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소봉전기(7)-古龙

핸디맨남자 | 2021.11.03 13:10:22 댓글: 1 조회: 548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20415

5. 사랑의 비가(悲歌)

만매산장에는 매화가 없었다.

지금은 음력 삼월이라 복숭아꽃과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었다. 온 산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들을 앞에 두고 화만루는 여기를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평화가 깃든 그의 얼굴에 갑자기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이 나타났는데,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녀가 연인을 만난 것 같았다.

육소봉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흥을 깨고 싶지는 않지만, 날이 어두워지면 서문취설은 손님을 만나지 않아."

화만루가 말을 했다.

"자네도 만나지 않으려 할까?"

"황제의 할아버지가 와도 만나지 않을 걸세."

"만약 그가 없으면?"

"그는 반드시 있어. 매년 그는 많아야 네 번, 사람을 죽일 일이 있을 때 만나가거든."

"그래서 그는 매년 많아야 네 명을 죽이는 건가."

"그러나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모두 다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야."

"누가 죽어 마땅한 사람인가? 누가 그들이 죽어 마땅하다고 결정을 했지?"

화만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네 혼자 그를 찾으러 가게, 나는 정말 여기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기를 원한다네."

육소봉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 사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만루가 화를 내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가 한 번 결정한 일은 누구라도 그의 뜻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는 온 산 가득한 꽃을 마주하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자네가 그를 만나면, 먼저 내 방법을 시험해 보고 나서 자네의 방법을 시험해 보게."

방 안에는 꽃이 보이지 않았지만 꽃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 은은하고 조용한 것이 꼭 서문취설 같았다.

육소봉은 푸른 등나무로 만든 부드러운 의자에 앉아서 그를 보고 있었다.

잔에 있는 술은 연한 백옥 색이었고, 그의 몸에 있는 것은 눈처럼 하얀, 가볍고 부드러운 옷이었다.

봄바람보다 부드러운 세피리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는데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멀리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다만 피리를 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육소봉이 말했다.

"당신은 살아오면서 진실로 걱정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서문취설이 대답했다.

"아뇨."

"당신은 지금 현재의 생활에 만족합니까?"

"내가 바라는 것이 그리 높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대로 만족하며 삽니다."

"그럼 지금까지 당신은 자신의 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 적도 없나요?"

"지금까지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당신을 찾아와서 부탁을 해도, 당신은 응낙하지 않을 건가요?"

"그럴 것입니다."

"누가 당신에게 부탁을 하든, 부탁하는 것이 어떤 일이든, 당신은 응낙하지 않을 건가요?"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와서 부탁을 해도 소용이 없고, 누구라도 그럴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당신의 집에 불을 지르려고 한다면요?"

"누가 내 집에 불을 지를 수가 있나요?"

"접니다."

서문취설은 웃었다. 그는 웃음이 적은 사람이고, 그래서 그의 웃음은 비웃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여기에 온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서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거절한다면, 나는 당신 집에 불을 질러서 깨끗하게 태워 버리려고 생각했습니다."

서문취설은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고는 느릿느릿 말했다.

"나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 기껏해야 두세 명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생 나의 친구입니다."

"그래서 나도 당신에게 부탁을 하러 온 것입니다."

"당신이 언제 내 집을 불태우든 상관이 없고, 어디서 시작을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육소봉은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멍하니 있었다. 이 사람이 말한 것은, 쏘아버린 화살과 같아서 지금까지 번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쪽에 있는 골방에는 송진과 기름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거기에서 태우기 시작하는 것이 좋겠고, 이런 불꽃은 저녁에 가장 보기가 좋으니 저녁때 태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갑자기 육소봉이 말했다.

"당신은 대통, 대지,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서문취설은 쌀쌀맞게 대답했다.

"이 세상에서 그들이 대답해 내지 못한 문제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정말로 그들이 모든 일을 다 알던가요?"

"당신은 못 믿어요?"

"당신은 믿어요?"

