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오강호 7-2

3학년2반 | 2022.03.16 07:14:31 댓글: 0 조회: 1688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6258

이때 숭산 꼭대기에는 수천 개의 눈이 좌냉선과 악불군의 결투를 보고 있었으나 오직 한쌍의 눈만은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시종 의림의 눈빛은 영호충의 몸에서 조금도 떠나지 않았다.

갑자기 좌냉선의 외침소리가 들리더니 악불군은 뒤로 물러나 봉선대 서남쪽에 우뚝 멈추어 서 있었다. 봉선대 아래와 불과 한척 남짓 되었으며 몸이 흔들거려 마치 금방이라고 떨어질 것 같았다.
좌냉선은 우측손으로 장검을 휘둘렀다. 휘두르는 동작은 갈수록 급하고 숭산의 검법을 모두 동원하는 듯하였다. 일초일초가 연이어지더니 온몸의 전후 좌우의 요혈을 감쌌다. 그러나 그의 검법은 정묘하고 기괴했으며 힘 또한 대단하여 일초식 일초식의 기세가 너무나 당당하여 많은 사람들은 모두 갈채를 보냈다. 한참 지난 뒤에 좌냉선은 여전히 혼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악불군을 향해서 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상황이 마치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의 검초는 단지 방어만 할 뿐 악불군을 향햐서 일초식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이런 행동은 마치 홀로 검법을 연마하는 사람 같았지, 공격을 하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갑자기 좌냉선의 일격이 쭉 뻗어 나오더니 허공에 멈추고 거두어들이지도 않았으며 약간 머리가 기우뚱해지더니 마치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하였다. 단지 그의 눈에서는 두 줄기의 가느다란 핏자욱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어떤 사람이 말을 했다.

[그의 눈이 멀었다!]

그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좌냉선은 갑자기 대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외쳤다.

[나는 눈이 멀지 않았다! 나는 눈이 멀지 않았다! 어떤 개 같은 놈이 나보고 눈이 멀었다고 했느냐? 악불군, 악불군 이 못된놈아 씨가 있는 놈이라면 즉시 이쪽으로 건너와 이 어르신과 밤새도록 삼백여 합을 더 싸워 보자꾸나.]

그는 외칠수록 더욱 소리가 커 목소리 속에는 분노와 고통과 절망이 충만하였으며, 마치 한 마리의 맹수사 중상을 입고 난 후 죽을 무렵에 온 힘을 다하여 울부짖는 것과 같았다.
악불군은 한쪽 귀퉁이에 서서 단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좌냉선이 분명히 악불군에 의해 두눈이 멀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입만 딱 벌리고 있을 뿐 이었다.
단지 영호충과 영영만이 이같은 결과에 놀라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악불군의 장검이 손에서 빠져나가자 그가 사용하는 초술(招術)은 바로 동방불패의 무공과 너무도 흡사하였다. 그날 흑목애에서 임아행, 영호충, 상문천, 상관운 네 사람이 연합해서 동방불패와 격돌을 할 때 동방불패의 기세에 그들은 꼼짝 못하고 있었는데 영영이 양련정을 공격하자 비로소 틈을 얻어 승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승리를 했다고 해도 임아행은 결국은 한쪽 눈을 못쓰게 되었던 것이다. 악불군의 몸놀림이 동방불패의 신속함과 비교를 할 때 비록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일대일로 좌냉선과 격돌을 하면 좌냉선은 반드시 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그의 두 눈은 바늘에 찔려 멀게 되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사부가 승리를 했으나 마음속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갑자기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악불군의 성격은 온화하고 그를 지금까지 친절하게 대해 왔고 그는 어려서부터 사부에 대해서는 위엄보다는 사랑을 더 느꼈었다. 나중에 사부가 자기를 문하에서 내쫓았을 때도 그는 내심 자기 행동이 방자했던 결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단지 사부와 사모가 용서를 해주기를 기다리고 지금까지 조금도 원망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때 사부의 옷소매가 바람에 펄럭이고 봉선대 위에 서 있으며 표정이 매우 근엄한 것을 보고는 어찌된 영문인지 마음속에는 강렬한 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악불군이 사용하는 무공이 그로 하여금 동방불패의 괴상망측한 모습을 떠오르게 했는지도 몰랐고 또 어쩌면 사부의 이번 승리는 그리 정당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는 한참 멍청히 서 있다가 상처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는 풀썩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영영과 의림은 동시에 손을 내밀어 부축하고 일제히 물어봤다.

[어떻습니까?]
영호충은 고개를 흔들며 억지로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소이다.]

좌냉선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악불군! 이 겁장이 씨가 있는 놈이라면 한판 겨뤄보자. 요리저리 피하고 무례한 소인배이구나! 이쪽으로 건너와라. 이쪽으로 건너와서 한번 붙어보자.]

숭산파 가운데 탕영악은 말했다.

[너희들은 가서 사부를 부축하여 내려오거라.]

두 명의 대제자인 사등달과 적구는 대답을 했다.

[녜.]

잽싸게 봉선대에 올라가 말했다.

[사부님, 저희들이 모시고 내려가겠읍니다.]

좌냉선은 외쳤다.

[악불군아 어서 이쪽으로 오지 못하겠느냐?]

사등달은 손을 내밀어 부축하며 말을 했다.

[사...... 사부.....]

갑자기 차가운 빛이 번쩍이더니 좌냉선의 장검이 사등달의 좌측 어깨에서 똑바로 위측 허리까지 가로질러 내려갔다. 이어서 검광이 다가오더니 적수는 이미 꼬꾸라졌다.이 두 검의 기세는 너무나 날카로워 실로 생각밖이었으며, 단지 한 줄기의 섬광이 번쩍이더니 두 명의 숭산파 대제자들은 이미 네 조각으로 잘라졌던 것이다.
봉선대 아래의 군웅들은 일제히 외치며 깜짝 놀랐다.
악불군은 걸음을 천천히 해서 봉선대 가운데로 오더니 말을 했다.

[좌형, 당신은 이미 폐인이 되었소. 나는 당신처럼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소. 일이 지금에 이르렀는데도 당신은 여전히 나와 오악파의 장문자리를 겨루려고 하시오 ?]

좌냉선은 천천히 장검을 돌리더니 검끝으로 그의 가슴을 겨누었다. 악불궁의 수중에는 병기가 없었다. 그 장검은 공중에서 떨어져 봉선대에 꽃혀 바람에 움직이고 있었다. 악불군의 두 손은 소매 속에 있었으며 눈도 껌벅이지 않고 가슴 앞에 있는 검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끝에는 피가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며 가벼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좌냉선의 우측 소맷자락은 부풀어 올라 마치 바람을 맞은 돗처럼 팽팽하였다. 좌측 소매는 평편하게 밑으로 쳐져 있었으며,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만 보아도 그가 온 몸의 경력을 모두 우측 팔에 모아놓고 있는 것이 역력하였다. 내공이 부풀어 오르자 소매도 부풀어 올라 실로 대단하였다. 이 일검은 실로 천금과 같은 위력을 지녔다.
갑자기 힌 그림자가 급히 움직이더니 악불군은 뒤로 한장 정도 미끄러나갔다. 그리고 바로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뒤로 물러나고 앞으로 나오는 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는 잠시 멈춰 있다가 순식간에 뒤로 물러서고 이어서 신속하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가슴을 좌냉선의 검끝에 갖다 대었다. 모든 사람들은 분명히 보고 있었다. 좌냉선의 이 맹격이 아무이 무섭다 하더라도 결국은 악불군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좌냉선의 마음속에서는 무수한 생각이 일어났다. 이 일검이 만약 똑바로 악불군의 가슴을 꿰뜅지 못하고 그가 피해 버린다면 자기의 두눈은 이미 멀었기 때문에 그의 처분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자기가 지금까지 무수한 공력을 써서 오파의 합병을 계획했는데 뜻밖에 마지막에 이르러 물거품으로 변하고 오히려 계략에 말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뜨거운 피가 용솟음쳤다. 왁 하고 소리를 내며 새빨간 피를 토해냈다.
악불군은 이런 행동을 예측이나 한 것처럼 벌써 몸을 피했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번벼 있었다.
좌냉선의 우측손이 떨려오더니 정검이 두동강이 나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나서 하늘을 향해 껄껄껄 웃었다. 웃음소리는 멀리 전해져 산 계곡이 찌렁찌렁 울렸다. 그는 웃으면서 몸을 돌리더니 한걸음 한걸음 봉선대 아래로 걸어 내려왔다. 봉선대 가장자리에 이르자, 마음속에 준비나 한 듯이 좌측다리를 차고 몸을 날려 아래로 내려왔다.
숭산파의 여러 제자들이 달려가서 일제히 외쳤다.

[사부님!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여 화산파의 모든 작자들을 없애 버립시다!]

좌냉선은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대장부는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시합을 해서 장문인을 가리기로 했지 않느냐? 기량이 높은 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악선생의 무공은 나보다 한수 위다. 모두들 그를 장문인으로 섬기고 다른 말은 하지 말아라.]

그는 눈이 처음 멀어졌을 때 놀라움돠 분노가 교차되어 자기도 모르게 욕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진정되자, 즉시 무학대종사의 신분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군웅들은 그의 이같은 행동을 보고 일세의 영웅이라 칭하며 탄복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곳 숭산에는 숭산파 사람들과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고, 또한 지리적인 잇점이 있었기 때문에 화산파 사람들과 단판으로 승부를 가린다면, 악불군의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그들을 막기는 어려웠다.

오악검파와 이곳 숭산에 와서 구경을 하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좌냉선의 이 같은 말을 듣자, 삽시간에 환호를 하였다.

[악선생이 오악파의 장문을 맡으시오! 악 선생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시오! ]
화산파의 제자들은 덩달아 힘껐 목청을 터뜨렸다. 단지 이런 변고가 너무나 뜻밖이었기 때문에 화산문하의 사람들도 눈 앞의 이 일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악불군은 봉선대의 가장자리로 걸어가더니 말을 했다.

[내가 좌 사형과 기량을 겨룰 때 원래 승부만을 가리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좌 사형의 무공이 너무나 높아 내 수중의 장검을 땅에 떨어뜨리자, 위급한 나머지 내 스스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실수를 허여 좌 사형이 두눈에 상처를 입게 하였읍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심히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소. 우리는 응당 눈을 고치는 명의를 찾아서 좌 사형을 치료해 드려야 합니다.]

봉선대 아래의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검에는 눈이 없는데 어찌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읍니까? ]

또 다른 한 사람이 말을 했다.

[귀하는 살생의 뜻이 없었으니 그것만 보아도 의롭고 인자한 분이시오.]

악불군은 말했다.

[천만에요!]

그는 공수를 하며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 아래로 내려올 의사는 없었다. 단 아래의 어떤 사람이 외쳤다.

[그 누가 오악파의 장문이 되고 싶으면 단 위로 올라가 한번 겨뤄보시오.]

다른 한 사람이 말을 했다.

[몸이 좀 근질근질한 사람이 있으면 올라가서 악선생에게 만져달라고 하시요.]

수백 사람이 일제히 외쳤다.

[악선생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되시오! 악선생이 오악파의 장문인을 맡으시오.]

악불군은 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낭랑한 소리로 말을 했다.

[여러분께서 이렇게 추천을 해 주시니 저도 감히 뿌리치지 못하겠군요. 오악파는 오늘 새로이 탄생을 하였읍니다. 모든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해야 할 때입니다. 형산의 사무는 앞으로도 막대선선생께서 맡아 주십시오. 항산 사무는 영호충 형제가 맡고, 태산 사무는 옥경, 옥음 두 분의 도장과 천문사형의 문인인 건제도장(建除道長) 세 사람이 공동으로 맡아서 관리해 주시오. 숭산파의 사무는 좌 사형이 눈이 불편히므로 그것은......]

악북군은 잠시 멈췄다가 눈빛이 숭산파의 무리가 있는 곳에 가서 멈추더니 말을 했다.

[저의 의견으로는 탕영악 탕 사형과 육백 육사형께서 좌 사형과 함께 세 사람이 일상 업무를 처리해 주시오.]

이때 육백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래서 말하기를, [이건...... 이건......]

숭산문인들과 다른 파의 많은 사람들도 모두 심히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탕영악은 오랫동안 좌냉선의 부수(副手)라서 그렇다치고 육백은 좀전에 직설적으로 악불군을 괴롭혔으며 냉소를 하고 풍자를 하여 심히 무례하였는데 뜻밖에 알불군은 좀전의 일을 접어두고 그를 숭산파의 일반사무를 관장하는 사람으로 지정을 했던 것이다.
숭산파의 문인들은 사실 좌냉선의 두눈이 멀게 되자 모두가 심히 못마땅하여 많은 사람들이 때를 기다려 일을 벌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악불군이 탕영악, 육백, 좌냉선 세 사람을 선출하여 숭산의 사무를 맡도록 하자 그렇게 되면 숭산파는 원래의 상태로 회복이 되고 악불군애 의해 감섭을 받지 않아도 되므로 금방 그런 기미가 누그러졌다.
악불군은 말했다.

[우리 오악검파는 오늘 합병을 했읍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똑같이 노력을 하고 헤쳐나가지 않는다면 오파가 화평한 것은 단지 겉 모양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는 같은 동문이 되어 서로를 구분하지 맙시다. 제가 무능하고 덕이 없지만 잠시 동안 본문의 문호를 지키도록 하겠읍니다. 여러가지의 개혁들은 많은 형제들과 숙의를 하여 결정을 하겠고 저 혼자로는 독단적으로 결정을 하지 않겠읍니다. 지금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모두들 피곤할 겁니다. 모두들 숭산 본원에 가서 쉬도록 하고, 술과 음식을 먹도록 합시다.]

군웅들은 일제히 환호를 지르며 서로 다투어 아래로 내려갔다.
악불군이 단 아래로 내려오자 방증대사와 충허도인 등은 모두와서 그에게 축하인사를 하였다.
방증과 충허는 애당초 좌냉선이 오파를 합병한 후 야심이 수그러지지 않아 곧바로 소림, 무당을 삼키고 또한 무림의 화근이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였었다.
이 사람들은 평소 악불군은 군자의 호풍을 지녔고 그가 오악일파의 문호를 맡게 되자 내심 크게 마음이 놓여져 그들이 축하하는 말 속에는 진심이 많이 담겨져 있었다.
방증대사는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악선생님, 지금 숭산문하의 사람들은 아마도 심히 불평을 하고 기회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시주께서는 몸을 각별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남을 해칠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방비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읍니까? 시주께서는 지금 숭산에 계시니 특별히 몸 관리를 잘 하시오.]

악불군은 말했다.

[녜, 알았읍니다. 방증대사의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방증은 말했다.

[소실산과 이곳과의 거리는 지척에 놓여 있으니 그런 일이 있다면 금방 달려올 수 있을 것이오.]

악불군은 깊이 읍을 하며 말했다.

[대사님의 염려하는 마음 이 몸이 마음속 깊이 명심하고 있겠읍니다.]

그는 또 충허도인, 개방 해방주 등과 몇마디 나누고 빠른 걸음으로 영호충 앞에 이르러 물어봤다.

[충아! 너의 상처는 괜찮으냐?]

그가 영호충을 화산문하에서 쫓아낸 후 처음으로 이렇듯 온화한 표정으로 그를 충아라고 불렀던 것이다.
영호충은 내심 멈칫하여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괜......괜찮습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너는 나를 따라서 화산에 가서 몸을 치료하도록 하여라. 그러고 너는 사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 어떻겠느냐?]

악불군이 만약 몇 시간 전에 이런 말을 했다면 영호충은 뛸듯이 기뻐했을 것이고 대답이 금방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크게 주저하고 있고 화산에 대해서 두려움이 생겼다.
악불군은 말했다.

[어찌 하겠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항산파의 약이 참 좋습니다. 제자...... 제자는 상처가 다 나으면 다시 사부님과 사모님을 찾아뵙겠읍니다.]

악불군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의 진정한 마음을 살피려 하는 것 같았다.
한참 지난 후에 비로소 말을 했다.

[그것도 좋겠지. 너는 안심하고 몸을 보살피거라. 내가 하루빨리 화산에 오기를 학수고대하겠다.]

영호충은 말했다.

[녜.]

몸을 뒤뚱거리며 일어나서 절을 하려 하였다.
악불군은 손을 내밀어 그의 우측팔을 잡더니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일어날 필요없다!]

영호충의 몸이 움츠려들며 얼굴에는 자기도 모르게 무서운 표정이 되었다.
악불군은 흥 하고 소리를 내면서 양미간에는 노색이 역력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웃는 얼굴로 바뀌더니 탄식을 하며 말했다.

[너의 소사매는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구나.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다니. 어쨌든 생명에 지장이 없으니 다행이다.]
이어서 의화, 의청 등 항산파의 이 대제자와 고개를 끄덕이는 체하더니 비로소 몸을 돌려 천천히 돌아갔다.
수장밖에는 수백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악불군이 다가오기를 기다려 서로 에워싸며 그의 무공이 대단하고 인자롭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한다고 칭찬을 하고 아부하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웅성거렸다.
영호충은 사부의 뒷모습이 산봉우리에서 사라지는 것과 뒤이어 각파의 사람들도 모두 봉우리를 떠나는 것을 멀꺼름하게 쳐다봤다.
갑자기 등 뒤에서 한명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군자!]

영호충의 몸이 뒤뚱거리더니 상처가 심히 아파왔다.
이 위군자라는 말은 마치 하나의 크나큰 철추처럼 그의 가슴을 무겁게 내려치고 있었다.
삽시간에 그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날씨는점점 어두워 갔다.
봉선대 위에는 항산파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의화는 말을 했다.

[장문사형님, 우리도 내려가지요.]

그는 여전히 영호충을 장문사형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도 오파의 합병을 승인하지 않고 악불군은 본파의 장문인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영호충은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밤을 지샙시다. 어떻습니까?]

그는 악불군과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다시 숭산본원에 가서 그를 만나보고 싶지 않았다. 그의 이 말이 나오자 항산파의 많은 제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의 마음이란 같아서 그 누구도 내려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전 복주성(福州城)에서 그들이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화산파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악불군이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리자 항사제자들은 그후부터 계속 그것을 염두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영호충이 악영산에게 상처를 입게 되자 마음속으로 화가 치밀어 있었고 또한 다시 악불군이 오악파의 장문자리를 빼앗자 각자는 모두 마음속으로 승복하지 않고 있었다.
봉선대 위에서 하루를 지내게 되자 모든 사람들은 거기에 동조를 하였다.
의청은 말했다.

[장문사형께서는 움직일 수 없으니 이곳에서 정양을 하는 것이 좋겠읍니다. 단지 이 대형......]

말을 하면서 눈은 영영을 쳐다보았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하였다.

[대형이 아니라 임소저이오.]

영영은 계속해서 영호충을 부축하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자기의 신분을 밝히자 자기도 모르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급히 일어나더니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되자 영호충은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뒤로 쓰러지려 하였다.
의림은 그의 앞에 서서 손을 내밀어 그의 좌측 어깨를 부축하더니 외쳤다.

[조심하세요!]

의화, 의청 등은 이미 영영과 영호충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고 두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소림사에 가서 목숨을 던졌고 한 사람은 그녀를 위해서 강호의 호걸들을 이끌고 소림사를 공격했던 것이다. 영호충이 항산파의 장문인에 부임했을 때 이 임소저가 친히 와서 축하를 했으며 마교의 간계를 격퇴했는데 그녀는 항산파에게 있어서 은혜를 베푼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눈 앞에 이 수염난 사내가 바로 임소저라는 말을 듣고 모두가 놀라고 기뻤다.
항산파의 여러제자들은 마음속으로 벌써 임소저를 미래의 장문인의 부인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서로 인사를 하고 심히 가깝게 지내려 하였다.
의화 등은 가져온 마른 양식을 꺼내서 모두 배불리 먹고나자 잠에 빠져 들었다. 한참 자고 있는데 갑자기 먼곳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영호충은 비록 깊은 상처를 입고 있지만 내공이 강하기 때문에 이 소리를 듣자 즉시 잠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순라를 도는 항산파의 제자가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확인하는 소리였다.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왔다.

[오악파동문인이오. 장문인 악선생 밑에 있는 제자 임평지요.]
야간순시를 하는 항산 제자가 물어봤다.

[밤중에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소?]

임평지는 말했다.

[저는 봉선대 아래에서 어떤 사람돠 만나기로 되어 있는데 여러 사저께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실 줄은 몰랐소이다. 참으로 죄송하군요.]

말투는 심히 예의를 갖추었다.
바로 이때 창노한 목소리가 서쪽에서 들려왔다.

[이 임가놈아. 네놈은 그곳에서 오악파의 동문들을 잠복시켜 놓고 이 늙은이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영호충은 이 사람이 바로 청성파의 장문인인 여창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속으로 약간 놀랬다.

(여창해는 임평지의 부모를 죽였으니 임사제와여창해는 철천지 대원수이다. 이곳에서 만나자고 한 것은 물론 그 빚을 갚으려는 것이겠지.)

임평지는 말했다.

[항산 여러 사저께서 이곳에서 쉬고 계실 줄은 몰랐소. 우리는 다른 곳에 가서 끝장을 봅시다. 다른 사람의 잠을 방해할 필요가 있소이까?]

여창해는 껄껄 웃더니 말했다.

[다른 사람의 단잠을 깨우지 말라. 하하, 네놈이 이곳에서 다 떠들어 놓고 퍽이나 점잖은 체하는구나. 사위놈이나 장인놈이나 모두 똑같은 놈들이구나. 네가 할 말이 있으면 속 시원하게 말을 해라.
그래야지모두들 안심하고 잠을 잘 것이 아니겠느냐?]

임평지는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이 평생동안 편안하게 잠을 자려고 한다면 그것은 망상이오. 당신, 숭산에 있는 청성파 사람들은 당신까지 합해서 총 34명이오. 내가 당신들 모두와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어찌 당신들 셋뿐이오?]

여창해는 하늘을 향해 껄껄 웃더니 말했다.

[네놈은 어떤 놈이냐. 네놈이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할 주제이더냐. 너의 장인이 오악파의 장문인에 앉았으므로 내가 그의 체면을 봐서 네놈의 말을 듣는 것이다. 할 말이 있으면 빨리 하고 검을 휘두르고 싶으면 휘둘러라. 내가 네 임가의 벽사검이 얼마나 진보했는지 좀 구경이나 해보자.]

영호충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달빛 아래서 임평지와 여창해는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으며 두사람의 거리는 삼장 정도였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그날 내가 형산에서 부상당했을 때 이 여왜자(余矮子)가 일장으로 나를 쳐 죽이려고 했는데 다행이 임사제가 몸을 날려서 나를 구해주었다. 그래서 내 생명이 지금까지 부존되어 온 것이다. 만약 여왜자가 일장으로내 몸을 쳤다면 나 영호충에게 어찌 오늘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임사제가 화산에 들어온 후 무공은 크게 진보를 하였다. 그러나 여왜자와 비교를 할 때 필경 아직도 멀었을 것이다. 그가 여왜자와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것은 틀림없이 사부님과 사모님이 뒤에서 도와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사부님과 사모님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는 먼 산 바라보듯이 있을 수 없다.]

여창해는 냉소를 하며 말했다.

[속이 있는 놈이라면 응당히 청청산에 찾아와서 떳떳이 복수를 할 것이지. 어째서 귀신처럼 나를 이곳으로 오라 하고 또 이곳에다 수많은 비구니를 매복시켜 놨으냐? 정말로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의화는 이 소리를 듣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이 임씨 성을 가진 자가 당신과 무슨 관계에 놓여 있든 우리 항산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 무슨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오. 당신들이 물어 뜯고 서로 죽이든 간에 우리는 여기서 구경만 할 것이오. 두려우면 혼자나 두려워할 것이지 우리 항산파를 함께 싸잡아서 생각하지 마시오.]

그녀는 악영산에게 심히 불만을 갖고 있었으므로 악영산의 남편조차도 미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여창해와 좌냉선과의 교분은 심히 좋았다. 이번에도 좌냉선은 두번이나 편지를 보내 구경오라고 초청을 하였던 것이다. 여창해는 이곳 숭산에 왔을 때 좌냉선이 틀림없이 오악파의 장문인이 될 것이라고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화산파의 문인들과 원한 관계에 놓여 있었지만, 조금도 염두해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오악파의 장문자리를 악불군이 빼았아가 버리자 처음 생각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숭산에 더이상 머무를 기분이 나지 않아 밤에 하산하려 했었던 것이다.
청성파 일행이 숭산의 꼭대기에서 내려올 때 임평지는 그의 몸 가까이 다가가 낮은 소리로 그에게 오늘 자시(子詩)에 봉선대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던 것이다. 임평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였지만, 표정과 말투가 심히 무례하기 짝이 없어서 그는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여창해는 깊이 생각하기를, (네놈 화산파가 오악파를 새로 장악했으니 그 기염이야말로 일세를 풍미하겠구나. 그러나 너희들은 아직 날개가 충분히 자라지 않았고 오악파 내에는 사분오열이 되어 있다. 나는 너희들을 절대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단지 네놈이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올것이니 그것을 주의해야겠구나.)

그는 고의로 약속시간을 늦추고 임평지의 몸에 바짝 따라붙어 그가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지를 살피었다. 임평지가 혼자서 약속장소에 가는 것을 보고는 암암리에 기뻐서 본래는 청성파의 문인들을 데리고 왔지만 즉시 두 명의 제자만을 대동하였고, 그 나머지 문인들은 흩어지게 하여 사람들이 봉우리에 응원하러 오면 즉시 소리를 내어 경고하도록 하였다.
여창해는 봉우리에 올라왔을 때 봉선대에 많은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암암리에 아뿔사하고 외쳤던 것이다.

(나는 단지 그가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봉우리에 올라가는지의 여부만을 살피었는데 많은 사람들을 봉오리에 매복시켜 놓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구나. 분명히 함정에 빠졌으니 빠져나갈 궁리나 해야겠다.)

그는 항산파의 무공검술이 청성파와 비교해볼 때 손색이 없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비록 세 분의 선배대사가 죽음을 당하고, 영호층이 또 깊은 상처를 받고 있어 지금 항산파에는 인재가 없고 고수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필경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만약 수백 명의 비구니들이 한데 어울려 공격을 한다면 그 위력이야 말로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의화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비록 자기 이름을 똑바로 부르고 심히 무례하였지만 말투 속에 도와주겠다는 의사가 없음을 보고 마음이 놓여 말했다.

[여러분께서 가만히 있겠다고 하시니 그것은 실로 다행한 일이오. 여러분께서는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청성파의 검술이 화산파의 검법과는 무엇이 다른가 보시기 바랍니다.]

잠시 멈춘 후, 또 말을 했다.

[여러분들은 절대로 악불군이 숭산의 좌사형을 이겨 그 검법이 대단하다고 여기지 마시오. 무림중의 모든 각파는 자기 나름대로의 무었인가가 있는 법이오. 화산검법이 절대로 독보천하는 할 수 없소. 내가 보건대 항산검법은 화산검법보다도 한 수 위입니다.]
그의 이 몇마디는 원래의 뜻과 크게 벗어났다. 항산문인들이 어찌 못알아듣겠는가. 그러나 의화는 그의 아부가 섞인 말을 받아주지 않고 말을 했다.

[당신들 둘이 싸움은 하려면 통쾌하게 빨리 하시오. 한밤중에 이곳에서 떠들고 모든 사람들을 깨운다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오.]

여창해는 내심 진노하였다. 깊이 생각하기를, (오늘 이몸이 이 임가 놈을 상대해야 하고 또 홀로 떨어져 중과부적이라 냄새나는 비구니들과 상대를 할 수 없구나. 앞으로 너의 항산파 문인들이 강호에서 이 어르신의 손에 걸리기만 하면 너희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갰다.)

그의 사람됨은 본래 협소하고 또한 스스로 자존자대하다고 여겨왔기 때문에 무림의 후배들이 자기를 공경하지 않으면 심히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의화가 이런 말을 했을 때 평시라면 그는 벌써 가만히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평지는 앞으로 두어 걸음 걸어나오더니 말을 했다.

[여창해! 당신은 우리집의 검보를 호시탐탐 노리고 나의 부모님을 살해했으며 나의 복위표국(福威표局)에 있던 수십 사람들은 모두 당신 청성파 수하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이 원한을 오늘에야 비로소 갚아 주겠다.]

여창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내 큰아들이 네 놈의 손에 죽어 네놈이 나를 찾아 오지 않는다 해도 내가 네놈을 천갈래 만갈래 찢어 놓으려 했다. 네놈은 화산 문호의 비호를 받아 악불군에세 기댔는데 그렇다고 영원히 숨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여창해는 쨍그랑 소리를 내면서 칼집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이날은 바로 보름이어서 달빛은 휘영청 밝았다.
그의 몸은 비록 작았지만 검은 상당한 길어서 달빛과 검광이 서로 어우러져 흐르는 물과도 같았다.
그의 몸이 서서히 움직거리자 이 일검의 기세는 실로 비범했다.
항산파 제자들은 모두 생각하기를, (이 땅딸보의 이름이 강호에 자자한데정말로 대단하구나.)
임평지는 여전히 칼을 뽑지 않고 또 앞으로 두어 걸음 걸어나갔다. 여창해와 거리가 한장 정도에 이르자 고개를 옆으로 하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눈속에서 마치 불덩이를 토해 내는 것 같았다.
여창해는 그가 검을 뽑지 않자 내심 생각하기를, (네놈이 간도 크구나. 내가 벽연등교(碧淵騰蛟)의 초식을 쓰기만 하면 장검이 튀어나와 네 놈의 아랫배와 목구멍에 커다란 구멍을 내 놓을 것이다. 단지 네놈이 후배니 내가 먼저 손을 쓸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일갈을 했다.

