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조각사 29

3학년2반 | 2022.01.24 07:54:49 댓글: 0 조회: 417 추천: 0
분류인터넷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4747


차례


1) 실패한 조각품

2) 신들의 정원

3) 오크들의 선택

4) 최악의 팔자

5) 벨소스 왕의 유적

6) 마지막 조각술 마스터

7) 정령왕의 조각품

8) 북부 영주들의 선택

9) 조각 생명체들의 활약

10) 슬레이언 부족의 함정


1) 실패한 조각품



★★★★★★★★★★★★★★★★★★★★★


모라타에는 로열 로드를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의 중앙 대륙의 여행자들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정말 기대했던 대로야."

"여긴 왜 이렇게 사람도 많아. 빨리 밖으로 나가서 사냥도 하고 모험도 즐겨 보고 싶다."

모라타에서 시작한 유저들의 국적은 아르펜 왕국 소속이 되어 있었다.

국왕 위드가 통치하는 신생 왕국!

초보자들은 4주간 모라타의 넓은 도시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서적 배달, 재료 운송 등의 소소한 퀘스트도 진행했다.

"수고 많았네."

"감사합니다! 다음에 일이 있으면 또 불러 주세요."

"조금 힘든 일이라도 괜찮겠는가?"

"물론이죠. 뭐든 시켜 주세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10쿠퍼, 20쿠퍼씩 돈을 모았다.

녹슨 장검도 구입하고, 금방 닳아 버리는 가죽 갑옷도 장만해야 되어서 돈이 궁한 시기였다.

주민들과도 나중에 두고두고 퀘스트나 거래를 하면서 자주 만나게 될 테니 일찍 친해지려고 했다.

초보자들은 풀죽, 풀빵을 먹으면서 모라타에 대해서 알아갔다.

"거리도 넓고 깨끗하네. 신축 건물들도 많고."

"화가의 언덕이 있는 판자촌 가 봤어? 거기 볼 거 엄청 많대."

"우리가 가도 돼?"

"응. 모라타에서 꼭 가 봐야 되는 열두 곳의 명소 중 한 곳이야."

"다른 곳들은 어디야?"

"저녁 무렵의 빙룡 광장, 프레이야 여신상이 있는 호숫가, 대성당 뒤쪽 골목, 중앙 광장의 시장이랑 재봉사들이 모여 있는 가방 거리, 조각의 다리, 예술의 회관의 정원, 빛의 탑!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방송에서 봤는데."

"그럼 화가의 언덕부터 놀러 가 보자!"

조각품과 미술품, 공연, 위대한 건축물, 판차촌이 있는 도시!

역사는 짧아도 이것저것 구경할 거리가 정말 많았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내도 다음 날 돌아다닐 생각에 힘이났다.

"커헉... 여기까진가."

"윽, 더 가 보고 싶은 장소가 많은데."

거리에는 뛰어다니다가 체력의 한계로 쓰려져서 쉬는 초보자들도 많았다.

요리 스킬을 배운 유저들은 풀죽 도시락을 싸서 다니면서 친구도 사귀었다.

"너 무슨 직업 할 거야?"

"위드 님 따라서 조각사 할 거야. 미래에 대륙을 쩌렁쩌렁 울리는 그런 모험을 해야지."

"조각사로 모험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잘해 봐 내가 맛있는 요리 해 줄게. 나중에 판자촌에 식당 내면 놀러 와."

"응, 그래."

친구들끼리 다니다 보면 해가 저물어 간다.

그러면 손에 손을 잡고 성벽이나 언덕 높은 곳에 올라서 도시와 빛의 탑의 야경을 지켜보았다.

관람하기 좋은 장소의 바위에는 웅대한 포부를 품을 수 있는 명언들이 새겨져 있었다.


잡템이라도 모아서 팔자

초보자 때 고생해야 나중에 다리 뻗고 잔다

이른 주택 마련, 내 집의 든든함

성실한 세금 납부만이 평화를 지키는 길


조각칼로 새겨진 조악한 필체의 글귀들은 언제부터인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것들이었다.

도시에도 구경하고 놀 곳들이 많지만 4골드를 모아서 예술 회관에 들어가는 것은 초보자들의 목표이고 꿈이었다.

"풀죽신교 가입해야지."

"난 돈 벌어서 판잣집부터 살 거야."

그렇게 4주가 지나, 마침내 부푼 희망을 안고 성문 밖에 나갈 수 있게 된 초보자들!

원래대로라면 사슴이나 토끼를 사냥하면서 차근차근 성장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위드의 건국식이 모라타의 중앙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모라타와 도시 부근에서 사냥을 하던 초보자들은 일제히 중앙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성문의 동서남북으로 말과 마차, 유저 들이 계속 들어오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각 방송국에서도 당연히 전부 취재를 나왔다.

"지금 시작하려나 봐."

"즉위식 같은 거 처음 보는데... 완전 떨리네."

"앞에서 뭐라고 하는 거야. 주변이 소란스러워서 잘 안들려."

"왕관을 씌워 준 거 같은데......."

"벌써?"

"어라, 끝났나?"

"이대로 이렇게 금방 끝나 버린 거야?"

바드들의 거창하고 웅장한 연주나 기사단의 마상 시합 같은 의식도 없이 초고속으로 진행되어 버린 즉위식!

허탈해진 군중들은 이대로 흩어지기가 너무도 아쉬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미적거렸다.

모라타에 가진 애정이 아르펜 왕국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기념하는 어떤 행사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아르펜 왕국을 번영시키기 위한 사상 최대의 조각품을 창조하겠다는 위드의 선언!

지금까지 유저들은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들을 구경만 해 왔지만,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아닌가.

대륙의 역사에 이전까지 존재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누군가 감히 만들겠다고 덤벼들기 전에는 나오지 않을 굉장한 작품!

그런 작품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게 되어 영광인지, 위드가 터트리는 사자후에는 미묘한 떨림까지 있었다.

"국왕 위드 만세!"

"저 꼭 하고 싶어요!"

광적인 열기가 광장을 휩쓸었다.

이런 거대한 기회는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고, 참여하지 않으면 무언가 뒤처질 것만 같았다.

멋진 도시를 성장시키고 왕의 자리에까지 오른 위드를, 초보자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존경했다.

"진짜 훌륭한 왕이 되어 주시겠지."

"응. 우리 같은 초보자들의 어려움도 고려해 주고, 예전에 레벨이 낮을 때의 설움도 잘 알아주실 거야."

절대 세금 인상 따위는 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순진한 그들!

그러나 페일 일행을 정확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조각품을 만드는 데 동참할 수 있는 기화란, 곧 강제 노동 개시와 같은 의미라는 것을!

무력을 동원하거나 억지로 시키는 건 아니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교묘하게 꾀어서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고야 만다.

위드가 역사상 존재하지도 않았던 규모의 조각품을 만들겠다고 하면 어지간해서는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예산 30골드의 허무한 즉위식까지도 이를 의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광장의 대규모 인파를 몽땅 노동자로 삼으려는 웅대한 계획의 일부였다면!

수르카가 냉철하게 분석했다.

"위드 님의 목소리가 떨리는 건 아마 공사 비용 때문일 것 같아요."

마판은 닭살이 돋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감정까지도 느꼈다.

"정말 배울 점이 많고 많구나."

위드에 의해 이 군중이 움직이게 되다니!

훌륭한 장사꾼은 사기도 잘 칠 줄 알아야 한다.

이 사상 최대의 공사가 이루어 낼 모습들이 조금씩이나마 상상이 되었던 것이다.

"자, 갑시다!"

위드는 군중을 이끌고 성문을 나갔다. 예쁘게 피어 있는 꽃길을 따라서 산으로 이동했다.

채석장, 광산이 있는 산악 지대였다.

"이걸 하나씩 들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빨리빨리 움직이세요. 늦으면 곤란하니까요. 해가 저물면 다시 와서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끝도 없는 개미 떼의 행렬처럼 군중은 돌덩이와 광물을 등과 머리에 이고 운반을 했다.

위드가 점찍어 놓은 목적지는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넓은 황무지였다.

모라타의 성벽과 건축물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먼 거리.

일꾼의 행렬은 금세 10만 명을 넘었고, 모라타에서 꾸역꾸역 나와서 계속 산악 지대로 향했다. 돌과 나무 등 필요한 자재를 채취해서 뒤를 따라왔다.

초보자들의 좋은 시절은 이것으로 끝나고, 이제부터는 충실한 일꾼이 되어야 했다.



★★★★★★★★★★★★★★★★★★★★★


"땅값도 싸고... 나중에 오를 일도 없는 이런 장소가 조각품을 놔두기에 딱 좋지."

위드는 황무지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조각품은 지형과 자연환경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위드가 설계한 주제의 조각품들은 척박한 장소에서 시작해야 효과가 더 높게 발생할 수 있었다.

조각품들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광대한 면적, 정말로 사상 최대의 공사를 필요로 했다.

"돌을 더 올리세요!"

"이곳은 지반공사를 더 튼튼히 해야 합니다. 땅을 더 깊이 파내고 시작합시다."

일꾼들이 돌산과 깊은 숲으로 투입ㅂ되어서 자재를 운반해왔다.

위드를 믿고 조각품을 제작하는 데 같이 참여하기로 한 유저들의 숫자는 이제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로자임 왕국 출신의 유저, 중앙 대륙에서 건너온 레벨이 좀 높은 유저들만 해도 다단한 인원이었다.

거기에 풀죽신교를 대표로 하여 모라타에서 시작한 초보자들이 대거 합세하니 황무지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위드가 지정한 장소의 땅을 파내고, 운반해 온 바위를 높이 쌓았다.

만리장성, 피라미드, 운하를 파내는 것처럼 엄청난 규모!

역대 왕들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실행했을 거대한 토목 사업이었다.

"너도 빨리 자식들 데리고 와서 일해."

"음머어어어어어."

누렁이도 새끼 소들과 같이 산더미 같은 바위와 진흙을 운반했다.

공사 장소에 쌓여 가는 각종 재료들!

매일 바위와 흙더미가 작은 산처럼 형성될 정도였다.

"도대체 뭘 만들려고 하는 걸까?"

"몰라. 일단 재료들을 모아 주면 뭐라도 만들겠지."

위드와 같이 조각품을 만들고 싶었던 유저들은 인근의 쓸만한 큰 돌은 닥치는 대로 채취해 왔다.

아르펜 왕국이 건국되고 나서 최초로 위드가 진행하는 사업인 만큼 많은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모라타와 도로를 연결하고, 건축가 유저들은 땅을 고르며 광장을 지을 터를 닦았다.

위드는 32개의 조각품을 만들 수 있는 작업 구역을 정했다. 혼자서 전체를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제자를 모집해야 되겠어."

서른두 곳이나 되는 대형 작업장에서 전부 혼자 조각을 할 수는 없었다.

조각상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전에 누군가 최소한의 손질을 해 준다면 일이 편해진다.

위드는 베르사 대륙 최고의 조각사로서 모라타의 성문에 구인 광고를 냈다.


위드가 제자를 구함

안녕하세요.

조각사 위드가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황무지에서

같이 조각품을 깎을 제자를 찾습니다.

매일 하루 21시간씩 조각품을 만들고, 3시간 동안 심부름

할 수 있는 분.

시급 4쿠퍼.

단, 사흘의 수습 기간에는 절반의 급여만 지급.

조각품을 만들다가 부상 시 붕대 지금 안 됨.

휴일 없음.

야간 추가 근로 수당 없음.

숙식 제공ㅡ하루 세끼 풀죽, 작업장 아무 곳에나 누워서 자면 됨.

월 2회 토끼탕 회식 있음

단, 토끼는 직접 잡아 와야 함.

상시 모집.

조각 경력자 우대.

초보도 상관없음.

재능보다는 성실하신 분을 필요로 합니다.


최악의 근로조건!

그럼에도 위드의 제자라고 하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설마 진짜 이렇게 쓴 대로 하겠어?"

"난 그렇더라도 제자가 될래. 기술을 배워 놓으면 써먹을 수 있잖아."

초보자들부터 고위 마법사까지 가리지 않고 지원자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위드는 10명씩 간단한 면접을 봤다.

"조각술은 알고 있습니까?"

"네!"

"조금 전에 배우고 왔습니다."

위드의 앞이라서 지원자들은 숨도 제대로 크게 쉬지 못하고 긴장하고 있었다.

모라타에는 조각사의 꿈을 가지고 시작한 유저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조각사에 대한 큰 포부나 예술관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준비를 해 왔다.

"조각품을 깎다가 비가 오거나 공복일 때에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죠?"

"예? 물론... 악천후가 좀 있고 몸이 좀 힘들더라도 참고 계속할 생각으로 오긴 했는데요."

"합격!"

조각술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완전 초보자들도 지원했다.

"팔다리 멀쩡하고... 시간 많이 있죠?"

"예. 백수라서 남는 게 시간인데요."

"합격!"

순식간에 700명의 제자들을 뽑아 버린 위드!

실력이 미숙한 조각사들은 위드가 시키는 대로 바위를 손질하는 일부터 맡았다.

완전 초보자들은 그들을 돕는 역할로 심부름을 하면 되었다.


★★★★★★★★★★★★★★★★★★★★★


중급의 조각술을 익히고 있는 유명한 유저 뎁스도 제자로 지원했다.

로디움에서 북부로 이사를 와서 모라타에서 조각사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평소에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조각품은 자주 만들면 실력이 늘어나게 되니까, 일을 많이 하면 돼."

"어떤 일이든 시켜만 주세요."

뎁스를 비롯하여 실력이 괜찮은 조각사들은 조각상을 다듬는 역할을 맡았다.

재료가 높이 쌓이면 위드가 지시하는 대로 외관을 다듬으면서 조각상의 기본적인 형태를 잡았다.

"이 정도면 일을 시작할 만하군."

위드는 제일 먼저 사람처럼 형태가 잡힌 거대 조각상에, 조각칼과 모루와 정 같은 작업 도구를 꺼내고 매달렸따.

등에서는 빛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잔뜩 자아냈다.

"기술이 과하게 들어갈 필요는 없겠지. 조금 투박하더라도 원형에 충실하게 해야 돼."

땅! 땅! 땅!

돌을 깎으면서 조각을 개시했다.

위드의 조각술이 고급 8레벨인 만큼 돌이 가진 재료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개울가에서 수백 년간 구르던 자갈돌처럼 매끈하고, 높은 산에 있는 큰 바위처럼 웅장한 면이 표현되었다.

공중에서 단단한 바위를 조금씩 정교하게 깎는 건 인내와 체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아름다움을 향한 열정과 노력으로 조각품이 탄생한다.

예술의 숭고함이란 노가다와 고난에서 탄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커서 자식을 낳으면 절대 조각사는 시키지 말아야 되겠어!"

위드는 왜 부모들이 자신의 직업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하는지 이해했다. 경험해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로열 로드에서도 이렇게 힘들고 위험한데, 현실에서 평생 조각품을 만든다면 얼마나 거친 인생을 살아야 되겠는가.

물론 그 인생 자체가 멋지고 존경할 만한 가치도 있겠지만, 자식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죄짓고, 남한테 피해도 주고, 공부 열심히해서 성공하는 게 최고지."

부모들의 마음이란 다 똑같은 것.

위드가 가끔 아래를 내려다보면 지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황무지 일대에는 도로가 놓이고, 조각 재료들이 흙더미 바위 더미 옆에 쌓였으며 광장에도 벽돌을 깔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조각상의 개수에 따라서 대리석 건물까지 건축되고 있었다.

다들 무엇을 만드는지도 모르지만, 위드의 지시에 따라서 엄청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걸 다 해 놓기 전에는 쉴 틈도 없겠군."

다른 작업보다 늦어지면 안 되기에 위드는 바위를 계속 깎았다.

그가 조각을 할 때에는 와이번들과 빙룡, 불사조가 구경을 했다.

"왜 또 왔냐. 가서 사냥이나 하지."

"주인, 주인! 오늘은 말을 2마리 먹었다."

"배부르겠다. 바쁘니까 가라, 좀."

"맛있었다. 말고기는 만날 먹어도 맛있는 거 같다. 주인."

"그래, 맛있는 거 알아. 그러니까 다른 데로 가."

은새는 가끔 진지한 고민도 늘어놓았다.

"황금새가 자꾸 날 보는 시선이 이상해요, 짹짹. 근데 꼭 싫은 건 아니고요."

불사조는 한낮에 더울 때 와서 바싹 달라붙었다.

"주인, 조각품이 멋진 것 같다."

딱히 용건도 없으면서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몸을 들이대며 조각품을 가까이에서 구경하다가 가는 것이다.

위드의 짧은 인내력은 벌써 밑바닥을 완전히 드러냈다.

그때 와삼이가 날아왔다.

"주인, 오늘은 말을 3마리 먹었다. 이러다가 살찌면 어떻게 하지?"

조각 생명체들은 요즘 들어서 위드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어서 서운했다.

그렇기에 자꾸 와서 조금이라도 더 위드 곁에 있으려고 투정을 부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조각 생명체들로서 위드가 만드는 예술품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도 사실이었다.

"와삼아."

"주인. 말해라."

"오래오래 같이 살자."

"알았다, 주인."

하지만 위드는 화를 풀기 위해서 때리거나 하지 않았다.

나중에 오래오래 힘든 일, 어려운 일에 부려 먹으면서 조각 생명체들과 같이 지내다 보면 해결될 문제였으니까.


★★★★★★★★★★★★★★★★★★★★★


모라타 군중의 기대는 엄청났다.

"저 방대한 규모를 좀 봐. 대체 뭘 얼마나 지으려고 저렇게까지 넓게 하는 걸까?"

"왕궁 지으려는 거 아니야?"

"정말 그럴 수도 있겠는데?"

위드는 광장에, 대리석으로 건물까지 세웠다.

만들려고 하는 조각품의 숫자에 맞춰서 32개의 건축물이 지어지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자세히 보면 일반적인 왕국과는 형태가 많이 달랐다.

그다지 호화스럽지도 않았으며, 그저 대리석으로 기둥들을 줄줄이 세워 놓고 지붕을 씌워 넓고 큰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돌과 흙은 근처에서 파낼 수 있었지만 대리석은 당연히 공짜가 아니었다.

북부의 다른 마을에서 구입하면서 아르펜 왕국의 국가 예산도 소모되고 있었다.

위대한 건축물 3개를 세워도 될 만큼의 자금이 이 공사로 빠져나갔다.

사람들은 도대체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무슨 조각품을 만들려는 것이기에 이렇게 거창해?"

"여기에 아르펜 왕국의 재정을 다 투입해서 바로 몰락해 버리는 거 아니야?"

공사의 규모로 볼 때, 그야말로 돈을 쏟아붓는 꼴이다.

왕국 주민들의 충성도가 지금은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치안 역시 높았다.

모라타와 바르고 성채의 미래는 매우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세상일이란 모르는 것이 아니던가.

국가재정이 과하게 소모되면 그다음 수순은 당연히 세금 인상이고, 그러면 주민들과 유저들의 불만을 감당해야 될 것이다.

게다가 어쩌면 세금 인상이 한차례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치안이 악화되어 생산량이 감소하고 도적 떼가 들끓게 된다.

자칫 아르펜 왕국이 잘못되는 건 아닌지, 유저들이 더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위드가 마른 수건도 쥐어짜서 다시 말려 쓰는 방식으로 예산ㅇ늘 최대한 절감하여 추가적인 공사 비용이 들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었지만 이미 투입된 돈만도 미증유의 거액이었다.

다른 도시에는 있지도 않은 위대한 건축물을 3개는 세울 자금 규모의 투입이라니, 공사에 대해 납득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차라리 왕궁이나 군사시설을 짓는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이런 자금을 들여서 조각품을 탄생시키다니!

위드의 조각품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몰리고 있을 때, 어렴풋이 조각상의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하게 생긴 여자의 조각품이었다.

멋지고 대단한 작품을 기대하며 돌과 흙을 나르고 작업에 참여한 유저들로서는 어깨에 힘이 빠졌다.

"고작 이걸 만들려고 이렇게 대작업을 하는 거였어?"

"말도 안 돼. 위드가 만든 얼음 미녀상만 하더라도 엄청 예쁜데."

"프레야 여신상도 예쁘잖아."

위드의 조각품들은 모라타의 유저들에게 대단한 긍지이고,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새벽안개를 헤치고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을 때의 프레야 여신상은 정말로 황홀할 정도였다.

그런 위드가 모라타 유저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가면서 만들어 낸 조각품이 평범한 수준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이건 완전 실패작이잖아."

"어쩌겠어. 위드라도 조각품이 매번 성공한다는 법도 없지, 뭘."

"그렇게 보기에는 실력이 엄청 퇴보했네."

"에이. 난 그냥 사냥이나 갈걸 그랬다. 이렇게 대공사를 벌여서 저런 졸작을 창조해 낸다는 건 돈 낭비, 시간 낭비였어."

유저들 사이에 실망과 우려가 생기려고 했다.

고된 작업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기대도 많이 했는데 작품이 너무 평범한 수준이었다.

"고작 저 정도라면 배울 것도 없겠다."

제자로서 참여하던 조각사들 중에도 불만을 품고 일을 그만두는 이들이 속출했다.

모라타의 뒷골목에서는 은밀하게 흉흉한 소문도 돌 정도였다.

"바드레이한테 죽고 나서 조각술도 감이 떨어졌나 봐."

"위드의 조각품도 알고 보니 별 볼일 없네. 그동안은 그냥 운이 좋았던 거 아니야?"

풀죽신교의 눈초리가 무서워서 드러내 놓고 떠들지는 못 했지만, 모라타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위드에 대한 비난도 했다.

세상의 인심이 각박하다는 걸 드러내는 것처럼, 위드가 조각품을 만들기로 한 계획을 밝히자 열렬한 환호를 보냈던 군중이 차갑게 등을 돌리고 돌아서고 있었다.

대작업에 어마어마한 자금과 인원을 동원한 만큼 작품의 가치에 따라서 비난과 실망을 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각사로서의 무거운 짐과도 같은 일.

"어쩌려고 저러시지?"

"이번 건 우리가 보기에도 조금 별로인 것 같기는 한데요."

이리엔, 수르카도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석상에 매달려 있는 위드를 보며 안타까웠다.

저렇게 고생을 하는데 사람들은 기대보다 떨어진다고 쑥덕거리고 있었다. 이럴 때에는 당사자인 위드의 마음이 가장 아프지 않겠는가.

위드는 불신을 받으면서 첫 번째 조각상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별 기대도 없이 광장에서 그 광경을 올려다보았다.

위드가 마지막으로 조각상의 쌍커풀을 완성하는 순간!


『 여신 헤스티아의 신상이 탄생하였습니다.!

고대부터 베르사 대륙을 수호하던 헤스티아.

불과 화로를 관장하던 그녀는 가정적이며, 창조적인 능력을 사랑한다.

그녀의 신상이 전쟁으로 파괴되고 난 이후로는 드워프들의 말과 인간

들의 기록에 의해서만 그 존재가 알려져 왔다.

베르사 대륙의 인간과 드워프들을 보살펴 온 여신 헤스티아의 완전한

석상을 복원시킨 것은 종교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사가 기록되고 난 이후에 최초로 완성된 헤스티아의 여신상입니다.

여신 헤스티아의 신상을 감상하여 하루 동안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

도, 체력의 최대치가 35% 증가합니다.

불과 관련된 정령술, 마법, 공격 스킬의 효과를 11% 높입니다.

종교적인 조각ㅍ무을 감상하여 신앙 스텟이 영구적으로 7 증가합니다.

조각사와 화가, 음유시인의 예술 스텟이 영구적으로 9 오릅니다.

예술 계열의 직업에 대한 헤스티아 여신의 축복이 비정기적으로 발생합니다.

주변 일대에서 인간과 드워프의 불을 다루는 능력이 13% 향상됩니다.

마법사들의 화염 계열 마법에도 4%의 확률로 꺼지지 않는 불꽃의 효과가 부여됩니다.

고대의 작품 탄생법으로 예술 스텟이 영구적으로 6 높아집니다. 』


여신 헤스티아의 신상!

단지 완성된 조각품을 밑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스탯이 마구 올랐다.

"위드가 만든 조각품이 헤스티아의 신상이었던 거야?"

"우와왓, 끝내준다!"

그래도 위드를 믿으면서 작품의 완성을 지켜보던 사람은 스탯을 얻는 효과를 누렸다.

조각품의 재료를 운반해 오고 기반을 다지고 있던 사람들도, 순간 어깨에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이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기쁜 소식이었다.

띠링!

-헤스티아 신상이 완성되면서 아르펜 왕국의 지역 정치력이 확장됩니다.
드워프들과의 관계가 개선됩니다.
새로운 종교의 영향은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희망을 안겨 주게 될 것입니다.

헤스티아 여신상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고 모라타에서도 사람들이 마구 찾아왔다.

"과연 조각사 위드야. 조각술의 신이야, 완전!"

"내가 돌덩어리 일곱 번이나 옮겼다니까! 저 석상 만드는데 나도 엄청 고생을 했어!"

"난 처음부터 위드 님이 하는 조각품이라면 무조건 믿고 있었다니까."

"이럴 게 아니라 빨리 돌 나르러 가자."

"일한 후에 마시는 풀죽의 맛은 최고지."

초보들 외에도, 일을 하기 위해 모라타에서부터 달려오는 지원자들이 끝도 없이 늘어났다. 하루 만에 지원하는 인부가 30만 명이 넘어갈 정도였다.

헤스티아의 신상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한 사람은 여신의 축복을 특별히 더 받았다.

신앙심이 더 늘어나고, 힘과 인내력도 약간 향상되었따.

아르펜 왕국에 대한 공헌도마저도 늘어났으니 이런 일감은 다시없는 기회!

드넓은 공사 구역에 돌이 산더미처럼 쌓여 갈 정도였다.

"곡괭이질은 이렇게 체중을 이용해서 하는 겁니다."

"돌덩어리는 등에 짊어지고 허리를 굽히는 편이 운반하기가 쉬워요. 그다음에는 무조건 앞만 보며 가는 거예요."

"무리해서 한꺼번에 너무 많이 짊어지려고 하지 마세요. 무겁게 한 번에 나르기보다는 두 번, 세 번 나누어서 나르는 편이 더 빨라요."

로자임 왕국에서 피라미드를 만들 때부터 동원되었던 숙련된 유저들은 경험을 과시하면서 초보자들을 이끌어 줬다.

"힘들어요?"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페일과 메이런도 오붓하게 석판을 나르며 다시금 애정을 과시했다.

수르카도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내심 인연을 기다렸다.

"이건 너무 커 보이는데, 부숴 드릴까요?"

"그러면 좋긴 한데... 가능하세요?"

"연환권!"

파바바바박!

맨주먹으로 바위를 부수는 수르카!

웬만한 남자들은 자기들이 들지도 못하는 무거운 돌을 번쩍번쩍 운반하는 그녀에게 감히 말도 붙이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사제님."

이리엔은 다른 사제들과 같이 고된 일을 하는 유저들에게 축복을 걸어 주면서 대환영을 받았다.

돌을 나르는 일꾼들이 쉬어 갈 만한 장소마다 요리사들이 나와서 풀죽을 제공했다.

대대적인 노동력 투입을 통해, 매일 지형이 바뀔 정도의 엄청난 공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


벤트 성!

니플하임 제국의 수도 모드레드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관문 중의 하나였다.

제국의 수도가 완전히 무너지고, 북부가 얼음과 몬스터로 뒤덮이고 난 이후에 얼마 남지 않은 기사단과, 군대가 할 수 있는 건 성문을 걸어 잠그고 주민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곳을 목숨으로서 지킨다. 언젠가 니플하임 제국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제국의 기사단은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어렵게 성을 보호했다.

혹독한 빙하의 폭풍이 불던 시절. 그나마 북부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장소는 벤트 성이 유일하였다.

얼마 안 되는 땅을 일구고, 식량을 자급자족하면서 몬스터를 경계하면서 살아왔다.

북부 대륙이 다시 온화한 기후를 되찾았지만, 그들의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북부는 위험하다. 그리고 니플하임 제국을 계승하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기사단과 병사들이 다스리는 벤트 성!

그 사이에 북부의 다른 지역이 개발되고, 모라타가 프레야 여신의 축복을 받으면서 농작물을 많이 수확하고 있었다.

모라타의 식료품의 가격이 저렴하게 유지가 되면서, 그곳의 식량은 받은 마을의 출생률은 기적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북부에는 사냥꾼과 전사들이 매우 많이 흩어져서 살았다.

추운 기후에 얼어 죽고 몬스터에 투쟁하며 살던 주민들이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 것이다.

작은 부략이 마을이 되면서 커지는 곳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모라타의 지역 정치 영향력등이 증가하고 있었다.

벤트 성에도 그 변화의 물결이 찾아왔다.

"저기... 식료품을 팔러 왔는데요."

모라타에서 온 초보 상인 가몽이었다.

"저리 썩 꺼져라!"

벤트 성의 기사들은 야박하게 내쫓았다. 하지만 가몽은 그런 대접이 익숙했다.

그는 명성이 높지도 않았고, 교역 경험이 많지도 않았던 것이다.

북부에서 상인이 활동하기란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모라타에서 나오는 방대한 특산품을 가지고, 중앙 대륙으로 가면 좋은 대우를 받을 수가 있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모라타와 중앙 대륙을 오가면서 교역을 하거나, 아니면 모라타에서만 유저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짭ㅉ발해서 북부를 교역 마차를 끌고 돌아다닐 생각은 잘 하지 않았다.

상인들에게는 위험한 몬스터들이 많이 돌아다니는데, 그에 비해서 도로는 뚫려 있지 않아서 이동이 힘들었던 것이다.

북부의 다른 마을들은 발전도도 느려서 모라타처럼 특산품이 개발되어 있지도 않아 더욱 이득이 적었다.

"하지만 상인의 길은 남보다 먼저 뚫는 교역로에 있다고 했어!"

가몽은 안락함을 추구하는 다른 상인들처럼 성장하고 싶지 않았다.

모라타의 존경 받는 대상인들은 주로, 도시가 커지기 전에 와서 장사를 시작한 인물들이다.

다행히 모라타에는 풍부한 산물들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북부를 돌아다니면서 팔면 어떨까 싶었던 것.

잡템을 거래하고, 멀고 먼 중앙 대륙과 오가면서 벌어들인 재산을 털어서 가몽은 북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단 맛이라도 한 번 보세요."

가몽은 올리브와 와인, 쌀을 기사들에게 다섯 보따리씩 주고 나서 물러났다. 그리고 남은 식료품은 주변의 작은 마을들을 돌면서 나누어주었다.

식료품들은 유통 기한이 있어서 오래 놔두면 상해버렸던 것이다.

큰 재산상의 손실만을 얻은 거래!

가몽은 그럼에도 희망을 가졌다.

"모라타는 갈수록 커질 거야. 그리고 북부에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 늘어나면 교역은 활성화 될 거야."

모라타에서 돈을 벌면, 식량 마차를 끌고 장사를 하며 북부를 돌아다녔다.

몬스터를 만나서 몽땅 털리거나, 공짜로 나누어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운 좋게 여행자나, 전사들의 무리, 다른 영주의 마을에서 판매를 하기도 했지만 수익이라고 할 수는 없을 정도였다.

"야야. 그거 미친 짓이야. 하지 마."

"돈 모아서 모라타에 상점 하나만 내. 그러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놀고먹어도 된다니까."

상인들은 술집에서 만나더라도 다들 말리기만 했다.

가몽은 그럴 때마다 모라타의 밤을 밝혀주는 빛의 탑을 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나는 큰 교역 상인이 될 거야. 1000대를 끌면서 거래하는..."

그렇게 몇 개월 이상을 북부를 돌아다녔다.

돈은 벌지 못하였지만 작은 마을들을 잇는 빠르고 안전한 길을 발견하고, 현지의 주민들과 친해진 것이 소득이었다.

"벤트 성에 가보고 싶다고?"

어느 산골 마을에서 식량을 나눠주고 있는데, 주민 중의 할머니가 말했다.

"예. 아 그런데 거의 포기하고 있어요. 어차피 쉽게 될 일도 아닌 거 같고요ㅣ."

"그곳의 경비병이 손자인데... 아마 밤에 오르데라는 내 이름을 대면 들여보내 줄 거야."

띠링!

-벤트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정보를 획득하셨습니다


가몽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북부에서 누구도 방문하지 못하던 성을 처음으로 들어가 본다!

다른 직업들이라면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퀘스트에 관심이 많겠지만, 그는 상인이었다.

장사를 위하여 그곳에서 뭘 구매하고, 팔 수 있을지에 대하여 궁금했다.

가몽은 이틀 후의 밤에 벤트 성에 도착했다.

"음... 자네가 이 근처에서 식량을 나누어주는 착한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할머니의 부탁이 있었다면 들여보내줘야지."

벤트 성에서는 과거 니플하임 제국 시절의 유물이 간직되어 있었다.

상점의 교역품으로도 그 당시의 기술을 고스란히 가진 상품들이 나왔다.

"나... 난 이제 대상인이다!"

가몽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벤트 성의 물품을 가져다가 다른 곳에 팔 수 있다는 것은 교역으로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따는 보증수표와도 같았다.

거기에다가 경쟁자도 없는 독점 판매!

독점이 언제까지 지속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가몽이 성공한 이상 다른 상인들도 벤트 성의 문을 두들길 것은 분명했다.

설혹 독점 기간이 끝나더라도 그동안 쌓아놓은 친밀도나 인맥, 상품에 대한 정보들이 자산이 될 수 있었다.

가몽은 벤트 성의 우수한 세공품과, 갑옷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을 해서 모라타에서 판매했다.

벤트 성은 그동안 닫혀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세공품과 갑옷의 가격의 시세가 낮게 유지가 되었다.

모라타에서는 막대한 양의 식료품을 구입을 해서 벤트 성으로 왔다.

"자. 모라타의 특산품! 양고기와 맥주, 쌀, 토마토, 포토, 치즈, 와인, 야자 술을 정말 싸게 팔아요! 어서 와서 사가세요!"

"상인님. 이거 얼마에요?"

"4쿠퍼만 주세요. 덤으로 밀도 조금 더 드릴게요."

광장에서 판매를 하면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다.


-벤트 성의 주민에게 싼 가격에 식료품을 판매했습니다.
교역 명성이 24 오릅니다.
매력이 3 증가합니다


가몽은 먼 미래를 생각해서 식료품은 거의 마진을 남기지 않고 팔았다.

구입가에 비해서 최소 서너 배를 더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거래 자체가 이득이었다.

모라타에 많은 식료품을 팔면서 이렇게 명성과 스탯, 친밀도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란 지금 뿐이었다.

그리고 벤트 성의 상점에서 구매를 할 때에는 바로 반응이 왔다.

"좋은 상인 가몽이로군. 당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소. 이건 여간해서는 잘 팔지 않는 물거인데... 한 번 보시겠소? 참 그리고 당신에게는 판매하는 수량도 조금 늘려주겠소."

상인으로서 돈이 있다고 물건을 무한정 구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무기나 방어구 등에는 정해진 수량이 있었는데, 그것이 대폭 늘어나게 됐다.

"에헤헷 부자다. 부자!"

가몽은 교역으로 큰 돈과 명성을 얻게 되었다.

초보 상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가 교역을 할 때마다 축적되었다.

상인으로서 위엄을 뜻하는 뱃살도 볼록하게 나와서 걸을 때마다 출렁거렸다.

그것이 가몽 혼자만의 이득도 아니었다.

모라타에서는 재배하고 가공하는 식료품의 판로가 확대되는 효과를 가졌고, 벤트 성은 당장 치안이 좋아지고 출생률이 높아졌다.

상인이 지역 안정에 큰 이바지를 하는 것이었다.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벤트 성의 폐쇄성도 조금씩 풀리게 되었다.

"고블린의 말에 따르면 조각사 위드라는 사람이 대단한 모험을 성공시켰다더라고. 거짓말을 잘하는 고블린의 말이라서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 그런데 위드에 대해 모르는 건 우리뿐이라고 놀라더군."

"길 잃은 인간이 지금의 따뜻한 기후는 위드의 모험 덕분이라는데 과연 정말일까?"

"우리가 존경하는 니플하임 제국의 황실의 명예를 되찾아준 사람도 위드라는 헛소문이 많이 들리는 것 같아."

"벤트 성보다 남쪽에 모라타라는 도시가 크게 번성하고 있다는데 그게 정말은 아니겠지?"

"아르펜 왕국이 건국됐다고? 글쎄... 요즘 들어서 계속 위드와 모라타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씩 벤트 성의 주민들도 위드에 대해서 알아갔다.

"떠돌이가 말했는데 위드가 엄청난 신상들을 만들고 있따지. 그 신상들로 인하여 모라타는 놀라운 도시가 되고 있다더군."

"우리들이 먹고 있는 식량이 모라타에서 재배가 된 것이라는데... 그곳의 밀로 구운 빵은 아주 고소해."


★★★★★★★★★★★★★★★★★★★★★


"이곳이 작업실을 운영하기에 적당하겠군."

대장장이 헤르만은 드워프의 왕국 쿠르소를 떠나서 모라타에 왔다.

대장장이 마스터에 도전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목표로 최고의 검을 만들고 싶어 하는 헤르만.

그는 많은 것을 따져 보고 이곳으로 왔다.

"헤스티아의 대장간과도 거리가 가까워서 도움이 많이 되겠어."

쿠르소에서는 양질의 철과 희귀 금속이 풍부하게 공급되었다.