"내가 그들에게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당신을 감동시킬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었는데, 그들이 아무 방법도 없다고 말했을 때 나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아하니 그들이 정말 당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서문취설은 갑자기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그들도 틀렸군요."

"뭐라구요?"

"당신이 나를 감동시킬 방법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어떤 방법이 있나요?"

서문취설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의 수염을 깨끗이 깎기만 한다면,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당신과 같이 갈 것입니다."

친구들이 나중에 육소봉을 보면, 아마 그를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 네 조각의 눈썹을 가진 사람이, 지금은 두 개의 눈썹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수염이 났던 자리는 갓난애처럼 매끄럽게 변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화만루는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당연히 육소봉과 함께 온 서문취설을 볼 수는 없었지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문 장주(莊主)이십니까?"

"화만루?"

화만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님이라 당대 최고 검객의 풍채를 볼 수 없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서문취설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갑자기 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볼 수 없습니까?"

"장주는 '화만루는 눈이 있지만 박쥐처럼 장님이다' 라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셨나요?"

"당신은 어떻게 나의 발자국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그도 독고방과 마찬가지로, 이 말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의 경공술과 검법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도 경공이 대단하였다.

화만루가 말했다.

"제가 일기로는 네다섯 명이 움직일 때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다고 하는데, 장주가 바로 그중의 한 사람이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화만루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장주의 몸에 있는 살기(殺氣) 때문입니다!"

"살기라고요?"

"날카로운 칼을 빼내 들면 반드시 검기가 있습니다. 장주는 평생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까! 어떻게 살기가 없을 수 있습니까?"

"당신이 들어오시지 않은 것은 나의 이런 살기를 참을 수 없어서였군요!"

"여기는인적이 드물어 꽃들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장주께서 더 많이 느끼시려고만 한다면, 이 살기는 점차로 없어질 것입니다."

"꽃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어찌 사람을 죽일 때의 핏자국만 하겠습니까?"

"뭐라구요?"

서문취설은 눈에 갑자기 이상한 빛을 나타내며 말을 했다.

"세상에는 죽이지 못한 신의를 저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들의 목에 칼을 찌르고 나서 당신의 칼에 터지는 핏자국을 보면, 당신은 잠시 동안 휘황찬란한 광경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뒤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꽃밭에서 사라지고 있는 한 폭의 얇고 가벼운 하얀 능라사와도 같은 저녁 안개가 가득하였고, 그는 그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화만루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야 나는 그가 어떻게 그런 검법을 익혔는지 알 수가 있겠어."

"뭐라구?"

"그는 정말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신성하고 아름다운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야. 그는 이미 자기의 목숨을 이런 일에 바치려고 하고, 사람을 죽일 때만이 그는 살아 있는 것이고, 다른 때 그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에 불과한 거야."

육소봉은 잠시 생각을 하고는 말했다.

"다행히 그가 죽이는 사람은 모두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야."

화만루는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끝없는 어둠이 이미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막 뜬 별들이 드문드문 있고, 미인의 눈썹 같은 하현달이 멀리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바람 속에는 꽃향기가 실려 있고, 밤은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화만루는 이미 신비롭고 아름다운 꿈속에 들어간 것처럼 천천히 산비탈을 걸었다.

육소봉이 물었다.

"자네는 왜 나에게 일이 잘되었는지 아닌지를 묻지 않는 거지?"

화만루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자네가 그를 설득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

"자네가 안다고? 어떻게 알았나?"

"그는 자네를 잡지도 않았고 보내지도 않았네. 자네는 화도 내지 않고. 이것은 자네들이 벌써 만날 곳을 약속했기 때문이 아니겠나."

"자네는 내가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도 아는가?"

"당연히 내 방법이겠지."

"왜 그런가?"

"왜냐하면 그는 정이 없는 사람이지만 자네는 정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는 자네가 절대로 그의 집을 불태우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네. 게다가 자네가 정말로 태웠더라도 그는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이네."

육소봉은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정말 대단하기는 하지만 어떤 한 가지 일은 끝내 생각해 내지 못할 것이네."

"어떤 일인가?"

