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 - 마을사람들

3학년2반 | 2022.02.07 08:16:20 댓글: 0 조회: 395 추천: 0
분류엽기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6967
소설제목 : 마을 사람들

장르 :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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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1


20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 날은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는데, 급한 일이 있어서 지방으로 내

려가야 했다. 비가 너무 쏟아져서 버스를 타고갈까 했으나 짐이 많아서 내가 직접 운전하기

로 했다. 와이퍼는 쉴새없이 움직였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하늘에 구멍이 났나? 너무 쏟아지는군.”


운전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잠시 시동을 끄고 의자

를 뒤로 뺐다. 잠깐 눈이 부치면서 쉬려고 했던 것이다.

비가 차를 때리면서 자장가를 들려줘서인가 이상하게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30분정도 잤을까? 자장가가 더욱 시끄러워져서 잠에서 깼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괜히 차를 끌고 와서.”


그때는 핸드폰도 없어서 다른 사람들과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있었다해도 비 때문

에 통화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난 차를 끌고 온 것을 후회했다. 버스를 탔더라면 편히

잠이나 자면서 갔을텐데 말이다. 그때는 미처 버스에도 짐싣는 곳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밖을 보면 답답하기만 했다. 와이퍼를 켜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

지였다. 그렇다고 계속 고속도로에 차를 세워놓을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지방에 가는 것이

너무 중요하고 급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제발 그쳐라. 망할놈에 하늘아. 왜 하필 오늘 쏟아지는거야. 제발 그쳐라.”


난 한탄을 하는 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비가 뚝 그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2


고속도로 한 복판에 경찰들이 줄지어있다. 전날 비가 많이 내려서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났

었다. 교통사고 피해자들은 죽거나 다쳤다. 그런데 실종된 한 사람이 있었다. 경찰들은 그

것이 한 사람인지 처음에는 몰랐지만 번호판을 통해 실종자가 혼자였다는 것을 알았다.

경찰이 실종자의 차를 발견했을때는 와이퍼가 움직이고 있었고 차안에는 실종자의 짐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의자는 끝까지 내려간 상태였고 음악 테이프가 끝까지 돌려진 채

그대로 꽂혀있었다. 그것말고는 이상한 점이 아예 없었

다. 수많은 경찰들이 투입되어 실종자를 찾으려고 했지만 갈피도 못 잡고 수사가 끝났다.

결국 실종자는 사망처리되었고 20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3


아무래도 오늘 밤은 이 고속도로에서 지내야 할 것 같다. 몇 안되는 음악테이프를 하나 골

라서 넣고 재생을 눌렀다. 조용한 잠을 청하기에는 아닌 음악이었지만 외로운 밤을 혼자 지

내는 것에는 많이 위로가 되었다. 의자를 눕히고 잠을 청하려고 할때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빗소리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이 소리는 빗소리보다 더 묵직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귀기울였다.


-뚝뚝. 계세요? 뚝뚝. 안에 사람있나요? 뚝뚝.


빗소리 때문에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사람목소리였다. 난 창문을 내렸다.

그러자 비가 순식간에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사람의 형태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다시 올리지는 않았다. 고개를 내밀고 찾으려고 하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지나가는 길에 여기에 차가 있길래 와봤습니다.”

“그런데요? 하여튼 비가 많이 오니까 빨리 차안으로 들어오세요.”


난 비가 계속 차 안으로 쏟아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다급하게 말한 뒤 창문을 올렸다.

그 사람은 보조석쪽으로 가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안 젖은 곳은 없었

다.


“그쪽도 비가 많이와서 차를 잠시 세워놓고 있는가보죠?”


난 나와 상황이 비슷할거라고 생각했다.


“아뇨. 전 그냥 걸어가는 도중에..”

“고속도로에서 걷다니요?”

“아, 이 근처에 제가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 마을로 가려면 여기를 통과해야하거든요.”

“그래요? 그럼 오늘 하룻밤만 그곳에서 머물 수 있을까요?”

“물론 되죠. 그럼 어떻게?”

“차를 여기에 놓고 갈 수는 없으니까. 마을 얼마 안되죠?”

“요기 고개만 넘어가면 저희마을이 나옵니다. 집도 가깝고요.”


아무래도 차안보다 남의 집에서 자는게 더 편할 것 같았다.

난 차에 시동을 걸었다. 한번 꺼지더니 두 번째에서 시동이 제대로 걸렸다. 다시 생각해보

지만 정말 앞이 안 보였다. 보조석에 앉은 사람이 가끔 창문을 열고 방향을 가르쳐주지 않

았다면 어디 구덩이에 빠지던가 했을 것이다.

그 사람의 덕분인지는 몰라도 무사히 마을에 도착했다. 엑셀을 밟은 것이 얼마 안된거 같

데 금방 도착한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말처럼 정말 가까운 것 같다. 도착 후에도 비는 멈추

지 않았다. 정말 지겹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산 있으세요?”

“있긴한데, 전부 찢어버려가지고요.”


그 사람의 질문에 내가 대답했다. 원래 우산을 가져왔는데 비가 뚫은 것처럼 찢어버렸다.


“그래요? 그냥 뛰어갈까요? 집이 바로 요 앞이예요.”

“그러죠.”


난 간단하게 대답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 사람이 먼저 열고 나가자 나도 바로 나갔다.

비는 머리로 곧바로 떨어지는데 두피마사지받는 느낌이 났다. 그 사람은 굉장히 빨랐다.


‘왜 저리 빠른거야.’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불렀다.

“저기요. 좀 같이가요. 비 때문에 잘 안 보여요. 저기요.”


빗소리 때문에 못 들은 것 같아서 계속 불렀지만 그 사람은 빗속으로 사라졌다.

난 그 자리에 멈춰서 가만히 서있었다. 물은 속옷까지 적셨다.

정말 난처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할지는 학창시절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았고, 책

에도 나오지 않았다.

무작정 따라가는 것은 바보들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리도 모르는데 괜히 따라갔

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일단 차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안 따라가는 것을

눈치챘다면 이곳으로 올 것이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도록 그 사람은 오지 않았다.

아까부터 어두웠지만 지금은 더 어두워진 것 같았다.


“도대체 뭐야. 그 사람.”


밤이 깊어지니까 잠이 왔다. 자려고 하는데 누군가 차문을 두드렸다. 난 그 사람인가 해서

문을 열었다. 이젠 비가 차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어디갔다 오셨어요. 한참 기다렸잖아요. 그건 그렇고 왜 그렇게 혼자 가신거예요?”

“네?”


그 사람과 목소리가 다른 소리가 들렸다. 그 얼굴을 확인 했을때는 그 사람이 여자라는 것

을 알았다. 보기드믄 미인이었다.


“여기에 차가 있길래, 와봤어요. 괜찮으세요?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그 여자의 물음에 난 비가와 고속도로에서 쉬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 여기까지 온 것을 차근

차근 얘기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놀란 듯이 말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비가 많이 오니까 저희 집으로 가시죠.”


난 여자가 들고있던 우산을 같이 쓰고 여자의 집으로 갔다. 여자 혼자 살기에는 정말 아담

한 집이었다. 그래도 몇 명이 누워서 잘 수 있는 크기여서 좁다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차 한잔 드릴까요?”

“주면 고맙죠.”


여자는 따뜻한 홍차를 내놨다. 홍차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몸이 많이 추웠는지

쉽게 목구멍으로 넘겼다.


“정말 어떤 사람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됐나요?”

“네. 고속도로 차안에서는 도저히 혼자 자면 안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잘됐다 싶어 왔죠. 그런데 왜 그러세요?”

"사실은 이 마을은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거든요. 비오지 않거나 낮이면 이곳에 오지 못해요. 오직 비오는 밤에만 올 수 있죠. 그렇다고 쉽게 길을 찾아오지 못하는데 그 사람도 여기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군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잘.”

“이해가 안되는 것이 당연하죠. 저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처음?”

“네. 제가 여기 온 그 날도 오늘처럼 억수같이 비가 내리던 날이었어요. 그런데 성함이?”

“이민수요. 엄청 흔한 이름이죠?”

“흔하긴요. 오히려 정감이 가는 이름인데요. 제 이름은 은미예요. 정은미. 저도 민수씨처럼 차를 끌고 왔어요. 정말 급한 일이었죠. 그런데 너무도 비가 많이 오는거예요. 아직 운전이 초보라서 고속도로 가는것도 엄청 겁났었는데 비까지 오니까 못 가겠더라고요. 그래서 아무 민박집이나 얻어 자려고 다른길에 빠졌다가 이곳에 오게 됬어요.”


난 홍차를 끝까지 들이키면서 은미씨의 말을 들었다.


“더 드릴까요?”

“아뇨. 맛있게 잘 마셨습니다. 이 마을을 빠져나가려고 시도는 해보셨을 것 같은데.”

“해봤는데 똑같은 자리에만 멤돌았죠. 왜, 그거 있잖아요. 옛날에 도깨비에게 홀리면 그렇다고. 그것처럼 되더라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하죠? 평생 이곳에서 살 수도 없고. 지금 지방에는 저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부모님도 살아계시고 친구한테 연락도 못했는데..”

“진정하세요. 정말 어쩔수 없어요.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할 뿐이네요.”

“날이 밝는대로 여기 나가야겠어요.”

“소용없는 짓이예요. 실망만 더 커질뿐 일텐데..”

“아직 은미씨의 말을 못 믿겠어요. 내일 차를 타고 왔던 길을 가야겠어요.”

“차는 지금쯤 없을거예요.”

“무슨 말씀이죠?”

"제가 여기 처음 왔을때도 그랬어요. 분명 이 마을에 차를 타고 왔었는데, 다음 날 가보니 없어졌어요. 마을사람들 말이 이곳에는 사람만 들어올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차를 타고 왔어도 사람과 잠시 떨어지면 원래 그 자리로 돌아간다고요."

"그러면 지금 제 차는 아까 고속도로로 가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은미씨는 단호하게 말한뒤 우리는 오고간 대화가 거의 없었다.

결혼했느냐, 여기에 얼마나 살았느냐등의 대화였다. 결혼은 하지 않고, 정확히 3년동안 이

곳에 있었다고 말했다.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4


언제 잤는지 몰라도 눈을 떴을때는 은미씨는 없었다. 비도 그친 상태였다.

난 눈꼽을 떼고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냉기가 느껴졌다. 비포장인 길은 매우

축축해서 발을 디딜때마다 땅이 쑥 들어갔다. 검은신발이어서 다행이지 하얀신발이었다면

색깔이 바뀌었을 것이다.

난 차가 있는 쪽을 가봤지만 차는 없었다. 은미씨의 말이 맞는 것이다. 어제는 비가 많이

와서 마을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보니 민속촌같은 느낌이 들었다.

쥐죽은 듯 조용한 마을은 왠지 모르게 평온함을 느꼈다. 난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

다. 이곳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물론 대부분의 얘기를 은미씨에게 들었

지만 더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 사람들이 더 잘 알테니까.

마을에는 집이 20채정도 밖에 안되는거 같았다. 난 은미씨집에서 가장 가까운 집을 찾아갔

다. 문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계세요? 계시면 문좀 열어주세요."


문이 열리면서 한 노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누구슈?"

"이곳에 사시나요?"

"그럼 내가 왜 여기 살겠어?"

"제가 이곳에 대해 물어볼것이 있어서요. 들어가도 될까요?"

"아니, 안돼. 거기서 말해."


난 노인의 매몰찬 말에 황당했다.


"제가 어제 이 마을에 왔거든요. 어떻게 나가는 방법이 없을까요?"

"없어. 절대 없다구. 내가 40년동안 나가려고 해봤지만 절대 나갈수 없어. 어떤 귀신의 장난인지 몰라도... 하여튼 절대 없다는 것을 알아둬야해."


두 번째 확인까지 했지만 왠지 노인의 말은 설득력이 없었다. 말을 끝내자 바로 문닫는 노

인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나쁜 노친네 같으니."


비가 그렇게 쏟아지더니 오늘은 날이 매우 좋다. 구름 한점 없고 바람도 솔솔 불어왔다.

어디 나무 그늘에서 낮잠자기에는 딱 좋은 날씨였다.

다른 집을 가려고 길을 걷고 있는데 은미씨가 앞에서 오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그냥 사람들좀 만나서 얘기좀 해보려고요."

"아직 제 말을 믿지 않으셨군요."

"솔직히 믿지는 않았어요. 땅이 좀 굳으면 나가려고요."

"그래요. 한번 겪어봐야 제 말이 진실인줄 아실테니까요."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그렇게 은미씨와 말이 끝나고 다른 집들을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없었다.

오후쯤에 다시 은미씨의 집을 돌아갔는데 은미씨는 책을 읽고 있었다.


"오셨어요?"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말고는 아무도 없더군요."

"아마 산에 갔을거예요."

"비가 왔는데 무슨 산이요?"

"여기 사람들은 다른 것은 해결되지만 먹을 것은 해결이 안되거든요. 비오는날 산에 가면 먹을것들이 많이 자라있어요. 산이라서 고기같은 것은 먹기 힘들지만 버섯들이 많거든요. 나물들도 있고요. 아까 아침에 저도 산에 간거예요."

"아, 그렇군요. 만약에 은미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 어디서 살아야하죠?"

"아무 빈집에서 살면돼요. 그런데 저와 같이 사시지 않겠어요? 말동무도 될겸."


아마도 사람이 그리웠나보다. 옆집 노인같은 사람이라면 정상적인 대화가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이런곳에서 혼자사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녁은 오늘 아침에 산에서 따온 버섯으로 할건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엄청 고맙죠. 그런데 아까 무슨 책같은거 읽는거 같던데.."

"아, 이거요. 제가 책을 좋아하거든요."

"어디서 책을 구했어요? 책 구할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던데.."

"옆집할아버지께서 책을 많이 갖고 있어요. 어디서 그 많은 책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그럼 그 책 다 읽고 저좀 빌려주세요."


그날 은미씨가 해준 버섯요리는 맛있었다. 며칠동안은 땅이 마르지 않았다.

5


차가 없어서 걷기로 했다. 땅은 어느정도 단단해서 아침일찍 탈출을 시도했다.

주위에 물이 흐르는 곳도 없었는데도 안개가 뿌옇게 공중에 떠있었다. 안개를 해치고 내가

돌아왔던 길을 찾아갔다. 그러니까 차가 있었던 자리다.

활엽수들이 빼곡이 틀어박힌 숲속으로 들어가서 앞으로만 걸었다. 원래 숲길이나 산길은 사

람들이 많이 다녀야 자연스레 생기는 법인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길을 만드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앞으로만 가면 나올테지.


-끼익--꺄악-


까마귀 소리인지 나무들 위에서 소리가 나는 거 같았다. 소름이 돋았다.

쉬익-

소리에 뒤돌아보니 이상한것이 따라오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검은 형체만 비췄다.


"누구세요? 누구 있어요?"


그것은 아무말도 없이 쉬익-소리만 냈다. 난 기다려보기로 했다.

쉬익-쉬익-

소리는 빨라지면서 더 커졌다. 형체는 더 커지면서 안개를 뚫고 내게 날아왔다.


"뭐,뭐야. 으악."


난 도망쳤다. 내게 날라온 것은 길쭉하고 무성한 뿌리들이 돋아있는 나무뿌리들이었다.

쉬익-쉬익-

아마존의 아나콘다처럼 내 몸을 휘감고 뼈를 모두 부숴버릴것만 같았다.

난 그 뼈들이 내 살들을 짓누르고 있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뼈들이 내 몸들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빨리 뛰었다.

그러다 그만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급한 마음에 뒤돌아봤지만 나무뿌리흔적도 없었

다.


"내가 잘못 봤나? 분명 나무뿌리였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면서 말했다. 정신없이 뛰다보니 안개가 사라진것도 몰랐다

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분명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였다.

아마도 근처에 고속도로가 있는가 보다.

난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해 뛰었다. 마지막 나무를 넘자 고속도로가 눈앞에 보였다.

확실했다.


"미친년. 말이 되는 소리를 했어야지. 고속도로가 뻔히 눈앞에 보이는데.."


난 은미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에 미친년으로 몰아넣었다. 난 차가 쌩쌩 달리는 고속도

로로 뛰어갔다. 뒤로는 어두운 숲들이 울창하게 펄쳐져있었다.

우측에는 차가 들어갈만한 길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저쪽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봤다.

난 계속 뛰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을 했다.

'차는 어떻게 된거지? 그년이 거짓말을 했다면 차는 어디있는거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더니 현기증이 났다. 세상이 도는 것 같았다. 징이 울려퍼지는 소리때

문에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으.."


난 머리를 쥐어감싸고 다리를 굽혀 앉았다. 현기증이라는 것이 아지랑이처럼 금새 사라지는

것이니 다시 일어서서 걸었다. 징 울림은 사라졌지만 다시 들려야할 차소리가 들리지 않았

다. 내 주위에 감싼 나무들이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뭐야. 으악~"


나무들이 빙빙 돌더니, 암흑으로 바뀌었다.



6



눈을 세 번 깜박거렸는데 눈앞에는 은미씨가 보였다.


"아.."


아직 머리가 아파서 머리를 만지면서 일어났다.


"일어났어요? 제 말이 맞았죠?"

"분명 고속도로가 눈앞에 보였었는데."

"그냥 착시현상이예요. 여기 숲은 엄청난 미로로 연결되어 있어요."

"은미씨, 죄송해요."

"뭐가요?"

"믿지 않아서요."

"뭘요. 저도 처음에 그랬는걸요. 누가 이런걸 믿겠어요."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어리석은 짓은 하지말아야겠어요. 언젠가 지혜를 얻겠죠."

"잘 생각하셨어요."

"그런데 절 어디서 발견하셨어요? 숲 중간에 있었을텐데."

"집 앞에 쓰러져 있던걸요?"

"아."


난 이젠 모든 것을 믿기로했다. 지금 당장 말이 안된다고 해도 나중에는 말이 되는 것들로

연결될테니까.


"이 마을 이름은 뭔가요? 그래도 마을이라면 이름이 있을텐데."

"글쎄요. 아직 생각해본적 없네요. 옆집 할아버지한테 물어보세요."

"그 할아버지와는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더군요. 몰아세우기만 하고."

"처음봐서 그럴거예요. 그래도 이곳에는 나이가 가장 많으시니까 많은 도움 될거예요."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저와 은미씨처럼 이곳에 온 사람들인가요?"

"네. 그래서 누가 이 마을을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난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아직 머리가 아픈 기운이 남아서인지 쉽게 잠들었다.

아침이 되면 동네사람들과 친해져야겠다. 그래도 앞으로 힘이 되어줄 사람들으니까 빨리 친

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침이 밝자 밖으로 나가서 쉬원한 공기를 한껏 들여마셨다. 숲속인지라 공기는 맑았다.

애인이 선물해준 손목시계는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이다. 명품시계, 비싼시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거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시계는 아침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는 내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을 때 본 것이다.

아침 8시라면 지금쯤 해는 동쪽 끝에 걸려있어야 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정확히 내 머리 위. 그러니까 중간에 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알 길은 없었다.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마을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길을 걷다가 누군가를 만나게 됐다.

'여기 사시는 분이세요?'라고 말 할 필요는 없었다. 노인을 만났을때처럼 욕을 먹을 수도

있었다. 나보다 젊었으면 젊었지 더 늙어보이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이 마을에 새로 오신 분이시죠?"

"어떻게 아셨어요?"

"당연하잖아요."

"하하. 그렇군요."

"언제 오셨어요? 제가 원래 밖을 잘 나가지 않거든요."

"며칠됐어요. 지금은 은미씨네 집에 머물고 있고요."

"네? 은미씨네라뇨."