드워프 대장장이에 대한 대우도 좋은 편이었다. 쿠르소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만드는 장비의 가격을 다른 곳보다 2~3배씩은 더 받았다.

하지만 여러 편의에도 불구하고 헤스티아의 대장간이 지어지자 더 훌륭한 생산물을 만들기 위해 5대 대장장이 중의 1명인 헤르만이 모라타로 온 것이다.

그 혼자만이 온 것도 아니고, 다른 드워프 대장장이 상당수가 이주에 동행했다.

드워프들은 땅 보러 다니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도 좋아. 평탄하고 넓은 땅이군. 주택과 대장간을 같이 지을 수도 있겠어."

"캬하! 이곳의 맥주 맛이 기가 막히다던데. 집부터 짓고 마시러 가야지."

"인간들이 빚은 맥주가 다 거기서 거기지 않겠어?"

"마셔 보지 않고서는 모르지. 맥주 맛이 좋으면 강철을 두둘길 때에도 도움이 될 거야."

드워프 대장장이들은 손재주와 재료를 다루는 능력 덕분에 쓸 만한 건축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헤스티아의 대장간과 가까운 장소의 땅을 사려고 했는데, 개발되지 않은 공터들이 벌써 널찍하고 평평한 형태로 조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땅값은 최소 4,500골드에서부터 시작!

"근데 땅값이 왜 이렇게 비싸!"

"여긴 번화가도 아닌데. 이상하게 비싼 가격이군."

"그렇다고 사지 못할 정도도 아니기는 하지만......"

드워프들은 구시렁거리면서도 관청으로 가서 토지를 구입했다.

위드는 헤스티아의 대장간을 건설하기로 했을 때부터 생각을 해 놓았다.

'여긴 최고의 역세권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 장소야.'

땅 투기는 남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시점에 해야 한다.

위드는 일대의 땅 소유권을 가지고 부지 조성까지 끝내 놓고, 돈 많은 드워프 대장장이들의 이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대한 건축물인 헤스티아의 대장간을 짓기로 했을 때부터 투자금 회수까지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2) 신들의 정원


위드의 즉위식에는 모라타와 바르고 성채 그리고 북부의 유저들 전체가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모라타에만 수백만 명이 넘는 유저들이 있지만, 언제 어디서 하는지 전혀 홍보가 되지 않았다.

헤르메스 길드 하벤 왕국 바드레이의 휘황찬란한 즉위식과는 달리, 고작 30골드라는 푼돈으로 간략하게 진행되어 버린 즉위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잔잔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건축물 건립에는 수백만 골드를 아깝지 않게 여기면서 가장 영광된 순간에는 30골드라는 돈밖에 지출하지 않다니.

"이런 거... 무슨 동화에서나 보던 선정을 베푸는 국왕이 하는 거잖아."

"캬하! 다르긴 다르다. 자기를 돋보일 수 있는 행사는 작게 치르면서, 주민들을 위하는 데에는 목돈을 안 아끼네."

"그러니까 마을을 성장시켜서 국왕까지 된 거지. 나는 그럴 줄 알고 있었다니까."

위드의 의도와는 다르게 훌륭한 통치자로서의 마음씨라는 칭찬이 자자하게 퍼지게 되었다.


★★★★★★★★★★★★★★★★★★★★★


위드는 신상을 조각하는 장소의 이름을 신들의 정원이라고 정했다.

조각품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신전도 짓고 호수도 파고 주변에는 꽃과 나무를 심어서 조경에도 신경을 썼다.

예전이었더라면 분명히 조각품만 덩그러니 놔두고 말았을 것이다.

사실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데에는 조각품과 건축물뿐만 아니라 광활활 정도로 넓은 정원 조성 사업에도 이유가 있었다.

자연과의 친화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것이 필요했다.

숲이나 산에서 잘 자라고 있는 나무를 그냥 봅아 와서 옮겨 심는 건 의미가 없다.

절벽 중턱이나 바위 틈새 같은 곳에서 곧 말라 죽을 것 같은 식물들만 옮겨 와서 생명력을 왕성하게 도와주는 자연의 식물원을 완성한다는 계획.

메마르고 자갈이 많은 황무지에 이룩하기 위하여, 강에서 수로를 통해 물도 끌어와야 되었다.

엄청난 인부 투입과 그로 인한 노동력 착취로 이루어 내는 대사업!

"커허허헉........"

"잠깐 쉬었다가 하자."

"난 조금 더 갈 수 있을 것 같아."

"못 들었어? 로모모 님이 오전에 들고 있던 돌에 깔려서 사망하셨잖아. 쉬었다가 해."

"크흐흑. 어쩐지 그분이 안 보이시더라니."

초보자들은 무거운 짐을 나르다가 사망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벌써 3개째의 신상이 만들어지고 있어, 성기사와 사제에게는 필수적인 방문 장소가 됐다.

신상을 보면 중요한 스탯인 신앙심을 올려 주고, 신성 마법과 전투 능력도 향상시켜 준다.

자신이 믿는 신의 조각품을 보고 기도를 하면 더 많은 혜택과 특별한 힘을 내려 주는 경우까지 있으니 더욱 열성적으로 신들의 정원을 찾아왔다.

"위드 님은 정말 우리 사제와 성기사를 위해 주는 것 같아."

"응. 우리를 위한 일을 많이 해 주시잖아."

위드는 딱히 어느 직업만 가려서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르펜 왕국에 쓸데없는 지역주의나 직업에 따른 차별은 필요 없어."

중앙 대륙에서 왔거나 북부에서 시작한 유저나 같았다.

어떤 직업의 유저라도 세금만 많이 내면 공평하게 존중할 뿐!

신들의 정원이 인터넷으로 퍼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초공사가 이루어질 때부터 게시판과 동영상, 스크린샷을 통하여 로열 로드의 유저들이 주목하고 있었다.

KMC미디어, CTS미디어 등의 방송국을 통해서도 소개되었다.

"모라타에 또 다른 조각품이......."

"지금까지 상상했던 그 모든 규모를 넘어설 정도의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중앙 대륙, 동부, 서부, 남부의 성직자들은 모라타로 찾아오기 위한 긴 원정길에 올랐다.

"신앙심도 늘리고... 신상도 보고 와야겠어요."

성직 계열의 직업들은 파티 사냥에서 핵심을 차지한다. 사제들의 축복, 보호 마법, 치료 능력에 따라서 파티원이 죽을 상황에서 죽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제들끼리의 경쟁도 존재해서, 치료 마법 한 번에 생명력을 얼마나 채울 수 있는가도 민감한 부분이었다.

자신은 워리어의 생명력일 1,500씩 회벽시켜 줄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은 1,730을 회복시켜 줄 수 있다면 받는 사람의 태도부터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파티 사냥을 뒷받침하는 직업이 사제이다 보니 그들의 자부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중앙 대륙에서 모라타까지는 꽤 먼 길이지만 그때쯤이면 더 많은 신상이 완공되었으리라 생각하고 사제들은 순례의 길에 올랐다.

말을 타거나, 상인의 마차를 얻어 타고, 배를 이용하여, 성직 계열의 유저들이 모라타로 대거 모이고 있었다.

"던전 사냥 갑니다. 지금 사제 구해요."

"레벨 200 이상 사제님 특급 대우 해 드립니다. 아이템도 2명 몫으로 가지게 해 드릴게요."

"실력 따지지 않고 사제님 있으시면 저희 파티로 모실게요. 원하시는 조건 있으면 최대한 맞춰 드립니다."

대륙의 다른 장소에서는 사냥을 가기 위해서 실력이 좋은 사제를 찾는 게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일부 지역은 사제들의 몸값이 크게 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


"이것으로 열네 번째 퀘스트를 마쳤군."

바드레이는 직업 마스터 퀘스트에서 가장 앞서 나갔다.

카잔카의 식인 괴물 퇴치 의뢰 완료!

그가 의뢰를 받으면 각 방송국에서 생중계에 들어갔다. 전투 영상은 동시간대에 최고의 시청률도 기록했다.

진행자들은 그의 힘과 스킬 운용에 대하여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할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싸울 수 있죠?"

"기가 막힐 정도로 허점을 잘 노렸습니다. 완벽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아마도 정말 무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바드레이의 전투 능력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인기와 명예, 헤르메스 길드에서 비롯되는 권력까지 가지고 있는 바드레이!

하지만 시청률이 가장 높았을 때에는 위드와의 전투가 벌어졌을 때였다.

바드레이도 위드를 이겼던 그 전투를 수업ㅄ이 다시 생각했다.

위드의 검이 그렸던 궤적, 헤르메스 길드의 전사들을 상대로 활약하던 모습들.

'공격 스킬의 사용은 정해 두지 않은 채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서 몸이 먼저 이끌어 간다.'

위드의 공격은 맹렬하고, 끊어짐이 없었다.

헤라임 검술에 대해서는 바드레이도 알고 있었지만, 여섯 번의 연속 공격까지가 최대였다.

그것만으로도 친위대에서는 대단하다고 우러러볼 정도였다.

그런데 위드의 경우에는 어쌔신을 상대로 열여섯 번까지도 성공시켰다.

바드레이로서는 그 움직임이 계속 떠오를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위드의 다른 전투 영상들도 찾아봤다.

'투지로 몬스터를 놀라게 만들고 멈칫거리는 것을 이용하여 호흡을 끊어 버리는군. 몬스터보다 앞서서 공격을 하고, 옆으로 빠지면서 반격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연속 공격. 사방이 포위되었을 때에는 일부러 허점을 보이면서 뒤쪽의 몬스터가 공격하도록 반응을 유도하며 제압한다. 포위당해서 공격을 받을 때에도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게, 정말 익숙하게 수없이 맞춰 보기라도 한 것처럼 싸우는군. 도대체 어떤 전투를 얼마나 경험하면 저럴 수가 있지?'

일점 공격술은 본 드래곤에게 사용한 걸 봤으면서도 따라 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사실 하늘을 날고 있는 본 드래곤의 몸에 그대로 올라탄다는 자체만으로 웬만한 용기로는 저지를 수도 없는 미친 짓이다.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서 공격 스킬이나 쓰는 정도가 대다수의 유저들이 상식적으로 선택하는 행동이다.

위드는 본 드래곤과 와이번을 타고 공중에서 전투를 벌였다.

"스킬이나 레벨이 높다고 해서 이게 할 수 있는 행동일까?"

리치 샤이어와 싸울 때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오크, 다크 엘프 부대를 지휘하는 데 썼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을 노려서 위드는 한 번의 공격을 성공시켰다.

모든 것을 걸었던 한 번의 공격에서 발견해 낸 적의 허점 공략!

위드의 전투는 보면 볼수록 대단하단 생각뿐이었다.

'만약 스킬이나 레벨, 장비를 다 제외하고 그냥 검을 들고 동등하게 일대일로 싸웠더라도 이길 수 있었을까?'

위드는 매우 빨랐다. 하지만 그때의 바드레이도 여러 가지 축복으로 속도가 빨라진 상태였다.

최고의 명마 린들린도 타고 있었다.

스킬의 반응속도와 범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체로 동등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전투 내내 위드가 자신보다 한발 앞서 공격을 주도했다.

그가 노리는 방향은 가장 까다로운 경로였고, 심리적인 허점을 이용하며 두 번째, 세 번째의 공격까지도 연속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변칙 공격들......'

위드는 검을 휘두르면서 흐름을 일으켰다.

빠르게, 빠르게, 느리게, 빠르게, 강하게, 느리게, 강하게, 빠르게, 강하게!

그냥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폭풍처럼 쏟아지는 공격에 정신없이 적응하려고 하면 어느새 다시 살벌하고 혼란스럽게 바뀌었다.

전혀 다른 성격의 여러 명과 싸우는 것처럼 리듬을 바꾸면서 몰아친다.

이게 멀리서 볼 때에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직접 싸우는 사람에게는 미치게 만드는 공격인 것이다.

바드레이는 검술의 비기인 다른 하나의 검까지 쓰고 있었는데, 그것까지 감안하여 쳐 내면서 온통 두들겨 댔다.

그 현란함과 화려함 속에 숨어 있는 공격성은 무자비했다.

섬뜩함을 느낄 정도로 파괴적인 방식.

'생각보다 공격력이 약해서 다행이었어. 위험할 수도 있었다.'

피해가 덜한 공격은 그냥 맞아 주고서라도 강하게 반격을 가하려고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먼저 반응을 해 버렸다.

'그런 전투를 몬스터에게도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바드레이는 자신의 전투법이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힘과 마나 분배를 잘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 스킬의 위력을 이끌어 내며 효율적으로 사냥을 해 왔다.

그러나 위드가 보여 준 전투는 그보다 높은 단계였다.

전투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내면서 싸운다.

'괜찮은 시도가 되겠군. 사냥이 한층 재미있어지겠어.'

바드레이는 스스로 부족한 면을 일부나마 깨달았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를 위한 전투에도 반영해서 소득을 거두었다.

몬스터나 다른 기사와 싸울 때마다, 위드의 전투법을 참고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허점을 잡기가 쉬워졌다.

'일점 공격술이란 것도 따로 어떻게든 연습을 해 봐야겠다.'


★★★★★★★★★★★★★★★★★★★★★


"빨리빨리!"

"붉은 돌이 세 수레 왔습니다!"

"여기 이쪽부터 깔아 주세요."

유저들이 신들의 정원 공사 현장을 가득 채웠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광장이 완성되었으며, 신전도 금방 세워졌다.

"역시 이 재미로군. 노가다는 다 같이 하니까 못 할 게 없어."

위드는 노가다가 보여 주는 마법 같은 공사 현장을 보면서 뿌듯했다.

이게 바로 권력의 맛이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파내고 쌓으면서 작업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이 정도라면, 조각품만 완성된다면 다른 구조물들은 먼저 끝마칠 수도 있겠어."

위드는 라체부르그에서 봤던 신상을 만들었다.

세상에서 잊힌 신들의 경우에는, 조각상이 완성되면서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기도 했다.

조각사들도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알게 되자 진전이 빨라졌다.

위드가 손을 대야 하는 부분들을 남겨 놓고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 하부의 조각을 했다.

"신들을 조각하는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니 이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야."

"응. 작품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얻는 게 많으니까."

제자들은 많은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의욕이 솟았다.

"으아아아악!"

가끔 줄을 소홀히 매서 석상에서 추락하여 사망하는 조각사들도 생겨났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이나 조각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졌던 기억이 없었다.

위드의 작품을 보조하면서 스킬 숙련도와 스텟, 명성도 많이 얻었기에 조각사 유저들은 기쁜 마음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4개의 신상이 완성되었을 때에는 수십만 명이 넘는 유저들이 작업을 매일 도와주고 있었다.

6개의 신상이 만들어질 무렵에는 더 이상 조각 재료를 모아 올 필요도 없었으며, 광장에도 돌이 빼곡하게 깔렸다.

엘프들이 와서 정원에 야생화와, 각 신을 상징하는 꽃을 심었다.

10개의 신상의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에는, 모라타와의 도로도 개통되었다.

군중의 참여로 인해 작업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쪽에는 야산이 있었는데......"

"아침에 싹 옮겼어."

"호수의 형태가 바뀐 거 같은데?"

"그냥 동그란 건 식상하다고, 공중에서 보면 모라타의 모습을 축소한 것처럼 해 놨거든."

부실 공사가 우려될 정도로 일대의 모습이 빠르게 바뀌었다.

신들의 정원의 기초공사가 마무리되자마자, 신전들에 사람들이 와르르 몰려가서 기둥을 세우고 외부 장식을 했다.

벽에는 위드가 조각한 신상을 참고하여 찬양하는 그림이 그려지거나 조각품이 새겨졌다.

"위드 님이 이번에 만든 신은 누구야?"

"여행과 시간의 신, 트로체트!"

"그게 누군데?"

"나도 몰라."

"또 모르는 신이 나타난 건가?"

"근데 지금 모험가와 학자 직업을 가진 유저들에게 퀘스트가 부여되었다더라. 트로체트의 신탁이라는 의뢰라던데."

위드가 신상을 만들고 나면, 모험가들은 그 신상에 대한 정보들을 입수해 왔다. 신상의 완공은 곧 관련된 신의 퀘스트와도 연결되었다.

"아하, 이게 트로체트 신을 의미하는 말이었구나!"

도서관에 아무 근거도 없이 남겨져 있던 쪽지들이 설명이 되었다.

트로체트 신에 대한 내용으로,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문구들이 밝혀지면서 퀘스트의 완수!

신의 탄생으로 인하여 밝혀진 쪽지와 책자는 다른 연계 퀘스트와도 이어지게 되었다.

"크윽, 맥주 맛 죽인다. 다음에는 무슨 의뢰부터 할까?"

"헤스티아의 의뢰는 벌써 끝낸 거야?"

"응. 어렵지 않은 의뢰라서 금방 해치웠지!"

모험과 의뢰가 다시 모라타를 뜨겁게 했다.

신들의 정원에 신상이 만들어질수록 지역 정치에 대한 영향력이 늘어나고, 새로운 종류의 의뢰가 발생하며, 종교적인 혜택이 생겼다.

성직자와 사제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고, 모험을 원하는 사람들은 밀려드는 의뢰와 밝혀내야 하는 진실의 실마리를 가지고 길을 떠났다.

건축가들도 신전을 만들면서 그동안 쌓았던 실력을 발휘했다.

"너무 평범한 신전은 안 돼. 불과 화로의 여신인 헤스티아의 특성을 고려해야지. 드워프들도 편하게 올 수 있는 그런 장소로....."

"신전에서 맥주라도 팔면 안 되겠지?"

"꿀꺽! 그러면 장사야 잘되겠지만 어디 그렇게 할 수야 있겠는가? 신성한 불을 피울 수 있는 장소를 신전 중앙에 제단 형식으로 해서 놔두어야지."

"드워프들을 위하여 작은 의자도 설치해 두면 편할 것 같네."

위드의 연설과 조각품으로 빚어낸 결과이기는 하지만, 신전은 군중의 절대적인 호응을 받으면서 세워지고 있었따.

신전은 일단 건설되고 나면 아주 긴 시간 동안 무너지지 않고 보존될 것이다.

건축가들도 그런 건물을 지을 때에는 특별히 많은 명성과 스킬 숙련도를 얻었다.

그들은 군중의 도움에 힘입어 갖은 솜씨를 발휘하여 멋진 건물을 지었다.

모라타로 인하여 튼튼하던 아르펜 왕국의 재정은, 신들의 정원을 조성하면서 비축해 두었던 자금이 몽땅 소모되어 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런 점에 있어서는 걱정하지 않게 되었따.

"요즘 들어서 유저들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지?"

"응. 초보자들은 정말 아르펜 왕국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잖아."

"초보자들만이 아니라더라. 중앙 대륙인아 다른 곳에서도 유저들이 매일 몰려오니까."

"하긴... 광장에서 거래되는 물건들이 별게 다 있더라. 아주 비싼 마법용품도 사람들이 금방 사 가 버리더라고."

신들의 정원을 보기 위하여 찾아온 성직 계열의 직업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혼자서도 왔지만,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같이 여행과 사냥을 하며 모라타에 도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여기가 북부구나!"

"이곳에 요즘 의뢰가 많이 생긴다던데, 우리 이번에 한번 모험을 해 봐요."

"던전 탐험도 해 보죠."

사제와 성기사 들은 신들의 정원이 완전히 갖춰지기 전에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모라타에서 지내다 보면 그들 중에서는 점차 북부의 들끓는 몬스터와 다양한 의뢰에 반하게 되는 사람들이 나오리라.

예술품, 공연으로 아름다운 도시 모라타에 빠져들면 다시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중앙 대륙에서 와서 머무르는 사람들로 인하여 아르펜 왕국의 세금 수입은 비약적으로 늘어나서, 신들의 정원에 필요한 공사 대금을 넉넉히 충당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미 특정한 신을 믿고 있는 사제는 관련 신전의 공사 비용을 내면서 공헌도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헌금도 많았다.

모라타의 초보자들은 몇 쿠퍼씩이라도 내놓는다면, 중앙 대륙에서 온 사제와 성기사 들은 한번에 목돈을 내놓았다.

아직 종교가 생기지 않은 신에게도 헌금이 많이 몰렸는데, 새로운 신의 경우에는 고위 사제가 되기 쉽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 아닌 오크의 신, 바바리안의 신도 조각되었다.

띠링!

-오크의 종교가 탄생하였습니다.
오크들의 복수심과 문화를 확장하게 될 것입니다.

-바바리안의 종교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곳 신전에 와서 강건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르펜 왕국과의 우호도가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각종 신상이 하나씩 만들어짐으로써 역시 좋아하고 자부심을 갖는 건 아르펜 왕국의 주민들과 유저들이었다.

신들의 정원은 그들이 북부에서 살아가는 한 끝없는 축복을 내려 주는 장소가 되리라.

황무지를 바꾸어 버린 대역사에 참여했다는 명예도 얻었다.

대륙의 그 어느 왕국도 따라올 수 없는 문화가 하루하루 쌓아 올려지고 있었다.


★★★★★★★★★★★★★★★★★★★★★


위드는 베르사 대륙의 시간으로 꼬박 3달이 넘게 신상 조각에 매달렸다.

지루하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아래에서 구경하는 유저들이 의지가 되었다.

"인구가 더 늘어났군. 이제 앞으로 벌어들일 세금이 얼마겠어!"

위대한 건축물도, 지을 때는 밑 빠진 독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모라타의 굉장한 자랑거리다.

"아르펜 왕국의 인구를 계속 늘려서 앞으로 저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해야지. 평생을 내 왕국에서 지내면서 세금을 내게 해야 돼!"

대륙 최대의 조각, 토목공사라는 신들의 정원도 그런 측면에서 볼 때에는 반드시 필요했다.

무릇 장사가 잘되는 가게를 보면 인테리어부터 화려한 경우가 많지 않던가.

어딘가, 손님으로 하여금 꼭 들어가 보고 싶게 하는 충동을 일으켜야 된다.

뒤늦게 후회를 하더라도 일단 낸 세금에 있어서 환불은 없으니까.

주민으로 정착시켜서 돈을 싹싹 긁어모으려면 투자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뭔가 비싸 보여야 돼. 나중에 세금을 올리더라도 아까운 느낌이 나지 않도록! 관광업은 돈을 잘 거둬들인다는 측면에서 볼 때 남기는 것이 많지."

건축물은 도시를 유명하게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신들의 정원이 필요 이상으로 거대하게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라체부르그에 있던 신들이 최초로 세상에 나오는 중요한 자리였다.

아직까지 믿는 사람이 많은 신이라고 해도, 그 원형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힌 후였다.

종교적, 역사적인 가치를 고려해 볼 때 지금이 신상을 조각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볼 수 있었다.

다른 누구도 라체부르그를 발견하기 전이었으며, 조각사는 그 신들에 대하여 예술품ㅇ므로 세상에 알릴 수가 있는 것.

"장사에도 다 때가 있어!"

위드 본인의 실력과 그에 대한 주민들의 믿음까지 이용하여 누가 봐도 경악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제대로 멋지고 크게 만들어 본 것이다.

"조각술 숙련도는 고급 8레벨에서 정말 안 오르는 편이지. 조각품은 이런 것이라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야 돼!"

현재 위드의 조각술 스킬은 고급 8레벨!

지금까지 세워 놓은 신상은 11개로, 조각술 스킬 숙련도를 27% 약간 넘게 얻었다.

작품들이 역사적인 종교적인 가치를 가지면서 얻은 스탯도 부지기수!

위드와 성향이 비슷한 신들의 축복까지 받으면서 손재주와 요리, 낚시, 재봉의 스킬 숙련도도 조금 획득했다.

더 이상 숭배하지 않게 된 신들이 여럿 나타나면서, 베르사 대륙 전체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조각사로서 현재까지는 위드만이 저지를 수 있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까지를 놓고 본다면 조각술 마스터에도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걸 망쳤으면 난 아마 다시는 돈이 많이 드는 비싼 조각품을 만들지 못했을지도 몰라."

위드는 지긋지긋하게 작품을 만들면서도 전투를 하고 싶어서 몸이 간질거렸다.

헬리움으로 만든 여신의 기사 갑옷!

특정한 신들을 조각하고 나서는 장비에도 축복을 받아서, 신앙심에 영향을 받는 다른 옵션이 생기거나 방어력이 추가 되었다.

이걸 착용하고 전투를 한다면 훨씬 재미있게 싸울 수 있을 텐데, 지금은 다른 일보다는 조각품을 만들어야만 했다.

위드가 매달려서 신상의 조각을 끝낼 때마다 지상에서는 거센 함성이 터졌다.

많은 군중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참여한 사람들의 공을 생각해서라도 조각품을 만드는 일이 우선이었다.

아르펜 왕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참으면서 조각품만 깍아야 했다.

"힘들어요, 주인님."

빛날이의 날갯짓이 약해지면, 밧줄에 몸을 의지한 채로 돌을 깎고 신상의 어깨에 올라가서 일을 했다.

한밤에 달빛과 별들 아래에서 고요하게 돌을 깎았다.

'다른 사람들은 사냥도 하고, 모험도 하고, 재미있게 지내겠지.'

위드를 부러워하면서도 바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여전히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인생은 적당히 즐기면서 살아야 하는데, 조각사라는 직업을 택해서 백날 고생하며 작품만 깎고 있으니까.

눈물 젖은 보리 빵을 먹으면서 살아온 삶이었다. 하지만 작품을 만들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부족하더라도 최선을 다하였을 때에는 성취감과 충족감을 얻을 수가 있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인생을 겪어 보지 않은 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세금... 이게 다 나중에 세금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위드가 밤에도 조각품을 깎고 있는데, 방문자가 찾아왔다.

그는 큰 새를 타고 위드가 있는 근처까지 올라왔다.

"위드, 오랜만일세."

드워프 대장장이 헤르만!

그는 헤스티아의 대장간 주변에서 검과 방어구를 주문 제작해서 사람들에게 제공해 주고 있었다.

헤르만의 장비는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 했음에도 대기 주문자들이 끝도 없이 밀려 있었다.

위드도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모라타에 정착하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모라타는 정말 좋은 도시더구만. 쿠르소에서 더 빨리 오지 않은 걸 후회할 정도로..... 참, 예전에 쿠르소에서 환송식을 했을 때 말인데......"

위드는 쿠르소의 환송식에서 계산을 헤르만에게 미루고 달아난 적이 있다.

"환송식요? 오래전 일이라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왜요?"

"그게, 자네가 쿠르소를 떠나는 마지막 날에... 에잉, 별것 아닐세."

헤르만은 구차스럽기도 하여서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드워프 대장장이로서 버는 돈도 많은데 상대적으로 푼돈에 불과한 환송식에서의 일은 다시 꺼내지 않기로 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환송식의 드워프들의 풍습은, 어쩌면 쿠르소의 유저들끼리 만들어 낸 것이 아니던가.

'그냥 내가 산 걸로 치고 말지.'

당사자인 위드도 잘 알지도 못했을 텐데 그 술값을 내라고 한다는 건 다소 횡포에 가까운 주문이 될 수도 있다.

위드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조각품을 깎으면서 얻은 정신적인 피로의 상당 부분이 돈을 떼먹으며 날아갔다.

"내가 여기에 온 건 영주나 국왕에게 허락을 받아야 될 일이 있어서인데, 화가의 언덕처럼 헤스티아의 대장간 주변으로 대장장이의 거리를 만들면 어떻겠나?"

헤르만은 모라타에 정착하기로 하면서 쿠르소에서부터 같이 온 드워프들과 함께 대장간의 거리를 조성하고 싶었다.

좋은 품질의 물품들만을 판매하는 무기점, 방어구점도 중간 중간 문을 열면서, 도시에서도 이름 있는 장소를 이루는 것이 작은 꿈이었다.

"대장간 주변으로는 다른 작업보다는 대장장이들이 모여서 사는 걸세. 그러다 보면 서로 가르쳐 주면서 도움이 되는 일도 생길 것이고, 금속을 주로 다루는 상점들도 생긴다면 도시 발전에도 좋지 않겠는가?"

식당도 잘되는 곳일수록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모여 있는 편이 좋다. 그러면 더 많은 이용자들을 끌어들이면서 다같이 장사가 잘된다.

헤르만은 대장장이들을 이끌어 가면서 적극적으로 도시 발전에도 동참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대장장이만이 아니라 다른 직업들도 모라타에서 더 많은 역할과 기여를 하려고 했다.

사람들이 보는 눈은 대체로 비슷했다.

모라타는 베르사 대륙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도시였고, 이제는 아르펜 왕국의 수도다.

신들의 정원까지 조성되면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여겼다.

먼 훗날 대륙 최고의 도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저 망상만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지금으로써도 유저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니까.

위드의 입가에도 훈훈한 미소가 어렸다.

"안 그래도 그렇게 할 계획이었습니다. 대장장이들이 존중을 받아야 다른 직업들도 멋진 장비를 입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정말 좋아합니다."

대장장이들이 많아야 세금이 듬뿍듬뿍!

위드는 대장장이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모라타 주변에 대장장이 마을을 조성하여, 그들이 대륙을 대표할 만한 훌륭한 검과 갑옷을 만드는 것이다.

교역은 물론이고, 정착하는 사람과 여행을 통한 방문자들 까지도 많아지게 되면 일석삼조의 세금 수입!

"알아주니 고맙네."

"물론이지요. 제 마음속에는 대장장이들에 대한 착...실한 지원 방안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착취란 단어가 언뜻 나올 뻔한 위드였다.

"대장장이의 거리가 생겨나기만 하면 사람들이 지금보다 정말 많아질 거네."

대장장이들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확보되어야 한다.

모라타에는 북부에서 모험을 하는 높은 레벨의 유명한 유저들이 많았고, 초보들도 계속 유입되고 있었다.

초보 대장장이라고 하더라도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었고, 헤르만처럼 최고의 대장장이 중 1명이라도 그의 물건을 구매할 능력이 갖춰진 고객이 충분히 있으니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최상급의 철 확보가 필요했다.

모라타에는 철광산도 있긴 하지만 매장량이나 품질이 그렇게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다 합쳐도 트레이피크 멜버른 광산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수준.

광산 쪽으로는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현재 재료의 부족은 니플하임 제국 시절에 제조되었던 오래된 무기를 철로 녹여서 대장장이들이 다시 쓰는 방식으로 해소하고 있었다.

초보 대장장이들은 기존에 있는 녹슨 철검이라도 새로 만듦련서 더 단단하게 제련하는 방법을 배웠다.

제법 이름이 알려진 대장장이들은 북부의 다른 마을에서 개발된 광산의 철을 수입해 와서 썼다.

모라타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워낙 막대하다 보니 광산이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들은 엄청난 수익을 얻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바르고 성채 주변은 험준한 산악 지역이라서 매장량이 많은 광산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드워프들은 현재는 폐광이 된 은 광산, 철광산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군대를 키우고, 유저들이 역량을 갖추어서 몬스터를 몰아낸다면 에르리얀들도 바르고 성채의 광산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장장이들에 대한 지원은 지속적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들을 생각한다면 내 우려가 괜한 것들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위드가 예술가를 지원하기 시작한 게 아니라 그의 생각을 지레짐작한 모라타의 장로가 멋대로 저지른 일이지만, 어쨌든 그러한 부분에서도 훌륭한 왕이라는 소문이 많이 퍼졌다.

예술 계열, 공연 계열의 직업들은 대륙을 떠돌며 위드에 대한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르펜 왕국의 치안이나 주민 충성도는 그런 부분에서도 높게 유지 되었다.

북부를 넘어서 이제 중앙 대륙에서도 유민들이 들어왔다.

"그보다도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어떤 일인가?"


★★★★★★★★★★★★★★★★★★★★★


신상을 제작할 때에는 헤르만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

군신이나 투신의 조각품 등을 표현할 때에는 무기도 들고 있는 편이 좋다.

"대장장이가 참여한다면 훨씬 좋겠지."

너무 큰 무기는 그 자체의 무게도 많이 나가기에 조각상이 파괴되어 버릴 수도 있다.

위드의 손재주와 조각술 스킬이 적용되어 내구성이 높다고 해도, 거대한 강철 검을 머리 위로 들고 있는 조각상이라면 당연히 부서지기 마련.

헤르만은 내부가 비어 있는 대형 무기도 만들 수 있을 테니 경량화가 가능했다.

"그러니까... 품질보다는 조각상에 쓸 만한 무기를 제작해 달란 말이로군. 보통 해 본 적이 없는 일이기는 해도 새로운 도전이라서 흥미가 생겨. 같이 일을 해 보세."

위드의 작업에 동참하는 건 오히려 헤르만 쪽에서 고맙게 생각해야 될 입장이었다.

무기만이 아니라 청동으로 신상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위드의 부탁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런 특성의 재료라면... 딱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데, 자네가 다를 수는 있겠는가?"

"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주지. 가격은 잘 쳐주게."

-흑암의 철을 습득하셨습니다.

-피를 흡수하는 보석을 습득하셨습니다.


『 흑암의 철 : 내구력 9/9.

생산 스킬 대장일과 관련된 아이템.

궁극의 대장일 재료.

네크로맨서가 제물을 바치며 얻은 강력한 저주를 받은 철이다.

언데드들이 사용하는 무기를 만들면 암흑 투기를 더 많이 이끌어 내

는 특성을 부여할 수 있다.

신성력에 의한 보호 마법에도 영향을 덜 받는다.

1등급 대장일 아이템.

옵션 : 언데드가 사용할 시에는 능력을 더 발휘함. 』

『 피를 마시는 보석 : 내구력 7/7.

생산 스킬 대장일과 관련된 아이템.

궁극의 대장일 재료.

마센 왕국과 에버딘 왕국 간의 전쟁의 빌미가 되었던 보석이다. 보석

은 결국 에버딘 왕국의 소유가 되었지만, 3명의 왕비들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고, 그 후에도 숱한 피를 뿌렸다.

이 보석은 아직 가공되지 않았지만, 세공하는 사람에게는 불행한 일이 생길 것이다.

1등급 대장일 아이템.

옵션 : 피와 관련된 스킬의 효과 증가.

가공 시에는 행운 스탯 13 감소.

매력 7 증가.

특별한 숙련도를 획득할 수 있음. 』


위드는 헤스티아의 대장간 주변의 땅을 넘겨주기로 하고 물건을 인수했다.

"이것들은 바로 만들어 줘야 되겠군."

신상을 깎는 일도 제쳐 두고 하루를 헤스티아의 대장간에서 외도를 했다.

조각술 스킬이 있으니 보석 깎는 일은 문제도 아니고, 평소에 다양한 재료들을 써 보았으니 흑암의 철도 금방 익숙하게 다루었다.

"다시는 부러지지 않을 검을 주어야겠어."

위드는 흑암의 철을 헤스티아의 화로에 녹이고 다시 물로 식혀서 망치를 두들겼다.

그리하여 탄생한 검!


『 흑암의 검 : 내구력 145/145. 공격력 96~137.

네크로맨서의 희귀한 저주가 깃든 철로 단련된 검이다.

언데드를 강화시키는 특성이 있으며, 지휘관급에게 더욱 효과가 높다.

외부의 장식은 전혀 되어 있지 않고 투박한 외형을 가졌다.

어지간한 언데드는 들 수도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마검이다.

재능이 절정에 달하려고 하는 대장장이의 제작품!

제한 : 언데드, 타락한 기사 전용.
레벨 465
도덕심, 신앙이 없어야 함.

옵션 : 견고함.
암흑 투기의 효과 37%
네크로맨서의 저주, 증오의 소리, 의지 상실 사용 가능.
힘 +12.
민첩 +26.
언데드를 지휘하고, 그들의 힘을 13% 더 끌어낼 수 있다.
신성력을 기반으로 한 보호 마법의 효과 약화. 』


-중급 대장장이 스킬의 레벨이 10이 되어 고급 대장장이 스킬로 변화
됩니다. 존재하는 철과 금속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검과 방어구의 성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재료가 필요합니다.
드워프들의 우호도가 더욱 높아지며, 그들은 종족을 떠나서 친구로서
존중해 줄 것입니다.
화로의 불을 다스리는 효과가 추가로 31% 증가합니다.
매우 높은 온도의 불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망치질을 할 때 체력 소비량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각 아이템의 착용 제한이 4% 줄어듭니다.
전 스탯이 20포인트씩 늘어납니다.

-언데드가 착용할 수 있는 특별한 무기를 제작하여 명성이 139 올랐습니다.

흑암의 검을 완성하자 중급 대장장이 스킬이 고급의 단계에 올랐다.

엄청난 노력 끝에 얻은 결실.

미스릴과 헬리움을 이용한 여신의 기사 갑옷도 만들면서 스킬 숙련도를 많이 올린 덕분이었다.

"드디어 기다려 왔던 순간이군."

위드는 가지고 있는 장비들을 전부 손봤다.

데몬 소드를 조금 더 강화하고, 아직 몬스터에게는 써먹어보지도 못한 여신의 기사 갑옷도 마찬가지였다.

방어 능력을 키우기 위하여 미스릴을 조금 더 추가하고, 특수한 복잡한 무늬를 새겨서 적들의 공격을 훨씬 더 잘막을 수 있게 했다.

처음부터 고급 대장장이 스킬로 갑옷을 제작한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아졌다.

사실 필요한 장비를 직접 만드는 입장에서는 스킬의 레벨이 오를 때마다 전부 다시 새로 제작하여 쓸 수도 없었다.