육소봉은 수염이 있던 자리를 만지면서 물었다.

"자네가 알아맞히면 내가 알려주겠네."

화만루가 웃었다.

"내가 벌써 알아냈다면, 자네가 내게 알려줄 필요가 있겠는가?"

육소봉도 웃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화만루의 평화로운 미소가 갑자기 이상하게 변한 것을 알았다.

"자네 또 뭔가 발견했나?"

화만루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신비한 소리를 듣느라 그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것은 그도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그는 갑자기 방향을 돌려 산비탈 아래로 갔다.

육소봉만이 그를 따르고 있었고, 별과 달이 모두 사라져 버린 뒤라서 밤은 더욱 어두웠다.

육소봉도 멀고 어렴풋한 노랫소리를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찢어지게 하는 듯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음률이었다.

노래 가사도 처량하고 아름다워서 사람을 감동시켰다. 어느 사랑스러운 소녀가 죽음에 직면하여 애인에게 그녀의 몰락하는 일생과 불행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육소봉은 가사를 자세히 듣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화만루의 기분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네는 전에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나?"

화만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네!"

"누가 부르는 것을 들었나?"

"상관비연."

육소봉은 세상에서 그가 완전하게 믿는 것은 모두 열두 개 정도인데, 그중 하나가 화만루의 귀라고 말하곤 했다.

다른 사람들은 직접 보고서도 때론 잘못 볼 때도 있지만, 화만루는 지금까지 잘못 들은 적이 없었다.

그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얼굴 표정은 지금 노래하는 것이 바로 상관비연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실종된 신비한 소녀가 어떻게 갑자기 여기에 나타난 것일까? 왜 이 깊은 산속에 숨어서 이렇게 처량하고 원한 서린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그녀는 누구에게 들려주려고 노래를 하는 것일까?

노래 가사처럼 몰락해 버린 소녀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의 연인에게 자신의 쓸쓸하고 불행한 운명을 얘기하는 것처럼 그녀도 그런 것일까? 이때 어둠 속에서 갑자기 한 줄기 등불이 나타났기 때문에 육소봉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노랫소리는 바로 등불이 반짝이는 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만루도 벌써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이 등불을 보지 못했을 텐데도 그가 향하고 있는 방향은 조금도 틀리지가 않았다.

등불이 점점 가까워지자 육소봉은 그것이 작은 사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시고 있는 것은 산신일까? 토지신일까? 그런데 노랫소리가 갑자기 멈추어 버려서 세상이 아주 조용한 적막에 잠겨 버렸다.

육소봉은 화만루를 보고는 말했다.

"그녀가 정말로 자네에게 들려주려고 노래를 불렀으면, 가지 않을 거야."

그러나 그녀는 가버렸다. 등불은 아직 빛나고 있지만 음산한 숲 속의 사당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얼굴의 산신은 쇠 채찍을 들고 있고 무서운 짐승들도 서 있었다. 어두운 등불 아래서 보니 마치 선량한 사람들을 위하여 의분을 느끼고는 세상의 나쁜 사람들을 엄하게 처벌하기 위해 채찍을 휘두르려고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칠이 벗겨진 상에는 낡은 놋쇠 그릇이 있었는데, 그릇에는 맑은 물이 가득 있었고 물 위에는 한 가닥 검은 실같이 가느다란 것이 떠 있었다.

화만루가 물었다.

"자넨 지금 뭘 보고 있나?"

"탁자 위에 물그릇이 있는데, 물 안에 머리카락이 몇 가닥 떠 있어."

"머리카락?"

머리카락은 부드러웠고, 소녀 특유의 체취가 남아 있었다.

"소녀의 머리카락 같아. 방금 어떤 소녀가 여기서 노래를 부르며 이 물그릇을 거울삼아 머리를 빗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보이지 않아."

그녀가 절대로 여기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화만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육소봉이 말했다.

"이런 장소에서, 이런 시간에, 머리를 빗을 기분이 들 정도면 분명히 예뻐지려고 하는 소녀인가 봐."

