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소봉전기(3)-古龙

핸디맨남자 | 2021.10.28 09:11:07 댓글: 1 조회: 540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18280

1. 네 조각 눈썹을 가진 사나이

해질 무렵 황혼이 물들고 어둑어둑해졌다.

이때가 용상 여관이 가장 바쁜 시간이고, 아래층 식당에는 탁자마다 손님으로 가득 차 있을 때이다. 뛰어 올라오는 점원, 소북경(小北京)은 바빠서 땀을 흘리고 있었고,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위층에는 스물네 칸의 방이 있는데, 모두가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칼을 지닌 강호의 호걸들이었다. 누구도 평상시에는 쓸쓸하기만 한 이곳이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번잡해지기 시작했는지 몰랐다.

느닷없이 촉급한 말발굽 소리가 나더니, 말 두 필이 문 밖에서 뛰어 들어왔다.

실내는 말울음 소리로 잠시 소란해졌으나, 말에 타고 있던 두 명의 푸른 옷을 입은 사나이들은 꿈쩍도 않고 안장에 앉아 있었다.

한 필의 말에는 한 쌍의 번쩍이는 은 갈고리가 안장 옆에 걸려 있었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붉은 얼굴에 수염이 잔뜩 나 있었다. 눈동자는 은으로 만든 염주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더니 소북경의 얼굴에 시선을 못 박고 천천히 말했다.

"그 녀석은?"

"아직도 천자호(天字號) 방에 있습니다."

붉은 얼굴에 곱슬곱슬한 수염이 있는 사나이가 물었다.

"아홉 낭자들은 어디에 있지?"

"위에서 그와 대결하고 있습니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삐를 움켜잡았다. 말은 화살처럼 빨리 위층으로 올라갔다.

다른 한 필의 말에 탄 사람의 동작도 빨랐다. 이 사람의 왼쪽 귀는 반쪽이 없었다. 얼굴에는 왼쪽 귀에서 오른쪽 입 있는 곳까지 칼자국이 그어져있어, 그의 검푸른 얼굴을 더 징그럽고 무섭게 보이게 했다.

말이 위층에 도착하자, 사나이는 안장을 박차고 높이 솟았다가 공중에서두 바퀴를 돌고는 쿵, 하고 계단 옆 천자호 방의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그의 손에는 여러 번 단련되어 완성된 판관필이 들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방안에는 단지 한 사람의 여인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눈처럼 하얀 피부에 풍만한 가슴, 곧게 뻗은 다리에 옷이라곤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여자였다.

어떤 남자라도 한 번 보기만 하면 같이 지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대들보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얌전히 앉아 있었고, 표정은 뜨겁게 달구어진 함석판 위에서 발바닥을 동동 구르며 다급해 하는 고양이 같았다. 그녀는 입이 막혀 있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손에 들고 있던 채찍을 휘둘러 그녀의 입을 막고 있던 홍자색의 수건을 벗겨내었다.

칼자국이 있는 사나이가 물었다.

"그 녀석은?"

그 여인은 여러 차례 숨을 돌리고 나서야 대답했다.

"갔어요. 그는 이미 내가 구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칼자국의 사나이는 급히 다시 물었다.

"어디로 갔지?"

"말발굽 소리를 들어 보니 북쪽의 황석진(黃石鎭)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요."

그녀는 다시 급히 말했다.

"당신들이 먼저 나를 내려가게 해주고, 나와 같이 쫓아가도록 해요."

칼자국의 사나이는 쌀쌀하게 말했다.

"너를 도울 사람은 없다. 네 스스로 내려올 수밖에."

이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아 다들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여인은 다급하게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내려갈 수 없어요. 그 나쁜 녀석이 다리의 혈도를 짚었어요."

그러나 두 사나이는 들은 척도 않고 창 밖으로 나갔다. 아래쪽에는 벌써 사람들이 다른 두 필의 말을 준비하고 고삐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말에 올라탔고, 두 필의 말은 즉시 화살처럼 북쪽으로 달려갔다.

여인은 이 말발굽 소리를 듣고는 화가 나서 입술까지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발버둥을 치며 한스럽게 외쳤다.

"후레자식들, 나쁜 놈들!"

문이 열리며 소북경이 걸어 들어와 그녀의 알몸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 여인은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물론이지."

소북경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리고는 문이 닫혔다.

황석진은 제법 큰 고을로 거리는 번화하고 시끄러운 곳이다.

지금은 밤이 깊어 갈고리 같은 초승달만이 잘 포장된 길 위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두 마리의 발 빠른 말이 도착했을 때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칼자국이 난 사나이는 고삐를 당겨 말을 세웠다.

"그가 여기서 하룻밤을 새울까?"

"그럴 거야."

칼자국의 사나이는 다시 물었다.

"그가 머문다면 어디서 묵을까?"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훅 내뱉었다.

"영춘각(迎春閣)이다."

