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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손원평 작 (19)

호수 | 2021.10.01 19:54:09 댓글: 0 조회: 100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09920


58.
도라와 가까워 질수록 이상하게 곤이 녀석에게 비밀이 생기는 것 같았다. 우연인지 두 사람이 같은 시간에 방문한 적도 없다. 곤이는 뭘 하느라 바쁜지 전보다 발길이 부쩍 뜸해졌다. 그런 와중에도 찾아올 때면 매번 코를 킁킁댔다.
- 수상한 냄새가 난다. 너.
- 무슨 냄새?
- 알수없는 냄새.
그러면서 쏘아본다.
- 나한테 감추는거 있냐.
- 글쎄
곤이 녀석이 더 캐물었다면 나는 도라에 대해서 얘기했을거다. 하지만 곤이는 웬일인지. 그러면 됐다며 그만두었다.
그즈음 곤이는 다른 학교 애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거칠기로 유명한 애들이었는데 곤이의 소년원 동기나 선배 몇몇도 그 안에 있었다. 그중에서 찐빵이라는 애가 유명했다. 나도 하굣길에 곤이와 얘기하는 찐빵을 본 적이 있다. 찐빵은 별명과 달리 대나무를 연상시켰다. 키는 대나무처럼 컸고 몸은 꼬챙이처럼 마른 데다 팔과 다리도 가시처럼 앙상했다. 그런데 그 가지 끝에 달린 손과 발이 찐빵처럼 두툼했다. 마치 나뭇가리로 만든 인형의 사지에 밀가루 반죽을 크게 뭉쳐 붙여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찐빵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딴 데 있었다. 그 커다란 주먹과 발로 맘에 안드는 사람의 얼굴을 찐빵같이 만들어 놓는다고 했다.
- 걔네랑 놀면 재밌어. 말도 통하고. 왠지 알아? 최소한 나한테 꼬리표를 붙이고 넌 이런 애니까 이렇게 해야한다는 말 같은건 안 하니까.
곤이는 찐빵 무리한테 들은 얘기들을 재미나다며 내게 전해 주었지만 내 귀에는 전혀 재미 있거나 즐거운 얘기로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곤이 녀석은 혼자 요란하게 웃어대며 잡담을 늘어놨다. 묵묵히 들어 주는 것. 내가 할수 있는건 그것뿐이었다.
학교에서는 곤이를 주시했다. 여전히 학부모들에게서 전화가 자주 걸려왔고 한 번만 더 빌미가 잡히면 곤이는 또 다시 전학을 거야 할지도 몰랐다. 곤이는 문제를 일으키는 대신 수업 내내 엎드려 잠만 잤지만, 그애에 대한 평가는 점점 나빠졌다. 아이들이 곤이를 욕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다.
- 차라리 말이야. 내가 더 나쁜 짓을 저질러 버릴가? 어쩌면 다들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곤이가 말했다. 그땐 그냥 곤이가 하는 많은 말들 중 하나인 줄 알았다. 하지만 괜한 말이 아니었다. 2학기 중반이 되면서 곤이는 달라졌다. 자기 자신을 나락으로 빠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듯했다. 연초에 그랬던 것처럼 눈이 마주치는 아이라면 무조건 욕을 쏟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는 다리를 꼰 채 삐딱하게 앉거나 대놓고 딴짓을 했다. 선생님이 지적하면 치켜뜬 눈으로 응대하며 어쩔 수 없어서라는 듯 건성으로 자세를 고쳤고 결국 선생님들도 평화로운 수업을 위해 더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곤이의 그런 행동들을 볼 때마다 도라의 머리카락이 내게 닿았을 때처럼 문득 가슴에 돌덜이가 앉곤 했다. 그때보다 더 무겁고 정체를 알 수없는 돌덩이가.