"십대 소녀치고 누가 예뻐지고 싶지 않겠나?"

"상관비연도 열 일고여덟의 소녀가 아니겠는가?"

육소봉은 그를 보고는 슬쩍 떠보았다.

"자네는 전에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져본 적이 있지!"

화만루가 웃었다. 웃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의 이런 웃음의 의미는 인정한다는 있었다.

육소봉이 물었다.

"이것이 그녀의 머리카락인가?"

그는 화만루의 귀의 예민함과 같이 그의 손가락을 믿었다. 그는 화만루가 손끝으로 살짝 만져보고는 골동품의 진가(眞假) 구분해 내는 것을 직접본 적이 있었다.

화만루는 머리카락을 받아 손끝으로 살짝 문질렀다. 그러자 얼굴에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모를 이상한 표정이 나타났다.

육소봉이 말했다.

"정말 그녀의 머리카락인가?"

화만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 여기에 있었고, 머리를 빗으며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면,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군."

화만루는 또 웃었다. 웃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의 이런 웃음은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구분이 안 갔다.

그녀는 조금 전에 여기에 있었는데 왜 그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그녀가 만약 그가 올 줄 몰랐다면 누구를 위하여 노래를 부른 것일까? 육소봉은? 모르는 체하는 것인가.

바람이 문 밖에서 불어 들어오는 순간, 쇠채찍을 들고 맹수들을 거느리고 있던 검은 얼굴의 산신상이 갑자기 열리면서 네 척 길이의 채찍이 조각조각 갈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거대한 산신상도 산산 조각이 나서 땅에 떨어졌다.

먼지가 가득 피어올랐지만 육소봉은 산신상 뒤쪽 벽에 누군가가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몸에 흐르는 피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죽은 사람이었다. 마치 그를 거기에 못박아 놓은 것처럼 하나의 판관필이 그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판관필에는 관 앞에 세워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깃발 같은 두 조각의 누런 천이 펄럭이고 있었다.

"피로써 피를 갚다."

"이것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한 본보기이다."

이와 같은 두 마디의 말이, 똑같이 피로 적혀 있었다. 그 핏자국은 흥건히 스며들어 있었다. 육소봉은 죽은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고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가 있었다.

독고방이었다!

유여한이 아니라, 독고방이었다. 죽으려는 사람은 죽지 않았고, 생각지도 않는 사람은 이렇게 죽은 것이다.

육소봉은 못 견디겠다는 듯 한탄스럽게 말했다.

"신상은 이미 파괴되어 있었고, 죽은 사람을 바로 거기에 놓아두곤 우리들이 와서 볼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야."

화만루의 얼굴색이 창백해지면서 급하게 물었다.

"죽은 자가 상관비연인가?"

"죽은 자는 독고방이야. 나는 정말 두 번째로 죽은 사람이 그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화만루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는 왜 여기에 왔을까? 상관비연은 왜 여기에 왔을까? 정말 그녀가 사람을 해친 것일까? 정말 그녀가 벌써 청의루의 부하가 돼버린 걸까?"

육소봉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네는 항상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데, 그녀의 일만은 왜 그렇게 일부러 나쁘게만 상상을 하는 것인가?"

화만루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너무 관심이 많아서가 아닐까?"

그렇다! 관심이 있으면 생각을 할 수밖에 없고, 생각을 많이 하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도 끝까지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해하기가 쉽고, 헤어질 때도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다.

육소봉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아직 살아 있네. 어떤 사람이, 목에 칼이 가까이 있는데 어찌 그리 듣기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육소봉은 젓가락으로 술잔을 두드리며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인생의 즐거움은 사라지기 마련이니 달빛 아래서 술 한 잔 하지 않을 수 없나니....."

노랫소리가 듣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부르는 것은 이 두 소절뿐이었다.

그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화만루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화만루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결코 자네의 노래가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겠네만, 자네 두 소절을 바꾸어 부를 수는 없겠나?"

"그럴 수 없네!"

"왜 그런가?"