"흑암의 검도 썩 나쁘지 않은 편이군."

재료의 성향도 있지만 일반적인 검에 비해서 조금 더 두껍고 무겁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공격력이 좋았다.

위드는 보석 세공용을 칼을 꺼내서 보석도 가공했다.

원래 직업이 조각사이다 보니 흑암의 검을 만드는 것보다는 보석을 깎는 편이 훨씬 쉬웠다.

요사스럽게 빛나는 붉은색 보석!

베르사 대륙의 역사사에도 기록된 보석으로, 가지고 있으면 여러 나쁜 일이 일어났다.

"행운 스탯도 중요하긴 한데... 뭐, 어쩔 수 없겠지."

위드는 깎아 놓은 보석을 금반지에 끼워 넣었다.

마치 원래 있을 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석이 반지에 들어갔다.


『 요사스러운 흡혈 반지 : 내구력 27/27.

피를 마시는 보석으로 만든 반지.

착용하고 있으면 생명력이 계속 줄어들며, 체력도 저하된다. 결국 무

시무시한 병에 걸리게 만드는 반지.

대단한 실력을 가진 대장장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만들어 냈다.

가능한 세상에 나가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밤의 귀족이 탐낼 만한 물건이다.

제한 : 없음.

옵션 : 착용자의 생명력 감소.
체력 약화.
매력 16% 증가.
현혹의 능력을 강화함.
흡혈의 권능 효과를 늘림.
피를 마실수록 보석의 숨겨진 힘이 드러남. 』


확실하게 재수 없는 물건!

위드는 착용해 보지도 않았다.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검은 연기가 일어나더니 데스 나이트가 나타났다. 뱀파이어 로드도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등장했다.

"주인, 이번에는 무슨 싸움인가."

"어떤 적이라도... 싸우고 싶다. 이 갈증을 씻어 낼 수 있도록 피에 취하고 싶다."

헤르메스 길드에 비참하게 깨진 일 때문에 위드의 두 부하도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신성력의 영향을 받아서 역소환되고 난 이후로 아직 몸이 정상도 아니었다.

특히 데스 나이트의 경우에는 찢어진 망토에 맨손이라서 볼품도 없었다.

"이거 너희에게 주는 선물이야."

위드는 흑암의 검은 반 호크에게, 요사스러운 흡혈 반지는 토리도에게 보여 주었다.

항상 재고나 불량품, 혹은 중고 물품만 받아서 쓰던 그들에게 처음으로 휘황찬란한 물품들을 지급한 것이다.

반 호크와 토리도는 흠칫 뒤로 물러났다.

"아니다. 이런 건 필요 없다, 주인. 맨손으로도 싸울 수 있다."

"나도 보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위드의 함정이라고 판단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둘이었다.

매사에 의심과 경계가 습관이 되어 버린 훌륭한 주종 관계!

"내가 아주 공들여서 만든 건데. 정말 귀한 재료들로 특별히 너희에게 맞춰서 제작한 거야."

위드는 장비들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제야 안심하고 받아 드는 반 호크와 토리도였다.

"앞으로는 말 잘 들을 거지?"

"무슨 말이든 따르겠다.'

"난 정말 좋은 주인인 것 같아."

"물론이다."

"다른 주인이라면 자기만 생각하지, 너희에게 이런 거 만들어 줄 생각도 못 했을 거 아니야.'

"......"

"내가 이것들을 만들려고 넣은 재료들이 뭐냐면......"

"......."

위드는 그날부터 사흘간 소환을 유치한 채 쉬지도 않고 생색을 냈다.


3) 오크들의 선택


"전쟁이다!"

"블랙 안나스의 군대가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

"빨리 성부터 빠져나가야겠군!"

위드가 신상을 만들고 있는 동안, 베르사 대륙은 전쟁으로 불타올랐다.

성과 도시에서 공성전이 벌어지면 장사를 하던 상인들과 초보자들은 모두 성 밖으로 도망을 나왔다.

공성전이 벌어지면다 보면 성내가 무법 지대가 되어서 닥치는 대로 방화와 살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엠비뉴 신을 찬양하라."

"정의로운 성기사들은 이교도들과 맞서 싸우라."

대륙에서는 엠비뉴의 군대와 각 교단 성기사단끼리 충돌도 일어났다.

엠비뉴 고단이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부터 다른 교단들도 바빠졌다.

대성당과 수도원에 머무르던 성기사단과 수도사들이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들이 돌아다님으로써 유저들에게는 신규 퀘스트가 계속 발생하였으며, 공적을 올릴 기회도 많아졌다.

엠비뉴 교단과의 전면전쟁!

어떤 유저도 그 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안정되게 성에서, 마을 근처에서 사냥을 하며 던전을 돌아보던 시절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륙이 위험해짐으로써 성과 마을이 파괴되기도 하고, 더강한 몬스터들이 떼거리로 출몰하기도 하였다.

엠비뉴 교단에 의해서 점령된 지역에서는, 개종을 하고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서 같은 유저들을 사냥하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


주식회사 유니콘에서는 홍보부의 장윤수 팀장이 주관하는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최근 베르사 대륙의 상황에 맞춰 지난번에 기획부에서 내온 시안을 바탕으로 광고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실제 플레이 화면은 얼마나 담겨 있나요?"

"90% 이상입니다. 먼저 보시고, 나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의실의 불이 꺼지고 벽 스크린에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익숙해진 엠비뉴의 군대가 어마어마한 숫자로 평원에 모여 있었다.

깊은 밤, 횃불을 밝히고 모여든 그들!

화면은 엠비뉴의 대사제들이 머무르는 천막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곳에서......"

"제물을 바침으로써 비로소....."

"인간들에게......."

"크크긋....."

대사제들이 음산하게 소곤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엠비뉴의 암흑 기사들이 삼엄하게 순찰을 돌았고, 몬스터들도 경계를 섰다.

로열 로드를 경험한 유저라면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장소인지 알고 소름이 돋을 정도의 분위기였다.

대부분은 엠비뉴 교단을 적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더욱 두렵고 공포스러웠다.

자기가 활동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지만, 정작 엠비뉴 교단의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윽고 화면은 바뀌어서, 유저들이 그라디안 왕국을 침공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가라, 용사들이여!"

"우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끝까지 싸울 것이다!"

성벽에서 우수수 쏟아지는 화살 비를 뚫고 전진하는 블랙소드 용병단!

공성 무기까지 동원되어서 엄청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라디안 왕국은 중앙 대륙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하여 지형이 험한 까닭에 유저들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활동 영역이 넓은 블랙소드 용병단에서 이 그라디안 왕국을 목표로 삼고 전투를 벌여 점령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사흘간 싸운 결과 왕성이 함락당하고, 왕국 전체는 내전에 휩싸이게 되었다.

다시 화면은 바뀌어서 하벤 왕국으로 향했다.

호화롭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사치스럽게 지어지고 있는 왕궁!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여 기사들과 병사들의 충성도를 높여 통치를 유리하게 하는 왕궁을 건설하고 있었다.

노예들의 강제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주변에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삼엄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수도 아렌 성에는 빛과 어둠처럼, 한편에는 넓은 빈민가가 있고 다른 편은 상업 건물들로 성업을 이루었다.

왕성 주변을 공중에서 짧게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다른 왕국의 모습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다시 화면은 바뀌어서 오크들에게로 향했다.

화면에 나무와 수풀이 보였다.

"취이이이잇!"

오크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거친 숨소리, 그리고 수풀 위로 빛나고 있는 글레이브.

"가자. 취취췩!"

오크 랜드의 동쪽, 엘나스 산맥 오크들이 일제히 넓은 평원을 향하여 달렸다.

화면은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서 비추고 있었다.

놀란 짐승들이 도망치고,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평원을 향하여 내려가는 오크들의 행렬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무지막지한 번식력으로, 동쪽으로 계속 세력을 넓혀 가는 오크들.

엘프들은 정령술과 마법을 개발하고 있었으며, 드워프들은 그들만의 무기를 제작하며 토르 왕국을 다스린다.

이미 마지막 단계로, 화면은 사람들을 비추어 주었다.

가장 유명하며 무력의 정점에 서 있는 바드레이가 왕성의 탑에 서서 아렌 성에 비치는 여명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험가 체이서는 던전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는데, 그를 뒤쫓아서 몬스터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대장장이 파비오는 온통 새빨간 화염이 넘실거리는 장소에서 철을 다루었다.

각 직업을 대표하는 17명의 유저들의 행동이 화면에 비쳤다.


영상이 끝나고 나서 장윤수 팀장이 말했다.

"지금으로써는 베르사 대륙이 혼돈의 시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점을 감안하여 유저들에게 보여 줄 영상을 제작하였습니다."

인터넷과 방송으로 나누어서 내보내질 이 영상은 로열 로드의 유저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알려 주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베르사 대륙이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각 지역에도 영향이 생겼기 때문이다.

혼돈의 시기!

로열 로드의 초창기에는 각 왕국들 간의 분쟁이나 이종족, 몬스터의 침공이 있기는 했어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토대에 머무르고 있었다.

원래부터 존재하던 각 왕국이 치안을 유지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덕분이기도 했다.

문제는, 유저들이 점점 성장하면서 그 균형이 깨어졌다.

기사로 임명된 유저들은 명예보다 이득을 택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영주들도 과도한 세금을 물리면서 주민들을 돌보지 않았다.

몬스터들이 날뛰고나 말거나 상관하지도 않았다.

왕국에 대한 충성도 하지도 않고, 이웃 성과 전쟁을 벌이며 약탈을 일삼는 데에만 관심이 많았다.

로열 로드는 딱히 정해진 스토리가 없었다.

만약에 중앙 대륙의 영주들과 명문 길드들이 통치를 잘했다면 악의 세력이 크게 나서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현재로써는 주민들의 충성도가 낮아지면서 엠비뉴 교단을 비롯한 여러 악의 단체들이 활동하기가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 결과 확실히 각 왕국보다는 유저들이 중심이 되었지만, 그만큼의 대가도 치르고 있는 형편이었다.

로열 로드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런 혼돈의 시기가 과거에도 존재했다.

그때에는 마족과 계약을 한 흑마법사들이 날뛰었으며, 각 왕국들은 전란에 휩싸였다. 각 교단도 성물을 빼앗기면서 위세가 크게 약화되었다.

"흐음, 전략운영실에서는 어떻게 판단하고 계십니까?"

유니콘 사에서 베르사 대륙의 상황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전략운영실의 손일강 실장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맞춰졌다.

그는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던 듯이 의자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엠비뉴 교단의 대대적인 준동 그리고 거대 길드들의 세력 확장, 역사적인 몬스터들의 등장이나 흑마법사들의 난립. 여러 측면에서 볼 때에 과거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 나왔던 혼돈의 시기보다 더욱 큰 위기로 보입니다."

이사들과 여러 부서의 책임자들은 골치가 아파 왔다.

사실 베르사 대륙의 수많은 종족들과, 생성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왕국들을 다 파악하고 있기란 무리였다.

대륙에는 유저들의 밥이 되는 몬스터들만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무수한 무리가 음모를 꾸민다.

해결책 역시 유저들 스스로가 찾아내야 했다.

"그렇다면 아주 곤란하게 된 것 아닙니까?"

로열 로드의 이용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이때 베르사 대륙의 평화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은, 유니콘 사의 이사들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손일강 실장의 표정은 밝았다.

"영웅은 위기 속에서 탄생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혼돈의 시기가 도래한다면 유저들에게 강한 결속력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업적을 이루는 사람도 나타나겠지요."

베르사 대륙은 가상의 세계!

손일강 실장은 그 안에서 극복하고 해결해 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유니콘 사의 직원들도 비슷한 공감대를 가졌다.

처음 로열 로드가 열리고 난 이후부터 유저들의 성장세는 매일매일이 놀라울 정도였다. 그들이 알아서 자신의 삶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어떤 국가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민중의 힘만큼 위대한 것은 없었으니까.


★★★★★★★★★★★★★★★★★★★★★


"케헤헷."

"으케음케!"

"크헤헤헤헤헤헤."

바르고 성채에 정착한 조각 생명체들은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이 맑은 공기와 신선한 풀들 환상적이다!"

위드가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한 47마리의 조각 생명체들.

그들은 위대한 조각사들이 만들어서 오랜 기간을 조각상으로 지내왔다.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한 만큼, 바르고 성채에서도 적당히 놀면서 만족스럽게 지냈다.

와이번과 빙룡, 불사조 등이 매번 위드에 의해서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들은 편하게 지내서 참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오도독오도독!

켈베로스는 산양의 뼈를 먹고 나서 풀밭을 뒹굴었다.

알록달록한 색상을 가진 독사, 산과 숲에서 날쌔게 움직이는 시골뱀은 나뭇가지에 축 늘어져 있었다.

데스웜은 진흙탕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조각 생명체들은 한적한 오후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예외적으로 기사 세빌 프렉스턴은 바쁜 임무를 맡았다.

그는 적극적으로 몬스터를 몰아내는 일을 하며 사냥꾼과 병사를 1명씩 부하로 거느리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바리안까지도 세빌의 전투력에 감탄하여 휘하로 들어와, 세빌의 병력은 금세 불어나서 이제 980명이나 되었다.

병사들은 훌륭한 기사의 지휘를 받으면서 전투를 치렀다.

재능 있는 기사 후보생에 정규 기사까지 14명이나 보유한 막강한 전력이었다.

바쁘든 한가하든, 위드의 명령에 따라 발 고 성채 인근에 정착한 이후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

금인이와 누렁이도 그들과 어울리다가 야밤에 몰래 빠져나왔다.

"요즘 걔들은 어떠냐."

"너무 편하다, 골골!"

"고생 좀 시켜야 되겠지."

"일을 3배는 해야 된다. 골골!"

금인이와 누군가의 모종의 뒷담화가 오가고 난 다음 날부터, 조각 생명체들이 있는 장소에 몬스터들이 마구 밀려왔다.

빙룡, 불사조, 와이번들이 몬스터를 몰아서 그곳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저놈들 지금까지 엄청 많이 놀았다."

"우리만 땀 흘리고 파닥거리며 다녔다!"

위드의 나머지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를 돕기 위해서라도 조각 생명체들은 매일 강해지고 있었다.


★★★★★★★★★★★★★★★★★★★★★


바르고 성채 근처에 제멋대로 정착한 오크들!

"취취췻!"

"날 밝았다. 싸우러 가자, 취이익!"

오크들은 정작촌을 이루었다.

바르고 성채로 침략하려는 몬스터들은 오크들의 정착촌부터 넘어야 했다.

몬스터와 오크들의 싸움이 매일같이 벌어졌다.

오크들의 개체 수는 6만까지도 감소했지만, 그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취취췻, 첫째 형 죽었다. 둘째 형도 죽었다. 일곱째 형도 죽었다. 엄마가 5마리 더 낳으면 된다, 취이이익!"

"누구냐, 너는. 취취췻!"

"나 서른두 번째 아들이다, 취잇!"

"니가 막내냐, 취치칙!"

"아니다, 췩췩췩 엄마가 마흔네 번째까지 더 낳았다."

오크들은 번식력으로 버티면서 몬스터를 상대했다. 전사들이 나가서 싸우는 사이에 암컷들은 안전하게 보살핌을 받은 덕분이었다.

몇몇 오크 로드 유저들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눈부신 활약을 했다.

"오크는 싸우다 죽는다, 취췻!"

"나 에이취를 따라서 가자, 취치익!"

대규모의 전사와 투사 들을 이끌고 몬스터의 진지를 습격하기도 했다.

물론 1마리의 오크도 돌아오지 못하는 계획이었지만, 몬스터들에게도 그 이상의 타격은 입힐 수 있었다.

10마리가 죽더라도 5마리를 없애면, 다음 날에는 13마리가 싸우러 갈 테니 이득이라는 오크식의 계산법!

ㅡ오크 카리취는 어떤 불리한 전투에서라도 물러서지 않았다.

ㅡ흉악하게 생긴 오크가 강하다.

ㅡ암컷 오크들에게 인기를 끌기 위해서라도 용맹해야 한다.

오크 유저들에게 내려오는 전설, 혹은 카리취로 인해 만들어진 편견도 있었다.

위드의 모험이 오크 유저들에게 미친 영향이 막대하다 보니 그들도 대책 없이 용감한 경우가 허다했다.

"싸워야 큰다, 취췻!"

새끼 오크들이 조금만 자라면 대량으로 끌고 나가서 싸웠다.

오크들은 기본적으로 무리를 지어서 활동하며 전투를 몇번만 같이 치르면 형제처럼 인식하기 때문에, 대규모 전투를 같이 치르기에는 가장 편한 종족이었다.

다소 무모한 싸움으로 크게 피해를 입더라도, 오크 유저들은 새로운 전투를 계획했다.

"이번에는 안 됐다, 취치이익!"

"다음에는 될 거 같다, 췩!"

"더 많이 데려가 보자. 안 되면 이길 때까지, 취치치치칫!"

오크 유저들은 형제와 자식 들을 지휘하며 얼마든지 대규모 전투를 치룰 수 있었다.

오크 종족을 선택한 최고의 장점이었다.

위드는 다크 엘프와 싸우고, 나중에는 그들까지 동료로 맞이하여 불사의 군단과도 전투를 치러서 이겨 냈다.

오크 로드를 지망하는 유저들은 그런 대규모 전투를 꿈꾸면서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전투를 배웠다.

몬스터로부터 전리품을 습득하거나 그들의 본거지를 약탈 할 때도 있었다.

산에서 값나가는 물건이라도 주우면 바르고 성채로 가서 식료품과 무기를 듬뿍 구입!

"많이 먹고, 무기를 들고 싸우자, 취이이익!"

덩치가 큰 오크들은 갑옷을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든다. 높은 생명력과 번식력을 이용하여 무기에 투자를 해서 전투를 이끌었다.

오크 로드들은 이 과정에서 갖은 고생을 했지, 바르고 성채의 유저들에게는 그냥 한심해 보일 뿐이었다.

"쟤들 또 싸우러 가는 거야?"

"응, 아까 밥 사 갔으니까......."

"아무튼 오크들이 대단하기는 하네."

"쟤들은 정말 건드리면 안 되겠다."

바르고 성채는 보수 작업이 거의 완료 단계라서 튼튼한 성벽과 방어 시설들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제는 몬스터 무리가 잘 쳐들어오지 않았다.

오크들과 서로 감정이 격화되어 만날 치고받고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투만 이기면 암컷들을 5마리나 더 거느릴 수 있게 된다, 취이이이잇!"

위드는 피해 다녔던 암컷 오크들!

오크 유저들은 그들의 호감을 얻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용기를 과시하려 했다.

자신의 세력에 암컷 오크들이 많이 속해 있을수록 새끼 오크들이 엄청나게 많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암컷 오크들의 사랑 고백을 받을 때에는 행복한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구취, 당신의 새끼를 낳고 살겠다, 취치칫!"

"고맙다, 데취! 나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취이이익."

"카리취의 외모나 힘은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나한테 잘해주는 점이 좋다. 췩췩!"


바르고 성채 일대에는 조각 생명체들이 활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검치와 수련생들도 이곳을 사냥터로 삼고 몬스터를 때려잡았다.

북부에서 모여든 유저들도 하나 둘 사냥을 개시하자, 근처를 배회하거나 성채로 몰려오는 몬스터들의 숫자도 대폭 감소했다.

"온다."

"아직 조금만 더 기다려."

"지금이다 쏴!"

레인저와 궁수 들은 몬슨터들이 주로 오가는 길목의 나무 위에 매복을 한 뒤에 화살을 쏘는 식으로 사냥을 했다.

거리와 지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궁수들의 비법!

바르고 성채의 군대도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술을 바꾸었다.

아르펜 왕국의 군대가 성문 밖으로 나와서 몬스터의 무리를 주기적으로 퇴치하면서 오크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훨씬 줄어들었다.

"몬스터를 쫓아가자. 다 때려죽이자. 취치치칫!"

오크들은 시원하게 몰려다니면서 싸웠다.

-숙련된 오크 전사가 탄생했습니다.

-3마리의 오크 전사가 오크 투사가 되었습니다.

오크들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도 금방이었다.

잘 먹고 잘 싸우면 세력이 급속도로 확장되는 것이 오크들의 무서운 특징!

새끼 오크들이 점점 더 많이 태어나고, 몬스터에 의하여 정착촌이 불타는 경우도 거의 사라졌다.

그러자 금방 개체 수가 늘어나서 39만이 되었다.

띠링!


『 오크가 북부 대륙에 존재를 드러내었습니다.

포악하고 이기심 많은 종족, 투쟁심 강한 오크들이 북부까지 영역을

확대했습니다.

강력하고 위험한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오크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시

험하며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믿어 왔던 힘이 마법과 대형 몬스터 앞에서는 약하

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오크들에게 믿을 수 있는 존재는 동족들밖

에 없습니다.

오크로서 세상을 밟게 된다면 많은 형제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형제들과 같이 다닌다면 두려움도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


-오크들이 집단을 이루고 번식에 성공했습니다.
바르고 성채에서 종족 오크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으로서 활동을 하려면 여러 조건을 맞춰야 되었다.

치안은 기본이고 기술력, 상업 등 도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에 비해서 오크는 번식력 자체가 장점인 만큼 시작하는 조건이 훨씬 간단했다.

동족들과 식량, 우물 7개만 있으면 되었던 것이다.

초보자들 중에서 아직 오크를 택하는 사람은 그 비중이 낮았다.

어쨌든 징그러운 외모와, 마법사, 정령술사 등의 직업을 택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운 면이었다.

검사, 기사처럼 전문적인 전투 계열의 직업도 선택할 수 없다.

오크를 선택했을 경우에는 종족 자체의 힘과 글레이브를 다루면서 투사로서 성장하거나 샤먼이 되는 방법이 있다.

그렇지만 오크에게는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자유로움과 전투의 낭만이 있어서, 일단 택한 유저들은 별로 후회하지 않는 종족이었다.

게시판에 오크들의 동영상이라도 한번 올라오면, 이미 다른 종족과 직업을 가지고 플레이를 하는 유저들의 부러워하는 글이 올라올 정도였다.


★★★★★★★★★★★★★★★★★★★★★


바르고 성채의 오크들은 다른 지역보다 조금 지식이 높다는 특성을 가졌다.

조각품과 미술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먹을 것, 싸울 것 이외에 오크들이 진지하게 토론을 벌이는 일 따위는 존재할 수가 없는 행위였다.

그런데 지금 바르고 성채의 오크들이 모여 심각한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취이이잇!"

"그게, 카리취가... 취취췻."

오크 카리취에 대한 수상한 소문이 정착촌마다 돌아다녔다.

오크 유저들도 일반 오크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상한 소문을 접했지만, 그들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웃어넘겨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오크들에게 있어 이 문제는 결코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용서할 수 없다, 취익!"

"그는 우리의 형제다, 취췩! 밥을 나보다 더 먹더라도 밉지 않은 형제다!"

이윽고 오크 로드 5명이 모라타로 출발했다.


★★★★★★★★★★★★★★★★★★★★★


위드는 모라타에서 조각계에 엄청난 열풍을 일으키며 신상을 조각하고 있었다.


『 갈레리아스의 신상이 탄생하였습니다!

정복자의 신!

한때 베르사 대륙에 평화가 찾아오자 사라지게 된 신이다.

전쟁과 영토 확장을 좋아하는 갈레리아스는 야만족과 몬스터와 싸울

때에 축복을 내리는 투신이다. 그의 신도들은 매번 싸움을 일으켰기

에 다른 신들과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에게 기도를 올리면, 창과 도끼 등의 중병기를 다루는 인간과 오크

의 힘과 투쟁심을 높여 주리라

조각상으로만 남아 있던 갈레리아스!

거장 조각사 위드의 손에 의해서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갈레리아스의 석상은 종교적으로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후에 최초로 완성된 갈레리아스의 석상입니다.

갈레리아스의 석상을 감상하면 하루 동안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

체력의 최대치가 16% 증가합니다.

종교적인 조각품을 감상하여 신앙 스탯이 영구적으로 6 증가합니다.

인간과 오크가 조금 더 무거운 무기를 편하게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전투에서 더 높은 사기를 보유합니다.

고대의 작품 탄생법으로 예술 스탯이 영구적으로 6 높아집니다. 』


-왕과 영주가 갈레리아스를 믿는다면 정복 전쟁을 일으켰을 때 병사들
의 투지를 더 높게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군대와 보급 부대의 이동속도를 빠르게 합니다.
갈레리아스를 따르는 주민들은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감소할 것입니다.
왕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충성도가 낮더라도 적극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몬스터와 야만족의 무리를 처단하면 더 많은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게 됩니다.
전투에 패배하고 영토를 빼앗기게 되면 신의 믿음을 잃어버리게 될 것 입니다.
갈레리아스의 신의 혜택을 3회 이상 입는다면 그다음부터는 많은 공물을 바쳐야만 저주를 입지 않습니다.

갈레리아스 신은 개인보다는 왕국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편이었다.

"싸움의 신이로군."

위드는 라체부르그에 매장되어 있던 여러 신들을 조각했다.

그 여파로 인해 특별히 인기가 있는 신들은 성직자들에 의하여 모라타에 새로운 교단이 생겨나기도 했다.

라체부르그에 악신이나 파괴신은 따로 없었기에, 전부 조각품을 만들면 되었다.

19개째 조각했을 때, 드디어 조각술 스킬의 레벨이 한 단계 올랐다.

-고급 조각술 스킬의 레벨이 9로 상승했습니다.
궁극의 경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조각술이 놀랍도록 섬세하고 세밀해집니다.
예술에 대한 안목이 넓어지면서 지력과 지혜 스탯이 39 증가합니다.
매력이 41 늘어납니다.
자연 조각술을 익혔기 때문에 자연과의 친화력이 98 오릅니다.
광휘의 검술을 익혔기 때문에 민첩이 7 오릅니다.

-매력 스탯이 500을 넘었습니다.
호칭 '신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줄 아는 조각사' 를 획득하셨습니다.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호의적인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모험 의뢰, 조각품 주문을 받을 때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위드의 조각술 스킬이 고급 9레벨에 올라섰을 뿐만 아니라 호칭까지도 하나 더 얻었다.

그동안 얻었던 '훌륭한 조각 장인.' '미지로 돛을 펼치는 유령 선장.' '극지의 탐험가.' 등 다양한 호칭들로 약간씩 도움을 받았으니 새로운 호칭이 생긴 것은 역시나 기쁜 일이었다.

명성도 11만을 넘겨 버린 상태였다.

"크흠, 오늘 밥은 먹었니?"

멍멍!

지나가는 길거리의 강아지에게 말을 걸더라도 위드를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 정도!

위드는 이어서 계속 신상을 조각했다. 그런데 그에게 오크 로드 5마리가 찾아왔다.

"취이잇! 나 왕 만나러 왔다."

"위드는 당장 내려와라, 췻췻췩!"

오크 로드들은 신들의 정원에서 막무가내로 소란을 일으켰다.

병사들과 기사들을 시켜서 제압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자칫 바르고 성채에 정착해 있는 오크 부족 전체와 전쟁을 치러야 될지도 모른다.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든든하지만 영 골치 아픈 종족.

위드는 조각상을 만들다가 내려와서 정중하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우리 다 알고 왔다, 취이잇!"

"취췻 속일 생각 하지 마라!"

오크 로드들이 강하게 윽박질렀다.

그에 따라 위드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대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거지?'

걸릴 만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머릿속을 정리해 봐야 했다.

'이놈들이 북부에 못 오고 죽기를 바랐던 게 문제인 걸까? 아니야, 행동에 옮긴 게 없잖아. 바다에서 쓱싹 해치워 버리는 게 최선이었는데 바빠서 그러지를 못했으니......'

그게 아니라면 조각사 퀘스트를 하며 엘프, 드워프와 함께 오크들에 대한 뒷담화를 한 정도밖에 없다.

오크들은 그 정도의 사건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었다.

위드로서는 믿는 부분도 있었다.

화나면 글레이브부터 꺼내 들지 오크는 이렇게 말로 타투려는 종족이 아니니까.

"취이췻, 카리취......"

"예?"

"모르는 척하지 마라. 취취췻 우리도 다 안다."

오크 로드들은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자꾸 췻췻거렸다. 눈시울도 붉어졌다.

"너한테서는 냄새가 난다, 취취칫!"

"췻췻취췻, 카리취와 같은 냄새다."

위드는 자신의 몸에서 냄새를 맡아 봤다.

요리를 하다 보니 여러 음식들의 냄새가 묻어나더라도 별로 이상할 건 없으리라.

"1년 넘게 안 씻은 쉰 냄새! 이거 우리 오크들에게서나 나는 냄새 맞다, 취이췻!"

"......."

오크들과 냄새로 동질감을 형성할 줄이야!

위드는 사실 자주 씻는 편은 아니었다. 특히 요즘에는 신상을 깎으면서, 비가 오면 그대로 맞고 땀이 나면 그대로 흘렸다.

괜히 비싼 옷을 입어 봐야 관릴만 힘들 뿐이라 꾀죄죄한 초보자용 복장을 그대로 입고 있는 것이 문제였을까?

하지만 이 옷으로 예전에는 사냥도 하고, 요리도 하고, 약초도 캐고, 조각품도 깎고, 대장간에서 일도 했다.

지골라스까지 먼바다를 항해해서 다녀오기도 했을 정도다.

"우리 카리취 찾아서 고향 떠나서 여기까지 왔다. 어떤 인간도 그런 냄새 안 난다, 취췻. 카리취는 만날 조각품 만드는 오크다."

안 씻는 습성은 영락없이 오크 그 자체였다.

"우린 형제다. 취이취이취취췻. 저주로 인해 연약한 인간이 되었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취익.."

오크들은 위드가 저주로 인하여 인간이 되었다고 믿었다.

"우린 카리취를 따르기로 했다, 취이췩!"

-오크 종족이 아르펜 왕국에 합류합니다.
그들은 놀라운 호존성과 생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종족입니다.
식량을 대량으로 소모하는 데다 말썽을 부릴 수도 있지만, 그만큼의
일은 하는 종족입니다.
오크들은 넓은 땅을 좋아하고, 떼로 몰려다니면서 싸움을 즐깁니다.
오크들이 왕국에 잘 어우러질 수 있다면 분명 많은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다 좋은 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4) 최악의 팔자


위드는 대륙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끈질기게 신들의 정원에 세울 조각품 제작에 매달렸다.

신들의 정원이라는 엄청난 대공사에 지칠 만도 했지만, 걸작, 명작이 나오면서 군중이 환호를 보냈다.

"위드의 조각품은 진짜 달라!"

"평범하면서 좀 못나 보이다가도, 오랫동안 보면 조금 괜찮게 느껴지기도 한다니까."

지금까지 여러 직업과 역할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지만, 조각사로서 진정 뛰어나다는 평가는 이제야 받고 있었다.

사실 여러 분야에 걸쳐서 조각사의 다재다능함이 장점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면이 많았다.

대작의 조각품!

헤르만과 협력해서 만든 루의 신상과 투신 바탈리의 신상이 대작으로 탄생했다.

대작은 각 교단에 대한 높은 공헌도를 선사해 주고 지역의 전사들을 전직시켜 주며, 몬스터와 싸울 때 축복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었다.

유저들과 주민들은 신들의 정원을 만들면서 단합도 이루어 냈다.

아르펜 왕국이 건국되고 나서 위드가 시도한 최초의 작품은 대성공이었다.

"크으윽, 허리가 쑤셔."

"하체에 감각이 없어."

"난 고개를 들지를 못하겠어!"

위드가 마지막 신상을 조각할 때쯤에는 신음하며 길가에 쓰러진 유저들이 가득했다.

돌과 모래를 나르다가, 수로를 개통하고, 도로를 깔았다.

정원을 단장하기 위하여 풀과 나무까지 옮겨 와서 심었다.

대형 토목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해야 할 일이 한가득,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하여 골병이 들고 나서야 끝마치게 된 공사!

일이 고되다 보니 중간에 빠지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느낀 유저들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이런 조각품을 언제 다시 만들지 모르니 기회를 놓치기가 싫어서 대부분은 끝까지 공사에 참여했다.

유저들은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아... 저게 마지막이구나."

"참 길었지."

"몬스터랑 싸운 것도 아니고 노동을 하다가 세 번이나 죽을 줄은......"

북부의 다른 곳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모라타는 여행객들로 넘쳐 났다.

사냥과 퀘스트를 하러 떠났던 사람들도 완공 일자에 맞춰 돌아오면서, 식당과 상점이 유저들로 미어터질 정도였다.

"이거 완성되면 정말 대륙의 어떤 곳보다도 대단하겠다."

"완전 믿을 수가 없을 정도지."

"어디에도 이런 비슷한 것도 없잖아. 위대한 건축물도 없는 곳이 많은데 여긴 다 있으니까."

"하긴 그래, 어떤 신이든 전부 있으니까 축복을 받기가 아주 편해."

신들의 정원에 세워진 웅장한 32개의 조각품은, 참여한 유저들과 인부들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결정체였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신전들도 모여 있다 보니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흐르는 데다, 정원의 한가운데에는 광장과 호수도 조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모라타에는 유난히 꽃이 많았다.

프리나의 꽃씨가 뿌려지기도 했으며, 위드가 얻어 와서 심어 놓은 야생초의 꽃들도 활짝 피어났다.

정원사에게 모라타는 가꾸어야 할 꽃과 나무가 다양한 도시였다.

씨를 뿌려 놓은 작물들은 싹이 트자마자 정원사들의 24시간 철저한 관리를 받고 있었다.

정원사들에게 신들의 정원이란, 도전해야 할 넓은 사냥터 와도 같은 것!

한쪽에는 공연장도 만들어 두었다.

신의 조각품이 있는 장소에서 너무 소란을 피우면 곤란하겠지만, 신들과 관련된 전설과 이야기를 공연으로 할 수 있게 했다.

찬양하는 노래까지 부르게 된다면 신들의 정원을 한층 유명하게 만드는 장소가 되리라.

규모 면에서나 작업의 속도 면에서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진행되어 마무리만을 앞둔 신들의 정원.

위드는 마지막 작업을 다음 날 아침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래야 저 밑에 있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하루를 더 묵어가겠지!"

아르펜 왕국은 계속 투입된 자금 소모로 인하여 남아 있는 재정이 거의 없었다.

만일 신들의 정원이 실패했다면 국력의 낭비로 인하여 역사서의 잉크에 물기도 마르지 않은 시점에서 망하는 왕국이 될 뻔했다.

위드의 피로도 쌓일 만큼 쌓여 있는 상태였다.

"나머지 작업은 내일 아침에 끝내겠습ㅂ니다. 오늘은 모두 다 수고했으니 가서 실컷 쉽시다!"

신들의 정원 근처에서 환호성을 지를 준비를 하고 있던 군중은 약간의 아쉬움과 내일의 큰 기쁨을 간직하며 흩어졌다.

위드도 동료들과 술집이나 가기로 했다.

모라타에 유저들이 계속 몰리면서 무역업과 상점업을 겸하는 마판은 떼돈을 벌었다.

그가 거하게 술을 사기로 했으니, 검치와 수련생들, 거기에 헤르만까지 끼어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


"크후후, 내일은 하루 종일 돈을 세어야지!"

손대는 사업마다 큰돈을 벌어들인 마판.

잡템 전문 상인에서, 이제는 북부 전체를 관장하는 상회까지 둘 정도가 되었다.

북부상인연합회의 회장직도 맡으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모라타의 노른자위 땅에 있는 상점들은 전부 그의 것, 바르고 성채에도 무기 상점, 갑옷 상점, 가죽 상점을 개설했다.

다른 상인들은 쭉쭉 뻗어 나가는 마판을 보고 부러워하면서 장사 수완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 했다.

"마판 님, 대체 비결이 뭡니까?"

"오랜 신용과 단골 고객 덕분입니다."

마판은 일찍부터 위드를 따라다니면서 모라타에 같이 투자를 해 왔다.

초보자들이 시작하기 전에 북부로 왔던 중앙 대륙의 유저들과도 먼저 거래를 트고 지속적인 관리를 해 왔다.

알음알음 사람들 사이에서 괜찮다는 입소문이 퍼져서 현재로써는 누구나 마판의 상점을 최고로 쳐줬다.

대륙의 다른 왕국에도 지점이나 연락망을 두고 활용하였기에, 마판은 무역업도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다.

모라타의 특산품들이 많아질수록 대량으로 구입하여 구매 가격을 낮추고 필요한 곳에 가서 판매하여 돈과 명성을 얻는 대상인!

북부의 발전이야말로 마판에게 큰돈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물론 비결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뇌물과, 권력과의 유착은 필수적.

위드가 아르펜 왕국의 국왕이 되자 가장 기뻐한 사람도 마판이었다.

위드의 꿈인 장기 독재가 실현된다면 그의 부도 덩달아서 늘어날 테니까!


★★★★★★★★★★★★★★★★★★★★★


"캬하, 과연 이 맛이로구나."

"닭 날개가 입안에서 분리되어 사르르 녹는 이 느낌."

"갈비가 뼈에서 떨어지면서 씹히는 식감은... 역시 돼지가 최고지."

검치와 수련생들은 사냥만 하다가 오랜만에 푸짐하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었다. 마판이 술집을 통째로 빌려서 접대를 해 주었던 것이다.

씨름 선수들을 능가하는 식성 탓에, 고기 굽는 일은 불의 정령인 화돌이가 맡았다.

화돌이가 테이블에서 뛰어다니면 육즙까지도 대부분 남아 있는 채로 적당히 잘 익었다.