"저기 마을 입구쪽에 있는 집이요."

"네. 그럼 볼일 보세요."

"저기. 이제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은데 성함이라도?"

"청우라고해요. 나이는 25살. 그쪽은요?"

"이민수라고 해요. 나이는 28살인데. 편하게 말 놔도 될까요?"

"그러세요. 그럼.."

"잠깐. 청우라고 했나? 청우야. 하나 물어볼것이 있는데."

"뭔데요?"

"지금 몇시야?"

"8시 20분정도요."


청우는 자신이 차고 있는 손목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내 시계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상하다. 왜 해가 중간에 있는거지?"

"그건요. 아뇨. 저는 바빠서."



말을 뱉어놓고 급히 어딘가로 뛰어갔다. 왜 말을 해주지 않는것일까?

마을에 대해서는 설명할 것이 없었다. 입구는 두곳이 있었고, 4면이 모두 숲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만약에 불이라도 난다면 몰살되고 말 것이다. 불?


"불이라면 이곳을 모두 태워버릴테고. 잠깐."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혼자 중얼거렸다. 빨리 사람들을 만나서 이 얘기를 하고 싶

었다. 숲에 불을 지른다면 길이 생길 것 같았다.

난 가장 가까운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있으시면 문좀 열어주세요."


그러자 사람이 문을 열었는데 순간 조선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검은 갓에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하얀옷을 입어서 더더욱 그랬다.


"들어오세요."


그 사람이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그의 집 안에는 사극드라마에서만 볼수 있었던 모양

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정신이상을 보이는 사람일 것이다.

하긴 마을의 전체적인 모양이 시골이니 이럴수가 있겠다.


"어떻게 오셨나요?"


그래도 말은 차분하고 정감이 가는 것이 노인과는 딴판이었다.

난 지금까지 겪은 이야기와 함께 불의 대한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혀를 찼다.


"쯧쯧. 소용없는 짓이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아무리 귀신같은 것에 홀렸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들이 귀신에 홀렸다고 생각하세요?"

"그럼요?"

"귀신에 홀렸다면 우린 서로 보면서 대화도 못하고 그럴것입니다. 이건 저주예요."

"저주?"

"네. 이런일은 아무도 못해요. 신의 저주만이 이런일을 할수 있죠."

"신의 저주라.. 전 잘 모르겠군요. 이만 가봐야겠어요."

"저기요. 제 얘기를 잘 들어보세요. 신선한 피를 신에게 바치면.."


그 사람의 얘기가 끝나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사이비종교같았다. 저런곳에 빠져들면 언

젠가는 목숨을 잃게 될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왜 소용없는짓일까? 난 숲으로 가서 나뭇가지 몇 개를 주워왔다.

한곳에 모아놓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습기찬 나무라서 그런지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물기를 어느정도 마르게 한 다음에 불을 붙였다. 서서히 타들어가는 나뭇가지는 연기를

뿜어냈다. 나무가 갈라지면서 소리를 냈다. 연기 때문에 계속 바라볼수가 없었다.

뒤돌아보는 순간에도 나무갈라지는 소리는 계속 났다. 옛날 어렸을 때 모닥불에 고구마구워

먹을때도 이런 소리가 났다. 도시로 오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본다. 연기가 차츰 사라지는 것 같아도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쓸데없는 소리였어. 난 또 무슨 일 일어나는줄 알았지."


혼자 중얼거리면서 마을로 나갔다. 거기서 은미씨를 만났다. 왠지 이상한 표정이었다.


"여기서 만나네요. 저기에 사는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아요?"

"누구요?"

"지금 시대에 갓을 쓰고 수염까지 길려서."

"아, 옛날아저씨요?"

"옛날이라뇨?"

"복장같은 것이 옛날사람같다고 해서 옛날이라고 불려요. 실제이름은 뭔지 모르겠더군요."

"저에게 이상한 말을 했어요. 저주를 받았으니, 신선한 피를 뭐라고 하던데."

"그냥 신경쓰지 마세요."


불의 대한 얘기를 은미씨에게 했다. 그러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다급해했다.


"왜 그러세요?"

"그곳이 어디죠? 빨리 처리해야해요. 위험한데.. 빨리 앞장 서세요."

"왜 그러시는데요? 저기 숲근처인데.."

"빨리..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난 은미씨가 그렇게 초조해 하는 모습은 처음 봐서 당황스러웠다.

난 은미씨의 말대로 앞장서서 그곳으로 갔다. 멀리서 봤을때는 시커먼 나무들이 보였을뿐

아무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난 가까이 가서 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예요. 아무 이상 없는데요? 여기요. 여기."

"아니 자세히 보세요. 그런데 이거 태운지는 얼마나 됐죠?"

"태우자 마자 바로 은미씨 만나거예요. 한 10분 됐나?"

"그럼 됐어요. 여기서 이것좀 지켜보고 있으세요. 뭐좀 가져올게요."

"네 그러세요."


은미씨가 급하게 어딘가로 뛰어갔다. 난 구부려앉아서 나무를 자세히 살펴봤다.

아무래도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았다. 나무들을 건들면 부숴질테고, 갈라진 나무틈 사이에

서는 잔연기가 살며시 나오고 있었다.

2분정도 보고 있자니까 이상한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더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더 갖

다 대서 갈라진 틈사이에 꿈틀거리는 것들이 나오고 있었다.

실지렁이처럼 보였지만 더 길었다. 어떻게 그 사이에서 이렇게 긴 생물이 나오는지 궁금했

다. 아직까지는 신기할뿐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너무 가늘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입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생물은 내게 다가오더니 팔에 옮겨 붙었다. 입을 우물거리는 것 같아서 손으로 밀쳐내려

했는데 그 생물이 벌써 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팔목을 두 번 감더니 동목을 파고 들어갔다. 난 그것을 잡아댕기려고 했지만 늦었다. 거의

들어가서 보이지 않을정도다. 그 물체의 형태가 팔에 나타났다. 볼록튀어나온 것이 움직이

고 있었다.


"뭐야."


팔속을 휘젓고다니는 생물이 괴기한 느낌을 줬다. 어떻게 해야할지는 몰랐다.

은미씨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내 몸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볼록튀어나온

것을 계속 보니까 토할 것 같았다.

볼때는 아니었지만 생물이 내 뱃속까지 들어가서 장을 위를 기어다는 것 같았다.


"우욱.. 우욱.."


헛구역질이 나와 얼굴을 내밀고 있을 때 은미씨가 나한테 왔다. 손에는 작은 병을 들고 있

었다.


"민수씨 괜찮아요?"

"우욱.. 저 속에서 욱.."

"말 안해도 알아요. 잠깐만 참아봐요."


그러더니 은미씨는 가져온 병의 뚜껑을 열고 타고 잿더미가 된 나무에 뿌리기 시작했다.

액체는 푸른빛을 가진 투명색이었다. 액체가 나무에 닿자 연기를 내면서 나무가 녹았다.

이젠 병을 내게 줬다.


"마셔요. 빨리 마셔야 후유증이 없어요."


난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얼른 병을 받아들고 덜컥덜컥 마셨다. 잠깐동안 장이 쓰리더니

구역질이 사라졌다. 팔목을 보니 볼록튀어나온것도 들어가고 없었다.


"지금은 맛이 안 느껴 질거예요. 그런데 마음의 준비하고 계세요."

"네? 아무렇지도.."


내가 말을 끝내기전에 혀가 돌아가서 말을 하지 못했다. 혀가 녹는 느낌이었다. 녹아서

입전체에 퍼지는 것 같았다. 피비린내같기도 하고, 똥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또 다시 구역질이 났다. 씁쓸한 위액의 맛이 목젓에 닿고 나서 쏟아냈다.


"우욱.. 억..."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토를 해본적이 없었다. 주로 빨간액체였다. 액체 사이에 꿈틀거리는

것이 있었는데, 나중에 은미씨에 말을 들어보니 그것은 내 몸속으로 파고들어간 생물이었

다.


"도대체 이게 뭐죠?"


난 꿈틀거리는 생물에게 액체를 뿌리고 있는 은미씨에게 말했다.


"인육먹는 지렁이예요. 나무속에 살다가 뜨거워지면 밖으로 나오죠. 그래서 절대 나무를 태우면 안돼요. 이 지렁이가 조금만 더 민수씨 몸에 있었으면 모든 혈액이 빨려서 죽었을거예요. 제가 여기 살면서 그런 사람을 몇 명 봤거든요."

"그런게 있다니 놀랍군요."


느낌탓인지 몰라도 지금도 속이 거부룩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 같았다.


"집에 가서 좀 쉬어요."

"고마워요."


몸이 많이 피곤했는지 그날 밤은 깊은잠에 빠져들어서 해의 대해 묻는것도 잊버렸다.


7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은미씨는 사라졌다. 며칠동안 관찰한 결과였다.

오늘 아침도 해는 내 머리위에 떠있다. 궁금증이 도발해서 어쩔수 없이 옆집 노인네 집을

찾아갔다.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가는 무슨 욕을 얻어먹을지 모른다.

그래서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번 하고 문을 두드렸다.


"할아버지. 저 옆집에 사는 사람인데 여쭤볼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몇차례 문을 두드리면서 열리길 기다렸지만 문을 열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동네주변을 걸었는데 뒤뜰같은 곳에서 노인을 만났다.


"할아버지. 여기 계셨네요. 여쭤볼 것이."

"쉿! 조용해."


노인의 말에 난 입을 다물었다. 얼핏보니 뭘 찾는 것 같았다. 쇠같은걸로 만든 지팡이로 땅

을 계속 두드리더니 생긴 구멍에 손을 넣었다.


"음.. 걸렸다."


노인이 손을 빼면서 말했다. 손에는 미꾸라지만한 뱀이 들려있었다.


"왜 찾아왔다구?"

"할아버지 그건 뭐예요?"

"보면 몰라? 뱀이잖아. 뱀. 여기서는 고기먹기가 쉽지가 않지."

"땅속에서 뱀을 잡아요?"

"뭐 그게 이상하냐?"

"아니, 뭐 그냥. 그건 그렇고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


뱀잡는것에 잘 모르는 난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궁금증 해결하는것에 썼다.


"바빠."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제 얘기좀 들어주면 안돼요?"

"그렇게 궁금하면 밤에 우리집에 찾아와. 그 궁금한 것이 저 해에 대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구먼."


노인이 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8


밤이 되도록 은미씨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노인의 말대로 노인의 집을 가기로 했다.

해가 사라지자, 옆집으로 갔다. 노인이 한 말을 도저히 잊지 못하겠다.

내가 궁금한 것이 그것인데 그것의 대한 질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니. 약간 섬뜩했다.

그래도 그 말에 그냥 포기하는것도 한심해보였다. 노인의 집 앞에서 노인을 내가 온 것을

알리고 노인의 집으로 들어갔다. 은미씨네 집과는 다른게 별로 없었다.


"앉지."

"네, 고맙습니다."

"궁금한게 뭔데 그래? 해의 대해서만 아니면 돼."


노인이 다시 그 말을 언급했다.


"그건데요. 왜 해가 동쪽에서 뜨지 않고."

"그만!"

"왜 그러시죠? 도대체 왜 알려주시면 안되는데요?"

"그럼 이 마을의 비밀이 알려지게 돼. 그러니까 안돼."


마을의 비밀이 알려지면 나가는 방법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난 더 궁금하기도 했으며 희망

이 생겼다는 생각에 그것에 더 집착을 가지게 됐다.


"가르쳐주세요.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요. 제발 가르쳐주세요."

"해는 해야. 다른거 없어."

"그게 뭐예요. 해는 해라뇨. 왜 중간에 떠있는거죠?"

"여기가 동쪽마을이야."

"무슨 말씀인지?"

"동쪽 마을이라서 그러니까 해가 동쪽에서 뜨잖아. 그건 너도 알거아녀. 왜 해가 중간에 있냐면 그게 동쪽에 있다구."

"이해를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해가 동쪽에서 뜨니까."

"그게 전부야. 여기가 동쪽이야."

"할아버지께서는 방법을 알면서 왜."

"나가지 않았냐고? 여기가 좋아서 그랬다면 믿겠나?"


노인은 그뒤로 아무말하지 않았다. 난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은미씨집 평상에 걸쳐앉았다.

노인의 말이 이해는 가지 않는다. 이 마을은 동쪽이라서 해가 동쪽에서 뜨기 때문에 해가

위에 있다니.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때 은미씨가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뭐해요?"

"옆집 할아버지 만났어요."

"왜요?"

"들어가서 말할게요."


내가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서 은미씨를 기다렸다. 방안은 통풍이 잘돼서 덥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가 모든 방향에 나무들이 있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이 문제다.


"왜 이리 안 들어오지?"


은미씨가 들어왔어도 벌써 들어왔어야했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자 이상했다.


"은미씨, 뭐해요? 안 들어오세요?"


난 방 안에서 은미씨를 불렀다. 반응이 없어서 문을 열고 부르려고 했지만, 은미씨는 없었

다. 흔적없이 사라진 것이다.


"어디 간거야? 은미씨. 어딨어요."


난 크게 불렀다. 갑자기 사라진 것이 이상했지만, 신경쓸 일이 아니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납치할만한 사람이 이곳에는 없었기에 그냥 볼일보러 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 말을

무시한 것 같아 화가 났다. 평상에 앉아서 은미씨를 기다리기로 했다.

담배를 피던 나에게는 며칠동안 담배를 안 피는 것은 매우 고통적인 일이었다. 가져온 담배

는 한 곽이뿐이었고, 이젠 그것마저도 몇 개비밖에 남지 않았다. 그 몇 개비중 하나를 꺼내

서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빨아마셨다. 눈을 감고 연기가 목구멍을 통해 폐까지 가는 과정을

생각했다. 담배를 피면 폐에 구멍이 생기는 사진을 많이 봤어도 연기는 계속 폐안으로 들어

갔다. 담배를 거의 펴가고 있는데 바닥에 머리카락이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무슨 머리카락이지? 한주먹은 되는데?"


난 떨어져있는 머리카락을 한웅큼 집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긴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은

미씨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은 머리카락을 떨어트렸다는 것이 이상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은미씨를 찾아나섰다. 대문앞에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더 진

한 색깔의 액체들이 흘려있었다. 난 허리를 굽혀 손으로 액체를 만져서 냄새를 맡았다.


"피?"

그러고보니 진한 색깔의 피가 머리카락부터 이어져오고 있었다.

피의 흔적이 남아있는 길을 쭉 따라가보니, 숲으로 연결돼 있었다. 저번에 숲에 들어갔다가

겪은 일과 너무 어두워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거기서 뭐하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청우가 손전등을 들고 날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 반가울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있니?"

"시간은 있는데, 왜요?"

"나와 같이 숲속으로 들어가자."

"네? 밤중에 숲은 왜요?"

"은미씨 알지?"

"당연히 알죠."

"은미씨가 저 숲에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머리카락과 피의 대한 얘기를 청우에게 했다. 그랬더니 선뜻 같이 들어가주겠다고

했다. 달빛마저 없었다면 숲속에는 나무들이 없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부엉이소리와 매미소리가 뒤섞여 내 귀를 울리는데 오묘한 기분이었다. 손전등이 비춰지는

곳에는 뻣뻣한 나무들밖에 없었다. 난 꾸준히 은미씨를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무들속에 지렁이들이 숨어있다는 생각에 온 몸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청우야."

"네."

"은미씨 무슨 일 당한 것은 아니겠지?"

"글쎄요. 사는 사람이라고는 5명밖에 안되니."

"5명? 나 포함해서?"

"아, 6명이 되겠군요."

"2명은 한번도 보지 못했군."

"저는 정말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요."

"나도 마찬가지야. 꼭 방법을 알아내서 같이 빠져나가자."

"고마워요."


그것의 대한 대답이 나올줄 알고 기다렸지만, 다른 말을 했다.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비

추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난 혹시나 나무뿌리가 날 위협할까봐, 수시로 뒤를 살폈다.

그때 나무뿌리 공격이 현실이었는지 꿈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왠지 길을 잃은 것 같아서 청우에게 한번더 말을 걸었다.


"너 숲길 다 알아? 가뜩이나 어두워서 거기가 거기같은데."

"그러고보니 이 숲 근처에 이상한게 있었어요."

"그게 뭔데?"


청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내게 말했다. 은미씨를 찾다가 저런말을 하는 것이 이상했다.

"벌집이 원래 노랗지 않아요?"

"벌집같은건데, 벌이 전혀 없었어요."

"뭐가 이상해. 벌이 다른곳으로 옮겨갔나보지."

"벌집이 원래 노랗지 않아요?"

"노랗지."

"그런데 그건 새빨간 색이었어요. 아주 빨간색이었요. 마치 피가 스며들어간 것처럼요."


그곳에 가면 뭔가 얻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청우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난 그곳으로 안내하라고 했다. 정말 어두운 길인데도 청우는 노련하게 길을 찾았다. 조금만

멀리 떨어지면 비가 오던 그날처럼 사람이 어디로갔는지 모를수도 있다. 그랬기 때문에 청

우뒤에 바싹 붙어서 따라갔다.

3분정도 걸었을 때 청우가 걸음을 멈추더니 주위에 손전등을 쭉 비추었다.


"여기인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나무사이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올빼미소리와 부엉이소리를 구별은 못 하

지만 매우 섬뜩한 소리인 것은 확실하다.


"찾았어요. 여기예요. 여기 와서 한번 보세요."


청우는 손전등을 흔들면서 나에게 소리쳤다. 아무리 어둡다하지만 손전등있는곳까지 못 갈

리는 없었다. 난 가까이 가려고 그곳으로 몸을 발걸음을 옮겼다.

나뭇잎이 종종 밟히는 소리는 내 몸을 감싸주는데는 충분했다. 거의 가까이 왔을 때 발에서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고 어디론가 떨어졌다. 깊이는 2미터가

약간 넘은 것 같았다. 구덩이같은곳에 내가 빠진 것이다.


"누가 이런곳에 구덩이를 파놓은거지? 청우야, 나좀 도와줘."


못들은 것 같다.


"청우야."

"어딨어요? 형 어딨어요? 어디갔어요?"

"나 여기야. 좀 꺼내줘."

"형 어디예요."


2미터정도밖에 안되는데 목소리를 못 들을 리가 없다. 난 더 크게 청우를 불렀지만 나를

부르는 청우목소리는 점차 작아지고 있었다.


'형, 어딨어요?'라는 말은 부엉이소리인지 올빼미소리인지에 묻혀서 더 이상 들리지 않았

다. 손전등조차 있지않아서 구멍말고는 앞을 볼수 없었는데, 따뜻한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

오고 있었다. 구덩이안쪽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었다. 냄새는 그곳에서 났다.

손으로 구멍을 약간 더 크게 만든다면 내가 누워서 간신히 들어갈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땐 왜 몰랐을까? 2미터정도 구덩이쯤이야 금방 올라갈수 있다는 것을.

난 서둘러 구멍을 넓혔다. 조금만 넓히니 내가 충분히 들어갈수 있을만한 구멍이 생겼다.

몸을 굽혀 안으로 들어가자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구멍속은 기다란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

고, 내가 일어서도 천장이 머리에 닿지 않았다. 마치 숨겨진 동굴과도 같았다.

따뜻한 냄새처럼 통로안도 매우 따뜻했다. 난 그때가 여름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지, 별다

른 생각은 없었다. 따뜻한 냄새가 이끄는 곳인 통로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통로가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통로는 자연적으로 생성된것이라고 생각했다. 빛이 들어오는 곳이 없어 앞으로간다는 느낌

이 전혀 들지 않았다. 통로는 꽤 길었다. 어느정도 가다가 내가 눈감고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도 잠시 따뜻한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고, 다른 곳으로

빠져나오는 곳이 보였다.


