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양반편 1

3학년2반 | 2022.01.03 09:39:41 댓글: 0 조회: 434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39238
  제 1장 국상
  1
  동궁의 외삼촌인 윤임은 중전을  곱게 생각지 아니하고 중전의 오라버니 되는 
윤원로, 윤원형 형제는  동궁을 미워하여 처음에 알력이 두 윤가의  집에서 생기
며부터 차차로 유언비어가  세상에 돌기 시작하고, 마침내  시비의론이 조정에까
지 나타나게  되었다. 이때 영남 예안  사람 이황이 서소문 안에  와서 우거하며 
교리 벼슬을 다니는 중이었는데, 어느 날 수찬  임형수와 지평 정희동이 각각 이
교리를 찾아왔다가 서로 만나게 되어 주인, 손  세 사람이 고금치란을 말하던 끝
에 윤가 알력이 미치었다. 임수찬이 소매를  걷어치며 “그것이 하등 큰일이기에 
조정에서까지 의론이  분분하단 말인가? 한두 놈에게  형장 맛을 알리기만 하면 
곧 지식될  것이니. ” 하고 말하니  한두 놈이라고 하는것은 원로  원형 형제를 
가리키는 의미라 정지평이 고개를  흔들며 “아니, 그래서는 아니 되네. 두 윤가
의 알력이 사사 원수로 나온 것이 아니고 국가에 관계가 있는 일인즉 먼저 교란
한 죄로 두 윤가를  함께 탄핵하고, 그 다음에 분규의 공사를  갈라서 별로이 다
스려야 할 것일세. ”  하고 말하는데 말소리와 기색이 함께 씩씩하였다. 단정하
게 앉았던 이교리가 잠깐 자리를 움직이어 앞으로 나앉으며 “원룡의 말이 공평
한 말일세. ”  하고 임수찬을 바라보니 임수찬이 “자네들이 대소과  모두 동년
이라고 동년의를 차리어 편을 드는 모양일세그려. " 하고 껄껄  웃었다. 이교리가 
“실없는 사람. ”  하고 온자하게 웃고 나서 얼굴빛을 고치고  “동궁의 사속이 
없으신 까닭으로 외간에 유언이 많이 생기는 모양이니 이것이 우려할 바이 아니
겠나?” 하고  두 사람을 돌아보니 정지평이  옷깃을 고쳐 여미며 “동궁께옵서 
성덕이 갸륵하옵셔서  대전께 효성이 극진하시고 대군께  우애가 돈독하신 터인
즉, 동궁께서 만일 장래에까지 사속이 없으신다면  대군으로 세제를 책봉하실 터
이지 무슨 우려가 있겠나. ” 하고 말하여  이교리는 말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임수찬은 “원룡의 말이 옳은  말일세. 나는 동년의가 없지만 옳은 말이야. 옳다
고 아니할 길이  있나. ” 하고 번듯이  드러누웠다. “사수의 실없는 것도 병이
야. ” 하고  정지평이 이교리를 돌아보는데 “병인지는 모르나 잘하는  일은 아
니겠지. ” 하고 이교리가 빙그레 웃으니 “자네들이  나를 어찌 알고 잘하고 못
하는 것을 말한단 말인가?” 하고 임수찬이 누운 채로 고개를 모로 돌리어 이교
리를 향하여 “경호. ” 하고 먼저 그의 자를 불러놓고 말하였다. “자네가 사나
이 대장부의  행사를 알겠나?” “자네는 아는가?”  “암, 내야 알다뿐이야. ” 
“알거든 어디 말해 보게. ” 임수찬이 벌떡  일어 앉아서 “눈이 산중에 가득히 
쌓인 때 백근  강궁을 팔에 메고 천금 보도를  허리에 차고 철총마를 칩떠 타고 
산골로 달려들어갈 제 앞에서 큰  돝이 튀어나와 어디로 갈지 몰라서 함부로 뛰
는 것을 대살에 쏘아 누이고 말에서 내려와서 칼로 참나무를 베어젖혀 화톳불로 
놓고 긴 꼬챙이로 돝고기를 구워  가며 술을 마시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한 뒤에 
얼굴을 치어들면, 어느 동안 눈이 시작하여 면화  같이 눈송이가 술 취한 얼굴에 
선득선득 떨어지는 맛이라니. 자네들 같은 고리삭은  선비로야 꿈엔들 맛볼 수가 
있나? 자네들 장기란 것은 말하자면 조충소기이지. ”  하고 거침없이 크게 웃으
며 무릎을 치니, 이교리와  정지평은 서로 돌아보며 웃었다. 말이란 것이 날개는 
없지만 날아다니기를 잘하는 것이라  서소문안 이교리 집에서 세 사람의 이야기
한 말이 윤원로,  윤원형 형제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형제 두 사람이 조용히 
앉았을 때 원로가 “임형수란 자가 우리에게 현장 맛을 알려야 한다니 민망스럽
제 아니하냐?” 하고 임수찬을 미워하여 말하니 원형은 “정희등 말대로 한다면 
윤임이나 우리나 모두 큰일나겠소. ” 하고 정지평을 꺼리어 말하였다. “이것저
것 할 것 없이 일이  우리의 꾀대로 되기만 하면 조정에 우리를 걸어 말할 자가 
없다. 임형수같이 거센 체하는 자도 우리네 집 문간에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다. 
” “임형수,  정의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이황이 같은 사람도 붙잡아  내 사람을 
만들기만 하면 좋을 것이지요. ” “어디 두고  보자꾸나. ” 하고 원로, 원형 형
제가 서로 바라보며 의미 있이 웃었다.
  2
  이때 왕비는 연세가 사십에 가까웠으나 왕의 은총을 오로지 받고 지내는 중이
라, 왕비에게 이롭지 못한 말이 왕의 귀에  들어갈 길이 없으므로 왕비의 언어동
작이 왕의  보고 아니 보는 것을  따라 두 사람같이 판이하건마는,  왕은 이것을 
알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왕은 왕비를 재덕이  겸비한 양으로 여기어 팥으로 메
주를 쑨다 하더라도 그 말을  옳게 들을 만하였다. 어느 날 윤원로, 윤원형 형제
가 곤전에 승후하고 나가더니 그날 밤에 왕비가 잠이 든 대군을 앞에 뉘고 들여
다보며 눈물을 흘리는데 왕이 내전에 들어오다가 눈결에 이것을 보고 괴상히 생
각하여 우선 대군 옆에  와서 그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고 “잘  자는군. ” 하고 
다시 왕비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 동안 눈물은 거두었으나 분위에 아롱진 자국이 
남아 있어 눈물을 흘린 표적이 완연히 보이었다.  “무슨 까닭에 눈물을 흘렸소?
