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피장편 7

3학년2반 | 2022.01.02 07:49:54 댓글: 0 조회: 728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39058
  제 7장 분산
  1
  봉학이와 유복이가 바깥방으로  나왔다. 갖바치가 “거기 들어앉아라.  꺽정이
도 왔고 하니 너희들에게 이를 말이 있다.”하고  전과 같이 세 동무로 몰려다니
며 장난치지  말라고 일렀다.“지금 열육칠  세씩 된 너희들이  함께 뭉쳐다니며 
활을 쏜다,뼘창을 던진다,또는 칼을  휘드른다 하면 남이 장난으로 보지 않고 역
모한다고 고변할는지 누가  아니? 고변을 당하는 날은 여간  큰일이 아니다.”하
고 갖바치가 말한 뒤에 심의가  그 뒤를 이어서 “큰일이고말고 만일 고변을 만
나면 역적 괴수는 여기 있다.”하고 갖바치를  가르키며 허하 웃다가 그치고“너
희들은 모를라만 병자년에  동몽옥이란 옥사가 있었다. 이 옥사가 다른  것이 아
니라 여남은 살씩 먹은 아이들이 남산에 올라가서 웃옷을 벗어서 기라고 만들고 
나뭇가지를 꺽어서  병장기라고 들고서 장난으로 습진  하는 것을 역적모의라고 
고변한 놈이 있어서 입에 젖내나는 아이들을 항쇄족쇄로 금부에 잡아 가두고 나
라에서 추심까지  하게 된 일이다. 여러  아이들 중에 남존 명가의  아들 손자가 
많이 섞이었는데 그 중에도 더욱이  정의정의 손자 옥수 같은 귀동자가 끼여 있
어서 일이 쉽사리 변백  되었지만 잘못되었더라면 철없는 아이들이 훌륭하게 역
적이 될 뻔하였다. 세상 인심이  살얼음판이다.조심들 새라.”하고 갖바치를 가르
키며“환갑 지난 늙은이를 금부 귀신 만들어 줄라.”하고 다시 허허 웃었다.
  그 뒤  어느 날 꺽정이가 구  동무와 같이 훈련원에 기사쏘는  구경을 갔었다. 
구경꾼이 둘러섰는 중에  세 아이가 뒷전에 섰다가  잘 보이지 아니하여 앞으로 
나서려고 틈을 벌리었다.  앞에 섰던 사람이 “이거 왜  이러느냐?”하고 돌아보
는 것을  꺽정이가 제잡담하고 그사라을 잡아제치고  봉학이와 유복이를 데리고 
앞으로 나섰다.  그사람이 분하였다.“이놈의  애녀석이!”하고 꺽정이의  머리를 
끄들렀다.꺽정이가 그 사람의 손을 쥐고 돌아서서  한번 떠다밀었더니 그 사람은 
고사하고 그 사람  뒤에 겹겹이 섰던 구경꾼이 장기 튀김으로  자빠졌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쌈났다!” 하고 소리지르며 모여들고, 멀리 있던 사람들은 “여
편네가 아이 났다!” 하고 외치며  쫓아왔다. 꺽정이가 두 동무더러 “구경 고만
두고 가자.” 하고  여러 사람의 틈을 헤치고 나와서 동소문  안으로 돌아오는데 
뒤밟는 포교가  따라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날 저녁때  포교들이 갖바치의 
집을 에워싸고 들어와서  꺽정이를 잡아가는데, 꺽정이가 항거하려고  하는 것을 
갖바치가 “이애  지각없이 굴지 마라.  죄없는 바에야 잡혀가더라도  곧 나오게 
될 것이다” 하고 일러서 못하게 하고 꺽정이가 붙들려나갈 때에 뒤를 따라나오
며 “온순한 것이 제일이다. 명심해라.”하고 다시 일렀다.
  꺽정이가 잡힌  뒤에 봉학이와 유복이도  잡히었다. 세 아이가  함께 포정으로 
가게 되었다. 그날 밤에 심의가 갖바치를 보고  세 아이의 일을 걱정하닌 갖바치
가 “걱정이오 가만히 내버려  두면 그 불똥이 우리에게 까지 튀어올 모양이오?
” 하고 말하였다 “청길을 찾아  청질이나 해보지.”“좋은 청길이 생각나시오?
” “글쎄”하고 심의는 고개를  한참 비틀고 앉았더니 “형조판서 윤임의 집에 
드나드는 화초장이를  친하니 그 사람을 놓고  윤임에게 청해 볼까?” “그만한 
길이면 될 것 같소.” “나 혼자 가기는 싫으니 둘이 동행해 보지.” “아무리나 
합시다.”하고 갖바치가 대답한  뒤에 심의가 곧 가자고 말하여 두  사람은 그날 
밤에 화초장이 집을 찾아갔었다 화초장이가 윤판서를  보고 말하는 동안이 있고, 
또 윤판서가 포청에  기별하는 동안이 있어서 꺽정이와  두 동무아이는 오륙 일 
동안 포청에서 고초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2
  훈련원에서 자빠지던 구경꾼 틈에 포도청 부장의  외삼촌이 끼였다. 부장의 외
삼촌이 시골 한량으로 활순이나 쏘아본 사람이라 부장 생질을 데리고 나서 “기
사란 것이 과녁을 뒤로 돌아보며  쏘아야지 앞으로 나가며 쏘면 좀처럼 맞지 않
는 것이야.”하고 기사 쏘는  법도 아는 체하고 “과거 보일 때는  이십 보에 사
중을 해야 뽑는다니까 어렵지그려. 사중이 어디 쉬운가.”하고 과거의 어려군 것
도 탄식하던 중에 앞에 섰던  사람이 넘어지며 따라서 뒤로 자빠지게 되어서 갓
을 부수고 옷을 짓밟히고 일시 졸경을 단단히 치렀었다.
  그 부장은 외삼촌이 의외에  봉변한 것을 분하게 생각하여 꺽정이와 봉학이와 
유복이를 잡아온 뒤에 포도군사들과 통을 짜고 아이 도적으로 몰아서 포도청 북
간에 가두게 하였다.  세 아이가 하나는 천하  장사요, 하나는 활을 잘  쏘고, 또 
하나는 창을 잘 쓴다는 것을  염탐하여 들은 뒤에 그 부장은 세 아이를 각각 잡
아 들이어 문초를 받았다. 첫번 차례에 유복이가  걸리었다.“너 이놈! 창을 쓴다
니 창 배운 뜻은 무엇이냐?” “아버지 원수  갚을 랍니다.” “아비 원수? 무슨 
원수냐?” “남의 무고에  원통한 죽음을 했습니다.”“무고? 무고라면  구경 죽
기는 나랏법에 죽은  것이로구나. 무고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나랏법에 죽
은 네 아비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역적질할 생각이란 말이냐?” “역적질이란 
석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이놈  잔소리 마라! 어린 놈이 그런 생각을 
가질 때는 가르친 사람이 있겠구나. 가르친 사람이 누구인가 대어라.” “무엇을 
누가 가르쳤단 말씀입니까? 아버지가 원통하게 죽은것은 어머니가 가르쳐 준 것
익 뼘창 던지는 것은  선생 없이 나 혼자 배운 것입니다.”  “어린 놈이 겁없이 
대답하는 것이 역적질이라도 족히 할 놈이다.”  고지식한 유복이는 작은 곤장이
나마 십여 도를 맞고 끌려들어가고 다음 차례에 봉학이가 끌려나왔다.
  “너 이놈! 역적질할 생각으로 활을 배웠지?” “활을 잘  배우면 선달이 되어
가지고 나중에  부장이 되고 위장이  된다고는 말합니다만, 역적이  된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너는  원수가 없느냐?”“원수는 무슨  원수예요? 외할머니
가 항상 말이  가난이 원수라고 하니까 가난을 저의 원수라고나  말할까요.” 약
은 봉학이는 대답을 약게 하여 포도군사에게  볼퉁이는 쥐어박혔지만, 곤장은 맞
지 아니하고 들어가고  맨 끝 차례에 꺽정이가 나왔다.  “너 이놈! 힘이 세다고 
역적질할 생각을 가졌다지?” “역적질이오? 할 생각 있지요.” “이놈 보아, 죽
일 놈 같으니!” “내가 남  죽일 생각을 하니까 남도 나 죽일 생각을 하겠지요.
” “이놈, 네가  봉학이와 유복이를 꾀어서 활을 가르치고  창을 가르쳤구나?” 
“저희들이 좋아서 배운 것이지  내가 꾀인 것은 아니오.” “이놈, 네가 역적질
을 할 작정이면 봉학이  활과 유복이 창을 써먹을 생각이 있겠구나?” “그럴는
지 모르지요.”  “역적질할 것을  누가 가르치더냐?”“가르치다니? 내가  남을 
가르칠 작정이오.”“어느 때쯤 일을 내려고 했느냐?” “일을  내기 좋은 때 내
려고 했지요.” “누구를  추대할 생각이 있었더냐?” “추대가  무어요?” “임
금으로 세우려는 것  말이다.” “임금을 없이 하려는 사람이 다시  세운단 말이
오?” “임금 노릇할 사람은  작정이 없었단 말이냐?” “임금이 소용들 있다면 
나는 못할까요.”
  부장, 군사 할 것 없이  꺽정이의 무식한 말에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꺽정
이를 칼을 씌우고 착고를 채우고 하여 다시  내려 가두고, 문초받은 것을 포장에
게 올리었다. 포장이 일변 세 아이를 역적  죄인으로 몰아서 남간으로 옮기어 가
두고, 일변 위에 주달하려고 할 때에 윤판서의 청편지가 왔었다. 판서도 판서 나
름이지 치자면 윤판서는  임금의 처남이라 그 청편지를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포장이 세 아이의 문초받은 것을 가지고 윤판서를 가보고 “역적질할 생각이 있
었다고 승복까지 한 것을  어떻게 하오리까?” 하고 물으니 윤판서가 “어린 놈
들이 역적질이란 다 무어냐?  그까짓 것들을 역적이라고 떠들어야 봉훈을 할 터
인가 무어? 후일  징계하기 위해서 매개나 때려 내쫓는 것이  좋지.” 하고 말하
였다. 포장이 ‘역모라고 떠들기는 일이 우스울 뿐  아니라 윤판서 말을 들어 두
는 것이 장랫길이  좋겠다.’ 하고 생각하여 포정으로 돌아와서 세  아이를 잡아
내어 중곤을 쳐서 내쫓았다. 
  3
  꺽정이가 죄없이 고초를  받게 되며 공연한 구설까지 듣게 되었었다.  몸져 누
운 봉학이 외조모와  징징 울고 다니는 유복이  어머니가 모두 꺽정이를 탓하고 
원망하였었다. 애가 타는 중에 심정이 사나워하던  섭섭이가 꺽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첫새 “봉학이와 유복이도 나왔겠지?” 하고 물었
다. 꺽정이가 안방 아랫목에 편히 누운 뒤에 섭섭이가 앞에 와서 앉았다. “네가 
고초받을 것을 생각하고 뼈가 아픈 중에 남의 구설이 듣기 싫어서 속이 상해 죽
을 뻔했다.” “구설은  무슨 구설이오.” “봉학이 할머니하며 유복이 어머니가 
네 원망을 여간  했다더냐.” “나 언망할 것이 무어 있소?”  “모두가 너 때문
이라고.” “오죽 못생겨야 남을 원망하겠소.  고만두오.” 하고 꺽정이는 누이의 
이야기를 막더니 한참  있다가 “바른 대로 말이지, 이번에 선생님이  항거를 말
라고 당부하신 까닭에  많이 참기도 하였지만 봉학이  유복이가 없고 나 혼자만 
같으면 벌써 활개쳐 가며  도망했어. 착고니 칼이니 그까짓 것 소용있소. 그러나 
그것들을 둘씩이나 달고서는 포청을  벗어져 나온대도 사대문 밖을 나가기 전에 
다시 잡힐  것 같습디다. 그래서 끝까지  가서 어떻게든지 할 작정으로  까짓 것 
참고 있었소.” 하고 이야기하니 섭섭이가 
  “그러니 내가 봉학이나  유복이를 원망해야 할 것 아니야.” 하고  웃어서 꺽
정이도 따라 웃었다.  그 뒤에 봉학이 외조모는 봉학이를 갖바치의  집에도 가지 
못하게 금하고, 유복이  어머니는 유복이에게 꺽정이를 따라다니지  말라고 일렀
다. 그러나 두 아이는 듣지 아니하고 갖바치의  집에 와서 꺽정이와 같이 붙어다
니었다. 봉학이 외조모가 봉학이를 놓고 으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나중에는 
“하미의 말을  말같이 듣지 아니하니 애써  기른 보람이 없다. 내가  죽어 보지 
않으면 고만이다.”  하고 사설을 섞어 야단까지  쳤지만, 봉학이는 꾀꾀로 틈을 
타서 꺽정이를 찾아왔다.  봉학이 외조모에게는 이것이 한걱정이었다. 닭의 새끼
가 아닌 바에 발목을  잡아맬 수도 없고, 생각다 못하여 멀리  떨어져 살 작정으
로 동촌 구석에서 서문 밖 무악재 밑으로  집을 이사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허사
이었다. 인제는 자주  쫓아다니지 못하려니 생각한 것도 며칠 동안에  지나지 못
하였다. 모화관 한량들 활 쏘는 것을 구경간다고  하던 봉학이가 혜화문 안에 와
서 있는 것도  보았고, 또 봉학이의 뒤를 밟아가다가 꺽정이와  유복이가 중간에 
장맞이하는 것도 보았다.