위드가 요리를 하면 더 맛이 있겠지만, 그도 오늘만큼은 먹는 입장이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으니 한입 드세요."

수르카가 먹여 주는 쌈을 먹고 있자면 이리엔도 고기를 두점이나 올려서 챙겨 줬다.

신들의 정원이 지어지면서 일행 중에는 사제인 이리엔이 혜택을 제일 많이 입었다.

"역시 공짜 음식이 맛있어."

위드도 편안한 기분으로 만찬을 즐겼다.

고기만이 아니라 수십 가지의 안주들을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테이블 구석에 앉아 있는 마판의 얼굴색이 비어 가는 접시 만큼이나 창백해지고 있었지만, 어쨌든 먹고 볼 일.

모라타의 식당과 술집은 도시로 온 손님들로 전부 북적였다.

광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도 한몫 잡았고, 내일 원정을 떠날 파티를 구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제 조금 주먹 쓰는 법을 알 거 같아요."

수르카가 자신 있게 말했다.

위드와 사냥을 할 때에 그녀는 약간 소극적인 편이었다.

일부러 맞아서 생명력을 낮추는 과감한 전투를 하는 방식이니 공격력에서는 훨씬 뒤져 있기 때문이다.

스킬을 잘 활용할 줄 알아서 누가 봐도 평균 이상은 되는 권사였지만, 전투 감각이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았다.

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더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는 법.

하지만 그동안 검치와 수련생들과 섞여서 사냥을 계속하다 보니 그들의 사냥법을 참고할 수 있었다.

"먼저 패고, 아픈 데 패고 또 때리면 된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수르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어린 만큼, 보조개가 팰 정도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더욱 귀엽기 그지없었다.

싸움의 3대 법칙.

누구나 알지만 직접 체득하기 전에는 사냥에서 잘하기가 어렵다.

수많은 사냥 동영상을 보더라도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잘되지 않았는데, 그 벽을 깬 것이다.

메이런도 웃으면서 옆에서 거들었다.

"요즘 수르카가 무서워요. 몬스터들을 얼마나 잘 패는지 몰라요."

"언니도 화살 잘 쏘잖아요. 추적 화살 스킬도 대부분 다 맞던데, 거의 마스터 가까이 올리지 않았어요?"

위드는 불현듯 이들의 레벨이 궁금해졌다.

수르카, 메이런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과 모험을 한 지도 꽤 오래됐다.

라체부르그를 발견했던 당시에 잠깐 같이 사냥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실력이 크게 늘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위드는 수르카에게 물었다.

"혹시, 레벨이 얼마지?"

레벨은 친하지 않으면 말하기 꺼리지만, 이들과는 그런 거리낌이 없는 사이였다.

"403밖에 안 됐어요."

"403?"

"레벨이 아직 조금 낮죠? 오빠는 나보다 엄청 높을 텐데요."

위드는 정말 크게 놀랐다. 그의 레벨은 현재 409였다. 높은 편이기도 해도 수르카와 그리 차이 나는 건 아니었다.

"커험, 내가 조금 높긴 하지."

"페일 오빠는 지금 411인데요, 페일 오빠보다도 훨씬 높죠?"

"뭐, 그렇게 높은 건 아니야."

위드가 400의 벽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던가.

모험도 하고 조각품도 만드는 사이에 다른 동료들이 어느새 다 따라와 있었다.

이럴 때 나오는 것은 바드레이에 대한 원색적인 욕뿐!

"늦었지만 레벨 400 넘은 거 추... 축하해."

"고마워요."

축하해 주는 위드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음식을 먹으면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에게로 다가오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검은 머리에,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눈매를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NPC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년의 얼굴에는 아주 미세한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위드는 그를 보자마자 심각한 위화감을 느꼈다.

중학생 시절에 인형 눈을 40만 개쯤 붙였는데 월급도 안주고 내쫓는 악덕 사장에게서 느껴지던, 형용하기 어려운 두려움.

입안이 바싹 마르고, 머리털이 주뼛 서는 듯한 불안감!

위드는 소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얘야, 지금은 식사 중이니까 다음에 오렴."

위드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퀘스트를 받는 일이 아주 쉬워졌다.

국왕이 되고 나서는 모라타에 있는 주민들의 의뢰를 원하는 대로 골라 받을 수 있을 정도.

위드는 선수를 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는 베르사 대륙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바쁘니 너의 부탁이 뭔지는 몰라도 받아 주지를 못하겠구나. 다른 사람을 먼저 찾아보도록 하렴. 충분히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적당히 무난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소년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는 게 아닌가.

"인간인 너에게는 내 명령을 거절할 자격이 없다."

국왕인 위드의 지위를 감안하면 광오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다.

그렇지만 인생이 매번 자기 뜻대로만 살아지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오직 눈치로 연명해 온 위드!

그 눈치가 이 소년이 범상치 않은 신분이라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누굴까, 니플하임 제국의 진정한 후계자? 어떤 퀘스트의 조건이 되어서 나타났나?'

퀘스트의 요건을 갖추면 직업 찾아가지 않더라도 알아서 만나러 오는 경우도 많았다.

'몽땅 죽었다고 들었는데 혹시나 어디 1명쯤 살아 있다가 갑자기 나타났더라도...... 하기야 멀리 떨어진 왕족 중에서 목숨을 건진 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이참에 뒷골목에서 조용히.......'

위드의 두뇌는 맹렬히 회전하면서 소년의 신분을 파악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기사를 비롯한 다른 호위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음에도 소년은 매우 당당했다.

위드의 전투 능력은 이제 어지간한 몬스터라면 반갑게 맞이하면서 때려 줄 정도였다.

좋은 말 대신 주먹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위드는 소년이 입고 있는 장비들을 보며 생각을 돌렸다.

'최고급이다. 드워프들 중에서도 최고의 장인이나 되어야 겨우 만들 수 있는 복장이야.'

검 자루에는 무슨 오리 알만 한 다이아몬드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게다가 검집에는 복잡한 마법진의 무늬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거야말로 순도 100%의 마법검임을 증명하는 것.

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누가 착용하거나 구했다는 이야기도 들어 본 적이 없을 정도의 명검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특수한 벌레에서 나온 실을 수천 가닥으로 쪼개고 그걸 다시 세 가닥씩 엮어서 만든 제품이다.

최고의 드워프 재봉 장인이 끈질긴 노력을 하여도 1달에 한 벌 이상은 만들지 못하는 옷.

당연히 유저들 중에서 저런 옷을 착용하고 있는 사람도 아직은 없다.

'거기에 스텔레세의 날개 신발까지 신고 있어.'

최강의 바바리안 전사들만 오를 수 있다는 스텔레세 언덕.

소년은 그곳을 지키는 수호 바바리안들이 착용한다는 날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신발의 추정 레벨은 590 정도였다.

순식간에 공손해지는 위드!

"물론 그렇습니다. 저에게 시키실 일이 무엇인지요."

진정한 비굴함이란 상대의 나이 따위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 것!

명성이 높아지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고 하지만 위드는 과거의 약했던 시절을 잊지 않았다.

초지일관으로 꿋꿋한 비굴함이었다.

"너의 조각술 실력이 괜찮더구나."

"저보다 더 뛰어난 이들도 있습니다."

조각술이라니, 위드는 대체 어떤 퀘스트의 요건이 갖춰졌는지 궁금했다.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구해 오너라, 그것은 인간들에게 내려지기에는 지나치게 과분한 보물. 나만이 그것을 조각품으로 만들어서 가질 자격이 있다. 아가테의 수정은 아마도 벨소스라는 인간이 가졌을 것이다. 약한 인간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일 테니 내 부하들에게 널 지켜 주라고 하겠다."

띠링!


『 드래곤이 원하는 보물

불의 대제 벨소스!

그의 유산을 찾아서 사악한 악룡 케이베른이 원하는 조각품을 만들어라.

악룡 케이베른은 자신에게 상납된 공물 중에서 괜찮은 실력으로 완성

된 조각품이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오만한 케이베른은 명령한다.

"조각사여, 너와 너의 친구들이 살아남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만일 늦거나 내 마음에 들 정도가 되지 못한다

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아가테의 수정은 깨어지기 쉬운 물건이다.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는 수수께끼에 휩사여 있지만, 수정 안에는 은

하수처럼 수많은 별들이 반짝인다고 한다.

케이베른은 아가테의 수정을 가져올 당신을 호위하기 위하여 11명의

용아병을 투입할 것이다.

난이도 : 조각사 퀘스트

퀘스트 제한 : 조각사로서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어야 함.
케이베른과의 인연.
30일 내에 해결해야 함.
어떤 보상도 없음.
실패하면 케이베른에게 죽게 됨.
최소한 8명이 함께 완수해야 합니다.
7명에게 퀘스트를 권유할 수 있습니다. 거절한 상대방
은 케이베른에 의하여 처단될 것입니다. 』


"커헉!"

위드의 앞에 있는 이 소년의 정체가 악룡 케이베른이었다니.

대륙 최초이지만, 반드시 기뻐할 수만은 없는 처지인 드래곤의 퀘스트!

보상도 없으며, 실패는 더더욱 하면 안 된다.

드워프들이 이 악룡을 향해 갈아 대느라 닳아 버린 이빨 파편만 모으더라도 아르펜 왕국 병사들 전부의 갑옷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저기서 고생을 했더니 이제는 드래곤까지 날 알아먹고 부려 먹기 위해 의뢰를 맡기는군'

위드에게 케이베른과 엮었던 사건이라면 딱 두 가지가 있었다.

과거에 우스꽝스러운 케이베른을 조각한 적이 있기야 하지만 그건 유명한 작품도 아니라서 그냥 묻혀 버린 일이고

최근에 드워프들의 상납품을 같이 만들어 준 경험이 있다.

드워프들로부터 보상도 많이 받고 무사히 끝난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식의 조각사 퀘스트로 이어지는 반전이 있었다니.

'그냥 드워프들이나 계속 부려 먹을 것이지!'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에서 어쩌다 연결된 악룡 케이베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벨소스 대제는 베르사 대륙의 온도를 높여 놓고 진홍의날개 길드를 파멸시킬 정도의 거물이었다.

전형적인, 고래 싸움에 새우처럼 끼어들게 되었다.

어느 쪽이든 한 걸음만 내디디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신세.

'드래곤의 퀘스트라면 난이도는 무조건 평균 이상이겠군. 그나마 다행이라면 조각술과 관련이 있다는 건데...... 그리고 잘 풀리면 어쨌거나 아가테의 수정도 조각해 볼 수 있고, 드래곤이 바라는 물건이라면 정말 귀한 거겠지.'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시는 물건을 찾아오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드래곤 케이베른으로부터 1달간 용아병 11명의 지휘 권한을 획득합니다.

어차피 거절한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

일찍 죽나 나중에 죽나, 순서상의 문제일 뿐이다.

"잘 생각했다. 기다림이 길면 그만큼 나의 노여움도 커질 것이다."

소년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위드가 그제야 주변을 돌아보니 술집 안이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다.

"커허헉."

"이제 겨우 숨을 쉴 수 있네."

"방금 뭐였어?"

악룡 케이베른의 투기에 눌려서 전부 말도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저는 어떤 위대한 존재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위드는 혹시 케이베른이 아직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중하게 존댓말을 써 가면서 간추려서 설명해 줬다.

"토르 왕국에서 군림하는 위대한 드래곤 케이베른 님께서 누추한 이곳까지 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저에게 고귀한 임무를 부여하였는데, 벨소스 왕의 유산을 찾아서 조각품으로 창조해 달라는 것입니다. 케이베른 님께서 원하시는 물품이니 정말 귀한 것이겠지요. 비록 어려움이 예상되더라도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존엄한 분의 부탁이라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조각술의 길을 걷다 보니 이러한 영광도 얻게 되는군요."

해석하자면......


ㅡ토르 왕국에서 깽판을 부리는 악룡 케이베른이 뭐 건져먹을 게 없나 해서 모라타에까지 왔다.
생판 본 적도 없는 위드 자신에게 일도 시켰는데, 벨소스 왕의 유산을 찾으라는 거다.
드래곤 주제에 좋은 건 알아 가지고 가져다 달라고 하는데,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조각사로서 살다 보니 내 이런 더러운 꼴도 다 당한다.


"오, 전설로나 듣던 드래곤의 퀘스트!"

"과연 위드로구나 역시 막내는 달라!"

"암요. 우리의 자랑거리 아니겠습니까?"

검치와 수련생들은 부러워했다.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드래곤의 퀘스트를 할 수 있다니!

대충 설명해도 잘 알아들은 동료들의 눈빛에는 동정심이 가득 어렸다.

"위드 님 어떻게 해요."

"잘하실 수 있겠죠?"

"다른 누구도 아닌 위드 님이니까 하실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이번에도 대단한 모험을 하게 생겼네요. 응원할게요."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용기를 주기 위하여 애쓰는 동료들이었다.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벨소스 왕의 무덤에 가려면 스콜피온 왕의 유적으로 가야 됩니다."

메이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죠?"

과거에 진홍의날개의 모험을 방송한 적도 있어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곳 정말 위험하잖아요. 탐험할 때에도 상당히 많이 죽었는데. 그리고 유적 내부로 들어가려면 무슨 열쇠가 있어야 하지 않아요?"

"그 조각품을 제가 만들어 주었고 형태도 기억이 나니까 던전으로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스콜피온 왕의 무덤은 현재 봉인되어 있다. 진홍의날개 길드에서 그 꼴을 당하고 나니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고,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근데 중간에 봉인된 문을 열려면 스콜피온의 조각을 동시에 올려놔야 하기 때문에 저를 제외하고도 최소한 7명의 인원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게... 그랬나요?"

"네. 그리고 퀘스트에서도 다른 동료들을 구하라고 하던데요."

위드는 동료들과 눈을 마주쳤다.

"드래곤이라니......"

얼어붙어 있는 페일이었다.

"벨소스 왕의 유적은 위험할 것 같은데요. 괜찮을까요? 아... 저 며칠간 방송국에 출근해야 되는데......"

호기심을 보이고 있지만 직장인으로서 어쩔 수 없어 포기하는 듯한 메이런.

"그때 방송에서 봤던 보물을 거기서 얻을 수 있을까요?"

수르카는 큰 모험이라고 대책 없이 좋아했다.

"잘못 손대면 큰일 나는데."

이리엔은 불안해하고, 로뮤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이, 거절할 변명거리를 찾는 모습이었다.

"유린아... 크윽."

제피는 어쨌든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라서 같이 죽어도 된다는 듯이 눈을 마주쳐 왔다.

화령과 벨로트 그녀들은 어떤 장소라도 가 보고 싶어 했다.

위드와 같이 갔던 모험이 재미가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진짜 위험할까?"

"언니, 전 엄청 위험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멋진 노래로 제작할 수 있지 않겠어요?"

스콜피온 왕의 무덤이라면 바드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노릇.

'메이런 님은 아마도 방송을 해야 될 테고.....'

그녀를 제외하면 딱 7명이 모집된다.

서윤도 같이 간다면 대단한 전력이 될 테지만 양심상 자꾸 부탁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녀에게는 다른 특별한 정보도 알려 준 상태였다.

위드가 신상을 만들고 있는 동안, 어느 떠돌이 음유시인이 미친 전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국왕이나 고위 귀족에게는 음유시인들이 와서 공연을 하거나 노래를 들려주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폐하, 제가 토호루 지방에 가서 보고 들은 것을 노래로 들려 드려도 될까요?"

그러면 왕은 음유시인의 노래를 감상하고 나서 그에 대한 포상금을 준다.

국왕이 일부러 파티를 베풀어서 음유시인들을 통해 대륙의 정보를 얻거나 퀘스트의 단서를 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수백 명 이상의 실력 있는 음유시인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모여들게 되는 것이다.

위드는 물론 일부러 궁중 파티를 벌일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굳이 아르펜 왕국의 재정이 바닥에서 맴도는 현실이 아니더라도, 그들에게 지급할 행사료가 아까웠으니까!

"노래 한 곡 하고 몇백 골드씩 달라고 하다니 어림도 없지."

물론 명곡은 그 가치를 할 테지만, 흥청망청 쓰다 보면 왕국의 존립이 위태롭다.

"역대로 보면 주민들을 정말 잘 착취하면서 많은 세금을 거두었더라도 사치를 하다 망하는 왕들이 많았지."

위드는 그런 왕들을 보면 참 못났다고 생각했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고도 그 금이 다 닳을 때까지 빨아 먹을 줄 아는 현명함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경비 절감이란 언제나 중요한 것이었다.

위드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도 대륙 제일이라고 할 만큼 명성이 높았고, 모라타에는 공연장들도 있어서 음유시인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북부의 떠돌이 음유시인이 와서 들려준 노래는 전장에서 악귀라고 불리던 최고의 광전사가 은거한 장소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혹시 직업 기술이라도 익힐 수 있을지 몰라서 서윤에게 그곳으로 가 보라고 했다.

물론 확실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신세 진 것이 있어서 특별히 알려 주는 것이라면서 생색도 실컷 내고서 말이다.

'혹시나 오두막이 텅 비어 있어서 칼을 들고 날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

위드는 생각을 정리한 후에 환하게 웃었다.

"여러분 레벨도 400이 넘었고, 그러면 우리끼리 가면 되겠네요."

"하, 하하하, 그럴까요?"

어딘가 모르게 경직된 웃음!

착하고 순한 청년이던 페일에게도 어느새 위드의 썩은 미소가 전염되어 있었다.


★★★★★★★★★★★★★★★★★★★★★


각 방송국에서는 바드레이의 전투와 모험을 매일 중계했다.

"최강의 무신 바드레이!"

"오늘도 지금까지 잡힌 적이 없는 몬스터에 도전합니다."

"흑기사의 마스터 퀘스트! 강함의 끝을 알려 주는 것 같은 의뢰가 잠시 후부터 시작됩니다."

시청자들의 환호 속에서 바드레이의 직업 퀘스트는 뉴스와 중계를 통해서 매일 올라왔다.


바드레이는 벌써 열다섯 번째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흑기사의 이번 퀘스트에는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었다.

전쟁에서 왕에게 배반당한 기사가 스스로 명예를 버린다.

왕국을 떠나 여러 전쟁터를 전전하면서 공적을 쌓고 돈을 벌어 노예나 고아 중에서 자질을 가진 이들을 제자로 삼는다.

그들을 데리고 용병대로 활동하며 전쟁터에서 군대를 조직해 내고 기사를 키워 내는 이야기.

바드레이를 위하여 과거 베르사 대륙의 역사에 있던 왕국과 전투가 재현되었고, 성과 요새도 당시의 모습대로 건설되어 있었다.

어마어마하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규모의 퀘스트!

테르메돈의 기사단.

테르메돈의 보병대.

바드레이는 전쟁터에서 기사 30명과 병사 2,500명을 구성해 냈다.

이 병력은 남은 흑기사 퀘스트에도 사용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 부하로도 계속 둘 수 있다. 그렇기에 상당한 정예 병력으로 키워 낸다는 목표였다.

"작은 성 정도는 점령할 수 있겠군."

원래 바드레이가 받아들인 고아의 숫자만 4,000명이 넘고, 전쟁터에서 끌어들인 병사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전투중에 소모된 병력도 적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무능하다고 느껴지면 바드레이는 일부러 어려운 임무를 맡겨 가차 없이 죽게 했다.

"성문 앞을 사수하라."

"하지만 기사님, 그 명령은 저희로는 무리입니다."

밀려오는 몬스터들에 맞서 도시를 안전하게 지켜야 되는 상황이었다.

성문 안쪽에서 대비하더라도 위험한데 밖에 서 있으라는 말은, 그냥 죽으라는 뜻.

"기사가 되려면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를 끝까지 데리고 갈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아 출신의 병사들은 성문 바깥에 있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바드레이는 그 빈자리를 더 좋은 재능을 가진 아이들로 채웠다.

흑기사의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피치 못하게 선호하는 용병술의 방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간 바드레이는 헤르메스 길드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그 뒤에 숨어서 가려져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혼자서 진행해야 하는 퀘스트에서 서슴없이 부하들을 버리는 광경을 보여 주면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완전 나쁘다. 어떻게 전투에서 몇 번이나 공을 세운 부대를 저런 식으로 버려."

"정말 충성스러운 부하였는데 전투에서 쉽게 이기려고 희생양으로 삼아 버리네, 진짜 인정머리도 없다."

"귀족 자제들이 현금을 들고 오니까 평민은 내쳐 버리네. 지난번 바드레이와 같이 싸웠던 기사까지도 내쳤어."

하지만 그림으로써 부대가 더 강해지고 있었기에 만만치 않은 수의 시청자들이 열광하고 호응하기도 했다.

바드레이가 추구하는 힘.

정의나 명분은 제쳐 두고 강력한 기사단과 군대를 양성해 내는 과정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두가 부러워하는 모험을 하면서도 정작 바드레이 본인은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쓸모없고 귀찮은 일이군.'

헤르메스 길드를 장악하고 있는 그로서는, 기사단과 병사들이 필요하다면 손쉽게 동원하면 될 뿐이다.

바드레이를 위하여 죽어 줄 부하들은 이미 많다.

역사적인 전쟁을 헤매면서 직접 부하를 키우고 그것으로 퀘스트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번거로울 뿐이었다.


★★★★★★★★★★★★★★★★★★★★★


명장의 손 파비오.

드워프 대장장이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검과 갑옷을 제작하는 그는 인기인이었다.

로열 로드 초기부터 최고의 갑옷을 만들어 내며 두각을 드러내어, 현재는 방송사의 단골 취재를 받았다.

"이번에는 어디 괜찮은 검이 나오려나."

땅. 땅. 땅.

파비오의 대장간은 쉴 틈이 없이 돌아갔다.

그가 직접 키운 드워프 도제들이 불을 지피고 재료들을 운반한다.

대장간의 규모도 매우 컸지만, 이미 완성되어 철광을 번뜩이며 쌓여 있는 검이 산더미.

"아빠, 트리커 길드에서 레벨 360짜리 검 백스무 자루 주문이 들어왔어요. 팔까요?"

"그래 알아서 챙겨 가라."

드워프들은 쌓여 있는 검 중에서 대충 선별해서 가져갔다.

파비오가 따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낸 무기가 아니더라도 옵션이 최소한 4~5개씩은 붙었다.

공격력과 방어력도 일품이고 무게중심도 잘 잡혔으니 누가 착용하더라도 좋아 할 것이다.

"진정한 검이 탄생하려면 멀었어."

파비오는 망치를 두들기며 오로지 검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었다.

수백 자루 중에서 한 자루 정도, 의도하지도 않은 작품이 태어난다.

저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그런 검들은 더 두들기고 괴롭혀 주면 명검이 된다.

불과 철, 실력 있는 대장장이가 어우러져야 탄생하는 작품.

드워프 대장장이 파비오의 검게 그을린 몸은 불꽃의 기운을 담은 강철을 연상시켰다.

그는 대장간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검과 갑옷만을 제작했다.

일체의 대화는 철과 불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흐르는 땀방울로 충분했다.

파비오의 대장장이 스킬은 고급 9레벨 81.7%.

대장간에 웅크리고 있는 거인이었다.


5) 벨소스 왕의 유적


농부들이 한 장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이 많았다.

넓고 비옥한 땅, 맑고 메마르지 않는 물, 자연재해나 몬스터의 습격도 없어야 한다.

"그런 다 좋은 땅은 땅값이 비싼 게 흠이지."

그래서 농부들은 성벽으로 보호된 좁고 비싼 곳보다는 험한 산과 들판을 개간했다.

산짐승의 습격을 방지하기 위하여 목책도 두르고 배수로도 팠다.

성의 병사들과 전투 계열 유저들이 치안을 확보하면 눈치를 보며 그 지역으로 농지를 확대해 가야 되었다.

산과 들에서 일을 하다 보면 몬스터에게 죽는 경우도 잦은 편이다.

작물을 기르기 위해서는 일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고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농부들은 그 일을 좋아했다.

"오늘은 저녁에 비가 올지도 모르겠는걸. 일을 빨리 마쳐야 되겠어."

아침 해가 뜨기 전 안개가 깔려 있을 때부터 땅을 일구고 씨앗을 심으면, 싹이 트고 줄기가 무럭무럭 자라는 걸 볼 수 있다.

안 좋은 환경을 극복하면서 악착같이 생명의 씨를 뿌리다 보면 언젠가는 황금의 들녘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감동은 농부만이 느낄 수 있으리라.

묵직한 알맹이를 가진 곡물이 자라고, 과수원의 나무에 열매들이 탐스럽게 영글면 시장에 나가서 내다 팔기도 하였다.

직접 키운 농산물로 장사의 재미도 느낄 수 있을뿐더러, 재배가 잘되면 요리사들이 웃돈을 얹어 주며 구입하기 위하여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렇게 번 돈은 땅을 더 사거나 특수작물을 기르는 데 투자하게 된다.

무기나 방어구를 구입하는 게 아니라 땅에 다시 투자하기에 흉작이 오더라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북부의 모라타는 엘프들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토지도 비옥한 편이라서 인기 만점의 엘프들의 과일을 키울 수 있었다.

잘 돌볼 수만 있다면 주변의 다른 대지까지 비옥하게 만들어 주고, 조경 효과도 좋았다.

단지 나무와 과일이 비싸서만이 아니라, 농부들에게는 자신의 밭과 논이 풍성해 보인다는 자체가 굉장한 자부심이 되었다.

하지만 수익성을 놓고 볼 때 가장 비싼 건 아무래도 약초밭!

약초밭은 아무 곳에나 조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적당히 그늘지고 땅의 양분이 기름진 구역에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야 한다.

몬스터, 산짐승의 적극적인 침략 행위를 막으면서 좋은 약초를 길러 내면 각 교단이나 요리사들이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면서 사 간다.

안정화 단계에 이르기만 하면 농작물은 조금만 관리하더라도 재배가 쉽고, 땅은 고스란히 남는다.

넓은 땅을 가진 농부야말로 상인이 부럽지 않을 만큼 돈을 벌어들이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어느 정도 개간한 땅을 넓히는 데 한계가 오면, 자신의 땅을 영주나 다른 농민에게 팔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서 이주하게 된다.

알려지지 않은 씨앗을 구하고, 비옥한 땅을 찾기 위하여 다른 장소에 정착했다.

전문 농부들이 뭉친 캐비지 길드는 프레야 여신상이 지어지고 난 직후에 모라타에 왔다.

"북부는 땅이 정말 넓어서, 중앙 대륙처럼 협소한 영역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겠네요."

"어디 그것뿐인가요. 여기 토질 좀 보세요."

길드원들이 거친 땅을 파 봤더니 금방 기름진 토양이 나왔다.

"여긴 뭘 심어도 잘 자라겠는데요."

"프레야 교단에서 이 땅에 축복까지 내려 주었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죠. 여기서 농사나 지어 봅시다."

처음에는 간단한 작물인 밀과 쌀을 심었다.

밀은 어느 장소에서도 어지간한 수확량을 쉽게 거둘 수 있고, 땅도 크게 가리는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대풍년!

프레야 교단의 가호로 인하여 곡물을 무사히 재배할 수 있었다.

몬스터의 침입을 걱정할 때에는 모라타의 영주에 대한 악담도 많이 나눴다.

"모라타 영주는 생각이 짧아. 몬스터가 있어서 치안이 위태로우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데."

"무식한 놈들이 때리고 부수는 거 외에 뭘 알겠습ㅂ니까. 다 그런 거지요."

농부들은 원래 중앙 대륙으로의 수출을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유민들이 모라타로 밀려왔고, 초보자들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가까운 소비 시장이 형성되었고, 영주는 아르펜의 특수 곡물 창고까지 지어 주면서 농부들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도 확실히 해 줬다.

농부들에게는 애써 재배한 농작물이 보관 중에 상하는 것만큼이나 가슴 아픈 일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다른 영주들과는 달리 세심하게 신경을 써 준 것이다.

"모라타의 영주가 검소하게 살면서 투자를 많이 하긴 하네요."

"조금 좋은 면도 있는 거 같죠?"

"요즘에야 알아차린 건데요. 우리가 땅을 개간하면 레인저 부대들이 전진 배치되면서 지켜 주고 있어요."

농부들이 토마토와 포도까지 성공적으로 재배하자 농작물의 명성과 지역 명성이 합쳐져서 특산품으로 등록이 되었따.

특산품이 되기만 하면 판매는 우스울 정도였다. 식품 상인들이 구매를 위하여 일부러 방문하여, 곡물 창고에 있는 물량을 싹 가져가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농부들의 활약으로 나중에는 올리브도 특산품으로 추가 등록이 되고, 식료품을 원료로 요리사들이 기술 발전도 이루어 냈다.

와인, 맥주 양조장도 운영되면서 재배된 곡물들을 2차로 가공하며 더 많이 소비시켜 주었다.

축산업으로는 소, 양을 대량으로 키우면서 우유, 치즈의 음식물과, 모라타의 경쟁력 높은 가죽 산업에도 뒷받침이 되었다.

"모라타의 영주는 정말 훌륭합니다. 누가 우리 농부들의 일까지 이렇게 세심하게 살펴 줄까요?"

"뛰어난 재목이죠. 아르펜 왕국이 되면 사람이 지금보다 늘어날 테니 더 늦기 전에 약초밭도 시작하고, 과수원과 포도 농장도 더 넓혀야겠습니다."

"전 커피와 사탕수수도 시작하려고요."

농부들이 거대한 부를 축적하며, 더 넓은 땅을 곡창지대로 일구어 내는 데에는 영주인 위드의 역할도 절대적이었다.

위드를 보고 많은 유저들이 정착을 하면서, 치안이 강화되고 몬스터로부터 안전ㄴ을 지킬 수가 있었다.

농부들이 조각 생명체 중에서 킹 히드라와 블랙 이무기의 집중적인 보호를 장기간에 걸쳐서 받아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안심하고 생산량을 늘리진 못하였으리라.

그렇지만 농부들도 모라타의 발전을 많이 이끌었고, 아르펜 왕국이 되고 나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현재 농업은 대활황이었다.

야생초와 꽃나무가 활짝 피어 있는 모라타는 관광지로도 인기다.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새들도 이 아름다운 도시로 많이 날아들었다.

아까운 곡식을 마구 먹어 치우는 새들은 농부들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놈의 새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훠이! 이것들만 몽땅 없애 버리면 정말 그 이상 바랄 게 없겠어."

그들을 쫓아내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지만, 수만 마리씩 무리를 지어 황금 들판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은 농부들의 썩어가는 속과는 상관없이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여행자들이 새들을 보기 위하여 일부러 곡창 지대로 찾아올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누나, 저기 저 새는 이상해!"

새들을 이끌고 다니는 2마리의 특별한 대장 새.

특별한 외관을 가진 황금새와 은새는 둘이서 오붓하게 쌀알들을 쪼아 먹었다.

황금새가 껍질까지 벗겨서 주면, 은새는 공주처럼 받아먹으면서 만족스럽게 짹짹 울었다.


★★★★★★★★★★★★★★★★★★★★★


루의 교단의 의뢰를 받아 아골디아로 떠났던 원정대.

대륙 10대 금역은 그 명성이 허황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원정대를 괴롭혔다.

"아, 지친다."

"아무리 가도 끝이 없네."

"벌써 이틀째 발견한 것이 없으니 절망적이야."

식량은 물론 물도 구할 수가 없었다.

바닥까지 갈라져서 메마른 땅에는 굶주린 몬스터와 식인 야만족들이 돌아다녔다.

성지 아골디아는 이미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된 지 오래.

"이겨 내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루의 교단 출신의 성기사와 사제 들이 지쳐 있는 사람들을 독려했다.

아무래도 교단에서 내건 퀘스트인 만큼 성직 계열의 유저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위드 님도 이런 10대 금역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가면 우리는 패배자로 남을 뿐입니다. 다 같이 해냅시다."

그렇더라도 끝이 없는 메마른 땅은 그들을 포기하고 싶게 유혹했다.

굶주림과 목마름.

몬스터들은 돌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의 고기를 먹지도 못했다.

겨우 찾아낸 오아시스조차도 이미 다 말라붙어서 밑바닥까지 드러낸 상태였다.

"크으... 이곳도 틀렸습니다."

"흩어져서 조금 더 찾아보죠."

"내일은 비라도 내려 주면 좋을 텐데......"

"1달 전에 내렸던 비가 마지막이라니, 정말 끔찍합니다."

아골디아는 다크우드의 마법사들의 영역이라서 텔레포트 등의 마법을 쓰지 못했다.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주변에 파장을 덜 일으키는 소규모의 마법만 시전해야 했다.

인근에 다크우드 소속의 마법사가 있으면 발각되어 그들의 습격을 받았다.

레벨 460이 넘는 고위 마법사의 공격은 원정대를 시달리게 하기에 충분.

아골디아에 도착해서 헤매기 시작한 지도 시간이 제법 흘렀다.

모라타에 있던 북부의 최정예 유저들이 대거 참여하였다지만, 사상자가 무수히 발생했다.

원정대가 중요한 갈림길에 놓일 때마다 사람들의 생각이 부딪치다 보니,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모라타에 신들의 정원이 완성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성직 계열의 유저들은 돌아가고 싶었다.

"금역 아골디아의 탐험은 그냥 이쯤에서 끝내고, 모라타에 가서 신들의 정원을 감상하는 쪽이 어떻겠습니까?"

"아르펜 왕국에는 재미있는 모험들이 더 많을 것 같네요."

"그게 더 낫겠어요."

성직 계열의 유저 상당수가 이탈하자, 같이 참여했던 다른 직업을 가진 유저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남은 인원은 불과 20명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반드시 우리의 임무를 완수해야 됩니다."

대륙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모험가 스펜슨이 이들을 끝까지 이끌며 루의 검의 힘을 되찾기로 했다.


★★★★★★★★★★★★★★★★★★★★★


위드는 새벽 일찍 신들의 정원에 나와서 자신이 만든 조각상들을 돌아보았다.

아침에 마지막 조각상을 최종 완성하기로 했으니 시간은 남아 있었다.

달과 별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맑은 밤하늘이었다. 그렇지만 위드의 마음은 그렇게 편하지 않았다.

과거 200원 더 비싼 소금을 샀던 것은 물론 여전히 후회로 남아 있지만, 그보다 더 잘못을 최근에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멜버른 광산에서의 전투는 실수가 너무 많았어."

그동안 조각상을 만들면서도 바드레이와 싸웠던 순간이 자꾸만 떠올랐다.

위드는 그때의 패배와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억울하거나 분통이 터지는 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약해서 죽었을 뿐이다.

"더 강해지지 못한 내 책임이겠지."

바드레이는 알려진 별명만큼 강했다.

길드의 지원을 받았다거나 처음부터 불리한 상황이었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변명거리일 뿐.

그 전투에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여 싸우지 못했다는 후회가 자꾸 들었다.

"더 차분히 생각하지 못했어. 내가 가진 걸 최대한으로 활용하지 못했지."

전부 열악한 상황이었다지만, 그래도 이용할 것은 많았다.

서윤과의 결혼반지로 생명력을 분배받을 수 있었으니 그점을 활용하였더라면 마지막에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생명력이 떨어졌을 때 더 활발하게 싸우면서 광전사의 직업 특성에 스킬까지 활용하면서 싸웠다면, 더 화끈하게 붙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다른 지원군이 부담이 되어서, 어차피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조급하게 싸운 점이 없지 않았다.

생명력이 적당히 낮은 상태에서 한꺼번에 큰 타격을 받아서 결혼반지의 효과도 써 보지 못하고 죽어 버리고 말았다.

"난 지렁이만도 못했던 거야. 하기아 그랬으니 미련하게 200원이나 비싼 소금을 샀겠지."

위드는 꿈틀조차 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정작 그 싸움에서 의도치 않게 피해를 본 헤르메스 길드의 유저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겠지만.

사실 약간 복잡한 상황이 있었더라도, 헤르메스 길드의 최정예 유저들이 그만큼의 피해를 본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스킬이나 레벨을 떠나서 단 1명이 몬스터인 벨카인 부부와 협력하여 그렇게 자신들을 괴롭힐 줄은 몰랐다.

"그리고 심하게 방심했어. 내게 적이 많은 이상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었는데 대비가 부족했지."

조각 소환술은 상황이 나빠서 일부러 쓰지 않았다. 그건 더 큰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였으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도, 마땅한 조각품이 없어서 사용할 수가 없었따.

화산 폭발 같은 스킬은 발동하는 데 아주 오래 걸릴 테고 위드 자신에게도 너무나 위험하여,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쓸모가 많지 않았다.

던전에서도 적당히 일으킬 수 있는 재앙의 조각품을 가졌다면, 그걸 사용하고 나서 훨씬 더 잘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달빛 조각 검술은 전투적으로 유용하기는 했다. 대부분의 사냥에서 사용했기에 스킬의 숙련도는 역시 높았다.

하지만 조각 검술의 3배나 되는 살벌한 마나의 소모, 일대일의 전투도 아니고 그때에는 여신의 기사 갑옷도 없어서, 별로 써먹지를 못했다.

"여러모로 긴장이 풀려 있었군."

위드는 허술했던 지난 전투에 대하여 통렬한 반성을 했다.

이런 식으로 진다면 언제 강해져서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 살겠는가!

"거기다가 탈로크의 믿음 갑옷까지 잃어버렸으니."

유니크급의 아이템.

획득한 지 오래되기는 했어도 옵션들이 좋았고 착용하기도 편했다.