영춘각은 이 고장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가장 많은 곳이다. 그가 잠을 잘 때는 꼭 여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알고 있었다.

영춘각의 대문엔 빨간 등불이 걸려 있어 지나가는 사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사내들은 여기에 와서 황홀한 밤을 즐기곤 했다.

문은 반쯤 닫혀 있었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채찍을 쥐고는 소리치며 말을 타고 들어갔다. 깡마르고 얼굴이 누렇게 뜬 사나이가 마당가 등나무아래에 앉아 졸고 있었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손에 쥐고 있던 채찍으로 그의 목을 감고 무섭게 말했다.

"오늘 저녁 이곳에 큰 체구에 붉은 옷을 입은 청년이 오지 않았느냐?"

그는 채찍에 감겨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가 그를 풀어주며 물었다.

"아직 있느냐?"

그는 가쁜 숨을 내 몰아쉬고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있느냐?"

"방금 전까지도 도화청(桃花廳)에서 네 명의 사내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네 명이 서로 권하여 이미 취했을 거예요!"

칼자국의 사나이가 놀라며 물었다.

"네 명은 어떤 사람들이지?"

"매우 흉악해 보이는데, 그에게는 예의바르고 친절해요!"

"일행인가?"

"그들은 그를 방으로 보냈을 거예요."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말머리를 돌려 왼편의 복숭아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있는 도화청(桃花廳)이 환했다.

도화청의 탁자에는 술잔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세 개의 술항아리가 모두 비어 있었다.

칼자국의 사나이는 몸을 날려, 한 발로 뒷문을 차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안에는 네 사람만이 있는데, 네 사람은 나란히 문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모두가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칼자국이 난 사내를 보자 그들의 안색이 빨개졌다.

네 사람은 화려한 옷을 입고 있어, 평소에는 기풍이 있는 사람들 같이 보였지만, 지금 네 사람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첫 번째 사람의 얼굴에는 거북이가 그려져 있고, 얼굴에는 <나는 거북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두 번째 사람의 머리에는 자라가 그려져 있고 <나는 자라>, 세 번째 사람은 <나는 돼지>, 네 번째 사람은 <나는 똥개>라고 얼굴에 적혀 있었다.

칼자국의 사나이는 문 앞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그려진 그림과 글자들을 보자 그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평생 동안 이렇게 우스운 일은 보지 못한 듯이 허리를 잡고 웃었다.

네 사람은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 서려 있었다. 뛰어가서 그를 죽이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네 사람은 모두 다 똑바로 꿇어앉아 있어 뛰지도 못할 뿐 아니라, 꼼짝도 못했다.

칼자국의 사나이는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위풍당당한 강동사걸(江東四傑)이 언제 거북이, 자라, 돼지, 똥개로 변하셨나? 이거 정말 이상한 일이야."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여기 와서 명성 높은 강동사걸의 위풍을 보시오. 누구라도 와서 보면, 내가 은 아홉 냥을 주겠소."

꿇어앉아 있는 네 사람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칼자국의 사나이가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정말로 개자식인가 봐요."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다시 외쳤다.

"여러분!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정말 억울할 겁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어떤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많아야 열다섯 살 가량의 소녀였다. 머리를 보석으로 장식하고 얼굴은 연지와 분으로 화장을 하였지만 아직은 어린애 티를 감출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레 물었다.

"두 분은 육 도련님을 찾아오신 거죠?"

칼자국의 사나이가 놀라며 물었다.

"네가 어찌 그걸 알지?"

소녀는 우물쭈물 거리며 말했다.

"방금 육 도련님이 술을 많이 마시고 있었는데, 나도 그 옆에 앉아 억지로 두 잔이나 마셨는 걸요!"

칼자국의 사나이는 싸늘하게 웃었다.

"그가 여자들 틈에 나자빠져 있는 게 틀림없군!"

소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당신들에게 팔라고 하면서 그가 나에게 뭔가를 주었어요."

붉은 얼굴의사나이는 다급히 물었다.

"그가 네게 준 것이 뭐지?"

"그것은..... 말 한마디예요."

"말 한마디? 무슨 말?"

"그는 이 말 한마디에 적어도 은 삼백 냥은 받으라고 했어요. 한 푼도 깎지 말고요. 그리고 또 그가 말하길, 두 분께 먼저 돈을 받고 나서 말하라고 했어요."

그녀는 자기가 느끼기에도 황당한지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가 망설이지도 않고 즉시 백 냥짜리 은표(銀票)를 석장 꺼내더니 소녀 앞에 있는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좋아, 내가 너의 말 한마디를 사겠다."

소녀는 눈이 커지면서 석 장의 은표를 보았다. 말 한마디를 정말로 은 삼백 냥에 사다니 세상에 이렇게 황당한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리 와서 내 귀에다 대고 조그맣게 얘기하렴, 저기 있는 짐승들이 듣지 못하게 말이다."

