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봉단편 2

3학년2반 | 2021.12.31 10:01:31 댓글: 0 조회: 614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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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이교리 도망
1
그날 삭불이가 한씨와 마주 앉아서 이교리 살릴 계획을 서로 이야기하는데 한
씨 말이 “야, 이교리가 화를 당할 길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약, 하나는
장하에 물고 또 혹은 처참을 당할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배소에서 죽거나 서울
로 압상되어 와서 죽거나 두가지는 틀림없을 것이니까 이것을 구할 작정이면 역
시 두 가지 방법을 차려야 한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오늘부터라도 정원 소
식을 잘 탐지합시다. 상감인지 땡감인지 어느 때 그 소위 전교란 것을 내릴지
모르니까. 그래 탐지해 가지고 사약이거든 삼현령 역마보다 빨리 가는 말을 타
고 도사 앞질러 가서 살짝 빼돌리고 압상이거든 오는 길목에 동무 한 십여 명
붇었다가 집어칩시다그려.”
삭불이는 말을 할 때 몸과 손을 가만히 두지 아니하고 ‘말을 타고’ 하때는
몸을 말탄 것같이 까닥거리고, ‘집어칩시다’ 할 때는 손으로 물건을 잡아채
는 시늉을 낸다. 한씨는 이것이 구경스러운 득이 또는 귀여운 드이 빙그레 웃으
며 삭불이를 바라보았다. 삭불이는 자기의 꾀가 한씨 비위에 맞았나 보다 생각
하여 좋아하면서 “사람을 보고 왜 그렇게 웃으시오? 내 얼굴에 검정이가 묻었
나요?” 그리하고 또 자기가 일을 요량하는 법이 경선치 아니한 것을 보이려고
“일이 작고 크고 시작하기 전에 아무쪼록 주밀하게 생각하여야 하지 않겠습니
까? 빼돌리거나 집어태거나간에 그 당자가 말을 듣지 아니하면 어찌하나요?”
한씨는 자기가 먼저 생각한 것을 자랑하듯이 “그렇기에 내가 말하지 않더냐?”
“사람이 죽을 지경에 살려준다는 것을 싫달리는 만무하지요만 그래도 그렇지
아니하니까 일이 나기 전에 내가 한번 거제를 갔다오리다. 당자가 의향이 있으
면 좋고 그렇지 아니하면 거제 구경간셈만 잡고 고만두지요.” 이리하여 삭불이
는 한씨의 허락을 맡아 가지고 수일 동안 준비한 뒤에 곧 거제길을 떠났다.
이때 이교리는 거제 배소에 도착한 지 벌써 이삼 삭이라 처음 서울서 떠날 때
는 개나리 꽃잎도 돋기 전이었는데, 남방으로 내려올수록 일기가 점점 더 온화
하여 거제에 도착한즉 진달래가 만발이더니 지금은 녹음이 우거지고 이른 매미
의 찌르르 소리가 여기저기거 들리게 되었다. 다행히 부사가 까다롭지 아니한
사람이라서 이교리는 요식으로 군색도 당히지 아니하고 또 초하루 보름의 점고
외에는 별로 간섭도 받지 아니하여 귀양ㅇ살이로는 편하다면 편하나, 일천일백
리 머나면 길에 서울 소식이 막히고 또 자기 앞에 오는 위험이 예측하기도 어려
운 까닭에 때때로 긍금 답답하여 긴 한숨을 짓는 것은 면치 못할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때 이교리는 집안에 들어앉았기가 갑갑하든지 바닷가에서 나가서
거닐며 바람을 쏘이더니 주인집의 아이가 찾아나와서 서울서 손님이 왔다고 한
다. 이교리는 서울 손님이란 말에 귀가 번쩍 뜨이어 두 걸음에 한 걸음으로 걸
어들어와서 닫힌 방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주인을 부르니 주인은 어
디 가서 없고 안주인이 대답하고 나오는 것을 보고 ‘서울 손님 어디 있느냐’
고 물으니 안주인은 이웃집에 장을 얻으러 갔다 방금 돌아온 터이라 손님이 온
것까지 모른다고 한다.
