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봉단편 1

3학년2반 | 2021.12.31 09:56:02 댓글: 0 조회: 547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38674
한양 개국한 후에 태조 7년, 정종 2년, 태종 18년, 세종32년, 문종 2년, 단종 3
년, 세조 13년, 예종 1년을 지나 성종대왕이 즉위 하였습니다. 성종은 영명한 임
금이라 재위 25년간 별로 실덕이 없으셨지만, 한 가지 흠절이 폐비사건입니다.
이 폐비사건도 물론 성종대왕의 실덕은 아니겠지요만 태평성대의 흠절이라면 흠
절이 될 만합니다. 폐비사건은 다른 일이 아니라 곧 왕비 윤씨를 폐위서인 하였
다가 나중에 사약까지 한 사건인데, 그 윤씨라는 왕비가 투기가 심하고 너무도
방자하여 어느 때는 대왕의 얼굴을 할퀴어 생채기 낸 일까지 있었더랍니다. 대
왕은 그대로 참으실 만큼 참으셨지만, 대왕의 어머님 되시는 인수대비 한씨께서
윤씨를 대단 괘씸히 여기셔서 대왕께 말씀하여 구경 폐비와 사약 전교가 내리게
되었었답니다. 성종대왕 뒤에 임금 된 연산주는 폐비 윤씨의 소생인데 동궁으로
있을 때부터 임금 노릇 잘못할 싹수가 보이든지 성종대왕이 극히 사랑하시던 신
하 문정공 순손효가 용상 가까이 엎드려 용상을 가리키며 이 자리가 아깝다고까
지 말씀을 아뢴 일이 있었답니다. 이 연산주가 임금 노릇한 동안이 12년인데 즉
위 4년인 무오년에 간신 유자공의 무고를 믿어 큰 옥사를 일으키고 즉위 10년인
갑자년에 폐비사건으로 또 큰 옥사를 일으켜서 유명한 조신들을 마냥 죽이고 산
사람을 죽일 뿐이 아니라 이왕 죽은 사람은 두번 죽음 시키는데 보관참시라고
관을 파다가 송장의 목을 베기, 쇄골표풍이라고 뼈를 갈아 바람에 날리기, 별별
형벌을 하고 파가저택이라고 집을 헐어 웅덩이를 만든 것이 열 집 스무 집이 아
니고, 가장 경한 사람이라야 2천 리 3천 리에 귀양살이를 보냈더랍니다. 이렇게
두 번 큰 옥사로 유명한 신하들을 죽이고 귀양 보낼 뿐 아니라 각 고을의 얼굴
이 반반한 계집 또는 계집아이를 서울로 뽑아 올려 기생 명색으로 궐내에 드나
드는 것이 만 명 이상이 되었는데, 기생의 칭호를 운평이라고 하고 궐내에 가까
이 도는 운평을 흥청이라고 하고 상관이 있는 흥청을 천과흥청이라고 하여 운
평, 흥청과 악수들을 살리느라고 종실 대관의 집을 빼앗고 운평, 흥청들을 먹여
살리고 몸치장시키느라고 민간 재물을 강탈하고, 이것도 부족하여 종실 대관의
처첩을 빼앗아 갖은 음란한 짓을 다하였답니다. 연산주는 이러한 할 짓, 못할 짓
다한 까닭에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고 그 뒤에 종종대왕이 등극하였습니다. 종종
대왕 39년간에는 남곤, 심정같은 간신의 모함으로 조광조 이외 여러 명사를 죽
이고 귀양 보낸 유명한 기묘사화가 있었습니다. 즉위 39년 갑진 11월에 중종이
승하하시고 인종이 즉위하니 인종은 성덕이 있던 임금이시랍니다. 수 양제, 금
해릉 같은 임금도 그 당시 신하들은 요순이라고 칭송하여 임금치고 요순 소리
아니 들은 임금이 없겠지요마는, 이 인종대왕이야말로 참말 요순이라고 칭송할
만한 임금이더랍니다.