소녀가 머뭇거리며 다가와서는 그의 귀에다 대고 조그맣게 말했다.

"그가 한 말은 이거예요. 나를 찾으려거든, 먼저 주인마누라를 찾아라."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세상에 주인마누라는 수도 없이 많은데, 그리고 가게마다 모두 주인마누라가 있는데, 어떻게 그를 찾으라는 것인가?

"만약 당신이 말뜻을 이해 못하면, 한마디를 더 해주라고, 그가 말했어요. 그 주인마누라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대요."

소녀는 난감해 하는 사나이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더 묻지 않고, 그의 동료에게 손짓을 하고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칼자국의 사나이도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빈 술항아리를 번쩍 들어 던졌다. 그 빈 술 항아리는 공교롭게도 두 번째 사람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이거 정말로 틀림없는 자라인가 보군."

세상에 예쁜 주인마누라는 아주 많다. 가장 예쁜 사람은 누구일까? 칼자국의 사나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가 가게를 한 집, 한 집 돌아다니며 그 녀석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까? 가게의 주인마누라를 모두 나오게 해서 하나하나 살펴보면서요?"

붉은 얼굴의 사나이가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요?"

"그가 한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뜻이었는데요?"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웃으며 말했다.

"넌 주정(朱停)의 별명이 무엇인지 잊어버렸어?"

"알겠어요."

주정은 장사도 하지 않고, 가게도 열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어떤 장사를 하든지 적자를 볼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는, 그런 모험은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장사를 하지 않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에게는 장사할 만한 밑천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별명은 '주인'이다.

주정은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모든 일을 편안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매일매일 살이 찌고 있는 것이다.

뚱뚱한 사람은 원래 복이 많다. 복 많은 사람이 장사를 해야 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인이라고 불렀다. 정말로 그는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자신의 모습은 보잘것없지만 부인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는 가장 편안한 방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좋은 술을 마셨다.

그가 또 한 가지 거만하게 생각하는 일은 그가 육소봉보다 게으르다는 것이다.

그는 크고 넓은 의자에 앉아서 모든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일이든지 천천히 생각한다.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세상에서 어떤 일이라도 못할 것이 없다.

지금까지 그는 매우 편안하게 살아왔는데, 모두가 그의 뛰어난 능력 때문이었다. 아무리 많고, 희한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얻으려고만 하면 그는 충분히 얻을 수가 있다.

한 번은 그가 다른 사람과 도박을 했는데, 그가 이겨서 탁자 50개 위에 차린 제비집 요리와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얻어먹었고, 게다가 50년이 된 좋은 술까지 얻을 수가 있었다.

이것들은 그의 몸에 적어도 다섯 근 정도의 살을 더 찌게 하였다. 지금 그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하늘로 데려갈 수 있는 연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 중이었다.

전에는 땅 아래를 보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하늘로 올라가고 싶어 했다.

그는 바깥에서 말발굽 소리를 듣고, 그 파란 옷의 두 사람을 보았다.

이번에는 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칼자국의 사나이가 발로 문을 차지는 않았다.

그는 단번에 들어와서는 눈을 부릅뜨곤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마누라는···?"

"주인마누라를 찾는다면, 맞은편에 있는 잡화점으로 가보시오. 주인마누라는 거기에 있으니."

"여기에도 있어 당신이 주인이니까, 당신의 마누라가 곧 주인마누라지"

"마누라가 <청의루(靑衣樓)> 사람이 자기를 찾아온 줄 알면,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할 거예요."

그는 이 두 사람을 알고 있었다.

청의루는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108개의 건물을 가지고 있는데, 각 층에는 108명의 사람이 있고 게다가 막강한 힘을 가진 조직이었다.

그들은 사람 수가 많을 뿐만이 아니라, 조직이 엄격해서 그들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성공하지 않는 일이 드물었다.

이 두 사람도 청의루의 제 1층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청의루 제 1층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누구도 그 108명을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미 강호에서 아주 설치고 다니는 사람들인 것이다.

칼자국의 사나이는 철면판관(鐵面判官)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이 그의 얼굴에 칼을 던졌는데, 칼날이 망가진 일이 있었다. 그 철면이라는 두 글자도 그래서 생겨났다.

다른 한 사람은 영혼을 빼는 손, 즉 구혼수(勾魂手)라고 불렸다. 그가 가진 한 쌍의 은갈고리가 많은 사람의 혼을 뺏은 것이다.

주정은 조용히 계속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마누라는 지금 중요한 일이 있어, 당신들을 만날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철면판관이 말하였다.

"어떤 중요한 일인가?"

"그녀는 지금 친구와 같이 술을 마시고 있어요. 친구와 술을 마시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겠어요?"

"당신의 그 친구 성이 혹시 육씨가 아닌가?"

"당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성이 육씨인 사람은 마누라의 친구이지 내 친구는 아닙니다."