[그래도 검을 뽑지 않겠느냐!]

그는 힘을 모으고 기다리고 있었다.
임평지가 손에 검자루를 쥐고 장검을 뽑으려 할 때 미처 그의 장검이 칼집에 빠져 나오기도 정네 벽연등교의 일초식을 써서 그의 배를 찌르려 하였다.
그렇게 된다면 항산파의 제자들은 그의 신속함을 찬탄할 것이고 그가 갑자기 급습했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영호충은 여창해 수중의 장검의 끝이 계속해서 떨리고 있음을 보고는 외쳤다.

[임사제, 그가 너의 아랫배를 겨누고 있다. 조심하거라!]
임평지는 냉소를 하더니 갑자기 질풍처럼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동작은 심히 날렵해서 순식간에 여창해와 거리가 한척 정도로 좁혀졌다.
두 사람의 코가 거의 함께 부딪칠 정도였다. 이 앞으로 달려나가는 초식의 기괴함이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고 행동의 빠름이란 더욱 형용할 수 없었다.
그가 이렇게 돌진해서 들어가자 여창해의 우측손의 장검은 이미 상대방의 등 뒤에서 꼼짝도 못하고 묶여 있었다. 그는 장검을 돌려서 임평지의 등뒤를 찌를 수 없었다. 또한 임평지의 좌측 손은 이미 그의 우측 어깨를 잡고 우측손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여창해는 자기의 견정혈(肩井穴)이 마비가 됨을 느꼈고 우측 팔은 힘이 빠져 장검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임평지가 일초로 강적을 제암하는 수법의 기괴함이란 마치 악불군이 좌냉선과 싸워 이겼을 때 썼던 초식과 흡사하였고 자세 또한 똑같았다.
영호충은 고개를 돌려 영영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 마주치자 낮은 소리로 외쳤다.

[동방불패!]

두 사람은 모두 상대방의 눈빛 속에서 공포감과 당황함이 뻗어 나오고 있음을 보았다. 틀림없이 임평지의 이 일초식은 바로 동방불패가 그날 흑목애에서 사용했던 공력인 것이다.
임평지는 우측 장의 공력을 아직 토하지 않았다. 달빛 아래 여창해의 눈빛속에서 겁자기 커다란 공포감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임평지는 내심 말할 수 없는 통쾌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단지 일장으로 이 철천지 원수를 죽인다면 그를 너무 편안하게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때 악영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께서 그를 잠시 살려주라고 하셨읍니다.]

그녀는 큰 소리로 외치면서 봉우리를 향해서 달려왔다. 그리고는 임평지와 여창해가 얼굴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흠칫 멈추었다.
그녀는 앞으로 몇발짝 걸어나가 임평지가 한쪽손으로 이미 여창해의 요혈을 쥐고 다른 한손으로 그으 가슴팍을 누르고 있는 것을 보고 헐떡이며 말을 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여창해는 오늘 우리의 손님이니 절대로 그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하셨읍니다.]

임평지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여창해의 견정혈을 쥐고 있던 좌측송에 내공을 가하였다.
여창해는 혈도가 더욱 마비되는 것 같았으나 바로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상대방의 내공은 실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데 불행하게도 자기의 혈도가 찍혔다. 내공으로 말하자면 절대로 그는 자기의 적수는 아니었다. 그래서 순간 마음속에 비분과 분노가 교차 되었다. 분명히 상대방의 내공은 평범하여 십년을 연마한다 해도 자기의 적수는 되지 못하는데 일시적인 잘못으로 그에게 목덜미를 잡혀 일세에 풍미했던 명성이 물거품이 되고 또한 그는 부모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 사부의 분부를 받지 않고 이런 행동을 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악영산은 말을 했다.

[어버지께서 당신보고오늘만은 그를 살려주라고 하셨읍니다. 당신이 복수를 하려고 하면 어찌 오늘만이 날이겠읍니까?]
임평지는 좌측장을 들어 철썩철썩 하고 여창해의 뺨을 두어번 때렸다. 여창해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상대방의 우측손은 여전히 자기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이 손안의 내공은 강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약간 힘만 쓰면 자기의 심맥(心脈)은 가루가 되는 것이다. 이 일장이 자기를 단숨에 죽인다면 괜찮지만, 제일 염려되는 것음 돼 먹지도 않은 내공으로 자기를 죽은 상태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 수도 없는 그런 처참한 꼴로 만들까봐 염려되었다. 이 일순간에 그는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재어보고 감히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임평지는 그의 두 뺨을 때리고 껄껄 웃더니 몸을 돌려 뒤로 물러섰다. 그의 몸에서 약간 떨어지자 고개를 비스듬히 하여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창해는 검을 쥐고 달려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자기는 일대종주(一代宗主)로써 일초 사이에 상대방에게 제압을 당하고 또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다시 나가 싸움을 한다면 그것은 억지에 불과했고 무술시합을 하다가 지는 것보다 더욱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비록 한발을 내디뎠으나 더이상 두발짝은 내디디지 않았다. 임평지는 냉소를 하더니 몸을 돌려 가버렸다.
몸을 돌려 가면서도 그는 자기 아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악영산은 멈칫거리다가 영호충이 봉선대 옆에 있는 것을 보고는 즉시 그의 몸 가까이에 다가오더니 말을 했다.

[대사형, 상처는 어떠하신지요?]

영호충은 그녀의 외치는 소리를 듣자 가슴이 이미 두근두근 뛰었다. 이때 더욱 심신을 가눌 길이 없어서 말을 했다.

[나는...... 나는......]

의화는 악영산을 향해서 냉랭히 말을 했다.

[안심하시오. 죽지는 않을테이니.]

악영산은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다. 눈동자는 단지 영호충만 바라보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 검이 손에서 빠져나가 나는......나는 고의로 당신을 해치려는 생각은 진정 없었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물론 나도 알고 있소, 나도 물론 알고 있소. 나는......나는......나는 물론 알고 있소.]

그는 원래 소탈하고 직선적인 성격이었으나 소사매 앞에서는 자기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치 나무토막처럼 연신 `나는 물론 알고 있소.`라고만 말할 뿐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악영산은 말했다.

[당신을 이렇게 다치게 하여 대단히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를 탓하지 말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아니오, 절대로 탓하지 않을 것이오. 나는 물론 당신을 탓하지 않소.]

악영산은 잔잔히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숙이며 낮은 소리로 말헹다.

[저는 가보겠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가시겠소?]

실망을 한 듯 말끝을 흐렸다.
악영산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 봉우리를 한참 내려가 보이지 않게 되자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말했다.

[대사형,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항산파에서 화산에 온 두분의 사저에게 우리들이 많은 실례를 범했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화산에 돌아가면 두분의 사저에게 즉시 사죄를 하고 두분을 보내드리겠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알았소. 그렇게 되어야지요. 잘 되었소......]

그녀가 멀리 사라져 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이 소나무 사이로 없어지자 갑자기 사과애에서 그녀가 날마다 자기를 위해서 술과 밥을 갖다주고 돌아갈 때 역시 이렇게 아쉬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생각이 떠오르자 자기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의화가 냉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뭐가 좋단 말이오. 진실한 마음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읍니다. 우리 임소저와 비교해 볼 때 발 뒤꿈치도 따라올 수 없읍니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이때서야 비로소 영영이 바로 자기 몸 가까이에 있음을 알았다.
자기가 이렇듯 소사매에게 정신이빠진 모습을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봤을 것이다.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영영은 봉선대의 한쪽에 기대어 마치 잠에 빠진 것 같았다. 내심 생각하기를, (그녀가 잠에 빠져 좀전의 내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영영은 매우 귀가 밝은 사람이므로 어찌 지금 잠에 취해 있겠는가. 영호충은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자기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마디 말을 찾아내서 그녀에게 하려고 했으나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는 영영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였다.
이때 할 말이 없으면 아무말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은 그녀의 마음을 다른 데로 돌려 조금전의 일을 생각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영호충은 즉시 천천히 드러눕더니 갑자기 가볍게 아픈 소리를 냈다.
영영은 과연 몹시 염려가 되는 듯 다가오더니 낮은 소리로 물어보았다.

[많이 아프십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괜찬소.]

그리고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영영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하였으나 영호충은 더욱 꼭 잡았다.
영영은 힘을 너무 주면 그의 상처에 아픔이 올까봐 별수없이 그가 잡는대로 손을 맡겼다. 영호충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렸고 심신이 피로한 나머지 한참 지나자 자기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이미 해는 중턱에 걸려 있었다.
여러 사람들은 그가 잠에서 깰까봐 말을 크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호충은 자기의 손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언제 영영이 자기곁을 떠난지 몰랐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어린 눈빛은 여전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영호충은 그녀를 향해서 잔잔하게 웃고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말하기를, [우리 항산으로 돌아갑시다.]

이때 정백광은 이미 나무를 꺾어 담가를 만들어 놓았다. 즉시 불계대사와 전백광은 영호충을 담가에 태우고는 봉우리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은 숭산 본원 앞을 지날 때 악불군인 입구에 서서 훤한 얼굴로 환송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악 부인과 악영산은 그 옆에 보이지 않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사부님, 제자는 사부님께 절을 하고 고별할 수 없군요.]
악불군은 말했다.

[그럴 필요없다. 그럴 필요없다.상처가 나은 다음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내가 오악파의 장문이 되었는데 너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구나. 앞으로는 네가 도와줄 일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영호충은 억지로 웃었다.
불계와 전백광은 그를 들쳐메고 날듯이 달려서 순식간에 이곳에서 멀리 떨어졌다. 큰길에는 숭산대회를 구경하러온 군웅들로 꽉 차 있었다.
항산 제자들은 산및으로 내려가 몇대의 나귀가 끄는 수레를 빌려 영영과 영호충 들을 타로록 하였다.
저녁무렵 한 작은 읍에 당도하니 찻집의 휘장 아래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가 청성파의 사람들이었다. 여창해도 그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는 항산제자들이 오는 것을 보자 안색이 변하더니 몸을 돌렸다.
작은 읍에는 다른 찻집이나 식당이 없기 때문에 항산이 많은 사람들은 바로 건너편 처마밑 돌계단 아래서 휴식을 취하였다. 정악과 진견은 그 안으로 들어가 뜨거운 차를 가져와서 영호충이 마시게 하였다.
갑자기 말발굽소리가 들리더니 큰길에는 먼지가 일어나면서 두 마리의 말이 급히 달려왔다. 읍 앞에 이르자 두마리의 말을 고삐가 당겨지고 말 위에는 한 남녀가 앉아 있었는데 바로 임평지와 악영산 부부였다.
임평지는 외쳤다.

[여창해! 너는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빨리 도망치지 않고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단 말이냐?]

영호충은 수레에서 임평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물어 보았다.

[임사제가 뒤따라 왔읍니까?]

진견을 수레 옆에 앉아서 그가 차 마시는 것을 시중 들고 있었다. 즉시 수레의 휘장을 걷어 올리고 그가 수레 밖의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여창해는 의자에 앉아서 차를 따라 한입 한입 마시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잔의 차를 다 마시고 나서 비로소 말을 했다.

[그래 맞다. 내가 지금 네놈이 목숨을 바치기를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

임평지는 일갈했다.

[좋다.]

이 좋다는 말이 막 입에서 나오자마자 즉시 검을 뽑아들고 말에서 내려와 일격을 가하였다. 그리고는 몸을 날려 말을 타더니 일성을 지르며 악영산과 나란히 말을 타고 가버렸다.
길가에 서 있던 한명의 청성제자가 가슴에서 피를 흘리더니 천천히 꼬꾸라졌다. 임평지의 이 일검은 상당히 기묘하여 실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가 검을 뽑아들고 말에서 내리는 것은 틀림없이 여창해를 향해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여창해는 그가 검을 뽑아들고 공격해 들어오자 바로 이런 기회를 만들려 해도 만들 수 없는 기회라고 하여 내심 기뻤다. 그와 싸우기만 하면 바로 그의 생명을 빼았을 수가 있고 또 그렇게 되면 어젯밤 봉선대에서 받은 치욕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앞으로는 악불군이 자기를 찾아와서 이 일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은 장래의 일이니 그때가서 또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뜻밖에 상대방의 이 이검이 중도에서 방향을 바꾸어 번개처럼 한명의 자기 제자를 살해하고 말을 달려 도망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여창해는 놀라고 화가 난 나머지 뒤쫓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두사람이 너무나 빨리 도망쳤기 때문에 아무리 서둘러도 쫓아갈 수 없었다. 또한 임평지의 일검은 예측할 수 없었고, 검의 빠름이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영호충은 이런 광경을 보더니 혀를 차며 내심 생각하였다.

(이 일검이 만약 나를 향해 들어왔을 때 내 수중에 병기가 없다면 절대로 막아낼 수 없을 것이고 반드시 그의 검에 찔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검술에 있어서는 임평지보다는 한참 위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전 임평지의 빠른 초식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여창해는 임평지가 달아난 방향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욕을 했다. 그러나 임평지와 악영산은 이미 멀리 사라졌는데 어찌 그가 욕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그는 마음속 가득 화가나서 화를 풀 데가 없었다. 그래서 몸을 돌리더니 욕을 하였다.

[이 썩어빠진 비구니들이 임가놈이 오는 것을 알고는 먼저 이곳으로 와서 길을 터 쥣던 것이다. 좋다. 이 임가놈이 도망쳐 버렸으니 씨가 있는 놈이라면 이리로 와서 한번 목숨을 걸고 싸워보자.]
항산제자들은 청성파 사람보다 몇배 많고, 불계화상, 영영, 도곡육선, 전백광 등과 같은 고수들이 그 안에 섞여 있었으므로 싸움을 한다면 청성파는 절대로 이길 희망이 없었다.
쌍방의 힘의 균형을 여창해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자기자신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의화는 즉시 장검을 뽑아 들고 화가 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싸우려면 한번 싸워 보시지요. 누가 당신을 무서워한답디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의화 사저, 그자와 상대를 하지 마시오.]

영영은 도곡육선들과 낮은 소리로 몇마디하였다. 도근선, 도간선, 도지선, 도엽선, 네 사람은 갑자기 몸을 날리더니 그늘 아래 매어져 있는 한필의 말옆에 다가갔다. 그 말을 바로 여창해가 타고 다니는 말이었다. 말이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도곡사선들이 이미 각각 그 말의 사지를 잡고 사방으로 잡아당기자 큰 소리가 나면서 그 말은 네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였다. 오장육부가 흩어지고 피가 낭자했으며 사방에 튀었다. 이 거대산 몸집의 말을 결국 도곡사선들이 맨손으로 갈기갈기 찢었던 것이다. 네사람의 완력은 실로 무지막지하였다. 청성파의 제자들은 모두가 안색이 변하도록 깜짝 놀라고 항산문인들조차도 모두 너무 무서워서 가슴이 난도질쳤다.
영영은 말했다.

[여노도(余老道), 이 일은 임가와 당신과의 일이지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에 우리는 단지 수수방관하고 있었을 뿐이오. 당신을 절대로 우리를 그 속에끼어넣지 마시오. 진정 싸우고자 한다해고 당신들은 우리들의 적수가 아니니 잠자코 있으시오.]
여창해는 너무 놀란 나머지 기세가 꺾였다. 싹하고 소리가 나더니 장검을 칼집 속에 집어 넣으며 말을 했다.

[당신들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면 각자 제 갈길을 갑시다. 당신들 먼저 가시지요.]

영영은 말을 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우리들은 당신 뒤를 따라갈 것입니다.]
여창해는 눈쌀을 찌푸리더니 물어봤다.

[그것은 어떤 연유요?]

영영은 말을 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읍니다. 그 임씨 성을 가진 자의 검법은 너무나 괴상망칙하여 우리들은 반드시 그 내력을 알고 싶소.]
영호충은 내심 깜짝 놀랐다. 영영의 이 말은 바로 자기가 지금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임평지의 검술이 너무나 괴상하여 독고구검 조차도 그 검술을 파헤칠 수가 없어 또 한번 분명히 두눈으로 임평지의 검술의 자세를 보고 싶었다.
여창해는 말을 했다.

[당신들이 그놈의 검법을 보려는 것이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소?]

자신이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말을 잘못했다고 생각하였다. 자기와 임평지는 철천지 원수이므로 임평지는 결코 한명의 청성제자를 죽여놓고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틀림없이 다시 와서 복수를 하려고 할 것이다. 항산파의 여러 사람들은 바로 임평지가 어떠한 검술을 쓰고 있으며 어떻게 청성파 사람들은 살해하는가 보려고 하는 것이다.
무술을 배우는 사람이 이상하고 특이한 무공을 봤을때 반드시 그 무술의 내력을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항산파의 사람들은 모두 검을 쓸 줄 알므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들은 청성파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마치 도마위에 올려진 생선 같은 청성파를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요리하는가를 보고 싶었을 뿐이다. 세상에 이런 경우보다 더 꽤심한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 ?
그는 내심 화가 잔뜩 나 욕을 퍼부으려고 했다. 욕이 목구멍까지 오르다가 자기 스스로 억제를 하였다. 단지 콧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내심 생각하기를, (이 임가놈은 갑자기 괴상망칙한 초식을 써서 비굴하게 급습을 하였다. 두번 공격을 내가 맡도록 하지 않았기게 그는 실로 아무런 피해가 없었던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그는 감히 정정당당하게 겨루려 하지 않았겠는가? 좋다, 너희들이 뒤쫓아온다면 너희들에게 분명이 보여주겠다. 이 어르신네 검이 그놈을 어떻게 가루로 만들어 주는가를.)

그는 몸을 돌려 천막 속으로 들어가 앉더니 주전자를 들어 차를 따랐다. 그런데 주전자는 딸그락 딸그락 소락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우측손이 떨리고 있으며 주전자와 주전자 뚜껑이 움직여서 소리를 냈던 것이다. 조금 전에 임평지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을 때에도 그는 내심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었고 천천히 한잔의 차를 다 비우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속으로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손이 떨리고 있을까? 왜 벌벌 떨고 있을까?)
억지로 기를 써서 진정을 하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계속해서 찻잔과 주전자에서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들 문하의 제자들은 단지 사부가 너무 약이 올라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사실 여창해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기도 모르게 무서움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임평지의 일검이 자기를 향해서 들어왔다면 절대로 막지 못했을 것이다.
여창해는 한 잔의 차를 마시고 난 후에도 심신을 여전히 징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몇몇 제자들에게 죽음 당한 제자를 들고가서 들판 빈터에 묻으라고 분부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쉬도록 하였다.
옥외 주민들은 멀리서 이런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보고 이미 겁을 집어먹고는 문을 꼭꼭 잠그고 그 어느 누구도 얼굴을 내밀어 구경하려고 하지 않았다.
항산파 일행은 점포와 인가의 처마밑에 흩어져 있었다. 영영은 혼자서 한대의 나귀가 끄는 수레에 앉아 있었다. 영호충이 타고 있는 수레와는 심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비록 그녀와 영호충의 관계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녀의 부끄러운 마음 여전히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항산의 예제자들이 영호충에게 약을 바르고 환부를 치료해 줄 때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악, 진견 등은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부단히 영호충의 상처에 대해서 자세히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영영은 그 소리를 듣고 단지 고개를 끄덕일 뿐 한 마디 아찌하랴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임평지의 검법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다. 검초 자체는 별다른 특이한 점이 없는데 손의 동작이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나고 또한 아무런 징조가 없기 때문에 이 일초가 누구를 향해 공격하든 최고의 고수일지라도 방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당시 흑목애에서 동방불패를 에워싸 공격할 때 그의 수중에는 한개의 수바늘만이 있었는데 네 명의 고수들은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 자세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동방불패의 내공의 기묘함도 아니고 역시 초식의 기묘함도 아니었다. 단지 그의 행동이 마치 벼락처럼 공격과 수비와 진격함이 모두 뜻밖에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임평지가 봉선대에서 여창해를 제압하고 조금 전에 청선의 제자를 찔러 죽인 무공의 초식은 동방불패와 똑같았다. 그리고 악불군이 좌냉선의 두눈을 멀게한 것도 분명히 동방불패의 그런 초식이었다. 벽사검법과 동방불패가 배운 규화보전(葵花寶典)은 그 근원이 같다. 악불군과 임평지가 사용하는 것들은 물론 벽사검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면서 중얼중얼 말을 했다.

(벽사(?邪), 벽사, 무슨 사악함을 파한다는 소린가? 이 공력은 본시 사악하기 그지 없는데.)

내심생각하기를, (지금 세상에서 이 검법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풍태사숙(風太師叔)일 뿐이다. 내가 상처가 난 후에 다시 화산에 가서 풍태사숙에게 가르침을 청해야겠다. 어르신에게 그 검법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풍태사숙께서는 화산파의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하셨자만 지금 나는 화산파의 사람이 아니잖는가.)
또 생각하기를, (동방불패는 이미 죽었다. 악불군은 나의 사부이고 임평지는 나의 사제이므로 두사람은 절대로 이 검법으로 나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검법을 풀 수 있는 법문(法門)을 연구할 필요가 있게는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었다. 순간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나귀가 끄는 수레가 움직이며 상처가 극심하게 아팠다. 너무나 아픈 나머지 나머지 신음 소리를 냈다.
진견이 수레 옆에 서 있다가 급히 물오봤다.

[차를 마시고 싶습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필요없소. 소사매, 당신이 가서 임소저를 이곳으로 오라고 하시오.]

진견이 대답하였다.
한참이 지나자 영영이 진견과 함께 오더니 담담히 물어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난 갑자기 어떤 일을 생각하였소. 당신 아버님이 말씀하시길 당신 교중의 규화보전을 어버지가 동방불패에게 전해주었다고 하셨는데 당시 나는 규화보전네 기재되어 있는 공력은 틀림없이 당신 아버지가 연마한 신공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였소. 그러나......]
영영은 말을 했다.

[그러나 저의 아버님의 무공이 동방불패보다 못하단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바로 그렇소. 그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구료.]

무예를 배우는 사람은 무학의 기서(奇書)를 보면 자기가 배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그러한 이치는 없었다. 설령 부자의 관계, 부부의 관계, 사재의 관계, 형제 또는 친척이거나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함께 연마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버리면서까지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영영은 말을 했다.

[이 일에 대해서 어버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지요. 어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첫째 이 보전의 무공은 배울 수가 없으며 배운다면 크게 해가 된다고 하였읍니다. 두번째로는 그도 무공을 배운 다음 얼마나 무서운가를 무른다고 하였읍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배울 수가 없다고요. 그것은 왜 그렇소?]

영영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말을 했다.

[왜 배울 수가 없는지를 내가 어찌 알겠읍니까?]

잠시 멈추었다가 또 말을 했다.

[동방불패는 그렇게 마지막을 장식하지 않았읍니까? 그의 마지막이 어떤 꼴이었읍니까?]

영호충은 음하고 소리를 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집히는 듯하였다. 그가 이번 좌냉선을 격퇴시키고 오악파의 장문자리를 빼앗았는데 영호충은 그 일에 대해서 기쁘지 않았으며 담담한 생각뿐이었다. 흑목애에서 본 정경과 그 아부의 말들이 점점 악불군과 함께 연상이 되었다.
영영은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당신은 조용히 상처나 치료하시고 엉뚱한 생각을 마세요. 나는 가서 잠을 자겠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알았소.]

수레에 둘러쳐 있던 휘장을 걷자 달빛이 마치 물처럼 영영의 얼굴에 비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영영은 천천히 몸을 돌려가더니 갑자기 말을 했다.

[당신의 그 임사제는 옷을 매우 화려하게 입었더군요.]
이 말을 하더니 자기의 수레로 걸어갔다. 영호충은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영영이 임사제의 옷이 매우 호화스럽다고 했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가? 임사제는 막 신랑이 되었으므로 옷차림이 좀 화려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게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여자들이란 다른 사람들의 검법은 주의하여 보지 않고 옷차림이나 보고 있구만. 여자란 참 재미가 있어.)

그가 눈을 감자 머릿속에서 임평지의 일검이 번쩍이는 광경이 떠올랐다.도대체 임평지가 입고 있는 옷차림이 어떤 것이었는가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자고 있는데 멀리서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두마리의 말이 서쪽에서 달려왔다. 영호충은 몸을 일으켜 앉더니 수레 휘장을 걷어올렸다. 항산파 제자와 청성파 제자들은 모두 잠에서 깨어났다. 항산의 여러 제자들은 즉시 일곱명이 한무리가 되어 검진을 이루고 방향을 정하더니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청성파 사람들은 길가로 달려나가거나 어떤 자는 벽에 기대어 항산 제자만큼 진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듯하였다.
대로상에 두마리의 말이 급히 달려왔다. 달빛 아래서 분명히 볼수가 있었다. 바로 임평지 부부였다.
임평지는 외쳤다.

[여창해, 너는 우리 임가의 벽사검법을 훔치려고 나의 부모님을 죽였다. 지금 내가 한초식 한초식을 보여주마. 너는 그 초식을 자세히 보도록 하여라.]

그는 말을 멈추더니 몸을 날려 말에서 내려왔다. 장검은 어깨에 매달려 있었으며 빠른 걸음으로 청성파 사람들 쪽으로 걸어들어 갔다.
영호충은 두눈을 주시하여 그가 입고 있는 옷차림새를 살펴보았다. 그는 비취색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소매자락과 옷자락에는 짙은 노란색 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금선으로 선을 둘렀으며, 허리에는 금대(金帶)를 차고 있었다. 금대는 걸어갈 때 번쩍번쩍 빛이 났으며 과연 아름답고 찬란해 보였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임사제는 본래 매우 검소한 사람인데 신랑이 되더니 옛날과는 사뭇 다르구나. 그것도 탓할 수는 없지. 그렇게 멋진 부인을 얻었으니 너무나 기뻐서 이런 몸치장을 하였을 것이다.)

어제밤 봉선대에서 빈손으로 여창해를 공격했을 때 바로 지금과 똑같은 상태였다. 이때 청성파 사람들은 어찌 그가 어제밤의 방법을 다시 펼치도록 용납을 하겠는가? 여창해가 일성을 지르자 바로 네명의 제자가 검을 들고 똑바로 달려나갔다. 두자루의 검이 각각 그의 좌측 가슴과 우측 가슴을 향했고 또 두자루는 좌측 우측에서 그의 두다리를 향해 미끄러져 들어갔다.
도곡육선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세사람이 외쳤다.

[얘야, 조심하거라! 조심하거라! 얘야!]

임평지는 우측손을 내밀어 신속하게 두명의 청성제자 손목을 눌렀다. 이어서 팔을 돌려 그의 아랫도리를 찌르려하는 두명의 청성제자들의 손목을 밀치었다. 네사람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두사람이 꼬꾸라졌다. 이 두사람은 본래 장검으로 그의 가슴을 찔렀으나 손목이 잡히자 장검이 반대로 회전하여 자기의 아랫배를 찌른 것이다.
임평지는 외쳤다.

[벽사검법 제이초식과 제삼초식이다. 분명히 봤느냐?]
이렇게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 말안장에 오르더니 말을 달려 사라졌다.
청성파 사람들은 모두 어리벙벙하여 그 어느 누구도 뒤쫓으려고 하지 않았다. 또 다른 두명의 제자를 보니 한사람의 장검이 아래서 위로 뚫고 올라가 상대방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또 다른 한 사람도 똑같았다. 두사람은 이미 모두 숨이 끊어졌다. 그러나 우측손은 여전히 검자루를 꼭 쥐고 있었고 두사람은 서로 기대어 똑바로 서서 쓰러지지 않았다.
임평지가 상대방의 팔목을 누르며 밀치는 방법을 영호충은 분명히 보았다. 그래서 깜짝 놀라고 탄복을 하였다. 그리고 내심 말하기를, (정말로 교묘하고 정교하기 짝이 없구나. 이것은 분명히 검법이다. 단지 그의 수중에 검을 들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달빛이 휘황찬란하게 비치는 가운데 여창해의 작은 몸은 네 구의 시체 옆에 서서 넋이 나긴 사람처럼 보였다. 청성파의 사람들은 그의 몸주위를 둘러싸고 겉으로만 맴돌 뿐 그 누구도 말을 걸려하지 않았다.
한참 지난 후 영호충이 수레에서 밖을 보니 여창해가 여전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그림자는 점점 길게 늘어졌다. 이러한 정경을 보니 말할 수 없는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 청성제자들은 이미 물러났고 어떤 자들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창해는 여전히 굳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내심 한줄기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청성파의 일대 장문인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죽음을 기다리는 꼴이 되자 그는 그와 똑같이 괴로운 심정이 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꿈속에서 갑자기 수레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날은 밝아서 여러 사람들은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똑바로 나 있는 길을 청성파 사람들은 어떤 사람은 말을 타고 어떤 사람은 걷고 있었으며 축늘어진 뒷모습에는 말할 수 없는 처량함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한무리의 소떼가 스스로 도살장으로 걸어가는 거와 같았다.
그는 생각하기를, (이 사람들은 모두 임평지가 틀림없이 다시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대항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분산되어 도망친다면 청성일파는 여기에서 괴멸이 되는 것이다. 혹시나 임평지가 청성산(靑城山)에 찾아간다면 송풍관(松風觀)에서는 아무도 그를 맞아 싸울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닐까?)
점심때가 되어서야 약간 큰 음에 당도하였다. 청성파 사람들은 술집에서 마시고 먹고 하였다. 항산파 사람들은 바로 맞은편 음식점에서 쉬고 있었다. 길건너 청성파 사람들이 큰 잔으로 마시고 먹는 것을 보고 모든 비구니들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모두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들은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더 마시고 먹으려 한다는 것을.
이들은 다시 출발을 하여 미시(未詩)경에 어느 강가에 당도하였다. 말발굽소리가 들리더니 임평지 부부가 또 다시 말을 타고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의화가 휘파람소리를 내자 항산의 사람들은 모두 그자리에 멈추었다.
그때 두 마리의 말이 강가를 향해 달려왔다. 가까이 당도하자 악영산은 말고삐를 잡고 그자리에서 멈추고 임평지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왔다. 여창해가 손을 흔들어 여러제자들은 일제히 몸을 돌려 강의 남쪽으로 달려갔다.
임평지는 껄껄 크게 웃더니 외쳤다.