  그리하여 봉학이  외조모가 얼마 동안은 속으로는  딴생각을 먹으면서 겉으로 
모른 체하고 내버려두었다. 친한 진관 중의 전장이  교하 낙하원 근처에 있는 것
을 알고 그  전장을 의지삼아 이사할 작정으로  봉학이 외조모가 졸라서 마침내 
그 중의  허락을 얻었다. 봉학이가 다시  교하로 이사하게 되는 것을  알고 저는 
아니 가겠다고 말하다가 외조모와 사이에 일장  풍파만 일으키고, 구경은 외조모
를 따라가게 되어서 떠나던 날  식전에 혜화문 안에 와서 면면히 하직하고 나가
는데 뒤따라나오는 꺽정이와 유복이를 보고  “언니, 들어가시오.” “유복아, 들
어가거라.” 하고 눈물을  뿌리면서 두 손으로 꺽정이와 유복이의 손을  갈라 잡
고 꺽정이를 향하여  “우리가 이 담에 우리 집을  가지고 살 때 되거든 한곳에 
모여서 떠나지 말고 삽시다.” 하고 작별하였다. 봉학이가 떠나간 뒤 한 달이 채 
못 되어서 유복  어머니도 아들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다.  시골은 고향
인 강령이 아니요  배천이었다. 유복 어머니는 원수 같은 고향에를  가기 싫어서 
서울서 행랑살이를 하고  지내던 중인데, 고향에 살던 형님의 남편이  배천 땅으
로 이사를 나와서  그 형님을 의지하고 내려가게 된 것이었다.  꺽정이가 봉학이
와 유복이를 차례로 떠나보낸 뒤에는 짝 잃은  기러기가 되었다. 서울 있기가 재
미 없으면 양주로 가고, 양주  있기가 재미 없으면 서울로 왔다. 이럭저럭 한 반 
년 지난 뒤에  서울서 다시 맘에 맞는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되어서 양주에 별로 
가지 않고 서울에 많이 있게 되었다.
  4
  꺽정이의 비위에  맞는 사람이 누구였을까.  그 사람은 별다를  사람이 아니라 
김덕순이었다. 김덕순이가  본래 탈속한 사람이  환란을 겪은 뒤로  더욱이 속이 
서그러져서 양반의  티가 조금도 없었다.  갖바치의 집에서 꺽정이를  만나던 날 
첫인사가 “촌수를 따지면  내가 너의 아재비다.” 하고 그 뒤에  “우리 누님이 
가끔 너의 말씀을 하며 상면하고 싶다고 하더라.  언제든지 한번 나하고 같이 창
녕을 가자.” 하고 말하는 품이 참말 족척간에 말하는 것과 같았다. 첫째는 덕순
이가 훌륭한 양반  사람으로 양반의 티를 부리지 아니하고, 그  다음에는 덕순이
가 고리삭은 글  이야기를 좋아하지 아니하고, 또 그 다음에는  덕순이가 힘꼴을 
쓰는 까닭에 힘겨룸을  할 만하여 가지가지 모두  꺽정이의 비위에 맞았던 것이
다. 그때 꺽정이의 나이 덕순이보다 배나 넘어 아래지만, 외자로 해라를 받는 외
에는 동무 쇠임직하게 대접하며 덕순이와 서로 상종하였다.
  덕순이가 십이삼 년  동안은 창녕 이판서의 집에서  그 부인의 동생으로 지내
고, 남곤이가 죽고 심정이까지 죽은 뒤에는 그  아버지의 묘하인 충주 땅에 와서 
형님 덕수와 같이  그 어머니를 봉양하고 지내되, 오히려 성명을  숨기던 사람이 
갑자기 서울로 올라와서 본성명을 내놓고 지내게 된 사정을 명백히 알게 하려니 
자연히 조젖의 전후 형편을 이야기하여야 하겠고,  조정 이야기에는 궁중 형편까
지 겸하여 이야기할 것이 있으므로 중간 이야기가 조금 장황하다.
  김안로가 풍덕에서 귀양살이할 때는 사화 중 인물의 죄없는 것을 주장하던 자
가 조정에 들어와서 정권을 잡은 뒤로는 그 주장을 입밖에 내지 아니할 뿐이 아
니라, 조정에서 일어나는 공론까지 친근한 대신을 시켜 꺾어버리게 하였다. 김안
로가 영수가 되고 허항, 채무택이 같은 인물이  동류가 되어 일국의 정치를 좌우
하던 판이라, 안로가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 두번 말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안
로의 비위를  거스르는 사람이라면 어느모로든지 옥사에  걸리어서 죽거나 귀양 
가는 것을 면치 못하였다. 안로가 권을 잡은 뒤로  오륙 년 동안에 해마다 몇 번
씩 옥사가 일어나서 왕시 지친으로부터 여염 남자까지 죽고 귀양간 사람이 얼마
인지 알 수 없었다.
  중전의 형이 되는  윤원로, 윤원형 형제가 동궁이 저희들의 생질이  아닌 까닭
으로 동궁에 대하여  항상 불리한 생각을 품던  터에 중전이 경원대군을 탄생한 
뒤로는 더욱이 대군을  장래 임금으로 받들 생각이  있어서 동궁이 외삼촌 되는 
윤임과는 장차 맞서게 될 조짐이 있었다. 윤원로가  그 아우 원형과 의론하고 세
력 좋은 김안로를 저희 편으로 끌려고 원로의 딸을 안로의 손자에게로 통혼하였
더니 안로는 동궁을  보호한다고 떠들고 나선 사람일  뿐 아니라 당시 형조판서 
윤임과 사이가 좋은 터이라 두말 아니하고 그 혼인을 거절하였다.
  김안로는 그때 벼슬이 좌의정이라  조만한 일이 아니면 별로 출입을 아니하는 
터인데, 윤판서를 보고 윤가의 통혼 거절한  것을 이야기하려고 윤판서를 찾아왔
다. 그때 장의동 윤판서는 마을에서 나와서 화초  잘 기르는 장원서 사령 박수경
과 화초장이 홍인서를 데리고 화초를 가꾸다가 대신이 왔다는 선통을 듣고 바삐 
의관을 정제하고 나와서  공손히 맞아들이었다. 좌정한 뒤에  김정승이 “요사이 
동궁 제절이  어떠하시답디까?” 하고 물으니 윤판서가  “어제 문후하였습니다. 
제절은 별로  못지 않으십디다.” 하고  대답하고 나서 “그러지  않아도 대감께 
말씀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하고 자리를 가까이 옮겨앉았다. “망상스러
운 윤원로 형제가 동궁을 천치라고 훼방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요만, 요사이는 
동궁의 수한이 단축하시라고  사람을 보내서 산천기도를 한답디다.  그것이 원로 
형제의 짓이면 오히려도 모르겠으나, 내전에서 시키시는  일이라니 이런 변이 어
디 있겠습니까?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씀이오니까?” 김정승이 이 말을 듣더
니 그 대답은 접어놓고 “원로가 저의 딸을 집의 큰손자놈과 혼인하자고 통혼하
데그려, 깜냥없는 것이.” 하고  말한 뒤에 단정히 앉았던 자리를 움직이어 입을 
윤판서의 귀에 가까이 대고 “여희가 있고는 신생이 살기 어려울 것 아니오? 대
감, 생각해 보시오.” 하고 다시 단정하게 물러앉았다.
  5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하고 재우쳐 묻는 것은 주인  윤판서이고 “폐위.
” 하고 간단히 대답하는 것은 김의정이다. “어렵지  않습니까?” “될 수 있지
요.” “글쎄요.” 하고 윤판서가 고개를  비트니, 김의정이 나직나직하나 힘지어 
들리는 말소리로
  “될 수 있다뿐이오. 저정에서 들고일어설 만한  실덕만 잡아내면 어려울 것도 
없소. 신씨를 폐출할 때  상감이 고집 세우시지 못하던 것을 생각해 보시오그려.
” 하고 한동안  말을 그치었다가 잠깐 빙그레  웃고서 “중전이 맹량한 양반이
야. 나를 끌어보려고 은근히 애를 쓰겠지. 자기 소생 따님 중에 제일 똑똑하다는 
경현공주를 내작은자식에게  하가하려고 형제가 나가서 한집  며느리 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까지 말씀하ㄷ라지. 나는 못 들은 체해버렸소. 중전이 소료가 틀
려서 속상했을 것이오. 이번에 윤원로가 큰자식과  사돈하잔다는 것을 내가 못한
다고 막았으니까 이것도 중전은 재미 없이 생각할  것이오. 이와 같이 중전 편에
서 내게 붙이는 것을 내가  차버리다시피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 동방의 
성군이 되실 동궁을 조금이라도 저버리지 아니하려는  까닭이도. 사실로 지금 조
정에 진심으로 동궁을 보호하려는  사람이 대감하고 나밖에 또 누가 있소? 우리 
두 사람이 죽을  힘을 다해서라도 동궁께 일이 없도록 보호하여  나갑시다.” 하
고 나직이 한숨을  지었다. 윤판서는 김의정의 말을 듣고 일변으로  갸륵하게 생
각하며, 일변으로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김의정이 돌아간 뒤에 윤판서가 한참 동안 혼자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다가 갑
갑증이 나든지 화초밭으로  나와서 국화분을 돌아보며 “곁가지를  다쳤구나. 수
경이와 인서는 다 갔느냐?” 하고 옆에 따라나온 상노를 보고 물으니 그 상노가 
“간다 말씀  못 들었습니다. 하인청에 나가  보겠습니다.” 하고 밖으로 나가서 
얼마 아니 있다가 두  사람과 같이 들어왔다. “아니들 갔구나.” 화초장이 홍인
서가 앞으로 나서며  “오늘 대감께 특별히 청할 말씀이 있는데요.”  하고 허허 
웃으니 윤판서가 인서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무슨 청?  요전과 같이 포청에 갇
힌 사람  빼놓아 달라는 청인가?” “요전은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을 포청에서 
중대한 죄범같이 다루는  것이 일이 우습기에 소인이  대감께 와서 말씀을 사뢸 
뿐이었습지요, 청이  무슨 청입니까?” “저자식  보아 포장에게  편지해 달라던 
사람은 누구인고?”  “하여튼지 그것이 소인에게는 긴청이  아니었습니다. 그러
하온데 이번은 소인에게  긴한 일이올시다.” “무슨 긴한 일인가?  어디 들어보
자. 말해라.” “말씀합지요.  다른 청이 아니오라 소인이 홀아비  살림에 멀미가 
났습니다. 대감께서 장가 좀 들여주십시오.”
  이렇게 청하는 홍인서는 윤판서집 계집종 중에 눈에 드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
다. 윤판서가 호반의 풍도로 허허허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하였다. “어렵지 않은 
청이다. 장가를  어떻게 들여줄까? 색시  장가를 들여줄까? 기생 장가를  들여줄
까?” “색시고 기생이고  할 것 없이 댁 종 하나만  주시면 원이 없겠습니다.” 
“그것은 더욱 쉽다. 내 집안에 있는 아이종 어른종  할 것 없이 모두 불러낼 것
이니 네 맘대로 그 중에서 하나를 골라보아라.”  하고 상노를 보고 “너 마님께 
들어가서 아이종들과 서방  없는 어른종들을 모다 불러  내보내시라고 말씀해라. 
내외 낀 것 외에 하나라도 빠지고 안나오는  년이 있으면 물볼기다.” 하고 다시 
허허 웃고 말이 없이 섰는 박수경이를 돌아보며  말을 붙였다. “너는 생각이 없
니? 너도  하나 골라보지.” “싫소이다.  있는 것도 주체궂어  못 살겠소이다.” 
“첩으로 하나  골라보아라. 먹을 것은 내가  대어 주지.” “첩도  싫소이다. 그 
속에서 자식새끼가 나면 댁의 씨종이나 늘려 드리게요.” 
  이때 안에서 어른종  아이종이 떼를 지어 몰려나왔다. 넓은 사람  마당이 그들
먹하도록 수가 많았다. 키 크고 몸이 가냘픈 것도 있고, 키 짧고 몸이 똥똥한 것
도 있으며, 수줍어 고개를 들지 못하는 계집아이도 있고, 멋있게 몸을 놀리는 낫
살 먹은 계집도 있었다. 윤판서가 상노를 바라보고  “인제 다들 나왔느냐?” 묻
고 나서 홍인서를 돌아보며
“어디 골라보아라.” 하고  말하여 인서가 이리 저리 기웃하다가 손을  들어 한 
사람을 가리켰다.