"그들은 어디서 술을 마시고 있나요?"

"그 사람이 머물고 있는 청운 여관에서 마시고 있을 겁니다."

철면판관은 그를 아래위로 몇 차례 훑어보고는,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의 마누라가 호색한이라 소문난 다른 사람과 여관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당신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요?"

"애들이 오줌을 누려는 거랑, 마누라들이 서방질하려는 것은 누구도 막지 못하는 것입니다. 앉아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다락에 올라가서 공중제비 돌기라도 할까요, 아니면 땅바닥에 떼굴떼굴 구르기라도 할까요?"

"정말 호탕하시군요. 감탄했습니다."

그는 계속 웃었다. 웃지 않는 것보다 웃는 것이 더 괴롭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웃기 시작하자, 칼자국의 사나이는 허물어진 절의 흉악한 비밀을 본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주정은 그를 보며 물었다.

"당신은 마누라가 있습니까?"

"없소."

"당신이 만약 나처럼 예쁜 부인을 얻어 봐요. 당신도 호탕해질 거요."

육소봉은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가슴에는 술이 가득 찬 술잔을 놓아두고 있었다.

그가 가만히 누워 꼼짝도 않고 있자 술도 흐르지 않았다. 거의 죽은 사람 같았다. 눈도 감고 있었다. 그의 눈썹은 짙고 속눈썹도 길었다. 입가에는 팔자수염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주인마누라는 맞은편에 앉아, 그의 수염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큼지막한 눈, 정교하고 도톰한 입술은 잘 익은 수밀도(水蜜挑) 같아서, 누구라도 한입 깨물어 주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몸에서 가장 멋있는 부분은 그녀의 얼굴도 아니요, 그녀의 몸매도 아닌 다만 그녀의 우아한 자태이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이런 여인에게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오히려 육소봉의 이 두 갈래의 팔자수염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보고 있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이 팔자 수염은 정말로 눈썹과 똑같이 생겼어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네 조각의 눈썹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당연해요."

"당신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두 조각의 눈썹이 입가에 나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할 거에요."

육소봉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숨을 깊이 들이 쉬더니, 가슴 위의 술잔을 삼켜버렸다. 술잔 안에 가득 차 있던 술도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벌컥, 소리가 나더니 뱃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그가 다시 숨을 내뱉으니 술잔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주인마누라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술을 마시는 거예요, 아니면 요술을 부리는 거예요?"

육소봉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입을 열지도 않고, 손을 내밀어 배 위의 빈 술잔을 가리켰다.

주인 여자는 술을 따르고는 다시 물었다.

"당신은 나더러 술을 마시자고 해놓고는 왜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기만 하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아요?"

"당신을 감히 볼 수가 없습니다."

"왜요?"

"당신이 나를 유혹할까 두려워서요!"

주인 여자는 입술을 깨물고는 말했다.

"당신은 일부러 당신과 내가 떳떳하지 못한 사이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해놓고는, 오히려 내가 당신을 유혹할까 두렵다니 정말 무슨 까닭이에요?"

"당신의 남편 때문입니다."

"그 사람 때문이라구요? 당신은 그가 멍청하다는 걸 몰라요?"

육소봉은 여자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언제라도 사람을 시켜 그를 없앨 수도 있지만, 그는 너무 많은 사람을 알고 있고 너무 많은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주인 여자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주정은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너무 많은 비밀과 이상한 물건들을 얻어 왔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그의 입이 무거운 것을 믿고 있었지만, 죽은 사람의 입이 더 무겁지 않겠는가? 사람을 죽여 시체를 없애고 흔적을 없애는 일은 그런 사람들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육소봉이 말했다.

"그가 죽고 나면 당신은 그를 위해 일 년을 과부로 수절해야 하는데....."

주인 여자는 눈을 치켜뜨고는 쌀쌀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반금련(潘金蓮)인 것 같아요?"

"당신이 반금련이라 해도, 애석하게도 나는 서문경(西門慶)이 아니지 않소!"

주인 여자는 그를 노려보고는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리고 가버렸다. 육소봉은 그녀를 잡으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러나 주인 여자는 문을 나가자마자, 갑자기 되돌아와서는 침대 머리맡에 서서 두 손을 허리에 대고는 차갑게 말했다.

"정말 내가 당신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거예요? 도대체 나를 바보로 생각하는 거예요?"

"그럼 아니었소?"

주인 여자는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과 그가 틀어지고 나서, 그가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 일부러 나와 당신이 잘 지내고 있는 사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다니. 과부가 될 생각이 없으니 난 결백한 걸 밝히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한다면, 당연히 당신이 그를 보호하시겠지요?"

그녀는 더 화가 나서는 목소리도 더 커졌다.

"그러나 왜 당신은 내 입장은 생각지 않는 거예요? 내가 왜 그런 누명을 뒤집어 써야 하죠?"