이교리는 아이의 거짓말이 아닌가 생각하여 낙심하고 방문 앞봉당에 주주물러
앉았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그 아이가 촐알촐랑 앞서고 한 사람이 그 뒤를 따라
들어온다. 이교리는 이 사람을 바라보고 너무 반가워서 어이가 없는지 넋잃은
사람같이 멀거니 앉아 있다가 그 사람이 앞에 와서 “문안드립니다.” 하고 재
치있게 하정배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삭불아, 어 웬일이냐?” 삭불이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그 아이가 이교리를 향하여 “이 손님이 우리 찾아나온다고 갈밭
길로 가옵디다. 내가 그리가서 다리고 왔지라오.” 공치사를 한다. 아이 말이 끝
난 뒤에 삭불이는 "나으리의 문안 알려고 전위하여 왔습니다." 고 이교리 말을
대답하였다. "오래간만이다. 반갑다. 너 줄곧 서울 있었겠지? 이번에 서울서 떠났
겠지?" 이교리는 말하고 삭불이의 얼굴을 보니 먼 길에 지친 사람이라 피곤한
빛이 많다. "이리 올라앉아라." 하고 뒤미처 "너 무엇 요기나 했느냐?" 고 물었
다. 삭불이는 "황송합니다만 다리가 아파서 좀 앉겠습니다." 하고 일변으로 이교
리의 앉은 봉당에 올라와서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으면서 일변으로 말하였다. "아
까 장터에서 요기했습니다. 음식을 먹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도 술맛은 좋아
요." 이교리는 술맛 좋다는 말에 웃으면서 "네가 제법 술맛을 알도록 술을 먹을
즐 알든가?" 하고 나서 "서울서 언제 떠났니?" 물었다. "소인이 한 보름 전에 서
울서 떠났습니다. 떠날 때 댁 문안은 알고 왔습니다. 다 안녕들 하십니다." 고 삭
불이의 전하는 안부를 듣고 이교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녁밥이나 먹은 뒤에
서울 이야기 좀 자세히 듣자." 말하고 천천히 몸을 일어 방으로 들어갔다.
2
이교리의 거처하는 방은 단간이라도 간살이 넉넉하여 과히 좁지 아니하고 뒷
들창과 앞되창을 함께 열어놓으면 바람이 잘 통하여 과히 덥지 아니하였다. 그
날 밤에 삭불이는 되창문 밖 봉당 위에 앉아서 방안에 앉은 이교리를 들여다보
며 봄 이후 서울 이야기를 압담 좋게 늘어좋는데, 그중에도 더욱이 한번 귀양
갔던 사람이 도로 잡혀와서 맞아죽는 이야기를 아무쪼록 자세히 하고 또 상감이
'이교리의 위잉ㄴ이 아무래도 수상하니 다시 처치하여야 한다‘고 일대 간신 임
사홍이에게 말한 것을 자기가 어찌어찌하여 굴러 듣게 되었다고 그럴싸하게 꾸
며서 지껄였다.
이교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혹 말을 채쳐 묻기도 하고 또 혹 말이 없이 한숨만
쉬기도 하다가 삭불이의 이야기가 한참 동안 중간이 그치자 "물어볼 말이 하도
많아서 뒷전이 같다만 너 그 동안 무슨 짓 하고 지냈느냐? 여전히 노름이냐? 노
름꾼은 친한 집에 발그림자를 끊는 법인가? 내가 너 못본 지가 벌써 몇해냐!"
이교리는 나무라듯이 말하더니 곧 뒤를 이어 "반갑다. 천리 밖에 있는 사람을 일
부러 찾아보러 왔으니." 하고 정답게 말한다. 삭불이는 "황송합니다." 하고서는
다시 잡시 동안 말이 없다가 "나으리쎄 조용히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주
저주저하니 이교리는 "조용히 할 말이 있어? 방으로 들어오려무나." 하고 문턱에
서 몸을 비켜 길을 냈다.
삭불이는 방안으로 들어와서 이교리에게 핍근히 앉기가 어려워서 등잔이 걸린
벽 밑에 앉으려고 하니 이교리가 이것을 보고 “이애, 그쇄뿔에서 기름이 듣는
다. 옷에 튀일라. 이리 와 앉아라.” 하여 삭불이가 이교리에게 가까이 와서 모
를 꺾어 앉았다. 삭불이는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묻는 이교리의 얼굴을 고
개를 돌려 바라보며, 우선 자기 모친의 이야기를 꺼내어서 자기 모친이 이교리
의 덕을 많이 보았다는 것과 자기 모친이 죽을 때 이교리를 저버리지 말라고 유
언한 것이 머리에 박혀 있다는 것을 중언부언 말하니, 이교리는 삭불이가 노름
빚을 많이 지고 갚아 달래러 온 줄만 짐작하고 “ 나 같은 조불여석의 인생에게
그런 말 하여 무엇하니?” 하고 한숨을 쉰다. 삭불이는 그 말의 뒤를 대어 “그
때문에 소인이 천여 리 길을 전휘하여 왔소이다.” 말하고 나서 그 다음에 한치
봉의 도당에 든 이야기와 한치봉에게 신임받는 이야기와 또 한치봉을 조른 이야
기를 이교리의 눈치를 보아가며 쏟아놓고 말하고 나중에 “나으리 의향이 어떠
싶니까? 잠깐 소인들에게 와서 피신하셨다가 좋은 세상이 되거든 나서시지요.