  6
  홍인서가 고른 계집은 나이 근 삼십한 어른종인데 대가의 맏며느리와 같이 복
성스러웠다. 전갈  잘하기로 불리는 계집이라  각 집에 전갈  다니느라고 드나들 
때 인서의  눈에 뜨이어서 복성스러운  얼굴이 맘에 들었던  것이었다. 윤판서가 
인서를 보고 “우리 집 전갈꾼을뽑아 가려느냐?” 하고 웃으니 인서는 “황송합
니다.” 하고 웃었다. 이때 하인 하나가 밖에서 들어와서 상노를 불러 가지고 무
어라고 말하는데, 윤판서가  “무어냐?” 하고 물으니 상노가 주인  대감의 앞으
로 가까이  나와서 “임동지가 밖에 오셨답니다.”  하고 하인의 말을 옮기었다. 
윤판서가 계집 하인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홍인서에게 “혼인이 급하거든 불복
일로 성혼하자.” 말하고 박수경이를 향하여 “인서 혼인날 술 먹으러 오너라.” 
말하고 그 다음에야  상노를 보고 “임동지를 들어 오래라.” 하고  말하며 사랑
으로 올라갔다. 임동지는 윤 판서와 한 동리에 사는 임준이란 사람인데, 윤 판서 
집에 종종 오는  터이라 대접받는 손님이 아니었다. 윤판서가 비슷이  앉아서 “
어서 오시오.” 하고  거만하게 말하니 임동지는 장지 밖에 와서  꿇어앉으며 “
날 사이 문안 어떱사오니까?” 하고 공손히 인사하였다. “참, 내가 물어볼 말이 
있어. 자제가  임백령이와 친하다지?” “같은 홍당지들이니까  면분은 있겠습지
요만, 상종은 없는갑디다.” “자제  같은 인물이 임백령 문하에 다닐 리가 없는
데 누가 그러드군. 그런데 자제가 내게는 영 아니 와.” “자식이라도 어떻게 만
만치 않은지  모릅니다. 자주 와서 문후하라고  이릅니다만, 조관 명색으로 대관 
문하에 자주 드나드는  것이 좋지 못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려.”  “자제가 기
개가 놀랍다는 말은 들었지.  자네 같은 사람이 무서워. 내가 조그마치라도 조정
에 득죄나 하면 영감하고  친하다고 용서할 리 없을 것이야.” “모릅니다. 그럴 
만한 일이 있다면  대감께 까지 범하려고 할는지.  저의 아비라도  용서할 것 같
지 않아  보이니까요. 입이 너무 발라  걱정입니다.” “영감은 임백령에게 더러 
가시오?” “일년 일차 세배를 갈 뿐입니다.” “영감께 말이지, 내가 첩을 얻을 
때 임백령이가 해괴망측한  짓을 하더니 지금도 그 맘을 끊지  못하는 모양이야. 
가끔 내 첩에게 먹을 것도 보내지 한다지. 계집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하
인이 문에 들어서지도  못하게 쫓아버리고 하니 저만  망신이지.”하고 윤판서가 
우스꽝스럽다는 듯이 코웃음을 웃었다. 
  윤판서의 첩은 당대 일색으로 유명한 평양  기생 옥매향이니, 처음에 옥매향이 
하나 놓고 윤임,  임백령 두 사람이 서로  내 것을 만들려고 사단을 부리었는데, 
옥매향이는 윤판서의 세력 좋은 것과 임 참판의 다정한 것 중 어느 것을 골라잡
을지 몰라 하다가  구경 세력 좋은 데로  쏠리어서 윤판서의 첩으로 들어앉았으
나, 종시 임 참판의 다정한 것을 잊지 못하여  임 참판과 연신을 끊지 않고 윤판
서가 공고로 집에 나오지 못하는 것을 미리 알게 되면 심복 하인 모린이를 보내
서 임 참판을 맞아오는 일까지 있었다. 
  임 참판이 도포에 갓만 쓰는  선비 모양을 차리거나 소매 없는 옷에 패랭이를 
쓰는 천인 복색을  하고 남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밤중  새벽으로 드나들지마는, 
말이 모란이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여도 소문이 나기 쉬운 일이라 임백령이가 
옥매향의 집 뒷문 출입을 한다는 말이 한 입 거쳐 두 입 건너 자연히 아는 사람
이 많아진 터이다. 임동지도 이 소문을 들은  사람인 까닭에 윤판서의 말을 듣고 
‘모르는 것이 부처님이다.’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임백령의  행사가 괴악
해요.” 하고 얼쑹덜쑹하게 대답하였다. 윤 판서는 그 대답의 뜻을 다 알아 듣지
도 못하면서 “괴악하고말고.” 하고 임동지의 말에  비위가 맞는 모양으로 말하
고 조금 동안을 띄어서  “내가 저를 미워하려니 생각하고 윤원형이와 상종하면
서 나를 해낼 공론을 한다지.  내가 그만 일로 저를 미워할 사람도 아니지만, 저
희들이 공론한다고 쉽사리 넘어백힐 사람도 아니야.” 하고 나중에 “영감, 그렇
지 않소?” 하고 임동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임동지는 “그렇습니다.” 하고 
맞장구를 치고 말머리를  고치어서 “여보십시오, 대감. 실상 생각하면 소실이라
고 다 그럴 리는 없지요만, 소실은 아물래도  정실과 달라서 모든 일에 믿음성이 
적습니다.” 하고 말하자, 윤 판서는 “암, 다르지.” 하고 헙헙하게 대답하며 임
동지의 말은 별로 새겨듣지도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7
  며칠 뒤 저녁때 윤임이가  김안로를 찾아왔더니 허항과 채무택이가 먼저 와서 
자리에 있었다. 각기 인사를  마친 뒤에 주인 손 네 사람이  조정 이야기를 시작
하여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는 중에 젊은 조신의 인물 이야기가 나서 윤임이는 
임동지의 아들 임형수가  인물이 잘났다고 칭찬하고, 채무택이는  송희규란 사람
이 인물은 맹랑한 모양이나 외모가 잔열하다고  비웃어 말하고, 김안로는 유희춘
이란 사람이 총명도 있고 성질도 온순하나 사람이 정갈치 못하다고 폄하여 말하
였다. 허항이가 김안로의 말 뒤를 따라서 “유춘의  정갈치 못한 것은 말도 마십
시오. 먼지가 켜로  앉은 갓을 쓰고 때천지가  된 옷을 입고 출입하는 꼴이라니, 
더러워 볼 수가 없을  지경이지요.”  하고 깔깔 웃으니 채무택이도  또 뒤를 이
어서 “그 친구의  웃옷에는 언제든지 이가 슬슬 기어 다닌답니다  그려.” 하고 
깔깔 웃었다. 윤임이가  “그런 사람은 말할 것이 없지만 주인  대감은 정갈하신 
것이  너무 심하시어.” 하고 허항과  채무택이를 돌아보니 허항이는 “그러시다
고도 할 수 있지요.  입으시는 옷에 금이 한 번만 나면 벗으실 때까지  꼭 그 금
뿐이니까요.”하고 김안로의 눈치를 살피고  채무택이는 “면대해서 말씀 여쭙기
는 좀 황송하지만, 옥골선풍으로 단정하게 앉으신  것이 재상보다도 신선 같으십
니다.”하고 윤임이를 가르키며 “내가 이 대감과  조용히 의논할 말씀이 있으니 
자리들을 좀 피하여 주시오.” 하고 말하여  허항과 채무택이는 다같이 무료하여 
하면서 “물러가겠습니다.” “저녁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두 사람이 함
께 일어섰다. 그 뒤에 김안로가 윤임의 앉은  자리를 가까이 옮기게 하고 “전날 
말씀하던 일을 집에  와서 생각해 보았소. 동궁이 촉수하시라고 산천  기도를 시
킨다는 것이 벌써 종사에 대한 큰 죄악이라 구태여 다른 실덕을 물을 것이 없지 
않겠소? 산천 기도 다니는 것들을 붙잡기만 하면 그들의 입에서 원로 형제의 말
이 나올 것이고,  원로의 형제가 잡혀 들기만  하면 그 일은 여반장이 아니겠소. 
그래서 기도 다니는  것들을 기찰하여 잡으라고 비밀히 포청에 일러  두었소. 하
나라도 붙잡히기만 하면 그 날로  곧 일을 바로잡을 작정이니 대감도 그리 알아
두시오.”
  윤임이는 이 말을  듣고 아무 대답이 없이 고개만 끄덕이었다.  그럭저럭 하는 
동안에 해가 저물었다. 윤임이가 일후에 다시 올  것을 말하고 일어서려 하니 감
안로가 “별로  일이 없으시거든 내게서  저녁을 자시고 이야기나  더 합시다.” 
하고 만류하였다. 윤임이가 “오늘 밤에 조그마한 일이 있습니다.” 하고 웃으니 
김안로는 그 웃는 것을 보고 괴상히 생각하여 “무슨 일이오?” 하고 묻는데 윤
임이가 빙글빙글하면서 “종년 하나  시집을 보내는데 오늘 밤에 봉채를 받습니
다.” 하고  대답하니 “대감은 별일을 다  총찰하는구려.” 하고 김안로도 역시 
웃었다. 
  그 날이 윤판서의 집 종이 홍인서의 봉채를  받는 날이었다. 윤판서가 모든 절
차를 차려주어서 법제로  혼인을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함진아비가 지고  온 함
을 윤판서가 손수 열었다. 이것이 남 의집  종으로는 꿈에도 받아보지 못할 호강
이었다. 그날  밤 봉채뿐이 아니라 이튿날  초례까지도 남의 집 종의  혼인 같지 
아니하였다. 첫째는 윤판서가 홍인서를 사랑하는 까닭이지마는, 태반이 윤판서의 
실없는 장난이었다. 홍인서  내외가 초례를 마치고 윤판서 앞에 와서  인사 문안
을 드리니, 윤판서가  인서의 안해를 보고 “너는 오늘부터 댁에  드난할 것없이 
너의 남편을 따라가서  유자생녀하고 잘 살아라.” 하고 그 다음에  인서를 보고 
“인제는 네가 내 집 사위야.” 하고 빙글빙글 웃었다. 인서의 안해는 고개를 숙
이고 있을 뿐이고,  인서는 “황송합니다.” 하고 허리를 굽신굽신하였다.  윤 판
서는 인서의 혼인잔치를 선비집  자녀의 혼인잔치보다 낫게 차리고 문객들 이외
에 동리에 사는  임동지 같은 친구까지 청하여 대접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윤판
서의 집에는 큰사랑,  작은사랑, 수청방, 하인청 할 것 없이  모두 술상이 벌어지
게 되었다.
  8
  윤판서가 임동지 이외에 몇  사람을 데리고 술상 앞에서 고담준론을 시작하여 
그칠 줄을 모를  때에, 마침 형조 좌랑  정희등이 공사로 와서 보기를 청하였다. 
정좌랑은 성질이 강직하여  허물 있는 사람을 면박주기 잘 하고,  아무리 귀인이
라도 위인이 부정하면 사람 같지도  않게 보는 까닭으로 누구나 다 꺼리는 사람
이다. 그가 전에 상처하였을  때, 김안로가 사위를 삼고자 하여 통혼하였더니 통
혼하러 간 사람을 보고 말하기를 “일평생 다시 장가를 들지 아니할지언정 김씨
의 집 사위 노릇은  아니하겠다.” 하고 두 번 말 못하게  거절한 것이 김안로의 
미움을 사게 되어  삼사이랑의 좋은 벼슬을 다니지 못하고 공조.형조의  낭관 부
스러기로 돌게 된  것이었다. 윤판서가 정좌랑의 보잔다는 말을 듣고  눈살을 찌
푸리며 “술이 취해서  잠이 들었다고 말해라.”하고 하인에게  일러 내보냈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그 하인의 다시 들어오며, 그 뒤에 정좌랑이 따라왔다. 정좌랑
이 사랑 일각문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윤판서는 어찌할  줄 몰라 하다가 할 수 
없이 아랫목에 드러누워서  잠이 든 체하였다. 정좌랑이 방에 들어서서  좋지 않
는 기색으로 잠깐 아랫목을 내려다보더니  선뜻 술상 앞으로 와서 상을 들어 그 
자리에 메어쳤다. 놋그릇  소리가 요란하였다. 윤판서가 놀라 일어나며 “이것이 
웬일이야?” 하고 말하는데 어성이 높지 않을 수  없었다. 정좌랑이 “대감이 척
완중신으로 국사를 위하여  주소동동할 처지인데, 처지 불구하고  술잔 잡수시노
라고 마을에 나오시지 않는  것이 대감 생각에는 옳으신 일입니까? 그러고 아까 
일각문에 들어설 때 언뜻 본즉 앉으셨던 대감이 갑자기 누우시는 모양이니 공사
로 보이러 온 요속을 보지 않으시려고 거짓말하시는 것이 대감 생각에는 실체가 
아닙니까?”