"뭐지? 설마 밖으로 나가는 길인가?"


난 허리를 숙이고 뛰었다. 밖으로 나오자,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노란불들이었다.

고속도로인 것이다. 차들은 라이트를 켜고 자기 고속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여기가 통로였어. 하하. 이젠 살았어. 살았다구."


환호성을 치고 나가려다가 청우가 한 말을 생각했다. 이곳을 꼭 나가고 싶다는 청우를 놔

두고 갈 수 없다. 따지고보면 이 통로를 알게된 것도 청우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시 길을 돌아간다고 해도 통로가 없어질리는 없

을 것이다. 그래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곧 구덩이쪽으로 왔고, 구덩이를 벗어나 마을

로 돌아갔다.

내가 분명 알지 못하는 길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쉽게 마을로 돌아왔다.

은미씨집에 들어가봤지만 은미씨는 없었다. 은미씨를 찾으러 나섯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날이 너무 어두워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잠이 안 온다. 이젠 부모님과 친구들을 만날수도 있다. 애인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항상 하는 일이라서 몰랐지만, 매우 소중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새벽이

찾아왔다.

9



날이 밝자 청우를 찾았다. 생각해보니 아직 청우의 집을 알지 못했다. 일일이 모든 집을

찾아볼수도 없었다. 그래서 노인을 다시 찾아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노인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마을에서 유일한 해결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은 멀리할수 없는 인물이다.


"할아버지 청우집이 어디죠?"

"청우가 누구야?"


이름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생김새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랬더니 얼굴을 붉히면서

나를 미친놈취급을 했다.


"미친놈, 니가 어떻게 그 청년을 알았는지 몰라도 죽은지 오래야."

"죽다뇨? 농담도 참. 어제까지 분명 저랑 있었어요."

"노인네 놀리면 못써."

"아 미치겠네. 정말이라니까요. 할아버지가 절 놀리시는 것이잖아요."


노인의 진지한 눈빛과 마주치고서야 노인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귀신에 홀린것일까?


"청우가 어떻게 죽었나요?"

"아마 6개월전쯤이었지? 그 청우라는 청년이 산에 갔다가 시체로 발견됐어."

"왜요?"

"여기 사람들이 발견했을때는 온 몸이 퉁퉁 부어있었어. 벌집을 잘못 건드렸나봐. 벌떼들한

테 쏘여서 죽었어. 입안속까지 수십마리의 벌들이 들어있었지. 쯧. 얼마나 쏘였는지 벌집에

피들이 물들어있었어. 아주 새빨간 피로 벌집의 색깔을 바꾸었지."


노인의 말을 들은 난 공포에 휩쌓였다. 청우가 한말이 똑똑히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새빨간 색이었어요. 아주 빨간색이었요. 마치 피가 스며들어간 것처럼요.]

어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냈다.


"젠장. 어제 청우를 만나서 그 벌집이 있는곳으로 갔어요."

"그건 말이 안돼. 사람들이 그 벌집 기분나쁘다고 불태워버렸는데."

"그곳에 구덩이같은 것이 있었어요. 거기가 이곳을 나가는 통로예요."


난 통로를 통해 나갔던 일들을 자세하게 노인에게 말해주었다. 노인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사람들을 만나야겠어요. 할아버지는 상관없겠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야죠. 같이."


이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찾았다. 물론, 은미씨도 함께 말이다.

마을을 곳곳을 뒤졌지만, 사람의 흔적은 아예 없었다.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젠장! 사람들은 왜 아무도 없는거야. 왜!"


점점 아파오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꼭 눌렀다.

평소에도 두통약을 1년 내내 호주머니속에 넣고 다녔다. 툭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아파

오기 때문이다. 노인의 집을 다시 찾아갔다.


"할아버지, 물 한잔만 주세요."

"기다려봐."


노인은 밖으로 나가더니 물한바가지를 내게 떠왔다. 하얀통에 가득하게 들은 알약을 손바닥

으로 쏟아냈다. 입안에 넣고 물을 마셨다.


"할아버지 잠깐만 여기서 잘게요. 잠깐만."


이젠 지루한 꿈속 여행이 시작된다. 아주 지루한 꿈이다.



10



난 어느 벌판에 서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사람 한명을 끌고 간다. 그 사람은 아무

런 저항도 없이 순순히 끌려간다. 그들의 대화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

어서 그들의 얼굴형체를 알아볼수 없는데도 말이다.



[이번에는 어디야?]

[저 숲속.]

[저기는 이상한 마을이 있는 숲이 아닌가?]

[이상한 마을?]

[저 숲에 들어가면 무슨 마을이 있다나봐. 아무도 못 들어가는 마을이지.]

[농담말게. 아무도 못 들어가는 마을을 어느 누가 알겠나.]


그러고는 숲속으로 들어간다. 이젠 아무도 없다. 난 그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하염없이

서있었다.


11



눈을 떴을때도 머리가 지끈했다. 그러나 일어나자 본 것은 노인이 아니라 은미씨였다.


"일어났어요?"

"어떻게?"

"제가 갑자기 뭘 하는 그런 것이 있거든요. 그냥 숲속을 돌아 다니고 싶더라고요?"

"그랬군요."


이상했지만 내가 이상하다고 말할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사

라지고 그냥 그러고 싶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없던데요? 옆집 할아버지 빼고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건 그렇고 어제 하려던 말씀이 뭐예요? 할아버지랑 대화 했다

고 저에게 뭘 말씀하시려고 했잖아요."

"말이 안되지만 해가 중간에 뜨더라고요. 동쪽에 떠야할 해가 중간에 뜨니까 이상해서 할아

버지한테 물어봤죠."


은미씨에게 할아버지에게 들은 얘기를 말해줬다.


"뭐 그거야 여기가 동쪽 마을이니까 그렇죠."

"아,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이곳을 탈출하는 통로를 발견했어요."

"그런게 있을 리가 없는데.."

"정말이예요. 분명 제가 들어가서 나온 것을 확인했다니까요."

"그럼 그게 어디있어요?"

"벌집있는.."


노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넓은 숲속에서 그곳을 찾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벌집. 벌집. 벌집.


"혹시 청우라는 사람 알아요?"

"민수씨가 어떻게 청우를 알아요?"


내가 귀신을 봤다고 말하면 분명 믿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한테 들었어요."

"아. 그렇군요. 청우는 왜?"

"그 사람이 죽었다는 곳을 알고 있나요?"

"몰라요."

"몰라요?"

"어떻게 알겠어요. 숲 중간에서 죽었는데. 더군다나 거기라고 알려주던 벌집마저 태워버렸

어요. 그래도 저희집쪽인건 확실해요."

'젠장. 괜히 동점심 때문에. 그냥 갔어야했는데.'

정신이 이상한 병신이라도 지금 이 상태에서는 한가지 생각밖에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탈출.

난 지금 이 순간 빠삐용이다. 자유를 위해서라도 이곳을 탈출해야한다. 아직 날이 밝아서

곧장 시작하기로 했다.


"은미씨. 같이 가실래요?"

"어딜?"

"이곳을 탈출해요. 제가 통로를 찾아올테니까요."

"됐어요."

"왜요."

"그런게 없어요. 창우가 죽었을 때 가봤는데 벌집주위에는 구덩이같은 것은 없었어요."

"아니예요. 은미씨가 가시지 않으신다면 저라도 가겠어요."


어둡고 침침한 숲의 분위기는 소름끼쳤다. 빛이라고는 해가 내리째는 한줄기정도였다.

어제 기억을 더듬으면서 걸었다.


-끼이익. 고막을 찢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막고 주위를 살펴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들을까봐 발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걸었다.


-끼이익. 한번더 내 고막을 자극시켰다. 좌우로 살피면서 걷는다. 누구에도 눈치 채지 않게

말이다. 하지만 수도없이 많은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숨을 쉬며 살아있었다. 눈은 6개이고 내가 움직일때마다 살살 움직인다.

입은 없고 숨구멍이 여러군데 송송 솟아있는데, 숨소리도 매우 거칠었다.

나무들이 내게 들려준 대화는 이렇다.


[하찮은 인간따위는 죽여버려야해.]

[내 동료를 죽였어.]

[지금 당장 죽일까?]

[아니야. 조금 더 지켜보고 사지를 찢어버리자.]


"닥쳐. 다 태워버리기전에."


내 말에 수많은 눈들은 움직이지 않고 날 보고 있었다. 두 개밖에 없는 내 눈으로는 모두

볼 수 없었다. 나무들의 눈들이 검은자로 뒤덮혀진다.


-끼이익. 한번 더 이 소리가 들리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무들의 눈은 아예 사라졌다. 대화하는 나무들도 이젠 대화를 하지 않았다.

주위가 너무 컴컴해서 겁이 났다. 이곳저곳을 헤매봤지만, 벌집이 있는곳을 찾지 못했다.

육각형인지, 팔각형인지의 그 모양인 벌집을 찾지 못했다.

아니, 찾지못한게 아니라 없는것이겠지. 한줌의 잿더미가 되어버렸을테니까.

내 희망조차 연기처럼 날라가버린 것이다. 은미씨의 말처럼 아예 없었던 것일수도 있다.

정말 그럴까? 정말 내가 환상따위를 믿고 이리도 미련한 짓을 하는것일까?


"저게 뭐야?"


움푹 들어간 것을 발견하고 내가 소리쳤다. 물론 나 혼자만의 말이었다.

설마. 설마.

가까이 갔을때는 구덩이가 틀림없었다. 다만, 새로운 것이 하나 더 있었을 뿐이다.

그것은 7살정도로 보이는 아이였다. 아이의 얼굴은 더러웠고, 옷은 때가 타서 누렇게 변한

하얀 천조각들이었다.


"넌 누구니?"

"...."

"왜 여기 있어? 저기 마을에 살아?"

"네."

"엄마 어딨어?"

"없어요."


난 속으로 이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버렸을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금방 생각을 고쳤다.

이유도 간단하지 않은가. 이곳은 보통숲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아이와 아이의 엄마까지 합한다면 나머지 두명이 확실해지는 것이다.

그래도 구덩이를 발견했으니 다행이다. 난 아이가 들어가 있는 구덩이에 들어가서 밑을

살폈다. 분명 내가 뚫어놓은 구멍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없었다.


"여기에 구멍없었어?"

"그런건."

"젠장!"


머릿속이 복잡해온다. 아이를 그냥 놓고 갈수도 없었다. 짐승이 사는 것은 확실하지 않았

지만, 불안했다. 나와 상관없는 아이지만 왠지 익숙했다. 자세히 볼수록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다.


"흑흑. 으앙.. 앙."


아이가 불안했는지 울음을 터트렸다. 콧물을 입술까지 흘리면서 크게 울어재꼈다. 나무들이

소근되는 것 같았다.


"꼬마야, 아저씨랑 마을로 내려가자. 데려다줄게."


난 꼬마를 손으로 잡고 왔던길을 되돌아 가려고 했지만, 그것마저 쉬운일이 아니었다.

길치는 아니었지만, 내 발자국조차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엇갈리는 길이 많았다.

내가 이러고 있는 아이가 내게 말했다.


"저쪽으로 가서 쭉 내려가면 되는데.."

"이 길 알아?"

"응."


내게 친근감이 느껴졌는지 말을 편하게 놨다. 아이의 말대로 길을 갔더니 마을이 나왔다.

오히려 아이가 날 마을에 데려다준 것이다.


"집이 어디야? 엄마는 어딨고."

"엄마 없다니까. 나 태워났을 때 죽었대."

"그럼 아빠는?"

"몰라. 으히히."


아이가 웃는게 수상했지만, 가장 가까운 은미씨네 집으로 갔다. 다시 안 돌아올 것처럼 말

하고 나가서 다시 들어가기가 민망하기도 했다.


"은미씨. 있어요?"


반응이 없어서 그냥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뭐라고 할 은미씨가 아니었다. 적어도 며

칠간 지켜본 은미씨는 그랬다.


"들어와."

"아저씨 집이예요?"

"아니야."

"그런데 왜 들어와?"


말을 계속 바꿔가면서 쓰는 아이였지만, 기분나쁘지는 않았다.

어색하게 집 안으로 들어온 아이는 집안을 두리번 거리더니 자리에 앉았다. 내 집이 아니기

에 뭔가 먹을 것을 줄수가 없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몰라요."

"그럼 너 아까 그곳에는 어떻게 간거야?"

"몰라. 모른다니까!"


아직 미성인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밤이 될동안 몇가지 질문해봤지만, 아이는 대부분 모

른다고 말했다. 은미씨는 오지 않았다.

아무생각없이 있다가 문득 아이를 봤을때는 벽에 기대에 쌔근자고있었다. 아이를 방에 눕히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이는 볼수록 어디서 본듯한 얼굴이었다.


"흠. 어디서 봤더라?"


눈밑이 힘이들어가 압박감이 느껴졌다. 손가락을 펴서 눈을 꾹꾹 눌러줬다. 대화할 사람도

없으니, 담배가 생각이 나서 밖으로 나갔다. 밤날씨도 점차 쌀쌀해져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마을 모습을 모두 바라볼수는 없지만, 밤에 본 마을 모습은 운치가 있었다. 아무

도 다가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피할수도 없는 그런 뭔가가도 같은것이었다.

난 담배 한모금을 깊게 빨아마시고, 길게 뱉었다. 역시 담배만이 가장 친한 대화상대였다.

담배를 모두 태워없애고 편상에 두다리뻗고 누웠다. 정통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별이 빼곡이

박혀있었다. 곧 나에게로 떨어질 것만 같아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눈을 감고 늦여름의 매미소리를 귀기울였다. 힘이 없는 울음소리는 나의 대한 동정같이 들

렸다. 동정같이.


"아이쿠!"


서서히 잠에 빠져들려고 할때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모른척 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 한명 빼고는 내가 아는 사람일테니. 그리고 이 목소리는 잊을수도 없는 목소리였다.

난 소리가 나는쪽으로 뛰어갔다. 노인은 바닥에 넘어져있었다.


"괜찮으세요?"

"일단 우리집으로 들어가지."


노인이 왜 자신의 집으로 나를 불러들이는지 몰라도 노인이 들어간 뒤 곧 따라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노인은 날 노려보듯 쳐다보면서 말했다.


"앉아. 오늘 뭔가 말해주지. 너 정말 이곳을 나가고 싶어?"

"당연하죠. 방법을 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럼 내 방법을 가르쳐주지. 대가는 필요없어."

"정말 방법 알고 계세요? 빨리 가르쳐주세요. 빨리. 가르쳐주시면 은혜는 진짜."

"은혜따위는 필요없다. 내가 전에 이곳이 동쪽마을이라고 했지?"

"네. 무슨 말씀인지는 몰랐지만."

"바로 그거야. 서쪽으로가."

"서쪽이 어딘지?"


내가 묻자 노인은 장롱같은곳에서 뭔가 하나를 꺼내서 내쪽으로 던졌다. 묵직한 소리를 내

며 떨어진 것은 도끼였다. 손도끼정도가 아니라 정말 큰도끼였다.


"이게 뭐예요?"

"보면 몰라? 도끼지."

"그건아는데 왜 이걸 제게 주죠?"

"도끼가 이 마을의 해답이야. 바로 그게 해답이라구. 키키킥. 크하하핫."


정말 기분나쁜 웃음이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배꼽이 빠지도록 웃어재꼈다. 도끼의 모양은

사람의 몸을 몇 번은 찍었을듯한 느낌이 풍겨왔다. 내 손은 나무로 만들어진 손잡이쪽을 향

했다. 매끄러운 것을 보니 사람손이 많이 닿았을 것 같았다. 손은 점점 올라가 쇳덩어리쪽

을 향했다. 날 부분을 살짝 갖다 댔더니 손가락이 베어져 묽은피가 나왔다.

손가락을 문질러 피를 없애고 있는데 노인이 말했다.


"그거 조금 날카롭지?"

"이걸로 어떻게 하란 말씀이예요. 도대체 이걸로."

"서쪽으로 가라고 했잖아. 그런데 말이야. 도저히 여기서는 방향을 몰라. 물론 어느 방향을
찍어도 4개중 하나는 맞겠지. 중요한게 그거야. 서쪽으로 가더라도 통로는 나오지 않아."

"그래서요?"

"뭐가 그러세요야. 그러니까 내가 지금 그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잘 들어. 지금 집에 꼬마
있지? 일단 걔를 죽여. 이 도끼로 말야. 다른곳은 안되고 오직 목만 찍어야돼. 알았어? 그
럼 도끼에 피가 묻을거야. 그 도끼를 가지고."

"잠깐만요. 그럼 저보고 아이를 죽이라고요? 살인을 하라는 소리네요. 저 못해요."

"하기 싫어? 평생 여기에 산다고 해두? 나야 상관없지. 크크크."


노인은 계속 기분나쁘게 웃어댔다. 나보고 살인을 하라니.


"그 도끼가지고 네 방향 어느곳을 가서 나무를 내리찍어. 서쪽은 다른 세 방향과 다른 현상이 일어날거야. 그럼 그쪽으로 쭉 가면 빠져나올 수 있지. 가장 중요한 것은 꼬마의 피야. 피."

"안해요. 안 한다니까.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

"과연 그럴까? 과연 말이야. 도끼는 집 앞에 놔둘테니, 마음이 바뀌면 가져가. 참고로 말해두지만, 오늘밤이 아니면 안돼."


집으로 돌아와서 황당함을 담배로 해결했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은 생애 처음 당해보

는 것이다. 노인이 넘어져서 나를 유도한 것은 계획된 일이었을 것이다. 해에 대해 묻지 말

라더니 너무나 자세히 가르쳐주고 있다. 노인에게는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는게 분명하다.

나 또한 노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직 귀에서는 '오늘밤이 아니면 안돼' 라는 말이

떠나지를 않는다. 난 노인 앞에서 살인은 절대 안하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만

더 불안해지고 있었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난 속으로 이 말을 수백, 수천번 생각했다.

아이와 난 아무 인연도 없으며, 오늘 처음봤다. 그렇다고 살인을 할 수는 없었고, 여기는

빠져나가고 싶다. 그런데 그럴려면 살인을. 갈등은 물의 순환처럼 똑같은 것이 반복되었다.




12



밤이 깊어질수록 별이 많아졌다. 달이 없어도 밤길이 잘 보일 것 같았다. 손이 떨려왔다.

아이는 아직 자고 있다. 내가 여기서 도끼를 들고 있다는 것은 꿈에서도 모를 것이다.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심장도 터질 듯이 뛰었다. 잠이 깨지않도록 한걸음 한걸음

신중하게 다가갔다. 도끼는 지금까지 써본적도 없었다. 떨리는 손 때문에 머리까지 들지 못

하고, 배꼽높이까지 들었다. 다 자라지 않은 아이의 목을 조준하기가 어려웠다.

대충 맞추고 마음정리를 했다. '하나, 둘, 셋 하면 내리 찍는거야.'

숫자를 모두 세고 아이의 목으로 내리찍었다. 피가 양쪽으로 튀었다. 그런데 이상한 비명소

리가 들렸다.


"으욱. 억.. 욱."


아이는 아직 살아있었다. 힘이 들어가지가 않아 도끼로 목을 전부 찍지 못한 것이다. 반쯤

박힌 도끼를 빼내니, 검붉은피가 솟구쳐나왔다. 도끼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비명소리는 여릿하게 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죽여야한다. 죽여야돼.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목은 방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다 내 다리에 부딪치자, 내

온 몸은 굳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콧구멍과 입에서는 피가 서서히 나오고 있었고, 잘려

진 목쪽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난 잘려진 얼굴의 눈과 마주치지않기 위해 신속히 밖으로

나왔다. 별은 여전히 많다. 떨리는 손은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아이의 피가 땀

처럼 흘렀다. 가장 가까운 방향으로 갔다. 그리고 도끼를 들어 나무를 찍었다.