나으리, 깊이 생각해 봅시오.” 하고 말은 생각하여 보라 하나 어조는 다시 생각
할 것도 없이 동의하라는 것 같다. 이때꺽 말없이 귀를 기울이고 삭불이의 이야
기를 듣고 있던 이교리는 “의향? 의향?” 하고 두서너 번 입속으로 뇌고서는
한참 동안 다른 말이 없이 앉았다가 닭이 첫홰 치는 소리를 듣고서 “이야기에
팔려서 닭이 울도록 앉았었구나. 고만 자자. 내일 또 이야기하지.” 하고 목침을
베고 누우니 삭불이는 이교리의 대답을 듣고 잤으면 좋을 줄로 생각하였겠지만,
재촉할 길이 없어 등잔불을 불어 끄고 방 윗목에 누웠다.
삭불이가 늦잠이 들어서 이튿날 해가 높이 돋았을 때 겨우 잠이 깨었다. 일어
나서 보니 이교리는 벌써 소세하고 봉당에서 주인집 아이와 무슨 이야기를 한
다. 삭불이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봉당으로 나가서 “벌써 일어나셨습니까?”
이교리에게 인사를 한 뒤 소세하고 조반 먹고 하느라고 한참 분주하였다. 아침
밥 때가 지난 뒤에 삭불이가 이교리의 방에서 “많이 생각해 보셨습니까? 다른
의향이 없으실 터이지요?” 하고 이교리의 대답을 조르니 이교리는 굳센 어조로
“네 말이 고맙다만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다.” 고 간단하게 거절한다. 삭불이는
천만의외로 생각하여 “할 수 없으시다니요? 어찌한 말씀입니까. 한번 더 생각
하여 보십시오.” 권하다가 “더 생각할 것 없다.” 고 이교리가 잘라 말하는 것
을 듣고서 천여리 길에 찾아온 정성을 받아 달라고, 모친의 유언을 지키게 하여
달라고, 또는 한치봉이 대할 면목을 세워 달라고 여러 가지로 애걸하다시피 말
하였건만 이교리는 종시 결심을 변치 아니하고 “천여리 길을 찾아온 정성은 내
가 고맙게 생각하고 이번 길 왔다 가는 것만 하여도 어멈의 유언은 잘 지켰고
하니 너 할 일은 다한 셈이다. 네가 한치봉이 대할 낯이야 있건 없거 내가 알은
체 할 배 아니나 알은체한다면 대할 낯이 없어도 좋다.” 삭불이는 어이없어 한
참 잠자코 있다가 “소인더러 참말 허행하란 말씀입니까?” 하고 말하는데 이교
리의 고집을 딱하게 여기는 기색이 그 얼굴에 가득하다. “허행이라니 의향 알
러 왔다가 의향 알았으면 고만 아니냐. 내 의향은 너희들 손에서 살아나느니 차
라리 죽겠단 말이야. 인제 잘알았니?” 이교리의 언성이 높아져서 주인집 식구
가 기웃기웃 방안을 들여다본다. 그때 이교리가 다시 언성을 낮추어 “남이 보
기에 수상할라. 오늘로 곧 떠나 올라가거라.” 삭불이가 할 수 없이 그날 그대로
떠나 서울로 올라와서 한치봉을 보고 전후 사연을 말하니 한씨는 자기 말이 맞
은 것을 자랑하듯이 “그렇기에 내가 무어라고 하드냐?” 고 말하고 그 뒤로는
한씨나 삭불이나 자기들의 벌이할 것이나 생각하고 이교리의 말은 입에도 올린
일이 없었다.
3
이교리는 굳센 맘으로 삭불이를 쫓다시피 하였지만, 삭불이가 하직할 때 “나
으리, 인제는 저생에 가서나 또 보입겠습니다.” 절하고 돌아서 나가는 것을 보
고는 그의 먹었던 맘이 갑자기 풀리었던지 무엇을 잃은 사람같이 한참 동안을
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였다. 주인집 아이가 이 모양을 보고 있다가 이교리가
깊이 고개를 숙이고 방안에서 서성거릴 때 가만가만히 방문 앞으로 와서 “소인
문안드립니다.” 하고 삭불잉의 하정배하던 흉내를 냈다. 이교리가 고개를 들고
내다보더니 “이놈 매맞는다.” 빙그레 웃으면서 벼르듯이 꾸짖는데 그 아이는
저대로 또 한번 더 하정배를 흉내내고 “나으리 인제는 저생에 가서나 또 보입
겠습니다.” 하고 하하하 웃는다. 이교리는 이번에는 웃지도 아니하고 꾸짖지도
아니하고 양미간을 찌푸리며 혼자서 입속말로 “저생에 가서나? 저생에 가서나?
” 하고서 고개를 세로 몇 번 흔들다가 홀저에 또 가로 흔들었다.
그날은 저녁때가 되어도 바람기가 없어서 해가 지자마자 모기떼가 흩어졌다.