  윤판서는 술에  취하고 무안에 취하여  얼굴이 주홍빚이 되었다.  흐르는 술과 
흩어진 안주를 청지기가 치운  뒤에 정좌랑이 꿇어앉아서 간단히 공사를 말하고 
총총히 일어서려고 하니,  윤판서가 무안한 것을 풀려고 “내가 술이  있으니 한
잔 자시고  가시오.” 하고 만류하였다. 정좌랑이  윤판서의 만류하는 말은 들은 
체 만체하고 “오늘 작죄가 적지 않으니  다음날 사과하겠습니다.” 하고 일어서 
나가니 윤판서는 다시 또 무안하였다. 윤판서가 무안본  끝에 화가 나서 술을 다
시 내오라고 하여 양에 겨운 술을 먹고 전후 부축하고 소실의 집에를 왔다. 
  옥매향이가 취한 윤판서를  맞아들이어 쥔 뒤에 일변 관망을 벗기고  대님, 허
리띠를 풀고, 일변 하인을 불러 새앙차를 달이게 하였다. 윤판서가 개개 풀린 눈
으로 옥매향의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옥매향이가  “처음 보시는 사람 같습니까?
”하고 방그레 웃으니 윤판서가 옥매향의 손목을  잡으며 “참말 이쁘다.” 하고 
옥매향의 손목을 놓지  않고 혼곤히 잠이 들었다. 옥매향이는 윤판서가  잠을 깰
까 하여 손목을 잡힌 채로 옆에 붙어앉았더니,  윤판서가 갑자기 한두 번 욕지기
를 하고  번고하기 시작하여 옥매향의  치마 앞이 흥건하게  되었다. 옥매향이가 
치마를 갈아 입고 양치물과 새앙차를 아이종 들리고 들어왔을 때 윤판서는 다시 
잠이 들기 시작하였다. “잠드셨세요? 양치질하시고 새앙차 좀 잡수시지요.”
  윤판서가 옥매향의 시중으로 간신히 머리를 들고 시늉으로 양치질하고 새앙차
를 마시었다. “웬 술을 그렇게 많이 잡수셨세요.” “무어 어째?” “술을 많이 
잡수셨단 말이에요. 동궁마마께옵서 술을 먹되 과히  먹지 말라고 하교하셔서 많
이 안 잡숫는다더니...?” “동궁이 어떠시어? 앞으로는 걱정없으시다. 중전이 며
칠 안가.”  “중전이 며칠 안 가시다니요?”  “김정승이.” “김정승이 어떻게 
하셔요?” “어, 어.” “네?  네?” 옥매향이는 윤판서의 취담을 다 들어보려고 
몸까지 흔들어 보았으나, 윤판서는 흔드는 손을 뿌리치고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9
  수일이 지난 뒤에  일이었다. 윤판서가 어명을 받들고 새로 천봉한  고양 희릉
에 봉심을 나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오게 되었었다. 그날 밤에  옥매항의 집에는 
앞대문과 안중문이 첩첩이  닫히고 아이종들은 모두 아랫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모린이는 혼자 분합마루에서  주안상을 차리었다. 얼마 뒤에  옥매향이 방안에는 
뒷문으로 출입하는  손님이 방 주인과  나란히 앉아서 술잔을  주고받고 하였다. 
“나는 더 못 먹어요.” “이것 한잔만.” 하고 사나이가 술잔을 들어 입가에 대
어 주었다. “못 먹겠어요.  정말이에요.” “한 모금이라도 마시어야지. 내 손이 
부끄럽지 않지야.”
  옥매향이가 맛보듯이 조금조금 마시어 한  잔 술을 거의 반이나 마신 뒤에 사
나이가 “아따, 고만.” 하고 술잔을 떼어 가며
“나머지는 내가  먹지.” 하고 소리가 나도록  잔을 빨아 말리었다. 옥매향이가 
“청실홍실 늘였나요?” 하고 빙그레 웃는데 얼굴에 술기운이 올라서 홍도화 한 
가지가 봄비에 젖은 것 같았다. 사나이가 “나도 술을 고만 먹을 터이다.” 하고 
말하여 술상을 치운 뒤에, 옥매향이가 일전에  주정받이한 것을 이야기하다가 말
끝에 윤판서의 취담을  이야기하였다. 사나이가 정신 나는 말을 들을  듯이 “그
래? 김정승이 어떻게  한다고?” 하고 채쳐 물으니  “고만이야.”하고 옥매향이
가 해해 웃었다.  “무슨 밀의가 있는 것이군.” “그것 알  수 있나요.” “취중
에 진정발이라니 까닭없는  취담이 아니야.” “공연한 이야기를 했구려.” “공
연은 왜 공연이야.”
  이튿날 첫새벽에 옥매향의 집에서  나가는 사나이는 임백령이었다. 임백령이가 
윤원형을 와서 보고  옥매향에게서 들은 말을 옮길 때에, 추측한  생각을 보태어
서 윤임이와 김안로가 동궁  보호를 자탁하고 중전의 죄목을 잡아서 폐위하려고 
계획한다고 말하고, 윤원형이가 자기 친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임백령의 말을 가
지고 공론할 때에 윤임이와 김안로가 동궁을 위하여 중전을 종사의 죄인으로 몰
아서 폐위하도록  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기회를 엿보는 중인데,  불일간 발단이 
될는지 모른다고 말하고, 중전의 지친으로 참판  벼슬을 다니는 윤안인이가 내전
에 승후하러 들어가서 친족들의 공론한 말을 중전께 말씀할 때에 중전이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면 일문이 멸망을 당한다고 공동하여 그날 저녁에 중전이 대전 앞
에서 울며불며 하소연을 하였다.
  임금이 중전의  하소연을 듣는 즉시로 윤판서를  패초하여 편전에서 인견하고 
첫마디 말씀에  “경이 중전을 폐하려고 꾀한다지?”  하고 노기 있는 음성으로 
하문하니 황겁한  모양으로 “그럴 법이  어데 있사오리까?” 하고  궁극하였다. 
“불 안 땐  굴뚝에 내 날 리 있을까? 나는  들으니 경이 김안로와 같이 발의한 
일이 있다는걸.”  “안로가 동궁 보호를  청탁하고 애매한 옥사를  일으킨 일이 
없지 않사온즉  이러한 부언이 안로로  인하여 나는 줄로  신은 생각하옵니다.” 
“안로 방자한 것이  목숨이 몇인고.” 하고 임금은 진노하여 김안로의  목을 당
장에 베어들이라고  전교를 내리고 싶었으나,  권세 잡은 재상을  함부로 처치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윤판서를  향하여 “내가 경은 믿는 터이나 안로는 괘씸
하니 처치할 도리를 생각하라.” 하고 말씀한 뒤에 윤판서를 물러나게 하였는데, 
윤판서의 등골에 찬땀이 차이었었다.
  임금이 중전의 말을 좇아서  김안로를 도모하라고 어필로 적어서 비밀히 윤안
인에게 내리었다. 윤안인이  밀지를 받은 뒤에 시임 대사헌 양연을  누차 찾아다
니다가 손이 없는 틈에 침방  안에서 만나서 조용히 어필 밀지를 보이고 김안로 
도모할 일을 부탁하니  양연이 말이 “이것이 여간 중대한 일이  아니오. 잘못하
다가는 신명을 보전치 못할  일이오.” 하고 고개를 비틀었다. “그 대신에 일이 
성공하는 날은 부귀공명이 소원대로 될 것 아니겠소.” “어디 해봅시다. 그러나 
급히 하려다가는 탈이 날 것이니 서서히  생각해서 합시다.” “위에서 하루라도 
급하기를 바라시는데요.” “가만히 계시오. 될 수  있소. 사오 일 후에 김안로가 
작은아들 혼인을 지낸다니,  그날 안로의 당이 몰려가서 없는 틈에  양사가 합계
하도록 일을 주선해 봅시다.” 하고 양연이는 윤안인과  서로 밀약을 한 후 흩어
졌다.
  10
  김안로의 집 혼인날이다.  식전부터 안손님, 바깥손님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점
심때에는 넓으나 넓은  집의 방방이 사람이 가득하였다. 큰사랑 마루  앞에 마루
와 느런히 부계를  매고 안로가 모대하고 나앉아서 금관자, 옥관자  손님을 한자
리에 모았었다. 잔칫상이 벌어져서 술을 권커니잣거니  하는 중에 김안로가 도야
지머리 장정승을 돌아보며 “궐내에서 이때까지 선온이 내리시지 아니하니 무슨 
일일까요?” 하고 물으니 장정승은  그 괴상한 면상을 앞으로 내밀며 “아니 내
리실 리 있소? 곧 내리시겠지.” 하고 대답하였다. 이날 이때까지는 김안로의 집 
조그만 생일잔치에도 궐내에서  어주가 나오던 터이라, 안로가  선온이 더딘것을 
괴상히 생각할 만하였다. 안로가 술 한잔을 마시고  안주를 집으려 할 때에 난데
없는 솔개 한 마리가 쏜쌀같이  내려와서 안로 머리 위의 사모를 움키다가 좌중
에서 “이놈!” “휘여!” 하고 소리들을 지르니까 솔개는 공중으로 날아가고 사
모는 자리위에 떨어졌다. 괴상한 일이다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좌중에서 수군수
군하는데, 채무택이가 일어서서  사모를 집어 안로를 주니 안로는 정신  빠진 사
람같이 사모를 받아 옆에 놓았다. 허항이가 이것을  보고 “왜 쓰시지 않고 놓으
십니까?” 하고  말한 뒤에야 다시 집어  쓰게 되었다. 이날  양연이는 대사간과 
의논하고 양사 간관을  중학 안에 모아놓고 “논핵할 사람이 있소.”  하고 미리 
준비하였던 계초를 내보이니 간관들  중에는 뒤가 좋지 못할까 의심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양연이가 “여러분,  염려 마시오. 내가 뜻을 받은 곳이 있소.” 하
고 안로와  및 그 당류를 논핵하는  합계를 위에 올리었더니, 위  아래에서 미리 
짜놓은 일이라 합계 한번에 안로와 및 그 당류를 각각 배소를 정하여 귀양 보내
되 당일로 압송하라는 처분을 묻게 되었다. 궐내가 수선수선하였다. 선전관이 금
위군사를 영솔하고 나가서 안로의 집을 둘러싸고  들어갔다. 잔치집이 불끈 뒤집
혔다. 하인들도 도망하고  문객들도 도망하고 손님들도 도망하였다. 도망하다 붙
잡히는 사람들은 꼭뒤를 잡히고 발길에 차이었다. 안팎에서 곡성이 일어났다. 안
로는 넋을 잃고  앉았고 허항·채무택이는 쥐구멍을 찾았다.  도야지머리는 대신
의 체모가 있는 터이라 선전관을 불러 앞에 세우고 “내 이름도 은명 중에 들었
는가?” 하고 물으니 선전관이  “대감 함자는 없소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도
야지머리가 그제는 군사를 시켜  장정승댁 하인을 부르라고 하여 탈것을 대령하
라 한 뒤에 안로를 돌아보고 “나는 가오.” 하고 일어서 나갔다. 허항이가 이것
을 보고 본을  떠서 허참판댁 하인을 불러달라고  군사에게 일렀더니 옆에 있던 
선전관이 “허항이 아니냐?  잔소리 말고 가만히 있거라.” 하고  호령하여 허항
이가 움찔하고 목을 움츠러들였다. 안로가 잡히어  나올 때에 혼인하려던 작은아
들을 돌아보며 “오늘 이후에야 누가 내 집과 혼인을 하겠느냐? 너를 일찍이 성
취시키지 못한 것 이 한이다.” 하고 눈물을 머금었다.
  김안로와 허항과 채무택 등이 귀양길을 채무택 등이 귀양길을 떠난 뒤에 위에
서 선정전에 전좌하고 대신 이하 여러 조신에게  입시를 명하니, 그 조신들 중에
는 병조참판 윤안인과 도승지 임백령과 기사관 임형수와 형조판서 윤임 등이 앞
서거니 뒤서거니 하였다.  “원임 영의정 정광필이 오늘날 화근이 될  것을 짐작
하고 안로를 물리치려다가 도리어  죄를 입었으니 가이없는 일이라 즉일 방면하
고, 이외에 안로로 인하여 귀양 가서 있는 사람을 모두 방송하게 하라.” 위에서 
말씀이 있은 뒤에 병조참판 윤안인과 도승지 임백령이 함께 앞으로 나와서 안로 
등의 죄가 중하여  사사함이 마땅하다고 아뢰니, 위에서 대신 외  여러 신하에게 
하문하여 다른 의견이 없는 것을  보고 “안로를 차마 중죄로 다스릴 맘이 없으
나 물론의  돌아가는 바를 어기기 어려우니  사약하라.” 하고 전교를 내리었다. 
며칠 뒤에 또 대계가  나서 허항과 채무택도 사약을 받게 되고,  당류 중에 가장 
가벼운 자가 파직을 당하게 되었다. 임금은 대신  이하 여러 조신의 청을 좇아서 
김안로등의 복법한 것을 종묘에  고하고, 제신의 진하를 받은 뒤에 양연, 윤안인
등의 벼슬 자품을 돋우게 하였다.