[이놈들아 어디까지 도망치려 하느냐?]

말을 달려 뒤쫓아왔다.
여창해는 갑자기 몸을 돌려 일검을 가했다. 검광은 마치 무지개처럼 임평지의 얼굴을 향해서 찔러 들어갔다. 이 일검의 기세는 정말로 대단하여 임평지는 마치 깜짝 놀랜 듯 급히 검을 뽑아 막았다. 청성파의 여러 제자들은 서로 타투어 에워쌌다. 여창해의 일검은 갈수록 긴박하여 갑자기 하늘로 치솟고 갑자기 아래로 향했다.
이 육십살 정도의 늙은이는 이때 마치 건장한 청년처럼 손에 초식을 있는대로 다 쓰며 공격을 하였다. 여덟명의 청성제자들은 장검을 휘루르며 임평지와 앞뒤를 에워쌌다. 그러나 말 가까이 다가가 내려찍지는 않았다.

영호충은 몇초식을 보고 여창해의 의도를 알 수가 있었다. 임평지의 검법의 장점은 변화무쌍하고 신속함에 있었는데 그가 말을 타고 있자 이러한 장점은 크게 그 위세가 감소되었다. 만약 갑자기 공격을 한다면 별수없이 몸을 앞으로 내밀어야 하는데 아랫도리는 말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여덟명의 청성제자들은 검망(劍網)을 만들어 그 말의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다. 포위하고 있는 것은 임평지가 말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청성장문인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이 방법은 정말로 대단하다.)

임평지의 검법의 변화는 실로 기묘하였다. 그러나 몸이 말에 묶여 있어 여창해는 있는 힘을 다하여 막을 수 있었다.
영호충이 또 몇초식을 보고 나서 멀리 악영산이 있는 곳을 바라보자 갑자기 온몸이 떨리더니 깜짝 놀랐다. 여섯명의 청성제자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천천히 강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그녀가 타고 있던 말은 배에 칼을 맞아 길게 비명소리를 지르더니 한번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쓰러졌다. 그녀는 말잔등에서 굴러떨어졌다. 악영산은 몸을 옆으로 피하면서 찔러들어오는 두검을 막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섯명의 청성제자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공격을 하였고 마치 목숨을 거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후인영과 홍인웅이 거기에 끼어 있음을 알았다. 후인영을 좌측손으로 검을 사용하며 매우 용맹하고 표독스러웠다. 악영산은 비록 사과애의 뒷동굴석벽에서 오파의 검법을 배웠지만 청성파의 검법은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석벽위의 검초는 그녀에세 있어서는 모두가 너무나 높은 차원의 것이었으므로 그녀는 실질적으로 익혔다고는 볼 수가 없고, 단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서 약간 그 모양만을 갖추고 있었을 뿐이었다. 봉선대에서 태산검법으로 태산고수들을 상대하고 형산검법으로 형산파의 장문인을 상대하자 상대방은 깜짝 놀라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청성 제자들을 상대할 때는 그런 효과는 없었다.
영호충은 몇초식을 보고는 악영산이 막아낼 도리가 없음을 알았다. 초조한 가운데 갑자기 악 하고 길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명의 청선제자의 좌측팔이 악영산의 형산검법에 의해서 싹뚝 잘라져 나갔다. 영호충은 내심 기뻤다. 이 여섯명의 제자들이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나기를 바라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 나머지 사람은 반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좌측팔이 떨어져나간 사람조차도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악영산은 그가 팔이 잘려나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자 겁을 집어먹고 연신 뒤로 몇발짝 물러나더니 발을 헛디뎌 강가의 모래바닥에 쓰러졌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외쳤다.

[이 비겁한 놈들! 이 비겁한 놈들!]

갑자기 영영이 말을 했다.

[그날 우리가 동방불패를 상대했을 때의 전법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읍니다.]

그녀가 언제 자기 몸 가까이 다가왔는지 몰랐다. 영호충은 내심 그 말에 동조하였다. 그날 흑목애의 싸움에서 자기편 내사람의 패색이 짙었는데 다행이 영영이 양련정을 공격하여 동방불패의 심기를 흐트러 놓아서 결국 그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여창해가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이러한 책략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동방불패를 죽였는가를 여창해는 물론 모른다. 단지 급하면 통한다고 이런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임평지가 자기 처가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을 보면 틀림없이 심기가 흐트러지고 급히 가서 구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그는 전심전력 여창해를 맞아 싸우고 있었으며 자기처가 어떤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가는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악영산은 주저앉은 다음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장검을 급히 휘둘렀다. 여섯명의제자들은 청성일파의 존망과 자기들의 생과 사가 바로 그녀를 죽이느야 살려주느냐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공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팔이 잘려나간 사람은 이미 장검을 버리고 몸을 땅에 굴리면서 우측팔로 악영산의 다리를 휘어감았다.
악영산은 크게 놀라서 외쳤다.

[여보, 여보, 빨리 도와주세요!]

임평지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네놈이 나의 벽사검법을 보자고 했으니 확실히 보거라. 그래야만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을 것이다.]

기묘한 초식이 연달아 나오더니 여창해가 숨을 내쉴 겨를도 주지 않았다. 그의 벽사검법의 초식을 여창해는 이미 자세히 연구를 했고 그의 모든것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있었다. 그리 기묘할 것이 없는 초식중에는 갑자기 약간의 기묘한 변화가 더욱 가중되었다. 그 기세는 하늘을 찌를 것 같았고 벼락과도 같았다. 임평지가 연달아 초식을 써서 공격을 하자, 여창해는 숨을 가삐 쉬며 갈수룩 처참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여창해는 상대방의 내력이 자기만 못하다는 것을 알고 쉬지 않고 칼날로 임평지의 장검을 내리쳤다. 자기의 내공으로 임평지의 손에 들려져 있는 장검을 땅바닥에 내려뜨리려고 했으나 끝내 자기의 칼날이 상대방의 칼날에 닿지 않았다.
영호층은 대노하여 일갈을 하였다.

[이놈이......이놈이......이놈이......]

그는 본래 임평지가 여창해에서 발목이 잡히어 자기 아내를 구할 수가 없는 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나자 악영산의 안위는 마음에 두고 있지 않고 단지 여창해를 골려주고 장난을 치는데 골몰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때 햇빛은 강렬하게 비치어 멀리 임평지의 입이 약간 삐뚤어지고 얼굴에는 흥분과 통쾌한 표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의 내심에는 복수의 결의가 충만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고양이가 생쥐를 잡으면 먼저 간혹하게 골려주고 고통을 안긴 다음 다시 물어죽인다고 한다면 임평지는 고양이보다도 더욱 악독하고 매서웠다.
악영산은 또 외쳤다.

[여보, 여보, 빨리 오세요!]

목소리가 매우 다급하고 지쳐있는 듯하였다. 임평지는 대답하였다.

[내가 곧가겠소. 조금만 더 지탱하시오. 나는 벽사검법을 다 써서 그가 분명히 보도록 할 작정이오. 이 자가 우리와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나의 부모님을 해친 것은 모두 이 벽사검법 때문이오.
그가 이 벽사검법을 처음부터 분명히 끝까지 보도록 합시다.]
그는 천천히 점잖게 말을 하였다. 그것은 자기 아내에게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여창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상대방이 분명히 알아듣지 못할까봐 한마디를 덧붙였다.
[여창해, 그렇지 않소!]

그의 몸놀림은 아름다왔고 일검 일검이 극히 우아했으며 모습은 마치 화산파 여자들이 쓰는 옥녀검십구식의 자세와 똑같았다. 단지 약간 음산하고 사악한 기가 감춰져 있을 뿐이었다.
영호충은 처음부터 그의 벽사검법의 초식을 보려고 하였다. 지금 그가 여창해에게 초식을 전개하고 있는 것은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악영산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설사 앞으로 임평지가 이 검초로 자기를 죽인다해고 더 계속해서 자세히 볼 여유가 없었다. 악영산의 연신 외치는 소리를 가고는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외쳤다.

[의화사저, 의청사저, 당신들이 빨리가서 악소저를 구해 주시오. 그녀는......그녀는......견디지 못할 것이오.]

의화는 말을 했다.

[우리는 양쪽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을 하지 않았읍니까? 우리가 손을 쓴다는 것은 불가한 듯합니다.]

무림의 사람들은 신의(信義)를 제일 따졌다. 좌도의 인물들조차 말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지만 한번 내뱉은 말을 절대로 번복하지 않았다. 만약 식언을 한다면 강호에서는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전백광과 같은 여자를 밝히는 사람조차도 자기의 약속을 끝까지 지켰던 것이다.
영호충은 의화의 말을 듣고 전날밤 봉선대에서 그녀들이 여창해에게 분명히 이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고 말했음을 기억해 냈다. 만약 지금 악영산을 구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항산일파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져서 말을 했다.

[이런......이런......]

그리고 외쳤다.

[불계대사는 어디 있소? 전백광은 어디 있소?]

진견은 말을 했다.

[그 두사람은 어제 벌써 도곡육선과 함께 가버렸읍니다. 여창해가 이렇게 당하는 꼴이 보기 싫다고 술마시러 가버렸읍니다. 더우기 그 여덟사람도 모두 항산파의 사람들......]

영영은 갑자기 몸을 날려 나오더니 강가로 달려갔다. 허리춤에서 두자루의 단검을 뽑아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너희들은 분명히 보아라. 나는 일월신교 임교주의 딸이다. 내가 바로 임영영이다. 나는 절대로 항산파의 사람은 아니다. 남자 여섯사람이 합심하여 여자 하나를 못살게구니 정말 그냥 넘길 수가 없구나. 이 임소저는 그런 꼴을 보면 손이 근질근질해 그냥 앉아서 쳐다보지는 못한다.]

영호충은 영영이 손을 쓰는 것을 보자 마음이 놓였다. 길게 숨을 내쉬더니 상처가 너무 아파 수레에 덜썩 주저앉았다.
여섯제자들은 영영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상관도 하지 않고 여전히 악영산을 향해서 힘껏 공격을 하였다. 악영산은 뒤로 몇발짝 물러섰다. 첨벙 소리가 나면서 좌측발이 강물 속에 빠졌다. 그녀는 물을 잘 몰라 한쪽 발이 물속에 빠지자 내심 당황하여 검법이 더욱 흐트러졌다. 바로 이때 좌측다리가 아파오더니 적의 일검에 다리를 맞었다. 그 팔이 잘려져 나간 자는 기회를 틈타 달려들어 우측손으로 그녀 우측다리를 거머쥐었다. 악영산은 장검을 들어 그의 등허리를 찍었다. 팔이 잘려나간 사람은 눈을 돌리고 그녀의 다리를 죽어라고 끌어당겼다.
악영산은 눈앞이 컴컴해지면서 내심 생각하였다.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멀리 임평지는 일검을 비스듬히 내리찌르며 좌측손에는 검결을 거머쥐고 허공중에서 호형(弧形)을 긋더니 자세가 매우 우아하고 마치 자기의 검법을 즐기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녀의 마음이 처량해지며 정신을 잃을 뻔하였다. 갑자기 눈앞에 두자루의 장검이 날으더니 이어 첨벙첨벙 소리가 나면서 두명의 청성파 재자들이 쓰러졌다. 악영산은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영영은 단검을 휘두르며 십여초 사이에 나머지 다섯명의 청성 제자들에게 모두 상처를 입혔다. 그자들은 병기가 손에서 떨어져 나가자 별수없이 뒤로 물러섰다. 영영은 꼬꾸라져 죽은 사람을 밀치고 악영산을 끌어당겼다. 그녀의 하반신은 이미 강물에 잠겨서 치마가 모두 젖어 있었으며 옷에는 새빨간 피가 묻어 있었다. 즉시 그녀를 부축하여 언덕 위로 걸어나왔다.
임평지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임가의 벽사검법을 너희들은 똑똑이 봤느냐?]

검광이 번쩍이더니 그의 말을 둘러싸고 있던 한명의청성제자 양미간에 검이 적중되었다. 그는 껄껄 크게 웃더니 외쳤다.

[방인지(方人智)이 못된놈아, 네놈을 이렇게 죽인다는 것은 네놈을 많이 봐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고삐를 잡아당기더니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방인지의 몸의로 말을 재촉하여 달려나갔다.
여창해는 탈진 상태가 되어 뒤쫓지 않았다. 임평지는 말고삐를 세우더니 사방을 둘러보며 갑자기 외쳤다.

[내놈은 가인달(賈人達)이지.]

말을 달려 앞으로 나아갔다. 가인달은 본시 멀리 한쪽에 움츠리고 있었으나 그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크게 외치더니 미친 듯이 도망쳤다. 임평지는 그리 급하지 않았다. 말을 몰아 천천히 뒤쫓더니 장검을 내리쳐 그의 우측다리를 맞추었다. 가인달은 풀썩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임평지는 말고삐를 잡더니 그의 몸위로 밟고 지나갔다. 가인달은 참혹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임평지는 크게 웃으면서 말고삐를 돌려 세우더니 다시 말을 달려 그의 몸위를 밟고 지나갔다. 이렇게 몇번 왔다갔다하자 가인달은 결국 소리도 없이 죽었다.
임평지는 더 이상 청성파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고 말을 달려 악영산과 영영의 몸가까이 다가오더니 자기 아내를 향해서 말을 했다.

[말을 타시오!]

악영산은 뚫어지게 한참 그를 쳐다보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을 했다.

[혼자 가세요.]

영영은 물어보았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소?]

악영산은 말을 했다.

[나는 상관하지 마시오.]

임평지는 항산파 제자들을 쳐다보더니 냉소를 하며 두다리에 힘을 주고는 말을 달려 먼지를 내며 사라졌다. 임평지가 그의 상처입은 아내를 이렇게 박정하게 대할 줄은 영영은 뜻밖이었다. 그래서 깜짝 놀라며 말을 했다.

[임부인, 당신은 내 수레에 가서 좀 쉬도록 하시오.]
악영산의 두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억지로 눈물을 참으면서 흐느적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난 안 가겠읍니다. 당신은......당신은 어째서 나를 구해 주었읍니까?]

영영은 말을 했다.

[내가 당신을 구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대사형인 영호충께서 당신을 구하라고 하였소.]

악영산은 내심 시큰하였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말을 했다.

[나에게......나에게 말 한 필만 빌려 주세요.]

영영은 말을 했다.

[그렇게 합시다.]

몸을 돌려 한필의 말을 몰고왔다.
악영산은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당신은......당신은......]

몸을 날려 말등에 올라타더니 말머리를 동쪽으로 향했다. 임평지가 갔던 방향과 정반대 방향이었다. 아마 숭산으로 돌아가는 듯하였다.
여창해는 그녀가 자기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퍽이나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눈치를 하지 않고 생각하기를, (하룻밤을 지새면 이 못된 임가놈이 또다시 우리 몇사람을 죽이려올 것이다. 나의 제자들을 하나하나 죽여 나를 외톨이로 만들고 나서 나에게 손을 쓸려고 하는구나.)

영호충은 여창해의 이런 혼비백산한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말을 했다.

[자, 우리는 그만 갑시다.]

말을 모는 자는 대답을 하였다.

[녜.]

이랴 하고 소리를 지르며 말채찍을 허공에서 찰싹 내리치자 나귀는 수레를 끌고 앞으로 나갔다. 영호층은 악영산이 동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내심 그녀를 따라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수레는 서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내심 철렁하였다.그렇다고 수레를 동쪽으로 돌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수레의 휘장을 열어 제치고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아 마음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몸에 상처를 입었는데 보살펴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갑자기 진견이 말을 하였다.

[그녀는 숭산으로 돌아갔읍니다. 그녀는 부모 곁으로 가 편안 할 것이니 그리 걱정하지 마세요.]

영호충은 마음이 놓여 말했다.

[알겠소.]

그리고 나서 내심 생각하기를, (진사매는 정말 세심하구나. 내마음을 다 알아 차리다니.)

다음날 일행은 작은 식당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이 식당은 사실 식당이라고는 말할 수 없고 단지 길 옆에서 몇칸의 오두막을 지어 몇개의 의자를 놓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차와 밥을 파는 곳이었다.
항산파의 사람들이 일제히 들어오자 식당에는 그리 많은 쌀이 없었다. 다행이 많은 사람들은 쌀을 갖고 있었고 솥이나 그릇 등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즉시 그 움막에 솥을 걸고 밥을 지었다.
영호충은 오앳동안 수레에 앉아 있었으므로 답답했다. 항산파의 약을 복용하고 상처부워에 발라서 상처는 이미 많이 좋아졌다. 정악과 진견 두사람이 그를 부축하여 수레에서 내려주어 그는 오두막에 앉아 휴식을 취하였다.
그는 동쪽을 바라보며 내심 생각하였다.

(소사매가 올까 아니면 오지 못할까?)

큰길에는 먼지가 휘날리더니 한무리의 사람들이 동쪽에서 다가왔다. 바로 여창해의 무리였다. 청성파 사람들은 초막밖에 이르자 즉시 앉아서 밥을 짓고 휴식을 취하였다. 여창해는 혼자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스스로 자기의 운명이 이미 정해졌다는 것을 알고 항산파 사람들을 피하지도 않았으며 관심도 두지 않았다.
얼마 안 있자 서쪽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리더니 한마리의 말이 천천히 다가왔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옷을 화려하게 입은 임평지였다. 그는 오두막 가까이 다가오더니 말을 세웠다.
청성파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밥을 지을 사람은 짓고 차를 마시는 자는 차를 마시었다. 이런 광경은 퍽이나 뜻밖이었다. 임평지는 껄껄 웃더니 말을 하였다.

[너희들이 덤비지 않는다 해도 나는 쪽같이 네놈들을 죽일 것이다.]

말에서 내려 말 엉덩이를 치자 그 말을 한참 달여가더니 혼자 풀을 찾아 뜯어먹었다. 그는 오두막안에 두개의 빈의자가 있는 것을 보고는 즉시 가서 그 의자에 앉았다. 그가 오두막에 들어서자 영호충은 한줄기의 강렬한 향기를 맡았다. 임평지의 옷차림은 매우 알록달록하였으며 옷에 향수를 뿌린 것 같았고, 모자위에는 한개의 취옥(翠玉)이 매달려 있었으며 손에는 홍보석(紅寶石) 반지를 끼고 있었다. 신발끝에는 두개의 진주를 매달고 있었으며 마치 억만장자 도련님의 행색을 하고 있었으며 무림인물의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그의 집은 본래 복위표국을 열고 있었기 때문에 애당초 돈많은 부잣집 도련님이다. 이 몇년 동안 강호에서 찬밥을 먹었으니 지금은 자기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한판 멋지게 즐기려고 하는 것이겠지.)

임평지는 품속에서 햐안 비단 손수건을 꺼내더니 얼굴을 닦았다. 그의 용모는 매우 잘 생겼으므로 손수건으로 뺨을 닦고 옷의 먼지를 털어내는 모습을 보니 마치 무대 위의 광대와 똑같았다.
임평지는 앉은 후에 담담하게 말하였다.

[영호형, 안녕하십니까?]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잘 있었는가?]

임평지는 고개를 돌려 한명의 청성제자가 뜨거운 주전자를 들고 차를 따라 여창해에게 건네주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너는 우인호(于人豪)라고 부르지 그렇지 아니한가? 그 옛날 우리집에 와서 사람을 죽일 때 너도 그틈에 끼어 있었지. 네놈이 죽어서 백골이 되어도 나는 알 수가 있다.]

우인호는 주전자를 책상에 무겁게 내려놓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검자루에 손을 갖다대고 뒤로 몇발짝 물러 나더니 말을 했다.

[이 어르신이 바로 우인호이시다. 네놈이 어떻게 할테냐?]
그의 말소리는 두껍고 투박했으나 말은 떨렸고 안색을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임평지는 잔잔히 웃더니 말을 했다.

[영웅호걸 청성사수(靑城四秀) 중에 너는 세번째이지. 그런데 호걸의 기개가 손톱만금도 없구나. 정말 웃기는군 웃겨.]
영웅호걸 청성사수는 청성파의 무공이 제일 강한 후인영, 홍인웅, 우인호, 나인걸 등 네명의 제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중 나인걸은 이미 상남 취선루(醉仙樓)에서 영호충에게 살해되었고 나머지 세사람은 모두 이곳에 있었다.
임평지는 또 냉소를 하더니 말을 했다.

[저기 앉아 계신 영호형께서 구웅야저 청성사수(狗熊野猪靑城四獸)라고 하여 너희들을 맹수로 비유했는데 너희들을 너무 치켜세워 준 것 같군. 내가 보건대 흥 너희들은 짐승보다도 못한 놈들이다.]

우인호는 무섭고 화가나서 얼굴색이 더욱 새파래졌다. 손은 칼자루를 쥐고 있었으나 끝내 검을 빼지 못했다.
바로 이때 동쪽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리더니 두마리의 말이 급히 달려왔다. 움막 앞에 이르자 말을 세웠다. 여러사람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어떤 자들은 억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앞의 말을 타고 온 사람은 몸집이 뚱뚱하고 키가 작은 곱추였다. 바로 사람들이 그를 새북명타(塞北明駝)라고 부르는 목고봉(木高峯)이었다. 뒤의 한필의 말을 타고 온 사람은 바로 악영산이었다.
영호충은 악영산을 보자 가슴이 불같이 일어나며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악영산의 두손은 뒤로 묶여 있었으며 악영산이 탄 말고삐도 목고봉 손에 쥐어져 있었다. 틀림없이 목고봉에게 잡힌 것 같았다. 영호충은 견디다 못해 발작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을 하였다.

(그의 남편이 이곳에 있는데 내가 지금 나설 필요가 있는가? 남편이 구하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다시 구해도 늦지 않겠구나.)
임평지는 목고봉을 보고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보배처첨 기쁘기 그지 없었다. 내심 생각하기를, (나의 부모님을 죽인 자 가운데 이 곱추도 끼어 있었지. 뜻밖에 하늘이 준 좋은 기회구나. 오늘 목을 내 놓으려고 이곳에 오다니 정말로 하늘이 도와준 것이다.)

목고봉은 그러나 임평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날 형산 유정풍(劉正風)집에서 두사람은 서로 만났지만 임평지는 그때 곱추로 변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의기양양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후에 그가 곱추로 분장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진면목을 본 적이 없었다.
목고봉은 고개를 돌려 악영산을 향해서 말을 했다.

[많은 친구들이 이곳에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우리는 바로 떠나자.]

그는 청성과 항산 두파의 사람이 많이 있음을 보고는 내심 염려가 되었다. 그들이 틀림없이 악영산을 구할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 이곳을 빨리 떠나려고 하였다.
악영산은 몸에 상처를 입고 숭산의 부모 곁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었다. 그러나 채 얼마 가지도 못하고 목고봉을 도중에서 만났던 것이다. 목고봉은 마음이 좁고 생각이 짧은 사람이었다. 그날 악불군과 내공시합에서 이기지 못하고 임진남 부부가 그에게 구출이 되자 내심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또한 나중에 임진남의 아들인 임평지가 화산 문하에 들어가 악불군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는 것을 알고는 벽사검보가 틀림없이 화산파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 더욱 화가 머리끙까지 치밀어 있었다. 오악파가 출범했다는 소리도 그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오악검파는 평소 그를 업신여겼기 때문에 좌냉선조차도 그에게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못마땅하여 숭산 부근에 잠복하여 오악파 문인들이 산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렸었다. 무리를 이루고 함께 내려온다면 그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홀로 따로 떨어져 내려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암암리에 몇명을 처치하여 마음의 울분을 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군웅들은 산을 내려올 때 모두 수십명 내지 수백사람이 동행하여 내려오자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가까스로 악영산이 혼자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을 보고 즉시 앞을 막아섰던 것이다.
악영산의 무공은 본래 목고봉에 미치지 못하고 더우기 몸에 상처를 받고 있었으며 또 목고봉이 갑자기 급습을 하자 그에게 잡혔던 것이다. 목고봉은 그녀가 스스로 악불군의 딸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더욱 화가 나 그자리에서 악영산을 은밀한 곳에 숨겨두고 악불군을 협박해서 벽사검보와 맞바꾸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말을 달려 급히 가는데 뜻밖에 도중에서 청성 항산 두파의 사람들과 부딪쳤던 것이다.

악영산은 내심 생각하였다.

(지금 이대로 내가 끌려간다면 그 누가 나를 구해 준단 말인가?)

그녀는 자기의 어깨의 상처를 돌보지도 않고 몸을 옆으로 하여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목고봉을 일갈을 했다.

[무슨 수작이냐?]

말에서 잽싸게 뛰어내려 몸을 숙여 악영산은 등허리를 거머쥐었다.
영호충은 내심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능욕을 당하고 있으니 임평지가 틀림없이 구해 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임평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좌측 옷소매에서 한자루의 접는 부채를 꺼내 가볍게 펴더니 살살 부쳤다. 때는 삼월의 날씨라 북방의 얼음과 눈이 막 녹을 때여서 부채를 쓸 필요는 없었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틀림없이 고의로 하는 것 같았다.
목고봉은 악영산의 등허리를 거머쥐더니 말을 했다.

[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그녀를 들어 말안장 위에 올려놓고 말에 뛰어오르더니 말고삐를 잡고 가려고 하였다.
임평지는 말을 했다.

[이 목가놈아.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네놈의 무공이 변변치 않다고 말을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목고봉은 멈칫하였다. 임평지가 혼자 앉아 있고, 또한 청성파의 사람들도 항산파의 사람도 아닌 것을 보고는 그의 정체를 물었다.

[너는 누구냐!]

임평지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왜 나에게 물어 보느냐? 무공이 변변치 않은 놈이 너지 내가 아니다.]

목고붕은 말을 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

임평지는 팍 하고 소리를 내더니 부채를 접어 여창해를 가리키며 말을 했다.

[바로 청성파의 여관주이다. 그는 최근 정묘한 검술을 봤는데 그것은 천하에서 으뜸인 검법이다. 아마 그것을 벽사검법이라고 하지.]

목고봉은 벽사검법이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정신이 크게 진작되어 옆눈으로 여창해를 쳐다보았다. 손에는 찻잔을 들고 멍청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여창해를 보자, 목고봉은 임평지의 말을 듣고도 마치 못 들은 양 말을 했다.

[여관주, 당신이 벽사검법을 봤다니 축하합니다.]

여창해는 말을 했다.

[거짓이 아니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보았소.]
목고봉은 놀라고 기뻐서 단숨에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여창해가 앉아 있는 의자에 다가다서 말을 했다.

[듣건데 그 검보는 화산파의 악불군의 손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걸 봤소?]

여창해는 말을 했다.

[나는 검보를 보지 못했고 단지 어떤 사람이 그 검법을 쓰는 것을 봤을 따름이오.]

목고봉은 말을 했다.

[오호라,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 벽사검법은 진짜와 가짜가 있읍니다. 복주 복위표국의 후손이 그 벽사검법을 배워서 쓰는데 정말로 너무나 웃겨 하마터면 이빨이 빠질 뻔하였소. 당신이 본것은 틀림없이 진짜를 보았겠지요?]

여창해는 말을 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릅니다. 그 검법을 쓰는 사람은 바로 복주 복위표국의 후손입니다.]

목고봉은 껄껄껄 크게 웃더니 말을 했다.

[당신은 헛 살았소. 검법의 진짜 가짜도 구분해 내지 못하니 말이오. 복주 복위표국의 그 임진남이라는 자는 당신 손에 죽지 않았소.]

여창해는 말을 했다.

[벽사검법의 진짜와 가짜를 나는 구분해 내지 못하오. 목대협(木大俠)은 견문이 넓고 고묫하시니 틀림없이 진짜 가짜를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목고봉은 일찌기 이 도인의 무공이 무림의 일류 고수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이렇게 말을 하자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 킥킥 웃더니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방을 둘러보니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데 그 표정들이 심히 괴상망칙하였으며 마치 자기가 틀린 말이라도 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말하였다.

[만약 내가 본다면 진짠가 가짠가를 알 수 있을 것이오.]
여창해는 말했다.

[목대협께서 보시려고 한다면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사람이 벽사검법을 쓸 줄 압니다.]

목고봉은 내심 멈칫하여 사방을 둘러보았다. 임평지의 표정이 제일 만만해 보여 물어보았다.

[이 청년이 그 검법을 사용할 줄 압니까?]

여창해는 말을 했다.

[탄복했소, 탄복했소. 과연 목대협의 눈은 고명하오. 보자마자 알아차리다니 말이오.]

목고봉은 위아래로 임평지를 흘겨봤다. 그의 옷차림새는 화려했으며 마치 돈 많은 귀공자차림이었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였다.