” “아닙니다. ”  “아니라니? 무슨 까닭이 있겠지. ” “아닙니다.  ” “무슨 
말이든지 속이지 말고  말을 하시오. ” “자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홀저에 
불쌍한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온가 싶습니다. ” “왜  불쌍하기는?” “죄없는 
것이 저의 명에...”  하고 왕비의 말에 뒤가  없었다. “저의 명에 어째?” 하고 
왕이 한참 동안 입맛을 다시더니 “동궁이 우애가 극진하니까 대군은 걱정이 없
소. ” 하고 왕비를  위로하듯이 말하였다. 왕비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동궁이 
우애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만, 대군의 장래는 안심할수 없습니다. 말씀 아뢰가
가 황송하오나 마마께서 우애가 부족하셔서 진성군에게 후명을 내리시고 영산군
에게 찬배지전을  내리셨습니까? 마마같이 갸륵하신  우애로도 동기를 보전하지 
못하셨으니 동궁이야 당초에 믿을 수가 있습니까? 인약한 동궁이 고의로 대군을 
어떻게 하지는 않겠습지요만 뒤에  권신이 있어 대군을 모해하려고 삼사를 충동
하고 나종에 정부  육조까지 들끓게 나서게 하면  동궁이 어찌하지 못하고 좇을 
것입니다. ” 하고  말을 한동안 끊었다가 다시 이어 “대군을  성취시켜서 손이
나 뒤에 끼치게 되면 한이 없겠습니다만,  저것이 언제 자라 성취하게 됩니까?” 
하고 화가 박두한 것같이 말하고  눈에 다시 눈물을 머금으니 왕은 잠자코 앉아
서 옛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긴 한숨을 쉬었다.  이튿날 동궁에서 오시 문안을 들
어왔을 때 왕은 대전에서 대군을  무릎 위에 앉히고 “네가 공주로 낳았다면 걱
정이 없을 것  아니냐?” 하고 한숨을 쉬며 왕비를 돌아보는데,  동궁은 죄도 없
이 황송한 맘을 못이겨하다가 대군의 장래를 걱정하는 대전 맘을 위로하려고 “
신의 나이 삼십이 가깝도록 사속이 없사와 불효 막대하오나 대군이 있으므로 종
사의 걱정은 없사외다. ” 하고 말씀을 아뢴즉, 왕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
이고 왕비는 곱지 않은 눈으로 동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있다가 동궁이 퇴
출한 뒤에 왕비가  “지금 동궁의 말이 진의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을 
듣사온즉 세상에  유언비어가 없지 않다는데 동궁부터  대군을 의심하는 모양인
즉, 잘못하면 모자가 함께 종사에 큰 죄인이 되고 말 것이올시다. 애매한 죄명을 
쓰고 세상을 마치느니 진작 다른 도리를 생각하여 청백한 것이나 세상에 알리는 
것이 옳겠습니다. 마마께서는 부득이한  사정을 통촉하옵시니까 단견을 용서하실 
줄로 압니다. ” 하고 대군의 모자가 함께  자처라도 어운을 보이며 목메인 말소
리로 왕의 심사를 동았다. 그날 궁중에서 큰 사단이 생기었다. 왕이 동궁에게 선
위한다는 전교를 내리어서 동궁이  맨머리 맨발로 내전 문밖에 뛰어와 엎드려서 
전교 거두기를 청하는데, 그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그때 동궁의 억색
하여 하는 모양을 보고 궁인들 중에는 남 모르게 눈물을 흘린 사람이 한두 사람
이 아니었었다. 여러 시각 동궁이 울고 엎드려 있은 뒤에, 대전에서 동궁을 가긍
하게 여기는 맘이 나서 선위 전교를 도로  거두는 처분을 내리었다. 이리하여 이 
큰 사단은 궁중에서 그치고 조정에까지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3
  윤원로, 윤원형이  중전을 사이에 놓고  대전의 맘을 흔들어서  동궁을 이롭지 
못하게 할 뿐이 아니라 두고두고 갖은 흉계를  다 써서 동궁을 해치려고 하였다. 
어느 해 정월달 일이다. 아닌밤중에 동궁 침전에 화재가 났다. 궁인 하나가 오줌 
누려고 일어났다가 창문이 너무 일찍이 밝은 것을 괴상히 생각하여 밖에 내다보
았더니 이때 불이 벌써 동궁 침전에 돌아  붙었었다. 그 궁인이 정신없이 “불이
야, 불이야!” 하고 큰소리를 질러서 이 방 저 방 여러 방에서 궁인들이 모두 놀
라 일어났다. 궁인들은  곤히 자던 끝에 갑자기 경겁하여 거지반들  어찌할 줄을 
몰랐었다. 동궁께 문안  가려고 황망히 머리에 첩지를 얹고 단속곳  바람으로 나
오다 들어가는 궁인이 없을까,  패물 궤짝을 안고 쩔쩔매는 궁인이 없을까, 무수
리 부르느라고  악쓰듯 소리만 지르고 앉았는  궁인이 없을까, 수내인, 암내인이 
손길을 맞잡고서 대를  내리듯이 떨고 있지 아니할까, 우스운 거동이  한둘이 아
니었다. 조금 정신들을 차리면서부터는 여러 궁인이  각각 자기의 물건을 들어내
느라고 부산하여 동궁  침실에 와서 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  밤에 정귀인이란 
이가 동궁을 뫼시고 자다가 놀라  일어나서 급히 의복을 입고 문을 열려고 한즉 
침실 덧문의  바깥고리가 걸리었었다. 정귀인이  안복도로 난 문을  열고 나와서 
침전에서 떨어져  있는 별채 궁인의 방으로  동궁을 뫼시어 오고, 그  다음에 또 
세자빈 박씨를 뫼시어 오게 하고  귀인이 다시 동궁 침실에 가서 의관이며 서책
이며 그외 동궁의 손그릇을 들어내고 끌어내고  하였다. 이리하는 동안에 앞뒤에
서 난간이 타고 기둥이 타고 석가래가 탔다. 눈  위의 매운 바람이 불 기세를 도
와서 동궁 침전 전체가 불  속에 싸이며 화광이 충전하게 되었다. 위에 대전, 중
전이 밖에 나서고 아래 별감,  무감 들이 줄달음을 쳤다. 궁중 상하가 물끓듯 하
였다. 궐내에 숙위하던 위장과  부장들이 숙위 군사들에게 걸낫, 도끼 등속을 들
리어 가지고 황황히 쫓아들어왔을 때는 기왓장이 불에서 튀어 사람이 근처에 섰
기가 어려웠다. 물그릇을 뻔질 날라다가 불에  끼어얹어서 연채에 옮겨붙지 못할 
만큼 불 기세를 줄이었으나, 침전 한 채는 고스란히 태워버리고 말게 되었다. 대
전에서 동궁의 안부를 몰라서 친히 동궁에 동가하려 한즉 중정이 “동궁이 중합
니까, 종사가 중합니까?  마마께서 화염 중에 돌아가신다니 말씀이  아니 되옵니
다. ” 하고 이유를  붙여 가며 말리어서 대전에서 발을 구르고  섰을 때 동궁이 
정귀인을 데리고 들어와서 문안을  여쭙고 뒤미처 세자빈 박씨가 들어와서 문안
을 드리었다. 동궁이 정귀인에게 힘본 것을 대강 사뢰니 대전에서는 “신통하다. 
” “기특하다. ” 하고 칭찬을  마지 아니하고 중전은 “고 계집, 몸이 재게 생
겼다. ” 하고  칭찬 비슷이 말하였다. 이  화재가 어디서부터 난 것은 궁중에서 
아는 사람이  없었으나 “그 놈의 짓이지  무어. ” 하고 수근거리는  것은 원로 
하나를 지목하는 말이고 “그놈들의  흉계야. ” 하고 속살거리는 것은 원로, 원
형 형제를 함께 지목하는  것이었다. 궁중의 지목이 원로, 원형 형제에게 돌아가
는 것을 대전에서는 알지 못하여 까닭없는 불이라고 귀화인가 하는 중전의 말을 
옳게 여기었다.  며칠 뒤에 동궁에서 시강원  제신에게 하서하였는데, 대개 뜻이 
아래와 같았다. “덕 없는 사람이 외람히 동궁에  있게 된 까닭으로 하늘이 벌을 
내리어 조종조부터 백여  년간 전래한 집이 하룻밤에 재가 되었는데,  위로 성심
을 경동케 하고 아래로 백료를 황황케 하였으니  이러한 변은 전고에 없는 바라. 
