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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손원평 작 (4)

호수 | 2021.09.13 19:09:39 댓글: 0 조회: 50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03150
엄마의 말에 따르면 그럴 때 모범 답안은
-좋겠다.
였고 그게 뜻하는 감정은 '부러움' 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생겼다거나 잘했다는 식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면(물론 '긍정적' 에 해당하는게 무엇인지도 따로 외워야 했지만)
- 고마워
혹은
- 이정도 가지고 뭘
이 맞는 대답이였다.
엄마는'고마워' 는 상식 수준의 답이고 '이정도 가지고 뭘' 은 약간의 여유를 부리는 태도로 내가 더 멋진 아이로 보일수 있는 답변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언제나 제일 간단한 답을 선택했다.

9.
엄마는 자타가 공인하는 악필이었기 때문에 나를 위해 인터넷에서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한자를 찾아 A4 한장에 한 글자씩 커다랗게 인쇄했다. 쯔쯔.그 꼴을 본 할멈이 혀를 찼다. 할멈은 모든 일엔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법이라며 엄마를 타박했다. 그러곤 한자에 관한 한 까막눈이 었음에도 그림 그리듯 그 글자들을 커다랗게 따라 그렸다. 엄마는 할멈에게 건네받은 글자들을 가훈처럼 혹은 부적처럼 집안 곳곳에 붙였다.
신발을 신을 때면 신발장 위에서 喜(희)가내게 미소 지었고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爱(애)를 보아야 했다. 잠들기 전에는 침대맡에서 楽(락)이 나를 굽어보았다. 장소와는 무관하게 붙여 놓은 것들이었지만 엄마의 미신에 따라 나쁜 것들, 그러니까 분노, 슬픔, 미워함 따위에 해당하는 글자들은 화장실 안에 한꺼번에 붙여 두었다. 시간이 가면서 화장실의 습기로 종이는 우글쭈글 해지고 글자들은 희미해졌다.할멈은 정기적으로 그 글자들을 다시 써서 붙였다. 그래서 인지 종국에는 할멈이 그 한자들을 외워서 멋들어진 글씨체로 쓸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는 '희로애락애오욕 게임' 까지 만들었다. 엄마가 상황을 제시하면 내가 감정을 맞혀야 한다. 누군가가 맛있는 음식을 준다면 느껴야 할 감정은? 정답은 기쁨과 감사. 누군가가 나를 아프게 했을 때 느껴야 할 것은? 정답은 분노, 이런 식이었다.
한번은 내가, 누군가 맛없는 음식을 주었을 때는 무엇을 느껴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엄마가 대답을 내놓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한창 고민한 끝에 엄마는 일차적으로 음식이 맛이 없기 때문에 분노를 느낄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음식 맛이 형편없다며 식당 흉을 보는 것을 몇 차례 본적이 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맛이 없는 음식일지라도 기뻐하거나 감사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럴때마다 할멈은 그저 감사하며 먹으라고 엄마에게 핀잔을 주곤했다.)
시간이 흐르고 내 나이가 두 자랏수가 되자. 엄마가 내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못하거나 우물쭈물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결국 엄마는 더 이상의 질문을 압축하듯 ' 희로애락애오욕' 의 기본 개념이라도 잘 암기하라고 했다.
- 복잡한 것 까진 몰라도 기본은 꼭 알아야 해. 그렇게만 해도 조금 메말랐다는 소릴 들을지언정 정상 범주에 속할거야.
사실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미세한 단어의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따위는 내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10.
엄마의 끈질긴 노력과 매일같이 행해지던 습관적이고 의무적인 훈련 덕에 나는 차츰 학교에서 별문제 없이 지내는 법을 대강 익혔다. 초등학교 4학년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적당히 무리 안에 섞여 있는것도 가능 했으니, 튀지 말라는 엄마의 소망도 이루어진 셈이다. 대부분은 그저 잠자코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화내야 할 때 침묵하면 참을성이 많은 거고, 웃어야 할 때 침묵하면 진중한 거고, 울어야 할 때 침묵하면 강한 거다. 침묵은 과연 금이었다. 대신 '고마워' 와 '미안해' 는 습관처럼 입에 달고 있어야 했다. 그 두 가지말은 곤란한 많은 상황들을 넘겨 주는 마법의 단어였다. 여기까진 쉬웠다. 상대방이 내게 천 원을 내면 거스름돈을 이삼백 내주는 것과 비슷했다.