이교리가 방문은 닫혀 두고 부채로 모기를 쫓아가며 봉당에서 오락가락하노라니
모깃불을 놓아 주려고 청솔가지를 들고 오던 바깥주인이 이교리를 보고 “오늘
은 모기가 대단합니다.” 하고 봉당위에 놓였던 질화로에 모깃불을 놓으며 ‘왔
다 간 서울 손님이 누구냐’, ‘왜 호령하여 쫓았느냐’ 꼬치꼬치 물었다. 이교
리가 처음에는 “유모의 아들인데 나의 안부도 알고 서울 소식도 알려 주려고
온 것이야.” 어물어물 대답하다가 매사에 자기에게 지성스럽게 하는 주인을 기
이기가 종시 미안하든지 자기 몸에 화가 박두한 것과 자기를 구하여 피신시키려
고 삭불이가 왔던 것과 자기가 삭불이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것을 대강대강 이야
기 한즉, 주인은 홀저에 눈을 크게 뜨며 “그렇게 의리 있는 사람을 왜 쫓으셨
소?” 이료리를 시비한다. 이교리가 허허 웃으며 “피신하려다가 붙잡히면 화를
더 지독히 당할 것이 아닌가?” 적당 틈에 가서 피신하기가 싫어서 거절한 것은
말하지 아니하였다. “붙잡히다니? 여기서 피신하려면 사방이 다 바다니 어디를
못가서 붙잡히겠소. 남해를 건너가면 대마도가 지척이고 서해로 돌아서 적해, 백
해 지나가면 대국도 갈 수 있고 동해바다로 올라가면 오랑태 땅에는 못 가겠소.
튼튼한 배에 몇말 양식만 실으면 고만이지.” 까닭도 모르고 분개하는 부인의
말을 이교리는 우습게 여기면서 “뭍에 살던 사람이 뱃길을 알아야지.” “세상
이 망했기로 의리 있는 사람이 그 사람 하나뿐이겠소. 뱃길 모르면 내가 타지.
닷새 엿새 혼자서 큰배를 저어도 이 팔이 끄떡없소.” 하고 팔뚝을 걷어 내밀며
“그 사람이 의리 많은 사람이오. 세상에는 의리가 제일이지요, 의리!” 주인이
의란 말을 뜻도 잘 모름ㄴ서 연하여 거푸 말하였다. “그렇지.” 이교리는 그 말
을 따라 힘없이 대답하고 마침 볼에 앉은 모기를 부채 안 쥔 왼손으로 때리면서
“지독하다.” “흉하지요. 여기 모기가 섬모기라도 고성 모기와 혼인을 아니한
다오.” 말이 달리 돌기 시작하여 예전에 거제현령이 고성 가서 있었던 까닭에
고성 사람들이 지금까지 거제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일어
서 갔다.
그때부터 사오 일 지난 뒤의 일이다. 주인이 장을 보러 읍내 갔다가 장도 채
보지 않고 돌아와서 이교리를 보고 “큰일났소. 어제 서울서 무슨 벼슬이라든가
벼슬 가진 자가 읍내 왔는데 당신을 읍에서 멀리 나가 있게 사정 썼다고 원님을
야단쳤답디다. 읍에서는 지금 수선수선입디다. 큰일났지요?” 이교리는 “도사라
고 하지 않던가?” 한마디 묻고는 이를 악물고 말이 없다가 한참만에 “어제 와
서 이때까지 아무 말이 없어? 괴상한데! 어렵지만 좀가서 자세히 알고 오게.”
주인을 도로 읍으로 보내고서 ‘가좨를 당할 것은 거의 의심없는 일이다. 도사
가 왔다면 사약이다. 사약 아니면 압상이렷다. 만일 압상이라면 그 갖은 곤욕을
어째 다 당할까. 형장의 고통은 당하고 죽느니 숫제 고기밥이 되지.’ 이교리가
혼잣말로 한참 중얼거리더니 홀저에 얼굴에 무슨 결심한 빛이 보이며 빠른 걸음
으로 바닷가를 향하여 나갔다.
4
이교리가 바닷물에 몸을 던질 결심으로 바닷가에 나와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한 곳은 주인집 아이가 여러 아이들과 헤엄치며 장난하고, 한 곳은 이웃 동리의
어부들이 그물을 고치며 두런거린다. 사람을 피하려는 이교리 눈에는 이곳에도
사람, 저곳에도 사람, 사람 없는 곳이 없다.
이교리는 바람을 쏘이러 나온 것같이 천연스럽게 걸음을 떼어 놓아서 사람이
없는 절벽을 찾아왔다. 한참 동안 바위 위에 서서 하늘을 치어다보고 바닷물을
내려다보다가 한번 몸서리를 치고 펄썩 주서앉았다가 다시 머리를 좌우로 흔들
며 서서히 일어섰다.
이교리가 두 손에 주먹을 쥐고 두 발을 모으고 몸을 솟치려 할제 그 뒤에서
“에헴!”
기침소리가 났다. 이교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깜짝 놀라며 겁결에 선뜻 몸을 돌
치어 서니 위도리를 벗은 주인집 아이가 한손으로 괴춤을 들고 눈앞에 서 있었
다.