(여창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틀림없이 흉계를 꾸며 나를 상대하려고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수가 많으니 이 자리에서 그들과 맞부딪칠 수는 없다. 빨리 이 자리릴 떠나고 보자. 악불군의 딸이 나한테 있는 한 그 검보는 틀림없이 내 수중에 들어올 것이다.)
즉시 껄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여러날 날 못 봤더니 당신은 여전히 농담을 즐기고 있군요. 이 곱추는 일이 있어 더 이상 머물지 못하겠읍니다. 벽사검보도 좋고, 항마검법(降魔劍法)도 좋지만 이 곱추는 지금까지 그것을 마음에 두고 있은 적이 한번도 없었소. 모도 잘 있으시오.]
이 말을 하자마자 몸을 튕기더니 이미 말잔등 위에 올라 있었다. 몸은 민첩하기 이를데 없었다.
바로 이때 많은 사람들은 눈앞에 무엇인가 어른거리는 듯하였다. 마치 임평지가 몸을 나려 목고봉의 앞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의 부채가 가볍게 흔들리는 것을 보자마자 바로 의자 옆에 앉아 있었다. 마치 자리를 떠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여러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목고봉은 소리를 지르더니 말을 재촉하여 떠났다. 그러나 영호충, 영영, 여창해와 같은 고수들은 분명히 임평지가 손을 내밀어 목고봉이 타고 있던 말의 몸에 이미 손을 썼음을 확연하게 볼 수가 있었다.
과연 그 말은 몇발짝 달려나가더니 갑자기 머리가 움막의 기둥에 부딪쳤다. 이 부딪친 힘은 너무나 커서 반쪽의 움막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여창해는 몸을 날려 밖으로 뛰쳐나갔다. 영호충과 임평지 등은 머리에 보리짚과 잡초 등을 뒤집어썼다. 정악은 손을 내밀어 영호충의 머리의 풀을 거두어 내렸다. 임평지는 옴쭉달싹 않고 두눈은 똑바로 목고봉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목고봉은 약간 주저하더니 말잔등에서 내려와 말고삐를 풀었다.
그 말은 다시 달려 나가더니 머리를 큰나무에 부딪쳤다. 큰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땅바닥에 꼬꾸라지고 말머리에는 온통 새빨간 피로 범벅이 되었다. 말의 행동이 이렇듯이 괴상망칙한 것은 틀림없이 말의 두눈이 멀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것은 임평지가 조금 전에 신속하기 이를데 없는 수법으로 말의 두눈을 찔러서 멀게 했던 것이다.
임평지는 부채로 천천히 좌측 어깨의 풀들을 떨어내더니 말을 했다.

[봉사가 눈이 먼 말을 타다니 정말 위험하구나.]

목고봉은 껄껄껄 웃더니 말을 했다.

[이놈은 겉보기와는 다르구나. 여창해가 말하기를 너는 벽사검법을 쓸 줄 안다고 그랬는데 이 어르심께 좀 보여주지 않겠느냐?]
임평지는 말을 했다.

[좋다 내가 틀림없이 네놈에게 보여 줄 것이다. 너는 나의 집의 벽사검보를 보기 위해서 나의 부모님을 죽였다. 그 죄값이야말로 여창해와 별반 차이가 없다.]

목고봉은 깜짝 놀랐다. 눈앞의 이 공자가 임진남의 아들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암암리에 계산을 하였다.

(그가 감히 이렇듯이 나에게 도전하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뭔가 있긴 있구나. 오악검파가 이미 한파로 합병이 되었으니 항산파의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를 도와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잽싸게 악영산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내심 생각하기를, (적은 많고 나는 혼자이다. 이 여자가 알고 보니 그의 마누라였구나. 그녀를 끼고 있으면 그는 틀림없이 고분고분 할 것이다.)
갑자기 등뒤에서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일검이 다가왔다. 목고봉은 몸을 옆으로 하여 잽싸게 피하였다. 이 일검은 바로 악영산이 내리친 것이다.
알고보니 영영이 그녀의 손을 묶었던 끈을 풀어주고 몸에 봉쇄되어 있는 혈도를 뚫어주었으며 다시 한자루의 장검을 그녀의 손에 건네주었던 것이다. 악영산은 목고봉이 자기의 일검을 피하자 상처가 몹시 아파왔고 혈도가 오랫동안 찍혀져 있어서 사지가 마비되었다. 내심 화가 났으나 쫓아가서 내리칠 수가 없었다.
임평지는 냉소하며 말을 했다.

[무림에서 이름이 난 인물이 이렇듯이 별볼 일 없구나. 네가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땅바닥을 기어서 나에게 세번 절을 하고 나보고 할아버지라고 불러라. 그렇다면 너를 일년 동안 살려주마. 그리고 나서 일년 후에 다시 네놈의 태도를 보겠다.]

목고봉은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껄껄웃더니 말을 했다.

[이놈 그날 형산 유정풍의 집에서 네놈은 곱추로 분장하고 할아버지라고 외치며 제자가 되겠다고 용쓰지 않았느냐? 이 어르신이 받아들이지 않자 그 악불군 문하에 들어가서 속임수를 써서 마누라를 훔치었지. 그렇지 않느냐?]

임평지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눈에는 노기가 충만되었다. 얼굴에도 흥분의 기색이 역력하였다. 접어집 부채를 좌측손으로 옮겨쥐더니 우측손으로 도포자락을 들고 초막을 나와서 똑바로 목고봉을 향해서 걸어갔다.
바람이 불어오자 모든 사람들은 한줄기의 향기를 밭을 수가 있었다. 갑자기 쾡쾡 소리가 나더니 청성파 가운데 우인호, 길인통(吉人通) 두사람은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입속에서 새빨간 피를 토해내고 꼭꾸라졌다.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는 분명히 목고봉을 향하고 있었는데 어찌된일인지 검을 뽑아 우인호, 길인통 두사람을 찔러 죽인 후에 즉시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영호충 등 몇명의 고수들은 차가운 빛이 번쩍이는 것을 봤을 뿐 어떻게 검을 뽑고 더우기 그가 어떻게 칼을 휘둘러 사람을 죽였는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영호충은 마음속에 갑자기 무었인가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처음 전백광의 빠른 동작을 봤을 때 역시 막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내가 독고구검을 배운 후 그의 빠른 칼솜씨는 내 안중에는 별볼일 없이 보였었다. 그러나 임평지의 이와 같은 빠른 검을 전백광이 만약 부딪쳤다면 아마 삼검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몇검이나 막아 낼 수 있을까?]

삽시간에 손바닥에 땀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목고봉은 허리를 제치더니 한자루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의 자세는 심히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하나의 호형으로 구부러졌던 것이다. 사람이 구부러지니 검도 구부러진 듯한 바로 한자루의 타검(駝劍)이었다.
임평지는 잔잔히 냉소를 하더니 한걸음 한걸음 그를 향해서 다가갔다. 갑자기 목고봉이 큰 소리를 지르니 마치 이리가 울부짖는 것 같았다. 몸을 앞으로 달려들면서 타검은 하나의 호형을 그리더니 임평지의 겨드랑이를 낚아챘다. 임평지의 장검이 칼집에서 나오더니 그의 앞가슴을 후려쳤다. 이 일검은 목고봉보다 나중에 나왔으나 더욱 빨랐고 정확해서 목고봉은 큰 소리를 내더니 몸이 뒤로 튕겨저 나갔다. 그의 앞가슴의 옷이 크게 열리더니 가슴의 시커먼 털이 보였다. 임평지의 이 일검이 수척정도 더 뻗어 나갔다면 목고봉은 바로 가슴이 뚫어지는 큰 화를 당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억 하고 소리를 지르며 어안이 벙벙하였다. 목고봉은 죽음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 사람은 용맹하기 그지없었다. 조금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운 빛이 없었다. 연신 소리를 지르며 몸이 검과 함께 임평지를 향해서 덮쳤다. 임평지는 연신 두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목고봉의 타검에 의해서 막아졌다. 임평지는 냉소를 하더니 초식이 더욱 빨라졌다. 목고봉은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한자루의 타검을 마치 한개의 검광으로 만들어진 강철의 방패처럼 휘둘러 몸을 그 안에 숨기고 있었다. 임평지의 장검이 들어와 그의 타검과 서로 부딪치자 팔뚝이 마비가 되는 듯하였다. 상대방의 내공이 자기보다 더 강하고 조금이라도 신중을 기하지 않는다면 장검은 반대로 자기 손에서 빠져 나가리라고 생각을 하였다. 이렇게 되자 초식을 크게 휘두를 수가 없었다. 그의 빈틈을 정확히 조준하여 빨리 급습을 해야만 했다.
목고봉이 연신 검을 휘두르자 한자루의 타검은 비바람도 스며들지 못할 정도였으며 조그마한 틈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임평지의 검법이 매우 뛰어났지만 금방 그를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싸운다면 임평지는 틀림없이 우세에 놓일 것이다. 설령 상대방을 처치하지 못할지라도 목고봉은 절대로 반격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고수들은 모두 감탄을 하였다. 목고봉이 반격을 한다면 검망은 즉시 헛점을 보일 것이고 임평지의 빠른 검이 일격을 가한다면 그는 절대로 막아 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빠르게 검을 휘두르려면 초식마다 있는 힘을 다해야만이 앞의 일초식과 뒤의 일초식이 틈새가 벌어지지 않고 그물을 펼 수 있었고 앞의 힘과 뒤의 힘이 서로 연속되어야 했기 때문에 힘의 소모가 상당히 빨랐다. 그 아무리 내공이 강하고 두껍다 하더라도 결국은 힘이 소모되어 지치게 될 것이다. 그 타검이 만든 검망 사이에서 목고봉이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갑자기 높아지고 갑자기 낮아지면서 가합소리와 검초는 서로 어울려 그 위풍이 당당하였다.
임평지는 몇차례 그 망을 뚫고 들어가려고 했으나 결국 타검에 막혀서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여창해는 한참동안 구경을 하였다. 갑자기 검망에 둥근원이 반척 정도 축소가 되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이 목고봉의 내공이 점차적으로 힘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고함을 지르며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가 급히 삼검을 공격하였다. 이 삼검은 모두 임평지의 중한 곳을 향하였다. 임평지는 검을 휘둘러 막았다. 목고봉의 타검이 휘둘러 나오더니 질풍처럼 임평지의 아랫도리를 찔렀다. 이치대로 라면 여창해와 목고봉 같은 고수들이 서로 협력하여 청년 한 사람을 협공한다면 체면이 크게 손상되는 것이다. 그러나 항산파의 많은 사람들은 임평지가 계속해서 청성제자들을 죽이며 악독하고 무정한 수법을 쓰는 것을 보고는 두명의 고수가 서로 협력해서 공격하는 것에 대해 모두 비겁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매우 동정하였다. 목고봉, 여창해 두사람이 서로 연합해서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어찌 임평지의 번개 같은 빠른 검을 막아낼 수가 있겠는가.
여창해의 도움을 받자 목고봉의 검초는 더욱 신속하게 공격과 수비를 하였다.
그 세사람은 또 삼십여초식을 겨루었다. 임평지는 좌측손으로 부채자루를 들더니 갑자기 앞으로 쑥 내밀었다. 부채자루에서 반척 가량의 뾰쭉한 침이 튀어 나갔다. 그 침은 목고봉의 우측다리의 환조혈(環眺穴)에 박혔다. 목고봉은 타검을 급히 휘둘렀으나 좌측다리의 혈도가 마비되어 옴을 느꼈다. 그는 더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타검을 미친듯이 휘둘러 몸을 보호하였다. 두다리는 점점힘이 빠지고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임평지는 껄껄껄 웃고서 크게 외쳤다.

[이제서야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너무 늦지 아니했는가?]
그가 말을 할 때 여창해는 급히 삼초를 공격하였다. 목고봉은 무릎을 꿇고 있으면서도 손의 타검은 조금도 완만해지지 않고 급히 휘둘러 내리찍었다. 그는 이미 자기가 졌음을 인정하고 모든 초식마다 적과 함께 목숨건다는 타법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공격하였다. 처음에 그는 단지 수비만 하고 공격은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생명을 돌보지 않고 공격만 할 뿐 수비에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았다.
여창해는 지금의 여건이 자기에게 불리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수초 사이에 상대방을 쓰러뜨려 이기지 못하고 목고봉이 쓰러진다면 자기는 외톨이가 될 것이다. 그는 한자루의 검을 더욱 광풍처럼 휘둘렀다.
갑자기 임평지의 길게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두눈이 캄캄해지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이어서 양어깨에 싸늘한 느낌이 들더니 양쪽팔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임평지가 미친듯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나는 너를 절대로 죽이지 않겠다. 너는 두팔이 잘리고 눈은 멀었으니 홀로 강호에서 살아가거라. 너희 제자, 집사람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내가 죽버리겠다. 너를 이 세상에서 혈혈단신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여창해는 팔끝이 잘려나가자 그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중을 꿰뚫었다.

(그가 내 몸을 이렇게 만들어 놓는 것은 나를 죽이는 것보다 천배 만배 잔인한 짓이다. 내가 이러한 꼴로 세상을 산다면 무공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물론 세살난 아이도 나를 능욕하려 들 것이고 많은 고통은 안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임평지의 몸을 향해서 달려들어갔다. 임평지는 껄껄 웃더니 몸을 살짝 피했다. 그는 그동안 한맺힌 원한을 갚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신중하지 못하여 두걸음 뒤로 물러서자 목고봉의 몸 가까이 다가갔다. 목고봉은 타검을 미친듯이 휘둘러 들어왔다. 임평지는 검을 세우고 막았다. 그러나 갑자기 두다리가 조여져 오더니 이미 목고봉에세 오쭉달싹 못하게 잡히었다.
임평지는 깜짝 놀랐다. 사방의 청성제자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것을 보고 두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주어도 목고봉의 손은 마치 쇠사슬처럼 꽉 죄어오고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즉시 검을 들어 그의 어깨인 곱추가 툭 튀어나온 곳을 향해서 찔렀다.
퍽 하고 소리가 나면서 곱추의 등에서 검은 물이 쏟아져 나와 썩은 냄새는 도저히 맡을 수가 없었다. 이런 변화는 정말로 예기치 못하였다. 임평지는 두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날려 피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두다리가이미 목고봉에게 잡혀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갑자기 온 얼굴에 썩은 물이 뿜어 올라오자 너무 아픈 나머지 크게 소리를 질러 외쳤다. 이 썩은 물은 하나의 독극물이었던 것이다.
원래 목고봉의 곱추등에는 독극물을 넣은 주머니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임평지는 좌측손으로 얼굴을 가려 눈을 꼭 감고 검을 휘둘러 목고붕의 몸에 난도질을 하였다. 이 몇검은 상다히 빨라서 목고봉은 조금도 피할 여유를 갖지 못하였다. 단지 옴쭉달싹 못하도록 임평지의 두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바로 이때 여창해는 두사람의 고함소리를 따라 방향과 위치를 분간해 내고는 덮쳐들어가 입으로 물어뜯었다. 한입에 임평지의 우측볼을 물어뜯고는 물어뜯은 입을 풀지 않았다. 세사람은 한덩어리가 되어 세사람 모두가 정신을 잃어갔다. 청성파제자들은 검을 들어 임평지의 몸을 향해서 내리찍었다. 영호충은 수레 안에서 모든 것을 확실하게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고만 있었으나 임평지가 목고봉에게 잡히자 청성파의 여러제자들이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는 급히 외쳤다.

[영영! 영영! 그를 빨리 구해 주시오.]

영영은 단검을 손에 들고 몸을 날려 나갔다.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더니 청성파의 여러 제자들은 몇걸음 밖으로 다 몰아냈다.
목고봉의 미친듯이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가라앉았다. 임평지는 계속해서 일검 일검을 그의 등허리를 향해서 찔렀다. 여창해는 온몸이 피로 범벅되었으며 끝끝내 임평지의 뺨을 물고 풀지 않았다.
한참 지난 후에 임평지가 좌측손으로 밀치자 여창해의 몸이 날아갔다. 그는 동시에 비명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임평지의 우측뺨은 피로 범벅되어 있었으며 여창해에게 물려서 살점이 뚝 떨어져 나갔다. 목고봉은 벌써 숨이 끊어졌으나 여전히 임평지의 두다리를 꼭 껴안고 있었다. 임평지가 좌측손으로 그의 손을 겨냥하고 검을 들어 획 긋자 그의 두 팔뚝이 떨어져 나갔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의 팔에서 벗아날 수가 있었다. 영영은 그의 공포스러운 표정을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뒤로 몇발짝 물러섰다. 청성파 제자들은 서로 다투어 사부의 곁으로 달려가 손을 쓰고 더 이상 이 강적을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청성파 제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사부님!]
[사부님이 돌아 가셨읍니다! 사부님이 돌아 가셨읍니다!]
여러 사람들이 여창해의 시신을 들고서는 임평지가 쫓아와서 죽일까봐 멀리 도망쳐 버렸다.
임평지는 껄껄 뭇더니 크게 외쳤다.

[나는 복수를 하였다! 나는 복수를 하였어!]

항산파의 여러제자들은 이런 변고를 보고는 모두가 안색이 변하고 깜짝 놀랐다.
악영산은 천천히 임평지의 몸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했다.

[여보, 축하드립니다. 복수를 이제서야 하게 되었군요.]
임평지는 여전히 미친듯이 웃고는 크게 외쳤다.

[나는 복수를 하였다! 나는 복수를 하였어!]

악영산은 그가 두눈을 꼭 감고 있는것을 보고 말했다.

[당신 눈이 어떻게 되었읍니까? 그 독물은 씻어야 되지 않겠읍니까?]

임평지는 멍청해지더니 몸이 흔들려 하마터면 쓰러질 뻔하였다.
악영산은 손을 내밀어 그를 부축하여 한걸음 한걸음 초막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더니 맑은 물을 떠다가 그의 머리 위로부터 부었다.
임평지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비참하기 짝이 없었으며, 그 고통을 참기 어려운 것 같았다.
먼곳에 서 있던 청성파제자들은 모두 깜짝 놀라서 뒤로 몇발짝 물러났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소사매, 당신이 약을 가져다가 임사제에게 붙여주시오. 그리고 그를 부축하여 수레에서 좀 쉬고록 하시오.]

악영산은 말을 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임평지는 큰 소리로 말을 했다.

[필요없다. 무슨 허튼 수작이냐. 내가 죽든 살든간에 그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영호충은 멈칫하여 내심 생각하였다.

(내가 언제 너에게 섭섭하게 대했느냐? 어째서 나를 이렇게 미워하느냐?)

악영산은 부드러운 소리로 말을 했다.

[항산파의 약은 정말로 영약입니다. 그 진가는 천하에서 모두 알아주고 있읍니다. 이런 약은 얻기가 어렵습니다.]

임평지는 화가 나서 말을 했다.

[어째서 얻기가 어렵단 말이냐?]

악영산은 한숨을 쉬었다. 또 한대야의 맑은 물을 그의 머리에 부었다. 이번에는 임평지는 신음소리를 냈지만 입을 꼭 다물고 더이상 울부짖지 않았다.
그는 말을 했다.

[그가 당신에게 이렇게 관심을 갖고 당신도 계속해서 그가 좋다고 말을 하는데 어째서 그를 따라가지 않소? 왜 나를보살펴 주는 것이오?]

항산의 여러 제자들을 그의 이말을 듣고 모두가 아연실색하였다.
의화는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당신은......당신은......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창피한 줄도 모르는군요.]

의청은 즉시 그녀의 옷소매를 잡아 당기고는 말을 하였다.

[사저, 그는 지금 이렇듯 상처를 입어 속이 안 좋을 것입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의화는 화가 나서 말을 했다.

[쳇 이런 꼴을 보기가 싫어서 입니다......]

이때 악영산은 손수건 하나를 꺼내서 임평지의 뺨의 상처를 싸매고 있었다.
임평지는 갑자기 우측손으로 힘껏 밀어 제쳤다.
악영산은 그런 행동에 방비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즉시 뒤로 벌렁 자빠졌다. 펑 하고 소리가 나면서 움막 밖 흙담에 몸을 부딪쳤다.
영호충은 크게 노해서 일갈을 했다.

[넌......]

그러나 바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들 두사람은 부부이다. 부부간에는 언쟁이나 심지어는 구타를 해도 다른 사람은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 더우기 그는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잖은가? 내가 계속해서 소사매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임평지가 모를 리 없다.)
영호충은 즉시 자기자신을 억제하였다. 그러나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임평지는 냉소를 하며 말을 했다.

[나보고 못된 놈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누가 못된 놈이오.]
손가락으로 초막 밖을 가리키며 말을 했다.
[이 여창해와 목고봉 그들은 우리집의 벽사검법을 얻기 위해서 악독한 수법으로 나의 부모님을 살해하였소. 그들은 악독하고 흉악하지만 강호에서 그들 나름대로 정정당당하였고 체면을 잃지 않았소. 그 어찌 누구처럼......그 누구와 같이......]

몸을 돌려 악영산을 가리키며 계속 말을 했다.

[당신 아버지인 군자검 악불군처럼 비굴하고 악독한 수단으로 우리집의 검보를 탈취하려고는 하지 않았소.]

악영산은 흙담에 기대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또다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어찌 그런 일이......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읍니까?]
임평지는 차갑에 웃으면서 말했다.

[천박하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당신 부녀는 공모하여 나를 함정에 끌어들였소. 화삼파 장문인의 딸인 악소저가 나같이 보잘것 없고 돌아갈 집도 없는 놈에게 시집을 왔는데 그것은 어찌된 영문이오? 그것은 나의 임가의 벽사검보 때문이 아니오? 검보가 이미 수중에 들어갔으니 나 같은놈이 더 필요하겠소?]
악영산은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울면서 말을 했다.

[당신은......당신은 억울한 누명을 덮어 씌우는군요. 내가 추호도 그런 마음을 품었다면 정말로 나는......정말로 나는 곱게 죽지는 못할 것입니다.]

임평지는 말을 했다.

[당신들이 암암리에 간악한 흉계를 꾸미고 있을 때 나는 너무 어리석고 멍청하여 몰랐소. 지금 나는 두눈이 멀었지만 오히려 더욱 분명하게 볼 수가 있소. 당신 부녀 들리 이런 마음을 품고있지 않았다면 어째서......어째서......]

악영산은 천천히 그의 몸 가까이 다가가더니 말을 했다.

[그렇게 억측하지 마세요. 저의 당신을 향한 마음은 옛날과 같이 조금도 변한 것이 없읍니다.]

임평지는 흥 하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악영산은 말을 했다.

[우리 화산으로 돌아갑시다.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해요. 당신 눈이 낫든지 악화되어 낫지 못하든 간에 이 악영산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내 마음이 그러하다면 이 여창해보다도 더 비참하게 죽을 것이예요.]

임평지는 냉소하며 말을 했다.

[마음속으로는 다른 꿍꿍이가 있으면서 겉으로는 입에 발린 말만 하는군.]

악영산은 더이상 대꾸하지 않고 영영을 향해 말을 했다.

[임소저, 임소저에게 수레 한대만 빌릴까 합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물론 빌려 주지요. 두분의 항산파 언니들 보고 당신들을 호위하라고 할까요?]

악영산은 계속해서 흐느끼며 말을 했다.

[아닙니다......아닙니다......정말로 감사합니다.]

영영은 수레 한대를 끌고와 말고삐와 채찍을 그녀의 손에 건네 주었다.
악영산은 임평지를 부축하고는 말을 했다.

[수레에 오르세요.]

임평지는 내키지 않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의 두눈은 이제 사물을 볼 수 없어서 실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였다.
잠시 주저하더니 결국은 수레에 탔다. 악영산은 입술을 깨물며 수레를 모는 자리에 오르더니 영영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그리고는 채찍을 휘둘러 서북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영호충에게는 눈도 한번 보내지 않았다.
영호충은 수레가 멀어지는 것을 멀건히 바라보더니 마음이 씁쓸해지고 눈물이 금방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내심 생각하기를, (임사제는 두눈이 멀고 소사매는 상처를 입었는데 두 사람은 아무 도움없이 그 머나먼 길을 가야 하다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만약 청성파 제자들이 쫑아와서 복수를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청성파의 여러제자들이 여창해의 시신을 묶어서 말잔등에 올려놓고 서남쪽을 행해서 가는 것이 보였다.
비록 임평지와 악영산의 방향과는 반대였지만 그들이 얼마 가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또다시 임평지와 악영산을 뒤쫑는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리고 또 임평지와 악영산 두 사람이 조금 전에 주고 받던 말을 되새겨 보았다. 그안에는 심히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간의 사랑과 미움은 비록 다른 사람이 알 바는 아니지만, 임평지와 악영산 두사람이 결혼을 한 후에 다정하지 못하고 틈이 갈라져 있다는 것을 단언할 수 있었다.
소사매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부모의 사랑을 듬뿍받고 있으며 동문 사형사제들은 그녀를 모두가 사랑해주고 있다. 그러나 임평지에게 이러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날 여러사람은 십여리를 가다가바로 낡은 사당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였다.
영호충은 잠을 자다가 몇번이고 악몽을 꾸곤 하였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갑자기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사람이 부르고 있던 것이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영호충은 윽하고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영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으로 좀 나오세요. 제가 할 말이 있읍니다.]

영호충이 급히 일어나 앉아 사당 밖으로 걸어나와 보니 영영이 돌계단에 앉아서 두손으로 턱을 괴고 달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영호충은 그녀의 몸 가까이 다가가 그녀와 나란히 하고 앉았다.
밤은 깊고 인적이 없었으므로 사방은 모두가 고요하였다. 잠시 후에 영영이 말을 했다.

[당신은 소사매가 걱정되십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렇소. 많은 일들이 정말로 석연치 않습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은 그녀가 남편에게 괴로움을 받을 까봐 그것이 걱정되는 것이지요?]

영호충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했다.

[그것은 그들 부부 두사람의 일인데 다른 사람이 어찌 상관할 수 있겠읍니까?]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은 청성 제자들이 그들을 뒤쫑아가 일을 벌릴까봐 염려하고 있지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청성제자들은 사부가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복수를 하려고 할 것이고 또한 그들 부부가 상처를 받은 것을 봤기 때문에 틀림없이 따라가서 해칠 것이오. 그것을 뻔한 이치가 아닙니까?]
영영은 말을 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그들을 구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영호충은 또 길게 탄식을 하더니 말을 했다.

[임사제의 말투를 들어보면 나를 상당히 미워하고 있는 것 같았소. 내가 비록 좋은 뜻으로 구하려고 해도 아마 그들 부부간의 감정을 해치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그것도 하나의 원인이겠지요. 그러나 당신 마음속에는 다른 걱정이 있을 겁니다. 제가 불쾌할까봐 염려되지요. 그렇지요?]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그녀의 좌측손을 꼭 쥐었다. 그녀의 손이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부드러운 소리로 말을 했다.

[영영 이 세상에는 나에게는 오로지 당신 한사람뿐입니다. 만약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떤 틈이 벌어진다면 이 세상을 무슨 의미로 살아가겠소.]

영영은 천천히 머리를 돌려 그의 어깨에 살며시 갖다대고는 말을 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는데 어찌해서 당신과 나 사이에 틈이 벌어질 리가 있겠읍니까?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빨리 뒤쫑아가서 구해 줍시다. 이핑계 저핑계 대다가는 아마 평생토록 한이 맺힐 것입니다.]

영호충은 깜짝 놀랬다.

(평생동안 한이 맺힌다. 평생동안 한이 맺힌다.)

마치 눈앞에 수십명의 청성제자들이 임평지와 악영산이 타고 있는 수레를 에워싸고 수십자루의 장검이 수레를 난자하는 광경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영영은 말을 했다.

[제가 가서 의화, 의청 두사람을 깨우겠읍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먼저 항산에 돌아가라고 분부하세요. 우리는 암암리 당신의 소사매를 보호한 다음에 다시 백운암으로 돌아가겠다구요.]

의화와 의청은 영호충의 상처가 다 낫지 않은 것을 보고는 내심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의지가 너무나 강한 것을 보고는 더이상 권고하지 않고 별수없이 약을 한꾸러미 들려주고 그 두사람이 수레를 몰고 가는 것을 멀건히 쳐다보고 있었다.
영호충이 의화, 의청에게 분부를 하고 있을 때, 영영은 한쪽 옆에 서서 고개를 돌려 의화, 의청 두사람을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젊은 처녀와 젊은 남자가 밤중에 수레를 함께 타고 간다면 아마 그들 두사람이 비웃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수레가 수십리 밖을 나오자 그때서야 비로소 긴 숨을 쉬고는 뺨에 빨간 홍조가 사라졌다. 그녀는 길을 확인한 후 서북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화산으로 가는 길은 단지 하나뿐이다. 엉뚱한 길로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수레를 끄는 나귀는 심히 튼튼하였으므로 밤길을 잘 달렸다.
고요한 가운데 오직 수레가 가는 소리만이 들릴 뿐 다른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영호충은 내심 매우 감격 했다. 그래서 깊이 생각하기를, (영영은 나를 위해서 무엇이들 하려고 하는구나. 그녀는 내가 소사매를 염려하는 것을 보고 나와 함께 보호하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아마 영호충은 전생전후에 만나지 못할 것이다.)

영영은 나귀를 몰아 질풍처럼 얼마 정도 달리다가 고삐를 느슨하게 하더니 말을 했다.

[우리는 암암리에 당신의 사제와 사매를 보호해 줍시다. 그들이 어떤 위험을 만나 우리가 손을 쓸 때 제일 좋은 방법은 그들이 알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건대 우리는 아무래도 변장을 해야겠읍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렇소. 당신은 수염난 사내로 변장하시오.]

영영은 고개를 한들며 말을 했다.

[안 됩니다. 봉선대에서 내가 몸을 내밀어 당신을 부축한 것을 당신의 소사매가 이미 보았읍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렇다면 어떤 모양으로 변장해야 될까요?]

영영은 채찍을 내밀어 앞의 한 농가를 가리키면서 말을 했다.

[제가 가서 옷 몇가지를 훔쳐오겠읍니다. 우리 두사람이 하나......하나......두명의 시골뜨기 남매로 분장을 해야겠읍니다.]

그녀는 본래 한쌍이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할때 무엇인가 좀 쑥스러워 즉시 둘이라고 고쳐 불렀던 것이다. 영호충은 그 말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수줍음을 잘 탔으므로 속으로 알고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단지 웃음만을 띠었다. 영영은 마침 머리를 돌리고 있었으므로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는 얼굴이 빨개지며 물어보았다.

[무엇이 그리 재미 있읍니까?]