"왜냐하면 나는 이 두 소절밖에 모르거든."

화만루가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육소봉이 아주 뛰어나고, 총명하기 이를 데가 없으며 게다가 어떤 무술이든지 배우기만 하면 잘한다고들 말하던데, 실제로 자네 솜씨는 나귀보다 더 엉망이야."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이 싫다면, 자네가 직접 부르지 않나?"

그는 화만루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다그쳤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까지 화만루가 이렇게 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셔대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술은 절대로 좋은 술은 아니었다. 산속 허름한 여관에서 어떻게 좋은 술을 구할 수 있겠는가? 좋은 술은 아니지만 화만루는 한 잔을 다 마시고는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구름 한 조각과 옥 하나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린 여자의 짙게 그린 눈썹과 소라 모양으로 쪽찐 머리 같구나. 가을바람과 비가 서로 어우러지고, 방밖의 파초는 긴 밤 어찌하겠는가."

'장상사(長相思)'는 남당(南唐)의 마지막 군주 이욱(李煜)이 그의 죽은 부인 대주후(大周后)를 생각하면서 지은 것이었다. 슬픔에 사로잡힌 노래 가사에는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 묘사되어있었다.

육소봉은 화만루가 그 신비하고 아름다운 소녀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고, 그토록 깊이 사랑하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사랑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상관비연은 어떤가?

그녀의 행방은 정말 묘하고, 하는 일도 초가을쯤이었다. 아주 이상해서 육소봉조차도 그녀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화만루는 이미 사랑의 늪에 빠져 버리지 않나?

육소봉이 말했다.

"내 노래가 비록 좋지는 않지만, 자네 노래는 오히려 더 엉망이야. 내 노래는 적어도 자네를 웃기기는 했지만, 자네 노래는 나를 웃기지도 못했어."

"그래서 결국은 우리들이 잠자코 술을 마시는 것만 못하다는 거로군. 그렇다면 술이나 취하도록 마시자구."

그렇게 그들이 술잔을 들어 쓸 때 갑자기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육소봉 도련님이 아니십니까?"

밤은 이미 깊었고 사람들도 모두 돌아가 버린 이 산 속의 여관에 다시 올 사람도 없었고, 더군다나 육소봉을 찾아올 사람은 더 더욱 없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의외로 찾아왔으며, 뜻밖에 육소봉을 찾아온 있었다.

그의 차림새를 보니 산 속의 사냥꾼 같았고, 손에 든 대바구니 속에는 한 마리 잘 구워진 꿩이 담겨져 있었다.

육소봉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왜 육소봉을 찾습니까?"

사냥꾼은 대바구니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것은 송 도련님의 고모님이 특별히 보내신 겁니다. 저더러 육도련님의 술 안주로 가져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나의 고모라고?"

"당신이 육소봉 도련님이십니까?"

사냥꾼은 놀란 듯이 물었다.

육소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나 나는 도련님도 아니고, 고모 또한 없는데."

"반드시 있을 겁니다.

틀림없어요."

"?"

"그분이 당신의 고모가 아니라면, 왜 은 다섯 냥이나 써서 이 꿩을 샀으며, 또 은 다섯 냥이나 써가면서 나를 보냈겠습니까? 단지....."

"단지 어떻다는 겁니까?"

사냥꾼이 그를 쳐다보며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녀가 말하기를 육도련님은 네 조각의 눈썹을 가진 사람이어서 내가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당신은 눈썹이 두 조각밖에 없군요."

육소봉은 정색을 하였지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당신은 눈썹이 네 조각인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사냥꾼도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 번 보려고 왔습니다. 은 다섯 냥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고모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어린 고모입니다."

육소봉이 기가 막혀서 물었다.

"어린 고모라구요? 당신은 이렇게 큰 사람이 어린 고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냥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원래는 믿지 않았습니다만 그녀가 나이는 많지 않지만 촌수가 높아서, 나이가 쉰 살이 넘은 화만루라는 증손자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육소봉과 화만루는 마주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화만루가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맞아요, 나는 한 분의 고모가 있습니다."