어려운 건 내가 먼저 천원을 내는 거였다. 그러니까. 뭔가를 원한다거나 하고 싶다거나 어떤 것을 좋다고 표현하는 일들, 그런 게 힘든 이유는, 여분의 에네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돈을 내야 하는데 나는 사고 싶은 것도 없고, 얼마를 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잔잔한 호수에 억지로 파도를 치게 만드는 것처럼 버거웠다.
가령 전혀 먹고 싶지 않은 초코파이를 보며"나도 먹고 싶어,'' 라고 말하는것 그러면서"나도 하나 줄래?" 라며 미소를 짓는 것 누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가거나 약속을 어겼을 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고 따져 묻는 것, 그러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흘리는것,
그런 것들이 내겐 가장 힘든 일어었다. 기왕이면 아예 안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사람이 너무 잔잔한 호수처럼 보여도 이상한 애로 낙인찍힐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런것도 '아주 가끔씩은' 해야 한다고.
- 인간은 교육의 산물이야. 넌 할 수 있어.

엄마는 모든 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고 다른 말로는 그걸'사랑'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더 가까웠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사랑이라는 건. 단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서 이럴 땐 어렇게 해야 한다. 저럴 땐 저렇게 해야 한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여놓는 것에 불과 했다. 그런 게 사랑이라면 사랑 따위는 주지도 받지도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물론 그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엄마의 행동 강령 중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라는 덕목을 입이 닳도록 외원 덕이다.
11.
할멈식으로 표현 하자면 나는 엄마보다는 할멈과 '궁짝이 더 잘 맞는' 편이었다. 사실 엄마와 할멈은 둘 다 자두맛 캔디를 좋아한다는 것 말고는 생김새부터 취향, 성격까지 같다고 말할 수 있는게 거의 없었다.
할멈은 엄마가 어린 시절 가게에서 제일 먼제 훔친 게 자두맛 캔디라고 했다. '제일 먼저' 라는 말을 들은 엄마가 재빨리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었다고 큰 소리로 덧붙였지만 할멈은 배시시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두사람이 자두맛 캔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좀 유별났다. 그 사탕은 ' 단맛과 피 맛을 동시에 느낄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오묘하게 반짝이는 흰 바탕에 빨간 줄이 쓰윽 그어진 자두맛 캔디. 그걸 입 안에서 굴리는 건 둘의 소중한 즐거움 중 하나 였다. 그 빨간 줄은 유독 빨리 녹아서 먹다 보면 혀를 베기 일쑤였다.
-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말이야, 짭조름한 피 맛이 단맛이랑 어우러지는 게 그럴듯하거든.
엄마가 오라메디를 찾을 동안 할멈은 사탕 봉지를 품에 안은 채 환하게 웃으며 말하곤 했다. 할멈의 얘기는 이상하게 몇 번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할멈은 내 인생에 갑자기 등장한다. 삶에 지친 엄마가 마침내 할멈에게 SOS를 치기 전까지 엄마와 헐멈은 칠년 가까이 서로 연락을 끊다시피 하고 살았다. 혈육의 정마저 끊게 한건 외간 남자, 즉 나의 아빠였다.
엄마가 아직 배속에 있을 때 할아버지는 암으로 잃은 할멈은 엄마가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젊음을 다 써 버렸다. 오로지 자식을 위해 산 삶이나 다름없었다. 다행이 딸은 특출하진 않았어도 공부를 곧잘 했고 서울에 있는 여자 대학에 진학했다.그렇게 키운 딸이, 여대앞에 자판을 깔고 액세사리 장사를 하는 웬 놈팡이 - 그게 할멈이 아빠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 한테 눈이 먼 거였다. 놈팡이는 귀한 딸에게 아마도 좌판에 널려 있던 것 중 하나였을 싸구려 반지를 끼워 주며 영원히 사랑의 서약을 했다. 할멈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허락할 수 없다고 했지만. 사랑은 누가 허락하거나 허락하지 않는 결재 서류가 아니라고 엄마는 받아쳤고 그 결과 뺨을 맞았다.