  11
  양연이가 김안로를 몰아낸 뒤에 그 공로로 잠시  세력이 좋았으나, 그 집의 하
인이 주인을 자세하고 이웃  과부를 겁탈하다가 법관에게 발각된 까닭에 양연이
는 가장의 치가 잘못한 죄목으로 조정에서 쫓겨났다.  그 뒤로는 물망 있는 사람
들이 차차로 조정에 등용되어서 유관, 권발,  이언적, 유인숙 같은 인물이 재열에 
벌여서고, 사화에 섭쓸려 찬배를 당하였던 사람이 많이 풀리었는데, 이때에 파릉
군도 방면되고 숭선부정도 복직되었다.
  김덕순이가 죄없는 몸이 되어 본성명을  드러내고 서울 와서 있게 된 것이 조
정이 이와 같이 변한  까닭이다. 김식의 가택과 가산은 화를 당할  때 국고에 몰
수되었던 까닭으로 덕순이가  처음에 서울 와서는 안해  없는 처가에 붙여 있었
고, 그 뒤에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새로 서울집을 장만하고 가족이 단취하
게 되었는데, 덕순의  형님 덕수가 집에 앉아 선생질을 시작하여  아이들의 강미
로 어머니를  봉양하고 가속들을 접제하였다.  덕수는 내외 가진  터이라 자녀를 
낳기 시작하였고, 그 아버지의 얼굴을 잘 알지  못하는 덕무도 나이 벌써 이십여 
세라 혼처를 택하여  성취하였다. 덕순의 재취는 집안에서 누가 권하지  않는 사
람이 없고 숭선부정의 집에서까지 권하건만, 덕순이가  왼고개를 치지 듣지 아니
하여 하루는  그 어머니가 조용히  덕순이를 불러앉히고 고집하는  뜻을 물었다. 
“별 뜻은  없습니다만, 다시 장가들 생각이  없어요.” “그래, 아직  나이 있는 
처지에 홀아비로 늙을 터이란 말이냐?”  “홀아비는 어떱니까.” “늙은 어미를 
생각하더라도 아예 그렇게  고집하지 마라.” “어머니께서 며느리가  없으신 터 
같으면 나도  생각을 달리하겠습니다만,  지금 큰며느리 작은며느리를  거느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나대로 내버려 두십시오.” “어느 손가락을  물면 아프
지 않겠느냐? 다 각각이지. 인제 나는 너의  장가드는 것만 보면 지금 죽어도 원
이 없겠다.” 덕순이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이 없었다. 그 어머니가 이것을 보고 
“어미의 원을 풀어 줄 생각이 없느냐?” 하고  다그쳐 물었다. “어머니가 그렇
게 까지 생각하신다면 장가를 들어도 좋습니다만 중심에 맺힌 한이 있어 다시는 
내외 재미를 보고 살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중심에 맺힌 한이란 걸 알겠
다. 한도 될  만하지. 그렇지만 사나이도 수절하느냐?”  “죽기 전에 한번 다시 
보기만 했어도 한이  덜 되었을 것이에요. 지금도 붉은 명정이  눈앞에 어른거리
면 맘이 저린지  아픈지를 모릅니다.” 하고 손등으로 눈에 어리는  눈물을 씻었
다. 그 어머니가  둘째며느리의 죽을 때 광경을 맏며느리에게 들어서  아는 터이
라 덕순의 눈물이 비회를 자아내어서 얼마 동안 모자가 마주앉아 눈물을 흘리다
가 덕순이가  “어머니, 고만두시오.” 하고 위로하여  비회를 조금 진정한 뒤에 
그 어머니가 옆에 놓엿던 노랑 명주수건을 집어서 진물진물한 눈귀를 씻으며 “
장가 다시 들고 안 드는 것은 네 요량대로  해라.” 하고 한번 길게 한숨을 쉬었
다. 그 어머니가  불쌍한 죽은 며느리를 생각하다가 생각이 그  유모자에게 미치
어서 “연중이의  소식은 이내 못들었느냐?” 하고  물으니 “평산으로 여러 번 
알아보았지요만, 자세히 모르겠어요.  무슨 다른 일로 관가에 붙잡혔다가 박연중
이란 성명이  사출나서 서울로 압송하게  되었는데, 그때 누가  옥에서 빼가지고 
도망을 했다나요. 하여튼지 죽지는 않은 모양인데 소식을 알 수가 있어야지요.” 
하고 덕순이는 궁금히  여기는 빛을 얼굴에 드러냈다. “그애 어미는  자식의 얼
굴도 못  보고 죽었으니 그것도 불쌍하지  아니하냐.?” 하고 그  어머니가 다시 
눈물을 머금는 것을 보고 덕순이는 “어머니, 그런 이야기는 그만두십시다. 내가 
내일 용인을 좀  갈까 합니다.” 하고 말을  돌리었다. “용인은 왜?” “조정암 
자제를 좀  찾아보려고 합니다.” “용이나 정이가  다 어른이 되었겠다. 정이가 
집의 덕무와  동갑인가 한 살 더  먹었나? 그러니까 지금은  이십이 넘었겠다.” 
“용이는 죽었단 말이 있세요.”  “이애야, 용이가 죽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전하는 말이니까 가보면  적실한지 아니한지 알겠지요.” “가보아라. 너의 아
버지와 조참판과 지내던 정분을 생각하기로 사생  존망을 모르고 지낼 처지냐.” 
하고 그 어머니는 옛일을 돌이켜 생각하고 언짢아하였다.
  12
  김덕순이가 용인을 갔다올  때 조정이와 같이 왔다. 그때 정이는  성관한 사람
이지만, 덕순의 대부인이  자질과 같이 여기어 안으로 불러들여서 용이  죽은 인
사도 말하고 지내는 형편도 물어 보았다. 정이가  며칠 묵는 동안에 하루는 덕순
이가 정이를 보고 “여보게, 자네가 찾아가 볼 사람이 하나 있네.” 하고 말하니 
정이는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선장과 자별히 지내던 사람이야.” “노
인 어른이겠읍니다그려.” “노인이야. 나하고 같이  보러 가세.” 정이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자기 아버지의 친구 노인이면 덕순이에게도 존장일 터인데 어찌하여 
말을 홀하게 할까 괴상한  일이다 하고, 재차 “누구입니까?”하고 물었다. “선
장이 자주 상종하시던 갖바치가  있어. 그 사람을 보러 가잔 말일세.” “갖바치
라니요? 자죽신쟁이 말씀이오? 선친이 그런 자와  상종하셨을 리가 있나요.” “
상종하실 뿐인가. 그사람의 집에 가서 흔히 주무시기까지 하셨으니.” “저는 불
행이 늦게 나서  선친의 일이라도 친히 뵈온 것이  없는 까닭에 남의 말을 듣고 
아는 것밖에 없습니다만,  선친께서 일언일동이 다 후생의 본이 될  만하시던 것
은 저의 집안에서만 하는 말이 아니겠읍지요.” “그게야 누가 모르나.” “그러
면 갖바치와 상종하셨을 리 없지요.” “당신이  상종하신 것을 자네가 상종하셨
을 리 없다면 되나?” “저는 그런 말을  듣지 못했읍니다.” “갖바치와 상종하
셨다는 것이 당신께 수지 될 일이 아니니.” “그래, 사대부가 백정놈의 집에 가
서 자는 것이 수치가 아니란 말입니까? 어찌하시는 말입니까?”“자네가 그사람
을 보지 못한 까닭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예사 백정이 아니야.” 
“예사 백정이  아니라도 갖바치라면  가죽 다루는 백정이지요.”  “백정이라도 
나는 선생님으로 아는 터일세.” “선생님으로 아시거나  말거나 그 선생님이 선
친과 자별히  지냈다고 거짓 말씀이나 마십시오.”  “거짓말이라니? 자네하고는 
말 못하겠네, 고만두게.”  하고 나중에는 덕순이도 증을  냈지마는, 정이는 자기 
아버지를 욕보인 것같이 속으로 대단히 분하게 생각하였다.
  그날 밤 초저녁이다.  글 배우는 아이들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고  수선한 덕수
의 사랑이 조용하여진  때다. 덕수와 덕순 형제가 덕무와 정이를  데리고 앉아서 
옛이야기를 하는 중에, 갖바치와 심의가 작반하여 찾아왔다. 두 사람을 맞아들이
는데 덕순은 말할 것도 없고 덕수도 대접이  깍듯하였다. 정이 외에 여러 사람이 
각기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주인 삼형제를  따라서 섰다 앉았다 하는 정
이를 갖바치가 유심히 보더니 손가락을 들어 정이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누구
야?” 하고 덕순을  돌아보는데, 덕순이가 대답을 더디하여 덕수가  “정암 자제
이에요.” 하고 대신  대답하였다. “그러면 정인가? 돌  전에 본 사람이 저렇게 
컸단 말이지.” 하고 그 다음에 정이를 바라보며  “나는 선장의 욕된 친구 갖바
치야.” 하고 말하는데, 홍안백발에 외모도 틀지게 보이거니와 반말로 그치는 말
소리가 위엄 있게 들리었다. 정이는 다른 생각  할 사이가 없이 일어나서 절하였
다. 갖바치는 “절은  무슨 절.” 하고 빙그레  웃으면서 앉은 채로 조금 허리만 
굽실하였다. 옆에서 보던  덕순이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정이를 바라보니, 정이는 
무안본 사람같이 얼굴이 붉었었다. 갖바치가 심의를  가리키며 정이를 향하여 “
이 양반은 대관재 심선생인데 그 형님과는 팔팔결  다른 양반이야. 이 주인 삼형
제도 혐의 없이 좋게 지내는 터이니 절하고  인사하지.” 하고 말을 일러서 정이
는 그가 누구의 아우인지도 채 모르고, 또 한번 무릎을 굽히었다. 심의가 정이를 
보고 하는 말이  “내가 남곤·심정이 하는 심정의 아우야. 그리고  효직이는 우
리 선생님이야. 인제 알겠지?” 하고 미친 사람같이 웃었다.
  13
  덕순이가 다시 서울 와서 살게  된 뒤로 전날 선생 갖바치 외에 젊은 친구 꺽
정이가 새로 생기어  갖바치나 꺽정이의 얼굴을 하루만  못 보고 지나도 궁금히 
생각할 만큼 가까이  상종하므로 혜화문 안에 있는  갖바치의 집을 남의 집같이 
여기지 아니하더니 갖바치가 금동이 내외를 양주로 보내서 살게 하고 자기는 팔
도강산에 떠돌아다니겠다고 작정하니 혜화문 안 집은 주인이 갈리지 않을 수 없
이 되었다.  심의도 누차 갖바치에게 집을  없애지 말라고 말하였지만, 덕순이가 
지성으로 말리었다. “내가  서울 와서 살게 되자 선생이 서울을  떠난다는 것이 
일변 생각하면 야속한 일이 아니오.” “내가 올해에  서울을 떠날 것은 이십 년 
전에 작정하여 둔 일인 즉 지금 갑자기 변할  수가 없소.”  “어디를 가실 터기
에 그렇게 오래 전부터  작정하셨단 말이오?” “우리 선생님을 만너러 갈 터이
오.” “선생님에게 가서 다시 서울 오지 않을 터이란 말씀이오?” “아니오, 또 
오지요.” "그러면 집까지 없애실 것  없지 않소." "아니, 오더라도 서울 와서 살
지는 않을 터이오." "이때까지 살던  서울이 아니오? 갑자기 그렇게 작정하실 것
이 무엇 있소?" "늙은 것이 금동이  내외에게 얻어먹고 들어앉았으면 무엇하오?" 
"무엇하는 건 아니지만 육십 넘은 노인이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주는 
밥 먹고 앉았는  것이 낫지 않소." 갖바치는 고개를 외로  흔들고 말을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덕순이가 말리어 되지 않을 것을 본 뒤에  "그러면 이 집을 나를 주
오. 우리 집이 적기도  하려니와 이 집을 내가 지니고 있으면  서울 와서 묵으시
지 좋을 것  아니겠소?" "그것은 좋지요. 그러나 혼자  살림을 어떻게 하시려 하
오?" "어머니께 말씀하고 아우  내외를 이 집으로 분가시키고 붙이어 있을  수도 
있지요." "그것 좋소. 그렇게 합시다." 하고 갖바치가 덕순이의 말대로 작정한 뒤
에 서울 살림을  하루라도 속히 거두어 치우려고 경영하였다. 금동이  내외가 살
림을 떠싣고 양주로  내려갈 때 꺽덩이도 따라 가게 되었다.  갖바치가 꺽정이를 
보고 "나도 앞으로 한 달 내외간에 서울을  떠날 터이다. 네가 양주 가서 갑갑하
게 들어앉았느니 날 따라서 훨훨 쏘다니면 좋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니 꺽정이
는 선뜻 "그러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양주 집에 가서 한 보름 동안 묵다가 올라와서 보니 갖바치 방에 심
선생 외에  낯모르는 사람이 하나 앉았는데,  그 사람이 갖바치를 보고  말할 때 
형님이라고 불렀었다. 꺽정이가 잠깐 그 방에  앉았다가 나와서 덕순이를 찾아왔
다. "선생님  집으로 이사한다더니 어째 아니했소?"  "차차 하게 될 터이지. 그런
데 지금 선생과 새로 온 사주쟁이는 심선생  집에서 식사를 하지만, 널랑은 내게
서 먹어라." "그건 아무리나 합시다. 설마 사람 사는 곳에 굶게야 되겠소. 그런데 
지금 선생님에게 낯모르는 사람이 하나 있더니 그게  사주쟁이오?" "유명한 사주
쟁이 김륜이란 사람이다.  이번에 선생과 동행하려고 왔다더가." "별놈의  동해을 
다 데리고 갈 모양일세.  나는 고만두어야겠군." 하고 꺽정이가 "이따 만납시다." 