위드는 방어력을 높이기보다는 공격력에 치중하는 편이라서 검을 훨씬 더 자주 바꿨다.

뺏겨 버린 갑옷에 대한 애착이 자꾸 그를 괴롭게 했다.

탈로크의 믿음 갑옷을 입고 있으면 든든한 돈주머니를 차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그게 팔아먹기도 전에 남의 손에 들어가 버리다니.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위드는 마지막 신상을 조각하기로 한 아침이 찾아오기 전에, 던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재앙의 조각품부터 깎았다.

갑자기 출몰하는 죽음의 벌레들의 떼. 지독한 생명력과 바위까지 뚫고 다니는 관통력으로 인간과 몬스터를 덮어 버리게 될 것이다.

사실 위드가 지금까지 만든 조각품의 종류도 워낙 다양했고, 재앙은 조금만 골몰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종류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뭐든 끔찍하면 되겠지. 몸이 익어 버릴 정도로 뜨거운 물이 들어차는 것도 괜찮을 거야. 얼음물로 훌륭하고 기왕이면 조각품에 내가 피할 장소는 미리 만들어 놔야지."

대재앙도 자주 일으키다 보니 경험이 싸였다.

광산 같은 곳에서 재앙이 일어나는데 딱 혼자서만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구멍 같은 것을 미리 조각품에 형성해 놓는 것이다.

과연ㅇ 나쁜 짓도 자주 해 봐야 는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니었다.

"은행도 여러 번 털어 본 강도가 잘 훔쳐 가겠지."

위드가 아침까지 만든 것은 재앙의 씨앗을 사방으로 퍼트리기 위한 작품들이었다.


★★★★★★★★★★★★★★★★★★★★★


"곧 시작하는 거야?"

"이제 진짜 끝이다."

"괜히 긴장되네."

"난 갑자기 허리가 쑤셔."

신들의 정원을 완성시키기로 한 아침이 되자, 모라타에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대군중이 모였다.

그들의 흥분과 설렘은 마지막 조각을 남겨 두고 커졌다.

직접 참여하였기에 감동도 더욱 진할 것이다.

"으윽... 저걸 다 만들면 우리가 가게 되겠죠?"

"벨소스 왕의 유적은 탐험이 어렵진 않을 거야. 다만 잘못 될 수는 있겠지."

"하아! 과거 진홍의날개 경우를 봐도 너무 불안해요."

수르카와 로뮤나, 이리엔 등의 등료들만 얼굴빛이 상한 풀죽처럼 거무스름했다.

조각품이 완성되면 위드와 함께 던전으로 떠나야 하는 처지라서 표정이 밝을 수가 없었다.

케이베른의 용아병들은 벌써 흑생 거성에 도착하여 있었다.

"역시 너무 착하면 안 돼."

위드는 대표적으로 페일과 이리엔을 보면서 느꼈다.

괜히 생고생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서 같이 날벼락을 맞는 성격!

"나처럼 재수 없는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니까."

아침 해가 뜨면서 주변이 밝아져 마지막 조각품을 선보일 때가 되었다.

군중의 기다림이 최대가 되는 시간.

허기가 최고의 반찬인 것처럼, 이럴 때 완성을 해 주어야 조각의 결과물에 더 감탄하게 될 것이다.

"오늘 아침, 이 아르펜 왕국에는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야.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한 새로운 장이 열리겠지."

위드는 조각품의 입술을 깎았다.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신상은 프레야였다.

중앙 대륙에서까지 달려온 성기사와 사제 들은 경쟁적으로 자신들이 모시는 신부터 완성해 주기를 바랐다.

프레야 여신상은 모라타에 이미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신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깍게 된 것.

미의 상징인 프레야 여신상은 아름다워야 했고, 여러 차례 우려먹었던 주제라서 최종 작품으로 할 정도의 자신도 있었다.

립스틱을 곱게 바르고 마무리로 반짝이는 립글로스까지 더해 화장을 완성한듯, 프레야 여신상의 입가가 완성됐다.

띠링!


『 여신 프레야의 신상이 탄생하였습니다.

아름다움과 풍요를 주관하는 여신.

여러 방면에 재주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여신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정평이 나 있는 거장 조각사의 작품이다.

과거의 작품을 새롭게 선보이는 것으로, 프레야 교단에서는 이 조각

상도 귀중히 여길 것이다. 』


-프레야 교단의 우호도가 54가 되었습니다.

-프레야 교단의 공적치가 960 상승했습니다. 교단의 공적치는 종교 상태 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프레야 교단의 공적치 : 21,291
종교 단체에의 공적치는 마물을 퇴치하는 것과, 관련된 퀘스트를 완수하는 것으로 상승한다.

프레야 교단과는 대성당으로, 그리고 주민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가만 놔두더라도 공적치가 매일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

국왕이나 영주로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이득 중의 하나였다.

띠링!

-하나의 넓은 장소에 신을 표현한 조각품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 조각품들이 완성된 장소에 이름을 붙이겠습니까?

"신들의 정원으로 하겠다."

-신들의 정원이 맞습니까?

이미 인부들과 유저들 모두가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위드의 작명 기준으로는 썩 나쁘지도 않았다.

노가다의 땅, 모라타 도시 옆 동네, 세금의 정원, 헤르메스 길드 나쁜 놈이라는 이름을 지을 수도 있었으니까.

"맞다."

띠링!


『 베르사 대륙에 신들의 정원이 조성되었습니다!

신의 조각품들이 거대한 위용을 갖추고 있는 장소.

그 어떤 종족이라도 이 장소에 오면 경건함과 장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은 조각사이며 아르펜 왕국의 국왕인 위드가, 그의 주민들과 함

께 방대한 공사를 통해 꾸며 놓았습니다.

가장 오래된 신들의 원형을 복구해 놓았습니다.

종교적으로 중요한 곳이 될 것이며, 넓은 정원에 나무가 자라고 꽃이

활짝 피게 되면 정령들도 좋아할 것입니다.

각 교단들에 의하여 이곳은 베르사 대륙의 성지로 등록됩니다.

순례자들이 신들의 정원을 방문하기 위하여 올 것입니다.

아르펜 왕국의 국가 명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신을 믿는 이들에게는 신성한 경험을 통한 축복이 부여됩ㅂ니다.

높은 문화를 가진 국가의 확장력이 최대가 되었습니다.

주민들의 충성도는 국왕을 향한 존경 그 자체입니다. 』


국가 명성은 외교와 특산품의 거래에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널리 알려진 왕국에서 가져온 교역품일수록 가격을 잘 쳐준다.

기왕이면 특정 왕국의 물건으로 구해 오라는 조달 퀘스트도 발생하게 될 테니 상인들이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위드의 개인적인 메시지 창도 떴다.

다른 교단과의 친밀도나 공적치가 무척 많이 올랐으며, 신들의 축복까지 받았다.

신이 축복하는 독재자, 착취자!

신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총 대작 2개, 명작 3개, 걸작 7개를 탄생시켰다.

역사적인 조각품, 종교적인 조각품, 거대한 조각품도 다수 완성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면서 조각품을 만든 덕분에 스탯도 통솔력이, 그리고 지구력과 인내력이 많이 오른 편이었다.

조각술 숙련도도 고급 9레벨에 38.2%가 되었다. 대륙 전체 종교계에 큰 방향을 일으킬 만한 작품을 만들어 낸 덕분에 스킬 숙련도가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위드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조각술 숙련도를 늘린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아르펜 왕국의 건국 이후에 얼마 되지 않은 초창기에 신들의 정원이 생성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이득이 발생할 것이다.

"캬하하하하! 드디어 끝났다!"

"이제 놀아 보자!"

신들의 정원 공사에 참여했던 유저들은 환호하며 모자를 높이 던졌다. 악사들은 가지고 있는 악기들을 힘차게 연주했다.

"여행, 바람, 돼지고기 식당으로 오세요. 싸게 많이 드리겠습니다. 상추 무료!"

"톡 쏘는 흑맥주! 방금 전까지 날아다니던 새 요리도 같이 나오는 곳이 있어요. 드시고 싶은 손님들은 저를 따라오세요!"

"풀죽신교! 대추죽 부대 찾습니다. 오늘 풀술 카페에서 정규 회식 있습니다!"

모라타에서 오늘만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는 축제나 다름이 없었다.

거리에는 완성을 기념하는 꽃잎들이 날리고, 상점들은 문을 활짝 열었다.

판잣집과 주택에는 팻말도 달렸다.

-신들의 정원 돌 14회 운반.

-신들의 정원에서 삽질 4시간 하였음.

-상인의 집. 대리석 두 판 기부.

집집마다 자랑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대륙의 다른 장소에서 관광객과 이주민도 계속 찾아오고 있었기에 그 분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었다.

위드가 국왕이기는 했지만, 조각사로서 이토록 거대한 토목공사를 군중과 같이하며 작품을 만든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다른 조각사라면 길드의 지원이 있더라도 대중의 인기가 따라오지 않는 한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

환하게 웃으면서 순수한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수많은 주민들의 노동력을 쥐어째 내서 완성시킨 신들의 정원.

조각사들의 위상이 달라질 만한 작품이었다.

위드는 주민들에게 잘 보일 기회가 이때라고 여기고 사자후를 터트렸다.

"이 신들의 정원은 앞으로 영원히 무료로 개방할 것이다!"

"아르펜 국왕 만세!"

"대륙 최고의 조각사 위드 만세!"

유저들에게 더 큰 기쁨을 선사하는 위드!

"정말 위드 님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

"응. 나 위드 님 완전 좋아해 위드 님이 나오는 모험은 다보고, 모라타에 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니까."

솔직히 위드로서는 무조건 무료로 들어오게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영향력이 높은 성직 계열의 유저들이 많이 찾아오는 데다가, 일반 직업들도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필수 장소가 되었다.

입장료를 받을 수만 있다면 소득이 정말로 막대할 테지만, 군중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위드 혼자만 해낸 것이 아니라서 입장료를 받겠다면 저항이 만만치가 않으리라.

게다가 결정적으로, 안타깝게도 종교 건물로 분류되어서 도저히 입장료를 거두지 못하는 서글픈 속사정이 있었다.

신들의 정원 자체가 완공된 것과 간접적으로 따라올 긍정적인 효과들만 하더라도 작은 것은 아니다. 위드도 그 정도에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좋은 시설들이 있어야 나중을 위해서도 좋겠지. 세금을 거둘 때에도 뭔가 받은 느낌이 날 테니까."

중앙 대륙의 다른 영주들이라고 하여 위대한 건축물 건립이나 조각사, 건축가를 고용하여 대작업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기술력이나 발전도 등의 조건이 되지 않거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하고 당장의 목돈이 나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 뿐이다.

멀리 보면 성공하는 길이 있더라도,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이득이 있는지 손에 쥐여 주지 않는 이상은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위대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성과 도시는 중앙 대륙에 많이 몰려 있었다.

전쟁으로 인하여 다소 피폐해지기는 했지만, 중앙 대륙의 성과 도시 들은 높은 경제력과 기술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영주들은 유저들을 늘리기 위한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영주가 되기만 하면 소속 유저들을 쥐어짜 낼 궁리만 하였다.

가만히 있어도 새로 시작하는 유저들이 다수 늘어나고 있었고, 세율을 높게 올리면 그만큼 세금이 더 걷혔기 때문이다.

멀리 보기보다는 당장의 이익에 충실 하는 데 익숙해지고 말았다.

주변의 다른 영주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으니 변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대륙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 위드의 인기가 높은 것도 당연했다.

마법의 대륙에서 위드를 조금이라도 겪어 본 사람들은, 모라타를 개발하여 선정을 베푸는 국왕이라는 걸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였을 정도다.

"케이베른 님을 위하여 가야 한다."

대단히 좋은 갑옷을 입은 용아병들이 위드에게 다가왔다.

위드도 조각품을 만드느라 소중한 하루를 써 버렸기에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케이베른의 퀘스트에 늦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아르펜 국왕으로 해야 될 일도 많지만 이제는 가야지. 와삼아!"

조각 생명체인 와이번들이 날아와서 신들의 정원에 착륙했다.

불의 대제 벨소스의 던전으로 가는 길은 와이번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근처의 지형에 대해 완벽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유린의 그림 이동술로는 각종 저항력이 높은 용아병들을 옮기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위드가 신들의 정원에서 용아병들과 같이 와이번ㄴ에 타자, 구경꾼들은 크게 놀랐다.

"위드 님의 왕실 기사들인가?"

"갑옷 좀 봐. 보통이 아니야."

"정말 강해 보이네. 저런 정도면 레벨이 400대 중반이거나 후반 수준 아니야?"

"아르펜 왕국의 군대가 약한 줄 알았는데... 과연 저런 기사들을 숨겨 놓고 있었구나!"

"생긴 지도 얼마 안 된 아르펜 왕국 왕실 기사들의 수준이 왜 저렇게 높지?"

위드를 따르는 용아병들은 군중을 통해, 그리고 화면을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방송국들로 알려지고 있었다.

"저건 용아병입니다!"

"용아병이라면, 드래곤이 자신의 신체 일부로 만들 수 있는 대단히 강력한 몬스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용아병이 전투에 나선 걸 본 적은 없습니다만,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로 감안하여 볼 때에는 최상급의 몬스터라고 분류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확한 레벨은 일단 500대 초반으로 예상됩니다."

"용아병은 마법 저항력이 굉장한 수준이고, 생명력도 무한ㄴ에 가까운, 실제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간해서는 거의 줄어들지 않는다는 자료가 여기 있네요."

"아아, 놀랍습니다! 언제 위드가 드래곤의 퀘스트도 해서 용아병을 호위 기사로 받았던 것일까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위드라면 어느새 해치웠더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방송국의 스튜디오에서는 진행자들이 경악했다.

신들의 정원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보고 있던 중앙 대륙의 고레벨 유저들도 덩달아 기겁했다.

"아르펜 왕국이 이제 막 건국되어 약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잖아?"

"북부에는 별거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시했다가는 큰일 나겠어."

신들의 정원의 완공에 대한 방송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용아병으로 활기를 띠었다.

왕실 기사는 왕국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주나 국왕은 복잡한 퀘스트를 거칠 필요도 없이 주어진 권한으로 기사들을 임명할 수 있었다.

자유 기사나 유저도 기사에 임명되면 월급과 말, 갑옷, 검술, 연무장 등의 혜택을 받지만, 대신 충성을 바쳐야 한다.

기사들은 병사들의 지휘권을 가지고 던전 사냥이나 몬스터 소탕에 나갈 수도 있기에 잘 임명해야 하였다.

국왕이 되면 인사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했던 것이다.

훌륭한 기사들을 거느리고 있으면 그들로 인하여 왕과 영주의 명성도 높아지고 명예 스탯까지 올랐다.

외부에 드러낼 수 있는 자랑거리도 되었다.

모두가 용아병에 대해서 놀라고 큰 화제가 되었지만, 위드와 그 일행만이 알고 있는 그들의 숨겨진 진실한 정체는 바로 케이베른의 감시병!

위드가 날짜 안에 퀘스트를 성공시키지 못하거나 딴짓을 한다면 당장 적대적으로 나올 이들이었다.


6) 마지막 조각술 마스터


"안개가 많이 끼어서 으스스하네요."

"여긴 만날 안개가 낀다고 해요."

왕들의 무덤이 있는 므소스 계곡에 와이번을 탄 위드와 동료들이 도착하였다.

용아병들은 눈을 부릅뜨고 몬스터나 위협거리들을 찾고 있었다.

계속에서 돌아다니던 산짐승과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용아병들이 내뿜는 투기에 질려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무질서하게 마구 도망쳤다.

고위 몬스터의 쓸데없는 위용이었다.

반 호크나 토리도처럼 고분고분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위드는 입맛을 다셨다.

"잡아서 가죽을 벗기면 비싸게 팔릴 텐데."

"저곳이 맞는 것 같습니다."

페일이 주위를 살피다가 입구를 발견해 냈다.

벨소스 왕의 무덤이 있는 유적의 입구는 과거 진홍의날개 길드에 의하여 개방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다시 봉인되어 있었다.

무너진 입구의 돌을 치우고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


유적의 내부는 천연 동굴이 아니라 평평하고 넓게 깎아 놓은 돌벽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간 중간 커다란 원형기둥도 있었는데, 몬스터들이 충분히 숨을 수 있는 면적이라서 신경이 쓰였다.

"여기서는 저부터 실력을 발휘해 보죠."

페일이 앞으로 나섰다.

"바람의 눈."

-공간이 연결되어 있다면 장애물을 뚫고 볼 수 있습니다.

레벨400데에 오르고 난 이후에 획득한 궁수 스킬.

궁수의 비기는 얻지 못하였어도, 페일은 순수하게 전투 계열로 성장해 왔다.

위드를 따라다니면서 스탯과 스킬 숙련도를 충실히 올리는 방식을 택하면서 훌륭한 궁수가 된 것이다.

페일은 화살에 시위를 걸었다.

"땅거미의 화살."

-끈끈한 거미줄이 걸려 있는 화살은 적의 속도를 늦추게 합니다.

"바람의 인도."

-바람의 눈으로 본 목표물을 맞힐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조준을 해야만 화살이 적을 추적하여 맞히게 됩니다.

푸슝!

페일이 막혀 있는 벽을 보면서 화살을 쐈다.

그의 궁술 스킬은 하나의 화살에 네 가지까지 기술을 걸 수 있었다.

화살은 일직선으로 날아가더니 벽을 타고 이동하며 사라졌다.

잠시 후.

캬하악!

몬스터의 괴성이 들렸다.

페일은 속사 스킬을 발휘하며 계속 화살을 쏘았고, 달려오던 몬스터의 비명은 이내 잦아들었다.

멀리 있는 몬스터를 던전에서도 사냥하는 위용을 보인 것이다.

고레벨 궁수들만이 실행할 수 있는 능력!

1마리씩 있을 때에야 별 상관 없지만 여러 마리가 모여 있으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몬스터들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화살로 적의 숫자나 생명력을 많이 줄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다.

몬스터들을 유인하는 데에도 일품이었다.

페일이 적을 해치우고 천천히 활을 내리는 모습은 누구라도 반할 정도로 멋진 것이었다.

다음에 나온 몬스터는 수르카의 주먹의 희생양이 되었다.

"연환권, 무쌍권, 차륜의 권!"

복부, 옆구리, 이마.

부위를 가리지 않고 폭풍처럼 때리면서 권사 특유의 스킬의 중간 연결까지 이뤄졌다.

권사 본인이 느끼는 짜릿한 손맛이나 들려오는 타격음은 역시 최고였다.

"헤헤, 저도 많이 강해졌죠?"

위드는 동료들이 많이 성장한 것을 느끼고 흡족했다.

"잘됐습니다. 다음에 언제 S급 난이도 퀘스트라도 받게 되면 우리 모두 같이 할 수 있겠군요."

고생도 나누어서 하면 그만큼 줄어드는 것.

혼자서 고생하지 않고 동료들과 같이한다면 훨씬 편할 수 있으리라!

위드의 말에 동료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싸악 가셨다.

괜히 힘자랑을 했다가 더 큰 일에 휘말린 꼴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다음부터는 적극적으로 유적을 탐험하는 데 속도를 냈다.

과거 진홍의날게에서는 벨소스 왕의 유적을 탐험하면서 레벨 300대의 유저들을 대거 끌고 왔다.

당시의 수준으로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베르사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왕이 남긴 유적의 문까지는 휴식 없이 바로 갑니다."

"알겠어요!"

"이리엔 님, 축복을 걸어 주시고, 늘 그랬듯이 제 생명력 회복은 목숨이 위태로운 수준이 되어서만 해 주셔야 됩니다."

"그렇게 할게요."

위드는 유적 탐험을 지휘했다.

그를 비롯하여 동료들도 레벨이 400대에 올랐다. 진홍의날개만큼의 전력은 아니더라도 개개인이 훨씬 강하다 보니 던전 탐험에서는 더 효과적인 측면도 있었다.

게다가 케이베른이 남긴 용아병까지 있으니 여차하면 그들을 앞세우면 된다.

용아병은 드워프들이 만든 최고급의 갑옷을 착용한 해골들이었다.

인간형의 해골이었지만, 뼈가 더 굻고 마디마다 날카로운 가시가 있었다.

위드는 용아병들에게 지시했다.

"가서 싸워라."

웬만한 몬스터들은 동료들과 함께 해결하겠지만, 작은 유적 벌레나 철갑충은 잘 죽지 않아서 번거로운 부류였다.

"너의 말을 들을 의무는 없다."

"위대하신 케이베른 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야."

"...알았다."

용아병들은 갑옷을 철걱대며 걸어가서 철갑충을 베어 넘겼다.

어딘가 자유롭지 못하고 기계 같은 느낌이었지만, 철갑충을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할 정도로 강했다.

'이런 놈들이 내 부하라면 좋을 텐데......'

용아병의 추정 레벨은 520 정도라지만 어떤 전투에 내놓아도 될 만큼 듬직했다.

오로지 전투를 위하여 태어난 마법 생명체!

위드는 그들의 뒤모습을 쳐다보며 진득한 침을 흘렸다.

'죽어 주는 것도 괜찮지. 몬스터들의 습격에 의하여 용아병이 전멸한다면......'

용아병이 들고 있는 검이며 입고 있는 갑옷은 모두 위드의 것!

위드의 눈빛이 음험해졌다.

"용아병, 앞으로 쭉 돌격하라!"

"키릿, 알겠다."

용아병들이 전진하니, 유적에서 깨어난 마수들이 수백 마리씩 뛰쳐나왔다.

통로에서 그들끼리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잘한다, 용아병!"

위드는 응원을 하면서 용아병들과 마수의 싸움을 구경했다.

마수들은 용아병들에게 지극히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앞발로 치고, 머리로 들이받고, 불을 토해 내거나 입을 크게 벌려 물어뜯는 정도는 예사였다.

하지만 용아병들은 아무리 공격을 당하더라도 생명력이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악룡 케이베른의 강력하기 짝이 없는 보호 마법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공격이 통하지 않으니 오히려 마수들이 주춤거렸다.

용아병들이 전혀 공포나 위기를 느끼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마수들을 1마리씩 사냥했다.

"과연, 쉽게 안 죽어 주는군."

위드는 용아병들에게 그 자리를 지키도록 했다.

공격력이 일품이고 방어력까지 훌륭한 용아병이 있으니 사냥이 편해졌다.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주인, 불렀는가."

"싸워라."

토리도와 반 호크를 전투에 투입시킨 위드는 검술의 비기를 사용했다.

"분검술!"

바로 그의 분신이 5개로 늘어났다.

바드레이와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나서 깨달은 부분이 있다면, 사냥이 아닌 결투를 위해서는 여러 전투 스킬의 숙련도를 골고루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검술의 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전투 개시!

분신들이 마수들을 공격하고, 또 공격당했다.

위드가 앞으로 뛰어나갔기 때문에 그에게 마수들의 앞발 공격이 다가왔다.

-말루크의 공격에 스쳤습니다.

-여신의 기사 갑옷이 프레야 여신의 축복을 불러옵니다.
몬스터의 공격력에 따라 방어력이 27% 높아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좋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는 여신의 기사 갑옷의 방어력이 더 높아졌다.

"좋아, 웬만큼 맞아서는 끄떡도 없겠군."

위드는 즉흥적으로 전투 방법을 평소와는 조금 달리했다.

일부러 때리라는 듯이, 마수들 앞으로 가서 스킬을 난사하며 싸웠다.

바드레이조차 감탄했던, 정교하며 민첩한 전투가 아니었다.

"눈 질끈 감기, 광휘의 검술!"

퍼버버버벅!

위드는 마수들에게 얻어맞으면서 검술의 비기를 사용했다.

이제는 빛나는 참새가 3마리씩 나왔다. 알아서 적들에게 달려들었으니 눈을 감고 싸워도 된다.

마수들의 공격은 피하지도 않고 맞으면서, 전투 스킬을 계속 사용했다.

맷집과 인내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많이 맞아야 되었고, 공격력의 측면에서도 피하고 때리기보단 맞으면서 때리는 편이 더 나았다.

사냥 방식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바뀐 것이다.

보통 때 싸움을 잘하던 사람이 개싸움을 벌이니 더 지독했다.

"더 때려라, 아직 약해. 날 패 줘, 어서!'

여신의 기사 갑옷을 전투에 사용하는 것도 처음.

높은 방어력은 기본이고, 헬리움으로 완성되어서 마나를 빨리 채워 주는 효과도 가졌기에 검술 스킬을 연달아서 쓰면서도 지치지 않았다.

벨로트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위드 님은 정말......"

무식하다 무식하다 해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남자로서 어느 정도 체면도 고려해야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화령은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위드 님은 짐승 같은 매력까지 있으시다니까. 꺄아아!"

"......"

정말 친한 언니이긴 하지만, 벨로트는 가끔 화령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벨소스 왕의 석실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무사히 도착하였다.

용아병들이 도와주었지만 몬스터가 지긋지긋하게 많이 나왔다.

정말 많이 맞으면서 전투를 했기 때문인지, 위드는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리엔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어디 아프신 곳이 있으면 치료 마법이라도 걸어 드릴까요?"

"그게 아닙니다. 휴우."

인내력 스탯이 900을 넘었고, 맷집은 곧 500이 된다. 지독한 사냥과 조각품 제작을 통해 이룩해 낸 결과물이었다.

워리어들조차도 가능하면 방패로 공격을 막기 때문에 수비 스킬이 발달하는 편.

위드처럼 기본 스탯을 위주로 성장시키기란 정말 어려웠따.

사냥을 하다가 몬스터가 엉뚱한 곳으로 날린 공격까지도 일부러 맞아 주어야 했으니까.

"갑옷이 워낙 좋아서 맞아도 예전처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안 들어서요."

"......"

방어력이 85밖에 되지 않던 탈로크의 믿음 갑옷과 방어력이 최대 300 가까이 늘어나는 여신의 기사 갑옷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여기에 방어구 닦기까지 사용한다면 20%의 방어력이 추가로 더 늘어나서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방어력 200 정도의 차이는 몬스터의 공격을 오분의 일 이상 감소시키는 효과를 나타냈다.

"전에는 시원하게 맞았는데 이제는 조금 간질간질해서 많이 아쉽네요."

여신의 기사 갑옷을 입었기에, 각종 저주를 무시하고 피하거나 도망가지 않으며 더욱 적극적으로 싸울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전투력에 영향을 미쳤는데, 갑옷의 재질이 헬리움이라서 마나를 빨리 채워 줬다.

공격 스킬을 많이 사용하면서, 사냥의 속도가 빨라지고 검술의 비기 숙련도 올리기도 좋아졌다.

지금까지 위드의 맷집을 성장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해주었던 탈로크의 갑옷을 잃어버린 것이 새삼 안타까워졌다.

"좋은 구매자에게 비싼 가격에 팔아먹기만 하면 완벽했는데."

"네?"

"아닙니다. 그보다도, 이제 조각상을 끼워 넣죠."

벨소스 왕을 상징하는 스콜피온의 조각.

위드는 제단에서 붉은색의 원석들을 주웠다.

과거에도 조각을 해 본 적이 있지만, 아주 상세하게까지는 기억을 못 했다.

대륙에서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조각품들이 엄청난 수량으로 떠돌고 있을 것이다.

흑생 거성의 창고에도 막대한 양이 쌓여 있었다.

기념일이 있거나 하면 특별 판매로 좋은 가격에 팔아 치우려는 조각품들.

"그때보다 더 좋은 전갈로 만들면 되겠지."

위드는 원석을 세공하여 전갈을 금방 깎아 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1개씩 나누어 주었다.

"동시에 올려놓는 겁니다."

"네."

긴장된 순간이 잠시 흘러갔다.

진홍의날개 길드가 벨소스 왕의 무덤에 들어가서 베르사 대륙 전체가 저주를 입었다.

그것을 감안한다면 이 안으로 들어간다는 건 대단한 위험을 안고 있는 일이었다.

위드는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었다.

'몰래 하는 거니까 설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내가 한 건지는 모르겠찌. 끝까지 잡아떼면 돼.'

진홍의날개처럼 공개적인 게 아니라, 도굴꾼처럼 유적의 입구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내부로 들어왔던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궁!

붉은 스콜피온이 그러져 있는 석문이 큰 소음을 내며 열렸다.

내부에는 상당한 양의 마수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마수들이 한꺼번에 위드와 일행을 쳐다보며 공격의 의지를 다지는 거친 울음소리를 냈다.

"용아병, 앞으로 가서 입구를 지켜라."

"알겠다."

왕의 무덤을 지키는 마수들이기에 더 위험하고 레벨도 높으리라.

진홍의날개 길드가 먼저 공략하던 동영상을 봤기에 많은 참고가 되었다.

위드는 이번에는 무리하지 않고 안정된 사냥을 하기로 했다. 용아병과 데스 나이트로 입구를 지키고, 원거리 공격을 위주로 하기로 결정했다.

로뮤나의 고위 마법, 페일의 화살, 제피의 낚싯대도 공격 사거리가 제법 길었던 것이다.

수르카는 용아병들 사이를 빠져나온 마수들과 싸우면 된다.

"우리도 춤을 시작해야지."

"언니, 빠른 리듬으로 연주할게요!"

화령과 벨로트는 춤과 노래로 마수들을 현혹시켰다.

위드는 광휘의 검수을 쓰다가 마나가 떨어지면 엘프의 활로 무장하고 화살로 마수들을 차근차근히 없앴다.

입구에서 철저히 틀어막고 원거리 공격으로 마음 놓고 사냥을 한다.

강한 마수들을 상대로 경험치도 쉽게 올리고, 전리품도 쌓이고 있었다.

모든 전투 계열 유저들이 꿈꾸며 바라는 상황이었다.

"조금 싱겁군. 역시 난 맞아야 되겠어!"

하지만 결국 위드는 용아병들의 머리 위로 넘어가서 마수들에 둘러싸인 채로 전투를 하는 쪽을 택했다.

마수들은 더없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었지만, 여신의 기사 갑옷이 제 위력을 발휘했다.

"치료의 손길!'

용아병들에게는 이리엔의 치료도 필요하지 않았기에 집중적인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위드는 조각품을 깎을 때처럼 다소 정적인 일을 할 때도 좋았지만, 이렇게 정신없는 사냥을 할 때도 행복했다.

경험치와 숙련도를 쌓으면서 바로바로 전리품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

"위드 님, 엄호해 드리겠습니다."

페일의 화살이 위드의 뒤쪽으로 돌아서 공격하는 마수들을 위주로 집중됐다.

로뮤나는 마법을 준비해서 한 번씩 크게 터트렸다.

화령과 벨로트의 춤과 노래에 현혹된 마수들은 움직임이 조금 느려지면서 약화되었다.

정신없이 치고받고 싸우면서 왕의 석실이 있는 공간을 제압했다.

"캬아!"

그리고 위드는 물기 어린 눈으로 황금 스콜피온상과, 쌓여 있는 금은보화들을 보았다.

위드는 물기 어린 눈으로 황금 스콜피온 상과, 쌓여 있는 금은보화들을 보았다.

진홍의 날개 길드에서 침입했을 때에도 동영상을 통해 봤던 광경이지만 그 감동이야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 금화에 보석들이..."

위드의 목소리는 첫사랑에게 고백하는 어린 소년처럼 떨렸다.

그러나 얼굴은 막대한 뇌물을 본 정치인 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쪽으로 가시면 안 돼요. 위드님!"

"이거 건드리면 큰일 나는 거 아시잖아요."

동료들은 위드가 보물을 몽땅 챙기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진홍의 날개에서도 이 보물을 잘못 건드려서 큰 저주를 받지 않았던가.

그림의 떡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보물들. 가져갈 수 없기에 굳이 큰 위험성을 무릅쓰면서 이곳으로 온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리라.

동료들이 달려와서 팔을 잡아끄는 와중에도 위드의 두뇌는 계속 빠르게 돌아갔다.

보석과, 금화, 아이템에 대하여 냉정하게 분석!

'보석 값이 많이 올랐지. 처분을 잘하면 요즘 시세로 340만 골드정도는 나올 것 같군. 마판님에게 맡기면 수고료를 준다고 해도 367만 골드까지는 얻을 수가 있겠어.'

최근 변동된 시세까지 감안하며 오차범위 3% 내외의 정확한 분석.

위드는 쌓여 있는 보석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챱챱챱챱!"

침을 줄줄 흘렸을 뿐!

"어머 이 반짝이는 보석 좀 봐."

"언니. 여기에 가방도 있어요. 공주 로세나가 착용하던 하나뿐인 가방이래요."

"정말? 한정품이잖아. 이것도 꼭 갖고 싶었는데."

화령과 벨로트는 피혁류와 귀금속, 액세서리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꺄아아. 너무 예쁘잖니. 이거 착용하고 광장에 나가봐야 되는데."

"이 영롱한 빛깔 좀 봐요."

가방과 보석, 부츠는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사제용 스태프가 이런 곳에 있었네?"

"다이아몬드가 박힌 장갑은 처음 봐요."

이리엔과 수르카도 장비를 보더니 눈빛이 흔들렸다.

마법사로서 진귀한 아이템에 관심이 많은 로뮤나는 붉은 빛이 도는 로브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물건을 보면서 욕심을 내는 건 위드만이 아니었던 것!

위드는 쌓여 있는 보석들을 감상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세공한 솜씨가 상당히 훌륭하군. 드워프의 작품인가? 미세한 차이지만 드워프들이 좋아하는 방식은 아닌데."

드워프들은 예쁘거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어려운 세공보다는 단순하면서도 보석의 빛깔을 최대한 표현하는 양식을 따랐다.

"자세히 보니 다른 것들도 조금 이상해."

위드는 술잔이나 기사들의 모형등이 상당한 실력을 가진 조각사에 의하여 완성된 것임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정중앙에 있는 벨소스 왕의 커다란 관.

관 뚜껑에 새겨진 불과 어우러지는 정령들의 조각 무늬는 보통의 실력이 아니었다.

"스콜피온 상도 상당히 범상치 않은 수준이로군."

위드는 왕의 석실에 들어오기만 하면 되어서 스콜피온을 대충 깎기만 했다.

하지만 이곳의 석실에 있는 스콜피온들은 매우 정교하여 살아서 기어 다닐 것처럼 보일 만큼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보물들이 많이 있었지만 직업이 조각사인 탓에 그렇게 많지 않은 조각품들도 대단한 손길이 간 것임을 알아보았다.

"어쩌면 이것은..."

위드는 벽에 있는 스콜피온의 무늬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감정!"

-실패하셨습니다.

"역시 이건..."

위드의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감정!"


『 전갈의 조각품

조각술 마스터 벨소스 라 데우스 3세의 작품이다.

그가 좋아하던 전갈을 표현했다.

예술적 가치 : 472

특수 옵션 : 전갈의 번식을 늘림.
붉의 힘이 깃듦 』


"역시 조각술 마스터였어!"

위드가 만나지 못했던 마지막 마스터가 벨소스 왕이었다.

그리고 조각품에 담긴 추억이 보이기 시작했다.


★★★★★★★★★★★★★★★★★★★★★


벨소스는 남부 사막에서 태어났다.

왕의 핏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어린 시절 내내 어쌔신들에게 쫓겨 다녔다.

사막의 부족들과 대상들을 따라다니면서 성장하고, 그들의 짐을 나르면서 진귀한 물건들을 구경했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칼과 조각품이었다.

벨소스는 여리고 작은 손으로 조각품을 깎아서 대상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용병들로부터 검도 배우면서 사막과 중앙 대륙을 오가는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그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갔다.

벨소스가 착용하고 있는 전갈의 목걸이와, 갓 태어났을 때 등에 새겨진 문신이 부족의 증표.

부르칸 왕국의 국왕이 되고 난 이후 그는 남부 사막을 다스리게 되었다.

벨소스 왕은 불의 대제라고 불렸으며, 전쟁이 불어지면 수많은 정령들이 그를 따랐다.

"부르칸 왕국의 진군이다."

"사막의 크실리야 부족은 집결하라!"

사막의 약탈 부족들과의 전쟁.

약탈 부족들은 양과 낙타를 키우는 유목민들을 살육하고, 가축을 빼앗아갔다.

사막에서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세력으로 벨소스 왕의 아버지도 그들에 의해 패배하고 죽임을 당했다.

약탈 부족의 대군은 10만 명이 넘는 낙타 기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긴 곡도를 휘두르며, 활을 능숙하게 다룬다.

근접전에서는 짧은 창을 먼저 집어던지기에 중앙 대륙의 기사단과는 많이 다른 방식으로 싸웠다.

하지만 전투력만큼은 중앙 대륙의 기사단에 못지않았다.

반면에 부르칸 왕국의 부족 전사들은 채 3만 명도 되지 않았다.

낙타도 타고 있지 않은 일반병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는 숫자였다.

싸우나마나 전투의 결말은 정해져있는 것 같았지만, 벨소스 왕의 군대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수만에 달하는 불의 정령이 있었다.

사막이 아닌 초원이나 숲이라면 전투가 벌어지고 난 이후에 모든 것이 타서 없어져버렸으리라.

사막의 모래에서 불의 정령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벨소스 왕은 불의 정령들을 통해 사막에 평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훌륭한 왕은 될 수 없었다.

사막은 곡물이 자라지 않는 땅이 대부분이었고, 오아시스와 강을 두고 뜻이 맞지 않는 부족들간의 싸움은 계속 일어났다.

벨소스 왕은 어쩔 수 없이 중앙 대륙으로 진출했다.