이교리는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턱을 치어들어서 저리 가라는
뜻을 보이었다. 그 아이는 이것을 본체만체하고 “무얼 하러 오시는가 하고 가
만가만 뒤를 밟아 왔지라오. 바람을 쏘이시랴거든 저기 나무 밑으로 갑시다. 여
기는 뚜약볕이 막 내리쪼이니.” 말하고 한 손으로 이교리의 겉옷자락을 잡앗다.
“놓아라.” “갑시다.” “놓고 가자.” “그랩시다.” 이리하여 이교리는 그 아
이에게 끌리어 그늘진 나무 밑까지 와서 나무등걸에 등을 대고 비슷이 앉았다.
얼마 동안은 얼빠진 사람같이 우두커니 하늘가를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무
엇이 생각나는 듯이 염낭끈을 끄르고 그 속에서 조그마한 종이봉지를 꺼내었다.
그 봉지를 떼고 보니 봉지 속에 봉지가 있고 속봉지를 떼고 보니 속봉지 속에
또 봉지가 있는데, 그 셋째 봉지 위에 “거제배소개탁.” 이라고 쓰이어 있다.
이교리가 혼잣말로 “이 사람이 귀신인가!” 하고 급히 셋째 봉지를 뜯으니 그
속에서 종이쪽 하나가 떨어진다.
그 종이쪽에는 “주위상책, 북방길.” 이라고 쓰이어 있다. 이교리가 조그만
종이쪽을 정신놓고 들여다 보는데 그 옆에 앉아서 말없이 보고 있던 아이가 “
그것이 무엇입니까? 글자가 하나 둘 셋 일곱밖에 안 되는데 왜 그렇게 오래 들
여다보십네까?” 물으니 이교리가 그제야 종이쪽을 접으며 “나의 사주팔자를
적은 것이야.” 하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사주가 맞습네까?” “맞는 것도 있
지.” “그것은 맞았습네까?” “앞으로 지내보아야 알지.” “그 사주를 낸 사
주쟁이는 누구입네까?” “나의 친구다. 그만 물어라. 대답하기가 성가시다.”
이교리는 말을 끊고 일어서서 ‘집으로 들어가자’ 고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다
가 읍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삽작문께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이교리는 “여보게!”
불러서 삽작 밖에 세워놓고 가까이 와서 “도사라든가?” 물으니 주인이 고개를
가로 흔들며 “이야기가 기오. 들어가서 합시다.” 하고 세 사람이 함께 집으로
들어와서 아이는 저리 가라고 쫓아버리고 둘이 이교리는 거처하는 방으로 들어
왔다.
주인이 방 윗목편에 앉아 아랫목에 앉은 이교리를 바라다보며 “세상이 망할
랴니까 별놈에 벼슬이 다 있습디다. 계집들 빼앗으러 다니는 벼슬이 그게 무어
요? 그것이 왔답디다. 원님도 쩔쩔매더라는걸. 한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성명을
들었건만 잊었소. 임무어랍디다.” 이교리가 듣다가 “임사홍이라든가?” 말하니
주인이 “옳지, 임사홍이랍디다. 향교말 사홍이 김생원의 자를 생각했더면 잊지
않을걸.” 하고 껄껄 웃고 또 말을 이어서
“그놈이 오늘 저녁때에는 도루 떠난답디다. 그러나 당신 일은 걱정인걸. 그놈이
참말 원님더러 당신 말을 했답디다. 내가 통인 다니는 장줄이를 만나서 자세히
물어보았소. 그놈의 말이 당신이 나라의 큰 죄인이라고 도망 못 가게 잘 보살피
라 하고 읍에서 잡아다 가두고 객사 쓰레질 같은 것을 시키라고 하니까 원님이
녜녜하며 분분대로 하겠다고 하더랍디다. 그저 당신이 사람이 고지식하지 서울
서 왔던 사람의 말을 들었더면 이것저것 걱정이 없을 것 아니오.” 주인의 말이
끝나면 이교리는 말하였다. “내가 지금 정신이 산란하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
세.” “그리합시다. 좀 누우시오. 나도 잠깐 어디 좀 갔다 올 데가 있소.” 하고
주인은 일어서 나갔다.
5
그날 밤 초저녁에 주인이 관솔과 불씨를 가지고 이교리의 방문 앞으로 와서
봉당 위에 화톳불을 놓으며 “여보시오, 어두운 방에서 혼자 무얼 하시오?” 봉
당으로 내다보며 “이리 들어오게. 내가 머리가 아파서 일어나기가 싫네.” 목소
리가지 전같이 웅장하게 들리지 아니한다. 주인은 “대단히 불편하신가 보오.”
하면서 불 붙은 관솔 한 가지를 손에 들고 방안으로 들어와서 등잔에 불을 당기
고 관솔을 든 채로 이교리에게 가까이 와서 그 얼굴에 불을 비추고 들여다보니
상기된 것이 환하게 보인다. “병환이 나셨소그려.” “아니 감기 기운이 좀 있
는 것 같이. 이 사람 관솔을 끄고 거기 좀 앉게. 할 말이 있네.” “나도 할 말
이 있소. 그러나 말할 기운이 있겠소?” “그럼, 감기쯤 들었다고 말할 기운까지
없겠나.” 하고 이교리가 벌떡 일어 앉았다.