영호충이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오. 나는 지금 저 농가에 젊은 여자가 없고 한명의 늙은 노파와 어린애가 있다면 당신을 할머니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영영은 킥 하고 웃었다. 맨처음 영호충을 만났을 때 영호충은 줄곧 자기를 할머니라고 불러왔으므로 그 생각을 하자 마음속에는 무한한 따스함이 스며들었다.
즉시 수레에서 내려 그 농가를 향해서 달려갔다. 영호충은 그녀가 살며시 담을 뛰어넘자 이어서 개 짖는 소라가 들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한번 들렸을 뿐 계속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틀림없이 영영이 단숨에 걷어차서 기절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참 지난뒤에 그녀는 한 보따리를 둘려 메고는 달려나와 수레 옆에 다가왔다. 얼굴에는 웃는 표정인지 우는 표정인지 심기가 매우 이상하였다. 갑자기 옷을 수레에 던지니 수레 바퀴에 기대어서 껄껄 웃기 시작하였다.
영호충이 몇가지 옷을 들어보니 달빛 아래서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늙은 농부와 그의 아내의 옷이었다. 특히 그 농부아내의 옷은 매우 크고 하얀 바탕에 파란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절대로 농가의 젊은 여자나 젊은 부인의 옷은 아니었다. 이 옷들 중에는 또 남자의 모자가 있었으며 여자의 옷을 싸맨 보따리에는 한 자루의 곰방대가 있었다.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추측해 보건데 이 시골사람들은 아들 딸이 없는 것 같군요.]
여기까지 말을 하고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입을 막았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남매 사이군요. 이 두 남매는 참으로 사이가 좋습니다. 하나는 시집을 안 가고 하나는 장가를 안 가고, 칠, 팔십살까지 살면서 아직도 함께 있다니요.]

영영은 웃으면서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했다.

[당신은 알면서도 괜히 능청을 떠는군요.]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다면 남매가 아닙니까? 참으로 이상하군요.]

영영은 참지 못하고 킥킥 웃어 댔다. 즉시 수레 뒤에 가서 늙은 농부 부인의 옷을 입고 머리를 싸매고 손으로 길옆에 흙을 집더니 자기 얼굴에 쳐 발랐다. 자기가 다 바꾸어 입고 비로소 영호충의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영호충과 그녀의 뺨과의 거리는 수촌에 불과하였다. 그녀의 입김이 난초처럼 향기로움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울렁거려 손을 내밀어 그녀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싶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녀의 사람됨이 매우 단정해보여서 조금도 그녀를 범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에게 실례하여 그녀가 화를 낸다면 그 결과야말로 짐작하기 어려웠다. 즉시 그와 같은 마음을 거두고 옴쭉달싹 하지 않았다.
영호충의 눈빛이 갑자기 이상하게 변하여 바로 자기자신을 억제하는 눈치였다. 영영은 그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웃으면서 말을 했다.

[착한 손자야, 그래야만 이 할머니가 너를 귀여워 해주지.]
손을 내밀어 손바닥에 흙을 묻혀 그의 얼굴에 비볐다. 영호충은 눈을 꼭 감았다. 단지 그녀의 손바닥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자기얼굴에다 가볍게 문지르자 말할 수 없이 편안한 생각이 들었고 영원히 자기를 어루만져 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한참이 지난 후에 영영은 말을 했다.

[됐어요. 컴컴한 밤이라 당신의 소사매는 분명히 알아보지 못 할 것입니다. 단지 말을 할 때나 조심하세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내 머리카락에도 흙을 좀 묻혀야 되겠군요.]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누가 당신 머리를 보고 싶답디까?]

영영은 즉시 중지를 꿀려 그의 이마박에 가볍게 알밤을 먹인 후 수레를 모는 자리에 와서 앉더니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나귀를 몰아 앞으로 달렸다. 갑자기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킥킥 웃어 댔다. 웃을수록 소리가 더 커졌고 결국은 허리를 굽히고 몸을 펴지 못하도록 껄껄 웃어댔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을 했다.

[당신은 그집에서 무엇을 보았소?]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 재미있는 것을 본 것은 아닙니다. 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부부 둘이......]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알고보니 남매가 아니라 그들은 부부였군요.]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이 계속 그렇게 장난을 하신다면 저는 말을 하지 않겠읍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래 좋습니다. 그들은 부부가 아니라 남매이오.]

영영은 말했다.

[그입 좀 다물 수 없읍니까? 제가 담을 뛰어넘어 들어갔을 때 개가 짖기 시작하였죠.그래서 나는 즉시 개가 정신을 잃게 했읍니다. 그런데 개가 짖자 그 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잠에서 깨어났지요. 늙은 할머니가 말을 하였읍니다. `아모(阿毛)아버지, 여우가 닭을 훔치러온 것 같군요.' 늙은 할아버지가 말하길 `검둥이가 계속 짖지를 않으니 여우가 온 것 같지는 않소.' 늙은 할머니는 갑자기 웃으면서 말을 했읍니다. `아마 그 여우는 당신의 그 옛날 그 버릇을 배운 모양입니다. 한밤중에 우리집에 찾아올 때는 항상 고깃덩어리와 닭고기를 가져와서 개에게 주는 모양입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 할머니는 참으로 나쁜 사람이군요. 한바퀴 삥 돌아 당신을 여우라고 욕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는 영영이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옛날 그 농부 부부가 사랑하던 시절의 얘기를 하자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장을 하였다. 이렇게 가장을 해야만 그녀가 계속 말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자기 말투 속에 이상한 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녀는 즉시 입을 다물어 버릴 것이었다.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그 늙은 할머니는 그들이 결혼하기 전의 일을 말하고 있었읍니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허리를 펴고 말고삐를 잡아 당기자 나귀는 또다시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결혼하기 전에 아쨌다는 말입니까?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매우 점잖을 것입니다. 한밤중에 설사 함께 큰 수레를 타고 가면서도 틀림없이 껴안지도 않았을 것이고, 입맞춤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영은 치 하고 소리를 내더니 계속 말을 하지 않았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아이고! 이거 큰일 났구료. 내가 착한 동생을 화나게 했군요.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가 좀 들려주시오.]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컴컴한 밤중에 나귀의 발굽소리만 길거리에서 찌렁찌렁 귓가에 울려올 뿐이었다.
영호충이 밖 내다보니 달빛이 마치 물처럼 넓고도 똑바르게 뻗은 길가에 내리비치고 있었다. 연기 같은 옅은 안개가 길가 나무 끝을 휩싸고 있었으며 수레는 천천히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먼 곳의 경치는 분명히 볼 수가 없었다. 영영의 등허리도 한거풀의 옅다란 안개속에 휩싸여 있었다.
때는 이른 봄이어서 들꽃의 향기가짙었으며 미풍이 살며시 불어오자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영호충은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으므로 지금의 달콤한 정경은 마치 멋진 술내음을 맡는 듯하였다. 영호충은 줄곧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으며 영영은 그 늙은 노 부부의 말을 회상하고 있었다.

늙은 할아버지는 말했다.

[그날 저녁에 집에는 고기가 없었소. 그래서 별수 없이 이웃집에 가서 닭을 한마리 훔쳐서 가지고 당신의 집에 와서 개에게 먹였지요. 그 개 이름이 뭣이었더라?]

늙은 할머니는 말을 했다.

[그 개이름은 아마 대화(大花)라고 불렀었지요.]

늙은 할아버지는 말을 했다.

[맞소, 대화라고 불렀었소. 그 개는 닭을 먹더니 착하게도 짖지 않았었지. 그래서 당신 부모님께서 내가 온 것을 알지 못했소. 우리들의 아기는 바로 그날 저녁에 생겼었지.]

늙은 할머니는 말을 했다.

[당신은 당신 자식을 죽일 줄만 알았지 다른 사람이 죽건 살건 상관도 하지 않았읍니다. 나중에 내 배가 불러오자 아버지는 나를 죽도록 때렸읍니다.]

늙은 할아버지는 말을 했다.

[다행이 당신 배가 커졌기 멍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 아버지가 어찌 나 같은 가낸뱅이에게 당신을 시집보냈겠소? 그래 나는 당신의 배가 더 빨리 불러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소.]
늙은 할머니는 갑자기 화가나서 욕을 했다.

[이 늙은 귀신이 알고 보니 고의로 그랬군요. 당신은 계속 나에게 숨기었어요. 나는......나는 절대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늙은 할어버지는 말을 했다.

(떠들지 마시오, 떠들지 마오. 다 큰애들이 놀라 잠에서 깨어나겠소. 왜 그리 떠드는 것이오.]


그때 영영은 영호충이 자기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염려할까봐 더이상 듣지 못하고 옷과 물품을 훔쳐서 돌아왔던 것이다. 물건 훔칠 때도 그만한 돈을 남기고 왔었다. 그녀의 동작이 너무나 날렵했고 또한 이 늙은 부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았고 매우 흥이 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와서 옷을 훔쳐가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었다.
영영은 그 노인네의 주고 받는 말을 생각해 내고는 갑자기 얼굴 붉혔다.
다행이 컴컴한 밤중이라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매우 낭패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녀는 더이상 나귀를 재촉하지 않았다. 큰 수레는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한참 가서 휘어진 길에 접어들자 큰 호수가 옆에 이르렀다. 호숫가에는 수양버들이 심어져 있었고 둥그런 달빛이 호수에 비치자 호수의 물결은 잔잔히 일어 은빛이 번쩍번쩍 했다.
영영은 가볍게 말했다.

[충 오라버니, 잠이 드셨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잠이 들었읍니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어요.]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읍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나는 꿈속에서 큰 소고기덩이를 가지고 흑목애에 더듬어 올라가서 당신의 집의 개에게 먹였소.]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은 정말 점잖지 못하군요. 꿈을 꾸면서도 점전지 못한 꿈만 꾸는 군요.]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레에 앉아서 호수를 바라다봤다.
영호충은 우측손을 내밀어 영영의 좌측손의 손잔등에 살며시 내려 놓았다. 영영의 손이 약간 떨렸다. 그러나 손을 거두어들이지는 않았다.
영호충은 내심 생각하기를, (영원히 이렇게 있으면서 무림의 그 피비랜내나는 광경을 보지 않는다면 설사 내가 신선이 된다하더라도 이렇게 즐겁지는 않을 것이다.)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영호충은 조금 전에 생각하였던 것을 말했다. 영영은 좌측손을 들어 그의 우측손을 꼭 쥐더니 말을 했다.

[충 오라버니, 저는 정말 행복해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나도 똑같소.]

영영은 말했다.

[당신들이 군웅들을 이끌고 소림사를 공격했을 때 저는 매우 감격했지만 지금처럼 기쁘지는 않았읍니다. 만약 제가 다시 소림사에 갇혀 있다면 당신은 강호의 의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도 돌보지 않고 저를 구하러 왔을 것입니다. 이때 당신은 단지 저만을 생각하고 있을뿐 당신의 소사매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가 당신의 소사매라는 말을 꺼내자 영호충은 옴몸을 떨며 입을 열어 말했다.

[아, 우리 빨리 뒤쫓아갑시다.]

영영은 가볍게 말을 했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는 믿고 있읍니다. 당신 마음속에는 내 생각을 당신의 소사매 생각보다 더 많이 한다는 것을.]

그녀가 가볍게 고삐를 당기자 나귀는 고개를 돌려 수레를 끌고 호수가에서 다시 큰길로 올라섰다.
채찍을 가하자 나귀는 빨리 달렸다. 단숨에 이십여리를 갔다. 나귀의 발이 무디어지자 비로소 천천히 발을 띠었다. 구부러진 길을 두번 돌자 앞에는 넓다란 평야가 나타났다. 길양쪽에는 수수가 심어져 있었고 휘황찬란한 달빛을 받자 그것은 마치 거대한 녹색의 비단 같았으며, 그 비단이 대지에 깔려 있는 듯하였다. 멀리 바라다 보니 길끝머리에는 한대의 큰 수레가 마치 멈추어 있는 듯하였다.
영호충은 말했다.

[이 큰 수레는 아마 그들의 수레인 것 같소.]

영영은 말했다.

[우리가 천천히 따라가서 봅시다.]

나귀의 발에 맡기어 두자 수레는 갈수룩 가까이 다가갔다.
한참 지난 후에 비로소 앞의 수레는 속도가 극히 느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귀 옆에는 또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는 데 그것은 임평지였다. 수레를 모는 사람의 뒷모습은 바로 악영산이었다.
영호충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손을 내밀고 말고삐를 당겨 수레를 그 자리에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저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오?]

영영은 말했다.

[당신은 이곳에서 기다리세요. 재가 가서 한번 보겠읍니다.]
만약 수레를 끌고 앞으로 간다면 즉시 상대방에게 발견될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경공(輕功)을 전개하여 몰래 살펴봐야만 했다.
영호충은 몹시 가고 싶었다. 그러나 상처가 다 낮지 않았고, 경공을 쓸 수가 없어서 별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그러시오.]

영영은 가볍게 수레에서 내려 수수밭 사이로 들어갔다. 수수는 매우 조밀하게 자라고 있으므로 그 속에 들어가자 설령 낮이라도 사람의 그림자를 볼 수가 없었다. 단지 초봄이라 수수의 키는 작고 잎파리도 작았으므로 머리를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허리를 굽혀 갔다.
수레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확인하고는 뒤쫓아갔다. 수수밭에 숨어서 악영산의 수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따라갔다.
임평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검보는 벌써 당신 아버지에게 건네주었소. 모두 건네주고 단 일초식도 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왜 그고생을 하며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당신은 끝까지 나의 아버지가 당신의 검보를 탐내고 있다고 의심하는데 그것은 말도 되지 않읍니다. 당신도 양심에 손을 얹고 말씀 좀 해보세요. 당신이 처음 화산문하에 왔을 때 당신손에 무슨 검보가 있었읍니까? 그러나 나는 당신......당신과 사이가 좋았어요. 그때도 내 마음이 다른데 있었을까요?]

임평지는 말했다.

[나 임가의 벽사검법은 천하에 알려져 여창해, 목고봉 등과 같은 자들은 우리 아버지 몸에서 찾지 못하자 나를 찾아왔소. 내가 어찌 당신이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나에게 가까이 접근했는가를 알 수 있었겠소?]

악영산은 흐느끼며 말을 했다.

[당신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에게 무슨 방법이 있겠읍니까?]

임평지는 화를 내며 말했다.

[설마 하니 내가 당신을 잘못봤단 말이오? 결국 당신 아버지는 벽사검보를 내 수중에서 빼았아가지 않았소. 그 누구도 알고 있읍니다. 만약 벽사검보를 얻으려 한다면 반드시 내 몸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을......여창해, 목고봉, 흥흥 악불군 뭐가 다릅니까? 단지 악불군은 승자가 되었고 여창해와 목고봉은 패자가 되었을 뿐이오.]

악영산은 화가 나서 말했다.

[당싱이 이렇듯이 나의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데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고 있읍니까? 만약에......만약에......흑흑......]

임평지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당신이 어떻게 한단 말이오. 만약 나의 눈이 멀지 않았고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당신이 나를 죽이려 했다는 말이지요? 그렇지요? 내 이 눈은 오늘에야 비로소 멀은 것은 아니오.]

악영산은 말을 했다.

[그 말은 당신이 애당초 나를 알았을 때 바로 눈이 멀었다는 뜻이군요.]

말고삐를 잡아당기자 수레는 멈추었다.
임평지는 말을 했다.

[그렇소, 내가 어찌 당신이 이렇듯이 깊은 계략을 갖고 있는 줄 알았겠소? 벽사검보를 위해서 복주(福州)에 와서 작은 주점을 차릴 줄은 청성파의 그 여(余)가놈이 당신을 못살게 굴 때 실은 당신의 무공은 한수 위였소. 그러나 당신은 거짓으로 무예를 할 줄 모르는 척 가장을 하여 나를 끌어들였던 것이오. 흥! 임평지야 너는 벌써 눈이 멀어 있었다. 걸음마도 띠지 못한 공력을 가지고 간도 크게 의로운 행동을 한답시고 그자리에 나섰으니 말이다. 당신은 당신 부모의 사랑스런 딸이오. 그들이 만약 중대한 음모가 아니면 어찌 당신을 밖에다 내놓고 그런 술이나 파는 짓거리를 시킬 수 있었단 말이오?]

악영산은 말을 했다.

[아버지는 본시 둘째 사형을 파견하여 복주로 가도록 했었읍니다. 그렇지만 나는 하산하여 놀고 싶어서 둘째 사형을 따라서 간것입니다.]

임평지는 말을 했다.

[당신 아버지는 문하의 제자들을 엄격하게 다루시는데 만약 그 양반이 타당하다고 여기지 않았더라면 설사 당신이 삼일낮 삼일밤을 무릎을 꿇고 애걸을 했다 하더라도 절대로 허락을 하지 않았을 것이오. 아마 당신 아버지는 둘째 사형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을 파견하여 감시를 하도록 한 것이지요.]

악영산은 묵묵무답이었다. 마치 임평지의 추측이 아무런 근거 없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후에 말을 했다.

[당신이 믿어도 좋고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 어쨌든 나는 복주로 가기 전에 벽사검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읍니다. 단지 아버지는 대사형이 청성파의 제자들을 혼내 주었으므로 쌍방이 틈이 생기고 지금의 청성파의 사람들이 대거 동쪽으로 이동을 하니 우리파에 불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래서 둘째 사형과 나를 파견하여 암암리에 관찰을 해보라고 하였읍니다.]

임평지는 한숨을 길게 쉬더니 화가 좀 풀린 듯하였다. 그래서 말하기를, [좋소 내가 다시 당신을 한번 더 믿겠소. 그러나 나는 이미 이런 꼴로 변해 있소. 당신이 나를 따라온다고 하더라도 무슨 좋은 일이 있겠소? 당신과 나는 부부의 이름만 있을 뿐 결코 부부의 관계는 없었소. 당신은 아직 처녀의 몸이니 바로 돌아가......영호충한테로 돌아가시오.]

영영은 `당신과 내가 부부의 이름만 있을 뿐 부부의 관계는 없고 당신은 아직도 처녀의 몸'이라는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이것은 또 무슨 연고인가?)

바로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개지고 목덜미도 새빨개졌다.
내심 생각하기를, (여자의 몸으로 부부의 밀담을 엿듣는 것이 이미 합당치 못한데 또 무슨 연고인가를 생각하다니 참으로 나는 참으로......)
즉시 몸을 돌려 돌아갔다. 그러나 몇걸음 가다가 호기심이 발동되어 더이상 누를 수가 없었다.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그러나 내심 무서워서 감히 앞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임평지와 악영산 두사람과의 사이가 상당히 떨어졌다. 그러나 두사람의 말은 분명하게 귓속에 들어왔다.

[나는 당신과 결혼을 한 지 삼일 후에 당신이 마음속으로 나를 상당히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비록 우리는 같은 방을 썼지만 같은 이불 속에 들지 않았읍니다. 당신이 그렇게 나를 미워하는데 내가 어찌......내가......당신은 왜......나를 택하였읍니까?]

임평지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나는 당신을 미워해본 적이 없소.]

악영산은 말을 했다.

[당신이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구요?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낮에는 나에게 매우 다정한 척하면서 저녁이 되어서 방에 들어가면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단 말씀입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몇번이고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대해 주느냐고 물어 봤을 때 나는 항상 당신이 참 좋다고 말씀드렸고 아주 좋다고......아주 잘 해준다고......
흑]

여기까지 말하자 갑자기 소리를 내며 울었다.
임평지는 몸을 날려 수레에 오르더니 두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엄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당신은 당신 아버지 어머니가 몇번이고 내가 당신을 어떻게 대해 줬느냐고 물어봤다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정말이오?]
악영산은 흐느끼며 말을 했다.

[물론 정말이지요. 내가 왜 당신을 속이겠읍니까?]

임평지는 물어봤다.

[분명히 내가 당신에게 잘못해주고 있었고 한번도 같은 이불속에서 잠을 잔 적이 없었소. 당신은 어째서 나를 좋게 말해주었소?]
악영산은 울면서 말을 했다.

[나는 당신에게 시집간 몸입니다. 바로 임가의 사람입니다. 오로지 당신이 머지않아 마음이 돌아서리라고 가대하고 있었읍니다. 나는 당신을 짐심으로 대하고 있었읍니다. 내가 어찌 자기 남편의 잘못을 말할 수가 있겠읍니까?]

임평지는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고 단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한참 지난 뒤에 비로소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흥! 나는 단지 당신 아버지가 당신을 생각해서 나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었소. 그런데 당신이 나를 감싸주고 있었구료? 당신이 만약 그럭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이 임가놈은 벌써 화산 꼭대기에서 죽었을 것이오.]

악영산은 흐느끼며 말을 했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읍니까? 우리는 신혼인데 설령 약간 불화가 있을지라도 장인이 된 사람이 어찌 사위를 죽일 수 있읍니까?]

영영은 여기까지 듣고는 천천히 앞으로 열발짝 걸어나갔다.
임평지는 혹독하게 말을 했다.

[그가 나를 죽이려고 한 것은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다고 해서가 아니오. 내가 벽사검법을 배웠기 때문이오.]

악영산은 말을 했다.

[이 일에 대해서 나는 정말 알 수가 없군요. 당신과 아버지가 이 며칠 동안 사용한 검법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읍니다. 그러나 그 위력은 강하기 이를데 없었읍니다. 아버지는 좌냉선을 쓰러뜨려 오악파의 장문인을 빼앗았고, 당신은 여팡해, 목고봉을 죽였는데 그렇다면......그렇다면 이것이 정말로 바로 벽사검법입니까?]
임평지는 말했다.

[그렇소. 이것이 바로 나의 복주 임가의 벽사검보이오. 그 옛날 나의 증조부인 원도공(遠圖公)께서 이 칠십이로(七十二路)의 검법으로 군웅들을 다스리시고 복위표국을 창안하셨소. 당시 천하의 영웅들은 추앙을 하지 않는 자가 없었는데 바로 이런 연유에서 그러한 겁니다.]

이 일을 이야기할 때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말투 속에는 의기양양함이 충만되었다.
악영산은 말을 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까지 이 검법을 배웠다고 말씀하지는 않았읍니다.]

임평지는 말했다.

[내가 어찌 말할 수가 있겠소? 영호충이 복주에서 그 가사 장삼을 빼았은 후 필경 가져가지 못했읍니다. 단지 검보가 적혀져 있던 가사 장삼은 당신 아버지 수중에 떨여졌소.]

악영산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검보는 대사형이 가져갔다고 하셨읍니다. 그래서 내가 대사형을 만나 당신에게 돌려주라고 요구를 하였죠. 그러나 그는 승낙을 하지 않았읍니다.]

임평지는 흥 하고 냉소를 하였다.
악영산은 또 말을 했다.

[대사형의 검법은 매서워서 아버지조차도 그를 이길 수가 없읍니다. 설마 하니 그가 사용하는 것은 벽사검법이 아니란 말입니까? 당신 집의 벽사검보에서 배워온 것이 아닙니까?]

임평지는 냉소를 하며 말했다.

[영호충은 간사하고 교활하나 당신 아버지와 비교할 때 한참 뒤떨어집니다. 더우기 그의 검법은 엉망진창인데 어찌 우리 집의 벽사검법과 비교를 한단 말이오? 봉선대에서 시합을 할 때 영호충은 당신조차도 이기지를 못하였고 당신의 검 아래서 중상을 입었소.
흥 그 어찌 무가의 벽사검법과 비교를 한단 말이오?]

악영산은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그는 고의로 나에게 양보를 한 것입니다.]

임평지는 냉소를 하며 말을 했다.

[그는 당신에게 참으로 마음을 쓰고 있구료.]

이 말을 만약 영영이 하루 전에 들었다면 비록 벌써 영호충이 검시합을 할 때 고의로 양보를 한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두사람이 한적한 밤에 같은 수레를 타고 호숫가에서 정담을 나누면서 이미 두사람의 마음이 합쳐졌던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히려 달콤한 감이 들었다.

(그는 전에는 틀림없이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더욱 생각하고 좋아하고 있어. 그를 절대로 탓할 수는 없어. 그가 절대로 변심한 것은 아니고, 실제로 너는 너무나 능멸을 하고 있는 것이야.)

악영산은 말했다.

[알고 보니 대사형이 사용하는 것은 벽사검법이 아니군요. 그런데 어째서 아버지는 그가 당신집의 벽사검법을 훔쳐갔다고 탓하고 있읍니까? 그날 아버지가 화산문하에서 그를 내쫓고 그의 죄명을 선포하셨을 때 당신집의 벽사검법을 훔쳐갔다는 것이 하나의 큰 이유였읍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난......난 그를 잘못 탓하고 있었군요.]

임평지는 냉소를 하며 말을 했다.

[무엇이 잘못 탓했단 말이오? 영호충이 나의 검보를 훔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실제로 그는 틀림없이 훔쳐 갔었소. 단지 도둑놈이 강도를 만났을 뿐이오. 그는 중상을 입은 후에 정신을 잃었고, 당신 아버지가 그의 몸에서 찾아냈던 것이오. 그리고 나서 그가 훔쳤갔다고 억지를 부린 것입니다. 그래야만 남의 이목을 속일 수 있었으니까 말이오. 이것이 바로 도둑놈이 도둑 잡으라고 소리치는 꼴이오......]

악영산은 화가 나서 말했다.

[왜 말끝마다 도둑놈 도둑놈 하는 것이오. 정말 듣기가 않 좋군요.]

임평지는 말을 했다.

[당신 아버지가 이런 일을 했다고 듣기가 좋지 않단 말이오? 그가 할 수 있는데 왜 내가 말할 수 없단 말이오?]

악영산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했다.

[그날 상양항에서 이 가사 장삼을 숭산파의 못된 놈들이 탈취해 갔었죠. 그때 대사형은 그 두사람을 죽이고 가사 장삼을 빼앗으려는 것이었지 혼자 가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대사형은 도량이 넓은 사람이고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내지 않았지요.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그가 당신의 검보를 탈취했다고 하셨는데 나는 계속 약간은 회의를 품었었죠. 단지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고 대사형의 검법이 갑자기 크게 발전되어 아버지의 무공조차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자, 그래서 믿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영영은 내심 말을 하였다.

(네가 이렇게 말한다면 너의 남편니 조용히 듣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임평지는 냉소를 하며 말했다.

[그가 그렇게 좋다면 당신은 어째서 그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여보, 당신은 아직까지 내 마음을 모르십니까? 대사형과 나는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왔고 내 마음 속의 그는 나의 친 오라버니일 뿐입니다. 내가 그를 마음속에 두고 있는 것은 단지 그를 나의 오라버니로 여기고 있고 지금까지 그를 이성으로 보지는 않았읍니다. 당신이 화산에 온 직후부터 나는 당신에게 말할 수 없는 정을 느끼고 있었읍니다. 잠시만 보지 못해도 허전했고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읍니다. 나의 당신을 향한 마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임평지는 말했다.

[당신과 당신 아버지는 원래부터 조금 달랐소. 당신은......당신은 당신 어머니를 더욱 닮았소.]

말소리는 약간 부드러워졌다. 악영산의 진정한 마음을 알고 난 뒤 감동된 듯하였다.
두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 지난 뒤에 악영산이 말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에 대해서 편견이 아주 깊군요. 당신 두사람은 앞으로 함께 있어도 좋은 사이로 지내지는 못할 겁니다. 나는......나는 당신에게 시집을 간 몸이라 당신을 따를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래도 멀리 달아나 은밀한 장소를 찾아서 평안하고 행복하게 삽시다.]

임평지는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 생각은 멋지구료. 내가 여창해, 목고봉을 죽인 사실은 이미 천하에 알려져 있소. 당신 아버지는 내가 벽사검법을 배웠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러니 어찌 나를 도망가도록 내버려 두겠소?]

악영산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당신의 검보를 탈취하려고 했다고 말을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아버지를 위해서 변명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말끝마다 당신이 벽사검법을 배웠기 때문에 아버지가 당신을 죽인다고 하는데 천하에 그러한 이치가 있겠읍니까? 벽사검보는 본시 당신집의 물건입니다. 당신이 그 검법을 배운다는 것은 천하의 이치고 당연한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가 아무리 인정이 없다고 한다 해도 이 일 때문에 당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임평지는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말한다면 단지 당신은 당신 아버지의 사람됨을 모르고 있을 뿐이오. 또한 도대체 이 벽사검보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나는 비록 당신에게 마음을 두고 있지만 당신의 마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군요.]

임평지는 말했다.

[맞소. 당신은 모를 것이오! 당신은 모를 것이오! 당신이 알 필요가 있겠소?]

여기까지 말을 하고 나서 말추는 갑자기 난폭해졌다.
악영산은 감히 더이상 그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하기를, [자, 이제 그만 우리 갑시다.]

임평지는 말했다.

[어디로 간단 말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당신이 가고 싶은 데로 나도 가겠읍니다. 하늘 끝까지라도 나는 당신과 함께 가겠읍니다.]

임평지는 말했다.

[그 말이 정말이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후회하지 마시오.]

악영산은 말했다.

[나는 당신이 좋았기 때문에 당싱에게 시집을 간 것이고, 이미 당신을 따르기로 작정을 하였는데 무슨 후회가 있을 수 있겠읍니까? 당신이 눈에 상처를 입었지만 치료가 안 된다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설령 옛날 처럼 회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영원히 당신 곁애 있으면서 시중을 들 것이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것입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이 말에 영영은 수수밭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감동을 하였다.
임평지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여전히 믿지 못하는 듯하였다.
악영산은 가볍게 말을 했다.

[당신은 아직도 나를 의심하고 있구료. 난......나는 오늘 저녁에 저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드리겠읍니다. 당신은......당신은 그러면 나를 믿을 수가 있겠지요. 우리 두사람이 오늘밤 이곳에서 화촉을 밝히고 진정한 부부가 됩시다. 오늘 밤 이후로 우리는 진정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말할수록 작아져서 나중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영영은 또 한번 난감해졌다. 내심 생각하기를, (내가 계속 엿듣는다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가있겠는가?)
즉시 발걸음을 옮기고 암암리에 경멸 하였다.