내가 자책함을  마지 아니하나, 실로 변에  대하야 처신할 바를 잘  알지 못하니 
여러 요관들은 여러  빈사와 같이 의론하야 밝히 교도하야 주기를  바라노라. ” 
동궁 생각에는 조종조로부터 전래하는 집을 태운 것이 자기의 부덕 소치라고 하
여 세자위를  사양할 맘이 났었다.  경선히 말하기가 어려워서  시강원 관원에게 
그대로 범범하게 처신할  도리를 하문하게 된 것이다. 이때 동궁의  생각을 빌밋
하게라도 안 사람은 화재 후에 하교로 동궁을 더욱 가깝게 뫼시는 정귀인뿐이었
다.
  4
  동궁 화재 나던 해 겨울에 대전에서 병환이  났었다. 처음에 상한 기미로 조금 
미령하던 것이 불과 며칠에 증세가 심상치 않게 변하여 내의원 의관들이 정성으
로 약을 드리었으나 약효험이 나지 아니하였다.  동궁에서는 주야로 시측하여 친
히 의약을 보살피는데 초민한 맘에 침식까지 폐하여 며칠 동안에 형용의 수척한 
것이 병환 중 대전과 별로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대전은 고통중이라서 알지 못
하고 중전은 심란하다고  모르는 체하고 오직 나이  어린 대군이 때때로 죽이나 
미음을 지성껏 권하여  동궁이 곡기를 끊게 되지 아니하였다. 대전  환후가 더욱 
침중하여 큰일이 조석에 날 것 같으니 동궁은 목욕재계하고 내전 뒤뜰에 내려서
서 하늘을 우러러보고  몸으로 대신하기를 축원하는데, 찬바람을  무릅쓰고 겨울 
긴 밤을  선 채로 새웠었다. 하늘이  앎이 있으면 동궁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이 
되었으련만, 대전의 병환은 구경  돌리지 못하고 상사가 나게 되었다. 동궁의 발
상한 뒤에 여러  차례 혼도할 뿐이 아니라 여러날  동안 미음 한 모금을 마시지 
아니하여, 나중에는 곡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아니하도록 기운이 시진하였다. 처
음에 대신이 옥새를 받들고 나아왔을 때 통곡하며 받지 아니하여 조정 제신들이 
대위는 하루도 비우지 못한다고 국보를 받으시라고  청하고 옥새를 드리는데, 옥
새가 앞에 이른즉 통곡하며 차마  받지 못하니 제신들 중에는 따라서 눈물을 흘
린 사람이 많았었다.  종일 지체한 뒤에 동궁이 하릴없이 누물로  용상을 적시며 
대신 이하 제신의  배례를 받았으나, 상사에 관한 일 외에는  대신에게 일임하고 
돌보지 아니하였다.  새 임금이 집상을  과도히 하여 초상부터  졸곡까지 미음과 
죽 외에는 진어한 음식이 없고  밤에 침전에 눕지 아니하고 인산을 지난 뒤에도 
오히려 상차를 떠나지 아니하여 대신들이 침전에서 기거하시기를 누누이 청하였
으나, 위에서 잘 좇지 아니하였다.  또 새 임금은 자전에 대한 도리를 극진히 차
리어 백 가지로  대비의 맘을 위로하려고 힘썼으나, 대비는 하루  한두번씩 미안
한 처분을 내리지 않는 날이 없고 그것이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하여 과부와 어린
아이가 명에 죽기를 바라지 못한다고 고의로 울며불며 하는 때도 없지 아니하였
다. 대비의 미안이 내릴때는 상감이 억색함이  못이겨하면서도 그 미안을 풀려고 
성의를 다하건만,  대비는 목석 아닌  사람으로 심장이 어찌되었든지  그 성의에 
감동되는 빛이 없었다. 상감은 청약한 기질로 초상  이후 몹시 지친 끝에 대비의 
맘을 얻지 못하여  심려를 많이 하므로 기거범절의  불안한 때가 점점 잦아지니 
윤원로, 윤원형 형제와 및 그 동류 이외에  조정 제신들은 한없이 우려하여 성궁 
보전할 계책을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옥과현감 김인후가 다른 궁으
로 이어하여 조양하시기를  청하니, 이것은 대비전과 각거하시라는  말이라 성궁
을 보전하기에는 계책이 좋지  않음이 아니로되 도리에 합당치 못하므로 상감이 
그 청을  좇지 아니하였다. 일개 현감이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상감께  청할 수 
있었을까? 대개 김인후는  칠팔 세때에 전라감사 조원기에게 장성  기재요, 천하
문장이라는 칭찬을 받은  희한한 인재로서 등과한 뒤  시강워 설서 벼슬을 다닐 
때, 동궁과 계합이 자별하여 남에 없는 특별한  은총을 입은 사람이라 상감 문안
을 알고자하여  일부러 상경하였을 때 상감이  편전에서 인견하였으므로 상감을 
위하여 그만한 말씀을  아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김인후는 성균고나  직강 유희
춘과 정분이 특별히 좋은 터이라 옥과로 내려가기 전에 유직강을 심방하고 여러 
이야기 하는 중에 상후 불안한  것을 한걱정삼아 말하였다. "원로의 집에서는 요
사이 매일 점을 친다네.  " "점이라니?" "상후가 평복되시지 않기를 점친다는 말
이 있어. "  "죽일 놈들 같으니. " "원로는 상감  말씀을 심화거리라고 한다니 더 
할 말이 있나. "
  윤원형의 건객인 임백령이  유직강의 안해와 육촌척이요, 또  유직강하고 같은 
해남 사람이라 원로, 원형의 집 말이 간가이  유직강의 귀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
다. "그것이 무슨 소리야? 지금 조정에 사람이 없단 말인가? 어찌해서 그놈의 형
제를 그대로 두고  본단 말인가? 인중이 자네부터 그런  말을 귀에 담아 두기만 
한단 말인가?"   하고 김옥과가 분하여 펄펄 뛰다시피  하였다. "나도 분한 맘이 
있기야 하지. 그러니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언책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상소장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삼사가 함께 나서서 죽기로 다투어도 윤가 형제를 처치하
실 리는 없으니 우리 성주의 착한 맘만 상할 뿐이 아니겠나. " 유직강의 말이 옳
았다. 김옥과는 길이  한숨을 쉬더니  "하늘이  우리 동방을 돌보시면... "   하고 
눈물을 좌르르 흘리었다.