주인은 관솔불을 꺼서 놓고 한참 이교리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왜 무슨 까닭
으로 절벽에서 뛰엄질을 하려 하였소?” 이교리는 말이 없다. “애놈의 거짓말
은 아니겠지요?” 이교리는 역시 말이 없으나 이번에는 머리를 조금 끄덕끄덕하
였다. “그것이 무슨 일이오. 사람이 한번 죽으면 두번 살지 못하는 것이오. 진
정이 만리 같은 당신이 왜 죽는단 말이오?” 이교리를 시비하고 나중에 고개를
이교리에게로 기울이며 “도망하실 생각이 되거든 나오라고 하더라지 않았소?
그 말이 옳지 않소? 그래 생각이 없소?” 하고 은근히 물었다.
이교리는 “내가 그러지 않아도 좀 의논하려고.” 말을 중간에 그치고 두 손
바닥을 마주 비비면서 “섬 속에서 가면 어디로 가나?” 수단이 없는 것을 한탄
하니 주인은 “배가 없소?” 이교리의 미처 생각 못하는 것을 개도하여 주듯이
말하였다. 그리하여 이교리는 도망할 생각이 있는 것을 토설하고 배 한 척을 얻
어 달라고 부탁하고 주인이 어디까지 가든지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고 장담하는
것을 “그렇지 아니해. 자네가 나를 데리고 도망한 것이 발각되는 날에는 자네
집이 망할 것일세. 설사 자네는 죄책을 감심한다손 잡더라도 자네 처자가 있지
아니한가? 집에 있던 손 한목숨을 구하려고 사랑하는 처자 두 목숨을 죽이는 것
이 무슨 의리란 말인가. 자네가 같이 간다면 내가 아니 갈 터일세. 나를 구하여
줄 생각이거든 튼튼한 배 한 척만 얻어주게. 자네 배도 좋을 것일세. 내가 장난
이라도 부리어 보던 것이라 다른 배보다 나을지도 모르지.” 중언부인 달래다시
피 하여 간신히 그리 한다는 대답을 받았다.
주인은 몸이 불편한 이교리가 너무 오래 앉아 이야기하는 것을 미안히 생각하
여 “내일부터라도 내가 슬금슬금 준비하여 둘 것이니 그 동안 몸조리나 잘하시
오.” 하고 일어설 때, 이교리는 준비하는 것을 남의 눈에 뜨이지 않게 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 이튿날 이교리가 마침 방안에 누웠을 때, 이교리를 부르러 읍에서 사령이
나왔다. 주인은 나온 사령에게 술대접을 잘한 뒤에 이교리가 일전부터 병이 나
서 지금 누웠으니 앓는 사람을 어떻게 데려가느냐고 걱정하니 그 사령이 제풀로
“앓는 것이야 데리고 갈 수 있나. 그대로 들어가서 원님인가 원놈인가한테 그
사연을 말하지. 원놈으로 말해도 쓸개가 빠졌지그려. 이때껏 인정을 써오다가 서
울 궐자의 말 한마디에 곧 붙잡아다가 객사의 쓰레질을 시키려고 하니 말이 되
나.” 하고 이교리 앓는 것은 보자는 말도 없이 그대로 돌아갔다.
사령이 간 뒤에 이교리는 주인을 청하여 “한번 읍내로 잡혀가는 날이면 일은
다 틀리는 것이요, 먼 바다로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다가는 잡혀가기가 쉬울 것
이니 오늘 밤에 자네가 나를 고성땅에까지 건네놓아 주겟나? 그러면 거기서부터
걸어서 어디로든지 도망할 터일세.” 의논을 고치었다.
그날 밤중에 이교리가 주인집을 떠나는데 이웃 사람이 혹시 알까 꺼리어서 주
인과 단 두 사람이 어두운 속에 가만가만히 바다로 나왔다. 침침한 밤중에 거제
해변에서 배 한 척이 떠나갔다. 도망하는 이교리와 도망시키는 집주인이 그 배
에 탄 것이다. 때마침 불어오는 남풍에 그 배는 돛을 높이 달고 동방을 향하여
살같이 달아나니 희미한 별빛 아래에 갈라지는 흰 물결이 띠와 같이 보이었다.
주인은 이교리를 위하여 한참 배질이라도 더하여 줄 작정으로 서편에 있는 고
성을 버리고 동북으로 뱃머리를 틀어서 이튿날 새별에 웅천땅에 배를 대고 이교
릴를 내려놓았다. 이교리는 정한림이 써준 ‘북방길’ 세 글자가 머리에 박힌
까닭에 북도로 도망할 것을 미리부터 마음속에 작정하였지만, 남방 한 끝에서
북도를 생각하니 아득하기가 짝이 없을 뿐 아니라 하루 양식의 준비도 없이 도
망하는 몸으로 몇천리 길을 무사히 가게 될지 몰라서 걱정스러운 생각이 머리속
에 가득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기골이 남보다 유달리 튼튼한 것을 믿고 하루이틀 한데서 잠을
자고 굶으면서라도 어디까지든지 가보겠다고 결심하고 북쪽으로 올라오는데, 길
이 돌더라도 촌에서 촌으로 길을 잡아서 될 수 있는 데까지 읍길을 피하였다.