그랬더니 나무가 비명을 질렸다. 한번 더 찍자, 나무속에서 피가 올라왔다. 반쯤 잘려나간

지렁이도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마 별이 아니었으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가 아니야. 빨리. 젠장 토할 것 같다.' 잘려나간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자 속이

울렁거렸다. 나오려는 것을 참고, 다른 방향으로 갔다. 거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도 그랬고, 이젠 네 번째 방향으로 왔다. 노인의 말이 맞는다면 여기가 확실히 서쪽

이다. 난 도끼로 나무를 찍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른 세 방향처럼 피와 함께 지렁이

가 꿈틀거리지 않았다. 보통 나무처럼 찍힐뿐이었다.

노인의 말처럼 앞으로 쭉 달렸다. 도끼를 던져버리고 계속 달렸다. 달렸다. 달렸다.

결국 노인의 말이 맞다고 믿은 것은 눈앞에 고속도로가 들어왔을 때였다. 늦은새벽이라서

차는 별로 없었지만, 가끔 화물차가 지나갔다. 난 손을 흔들어 화물차를 얻어탔다.

드디어 탈출이다. 멀어져가는 숲속을 보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내 얼굴과 옷에 피들이 묻

은 것도 잊은채 말이다. 기사도 미처 보지 못했는지 아무말않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까는 못 봤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피가 묻은거예요?"


난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


"그냥 산짐승에."

"고속도로에도 산짐승이 있나보죠?"

"사냥꾼이 죽였나봐요. 그 피가 저에게 튀었더군요."


말이 안되는 변명이었지만, 기사는 운전하는데에만 집중하느라 내 말을 잘 듣지 못한 것 같

았다. 서울에 도착했다. 기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아직 내 주머니속에는 집열쇠가 있었다. 찰랑거리는 열쇠를 손으로 주물럭거렸다. 그런데

집과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에서는 아이가 파고들었다.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나머지 한명은 끝내 누군지 보지 못했다. 아마도 날 그곳으로 끌고온 사람일 것이다.

13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목욕이었다. 당연한일이겠지만, 피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일한 증거인 피를 없애려고 목욕을 한 것이다. 다른 증거인 도끼가 숲속에 있

지만, 그것을 발견 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지금쯤 은미씨는 목이 굴러다니는 집에

서 비명을 지를테고, 노인은 태연한 척 할 것이며, 옛날아저씨는 저주라고 소리칠 것이다.

목욕을 마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거의 20시간 되도록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꿈도 없는 아주 편한 꿀잠이었다. 잠에서 깨어나서 지방에서 만날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한수형, 미안해요. 그때 일이 생겨서 못 갔어요."

"전화한통도 없이 안 오면 걱정하잖아. 어떻게 할거야. 계약이 모두 취소 됐잖아."

"미안해요. 정말 어쩔수 없었어요."

"무슨일인데 그래. 나한테도 말하지 못하는거야?"

"말할수야 있겠지만, 그게 좀 곤란하네요."

"그럼 끊어라. 나 지금 나가봐야 하거든."

"네. 끊어요."


전화를 내려놓고,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역시 집이 편하다. 마을에 갔다온 뒤로

복잡해진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차도 없어졌고, 평소처럼 생활을 하려고 해도 익숙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내 직업은 월급쟁이와 같은 돈을 달마다 받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이다. 배달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비오는 그날도 같이 일하는 형에게 물건을 갖다주는 날이었던 것이다. 난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생각해봤자 득이 될것이 없었다.


"평소처럼 행동하자."


아침이 되면 커피를 끓였다. 커피와 설탕은 한 스푼, 크림은 두 스푼. 난 항상 이렇게 마

셨다. 다르게 먹어봤지만,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다. 직업의 특정상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침은 대부분 느긋하게 보낸다. 커피한잔 마시고, 화장실을 간다.

아침에 똥누는 것이 건강하기 때문에 어렸을때부터 습관으로 길러왔다. 그 다음으로 하는

일은 책을 읽는다. 마을에 가기에 전에는 '파리대왕'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아직 반도

읽지 못했다. 솔직히 이해를 못했다. 너무 난해하고 복잡한 내용이기에 읽는 도중 수도없이

딴 생각을 했다. 연락이 오면 내게는 출근시간이 된다. 그런데 요즘은 출근하는 일도 줄어

들었다.



14


내가 한동안 밖에 나가지 않거나 전화를 하지 않은 이유는 알지못할 압박감때문이었다. 오

늘은 한수형에게 연락이 왔었다. 오랜만에 출근인 셈이다. 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가기

로 했다. 이리저리로 끌려다니기도 싫었고, 그냥 조용하게 지내고 싶었다.

점심을 먹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버스를 보면 그냥 화가 난다. 그때 버스타는 것을 선

택했었어도, 마을에 갇히는 일은 없었을것이고, 살인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표를 끊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지금 기분으로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좌석이 맨뒤 중간이었

고, 어렸을때부터 창문가에 앉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버스안에는 만원이었다

다. 출발전부터 기분이 나빠져서 일을 제대로 할수있을지 몰랐다. 가는 내내 얼굴을 찡그렸

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지만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었다면 내가 심장이 뛰지는 않았을 것

이라고 맹세한다.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기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수형집으로 향했다.

자주 들리던 곳은 아니지만, 한번 갔던 길은 숲길빼고는 모두 알 자신이 있으니까, 쉽게

찾아갔다. '니가 오면 나 없을거야. 일이 있거든. 경비실에 열쇠맡기고 갈테니 열고 들어

가'라고 말해던 것을 기억해내고 경비실로 갔다.


"아저씨. 오랜만이예요. 한수형 열쇠좀 받으려고요."

"민수아녀? 참으로 오랜만이구먼."

"아저씨 정말 이젠 늙으셨네요."

"한수 말대로 민수 니가 왔구먼. 자, 여기 열쇠. 한수 걔는 참 희안한 능력을 가졌어."

"능력이라뇨?"

"아녀,아녀. 그냥 해본 소리여. 그럼 들어가봐."

"고마워요. 저 집에 가기전에 소주한잔이라도 해야죠."


경비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의 말이 어딘가 이상했지만, 일일이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한수형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현관문으로 들어와서 혀를 차면

서 말했다.


"쯧쯧. 아무리 혼자살아도 그렇지. 좀 정리좀 하면서 살지. 이게 뭐람."


처음으로 연상케한 장면은 부도난 사무실이었다. 옷들은 방바닥에 널려있었고, 몇 달간 청

소도 안한 것 같았다.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청소해줄 생각은 없었다.

TV위에는 쫙 벌려진 책이 올려져 있었다. 책의 제목을 보니 내가 읽고 있었던 '파리대왕'이

었다. 잘됐다 싶어, 책을 들고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벽에 기대에 내가 읽었던 부분을 찾

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아니, 빨리 읽었다. 수백쪽에 달하는 책을 2시간도 안되서 읽었

으니 말이다. 책을 모두 읽고 내가 느낀 것은 단 하나뿐이다. '재미없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날이 빨리 어두워졌다. 그만큼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

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한수형은 오지 않았다. 연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연락을 기다

리는 상황이라서 더욱 그랬다. 집을 곳곳을 살피다가 사진액자같은 것을 발견했다. 맑은날

에 꼬마가 웃으면서 브이자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한수형의 어렸을적 사진같았다. 보고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라기보다 기분이 나빴다.

아까 버스에서 느낀 기분보다 더 나빴다. 왜 나쁜지는 다시 한번 사진을 봤을 때 알았다.

내가 잘못 본게 아니고, 내 기억력이 5살짜리보다 못한게 아니라면 웃으면서 브이자를 하고

있는 꼬마는 도끼로 목이 떨어진 아이가 분명했다.


"이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설마하는 마음으로 경비실로 갔다. 아저씨는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난 문을 열고 들어가

아저씨를 흔들어 깨웠다.


"아저씨, 아저씨! 일어나봐요! 아저씨."

"으응? 민수여? 왜 왔어? 아! 소주먹자고 했었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한수형 어딨어요."

"어딨긴, 젊은자식이 늙은 나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게 뭐하지만."

"무,무슨 말이예요? 세상을 떠나다니요?"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한수 죽었잖아. 몰랐어?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네."

"어,언제. 언제 죽었어요."

"한 두달전이던가? 시내에서 강도에게 칼맞아서 죽었어. 너는 알 것 같았는데."

"그럼 제가 여기 올줄은 어떻게 알았죠? 열쇠는 아저씨가 어떻게 가지고 있고."

"그거야. 아까 내가 말했잖어. 한수 걔가 희안한 능력을 가진 것 같다고. 그 죽는날 아침에 나한테 열쇠를 맡기더라구. '몇달후에 민수가 올거예요. 그때 민수가 오면 주세요.'라고 말이야. 아마 자기가 죽을것이라고 알고있었던거 같더라고."


머리가 아파왔다. 호주머니에서 두통약을 꺼내서 집어삼켰다. 이젠 하두 많이 넘겨봐서 물

도 필요없었다. 장속에서 소화제가 모두 소화되고 온 몸에 흡수될때쯤에 서울행 버스에 올

라 탔다. 힘없고 졸릴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버스에는 사람도 없었고, 내가 원하는

창문가에 앉았지만 그리 기분은 좋지 못했다. 그냥 잠시 잊어버리려고 잠을 잤다.

그러나 핏기없고 흰자위를 늘어트린 한수형의 얼굴이 날 쫓아오는 꿈을 꿔서 짧은 비명을

지르면서 잠에서 금방 깼다.


"손님. 주무세요?"

"아뇨. 왜 그러시죠?

버스기사가 누군가 불렀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기사뿐이니 날 부른 것이 확

실했다. 내가 대답을 하자 버스가 멈췄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려고 하자, 버스기사가 먼

저 말을 했다.


"제가 오줌이 너무 마려워서. 죄송한데 잠깐만 갔다올게요."

"뭐, 그러세요."


금방이라도 쌀 듯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갔다. 버스안에 아무도 없으니 썰렁했다.

머릿속에는 계속 한수형의 대한 것들이 계속 그려지고 있었다. 원래 귀신같은건 믿지 않았

다. 그저 사람들이 약해빠져서 지어낸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이히히' 하고 쫓아오는 귀신

따위가 무섭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무시했다. 지금 나에게 귀신을 믿는다고 묻는다

면 어떻게 대답할지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나와 통화한 사람이 귀신이 아니라고 말할수도 없고, 귀신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5분

정도 지나려고 하니까 기사가 버스안에 탔다. 곧 출발하겠지 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눈감을 지겨워지도록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하고 눈을 떠보니 기사가

아닌 마을에서 본 노인이 서있었다. 심장이 굳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왜 놀랐어?" 놀라는게 당연하지."

"어떻게."

"밖을 봐. 익숙한 숲이 보이지는 것 같지 않아?"

"아. 여기로군요.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 지금 할아버지 진짜 보기 싫거든요? 제발 제 앞에서 없어져주세요.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뭘 그리 흥분하나. 나 때문에 지금 너도 여기에 있잖아."


모든 것을 따져묻고 싶었지만, 계속 노인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노인이 나보고 한수형을

죽이라고 시킨 것이다. 내가 이러고 있는데도 노인은 그저 웃기만 했다.


"왜 계속 거기에 있죠? 빨리 나가라니까요."

"넌 정말 모르고 있는게 있어. 정말 한심하단 말이야. 넌 곧 누굴 죽일거야."

"진짜 빨리 나가라고요. 듣기 싫어. 무슨 개소리를 하는거야!"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노인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창문 밖으로

는 노인이 숲쪽으로 가는 모습을 봤는데, 서서히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노인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몰랐다. 기사는 곧 돌아왔고, 금방 버스는 움직였다. 저 숲은 다시는

가기도, 보기도 싫었다. 집에 돌아와 바로 골아떨어졌다. 계속 한수형머리에 쫓겼다.


한달 후..


날씨가 매우 추웠다. 거기에다가 바람까지 불어서 체감온도는 대단했을 것이다. 감각이 무

뎌 질 정도로의 추위였지만, 살게 있어서 어쩔수 없이 밖에 나갔다. 외투를 단단히 입고도

온 몸을 움츠리지 않으면 안됐다. 웬만하면 바람을 등뒤고 하려고 했으나 그게 마음대로 되

는것도 아니니 어쩔수 없었다. 가게에서 사려고 하던 물건을 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

밖으로 나섰다. 바람은 계속 불고 있었다. 칼바람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칼이

계속 내 얼굴을 스쳐가는 것처럼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움츠리고 땅을 보면서 걷고 있는데, 누군가 길을 막아섰다. 막아섰다기보다 내가 사람을 못

봤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난 고개를 들어서 얼굴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오랜만이네요."

"은미씨? 은미씨 맞죠?"

"네."

"여기에는 어떻게? 마을에."

"좀 그렇게 됐네요."

"아니, 아니지. 저희 집으로 가요. 이렇게 추운데."

"고마워요."


그동안 있었던 얘기가 듣고 싶어서 은미씨에게 말했다. 이상하게도 노인과는 다른 감정이

든다는 것을 내 스스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따뜻한 커피를 만들었다.


"커피 드실거죠?"

"고마워요."

"설탕은 어떻게?"

"민수씨처럼 해주세요. 날씨가 정말 춥군요. 그냥 뜨거운 것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죠? 몸이 어는줄 알았다니까요."


오랜만에 사람다운 대화를 나눌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별 다른 주제도

없었는데도 많은 대화를 했다. 거의 처음 만난 사람치고는 어렸을 때 있었던 일까지 얘기하

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민수씨."

"네?"

"제가 어떻게 여기에 온 줄 아세요?"

"...."


그점도 내가 엄청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난 말 없이 은미씨를 바라봤다.


"민수씨가 그날 벌집을 찾으러 나간다고 했을 때 무서웠어요. 또 그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까하고 말이죠.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게다고."

"그게 뭔데요. 그 일이 뭐예요. 네?"

"살인이요. 결국 민수씨는 살인을 하고 말았죠. 왜 그랬죠? 조금만 참았으면 좋았을걸."

"어쩔수 없었어요. 빠져나가려면 그렇게 하라고."

"청우도 그 짓을 했어요. 절대 노인을 믿으면 안돼요. 민수씨를 구하려고 여기 왔어요."

"저를 구하다뇨?"

"한수라는 사람 강도에게 죽었죠?"

"어떻게?"

"역시. 한수라는 사람은 민수씨가 죽인거예요."

"제가 안 죽인거예요. 제가 왜 죽여요, 한수형을! 제발 말하지 마세요."

"하지만 이건 인정해야해요. 빨리 마을로 돌아가요. 아니면 민수씨는 죽어요."

"그래도 마을 싫어요. 차라리 죽고 말래요."

"저 그런 방법 말고도 마을을 나가는 방법을 알아요. 그러니 세상이 조용해질때까지 마을에 있으세요. 네?"


은미씨는 나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부탁이라는 생각에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왜 저한테 그러시죠? 은미씨를 만난지 별로 되지도 않았는데."

"청우와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민수씨 청우와 많이 닮았거든요. 외모가 아니라 느낌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커피에서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왔다. 은미씨는 코를 컵에 갖다대고 향을 맡았다.


"커피향이 좋네요."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는게 이상했다. 그래도 내가 먹는 그대로가 좋다는 말처럼 들려서 기

분은 나쁘지 않았다. 한모금 마시더니 다시 내게 말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의 얼굴이 굴러다니더군요. 민수씨는 아직 믿지는 않을거예요.. 어떻게 죽은 얼굴이 방안을 돌아다니는지. 데굴데굴. 데굴데굴. 소리까지 내면서요. 머리가 굴러질때마다 머리카락은 한 올씩 빠졌어요. 정말 소름이 끼쳤죠. 계속 돌았어요. 그러다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니까 멈추더군요. 제가 처리하려고 했지만, 겁이 나서 도저히 못 할 것 같아서 옆집 할아버지에게 찾아갔어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에게 그것들을 말했더니, 벌컥 화를 냈어요. 왜 그러냐 했더니 아무말 하지 않으시더군요. 전 한동안 다른곳에서 살다가 민수씨가 위험한 꿈을 꾸게 됐죠. 제발 부탁이예요. 같이 마을로 돌아가요."

'말이 약간 안 맞는데..'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묻어버린 것은 은미씨의 간절함이었다

다.



15



믿지 않겠지만, 내가 지금 서있는 곳은 숲앞이다. 비올때까지 우리집에서 머물다가 비가 내

리자 숲으로 왔다.


"저쪽이예요. 저만 따라오세요."


은미씨는 가져온 손전등으로 한쪽길을 비추면서 말했다. 갈때마다 손전등의 불빛은 상하로

흔들렸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알아보기 쉬웠는지 모른다. 가까이 가니까 아주 작은 모퉁길이

있었다. 진작 이런 것을 못 본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런게 있었네요."

"비올때만 생겨요. 모세이야기 아시죠? 파도가 갈라지는거."

"네."

"그런거와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 길이 생겨지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죠."


저번처럼 엄청 어두워서 주위사물들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손전등은 앞만 보고 있고, 어색

한 길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도대체 어디로 나왔는지 모른다는 것

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로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났다. 은미씨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말

할 뿐이었다. 오랜만에 온 마을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변함이 없었다는 것은 내가 여기

를 처음 왔을때와 마찬가지란 말이다. 비 때문에 가장 가까운 집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 집은 저쪽이예요. 비가 많이 오니까 빨리 가죠."


여러집들을 지나치고, 은미씨가 걸음을 멈춘곳은 어느 집도 마찬가지였지만, 낡은 집이었

다.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집은 아니어서 속으로 안심했다.

자면서 '이거 속고 있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해봤지만, 노인이라면 모를까 은미씨는 아닐거

라는 생각에 그냥 눈을 감았다.

아침에는 물안개로 뒤덮힌 마을이었다. 숨쉴때마다 물알갱이 하나하나가 숨구멍을 통해 몸

속으로 들어가 톡 터지는 느낌이었다. 여기있는 동안은 왠만하면 노인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해가 불쑥 나왔을 때 아니, 생겼을 때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은미씨는 숲에 잠깐 가본다고 하고 나갔고, 나 혼자 집안에 있다가 답답해

서 밖을 나갔었다. 노인은 그때 만난 것이다. 꼭 일부러 찾아온 것처럼 말을 했다.


"역시 왔었네. 그럼 괜한 아이만 죽은거로군."

"조용하세요."


1분도 마주치고싶지 않은 마음이라서 들어가라고 했지만, 노인의 말이 더 빨랐다.


"내가 말해주고 싶은 것은 넌 여기 괜히 왔다는 것이야. 은미가 널 속이고 있는거라고. 또 빠져나가려면 아이의 피가 필요한데 어떻게 구할수도 없는것이고. 영원히 여기서 썩어야지.크크."

"은미씨를 모욕하다니. 할아버지 당신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요. 그리고 은미씨는 다른 방법을 안다고 내게 그랬거든요. 조금 잠잠 해지면 여길 빠져나갈거예요."


"제가 여기 처음 왔을때도 그랬어요. 분명 이 마을에 차를 타고 왔었는데, 다음 날 가보니 없어졌어요. 마을사람들 말이 이곳에는 사람만 들어올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차를 타고 왔어도 사람과 잠시 떨어지면 원래 그 자리로 돌아간다고요."

"그러면 지금 제 차는 아까 고속도로로 가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은미씨는 단호하게 말한뒤 우리는 오고간 대화가 거의 없었다.