  5
  윤가 형제가 점을  친다는 것이 헛말이 아니었다. 그 형제는  새상감이 등극한 
뒤로 상감의 수명을  점치고 상감을 두고 방자하는 것을 성사로  여기었다. 주부 
이건양이란 자가 숙덕거리었다.  어느 날 원형이 대비전에  승후하러 들어갔다가 
한동안 밀담하는 중에  대비가 말하였다. "수십 년 전에 소격서  안에 와서 있던 
유명한 술객은  일생의 길흉화복을 눈으로 내다보는  것같이 알아맞히더니 그런 
술객이 다시는  없는 게야. 내가 그  술객에게 유년을 낸 것이  있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대전 환후  중에 우연히 생각이 나서  찾아볼랬더니 아무리 찾아야 찾을 
수가 있어야지. 정녕 없어진 게야. 그 유년 속에 종사지경은 일왕사주란 귀가 있
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일찍 죽은 인순공주까지 수에  치면 공
부 넷, 대군 하나 오남매  맞지 않았어?"  "일군사주가 아니고 일왕사주이었습니
까?"  "일왕사주로 생각나는군. " "녜.  " 하고 대답하는 윤원형은 왕 한 자에 맘
이 가득하였다. 원형이 궐내에서  나오는 길로 곧 이건양을 보고 수십  년 전 소
격서에 와서 있던  술객이 누구인 것은 아느냐고  물은즉 이건양의 말이  "저는 
알지 못하나 저의 아는 소격서 늙은 도사는 혹시 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하고 
이건양이가 늙은 도사에게 가서 그  술객의 성명이 김륜인 것 외에 신판사 따라 
광주로 간 것까지  알아왔었다. 다시 사람을 놓아 알아본 결과로  김륜이가 아직 
죽지 않고 광주읍 근처에서 산다는 말을 듣고,  원형이가 그 형과 공론하고 이건
양을 시켜 폐백을 가지고 가서 김륜을 서울로 맞아오게 하였다. 원로, 원형이 먼
저 자기들과 집안식구들의 사주를  김륜에게 보이고 길흉을 물으니 원로와 원형
의 안해는  대체가 불길한 중에 정명을  다 누리지 못하리라 하고,  원형은 이십 
년 부귀가 앞에 있다고 말하였다.  "내가 부귀한다면 형님과 실인이 불길할 까닭
이 있소? 두 말중에 하나는  틀릴 것이 아니오?"  하고 물으니 "그건 나도  모르
지요. 내 말이 틀릴 리는 없을 걸요. " 하고 김륜이가 두동지게 대답하였다. 원로
가 "아따, 우리  사주는 어떠하든지 그만두고 이  사주나 하나 보아주오. "  하고 
올해생 사주를 적어 주며  "다른 것은 물을 것도 없으니 사주 임자의 수한만  알
아내시오. " 하고  말이 떨어지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양으로 김륜이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명은 육십이 세요. " 원로는 입을  벌리고 그 아우를 돌아보
았다. "그렇지만 금년  육칠월 어름에 횡사수를 면하기가 어렵소. "  원로의 벌리
었던 입은 다물어지고 원형의  눈동자는 움직이는데 형제의 얼굴에 다같이 은근
히 좋아하는 빛이  보였다. 김륜이는 나이가 육십줄이나 위인이 젊었을  때나 다
름없이 부삽하여 언어 동작에 체신머리가  없었다. "이 사주 임자는 지금 상감이
신데 상감의 수한은 알아 무어하실라요?" 하고 원로 형제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 
형제가 다같이 놀라는 빛이 있으며 "상감 사주는  무슨 상감 사주. " "아니요, 잘
못 알았소.  " 하고 우물쭈물들 대답하였다.  원형이가 김륜의 위인이 꾀기  쉬운 
것을 보고 밀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자기 형제의 처지와 소망을 대강대강 이야기
하고, 자기 집에 와  있어서 자기들과 의논을 같이 하면 다음날  부귀를 같이 누
리겠다고 말하였더니,  속이 얕은 김륜이가  원형의 꾐에 넘어가서  원형의 사람 
노릇할 것을 맹세하다시피 말하여 그  뒤로는 김륜이가 원형 집 손이 되어 주인 
형제와 이건양과 네 사람이 함께 쑥덕 공론을  하게 되었다. 김륜이가 사람 방자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있어서 원형에게 말하였더니  원형 형제가 좋아하여 곧 
그 방법을 시행하기로  작정하였다. 그 방법은 산골 조용한 곳에  들어가서 제웅
을 만들어놓고 제웅등에 사람의 사주를 써서 붙이고 매일 바늘 하나씩을 박으면 
칠일 만에 사주  임자의 목숨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원형의 형제가  남산 으슥한 
구석에 초막을 짓고 김륜이의 가르치는 방법대로 제웅을 만들고 그 등에 상감의 
사주를 써붙이고 매일 바늘 하나씩 박아 가는데,  괴상한 일은 제웅 발에 바늘을 
막는 날부터 상감은 발이  쑤시어 못션디어 하고, 또 제웅 팔에  바늘을 막는 날
부터 상감은 팔이 쑤시어 못견디어 하여 이삼 일 지난 뒤에 상감은 온몸이 쑤시
지 않는 곳이 없었다.  원형의 형제는 궐내의 소식을 듣고 방자가  영험 있는 줄
을 알고 좋아하여 닷새 되던  날부터 원형이는 어느 시공을 갔다 온다고 핑계하
고 남산 초막 속에 가서 파묻혀있게 되었다.
  6
  원형의 형제가 남산에서 시작하기  전에 상감이 특별한 처분으로 전에 몰수하
였던 김식의 가택과 재산을 도로  내어 주게 하여 김덕수는 그의 늙은 어머니를 
뫼시고 전날 아버지의 집으로 이사하고 김덕무는 맏형의 글방 차렸던 집으로 이
사하고 혜화문 안 갖바치 살던  집에는 김덕순이 홀아비 살림으로 밥해 줄 사람
만 두고 지내게 되었다. 덕순이가 아우 내외에게  얹히어 있을때와 달라 가끔 놀
러 올라오는 양주  꺽정이도 며칠씩 묵다 가기가 편하였다. 꺽정이가  혜화문 안
에 와서 묵고 있을 때다. 어느 날 젊은  중 하나가 찾아와서 덕순을 보고 “김서
방님, 소승 문안드입니다. ” 하고 인사하니 덕순은 처음 보는 중이라 인사 대답
으로 “어느 절에 있는가?” 하고 물었다. “죽산 칠장사에 있습니다. ” “시주 
얻으러 다니는가?” “아니올시다. 스님의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 “스님은 
누구야?” “병해대사올시다.  ” 덕순이와 꺽정이는 다같이  놀라며 반가워하였
다. 꺽정이가 창녕서  떠날 때 대사는 늦더위 지나거든 온다고  뒤떨어지더니 그 
뒤에 창녕서는 서울로  올라갔다는 기별이 있었는데, 서울은 온 일이  없고 중간
에서 자취가 없어져서 삼사 년 동안 생사 존몰을 모르던 터에 뜻밖에 소식을 듣
게 된 것이었다.  “편지 어디 있나? 어서 이리  내어. ” 덕순이는 편지 보기를 
급하여 하는데 꺽정이는 중을 보고 말을 물었다.  “병해대사가 죽산 가 계신 지 
몇 해나 되었소?” “올해 사  년째인가요. ” “창녕서 오시는 길에 곧 가셨군. 
” 편지봉을 뜯어보던 덕순이가 “여기 네게 오는  편지도 있다. ” 하고 꺽정이
를 돌아보았다. “뜯어보시오. ” “그래라. ”  덕순에게 온 편지도 사연이 간단
하나 칠장에 연분이 있어 와  있게 되었다는 말과 소식 끊어 미안하다는 말이나 
있지만 꺽정에게  온 것은 다른 말이  없이 “제웅을 사를 때  바늘들을 뽑아라. 