(이 악소저는 정말 창피한 줄도 모르는구나! 이 큰길에서 어찌 그런 짓을......)

갑자기 임평지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심히 처량하고 날카로왔다. 이어서 일갈했다.

[꺼져라!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영영은 깜짝놀라 내심 생각하기를, (왜 그럴까? 어째서 이 임가 놈이 이렇듯 흉악하단 말인가?)
악영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임평지는 일갈을 했다.

[꺼져라, 꺼져! 빨리 멀리 꺼져 버려라! 나는 차라리 너의 아버지에게 죽음을 당할 망정 너는 나를 따라오지 마라.]

악영산은 울면서 말을 했다.

[당신이 나를 이렇듯 박대하는데 내가......내가 도데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이오?]

임평지는 말했다.

[난......난......]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넌......넌......]

그러나 또 다시 입을 마고 말을 하지 않았다.
악영산을 말했다.

[당신이 마음속에 할 말이 있다면 모두 말하세요. 만약 내가 잘못을 했다면, 또 당신이 나의 아버지를 탓하고 용서할 수 없다면 당신은 분명하게 한마디 하세요. 당신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내 스스로 자결을 하겠읍니다.]

싹 하고 소리가 나면서 검을 뽑아들었다.
영영은 내심 말하였다.

(그녀는 정말 임평지의 등쌀에 죽겠구나. 그녀를 구하지 않을 수 없다.)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가서 구하기 쉽게 수레에 가까이 다가갔다.
임평지는 또 말을 했다.
[난......난......]

한참이 지난 뒤에 긴 한숨 소리가 나오더니 말을 했다.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오. 내가 못나서 그런 것이오.]
악영산은 흐느적거리며 말을잇지 못했다.
임평지는 말을 했다.

[좋소. 내가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말하겠소.]

악영산은 울면서 말을 했다.

[당신이 나를 때려도 좋고 나를 죽여도 좋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모두 털어놓으세요.]

임평지는 말을 했다.

[당신이 나에게 진실로 대하는데 나도 분명하게 당신에게 말해 주겠소. 그렇게 되면 당신의 생각이 고쳐질 것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어째서입니까?]

임평지는 말을 했다.

[어째서라고? 우리 임가의 벽사검법은 무림에서 명성이 자자하여 여창해와 당신 아버지는 모두 일파의 장문인이고 자신들의 검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나의 집의 검보를 취하려고 하였소. 그러나 나의 아버지의 무공은 별볼일이 없었소. 그는 사람들에게 능멸을 당하면서까지 반항할 수 없었소. 그것은 어찌된 영문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어쩌면 시아버지께서는 천성이 무예를 익히기를 좋아하지 않으셨고 또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셔서 그러하셨는지도 모르지요. 무림의 자제들이라고 모두 무공이 강하고 높은 것은 아니지요.]
임평지는 말했다.

[그렇지 않소.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 주신 벽사검법은 틀린 것이었소.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것이 아니었소.]

악영산은 목소리가 낮게 깔리더니 말을 했다.

[이건......이건 참으로 이상하군요.]

임평지는 말을 했다.

[사실을 알고 나면 이상할 것도 없소. 당신은 나의 증조부인 원도공이 본래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소?]

악영산은 말했다.

[모릅니다.]

임평지는 말했다.

[그는 처음에 중이었소.]

악영산은 말을 했다.

[알고보니 출가한 사람이었군요. 어떤 무림 영웅들은 강호에서 큰 사업을 벌린 후 나이가 들어 속세의 일을 떠나 출가한 사람들이 많이 있읍니다.]

임평지는 말했다.

[아니오. 나의 증조부는 늙어서 출가한 것이 아니라 먼저 중이 되었다가 다시 환속을 했던 것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영웅호걸 중에서 어렸을 때 중이 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명나라 개국환제인 주원장(朱元璋)은 어렸을 때 황각사(皇覺寺)에 출가하여 중이 되었읍니다.]

영영은 내심 생각하기를, (악소저는 남편의 마음이 좁다는 것을 알고는 한마디도 거슬리는 말을 하지 않소 오히려 위로를 하고 있구나.)

악영산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증조부인 원도공께서 어렸을 때 출가하여 중이 된 것은 시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말을 해준 것이로군요.]

임평지는 말했다.

[나의 아버지는 한번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소. 그리고 아마 그분도 모르고 계셨을 것입니다. 상양항의 저택에는 불당이 있었는데 그날 저녁 나와 당신은 함께 그곳에 갔었지 않소.]
악영산은 말했다.
[녜.]

임평지는 말을 했다.

[이 벽사검보는 어찌해서 그 가사 장삼에 적혀 있었겠소? 그것은 단지 증조부께서는 본래 중이었으므로 검보를 보고 난 후 남 모르게 그 가사 장삼에 적어 넣은 후 훔쳐서 나온 것이겠지요. 그 분은 환속한 후에 집에 불당을 하나 세워놓고 조석으로 부처님을 섬기는 것을 잊지 않았겠지요.]

악영산은 말을 했다.
[당신의 추리는 매우 맞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어떤 고승이 원도공에게 전해 주었는지도 모르지요. 이 검보는 본래가 가사 장삼에 써져 있었던 것입니다. 원도송께서 이 검보를 얻으신 것은 매우 광명정대한 일입니다.]

임평지는 말을 했다.

[그렇지 않소.]

악영산은 말을 했다.

[당신이 그렇게 추측을 하시는 것은 틀림이 없읍니까?]
임평지는 말했다.

[내가 추측한 것은 아니오. 원도공께서 친필로 가사 장삼에 써 놓았던 것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오, 알고 보니 그랬었군요.]

임평지는 말했다.

[그는 검보의 제일 뒤에다 분명하게 밝히셨소. 그는 중으로서 절에 있을 때 어떤 계기로 다른 사람의 입을 퉁해 이 검보에 대해 듣고는 가사 장삼에 적어 놓는다고요. 그분은 신중하게 경고를 하였소. 이 검법은 너무나 무서워 연마를 하는 자는 반드시 자손이 끊긴다고요. 비구니나 중이 연마를 하면 타당치 못하고 불가의 자비로운 뜻을 크게 손상시킨다고 하였소.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절대로 연마를 할 수 없다고 하였소.]

악영산은 말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배웠지 않았읍니까?]

임평지는 말을 했다.

[당시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였소. 이 검법이 설령 악랄하고 연마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해도 원도공께서는 연마를 한 후에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아내를 얻고 자손을 보았지 않았소?]

악영산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분께서는 아내를 얻고 자식을 본 후에 그 검법은 배웠는지도 모르지요.]

임평지는 말했다.

[절대로 그렇지는 않소. 천하에 무예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그가 아무리 영웅호걸 일지라도 또는 아무리 강한 고수일지라도 일단 이 검보를 보면 한번 씌여진 대로 연습을 하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제일 초식을 행한 후 절대로 두번째 초식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두번째 초식을 배운 후에는 더욱 세번째 초식을 포기하지 않소. 검보를 보지 않았다면 몰라도 보았다면 틀림없이 그 속에 빠져들어 더이상 빠져나오기가 어렵고 처음부터 끝까지 연마를 해야만 하오.
설령 그 검보가 큰 화가 될지라도 그것은 나중의 일이라고 여기고는 하지요.]

영영은 여기까지 듣고 내심 생각하였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벽사검보는 사실 나의 규화보전과 같은 원류이고 기본원리 또한 다르지 않다고 하셨는데 어쩐지 악불군과 임평지의 검법이 동방불패와 유사하더라니.)

또 생각하기를,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규화보전의 공력은 오직 화근만 될 뿐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그는 무예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내용이 정묘하고 깊은 무학의 비급을 보면 설령 분명히 화근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속에서 빠져들오 나오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아버지는 그 규화보전을 쳐다보지도 않으셨으니 정말로 잘한 일이었다.)

머릿속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규화보전을 동방불패에게 전해 주셨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자연히 무엇인가 추측할 수가 있었다.

(알고 보니 당시 아버지는 이미 동방불패의 야심을 아시고 그 규화보전을 전해주어 고의로 그를 함정에 빠뜨리신 것이다. 상아저씨는 여전히 아버지가 어리석어 동방불패의 꼬임에 빠져 있다고 혼자서 노심초사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처럼 영리하고 대단한 사람이 어찌해서 오랫동안 그런 고생을 하시고 계셨단 말인가? 단지 천명은 예측할 수 없는 법이지. 동방불패는 먼저 손을 써서 아버지를 잡아 놓고 서호의 밑바닥에다 감금을 하셨던 것이다. 어쨋든 동방불패의 심기는 나쁜 사림이 아니어서 망정이지 만일 그때 아버지를 죽이거나 또는 음식을 주지 못하도록 하였다면 아버지에게 어찌 복수할 기회가 있었겠는가? 사실 우리가 동방불패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 요행에서 비롯된 일이다. 만약 영호충이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버지, 상아저씨, 상관운과 나 네사람은 동방불패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내가 또 양련정을 옆에서 괴롭히지 않았다면 동방불패는 여전히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동방불패가 약간은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또 생각하기를, (그는 나의 아버지를 호수 밑바닥에 감금해 놓고도 나에게는 심히 잘 대해 주었다. 나는 일월신교에서 공주와 다를 바가 없었지.
오늘날 나의 아버지가 교주가 되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 옛날보다 권세도 위풍도 없구나. 지금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 썩어빠진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과거를 회상하며 아버지의 계략이 용의주도하다는 것을 생각하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깜짝 놀랐다.

(오늘날까지 아버지는 아직 영호충에게 신공의 법문을 전수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영호충의 체내에는 다른 사람의 진기가 쌓여 발산하지 않으면 화근은 더욱 커져서 언젠가는 큰 우환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말씀하기를 그가 우리교에 들어오기만 하다면 즉시 그런 방법을 전수해 줄 뿐만 아니라 또한 교중들에게 선포하여 그에게 교주의 자리를 잇게 한다고 하셨는데 영호충은 고개를 숙이고 따르지 않으니 정말 어렵구나.)

영영은 근심이 되어 한참 수수밭 속에 있었다. 비록 잡다한 생각을 했으나 끝내는 영호충에게 귀결이 되었다.
이 때 임평지와 악영산도 역시 아무말 하지 않았다. 한참 지난 후에 임평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도공께서는 검보를 보시고 난 후 바로 연마에 들어가셨소.]
악영산은 말했다.

[이 검법이 설령 화근이 있다 해도 즉시 발작을 하는 것은 아니고 십년 이십년이 지난 후에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기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원도공께서 아내를 맞이하고 자식을 본 것은 그 화가 발작하기 전의 일이었겠군요.]

임평지는 말했다.

[아......니오.]

그는 말을 길게 빼었다. 그러나 말투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을 하였소. 그러나 며칠후에 그것이 아님을 알았소. 나의 할아버지는 원도공의 친아들이 아니었소. 아마 원도공은 양자를 얻었던 것 같소. 원도공이 처를 맞이하고 아들을 낳았다고 했는데 그것은 단지 사람의 이목을 가리기 위한 수단이었소.]

악영산은 아 하고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 말했다.

[남의 이목을 가리기 위해서라니요? 그건......그건 어찌 된 일 입니까?]

임평지는 흥 하고 콧소리를 내고는 한참 뒤에 말을 했다.

[내가 검보를 보았을 때는 이미 당신과의 결혼 날짜가 매우 가까웠었소. 나는 몇번이고 당신과 결혼을 해서 진정한 부부가 된 후에 그 검법을 연마하려고 하였소. 그러나 검법에 기재되어 있는 초식의 법문은......무예를 배우는 사람은 그 검법의 힘에 이끌려 거역할 수가 없었소. 나는 결국......결국 남자를 포기하고 스스로 거세를 하였소.]

악영산은 실성한 사람처럼 말을 했다.

[당신 스스로......스스로 거세를 하고 연마를 하였다고요.]
임평지는 음산하게 말을 했다.

[그렇소. 이 벽사검보의 첫번째 법결(法訣)은 바로 무림칭웅 휘검자궁(武林稱雄 揮劍自宮)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그건......그건 어째서입니까?]

임평지는 말했다.

[이 벽사검법을 연마하려면 내공에서부터 시작을 해야하오. 자기 스스로 거세를 하지 않고 연마하게 되면 화를 당하게 되오. 마치 숯을 들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소.]

악영산은 말을 했다.

[그렇군요.]

말소리는 마치 모기소리처럼 작아 들리지 않았다.
영영은 마음속으로 말을 했다.
이때서야 그녀는 비로소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알고보니 그랬구나! 어째서 동방불패같은 영웅호걸이 무공이 천하무적이면서도 부인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바늘로 수를 놓고 있었으며 또한 양련정과 같은 수염이 많고 거대한 몸집의 사내와 지내고 그 속에 빠져들어갔는 가를, 알고 보니 이 사악한 무공을 연마하게 되면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꼴이 되는구나.)
악영산이 흐느끼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옛날 원도공이 거짓으로 아내를 얻고 자식을 구한 것은 모두 남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군요. 당신도......당신도......]
임평지는 말했다.

[그렇소. 내가 스스로 거세를 한 후에 당신과 결혼을 한 것은 남의 눈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소. 그러나 단지 그것은 당신 아버지 한 사람만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소.]

악영산은 아무말 없이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임평지는 말했다.

[나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말했소. 당신이 나를 미워해도 별수 없는 것이오.]

악영산은 더욱 흐느끼며 말을 했다.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나는 단지 그 옛날 벽사검보를 쓴 사람을 미워할 뿐입니다. 어째서......어째서 이렇게 사람을 해칠 수 있단 말입니까?]

임평지는 킥킥 웃더니 말을 했다.

[이 선배 영웅은 바로 거세를 당한 태감(太監)이었소.]
악영산은 음 하고 소리를 지르며 말을 했다.

[그렇다면......그렇다면 나의 아버지도......당신처럼......]
임평지는 말했다.

[이 검법을 연마한 이상 그 누구도 예외는 없소. 당신 아버지는 한파의 장문이지만 사람들에게 스스로 검을 휘둘러 거세를 했다는 소리가 전해지면 그 어찌 강호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소. 그래서 그는 내가 그 검법을 연마했다는 것을 아게 되면 반드시 나를 죽이고 말 것이오. 당신 아버지가 몇번이고 당신에게 나에 대한 것을 물어본 것은 바로 내가 스스로 거세를 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소. 만약 그 당시 당신에게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나의 생명은 벌써 없어졌을 것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지금은 아버지가 알았을까요?]

임평지는 말을 했다.

[내가 여창해와 목고봉을 죽인 사실을 수일 내로 무림 천하에 알려질 것이오.]

말소리는 심히 의기양양하였다.
악영산은 말했다.

[그렇게 말한 다면 나의 아버지는......정말 당신을 가만두지는 않겠군요. 우리는어디에 가서 숨어야 된단 말입니까?]

임평지는 이상하게 생각되어 말했다.

[우리라고? 당신은 지금 내가 이런 꼴이 되어 있는데도 나와 함께 가겠소?]

악영산은 말했다.

[물론이지요. 나의 당신에 대한 마음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시종......시종 같을 것입니다. 당신의 처지가 심히 가련......]
그녀는 이 한며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수레에서 떨어졌다. 아마 임평지가 밀어서 떨어진 것 같았다.
임평지의 원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당신이 나를 가련하게 보아주는 것을 원치 않소. 누가 당신보고 나를 불쌍하게 보라고 하였소? 임평지는 이미 검술을 이루었으니 그 누구도 두렵지 않소. 내 눈이 나으면 나는 천하를 주름잡을 것이고 악불군, 영호충은 물론 방증화상, 충호도사 등도 나의 적수는 아니오.]

영영은 숙으로 은근히 화가났다.

(너의 눈이 나은 다음, 흥 너의 눈이 나을 수 있겠느냐?)
임평지의 처지가 너무 불행하여 그녀는 처음에 측은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가 자기 아내에게 이렇듯이 무정하게 대하고 스스로 높게 평가하자 자기도 모르게 미운생각이 들었다.
악영산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했다.

[당신은 어쨋든 장소를 찾아 숨어 계세요. 눈이 나은 다음 그때가서 말하기로 하지요.]

임평지는 말했다.

[내 나름대로 당신 아버지를 상대할 방법이 있소.]

악영산은 말했다.

[이 일은 듣기가 거북하니 당신도 말하지는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아버지도 당신에 대해 염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임평지는 냉소하며 말을 했다.

[흥, 당신 아버지의 사람됨을 나는 당신보다 더 잘 알고 있소.
내일 나는 사람을 만나면 바로 이 일에 대해 말을 할 것이오.]
악영산은 급히 말을 했다.

[그럴 필요가 있겠읍니까? 당신은......]

임평지는 말했다.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이것이 바로 나의 생명을 지키는 한 방법이오. 내가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면 머지않아 당신 아버지의 귓속으로 들어갈 것이오. 악불군이 내가 이미 소문을 퍼뜨린 것을 알면 나를 죽여 입을 틀어막으려 하지는 않겠지. 그는 오히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내 생명을 지키려고 할 것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당신의 방법은 아주 희귀하기 짝이 없구료.]

임평지는 말했다.

[어째서 희귀하단 말이오? 당신 아버지가 거세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단숨에 알아낼 수는 없소. 그의 수염이 없어졌다 해도 다시 풀로 붙인다면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릴 수가 없을 것이오. 그러나 내가 영문도 모르게 죽는다면 모든 사람들은 악불군이 죽였다는 것을 알 것이오. 이것이 바로 선수를 치는 방법이오.]

악영산은 한숨을 쉬더미 묵묵부답이었다.
영영은 깊이 생각을 하였다.

(임평지의 생각은 매우 기민하고 매섭다. 악소저는 중간에 끼어 꼼짝할 수가 없겠구나. 그렇게 된다면 악불군의 명성은 땅에 떨어질 것이고, 그렇다고 저지를 한다면 그녀의 남편 생명이 위험할 것이다.)

임평지는 말을 했다.

[나는 두눈이 멀어 앞으로는 사물을 볼 수 없소. 그러나 부모님의 원수를 갚았으니 평생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오. 당시 영호충이 아버지의 유언을 전해 주었는데, 아버지의 유언에는 상양항의 조상의 유물을 절대로 뒤지지 말라고 하였소. 이것이 바로 증조부님의 유언이기도 하오. 사실 나는 자세히 살펴보아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했지만 부모님의 복수를 하였소. 내가 이렇게 복수를 하지 못했다면 남들은 모두 우리 임가의 벽사검보의 명성이 거짓이라고 했을 것이고, 복위표국의 역대 총두표들은 세상을 속이는 도둑놈의 무리라는 누명을 썼을 것이오.]

악영산은 말을 했다.

[당시 아버지와 당신은 모두 대사형을 의심하였읍니다. 그가 당신 일가의 벽사검보를 가졌고, 시아버님의 유언을 날조하였다고......]

임평지는 말했다.

[설령 내가 그랬다고 해도 그것이 어쨌단 말이오? 당시 당신까지도 의심을 하지 않았소?]

악영산은 탄식을 하더니 말을 했다.

[당신과 대사형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의심을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아버지와 나는 그를 의심해서는 안 되었읍니다. 세상에서 진정으로 그를 믿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 한사람뿐이었읍니다.]

영영은 마음속으로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영호충을 믿는 사람이 오직 너의 어머니 한사람 뿐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임평지는 냉소하며 말을 했다.

[당신 어머니는 정말 영호충을 좋아하셨소. 그놈 때문에 당신 부모님들은 여러차례 말다툼을 하였소.]

악영산은 의아하여 말을 했다.

[나의 부모님들이 대사형 때문에 말다툼을 하였다고요? 나의 부모님께서는 절대로 말다툼을 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임평지는 냉소를 하며 말을 했다.

[한번도 말다툼을 하지 않았다고? 그는 단지 거짓으로 꾸며 다른 사람들이 믿게 한 것뿐이오. 이런 일까지 악불군의 위군자의 가면을 쓰고 있었소. 나는 친히 분명하게 들었소.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시오?]

악영산은 말했다.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읍니다. 단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째서 나는 듣지 못했는데 당신은 들었단 말입니까?]

임평지는 말했다.

[지금 당신에게 말을 해주어도 상관없겠구료. 그날 복주에서 숭산파의 두명의 고수가 그 가사 장삼을 빼앗아 갔을 때 그 두사람은 영호충에게 죽음을 당했지요. 가사 장삼은 물론 영호충이 가져갔지요. 그러나 그가 중상을 입어 서서히 정신을 잃었을 때 내가 그의 몸을 뒤졌지만 그 가사 장삼은 이미 행방이 묘연했었소.]
악영산은 말했다.

[알고보니 복주성에서 이미 당신은 대사형의 몸을 뒤졌군요.]
임평지는 말했다.

[그렇소. 그게 어쨌단 말이오?]

악영산은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영은 내심 생각했다.

(악소저는 앞으로 이렇게 간계하고 혹독한 놈과 한평생을 지내자면 정말 많은 고통을 당하겠구나.)

갑자기 또 생각하였다.

(내가 이곳에서 너무 오래 있었구나. 영호충은 틀림없이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임평지의 말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가사 장삼이 이미 없어져 나는 틀림없이 당신의 부모가 빼았아갔을 것이라고 단정을 하였소. 복주에서 화산으로 돌아갈 때 나는 내심 살펴보았소. 그런데 당신 아버지는 정말 연기를 잘 하여 조금도 단서를 잡을 수가 없었소. 당신 아버지는 그때 병을 얻었소. 물론 그 누구도 당신 아버지가 그 가사 장삼에 적혀 있는 벽사검보를 읽고 그 즉시 거세를 하고 벽사검법을 연마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는 못했소. 여행중이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서 나는 당신 부모의 동태를 엿볼 수가 없었소. 화산에 돌아가자 나는 매일밤 당신 부모가 묵고 있는 절벽에서 숨어 그들의 말소리를 듣고 검보의 소재를 알 수 있었소.]

악영산은 말했다.

[당신이 매일밤 그 절벽에 숨어 있었다고요?]

임평지는 말했다.

[그렇소.]

악영산은 또다시 반복하여 물어보았다.

[매일밤이라고요?]

영영은 임평지의 대답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단지 악영산의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정말 인내심이 강하군요.]

임평지는 말했다.

[복수를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소.]

악영산은 느즈막하게 말을 하였다.

[그렇군요.]

임평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계속해서 십여일 동안 들었소. 그러나 아무런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소. 어느 날 저녁에 당신 어머니의 말을 들을 수가 있었소. `여보, 나는 근래에 당신의 표정이 심히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어요. 자하신공을 연마하는데 뭐 좋지 않은 일이 있읍니까? 너무 정진하지 마세요.' 당신 아버지가 웃더니 말을 했소. `아무일 없소. 자하신공을 연마하는 데는아무런 문제가 없소.' 당신 어머니가 말하기를 `나를 속일 생각은 마세요. 요즈음 당신은 말하는 소리가 가늘고 높아 마치 여자와 같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말했소. `함부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오. 나의 목소리는 옛날 부터 이러했소.' 나는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목소리가 뾰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소. 확실이 여자가 크게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소. 당신 어머니는 말했소. `그래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십니까? 당신은 예전에 절대로 이런 목소리로 말을 한 적이 없었읍니다. 당신과 나는 오랫동안 부부로 살아왔읍니다. 당신은 마음속에 무슨 걱정이 있읍니까? 왜 나를 속입니까?' 당신 아버지가 말하기를 `무슨 걱정이 있겠소? 음 숭산 대회가 멀지 않고, 좌냉선이 의도적으로 네파를 합병시키려는 야심이 너무 커 그래서 내가 걱정을 하였소.' 당신 어머니는 말했소. `내가 보건대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구료.' 당신 아버지는 또 화를 내며 뾰족한 소리로 말을 했소.
`당신은 어째서 남편을 의심하시오? 그밖에 또 다른 일이 있다니?' 당신 어머니는 말했소.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당신은 절대로 화를 내지는 마세요. 나는 당신이 충아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당신 아버지는 말했소. `충아라니? 그가 마교의 사람들과 왕래를 하고 마교의 임씨 성을 가진 아가씨와 정이 두터운 것은 천하가 모두 알고 있소. 내가 왜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겠소?]

영영은 임평지가 악불군의 말을 할 때 자기와 영호충과의 관계를 이야기하자 얼굴이 달아 올랐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부드러운 정감이 용솟음쳤다.
임평지가 말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당신 어머니는 말했소. `그가 마교 사람들과 사귄 것은 나도 알고 있소. 내가 말하는 것은 당신이 그에게 임평지의 벽사검보를 훔쳤다고 누명을 씌웠다는 것입니다.' 당신 아버지가 말했소. `검보는 그가 훔친 것이 아니란 말이오? 그의 검술이 갑자기 진보되어 당신과 나보다도 고명한데 당신은 그것을 보지 못했간 말이오?' 당신 어머니가 했소. `그것은 틀림없이 다른 연유에서 그러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가 절대로 벽사검보를 훔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읍니다. 충아의 성격이 바르지 못해 당신의 가르침을 듣지 않는 것은 틀림없으나 그는 어려서부터 바르고 정직해서 절대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짓은 하지 않았읍니다. 딸아이가 임평지를 좋아하고 나서 그를 버린 후인지라 그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평지가 두손으로 벽사검보를 바친다고 해도 절대로 받지 않을 것입니다.']
영영은 여기까지 듣자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일어났다.
만약 악 부인이 곁에 있다면 그녀를 꼭 껴안고 감사를 드리고 싶었다. 내심 화산파에서 오직 악 부인만이 영호충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홋날 악 부인을 만나면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임평지는 계속해서 말을 했다.

[당신 아버지는 흥 하고 소리를 내면서 말했소.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은 영호충을 문하에서 쫓아낸 것을 후회하고 있단 말이오?' 당신 어머니는 말했소. `그가 문규를 어겼으니 당신이 문파의 법규를 지키고 문호를 깨끗이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사람이 없읍니다. 그가 좌도의 인물을 사귀었다는 죄명은 중합니다. 그러나 어째서 그가 검보를 훔쳤다는 누명을 거기에 더 보탤 수가 있읍니까? 사실 당신은 그가 벽사검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 아버지가 외치기 시작하였소. `내가 어찌 알겠소? 내가 어찌 안단 말이오?']

임평지의 목소리는 역시 높고 날카로웠다. 악불군의 뾰족하고 화난 목소리를 모방하여 소리를 지르자, 고요한 밤에 바치 부엉이가 우는 것처럼 영영은 모골이 송연하였다.
얼마 지난 뒤 그가 계속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어머니는 천천히 말을 했소. `당신은 물론 알고 있으며, 또 당신은 벽사검보를 갖고 계십니다.' 당신 아버지는 화가나서 포효를 하며 말했소. `당신......당신......당신이 나를......' 그러나 단지 이 몇마디만 했을 뿐 갑자기 입을 닫았소. 당신 어머니는 평정된 목소리로 말했소. `그날 충아가 상처를 입어 정신을 잃고 있을 때 나는 그의 몸을 치료하면서 그의 몸에 가사 장삼이 있는 것을 보았고, 또 그 가사 장삼에는 글자가 가득 씌어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언뜻 보니 그것은 검법의 하나였읍니다. 두번째로 그에게 약을 바꾸어 주었을 때 그 가사 장삼은 보이지 않았읍니다. 그 당시 충아는 여전히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않았던 상태였읍니다.
이 시간에 방에 들어간 사람은 당신과 나 두 사람뿐이었읍니다. 그 가사 장삼을 내가 가져간 것은 아니었읍니다.']

악영산은 흐느적거리며 말을 했다.

[나의 아버지가......나의 아버지가......]

임평지는 말했다.

[당신 아버지는 몇번이고 중간에 말하려고 하였지만 들을 수 없는 몇마디를 하고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소. 당신 어머니는 점점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했소. `여보, 우리 화산 일파의 검술은 그 나름대로 독특한 조예를 가지고 있읍니다. 자하신공의 기공은 더욱 비범하여 이것으로 군웅들과 충분히 겨룰 수있고 족히 강호에서 명성을 떨칠 수 있읍니다. 따라서 다른파의 검술을 더이상 배울 필요가 없읍니다. 다만 근래에 좌냉선의 야심이 너무나 커 네 파를 병합하려 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화산 일파가 당신 수중에 있으면 그 누구에 의해서도 멸망하지는 않을 것 입니다. 우리들이 태산, 항산, 형산 세파와 연락을 취하고 때가 되어 네파가 합심해서 그의 일파와 대항을 한다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만약 승리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 모두가 한바탕 멋지게 싸움을 하여 우리의 생명을 숭산에 바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 지하에 가 화산의 역대 선조들을 만난다고 해도 일점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영영은 여기까지 듣고 속으로 찬탄을 하였다.

(이 악 부인은 여자 중의 남자로구나. 그녀의 남편과 비교를 해볼 때 기개가 대단하구나.)

악영산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어머니의 말씀은 진정 이치에 맞는 말이군요.]
임평지는 냉소하며 말했다.

[그러나 그때 당신 아버지는 나의 벽사검보를 가지고 있었고 이미 연마를 하고 있었소. 그 어찌 사모님의 권고를 받아들이겠소?]
그는 갑자기 사모님이라고 호칭을 하였다. 이것만 보아도 그가 악 부인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임평지는 계속해서 말을 했다.