결혼했느냐, 여기에 얼마나 살았느냐등의 대화였다. 결혼은 하지 않고, 정확히 3년동안 이

곳에 있었다고 말했다.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4


언제 잤는지 몰라도 눈을 떴을때는 은미씨는 없었다. 비도 그친 상태였다.

난 눈꼽을 떼고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냉기가 느껴졌다. 비포장인 길은 매우

축축해서 발을 디딜때마다 땅이 쑥 들어갔다. 검은신발이어서 다행이지 하얀신발이었다면

색깔이 바뀌었을 것이다.

난 차가 있는 쪽을 가봤지만 차는 없었다. 은미씨의 말이 맞는 것이다. 어제는 비가 많이

와서 마을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보니 민속촌같은 느낌이 들었다.

쥐죽은 듯 조용한 마을은 왠지 모르게 평온함을 느꼈다. 난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

다. 이곳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물론 대부분의 얘기를 은미씨에게 들었

지만 더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 사람들이 더 잘 알테니까.

마을에는 집이 20채정도 밖에 안되는거 같았다. 난 은미씨집에서 가장 가까운 집을 찾아갔

다. 문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계세요? 계시면 문좀 열어주세요."


문이 열리면서 한 노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누구슈?"

"이곳에 사시나요?"

"그럼 내가 왜 여기 살겠어?"

"제가 이곳에 대해 물어볼것이 있어서요. 들어가도 될까요?"

"아니, 안돼. 거기서 말해."


난 노인의 매몰찬 말에 황당했다.


"제가 어제 이 마을에 왔거든요. 어떻게 나가는 방법이 없을까요?"

"없어. 절대 없다구. 내가 40년동안 나가려고 해봤지만 절대 나갈수 없어. 어떤 귀신의 장난인지 몰라도... 하여튼 절대 없다는 것을 알아둬야해."


두 번째 확인까지 했지만 왠지 노인의 말은 설득력이 없었다. 말을 끝내자 바로 문닫는 노

인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나쁜 노친네 같으니."


비가 그렇게 쏟아지더니 오늘은 날이 매우 좋다. 구름 한점 없고 바람도 솔솔 불어왔다.

어디 나무 그늘에서 낮잠자기에는 딱 좋은 날씨였다.

다른 집을 가려고 길을 걷고 있는데 은미씨가 앞에서 오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그냥 사람들좀 만나서 얘기좀 해보려고요."

"아직 제 말을 믿지 않으셨군요."

"솔직히 믿지는 않았어요. 땅이 좀 굳으면 나가려고요."

"그래요. 한번 겪어봐야 제 말이 진실인줄 아실테니까요."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그렇게 은미씨와 말이 끝나고 다른 집들을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없었다.

오후쯤에 다시 은미씨의 집을 돌아갔는데 은미씨는 책을 읽고 있었다.


"오셨어요?"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말고는 아무도 없더군요."

"아마 산에 갔을거예요."

"비가 왔는데 무슨 산이요?"

"여기 사람들은 다른 것은 해결되지만 먹을 것은 해결이 안되거든요. 비오는날 산에 가면 먹을것들이 많이 자라있어요. 산이라서 고기같은 것은 먹기 힘들지만 버섯들이 많거든요. 나물들도 있고요. 아까 아침에 저도 산에 간거예요."

"아, 그렇군요. 만약에 은미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 어디서 살아야하죠?"

"아무 빈집에서 살면돼요. 그런데 저와 같이 사시지 않겠어요? 말동무도 될겸."


아마도 사람이 그리웠나보다. 옆집 노인같은 사람이라면 정상적인 대화가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이런곳에서 혼자사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녁은 오늘 아침에 산에서 따온 버섯으로 할건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엄청 고맙죠. 그런데 아까 무슨 책같은거 읽는거 같던데.."

"아, 이거요. 제가 책을 좋아하거든요."

"어디서 책을 구했어요? 책 구할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던데.."

"옆집할아버지께서 책을 많이 갖고 있어요. 어디서 그 많은 책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그럼 그 책 다 읽고 저좀 빌려주세요."


그날 은미씨가 해준 버섯요리는 맛있었다. 며칠동안은 땅이 마르지 않았다.


5


차가 없어서 걷기로 했다. 땅은 어느정도 단단해서 아침일찍 탈출을 시도했다.

주위에 물이 흐르는 곳도 없었는데도 안개가 뿌옇게 공중에 떠있었다. 안개를 해치고 내가

돌아왔던 길을 찾아갔다. 그러니까 차가 있었던 자리다.

활엽수들이 빼곡이 틀어박힌 숲속으로 들어가서 앞으로만 걸었다. 원래 숲길이나 산길은 사

람들이 많이 다녀야 자연스레 생기는 법인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길을 만드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앞으로만 가면 나올테지.


-끼익--꺄악-


까마귀 소리인지 나무들 위에서 소리가 나는 거 같았다. 소름이 돋았다.

쉬익-

소리에 뒤돌아보니 이상한것이 따라오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검은 형체만 비췄다.


"누구세요? 누구 있어요?"


그것은 아무말도 없이 쉬익-소리만 냈다. 난 기다려보기로 했다.

쉬익-쉬익-

소리는 빨라지면서 더 커졌다. 형체는 더 커지면서 안개를 뚫고 내게 날아왔다.


"뭐,뭐야. 으악."


난 도망쳤다. 내게 날라온 것은 길쭉하고 무성한 뿌리들이 돋아있는 나무뿌리들이었다.

쉬익-쉬익-

아마존의 아나콘다처럼 내 몸을 휘감고 뼈를 모두 부숴버릴것만 같았다.

난 그 뼈들이 내 살들을 짓누르고 있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뼈들이 내 몸들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빨리 뛰었다.

그러다 그만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급한 마음에 뒤돌아봤지만 나무뿌리흔적도 없었

다.


"내가 잘못 봤나? 분명 나무뿌리였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면서 말했다. 정신없이 뛰다보니 안개가 사라진것도 몰랐다

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분명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였다.

아마도 근처에 고속도로가 있는가 보다.

난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해 뛰었다. 마지막 나무를 넘자 고속도로가 눈앞에 보였다.

확실했다.


"미친년. 말이 되는 소리를 했어야지. 고속도로가 뻔히 눈앞에 보이는데.."


난 은미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에 미친년으로 몰아넣었다. 난 차가 쌩쌩 달리는 고속도

로로 뛰어갔다. 뒤로는 어두운 숲들이 울창하게 펄쳐져있었다.

우측에는 차가 들어갈만한 길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저쪽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봤다.

난 계속 뛰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을 했다.

'차는 어떻게 된거지? 그년이 거짓말을 했다면 차는 어디있는거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더니 현기증이 났다. 세상이 도는 것 같았다. 징이 울려퍼지는 소리때

문에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으.."


난 머리를 쥐어감싸고 다리를 굽혀 앉았다. 현기증이라는 것이 아지랑이처럼 금새 사라지는

것이니 다시 일어서서 걸었다. 징 울림은 사라졌지만 다시 들려야할 차소리가 들리지 않았

다. 내 주위에 감싼 나무들이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뭐야. 으악~"


나무들이 빙빙 돌더니, 암흑으로 바뀌었다.



6



눈을 세 번 깜박거렸는데 눈앞에는 은미씨가 보였다.


"아.."


아직 머리가 아파서 머리를 만지면서 일어났다.


"일어났어요? 제 말이 맞았죠?"

"분명 고속도로가 눈앞에 보였었는데."

"그냥 착시현상이예요. 여기 숲은 엄청난 미로로 연결되어 있어요."

"은미씨, 죄송해요."

"뭐가요?"

"믿지 않아서요."

"뭘요. 저도 처음에 그랬는걸요. 누가 이런걸 믿겠어요."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어리석은 짓은 하지말아야겠어요. 언젠가 지혜를 얻겠죠."

"잘 생각하셨어요."

"그런데 절 어디서 발견하셨어요? 숲 중간에 있었을텐데."

"집 앞에 쓰러져 있던걸요?"

"아."


난 이젠 모든 것을 믿기로했다. 지금 당장 말이 안된다고 해도 나중에는 말이 되는 것들로

연결될테니까.


"이 마을 이름은 뭔가요? 그래도 마을이라면 이름이 있을텐데."

"글쎄요. 아직 생각해본적 없네요. 옆집 할아버지한테 물어보세요."

"그 할아버지와는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더군요. 몰아세우기만 하고."

"처음봐서 그럴거예요. 그래도 이곳에는 나이가 가장 많으시니까 많은 도움 될거예요."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저와 은미씨처럼 이곳에 온 사람들인가요?"

"네. 그래서 누가 이 마을을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난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아직 머리가 아픈 기운이 남아서인지 쉽게 잠들었다.

아침이 되면 동네사람들과 친해져야겠다. 그래도 앞으로 힘이 되어줄 사람들으니까 빨리 친

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침이 밝자 밖으로 나가서 쉬원한 공기를 한껏 들여마셨다. 숲속인지라 공기는 맑았다.

애인이 선물해준 손목시계는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이다. 명품시계, 비싼시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거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시계는 아침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는 내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을 때 본 것이다.

아침 8시라면 지금쯤 해는 동쪽 끝에 걸려있어야 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정확히 내 머리 위. 그러니까 중간에 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알 길은 없었다.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마을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길을 걷다가 누군가를 만나게 됐다.

'여기 사시는 분이세요?'라고 말 할 필요는 없었다. 노인을 만났을때처럼 욕을 먹을 수도

있었다. 나보다 젊었으면 젊었지 더 늙어보이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이 마을에 새로 오신 분이시죠?"

"어떻게 아셨어요?"

"당연하잖아요."

"하하. 그렇군요."

"언제 오셨어요? 제가 원래 밖을 잘 나가지 않거든요."

"며칠됐어요. 지금은 은미씨네 집에 머물고 있고요."

"네? 은미씨네라뇨."

"저기 마을 입구쪽에 있는 집이요."

"네. 그럼 볼일 보세요."

"저기. 이제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은데 성함이라도?"

"청우라고해요. 나이는 25살. 그쪽은요?"

"이민수라고 해요. 나이는 28살인데. 편하게 말 놔도 될까요?"

"그러세요. 그럼.."

"잠깐. 청우라고 했나? 청우야. 하나 물어볼것이 있는데."

"뭔데요?"

"지금 몇시야?"

"8시 20분정도요."


청우는 자신이 차고 있는 손목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내 시계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상하다. 왜 해가 중간에 있는거지?"

"그건요. 아뇨. 저는 바빠서."



말을 뱉어놓고 급히 어딘가로 뛰어갔다. 왜 말을 해주지 않는것일까?

마을에 대해서는 설명할 것이 없었다. 입구는 두곳이 있었고, 4면이 모두 숲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만약에 불이라도 난다면 몰살되고 말 것이다. 불?


"불이라면 이곳을 모두 태워버릴테고. 잠깐."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혼자 중얼거렸다. 빨리 사람들을 만나서 이 얘기를 하고 싶

었다. 숲에 불을 지른다면 길이 생길 것 같았다.

난 가장 가까운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있으시면 문좀 열어주세요."


그러자 사람이 문을 열었는데 순간 조선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검은 갓에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하얀옷을 입어서 더더욱 그랬다.


"들어오세요."


그 사람이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그의 집 안에는 사극드라마에서만 볼수 있었던 모양

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정신이상을 보이는 사람일 것이다.

하긴 마을의 전체적인 모양이 시골이니 이럴수가 있겠다.


"어떻게 오셨나요?"


그래도 말은 차분하고 정감이 가는 것이 노인과는 딴판이었다.

난 지금까지 겪은 이야기와 함께 불의 대한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혀를 찼다.


"쯧쯧. 소용없는 짓이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아무리 귀신같은 것에 홀렸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들이 귀신에 홀렸다고 생각하세요?"

"그럼요?"

"귀신에 홀렸다면 우린 서로 보면서 대화도 못하고 그럴것입니다. 이건 저주예요."

"저주?"

"네. 이런일은 아무도 못해요. 신의 저주만이 이런일을 할수 있죠."

"신의 저주라.. 전 잘 모르겠군요. 이만 가봐야겠어요."

"저기요. 제 얘기를 잘 들어보세요. 신선한 피를 신에게 바치면.."


그 사람의 얘기가 끝나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사이비종교같았다. 저런곳에 빠져들면 언

젠가는 목숨을 잃게 될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왜 소용없는짓일까? 난 숲으로 가서 나뭇가지 몇 개를 주워왔다.

한곳에 모아놓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습기찬 나무라서 그런지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물기를 어느정도 마르게 한 다음에 불을 붙였다. 서서히 타들어가는 나뭇가지는 연기를

뿜어냈다. 나무가 갈라지면서 소리를 냈다. 연기 때문에 계속 바라볼수가 없었다.

뒤돌아보는 순간에도 나무갈라지는 소리는 계속 났다. 옛날 어렸을 때 모닥불에 고구마구워

먹을때도 이런 소리가 났다. 도시로 오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본다. 연기가 차츰 사라지는 것 같아도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쓸데없는 소리였어. 난 또 무슨 일 일어나는줄 알았지."


혼자 중얼거리면서 마을로 나갔다. 거기서 은미씨를 만났다. 왠지 이상한 표정이었다.


"여기서 만나네요. 저기에 사는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아요?"

"누구요?"

"지금 시대에 갓을 쓰고 수염까지 길려서."

"아, 옛날아저씨요?"

"옛날이라뇨?"

"복장같은 것이 옛날사람같다고 해서 옛날이라고 불려요. 실제이름은 뭔지 모르겠더군요."

"저에게 이상한 말을 했어요. 저주를 받았으니, 신선한 피를 뭐라고 하던데."

"그냥 신경쓰지 마세요."


불의 대한 얘기를 은미씨에게 했다. 그러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다급해했다.


"왜 그러세요?"

"그곳이 어디죠? 빨리 처리해야해요. 위험한데.. 빨리 앞장 서세요."

"왜 그러시는데요? 저기 숲근처인데.."

"빨리..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난 은미씨가 그렇게 초조해 하는 모습은 처음 봐서 당황스러웠다.

난 은미씨의 말대로 앞장서서 그곳으로 갔다. 멀리서 봤을때는 시커먼 나무들이 보였을뿐

아무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난 가까이 가서 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예요. 아무 이상 없는데요? 여기요. 여기."

"아니 자세히 보세요. 그런데 이거 태운지는 얼마나 됐죠?"

"태우자 마자 바로 은미씨 만나거예요. 한 10분 됐나?"

"그럼 됐어요. 여기서 이것좀 지켜보고 있으세요. 뭐좀 가져올게요."

"네 그러세요."


은미씨가 급하게 어딘가로 뛰어갔다. 난 구부려앉아서 나무를 자세히 살펴봤다.

아무래도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았다. 나무들을 건들면 부숴질테고, 갈라진 나무틈 사이에

서는 잔연기가 살며시 나오고 있었다.

2분정도 보고 있자니까 이상한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더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더 갖

다 대서 갈라진 틈사이에 꿈틀거리는 것들이 나오고 있었다.

실지렁이처럼 보였지만 더 길었다. 어떻게 그 사이에서 이렇게 긴 생물이 나오는지 궁금했

다. 아직까지는 신기할뿐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너무 가늘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입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생물은 내게 다가오더니 팔에 옮겨 붙었다. 입을 우물거리는 것 같아서 손으로 밀쳐내려

했는데 그 생물이 벌써 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팔목을 두 번 감더니 동목을 파고 들어갔다. 난 그것을 잡아댕기려고 했지만 늦었다. 거의

들어가서 보이지 않을정도다. 그 물체의 형태가 팔에 나타났다. 볼록튀어나온 것이 움직이

고 있었다.


"뭐야."


팔속을 휘젓고다니는 생물이 괴기한 느낌을 줬다. 어떻게 해야할지는 몰랐다.

은미씨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내 몸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볼록튀어나온

것을 계속 보니까 토할 것 같았다.

볼때는 아니었지만 생물이 내 뱃속까지 들어가서 장을 위를 기어다는 것 같았다.


"우욱.. 우욱.."


헛구역질이 나와 얼굴을 내밀고 있을 때 은미씨가 나한테 왔다. 손에는 작은 병을 들고 있

었다.


"민수씨 괜찮아요?"

"우욱.. 저 속에서 욱.."

"말 안해도 알아요. 잠깐만 참아봐요."


그러더니 은미씨는 가져온 병의 뚜껑을 열고 타고 잿더미가 된 나무에 뿌리기 시작했다.

액체는 푸른빛을 가진 투명색이었다. 액체가 나무에 닿자 연기를 내면서 나무가 녹았다.

이젠 병을 내게 줬다.


"마셔요. 빨리 마셔야 후유증이 없어요."


난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얼른 병을 받아들고 덜컥덜컥 마셨다. 잠깐동안 장이 쓰리더니

구역질이 사라졌다. 팔목을 보니 볼록튀어나온것도 들어가고 없었다.


"지금은 맛이 안 느껴 질거예요. 그런데 마음의 준비하고 계세요."

"네? 아무렇지도.."


내가 말을 끝내기전에 혀가 돌아가서 말을 하지 못했다. 혀가 녹는 느낌이었다. 녹아서

입전체에 퍼지는 것 같았다. 피비린내같기도 하고, 똥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또 다시 구역질이 났다. 씁쓸한 위액의 맛이 목젓에 닿고 나서 쏟아냈다.


"우욱.. 억..."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토를 해본적이 없었다. 주로 빨간액체였다. 액체 사이에 꿈틀거리는

것이 있었는데, 나중에 은미씨에 말을 들어보니 그것은 내 몸속으로 파고들어간 생물이었

다.


"도대체 이게 뭐죠?"


난 꿈틀거리는 생물에게 액체를 뿌리고 있는 은미씨에게 말했다.


"인육먹는 지렁이예요. 나무속에 살다가 뜨거워지면 밖으로 나오죠. 그래서 절대 나무를 태우면 안돼요. 이 지렁이가 조금만 더 민수씨 몸에 있었으면 모든 혈액이 빨려서 죽었을거예요. 제가 여기 살면서 그런 사람을 몇 명 봤거든요."

"그런게 있다니 놀랍군요."


느낌탓인지 몰라도 지금도 속이 거부룩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 같았다.


"집에 가서 좀 쉬어요."

"고마워요."


몸이 많이 피곤했는지 그날 밤은 깊은잠에 빠져들어서 해의 대해 묻는것도 잊버렸다.


7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은미씨는 사라졌다. 며칠동안 관찰한 결과였다.

오늘 아침도 해는 내 머리위에 떠있다. 궁금증이 도발해서 어쩔수 없이 옆집 노인네 집을

찾아갔다.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가는 무슨 욕을 얻어먹을지 모른다.

그래서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번 하고 문을 두드렸다.


"할아버지. 저 옆집에 사는 사람인데 여쭤볼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몇차례 문을 두드리면서 열리길 기다렸지만 문을 열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동네주변을 걸었는데 뒤뜰같은 곳에서 노인을 만났다.


"할아버지. 여기 계셨네요. 여쭤볼 것이."

"쉿! 조용해."


노인의 말에 난 입을 다물었다. 얼핏보니 뭘 찾는 것 같았다. 쇠같은걸로 만든 지팡이로 땅

을 계속 두드리더니 생긴 구멍에 손을 넣었다.


"음.. 걸렸다."


노인이 손을 빼면서 말했다. 손에는 미꾸라지만한 뱀이 들려있었다.


"왜 찾아왔다구?"

"할아버지 그건 뭐예요?"

"보면 몰라? 뱀이잖아. 뱀. 여기서는 고기먹기가 쉽지가 않지."