나의 낯을 보아서 목숨만은  살리고 이 쪽지를 주어라. ”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만 적히고  륜개견이라고 쓰인 작은 봉지가 편지 속에  들었었다. “그게 
무슨 소리오? ” “나도  모르지. ” “편지 줄 때 무슨  말씀이 있습디까?” 하
고 꺽정이가 중에게 물으니   “별말씀 없어요. 혜화문 안 오는  길을 가르쳐 주
실 뿐입디다. ” 하고 중이 꺽정의 말을  대답한 뒤에 덕순을 바라보며 “심선생
님이란 이의  댁이 여기서 가깝다지요?”  하고 물었다. “심선생님이  돌아가서 
대상이 쉬었는데 심선생에게  편지를 한 게로군. ” “선생님이 심선생  죽은 것
을 아실 까닭이 없지요.  ” 덕순이와 꺽정이가 서로 보고 말하는  것을 중이 듣
고 있다가 한번  하하 웃고서 “우리 스님이 어떠신 분인지  잘들 모르시는구려. 
그만 일을 모르시고  생불 말씀을 들으시겠소. 스님이 향을 피우고  눈만 감으시
면 천리  만리 밖 일도 환하게  눈으로 보시는 것같이 알으십니다.  지금 편지들 
보고 말씀하시는 것도  스님은 알고 기실 것입니다. ” 하고  말하고서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심선생님이란 이의 대상이 인제 사흘  남았구먼요. ” 하고 말하였
다. “가만 있거라. 참말  한 사흘밖에 아니 남았는가 보다. ” “글쎄요, 하여튼
지 일간일 것이오. ” “그것  보시지요. 내가 떠나기 전날 밤에 스님 말씀이 대
상이 엿새 남았다고 하십디다. 그리고 향 한  쪽을 종이에 싸주시며 대상때 쓰도
록 갖다 드리라고 하십디다.  ” 하고 향쪽 산 것을 바랑  속에서 찾아내어 덕순
이와 꺽정이를 보이었다. 칠장사에서 온 중이 심선생  집에 가는 향을 전하고 도
로 혜화문  안에 화서 하룻밤을  묵어가는데, 덕순이와 꺽정이는  대사의 범절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날마다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불경 보시지요. ” “
상좌는 몇 사람인가?”  “온 절 중이 모다 스님의 상좌  셈이지요. 그중에 스님 
방에서 스님을 뫼시고 지내는 사람이 소승 외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 “훌륭
한 대접을  받는군. ” “그러면요. 대접  여부가 있습니까. 중들은  말씀할 것도 
없지만, 근처 속인들도 모두 대접합니다. ” “그건 어째서?” “병 있는 사람이 
절 한 번에  병이 낫지요, 자손 없는 사람이 스님  불공 한 번에 자손을 보지요.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눈앞에  영검을 보고야 대접 아니할 수 있습니까? 죽
산, 안성, 용인 근방  사람들에게 칠장사 생불님이라고 물으면 거의 모를 사람이 
없습니다. ”
  7
  이튿날 덕순이가 답장을  써주어 중을 떠나보낸 뒤다. 꺽정이가 부작  같은 편
지를 돌쳐 생각하고 “제웅은 무어고 낯 보아 살릴 사람은 누구이람?” 하고 혼
잣말같이 중얼거리더니  덕순이 말이 “평소에 말  한마디 지망지망히 아니하던 
사람이 종작없는 말을 편지로  적어 보낼 리 없으니 두고 보아라.  ” 하고 대사
의 사람된 것으로 그  말이 곡절이 있을 것을 믿어서 꺽정이도  “글쎄요. ” 하
고 그  쪽지 편지를 줌치 속에  집어넣었다. 그날 저녁때 덕순이는  큰집에 가고 
꺽정이 혼자 방에 들어앉았다가 갑갑하여 행길가에  나섰더니, 길 건너편에 동리 
여편네가 네 다섯이 함께 모여 서서 참새같이 지껄이는데 꺽정이가 들으려는 맘
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새된 목소리로 지껄이는 말이 저절로 귀에 들리었다. “
내일 모레 남산 국사당에 밤굿이 있답디다.  구경들 가십시다. ” “아이구, 나도 
가야지. ” “입고  나설 옷이 있어야지 가지.  ” “굿구경도 좋지만 밤에 남산 
꼭대기를 어떻게 올라가오. ” 꺽정이는 서울이 고향이나 진배없지마는, 남산 국
사당은 한번도 올라가  본 일이 없는 터이라  여편네들의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 
‘갑갑한 김에 국사당에나 올라가 보겠다.‘ 하고 생각하였다. 일이 일부러 만든 
것같이 공교히  되느라고 처음으로 남산에를 올라오는  꺽정이가 어디를 어떻게 
돌아서 왔던지 조그마한 초막 앞에를 왔다.  ‘국사당이 산꼭대기에 있다더니 어
째 이런 구석에 와 있을까?’ 하고 꺽정이는 국사당인가 의심하며 그 안을 들여
다보니 뒤편으로 다가서 젯상 하나가 놓여 있고,  젯상 안침에 제웅 하나가 세워 
있다. 대사 편지에 있던 말이 꺽정이  머리속에 번개같이 생각났다. ‘하하, 저것
을 사르란 말이구나.  대체 저것이 무엇일까?’ 하고 혼잣말하며  자세히 살펴보
니 제웅 앞에는 불을 켜지 아니한 등잔 세  개가 놓여 있고, 젯상 아래는 깔아놓
은 방석 두 개가 놓여 있다. 이것이 원형의  방자하는 초막인 것은 다시 말할 것
도 없지마는,  이때 원형이가 김륜이와  같이 앉았다가 목이  말라서 부엉바위로 
물 먹으로 나간  동안이라 초막이 비었던 것이다. 꺽정이가 처음에  대사 편지의 
말대로 곧 제웅을 사르려고 하였으나 불씨가 없을  분 아니라, 까닭도 모르고 사
르기가 우스원서 국사당에 올라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다시 와서 보리라고 생각
을 고치어 먹고 남산 꼭대기로 길을 찾아올라갔다.  해가 서산에 넘어간 뒤에 꺽
정이가 국사당을 돌아  내려오는데 길을 잃고 초막  있는 곳을 지나 내려갔다가 
다시 찾아올라왔다.  근처에 와서 보니  아까 없던 불빛이  초막에서 새어나오고 
도란도란하는 사람의 말소리까지 들리었다.  꺽정이가 동정을 살피려고 발소리를 
내지 않고 초막  옆에 있는 소나무 뒤에 와서  숨어 섰으니 초막 안에서 나오는 
말소리가 속살거리는  말 이외에는 모두 똑똑히  들리었다. “여보, 바늘을 어디 
두었소?” “아까 영감이 두셨지오.  ” “내가 언제 어디다 두어?” “영감, 정
신이 없으시구려. 나는 보니 아까 물 먹으러  나갈때 영감이 방석 밑에 넣으시는
갑디다. ”  “그러면 진작 방석 밑에  있다고 하지 기다랗게 말씀할  것이 무어 
있소?” “내가 두지  않은 것이니까 말씀 아니할 수 있습니까.  ” “내가 정신
이 없어. 옳지, 여기 있군.  ” “인제 이것 한 개면 소원 성취로구려. ” “오늘 
밤 자시만 지나면 만사여의할  터이지만, 술시를 잘 지날는지 염려가 됩니다. ” 
“술시, 염려 마시오. 조금  있으면 술식가 될 터이오. ” “글쎄요. ” “자시에 
바늘 하나만 더 꽂으면 내일 아침에는 전하  상소리를 듣게 될 모양인데, 지금쯤 
궁중에서야 야단 여부가 있겠소. ” "임금 노릇을 반 년도 못하고 죽기는 원통할
걸. “ 그 수작하는 이야기로  임금 방자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새 임금의 
처지는 꺽정이가 전부터 불쌍하게  생각하던 데다가 뒤에서 방자하는 것들의 미
운 생각이 복받쳐올라왔다. 뚜벅뚜벅 걸어서 초막  앞으로 나가서 드나드는 문을 
막고 서서 ”이놈들!“  하고 한 번 호령에  안에 있던 두 사람은  자지러지도록 
놀라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쩔쩔매었다. 꺽정이가 안으로 들어가서 한  손에 한 
사람씩 두 사람을 한꺼번에 잡아들고 나왔다.  ”이놈들, 못된 놈들 같으니, 방자 
잘한다. 버릇을 좀  배워라!“ 하고 호령한즉 그중에 늙은  자가 ”잘못했습니다. 