하고 일어서니 덕순이가 "선생에게 가거든 나하고 같이 가자." 하고 말하여 꺽정
이는 덕순이와 같이  갖바치에게로 돌아왔다. 꺽정이가 갖바치를  보고 밑도끝도
없이 "선생님, 나는  이번에 아니 가겠소." 하고 말하니 갖바치가  꺽정이의 얼굴
을 치어다보며 말이 없었다. 한동안 있다가 갖바치가  심의 김덕순 김륜 세 사람
을 방에 남겨  두고 꺽정이를 데리고 빈 안방으로 올라와서  "꺽정아, 왜 이번에 
아니 간다느냐?"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그까지 알지도 못하는 사주쟁이하고 누가 동행을 하겠소?"  하고 불쾌하게 말하
였다. 갖바치가 이 말을  듣고 “그런 듯하더라”하고 허허 웃고 나서, 묘향산에 
갔을 때 김륜이와 같이 한 선생 아래서 공부하던 것을 말하고 선생이 올해에 강
서 구룡산서 만나자고  약속이 있어서 이십 년 전에  동행 맞춘 것을 말한 뒤에 
“가기 싫거든 고만두어라만,  중간까지라도 같이 가면 반가운  사람도 만나보고 
좋을 것이다.”하고 말하여 꺽정이는 직수굿하고 앉아서 대답이 없었다.
  14
  김륜이란 사람이 꺽정이에게는  첫눈에들지 아니하였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
어 보이는 사람이 할깃할깃  남의 눈치를 보는 것과, 우습지 않은  말에 하하 웃
는 것과 얄미운  얼굴을 잠시 가만두지 아니하고  되반들거리는 것이 모두 사람 
같지 않게 보이었다.  꺽정이가 김륜이 사주쟁이란 말을 듣고서는 그  작인이 천
생 잡술꾼밖에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꺽정이가 동행하여 길  나서기 싫다
고 말하다가 갖바치의 달래는  말에 수그러져서 갖바치의 뒤를 따라 바깥방에를 
나와 보니 김륜이가 덕순이를 대하여 경력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
소격서 안에 사람의 사태가 났었지요. 소격서에서  사주 보는 사람이라면 지금도 
알 사람이 없지 않으리다. 본래가 번잡한 걸 좋아하지 않는 성미에.“ 하고 말하
다가 ”이 형님은  잘 아시지요.“ 하고 갖바치의 눈치를 보고  ’밤낮 사람에게 
시달리니까 나중에는 정말로  성가시고 귀찮아 못살겠습디다. 그래서  신경과 신
판사란 사람이 광주로  낙향한다기에 같이 가기로 했지요. 서울서 떠날  때는 도
망하듯 했소그려. 광주  간 뒤에 신판사의 중신으로 그곳 반명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지요.” “그래, 그때가지  총각이었더란 말이오?” 하고 덕순이가 이야기에 
쐐기를 쳐서 “총각은  아니었지만.” 하고 우물쭈물하는데 이야기하던  흥이 갑
자기 꺽이는 모양이었다.
  이야기 뒤가 싱거워졌다.  “광주 있기도 하고 고향에 가지고 하고  또 구경다
니기도 하고, 그럭저럭 지금 나이 오십객이니 그동안  경력이야 이루 다 말할 수
가 없지요.” 꺽정이가 인사도 하기 전이건만, 경력 많다는 말이 비위에 잘 맞지 
아니하여 “사주 보는 경력이지요?” 하고 말을 물으니 김륜이는 대답을 아니하
고 무례하게 말  묻는 총각이 누구냐고 묻는 듯이 갖바치를  돌아다보았다. 갖바
치가 이것은 본체 만 체 하고 “우리 내일 모레쯤은 길을 떠나 볼까?” 하고 떠
날 날짜를 공론하니 김륜이가 “어느 날 떠나든지 구월 초하룻날 구룡산만 대어
가게 합시다.‘하고  말하고 ”구월 초하룻날은  미리 약언한 날인가?“  심의가 
묻는 말에 ”녜, 그렇습니다.“ 대답하고 무엇이 우스운지 하하 웃었다. 심의가 "
그러면 아직도 앞으로 달포가 남았으니 그렇게 일찍 떠나 무엇었하나?”하고 갖
바치를 돌아보며 “나는  자네를 떠나보낼 일이 큰 걱정일세. 하루라도  더 같이 
지내보세.”하고 잠깐 동안  있다가 “그럴 것 없이 송도 가서  놀다 가려나? 서
경덕이도 찾고  박연도 구경하고.” 심의의 말이  그치자마자, 김륜이가“좋지요. 
나도 이때까지 박연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하고 갖바치를 앞질러 대답하였다. 
갖바치가 덕순이를 바라보며 “송도 구경 아니 가시려오?”하고 같이 가자는 뜻
을 보이니 덕순이가 “어머니께 말씀하고 가보지요.  나는 이왕이면 평산까지 가
서 연중이의  소식을 좀 알아보겠소.”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네 사람이 같이 
길을 떠나기로 작정되었다. 
  나귀 한 마리에 길양식과 소줏병을 실어서 아이에게 고삐 잡혀 앞세우고 어른 
네 사람과 총각 한 사람이 뒤를 따라  송도길을 향하였다. 길에서 심의는 갖바치
와 같이 가며  이야기하는데, 김륜이가 그 사이게 끼이고 덕순이는  꺽정이와 붙
어가며 이야기하였다. 두  사람은 앞서가는 사람의 걸음이 갑갑하여 길  가며 이
야기할 때보다 앉아  이야기할 때가 많았다. 이삼십 리쯤 걸음을  보고 갑갑증이 
나게 되었다. 두 사람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뛰어가느니나 다름없었다. 가령 내
를 만날 때에 길에 다른  행인이 있으면 다리로 건너가지만 행인이 없으면 훌훌 
뛰어 건넜었다. 덕순이도 서울서 송도쯤은 당일에도  다닐 만하고 더욱이 꺽정이
는 칠월 해에 한번  다니기만 할 사람이 아니니 갑갑할 만도  하였다. 서울서 떠
나던 이튿날 저녁때 일행이 송도에 들어와서 곧 벼우물골 서처사집을 찾아갔다.
  15
  서처사 삼형제가 서울  손님을 데리고 송도 고적을 구경 나섰다.  일행이 관덕
정과 선죽교를 돌아보고 자하동에를  들어와서 이리저리 다니는 중에 시내 있는 
편에서 맑은 노랫 소리가 들려왔다.
  중화당 태평잔치
  자취조차 아득하니
  만년환 옛날 곡조
  아는 사람 못 보도다.
  자하동 시냇물 소리
  시름 알어 우는가.
  서처사가 노래 한 곡조를 다 듣고 나서 빙그레 웃으며 “우리를 앞질러 온 게
로군.”하고 심의를 돌아보니 심의는 알아듣고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가구에
게는 진이가 따라다니네그려.”하고 허허 웃었다. 서처사가 여러 사람의 앞을 서
서 노랫소리 나던 곳을 찾아오니  시냇가 잔디밭에 정한 자리 몇 닢을 연폭하여 
깔아놓고 진이가 일해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각기 자리 위에 앉게 되
었는데, 덕순이와 꺽정이는 자리에 앉지 않고 조금  동안 떨어진 풀밭 위에 붙어
앉았다. "저 계집이  유명한 황진이란 기생이라구나." "나이는 먹었어도  아직 곱
습니다." "절대미인이란 칭찬을 받던 기생이다." "기생이라도 옷 호사는 아니했습
니다그려." "지금은 고사하고 한참  불릴 때도 의복은 물어멈같이 차리고 다녔다
더라." 이와 같이 한편에서 진이를 공론할 때 서형덕 서숭덕 형제가 진이에게 무
엇을 조르는 모양이 보이더니 참벌의 날개치는 소리와 같은 노랫소리가 나기 시
작하여 그 노래를 듣느라고 공론이 그치었다.
  부소산 푸른 남기  예와 이제 다르려니 진봉산  진달래꽃 가을 손님 뵈올소냐 
아이야 송소주 드려라. 진일장취하리라.
  "명창이다." "곡조는 몰라도 소리가  듣기 좋구먼요." "네가 시조맛을 알겠니?" 
"시조거나 말거나 이쁜 계집의 고운 목소리면 고만 제일이지요." 이와 같은 공론
이 다시 시작하였을 때,  서형덕이가 두 사람을 돌아보며 오라고 손짓하였다. 진
이가 가지고 온 술과 안주를 두상으로 차리어서 서경덕과 심의와 갖바치와 김륜
이가 한 상을 차지하고, 서형덕과 서숭덕과 김덕순과  꺽정이가 다른 한 상을 차
지하였다. 진이가 양편  상으로 왕래하며 술을 권하나 흔히 노축에게  가서 오래 
앉아 있으므로 서숭덕이가 "우리는 술 권하는 사람이 없어도 좋은가." 하고 진이
다 데리고 온 계집을 돌아보며 "꿩 대신 닭이란다. 너 이리 와서  술을 쳐라." 하
고, 그 계집아이의 손목을  붙잡아 끌어서 자리에 앉히는데, 그 자리는 서숭덕과 
꺽정이의 틈이었다. 꺽정이가  거북살스럽게 앉은 계집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들
여다보니 살결이 희고 눈 속이 맑고 코가 단정하고 입매가 예쁘장스러워서 넉넉
히 미인 소리를 들을  만한 인물이었다. 꺽정이가 연해 돌아보며 말을 물었다. "
몇 살이냐?" "열네 살입니다." "이름이 무어냐?"  "금단입니다." "부모가 있냐?" "
아버지만 계셔요." 나중에  꺽정이가 "편히 앉아라." 하고 금단이를  가까이 끌어
가니 서숭덕이가 이것을  보고 "계집아이 하나를 얻어왔더니 총각놈이  독차지하
네그려." 하고 웃어서 좌중이 다같이 웃었다.  술들이 취하였다. 술 뒤에 점심 밥
이 있었건만 꺽정이 외에는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이 없었다. 서형덕 서숭덕 형제
가 술이 취한 김에 요술을 할 것이니 구경하
라고 떠들었다. 진이가 그 형제를 돌아보며  “정우치에게 배운 재주를 내놓으실 
터이오?” 하고  방그레 웃으니 형덕이가 “뉘게  배운 재주든지 구경이나 하라
구.” 하고 물 만  밥 한술을 입에 넣었다가 공중을 향하여  뿜으니 흰 나비들이 
펄펄 날았다. 여러 사람들이  “저것 보아” “저것 보게” 하고 놀라자마자, 갖
바치가 슬그머니 손가락을 튀기더니  나비로 보이던 것이 종이쪽이 되어 떨어졌
다. 서형덕이는 ‘이것  웬일인가’ 하고 놀랐다. 숭덕이가 “형님,  가만히 계시
오. 내가 한번 해보리다.”  하고 “묵판 밑에서 까치 나가는 것  보시오!” 외치
고 목판을 아무것도 없는 자리  위에 엎어놓고 왼손 무명지로 부작 쓰는 체하고 
“까치 날아간다.” 하고 목판을 드니 까치 같은 것도 없다. 숭덕이는 “이게 웬
일인가?” 하고 놀라고 여러  사람은 웃는 중에 서경덕과 갖바치가 앉은 뒤에서 
까치가 날아 나갔다. 요술꾼들이  낭패를 보고 머리를 긁었다. 여러 사람들이 패
패이 웃고 떠드는  중에서경덕은 갖바치와 서로 재미있게  이야기하는데, 진이가 
속으로 ‘심선생이 칭찬하던  갖바치가 참말 범인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 옆에 가까이 앉아서 정신놓고 이야기를 들었다.
  16
  진이가 갖바치를  보고 “송도서 며칠이나  묵으시려나요?” 물으니 갖바치가 
“일간 떠날 터이어.” 대답하고 심의를 돌아보며  “오늘 저녁에 망월대에서 달
을 보고 내일은 박연을 갑시다.” 심의가 대답하기  전에 진이가 “나도 갈까요?