엄마는 그렇게 반대하면 임심할거라고 오히려 할멈을 협박했다. 정확히 한 달뒤에 협박은 현실이 되었다. 할멈은 아이를 낳겠다면 다시는 보지 말자고 최후통첩을 했고 엄마는 정말로 집을 나갔다. 그것으로 할멈과 엄마의 연은 '일단' 끊겼다.
나는 아빠를 본 적이 없다. 시진으로만 몇 번 봤을 뿐이다.내가 엄마 배속에 있을 때 술 취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아빠의 좌판을 덮쳤다. 그 자리에서 아빠는 목숨을 잃었다. 값싼 색색의 액세서리들만 남긴채. 그리고 나니 엄마는 더더욱 불행을 짊어지고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칠 년이 흘렀다. 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못 버틸 때까지. 엄마 혼자서는 나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12.
할멈과 나는 맥도날드에서 처음 만났다. 엄마는 그날따라 평소엔 잘 사 주지 않는 버거 세트를 두개 시켜 놓고는 자신은 손도 대지 않았다. 엄마의 시선은 출입구를 향해 있었는데, 누군가가 들어올 때마다 눈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상반신을 곧추 세웠다가 숙였다가 하길 반복했다, 나중에 엄마에게 물었더니 그건 두려움과 안도감이 뒤섞일 때 나타나는 행동 중 하나라고 했다.
마침내 저쳐 버린 엄마가 엉뎅이를 들썩이며 나갈 채비를 하던 그 순간, 출입구가 휭 열리며 바람이 훅 끼쳐 들어왔다. 고개를 들자 어깨가 떡 벌어지고 기골이 장대한 여자가 서 있었다. 회색 머리카락 위로 눌러쓴 보라색 모자엔 깃털이 꽂혀 있었다. 동화책에서 본 로빈 후드와 닮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바로 엄마의 엄마였다.
할멈은 무척 컸다. 크다는 말밖엔 할멈을 묘사하기에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비유하자면 할멈은 영원히 죽지 않는 커다란 떡갈나무 같았다. 몸도 목소리도, 심지어 그림자 마저도 큼직큼직 했다. 특히나 손은 , 힘 좋은 남자의 손처럼 두툼했다. 할멈은 내 앞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입을 한일자고 꾹 다문 채 침묵했다. 엄마가 눈을 내리깔고 웅얼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고 하자 할멈이 낮고 굵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 일단 먹어라.
엄마는 하는 수 없이 다 식어 버린 버거를 꾸역꾸역 입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마지막 프렌치프라이 한 조각까지 다 사라진 뒤에도 모녀 사이엔 말이 없었다. 나는 손끈에 침을 묻혀 밤색 플라스틱 쟁반 위에 흩어진 프렌치프라이 부스러기를 하나씩 집어 먹으며 다음 상황을 기다렸다. 굳게 팔짱을 낀 할멈 앞에서 엄마는 입술을 깨문 채 자신의 구두 끝만 바라 보았다. 더 이상 쟁반 위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드디어 엄마가 두 손으로 내 양 어깨를 잡고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 얘예요.
할멈은 크게 숨을 들이 쉬며 몸을 뒤로 기울이더니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나중에 할멈에게 물어보니 그 끄응은 '잘 좀 살지, 썩을 년' 이라는 뜻이었단다. 할멈은 맥도날드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쳤다.
- 꼴 좋구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고 엄마는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거의 벌어지지 않는 입술 사일로 지난 몇 년간 자신의 인생에 불어닥친 풍파를 털어 놓았다. 내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훌쩍이는 울음에 간간이 섞인 코 푸는 소리로만 들렸지만 용케도 할멈은 엄마의 말을 모두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빗장 잠그듯 팔짱을 끼었던 팔은 어느새 풀려 무릎 위에 얹혀 있었고 얼굴에 흐르던 윤기는 말라 버렸다. 나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할멈의 표정은 엄마와 비슷해 보이기 까지 했다. 엄마의 얘기가 다 끝난 뒤에도 할멈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갑자기 표정을 바꾸었다.
- 네 엄마 말이 사실이라면, 넌 괴물이다.
엄마가 입을 쩍 벌리고 할멈을 바라봤다. 할멈은 내 눈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며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고 눈꼬리는 아래로 축 처져서 입과 눈이 만날 것 같은 미소였다.
-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괴물, 그게 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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