"그가 당신의 남편이기 때문이지!"

주인 여자는 갑자기 말을 하지 못했다. 여자가 자기 남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불변의 진리가 아닌가.

육소봉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의 남편이 당신을 믿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은 그것에 상관할 바가 없어야 하오!"

주인 여자는 입술을 깨물고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당신은 정말 그가 나를 믿는다고 생각하나요?"

"그는 멍청하지 않소!"

주인 여자는 그를 노려보고는 말했다.

"그럼 그가 당신을 믿는다는 말이에요?"

육소봉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당신은 왜 그에게 가서 물어보지 않는 거요?"

그는 또 한숨을 쉬고는 가슴 위의 술을 마셔 버리고 중얼거렸다.

"청의루의 사람들이 그리 멍청하지 않으니, 지금쯤 여기 도착했을 거요. 당신은 빨리 가보시오!"

주인 여자의 눈에는 또다시 친절한 기색이 나타났다.

"그들은 당신을 찾아내서 어쩌려는 거죠?"

"그것은 내가 그들에게 물어볼 일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들이 찾아올 수 있게 하지 않지요!"

주정은 그의 큰 의자에 앉아서는 속으로 또 무슨 허튼 생각을 하는지 멍하니 있었다.

주인 여자가 즐거워하며 두 손가락으로 작은 손수건을 집어 들고는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 들어왔다.

그의 눈앞 두 발자국까지 왔는데도, 주정은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주인 여자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나 왔어요!"

"벌써 봤어!"

여자는 얼굴에 일부러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육소봉과 그의 방안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더니, 지금 머리가 어지러워요!"

"알고 있어!"

여자는 눈을 굴리며 말했다.

"우리들은 술만 마셨지, 다른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알고 있어!"

여자는 갑자기 소리를 꽥 질렀다.

"당신은 시시한 것만 알고 있어요!"

주정은 조용히 말했다.

"시시한 건 몰라!"

여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다른 남자랑 그의 방에서 반나절이나 술을 마셨는데도 당신은 조금도 질투를 하지 않네요. 이건 무슨 어리석은 생각이죠?"

"나는 어리석지 않기 때문에 질투하지 않는 것이오!"

여자가 손을 허리에 대고 쏘아붙였다.

"그가 그렇고 그런 남자이고, 난 이렇게 이런 여자예요. 작은 방에 같이 있었는데, 어떻게 정말로 거기서 술만 마시고 있었을까요?"

그녀는 쌀쌀맞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당신은 그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성인(聖人)인가요? 부처님인 줄 알아요?"

주정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가 나쁜 놈이라는 걸 알아. 그러나 나는 그를 믿어!"

여자는 더더욱 화가 치밀었다.

"당신이 질투하지 않는 것은 단지 그를 믿기 때문인가요? 나를 믿어 서가 아니라요?"

"당연히 당신도 믿어서이지!"

"그러나 당신은 그를 더 믿죠?"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는 걸 잊지 마!"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신들은 그렇게 오랜 친구이면서, 갑자기 원수처럼 지내는 거죠?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왜냐하면 그가 나쁜 놈이고, 나도 나쁜 놈이기 때문이지!"

여자는 그를 바라보면서 키득키득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당신들 두 나쁜 놈들이 하는 일을, 나는 하나도 모르겠어요. 갈수록 더 엉망이 돼가는 것 같아요."

"나쁜 놈들이 하는 일이니까, 당신은 당연히 이해 못하지, 당신은 나쁜 놈이 아니니까!"

"당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것이었군요!"

주정은 웃으며 천천히 말했다.

"당신은 아무리 해도 작은 나쁜 놈밖에는 안 돼. 아주 작은 나쁜 놈!"

육소봉은 여전히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있고, 그의 가슴에는 여전히 가득 찬 술잔이 놓여 있다.

이 잔은 여자가 가고 나서 그가 다시 채워놓은 것이다. 술을 따르기 위해 일어서지도 않았다.

이 침대는 아주 부드럽고 편안해서, 지금 그를 침대 아래로 내려오게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듯했다.

그의 외투는 침대 머리맡 옷걸이에 걸려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불문하고 어디서든 그는 항상 이 외투를 입는다. 이 외투를 보기만 하면 반드시 그가 주변에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철면판관과 구혼수는 창을 통해서 이 외투를 보았다.

그들은 창문을 통해 침대머리로 가서, 침대에 누운 육소봉을 바라보았다.

육소봉은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마치 숨도 쉬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철면판관이 날카롭게 물었다.

"당신이 육소봉인가?"

그러나 침대 위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구혼수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 사람 죽은 게 아닐까요?"

철면판관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이런 사람들은 오래 살기가 힘들지!"

육소봉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그들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내가 방금 방 안에서 사람 같은 걸 봤는데!"