"땅속에서 뱀을 잡아요?"

"뭐 그게 이상하냐?"

"아니, 뭐 그냥. 그건 그렇고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


뱀잡는것에 잘 모르는 난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궁금증 해결하는것에 썼다.


"바빠."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제 얘기좀 들어주면 안돼요?"

"그렇게 궁금하면 밤에 우리집에 찾아와. 그 궁금한 것이 저 해에 대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구먼."


노인이 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8


밤이 되도록 은미씨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노인의 말대로 노인의 집을 가기로 했다.

해가 사라지자, 옆집으로 갔다. 노인이 한 말을 도저히 잊지 못하겠다.

내가 궁금한 것이 그것인데 그것의 대한 질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니. 약간 섬뜩했다.

그래도 그 말에 그냥 포기하는것도 한심해보였다. 노인의 집 앞에서 노인을 내가 온 것을

알리고 노인의 집으로 들어갔다. 은미씨네 집과는 다른게 별로 없었다.


"앉지."

"네, 고맙습니다."

"궁금한게 뭔데 그래? 해의 대해서만 아니면 돼."


노인이 다시 그 말을 언급했다.


"그건데요. 왜 해가 동쪽에서 뜨지 않고."

"그만!"

"왜 그러시죠? 도대체 왜 알려주시면 안되는데요?"

"그럼 이 마을의 비밀이 알려지게 돼. 그러니까 안돼."


마을의 비밀이 알려지면 나가는 방법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난 더 궁금하기도 했으며 희망

이 생겼다는 생각에 그것에 더 집착을 가지게 됐다.


"가르쳐주세요.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요. 제발 가르쳐주세요."

"해는 해야. 다른거 없어."

"그게 뭐예요. 해는 해라뇨. 왜 중간에 떠있는거죠?"

"여기가 동쪽마을이야."

"무슨 말씀인지?"

"동쪽 마을이라서 그러니까 해가 동쪽에서 뜨잖아. 그건 너도 알거아녀. 왜 해가 중간에 있냐면 그게 동쪽에 있다구."

"이해를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해가 동쪽에서 뜨니까."

"그게 전부야. 여기가 동쪽이야."

"할아버지께서는 방법을 알면서 왜."

"나가지 않았냐고? 여기가 좋아서 그랬다면 믿겠나?"


노인은 그뒤로 아무말하지 않았다. 난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은미씨집 평상에 걸쳐앉았다.

노인의 말이 이해는 가지 않는다. 이 마을은 동쪽이라서 해가 동쪽에서 뜨기 때문에 해가

위에 있다니.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때 은미씨가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뭐해요?"

"옆집 할아버지 만났어요."

"왜요?"

"들어가서 말할게요."


내가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서 은미씨를 기다렸다. 방안은 통풍이 잘돼서 덥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가 모든 방향에 나무들이 있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이 문제다.


"왜 이리 안 들어오지?"


은미씨가 들어왔어도 벌써 들어왔어야했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자 이상했다.


"은미씨, 뭐해요? 안 들어오세요?"


난 방 안에서 은미씨를 불렀다. 반응이 없어서 문을 열고 부르려고 했지만, 은미씨는 없었

다. 흔적없이 사라진 것이다.


"어디 간거야? 은미씨. 어딨어요."


난 크게 불렀다. 갑자기 사라진 것이 이상했지만, 신경쓸 일이 아니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납치할만한 사람이 이곳에는 없었기에 그냥 볼일보러 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 말을

무시한 것 같아 화가 났다. 평상에 앉아서 은미씨를 기다리기로 했다.

담배를 피던 나에게는 며칠동안 담배를 안 피는 것은 매우 고통적인 일이었다. 가져온 담배

는 한 곽이뿐이었고, 이젠 그것마저도 몇 개비밖에 남지 않았다. 그 몇 개비중 하나를 꺼내

서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빨아마셨다. 눈을 감고 연기가 목구멍을 통해 폐까지 가는 과정을

생각했다. 담배를 피면 폐에 구멍이 생기는 사진을 많이 봤어도 연기는 계속 폐안으로 들어

갔다. 담배를 거의 펴가고 있는데 바닥에 머리카락이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무슨 머리카락이지? 한주먹은 되는데?"


난 떨어져있는 머리카락을 한웅큼 집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긴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은

미씨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은 머리카락을 떨어트렸다는 것이 이상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은미씨를 찾아나섰다. 대문앞에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더 진

한 색깔의 액체들이 흘려있었다. 난 허리를 굽혀 손으로 액체를 만져서 냄새를 맡았다.


"피?"

그러고보니 진한 색깔의 피가 머리카락부터 이어져오고 있었다.

피의 흔적이 남아있는 길을 쭉 따라가보니, 숲으로 연결돼 있었다. 저번에 숲에 들어갔다가

겪은 일과 너무 어두워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거기서 뭐하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청우가 손전등을 들고 날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 반가울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있니?"

"시간은 있는데, 왜요?"

"나와 같이 숲속으로 들어가자."

"네? 밤중에 숲은 왜요?"

"은미씨 알지?"

"당연히 알죠."

"은미씨가 저 숲에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머리카락과 피의 대한 얘기를 청우에게 했다. 그랬더니 선뜻 같이 들어가주겠다고

했다. 달빛마저 없었다면 숲속에는 나무들이 없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부엉이소리와 매미소리가 뒤섞여 내 귀를 울리는데 오묘한 기분이었다. 손전등이 비춰지는

곳에는 뻣뻣한 나무들밖에 없었다. 난 꾸준히 은미씨를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무들속에 지렁이들이 숨어있다는 생각에 온 몸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청우야."

"네."

"은미씨 무슨 일 당한 것은 아니겠지?"

"글쎄요. 사는 사람이라고는 5명밖에 안되니."

"5명? 나 포함해서?"

"아, 6명이 되겠군요."

"2명은 한번도 보지 못했군."

"저는 정말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요."

"나도 마찬가지야. 꼭 방법을 알아내서 같이 빠져나가자."

"고마워요."


그것의 대한 대답이 나올줄 알고 기다렸지만, 다른 말을 했다.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비

추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난 혹시나 나무뿌리가 날 위협할까봐, 수시로 뒤를 살폈다.

그때 나무뿌리 공격이 현실이었는지 꿈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왠지 길을 잃은 것 같아서 청우에게 한번더 말을 걸었다.


"너 숲길 다 알아? 가뜩이나 어두워서 거기가 거기같은데."

"그러고보니 이 숲 근처에 이상한게 있었어요."

"그게 뭔데?"


청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내게 말했다. 은미씨를 찾다가 저런말을 하는 것이 이상했다.

"벌집이 원래 노랗지 않아요?"

"벌집같은건데, 벌이 전혀 없었어요."

"뭐가 이상해. 벌이 다른곳으로 옮겨갔나보지."

"벌집이 원래 노랗지 않아요?"

"노랗지."

"그런데 그건 새빨간 색이었어요. 아주 빨간색이었요. 마치 피가 스며들어간 것처럼요."


그곳에 가면 뭔가 얻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청우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난 그곳으로 안내하라고 했다. 정말 어두운 길인데도 청우는 노련하게 길을 찾았다. 조금만

멀리 떨어지면 비가 오던 그날처럼 사람이 어디로갔는지 모를수도 있다. 그랬기 때문에 청

우뒤에 바싹 붙어서 따라갔다.

3분정도 걸었을 때 청우가 걸음을 멈추더니 주위에 손전등을 쭉 비추었다.


"여기인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나무사이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올빼미소리와 부엉이소리를 구별은 못 하

지만 매우 섬뜩한 소리인 것은 확실하다.


"찾았어요. 여기예요. 여기 와서 한번 보세요."


청우는 손전등을 흔들면서 나에게 소리쳤다. 아무리 어둡다하지만 손전등있는곳까지 못 갈

리는 없었다. 난 가까이 가려고 그곳으로 몸을 발걸음을 옮겼다.

나뭇잎이 종종 밟히는 소리는 내 몸을 감싸주는데는 충분했다. 거의 가까이 왔을 때 발에서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고 어디론가 떨어졌다. 깊이는 2미터가

약간 넘은 것 같았다. 구덩이같은곳에 내가 빠진 것이다.


"누가 이런곳에 구덩이를 파놓은거지? 청우야, 나좀 도와줘."


못들은 것 같다.


"청우야."

"어딨어요? 형 어딨어요? 어디갔어요?"

"나 여기야. 좀 꺼내줘."

"형 어디예요."


2미터정도밖에 안되는데 목소리를 못 들을 리가 없다. 난 더 크게 청우를 불렀지만 나를

부르는 청우목소리는 점차 작아지고 있었다.


'형, 어딨어요?'라는 말은 부엉이소리인지 올빼미소리인지에 묻혀서 더 이상 들리지 않았

다. 손전등조차 있지않아서 구멍말고는 앞을 볼수 없었는데, 따뜻한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

오고 있었다. 구덩이안쪽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었다. 냄새는 그곳에서 났다.

손으로 구멍을 약간 더 크게 만든다면 내가 누워서 간신히 들어갈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땐 왜 몰랐을까? 2미터정도 구덩이쯤이야 금방 올라갈수 있다는 것을.

난 서둘러 구멍을 넓혔다. 조금만 넓히니 내가 충분히 들어갈수 있을만한 구멍이 생겼다.

몸을 굽혀 안으로 들어가자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구멍속은 기다란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

고, 내가 일어서도 천장이 머리에 닿지 않았다. 마치 숨겨진 동굴과도 같았다.

따뜻한 냄새처럼 통로안도 매우 따뜻했다. 난 그때가 여름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지, 별다

른 생각은 없었다. 따뜻한 냄새가 이끄는 곳인 통로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통로가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통로는 자연적으로 생성된것이라고 생각했다. 빛이 들어오는 곳이 없어 앞으로간다는 느낌

이 전혀 들지 않았다. 통로는 꽤 길었다. 어느정도 가다가 내가 눈감고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도 잠시 따뜻한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고, 다른 곳으로

빠져나오는 곳이 보였다.


"뭐지? 설마 밖으로 나가는 길인가?"


난 허리를 숙이고 뛰었다. 밖으로 나오자,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노란불들이었다.

고속도로인 것이다. 차들은 라이트를 켜고 자기 고속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여기가 통로였어. 하하. 이젠 살았어. 살았다구."


환호성을 치고 나가려다가 청우가 한 말을 생각했다. 이곳을 꼭 나가고 싶다는 청우를 놔

두고 갈 수 없다. 따지고보면 이 통로를 알게된 것도 청우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시 길을 돌아간다고 해도 통로가 없어질리는 없

을 것이다. 그래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곧 구덩이쪽으로 왔고, 구덩이를 벗어나 마을

로 돌아갔다.

내가 분명 알지 못하는 길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쉽게 마을로 돌아왔다.

은미씨집에 들어가봤지만 은미씨는 없었다. 은미씨를 찾으러 나섯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날이 너무 어두워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잠이 안 온다. 이젠 부모님과 친구들을 만날수도 있다. 애인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항상 하는 일이라서 몰랐지만, 매우 소중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새벽이

찾아왔다.

9



날이 밝자 청우를 찾았다. 생각해보니 아직 청우의 집을 알지 못했다. 일일이 모든 집을

찾아볼수도 없었다. 그래서 노인을 다시 찾아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노인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마을에서 유일한 해결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은 멀리할수 없는 인물이다.


"할아버지 청우집이 어디죠?"

"청우가 누구야?"


이름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생김새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랬더니 얼굴을 붉히면서

나를 미친놈취급을 했다.


"미친놈, 니가 어떻게 그 청년을 알았는지 몰라도 죽은지 오래야."

"죽다뇨? 농담도 참. 어제까지 분명 저랑 있었어요."

"노인네 놀리면 못써."

"아 미치겠네. 정말이라니까요. 할아버지가 절 놀리시는 것이잖아요."


노인의 진지한 눈빛과 마주치고서야 노인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귀신에 홀린것일까?


"청우가 어떻게 죽었나요?"

"아마 6개월전쯤이었지? 그 청우라는 청년이 산에 갔다가 시체로 발견됐어."

"왜요?"

"여기 사람들이 발견했을때는 온 몸이 퉁퉁 부어있었어. 벌집을 잘못 건드렸나봐. 벌떼들한

테 쏘여서 죽었어. 입안속까지 수십마리의 벌들이 들어있었지. 쯧. 얼마나 쏘였는지 벌집에

피들이 물들어있었어. 아주 새빨간 피로 벌집의 색깔을 바꾸었지."


노인의 말을 들은 난 공포에 휩쌓였다. 청우가 한말이 똑똑히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새빨간 색이었어요. 아주 빨간색이었요. 마치 피가 스며들어간 것처럼요.]

어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냈다.


"젠장. 어제 청우를 만나서 그 벌집이 있는곳으로 갔어요."

"그건 말이 안돼. 사람들이 그 벌집 기분나쁘다고 불태워버렸는데."

"그곳에 구덩이같은 것이 있었어요. 거기가 이곳을 나가는 통로예요."


난 통로를 통해 나갔던 일들을 자세하게 노인에게 말해주었다. 노인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사람들을 만나야겠어요. 할아버지는 상관없겠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야죠. 같이."


이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찾았다. 물론, 은미씨도 함께 말이다.

마을을 곳곳을 뒤졌지만, 사람의 흔적은 아예 없었다.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젠장! 사람들은 왜 아무도 없는거야. 왜!"


점점 아파오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꼭 눌렀다.

평소에도 두통약을 1년 내내 호주머니속에 넣고 다녔다. 툭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아파

오기 때문이다. 노인의 집을 다시 찾아갔다.


"할아버지, 물 한잔만 주세요."

"기다려봐."


노인은 밖으로 나가더니 물한바가지를 내게 떠왔다. 하얀통에 가득하게 들은 알약을 손바닥

으로 쏟아냈다. 입안에 넣고 물을 마셨다.


"할아버지 잠깐만 여기서 잘게요. 잠깐만."


이젠 지루한 꿈속 여행이 시작된다. 아주 지루한 꿈이다.



10



난 어느 벌판에 서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사람 한명을 끌고 간다. 그 사람은 아무

런 저항도 없이 순순히 끌려간다. 그들의 대화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

어서 그들의 얼굴형체를 알아볼수 없는데도 말이다.



[이번에는 어디야?]

[저 숲속.]

[저기는 이상한 마을이 있는 숲이 아닌가?]

[이상한 마을?]

[저 숲에 들어가면 무슨 마을이 있다나봐. 아무도 못 들어가는 마을이지.]

[농담말게. 아무도 못 들어가는 마을을 어느 누가 알겠나.]


그러고는 숲속으로 들어간다. 이젠 아무도 없다. 난 그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하염없이

서있었다.


11



눈을 떴을때도 머리가 지끈했다. 그러나 일어나자 본 것은 노인이 아니라 은미씨였다.


"일어났어요?"

"어떻게?"

"제가 갑자기 뭘 하는 그런 것이 있거든요. 그냥 숲속을 돌아 다니고 싶더라고요?"

"그랬군요."


이상했지만 내가 이상하다고 말할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사

라지고 그냥 그러고 싶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없던데요? 옆집 할아버지 빼고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건 그렇고 어제 하려던 말씀이 뭐예요? 할아버지랑 대화 했다

고 저에게 뭘 말씀하시려고 했잖아요."

"말이 안되지만 해가 중간에 뜨더라고요. 동쪽에 떠야할 해가 중간에 뜨니까 이상해서 할아

버지한테 물어봤죠."


은미씨에게 할아버지에게 들은 얘기를 말해줬다.


"뭐 그거야 여기가 동쪽 마을이니까 그렇죠."

"아,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이곳을 탈출하는 통로를 발견했어요."

"그런게 있을 리가 없는데.."

"정말이예요. 분명 제가 들어가서 나온 것을 확인했다니까요."

"그럼 그게 어디있어요?"

"벌집있는.."


노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넓은 숲속에서 그곳을 찾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벌집. 벌집. 벌집.


"혹시 청우라는 사람 알아요?"

"민수씨가 어떻게 청우를 알아요?"


내가 귀신을 봤다고 말하면 분명 믿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한테 들었어요."

"아. 그렇군요. 청우는 왜?"

"그 사람이 죽었다는 곳을 알고 있나요?"

"몰라요."

"몰라요?"

"어떻게 알겠어요. 숲 중간에서 죽었는데. 더군다나 거기라고 알려주던 벌집마저 태워버렸

어요. 그래도 저희집쪽인건 확실해요."

'젠장. 괜히 동점심 때문에. 그냥 갔어야했는데.'

정신이 이상한 병신이라도 지금 이 상태에서는 한가지 생각밖에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탈출.

난 지금 이 순간 빠삐용이다. 자유를 위해서라도 이곳을 탈출해야한다. 아직 날이 밝아서

곧장 시작하기로 했다.


"은미씨. 같이 가실래요?"

"어딜?"

"이곳을 탈출해요. 제가 통로를 찾아올테니까요."

"됐어요."

"왜요."

"그런게 없어요. 창우가 죽었을 때 가봤는데 벌집주위에는 구덩이같은 것은 없었어요."

"아니예요. 은미씨가 가시지 않으신다면 저라도 가겠어요."


어둡고 침침한 숲의 분위기는 소름끼쳤다. 빛이라고는 해가 내리째는 한줄기정도였다.

어제 기억을 더듬으면서 걸었다.


-끼이익. 고막을 찢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막고 주위를 살펴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들을까봐 발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걸었다.


-끼이익. 한번더 내 고막을 자극시켰다. 좌우로 살피면서 걷는다. 누구에도 눈치 채지 않게

말이다. 하지만 수도없이 많은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숨을 쉬며 살아있었다. 눈은 6개이고 내가 움직일때마다 살살 움직인다.

입은 없고 숨구멍이 여러군데 송송 솟아있는데, 숨소리도 매우 거칠었다.

나무들이 내게 들려준 대화는 이렇다.


[하찮은 인간따위는 죽여버려야해.]

[내 동료를 죽였어.]

[지금 당장 죽일까?]

[아니야. 조금 더 지켜보고 사지를 찢어버리자.]


"닥쳐. 다 태워버리기전에."


내 말에 수많은 눈들은 움직이지 않고 날 보고 있었다. 두 개밖에 없는 내 눈으로는 모두

볼 수 없었다. 나무들의 눈들이 검은자로 뒤덮혀진다.


-끼이익. 한번 더 이 소리가 들리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무들의 눈은 아예 사라졌다. 대화하는 나무들도 이젠 대화를 하지 않았다.

주위가 너무 컴컴해서 겁이 났다. 이곳저곳을 헤매봤지만, 벌집이 있는곳을 찾지 못했다.

육각형인지, 팔각형인지의 그 모양인 벌집을 찾지 못했다.

아니, 찾지못한게 아니라 없는것이겠지. 한줌의 잿더미가 되어버렸을테니까.

내 희망조차 연기처럼 날라가버린 것이다. 은미씨의 말처럼 아예 없었던 것일수도 있다.

정말 그럴까? 정말 내가 환상따위를 믿고 이리도 미련한 짓을 하는것일까?


"저게 뭐야?"


움푹 들어간 것을 발견하고 내가 소리쳤다. 물론 나 혼자만의 말이었다.

설마. 설마.

가까이 갔을때는 구덩이가 틀림없었다. 다만, 새로운 것이 하나 더 있었을 뿐이다.

그것은 7살정도로 보이는 아이였다. 아이의 얼굴은 더러웠고, 옷은 때가 타서 누렇게 변한

하얀 천조각들이었다.


"넌 누구니?"

"...."

"왜 여기 있어? 저기 마을에 살아?"

"네."

"엄마 어딨어?"

"없어요."