인종대왕은 그 계모 되는 문정왕후 윤씨의 형제 윤원로, 윤원형이 내전에 자
주 드나드는 통에 즉위 1년이 못되어 의외로 승하하셨는데, 이때 국상 난 지 며
칠 안에 팔도가 울음빛이었었답니다. 인종대왕 뒤에 문정왕후 소생이신 명종대
왕이 즉위하셨습니다. 명종 초년에는 문정왕후가 정사를 알음하여 윤원로, 윤원
형의 세력이 같이 충천하다가 형제간에 세력 다툼이 생겨서 원로는 아우의 음해
와 족질의 공격으로 사약까지 받게 되고 원형이만이 문정왕후 상사 나던 을축년
까지 혼자 세력을 잡았었습니다.
이야기의 머리 말씀를 한 회에 마치려고 인종, 명종 때 일을 조금 자세히 설
명하여야 할 것도 다 못하고 본이야기로 접어들려고 합니다.
제 1장 이교리 귀양
1
연산주 때에 이장곤이란 이름난 사람이 있었는데 일찍이 등과하여 홍문관 교
리 벼슬을 가지고 있었다. 이교리는 문학이 섬부하여 한원 옥당의 벼슬을 지내
나 항상 말달리고 활쏘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신장이 늠름하고 여력이 절등하여
그 재목이 호반에도 적당한 까닭에, 그의 선배나 제배로 그의 문무 겸전한 것을
일컫지 아니하는 이가 없었다. 이교리가 과거에 급제해서 뽑힐 때에는 장차 국
가를 위하여 자기의 문무 재주를 다하려는 포부를 가졌었으나 때의 임금의 심법
과 행사를 차차로 알게 되자, 그 포부를 펴는 것은 고사하고 큰 죄나 면하고 지
내면 다행이거니 생각하여 조심조심하고 벼슬을 다니는 중에 무오년을 당하여
큰 옥사가 일어나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부관참시를 당하고 그외에 그의 여러
선배와 제배가 죄들도 없이 혹은 죽고 혹은 귀양 가는 것을 목도하고 벼슬 다닐
생각이 찬 재가 되고 곧 조정을 하지가혹 백구를 쫓아갈 맘이 났었지만, 상당한
이유도 없이 섣불리 벼슬을 고만둔다고 하다가는 임금이 싫어 내빼려 한다고 화
가 몸에 미칠 것 같아서 그는 굽고 접도 못하였다. 그럭저럭 몇 해를 지내는 동
안에 왕의 심법과 행사는 나날이 더 고약하여 이교리는 무슨 화가 자기 몸에 내
리지 아니할까 두려워서 하루라도 맘이 편할 날이 없었다.
하루는 그가 조반에서 나와서 입었던 관복을 천근 무게나 되는 갑옷을 벗듯이
간신히 벗고 자리에 앉으려 할 때 시중을 들던 하인이 “오늘 아침에 풍덕 정한
림 댕게서 답조장이 전편으로 왔습니다”하고 편지봉을 자리 앞에 놓았다. 정한
림은 누구인고 하니 예문관 봉교 벼슬을 지낸 정회량 정한림이니, 그가 무오년
에 의주로 귀양 가서 김해로 양이 되었다가 의외로 7년 만에 석방되는데 그가
고향인 풍덕으로 돌아오며 그의 어머니 초상을 당하였다.
이교리는 본래 친구들 중에서도 정한림과 정분이 자별하던 처지라 곧 전인으
로 편지도 부치고 또 조장도 부쳤더니 그 답장이 온 것이다. 이교리는 정상제에
게서 온 편지봉을 뜯어 답조장을 펴보면서 한편으로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꼭 한번 가서 물어야 할 터인데 색책하듯이 조장만하고 고만둘
수야 있나. 겸하여 서회도 하려니와 또 그외에도 물어볼 것이 있어. 이 사람이
음양술수로 능히 앞일을 집작한다니, 오순형의 말 같으면 이 사람의 사주가 세
상에 유명한 홍계관의 점보다도 더 용하다지.’ 이교리가 편지봉을 접어놓고 나
니 불현듯이 정상제를 만날 생각이 나서 하인을 불러서 나위를 얻어온다, 행장
을 차린다, 홍문관에 병이 났다고 닷새 수유를 얻는다, 그날은 분주하게 보내고
그 이튿날 새벽 파루 친 뒤에 곧 풍덕길을 떠났다. 봄 추위가 남아 있어서 바람
이 쌀쌀하나 오래간만에 시골길을 나선 이교리는 답답하던 가슴이 좀 시원하여
지는 것 같아서 쌀쌀한 것을 도리어 좋은 것같이 생각하였다.