철면판관이 큰소리로 말했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방 안으로 사람이 들어왔다면, 왜 내가 방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구혼수가 말했다.

"우리들이 문을 두드리지 않았기 때문이지."

육소봉은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을 한 번 바라보았다.

"당신들이 정말 사람이오?"

철면판관이 대답했다.

"사람이 아니면 귀신이냐?"

"믿을 수가 없군."

구혼수가 말했다.

"무엇을 믿지 못한다는 거지?"

"사람이라면, 방에 들어올 때 먼저 문을 두드려야 하는 법, 짐승들이나 창문으로 들어오는 것이오."

구혼수의 얼굴색이 변하면서, 갑자기 그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그는 관내(關內)에서 갈고리를 쓰는 4대 고수일 뿐만 아니라, 이 뱀가죽으로 만든 채찍에는 매우 깊은 내공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육소봉이 손가락 두 개를 사용하여 늙은 거지가 빈대를 잡듯이 가볍게 단번에 채찍을 잡았다.

이것은 화만루가 그에게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그가 화만루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구혼수의 표정은 최일동의 칼날이 붙잡혔을 때와 마찬가지로 붉어졌다.

하얘졌다, 파래졌다했다.

그가 힘을 다 써도 채찍을 육소봉의 손가락에서 빼낼 수가 없었다.

육소봉은 오히려 편안하게 누워 있었고, 가슴 위의 가득 찬 술잔에서는 한 방울의 술도 흘리지 않았다.

철면판관이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크게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오. 정말 대단한 무공이오. 육소봉의 명성이 거짓이 아니었군요."

구혼수도 갑자기 웃으며 손의 채찍을 놓고는 말했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당신이 정말 육소봉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한 것이었습니다!"

철면판관이 말했다.

"세상의 기풍이 날로 나빠지고, 사람들이 옛날 같지 않아, 강호에도 가짜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육형은 우리들의 실례를 괴이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면서 말을 했다. 육소봉은 이미 잠이 든 것 같았다.

구혼수는 웃음을 멈추고는 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말했다.

"육형은 이미 우리들이 누구인지 알고 계셨습니까?"

철면판관이 말했다.

"우리들은 이번에 명령을 받아서 왔습니다. 육형께서는 수고스럽겠지만 우리들과 같이 가시지요. 우리들은 당신을 모셔 가기만 할 뿐 아니라, 육형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드립니다."

육소봉은 마침내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우리들이 있는 곳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여기에나 있지요!"

"당신들이 이미 이 일을 알고 있다면, 당장 가서 당신네의 그 성이 위()인 사람에게 알리시오. 주정을 괴롭히면 내가 즉시 당신들의 108 청의루를 불태워 버리겠다고!"

철면판관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들이 주정을 죽이면, 당신이 더 좋지 않나요?"

"당신들은 듣지 못했나 보군요. 나는 원래 과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우리들과 같이 간다면, 나도 절대로 주인 여자를 과부로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드립니다."

그의 이 말이 다 끝나자,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이 언제 들어왔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는 손으로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손이 없었다.

석양이 창 밖에서 비쳐 들어와 문을 두드린 사람의 얼굴을 잘 볼 수가 있었다.

그 사람의 얼굴은 왼쪽이 반이나 없었다. 상처는 이미 쪼글쪼글해졌고, 그의 코와 눈은 모두 비뚤었다. 하나의 완전한 코가 아니라, 반쪽뿐이었고, 두개의 눈이 아니라, 하나의 눈이었다.

그의 오른쪽 눈도 이미 검고 깊은 구멍만 남아 있었고, 관자놀이에는 칼로 열십자가 그어져 있었다. 손 하나는 손목이 절단되어, 지금은 오른쪽 손목에 섬뜩한 빛이 나는 쇠갈고리가 끼워져 있었고, 왼쪽 손목에는 사람 머리보다 더 큰 쇠공이 끼워져 있었다.

철면판관과 그의 동료가 이 사람에 비하면 영준하고 말쑥한 미소년처럼 보였다.

지금 그는 문 안쪽에 서 있는데, 오른쪽 손목의 쇠공으로 문을 치고는 말했다.

"나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방에 들어 갈 때 반드시 문을 두드리지요!"

그가 이 말을 할 때 반쪽만 남은 얼굴은 계속 실룩거려서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사람을 보고 철면판관은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말로 그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지를 못했다. 구혼수는 두어 발자국 물러서서 엉겁결에 물었다.

"유여한(柳餘恨)?"

이 사람의 목에서는 녹슨 칼 같은 웃음소리가 났다.

"세상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정말 드문 일이야!"

철면판관도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이 정말 그 옥면낭군(玉面郎君) 유여한입니까?"

이런 얼굴을 한 사람이 정말 옥 같은 얼굴의 도령이었을까?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울하고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부터 정이 많으면 한이 많다고 했고,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더니... 옥면낭군은 이미 죽고 한 많은 유여한만 이렇게 살아 있다."