[당신 아버지는 그때 말하기를, `당신이 지금 말한 것은 아녀자의 견해에 지나지 않소. 그런 필부의 용기롤 목숨을 버린다면 화산파는 쉽게 좌냉선이 삼켜버릴 것이고, 죽은 뒤에 무슨 낯으로 선조들을 대한단 말이오.' 당신 어머니는 한참동안 말을 않더니 탄식하며 말을 했소. `당신이 화산파를 지키기위해 노심초사 한다면 나는 당신을 탓할 생각은 없읍니다. 단지......단지 그 벽사검보를 연마하게 되면 손해만 있을 것이고 득될 것은 없을 것 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임가의 후손들은 어째서 그 검법을 배우지 않았겠읍니까? 그 벽사검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꼴을 당했지만 나는 그래도 당신이 마음을 거두어 연마하지 않는 것이 좋겠읍니다.' 당신 아버지는 큰 소리로 말했소. `당신은 어떻게 내가 벽사검법을 연마하고 있는지 알았소? 당신......당신이 내가 연마하는 모습을 훔쳐보았소?' 당신 어머니는 말했소. `내가 어찌 훔쳐보아야만 알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 아버지는 큰 소리로 말했소. `말하시오, 말하시오!' 당신 아버지는 목청껏 외쳤으나 분명 기가 꺾여 있었소.
당신 어머니는 말했소. `당신의 목소리가 벌써 변하여 모든 사람들은 다 알 수 있읍니다. 설마 하니 당신은 스스로 느끼지 못한단 말입니까?' 당신 아버지는 여전히 억지를 부렸소. `나의 목소리는 옛날부터 이러했소.' 당신 어머니는 말했소. `매일 아침 당신의 이부자리에는 많은 수염이 떨어져 있었읍니다......' 당신 아버지는 날카롭게 소리쳤소. `당신이 보았소?' 말소리는 심히 놀랜 듯하였소. 당신 어머니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는 벌써 보았지만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당신이 붙이고 있는 것은 가짜 수염입니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절대로 수십년 동안 부부로 한 이불 속에서 지낸 나를 속일 수는 없읍니다.' 당신 아버지는 이미 탄로난 것을 알고 더이상 변명하지 않고 한참 있다가 물어보았소. `다른 사람 가운데 누가 또 알고 있소?' 당신 어머니는 말했소. `없읍니다.' 당신 아버지는 말했소. `산아는 알고 있소?' 당신 어머니가 말하기를, `산아는 모르고 있읍니다.' 당신 아버지는 말했소. `그렇다면 평지도 모르겠구료?' 당신 어머가 말했소. `그도 알지 못합니다.' 당신 아버지가 말했소. `좋소 당신의 권고를 받아들이겠소. 이 가사 장삼을 내일 아침에 임평지에게 되돌려 주겠소. 또 영호충의 결백함을 벗겨 주겠소. 앞으로 이 검법은 절대로 연마하지 않을 것이오.' 당신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소.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렇지만 이 검보는 사람에게 해로운데 어찌 평지에게 돌려준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없애 버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악영산은 말했다.

[아버지는 물룬 대답을 하지 않으셨겠지요. 만약 아버지가 그때, 검보를 없애버렸다면 오늘과 같은 이런 꼴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임평지는 말했다.

[당신 추측이 틀렸소. 당신 아버지는 말했소. `좋소, 내가 즉시 그 검보를 없애 버리겠소!'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내어 막으려고 하였소. 검보는 우리 임가 집안의 물건이니 해가 되는 득이 되든 당신 아버지에게 그 검보를 없앨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오. 바로 이때 창문이 탁하고 열리는 소리가 났소. 내가 급히 머리를 내말어 보니 눈앞에 빨간빛이 보이면서 그 가사 장심이 떨여졌지요. 그리고는 창문이 다시 닫혔지요. 가사 장삼이 내몸 옆으로 떨어져 나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려 했소. 그러나 간발의 차로 잡을 수 없었소. 그때 나는 부모님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가사 장삼을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네 목숨을 돌보지 않은 채 우측손으로 벼랑을 잡고 좌측발로 있는 힘을 다해 뻗었읍니다. 마치 발끝에 그것이 걸린 것 같아 비로소 발을 당겨 보니 정말 다행스럽게 그 가사 장삼을 움켜잡을 수 있었소.]

영영은 그의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내심 생각했다.

(네가 가사 장삼을 얻지 못했다면 그것이 바로 너에게는 행운이었을 것이다.)

악영산은 말했다.

[어머니는 단지 아버지가 그 검보를 천성협(天聲峽)에 버린 것만 알고, 아버지가 이미 모두 외워 가사 장심이 필요없어서 버린 것을 모르고 있군요. 또 당신은 아버지가 버린 가사 장삼을 가지고 벽사검법을 배웠단 말이군요. 그렇지요?]

임평지는 말했다.

[그렇소.]

악영산은 말했다.

[그것은 하늘의 뜻인 것 같군요. 하늘이 그 검보를 당신에게 주어 당신 부모의 원수를 갚도록 한 것이군요. 그건......그건......그건 다행입니다.]

임평지는 말했다.

[그러나 한가지 일을 요며칠 둥안 생각을 해았지만, 알도리가 없었소. 어째서 좌냉선이 벽사검법을 사용할 줄 아는가 말이오.]
악영산은 악 하고 소리를 내며 심히 의아해했다. 틀림없이 벽사검법을 사용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는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임평지는 말했다.

[당신은 그 검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중의 오묘한 것을 모르고 있소. 그날 좌냉선과 당신 아버지가 봉선대에서 시합을 할 때 마지막에 가서 주 사람은 모두 벽사검법을 썼었소. 단지 좌냉선의 검법은 모두 사이비였소. 모든 초식은 고의로 당신 아버지에게 져주려고 했고, 그의 검술의 밑바탕은 매우 높아 위험한 상황을 만나면 급히 검초가 변해 피할 수가 있었소. 그러나 결국 당신 아버지에 의해 눈이 멀게 되었지요. 만약 그가 숭산 검법을 사용하여 당신 아버지의 벽사검법에 패해다면 그것은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닙니다. 벽사검법은 천하무적이어서 본시 숭산 검법이 당해낼 수 없는 것이지요. 좌냉선이 스스로 거세를 하지 않아 진정한 벽사검보를 연마하지 못한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내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좌냉선이 어디서 벽사검법을 배워왔느냐 하는 것이오. 또 어째서 사이비로 배웠느냐 하는 것이오.]

그는 마지막 몇마디를 할 때에는 주저하였다. 내심 무엇인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영은 내심 생각했다.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겠구나. 좌냉선의 벽사검법은 아마 우리교에서 남몰래 훔쳐보며 배운 것이겠지. 그는 단지 초식만을 배웠을 뿐이고 그 쓸모없는 법문(法門)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동방불패의 벽사검법은 악불군보다 더욱 무섭기 짝이 없다. 그가 만약 보았다면 설사 그의 머리가 세개 있다고 해도 그 가운데의 이치를 깨닫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가 살며시 떠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먼곳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이십여 필의 말이 급히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영영은 영호충이 걱정이 되어 급히 경공을 전개하여 수레 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충 오라버니, 사람들이 오고 있어요.]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당신은 또 다른 사람이 닭을 잡아 개에게 먹였다는 소리를 듣고 왔읍니까? 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렸읍니까?]

영영은 체 하고 소리를 지르며 좀전에 악영산이 그 수레에서 임평지와 진정한 부부가 된다는 말을 생각해 내고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들은......그들은......무술 연마하는 것에 대해서 예기하고 있었읍니다......벽사검법에 관한 일이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이 말을 더듬더듬 하는데 틀림없이 다른 이상한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빨리 수레에 올라와서 나에게 들려 주시오. 절대로 나를 속일 생각은 하지 마시오.]

영영은 말했다.

[올라가지 않겠어요, 점잖지 못하게.]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어째서 점잖지 못하단 말이오?]
영영은 말을 했다.

[모르겠읍니다.]
이때 말굽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려 왔다.
영영은 말을 했다.

[사람수가 많은 것을 보니 청성파의 제자들이 정말로 복수를 하러 왔나 봅니다.]

영호충은 일어나더니 말을 했다.

[우리가 천천히 건너가도 늦지 않겠지요?]

영영은 말했다.

[녜.]

그녀는 영호층의 악영산에 대한 관심이 매우 깊고 또한 지금의 사태로 보아 적이 공격을 해왔으므로 그는 그의 상처가 아무리 깊다 하여도 반드시 가서 도와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물며 그를 수레에 남겨 놓고 자기가 직접 구한다 하더라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즉시 그를 부축하여 수레에서 뛰어내렸다.
영호충은 좌측발이 땅에 내디디자 다친 상처 부위가 아파왔다.
몸이 기우뚱하면서 수레 부딪쳤다.
수레를 끄는 나귀는 줄곧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꼼짝도 않다가 수레가 움직이자 자기보고 가라는 줄 알고 고개를 젖히더니 앞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영영은 단검을 휘둘렀다. 일검으로 나귀의 머리를 소리도 없이 두동강 내었다.
음 하고 영호충은 가볍게 찬탄을 했다.
영호충은 그녀의 검법이 민첩한 것을 찬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무공으로 검을 휘둘러 나귀의 머리를 떨어뜨린 다는 것은 그리 신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머리를 자를 때 나귀가 조금도 울음소리나 반항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수레를 끌고 길을 갈 것인가는 차후의 문제였다.
영호충은 앞으로 몇발짝 걸어갔다. 말굽소리는 더 가깝게 들리는 듯하였다. 그래서 즉시 걸음을 재촉했다.
영영은 깊이 생각했다.

(그가 적보다 앞서 가려고 빨리 걷고 있구나. 빨리 걷는다면 상처에 진동이 올텐데. 하지만, 내가 손을 쓴다면 그를 껴안는다면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가볍게 웃고는 말을 했다.
[충 오라버니, 미안합니다.]

영호층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우측손으로 그의 등뒤의 허리띠를 거머쥐고 좌측손으로 그의 목덜미와 옷깃을 잡고 그의 몸을 들어올려 경공을 전개하여 수수밭으로 들어가 질풍처럼 앞으로 나갔다.
영호충은 감격하고 한편으로는 매우 재미가 있었다. 자기는 당당한 항산파의 장문인데 마치 어린애처럼 그녀의 손에 들려져 있다니 만약 문하의 사람들이 본다면 얼굴을 들 수가 없겠구나. 그러나 내심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청성파 사람들이 먼저 도착할 것이고 소사매는 바로 참혹한 변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녀의 이런 행동은 자기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음이었다.
영영이 수십보 달려나가자 말발굽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바라다보니 컴컴한 가운데 횃불이높이 들려져 있으며 길을 따라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생각하였다.

(이놈들은 정말로 담도 크구나. 횃불을 밝히고 사람을 쫓아오다니.)

영호층은 말을 했다.

[죽음을 각오하니 아마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구료. 이렇게 된다면 아이고 큰일 났구나.]

영영도 무엇인가 생각이 나서 말했다.

[청성파 사람들이 수레에다 불을 지르려 하는 것 같군요.]
영호층은 말을 했다.

[우리가서 막읍시다. 그들이 이곳으로 오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영영은 말했다.

[그렇게 초조해하지 마세요. 두 사람을 구하는데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요.]

영호충은 그녀의 무공이 강하고 청성파의 여창해가 죽었기 때문에 그 나머지 사람은 그리 염려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놓였다.
영영은 영호층을 거머쥐고 악영산이 수레에 가까운 곳에 이르렀다. 그를 부추켜 세워 수수밭 가운데 앉히더니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당신은 조용히 앉아서 움직이지 마세요.]

악영산은 수레에서 말을 했다.

[적이 곧 당도 합니다. 과연 청성파의 쥐새끼들입니다.]
임평지는 말을 했다.

[당신은 어떻게 아시오?]

악영산은 말알 했다.

[우리 부부를 이렇게 해놓고 손에 횃불을 들고 뒤쫓아 오다니 흥 정말 무서운 것도 모르는 놈들이군.]

임평지는 말을 했다.

[모든 사람이 횃불을 들고 있소?]

악영산은 말을 했다.

[녜, 그렇습니다.]

임평지는 수많은 어려운 상황을 겼어 왔기 때문에 생각이 깊었고 악영산보다도 기민하여 말했다.

[빨리 수레에서 내리시요. 저 쥐새끼 같은 놈들이 수레에 불을 지를 것 같소.]

악영산은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렇겠군요.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횃불을 어디다 쓰겠읍니까?]

수레에서 몸을 날려 내리더니 손을 내밀어 임평지의 손을 꼭 잡았다.
임평지는 그녀를 따라서 뛰어내렸다. 두 사람은 밖으로 걸어 나오다니 수수밭 사이에 엎드려 몸을 숨겼다. 영호충과 영영이 매복하고 있는 곳에서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말발굽소리를 고막을 찢더니 청성파의 여러 사람들이 수레에 접근하여 먼저 앞뒤를 막고는 수레를 뺑 둘러 에워쌌다.
한 사람이 외쳤다.

[임평지 이 개 같은 놈아! 거북이 새끼 같은 놈아! 어째서 고개를 내밀지 않느냐?]

여러 사람은 수레 안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음을 알고는 어떤 사람이 말을 했다.

[아마 수레에서 내려 도망친 것 같군요.]

한 사람이 횃불을 수레 안으로 던지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수레에서 손이 나오다니 그 횃불을 받아 밖으로 내던졌다.
한 사람이 외쳤다.

[개 같은 놈이 수레 안에 있다!]

수레에서 갑자기 사람의 손이 나와 횃불을 받아 던지다 영호충과 영영은 수레 속에 또 다른 도와주는자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의아해 했다.
악영산은 더욱 깜짝 놀랐다. 그녀는 임평지와 오랫동안 얘기를 했지만 수레 속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횃불을 내던지는 손의 기세가 강한 것을 보니 무공이 상당히 높은 것 같았다.
청성파 제자들이 여덟게의 횃불을 동시에 던지자 그 사람은 하나하나씩 받아서 밖으로 되던졌다. 사람에세 상처를 주지는 않았으나 나머지 청성파 제자들은 횃불을 더이상 던지지 않았다. 단지 멀리서 수레를 웨워싸고 일제히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횃불이 훤한 가운데 모든 사람은 분명히 볼 수가 있었다. 그의 손은 삐쩍 마르고 힘줄이 툭 튀어 나온 노인의 손이라는 것을.
어떤 사람이 외쳤다.

[임평지가 아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이 외쳤다.

[임평지의 마누라도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이 말했다.

[자라 같은 놈이 수레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것을 보니 아마 상처를 입은 것 같군.]

여러 사람들은 한참 동안 주저하였다. 수레에서 아무런 동태가 없는 것을 보고 갑자기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이십여 사람들은 일제히 덤벼들었다. 각기 장검을 휘두르며 수레 안으로 쑤셔 넣었다.
퍽 하고 소리나 나면서 한 사람이 수레의 꼭대기에서 몸을 날려 나왔다. 손의 장검이 번쩍이더니 청성파의 여러 사람들 뒤로 빠져나가 장검을 휘두르니 두명의 청성제자들이 삽시간에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이 사람의 몸에는 노란 옷이 입혀져 있었는데 차림새를 보니 숭산파 사람인 것 같았다. 얼굴운 파란 보자기로 감싸고 있었으며 번쩍번쩍한 두눈만 내놓고 있었다. 검은 기괴하고 빨라서 수초 사이에 또 두명의 청성파 제자들이 검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영호충과 영영은 서로 두손을 꼭 잡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사용하는 것은 그 벽사검법이다.)

그러나 그의 몸체로 보아 절대로 악불군은 아니었다.
두사람은 또 같은 생각을 하였다.
(이 세상에 악불군, 임평지, 좌냉선 세사람을 제외하고 네번째로 벽사검법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있구나.)

악영산은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이 사람이 사용하는 초식은 바로 당신의 검법과 똑 같구료.]
임평지는 억 하고 소리를 지르며 이상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그가......그 사람도 나의 검법을 사용할 줄 안다니 잘못보지 않았소?]

순식간에 청성하는 또 세사람이 검에 맞았다. 그러나 영호충과 영영은 간파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사용하는 검법은 비록 벽사검법이지만 몸놀림과 공격은 동발불패와는 상당한 차이가 났으며 더우기 악불군과 임평지의 신출귀몰함에 미치지 못하였다. 단지 그의 무공은 청성 여러제자들보다 한 수 위였고 더우기 거기에다 벽사검법의 기묘함이 보태지자 혼자서 여러 사람을 상대해도 여전히 우세했다.
악영산은 말을했다.

[그의 검법은 당신의 검법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손의 동작은 당신보다 빠르지 않군요.]

임평지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손의 동작이 빠르지 않다면 그것은 벽사 검법의 본뜻과는 맞지 않소......그러나......그러나 누구일까? 어떻게 이 검법을 사용할 줄 알까?]

격돌하는 가운데 청성의 제자 한사람이 그 복면을 한 자에게 찔려서 쓰러졌고 또 그 복면을 한 자가 일갈을 하며 검을 휘두르자 또 다른 한사람의 허리가 두동강났다. 나머지 사람들은 겁을 집어 먹고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 사람은 소리를 지르며 두발짝 앞으로 다가갔다.
청성의 제자들 중 몇명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려 도망쳐 버렸고 나머지는 김이 샜다는 듯이 벌떼처럼 도망쳐 버렸다. 어떤 자는 두 사람이 말하나를 탔고 또 어떤 사람은 말을 타지 못하고 걸음아 날살려라 도망을 쳤으며 삽시간에 어디로 새어 나갔는지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복면을 한 자는 퍽이나 피로한 것 같았다. 장검으로 땅바닥에 기대더니 계속해서 숨을 헐떡거렸다.
영호충과 영영은 그의 숨결 중에 이 사람이 조금전에 격돌을 벌렸을 때 시간은 짧지만 내공을 크게 소모하고 또 이미 보이지 않는 상처를 입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때 땅바닥에는 일곱 여덟 자루의 횃불이 여전히 타고 있었다.
불빛이 너울너울 춤춰 밝기도 불길의 춤에 따라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였다.
이 노란 옷을 입은 노임은 한참동안 숨을 헐떡거리더니 장검을 들어 천천히 칼집에 꽂으면서 말했다.

[임 소협, 임부인, 저는 숭산 좌장문의 명령을 받고 이곳에 도와주러 왔소. ]

그의 목소리는 매우 작고 쉬어서 한마디 한마디를 분명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치 입속에 어떤 것을 물고 있는 것 같았으며 한편으로는 혓바닥을 고의로 구부려 목구멍에서 소리내는 것 같았다.
암평지는 말을 했다.

[귀하의 도움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존함은 어떻게 되는지요?]

말을 하면서 악영산과 수수밭에서 나왔다.
그 노인은 말했다.

[좌장문께서는 소협과 부인이 흉계에 빠져 상처를 입고 계신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에게 두분을 안전한 곳까지 모시라고 분부를 하셨읍니다. 그곳에 가서 상처를 치료한다면 악선생은 당신들을 찾지 못할 것이오.]

영호충과 영영, 임평지, 악영산은 모두 생각하였다.

(좌냉선이 어찌 이런 내막을 알았단 말인가?)

임평지는 말했다.

[좌 장문인과 귀하의 호의에 감격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상처를 치료하는 일은 내 스스로 처리할 수 있으니 더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군요.]

그 노인은 말했다.

[소협의 두눈은 새북명타(塞北明駝)의 독극물에 상처를 입었소.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가 사용하는 독은 무섭기 짝이 없음으로 낙역 좌장문인께서 친히 약을 주지 않은다면 아마......아마......소협의 생명은 보존하기 어려울 것이오.]
임평지는 목고봉의 독물세례를 받은 직후에 두눈과 얼굴이 가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괴로워서 스스로 자기의 눈을 빼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억지로 참고 또 참았던 것이다.
이 사람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저는 좌장문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좌장문인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받아주겠단 말이오. 귀하께서 분명히 나에게 밝히지 않는다면 나는 도움을 받지 않겠소.]

그 노인은 웃더니 말을 했다.

[같은 병을 앓고 있으니 그것을 동병상련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좌 장문인의 두눈도 악불군이 망처 놓았읍니다. 그리고 귀하도 두눈에 상처를 입었는데 그 원인을 찾는다면 화는 악불군으로부터 시초가 된 것입니다. 악불군은 소협이 이미 벽사검법을 익힌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소협이 하늘 끝까지 도망친다고 해도 당신을 반드시 찾아내어 죽이고 말 것입니다. 그는 지금 오악파의 장문이 되어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데 소협 혼자서 어떻게 대항하겠소. 하물며......하물며......하하 악불군의 딸이 하루종일 소협의 몸에 붙어 있을텐데 소협에게 설사 하늘을 뒤엎는 재주가 있더라고 침대 위에 벼갯가에서 공격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오......]
악영산은 갑자기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둘째 사형 알고 보니 당신이었군요.]

그녀가 이렇게 말을 하자 영호충의 몸이 떨렸다.
그 늙은 사람의 말소리를 들으니 목소리는 분명치 않았으나 어투는 심히 귓가에 익었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목소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악영산이 이렇게 외치자 금방 깨달았다.
이 사람은 바로 노덕약(勞德?) 이었던 것이다. 단지 전에 악영산이 말하기를 노덕약은 복주에서 살해되었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그를 연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악영산이 앞에서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 노자의 냉랭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계집아이가 퍽이나 낌새가 빠르구나. 내 목소리를 알아 듣다니.]

그는 더이상 목소리를 가장하지 않았다. 틀림없는 노덕약이었다.
악영산은 말을 했다.

[둘째 사형 당신은 복주에서 거짓으로 살해당한 체했군요. 그렇다면......그렇다면......팔사형(八師형)은 당신이 죽인 것입니까?]

노덕약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아니다. 영백라(英白雄) 꼬마애를 내가 죽여서 무엇하겠느냐?]
악영산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아니라고 우기시는 군요. 그......그......소림자(小林子)등허리의 일검도 역시 당신이 꽂은 것입니다. 나는 줄곧 대사형을 원망하고 있었읍니다. 흥 일을 멋지게 해냈군요. 당신은 또 다른 한 노인을 죽이고 그의 얼굴을 난도질했으며 당신의 옷을 그 죽은 자의 몸에다 입혀 놓고 모든 사람이 당신이 죽은 것으로 여기게 했군요.]

노덕약은 말했다.

[당신 생각이 맞소. 만약 그렇게 해 놓지 않았다면 악불군이 어찌 나를 그렇게 쉽게 놔 줄 수 있었겠소. 그러나 임소협의 등허리의 일검은 내가 내리찍은 것은 아니오.]

악영산은 말했다.

[당신이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또 있단 말입니까?]
노덕약은 냉랭히 말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의 아버지요.]

악영산은 외쳤다.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자신이 죽였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다니 나의 아버지가 영문도 없이 어째서 내 남편의 등을 찔렀단 말입니까?]

노덕약은 말했다.

[그때 당신 아버지는 영호충의 몸에서 벽사검보를 얻었었소. 이 검보는 임가의 물건이므로 악불군이 첫번째로 죽이려 했던 이는 바로 당신 남편이오. 임평지가 이 세상에 살아있다면 당신 아버지가 어떻게 벽사검법을 연마할 수 있었겠소.]

악영산은 아무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마음에는 이 말이 퍽이나 이치에 닿는 말이라고 생가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임평지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니 도저히 믿고 싶지가 않았다.
그녀는 연신 지어낸 말이라고 몇번이고 되풀이 하더니 말했다.

[나의 아버지가 내 남편을 죽이려고 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설마 하니 일검에 그를 죽이지 못했을까요?]

임평지는 말했다.

[이 일검은 틀림없이 악불군이 찍은 것이오. 둘째 사형은 말을 잘못하지 않았소.]

악영산은 말했다.

[당신......당신......당신도 그렇게 말을 하는 겁니까?]
임평지는 말을 했다.

[악불군의 일검이 내 등에 꽂히자 반격을 할 수 없음을 알고 땅바닥에 쓰러진 후 즉시 죽은 척하고 꼼짝도 하지 않았소. 그때 나는 아직도 나를 해치려는 자가 바로 악불군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소. 그러나 혼미한 상태에서 팔사형의 목소리를 들었소. 그는 몇번이고 `사부님'하고 불렀소 팔사형이 나타나자 내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명을 내던진 격이 되었소.]

악영산은 깜짝 놀라 말했다.

[당신의 말은 팔사형도 역시 아버지가 죽였단 말이군요.]
임평지는 말했다.

[물론이오. 나는 당지 팔사형이 `사부님'하는 것을 듣고 바로 처참한 비명소리를 들었던 것이오. 그리고 나서 나는 정신을 잃고 인사불성이 되었소.]

노덕약은 말했다.

[악불군은 본래 단검을 내려 꽂으려고 하였소. 그러나 내가 암암리에 숨어서 기침을 하였소. 그러자 악불군은 더이상 머무르지 않고 즉시 방안으로 들어갔지요. 임사제, 내 기침소리가 당신의 생명을 구했다고 볼 수 있소.]

악영산은 말했다.

[만약에......만약에......나의 아버지가 정말로 당신을 해치려고 했다면 그후로......그후로 기회가 많았읍니다. 그런데 그는 어찌해서 손을 쓰지 않았을까요?]

임평지는 냉랭히 말했다.

[나는그뒤로 내 자신에 대해서 방비를 하였소. 그에세 기회를 주지 않았소. 내가 하루종일 당신과 함께 있었기에 나를 죽이려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오.]

악영산은 울면서 말했다.

[알고보니......알고보니......당신이 나를 맞이한 것은 다른 사람의 이목을 숨기기 위해서였고. 또......또...... 나를 하나의 방패로 여기고 있었군요.]

임평지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노덕약을 향해 말을 했다.

[노형, 당신은 언제 좌장문과 사귀었소?]

노덕약은 말을 했다.

[좌장문은 나의 은사이시오. 나는 그 어르신의 세번째 제자이오.]

임평지는 말했다.

[알고보니 당신은 숭산파 문하로 들어갔군요.]

노덕약은 말했다.

[숭산문하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나는 줄곧 숭산문하의 사람이었소. 단지, 은사의 명을 받들어 화산에 들어갔고 화산에 들어간 것은 바로 악불군의 무공을 관찰하고 화산파의 여러 동태를 살피려고 하였던 것이오.]

영호충은 무엇인가 크게 깨달았다. 노덕약이 상당한 무예를 가지고 화산파에 들어왔다는 것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연기하고 보여준 무공은 잡스럽고 평범하여 운귀(雲貴)일대에서 배운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뜻밖에 숭산의 제자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알고 보니 좌냉선은 의도적으로 네파를 합병하려 오랫동안 계획을 짰으며 그것도 오래 전부터 계획을 실행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덕약은 육후아를 죽이고 자하신공의 비보(秘譜)를 훔쳐갔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더이상 따질 필요도 없었다. 사부는 신중한 사람이었지만, 그런 술수에 속아 넘어갔던 것이다.
임평지는 골똘하게 한참 생각하더니 말을 했다.

[그렇게 되었군요. 노형은 그 자하신공비급과 벽사검보를 화산의 문중에서 숭산으로 가져가서 좌장문이 검법을 배우도록 했구료. 정말로 크나큰 공로를 했읍니다.]

영호충과 영영은 암암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생각하였다.

(좌냉선과 노덕약은 그래서 벽사검법을 행할 줄 아는구나. 알고보니 다 이유가 있었어. 임평지의 머리도 퍽이나 빨리 돌아가는구나.)

노덕약은 한이 맺혀서 말을 했다.

[일이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임 동생에게 속일 필요가 있겠소. 당신과 나 두 사람 그리고 내 은사까지도 이 악독한 악불군놈에게 걸려들었소. 이 자는 악독하기 짝이 없는 놈이오. 우리들 모두는 그의 악독한 계략에 걸려들었소.]

임평지는 말했다.

[흠, 나도 알 것 같군요. 노형이 훔쳐간 벽사검보는 악불군이 이미 장난을 해놓은 것이었군요. 그래서 좌장문과 노형이 사용하는 벽사검법이 잘못되었군요.]

노덕약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알고 보니 그 옛날 내가 화산파 문하에 들어갔을 때 악불군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단지 내색을 하지 않고 암암리에 나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던 거요. 악불군이 적은 벽사검보에 기록되 있는 검법은 진짜인 것처럼 보인 가짜였소. 더우기 내공의 법문이 빠져 있었소. 그는 고의로 그 가짜검보를 나에게 훔쳐가도록 했고 나와내 은사가 그 검법은 온전하게 연마하지 못하도록 하였소. 생사의 결전을 할 때 그는 나의 은사에게 그런 검법을 쓰도록 유도하였고, 그래서 진짜의 검법으로 가짜검법을 이겼던 것이오. 우리는 꼭두각시가 되었고 그는 우리를 조정한 꼴이 되었소. 그렇지 않았다면 오악파의 장문인 자리가 어찌하여 그의 손에 떨어질 수 있단 말이오?]

임평지는 탄식하며 말했다.

[악불군의 간악한 흉계에 당신과 내가 모두 빠져버리고 말았군요.]

노덕약은 말했다.

[나의 은사님은 사물의 이치를 잘 아는 사람이오. 비록 내가 그 큰일을 망쳐놓았지만 단한마디도 나를 책망하지 않았소. 그러나 제자인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소? 내가 설사 펄펄 끓는 기름 속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악불군 같은 간악한 놈을 죽이고 말겠소.]

이 몇마디의 어투는 심히 격분하였고 마음속으로 그 원한이 깊이 사무쳐 있는 듯하였다.
임평지는 음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노덕약은 또 말을 하였다.

[나의 은사는 두눈이 멀어 지금 숭산의 서봉(西峯)에 은거하고 계시오. 서봉에는 또 다른 눈이 먼 사람이 열분이나 있소. 모두 악불군과 영호충에게 당한 사람들이오. 임형제는 나를 따라서 나의 은사를 찾아뵙도록 합시다. 당신은 바로 복주 임가의 벽사검문(벽邪劍門)의 유일한 전승자이니 바로 벽사검문의 장문이오. 나의 은사는 틀림없이 예로써 대할 것이오. 당신의 두눈이 치료가 된다면 그 이상 좋을게 없겠고 그렇지 않다면 나와 나의 은사와 함께 은거하며 복수를 계획한다면 그게 좋지 않겠소?]