” 하고 물어서 서처사가 “좋지.” 하고 대답하였다. 이때 젊은 축은 각기 숨은 
재주를 다 내놓아서 법석을 벌이었다. 서형덕은  나무꾼의 노래를 흉내내고 서숭
덕은 금단의 손을 잡고 춤을추고  김순덕은 긴 활개를 펼치고 남무 한바탕을 법
제로 추었다. 노축에  섞이어 앉았던 김륜이가 어느 틈에 자리를  옮겨와서 거북
움을춘다고 팔을 짚고 엎드려서  목을 오므렸다 내밀었다 하며 궁둥이를 치어들
었다 내려놓았다 하여 여러 사람의 웃음을 자아내어 젊은 사람들이 돌아서서 손
뼉을 칠 뿐  아니라 노축까지도 이야기를 그치고 입들을 벌리었다.  진이가 일어
섯 구경하다가 꺽정이가 무릎에 팔을 감고 쭈그리고 앉았는 것을 바라보고서 꺽
정이에게로 와서 말을 붙이었다. “왜 혼자 따로  앉았어? 우스운 거북춤을 보지 
않고.” “거북춤인지 두꺼비춤인지  병신이 지랄하는 것 같소.” “총각은 무슨 
춤을 출 줄 아오?” “사나이가 추면 추고  말면 말지, 거북춤을 추겠소? 칼춤을 
추지.” “칼춤 좋지,  한번 추어 보오.” 하고 진이가 여러  사람을 향하여 서서 
“이번에는 총각의  칼춤이 나옵니다.” 하고 외치었다.  “어디?” 하는 사람도 
있고 “좋지” 하는  사람도 있어 여러 사람이 칼춤을 보려고  돌아섰다. 꺽정이
가 앉은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하니 서숭덕이는 “쭈그리고 앉은 것이 칼춤이
란 말이.” 하고 혀를  차고 서형덕이는 “황씨의 딸이 우리를 속였구나.” 하고 
웃었다. 금단이가 살그머니  꺽정이의 옆으로 와서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참말
로 출 줄  아시오? 한번 추어 보시오그려.” 하고 칼춤을  재촉하니 꺽정이가 “
칼 없이  칼춤을 어떻게 추나.”  하고 일어서서 이리저리  돌아보다가 지게꾼의 
작대기가 풀밭에 놓인 것을 보고  그 작대기를 들고 와서 “칼춤 대신에 작대기
춤을 추리다.”  하고 외치니 진이가 “작대기춤  좋지그려. 목판 장단이나 쳐줄
까.” 하고 서숭덕이가 요술한다던  운두 높은 목판을 앞에 갖다 엎어놓았다. 꺽
정이의 작대기가  휘휘 돌기 시작하며  진이의 목판에서 또드락딱  소리가 났다. 
도는 작대기에 맞추어서 목판 소리가 차차로 잦아지다가 휘휘 돌던 작대기가 번
개같이 돌게 되어  작대기가 작대기로 보이지 아니하고  수없이 많은 검은 뱀이 
꺽정이의 전후좌우로 휩싸고 도는 것같아 보이었다.  또드락딱 소리는 그치는 줄 
모르게 그치었다. 꺽정이가  한번 허허 웃고 작대기를 던지고 앉은  뒤에 금단이
가 땀 씻으라고 수건을  주니 서숭덕이가 이것을 누여겨보고 “금단이는 총각놈
의 차지가 되었구나.” 하고 말하여 여러 사람이  웃는 중에 꺽정이는 “나는 차
지할 생각 없으니 염려 마시오.” 하고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진이가 남은 술을 권하여 노소동락으로  한 순배를 같이 한 뒤에 갖바치가 “
해도 저물어 가고  하니 차차 돌아가도록 합시다.” 하고 말하니  심의가 “그리
하지, 고만 일어서세.”  하고 서경덕을 돌아보았다. 서처사가 먼저  지팡이를 짚
고 나서고  여러 사람이 차차로  일어서는데, 진이도 지게꾼  불러서 뒷거둠새를 
맡기고 뒤를  따라나섰다. 덕순이가 “꺽정이가 어디를  갔을까?”이리저리 향하
여 “꺽정아, 꺽정아.”  불러보아도 대답 소리가 없었다. 나중에  서처사까지 “
어데를 갔을꼬?” 하고 두 아우를 돌아보며 “좀  찾아보아라.” 하고 말하여 서
형덕과 서숭덕이가  찾아나서려고 할 때,  김륜이가 어느 틈에  단서를 짚어보고 
“재전부재후요, 앞으로  나갑시다.”아는 체하고 말하였다. 여러  사람이 자하동 
어귀에를 나왔을 때 꺽정이를 만났다. 덕순이가 “그  동안 어리를 갔다 왔니?” 
하고 물으니  “뒷산 꼭대기에를 올라가  보고 왔소. 사당집  하나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꺽정이의 대답하는  말을 듣고 서처사부터 “그  동안에 송악산에를 
올라갔더란 말이냐?” 하고 놀라고  진이는 “아이구 그 동안에, 거짓말 같애.” 
하고 자그마한 붉은 혀까지 내둘렀다.
  17
  송도 주인이 서울 손님을  데리고 박연을 구경하고 돌아온뒤에 서울서 동행한 
다섯 사람 중에 심의 한 사람은 송도에서 떨어지고 나머지 네 사람이 길을 떠나
는데, 나귀는 길양식을  싣고 가다가 덕순이가 서울로 돌아올 때  끌든지 타든지 
하기로 하여 사람과  집승 다섯 일행이 서관대로를  좇아 나가서 송도서 떠나던 
이튿날 아침때 평산읍에를 들어왔다. 객주집에 들어서  나귀는 보리를 먹이고 사
람은 밥을 지어 먹는데 객주지기가 돌아보러 왔다가 그중에 노인인 갖바치가 보
고 말을  물었다. “어디서들 오십니까?” “서울서  왔소.” “어디들을 가십니
까?” “평안도를 가는 길이오.” “오늘 곧 떠나실 터이지요?” “아니, 찾아볼 
사람이 있으니까 며칠 동안 유련하게 될는지  모르겠소.” “찾아보실 사람이 누
구인가?” “누구래서  모를 사람이오.” “네.” 하고  객주지기가 시원치 않은 
모양으로대답하면서 여러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들여다보고 나가니 갖바치가 여
러 사람을  돌아보며 “우리네 행색이 수상해  보이는 게로군.” 하고 말하였다. 
갖바치와 김덕순이가 박연중  찾을  것을 공론하는 중에 장교 두 사람이 객주지
기를 앞세우고 들어와서  첫째로 갖바치를 붙들고 서울  사는 곳과 평안도 가는 
일과 그외에 여러 가지 말을 꼬치꼬치 캐어묻다가 서울서 떠난 날짜를 물어보고 
“아무리 노인의 행보라도 서울서나흘 더  걸릴 것이 없는 길인데 그 동안 어디
서 지체하셨소?” 하고 물어서 서화담과 같이 박연 구경 갔었단 말을 듣고 비로
소 의심이 놓이는 듯이 “송도 서처사의 친구십니다그려.” 하고 말하였다. 덕순
이가 “무슨  수상한 일이 있소?” 하고  물으니 장교들은 “네.”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장교들이 간 뒤에 객주지기가 미안하게 여기는  모양으로 이야기하
였다. “요사이 우리  평산서는 화적 까닭에 야단났습니다. 속롱산도 화적굴이고 
멸악산도 화적굴이고 그 외에 도적굴이 부지기수랍니다.  그중에 제일 강성한 멸
악산패가 각처 여러 패를 모아가지고 읍내를 들어친다는 소문이 있어서 행인 기
찰이 심합니다.”  꺽정이가 내달아서 “여보, 운달산에는  화적이 없소?” 하고 
물으니 “운달산에 있던  패가 멸악산으로 옮겨갔다네.” 하고  대답하고 꺽정이
가 “멸악산 화적  괴수의 성이 박가랍디까?” 하고 물으니  “괴수는 늙은이래. 
성은 모르지.” 하고 대답하였다. 객주지기가 나간 뒤에 꺽정이가 덕순이를 보고 
“박연중인가를 찾아보려면  멸악산을 갑시다.”  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너도 
점을 치느냐?”하고 웃는데 “봄보다도 더 영하게 맞을 게니 내 말을 믿고 갑시
다.” 하고 말하였다.
  멸악산은 평산읍에서 육십 리라 다 저녁때에  갖바치의 일행이 도달하였다. 오
는 길로 적굴을 찾을 수도 없고 또 어떻게 무모하게 적굴에 들어갈 묘리도 없어
서 절을 찾아가서 자기로 하고 산속으로 들어오는 중에 한 모퉁이를 지날 때 산 
위에서 “이놈들, 게 섰거라!” 하는 호통 소리가 나며 머리를 질끈질끈 동인 축
이 십여  명이 쫓아내려왔다. 십여 명  중의 수두로 보이는 자가  일행의 앞으로 
나서 총각과 말을 접하였다.  “너희들 어디를 가느냐?” “절에를 간다.” “이
놈, 총각놈이  말버릇하고, 목이 가려우냐?”  “가려우면 긁어주려느냐?” “오
냐, 이놈 긁어주마.” 하고  그자가 칼을 빼어들고 꺽정에게 달려들며 여러 놈이 
함게 아우성을 치고 내달았다. 꺽정이가 번개같이 몸을 솟치어 “에따, 이것까지 
가지고 가거라.” 하고  꺽정이가 쳐들었던 자를 앞으로 내던지니 깩  소리 한마
디에 그자는 사지가 늘어졌다.  여러 놈 중에 한 놈이 산  위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놈아, 이따  보자. 우리 대장이 오장의  원수를 안 갚을 줄 아느
냐? 풋기운 가진 네놈이 살  줄 아느냐?”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꺽정이가 “이
놈, 게 있거라!” 하고 맞소리를 지르니 그 놈이‘오금아 날 살려라’ 하고 산을 
넘어 도망하였다.
  18
  덕순이가 꺽정이를 붙들고 “이애, 야단나지  않았니?” 화적떼가 물컥 쏟아져
나오면 어떡할셈이냐? 섣불리  숨거나 도망질을 치다가 부잡히면 사나이 자식이 
망신까지 할 모양이고 어찌하면 좋단 말이야? 화적떼에 박연중이나 있으면 불행
중 다행이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맨주먹 가진  우리들이몰사죽음했지 별수 없겠
다.” 말하고  다시 갖바치를 돌아보며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하고 
물으니 갖바치가 아무 일 없는  때와 같이 웃으며 “장사가 둘씩이나 있는데 무
슨 걱정이겠소. 그러나  이곳은 산위에서 내려밀기가 좋아서  우리에게 불리하니 
우리가 뒤로  물러나가서 좋은 자리를  잡고 기다립시다.” 하고  말하여 일행이 
돌어서 나오는데, 맨 뒤에 서서 나오는 꺽정이는  오자이란 자의 내던진 칼을 집
어들고 나왔다. 산골  시냇가에 있는 편편한 자리에 와서 갖바치가  걸음을 멈추
고 앞선 김륜이를 가리키며 “우리 두 사람은 누가 돌 뿐이라 조금 멀찍이 떨어
져 있을 것이니 두  장사가 이쯤서 화적을 대적해 보게.” 하고  앞으로 더 나가
니 꺽정이가 덕순을 보고 “내가 도적 괴수를 처치하는 동안에 아랫도리 놈들이 
선생님께로 달려들는지  모르니 당신이  뒤를 따라가서 선생님을  보호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너 혼자 외롭지?”  “염려 마시오.” “가만  있거라. 몽둥이 
하나 만들어 가지고.” “내  만들어 주리다.” 하고 꺽정이가 시냇가에 섰는 나
무에서 굵은 가지 하나를 무질러 내려서 알맞은 몽둥이를 만들어 주니 덕순이는 
이것을 받아들고  갖바치의 뒤를 쫓아갔다.  꺽정이가 짚신 들메를  단단히 하고 
허리끈을 졸라매고 머리를 고쳐 동이고 손에 칼을 쥐고 산속기를 향하여 앉아서 
도적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때 산  위에는 달이 별써  올라왔고 시냇가에는 
밤안개가 끼었었다.  도적떼가 산속길로 몰려나오기  시작하였다. 창끝과 칼날이 
비치어서 번쩍번쩍 하였다. 
  꺽정이가 칼을 들고 길을  막아나섰다. “이놈들, 어디를 가느냐?” 하고 큰소
리르 치니 “여기 있다.” 소리가 나며 “아!”  하고 아우성이 일어났다. “괴수 
나서거라!” 도적들 중에서  군관 모양같이 상모 달린 벙거지를 쓰고  비단 군복
을 입은 키대  큰 사람이 큰 칼을 들고 앞줄로  나섰다. “이놈, 네가 내 부하를 
죽였느냐?” “그랬다. 그러니 어쩔 테냐?” “어째? 이놈, 어서 바쁘 목을 바쳐
라.” “네놈의 녹난 칼에내 목을 바쳐? 너혼자는  고만두고 네 졸개들까지 나온 
대로 다 덤벼라. 겁낼 나 아니다.”하고 꺽정이가 껄껄 웃으니 그 괴수가 “무엇
이 어째?  내가 혼자서 네놈을 처치  못하면 사나이가 아니다.”  하고 부하들을 
물러서서 나서지 말라고 하고 편편한  자리로 나와서 “이놈, 이리 오너라!” 하
고 호통을 쳤다. 꺽정이가 칼을 비껴 들고 마주서서 “제법이다. 네 성명이 무어
냐?” 하고 물으니 “셩명은 알아  무어하게. 어서 바쁘 목을 늘여서 칼 받아라.
