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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손원평 작 (1)

호수 | 2021.09.11 08:34:32 댓글: 2 조회: 128 추천: 1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02463

나에게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수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뿐이다.

1부

1.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먼저 엄마와 할멈. 다음으로는 남자를 말리러 온 대학생.
그후에는구세군행진의 선두에 섰던 50대 아저씨 둘과 경찰 한 명이었다. 그리고 끝으로는 그 남자
자신이었다.그는 정신없는 컬부림의 마지막 대상으로 스스로를 선택했다.자신의 가슴 깊이
칼을 찔러 넣은 남자는다른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구굽차가 도착하기 전에 숨이 끊어졌다.
나는 그 모든 일이 눈앞에서벌어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2.
첫번째 사건은 여섯살 때 일어났다. 징후를 보인건 훨씬 전부터였고 여섯살이 되어서야 그것이 수면
위로드러났다. 엄마의 예상보단 꽤 늦은 나이였다. 방심한 탓이었을까 그날 엄마는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는 그날 오래만에 실로 몇년만에 아빠를 찾아갔다고 한다.
이제는 당신을잊겠노라고 납골당의 빛바랜 벽을 닦으며 그렇게 얘기했단다. 그렇게 엄마의 사랑이
완전히끝맺어지는 그 순간에철없는 사랑이 가져다준 불청객인 나는 철저히 잊히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사라진 후 나는 유유히 유치원 건물을 빠져나왔다. 여섯 살짜리 남자애가 집의 위치에
대해 아는거라고 육교 너머 어딘가에 있다는 것뿐이 였다. 유교 위로 올라 난간 아래고 고개를 떨궜다.
아래로 차들이미끄러 지듯 씽씽 달리고 있었다. 문뜩 어디선가 본게 떠올라 입 안에 침을 잔뜩
끌어모았다. 아래로 지나가는차에 침을 맞히는 거다. 하지만 내 침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말았다.그걸 지켜보며 몇 차례 계속하고 있자니 몸이 붕 뜬 것처럼 어질어질했다.
- 뭐하니! 더럽게.
고개를 드니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아줌마는 제갈 길을 가는 차들처럼 그 말만
남긴 채 미끄러지듯나를 지나쳤고 나는 다시 홀러 남았다.육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사방으로
뻗어 있었고 나는 방향을 알지 못했다.어차피 계단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똑같이
회색빛으로 차가웠다.비둘기 몇 마리가 푸드덕 소리를내며 머리위를 가로질렀다. 새들이 향하는
방향을 쫓아가기로 했다.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린 뒤였다.
그즈음유치원에서 배우던 노래는<앞으로>였다. 그 노랫말처럼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자꾸 나아가면
언젠가 집에 도착하겠지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고집스럽게 짧고 투박한발걸음을 옮겼다.
큰길은 골목으로 이어졌고 골목 양폎으로는 낡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너져 가는 시멘트 벽 여기저기에 알수 없는 붉은색 숫자며'공가'르는 글자 따위가 적힌게 보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아, 하고 작게 소리쳤다. 아,였나,어, 였나. 아아아, 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작고
짤막한 외침이였다.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점점 소리가 가까워졌고 그 외침은 으, 가 되였다가
이이이,되기도 했다. 모퉁이 뒤에서 들리는소리였다. 나는 지체없이 모퉁이를 돌았다.
한 아이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작은 남자아이 였다. 그 아이 위로 검은 그림자가
정신없이 드리워졌다거둬졌다 하길 반복했다. 아이는 맞고 있었다. 짧은 외침은 그 아이가 내는 게
아니라, 그 애를 둘러싼 그림자들에게서 기합처럼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그들이 고작 중학생이였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 내 눈에 비친 그림자들은 다 큰 어른처럼 길고 거대했다.아이는 이미 맞은 지가 너무
오래된 듯 저항을 하지도, 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그저 헝겊 인형처럼 이쪽저쪽으로 내 팽개쳐지고있을
뿐이었다.그들 중 한 명이 마무리 동작처럼 아이의 옆구리를 내리찍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사라졌다.
빨간 물갑을뒤집어쓴 것처럼 아이의 온몸이 피로 물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열한 살이나 열두살,그러니까 내 나이의 두 배쯤. 그런대도 형이라는 생각은 안들고 아이인
것만 같았다.아이의 가슴이 갓 태여난 강아지처럼짧고 얕은 숨으로 빠르게 달싹 거렸다. 꽤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 쯤은 알수 있었다.나는 모퉁이를 다시 돌아 나왔다. 여전히 인적은 없었고 회백색 벽
위의 붉은 글씨들만이 눈을 어지럽혔다. 한참을 헤맨끝에 겨우 작은 구멍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미닫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주인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 아저씨.
텔레비전에선<가족오락관>이 나오고 있었다. 아저씨는 텔레비전을 보며 낄낄대느라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귀마개를 한 출연자들이 앞사람의 입모양만 보고 단어를 알아맞히는 게임이었다.
전달해야 할 단어는 '전전긍긍'이였다.그 단어가 왜 기억나는지 모르겠다.나는 그때 전전긍긍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으니까 어쨋든 젊은 여자 출연자가 자꾸만 엉뚱한단어를 얘기해서 방청객과 가게