사냥꾼이 멍해져서는 물었다.

"당신이 화만루입니까? 당신이 올해 오십 몇살이라구요?"

"나는 몸보신을 잘해서 청년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냥꾼이 급히 물었다.

"어떻게 몸보신을 하는지, 저도, 저도 배울 수 없을까요?"

화만루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것은 쉬워요. 나는 매일 오십 마리의 지렁이와 스무 마리의 도마뱀과 세 근의 사람고기를 먹을 뿐입니다."

사냥꾼은 그를 바라보고는 눈동자를 아래로 떨어뜨리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히 도망가 버렸다.

육소봉은 끝내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화만루도 웃으며 말했다.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그 작은 요괴가 거짓말하는 것을 보니 정말 죽은 사람이라도 그녀에게 속아 넘어갈 것 같아."

그가 말을 하면서, 젓가락을 들어서는 왼쪽 편의 창문을 가리켰다. 육소봉이 몸을 날려 공중에서 창문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양 갈래로 머리를 굵게 땋은 소녀가 창밖에 숨어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들켜 버린 상관설아의 눈은 놀라서 더욱 커졌고 겨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육소봉이 그녀의 땋은 머리를 붙잡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바로 이 작은 요괴가 나의 고모 노릇뿐만 아니라, 자네의 시고모 노릇까지 하는군."

설아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나는 단지 우스운 얘기를 했을 뿐인데, 웃지는 않고 괜히 남의 땋은 머리를 잡고는 화풀이를 하는군요."

화만루가 능청스럽게 덧붙였다.

"게다가 은을 열 냥이나 썼고 꿩의 맛도 좋을 텐데, 감격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남에게 결례는 하지 말아야지."

설아가 말했다.

"내 증손자는 양심이 있어 바른말을 하는군요."

육소봉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 양심 있는 사람은 양심이 없는 사람보다 한 수 아래이지."

그가 방심하며 웃는 동안 설아를 잡은 손이 느슨해지자, 그녀는 작은 여우처럼 육소봉의 옆구리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재빠르지 못해, 육소봉이 또 그녀의 땋은 머리를 붙잡았다.

육소봉이 그녀를 의자에 앉히곤, 정색을 하고 물었다.

"내가 몇 가지만 묻겠는데, 너는 정직하게 대답해라."

설아는 눈을 깜빡거리며 타이르듯 말했다.

"나는 원래 거짓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네가 지금 하는 말도 거짓말이다."

설아는 화를 내며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한마디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나와 얘기하겠다는 거죠?"

육소봉이 이 작은 요괴와 말싸움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색을 하고 말을 했다.

"묻겠는데, 너는 왜 우리 뒤를 따라왔지?"

"나는 당신을 쫓아오지 않았어요. 그러려고 했는데,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요."

이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들을 찾아내었지?"

"나는 당신들이 서문취설을 찾아올 것을 알고 미리 와 있었어요!" "

너는 계속 여기서 기다렸니?"

"벌써 와서 한참을 기다렸어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세수도 못해서 몸에서는 냄새가 나요. 못 믿겠으면 와서 냄새를 맡아 보세요."

화만루가 또 웃었다. 그는 마른기침을 여러 차례하고는 말했다.

"너는 왜 우리를 기다렸지?"

"비밀이 있어 당신에게 말하려고 해요."

"무슨 비밀이지?"

설아는 입을 샐쭉거리며 마치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녀는 몸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금제비 하나를 꺼내 놓으며 말을 했다.

"이걸 봐요. 이것은 내가 그날 저녁 꽃밭에서 찾아낸 거예요!"

육소봉은 그것을 보았지만 이것에 무슨 비밀이 있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설아가 계속 말을 했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죽기 전에 언니에게 준 것이에요. 언니는 이것을 보물처럼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어요. 내가 이틀만 빌려 달라고 해도 절대로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지금 나는 이것을 땅에서 주웠어요."

그러자 육소봉이 말했다.

"아마 그녀가 조심하지 않아서 땅에 떨어뜨렸을 거야."