그 이튿날 승석 때 풍덕에 당도하여 정상제를 찾아서 조례를 마친 뒤에 상제
의 파리한 얼굴을 대하니 이교리는 갑자기 무슨 말이 나오지 아니하여 묵묵하
고, 주인은 상제라 별로 말이 없어 이따금 이따금 수어를 접할 뿐이었다.
그날 밤 자리에 누운 뒤에야 이교리가 그 동안 조정 이야기를 대강대강 말하
고 국사가 한심하다고 눈물을 흘리니 주인 상제가 “그것도 막비천운이지. 그다
지 상심할 것이야 무엇이 있겠나?” 손을 위로하였다. 이교리는 갑자기 생각나
는 일이 있는 듯이 눈믈을 거두면서 “여보게, 천운이라니 말이지 자네는 앞일
을 짐작하지 않나? 그전에는 자네가 알기를 무얼 알아 하고 술수를 잘 안다고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도 술수에 그렇게 맘이 당기지 아니하였었네만 오주부
는 바루 자네를 이인같이 말하데그려.” 주인 상제는 이 말을 듣고 잠깐 웃는
듯 웃고서 “오순형이 말인가? 그 사람 말은 준신할 것이 있나.” 하고 말을 끊
었다. 이교리는 한참 있다가 “여보게, 점필재 선생이 벼슬을 내놓고 시골로 가
셨을 때 시골 사람이 새 임금은 영명하시다는데 무슨 까닭으로 벼슬을 내놓으셨
느냐고 어쭈어 보니까 선생의 말씀이 새 임금의 눈을 보면 나 같은 늙은 신하가
몸 성히 죽으면 다행이지 하시더니, 선생이 사후에라도 그런 화를 당하지 않으
셨나, 이로 보면 선생 같으신 이도 앞일을 짐작하시던 것이 아닌가?” “그것이
술수인가?” 이교리는 다시 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그 이튿날 도로 서울로 오려고 길을 떠나는데 정상제가 나귀 머리에 상장을
짚고 서서 “내가 어렴풋이라도 짐작하는 것을 자네에게 말 아니할 수가 있겠
나. 올 갑자년은 지난 무오년보다 더 혹화가 있을 듯한데 그 화가 나 같은 사람
에게도 미칠 것이요, 자네도 면하기 여러우리. 그렇지만 자네는 복이 두터운 사
람이라, 그러나 혹 앞에 액색한 경우를 당하여서 자처할 생각까지 날 때가 있더
든 이것을 뜯어보게. 그전에 뜯어서는 소용없어.” 하고 한손에 상장을 쥐고 다
른 한손으로 조그마한 종이봉지를 꺼내서 이교리에게 내주더니 “이제로부터 생
리사별일세. 아무쪼록 보증하시게.” 하고 이교리를 향하여 한 번 국궁하였다.