구인 불의 정령들을 동원하여 전쟁을 치르면서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다.

전쟁에 이길 때마다 쌓이는 막대한 보물들은 부족민들의 눈을 흐리게 했고, 그들은 땅을 일구고 살아가는 대신 더 많은 피를 원했다.

벨소스는 외로움을 느끼고 왕궁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부족에 의하여 전쟁은 계속 확대되었다.

사막 부족들은 전투로 단련이 되어 있었고, 공성 무기까지 확보하여 성벽도 더 이상 난공불락의 대상이 아니다.

벨소스가 싸우지 않더라도, 그의 부족들이 피를 흘리고, 중앙 대륙의 왕국들이 희생을 치러야 되었다.

"조각품은 아름답지만, 인간의 욕심까지 아름답게 만들지는 못하는구나."

벨소스는 왕이면서도 정령과 조각술에 더욱 매달렸다.

궁전을 가꾸고, 진귀한 재료들을 모아서 조각품을 표현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정원을 꾸며놓았으며, 평화롭게 개울가에서 목을 축이는 낙타의 조각품도 만들었다.

전쟁에 빠져 있는 사막 부족들은 그 조각품의 의미를 알지는 못했다.

벨소스가 왕궁에만 있는 사이에도 모집된 전사들로 왕국의 영토는 넓어지고, 더 많은 보물들이 들어왔다.

왕이 나이가 들었을 때에는 후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세력 다툼을 벌였다.

벨소스 왕과, 불의 정령들의 군대가 있었기에 왕성에는 조용하였지만, 밖으로 나가면 이미 처참한 살육터였다.

벨소스는 계속 불의 정령을 조각하였다. 그를 따르는 정령들도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결국 인간의 육신을 버리고 정령이 되었다.

그는 불의 정령왕이 된 것이다.


벨소스가 왕궁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난 이후, 불의 정령들도 종적을 감췄다.

더 이상 부르칸 왕국을 위하여 싸워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후계자들은 왕궁으로 와서 값나가는 것들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깨끗하게 타오르는 왕궁에는 벨소스가 만들었던 많은 조각품이 있었다.

이후 부르칸 왕국은 부족들 간의 전쟁으로 약화되고, 마센 왕국의 반격에 의하여 다시 사막으로 쫓겨났다.

다행히 벨소스의 몇몇 유품들과 보물들은 왕궁이 약탈되기 전에 시종들에 의하여 므소스 계곡으로 옮겨져서 파괴되지 않았다.

하지만 벨소스 왕은 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자료가 아주 적게 되었다.


★★★★★★★★★★★★★★★★★★★★★


-조각품에 담긴 추억을 통해 조각술 마스터 벨소스 라 데우스 3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셨습니다.
부르칸 왕국의 정보를 입수하셨습니다.
역사적인 지식을 획득하셨습니다.
지식이 14 증가합니다.
이미 정령 창조 조각술을 터득하고 있기에 연관된 퀘스트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조각술 마스터는 정말 평범하지 않은 인생들을 살았군."

위드는 조각품에 담긴 추억을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누구는 없어서 죽겠는데... 보물을 이렇게 쌓아 놓고도 외로움을 느끼다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불공평!

왕이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건 절대 비난만 할 일은 아니었다.

위드가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검소한 왕이란 대체 이해가 안 갔다.

그 많은 재산을 그저 가지고만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다 써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보물을 더 많이 모으고, 적당히 권력으로 횡포도 부리면서 살아야 그게 사람 사는 세상!

아무튼 벨소스 왕도 평범하지는 않았다.

정령 창조 조각술을 만든 마스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삶을 살았으리라.

조각술 마스터마다 각자 특색은 있었다.

다론은 한 여자를 많이 조각하면서, 조각품에 담긴 애정을 통해 조각 변신술을 깨달았다.

자하브는 왕비를 사랑하면서 조각 검술과 광휘의 검술을 남겼다.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는 조각품에 생명을 부여하여 제국을 거느렸고, 데이크람은 자연을 벗 삼아 조각하며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완성시켰다.

마지막으로 벨소스 왕은 사막의 이글거리는 열기처럼 살다가 사라진 것이다.

"나도 조심해야 되겠어. 잘못하면 착취도 못 해 보고, 흥청망청 돈도 못 써 보고 그러면 안 되니까."

위드는 경계심을 느끼면서도 훨씬 가벼워진 기분으로 왕의 석실을 구경했다.

벨소스 왕이 조각술 마스터라면 완전 남이라고 할 수는 없는 처지였으니까.


7) 정령왕의 조각품


위드는 자신이 얻어 낸 정보를 다른 동료들에게도 알려줬다.

이리엔이 알았다는 듯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왕이 이제 불의 정령왕이 되어서 예전에 그의 유물을 함부로 건드렸을 때 정령들로 인해 대륙이 뜨거워지는 저주가 내렸던 것이네요."

수르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은 듯이 좋아했다.

"완전 옛날이야기 같아서 신기해요. 베르사 대륙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이걸 알고 있는 건 지금은 우리뿐이겠죠?"

화령을 벨로트와 같이 벨소스 왕에 대한 공연을 해 보고 싶은지 무언가를 의논하면서 맞춰 가고 있었다.

모라타에는 소규모 공연장도 많았고, 웬만큼 큰 싱당에는 거의 공연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빛의 광장, 빙룡 광장에서도 곧잘 공연이 벌어지는데, 관객들의 높은 호응을 받으면서 크고 작은 공연을 성공시키면 스탯이 오르기도 한다.

위드가 역사적인 사연이 있는 조각품을 만들었을 때 효과가 높은 것처럼, 공연의 내용도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을 때 평가가 좋았다.

전에 알지 못하던 진실을 알려 줌으로써 공연을 본 관객들이 지식 스탯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더 환영받았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같은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처음 한 번만 스탯을 얻을 수가 있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더욱 좋은 공연들을 매번 찾아다니는 것이다.

바드들이 대륙을 떠돌면서 이야깃거리를 구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 일단 아가테의 수정만 가져가면 되긴 하는데."

위드는 조각 재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아가테의 수정을 다수 발견하였다.

수량도 적지 않아, 최소한 120개는 되어 보였다.

"근데 가져가도 별 탈이 없는 건지 모르겠군!"

벨소스 대왕의 검, 뿔피리, 그가 착용했다는 사막 전사의 장비 등 여러 가지 보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놔두고 가져가는 것이 하필 고작 조각 재료라니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그마저도 그져가도 되는지 안심이 안 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나."

위드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발굴가들도 던전에서 보물 상작 보인다고 하여 함부로 열지는 않는다.

어떤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

이런 경우에는 더더욱 의심하고 경계를 해야만 한다.

위드는 지금까지 경험한 자신의 팔자로 미루어 볼 때 더욱 수상한 기분이 들었다.

"드래곤의 퀘스트가 이렇게 간단히 끝날 수가 없어. 친절하게 용아병까지도 지원해 주고 와서 보물을 챙긴다? 유적의 위치를 찾는 데 약간 헤매거나 몬스터와의 싸움도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는 고생이라고 하기에 모자라."

보통 이런 난이도의 퀘스트는 술술 잘 풀리는 것처럼 방심시키고, 기분까지 행복하게 유도해 놓고 나서 제대로 뒤통수를 친다.

지금까지 난이도 높은 퀘스트를 하면서 얼마나 많이 경험해 보았던가.

"세상에 공짜나 쉽게 풀리는 일은 없어."

동료들은 조용히 서서 그의 선택을 기다렸다.

잘못된 선택을 하였을 때에는 다 같이 화를 입을 수도 있지만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제피가 소곤거렸다.

"위드 님의 결정은 대체로 믿을 만하죠."

벨로트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생각도 그래요. 밟아도 죽지 않는 바퀴벌레 같다고나 할까."

그 점은 다른 동료들도 동의했다.


★★★★★★★★★★★★★★★★★★★★★


"역시 안 되겠어."

위드는 조각 재료들에 손대지 않기로 했다.

어마어마한 고뇌가 있었지만, 아가테의 수정도 금은, 보석 이상으로 정말 귀한 것이다.

진홍의날개 길드가 보물에 욕심을 내다가 그런 꼴을 당한 것을 알면서도 손을 대서 챙길 수가 없었다.

"인생이란, 양념 통닭을 시켰는데 프라이드 통닭이 올 수도 있는 것이지."

위드는 조각 재료나 다른 보물들에서 시선을 거두고 왕의 석실을 둘러보았다.

욕심을 버릴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고, 조각품에 담긴 추억을 읽음으로써 벨소스 왕의 소장품들도 각별하게 느껴졌다.

"정령의 조각품이 많았던 것이 이해가 가는군."

어릴 때부터 험난하게 살면서 정령들이 친구이며 동료가 되었으리라.

그리고 발견한, 절반 정도 완성되어 있는 불의 정령의 조각상!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사막에서 거칠게 살아가던 벨소스 왕의 모습에, 몸 전체가 정령처럼 불로 이루어져 있었다.

위드는 그 미완의 조각상을 보는 순간 어긋난 퍼즐의 모든 것들이 맞춰지는 것처럼 확신이 생겼다.

"보물이 아니라서 아가테의 수정은 가져가도 괜찮을지도 몰라. 어떤 저주가 생기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

위드도 벨소스 왕도, 조각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간혹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하는 동업자 정신이 있지 않던가.

"그렇지만 벨소스 왕은 조각술 마스터였고, 그는 정령 창조 조각술을 가지고 있었어."

위드는 따로 독학으로 스킬을 익혔지만, 조각품에 담긴 추억으로 봐서 벨소스 왕이 정령 창조 조각술을 터득했으리라고 100% 확신했다.

"이곳의 미완의 조각상을 완성하면 정령 창조 조각술을 배울 수 있을 테지."

그렇다면 이 조각품을 마저 완성을 해 봐야 된다. 여기가 조각사와 관련이 있는 장소인 만큼, 조각상이 매우 중요한 열쇠라고 볼 수 있었다.

동료들은 계속 시시각각 깊은 상념과 혼잣말을 반복하는 위드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시려는 거죠?"

"몰라요. 당장이라도 보물을 가지고 도망칠 거 같진 않은데......"

"주변을 둘러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도 하네요."

"앗, 웃고 있어요!"

위드의 입가에 드디어 자신만만한 썩은 미소가 맺혔다.


★★★★★★★★★★★★★★★★★★★★★


"불의 정령왕이라 룰루루!"

위드는 콧노래를 부르며 정령의 돌 브루에시아를 깎았다.

"과연, 명품이라서 다르긴 다르군."

벨소스 왕이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정령의 돌은 거의 구할수가 없는 재료였다.

정령술사들이 정령계로 가서 퀘스트를 하고 공적치를 쌓아서 가져와야 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최상급 정령이 돌로 변한 것을 발견해야 된다.

정령의 돌에는 속성에 맞는 정령의 힘도 담겨 있었다.

위드가 조각을 할 때마다 불길이 화르르 크게 일어났다.

마치 중국집에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요리를 하는것 같은 모습이었다.

-불에 데어서 생명력이 237 감소합니다.

위드에게 조각품을 깎으면서 이 정도의 고난 따위야 자장면을 먹는데 단무지가 다 떨어진 정도.

조각을 한 부위는 돌이 굳지 않고 불길이 계속 넘실거렸다.

정령의 돌 브루에시아야말로 정령왕을 조각하기에 최고의 재료였다.

페일이 와서 알려 주었다.

"위드 님, 이제 놈들이 나타날 시간이에요."

"벌써 1시간이 지났군요."

벨소스 왕의 유적에는 마수들이 득실거렸다. 따로 서식지가 있어서, 통로와 석실로 마수들이 주기적으로 들어오기도했다.

위드는 동료들과 함께 이 마수들도 처리를 해야 되었다.

용아병과 동료들에게 맡겨 놓아도 되지만 직접 사냥하고 싶었던 것이다.

"광휘의 검술!"

그새 검술의 비기도 숙련도가 늘어서, 빛의 참새가 5마리씩 나타났다.

참새가 5마리로 늘어나자 몬스터에 충돌하며 일어나는 효과는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숙련도가 늘어날수록 검술의 비기답게 확실하게 강해졌다.

"위드 님, 이번에는 아이스 로커가 옵니다."

보스급 마수 아이스 로커!

"분검술!"

위드는 광휘의 검술이 아니라 분검술을 사용했다.

분검술은 강한 몬스터 1마리를 상대로 사냥할 때의 효과가 정말 좋은 편이었다.

샤샤샤샤샥.

위드의 분신이 9명이나 나타났다.

크르르르......

아이스 로커는 경계하면서 약간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분신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페일과 제피, 수르카는 아직 공격을 하지 않고 때를 긷가렸다.

"간다!"

위드가 아이스 로커를 향해서 달려갔다. 분신들도 동시에 앞으로 뛰었다.

캬호!

아이스 로커는 정면으로 강한 입김을 내뿜었다.

극한의 냉기!

적중된 분신의 몸이 달려가는 도중에 빠르게 얼어붙었다.

캬하하하학!

아이스 로커의 팔꿈치가 분신을 강력하게 쳤다.

회색빛으로 변하여 흩어지는 분신.

분검술은 적의 특수 공격을 무력화하는 데 효과가 컸다.

위드는 다른 분신들이 몬스터의 공격을 유도하는 사이에 뒤로 돌아가, 데몬 소드로 아이스 로커의 뒷목을 강타했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다시 분신들이 아이스 로커에게 덤벼들었다.

위드는 그 틈에 연속 공격을 했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연속으로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아이스 로커가 머리를 강타당하여 혼란 상태에 빠졌습니다.

"밟아!"

혼란 상태에 빠지면 여러 분신들이 다 같이 공격을 하였기에, 연거푸 퍼붓는 그 공격력이란 무자비한 수준!

"죽어랏."

"저도 때릴 거예요!"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제피와 수르카가 공격을 가했다.

로뮤나의 마법과 페일의 화살도 적중되었다.

위드가 '밟아!' 라는 말이 신호였던 것!

낮은 방어력과 생명력에, 공격력도 약해서 근접전에서 그다지 나서지 못하던 화령과 벨로트도 활약을 했다.

소검으로 찌르고, 강철 악기로 때리면서 사냥을 했다.

위드가 분검술을 익히기 전이었다면 제피와 같이 정면에서 상대하고, 다른 동료들은 지원을 했을 것이다.

웬만큼 강한 몬스터를 상대로 하여 싸울 때 파티 플레이의 정석!

이제 위드는 분검술을 이용하여 몬스터가 약해지거나 느려지지 않았을 때에도 치명적인 일격을 쉽게 터트리고, 혼란도 잘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검술의 비기를 익히고 나서 전투에서 많은 것이 달라진 것이다.

분검술은 몬스터를 여러 마리 동시에 사냥할 때의 효과도 일품이었다.

분신들이 일어나서 같이 싸우니 수비에도 도움이 되고, 전체적인 공격력이 커졌다.

급격한 마나 소모가 단점이긴 하지만 사냥 속도가 월등히 빨라지게 만드는 이유였다.

게다가 이제는 마나를 올려 주는 패로트의 링에, 바하란의 팔찌, 헬리움으로 만들어 낸 여신의 기사 갑옷까지 입고 있기에 분검술도 필요할 때마다 아낄 필요 없이 사용했다.

검치와 수련생들은 분검술을 익히고도 아직 제대로 활용을 못하였지만 위드는 완벽하게 써먹고 있는 것이다.

"과연 검술의 비기가 좋긴 좋군!"

숙련도를 듬뿍 올리면서 경험치와 전리품도 획득!

위드와 던전에 오기로 했을 때부터 동료들은 가방을 많이 가져왔다.

사냥을 하기만 하면 매번 전리품으로 가득 찼던 것이다.

-지금쯤 출발하면 될까요?

-아직 조금 더 기다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마판은 주기적으로 페일에게 귓속말을 보내서 상황을 확인했다.

최근에 매우 비싼 돈을 들여서 길들인 가고일 12마리를 구입했다.

최고의 수준에 오른 상인들만이 거느린다는, 하늘을 나는 가고일 운송 부대를 장만한 것이다.

마판은 이렇게 언제라도 와서 거래를 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쳐 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위드와 동료들이 유적에서 벌이는 사냥은 여러모로 짭짤했다.

"여기도 훌륭한 사냥터로군."

마수들이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고, 전리품으로는 가끔 벨소스 왕의 보석이 떨어졌다.

혼자라면 다소 버거웠겠지만 믿음직스러운 동료들과 같이왔고, 직업 구성도 잘되어 있었다.

위드는 던전의 보스급 몬슨터가 아닌 이상 정면 방어의 역할도 가능했고 공격력도 높았다.

동료들도 각자의 직업에서 실력이 뛰어나서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초반부터 쭉 같이 성장해 왔으니 눈빛만 봐도 의미를 이해했다.

'앞으로 3시간만 더 사냥을 하자는 뜻이구나. 으윽,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다리에 감각이 없어.'

'이놈의 마수들은 왜 이렇게 많이 나와. 위드 님이랑 사냥을 하면서 인내력 스탯이 또 올랐어.'

'아아, 위드 님이 차려 주는 맛있는 밥 먹고, 새로 산 신발이랑 옷이랑 걸쳐 입고 걸어 다니고 싶다."


★★★★★★★★★★★★★★★★★★★★★


"크흐흐흣."

"사형, 이거 정말 괜찮은데요."

"그래. 사냥하는 맛이 난다."

검치와 수련생들도 분검술과 광휘의 검술을 사용했다.

몬스터들은 점점 강해져만 가는데 기초적인 검술만 쓰면서 버텨 오다가 스킬을 운용해 가면서 잡아 보니 사냥에 제대로 탄력이 붙었다.

몬스터를 해치우고 던전의 보물을 찾거나 보스급 몬스터를 집단 사냥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혼자서 잡을 수 없는 보스급 몬스터를, 사형제들이 힘을 합쳐서 사냥을 한다.

말을 타고 달리며 검을 휘두르거나 와이번을 타 보는 것도 사나이의 로망!

"신 나지 않느냐."

"옛, 스승님!"

"마음껏 놀아 보자!"

바르고 성채 주변에는 이제 오크들이 있고, 레벨이 높은 유저들도 대거 찾아왔다.

검치와 수련생들은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험준한 산들을 장악하였다.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서 함성을 지르며 사방을 돌아보았다.

구름과,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들이 아래에 있다. 그보다 멋진 광경이 없었다.

야성을 만끽하면서 강한 힘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길!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들에게 레벨 같은 수치는 가슴으로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만족할 만큼 실컷 싸울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있다는 데에 전율을 느꼈다.

새벽의 이슬이 맺혀 있는 산길을 달리면서 몬스터의 무리를 찾아내고, 사형제들끼리 대대적으로 겨루는 그 기분!

무기술 스킬이 늘어나는 건 둘째 치고, 이렇게 싸울 수 있다는 것에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레벨이 마구 오르고, 전리품ㅁ도 셀 수 없이 획득했다.

바르고 성채에서 지낸 시간도 꽤 되다 보니 적응을 하여, 최근에 죽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둘치야."

"예, 스승님."

"우리가 이 로열 로드를 한 지도 꽤 오래됐구나."

"시간이 벌써 흘렀습니다, 스승님."

"그래......"

검치는 오른손에 들려 있는 이가 듬성듬성 빠진 철검을 쳐다봤다.

'실감이 난다.'

가상현실이라는 것이 이렇게 기쁜 것인지 몰랐다.

육체를 단련할수록, 어쩌면 사회에서는 그것을 쓸 기회가 더욱 줄어들었다.

남과 시비가 붙어도 싸우면 안 되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때려도 안 된다.

격투기에 나가서 관중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하여 싸울 필요도 없었다.

로열 로드는, 채워지지 않던 욕구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중학생 때 잡아 봤던 쇠 파이프만큼이나 마음에 드는구나."

"수련생들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도장의 수련생들도 사형제들끼리 전투를 하고 모험도 하는 로열 로드를 하는 시간을 매번 기다렸다.

주말이나, 휴식을 위해 쉬는 시간에도 자진해서 캡슐로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강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검치가 조용히 되뇌고 있을 때, 검삼치와 검사치, 검오치도 와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서 가장 강해지지 못하면 그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만한 일일까?"

사범들과 수련생들은 죽음에 대해서도 가볍게 받아들였다.

로열 로드에서는 레벨 차이나 장비 차이가 심하게 나면 이기지 못한다. 판단력, 육체의 반응이 매우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더라도 한계는 있었다.

"즐거운 꿈과 같구나. 이곳은......"

"......"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고 싶은 건 검을 배우는 것이다. 검을 배움으로써 달라지고,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몇십 년을 고되게 단련했더라도 한순간의 실수로 패배를 겪기도 하고 목숨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젊을 때의 혈기와 왕성함도, 나이를 먹게 되면서 약해진다.

허무하더라도, 그것이 인생이었다.

사범들이 그럼에도 험한 길을 택한 이유는 각양각색이었지만, 결국 검치의 인도 아래 검을 배우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갔다.

진정한 육체의 괴로움, 강해질 때의 기쁨, 생명의 위협, 훌륭한 검술.

이 모든 것들을 통해 강해지고, 자기 자신의 내면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라도 우리 정말 강해져 보자꾸나."

"그렇다면......"

"이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


위드가 벨소스 왕의 유적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엿새밖에 안 남았다.

악룡 케이베른의 퀘스트에는 시간제한이 있었기 때문!

"진짜 이 버릇없는 도마뱀은 도움이 되는 게 없어!"

조각품도 만들고 사냥도 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외부의 소문을 들었다.

-바드레이가 퀘스트를 또 완수한 모양이야.

-방송에 나왔어?

-아직. 방금 속보로 떴어. 방송 중계는 오늘 저녁에 해 준다더라.

바드레이가 직업 마스터 퀘스트 열다섯 번째를 성공시켰다는 소식이었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는 일반적으로 15단계에서 20단계까지로 이루어졌다고 했으니 거의 끝 부분에 도달해 있었다.

위드는 고작 열네 번째 퀘스트를 하고 있다.

조각사의 퀘스트가 어쩌면 흑기사보다 짧을지도 모른다는 행운을 바랄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써는 크게 불리했다.

"으으음!"

남이 잘될 때의 속 쓰림과 배 아픔을 참으면서 정령왕의 조각품을 만들었다.

"이럴 때 먹을 수 있는 속 쓰림 약을 개발한다면 그 회사는 떼돈을 벌 거야."

늦기 전에 케이베른에게 가야 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시간이 넉넉한 상황은 아니다.

그나마 절반 정도는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지만, 역으로 거기에 맞춰서 나머지 부분을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정령의 돌은 조각칼을 댈 때마다 불길이 크게 피어올라서 작업을 하는 환경도 나쁘다.

생명력이 감소하는 것이야 어쩔수 없다고 치더라도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았다.

정말 불덩어리를 다루는 것처럼 어려움을 참아 가면서 조각품을 만들어야 해서 다소 난이도가 있었다.

서두를수록 작품을 망가뜨릴 수 있기에 더욱 꼼꼼하게 집중력을 발휘했다.

"아무튼 나중에 레벨을 올려서 도마뱀 녀석들을 몽땅 다 죽여 버려야 하는데......"

마법의 대륙에서는 드래곤도 사냥했었다.

언젠가 될지는 몰라도 차후를 기약하는 위드였다.

띠링!

-만드신 조각품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벨소스 라 데우스 3세에게 바치는 후배의 조각품."

위드는 정령왕의 조각품을 완성했다.

조각품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마음대로였지만 아부는 필수!

-벨소스 라 데우스 3세에게 바치는 후배의 조각품이 맞습니까?

"불의 대제이며 정령왕이신 분의 작품을 조각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맞다!"

위드는 후련하게 외쳤다.

케이베른의 퀘스트 제한일까지 이제 고작 엿새 남겨 놓고 완성이었다.


『 대작! 벨소스 라 데우스 3세에게 바치는 후배의 조각품을 완성하셨습니다.

벨소스 왕은 조각품을 만들면서 외롭게 살아갔다. 그의 조각품에 대

해서는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예술가들의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벨소스 왕이 남긴 미완의 작품을, 최근 혜성처럼 떠올라 대륙의 조각

계를 밝히고 있는 거장 조각사 위드가 완성시켰다. 조각사 위드는 아

르펜 왕국의 존엄한 국왕의 신분이기도 하다.

그의 조각품은 대륙에 항상 커다란 화제를 몰고 왔으며, 귀족들이 탐

내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 놀라운 작품이 알려진다면 벨소스 왕의 예술성에 대하여 다시 평

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리라.

예술적 가치 : 조각술 마스터 벨소스와, 그에 버금가는 조각사의 공동 작품
19,834.

특수 옵션 : 벨소스...상을 본 이들은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31% 증가한다.
대륙 전체에서 불의 정령들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이 3.2% 늘어납니다.
정령술사의 불의 정령 소환 스킬의 레벨이 일주일간 1단계 오릅니다.
더 많은 불의 정령들이 나타납니다.
조각상과 가까운 거리일수록 화염 마법의 위력이 커집니다.
전 스탯 24 상승.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대작의 숫자 : 15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손재주 스킬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명성이 1,953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21 상승하셨습니다.

-인내력이 7 상승하셨습니다.

-카리스마가 9 상승하셨습니다.

-투지가 3 상승하셨습니다.

-자연의 원초적인 힘을 조각하여, 자연과의 친화력이 37 오릅니다.

-불의 정령왕을 조각하셨습니다. 특별한 경험으로 인하여 불에 대한 저항력이 3.4% 오릅니다.

-대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3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위드 혼자서 만들어 낸 조각품은 아니라서 스탯을 다소 적게 얻었다.

그렇더라도 대작을 완성해 낸 것은 대단한 수확!

'피땀을 흘리며 죽을힘을 다해 조각을 한 보람이 있군. 이번 건 유난히 어려웠지. 매번 조각품을 만드릭가 만만치가 않아.'

화염을 몸 전체에 두르고 있는 벨소스 왕.

불길을 정확하면서도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해야 하기에 어려운 작품이었는데도 실수한 부분 없이 잘해냈다.

대부분의 조각품들은 빛과 주위의 풍경과 같이 훌륭하게 잘 어우러진다.

막 새벽의 아침에 큰 감동을 주기도 하고, 청명하고 맑은 하늘과 흰 구름 아래에서 멋들어진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신들의 정원은 넓은 땅에 건물들과 조각물들로 하늘과 대지 전체에 걸쳐서 웅장함을 자아내는 노가다의 정점에 달한 장대한 예술품이었다.

불의 정령왕은 불꽃처럼 스스로 빛을 발산하면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존재감과 느낌을 강하게 드러냈다.

위드는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꼈다.

'재료도 정말 좋았고, 제대로 얻어걸렸구나.'

동료들도 작품을 보며 감탄했다.

"역시 위드 님이니까 대작 정도는 그냥 만드시는구나."

"저는 원래 이렇게 멋진 작품이 나올 거란 걸 알고 있었어요."

"......."

어렵게 고생하여 창조해 낸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동료들!

위드는 입가에 억지 미소를 지었다.

불에 대한 저항력이 오르면서 사냥하기가 훨씬 편해졌다.

일반적으로 빙계 마법이 훨씬 까다로운 건 사실이었다. 몸이 굳어서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됨으로써 전투력을 상당히 많이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가장 자주 활용하는 것은 불과 관련된 경우가 많았고, 위험한 화염 마법도 많이 있었다.

게다가 불의 저항력이 100%가 되면 드래곤의 검, 레드 스타를 쓸 수 있다.

위드의 경우에는 지골라스에서 임벌의 마법진을 통해 이미 7%가 올랐고, 지금 다시 3.4%가 늘었다.

유명한 화염의 링 같은 액세서리를 착용하여 저항력을 더 높일 수도 있었다.

'목걸이나 팔찌까지도 구입한다면 최대 79% 정도까지도 늘릴 수 있겠어.'

불과 관련이 있는 종족으로 조각 변신술까지 쓴다면, 거기에 대장장이 스킬까지 적용된다면 레드 스타를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아이템은 가지고 있으면 쓸 수 있는 날이 다 온다니까. 버릴 물건이 하나도 없지.'

잡템까지 알뜰하게 챙겨 왔던 생활의 보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릴 때 사용하던 기저귀를 자식에게 물려줄 정도의 절약 정신!

조각 변신술로 몸을 바꾸는 종족에 따라 저항력은 달라지겠지만, 미리 준비할 시간만 있다면 활용할 수 있었다.

단지 검의 원래 주인인 드래곤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이 걸릴 뿐.

"역시 장물은 그런 점에서 곤란하기는 해."

위드 입장에서야 드래곤을 만난 것은 악룡 케이베른으로도 충분했기에 보통 때 사냥을 위해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적당히 중요한 순간에 한 번씩 활용하다가, 검의 이름값이 높아졌을 때 바가지를 듬뿍 씌워서 팔아 버리면 되는 일.

그때 석실의 온도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낮의 사막처럼 온도가 높아지더니, 이내 사방에 불길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황금 스콜피온의 조각상도 눈을 뜨고 있었다.

"으으음......."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왠지 조짐이 좋진 않아 보여요."

위드와 동료들은 과거 진홍의날개 길드가 당했던 수난을 떠올렸다.

불의 대제 벨소스 왕의 저주를 받아서 탐험대가 전멸하고, 대륙이 저주를 받고 말았다.

"꿀꺽."

위드는 9시 뉴스에서 도시가스 요금이 오른다는 소식을 볼 때처럼 방심하지 않았다.

불길이 확 퍼지더니, 그 안에서 불의 정령들이 나와서 날아다녔다.

석실 안을 마구 휘젓고 돌아다니는 불의 정령들!

멋지지만 상당히 두려운 광경이기도 했다.

정령왕의 조각품이 생명을 부여하지도 않았는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땅에 방문한 인간들이여.......

벨소스 왕의 재림!

위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장 빨리 무릎을 꿇었다.

"존경해 마지않은 위대한 벨소스 대제시여,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지극한 영광이옵니다. 저는 대륙을 방랑하고 있는 후배 조각사입니다. 간악한 악룡 케이베른의 부탁으로 감히 이곳에 방문하여 벨소스 대제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속사포처럼 아부를 쏟아 내는 위드!

벨소스 왕의 고개가 위드와 동료들을 훑으며 지나갔다.

-너희는 나를 만날 자격이 있다. 탐욕에 눈이 멀지 않고... 나의 시험을 훌륭하게 통과하였다.

뜨끔!

위드만이 아니라, 일행 중에도 찔리는 구석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너희 가운데에는 나의 뒤를 이어서 영광의 길을 걷는 자도 있다.

벨소스 왕의 주변이 불로 뒤덮였다. 그리고 벨소스 왕이 그 불길을 타고 위드에게 걸어왔다.

-그대여, 고개를 들고 일어서라.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달은 사람은 다른 이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리라.

-정령왕 벨소스 대제의 인정을 받아 기품과 명예가 24씩 오릅니다.

위드의 머릿속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자기 뜻한 방식대로만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야 할 때는 시도 때도 없이, 틈만 나면 찾아왔다.

'이대로 더 있으면 점수를 딸 수 있을까? 모름지기 두 번은 사양을 해야 예의 바른 느낌이 나는데. 근데 조각사들끼리의 예법으로는 일어나도 될 것 같고, 하지만 지금 일어나서 바로 조각사로서 동등한 대우를 해 달라고 하면 그것도 이상할 거야.'

위드는 그냥 조금 더 고개를 숙이고 있기로 했다.

벨소스 대제는 상당히 무자비한 인물이다. 과거 인간이었을 때에도 그랬고, 정령왕이 되고 나서도 그의 비위를 거스른 진홍의날개 길드에 잔혹하게 보복을 했다.

상대가 무서울수록 자연스럽게 정중해지는 게 세상의 이치!

평소에는 목욕탕이 제집인 것처럼 시끄럽게 물장구치며 놀던 동네 초등학생 꼬마들도 몸에 문신이 잔뜩 그려진 아저씨들이 있으면 얌전히 노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니옵니다. 조각사의 길을 먼저 개척하신, 흠모하던 분을 만나다 보니 이렇게 뵙는 것이 저에게는 편합니다."

벨소스 왕에 대해서는 별로 사전 지식도 없었고 유적에 와서는 어떻게든 물건을 훔쳐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지만, 위드의 입에서는 속마음과 다른 말들이 술술 나왔다.

아부의 달인답게 감격에 겨운 듯 목소리 끝을 떨어 주는 세밀함까지!


8) 북부 영주들의 선택


벨소스 왕의 몸에서 불길이 마구 피어올랐다. 불의 정령들도 석실에서 미친 듯이 날아다녔다.

-보기 드문 훌륭한 인성을 가진 조각사 후배로구나.

위드의 눈이 정확했다.

벨소스 왕 역시 아부에는 약했던 것!

아닌 척하면서도 아부를 싫어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도 이제는 일어나도록 해라.

벨소스 왕이 위드의 팔을 잡고 일으켜 주었다.

-불에 데어 생명력이 489 감소합니다.

-불에 데어 생명력이 832 감소합니다.

-불에 데어 생명력이 1,309 감소합니다.

-불에 데어 생명력이 372 감소합니다.

-........

위드의 생명력이 마구 떨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영광이라는 듯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일어났다.

"폐하, 고맙사옵나이다!"

동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을 주민들과의 친밀도는 사냥이나 모험을 하다 보면 비교적 올리기가 쉬운 편이다.

하지만 어느 누가 이런 상황에서까지 친밀도를 염두에 두면서 행동할 수 있겠는가.

보통 강력하기 짝이 없는 몬스터를 만나면 몸이 굳어 버리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위드는 이때다 싶을 정도로 본능적으로 아부를 발동했다.

-이곳까지 와서 내가 생전에 완성하지 못했던 조각품을 훌륭한 솜씨로 마무리 지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정녕 저는 벨소스 대제께서 끊여 놓은 라면에 김치와 젓가락만... 아니, 형태와 비례미가 이미 갖춰진 조각품의 후반 작업만을 하였을 뿐입니다."

-겸손한 조각사여, 너는 자신의 실력을 너무 낮춰 보고 있구나.

"저의 조각술이 어찌 벨소스 대제께 비할 수나 있겠습니까. 요즘 베르사 대륙에서 제가 조각술로 굉장한 인정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벨소스 대제께서 만드신 조각품을 보면서 저절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나이다."

-앞으로 더 많이 발전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구나.

"대제께 가르침을 받고 싶을 뿐입니다."

위드는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면서 아부를 할 수 있었다.

-나의 시험을 통과하였으니 너희에게 한 가지씩의 선물을 주겠다. 가지고 싶은 것을 말하여라.

띠링!

-조각품을 완성하고 벨소스 유적의 숨겨진 모험을 완료하였습니다.
불의 정령왕 벨소스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불의 정령 소환술, 화염 계열의 상급 마법, 보물 중에서 택할 수 있습니다.

"으음......"

위드의 얼굴에 깊은 고뇌가 차올랐다.

다른 동료들도 무사히 던전의 마지막까지 오고 위드가 조각품까지 만들어 내서 모험을 끝낸 혜택을 다 같이 받았다.

이것저것 따질 이유가 없는 로뮤나가 제일 먼저 선택했다.

"폐하, 저는 화염 계열의 상급 마법을 배우고 싶어요."

-너의 실력에 맞추어 원하는 것을 받을 것이다.

로뮤나의 몸이 로브를 입고 있는 채로 불길에 뒤덮였다.

-화염 계열의 마법, 플레임 리버를 습득하셨습니다.

"꺄아!"

로뮤나가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화염의 강물을 흐르게 하여 적을 송두리째 몰살시킬 수 있는 광역 마법을 배운 것이다.

불의 상급 마법 중에는 '전소' 처럼 마법력이 허용하는 한 적에게 소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플레임 리버는 던전에서는 그다지 쓸모 있는 마법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평원처럼 확 트인 곳에서는 대량 살상을 할 수 있는 마법!

마법사들의 최대 장점이 파괴력과 위압감에 있는 만큼, 상급 마법을 입수한 것은 대단한 소득이었따.

"저희는 보물을 받고 싶습니다."

-이곳은 인간이었을 때 모아 놓은 물건들이 남아 있는 장소. 정령이 된 지금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각자 원하는 물품 중에서 하나씩 택하도록 하라.

위드를 뺀 다른 동료들은 미리 눈여겨봐 두었던 보물들을 택했다.

보석 등이 탐나기는 하였지만, 이곳에 모여 있는 대부분의 아이템들이 유니크, 혹은 레전드급!

한때나마 중앙 대륙으로 영역을 넓혔던 왕국의 보물들이 모여 있다.

현재로써 특별한 퀘스트나 이벤트를 완수하지 않고서는 비슷한 물품이나 옵션을 구할 수 없기에 원하는 것들은 장만했다.

화령의 경우에는 가장 예쁘게 반짝거리는 루비 귀걸이를 선택했지만.

"저는....."

위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갈등했다.

벨소스 대제에 대해서 그래도 많이 알고 있었기에 더 선택하기가 어려웠따.

검은 뿔피리, 이건 최고의 보물 중의 하나로 위드가 가지고 있는 트레세크의 뿔피리와도 비교가 불가능한 물건이었다.

'저걸 붊련 정령들이 나타나서 적들을 휩쓸어 버린다고 하던데.......'

전투에 동원되는 정령을 마나의 소비 없이 부를 수 있다.

진홍의날개 길드의 테로스가 탐을 내다가 저주를 받게 된 지옥의 불꽃 검도 엄청난 명검!