설아는 힘껏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절대로 아니에요. 이것은 사람들이 그녀의 시체를 옮기다가 모르는 사이에 떨어진 거예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어 정말로 아주 슬퍼 보였다. 그녀는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육소봉이 말했다.

"너는 정말로 너의 언니가 죽었다고 생각하느냐?"

설아가 입술을 깨물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알 뿐만 아니라, 누가 죽였는지도 알아요."

"누구지?"

"바로 나의 그 재수 없는 사촌 언니예요."

"상관단봉이?"

"바로 그녀예요. 그녀는 언니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소추우, 독고방, 유여한까지 죽였어요."

"그 세 사람 모두가 그녀에게 죽었다고?"

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직접 봤어요. 그녀와 유여한은 같은 방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비봉침(飛鳳針)으로 한 번에 유여한을 죽여 버리고는 그의 시체를 침상 밑에 묻었어요."

육소봉이 한숨을 쉬었다.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가 없었던 유여한이 이번에는 그렇게 빨리 죽었군!"

"비봉침은 그녀의 암기(暗器), 유퍼스 나무로 만든 거예요. 그리고 그 침은 맹독성이 있어 한방에 상대의 목숨을 끊어놔요. 언니도 분명히 그녀의 이 암기로 죽임을 당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녀가 언니의 시체를 어디에 숨겨 놓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육소봉은 또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너의 말은 정말로 공평하고 합리적이어서 진실 같지만, 나는 한마디도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당신이 나를 믿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당신은 이미 그녀에게 홀려 있기 때문이에요."

육소봉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하고 있는 설아를 보자 마음이 흔들려서 다시 물어보았다.

"그녀와 너의 언니는 사촌지간인데, 왜 언니를 죽이려는 거지?"

설아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녀가 왜 그랬는지 누가 알 수 있겠어요? 아마 그녀는 언니가 자기보다 더 똑똑하고 예뻐서 계속 언니를 미워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럼 유여한은? 그는 계속 충성스럽게 그녀를 위해 일을 해왔는데, 왜 유여한을 죽였지?"

"그녀가 독사처럼 독한 여자이기 때문이에요. 언니도 그 손에 죽었을 거예요. 그녀가 어떤 사람을 죽이지 못하겠어요?"

"나는 네가 그녀를 미워하는 것을 알아. 그러나....."

설아가 갑자기 그의 말을 끊으며 차갑게 말을 했다.

"당신은 내가 당신 때문에 그녀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내가 질투를 하고 있다고 말예요. 그러나 아녜요. 그녀는 겉으로는 내게 잘해주지만, 실제로는 어릴 때부터 뒤에서 나를 괴롭혀 왔어요."

육소봉도 그녀의 말을 끊고는 말을 했다.

"그녀는 올해 열아홉이고, 너는 스무 살인데 그녀가 어떻게 너를 괴롭힐 수 있지?"

설아는 말을 하지 못했다. 육소봉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네가 정말로 너의 언니를 생각한다면, 이제 마음을 놔도 좋아. 왜냐하면 나는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거든."

설아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유여한을 죽일 때 나는 정말 창 밖에서 그 장면을 직접 보았어요. 그래서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상관단봉이 벌써 침상 아래에 파묻었다는 유여한이 갑자기 나타났다.

밤안개가 짙고, 달빛은 어렴풋했다. 유여한은 천천히 흐린 달빛 아래에서 걸어와서는 작은 술집으로 들어왔다.

그의 흉한 얼굴을 달빛 아래에서 보다 더욱 무섭게 보였다.

그러나 그의 기분은 안정돼 보였다.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설아에게 말했다.

"이제 밖에서 충분히 놀았으니, 나랑 같이 돌아가자. 왕 할아버지가 특별히 나를 보내어 너를 데리고 돌아오라고 하셨다."

설아는 눈을 감고는 키득거리며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어요?"

유여한의 눈에 슬픈 기색이 떠오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사촌 언니는요?"