살려 줍시오. “ 하고 비는데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그 늙은 자의 얼굴을 불빛
에 치켜들고  들여다보니 낯이 익었다. 김륜이었다.  김륜이는 호되게 겁이 나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므로 양편 손으로 사람 하나씩 치켜드는 장사가 꺽정인 줄을 
모르고 장수님이라고 부르면서  “죽을 때라 잘못했으니 제발  용서하십시오. ” 
하고 빌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속으로 그 못생긴 것을  웃으면서 “못
된 짓 하는 군이 거센 체하면 혹시 용서할 수 있지만, 애걸
복걸해서는 용서하지  못하겠다. ” 하고  얼굴에 침을 배앝으니  김륜이는 침을 
씻을 생각도 못하고 “네, 거센  체합니다. ” 하고 고개를 겨우 목 늘이듯 하여 
꺽정이는 한번  허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하늘에 반달이  있어서 산구석 
솔빛 속에도 희미한 빛이 비치었다. 꺽정이가 두  사람을 땅 위에 주저앉히고 고
양이가 쥐 놀리듯  졸리었다. “ 이놈의 자식은  귀 뒤에 옥관자를 붙였구나. 네 
성명이 무엇이냐?” “대답 못하겠느냐?” 하고 꺽정이가 발끝으로 구부리고 있
는 사람의 어깨를  작신하니 애구애구 하고 죽는 소리가 나왔다.  “성명이 무어
냐?” “윤가올시다. ”  “이름은 없느냐?” “원로올시다. ” “윤원로,  잘 알
았다. 너의 놈 형제가 누이를 자세하고 못된 짓 잘한다더라. ” 윤원형이가 초막 
안에서 들려나올 때 벌써 기색하다시피  되어 살려 달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땅
에 주저앉힐 때까지도 이승인지 저승인지를 모르다가 어깨를 맞았는지 차였는지 
뼈가 부서지는  것 같이 아픈 데서  정신이 반짝 났었다. 그리하여  죄를 형에게 
밀어 붙이려는 꾀로  이름을 외대는 것이었다. ‘윤원로 잘 알았다’  하는 말에 
꾀 쓴 것을 다행히 여기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올시다. ” 하고 죽어가는 목소
리로 대답하였다. “처음은 죄가 아니랴?  너 같은 쇠새끼는 손 대일 것도 없다. 
죽거나 살거나 네 명이다. ” 하고 꺽정이가 발로 떠내던져 아래로 굴리었다. 원
형이는 이십 년 부귀가 앞에 있는 까닭으로 운수가 뻗치었던지 바윗돌에도 닥치
지않고 몇 번  구르다가 큰 소나무 밑둥에 걸치었었다. 어깨가  부어오르고 가슴
이 멍이 들고  몸에 생체기가 날 뿐이었다. 이것은 뒷이야기라  그만두고 꺽정이
가 그 다음에 김륜이를 내려다보며 “한어미의  자식도 오롱이조롱이다. 같은 선
생의 제자가 어째서 저 모양이람. ” 김륜이가  선생 들추는 말에 갖바치인가 의
심하였던지 “동문수학한 정분으로  보더라도 너무 몹시 하십니다.”  하고 고개
를 치어들고 이윽히  바라보다가 “나는 누구라고? 양주 백정의  아들이로군. ” 
무심결에 백정 아들이라고  말한 것을 꺽정이는 업수이  여기는 말로 듣고 “이 
늙은 것이 참말로 고만 살고 싶은 게다!” 하고 눈망울을 굴리었다. “선생의 낯
을 보더라도 내게 그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어?” “이것 보아라, 점점. ” “그
리 말아. ”  "말란다고 말 듯하냐?” 하고 꺽정이가 발로 턱을 치받치니 김륜이
는 한참 입을 움켜쥐고 쩔쩔매다가  나중에 침을 뱉는데 시커먼 피에 하얀 이들
이 섞이어 나왔다. “애구 애구 죽여라. ”  “죽이라면 못 죽이랴. ” 하고 꺽정
이가 두 손으로 김륜의 목을  움켜쥐며 곧 비틀어 죽이려고 하다가 별안간에 대
사의 편지가 생각이  나서 맘을 돌려먹고 손을 놓았다. 꺽정이가  김륜이를 잡아 
일으키어 앞세우고  다시 초막안으로 들어와서 줌치에  들었던 편지봉을 꺼내어 
주었다. 김륜이가 ‘륜개전’ 이란 글씨를 한참  동안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있다
가 꺽정이의 재촉을 받고서 겉봉을 뜯었다. 김륜이가  다시 한참 동안 편지를 들
여다보더니 눈에  눈물이 어리며 “형님, 감사합니다.  ” 하고 절하듯이 고개를 
수그렸다. 꺽정이가 “감사한 생각이  나거든 죽산이나 가지. ” 하고 웃으니 “
그러지 않아도 광주 집에  다녀서 곧 죽산으로 갈 터일세. 목숨살려  준 덕은 잊
지 않겠네. ” 하고  김륜이는 꺽정이에게까지 치사하고 산 아래고 내려갔다. 꺽
정이가 김륜을 보낸 뒤에 젯상 위에 있는 제웅을 집어내려서 묶은 짚을 풀고 박
히었던 바늘을 찾아 모으니 바늘이 모두 여섯  개였다. 꺽정이가 바늘이 다시 더 
없는 것을 보고야 등잔불을 옮겨  당기어 제웅 푼 짚을 태우고 그 다음에 그 초
막까지 불을 질러버리었다.
  8
  상감이 쑤시는 증세로  닷새안 밤에 눈을 붙여보지  못하다가 그날 밤에 잠이 
들어 한숨을 지고 난 뒤로  그 증세가 거짓말같이 없어져서 이튿날부터 친히 대
비전에 문안 다닐  만큼 기동하게 되었다. 대전 환후가 평복되어서  이런 경사가 
없다고 기뻐하는 소리가  궁중에 가득할 때 대비는 남몰래 입맛을  다시고, 진하
하는 말씀이 조반에 분분할 때 원로 형제는  집에서 이를 갈았다. 그러나 대군만
은 마마를 치른 뒤로 몸이 내리 깨끗치 못하여 누워 있던 아이가 대비의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일어나서 기쁨에 넘치는 낯으로 대전께 나와서 보입고 들어가는 
길에 고전에 와서 진하하니 대전에서 차마 사랑함을 못이겨하는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고, 곤전이하 여러  궁인들까지 모두 귀히 여기고 칭찬하였다. 상감이 환
후 평복된 뒤에 정사 다스리기를 힘쓰는데, 그  정사가 한 가지라도 인심에 어그
러지는 것이 없었다. 이때 태학 유생들이 사화에  죽은 조광조 등을 복직하여 달
라고 상소하였는데, 첫상소 비답에는  ‘상소 뜻은 잘 알았다. 이 사람들의 일을 
선대왕이 어찌 우연히 생각하고 처치하셨으랴’ 하고  좇지 아니하고, 둘째 상소 
비답에는 ‘좇지 아니하는 뜻은 이미  다 말하였다’ 하고 또 좇지 아니하여 유
생들이 모이어서 “학문을  좋아하시는 성주로서 어찌하여 이 일을 지난하실까? 