방패와 갑옷에 부딪치면 불길이 옮겨붙으면서 적을 태워 버린다고 한다.

방어가 불가능한 최고의 검 중의 하나였다.

게다가 몬스터들이 모여 있으면 그 불이 다른 적들에게도 연속으로 옮겨붙으며 대량 살상도 가능했다.

누구나 열심히 사냥을 하지만, 스킬이나 무기에 따라서 성과가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지옥의 불꽃 검을 가지고 있다면 위드의 부족한 레벨을 올리기가 훨씬 편해지리라.

대장장이 스킬이나 불의 저항력도 제법 있었으니 검을 갖기만 한다면 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제 선택은... 제가 바라는 건 벨소스 대제께서 가지고 계시던 보물이 아닙니다. 조각사로서 아가테의 수정을 받고 싶습니다. 크윽."

위드는 서러운 눈물이 흐르려고 하는 것을 참으면서 말했다.

결국 욕심이 악룡 케이베른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조각사여, 정 그대가 원한다면... 내가 모아 놓은 조각 재료들은 다른 이에게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조각 재료들을 모두 가지도록 하여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아가테의 수정외에도 쓸 만한 조각 재료들이 몇 가지 있긴 했지만, 크게 비싸거나 구하기 어려운 것들은 아니었다.

"기왕이면 비싼 걸로 선심을 쓸 것이지, 이놈의 팔자......"

위드는 힘 빠진 걸음걸이로 가서 아가테의 수정을 입수했다.

-불의 정령왕 벨소스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조각사여.

"예, 벨소스 선배."

위드의 말이 짧아졌다.

받을 것 받고 난 이후에는 삭막해지는 인간관계!

-그대가 만들어 놓은 조각품을 보고 있으니 나 역시 다시 예술에 대한 갈증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근데요?"

이제 유적을 나가는 것만 남았기에 위드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물론 벨소스 왕이 기분 나쁘게 여기고 물리적인 위협을 가할 조짐이 약간이라도 보이면 금세 굽실거릴 테지만.

-그대의 조각품을 같이 만들어 보고 싶다.

띠링!

-불의 정령왕 벨소스가 조각품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벨소스가 인간계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이며, 왕의 유적지
를 떠날 수 없습니다.

과거 조각 변신술을 가르쳐 주었던 다론과의 공동 작업처럼 조각품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

그때에는 위드의 수준이 많이 낮아서 일방적으로 배우는 입장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벨소스와 거의 동등한 입장에서 조각품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이라면 대형 조각품을 만들기도 무리이고, 아가테의 수정을 엮은 조각품 정도밖에 만들지 못하겠군'

그거라도 조각술 마스터가 같이 만든다면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가진 작품이 완성되리라.

위드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나중에 가서 소유권을 요구한다거나....."

-정령이 된 내게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아시다시피 이쪽 업계 사정이 그리 부유하지 않기 때문에 따로 수고료를 드리지는 못합니다."

-받을 생각도 없었다.

계약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확실히 해 두어야 되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


모라타로 돌아오는 서윤의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건축물, 조각품, 미술품, 공연, 요리!

만날 사람들이 없는 사냥터로만 피해 다니던 그녀가 북적거리는 도시에서 행복해했다.

그녀도 위드와 같이 모라타의 초창기 모습부터 지켜보았다.

위드가 지키고, 영주로서 키워 온 도시이기에 그녀도 많은 공헌을 했다.

모라타에 일찍 정착했고, 광전사로서 북부의 던전을 돌며 사냥하여 얻은 전리품을 이곳의 상점에 팔았다.

"죄송합니다만 이렇게 귀한 재료들은 아직 처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손님. 제값을 받을 수 있는 남쪽의 왕국으로 가 보시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이곳에서 팔겠어요. 돈은 적게 주셔도 괜찮아요."

-도시 모라타의 발전에 공헌하였습니다.
공헌도가 17 오릅니다.

그녀가 일찍부터 상점에 귀한 물건들을 처분하여 상업 발달에 도움을 줬다.

모라타에 온 고레벨 유저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 중에는 그녀가 구해 온 것도 제법 많았다.

공원과 다리가 새로 개설될 때에는 막대한 기부금도 냈다.

북브의 유민들이 몰려오며 주택이 모자랄 때에는 건축 비용을 대신 내주기도 하였다.

그녀의 공적치는 32,000 정도로. 대단히 높은 수준이었다.

'언젠가 그와 같이 이곳을 돌아다니고 싶어.'

위드와 함께 모라타를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빛의 탑의 영향 때문인지 건축물들은 대낮일 때뿐 아니라 야경까지 고려해서 지어졌다.

밤에 맑은 물이 흐르는 다리 위에서, 불빛을 환히 밝히고 있는 건축물들을 구경한다.

그리고 저 멀리 있는 빛의 탑을 바라보면 연인 사이의 설레는 분위기의 완성이었다.

다리에서 그림처럼 아름답게 서 있는 서윤!

'난 별로 매력이없나 봐.'

서윤은 남자들과 같이 걸어 다니는 여성 유저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만약에 그녀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들었으리라.

사냥을 떠나기 전에 얼음 미녀상을 보며 잘 풀리기를 기원하는 남성 유저는 너무나도 많았다.

얼음 미녀상 앞은 프레야 여신상 못지않게 인파가 들끓었다.

다른 조각품은 일절 안 보고 내내 얼음 미녀상만 보는 마니아층까지 두텁게 생겨났다.

'예쁜 건 금방 질리거나 하잖아. 위드 님이 날 싫어하면 안 되는데......'

서윤은 어릴 때부터 쭉 원래 예뻤기 때문에, 스스로의 미모가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잘 몰랐다.

학교에 가거나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그녀의 얼굴을 쳐다본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말을 붙여 보거나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없었다.

서윤은 자신이 그저 사람들의 구경거리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당연히 완전히 달랐다.

눈부신 미모 때문에 얼굴을 마주치는 순간 아무 생각도 안난다.

감히 무슨 말을 붙여 볼 수 있겠는가.

그저 꿈에서라도 다시 볼 수 있으면 행복할 뿐.

서윤은 상점으로 가서 거래를 하고, 분수대 근처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가까운 어디에서 공연이라도 열린 것인지,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서윤은 가볍게 눈을 감았다.


그녀가 한동안 오지 않던 사이에 신들의 정원이 완성되면서, 유저들은 심할 정도로 많이 늘어나 있었다.

밤에도 도시가 관광객들로 북적이면서 불야성을 이룰 정도였다.

초보자들이 모여 살던 판잣집도, 여전히 개미굴 같은 모습이지만 그동안 집주인이 많이 바뀌었다.

모라타에 일찍 정착했던 초보 유저들은 이제 도시에서 제법 멀리까지 가서 모험도 하고, 짭짤한 보상이 있는 퀘스트도 완료하였다.

도시가 발전됨에 따라서 주력 소비 계층을 이루는 중산층이 대거 등장하게 된 것이다.

"레벨 180대의 던전으로 데려가 주실 파티 찾습니다. 어디서든 제 몫은 할 수 있는 검사입니다."

"사제가 자리 구해요. 아직 사제 구하지 못하신 분? 제 레벨은 230대인데요, 안 졸고 치료 열심히 할게요!"

"풀죽신교 원정 갑니다. 레벨 제한은 210 이상. 최대 300명까지 서쪽으로 갑니다. 모이세요!"

유저들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소비 물품도 많아지고 고급화되었다.

그렇다고 중급 유저들에게 전망 좋은 산 중턱이나 강가에 아주 비싼 주택을 건축할 자금이 있는 건 아니었다.

집에 투자하기보다는 장비들을 계속 바꾸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집값의 안정은 유저들에게 대단히 민감한 부분이었다.

모라타에서는 누구나 판잣집으로 내 집 마련을 쉽게 했기에, 그다음 집도 낮은 가격이 유지되지 않으면 사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라타의 도시 경관을 해칠 정도의 허름한 집도 곤란했다.

건축가들조차 곤란해하던 이 주택문제는 새로운 직업 도예가의 등장으로 아주 쉽게 풀렸다.

도예가는 불과 흙을 다루며, 손재주가 훌륭하다. 그들은 사냥터가 아니라 강가에서 양질의 흙을 채취했다.

"빨리 작업장을 만들어야지!"

도예가들은 자신만의 작업장을 필요로 했다.

도시 밖에서는 불을 피워서 작업을 하기도 까다로웠고, 강가에는 몬스터들이 출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드야 몬스터가 나오면 이게 웬 간식거리냐 하고 잡아 버릴 테지만 막 직업을 도예가로 정한 유저들에게는 공포의 존재!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능력을 십분 활용해서 집을 지었다.

순수하게 흙을 뭉치고 굳혀서 지은 천연 황토 흙집!

모라타의 강가와 호숫가에는 좋은 진흙이 많이 나오기에 건축 재료로는 그만이었다.

도예가들이 흙으로 지은 집은 모라타의 집주인 유저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었다.

"이거 건축 비용이 얼마예요?"

"흙이랑 물만 있으면 되니까, 판잣집이랑 비슷한 돈밖에 안 들어요."

"아, 정말요? 완공까지는 며칠 정도 걸려요?"

"하루요."

"이야, 최고다! 저희 집도 지어 주시면 안 돼요? 수고비 따로 드릴게요."

중급 유저들의 적극적인 호응 속에서 도예가들은 황토 흙 집을 널리 보급했다.

초보 도예가에게는 처음부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황토 흙집의 장점이라면, 자연적인 재료로 지어져서 그만의 운치가 있다는 것과, 특히 조금 번거롭기는 해도 나무를 때서 방을 데우는 구들장의 존재가 유저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인기였다.

"캬아... 좋다."

"이쪽으로 와. 엄청 뜨끈뜨끈해."

추운 밤에도 뜨거운 아랫목에 등을 붙이고 있으면 정말 제대로 쉬는 기분이 들었다.

북부의 몬스터와 모험을 만끽할 수 있는 도시 모라타에서의 꿀맛 같은 휴식!

구들장에 누워 고구마, 생선을 구워 먹으면서 친구나 동료끼리 모여 있다 보면 탐험이나 사냥에 대한 이야기도 하며 친해질 수가 있었다.

꿀 풀죽이라도 따끈하게 한 잔 타 먹으면 더 바랄 게 없었다.

판잣집에서 성장한 유저들은 레벨이 오르면서 너도나도 황토 흙집으로 이사를 가는 붐이 일어났다.

판잣집이 언덕에 있다면, 강가에는 황토 단지가 조성이 되며 집값을 저렴하게 유지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흙집은 모라타의 도시 문화의 새로운 특색이 되기도 하였고, 도예가들이 일찍 자리를 잡는 계기도 되었다.

그들이 만든 그릇, 도자기나 황토 흙집과 절묘하게 잘 어울린다는 이유로 날개 돋친 듯 팔렸기 때문이다.

아르펜 왕국에서는 에르리얀들이 곳곳에 퍼져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광물이 평소보다 더 많이 채굴되었고, 곡물의 재배량이 늘었다.

커피와 멜론도 새로운 특산품으로 등록되었다.

무엇보다 커다란 변혁은, 성직 계열 직업의 대대적인 방문이었다.

대륙의 교단에서는 사제들과 성당 기사단을 대거 파견하여 신들의 정원에 와서 아르펜 국왕의 현명함을 칭찬하고 돌아갔다.

그것으로 국가 명성을 올리고 교단과의 유호적인 관계를 다질 수 있었다.

흰 사제복과, 신성한 은이 섞인 갑옷을 입고 있는 중앙 대륙의 유저들도 계속 찾아왔다.

사제와 성기사가 되어서 신들의 정원에 와 보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지고 있는 돈 얼마 있어?"

"3,400골드 정도 왜?"

"여기에 기부하고 가자 공헌도 올리기 좋대."

그들은 신들의 정원에 와서 자신들이 믿는 신을 위하여 상당한 액수를 기부하였다.

기부금이 모여 성당들이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건축가들이 바빠졌다.

한적하던 신들의 정원 주변에 여전히 공사가 계속되는 이유였다.

신들의 정원을 찾아온 사람들이 예술 회관과 다른 예술품도 관람하고 돌아가면서, 아르펜 왕국의 문화가 크게 팽창했다.

-아르펜 왁국의 문화가 널리 알려집니다.

상점에서 기념으로 예술품을 많이 구입해서 돌아가고, 그것들이 다른 도시와 왕국에서도 보이게 되면 문화 수치가 더 빨리 높아지게 된다.

국왕인 위드가 조각사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기사가 국왕이나 영주인 경우에는 병사들이 더 쉽게 충성을 바친다.

마찬가지로 명성이 높은 조각사가 국왕이기에 문화력의 확장 속도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타레스의 성당이 완성되었습니다. 아르펜 왕국의 종교적인 영향력이 오릅니다.

-아르펜 왕국의 국가 명성이 북부에서는 작은 산골 마을에까지 알려질 수준입니다.
중부와 동부에서도 상인들이 아르펜 왕국과 거래를 트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최고 품질의 농산물들을 수입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아르펜 왕국의 지역 정치력이 주변의 마을에 시시콜콜 참견할 수 있을 수준입니다.
영주들은 기뻐하지 않겠지만, 마을의 주민들은 오히려 아르펜 왕국의 참견을 반가워할 수 있습니다.
영주에 대한 충성심이 낮은 지역에 대한 반란 선동이 가능합니다.
내부 반란에 성공하면 그 지역은 아르펜 왕국에 귀속되겠지만, 그 대가로 국왕은은 명예를 잃어버리고 외교적인 관계가 악화될 것입니다.

위드는 땅을 넓히고 인구를 늘리기 위해 반란을 선동하려고 애쓰는 편이 아니었다.

모라타의 확장이 끝나더라도 북부 최고의 도시로 남게 되리라.

지금은 초보 대장장이, 재봉사라고 해도, 그들이 성장하고 나서 만들어 낸 물품들은 상인들의 교역망을 통해 퍼져 나가게 된다.

모험가들이 다른 곳의 던전을 돌아다니면서 캐낸 진귀한 물품들도 모이고, 전사들이 사냥으로 획득한 전리품까지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게시판에 모라타의 기적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초보 유저들은 일단 무조건 모라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아르펜 왕국의 국가 명성과 지역 정치력은 나날이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고, 북부의 다른 영주들은 그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사람이 온다!"

"야, 얼른 가서 도와줘!"

북부의 영주들은 모라타로 가는 유민들을 발견하면 집을 마련해 주고 상점도 내주었다.

길드원들이 잡초를 뽑고 돌을 골라서 농지를 넓혀 놓고 정착을 시켰다.

"영주님, 고맙습니다."

"뭘요. 어떤 불편함이라도 있으면 아무 때나 저에게 말씀하세요."

영지민들의 아이가 태어나면 다 함께 기뻐하기도 하였다.

주민이 3명, 4명씩이라도 늘어나다 보면 언젠가 그들의 마을도 커지지 않겠는가.

위드는 모라타가 완전히 열악하던 시기부터 발전을 시켰으니 그들도 가능하리라 믿었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얘들아, 가자."

하지만 영지민들의 선택은 야반도주!

모라타의 발전된 기술과 거대한 경제 규모, 놀라운 문화와 명성이 알려지면서 밤에 짐을 싸서 떠나 버렸다.

손수레에 그동안 퍼 준 물건들까지 가득 실어 떠나 버리는 잔인함!

북부에서 사냥과 모험을 하는 유저들이 많아지면서 영주들이 다스리는 마을의 방문자도 늘어났다. 그들이 희망이 될것 같았지만, 큰 이득은 없었다.

"이쪽 부근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냥하고 모라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빨리 서두르면 시간은 될 것 같아."

"밤에 빛의 탑 근처에서 저녁 약속 있는데... 어서 사냥하러 가자."

"응!"

던전과 사냥터를 개발해 놓아도 유저들은 모라타로 돌아가 버렸다.

마을의 인구가 힘겹게 100명씩 늘어 가고 있을 때, 모라타에서는 2만, 3만 명씩 마구 증가하였다.

"커흐흐흑!"

광산도 개발하고 농사도 지어 모라타와의 상업 거래를 통해서 미약하나마 사정이 나아지고 있었지만, 조각품과 지원시설을 따라잡기가 도저히 불가능했다.

"길드 자금을 탈탈 털어서 용병 길드를 마련해 놨으니 모험가들이 좋아할 거야. 하하핫!"

건물들을 세워 놓으면 무엇하겠는가.

모라타에는 말로만 듣던, 방송에서도 보기가 어렵던 위대한 건축물들이 마구 지어졌다.

그 탓에 북부 영주들의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도대체 모라타의 맥주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제2차 북부동맹군을 결성하여 전쟁을 선포할 수도 없었다.

모라타의 주민들과 유저들이 수십 배는 늘어나고 수준도 높아져서 범접하기도 어려워졌다.

다른 영주들의 반응도 부정적이었다.

"전쟁요? 아, 못 들은 걸로 할테니 저희는 빼 주세요."

"승산도 없는데 왜 싸워요. 전쟁 배상금도 안 받고, 오히려 영주 위드는 우리에게도 살길을 열어 주었는데요. 양심이 있어야지."

"모라타에 전쟁 선언하고 버틸 자신 있으세요?"

북부 영주들 중에서도 모라타와의 교역 관계가 커지면서 전쟁을 원하지 않는 이들이 늘어났다.

광산을 적극적으로 개발한 몇몇 대영주들은 그나마 수출로 먹고살고 있었던 것이다.

모라타와 전쟁이 시작되면 그 여파는 수출의 전면 중단으로 이어질 것이고, 아울러 위드를 따르는 북부 유저 전체와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공성전이 한 번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유저들에 의하여 버림받은 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냥 파티의 방문은 물론이고, 그나마 있던 유저들도 떠나 버릴 판이다.

중앙 대륙에서야 명문 길드들의 힘과 군사력이 강력하기에 일반 유저들을 억지로 찍어 누를 수 있지만 북부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모라타의 낮은 세율과 환상적인 환경으로 인하여, 사실상 솟아오르는 밝은 미래가 보장된 아르펜 왕국만을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역사에 남을 대공사를 통하여 신들의 정원까지 환상적으로 완공되고, 대거 인기 몰이를 해 버렸다.

영주의 노력이 부족하거나 척박한 지역에 위치하여 인구가 많지 않고 기술 수준이 낮으며 충성심이 낮은 마을들이, 드디어 들고일어났다.


『 아르망 마을의 얼마 안 되는 주민들이 아르펜 왕국에 영구히 종속되기를 원합니다.

모라타의 번성하는 문화가 주민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붙잡았습니다.

주민들은 그들의 영주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아르펜 왕국의 일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특산품 : 없음

인구 : 4,329.

매달 세금 수입 : 7,989골드. 』


『 에퀴녹 마을의 얼마 안 되는 주민들이 아르펜 왕국에 영구히 종속되기를 원합니다.

모라타의 경제력과 인구는 그들에게 너무나도 부러운 것입니다. 영주

의 노력이 나쁘지는 않지만, 에퀴녹 마을의 어린아이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아르펜 왕국에 속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특산품 : 없음

인구 : 5,828.

매달 세금 수입 : 4,124골드. 』


문화의 힘!

아르망, 에퀴녹, 요안나, 유셀린 마을 등 여덟 곳의 마을 주민이 아르펜 왕국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다.

자발적으로 위드의 통치를 받아들이고자 결정한 것이다.

영주가 존재하지 않는 매우 작은 마을도 있었지만, 유저들과 길드들이 다스리는 마을이 여섯 곳이나 됐다.

"아... 미치겠네. 이걸 어떻게 하지."

영주들은 골치 아픈 상황을 직면했다.

병사들을 동원하여 주민들을 강제로 진압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주민들의 충성도가 더 하락하고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결국 인구는 더 많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감당해야 된다.

덤으로 영주는 엄청난 악명까지 얻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모라타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는건 불가능한데......"

인구가 1만도 안 되는 작은 마을들이, 수백만 이상으로 커진 아르펜 왕국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벌써 상황이 크게 악화된 마을들 중에는 영주들이 초반에 어설프게 착취를 시도하면서 통치에 실패한 곳도 있었다.

무리한 군비 확장이나 몬스터의 습격으로 사태가 악화된 경우였다.

북부에 유저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에게도 분명히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초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지 않고, 인부들을 고용하여 광산 개발, 농지 개발 등에 힘쓰지도 않았다.

그저 모라타의 옆에 붙어 있으면 알아서 떡고물이 떨어질 거라 기대한 곳들은 오히려 시골 마을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주민들의 시위를 보며 영주들은 어려운 판단을 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길드장님, 지금이야 어떻게든 주민들을 억누를 수 있겠지만 문화적인 수준, 기술적인 역량, 군사력의 격차, 어느 모로 보아도 장기적안 관점에서 독자 생존은 힘들 것 같습니다."

"아르펜 왕국에 아예 종속되면 어떻게습니까?"

"영주로서 정치적인 권한은 잃어버리겠지만, 투자한 자금은 지킬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 기회도 얻을 수 있고, 유저들도 많아질 거라 생각됩니다."

위드가 다스린다면 그들의 마을도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르펜 왕국의 기술력과 인구, 교역, 국가 명성, 특산품 등이 공유된다면 수십 배나 유리한 환경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영주라는 자리는 지역에서 절대적인 것인데. 손에 쥐고 있다가 나중에 상황이 바뀌어서 발전이 되기라도 한다면....."

영주들은 자리를 내놓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자존심과 권력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그런데 길드에 속해 있는 상인들이 말했다.

"아르펜 왕국의 초창기에 결정해야 됩니다. 자칫 기회를 놓치면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아예 마을을 내놓을 기회 자체가 사라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길드장님, 모라타의 발전 속도를 보셨잖습니까. 바르고 성채는 또 어떻습니까? 우리 길드원의 평균 레벨보다 훨씬 높은 이들이 거기서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아르펜 왕국의 군대도 빠르게 커지고 있죠."

"우리가 왜 중앙 대륙에서 쫓겨났습니까. 솔직히 힘이 부족했기 때문 아닙니까? 위드가 북부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버틸 수야 있겠지만, 어쩌면 그에게 우리 마을은 존재감도 없을 겁니다."

"지금보다 더 늦어지면 다른 마을이 먼저 아르펜 왕국에 붙어 버릴 겁니다."

"나중에는 우리 마을이 소속되더라도 환영을 못 받습니다. 다른 마을과의 경제적인 격차도 커져 있을 것이고요. 북부의 유저들에 대해서도 크게 기대하면 안 됩니다. 그들은 모라타를 나오면 멀리 모험을 떠나고 말지 아르펜 왕국과 가까운 어중간한 거리에 있는 우리 마을에 집을 구해 살지는 않을 겁니다. 발전 가능성이 정말 약할 수밖에 없단 말입니다. 그렇다고 자체적으로 발전하기도 쉬운 것이 아니고요."

상인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아르펜 복속을 외치며 설득에 나섰다.

아르펜 왕국과의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그들은 교역과 세금에 있어서 큰 혜택을 받게 된다.

실제로 사람이 많은 광장과 교역소를 자주 출입하면ㅁ서 지켜보니, 아르펜 왕국과 경쟁한다는 것은 도저히 무리다.

북부의 영주들 여럿이 모여서 국가를 창설하고 교역권을 형성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것도 주도권 타툼이나 몇 가지 고려를 하다 보면 달성하기 쉬운 목표가 아니었다.

전사 계열의 유저들은 오히려 말이 없었다.

마을을 발전시키는 쪽에 대해서는 그들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고, 또 아르펜 왕국에 속하더라도 이득이 되면 되었지 잃을 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이미 직업 스킬이나 모험, 사냥 퀘스트를 받을 때에는 모라타로 가서 필요한 일들을 처리한다.

영주의 권력이 사라지게 되겠지만, 대신 마을이 발전할 수 있다면 그동안 투자한 자금이며 건물은 건질 수 있지 않겠는가. 길드는 그대로 아르펜 왕국에서 활동하면 된다.

전체의 뜻이 아르펜 왕국에 속하는 쪽으로 흐르다 보니 결국 영주도 아깝지만 지위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의 의견은 잘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민들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합시다."

발전도는 낮지만, 영토로만 놓고 보면 크고 작은 8개의 마을이 아르펜 왕국으로의 합류를 결정했다.


9) 조각 생명체들의 활약


위드는 악룡 케이베른의 레어로 걸어서 이동했다.

토르 왕국까지는 와삼이를 타고 왔지만 죽어도 혼자 죽기위하여 케이베른을 만나는 자리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아이고, 내 팔자야......"

얼마 전에 보물을 바치기 위한 운송단의 드워프들이 다녀오는 것을 선술집에서 맥주에 땅콩을 먹으며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직접 가야 되다니.

"진짜 신비할 정도로 고생을 찾아서 하는구나."

위드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인생이란 왜 이다지도 고난의 연속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럴 때 눈먼 돈이나 좀 떨어지면 기운이 날 텐데."

위드는 구시렁대면서 레어를 향하여 올라갔다.

아르펜 왕국의 영토가 넓어지고 소속된 마을이 많아졌다는 좋은 소식을 듣기는 했다.

사실 인구도 적고 교역품의 생산량도 약소한 마을이라서 당장은 국왕으로서 기뻐할 만한 대사건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벌써 통합된 마을은 유저들로 붐비고 있다고 한다.

아르펜 왕국에 속한 것만으로도 향후 발전 가능성을 보고 상인들이 투자를 하고 있었으며, 좋은 장소에 집도 지어지고 있었다.

위드를 따라서 다른 영주들도 판차촌을 형성해 놓았었는데 지금까지 치안만 악화시키고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없었다.

며칠 전부터 그 판자촌의 집들에도 유저들이 들어가는 변화가 생겼다.

농부들도 가서 땅을 개간하고, 광부들은 광산을 찾아서 헤매고 다닌다.

각 마을로 유지되고 있던 시기에는 그곳의 퀘스트나 사냥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마을을 떠나 버리면 쌓아 올린 친밀도나 공적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펜 왕국의 영토가 되고 난 이후부터는 전사들이 떼거지로 방문하여 몬스터 사냥을 하고 던전을 발굴했다.

이제부터는 아르펜 왕국의 공적치를 얻을 수 있으니까.

다른 마을들이 성장하는 저력에는 모라타가 있었기 때문에 당장의 이득은 없더라도 향후 잠재력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신들의 정원을 짓고 나서 바닥까지 드러냈던 왕국의 재정이 다시 차오르면서, 새로 받아들인 마을의 시설에 투자도 이루어졌다.

광장과 시장이 개설되고 필요한 건물들이 지어졌다.

아르펜 왕국의 수도인 모라타와 도로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개통되고 나면 마을 간의 교역이 확대되는 것은 물론이고 문화의 확장과 치안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유저들도 더 많이 찾아가게 되어 개발이 이루어지리라.

모라타는 급속도로 성장하였음에도 지금까지 긴 시간이 걸렸지만, 새로 왕국에 속하게 된 마을들은 초기에 걸리는 시간이 많이 단축될 것이다.

크르르.......

캬웅!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드래곤의 레어로 가는 길은 몬스터들 천지였다.

그들이 신경전이라도 펼치듯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위드라고 해도 위협을 느낄 만큼 레벨이 높은 몬스터들이 근처까지 와서 누런 침을 뚝뚝 흘렸다.

용아병들과 같이 악룡 케이베른의 영역으로 들어와서 레어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몬스터들로부터 공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 악룡의 부름을 받은 상태!

'드래곤 같은 거 진짜 신의 저주나 다름이 없지. 냄비에 넣어서 약간 삶은 다음에 소금을 뿌려서 먹어 버려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마침내 레어의 입구에 도착했다.

-드래곤 케이베른의 부하인 용아병의 지휘 권한을 상실합니다.

용아병들은 흩어져서 입구를 지키는 역할로 돌아갔다.

위드는 혼자서 큼지막한 레어로 들어갔다.

레어에는 진귀한 마법 서적들과, 명장이 만들어 낸 장비와 보물들이 쓰레기 더미처럼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토르 왕국의 드워프들이 매년 심혈을 기울여서 바친 공물들이 쌓이고 쌓인 것이다.

그리고 똬리를 틀고 누워 있는 블랙 드래곤!

-케이베른과 마주 보게 됨에 따라 공포 상태에 빠져듭니다.
모든 신체적인 능력이 저하됩니다.

위드는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편안히 쉬고 계셨는지요. 미천한 조각사 위드, 케이베른 님께서 원하셨던 조각품을 가지고 왔사옵니다."

구차하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장황하게 늘어놓지는 않았다.

친밀해져서는 안 되는 존재!

친밀도를 높여 봐야 그다지 의미가 없으니 물건만 빨리 주고 떠나고 싶을 뿐이었다.

악룡 케이베른의 시커먼 머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드래곤이 내뿜는 독한 입 냄새가 밀려들었다.

-조각품은?

"여기 있습니다."

위드는 배낭에서 '눈부신 케이베른 조각상' 을 꺼냈다.

아가테의 수정!

은하수처럼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결정체를 세밀하게 가공하여 만든 조각품이었다.

크고 작은 보석 같은 수정들을 정교하게 깎고 은실로 수천 개를 방울방울 엮어서 드래곤의 형상을 표현했다.

위드는 벨소스 왕과 같이 조각품을 만들던 기억이 잠시 떠올랐다.

벨소스 왕은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자마자 흥분했다.


-정말 창조적인 조각품이 되겠군.

"왕께서 보시기에도 괜찮습니까?"

-훌륭해. 하나로는 표현이 어려운 작은 수정들을 연결하여 조각품을 이루겠다니.


『 보석 조각품! 눈부신 케이베른 조각상

위대한 경지에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 놓고 있는 조각사, 그리고 전

설이 된 조각사가 함께 만든 조각품이다.

별빛을 담은 아가테의 수정으로, 이보다 더 영롱하며 신비로운 보물

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예술적 가치 : 12,843.

특수 옵션 : 지나친 아름다움으로 인한 불운, 도적 떼를 만나게 될 확률이 4배로 증가.
기품 +89.
매력 +145.
값을 따질 수 없음.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한 보석 조각품의 숫자 : 1 』


아가테의 수정이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표면을 세공했다.

위드와 벨소스 왕은 작은 수정을 깎아 내고 구슬 꿰기를 하여, 케이베른에게 바칠 조각품을 멋지게 완성해 낸 것이다.

"아......"

위드의 손에서 아가테의 수정으로 만든 조각품이 은은하게 빛을 냈다.

드래곤의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수정들 하나하나가 모여 완전한 조각품을 이루고 있었다.

약간의 햇빛이 조각품을 머리에서부터 훑고 지나가면 아가테의 수정들이 그 빛을 받아서 차례대로 빛났다.

정말 이보다 더 아름답거나 화려할 수는 없는 작품이다.

-놔두고 가라.

케이베른은 입을 크게 벌리더니 하품을 하고 눈을 감았다.

그래도 약간의 기대는 했는데 정말 아무 보상도 없이 뻔뻔하게 입을 다문 것이다.

띠링!


『 드래곤이 원하는 보물 완료

악룡 케이베른이 원하는 물건을 정해진 날짜 안에 구해 왔다.

조각품에 대한 흥미를 거둔 드래곤은 당분간 더 좋은 재료나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 한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달리 얻는 것이 없더라도 케이베른과 만나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자 영광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


퀘스트의 성공!

'이, 이런 썩을 드래곤.....'

위드는 웬만해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설움과 안타까움에 북받쳐서 눈가가 촉촉하게 젖고 있었다.

슬픈 영화를 봐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마구 흘러내리려고 했다.

"제 정성을 바,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케이베른 님."

위드는 인사를 하고 레어를 나왔다.


★★★★★★★★★★★★★★★★★★★★★


"아, 휴가 가고 싶다."

오늘은 오전 일찍 방송국에 출근하는 날이었다.

신혜민은 그녀가 진행하는 '베르사 대륙 이야기' 프로그램에서 유명인 7명을 데리고 1, 2부의 방송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대본도 미리 확인하고, 밀려 있던 서류 정리도 해야 되어서 할 일이 쌓여 있었다.

"이럴 땐 다 때려치우고 정말 모험이나 하고 싶다니까."

신혜민은 만약 사표를 썼을 때의 퇴직금이 얼마나 될지를 계산해 보고 나서 고개를 저었다.

1~2년 정도 외국 여행도 다녀오고 재충전을 위한 휴직을 하는 건 직장인의 꿈이지만, 현실에서 실행하기에는 항상 무리였다.


"오주완 씨, 오늘은 소개해 드릴 소식이 정말 많은데요, 밤에는 잘 주무셨어요? 눈 밑이 어두운 것이, 밤을 꼬박 새우신 것 같은데요."

"이런, 어제 베아스토 마을에 몬스터가 쳐들어왔는데 어느 여행자에 의해 격퇴되었다는 소문을 혜민 씨만 못 들으신 것 같네요."

"어머, 그런 일이 있었나요? 아마 시청자분들도 궁금해하지 않으실 거라고 여기고 넘어갈게요. 오늘도 중요한 소식을 전해 드려야죠."

신혜민과 오주완은 대본을 참고하며 방송을 진행해 나갔다.

"벌써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을 텐데요. 흑기사 바드레이가 열다섯 번째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정말 대단했죠. 바드레이가 키운 기사단과 보병대가 불리하던 전황을 멋지게 뒤집어 버리는 모습은요."

"오늘은 전달해 드려야 되는 사건들이 많아서 잠시 후에 중요한 부분의 영상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전사 파이톤도 대활약을 하고 있다면서요?"

"황야의 늑대라는 별명이 딱 어울릴 정도인데요, 어디에 이런 전사가 숨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침없이 대검을 휘두르는 모습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에 도전하는 유저들의 소식이 프로그램의 첫 부분이었다.

아직 마스터 퀘스트를 완수한 사람이 없기에, 누가 먼저 그 영광과 보상을 가져가게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었다.

그 외에 모험을 성공하거나 던전의 보물 발굴, 난이도가 높지 않더라도 보상이 후한 편이라서 많은 유저들이 도전할 만한 퀘스트도 소개를 해 주어야 한다.

뉴스 프로그램들은 각 방송국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알찬 내용들을 담고 있어야 했다.

최근 베르사 대륙이 혼란스러울수록 중요한 정보들을 유저들에게 전달하며 시청률을 올리는 것이다.

1부는 바드레이를 화제의 중심으로 진행하고 나서, 2부는 다른 사람의 모험에 대해서도 알렸다.


★★★★★★★★★★★★★★★★★★★★★


토르 왕국의 드워프 주민들이 맥주를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떠들었다.

"방송에서 그러는데 위드가 악룡 케이베른을 만나고도 무사했다는데?"

"정말?"

"응. 레어 부근에 있는 주민들이, 대단한 예술가가 케이베른을 만나고 나서 무사히 돌아갔다고 떠들고 있대."

"음, 그의 조각술 실력이 대단히 뛰어난 모양이야."

"커헉, 케이베른을 만났다고?"

드워프 유저들은 깜짝 놀랐다.

최근에 중앙 대륙의 유저들 사이에 위드에 대한 관심도는 다시 크게 늘어나 있었다.

바드레이에게 패배했을 때는 아무래도 결정타였다.

하지만 아르펜 왕국의 국왕 자리에 오르고 신들의 정원을 조성하여 엄청난 여파를 몰고 오기도 했다.

국왕으로서 영토를 넓히고 퀘스트도 치러 내면서 믿음을 되찾았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수 없었다.

마법의 대륙에서부터 위드를 지켜봤던 유저들은, 그리고 로열 로드에서의 팬들은 무언가를 더 제대로 터트릴 것만 같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위드가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강하거나 대단한 전력을 발휘했던 건 아니다.

잠잠하다가 크게 한 번씩 터트려 주며 흥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기대감을 주곤 했던 것이다.

"캬아! 위드가 드래곤을 만나고도 살아남다니....."

"전에 나왔던 용아병이 케이베른의 것이었던 모양이더라고."

"아, 정말 궁금하다. 그거 방송 일정 잡혔어?"

"아니, 아직 몰라."

"정말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진짜 용감하네."

위드도 드워프들이 떠들고 있는 아이언해머의 선술집에 앉아 있었다.

중급 이상의 대장장이에게 지급되는 공짜 맥주를 마실 수 있기에, 와삼이를 타고 가야 하는 장거리 비행에 앞서 잠시 들른 것이다.

'케이베른의 퀘스트를 성공한 것이 알려진 모양이로군.'

위드는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였다.

로열 로드의 여행자들은 대단히 많았지만, 랭커나 유명한 모험가들에게는 관심이 많아서 그들이 한 일은 금방 알려졌다.

드워프들은 대단한 사건이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짐나, 사실은 얻은 것도 없이 끝난 퀘스트!

'아무튼 이제 홀가분해질 수 있겠군.'

현재 위드의 조각술 숙련도는 고급 9레벨 49.2%

대략 50% 정도의 숙련도만 더 올리면 스킬을 완벽하게 마스터하게 된다.

'크으으, 조각술을 올리기 위한 투자가 너무 컸어.'

아르펜 왕국의 국력까지 기울였다.

직업의 완전한 마스터의 단계에 오르기 위해서 막대한 노력을 필요로 한 것.

다행히 성공하고 나름 신들의 정원이라는 결과물을 얻었기에 한숨 돌릴 수 있는 처지였다.

'퀘스트의 나머지를 진행하면서 얻는 조각술 숙련도도 있을 테고, 모자라면 더 만들면 되겠지.'