59.
11 월 초. 비가 한차례 오고 계절은 완전히 늦가을로 들어섰다. 책방 정리가 거의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팔 만한 책은 모두 팔았고 남은 건 폐기하면 된다. 머잖아 이곳을 떠난다. 새로 지낼 고시원도 알아봤고 이사 전까지 얼마간은 심 박사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텅 빈 서가를 바라보니 무언가가 일단락되는것 같았다.
불을 끄고 책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내겐 풍경처럼 익숙한 냄새였다. 그런데 거기 무언가 다른 게 실려 있었다. 갑자기 마음속에 탁, 하고 작은 불씨가 커졌다. 행간을 알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을 알고 깊은 얘기를 나누고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누군가가 가게로 들어왔다. 도라였다.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말하고 싶었다. 마음에 떠오르는 불씨가 꺼지기 전에.
- 나 언젠간 글을 쓸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도라의 눈망울이 뺨을 간질였다.
- 나도 이해 못하는 나를, 남들에게 이해시킥 수 있을까.
- 이해.
도라가 작게 말하며 몸을 틀었다. 갑자기 그 애는 내 턱밑에 있었다.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고 그러자 심장이 고동쳤다.
너, 심장이 빨리 뛴다.
도라가 속삭인다. 도톰한 입술에서 나온 음절들이 하나씩 턱 긑에 닿아 간지러웠다. 나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 애가 뱉어 낸 호흡이 내 몸 안으로 빨려들어왔다.
- 너 지금 왜 심박 수가 높아진 건지 알아?
- 아니
- 내가 너한테 가까이 다가가니까 심장이 기뻐서 박수치는거야.
- 아.
눈이 마주쳤다. 둘 다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도라는 눈을 뜬채 천천히 얼굴을 내밀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입술이 포개졌다. 쿠션이 닿는 것 같았다. 보드랍고 촉촉한 입이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그 상태로 우리는 세 번 숨을 쉬었다.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가고, 올라갔다 내려가고, 다시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내린다.입술이 떨어지고 이마가 붙었다.
- 나 방금 네가 어떤 앤지 조금 이해하게 됐어.
그 애가 바닥을 본 채로 말했다. 나도 바닥을 보고 있다. 도라의 운동화 끈이 풀려 있다. 그 끝이 내 신발 밑을 들어가 있다.
- 넌 착해. 그리고 평범해. 근데 특별해. 그게 내가 널 이해하는 방식이야.
도라가 고갤들었다. 볼이 빨갛다.
- 이 정도면.
도라가 중얼거렸다.
- 이제 나도 네 얘기에 등장할 자격이 생긴건가.
- 어쩌면.
- 시원찮은 대답이네.
도라가 웃었다. 그러곤 폴짝폴짝 뛰어 문 밖으로 사라졌다.
무릎에 힘이 풀려 천천히 주저 앉았다. 생각이 사라진 머리에 맥이 뛰었다. 몸 전체가 북이 된 것처럼 울렸다. 그만해. 그만. 그렇게까지 안 해도 살아 있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타이르고 싶었다. 고개를 몇 차례 흔들었다. 살아가면 갈수록 모를 일이 너무 많았다. 그때였다. 이상한 기운에 고개를 들었다. 창문 밖에 곤이가 서있었다. 몇 초간 곤이와 나는 쳐다보고만 있었다. 곤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실렸다. 그 애가 몸을 돌려 천천히 시야에서 멀어졌다.

60.
수학여행 행선지는 제주도였다. 가기 싫어한 애들도 있었지만 단순히 가기 싫다는 것많으로는 불참 사유가 되지 못했다. 전교에서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건 나를 포함해 세명뿐이었다. 둘은 경시대회 출전 때문에 , 나는 엄마를 혼자 둘 수 없었기 때문에 받아들여 졌다.
조용한 학교에 나가 종일 책을 읽었다. 기간데 과학 선생님이 형식적으로 출석 체크를 했다. 그렇게 사흘이 흘렀고 아이들이 돌아왔다. 어쩐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여행의 마지막 날 일이 벌어졌다. 돌아오기 전날 밤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간식을 사려고 따로 걷어 둔 회비가 몽땅 사라졌다. 소지품 검사가 있었고 회비 봉투는 곤이의 가방에서 발견됐다. 반 밖에 남지 않은 액수였다. 곤이는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했다. 사실 그 애에겐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날 밤 곤이는 숙소를 몰래 빠져나가 제주 시내를 활보하다 아침에야 돌아왔으니까. 피시방 주인도 증인이었다. 곤이는 피시방에서 캔 맥주를 홀짝이며 밤이 새도록 혼자서 게임을 했다.
그런데도 여하튼 다들 곤이가 한 거라고 입을 모았다. 누구를 시켜서 훔쳤건 다 같이 미리 짰건, 곤이의 짓이었다. 모두 그렇게 얘기했다.
그러건 말건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곤이는 엎어져 잠만 잤다. 오후가 되자 윤 교수가 학교로 왔다. 돈을 갚았단다. 아이들은 종일 휴대폰에 코를 박고 서로 메세지를 보냈다. 카카오톡 알림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무슨 말들을 하는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61.
며칠 뒤 4교시 국어 시간에 사건이 터졌다. 잠에서 깬 곤이가 부스스 일어나 교실 맨 뒤로 갔다. 선생님은 곤이를 무시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갑자기 짝짝 껌 씹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곤이였다.
- 뱉어라.
정년을 코앞에 둔 국어 선생님이었다. 곤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적 속에 껌 씹는 소리만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 뱉든지. 아니면 나가.
말이 끝나기 도 전에 퉤, 소리가 났다. 껌이 포물선을 그리며 누군가의 발치에 떨어졌다. 선생님이 책을 탁, 소리나게 덮었다.
- 따라와.
- 싫은데요.
곤이는 벽에 등을 기대며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렸다.
- 그래 봤자 당신이 나한테 할 수 있는게 뭔데. 고작해야 교무실로 불러서 협박하거나 아빠라는 새끼한테 전화를 걸어서 학교로 찾아오게 하는게 전부 아니야? 때리고 싶으면 때려,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참지 마시라고요. 왜 다들 이렇게 솔직하지가 못하냐고, 씨발.