2
이교리가 풍덕 갔다 온 뒤 며칠이 되지 아니하여 홍문관에 번을 들 차례가 돌
아왔다. 월화문밖에 있는 홍문관은 증정원에서 멀지 아니한 곳이라 그날 승정원
에 번들었던 젊은 동부승지 한 분이 이교리가 번 자는 줄 알고 석반 후에 일부
러 찾아와서 “여보, 내가 엊그제 입시하였을 때 전하께옵서 이 말 저 말 하문
합시다가 너 이모를 잘 아느냐고 노형 말씀을 물으십디다. 그래 내가 말씀을 잘
여쭈어 두었소. 그때 이응교, 권교리, 박수찬의 말씀까지 계셨는데 말씀이 이러
하십디다. 이행이와 박은이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고, 권달수는 위인이 괴악하다
고 그리합시고, 또 말씀이 조그마한 일만 있어도 옥당에서 이러니저러니 지껄이
니 성이 가시다고 하십디다. 이후에 무슨 말씀이 계시거든 덮어놓고 지당합소이
다고 아뢰어만 보구려. 노형 같은 이에게는 그날도 당상이 돌아갈 것이오.” 이
교리는 잘 여쭈어 주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아니하고 그저 네네 하고 그의 말만
듣고 있었는데, 그 네 소리에는 말이 옳다고 동의를 표하느니보다도 멋대로 지
껄여라,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린다는 듯한 어조가 있었다. 그 승지는 말을 다
하고 나서야 이것을 깨달았는지 한참 동안 무료하게 앉았다가 “나는 가오.”
하고 일어섰다.
동부승지가 간 뒤 한 식경 가량이나 지나서 밤이 이경쯤 되었을 때에 대내로
서 젊은 내시 하나가 나와서 곧 편전으로 입시하랍신다고 어명을 전하므로 이교
라는 창황히 관복을 갖추고 사초롱을 든 내시를 뒤따라 들어가서 편전 계하에
부복하니 왕은 이교리에게 계상에 올라 평신하라고 명하고 왕이 앉은 편 영창
한쪽을 열어놓는데, 왕은 밝은 촛불 아래에 앉고 그 뒤에는 여러 여관의 그림자
가 쫑긋쫑긋 서 있다. “너 병이 났다더니 인제 쾌히 나으냐?” 물으며 왕이 이
교리를 내다보니 이교리는 ‘옳지, 탈났구나. 병 칭타갛고 정회량이 찾아간 것이
입문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황송하외다.” 대답
하고 그 큰 키를 활같이 구부렸다.
“너 이것 좀 보아라.” 할 때에야 비로소 고개를 들고 무엇을 보라나 하고
영창 안을 들여다보니 왕이 두 손으로 여자의 적삼을 펴서 들었고, 여자 적삼이
왠일인가 하고 그 적삼을 살펴보니 흰 비단으로 지은 것인데 앞섶에 거뭇거뭇
얼룩진 것이 있고 소매에도 거뭇거뭇한 점이 있다. 이교리는 ‘왕에게 외조모
되는 신씨가 왕의 소생모 윤씨의 옷 한 가지를 왕께 바쳤다더니 이 적삼이 그것
인가.’ 선뜻 생각하였으나 말 없이 잠잠히 서 있었더니 왕이 적삼을 놓고 손가
락으로 그 앞섶을 가리키며 “이것은 약자국이고,” 또 소매를 가리키며 “이것
은 핏자국이다.” 말하고 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가는데 두 눈에서는 독기가 철
철 흐르는 것 같았다. 이교리는 ‘윤씨가 사약받을 때 입었었다는 적삼이 분명
하군.’ 생각하며 무슨 말을 하여야 할 지 몰라서 전과 같이 잠잠히 서 있었다.
한참 있다가 왕이 분이 진정된 뒤에 먼저 “장곤아” 불러놓고 “원수가 있으면
갚아야 하지.” 하고 두 손으로 영창 틀을 잡아당기며 이교리를 내다보는데 그
기색이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너도 곧 내 원수다 말할 것 같이 무서웠다. 이교
리는 아까 듣던 젊은 동부승지의 말이 언뜻 생각이 나며 ‘지당합소이다’하고
말이 거의 입술에서 떨어질 뻔하다가 의리 부당한 일에 임금의 비위를 맞추어
당상을 하고야 낯을 들고 다닐 수 있으랴 생각하고 “임금의 원수 갚는 법은 필
부와 다를 것입네다. 임금이 덕을 닦으셔서 국가가 태평하오면 원수 갚는 것쯤
은 그 속에 있사올 줄로 소신은 생각합네다.” 말이 ‘지당합소이다’와는 엄청
다르게 나갔다. 왕은 이 말을 듣고서 눈썹이 쌍그랗게 올라가면서도 ‘허허허’
거짓웃음을 웃으며 “임금이 덕이 없으면 그 임금은 어찌 하노” “임금의 자리
는 높은 까닭에 위태하옵네다. 덕이 아니면 누리기가...” “무에야, 덕이 없으면
어째” 하며 왕이 와락 영창을 닫았다. 조금 있다가 지밀내시 하나가 마루에서
상감마마께서 나가라신다고 말하여 이교리는 기운없는 걸음을 걸어 홍문관으로
물러나와 깊이 한숨만 쉬며 밤을 앉아 새다시피 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이교리가 집에 나와서 아침상을 대하였을 때 자기를 거제로 정
배하되 배도압송하라는 왕의 명령이 내린 것을 알고 아침을 변변히 먹지도 못하
고 얼마 아니 있다가 금부도사의 재촉하는 대로 총총히 귀양길을 떠나 문 밖으
로 나가게 되었다.