철면판관의 얼굴색이 변했다.

"당신..... 당신은 도대체 왜 여기에 왔습니까?"

그는 이 사람에게 아주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유여한은 의미심장한 어투로 말했다.

"십 년 전에 유여한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뜻밖에도 지금 이렇게 살아 있어 놀랐겠지. 나는 원래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이다. 당신들도 내가 죽었기를 바랐겠지?"

"우리가 왜 당신이 죽었으면 하고 바라겠습니까?"

"당신이 나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죽일 것이니까....."

철면판관은 멍하니 있었다. 구혼수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졌다.

이때, 그들은 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번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밖에 서 있었지만, 삽시간에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그의 앞에서는 얇은 종이처럼 변해 버렸다.

그는 부딪치지도 않고, 발로 차지도 않았다.

쉽게 앞으로 걸어 들어왔는데, 그의 앞에 있던 문이 부서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포악하게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점잖고 고상했으며, 글만 읽는 서생같이 하얗고 깨끗한 얼굴에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사람입니다. 문을 두드렸으니까요."

철면판관은 그의 웃고 있는 눈 속에서 칼날 같은 살기(殺氣)를 느낄 수가 있었다.

구혼수는 뒤로 물러서며 놀라 외쳤다.

"소추우(簫秋雨)!"

그 사람도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당신은 과연 견문이 넓고, 안목이 높으시군요."

철면판관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정말로 단장검객(斷腸劍客) 소추우라구요?"

"가을바람과 가을비는 근심으로 애가 타지요. 그래서 그때마다 사람을 죽이고 싶어집니다. 나는 언제나 이것이 걱정입니다!"

"무슨 걱정입니까?"

"지금 나는 걱정 중이라서 당신을 죽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유형이 당신을 죽이겠지요?"

철면판관은 갑자기 크게 웃었다. 그러나 웃음소리는 마치 울음소리와도 같았다.

구혼수는 매우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도망갈 길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또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무엇을 찾고 있어요? 혹시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이 은 갈고리가 아닙니까?" 또 한 사람은 창가에 서 있었다. 검고 여윈 얼굴이 자그마했는데, 얼굴에는 온통 털투성이였다. 손에는 구혼수의 은 갈고리를 들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을 대신해서 내가 은 갈고리를 가져왔다, 가져가라!"

가져가라는 말과 함께 이 은갈고리가 천천히 구혼수를 향해 날아왔다. 느려서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래에서 받쳐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철면판관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있었다.

"천리독행(千里獨行) 독고방(獨孤方)?"

독고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른 사람의 방에 들어가는 일이 드문데 이번은 예외입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문에 나타나서는, 부서진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리고는 또 갑자기 창가에 나타나서 안으로 들어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도 사람입니다. 문을 두드렸거든요."

문은 이미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문을 두드리곤 창을 통해 들어온 것이다.

구혼수는 그의 갈고리를 받고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도 우리들을 괴롭히려고 왔습니까?"

독고방이 대답했다.

"나는 짐승은 죽이지 않고, 사람들만 죽이지."

그는 아예 긴 의자를 옮겨 창가에 앉았다. 창밖은 어둠이 더 짙어졌다.

육소봉은 여전히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와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여한, 소추우, 독고방 --강호에서 이들 세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육소봉을 침대 아래로 내려오게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는 거의 이 침대에 눌러앉을 준비가 다 된 것 같았다.

유여한, 소추우, 독고방 이 세 사람은 강호에서 가장 괴팍하고, 가장 기이한 사람들이 아닌가. 지금 그들이 모두 여기에 모였다. 갑자기 여기에 나타난 것은 왜일까?

구혼수가 창백해진 얼굴에 냉소를 띠며 말했다.

"청의루와 세 사람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세 분은 왜 우리 형제를 찾아오셨소?"

소추우가 말했다.

"그저 즐거워서."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항상 누구든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오늘도 너희들을 죽이는 게 즐거워서 온 것이다!"

구혼수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만약 즐겁지 않다면?"

소추우가 말했다.

"내가 즐겁지 않을 때는 너희들이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하면, 나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기도 해!"

구혼수가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철면판관이 몸을 날렸다. 손에는 한 쌍의 검은 판관필을 들고 재빨리 유여한의 천돌(天突), 영춘(迎春) 두 곳의 혈도를 공격했다.

그가 사용한 기습 공격은 조용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하고도 신속해서 효과가 있었다.

유여한은 이 판관필을 전혀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오히려 한걸음 다가서니 뚝, 하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한 쌍의 판관필이 이미 그의 어깨와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러나 이때 그의 왼쪽 손목이 철면판관의 얼굴을 후려쳤다. 철면판관의 얼굴은 대뜸 뭉개져 버렸다. 그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넘어졌다.

유여한이 오른쪽 쇠갈고리로 그의 몸을 찍었다.