국어 선생님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몇십 년간의 교사생활에서 터득한 기술인 듯 그는 미동도 않고 곤이를 몇 초간 응시하더니 그대로 교실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남아 있는 아이들 사이에 파란이 일었다. 각자 고개를 숙인 채 앞에놓은 책만 바라보는, 소리 없는 파란이었다.
- 돈 벌고 싶은 새끼 있음 나와 봐.
곤이가 실실 웃음을 흘리며 모두에게 말했다.
- 몇 대 맞고 돈 벌고 싶은 새끼 없어? 아 뭐 , 등급에 따라 값은 달라진다. 죽탱이 한 방에 기본 10, 피 나면 50 추가 뼈 부러지면 200. 나올 새끼 없냐고.
교실 안은 곤이의 숨소리로 가득했다.
- 매점 갈 돈 몇푼에 벌벌 기는 새끼들이 왜 다들 점잔 빼고 앉았냐?어? 그렇게 용기들이 업어 갖고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이 병신 머저리 개씹새까들아.
온 힘을 다 실은 마지막 말이 복도 끝까지 울려 퍼졌다. 곤이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의미를 모를 웃음을 머금은 입이 빠르게 실룩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 그만해.
내가 말했다. 곤이의 눈이 쨍, 하고 빛났다.
- 그만하라고?
곤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만두고 뭐 할까? 죄송하닥 허리 굽히면서 반성문 쓸까? 네발로 기면서 제발 용서해 달라고 빌기라도 해? 어디 네가 한번 얘기해 줄래, 내가, 뭘, 할수 있겠냐고, 이 병신 새끼야.
나는 답할 수가 없었다. 곤이가 눈에 보이는 대로 물건들을 집어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여자아이들의 꺄악, 하는 소리와 남자아이들의 어어어, 하는 소리가 음역대를 나눈 합창처럼 귀를 찔렀다. 그토록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렇게 까지 만들어 버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교실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책상이며 의자들이 바닥을 향해 고꾸라졌고 벽에 붙은 액자와 시간표가 기울었다. 교실을 통째로 붙잡고 한바탕 흔들어 놓은 것 같았다. 아이들은 꼼짝도 못 한 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벽에 찰싹 붙었다. 그때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중얼거림이 었는데도 고함처럼 귀에 꽂히는 소리였다.
- 쓰레기 ... ...
곤이는 소리가 나는 쪽을 고개를 돌렸다. 거기 서 있는 건 도라였다.
- 꺼져, 여기서 굴러다니지 말고 너한테 어울리는 데로 꺼지라고.
도라의 얼굴에는 글쎄 ...... 나로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표정이 걸려 있었다. 눈, 코, 입이 다 제각각이었다. 눈은 위로 뻗쳐 있는 것처럼 콧구망이 살짝 넓어져 있었다. 그리고 입은 웃고 있는 것처럼 한쪽 꼬리가 말려 올라가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교실 문이 열리고 담임이 뛰어 들어왔다. 다른 선생님들도 함께였다. 하지만 그들이 뭔가를 하기 전, 곤이는 휙 뒷문으로 사라졌다. 누구도 곤이를 부르거나 붙잡지 않았다. 나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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