난 속으로 이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버렸을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금방 생각을 고쳤다.

이유도 간단하지 않은가. 이곳은 보통숲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아이와 아이의 엄마까지 합한다면 나머지 두명이 확실해지는 것이다.

그래도 구덩이를 발견했으니 다행이다. 난 아이가 들어가 있는 구덩이에 들어가서 밑을

살폈다. 분명 내가 뚫어놓은 구멍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없었다.


"여기에 구멍없었어?"

"그런건."

"젠장!"


머릿속이 복잡해온다. 아이를 그냥 놓고 갈수도 없었다. 짐승이 사는 것은 확실하지 않았

지만, 불안했다. 나와 상관없는 아이지만 왠지 익숙했다. 자세히 볼수록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다.


"흑흑. 으앙.. 앙."


아이가 불안했는지 울음을 터트렸다. 콧물을 입술까지 흘리면서 크게 울어재꼈다. 나무들이

소근되는 것 같았다.


"꼬마야, 아저씨랑 마을로 내려가자. 데려다줄게."


난 꼬마를 손으로 잡고 왔던길을 되돌아 가려고 했지만, 그것마저 쉬운일이 아니었다.

길치는 아니었지만, 내 발자국조차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엇갈리는 길이 많았다.

내가 이러고 있는 아이가 내게 말했다.


"저쪽으로 가서 쭉 내려가면 되는데.."

"이 길 알아?"

"응."


내게 친근감이 느껴졌는지 말을 편하게 놨다. 아이의 말대로 길을 갔더니 마을이 나왔다.

오히려 아이가 날 마을에 데려다준 것이다.


"집이 어디야? 엄마는 어딨고."

"엄마 없다니까. 나 태워났을 때 죽었대."

"그럼 아빠는?"

"몰라. 으히히."


아이가 웃는게 수상했지만, 가장 가까운 은미씨네 집으로 갔다. 다시 안 돌아올 것처럼 말

하고 나가서 다시 들어가기가 민망하기도 했다.


"은미씨. 있어요?"


반응이 없어서 그냥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뭐라고 할 은미씨가 아니었다. 적어도 며

칠간 지켜본 은미씨는 그랬다.


"들어와."

"아저씨 집이예요?"

"아니야."

"그런데 왜 들어와?"


말을 계속 바꿔가면서 쓰는 아이였지만, 기분나쁘지는 않았다.

어색하게 집 안으로 들어온 아이는 집안을 두리번 거리더니 자리에 앉았다. 내 집이 아니기

에 뭔가 먹을 것을 줄수가 없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몰라요."

"그럼 너 아까 그곳에는 어떻게 간거야?"

"몰라. 모른다니까!"


아직 미성인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밤이 될동안 몇가지 질문해봤지만, 아이는 대부분 모

른다고 말했다. 은미씨는 오지 않았다.

아래 10편은 도중에 짤렸더군요. -_- 지금에서야 알았음.



아무생각없이 있다가 문득 아이를 봤을때는 벽에 기대에 쌔근자고있었다. 아이를 방에 눕히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이는 볼수록 어디서 본듯한 얼굴이었다.


"흠. 어디서 봤더라?"


눈밑이 힘이들어가 압박감이 느껴졌다. 손가락을 펴서 눈을 꾹꾹 눌러줬다. 대화할 사람도

없으니, 담배가 생각이 나서 밖으로 나갔다. 밤날씨도 점차 쌀쌀해져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마을 모습을 모두 바라볼수는 없지만, 밤에 본 마을 모습은 운치가 있었다. 아무

도 다가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피할수도 없는 그런 뭔가가도 같은것이었다.

난 담배 한모금을 깊게 빨아마시고, 길게 뱉었다. 역시 담배만이 가장 친한 대화상대였다.

담배를 모두 태워없애고 편상에 두다리뻗고 누웠다. 정통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별이 빼곡이

박혀있었다. 곧 나에게로 떨어질 것만 같아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눈을 감고 늦여름의 매미소리를 귀기울였다. 힘이 없는 울음소리는 나의 대한 동정같이 들

렸다. 동정같이.


"아이쿠!"


서서히 잠에 빠져들려고 할때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모른척 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 한명 빼고는 내가 아는 사람일테니. 그리고 이 목소리는 잊을수도 없는 목소리였다.

난 소리가 나는쪽으로 뛰어갔다. 노인은 바닥에 넘어져있었다.


"괜찮으세요?"

"일단 우리집으로 들어가지."


노인이 왜 자신의 집으로 나를 불러들이는지 몰라도 노인이 들어간 뒤 곧 따라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노인은 날 노려보듯 쳐다보면서 말했다.


"앉아. 오늘 뭔가 말해주지. 너 정말 이곳을 나가고 싶어?"

"당연하죠. 방법을 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럼 내 방법을 가르쳐주지. 대가는 필요없어."

"정말 방법 알고 계세요? 빨리 가르쳐주세요. 빨리. 가르쳐주시면 은혜는 진짜."

"은혜따위는 필요없다. 내가 전에 이곳이 동쪽마을이라고 했지?"

"네. 무슨 말씀인지는 몰랐지만."

"바로 그거야. 서쪽으로가."

"서쪽이 어딘지?"


내가 묻자 노인은 장롱같은곳에서 뭔가 하나를 꺼내서 내쪽으로 던졌다. 묵직한 소리를 내

며 떨어진 것은 도끼였다. 손도끼정도가 아니라 정말 큰도끼였다.


"이게 뭐예요?"

"보면 몰라? 도끼지."

"그건아는데 왜 이걸 제게 주죠?"

"도끼가 이 마을의 해답이야. 바로 그게 해답이라구. 키키킥. 크하하핫."


정말 기분나쁜 웃음이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배꼽이 빠지도록 웃어재꼈다. 도끼의 모양은

사람의 몸을 몇 번은 찍었을듯한 느낌이 풍겨왔다. 내 손은 나무로 만들어진 손잡이쪽을 향

했다. 매끄러운 것을 보니 사람손이 많이 닿았을 것 같았다. 손은 점점 올라가 쇳덩어리쪽

을 향했다. 날 부분을 살짝 갖다 댔더니 손가락이 베어져 묽은피가 나왔다.

손가락을 문질러 피를 없애고 있는데 노인이 말했다.


"그거 조금 날카롭지?"

"이걸로 어떻게 하란 말씀이예요. 도대체 이걸로."

"서쪽으로 가라고 했잖아. 그런데 말이야. 도저히 여기서는 방향을 몰라. 물론 어느 방향을
찍어도 4개중 하나는 맞겠지. 중요한게 그거야. 서쪽으로 가더라도 통로는 나오지 않아."

"그래서요?"

"뭐가 그러세요야. 그러니까 내가 지금 그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잘 들어. 지금 집에 꼬마
있지? 일단 걔를 죽여. 이 도끼로 말야. 다른곳은 안되고 오직 목만 찍어야돼. 알았어? 그
럼 도끼에 피가 묻을거야. 그 도끼를 가지고."

"잠깐만요. 그럼 저보고 아이를 죽이라고요? 살인을 하라는 소리네요. 저 못해요."

"하기 싫어? 평생 여기에 산다고 해두? 나야 상관없지. 크크크."


노인은 계속 기분나쁘게 웃어댔다. 나보고 살인을 하라니.


"그 도끼가지고 네 방향 어느곳을 가서 나무를 내리찍어. 서쪽은 다른 세 방향과 다른 현상이 일어날거야. 그럼 그쪽으로 쭉 가면 빠져나올 수 있지. 가장 중요한 것은 꼬마의 피야. 피."

"안해요. 안 한다니까.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

"과연 그럴까? 과연 말이야. 도끼는 집 앞에 놔둘테니, 마음이 바뀌면 가져가. 참고로 말해두지만, 오늘밤이 아니면 안돼."


집으로 돌아와서 황당함을 담배로 해결했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은 생애 처음 당해보

는 것이다. 노인이 넘어져서 나를 유도한 것은 계획된 일이었을 것이다. 해에 대해 묻지 말

라더니 너무나 자세히 가르쳐주고 있다. 노인에게는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는게 분명하다.

나 또한 노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직 귀에서는 '오늘밤이 아니면 안돼' 라는 말이

떠나지를 않는다. 난 노인 앞에서 살인은 절대 안하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만

더 불안해지고 있었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난 속으로 이 말을 수백, 수천번 생각했다.

아이와 난 아무 인연도 없으며, 오늘 처음봤다. 그렇다고 살인을 할 수는 없었고, 여기는

빠져나가고 싶다. 그런데 그럴려면 살인을. 갈등은 물의 순환처럼 똑같은 것이 반복되었다.




12



밤이 깊어질수록 별이 많아졌다. 달이 없어도 밤길이 잘 보일 것 같았다. 손이 떨려왔다.

아이는 아직 자고 있다. 내가 여기서 도끼를 들고 있다는 것은 꿈에서도 모를 것이다.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심장도 터질 듯이 뛰었다. 잠이 깨지않도록 한걸음 한걸음

신중하게 다가갔다. 도끼는 지금까지 써본적도 없었다. 떨리는 손 때문에 머리까지 들지 못

하고, 배꼽높이까지 들었다. 다 자라지 않은 아이의 목을 조준하기가 어려웠다.

대충 맞추고 마음정리를 했다. '하나, 둘, 셋 하면 내리 찍는거야.'

숫자를 모두 세고 아이의 목으로 내리찍었다. 피가 양쪽으로 튀었다. 그런데 이상한 비명소

리가 들렸다.


"으욱. 억.. 욱."


아이는 아직 살아있었다. 힘이 들어가지가 않아 도끼로 목을 전부 찍지 못한 것이다. 반쯤

박힌 도끼를 빼내니, 검붉은피가 솟구쳐나왔다. 도끼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비명소리는 여릿하게 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죽여야한다. 죽여야돼.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목은 방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다 내 다리에 부딪치자, 내

온 몸은 굳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콧구멍과 입에서는 피가 서서히 나오고 있었고, 잘려

진 목쪽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난 잘려진 얼굴의 눈과 마주치지않기 위해 신속히 밖으로

나왔다. 별은 여전히 많다. 떨리는 손은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아이의 피가 땀

처럼 흘렀다. 가장 가까운 방향으로 갔다. 그리고 도끼를 들어 나무를 찍었다.

그랬더니 나무가 비명을 질렸다. 한번 더 찍자, 나무속에서 피가 올라왔다. 반쯤 잘려나간

지렁이도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마 별이 아니었으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가 아니야. 빨리. 젠장 토할 것 같다.' 잘려나간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자 속이

울렁거렸다. 나오려는 것을 참고, 다른 방향으로 갔다. 거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도 그랬고, 이젠 네 번째 방향으로 왔다. 노인의 말이 맞는다면 여기가 확실히 서쪽

이다. 난 도끼로 나무를 찍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른 세 방향처럼 피와 함께 지렁이

가 꿈틀거리지 않았다. 보통 나무처럼 찍힐뿐이었다.

노인의 말처럼 앞으로 쭉 달렸다. 도끼를 던져버리고 계속 달렸다. 달렸다. 달렸다.

결국 노인의 말이 맞다고 믿은 것은 눈앞에 고속도로가 들어왔을 때였다. 늦은새벽이라서

차는 별로 없었지만, 가끔 화물차가 지나갔다. 난 손을 흔들어 화물차를 얻어탔다.

드디어 탈출이다. 멀어져가는 숲속을 보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내 얼굴과 옷에 피들이 묻

은 것도 잊은채 말이다. 기사도 미처 보지 못했는지 아무말않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까는 못 봤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피가 묻은거예요?"


난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


"그냥 산짐승에."

"고속도로에도 산짐승이 있나보죠?"

"사냥꾼이 죽였나봐요. 그 피가 저에게 튀었더군요."


말이 안되는 변명이었지만, 기사는 운전하는데에만 집중하느라 내 말을 잘 듣지 못한 것 같

았다. 서울에 도착했다. 기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아직 내 주머니속에는 집열쇠가 있었다. 찰랑거리는 열쇠를 손으로 주물럭거렸다. 그런데

집과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에서는 아이가 파고들었다.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나머지 한명은 끝내 누군지 보지 못했다. 아마도 날 그곳으로 끌고온 사람일 것이다.












소설제목 : 마을 사람들

작가명 : 학생우

E-mail : ten2003gogo@hanmail.net

연재장소 : 장르소설방

총편수 : 총 14 편 완결

장르 :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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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13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목욕이었다. 당연한일이겠지만, 피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일한 증거인 피를 없애려고 목욕을 한 것이다. 다른 증거인 도끼가 숲속에 있

지만, 그것을 발견 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지금쯤 은미씨는 목이 굴러다니는 집에

서 비명을 지를테고, 노인은 태연한 척 할 것이며, 옛날아저씨는 저주라고 소리칠 것이다.

목욕을 마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거의 20시간 되도록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꿈도 없는 아주 편한 꿀잠이었다. 잠에서 깨어나서 지방에서 만날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한수형, 미안해요. 그때 일이 생겨서 못 갔어요."

"전화한통도 없이 안 오면 걱정하잖아. 어떻게 할거야. 계약이 모두 취소 됐잖아."

"미안해요. 정말 어쩔수 없었어요."

"무슨일인데 그래. 나한테도 말하지 못하는거야?"

"말할수야 있겠지만, 그게 좀 곤란하네요."

"그럼 끊어라. 나 지금 나가봐야 하거든."

"네. 끊어요."


전화를 내려놓고,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역시 집이 편하다. 마을에 갔다온 뒤로

복잡해진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차도 없어졌고, 평소처럼 생활을 하려고 해도 익숙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내 직업은 월급쟁이와 같은 돈을 달마다 받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이다. 배달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비오는 그날도 같이 일하는 형에게 물건을 갖다주는 날이었던 것이다. 난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생각해봤자 득이 될것이 없었다.


"평소처럼 행동하자."


아침이 되면 커피를 끓였다. 커피와 설탕은 한 스푼, 크림은 두 스푼. 난 항상 이렇게 마

셨다. 다르게 먹어봤지만,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다. 직업의 특정상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침은 대부분 느긋하게 보낸다. 커피한잔 마시고, 화장실을 간다.

아침에 똥누는 것이 건강하기 때문에 어렸을때부터 습관으로 길러왔다. 그 다음으로 하는

일은 책을 읽는다. 마을에 가기에 전에는 '파리대왕'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아직 반도

읽지 못했다. 솔직히 이해를 못했다. 너무 난해하고 복잡한 내용이기에 읽는 도중 수도없이

딴 생각을 했다. 연락이 오면 내게는 출근시간이 된다. 그런데 요즘은 출근하는 일도 줄어

들었다.



14


내가 한동안 밖에 나가지 않거나 전화를 하지 않은 이유는 알지못할 압박감때문이었다. 오

늘은 한수형에게 연락이 왔었다. 오랜만에 출근인 셈이다. 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가기

로 했다. 이리저리로 끌려다니기도 싫었고, 그냥 조용하게 지내고 싶었다.

점심을 먹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버스를 보면 그냥 화가 난다. 그때 버스타는 것을 선

택했었어도, 마을에 갇히는 일은 없었을것이고, 살인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표를 끊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지금 기분으로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좌석이 맨뒤 중간이었

고, 어렸을때부터 창문가에 앉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버스안에는 만원이었다

다. 출발전부터 기분이 나빠져서 일을 제대로 할수있을지 몰랐다. 가는 내내 얼굴을 찡그렸

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지만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었다면 내가 심장이 뛰지는 않았을 것

이라고 맹세한다.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기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수형집으로 향했다.

자주 들리던 곳은 아니지만, 한번 갔던 길은 숲길빼고는 모두 알 자신이 있으니까, 쉽게

찾아갔다. '니가 오면 나 없을거야. 일이 있거든. 경비실에 열쇠맡기고 갈테니 열고 들어

가'라고 말해던 것을 기억해내고 경비실로 갔다.


"아저씨. 오랜만이예요. 한수형 열쇠좀 받으려고요."

"민수아녀? 참으로 오랜만이구먼."

"아저씨 정말 이젠 늙으셨네요."

"한수 말대로 민수 니가 왔구먼. 자, 여기 열쇠. 한수 걔는 참 희안한 능력을 가졌어."

"능력이라뇨?"

"아녀,아녀. 그냥 해본 소리여. 그럼 들어가봐."

"고마워요. 저 집에 가기전에 소주한잔이라도 해야죠."


경비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의 말이 어딘가 이상했지만, 일일이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한수형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현관문으로 들어와서 혀를 차면

서 말했다.


"쯧쯧. 아무리 혼자살아도 그렇지. 좀 정리좀 하면서 살지. 이게 뭐람."


처음으로 연상케한 장면은 부도난 사무실이었다. 옷들은 방바닥에 널려있었고, 몇 달간 청

소도 안한 것 같았다.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청소해줄 생각은 없었다.

TV위에는 쫙 벌려진 책이 올려져 있었다. 책의 제목을 보니 내가 읽고 있었던 '파리대왕'이

었다. 잘됐다 싶어, 책을 들고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벽에 기대에 내가 읽었던 부분을 찾

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아니, 빨리 읽었다. 수백쪽에 달하는 책을 2시간도 안되서 읽었

으니 말이다. 책을 모두 읽고 내가 느낀 것은 단 하나뿐이다. '재미없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날이 빨리 어두워졌다. 그만큼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

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한수형은 오지 않았다. 연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연락을 기다

리는 상황이라서 더욱 그랬다. 집을 곳곳을 살피다가 사진액자같은 것을 발견했다. 맑은날

에 꼬마가 웃으면서 브이자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한수형의 어렸을적 사진같았다. 보고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라기보다 기분이 나빴다.

아까 버스에서 느낀 기분보다 더 나빴다. 왜 나쁜지는 다시 한번 사진을 봤을 때 알았다.

내가 잘못 본게 아니고, 내 기억력이 5살짜리보다 못한게 아니라면 웃으면서 브이자를 하고

있는 꼬마는 도끼로 목이 떨어진 아이가 분명했다.


"이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설마하는 마음으로 경비실로 갔다. 아저씨는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난 문을 열고 들어가

아저씨를 흔들어 깨웠다.


"아저씨, 아저씨! 일어나봐요! 아저씨."

"으응? 민수여? 왜 왔어? 아! 소주먹자고 했었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한수형 어딨어요."

"어딨긴, 젊은자식이 늙은 나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게 뭐하지만."

"무,무슨 말이예요? 세상을 떠나다니요?"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한수 죽었잖아. 몰랐어?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네."

"어,언제. 언제 죽었어요."

"한 두달전이던가? 시내에서 강도에게 칼맞아서 죽었어. 너는 알 것 같았는데."

"그럼 제가 여기 올줄은 어떻게 알았죠? 열쇠는 아저씨가 어떻게 가지고 있고."

"그거야. 아까 내가 말했잖어. 한수 걔가 희안한 능력을 가진 것 같다고. 그 죽는날 아침에 나한테 열쇠를 맡기더라구. '몇달후에 민수가 올거예요. 그때 민수가 오면 주세요.'라고 말이야. 아마 자기가 죽을것이라고 알고있었던거 같더라고."


머리가 아파왔다. 호주머니에서 두통약을 꺼내서 집어삼켰다. 이젠 하두 많이 넘겨봐서 물

도 필요없었다. 장속에서 소화제가 모두 소화되고 온 몸에 흡수될때쯤에 서울행 버스에 올

라 탔다. 힘없고 졸릴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버스에는 사람도 없었고, 내가 원하는

창문가에 앉았지만 그리 기분은 좋지 못했다. 그냥 잠시 잊어버리려고 잠을 잤다.