제 2장 왕의 무도
1
이교리가 거제도로 귀양간 뒤의 일이다. 왕은 자기의 어머니 윤씨가 궁중에서
좇겨나고 마침내 사약까지 받게 된 것은 엄귀인, 정귀인이 성종께 참소한 탓이
라고 하여, 어느 날 내전에 들어가서 두 귀인을 불러다가 뜰 아래에 세우고 철
여의를 쥐고 내려가서 대번에 머리를 쳐서 바수고, 한 마당에 두 시체가 거꾸러
지며 이곳저곳이 피투성이라 마루 위와 뜰 위에 섰던 왕비 신씨 이하 여러 궁인
들은 끔찍스러운 일을 보고 한참 동안 모두 섰던 곳에 박힌 듯이 서서 혹은 고
개만 돌리고 혹은 눈만 가릴 뿐이었다. 왕에게 조모인 인수대비가 그때 마침 병
환이 침중한 중에 이 일이 난 것을 알고 억지로 병석에서 일어 앉아 왕을 불러
다 앉히고 부왕의 후궁을 그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준절히 책망하니 왕
은 “무어요? 법이요?” 하면서 대비의 가슴을 머리로 받아서 대비는 일시 기가
질리었었다. 왕은 이런 일을 하고도 분이 풀리지 아니하여 정귀인의 소생인 안
양군과 봉안군을 절도로 귀양보내었다가 뒤미처 사약을 내리어 죽이고 또 폐비
사건에 참섭하였던 사람을 모두 대역죄로 몰아 참혹한 벌을 내리었는데, 이왕
죽은 사람들은 시체를 파내어 뼈를 갈거나 목을 자르거나 혹 시신을 강물에 띄
우게 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서울, 시골서 잡아다가 모두 목을 베게 하고 그들
의 죄를 동성팔촌에게까지 연좌시키었다.
이와 같이 참혹한 육시와 처참이 나날이 그치지 아니하는 중에 왕의 죄악을
낱낱이 열거한 언문 익명서가 서울 큰길거리에 붙으며 이것이 바로 왕에게 입문
되니, 왕은 죄인의 여당의 소위라고 일변으로 평일에 밉게 본 언문 아는 신하들
을 옥에 내리어 형벌을 더하며 언문 같은 쉬운 글이 있는 것이 병이라고 일변으
로 세종대왕 때 설치한 언문청을 파하고 여염 여자와 궐내 나인까지라도 언문을
배우지 못하도록 금하였다.
그때 마침 인수대비의 상사가 나니 왕은 거상 입기가 성가시어서 삼년간 달수
를 날짜로 대신하여 27일 만에 상기를 마치고 자기만이 그리할 뿐 아니라 삼년
상을 일체로 금하였다. 이때 대전내시로 세조 때부터 내려오는 김처선이란 늙은
지사가 있었는데, 이 늙은 내시는 왕의 처사가 옳지 못한 것을 볼 때마다 진심
으로 왕을 간하므로 왕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터이다.
