한 고험이다.

이번에 회사일로 통화에 출장을 가게 되였는지라 집안시를 둘러보는것도 빼놓을수가 없었다. 택시를 한대 세내서 집안으로 출발하였는데 버스로는 세시간거리를 두시간으로 단축할수가 있었다. 이미 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길가 곳곳에는 적설들이 두텁게 깔려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집안으로 가는길은 무척 험했고 산골짜기와 굽은길이 많은데다가 도로변에는 가드레일마저 없어서 위험해보였다. 기사아저씨 이야기로는 겨울에 집안으로 갈때마다 빙판길때문에 손에 식은땀을 쥐고 운전해야 한다고 한다.

집안시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커다란 솟을대문을 지나기바쁘게 기사아저씨가 손짓했다. "저것이 바로 장군총입니다." 손길을 따라보니 아닌게 아니라 길옆 벌판에 거대한 피라미드모양의 돌무덤이 시야에 들어온다.



- 웅장한 장군총.

장군총은 집안시에서 동북쪽으로 4.5킬로 떨어진곳에 자리잡고있으며 서남쪽으로 광개토왕비(호태왕비)와 0.5킬로 떨어져있다. 장군탑은 그 웅장한 규모와 피라미드모양의 조형으로 동방의 금자탑이라고 불리운다.

예전에는 당지 백성들이 이 무덤을 변방을 지키는 장군의 무덤이라고 전해내려오면서 장군총이라고 불리게 되였는데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무덤이 고구려 20대왕인 장수왕의 무덤이라고 추정하고있다.

장군총은 약 4세기말부터 5세기사이에 지어졌는데 이때가 바로 장수왕의 즉위시기이고 고구려의 전성시기였던것이다. 장수왕릉은 무려 1500여년이라는 세월을 지나면서도 우뚝 서서 그 위용을 뽐내고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조들의 고도로 발전된 건축기술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다.



- 장군총의 숫자들...

사진에서는 그렇다할만한 참조물이 없어서 장군총의 규모에 대해 감이 잘 안잡힐 것 같아서 한번 그림으로 그려서 수치를 표시해보았다. 장군총은 7단으로 이루어지고 밑의 너비가 31.58미터,높이가 12.4미터나 되는 거대한 화강암건물이다.



- 지름이 2미터가 넘는 화강암벽돌들.

장군총에 씌인 돌은 20여킬로 떨어진 오녀산에서 날라온것이라고 하는데 기중기도 트럭도 없는 당시에 어떻게 날라와서 쌓았을지 의문이다. 묘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의 아들 거련으로써 413-492년사이에 즉위하였다. 재위기간이 무려 79년이나 되니 장수왕이라는 칭호가 왜서 왔는지 알수 있다.

장수왕의 아버지인 광개토대왕때는 고구려의 국토를 가장 많이 넓혔고 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의 성과를 공고히 하고 고구려를 전성기로 이끌었다. 나중에 장수왕은 도읍을 집안에서 평양으로 옮겼는데 묘는 워낙 생전에 지은거라서 이렇게 남아있는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주몽이 지금의 길림성 환인에 건립하였으며 668년에 당나라에 의하여 멸망되였다. 그사이 모두 28대의 왕이 즉위하였으며 도합 705년이라는 기간동안 존재하였다. 나중에 왕건이 고려를 세울때에는 이미 250여년이 지난 918년이였다.

어릴 때 조선어문시간에 고구려건국신화를 배우고 활 잘 쏘는 주몽을 너무 좋아했었다.그때는 멀리 조선에서 있은 일인줄 알았는데 바로 내가 살고있는 길림이 고구려의 탄생지인줄을 미처 몰랐던것이다.



- 네면을 받치고있는 버팀돌들

이 버팀돌들은 한면에 세개씩 뉘여져있는데 묘의 내부는 자갈로 채워져있으므로 그 무게를 받아당하지 못하고 묘가 변형이 될가바 받쳐주는 작용을 한다. 버팀돌 한 개의 무게는 십몇톤에서 이십몇톤씩 한다고 한다. 뒷면의 버팀돌은 누가 훔쳐갔는지는 몰라도 한 개가 분실되여서 현재 남아있는 것은 도합 11개이다. 버팀돌이 없어진 자리는 과연 석재가 압력을 받아당하지 못하고 이곳저기에서 입을 벌리여서 내부는 자갈들로 채워진 것을 눈으로 확인할수 있다.



- 관이 들어간 석실

장군총의 5단쯤 되는 높이에는 관을 넣어두는 석실이 있는데 해설원의 안내하에 묘 뒤편의 나무층계로 에돌아 올라서 들어갈수 있다. 참고로 해설원은 두 이쁜 한족아가씨였는데 조선족 해설원은 없냐고 물으니 현재 모집중이라고 한다. 유람객중 상당수가 한국인일텐데 조선족해설원은 왜 안쓰는지 모르겠다.

석실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였다고 해서 아쉬운대로 밖에서나마 내부를 향해서 사진을 한장 남기였다. 사진에서 보다싶이 방범장치가 무려 3중으로 되여있다. 석실은 너비가 5미터가 되는 정방형 구조이며 높이는 5.5미터이다. 석실은 묘의 5단부분에 있는데 석실의 천정은 지름이 5미터가 넘는 돌 하나로 되여있다. 그 돌의 무게는 무려 50톤이 넘는다고 한다. 50톤짜리돌을 어떻게 들고왔는지? 고구려사람들은 힘이 무척 센 것이 틀림없다.

석실내부에는 거석으로 관을 놓는 돌침대를 만들어넣었는데 왼쪽의 좀 높은 것이 남자의 관을 놓는 자리고 오른쪽의 좀 낮은 돌침대가 여자의 관을 놓는 자리라고 한다. 부부가 합장한듯싶었다.

돌침대는 유리로 위를 막았는데 그위와 돌침대안에는 동전들이 어지러이 널려져있었다. 그런데 다 소액동전이고 1원짜리는 안보인다. 우리도 1원짜리 동전 두어개를 던져넣었다. 다음에 다시 왔을때도 동전이 그자리에 있을가? 없다면 분명 누군가가 주어간 것이 다름없다.



- 장군총의 동남향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무덤

작은 무덤이라지만 집채만하다. 워낙 장군총의 네귀에 무덤이 하나씩 있었는데 다 사라지고 현재 한채만 남아있다고 한다. 무덤은 많이 훼손되여 내부가 다 드러났는데 장군총의 내부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작은 무덤을 통하여 짐작할수 있다. 해설원의 말로는 왕비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사실이라면 장수왕은 왕후이외에도 적어도 네명의 왕비가 있으렸다.



- 장군총에서 내려다본 집안시

저 멀리 집안시가 아스라하니 보인다. 장군총주위에는 잔디가 심어져있었는데 예전에는 잡초더미에 파뭍혀여있었고 나중에는 주변에 민가가 많이 들어섰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에 집안시의 고구려유적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면서 집안시 정부에서 주변 민가를 모두 이주시키고 잔디를 심고 가꾸었다고 한다. 여름에 오면 잔디가 푸르고 나무가 우거져 더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다. 나중에 또 와바야지.

희한한 일이지만 주변의 눈이 채 녹지 않은 장군총 주위에서 노랑나비가 팔랑거리면서 날아다니는 것을 볼수 있었다. 봄이 오긴 오나부다.


ps: 여기에서 나오는 년대와 수치는 2003년 길림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한 "高句丽历史知识问答"에서 발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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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곰 (♡.34.♡.13) - 2008/04/06 11:46:19

와 ~주의 경치 정말 마음 시원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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