위드에게는 조각술의 다섯 가지 비기까지 있으니 사실상 퀘스트와 모험에 본격적으로 사용한다면 그때부터가 진짜라고 할 수 있다.

드래곤의 검 레드 스타도, 위험 요소는 컸지만 다룰 수 있음으로 인해서 발휘할 수 있는 전투력 자체도 종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일대일의 전투보다는 큰 세력전에 더 유리하게 발휘될 수 있는 능력!

"망할 놈 뻔뻔한 놈 껍질을 몽땅 벗겨서 구워 먹어야 되는데."

위드는 토르 왕국을 떠나기 전에 케이베른에 대한 욕을 실컷 했다.


★★★★★★★★★★★★★★★★★★★★★


"아시겠지만 케이베른의 퀘스트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퀘스트를 마치고 나서 위드는 페일을 포함한 다른 동료들과 다시 만났다.

일행은 혹시라도 무언가 보상으로 받은 것이 없을지 그래도 기대하고 있었지만, 위드의 표정을 보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숨김없이 아쉽고, 억울하며, 케이베른에 대한 얄미움이 가득 찬 표정!

'웃을 때도 무언가 이상했는데......'

'볼이 부푸니까 진짜 인상 안 좋다.'

그럼에도 벨소스 왕의 유적에서 다들 하나씩을 챙기기도 해서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위드만 아가테의 수정까지 몽땅 강탈당했으니 피해가 컸다.

화령이 다정하게 물었다.

"그럼 위드 님은 이제 뭘 하실 거예요?"

"저는 다시 직업 마스터 퀘스트를 진행해야죠. 하르셀로 갈 겁니다."

빙룡, 와이번, 금인이, 누렁이, 불사조, 황금새, 은새 외에도 지골라스에서 얻은 조각 생명체들을 총동원하고,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까지 쓸 생각이었다.

위드는 전투에 대해 모르는 순수한 조각사가 아니다.

갑옷도 새로 제작했고, 광휘의 검술을 비롯한 검술의 비기의 스킬 숙련도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높여 놓았다.

게다가 조각품에 생명 부여도 상당히 일찍 터득한 직업의 비기였다.

조각 생명체들이 이제 나이도 먹으며 강해지기도 해서, 나머지 퀘스트는 오히려 지금보다 쉬울 수도 있따.

라체부르그를 찾아내는 탐험에, 오크와 엘프 등과 엮이지만 않는다면.

화령이 대뜸 말했다.

"저도 같이 갈게요."

위드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페일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끼리 벌써 이야기를 다 끝내 놨습니다. 위드 님의 퀘스트에 계속 끼어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돕겠다고요."

위드가 헤르메스 길드에 의해 박해를 받고 또 고생을 하는 부분을, 동료로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조각술 마스터를 도와서 같이해 주기로 한 것이다.

동료들의 끈끈한 정!

위드는 평소에 동료들에게 잘 익힌 고기 한 점 덜 구워 줬던 게 미안했다.

"여러분, 이렇게 절 감동을......"

수르카가 귀엽게 웃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나중에 우리도 직업 마스터 퀘스트를 하게 될 테고, 그때 위드 님도 도와주시면 되니까요!"

"마스터 퀘스트요?"

위드는 갑자기 사양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도 복잡하고 어려웠는데 동료들의 직업 퀘스트까지 다 해야 하다니!

권사에 궁수, 레인저, 댄서, 바드, 마법사, 성직자, 낚시꾼까지 있다.

"아무래도 번거로울 것 같으니 저 혼자 하르셀로 가는 편이......."

"먼 거리니까 바로 출발해야 되겠죠? 와삼아, 이리 온!"

화령이 부르니까 냉큼 바닥에 배를 깔고 눕는 와삼이!

항상 양념된 말고기를 간식거리로 주거나 해서 위드 못지않게 이들 일행이라면 아무나 잘 따르는 편이었다.

"와일아!"

"와둘아!"

이어서 내려앉은 와이번들에 동료들이 계속 올라탔다.

공중에는 빙룡과 불사조도 대기하고 있었으며, 빛의 날개를 펼친 누렁이의 등에는 금인이까지 타고 있었다.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했던 생명체들은 조금 더 일찍 출발하여 하르셀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


슬레이언 부족!

험준한 높은 산들이 겹겹이 자리 잡고 있는 하르셀 산악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전사 부족.

이들을 해치우고 나면 조각 생명체 종족을 구출할 수 있다.

위드는 마음이 급했다.

"불쌍한 녀석들, 고생을 많이 하고 있을 텐데,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어서 구해 줘야지."

아르펜 왕국에 먼저 데려온 에르리얀들로 인하여 수확량등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5미터짜리 딸기에, 8미터짜리 수박!

꿀을 바른 것처럼 당도가 높고 크기도 커서 화젯거리였다.

지역 명성을 늘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어, 장기적으로 특산품으로 등록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여러 마을을 받아들이면서 확보한 토지에 농사를 짓는다면 그 수익률이 상당히 높을 것이다.

"아르닌이라고 했지? 기다리고 있어라. 제대로 부려 먹어 줘야겠어."

슬레이언 부족에 의하여 갇혀 있는 아르닌 종족의 더 큰위기!

위드는 하르셀 산악 지역에 도착하여 간단한 계획을 짰다.

"외곽에서부터 천천히 치고 올라가는 방식을 취해야겠습니다."

산악 지역 전체가 놈들의 소굴이라면 이를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기로 한 것이다.

제피가 얼굴을 찡그리며 우려를 담아 말했다.

"너무 단순한 계획이 아닐까요?"

"계획은 단순할수록 좋은 거니까 괜찮아."

"......."

슬레이언 부족이 대단한 전사들로 알려져 있기는 했다.

그러나 사실 빙룡이나 불사조의 공격력, 거기에 다른 조각 생명체들의 능력까지 감안한다면 산에서 싸운다는 불리함 정도는 그리 문제 될 게 없다.

오히려 놈들의 본거지로 잠입하는 게 불가능했다.

9개의 커다란 머리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킹 히드라, 멀리서도 명확히 보이는 불사조, 불의 거인 등!

전투력은 강해도 은밀하게 움직이는 쪽과는 도무지 거리가 멀었다.

"조각 생명체들을 데리고 싸우는 퀘스트라면, 제대로 한바탕해 줘야지. 몽땅 구해서 부려 먹어 주겠어."

위드는 지금까지 키워 온 조각 생명체들을 믿었다.

사실상 조각 생명체들의 전력은 1마리 1마리가 보스급 몬스터의 수준이었다.

그들을 조합하여 전투를 펼친다면 놀라운 전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주인,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불렀는가."

용맹하기 짝이 없는 두 부하도 나왔다.

위드는 그들을 다스리는 주인답게 폼을 잡으며 말했다.

"너희, 내가 반지랑 검 만들어 준 거 잊지 않았지?"

"......."

토리도의 눈가가 찌푸려졌고, 해골인 반 호크의 턱이 달그락거렸다.

최소한 구백아흔아홉 번은 다시 들었던 소리!

"착용해 보니까 어때, 좋아?"

"........"

"대답 안 하면 도로 가져간다."

"조, 좋다."

"훌륭하다."

"반지랑 검 만들어 줬으니까 밥값 확실히 해야 된다. 알았지?"

"알았다."


★★★★★★★★★★★★★★★★★★★★★


뿌우우우우우우!

위드는 힘차게 트레세크의 승리를 알리는 뿔피리를 불었다.

조각 생명체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전투 중에는 치료의 손길까지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

"가라."

그동안 조각 생명체들은 모라타를 지키고 바르고 성채 지역에서 몬스터 무리를 휩쓸면서, 전면에 잘 나서지 않았다.

와이번들만이 곧잘 이동 수단으로 쓰였을 뿐, 다른 조각 생명체들은 성장을 하도록 넉넉히 시간을 주었다.

"배에 살이 정말 포동포동 올라 있더군."

위드의 표현대로라면, 이제는 충분히 부려 먹을 수 있는 상태.

"콰아아아아아아!"

머리가 9개 달린 킹 히드라가 거대한 몸을 이끌고 하르셀 산악 지역을 올라갔다.

데스웜. 땅속에 사는 초거대 몬스터.

위드에게 지렁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데스웜의 몸은 200미터까지 커진다.

현재의 몸길이는 아직 95미터 정도지만, 땅속에서 튀어나와서 목표로 한 몬스터를 으스러뜨리거나 먹어 치우는 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입에 넣고 삼키는 순간 몬스터는 장렬히 사망!

지렁이는 그럴 때마다 좋다고 몸을 꿈틀거리는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불의 거인도 늠름하게 불의 검을 휘두르며 뛰쳐나갔다.

켈베로스, 기사 세빌도 있었다.

지골라스에서 탄생시킨 조각 생명체 47마리들은 전부 다른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엄청난 위압감!

빙룡, 와이번, 이무기, 불사조, 은새, 황금새는 지원을 위하여 공중에서 대기했다.

삐이이이익!

산에서 매우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니 수풀과 나무 사이에서 무언가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놈들이 있습니다."

시력이 좋은 페일이 수풀 사이에서 슬레이언 부족을 발견했다.

"약 300여 명이 화살과 창을 들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위드에게는 아직 그 정도까지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놈들이 전부입니까?"

"뒤쪽의 감춰진 동굴에서 계속 더 나오고 있고요, 조각 생명체들이 더 앞으로 가면 다소 위험할 수 있겠는데요. 지금 멈추게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위드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고작 이 정도의 적들에게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이곳에서, 어떻게 싸우는지 지켜보도록 하죠."

사자는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려서 강하게 키운다고 한다. 위드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밥값도 못할 정도로 약한 녀석이 있다면 일찍 추려 내는편이 낫습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부려 먹어야 하니 조각 생명체들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개개의 능력의 한계를 알아야 전술도 세울 수 있다.

슬레이언 부족은 집단으로 움직이며 용맹한 전사들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들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웬만한 보스급 몬스터 따위는, 일제히 덮쳐서 순식간에 사냥해 버린다.

그렇기에 위드도 조각 생명체들의 안전에 대해서 다소 걱정스럽기는 했다.

"이제 나오겠군요!"

조각 생명체들이 산을 절반 가까이 올라갔다. 그러자 갑자기 바위와 수풀, 나무 뒤에서 슬레이언 부족이 튀어나와서 공격을 가했다.

킹 히드라의 9개의 머리가 제각각 불을 토해 내며 전사들을 덮쳤다.

여성 하이 엘프의 조각 생명체, 위드가 엘틴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 엘프는 화살을 마구 쏘아 댔다.

여자 바바리안 전사 게르니카!

그녀는 왼손에는 도끼를, 오른손에는 철퇴를 들었다.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박력 있게 슬레이언 전사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여자 검사 반덱스.

그녀는 얇고 날카로운 검을 가지고 빠르게 움직이면서 전사들과 싸웠다.

아무래도 지골라스의 조각사들은 외로웠던 나머지 대체로 남자보다는 여성을 많이 조각했던 것이다.

아니면 대형 몬스터를 조각하여 강함에 대한 갈증을 풀거나!

얇고 긴 다리에, 우아한 공작새처럼 생긴 조각 생명체도 있었다.

수르카가 정말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에폴리티!

전투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뿐사뿐 걸어 다니다가 슬레이언의 전사가 가까이 오면 갑자기 날개를 활짝 펼쳤다.

췌래래래래랫!

날개에 숨겨 놓은 독을 방출하며 뛰어다녔다.

영악하고 재빨라서 생김새로는 전투력을 구분할 수 없었지만, 독 안개를 방출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몬스터였다.

독 안개에 닿으면 풀들은 금방 시들어서 죽어 버렸다.

위드와 일행이 멀리서 보고 있는 동안, 조각 생명체들은 대활약을 펼쳤다. 각자가 400대가 넘는 고레벨 생명체들인 만큼 기대했던 그대로의 모습들이었다.

커다란 불의 거인이 성큼성큼 걸어 다니면서 불의 검을 휘두르면 슬레이언의 전사들이 있던 곳이 불바다가 되었다.

압도적이라고 해야 마땅한 전투 능력!

"역시......"

위드는 흡족하게 웃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야. 앞으로 잘 부려 먹을 수 있겠어!"

개개인이 보스급 몬스터인 조각 생명체들이었다. 그들이 뭉쳐 있다 보니 각자의 특성에 맞는 전투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잘 조합한다면 웬만한 성이라도 부숴 버릴 수 있는 가공할 전력이었다.

공중 생명체들의 도움 없이 지골라스 출신의 조각 생명체들만으로도 산악 지역 초입을 멋지게 제압할 수 있었다.

"이제 탐색전은 끝났습니다. 충분하겠군요. 위로 올라가죠!"

위드는 일행과 같이 하르셀 산에 올랐다.


유병준은 모니터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방심을 해야지. 그 조각 생명체 군단이 강하기는 하다만... 슬레이언의 전사들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야."

이번의 위드의 모험은 방송국에서도 중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은 생방송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전투부터는 생중계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아마 시청자들은 날뛰는 조각 생명체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조각 생명체들의 전력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렇지만 하르셀 산악 지역의 중심부로 간다면 자칫 조각 생명체들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유병준의 다른 화면에서는 슬레이언 부족의 장로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보였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장로들과 전사들이 회합을 벌였다.

어찌 보면 조금 큰 파충류처럼 생겼지만, 그들이 하르셀 산악 지역의 지배자들이다.


ㅡ우리의 산을 넘어오는 자들이 나타났다.

ㅡ강한가?

ㅡ우리가 이길 수 있는 수준이다.

ㅡ나가서 싸우자.

ㅡ아니, 놈들을 더 깊이 끌어들이자.

ㅡ그러면.....

ㅡ크흐흐흣, 우리가 늘 그랬듯이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자.

ㅡ좋은 방법이다.


슬레이언 부족은 영악하게 머리를 쓸 줄 알았다.

이곳은 그들의 영역 산악 지역의 깊은 땅으로 끌어들이고 나서 진짜 전력을 내보내서 싸우는 것이다.

은밀하게 감춰져 있는 동굴들로 전사들이 계속 투입된다면 날아서 도주할 수 있는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전멸!

결국 로자임 왕국에 남아서 최후를 맞은 스핑크스의 경우를 보면, 비행이 가능한 생명체들도 그냥 싸우다가 죽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동안 투덕거리면서 미운 정이 잔뜩 든 빙룡과 누렁이, 와이번들까지 다 죽고 나면 위드에게는 부려 먹을 녀석이 없어지는셈이 된다.

"그거야말로 정말 재미있을 것 같군."

유병준은 흥미진진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


찍찍.

슬레이언 부족의 장로들이 회합을 가지고 있는 장소에 큼직막한 들쥐 1마리가 울면서 돌아다녔다.

"놈들을 더 끌어들여서....."

시골 쥐는 빵 부스러기라도 찾는지 바닥을 헤매 다녔지만 먹을 것이 보이지가 않았다.

"하르셀 산악 지역이 어떤 곳인지를 침입자에게 똑똑히 보여 주어야......"

찌직!

시골 쥐는 전사들의 발치 아래에 떨어져 있는 고기 조각을 발견해 냈다.


그러고는 벽의 틈새와 쌓여 있는 물건, 어두운 그림자 뒤로 계속 돌아다녔다.

네발로 재빠르게 뛰어다니는데도 은밀하여 소리가 나지 않았다.

"놈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야 한다."

드디어 고깃덩어리를 입에 넣는 데 성공!

시골 쥐는 땅을 파고 나타났던 구멍으로 조용히 다시 들어갔다.

그가 귀환해야 할 장소는 위드와 다른 조각 생명체들이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시골 쥐 역시 조각 생명체였던 것이다.

이름은 말 그대로 시골쥐!

별로 예쁜 구석은 없지만, 자세히 보면 툭 튀어나온 이빨이나 발톱이 그럭저럭 사랑스럽기도 했다.

지골라스의 탄광에서 일하던 조각사가 최후에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만들었던 조각품이다.

위드는 슬레이언 부족이 있는 장소에 시골쥐를 잠입시켜서 염탐을 하였던 것.

째재잭!

온몸이 시커멓게 칠해진 은새도 나뭇가지에 앉아서 엿들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위드는 속담을 참고하여 그들을 활용하고 있었다.


10) 슬레이언 부족의 함정


혼돈의 시기!

유니콘 사에서 내보내는 텔레비전 광고가 방송되기 시작했다.

"이게 갑자기 왜 나오는 거야?"

"우리 보라고 일부러 광고하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최근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중앙 대륙 도처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과거에는 길드끼리 벌이는 세력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몬스터와 엠비뉴 교단이 대거 가세했다.

-휘스론 마을이 몬스터에 의하여 초토화되었습니다. 그곳으로 가시려는 여행객 여러분은 주의해 주세요. 전사들도 레벨 320 이하는 가급적 방문하지 않기를 권합니다.

-세르지에 도시가 엠비뉴 교단에 공격받고 있어요. 구출하러 와 주실 수 있는 분 혹시 계신가요?

-프레디스의 상점에 도적 떼가 난입하여 싹 털어 갔습니다. 장비 장만하실 분은 인근의 롭스 성벽으로 가 보세요. 현재 행상인들이 와서 물건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게시판에도 도시가 망했다거나 성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올 지경.

평원이나 왕국의 도시들을 잇는 안전한 주요 도로에 전에는 못 보던 몬스터가 출현하기도 했다.

"진짜 요즘에는 너무 불안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네. 몬스터들 좀 물리치고 치안을 회복시켜 주면 안 되나?"

"다들 전쟁놀이하기 바쁜데 그럴 병력이 어디에 있겠어."

"에휴... 성문 밖에 나가기도 무섭네."

"이제 사냥하기도 힘들어졌어."

평원이나 산, 숲에서는 다른 몬스터들의 난입으로 바짝 경계를 해야 되었다.

왕국 전체가 내부적으로 혼란스럽거나, 엠비뉴 교단이 침공을 하면 전체적으로 흔들렸다.

몬스터들의 서식지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어서 유저들은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용병 의뢰들이 많이 들어오고, 대신에 임무를 완수했을 때의 보상은 줄어들었다.

"저희가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 죄송해요."

"어떻게 하죠? 약속했던 물품을 드려야 되는데 도적들에게 털려 버려서......"

주민들이 가난해지면서 의뢰의 내용도 단순해진 데다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 정말 해 먹기 힘드네."

"너무 어려워졌어."

"의뢰를 위주로 하다가는 정말 검 수리비도 안 나올 지경이야."

과거에는 도시가 몬스터에 휩쓸리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유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야만 되었다.

상황 자체가 많이 바뀌게 되었다고 봐야 한다.

상인들도 도적 떼의 출몰과 내전, 엠비뉴 교단으로 인하여 상권에 끔찍한 타격을 입었다.

"어이, 돈 좀 벌었어?"

"말도 마. 말먹이값도 대기 어려워 마차 수리비도 내야 되는데."

전쟁을 벌이는 왕국군과 길드에 물자를 납품하면 큰 교역의 이득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이미 각 세력의 전속 상인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독점 체제만 가속화되는 것을 손가락 빨며 구경만 해야 되는 입장!

일반 유저들과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는 혼란으로 인해서 갈수록 악화되다 보니 상인들의 불만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못 해 먹겠다, 진짜!"

"우리가 지금까지 낸 세금이 얼마인데 이런 식이야!"

상인들은 과도한 세금에 시달리면서도 성실하게 납부하면서 어렵게 장사를 해 왔다.

가끔 화가 나더라도, 상인으로서 무력이 약하다 보니 참고 넘어가야 하는 때가 많이 있는 편.

그런데 악재들이 연이어 터지다 보니 일반 상인들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들고일어났다.

"언제까지 참아야 되는 겁니까! 참으면 좀 나아질 희망이라도 보여야 할 맛이 나지, 이건 죽으라는 말밖에 안 돼요!"

"저는 상점 5개 문 닫았습니다. 밖이 위험하다 보니 사냥 하는 사람도 줄었어요. 다들 생활에 쪼들리다 보니 팔리는 물건의 질도 떨어지고 있고요."

"전 더러워서 때려치울 겁니다!"

중소 상인들의 회합에서는 영주와 길드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대륙의 혼란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직업이 상인이나 농부, 광부 등이었다.

그들은 일 자체가 하기 어려워지게 된 것.

다른 이들의 사정이 어떻든 간에 만족할 만한 영토를 확보하지 못한 명문 길드들은 계속해서 병력을 확충하고 전쟁을 벌였다.

중앙 대륙에서의 혼란은 몬스터들의 대거 등장으로 산골 마을까지도 퍼지고, 이제는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였다.

ㅡ악신을 신봉하는 엠비뉴의 광신도들을 심판대에 올려라.

여기서 대륙의 교단들은 엠비뷰 교단에 전격적으로 선전 포고를 했다.

성당 기사단과 비밀 수도원 소속의 몽크들이 움직였다.

엠비뉴 교단과 다른 교단들 사이의 전쟁까지 벌어지면서, 유저들은 베르사 대륙의 변화를 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


바드레이의 퀘스트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벤 왕국과 칼라모르 왕국에서 거두는 막대한 세금으로 군대를 양성하면서도, 다른 쪽으로는 음모를 꾸몄다.

"이런 좋은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헤르메스 길드의 제안을 거부할 수는 없지요. 받아들이겠습니다. 모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흑사자 길드는 멜버른 광산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길드의 전체적인 규모에 비하면 단 한 번의 패배일 뿐이지만, 대표인 칼리스를 비롯하여 최정예들의 몰살!

이것은 사실상 헤르메스 길드에 비하여 흑사자 길드가 보잘것없다는 인식을 퍼트리게 만들었다.

흑사자 길드에서 이탈하는 세력들이 생겨나고, 라이벌인 베덴 길드에서는 전력을 확충하여 총공세를 펼쳤다.

싸우기만 하면 이겨서 잃어버렸던 영토를 되찾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중소 길드와의 연합도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다.

사실 베덴 길드의 배경에는 헤르메스가 있었다.

그들에게 비밀 전력을 보내 주어서 흑사자 길드를 물리치고 톨렌 왕국을 장악하게 한 뒤, 이를 통째로 삼키겠다는 계산.

베덴 길드는 헤르메스 길드의 힘을 경험한 이상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였다.

톨렌 왕국을 바치는 대가로 제법 넓은 지역의 영주 자리를 보장받았는데, 그것은 흑사자 길드에 몰려서 해체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물이었다.


라페이는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 회의를 개최했다.

"2~3달이면 톨렌 왕국은 베덴 길드를 내세워서 어렵지 않게 정리될 것 같습니다."

"구태여 베덴 길드를 내세울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의 힘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요."

"중간에 다른 왕국이 있어서 거리상의 문제도 있고, 그 지역의 여러 사정들을 잘 알고 있는 베덴 길드가 귀찮은 여러 문제를 처리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나중에 혹시나 피곤하게 된다면......"

"그때는 베덴 길드를 쓸어버리면 되겠죠. 덧붙이자면, 베덴 길드의 핵심 고레벨 유저들에게는 별도의 포섭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껍데기만 남게 되겠군요."

"그보다도 라살 왕국의 점령 계획 문제인데....."

"그 작업도 막바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번 달 내로 공격 날짜가 잡힐 것으로 보입니다."

헤르메스 길드는 막강한 군대를 투입하여 속전속결로 라살 왕국을 끝장내는 계획을 세웠다.

그 뒤에는 곧바로 브리튼 연합 왕국을 침공하여 클라우드 길드까지 칠 작정이었다.


★★★★★★★★★★★★★★★★★★★★★


와삼이는 유린을 태우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경치 참 좋다. 와삼이 네 덕분에 이런 기분도 느끼네."

"까루룩. 캬캬캬캬."

칭찬에 약한 와이번이었다.

"너를 타고 만날 이렇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싶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밤새도록."

"......."

유린이의 말에 와삼이는 날개에 힘이 빠지려고 했다. 그렇잖아도 이미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탑승자가 1명 더 늘어나다니!

유린과 와삼이는 험한 산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위드의 부탁으로 하르셀 산악 지역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온 것이다.

"여기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한눈에 넓게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끼룩!"

와삼이는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동안 먹이를 사냥하며 레벨을 올린 만큼 상승 속도도 빨라져 있었다.

구름 근처까지 올라간 유린은 하르셀 산악 지역을 훤히 내려다보았다.

슬레이언 부족은 특별히 높고 험한 투브칼 봉우리에 요새를 짓고 살아가고 있었다.

성벽이 높거나 하진 않았지만 절벽과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서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었다.

"높은 산들 위주로 지형을 그려 달라고 했지."

유린은 상세한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


"음, 그렇군."

위드는 시골쥐와 은새로부터 슬레이언 부족이 벌일 전략을 그대로 입수했다.

"확실히 나쁜 전략은 아니야."

하르셀 산악 지역은 험한 지형으로 인해서 적을 깊숙이 끌어들여서 포위하여 일망타진하는 것이 유리하긴 했다.

슬레이언 전사들이 뚫어 놓은 동굴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었으니, 부족의 강점까지도 감안한 최선의 작전!

위드는 놈들을 크게 칭찬해 줬다.

"꽤 머리가 좋은 녀석들이군!"

페일은 큰 기대를 했다.

"그렇다면 어떤 전술로 받아치실 겁니까?"

위드의 용병술은 대륙에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일품이었다. 통솔력과 지휘 능력 자체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의 전투를 위해서는 트레세크의 뿔피리 외에 대륙의 지배자의 도장까지 가져왔다.

현재 위드 정도의 통솔력이라면 야만족 부대라도 조금만 훈련시키면 정예부대로 양성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위드라면 전투 자체로도 기대되지만, 그가 펼친 전술을 상상하니 더욱 짜릿했다.

"놈들이 제법 똑똑한 데다 여러모로 애를 쓰고 있으니......"

"쓰고 있으니까요?"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빠져 줘야죠."

"예에?"

페일은 설마 했다.

그렇지만 위드는 조각 생명체 군단을 이끌고 투브칼 산을 향하여 계속 진격했다.

적진으로 더욱 깊숙하게 들어가는 것.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슬레이언의 전사들은 조각 생명체들을 넓게 포위하고 지형과 공간을 활용하면서 싸웠다.

이렇기 때문에 하르셀 산악 지역 자체가 파티 사냥은 거의 불가능했다.

집단, 혹은 군대를 데려와서 슬레이언 부족과 싸워야 하는 장소!

조각 생명체들은 강하지만, 충원이 빠른 슬레이언 부족에 비하면 전체적인 전력은 약간 모자라다고 할 수 있었다.

지형상으로는 절대적으로 불리.

"킹 히드라, 오른쪽으로 가라. 임무는 적들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 게르니카, 나서지 말고 위치를 사수한 후에 동료들을 도와라."

위드의 명령에 따라 조각 생명체들이 진형을 바꾸었다.

투브칼 산이 있는 장소까지는 9개의 산을 넘어야 하는데, 적들이 숨겨진 동굴을 통하여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슬레이언의 전사들은 1마리를 집중해서 공격하는 성향이었다.

위험했던 생명체들이 뒤로 빠지고, 대형이고 생명력에 여유가 있는 이들이 전면에 나섰다.

조각 생명체들의 특성에 맞게 파티 사냥을 할 때처럼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플레임 리버!"

로뮤나가 새로 익힌 화염의 강 마법을 써서 적들을 공격했다.

불의 강에 휩쓸려 가는 적의 전사들!

"꺄아, 정말 세다!"

화끈한 광역 공격력에 기뻐하는 로뮤나를 볼 때마다, 축하의 썩은 미소를 짓는 위드!

동료들도 대활약을 펼치면서 계속 전진했다.

공중에서는 와이번, 빙룡, 불사조, 이무기가 지원하면서 적들을 격파했다.

"공격은 한 지점에 집중하고, 적들을 흩트려 놓은 후에 과감하게 싸워. 너 아까 그렇게 밥 많이 먹더니 행동이 왜 이렇게 느려!"

위드의 지휘 능력에, 조각 생명체들은 평소의 능력보다 약 35% 정도는 더 실력을 발휘했다.

거대 조각 생명체들을 활용하니 그 무지막지한 전력으로 일대를 초토화시킬 지경이었다.

화살을 쏘거나 마법을 쓸 줄 아는 생명체들은 안전한 가운데에 위치하여 위력을 발휘하였다.

무시무시한 화력이 집중되면서 연전연승!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페일과 로뮤나도 맹활약을 하고, 가까이 다가오는 적들은 수르카와 제피가 해치웠다.

"슬레이언 부족의 요새가 있는 장소까지는... 앞으로 산을 6개만 더 넘으면 되겠군요."

위드는 지도를 보면서 거리를 계산했다.

투브칼 산까지는 크고 험한 산을 9개나 넘어야 했다. 이미 한참을 왔지만,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었다.

"중간에 위험한 장소들이 있긴 한데......"

협곡과 같은 장소는 집중 공격을 받기가 딱 좋다.

보통은 와이번들로 정찰이 이루어지지만, 슬레이언의 전사들은 동굴을 통하여 은밀하게 이동하기 때문에 일찍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잠깐 순간에 포위당하여 공격을 받는다면 그거야말로 최악의 경우!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이리엔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제인 그녀는 포위당하여 공격받는 데에 꺼리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위급한 상황이 닥쳐와 누구를 치료할 틈도 없이 1명씩 죽어 나가는 꼴을 보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것.

"저한테도 생각이 있으니 조금만 더 계속 가죠."

위드는 잠깐씩 쉴 때는 요리를 하고, 부상을 입은 조각 생명체들의 몸에 붕대를 감아 주었다.

원래대로라면 프레야 교단의 공적치를 이용하여 알베론을 데려오려고 했지만, 전투 중에 이리엔의 치료를 받으며 버티기로 했다.

그녀의 실력이 알베론보다는 훨씬 못했지만, 킹 히드라처럼 거의 불사에 가까운 생명체를 전면에 앞세우면 되었다.

킹 히드라의 머리는 어지간하면 1개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동료 생명체들의 지원과 이리엔의 치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각 생명체들은 금세 사제인 이리엔과 친해졌다.

사제야말로 친밀도를 높이기에 정말 유리한 직업!

그리고 위드는 평소보다 오래 휴식 시간을 지내며 조각품을 깎았다.

평소에도 자주 하는 행동이라서 아무도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넓은 판자에 주변 산들의 형태를 조각하고 있었다.

몇 시간 후, 페일이 자리에 멈췄다.

"여기는 건너기에 좀 위험해 보입니다."

물이 흐르는 개울이 나왔다. 평소에는 무릎과 허리까지 차오를 정도로만 물이 흐르지만, 비라도 내리면 수심이 대책 없이 높아지고 급류로 변하는 그런 장소였다.

위드는 지도를 보고 위치를 확인했다.

"유린이 그려 준 지도에서 보면 적들이 공격하기 좋은 장소 중의 한 곳이군요. 투브칼 봉우리로 가려면 이 개울울 따라서 걸어야 합니다."

지형을 미리 알고 있다는 건 산악 지역에서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위험한 줄 알면서도 가야 되는 길이 있는 법, 투브칼 봉우리까지 가장 위험한 세 곳 정도를 꼽는다면 바로 이곳이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물길을 거스르면서 이동하여야 할뿐더러, 좌우의 숲에서 화살 등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페일과 로뮤나, 그리고 조각 생명체들이 대응을 하더라도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위드의 조각품에도 이 장소가 있었다.

로뮤나가 자신 없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길로 우회해서 가는 편이 안전하겠는데요?"

"그러면 산을 2개는 돌아가야 됩니다. 만만치 않은 등산도 해야 되고요. 이곳을 빨리 통과하는 편이 나을 것 같으니 여기서부터는 전투준비를 하고 조심해서 움직이죠."

위드는 생명력이 높은 조각 생명체들을 앞세우며 전진했다.

"절대 마음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페일 님이 먼저 경계를 해주세요. 로뮤나 님은 마법을 미리 완싱시켜 놓고 기다리셔야 될 것 같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물줄기가 흐르는 이곳에서는 갑자기 적들이 나타나거나 하지 않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마주치는 슬레이언의 전사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지금까지는 일반 전사들과 싸웠다면, 이제는 엘리트급 전사들까지 출현했다.

레벨 420이 넘는, 부족의 진정한 전사들!

슬레이언의 전사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고 맹공을 퍼부었다

조각 생명체들도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받은 후에 많이 성장해서, 여전히 적들을 압박하며 잘 싸우고 있었다.

생명체들의 생명력이 떨어지는 만큼 슬레이언의 전사들이 죽어 나갔다.

특히 불의 거인을 비롯한 몇 마리의 조각 생명체들은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불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파충류의 습성을 가진 슬레이언의 전사들은 공격을 상당히 기피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불안해요!"

이리엔이 걱정스러웠는지 다가와서 진지하게 말했다.

"여긴 완전히 적진이잖아요. 게다가 저쪽은 연결되어 있는 동굴을 통해서 어디서든 충원되어서 우릴 포위 공격할 수 있어요. 아무리 조각 생명체들이 강하더라도 너무 위험해요!"

위드가 조각 생명체들을 효과적으로 지휘하는 것만으로도 사냥 속도는 월등히 빨라졌다.

슬레이언의 전사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주기까지 하니 전투의 공적이 무섭게 쌓이고 있는 것.

보통의 경우에는 킹 히드라가 겁을 주고, 지렁이가 갑자기 땅을 뚫고 나오며 적들을 위협한다.

쉿쉿쉬쉬쉬쉬싯.

시골뱀은 독기를 뿜어내서 중독시키고, 마법과 화살 공격도 집중되었다.

이후로는 대형 생명체와 전사 부대가 돌격하여 정리하는 방식!

매우 효과적이고 강력하였지만,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슬레이언 부족이 총동원된다면 전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이리엔은 자신이 죽는 것도 물론 싫었지만, 일행이 어쩔수 없는 상황에 처해서 전부 사망하는 것은 결코 원치 않았다.

더군다나 위드가 아끼는 조각 생명체까지 다 잃어버린다면 그 손실은 돌이킬 수가 없다.

그래서 평소에 잘 나서지 않던 그녀지만 큰 결심을 하고 위드를 말리기 위해 입을 연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위드는 평소답지 않게 서둘렀다.

"여기까지 온 것도 적들이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리엔의 지적에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그러면 계획이......"

"우리도 놈들을 유인하고 있거든요."

위드는 유린이 그려 준 지형도를 보고 나서 고민을 했다.

'여긴 천혜의 요새야. 외곽에서부터 전투를 하면서 뚫는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방어 진형을 펼치거나, 놈들이 기습 공격 위주로 전환을 한다면......'

투브칼 봉우리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하르셀 산악 지역에서 계속 번식하는 슬레이언 부족과 싸워야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몇 차례 적들과 싸워 이기더라도, 적진에 가까이 갈수록 지형상 끊임없이 불리한 싸움만 거듭해야 된다.

그런 소모적인 전투를 하다 보면 보급이나 여러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은새와 시골쥐를 통하여 적들의 병력의 움직임까지 확인하며 한 번의 큰 전투를 펼치기로 했다.

"지금은 저를 믿어 주셔야 됩니다."

"성공 가능성은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놈들이 똑똑하다면 누워서 김밥 먹기 정도입니다."

위드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이리엔은 그를 믿기로 했다.

병원비 때문에, 웬만해서는 끔찍하게 몸을 아끼는 사람의 말이었으므로!

개울가 다음으로 마주친 지형상 위험한 지역은 바위 협곡이었다.

양옆이 높이가 2킬로도 더 되는 아찔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려 있다.

보고 있으면 그저 입이 떡 벌어지면서 돌아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하는 장소!

통과할 수 있는 길은 협곡의 중심으로 물이 흐르는 부분이었다.

제피가 주위를 돌아보더니 조금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여기서는 기습을 당하더라도 꼼짝도 못하겠는데요."

슬레이언의 전사는 좁은 동굴을 이용하기에 대부분 나타나기 전까지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협곡 중턱에 나 있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의 길이라도 빠르게 이동해야 되겠죠?"

페일이 화살을 이미 시위에 걸어 둔 채로 물었다.

왠지 이런 곳에는 적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

"아닙니다. 협곡의 아래로 갑니다."

"예? 거긴 앞뒤로만 뚫려 있고 빠져나갈 곳도 없습니다. 절벽처럼 가파른 협곡이 성벽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 집중 공격을 당할 텐데요?"

"바로 그걸 노리고 있는 거죠."

위드는 조각 생명체들과 같이 물길을 거스르는 쪽을 택했다.

좌우의 폭이 넓어서 조각 생명체들이 움직이기는 편했지만, 양쪽에 펼쳐진 협곡은 절망적인 높이였다.

'아마 이번에는 나오겠지. 여기야말로 가장 유리한 지형이니까.'

위드는 그런 생각으로 암벽 협곡에 들어섰다.


★★★★★★★★★★★★★★★★★★★★★


슬레이언 부족은 좌우 암벽 협곡의 동굴에 조용히 매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너무 똑똑하다."

"이 계획은 내가 세웠다."

"멍청한 인간 놈. 끄윽끄윽!"

장로와 전사들은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자신들의 현명함에 대한 깊은 고뇌!

'이런 곳에 있기에는 내가 너무 아까운데.'

'아, 신은 나에게 다 주셨구나! 근데 우리 엄마는 나보고 만날 멍청하다고 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위드와 일행, 조각 생명체들이 암벽 협곡의 중심부까지 오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놈들은 완벽한 함정에 빠졌다!"

"없애 버리자!"

슬레이언 부족 전사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절벽처럼 가파른 암벽 협곡이 그들의 피부색인 짙은 청색으로 뒤덮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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