이교리가 촌 농가에서도 자고 절간 판도방에서도 자고 서당에서도 자고 들판이
나 덤불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며, 논둑에서 기승밥도 먹고 절에서 잿밥도 먹고
서당에서훈생의 대궁도 먹도 한 끼 두 끼 굶기도 하면서 하여간 무사히 강원도
땅을 지나 함경도 땅을 잡아들었다. 이교리 생각에는 ‘인제는 북도를 왔다. 북
방길이란 것이 어떻게 맞으려나.’ 하고 얼른 안신할 곳이 사서기를 마음으로
조이면서 여전히 북쪽으로 올라온다.
이때 이교리가 거제 배소에서 도망한 지 달포가 넘었었다. 처음 이교리의 도
망한 것이 탄로되었을 때, 거제현령은 집주인을 잡아들여 중장으로 신문하였으
나 칭병하고 있다가 모야무야에 도망하였다는 것 외에는 별 말이 나오지 아니하
였고, 거제현령의 치보가 경상감영으로 올라가고 경상감사의 장계가 서울로 올
라와성 왕이 화도 나고 겁도 나서 일변으로 거제현령은 파직 후에 논죄하고 경
상감사는 추고하라고 명하고 일변으로 엄중히 기찰하여 기어코 체포하되 체포하
는 자에게는 중상이 있으리라고 팔도에 영을 내리었다.
이장곤이 북도로 도망한 형적이 있다고 하여 북도의 수령 방백은 이 소식을
듣고 중상에 탐을 내어 포교와 장교를 길에 늘어놓은 중에 이교리는 ‘북방길’
을 믿으면서 북도로 올라오던 것이다.
이교리가 함경도 땅을 밟은 뒤에도 요행히 안변.덕원.문천.고원. 몇 고을을 무
사히 지나서 영흥 땅에 들어섰다. 한 달 나머지 갖추갖추 고생한 사람으로 오뉴
월 폭양이 내리쪼이는 한낮에 논틀밭틀길을 걸어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 이교
리는 어느 동리 어귀에 선 정자나무 밑에 마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이 정
자나무 그늘에서 낮잠이나 한잠 자자.” 혼자서 말을 하며 누워서 막 잠이 들랴
말랴 할 때, 사람의 말소리가 귀에 들리었다. “이 동리에도 수상한 사람이 온
일이 없다니 이제는 어디로 갈까?” “글쎄, 고만 읍으로 들어가세.” 그말이 수
상한 데 놀라서 이교리는 잠이 달아났다. 이교리가 눈을 반쯤 뜨고 보니 기찰
다니는 장교 두 사람이 정자나무에서 몇 간 아니 되는 밭모퉁이로 돌아나온다.
일어나서 도망하려다가는 도리어 수상하게 보일 뿐이라 반눈을 도로 감고 자는
체하고 누워 있었다.
“여보게. 저기 누운 것이 이 동리 사람은 아닌 모양인데.” “자네 눈에는 낯
선 사람은 다 이장곤이로 보이는 것일세. 패랭이 쓰고 베옷 입은 것이 교리 다
니던 양반은 아닐세.” 목소리가 차차 가깝게 들리더니 두 사람이 앞에 와서 선
모양이다. “변복은 말란 법이 있나?” “그는 그렇지.” 이교리는 인제 잡히는
것이다 생각하여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여보게, 이 발 좀 보게.” 하고 한 사람
이 자기의 발을 가리키고 “아이구 기막히게 크다.” 하고 다른 한 사람이 발
큰 데 놀라서 입을 벌린 모양이다. “이것이 소도적놈의 발일세. 양반치고 이 따
위 큰 발 가진 것을 본 일이 있나?” “양반이 발 같지는 아니해도 그래도 누가
아나?” “아닐세, 이런 발을 가지고 과거를 하고 교리를 하여? 없는 일일세. 낯
바대기도 시커멓고 우락부락하지 않은가. 소도적인지는 몰라도 이장곤이는 아닐
세.” “아닌지 겐지 어찌 알아?” 두 사람의 수작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 사이
에 이교리의 살은 한 점 한 점 말라드는 것 같았다.
7
그 장교들이 자는 체하는 이교리 앞에서 한참 동안 저희들의 마음대로 지껄이
다가 필경은 발 큰 것이 양반 아닌 표적이라고 의논이 일치하여 “그만 가세.”
“아무려나 하세.” 가기로 작성하고 “그 자식 낮잠 잘 잔다.” “그 자식 코빼
기에 똥이나 발라 줄까.” 욕설을 남기고서 다른 데로 가버렸다.