한 쌍의 판관필이 아직 유여한의 피와 살 속에 있었다. 그의 혈도까지는 가지 못하였지만 깊숙이 찔렸다.

유여한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차갑게 웃으며, 철면판관의 피범벅이 되어 엉망인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얼굴이 원래가 철판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군!"

쇠갈고리를 휘두르자, 철면판관은 진짜 판관(判官)을 만나러 창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때 구혼수의 은 갈고리도 창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구혼수의 두 팔뚝 관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소추우의 손에 쥐어진 한 자루의 단검에서도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구혼수를 바라보고 말했다.

"너의 양손을 보니 앞으로 다시는 어떠한 사람의 혼도 빼앗을 수가 없겠군!"

구혼수는 계속 딱딱, 소리를 내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갑자기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말했다.

"왜 나를 죽이지 않는 거냐?"

소추우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은 너를 죽이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지. 네가 돌아가서 너희들 두목에게 두 달 동안 몸조심하라고 전해라."

구혼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문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독고방이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나서 말했다.

"너는 원래 창문으로 들어왔으니 창문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

구혼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발을 돌렸다. 창문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이렇게 모두 창문으로 나갔다.

유여한은 몸에 박힌 판관필을 뽑아낼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창밖의 깊어가는 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추우가 다가가서 가볍게 판관필을 뽑아 주었다. 그는 가슴에서 흐르는 피를 바라보았고, 그의 냉혹한 눈 속에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유여한은 한숨을 길게 쉬고는 말했다.

"애석하다, 애석해."

소추우가 물었다.

"이번에도 죽지 못한 것이 아쉬운 건가?"

유여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 안에서 한 사람이 죽고 소동이 나서 엉망이 되었지만, 육소봉은 아무 것도 못 본 것처럼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방 안에서 살인이 벌어졌으나 육소봉은 본 척도 하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한 것은 이들 세 사람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방안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조용히 서 있을 뿐, 누구도 말을 하지 않고 누구도 가지도 않았다.

이때 솔솔 부는 바람 속에서 은은한 음악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너무 아름다워서 신선의 음악처럼 들렸다.

독고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셨다!"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 육소봉도 듣고 있었다.

이런 음악소리는 어느 누구도 듣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는 이 피비린내로 가득 찬 방이 향기로 가득 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향기는 더욱 짙어져서 바람을 타고 음악소리와 같이 실려 왔다. 마치 온 세상이 이 기묘한 향기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어두운 방안이 갑자기 밝아지기 시작했다.

육소봉은 마침내 눈을 뜨고는 방안 가득히 춤추고 있는 꽃을 보았다. 여러 종류의 꽃이 창밖으로부터 날아 들어와 가볍게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은 마치 꽃으로 짠 깔개가 문 밖에서부터 덮여 있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이 천천히 문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

육소봉은 많은 여인을 보았다. 추하게 생긴 여자도 있었고, 아주 예쁜 여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새까맣고 부드러운 비단 도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바닥에 끌려서 꽃 위에도 끌렸다.

그녀의 흑단 같은 머리털은 양 어깨에 놓여 있고, 얼굴색은 아주 창백했다. 얼굴에는 흑단 같은 눈동자가 아주 까맣게 빛나고 있었다. 다른 장식도 없었고, 다른 색깔도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조용히 꽃 위에 서 있으니, 바닥의 오색찬란한 꽃들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이미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속세를 벗어난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유여한, 소추우, 독고방은 이미 조용히 벽 구석으로 걸어가 있었는데, 매우 공손해 보였다.

육소봉은 거의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흑의소녀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두 눈동자는 봄날 이른 아침에 장미 꽃잎 위에 맺힌 맑은 이슬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 또한 해질 무렵 먼 산 위의 연못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미소가 더욱 신비스러웠다. 그것은 밤에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같이 연하고 길게 끌려서, 다른 사람을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소봉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그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파란 하늘의 한 점 하얀 구름이 갑자기 바람을 타고 인간 세상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육소봉은 다시 침대에 눕지 않고 일어났다.

그는 화살처럼 급하게 일어나, 침대 위의 천장을 뚫어 버렸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을 부수어 버렸다.

그가 낸 구멍을 통해서 달빛이 들어왔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눈이 매우 크고, 차림도 매우 얌전한 소녀가 검은 옷의 소녀 뒤에 서있었다. 육소봉이 귀신을 본 것처럼 급하게 도망을 가자, 소녀가 놀라 조용히 물었다.

"공주님이 그에게 이렇게 예를 갖추어 대했는데, 그는 왜 도망을 갔을까요? 그는 뭐가 무서운 거죠?"

흑의 소녀는 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흐르는 구름 같은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일어났다.

또렷한 눈동자 속에는 이상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조용히 말했다.

"그는 확실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야, 아주 영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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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이다 (♡.50.♡.207) - 2021/11/02 18:4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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