하루는 김지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간하여 보려고 작정하고 종일 틈을 엿보고
있었으나, 왕이 계집들과 장난하느라고 여간하여 틈이 나지 아니하므로 나중에
는 왕이 편전 마루에서 두 젊은 기생을 양옆에 끼고 있을 때 편전 뜰 아래 나아
가 서서 “상감마마”하고 소리를 지르니 왕은 깜짝 놀라 기생들 끼었던 팔을
빼어서 얼른 뒷짐을 지고 김지사를 내려다보며 “늙은 것이 소리도 크다.” “
말씀 아뢸 것이 많소이다. 노가 마마께까지 사조를 섬기어 오는 중에 예전 사적
을 대강 들어 압니다만, 마마 하시는 일같은 것은 고금에 없을 듯합니다.”
김지사는 가쁜 숨을 돌려가지고 “부모의 삼년상 못 입게 하는 임금은 어디
있으며, 죄없는 선왕의 후궁을 박살하는 임금은 어디 있습니까. 또 ...” 왕이 처
음에는 저 늙은 것이 망령이 나지 아니하였나 생각하고 노려보고만 있다가 자기
의 죄악을 글읽듯 하려는 것을 보고 와락 나는 분을 걷잡지 못하여 벽에 걸린
활을 떼었다. 활시위에 살을 먹이자마자 김지사를 쏘았다. 그의 갈빗대가 맞았
다. 김지사는 잠깐 입술을 악물었다가 "조정대신도 장난하듯 살육하시는 수단이
니까 저같은 천한 늙은 것이야...” 또 한 살이 가슴에 맞았다. 김지사는 마당에
자빠져서 “죽어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마마가 오래 임금 노릇을 못하게 될 것
이 한이올시다.” 왕은 어느 틈에 활을 놓고 환도를 쥐고 쫓아내려와서 한칼에
김지사의 다리를 끊고, 김지사의 아픈 것 참는 모양을 들여다보면서 “일어나
걸어라.” 김지사는 왕을 쳐다보며 “마마는 다리없이도 걸으십니까?”왕이 환
도로 그 입을 찍었다. 그래도 김지사는 날 안 되는 소리로 무어라고 지껄인다.
왕은 이를 부드득 갈며 김지사의 배를 가르고 환도 끝으로 창자를 꺼냈다. 그래
도 시원치 못하던지 김지사의 고기를 갖다가 호권 속에 있는 호랑이의 밥을 만
들게 하고 곧 김처선의 ‘처’자까지 통용되지 못하도록 금하였다.
2
왕이 이것저것 금하는 영을 내릴 때마다 번번이 인심이 소동되어서 대궐 안으
로부터 시골 두메구석에까지 ‘세상은 망한다’ ‘나라는 망한다’ 한탄하는 소
리가 그치지 않건마는 왕은 나라가 망하든지 세상이 망하든지 놀고나 보리라고
결심한 것같이 밤낮없이 계집들 데리고 놀기만 일삼는데, 대궐 후원에 서총대를
쌓고 창의문 밖에 수각을 세우고 또 고양땅에 연희궁을 지어서 새로이 놀이터를
만들 뿐 아니라, 성균관 같은 좋은 집을 위패조각과 몇낱 선비에게 맡겨두는 것
이 합당치 않은 일이라고 위패는 집어치우고 선비는 내몰고 훌륭하게 놀이터를
만들었다. 계집들 데리고 놀기를 좋아하는 왕은 팔도 기생을 모두 뽑아올려서
서울 안에 만여 명 기생이 복작거리게 하여 놓고 기생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고 백성의 재물을 턱없이 빼앗으니, 한탄하던 것이 원망으로 변하고 원망하던
것이 악심으로 변하여 사방에서 나날이 느는 것이 도적이라. 지리산 속에 대적
이 있고 변산안에 적당이 있는 것은 오히려도 예사려니와 서울에서 멀지 아니한
장단, 인천은 온 고을이 거의 다 적굴이 되었고 장단, 인천은 또 고사하고 도성
안에도 이곳저곳에 적굴이 생기어서 밤은 말도 할 것이 없고 낮에라도 사람이
잘 다니지 못할 골목이 많았는데. 이때 남소문 안에 있던 한치봉이의 적당은 서
울 안에서 가장 유명하던 적당이다.