이교리가 한변 이 곡경을 치른 뒤에는 촌이라고 염려 놓기가 어려워서 산길로
들어섰다. 나무꾼의 자욱길을 좇아서 산을 타고 골을 넘어 나가다가 나중에 길
을 잃고서 헤매는 중에 해가 저물었다.
이교리는 갈길없이 무인지경인 산골에서 그날 밤을 지내는데 배고픈 것도 견
디기가 어렵거니와 들짐승의 우는 소리에 간을 졸이느라고 잠 한숨을 이루지 못
하였다.
이튿날 이교리가 인가를 찾아나오려고 골을 따라 내려온즉 멀지 아니한 곳에
한 동리가 나섰다. 그가 동리를 찾아가면 자연 요기할 수 있으려니 생각하고 주
린 배를 움켜위고 차츰차츰 내려오는데, 붉은 상모 달린 벙거지가 그 동리로 가
는 것이 어뜻 그의 눈에 뜨이었다. ‘사령이다. 부질없다. 다른 동리를 찾아가자.
’ 이교리는 그 동리를 옆에 두고 그대로 지나서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남은 기운이 갑자기 일시에 빠졌는지 칠팝십 노인같이 지척지척 걸어간
다. 그는 다른동리를 찾으려고 사방을 둘러보나 그 동리가 외딴 동리라 다시는
동리가 없다. 그는 기운이 시진하여 귀는 울고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한두
걸음 더 걸어나 가려고 하다가 그대로 길에 엎드렸다.
이교리 정신이 돌아나며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려고 애를썼다. 그러나 일식
하는 날 같아서 보이는 물건이 모두 똑똑치 아니하였다. 멀지 아니한 곳에 흘러
가는 물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그 편으로 기어갔다. 얼마 아니 가서 물컹하고
손에 집히는 것이 있었다. “밥이다!” 그가 먹으려고 자세자세 들여다보니 똥이
다. 보리밥이 채 다 삭지 아니한 똥이다. 그는 낙심하고 시냇가로 기어와서 물을
움켜 마시었다. 이교리는 정신이 깨끗하여지며 ‘길송장이 되는 것이다’염려도
생기고 ‘북방길이 뒤쪽으로 맞는 것이 아닌가’의심도 나섰다. 물을 마신 까닭
에 목은 타지 아니하나 오장이 당기기는 일반이라 그는 아까 밥으로 속던 것을
다시 한번 가보려고 간신히 일어서서 비척거리며 걸어갔다. 가서 보니 똥은 똥
이나 보리쌀알이 많이 그대로 있다. 그는 이것저것을 생각할 것도 없이 손으로
움키어 가지고 도로 시냇가로 나와서 보리쌀알을 물에 일어 골라서 입에 넣어
목으로 넘기었다. 그 뒤에야 눈에 보이는 물건이 똑똑하여질 뿐이 아니라 마음
에는 길이라도 걸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리가 천근같이 무거워서 시냇가에 있
는 풀밭에 누워서 넘어졌을 때,가죽이 벗겨진 이마와 코에 비름나물 잎을 뚜드
려 붙였다.
이교리는 얼마 동안 누워 있다가 천행으로 나무꾼 하나를 만나서 찬밥 한술을
얻어먹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여 무사히 용흉강을 건너서 어느 농가 봉당에서
하룻밤을 편히 자고, 이튿날 정평을 지나 함훙 땅에 들어섰다. 함흥 감영이 가까
운 까닭에 더욱 조심이 되어서 멀리멀리 둘러보며 가는 중에, 저 건녀편에서 장
교들이 떼를 지어 나오는 것을 보고 소로에서 소로로 도망하여 어느 시냇가에
오기까지 달음질을 쉬지 아니하였다. 숨은 턱에 닿고 목은 말랐다.
개버드나무 아래서 처녀 하나가 빨래를 하는데 그 옆에 바가지가 놓인 것을
보고 염치를 돌아볼 사이가 없이 물을 한 바가지 떠달라고 청하였다. 그 처녀는
헐떡거리는 나그네를 한번 흘끗 돌아보더니 바가지에 물을 떠서 한 손이 들고
한 손으로 머리 위에 늘어진 버들가지에서 잎사귀를 따서 물바가지에 띄운 뒤에
외면하여 바가지 든 팔을 내어미었다.
이교리가 처음에는 버들잎 띄운 것을 괴상히 생각할 여가도 없이 덥석 받아서
버들잎을 불어가며 물을 다 마시고 바가지를 도로 줄 때, 처녀의 얼굴을 잠깐
보니 달덩이 같은 얼굴이 복성스럽기도 하거니와 태도가 의젓하여 재상가의 딸
이나 다름이 없다. 이교리는 언덕 위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왜 물바가지에 버
들잎을 띄워 줄까?’ 처녀의 의사를 추측하여 생각하며 처녀의 곁태도를 바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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