” “네가 박연중이만 같으면  사정을 좀 두려고 물었다.” “이놈아, 잔소리 마
라.”
하고 괴수가 악 소리를 지르며 칼로 치기 시작하여 꺽정이도 마주 악 소리를 질
렀다. 싸움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범같이 날뛰며 두 칼이 어우러졌다 풀렸다 하
였다. 칼 쓰는 솜씨가 비등하였다.  그 괴수가 날쌔게 몸을 뒤로 피하여 서서 “
조금 참아라. 네  성명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니 꺽정이가 “  성명은 알아 무
엇하게. 네가 죽든지  내가 살든지 싸워보자.” 하고 쫓아와서  대들었다. 또다시 
싸움이 어우러졌다. 적수의 칼이라  오고가는 것이 서로 상하가 없었다. 승부 없
이 한동안이 지났다. 나중에 꺽정이가 허기가  나서 허리끈이 느지러지며 괴수에
게 몰리기 시작하였다. 괴수가 별안간에 으악 소리를  되게 지르며 칼을 높이 들
고 내리쳤다. 뒤에서 보던  졸개들이 “총각놈의 머리가 두 쪽에 나거니.” 하고 
생각할 뿐 아니라  괴수 역시 그리 생각하였던 것이, 총각이  머리위에 내리치는 
칼을 선뜻 칼로 가로막았다. 꺽정이의 가진 갈이  원래 변변치 못한 것이라 칼이 
슴베 밑이 부러져서 땅에 떨어졌다.
  19
  꺽정이가 칼자루를 내던지고 시냇가로 도망하니 괴수가 “도망하면 어디를 갈 
테냐?” 하고 껄껄  웃었다. 뒤에 섰던 졸도 중에서 두목  하나가 앞으로 나와서 
“대장님과 그만큼 겨루는  것이 제법이올시다.” 하고 말하니  “제법뿐이 아니
다. 맹랑치 않은 검객이다. 그런데  그놈의 칼 쓰는 법이 나와 같으니 괴상한 일
이다. 어디 잡아다 놓고  물어보자.” 하고 괴수는 졸도들을 거느리고 도망한 총
각을 뒤쫓았다. 꺽정이가  시냇가에 와서 물을 움켜 마시고 허리끈을  다시 졸라
매었다.
  칼 잘 쓰는 괴수가 앞장을 서서 도적의 떼를 몰고 풍우같이 쫓아오니 일이 위
급한 것은 차치하고, 도적에게 쫓기는 것이 분하여서  꺽정이는 평생 힘을 다 써
서 옆에 선 굵은 나무 한 주를 뽑아서 두 손으로 들고 오는 도적을 보고 내둘렀
다. 괴수부터 기가 막히어 물러서니 졸도들이 놀라서  뒤를 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꺽정이가 차차로 나오며 휘휘 내두르다가  위로 치어들고 “이놈들아 구경
이냐?” 하고 괴수 섰는 곳을  눈 겨누어 내리치니 괴수는 날쌔게 뒤로 뚜어 피
하였거니와 괴수 옆에 가까이 섰던 졸도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한번에 네다섯
이 나무 밑에 쓰러졌다. 도적들이 겁을 먹고 슬금슬금 뒤로 나갔다. 꺽정이가 나
무를 들고 가로 쓸며 나오고 세로 치며 나오니 나무에 맞은 자는 스러지고 나무
에 맞지 아니한 자는 맞을까 보아 도망하였다.  가지에 옷 찢기고 도망하는 자도 
있고 잎새에  눈 찔리고 도망하는 자도  있었다. 물 밀리듯 하는  형세를 괴수도 
금치 못하였다. 도적들이  산속길 편으로 도망하여 간 뒤에 꺽정이가  들었던 나
무를 내던지고 숨을 돌리는데 덕순이가 몽둥이를 끌고 찾아왔다. “꺽정아, 어떻
게 되었니?” “왜  왔소?” “네가 궁금해서.” “거기는 도적놈이  없소?” “
개미새끼도 못 보았다.”
  “통나무에 혼이 나서 도적놈들이  내삐기는 했지마는 저기 가서 뭉치어 섰는 
것이 무슨 공론들을 하는 모양이니 아직은 맘을  놓을 수가 없소.” 덕순이가 도
적들이 뭉치어  선 곳을 바라보고 나서  “통나무라니?” 하고 묻다가 꺽정이의 
가리키는 나무를 보고 “이거 생나무를 뽑았구나. 네  힘이 그거 무슨 힘이냐?” 
하고 혀를 빼어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꺽정이는 한번 싱긋  웃고 앞으
로 나가서 넘어지고 자빠지고  한 도적들에게로 돌아다니며 그자들이 가졌던 창
과 칼 중에서 쓸  만한 칼 두 자루를 골라 가지고 왔다. 덕순이와  칼을 나눠 가
진 뒤에 걱정이가 “인제는 허기가 걱정이오.”  하고 말하니 덕순이가 “참말로 
잊었구나. 흰무리를 줄라고 가지고 왔다.” 하고 품에서 흰무리 덩이를 내어주었
다. “이거 웬  거요?” “송도 서처사 집에서 먹으라고 내온  것을 김륜이가 길
에서 먹는 다고 싸가지고  왔더란다.” “사주쟁이도 쓸 데가 있구려.” 하고 꺽
정이는 시내에 가서 물을 움켜마시며  흰무리 한 덩이를 게눈 감추듯이 먹고 나
서 “인제는 되었소. 우리들이 쫓아가서 저놈들이 아주 해쳐버립시다.” 하고 말
하여 두사람이 몸단속을  고쳐 하고 도적들이 뭉치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도
적의 괴수가 두 사람이 쫓아오는  것을 보고 마주 나오니 “한 놈이 두 놈이 되
었구나.” 하고 허허 웃고  “ 이놈들, 게 서서 내 말을 들어라.  내가 네놈을 사
로잡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활을  쓰지 아니했더니 이렇게 거센 체하면 활을 쓸
터이다.” 하고 호통을 질렀다. 괴수의 목소리가  덕순의 귀에 익어 들리었다. “
활? 겁 안난다.” 하고  앞으로 내달으려는 꺽정이를 덕순이가 “잠깐만 참아라.
” 하고 붙잡고  앞으로 나서서 괴수를 바라보니  달빛이 밝지마는 섰는 동안이 
떨어진 까닭에 얼굴  전형을 분명히 알 수 없었다. “연중이  아니오?” 하고 큰
소리를 맞질렀다. “김덕순이오.” 하고 외치듯 하는 말이 덕순의 입에서 떨어지
며 괴수는 쥐었던 칼을  내던지고 한달음에 뛰어와서 덕순의 앞에 꿇어앉으면서 
“연중입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니 덕순이도 칼을  내던지고 그 자리에 주주물
러 앉았다. 연중이와  덕순이가 손을 마주잡고 한동안 말이 없이  눈물들을 흘리
었다.
  20
  꺽정이가 옆에서 보고 섰다가 “고만들 일어나오.”  하고 말한즉 연중이가 먼
저 입을 열어  “서방님, 저 총각이 누구요?”하고 물어서  덕순이가 “임꺽정이
란 총각이야.”하고 대답하니 “양주 임꺽정이오? 내 괴 칼 쓰는 법이 다르더라.
” 하고 연중이가 꺽정이를 치어다보며 “자네가 천하 장사란 것을 말로만 들었
더니 인제 눈으로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 “우리 선생님을 만나보았소?” “
자네 선생님이 우리 형님이야.  지금 내게 계시지. 요새도 심심하면 자네 말씀일
세.” “선생님이 여기  계시단 말이지. 그러면 어서 들어갑시다.”  하고 꺽정이
가 재촉하니 연중이가 덕순이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덕순이가 꺽정이를 보고 “
선생님 한 분은  여기 내버리고 갈 터이냐? 오시라고 해야지.”  하고 말하여 꺽
정이가 “어서 가서  뫼소고 옵시다.” 하고 덕순이와 같이 가려고  하는데 연중
이가 “그 선생님은 누구요?” 하고 물어 혜화문 안 갖바치란 말을 듣고 반색하
며 “나도 같이 갑시다. 그러나 잠깐만 기다리시오.” 하고 작은 두목 하나를 손
짓하여 불러서 죽은 자와 상한 자를 모두 치워 가지고 들어가게 하고 졸도 중에
서 십여 인만 데리고  남아 있으라고 분부한 뒤에, 세 사람이  같이 산기슭 솔밭 
속에 떨어져 있는 갖바치에게로 오게 되었다. 
  연중이가 갖바치와 반갑게 인사하고  김륜이와도 수어 인사를 마친 뒤에 꺽정
이가 산속으로 들어가기를 재촉하여  말하니 갖바치가 연중이를 보고 “자네 있
는 곳이 여기서  멀지나 아니한가?” 하고 물어서 십  리 넘는다는 대답을 듣고 
“지금 우리들은 모두 시장한 터이니 가까운 절이  있으면 절로 가세.” 하고 말
하여 연중이가 “그것도 좋지요. 여기서 남방사가  가까우니 그리로 가서 저녁들
을 잡숫게 하지요.” 하고 일변 갖바치의 뜻을  좇으며 “우리 형님도 그리 나오
시라고 함세.” 하고 일변 꺽정이의 급한 맘을 위로하였다.
  연중이가 작은 두목에게 말을  일러 들여보내고 나머지 졸도를 거느리고 손님 
일행과 같이 남방사에를  들어오니, 대장님이 행차하셨다고 절이  발끈 뒤집히다
시피 야단이었다. 멸악산에 있은 이 절 저  절 중들이 모두 박연중이를 호랑이같
이 무서워하고 상감같이  알고 위하는 터이라, 남방사 중들이 노문  없는 행차에 
수각이 황망하여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큰방을 치우고 연중이가 손님들고 
같이 들어앉았다. 손님 일행  다섯 중에 하나는 물론 마굿간으로 들어갔다. 칼고 
창이 번쩍거릴 때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이 마굿한 대접에 족한 줄을 모르고 ‘보
리를 드려라, 콩을 드려라’ 하는 듯이 앞발로 마판을 연해 긁고 있었다. 중들이 
갑자기 다담상을 차리느라고  분주한 중에 한 중이  “아니구, 노선생님까지오시
네.” 하고 말하여  여러 중이 문에 들어오는 늙은이에게로 마주  나가서 일제히 
문안을 드리었다. 그 늙은이는 중들이 문안하는 것을  본 체 만체하고 절 마당으
로 들어오며 “꺽정이 어디  있느냐?” 하고 소릴치니 큰방에 있던 꺽정이가 한
걸음에 뛰어나와 마당에서 절을 하고 늙은이를 부축하고 큰방으로 들어왔다. 
  그날 밤은 여러 사람이 다 함께 남방사에서 자게 되었는데 늙은이와 꺽정이의 
사이에도 이야기가 많았거니와 덕순이와  연중이의 이야기는 닭 울 때까지 그칠 
줄을 몰랐었다. 이튿날 연중이  있는 적굴로 들어왔다. 적굴이라고 토굴 같은 것
이 아니었다.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살골짜기에  가득하였다. 갖바치와 김륜이는 
이삼일 동안 융슝한  대접을 받은 뒤에 강서길을 떠나고, 덕순이와  꺽정이는 연
중이와 같이 산 밖까지 나와서  갖바치를 전송하고 다시 들어와서 며칠 동안 더 
묵었다. 그 동안에  덕순이는 연중이를 보고 세상으로 나가서 같이  살자고 누누
히 말하였다.  연중이가 아무말이 없이  듣고 앉았다가 나중에는  “세상에 나가 
사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오. 나를 죽은 사람으로만 치시오.” 
  이와 같은 대답으로 거절하여 덕순이는 연중의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까지 흘
리었으나, 진정에서 솟아나는  눈물로도 연중의 맘을 변개시키지 못하였다. 며칠 
뒤에 덕순이는 간곡하게  붙잡는 연중이를 떨치고, 꺽정이는  다시 볼지말지하다
고 눈물 뿌리는  검술선생을 하직하고 동행하여 멸악산을 떠나 나왔다.  두 사람
이 나귀를 앞세우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덕순이가 연중이를 인정없다고 원망
하니 꺽정이는  “세상에 나와서 남의 집  하인질하느니 산속에서 왕노릇하려고 
아니하겠소?” 인정을  말하는 당신이 대중없는  사람이오.“ 하고 덕순을  핀잔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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