"그녀도 네가 빨리 돌아오길 바라고 있어. 너는 지금 너무 어리니까, 더 크기를 기다려서 다음에 나와 놀아도 늦지 않아. 너의 사촌 언니를 봐라. 그녀는 지금 어디를 가도 아무도 그녀를 상관하지 않잖니."

설아는 그를 보고는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육소봉의 손을 잡고 큰소리로 말을 했다.

"살려주세요, 저 사람과 같이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당신과 같이 있고 싶어요."

유여한이 말했다.

"너는 아직 더 커야 돼. 지금 너는 어린아이이고, 그분들이 하시는 일은 중요한 일인데 어찌 너를 데리고 갈 수 있겠느냐!"

그때, 갑자기 밖에서 말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문밖에 서 있는 것은 육소봉이 타고 왔던 그 마차였다.

유여한이 말했다.

"너는 빨리 마차에 올라라. 한숨 자고 나면 집에 닿아 있을 것이다."

마침내 설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다.

육소봉은 가련한 모습의 그녀가 마차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너는 정말 사랑스러운 소녀인데, 왜 하필 거짓말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인지..... 쯧쯧."

화만루는 계속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어떤 사람들은 남을 속이려고 거짓말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속이려고 거짓말을 하기도하지."

그는 이어서 말을 했다.

"정말 가엾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동정을 얻으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주의를 끌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야."

육소봉이 말했다.

"그럼 설아의 경우는 그녀가 다른 사람의 사랑스런 보호나 동정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라는 건가?"

"그렇지."

육소봉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곧 용서를 구하지. 아마 내가 그들을 위해 좀 더 생각을 많이 했어야 하는 건데....."

그의 말이 채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유여한이 문밖에 나타나서는 그를 보고 조용히 말했다.

"설아가 할 말이 있다기에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려고 왔소."

육소봉은 이 무서운 사람의 눈 속에 따뜻한 표정이 일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당신에게 꼭 할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인즉, 당신은 수염이 없을 때가 수염이 있을 때보다 젊어 보여서 더 멋있다는 군요."

육소봉은 손가락 끝으로 입술 위의 수염이 났던 자리를 만지면서 수염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운 듯 만지고 있었다.

화만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내가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에 불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러나 지금 나는 자네의 그 수염이 깨끗이 사라진 것을 정말로 보고 싶다네. 도대체 어떤 모습인가?"

"젊어 보이고, 멋있어."

"그럼 전에는 왜 수염을 길렀나?"

"내가 너무 멋있어서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나에게 반하는 것이 두려워서였지."

화만루는 웃으며 말을 했다.

"이틀 동안 자네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것인가?"

육소봉이 쌀쌀맞게 대답했다.

"내가 왜 나에게 화를 내겠나?"

"왜냐하면 가엾고 사랑스럽고 거짓말을 하는 소녀에게 미안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 그녀가 돌아가서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화를 낼까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거야."

육소봉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떤 사람이 두 장의 초대장을 가지고 와 있었다.

<삼가 변변치 않은 술을 마련하여 귀하를 초대하오니, 꼭 왕림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래쪽의 서명은 '곽천청(藿天靑)'이라고 되어 있었다.

간단한 몇 글자가 단정하게 적혀 있고, 먹이 아주 진해서, 각 글자가 약간씩 볼록해졌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도 손가락 끝으로 만져 볼 수 있을 만큼 튀어나와 있었다.

화만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곽총관이라는 분은 정말로 세심하신 분이시군."

"어찌 세심한 것뿐이겠는가."

초대장을 가지고 온 말주변이 좋은 젊은이가 문 밖에서 몸을 굽히고 말을 했다.

"곽총관께서, 두 분이 왕림하실 것을 허락하시면 저더러 마차를 준비하여 기다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두 분이 주광보기(珠光寶氣)문 근처에 도착하시면, 곽 총관께서 두 분이 타신 마차를 공손히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가 우리가 온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젊은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 팔백 리 이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곽 총관께서 모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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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환타 (♡.161.♡.251) - 2021/11/22 13:54:18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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