아저씨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다.결국 주어진 시간이 종료됐고 여자 팀은 그 문제를 놓쳤다.
아저씨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나는 다시
-아저씨.
하고 불렀다.
-응?
아저씨가 고개를 돌렸고 나는,
-골목에 누가 쓰러져 있어요.
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그러니?
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곤 자세를 추슬렀다.텔레비전에선 여전이 가능한 점수높은 문제를 걸고
양 팀이 대결하려는 참이였다.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요.
나는 매대에 가지런히 진열된 게러멜을 만지작 거렸다.
-그래?
-네,그래요.
그제야 아저씨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무서운 얘기를 참 태연히도 하는구나.거짓말하면 못쓰는 거야.
나는 한동안 아저씨를 설득할 말을 찾느라 침묵했다.하지만 어린 나는 아는 단어도 별로 없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했던 말보다 더 진짜 같은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죽을지도 몰라요.
했던 말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3.
아저씨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프로그램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개러멜을 꼼지락대며 만지작거리는
나를 보다못한 아저씨는아무것도 사지 않을거면 그만 나가라고 하는 동안 그러고도 한참을 꾸물거린
경찰이 현장까지 가는동안 나는 줄곧 차가운바닥에 누워 있을 아이를 생각했다.
그 애는 진작에 숨이 끊어져 있었다.
문제는 그애가 바로 그 아저씨의 아들어었다는 거다.
나는 경철서 안 벤치에 앉아 아직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앞뒤로 휘저었다. 교차로 움직이는
발의 움직임이 차가운 바람을일으켰다.이미 깜깜한 밤이었고 졸음이 밀려왔다. 까무룩 잠이 들려는
순간,엄마가 경찰서 문을 밀고 들어섰다.나를 본엄마는 통곡하며 내 머리통을 아프도록 쓰다듬었다.
상봉의 기쁨이 채 식기도 전 다시 경찰서 문이 벌컥 열렸다. 온 얼굴이눈물로 덮인 아저씨가 경찰들에게
몸을 맡긴채울부짖으며 들어왔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의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아저씨는 쓰러지듯 꿇어앉더니 몸을 떨며 주먹으로 바닥을 때렸다. 그러더니 별안간 몸을 일으켜 내게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했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전달받은 의미는 이런거 였다.
'네가 조금만 진지하게 말했더라면 늦지 않았을거다.'
옆에서 경찰이 유치원생이 뭘 알겠느냐며 고꾸라지려는 아저씨를 간신히 받아 세웠다. 나는 아저씨의
말에 동의하게 어려웠다.나는 줄곧 진지했다. 단 한번을 웃지도 흥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런
질책을받아야 하는지 알수 없었다. 하지만여섯 살의 짧은 어휘로는 그런 의문을 표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잠자코 있었다. 나를 대신해 엄마가 목청을 높혔다.
경찰서 안은 삽시간에 아이를 잃은 자와 아이를 찾은 자의 소란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그날 밤 나는 여느 때처럼 장남간 블록을 가지고 놀았다.기린 모양의 블록이었는데 기다란 목을
아래로 꺾으면 코끼리가 됐다.엄마의 시선이 내 몸 구석구석에 닿는 게 느껴졌다.
-무섭지 않았어?
엄마가 물었고
-아니.
내가 대답했다.
어쩐 일인지 그사건 그러니까 내가 사람이 맞아 죽는 걸 보고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더라.
하는 얘기는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때부터 엄마가 걱정하던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문제는 심각해졌다. 어느 날 하굣길에 내 앞을 걷던 여자애가 돌부리에 결려
넘어졌다.걔가 엎어진 채로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애가 일어나길 기다리며 여자애의
뒤통수에 매달린 미키마우스머리 끈만 바라봤다.하지만 넘어진 애는 자리에서 울기만 했다. 갑자기
그 애의 엄마가 나타나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나를 흘기며 혀를 찼다.
-친구가 다쳤는데 괜찮냐고 물어볼줄도 모르니? 소문은 들었지만 애가 정말 보통이 아니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열지 않았다. 뭔가'사건'이 일어났음을 감지한 이이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소곤대는 소리가귀를 간질렀다. 모르긴 해도 아줌마가 한 말의 메아리 같은 말들이었을
거다.그때 난 구한 건 할멈이었다.할멈은 어디선가원더우먼처럼 등장해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재 복이 없어서 넘어진 거지. 어디서 남 탓이야?
걸걸하게 일갈한 할멈은 아이들어게도 한소리 하는걸 잊지 않았다.
-뭐가 재밌다고 보고들 있어? 못난 것들.
무리에서 꽤 멀어졌을 때쯤 할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꾹 다문 입이 앞으로 쭉 내밀어져 있었다.
-할멈, 사람들이 왜 나보고 이상하대?
할멈은 내민 입을 집어넣었다.
-니가 특별해서 그러나보다. 사람들은 원래 남과 다른걸 배기질 못하거든.에이그. 우리 예쁜 괴물.
할멈이 나를 으스러져라 안는 통에 갈비뼈가 아렸다.전부터 할멈은 나를 종종 괴물이라고 불렀다.
그 단어는 적어도 할멈에게만은 나쁜 뜻이 아니었다.
추천 (1) 선물 (0명)
IP: ♡.179.♡.193
토마토국밥 (♡.15.♡.73) - 2021/09/12 08:09:35

잘보고 갑니다

호수 (♡.111.♡.94) - 2021/09/13 05:03:5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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