그러나 핏기없고 흰자위를 늘어트린 한수형의 얼굴이 날 쫓아오는 꿈을 꿔서 짧은 비명을

지르면서 잠에서 금방 깼다.


"손님. 주무세요?"

"아뇨. 왜 그러시죠?

버스기사가 누군가 불렀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기사뿐이니 날 부른 것이 확

실했다. 내가 대답을 하자 버스가 멈췄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려고 하자, 버스기사가 먼

저 말을 했다.


"제가 오줌이 너무 마려워서. 죄송한데 잠깐만 갔다올게요."

"뭐, 그러세요."


금방이라도 쌀 듯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갔다. 버스안에 아무도 없으니 썰렁했다.

머릿속에는 계속 한수형의 대한 것들이 계속 그려지고 있었다. 원래 귀신같은건 믿지 않았

다. 그저 사람들이 약해빠져서 지어낸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이히히' 하고 쫓아오는 귀신

따위가 무섭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무시했다. 지금 나에게 귀신을 믿는다고 묻는다

면 어떻게 대답할지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나와 통화한 사람이 귀신이 아니라고 말할수도 없고, 귀신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5분

정도 지나려고 하니까 기사가 버스안에 탔다. 곧 출발하겠지 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눈감을 지겨워지도록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하고 눈을 떠보니 기사가

아닌 마을에서 본 노인이 서있었다. 심장이 굳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왜 놀랐어?" 놀라는게 당연하지."

"어떻게."

"밖을 봐. 익숙한 숲이 보이지는 것 같지 않아?"

"아. 여기로군요.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 지금 할아버지 진짜 보기 싫거든요? 제발 제 앞에서 없어져주세요.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뭘 그리 흥분하나. 나 때문에 지금 너도 여기에 있잖아."


모든 것을 따져묻고 싶었지만, 계속 노인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노인이 나보고 한수형을

죽이라고 시킨 것이다. 내가 이러고 있는데도 노인은 그저 웃기만 했다.


"왜 계속 거기에 있죠? 빨리 나가라니까요."

"넌 정말 모르고 있는게 있어. 정말 한심하단 말이야. 넌 곧 누굴 죽일거야."

"진짜 빨리 나가라고요. 듣기 싫어. 무슨 개소리를 하는거야!"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노인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창문 밖으로

는 노인이 숲쪽으로 가는 모습을 봤는데, 서서히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노인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몰랐다. 기사는 곧 돌아왔고, 금방 버스는 움직였다. 저 숲은 다시는

가기도, 보기도 싫었다. 집에 돌아와 바로 골아떨어졌다. 계속 한수형머리에 쫓겼다.


한달 후..


날씨가 매우 추웠다. 거기에다가 바람까지 불어서 체감온도는 대단했을 것이다. 감각이 무

뎌 질 정도로의 추위였지만, 살게 있어서 어쩔수 없이 밖에 나갔다. 외투를 단단히 입고도

온 몸을 움츠리지 않으면 안됐다. 웬만하면 바람을 등뒤고 하려고 했으나 그게 마음대로 되

는것도 아니니 어쩔수 없었다. 가게에서 사려고 하던 물건을 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

밖으로 나섰다. 바람은 계속 불고 있었다. 칼바람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칼이

계속 내 얼굴을 스쳐가는 것처럼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움츠리고 땅을 보면서 걷고 있는데, 누군가 길을 막아섰다. 막아섰다기보다 내가 사람을 못

봤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난 고개를 들어서 얼굴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오랜만이네요."

"은미씨? 은미씨 맞죠?"

"네."

"여기에는 어떻게? 마을에."

"좀 그렇게 됐네요."

"아니, 아니지. 저희 집으로 가요. 이렇게 추운데."

"고마워요."


그동안 있었던 얘기가 듣고 싶어서 은미씨에게 말했다. 이상하게도 노인과는 다른 감정이

든다는 것을 내 스스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따뜻한 커피를 만들었다.


"커피 드실거죠?"

"고마워요."

"설탕은 어떻게?"

"민수씨처럼 해주세요. 날씨가 정말 춥군요. 그냥 뜨거운 것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죠? 몸이 어는줄 알았다니까요."


오랜만에 사람다운 대화를 나눌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별 다른 주제도

없었는데도 많은 대화를 했다. 거의 처음 만난 사람치고는 어렸을 때 있었던 일까지 얘기하

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민수씨."

"네?"

"제가 어떻게 여기에 온 줄 아세요?"

"...."


그점도 내가 엄청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난 말 없이 은미씨를 바라봤다.


"민수씨가 그날 벌집을 찾으러 나간다고 했을 때 무서웠어요. 또 그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까하고 말이죠.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게다고."

"그게 뭔데요. 그 일이 뭐예요. 네?"

"살인이요. 결국 민수씨는 살인을 하고 말았죠. 왜 그랬죠? 조금만 참았으면 좋았을걸."

"어쩔수 없었어요. 빠져나가려면 그렇게 하라고."

"청우도 그 짓을 했어요. 절대 노인을 믿으면 안돼요. 민수씨를 구하려고 여기 왔어요."

"저를 구하다뇨?"

"한수라는 사람 강도에게 죽었죠?"

"어떻게?"

"역시. 한수라는 사람은 민수씨가 죽인거예요."

"제가 안 죽인거예요. 제가 왜 죽여요, 한수형을! 제발 말하지 마세요."

"하지만 이건 인정해야해요. 빨리 마을로 돌아가요. 아니면 민수씨는 죽어요."

"그래도 마을 싫어요. 차라리 죽고 말래요."

"저 그런 방법 말고도 마을을 나가는 방법을 알아요. 그러니 세상이 조용해질때까지 마을에 있으세요. 네?"


은미씨는 나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부탁이라는 생각에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왜 저한테 그러시죠? 은미씨를 만난지 별로 되지도 않았는데."

"청우와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민수씨 청우와 많이 닮았거든요. 외모가 아니라 느낌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커피에서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왔다. 은미씨는 코를 컵에 갖다대고 향을 맡았다.


"커피향이 좋네요."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는게 이상했다. 그래도 내가 먹는 그대로가 좋다는 말처럼 들려서 기

분은 나쁘지 않았다. 한모금 마시더니 다시 내게 말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의 얼굴이 굴러다니더군요. 민수씨는 아직 믿지는 않을거예요.. 어떻게 죽은 얼굴이 방안을 돌아다니는지. 데굴데굴. 데굴데굴. 소리까지 내면서요. 머리가 굴러질때마다 머리카락은 한 올씩 빠졌어요. 정말 소름이 끼쳤죠. 계속 돌았어요. 그러다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니까 멈추더군요. 제가 처리하려고 했지만, 겁이 나서 도저히 못 할 것 같아서 옆집 할아버지에게 찾아갔어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에게 그것들을 말했더니, 벌컥 화를 냈어요. 왜 그러냐 했더니 아무말 하지 않으시더군요. 전 한동안 다른곳에서 살다가 민수씨가 위험한 꿈을 꾸게 됐죠. 제발 부탁이예요. 같이 마을로 돌아가요."

'말이 약간 안 맞는데..'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묻어버린 것은 은미씨의 간절함이었다

다.



15



믿지 않겠지만, 내가 지금 서있는 곳은 숲앞이다. 비올때까지 우리집에서 머물다가 비가 내

리자 숲으로 왔다.


"저쪽이예요. 저만 따라오세요."


은미씨는 가져온 손전등으로 한쪽길을 비추면서 말했다. 갈때마다 손전등의 불빛은 상하로

흔들렸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알아보기 쉬웠는지 모른다. 가까이 가니까 아주 작은 모퉁길이

있었다. 진작 이런 것을 못 본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런게 있었네요."

"비올때만 생겨요. 모세이야기 아시죠? 파도가 갈라지는거."

"네."

"그런거와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 길이 생겨지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죠."


저번처럼 엄청 어두워서 주위사물들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손전등은 앞만 보고 있고, 어색

한 길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도대체 어디로 나왔는지 모른다는 것

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로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났다. 은미씨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말

할 뿐이었다. 오랜만에 온 마을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변함이 없었다는 것은 내가 여기

를 처음 왔을때와 마찬가지란 말이다. 비 때문에 가장 가까운 집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 집은 저쪽이예요. 비가 많이 오니까 빨리 가죠."


여러집들을 지나치고, 은미씨가 걸음을 멈춘곳은 어느 집도 마찬가지였지만, 낡은 집이었

다.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집은 아니어서 속으로 안심했다.

자면서 '이거 속고 있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해봤지만, 노인이라면 모를까 은미씨는 아닐거

라는 생각에 그냥 눈을 감았다.

아침에는 물안개로 뒤덮힌 마을이었다. 숨쉴때마다 물알갱이 하나하나가 숨구멍을 통해 몸

속으로 들어가 톡 터지는 느낌이었다. 여기있는 동안은 왠만하면 노인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해가 불쑥 나왔을 때 아니, 생겼을 때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은미씨는 숲에 잠깐 가본다고 하고 나갔고, 나 혼자 집안에 있다가 답답해

서 밖을 나갔었다. 노인은 그때 만난 것이다. 꼭 일부러 찾아온 것처럼 말을 했다.


"역시 왔었네. 그럼 괜한 아이만 죽은거로군."

"조용하세요."


1분도 마주치고싶지 않은 마음이라서 들어가라고 했지만, 노인의 말이 더 빨랐다.


"내가 말해주고 싶은 것은 넌 여기 괜히 왔다는 것이야. 은미가 널 속이고 있는거라고. 또 빠져나가려면 아이의 피가 필요한데 어떻게 구할수도 없는것이고. 영원히 여기서 썩어야지.크크."

"은미씨를 모욕하다니. 할아버지 당신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요. 그리고 은미씨는 다른 방법을 안다고 내게 그랬거든요. 조금 잠잠 해지면 여길 빠져나갈거예요."


15


"할아버지가 은미씨, 거짓말을 한다고 하더군요. 나참 어이가 없어서."


난 은미씨가 돌아오자 노인과 대화했던 것들을 모두 말했다. 왠지 고자질쟁이가 된 것 같아

좀 그랬지만, 그만큼 노인이 싫다는 것이다. 묵묵하게 나만 바라보는 은미씨가 정다웠다.


"그런데 민수씨 하나 묻고 싶은게 있는데요."

"네, 얼마든지요."

"그때 그 아이."

"...."

"말하지 말까요?"


내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봤는지, 나를 살피는 것 같았다. 그런데 굳이 피할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아니예요. 말씀하세요."

"그럼 제 느낌대로 말할게요. 지금까지 본 민수씨는 절대 살인같은 것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떤 생각이었죠?"

"...."

"말씀해주세요. 아무리 나가고 싶어도 살인을 하다니요. 저로써는 이해못 할 일이 었어요. 물론 청우도, 청우도 그랬지만."

"그날 저는 갈등을 했어요. 이 아이를 죽이고 할아버지 말처럼 이곳을 탈출할까. 그래도 살인은 할 수 없었죠. 나 살자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제 상식을 벗어난 일이 었었지요.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왜?"

"은미씨 나무들이 얘기하는 소리를 들어보셨어요? 절대 제 귀가 어떻게 됐다든지 그런 것은 아니예요. 소곤소곤 자기들끼리 대화하는 것 같았죠. 나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거칠죠. 거친목소리가 제 귀를 계속 울렸어요. 그렇게 무심코 듣다가 심장이 마비되는 느낌일 받는 말을 들었어요. '저 아이를 죽여야 이 마을을 벗어날텐데.','그렇지 않으면 평생 여기서 썩을거야.키키키' 그러니까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군요. 정신을 차려봤을때는 도끼가 제 손에 들려져 있더군요. 생각은 하지 말자고 했지만, 저도 무의식적으로 해야겠다고 느낀 것 같아요."

"힘든 얘기 부탁드려서 죄송해요. 차 한잔 드릴까요?"


수개월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은미씨에게 새로운 감정이 느껴졌고, 우리는 서로 사랑까지 나

눴다. 그동안은 남은 한명은 절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청우가 자신까지 말한 것 같았다.

노인은 한동안 보이지 않았으나, 곧 모습을 나타냈다. 물어도 알려주지 않을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았다. 옛날아저씨는 여전히 신 타령이었다. 아직도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은미씨를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거의 똑같은 일생만 반복되었지만, 변한게 있다면 은미씨를 은미라

고 부르게 된 것이다. 20년이나 지났지만, 노인은 늙지 않는 것 같았다. 노인은 내게 문제

를 낸 적이 있었는데, 뜸금없이 수수께끼를 풀어보라는 것이었다. 무슨 수수께끼라니 물어

보니 마을의 대한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아무런 의미 없는 문제인 것 같아서 넘겼지만, 나

를 만나면 툭하면 그 말을 했다.

나도 어느새 40을 훌쩍 넘겨 이마에는 잔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은미도 마찬가지

였다. 내심 다른 사람이 마을에 들어오기를 원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 20

년동안 변해가는 세월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은미에게 한가지를 물어봤

다.


"은미야. 뭐 한가지만 묻고 싶은게 있는데."

"물어봐요."

"20년 전 나한테 나가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 그거 말야. 그거 지금 나한테 가르쳐 줄 수 있어? 뭐 여길 나가겠다는 것은 아니고."

"이걸 어쩌죠. 벌써 20년이나 지났는데, 잊어버렸어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래도 그렇지. 그걸 까먹냐. 이렇다 빨리 치매걸리는거 아냐."


난 웃음으로 대화를 끝냈다. 말은 나가지 않는다고 했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는 싶었다. 어쩔수 없지.

요즘에는 노인에게 찾아가서 자주 책을 빌렸다. 엊그제도 책을 빌렸는데 꽤 재미가 있었다.

책을 거의 다 읽어 갈때쯤 은미가 내게 말했다.


"저 옆집 할아버지한테좀 갖다 올게요."

"잠깐만 기다려줘. 이거 몇 쪽 안 남았는데, 같이 가."

"네? 아니예요. 천천히 보고 갖다 줘요. 아니면 제가 갖다줄게요."

"뭘 그렇게 해? 나도 어차피 다른 책도 빌리려고."

"아뇨. 저 먼저 가볼게요."

"도대체 왜 그래?"


은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갔다. 왜 그러는지 이상했다. 난 책을 서둘러 읽고

노인의 집으로 갔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들어가도 돼죠?"


노인의 허락이 있지도 않았지만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상대에게 일일이 허락받고 행동

으로 옮겨야 할 일은 20년동안 모두 묻어버렸다.


"책 다 읽었어요. 꽤 재미있더라고요. 어? 그런데 은미는 어딨어요?"


집 안에는 노인 혼자 밖에 없었다. 그렇게 급하게 노인을 찾아갔으니 다른데 갈 것 같지는

않았었다.


"여기 안 왔어. 책 빌려줄까? 뭐 아무거나 가져가."

"그건 됐고요. 이상하다."

"뭐가."

"은미가 분명 여기 온다고 했거든요."

"다른데 갔나보지."

"글쎄요. 그럴거 같지는 않았는데."


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니까 노인은 실실 웃고 있었다.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

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왜 웃냐고 묻고 싶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은미를

기다렸다. 이상했다. 20년동안의 일들을 생각보니 이상한 것이 있었다. 꼼꼼히 씹어넘기지

않은 일이 있었다. 난 여기 있는 사람. 그러니까 나, 은미, 노인, 아저씨가 있었지만 한번

도 단 한번도 두명 이상으로 같이 대화해 본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 난 무조건 한명씩 따로

만나서 얘기했다는 것이다. 대화 뿐만 아니라 두명을 한꺼번에 본적이 없었다. 내 기억력이

80세 치매걸린 늙은이가 아니라면 확실했다.


'뭔가 이상해.'


또 그걸 지금에서야 생각했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은미가 들어왔

다. 들어오자마자 내가 물었다.


"옆집에 간다더니 어디 간거야? 없던데."

"그냥 숲속을 돌아다니고 싶었어요."


말의 앞뒤가 안 맞는다. 난 최고로 좋은쪽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 감정적으로 그게 되

지 않았다.


"나랑 잠깐 옆집 가자."

"왜요?"

"가자면 가! 빨리 나와."

"싫어요. 정말 왜 그래요?"

"왜? 그건 내가 묻고 싶은거야. 뭔가 이상해. 왜 난 한번도 당신과 노인이 만나는 모습을 보지 못 했지?"

"그거야 저도 모르죠. 유치하게 그런거 같고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 만나러 가자니까!"

"싫어요."


은미가 가기 싫다고 계속 하자 최악인 경우가 자꾸 머릿속에 헤메었다. 그 최악인 경우는

은미가 노인이고 노인이 아저씨인 경우다. 아니 거의 그렇다고 하고 싶다. 은미가 나와 노

인에게 같이 가주길 바랬다.


"제발 같이 가자."

"싫다니까요. 가려면 당신 혼자 가요."


마지막 부탁이었다.


"너 귀신아니야? 날 홀리게 하고. 어? 귀신. 그래서 니가 노인이 되고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과 만나지 못한거 아니냐고."

"무슨 말이예요. 무슨. 무슨. 무슨. 크크큭. 드디어 내가 낸 수수께끼 맞췄구먼. 정말 오래걸렸어. 20년이나 걸렸으니 말이야."


그 최악인 경우가 내 눈앞에서 펄쳐졌다.


"너, 너 누군데 이러는거야?"

"니가 맞춰놓고 모른다고 하면 안돼지. 귀신이라니까. 그런데 말이야 아직 모르는게 있어. 솔직히 내가 귀신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 그건 곧 밝혀질테니 알려고 하지마."

"무슨 소리야! 개자식아. 날 20년동안 갖고 놀았냐. 당장 죽일거야."


난 밖에 나가서 아이를 죽였던 도끼를 찾았다. 마당 구석에 박혀 있는 도끼는 오랫동안 쓰

지 않아서 녹이 슬어있었다. 도끼를 집어 들고 방안에 들어갔지만 은미는 없었다. 집이란

집이란 집은 모두 뒤지고 다녔지만, 은미는 없었다.


"어디 간거야. 아악~~~!"


소리를 질렸다. 내 20년을 이런곳에서 보냈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도끼를 이리저리 휘둘면서 은미가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

나서야 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잽싸게 소리나는 쪽을 갔다. 도끼는 놓치지 않았다.


"너 이 자식! 당장 목을 쳐서 죽여버리겠어. 알았어? 날 살인자로 만들고 가져놀아겠다."

"쉽지는 않을걸."


밤새도록이었다. 밤새도록 은미와 사투를 벌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둘에게는 상처들이 생

기지 않았다. 도끼를 휘두르면 모두 미끄러져 내리는 것 같았다.

아침이 거의 왔을 때 내가 은미의 팔을 찍어 잘랐다. 팔은 뚝 떨어졌다.



16


오후가 돼서야 창수와 그 동아리 회원들은 숲속에 집들을 발견했다. 정말 신비로운 듯이 바

라 보다가 창수친구가 소리쳤다.


"저기요! 여기와봐요. 여기 사람뼈같은게 있어요. 와보세요."


사람들은 우르르 친구가 부르는쪽을 갔다. 그곳에는 누렇게 변한 뼈가 있었다. 손부분에는

도끼가 있었고, 그 위에는 커다란 통나무가 있었다. 통나무의 생김새는 얼핏 봐서 사람이

양팔을 좌우로 벌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한쪽 부분의 나무가 도끼로 잘려나간듯한

흔적이 보였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그 부분의 나무를 발견했다.



17


잘려진 팔속에는 지렁이가 삐져나왔다. 지렁이는 나에게 기어와서 살속으로 파고들었다. 뼈

를 가는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은미는 점점 변해 딱딱한 나무로 변하고 있었다.

수백마리의 지렁이가 내 몸속을 갉아먹고 있었다. 나도 죽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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