이 말에 임평지의 마음이 동하였다. 내심 자기의 두눈이 독물에 오염되어 다시 회복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소위 치료를 한다는 말을 단지 사탕발림에 불과하였다. 자기와 좌냉선 두사람은 모두 실명하여 동병상련의 처지이고 똑같은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에 같이 지낸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평소 좌냉선의 수단이 냉혹한 것을 알고 있으므로, 갑자기 자기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자 반드시 또 다른 음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말하였다.

[좌장문의 호의에 제가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될까요? 노형께서 먼저 귀뜸이나 해주시지 않겠읍니까?]

노덕약은 하하하 웃더니 말을 했다.

[임형제는 분명한 사람이구료. 모두가 앞으로는 같이 협력하고 한마음이 되어야 할테니 내 자세히 말하겠소. 내가 악불군에게서 가짜 검보를 가져다가 나와 내 스승이 그 함정에 빠진후 지금까지 나는 계속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소. 나는 임평지가 신기를 펼치고 기묘하지 짝이 없는 검법으로 목고봉을 죽이고 여창해를 살해하고 청성파 조무래기들을 모두 쓸어버리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는데 그것은 벽사검보의 진수이오. 그래서 나는 매우 감복하고 또한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지......]

임평지는 그뜻을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말하였다.

[노형의 말씀은 나보고 그 벽사검보의 진본을 가져다가 당신과 당신 스승에게 보여주란 말이지요?]

노덕약은 말을 했다.

[그것은 임형제의 집안에서 내려오는 비본이므로 다른 사람이 보아서는 안 되겠지요. 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피를 마시고 동맹을 맺고 협력해서 악불군은 죽여야 합니다. 임사제가 두눈 멀쩡하고 젊고 힘이 있다면 악불군을 두려워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오늘의 상황은 오로지 나의 은사와 내가 벽사검법을 배워서 세사람이 힘을 합해야만 비로소 악불군을 죽일 희망을 가질 수가 있소. 그러니 임형제는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임평지는 내심 생각하였다. 자기 두눈이 이미 멀고 실로 혼자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대답하지 않는다면 노덕약은 즉시 완력을 써서 자기와 악영산 두 사람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 노덕약의 이 계획이 진심에서 나왔다면 자기에게 피해보다 이익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하였다.

[좌장문과 노형이 저와 동맹을 맺기를 원하시니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군요. 저의 집안이 망하고 내눈이 실명이 되어 이렇게 병신이 된 것은 여창해가 발단이 되었지만 악불군의 음모 또한 원인의 하나였읍니다. 악불군을 죽일 마음은 저 역시 당신이나 당신의 스승과 똑같습니다. 당신과 내가 결맹을 맺은 이상 벽사검보를 어찌 혼자서 알고만 있겠읍니까? 응당 당신과 스승님에게 보여드려야 되겠지요.]

노덕약은 크게 기뻐서 말했다.

[임형제는 깨끗하고 도량이 큰 사람이구료. 나의 스승께서 그 벽사검보의 진결을 보시면 틀림없이 감격해 하실 것이고 앞으로 임형제는 영원히 숭산파의 귀빈이 될 것이오. 당신과 나는 한수족처럼 더이상 서로를 굳이 구분하지 말도록 합시다.]

임평지는 말을 했다.

[정말 감사하군요. 저는 노형을 따라서 숭산에 들어간 뒤에 즉시 그 검보의 진결을 한자도 빠짐없이 모두 적어 놓겠읍니다.]
노덕약은 말을 했다.

[적어놓다니?]

임평지는 말을 했다.

[그렇습니다. 노형이 모르는 것이 있읍니다. 이 검보의 진결은 본시 우리집의 증조부인 원도공께서 장삼에 적어놓았읍니다. 이 가사 장삼은 악불군이 훔쳐가 그는 비로소 우리집의 검보를 엿볼수가 있었읍니다. 나중에 우연한 기회에 이 가사 장삼은 내 수중에 떨어졌지요. 저는 악불군에게 발견될까 염려되어 그 검보를 모두 달달 외어 버림 뒤에 즉시 그 가사 장삼을 없애 버렸읍니다. 만일 그 가사 장삼을 내 몸에 숨겨놓고 있었다면 현처(賢妻)가 함께 있는데 이 임가 놈이 어찌 오늘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겠소?]

악영산은 옆에서 듣고만 있을 뿐 줄곧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이렇듯이 풍자를 하자 또 울기 시작하면서 말을 했다.

[당신......당신이......]

노덕약은 수레에서 그들 부부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임평지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말했다.

[거 참 잘됐구만. 우리 함께 숭산에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소?]
임평지는 말했다.

[좋습니다.]

노덕약은 말을 했다.

[숭산에 가려고 하면 이 수레를 버리고 말을 타고 작은 길로 바꾸어서 가야 하오. 그렇지 않고 도중에 악불군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의 적수도 될 수 없소.]

그는 약간 머리를 옆으로 하더니 악영산에게 물어보았다.

[소사매, 소사매는 아버지를 도와주겠소? 아니면 남편을 도와주겠소?]

악영산은 울음을 거두더니 말을 했다.

[나는 둘 다 도와주지 않겠어요. 나는......나는 팔자가 기구한 사람입니다. 내일 머리를 깎고 출가하겠읍니다. 아버지도 남편도 앞으로는 절대로 만나지 않겠어요.]

임평지는 냉랭하게 말을 했다.

[당신이 항산에 가서 출가를 하여 비구니가 된다면 그것은 당신이 바라던 바요.]

악영산은 화가 나서 말을 했다.

[임평지, 당신이 그 옛날 갈데가 없을 때 나의 아버지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당신은 이미 목고봉에게 죽었을 것인데, 어찌 오늘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읍니까?설사 나의 아버지가 당신에게 못할 짓을 했다 해도 나 악영산은 절대로 당신에게 책잡힐 일을 한 적이 없읍니다. 당신의 말을 모두 무슨 뜻입니까?]

임평지는 말을 했다.

[무슨 뜻이냐고? 나는 좌장문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어야만해.]
목소리는 극히 흉악하고 매서웠다. 갑자기 악영산은 악 하고 외마디 비명소리를 질렀다. 영호충과 영영은 동시에 외쳤다.

[큰일났구나.]

수수밭에서 몸을 날려 나왔다. 영호충은 크게 외쳤다.

[임평지, 소사매를 해치지 말아라!]

노덕약이 지금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은 바로 악불군과 영호충 두 사람이었다. 영호충의 목소리를 듣자 혼비백산이 되어 즉시 임평지의 좌측팔을 잡고 청성제자가 타고 온 한필의 말 위에 뛰어오르더니 두다리에 힘을 주고 말을 달려 미친 듯이 도망쳤다.
영호충은 악영산의 안위가 걱정되어 적을 쫓을 여유가 없었다.
악영산은 수레에 쓰러져 있었고 가슴에는 한자루의 장검이 꽃혀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숨소리를 들어보니 이미 숨이 가늘어졌다.
영호충은 크게 외쳤다.

[소사매, 소사매!]

악영산은 말을 했다.

[음, 대사형입니까?]

영호충은 기뻐서 말했다.

[바로......바로 나요.]

손을 내밀어 검을 뽑으려 했다. 영영은 급히 손을 내밀어 막더니 말을 했다.

[뽑으면 안 됩니다.]

영호충은 이미 그 검이 반척 정도 들어가 치명상이 되어 있음을 보았다. 이 검을 뽑아낸다면 즉시 그녀는 숨이 끊어지고 말것이다. 눈앞에서 구할 수 없음을 보자 마음속에 측은한 생각이 들어 울음이 나왔다. 그리고 외쳤다.

[소......소사매!]

악영산은 말을 했다.

[대사형 당신이 내 옆에 있으니 매우 좋습니다. 임평지......임평지는 갔읍니까?]

영호충은 입술을 깨물며 울면서 말을 했다.

[안심하시오. 내가 틀림없이 그를 죽여 당신의 복수를 해줄 것이오.]

악영산은 말을 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의 두눈이 안 보이기 때문에 당신이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그는 막을 수가 없을 거예요. 난......
난......나는 어머니 있는데로 가고 싶습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좋소, 내가 당신을 사모님께 데려다 주겠소.]

영영은 그의 말소리가 갈수록 작아지고 생명이 경각에 달여 있음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악영산은 말을 했다.

[대사형, 당신은 정말로 나에게 잘 해주었읍니다. 난......나는 정말 미안합니다. 난......나는 곧 죽을 것이에요.]

영호충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했다.

[당신은 죽지 않을 것이오. 우리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당신을 낫게 할 것이오.]

악영산은 말을 했다.

[난......난 지금 아파요. 너무나 아파요. 대사형, 내게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당신......당신은 절대로 내 말에 대답해주세요.]
영호충은 그녀의 좌측손을 꼭뒤고 말을 했다.

[말하시오, 말하시오. 내가 틀림없이 승낙하리다.]

악영산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했다.

[당신은......당신은 승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것은 너무나 당신을 위축시킬 것입니다.]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졌고 호흡도 갈수룩 미약해졌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틀림없이 승낙을 할 것이니 말하시오.]

악영산은 말을 했다.

[금방 무엇이라고 하셨읍니까?]

영호충은 말을 했다.

[틀림없이 승낙을 할 것이니 당신이 내게 무슨 일을 하라면 나는 틀림없이 해낼 것입니다.]

악영산은 말을 했다.

[대사형, 나의 남편......임평지......그는......그는 눈이 멀었읍니다......너무 불쌍합니다......당신은 아시겠지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알고 있소. 물론 알고말고.]

악영산은 말을 했다.

[그는 외톨이입니다. 모두들 그를 적대시 합니다. 대사형, 내가 죽고 난 후에 당신이 있는 힘을 다하여 그를 보살펴 주세요. 절대로......절대로 다른 사람이 그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영호충은 멈칫하였다. 임평지가 아내를 죽였는데 악영산은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으면서도 그를 잊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너무나 뜻밖이었다.
영호충은 이 때 임평지를 잡아다가 천갈래 만갈래 짝짝 찢어놓고 싶었다. 앞으로 그를 용서해준다는 자체도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그 악당을 돌봐 줄 수가 있겠는가?
악영산은 천천히 말을 했다.

[대사형, 임평지......임평지가 정말로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나의 아버지가 무서워서......그래서 그는 좌냉선에게 몸을 의탁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별수없이......별수없이 그래서 나를 찔렀던 것이에요.]

영호충은 화가 나서 말을 했다.

[자기만을 알고 배은망덕한 악당을 당신은......당신은 아직도 생각하고 있군요.]

악영산은 말을 했다.

[그는......그는 고의로 나를 죽인 것은 아닙니다. 단지......실수를 했을 뿐이지요. 대사형......제가 부탁을 합니다. 당신이 그를 보살펴 주세요.]

달빛이 비스듬하게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녀의 눈빛은 흐트러지고 아무런 표정이 없었으며 한 쌍의 눈동자는 평상시처럼 맑지 않았다. 눈처럼 하얀 볼에는 몇방울의 피가 묻어 있었고 얼굴에는 간절히 부탁을 하는 표정이었다.
영호충은 과거 십여년 전 일을 회상하였다. 소사매와 화산의 여러 곳을 손잡고 놀러 다녔었다. 언제인가 그녀가 자기에게 무슨 일을 해달라고 요구를 했을 때 얼굴에는 이와 똑같은 표정을 띠었던 것이다. 어떤 어려운 일을 부탁하든 간에 자기의 마음을 그르치는 일이 있더라도 한번도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지금 그녀의 갈망하는 표정에는 애틋하고 슬픈 표정이 충만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기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어 영호충에게 부탁할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최후의 부탁이며 역시 제일 긴박한 부탁인 것이다. 삽시간에 영호충으로는 무궁무진한 피해를 당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지않은 많은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악영산의 애절한 표정을 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그렇게 하리다, 내가 그렇게 하리다. 마음을 놓으시오.]
영영은 옆에서 듣다가 참을 수 없어 끼어들었다.

[당신......당신은 어째서 그런 승낙을 하시는 겁니까?]
악영산은 영호충의 손을 꼭 잡고 말을 했다.

[대사형 정말......정말로 감사합니다. 난, 나는 마음이 놓이네요. 마음이 놓여요.]

그녀의 눈에 갑자기 광채가 나더니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영호충은 그녀의 이러한 표정을 보고 내심 생각하였다.

(그녀의 이러한 흡족한 표정을 볼 수만 있다면 아무이 어려운 일일지라도 그 어려움은 감당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갑자기 악영산은 가볍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영호충의 가슴은 망치로 얻어 맞은 듯하였다. 그녀가 부른 것은 바로 복건(福建)의 노래였다. 그녀의 노래 속에서 산에 차잎을 따러가자는 곡조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날 사과애에서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녀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이때 또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틀림없이 그날 임평지와 화산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이 맞아 달콤했었던 추억이 생각났기 때문인것 같았다. 노래 소리가 갈수룩 작아지더니 점점 그녀는 영호충의 손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 결국 손바닥이 펼쳐지더니 눈을 감았다. 노래소리도 멈추고 호흡소리도 역시 멈추었다.
영호충은 마음이 가라앉은 것 같았고 마치 갑자기 모든 세계가 죽은 것 같았다. 큰 소리로 울려고 했으나 울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두손을 내밀어 악영산의 몸을 껴안고 가볍게 외쳤다.

[소사매, 소사매, 무서워하지 마시오. 내가 당신을 안고 당신의 어머니에게 데려다 주겠소.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을 못살게 굴지는 않을 것이오.]

영영은 영호충의 등 뒤에서 빨갛게 물둘어오는 것을 보았다. 상처가 다시 터진 것이다. 새빨간 피가 계속 배어 나오며 옷에 핏자국이 갈수룩 커졌다. 그러나 지금 어찌 그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영호충은 악영산의 시신을 안고 무겁게 몇십걸음을 걷더니 말했다.

[소사매, 무서워하지 마시오. 무서워하지 마시오. 내가 당신을 데리고 사모님에게 가겠소.]

갑자기 두 무릎이 꺽어지더니 털썩 땅바닥에 꼬꾸라져 그로부터 정신을 잃었다. 혼미한 가운데 귓가에는 덩그렁 덩그렁 맑은 금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금소리가 되풀이되더니 곡조는 심히 귀에 익었다. 들을수록 말할 수 없는 편안한 감이 들었다. 그는 전신이 힘이 없고 두눈꺼풀조차도 뜨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영원히 이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금소리는 과연 끊이지 않고 계속 울렸다.
한참 듣고 있자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두번째 잠에서 깨어 났을 때 여전히 맑고 부르러운 금소리가 들려왔고 향기로운 꽃내음을 맡을 수가 있었다. 그가 천천히 눈을 떠보니 눈앞에는 온통 꽃송이들이었다. 빨간꽃, 하얀꽃, 노란꽃 자주꽃 온갖 꽃들이 눈앞에 가득 쌓여 있었다. 내심 생각하기를, (이곳은 어디인가?)

금의 몇대목을 듣고는 바로 영영이 자주 연주하는 청심보안주(淸心普安呪)라는것을 알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영영의 뒷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땅바닥에 앉아서 금을 타고 있었다. 그는 주위를 휘둘러보고 어렴풋이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햇빛이 밖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동굴속 부드러운 풀더미에 드러누워 있는 것 같았다.
영호충은 일어나 앉으려고 하였다. 몸을 받치고 있던 풀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금소리가 갑자기 멈추더니 영영이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는 기쁜빛이 역력하였다. 그녀는 천천히 영호충의 몸 가까이 다가와 앉더니 온 얼굴에는사랑스러움과 근심의 빛으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순식간에 영호충의 마음은 행복감으로 충만되었다. 악영산이 비참하게 죽자 정신을 잃어 영영이 자기를 이 동굴로 데리고 왔음을 알았다. 갑자기 내심 괴로운 감정이 일어났다. 그러나 점점 사라졌다. 영영의 눈빛에서 무한히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두사람은 서로를 쳐다보고 한참동안 아무말이 없었다.
영호충은 좌측손을 내밀어 천천히 영영의 손잔등을 쓰다듬었다.
갑자기 꽃향기 속에 고기굽는 냄시를 맡을 수가 있었다. 영영이 한개의 나뭇가지를 들자 나뭇가지에는 구워서 익힌 개구리가 꿰어 있었다.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또 새까맣게 탔군요.]

영호충은 크게 웃었다. 두 사람은 그날 개울가에서 개구리를 잡아 구워먹던 정경을 생각했던 것이다.

영호충은 크게 웃었다. 두 사람은 그날 개울가에서 개구리를 잡아 구워먹던 정경을 생각했던 것이다.
맨처음 두 사람이 개구리 고기를 구워먹을 때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변고가 있었으나 끝끝내 두 사람은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있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몇번 웃더니 마음속이 시큰해져서 또 눈물을 떨어뜨렸다. 영영은 그를 부축하여 앉히고는 밖의 무덤을 가리키며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악소저를 저곳에다 묻어 두었읍니다.]

영호충은 눈물을 머금고 말을 했다.

[정말......정말로 감사하군요.]

영영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감사하다는 말씀은 마세요. 각자 모두는 인연이 있고 자기 나름대로 업보가 있는 것입니다.]

영호충은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어 말했다.

[내가 소사매를 끝까지 잊지 못하고 있구료. 당신은 너무 탓하지 마시오.]

영영은 말했다.

[나는 물론 당신을 탓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 불량하고 박정한 사람이라면 나는 이렇게까지 당신을 중히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내가 맨처음에......맨처음 당신에게 마음이 기울어진 것은 바로 그 낙양녹죽항에서 발을 사이에 두고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소사매를 사랑하게 되었는가를 말했을 때부터였읍니다. 악소저는 원래가 좋은 아가씨였지요. 그녀는......그런데 그녀는 당신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어요. 만약 당신이 소사매와 함께 크지 않았다면 아마 그녀는 당신을 보자마자 좋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한참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소사매는 나의 사부님을 존경하고 있었지요.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는 그녀의 아버지처럼 단정하고 엄숙하여 말이 없는 남자입니다. 나는 단지 그녀의 친구였을 뿐입니다. 그녀는 지금까지......지금까지 나를 그리 중히 여기지 않았어요.]

영영은 말을 했다.

[어쩌면 당신 말이 맞는지도 모르지요. 마치 임평지는 당신의 사부처럼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은 꼴을 하고 있었지만온몸에는 사악한 생각뿐이었읍니다.]

영호충은 탄식을 하며 말을 했다.

[소사매는 죽을 때까지도 임평지가 그녀를 죽이려했다는 것을 정말로 믿지 않았고 여전히 그를 사랑했읍니다. 그건......그건 좋은 일이오. 그녀가 편안하게 안심을 하고 죽을 수가 있었으니 말이오. 그녀의 무덤을 보고 싶읍니다.]

영영은 그를 부축하여 굴 밖으로 나갔다. 영호충은 그 무덤이 돌로 싸여 있었지만 돌이 잘 정돈되어 있었고, 무덤 주위에 어여쁜 꽃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영영이 정성을 쏟았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깊이 감격하였다.
무덤 앞에는 가지와 잎파리가 쳐진 나무줄기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그 나무에는 검끝으로 조각한 화산여협 악영산소저의 묘라는 몇글자가 씌여져 있었다.
영호충은 측은한 생각이 들어 눈물을 흘리며 말을 했다.

[소사매는 어쩌면 다른 사람이 그녀를 임 부인이라고 불러주기를 좋아할지도 모르지요.]

영영은 말했다.

[임평지가 이렇듯이 무정하고 박정한데 악소저의 혼령이 지하에 있다면 그의 악독한 마음을 잘 알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아마 임 부인이 되는 것을 싫어할 것입니다.]

내심 생각하기를, (당신은 그녀와 임평지와의 관계는 부부의 이름만 있을 뿐 진정한 부부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말도 일리가 있읍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산봉우리가 둘러져 있었고 자기들이 있는 곳은 숲이 울창하고 사방에는 갖가지 꽃들이 자라고 가지마다 새들이 지저귀는 매우 조용하고 아름다운 장소였다.
영영은 말을 했다.

[우리 이곳에서 며칠간 더 묵어요. 묵으면서상처 치료도 하고 무덤도 지킬겸 말이에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그게 좋겠읍니다. 소사매가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있다면, 그녀의 넋은 외로워할 것입니다.]

영영은 그의 이와 같은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계곡에서 묵었다. 퍽이나 조용하고 유유자작하였다.
영호충이 받은 상처는 외상이었고, 항산파의 치료약은 명약이었으며 또환 내공이 워낙 깊은 사람이라 이십여일 동안 정양을 하자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 영영은 날마다 그에게 금을 가르쳐주었다.
영호충은 매우 총명하여 열심히 연습을 하니 금을 타는 솜씨는 심히 놀랍게 발전하였다.
이날은 새벽에 일어나 악영산의 무덤을 살펴보니 무덤에는 몇개의 새파란 싹이 돋아났다. 영호충은 멍청히 이 몇개의 새싹을 바라보더니 내심 생각하였다.

(소사매의 무덤에 풀이 돋아났구나 그녀가 무덤속에서 알고나있을까?)

갑자기 등뒤에서 청아한 퉁소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영영이 바위위에 걸터앉아 퉁소를 불고 있었다. 연주하는 것은 바로 청심보안주였다. 그가 걸어가보니 그 퉁소는 새로 만든 것이었다. 영영은 검으로 대나무가지를 쳐내고 구멍을 뚫어 음을 맞춘 다음에 퉁소를 하나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요금(瑤琴)을 가져다가 목에 얹더니 그녀의 곡조를 따라서 함께 연주하였다. 점점 마음이 곡속으로 빠져들며 아무런 잡념도 없었다. 한곡의 연주를 마치자 정신이 상쾌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함께 웃었다.
영영은 말했다.

[이 청심보안주의 곡은 이미 당신이 깊숙하게 익혔읍니다. 우리가 오늘 부터 그 소오강호곡(笑傲江湖曲)을 연습하는게 어떻습니까?]

영호충은말했다.

[이 곡은 매우 연주하기 어려운데 어느 세월에 당신과 똑같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영영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이 곳은 너무아 심오해서 나도 모르는 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 곡은 또 특이한 곳이 있는데 왜 그러한가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풀 수가 없읍니다. 만약 두 사람이 함께 연구를 하고 서로 탐구를 한다면 혼자서 알아보는 것보다는 더욱 빨리 진보를 할 것입니다.]

영호충은 박수를 치며 말을 했다.

[맞소, 그날 내가 형산파 유사숙과 마......일월교의 곡장로가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는데, 금과 퉁소가 함깨 어울려 소리가 나니 그 소리야말로 아름답기가 짝이 없었읍니다. 유사숙의 말을 빌리자면 이 곡은 원래 금과 퉁소가 합주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영영은 말을 했다.

[당신이 금을 타고 나는 퉁소를 불며 천천히 한귀절 한귀절 연습합시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단지 이것은 퉁소이고 슬(瑟)이 아니니 금슬이 서로 어울린다면 그게 좋겠읍니다.]

영영은 얼굴이 빨개지며 말을 했다.

[이 며칠동안 당신의 그 헛소리를 듣지 않아서 당신의 생각이 좀 바뀌었는가 생각했는데 옛날과 똑같군요.]

영호충은 귀신 얼굴을 흉내 내었다. 영영의 성격은 부끄러움을 잘 타고 비록 아무도 없는 빈 계곡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마주하고 있지만 자기에게 조금도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허락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 계속해서 농담을 한다면 그녀는 자기를 아는 체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즉시 가까이 다가가 그녀가 펼친 악보를 쳐다보았다. 조용히 그녀의 해석을 듣고 타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금타는 법은 원래가 쉽지 않은데 더우기 소오강호곡은 심오하고 변화가 복잡하여 심히 어려웠다. 그러나 영호충은 천성이 총명하고 훌륭한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그날 낙양녹죽항에서 이미 금타는 법을 배우고 그 뒤로 틈이 날 때마다 연습을 하여 시간이 지나자 실려기 많이 향상되었던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두 사람이 합주를 하자 처음에는 호흡이 잘 맞지 않았으나 천천히 어느 수준에 도달하였다. 비록 곡장로와 유정풍이 합주하는 묘미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거의 심오한 경지에 다다랐다.
그후로 십여일 동안 두 사람은 얼굴을 맞대고 금과 퉁소를 합주하였다. 이 푸른 소나무가 에워싼 계곡은 마치 딴 세상 같았다. 강호의 그 피비린내나는 광경이 잊혀져가는 것을 두 사람은 느꼈다.
만약 이 계곡에서 한평생을 살 수 있고 강호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 말려들지 않는다면 행복하리라고 느꼈던 것이다.
이날 오후 영호충은 영영과 한 반시간 동안 합주를 하였다. 갑자기 내식이 불순하고 진정할 수가 없으며 계속해서 잘못 연주하였다. 내심 초조하고 손가락이 더욱 흐트러졌다.
영영은 말을 했다.

[피곤하십니까? 좀 쉬도록 하시지요.]

영호충은 말을 했다.

[피곤하지 않는데 어찌된 일인지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구료. 내가 가서 복숭아를 따오겠소. 저녁에 다시 금을 타는 연습을 합시다.]

영영은 말을 했다.

[좋습니다. 그러나 멀리가지는 마세요.]

영호충은 산계곡의 동남쪽에 많은 복숭아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이미 과일이 열리는 때였으므로 풀을 해치고 나뭇가지를 비틀며 팔구리정도 걸어가서 복숭아나무 아래에 이르렀다. 몸을 날려 복숭아 두개를 땄다. 두번째 몸을 날렸을 때 세개의 복숭아를 땄다. 복숭아는 이미 새빨갛게 익었으며 나무 아래에도 적지 않게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며칠 안으로 모두 나무에서 떨어져 썩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즉시 단숨에 열 몇개를 따고 내심 생각하였다.

(영영과 복숭아를 먹고 나서 복숭아씨를 산계곡 사방에 심어야 되겠다. 그러면 몇년 후에는 복숭아가 자라서 이 계곡에는 복숭아 꽃이 만발하여 참 아름답겠지.)

갑자기 도곡육선 생각이 들었다.

(이 산계곡의 주인인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어째서 복숭아계곡 즉 도곡(桃谷)이라고 이름짓지 않았을까? 나와 영영이 도곡이선(桃谷二仙)으로 변했구나. 앞으로 나와 영영이 여섯명의 아들을 낳으면 작은 도곡육선이 아니겠는가? 그 작은 도곡육선이 그 늙은 도곡육선처럼 엉뚱한 짓만 한다면 큰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하며 소리를 내어 웃으려고 하였다.
갑자기 먼 숲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은 즉시 몸을 엎드려 숲속으로 숨고 내심 생각하였다.

(매일 개구리 고기와 과일만 먹으니 너무 물렸다. 소리를 들어보니 짐승인 것 같은데 만약에 한마리의 영양이나 들사슴을 잡을 수 있다면 영영을 깜짝 놀라게 해줄 수 있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두명이 걸어가는 소리였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이 황량한 계곡에 어떻게 사람이 있는가? 틀림없이 영영과 나를 찾으러 온것일게다.)

바로 이때 한명의 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잘못 보지는 않았겠지? 악불군 그자가 틀림없이 이곳으로 왔느냐?]

영호충은 더욱 의아하였다.

(그들은 나의 사부님을 쫓아왔구나. 그들은 누구인가?)
또 다른 한명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향주(史香主), 악불군의 딸과 사위가 갑자기 이 일대에서 실종이 되어 이 부근을 샅샅이 살펴보았읍니다. 그러나 이 부근 가까운 읍이나 부두에서 이들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읍니다. 틀림없이 이 일대의 산계곡에 숨어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을 것입니다. 악불군은 아마 언젠가는 찾으러 올 것입니다.]

영호충은 내심 시큰해왔다. 그래서 깊이 생각하기를, (알고 보니 그들은 소사매가 상처 입은 것으로만 알고 있을 뿐 그녀가 죽은 것을 모르고 있구나. 아마 앞으로도 저들은 그녀의 행방을 찾을 것이다. 특히 사부님과 사모님은 더욱 찾으실 것이다.
만약 이 산계곡이 매우 외떨어지지 않았다면 벌써 이곳까지 찾으러왔을 것이다.)

그 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너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악불군이 이곳에 올 것이다. 우리는 산계곡 입구에서 매복을 해야겠구나.]
목소리가 낮은 사람이 말을 했다.

[설사 악불군이 오지 않더라도 우리들이 함정을 잘 파놓고 그를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 나이 먹은 사람은 손바닥을 툭툭 치더니 말을 했다.

[그것은 실로 좋은 방법이다. 설형제(薛兄弟)는 겉보기와는 달리 지혜롭고 한가닥이 들어 있구만.]

설씨 성을 가진 사람은 웃으면서 말을 했다.

[갈장로(葛長老)께서 칭찬이 과분하시군요. 이 모두가 어르신께서 어여쁘게 봐주신 덕택입니다. 어르신께서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시키십시오. 저는 힘껏 할 것입니다. 어르신의 은덕에 보답할 것 입니다.]

영호충은 내심 무엇인가 깨달았다.

(알고 보니 일월신교의 사람들이구나. 영영의 아랫사람들이군.
그들이 멀리 가 나와 영영에게 훼방이나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생각하였다.

(지금 사부님의 무공이 크게 진보되어 그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 해도 절대로 사부님의 적수는 아니다. 더우기 사모님이 영리하고 기민한 것은 무림중에서 그 어느 누구도 따를 자가 없다. 그들의 졸책으로 나의 사부님을 빠져들도록 유도하는데 그건 정말로 공자 앞에서 문자쓰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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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 제 7 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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