괴상한 일일세. ” “우리의  정성이 천박한 모양이야. ” “우리가 이왕 발단을 
한 바에는 위에서  좇으시기까지 연해 상소질해 보세. 하다하다 안  되거든 공관
하고 다들 나가버리세나. ”  하고 서로 공론들 한 뒤에 연거푸  셋째 소장을 올
리었더니 비답이 길게  내리었다. “너희들이 수선지지에 있어서  예를 좋아하고 
때를 의론하여 소장을  세 번 올리는데 사의가  간곡하고 의리가 정당하니 배운 
바의 바른 것이 이보다  더할 수 없을 것이라. 우리 선대왕의  교육의 여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말을 좇지 않는 것은 뜻이 있는 일이고, 또 태학이 비록 공론을 
가졌다 하나 시비를 정하는 것은 따로 조정이 있으니 너희들이 시비를 말하기까
지는 득당하였다 할  것이나 기어코 시비를 정하려는  것은 유생의 일이 아니라 
아직 물러가 생각하라. ” 유생들이 이 비답에  감동이 되어 서로 돌아보며 눈물
을 흘리고 물러나갔었다. 상감이  몸이 약하고 병환이 잦으나, 그렇게 쉬이 상사
날 것은 아니었는데 유월 그믐날 밤에 홀저에 병환이 위중하여 삼정승을 내전으
로 불러들이어서 “나의 명이 심상치 않고 나에게 시속이 없는 터이라 경원대군
이 비록 나이 어리나 범정이  숙성하여 후사를 맡길 만하기로 이제 전위하는 것
이니 그대들은 도와주라. ” 하고 전교를 내리고  뒤미처 또 “조광조 등의 죄와 
현량과 파과는 선대왕  때 일이라 장차 조용히  처리하려고 하였더니 지금 나의 
병이 할 수  없이되어 더 기다릴 수 없으니  광조 등의 죄를 소석하여 직첩들을 
도로 주게 하고 현량과를  복과하여 주라. ” 하고 전교를 내린  뒤에는 한참 동
안 정신이 흔흔하여  곧 운명하는것 같더니 다시  잠깐 정신을 돌리어서 대신과 
경연관들을 불러 앞에  세우고 지필을 찾아 유교를  쓰려고 하다가 손이 떨리어 
글자가 되지 아니하매 붓을 내던지며  한숨을 쉬고  “나의 평생 소회를 그대들
에게 알리려고 하였더니 인제 할 수 없다.  선대왕 삼년상을 마치지 못하니 망극
하다. 내가 죽은 뒤에 선대왕 능하에 묻어 주기를 바란다. 초종 절차를 간략히하
여 인민에게 폐가 되게 하지  마라. 육칠 년 동안 수재, 한재에 백성들이 불쌍하
다. ” 하고 동강동강 말씀하고 특별히 경연관들을  돌아보며  “내가 병이 이러
해서 삼년상을 마치지 못하니 원통하고 다시 그대들과 같이 경전을 토론하지 못
하니 한이야. ” 하고  똑똑하게 말씀하였다. 그 이튿날인 칠월 초하룻날 상감이 
마침내 승하하여 조정 관원   여염 인민 할 것 없이 집마다 곡성이 들리는 중에 
윤원형 형제와 그  당파들은 의기가 양양하였다. 윤원로가 저의 집  사랑에서 이
건양을 데리고 앉아 술을  먹으면서  “인제 내 심화가 꺼졌네.  ” 하고 좋아하
는 것은 보는 사람이나 없었거니와 윤원형은 조찬성 이기와 함께 곡반에 들어와
서 벌써 서슬 있게 돌아다니기를  시작하니 이것을 보고 이를 가는 사람이 백관 
중에 한둘이 아니었었다.  인종대왕이 삼십 년 동궁으로 있는 동안에  탁월한 덕
행은 산림처사들까지 칭송하고 기구한 처지는 여염 부녀들까지 가엾게 여기어서 
만인의 맘을 일신에  모았던 까닭으로 임금 된 지  여덟 달에 덕화가 아직 깊이 
미치지 못하였건만, 국상이  발포되던 날 그날로 서울서 의주까지 천리  동안 곡
성이 맞이었었고, 인산까지  달포 동안 시골서 양식을 싸서 지고  서울로 올라오
는 사람이 수가 없이 많았었다. 이것이 전번 국상  때 보지 못한 일일 뿐이 아니
라 실로 전고에 없는 일이었다. 옥과현감 김인후는 국상 기별을 받은 뒤로 
친상을 당한 이나 다름없이 슬퍼하여 매일 통곡에 옆에서 보는 사람까지 경황이 
없이 지내었다. 김현감이  수십 일 동안 술로만 살아온 까닭으로  마침내 술병이 
나서 자리에 누워  있는 중에 장성고향에서 젊은 일가 사람이  왔었다. 김현감이 
누워 있는 방으로 그 사람을  불러들이어 집안 문안과 고향 소식을 대강 물어본 
뒤에 “자네  백씨가 서울을 갔다더니  언제 왔는가?” 하고  물으니 그 사람이   
“네, 벌써 오셨습니다.  국휼반포된 뒤에 곧 내려오셨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
다. “국휼 나시기  전에 서울을 떠났든가?” “아니요, 그 뒤에요.  이번에 대행
전하 승하하신것은 알고  보니 큰 변입니다. ” “무슨 변?”  “저의 백씨가 궁
중 소식을 소상히 아는 사람에게서 친히  들으셨다는데 참말이라면 큰 변입디다.