한치봉이는 어느 시골 한씨집의 서자로 집안의 홀대 받기가 싫어서 서울로 뛰
어올라와서 몸이 날쌔고 완력이 센것을 믿고 갖은 짓을 다하다가 마침내 적당의
괴수가 된 사람이니, 한씨가 처음 괴수가 되어 가지고 남소문 안에서 미인계 판
을 차리었을 때 경상도 선산 사는 박선전이란 사람을 옭아들였다가 그가 힘이
장사인데다가 무예까지 절등하던 까닭에 미끼삼아 사람을 옭아들이는 미인까지
빼앗긴 일은 있었으나, 구후로 이때까지 약 10여 년간 별로 봉패한 일이 없이
서울 안에서 거의 횡행하다시피 하는 터이다.
한씨의 부하인 김삭불이란 사람은 이교리의 유모의 아들로 어려서 이교리와
같이 자라다시피 한 사람이니, 노름에 반하여 노름판을 쫓아다니다가 한씨의 부
하가 되었는데, 사람이 영리하고 약삭 빠른 까닭으로 한씨가 끔찍이 사랑하여
입당한 지가 2년이 채 못되었건만 한씨 도당 중에서는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
었다.
어느 날 한씨와 같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는 중에 한싸가 무엇을 잊었던
것이 갑자기 생각난 듯이 “아니 이애 삭불아, 너의 젖동생 누가 교리 다니다가
귀양 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성명이 무엇이랬지?” “그건 왜 새삼스럽게 물
으시오? 알으켜 드리면 상을 주실 터이오?” 삭불이는 하하하하 웃었다. “이
자식 상은 되우 바라네.” 삭불이는 바로 정색이나 하는 듯이 별안간 웃음을 거
두면서 “당신이 꼭 하나 고치셔야 할 일이 있는데 고치지 않으십디다. 말투는
아무래도 좀 고치셔야 하리다. 무슨 잘못한 일도 없는 사람을 왜 이 자식 저 자
식 하시오? 당신이 영광서 오셨소, 순천서 오셨소?” “아따, 그 자식 수다도 하
다.” “그래도 고치지 않으시오그려. 그러나 그것은 대체 왜 물으시오?” 삭물
이는 눈귀에 웃음빛을 띠고 한씨 얼굴을 들여다보니 한씨는 팔을 늘리어 삭불의
등을 툭 치며 “왜 물었느냐? 네 젖동생 교리 나으리가 맞아죽었나 하구.” “
맞아죽다니오? 누가?” “어저께 뉘게 말을 들으니까 이교리니 권교리니 무슨
교리이니 하는 것들이 뼈가 부서지도록 매를 맞아서 거의 다 죽을 지경이라더
라.” “나와 친하다는 이교리는 거제로 귀양가서 지금 잘 있을 겝니다. 염려 마
십시오”
삭불이는 다시 하하하 웃으며 일어섰다가 얼굴에 걱정하는 빛을 띠고 다시 자
리에 앉으며 한씨를 보고 하는 말이 “이교리가 지금 죽지는 않았더라도 죽기가
십상팔구일 것이오. 지금 임금이란 것이 의심이 많은 데다가 사람을 죽이는데
수단이 난 터이니까 내 청으로 이교리응 좀 살려봅시다, 네?” “나는 죽일 수
는 있어도 살릴 수는 없다.” 한씨는 말하며 껄껄 웃었다. 삭불이는 양미간을 찌
푸리며 “아니 웃으실 것이 아니라 좀 생각해 주시구려. 우리가 좀 빼돌려 봅시
다.” 한씨는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침을 탁 뱉으며 “어림없는 소리다. 양반님
들은 곧 죽어도 도적논 중에서 사실리가 없다. 그런 생각은 고만두어라.“ 그렇
게 말하였지만, 삭불이가 갖은 정으로 청하는데 끌리어서 한씨는 이교리를 구하
여 보려고 작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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