” 하고 그 사람이 형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옮기기 시작하였다. “대행전하께서 
등극하신 후에 원로,  원형의 형제가 전하께 해로울 일이라면 갖은  흉참한 일을 
다하다가 나중에는 치독할 꾀를 내었든갑디다. 어느  날 원형이란 놈이 대비전에 
들어와서 궁인들까지 물리치고 무슨 말씀을 여쭙고  나갔는데, 그것이 정녕 치독
할 꾀를 말씀한  것이라고 한답디다. 이 말씀을 대군이 엿들었던지  그날부터 대
군이 대전 옆을 떠나지 않고 붙어 있어서 물  한 대접, 미음 한 보시기라도 자기
가 먼저 맛보기 전에는 대전이 그릇에 입을  대시지 못하게 하더랍니다. 열두 살 
먹은 아기로 지각이 갸륵하지 않습니까? 한번 대군이 뒤를 보러 나간 틈에 대전 
잡수실 마음이 나왔는데 대전께서 잡수시려고 그릇을  받아드셨을 때, 대군이 들
어와서 깜짝 놀라며  그 미음 그릇을 줍시사고  하여 맛보려고 하니 대전께서는 
그만두라고 주지 않으시더랍니다.  그래서 대군이 무엄한 것을  무릅쓰고 주시지 
않는 그릇을 빼앗으려고 하는데  대비가 뒤에서 동정을 엿보고 있었던지 홀저에 
들어와서 군부의 잡수실 음식을 신자 된 도리에  먼저 맛보는 것이 옳으나. 손에 
잡으신 그릇을 빼앗다시피  하는 것은 무엄한 일이다  하고 대군을 꾸짖고 미음 
그릇을 만져보며 미음이 다 식었다  다시 내오래라 하고 궁인을 불러서 미음 그
릇을 들여보냈답니다. 말들이 그 미음이 그저 미음이  아닌데 대군 없는 틈을 보
고 내왔던 것을 마침 대군이 들어와서 맛보려고 하니까 대비가 체면을 수습하는 
체하고 도로  들여보낸 것이라고 한답니다.  유월 그믐날 저녁때  대군이 서체로 
복통이 나서 따로 누워 있는 동안에 대전께서 무엇을 잡수셨던지 갑자기 오장이 
쥐어뜯는 것같이 아프다고 쩔쩔매기  시작하셔서 그 날 밤에 대군에게 전위하시
고 그 이튿날 새벽에 승하하셨는데, 수시하던 사람의  말이 몸에 검푸른 점이 생
기고 이에 검은 피가 엉기고  승하하신 뒤 불과 몇 시각 못 되어서 살이 문정문
정 만지는 손에 묻어나더라니 치독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서울서는 이것을 아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대비가 중간에 끼인 까닭으로  수군수군할 뿐이더랍니
다. ” 김현감은 이야기를 듣는 중에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 앉았는데 이야기 끝
이 나도록 말마디  아니하고, 취한 듯이 어린  듯이 앉았더니 홀저에 “애구. ” 
하고 소리를 지르며  입으로 피를 토하였다. “웬일이십니까?” 하고  일가 사람
이 놀라 일어나서 그 몸을  붙드니 김현감은 붙들린 채로 애고지고 하며 슬프게 
통곡하였다. 김현감이 정신을 수습한 뒤에 곰곰 생각하였다. ‘대비가 족히 그런 
일을 할  양반이지만, 이목이 번다한 궁중에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
까? 아무리 대비가 악하다 하더라도 못된 일을 드러내놓고는 할 수 없었을 터이
지. 아니 수랏간 나인 한둘만  끼면 하지 못하란 법도 없어. 원래 강건치 못하신
터이라도 갑자기 승하하시기는 반드시 곡절이 있는  일이야. 다른 궁으로 이어만 
하셨더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없었을 것인데,  내가 미리 염려까지 하면서도 위에
서 들으시도록 정성껏 말씀을 아뢰지  못하였으니 이런 절통한 일이 또 어디 있
단 말이냐.  도대체 말하자면 우리 동방  인민이 복이 없어서 요순  같은 임금을 
오래 뫼시자 못하게 된 것이다. ’ 김현감은  그 이튿날로 인궤를 봉하여 전라감
영으로 보내고 장성고향으로  돌아왔다. 김인후가 현감을 내버리고  집으로 돌아
온 뒤에는 문을 닫고 들어앉아 세상일을 묻지 아니하고 매년 육칠월 두 달 동안
은 매일 장취하다시피 술을 먹고 지내는데, 유월  그믐날만은 입에 술을 대지 아
니하고 종일 단정히 앉았다가 저녁때가 지난 뒤에는 앞산 속에 들어가서 북향하
고 통곡하며  그 밤을 새웠었다. 여러  해 뒤에 나라에서 특별히  홍문관 교리를 
제수하고 김인후를 서울로 부른 일이 있었었다.  그때 상지를 전갈하는 장성현감
부터 김인후가 으레 사폐하려니 미리 짐작하고 “이번 교리 제수가 옆에서 아뢰
거나 품한 것이 아니고 특별하신위의 처분이랍니다. 아무쪼록 곧 응명하
시도록 하시고 사폐하실 생각은 잡숫지 말으십시오.  ”하고 권하여 말하니 김인
후는 현감을 바라보며 “성주께서 민을 잘못 아시고 권하시기까지 하시는 것 같
습니다. 민 같은  용렬한 위인이 특별한 처분은 고사하고 심상한  제수라도 어찌 
감히 사폐할 생각을 하오리까. ” 하고 천연스럽게 대답하였다. “이번에 상경하
신단 말씀이오니까?” “하고말고,다른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 “그러면 언
제쯤 발정하시겠습니까?” “행장을 다소 수습할 터인즉 이틀 말미는 주셔야 할
까 봅니다. ” 김인후가 현감에게 말한 것을 어기지  않고 과연 사흘 되던 날 서
울길을 떠나는데, 행장 차린 것이 예사와 달랐었다. 말 두 필에 한 필은 안장 지
어 탔거니와  다른 한필에는 오지 장군  두 개를 한바리 짐으로  실리었고, 하인 
네 사람에 견마잡이는 찬합을 걸머졌거니와 나머지 세 사람에게는 항아리 한 개
씩을 지웠었다.  장군에 넘치는 것도 술이요,  항아리에서 출렁거리는 것도 술이
요, 찬합에 든 것은 안주였다. 대주객의 행장이다.  그 집에서 떠나 불과 오 리도 
못 나와서 좋은 대밭이 있었다.  “대밭 아래서 한잔 먹고 가자. ” 하고 김인후
는 말에서 내렸다.  한동안 지체한 뒤에 다시  길을 떠나 삼 마장도 채  못 나와 
남의 집 담안에 좋은 꽃나무가  있었다. “꽃나무 밑에서 한잔 먹자. ” 하고 김
인후가 말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마부가  “아까 대밭은 남의 집 울 밖이지만 지
금 꽃나무는 남의  집 담 안에 섰습니다. 술 잡수시려고  일부러 찾아들어가시렵
니까?” 하고 말리는 뜻으로 말하였더니  “아따, 이놈 잔소리 마라. ” 하고 마
침내 말에서 내렸다. 또다시 한동안 지체한 뒤에  길을 떠났다. “그 산 좋다. 산 
밑에서 한잔 먹자. ”  “그 물 좋다. 물가에서 한잔 먹고 가자. ”  한 잔 한 잔 
또 한 잔에 지체하는 동안이 길 가는  동안보다도 더 많았다. “이렇게 가다가는 
육백 리 서울길을 일 년  두고 가겠네. ” “늙어 죽도록 갈는지 모르지라오. ” 
하고 하인들이 뒷공론할 만큼 길이 붇지 아니하여 십여 일 두고 온 것이 서울길
을 반도 채 못왔는데, 그 동안에 항아리들이  벌써 비고 장군들이 차차로 가벼워
졌다. “술이 남았느냐?” “이번  잡수시면 고만 마지막이올시다. ” 술이 없어
지자, 사람은 그날로 병이 났다. 김인후는 서울로 기별하여 병으로 중도부진하게 
된 연유를 상달케 하고 장성으로  돌아와서 전과 같이 문 닫고 들어앉아 한많은 
세월을 보내다가 겨우 요사를 면하여 죽었는데,  유언으로 옥과 이후관작은 명정
이나 신주에  못 쓰게 하였다. 여줄가리  뒷날 이야기는 고만두고 인종  국상 난 
뒤로 당시 조정판국이 험악하던 것을 대강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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